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park.com,s8int.com
2019-05-09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8

: 유럽의 역사와 예술품에 등장하는 용은 공룡이었다! 

(Dinosaurs in Literature, Art & History of Europe) 

<웹사이트genesispark.com, s8int.com, 발췌>


역사 속의 용

”전설속의 용(dragons)은 이상하게도 과거에 실제로 살았던 생물처럼 보인다. 용은 사람이 지구에 출현하기 오래 전에 살았다고 말해지는 거대한 공룡과 너무도 유사하다. 용은 일반적으로 사악하고 파괴적이었다. 용은 모든 나라의 신화에 등장한다.” (Knox, Wilson, 'Dragon,” The World Book Encyclopedia, vol. 5, 1973, p. 265.) 브리태니커 백과사전(1949년 판)은 용에 대해, ”용을 믿었던 고대인들은 공룡(dinosaur)에 대한 조금의 지식도 없었지만, 용과 공룡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1828년 영어사전인 노아 웹스터(English Language Noah Webster) 사전에는 용(dragon)이라는 단어가 중세시대의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그러므로 그 단어는 쏘다 또는 끌어내다를 의미하는 단어에 어근을 둔,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 불타는 유성, 그리고 불을 뿜는 또는 날아다니는 뱀을 의미했던 것으로 추론된다.” 그 사전은 용에 대해, ”일종의 날개달린 뱀, 중세시대에 과장되었고 유명해졌다”고 정의하고 있었다. (Webster, Daniel, S. Converse, New York, 1828, p. 67)

용의 이야기는 많은 문화들에서, 여러 세대를 거치며 계승되어왔다. 이야기들 중 많은 것은 과장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들이 원래 근거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살아있는 도마뱀조차도 용처럼 보이며, 동물의 큰 다양성은 어떤 지역사회를 쉽게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예전에 공룡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미니 촬영장에서 이구아나 모형을 사용하여, 거대한 용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2004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의 헬크릭 지층에서 발견됐던 매혹적인 공룡 드라코렉스(Dracorex)의 골격이 인디애나폴리스 어린이 박물관에 전시됐었다. 용처럼 생긴 이 공룡의 머리, 뿔, 이빨 형태 때문에, 새로운 종은 드라코렉스 호그와트시아(Dracorex hogwartsia)로 명명됐다. 이 이름은 대중화 된 드라곤(dragons, 용)과 해리 포터 영화로 유명해진 호그와트 마법학교(Hogwarts School)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그 공룡의 두개골은 뾰족한 뿔, 혹, 긴 주둥이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돔형의 앞이마를 갖고 있는 파키케팔로사우루스(pachycephalosaur) 계통의 다른 공룡들과 같지 않게, 평평한 머리를 갖고 있었다.(아래 그림). 스탠포드 대학의 메이어는 말했다 : ”그 두개골은 용(dragons)을 연구했던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도 친숙하게 보였다! 드라코렉스는 고대 중국과 중세 유럽의 용들과 매우 놀랄 만큼 유사하다.” 용에 대한 역사를 면밀히 살펴본다면, 공룡에 대한 진실 된 역사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BC 2,000년경에 기록된 유명한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에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훔바바(Humbaba)라는 괴물을 처치한 이야기가 나온다. 훔바바는 아마누스의 백향목 숲(Cedar Forest of Amanus)의 무서운 수호자였다. 메소포타미아의 강력한 신인 엔릴(Enlil)은 그곳의 평화를 방해하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그곳에 훔바바를 배치했다. 거대한 생물인 훔바바는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대상이었다. 때때로 훔바바는 비늘 판으로 덮여진 거대한 인간을 닮은 형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훔바바의 강력한 다리는 사자의 것과 같았지만, 독수리의 발톱을 갖고 있었다. 머리에는 황소 뿔이 있었고, 꼬리는 뱀과 같았다. 또는 일부 문헌에 의하면, 훔바바는 불을 뿜어낼 수 있는 용의 형태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종합해보면, 그 모습은 아래와 같았을 것이다. 어디에서 많이 보았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인도를 침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의 한 동굴에 살고 있던 쉿쉿 소리를 내는 거대한 용을 보았다는 기록을 남겨놓았으며, 그리스 통치자들은 에티오피아에서 살아있던 용을 운반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Gould, Charles, Mythical Monsters, W.H. Allen & Co., London, 1886, pp. 382-383.) 마이크로소프트 엔카르타 백과사전(Microsoft Encarta Encyclopedia)은 '공룡(dinosaur)'에 대해 설명하면서, 공룡 뼈들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멀리 BC 5세기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일부 학자들은 그리스 역사가였던 헤로도토스(Herodotus)가 중앙아시아에서 둥지(nests)를 지키고 있는 괴수 그리핀(griffins)을 기술했을 때, 화석화 된 공룡 뼈들과 알들을 언급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에서 AD 3세기의 책에서 언급됐던 '용 뼈(dragon bones)'들은 공룡의 뼈를 가리켰던 것으로 생각된다.

요세푸스(Josephus)와 같은 고대 역사가들과 탐험가들은 고대 이집트와 아라비아에 있던 날아다니던 파충류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들의 천적인 (신성한 새로 여기는) 이비스(Ibis)에 대해서 기술해 놓았다. (Epstein, Perle S., Monsters: Their Histories, Homes, and Habits, 1973, p.43.) 3세기의 역사가인 가이우스 솔리누스(Gaius Solinus)는 아라비아에 있는 날아다니는 뱀(flying serpents)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독은 너무 빨라서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죽는다”라고 기록해놓고 있었다. (Cobbin, Ingram, Condensed Commentary and Family Exposition on the Whole Bible, 1837, p.171.)

유명한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이렇게 썼다. ”아라비아의 부토(Buto)라는 도시의 매우 가까운 곳에 어떤 날개달린 뱀(winged serpents)이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량의 뼈들과 뱀의 척추 뼈들을 보았다. 뱀의 형태는 물뱀의 형태처럼 보였지만, 깃털이 없는 날개를 갖고 있었는데, 마치 박쥐의 날개처럼 보였다.” (Herodotus, Historiae, tr. Henry Clay, 1850, pp. 75-76). 이것은 익룡(pterosaur)의 모습과 놀랍도록 유사한 표현이다! 세 번째 책에서 헤로도토스는 계속해서, 이 생물은 아라비아의 향료 나무 숲(spice groves)에서 간혹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헤로도토스는 그 생물의 크기, 색깔, 번식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독이 있는 날아다니는 뱀은 유향 나무(frankincense trees)에서 사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작업자들이 나무의 향료를 수집하려고 할 때, 역겨운 냄새의 연기를 피워 파충류를 멀리 쫒아내야 했다는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왜냐하면 그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확한지 아닌지를 검토한 후에, 기록했던 사람으로 알려진 최초의 역사가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가 날아다니던 파충류가 실제로 있었다고 자세히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존 고어첸(John Goertzen)은 잎 모양의 꼬리(leaf-shaped tail)를 결코 알 수 없었던 이집트인들이 날아다니던 파충류에 꼬리판(tail vanes)이 있었다는 표현에 주목하고, 이것은 그들이 익룡을 직접 목격했음에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Goertzen, J.C., 'Shadows of Rhamphorhynchoid Pterosaurs in Ancient Egypt and Nubia,” Cryptozoology, Vol 13, 1998.)

위의 사진은 최근 폴란드에 세워진 ‘바벨의 용’(Wawel Dragon, 폴란드 전통설화에 등장하는 용) 사진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용은 8세기 초반에 바벨 언덕(Wawel Hill) 아래의 커다란 동굴에 살고 있었다. 그 동굴(오늘날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은 폴란드 크라쿠프(Kraków)의 비스툴라 강(Vistula river) 제방 위쪽에 있다. 바벨 대성당(Wawel Cathedral)은 마을에 있는 900년 된 가톨릭 교회로, 지금도 그 거대한 뼈를(매달은 묶음으로) 자랑스럽게 (그 지역 용의 것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전시하고 있다.(아래 사진).

바벨의 용 이야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설명은 빈첸티 카두우베크(Wincenty Kadlubek)의 12세기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기에는 이 포악한 파충류의 은신처가 폴란드의 수도였던 곳 근처에 어떻게 위치하게 됐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폴란드 민간전승에 따르면, 용은 스쿠바(Skuba)라고 불리는 가난한 구두수선공에 의해서 마침내 죽임을 당했다. 스쿠버(Skuba)는 그 공로로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찰스 굴드(Charles Gould)는 역사가인 게스너(Gesner)의 말을 인용했다. 게스너는 ”1543년 독일 국경의 스티리아(Styria, 슈타이어마르크) 근처에 도마뱀과 같은 발, 박쥐와 같은 날개를 가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용(dragon)과 같은 생물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스칼리제르(Scaliger)의 말도 언급했다. 스칼리제르는 ”뱀(serpent)은 길이가 1.2m 정도, 굵기는 사람의 팔 정도였고, 양 측면으로 연골성 날개가 달려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벨로니우스(Bellonius)는 날개달린 용의 시체를 보았는데, 아라비아에서 이집트로 날아간 것과 같은 종류의 용으로 보였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용은 배가 두꺼웠고, 두 발과 두 날개를 갖고 있었는데, 날개는 박쥐의 것과 같았으며, 뱀의 꼬리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Gould, Charles, Mythical Monsters, W.H. Allen & Co., London, 1886, pp. 136-138.)  

지중해와 근동지방에 대해 광범위하게 연구했던, 1세기의 그리스 역사가였던 스트라본(Strabo)는 지리학에 관한 한 논문을 썼다. 그는 인도에서 ”박쥐와 같은 막으로 된 날개(membranous wings)를 가진 기다란 2규빗(90cm 정도)의 파충류가 있는데, 밤에도 날고, 소변과 땀을 떨어뜨려, 보호 장비가 없는 사람의 피부를 상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Strabo, Geography: Book XV: 'On India,” Chap. 1, No. 37, AD 17, pp. 97-98.) 스트라본의 연구는 메가스테네스(Megasthenes, BC 350~290)의 이전 작업에 일부 기초했을 수도 있다. 메가스테네스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경험했던, 날개가 달린 뱀(ophies)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생물은 낮이 아닌 밤에 날아다니고, 오줌을 배출하는데, 그것을 맞은 사람의 몸에 곪은 상처가 나게 한다는 것이다. (Aelianus, Greek Natural History:On Animals, 3rd century AD, 16.41.)  

중세에 스칸디나비아 인들은 바다에서 수영하는 용들을 기록해 놓고 있었다. 바이킹(Vikings) 족들은 그들의 배 앞면에 용 조각을 배치하여, 바다괴물이 이것을 보고 겁을 먹고 피해가도록 했다.(여기를 클릭).

위의 그림은 1734년에 한스 에게데(Hans Egede)에 의해서 목격됐던 것에 기초한 그림이다. 노르웨이의 선교사로서 그린란드의 사도로 알려져 있는 한스 에게데는 자연세계에 대한 세밀한 기록자로서 알려져 있다. 바다에서 용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범선의 시대(age of sailing ships, AD 1500~1900)로부터 수없이 보고되어 왔다. 용을 죽이는 세인트 조지(St. George)의 전설은 유럽의 예술과 역사를 통하여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했을 것이다. 세인트 조지는 잉글랜드의 수호 성인이다. 실제로 아래 그림의 세인트 조지가 죽이고 있는 '용'은 바리오닉스(Baryonyx) 공룡과 동일하며, 그 공룡의 뼈들은 유럽 전역에서 발견되었다.

영국 문학에서 베오울프(Beowulf)의 서사시는 유명하다. 노르웨이의 영웅적 전사 베오울프는 많은 용들을 죽인다. 마지막에 그는 날개달린 용(winged dragon)을 무찌르는 과정에서 죽는다. 용은 심지어 중세시대에 출판됐던, 인정받는 동물학 논문에도 기술되어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위대한 박물학자이며 의사였던 콘라트 게스너(Konrad Gesner, AD 1516~1565)는 '동물지(Historiae Animalium)'라는 제목의 4권짜리 백과사전을 출간했다. 그는 용(dragons)을 ”매우 희귀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생물(very rare but still living creatures)”이라고 기술했다.(p.224). 한 이야기에 의하면, 10세기의 아일랜드 인은, 뒤쪽으로 뻗어있는 꼬리 위에 쇠(iron)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발톱가진 괴수를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 생물은 말과 비슷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두꺼운 다리와 강한 발톱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살아남았던 스테고사우루스(Stegosaurus) 공룡일 수 있었을까? (Ham, K., Great Dinosaur Mystery Solved, 1999, p.33).

이탈리아의 박물학자였던 알드로반두스(Aldrovandus, Ulisse Aldrovandi, AD 1522~1605)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현대 자연사의 아버지로 간주된다. 그는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했고, 수천의 동식물들을 수집했으며, 최초의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의 인상적인 수집품들은 그가 장학생으로 다니던 볼로냐 대학(Bologna University,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에 지금도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신뢰성은 그가 용에 관해 개인적으로 보고했던 한 사건에 대해 신뢰성을 부여한다. 그 용은 1572년 5월 13일 처음으로 목격되었고, 뱀처럼 쉿쉿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생물은 페트로니우스(Master Petronius)의 작은 동상에 숨어있었다. 오후 5시, 볼로냐의 도시 외곽에 있는 농장에서 일하는 바프티스타(Baptista)라는 목동에 의해서 그 용은 공공 도로에서 살해되어 포획됐다. 바프티스타는 그의 황소 수레를 따라 집으로 가고 있었다. 소가 갑자기 멈추었고, 그는 소를 발로 차며 빨리 갈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소는 무릎을 꿇고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그때 목동은 쉿쉿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고, 이상한 작은 용이 그의 앞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갖고 있던 막대기로 머리를 힘껏 때렸고, 그것을 죽였다는 것이다. (Aldrovandus, Ulysses, The Natural History of Serpents and Dragons, 1640, p.402.) 불완전하게 발달된 발톱과 치아에 기초하여, 알드로반두스는 그 용을 새끼로 추정했다. 그 시체는 단지 60cm 정도였고, 단지 두 발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뱀처럼 미끄러짐과 발을 사용하여 이동했을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오늘날에도 두 발만을 가진 작은 도마뱀이 있다.(아래 사진)

알드로반두스는 그 생물의 표본으로 만들었고, 한동안 그 용을 전시했다. 또한 그는 그 생물에 대한 수채화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아래 그림). 아마도 이 두 다리를 가진 뱀 같은 용은 중세 유럽에서 얼마 동안 알려졌을 것이다.

프랑스의 토 궁전(Palais du Tau) 인근에 있는 랭스 대성당(Reims Cathedral)에는 ‘하와와 뱀(Eve and the Serpent)’이라는 13세기의 조각상이 있는데, 동일하게 두 발 가진 용이 조각되어 있다.   

멕시코에서 발견된 고대 아캄바로(Acambaro)의 점토상과(아래 좌측), 중국의 예술품에도(아래 우측) 두 발 가진 용이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세 시대에 과학적인 사고를 가졌던 작가들은 '베스티아리(bestiaries)'라 불리는 책을 제작했는데, 교훈적인 설명과 매혹적인 그림이 있는, 알려진(때때로 상상의) 동물들을 편찬한 책이다. 그러한 책 중 하나가 1500년대 초에 쓰여진 ‘애버딘 베스티아리(Aberdeen Bestiary)’이다. 이 책은 오늘날 헨리 8세 도서관(library of Henry VIII)에 보존되어 있다. 도롱뇽과 다양한 종류의 뱀들, 그리고 용(dragon)에 대한 묘사가 들어있다 : ”용(dragon)은 모든 다른 뱀들이나 지구상에 있는 모든 다른 생물보다 크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 사람은 ‘드라콘(dracon)’이라고 불렀고, 이것에서부터 라틴어 이름 ‘드라코(draco)’가 유래되었다. 용은 동굴에서 밖으로 끌어내지면 공기로 인해 사나워지게 만든다고 말해진다. 용에는 볏, 작은 입, 좁은 숨구멍이 있어서, 그것을 통해 숨을 쉬고, 혀를 내밀곤 한다. 그것의 힘은 이빨에 있지 않고, 꼬리에 있으며, 물어 죽이기보다 한 번의 타격으로 죽인다. 그것은 독이 없다. 용은 다른 생물을 죽이기 위해 독이 필요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 꼬리로 감아버리면, 어떠한 것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크기의 코끼리조차도 용에게는 안전하지 못하다. 코끼리가 자주 지나가는 길을 숨어 있다가, 용이 꼬리로 코끼리를 감아서 질식시켜 죽인다. 용은 일 년 내내 뜨거운 에티오피아와 인도에서 태어났다.”

3세기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필로스트라투스(Flavious Philostratus)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인도 전역에는 거대한 크기의 용(dragons)들이 있다. 늪지는 용들로 가득하고, 산에도 있다. 용이 없는 산등성이는 단 하나도 없다. 늪지대에 있는 종류는 그들의 서식지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것들로, 길이가 30규빗(약 13m)이나 되고, 그들의 머리에는 서 있는 볏이 없다.” (Philostratus, Flavius, The Life of Apollonius of Tyanna, 170 AD.) Pliny the Elder also referenced large dragons in India in his Natural History.

16세기 이탈리아 탐험가인 피가페타(Antonio Pigafetta, AD 1491~1534)는 콩고(Congo) 왕국에 대한 기록에서, 벰바(Bemba) 주를 기술하면서, 암바스 강에서 해안가 위쪽으로, 남쪽으로는 코안자 강까지라고 쓰고 있었다. 그리고 뱀(serpents)에 대해 기술하고 있었다. ”숫양(rams) 만큼이나 크고, 용처럼 날개를 가졌고, 긴 꼬리, 정렬된 이빨들, 날고기를 먹는 어떤 생물이 있었다. 그 색깔은 푸른색과 녹색이었고, 피부는 비늘처럼 채색되어 있었고, 단지 두 발만 가지고 있었고, 더 이상은 없었다. 이교도 흑인들은 그것을 신으로 숭배하기도 했고, 오늘날에도 그것을 숭배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 생물은 매우 희귀하기 때문에, 호기심 많은 추장은 그 생물을 보존하려고 해서, 사람들은 그들이 수확한 것의 일부와 선물을 드리고, 그것을 숭배하느라 고통을 받는다.” (Pigafetta, Filippo, The Harleian Collections of Travels, vol. ii, 1745, p.457.)

8세기에 기독교의 수사로 초기 시리아에 거주했던, 다마스쿠스의 요한(St. John of Damascus)은 용에 대한 냉정한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용(dragons)은 단지 파충류이며, 마법의 힘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2세기에 로마제국의 역사를 기록했던, 로마의 역사가 디오(Dio)의 말을 인용하고 있었다. 로마의 집정관이던 레굴루스(Regulus)는 카르타고(Carthage)와 싸우고 있었다. 그때 한 용이 갑자기 나타났고, 로마 군대의 진영 뒤에 자리 잡았다. 로마 군인들이 그것을 죽였고, 가죽을 벗겨서, 로마 원로원으로 보냈다. 원로원의 지시로 그 크기가 측정되었는데, 무려 120피트(36m) 크기였다고 디오는 주장했다.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디오 장군이나 경건했던 세인트 요한이 로마 원로원이 포함되는 한 작위적인 이야기를 꾸며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앵글로색슨 연대기(Anglo Saxon Chronicle)은 793년에 일어났던 끔찍한 일을 기록해놓고 있었다.(그 당시에 날아다니던 용의 흥분된 행동은 나쁜 일이 일어날 징조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올해는 노섬브리아인(Northumbrians)의 땅에서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가며 걱정하게 만드는 두려운 경고가 있었다. 하늘에서 회오리바람과 함께 사나운 용들이 무수한 빛의 판(sheets of light)들처럼 창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것이 목격되었다.” 유럽에서 날아다니는 용(flying dragons, 익룡으로 추정되는 생물)을 목격했다는 신뢰할만한 보고는 1649년의 기록에도 등장한다. (Thorpe, B. Ed., The Anglo Saxon Chronicle, 1861, p.48.)

이 주목할 만한 책에는 1405년에 출현했던 용에 대해서도 기록해 놓았다 : ”최근 서드베리(Sudbury) 근처의 부레스(Bures) 마을 가까이에서 많은 피해를 입힌 한 용이 나타났다. 이 용은 거대한 몸체, 볏이 있는 머리, 톱 같은 이빨들, 엄청난 길이의 꼬리를 갖고 있었다. 양떼를 치던 목동을 살해했고, 여러 양들을 먹어버렸다... 그 용을 죽이기 위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소집되었다. 그러나 용은 사람들이 화살을 쏘며 공격하는 것을 보고서는, 늪지 또는 호수로 도망쳤고, 거기에서 긴 갈대숲 가운데 숨어버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p. 60).

웨일스(Welsh)는 날아다니는 뱀(flying serpents)에 대한 많은 역사적 기록을 갖고 있다. 웨일스의 글러모건(Glamorgan)에 있는 펠린 성(Penllyn Castle) 주변 숲은 날개달린 뱀이 자주 출몰하는 곳으로 명성이 나있었다. 이 용들은 노인과 젊은 사람 모두에게 공포였다. 몇 년 전에 죽은 펠린의 나이 많은 거주자는 그의 소년 시절에 날개달린 뱀들은 매우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그 생물은 휴식할 때, 몸을 꽈리를 틀고 있는데, 마치 ”모든 종류의 보석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는데, 그들 중 어떤 것들은 무지개 빛깔을 내는 반짝이는 볏(crests)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방해를 받았을 때, 그 생물들은 자신들이 숨는 장소로 ”눈부시게 반짝거리며” 빠르게 날아갔다. 화가 났을 때는, ”공작의 꼬리 깃털처럼, 밝고 눈(eyes) 무늬가 있는 날개를 활짝 펴고,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그는 ”아이들을 겁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와 삼촌은 그 생물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노인은 날개달린 뱀들의 멸종이 농장과 그들의 은신처에서 위협적인 생물이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Trevelyan, Marie, 1909, Folk-Lore and Folk Stories of Wales, p. 168-169.)

.웨일스 남동부의 글러모건에 있는 펠린 성과 웨일스의 국기.

우리는 여전히 중세시대의 용에 관한 몇 가지 소책자들을 갖고 있다. 아래에 있는 ‘용 이야기(The Dragon Story, 아래 그림)’와 '에식스에서의 기괴한 뉴스 또는 날개달린 뱀(Strange News out of Essex or The Winged Serpent)'이라는 제목의 팜플렛 크기의 소책자이다.

후자의 소책자는 원래 1669년경에 인쇄되었는데, 영국의 에식스(Essex) 주의 핸햄(Henham) 근처에서 날개달린 뱀 같은 생물(a winged, snake-like creature)의 공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핸햄은 오늘날 125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로, 에식스 주의 북서쪽에 있으며, 코카트리스(cocatrice)라 불렸던 비행 파충류가 같은 시기에 도살되었던 곳인, 역사적인 마을 새프런 왈든(Saffron Walden)에서 약 7마일 정도 남쪽에 위치해 있다. 아래의 팜플렛은 1669년 영국 에식스에서 배포됐던 것으로, 커다란 파충류가 목격된 것을 다루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고, 지역 주민들이 그 짐승에 대해 쏘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소책자의 1885년 복사판에는(아래 그림) 같은 시기에 경험 했던 두 차례 용과의 만남 사건이 포함되어 있다. 그림에 의하면, 많은 마을 사람들이 먼 언덕꼭대기나 골짜기에 살았던 괴물 뱀(monstrous serpent)과 실제로 싸웠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독일의 수도사였던 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hanasius Kircher)는 귀족이며 장관이던 크리스토퍼 스코럼(Christopher Schorerum)이 어떻게 모든 것을 요약한 진정한 역사를 기록했는지를 쓰고 있었다. 그 기록을 통해 그가 경험했던 사실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했던 경험도 기록해두었다 : ”1619년의 한 따뜻한 밤에 나는 평온한 하늘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때 나는 필라투스 산(Mt. Pilatus) 앞쪽으로 날아가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빛나는 용을 보았다. 그 용은 호수 반대편에서 나와 플루(Flue, Hogarth-near Lucerne)라는 이름의 동굴이 있는 쪽으로 출렁거리며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긴 꼬리, 긴 목, 파충류의 머리, 사나운 갈라진 턱을 가진 생물로서, 필라투스 산에 사는 거대한 용(Mount Pilatus Dragon)이었다. 그것이 날아갈 때,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는 것처럼, 불빛이 흩어지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내가 본 것이 유성(meteor)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부지런히 살펴본 후에, 그것이 전신의 사지를 움직여 날아가는 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경받았던 성직자의 글로부터, 용은 진실로 자연 속에 존재했던 생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었던 것이다. (Kircher, Athanasius, Mundus Subterraneus, 1664, tr. by Hogarth, 'Dragons,” 1979, pp. 179-180.) (아래 그림 ‘The Dragon of Mount Pilatus’ 참조).

이러한 생물발광(bioluminescent)의 야행성 비행 생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 알려져 있다.(See the Ropen page.) 이것은 전 세계의 고대 문명에서 전승되어 오는 ”불을 뿜는 용”의 근거가 됐던 것은 아닐까?

존 해리스(John Harris 1666~1719)는 최초의 백과사전(encyclopedia)을 편집했던 영국의 과학자였다. 그는 용이 포획됐었다는 설명을 한 차례 하고 있었다 : ”한 고대 작가는 에티오피아의 국경에서 6m 길이의 용(dragon)을 사로잡았고, 그것을 프톨레미 필라델포스(Ptolemy Philadelphus) 왕에게 가져갔다는 것이다. 프톨레미는 이와 같은 위험한 짐승을 구해오는 사람에게 풍부하게 보상을 해주었다.” (Harris, John, Collection of Voyages, vol. i, London, 1764, p. 474.) 그러나 이것도 성 암브로시우스(St. Ambrose)의 설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는 ”갠지스(Ganges) 강 근처에서 길이가 약 70규빗(약 30m)의 용이 목격됐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Ambrose, De Moribus Brachmanorum, 1668.) 이 정도 크기의 용은 알렉산더와 그의 군대가 동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 생물이 내는 끔찍한 쉿쉿 소리는 마케도니아 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용맹한 마케도니아 사람들도 무시무시한 광경에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Aelian, De Animal, lib. XV, cap. 21.)

