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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Headlines
2005-06-10

세계 언론들이 캔자스 주의 진화론 전투를 주목하고 있다. 

(World Press Eyes Kansas Evolution Battle)


      10여년에 걸친 ‘반-스코프스 재판(Un-Scopes trial)’이 미국 캔자스 주에서 진행 중이다. 그리고 세계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다. 1925년의 스코프스 재판과는 달리, 이번에는 진화론이 주도적 이론이고, 지적설계 이론(intelligent design)이 경쟁자이다. 그러나 사실 지적설계 운동의 지도자들은 지적설계가 교실에서 가르쳐지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진화론에 대한 비판이 가르쳐지는 것을 허락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위원회의 대다수가 '논쟁점 가르치기”를 허락하는 과학 기준을 찬성하는 쪽으로 변화되면서, 진화론자들은 거의 확실한 패배가 예상되고 있다. 그들은 법정에서처럼 찬반 양론을 듣는 것도 보이콧트 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이 이야기에 대한 최근 뉴스들이 있다. 아마도 다른 주들의 교육위원회에 입장에 영향을 미치게 될 이번 논의의 결과는 조정 상태에서 머물고 있다.    

New York Times article (as analyzed by Discovery Institute)
Wichita Eagle : "진화론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Kansas City Star : "생명체는 설계자가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고 지적설계 이론은 주장한다'
MSNBC : "증인들은 진화론이 가르쳐지고 있는 방법을 비판하고 있다
MSNBC : "종국으로 향하고 있는 진화론 전쟁
CNN : "진화론에 대한 비판들이 캔자스에서는 공개되게 되었다
Science Daily : "교사들과 과학자들이 진화론 전쟁을 이끌고 있다
Lawrence Journal-World : "과학자들: 교육위원회는 진화론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Washington Times op-ed : "다윈니즘에 대한 논란
World Net Daily editorial : "폭발적인 메모가 캔자스에서 진화론자들의 전략을 나타내고 있다
Insight on the News (UPI) : "진화론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더 많은 뉴스 출처들이 창조론 대 진화론에 관한 이야기를 보도하고 있다 :

California Agee : "지적설계 이론가(Behe)가 다윈주의에 도전하다
Agape Press : "반창조론 글에서 명예를 훼손하였다며, 학부모들은 진화론자를 고발했다”  
MSNBC : "산에 대한 소란(한 창조론자가 세인트 헬렌 산을 성경적 지질학을 지지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방법)'
Kentucky Post : "창조론에 대한 모든 것. 여기에서 하나의 사명이다 (Answers in Genesis 창조박물관)

과학 기준의 변화를 위해 제안된 모든 것들은 Kansas Science 2005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가적 관심을 끌고 있는 이성에 대한 전쟁이며, 진실에 대한 전쟁이고, 선전에 대한 전쟁이 형태를 잡아가고 있다. 최선을 다해 잘 무장해야 할 것이다. 어리석은 감지기(Baloney Detector)를 제거하고, 배터리를 충전시켜라. 말하는 것만큼 말하지 않는 것을 주목하라. 허풍과 과학에 대한 재정의가 아니라, 진정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진화론자들이 화석(fossils)들과 분자 기계(molecular machines)들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라. 그들은 그것에 대해 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커다란 거짓말로 시민들을 놀라게 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100% 진화론 이외의 어떤 것도 경제적으로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04/21/2005 04/29/2005 이야기를 보라).     

그것을 믿지 말라. 아마도 부모들은 지적으로 디자인된 자녀들의 목구멍 아래로 다윈을 밀어 넣지 못하도록 떼를 지어 몰려올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용돈도 줄 것이다. 산업체들은 ‘분석적 사고력(analytical thinking)‘을 가지도록 훈련된 젊은이들을 원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진화론의 문제점들을 가르쳐달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다윈 이론에 대한 논쟁점을 분석할 수 있도록 가르치라. 진화론자들은 지적설계 이론은 '신념에 근거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윈이라는 우상에 대한 그들의 경배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신념도 없을 것이다. (04/30/2005을 보라)        

이전에는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뉴스 언론들이 지적설계(ID)와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을 다시 보기 시작했고,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획일적인 자유주의적 다윈당의 거대한 과학 제국(Big Science Empire)은 이러한 세밀한 조사에 견뎌낼 수 있을까? 골리앗이 거대하다 하더라도, 그의 무기와, 그의 목표와, 어떻게 그들이 연결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젊은이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적 전투(intellectual battle)에서 필요한 모든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505.htm#zoo105 

출처 - CEH, 2005. 5. 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678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5-05-17

창조 교리에 대한 타협 : 점진론적 창조론

(Compromise in the Doctrine of Creation)

John D. Morris 


     교회의 역사는 수많은 개별적인 싸움으로 점철되어 왔다. 그 모든 싸움에서 궁극적인 승리자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섰던 사람들이었다. 예컨대 초기 교회의 교부(敎父)들은 율법주의자와 그노시스주의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종교개혁 기간 내내 논쟁점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받는 구속 이론이었다. 이와 같은 싸움에서 매번 성경의 말씀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주장하는 쪽이 승리를 거두었다. 창조론의 경우도 역시 논쟁을 피할 수 없다. 1800 년대 전반에는 간격이론(Gap Theory)과, 1800 년대 후반에는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과 시작된 타협주의자들과 싸움에서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진리의 방패를 들고 승리했던 것이다.


오늘날 선택된 타협 이론을 사람들은 '점진론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 이라고 부른다. 이 이론은 창조의 6 일을 지질학적, 그리고 천문학적 시간 개념으로 수십억 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날-시대 이론 (Day-Age Theory)의 현대적 수정 이론이다. 이 이론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시대적으로 광대한 간극을 넘는 별개의 시대들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들이 신봉하는 아담 이전의 세계는 세속적인 지구관과 동일하다. 아담의 불순종한 결과로 죽음이란 징벌이 있기 이전에, 그 세계는 이미 질병, 피흘림, 그리고 살육행위로 대다수 생명체가 멸종하던 세상이다. 그런 세계를 믿는 점진론적 창조론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의미를 최소화 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그 이론은 십자가의 의미를 그리스도 당신의 육신, 또는 창조의 남은 숙제를 복원 또는 완성하는데 두지 않고, 인간 영혼의 구속에 한정하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안을 '오늘날의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발생관적 문제' 라고 정의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그릇된 편에 서서 싸우고 있다. 문제를 각성하지 못한 사람이나, 그릇된 편에 서있는 크리스천 지도자나 구별 없이, 그들은 모두 일견 권위있는 과학자들의 위협적인 이론에 밀려서 성경을 타협하려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ICR을  타협하지 않고 성경을 믿는 과학자들의 집단으로 세우시어, 타협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교회를 이끌어 올바로 세우려 하신다고 확실히 느끼고 있다.


이 사명을 다 하려고 ICR은 최근에 이름 있는 창조론자들을 소집하여 점진론적 창조론의 오류를 지적하게 하고, 성경의 창조진리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 ICR의 과학자 Dr. Henry Morris, Dr. John Morris, Dr. Russell Humphreys, Dr. John Whitcomb, Dr. Dou Phillips 등이 ICR 라디오 방송실에서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 모임은 4번에 걸친 일련의 1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녹화하였다. 이 녹화기록은 크리스천/창조주의자의 세계관을 제시하여 점진적 창조론의 잘못된 가르침을 폭로하고, 특히 우리의 녹화테이프와 유사한 녹화테이프에 담긴 휴 로스(Hugh Ross) 박사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우리의 녹화 내용의 발췌가 앞으로 몇 달 후에 '과학, 성경 그리고 구속'이라는 제하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송출될 것이다.


본 녹화내용이 조만간에 Dr. Henry Morris 3 세가 전사저술(傳寫著述)한 '에덴 이후━창조, 저주, 그리고 십자가의 이해' 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될 것이다. 성경적, 신학적, 그리고 과학적인 근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에게는 믿음의 방패 역할을 감당할 것이며, 타협자들에게는 맞대결자가 될 것이다.


