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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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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3

너희는 진화론의 소금?

(Ye Are the Salt of the Evolution)


      2009. 3. 11일 - 소금은 좋은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막 9:50). Science Daily(2009. 3. 11) 지에 의하면, 소금이 당신에게 좋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연의 항우울증(Nature's Antidepressant)” 물질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스테이크에 소금이 뿌려져 있지 않다면, 좋은 분위기를 갖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라는 것이다. 기분을 전환시키는 소금의 영향에 관한 이 기사의 중간쯤에 한 진화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고 있었다 :

”진화는 소금에 대한 인간의 갈망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인간은 짠 소금의 바다에 살았던 생물로부터 진화하였다. 육지에 올라와서도 신체는 나트륨과 염화물(chloride)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했다. 왜냐하면 미네랄들은 액체가 세포의 안과 밖을 통과하도록 하는 데에, 그리고 뇌와 신체를 오가는 정보를 신경세포들이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아프리카의 더운 기후에서 진화하면서, 발한(perspiration)은 나트륨의 신체를 잃어버리게 했다. 우리의 초기 조상들은 식물성 음식들을 주로 먹었고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살았기 때문에, 소금은 부족했다.”

그 연구를 수행했던 아이오와 대학의 연구원들 중 하나는 ”우리의 신장은 소금 구두쇠(salt misers)가 되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하였다. 소금에 대한 신체의 필요는 소금에 대한 우리의 식욕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 ”인류의 조상 동물은 소금을 탐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미각 시스템과 방목지에서 소금을 핥는 것과 같이 소금의 근원 장소를 기억하는 뇌를 가지고 있었다.”고 그 기사는 설명하였다. ”소금이 소모되었을 때, 뇌에서 일종의 쾌추구 메커니즘(pleasure mechanism)이 활성화되었다.” 회의론자들은 이것들 중 어느 것이 진화와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환경에 훌륭하게 적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말은 매우 우스꽝스럽다. 우리가 지어낸 폐에 대한 진화 이야기를 들어보겠는가? :

”진화는 공기에 대한 인간의 갈망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인간은 공중을 날아다니던 생물로부터 진화하였다. 육지에서도 신체는 질소와 산소를 지속적으로 필요로 했다. 왜냐하면 기체들은 생화학적으로, 그리고 신경세포들이 뇌와 신체를 오가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아프리카의 더운 기후에서 진화하면서, 세렝게티 평원(Serengeti plains)을 달리면서, 숨이 차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헐떡거리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폐는 산소 구두쇠가 되도록 진화하였다.”

마술처럼 진화는 요구되는 어떠한 복잡한 시스템도 제공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은 신장(kidney)과 같은 장기들은 그들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설계되었다는 분명한 증거들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증거들을 비틀어서 진화(비 설계)로 생겨났다고 추정하고 있었다. 당신은 신장이 얼마나 복잡한 기관인지 알고 있는가? (09/24/2008, 06/14/2004). 염분 농도의 조절은 방광(12/11/2001), 발한(03/02/2007), 중추신경계 등과 같은 여러 복잡한 시스템들이 관여하고 있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단지 신경계의 복잡성 하나만을 가지고도 진화는 거부된다.(see 12/30/2004).

이러한 종류의 진화 이야기 지어내기는 인간 신체에 어떤 것에도, 그리고 식물들과 동물들의 고도로 정교한 시스템들과 장기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람이 소금을 필요로 하고 그 맛을 즐긴다는 관측사실 뒤에 있는 과학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적절하게 간이 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우리의 조상이 수억년 전에 바다에서 물고기로부터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이야기이다. 진화론자들은 무엇이 관측되든지 진화를 찬양하는 것으로 관련짓는다. 우리는 이들 마법사들의 허구성을 대중들에게 알려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을 하고 있는지를 드러낼 것이다.(09/05/2008, 논평을 보라).    


*연습문제 : 신체의 복잡한 시스템을 하나 관측한 다음, 그것이 어떻게 진화되었을 지에 대한 진화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 단 지성(intelligence)은 허락되지 않는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903.htm#20090311a 

출처 - CEH, 2009. 3. 1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583

참고 : 133|1891|451|3858|2166|1461|4259|3113|4571|4306|2396|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

미디어위원회
2009-02-16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영국인들의 반은 진화론을 의심하고 있었다.

(Poll Reveals Public Doubts over Charles Darwin’s Theory of Evolution. 

A poll in Britain reveals widespread doubt over Darwinism—or does it?)

AiG News


      많은 과학자들이 다윈 탄생 200 주년을 맞이하여 그를 가장 위대했던 과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부르며 축하하고 있지만, 일반 대중들은 그의 이론을 의심하고 있었다. 다윈 탄생 200주년의 일환으로 여론조사 기관인 콤레스(ComRes)는 2,000명 이상의 영국인들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진화론은 생물들의 복잡한 구조들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따라서 중요한 단계들마다 어떤 설계자의 개입이 있었다”라는 문항에 대해 동의하는 지를 물어보았다.(The Telegraph. 2009. 1. 31. Gallup. 2009. 2. 11). 반이 넘는 51%의 사람들이 그렇다 라고 대답하였고, 40%는 동의하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고 응답하였다. ”하나님께서 지난 1만년 이내에 이 세계를 창조하셨다”라는 문항에 대해, 32%가 동의하였고, 60%가 동의하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Guardian reports지(2009. 2. 1)는 같은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해서, 영국인들의 25%는 다윈의 진화론(Darwinian evolution)이 명백한 사실로서, 25%는 아마도 사실로서, 12%는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을, 10%는 젊은 지구 창조론(young-Earth creationism)을 믿고 있으며,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였다.

그 여론조사는 타협한 크리스천(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의 두뇌집단인 Theos가 의뢰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그룹에 의해서 2008년 11월에 실시된 또 다른 여론조사를 보도했었다). 책임자인 폴 울리(Paul Woolley)는 의견을 말하였다. ”오늘날 진화론은 어떤 무신론자들에게 그들이 신을 믿지 않는 근거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진화론이나 하나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잘못된 선택에 의해서, 사람들은 진화론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울리는 이전에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로드 캐리(Lord Carey)와 연합하고 있다. 로드 캐리는 진화론적 무신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함으로서 그 여론조사 결과에 반응하였다. ”무신론을 찬성하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생물들의 엄청난 다양성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던지, 진화되었던지 둘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진화론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덧붙였다. ”나는 복음주의적 크리스천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이 지구 생물체들의 다양성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설명이라고 믿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캐리는 특별히 그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여 진화론을 믿지 않는 많은 영국인들을 ‘무식한 돼지(pig-ignorant)’들이라고 불렀던 리처드 도킨스에 대해서도 반응을 보였다.  

LiveScience 지의 편집책임자인 로버트 브리트(Robert Roy Britt)는 이 여론조사 결과를 그의 칼럼에 소개하고 있었다. 몇몇 조사결과의 %를 더하지 않고, 거의 반이 진화론을 확신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단지 22% 만이 지적설계론 또는 젊은 지구 창조론을 믿고 있다고 (32%의 사람들이 이 세계는 1만년 이내에 창조되었음을 믿고 있다는 통계와 일치하지 않는) 쓰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복합적 견해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화론과 종교에 대한 여론 조사는 매우 기교가 필요한 주제입니다.” 그는 순수 진화론과 성경적 젊은 지구 창조론 사이에 중도적인 믿음(타협안)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인간의 진화만을 제외하고 진화론을 믿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이 진화를 통해서 창조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브리트는 또한 ”많은 사람(창조론자나 진화론자나)들이 진화론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그러면서 ”진화론은 과학에 의해 가장 잘 지지되고 있는 이론들 중에 하나”라는 그의 견해를 전달하고 있었다.

한편 미국에서 실시된 갤럽 여론(Gallup Poll2009. 1. 28) 조사는 미국의 주들에 따라 다른 일련의 결과들을 발표하였다. 지난 주에 분석된 그 자료는 각 주들의 다양한 종교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것이었다. 35만 명 이상의 인터뷰에 기초하여, ”종교는 당신의 일상생활에서 하나의 중요한 부분입니까?”라는 질문에 ‘예스’ 라고 대답한 거주자들의 %에 의해서 모든 주들은 종교적 성향 순위가 평가되었다. (가장 종교적 성향이 강한 주는 미시시피주(85%) 였고, 가장 종교적 성향이 낮은 주는 버몬트주(42%) 였다).

그렇게도 오랜 기간 동안 무차별적이고 일방적인 진화론 교육 하에서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진화론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사실이지만,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진화론과 타협적인 신앙의 길을 걸고 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여론 조사 결과에 의하면 영국과 미국에서 성경 기록 그대로 젊은 지구 창조론을 믿는 사람은 분명히 소수이다. 당신이 어느 곳에 있을지라도 교회 문 바깥에는 추수할 밭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For more information:

The ”evolutionizing” of a culture

Is the intelligent design movement Christian?

Couldn’t God Have Used Evolution?

Hasn’t Evolution Been Proven True?

Get Answers: Countering the Critics Creation Compromises,  Creation: Why it Matters,  Charles Darwin, Religion


*관련기사 : 영국인들 절반 이상 진화론 안 믿어 (2009. 2. 2. 국민일보)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view.asp?page=1&gCode=int&arcid=0921178374&code=41131111

다윈 탄생 200주년... 新창조론 부흥: 미국인 63% '창조론 믿어' (2009. 2. 7. 연합뉴스)

https://news.nate.com/view/20090207n03876

캐나다인 60% 창조론 수용 (2007. 7. 5.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070705098500009

美 국민 78%는 창조와 신 인정해 : 진화론은 15% 신뢰... 2년 전보다 창조론 지지 늘어 (2012. 6. 6. 기독일보)

https://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63554/20120606/%E7%BE%8E-%EA%B5%AD%EB%AF%BC-78-%EB%8A%94-%EC%B0%BD%EC%A1%B0%EC%99%80-%EC%8B%A0-%EC%9D%B8%EC%A0%95%ED%95%B4.htm?r=seattle

미국 목회자들, 대체로 진화론 거부 (2012. 1. 19. 크리스찬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us/19652

한국인 30.6%, 진화론 불신 (2009. 2. 10.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10/2009021001447.html

'하나님과 진화론 함께 믿습니다” : 진화론 주일 지키는 교회 늘어 (2009. 2. 11.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14683§ion=section2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creation-vs-evolution/poll-shows-public-doubts-about-evolution/

출처 - AiG News, 2009. 2. 7.

