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홍수에 관한 16개의 질문과 답 (FAQ)
고재형 외
2. 대홍수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5-7)......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 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 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11-13)"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고,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고, 강포가 가득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시고, 노아로 말미암아 새롭게 출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노아의 홍수는 타락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므로 일부 지역의 홍수가 아니었다. 패괴와 강포가 가득한 땅에서 범죄한 인류중 일부만 멸망시키고 남은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악된 길을 계속 가도록 허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창 6:7),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창 6:17),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호흡을 기식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창7:21-23) 【그림 2-9 참조】
세상 끝날 예수님의 재림시 이 땅의 사람들은 죄악으로 멸망하여 버린 노아시대의 사람들처럼 주님의 심판의 경고를 조소하며, 무관심할 것임을 경고하셨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다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눅17:26-30).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 3-7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는 불의한 자들의 죄를 심판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노아를 구원하시는 과정을 통하여 마지막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과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2-9.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실 때 방주에 타지 못한 생물들은 모두 익사하였다.
성경은 노아홍수의 사건을 창세기 6, 7, 8, 9장에 걸쳐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홍수가 진행된 날짜들을 매우 상세히 기록하여 놓고 있는데 이것은 노아의 홍수가 설화나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일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홍수는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에 일어났는데, 노아가 방주 내에 있었던 기간은 일 년이 넘는 371일 이었다.
480세 : | 대홍수 경고(창 6:13) | |
600세 : | 홍수 시작(창 7:11-14) | |
2월 10일 | 방주에 들어감. 7일을 기다림. | |
2월 17일 | 40주야간 비가 내리기 시작. | |
150일간 땅에 물이 창일 | ||
7월 17일 |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 물이 감하기 시작. | |
10월 1일 | 산들의 봉우리가 보임 | |
11월 19일 | 비둘기를 내보냄.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옴. | |
601세 : | 1월 1일 | 방주 뚜껑을 제침 |
2월 27일 | 땅이 말랐으며, 방주에서 나옴. |
Q3. 노아의 대홍수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노아의 홍수는 결코 지역적이 될 수 없고, 전 세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구 표면에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과 증거물들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노아의 홍수가 전 세계적 홍수였음을 증명하는 몇 가지 사실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성경적 증거
1) 노아홍수의 크기와 기간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홍수로 인하여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으며, 홍수가 1년 이상 지속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2)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거대한 방주를 지을 필요가 없다. 방주의 규모는 한 지역에 분포된 동물만을 싣기에는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만일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의 식구들과 동물들은 고산지대로 피하든지 이웃지역으로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43,200 m3의 용량을 가진 거대한 방주를 120년에 걸쳐 축조한 이유가 없다.
3)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모든 동물을 방주에 태울 필요가 없다. 다른 지역에 사는 같은 종의 동물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종류대로 동물들을 태울 필요가 없다. 그리고 노아가 사는 중동지역에서만 사는 동물이 있어 구해내야 한다면 방주가 너무 크다.
4)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새들을 태울 필요가 없다. 홍수시 새들은 다른 지역의 산으로 날아가면 된다. 굳이 방주에 탈 필요가 없다.
5) 예수님과 사도들의 증언이 있다. 베드로(벧후 2:5, 3:6)와 바울(히11:7)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노아의 대홍수가 온 인류를 멸망시켰다고 증언하고 계신다 (눅17:26~30).
6)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홍수를 겪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았다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어긋나며, 장차 예수님의 재림 시 심판을 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7)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하나님이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실 필요가 없다.
(2) 지질 지형학적 증거
1) 지구 표면 중 75%이상이 물에 의해 만들어진 퇴적지층이다.
2) 세계 도처의 고산지대에 바닷물호수인 염호가 존재한다.
3) 퇴적층 넓이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퇴적물질의 성분은 매우 균일하다.
4) 퇴적층 경계면은 거의 평행의 층리현상을 보이며, 전혀 풍화나 침식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5) 오랜 침식에도 부정합 지층의 경계면은 너무도 깨끗하다.
6) 부서짐 없이 일률적으로 휘어지고 뒤틀려진 퇴적지층들이 발견된다.
