과학이란 무엇인가? - 2
: 물질계를 다루는 과학은 기원과는 무관하다.
유종호
4. 물질계를 다루는 과학은 기원과는 무관하다.
물질적 과학이 개입할 수 없는 한 가지 분야가 있는데, 그것은 모든 물질들의 기원이다. 그 이유는 물질이 존재하기 이전에는 실험이나 시험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진정한 과학자에게 최초의 기원, 즉 모든 것의 시초를 설명해보라고 제안을 한다면, 그는 종교와 철학으로 눈길을 돌리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요컨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즉 과학이란 물질의 기원에 관여하지 않는다. 과학은 있는 그대로의 물질을 다루는 것이다. 물질의 기원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이나 철학의 문제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초월적인 생각이 아니고, 과학적으로 기원을 설명해 보려고 노력하는 가설과 이론이기 때문에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초월적인 것은 증명이 가능한 가설과 이론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이전의 것(물질 이전에 존재한 것)과 초자연적인 것에 관하여 알고 싶어 한다. 이것에 관한 지식이나 과학 혹은 진리를 얻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의 감각이 포착할 수 있는 자연적 물질계를 넘어서야 한다. 인간은 그것이 어디에서 드러나든지 간에 자연 이전, 또는 초자연적으로 계시되는 것에서도 진리를 추구해야한다. 즉 자연에 존재하는 것에서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으로 계시는 것에서도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초자연적인 계시는 기원에 관한 진리와 지식을 추구할 때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괜찮다면 그것을 초자연적 과학이라고 불러보자.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모든 것의 기원으로 간주할 때 진화론자들은 거만한 태도로 질문한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을 만들었는가?” 그러나 기독교인은 반문한다. “누가 물질을 만들었는가?” 과학적 법칙에 따르면 물질은 무에서 생길 수 없기 때문에 자연적인 물질을 창조했던 초자연적 힘, 혹은 존재가 틀림없이 존재한다. 존재하는 물질적 차원을 넘어서는 설계자, 혹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이 확실하다.
과학(시험된 지식)과 성경의 진리(자연적인 동시에 초자연적인 것)는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 성경의 진리는 과학에 의해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왔다. 성경의 초자연적 진리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피조물에서도 확인되었다. 롬1:20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
완벽하고 진실된 과학은 창조주뿐만 아니라, 창조주가 자연과 물질에 부여한 자연 법칙에 대한 초자연적인 지식을 요구한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이것을 선포했다. 라마르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자연은 창조주의 전지전능한 뜻을 드러낸 멋진 산물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 어디에서나 표현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법칙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되었기 때문이다.”
매들러(Maedler)는『천문학』에서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진정한 자연주의자는 무신론자일 수가 없다. 자연의 법칙과 하나님의 법칙은 하나이고 동일하다.”
왕립 천문학회의 창시자이며 회장인 에드워드 몬더(Edward Maund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은 모든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의 토대이다.”
캠브리지 대학의 유명한 과학자인 J. 크럭 맥스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 능력이 미치는 한 모든 이론을 검사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이론은 그것을 작동하게 만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발견했다.”
5. 자연법칙을 다루는 과학조차도 그 작용과 보고서를 확신할 수 없다.
과학 보고서에는 종종 “과학은 믿어진다....또는 과학은 보여주었다....또는 과학은 증명하였다.”와 같은 구절을 사용한다. 이와 같은 구절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비판을 하지 못하도록하는 보증서로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과학이 그렇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라고 잘못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은 일종의 비판할 수 없는 성역이 되어왔다.
그러나 1982년 10월 7일 자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에 나온 논평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보다 개방된 시각을 제시했다. 그 논평에서는 워싱턴 D. C.에 있는 가톨릭 대학 소강당에서 열린 강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갈릴레오를 괴롭혔던 신앙과 지식 사이에 있었던 똑 같은 균열이 생겨났다.... 하버드의 천문학자인 오웬 징거리치(Owen Gingerich)는 갈릴레오의 고민에 대해 말하면서 강연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징거리치는 다소 즉흥적인 투로 말하기를, ”오늘날 과학에는 그러한 믿음은 없고 개연성만이 존재합니다“. 청중 가운데 아주 감성적인 사람이 일어섰다.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소. 당신이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없소.”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연구한 대상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는 사실과 천문학이 별의 정체와 별의 운행에 대하여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당신은 정말로 그것이 모두 틀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라고 그 사람은 답변을 요구했다. 징거리치는 “그렇다” 라고 대답했다. 일예로서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실제의 대상으로서 원자들을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징거리치의 설명에 따르면, 당신이 말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은 우주가 마치 원자로 만들어진 것처럼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저명한 천문학자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진건판 위에 노출된 빛의 입자로 별을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별들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가톨릭 대학의 윌리암 월러스 사제는 말하기를, “당신은 천문학 지식을 높은 개연성으로 받아들입니까? 아니면 그것을 진리라고 정말로 믿는 것입니까?” 징거리치는 우선 과학자들은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세기가 바뀐 직후 절대적 실체라고 믿고 있었던 과학적 사실이 붕괴되었음을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징거리치는 말했다. 시간 그 자체는 인식의 문제로서 탄력적이라는 점이 입증되었다. 물질은 유동적이고 가변적임이 입증되었다. 그래서 어떠한 측정도 절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시간과 공간의 절대적 실체는 포기되었다”고 징거리치는 말했다. 그 후로 어느 누구도 확정성들을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자리에 앉을 때 청중의 한 사람이 “나는 믿을 수가 없어요.” 라고 중얼거렸다.
그렇다. 과학자들 특히 과학자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자들이 궁극에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붕괴하는 세계, 1950』p21에서 임마뉴엘 벨리코브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에 무지한 인간이 있다.” 나는 무지한 인간(Home ignoramus, 호모 이그노라무스)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표현은 허구의 지혜와 대답을 즐기고 발전하는 오만한 호모 사피엔스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의 날 모든 인류 앞에서 평결을 내릴 때 “영리하고 현명한 녀석”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벨리코브스키는 계속 이어서 말한다.
“무지한 자는 인생이 무엇인지, 혹은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비록 인생에 대한 가설을 세웠다 할지라도 생명이 무기물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떤지도 모른다.... 비록 그가 중력을 법칙 중의 법칙이라고 간주할 지라도, 땅에 발을 딛고 지구의 반대 방향에 있는 친구를 잡아당기는 중력의 신비한 힘을 알지 못한다. 그는 5마일 발밑의 지구의 생김새를 알지 못한다. 그는 비록 가설을 세울지라도 산의 형성 과정과 대륙이 출현할 수 있었던 과정을 알지 못한다. 또한 그는 석유의 형성과정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 기원과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했으나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자연법칙의 작용에 관한 많은 것들-전기, 중력, 그리고 자력-이 있다. 그는 그러한 영향력을 예견하고 측정할 수 있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본질은 기원전 585년에 전기와 번개에 관하여 연구했던 탈레스 당시보다 그 이상으로 알려진 바 없다.
과학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실험될 수 없고 증명될 수 없는 문제의 경우, 즉 만물의 생성 과정을 우리에게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지구에 관하여 진화론자들은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생겨난 과정과, 유기물에서 생명체가 등장했다는 과정과, 식물이 동물로 바뀌고 동물이 인간으로 바뀐 과정을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이러한 과정을 탐구하고 설명할 때, 그들은 과학자로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가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론의 토대를 세우려는 가설조차도 세우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과학이란 무엇인가? - 1
: 일반적 의미의 과학과 과학자가 일하는 방법
유종호
1. 일반적 의미의 과학
여기서 우리는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학이라는 단어는 지식을 의미하는 라틴어 “scientia'에서 유래되었다. 과학은 실험되고 표명되고 증명되는 과학적 법칙이 될 때까지 1차적으로는 가설을 통해, 다음으로는 이론을 통해서, 관찰되는 사실들을 취급한다. 다시 말해서 과학이란 실험되고 표현되고 평가될 수 있는 사실과 사물의 속성과 현상들과 경험들에 관한 지식이다. 자연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책이나 다른 사람들의 문자적 혹은 언어적 기록이라는 수단을 통한 간접적 경험과 자신이 실제로 체험하는 직접적 경험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인간은 물질적인 것들, 생명, 그리고 무기물과 유기물(식물, 동물, 인간)을 지배하는 자연법칙과 같이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물만을 실험해 볼 수 있다.
물질의 기원이나 생명의 기원과 같은 초자연적인 것, 즉 물질과 생명의 창시자에 대한 지식은 실험, 관찰, 조사, 혹은 증명으로 알 수가 없다. 기원이란 존재하고 있는 모든 물질 이전의 문제이다. 기원에 대한 지식은 오직 창시자의 계시로만 획득될 수 있다. 히브리서는 신학적 진리뿐만 아니라, 심오한 철학적 진리도 설명해 준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11:3)
최초의 물질과 생명이 있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분만이 모든 것의 기원의 신비를 계시할 수 있다.