미디어위원회
2008-10-30

도킨스는 “하나님은 없다”라는 광고를 지원하고 있다. 

: 영국 런던의 버스에 등장한 무신론자들의 광고 

(Dawkins Supports 'No God' Ads)

Christine Dao 


       골수 진화론자인 옥스퍼드 대학의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만들어진 신’의 저자) 교수는 무신론자(또는 그들 스스로가 부르고 있는 것처럼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이 일종의 거품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음을 또 다시 보여주었다. 그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주장만을 중요시 여기고 있었다.

이 저명한 무신론자는 런던 버스들에 광고될 새로운 선전 캠페인을 BBC에서 자랑하고 있었다. 그 선전 문구는 ”아마도 하나님은 없다. 이제 걱정을 멈추고, 당신의 인생을 즐겨라 (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이다. 영국 인본주의자 협회(The British Humanist Association, BHA)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에 맞서 ”하나님은 없다”라는 표어를 광고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없다”라는 대담한 주장보다 ”아마도 하나님은 없다”라는 조금 약한 문구의 선택은 도킨스의 광고에 대한 지원을 조금 미묘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인본주의자협회는 60대의 버스에 4주 동안 그 문구를 광고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도킨스는 BBC에서 ”종교는 자동적 세금감면, 노력 없이 얻는 존경, 공격당하지 않을 권리, 어린이들을 세뇌시킬 권리” 등에 무료 편승하는 데에 익숙해 있다”라고 말했다.[1] 노력 없이 얻는 존경이라고? 도킨스는 그의 조국인 영국에서 위대한 공헌들을 했던 수많은 크리스천들에 대한 역사를 알고나 있는 것인지?

과거에 도킨스처럼 같은 옥스퍼드 대학의 일원이었던 C. S. 루이스(C. S. Lewis)가 있다. 그는 이전에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지만 기독교인이 된 후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나니아 연대기’ 등과 같은 그의 뛰어난 작품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그의 헌신은 문학적인 작품들 속에 남아있다. 루이스의 죽음(1963년 11월)은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의 암살에 의하여 빛을 잃고 가려졌지만, 그의 작품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많은 세대들에게 지속적으로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또 한 명의 유명하고 높은 존경을 받고 있는 영국인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이다. 그는 복음주의적 크리스천으로서, 노예 매매의 폐지를 위해 그의 부, 명성, 건강 등 그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사람이다. 그의 헌신으로 영국에서 노예 제도가 종식되었다. 인류 역사에 한 위대한 족적을 남긴 그의 동기는 명백했다 :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 가지의 커다란 사명을 맡기셨다. 그것은 노예 무역의 폐지와 도덕적 가치의 개혁이다.”[2]   

그리고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삭 뉴턴(Isaac Newton)이 있다. 그는 권위있는 영국 왕립협회(Royal Society)의 회장을 지냈으며, 만유인력의 법칙, 미적분, 뉴턴식 망원경 등의 발명자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을 연구했던 만큼 성경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던 사람이다. 윌버포스와 같이 그가 헌신하게 된 동기는 명백하다 :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나 항상 동일하시다”[3]

도킨스, 영국 인본주의자협회, 다른 무신론자들은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노력하고 수고했던 루이스, 윌버포스, 뉴턴, 다른 많은 크리스천들의 공헌에 대해서도 말해야했다. 무신론자들은 아마도 하나님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 위대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확신하였고 인류 발전의 놀라운 업적들을 남겼다.  

숙련된 의사였고 예수님의 전기를 기록했던 누가는,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고, 사람은 그 사람의 행위로 알 수 있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었다.(눅 6:43-45). ”하나님은 없다”는 광고들은 수 주 후에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마 24:35)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위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그들의 고귀한 노력들은 명백히 높은 존경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No God’ slogans for city’s buses. BBC News. Posted on news.bbc.co.uk October 21, 2008, accessed October 21, 2008.
[2] Wilberforce, R. I. and S. Wilberforce. C. Morris, ed. 1841. The Life of William Wilberforce. Philadelphia: Henry Perkins, 77.
[3] Newton, I. General Scholium. Translated by Motte, A. 1825. Newton’s Principia: The 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New York: Daniel Adee, 505.

  

*참조 : 런던 시내버스 무신론 광고 논란 (2008. 10. 22. 세계일보)

https://www.segye.com/newsView/20081022003568

“신은 없다” 무차별 광고 논란  (2008. 11. 17. 기독신문)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56753

영국, 이색 버스광고 모금운동  (2008. 10. 23.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317774.html

Dawkins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8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4168/

출처 - ICR, 2008. 10. 23.

Lawrence Ford
2008-09-02

21세기에는 증거를 요구한다. 

: ICR이 온라인 상에서 새로 구축한 창조의 증거 

(Demanding the Evidence in the 21st Century)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6일 창조, 최초 남자와 여자의 특별한 설계 및 창조, 지구와 우주의 젊은 연대, 지구 생물들을 쓸어버렸던 노아 시대의 전 지구적 대홍수 등을 믿고 있지만, 이것을 입증하고 있는 정확한 증거들의 중요성을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꽤 최근까지도 과학은 창조주를 인정하고 있었고, 역사에 기록된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성경의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했었고, 헌신된 삶을 살았었다. 진화론으로 가득한 오늘날에도 수천의 과학자들이 자기들의 전문분야에서 소수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면서 그 분을 창조주로 경배하고 있다. 

생물계에 대한 제한된 이해력을 가졌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150년 전에 과학과 신앙인들에 해를 끼치는 혁명을 일으켰다. 만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리 주변에서 관측될 수 있는 것들뿐이라면, 우리는 심히 불쌍한 자들일 것이다. 코넬 대학의 윌리암 프로바인(William Provine) 박사는 진화론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절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었다.

”현대의 진화생물학이 우리에게 강하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바에 대한 나의 견해를 요약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다윈의 견해이다. 신들도 없고, 목적들도 없으며, 목표를 지향하는 어떤 종류의 힘들도 없다. 죽음 이후에는 생명이란 없다. 내가 죽을 때, 내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며 죽는다. 그것이 나의 끝이다. 윤리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도 없고,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도 없으며, 인간에게 자유의지도 없다. 이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인가!” [1].

삶과 죽음에 대한 그런 무신론적인 견해는 그 자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찰스 다윈이나 윌리엄 프로바인이 묘사한 것보다 인간은 훨씬 더 가치 있는 피조물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적 성취는 무신론적 자연주의 안에서 자기방어만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 체계를 대중들, 학교들, 연구들, 사회적 관심사 안으로 밀어붙인다. 믿음의 사람들은 과학으로 밝혀진 증거들을 어떻게 정확하게 해석할 것이며, 성경에 대한 절대적 신뢰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거의 40년 동안,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은 과학의 기본 법칙들에 충실한 방법으로 과학적 연구들을 수행해 왔고, 과학의 문제를 다룰 때에 성경의 정확성을 입증하면서 대중들에게 이러한 증거들을 전달해 왔다.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박사가 1961년에 ‘창세기 홍수(The Genesis Flood)’를 출간하고 ICR의 설립하면서 시작했던 반-혁명은 과학적 연구와 교육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왔다. 지질학, 생물학, 천문학, 그리고 물리학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서 수많은 서적들이 출판되었고, 이제는 그 증거들이 전 세계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활용되고 있다.


웹 사이트에서의 증거

ICR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인터넷으로 접속할 수 있는 친사용자 형식의 ‘창조의 증거(Evidence for Creation)’라 불리는 새로운 온라인 시스템을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압도적인 과학적 및 성경적 증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http://www.icr.org/Evidence/)

5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 ‘창조의 증거’는(아래 링크 참조) 지구와 그의 자연적 과정들에 관한 기원들과 지구 행성에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복잡한 설계들을 논리적으로 탐구한다.
 
인터넷 사역팀의 책임자인 리처드 퍼드너(Richard Pferdner)는 약 10년 전에 처음으로 증거들에 관한 웹 구축을 계획했다 :

”내가 몇 년 전에 한 작은 성경공부 반에 들어갔을 때, 그 반에서 창조의 증거에 대해 토론을 하였다. 그 반의 한 사람은 ”우리는 성경적 증거에 대한 이야기보다 창조에 관한 과학적 증거들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웹 사이트에서 그러한 증거들을 둘 다(성경적 증거와 과학적 증거들) 볼 수는 없을까? ICR 웹사이트의 증거 섹션은 교사들과 인도자들에게 창조론적 견해를 지지하는 성경적 증거뿐만이 아니라, 과학적 증거들을 제공할 것이다.” 

‘창조의 증거’는 창조과학의 지식을 확산하기 위한 도구로서, 믿는 자들에게 우리의 경외스러운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세우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ICR은 거의 40년 동안 광범위한 분야의 많은 논문들을 발표하고, 많은 학술 연구들을 실시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정보가 우리의 웹사이트에서 날짜 별로 편성되었기 때문에, 방문자들은 관련 주제들을 연결하여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창조의 증거’의 오픈으로, 이제 정보들은 5 개의 큰 주제로 나뉘어졌고, 각 카테고리 안에는 작은 주제들의 여러 연결망을 갖추게 되었다. 더욱 심화된 일련의 연결 링크들은 방문자들이 ICR이 발간하고 보유하고 있는 흥미로운 과학적, 신학적 글들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퍼드너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가적으로 설명하였다 :

”ICR은 거의 40년간의 사역을 망라하는 논문들과 정보들의 거대한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창조의 증거’는 참고 자료들, 시작하는 장소,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제공한다. 그것은 증거와 정보들에 더욱 확실히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이제 웹 사용자들은 증거들을 편리하게 살펴볼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을 그들의 손가락 끝에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이 이루어지고, 증거의 분량이 더해짐에 따라, ‘창조의 증거’는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증거(Evidence for God) : 하나님은 반드시 계신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누구도 하나님(God)이 계심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완전하신 지혜와 능력은 만물 가운데서, 특히 우주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함께 작동되는 특별한 방법 가운데서 관찰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아름다움, 정의, 사랑, 질서 등과 같은 자연주의적 방법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그러나 창조주와 완전히 적합되는 인생의 많은 신비스러운 개념들에서 탐구될 수 있다. 설명들은 간결하고 논리적이며, 관련 논문들로 출판된 연구들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


진리에 대한 증거(Evidence for Truth) : 진정한 진리는 인식할 수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현대의 세속주의 철학들은 진리(truth)를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인 주관적인 것으로 재정의하려고 시도해왔다. 그러나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믿음 또는 불신은 그것이 실제로 참인가의 여부에 있지 않다. 과학 그 자체는 객관적인 진리에 기반을 둔 학문 분야로, 연구들을 수행하고 자연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절대적인 과학 법칙들을 이용한다. 절대적 진리란 관측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유익과 이점과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피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들 안에서 설명된다. 절대적 진리는 모든 인간의 선한 양심 속에서 발견된다. 비록 각각의 문화가 관습과 행위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자체의 취향을 가지고는 있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타고난 개념은 상존하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의 증거(Evidence from Nature) : 자연은 창조주를 계시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롬 1:20).

