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들은 노아 홍수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How Could Fish Survive the Genesis Flood)
노아의 홍수 당시 어떻게 동물들이 노아의 방주에 탔고, 적응했으며, 그곳에서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관심들이 모아지고 있다.1 그러나 수생동물(aquatic animals)들이 홍수 동안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분명히 육상에 살면서 공기로 호흡하는 동물들은 땅을 뒤덮은 대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수생동물들은 주변이 온통 물임으로, 집에 있는 것처럼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만은 않다.
수중 생물체들은 육상생물체들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생리학적, 생태학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2대격변적 홍수인 경우, 어류의 많은 종들이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지질 퇴적층에서 나타나 있는 어류 화석들의 기록은 많은 종들의 멸종을 보여주고 있다.3 몇몇 생물체들은 거친 물결에 의한 외상으로도 매우 쉽게 죽기도 한다. 다른 몇몇은 살기에 적절한 서식장소들의 파괴로 인해 죽기도 한다. 예를 들어, 너무 많은 담수(fresh water)는 적응을 불가능하게 하여 바다 물고기 종들을 죽음으로 내몰 것이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염분 농도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라, 수온, 빛, 산소, 미생물, 그리고 영양 상태와도 관련이 있다. 이것들은 수생생물들의 생존을 논의하는데 있어, 반드시 모두 다 평가되어야 한다.
논의를 간단히 하기 위해, 담수물고기, 바닷물고기, 그리고 두 서식지 모두에서 살 수 있는 물고기 중에서 다섯 종류의 물고기 (개복치(sunfish), 메기(catfish), 송어(trout), 뱀장어(eel), 대구(codfish))가 선택되었다. 선택된 물고기들은 맑은 담수, 탁한 담수,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질주해가는), 바다로 내려가고(반대로), 절대적으로 바닷물에서만 사는 것들이다. 이 범주들은 그들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의 주된 요소인 염분(salinity), 수온(temperature), 혼탁도(turbidity)에 관한 참고자료들과 함께 논의될 것이다.
생리학적 범위
염분
물고기는 그들의 신체 내부액체와 외부액체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데 있어서, 하나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담수물고기(freshwater fishes)들은 음식, 마시는 물, 조직에서 전이된 것으로부터 매우 많은 양의 담수를 얻고 있다. 반면에, 바닷물고기(marine fishes)들은 체액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매우 적은 양의 담수를 얻고 있다. 마시는 물에 포함된 많은 양의 소금과 일정한 삼투압은 조직 부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에서 담수를 끌어당긴다. 4
신장과 아가미가 이 균형을 관리하는 두 기관들이다. 만약 담수물고기가 너무 많은 물을 얻는다면, 신장은 순환하는 소금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양의 물을 내보낸다. 바다의 경골어류(bony fish)들은 과다한 소금을 아가미를 통해 내보내고, 내부의 물을 재흡수하여 보존한다.
바다 송어(sea-run trout)는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담수로 이동하고, 뱀장어(eels)는 담수에서 바다로 이동한다. 둘 다 그들의 환경에 있는 소금의 양에 따라 물과 소금의 조절을 반대로 할 수 있다. 개복치와 대구는 각각 그들의 생활 주기 동안 담수와 바다에 남아 있는다. 소금의 양은 담수의 0 에서부터 바닷물의 35 ppt (35,000 ppm, 또는 35,000 mg/l)까지 분포할 것이다. 절대적 담수어(obligate freshwater fish)는 일반적으로 7 ppt (7,000 mg/l) 보다 더 높은 염분 농도에서는 치사되어진다. 절대적 바닷물고기 종은 매우 적은 범위의 염분 내성 한계치를 지닌다.5 강과 바다를 오고가는 종들은 삼투압을 조절함으로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수온
물고기가 서식할 수 있는 수온의 범위는 어종과 서식지에 따라 다양하게 분포한다. 몇몇 물고기는 온도 변화에 대해 매우 민감하여, 차가운 물, 따뜻한 물, 뜨거운 물에서만 산다. 다른 몇몇 종들은 얼음물에서부터 뜨거운 물(0~32℃)까지 넓은 범위의 수온에서 생존이 가능하다. 성장 단계에 있는 어린 물고기들은 자주, 성어의 생존 수온 범위 내에서 폭이 좁은 수온 범위가 요구된다.
한류어종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어종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을 장기적으로 가진다면 최소한 2~24℃의 수온에서 생존할 수 있다. 조사대상이 된 성어들이 선호하는 수온은 다음과 같다. 송어 16~21℃. 개복치 16~28℃, 메기 21~29℃, 뱀장어 16~28℃ 정도, 대구 12~16℃ 이다.6, 7
혼탁도
자연 상태의 물 속에서 부유하는 미립자들은 광전자적으로 혼탁도가 측정된다. 부유 미립자들은 침식된 토사, 유기 입자, 박테리아, 플랑크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물질들은 바다속 기질(substrate)들을 덮음으로 먹이감들을 죽이고, 산란 장소를 파괴하여, 물고기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토사는 아가미와 무척추동물의 호흡 기관을 마모시켜 손상을 일으킨다. 물고기들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점액(mucus)을 분비하여 입자들을 밖으로 내보낸다. 탁한 물은 간접적으로 빛의 투과를 막아 광합성이 가능한 지역을 감소시킨다. 혼탁도의 범위는 다음과 같다. 깨끗함;<10ppm (mg/l), 탁함;10-250 ppm, 매우 탁함;>250 ppm. 월렌(Wallen)은8 많은 어종들이 100,000 ppm 정도의 매우 탁한 물에서도 한 주 이상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생존 작전
바다 위를 흐르는 빗물 (runoff)
지표를 뒤덮는 폭우는 금새 급류가 되어 하천 유역을 범람한다. 그 다음 잠식된 해안선은 담수로 뒤덮일 것이다. 오듐(Odum)은5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많은 층을 이룬(highly stratified)', 혹은 '염분이 분리된(salt-wedge)” 강어귀(estuary) 라고 불렀다. 대륙으로부터의 그런 엄청난 담수의 유출은 바다에 내린 강우와 합해져 염분 약층(halocline), 또는 강한 염분 농도차(density gradient)를 이룬다. 이것은 육지의 담수 생태계에서 떠밀려 나온 어류들이 계속해서 담수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만약 담수의 깊이가 깊어 내부의 혼합 흐름을 막기에 충분하다면, 이와 같은 담수층은 강한 바람에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은 담수물고기와 바닷물고기가 대홍수로 일시적으로 옮겨진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을 그려볼 수 있게 한다.
혼탁류의 흐름
한편, 침전되는 입자 강우와 바닥에 깔리는 슬러리(slurries)로서, 혼탁류의 큰 입자들과 거대한 밑짐(bedloads)은 대양 안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더 무거운 입자들은 천천히 움직이는 해안가 물 속에 가라앉았을 것이고, 진흙 흐름은 대양 바닥 위에 퇴적되었을 것이다. 담수층과 염수층의 경계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지만, 입자들의 삽입은 아마도 적절한 혼합없이도 일어났을 것이다. 주어진 내성 범위 내에서, 많은 물고기들은 높은 혼탁도의 노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세인트 헬렌산에서의 뜻밖의 발견
1980년 5월 18일 세인트 헬렌산의 화산 폭발은 생태계의 회복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분명, 노아의 홍수는 화산 폭발보다도 훨씬 더 큰 한번의, 또는 몇 번의 격변이었지만, 그 사건은 생태계가 회복되는 방법을 알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관심이 있는 세 가지 요인(염분 등의 용질이 용해된 의미에서의 알칼리도, 온도, 혼탁도)에 대해서, 중요한 변화가 그 지역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9, 10
세인트 헬렌산 스프릿 호수 (Spirit Lake) | ||
1980. 4. 4 | 1980. 6. 30 | |
알칼리도 (Alkalinity, mg/l) | 0.01 | 150.5 |
수온 (Temperature, °C) | 4.0 | 22.4 |
혼탁도 (Turbidity, mg/l) | 0.75 | 24.61 |
엄청난 격변적 사건에 노출됐던 스피릿(Spirit)호수는, 분출 후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알칼리도와, 상온과 같은 수온, 낮은 혼탁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폭발로 인해 호수에 살던 모든 고유 어종들이 죽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나무 조각들의 부패와 메탄, 이산화황의 확산으로 많은 양의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1980년 6월 30일 경에 물고기들을 다시 기른다 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0년 안에 그 호수는 물고기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회복되었고, 많은 수중 생물들이 돌아 왔고, 확립되었다. 만약 호수가 터틀(Toutle)강에 직접 연결되었다면, 연어들도 지금쯤 호수에 다시 살게 되었을 것이다.
예전의 화산 폭발 기록을 검사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찰은 아마도 폭발 부근의 다양한 지역 중에서 생태계에 가장 적은 피해를 입은 장소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폭발 지역 내에 있었던 메타 호수(Meta Lake)를 예로 들면, 폭발 당시 호수는 얼음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 덕분에 겨울 동안 잠들어 있던 생태계가 열기와 산소부족, 화산재로 인해 파괴되지 않았다. 물고기가 완전히 사라졌던 그 장소에서, 물고기와 그 생태계는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회복되었다. 수생생물학자인 머디 크릭(Muddy Creek)은 많은 양의 진흙과 파편들이 밀려들어왔던, 스위프트(Swift) 저수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관찰했다. 물고기들은 부근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강 연안이나, 더 낮은 하류의 저수지로 옮겨갔다. 그러나 2년 만에 많은 플랑크톤이 서식하게 되었고, 생태계는 새로운 이주자들과 함께 잘 회복되었다.
그러한 제한된 영역(평방 500마일)의 격변은 가령 홍수와 같은 거대한 격변에 대한 하나의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 그러한 사건들의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가장 손상을 입기 쉬운 것에까지도 살아남기 위한 피난처가 존재한다. 둘째, 원 상태로의 회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는데, 한 달에서 10년이면 충분하다. 셋째, 최소의 피해를 입은 지역으로부터 생물들의 이주는 생물체들의 정상적인 이주 행동과 함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몇몇 동식물의 개체 수나 종들은 그러한 사건으로 멸절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남은 개체들은 새롭게 번성하여 회복될 수 있다.
References
1. John C. Whitcomb and Henry M. Morris, The Genesis Flood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1961), pp. 63-79.
2. M. M. Ellis, 'Detection and Measurement of Stream Pollution' in Lowell E. Keup, William M. Ingram, and Kenneth M. Mackenthun, Biology of Water Pollution (U.S. Dept. of Interior, Federal Water Pollution Control Administration, 1967), pp. 129-185.
3. John C. Briggs, 'A Cretaceous-Tertiary Mass Extinction?' BioScience 41 (1991), pp. 619-624.
4. Ernst Florey, An Introduction to General and Comparative Animal Physiology (Philadelphia, W. B. Saunders Co., 1966), pp. 97-110.
5. Eugene P. Odum, Fundamentals of Ecology (Philadelphia, W. B. Saunders Co., 1971), pp. 328,354.
6. Alex Calhoun, Inland Fisheries Management (State of California , The Resource Agency, Department of Fish and Game, 1966), pp. 194, 375, 448.
7. William A. Anikouchine and R. W. Sternberg, The World Ocean: An Introduction to Oceanography (Englewood Cliffs, N.J., Prentice Hall, Inc., 1973), pp. 215, 223.
8. I. E. Wallen, 'The Direct Effect of Turbidity on Fishes,' Oklahoma Agric. and Mech. College Bulletin 48 (1951), pp. 18-24.
9. Robert C. Wissmar, Allan H. Devol, Ahmad E. Nevissi, James R. Sedell, 'Chemical Changes of Lakes Within the Mount St. Helens Blast Zone,' Science 216 (1982), pp. 175-178.
10. Robert C. Wissmar, Allan H. Devol, James T. Staley, and James R. Sedell, 'Biological Responses of Lakes in the Mount St. Helens Blast Zone,' Science 216 (1981), pp. 178-181.
* Dr. Kenneth Cumming is Professor of Biology and Dean at the ICR Graduate School.
*참조 : 노아 홍수 때 민물고기들을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71
홍수 동안에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http://www.hisark.com/홍수-동안에-민물고기와-바닷물고기는-어떻게
노아 홍수시 민물고기는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0
노아의 방주에 관한 24개의 질문과 답 (FAQ)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1
번역 - 한동대 창조과학연구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222.htm
출처 - ICR, Impact No. 222, December 1991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21
참고 : 4573|4198|4275|4235|4473|4490|4607|4610|6104|6049|6030|6006|4195|2141|6076|5973|5957|5958|5955|5951|5841|5834|5737|5721|5717|5675|5556|5517|5468|5429|5419|5400|5399|5286|5307|5264|5260|5185|4786|4722|4471|4468
노아홍수의 중요성
창조과학 세미나의 제목을 보면 '진화냐 창조냐?” '지구의 나이?” '생명의 기원” 등과는 달리 과학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노아홍수는 역사적 사실인가?” 하는 주제이다. 창조과학선교회에서 실시하는 창조과학학교에서도 10주간의 과정 가운데 2주나 할애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룬다. 언뜻 보면 성경 전체 중에 작은 한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는듯한 이야기인데 정말로 이것이 그리도 중요한 것일까?
지질학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라고 불리는 '지질계통표”다. 진화론자들이 지구의 역사라고 하면 여지없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이 지질계통표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을 이들 지질계통표를 수십 층으로 세밀히 나누었으나, 지구상에 이들이 그림에서 보듯 수직으로 모든 층을 보여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지질계통표는 화석에 의해 가설된 것인데, 진화론자들이 상상하듯이 화석이 단순한 무척추동물에서 고등한 척추동물까지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은 지구상에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다. 지구상에도 없는 단지 과학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과학의 의례적인(!) 그림이다.
그러나 화석들이 분포하는 양상을 보면 그림처럼 수직적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수평적이다. 화석들은 지표의 퇴적암 속에 '널려있다”는 표현이 오히려 적당하다. 실제로 수평적으로 분포하는 화석들을 진화의 순서에 꿰어 맞춰 수직적으로 과학책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말로 공룡이 사람과 동시대에 살았었는가?”라고 놀란듯한 질문을 받곤 한다. 이러한 질문은 질문자가 지질계통표가 지구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아직까지 화석 가운데 전이화석(어떠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되는 과정의 화석)이 발견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진화가 맞다면 지구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하는 수억 개의 화석에서 당연히 쉽게 관찰되어야만 함에도 말이다. 그리고 이 화석들이 분포하는 것은 수직적이 아니라 지표에 널려있듯이 다분히 수평적이다. 그리고 화석이 만들어 지는 것은 (깊음의 샘들과 하늘의 창이 열리는 노아홍수와 같은) 대격변에 의해서 만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공룡을 비롯한 대부분의 화석들은 지구전체에 있었던 대격변 당시에 동시에 만들어졌어야 한다. 또한 이는 화석들이 살아있을 당시 모두 같은 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노아홍수가 왜 중요한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바로 진화론이 사실이라고 지지하고 있는 '지질계통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지질계통표의 역사는 없다. 오직 노아홍수만이 존재할 뿐이다. 지질계통표의 긴 역사가 단 1년 여 있었던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되는 순간이다! 그러니 노아홍수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는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도 아주 중요하다. '창세기 1장의 하루가 오늘날의 하루인가?” '인류의 기원은?” '생물의 기원은?” '우주의 기원은?” 하는 문제는 과학적 실험을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제한되어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디자인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 전체에 걸쳐 일어났던 노아홍수는 '사건”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수 많은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노아홍수에 대한 확신은 더 소급해 올라가면 홍수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셨던 위의 여러 질문에 대한 확신으로 이끌어 올라간다. 또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타락과 하나님의 저주 등 신학적인 질문에 대하여도 사실로 받아들이는 기폭제 구실을 한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를 포함한 성경 전체에 대한 질문에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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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렉의 날에 세상(땅)이 어떻게 나뉘어졌는가?