7) 지향사 구조가 존재하는 등 지구지각에 엄청난 격변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8) 히말라야나 알프스 같은 높은 산맥에 조개류, 물고기류, 해초류 등의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된다.
9) 아라랏산 4200m 부근에는 용암이 물에 급격히 식을때 만들어지는 베게용암이 발견된다.
10) 엄청난 화산들이 과거에 폭발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11) 지층에는 토양층이 결여되어 있고, 생물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없다.
12) 광범위한 지역의 한 물질로만 구성된 사암층과 역암층은 거대한 홍수가 있었음을 증거한다.
13) 강과 계곡들은 과거에 엄청난 물이 흘렀던 수로들을 가지고 있다.
14) 파도나 물의 작용에 의한 층면 구조들이 존재한다.
15) 지표면에 수억년된 고평원들이 오랜 세월의 침식에도 평탄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16) 과거에는 해수면이 훨씬 낮았다는 증거들이 있다.
17) 과거에 엄청난 바닷물이 증발한 흔적들(Salt Dome 등)이 남아 있다.
18) 대양바닥에 물에 의해 침식된 모습의 해저캐년(submarine canyons)이 존재한다.
19) 대양 속에서 길이 74,000km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해저산맥(해령)이 발견되었다.
20) 대양의 해저산맥은 로키, 안데스, 히말라야, 애팔래치아 산맥들과 평행하게 달리고 있다.
21) 영구 동토지역에서 발견되는 매머드 사체는 지구에 대격변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22) 시베리아 1200m의 깊이에, 알래스카 300m깊이에, 푸르드호만 570m 깊이에 엄청난 양의 나뭇잎, 소나무, 야자수나무 등 고대숲이 발견되었다.
23) 최근 화산폭발 지역에서 하루에 7.5m의 지층과, 1~2년에 120m의 지층이 생성되는 것이 관찰됐다.
24) 그랜드캐년도 대홍수에 의한 격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증거들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25) 지구 육지 표면의 80~85%는 진화론적인 순서대로의 3개의 연속적 지층을 가지고 있지 않다.
26) 오래된 지층이 젊은 지층 위에서 발견되는 곳이 지구상에 500여 지역이 넘는다.
27) 세 개 지층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즉 공중에서 뒤집혀야만 설명이 가능한 충상단층이 발견되고 있다.
28) 루이스 충상단층은 길이 217km, 폭 24km, 두께 4.8km의 덩어리가, 거대한 애팔래치아 산맥은 250km를, 마테호른산은 48~97km를, 미텐산은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서 젊은 지층 위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이동한 흔적이 없다.
(3) 화석학적 증거
1) 오늘날에는 만들어지지 않는 화석이 엄청난 양으로 발견된다.
2) 대부분의 화석이 급격히 매몰된 양상을 가지고 나타난다.
3) 열대, 한대, 건조 지역의 동식물화석이 무더기로 함께 쌓여있는 화석무덤들이 발견된다.
4) 동물과 식물의 화석이 분리된 채 발견된다.
5) 수십만년이 걸렸다는 지층을 수직으로 뚫고 서있는 다지층나무 화석들이 발견된다.
6) 발자국, 빗방울자국, 물결자국, 벌레가 기어간 자국 등 순간적인 흔적들이 남아있다.
7) 수억년된 고생대 지층에는 오늘날 볼 수 있는 생물들이 똑같이 화석으로 발견되며, 어떤 것들은 살아서 발견되고 있다.
8) 완벽한 장기를 가진 동물들이 갑자기 출현한다.
9) 식물들의 화석은 너무도 갑자기 출현한다.
10) 지질연대와 맞지 않는 화석들이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
11) 수억 년된 화석에 분해되기 쉬운 아미노산, 단백질, DNA가 남아있다.
12) 발견된 화석의 95%가 바다생물 화석이다.
13) 발견된 곤충 목의 1,263개 과(families)의 화석을 조사한 결과 84%가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아있던 형태와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14) 몸이 발견되는 지층의 수천만 년 아래 지층에 발자국만 남겨 놓는 이상한 현상이 발견된다.