지구는 독특한 행성이다. 특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자연 법칙들은 일정하고, 너무도 특별하게 질서정연하여, 어쩌다가 우연히 그러한 현상들이 발생하였다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지구와 그의 자연 현상들에 대한 연구는 공업, 농업, 다른 분야들에서의 혁신과 발명들을 유도하였다. 특별히 오늘날의 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과학자들은 더욱 청정하고 재생 가능한 동력 자원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자연법칙들을 활용해오고 있다. 제약산업에서 박테리아의 생태와 그들의 환경에 대한 연구는 신약개발의 길을 쉽게 해주고 있다. 의학은 인체의 자연적 방어시스템인 면역계의 복잡다단한 작용들을 밝혀내고 있다.

이들 영역과 많은 다른 분야들에서의 연구는 과학의 절대법칙, 즉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에서 관측될 수 있는 법칙들을 활용함으로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으로부터의 증거(Evidence from Science) : 과학은 창조를 입증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과학은 우주와 우리 주변에서 관측되는 모든 자연법칙들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대한 이해는 창조(creation)에 대한 압도적인 증거들을 제공한다. ICR 웹사이트의 ‘과학으로부터의 증거(Evidence from Science)’라는 새로운 섹션에서, 방문자들은 물리학, 지구과학, 생명과학들에 의해 수집된 증거들은 우리의 세계, 생명체, 그리고 자연현상들이 너무도 정교하고 복잡함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오래된 지구와 진화에 대한 ‘증거’로서 세속적 과학이 사용하고 있는 많은 발견들(가령 화석들과 암석지층들)은 관측된 증거들과 과정들을 따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연구해 보면 실제로는 매우 다른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으로부터의 증거(Evidence from Scripture): 성경은 유일하고 독특하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오늘날의 많은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과학과 조화시키려고 할 때 자신이 없어한다. 성경은 과학교과서는 아니지만, 실험될 수 있고 관측될 수 있는 많은 과학적 현상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정보는 전적으로 정확하다. 그리고 이것은 논리적으로 성경이 역사적으로도 정확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성경으로부터의 증거’ 섹션은 과학적 조망을 가지고 성경을 탐구하는 많은 양의 연구들을 다루고 있다. 성경의 정확성을 규명하는 연구가 더 많아질수록, 성경의 권위에 대한 그리고 원저자인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더 많은 사실들이 알려질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이해하고 전달하기

과학은 이 세계와 지구상 생물체들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많은 발견들을 계속해오고 있다. 양적으로 많아지고 있는 데이터들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삶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나의 죽음 뒤에는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 ”나는 단순히 우연의 소산물인가? 아니면 어떤 분의 신중한 설계에 의한 것인가?” 등과 같은 우리 인간의 최대 흥미로운 질문들에 관한 질적으로 향상된 이해를 제공해줄 수 있다.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대답할 증거가 있는가?

사실, 증거들은 있다. ICR의 새로운 온 라인 '창조의 증거(Evidence for Creation)'는 독자들에게 과학과 성경에 관련된 진리를 이해하고 전달하는데 확신을 주도록 만들어졌다. 퍼드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불신자들과 과학과 증거들을 논할 때, 크리스천들은 진화 대 창조에 관한 세부적인 질문(공격)들에 답변이 막혀, 성경의 진리를 방어하는 것을 주저할 때가 있다. ‘창조의 증거’는 그러한 질문들에 답변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크리스천들은 ”그것은 참 멋진 질문입니다. 나는 당신이 더 많은 정보를 찾아갈 수 있는 곳을 바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증거를 구하라. 그리고 그것을 ICR에서 얻으라.



Reference
1. Provine, W.B. 1994. Origins Research. 16 (1): 9.

* Mr. Ford is Executive Editor.

Evidence for Creation Topics
Evidence for God
Evidence for Truth 
Evidence from Nature
Evidence from Science
Evidence from Scripture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June, 2008. 'Demanding the Evidence in the 21st Century',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http://www.icr.org/article/3881/ (accessed August 27, 2008).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881/

출처 - ICR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386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8-07-22

진화론에 대한 대중들의 견해는 26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 여론조사 결과 92%의 미국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Public Views on Darwin Not Evolving : 92 Percent of Americans Believe in God)

David F. Coppedge


        2008년 6월 27일 - 새로운 한 갤럽 여론 조사(Gallup Poll, 2008. 6. 20)는 미국인들의 진화론에 대한 견해가 지난 26년 동안 거의 변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1982년 이후로 갤럽 기관은, 인간이 수백만 년에 걸쳐서 진화했다고(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또는 도우심 없이) 믿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에 의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지난 1만년 이내에 창조되었음을 믿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성인들을 대상으로 무작위적으로 표본들을 선정하여 여론 조사를 실시해 왔다. 그 결과 커다란 변화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7 차례의 여론 조사에서, 43-47%가 최근 창조론(recent-creation)을, 35-40%가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통계는 미국인들의 거의 90%가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하나님이 관여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음을 의미한다. 단지 9-14%만이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진화되었다는 세속적 진화론을 믿고 있었다.


갤럽 기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의 광범위한 표본들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수십 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1만년 이내의 최근 창조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공화당원(60%)들이 무정당(40%), 민주당원(38%)들에 비해 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은 공화당원들이 더 많이 교회를 출석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 차이를 설명하였다.


*여론 조사는 2008년 5월 8-11일 사이에 미국 전역에서 1,017 명의 18세 이상 성인들을 대상으로 전화 인터뷰를 실시하여 조사되었다. 결과치의 신뢰 한계는 ±3 % 이다.  

*참조 : <지난 26년 동안의 창조-진화에 대한 여론조사 변화표>



언론매체, 교과서, 학교 및 대학, 박물관, 과학단체 등이 오로지 진화론만 외쳐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볼 때, 거의 변화가 없는 이와 같은 여론 결과는 놀라운 것이다. 진화론은 그렇게도 많이, 일방적으로, 그리고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있는데, 왜 그 효과는 이렇게 형편없는 것일까? 진화론자들은 과학을 모르는 무식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 의해서 여론이 잘못 호도되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둘러댈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성인들이 진화론은 문제점 투성이의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몽상가들의 교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이다. 창조 진영이나 진화 진영이나 같은 증거들을 바라보지만,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고 말했다.(롬 1:20). 사람의 얼굴 모습들이 각기 서로 다른 것을 창조론자들은 의도적인 목적으로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들이 일어나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선택은 분명하다. 바울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다윈의 설명은 섬뜩하다.  

 

*참조 : 미국인들에 대한 창조-진화 여론 조사 (Gallup)

Third of Americans Say Evidence Has Supported Darwin's Evolution Theory. Almost half of Americans believe God created humans 10,000 years ago (2004. 11. 19. Gallup) 

https://news.gallup.com/poll/14107/third-americans-say-evidence-has-supported-darwins-evolution-theory.aspx

Almost Half of Americans Believe Humans Did Not Evolve  (2006. 6. 5. Gallup) 

https://news.gallup.com/poll/23200/almost-half-americans-believe-humans-did-evolve.aspx

One-Third of Americans Believe the Bible Is Literally True  (2007. 5. 25. Gallup) 

https://news.gallup.com/poll/27682/onethird-americans-believe-bible-literally-true.aspx

Four in 10 Americans Believe in Strict Creationism (2010. 12. 17. Gallup) 

https://news.gallup.com/poll/145286/four-americans-believe-strict-creationism.aspx

In U.S., 46% Hold Creationist View of Human Origins  (2012. 1. 1. Gallup) 

https://news.gallup.com/poll/155003/hold-creationist-view-human-origins.aspx

In U.S., 42% Believe Creationist View of Human Origins  (2014. 6. 2. Gallup) 

https://news.gallup.com/poll/170822/believe-creationist-view-human-origins.aspx

40% of Americans Believe in Creationism (2019. 7. 26. Gallup)

https://news.gallup.com/poll/261680/americans-believe-creationism.aspx

How Many Americans Believe in God? (2022. 6. 24. Gallup) 

https://news.gallup.com/poll/268205/americans-believe-god.aspx


*참조 2 : Darwin Still Doesn’t Do Well in Polls. (CEH, 2009. 2. 4)

https://crev.info/2009/02/darwin_still_doesn146t_do_well_in_polls/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8/06/public_views_on_darwin_not_evolving/

출처 - CEH, 2008. 6. 27.

John Verderame
2008-04-19

성경적 세계관과 진화론적 세계관 

(The “evidence” for a biblical worldview)


        우리들 대부분은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와 그의 유명한 그림인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과 같은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하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포함하여 과학 분야에서도 조예가 깊은 발명가요 관찰자이기도 했다. 레오나르도가 그의 고향인 이탈리아 투스카니(Tuscany)의 구릉들뿐만 아니라, 그가 여행했던 다른 많은 산악지대들에서 발견된 화석들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주목을(비교적 최근까지도) 받지 못했다. 그는 바다생물 화석들이 높은 고도의 지역에서 발견되는 사실에 대해서도 많은 호기심을 가졌었다.  