서구 유럽의 개척자들이 전 세계로 나가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용(dragon)에 관한 보고가 계속해서 유럽으로 들어왔다. 지도제작자(cartographers)들은 그들의 지도에 탐사되지 않은 미개척 지역을 ”여기는 용이 있음(here be dragons!)”이라는 단어로 표시하는 것이 표준 관행이 되었다.(아래 그림). 지도에 용이 있음으로 주의하라는 표시는, 용이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동물이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지만 외진 지역까지 문명이 들어가면서, 생태계의 변화와 포식동물들에 대한 사냥은 남아있던 용과 같은 생물에도 피해를 입혔다.

후기 역사가인 로돌프 카사미쿠엘라(Rodolfo Casamiquela)가 제작했던 (남아메리카 남부 지역인) 파타고니아 원주민(Patagonian natives, 테우엘체(Tehuelche) 족)의 언어 사전에는, 16세기의 지도가 게재되어 있다(아래 그림). 그 지도에는 Terra Magellanica(마젤란의 땅, 오늘날의 아르헨티나 지역)의 지형을 그려놓고 있었는데, 냔듀(ñandú, 아메리카의 타조)의 모습과 함께, 지도 위쪽으로 매우 공룡처럼 보이는 생물이 그려져 있다. (Casamiquela, R., Diccionario Tehuelche, Va. Adelina : Patagonia Sur Libros, 2008)

작가 찰스 굴드(Charles Gould)는 초자연적인 개념을 제거하고, 용을 진지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용은 거대한 크기의 뱀에 지나지 않는다. 용들은 이전 인도에서 세 종류로 구분했다. 즉. 산에 사는 것과, 동굴이나 평지에서 사는 것, 그리고 늪지나 습지에서 사는 것들이다. 첫 번째가 가장 큰 것이고, 금처럼 반짝거리며 눈부신 비늘로 덮여 있다. 이들은 아래턱에 일종의 수염(beard)이 매달려있는 것도 있으며, 그들의 눈썹은 크고, 아주 정확하게 아치로 되어있다. 그들의 모습은 상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무섭고, 그들의 울음소리는 크고 소름이 끼친다... 밝은 노란색의 볏(crests)이 있고, 머리에는 불타는 석탄 색깔의 돌출부가 있다. 평탄한 지역에 사는 용은 첫 번째 용과 다르며, 은색의 비늘(scales of a silver colour)을 가지고 있으며, 자주 강에서 발견되는데, 강에는 첫 번째 종류의 용은 결코 오지 않는다. 늪지나 습지에 사는 용은 검은 색에 가까운 어두운 색을 갖고 있고, 매우 느리게 움직이며, 볏이 없고, 머리를 들어 올린다.” (Gould, Charles, Mythical Monsters, W.H. Allen & Co., London, 1886, p. 140.)

17세기 프랑스의 성서학자였던 사무엘 보차트(Samuel Bochart, 1599~1667)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동물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날개달린 뱀(winged serpents)들이 구약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있었다고 쓰고 있었다 : ”여행 중에 여러 분의 주변을 돌며 덤벼들려고 하는 날개달린 뱀을 만났을 때, 숨어야 된다. 왜냐하면 그 생물에 대한 명성 때문이다. 날아다니는 뱀이 나타났을 때, 누워서 뱀의 행동에 대해 경고를 보내고 자신을 지키라. 그 생물은 승리로 간주하고 조용히 가버릴 것이다.... 독이 있으며, 콧김을 내뿜는, 야만적이고, 불타는 것보다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 날개달린 날아다니는 뱀이 있다.” (Bochart, Samuel, Hierozoicon: sive De animalibus S. Scripturae, Vol. 2, 1794.)


세인트 조지가 죽였다는 용은 공룡인가?

중세시대의 예술에서 세인트 조지(St. George, 성 게오르기우스)가 무시무시한 용을 죽였다는(slaying of a ferocious dragon) 이야기는 매우 공통적인 주제였다. (세인트 조지는 4세기 때에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로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로 인해 체포, 고문, 참수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인물로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서는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다양한 유럽의 예술가들은 지역의 전승과 지식에 따라 용을 다르게 해석했다. 중세시대의 한 멋진 묘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게네랄리타트 궁전(Palau de La Generalitat in Barcelona Spain)에 있는 것이다. 이 궁전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Chapel of St. George)에는 성 조지가 용을 죽이는 장면을 묘사해 놓은, 제단 앞을 덮는 한 제대포(altar cloth)가 있다. 여기의 그림은 노토사우루스(Nothosaurus, semi-aquatic reptile) 공룡과 너무도 똑같다. 정확한 몸체 크기 비율, 악어 형태의 몸, 턱 앞으로 나와 있는 길고 굽은 이빨, 등에 미세하게 돌출되어 구조 등을 주의 깊게 보라.

용을 죽이고 있는 세인트 조지에 대한 또 다른 그림은 ‘Latin Book of Hours’(AD 1450)에서 발견된다. 이 책은 Master of Jean Chevrot에 의해서 그려졌는데, 현재 모건 도서관 & 박물관(Morgan Library & Museum)에 보관되어 있다. 조지의 갑옷, 하늘의 새, 용의 생식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부 사항을 상세히 묘사해 놓은 화가의 주의력을 확인해 보라(아래 그림 맨 좌측).

피츠윌리엄 박물관(Fitzwilliam Museum)에는 Latin Book of Hours(AD 1490)으로부터 세인트 조지가 용을 죽이는 또 다른 그림이 있다. 플랑드르 파(Flemish School)의 화려한 이 작품은 현저하게 공룡을 닮은 용을 묘사해 놓고 있다.(좌측 2번째)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Huth Hours’(AD 1480) 책에서도 용을 죽이는 세인트 조지의 그림을 볼 수 있다.(Image from the British Library). 괴물은 이상하게도 커다란 복부(아마도 임신)를 갖고 있으며, 물갈퀴의 발(web-footed)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파충류 귀와 공룡의 목을 갖고 있음을 주의 깊게 보라.(좌측 3번째).

마지막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에는 세인트 조지가 용을 죽이는 장면에 대한 1500년대 초의 그림이 있다. 용의 머리는 바리오닉스(baryonyx) 공룡의 주둥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납작하다.(맨 우측)

.용의 부분만을 확대한 그림. 그려진 용들은 공룡과 너무도 유사하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에는 이탈리아의 화가 카를로 크리벨리(Carlo Crivelli)가 그렸던, 세인트 조지가 용을 죽이는 그림이 있다.(위의 그림). 포플러 나무 판 위에 금과 템페라(tempera) 화의 이 그림은 아드리아 해 포르토 산 조르조(Porto San Giorgio)의 한 교구 성당에 있던 것이었다. 크리벨리는 날개달린 용을 그려 놓았는데, 그 용은 4개의 전방향 발가락, 다섯 번째 후방향 발가락, 늑골을 가진 날개, 머리 볏, 이빨들을 갖고 있었다. 뱀파이어 익룡(vampire pterosaur)으로 알려져 있는, 제홀옵테루스(Jeholopterus)와 같은 어떤 익룡은 이 그림의 용과 매우 유사한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실제로 제홀옵테루스는 거대한 공룡들 위로 날아가, 그 피부에 달라붙은 후, 피를 빨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세인트 조지에 관한 그림에 등장하는 가장 위협적인 용은 덴마크 질랜드에 있는 Højby Church에서 발견된 작품이다.(위의 그림). 이곳은 훌륭한 15세기 고딕 양식의 벽화들을 갖고 있다. 인상적인 용의 프레스코는 기사의 몸을 삼켜버릴 수도 있는, 진정 무시무시한 파충류를 보여주고 있다. 전형적인 뿔과 귀, 머리 볏, 디모르포돈(Dimorphodon) 같은 강한 다리, 두드러진 꼬리 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중세시대의 미술에서 흔히 사용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성 미가엘(St. Michael, 요한계시록 12:7-9에서 인용)이 용(dragon)을 죽이는 것이다. 위의 그림은 1400년대 말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가였던 안토니오 델 폴라이우올로(Antonio del Pollaiuolo)의 그림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용은 물갈퀴가 달린 발, 네 개의 발가락, 박쥐와 같은 날개, 뱀 같은 긴 목, 머리카락 등 여러 면에서 익룡의 특징을 보여준다.

위의 그림은 베니스(Venice)에 있는 산마르코 성당(Church of St. Marco)에 있는 그림이다. 날개달린 미가엘이 창으로 용을 찌르고 있다.

이 그림은 와이번 용(wyvern dragon)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탄을 날아다니는 미가엘과 천사들이 공격하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AD 1448년경에 만들어진 플랑드르파 필사본(Flemish manuscript)으로 일종의 백과사전과 같은 ‘Liber Floridus’에 들어있다. 여기에는 거대한 막과 같은 날개를 가진, 날개 달린 파충류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미가엘이 용을 죽이고 있는 또 하나의 훌륭하게 보존된 프레스코(fresco) 벽화 그림으로, 13세기 이탈리아 베니스의 작고 아름다운 산잔데골라(San Zan Degolà) 성당의 벽에 그려져 있다. 용의 몸체 부분들의 비율과, 특히 작은 앞다리는 콤프소그나투스(Compsognathus) 같은 작은 수각류 공룡(theropod dinosaurs)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중세시대의 그림에서, 하와를 유혹했던 뱀/사탄은 때때로 날개 달린 뱀으로서 묘사되고 있다. 날개 달린 용 같은 모양의 위의 그림은 AD 1324년 ‘유혹’(The Temptation in Speculum Humanæ Salvationis, Bibliothèque Nationale in Paris)이라는 그림이다. 이것은 유명한 주석가 매튜 헨리(Matthew Henry, his Commentary Upon the Whole Bible, 1708-10)가 갖게 되었던 사고의 틀로 이어졌다 : ”아마도 그것은 천상세계의 일종의 메신저로서 높은 곳에서부터 오는 듯한, 스랍(seraphim, 세라핌) 중의 하나였던, 이사야 14:29절의 날아다니는 불뱀(fiery serpents)과 같은, 날아다니는 뱀/사탄(flying serpent)이었다.” 많은 위험한 유혹이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화려한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한 꺼풀 뒤에는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으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다. (고후 11:14)  

위의 이 그림은 그리스의 성 니콜라스 아나파우사스 수도원(Saint Nicholas Anapafsa Monastery)에 있는 프레스코(fresco) 벽화이다. 이 수도원은 그리스의 메테오라(Meteora,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있다’ 라는 뜻)에 있는 절벽 꼭대기에 세워진 수도원으로 1500년대에 지어졌다. 우리에게 친숙한 코끼리, 표범, 말, 토끼, 소, 독수리, 원숭이, 새 등과 같은 많은 동물들 사이에 익룡(pterosaur)과 공룡(dinosaur) 같은 생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11세기에 지어진 이탈리아 플로렌스(Florence)의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San Miniato al Monte)의 천장에 그려져 있는 날아다니는 뱀(flying serpent)에 대한 흥미로운 그림이다. 부리, 발에 네 발톱, 머리 볏, 감겨진 꼬리, 박쥐 같은 날개를 주목하여 보라.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익룡(pterosaurs)의 특징이다. 꼬리는 람포링쿠스(Rhamphorhynchus)처럼 보인다. 파충류와 같은 갈라진 혀도 주목하여 보라. 이 그림들은 상세하게 그려진 개, 독수리, 사자, 비둘기 옆에 나란히 그려져 있다.


중세시대 프랑스의 성들에 새겨진, 공룡 모습의 용들

중세시대(Middle Ages) 말과 1500년대 초에 지어진 아름다운 프랑스의 성(French chateaus)들에는 벽과, 천장, 가구에 극적인 모습을 가진 용(dragon)의 형상을 새겨 놓았다. 이들 성은 샹보르 성(Château de Chambord),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 아제르리도 성(Château Azay-le-Rideau) 등이다. ”도롱뇽(salamanders)”으로 불려지는 그 생물은, 불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설 속 불도마뱀에 기초한 것으로, 프랑수아 1세(Francis I)가 통치하던 시기에 건축된 건축물에 특별히 유행하던 장식물이었다.

.프랑스의 성에 장식되어 있는 공룡과 거의 동일한 모습의 생물

자주 그들은 성경 속의 리워야단(Leviathan)과 같은, 불을 뿜는 용으로서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오늘날 그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양서류인 도롱뇽과는 너무도 다르다. 그들은 긴 목, 비늘, 눈에 띄는 이빨, 강력한 갈고리 발톱, 곧게 선 자세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파충류인 용/공룡에 훨씬 더 가깝다. 이러한 용들은 이 시기의 유럽 예술품에서는 매우 흔하게 등장한다. 

이 용들 사이에 유사성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프랑스의 성들에 새겨져 있는 용들은 테코돈토사우루스(Thecodontosaurus), 플라테오사우루스(Plateosaurus), 바리오닉스(Baryonyx)와 같은 공룡들과 너무도 흡사하다. (바리오닉스 공룡 화석은 유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 당시의 여러 왕실 가구에도 공룡과 유사한 생물이 등장한다. 아래에 있는 프랑스의 고풍스런 도자기(French pot)에 그려져 있는 생물은 매우 친숙해 보이지 않는가?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에 있는 벽걸이 융단(tapestry, 태피스트리)에는 머리에 멋진 뿔들을 가진 용(그림 오른 쪽에는 아기 용)이 묘사되어 있다. 이 용은 공룡 드라코렉스(Dracorex hogwartsia)의 머리에 있는 뿔들을 연상시킨다. [Photo credit: Don Patton.]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외벽에 있는 공룡과 유사한 생물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Church of St. Louis of the French)의 외벽에도 비슷한 작품이 있다. 이 성당은 로마에서 프랑스의 국교회로 예배가 드려지던 곳으로, 1580년대에 완성되었다. 이 성당에 조각되어 있는 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긴 목, 세 발가락의 발들, 긴 꼬리, 목 주름(frill), 비늘, 특별히 공룡 모양의 다리를 갖고 있다. 다리들은 도롱뇽이나 도마뱀 다리처럼 땅과 평행하게 옆으로 뻗어있지 않고, 똑바로 내려가는 형태이다. 교회 외벽에 오랜 기간 노출되어 있었지만, 상세한 모습은 거의 5세기 동안 현저하게 잘 보존되었다!

 

베드로 대성당에 장식되어 있는 용들은 익룡과 너무도 유사하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에는 날개를 가진 용(winged dragon)들이 도처에 장식되어 있다. 이 생물은 익룡(pterosaur)의 모습과 거의 동일하다. 머리 볏, 3개의 갈고리 발톱이 있는 박쥐 모양의 날개, 4개의 발톱 있는 발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1500년대 후반에 교황 그레고리오 13세(Pope Gregory XIII)에 의해서, 이 날개달린 뱀 또는 용이 그의 상징 또는 문장으로 채택된 이후에, 이 용은 대중화되었다.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의 도처에서 발견되는 익룡을 닮은 용들.


중세시대의 유럽 교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공룡을 닮은 장식들

또한 중세시대의 유럽 교회에서 성가대의 난간(railings)이나 미제리코르디아(misericords, 서있는 동안 기댈 수 있는 성직자석 뒤의 돌출부)에는 종종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공통된 주제는 용(사탄을 상징)과 싸우는 사자(그리스도를 상징)의 묘사이다. 위 왼쪽의 것은 용각류 공룡과 같은 생물과 싸우고 있는 사자의 조각으로 성 레미기우스 교회(St. Remigius 'Church)에 있는 것이다. 그 오른쪽의 그림은 15세기에 새겨진 칼라일 대성당(Carlisle Cathedral)의 미제리코르디아에 있는 조각이다. 익룡처럼 보이는 생물이 조각되어 있다.

중세에 민간에서 전승되어온, 두 발 달린 날아다니는 용(two-legged flying dragon)인 와이번(wyvern)은 18세기에도 계속해서 건물의 문장, 꼭대기, 장식용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인 상징물이었다. 이들 촛대(candlesticks)는 영국 골동품 경매에 나왔던 것으로 지금은 Genesis Park에 수집되어 있다.(위의 사진). 작은 박쥐 모양의 날개, 긴 목, 부리의 이빨, 상체의 털, 긴 꼬리, 꼬리 끝의 삽(spade) 모양 등을 주목해 보라. 이것은 람포린코이드(Rhamphorhynchoid) 익룡과 매우 흡사하며, 올바른 발가락 수도 보여준다.

고대 로마시대 꽃병의 동물은 납작 머리 공룡?

납작한 머리의 공룡(flat headed dinosaurs)은 매우 흔했다. 그들은 매우 큰 다양성을 갖고 있고, 다른 그룹에 속하는 것들도 있다. 위의 동물 모양의 꽃병(vase)은 고대 로마시대에, 아마도 미케네에서 만들어진, 적어도 2000년 이상 오래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미케네 문명(Mycenean)의 소멸은 주전 13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화병은 동물 모양을 갖고 있지만, 어떤 동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자주 신화적 동물을 새겨놓은 것이라고 말해져 왔다.

아래는 미국 고고학 연구소의 1998년 사진이다. 우리는 즉시로 이 생물은 납작 머리 공룡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현대의 진화론적 과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시의 예술가가 납작 머리 공룡을 알 수가 없었지 않은가? 따라서 고대 로마시대의 사람들이 상상의 동물을 조각해놓았는데, 2000년 후에 공룡 화석들이 발견되고, 정말로 우연히 납작한 머리를 가진 공룡과 일치했다고 설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공룡과 사람이 과거에 공존했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이 공룡과 사람이 공존했다면,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있었던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예술품들에 그들 공룡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평평한 머리를 갖고 있는 공룡 화석들은 매우 흔하다. 유물의 주요 기능이 꽃병이었기 때문에, 예술가가 정확한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납작한 머리 형태, 배와 꼬리의 곡선 형태, 앞다리 보다 굵은 뒷다리 등은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우리는 고대의 예술가가 이 작은 꽃병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동물이 무엇일지,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 여러 유형의 하드로사우루스(hydrosaurs) 공룡들을 골라 보았다. 당신은 어떤 공룡을 묘사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포르투갈의 커피포트에 새겨진 동물은 브라키오사우루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공룡의 모습은 대부분은 불완전한 뼈들로부터 복원된 것이다. 이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늘날의 예술가는 실제로 공룡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움직였을 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19세기 초 포르투갈의 한 '커피 포트(coffee pot)'의 주둥이는 분명하게 용각류(sauropod)의 머리 모양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우리는 적절한 고찰을 거친 후에 이것이 브라키오사우루스(brachiosaurus)를 묘사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왜냐하면 브라키오사우루스는 긴 목과 높은 돔 모양의 머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커피포트 머리 모양과 브라키오사우루스의 골격과 실제 모습을 비교하였다.

다른 공룡으로는 카마라사우루스(camarasaurus)가 될 수도 있는데, 이 공룡은 브라키오사우루스 보다 약간 평평한 두개골을 갖고 있다. 여하튼 그것은 용각류 공룡의 머리이다.

‘공룡(dinosaur)’이라는 단어는 1841년에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이 유물은 1825~18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용각류는 이 은제 커피포트가 만들어진 후, 50~75년이 될 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초기에 용각류 공룡의 복원은 미숙했다. 확실히 이 정교한 모습의 조각은 용각류 공룡의 복원도를 보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용각류 그림들은 브라키오사우루스의 피부는 뼈들을 가로지르며 촘촘히 뻗어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 은제 커피포트는 용각류의 피부 모양도 묘사해놓고 있다. 분명 이것을 만든 예술가는 이 생물과 친숙했으며, 그의 지식은 발견된 화석으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니었다. 용각류 화석이 발견되고 100여년이 지난 지금보다도 이 공룡에 대한 묘사는 비교될 수 없이 우수하다.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에 따르면, 포르투갈에서는 3개의 공룡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그들은 브라키오사우루스, 카마라사우루스, 다켄트루루스(dacentrurus) 이다.


일각수가 새겨져 있는 트라키아인의 투구

이 트라키아인의 투구(Thracian helmet, BC 3,200~500) 끝에는 뿔이 하나인 일각수(unicorn, 유니콘) 동물이 새겨져 있었다. 일각수는 발견된 적이 없는, 우화에서나 등장하는 전설상의 동물로서 우리들에게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성경을 공격하는 데에 이것을 사용하여 왔다. 즉 이것은 성경의 저자가 널리 전승되던 신화들을 개작하여 성경을 기록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유니콘(일각수)은 이마에 긴 외뿔을 가진 백마와 같은 신화 속의 동물이 아니라, 친타오사우루스(Tsintaosaurus) 같은 외뿔 공룡일 가능성이 있다.

”들소(unicorn)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unicorn)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욥 39:9~10. 개역개정 성경에는 들소로 번역되어 있다). 이외에도 ‘unicorn’이 등장하는 구절은 민 24:8, 민 23:22, 신 33:17, 시 22:21, 시 29:6, 시 92:10절 등이다. 일각수 공룡(unicorn dinosaur)으로 불려지는 오리주둥이 공룡인 친타오사우루스는 긴 외뿔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페르시아, 오스만 제국, 이집트에서 공룡을 닮은 생물들

이것은 페르시아(이란)의 청동 단지(bronze Persian pot, AD 9~10세기 추정)로 Genesis Park에 수집되어 있는 것이다. 이 용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둥이가, 긴 목의 공룡 머리(비늘 모양과 함께)를 닮았다는 것이다. 페르시아 신화와 신앙에 있어서 용은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이 용기의 제례적 분위기는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로아스터교 경전에는 용(dragon)과 같은 악한 생물들이 다수 언급되어 있다. 그것들 중 잘 알려진 용은 아지 다하카(Azi Dahaka)이다. 머리가 세 개인 이 페르시아의 용은 세상 끝 날에 모든 사람과 동물의 3분의 1을 삼켜버린다고 말해진다.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1299~1922, 터키)은 6세기 이상을 통치했지만, 그들의 예술품에 공룡과 유사한 생물에 대한 묘사는 그리 많지 않다(중세 유럽의 예술에 비해). 아마도 당시에 용은 동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는 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그림은 ”콘스탄티노플의 1720년 축제 기간 동안 무역상의 행렬”이라는 제목을 가진 터키의 그림으로, 이스탄불의 톱카프 궁전 박물관(Topkapi Museum)에 보관되어 있는 ‘Surname-i Hümayun’라 불렸던 성씨(surname, or historical album)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은 오스만 제국의 궁정 화가였던 Abdulcelil Levni (Abdulcelil Čelebi라고도 함, 1732년 사망)의 감독 하에 그려지고 기록된 삽화이다. 이 그림에는 길드 조합원(guildsmen)과 광대들, 그리고 머리가 3개인 생물이 운반되고 있는 것이 그려져 있다. 이 생물은 새끼 용각류 공룡(sauropod dinosaur)과 너무도 유사하다. 여러 개의 머리를 갖고 있는, 다두(polycephaly)로 알려진 이러한 기형은 동물에서 간혹 볼 수 있는 현상이다.(사례들은 여기를 클릭).

BC 1750년경 이집트인의 ‘액막이 막대기(apotropaic wand) 또는 마법의 칼(magical knife)’에는 공룡과 유사한 긴 목을 가진 생물이(그림 가운데 부근) 새겨져 있다. 이것은 하마의 엄니 상아(hippo tusk ivory)로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고대 예술품에서 이러한 긴 목을 가졌던 생물들의 잦은 등장은 고생물학자들을 자극했다.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것을 믿지 않는 고고학자들에게, 이 특별한 생물은 그 이름을 지어내도록 만들었다. 그 생물은 ‘세르포파드(serpopard)'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뱀(serpent)과 표범(leopard)를 합성한 이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사람과 공룡이 함께 창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목이 긴 생물은 고대 예술가가 용각류 공룡을 묘사하려했던 의도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더욱 명확하게 '세르포파드'가 새겨져 있는 이집트의 팔레트(palette)인 'Four Dogs Palette'를(아래 사진) 주의 깊게 살펴보라.

 

기타 유럽의 용들

프랑스의 나무로 된 용 조각은 익룡의 놀라운 특징을 보여준다.(아래 그림). 두 날개를 갖고 있는데, 깃털이 아니라 늑골에 연결된 막으로 되어있다. 눈 위와 뒤로는 작은 머리 볏이 있고, 강한 뒷다리, 독특한 꼬리 판(tail vane), 날개에는 돌출부가 있는데 발톱을 암시한다. 이 커다란 나무 조각상은 6세기 경 프랑스 중서부의 푸아티에(Poiters) 마을에 나타난 괴물 La Grand'Goule를 처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677년에 만들어졌다.

부패되고 있는 용(decaying dragon)의 그림은 프란시스코 헤르난데즈(Francisco Hernández)의 책 Rerum Medicarum Novae Hispaniae Thesaurus (1651년 출판) p.817에 게재되어 있다. 그것은 원래 요하네스 파버(Johannes Faber)의 작품으로 여겨지는데, 익룡을 현실감 있게 그려놓고 있었다. 이 용은 루이 13세(Louis XIII) 왕이 프란체스코 바베리니(Francesco Barberini) 추기경에게 준 선물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바베리니는 이 '작은 용(Little Dragon, Dracunculus)' 표본을 가지고, 이탈리아 과학 아카데미(Lincean Academy) 회원들을 흥분시켰다고 한다. 해부학자였던 파버는 그것에 대한 상세한 그림을 그렸고, 오늘날까지 여전히 전해져오고 있다.

