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부 특별반을 운영하면서
모든 삶이 사역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창조과학 역시 이러한 사역의 일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역의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삶'이다.
1. 하나님은 존재하시는가?
모태 신앙이었던 나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은 크게 해보지를 못했다. 그저 의심 없이 말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학교 교육, 특히 중·고등학교 과학교육을 받으면서 의심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물론 교회도 착실히 다니고 믿음 생활도 남에게 칭찬 받을 만큼 유지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존재하시는가?'라는 질문은 호시탐탐 나를 쓰러뜨리려고 노리고 있었다.
많은 사건들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하고 그래서 믿음도 자라게 되고 많은 일에 의심하는 모습이 줄기는 했지만 문제는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못하고 어렴풋하게 넘어 간 것에 있었다. 힘이 들고 말씀과 기도생활에 소홀해 질 때면 어김없이 이 질문은 나의 마음을 파고 들어왔다.
그래서 교회나 청년회나 성도가 모인 곳에서는 누가 봐도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였지만 홀로 있을 때는 그렇지 못한 적이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도 그 시간에도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100%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고 끊임없는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먼저,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이야기하는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가까이는 교회에 다니시는 부모님과 가족들로부터 교회의 많은 성도들, 라디오 방송에서 듣게되는 많은 간증들, 기독교 서적에 가면 만나는 전 세계의 많은 책 저자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이를 믿는 사람이 이토록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전 시대적으로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가장 큰 약점은 내가 체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그러더라,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좋더라"고는 할 수 있지만 "이렇다, 좋다"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다시 갈등은 불거졌다. 대학 입학 시 전공을 결정할 때 고민이 되었다. 고등학교까지 배운 것을 토대로 본다면 과학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가 없고 더 나아가 오히려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하니, 과학을 많이 알게 된다면 정말 하나님을 부인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이러한 걱정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을 했다.
그러나 이는 걱정에 불과했다. 입학 전에 기독교 서점을 통해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와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라는 서적을 보면서 과학과 기독교는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입학하고 보니 의외로 과학을 전공하는 크리스천 교수님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 교수님들과 여러 이야기도 나누고 듣기도 했다. 그 중에 길원평 교수님은 대학교 교단에서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무서운 분(?)이셨다. 게다가 국민일보 기사에 나온 진화와 창조에 관한 기사 등을 교수님 연구실 문 앞에 붙여 놓기까지 하셨다.(길 교수님은 내가 교사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답을 알게 해 주신 분이었다.)
이렇게 알게 된 것이 바로 창조과학이라는 용어와 단체였다. 그 때는 자격이 되지 않아 창조과학회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는 못했지만 창조과학회 책자와 교수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해 보게 되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이 질문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게된 두 번째 계기가 되었는데, 즉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다면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많은 설계의 흔적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알게 된 것이다(예, 열역학법칙 등).
이와 병행하여 세 번째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고 체험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성경이었다. 교회의 한 선생님을 통해 말씀 묵상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이름을 넣으며 말씀을 대하니 말씀이 정말 송이꿀보다도 더 달게 느껴졌다. 전에는 성경에 왜 만화가 없는지 투정했던 내가 대학교를 다니면서 다른 어떠한 소설과 책자보다 성경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정말로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시는 성령님이 계시는구나".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설사 봤다고 하더라도 성경을 자기 눈으로, 자기 지식으로, 교만한 마음으로 보는 이들이다. 성경은 그렇게는 이해될 수도 없고, 얄팍한 지식과 과학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책인 것이다.
네 번째는 기도응답이었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기도응답이라고 생각하고 '요구'하기만 하던 시기를 지나,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것이 완전한 기도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놀랍게도 많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경험하고 순종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 시작하는 체험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연이겠지 했지만 두 번, 세 번 그리고 그 이상의 많은 기도 응답을 체험하고는 도저히 하나님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니 나도 "이렇더라, 저렇더라"는 인용이 아닌 "이렇다, 저렇다"라는 체험의 이야기를 해 줄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바로 성경 자체의 과학성과 성경에 기록된 사실들의 역사성을 통해서였다. 비과학이라고 여겼던 성경, 과학으로 밝혀지기 수 천년 전에 기록된 성경에 이미 수많은 과학적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었다(예 : 많은 별, 공간에 있는 지구, 토끼의 되새김질 등). 노아방주가 사실이었다는 것(예 : 노아방주의 과학성, 인디언 벽화나, 한자의 예를 통해 인디언이나 중국인도 모두 노아의 후손이었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다.
이를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존재하심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이 가능했다. 첫째는 사실이다. 주위 사람이 많이 믿고 있다는 사실, 자연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사실, 성경이 과학적이고 역사적이라는 사실 등. 둘째는 체험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인격적 변화, 말씀 묵상의 체험, 기도응답의 체험, 찬양의 뜨거움을 통한 영적 감동, 원수를 사랑할 때의 예수님 심정 이해, 성령의 열매, 결실 등인 것이다.
2.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어떻게 전파할 것인가?(교육 현장으로 부르신 하나님)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되었을 때는 입학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학교에서 하나님은 없다라고 하는 교과서를 들고 가르치고 있는 교육현실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교회에서 성경이 절대 권위로 인정받고 있듯이 학교에서는 교과서가 절대 권위로 인정받고 있었다. 만약 교사가 교과서와 다른 내용을 가르친다면, 교과서가 오타가 아닌 이상 그 교사가 잘못 가르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교과서에 하나님이 없다라고 적혀 있으니 '이런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이, 특히 기독교 학생이 올바른 신앙관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교사에 대한 소명에 박차를 가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교회에서나 여러 선교 단체에서 복음으로 전파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창조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그 다음 단계인 타락과 구원과 재림을 이야기해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라는 강한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인정하지 못하는 신앙은 모래 위에 집을 쌓은 것과 같음을, 결정적일 때 하나님을 의심하게 됨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것으로 창조과학회에 관심을 더욱 많이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자격이 되지 않아 무심히 넘겼던 창조과학회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부산 기윤실 간사를 통해 같은 방을 쓰고 있던 창조과학회 부산 지부를 알게 되었다. 그 간사를 통해 창조과학회에 가입하고 정기모임에도 참석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나를 창조를 믿는 물리교사로 준비시키고 계셨다.
3.. 창조과학반 설립 및 운영
1) 설립
하나님께서 처음 2년간은 나를 학교에서 인정받는 교사로 키우셨다. 신임교사였지만 교수능력으로 다른 교사와 학생들에게 인정받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삶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인격과 성품이 인정받지 못한다면 다른 많은 것은 사실 소용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3년 째 1999년에 특활활동에 창조과학반을 신청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종교에 대해 친숙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특활반이 허락될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는데 놀랍게도 학교측에서는 허락이 떨어져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2) 운영
매 달 마지막 토요일에 전일제 특활을 실시했다. 첫 달에는 물리실에 설치된 전용선을 통해 먼저 학생들에게 창조 사이트 소개했다. 한동대 창조과학전시관(www.han.ac.kr/exhibit /index.html), 새벽별의 창조과학 홈페이지(user.alpha.co.kr/~dawnstar/) 등에서 많은 자료를 보여 주었고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www.kacr.or.kr/create/main.htm)에 들어가 즉석에서 학생회원으로 가입시켰다. 다음 달에는 한동대 창조과학전시관에 있는 파워포인트 자료로 노아의 방주, 공룡, 젊은 지구나이, 생명의 기원, 헬렌산을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두 달 동안 기초지식을 습득하도록 한 후 그 다음부터 대학교를 찾아다니며 교수님과 학생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부산대학교 길원평 교수님, 고신대학교 이강래 교수님 등을 만나면서 대학 시절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과학과 교수님들을 직접 뵙게 해 주었다.
이와 병행하여 조를 편성하여 연구하도록 했다. 학생 스스로 발표할 수 있도록 창조과학 사이트에서 자료를 받아 학생들에게 분배를 해주었다. 거기에는 일반적인 창조과학 자료와 UFO, 진화의 허구를 다룬 Time지 해석도 있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부산 창조과학회 정기모임에 참석할 수 있도록 담임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낸 것이다. 담임 선생으로서는 단체 활동을 하는데 학생을 특별한 이유(?)없이 그렇게 보낸다는 것은 결정하기 힘든 것이었다. 이 때 또 느낀 것이 평소 교사들과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정기모임에 참석하여 여러 교수님들, 강사들을 통해 그들은 창조과학의 내용을 습득하게 되었다.
4. 학예제 준비 및 실시
학예제는 물리실에 꾸몄다. 칸막이를 사용, 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관과 암실관, 생활관으로 구분했다. 먼저 본관은 하나님 존재하심을 드러내는 것을 주제로 삼아 창조과학의 자료를 전시했고 암실관은 비기독인이 흥미를 느낄만한 것으로 꾸몄으며, 생활관은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으로 구성했다. 전시 방법은 게시물과 멀티미디어 자료를 같이 병행했다. 게시물은 워드에서 편집용지를 제일 크게 하고, 프린트를 할 때 인쇄메뉴에서 가로와 세로를 모두 확대했다. 마지막으로 인쇄방식을 나눠 찍기로 하면 B4지 6장 정도의 크기로 게시물이 나뉘어서 프린트된다. 이를 다시 붙여 우드락을 받치고 비닐을 입히면 한 개의 게시물이 완성되었다. 학생들을 방꾸미는 조, 워드 작업조, 붙이는 조, 우드락에 놓고 비닐을 입히는 조 등으로 분업시켜 일을 추진했다.
1) 본관: 먼저 게시물로는 "창조과학과 진화론의 역사" 난을 만들었다. 이는 창조지 117호(1999년 11∼12월호)의 "20세기를 마감하며" 난을 정리하였고 특히 잇단 총기난사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큰 충격에 빠져 있는 가운데 미 캔자스주가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을 폐기키로 결정한데 이어 켄터키주에서는 교실에 십계명을 게시토록 허용하는 등 미 교육계가 창조론을 기반으로 한 도덕성을 회복 운동에 부심하고 있다는 내용과, 캔자스주 교육위원회의 진화론 폐기 결정이 앨라배마, 루이지애나, 아칸소 주에도 영향을 미쳐 앞으로 유사한 결정이 있으리라는 것을 강조했다.