먼저 우리가 자연 만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생각해 보자. 진정한 과학은 현재적으로 존재하는 과정과 현상에만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일한 사실이 과거에나 미래에도 적용될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과학 지식의 사실은 기원에 관한한 소급해서나 미래적으로 추정될 수 없다.
자연과학은 어떤 문제, 과정, 혹은 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한다. 현상이라는 말은 “나타나다 혹은 우리에게 그렇게 보이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다. 어떤 문제에 대한 과학적 설명 혹은 해답은 보통 가설에서 시작한다. 가설이라는 말은 아래에 놓는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이다. 그것은 어떤 관찰, 과정 혹은 현상을 설명하려고 미리 설정해 놓은 개념이다. 그러므로 가설은 어떤 과학적 생각의 전개를 위한 토대가 된다. 그것은 개연적 이론이 입각하고 실험자가 입증하려고 하는 출발점이요, 전제요, 토대이며 추정이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자신이 직접 증거를 수집하거나 서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수집해야 한다. 가설은 그것이 옳고 증명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관찰, 실험, 측정 및 기타 수단에 의해 시험되어야 한다. 만약 과학자의 생각이 진실하다면 그의 가설은 실증될 수 있고, 입증하고 시험하려고 하는 이론을 위한 토대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가설이 이론을 위한 토대로 역할하기 위하여 한 가지 요건이 더 필요하다. 가설은 증명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시험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반증되거나 빗나가거나 거짓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시험되어야만 한다. 칼 포퍼 경은 런던 경제 스쿨의 논리학과 과학 교수이기도 한 호주 태생의 철학자이다. 그는 과학자들의 과학적 논리가 합당한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과학자들과 학자들을 여러 해 동안 시험해 오고 있다.
그는 이론들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확인하기 위하여 시험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서술을 공식화했다. 그의 서술은 “있을 수 있는 어떤 것에 의해 논박되지 않는 이론은 비과학적이다. 논박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이론의 장점이 아니라 오히려 결점이다”라는 것이다. 한 젊은 교수가 이론을 증명하려는 어떤 논문을 제출했던 경우가 있었다. 그는 명성을 얻은 것 같았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이 흐른 뒤에 다른 교수가 그 이론의 잘못을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했다. 젊은 과학자는 치욕감을 느끼고 집으로 물러갔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생각이 혹시 빗나갈 수 있을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자료를 주의 깊게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설이 이론이 되고 그 이론이 많은 시험을 통해 증명되어 빗나가지 않았음을 확인한 후에야 그것은 결국 과학적 법칙이 되는 것이다. 두 가지의 열역학 법칙과 기타 과학적 자연법칙들이 최종적으로 과학적 법칙으로 된다. 그러나 포퍼에 따르면 가설은 거짓으로 남을 수도 있음에 틀림없다.
2. 진정한 과학자는 어떻게 일하는가?
1) 과학자는 어떤 사물이나 발생하는 현상을 관찰한다.
2) 그는 있는 그대로 이러한 것들이 왜 발생하는지 궁금하게 여긴다.
3) 그는 이러한 발생의 이유를 추측하고 가정하기 시작하고 가설을 세운다.
4) 그는 가설이 이론의 토대가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러한 현상을 실험해본다.
5) 그는 많은 시험과 실험을 통해 가설을 점검해본다.
6) 그는 관찰할 수 있는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비과학적인 것은 버린다. 그리고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을 시험한다.
진실한 과학자는 수용할 수 있는 증거에 맞아 떨어지는 것만을 받아들이고, 거짓이 아님을 입증한다. 이론이 시험에 의해 입증된 후에 그것은 가능하거나 과학적 법칙이 된다.
3.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입증될 수 없는 자연 이전의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포함하는 기원과 관련된 사실과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진실한 과학자들은 기원이란 철학과 종교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기원에 관하여는 초자연적인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물질을 창조하는 자연 이전의 비물질적 존재와 힘(Force)이 없이 무에서 물질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과학자들은 말했다. “무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즉 어떠한 물질도, 존재하지 않는 물질로부터 나올 수는 없다. 물질적인 요소보다 더 큰 어떤 것이 있음에 틀림없다. 진정한 과학은 모든 존재의 근원에 대한 모든 가능한 원인을 고려해야한다. 진화론자들은 우주, 중력, 전기, 그리고 왜 태양계가 시계처럼 움직이는가에 대한 최초의 원인도 찾지 못했다. 자연적인 것이 초자연적인 것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물질로부터 인간 내부의 비 물질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발명품을 설계하고 고안한 것은 인간의 물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인간의 비물질적인 의지, 정신 그리고 지혜이다. 그래서 기왕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지구상에 있는 수소에서부터 생명체에 이르기 까지-이면에는 비물질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 펜실베이니아 도버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화론 교육 논란
(What Are They Afraid Of?)
창조론/진화론 이슈들은 최근 뉴스 매체들에서 지속적인 주제가 되고 있다. 왜곡된 그리고 빈약한 정보들을 가지고, 모두 창조론에 대해서 부정적인 보도들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들은 실제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다.
한 작은 농촌 지역인 펜실베이니아 도버(Dover)의 학교위원회는 최근 생물학 수업에서 지적설계에 대한 간단한 언급(a brief mention)을 허락하는 것을 가결시켰다. 그러나 지적설계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진화론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 확실하게 성서적 창조론은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부분은 말하지 않은 채, 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ACLU의 지휘 아래, 지방의 몇 명 학부모들은 오직 진화론적 관점만을 유지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잘 알려진 진화론자들을 증인으로 신청하였다.
한편, 진화론을 지지하는 개인들과 단체들은 도버 지역으로 자금을 지원하여, ‘잘못된’ 교육위원들을 반대하기 위한, 그리고 진화론을 지지하는 교육위원들로 교체하기 위한 성공적인 정치적 캠페인을 벌였다. 지적설계 옹호자들도 역시 매우 작은 학교 구역의 크기와 경우를 무색하게 만든 대대적인 언론보도를 이끌어냄으로서 승리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토론은 캔자스에서 격렬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곳에서 주 교육위원회는 새로운 주립 교과과정 가이드라인을 확립했다. 그것은 창조론을 소개하지도 않으며, 진화론을 제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오직 진화론을 지지하는 자료뿐만이 아니라, 반대하는 자료들을 포함하여 모든 자료들이 가르쳐지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거기에는 생물체의 절묘한 디자인이 인정되고 연구되어지는 것을 허락했다. 다시 한번, 진화론을 지지하는 운동이 열성당원들 집단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교육위원회의 대다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 뒤에서 진화론자들이 공청회를 보이콧트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대신에 사실을 결코 정확하게 보도하지 않는 진화론에 호의적인 언론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면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만약 진화론이 그렇게 확고하게 증명된 이론이라면, 진화론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왜 진화론은 정밀 조사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가? 왜 학생들은 다른 견해로부터 차단되어야만 하는가? 좋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관련된 모든 사실들이 제시되고, 비판적으로(critically) 생각해볼 수 있도록 격려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좋은 교육 방법이 아닌가? 이것은 좀더 좋은 시민과 좀더 좋은 과학자들을 만드는 방법이 아닌가?
진화론자들은 진정한 과학은 지적설계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지적설계는 단지 종교라고, 또는 적어도 종교로 들어가는 ‘뒷문(backdoor)‘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은 많은 세속적 과학자들도 그들이 얻은 과학적 증거와 자료들에 기초한 관측과 실험을 통하여, 생명체는 설계되었으며, 단지 우연히 무에서부터 저절로 생겨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과학은 연구를 수행하고, 여러 가지 훈련된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자료와 결과들을 보고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들에서 종교는 없다. ICR은 최근에 암석들의 연대측정, 다이아몬드 내에 방사성탄소(carbon-14), 지르콘 내의 과도한 헬륨, 그리고 젊은 지구를 지지하는 다른 지질학적 자료들과 같은 땅이 뒤흔들릴만한 충격적인 증거들을 발견했다. ICR은 이러한 과학적 발견들이 비판적 사고자들과, 특별히 이러한 증거들을 평가하여 자신의 믿음을 확고하게 하려는 학생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조사되기를 원하며 견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만약 과학이 설계자를 가리킨다면, 설계자는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증거들이 설계자가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면, 설계자가 없다는 것이 확실해질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시도해 보자. 무엇이 두려운가?
진화론자들이 이러한 자료들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견해에 대한 근본적인 불확실성(insecurity)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진화론은 과학적 테스트를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ICR은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진화론은 공개된 질문을 피하려고 한다. 진화론자들은 오직 제한된 토론에 의해서, 교육에서 그들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 토론은 단지 학문적인 내용에 대한 통제보다는 더 깊은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만약 과학이 정말로 지적설계를 지지한다는 것을 진화론자들이 인정한다면, 그때 그들은 창조주의 가능성을 인정해야하는 것이다. 아마도 진화론자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초월자가 존재한다는 암시일 것이다. 초월자는 더 높은 권위를 의미하며, 결국에는 더 높은 책임(accountability)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news&action=view&ID=50
출처 - ICR, Recent News, Nov 19, 200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90
참고 : 2967|2986|2934|2864|2067|2443|1912|1914|696|2151|1784|192|548|2964|2961
도버에서 열린 지적설계론 재판에 스타 증인이 섰다.