: 해수면의 상승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How Was the Earth Divided in Peleg's Day?)
창세기 10:25 절과 역대상 1:19 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창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아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 때에 땅이 나뉘었음이요” (대상1:19).
”Two sons were born to Eber; One was named Peleg, because in his time the earth was divided....” (NIV, Genesis 10:25)
벨렉은 홍수 후 수세기를 살았다. 그에 대해서 알려져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어떻게 땅이 나뉘어졌을까? 여기에 세 가지 가능한 의미가 있다. 성경 주석가들은 단지 처음의 두 가지만 언급했었다.
a. 벨렉의 날에 일어난 나눠짐은 바벨탑 사건 후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의 나눠짐이다. (참조. 창11:1-9)
b. 벨렉의 날에 대륙표류(continental drift)가 시작되면서 대륙이 나뉘어졌다.
c. 벨렉의 날에 해수면이 상승되면서 대륙을 나누었다. (해수면이 90 m 정도 낮았다면, 모든 대륙은 연결될 수 있다.1 만약 해수면이 오늘날의 수준으로 상승했다면, 세상(땅)은 물로 나뉘어졌을 것이다.)
1. 벨렉의 날에 언어가 나뉘어졌다.
성경은 ”세상(땅)이 나뉘었음이요 (the earth was divided)”라고 말한다. 땅의 히브리어 단어인 erets 는 나라들(countries), 육지(land), 또는 땅(ground)으로 번역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민족이나 언어가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육지(land)가 나뉘어졌다. 그밖에도 벨렉은 언어가 바벨에서 나뉘어진 후 아마도 두 세대를 살았다.2
2. 벨렉의 날에 대륙이 갈라지고, 대륙표류가 시작되었다.
만약 이것이 일어났다면, 무엇이 갈라졌는가? 더 곤란한 것은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는가? 대륙이 움직이고 갈라지기 위해서는 지구를 뒤흔드는 힘이 요구된다. 판구조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지질학적으로 대륙들은 자주 갈라져왔다고 믿는다. 암석의 두꺼운 판들이 갈라지고 이동하기 위해서는, 그 판들은 엄청난 마찰력을 극복하고 다른 판들 위로 수평적으로 미끌어져 올라가야 한다.3 동시에 또 다른 힘에 의해 판들이 고무줄처럼 끊어질 때까지 판들을 잡아 당겨져야만 한다. 판구조론은 이러한 초거대한 힘의 어떤 것도 제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대륙이 갈라졌다고 한다면, 안전하게 대륙이 움직일 수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대륙이 갈라지고 움직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에 필요한 힘과 에너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수천년 안에 전체 대서양이 지판 위로 지판이 미끌어짐에 의해 열려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전지구적 재난과 화산활동 등이 동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질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이러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고대와 현대의 모든 문명들 속에 분명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는 전지구적인 격변은 오로지 홍수(flood) 이다).
만일 대륙이 분리되어 나갔다면, 그들은 훨씬 더 조각 맞추기처럼 잘 들어맞아야 할 것이다. 대중들은 수십년동안 대륙들이 서로 잘 들어맞는다는 믿음을 잘못 이해하여 왔다. 실제로, 네 개의 큰 지도의 비틀림은 심사숙고하여 만들어졌다. 대서양의 경계 대륙들은 대서양 중앙해령의 기저부분과 더 잘 들어맞는다. Hydroplate theory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3. 벨렉의 날에 해수면이 상승하여 대륙을 나눴다.
성경에 peleg 이란 단어는 3 번이나 동사로 사용되었다. 2 번의 사용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뉘었다' 로서 단순히 번역되었다.(창10:25, 역대상1:19). 세 번째 사용은 물에 의한 나뉘어짐 이었다. (욥38:25). Peleg은 10 예에서 보통 명사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항상 물(water)을 의미하고 있었다. 미국 표준새번역 성경(The New American Standard Bible)은 그것을 8 번은 '강들(streams)' 로, 한 번은 '강(stream)' 으로, 한 번은 '수로들(channels)' 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peleg은 물에 의한 나누어짐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영어에 archipelago (바다를 가진, 여러 섬들로 나누어진, 군도) 라는 단어와 pelagic (원양의, 대양에 사는, 바다와 관련된) 이란 단어가 있다. Pelagic sediments 또는 Pelagic deposits 이란 말은 대양바닥에 쌓인 퇴적물을 말한다. Pelagic 은 자주 바다에서 발견되는 생물과 관계되어 있다. Bathypelagic 이란 단어는 깊은 바다에서 살거나 관계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접두사로 pelag은 바다를 의미한다.
히브리어 교수인 Bernard Northrup 박사는, peleg 은 원래 물에 의해 나누어짐을 의미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4 그 의미는 노아 후손의 세 아들의 언어 가계에 묻혀있었다. 따라서, 그 의미는 아마도 바벨에서의 언어 분화 이전에 있었다. Northrup 은 말한다 :
[Peleg, palag, or PLG]는 자주 물과 관련된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히브리, 콥틱(Coptic), 에티오피아, 그리스에서 물이 흘러가는 강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어원은 메소포타미아의 땅들을 경작하는데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는 관개수로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리스어(노아의 세 아들 중 야벳 계열)의 사용된 조사에서 PL과 PLG의 어근은 많은 예에서 바다(ocean)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바다 또는 호수를 형성하다”, ”홍수가 일어난 장소 또는 물 아래가 된 장소”, ”바다를 건너서”, ”넓은 바다”, ”바다가 되다”, ”넓은 바다 위에”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바다사람(seaman)과 배(ship)로도 사용되었다.
접미사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범람(an inundation)' 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바다가 되다', '바다의 생물체', '바다 위를 걷는 사람', '넓은 바다로 항해하기 또는 나가기', '공해에 모래주머니로 쌓여진 항구', 그리고 많은 경우에 '넓은 바다 자체', '바다로 가기 또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기', '바다 위에 떠다님', '바다가 만들어지다', '어떤 것이 바다로, 또는 홍수로 변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어에서 사용된 모든 예에 의하면, 그것은 바다를 의미함이 분명하다.'
명백하게, 지구는 벨렉의 날에 물에 의해서 나뉘어졌다. 수판이론(Hydroplate theory)은 어떻게 나뉘어졌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홍수 직후에는, 해수면이 오늘날 보다 수마일 낮았다. 왜냐하면 지하공간에 갖혀 있던 물층의 바닥은 지표면보다 16 km 정도 아래이었다. 부서지고, 두꺼워지고, 구부러지고, 퇴적물이 쌓인 대륙은 홍수 후 수세기에 걸쳐 맨틀로 가라앉았고, 해수면은 보상적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해수면은 오늘날의 높이에 도달했다. (자세한 내용과 증거들은 위의 웹페이지의 Part II: Fountains of the Great Deep, The hydroplate theory를 참조)
홍수 후 수 세기 동안 해수면이 낮았다는 것은, 오늘날의 대륙과 섬들로 어떻게 사람과 동물들이 이동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6 홍수 후 하나님이 사람과 동물들에게 내리신 명령은 전 세계로 흩어져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이었다. (창9:1, 11:4-9).
만약 홍수 후에도 해수면이 오늘날과 같았다면, 하나님의 첫 명령을 받들어 땅에 충만하여 재번성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겠지만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님 명령의 지혜와 긴급성은 해수면이 얼마 후에 올라갔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았을 때 분명해진다. 전 지구로 이주할 수 있는 '기회의 창' 은 벨렉의 날에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족장들의 연대기 표에 의하면 (위의 웹페이지 Part III: Frequently Asked Questions에서, According to the Bible, When Was Adam Created? 참조) 벨렉은 홍수 후 100 년에 태어나 홍수 후 339 년에 죽었다. 그러므로 벨렉이나, 그의 이름을 부른 자들은 해수면의 상승에 의해서 땅이 나뉘어졌음을 발견했던 세계적인 여행가나 탐험가였을 수도 있다. 확실히 노아의 초기 후손들은 배를 건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홍수에 의해서 세상이 극적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탐험가적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들은 호기심과 지식을 축적하기에 충분한 오래된 수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뛰어나게 정확하고, 권위있는 고대 지도들에서 (일예로 피리레이스의 지도 등, 역자주) 지금은 물로 덮여있는 섬들이나, 빙산으로 덮여지지 않은 남극대륙의 해안선이 정확하게 그려져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7 그 지도의 제작자는 해수면이 낮을 때, 그리고 남극대륙의 해안선이 얼음으로 뒤덮여지기 전에 탐험을 했었음이 틀림없다. 단지 최근에 와서야 첨단기술의 발달에 의해, 얼음 밑의 대륙의 해안선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낮아진 해수면이 단지 빙하기 동안 대륙에 얼음이 만들어짐에 의한 결과라면, 해수면은 가까스로 모든 대륙이 연결되어질 정도인 90 m 정도 낮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빙하시대의 정점에서 남극대륙은 얼음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러므로, 빙하시대는 고대지도와 대륙의 연결을 동시에 설명할 수 없다. 홍수는 이 둘을 설명할 수 있다. (수판이론은 빙하시대가 대홍수의 결과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
강한 언어학적, 그리고 과학적인 논의들은 창세기 10:25절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두 가지 해석 즉, 1)언어의 분화에 의한 민족들의 나눠짐 2)대륙표류의 시작을 거부하고 있다. 대신 이 연구는 벨렉의 날에 해수면의 상승으로 땅이 나뉘어졌음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그것들은 우리의 조상들이 홍수 후에 곧 이동을 시작했고, 탐험을 시작했음을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참조 : Scriptural constraints on the variation of water level during the Genesis Flood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069/
‘In Peleg’s days, the earth was divided’: What does this mea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420/
Flood models: the need for an integrated approac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19
References and Notes
1 . Except for narrow bodies of water, North America would join Asia at the Bering Strait, Australia would connect to Asia along a 1,000-mile-wide land bridge, Europe would join North America via Greenland, and Antarctica would touch South America.
2 . Nimrod, who established Babel, lived three generations after Noah (Genesis 10:8-10), while Peleg lived five generations after Noah.
3 . The slab must first separate from its foundation before sliding and stretching can begin. At the extreme pressures pressing a continent onto its foundation, 'fusing” would occur. Atoms on one side of the slab-foundation interface would bond with atoms on the other side in a crystalline, minimum-energy structure. Breaking that seal by some shearing action along a nearly horizontal plane would require precise, herculean forces.
Some speculate that large asteroid impacts or volcanic eruptions broke the continents. If such global disasters occurred, consider the vast collateral damage. Had some of today’s fragile life forms been anywhere on earth during such a catastrophe, they wouldn’t be here today. Also, most continental rock is far below the surface, under extreme compression. That compression prevents spreading or breaking. These proposals have many other problems.
4 . Bernard Northrup, 'Continental Drift and the Fossil Record,” Repossess the Land (Minneapolis, Minnesota: Bible Science Association, 1979), pp. 165-166.
5 . Three lines of evidence also support the conclusion that sea level was several miles lower than today: submarine canyons, tablemounts, and coral deposits almost one mile below Enewetak Atoll. For details, see pages 95-129.
A drastically lowered sea level after the flood surprises most people, because it has always been difficult to see how water covering all the earth’s mountains could go anywhere, let alone miles below today’s sea level. Once one understands where the flood waters came from, understanding where they went becomes easy.
6 . Legends of the Hopi indians tell how their ancestors came to the Americas. After a gigantic flood, their ancestors used many family-sized rafts and 'island hopped” for many years north and east to the Americas. The steep coast line [today’s continental slope] forced them along the coast until they could land. Rising water later drowned the chain of islands. [See Frank Waters, Book of the Hopi (New York: Penguin Books, 1963), pp. ix-27.] This seems to describe the Mid-Oceanic Ridge in the Pacific as a major corridor to the east. It would explain many things, including why the earliest known settlers in the Western Hemisphere lived in Central and South America. (This legend and explanation were brought to my attention by Kevin P. Kluetz on 4 June 1996.)
7 . Charles H. Hapgood, Maps of the Ancient Sea Kings (New York: Chilton Books, 1966; reprint edition, Kempton, Illinois: Adventures Unlimited Press, 199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cience.com/onlinebook/FAQ213.html#wp1615695
출처 - CSC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8
참고 : 1407|1415|1417|1419|1420|1422|1429|1436|1437|516|930|3372
노아의 홍수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점들
(Points to Ponder About the Flood)
성경은 베드로후서 3:3-8에서, 말세에 성경을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 창조와 홍수에 대해 ”부러 잊으려(willingly ignorant)”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과학과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 역사에서 가장 큰 두 가지 사건이었던 창조(creation)와 홍수(flood)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보다 많은 정보를 위해서는 창조 세미나 테이프 2를 보라).
1. 전 세계의 모든 지역으로부터 250 여개 이상 홍수 전설들이 발견되고 있다. 대부분이 창세기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참조: 세계의 홍수전설 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68)
2. 노아 방주는 어떤 곳으로 항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물에 뜨기 위해서 건조되었다. 방주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노아의 방주는 선박(boat) 형태가 아니라, '바지선(barge)' 형태이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 형태는 화물운반 능력을 매우 증가시킬 수 있다. 기롱하는 자들은 배의 뒤틀림(twisting)과 굽어짐(flexing)의 문제 때문에 가장 큰 선박도 90 m 미만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인 선박들은 바람을 이용해 항해할 수 있는 거대한 돛과 돛대(masts)를 가지고 있다. 노아의 방주는 이러한 것들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틀리는 압력을 훨씬 적게 받았을 것이다. (참조: 노아의 방주에 관한 24개의 질문과 답.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1)
3. 작은 규빗(팔굼치에서 손가락 끝까지 길이)을 사용하더라도(나는 183cm의 키에, 53cm의 규빗을 가지고 있다), 방주는 태워야할 동물, 사람, 먹이와 여분의 방들을 가질 만큼 충분했다.
4. 길이와 폭의 비율인 6 : 1 은 오늘날의 선박 건조 시에도 자주 사용되는 비율이다. 이 비율은 폭풍우 속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상의 비율이다.
5. 방주는 중앙부에 '문풀(moon-pool, 심해굴착선과 같이 중앙의 가운데가 빈 원통상 설비)'을 가졌을 수도 있다. 거대한 선박들은 바닥 중앙에 선박 안으로 확장된 벽을 가진 하나의 구멍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갖추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그것은 선박이 물마루에서 물이 구멍을 통해 위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것은 긴 선박에서 변형력(strain)을 감소시키는데 필요했을 것이다.