중세시대의 날개달린 용에 대한 또 다른 묘사는, 프랑스 중부에 있는 1500년대 초에 건축된 아제르리도 성(Château Azay-le-Rideau)에 있다. 그 성에는 사자와 익룡 같은 생물이 싸우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매혹적인 벽걸이 융단(tapestry, 태피스트리)이 있다. 날아다니는 용의 앞발은 날개와 통합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놀랍도록 세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용의 머리 볏, 이빨을 가진 턱, 긴 꼬리, 심지어 항문도 보여주고 있다.

유럽의 역사와 문헌과 예술품에 등장하는 용은 공룡 또는 익룡과 너무도 비슷하다. 유럽인들이 실제로 용들을 만나거나 목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유사하고 상세한 용들의 이야기가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유럽인들이 살아있는 공룡이나 익룡을 실제로 목격했다면, 그것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하나님이 창조주간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 이들 익룡과 공룡들을 창조하셨고(창 1:20~25), 노아의 방주에 승선하여 대홍수(창 6:19)를 피해 살아남았다가, 환경 변화, 먹이 고갈, 인간의 사냥 등의 이유로 우리 주변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기억은 인류의 역사와 문헌과 예술품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성경 욥기에는 베헤못(behemoth)과 리워야단(leviathan)이라는 거대한 생물이 등장한다.(욥기 40:15~24; 41:1~34). 꼬리 치는 것이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과 같았던 베헤못과, 쇠를 지푸라기 같이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던 리워야단은 공룡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베헤못을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것이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얽혀 있으며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뼈대는 쇠 막대기 같으니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으신 이가 자기의 칼을 가져 오기를 바라노라
모든 들 짐승들이 뛰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내느니라
그것이 연 잎 아래에나 갈대 그늘에서나 늪 속에 엎드리니
연 잎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그를 감싸는도다
강물이 소용돌이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 강 물이 쏟아져 그 입으로 들어가도 태연하니
그것이 눈을 뜨고 있을 때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것의 코를 꿸 수 있겠느냐”  (욥 40:15-24).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네가 능히 많은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을 그 머리에 꽂을 수 있겠느냐
네 손을 그것에게 얹어 보라 다시는 싸울 생각을 못하리라
참으로 잡으려는 그의 희망은 헛된 것이니라
그것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는 기가 꺾이리라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만큼 담대하지 못하거든
누가 내게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느냐...
칼이 그에게 꽂혀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투창이나 화살촉도 꽂히지 못하는구나
그것이 쇠를 지푸라기 같이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니
화살이라도 그것을 물리치지 못하겠고 물맷돌도 그것에게는 겨 같이 되는구나
그것은 몽둥이도 지푸라기 같이 여기고 창이 날아오는 소리를 우습게 여기며
그것의 아래쪽에는 날카로운 토기 조각 같은 것이 달려 있고
그것이 지나갈 때는 진흙 바닥에 도리깨로 친 자국을 남기는구나” (욥 41:1-30).


참조 :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1 : 벽화나 예술품에 그려져 있는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36&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2 : 공룡과 인간의 발자국이 함께 발견되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28&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3 : 세계 도처에서 전해져 오고 있는 공룡에 관한 이야기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29&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4 : 최근에 발견된 공룡의 사체와 모습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30&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5 : youtube 동영상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00&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6 : 그림, 문헌, 암벽화, 예술품에 등장하는 나는 용은 익룡이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2&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7 : 중국과 아시아의 그림, 조각, 예술품에 등장하는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3&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8 : 유럽의 역사와 예술품에 등장하는 용은 공룡이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4&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9 :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역사, 그림, 예술품에 등장하는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5&bmode=view

용의 신화는 신화가 아닐 수 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555&bmode=view

당신이 들어보지 못했던 역사 기록 속의 용, 그리고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15&bmode=view

세인트 데이비스 대성당에 조각되어 있는 용 : 용각류 공룡을 닮은 그 생물은 상상인가, 실제인가?

http://creation.kr/Dinosaur/?idx=2633785&bmode=view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 속의 공룡을 닮은 용

http://creation.kr/Dinosaur/?idx=1910481&bmode=view

1870년대 남북전쟁시의 프테로닥틸 : 익룡(날아다니는 공룡)이 사냥되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32&bmode=view

남북전쟁 시에 사냥된 익룡 사진에 관한 진실! : 위조된 사진을 유포시켜, 진짜 사진을 불신시키고 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7&bmode=view

쥐라기의 예술품? : 이카의 돌(Ica Stones)들에 새겨져 있는 공룡 그림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58&bmode=view

페루 고대 무덤의 공룡 예술품들 : 이카의 돌에 새겨져 있는 공룡 그림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33&bmode=view

이카 돌의 진위 여부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6&bmode=view

칼라일 성당의 벨 주교의 무덤에 새겨져 있는 공룡 : 슈노사우루스? 불카노돈?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02&bmode=view

메소포타미아 우루크에서 발굴된 원통인장에 새겨져 있는 공룡처럼 보이는 목이 긴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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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주교 무덤의 놋쇠 띠에 새겨져 있는 베헤못! : 15 세기의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71&bmode=view

노아의 포도원에 있었던 공룡들 : 조지아의 14세기 교회에 새겨져 있는 두 마리의 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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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들은 공룡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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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이오 마루호의 신비한 동물에 관한 새로운 정보 1, 2 : 그것이 해양 사족동물이었다는 강한 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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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화석 탐사 보고서: 남해군 가인리에 공룡발자국과 함께 나있는 사람발자국 추정 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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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딕 발자국은 진짜다! : 진화론자들의 궤변을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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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공룡을 찾아서 : 살아있는 공룡 모켈레 므벰베 탐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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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공룡이 목격되었다! : 파푸아 뉴기니에서 목격된 수각류와 용각류 공룡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540&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genesispark.com/exhibits/evidence/historical/dragons/http://www.genesispark.com/exhibits/evidence/historical/ancient/pterosaur/

출처 -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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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 Clarey
2018-10-11

모리슨 지층의 공룡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묻혔다. 

(Dinosaurs Buried More Rapidly Than Thought)


   최근 세속적 과학자들은 모리슨 지층(Morrison Formation)에 묻혀있는 공룡 화석의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묻혔다고 결정했다.[1] 모리슨 지층은 미대륙 서부를 가로질러 70만 평방마일의 광대한 범위로 확장되어 있으면서, 구성 퇴적입자들이 일정하며, 풍부한 공룡 화석들이 발굴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리슨 지층은 지구상에서 쥐라기 말의 다양한 공룡 화석들로 유명한데, 특히 대형 초식 용각류 공룡들(아파토사우루스, 디플로도쿠스, 브라키오사우루스 등)을 포함하여, 매우 중요한 다양한 공룡 화석들이 대대적으로 발굴되고 있다.[1]    

전통적 견해는 모리슨 지층은 천천히 구불구불하게 흐르던 사행천들에 의해서, 장구한 기간 동안에 퇴적됐다는 것이었다. 세속적 고생물학자들은 이들 '강'들에 있었던 주요한 홍수 사건들이 국립공룡유적지(Dinosaur National Monument, DNM)를 포함하여, 여러 화석 발굴지들에서 발견되는 막대한 량의 공룡들을 파묻었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홍수는 1000년에 한 번 일어났던, 또는 더 큰 규모의 홍수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은 모리슨 지층의 공룡 채석장에서 발굴되는 공룡 화석들의 일반적인 특성들과 함께, 진화의 증거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해왔다.[2]

이들 다양한 공룡 채석장들의 암석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파묻힌 공룡 분류군은 모리슨 지층 70만 평방마일 면적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그러한 균일한 분류군은 진화론자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우리는 모리슨 지층 내에서 일반적인 수준에서 어떤 설득력 있는 진화의 증거를 찾는 데에 실패했다.”[3] 가장 유명한 사례인 국립공룡유적지(DNM)에서 공룡 뼈들의 대대적인 축적은 하나의 지질학적 미스터리이다.[2]

그러나 세속적 지질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적어도 20번 이상의 각각의 홍수들이 장구한 기간 동안 연속적으로 일어나, 이러한 광대한 지역에 걸쳐서 공룡들을 연속적으로 파묻었다는 것이다.

보스턴 대학의 케네스 갈리(Kenneth Galli)와 그의 동료들은 모리슨 지층의 한 주요한 부분을 퇴적시키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그들은 우라늄-납(U-Pb)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 기법을 사용하여, 모든 공룡 화석들의 약 3분의 2가 들어있는, 모리슨 지층 내의 한 하위 지층단위인, 96m 두께의 Brushy Basin Member의 상단부와 하단부의 두 화산재-암석 층의 연대를 측정했다.[1]

그 결과는 오래된 연대를 믿고 있는 세속적 과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들은 Brushy Basin Member의 대부분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1백만 년도 안 되는 기간 내에 모두 퇴적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덧붙였다 :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공룡들의 보존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Brushy Basin Member의 시기 동안에 진화가 제한적이었음을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짧은 시간 간격이 생물층서학적으로 세분화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리슨 지층의 공룡 분류군들은 짧은 시간적 간격으로 인해, 주요한 진화적 발전을 가리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석무덤 내의 척추동물 화석들을 생물층서학적으로 세분화하는 것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1]  

근본적으로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화석의 체계적인 변화에 의해서 Brushy Basin Member를 나눌 아무런 기초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모리슨 지층에서 공룡의 진화에 대한 증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체 화석기록을 통해 진화의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창조과학자들은 이것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전체 화석기록을 통해 진화의 증거를 볼 수 없다고 말해왔다. 모든 생물 화석들은 갑자기, 완전한 몸체 형태로 나타나서, 그 이후 동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가, 지층 기록의 위쪽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모리슨 지층은 전 지구적 홍수에서, 공룡들이 살던 환경이 격변적으로 침수되던 시기에 퇴적됐던 지층이다. 쓰나미 같은 거대한 파도들이 밀려왔고, 공룡들은 통나무 더미들처럼 막대한 사체와 뼈들을 남기고, 집단적으로 파묻혀졌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공룡 채석장이 되었다.

우리도 또한 1백만 년 이라는 세속적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모리슨 지층이 짧은 기간 동안에 퇴적되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성경은 불과 4,500년 전에 전 지구를 뒤덮었던 대홍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전 지구적 홍수는 모리슨 지층의 광대한 범위와, 막대한 량의 공룡 매몰과, 어떠한 진화의 증거가 없다는 것을 더 잘 설명해준다.

모든 생물 화석들은 갑자기, 완전한 몸체 형태로 나타나서, 그 이후 동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가, 지층 기록의 위쪽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세속적 과학자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모리슨 지층을 천천히 퇴적시켰던 구불구불한 강은 없었다. 전 지구적 홍수에 의한 엄청난 량의 물만이 수백만의 공룡 뼈들이 미대륙 서부의 70만 평방마일에 걸쳐, 1백m 두께의 얇은 한 지층에 확산되어있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여러 개의 강들은 이러한 일관성을 결코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다른 지층들과 마찬가지로, 모리슨 지층은 전 지구적 홍수의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


References
1. Galli, K. G. et al. 2018. New chemical abrasion thermal ionization mass spectrometry dates from the brushy Basin Member, Morrison Formation, Western Colorado: implications for dinosaur evolution. The Journal of Geology. 126 (5): 473-486.
2. Hoesch, W. A., and S. A. Austin. 2004. Dinosaur National Monument: Jurassic Park Or Jurassic Jumble? Acts & Facts. 33 (4).
3. Dodson, P., A. Behrensmeyer, R. Bakker, J. McIntosh. 1980. Taphonomy and paleoecology of the dinosaur beds of the Jurassic Morrison Formation. Paleobiology. 6 (2): 208-232.

*Dr. Timothy Clarey is Research Associate is at ICR and earned a doctorate in geology from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번역 - 미디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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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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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 Clarey
2018-09-03

알래스카의 공룡 고속도로는 전 지구적 홍수로 쉽게 설명된다.

(Dinosaur Superhighway Explained by Global Flood)


    최근 고생물학자들은 알래스카 백악기 지층에서 비정상적 발자국들의 집합체를 발견하고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었다. (Phys.org, 2018. 8. 6)

페롯 박물관(Perot Museum)의 안소니 피오릴로(Anthony Fiorillo)와 그의 동료들은 Scientific Reports 지에 공룡 보행렬(trackways)에 관한 발견을 보고했다.[1] 수많은 공룡 발자국들이 알래스카 중부의 데날리 국립공원(Denali National Park)에 있는 백악기 후기의 캔트웰 지층(Cantwell Formation)에서 발견되었다.

캔트웰 지층은 다양한 화석 식물상(flora)을 갖고 있는 3900m 두께의 역암, 사암, 셰일(간혹 석탄층을 가진)로 이루어져 있다.[1]
 
이 발견을 이례적으로 만든 것은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공룡인, 오리주둥이 공룡(Hadrosaurs)과 테리지노사우르스(therizinosaurs) 공룡 발자국들이 함께 나란히 나있었다는 것이다. 테리지노사우르스는 긴 목, 긴 팔, 긴 발톱을 갖고 있는 기묘하게 보이는 이족보행 공룡이다. 피오릴로는 말했다 :

오리주둥이 공룡은 매우 흔하고, 데날리 국립공원의 모든 곳에서 발견된다. 이전에 오리주둥이 공룡은 국립공원 내에서 테리지노사우르스와 함께 발견되지 않았었다. 이 연구 결과로부터, 이들 발자국들의 동시발생(co-occurrence)은 현재까지 북미 대륙에서 유일한 것이다.[2]

연구의 저자들은 중국의 동일한 지층에서 오리주둥이 공룡과 테리지노사우르스리자 공룡 뼈가 발견됐지만, 그들의 발자국들은 동시에 나있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었다.[2]

논문은 설명했다. ”그들의 극히 드문 동시발생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로서, 오리주둥이 공룡은 복잡한 사회적 역동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특별히 흥미롭다.”

저자들은 알래스카는 아시아에서 북미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공룡들의 관문(gateway for dinosaurs)'이었음에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2]

 전 지구적 홍수는 이러한 발자국들 집합체에 대한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한다.

2018년 초에 또 다른 당황스런 공룡 발자국들이 레이 스탠포드(Ray Stanford)와 그의 팀에 의해서, 메릴랜드의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되었다.[4] NASA의 고더드 우주비행센터(Goddard Space Flight Center)가 있는 장소에 약 20평방피트의 면적에서 70개가 넘는 발자국들이 발견되었다.[2] 발자국들은 작은 포유류의 발자국, 조류 크기의 수각류 공룡 발자국, 익룡 발자국, 거대한 용각류 발자국, 노도사우루스 공룡 발자국들의 것이었다.[4]

매우 좁은 장소에서 이러한 동물 발자국들의 극히 드문 집합체는 (특히 포유류 발자국을 포함하여)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저자들은 이러한 무더기 발자국들은 ”특별한 보존 및 화석생성 조건”에 요구되는 ”거의 최적”인 상태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다.[4]

따라서 서로 다른 종의 많은 동물들이 서로 가깝게 걸어갔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화석 발자국들의 특이한 두 집합체를 갖게 된 것이다. 세속적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가장 좋은 설명은 특별한 상황에서 공룡들은 무리를 지어 공룡 고속도로를 따라 지나갔다는 것이다.

전 지구적 홍수는 이러한 발자국들 집합체에 대한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한다. 홍수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짐에 따라, 동물들은 아직 범람되지 않은 육지의 마지막 남은 고지대로 허겁지겁 올라갔다. 이러한 장소들 중 일부는 오늘날의 알래스카와 메릴랜드였을 것이다. 다른 지역은 미국 서부에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전 글에서 홍수 이전의 고지대로 나아가는 좁고 길쭉한 지역을 발견하고, 내가 ‘공룡 반도(Dinosaur Peninsula)’라고 불렀던, 수많은 공룡 발자국들이 나있는 미국 서부의 같은 지역을 설명했었다. ”노아 홍수의 초기에 미국 서부에서 공룡들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공룡들은 홍수가 진행됨에 따라, 퇴적물이 아직 깊지 않았던, 육지의 남겨진 고지대로 서로 긴급하게 뒤섞여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5]   

공룡 발자국들의 특별한 보존은 홍수에 의한 신속한 매몰로 쉽게 설명된다.

공룡 발자국들에 대한 최근의 두 발견은 특이한 것이다. 왜냐하면 다양한 동물들이 짧은 시간 내에 서로 가깝게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발자국들의 보행렬은 전 지구적 홍수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예상되는 것이다. 공룡 발자국들의 특별한 보존은 홍수에 의한 신속한 매몰로 쉽게 설명된다.


References
1. Fiorillo, A. R. et al. 2018. An unusual association of hadrosaur and therizinosaur tracks within Late Cretaceous rocks of Denali National Park, Alaska. Scientific Reports. 8:11706. DOI:10.1038/s41598-018-30110-8
2. News Staff. 2018. Cretaceous Alaska Was ‘Superhighway’ for Migrating Dinosaurs, Paleontologists Say. SciNews. Posted on sci-news.com Aug. 8, 2018, accessed August 22, 2018.
3. Fiorillo, p. 8.
4. Stanford, R. et al. 2018. A diverse mammal-dominated, footprint assemblage from wetland deposits in the Lower Cretaceous of Maryland. Scientific Reports. 8: 741. DOI:10.1038/s41598-017-18619-w
5. Clarey, T. 2015. Dinosaurs found in late Flood rocks. Acts & Facts. 44 (2): 16.

Image: Life reconstruction of hadrosaur-therizinosaur co-occurence based on tracks described in the Fiorillo study.
Image credit: Copyright © Karen Carr. 2018. Used in accordance with federal copyright (fair use doctrine) law. Usage by ICR does not imply endorsement of copyright holder.

*Dr. Timothy Clarey is Research Associate at ICR and earned a doctorate in geology from Western Michigan University.


*관련 글 : 백악기 후기 알래스카는 공룡 이동의 고속도로였다.
http://jjy0501.blogspot.com/2018/08/blog-post_77.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10851/

출처 - ICR, 2018. 8. 28.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98

참고 : 5491|6625|6346|6227|4882|4479|6781|6230|5682|5557|4716|4299|3958|5538|6892|6272|6115|6794|5237|6497|6171|6172|5032|3271|3347|4235|6615|6789|6021|6111|5857|5407|5266|3902|5060|4320|2171|4314|5274|5371|5842|6041|6174|6180|6184|6758|3079|3081|3086|6127|6173|6177|6187|6226|6233|6249|6252|6282|6318|6338|6352|6383|6403|6429|6484|6488|6496|6511|6520|6539|6541|6580|6583|6683|6685|6707|6709|6710|6712|6714|6220|6466|6762|6782|6787|905|738|740|741|6102|6766|6769|6774

Tim Clarey
2018-08-23

용각류 공룡이 예상치 못한 장소와 시대에서 발견됐다. 

(Diplodocoid Dinosaurs Found in Unexpected Place)


    중국 북서부에서 새로 발견된 공룡 화석은 세속적 고생물학계에 충격을 주고 있었다. ”링우의 놀라운 용(amazing dragon from Lingwu)”이라는 뜻의, ”링우룽 선치(Lingwulong shenqi)”라는 이름이 붙여진 새로운 용각류(sauropod, longneck) 화석은 세속 과학이 믿고 있던 연대와 지역이 틀린, 잘못된 지질학적 장소와 시대에서 발견되었다.[1]
 
중국 과학아카데미의 싱쑤(Xing Xu) 및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자연사박물관, 중국 여러 기관의 연구자들은, 이 발견을 Nature Communications 지에 보고했다.

그들의 발견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이 새로운 공룡 화석은 그동안 발견됐던 다른 모든 유사한 디플로도쿠스(diplodocoid) 공룡 화석들 보다 아래 지층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 화석은 용각류의 번성 시기를 진화론적 시간 틀로 쥐라기 중기의 이른 시기인 약 1억7천4백만 년 전으로 확장시켰다.[2] 그러나 대부분의 디플로도쿠스 및 용각류는 일반적으로 약 1억6천만 년 전의 쥐라기 후기 지층까지는 등장하지 않았었다.

공동 저자인 폴 업처치(Paul Upchurch)는 말했다 :

우리는 1억7천4백만 년 전의 동아시아의 중국 북서부 지역에서 디플로도쿠스의 가까운 친척을 발견하고 놀랐다. 용각류는 2억 년 전까지 그곳으로 분산되지 않았으며, 거대한 크기의 디플로도쿠스의 후손들은 훨씬 나중에 그 지역에 도착했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해왔었기 때문이다.[1]
 
우리의 링우룽 발견은 여러 다른 타입의 발달된 용각류들이 적어도 1500만 년 더 일찍부터 존재했으며, 초대륙 판게아(Pangaea)가 아직 한 덩어리로 붙어 있는(연결되어 있는) 동안, 전 세계로 분산되어 나갔음에 틀림없음을 입증했다. 이것은 용각류의 기원과 진화를 완전히 재평가를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1]

Nature Communications 지의 논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이 새로운 발견은 전통적 생물지리학적 개념에 도전하고 있으며, 동아시아로 용각류의 분산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이전에 발생했음을 가리킨다.”[2]

성경적 세계관에서 볼 때, 모든 공룡 화석들은 수십억의 생물들을 파묻어버린 전 지구적 대홍수의 산물이다.

창조론자들은 이 화석에 부여된 장구한 나이와, 다른 진화론적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발견에 전혀 놀라지 않는다. 몇몇 용각류 화석들이 진화론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래 지층에서 발견되었다는 보고에 놀랄 필요가 없다. 성경적 세계관에서 볼 때, 모든 공룡 화석들은 수십억의 생물들을 파묻어버린 전 지구적 대홍수의 산물인 것이다.

창세기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은 홍수 이전 사람들의 죄악과 강포함을 보시고, 전 지구적 홍수로 이 세계를 심판하셨다. 거대한 쓰나미와 같은 파도들이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양의 물과 흙을 운반하면서 연속적으로 밀려왔고, 육지들은 물로 범람되었고, 수위는 점점 올라갔다. 최초에 등장하는 공룡들은 전 지구적 홍수에서 단지 먼저 파묻히게 됐던 공룡에 불과한 것이다. 오직 두 마리의 디플로도쿠스만이 노아 방주에 태워졌다. 다른 모든 공룡들은 홍수로 인해 멸절했다. 화석 결과는 단지 거대한 쓰나미들이 전 세계의 생물들을 파묻어버릴 때의 매몰 순서만을 우리에게 가르쳐줄 뿐이다.

최초에 등장하는 공룡 타입들은 단지 전 지구적 홍수 직후에 먼저 묻혔던 공룡에 불과한 것이다.

용각류 공룡은 상승하는 물을 피해 도망갈 때에, 다른 타입의 공룡들처럼 빠르게 달릴 수 없었을 것이다.[3] 이러한 이유로, 용각류 공룡들은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던 많은 오리주둥이 공룡이나, 각룡류 공룡 같은 다른 공룡들 보다 먼저, 또는 아래 지층에 묻혔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빠른 이동성의 공룡들이 백악기 지층의 더 윗부분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3] 장구한 시간 개념이 제거되고, 전 지구적 홍수의 역사적 사실성이 받아들여질 때, 이전 지층 보다 아래 지층에서 7~10 마리 분의 용각류 화석들이 발견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References
1. University College London. 2018. New dinosaur found in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 ScienceDaily. Posted August 1, 2018, accessed August 4, 2018.
2. Xu, X. et al. 2018. A new Middle Jurassic diplodocoid suggests an earlier dispersal and diversification of sauropod dinosaurs. Nature Communications. 9 (2700): DOI: 10.1038/s41467-018-05128-1.
3. Clarey, T. L., and J. P. Tomkins. 2015. Determining average dinosaur size using the most recent comprehensive body mass data set. Answers Research Journal. 8: 85-91.
 
*Dr. Timothy Clarey is Research Associate at ICR. He earned his doctorate in geology from Western Michigan University.


*관련기사 : 중국서 용각류 공룡 화석 발견…中지질사 다시 써야 (2018. 7. 25. 연합뉴스)
: 용각류 출현 앞당기고 초대륙 분리 시기는 늦춰야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25/0200000000AKR20180725083400009.HTML

용각류 공룡 선조 화석 중국서 발견 (2018. 7. 25.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78c0e0d624dc4f05a70ecae82191e770

중국서 용각류 공룡 화석 발견…中지질사 다시 써야 (2018. 7. 25. KBS News)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014583&ref=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10824/ ,

출처 - ICR, 2018. 8. 21.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92

참고 : 6346|6272|6115|6794|5237|6497|6171|6172|5032|3271|3347|4235|6615|6789|5682|5557|5491|6227|6021|6111|5857|5407|5266|4716|3902|5060|4320|2171|4314|5274|5371|5842|6041|6174|6180|6184|6758|3079|3081|3086|6127|6173|6177|6187|6226|6233|6249|6252|6282|6318|6338|6352|6383|6403|6429|6484|6488|6496|6511|6520|6539|6541|6580|6583|6683|6685|6707|6709|6710|6712|6714|905|738|740|741|6102|6762|6766|6769|6774

David F. Coppedge
2018-08-22

완벽하게 비행을 했던 익룡 화석이 

대륙 건너편의 2억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Good-Flying Cosmopolitan Pterosaur Found Earlier Than Thought)


    미국 유타주에서 발견된 거대한 익룡(pterosaur)은 진화론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6500만 년이나 더 오래되었지만, 이미 완전히 날 수 있는 몸체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 화석은 '천풍(天風, heavenly wind)'이란 뜻의 라틴어인 '칼레스티벤투스 한세니(Caelestiventus hanseni)'로 명명되었다.)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지층에서는 익룡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화석은 놀랍도록 잘 보존되어 있었다. 진화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브러세트(Steven Brusatte)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는 BBC News(2018. 8. 13)에서 말했다.