15) 그랜드 캐년의 코코니노 사암층에는 대략 천만 년 동안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경사가 높은 북쪽으로만 나있다.
16) 나우틸로이드(Nautiloid) 캐년의 레드월(Redwall) 석회암층의 오징어 화석들은 대부분 태평양쪽을 향하여 죽어있다.
17) 수억, 수천만 년 전 지층 깊은 곳에서 사람의 유물들이 나오고 있다.
18) 사람과 공룡이 동시대를 살았다는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19) 석탄이 매우 빠르게 형성되는 것이 발견되었다.
20) 화석의 광물화가 불과 수십 년만에 이루어짐이 발견되었다.
(4) 역사적 증거
1) 모든 고대 문명의 역사에서 홍수에 대한 전설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뉴질랜드 마오리족, 호주 원주민 등에는 홍수 전설이 내려오고 있고, 특히 니느웨에서 발견된 바벨론의 길가메쉬 서사시나 미국 미시간 주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인디언의 석판 등에는 노아의 홍수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2) 40일간에 내린 비에 의한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하류인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갔을 텐데, 방주는 강상류인 북쪽에 있는 아라랏 산에 도착했다. 이는 강물에 의한 작은 홍수가 아니라 바닷물의 육지 침범이 동반된 엄청난 홍수였음을 말해준다.
3) 노아의 후손들의 이름이 도시나 국가, 민족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4) 단군의 가르침을 기록한 민간전승의 규원사화나 중국 순황제때 상제께 드리는 제사문을 보면 기독교적인 신앙고백 내용과 유사하다. "그분께서 하늘을 펴시고, 땅을 펴시고, 인간을 지으셨도다", "상제(하나님)는 오직 한 분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
5) 상형문자인 중국의 한자에 창세기와 홍수 관련한 문자들이 남아 있다.
6)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역사도 약 6000년 전이고, 노아의 홍수는 대략 4350년 전이다.
7)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인의 상형문자로 5~6000년 전이다.
8) 고대언어 발생은 5,000년 전을 넘지 못한다.
9) 최초의 도시형성 연대는 약 5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0) 농업을 시작한 시기를 5~6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1) 가축을 길러 이용한 시기를 5~6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2) 최초로 야금술은 5~6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3)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 수령은 대략 4,300년 전이다.
(5) 인구통계학적 증거
홍수 이후 노아의 8식구로 시작된 세계인구는 통계학적 견지에서 볼 때, 오늘날의 인구와 잘 들어맞는다. 만일 홍수 이후 인구의 연간증가율이 현재 세계 인구증가율의 1/4에 불과한 0.5%만 되어도, 현재 인구에 도달하는 데에는 4,000년이면 충분하다.
Q4. 세계적으로 육지 깊숙한 곳이나 높은 산 위에 염호(鹽湖)가 존재하는데 이는 노아 홍수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현대 과학자들이 인정하듯이 40일간에 내린 비만으로 지구의 모든 산을 덮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전 지구적인 홍수가 되려면 해저가 솟아오르거나 대륙이 가라앉는 등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야만 한다. 따라서 홍수의 주요 원인으로 바닷물의 육지침범이 고려되어야 한다. 노아 홍수 시 바닷물이 육지를 침범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먼저 노아의 홍수가 단지 강우에 의한 일부 지역의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노아가 살았다고 추정되는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하류인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떠내려갔을 텐데,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방주는 상류쪽인 북쪽에 있는 아라랏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지구상의 여러 곳에 있는 염호(鹽湖)의 존재는 바닷물의 육지 침범의 증거가 된다. 많은 학자들이 고산지역에 있는 염호의 생성 원인을 조사하였는데 담수호가 증발이나 어떤 원인에 의해 자연적으로 염호가 될 수 없으며, 결국 언젠가는 바닷물의 침습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터어키 동부에 위치한 만호는 해발 1,700m에 있는데 다량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바다에 사는 청어가 이 호수에 서식하고 있다. 또한 이란에 있는 우르미아 호수는 해발 1,470m에 위치하며 염분의 함유량은 23%나 된다. 그리고 해발 3,800m의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는 그 넓이가 480km2나 된다고 하니 가히 놀라울 지경이다. 또한 카스피해와 고비 사막에 남아 있는 내지해(內地海)는 염호로써 육지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고산지대의 염호는 과거 그 지역이 바닷물로 덮였음을 말해주고 있다.(21)