2)올라가고, 내려가는 물은 펌프의 피스톤처럼 작용하여 방주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안으로 끌어 들이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방주 안의 동물들로부터 발생되는 좋지 않은 가스들을 축적을 막았을 것이다.
3)구멍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바다로 쓰레기들을 버릴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6. 노아의 방주는 거칠은 바다에서 안정성을 더욱 유지하기 위해서, 양 측면에 커다란 돌 닻(anchor)들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돌 닻으로 추정되는 돌들 여러 개가 방주가 도착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참조: 노아의 방주를 찾아서 2.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58)
7. 노아는 950년을 살았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매우 컸을 것으로 믿고 있다. 3.3m 이상의 키를 가졌을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뼈들이 발견되었다! (참조: 과거 지구상에 거인들이 있었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1)
만약 노아도 매우 키가 컸다면, 그의 규빗은 매우 컸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방주가 좀 더 컸을 수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세미나 테이프 2편을 보라).
8. 하나님은 노아에게 각 종(species)대로가 아니라, 각 종류(kind)대로 2 마리씩을 (어떤 것은 7 마리) 태우라고 명하셨다. 노아는 늑대, 코요테, 여우, 잡견.. 등을 포함할 수 있는 개 종류(dog kind) 2 마리를 태웠을 것이다. 이 '종류” 라는 집단은 오늘날 분류학상의 아마도 과(family) 정도에 해당했을 것이며, 이것은 방주에 타야할 동물들의 수를 매우 감소시켰을 것이다. 동물들은 홍수 이후 지난 4400여년 동안 많은 품종들(varieties)로 다양화되었다. 이 다양화는 진화론자들이 가르치고 있는 위대한 주장들과 유사한 것이 아니다.(진화론들은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아메바가 코끼리로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참조: 핀치새의 부리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8,
종의 진화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0)
9. 노아는 모든 동물들을 붙잡아올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은 동물들을 노아 앞으로 나오게 하셨다. (창세기 6:20 ”...네게로 나아오리니”).
10. 단지 육상에 거주하며, 코로 호흡을 하는 동물들만 방주에 태워졌다. (창세기 7:15,22). 노아는 수많은 곤충(insects) 종들을 태울 필요가 없었다.
11. 많은 동물들은 열악한 날씨 동안에는 잠을 자거나, 동면하거나, 매우 비활동적이다. 이 경우 노아 식구들은 방주 안의 동물들을 돌보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12. 성경 기록에 따르면 모든 동물(그리고 사람)들은 홍수 이전에, 그리고 홍수 동안에 채식을 하고 있었다. (창세기 1:20-30, 9:3). 따라서 육식은 노아 홍수 이후에 생겨났고, 방주 안에서 육식동물은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비판가들의 질문은 무효가 되는 것이다.
13. 아마도 홍수 이전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보다 더 현명하고 더 앞서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직접 접촉했던 아담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수명이 매우 길었기 때문에, 많은 세대 동안 지식이나 기술들을 축적하고 전수하여줌으로서 홍수 이전 사람들의 지식 기반은 매우 확장되었을 것이다.
14. 성경은 가장 높은 산도 15 규빗이나 물들로 덮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방주 높이의 반이다. 방주는 홍수 동안 바닥이 부딪치는 것으로부터 안전했다.
15. 오늘날 존재하는 높은 산들은 홍수 이후에 산들이 솟아오르고 골짜기가 내려갈 때까지(시편 104:5-9, 창세기 8:3-8) 존재하지 않았다. 8,000m를 넘는 에베레스트 산도 대륙의 주요 산맥들도 홍수 말기 또는 이후에 격변적인 판구조운동으로 솟아 올랐다.
16. 만약 지구의 표면을 평탄하게 만든다면, 2.4 km(8,000 피트) 깊이의 물이 지구를 뒤덮을 만큼 바다에는 충분한 물이 있다.
17. 최근 방주를 보았다는 많은 주장들이 성경에 방주가 머물렀다고 기록되어있는 지역에서 제기되고 있다. 방주가 있는 실제적 장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기본적인 생각이 있다. (더 많은 정보를 위해서는 나의 창조 세미나 3편을 보라). 이 두 입장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들을 소비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방주는 눈으로 덮인 채 아라랏산 위에 있다고 믿고 있다. (CBS는 1993년에 이 장소에 대해 1시간 짜리 특집방송을 내보냈었다).
다른 그룹은 방주는 아라랏산 남쪽 17마일에 '여덟 계곡(the valley of eight)'이라 불리는 계곡에 있다고 믿고 있다 (여덟은 방주에 탄 사람의 수). 성경의 기록에는 방주는 아라랏 산들(mountains, 영어 성경에는 복수)에 머물렀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아라랏산 자체에 머물렀다고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참조 : 노아의 방주를 찾아서 1.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55)
18. 대륙은 홍수 이후 100-300 년까지 육지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창세기 10:25). 사람과 동물들은 그때까지 지구상 어느 곳이라도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보다 많은 정보는 세미나 6 편을 보라). (참조: 노아의 홍수에 관한 16 개의 질문과 답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0, 벨렉의 날에 세상(땅)이 어떻게 나뉘어 졌는가?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8)
19. 에베레스트산의 가장 높은 900m (7,930-8,840m, 26,000-29,000feet)는 바다 조개와 다른 대양서식 동물들로 채워진 퇴적암으로 구성되어있다. (참조: 뒤틀린 땅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66)
20. 퇴적암은 전 세계적으로 발견된다. 퇴적암은 물 속에서 형성된다.
21. 닫혀있는 상태에서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화석화된 조개들은 (심지어 에베레스트산 꼭대기 부근에서도) 그들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빠르게 묻혔음을 입증하고 있다. (참조: 빠르게 소멸되는 모습이 남아있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50, 빠른 화석화의 증거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57)
22. 휘어진 암석 지층들, 화석 무덤들, 다지층 화석들은 홍수에 의해서 가장 잘 설명된다. (참조: 다지층 화석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56, 그랜드 캐년의 지층은 지질시대가 허구임을 보여준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62)
23. 사람들은 홍수를 믿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홍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3:3-8).
*참조 : Where did all the water go?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938/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홍수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1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방주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rdino.com/cse.asp?pg=articles&specific=5
출처 -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817
참고 : 4198|4275|4235|4473|4490|4607|4610|6104|6049|6030|6006|4195|2141|6076|5973|5957|5958|5955|5951|5841|5834|5737|5721|5717|5675|5556|5517|5468|5429|5419|5400|5399|5286|5307|5264|5260|5185|4786|4722|4471|4468|6547|6545|6543|6535|6531|6508|6507|6558|6551|6559|6549|6462|6417|6431|6524|6415|6413|6330|6254|6255|6240|6228|6225|6223|6222|6136|6170
비아미 족의 전설들 (The BIAMI Legends)
: 파푸아 뉴기니 식인종족에게 전해져 온 창조와 홍수 이야기
Tom Hoey
비아미(Biami) 족은 파푸아 뉴기니(Papua New Guinea)의 서쪽 지방에서 살고 있는 종족으로 약 4000-5000 명 정도의 인구 수를 가지고 있다. 14년 전(1970년)까지 그들은 파푸아 뉴기니의 마지막 식인 종족 이었다. 13년 전 톰호이(Tom Hoey)와 다른 2명의 선교사가 이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언어를 배운 후, 비아미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와 노아 홍수에 대한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톰호이와 다른 선교사들은 비아미족이 4000년 이전의 바벨탑을 떠나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이 전승되어온 이야기들이 창조주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원주민들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준비시켜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지난 13년 동안, 비아미 족의 많은 수가 크리스챤이 되었다. 선교사들이 들어간 후 13년 동안에 그들은 식인습관과 야만적인 관습들을 버렸고, 비아미 교회는 매우 강하게 부흥되어 현재 15개 이상의 지역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현재 교회의 지도자는 크리스천이 되기 전에 종족의 지도자급 사냥꾼이었다.
비아미의 창조 이야기
”처음 세상에는 단지 남자들만 살고 있었다.[1] 세상의 첫 번째 남자는[2] 한 작은 야자수가 계속해서 우는 것을 들었다. 남자는 작은 야자 나무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자신을 위해 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칼을 가져와[3] 작은 야자수를 여자의 모양으로 조각하였다.[4] 그는 여자의 기관들을 모두 조각하였다.[5] 그리고 그가 나무에 조각한 코 안으로 생명의 호흡을[6] 불어넣었다. 여자는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각주 :
[1]. 비아미 족의 전승되어온 이야기에는 남자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관해서는 꽤 모호했다. 창세기에서는 매우 명확하다 - 하나님은 흙(dust)으로 아담을 만드셨다.
[2]. 비아미 족의 이야기에 최초에 이 세상에 어떤 다른 남자들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 남자가 있었다. 창세기는 확실하다 - 다른 어떠한 남자도 없었다.
[3]. 칼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종류의 날카로운 도구를 의미할 수도 있다.
[4]. 야자수 나무(palm tree)는 여자 또는 소녀의 형체로 조각되었을 것이다.
[5]. 여성 기관들의 조각에 대한 묘사는 전설들의 일부에서 어느 정도 외설스럽다.
[6]. 비아미 족들이 창조주 하나님이 최초의 남자인 아담에게 생명의 호흡을 어떻게 불어넣었는지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을 들었을 때, 그들은 남자의 기원에 관한 성경의 기록이 그들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 강한 친근감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의 매우 명확한 세부사항에 대해서 그렇게 확신하지는 않았다.
비아미의 홍수
”한때 전 세상을 덮은 거대한 홍수가 있었다. 홍수는 비아미의 조상만을 제외하고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을 쓸어버렸다.[1] 그들의 조상들은 고비아(Gobia)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나무의 껍질들을 꿰어 망태기(string bags)를 만들었다. 그들은 농작물과 그들의 모든 동물들, 그들의 개들, 그리고 그들의 돼지들을 나무에 실었다. 홍수 물이 땅 위로 점점 오르자, 사람들은 나무 위로 더 올라갔다. 나무는 물이 올라가면서 물 위로 자랐기 때문에, 그들은 이 나무의 가지에서 안전하였다.
물들이 전 세계의 표면에서 물러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나무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땅들은 진흙 투성이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농작물들을 심었고, 동물들은 번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무로부터 멀리 나아갔고, 땅들에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나무 아래로 내려왔던 사람들은 사모스, 쿠보, 고바시스, 에토로의 조상들이 되었다.”
각주 : 1. 비아미 족은 그 나무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비아미 족과 그들 주변의 모든 다른 종족들의 조상들이었으며, 그들은 백인 선교사가 오기 전까지 어떠한 다른 사람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고 믿고 있었다.
2. 창세기와 이 이야기의 유사점에 주목하라.
.거대한 홍수가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은 죽었다.
.그들은 모든 동물들과 먹을 식물들을 준비했다.
.그들은 홍수 이후 땅에 재분포 되었다.
3. 이 이야기는 노아 홍수와 바벨탑에 대한 성경 이야기의 확실성에 대한 인류학적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참조 : A possible post-Flood human migration rout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1/j19_1_65-72.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magazines/docs/v7n2_biami.asp ,
출처 - Creation 7(2):12–13, October 1984.
대홍수에 의한 격변의 증거
: 여러 민족의 전설과 세계 도처에 남아있는 대홍수의 흔적
임번삼
이러한 격변설이 전 지구적인 사건이었다면, 그리고 당시 사람의 수명이 수백 세였다면 홍수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왔을 것이며, 세계 도처에 많은 증거들을 남겼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도처에, 그리고 여러 민족의 전설 속에 지구적인 대홍수에 관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대홍수 전설들
현재 지구상의 200여 부족이 270여 종의 홍수에 관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표 3). 그 지역은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다는 바벨로니아 지방에서 시작하여 그리스,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이집트, 중국, 인도, 페루, 브라질, 하와이, 피지, 수마트라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망라한다. 그 내용은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공통된 것은 홍수에 의한 우주적 격변, 구원받은 인종의 씨앗, 방주의 준비, 인류의 범죄, 신의 노여움, 구원받은 가족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기술내용은 노아홍수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Randy L. Wysong; Creation-Evolution: The Controversy, p 386, Inquiry Press, Midland, Michigan, 1978]
후레이져 (James Frazer, 1918)는 <구약성서 속의 민간전승> (Folklore in the Old Testament)에서 전 세계 지역에서 138 개의 홍수전설을 수집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네 가지의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째는 홍수를 야기한 도덕적 문란이며, 둘째는 신이 사람에게 홍수를 미리 예보했다는 사실이고, 셋째는 구원받은 몇 사람을 제외한 전 인류의 멸절과 마지막으로 동물들이 홍수의 시작과 종료를 알려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 밖에 이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큰 배가 동원되었다는 내용도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홍수전설을 연구했던 커스탄스(1979) 역시 각 나라의 전설 속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하였다. 홍수의 원인이 인간의 타락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홍수에 대한 예고가 있었다. 인류가 모두 멸절했으나 일부가 생존하였고, 현생인류는 그 생존자의 후손이며, 홍수를 전후하여 동물들(특히 새들)이 홍수의 진척상황을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홍수 후에 주인공들이 신께 희생 제사를 드렸다는 내용 등이다. [Arthur C. Custance; Flood Traditions of The World, The Flood: Local or Global?, pp 67-106, Grand Rapids, MI, 1979]
홍수에서 인류를 구원한 사람의 이름을 중국 전설에서는 ‘누와 (Nu-wah)’ 라 하였다. 중국 남부의 고산지방에 사는 묘족(苗族 Miao)들은 지금도 제사 때마다 선조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전통적인 주술문을 낭송하고 있는 데, 그 내용 역시 노아의 홍수장면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컨데, 묘족의 전승은 대홍수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흙모래 섞인 비가 40 일간 쏟아져 내렸도다. 물은 산들과 산맥을 넘쳐 흘렀도다. 산채 같은 홍수가 계곡과 웅덩이에 뛰어 들었도다. 세계에는 발붙일만한 곳도 없었도다. 사람마다 좌절하며 무기력하게 되고 멸망케 되었도다...그러나, 족장 누아는 올바른 사람이었도다....매우 폭이 넓은 방주를 만들었도다....그와 함께 승선한 동물들은 암수 한 쌍이었도다...그 날이 이르자 물은 멀리 물러갔도다.” [Edgar Traux 저, 임번삼 역; 묘족에게 전승되어 온 창조이야기, 창조, 78호(4,5,6월호), p 4-5, 한국창조과학회, 1992]
(2) 길가메쉬 서사시
대영제국의 런던박물관에서 <서아시아 계형문자>(5권)를 저술한 로린손(Hery Rolinson 1810-1895)의 조수로 일하던 인쇄공출신의 스미스(George Smith 1840-1876)는 36세로 요절했지만, 불후의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쐐기문자의 기록에서 번역한 앗슈르바니팔의 역사>를 저술하여 성서고고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어느 날 라쌈(1852)이라는 사람이 니느웨의 앗슈르바니팔(Assurbanipal 669-627 BC)의 왕실서고에서 발굴한 24,000장에 달하는 방대한 점토판문서(627 BC)의 길가메쉬 서사시(The Epics of Gilgamesh) 11장(326행)을 읽다가 몹시 흥분했다고 전한다. 이 사진은 11장의 토판사진과 당시에 살았던 갈데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사진 11).