교회는 전반적으로 전폭적인 성경적 세계관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과학'으로 가장한 그들의 세속적인 사고를 이제 그만 그쳐야만 한다. 점진론적 창조론 사상은 복음주의자들 중에 번지고 있는 그릇된 현대 사상의 아픈 가시이다. 여러분들은 ICR이 결코 이 과업에 위축되지 않을 것임을 믿어도 좋을 것이다.

 

*참조 : What’s wrong with ‘progressive crea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358/

Progressive creationist anthropology: many reasons NOT to believ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31-38.pdf

Pre-Adamic man: were there human beings on Earth before Ada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53/

Is cruelty normal?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918/

The dubious apologetics of Hugh Ros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65/

Exposé of The Genesis Ques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54/

Critique of the introductory chapter of Hugh Ross’ book A Matter of Days: Resolving a Creation Controvers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138/

Hugh Ross lays down the gauntle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973/

Jason Lisle vs. Hugh Ross debate: annotated transcrip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414/

Beaded ornaments challenge ‘progressive creationist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205/

Progressive creationist anthropology: many reasons NOT to believ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31-38.pdf

A pathetic case for an old earth : A review of A Biblical Case for an Old Earth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52-54.pdf

Creation compromises—Gap Theory

http://creation.com/creation-compromises#gap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president/prz-0306.htm

출처 - ICR

미디어위원회
2005-02-05

원숭이(스코프스) 재판과 브라이언의 변론

(Scopes : Creation on Trial)

Richard M. Cornelius, John Morris


      1925년 미국에서 일명 ”원숭이 재판 (Monkey Trial)”이라고 불리는 재판이 있었다. 피고인의 이름을 따서 ”스코프스 재판(Scopes Trial)”이라고도 하는 재판으로, 사건은 그 해 7월 미국의 테네시 주의 데이턴이라고 하는 작은 시골도시에서 발생하였다. 한 공립학교 교사인 스코프스가 수업 중에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것과, 이에 대한 반진화론자인 기독교인들의 고소로 시작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우습고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당시의 주교육법상에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었던 상태였기에, 이러한 고소가 가능하였던 것이다.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그것도 우리에게는 일제의 압제하에 있었던 시기에 일어난 것이기에 생소한 이야기이지만, 당시 재판의 관심과 이 재판의 파장이 미국 교육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교과과정에 진화론이 자리를 잡게한 중요한 사건이기에, 당시 재판의 진행을 검토하여 보는 것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욱이 재판의 기소자측의 변호를 맡았던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 (William Jennings Bryan)이 진화론자들의 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한 점과 성서에 대한 그의 곳곳한 자세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언론의 관심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시작된 작은 시골도시의 이 재판이 보도되자, 빠른 속도로 전 미국의 이목이 이곳으로 집중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모여든 언론의 규모를 통해서도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200 여명의 신문 기자들이 취재를 위하여 이 작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방송계 대표자들도 대거 참가하였는데, 유명한 방송국인 시카코 트리뷴 WGN 에서는 이 재판을 미국내의 공판사상 처음으로 라디오 전국 중계를 준비하고 있었고, 65 개 전신 교환수들이 몰려들어 사상 최다의 기사를 유럽과 호주로 보내는 등, 그 관심은 대단하였다. 


2. 목적의 이탈과 제시된 진화의 증거들 

7 일간의 열띤 공방전이 오고 갔으며, 재판의 시작은 스코프스 교사가 주의 교육법상에 유죄인가 하는 문제에서 시작하였지만, 피고측의 변호사들은 피고인에 대한 무죄성을 변론하기 보다는 진화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더욱 열을 올렸다. 예를 들면 그들은 ”스코프스 교사가 진화론을 가르쳤습니까?” 라는 질문 조차도 전혀 없이, 스코프스의 위법행위에 대하여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당연히 재판의 진행은 진화론에 대한 정당성 문제로 확산되어, 이는 스코프스 교사의 위법문제에 대비하였던 기소자측을 적지않게 당황시켰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측이 몇 가지의 증거들을 제시하였는데, 그들이 제시했던 증거들은 오늘날에는 오히려 진화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 증거들은 보면, 흔적기관, 태아(헥켈)의 배, 그리고 인류화석인 네안데르탈인, 호모에렉투스인, 필트다운인, 네브라스카인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이었다. (이들 증거들에 관한 허구성은 그 동안 창조지에서 여러 번에 걸쳐 언급하였으므로 이를 참조하기 바람) 


3. 성경에 대한 피고측 공격과 브라이언의 대답 

재판은 진지하고 복잡한 질문들로 이어졌다. 특히 일곱째 날에 열띤 질문과 대답은 감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재판의 절정을 이루었는데, 나중에 피고측 변호인은 성경의 무오성 문제까지 확대시켜 나갔다. 예를 들면, 뱀은 하나님이 기어다니라고 저주하기 전에 꼬리로 걸어 다녔습니까?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구하였습니까? 지구가 얼마나 오래되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3500~5000 년 전에 이집트와 중국에서 살았습니까? 라는 식의 질문이었다. 그러나 기소자측 변호사인 브라이언은 이러한 난해한 질문에 대하여 성경적인 지식을가지고 능숙하게 응수하였고, 그가 모르는 대답에 대하여는 솔직히 시인하였다. 가열된 대화 중에 브라이언은 성경의 문구가 실제로 말하는 점들은 지적해 주며, 피고측 변호사에게 성경을 부연 설명하지 말고 그대로 인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대표적인 대화내용을 보면, 

문 : 당신이 요나가 고래에게 삼키웠다는 내용을 읽을 때 당신은 어떻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는가?

답 : 나는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웠다고 읽었다. 고래라고 말하지 않았다.

문 : 그런가? 확실한가?

답 :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바이다. 큰 물고기,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나는 고래를 만들고, 사람을 만들고 ,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

문 : 브라이언씨, 신약성경이 고래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답 : 잘 모르겠다. 나는 그것은 물고기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상황을 크게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나는 성경이 물고기를 말한다는 것을 당신에게 주목시키고 싶을 뿐이다. 성경은 고래라고 말하지 않았다.

문 : 그러나 신약 성경은 고래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은가?

답 :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내가 그것에 관하여 어떻게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겠다.

문 : 자, 당신은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었고, 그는 거기서 3 일 동안이나 지냈으며, 고래는 그를 땅 위로 토해내었다고 말하였다. 당신은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믿는가?

답 : 나는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단지 그것이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문 : 당신은 그것이 일상의 물고기였는지 그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답 : 당신은 추측해도 된다. 진화론자들은 추측한다.

문 : 그러나 우리가 추측할 때 , 우리는 바른 감각을 갖고 추측한다.

답 : 그러나 종종 그렇지가 않다.

문 : 당신은 물고기가 사람을 삼키기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졌는지 아닌지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답 : 성경이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말하지 않는다.

문 : 당신은 하나님이 목적을 위하여 특별하게 물고기를 수리하셨는지도 모른다.

답 : 그렇다, 성경은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문 :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이 그들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즉, 그는 그러한 물고기를 만드셨고 그것은 요나를 삼킬만큼 컸었다고 믿는다.

답 : 그렇다. 추가하자면, 하나의 기적은 다른 기적만큼이나 믿기가 아주 쉽다.

문 : 그것은 나에 관한 것이냐?

답 : 그것은 나에 관한 것이다.

문 : 그것이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냐?

답 : 당신에게는 믿기 어렵다. 그러나 나에게는 쉽다. 기적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행해지는 것이다. 당신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보았을 때 기적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리고 요나의 기적을 믿는 것은 성경의 다른 기적을 믿는 것 만큼이나 아주 쉽다.

문 : 요나가 고래에 의해 삼키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완벽하게 쉽나?