다음 전시물은 '성경과 한자'난으로 하나님과 마귀(上帝:상제, 神:신 신, 靈:신령 영, 鬼:귀신 귀, 魔:마귀 마 등), 천지 창조(西:서녁 서, 造:지을 조, 元:처음 원 등), 타락(람:탐할 람, 禁:금할 금, 兇:범인 흉 등), 노아방주(船:배 선, 穴:구멍 혈, 空:빈 공, 分:나눌 분 등)로 나누어 게시물을 만들었고 이 한자를 통해 중국인이 노아의 후손임을 강조했다.
그 다음에는 '성경과 과학' 난이었다. 이는 과학이 발달하기 몇 천년 전에 이미 성경에 기록된 과학적인 사실을 전시하는 코너였다. 내용으론 무수히 많은 별, 묘성과 삼성, 공간에 떠 있는 지구, 운석의 존재, 해로, 바다의 근원, 바람의 무게와 수증기, 전기-통신 시대 예보(욥기38:35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그것으로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공동조상(여자 :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는 엄마에게만 받음 → 하와 / 남자 : Y염색체 → 아담), 토끼의 되새김질, 할례 등을 다루었고 이 '성경과 과학' 난을 통해 비 과학으로 여겨졌던 성경의 과학성과 그 저자가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다윈은 천국에 갔을까?"라는 파트도 만들었다. 이는 후쿠오카 이현배 선교사님(ccc.kimc.net/lee/LEECREA.html)의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얻었다. 다윈이 신학과에 다녔었고, 종의 기원에도 초판에는 "생명은 최초에 하나님에 의해 2, 3 혹은 하나의 형태로 불어넣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그 역시 초기에는 창조주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며, 노후에는 자신의 이론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통해 진화론의 창시자도 그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했음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멀티미디어 자료로는 노아 방주, 헬렌산 폭발, 공룡, 지구의 역사난을 각각 만들었다. 컴퓨터 1대에 하나의 주제로 4대를 전시했고 특히 노아의 방주는 프로젝션 TV를 연결해, 방문자가 반드시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옆에 노아방주 모형을 비율에 맞춰 축소, 제작하여 전시했다. 컴퓨터 1대에 두 사람의 도우미를 준비했고 관람자가 자유롭게 컴퓨터를 조작하며 볼 수 있도록 인도했다. 그 다음 멀티미디어 자료로는 창조과학회에서 구해온 창조과학 비디오를 보여 주는 '완벽한 지구'난을 만들었다. 비디오가 돌아가지만 게시물이 필요해 물의 밀도, 대기의 조성, 지자기 세기, 지구의 중력, 지구의 온도(이산화 탄소량, 기단이동, 해수이동, 알베도, 자전축, 자전속도, 태양과 지구까지 거리) 등을 게시물로 만들어 전시했다. 이를 통해 이 지구가 얼마나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어느 것 하나 조금이라도 변하게 되면 이 지구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2) 암실관: 암실관은 비기독인이 흥미를 느낄만한 것으로 꾸몄다. 암실관은 사방을 다 막고 형광등 대신에 블랙 라이트를 꼽아주면 흰 바탕이 형광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하는 장소였다. 먼저 'UFO'난을 만들어 그 허구성과 위험성를 강조했고, 사다리 타기로 캐롤송, 선물, 인공 눈 뿌리기 등의 메뉴를 구성했다.
3) 생활관: 생활관은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으로 구성했다. 한 참 옷로비 사건으로 기독인이 욕을 먹고 있는 상황에서 삶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는 코너였다. 먼저 "기독교 독립 투사" 난을 만들어 헤이그 밀사 사건의 이준, 이토오 히로부미 저격의 천주교인 안중근과 공범자로 지목된 우덕순 등을 이야기하면서 기독교인으로서의 국가를 위한 삶을 강조했다.
그 다음 세계에 영향을 주자는 주제로 창조과학자를 게시했다. 한편으로는 창조론을 과학 발전의 방해물로 여기고 종교가 과학에 들어와 사이비과학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음을 이야기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중에도 창조를 믿는 과학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그 업적은 또한 얼마나 컸는지를 이야기했다. 켈빈, 파스퇴르, 파스칼, 뉴튼, 케플러, 보일, 심프슨, 패러데이, 플레밍, 멘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윌리암 램세이 경, 마우리, 주울, 맥스웰, 모르스, 린네, 오일러, 라이트형제, 프랭클린, 라이프니츠, 조셉리스터 등 그 삶과 업적을 전시했다. 이를 통해 자신이 담고 있는 학문에서 세계 많은 사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독인이 되자는 내용을 강조했다.
그 다음은 '진화론 병폐'난을 게시했다. 진화론의 가장 큰 병폐는 인간존엄성의 말살임을 강조하고 그 예로 약육강식, 공산주의, 히틀러, 북경천안문사태, 인종차별 등을 이야기했다. 이에 반해 우리 기독교에는 사람의 귀천이 없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여김을 강조해 상호 존중하고 사랑하자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국가와 세계도 좋지만 자신의 주위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자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과학과 학문과 삶'이라는 부분을 게시했다. 이 부분은 물리 수업시간에 수업을 마치기 전 학생들에게 해 준 인성교육을 모은 것이었다. 예를 들어 상대속도는 움직이는 관측자가 본 상대방의 속도로 그 값은 상대방의 속도에서 관측자의 속도를 빼 주면 되는데, 이를 통해 인성교육은 "색안경을 끼지 말자"로, 움직이는 즉 편견을 가진 상태에서는 상대방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성의 법칙으로는 습관의 중요성, 작용과 반작용으로는 먼저 대접하자는 내용 등을 이야기했다. 이를 통해 과학에서, 학문에서, 또한 자신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자는 내용을 강조했다.
5.. 맺음말
하나님께서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에게 갈등을 주시고 과학에 흥미를 주시고 교사의 사명을 주신 이유 중에는 바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크게는 세상에, 작게는 학교에 전파하도록 하는 크신 섭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 사역에는 참으로 많은 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찬양사역, 선교사역, 부부사역, 청소년사역, 복지사역, 도시사역, 농촌사역, 인터넷사역, 문화사역 등 우리가 접해 있는 모든 삶이 사역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창조과학 역시 이러한 사역의 일부분일 것이다. 각 사역을 담당하는 사람의 특징은 그 사역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그 사역에 모든 삶을 바치며 하나님의 뜻을 이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역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가 바로 '삶'이었다는 것이다. 창조과학부 특활반에서 학예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던 것은 삶을 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캔자스주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시키는 투표를 했을 때 그 위원들이 모두 기독교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진화론을 반대했을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 주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그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농촌사역을 하시는 목사님은 대부분 그 삶을 공유하시는 것을 들었다.
이렇듯 교회든 선교단체든 개인이든 모든 기독인은 어떠한 사역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주위의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창조과학부를 운영하면서 배우게 되었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culture/c5/c51/c51c6.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06
참고 :
교회와 학교에서의 창조론 교육을 생각하며
우리는 진정한 과학과 진정한 신학에 의해 제공되는 상보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우리의 삶과 생각과 행동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로서 가장 효과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청소년기를 거쳐왔다면, 누구나 중·고등학교 과학시간에 진화론에 대한 선생님의 강의로 인하여 어려움을 경험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선택이 없는 진리-과학-진화론이라는 연결고리에 얽혀 진화론만이 진리라고 기록하며 그 증거를 몇 가지 설명하는 교과서 앞에서, 이제 막 신앙이 형성되고 있는 청소년 그리스도인들은 적지 않은 갈등을 겪어야만 한다. 그 갈등은 비단 과학교과서를 배우는 청소년 뿐 아니라, 모든 대중 매체를 통하여 진화론을 설명하고 있는 과학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동일하게 경험하였거나 경험하고 있는 갈등이다. 이 글에서는 창조론 교육에 대하여 교회에서의 창조론 교육과 학교에서의 창조론 교육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교회에서의 창조론 교육
먼저 교회에서의 창조론 교육을 생각해 보자. 교회에서의 창조론 교육에 있어서는 창조론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진화론의 잘못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창조를 성경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20여 년 간 한국창조과학회가 한국교회에 미친 선한 영향력과 그 결과는 말로 다 설명 못할 만큼 크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많은 선배 창조과학자들의 헌신과 기도가 보이지 않는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 창조과학회는 앞으로도 이 일에 계속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의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그것은 소위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신앙과 과학'이라는 주제이다. 진화론과의 갈등으로 인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개인의 신앙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는 신앙심의 정도보다는 진화론이 기반을 두고 있는 과학에 대한 각 그리스도인의 세계관 또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신앙심이 아무리 좋더라도 그의 과학에 대한 입장에 따라 진화론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필자와 함께 과학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세계관 또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는 것은,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이 진화론의 유혹으로부터 전혀 미혹되지 않고 승리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데에 유익을 줄 것이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패턴에 대하여는 수많은 연구가 있지만, 여기서는 뷰브(R.H.Bube)박사가 제안한 패턴 중 주요한 몇 가지를 예를 들고자 한다. 패턴의 첫 번째는 "과학은 신앙의 가능성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이 패턴에서는 과학과 신학은 동일한 사실에 대하여 동일한 종류의 것을 말하며, 과학적인 설명과 신학적인 설명이 모순되면 반드시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린데, 이 대결에서 항상 과학이 승리자가 된다. 어떤 그리스도인의 과학과 신앙에 대한 관계설정이 이 부류에 속한다면 그는 과학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떠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패턴은 '과학의 발견들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유지된다'는 입장이다. 이 패턴에서는 과학과 신학은 동일한 사실에 대하여 동일한 종류의 것을 말하며, 과학적인 설명과 신학적인 설명이 모순되면 반드시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리고, 이 대결에서 항상 신학적 설명이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견해는 신앙적 입장에서 참으로 중요한 입장이며,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부류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 견해는 학문적인 발전은 없지만, 과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많은 그리스도인 집단이 있기에,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 문화에서의 그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다. 이 그리스도인 그룹은 믿음에 대하여는 근본적으로 반지성적이며, 자신과 자신의 사회를 과학에 의하여 주도되는 세상의 영향으로부터 분리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때때로는 기본적으로 이 유형에 관계된 그리스도인들이, 신학을 올바른 과학의 궁극적인 안내자로 만들기 위해 과학과 기독교 신앙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계하기도 한다.