스미스가 밝힌 바에 의하면, 이 서사시는 주인공인 영웅 길가매쉬가 수메르의 우룩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생명나무를 찾아 배를 타고 출가하여 겪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커다란 뱀이 생명나무를 삼키자 신은 대노하여 홍수를 일으킨다. 그런데, 11장에 나오는 홍수 이야기가 창세기의 노아홍수의 기록과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치한다. [N.K. Sandars; The Story of The Flood, The Epic of Gilgamesh, Chapter 5, Penguin Books, London, 1972]
(3) 에블라의 창조이야기
페티나토(Giovani Petinato 981)는 <에블라의 고문서>(Archives of Ebla)에서 에블라 지역에서 114개의 2개 국어 번역사전이 발견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모세보다 천여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므로, 이러한 증거만으로도 모세 때에 문자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개발가설(開發假說)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에블라의 창조이야기는 기원전 16세기의 다른 바벨론의 기록들(Enuma Elish, Epic of Atrahasis)과는 매우 다르다고 한다. 이러한 증거들은 진화론적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도 창세기가 쓰여지기 천여년 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지구가 없었을 때에 그것을 만드셨고 낮의 빛이 없었을 때 그것을 만드셨고 월광이 아직 없었을 때 계셨도다.'
(4) 한자의 증언과 천단(天壇)
중국 한자는 삼황오제 시절 황제의 신하 창힐 (蒼頡, Tsieng Chih)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Hsin Cheng Yu; Ancient Chinese History, p 6, Taiwan Commercial Press, Taipei, 1963]. 한자는 처음에는 상형문자로 출발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표의문자(뜻글자)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상형 및 표의문자 속에 창세기의 사건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이 싱가폴의 강목사(C.H. Kang)와 미국의 생리학자인 넬슨 여사(C.H. Kang & E.R. Nelson)가 260여개의 한자를 풀이함으로써 밝혀지게 되었다. [하현일 역; 창세기와 중국문자, 인쇄계사출판국, 서울, 1984, 원문은 The Discovery of Genesis, Thai Watana Panich Publishing Co, Bangkok, 1979]
이러한 창세기의 내용은 진시황 때 이사(李斯 220 BC)가 한자를 인장문자로 통일시키기 이전의 고대한자 속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중국문자는 전설적인 은나라(1711-1122 BC 추정)의 폐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甲骨文字)와 청동기 그릇의 안쪽에 새겨진 청동글자이다. 지금의 한자는 허신(許愼 86 BC)이 표의문자를 분석하여 집필한 설문문자(說文文字 120 AD)를 토대로 하고 있다. [전광호, 우재태역; 고대한자 속에 감추어진 창세기 이야기, pp 26-29, 인천, 1996, 원문은 Etherl R. Nelson, Richard E. Broadberry; Genesis and The Mystery: Confucius Couldn't Solve, CPH, St. Louis, Revised, 1994]
이 책들에 의하면, 공자(551-479 BC)가 쓴 서경(書經)에 기록하기를 순임금(2230 BC)이 '상제께 제사를 드렸다”고 했으며 [James Legge; The Chinese Classics(vol. 3), The Shoo King:Cannon of Shoon, Southern Material Center Inc. Taipei, pp 33-34, 1983] 그 내용은 창세기의 내용과 유사한 것이라 한다. 황제가 일년에 두 번씩 드렸다는 국경제사 봉선제(封禪祭 Sacrifice Offering)는 은나라 때부터 2천년간 계속되었으나, 기원전 6세기경부터 도교를 비롯한 민간종교가 등장하고, 기원전 3세기 경에 진시황의 분서갱유, 그리고 1세기 경에는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옴으로써 다신론이나 범신론적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15세기에 이르러 청조(淸朝)는 다시 북경남쪽에 천단(天壇 1420)을 만들고, 황천상제(皇天上帝)께 제사를 지냈다(그림 15). 그 후(1539), 천단의 남쪽에는 75미터의 3층 제단을 세우고 숫소를 번제로 드리고 주문을 외우며 제사를 지내어 오다가, 이 제사의식이 청나라가 망하면서(1911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한다.
넬슨 등이 저술한 책에 의하면 263자의 한자 속에 창세기의 기록이 내포된 한자들이 나오는 데, 그 중 몇 자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노아의 여덟(八) 식구(口)가 대홍수를 피하여 탔던 방주(舟)는 배선(船)자에 잘 나타나 있다. 홍수의 홍(洪)자는 여덟 명(八)이 하나로(一) 연합하여(手) 홍수(水)를 맞은 사실을 나타낸다. 떠다닐 연(沿)자는 여덟(八) 식구(口)가 물(水)위에 떠다녔음을 의미한다. 노아가족들(八)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이 낮에 사람들이 일하러(工) 나가 텅빈 상태를 공(空)이라 고증한다. 즉, 여덟 사람이 한 지붕아래 있었던 동굴(穴)이 일(工)을 하러 나가면 텅 비게 된다(空)는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하나님께 제사드린 희생(犧牲)제물은 소(牛)나 양(羊)중에서 좋은 것(秀)으로 골라 창(戈)으로 죽여서 드리는 번제였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어린양(羊) 중에서 가장 좋은 것(秀)을 창으로 잡아(戈) 희생제를 드릴 때에 의롭다(義)고 칭함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하현일 역; ibid, pp 181-190]
(5) 중동지방의 지명들
지명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노아의 홍수기사에 나오는 아라랏산은 옛 지명 그대로이다. 산 주변에 사는 원주민들은 자기들은 노아의 후손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토판문자가 만들어졌고, 길가메쉬 서사시가 기록된 바벨론 지역(지금의 이라크)의 두 강의 이름도 창세기에 나오듯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히브리어로 힛데겔)로 불리우고 있다. 역시 창세기에 나오는 홍수 전후의 수많은 중동지역의 지명과 족속들, 노아의 10대손 아브라함이 살았다는 갈데아 우르(Ur)와 하란(Haran)이라는 성경에 나오는 옛 지명도 오늘날 그대로 남아 옛날의 역사를 무언으로 증언하고 있다.
(6) 노아방주의 발견
창세기에 기록된대로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해발 5,160m)의 정상부분 어딘가에 묻혀 있을 가능성에 대하여 많은 탐험가들이 발굴 작업에 나섰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경우만 하여도 1856년 이래 23회에 200명 이상의 탐험가들이 빙하 속에 묻힌 방주를 발견했다고 보고하였다. 그리고, 1883년에 터키정부도 노아의 방주를 발견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창세기에 기록된 4-5천년 전의 노아의 방주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이 판명되는 의미 외에도 오랜 전설적 사건이 현실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것이었다.
아라랏산의 정상은 두 봉우리(5,160m와 5,126m)로 구성되어 있고, 두 봉우리 사이에는 거대한 빙하가 있으며, 일년내내 강풍이 휘몰아치기 때문에 그 속에 묻힌 방주를 찾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한다. 반면에, 그러한 추위 때문에 지금까지도 방주가 보존되어 왔을 것으로 추측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탐험가들이 집중적으로 탐색하는 지역이 터키, 러시아의 국경선이 만나는 아르메니아의 아그리 다기(Agri Dagi)지역이다. [William H. Stiebing; Ancient Astrounauts, Cosmic Collisins and Other Popular Thorie About Man's Past, Prometheus Books, pp 22-23, Buffalo, NY, 1984], [Lloyd R. Bailey; Noah: The Person and the Story in History and Tradition, p 72, University of South Caliornia Press, 1989]
이러한 방주에 대한 증언은 매우 긴 역사를 가진다. 유대인 출신의 로마의 역사가인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를 비롯하여, 살라미스의 주교인 살라미스(4C), 초대교회의 교부인 크리소스톰, 중세기의 마르코 폴로(15C), 올리어리우스(Adam Olearius 1662), 윌리엄 휘스튼(1737), 에스토니아의 도르팟대학 교수인 패롯(Friedrich Parrot 1829), 터키주재 영국대사인 브라이스(James Bryce 1876) 등이 방주의 존재를 증언했거나, 직접 등정하여 확인했다고 말하고 있다. 터키정부는 지진(1883.5.2)으로 파괴된 그 지역을 영국대사관원들과 같이 조사하던 중 지상으로 4-50피트가 솟아 오른 거대한 목재선박의 구조물을 발견하고 노아의 방주라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The British Prophetic Messenger, Summer, 1886], [The Chicago Tribune,August 10, 1983], [New York Herald, August 10, 1883]
네스토리아파의 지도자인 존 죠셉(John Joseph, 1887)은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방주를 목격했으며(1887.4.25), 그의 이야기는 친구인 코언(1939)에 의해 상세히 기술되었다. [Frederick B. Coan; Yesterdays in Persia and Kurdistan, pp 163-165, Claremont: Saunders Studio Press, 1939]. 죠셒은 세계종교회의 의장인 배로우스의 초청으로 시카고 박람회에서 탐사결과를 보고하였다(1893). 그 때에 그는 말하기를 방주는 길이가 300야드에 100피트의 높이이며, 방주의 한 쪽 끝부분이 파손되어 있었다고 하였다. [Charles Beritz; The Lost Ship of Noah: In Search of the Ark at Ararat, p 26, G.P. Putnam's Son, New York, 1987] 벨지움 금융인들의 지원으로 죠셒은 방주의 일부를 분해하여 시카고 박람회장으로 옮기고자 했으나, 터키정부의 입국거부로 실행되지 못했다고 한다. [Tim La Haye, John C. Morries; The Ark on Ararat, Creation Life Publishers, El Cajon, Chicago, p 26, 1976]
20세기에도 탐험 활동은 계속되었다. 아르메니아 출신의 미국인 하고피안(George Hagopian, 1902-10)은 돌처럼 굳은 방주를 목격했다고 했으며(William H. Stiebing, 1984), 제정러시아의 로스코비츠키(Vladimir Roskovitsky, 1916)는 아라랏산에서 선체의 1/4이 물속에 잠긴 전투함 크기의 물체를 발견했다고 보고하였다. [Vladimir Roskovitsky; Noah's Ark Found, The New Eden, Los Angeles, 1940 cited by La Haye & Morries, The Ark on Ararat, pp 76-70, 1976]. 이러한 보고를 받은 러시아 황제인 니콜라스 2세는 150명의 군인들을 보내어 방주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에 대해 백러시아군의 19연대 연대장이었던 쿠오 대령(Col. Alexander Koor, 1915-16)은 자볼로츠키 소위가 아라랏산의 두 봉우리 사이의 등마루에서 처음으로 방주를 발견했다고 증언했으며 [Kelly L. Segraves; Search for Noah's Ark, p 28, Beta Books, San Diego, 1975], 로스코비츠키는 관측한 내용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방주는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높은 천장을 가진 큰 방들도 몇 개가 발견되었다...울타리의 두께는 2피트 정도로 코끼리보다 10배나 큰 동물들을 가두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사용한 나무의 재질은 서양협죽도(Oleander)로 겉에는 페인트를 칠하면 전혀 썩지 않는다. 이 방주는 대부분의 시간을 냉동된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Vladimir Roskovitsky; New Eden Megazine, CA, 1939 cited by La Haye and Morries, The Ark on Ararat, p 79, 1979]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보고서는 볼세비키 혁명(1917. 2. 8)으로 황제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그 후 이와 관련한 아무런 자료도 발견할 수 없어 신빙성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Berlitz; ibid, pp 32-34]
미국조종사들이 찍어 성조지(The Stars & Strife)에 실렸던 사진들도 1943년에 모두 분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미국 조종사들이 1960년 봄에 배와 같은 구조물을 발견했으나, 소련군의 감시로 사진을 찍지 못하고 귀향했다고 한다. [Beritz; ibid, p 42].
최근에 방주를 가장 많이 목격한 사람은 프랑스의 나바라(1974)이다. 그는 1952년에 처음으로 방주탐사에 나서 얼음 밑의 거대한 배모양의 물체를 발견하였다. 1955년의 탐사 시 그의 아들과 같이 방주를 발견하고 5피트의 나무조각을 잘라내었다. [Fernand Navarra; J'ai trouve l'ache de Noe, Paris, 1956, Noah's Ark: I Touched It, pp 36-69, Logos International, Plainfield, NJ, 1974] 이 나무는 이집트, 스페인, 프랑스 등의 박물관으로 보내어졌고, 분석결과 나무의 종류는 백참나무(white oak)이며, 최소 5,000년 이전의 것으로 발표되었다. [Navara; ibid, pp 125-132] 그러나, 미국의 분석기관에서는 1,190-1,340년의 젊은 연대치가 나왔다.
미국의 와이어트(R.E. Wyatt)는 11년간(1977-1987) 23회나 현장을 조사하고 수많은 증거물을 수집하였으며 "배 모양의 구조 속에 대형의 구조물이 있음을 확인"하고 노아의 방주가 틀림없다고 주장하였다. [Ronald E. Wyatt; 이것이 노아방주다, pp 20-26, 크리스챤월드, 1991]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터키 정부는 방주가 발견된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광목적으로 고속도로를 놓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많은 개인이나 단체들이 방주의 목격담을 증언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창조연구회(ICR)의 현 회장인 죤 모리스가 이끈 세 번의 탐사결과와 인공위성 (ERTS, SKYLAB)이 찍은 사진들(1972-1974)이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John C. Morries; The Search for Noah's Ark, Impact, ICR, No. 125, 1983]
이상에서 노아의 방주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살펴보았으나 아직은 그러한 증거들이 노아의 방주라고 단언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증거들이 노아의 방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탐험과 연구가 진행되어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7) 갑작스러운 빙하기의 도래
빙하기는 진화론에서 주장하듯이 5-6회의 대 빙하기와 여러 번의 작은 빙하기를 거쳐 일만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아의 홍수 후에 갑자기 찾아온 추위와 격변에 의한 충격으로 맘모스와 같은 거대동물들이 얼음 속에 냉동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맘모스가 시베리아와 알라스카 및 카나다의 북부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은 이 지역들도 홍수 이전에는 아열대 기후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울러, 빙하가 북극지역에 집중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맘모스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은 채 싱싱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갑작스러운 기후의 변화로 냉동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맘모스의 입과 위 속에서는 소화가 채 되지 않은 음식물들이 발견되기도 하는 데, 이는 음식물을 소화할 겨를도 없이 어떤 급변적인 사태가 발생하여 동사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일과정설에서 설명하는 이론대로 이들의 사체가 서서히 냉동되었다면 이미 부패되었거나 다른 동물들의 밥이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8) 예술품에 등장하는 공룡들
북중미 지방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현생인류와 공룡의 발자국은 이들이 같은 시대에 살았음을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1,800년대 말에 그랜드 캐년 부근의 하바수바이 계곡의 바위에서 공룡과 사람이 같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발견되었다. 아프리카의 로데지아의 살즈버리 동굴에서도 사람과 브론토사우루스 공룡(Brontosarus)의 그림이 같이 그려져 있다. [R.L. Wysong; Creation-Evolution: The Controversy, Inquiry Press, p 378, Midland, Michigan, 1981]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멕시코 원주민들의 토우(土偶)중에는 한 여인이 등에 갑주를 달고 있는 새끼공룡의 목을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그림 16). 미국의 한 동굴 속에 있는 벽화에는 공룡과 사람, 새들의 그림이 같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공룡에 대해서는 세계최고(最古)의 기록인 성경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 "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하마 (공룡의 오역으로 봄)를 볼지어다...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 꼬리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넙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그 뼈는 놋관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같으니"(욥 40;15). 욥이 4천여년 전 사람으로 추정되므로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사람과 공룡이 노아시대의 홍수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공존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1977), 뉴질랜드 근해의 300m 수심에 쳐 놓았던 일본어선(Zuiyo Maru, 大洋水産社소속)의 어망에 해상 공룡인 사경룡(Plesiosaur)의 시체가 인양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끌은 바 있다. 이 동물은 진화론적으로는 수천만년 전에 멸종한 것이다. 그러나, 2톤이 넘는 거대한 몸체에는 발굴 당시에도 살점이 붙어 있었고, 썩는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고 목격자들은 전한다. 진화론자들의 말대로라면 수천만년간 공룡의 살이 비록 썩은 상태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존재했다고 믿어야 할 터이다. 반대로, 공룡이 지금까지 살았다면 그 동안 주장해 온 공룡의 멸절설도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사경룡의 시체가 지금도 발견된다는 것은 공룡이 최근까지도 사람과 같이 살았다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발견에 당황한 진화론자들은 그 동물이 공룡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일본의 학자들은 틀림없는 공룡이라고 확고하게 주장하며, 일본정부에서는 기념우표까지 발행한 바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괴물의 시체는 물속으로 다시 수장되고 말았다.
