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시대 홍수 심판의 의미

미디어위원회
2007-05-29

노아 시대 홍수 심판의 의미

이은일


서론

노아 시대 대홍수의 심판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의미가 매우 깊기 때문에 과거의 사건으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우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게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홍수와 관련된 과학적 증거를 보기 전에 노아 홍수와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우선 보아야 할 것이다.


본론

1. 전 지구적 심판으로서의 대홍수

노아 시대 대홍수의 심판이 있었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6장에서부터 심판의 전조는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하여 6장 5절부터 7절까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고 홍수의 심판을 선포하셨다. 그런데 이 홍수의 심판이 전 지구적인 홍수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휩쓴 국지적인 홍수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홍수가 전 지구적인 홍수였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첫째는 심판의 대상이 모든 사람과 기식있는 생물이었음을 여러 곳에 분명히 하고 있다. 창세기 6장 11절에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12절에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17절에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7장 4절에는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또한 실제로 홍수가 전 땅을 덮었고, 노아방주에 탄 사람들과 생물 이외 모든 사람과 기식있는 생명체가 홍수로 죽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7장 19절에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7장 21절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7장 22-23절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또한 하나님은 9장 11절을 통해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이런 심판의 홍수는 다시 있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만약 노아의 홍수가 국지적인 홍수라면 지금도 계속되는 국지적인 홍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홍수가 있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들은 거짓이 되고 말 것이다. 


2. 예수님 재림의 예표적 사건으로서의 대홍수

노아 시대 대홍수가 전 지구적인 홍수였다는 것을 성경은 왜 그렇게 강조하고 있을까? 그것은 대홍수를 통해 전 지구적인 심판이 과거에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전 지구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임을 분명히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모스 3장 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오셔서 행하실 전 지구적인 심판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 노아 홍수의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누가복음 17장 26-30절에 예수님은 재림의 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예수님은 재림의 때를 노아의 때와 롯의 때에 비유하셨다. 즉 예수님의 재림의 때(인자의 때)에는 노아의 때와 같이 "다 멸하는” 심판이고, 또한 롯의 때와 같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심판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이 마지막 심판을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예언하셨다. 노아의 때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를 지으면서 대홍수를 대비하고 있는 것을 수십 년간 보면서도 심판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예수님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라고 표현 하셨다. 자신들의 일상의 삶에 열중한 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임박한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는 모습인 것이다. 롯의 때도 동일하였다. 롯이 자기의 사위들에게 가서 심판을 경고하지만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기고 무시해버린 것처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 19:14).

예수님의 재림이 노아 홍수 사건과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베드로후서 3장 3-6절 말씀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베드로 사도는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 사도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의심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재림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런 의심을 북돋으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떨어지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가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는 것이었다. 즉, 옛날부터 지금까지 만물이 그대로 변함없이 그대로 있었고, 한번도 부활이나 재림 사건이 없었으므로,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관찰되는 경험을 근거로 과거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매우 과학적인 주장이다. 재림이 관찰된 적이 없으니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이들의 주장이 잘못된 지식에 근거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즉, 조상들로부터 지금까지 만물이 변화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잘못이라는 것이다. 첫째는 땅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되었고, 이 땅이 굳건하게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는 것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의 심판이 예비 되어 있는데 모르는 척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창조 이후에 땅이 변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큰 변화 즉 물의 넘침으로 멸망당했었는데, 이것도 일부러 모르는 척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대홍수 심판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은 다가올 불의 심판, 즉 예수님의 재림을 무시하는 태도인 것이다.