Q5. 노아 홍수 시 식물들은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성경에서는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창 6:17)라는 하나님의 '멸망의 선포'에서 보면 그 대상에는 식물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 실제로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지으신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실 때에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창 7:21-22)라고 성경에 적힌 대로라면 동물만 멸절시킨 것이지, 식물을 멸절시키지 않으셨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창 8:11)란 구절을 보면, 동물들을 방주로 인도하는데도 특별한 섭리와 인도를 하셨던 하나님께서 바닷물 속의 식물들도 특별한 방법으로 보존하셨음을 알 수 있다. 홍수 때에 바닷물의 범람으로 인하여 육상식물이 다 멸절하고 다시 자연발생하고 그것이 진화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다윈이 1859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생명의 자연발생은 한번만 일어났다"는 가정에도 명백히 배치된다. 어떻게 식물들은 전 세계적인 홍수 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1) 식물들의 씨앗(seed)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육상식물의 종자들은 여러 농도의 소금물에서 일 년 동안 잠갔다가 꺼낸 후에도 발아할 수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또한 이 보다 더한 혹독한 환경에서도 식물의 종자는 살아남을 알 수 있다. 고대 미라의 손에 쥐어진 밀알 씨를 땅에 심었더니 싹이 텄다는 보고가 있다.
2) 식물들은 홍수 시 떠다니던 거대한 나무 매트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세인트 헬렌산 폭발 후 스프릿(Spirit) 호수에는 백만 그루 이상의 떠다니는 거대한 통나무들로 매트처럼 덮여졌는데, 노아의 홍수 시에도 화산폭발에 의해 엄청난 면적으로 이 떠다니는 나무 매트(floating log mats)들이 수면 위에 있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식물들에 의해 만들어진 석탄층들이 종종 한 주(state)를 덮을 정도로 넓은 면적으로 발견되며, 심지어는 극지방에서도 두꺼운 석탄층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섬을 이룬 이 떠다니는 거대한 나무 매트들은 홍수지질학(flood geology)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몇몇 지층들에는 나무 파편들의 흔적들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떠다니던 나무매트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얕은 물에서 바닥 표면과 부딪혀 떨어져 나간 조각들로 보이며, 많은 암석지층들은 평온한 물에서 퇴적된 양상을 보이는데, 이 매트들이 홍수의 격랑 속에서 제동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매트들은 여러 동물들에 대해 수주 혹은 몇 달 동안 일시적인 피난처 역할을 했을 것이며, 식물들의 생존뿐만 아니라 특별히 곤충(insects)이나 벌레들이 알이나 유충상태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음이 틀림없다.
많은 식물들은 이 나무 매트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고, 얕은 물가로 흘러간 나무 매트의 식물들은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라앉고 묻힌 거대한 나무 매트들은 넓은 면적에 석탄층을 형성했음이 틀림없다. 방주에서 노아가 내보낸 비둘기가 물고 온 감람 새 잎사귀(Olive branch)는 감람나무가 싹이 새로 나서 자란 것이 아니라, 이 나무매트에서 살아남은 감람나무가 물이 감하면서 뿌리를 내려 새 잎사귀를 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감람나무는 매우 재생력이 강하여 작은 가지를 꺾어 땅에 심어도 쉽게 자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나무매트 위에서 식물들의 씨앗, 포자들은 더 쉽게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일부 식물들은 방주 내에 비축된 먹이 중에 섞여서 우연히 또는 노아에 의해서 많은 종자들이 계획적으로 보관되어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사실 노아는 홍수 후에 피폐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많은 준비들을 했을 것이다. 기구, 기계, 연장, 재료, 물품, 의복, 그릇 등등을 준비했을 것이고, 농사를 위해 곡식, 야채, 과일나무 등 많은 식물들의 종자들을 모았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노아가 모든 식물들의 종자를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농사를 바로 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종자들은 모아 두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창 9:20절에는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는 장면이 나온다. 분명히 노아는 농업을 준비하였으며, 포도나무 씨앗도 준비하였음이 틀림없다.(22)
Q6. 노아 홍수시 민물고기는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노아의 홍수가 바닷물의 침습에 의한 전 지구적 홍수였다면, 어떻게 모든 물고기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떤 종류는 차고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고, 어떤 종류는 탁한 물, 어떤 종류는 바닷물을, 심지어 어떤 종류는 바닷물보다 더 짠 물을 필요로 한다. 민물에 사는 생물과 바닷물에 사는 생물이 어떻게 같이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까.