(9) 내륙에 있는 소금호수들
대홍수로 바닷물이 모든 육지와 산꼭대기까지 뒤덮었다면, 그리고 육지가 조산활동으로 바닷 밑에서 솟아 오른 것이라면 당연히 지구상의 여러 곳에 소금호수와 소금덩어리가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지구상에는 소금호수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이스라엘의 사해는 염해의 대표적인 예이다. 소금함량이 보통의 바닷물보다 10배 이상 짠 30% 정도이다. 그래서 비중이 높아 사람도 둥둥 뜬다고 하니, 수영이 서툰 사람도 거기에서 시험해 볼 만한 일이다. 몽고에 있는 고비사막의 염호들, 이란의 우르미아호(해발1,470m), 터키동부의 만호(해발1,700m), 안데스산맥의 티티카카호(해발3,800m) 등 수많은 소금호수들이 세계 도처에 널려 있다.
민물호수가 물을 방출하지 못하면 수분의 증발로 소금함량이 늘어나 염호가 되리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소금호수가 생성되었을까? 해답은 언젠가 전 지구를 휩쓴 대홍수가 있었고, 홍수가 물러가면서 바닷물이 남은 곳에 염호가 형성되었고, 새로 생긴 빈 호수에 지하수와 빗물이 모여 민물호수를 만든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아라랏산의 해발 2,100m지점에서는 귤크기의 소금덩이들이 무수히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나 호주 및 남미 등지에서 발견되는 엄청난 규모의 암염광산들의 존재도 해수의 증발에 의하지 않고서는 해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홍수 때 형성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10) 격변적 매몰에 의한 화석들
생물들은 죽으면 며칠 만에 부패한다. 아니면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된다. 이것이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들이 화석이 되려면 긴 기간에는 아예 생성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짠 바닷 속에서라 할지라도 화석의 형성은 불가능하다. 거기서도 다른 물고기들의 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천만 개의 화석들은 한결같이 옛날에 큰 격변적 사건이 있었음을 무언으로 말해주고 있다.
입이나 위속에 소화가 안된 음식물이 들어 있는가 하면, 수영하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고스란히 화석이 되어 있다. 공룡과 맘모스가 무더기로 화석무덤을 이루었다. 그런가 하면 부패하기 쉬운 잠자리, 해파리, 식물체와 같은 생물들도 화석으로 발견된다(사진 12). 이는 부패하기 전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격변적 증거가 어디에 또 있을까?
남아프리카의 화석학자인 브룸(Robert Broom)은 20만평에 이르는 카루고원(Karoe)에 8천억 마리의 척추동물들이 묻힌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 데, 그 동물의 대부분은 양서류와 파충류라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국 UCLA의 지질학 교수인 밀러 교수(W.J. Miller)는 "오늘 날 지구상에 있는 유기체들 가운데 화석으로써 보존되기 좋은 상황 하에서 퇴적되고 있는 유해들은 거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토록 많은 수효의 화석들이 암석층 속에 파 묻혀 있는지 주목할만한 일이다.”고 하였다. 이는 격변에 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현상이다. 격변적 화석형성 이론은 동식물체들이 고온, 고압에 의해 순간적으로 매몰되면서 탄화되었다는 것이다(그림 17).
(11) 잔류지형들 (Relic Landforms)
빙하기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남북지반에서 발견되는 잔류지형이다. 빙하의 흐름에 의해 조성된 이러한 잔류지형은 카나다, 북미지역, 북유럽, 뉴질랜드, 아프리카 지역에 남아 있다. 지금의 기후조건으로는 이러한 지형을 남길 수 없으며, 형성사례도 근간엔 발견되지 않는다. 잔류지형은 '지금과는 다른 기후환경에서 만들어진 지형” (H.F. Garner 1974)을 말하는 데, 세계도처의 지형들은 대부분 잔류지형이다 (Budel & Garner). 이러한 말은 과거의 언젠가는 지금과는 다른 격변적 환경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기후 변화로는 그러한 잔류지형들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만; 잔류지형-홍수가 남겨둔 흔적, 창조 120호(5월호), 한국창조과학회, p 7-10, 2000]
* 언더핏류 (Underfit Streams) ; 하상, 계곡, 준평원처럼 지금의 과정으로는 형성될 수 없는 엄청난 물이 흘러서 만들어 놓은 지형을 말한다. 미국과 유럽의 50% 이상이 언더핏류의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G.H. Dury, 1977).
* 건조지역의 배수로 (Drainage System) ; 잘 짜여진 하천의 배수망은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지금은 건조한 사막지대에서도 그 흔적이 지형으로 남아 있다. 미국의 모하비 사막(Mojavi Desert), 데쓰밸리 사막(Death Valley Desert, California), 페루의 아타카마 사막(Atacama Desert)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 해안절벽 (Inland Sea Cliffs) ; 해변가라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해안절벽들은 한때 전 세계에 급변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카르스트 니들 (Karst Niddles) ; 이것은 단단한 층에 깔린 석회암이 젖어 있는 상태에서 물리화학적인 작용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중국의 계림(桂林)과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다.
* 잔류 모래언덕 ; 일명 에르그스(Ergs)라고 한다. 충적층의 암석이 빙하의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모래가 되고 식생에 의해 안정한 형태가 된 것이다. 미국의 네브라스카주의 2/3 이상이 모래언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 건조 호수층(Dry Lake Beds) ; 물이 없는 호수바닥층을 말한다. 이러한 지형은 한 때 그 곳이 물이 가득한 호수였음을 말한다. 미국 서부의 건조지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2) 인구의 증가
현재의 인구가 60억이다. 첫 인류가 출현하여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다면 이러한 숫자는 설명하기가 어렵게 된다. 노아(4,000-5,000년 전 추정)의 네 식구로부터 연간 인구증가율을 0.5% (현재는 2%)로 하여 계산하면 4,000년 정도로 충분하다. 엇셔가 주장한 대로 노아홍수가 대략 4,300년 전에 일어났고,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현생인류가 유래했다면 (창9;19), 한 세대를 43년으로 계산하면 100 세대가 조금 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 500 Flood stories prove Noah's Ark is real history!
출처 - 임번삼 저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홍수 이전에 비가 내렸습니까? (Did It Rain before the Flood?)
창세기 2:5-6은 홍수 이전에 비가 오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주목할 것은 이 구절은 단지 지구가 창조된 후에 얼마 되지 않은 때로, 비가 없었던 시기를 말하고 있다. 그 기간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을까? 몇몇 사람들은 이 안개는 증발-강우 사이클(evaporation-rain cycle)을 시작했다고 믿는다. 만약 그렇다면, 비가 오지 않은 기간은 잠깐이었고, 홍수 이전에는 비가 왔었는가? 자 다른 단서들을 찾아보자
무지개 (Rainbows).
하나님은 전 지구적인 홍수를 다시 일으키지 않으시겠다고 구름 속에 활처럼 생긴 무지개를 증표로 약속하셨다. (창세기 9:12-17). 무지개는 빗방울이 햇빛에 굴절되었을 때 형성된다. 이것은 무지개가 홍수 후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홍수 이전에 비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무지개는 홍수 이전에도 보여질 수 있었을 것이며, 나중에 하나님이 단순히 당신의 약속을 무지개와 관련시키셨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결혼반지의 상징성과 유사할 수 있다. 반지는 결혼 이전에 존재했다. 그러나 후에 반지는 엄숙한 맹세를 기억하게 한다. 그러나 만약 무지개가 새로운 현상이었다면, 홍수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는 무지개의 상징적 효과는 더 잊혀질 수 없는 확고한 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몇몇은 무지개는 홍수 이전에 물들이 반사되고 햇빛이 물방울을 통하여 지나가면서, 홍수 이전에도 형성되었을 것으로 주장한다. 이 주장은 하나님의 약속이 ‘구름 속’에서 무지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비교적 작은 물방울들은 땅 위 수 피트 정도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유리 온실 (A Terrarium).
홍수 이전에 지구는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수증기 덮개 안에 습도가 높은 유리온실(비가 오지 않은 상태에서 안개 상태로 증발과 응축만 있는)과 같았는가? 전 지구적 크기의 유리온실이 창세기 2:10-14에 기록된 것과 같은 주요한 강들을 이룰 만한 충분한 물들을 공급할 수 있었을까? 홍수 이전의 두 강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은 오늘날 똑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강력한 홍수 후에 생긴 강들의 이름에 기초가 되었음에 분명하다. (256 페이지에 Endnote 4 를 보라.)
홍수 이전 지구에 매일 이러한 강들을 만들 만한 충분한 물이 응축될 가능성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홍수 이전의 지구는 오늘날의 지구와는 상당히 달랐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여만 한다. 만약 수판 이론(hydroplate theory)이 맞는다면, 홍수 이전 지구에는 화산도, 주요한 산도, 빙하도, 극지방의 얼음도 없었다. 대략 지구 물의 반은 지각(crust)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다른 반은 지구 여러 곳에 조금씩 (호수나 얕은 바다)로 분산되어져 있었음에 틀림없다. 일년은 360일 정도로 지금의 하루보다 약간 길었고, 온도는 낮에는 약간 높았으며, 밤에는 조금 더 낮았다. (95-129 페이지와 146 페이지의 Endnotes 11-13을 보라).
오늘날의 대양저(ocean basins)는 홍수의 결과로써 형성되었다. (페이지 132-139를 보라). 오늘날의 석탄, 석유, 메탄 퇴적물들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광대하고 울창한 숲이 존재했다. 그곳에 사막과 같은 장소는 거의 없었다. 이러한 홍수 이전의 상황은 비가 내리는 것을 막으면서 충분한 물들을 공급할 수 있었는가?
응축 핵 (Condensation Nuclei).
물방울은 거의 항상 고체표면 위에서 수증기가 응축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다. 일반적인 예가 아침 일찍 풀 위에 생기는 이슬이다. 빗방울, 눈송이, 안개 입자들은 대기 중에서 존재하는 미세한 입자에 의해서 자라기 시작한다. 이러한 입자들을 ‘응축 핵’ 이라고 부른다. 이 입자들은 전형적으로 직경이 1-0.1㎛ 이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카락 직경의 1/100 보다도 작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 1 입방인치 안에는 이러한 입자들이 적어도 천개는 포함되어 있다. 수증기 분자들은 거의 서로 서로 충돌하거나 달라붙지 않기 때문에, 한 방울의 물방울은 한 개의 응축 핵에 물분자가 100억의 100억 개가 모였을 때 형성된다.
바람 (Wind)
대기의 온도차는 바람의 원인이 된다. 그때 바람은 다른 온도와 습도를 함유한 공기들을 혼합한다. 혼합물의 여러 형태가 우리에게 비, 눈, 우박, 허리케인, 토네이도, 맑음 등과 같은 날씨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큰 산들, 얼음들, 화산들, 대양들이 없었다면2, 홍수 이전의 지구는 매우 균일한 온도를 가졌을 것이다. 또한 풍부한 식물들은 낮 동안에 증발과 냉각, 그리고 밤에 응축과 방열을 제공함으로써 온도를 온화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훨씬 균일한 온도는 바람3과 기후의 변화가 적었음을 의미한다.
만약 물분자가 탁구공 크기라면, 응축 핵은 집채 만한 바위에 해당될 것이고, 빗방울은 직경 160 km에 해당될 것이다. 가스성 물분자가 그 바위를 때렸을 때, 분자에너지의 많은 부분이 열로써 바위에 전달될 것이다. 만약 어떤 ‘흡수성 바위(absorbent rock)’ 가 충분히 차갑고 상대습도가 충분히 높다면, 분자들은 달라붙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응축이 시작되면서 빗방울이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충돌하는 물분자로부터 에너지가 증가됨에 따라, 약간 따뜻해진 바위는 주변에 공기를 따뜻하게 할 것이고, 이것은 약간 위쪽으로 상승하는 원인을 제공할 것이다. 위로 올라가는 바람은 물방울로 자라기 위한 충분한 습도를 바위에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 바위와 거기에 부착된 물은 풀장에 담긴 정지된 물에서 모래 입자가 떠다닐 수 없는 것처럼, 오랫동안 대기 중에 떠다닐 수 없다. 마치 빠른 물의 흐름이 모래입자를 부유시키는 것처럼, 단지 바람만이 응축 핵을 부유 시킬 수 있다. 홍수 이전에 바람이 없었다면, 응축된 핵은 비교적 적게 들어 올려졌을 것이며, 땅에 가까이 머물렀을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균일한 온도가 유지되었다면, 따뜻한 지역 상공으로 비교적 적은 공기가 상승하였을 것이다. 즉 응축 핵과 습기는 땅 근처에서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높은 구름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한번 물이 땅 근처에 핵들 위에 모이기 시작하면, 방출된 응축열은 공기를 상승시키는 원인이 된다. 미세한 물방울은 그 부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단면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상승 기류는 작은 물방울들을 위쪽으로 운반할 것이다. 물방울이 점점 자라면서, 그 무게는 단면적 보다 빠르게 증가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그것은 곧 땅으로 가라앉게 되고, 자주 통로에 있는 다른 물방울들을 모으게 된다. 우리는 안개가 땅에서 올라가다, 비를 형성되기 전에 땅에 다시 물방울로 가라앉는 것으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다. (창세기 2:5-6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은). 조용한 호수 위에 올라가는 아침 안개와 유사할 수 있으나,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홍수 이전에 극지방의 얼음층과 눈으로 덮인 산들이 없었다면, 우주로부터 들어오는 태양 광선의 반사는 적었을 것이고, 그래서 낮 동안에 지구는 더 가온되었을 것이다. 울창한 숲, 적은 구름, 약간 긴 낮 등으로 지구는 더 많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했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물들이 낮에 증발했다. 밤에는, 적은 구름, 약간 긴 밤 등은 우주로 열을 더 많이 잃어버리게 하였다. 이것은 더 많은 물들을 응축시키게 하였다. (오늘날 구름은 지구 외부로부터 오는 복사광선의 20-25%를 우주로 반사시켜 버린다). 그러므로 홍수 이전의 지구는 오늘날 비에 의한 것보다 매일 응축에 의해 더 풍부하고 균일한 물들을 가질 수 있었다.