(Dover I.D. Trial Calls Star Witness)
편모(flagella), 쥐덫(mousetraps), 블랙박스(black boxes) 등으로 유명한, 그리고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주장하는 레히(Lehigh) 대학의 생화학자 마이클 베히(Michael Behe)가 2005. 10. 17일 펜실바니아주 도버(Dover)에서 열린 지적설계론 재판에 증인으로 섰다. 이 사실은 New Scientist, MSNBC News, Washington Post 등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실제 진행에 대한 더 많은 상세한 내용은 지적설계에 호의적인 EvolutionNews을 보라.
베히는 기술적 전문용어들을 사용하며 일부 방청자들을 압도하였다. 그리고 생물학에서 명확한 증거들에 기초한 지적설계의 증거들이 너무도 많다는 그의 견해를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분자 기계(molecular machines)들을 설명하고 있는 다윈주의 메커니즘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다른 교육위원회들도 관심과 공포(trepidation)로 이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싣고 있다 :
'더 많은 교육위원회들이 지적설계를 언급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해리스버그(Harrisburg)의 북쪽에 있는 쉭스쉬니(Shickshinny)의 교육위원회 위원인 랜디 토마사치(Randy Tomasacci)는 그의 교육위원회도 교사들에게 지적설계론을 가르칠 것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 몇 일을 소비하며 토론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적설계를 고려 중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고소당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베히의 지위는 안전하다. 비록 그가 재직하고 있는 레히 대학은 지적설계론을 거부하고 있지만, 베히는 정년을 보장받았고 (다른 지적설계 지지자들과 같지 않게), 그의 견해에 대해서 제약을 받을 수 없다. 한편 기자들과 비평가들은 베히가 가톨릭 신자라는 것에 대해, 그래서 그가 지적설계자를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기자(reporters)들은 베히가 가톨릭 신자라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과학적 증거(evidences)들에 대해 시선을 집중할 수는 없을까? 아마도 그들은 그들이 풍자하고 있는 지적설계론자들에 대한 비밀스런 움직임 대신에, 과학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반-지적설계론 기자인 알란 보일(Alan Boyle)은 그의 편견에 대한 독자들로부터의 수많은 이메일들을 받았던 것처럼, 진화론만을 주장하는 책들과 진화론 웹사이트 만을 살펴볼 것이 아니라 (MSNBC을 보라), 리 스트로벨(Lee Strobel)의 책 ‘The Case for a Creator ’을 읽어보고 기사들을 써야할 것이다
또한 MSNBC은 딸이 지적설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학생들에 의해서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을 걱정하는 한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크리스천들은 진화론자들이 했던 것처럼 똑같이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진화론-지적설계론 재판에서 피고측 변론이 시작되다 (10/20/2005)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 ID)에 있어서 유명 스타인 레이 대학(Lehigh University)의 생화학자인 마이클 베히(Michael Behe)가 증인으로 어제 법정에 섰다. 이것은 키츠 밀러(Kitz miller) 등과 도버(Dover) 교육위원회 사이의 진화론-지적설계론과 관련한 소송사건에서 변론이 시작됨에 따른 것이다. 그는 창조론과는 달리 지적설계론은 '과학” 이며, 진화론 모두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고, 진화론의 한 측면인 자연선택설에 관련된 것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펜실베니아 연방법원에서 4주째 진행되고 있는 이 소송은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공립학교에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대체 이론인 지적설계론이 학생들에게 가르쳐질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이기 때문이다.
피고측 변호사인 로버트 뮤즈(Robert Muise)의 심문에 대한 답변에서, 베히는 지적설계론은 다윈의 이론인 자연선택설 보다는 훨씬 더 과학적이라는 것을 재판관 존스(John E. Jones III)에게 설명하였다. 베히는 지적설계론은 두 가지 독립적인 주장에 근거한다고 말하였다. 하나는 다윈설의 실체를 밝히려는 것으로서, 자연선택설은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보이는 시스템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좋은 예는 세균의 편모(flagella)인데, 이것은 세균에 있는 작은 회전 모터로서, 세균은 이것을 이용하여 그 몸체를 회전하면서 추진력을 얻어 나간다. 이것은 모든 복잡한 구성 요소들이 모두 같이 있어야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이 시스템 즉, 편모는 진화론의 메커니즘인 무작위적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구성 요소들이 의도적인 배열을 보이는 것은 지적설계의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과학자들이 지적설계론을 비과학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개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편모에 대한 주장은 직접적인 실험적 증명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베히는 주장했다. 그는 꼬리 없는 세균을 만 세대 동안 증식시켜보면, 자연선택만으로 충분히 편모가 재창조될 수 있는지를 2~3년 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편모가 생겨난다면, 지적설계론은 의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고(진화론) 측은 베히의 증언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묵살하지도 않았다. 청중 중의 한 명인 랜디 토마사치(Randy Tomasacci)는 근처 지역의 교육위원회 위원인데, 그의 지역은 지적설계론을 학생들의 커리큘럼에 포함시키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하면서, 베히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sciencenow.sciencemag.org/cgi/content/full/2005/1018/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510.htm
출처 - CEH, 2005.10. 1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30
참고 :
원숭이는 말하는 것을 배웠는가?
(Has an ape learned to talk?)
칸지(Kanzi)라는 난쟁이 침팬지(bonobo or pygmy chimpanzee)가 말하는 것을 배웠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진화론자들의 흥분이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현실은 훨씬 더 요란스럽다.
칸지와 다른 침팬지들은 바나나, 포도, 주스, 또는 예스 같은 개념을 나타내는 단순한 기호들을 사용하는 훈련을 수년 동안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 분석한 테이프로부터, 이 원숭이들은 네 가지의 특별한 개념을 나타내는 데에 네 개의 분명한 소리(sounds)를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원숭이 또는 사람이 그것을 이해했는지는 현재 명백하지 않다.
인간의 말(speech)과 같은 소리는 없으며, 그것을 흉내 낼 수도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만 한다. 원숭이의 후두(larynx)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그것은 인간 언어의 기본적인 모음(아, 오, 이.., 등)을 만들 수 없다. 인간과 가까운 관계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아프리카 회색 앵무새(African Gray Parrots)는 상징적인 개념을 전하는 데에 발성(vocalization)을 사용해서 원숭이보다 훨씬 더 나은 소리를 낼 수 있다.
얼마 전 창조(Creation) 지에서 보고했던 것처럼, 그들 중 한 마리는 최소한 실제 영어 단어를 명료하게 발음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의미 있는 개념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명백한 진화론적 유용성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처럼 이것을 듣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앵무새도, 칸지도, 다른 어떠한 동물도 실제 언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언어(language)는 말해지는 단어 또는 어떠한 소리를 포함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몸짓 언어(sign language)를 생각해 보라. 그것도 진정 언어이다. 그러나 언어는 음성화 되든지 아니든지 간에, 언어학자들에 의해서 단지 기호들의 사용 이상으로 정의되고 있다. 언어는 구문과 문법과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원숭이들이 약간의 것들에 대한 신호를 만들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진정한 몸짓 언어와 결코 혼동되서는 안 된다.
니카라과(Nicaragua)에서 여러 귀머거리 어린이들이 어떠한 언어도 배우지 못한 채, 환경에 함께 놓여졌을 때, 그들은 구문과 문법 규칙들을 완비한 그들 자신의 매우 복잡한 몸짓 언어를 발달시켰다. 인간의 뇌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도록 하는(심지어 필연적으로) 복잡한 프로그래밍을 운반한다.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언어를 진행시키는 뇌의 같은 부위에서 몸짓언어를 진행 처리한다. 그러나 이들 언어 부위(language areas)는 사람에게만 독특하게 있고, 사람이 아닌 생물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말하는 원숭이(talking apes)는 존재하지 않는다.
Reference
1. Birdbrain matches chimps (and neither makes it to grade school), Creation 19(1):47, 199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5/i3/talkingApe.asp
출처 - Creation 25(3):52–53, June 200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28
참고 :
너희가 진화를 믿느냐? - 제3장
근대의 과학 세계에서 진화(evolution)는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세계의 모든 과학자와 여러 과학적 증거들이 당연히 진화론을 지지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케임브리지, 스탠포드, 코넬, 예일, 프린스턴 등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우리는 진화에 대해 회의적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들은 동료들의 박해가 있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에서는 금기시 되는 주장을 과감히 밝혔다.
우리는 과연 현대 과학이 무신론을 지지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지지하는지 체계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먼저 진화론의 주장들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이를 위해 진화론의 아이콘(밀러의 실험, 다윈의 진화계통수, 헤켈의 배아발생도, 시조새 화석)들을 재검토 해 본다. (저자는 조나단 웰스 박사를 찾아가 그와의 대화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는다. 그는 UC 버클리에서 지질학과 물리학 학사를 받았는데, 부전공으로 생물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예일 대학원에서 종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의 전공 분야는 다윈을 둘러싼 19세기의 논쟁이었다. 그리고 다시 버클리에서 분자와 세포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의 연구의 초점은 주로 척추동물의 발생학과 진화였다. 그는 진정으로 과학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졌다. 얼핏 들은 풍월을 마치 사실인 양 고집하는 사람과 다르다.)