세 번째 패턴은 "과학과 신앙은 완전히 관계없어서 그 중 어느 것도 나머지 다른 것에 대하여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과학과 신학은 다른 사실에 대하여 다른 종류의 것을 말하고, 그 사이에는 어떤 공감도 없다. 과학은 신학에 대하여 전혀 할 말이 없고, 신학은 과학에 대하여 전혀 할 말이 없기에 대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 유형은 첫 번째와 두 번째 패턴에서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갈등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패턴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방법이며,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네 번째 패턴은 "과학과 신앙은 적절한 종합이 이루어지도록 모두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 패턴에서는 과학과 신학은 동일한 사실에 대하여 동일한 종류의 것을 말해야 하지만, 그러나 현재의 과학과 신학은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들므로 현재 필요한 것은 과학과 신학이 서로 양립할 수 있고 실재(reality)의 새로운 해석에로의 접근을 향한 과격한 변형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건전한 그리스도인의 변형에서부터 뉴에이지에 이르기까지, 온건주의에서 극단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것은 과학과 신학 모두의 과격한 변화를 요구하며 그래서 진정한 과학과 진정한 신학의 특징을 부인한다는 큰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바른 패턴이라 할 수 있는 다섯 번째 패턴은 "신앙과 과학은 실재에 대한 보충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이 패턴에서는 과학과 신학은 동일한 사실에 대하여 다른 종류의 것을 말하며, 각각은 각자의 진정한 역량에 진실할 때 실재의 본성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력을 서로에게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재에 대한 적절하고 일관성 있는 관점을 가지기 위하여 이 두 형태의 통찰력을 통합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이 유형이 진정한 과학과 진정한 기독교 신학의 특징에 대한 가장 일관된 관계이다. 이것은 실재(reality)의 본성에 대한 서로 다른 통찰력으로서, 각각을 정당하게 대하기 위한 전체적인 통합의 노력이며, 과학적 설명과 신학적 설명을 모두 유지하면서 그들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들의 유사점을 평가하는 상보성(complementarity)의 관점이다.
우리는 진정한 과학과 진정한 신학에 의해 제공되는 상보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우리의 삶과 생각과 행동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로서 가장 효과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청소년들과 대학생, 청년들에게 과학과 신앙에 대한 바른 관계설정에 대한 교육을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이중적인 신앙을 가지지 않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받을 것이다.
학교에서의 창조론 교육
이제 학교에서의 창조론 교육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작년 8월에 미국에서는 학교에서의 창조-진화론교육에 대한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기에 이 지면을 통하여 잠시 소개하려 한다.
작년(1999년) 8월 11일, 미국 캔자스주 교육위원회는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에 관한 일체의 언급을 삭제하기로 결정하였다. 약 1년 동안의 긴 논쟁 끝에 10인의 교육위원회는 창조론자들의 손을 든 것이다.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사이언스」(Science, 8월 20일, Vol.285, pp.1186-1187)와 「네이처」(Nature, 8월 19일, Vol.400, pp.697,701)가 이 사건을 1면 기사로 다루었으며,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언론들이 이 사실을 기사화하였고, 우리 나라에서도 즉시 보도되었다.(중앙일보, 8월13일, '진화론교육금지', 8월17일, '진화론의 일보후퇴' ; 동아일보, 8월13일, '진화론 가르치지 말라' ; 조선일보, 8월13일, '학교서 진화론 교육 금지' ; 한국일보, 8월13일, '미캔자스주 생물교과서 진화론 삭제')
새로운 교과과정은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대부분의 언급을 삭제할 뿐 아니라, 우주가 대폭발로 인해 탄생되었다는 빅뱅이론에 대한 언급까지 삭제하였다. 이 획기적인 수정에 대하여 미국 국립과학교육센터의 한 관계자는 "수정된 수와 진화에 대한 언급의 철저한 삭제와 정의의 변화 등에서 이전에 보아온 어떤 것보다 포괄적이다"라고 평하였다(뉴욕타임즈 1999년 8월 12일). 사실 이와 비슷한 창조론과 진화론의 법적 논쟁이 앨라바마, 네브라스카, 텍사스 주 등 다른 주들에서도 전개되었으며, 루즈빌 대학의 생물학과 교수이며 미국 국립생물교사협회의 주간자인 랜디 무어의 말대로 "논쟁은 어디서나 진행되고 있고 창조론자들이 승리하고 있다."(뉴욕타임즈 1999년 8월 12일)
캔자스주에서의 이 사건은 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에 대응해 온 창조론자들의 오랜 노력의 결과 중 하나이다. 필자는 창조론자들이 이런 내용을 입법적 이슈에 도달시킨 정책에서부터, 진화론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매우 지혜로왔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진화론이 증명되지 않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라고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게 하거나(실제로 앨라바마주에서는 이 안이 채택되었다), 때로는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교과서에 포함하도록 제안하거나(텍사스주 등), 때로는 진화는 과학적인 증거가 없으므로 교과서에서 완전히 삭제하도록 제안(캔자스주)하는 등 각각의 주에서의 창조론 운동은 각각의 상황에 맞게 지혜롭게 전개되었으며, 성공하였다. 현재의 작은 성공들은 앞으로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기초석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 나라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우리 나라의 여러 종류의 과학교과서들은 모두 여전히 진화론만이 유일하게 과학적이고 진리인 양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교과서에서 진화의 증거라고 제시된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근거에 타당성이 없거나 잘못된 증거들이라는 비난을 받는 내용들이며, 교과서 어디에도 확실한 진화의 증거는 없다. 생화학적으로 하나님의 설계의 증거를 잘 설명한 책인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의 저자인 베헤(M.Behe) 교수는, 현재까지 진화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진화론은 무너져야 한다는 주장을 'Publish or Perish'라는 경구로 표현하였다.
우리 나라의 현 교육상황에서 창조론자들은 어떻게 기도하고, 또 운동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교회교육에서만이 아니라 학교 교육에서의 창조론 교육을 위하여도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대안은 여러 가지일 수 있으며, 분명히 우리는 지혜로와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의 일련의 사건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든다면, 첫째, 우리가 '창조과학'이라고 부르는 과학을, 일반 과학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창조론에서 근본적으로 신앙의 영역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창조론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과학의 영역 안에서 창조론을 설명하는 시도를 하였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 이론이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의 과학을 넘어서 비그리스도인을 포함하는 창조론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앞으로 이 이론이 과학적으로 또한 신학적으로 발전해 가야할 길은 멀지만, 현재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창조를 설명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고 있다. 각 사람에게 전도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듯이, 비그리스도인에게 창조론을 설명하는 방법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과학적이어야 한다. '지적설계' 이론 뿐 아니라 다른 어떤 방법으로든 과학적인 방법과 '창조과학'의 학문적인 발전을 통하여 그들에게 창조론을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두 번째 교훈으로는 상황에 맞는 단계적인 전략을 들고 싶다. 지난 수 십년 간 진화론만을 진리로 설명해 온 우리 나라 교과서에서 갑자기 진화론에 대한 모든 언급을 삭제하고 창조론만 설명하도록 바꾸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보다는 좀 더 나은 상황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를 들어, 창조론을 진화론과 동등하게 가르치도록 주장할 것인지, 둘 다 과학교과서에서 삭제할 것인지, 진화론을 가르치되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하나의 가설로서 가르치게 할 것인지, 진화론에 대한 반론을 진화론과 함께 가르치게 할 것인지 등, 우리 나라의 상황에 맞는 전략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 각각의 전략에 맞게 지금부터 하나하나 준비해 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를 입법적 이슈로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최종 목표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 천년에는 학생들이 교실현장에서 진화론의 허울을 벗어버리고 자연 속에 명백히 드러난 하나님의 창조(설계)의 경이로움을 알게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과 기도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할 것이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culture/c5/c51/c51c5.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05
참고 :
대학생들에게 창조과학을
강의에 대한 비기독학생들의 반응은 모든 창조과학 사역자들에게, 특히 교수들에게 학원에서의 창조과학활동에 대한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강의가 개설되기까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는, 1999년 12월, 학사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드디어 전교생 대상 교양선택 제9영역, '과학과 자연관리'분야의 교과목으로 창조과학강의 개설안을 통과시키게 되었고, 이에 따라 2000년 1학기부터 그 첫 강의가 시작되게 되었다. 강의 개설을 위해 준비한지 거의 5년만의 일이었다. 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후에도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기 직전까지 계속 강의 명칭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나 최종적으로 '창조과학의 이해'로 결정, 마무리되었다. 학사위원회에 제출하여 심의를 거치기 위해 강의의 개설 목적과 강의할 내용에 대한 강의계획표 등을 작성하며 이번에는 꼭 심의에 통과되어 강의가 시행될 수 있도록, 강의의 책임교수로서 환경학을 전공한 강준원교수와 함께 기도로 준비했다.
하나님께서는 뜻하지 않은 방법으로 창조과학회 회원이 되기 전부터 나를 창조과학 세미나 강사로 세우셨다. 하지만 대학에서, 교회에서, 또 국내에서, 국외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세미나를 하면서도 나는 늘 나의 전공과 다른 분야라는 부담이 있었고 떠밀려서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강의하는 대학에서 좀더 학문적인 전문성을 갖추어 15주 연속 강의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어 정규 강의를 위한 절차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선 나의 전공인 수학 분야에서 창조를 증거할 수 있는 학문적인 내용을 발견하지 못하면 강의 개설을 제안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내게 의무적으로 맡겨진 전공과목 강의, 연구와 병행하여 이 일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의 ACMS(Association of Christians in the Mathematical Sciences)에 가입, 회원이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캠퍼스 내에 창조과학 각 전공 분야를 함께 증거할 수 있을 신실한 동역자들을 세워주시도록 기도했는데 드디어 강준원 교수를 준비시켜 주셔서 함께 강의를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내가 강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창조과학강의 개설을 요청할 예정인데 나와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고 얘기를 꺼냈을 때 그도 같은 생각을 갖고 준비중에 있었던 것이다.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강의를 위한 새벽기도를 하루도 쉬지 않았고, 특별히 수강학생 200명 모두와 각 주제별 강사를 위해 계속적으로 기도하였다. 100명이 넘는 대형강의가 이루어지리라 예상을 못했고 또 대부분 기독교인 학생들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의외로 비기독교인 학생수가 더 많았던 것도 놀랍고 감사한 일이었다.