답 : 만약에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면...(그러나) 성경은 진화론자들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질문의 초기에 브라이언은 ”성경 안에 모든 것이 거기에 적혀 있는 대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 고 말하므로,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한다고 몰아부치는 피고측의 함정을 피하였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비유적인 곳이 있다” 라는 것과, 그러한 비유적인 언어는 적당히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언급을 피고측 변호인들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해석을 가질 권리가 있다 라는 의미로 확대시켰다. 
 

4. 재판의 결론과 그 결과 

포성과 함께 시작하였던 ”스코프스의 재판”은 피고 스코프스가 유죄 판결과 100 불의 벌금형이 내림과 함께 막을 내렸다. 재판의 결과 미국의 일곱 주에서 연달아 비슷한 법적 논쟁을 일으키게 하는 발단이 되었다. 더욱이 이 재판은 1960 년대 까지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에 진화론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던 당시의 추세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당시 언론들의 보도방향은 사람들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대부분의 기자들은 재판의 시작전부터 이미 기독교인인 브라이언을 공격하려는 생각을 갖고 취재를 시작하였으며, 브라이언의 진화론의 문제점에 대한 분명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브라이언에게 불리한 쪽으로 기사를 실었다. 한 기자에게 왜 재판을 취재하러 왔는가 하는 질문을 하자, ”오, 저는 무슨 일인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무엇을 써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영화 관계자들도 가끔씩 흥미거리로 이 재판을 영화화 하였는데, 제작자들의 편견으로 재판의 중심 내용과는 많이 벗어난 경향이 있었다. ”세계의 가장 유명한 공판” 이란 영화제목으로 장식된 영화들은, 재판을 재연할 때마다 당시의 중요하고 근본적인 논쟁보다는 주로 유명한 관계자들, 극화한 논쟁들, 절정의 모습들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편견을 가진 기록들은 무모하게 성경을 고수하려는 기독인들에 의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한 진화론자의 피해로서 이 재판을 인식시켰다. 


5. 브라이언의 생각들 

이러한 언론의 편견된 기록들은 브라이언의 진의를 파악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도록 하였다. 재판 전후의 브라이언의 기록들은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 어떠하였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다음은 그의 기록중 몇 가지 예들이다. 

   # 192O년과 1923년, 네브라스카에서 있었던 입법총회

”우리는 공립학교 선생에게 종교를 가르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선생들이 학교에서 성경을 공격하는 것이 허락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공립학교와 대학에서 선생들이 정통기독교를 설명하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신념과 성경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그리스도를 인간의 수준으로 낮추는 식의 가르침에 대하여 저지할 권리가 있다.”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가르치기 원할 때 그들 자신의 학교를 설립한 것처럼, 진화론자들도 그들의 생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다면 그들 자신의 학교를 설립하여야 한다.” 

   # 1923년, 상원의원 싱글테리에게 보낸 편지

”진화론은 계속된 관찰에 의한 확정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가설이며, 사실로서 가르치는 것은 위험하다.” 

   # 1923년 월간 대중과학

”모든 진실은 하나님으로부터 라는 문제를 논하며 자연의 책 안에서 혹은 책중의 책(성경)안에서 발견되든지 어떤 것도 추측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진화가설과 같은 가설들은 진실이 아니다.”

   # 1925년 5월 28일과 7월 12일, 데이턴 시의 법률가 수힉스에게 쓴 편지

”연설, 출판, 생각, 지식의 자유를 향한 어떤 공격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부모들은 자식들의 종교적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를 가졌다.”

”허위로부터 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을 맺고, 한 개인으로서 사고하기 위해 만든 집단의 권리는 그 개인의 권리와 동등하게 인정되야 한다” 라고 하며 진화론의 침투에 대하여 단체적인 행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브라이언은 정치적 사회적 활동에 대하여 자유롭고 진보적이었지만 성서적으로는 보수적이었다. 근본주의자들과 함께 성경의 성령의 감동과 권위, 신성, 처녀의 잉태, 기적들,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인류의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대속능력의 믿음에 관하여 논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위치는 브라이언을 도덕과 종교의 문제에서 절대론적인 권위주의로 치우쳐 있는 사람으로 인식시키기도 하였는데, 그는 삶의 모든 관점에서 영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진화론의 가설을 하나님의 권위, 성경의 기초, 기독교 정신, 마지막에는 문화의 모든 면을 향한 도전으로 보았다. 


6. 맺음말 

”원숭이 재판”에서 피고인 스코프스는 유죄로 선언되었지만, 실제로 이 재판은 진화론이 전 미국으로 확산되는 동기가 되었다. 재판과정에서 진화론의 증거들은 오늘날에는 케케묵은 허구들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에게는 진화의 논리성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기소자측 변호사인 브라이언의 정확한 진화론의 문제지적과 그의 성경에 대한 믿음을 향해서, 언론들은 브라이언을 성경을 무모하게 신뢰하는 고집쟁이로서, 그리고 피고측 변호단을 진리를 향한 피해자로 표현하였다. 재판으로부터 70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어떠한 편견 속에서 살고 있는지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추측된 이론인 진화론이나 동일과정설과 같은 진리로 향하는 길목의 장애물들 앞에서, 진리를 지켜야 할 사람들은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준비하여야 한다.

 

번역 - 이재만

주소 - https://www.amazon.com/Scopes-Creation-Trial-John-Morris/dp/0890512574

출처 - 창조지, 제 108호 [1998. 5~6]

미디어위원회
2004-12-09

창조를 믿는 것은 지적 자살 ?

김무현


       창조에 관해서 어떠한 믿음을 갖느냐는 것은 개인의 신앙에도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과학과 시대정신의 패러다임(paradigm)을 잡아 나아가는 데에도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이 창조에 관한 연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지적설계로 이루어진 (하지만 죄로인해 타락한 모습도 아울러 보여주는) 피조세계와, 과학이란 이름으로 위장된 진화론의 모순과, 그로 야기된 문제점들을 보시고 굳건한 창조신앙을 확립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읽는 모든 책에는 저자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저자가 알려지지 않은 경우에도 우리는 누군가가 그 책을 지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가전제품과 생활필수품에는 제조 회사가 표시되어 있으며, 모든 건축물에는 설계자와 시공자가 있습니다. 만든 사람이 없이 저절로 생긴 것은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반드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은 유사과학 진화론은 이러한 대전제를 부정하고 모든 피조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 졌다고 주장 합니다.


진화론은 한마디로 말하면 “우주알 (cosmic egg)의 단 한번의 거대한 폭발에 의해서 모든 우주와 물질과 생명이 저절로 만들어 졌다“ 고 말하는 이론입니다. 마치 '먼지와 물과 바람으로부터 수많은 시간이 걸려서 난초가 만들어졌다.'고 하는것과 같지요.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고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예레미야 2:27) 라고 한다며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첨단으로 치닫고 있는 이 시대의 과학이 예레미아 선지자 때와 똑같은 모순에 빠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적 가설과 추론에 불과한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믿고 있으며, 모든 정규 교육과정에서도 진화론이 부정될수 없는 진리인 것처럼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규 교육과정을 통하여 진화론에 세뇌되어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혼란스러워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유신론적 진화론”이란 허울좋은 타협안을 만들어 놓고 자위하기도 합니다. 기원에 관한한 창조와 진화 두가지 가능성 밖에 없습니다. 창조가 참이면 진화는 거짓이요, 진화가 참이면 창조가 거짓입니다. 서로 상반되는 두 대전제가 동시에 진리일수 없다는 것입니다.