첫 번째 이미지 : 밀러의 실험
당시 밀러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그의 지도교수였던 해럴드 유레이의 대기 이론에 의지하여, 원시 지구의 환경을 설정하여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실험을 하였다. 현재 원시 대기가 어떤 상태였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원시 대기가 밀러가 조성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밀러는 메탄, 암모니아, 수증기에다 수소가 많이 들어간 혼합물을 선택했다. 당시의 많은 과학자들은 원시의 대기상태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970년대 중엽, 벨기에의 생화학자인 마르셀 플로르킨은 밀러의 원시대기론을 바탕으로 한 개념은 ‘폐기되었다‘고 선언했다. 저명한 생명기원 연구자들인 클라우스 도스와 시드니 폭스는 밀러가 잘못된 혼합가스를 사용했음을 확증했다. 그리고 1995년에 “사이언스“지는 ‘원시 대기가 밀러의 실험에서 가정한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제 전문가들은 그 실험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의 과학자들은 원시 대기가 이산화탄소, 질소, 그리고 수증기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1960 년대부터 대부분의 지구과학자들이 원시 대기는 밀러의 실험에 사용된 혼합 가스와 전혀 다른 상태였다고 밝혔는데도, 아직도 교과서는 밀러의 실험이 원시 지구의 환경을 재현한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 정확한 대기를 사용하여 밀러의 실험을 재연하면 분명히 아미노산을 얻지 못한다. 실제 대기를 사용해도 여전히 유기분자를 얻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유기분자란 포름알데히드, 즉 시안화물(쉬운 말로, 청산가리)이다. 그것은 비록 유기분자일지 모르지만, 너무 독성이 강해서 그 주위의 단백질이 익어버린다. 그것은 생명체의 배아를 죽이므로, 현실의 원시 대기를 사용해 생명 기원의 첫 단계에 들어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이다. 그것을 가지고는 기껏해야 방부제가 생길 뿐이다.
밀러의 실험에 대한 평가 : 깨진 달걀 다시 붙이기
화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지만, 원시 지구의 실제 대기 조성에서 아미노산이 만들어졌다고 치더라도, 그 아미노산이 살아있는 세포로 생성되기까지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우선 수십 개의 단백질 분자들이 올바른 순서로 배열해야만 살아있는 세포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시험관 안에 살아있는 세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분자가 다 들어 있더라도 그 조건에서 살아있는 세포를 만들 수 없다. 결론적으로, 생명체를 창조하려면 무기물에서 세포의 구성요소들을 만들어 내는 어려움은 물론이고, 그 요소들이 올바른 방식으로 결합해야만 한다. 그것은 깨진 달걀은 다시 붙지 않는 원리와 같다.
오늘날 밀러의 실험이 가지는 과학적인 의미는 사실상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바로 그 이론 때문에 여러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이 생명이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영향이 되어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부터 공립학교에서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없애버렸다.
생화학자이자 영적 회의론자이며, DNA의 분자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프랜시스 크릭은 몇 년 전 ‘기적‘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지식으로 무장한 정직한 사람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생명의 기원은 거의 기적으로 보인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미지 : 다윈의 진화계통수
가장 유명한 진화의 아이콘 중 하나는 『종의 기원』에서 실린 다윈이 직접 그린 그림이다. 다윈은 그 그림을 통해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나왔고, 자연선택이 우리 현대 세계에서 보는 수많은 유기체의 발달을 낳았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그것은 마치 자연사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열쇠 같았다. 그러나 과연 그 계통수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일치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화석기록은 철저히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
다윈 이론의 핵심 중 하나는 "사소하고, 연속적이고, 유리한 변이가 서서히 축적됨으로써" 자연선택이 일어나되 "갑작스럽거나 커다란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윈이 활동하던 당시에도 다윈은 화석기록이 전혀 자신의 진화계통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윈은 미래에 발견될 화석들이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 주리라고 믿었지만, 그 이후로 150년 동안 발견된 화석들은 오히려 다윈의 진화계통수를 뒤엎어 버렸다. 화석기록은 다윈의 이론과 정반대되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데, "캄브리아기 폭발"이 그 예이다. 캄브리아기 폭발이란 "생물학적 빅뱅"이라고도 부르는데, 진화론 연대로 약 5억 4천만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질학 시대인 캄브리아기에 지금 멸종한 동물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대부분의 주요 동물문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화석 기록에 따르면 캄브리아기 이전에는 일부 생물들만 있었다. 그러다 캄브리아기로 들어서자 갑자기 "펑!" 하고 빅뱅이 일어난 것이다. 이 시기에 절지동물(현대의 곤충, 게 등이 해당), 극피동물(현대의 불가사리와 성게), 척색동물(현대의 척추동물) 등이 나타났다. 포유류는 나중에 나타났지만, 척색동물은 캄브리아기 초기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다윈의 진화 계통수와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동물들이 완전히 발달된 형태로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결국 캄브리아기 폭발은 다윈의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린 것이다.
세 번째 이미지 : 헤켈의 배아발생도
헤켈의 배아발생도란 발생의 세 가지 단계에 있는 물고기, 도룡뇽, 거북이, 병아리, 돼지, 송아지, 토끼, 사람의 배아를 나란히 보여주는 그림이다. 다윈에 따르면, 초기 배아들 사이의 놀라운 유사성은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나왔다는 그의 이론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하나의 사실이었다. 그 그림을 보면 초기 단계의 배아들이 서로 너무나 닮아서, 이것은 다윈주의를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헤켈의 그림과 실제 배아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 그림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은, 첫 번째 단계의 유사성이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다. 학생 때 배운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 설마 조작된 것이라니? 그런데 실상은 조작이 맞다. 심지어 헤켈은 하나의 목판으로 다른 동물의 배아를 찍어내기까지 했다. 그는 모든 동물의 초기 배아가 똑 같다는 자신의 이론을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각 동물의 배아를 따로 그릴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실제보다 더 비슷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그림을 조작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 그림들은 실제 배아들과 다르다.
그 사실이 밝혀진 것은 사실 1860년대 후반이다. 헤켈의 동료들이 그를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며 폭로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교과서에서 그것을 사실인 양 배우고 있다. 진화론계의 거장이었던 하버드의 굴드 박사는 배아발생도가 한 세기가 넘도록 분별없이 재활용된 것에 대해 교과서 저자들이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것을 “학문적 살해행위”라고 말할 정도의 솔직함이 있었던 것이다.