강의 운영
학점은 한 주일 내 2시간 강의로 2학점으로 했고, 60분 강의에 이어 20분 정도는 강의와 관련된 창조과학 비디오를 보고 그것에 관해 각 조장의 인도로 조별 토론을 가진 후, 조별 보고서를 공동으로 작성, 제출하도록 했다. 모든 강의는 시청각 기자재를 사용하여 진행했으며 비디오를 보지 않는 날은 강의를 연속 2시간 하는 것으로 했다. 200명의 학생을 10명씩 20조로 나누었는데 각 개인의 신앙정도에 따라 조를 편성하고 신앙이 깊고 교회나 기독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학생을 조장으로 세웠다. 신앙의 정도는 개강 첫 날 설문지를 통해 조사했으며, 신앙의 등급은 5단계로 구분하여 각 단계별로 학생들이 골고루 섞이도록 조를 만들었다. 조장들과는 수업시간 외에 따로 모여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각 조원들이 한 학기동안 삶의 방향과 목표를 하나님을 향하여 맞출 수 있도록 잘 인도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비교적 조별 토론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토론에 참여했다. 토론의 결과는 조별로 평가하여 개인의 중간, 기말 보고서와 함께 학점 산출의 자료로 삼았다.
수강생들의 불평을 가능하면 적게 하기 위해 결정적인 기독교적 언사와 행동은 가급적이면 피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첫 시간을 맡은 내가 '이 강의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과학적으로 증거하는 강의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묵상기도로 시작하겠다'고 학생들에게 선언했을 때 학생들은 항의없이 모두 눈을 감고 기도하는 숙연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주교재는 기원과학(한국창조과학회 편)으로, 참고 문헌은 성경과 자연과학(한국창조과학회 편)으로 했다. 한 학기동안의 강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주 | 강의 주제 | 강의 교수 |
제1주 | 기독교 세계관이란? | 이정자 |
제2주 | 기원론의 두 모델 | |
제3주 | 창조에 대한 수학적 고찰 | |
제4주 | 우주의 기원:물질과 에너지 | 강준원(환경학) |
제5주 | 성경에 나타난 과학 | |
제6주 | 엔트로피의 법칙 | 권영식(화학) |
제7주 | 생물학적 고찰:생명의 신비 | 정계헌(생물학: 순천향대학) |
제8주 | 중간고사 (중간보고서 제출) | |
제9주 | 생명복제의 원리와 의미 | 김현원(의과대학 생화학교실) |
제10주 | 인체 창조 | 한용표(의과대학) |
제11주 | 지질학적 고찰(지층과 화석) | 김세현(지질학:상지대학) |
제12주 | 환경과 창조질서 | 강준원 |
제13주 | 창조역사의 문자적 고찰 | 이정자 |
제14주 | 종합토의 | 강준원, 이정자 |
제15주 | 기말고사 (기말보고서 제출) |
비기독 학생들의 반응과 의식의 변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다른 교양과목에 비해 매우 많은 학생들이 이 강의에 관심을 보였다. 강의 첫 시간에 198명의 수강생 중 81명이 기독교인(매주 교회에 출석하는)이라고 응답했고 마지막 시간에도 82명이 기독교인이라고 응답하였으므로 한 학기 동안 기독교인의 수에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그 동안 우리가 관심을 갖고 관찰한 것은, 기독교인 학생이 창조과학 강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보다는 비기독교인 학생들의 창조주와 창조론에 대한 반응과 의식의 변화였다. 수강생 중 117명의 비기독교인 대학생들의 의식구조의 변화를 관심있게 관찰함으로, 앞으로 창조과학 강의가 더 많은 대학에서, 각자의 전공분야에 대해 창조과학적 안목으로 훈련되고 헌신된 교수들에 의해 과감하게 실행될 수 있도록 돕고자 함이었다. 다음의 모든 자료는 수강 학생들의 60%인 비기독교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이다.
첫 주 강의 시작하기 전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창조주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학생이 35명, 종교와 상관없이 창조주(조물주)는 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64명이었다. 그러나 15주 후, 마지막 강의가 끝난 후에 다시 조사된 설문에서는 창조주는 절대로 없다는 학생이 12명이었다. 한 학기의 강의를 듣고 난 후, 무신론자들로서 절대로 창조주는 없다던 학생의 50% 이상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했던 창조주라는 신은 바로 기독교의 하나님임을 알게 되었다는 학생은 40명이고 4명만이 다른 종류의 신이라고 했다.
진화론에 대해서는 18.2%만이 계속 진리라고 응답했고 그들 중 75.8%는 진화론이 한낱 가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거나 또는 많은 오류가 있어 진리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임을 알게되었다고 표현했다.
우주만물은 창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47%였고 40%는 단호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에 동의했다. 5명만이 우주만물이 진화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창조과학이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76.8%가 답함으로 창조과학이 복음전도의 좋은 도구가 되고 있음을 암시해 주었다. 강의 선택하기를 잘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73.7%로 비기독교인 학생들에게도 상당히 호의적인 학문으로 창조과학이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누가 계속 도와준다면 앞으로 성경의 창세기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학생은 87.9%에 달했다. 기독교에 대해서도 계속 더 알고 싶다는 응답이 85.8%였으며, 성경이 진리 또는 부분적으로라도 진리라는 데에 93%가 동의했고 4%만이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적은 책이라고 표현했다. 12%의 응답자는, 성경은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게도 꼭 들어보라고 추천하겠다는 학생이 27.3%, 추천하고 싶은 과목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65%였다.
이런 종류와 유사한 기독교적 강의는 대학에서 필요없다고 한 학생은 비기독교인 학생중 단 2명뿐이었다. 강의 내용이나 강의 진행 방법, 그리고 강사 선정과 강의의 주제 선택 등 각 질문에 대해 모든 것이 좋다(또는 아주 좋다)는 반응은 70-80%였고, 좋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응답은 2-4%로 아주 미미한 정도에 그쳤다.
결론적으로 기원론은 창조론 또는 창조론 쪽(진화론보다는)이라고 생각한다는 학생이 51.5%에 달했으며, 계속 진화론이 옳다고 하는 학생은 3%, 진화론 쪽일 것이라는 학생은 17.2%였다.
이상의 강의에 대한 반응들은, 모든 창조과학 사역자들이, 특히 교수들이 창조과학을 통해 비기독교인 대학생들에게 충분한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학문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과감하게 접근하게 하는 용기를 갖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강준원 교수 및 다른 모든 강사들, 그리고 기독교인 수강생들과 조장들의 수고에 감사드리며, 비기독교인 학생들이 소감으로 남긴 글 몇 가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비기독교인이지만 진화보다 창조가 더 과학적이다."
"진화론의 잘못됨을 비판할 수 있고 창조론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게 됐다"
"단지 시간표가 맞아서 듣게 것인데, 주위의 친구들에게 수강을 많이 권하고 싶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대학마다 개설되면 좋겠다"
"비기독교인에게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 강의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culture/c5/c51/c51c4/education.htm
출처 - 창조지, 제 121호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04
참고 :
창조개념체계의 과학교육을 위한 함축들
I. 진화개념체계에 따른 과학교육의 시도들
1970년대 말부터 과학교육의 목표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과학과 기술의 급속한 발전, 과학지식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인식, 환경과 자연지원에 대한 새로운 관심 등의 요인들과 탐구 중심의 과학교육 시도의 실패가 그 기본 목표와 전제 등에 대한 숙고를 요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말부터 거의 1970년대까지 과학교육의 목표는 각 학문의 구조에 바탕을 둔 지식과 탐구과정의 이해와 적용에 있었다. 이것은 과학교육이 미래의 과학자를 양성해내는 기능을 한다는 국가의 정책적인 의도에 의해 형성되었다. 따라서 그 당시 과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과학자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배우는 데 있었다. 국가의 지원 아래 많은 교과과정이 개발되었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대표적인 교과과정으로 물리의 Physical Science Study Committee(PSSC)), 화학의 Chemical Education Materials Study(CHEM STUDY), 생물의 Biological Science Curriculum Study (BSCS), 지구과학의 Earth Science Curriculum Project (ESCP) 등을 들 수 있다.
생물분야의 경우 생물학 전체 내용에 구조를 제공해 준 주제는 ‘진화’와 ‘탐구’이었다.1) 진화의 개념은 단지 내용으로뿐 아니라, 생물교과 전체내용의 구조를 형성해 주는 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부정적이었다.2) 3) 4) 많은 교사들이 위의 교과과정을 바탕으로 개발된 교재들의 선택을 기피하고, 수많은 교사연수에도 불구하고 그 교과과정의 기본 전제와 철학들이 재대로 이해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 교재들이 사용되고 있다고 보고서들은 지적하였다. 학생들의 성취도도 계속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1970년대 말부터는 과학교육의 비판과 함께 사회의 변화들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그것은 과학교육이 과학자의 양성을 위한 것보다는 학습자의 인간적 측면, 과학과 기술의 사회와의 연관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5) 이렇듯 과학교육의 목표가 학문적 준비이외의 개인적 필요, 사회적 논쟁점, 직업교육 등에 관심을 두는 경우, 과학수업에는 필연적으로 가치관이 반영되고, 과학과 관련된 개인의 생활과 사회의 논쟁점에 대해 학생 나름대로의 견해를 갖도록 격려되고 자극된다. 과학교육이 이와 같은 목적 군들을 위해 수행되어야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이끌어 갈 추진력(핵심)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 지에 관하여는 이견이 있다. 왜냐하면 그 핵심을 인간관, 자연관, 그리고 사회관을 반영하는 사상체계(framework of thoughts)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물교육의 경우, 폴 허드는 새로운 교과과정에서 생물교육의 목적들은 자연의 한 부문으로서, 인간이란 종의 연구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6) 그래서 인간을 다른 종들과는 다른 독특하고도 유일한 유기체로 이해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사회와 자연환경사이의 부조화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성취해야 할 생물교육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생물교육의 기본적인 전제가 진화론이어야 함을 내포하고 있다. 1960년대의 학문중심의 교과과정만큼이나 과학의 사회적 연관성과 유용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교과과정도 진화사상을 그 노력의 철학적 배경으로 삼고자 한다.