레오나르도 시대에는 화석들의 기원(origin of fossils)에 대한 많은 설명들이 존재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화석들이 바위에서 자라난 것이라고 믿었다. 레오나르도는 바위 속에서는 먹이 공급처와 이동 통로가 없기 때문에 복잡한 생물체들이 자라날 수 없음을 보여주면서, 그와 같은 믿음의 불합리성을 지적했었다. 또 하나의 이론은 화석은 신에 의해서 직접 창조된 생물체의 살아있지 않은 모조품(non living imitations)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것들보다 레오나르도를 매우 분노하게 만들었던 한 설명은 화석들이 성경 창세기의 홍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왜 이 설명에 대해서 그토록 화를 냈을까? 그는 어떤 산들은 너무도 높아서 물로 뒤덮일 수 없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그는 높은 산꼭대기에 조개 화석들이 묻히기 위해서는, 해수면의 상승을 가정해야만 했다. 그는 물은 낮은 데로 흐르기 때문에, 산의 정상에 조개들이 퇴적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많은 창조과학자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창세기의 홍수로 조개들이 묻히고 나서 이후에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시편 104:6-9)라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는 왜 그러한 가능성을 조금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 레오나르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만일 오늘날의 과학자들도 그들의 선입관으로 진화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면, 레오나르도와 똑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들은 증거들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증거들을 그들의 신념 체계에 '맞출”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성경적 안경을 통해서 이 세상을 보는 창조과학자들은 증거들을 우리들의 선입관적 세계관에다 맞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문제점을 가진다. 즉 우리는 가지고 있는 증거들을 사용하여 창조론적 입장을 진화론자가 받아들이도록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우리는 할 수 없다.


예컨대 과학자들은 화성(Mars)에도 한때 대홍수가 있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화성에는 커다란 암석들이 마치 홍수에 의해서 된 것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고, 또한 마치 흐르는 물에 의한 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협곡과 골짜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들이 그렇게 믿고 있음에도, 화성에는 액체상태의 물이 있다는 증거는 전무하다!

그러나 그와 똑같은 과학자들이 지표면의 3/4이 평균 3,800m 깊이의 물로 뒤덮여 있는 지구 행성에서 성경의 기록처럼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비웃고 조롱하고 있다.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다는 증거들은 압도적으로 풍부하다. 지구는 전 지구적인 홍수를 일으킬만한 충분한 물을 가지고 있는 행성이다. 그리고 갑자기 매몰되어서 화석무덤들을 이루고 있는 무수한 동식물들의 화석들이 전 세계적으로 존재한다. 또한 전 세계의 대륙들에 분포하는 엄청난 두께와 광대한 넓이의 퇴적지층들은 격변적인 대홍수에 의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 선입관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창조론자들은 그들이 보기 원하는 것을 보고, 진화론자들은 그들이 보기 원하는 것을 본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것이다. 즉 '증거”에 대한 당신의 해석은 다른 누군가를 확신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들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들의 입장을 방어하도록 강요하고, 그 입장에 약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해줄 수도 있다. 그것은 우주 만물에 '지적설계”가 명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창조주(그냥 조물주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자존자”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영적인 문제이다. 우리(AiG)의 초점은 성경적 진리에 대한 증거들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주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 전이라도 성경의 권위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편 118:19)

 

Reference
.Ligabue, Giancarlo, Leonardo Da Vinci e i Fossili, Neri Pozza Editore, 1977.

*John Verderame, B.S. biology, Th.M. pastoral ministries. John spent five years in Italy and Europe in church planting and evangelism. He joined the AiG staff in Octobe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4403news11-13-2000.asp

출처 - AiG, November 13, 200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244

참고 : 548|3055|3024|3682|2330|2332|2177|2176|3423|2130|2353|4198|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812

Andrew A. Snelling
2008-04-18

회의론자 다루기 

(Dealing with Skeptics)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3-7)

   나는 몇 년 전 어느 주일날 밤에 창조론의 타당성을 설교하기 위해서 호주 멜버른에 있는 한 교회에 도착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회중들과 내가 교회로 들어가려고 할 때, 내가 진짜 과학자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전단지를 나누어주던 안티창조론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들이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성경을 믿고 있으며, 그러므로 지구는 젊고, 지구의 지질학은 전 지구적인 대홍수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과학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가 (베드로후서 3장을 본문으로 하여) ”창조와 기롱하는 자들(Scoffers)”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강단에 섰을 때, 회의론자들은 바로 정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방해받지 않고, 베드로가 말세에 올 것이라고 예언했던 기롱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식별할 수 있는지를 지적하면서 설교를 해나갔다.


여기에서 기롱하는 자들이란 온 세계가 전 지구적이고 산들을 덮었던 창세기 홍수(Genesis Flood)에 의해 파멸되었고, 다시 재건되었다는 지질학적 증거들을 일부러 거부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대신 오늘날과 같이 느리고 점진적인 지질학적 과정들이 수억 수천만 년 동안에도 동일한 율로 느리게 일어나, 지형들의 모습을 만들었고, 화석을 포함하고 있는 암석지층들을 퇴적시켰다고 믿고 있는 자들이다.
 
물론 내가 이 말세의 기롱하는 자들은 우리 시대의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자들(오랜 연대를 주장하는 진화론자들)과 일치한다고 말했을 때, 회의론자들로부터 항의와 야유가 있었다.
 
수년 전에 내가 배웠던 한 가지 교훈이 그날 밤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예배 후에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당연히 이들 회의론자들은 이 시간을 나를 사기꾼으로 비난하기 위한 연장된 기회로 삼았다. 그들은 수백만 년 동안의 느리고 점진적인 지질학적 과정들이 화석을 포함하는 암석지층들을 퇴적시키는 것을 ”입증했다”는 추정되는 과학적 증거들과 짧은 기간 동안에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되는 지질학적 사례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많은 반증들을 제시해도 그들이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베드로후서 3장을 본문으로 하여 설교했던 것과 똑같이, 이들 기롱하는 자들은 대홍수에 대한 압도적인 지질학적 증거들을 부러 무시하며 잊으려했다. 그들의 본질적인 문제는 영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었다”(롬 1:18-32).

그래서 그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더 많은 과학적 증거들을 가지고 어떻게든 확신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성령께서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들에게 확신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될 때에만 땅의 기원과 역사를 포함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모든 분야에서 그 권위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주위의 세상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들만 납득한다는 것을 항상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만 진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은 유한하고, 오류가 있게 마련이고, 늘 배워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계셨고(편재), 무한하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전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지구의 역사에 대해 그가 친히 목격하신 것에 대한 증언이다. 그러나 지질학자들은 하나님이 온 지구를 대홍수로 심판하실 때 거기 있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전 지구적인 대홍수는 의심할 여지없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을 안다. 설령 내가 어떤 증거도 직접 볼 수 없다고 해도,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 주변 모든 곳에 대홍수에 대한 수많은 압도적인 증거들을 남겨 놓으셨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였을 때에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성경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u/dealing-with-skeptics

출처 - AiG, 2008. 2. 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243

참고 : 4198|4235|2104|3948|4211|4214|4087|4052|1493|1464|2050|3119|4217|3346|3272|2922

미디어위원회
2007-09-06

스코프스 재판을 되돌아보며 

(A Look Back at the Scopes Trial)

John D. Morris Ph. D


       1925년의 스코프스 재판(Scopes Trial, 일명 원숭이 재판)은 미국 역사에서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그 재판은 우리가 다시 되돌아보고 배워야할 가치가 있다.

그 재판은 1900년대 초 진화론의 수용이 증가되는 것과 함께 시작되었다. 진화론은 수십년 동안 과학에 영향력을 끼쳐오고 있었다. 많은 이들은 세속적 진화론이 의미하는 종교적 도덕적 암시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또한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도록 강요하였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테네시주를 포함한 몇 개의 주들은 공립학교에서 인간이 동물 조상들로부터 진화했다고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새롭게 조직된 ACLU(American Civil Liverties Union, 미국 시민자유연맹)의 지도자들은 다윈주의적 자연주의(Darwinian naturalism)에 기초한 완전히 세속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로서, 그들은 이 법안을 바꾸기를 원했다. 스코프스 재판은 그것에 대한 첫 번째 재판이었다.

땅을 뒤흔들었던 ACLU의 많은 소송들처럼 이 소송에도 효과적인 전략이 이용되었다. 몇 개의 테네시주 신문들에 그 법안을 시험하길 원하는 선생님을 찾는다는 광고가 실렸다. 테네시 주 데이톤(Dayton)이란 작은 마을의 실업가들은 그들의 지역사회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고, 존 스코프스(John Scopes)를 권유하였다. 스코프스는 생물학 교사는 아니었지만, 가끔 대리로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실제로 진화를 언급했던 기억을 생각해내지 못했으나, 그가 체포된 후에 그 법을 확실히 위반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 변호사들은 그가 한 학생에게 개인적으로 진화를 말한 것으로 각색하였다.

과연 데이튼은 전국으로부터 신문 기자들이 몰려오고, 라디오 보도들로 인해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저명한 과학자들이 진화를 입증하기 위해서 모여들었지만, 판사는 단지 스코프스는 법을 위반하였는가? 라는 그 소송에 관한 사실 증언으로만 한정하였다. 그리하여 법정에서 제지되어진 진화론을 가르쳐야한다는 압박들은 언론매체들을 통해서 전 세계로 보도되었고, 이것은 기독교에 대한 커다란 경멸과 신랄한 조소로 이어졌다.

결국 몇몇 왜곡과 변질, 그리고 더러운 속임수들이 난무한 가운데 존 스코프스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은 후에 절차상 문제로 번복되었다). ACLU는 유죄 선고를 환영했다. 왜냐하면 항소하여 이 재판을 연방대법원으로 끌고 가서 진화론의 위대한 승리를 거두려고 계획했기 때문이었다. 재판 결과가 뒤집어지면서, 항소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벌어진 그 재판은 기독교의 쇠약과 패배를 가져다주었다. 크리스천들은 교회 안으로 후퇴하게 되었고, 학교, 언론, 공공장소 등에서의 영향력을 세속주의자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오늘날 기독교적 원리들이 조직적으로 배척받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후퇴로부터 고통 받고 있다. 미국 국민들의 대부분이 크리스천들임이 확인되고 있음에도 미국은 완전히 세속화된 길을 걸어왔다. 스코프스 재판은 그러한 변화의 전환점(turning point)이었다.