3. 노아 시대 홍수 사건을 통해 본 심판과 구원

심판은 죄에 대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반응이다. 로마서 1장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와 같은 말씀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노하고 계신다. 노아 시대 하나님의 진노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전 지구적인 심판이 일어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악인은 많고 왕성한대 왜 그 당시 하나님의 진노가 극심하셨을까? 창세기 6장 5절에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또한 6장 11절에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다시 말해 죄가 세상에 가득 찼고, 계획을 하는 것마다 모두 악한 것뿐이고, 모든 사람이 죄인이었다는 것이다. 이 우주에 유일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죄로 인해 완전히 더렵혀져서 하나님은 물로 깨끗이 청소하실 수밖에 없게 되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로 인해 임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연기할 의인이 없어서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즐겨하지 않으신다. 노아 시대 홍수의 심판 때도 하나님은 많이 괴로워하셨다. 창세기 6장 6절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죄 때문에 괴로우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멸망당하는 것이 괴로우셨을 것이다. 에스겔 33장 11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의인으로 인해 돌이킬 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의인들이 악인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공동체를 이뤄야하는 것 같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은 우리에게 심판을 연기할 의인의 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의인이 악인과 함께 멸망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의인 10명이 있으면 멸망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낸다. 그러나 롯 이외 의인을 찾을 수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당하고 만다. 

노아 시대도 노아만이 의인이었기 때문에 심판을 면할 수가 없었다. 왜 이 시대 노아만이 의인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그 이유는 창세기 6장 1-2절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이 말씀에서 사람의 딸들이란 살인자 가인의 후손을 말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셋의 후예를 가리키는 것이 다수의 성경학자들의 해석이다.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아담의 계보에서 "아담이 일백 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즉, 셋은 바로 아담의 직계 후손이 된다. 가인에 의해 아벨은 죽고, 가인은 떠났고, 셋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의 뒤를 잇는 후계가 된 것이다. 지금도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무리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지녔던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인 여인의 아름다움에 그 특권을 포기하고 만 것 같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셋의 후예들이 살인자 가인의 후예들과 결혼하면서 영적인 영향력을 상실하였고, 그래서 하나님의 의인들이 사라져 갔기 때문에 6장 5절에는 죄악이 관영하였다고 기록되었고, 7절에는 홍수의 심판이 선포된 것이다.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들 사이의 결혼이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았을까? 그 결혼의 결과를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연결되는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뜻에는 다투지 않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즉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버린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들과 다투지 않고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6장 4절에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라고 기록되었다.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들 사이의 결혼을 통해 태어난 자식들은 네피림(거인)들이었고 유명한 용사들이었다. 네피림에 대하여는 민수기 13:33절 아낙자손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네피림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고, 가나안을 정복하는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다. 민수기에 네피림(거인)이라는 표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마는 족속에게 쓰여 진 것을 보면 창세기에 있는 네피림, 고대의 용사들이라는 표현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가인의 후예인 라멕은 창세기 4장 23-24절에서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시(詩)인데 자신의 살인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가인의 문화에서 영웅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은 왜 거인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정확히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셋의 후예들은 서로 분리되어서 자손을 낳고 있었다. 따라서 가인과 셋의 후예들은 각각 유전적으로 유사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각각 다른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가인과 셋의 후예가 서로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을 때 그 자녀들은 가인과 셋의 유전정보 모두를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두 집단에서 관찰되었던 형질과는 다른 사람들이 태어날 수 있었고, 그중에 거인이나 용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인의 후손들은 왜 아름다웠을까?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첫째는 가인의 후손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도시 문명을 건설하여 살았기 때문에 농사를 짓고 살았던 셋의 후손들보다 피부도 곱고 세련되었을 것이다. 창세기 4장 12절에 가인은 살인하였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음을 기록하고 있다.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이 저주가 가인의 후예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가인의 후예들도 가인을 좇아 농사를 짓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또한 가인의 후손들이 육축 치는 자의 조상,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들이 된 것을 보면 (창 4:20-22) 농사보다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많다. 가인이 건축한 에녹성이라는 도시에서 가인의 후예들은 셋의 후예들과는 전혀 다른 도시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둘째 이유는 가인의 후예들은 여인들 간에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이 더 많았을 것 같다. 가인의 후예 중 라멕은 두 여인과 결혼하는 놀라운 일을 한다.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1:1인 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이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창세 이후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는데 이것을 라멕이 깨뜨린 것이다. 한 남자가 두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 여인들 사이에 질투가 날 수 밖에 없고 서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그 결과 여인들 사이에 화장술들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멕의 부인 중의 하나인 '아다”의 이름은 꾸밈, 아름다움 등을 뜻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인들에게 바로 임하지 않는다. 심판이 선포되고, 그 선포된 말씀 앞에서 회개하면 심판이 돌이켜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심판이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경고를 하시고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다. 셋의 후예가 타락하고 나서 그들에게 남은 날이 일백 이십년이라는 것이다. 이 당시 사람들의 수명이 구백세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일백 이십년은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또한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짓고 있는 기간이 바로 심판이 임하기 전까지 회개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노아가 방주를 지었던 기간은 정확히 몇 년인지 알 수 없지만 수십년 정도 밖에 안 되었을 것이다. 대홍수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시작되었다. 창세기 7장 11-12절에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 일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노아가 방주를 짓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창세기 6장 10절에 세 아들을 난 후 6장 14절부터 시작된다. 6장 17-18절에는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라고 기록되어 있어 방주를 지을 때 아들들과 자부들이 이미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아는 세 아들을 오백세 이후에 낳았으니 (창 5:32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실제 방주를 지은 기간은 수십 년 정도 밖에 안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경고는 홍수 120년 전, 수십년 전뿐 아니라 몇 세대 전부터 이뤄졌었다. 창세기 5장 21절에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이 낳은 아들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활을 쏘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또한 파수꾼이라는 의미도 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에는 이 사람의 죽음은 세상의 종말을 뜻한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 '므두셀라”는 창세기에 기록된 인물 중에서 가장 오랜 수명인 969세를 향수하였다. '므두셀라”가 죽은 해가 바로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 즉 홍수의 심판이 시작된 해이다. 하나님은 '므두셀라”의 출생 이후 969년을 기다리셨으며, '므두셀라”의 수명이 가장 오랜 것은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나타내는 것 같다.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에서 구원의 소식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통해 전해온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할 때 모두가 멸망당할 수밖에 없지만 노아의 방주에 탄 노아와 그 가족들과 동물들은 대홍수의 심판에서 구원받고 살아남게 된 것이다. '구원'이란 죽음의 심판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할 때 "예수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들어가지 말고 유일한 구원의 길인 예수님을 믿고 살아남으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예수님 이외 구원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고 베드로가 고백한 것처럼(행 4:12),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되는 방법은 오직 노아가 지은 방주뿐이었다.  