그러나 학문의 기본체계로서 진화사상을 이용하려던 노력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처럼, 과학을 개인적 필요 사회적 논쟁점에 적용할 때 진화를 그 핵심사상으로 하는 경우도 실패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진화사상이 목표성취를 위한 추진력으로 사용될 경우 실패의 잠재적 가능성은 확실하다. 위에서 제시된 과학교육의 목표 군들 - 즉 개인적 필요, 사회적 논쟁점, 학문적 준비, 그리고 직업교육 내지는 인식 - 은 한 개인의 삶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데 반해, 진화사상은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들에게 생물 (크게는 과학) 학습의 당위성을 제공하거나 학습성취 의욕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유물론적인 진화사상이 영적 존재인 인간의 갈구를 채울 수 없으며, 인간, 자연 그리고 사회를 포괄하는 통일적인 세계관을 제공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화사상이 생물교육의 구조를 형성해 주고 전체 내용을 꿰뚫는 상위 개념으로 작용할 경우, 그것은 제한적이며 비능률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식은 현실과 동떨어진 별개의 산물로 인식되어지고, 가치나 태도의 면은 각 개인의 선택이나 결정에 맡겨지거나, 기껏해야 인간존속과 사회유지를 위해 필요한 가치와 태도들을 고취하고 권장하는 정도로 밖에는 교육할 수 없다. 또한 이 추구 속에서 얻어질 수 있는 자연의 심미적 속성, 신에 대한 경외심, 의미 있는 존재로서 자기확인 등의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이상의 논의에서 현재 생물교과과정의 추진력이자 핵심사상이 진화라는 개념이며, 이에 따른 문제점들을 살펴보았다. 이 논문에서는 진화에 대한 대체적 개념체계로서 창조개념체계가 과학교육에 적용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보이고자 한다.
II. 창조개념체계의 과학교육을 위한 함축들
기독교 세계관은 창조, 인간의 타락, 구속, 영화로 구성된다. 이 요소들 중 창조이외의 요소들은 공교육제도의 현실과 자연을 학문대상으로 하는 과학의 성격과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과학교육의 목표와 과정들에서 고려하기 어렵다. 그러나 창세기 1장과 2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문화명령은 과학교육을 위한 중요한 함축들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진화론 중심의 과학교육체계에 대한 건전한 대안으로서 창조개념체계가 제시될 수 있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교육의 전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도덕적이며, 책임 있는 존재(Person as a moral and responsible being)이다.(창1:26).
둘째, 모든 인간은 한계 내에서 하나님의 창조성(Creativity)을 갖고 있다 (창2:19,20).
셋째, 인간은 관계를 위한 존재 -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상호간의 관계, 자연세계와의 관계 - 로 지음 받았다 (창1:27,28).
넷째, 인간은 일(work)하도록 부름 받았다 (창1:28).
위의 전제들은 지식, 가치, 기능의 영역에서 분명한 교육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창조개념체계는 자연세계, 자연과 인간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상호간의 관계 및 인간의 본질을 포함하는 총체적이고도 일관된 관점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특징들은 진화개념체계만큼 창조개념체계가 학생들의 과학지식에 대한 인식론, 가치, 태도 및 학습욕구, 그리고 성취도 전반을 위한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상위개념체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1. 도덕적이고 책임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
이 전제는 과학교육뿐 아니라, 일반 교육 전 분야에 적용되며, 개인의 지식, 태도와 가치 그리고 기능과 능력의 개발은 자유롭고 책임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자연세계와 관련하여 “책임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과학교육에 중요한 함축을 제공한다. 과학교육이 지향하여야 할 목적군 중 ‘사회적 논쟁점’의 영역은 과학과 관련된 여러 사회적 논쟁점들의 본질을 이해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지식, 가치, 기능면에서 교육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의 문화명령은 이 ‘사회적 논쟁점’ 영역이 논의되고 실행될 수 있는 사상적 배경과 방향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리고 보호하는 책임을 주셨다. 따라서 자연의 개발은 하나님의 뜻이며, 자연의 이용과 개발은 오직 인간위주로, 탐욕의 동기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사회와 자연환경이 적절히 조화될 수 있고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지시하고 있다. ‘사회적 논쟁점’으로 거론되는 환경오염, 오존층의 파괴, 온실효과, 방사능의 위험, 중금속 중독, 수자원의 고갈, 인구문제, 우주개발이나 유전공학 등 특정연구의 타당성 및 한계 등과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게 하고, 바람직한 태도와 가치를 지니게 하며, 연구의 손익을 따지고 분명한 결론에 이를 수 있는 사고과정을 제공하는 것이 이 목적 군이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담당한다는 마음으로 이 목적 군에 접근할 때 의미 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교육의 영역 중 가치, 태도의 영역은 창조와 진화의 개념체계의 차이가 확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진화의 체계아래서는 보통 사회구성인 다수가 지니고 있는 태도나 가치가 학생들에게 전달되며,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슈들에 대한 판단은 학생 개개인에게 유기되어 진다. 인간의 미래의 운명은 인간 자신에 의해 결정되며, 그래서 그 결정은 인류의 생존이나 발전 등의 인위적인 척도에 의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쳐진다. 반면, 창조개념체계에서는 피조세계는 인간의 책임 하에서 개발되고 돌보아질 대상이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과 존재를 확실히 나타내며(시19:1, 롬1:20), 이 세계에 대한 연구와 발견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솜씨에 대한 경탄과 즐거움이 된다. 과학과 관련된 사회적 제 문제 및 논쟁에 있어서도 창조의 체계는 보다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기능의 영역에서 창조개념체계는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교육에서 개발하여야 할 종합적인 사고력, 문제해결 능력,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도덕적이며 자유로운 인간이 주는 과학교육에의 함축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자발성, 자부심, 인간성과 독립심들을 키울 수 있는 학습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수업이 집단 교수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주도와 학생의 수동적인 학습활동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위의 목표들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개별화 학습과 학생들에게 많은 활동과 책임을 부여하는 수업형태로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2. 창조성 (Creativity)
창조성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격적인 인간의 본질적이고 현저한 특성이다.7) 따라서 창조성은 예술가나 과학전문직 종사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학자, 신학자, 운동선수, 기업가, 가정주부, 그리고 학생 등 누구에게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은 더욱 인간적이게 하며 (more humane), 평생에 창조성을 발휘하지 않는 사람은 충분히 인간적인 삶을 누렸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상으로 창조성 자체가 목적이자 이상으로 추구되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무신론과 진화론에 그 바탕을 두고 나타나는데, 자연주의, 인간중심주의, 심미주의, 기술과학주의, 경제주의 등으로 비인간화, 인종주의, 민족우월주의의 병폐를 야기하였다.
창조성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은 기독교 지식관과 같이 겸손과 확신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창조성은 무한하지도 않고 절대 무로부터의 생성을 의미하지도 않으며, 그 창조성은 피조세계에 내재된 질서와 구조를 하나님이 세계를 지으신 목적과 관련하여 밝히는데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조성이 발휘되는 작업에서 인간은 존재의 의미와 일의 보람을 가지며 자신의 자유와 독립성의 표출을 경험한다.
Torrance는 창조적 사고는 능력, 기능 그리고 동기의 공통부분으로부터 예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8) 그는 창조성을 한 과정(a process)으로 보았다. 어려움, 문제점, 논리의 비약, 빠진 요소 그리고 부조화를 감지하며, 문제를 분명하게 정의하고, 이러한 결함에 대한 추측과 가정을 세우고, 추측을 검증하고, 재수정하고, 재검증하거나 아니면 문제를 재 정의하고, 마지막으로는 그 결과를 전달하는 과정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의 제 요소들로서 과학교육에서 탐구(inquiry)라는 이름으로 지향하는 목표이다.
새교과과정운동(New Curriculum Movement)에서 강조되었던 탐구교육은 순전히 미래의 우수한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준비로서 제공된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해 효과를 얻지 못했고, 대부분 학교들은 이 교과과정을 기피하고 탐구교육의 비현실성을 토로하였다. Welch는 “과학교육자들이 탐구교육을 시도한 햇수만큼 그들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였다”고 하였다.9) 그들의 노력이 실패한 이유로는 여러 외부적인 요인들이 거론되지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진화를 그 교과과정의 기본체계로 삼았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거의 그들의 하는 활동과 자신의 삶을 연관지을 수 없었다. 그들이 배우고 실험하는 것은 과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자신들이 스스로 그 탐구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그 탐구활동이 자신의 삶의 일부라고 여길 수는 없었다.
왜 이렇게 자신의 삶과 학습활동을 철저히 분리시키는 행동을 가지게 되었을까? 진화사상체계는 학생들이 자연을 탐구하고, 그 과정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여기도록 하는 배경과 기능을 (동기부여, 활동의 유목적성) 제공하지 못하였다. 탐구교육은 전체 사회의 필요 - 과학자 양성 - 를 위해 필요하였지,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잠재적 창조성을 개발하고 보다 인간적인 삶을 위한 과정으로서 제공되지 않았다.
창조개념체계에서 창조성의 교육은 본질적으로 인간성의 신장을 위한 교육이어야 하지, 어떤 부차적인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됨을 분명히 한다. 비록 우수한 영재들을 위한 교육이 특별히 이루어질 수 있지만, 적어도 창조성교육은, 모든 학생을 위한 것이라는 전체적인 학습환경이 중요하다. 각 개인이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성을 부여받았다는 전제아래 모든 학생들의 모든 활동에서 창조성이 고취되고 요구되는 학습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
창조활동은 과학과 관련된 개인적인 필요들, 사회적 쟁점들, 학문의 준비 및 직업인식 등 과학교육의 모든 분야에서 실행될 수 있고 학생들의 개인적 관심, 능력 등의 차이에 따라 개별화 학습이 제공될 필요가 있다. 창조적 행동을 예견할 수 있는 3가지 요건이 능력 (abilities), 기능(skills), 동기(motivations)라고 할 때, 창조개념체계는 창조적 행동을 위한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하며, 소유하고 있는 능력, 기능의 수준에서 창조활동을 명령한다. 또한 그 활동은 자기의 삶에 연장되어지며, 평생토록 지속되는 삶의 원동력이 되게 한다. 그러나 능력과 기능이 갖추어 졌다고 하더라도 동기가 제공되지 않으면 창조활동이란 특별히 요구된 환경이 아니면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이 곧 진화사상에 바탕을 둔 과학교육의 탐구교육의 결과이다.