해가 뜨기 전에 빠르고 강한 응축은 습기를 땅 근처에 가깝게 유지시켰고, 높은 구름의 형성을 제한하였다. 오늘날 아침 안개는 해가 뜨고 나면 땅에 가라앉기 전에 곧 증발해 버린다. 설사 홍수 이전에 높은 구름이 적게나마 있었다 하더라도 온도는 밤에 빠르게 떨어졌을 것이다. 이것은 낮 동안 대기에 많은 습기를 가지게 하여, 물방울이 크게 자라도록 함으로서, 땅에 빠르게 가라앉게 하여, 아침증발이 일어나기 전에 토양으로 흡수되게 하였을 것이다.
두 번째 차이는, 홍수 이전의 안개 물방울은 빠르고 크게 자랐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응축 핵의 주요한 근원인 화산재, 화산성 황 화합물, 대양의 소금가루, 강한 바람, 인공 오염물질들 등이 홍수 이전에 없었다면, 응축 핵들은 적었을 것이다. 적은 응축 핵에 많은 습기를 가진 물방울의 응축은 크게 자라고 빠르게 가라앉는 안개 물방울을 의미한다.
첫 번째 비 (First Rain)
만약 홍수 이전에 비가 없었다면, 홍수가 시작될 때 최초의 비는 어떻게 내릴 수 있었는가? 95-129 페이지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홍수가 시작될 때의 떨어진 최초의 물방울은 응축된 물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다. 대신, 그들은 대기권으로 터져 나온 깊은 지하의 물들이 분무되고 분산되면서 형성되었다.
홍수에 대한 어떤 신뢰할 만한 설명이라면, 홍수 이전에는 왜 비가 내리지 않았는지, 비옥한 땅들은 어떻게 물을 가지고 있었는지, 무엇이 강들에 물을 제공하였는지, 어떻게 그렇게 강렬한 비가 홍수 초기에 강하게 내릴 수 있었는지, 그리고 비는 40 일 후에 그쳤음에도 홍수 이전의 산들을 잠기도록 홍수 150 일까지 왜 물이 계속 올라갔는지... 등을 반드시 설명해야만 한다. 또한, 홍수를 일으킨 40 일 동안의 비가 응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비는 수일 후에 왜 멈추지 않았는지도 (왜냐하면 떨어지는 비는 응축 핵을 제거하기 때문에) 설명해야 한다. 수판 이론(hydroplate theory)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References and Notes
1. Translations of these verses have raised frequent questions. Many believe Genesis 2:5-6 contradicts Genesis 1. They dismiss Genesis as inaccurate or conclude there are two creation accounts, Genesis 1 and Genesis 2. (Item 3 on page 301 disputes this belief.)
Other objections include: The creation of vegetation was described in Genesis 1:11-12, but Genesis 2:5 says there was no vegetation. Also, man was created in Genesis 1:27, yet Genesis 2:5 says there was 'no man.' Furthermore, it says man must be present before plants could grow, but in Genesis 1, plants came before man.
These apparent problems disappear when one realizes that 'vegetation' in Genesis 1:11-12 is the Hebrew word deshe, meaning the plant kingdom. In Genesis 2:5, 'shrub' (siach) and 'plant' (eseb) are special kinds of cultivated plants. Following the latter two words with 'of the field' implies cultivation or farming of specific plants-not vegetation in general. Likewise, 'beasts of the field' (Genesis 2:19-20, II Samuel 21:10, Psalm 8:7) are domestic animals, while 'beasts of the earth' (Genesis 1:24-25) are wild animals. Cultivated 'plants of the field' were probably not eaten until after the fall (Genesis 3:18). My understanding of Genesis 2:5-6, although not a translation, is:
Crops were not yet growing on the newly created earth. The Lord God had not sent rain, and man did not yet toil for food. [Hard labor came after the fall.] Heavy fog watered the earth.
2. Oceans and other large bodies of water change temperature slowly, but land changes temperature rapidly. Today, large temperature contrasts between the two generate strong wind systems high into the atmosphere. Before the flood, less surface water was spread over the earth in smaller bodies (lakes and shallow seas). This produced many smaller, weaker wind systems closer to the ground.
3. Another factor that retarded preflood winds was aerodynamic drag from the extensive preflood forests.
4. See Endnote 5 on page 288.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홍수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1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방주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cience.com/onlinebook/FAQ215.html#wp1615634 ,
출처 - CSC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102
참고 :
노아와 사람의 어원
: Manu, Man, Maru, Mano, Anu, Marine...단어들의 기원과 대홍수
(Noah And Human Etymology)
Bengt Sage
노아 홍수 이후 사람들의 이주와 함께 전 지구적 홍수 전설도 세계로 퍼져나갔고, 노아라는 존경할 만한 이름도 그들과 함께 이동되었다.1 이것은 고대 산스크리트 언어와 '마누(Manu)' 라는 이름으로 인해 더욱 분명해진다. 산스크리트어는 '고대 인도유럽어'와 같은 뿌리의 말에서 유래된 듯하다.
'마누(Manu)'는 인도 전설 속 홍수 영웅의 이름이었다. 그는 노아처럼 여덟 사람을 구해낸 방주를 지었다고 한다. 따라서 노아와 'Manu'는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Ma'는 고대어로 '물' 이라는 뜻이므로, 'Manu'는 '노아의 홍수'를 의미할 수 있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에서 '물'과 '큰물'이라는 단어는 표준 히브리어의 복수 어미인 'yim' 음절이 있는 'mayim'을 번역한 것이다. 'ma' 접두사는 원래 'mar'과 'mer'(스페인어와 불어에서는 '바다'를 뜻하며 두 단어 모두 라틴어의 'mare'에서 유래되었다)에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영어에서는 'marine'이라는 단어가 되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Manu' 라는 이름은 '인간(man)' 혹은 '인류(makind)' 라는 말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왜냐하면 Manu, 또는 Noah는 홍수 후 모든 인류의 조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단어는 서부 게르만 사람들의 언어인 게르만어의 'Mannus'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다.2 'Mannus'는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저서 'Germania'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3 또한 리투아니아에서는 노아를 'Mannus' 라고 부른다.4 또 다른 산스크리트 말인 'manusa'는 스웨덴어의 'manniska'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5, 이는 모두 '인류'를 의미하는 단어들이다. 'Manu'는 아마도 이집트의 'Menes'(이집트 최초 왕조의 건립자)와 'Minos'(첫 번째 크레타 왕조의 건립자)에 조차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Minos'는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들과 바다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한다.6
영어 단어 'man' 역시 다른 게르만 언어들과 동일하게 산스크리트의 'manu'와 연관이 있다. 가장 오래된 게르만 언어라고 알려진 고트어(Gothic)는 'Manna'와 'gaman'('fellow man') 형태를 사용했었다.
'아누(Anu)' 라는 이름은 수메르어에서 하늘의 신이라는 뜻으로 나타나며, 무지개를 'Anu의 커다란 활'7 이라고 불렀고, 이는 노아와 관련이 있음이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창세기 9:13). 이집트 신화에서 'Nu'는 홍수로 인류를 파괴시키러 보내진 홍수의 신이었다. 'Nu'와 그의 배우자 'Nut'은 하늘과 비의 신이었다. 'Nu'는 최초의 물 덩어리와 동일시되며, 그의 이름 역시 '하늘'을 뜻하고 있다.9
아프리카에서는 콩고 왕조(콩고 제국은 한때 콩고 전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앙골라, 자이르, 카빈다, 그리고 콩고공화국의 영토가 함께 자리 잡고 있다)를 'Mani' 콩고라고 불렀었다. 'Mani'는 위대한 지도자, 각료, 통치자, 성직자, 그리고 왕 자신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지위였다. 사실 이 제국은 한 때 'Manikongo' 제국으로 불리었었다.10
유럽에서 'ma' 접두사는 종종 '물'과 '강'을 뜻하는 오래된 단어인 'da' 형식으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영국과 러시아와 발칸 제국의 다뉴브(Danube) 강에서 'Don'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되었다. 해변 지역에 살았던 최초의 그리스인들은 'Danaoi' 혹은 '물의 사람들'이라고 불려졌었다.11다뉴브(Danube)라는 이름은 'Donau', 'Dunaj', 'Duna', 'Dunau', 'Dunay'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변형되었다. 이 모든 이름들의 뿌리는 '강' 혹은 '흐름'을 뜻하는 'danu' 라는 단어이다.12라트비아의 강 드비나(Dvina)는 이전에 'Duna'로 불려졌었고, 이는 또한 같은 인도-유럽어원의 단어인 'danu'에서 유래된 것이다. 'danu'에서 'manu'에까지 그 유사성은 매우 분명하다.13
산스크리트어인 'manu'는 인도에서부터 동쪽으로도 전해졌다. 일본에서 'manu'는 'maru'가 되었고, 이 단어는 대부분의 일본 선박 이름에 쓰여지고 있다. 고대 일본 전설에서 'Hakudo Maru'라는 신은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 배를 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 이름은 최초의 선박건축자인 노아와 잘 연관될 수 있다. 일본의 선박 이름에 'maru'라는 이름을 사용한 관습은 12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16세기 말, 전쟁의 신인 히데요시는 'Nippon Maru' 라고 불리는 일본 최초의 거대 선박을 건조하였다. 또한 일본에서 'maru'는 둥글게 둘러친 담 혹은 원형의 피난처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원형은 행운의 표시로 생각되어졌다. 물론 노아의 방주는 최초의 거대한 둥근 피난처였었다. 일본의 원주민을 'Ainu'라고 불렀는데 이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14
'mai' 라는 단어는 몇몇의 호주 원주민 언어에서 '원주민(aboriginal man)'을 의미하고 있다. 하와이에서는 'mano'가 상어(shark)를 뜻하는 단어 일뿐 아니라, 상어 신의 이름이다. 몰로카이 섬의 어떤 언덕은 'Puu Mano(상어 신의 언덕)' 라고 이름지어졌다.15 산(mountain) 이란 뜻의 단어는 'mauna'인데, 아마도 하와이의 거대한 화산들은 최초의 정착민들에게 아라랏산을 생각나게 한 듯 하다. 그래서 그들은 이 후부터 그들의 조상인 'manu' 혹은 노아의 이름으로 그런 산들의 이름을 짓게 되었다. 말이 나온 김에 아라랏(Ararat)은 성경에서 아르메니아(Armenia)와 같다. 'Ar' 접두사는 '산'을 뜻하므로, 'Armenia'는 아마도 'Meni의 산'을 의미할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manu'가 몇 개의 형태로 변화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수족(Sioux)의 언어에서는 '물'을 뜻하는 'minne' 형태로 변하였다. 따라서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미국 미네소타 주 최대의 도시)는 '물의 도시'를 뜻하며, 미네소타(Minnesota)는 '하늘 푸른 물' 등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니보인(Assiniboine) 언어에서 'minnetoba'는 '물의 대초원'을 의미하고 있다. 이 이름은 캐나다 지역의 매니토바(Manitoba; 캐나다 중남부의 주)에서 보전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위대한 영의 장소' 라는 의미가 함께 있는 매니토바(manitoba)라는 단어는 크리족(Cree, 북미대륙의 인디언 부족 중 하나)과 'Ojibiva-Saulteaux' 언어에 그 기원이 있는 듯 하다. 'Manitou'(위대한 영)는 알곤킨 부족(Algonquins, 북미 인디언 부족 중 하나)의 우두머리 신을 의미한다.16
남미에서조차 고대 'Manu'라는 이름의 흔적들을 찾아낼 수 있다. 니카라과(중앙 아메리카의 공화국)의 수도인 마나과(Managua)라는 이름은 '물로 둘러싸였다' 라는 뜻을 가진 'Nahuatl managuac'에서 유래되었다. 서기관 프랜시스코 로페즈 드 고마라(Francisco Lopez de Gomara)는 잔인한 정복자 코르테즈(Cortez)에게 'Manoa'를 금의 도시인 엘도라도의 수도인 냥 꾸며낸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그래서 'Manoa'(노아의 홍수를 의미함)는 브라질과 베네주엘라 사이 Sierra Parina 고지에서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17 브라질 아마존강 유역의 'Manaus' 라는 도시는 한 때 그 지역을 지배했었던 인디언 부족인 'Manau'족이 살기 시작한 이후에 지어진 이름이다. 볼리비아에는 'Manoa'라는 마을이 있고, 페루에서는 강을 'Manu'라고 부른다. 사실상 몇몇 강들의 이름에도 'manu'가 들어가 있다 : Muymanu, Tahuamanu, Pariamanu, Tacuatimanu, 등등. 'Madre de Dios' 성(省)에는 모두 이런 강들이 위치하고 있고, 이 곳에서 'manu'는 '강' 혹은 '물'의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사실 이 성(省)의 지역 중 하나에서는 'Manu'와 또 다른 'Tahuamanu'로 이름 지어졌다.
'물'을 뜻하는 이집트의 상형 문자는 물결치는 선으로 기록되어 있다. 알파벳이 만들어 질 때, 이 기호는 'm' 이라는 글자가 되었고, 셈족의 언어에서 '물'을 의미하는 'mayim'을 표시하고 있다. 기원전 1300년-1000년 사이의 페니키아에서는 'm'을 '멤'(Mem)이라 불렀고, 그 후에 그리스에서는 '무'(Mu)라 불렀으며, 마침내 로마인들 사이에서 '엠'(Em)이 되었다.
노아라는 이름은 '비'(rain)를 뜻하는 앗시리아어 'zunnu'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친 듯 하다.20 머리가 둘 달린 신인 야누스(Janus ;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1월(January)이 여기서 유래되었다)는 세상의 아버지와 배의 창조자로서, 후에는 문(portals)의 신이 됨으로써 이탈리아 최초의 거주자들에게 섬김을 받았다. 이러한 모든 개념들은 노아와 잘 연관되어져 있다.
야누스(Janus) 라는 이름은 원래 'Jah'와 'Noah'가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노아의 주(Noah's Lord)' 를 의미하고 있다. 북유럽 신화에서 'Njord'는 배의 신이며, 배들의 항구인 'Noatun'에서 살았다. 이 언어에서 'noa'라는 음절은 아이슬란드어에서 배를 뜻하는 'nor'와 관련이 있다.21 또한 원래 산스크리트와 유사하게, '배' 라는 단어는 'nau' 이다. 이 어원은 영어에서 조차 다음과 같은 단어들로 - 'navy'(해군), 'nautical'(해상의), 'nausea'(뱃멀미) 발전되어 왔다.22 이 단어는 여전히 최초의 선박 건축자인 '노아(Noah)' 라는 이름의 또 다른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Ino'는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신이며, 또한 그리스어에서 'naiade'는 '강의 요정'을 의미하고 있다.23
많은 다른 예들을 열거할 수 있다. 이처럼 노아와 거대한 홍수는 모든 나라들의 고대 전설에서 재차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아나 홍수와 관련된 명칭들은 노아의 후손들의 많은 언어들 속에 각가지 경로를 통하여 섞이게 되었다.