18세기의 신학자 윌리엄 팔리(William Paley)는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시계공논증이라는 것을 통해서 자연의 지적설계를 설명하였습니다. 즉 길을 가다가 만약 시계를 하나 발견하면 그 사람은 시계를 바라보며 이 시계를 만든 시계공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듯이, 시계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생명들을 바라볼 때는 반드시 창조자가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후 진화론이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혀 가고 있을 즈음에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으로 널리 알려진 신다윈주의의 지도자인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 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모든 생명은 누적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의 결과로서, 설계논증은 낡고 비과학적인 것임으로 이것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시간낭비에 불과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마치 바벨탑을 쌓으며 '자, 성과 대를 쌓아 대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창세기 11:4) 으쓱대면서 하나님 자리에 앉아 보려 했던 인류의 교만함을 다시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본주의를 대표하는 리차드 도킨스의 도도하고 교만한 기대와는 반대로 오히려 진화론의 문제점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며 그 기둥들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한편, 첨단화된 분자생물학을 통하여 DNA의 구조와 엄청나게 복잡한 유전자코드(genetic code)가 해석되면서, 마이클 베히(Michael Behe)의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box)“ 나, 필립 존슨(Phillip Johnson)의 ”다윈주의 부수기(Defeating Darwinism)“,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의 ”설계추론(The design inference)“ 등 전능자의 지적 설계가 과학적으로 더 타당한 것임을 보여주는 책들이 연속적으로 출판되며 지적설계운동이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 비추어 최근에 오하이오 주의 교육지침에서는 진화론과 함께 진화론의 문제점들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권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의학자이며 컴퓨터 공학자인 마크 이스트맨(Mark Eastman)과 찰스 미슬러(Chuck Missler)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창조(The creation beyond time and space)” 라는 저서를 통해 '다윈 이후 수세기 동안 창조를 믿는다는 것은 지적자살을 기도하는 것(committing intellectual suicide)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성경비평이 가장 극심했던 20세기에 걸쳐, 그 전의 인류역사 모두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창조를 뒷받침해주는 자료들이 발견되고 축적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라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고 전제합니다. 과학자들에 대해서 당신은 어떠한 믿음을 갖고 계십니까? 편견이 없고, 객관적이고, 항상 진리만을 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당신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당신도 이미 과학주의(과학의 우상)에 물들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과학자들도 우리와 같은 한계성을 지닌 사람들이며, 그들의 의견은 시대에 따라 변하며, 배경신념하에 연구하므로 객관적이지 못할 수 있으며, 특히 실험실에서 증명할 수도 없고 자연계에서 관찰할 수도 없는 기원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은 “과학세계에서는 절대적인 진리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패러다임이 지배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지적대로 과학자는 그시대 패러다임의 절대적 권위와 영향력 하에서 연구에 임하게 됩니다. 아인슈타인도 “과학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잡다한 감각자료를 기반으로 선택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반드시 주관적 요소가 개입되게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도 “관찰자는 언제나 거기(어떤 주관적 견해)에 있어 결론을 만들므로 그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프랜시스 쉐퍼도 “과학자는 일정한 사고방식의 틀을 갖고 그 안에서 실험을 고안하고, 관찰결과를 배열하고 결론을 맺게된다.” “심지어 현대과학은 사회학적 과학의 성향을 갖고 있는데, 즉 객관성을 거의 확신하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얻고 싶어하는 사회학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자신들이 요구하는 어떤 결론으로 쉽게 도달하게 된다.”고 지적하며 그 예 중의 하나가 진화론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이 연재를 통하여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인가? 이 피조세계에 전능자의 창조와 설계의 흔적이 있는가? 또한 진화론으로 교육받은 우리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성경에 적힌 사실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창조과학에서 성경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것들은 과연 과학적사고체계로도 설득력이 있는가? 기독교인으로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계속 생각해 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창조과학 사역을 “창조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무모한 시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진화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듯이 초월적 창조도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습니다. 다만 로마서 1장 20절 말씀처럼 피조세계에 남겨놓으신 전능자의 설계와 창조의 흔적을 추적하며, 다른 한편으로 진화론의 모순과 불가능성을 드러내고 알리는 사역인 것입니다.


미디어위원회
2004-12-06

왜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에 대해 배워야만 하는가? 

(Why Should I Learn About the Creation vs Evolution Controversy?)

Curt Sewell 


      여러 종류의 독자들이 있듯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상관없어,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도 않잖아, 그리고 난 과학에 흥미 없어.” 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질문들을 조금 더 해보기로 하자. 당신의 친구나 가족 구성원 중에서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당신은 지난 수십년 간의 국가 윤리나 사회 관습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가? 만약 당신의 대답이 '네' 라면 부디 계속해서 읽어 주기 바란다. 이 질문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창조론과 진화론”은 커다란 논쟁 중에서 단지 한 단면이라는 사실이다. 이 논쟁은 인류의 처음 시작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항하는 오랜 전쟁(The Long War Against God)” 이라고 불려져 왔다. 지난 2 세기 동안 그 전쟁에서의 중요한 격전지는 유물론 대 유신론이라는 관점이었다. 이 두 종류의 철학적 믿음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관점에 기초가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정상적인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아마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90% 안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60%가 넘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또한 성경은 어떤 부분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꼭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는 오래된 책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부류중의 한 사람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경우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성경 속의 권능과 영감에 대한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중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라면, 당신은 당연히 과학이나, 사회, 역사, 철학, 중에 어느 수업을 들었던지 간에 진화론에 관해 어떤 내용이든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기독교 가정이나 교회와 같은 곳에서 종교적인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다면, 아마도 당신의 부모님이나 주일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가르침과 학교에서 배운 것 사이에서의 차이 때문에 궁금해 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차이점이 자신의 인생관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만약 당신이 이런 학생의 학부모라면,  그리고 특히 당신이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논쟁에 날카로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논쟁이 그 학생들로 하여금 기독교적 믿음을 버리도록 초래하는 주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세속의 학교에서, 특히 과학을 가르치는 미국의 국립대학들은 진화론적 유물론을 설득시키고 있는 호교론자들이다. 그들은 '물리적인 우주 속에서 어떤 종류의 초자연적인 것의 개입은 과학에서 존재할 수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우리들이 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라는 이론을 펼친다. 이것은 종교적인 믿음을 황폐화 시키는 것이다. 만약 크리스천 청소년이 대학에 다닐 때 그의 신앙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은 아마도 확실히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과학에 흥미가 있다면, 그리고 교회나 어떤 종교적인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아마도 수천만년 전에 살았던 공룡들에 관해, 또 그들이 어떻게 멸종하게 되었는가에 관해 더 흥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과학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곳에는 누가 거주했었는지에 관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들을 지어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구의 나이는 수십억 년이고, 또 그곳의 모든 생물들은 수억 수천만 년의 시간을 거쳐서 천천히 진화했다고 확신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정말 사실일까? 그들의 주장을 증명할 만한 어떠한 뚜렷한 증거들을 그들은 가지고 있을까? 당신은 이제 놀라게 될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많은 과학적 이론들을 기술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적인 증거들을 논하면서, 당신이 믿고 있는 것만큼 그 이론은 진실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든 것들이 천천히 진화되었음을 나타내는 증거들보다, 신이 우리 세상을 갑자기 창조하셨다는 것을 나타내는 실제적인 증거들이 더욱 많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한때 나 자신도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랐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놀랄 것이다. 이러한 놀라움이 마침내 나로 하여금 진화론을 믿다가 창조론을 믿도록 바꾸어지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내가 왜 이 작은 글을 쓰고 있는 지에 대한 이유를 리스트로 간단하게 작성하여 보고자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창조가 수십억년 동안 천천히 발전되어간다는 진화론과 동일과정설의 주장보다 이 세계와 모든 생물체들을 훨씬 더 잘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추후의 글에서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많은 증거들을 제시할 것이다.


ㆍ나는 물리적인 증거들을 기술함으로써, 진화론은 대중들을 속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확고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제 나는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과학자들과 교과서들이 사용하고 있는 여러 순환논리들과 철학적인 기초를 보여드리겠다.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가르침으로서, 학생들의 논리력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교육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에 하나이다. 모든 사실들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으며 사고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학생들이 이 두 관점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두 듣고, 그들이 지적으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ㆍ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진화론을 반대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신앙에 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하게 수천년 전의 일이지 수십억년 전의 일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ㆍ또한 성경은 예수님께서도 진화가 아닌 창조를 믿으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는 실제로 지구 의 지표를 파괴하고 대부분의 동물과 사람들을 멸망시켰던 전 세계적인 노아의 대홍수를 믿으셨다. 그는 확실히 그러한 성경적인 기적을 믿으셨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실들을 믿으셨다면, 우리들도 믿어야하지 않겠는가.