많은 크리스천 활동가들, 국회의원들, 교육자들은 이러한 재판 결과를 뒤엎기를 원했지만 잘못된 시도들을 해왔다. 적절한 전략의 부재로 그들 모두는 실패해왔다. 이에 반해 ICR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적 또는 법적 해결책을 주장하지 않아왔다. 대신에 장기간에 걸친 교육적 접근 방식을 추천한다.

그러나 ICR이 법률적 해결책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나도 유용한 소송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ACLU가 스코프스 재판을 위해 시도했었던 방식처럼,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노골적이지는 않더라도, 법률학자들과 함께 앉아 승리의 전략을 논의하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증거들이 가리키는 것처럼 진실은 우리 편이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다수의 교육계, 과학계, 언론계의 인사들과 법적 판례들은 우리와 반대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가진 신중한 계획은 스코프스 재판에서 입은 손상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세심하게 그리고 기도하면서 이 일을 이루어나갈 것이다.


*Dr. John D. Morris is the President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385/ 

출처 - ICR, 2007. 7. 1.

Jerry Bergman
2007-08-15

창조적 진화 : 노벨상을 받은 반다윈론 

(Creative Evolution: An Anti-Darwin Theory Won a Nobel)


서론

신다윈주의(neo-Darwinism)의 주된 개념은 생물학적 다양성(biological variety)의 창조와 더 적응한 유기체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다.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적자의 도착(arrival)과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변화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어려움으로 남아있다. 다윈은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해결책이 단지 "일시적인 가설이나 추정(a provisional hypothesis or speculation)"일 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더 나은 설명이 나오기 전까지, 그것이 종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고안되어진 최고의 이론이라고 믿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이론이 다른 동인(efficient cause, 작용인)에 의해서 분리된 채 현재 남겨져 있는 다수의 사실들을 한 데 묶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Darwin 349-350).

1900년 무렵의 수십 년 동안, 몇몇의 신다윈주의적 이론들이 새로운 생물학적 정보(new biological information)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개발되었으나, 대부분의 이론들은 현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Bowler 1990). 지난 세기에서, 새로운 생물 형태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개발된 가장 성공적인 비다윈주의적(non-Darwinian) 이론들 중의 하나는,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에 의해 체계화된 ‘창조적 진화(creative evolution)’였다.

베르그송의 주된 저서인 "창조적 진화(Creative Evolution, 1944)"는 2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수차례에 걸쳐 재출판이 이루어진 베스트셀러였다. 이 책의 성공은 부분적으로 그 당시의 가장 중요한 프랑스 철학자였던 베르그송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Fiero 1998). 1921년에서 1926년까지 프랑스 대학(Collége de France)의 철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이었던 베르그송은, 그의 저서들로 인해 프랑스 한림원(French Academy)의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27년에는 노벨상을 수상을 했던 사람이었다.


창조적 진화

창조적 진화론(creative evolution theory)은 그 당시 다윈주의의 주된 어려움으로 간주되었던 것들을 다루기 위해서 베르그송에 의해 개발되었다. 베르그송이 설명하려고 노력했던 가장 중점적인 내용은, 다윈주의는 자연선택이 선택한 새로운 유전적 정보의 근원(source of new genetic information)에 대해서 어떠한 만족할 만한 설명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베르그송의 이론은 자연선택을 포함해서 잘 알려진 메커니즘들이 기능을 하도록, 새로운 유전정보를 생산해 내는 비다윈적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Bothamley 2002).

베르그송의 이론은 다윈주의가 가르쳤듯이 모든 생물체들은 기계적 힘으로부터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진화를 야기시켰던 ‘생명의 추진력(vital impulse)’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Fiero 1998). ”진화의 실제 사실은 부적응한 개체의 기계적 제거에서가 아니라, ‘생명의 약동(élan vital)’ 안에서 생물체의 창조적 고조(creative surge)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Edman 1944, xii). 사실상 베르그송의 이론은 특정한 방향으로 진화를 이끄는 비물질적인 생명력(vital impetus)에 호소하는 목적론적 견해(teleological view)이다. 이 생명의 약동은 모든 물질들 내에 불어넣어져 있으며, 거의 무한히 다양한 생물체들의 근원이라고 베르그송은 결론 내렸다. 그것은 또한 최초 생명체를 탄생시킨 원래 추진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Goudge 1967).

베르그송이 설명했던 ‘생명의 약동’은 중력이나 전자기력과 같은 기본적인 힘으로써, 그것들과 다른 많은 물리적 현상과 마찬가지로 그것의 기원(origin)은 설명되어질 수 없다. 베르그송은 자신의 관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철학적 논의뿐만 아니라 상세한 과학적 논점까지" 사용했으며,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와 철학자인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를 포함하여 그를 따르는 많은 지식인들을 얻게 되었다 (Bothamley 2002). 하지만, 자연주의적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그의 이론에 대한 지속적인 추종자들을 얻지는 못했으며, 오늘날 그의 기원에 관한 이론은 전반적으로 경험적 증거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폐기되어졌다.

비록 베르그송의 이론이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존 스튜어트 밀(John Stewart Mill), 찰스 다윈(Charles Darwin) 등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은 대개 그들의 철학과 자연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었다. 혹자는 그가 진화론과 유신론(theism)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글을 보면 생명의 약동이 다윈니즘의 매우 실제적이고 심각한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임을 보여주면서, 그 자신을 다윈주의와 동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베르그송의 이론이 다루려고 노력했던 다윈주의의 많은 문제점들 중 하나는, 한 다세포 기관(a multicellular organ)은 ‘공동으로 작용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능적 전체(functional whole made up of coordinated parts)’라는 것이고, 만약 "그 부분들 중 하나나 몇에서 우연한 변이가 일어난다면, 전체의 기능은 손상될 것이다”라는 사실에 있었다 (Goudge 1967, 292). 현재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으로 알려져 있는 이 개념은 현대 지적설계 운동(Intelligent Design movement)의 기초가 되는 개념이다. 베르그송도 또한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으로 말미암아, 한 동물의 역사와 발달의 모든 단계에서,

동물의 모든 장기들과 복잡한 기관들이 효율적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가 반드시 동시에 변이가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다윈도 인정했던 것처럼, 이러한 상호 조화가 필요한 변이들이 무작위적인 복제 실수인 돌연변이들에 의해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완전히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물 형태들의 연속적인 변화 과정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기능을 유지하도록, 자연선택 외의 다른 어떤 힘이 작동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Goudge 1967, 292).

베르그송은 또한 다윈주의는 생명체가 점점 더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실패했다고 결론 내렸다.

가장 초기의 생명체는 그 자체로는 단순하지만, 환경에 잘 적응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진화적 과정이 이 단계에서 멈추지 않았는가? 왜 생물체는 (잘 적응했음에도) ‘점점 더 위험하게’ 그 자신을 계속해서 복잡하게 만들면서 진화해 나갔을까? (Goudge 1967, 292).

더 나아가 베르그송은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은, 진화론의 심각한 문제인 더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높은 단계의 생물체로 나아가도록 이끌었음에 틀림없는 어떤 것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Goudge 1967, 292). 그런데 그 어떤 것이 생명의 약동이라는 것이다.

베르그송이 다루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주요한 문제점은, 이 생명력(vital force)의 기원에 대한 설명과, 새로운 생물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것이 정확히 어떻게 기능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 이론이 가지는 다른 많은 문제점들 중 하나는, 진화가 무질서한 길 대신에 그 길을 택한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Bothamley 2002).

비록 일반인들은 베르그송의 노벨상 수상이 직접적으로 "그의 걸작인 창조적 진화"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의 노벨상은 사실상 창조적 진화라는 생각과, 그의 생물학적 업적, 그리고 그의 이론에 대한 암시를 다룬 미학적 글들을 포함해서, 그의 철학적 업적 전반에 대한 수상이었다 (Schlessinger and Schlessinger 1986, 56). 노벨상 증서에는 "그의 풍부하고 활력이 넘치는 생각들과 그것들과 함께 제시된 놀라운 기술을 인정하여” 라고 씌어있다.


토의

베르그송의 이론은 많은 학자들에게 자연선택이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는 유전적 다양성의 근원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의 노벨상 수상으로 인해 유명해졌다. 하지만 그 이론이 폐기처분되었을 때, 베르그송의 이론을 믿었던 사람들은 또 다른 메커니즘을 가정하도록 강요당했다.

수십 년간 널리 유행했던 한 메커니즘은 정향진화(orthogenesis)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진화는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도록 이끄는 내부의 유기적 힘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생물체는 배아가 내부적인 힘(internal forces)에 의해서 성체로 발달하도록 인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완벽함으로 인도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 또한 힘을 공급하거나 방향을 지시할 수 있는 어떠한 메커니즘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폐기되어졌다.

다양성의 근원에 대한 또 하나의 주요한 이론은 대돌연변이(macromutations)이다. 드브리스(Hugo De Vries, 1848-1935)는 달맞이꽃(evening primrose)에 대한 그의 연구로 극적으로 새로운 변종들과 특성들이 설명 없이 갑자기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와 다른 이들은 이러한 대돌연변이가 마침내 진화론자들에게 새로운 유전적 특성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을 제시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뒤따른 연구를 통해, 드브리스의 변화들은 돌연변이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변종들을 만들어 잡종식물(hybrid plants)들이 나타나도록 하는, 달맞이꽃 내의 부등염색체수(unequal chromosome numbers)에 기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돌연변이라는 개념은 1940년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유전학자인 골드슈미트(Richard Goldschmidt)에 의해서 간단히 부활되었다. 그는 새로운 주요한 동식물 다양성의 기원은 ‘희망적 괴물(hopeful monsters)’에 기인하였다는 것이다. 즉 복잡하고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돌연변이들이 단 한 차례 모두 발생하여 갑자기 새로운 생물체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동물 목(order)이 진화하는데 필요한 변화를 위해서는 수백 혹은 수천의 돌연변이들이 요구되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덧붙여, 대돌연변이를 만족시킬만한 그 어떠한 만족할만한 메커니즘도 오늘날의 신다윈주의자들에 의해서 제안되어진 적이 없다.