실제 그들 중 많은 수가 살아 남지 못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모든 화석의 95% 이상이 바다생물이다. 그들은 견디지 못하고 죽었고, 수조 개(trillions)의 화석으로 남게 되었다. 많은 수가 거대한 화석무덤을 만들었고, 무더기로 퇴적물에 덮여져 질식되면서 부패될 시간도 없이 죽어갔다. 분명히 그들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러나 소수 아니 극소수의 몇 마리라도 살아 남았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들 소수의 나머지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1) 최근 연구에 의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홍수 중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서로 다른 층을(salinity stratification) 이루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큼이 밝혀졌다. 즉 심부의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13~15ppt, 중간부위는 7~11 ppt, 표면은 5ppt 이하로 염분농도가 다르게 층을 이루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민물이 바닷물과 완전히 섞이지 않고 바닷물 위에 염분농도의 경사를 이루며 놓여져 있었다면, 바다고기는 심부에서, 민물고기들은 표면부위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2) 홍수환경에서 어떤 지역은 민물로 고립된 지역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기억해야할 것은 엄청난 강우가 한동안 지속됐다는 것이다. 비는 담수이다. 퇴적물들에 대한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구성성분이 다른 퇴적물들이 어떤 지역에 격리되어 발견되고 있으며, 물의 화학성분, 물의 온도 등이 서로 다른 상태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홍수동안 상당 기간동안 이러한 고립지역들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3) 홍수 전 바다의 염분농도, 온도, 혼탁도 등을 알지 못한다. 오늘날의 바다와 같이 홍수 전에도 짠 바다였는지 알지 못한다. 홍수전의 바다는 오늘날의 바다보다 덜 짤 수도, 더 짤 수도 있다. 왜냐하면 홍수의 시작은 큰 깊음의 샘이 터지면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4) 민물과 바닷물에서 같이 사는 물고기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바다에 살던 연어가 산란을 위해 산골짜기의 차가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을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연어, 줄무늬농어, 철갑상어 등은 민물에서 알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성장하며, 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호수나 냇가에서 자란다. 민물과 바닷물에서 같이 살 수 있는 물고기들은 toadfish order, garpike order, bowfin, sturgeon, herring/anchovy, salmon/trout/pike, catfish, clingfish, stickleback, scorpionfish, flatfish order 등이다. 그러므로 민물고기들은 홍수시기에는 민물과 바닷물에 다같이 견디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홍수 후 분화가 되면서 많은 종들이 그 능력을 잃어 버렸을 수 있다. 또한 민물고기와 바다고기의 생리적 차이가 매우 적을 수 있다. 스코틀란드에서 보고된 야생의 송어(민물고기)와 양식된 연어(민물, 바닷물 이동)와의 잡종(hybrids)은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경우에 담수와 바닷물이 처음부터 완전히 혼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음으로, 염분의 농도가 천천히 올라간다면 어느 정도 기간을 거쳐 적응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강 하류에 사는 종들은 염분농도의 변화에 원래 잘 견딘다. 불가사리는 정상적인 바닷물의 염분농도의 16~18%에서도 살 수 있고, 따개비는 10% 이하로 감소된 농도에서도 살 수 있다.(23)
Q7. 홍수 후 바닷물의 침습에 의한 육지토양의 염분농도는 식물이 살 수 없을 정도였습니까?