ㆍ많은 기독교 교리들은 창세기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창세기는 많은 부분을 창조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만약 그러한 창조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던 사건이라면, 그것은 기독교 사상의 기초를 붕괴시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다가올 심판이 남아 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천국에 있기 보다는 지옥에 있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ㆍ완전한 비종교적인 이유에서도, 나는 또한 진실된 과학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과학은 진실만을 가르쳐야 하며,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실은 진화가 아닌 하나님의 창조임을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만약 과학자들이 하나님을 이 우주의 설계자로서 창조자로서 받아들인다면, 훨씬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연구들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ㆍ우리의 사회는 유물론과 진화론의 교육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만약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동물들의 후손들이고, 우리들의 잘못된 행동은 단지 동물들의 본성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우리들은 죄를 범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진화론은 도덕적 책임감을 사라지게 하고, 상황에 따른 윤리만을 대체해 놓았다. 우리의 사회는 범죄, 질병, 사생아, 수백만 건의 낙태, 그리고 수많은 여러 문제들로 신음하고 있다.


나는 창조론과 진화론은 다음과 같이 말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ㆍ창조론과 진화론은 둘 다 실제적으로 과학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먼 과거에 일어난 일이고, 실제로 관측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둘 다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입증될 수도, 반증될 수도 없다.


ㆍ창조론과 진화론은 둘 다 종교적인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둘 다 어떤 종류의 신앙과 믿음 체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믿음은 유신론이고, 다른 하나는 무신론이다.

  

번역 - 한동대학교 창조과학연구소

링크 - http://www.rae.org/bits01.htm

출처 - Revolution against Evolution, 1999.11. 2.

C.S. Lewis
2004-10-06

우연이라는 견해 

(Accidental angle)


    "만약 태양계가 우연한 충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면, 그리고 이 행성에서의 생명체들의 출현이 또한 우연히 이루어졌다면, 그리고 인간의 진화 역시 우연한 사건이었다면,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thoughts)들도 또한 모두 우연적으로 (원자들의 운동에 의한 우연한 부산물로서) 생겨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들에 해당되며, 유물론자들과 천문학자들의 생각에도 적용될 것이다.

만약 유물론과 천문학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단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면, 왜 우리들은 그들의 생각이 진실일 것이라고 믿어야만 하는가? 한 우연적인 사건이 모든 우연적인 사건들에 대한 올바른 설명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것은 우유병이 쏟아졌을 때 만들어진 우연한 얼룩이 당신에게 병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왜 그것이 쏟아졌는지에 대한 올바른 설명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과 같다.”

* C.S. Lewis (1898–1963), The Business of Heaven, Fount Paperbacks, U.K., p. 97, 1984.


* 참조 : 1. 생각의 유효성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1

2. 진화론 : 진정한 과학인가, 어리석은 생각인가?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1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1/i2/angle.asp 

출처 - Creation 21(2):47, March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239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8-14

창조가 과학적이고, 진화는 종교적이다.

(Creation is Scientific but Evolution is Religious)

Doug Sharp 


       ”진화론은 과학이지만, 창조론은 종교이다!” 당신은 종종 이런 말을 진화론자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창조론을 주장하는 동기가 종교적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종교적(religious)’ 이라는 단어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라고 정의된다면, 어찌됐든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맥락에서, 진화론 역시 그들 자신의 신들을 숭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적이다.

기원(origin)에 관한 학문의 목적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거나, 그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각자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기원에 과한 이론은 과학적 실험으로 입증될 수 없기 때문에, 두 믿음 다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것이다.

하지만 창조론이 더 과학적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알려진 과학 법칙들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진화론은 훨씬 더 큰 ‘신앙(faith)’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열역학 법칙들을 위반하며, 확률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초 안에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생체 시스템과 그것을 복제해보려는 인간의 시도가 비교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단백질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한 팀의 뛰어난 과학자들과, 많은 양의 비싼 화학 시약들, 수백 개의 반응 단계들, 자동화된 실험 장비들, 그리고 수개월에 걸친 계획 등이 요구된다.

진화론를 기초로 한 예측들은 현실성을 반영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화석과 지층들은 잘못된 위치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어떤 동물의 DNA 함량은 진화론적 패턴을 따르지 않으며, 생물체들 사이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은 진화론적 설명을 거부하고 있다.

만약 진화론이 사실이었다면, 매우 많은 전이형태의 중간 생물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이것은 생물체들을 분류하는 데에 어려움을 초래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동물들은 번식(breeding)이라는 장벽에 의해서 유전적인 구분되는 분명한 '종류(kinds)”들로 분류된다.


진화론자들을 향한 기독교인의 자세

창조와 진화의 논쟁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이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조심해야하며 기도해야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나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알 필요가 없다. 나는 단지 그가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고 말하며, 이 논쟁을 무시하는 자세를 선택한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의 자세는 별 문제는 없지만, 불신자들 특히 자신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유로서 진화론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늘 항상,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 할 때, 많은 시간을 진화론적 논쟁들과 부딪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진리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일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타당한 자료와 생각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펼치다가 많은 손해를 본다. 그러한 주장(이론)은 과학적이지도 않고, 좋은 신학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눠지게 하며,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게 한다. 결과적으로 "가짜 과학 (진화론)”과 타협하면서 많은 이상한 교리와 이교(cults)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성숙한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남아있는 이러한 이교적 자세는 진리에 대한 또 다른 방해물이 된다. 만약 한 사람이 도덕주의적이고 심판자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그는 즉시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잃게 만들 것이다. 우리의 믿음을 나누는 것은 매우 민감한 과정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매우 귀중하고 엄청난 가치가 있으며, 금이나 은보다 훨씬 더 귀중하다는 자세를 포함하고 있다. 비난하거나 부정적인 자세는 금이나 은을 쓰레기 속으로 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결코 논쟁(debate)에서 "이기려고(win)" 노력하거나, 진화론자들을 개인적으로 비난(condemn)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사람들을 잘못된 학설로부터 분리해내는 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종종 기독교인들은 자기방어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고 사명을 맡겨주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우리들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그리고 어둠의 주관자들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진화론이라는 속임수를 미워하지만, 그것에 기만당한 사람들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대신, 그들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사랑해야하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남을 박해하는 기독교인은 결코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지 못한다.


진화론자를 이해하기

진화론자들의 동기 부여(motivation)는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것이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들의 '하나님'은 '인간 자신'인 것이다. 그들의 교리는 바로 인간이 진화의 생존 경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서있다는 것이고, 인간은 스스로가 그들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한 예로, 한 화학교수의 연구실 문에서 들은 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한 학생이 교수에게 인류를 더 낫게 하는 과학을 공부하길 원한다고 말하자, 교수는 학생에게  자선단체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는 것이었다.

 ”과학은 자존가(egotist)를 필요로 한다. 과학 자체를 사랑하는 진정한 자기중심주의자”

과학자들은 과학적 방법에 매료되어 있는 듯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 발견해내는 것이 더 많을수록, 과학자들은 스스로가 신이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때문에, 그러한 생각과 대립되는 이론이나 사실들을 외부로 밀어내는 것이다.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이 유명해진 이유는 과학적 증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밀어내는 데에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운행되도록 하신 후, 간섭하시지 않고 포기하여 버린 기계론적 우주론을 주장한다. 무신론자들은 인간의 삶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밀어낸다. 조지 심슨 (George Gaylord Simpson)은 그의 책 '과거의 삶(Life of the Past)'에서 이러한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쓰고 있다.  