오늘날, 많은 진화론자들은 다수의 작은 돌연변이들이 대진화(macroevolution, 종을 뛰어 넘어 다른 생물 종으로 변화되는 것)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러한 결론은 실험적 증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단지 소진화(microevolution, 종 내에서의 작은 변화들)에 대한 증거들이 대진화로 외삽되어질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경험적 증거들은 대진화든지 소진화든지 어떠한 것도 새롭게 획득해야할 유전정보의 중요한 근원을 제공할 수 없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돌연변이의 축적(mutation accumulation)은 새로운 생물 종은 물론, 심지어 새로운 장기나, 조직조차도 만들어낼 수 없다” (Margulis and Sagan, 2002, 11). 돌연변이는 결국 질병과 죽음으로 이끈다. 마굴리스(Margulis)가 과학자들의 영예로운 단체인 미국과학연구학회(Sigma Xi)의 회장이었을 때, 그는 "많은 생물학자들이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목적이 없는 우연)들이 새로운 종의 생물체를 발생시키는 유전적 변화의 근원임을 확신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아니다!’ 라고 말하겠다”고 덧붙였다(Margulis, 2006, 194). 지적설계 운동가들은 하나의 지적인 근원을 가정하고 있고, 창조론자들은 그 근원을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창조주(Creator)라고 결론짓고 있다.


요약

베르그송 이후 거의 1세기 동안, 신다윈주의자들은 여전히 대진화를 일으킨 새로운 유전정보의 근원(source of new genetic information)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Sterelny 2001). 이러한 사태는 가설들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창조적 진화론과 같이 "다윈주의적 메커니즘을 대체하는" 다른 이론들(Bothamley, 2002, 127)이 널리 지지를 받았지만, 주의 깊게 조사되었을 때, 결국 모든 대체 이론들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폐기되어져 버렸다. (Bergman, 2003).

지금까지, 어떠한 후다윈주의적 이론(post-Darwinian theory)도 신다윈주의적 이론의 주된 결점이었던 새로운 생물학적 유전정보의 근원을 다룰 수 없었다. 하버드 대학교의 한 생화학자가 언급했듯이, "오늘날 진화론은 다른 많은 견해들이 패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떠들썩한 분야(tumultuous field)인 것이다.” (Esensten 2003, 2).



References

  1. Bergman, Jerry. 2003. The century-and-a-half failure in the quest for the source of new genetic information. T.J. Technical Journal 17 (2): 19-25.
  2. Bergson, Henri. 1944. Creative evolution. New York: The Modern Library.
  3. Bothamley, Jennifer. 2002. Dictionary of theories. Canton, MI: Visible Ink Press.
  4. Bowler, Peter J. 1990. Charles Darwin: The man and his influence. UK: Blackwell Publishers.
  5. Darwin, Charles. 1896. The variation of animals and plants under domestication. Vol. 2. New York: D. Appleton.
  6. Edman, Irwin. 1944. Foreword to Creative evolution, by Henri Bergson. New York: The Modern Library.
  7. Esensten, Jonathan H. 2003. Death to intelligent design. The Harvard Crimson Online Edition, March 31. http://www.thecrimson.com/article.aspx?ref=347206.
  8. Fiero, Gloria K. 1998. The humanistic tradition, book 5: Romanticism, realism, and the nineteenth-century world. 3rd ed. New York: McGraw-Hill.
  9. Goudge, T. A. 1967. Henri Bergson in Encyclopedia of philosophy. Vol. 1. New York: Macmillan.
  10. Margulis, Lynn, and Dorion Sagan. 2002. Acquiring genomes: A theory of the origins of species. New York: Basic Books.
  11. Margulis, Lynn. 2006. The phylogenetic tree topples. American Scientist 94 (3): 194.
  12. Schlessinger, Bernard, and June Schlessinger. 1986. The who's who of Nobel prize winners. Phoenix, AZ: Oryx Press.
  13. Sterelny, Kim. 2001. Dawkins vs. Gould: Survival of the fittest. Oxford, Cambridge: Icon Books.

*Jerry Bergman is on the Biology faculty at Northwest State College in Ohio.



번역 - 창조과학회 대구지부

링크 - http://icr.org/article/3383/

출처 - ICR, Impact No. 409, 200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991

참고 : 3800|3856|3841|3808|3744|3736|3729|3679|3677|3606|3598|3586|3593|3591|3426|3391|3360|3341|3293|3262|3109|3107|3059|3051|3012|2859|2748|2763|2752|2579|2504|2334|2125|2153|2114|2067|2061|1912|1914|1907|736|730|729|657|658|659|696|653|654|551|328|201|202|45|3847|3859|3779|3375|3712|3727|3732|3718|3652|3607|3608|3409|3413|3355|3373|3315|3266|3202|3214|3174|3097|2513|2347|2157|2169|2025|2089|664|695|442|498|423

조정일
2007-05-07

우리는 왜 창조과학을 지지하는가? 

: 과학, 성경, 그리고 윤리와 관련하여


       「기독교 사상」 2007년 4월호 신학기고 란에 게재된 "기독교인이 창조과학을 지지할 수 있는가?” (원 제목은 Can a Christian be a Creationist? 로서 정확한 번역은 "기독교인이 창조론자가 될 수 있는가?" 이다) 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 과학과 창조과학의 본성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느껴 본 글을 쓰게 되었다. (기독교 사상) 편집자는 독자들에게 위 제목의 글을 쓴 커트 놀 (Kurt Noll)의 신앙관을 비판하기보다는 창조과학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라고 주문하고 있다. 어떤 글이든지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그 글이 내 관점에 맞지 않는다고 꼬투리를 잡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창조과학에 대한 우리 학회의 관점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커트 놀은 창조과학과 관련된 세 가지 주제를 제시했는데, 첫째, 과학 혹은 과학적 방법, 둘째, 성경, 셋째, 윤리이다. 이 세 주제는 창조과학자들에게는 사역의 중요한 세 축이며, 그런 점에서 커트 놀이 잘 지적하였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본 저자는 커트 놀이 자신의 글에서 보여준 과학(진화론)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비판하고, 창조과학이 왜 쓰레기 과학이 아니라 바람직한 과학인지와 성경이 진화와 무관하지 않은지를 보이고자 한다.


커트 놀(Kurt Noll)의 과학관 고찰

커트 놀이 자신의 글에서 과학과 관련하여 언급한 구절들을 통해 그의 과학관을 짐작할 수 있다. 몇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다윈의 이론이 진실이라면......그런 이유로...공립학교에서의 생물학적 진화론 교육을 지지하는 것이며...” (pp.180-181)

"과학적 방법론은 오직 과학적 가설에 한해서만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p.188)

"과학적 방법론은 그 어떤 종교로부터도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 (p.192)

커트 놀은 또한 과학을 "자연에 관하여 질문을 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과학적 방법을 "자연에서 관찰된 특정 사항들을 기본으로,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가설을 세운 후, 그 가설을 시험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개발해 내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p.182) 커트 놀의 과학과 과학적 정의는 수용할 만하지만, 그의 글에 나타난 과학에 대한 묘사는 매우 고전적인 과학관을 반영한다. 오늘날 거의 모든 과학철학자와 과학교육학자들은 과학이 객관적이거나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 가설과 과학 이론은 참과 거짓으로 결론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을 보다 잘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능력 정도에 따라 그 가설과 이론의 선택 여부가 결정된다고 본다. 그래서 과학 가설과 이론은 ‘증명’의 의미를 함축하는 참이나 진실(혹은 진리)란 단어로 표현하지 않는다.

커트 놀의 정의대로 과학적 방법은 가설-연역적 논리에 기초하여 수행된다. 과학자들이 가설을 만들 때, 가설들이 가치와 신념이 배제된 객관적 지식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않는다. 가설은 과학자가 살고 있는 사회의 사조, 과학자 자신의 신념, 그리고 과학자 사회의 패러다임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과학은 그 본성상 종교를 포함한 신념과 가치로부터 독립된 영역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사람, 특히 과학자의 지식은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지식 구조를 구성하며 그 안에서 종교적 신념과 과학적 지식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통합적 지식 구조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커트 놀이 쓴 논문은 그의 종교관, 과학관, 성경관을 아우르는 통합적 지식체계에서 나오는 것이며, 각 요소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면 통합적이고 일관적인 한 편의 논문을 만들어내기란 극히 어려울 것이다. 그의 매우 소박하고 극히 수용적인 과학에의 관점이 논문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데,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창조과학과 성경에 대한 그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


창조과학과 과학

과학적 방법의 정의를 엄격하게 적용하자면 과학의 대상은 관찰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다시 말하면 재현 가능한) 자연현상이어야 한다. 창조과학은 현재 관찰할 수 없는 생명과 종의 기원에 대한 증거와 그에 대한 추론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위의 정의를 엄격히 적용하면 창조과학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역사이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진화과학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진화는 커트 놀의 표현처럼 45억년의 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생물이 발달한 과정이고, 지구 역사를 48시간으로 줄여 놓았을 때 인류는 막 1초 전에 발을 내디딘 긴 과거를 가진다. (p.189). 이 시간을 초로 환산해 보면 172,800초 중 172,799초 동안에 일어난 일은 인간이 출현하기 전에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기에 현재 사람들이 학문 주제로 다루는 모든 진화가 이미 일어나 버렸다. 즉 진화과학은 현재 관찰 가능한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고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건을 다루며, 앞에서 창조과학에 적용했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 진화과학 역시 과학이 아니라 역사라고 보아야 하지 않은가?

창조과학이 과학의 정의에 비추어 미달하는 부분은 창조과학은 이미 답을 갖고 있으며, 이 답은 어떤 연구 결론에 의해서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창조과학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종류대로 생물들을 창조했으며, 노아의 홍수를 기점으로 하여 지금 관찰되는 지층과 화석의 대부분이 형성되었다는 가정으로 구성된다. 그런 점에서 창조과학은 과학 지식의 일반적 특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과학적 지식은 내구적이면서 동시에 가변적이다. 만일 어떤 과학 이론이 절대 불변의 참 혹은 진리라고 인정되면 그 이론은 과학적 지식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한다. 그 지식은 형이상학적 지식이지 경험적 지식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커트 놀이 약간 애매하게 표현했지만, 진화론을 진리라고 하였다.(p.180-181) 사실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변할 수 없는 진리라고 믿지, 진화 자체를 의심하고 감히 그 가정을 검증해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진화는 단순한 과학 이론 이상이다.