헤켈의 두 번째 잘못은, 헤켈이 표본을 세심하게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척추동물의 7개 강 중에서 일부만을 선택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배아발생도에는 여덟 개의 서로 다른 동물이 있다. 그 중 넷은 포유류지만 모두 태반류이다. 배아발생도에서 빠진 두 종류의 포유류는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나머지 네 동물은 척추동물의 네 강(파충류, 조류, 양서류, 어류)을 보여주는데, 그가 생략한 나머지 네 강들에 비해 모습이 서로 비슷하다. 그는 양서류를 대표하는 것으로 개구리 대신 도롱뇽을 사용했다. 개구리는 모습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각 강(綱)에서 결과를 조작하기에 쉬운 동물만을 선정한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헤켈이 주장한 초기 단계의 발생이라는 것이 전혀 초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발생의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 좀 더 초기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배아들은 훨씬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헤켈은 의도적으로 그 전 단계를 몽땅 생략했다. 다윈의 주장이 맞으려면, 초기 단계의 배아들이 비슷해서 그것이 바로 생명체가 공통 조상에서 나왔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싶은데,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척추동물의 배아들은 세포분열 초기단계에서 서로 매우 다른 모습으로 출발한다. 예를 들어 포유류의 세포분열은 파충류나 조류 등 다른 강의 세포분열과 확연히 다르다. 그것들은 서로 혼동할 여지가 없다. 사실 개개의 강 내에서도 배아들은 전혀 다르게 생겼다. 그러다가 헤켈이 초기 단계라고 주장했던 중간 단계의 시기에 접어들면 배아들은 좀 더 비슷해진다. 그러나 헤켈이 주장했던 정도의 유사성은 어림도 없다. 그 다음 과정에 이르면 배아들은 다시 확연히 달라진다. (헤켈이 그린 조작 그림과 실제 사진을 다음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85¶m=category=J05)
아가미에 관한 진실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나왔다는 증거로 주장하는 것은 헤켈의 배아발생도만은 아니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배아가 발생 단계에서 목에 아가미 같은 구조를 가지는 시기를 거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조상들이 바다에서 살았다는 확신을 심어준 정보였다. 백과사전에도 “포유류의 태아들은 어류의 아가미와 닮은 아가미구멍이 생기는 단계를 거친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근래에 출판된 일부 생물교과서들조차 인간 배아에 ‘아가미 주머니’ 또는 ‘아가미 틈새’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렇다. 머리를 배꼽 쪽을 내려다보면서 목을 만져보면 피부가 접혀져 생긴 이랑들이 있다. 배아는 몸을 구부리고 있는데 그 목에는 이랑들이 있다. 물론 이것은 피부가 접힌 것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러나 이것은 척추동물의 배아가 발생하면서 보이는 해부학적 특성일 뿐 분명히 아가미는 아니다. 그 단계에서는 물고기도 아가미가 없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 이랑들은 나중에 귀와 턱 부분이 되고, 어류는 아가미가 된다. 그것은 절대 아가미구멍이 아니다. 이것을 아가미와 비슷한 구조라고 하는 것은 진화론적 시각에서 진화의 증거로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영국 발생학자 루이스 울퍼트가 말한 것처럼 유사성은 착각일 뿐이다. 진화론자들은 한때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유명한 표현을 가르쳤다. 그것들은 배아들이 발생 과정에서 그 동물의 진화 과정 전체를 되풀이한다는 말을 근사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배척되어 왔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아가미구멍" 이론 같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날개, 물갈퀴, 다리, 손
공통조상에 대한 또 다른 범주의 증거로, 척추동물의 팔다리와 날개에서 볼 수 있는 ‘상동성’이다. 즉, 박쥐의 날개, 돌고래의 지느러미, 말의 다리, 인간의 손 사이에서 보이는 골격 구조의 유사성에 대한 그림들이 있다. 이들 팔다리와 날개들은 각기 다른 용도로 적응했지만, 그 근저에 있는 유사성 혹은 ‘상동성’은 그들 모두가 공통조상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윈 시대에 가장 유명한 해부학자였던 리처드 오웬은 상동성이 ‘변이의 계승’이 아니라, 공통 원형 또는 설계를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들 사이에 분명히 유사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변이의 계승과 설계 어느 쪽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모델 사이에 모양이 비슷한 것은 분명히 설계자가 개입했다는 증거이다. 만약에 그것이 다윈주의의 공정으로 생겨났다는 것을 보이고 싶다면, 일단 어떻게든 자동차 한 대를 얻고 난 후 녹, 바람, 중력 등의 자연적인 힘이 그 차를 신형 모델로 바꾼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다윈주의에서는 그것을 ‘공통발생 경로’라는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상동적 특성을 가진 두 동물의 배아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유사한 세포에서 유사한 과정을 거쳐 나왔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개구리들은 발생과정에서 도롱뇽과 비슷하고 어떤 개구리들은 새와 비슷하지만, 다 자라고 나면 모두 거의 같은 모습의 개구리이다. 요즘은 유사한 유전자에서 상동성이 나온다는 설명이 일반적이지만, 실제로 다른 유전자에서 유사한 특성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 훨씬 많은 경우 유사한 유전자에서 전혀 다른 특성들이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발생경로설이나 유사유전자설도 상동성을 설명하지 못하고, 한 마디로 신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교과서에서는 공통조상 때문에 생기는 유사성이 공통조상을 증명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순환논증이다.
인간 유전자, 원숭이 유전자
인간과 원숭이의 유전자가 98% 내지 99% 똑 같다는 유전학 연구 결과가 있다. (이것은 최적의 조건에서 비슷한 부분끼리만 비교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것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나왔다는 증거일까? 해부학적으로 유사한 두 생물이 유전적으로 유사한 경우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놀랄 만큼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꼭 공통조상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통설계로도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신다윈주의의 주장을 분석해 보자. 인간이 인간 유전자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극적인 차이는 2%의 유전자에서 나온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차이가 나는 2%의 유전자는 해부학적 구조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비교적 사소한 유전자들이고, 소위 몸을 구성하는 유전자들이 그 98% 안에 있다. 그러니까 인간과 침팬지 DNA의 유사성은 신다윈주의자들의 설명과 맞지 않는다.
네 번째 이미지 : 잃어버린 연결고리 시조새 화석
1859년 “종의 기원”이 출간되었을 때, 다윈은 “내 이론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가장 명백하고 심각한 반론”은 화석기록이 그의 진화가설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다윈은 이 문제를 화석기록이 불완전한 탓으로 돌렸고, 미래에는 화석들의 발견으로 자신의 이론이 입증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치 그 말이 신호이기라도 하듯이 2년 후 과학자들은 독일의 한 채석장에서 시조새의 화석을 발굴했다. 그리고 다윈의 지지자들은 감격했다. 파충류와 조류를 잇는 이 잃어버린 연결고리가 다윈의 책이 출간되자마자 그토록 빨리 발견된 것은, 그것을 필두로 앞으로 다윈의 주장을 입증하는 많은 화석들이 발견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화석기록은 다윈을 완전히 실망시켰다. 시조새를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라고 주장한 근거는, 부리에 이빨이 있다는 것과 날개에 발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부리에 이빨 달린 새를 발견했으며, 날개 끝에 발톱이 달린 새는 타조 등 그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시조새의 치조골이나 깃털 구조 등으로 볼 때 시조새는 완벽한 새였음이 드러났다. 오늘날에도 오리너구리 같은 이상한 동물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중간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현재 진화론 학계에서는 시조새는 현대 조류의 조상이 아니라, 완전히 멸종한 조류의 일종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1982년 국제시조새회의에서 완전한 조류로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음.)
사기꾼과 칠면조
그러나 진화론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을 가진 고생물학자들은 조류의 파충류 조상을 찾아내려고 열광적으로 노력해 왔다. 그들의 열정 덕분에 최근의 과학계에 망신살이 뻗친 사건이 있었다.
몇 년 전 미국 국립지리학회는 애리조나의 한 광물전시회에서 구입한 화석이 실제로 날 수 있는 조류와 육상공룡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들이 ‘아르케오랍토르(Archaeopteryx)’라고 부른 그 화석에는 공룡의 꼬리와 새의 앞날개가 함께 있었다. 1999년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지는 이를 근거로 해서 깃털 달린 공룡이 첫 번째 새의 조상이라는 새로운 증거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조작품이라는 것이다. 한 중국인 고생물학자가 누군가 원시 새에다 공룡의 꼬리를 붙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누군가가 과학자들이 찾던 모습의 화석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또 어떤 컨퍼런스에서는 어떤 분자생물학자들이 6천5백만 년 된 조류 계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공룡 뼈에서 새의 DNA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그들이 발견한 DNA는 조류와 90% 내지 99% 정도 유사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100% 칠면조 DNA였다. 100%의 칠면조 DNA를 가진 것은 칠면조뿐이다.
자바인의 전설
인간의 진화에 대한 그림에 관하여 자바인 한 가지만 다루어 보자. 자바인에 대해 백과사전에는, 네덜란드의 과학자 유진 듀보아가 1891년과 1892년에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서 발굴 작업을 하는 도중 “강기슭에서 일부 뼈들을 파낸” 과정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가 50만년 이전으로 추정한 자바인은 “뇌가 더 작은 조상으로부터 현대인에 이르는 발달 과정의 한 단계에 해당한다.” 듀보아의 말에 따르면, 자바인은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고리가 분명했다.
그런데 자바인의 진실은 이렇다. “자바인이 두개골 하나, 대퇴골(넓적다리뼈), 치아 세 개, 그리고 엄청난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자바인의 생생한 모습은 다윈주의가 옳다고 가정할 때 마땅히 갖추어야 할 모습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추측이 낳은 결과물에 불과했다.
그 두개골은 인간의 것이 분명했고, 뇌의 용량도 오늘날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19명의 진화론자들로 이루어진 진상조사단이 제출한 342쪽의 보고서는 듀보아의 주장을 뒤엎었고, 자바인은 인간 진화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타임’ 지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듯, ‘타임’ 지는 지난 1994년에도 자바인을 인간의 합법적인 조상으로 다룬 기사를 실었다.
인간 진화 이야기
고인류학의 주요 문제들 중 하나는 현재 발굴된 화석 전체에 비교할 때, 인간의 조상이라 할만한 생물의 것은 그 수가 보잘 것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두개골 조각이거나 치아뿐일 때가 많다. 결론적으로 인간 진화론은 "인간의 편견에 따라 구성된 사실을 짜 맞춘 인간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화석들이 인간 진화론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이유는 다른 사실들을 근거로 하여 다윈주의가 옳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왜곡되고, 위조된 실패
진화의 아이콘이 하나씩 신빙성 없는 것으로 밝혀질 때마다, 다윈주의자들은 특유의 신앙적 열정으로 처음부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조사 결과는 정말 대진화를 지지한다고 내세운다. 그리고 이제 원래의 아이콘이 뒷받침해 주지 않아도 진화론 자체는 의문시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새로운 모델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진화론을 다시 사용한다. 일례로 몇 년 전 굴드와 그의 동료는 ‘단속평형설’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제안했는데, 그것은 화석의 간격을 설명하기 위한 절박한 시도였다.