창조성교육과 관련해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요소로서 학교나 지역사회의 요구가 있다. 입시제도와 학부모의 지식위주의 수업요구 등이 창조성교육을 방해할 수 있다. 또한 교사의 준비도, 민감성, 지식, 세계관 등이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은 한편으로는 현재의 교육제도 내에서 교재개발, 교수법개발, 교사교육 및 제도개선을 통해 이룰 수 있고, 한편으로는 독자적으로는 기독교대학과 같은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서 설립된 기관에서 과학교사를 양성하고, 같은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초 중, 고등학교에서 보다 창조성교육이 창조되는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3. 관계를 위한 존재
창조의 세계관에서 아담과 이브의 창조는 인간의 관계적인 존재를 말해준다. 이 관계는 부부의 관계를 넘어 그들로부터 이루어지는 인간들 간의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성을 사람들 서로의 관계를 통해 더욱 고양된다.
반면, 진화의 사상체계는 적자생존의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인간의 모든 활동의 동기를 삼아 남기 위한 경쟁에서 찾게 한다. 이러한 동기는 더 나아가 인간성의 본질인,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에 기원을 둔 노동이 축복이 아니라, 단지 생존을 위한 수고나 일, 그 자체로 전략해 버리게 한다. 인간의 타락으로 노동이 즐거움보다는 수고가 더 특징이 되었지만, 창조때 부여된 노동의 본질까지 제거된 것은 아니다.
창조의 세계는 인간 상호의 상위 하나님의 교제만큼이나 서로 긴밀하고, 하나가 되어야 함을 전제한다(요17:11하, 요17:21). 따라서 우리의 바람직한 교육은 학생 상호간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극하며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을 제공해야 함을 함축하고 있다. 과학교육에서 이 관계를 위한 학습활동이 어떻게 시도되어야 하는지는 보다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과학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동적이며 협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 의도적으로 상호 협동을 요구하는 실험활동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개인적 필요나 학문적 필요 그리고 작업교육과 관련해서도 인간관계를 교육할 여지는 있을 것이다.
4. 노동에의 소명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과학교육의 목표에는 과학과 관련된 직업에 대한 소개 내지는 인식을 하나의 목표 군으로 삼고 있다. 이 목표 군은 과학, 기술과 관련된 직업들의 성격과 전망을 알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준비시키는 일이다. 우리나라 교육체계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연계와 인문계를 결정하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구체적인 직업을 위한 전공을 결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어느 교과목보다도 과학교육은 직업교육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창조의 사상체계는 “직업”, “노동”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 노동은 충분히 의미 있는 활동이며, 인간성을 증진시키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활동이다. 또한 노동은 인간관계속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 관계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표출시킨다. 종합적이고 일관된 창조의 사상체계의 실제적인 작용들인 노동과 직업은 학생들이 과학과 관련된 직업을 알아보고 선택하는데 있어 개인의 자질, 취향, 직업의 유망성을 포함하여 보다 포괄적인 요소들을 고려하게 한다. 어쩌면 다른 사상체계 혹은 세계관 아래서 선택할 수도 있었을 직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창조의 개념체계는 직업이 자기의 삶뿐 아니라 하나님의 전 주권의 영역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궁극적으로 이 개념체계의 차이는 일에 임하는 태도, 자세에도 영향을 준다. 사도 바울은 종과 상전이 각각의 일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으며, 디모데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치고 권하라고 명하고 있다(딤전6:2). 이 가르침들은 학생들에게 직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일에 있어 구체적이고 확실한 함축을 제공하고 있다.
III. 끝맺는 말
이 글을 통해 창조의 개념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즉, 도덕적이고 책임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 창조성, 관계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그리고 노동에의 소명이 과학교육이 지향하고 있는 목표 군들, 즉 개인적인 필요, 사회적인 쟁점, 학문적 준비, 그리고 직업교육에 어떤 함축들을 제공해 주는지를 지식, 태도, 기능의 영역에서 살펴보려고 했다.
여기서 논의된 창조의 개념체계의 요소들은 그 전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라고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는 없다. 저자가 창세기 강해설교를 들으며 진화의 개념체계 위에 세워진 과학교육의 제반 시도들을 이 창조의 개념체계를 바탕으로 재구성할 때 훨씬 의미 있고 일관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하였을 뿐이다. 또한 기독교 세계관을 구성하는 창조, 타락, 구속, 성화의 전반적인 면에서 과학교육에의 함축을 고려할 수 없었던 것은 공교육제도 및 과학이라는 학문에 의한 제한과 저자의 다른 요소들에 대한 충분한 숙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가지 지적해야 할 사항은 이 창조의 개념체계에 바탕을 둔 과학교육의 실현가능성의 여부이다. 앞으로 창조의 개념체계로부터 나온 함축들이 과학교육을 위해 보다 효율적이며 의미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노력으로서 창조의 개념체계에 입각한 교과과정, 교수법, 교사교육, 수업 등의 개발과 실행, 그리고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기독교학문학회발표 논문집(89.8.10~12)에 게재된 논문임을 알려드립니다.>
참고문헌
1) Schwab, J. J(supervisor) (1963). 'Biology teachers handbook', New York : John Wiley & Sons, Inc.
2) Helgeson, S, L ; Blosser, P. E. ; and Howe, R. W. (1977). 'The status of precollege science, mathematics, and social science education : 1955-1975, Vol 1 : Science education'. U. S. Government Printing Office.
3) Stake, R. E.(1977).'case studies in science education , Vol 1 'The case reports', U. S. Government Printing Office.
5) Harms, N. C. : Yager, R. E(Eds.). (1981). 'What research says to the science teacher'. Vol 3. pp. 7-8, Washington, D. C : National Science Teacher Association.
6) Hurd, P. D (1981). Biology education. In N. C. Harns and R. E. Yager (Eds.), 'What research says to the science teacher', Vol 3, p.13,
7) Holmes, A. F. (1983). 'Contours of a worldview (Studies a Christian worldview', William B. Edrmans Publishing Company' 이승구 역, 기독교세계관, 1985, p.289. 도서출판 엠마오.
8) Torrance, E. P. (1980). In A. E. Lawson (Ed), '1980 AETS Yearbook : The psychology of teaching for thinking and creativity', p.237, Columbus, OH : ERIC Clearinghouse for Science, Mathematics, and Environmental Education.
9) Welch, W. W. (1981). Inquiry in science education. In N. C. Garms and R. W. Yager (Eds.), 'What research says to the science teacher', Vol 3, Washington, D. C.: National Science Teacher Association.
출처 - 창조지, 제 65호 [1989. 10~1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03
참고 :
창조신앙을 가르칠 사람들
이광원
1. 창조를 가르쳐야 한다
성경을 역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구속사(救贖史; Salvation history)이다. 구속사는 인류의 모든 역사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반사(一般史)와 구별이 되지만, 구속사는 어디까지나 역사의 사실을 통하여 구원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또한 구원을 완성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구속사의 여정은 창조→ 타락→ 구원의 순서로 이어져 가고 있다. 여기서 구원이란 타락하여 죄 가운데 있는 피조물이 창조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처음 사람 아담의 범죄와 타락과 이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로 파괴된 피조계의 질서가 창조 상태의 의(義)와 영생(永生)의 온전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구원인 것이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창조는 당연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상에는 창조의 사실을 부인하는 세력들이 기독교 밖과 안에 모두 존재하고 있다. 즉, 진화론과 자유주의 신학이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 밖에서 창조론을 부인하는 세력인 진화론에서는 우주와 만물이 창조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진화에 의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사람도 원숭이가 진화한 존재라고까지 주장하기도 했었다. 기독교 내의 창조론 부인 세력인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에서 초자연적 요소를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이해되는 부분만 수용하자는 사조이다. 가령 창세기를 창조신화나 창조설화로 해석하기도 하고, 성경 중에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장애세력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특별계시 관점에서 본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일반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다. 따라서 진화론과 자유주의 신학으로 물들어 있는 그들에게는 이론과 실증으로 대결해야 한다. 즉, 신학자, 목회자, 과학자, 역사학자들 모두를 포함한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창조의 과학적 사실을 연구하고 탐색하여 진화론을 분쇄해야만 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방법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55:8) 라는 성경 말씀을 우리는 겸허히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이 말씀을 본인이 실감한 것은 1990년 '생물교과서 검정'에 관한 재판 사건이 있고 난 후였다. 당시 이화여대 이양림 교수와 필자는 공동저자로 생물교과서를 집필하면서 기존의 진화론을 공격, 분쇄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나라에 도래하였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기존의 진화론 내용의 틀을 벗어나지 말라는 문교부의 지시 등 장애 세력들이 나타나면서 결국에는 '검정불합격' 처분을 받게 되었다. 저자들 뿐 아니라 창조과학회 회원, 출판사 관계자 모두는 어리둥절하고 말았으며, 이제는 창조론의 설 자리가 영영 없어졌나 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생각과 달랐다. 1990년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 매스컴에서 일제히 "창조냐 진화냐"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반인들도 이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는 창조론에 관한 이야기가 수업시간에 겉으로 드러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설이 맞느냐 틀리느냐 하는 문제는 차치해 놓고 라도 이제까지 들어보지도 못했던 '창조설'을 접해볼 수 있는 계기가 생긴 셈이다. 만약 교과서 검정이 합격되었다면 그 교과서를 택한 일부 학교에서만 그 내용을 접해 볼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불합격'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일시에 전국적으로 창조론을 소개시켜 주신 것이다. 이 어찌 하나님의 방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실로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알기 위한 기도를 먼저, 많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 후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생물 수업시간에 교사들의 입을 통하여 창조론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교회학교 중·고등부 수련회를 통하여 창조론 세미나가 매우 활발하게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교실 밖에서도 창조신앙 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게 되었다. 그러나 체계적인 신앙교육 안내서 및 지침서가 없는 실정이고, 창조신앙교육을 맡아서 할 강사훈련 프로그램이 미비한 실정이었으며, 특히 학교 교단에 서는 교사들을 교육시킬만한 프로그램이나 교과서 편제에 맞는 지도서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사실 본인도 교과서 검정불합격 사건 이후 아무런 대안이나 계획이 없는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단지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나의 주장을 피력하고, 기독교 동아리반 운영 등에만 관심을 가지는 정도였다. 교과서를 통한 창조론 교육만이 유일한 방법이고,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어떤 방안(?)을 마련하시겠지 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왜 하나님께 해야할 일, 방법 등을 물어 보지도 않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두렵기까지 하다.