증거들은 빈약하고 때로는 거의 없어져서, 몇몇의 추측된 연결 과정들이 불확실하거나 어쩌면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언어들 사이의 상관관계들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일치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 역시 전 지구적 홍수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된다.
References
1. This study is necessarily exploratory and somewhat speculative. Nevertheless, it is fascinating, and the etymological correlations seem too numerous and detailed to be coin- cidental.
2. See the Oxford Dictionary of English Etymology.
3. Tacitus, The Agricula and the Germania, Middlesex, England: Penguin Books, Ltd., 1970, p. 102.
4. Kolosimo, Peter, Not of This World, London, England: Sphere Books, Ltd., 1975, p. 171.
5. See the Syensk Etymologisk Ordbok.
6. Ceram, C. W., Gods, Graves and Scholars, Middlesex, England: Penguin Pelican Books, 1974, pp. 79-83.
7. Sandars, N. K, The Epic of Gilgamesh, Middlesex, England: Penguin Classics, 1960.
8. Tomas, Andrew, Atlantis from Legend to Discovery, London: Sphere Books, Ltd., 1972, p. 25.
9. Spence, Lewis, Myths and Legends of Egypt, London: George C. Haffap & Co., Ltd., 1915.
10. Hall, Richard, Discovery of Africa, Melbourne, Australia: Sun Books, Ltd., 1970, p. 67.
11. See article on El Correo, published by Unesco, April 1960, p. 27.
12. See National Geographic Magazine, October 1977, p. 458.
13. There is no actual documentation of a phonetic change from 'ma' to 'da,' although such would have been quite possible, especially in view of the similar meanings of derivatives.
14. Furneaux, Rupert, Ancient Mysteries, London: Futura Publications, Ltd., 1976.
15. Pukui, Mary Kawens, and Elbert, Samuel H., Place Names of Hawaii,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66.
16. See brochure published by Manitoba Historical Society in Winnipeg, Canada.
17. Kolosimo, Peter, Timeless Earth, London: Sphere Books, Ltd., 1974, pp. 136, 215.
18. Laird, Charlton, The Miracle of Language, New York: Fawcett World Library, 1967, p. 177.
19. Pei, Mario, Language for Everybody, New York: Pocket Books, Inc., 1958, p. 182.
20. Cleator, P.E., Lost Languages, New York: New American Library of World Literature, 1962, p. 105.
21. Filby, Frederick A., The Flood Reconsidered, London: Pickering and Inglis, 1970, pp. 55-57.
22. Hellquist, Elof, Svensk Etymologisk Ordbok, Lund, Sweden: C.W.K. Gleerups Forlag, 1966, p.701.
23. Cuerber, H. A., The Myths of Greece and Rome, London: George G. Harrap and Co., Ltd., 1948, p.235.
* 저자 : Bengt Sage는 언어와 어원학 연구를 취미로 하는 호주 사업가이다. 그는 스웨덴 태생이며 어린 시절에는 해군 함정의 상인으로 모든 대륙을 여행하였다. 그는 스페인어로 성경의 서신서를 연구하여 학위를 받았고, 스페인어 번역본으로 된 성경과 현대 과학서적을 읽은 결과 창조론에 전념하게 되었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www.icr.org/article/noah-human-etymology/
출처 - ICR, 1980. 5. 1.
노아의 홍수와 이사산의 금속퇴적
(Noah's Flood and the Mount Isa Metal Deposits)
호주 퀸스랜드 북서쪽에 있는 이사산(Mount Isa)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풍부하게 금속 퇴적물(metal deposits)을 가지고 있는 곳 중에 하나이다. 이곳에는 같은 지층에 은-납-아연, 구리 광석들을 가지고 있다. 은-납-아연 광석은 단단한 진흙(mud, shale)층과 교대로 얇은 광물 층으로서 발견된다. 그러나 구리광석은 silica dolomite의 덩어리 안에 구리광물이 가로질러서 관입되어(cross-cutting veinlets)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은 이사산의 광물들은 처음부터 동시에 퇴적되었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덧붙여서, 오늘날의 홍해(Red Sea)나, 캘리포니아만, 동태평양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이, 최근에는 물속에서 금속이 풍부한 뜨거운 화산성 샘(springs)에 의해서 퇴적되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금속 광석과 그들이 들어있는 퇴적지층에 대한 통계학적 분석에 의하면, 은-납-아연 광석 의 몸체와 그들을 포함하는 셰일층 모두는 20일 이내에 퇴적되었을 것으로 분석되어지고 있다!
또한 납의 동위원소(lead isotope)에 대한 자료들은 거대한 스케일로 신속하게 퇴적되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빠른 퇴적을 위한 그러한 격렬한 물 속에서의 화산작용은 노아의 홍수동안에 터졌던 큰 깊음의 샘을 기억나게 한다. 그리고 금속광석을 함유하고 있는 셰일층에 화석들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이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면 이 이슈에 대한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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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홍수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1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방주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6/i3/noah.asp ,
출처 - Creation 6(3):17, February 1984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09
참고 :
노아 홍수와 지구의 환경 변화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장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니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창 1:6-7).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 7:11-12).
(1)궁창 위의 물이란 무엇인가?
지구가 아직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빛이 없어 흑암에 쌓여 있을 때 벌써 지구에는 물이 있었습니다(창 l:2). 하나님께서는 이 물을 지구 표면이나 지하에만 배치하지 않고 궁창(firmament)을 만들어 궁창 위에도 배치했습니다(창 1:6-7). 궁창은 지구 주위에 펼쳐진 광활한 창공을 의미하는데 특별히 물을 아래 위로 나누어 놓게 한 궁창은 지구 주위의 대기권(공기층)을 지칭함에 틀림이 없습니다. 여기서 궁창 아래의 물은 오늘날 바다와 강, 호수 등 지표수와 그리고 지하수를 말하는 것으로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궁창 위의 물은 쉽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굳이 궁창 위의 물을 오늘날의 것으로 비유한다면 공기중의 수증기나 구름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궁창 위의 물이 오늘날 대기중에 포함되어 있는 수증기와 구름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증거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당시 궁창 위의 물은 ”하늘의 창이 열려 4o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질”(창7:11) 만큼 막대한 양의 물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양분해서 대등하게 지칭할 만큼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둘째로, 노아 홍수 때까지는 궁창 위의 물을 비로 땅에 내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 이르러 비로소 하늘의 창들이 열려 비가 내리게 되었다는 것은 그 동안은 마치 창문을 닫아 놓은 것처럼 궁창 위의 물에는 땅으로 떨어지지 못하게 하는 경계막 같은 것이 있었음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이 경계막은 마치 공기가해수면에서 어느정도 이상 물속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것처럼 공기(N2, O2)보다 가벼운 수증기(H2O) 상태의 물이 대기층 위에 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수증기 층은 태양열과 온실 효과에 의하여 빗방울로 응결되지 않고 수증기 상태로 계속 유지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실제로 창세기 초에는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5-6).
셋째는, 다시는 노아홍수처럼 많은 비를 내리게 하는 궁창 위의 물을 두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성경에 증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와 언약을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파멸시킬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창 9:11)라고 사람들에게 언약하시면서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셨습니다(창 9:12,13).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노아홍수 전에는 궁창 위의 물로 말미암아 무지개가 생길 기상환경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지개로 언약을 세운 것은 다시는 무지개를 볼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 만큼 궁창 위의 물을 준비하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앞으로는 영세까지 무지개를 볼 수 있도록 비도 내리고 햇빛도 비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오늘날 대기층의 상층부에 전리층(이온층)이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노아홍수 전에는 대기의 상층부에 두꺼운 수증기층(궁창 위의 물)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2) 궁창 위의 물로 인한 온실효과와 쾌적한 환경
앞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궁창 위의 물’은 지구 주위를 두꺼운 수증기 층으로 둘러싸고 있어 마치 전 지구를 반투명 비닐 하우스로 만들어 놓은 상태가 되었을 것입니다. 물이 비열이 크다는 성질을 이용해서 요즈음 농민들은 비닐 하우스 지붕에 수막(水幕)을 만들어 보온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증기도 비열이 크므로 하나님께서는 지구의 주위에 수증기층으로 막을 만들어 지구를 온실화함으로써,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쾌적한 환경으로 만드신 것 같습니다. 오늘날 지상 100km까지에 99%의 공기가 존재하는 대기층은 궁창 위의 물(수증기층)의 무게에 의하여 오늘날 성층권계면(50km)이나 중간권계면(80km)까지 압축되어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궁창 위의 물은 오늘날 중간권(50-80km)이나 열권(80km 이상) 중간의 위치에 두꺼운 수증기층으로 존재했으리라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창세기 홍수전의 기상환경을 다음과 같이 추리해 볼 수 있습니다. 수증기 층과 압축된 공기층은 전체적으로 태양 광선에 대하여 반투명막이 되어 가시광선은 지표에 직접 도달할 수 없지만, 장파장의 열선은 수증기층을 투과하여 지표에 도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지표에 들어온 열은 지표와 수증기층을 반복 반사하면서, 전 지구 표면에 전달되어 지구에 전체적으로 온실효과를 가져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전 지구 표면은 오늘날처럼 열대지방, 한대지방의 구분이 없이 온실 내부처럼 골고루 온난한 기온을 유지했을 것입니다. 한펀 기온차가 없기 때문에 바람도 없었으며, 또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비도 없었습니다. 생물체에 필요한 물과 습도는 지하수로부터 솟아나와 흐르는 내와(창 2:10-14) 지면에서 올라오는 안개로(창 2:6) 충당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 밖 우주에서 들어오는 자외선, 감마선 등 수많은 해로운 물질은 수증기층(궁창 위의 물)에서 차단되어 지구 표면은 생명체의 건강에 아주 좋은 쾌적한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3) 화석층에 나타난 온실 효과의 증거
앞에서 말한 ‘궁창 위의 물’에 의한 온실효과를 뒷받침해주는 과학적인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따뜻한 지역에서 살았던 동식물의 화석이 오늘날 한대지방에서 많이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한대지방도 옛날 한 때에는 기온이 따뜻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첫째로는, 알래스카 및 시베리아 등지에서 빙하 속에 거대한 코끼리 ‘맘모스’의 화석이 많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수백만 마리의 동물이 북한대의 영구 동토에 묻혀 있습니다. 특히 맘모스의 뱃속을 해부해 본 결과 방금 먹고 소화도 안된 열대의 활엽수 잎이 들어 있었고 화산재도 들어있었습니다. 진화론에서는 맘모스가 열대 지방에서 살다가 빙하기 때 시베리아로 옮겨와서 멸종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맘모스가 이동하면서 열대지방의 먹이까지 운반할 수는 절대로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는 주장입니다. 이 맘모스가 시베리이에 살았다는 것은 시베리아도 원래는 아주 따뜻한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지구 온실화의 다른 증거로는 양극지방에서 발견되는 아열대 생물들의 화석이 있습니다. 남극 및 북극 대륙에는 따뜻한 지방에서만 자라는 거대한 포유동물 및 식물들의 화석이 수많이 발견됩니다. 특히 남극 대륙에서는 석탄층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 때 이 지역이 온실효과로 따뜻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상과 같이 오늘날 한대지방이 한 때 기온이 따뜻했었다는 사실은 노아 홍수 전까지 형성되어 있던 궁창 위의 물(수증기층)로 인한 온실 효과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특별히 오늘날 해양의 대륙붕(200m 이내의 바다)에서 석유, 석탄 등 생물의 유해가 많이 발견되는 것은 궁창 위의 물이 비로 내리기 전에는 모두 육지였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전의 지구 표면의 온실 효과를 결정적으로 증거해주는 성경 말씀은 홍수 후에야 비로소, 추위, 더위와 춘하추동의 계절이 생겼다는 기록입니다.
(4) 큰 깊음의 샘과 홍수 이전의 물의 순환 체계
오늘날 한 통계에 의하면 지구에 있는 모든 물의 97.2%는 바닷물이며, 2.15%가 빙하이고 나머지 0.65%가 담수입니다. 그리고 이 담수의 97.54%는 지하수이며, 이것은 강, 호수 등 지표수의 65 배나 됩니다. 이 지하수는 지하 1,000m 이하에까지 존재하며, 오늘날 사람들이 암반을 뚫어서 이 지하수를 퍼올려 이용하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가 날 때 하늘에서 40 주야 동안 비만 내린 것이 아니라, 땅에서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All the fountains of the great deep were broken up)”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큰 깊음의 샘들’이 무엇이겠습니까? 틀림없이 땅 속 깊숙한 곳에 있는 지하수의 샘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하수도 오늘날의 지하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고 추측이 됩니다. 노아홍수 전에는 아직 궁창 위의 물이 땅에 내려오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육지의 면적도 지금보다 훨씬 넓었을 것이며, ”모든 큰 깊음의 샘들(all the fountains of the freat deep)” 이라는 표현이 엄청난 양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 이 ‘큰 깊음의 샘들’이 터져서 지하수가 범람했다는 것입니다. ‘궁창 위의 물’이 비로 내린 다음에 오늘날 궁창 위의 물이 모두 없어진 것처럼,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진 후에 지하수가 거의 없어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큰 깊음의 샘들’로 표현되는 당시의 지하수는 오늘의 지하수보다는 엄청나게 큰 양이었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많은 지하수가 있었어야만 될 이유가 있습니다. 지표에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창 2:5-6) 지표의 생물을 위한 물의 순환 체계는 지하수 순환 체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하수로부터 안개가 땅으로 올라와 지면을 적시게 되었고(창 2:6), 지하수로부터 강이 발원하게 되었기(창 2:10) 때문입니다. 따라서 홍수 이전의 물의 순환은 오늘날과 같은 대기의 태양 통제적 순환(atmospheric, sun-controlled cycle)과는 전혀 다른 지하의 지구 통제적 순환(subterranean, earth-controlled cycle)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깊음의 샘들’의 물이 지열에 의한 압력으로 지상으로 분출되어 강을 이루게 되며 지면을 적시고, 다시 바다로 들어간 물은 바닷물의 큰 압력에 의하여 ‘깊음의 샘들’에 물을 공급해 주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5) 큰 깊음의 샘들’의 터짐과 ‘하늘의 창들’의 열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 7:11-12)라고 노아 홍수의 시작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늘의 창들’(the windows of heaven) 이란 무엇입니까? 궁창 위의 물을 땅으로 떨어지지 않게 보호하고 있던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실제로 어떤 막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마치 수증기가 대기 중에서는 땅으로 떨어지지 않지만 이것이 빗방울로 응결이 되면 떨어지는 것처럼 대기층 위에 수증기 상태로 있던 궁창 위의 물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기상 변화로 말미암아 물로 응결이 되어 땅으로 떨어질 수 있는 여건이 확립된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빽빽한 수증기 상태로 있던 궁창 위의 물이 어떤 기상변화의 충격으로 모두 응결하여 물이 됨으로써 그 비중이 커짐에 따라 궁창 위의 물에 대하여 마치 하늘의 창처럼 펼쳐져 있던 대기 층의 상층부가 뚫어져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큰 깊음의 샘들’(all the fountains of the great deep)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땅 속 깊숙한 곳에 있는 거대한 샘들” 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하수를 저장하고 있던 거대한 샘들입니다. 이 모든 지하수의 샘들(all the fountains)이, 하늘의 창이 열리고 궁창 위의 물이 쏟아져 내릴 때 땅 속 깊은 곳에서 터져나왔다(were broken up)는 것입니다. 마치 하늘의 창이 열리고 궁창 위의 물이 다 쏟아져 내린 것처럼 지하에 저장되어 있던 거대한 양의 큰 깊음의 샘물 대부분이 땅 위로 분출되어 나왔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하늘에서 쏟아진 궁창 위의물에 의한 홍수 못지 않게 지하에서 터져 나온 큰 홍수가 합쳐서 전 세계를 수몰시킨 홍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홍수를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은 이 때 단순히 지하수의 샘들만 터져나온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급격한 지각 운동이 일어나 조산 운동과 조륙운동이 병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방성 핵물리학 연구소 소장인 브라운(Walt Brown)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큰 깊음의 샘들’의 폭발의 엄청난 위력이 자그만치 수소폭탄 100억 개가 한꺼번에 터진 위력이었고, 그 힘에 의한 지구의 지각 변동때 이동된 대륙의 이동 속도가 무려 시속 70 km나 되었다고 합니다.