설계의 증거를 외치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로 다윈주의를 분석해 본다면, 다윈주의는 과학을 가장한 유물론 철학에 불과하다. 과학의 증거들은 오히려 ‘설계’를 강력하게 가리킨다. 캄브리아기 폭발이나, 상동성 등의 증거들은 생명의 기원이 설계자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뿐만 아니라 우주론,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등에서 최근에 나오는 분명한 증거들을 모아 분석해 보면, 지적 설계자를 지지하는 논거가 강력하게 발견된다.
번역 - 이종헌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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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조과학회 대구지부 월간소식지 제 35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880
참고 :
너희가 진화를 믿느냐?
저자는 1966년에 고등학교 신입생이었다. 그는 과학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무신론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정보를 얻었다.
과학은 "실험으로 증명된 진실"이라는 허울을 쓰고 우리를 미혹한다. 물론 과학에 그런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생물 시간에 개구리를 해부하는 경우, 개구리의 배를 갈라놓고 음식물이 어떻게 소화되고, 생명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보여주는 실험을 통하여 과학은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과학은 경험적인 것, 믿을만한 것, 의심할 수 없는 사실, 실험으로 증명된 진실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그저 의견이나 추측, 미신, 분별없는 믿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무시한다. 과학에 대한 감탄이 늘어가면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약해져 간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만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증거가 없다면 거기에 관심 둘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사실들은 증거가 확고하며, 과학적 발견들은 "지적으로 온전한 무신론자"가 될 수 있게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과학은 "증명된 사실"이고, 종교는 "무조건적인 신념"이 아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과학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나면 오히려 그 반대가 된다. 이 책의 저자의 경우가 그렇다. 과연 과학의 바탕에는 어떠한 전제들이 깔려 있을까? 저자는 이번 장에서, 진화가 가지고 있는 상징물(icons)들을 나열하고, 다음 장부터 그것들을 깊이 있게 조사해 가며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다. (편주 : 여기서는 각각의 주제들에 관하여 간단한 반론을 제시한다.)
진화의 이미지
첫 번째 이미지 : 스탠리 밀러의 실험 - 튜브와 플라스크, 전극
이 그림은, 1953년 당시에 시카고 대학원생이었던 스탠리 밀러가 생명체의 기본 요소들을 인공적으로 만들 때 사용한 실험 기구들이다. 밀러는 원시 지구의 대기 상태를 재현하고, 거기에다 번개에 해당하는 전기 스파크를 주어 아미노산이 함유된 붉은 응축물을 만들어 냈다.
이 실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은, "생명의 기원이 순전히 자연적인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신이 더 이상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반론 : 밀러가 만들어 낸 것은 생명을 이룰 수 없는 아미노산이었고, 그것도 무(無)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아미노산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시험관에 넣고 그것들을 이용하여 만들어 냈다. 그 실험은 생명이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못된다.)
두 번째 이미지 : 다윈의 ‘생물계통수‘(生物系統樹)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그린 그림으로, 맨 밑바닥에는 하나의 고대 조상이 있고, 그것이 몇 개의 큰 가지로 뻗어 나가다가 다시 작은 가지를 치고, 이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이런 진화의 모습은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과 비슷해서, "생물계통수"라고 부른다.
(다윈은 이 그림을 통하여 수백만 종의 유기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달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지만, 너무나 어리석게도 아무도 이 그림의 과학적 증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 그림이 나온 배경은 순전히 상상일 뿐,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없다.)
세 번째 이미지 : 헤켈의 ‘배아발생도‘
독일의 생물학자 헤켈이, 모든 생명체가 공통 조상에서 나왔다는 증거로 제시한 것이 배아발생도이다. 헤켈은 물고기, 도룡뇽, 거북이, 병아리, 돼지, 송아지, 토끼와 사람의 배아 그림들을 나란히 놓고, 그 모두가 발생 초기단계에는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 그림을 보면 마치 배아 발생의 초기 단계에는 여러 척추동물들과 인간의 모습을 구별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통해서, 모든 생물에게는 공통의 조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그림이 사기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네 번째 이미지 : 잃어버린 연결고리(missing link)
시조새의 화석을 놓고 어떤 고생물학자는 "진화의 강력한 상징이 될 수 있는 과거의 신성한 유물"이라고 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시조새를 파충류와 조류를 잇는 중간 고리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진화론 과학자들도 시조새는 진화의 증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대한 분명한 과학적 증거들이 있다. 1982년 국제시조새 회의에서 시조새는 더 이상 파충류와 조류를 잇는 중간종이 아님이 선포되었다. 그런데도 진화를 신봉하는 일부 편협한 사람들은 아직도 시조새를 진화의 증거라고 우기고 있다.)
다윈 대 하나님
다윈주의자가 동시에 기독교인이 될 수 있을까?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진실인 것처럼 여겨지자, 다윈의 진화론과 기독교의 교리를 조화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윈주의가 무신론을 함축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논증이 제시된 적이 없다. 나는 과학자, 진화론자, 찰스 다윈의 열렬한 찬미자이자 기독교인이다. 첫 번째 세포가 화학적 진화의 자연적 과정으로 생겨났다고 믿는 것은 무신론적 세계관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이 세상의 시작 버튼을 눌러 놓고 미묘하게, 도무지 탐지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한 방식으로 자연법칙을 통해 세계를 보존하고 역사한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신이 진화의 작동 원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실상 무신론을 믿는 것과 동일하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설계하는 대신 자연적인 메커니즘을 설계했다고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분명하다. 하나님이나 자연선택 중 하나를 선택해야지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은 “우리가 진화의 과정에 하나님을 허용한다면, 하나님은 ‘올바른 변이‘만 일어나도록 하기 때문에 자연선택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다윈주의의 요점은 자연이 스스로를 창조할 수 있으므로 초자연적인 창조주가 필요 없음을 보이는 것이다. 다윈주의의 진정한 핵심은 자연선택이고, 그것은 신의 개입이 아니라 자연적인 방법으로 적응에 대한 설명을 가능케 한다.
인류가 다윈주의의 자연선택으로 진화했다면(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믿듯이), 하나님이 아니라 유전적 우연과 환경적 필연이 종을 만든 것이다. ‘크리스천 진화론자‘ 라는 용어는 분명히 모순된 말이다. 찰스 다윈은 자신의 입으로 말한 것처럼 신을 살해할 뜻은 없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고 말았다.
‘종의 기원‘이 있으면 성경은 필요 없다.
진화를 믿는다면 인간은 자연선택이라는 비인격적인 힘의 산물에 불과하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할 필요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의 기원‘이 있다면 성경은 필요 없게 된다. 진화론에 충실하다면 저자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들이 타당하다.
“나는 하나님의 도덕 구조에서 벗어나 새롭게 얻은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성혁명이 시작되었고, 나는 하나님의 찡그린 눈길을 의식할 필요 없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쾌락에 빠져들 수 있었다. 저널리스트였던 나는 윤리와 도덕의 성가신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경쟁에 뛰어들 수 있었다.“
유물론을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엔 물질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사람은 죽고 나면 완전히 끝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지구상에 질서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있었던 사건을 취재한 지 5년 후 저자의 아내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그렇게 합리적이었던 아내가 어떻게 헛된 기대와 가장, 신화와 전설이 뒤섞인 불합리한 종교를 믿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서 아내의 인격은 달라졌고 가치관이 변했다. 더 사랑이 넘쳐 남을 많이 배려하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 갔다.
그래서 저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사하기로 했다. 믿음과 하나님, 성경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2년 동안 집중적인 영적 탐구를 했다. 어릴 때부터 그를 괴롭혀 왔던 기독교의 난제들에 대해 답을 찾아보았다. 주로 과학계의 최신 연구 결과가 하나님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1) 과학과 믿음은 언제나 부딪칠 운명인가?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종교적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과연 옳을까? 아니면 영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의 관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이 있을까?
2) 과학의 최신 증거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뒷받침하는가, 부인하는가?
3) 과학이 최근에 발견한 바에 비추어볼 때, 나를 무신론으로 이끌었던 진화의 이미지들은 여전히 유효한가?
저자의 접근 방식은 여러 과학 분야에서 가장 최근에 발견한 내용들에 대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가 반대 심문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편견을 넘어서서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려는 저자의 용기는 참다운 용기이다.
출처 - 창조과학회 대구지부 월간소식지 창조 제34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838
참고 :
기독교 : 현대 과학의 원인?
(Christianity : A Cause of Modern Science?)
by Eric V. Snow
듀헴-자키, 머톤의 논문들
기독교는 과학의 발전을 저해했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지성인은 17세기 갈릴레오의 지동설에 대한 종교재판과 1860년에 있었던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와 윌버포스 주교(Bishop Wilberforce) 사이의 진화 논쟁에서 주교를 당황하게 만든 것 등을 증거로 인용하면서 그렇게 했다고 믿고 있다. 그런 고정관념은 역사적으로 정확한가? 현대 과학(modern science)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가톨릭 대학과 수도원들에 있던 신학자들, 수도사들, 교수들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만약 추측하는 것처럼 기독교와 과학이 서로 매우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중세와 르네상스시대 동안 유럽에서 과학이 점차 발전할 수 있었을까? 어찌되었든 지동설을 믿었던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도 역시 기독교 신자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피에르 듀헴(Pierre Duhem), 스탠리 자키(Stanly Jaki), 그리고 로버트 머톤(Robert Merton)의 역사적 연구에서 보듯이, 기독교 세계관이 현대과학의 발전에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적 발달과 과학은 같은 것이 아니다.