바닷물이 물러간 후 육지표면은 소금이 남아있어 식물이 살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17,18 세기부터 이성주의자들이 성경을 비판할 때 사용하던 주장이다. 그러나 바닷물이 물러가면서 남긴 소금은 빗물에 의해서도 쉽게 용해되어 제거되며, 관개용수로 사용된 물에 의해서도 쉽게 제거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배수가 잘 되는 곳에서는 한 번의 강한 비에도 소금농도가 극적으로 낮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홍수 후 지구의 곳곳은 바닷물의 급격한 후퇴로 인한 침식으로 수로와 계곡들이 잘 발달되어 있었을 것임으로 빗물에 의한 염분의 세척은 매우 신속히 일어났을 것이다. 바닷물이 물러간 후 수일에서 수주 후에는 육지의 대부분에서 염분은 제거되었을 것이고, 염분에 민감한 식물들까지도 쉽게 발아하고 자라기 시작하였을 것이다(24)
Q8. 화분을 필요로 하는 식물의 경우 화분 시킬 곤충이 없는데 어떻게 번성하였습니까?
곤충매개식물(entomophilous plants)은 곤충에 의해서 번식하는 식물로서, 성경비판자들은 이들 식물들이 홍수후 자라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두 가지 이유를 근거로 하고 있다. 하나는 홍수 직후에는 곤충들이 없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곤충매개식물은 종자를 퍼트리는데 절대적으로 곤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먼저 곤충들을 생각해보자. 앞에서도 논의했지만 곤충들은 방주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곤충들의 수는 홍수 말기에는 매우 증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식물들이 자라 처음으로 꽃을 피울 때 쯤에서는 곤충들은 상당한 숫자로 불어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곤충매개식물들은 자가수분이나 바람에 의한 수분으로도 충분히 번식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몇몇 연구자들은 식물의 꽃에 곤충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망을 씌운 후 관찰한 결과 곤충 없이도 수분이 이루어졌다고 보고하고 있다. 곤충매개식물의 대부분은 곤충 없이도 씨를 퍼뜨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곤충들이 매개할 때보다는 수분율이 떨어지지만, 멸종할 수준은 아닌 것이다. 절대적으로 곤충에 의존하는 식물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극소수이며, 종 분화에 의해서 종 내에서 변형된 식물일 것이다.(25)
Q9. 홍수 후 황량한 세계에서 동물들은 먹이를 어디서 구했습니까?
어떻게 황폐화된 서식지에서 많은 종들이 살아 남았을까? 홍수는 대부분의 종들이 생존에 필요로 하는 식량과 서식처를 파괴했을 것이다. 방주에서 내린 동물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방주에서 나온 육식동물들은 방주에서 내린 다른 동물 외에는 먹이가 없었을까? 이러한 생각들은 홍수 후 방주에 약간 남아있을 먹이 외에는 육지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홍수 후에도 먹을 것이 있었던 것이다.
1) 먼저 홍수 뒤에 남겨진 쓰레기들이다. 나무의 껍질들은 토끼, 코끼리, 호저(porcupine) 등에게 임시적인 좋은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2) 그리고 빠르게 자라난 풀들이다. 창세기 8장에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한 후 10월 1일에는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고, 40일 후에는 까마귀를 보내고, 다시 7일 후에(11월 17일) 비둘기가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왔으며, 홍수 다음해 1월1일에 물이 걷히고, 2월 27일에 방주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람 새 잎사귀가 난 후부터 100일 후에, 물이 걷히고 57일 후에 노아와 동물들은 방주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씨앗으로 살아남은, 빠르게 자라는 풀들은 이 기간 동안 충분히 발아하여 잎사귀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3) 또 다른 먹이는 해초(seaweed)들이다. 홍수 기간동안 해초들은 광대한 지역에 번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소, 코끼리, 토끼 등은 해초를 잘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소, 말, 여우, 곰 등도 해초를 주식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아이슬란드의 양은 눈이 많은 겨울의 4달을 해초만을 먹고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버섯류도 좋은 식량이 되었을 것이며,
5) 파묻혀진 죽은 동물의 사체들도 식량이 되었을 수 있다.