이 화석은 세 가지 점에서 놀랍다 : 새로운 장소에서 발견된 트라이아스기 익룡이며,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고, 그렇게 초기에는 살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환경의 지층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익룡들은 그들의 진화 초기에 이미 지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으며, 다양한 환경에서 번성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들의 진화에서(in their evolution)”를 두 번이나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말에 대한 증거를 제시함 없이, 단지 진화는 전제되고 있었다. 진화를 지지하는 익룡 화석은 없다. 그것은 ”비행을 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고 Phys.org(2018. 8. 13) 지는 말한다. 그러나 그 익룡은 진화론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6천5백만 년 더 오래 전인 2억 년 전의 지층암석에서 발견되었다.

브러세트는 고찰 부분에서 지구 온난화를 언급하고 있었다 :

새로운 익룡 종은 초기 쥐라기 시대의 영국 익룡과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들 원시적 익룡 집단이 널리 퍼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초대륙 판게아(Pangea)의 파쇄 균열을 통해 화산들이 분출되어 오늘날 겪고 있는 것과 유사한 급격한 지구 온난화를 유발했던, 트라이아스기 말에 있었던 대멸종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자들은 영국과 미국 유타주는 약 5천마일 떨어져서, 지구의 거의 반대편에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유일한 다른 트라이아스기 익룡은 그린란드(Greenland)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흩어져서 조각으로 발견되는 대부분의 익룡 화석들과는 다르게, 이번에 발견된 익룡 화석은 현저하게 잘 보존되어 있었다.

왜 이 익룡을 원시적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 익룡은 날 수 있었다. 그것은 1.5m의 날개 길이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무거운 생물이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특별한 특성들을 필요로 한다. 익룡은 활발한 비행을 할 수 있었던 최초의 척추동물이었다고, Live Science(2018. 8. 13) 지는 말했다, 물론 곤충들은 완벽한 비행을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 화석 표본은 일찍이 발견된 가장 완벽한 익룡의 골격이라고, Phys.org 지에서 말로 후드(Marlowe Hood)는 말한다.

”대부분의 익룡 뼈들은 로드-킬(road-kill)로 죽은 동물 뼈처럼 조각나있다.” 브릿은 AFP에서 말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익룡 표본은 완전한 뇌 덮개와 함께 수십 개의 손상되지 않은 완전한 뼈와 치아들을 가진 채로 발견되었다.

Live Science 지는 그 익룡은 4개의 저주받은 송곳니(wicked fangs)을 포함하여, 110개의 치아를 갖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 익룡 화석은 2014년 미국 유타 주의 ”성인과 죄인 채석장(Saints and Sinners Quarry)”에서 발견되었다.



이 익룡 화석도 생물 화석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있었다. 갑작스런 출현, 완전히 발달된 상태, 어떠한 진화도 없고, 오늘날은 멸종되어 있는 패턴 말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말했던 ”고생물학의 영업 비밀”은 이제 대중들에게도 폭로되고 있는 중이다.
 

*관련기사 : 2억1천만년 전 원시 익룡 '천풍' 화석 발굴 (2018. 8. 14.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8/14/0200000000AKR20180814070800009.HTML?input=1195m

2억 년 전 하늘 지배한 역대 가장 오래된 익룡 화석 발견  (2018. 8. 14. 나우뉴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814601010&wlog_tag3=naver

2억 1천만 년 전 원시 익룡 '천풍' 화석 발굴 (2018. 8. 14. SBS News)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889851&plink=ORI&cooper=NAVE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8/08/pterosaur-earlier-than-thought/

출처 - CEH, 2018. 8. 1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91

참고 : 6448|6737|5912|5748|4754|4716|3912|3073|2916|762|6762|6787

David F. Coppedge
2018-07-06

공룡 멸종에 대한 칙쇼루브 이야기에서 놀라운 발견. 

(Surprises in the Chicxulub Tale of Dino Extinction)


    공룡들의 멸종이 유카탄 반도의 소행성 충돌로 설명될 수 있을까? 충돌분화구의 새로운 시추 작업으로 몇몇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공룡의 멸종 원인이 6600만 년 전에 한 소행성의 충돌 때문이었다는, 처음에 마지못해 받아들여졌던 알바레즈 이론(Alvarez theory)은 '스모킹 건'이라고 말해지는 충돌분화구의 발견 이후에, 진실로서 받아들여져 왔었다. 유카탄 반도의 칙쇼루브(Chicxulub)에 샌프란시스코 크기의 소행성이 강타했고, 준원형의 충돌 자국이 육지와 해상에 남겨졌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켰고, 먼지들을 대기로 날려 보냈으며, 수십 년 동안의 차가운 핵겨울을 초래했고, 그 불운했던 날에 행성 지구의 생물들은 즉각적으로 약 76%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진화론의 전형적인 이야기였다.

이제 충돌분화구의 고리 일부에서 새로운 드릴 코어(drill core) 결과가 공개됐는데, 그 결과는 과학자들의 눈썹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공룡들을 멸종시켰던 소행성의 충돌 장소에서 생물들은 빠르게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NASA의Astrobiology(2018. 5. 31) 지는 주요한 놀라움 중 하나에 주목하고 있었다. 지질학자들은 작은 충돌분화구로부터 생태학적 신호를 추정하여, 커다란 충돌 장소에서 생물들이 얼마의 시간 후에 복구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충돌 흔적들에서는 생물들이 복구되는 데에는 10배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텍사스 대학의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소행성 충돌이 생물 종들을 쓸어버렸지만, 남겨진 충돌크레이터는 충돌 후 십 년 이내에 바다생물의 고향이 되었음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3만 년 이내에 번성했던 생태계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 세계의 다른 장소들 보다 훨씬 빠른 복원이었다.

미화석(microfossils)과 생흔화석(ichnofossils)은 동물들이 소행성 충돌 이후 약 2~3년 내에 충돌 장소에 다시 서식했음을 보여준다. 전 세계의 공룡들을 멸절시킨 거대한 재앙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생물들이 다시 살 수 있었던 것일까? 쓰나미들이 멀리로부터 신선한 물질들을 다시 가져왔기 때문인가?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정말로 빠르게, 충돌 후 몇 년 이내에 충돌분화구 내에서 생물들을 발견했다.” 연구를 이끌었던 텍사스 대학 지구물리학 연구소의 크리스(Chris Lowery) 박사는 말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복구 예측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Astrobiology(2018. 5. 29) 지의 또 다른 글에서, 숲과 나무에 서식하는 새들도 소행성 충돌에 의해서, 전 지구적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전 지구적 재난 후에 복구가 지역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까?

Nature(2018. 5. 30) 지의 논문은 ”충돌 장소와 가까운 곳도 복구가 늦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복구에 대한 충돌-관련 환경적 조절은 없었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충돌분화구 근처가 최악의 상태였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직관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충돌은 분화구에 열수 분출구(hydrothermal vents) 시스템을 생성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들은 ”지구상의 초기 생명체에 대한 잠재적인 서식지로 가정되고 있는 충돌 유래 열수 시스템”을 간단히 제안했다. 그것은 일부 기자들이 충돌이 생명의 기원을 유발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PNAS(2018. 5. 30) 지의 뉴스는 유카탄 반도에서 수 주 동안 시추 작업을 했던 과학자들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들의 모험과 특성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 장소의 추가적인 지질학적 이상(anomalies)에 대한 것도 알려주고 있었다. ”오늘날까지, 그러한 변경을 이끌었던 파쇄의 패턴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드릴 코어에서 볼 수 있었던 분쇄된 화강암(pulverized granite)에 대해서 한 연구자는 말했다. 그리고 기사는 충돌이 지구상과 다른 행성들의 생명체들의 도가니가 될 수 있었을 지에 관한 추정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상상을 날개를 펼쳐보라. 충돌이 일련의 실험실 플라스크가 되어, 많은 유기물질들을 만들고, 어떤 시점에서 스스로 자가-복제가 되는 생명체가 출현할 수 있었을까? 세포를 구성하는 수많은 복잡한 화학물질들과 유전정보가 동시에 모두 우연히 생겨나서 우연히 조립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일이 불합리한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Illustra Media가 제작한 Origin에서 수행됐던 계산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The Amoeba’s Journey” 영상을 보라).


칙쇼루브 시나리오의 문제점들

공룡 멸종에 대한 소행성 충돌 이야기를 선전하는 사람들은 칙쇼루브에서 결정적 증거라는 것을 만들려고 한다. ICR의 브라이언 토마스(Brian Thomas)는 그 이야기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있었다. ICR의 Acts & Facts 지 6월 글에서, 그는 칙쇼루브 이야기의 심각한 의문점들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는 소행성 충돌에 의한 공룡 멸종 이야기가 어린이들에게도 가르쳐지고 있으며, 크리스천 부모님들은 성경 창세기의 홍수 기록과 이 이야기를 어떻게 조화시켜야하는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

▶ 개구리와 조개는 소행성 충돌로 야기된 독성적인 환경 영향에 훨씬 더 취약하지만, 살아남았다.

▶ 칙쇼루브 크레이터는 원형이 아니다. ”추가하여, 전 세계적 파괴를 초래한 충돌은 암석을 녹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소에서 용융된 암석은 매우 적다.” 칙쇼루브에서 보여지는 구조는 용승(upwelling)된 마그마로 설명될 수 있다.'

▶ 홍수 지층은 수백 평방마일에 걸쳐 확장되어 있는데, 이러한 지층은 충돌에 의한 쓰나미로 만들어질 수 없다. 쓰나미는 멀리 가면서 사라지는 쐐기 모양의 흔적(wedge-shaped trace)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많은 홍수 지층들은 먼 거리에 걸쳐 동일한 두께를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륙을 횡단하며 광대한 지역에 두텁게 쌓여있다.

▶ 공룡들은 유카탄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진흙 퇴적층에서도 묻혀있다.

▶ 공룡 뼈와 다른 동물 화석에 아직도 남아있는 부드러운 연부조직들은 그들이 최근에 죽었음을 보여주며, 그러한 연부조직이 6,600만 년 동안 지속될 수 없다.

창세기 홍수 시나리오에 의하면, 일부 공룡들은 방주에 태워졌고, 나머지들은 홍수로 멸절됐다. 살아남은 공룡들은 홍수 후에 짧은 기간 동안 번성했으나, 먹이, 해충, 사람들의 사냥으로 멸절되었고, 많은 나라의 문화와 그림, 예술품, 전설 속에 용(dragon)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것이 공룡 뼈에서 화석화되지 않은 연부조직들이 발견되는 이유이고, 오늘날 공룡들이 살아있지 않은 이유이다.



진화론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증거들이 그것을 지지하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일부 선택된 증거들로부터 진화 소설이 쉽게 쓰여지고 있지만, 세밀한 조사는 그렇지 않음을 자주 밝혀내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토마스는 단지 5개의 반대 증거들만을 제시했지만, 더 많은 반대 증거들이 있다.

연습 : 많은 반대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주장되고 있는 어떤 다른 '시나리오'나 합의된 이야기를 제시해 보라. 그들은 ‘스모킹 건’이라고 주장되는 어떤 것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 증거들은 자주 최소화되고, 무시된다. 칙쇼루브 이야기가 그 하나의 사례이고,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또 다른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8/06/surprises-chicxulub-tale-dino-extinction/ ,

출처 - CEH, 2018. 6. 5.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63

참고 : 6648|6408|6567|6077|5371|3583|4639|691|5983|5392|5227|4136|2452|4876|4629|4615|4175|5237|6497|6625|6541|5060|4320|3271|2171|4496|5032|6227|5682|2106|5557|6127|6173|6177|6187|6226|6233|6249|6252|6282|6318|6338|6352|6383|6403|6429|6484|6488|6496|6511|6520|6539|6580|6583|6683|6707|6709|6710|6712|6714|905|738|740|741|6102|6762|6766|6769|6774

Tas Walker
2018-04-18

몽골에서 발견된 앵무새 부리 공룡들의 집단 묘지 

(Massive graveyard of parrot-beaked dinosaurs in Mongolia)


   고생물학자들은 이 공룡들의 사인(cause of death)에 대하여 머리를 쥐어짜고 있지만, 명백한 단서를 놓치고 있다.

187 마리의 앵무새부리 공룡(parrot-beaked dinosaurs)들은 어떻게 화석이 되었을까? 물론 그들은 빠르게 파묻혀야만 했다.

그것은 최근 몽골의 화석 지대에서 187개의 프시타코사우루스(Psittacosaurus) 공룡들의 화석 발굴을 보고했던 고생물학자들에게 하나의 수수께끼가 되고 있다.[1] 그 공룡들은 주둥이가 앵무새 부리를 닮았기 때문에, ‘앵무새 도마뱀(parrot lizard)’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수 km2 지역 이내에서 발견되었고, 고생물학자들은 그 지역에서 발견될 화석들이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몬태나 주립대학에 있는 록키 박물관(Museum of the Rockies)의 고생물학 관장인 잭 호너(Jack Horner)는 그 장소에서 80개 이상의 골격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곳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자동차로 이틀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생물학자들은 그 공룡들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질문의 일부에 불과하다. 대답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훨씬 중요한 질문이 있다.
 
잭 호너의 공룡 발굴을 보고하고 있는 Discovery News 에 따르면, ”동물들은 독극물 중독이나, 질병, 또는 어떤 종류의 자연 재해(natural disaster)로 한꺼번에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독사라고? 187마리의 공룡들이 모두 동시에 중독으로 죽었다는 생각은 얼마나 타당성이 있을까? 동물들에게 그러한 종류의 사건은 정상적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설령 그 공룡들이 모두 독극물 중독으로 죽었다 할지라도, 까다로운 다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 공룡들은 어떻게 물에 의해서 만들어진 퇴적암에서 함께 모두 묻혀서 화석화되어 있는가? 라는 것이다. 독극물로 죽은 그 공룡들은 퇴적물로 조금씩 덮여지기를 기다리면서, 몇 년 동안이나 그 장소 주변에 누워있었는가?
 
프시타코사우르스는 거대한 크기의 공룡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다. 그것은 몸길이가 2m 까지 자랐고 몸무게는 30kg 이상 나갔다. 그런 크기라면 썩지 않도록 몸 전체가 빨리 매몰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퇴적물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질병(disease)으로 죽었을까? 그것은 가능할 수 있는 이야기다. 상상컨대 병원균들은 187 마리의 공룡들을 모두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금 그것은 공룡들이 어떻게 모두 한꺼번에 한 자리에 매몰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의 사체가 신속히 매몰되지 않았다면, 썩어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질병 이론은 공룡들의 집단 화석무덤을 설명하지 못한다. 

자연 재해로 죽었을까? 그것은 좀 더 괜찮은 아이디어일 수 있다. 나는 Discovery 웹사이트에서 이 항목에 대한 기사의 링크를 따라가서, 소행성의 충돌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발견했다.[2] :

”대략 6천5백만년 전에 직경 9.5km 정도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했고, 화재 폭풍을 일으켰고, 거대한 먼지 구름을 일으켜 태양빛을 차단하였다.”[3]

그 소행성 충돌은 공룡들을 확실히 죽일 수 있었던 불과 먼지를 제공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불과 먼지는 마찬가지로 그들의 매몰(burial)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사실 내가 그 기사를 읽었을 때, 나는 불과 먼지가 죽음의 주요 원인으로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

”이 기나긴 겨울(먼지가 태양빛을 가려) 동안에, 많은 식물들이 죽었고, 그들에 의지하여 살던 생물 종들도 멸종되었다. 오직 새로운 도전을 극복할 수 있었거나, 환경적 적소(niche)를 개척한 동물들만 살아남았다.”


그들이 죽은 이유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전 지구적인 홍수이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은 공룡들의 아사(starvation)였다. 이 시나리오에 의하면, 식물들의 절멸 때문에 187마리의 공룡들이 모두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시 아사는 어떻게 그들이 모두 퇴적물 속에 매몰되었으며, 왜 그들이 동일한 장소에서 아사했는지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이 공룡 묘지(graveyard)는 설명할 더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공룡들의 매몰을 생각하면서, 얼마 전 메리 슈바이처(Mary Schweitzer, 잭 호너의 이전 학생)가 공룡 티라노사우르스 렉스(T. Rex)의 다리뼈 안쪽에서 발견했던 적혈구(red blood cells) 및 연골 조직(soft bone tissue)과 연결하여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4] 유기물질인 연부 조직이 어떻게 6천5백만년 동안이나 보존될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 그렇게 신선해 보일 수 있는가? (‘Schweitzer’s dangerous discovery‘을 보라). 아마도 그 증거는 하나의 다른 해답을 가리키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당신이 이들 공룡들의 죽음과 그들의 즉각적인 매몰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매우 간단한 설명이 있다. 그것은 거대한 홍수 사건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전 지구를 뒤덮었던 대홍수에 대한 목격자의 설명(창조주의 말씀인 성경)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 공룡들은 홍수 물에 의해 빠르게 파묻혀버렸다는 매우 깔끔하고 합리적인 설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대신에 수천만 년이라는 연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 한다.
 
나에게 전 지구적인 홍수는 공룡들이 죽은 이유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분명코 빠르게 흘렀던 물에 의해 퇴적된 지층들 속에 어떻게 그들이 신속히 묻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뼈 속에서 아직도 연부조직과 혈구 세포들이 발견되는 것에 대한 더욱 합리적인 설명이 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신뢰한다면, 그 모든 것들은 너무나도 쉽게 풀려진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성경을 진정한 역사의 기록으로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중독, 질병, 소행성 충돌 등과 같은 어떤 원인들을 창안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경우에 우리는 그런 아이디어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문제들, 특히 결코 설명될 것 같지 않는 커다란 문제, 즉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빠르게 순식간에 묻어버렸는가? 라는 문제를 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Related articles

What about dinosaurs? Chapter 19, The Creation Answers Book  
The extinction of the dinosaurs 
How did dinosaurs grow so big?

References
1. Viegas, J., Dino trove yields 187 fossils, Discovery News, 4 Oct 2007.
2. Ingram, R., Killer asteroid traced in space, AFP, Discovery News, 5 September 2007.
3. This popular idea has serious problems: Wieland, C., Dino-impact theory takes a hit.
4. Wieland, C., Still soft and stretchy: Dinosaur soft tissue find—a stunning rebuttal of ‘millions of years’, 25 March 2005. 

 

*참조 : Chinese fossil layers and the uniformitarian re-dating of the Jehol Group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6116

Dinosaur herd buried in Noah’s Flood in Inner Mongolia, China(CMI. 2009. 4. 14)
http://creation.com/dinosaur-herd-buried-in-noahrsquos-flood-in-inner-mongolia-chin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387/ ,

출처 - Creation on the web, 2007. 10. 2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314

참고 : 3658|4235|3995|3271|3347|3270|2171|3888|3797|2106|3129|1682|3079|3081|3086|3609|2417|2107|4882|5062|5100|5237|5371|5313|5407|5857|5867|5946|6111|6150|6392|5951|5955|5958|5957|5973|6006|6030|6049|6076|6097|6104|6123|6136|6170|6175|6215|6222|6223|6225|6228|6240|6254|6255|6311|6316|6330|6413|6415|6417|6422|6431|6453|6462|6469|6485|6507|6508|6523|6524|6531|6535|6542|6543|6545|6547|6551|6552|6558|6559|6563|6566|6638|6645|6688|6694|6723|6737|6758

TIM CLAREY,
2018-02-22

이집트에서 발견된 공룡 화석이 가리키는 것은?

: 또 다시 해성퇴적암에서 발견되었다. 

(The Holy Grail of Dinosaurs?)


    최근 발표된 기사에 의하면, 이집트 만수라(Mansoura) 대학의 헤샴 살람(Hesham Sallam)이 이끄는 고생물학 팀은 이집트 사막 한가운데서 공룡의 성배(Holy Grail)를 발견했다는 것이다.[1] 창세기 홍수(Genesis Flood) 모델은 이 독특한 발견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공동 저자인 피츠버그 카네기 자연사박물관(Carnegie Natural History)의 맷 라만나(Matt Lamanna)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처음 화석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너무도 놀랐다. 이것은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공룡시대의 말에 잘 보존된 공룡으로서 성배였다. 그것은 우리 고생물학자들이 오랫동안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2]

이 발견 이전까지 백악기 상부 지층에서, 공룡들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만수라사우르스 샤히나(Mansourasaurus shahinae)라 명명된 이 긴 목의 용각류(sauropod) 화석은 그 차이를 메울 수 있게 된 최초의 공룡 화석이었다. 이 공룡 화석은 쿠세르 지층(Quseir Formation)으로 불려지는, 이집트 서부 사막에서 발견되었다.[1]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성배가 되는 공룡을 발견했던 것일까? 여러 대학의 고생물학자들로 구성된 발굴팀은 이 발견으로 이전까지 아프리카에서 공룡 화석들이 발견된 적이 없었던 잃어버린 시기가 채워지게 됐다고 주장했다.[1] 그들은 또한 이 공룡이 유럽과 아시아의 다른 용각류 공룡들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 시기에도, 공룡들이 유라시아에서부터 아프리카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이 공룡 뼈들은 아프리카의 백악기 지층 상부에서 발견된 가장 완벽한 표본이지만, 단지 25개의 뼈와 뼈 조각들로서, 대부분 늑골, 목뼈, 앞다리 뼈들이었다.[1] 뼈들은 NE-SW 방향으로 8평방미터에 걸쳐 흩어져서 발견되었다.

전 지구적 홍수 모델에서, 이 독특한 화석의 발견은 쉽게 설명된다. 이 공룡은 쓰나미와 같은 격렬한 물 흐름에 의해서, 그 위치로 운반되었고, 맹렬한 과정에 의해서 조각들로 나뉘어졌을 것이었다. 운반된 뚜렷한 이동 방향은 뼈들이 흩어져 있던 NE-SW 방향이었다.

또한 저자들은 단지 뼈들이 백악기 쿠세르 지층 상부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만을 언급하고 있지, 현장의 지질학적 내용을 기술하지 않고 있었다.[1] 그러나 이 지역의 동쪽 지형에 대한 다른 연구들은 쿠세르 지층은 해양성 퇴적층으로, 포함되어있는 화석들과 인산염(phosphate)과 같은 광물은, 이 지층이 바다(open ocean)에서 퇴적된 해성퇴적암임을 가리키고 있었다.[3, 4] 또 다른 연구들은 이 지층과 동일한 지층에서 물고기, 거북이, 폐어(lungfish) 등과 함께 악어, 육상공룡, 육상식물의 꽃가루와 포자 등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5] 다른 말로 하면, 육상생물과 바다생물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퇴적지층에서 이러한 현상은 흔히 관측되는 것으로, 이것은 전 지구적 홍수를 강하게 가리키는 것이다.[6] 

덧붙여서, 북유럽과 유럽 전역에 걸쳐서, 이 지층과 유사한 백악기 지층 상부에서 발견되는 공룡 화석들은 매우 흔히 석회암층이나 백악(chalk)과 같은, 바다 퇴적물에서 발견되고 있다.[7]

이러한 발견들은 세속적 과학자들이 제안한 것처럼, 백악기에 공룡들이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을 실제로 입증하는 것일까? 아니면 전 지구적 대홍수로 육상생물과 바다생물들이 혼합되었고, 공룡 사체는 물에 의해 운반되어, 파묻혀졌던 것일까? 증거들은 후자의 설명이 더 적절해보임을 가리킨다. 전 지구적 홍수는 육상공룡들과 육상생물들을 바다로 쓸어가 버렸고, 바다생물과 혼합하여 파묻어버렸다는 해석이, 이러한 모습의 화석기록에 대한 보다 적절한 설명으로 보인다. 우리는 전 세계의 퇴적지층들 속에서 육상생물과 바다생물의 화석들이 혼재되어 있음을 보고 있다. 이 발견도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References

1. Sallam, H. M. et al. 2018. New Egyptian sauropod reveals Late Cretaceous dinosaur dispersal between Europe and Africa. Nature Ecology & Evolution. DOI: 10.1038/s41559-017-0455-5.
2. No Author. New Egyptian dinosaur reveals ancient link between Africa and Europe. Article posted on phys.org January 29, 2018, accessed February 12, 2018.
3. Soliman, M. A. et al. 1986. Sedimentologic and tectonic evolution of the Upper Cretaceous-Lower Tertiary succession at Wadi Qena, Egypt. Sedimentary Geology. 46 (1-2): 111-133.
4. Ciobota, V. et al. 2013. Raman investigations of Upper Cretaceous phosphorite and black shale from Safaga District, Red Sea, Egypt. Spectrochimica Acta Part A: Molecular and Biomolecular Spectroscopy. 118 (C): 42-47.
5. Claeson, K. M. et al. 2014. A revision of the Upper Cretaceous lepidosirenid lungfishes from the Quseir Formation, Western Desert, central Egypt. Journal of Vertebrate Paleontology. 34 (4): 760-766.
6. Clarey, T. 2015. Dinosaurs in Marine Sediments: A Worldwide Phenomenon. Acts & Facts. 44 (6): 16.
7. Csiki-Sava, Z. et al. 2015. Island life in the Cretaceous-faunal composition, biogeography, evolution, and extinction of land-living vertebrates on the Late Cretaceous European archipelago. ZooKeys. 469 (4474): 1-161.

*Dr. Timothy Clarey is Research Associate at ICR and earned his doctorate in geology from Western Michigan University.
Stage image credit: Copyright © 2018. Used in accordance with federal copyright (fair use doctrine) law. Usage by ICR does not imply endorsement of copyright holder.

 

*관련기사 : 사하라 사막서 스쿨버스만한 신종 공룡 발견 (2018. 1. 30. 나우뉴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130601017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된 새 공룡 화석 (2018. 2. 6.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235141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10466/ ,

출처 - ICR News, 2018. 2. 19.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89

참고 : 6615|6686|6171|6172|5032|3271|3347|4235|6497|5237|6346|5682|5557|5491|6227|6021|6111|5857|5407|5266|4716|3902|2106|5060|3129|4320|4289|2171|4314|4496|3079|3081|3086

genesispark.com,s8int.com
2018-01-29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9 

: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역사, 그림, 예술품에 등장하는 공룡! 