과학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부정하기 위해서, 회의론자들은 과학의 일부 정의에 해당하는 것을 사용하여, 모든 문명들이 과학을 발전시켰었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이전의 시대에서 일상 생활에 영향을 주었던 발명품들은 자연의 법칙을 묵상했던 과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능인들에 의한 ‘경험적인(empirical)‘ 발견이었다. 비록 그리스, 중국, 인도, 그리고 아랍 등에서 과학이라고 불려질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과학은 곧 사그라졌고, 갈릴레오의 전진으로부터 기독교 과학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엄격한 적용과 활력이 확실히 결여되어 있었다.
듀헴-자키의 이론은 사회학적 요인, 유물론자(materialist), 현상론자(externalist) 등과 같은 원인들이 현대과학을 발생시키는 데에 충분한 조건들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다. 자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88, p.35),
“과학의 역사문헌들은 왜 세 개의 고대 문명(중국, 인도, 이집트)이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비슷한 패턴의 마주보는 과학(vis-a-vis science)을 보여주는 지에 대한 문제에 여전히 직면해 있다. 그 문명들 각각은 뛰어난 재능들이 있었고, 사회적인 조직도 잘 되어 있었으며, 평화로운 기간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것들은 역사 문헌이 강하게 신뢰하는 과학의 전지사회학(all-knowing sociologies)에 의해서 제공되었던 표준적인 설명 안이다) 불구하고 과학의 사산아였다.”
비록 이런 모든 조건들은 문명이 과학의 발전을 허락하는 데에 필요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왜 단지 하나의 특정한 문명만이 자립적으로 현대과학을 탄생시켰으며, 다른 문명들은 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의 지적, 철학적인 환경을 또한 살펴보아야만 할 것이다.
한 문화가 과학을 발전시키기에 필요한 철학적 개념들
듀헴과 자키에 의하면, 문명은 몇 세기 동안의 발전 이후에 소멸하지 않고 자립적으로 과학을 지키려는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첫째로, 시간은 직선적인(linear) 것이며 잠재적으로 정량화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시간에 대한 이해는 과거, 현재, 미래를 분명하게 구분해 주기 때문에, 자연(nature)의 원인-결과 관계를 훨씬 더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유대교과 기독교의 전통에서, 이러한 개념은 과거 어떤 특별한 시점에 무로부터 우주의 물질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행위로부터 시작한다. 시간은 현재로부터 미래의 심판의 날까지 행군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다른 이교도의 시선은 시간은 그 자체가 반복되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Great Year"의 개념은 수 세기에 걸쳐서 순환하는 시간들의 존재를 유지시켜왔다. 이론적으로 어떠한 종류의 발달이든지 영원히 진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고대 세계의 시간 개념은 미래는 과거의 반복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자기만족(complacency)이라는 의식을 갖게 하고, 이것은 과학의 발전을 방해한다. 영혼의 환생(reincarnation)과 윤회(transmigration)는 이러한 시간에 대한 관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만약 과학이 존재한다면, 자연 현상에 대한 해석들은 사건들에 대한 실제적인 원인을 설명하지 않는 추측적인(priori), 의사 과학적 설명(pseudo-scientific explanations)을 피하여야만 한다.
셋째로, 자연에 대한 유기체적 관점(organismic view)은 과학의 발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전체 우주가 살아있다는(alive) 믿는 것은 세계를 앞에서 언급한 순환적 과정인 탄생, 성장, 죽음, 그리고 재탄생을 진행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서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범신론(pantheism)과 결합되어 있다. 모든 것이 신(everything is God)이라고 믿는 이러한 개념은 힌두교(그리고 뉴에이지 운동)에서 보여지는 개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서구 사람들은 바위, 별, 바다 같은 것들을 생명이 없는 사물로서 인식한다. 유기체적 관점은 위의 것들을 그것들 자신이 지적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 간주한다.
넷째로, 우주의 기본적인 질서정연함과 실제성을 부정하는 것은 과학의 발달을 방해한다. 결코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그리고 또한 신과 자연이 임의대로 예측할 수 없이 변화시키는 것을 사람은 주의 깊게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섯째로, 자연 현상들에 대한 유기체적 개념의 한 작은 부분으로, 과학적 천문학(scientific astronomy)은 우주가 살아있다거나, 신이라고 믿지 않을 때 오직 발전할 수 있다.
여섯째로, 이성(reason)과 믿음(faith)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자연법칙들을 완전히 부정해서는 안 된다. 반면에 과학자들은 종교적 진실성의 가능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사람은 동물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정신(mind)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에 있는 것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대교-기독교 세계관에서, 창세기는 함축적으로 이 점을 나타내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창세기 1:26-29). 환생(reincarnation)은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남으로서 동물의 영혼이 사람에게로 들어갈 수도 있고, 사람의 영혼이 동물에게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주장함으로서 이것을 부정한다.
기독교 사상은 이교도 사상들을 몰아냈다.
상당히 많은 문명 지식인들이 이런 거짓된 사상의 모두 또는 대부분을 믿는 한, 스스로 유지되는 과학, 특히 외부적 실제 세계의 물리적 사물들에 대한 진정한 과학을 발생시킬 수 없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교도들의 개념에서 나온, 과학의 발달을 방해해 왔었던 우주의 본질에 대한 이념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피에르 듀헴은 10권의 웅대한 저서인 Le Systeme du Monde 에서 과학의 탄생은 219 개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철학적 개념들을 구분했던(가르쳐지는 것을 금지했던) 파리의 주교였던 스테픈 템피어(Stephen Tempier)의 선언(condemnation)이 있었던 1277년에 이루어졌다고 선언했다.
어떤 문명들은 이런 거짓된 개념들의 모두 또는 대부분을 가지고 있고 (힌두 사상의 인도), 일부 문명은 적게 가지고 있고 (중국), 한 두 문명은 아직도 소수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 이에 일치하여, 이슬람은 인도와 중국에 비해서 과학이 더 발전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이러한 잘못된 개념을 적게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은 하늘이 신이고 살아있다 라는 잘못된 생각을 적게 가지고 있었지만, 이러한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매우 영향력 있었던 작품인 On the Heavens에 나타나 있었다. 이러한 개념은 고유의 이슬람 과학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런 불완전한 지적인 개념들은 궁극적으로 힌두 과학과 충돌하면서 결합했다. 그것은 외부의 진정한 세계와 질서를 거부했고, 영원한 순환과 자연의 유기체적인 개념을 지지했다. 그리고 하늘의 신성을 주장하였다. 힌두 개념의 확장이 불교를 통해서 중국인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면서, 중국의 과학은 초기에 질식되어져 버렸다. 만약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Quran)이 이성을 초월한 신의 의지와 권능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슬람의 지도자급 신학자들이 매우 신비적으로 남아있었던 동안 이슬람 과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물리학에 대해 무비판적이 아니었다면, 이슬람의 과학은 자기 보존이 되어졌을 지도 모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와 갈릴레오(Galileo)의 새로운 개념이 그냥 아무데서 쉽게 튀어나온 개념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신 그들은 뷔리당(Buridan)과 오렘(Oresme)과 같은 중세의 전임자들의 기록을 통해서 그들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이들 두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물리학 개념을 깨뜨리기 시작함으로서 현대 물리학의 개념적인 기초를 형성하는 첫 걸음을 시작했다는 것을 듀헴과 자키는 매우 강조하고 있다.
머톤의 논문이 언급했던 것
머톤의 논문은 17세기 청교도들의 과학적 연구들을 장려하였던 확실한 도덕적 가치관을 보여준다. 그는 영국 청교도들 가운데서 과학을 장려했던 여러 가치들을 목록화 하였다. 첫째 한 사람의 기독교인은 중세 가톨릭에서 특성화되어졌던 사회로부터 은둔하여 묵상하는 수도사적 개념이 아니라, 전체의 삶을 사회에 유용하도록 행동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섬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에 유용한 직업들을 열거함으로서 직업을 강조하면서, 청교도주의(Puritanism)은 부지런함, 산업,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장려하였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그의 능력에 가장 잘 맞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에 있어서 이성과 교육은 둘 다 칭송되었다. 교육은 내용에 있어서 문학적인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것이 되었다. 과학적인 방법론은 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경험적이고(실용적인) 합리적인(이론적인) 시도들을 둘 다 필요로 했다. 이것은 자키가 반복적으로 되돌아갔던 하나의 이슈였다. 청교도주의는 각자의 소명을 감당하는 데에 필요한, 그리고 전체 사회에 유익한 지식의 탐사를 장려함으로서 경험주의를 증진시키는 것을 통해 이 둘을 제공했다.