3. 사람이 할 일
그러던 중 작년(1998년) 10월부터 한국창조과학회에서 「창조과학 강사프로그램」을 개최하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과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창조신앙교육을 시키시기 위한 계획이라는 판단 하에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가듯 갈급한 마음으로 등록을 하게 되었다. 본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창조과학교사연합회」의 결성이 태동되었고, 금년 2월 23일 정식으로 결성을 보게 되었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9). 하나님의 때가 되매 교과서 출판을 통한 창조신앙교육 방법만 의지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여 주신 것이라 믿는다. 최종적으로 학생들에게 창조신앙을 전달할 사람은 교단에 서서 가르치는 교사인 만큼 그들의 입술에 창조론을 담아주기만 하면 아직 교과서는 없지만 창조신앙교육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리라 믿는다. 교사들을 통해 교내 창조과학동아리를 일으킬 수도 있고, 현 교과서를 분석, 이를 창조적 관점에서 해석한 소책자를 발행하여 일반 교사들이 지침서로 활용하도록 할 수도 있으며, 창조주의 섭리를 배울 수 있는 교재나 캠프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할 수도 있는 것이다.이렇듯 일선 교육 현장에서 청소년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왜곡된 진화론적 세계관을 바로잡기 위한 일, 진화론의 허구성을 밝히고 창조론을 가르칠 수 있는 토대의 마련을 하나님께서 해주고 계신다.
즉, 지난 1월에는 광주와 경주에서 이를 위한 세미나가 개최되었고, 2월에는 서울 ·경인지역 교사들을 위한 세미나가 개최되었으며, 4월에는 목포에서 세미나가 있었다. 이제 금년 상반기 중에 강원도, 부산, 충청도 등 전국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여 관심있는 교사들, 헌신된 사람들을 불러내고자 한다. 그런 후 8월의 회원의 날 기간에는 전국적인 「창조과학교사연합회」 모임을 가지면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의 출발을 위한 준비를 할 것이다.
창조과학교사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구속사역 완성의 최일선에 동참할 일꾼이라 믿는다. 우리 회원 전원은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사 65:18)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천하 만민에게 증거하는 사명을 게을리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출처 - 창조지, 제 114호 [1999. 5~6]
아! 난 진화론을 가르친 죄인!
평생동안 생물교사로 진화론을 가르치다 그랜드캐년에서 참회의 눈물을...
"아버지 하나님! 소생은 죄인이로소이다.
교단에서 젊은이들에게 평생 진화론을 가르친 큰 죄인이올시다.
어리석게도 이제서 깨달았나이다.
그랜드캐년 와서야..
노아의 홍수가 역사적인 사실임을 확인하고서야..
주님의 거대한 진노의 흔적을 눈으로 보고서야..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나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신 하나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믿음은 약하나마, 미약한 힘이나마, 여생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성심껏 '진화론은 허구이고, 창조론이 진리'임을
나와 같이 생물학을 전공한 동료들에게, 교단 후배들에게, 교회 형제들에게
알리고자 하오니 믿음과 용기와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 이번 그랜드캐년 지층 탐사 여행에 불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멘 "
나는 그랜드캐년을 탐사하던 날 밤 지난날들을 회개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나의 평생 지은 죄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기도 하고 그 엄청난 계곡의 장엄함과 광활한 공간의 신비로운 광경-인간의 힘이나 아니 자연의 힘으로조차 만들어지기 어려운 오직 하나님께서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창조물을 보고 감격하고 흥분한 눈물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그랜드캐년 탐사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 창세기를 1장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의 과정을 상세히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노아가 등장하는 6장부터는 대홍수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까 하는 생각에 흥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탐사 전에는 노아의 방주사건에 대해 전설이나 신화로만 생각했으나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대홍수 사건은 내가 참여했던 그랜드캐년 탐사 과정을 연관시켜 볼 때 확실한 역사적 사실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방해하던 진화론적 사고가 해소되며 창조론이 진리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랜드캐년 보고 성경의 정확성 깨달아
우연히 창조과학 교육원에서 실시한 2001년 1학기 과정을 수강하게 된 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모든 교수님들의 충실한 강의에 매료되어 정성껏 강의를 수강했으며 결국 그랜드캐년 지층 탐사 여행에까지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랜드캐년을 탐사하며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적극 권유합니다. 창조과학회의 발전을 빌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culture/c5/c51/2001_125_9.htm
출처 - 창조지, 제 125호 [2001. 5~8]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04
참고 :
기회이자 위기의 시대에
지난 1월 29일 Georgia 주 교육감이 중고등 학교 과학책에 “진화”라고 하는 용어를 “시간에 따른 생물학적 변화”라는 용어로 바꿀 것을 제안하였다고 각 신문이 보도하였다. 용어를 바꾼다는 표현이 진화 내용 가운데 어느 정도 손을 대는 것인지는 자세히 언급되진 않았지만 미국 교육계에서 진화의 한계를 드러내는 또 다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최근 년간에 걸쳐 학교에서 진화에 대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 주들은 Georgia주를 비롯하여 Alabama, Arizona, Idaho, Kentucky, Michigan, Nebraska, New Mexico, Oklahoma, Pennsylvania, West Virginia, Kansas, Montana, Ohio, Pennsylvania, Tennessee, Texas, Wisconsin 등에 달한다(Creation Science Resource 참조).
이러한 변화는 1925년 법적으로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칠 수 없었던 미국에서 테네시주 고등학교 교사인 스코우프스가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일로 일어난 일명 “원숭이재판(Monkey Trial)”을 떠오르게 한다. 이 재판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 진화론을 집어 넣자고 하는 변화가 일어났었으며 결국에는 오늘날의 미국 모든 주가 진화론을 가르치는 상황까지 번지게 되었다. 거의 80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는 반대 현상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원숭이 재판이래로 미국의 각 주에서 “탈 창조”가 연달아 일어났었던 모습이 최근에는 “탈 진화”의 물결의 양상으로 뒤바뀐 것이다.
각 주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진화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 이다. 진화는 처음부터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믿음”이었으며, 그 동안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제시되어왔던 생존경쟁, 자연선택, 돌연변이 등은 종을 바꾸는 진화하고는 무관하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깨달은 것이다. 또한 화석에서 진화를 지지하려고 중간단계화석을 찾으려는 노력은 언제나 빈손만을 남겨준 결과이다. 드디어 성경을 믿지 않는 과학자들도 과학 자체만으로도 진화는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며 기존의 진화내용을 삭제하거나 변형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그 동안 진화는 없었다고 끊임없이 주장해 온 창조과학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일반 과학자들 조차도 스스로 진화에 대하여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니 말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여기서 승리의 축가를 불러야 할까? 다시 말하지만 그들이 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과연 기독교인들이 무슨 자세를 취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처음부터 창조과학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진화론 비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창조과학사역은 성경과 과학이 상반되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진화가 사실인 성경과 맞지 않는 거짓이었기 때문에 진화의 모순성을 지적해왔던 것이다. 이는 성경의 무오성을 말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진화론이 등장한지 백 년이 넘도록 중간화석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 진화론자들의 태도는 실로 경악할만한 것이었다. 진화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놀라운 이론은 제시했다. 바로 단속평형이론(Punctuated Equilibrium)이었다. 즉 진화가 일어나되 화석을 남겨놓을 새 없이 빠르게 진화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는 이론이다. 각각의 중요한 생물 간에 전이화석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한동안 잠복기 후에 빠르게 진화되어 화석을 남겨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진화론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이론을 내세우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진화에 대해 그들이 회의적이라 해서 스스로 성경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또 다른 이론을 내세우게 될지 모른다. 오히려 오늘날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뉴에이지 물결과 맞물려 자연 스스로가 생물을 만들 수 있는 놀라운 능력 그 자체라고 하며 자연을 더 경배하려고 한다. 어쨌든 성경에서는 우리가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4). 우리는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지만”(롬 1:20),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을 때는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롬 1:22) 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진화가 없었다는 것을 창조과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깨닫기 전에 일찍부터 알고 있었고 이를 지적해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정답, 처음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창조자께서 말씀하신 그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자가 스스로 깨달아 안 것이 아니라, 창조자가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진화론에서 벗어나려는 세속적 과학자들을 비판하자는 것도 아니며, 진화를 비판하는 그들의 증거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데이터는 더없이 소중하다.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스스로 성경으로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지금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파하고”(고후 10:5)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절호의 찬스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교회는 더욱 그러하다. 갈팡질팡하고 있는 세상과 교회에 진짜 창조자와 성경적 세계관을 제시할 기막힌 “기회”인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또 다시 멀리 돌아갈지도 모르는 “위기”이기도 하다. 또 다른(!) 진화론을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화를 비판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듯이 사탄은 진화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고후 10:5)것을 막는 것이 그의 목적이며 그도 역시 진화를 단지 그의 수단으로 사용해왔던 것뿐이다.
지난 수년 동안 세계적 창조과학자들이 지구의 나이가 수 십 억년이라는 것을 뒷받침 해 준다는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의 문제점을 첨단 과학으로 지적하려는 RATE프로젝트를 준비해 왔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창조과학자들은 앞으로 진화는 큰 문제가 안 될 것임을 예견해왔다. 앞으로는 지구의 나이 문제가 더 첨예하게 대립될 것을 예측했다. 이를 위해서 미리 준비해 왔었으며 2003년 급기야는 미국지구물리학회에서 발표하여 주목 받기에 이른 것이다(Creation Truth v. 12 n., Feb. 2004).