”인류는 독특한 이해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우주 속에 홀로 서 있는, 길고 무의식적이고 비인격적인 물질 과정으로 생겨난 독특한 생성물이다. 인간의 존재는 누군가에게 빚진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며, 그 자신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통제할 수 없으며 감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창조된 창조물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주인인 것이다. 그는 그의 운명을 결정하고, 다룰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

진화론은 과학자들의 자기 경배(self­worship)를 강화시켰다. 만약 인류가 ”진화의 길고 무의식적이고 비인격적인 물질 과정”의 산물이라면,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며,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왜 내가 하나님을 필요로 해야 하는가? 나는 스스로 존재하게 된 사람이다!” 이것이 그들의 이유이다.

진화론이라는 종교는 자신의 교리, 전통, 생활방식, 그리고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회학적 진화론(Social Darwinism)은 진화론의 논리적인 확장으로서, 많은 다른 철학과 종교들을 명시하고 있다. 이것들의 예는 다음과 같다 :

* "당신 자신의 것을 행하라"는 철학

*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최적자' 라는 사고방식

* 자본주의의 '고달픈 개인(rugged individual)'의 형태 (Ayn Rand와 같은)

* 뉴 에이지 운동 (New Age movement)

* 신비주의 (Rosicrucianism)

* 신지학 (접신학, Theosophy)

* 심령술 (Spiritism)

* 악마숭배주의 (Satanism)

* 마르크스주의 (Marxism)

* 사회주의 (Socialism)

* 민족우월주의 (Racism)

* 나치주의 (Nazism)

* 낙태 (Abortion)

기독교를 믿으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사탄은 창세기에서부터 강력하게 공격한다. 지난 150 여년 동안 공들인 진화론은 그에 반하는 압도적인 과학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웠고 유지되어 왔다.

만약 창세기가 의심스러운 기록이라면, 인류의 타락과 구속도 역시 의심스러운 일인 것이다. 진화론에 대한 의문은 주변적인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중심적인  논쟁인 것이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타락한 길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로마서 1:18~20 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그들은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물들을 통해 이미 그의 능력과 신성을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핑계치 못한다는 것이다. 불신앙에는 핑계가 없다. 그들의 생각은 허망하여지고, 그들의 미련한 마음은 어두워졌던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있다 생각하나, 우준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에, 사람과 금수를 경배하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정욕대로 내어버려두셨고, 그들은 자신 스스로 죄의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사람들에게 설명함에 있어서 공격적이어야 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이 타락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첫 번째 표시임을, 성경은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만약 창세기가 사람들에게 정말로 사실로서 이해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돌아올 것이다. 만약 그들이 더 이상 의심 없이 믿는다면, 하나님은 그들 안에서 일하실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적 편견을 확인하기

진화론적 편견은 많은 형태로 접할 수 있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에게 사용되어지는 여러 논쟁과 책략들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장 흔한 책략 중에 하나가 시류에(우세한 쪽에) 편승하도록 하는(bandwagon) 수단이다. 이러한 책략은, 모든 지식인들은 진화론을 믿는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창조론을 믿는 사람은 단지 소수이며, 광신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책략에 대해 무엇보다도 먼저, 대다수 의견이 언제나 진리를 말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둘째, 시류에 편승하는 사람들은 단지 대다수의 의견은 시끄러운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는다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류에 편승하도록 하는 방법은 창조에 관한 논쟁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알아야할 필요가 있는 전형적인 사탄의 책략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소수(minority)에 속한다면, 협박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복음 7:13,14)고 말씀하고 있다. 

진리로 나아가는 자는 언제나 소수임을 기대해야만 한다.

질문 공세(barrage) 수단은 창조론자들을 반대하는 데에 자주 사용되는 또 하나의 무기이다. 토론 시에 질문들은 대담자를 당황하게 하기 위해서 매우 빠르게 요청되어진다. 그러한 사람들은 늘상 목소리가 크고, 무례하며, 전혀 대담자의 대답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만일 그러한 상황에 당신이 놓여 있다면, 당신의 유일한 수단은 똑같이 무례하게 그 사람에게 맞서거나, 같이 질문 공세를 퍼붓는 일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당신은 그에게 엄하게 대해야 될 것이고 그러한 행동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논쟁을 이기고자 하는 사람이다.

창조론자들의 글에 대한 검열(censorship)은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사용되는 또 다른 전술이다. 활발한 검열은 과학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고 창조론 교육에 반대하는 법안을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되어진다.

논쟁에 대해 반응을 하지 않고 무시해(ignore) 버리는 것은 창조론자들을 냉대해버리는 하나의 방법이다. 자주, 창조를 지지하는 결정적인 사실들도 교과서에서는 무시되어진다. 또는 만약 그것이 언급되었다 하더라도 얼버무리거나, 기각시키거나, 비웃어버리고 만다.

인신 공격(Ad Hominem)도 한 사람의 평판을 나쁘게 하여, 실제 논쟁으로부터 사람들의 주의를 멀어지게 하려는 또 하나의 전략이다.

성급한 결론(hasty conclusion)은 부족한 증거에 기초해서 내리게 되는 불합리한 논증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에 먼저 출석한 10명의 사람이 빨간 내의를 입었다는 것이 관측된다면, 성급한 결론은 모든 교인들이 빨간 내의를 입었다고 결론내리는 것일 수 있다.  

크리스천은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그는 의견(opinion)으로부터 사실(fact)를 구별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아마도, 아마,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예측된다....등등과 같은 추측성 단어들 밑에 빨간 색으로 밑줄을 그어라. 어떤 과학책들은 빨간 색으로 인해 홍역에 걸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진화론과 모순되는 사실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계속하라. 이러한 증거들은 너무도 풍부하다. 예를 들어, 물고기는 몇몇 포유류의 DNA 양보다 25 배나 더 가지고 있음을 생화학 교과서에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문장들을 노트로 옮겨 적고, 그러한 사실들을 수집해 보라.  가정(assumptions)들에 밑줄을 긋고, 그것들을 적어 두고, 그리고 그것들이 유효한지를 테스트해 보라.

학생들을 좌절시키는 또 하나의 문제는 어려운 과학 전문 용어들의 남용이다. 이것은 학생들을 혼란의 바다 속으로 파묻어 버린다. 전형적으로, 진화론자들은 어떤 것들을 의미하는 데에 사용되는 일반적인 용어를 어렵게 재명칭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판단력의 암흑화(obfuscation) 라고 불려진다. 그리고 이것은 창조론자들에 대해 사용되는 전술일 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정신이상 상태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사용된다.

이 질환의 또 다른 특별히 유해한 균주는 단지 이해하기 힘든 도표와 그래프들과 함께 ‘그리고’ ‘그러므로’에 의해서 나열되어있는 수학적 공식들로 구성되어있는 논문들이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것들을 모두 치워버리고, 학생은 자신에게 이와 같은 질문들을 물어보라.

* 가정(assumptions)들은 무엇인가?

* 그 가정들은 유효한가?

* 결론은 무엇인가?

* 결론은 유효한가?

* 그는 어떻게 가정들로부터 결론을 얻었는가?

* 이 논문은 모두에게 읽혀질 가치가 있는 것인가?

창조론자들도 또한 이러한 형태의 저술을 피할 필요가 있다. 만약 당신이 독자들을 잃어버리려면 어떤 글을 이치에 맞지 않도록 쓰면 된다. 암흑화는 늘상 지나친 자기 아집의 결과이다. 이것은 자기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될 수 없다. 과학자는 만약 시간을 낸다면, 그의 저술을 이해 가능하도록, 읽기 쉽도록 쓰는 것이 가능하다. 