(Dinosaurs in Literature, Art & History of Africa and America) 

<웹사이트 genesispark.com, s8int.com, 발췌>



이집트 문화에 등장했던 공룡

많은 고대 역사가들은 이집트 근처의 습지와 사막에 서식하는, 날개달린 뱀(winged serpents) 또는 익룡(pterosaurs)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와 다른 문헌에 날개달린 뱀은 자주 등장하는데, 심지어 날개달린 뱀을 의미하는 이집트 상형 문자(glyph)도 있다. (아래 그림의 이집트 석회암 펜던트 하단에 있는 형상을 보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집트 투트 왕(King Tut)의 황금 왕좌(아래 그림)에는 팔걸이가 날개달린 뱀(winged serpents)으로 되어 있다. 우제트(Wadjet)로 알려진 이집트의 날개달린 뱀은 파라오(Pharaohs)의 보호자로, 나일 강의 수호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사실 날개달린 뱀은 고대 이집트의 많은 관(coffins)들에 그려져 있다.

많은 묘사들은 익룡의 가죽 날개와는 다르게, 깃털의 날개를 가진 우제트 코브라 여신(Wadjet cobra goddess or Uraeus, 우레우스)을 그려 놓고 있다. (아래의 파피루스를 보면, '엄호 천사(saraph, 사랍, 치천사)'가 오시리스 신(god Osiris)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북부의 아크지브(Achziv)에서 발굴된, 이집트 스타일의 스캐럽 인장(scarab seal)에는 박쥐 같은 날개를 갖고 있는 생물이 새겨져 있다.(아래 그림). 인장은 BC 1292~1075년경의 것으로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Giveon, Raphael, Scarabs From Recent Excavations in Israel, 1988, p. 37.)

아래의 그림은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 들어있는, 이집트의 발을 가진 뱀인 우제트(Egyptian Wadjet)이다. (Keel, Othmar, Jahwe-Visionen und Siegelkunst, 1977, p. 77.)

이집트에 날아다니는 뱀(flying serpents)이 있다는 보고는 160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이탈리아의 박물학자인 프로스퍼 알핀(Prosper Alpin)은 1580년대에 이집트의 매혹적인 자연사를 기록했는데, 그는 그 생물에는 볏(crest)이 있고(머리 꼭대기에 작은 뼈나 케라틴 조각), 꼬리는 발가락처럼 두껍고, 길이는 종려나무 가지만큼 길고, 잎 모양의 꼬리를 갖고 있었다고 묘사해놓았다. (Alpin, P., Histoire Naturelle de l’Egypte, tr. by R. de Fenoyl, 1979, pp. 407-409.) 현대에 화석들이 발견되어 복원되었을 때, 이 기록된 모습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BC 650년경 앗시리아의 습지에 있던 거대한 동물은?

.BC 800~525년경에 만들어진 고대 이란의 ‘아르잔 접시(The Arjan Bowl)’

1982년 이란 남부의 자그로스 산맥 깊숙한 곳에서 '아르잔 무덤(Arjan tomb)'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귀중한 유물들과 금속 물체들이 다수가 발굴됐다. 1985년 무덤과 그 부장품들에 대한 최초의 상세한 설명이 발표됐을 때, 한 청동 접시(bronze bowl)는 단지 '커다란 얕은 접시(large shallow bowl)'로 기술됐었다.

앗수르(Assyrian) 또는 엘람인(Elamite)이 BC 800~525년경에 만들었던 이 고대 접시는 레지스터(registers)라 불리는 다양한 그림들이 여러 원들의 둘레에 고리를 이루며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들은 고대 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묘사해놓고 있었다. 레지스터 중 하나에는 고대 습지에서 사냥을 하는 사냥꾼, 군인, 다수의 사람들을 묘사해 놓았다. 다양한 고대 그림들에 대한 많은 연구와 추정들이 있었고, 실제로 몇몇 사람은 유물의 다양한 측면에 관하여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림 중 하나는 매우 흥미로웠는데, 나무에 가려 머리와 꼬리만 보이고 있는 한 거대한 동물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아래 그림 맨 좌측).

성경 욥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베헤못을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것이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욥기 40:15~17)

.상; 숲(양치식물로 보임) 사이에 있는 '알 수 없는' 생물.
하; 식물을 먹고 있는 용각류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은 코끼리 또는 하마를 그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거대한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brachiosaurus) 또는 디플로도쿠스(diplodocus)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란 루리스탄의 청동 말(horse)은 오리주둥이 공룡?

루리스탄 청동(Luristan bronzes)는 고대 이란 서부에서 나온 특별한 청동상 유물들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작품은 BC 900~7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Luristan Bronze Double Headed Horse Sculpture, BC 900-700, Bronze, Size(h): 9.5cm, Persian). 이 특별한 청동 조각상에 대한 박물관의 설명은 양방향으로 머리를 가진 말(double headed horse)이라는 것이다. 부가적인 설명은 이렇다 : ”이런 부적(amulet)은 부분적으로 기발하고, 부분적으로는 신비스럽고, 이 소중한 생물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반영된 것 같다.” 박물관은 이 생물을 말(horse)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지만, 기발하고 신비스럽다고 표현한 이유는 말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생물은 말(horse)이 아니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동의할 수 없겠지만, 이 생물은 볏(crest)을 갖고 있는 생물인, 코리토사우루스(Corythosaurus), 히파크로사우루스(Hypacrosaurus), 또는 람베오사우루스(Lambeosaurus) 공룡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이 생물은 말보다는, 람베오사우루스와 더 비슷하게 보인다. 우리는 이 조각상이 정확히 어떤 종의 공룡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볏이 있는 공룡 종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말을 닮았는지, 공룡을 더 닮았는지는 당신이 판단하라.


아프리카 말리의 도곤 족은 공룡을 타고 다녔는가?

이것은 1800년대 중반에 서아프리카 말리(Mali)에 살았던 아프리카 부족인 도곤(Dogon) 족이 만들었던 청동 용기(bronze vessel)이다. 조각류(Ornithopod) 공룡 같이 생긴 이 생물의 등(용기의 뚜껑)에는 사람이 올라타고 있다. (Antique African bronze dinosaur 1800’s AD, measures: 14' x 7 1/2').

이 청동 용기가 제작된 시기는 리처드 오언(Richard Owen) 경이 영국에서 '공룡(dinosaur)'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할 때와 같은 시기이다. 긴 목과 긴 꼬리를 갖고 있는 파충류로, 강한 턱선(jawline)과 능선이 있는(ridged) 머리와 목은 그리포사우루스(Gryposaurus, 구부러진 코를 갖고 있음)와 같은 조각류(ornithopod)의 오리주둥이 공룡(hadrosaur)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이 공룡의 뼈들은 미국 유타주의 카이파로윗츠 지층(Kaiparowits Formation)에서 발견되었다. 피부에 표현된 다이아몬드 모양의 패턴은 유타주 남부에서 발견된 오리주둥이 공룡에 남아있던 피부 인상(skin impressions)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올라타고 있는 도곤족 사람 크기와 커다란 코를 가진 그리포사우루스의 크기 비율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사람들은 공룡을 목격했는가? 

1890년 4월 26일, Tombstone Epitaph(애리조나의 지역 신문)는 2명의 카우보이가 날개달린 용으로 기술된, 익룡을 닮은 생물을 발견하고 총으로 쏴 떨어뜨렸다고 보도했다. 그 생물은 날개 길이가 4.8m이고, 몸체 폭은 1.2m, 길이는 2.8m 였다고, 카우보이들은 말했다. 카우보이들은 그것이 생물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날개 끝을 자른 것으로 보였다. 신문 기사로 보도된 그 생물은 텍사스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케찰코아툴루스(Quetzelcoatlus)와 적합해 보인다. (Gish, Dinosaurs by Design, 1992, p. 16.). 이 생물은 수 족(Sioux) 아메리칸 인디언 전설에 등장하는 톱니모양의 날개(jagged-winged), 무시무시한 이빨들을 가진, 날아다니는 생물인 천둥새(thunderbird) 또는 와킨얀(Wakinyan)이 될 수 있을까? 이 천둥새는 올림픽 산(Olympic Mountains) 꼭대기의 동굴에 살았으며, 해산물을 먹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수리(Wanbli), 또는 매(Cetan)와는 다르게, 천둥새로 불리는 와킨얀은 거대한 생물로 알려져 있었으며, 어린이들을 낚아채서 잡아가며, 천둥이나 번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폭풍우 때 번개에 맞아 땅에 떨어졌던 것으로 추정), 천둥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Geis, Darlene, Dinosaurs & Other Prehistoric Animals, 1959, p.9). 그 생물은 찢어지는 울음소리와 우레와 같은 날개 치는 소리로도 구별되었다. (Lame Deer’s 1969 interview).

진화 동물학자인 데스몬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상상의 동물 세계에서 용(dragon)은 독특하다. 상상의 동물이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미스터리하게 멸종되기 전까지, 실제로 존재했던 다른 생물 계통처럼, 한때 이들 용에도 어떤 가계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비교적 최근인 17세기의 학자들도 용의 존재는 과학적 사실로서, 용의 해부학 및 자연사를 자세하게 기록해 놓고 있었다. 예를 들어, 박물학자인 에드워드 톱셀(Edward Topsell)은 1608년에 용을 파충류로 간주했고, 뱀(serpents)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썼다 : ”여러 종류의 용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라(지역)들에 따라 구분되고, 몸체 크기가 다르며, 다른 형태로 존재했다.” ”보는 것보다 더 두려운 용(dragon)”이라고 말했던 세익스피어와 같지 않게, 톱셀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목격되어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우리는 용을 결코 보지 못했고, 오직 들어만 왔으나, 자신의 나라에서 용들은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목격되었고 도살되었던 것이다.” (from the forward to Dr. Karl Shuker’s Dragons: A Natural History, 1995, p.8.)

진화론자인 아드리엔 메이어(Adrienne Mayor)은 미국 원주민들이 공룡 화석을 발굴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지어냈을 가능성을 조사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일부 공룡들이 그때까지 생존해있었고, 인디언들이 공룡들을 목격했다면, 그녀가 받았던 일부 보고들은 훨씬 더 의미가 통하는 것이었다. 인디언들이 살았던 시대에 훈련받은 고생물학자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오래된 아시니보인(Assiniboine) 이야기는 먼 낯선 곳을 여행하고 큰 도마뱀을 목격했다는, 한 전투에 관한 것이다. 메이어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 있었다 : ”전사(warriors)들은 회의를 열었고, 아시니보인의 이상한 생물에 대해 논의를 했다. 더 많은 전투 영예를 원했던 한 전사는 그 생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것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창을 가지고 가서, 거대한 도마뱀 종류의 하나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창으로 그 생물을 찌르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전투 중에 죽임을 당했고 먹혔다.” (Mayor, Fossil Legends of the First Americans, 2005, p. 294.)

이것은 비늘(scale)을 갖고 있는 거대한 파충류의 목격에 대한 신뢰할만한 이야기로 보여진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단순한 공룡 뼈들로부터 거대한 파충류에 비늘이 있는지 여부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북미 대륙에서 털복숭이 매머드(Woolly Mammoths)는 사람이 도착하기 훨씬 이전에 번성했던 생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매머드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살해되고 도살된 장소가 발견됨으로서, 북미 대륙에서 사람과 매머드가 동시대를 같이 살았다는 것이 확립되었다. 아마도 이것과 유사하게, 사람과 공룡이 동시대를 살았다는 증거들도 앞으로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매혹적인 익룡과 같은 생물의 그림이 새겨진 도자기(pots)가 미국 앨라배마주 마운드빌(Moundville)에서 발견되었다.(위의 사진). '날개달린 뱀(winged serpent)'은 비늘, 늑골이 있는 날개, 긴 꼬리를 갖고 있었다. 어떤 것은 부리에 이빨의 흔적도 갖고 있었다. 마운드빌은 1300년경으로 평가되는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n)의 미시시피 문명의 한 장소이다.

 

미국 애리조나 우파키 국립공원의 암벽에 그려진 공룡?

이것은 미국 애리조나 주의 우파키 국립공원(Wypatki National park)의 미들 메사(Middle Mesa) 근처에 있는, 인디언들이 새겨 놓은 '공룡' 암각화 중 하나인데, 2일 동안을 꼬박 걸은 후 크리스 메이어(Chris Maier)가 촬영한 것이다. 이 특별한 암각화는 ”Puff the Magic Dragon(마법의 용 퍼프, Peter, Paul and Mary가 1963에 발표했던 노래)”이라고 불리며, 불을 뿜는 공룡(a fire breathing dinosaur)을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암석에는 유기물질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암각화에 대한 연대측정은 불가능하다. 이 암각화의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적어도 수백 년 전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고, 1천년 이상 오래됐을 수도 있다.

 

미국 뉴멕시코 주에 푸에블로 인디언이 그려놓은 공룡?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볏을 가진 오리주둥이 공룡(duck-billed dinosaur)의 그림이 발견되었다. 이곳과 다른 여러 장소에서는 이들 공룡의 뼈들이 발견되었다. (Photo from 'Clues to the Past', by the Archaeological Society of New Mexico:#16, 1990, edited by Duran and Kirkpatrick. The painting is attributed to the Pueblo 4 culture - AD 1300 to AD 1500.)

”오리주둥이 공룡인 파라사우롤로푸스(Parasaurolophus), 크리토사우루스(Kritosaurus), 뿔이 있는 펜타케라톱스(Pentaceratops) 공룡들은 백악기 말에  뉴멕시코 주 북서부에서 가장 흔한 공룡이었다.” - New Mexico State Museum. 이 그림과 오리주둥이 공룡인 람베오사우루스(lambeosaurus)를 비교해보라.

2012년 5월 반스 넬슨(Vance Nelson)은 페루 북부의 아마존 열대우림 경계 지역의 한 바위에서 암벽화(pictographs)를 발견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위의 그림). 이러한 암벽 그림은 세속적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수천 년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암벽화 중에 하나는 9명의 전사들이 공룡처럼 보이는 한 생물을 사냥하고 있었다. 1940년대에 미국 탐험가 퍼시 포싯(Percy Fawcett)은 아마존의 같은 지역에서 공룡 모양의 거대한 생물을 목격했다는 보고를 했었다.

이 암각화는 2012년 제레미 스프링필드(Jeremy Springfield)가 뉴멕시코 주의 로스루너스(Los Lunas) 외곽에 있는 히든 마운틴(Hidden Mountain)을 여행하다가 발견했다.(위의 사진). S8int 웹 사이트는 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림은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바위에 있었는데, 매우 분명하게 공룡과 유사한 생물의 암각화를 볼 수 있었다. 고대 푸에블로(Pueblo) 족은 그 생물이 살아있던 공룡이 아니라면, 어떤 동물을 묘사하려고 했던 것일까?

지질학자인 헨리 스쿨크래프트(Henry Rowe Schoolcraft)는 수 족(Sioux Indians) 인디언들에 대한 광범위한 글을 썼던 인디언 담당관(Indian agent)이기도 했다. 그는 인디언들로부터 웅크테히(Unktehi)라 불리는, 황소 같으나 황소보다 훨씬 크고, 커다란 뿔을 갖고 있는, 괴물 같은 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1850년 경에 헨리는 자작나무 껍질(birchbark) 위에 웅크테히 괴물에 대한 그림들을 다시 옮겨 그렸다. 그 그림은 슈피리어 호를 카누로 가로지르던 5명의 수 인디언들이 자이언트 거북과 뱀과 큰사슴(moose)의 모습을 같이 갖고 있는 이상한 생물과 벌인 전투를 그려놓은 암벽화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것은 분명히 공룡이었다. 민속학자들이 인디언들은 인터뷰했을 때, 그들은 웅크테히가 거대한 파충류 또는 다리를 가진 뱀으로 설명했다. 웅크테히는 발을 가진 거대한 비늘이 있는 뱀의 모습이었고, 톱니 모양의 등뼈(notched backbone), 또는 커다란 톱 같은 볏(crest like a giant saw), 그리고 육중하고 뾰족한 꼬리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웅크테히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슈피리어호 주립공원의 미쉬페치우(Misshepezhieu) 지역에 있는 아가와 록(Agawa Rock)에 그려진 암벽화(Pictographs, 위의 그림)에 그려진 생물과 동일한 모습이었을까? 인디언들의 말에 의하면, 웅크테히는 늪지대에 사는 생물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자인 아드리엔 메이어(Adrienne Mayor)는 수 족 인디언들이 그들이 보았던 화석으로부터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Mayor, Fossil Legends of the First Americans, 2005, pp. 235-237.) 하지만 그림과 그들의 설명은 낮은 위치의 몸체, 긴 꼬리, 육중한 갑옷, 다중 뿔을 가진 안킬로사우루스 공룡을 떠올리게 한다.(위의 우측 아래). 갑옷이 있고 뿔을 가진 생물은 아가와 록 위쪽에 있는 오지브와 족(Ojibwa Indian) 그림에서도 또한 발견되었다.  

 

고대 멕시코에 점토로 만들어진 안킬로사우루스?

진화론이 아니라면, 고대 미술에서 용과 다른 유형의 '신화적' 동물을 보았을 때, 즉시 공룡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진화론에서는 사람과 공룡이 결코 만나지 못했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설명을 찾아야만 했다. 우리는 이 고대 예술품에 등장하는 많은 생물들이 '신화적' 동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생물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 사진은 멕시코 할리스코 문화(Jalisco culture, BC 300~AD 300)의 테라 코타(Terra Cotta, 점토를 구워서 만든 토기류)이다. 역사가들과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할리스코 문화는 오늘날 멕시코시티의 서쪽 태평양 연안에 있는 서부 멕시코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가 주목하는 첫 번째 동물은 전시관에서 ‘뿔이 있는 두꺼비(horned toad)’로 설명하고 있는 생물이다. 아마도 그럴 수도 있다. 뿔이 있는 두꺼비의 다양한 품종들이 있는데, 두 가지 예를 제시하였다.(위의 오른쪽 사진). 그러나 그 생물은 수천만 년 전에 멸종됐다고 말해지고 있는 안킬로사우루스(ankylosaurs)를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행하게도, 그 점토상의 꼬리가 분실됐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인데, 왜냐하면 많은 안킬로사우루스 공룡들은 매우 독특한 유형의 꼬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다른 문화의 예술품들은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지만, 할리스코의 점토상들은 인간의 삶을 나타내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점토상들은 대게 무덤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Logan museum).

안킬로사우루스. 당신이 안킬로사우루스(ankylosaur) 공룡을 본다면 어떻게 식별할 수 있겠는가? 안킬로사우루스는 6천만 년 이상 지구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장 성공적인 공룡 중 하나였다고 말해진다. 캐나다 앨버타에서 발견된 공룡은 안킬로사우루스 과 중에서 가장 큰 몸집의 공룡 중 하나였다. 이 갑옷으로 무장된 공룡은 땅딸막한 다리, 짧고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안킬로사우루스의 몸무게는 4,000~7,000kg, 길이 7~11m, 크기/높이는 1.7m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크기는 다양했다. 일부는 대형 거북이 크기였고, 일부는 자동차처럼 컸다. 그들의 몸을 덮고 있는 갑옷(armour), 뾰족한 못(studs), 꼬리 곤봉(tail clubs)은 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했다. 안킬로사우루스는 탱크처럼 지어졌으며, 거대한 소화계를 지지하는 넓은 후방 부위는 소비한 식물을 잘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모든 안킬로사우루스들은 초식성 동물이지만, 치아가 약하여 음식을 잘 씹지 못했다. 대신에 식물 전체를 삼켜서, 거대한 위장으로 소화시켰다. 그들의 다리는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육중한 근육으로 되어 있었다.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짧은 거리는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calgary public library).

한때 안킬로사우루스와 같은 종으로 간주됐었던, 유오플로케팔루스(Euoplocephalus)는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안킬로사우루스일 것이다. 그것은 안킬로사우루스 보다 훨씬 작았는데, 길이 6m, 너비 2.4m, 몸무게는 2,700kg 정도로 알려져 있다. 등에는 뾰족한 못과 같은 돌기(spikes)가 줄을 지어 박혀있는 골판(bony plates)으로 되어있고, 꼬리는 곤봉(club)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 생물은 중무장이 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눈꺼풀에도 커다랗고 구부러진 골판을 가지고 있다. 둥근 주둥이는 부리에서 끝나는 작고 약한 이빨들을 갖고 있었다. 유오플로케팔루스 화석은 복잡한 비강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유오플로케팔루스가 매우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것은 짧고 튼튼한 네 다리로 걸었고, 발굽(hoof) 모양의 발톱을 갖고 있었다.

유오플로케팔루스는 캐나다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갑옷 공룡 중 하나였다. 실제로 알려진 모든 표본들은 이 지방에서 발굴된 것들이다. 그것은 1902년 로렌스 램(Lawrence Lambe)에 의해서 처음 발견되었다. 모든 표본은 7천만 년, 또는 그 이상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많은 화석들이 꼬리 곤봉을 가진 채 발견되었다. 꼬리 곤봉은 골격의 나머지 부분보다 훨씬 더 일반적이다.

 

고대 멕시코의 타악기 형상은 티라노사우루스?

멕시코의 뮤직 하우스(House of Music)에는 콜럼버스 이전의, 마야(Maya)와 아즈텍(Aztecs)과 같은 고대 히스패닉 문화에서의 고대 유물들이 수집되어 있다. 이 특별한 것은 동물 모양의 테포나츠리(zoomorphic teponaztle)로 확인된 것이다. ‘동물 모양의(zoomophic)’는 단어는 말 그대로 어떤 동물의 모양을 본 딴 것임을 말하며, ‘테포나츠리(teponaztle)’는 일종의 북(drum)과 같은 고대 타악기이다. 우리의 눈에 이것은 수천만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말해지고 있는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또는 다른 육식공룡처럼 보인다. 당신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가?  

테포나츠리 또는 아즈텍의 드럼(Aztec Drum)은 콜럼버스 이전 시대인 고대 멕시코의 아즈텍 및 마야 사람들이 연주했던 직사각형 모양의 일종의 북이다. 그들의 고대 연주 스타일은 16세기에 잃어버렸다. 오늘날, 원래의 연주 기법은 전통 멕시코 댄스 그룹에서 활용되고 있다. 고무로 감싼 나무 망치로 악기 상단의 혀 부분을 치면서 소리를 낸다. 사운드 패턴을 결합함으로써 연주자는 복잡한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다.

 

멕시코 아캄바로의 공룡 점토상들

1945년 고고학적 탐사 경력이 있는 왈데마 줄스루드(Waldemar Julsrud)는 멕시코의 아캄바로(Acambaro)에 살면서, 엘 토로 산(El Toro Mountain) 기슭에 묻혀있는 진흙 점토상(clay figurines)들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3만3천 개가 넘는 점토상 및 돌 조각상들이 발견되었다! 점토상들은 호각(whistles), 악기, 대략적 모습의 동물들, 괴물 같은 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이 점토상들은 줄스루드가 공동 발견했던 츄피쿠아로 문명(Chupicuaro Culture)의 유물들(BC 800~200년)과 매우 유사했다.

그러나 줄스루드 발견은 많은 수의 점토상들이 공룡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에, 진위 논란이 일게 되었다. 1954년 멕시코 정부는 한 팀의 고고학자들을 파견하여 조사했다. 1955년 뉴햄프셔 대학의 인류학 교수였던 찰스 헵굿(Charles Hapgood)는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방사성 연대측정(radiometric dating)과 열발광 테스트(thermo-luminescence testing)와 같은 정교한 조사를 수행했다. 후속적인 조사들이 멕시코 정부에 의해서도 수행되었다. 따라서 줄스루드의 작업은 상당한 정밀한 조사들을 거쳤다. 심지어 멕시코 정부는 암시장에서 이 유물을 파는 사람들을 투옥했다.

또한, 공룡은 매우 민첩하고 활동적인 자세로 표현되어 있었는데, 최근의 과학적 증거들로 밝혀진 것들과 잘 부합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점토상을 만든 예술가가 실제로 그 생물들을 목격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카의 돌(Ica Stones)과 마찬가지로, 일부 용각류는 구별되는 등 주름(spinal frill)이 묘사되어 있었다. 같은 위치에서 빙하시대의 말(ice-age horse, 현재는 멸종됨), 털복숭이 매머드의 화석화되지 않은 뼈들, 고대 인류의 다수의 두개골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이 유물의 고대성(antiquity)을 확인해주는 것이었다.(Hapgood, Charles, Mystery in Acambaro, 2000, p.82.).

1955년에 이반 샌더슨(Ivan T. Sanderson) 박사는 그 당시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브라키오사우르스(brachiosaurus) 공룡의 모습이 점토상에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 샌더슨은 썼다. ”이 점토상들은 매우 훌륭하고, 검고 광택이 나는 모양의 도자기류(ware)이다. 크기는 약 30cm 정도이다. 중요한 점은 동아프리카와 북아메리카에서만 알려진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준 문헌에서 그 공룡의 골격에 대한 많은 복원도들이 있었지만, 몸 전체에 대한 것으로는 유일하다. 이것은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모습과 정확히 동일하다.” (Hapgood, p. 85.)


줄스루드 발견의 진실성에 대한 또 다른 증거는, 이구아노돈(Iguanodon)을 닮은 점토상이 제공한다. 이구아노돈은 최초로 발견된 공룡 뼈 중 하나였다. 1800년대 중반에 그려진 최초의 외관은 매우 우스꽝스러웠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상당히 개량되었지만, 오늘날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부족했다.