(6) 노아 홍수는 과연 모든 육지를 수몰할 수 있었겠는가?
가령 한 시간에 l00 mm의 집중 호우가 3시간 내리면 웬만한 지역은 물바다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만일 한강 수계(水系)의 전역에 시간당 100mm의 집중 호우가 24시간 계속해서 내린다면 총 강우량은 2,400mm, 즉 2m 40cm가 되고 아마 서울은 완전히 수몰되고 말 것입니다. '그날에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창 7:12)라고 성경은 노아 홍수 때의 집중 호우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궁창 위의 물이 하늘의 창들을 통하여 폭포수처럼 쏟아진 비라면 시간당1,000mm의 집중 호우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40일 간의 총 강우량은 무려 960m나 될 것입니다. 엄청난 양의 지하로부터의 홍수가 합쳐져서 전 세계의 모든 육지가 수몰되고,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던 모든 사람을 비롯한 기식동물(氣息動物)들이 멸망하였다는 것입니다(창 7:17-22).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과연 40 일동안 집중 호우로 내릴 만큼의 비가 준비되어 있었느냐는 문제이고, 둘째는 아무리 비가 많이 오고 지하수가 터져나왔다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수 천m나 되는 산들이 모두 수몰될 수 있었겠느냐는 문제입니다.
첫째로, 40 일 간 집중 호우로 내린 비의 양에 관한 문제인데, 이것은 오늘날 장마 때 내리는 집중 호우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비였습니다. 오늘날 대기 중에 있는 전체 수증기의 양은 전체 물의 양의 0.001%, 즉 전체 물의 양의 10만분의 1입니다. 그러나 당시 궁창 위의 물은 전체 물의 양의 40% 이상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물을 나누어 놓으실 때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 (창 1:7)로 대등하게 나누어진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이 물의 양은 오늘날 지구 표면을 약 1,000m 두께로 덮을 물의 양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만한 양의 물이라면 40 주야를 쏟아지고도 남을 만한 물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전 세계적으로 높은 산이 모두 수몰될 수 있었겠느냐는 문제인데, 이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날 육지와 바다의 면적비는 약 3:7 이고, 육지의 평균 높이는 857m이며, 바다의 평균 깊이는 3,730m 입니다. 따라서 지구 표면을 완전히 구로 만들었을 때, 지구에 있는 전체 물의 양은 지구 표면을 약 2,700m 두께로 덮을 수 있는 엄청난 양입니다. 또한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 갔나이다”(시 104:6-8) 라고 성경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노아 홍수 직후에 일어난 조륙 운동 및 조산 운동으로 오늘날과 같은 지형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때, 그 당시는 오늘날처럼 깊은 바다나 높은 산들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집중 호우 때 홍수가 범람하는 것처럼, 육지에 내린 비가 낮은 바다로 내려가 평형이 이루어질 때까지 얼마 동안은 충분히 전 지면을 덮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몇 가지 가상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오늘날 지구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물의 양을 생각할 때 노아 홍수 때 40 주야의 집중 호우와 전 세계 육지의 완전 수몰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7) 노아 홍수와 땅의 파괴
하나님에게는 놀라운 원리가 있습니다.'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실과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 3:17)라고 성경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죄를 물어서 그 땅에 저주를 선포하셨습니다. 땅은 거칠어지고 생명나무 과실 대신 가시덤불과 엉경퀴가 무성하게 되었습니다(창 3:18). 왜 사람의 죄 때문에 피조물이 저주를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땅과 그 위의 모든 피조물을 사림에게 관리하도록 위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8)라고 피조물의 관리권을 사람에게 위임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타락하였을때 땅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까지도 저주를 받아 허무한데 굴복하여(롬 8:20) 서로 갈등하고 공격하며(창 3:15)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21)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유를 얻게 되는 날 피조물도 따라서 자유케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땅과 그 땅 위에있는 모든 피조물을 그 관리를 위임한 사람에게 종속시켜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5-6) 사람을 홍수로 멸하실 계획을 세우실 때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I will destroy them with the earth)” (창 6: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노아 홍수 때 사람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땅(지구)도 많이 파괴되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홍수 후 방주에서 살아 남은 사람과 모든 생물에게 연약하실 때에도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파멸할(to destroy)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창9:11)라고 말씀하셔서, 다시는 사람 뿐만 아니라 땅(지구)을 파괴할(to destroy) 홍수를 내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사람이 사는 이 지구(the earth)는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사람과 함께 파괴되기도 하고, 사람이 보호받을 때 함께 보호받게 되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 홍수 때 지구는 어떻게 파괴되었습니까? 첫째로, 궁창 위의 물이 모두 쏟아져 내려오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지구의 온실 효과가 파괴되었습니다. 지표에는 기압이 낮아지고, 한서의 차이가 생기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게 되어 홍수 전보다 변화가 크고 거치른 기상 환경으로 변했습니다.
둘째로는, 큰 깊음의 샘들이 터져 나올때 이루어진 급격한 지각 변동으로 말미암아 높은 산맥과 깊은 바다가 이루어지고, 대륙의 모습이 바뀌게 되었으며, 대홍수로 말미암아 육지의 면적이 엄청나게 좁아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가 존재할때(최후의 심판 때)까지는 노아 홍수와 같은 사람을 멸하고 땅을 파괴시키는 홍수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 8:22)하여 오늘날과 같은 땅의 모습과 기상 상태가 유지된다는 언약을 하셨습니다.
(8) 지각의 격변설과 그 증거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파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아니 하리 라” (창 9:11).
이상의 두 성경말 씀 (창 6:13, 9:11)은 우리 지구의 역사에서 땅을 파멸한 대홍수가 단 한 번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13절은 창조 후 하나님께서 땅을 멸하시겠다는 처음 선언이고, 9장 11절은 다시는 땅을 파멸할 홍수를 내지 않으시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증언은 지층 구성에 대하여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동일과정설(同一過程說)과는 배치되는 이론입니다.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 (the present is the key for the past) 라고 주장하는 동일과정설은 현재에 작용하는 모든 지표상의 영력(榮力; 물, 바다, 동식물, 지진, 화산, 지각 운동 등 지구 표면을 변화시키는 힘)이 과거에도 현재와 똑같은 방법과 강도로서 작용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일과정설에서는 현재의 지형이나 지질은 장기간에 걸친 침식과 퇴적 작용에 의해 진화되어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노아 홍수 때와 같이 지각의 격변에 의하여 오늘날의 지형이나 지층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견해를 격변설(激變說)이라 합니다. 창조론에서는 노아 홍수에 의한 단 한번의 지각 격변으로 오늘날과 같은 지형과 지층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노아 홍수와 지각의 격변설에 관한 분명한 증거는 오늘날 지하에서 나타나는 화석입니다. 평균 1.6km의 깊이로 지구 주위 전역에 걸쳐 있는 퇴적암 지층 속의 거대한 화석 묘지입니다. 바로 이 화석의 존재는 생물들의 급속한 매몰을 증거해 줍니다. 만약 지층이 동일과정설의 주장대로 동일 속도로 서서히 쌓였다면 화석은 생길 수가 없습니다. 화석은 생명이 썩기 전에 화석화되어야 되기 때문에 급격한 지각 변동으로 생물이 매몰되어 적당한 압력과 온도 등의 여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발견되는 화석은 노아 홍수 때 지구 전역에서 흙더미의 급속한 퇴적으로 수많은 생물들이 매몰되어 화석화 되었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또 화석은 진화론자들이 바라는대로 지층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나타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들 생물의 화석들은 오랜 시대에 걸친 생명체의 진화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라, 홍수 이전 시대에 살았던 생물들의 파멸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9) 노아 홍수 전후의 환경 변화와 인간의 수명
1) 노아 홍수 전후에 있어서 인간의 수명비교
노아 홍수 전후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 중의 하나는 인간의 수명이 대폭 단축되었다는 기록입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살았던 사림들은 365 세를 살고 승천한 에녹 외에는 모두 777 세(라멕) 내지 969 세(므두셀라)까지 장수하여 족장 9 명의 평균 수명은 912세였습니다(창 5:3-31). 그리고 노아의 아들 셋은 600 세까지 살았지만 홍수 후에 출생한 셈의 후손 중 175 세에 죽은 아브라함까지의 9 명의 평균 수명은 241 세였습니다. 이것은 홍수 전 평균 수명 912 세에 비하면 평균 671 년이 단축된 셈이고 거의 4분의 1로 줄어든 셈입니다. 그 후 인간의 수명은 점점 단축되어 모세는 120세에 죽었고, 다윗은 69세에 죽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 (시 90:10)고 노래했습니다. 그렇다면 홍수 후에 있어서 이 엄청난 인간의 수명 단축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분명히 그것은 노아 홍수로 인한 지구의 환경의 변화가 그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2) 홍수 전후에 있어서 변화된 환경
노아 홍수 때 궁창 위의 물이 모두 비로 내려옴에 따라 지구의 환경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첫째로, 온실의 비닐이나 유리덮개를 제거한 것처럼 궁창 위의 물(수증기층)이 제거됨으로써, 전 지구 표면이 골고루 온난하던 온실 효과가 없어지고, 한서의 차이가 생기게 되어 한대지방, 온대지방, 열대지방으로 구분이 생기고, 온대지방에는 4계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둘째로는 물의 순환체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하의 지구 통제적 순환 체계가 대기의 태양 통제적 순환 체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궁창 위의 물이 제거 됨에 따라 지표의 기압이 대폭 낮아져서 오늘과 같이 1 기압으로 되었고, 이에 따라 바다 및 지표수의 증발이 왕성하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수증기들이 대기 중에서 응결되어 비나 눈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서의 차이로 인한 저기압, 고기압의 형성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구표면은 추위와 더위, 눈 비와 바람 등으로 조용하고 온난하던 환경이 오늘날과 같이 풍화작용이 심하게 일어나는 거치른 환경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셋째로는 육지의 면적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궁창 위의 물이 아직 땅으로 내려오지 않았을 때에는 바닷물의 양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큰 깊음의 샘에 저장된 막대한 지하수로 말미암아 육지의 면적이 오늘날보다 훨씬 넓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날 수심 200km 이내의 대륙붕에는 많은 석유와 석탄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때 분명히 육지였음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이 대륙붕의 면적은 전 지구표면의 약 12%이고, 이들만 육지였다 하더라도 홍수 전 육지와 바다의 면적비는 오늘날과 같이 29:71 이 아니라, 41:59 가 됩니다. 따라서 노아 홍수 전에는 육지가 바다보다 넓었음이 틀림 없습니다.
넷째로는 자외선 등 유해한 우주선이 대폭 지구 표면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두꺼운 수증기층으로 형성되었던 궁창 위의 물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차단되었던 고주파 우주선이 쉽게 지표에까지 들어오게 되어 생명체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아 홍수 전후에 있어서 변화된 것 중의 하나는 사람의 양식입니다. 이것은 환경의 변화라기보다는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보완시켜 주신 내용인데 노아 홍수 후에 사람의 양식으로 육류가 추가되었다는 것입니다. '무릇 산동물은 너희의 식물(食物)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9:3) 라고 하여 채소와 과일만을 식물로 주시던 창조 당시(창 1:29)와는 달리 노아 홍수 직후 하나님께서는 산 동물을 사람의 식물로 주셨습니다.
3) 환경 변화가 인간의 수명에 미친 영향
앞에서 증언을 들은 바와 같이 노아 홍수 후 인간의 수명이 대폭 단축되었다는 것은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그 원인이 있다 하겠습니다. 주로 기상 환경의 변화, 음식물의 변화, 고주파방사선의 입사 등이 수명 단축에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이 없다 하겠습니다.
가령 온실에서 자라는 식물은 기온의 일교차나 연고차가 없이, 그리고 비바람의 시달림 없이 자라게 되기 때문에, 1년초라 할지라도 상록수처럼 수명이 대폭 연장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 홍수 전에는 사람도 온실의 식물처럼 기상 환경의 변화나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유해한 방사선이 없었고, 또한 온난한 기후가 가져다주는 충분한 음식물로 영양의 결핍이 없었기 때문에, 질병 등 노화에 장해가 되는 조건들이 적어서 무병장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 홍수 이후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질병 발생과 노화 촉진이 가속화되어 수명이 단축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일교차나 연교차가 심한 기후가, 또는 혹한이나 혹서의 기후가 질병을 유발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늘날 사하라 사막 같은 혹서 지역에서는 인간의 수명이 40~45세 라고 합니다.
둘째로는, 이와 같이 변화가 심한 환경에서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해야했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고,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육식을 허용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 식품과과학이 증거하는 바와 같이 채식을 할 때보다 육식을 함으로써 질병이 많아지고 수명이 단축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셋째로는, 오늘날 방사선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수명이 단축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궁창 위의 물이 있을 때에는 지구 표면이 유해한 방사선 뿐만 아니라 직사광선까지도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궁창위의 물이 모두 비로 내려온 다음, 자외선 등 유해한 고주파 우주선이 들어옴으로써 사람들의 질병 유발과 노화 촉진이 가속화 되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홍수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1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방주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2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geology/g2/g2/g2o19.htm
출처 - 기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16
참고 : 4198|4275|4235|4473|4490|4607|4610|6104|6049|6030|6006|4195|2141|6076|5973|5957|5958|5955|5951|5841|5834|5737|5721|5717|5675|5556|5517|5468|5429|5419|5400|5399|5286|5307|5264|5260|5185|4786|4722|4471|4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