연구 방법을 개발하기

만약 크리스천 학생이 과학을 공부하여 성공하려고 한다면, 그는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그(또는 그녀)가 관측한 모든 것에서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발견하는 것과, 그가 연구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대한 연구가 건조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에 상당 부분은 연구의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초기의 과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과학적 연구를 실시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아직도 많은 것들이 발견되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고, 창조하신 자연에는 발견되어야할 것과 탐사되어야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크리스천 학생들은 질(quality)로서 나타내져야만 한다. 모든 것에서 뛰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비록 선생님의 의견이 당신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시험 때에 선생님이 동의하지 않는 답을 제시함으로서, 당신의 주장을 증명해보려고 노력하지 말라. 시험은 그러한 장소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동의할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당신의 믿음에 반대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당황하지 말라. 대신 기뻐하라! (야고보서 1:2). 만약 당신이 당신의 선생님과 의견을 달리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사랑과 존경의 자세 안에서 행하여야 한다. 그가 당신은 광신자라는 고정 관념을 갖을 기회를 주지 말라. 당신의 행동이 나무랄 데가 없도록 하라.

꼭 배워야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라. 중요한 이슈를 마음 속에 새기는 비결이 있다. 책이 당신의 것이라면, 중요한 부분에는 반드시 표시를 해두라. 노트에 적어두고, 논리적인 순서로 그것들을 조직하라.

크리스천 학생은 창조성, 완전성, 우수성으로 특징되어야 한다. 과제를 받았을 때마다, 통찰력, 아이디어, 신선한 접근을 위하여 주님께 의존하라. 모든 일에 정직하고, 다른 사람의 작업을 도용하거나 복사하지 말고, 자신의 작업을 수행하라. 할당된 것보다 10%를 더 하라. 그것은 100 배로 늘어날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창조론을 공유하기

당신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해 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답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을 위장하려고 하지 말라. 당신은 전능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라. 만약 할 수 있다면, 대답을 발견할 때까지 질문을 연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라. 자주, 이것은 깊은 영적 성장의 시간이 될 것이다.

조롱하는 자들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주제나 질문에 대해서 대부분 전혀 올바른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당신이 답을 알지 못한다면, 그에게 답을 조사해서 오겠으니 다시 만나자고 제안하라. 그가 거절한다면, 그는 아마도 그 답을 듣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또는 당신이 그 답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당신과 토론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실망하지 말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을 보도록 하지 않으시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기 전까지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하리라 기대하지도 않으실 것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할 것은, 창조론(creationism)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도구로서 사용하라는 것이다. 창조론은 소금(salt)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토론과 관심분야를 나눌 때 양념처럼 가미되어야 한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 안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리고 창조와 진화에 관한 긴 토론으로 옆길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금은 그 자체만으로는 전혀 음식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창조론은 작은 양으로 첨가된다면, 그 목적을 잘 맞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사람들의 영적 갈급함을 채워주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의 지적인 질문에 대해 만족할만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데에 방해가 되는 주요한 장애물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물들이 제거될 때, 복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번역 - 한동대학교 창조과학연구소

주소 - https://www.rae.org/essay-links/issues/

출처 - Revolution against Evolution, 1999. 6. 26.

이재만
2004-08-13

원숭이 재판


      창조과학 사역을 하다 보면 거의 매번 나오는 질문이 있는데 "학교에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진화론만 가르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이다.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한가지 역사적 사건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미국에서는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알고있는 사건이다. 사건 자체뿐 아니라 대부분이 왜곡되어 보도되었기에 이 사건 자체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의 교육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1925년 미국에서 일명 '원숭이 재판 (Monkey Trial)' 이라고 불리는 재판이 있었다.  피고인의 이름을 따서 '스코우프스 재판 (Scopes Trial)' 이라고도 하는 재판으로, 사건은 미국의 테네시 주의 대이턴이라고 하는 작은 시골도시에서 발생하였다. 한 공립학교 교사인 스코우프스가 수업 중에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것과, 이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고소로 시작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우습고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당시에 주 교육법상에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 되었던 상태였기에 이러한 고소가 가능 하였던 것이다.


교통이 어려운 그 때에 200 여명의 세계 기자들이 취재를 위하여 이 작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미국 공판사상 처음으로 라디오 전국 중계가 되기도 했다. 막상 재판이 시작하자 스코우프스 교사가 주의 교육법상에 범법 사실보다는 피고측은 법적인 문제를 이탈하여 진화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더욱 열을 올렸다. 재판은 점점 복잡한 진화론에 관한 질문들로 이어졌다. 그러나 고소자 측 변호사인 브라이언은 이러한 난해한 질문에 대하여 성경적인 지식을 가지고 능숙하게 응수하였고, 물론 그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인 질문에 대하여 모르는 대답에 대하여는 솔직히 시인하였다. 재판 결과는 피고의 유죄판결과 100불의 벌금형이 내림과 함께 막을 내렸다. 


재판 결과 일곱 주에서 연달아 비슷한 법적 논쟁을 일으키게 하는 발단이 되었으며, 1960년대까지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에 진화론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던 당시의 추세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당시 언론들의 보도방향은 사람들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대부분의 기자들은 처음부터 이미 고소자 측을 공격하려는 생각을 갖고 취재를 시작하였으며, 고소자 측의 진화론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고소자 측에게 불리한 쪽으로 기사를 실었다. 한 기자에게 왜 재판을 취재하러 왔는가 하는 질문을 하자, "저는 무슨 일인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무엇을 써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영화 관계자들도 가끔씩 흥미거리로 이 재판을 영화화 하였는데, 편견을 가진 영화들은 성경을 고수하려는 기독교인들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진화론을 무모하게 공격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이러한 편견에 의해서 이 사건은 오히려 진화론이 전 미국과 세계로 확산되는 동기가 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진화론의 증거들은 오늘날에는 케케묵은 허구들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에게는 진화가 논리적으로 이해(?) 시키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성경과 진화론의 대결이 되어버린 이 재판을 보면 마치 빌라도 앞에서 예수와 바라바 사이에서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예수)을 없이 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눅 23:25) 재판의 결과는 미국 학교에서 성경을 없이하고 진화론이 들어오는 계기를 마련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48

참고 : 2067|3677|4010|3051|2148|2061|729

Kent Hovind
2004-07-26

호빈드 박사의 25만 불 제안 1

(Dr. Hovind's $250,000 Offer)


1990년부터 1만불이 제안되어 왔었다.

나는 진화(evolution)에 관한 어떠한 관측되는 경험적 증거(empirical evidence, scientific proof)를 제시하는 사람에게 25만 달러를 줄 것임을 제안한다. 나의 25만불 제안은 진화 가설이 단지 종교적인 믿음(religious belief)에 불과함을 증명하고 있다.

관찰되는 현상들 : 사고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음 사항에 동의할 것이다 :

1. 고도로 질서화 된 우주가 존재한다.

2. 이 복잡한 우주에서 적어도 한 행성은 매우 놀랄만한 다양한 형태들을 가진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3. 사람은 이 행성에서 가장 진보된 형태의 생명체인 것으로 보인다.


알려져 있는 선택의 종류 : 관찰되는 현상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다음 중에서 선택하여 보면,

1. 우주는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2. 우주는 항상 존재했다.

3. 우주는 단지 진화로 알려진 자연적인 과정(natural processes)에 의해서 스스로 저절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초자연적인 것은 필요하지 않다.

진화는 관찰되는 현상들의 유일한 원인 과정으로 주장되어 왔다. 공공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들을 진화가 제공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1. 무(nothing)로부터 시간, 공간, 물질의 존재.

2. 물질들로부터 은하들, 별들, 적어도 태양을 공전하는 9개의 행성들의 형성. (이 과정은 우주진화(cosmic evolution) 라고 자주 불려짐).

3. 이들 행성들 중 적어도 하나에 존재하는, 무생물(nonliving matter)로부터 생겨난 생명체의 탄생. (화학진화로 불려짐).

4. 살아 있는 생명체 자신들의 번식에 대한 흥미와 능력에 대한 원인.

5. 우연히 만들어진 생명체가 매우 다양한 생명체로, 예를 들어 오늘날 지구상에 수많은 식물들과 동물들로 다양화된 원인. (생물학적 진화로 불려짐).