홍수의 심판 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식이 인간 노아가 열심이 만든 방주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산은 덮은 홍수 가운데서 노아가 만든 방주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방주를 지을 때 엄청난 파도에서도 잘 견딜 수 있도록 방주의 설계도를 직접 고안하셨다. 6장 14-15절에서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라고 말씀하셨다. 한 규빗이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이므로 약 45cm가 된다. 따라서 방주의 크기는 축구경기장 보다 길고, 농구장 20개를 합친 면적이 되는 엄청난 크기이다. 이 방주의 길이, 넓이, 높이의 비율은 선박을 매우 안정하게 만들어, 30m의 파도에도 견딜 수 있는 구조이다. 설계도는 하나님이 만드시고, 실제 노아가 충성스럽게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었을 때 놀라운 구원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 6;22)”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시다.


결론

노아 홍수 사건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전 지구적으로 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있을 불의 심판을 예표하고 있다. 성경에 노아 홍수 사건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하여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왜 심판이 일어났는지, 얼마나 하나님이 오래 참으셨는지, 사람들이 진노의 심판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한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아 홍수 사건의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난 후 이제 노아 홍수와 연관된 과학적인 증거들을 봐야할 차례이다. 노아 홍수의 사건은 너무나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많다. 그러나 진화론적인 선입관에 빠지지 않고 과학적인 증거들을 살펴보면 대홍수의 사건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너무나 많은 증거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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