영국 청교도 과학자들
이 기간 동안 많은 영국 과학자들의 종교적 가치관과 신념들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보는 것은 쉽다. 위대한 생물학자인 존 레이(John Ray, 1627-1705)는 그의 친구에게 자연을 조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네가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작품과 자연을 조사하고 관찰하는 일에 시간들을 잘 보내고 있다네” 왕립협회(Royal Society, 영국의 우수한 과학적 조직)의 68명의 창립 멤버 중에 42명이 그들의 종교적 배경이 청교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인들의 대부분은 신앙적으로 영국 국교회(Anglican)가 주류였기 때문에, 높은 비율의 청교도들이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과학적인 연구들에 수행하였음을 의미한다. 로버트 모레이(Robert Moray), 윌리암 페티(William Petty),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존 윌킨스(John Wilkins), 존 월리스(John Wallis), 조나단 고더드(Jonathan Goddard) 등은 모두 왕립협회의 유명한 지도자들이었고, 모두 청교도인(Puritans)들이었다.
과학과 기독교는 양립할 수 있다.
듀헴, 자키, 머톤의 글에서 보여지듯이, 역사의 확고한 사실들은 과학과 기독교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는 진화론자들의 일상적인 주장을 거부하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웨버(Max Weber)가 자본주의의 발전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가치관에 의해 기인했다고 말했던 것과 같이, 머톤의 이론은 영국 청교도들의 가치관이 과학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다 더 중요하게, 듀헴과 자키의 연구는 기독교에 대한 철학적 믿음이 과학이 탄생하도록 이교도들의 반과학적 개념들을 몰아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성경에 대한 믿음은 궁극적으로 스스로 유지되는 과학을 통하여 이성적인 표현을 막았던 이교도적 사고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했던 것이다.
Selected References
.Stanley Jaki, The Origin of Science and the Science of Its Origin
(South Bend, IN: Regnery/Gateway, 1978).
.Stanley Jaki, The Savior of Science (Washington, DC: Regnery Gateway, 1988).
.Robert K. Merton, 'Science in Seventeenth Century England,' Osiris, 1938, pp. 360-632.
More specifics and further references are in my essay, 'Christianity: A Cause of Modern Science? The Duhem-Jaki and Merton Theses Explained.'
1 Empiricism maintains knowledge is mostly gained by the senses, while rationalism maintains knowledge is mostly gained by thinking, reasoning, and logic.
* Eric V. Snow has a master's degree in history.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christianity-cause-modern-science
출처 - ICR, Impact No. 298, April 1998.
툴사 동물원은 성경적인 것만 제외하고 종교에 대해서 관대하다.
(Tulsa Zoo Tolerates Religion - Except the Bible Kind)
미국 오클라호마에 있는 툴사 동물원(Tulsa zoo)에서 힌두교의 신인 가네사(Ganesha)를 찬양하고, 범신론(pantheism)을 외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성경적인 설명은 불가능하다. 동물원 위원회는 창조론적 설명의 전시를 허가하기 위한 첫 번째 미팅 후에 그것을 번복하였다고(2005. 7. 7) Agape Press는 보도하였다. 기독교 관계자들은 동물원 측이 힌두교에서 신성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는 코끼리와 같은 동상을 포함하여 종교적인 심볼들을 나타내는 여러 전시물들을 이미 특성화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전시가 금지되는 것은 오직 유대교-기독교의 창조론적 설명 만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 동물원 측은 동의했었다. 그러나 전시 디자이너인 힉스(Dan Hicks, an AiG friend)는 위원회가 특별히 몇몇 그룹들에 대해서는 조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힉스는 동물원에서 창조론의 전시를 원래 승인했던 툴사 공원과 레크레이션 위원회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수의 요구들을 조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이종교간 동맹(Interfaith Alliance), 툴사 메트로폴리탄 미니스트리(Tulsa Metropolitan Ministries), 그리고 모든 것을 관용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그룹들은 사실 교회와 정부의 분리를 위한 미국인 연합(Americans United for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과 제휴하고 있는 정치적 활동단체 라고 주장하였다.
AiG(Answers in Genesis)는 또한 창조론적 전시의 취소에 대한 엄중한 논평을 하였다. 여론 조사는 대중들의 76%가 창세기의 전시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힌두-범신론적 전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외치고 있다. ”지구는 우리의 어머니이고, 하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우리 문화에서 관용(tolerance)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크리스천들의 손을 뒤로 묶고, 입에는 재갈을 물리고, 상황 청구권도 없이, 목격되는 모든 악한 행동들과 타락하고 사악한 퍼레이드들이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견디도록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항하려는 시도를 하려고 하면, 교회와 정부는 분리되어야 한다 또는 진화는 사실이다 라는 주문(mantras)들이 끊임없이 외쳐지는 것을 들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인내를 해야만 하는가. 피해자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들의 묶여진 끈을 끊고 싸우려 나설 때, 그들은 웃으며 실제로는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단지 포함되기를 원했던 것이었다고 위장한다. 시간이 지나 평온해지고 나면 피해자들은 또 다시 느슨해진다. 이제 당신은 자유주의(liberalism)에 대해서 훨씬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될 예정이었던 창조에 대한 성경적 설명.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507.htm
출처 - CEH, 2005. 7. 1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63
참고 :
걷는 물고기 : 유전적 다리?
(The Fish that Walks : A Genetic Bridge?)
진화론자들은 어류와 양서류 사이의 연결 고리(link)로 부를 수 있는 다수의 물고기 종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말뚝망둥어(mudskipper), 등목어(climbing perch), 폐어(lungfish) 등은 모두 얼마 시간 동안 물 밖에 있을 수 있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기물로부터 사람으로까지 모든 생화학적 정보들이 물에서 육지로 올라가는 동안 유전적 다리(genetic bridge)를 통하여 전달되었다는 것을 믿기 위해서는 논리적 도약이 있어야 한다.
양쪽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생물체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들 특성들은 처음부터 창조된 것이라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한다. 진화론자들은 과거 수억 수천만년 동안 발생된 진화론적 변화(transition)의 예로서 오늘날 존재하는 이들 종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은 말뚝망둥어나 폐어가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사람으로 계속 진화해 갈 것으로 기대하는가? 아마도 그런 생물들은 진화론자에게 표면적인 수준에서 일부 위안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포크가 스푼으로부터 진화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수저세트를 정렬시켜 놓는 것만큼이나 오류가 있는 것이다.
한 유사한 문제가 비행의 기원(origin of flight)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조류(birds)에서, 박쥐(bats)에서, 곤충(insects)에서, 나는 파충류(flying reptiles)에서 적어도 4번을 각각 진화했어야만 한다. 관련이 없는 생물 종들에서 각기 4번이나 엄청난 진화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보다 창조주가 한 번에 그러한 것들을 창조하셨음을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목적 중 하나는, 창조론자들의 관점은 합리적이고, 주어진 과학적 사실을 더 쉽게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창조주가 모든 동물들을 다르게, 그러나 비슷한 마스터 플랜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생명을 유지시키는 풍부한 단백질들이 같은 생화학적 구성요소들을 가지는 먹이(food)로부터 공급되지 않는다면, 생물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우리에게 모든 육상동물들에 암호화되어 있는 유전정보들이 말뚝망둥어와 같은 한 도관(conduit)을 통하여 전달되었다는 것을, 또는 어떻게 해서든지 후에 실현되었음을 믿으라고 요구한다.
나는 내 생활에서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사용한다. 컴퓨터 암호는 프로그래머 없이 실현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생물체는 3차원적인 컴퓨터 암호를 가지고 있다. 그 암호에는 손가락이 어느 정도 길이로 자라다가 멈추라는 명령이 들어가 있다. 당신의 눈동자는 직경 5cm 정도에서 더 자라지 않으며, 당신의 혀는 60cm씩 자라지 않는다. DNA, RNA, 단백질들의 경이로운 반응들은 한 종의 생물체 내에 엄청난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음을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조절되고, 스스로 수선되며, 엄청난 정확성을 가지고 스스로를 복제한다. 이 놀라운 시스템이 처음에는 달랐고, 더 단순했다고 믿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 단계에서 다윈설의 논리적 논쟁은 실패하고 만다.
창조론자들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창조된 여러 종류들(kinds)로부터 출발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생물체의 다양성(diversity)은 각 생물체들의 건설과 복제를 위해 암호화되어있던 ‘야생형(wild-type)‘의 유전정보 내에서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종의 분화(speciation)는 이들 생물체의 여러 집단들이 고립되고, 돌연변이나 유전학을 통하여 일부 정보들을 잃어버렸을 때 발생하였다. 진화론자들은 수백 수천만 년이 지나면서 정보의 획득이 일어났다는 불가능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시스템들은 거꾸로 일어날 수 없다. 유전 정보(genetic information)는 만들어지기보다 없어지기가 훨씬 쉽다. 생물체에 대한 생화학적 연구를 실시한다면, (이들이 모두 우연히 동시에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을 믿는 것보다) 어떤 설계자가 생물체의 놀라운 시스템을 설계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rae.org/fishwalk.html
출처 - Revolution against Evolution, 2000. 12. 2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13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