6) 상당 기간 동안 매우 중요한 먹이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수생생물들이다. 홍수 기간 동안 전 지구의 물고기의 종 수는 감소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몇몇 종은 홍수 후 바다에 영양물질들이 풍부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숫자로 증가하였을 것이다. 또한 바닷물이 후퇴하면서 어떤 지역은 물이 갇혀 작거나 큰 호수를 이루다가 말라가면서 많은 물고기들을 남겼을 것이고, 이러한 지역에서는 많은 수생식물들과 죽어 가는 많은 물고기들을 먹이로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자, 하이에나, 표범과 같은 육식동물이나, 매, 갈매기와 같은 각종 조류, 설치류, 파충류 등은 이러한 풍부한 물고기들을 먹으며, 어쩌면 먹이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여유롭게 번식해 갔을지도 모른다.(26)
Q10. 홍수 후 첫 번째 먹이사슬(food chain)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습니까?
홍수에 의해서 동식물의 개체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고, 생존하여 살아남은 동식물들은 주변에 경쟁자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개체수가 증가하였을 것이다. 특히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 중에서 곤충과 벌레들과 설치류들은 빠른 시간 내에 현저하게 증가했을 것이며, 이러한 동물들은 홍수 후 첫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이에 비해 덩치가 큰 동물들의 개체 수는 천천히 증가하였을 것인데, 이것은 생태학적으로 먹이사슬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홍수 후에 떠다니는 많은 쓰레기나 나무 부스러기들은 곤충들이 알을 까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썩어 가는 동물의 사체들이나 채소, 해초 등에 파리는 많은 알들을 낳았을 것이다. 증식하는데 장애물이 없다면 1㎎의 작은 곤충의 알들은 6개월 후에는 1,200억배로 증식할 수 있으며, 300마리의 개미도 1년 안에 수십억 마리로 증식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홍수 후 초기부터 곤충들은 이미 상당수에 도달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은 충분히 먹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우, 야생돼지, 호랑이, 사자, 곰, 늑대 등은 곤충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땅속에서 사는 벌레(earthworm)들은 홍수에서도 어느 정도는 살아 남을 수 있다. 비 온 후에 길가에서 흔히 관찰되는 지렁이 같은 벌레들은 1년 동안 침수된 진흙에서도 살아 남았으며, 물 속에서도 수주 이상 살 수 있었고, 이들의 낭(capsules)은 나무 뿌리에 묻어 수천 km의 바다를 건너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음이 보고되어 있다. 물의 온도가 10℃ 이하인 지역에서 이들의 낭은 휴면상태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살아 남은 땅속벌레들은 홍수가 물러가는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것이다.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조건의 1/4 수준만 되어도 earthworm 1000마리는 6개월 후에 73,000마리, 1년 후에 883,000마리로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대부분의 조류는 벌레를 먹으며, 뱀도 그렇고, 많은 육식성 포유동물들 예를 들어 여우, 오소리, 족제비, 너구리, 주머니쥐 등도 벌레를 즐겨 먹거나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땅속에 사는 벌레들은 홍수 후 먹이사슬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설치류(rodents)의 경우 그들의 증식율은 믿기 어려운 정도인데, 방해하는 경쟁자가 없을 경우 한 쌍의 쥐는 1년 만에 15,000마리로 증식할 수 있으며, 야생의 경우에서도 10개월에 2,557마리로 늘어남이 보고되고 있다. 더군다나 이들의 번식은 홍수 후 땅에 먹이가 되는 벌레나 곤충들이 풍부하였다면 더욱 가속되었을 것이다. 이 경우 수주에서 수개월후면 설치류들은 땅에 매우 흔하게 존재하여 육식동물들의 훌륭한 먹이감이 되었을 것이다.(27)
Q11. 동물들은 대홍수 이후 어떻게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이동 분산하게 되었습니까?
남아메리카의 밀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나무늘보나 개미핥기 등 빈치류는 느리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먼 근동의 아라랏산으로부터 옮겨올 수 있었을까? 캥거루 같은 유대류들은 오직 호주와 서반구에서만 발견되는데 어떻게 바다를 건너 왔을까?