사람들은 진화론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진화론이 진실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다. 믿음은 가지고 있기에는 좋지만, 국가 예산(국민들의 세금)이 지원되는 공공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하나의 믿음이 강제적으로 가르쳐지는 것은 옳지 않다. 진화론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성경, 대중들의 의견, 상식 등에 의해서도 지지받지 못하고 있는 종교적인 세계관이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또한 인생관을 바꿀 수도 있는 이 위험한 철학이 예산이 지원되는 공공학교, 국립공원, 박물관 등에서 독점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은 헌법 제 1조의 분명한 위반이다.

250,000 달러를 얻는 방법 :

관찰되는 현상들이 존재하게 된 유일한 가능성 있는 길로서 진화 과정(위의 ‘알려져 있는 선택의 종류에서 3’번 항)이 합리적인 것임을 증명하면 된다. 단, 관찰되는 경험적 증거(empirical evidence) 만을 제시해야 한다. 25만 달러를 얻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증거들을 글로 써도 되고, 시간을 정하고 공개적인 발표를 통해 할 수도 있다. 전문적인 과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최선의 전문 지식을 동원해 제시된 증거를 자세히 검토할 것이고, 제시된 증거의 유효성에 대해서 평가와 판단을 공정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진화론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확신한다면, 당신도 진화론에 반대되는 경험적이고 역사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사람에게 25만 달러를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한 증거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할 수 있다.

1. 지구는 수십억 년 되지 않았다. (이것은 가르쳐지고 있는 것처럼 진화가 우연히 일어날 가능성을       파괴할 것이다).

2. 동물이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동물로 변화되는 것이 일찍이 관측된 적이 없다.

3. 아무도 생명체가 무생물로부터 저절로 발생하는 것을 일찍이 관측하지 못했다.

4. 물질은 무(nothing)로부터 스스로 만들어질 수 없다.


나의 제안 :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화론을 믿는다는 것을 잘 인정하면서도, 자기가 가르치는 이론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진화론은 '신념(faith)'이나, '종교(religion)'로 불려져야만 한다. 그리고 과학 책에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 어리석은 진화론이라는 종교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성경의 하나님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당신과 나를 심판하실 것이며, 다시 오실 분인)을 믿으라. 그는 당신을 용서하시고, 장차 임할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부터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 노트 : 내가 진화(evolution)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모든 생물체들에서 발견되는 작은 변화들 (소진화, microevolution)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일반적인 진화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래의 5가지 결과들이 창조주 없이 발생했다고 믿는 믿음이다.

1. 시간(time)과 공간(space)과 물질(matter)이 그들 혼자서 존재하게 되었다.

2. 행성들과 별들은 우주의 먼지들로부터 형성되었다.

3. 물질들이 스스로 생명체로 만들어졌다.

4. 초기 생물체들은 스스로 번식하는 것을 배웠다.

5. 주요한 변화들이 다양한 생물체들 사이에서 발생했다. (즉, 물고기에서 양서류, 양서류에서 파충류,       파충류에서 조류 또는 포유류).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rdino.com/cse.asp?pg=articles&specific=1 

출처 -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12

참고 : 

Walt Brown
2004-07-26

어떻게 창조에 대한 연구가 과학적일 수 있는가?

(How Can the Study of Creation Be Scientific?)


과학을 정의해 보자.

과학 (science) : 반복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하여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의 한 분야. 넓게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고 정확성을 증진시키는 것. 과학 법칙이라 불리는 이러한 관계들은 미래의 현상들을 예측하고 과거의 결과들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주의할 것은, 이것은 첫 번째 원인이 자연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인-결과의 관계에서, 과학이 자연을 다루기 때문에 첫 번째 원인이 반드시 자연적 사건이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빈약한 논리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원인으로 어떤 자연적 결과가 발생했을 때, 첫 번째 원인은 원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첫 번째 원인이 반복될 수 없다 하더라도, 과학적 법칙들은 궁극적 기원에 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그렇다 시작이 있었다.       

최종적이지 않은 과학적 결론은 반드시 증거에 근거하여야만 한다. 

과학적 증거 (scientific evidence) : 우리의 감각이나 기기들을 통해 관측되는 것으로, 어떤 현상을 입증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어떤 것.

이 책의 1부에서 나열한 모든 증거들은 관측 가능한, 다른 사람들도 검토가 가능한 자연적 현상들에 기초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증거들은 창조와 전 세계적인 홍수를 의미한다. 이것은 창조주(제 1원인)가 과학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거나, 또는 성경이 공공 학교의 과학 수업시간에 읽혀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그것을 반대해 왔다). 진화론에 반대되는 분명한 증거들을 외면한 채 진화론만을 가르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수많은 과학적 증거들을 검열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잘못되었다. 또한 전 지구적인 홍수의 결과가 홍수의 증거로서가 아니라, 진화의 증거로 잘못 해석되어 왔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잘못된 해석이 과학으로서 가르쳐지고 있다. 

 그림 136 : 원인과 결과들 (causes and effects).  각 화살표 꼬리는 원인을 나타낸다. 그리고 각 노란 원은 하나의 결과를 나타낸다. 화살표 자체가 원인과 결과의 관계이다. 노란 원은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창조와 전 세계적인 홍수를 제시하는 과학적인 증거를 나타낸다. 학생들을 포함하여, 우리들 모두는 기원에 관한 모든 증거들과 합리적인 설명을 배운 후, 각자가 결론을 내리는 데에 자유로워야만 한다. 학교에서 그러한 정보들을 배제해 버리거나, 미디어 매체를 통해 잘못 전파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첫 번째 원인은 초자연적으로 또는 자연적인 것을 초월해 나타난다 (청색 부분). 진화론자들은 첫 번째 원인이(적색 원) 초자연적이기 때문에, 노란 원과 그들의 과학적 의미는 과학 수업에서 가르쳐질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것을 넘어서는 주제들은 (물리적 증거들과 너무도 일치하는 창조와 홍수에 대한 성경적 기록을 포함하여)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과학 교육에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 있는 원인을 따라가면서, 자연에서 실제 관측되어지고 입증 가능한 것들을 배제하는 것은 나쁜 과학이며, 잘못 인도하는 것이며, 검열제도인 것이다.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은 이러한 과학적 증거들에 대한 연구이다.    

  

미래의 어떤 날에 창조와 전 지구적인 홍수보다 모든 증거들과 일치하는 (원인-결과 관계에 있어서도 반복적으로 논증이 가능한) 어떠한 다른 설명이 제안될 수도 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존재하는 증거들을 무시하는 자들은 매우 비과학적인 사람들인 것이다. 특히 수많은 증거들이 그들의 추론을 반대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주제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토론 거부와, 논증될 수 없는 원인-결과 관계에 대한 그들의 일방적 추측 또한 매우 빈약한 과학이다.

진화론자들은 몇 가지 반대 이유를 제시한다. '증거들이 갑작스런 창조를 의미한다 할지라도, 창조는 자연적이 아니라 초자연적이다. 그리고 과학적 설명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과학적으로 어떻게 창조가 발생했는지, 어떻게 공간, 시간, 물질, 물리법칙들이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홍수가 지구상의 많은 지형들의 모습을 가장 잘 설명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에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믿을 수 없는 기록이기를 원하는 성경에 홍수가 언급되어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홍수로부터 출발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과학에서 모든 출발점은 열려있어야 한다. 가장 핵심 질문은 항상 '모든 증거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어야만 한다. 또한 과학적 생각의 출처가 과학적으로 유래되어야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Friedrich Kekule은 뱀이 그 꼬리를 물고 있는 꿈을 꾼 후에 벤젠의 고리 구조를 발견했다. Kekule의 발견은 화학 구조에 대한 기초를 놓았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생각의 출처가 아니라, 모든 증거들이 다른 어떠한 설명보다 그것을 더 잘 지지하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과학은 어떻게 물리적 우주가 운행되는 가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과학적인 증거들이 가르쳐져야 한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cience.com/onlinebook/FAQ12.html#wp1619382

출처 - CSC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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