아캄바로 점토상들은 우리가 최근 수십 년 동안에 얻은 지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1940년대에 어떤 사기꾼들이 이러한 모습의 공룡 점토상들을 위조하여 만들어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최근에 용각류 공룡들을 '날씬하게 복원하는' 움직임이 있어서, 그들은 더 민첩하고, 덜 우둔했다. (아캄바로 점토상과 비슷함). 예를 들어, 2009년에 과학자들은 뼈의 너비에 기초하여 동물의 체중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통계 모델을 고안해 냈는데, 이에 의하면 약 42톤의 체중으로 말해지던 아파토사우루스(apatosaurus)는 훨씬 적게 나간다는 것이다. 새로운 방정식에 따르면, 이들 공룡의 실제 무게는 약 20톤으로, 이전 추정치의 절반보다 작다는 것이다. (Moskowitz, Clara, 'Giant Dinosaurs Get Downsized,” Live Science, December 12, 2009.)

아캄바로 점토상들 중에 인식가능한 공룡으로는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 같은 수각류 점토상과, 안킬로사우루스(Ankylosaurus) 점토상이 있다. 이 점토상들의 부리는 약간 부서져 있었지만, 뚜렷한 뿔, 짧은 목, 피부 돌기, 땅딸막한 발, 강력한 꼬리 등은 멋지게 표현되어 있다.(이 두 작품은 모두 Genesis Park에 수집되어 있다.) Genesis Park 스탭들은 이 유물들의 대부분이 발굴됐던 아캄바로의 토로 산에서 수행됐던 연구에 참여했었다. 많은 조각상들이 아직도 그곳에 묻혀 있으며, 침식, 건설, 농업으로 인해, 새로운 점토상들이 지속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참조 : Acambaro Photo Gallery
http://www.bible.ca/tracks/tracks-acambaro-dinos.htm
멕시코 아캄바로의 공룡 조각상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62
아캄바로의 점토상들에 대한 12명의 목격자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49

 

마야 문명의 케찰코아틀은 익룡?

먀야인들이 깃털달린 뱀신(feathered serpent god)인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을 숭배했다는 기록은 기원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날개달린 뱀(winged serpent)에 대한 광범위한 믿음(아즈텍 문명에서도 또한 존재함)으로 인해, 고대문명을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마야인들이 실제로 있었던 동물에 근거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고대 마야인들이 숭배하던, 파충류 특성을 갖고 있는 한 특별한 새에 대한 부조(relief sculpture)가 멕시코의 베라크루즈 동북부에 있는 토토나카팡(Totonacapan)에서 발견되었다. 멕시코의 고고학자이며 저널리스트인 발굴책임자 볼리오(Jos-Diaz-Bolio)는 타진(Tajín)의 폐허에 위치한 곳에서 발견된 날아다니는 뱀-새(serpent-bird)의 부조는 마야인들이 단지 상상으로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고대 마야인들이 살았던 1000년에서 5000년 전에 실제로 그들과 같이 살았던 동물을 묘사하여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그러한 괴수가 고대 마야문명과 동시대에 존재했다면, 그들이 남겨놓은 조각은 진화론적 가설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특징을 가지는 동물은 대략 1억3천만 년 전에 사라졌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Anonymous, 'Serpent-Bird of the Mayans”, Science Digest, vol. 64 November 1968, p.1)

여기에 있는 것은 익룡의 머리임이 틀림없는, 마야인들이 만들어놓은 조각상이다. 그 생물은 현란한 거대한 머리 볏을 갖고 있었던, 브라질에서 발견되는 익룡의 일종인, 아마도 타페야라(Tapejara)로 추정된다. 마야인들은 한 동물 또는 여러 동물의 모습을 갖고 있는 정교한 머리 장식을 가진, 사람의 조각상을 자주 만들었다. 현재의 화석으로부터 복원된 익룡의 모습들은, 거의 전적으로 뼈와 두개골의 조각들로부터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의해서 복원된 작품임을 명심하라. 따라서 그들이 그려놓은 타페야라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멕시코의 팔렝케 박물관(Palenque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이 작품은 1200년에서 2000년 전의 작품이다. 그것은 파충류이며, 놀라운 머리 볏, 머리 뒤쪽으로 연장된 뾰족한 끝, 익룡 류에서 확인된 아래로 휘어진 부리, 그리고 공포스러운 얼굴을 갖고 있다. S8int.com은 그것은 남아메리카의 특정 익룡 종을 보도했던 한 기사가 제시했던 익룡의 머리로 추정한다. 몇몇 목격자들의 묘사에 의하면, 그들은 살아있는 익룡을 목격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타페야라(Tapejara)는 일종의 바다 익룡(marine pterosaur)이다. 페테이노사우루스(Peteinosaurus)와 같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으로 알려진 익룡은 이미 잘 발달된 파충류였다. 대부분의 고생물학자들은 익룡을 공룡의 가까운 사촌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간 단계인 전이형태가 없으므로, 이것은 불확실하다. 타페야라는 매우 짧은 꼬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후기 익룡이었다. 턱의 끝은 새의 부리처럼 앞쪽에서 아래 방향으로 향해있다. 타페야라는 90cm 이상의 화려한 머리 볏(head crest)이 있었다. 수컷 공작새의 꼬리 깃털처럼, 이것은 전시 목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이름은 'The Old Being(오래된 존재)'를 의미한다. 이것은 브라질 원주민인 투피 인디언(Tupi Indians)의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타페야라 속은 크기에서 상당한 다양성을 보여주었으며, 각 종들은 다른 크기와 다른 모양의 볏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큰부리새(toucans)가 그들의 밝은 부리(bills)를 사용하여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이, 아마도 동료들에게 신호와 전시 목적으로 사용됐을 지도 모른다. 대게 타페야라의 머리 볏은 주둥이 위로 반원형으로 나있으며, 머리 뒤쪽으로 연장된 골성의 갈퀴(bony prong)처럼 되어 있다. (Tapejara navigans에는 이 갈퀴가 없지만).

여기서 우리는 이 조각상이 타페야라 익룡을 묘사한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은 익룡의 일종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익룡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단지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음을 말하려는 것이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제시한 '증거'들이 다른 '증거'보다 더 설득력이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을 제시하는 것이고, 그것을 믿을지 안 믿을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위의 사진은 마야인의 조각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날아다니던 파충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프테로닥틸로이드 익룡(pterodactyloid pterosaur)과 매우 유사한 이 조각은 고대 마야 예술가에 의해서 머리 볏, 커다란 눈, 가죽 날개, 날개 발톱 등이 매우 실제와 같이 묘사되어 있었다. 이 조각은 한 사냥꾼이 죽은 생물을 집으로 운반하는 모습인지, 또는 사냥꾼의 자켓이 파충류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마야문명의 고대 도시 코판에 익룡이?

”코판(Copán)은 광대한 마야문명의 남부지역에서 가장 큰 고대 도시로서, AD 300~900년 전성기 시대(Classic Period)에 번성했다.” 전 세계에는 수백 종, 아마도 수천 종의 익룡(pterosaurs) 및 프테라노돈(pteranodons)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생물이 남미의 많은 익룡 유형들 중(우리가 정확하다면) 정확하게 어떤 타입을 표현한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새’라는 코판 박물관(Copan Sculpture Museum)의 설명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이 진화론에 의해서 수천만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말해지는 익룡의 일종이라고 믿는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과학은 공룡들이 실제로 어떻게 보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익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표본은 긴 부리를 갖고 있는 많은 익룡류와 마찬가지로, 그 부리 위에 특징적인 노치(notch, 패임, 절흔)가 있음을 주목하여 보라. 그러나 펠리컨을 포함하여 일부 새들도 이 노치를 갖고 있다. 이 표본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익룡(Pterosaurs)도 물고기를 먹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늘 그렇듯이, 증거가 당신을 확신시키는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되는지는 당신이 결정할 일이다.

 

코스타리카의 돌 테이블의 형상은 티라노사우르스?

아래의 조각은 '메타테(metates, 돌 위에 막대를 굴려 곡물을 갈아내는 도구)'라고 불리는, 연마를 위해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조각이 있는 돌 테이블(stone table)이다. 이 조각들은 콜럼비아 이전 시대의 코스타리카 인이 만든 것으로, BC 100~AD 800년의 연대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이 특별한 조각은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에 전시되어 있으며,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 또는 기간토사우루스(gigantosaurus)와 같은 육식성의 수각류 공룡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Costa Rica. Carved Stone Metate. Pre-columbian. 100 B.C. to 800 A.D. Photo: by Joy Wang. Art Institute of Chicago, 2003.)

.조각상과 티라노사우르스를 두 각도에서 비교하였다.

”스탄(Stan)에서 관절이 분리된 상태의 두개골의 발견은 과학자들에게 티라노사우르스 렉스(T. rex)의 두개골 구조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주었다. 새로운 뼈가 발견되었는데, 지금까지 다른 뼈의 일부로 여겨졌던 뼈였다. 특히 호기심은 끄는 뼈는 안와(eye socket) 위쪽 각 측면에 있는 2개의 뼈이다. 이 두 개의 뼈는 티라노사우르스에게 육중한 눈썹 표정과 눈 위에 뿔 같은 구조에 대한 힌트를 준다.”... Michael Covel on Stan, a nearly complete T-Rex skull.

왼쪽 : 큰부리새(toucan)를 조각해놓은 메타테(Bird effigy metate). (Costa Rica, Atlantic watershed. A.D. 300-700 Carved volcanic stone. L. 77.5cm. Ht. 38cm)
오른쪽 : 3개의 다리를 가진, Guanacaste-Nicoya 지역에서 발견된 또 다른 메타테. (Late Period IV-V, circa A.D. 300-700. L. 67.3cm)

위의 것은 코스타리카(Costa Rica)에서 발견된 또 다른 메타테(metates)이다. 여기에도 매우 기묘한 비행 생물이 조각되어 있다. 물론 전시관은 '새'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기간의 코스타리카 인들은 독수리나 대머리수리를 경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새들 사진을 연구한 결과, 여기 새겨진 생물은 독수리나 다른 새가 아니었다는 결론에 우리는 도달했다. 이 기묘한 생물은 익룡(pterosaurs)으로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이 생물의 부리는 너무 길고, 두개골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한편 독수리는 중앙에 조각된 생물이 하고 있는 것처럼 뱀을 먹는다. 그러나 익룡도 뱀을 먹는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조각된 생물의 발과 발가락이다. 독수리는 앞으로 향한 3개의 발가락과 뒤로 향한 1개의 발가락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익룡은 뒤쪽을 향하여 뻗어 있는 발가락을 포함하여 5개의 발가락을 갖고 있다. 이 생물의 발과 다리는 익룡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 일치하지만, 조류에서 기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쪽 두 생물의 날개와 마찬가지로, 중앙 생물의 날개는 앞발이 붙어있는 익룡의 날개를 연상시킨다. 또한 앞에서 본 마야의 익룡은 이 코스타리카의 비행 생물과 일치되는 머리와 두개골, 부리 크기 비율을 갖고 있다. 특히 커다란 눈을 갖고 있다. 이것은 새들의 눈보다 훨씬 크다. 물론, 우리의 판단이 잘못 됐을 수도 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파나마의 금 장신구에 새겨져 있는 익룡?

파나마의 아주에로 반도(Azuero Peninsula)의 코클레(coclé)에서 발굴된 커다란 금 장신구(gold double figural pendant, AD 800-1500년, 16.5cm 너비)에는 익룡의 머리 모습을 한 두 전사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각 전사는 약간 휘어진 근육질의 다리, 막대기를 쥐고 있는 긴 철사 같은 발가락, 서로 반대편을 향한 머리, 사다리꼴의 의식용 도끼를 쥐고 있는 바깥쪽 손, 짧은 분할된 도구를 붙잡고 있는 안쪽 손의 모습을 갖고 있었는데, 머리 뒤로 커다란 볏(crest)과 같은 장식을 갖고 있었다.

콜럼버스 이전의 시기에 오늘날 파나마의 코클레(Coclé) 지역에는 다수의 고대 문화가 존재했다. 고고학자들은 이 문화를 도자기 유형으로 막연히 정해왔다. 잘 연구되지 않은, BC 150~AD 300년까지 라물라 시대(La Mula period), 그 뒤로 AD 300~550년까지의 토노시 시대(Tonosi period), AD 550~700년까지 쿠비타 시대(Cubita period)가 뒤따랐다. 통일된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는 이 지역에서 BC 1200년부터 16세기까지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이후 고고학자들은 간격을 두고 작업을 하면서, 놀라운 인공 유물들이 묻혀있는 매장지와 폐허들을 발굴했다. 여기에는 가공된 금, 여러 금속들, 조각된 뼈, 고래 상아, 직물, 보석, 값진 광물들, 도자기 등이 포함된다. 코클레의 금 세공은 이 지역 전체에서 이루어졌으며, 유카탄(Yucatán)의 치첸이트사(Chichen Itza)만큼 멀리 떨어져서도 발견된다. 아래의 그림은 코클레의 금 장신구와 타페야라(Tapejara) 익룡의 머리 볏을 비교하였다. 

비슷한 주제가 그려진 이 시기의 도자기들이 중앙아메리카 전역에 존재한다. 파나마(Panama) 원주민의 코클레 문화(Coclé culture)는 하이엇 베릴(A. Hyatt Verrill)에 의해서 발굴되었다. 그는 코클레 도자기에 익룡과 같은 이상한 생물의 그림이 있음을 주목했고(아래 그림), 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화석 발견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는 매우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있는 부리 같은 턱, 두 개의 휘어진 발톱이 있는 날개, 짧고 뾰족한 꼬리, 파충류에 있는 머리 볏 또는 부속기, 각각 다섯 개의 발톱 발가락이 있는 강한 뒷다리”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클레 문화는 AD 1330~1520년경으로 연대가 평가된다. 그러나 베릴은 이러한 정확한 묘사는 ”익룡 화석이나, 심지어 그림이나 조각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Verrill, A. Hyatt, Strange Prehistoric Animals and Stories, 1948, pp. 132-133).

 

잉카 문명의 나무 그릇에 그려져 있는 공룡을 닮은 생물.

이것은 잉카 제국에서 제례용으로 사용되던, 나무를 조각하고 색을 칠한, 케로(kero)라는 용기이다.(AD 1430~1532). 이 그릇에 조각되어 있는 생물이 도마뱀인지, 공룡인지는 여러분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잉카인들은 조각되어 있는 생물과 같은 매우 커다란 파충류를 사냥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남미의 잉카 제국(Inca Empire, or Inka Empire)은 콜럼버스 이전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다. 제국의 행정, 정치, 군사 중심지는 쿠스코(Cuzco)에 위치해있었다.

이카의 돌(Ica Stones, from the Nasca culture, BC 100~AD 800)로 유명한 페루의 한 지역 근처에서, 용각류 공룡을 닮은 생물이 새겨져 있는 도자기(ceramics)들이 발견되었다.(위의 사진). 이들 나스카의 화병(Nazcan vases)들은 데니스 스위프트(Dennis Swift)의 개인 소장품이다. 이 유물들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매우 큰 눈을 가진 공룡과 같은 생물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에는 피부 주름(dermal frill)을 갖고 있고, 다른 것에는 피부 주름이 없다. 이것은 암수가 다른 성별 이형(sexual dimorphism, 아마도 수컷의 성별 특성) 일 수 있다. 아래의 사진은 도자기 둘레에 새겨져 있는 동물을 리처드 돕스(Richard Dobbs)가 디지털 방식으로 합성한 것이다.

남미의 나스카(Nasca)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모체 문화(Moche culture)의 고고학적 유적지가 있다. 이 모체 부족은 페루의 북부 지역에서 약 100~800년 동안 거주했었다. 현재 리마 박물관(Lima museums)에 있는 유물들 중에는 주둥이가 있는 토기(stirrup-spout pots)들이 있다.(아래 사진). 이들 도자기 항아리에는 적색과 흰색 등으로, 의학적 처치 과정, 전투 사건, 악기, 식물, 동물, 그리고 공룡을 닮은 생물 등 많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페루의 많은 박물관들과 고고학 유적지를 안내하는 공식 안내원들은 원주민들이 자연에서 그들이 보았던 것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 있는 공룡과 비슷한 생물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상상의 동물이라면, 그들에게 영감을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리마 박물관에는 3~4개의 발가락이 있는 긴 목의 파충류 괴물이 그려져 있는 고대의 그릇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것은 꼬리에 육중한 철퇴 같은 것이 그려져 있다. 이 생물들은 피부 주름을 포함하여, 이카 돌(Ica stones)들에 그려져 있는 생물들과 매우 닮았다.

위의 세 유물도 모두 페루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좌측의 것은 커다란 파충류 형태의 동물이 그려져 있는 모체 문명의 토기(Moche pot)이다. 그 생물은 장례 시에 수의(burial cloths)에 그려져 있던 생물과 유사하다. 가운데는 무시무시한 이빨들을 가진 수각류 공룡(theropod dinosaur)을 닮은 황금 유물이다. 그것은 페루 리마의 황금박물관(Museo Oro del Peru)에 보관되어 있다. 오른쪽은 파라카스 토기(Paracas pot)로, 몸통과 꼬리를 따라 있는 피부 볏(dermal crest)이 있는 사나운 공룡과 같은 생물이 그려져 있다.

 

볼리비아 티아우아나코에서 발견된 공룡을 닮은 조각상

위의 사진은 콜럼버스 이전의 볼리비아(Bolivia)에서, 한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지인 티아우아나코(Tiwanaku or Tiahuanaco)에서 발견된 유물이다.(AD 200~1000, Gold Tiwanaku zoomorphic figurines,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Bolivia). 티아우아나코는 잉카제국의 번성에 가장 중요했던 장소로서, 티티카카 호의 남동쪽 해안 근처, 라파스에서 약 72km 서쪽에 있다. 조각가는 유럽 과학자들이 공룡을 발견하기 최소 850년 전에 공룡과 비슷한 생물체를 묘사해 놓았던 것이다.

아래의 꽃병(vase)은 티와나카(Tiwanaku)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싸우고 있는 두 공룡이 묘사되어 있는데, AD 500-1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타일은 나스카 문화의 공룡 묘사(이카의 돌, Ica Stones)와 매우 흡사하다.

 

페루 이카의 돌에 새겨진 공룡들

페루 나스카 문화(Nasca culture, BC 100~AD 800)의 이카 부장석(Ica Ceremonial Burial Stones)에는 공룡을 닮은 생물들이 새겨져 있다. 1500년대에 스페인 정복자들은 페루에서 발견된 돌들에 이상한 생물이 새겨져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심지어 돌들 중 일부는 스페인으로 보내졌다. 잉카문명의 연대기를 기록했던, 주안 산타크루즈 파차쿠티(Juan de Santa Cruz Pachucuti Lumqui)는 1571년에 이카에서 돌들에 새겨진 이상한 그림들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See Swift, Dennis, Secrets of the Ica Stones, 2006.) 돔 제로노모 카브레라(Dom Geronomo Cabrera)는 스페인의 정복자로 1570년에 이카 지역에 정착했다. 그의 후손인 제이콥 카브레라(Jacob Cabrera) 박사는 리마 대학(University of Lima)의 의과대학 교수이자 학과장이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1930년대부터 이카의 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카브레라는 어렸을 때부터 이 돌들을 보았고, 1960년대부터 그도 이 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카브레라 박사가 죽기 전까지 그의 작은 박물관에서 11,000개가 넘는 이카의 돌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다른 데에 있는 것들을 합해 16,000개 이상의 이카의 돌들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카의 돌은 토마토 크기에서, 농구공 2개 정도의 크기까지, 다양한 크기로 있으며, 발달된 천문학적 장면, 발달된 의학 지식, 심장 및 뇌 수술, 그리고 공룡과 사람이 함께 있는 많은 장면들이 새겨져 있었다. 공룡들은 이카 돌들의 3분의 1에 묘사되어 있었는데, 1960년대에 (돌의 존재가 일반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 돌에 새겨져 있던 공룡의 특성들은, 공룡이 과거에 어떻게 보였을 지에 관한 현재의 이해보다 먼저 선행되어 있었다. 이카의 돌에는 사람이 공룡을 다루는 장면, 공룡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들도 새겨져 있다.

산타크루즈 파차쿠티는 Peru-tomb Pachachuti의 시대에 많은 조각된 돌들이 망코(Manco)라고 불리던 친차융가(Chinchayunga)에 있는 Kingdom of Chperu-tomb에서 발견되었다고 기록해놓았다. (Juan de Santa Cruz Pachacuti Llamqui : 'Relacion de antique dades d' este reyno del Peru.') '친차융가'는 페루 중부 해안의 남쪽 지역으로, 오늘날 이카(Ica)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Manco는 아이마라 족(Aymara)의 단어 'malku'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데, 'malku'는 '족장' 또는 '가문의 신'을 의미한다. 이 돌들 중 일부는 스페인으로 운반됐다고, 페루 무덤의 연대기 기록가는 1570년경에 기록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 카브레라 박사는 과학계 내에서 이러한 발견의 유효성을 검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의 믿음은 긴 목의 파충류들이 그려져 있는 많은 도자기들의 발견으로 강화되었다.(아래 맨 오른쪽). 이 도자기는 현재 리마 박물관(museum of Lima)에 전시되어 있다.

공룡처럼 보이는 생물의 반복적 패턴이 새겨진 아름다운 태피스트리(tapestries, 위 사진) 직물이 그 지역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사진 제공 Dennis Swift). 사실, 일부 이카의 돌들은 아캄바로(Acambaro) 점토상과 매우 비슷한, 등 쪽에 볏을 가진 용각류 공룡들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체르카스(Stephen Czerkas)는 공룡의 피부가 보존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최근 화석화 된 용각류(디플로도쿠스) 피부 인상의 발견은 이들 공룡에 대한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석화 된 피부는 척추의 중앙 열(a median row of spines)이 존재했음을 보여주었다... 일부는 꽤 좁고, 일부는 넓고 보다 원추형이다.” (Czerkas, 'New Look for Sauropod Dinosaurs,” Geology, December, 1992, p. 1,068.)

또한 관심을 끄는 것은 많은 조각된 공룡의 피부가 둥글고 혹(bump)처럼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카의 돌 그림이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는 증거로서 이것을 지적했었다. 그러나 최근 화석화 된 공룡의 피부와 태아의 발견은 이 같은 비판가들을 침묵시켰다. 예를 들어 루이스 치아페(Luis Chiappe)와 동료들은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용각류 공룡의 태아에 대해서 언급했다 : ”일반적으로 공룡의 피부 패턴은 둥글고, 겹치지 않는, 결절(tubercle) 같은 비늘로 이루어져 있었다... 장미 패턴(rosette pattern)의 비늘이 PVPH-130에 존재한다.” (Chiappe, et al., 1998, p.2599).

묘사된 피부를 주의 깊게 보라. ”두 분류군 모두 작은 다각형 비늘들의 둥근 패턴을 보여주는데, 어떤 곳에서는 작은 비늘들로 둘러싸인 커다란 난원형의 결절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장미 같은 구조를 갖는다... 이것은 공룡에서 알려진 가장 일반적인 피부 구조와 일치한다.” (Christiansen, and Tschopp, 'Exceptional Stegosaur Integument Impressions from the Upper Jurassic Morrison Formation of Wyoming,” Swiss Journal of Geosciences 103:2, 2010.)

공룡의 꼬리와 다리의 위치에 관한 최근의 해부학적 발견들도 이카 돌의 묘사가 정확했음을 입증해주었다. 초기 비판가들은 이카의 돌은 가짜(fakes)라고 말하면서, 한 예로 이카의 돌에서는 공룡의 꼬리가 걷는 동안에 뒤로 뻗쳐져 있다는 것을 지적했었다. 1960년대까지 고생물학자들은 공룡들이 거대한 꼬리를 땅에 끌고 다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생물학자들은 틀렸고, 이카의 돌이 옳았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공룡 보행렬에서 꼬리를 끌고 간 흔적이 없기 때문에, 공룡이 걷는 동안에 그들의 거대한 꼬리를 들고 다녔을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이카 돌의 공룡들은 도마뱀과 같은  옆으로 벌어진 다리가 아닌, 똑바로 서있는 모습으로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이카의 돌에 새겨진 동물의 묘사 스타일은 나스카 지상화(Nascan Lines, 말린 꼬리의 원숭이, 벌새, 곤충... 등)와 일치한다. 대부분의 이카 돌(Ica Stones)들은 검은 색으로 되어 있어서, 예술적 식각(etchings)이 돋보인다.

진화론적 과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이 미스터리한 돌들을 무시하거나, 가짜로 취급해버린다.  그들은 돌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참여하기를 거부했고, 그 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들은 이카의 돌들에 대해서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린다. 최근 몇 년 동안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기 위한, 일부 모조품들이 제작되기도 했지만, 공룡의 그림이 그려진 수많은 돌들은 숙련된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무덤들에서 발굴된 것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여전히 대부분의 돌들은 진짜로 여겨진다. 더군다나 이 돌들은 산화(oxidation)와 같은 오랜 시간이 흐른 흔적들을 보여준다. 돌 표면을 덮고 있는 녹청(patina), 식각되어 파여진 홈에서의 구리 흔적, 산화에 대한 현미경적 분석은 진품과 모조품을 명확하게 구별해낼 수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돌의 나이를 1,500~12,000년이라고 주장했다. 2015~2016년에 Genesis Park는 이카 돌(Ica Stones)들을 독립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하는 연구에 참여했었다. 이 결과는 동료 검토된 과학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Can the Ica Stones be Independently Authenticated? Journal of Creation, Volume 30(3), November, 2016, pp. 67-73.http://www.genesispark.com/can-the-ica-stones-be-independently-authenticated/ )

 

이카의 돌은 실험실에서 오래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by Robert Prickett)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약 이카의 돌들이 사기(hoax)라면, 몇 가지 질문이 생겨난다. 왜 수십 년 전에, 그 많은 돌들에 그림을 조각하고, 그것들을 파묻어 놓았는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것으로 어떤 이익이 생겨난 것일까? 그리고 그 많은 일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었는가?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의 위조범은 어떻게 최근에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을 알고 있었는가? 고대의 사람들이 하늘을 관측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나는 어떠한 해답도 찾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대략 15,000개가 넘는 그림이 새겨진 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것들은 어떤 미스터리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카브레라 박사의 박물관은 개방되어 있어서,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쉽게 들어가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미스터리하다는 것인가? 이 돌들에는 의학적 수술 장면, 공룡들을 타고 있는 사람들,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는 장면... 등 놀라운 장면들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것들이 모두 위조품이라면, 누가 그것을 새겼는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신뢰할만한 설명이 없다. 언제? 왜? 누가? 어떻게? 이 많은 돌들을 모두 위조했는가?