프란시스코 아얄라(Francisco Ayala) (1977)는 도브쟌스키에 대한 묘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브쟌스키에 따르면 인간의 사고에 있어서 생물학적 진화의 위치는 그가 가끔 인용했던 피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글로서 잘 표현된다. ‘진화는 모든 이론, 모든 가설, 모든 체계가 그 아래 복속되어야 하고, 그것들이 고려할만하고 참이기 위해서는 만족시켜야 하는 대 전제이다. 진화는 모든 사실을 비추는 빛이고 모든 사고 과정이 따라야만 하는 길이다.” (p.3)

유명한 진화론자인 후투이마 (Futuyma) (1983)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창조와 진화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가능한 모든 설명을 다 포함한다. 생물은 완전히 발달한 채로 지구에 나타났던지 아니면 그렇지 않든지 둘 중 하나이다. 그것들이 완전히 발달한 채로 지구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것들은 이미 존재하는 종으로부터 변화의 과정을 거쳐 그 이전의 종으로부터 발달했어야 한다. 그것들이 충분히 발달된 상태로 나타났다면 그것들은 실제로 어떤 전능한 지적 존재에 의해 창조되었어야 한다.” (p.197)

진화론을 인정하는 과학자들은 진화를 불변의 진리로 믿으며, 기원에 대해 창조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진화를 바라본다. 그들에게 진화론은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유일한 답이며 변할 수 없는 전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창조론자인 듀에인 기쉬 (Duane Gish)의 말은 이 점에서 참으로 적절하다. 그는 말하기를 "창조는 진화만큼 과학적이며, 진화는 창조만큼 종교적이다.” (Gish, 1995, p.9)

여기서 논의가 끝난다면 창조와 진화는 함께 역사나 종교 시간에만 다루어야 하는 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제는 그 선을 넘는다. 사람은 창의적이며 호기심이 많다. 비록 관찰되지 않는 과거의 사건일지라도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 현상을 밝혀보고자 하는 역동성을 갖고 있다. 더욱이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이며 이에 관해 어떤 견해를 갖는가에 따라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에 관한 두 모델 중 어느 것이 현재 통용되고 있는 과학적 기준에 더 부합되는지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과학적 방법을 보다 넓게 정의하자면, 자연 현상에 대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다양한 과정들이다. 그리고 이 과정의 핵심은 여전히 가설-연역적 사고이다. 즉 가정에 일관적인 가설을 세우고 경험적 예측이 과거와 현재의 실제 데이터에 어느 정도 일치하느냐를 가지고 그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다. 예측과 증거가 자주 맞으면 그 가설은 살아남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가설은 폐기된다.

창조과학은 이러한 역동적인 과학적 방법을 통해 수행된다. 칼 포퍼의 말처럼 형이상학적 명제를 검증 가능한 경험적 가설로 과감히 전환시킴으로써 과학은 발전한다 (Johnson, 1991/1993). 창조과학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창조과학은 커트 놀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의 존재 여부(p.183)나 종교적 이상이나 종교적 주장(p.183)을 검증하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 생명, 지구, 우주를 비롯한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특히 생명체의 창조와 인류의 창조 등은 좀 더 구체적으로 그 과정을 말씀하셨다고 믿는다. 그리고 노아 시대 전 지구적 홍수 결과 그 흔적이 지층과 화석 그리고 다양한 지형으로 남게 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창조과학이 사실 혹은 참으로 믿는 가정들이다. 가정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형이상학이지 과학은 아니다.

창조과학은 이러한 믿음으로부터 추론된 경험적 가설들로 구성된다.

첫째, 우주, 에너지, 생명의 무로부터 갑작스러운 창조.
둘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기구들은 한 원시 생명체로부터 현재의 모든 종류들을 출현시키기 위한 것으로서 매우 불충분하다.
셋째, 원래 창조된 식물과 동물의 변화는 그 종류 안에서의 변화에 국한된다.
넷째, 사람과 원숭이는 별개의 조상을 가졌다.
다섯째, 전 세계를 덮는 홍수 사건을 포함하는 격변에 의한 지구 지질학의 설명.
여섯째, 지구와 생물의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

위의 가설들은 현재 관찰 가능한 현상들, 과거 이미 일어난 사건의 흔적들, 그리고 이제까지 밝혀진 과학적 법칙, 이론, 원리들에 기초하여 검증될 수 있다. 과학 이론과 모델의 속성상 증거에 의해 진위가 증명될 수는 없지만, 정말 엉뚱한 주장인지 아니면 진화론보다 더 좋은 설명을 제공하는지는 비교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종교적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생명의 기원, 종의 기원, 화석의 형성과 지구의 나이 등에 관한 살아있고 가능성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것일 뿐이다.

과학자가 검증하고자 하는 가설이 어디에서 왔든지 그 원천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 없이 가설을 세울 수도 있고,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서 올 수도 있고, 꿈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물론 성경에서 유래할 수도 있고 자신의 일상 경험과 관찰에서 가져올 수도 있다. 과학에서 상관하는 것은 그 가설이 어디로부터 유래했느냐가 아니고, 그 가설이 경험적 증거에 의해 지지될 수 있는가이다. 다른 것보다 훨씬 뛰어난 설명과 예측 능력이 있는 가설이라면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기원에 관한 창조모델과 진화모델은 이미 일어나버린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직접적인 증거보다는 간접적인 증거에 의해 그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하게 된다. 이 경우 아무리 많은 증거가 쌓여도 그 가설이 절대적인 의미에서 참, 혹은 거짓으로 증명되지는 않는다. 다만 더 효과적이고 유력한 가설이라는 위상을 가질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과학철학자와 과학교육자들이 생각하는 과학이다. 그 점에서 창조과학은 매우 과학적이며, 진화과학만큼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과학은 과학의 영역과 시야를 확장시키며, 과학의 역동적 본성을 경험하는 아주 좋은 소재이며 방법이다.

창조과학을 종교라고 하여 과학적 고려대상을 삼지 않는 것은 철학, 과학, 교육의 어떤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런 생각은 오직 자연주의 세계관, 즉 모든 현상은 오직 자연적 원인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연주의자들에게는 신, 성경, 종교의 함축을 지닌 창조과학이 아무리 기원과 다른 자연 문제를 잘 설명한다 하여도 그것을 용납하고자 하지 않고, 차라리 매우 부족하지만 진화과학을 고수하려고 한다. 그들은 창조과학을 수용하면 곧 창조주의 존재에 직면해야 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신론적 자연주의자들의 발상을 그리스도인이 동조할 이유가 없다. 과학이 진정 자연 세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검증하기 위한 엄격한 방법이라면, 설령 하나님의 존재를 대면하게 되더라도 진실이면 수용하여야 하는 것이 옳다. 하나님의 존재와 부딪히기 싫어 자연주의적 설명 체계인 진화론을 고집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또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진화론자 과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은 과학의 방법론으로 물질주의를 채택했다고 하지만, 방법론뿐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오직 물질주의, 자연주의 세계관만이 인정되는 세계관적 선택을 한 것이다.

1961년 『창세기 대홍수』가 출판된 후, 저자인 헨리 모리스 박사는 미국지질학회의 초청을 받아 수백 명의 회원들 앞에서 지질 형성에 대한 격변론을 소개하였다. 그 뒤 지속적인 연구들은 지형, 지층의 형성 모델로서 격변론이 우수함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현재 지질학에서는 동일과정설에 관한 호소가 약화되고 대신 소위 신격변론이 매우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격변론은 지층의 형성은 매우 급격히 짧은 기간 내에 형성되었음을 인정하지만, 지층과 지층 사이의 긴 기간을 삽입함으로써 오랜 지구 연대 주장을 계속 지지하는 이론이다. 어쨌든 현재 지질학계의 이러한 변화는 결국 창조론자들의 격변론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지난 7년간에 걸쳐 미국창조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에서 수행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에 대한 연구 보고서는 오랜 지구 연령의 기초가 되어 왔던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의 가정들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헬륨 기체의 확산, 방사능 훈(radioactive halos), 엄청나게 가속화된 방사능 붕괴 속도, C-14에 의한 석탄의 나이 등이 젊은 지구 모델과 격변 모델의 설명과 일치하는 흥분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DeYoung, 2005; Vardiman, Snelling & Chaffin, 2005). 이 연구들은 창조과학이 종교이며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려고 하는 시도가 아니라, 성경에서 이끌어낸 설명 모델이 자연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하고 좋은 것이며, 창조를 인정하고도 하나님에게 호소하지 않고 과학의 본성에 충실한 연구가 정말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오직 진화 모델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창조모델과 진화모델 둘 모두에게 개방적인 사람들보다 더 교조적이고 종교적이다.

창조모델에 기초한 연구는 현재 유전자 염기 서열에 대한 연구로 확장되고 있다. 돌연변이율은 한 종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가정된다. 즉 그 종이 처음 출발부터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에 비례하여 그 안에 유전자의 염기 돌연변이가 축적되어 있을 것으로 가정한다. 인간지놈이 밝혀졌기 때문에 서로 격리된 인구 집단 간의 염기 서열의 차이는 곧 얼마나 오랫동안 분화가 일어났는지를 지시한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같은 종 내에서 그리고 비슷한 종 사이에 과거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의 신실성을 믿기에 자신들의 가정이 옳다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연구를 추진하며 실험 조건과 연구 방법 및 기술이 갖추어지기만 하면 그들의 예측과 일치하는 결과를 얻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제까지 이 확신은 실현되어 왔으며 앞으로 더 많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창조과학과 성경, 그리고 윤리

우리는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며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글과 역사를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신 책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전 인류 역사를 통해 사람들이 읽고 그 뜻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실 수 있는 뛰어난 문장 능력과 화법을 갖고 계시다고 믿는다. 창세기 6장과 7장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짓되, 길이가 300규빗, 너비가 50규빗, 높이가 30규빗되는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다. 또한 홍수는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 그해 2월 17일부터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방주의 규모는 이러 했으며, 홍수는 이때 시작되었구나 하고 읽고 이해한다. 이렇게 분명한 묘사가 어느 책에 나오든지 어떤 조건이나 제한이 분명히 제시되지 않았다면 문자 그대로 읽고 이해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것을 가상적 이야기라고 믿을 어떤 근거도 그 문장에서 찾을 수 없다. 저자가 그 글이 비유나 교훈으로 읽히길 바라면서 그렇게 자세하고 명확하게 기술했다면 그는 사기꾼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행동을 하셨을 리 만무하다.