창조과학선교회에서 전세계 창조과학자들이 모여 Origins DVD 제작을 준비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시기는 우리가 참된 창조자를 보여줄 기막힌 “기회”임과 동시에 이 시기를 놓치면,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2세들에게 더 혼잡한 세계관이 들어서게 될 “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Origins DVD는 진짜 창조주를 인식하고 있는 우리 선견적인 부모들이 후세와 세계에게 주는 훌륭한 선물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로 “모든 이론이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며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데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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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학교같은 교회, 교회같은 학교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던지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친다. 언어, 수학, 과학, 사회, 윤리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사실이라고 믿던지 그 가정 하에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교회도 물론 마찬 가지이다. 하나님의 창조하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첫 인간의 범죄,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대한 물심판, 언어의 혼란, 이러한 인간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초림과 마지막 심판인 재림 등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가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각각의 장소에 모여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많은 부분이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쪽에서는 인간은 원숭이와 같은 하나의 동물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인간은 그 동물들을 다스리기 위해 특별히 창조자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한쪽에서 윤리란 인간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이 나쁘다라고 하는 것은 나쁜 것이고, 하나님이 옳다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이라 가르친다. 한쪽 과학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화되어 여기까지 왔다고 가르치고, 다른 쪽에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은 이세상을 완벽하게 디자인하여 창조하였다고 가르친다. 한쪽에서는 옛날 사람들은 우리보다 덜 진화되어 지식 또한 훨씬 떨어졌다고 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첫 인간부터 완전한 인격체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친다.
두 곳이 다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가르치면서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 가서는 이렇게도 다를까? 단순하게 답을 하면 학교에서는 진화론과 진화론에서 파생된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고,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성경대로 창조하셨다는 창조론과 그 창조자의 삶의 기준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는 과학적 사실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은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진화론에서 파생된 인간관, 윤리관, 역사관을 사실처럼 가르치고 있다. 반면에 오늘날의 교회는 진화론적인 사고의 영향을 받아 성경적 창조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회피하곤 한다. 성경대로 창조하시고 성경대로 전 세계를 홍수로 심판하시고, 바벨탑 사건으로 사람들을 흩으신 사실을 사실 그대로 담대하게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성경은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5-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서 창조사실을 전할 수 있는 곳은 딱 한군데 밖에는 없다. 이는 바로 “교회”다. 교회는 바로 창조사실을 알고 있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이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성경대로 행하신 창조자가 있으며 이 창조자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을 알고있다.
이제 교회는 학교와 같이 가르쳐야 한다. 진짜 교육을 해야 한다. 일반 학교에서 가르치는 진화론적인 내용이 아닌 창조에 입각한 교육을 해야 한다. 성경에서는 성경을 벗어난 어떠한 것도 “교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즉 사실에 기초한 것만이 “교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학교는 교회와 같이 성경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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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진화에 관하여 생물 선생님께 물어봐야 될 10가지 질문
1. 생명의 기원
왜 교과서는 1953년 Miller와 Urey의 실험이 초기 지구에서 생명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보여준다고 가르치는가? 실제로 초기 지구는 이들의 실험장치와 같지 않으며, 생명의 기원도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지 않은가?
2. 다윈의 진화나무
왜 교과서는 모든 주된 동물화석 그룹이 조상 없이 완전한 형태로 함께 발견되는 "캠브리아기의 화석 대폭발”에 대하여 언급이 없는가? 이는 진화론과 상반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3. 상동관계 (Homology)
왜 교과서는 상동관계를 공통조상으로 인한 유사성으로 정의를 내리는가? 왜 이를 공통조상의 증거로 주장하는가? 이는 과학적 증거인 것처럼 보이는 순환논리가 아닌가?
4. 척추동물의 배
왜 교과서는 공통조상의 증거로서 척추동물의 배의 유사성을 나열한 그림을 사용하는가? 생물학자들이 이들 배들이 초기상태에서 거의 유사하지 않으며, 그림도 조작되었다고 100년 동안이나 말해오지 않았는가?
5. 시조새
왜 교과서는 공룡과 오늘날의 새의 빠진고리로 이 화석을 사용하는가? 오늘날의 새는 이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으며, 새의 조상이 그 후 수백만 년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많은 과학자들이 말하지 않는가?
6. 검불나방 흰불나방
왜 교과서는 나무에 위장된 불나방의 그림을 자연선택의 증거로 사용하고 있는가? 1980년 이래로 모든 생물학자는 나방은 정상적으로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며, 모든 그림이 조작되었다고 알고 있지 않은가?
7. 다윈의 핀치새
왜 교과서는 극심한 가뭄 동안 갈라파고스 섬에서 핀치새의 부리 변화가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을 설명한다고 주장하는가? 가뭄이 끝난 후에 그 변화는 다시 역전되었으며, 어떠한 진화도 발생하지 않았지 않은가?
8. 돌연변이 과일파리
왜 교과서는 과일파리를 추가된 날개들과 함께 DNA 돌연변이가 진화를 분명하게 지지하는 증거로 사용하는가? 이 추가된 날개들은 근육도 없었으며, 이 장애 돌연변이들은 실험실 밖에서는 생존하지도 못했지 않았는가?
9. 인류의 기원
왜 교과서는 우리는 단지 동물이며, 우리의 존재는 완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유물론적인 주장을 정당화시키는 조작된 유인원의 그림을 사용하는가? 화석전문가들도 이들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이나, 그들이 무엇을 닮았는지 조차 말하지 않는다.
10. 진화가 사실?
왜 우리는 진화의 다아윈 학설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배우고 있는가? 많은 주장들이 사실에 대한 허위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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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
생명의 설계가 과학적으로 가르쳐질 수 있다.
노트 : 오하이오 주의 과학 교육 기준에 대한 논쟁의 결과를 보도하였지만, 몇 가지 중요한 점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즉,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비판은 고등학교 졸업 시험의 한 부분으로 바로 허락되지는 않겠지만, 의무사항으로 되어질 것이다. 중요한 세부사항은 오하이오주의 최대의 신문인 Cleveland Plain-Dealer 지에 자세하게 보고되었다. 이 글에 관한 링크는 다음과 같다.
생명 기원에 관하여 정책이 결정되었다 (Policy resolved on origin of life).(http://www.cleveland.com/debate/index.ssf?/debate/more/1039602647180400.html)
12/11/02, Scott Stephens, Plain Dealer Reporter
콜럼버스 - 주교육위원회는 어제 일련의 과학교육기준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기준으로 인해 오하이오주는 처음으로 생명체의 진화에 대한 비판을 조사하는 것을 학생들에게 의무사항으로 하는 주가 되었다.
생명의 '설계' 가 과학으로서 가르쳐질 수 있다.
'Design' of life may be taught as science.
by: Sandra Svoboda, Toledo Blade, December 11, 2002
콜럼버스 - 오하이오는 '지적설계'라는 용어를 과학 교과 과정에 포함시키는 최초의 주가 되었다. 그러나 학교가 그 내용을 가르쳐야하는 것은 아니며, 학생들도 그에 대해 시험을 보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주교육위원회는 어제 18 : 0 의 만장 일치로 (한 명이 불참) 생명의 기원에 관하여 주에서 요구하는 시험에서 다루어지는 유일한 개념이었던 찰스 다윈의 진화론 (생명은 자연적인 과정으로 진화했다는)에 대해 결정하였다.
지방 교육구(local school districts)는 진화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과 생명이 어떤 초월자에 의해 설계되었을 수도 있다는 지적설계 이론과 같은 대안적인 개념을 숙고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다.
그러나 투표 직전에 위원회는 특별히 '생명과학 과목에서 학생의 학업정도를 측정하는데 사용하는 지표로서 지적설계를 가르치거나, 그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의무사항으로는 하지 않을 것'을 수정안에 추가하였다.
오하이오의 180 만 공공학교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과 졸업 자격시험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이 안은 총 75쪽의 분량으로서, 주 교육위원회가 올해초 주 교육과정의 가능한 변화에 대한 일반대중의 의견을 묻기로 한 이후,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었다. 위원회는 사회 과목에서 이와 유사하지만 논쟁의 소지가 적은 교육기준을 어제 통과시켰다.
교육기준 위원회의 의장인 조 로만(Joe Roman)은 '우리는 뛰어난 일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볼링 그린의 웨스턴도프(Sue Westendorf)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결과에 대해 아주 만족한다. 우리는 서로 합의를 해서 18 : 0 의 투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웨스턴도프는 당시 주지사였던 죠지 보이노비치(George Voinovich)에 의해 임명되었으며, 현 주지사인 밥 태프트(Bob Taft)에 의해 재임되었다. 두 주지사는 모두 공화당이다.
마르다 와이즈(Martha Wise)는 루카스, 우드, 이리, 로레인 지역을 대표하여, 오타와, 휴론, 네네카를 부분적으로 대표하기 위해 재선출된 위원인데, 새로운 표현이 추가되기까지는 과학교육 기준을 반대하는 투표를 할 예정이었다.
"그것으로 인한 문제는 없다. 우리는 그 문제를 지적설계나 초자연적인 능력 또는 종교적인 관점과 연결시키지 않을 것이다." 라고 와이즈는 말했다.
일반 대중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21 명이 위원회를 향해 이야기했으며, 대부분 10월에 채택된 안의 표현(language)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를 희망했다.
콜럼버스에서 온 그리스틴 호그는 말했다. "오하이오에서 학생들에게 진화의 여러 면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그러나 교육 기준 위원회의 한 사람이었고, 지적 설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에 찬성인 입장이었던 데보라 오웬스(Deborah Owens Fink)는 위원회가 공교육에서 종교를 가르치는 문을 열어주는 위해 10 월 안을 허락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느끼기로는 위원회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이 추가 조항이 우리의 임무에 (위원회로서 더 좋은 과학 기준을 만들어야한다는 목적에) 잘 맞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적 설계 네트웍의 전국 조직 공동 설립자이기도한 죠디 시요르겐(Jody Sjogren)은 투표 후에 과학 교육 기준에 관해서는 '오하이오가 지적 설계라는 말을 사용한 첫 번째 주'라고 말했다.
과학을 위한 오하이오 시민의 모임을 대표하는 패트리샤 프린하우스는 새로운 기준이 구체적으로 지적 설계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과학의 승리라고 불렀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창조론자들에게 대단한 기폭제(boost)가 될 것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미연방 대법원은 그 속에 내포된 종교적인 의미 때문에 창조론을 공공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해왔었다.
이전의 오하이오 과학 기준은 학교가 '시간에 따른 변화'에 대해서 가르칠 것을 권했으나 '진화 (evolution)' 라는 말을 언급하지는 않았었다.
교육구에 따라서 이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지적설계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안소니 웨인 교육구와 패트릭 헨리 교육구와 같은 교육구에서는 계속해서 가르치게될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iscovery.org/news/designOfLifeMayBeTaught.html ,
출처 - 기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7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