나는 이 조사를 하면서, 매번 너무도 놀랐다. 이카의 돌들은 고생물학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고, 지구에서 인류의 출현 연대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이카의 돌들이 현대인에 의해서 어떻게든 위조됐을 가능성이 없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카 지역의 한 박물관 관리자가 오쿠카제(Ocucaje)의 농부들이 그것들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매우 신빙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지역 농부들은 이카의 돌에 새겨져 있는 과학적 지식이 매우 부족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카의 돌들이 농부들에 의해서 위조된 것이 아니라면, 과학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던 한 두 명의 사람이 그것을 팔아 이익을 남길 목적으로, 몰래 그림을 새겨 넣었을 가능성이 있을까? 허먼 부스(Herman Buse)의 설명에 따르면, 1961년 이래로 이 돌들은 매우 소량만 팔렸고, 이 많은 것들을 위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돌들의 연대에 대한 실험실 실험을 실시해 보기로 결정했다.

1967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33점의 돌을 내 컬렉션에서 선택했다. 그 중 몇 개는 수천만 년 전에 멸종했다는 동물과 너무도 유사한 생물이 그려져 있었다. 진품으로 인정된다면,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이었다. 나는 친구인 루이스(Luis Hochshild)에게로 갔다. 그는 훈련된 광산 기술자였고, 리마에 본사를 둔 광산회사(Mauricio Hochshild Mining Co)의 부회장이었다. 나는 그의 실험실에서 이카 돌의 특성과 이러한 조각이 고대에 이루어졌는지, 최근에 이루어졌는지를 분석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6월 초에 나는 지질학자인 에릭 울프(Eric Wolf)가 서명한 한 보고서를 실험실로부터 받았다 :

”이카의 돌들은 강물의 이동에 의해 형성된(river rock) 의심할 여지없이 자연적인 돌입니다. 암석학적으로 그 돌들은 안산암(andesites)으로 분류됩니다. 안산암은 기계적으로 커다란 압력에 노출되어 구성 성분에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 화산암의 일종입니다. 이 경우 강한 견운모화(sericitation, 장석이 견운모로 변형) 효과가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이 과정은 치밀함과 특별히 무게를 증가시켰고, 또한 예술가들이 조각 작업을 할 수 있는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게 했습니다. 돌의 조각된 부분 위로는 자연적 산화에 의한 미세한 녹청(patina)으로 덮여 있었으며, 이것은 조각이 매우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임을 추론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나는 파여진 부분의 가장자리에서 눈에 띄는 불규칙적인 마모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무덤에서 발견된 이후, 다른 장소에서 최근에 이 조각이 파여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참조 : official Cabrera Museum website
http://www.museocientificojaviercabrera.com/
Images of Ica Stones
http://tccsa.tc/articles/ica_stones.html
Revisiting the stones of Ica
http://s8int.com/articles/114/Dinosaurs-in-Literature-Art-History-Page-25.htm
The Ica Stones: 20 fascinating, rare images of the controversial stones
https://www.ancient-code.com/ica-stones-20-fascinating-rare-images-controversial-stones/
쥐라기의 예술품 : 이카의 돌(Ica Stones)들에 새겨져 있는 공룡 그림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53

이카 돌의 진위 여부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6782

 

성경에 언급된 용

구약성경에는 '용(dragon)'이라는 단어는 21번 나타난다.(KJV). 시편 기자는 ”너희 용( dragons)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시 148:7)라고 기쁨으로 선언하고 있다. 성경이 영어로 번역된 시기는, '공룡(dinosaur)'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기 오래 전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 다른 시편 구절이 있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dragon)을 발로 누르리로다”(시편 91:13). 문맥에서 볼 때, dragon(용)은 발로 누를 수 있는, 인상적이며 위협적인 실제 생물로 말해지고 있다. 또한 예레미야 51:34절에는 ”...큰 뱀(dragon) 같이 나를 삼키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여러 육식성 파충류가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것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dragon)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시편 74:13),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dragon)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이사야 43:20)의 구절에서도 용(dragon)이 언급되고 있으며, 심지어 용의 발성(vocalization)도 암시되어 있다.

몇몇 학자들은 탄닌(tannin)이 냈던 길게 울부짖는 소리 때문에, 그리고 어떤 탄니님(tanninim, tannin의 복수형)의 서식지가 광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이사야 34:13-15, 35:7), 탄닌은 단지 자칼(jackal)이라고 제안했다. 성경에 용(그들이 신화라고 믿고 있던)이 등장하는 것을 의심스러워했던, 현대의 성경 번역자들은 자칼이라는 해석을 선호했다. 자칼에 대한 히브리 단어는 'tan'이고 복수어는 'tanim'이다. 그래서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이 잘못된 시도는 '바다의 탄닌(tannin of the sea)'(시편 74:12-13)을 번역할 때, 엉망이 되어버린다! 자칼은 바다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로, 창세기 1:21 절의 탄닌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And God created great sea monsters…”로 번역될 수 있다. 그와 같은 거대한 바다괴물(great sea monsters) 중 하나는 고대 사람들이 '라합'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였던 잘 알려진 동물일 수 있다. ”..라합(Rahab)을 저미시고 용(dragon)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이사야 51:9). 또한 히브리인들은 고래(whales)도 바다괴물로 여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애가 4:3절('Even the sea monsters draw out the breast..”)에서 탄닌은 그들의 새끼에게 젖을 주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지자 에스겔은 이집트의 파라오(애굽의 바로 왕)를 나일 강을 침범한 바다 괴물(monster in the seas, NIV, NASB)에 비유하고, 발로 물을 휘저어(진흙탕을 만들어) 그 강을 더럽혔다고 말하고 있다.(겔 32:2).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에서 그물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낚았다.(오늘날도 그러하다). 에스겔 32:3절은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육지로 끌어낼 것이라고 말한다. 에스겔서 29:3~5절은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great dragon; KJV, great monster; NIV, NASB)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너의 강의 고기가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너의 강들 가운데에서 끌어내고 너와 너의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으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주었음이라”고 말씀한다. 

이 현대의 그림은 고대 이집트에서 일어났던 실제 역사적 사건을 회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생생한 그림이다. 히브리어 '탄닌(tannin)'이라는 단어는 '길게 뻗은(to extend)'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단어는 길게 뻗은 목을 갖고서, 나일 강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간혹 지느러미발(flippers)로 나일강 주변의 진흙을 휘저어 버리는, 사경룡(plesiosaur) 같은 생물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그러한 생물체가 고대 이집트 미술에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아마도 나일 강의 어부들은 실제로 에스겔서에 기록된 것처럼, 바다 용(sea dragon)을 실제로 잡았고, 죽였을지도 모른다.


참조 :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1 : 벽화나 예술품에 그려져 있는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36&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2 : 공룡과 인간의 발자국이 함께 발견되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28&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3 : 세계 도처에서 전해져 오고 있는 공룡에 관한 이야기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29&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4 : 최근에 발견된 공룡의 사체와 모습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30&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5 : youtube 동영상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00&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6 : 그림, 문헌, 암벽화, 예술품에 등장하는 나는 용은 익룡이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2&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7 : 중국과 아시아의 그림, 조각, 예술품에 등장하는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3&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8 : 유럽의 역사와 예술품에 등장하는 용은 공룡이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4&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9 :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역사, 그림, 예술품에 등장하는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5&bmode=view

용의 신화는 신화가 아닐 수 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555&bmode=view

당신이 들어보지 못했던 역사 기록 속의 용, 그리고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15&bmode=view

세인트 데이비스 대성당에 조각되어 있는 용 : 용각류 공룡을 닮은 그 생물은 상상인가, 실제인가?

http://creation.kr/Dinosaur/?idx=2633785&bmode=view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 속의 공룡을 닮은 용

http://creation.kr/Dinosaur/?idx=1910481&bmode=view

1870년대 남북전쟁시의 프테로닥틸 : 익룡(날아다니는 공룡)이 사냥되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32&bmode=view

남북전쟁 시에 사냥된 익룡 사진에 관한 진실! : 위조된 사진을 유포시켜, 진짜 사진을 불신시키고 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7&bmode=view

쥐라기의 예술품? : 이카의 돌(Ica Stones)들에 새겨져 있는 공룡 그림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58&bmode=view

페루 고대 무덤의 공룡 예술품들 : 이카의 돌에 새겨져 있는 공룡 그림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33&bmode=view

이카 돌의 진위 여부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6&bmode=view

칼라일 성당의 벨 주교의 무덤에 새겨져 있는 공룡 : 슈노사우루스? 불카노돈?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02&bmode=view

메소포타미아 우루크에서 발굴된 원통인장에 새겨져 있는 공룡처럼 보이는 목이 긴 동물.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18&bmode=view

벨 주교 무덤의 놋쇠 띠에 새겨져 있는 베헤못! : 15 세기의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71&bmode=view

노아의 포도원에 있었던 공룡들 : 조지아의 14세기 교회에 새겨져 있는 두 마리의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17&bmode=view

호주 원주민들은 공룡을 보았는가?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86&bmode=view

쥬이오 마루호의 신비한 동물에 관한 새로운 정보 1, 2 : 그것이 해양 사족동물이었다는 강한 암시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42&bmode=view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43&bmode=view

공룡 화석 탐사 보고서: 남해군 가인리에 공룡발자국과 함께 나있는 사람발자국 추정 화석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64&bmode=view

버딕 발자국은 진짜다! : 진화론자들의 궤변을 반박한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41&bmode=view

콩고 공룡을 찾아서 : 살아있는 공룡 모켈레 므벰베 탐사기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47&bmode=view

살아있는 공룡이 목격되었다! : 파푸아 뉴기니에서 목격된 수각류와 용각류 공룡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540&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genesispark.com/exhibits/evidence/historical/ancient/pterosaur/ ,         http://www.genesispark.com/exhibits/evidence/historical/dragons/

출처 - http://www.genesispark.com, http://s8int.com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74

참고 : 905|738|740|741|6102|6762|6766|6769|462|460|472|762|461|1145|1433|1447|1448|1875|1977|2017|2049|2058|2206|2320|2529|2543|2680|2647|2648|2650|2690|2722|2775|2980|3194|3720|3811|3852|3865|3868|3871|3888|3889|3891|3957|4106|4136|4170|4194|4240|4284|4299|4362|4437|4479|4507|4624|4654|4655|4669|4674|4686|4702|4734|4754|4783|4844|5044|5062|5140|5237|5313|5371|5418|5491|5511|5557|5568|5676|5688|5808|6151|6173|6174|6177|6214|6220|6252|6282|6318|6352|6436|6464|6459|6466|6484|6488|6707

s8int.com,genesispark.com
2018-01-17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7 

: 중국과 아시아의 그림, 조각, 예술품에 등장하는 공룡!

 (Dinosaurs in Literature, Art & History) 

<웹사이트 s8int.com, genesispark.com 발췌>


   사람과 공룡은 함께 살았음이 틀림없다. 과거의 문헌, 예술 및 역사에서 그러한 증거들을 무수히 찾을 수 있다. 그러한 증거를 찾는 것보다, 오히려 찾지 못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패러다임인 진화론에 의하면, 공룡들은 6500만 년 전에 멸종한 중생대의 생물이기 때문에, 신생대 말에 출현한 사람은 공룡을 목격할 수 없었다.

만약 사람들이 사람과 공룡은 함께 살았다는 수많은 증거들을 살펴본다면, 여전히 수억 수천만 년의 진화론적 패러다임이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물론 진화론에 철저히 세뇌된 사람들은 계속 진화론의 이야기를 믿을 것이다. 특히 진화론과 진화론적 지질시대를 가르치고, 글과 논문을 쓰고, 직장에서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진화론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대해서 알고 있는 크리스천들이라면,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이전의 글들을 읽고 아직도 믿을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하는 크리스천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진화론자들은 사람과 공룡이 공존했다는 증거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각 증거들을 하나씩 반박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Angkor Wat) 사원에 새겨져 있는 생물은 명백하게 스테고사우루스(stegosaurus) 공룡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식물 배경의 코뿔소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하나가 아니다. 이 수많은 증거들을 다 설명해내려면, 지쳐버릴 것이다.

세뇌된 진화론적 사고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첫 단계로 성경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룡'과 사람이 함께 창조주간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람과 함께 살았던 다른 동물들의 그림이나 예술품과 함께, 공룡에 대한 그림이나 예술품도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고대 사람들의 그림이나 조각, 예술품에서 종종 공룡과 유사한 생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진화론에 의해서, 그것들은 신화적 동물, 상상의 동물, 알 수 없는 동물, 기괴한 동물, 또는 용(dragon)으로 불려진다.

그러나 거기에 속아 넘어가지 마라. 고대에 10m가 넘는 공룡들이 돌아다녔다면, 그것은 숨겨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 1~6”에 게재됐던 내용을 제외하고, 중국과 아시아의 문화와 예술품에서 발견되는 공룡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신화에서 역사적 동물로 재탄생하고 있는 고대 중국의 용(dragon)

중국인들은 용(dragon)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고대 중국인들은 심지어 용의 피를 약으로 사용하였고, 알들을 얻기 위해서 용을 사육했다는 것이다.(DeVisser, Marinus Willem, The Dragon in China & Japan, 1969.) ‘동방견문록’을 썼던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카라얀(Karajan) 지방의 여행에서 목격했던, 거대한 뱀(serpents)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 뱀은 앞쪽에 두 개의 짧은 다리(two short legs)가 있었고, 각각 세 개의 갈고리 발톱(three claws)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턱은 사람을 삼키기에 충분하도록 넓었고, 이빨은 크고 날카로웠다. 그 생물의 모습은 너무도 공포스러워서, 사람이나 어떤 종류의 동물도 두려움 없이 접근할 수 없었다.”(Polo, Marco, The Travels of Marco Polo, 1961, pp. 158-159.)

마르코 폴로는 지역 주민들이 그 생물을 어떻게 사냥하고 죽였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파충류는 낮에 열기를 피해 '동굴'에 머무르며, (빵(loaf) 보다 더 큰 눈을 가진) 야행성 동물로서, 먹이를 먹은 후에, 호수, 샘, 강과 같은 물이 있는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들의 거대한 몸체는 ”마치 무거운 기둥이 지나가며 모래 위에 자국을 남겨놓은 것처럼” 경로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 생물은 예측할 수 있도록 같은 경로를 자주 지나갔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땅을 파고, 끝이 날카로운 철로 된 커다랗고 뾰족한 '나무 기둥'들을 묻은 후에, 그 위를 모래로 덮어두었다.”(p. 159). 분명히 이 창들은 그 생물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고, 그 생물은 곧 죽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음력(lunar calendar cycle)에는 (한국도 마찬가지) 12간지(띠)라는 것(twelve signs of the Chinese zodiac)이 있어서, 12종류의 동물들이 어떤 해를 나타내고 있다. 쥐띠, 소띠, 범띠, 토끼띠, 용띠, 뱀띠, 말띠, 양띠, 원숭이띠, 닭띠, 개띠, 돼지띠 이다. 모두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동물들이다. 그러나 용(dragon)만은 신화 속에 나오는 전설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왜 한 동물만 전설 속 동물로 정했을까? 중국인들은 이 띠를 가지고 그 사람의 성격을 예측하기도 한다. 상상의 동물로 성격을 말한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면 용도 실제로 존재했던 동물이 아니었을까? 고대 중국인들이 12간지를 만들 때, 실제의 동물 11마리와 신화적 동물 1마리로 만들었다는 것은 매우 비논리적으로 보인다. 용도 동일하게 실제로 존재했던 동물일 가능성이 높다. 

”공룡을 용으로서 해석한 것은 중국 문화에서 2천 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들은 권력의 상징으로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Zhiming, Doug, Dinosaurs from China, 1988, p.9). 위의 이 용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용(Bronze Dragon, Tang dynasty, AD 618~907, Red & GoldMing Dynasty Terracotta Sculpture)으로, 청동에 양각무늬를 새긴 다음 붉은 금으로 칠해져 있다. 긴 목, 긴 꼬리, 주름(frills) 장식, 유연한 자세 등을 주목하여 보라.

이것은 명나라(Ming Dynasty, AD 1368~1644) 때의 무시무시한 공룡 조각상(dragon statue)이다. 이것은 바라캇 갤러리(Barakat Gallery Collection)에 전시되어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용에 대한 보고는 허난성 황하(Yellow River) 인근의 고대 Xishuipo 매장지 유적(Xishuipo Cemetery Ruins)에서 발견된, 호기심을 끄는 한 진기한 발견일 것이다. 그곳에는 하얀 조개껍질(white shells)로 만들어진 3개의 예술적 용(artistic dragons, 호랑이와 다른 동물들과 함께)이 사람 유해와 함께 놓여있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은 중국 문화의 시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통치자의 매장 장소였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Xishuipo 유적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표현된 용은 놀랍게도 현대적 표현의 용과 비슷했다. 이것은 용의 개념이 단순하고 원시적인 신화적 모습에서 중국 역사를 통해 서서히 발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실, 중국인들은 살아있는 생물을 용으로 형상화한 것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렇게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국의 책 ‘춘추좌씨전(Zuozhuan)’에는 ”고대인들이 어떻게 용을 키웠으며, 나라에서 용을 사육하는(Dragon Rearers) 가문과 용을 훈련시키는(Dragon Tamers) 가문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들어있다는 것이다.(Sterckx, R., The Animal and the Daemon in Early China, 2012, p.52.) 송나라(AD 960~1279)의 황제는 그의 궁전에서 용을 키웠다는 것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있다.(Niermann, LD 'Dinosaurs and Dragons', Nihilo Technical Journal 8:1, 1994, p.85-104). 황제 헌원(Huang Di, 주(周) 왕조 이전의 전설적인 통치자)은 6마리의 용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태산(Tai Shan)을 오른 후에 그곳에서 희생제물을 드렸다고 말해진다.(Roberts, Jeremy, Chinese Mythology A to Z, 2004, p. 42.)

명나라의 화가인 우빈(Wu Bin, 1573~1620)은 황제의 비서로서 한동안 일했다. 그의 그림 중 ”18 아라한(Eighteen arhats)”에는 용이 마차를 끌고 있다. 이 우빈의 그림은 어떤 상상에 의한 작품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며, 용들은 그의 시대까지 멸종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중국 속담에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이 놀라운 그림을 보라. 상하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 그림은 중국 명나라 말기의 화가 정운봉(丁雲鵬, Ding Yunpeng)이 그려놓은 아라한(Arhats, holy men, 阿羅漢)과 용(Dragon)이다. 이것은 중국의 거의 모든 사원(절)의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전통적인 중국 용(Chinese Dragon)의 가장 초기 버전과 동일하다. 


이제 이 그림에서 놀라운 점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생물은 사각형의 수염이 달린 입, 두 개의 긴 안테나와 같은 촉수, 머리 뒤쪽으로 향한 긴 뿔, 비늘이 있는 피부, 튀어나온 이글거리는 눈, 머리의 볏, 4개의 다리(오늘날의 중국 용 보다는 긴 뒷다리), 갈고리가 있는 3개의 발톱, 휘어지는 등쪽 척추, 톱니 모양의 등, 비늘이 없는 복부를 갖고 있다.  

여러분은 BC 2000년경부터 오늘날까지 중국 문화에 등장하는 용의 기본적 특징이 거의 변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중국 문화의 용들이 공룡과 매우 유사한 모습이었다는 것은 오늘날 진화론이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신화적 동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용들은 역사적으로 실제로 존재했던 동물들이었기 때문에, 거의 변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의 중국의 문헌, 그림, 예술품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발굴된 쥐라기의 공룡인 구안롱(Guanlong) 화석은 그림 속의 용과 매우 닮았다.

'구안롱 : 구안롱(Guanlong)은 중생대 쥐라기 후기(약 1억 6500만~1억 4500만 년 전) 오늘날의 중국에서 서식했던 육식 공룡이다. 티라노사우루스상과에 속한다. 전체 몸 길이는 약 3~3.5m, 높이는 1m, 체중은 75~100kg 정도 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명은 ”관이 있는 도마뱀”이란 뜻으로 중국에서는 '五彩冠龍'(오채관룡)으로 불린다.” - 백과사전

그림 속의 용과 구안롱 공룡을 비교하였다.

약 500년 전 명나라(Ming Dynasty) 시대의 우빈(Wu Bing)이 그렸던 이 놀라운 그림을 보라. 이것은 진화론에 의해 세뇌된 많은 사람들을 미혹에서 깨울 수 있을 것이다. 공룡처럼 생긴 용을 타고 가고 있다.

소, 황소, 그리고 용에 타고 가는 도인들!

중국인들은 용과 함께 살았고, 용을 훈련시켰고, 용을 사용했고, 용에 대해 기록했다. 그리고 위의 사례들과 같이 용을 그림 속에 남겨놓았다. ‘동방견문록’으로 유명한 마르코 폴로 (Marco Polo)는 그의 책에서 중국에서는 용들이 왕의 마차를 끌고 있었다고 기록해놓고 있다.

 

중국 문화에 항상 존재해왔던 용(dragon)
                 

중국에서 용을 나타내는 글자(한자)이다. 글자의 오른 편을 보면, 용은 등에 돌기와 힘찬 꼬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반영되어 있다.

중국어의 많은 예에서 용은 살아있는 동물로서 (호랑이처럼) 간주되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말이 있다. 용과 호랑이가 싸우니 막상막하라는 뜻인데, 용이 상상의 동물이라면 어떻게 호랑이와 싸우겠는가?

창조론자들은 종종 용(dragon)에 대한 전설은 실제 생물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해왔다. 예를 들면 러셀 그릭(Russell Grigg)의 ”공룡과 용: 전설 속 생물이 아니었다(Dinosaurs and dragons : stamping on the legends)”를 보라. (Creation (17:4) Sept.-Nov. 1995 p.8)

.중국 북위(BC 386~534) 시대의 용 조각상.

몇 년 전에 중국 고고학자들은 중국 신화의 용과 닮은 파충류 화석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700여점의 ”구이저우 용(Guizhou dragons)” 화석들이 불법 화석 무역업자들로부터 압수됐는데, 화석 파충류들은 긴 목, 긴 꼬리, 발에 5개의 긴 뼈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파충류들은 구이저우 성(Guizhou province)의 싱이(Xingyi) 시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중국 과학원(Chinese Academy of Sciences)의 고대 척추동물 연구원인 자오(Zhao Xijin)는 구이저우가 ”용(dragons)”의 중요한 기초가 됐던 생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광명일보(Guangming Daily)는 이 용들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용들의 실제 조상이 아니고, 단지 중국의 용을 닮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금과 터키옥으로 상감 세공된 송나라(Song Dynasty, AD 960~1279년) 때의 은으로 된 용 조각상이다.(Sung Dynasty dragon, in silver with gold and turquoise inlays. Musee Guimet, Paris. AD 1127-1279). 머리 뒤쪽에 붙어있는 피부 판(flaps of skin)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의 곧은 뿔로 장식(및 무장)되어 있다. 이 시기에 유럽은 십자군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여전히 용을 보았고, 많은 조각상이나 예술품으로 새겨놓았다. 은제 용 조각상은 발굴된 뼈들을 가지고 복원한 진화 고생물학자들의 추정도(아래)보다 해부학적으로 더 낳아 보인다.

송나라 시대의 중국인들은 긴 목의 '원시용각류(prosauropod)'를 보았음에 틀림없다. 뒤로 구부러지는 무릎을 표현해 놓은 것을 보라!


중국의 전국시대에 용각류를 닮은 청동 조각상

이 고대 중국의 조각상은 용각류(sauropod) 공룡과 사실상 완전히 동일하다. 예술가는 분명히 이 공룡을 보았으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세히 관찰했음이 분명하다. 이 청동 조각상은 중국 호북성 박물관(Huebei Provincial Museum)에 있는, 전국시대(Warring States Period, BC 475~221)의 증후을묘(Tomb of Marquis Yi, BC 430년경)에서 출토된 것이다. 오른쪽은 비교를 위한, 카네기 박물관에 전시된 디플로도쿠스(diploducus)이다. 이 장소에서 발견된 청동 비문은 이 무덤이 증(Zeng)나라의 한 후작(marquis)의 묘(증나라 후작 을의 묘)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비판가들은 그 조각상이 작은 날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신화적 생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날개는 아래의 한 호랑이와 같은 많은 명백한 생물에서도 나타난다. 시간이 있다면 중국 문화애서 날개의 의미를 읽어보라. 날개가 그려졌다고 호랑이를 상상의 동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한나라의 청동 그릇에 납작한 머리의 공룡?  

이 작품은 중국 한나라(Han Dynasty)의 청동 요리그릇(bronze cooking vessel)의 복제품이다. 한나라는 대략 BC 200 ~ AD 220년 사이에 있었다.

중국에서 청동기는 오랫동안 고대 중국의 보물로 여겨져 왔으며,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에서 청동(bronze)은 고대의 사람들의 일용품, 작업도구, 무기일 뿐만 아니라, 정교한 장인들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술은 세대와 세대를 거치며 전해졌다. 중국 청동기에 대한 연구는 대개 한나라(AD 220년) 말까지 광범위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시기인 1950년대 초에서 중기까지 있었던 발굴 작업은, 현재 북경 역사박물관(Beijing History Museum), 상해 박물관(Shanghai Museum), 산시 역사박물관(ShannXi History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많은 보물들을 발굴했다.