사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6일 창조 (막10:6), 노아의 홍수 (마24:37-39)를 구약에 쓰여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셨고, 베드로 사도 역시 베드로후서 3장에서 분명히 모든 세계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다고 함으로써 그 사건의 역사적 사실성을 분명히 하였다. 그 정도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노아의 홍수의 역사적 사실을 믿어야 한다. 설령 믿지 않을 수는 없지만 문자 그대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아서 국지홍수설이나 평온홍수설을 주장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지난 주일이 부활주일이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 전에 살았던 다윗을 통해 시편 16편 6-9절에 잘 예언되어 있다. 2천년 전의 역사적 정황, 성경의 선포, 내주하시는 성령의 확신과 우리의 삶 가운데 경험하는 부활의 능력이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일어났던 사건임을 증거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증명’해 보이라고 하면 증명할 수는 없다. 우리 눈앞에서 예수님이 다시금 육체로 오셔서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지 않고는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증명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증거가 있기에 믿는 것이지 증명되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로 저자는 매우 비판적인 톤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며, ‘증명’했다고 하여 그것이 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다시 질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창조과학을 비판할 때 사람들은 항상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비판을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학적 증거, 혹은 고고학적 증거, 혹은 성경적 증거가 창조과학을 부정하는지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판자들의 한계이고 그 비판이 신뢰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과학 뿐 아니라 여타 학문에서 비판은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정당화되어야 하지 단지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커트 놀이 성경의 신실성과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기록에 대해 접근하는 그 만큼의 정밀함과 엄격함을 가지고 과학적 방법과 과학에도 접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과학적 방법과 과학은 성경에 비하면 풋내기에 불과하다. 고작 역사라고 해봐야 2~3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 동안에도 과학적 지식은 계속 변하는 게 그 특징이라고 할 만큼 거듭 변해 왔다. 특히 진화론은 1859년 자연선택설이 나온 이래로 1900년대 초 신다윈설, 그리고 1950년대 이후 현대 종합이론과 1980년대 이후 단속평형설로 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이론들 또한 매우 불안정한 위상을 갖고 있고 확률과 우연에 의한 종의 분화를 믿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신비적 힘을 의지하는 가이아(대지의 여신) 가설 등에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과학은 무조건 수용하면서 (p.187), 약 3500년 전부터 여러 기자들에 의해 기록된 후 한 번의 수정도 없이 그대로 보존되어 지금 우리 손에까지 오면서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진리로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 성경에 대해서는 단 한 점의 실증적 신뢰도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 혹시 커트 놀이 성경을 연구하려고 접근할 때부터 성경은 신화이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에 맞춰 증거를 찾고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어떤 진리든지 그것이 진리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표지라고 한다면, 커트 놀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과학적 진리와 성경의 진리를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p.188) 커트 놀에게는 진리가 그렇게 철저하게 구획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역사 속에서 사람의 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역사 속에서 사람의 입으로 고백되는 말을 통해 영광받길 원하신다. 만물 속에 깃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찾아내어 마땅한 경배를 창조주께 드리기를 참으로 기대하고 계신다 (시19편; 롬1:20; 시104편; 계4:11, 14:6~7).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특별 창조를 부인하는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기 어려우며, 결국 진화론적 윤리관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본다. 진화론은 다름 아닌 양육 강식, 죽음, 고통, 기형의 토대 위에서만 구축되는 잔인한 구조물이다. 『종의 기원』의 마지막 단락에서 찰스 다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리하여 만물의 투쟁에 의해, 기근과 죽음에 의해, 우리가 보기에 가장 우수한 개체, 즉, 더 고등한 동물들 (예를 들면 사람)이 잇따라 출현했다.”

도브쟌스키(1974)는 진화론적 윤리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적자생존은 자기 본위, 쾌락주의, 비겁함...속임수와 약탈...을 뒷받침할 수 있다. 윤리학은 인간의 윤리학이다. 그것들은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다.”

차라리 진화론자들은 기독교와 진화론이 어떻게 서로 상충되는지에 대해 커트 놀과 같은 많은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잘 깨닫고 있는 것 같다. 무신론자로 자처하는 한 사람의 말을 들어 보자.

"기독교는 진화론에 대항해서 필사적으로 과학(자연주의를 의미함)과 싸웠으며 아직도 싸우고 있고 앞으로도 싸울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예수의 지상 사역 및 죽음이 필요한 이유를 완전히 허물어 버리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와 원죄를 파기해 버려라. 그러면 그 잡석 속에 버려진 신의 아들의 불쌍한 유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의 죽음의 의미를 거절하라. 만일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죽은 구속자가 아니라면-이것이 진화가 의미하는 것이다-기독교 신앙은 허구이다.” (American Scientists, 1978, Feb. 19, p.30)

커트 놀이 진화론적 윤리관을 마음껏 환영하면서, 하나님의 본성에 기초한 윤리관을 저버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보면 1700년대에 신학자들과 과학자들 대부분이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창조론자들이었다. 1800년대 말 경에 신학자들과 과학자들 대부분이 창조, 노아의 홍수, 젊은 지구설을 거부하고, 성경에는 오류가 있으며, 신뢰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받아들였다.

1700년대 말 제임스 허튼, 1800년대 초의 찰스 라이엘이 균일론(동일과정설)과 오랜 지구를 주창하였고, 1859년에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통해 성경에 대한 신뢰를 제거했다. 무엇이 대세를 바꾸어 놓았는가? 성경에 대한 반대를 주도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인 경우가 많았다. 1800년대 초부터 신학자들이 처음에는 오랜 지구 사상을 수용하더니, 다음에는 노아의 홍수 대신 균일론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 당시 성경을 진리로 믿는 과학자들은 신학자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성경 말씀을 옹호하려고 노력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창세기가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확신은 점차 사라지고, 한 세대 후에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하였을 때는 과학자들까지도 그의 함정에 빠져, 과학자이건 신학자이건 더 이상 창조론을 인정하는 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게 되어 버렸다.

20세기 들어와 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의 기초가 된 그의 책『자본론』을 찰스 다윈에게 헌정하였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현대 유럽역사를 가르치는 리처드 웨이카트 교수는 그의 저서 『다윈에서 히틀러까지: 진화적 윤리학, 우생학 그리고 독일에서의 인종주의』에서 미국의 우생학자들이 어떻게 독일의 나치에 영향을 주어 인종학살을 감행하게 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현재 생명공학자들은 철저한 다윈론자였던 어네스트 헥켈의 진화재현설(발생반복설)을 굳게 믿고 배 발생 초기의 상태는 인간이 아니며 동물의 배나 다를 바 없다고 여겨, 그것을 가지고 실험 조작을 하려고 벼르고 있다. 예수님은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역사적으로 진화론은 항상 인류에게 피해를 주어왔고 현재도 주고 있다. 다윈의 말에 따르면 그런 피해를 통해 진화가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오래 참으시고 인자와 진리가 풍성하신 사랑 그 자체이시다. 이 분이 인간과 생물에게 이토록 심한 고통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생물들을 만드셨다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아담이 진화하기 까지 수십억 년 동안의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을 거쳐 출현한 아담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신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얼마나 잔인하고 나쁜 신인가? 진화는 하나님과 함께 갈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진화론자는 될 수 있다. 그러나 진화론과 기독교 진리가 둘 다 진리일 수는 없다.


요약

과학은 자연 세계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본성상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지식 체계를 구성한다. 우리가 과학을 수용하는 것은 자연 세계를 설명하고 예측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며, 과학 이론은 항상 증거 앞에 노출되어야 한다. 과학의 본성은 가설-연역적 사고이며, 가설은 과학자 개인, 과학자 사회가 지지하는 가정에 기초하여 생성된다. 이 모든 점이 과학을 가치 내재적이고 상대적으로 만든다.

창조과학은 기원(생명, 종, 화석과 지층)에 있어 검증 가능한 예측을 제공하는 모델 아래서 수행되며, 진화 과학에 대비되는 모델이다. 창조과학은 역동적 과학의 특성을 보여주며 실제 여러 분야에서 유용한 결과가 산출되고 있다. 무신론자들은 창조 모델을 뒤따라오는 유신론적 함축 때문에 창조모델을 채택하지 않지만, 유신론자들은 그것을 채택함으로써 받는 과학자로서의 불이익도 감수하며 창조 모델을 포기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기원에 관한 한 모든 측면에서 창조모델은 진화모델보다 훨씬 정확하고 광범위하게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

성경은 영적 진리일 뿐 아니라, 피조세계를 다루고 있고, 그 일부는 과학의 원리로서의 역할을 한다. 우리는 때로 형이상학을 경험적 가설로 바꾸어 검증에 노출시킴으로써 과학을 수행한다. 가설의 타당성 여부는 그 원천(source)이 아니라 증거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여러 경쟁 이론이나 가설 중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많고 예측이 보다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 채택되는 것이 과학의 관행이다.

과학을 다른 영역과는 별개의 독립적 영역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경은 과학 및 다른 학문과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이 처음 아담을 창조하신 후,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는 복을 주신 것은 사람에게 피조세계를 탐구할 것을 명하신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과학과 공학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참고문헌

.Ayala, F. J. (1977). Nothing in biology makes sense except in the light of evolution, Theodosius Dobzhansky: 1900-1975. Journal of Heredity, 68(Jan/Feb), 3-10.
.DeYoung, D. (2005). Thousands not billions. El Cajon, CA: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Dobzhansky, R. (1974). Ethics and values in biological and cultural evolution. Zygon, the Journal of Religion and Science.
.Futuyma, D. J. (1983). Science on trial. New York: Pantheon Books.
.Gish, D. (1995). Teaching creation science in public schools. El Cajon, CA: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Johnson, P. E. (1993). 심판대 위의 다윈 (이수현 역). 서울: 과학과 예술 (원전은 1991년에 출판됨).
.Vadiman, L., Snelling, A. A., Chaffin, E. F. (2005). Radioisotopes and the age of the earth, Vol. II: Results of a young-earth creationist research initiative. El Cajon, CA: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참조 : '기독교인이 창조과학을 지지할 수 있는가?” (Kurt Noll. 이병권 번역. 2007년 4월호 기독교사상) (원제 : ‘기독교인이 창조론자가 될 수 있는가’. )
http://www.clsk.org/gisang/index.asp


출처 - 기독교사상, 2007년 5월호.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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