고대 중국의 청동 유물들은 경매장에서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고, 많은 것들이 국가적 보물로 간주되기 때문에, 정품을 구하기는 어렵다. 지난 30~40년 동안 중국 청동기의 양질의 복제품들이 박물관의 관람객을 위해서 전시용으로 제작되었다.

눈에 띠는 한 유물은 파충류의 피부를 가진, 납작한 머리 공룡(flat headed dinosaurs)인, 하드로사우루스 공룡(hadrosaurine dinosaurs, 오리주둥이 공룡)을 닮은 유물이다. 이 생물에 대한 설명은 '물개', '용(dragon)', '신화적 동물' 등으로 기술되어 있다.

많은 하드로사우루스 공룡들은 모습이 서로 비슷한데, 에드몬토사우루스(edmontosaurus), 샹퉁고사우루스(shantungosaurus) 등을 포함하며, 심지어 이구아노돈(iguanodon)도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청동 요리그릇은 샹퉁고사우루스를 조각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 이유는 예술가가 표현한 두개골의 모습이 매우 유사하며, 이들 공룡 화석은 중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공룡들은 9000만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말해지고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샹퉁고사우루스, 한나라 청동 그릇 생물, 이구아노돈, 다른 샹퉁고사우루스.

그러나 숙련된 장인은 그의 생애 동안에 이 생물을 직접 보았음에 틀림없다. 묘사된 생물의 모습은 너무도 유사해서 상상으로 만들어냈는데 우연히 일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이 청동 그릇을 보았던 당시의 사람들도 매우 친숙하게 그 동물을 연상했을 것이다... s8int.com

이것도 또한 중국 한나라(Han Dynasty) 시대에 만들어진,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0년 전의 조각상이다. 이 조각상은 수각류(theropod, 이족보행을 하는) 공룡을 정확하게 닮았다. 정확한 자세, 피부 돌기들, 세 개의 발가락을 가지는 짧은 앞발 등이다. 이 조각상은 테리지노사우루스(therizinosaur)와 현저하게 유사하다. 


중국 동주 말의 청동 용기에 용각류 공룡?

팡 지에(放箭)의 용각류(Fang Jian Sauropod)는 흥미롭다. 이 중국 동주 말(Late Eastern Zhou Period, BC 3세기)의 청동으로 된 장식용 용기(ornamental box)에 조각되어 있는 세 발가락, 긴 목, 긴 꼬리의 생물은 용각류 공룡(예로 브라키오사우루스, Brachiosaur)을 닮았다. 긴 목과 이 생물은 고생물학적 기록은 물론, 특히 중앙아프리카 콩고강 유역에서 원주민들에 의해서 관측됐다는 용각류로 추정되는 모켈레 므벰베(Mokele-Memembe)와 유사하며 세 발가락 발톱(three-toed claw)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Fong, Wen ed., The Great Bronze Age of China,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80, p. 285.)


팡 지에의 생물과 용각류의 머리를 비교해 보라.

 

공룡 모양의 머리와 목을 가진 중국 주나라의 청동 냄비

2003년에 중국 산서성의 몇몇 농부들은 한 동굴에서 서주(Western Zhou Dynasty, BC 1046~771년) 시대의 청동기 27점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이 발견에 대해 특히 흥분했는데, 왜냐하면 청동 유물들 중 많은 것에 비문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청동 냄비(bronze pan)로 묘사된 유물 중 하나도 긴 비문을 갖고 있었다. 그 유물들의 사진을 얻기가 어려웠는데, 특히 한 유물은 더욱 어려웠다.

그 유물의 사진은 단지 발만 볼 수 있었는데, 어떤 이유가 있어서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발은 그 유물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유물을 보여주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현재까지 발견된 주나라의 유물들 중 가장 많은 비문이 쓰여진, 역사학자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유물의 사진으로 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물들 중 완전한 사진은 아래의 두 장의 사진뿐이다. 이 서주 시대의 청동 유물에 새겨진 동물은 아파토사우루스(apatosaurus)의 머리와 목을 너무도 닮았다.

위의 비문이 있는 '냄비'에서 표현된 동물의 모습 및 목 각도와, 아파토사우루스의 두개골과 목은 완벽하게 일치한다. (Source: Weather Enthusiast-Sam Noble Museum)


중국 주나라의 난로에 새겨져 있는 공룡?

이것은 주나라(Zhou Dynasty, BC 1100~256) 때 만들어진 청동 난로(bronze stove)이다. 이 유물은 3000년 이상 된 것일 수도 있다. 이 난로에 새겨진 동물은 공룡과 너무도 유사하다. 고대 예술가가 상상으로 어떤 동물을 조각했는데, 그것이 우연히 공룡처럼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19세기에 당시 과학자들이 수집한 공룡 뼈들로 이구아노돈(iguanodon)을 그렸던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말이다.

 

중국 상나라의 옥 세공품은 공룡?

이것은 BC 1700년경의 중국 상나라(Shang Dynasty, 은나라) 시대에서 발굴된 옥(jade) 세공품이다. (높이 39cm, 무게 14kg). (이것은 경매로 10만 불에 나왔다가, 지금은 Genesis Park Collection에 소장되어 있다). 이 용은 람베오사우루스 공룡(lambeosaurine dinosaurs)과 유사한데, 이 생물의 자세, 작은 앞발(조각하지 않음), 등쪽에 있는 볏, 뒤쪽을 향한 커다란 머리 볏, 이족보행을 하는 두 개의 튼튼한 다리 때문이다.

람베오사우르스류 공룡들은 카로노사우루스(Charonosaurus), 사우롤로푸스(saurolophus), 파라사우롤로푸스(parasaurolophus) 등이 있는데, 이들은 사실상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매우 비슷하다. 이들 3종의 공룡 모두 상나라 시대의 예술가가 조각해놓은 볏/뿔(crest/horn)과 매우 유사한, 뒤로 향하는 커다란 볏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대 상나라 조각품의 생물과 두 람베오사우르스 공룡을 비교하여 보았다. 왼쪽은 파라사우롤로푸스, 가운데는 상나라 조각품, 오른쪽은 또 다른 파라사우롤로푸스이다. 예술가가 작은 앞다리는 조각하지 않았다는(예술가의 특권) 것을 주의해야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묘사한 것인지 쉽게 식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고대 조각품에 있는 생물과 이들 공룡은 너무도 유사한 점이 많았는데, 등에 나있는 볏, 뒤로 향한 커다란 볏, 두 커다랗고 강력한 다리로 이족보행을 할 수 있는 능력... 등이다.

이 '공룡'의 특징은 비늘이 있는 피부, 이족보행 시에 균형을 도와주는 긴 꼬리이다. 이것은 북미 대륙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살았던 람베오사우르스(lambesaurine) 공룡이 불과 3천 년 전에도 살아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왼쪽은 상나라 조각품, 오른쪽은 사우롤로푸스이다.

 

중국 송나라 불상에 새겨져 있는 케라톱스류 공룡?

케라톱스류(Ceratopsians, 각룡류)는 수천만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말해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만든 고대 예술품에서 자주 발견된다. 송나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불상의 아랫부분에는 이상한 모양의 생물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케라톱스 공룡처럼 보이는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1913년에 찰스 랭 프리어(Charles Lang Freer)는 1091년이라는 날짜가 새겨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이 조각품을 구입했다. 10년 후에, 프리어 미술관(Freer Gallery)의 최초 관장인 존 로지(John Ellerton Lodge)는 이 작품이 ”세련되지 못하고, 그렇게 초기의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1960년대에 이 조각품은 재평가되었고, 1091년의 연대는 당시 중국의 유사한 조각품들과 외국 예술품들과 비교하여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 Smithsonian Freer Gallery.


중국의 많은 예술품에 등장하는 용은 공룡이었다.

모든 공룡 종의 10~15%만 발견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매년 새롭고 흥미진진한 발견들이 전 세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우리는(s8int.com) 공룡이라고 확신하는 생물을 표현한 고대 예술품들을 많이 발견했지만, 그것과 적합한 공룡 종이 발견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이것은 그러한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특정 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예술품의 생물을 확인하려 할 때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발견된 공룡들의 이미지는 화석 뼈들에 의해서, 어떤 것은 부분적인 화석 뼈들로부터 복원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룡으로 생각되는 두 동물이 표현된 예술품이 있다. 왼쪽은 디플로도쿠스(diplodocus)나 아파토사우루스(apatosaurus)와 같은 긴 목을 가진 공룡 유형이다. 이것은 2003년 중국 산서성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유물로서, 고대 중국의 청동 찻주전자(bronze teapot)의 복제품이다. 가운데는 비교를 위해 디플로도쿠스의 골격과, 고대 중국의 '용'으로 자주 표현되고 생물의 머리 부분이다. 이것은 찻주전자의 머리 부분의 모양과 유사하다. 오른쪽은 남미 멕시코의 콜리마 문화(Colima culture) 초기에서 발굴된 것으로, 탱크 같이 보이는 생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안킬로사우루스(ankylosaur)의 다른 유형일 수 있다. (무릎의 '공룡 피부'를 주목해 보라)

이 청동으로 주조된 앉아있는 용(dragon) 조각품은 당나라(Tang Dynasty, AD 618~906) 때의 것으로, 현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 전시되어 있다. 이 시대에 공룡을 묘사해놓은 많은 예술품들이 발견되었고, 여러 박물관에 당나라 시대의 유물로 전시되고 있다.

이것은 중국 전국시대(Warring States period, BC 475~221)의 도자기(Ceramics)로, 공룡 같은 동물 등에 한 남자가 올라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300년 전의 중국 전국시대에 사람이 공룡 같은 동물의 등 위에 올라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진화론에 의하면 사람은 결코 공룡을 볼 수 없었음으로, 이 예술가는 상상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순전히 우연히 공룡과 같은 생물을 만들었던 것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사람과 공룡은 정말로 수천만 년의 시간 간격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주장일 뿐이다. 증거들과 당신의 눈을 따라가라!

중국에서 용의 이야기는 매우 흔하다. 그러나 한 특별한 부리를 가진 용 조각상(dragon statue)이 골동품 시장에 나왔고, 지금은 Genesis Park에 보관되어 있다. 이 유물(위의 좌측)의 청동 스타일은 이것이 한나라(Han Dynasty, BC 206~ AD 220년) 시대의 것임을 가리킨다. 이 유물은 부리 공룡(beaked dinosaurs)의 많은 특징들을 보여주는데, 세 발가락의 발, 중족골 자세(metatarsal stance), 몸 전체에 비늘 같은 표현(줄무늬 패턴이 있는 뿔을 제외하고), 긴 꼬리(가늘지만), 정교한 머리 볏, 긴 목을 가지고 있다. 이 유물에 대해 산업용 X-Ray 검사 및 녹청(patina)에 대한 화학검사가 실시되었고, 유물은 진품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아름답게 보존된 부리 공룡(Edmontosaurus)의 미라(mummy)가 2013년에 캐나다 알버타에서 발견되었다. 그 화석 표본은 머리 꼭대기에 육질의 볏(fleshy crest)을 갖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모자와 같은 이 장식물은 밝게 채색되어 있어서, 서로 인식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공룡에서 발견됐던 최초의 골성이 아닌 볏이었다. 그것은 중국의 부리를 가진 용들의 모양과 매우 잘 일치한다.

위의 오른쪽 사진은 매우 유사한 특성을 가진 동물로 우리에게 비쳐진다. 이 유물은 중국에서 나온 골동품이다. 갤러리는 이 작품을 '새'(드물게 4다리를 가진)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오리 같은 주둥이' 때문에 별 의심 없이 새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 유물은 좌측의 용 조각상과 매우 비슷하게 보인다. 예술가는 오리주둥이 공룡(duck billed dinosaurs)과 매우 친숙했던 것으로 보인다. 브라키로포사우루스(brachylophosaurus)는 오리주둥이 공룡의 한 종류로, 그 화석들은 중국에서 발견되어왔다. 아래 사진은 이 동물의 두개골로부터 추론된 그림 중 하나이다.

약 4,000년 전에, 중국의 훙산 문화(Hongshan culture)는 옥(jade)으로 된 많은 용(dragon) 조각들을 제작했다.(다른 명확한 동물 표현과 함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용 조각상들은 고도로 정형화되었고, 특히 목걸이 둥 장식용 펜던트(pendants)로 대중화됐다. 많은 조각상들이 특별한 공룡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위의(좌측 1, 2번째) 옥 용(jade dragons)들은 작은 프로토케라톱스(Protoceratops) 공룡과 매우 유사하라. 일부 홍산 용들은 위의 맨 오른쪽 조각상과 같이 긴 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각룡류(ceratopsian) 공룡인 우다노케라톱스(Udanoceratops)처럼 보인다. 왼쪽의 붉은 용 조각상과 맨 오른쪽의 목이 긴 조각상은 Genesis Park에 소장되어 있다.

위의 것은 홍콩 시장(Hong Kong open market)에서 발견된 신석기 유물로 말해지는 옥(jades) 세공품이다. 조각된 생물은 양추아노사우루스(Yangchuanosaurus)와 매우 유사하다. 양추아노사우루스는 쥐라기 후기인 옥스포디안기(Oxfordian)에 중국에서 살았던 수각류 공룡이다.

이것은 알 수 없는 동물의 머리를 가진 또 다른 고대 중국의 찻주전자(teas server)이다. 물론 사람들의 설명은 신화적 동물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고대 찻주전자에 표현되어 있는 이와 같은 긴 목을 가진 동물은 우리의 조상들이 공룡과 함께 살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거에 살았던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공룡들은 그렇게 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 고대의 용기들은 이것을 만든 예술가들이 오늘날 우리가 용각류라고 부르는 다양한 종류의 공룡들을 실제로 보았음을 가리킨다. 상상으로 만들었는데, 오늘날에 와서 공룡과 우연히 비슷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들 용/공룡들은 사람이 진화로 출현하기 수천만 년 전에 멸종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사람과 함께 동시대를 살았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중국 서한(Western Han dynasty, BC 206~AD 24) 시대의 청동 스푼(Bronze Spoon)이다. 용/공룡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는 손잡이 모양을 주의 깊게 보라. (Size & Weight : H. 14cm, Source: 5000Art.com)

가운데는 중세에 공룡 모습의 생물이 그려진, 바닥에 깔던 타일이다.(Medieval Floor Tile. Worchester City Museums).

이란 이스파한(Isfahan, AD 17세기)에서 발견된 용머리 주둥이의 물병이다. 용각류 공룡과 같은 긴 목과 머리 볏을 주목하여 보라. (Ewer with dragon-headed spout, From Isfahan, Iran, Second half of the 17th century AD, British Museum)

이것은 중국 하나라(Xia Dynasty, BC 21세기~BC 221) 때의 청동 종 (Bronze bell)이다. 용각류 공룡와 거의 동일한 생물이 상단에 새겨져 있다. (Bronze bell from the Xia Dynasty, Shanghai Museum)

이것은 명나라 시대의 은으로 장식된 도자기이다. 주둥이에 새겨진 생물은 머리 볏을 가지고 있다. (China, Ming Dynasty, probably Wan-li period [1573–1619], Museum of Fine Arts, Boston)


이것도 명나라(Ming Dynasty, AD 1368~1644)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개(dogs)와 용(dragons)과 함께 있는 긴 목을 갖고 있는 생물은 용각류 공룡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China, Ming Dynasty, inlaid 'sauropod' with dogs and dragons, 1368 until 1644 A.D)

 

태국의 1400년대 도자기에 그려진 생물은 공룡인가, 해마인가?

코리토사우루스(corythosaurus) 공룡은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특유의 볏 때문에, 고대 예술품에 표현됐다면 가장 쉽게 식별될 수 있는 공룡 중 하나이다. 사실, 이전의 글에서도 코리토사우루스는 쉽게 확인됐었다.

그러나 이 도자기를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은 그것을 해마(seahorse)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그것은 어느 정도 해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신중하게 코리토사우루스의 사진과 해마의 사진, 그리고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을 비교하고, 그 그림은 공룡을 그린 것으로 결론지었다.

도자기에 물고기가 그려있어서 해마라는 말할 수 있지만, 또한 코리토사우루스가 먹었을 수 있는 식물 잎도 그려져 있다. 그리고 볏(crest)은 해마의 것과 다르며, 공룡의 머리 위에 있는 볏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머리의 자세(상향 각도)가 일반적으로 해마가 보여주는 머리의 자세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사실 해마가 편안하게 머리를 그림과 같이 똑바로 들고 있을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람들은 비늘(scale)이 해마의 것인지, 공룡(파충류)의 것인지 살펴보면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식별하는 데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여러분이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우리는 코리토사우루스(윗줄)와 해마의 사진들(아랫줄)과 도자기의 그림(맨 우측)을 제공한다. 물론, 그 그림이 코리토사우루스의 것이라면, 이것은 특별한 발견이다.

 

태국의 청동 향로에 새겨져 있는 용각류 공룡?

공룡(dinosaur)이라는 이름은 1841년에 유명한 영국의 학자 리처드 오웬(Richard Owen) 교수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그리스어로 ”끔찍하게 무서운”이라는 뜻의 'Deinos'와 파충류를 의미하는 'Sauros'를 합성하여 이름을 지었다.

1976년 태국에서 공룡 화석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광산자원부의 지질학자들이 콘캔(Khon Kaen) 주의 푸위앙(Phu Wiang) 지역에서 우라늄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조사팀 중 한 명인 쿤(Khun Sutham Yaemniyom)은 용각류(sauropod) 공룡 (긴 목, 긴 꼬리, 4다리)으로 밝혀진 한 커다란 뼈를 발굴했다. 나중에, 북동부 지질조사팀은 차이야품(Chaiyaphum)과 우돈타니(Udon Thanee) 지역에서 더 많은 공룡 화석들을 발견했다.

푸위앙 숲은 1991년에 제 7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약 325km2의 면적을 차지한다. 콘캔 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8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원의 북서부 지역은 특히 공룡 화석의 훌륭한 원천이다.

이것은 ‘아시아의 예술(Arts of Asia)’ 책에 있는 고대 태국의 예술품으로 향로(Incense burner) 또는 촛대이다. 흥미롭게도 그것은 태국에서 실제로 발견됐던 공룡인 용각류와 매우 비슷했다. 공룡의 등 위에는 새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은 태국의 푸위앙 공원(Phu Wiang Park)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용각류 공룡 상에 대한 사진이다. 근처에서 이 공룡의 뼈들이 1976년에 발견되었다.

 

베트남의 청동 향로에 새겨져 있는 용각류 공룡?

공룡에 관한 자료들은 매우 적다. 박물관 근무자들은 인디언, 고래, 코끼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실제 그들의 삶을 충분히 재현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공룡은 다르다. 그들은 불완전한 뼈 무더기로부터 작업을 해야 한다... 전문 공룡 미술가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농담이 있다: 코끼리 뼈 한무더기를 갖다 준다면, 그들은 아마도 거대한 햄스터로 복원할 것이다. - Discover Magazine. What Did Dinosaurs Really Look Like, and Will We Never Know?

이것은 용(Dragon)의 손잡이와 불사조(Pheonix) 뚜껑을 가진 고대 베트남의 청동 향로(Incense burner)이다. (From the Vietnamese Bronze Age: 3rd century A.D. Cast bronze. Size: 13.5 x 19 cm (5 5/16 x 7 1/2 in.) Museum of Fine Arts, Boston).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태국의 청동 향로와 유사한, 이 지역의 동선문화(Dongson culture, BC 500~기원 전후)의 또 다른 예술품이다. 동선문화는 베트남 북부의 홍강(Hong River) 유역에서 번창했던, 베트남을 대표하는 고대 청동기 문화로, 풍응우엔(Phung Nguyen) 문화에서부터 이어진 것이다. 풍응우엔 문화는 BC 2000~1500년경의 신석기 말에서 초기 청동기 문화로, 동더우 문화(Dong Dau culture), 고문 문화(Go Mun culture)를 거쳐, 주변 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던 동선문화로 이어졌다. 19세기 이래로 많은 학자들이 동선문화를 분석하려했지만, 그들의 문화나 유물이나 동시대 문명들에 미친 영향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베트남의 램프에 새겨져 있는 공룡?

이것은 BC 3~1세기 베트남의 동선 문화(Dong Son) 시기에 만들어진 램프이다.(Script from The JavaScript Source). 다른 미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즉 거대한 동물의 등에 올라타 있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전사들 그림과 유사하게, 또한 이카 돌(Ica Stones)에 그려져 있는 그림과 유사하게, 고대 베트남의 전사들이 공룡과 유사한 생물을 올라타고 있다.

어쩌면 이 시대에는 모든 나무들 뒤로 공룡이 보였을 수 있다. 이 생물은 브라키오사우루스(Brachiosaurus)처럼 보인다. 이것은 기능적 램프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머리 부분은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유형의 공룡 화석들은 중국 국경 근처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 (Art of Vietnam, by Formon. piece number 34)


고대 시리아의 램프에 오리주둥이 공룡?

 

오리주둥이 공룡은 가장 흔한 공룡 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오리주둥이 공룡들에 대한 여러 타입의 수천의 그림들을 검토한 후에, 우리는 이 고대 시리아의 램프(Syrian Lamp)는 그 공룡들 중 하나를 묘사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램프를 조각한 고대 예술가처럼, 이들 동물에서 뿔 또는 수염을 묘사해놓은 경우는 거의 없다. (예술가는 동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실제로 알고 있었다). 입(오리 모양 주둥이), 턱선, 눈과 머리 모양을 면밀히 살펴보고, 우리가 제공한 오리주둥이 공룡들 사진과 비교하여 본다면, 이 생물이 무엇을 묘사했는지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고대의 예술가가 살아있는 공룡을 보지 못했다면, 공룡 화석이 발견되기 수백 년 전에, 어떻게 오리주둥이 공룡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예술가가 신화적 동물을 상상으로 조각했는데, 우연히 오리주둥이 공룡과 일치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살아있던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일까? 마음속으로 한번 생각해 보라. (LAMP, Bronze. H: 13.4 W: 22.9 D: 6.8 cm Syria. Gift of Charles Lang Freer, Smithsonian Freer Gallery of Art.)

 

진화론자들과 수십억 년의 지구 연대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공룡이 사람과 함께 살았었다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을 매번 비웃어왔다. 그러나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었다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 오늘날 아이들이나 성인들이나 똑같이 공룡에 매료되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룡은 진화론의 확실한 상징물(icon)이 되어버렸다. 공룡은 무신론적 진화론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신성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일은 교회가 공룡을 이 세상에 양도했기 때문이다. 즉 창세기에 명백하게 언급된 기록된 그대로의 역사를 포기하고, 수십억 년이라는 오래된 연대와 진화론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지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제 우리의 자녀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할 것이다. 진화론은 거짓의 속임수 이론인 것이다!   



참조 :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1 : 벽화나 예술품에 그려져 있는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36&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2 : 공룡과 인간의 발자국이 함께 발견되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28&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3 : 세계 도처에서 전해져 오고 있는 공룡에 관한 이야기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29&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4 : 최근에 발견된 공룡의 사체와 모습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430&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5 : youtube 동영상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00&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6 : 그림, 문헌, 암벽화, 예술품에 등장하는 나는 용은 익룡이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2&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7 : 중국과 아시아의 그림, 조각, 예술품에 등장하는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3&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8 : 유럽의 역사와 예술품에 등장하는 용은 공룡이었다!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4&bmode=view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9 :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역사, 그림, 예술품에 등장하는 공룡!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35&bmode=view

용의 신화는 신화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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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들어보지 못했던 역사 기록 속의 용, 그리고 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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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데이비스 대성당에 조각되어 있는 용 : 용각류 공룡을 닮은 그 생물은 상상인가, 실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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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 속의 공룡을 닮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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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 남북전쟁시의 프테로닥틸 : 익룡(날아다니는 공룡)이 사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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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시에 사냥된 익룡 사진에 관한 진실! : 위조된 사진을 유포시켜, 진짜 사진을 불신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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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라기의 예술품? : 이카의 돌(Ica Stones)들에 새겨져 있는 공룡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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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고대 무덤의 공룡 예술품들 : 이카의 돌에 새겨져 있는 공룡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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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 돌의 진위 여부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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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일 성당의 벨 주교의 무덤에 새겨져 있는 공룡 : 슈노사우루스? 불카노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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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우루크에서 발굴된 원통인장에 새겨져 있는 공룡처럼 보이는 목이 긴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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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주교 무덤의 놋쇠 띠에 새겨져 있는 베헤못! : 15 세기의 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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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포도원에 있었던 공룡들 : 조지아의 14세기 교회에 새겨져 있는 두 마리의 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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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들은 공룡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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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이오 마루호의 신비한 동물에 관한 새로운 정보 1, 2 : 그것이 해양 사족동물이었다는 강한 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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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화석 탐사 보고서: 남해군 가인리에 공룡발자국과 함께 나있는 사람발자국 추정 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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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딕 발자국은 진짜다! : 진화론자들의 궤변을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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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공룡을 찾아서 : 살아있는 공룡 모켈레 므벰베 탐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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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공룡이 목격되었다! : 파푸아 뉴기니에서 목격된 수각류와 용각류 공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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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8int.com ,      http://www.genesispark.com

출처 -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66

참고 : 905|738|740|741|6102|6762|462|460|472|762|461|1145|1433|1447|1448|1875|1977|2017|2049|2058|2206|2320|2529|2543|2680|2647|2648|2650|2690|2722|2775|2980|3194|3720|3811|3852|3865|3868|3871|3888|3889|3891|3957|4106|4170|4194|4240|4284|4299|4362|4437|4479|4507|4624|4654|4655|4669|4674|4686|4702|4754|4783|4844|5044|5062|5140|5237|5313|5371|5392|5418|5491|5511|5557|5568|5676|5688|5808|6151|6173|6174|6177|6214|6220|6252|6282|6318|6352|6436|6464|6459|6466|6484|6488|6707|6769|6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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