1) 오늘날 동물들은 대륙과 심지어 광막한 바다를 놀라운 속도로 횡단하며 이동할 수 있음이 알려져 있다. 1883년 크로카토아 섬의 화산폭발 당시 이 섬에서 서식하던 동물들은 완전히 멸종하였고 수년동안 이 섬에는 아무 것도 살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 25년이 지난 뒤에는 곤충, 벌레들뿐만이 아니라 각종 조류, 파충류들 심지어 소수의 포유동물까지 놀랍도록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많은 생물들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건너 왔던 것이다.
2) 과거의 대륙은 바다에 의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많은 진화론적 고고학자들도 과거에 베링해협이 육지로 되어 있어서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연결되어 있었고, 이 육교(陸橋)를 통해 사람과 동물들이 이동하였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사실 진화론자들은 대륙이동설이 유행하기 전까지 빙하기에 많은 물들이 얼음으로 갇혀 있어서 해수면은 낮았을 것이며, 따라서 유럽에서 여러 대륙 심지어 호주까지도 육지로 이동할 수 있었을 것으로 믿어 왔고 가르쳐 왔다. 사람들은 캥거루와 같은 유대동물(marsupials)들은 호주에서만 발견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캥거루는 호주에서 독특하게 진화됐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유대동물들이 미대륙에서 발견되고, 화석은 유럽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최근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오리너구리 이빨 화석의 발견은 과학자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는데, 이들 유대동물들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같이 진화되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호주와 남아메리카도 과거에는 연결되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3) 창조과학자들은 대부분 홍수 후 한번의 빙하기가 있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상당 기간동안 대륙은 연결되어 있어서 동물들이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수 후 대륙이 나뉘어졌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벨렉이 태어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 Two sons were born to Eber: One was named Peleg, because in his time the earth was divided ~"(창10:25). 이 시점은 홍수 후 백여 년이 지난 시기여서 대륙이 바다로 나뉘어지기 전에 동물들은 충분히 분산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4) 또 하나의 중요한 분산 방법은 사람에 의해서 일 수 있다. 호주 개척 초기에 이주민들은 몇 마리의 토끼들을 가지고 갔다. 그러나 지금은 호주 대륙 끝에서도 야생의 토끼들을 볼 수 있다. "캥거루는 방주에서 내려서 호주까지 계속 깡충깡충 뛰어갔는가?" 가끔 이러한 비아냥거리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캥거루는 뛰어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배의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감상하며 편안하게 호주대륙에 도착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Q12. 한 쌍의 동물이 많은 수로 불어나는 것이 가능합니까?
한 쌍의 동물이 많은 수로 불어나는 것이 많은 예에서 보고되고 있다. 호주대륙으로 전해진 많은 새들은 한 쌍으로부터 출발했고, 하와이군도에 전해진 Laysan Finch 새도 한 쌍으로부터 번식되었으며, 호주 빅토리아 지역에 전해진 미국산 밤색다람쥐(American Gray Squirrel), 하와이에 전해진 rock wallaby, 고대 로마인들에 의해 밸리아릭 섬에 전해진 토끼, 19세기 호주에 전해진 토끼, 바하마에 전해진 아메리카너구리(raccoons), French Ⅰ섬에 전해진 코알라, 캘리포니아에 전해진 고라니(elk), 일하우트 섬에 전해진 양(sheep), 마우리티우스 섬에 전해진 짧은 꼬리원숭이(macaques) 등은 모두 한 쌍으로 오늘날의 숫자로 늘어났다. 또한 한 쌍은 아니지만 소수의 동물로 늘어난 예는 일하우트 섬에 전해진 순록(reindeer), 유럽에 전해진 미국산 사향뒤쥐(muskrat), 남아메리카 광대한 초원에 살게된 유럽산 말들, 남아프리카에 전해진 여러 종류의 유럽지역 새들, 유럽에 전해진 중국산 꿩(pheasants) 등 많은 수의 동물들이 한 쌍 또는 소수에서 오늘날의 숫자로 번식하였던 것이다.(28)
Q13. 떼로 모여 사는 동물인 경우 번식하기에 한 쌍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군집으로 모여 사는 동물들은 한 쌍만 있을 경우 번식할 수 없고 멸종해 버린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먼저 떼로 군집을 이루어 모여 사는 습성이 오늘날과 같이 과거에도 동일했는지를 알 수 없다. 바다새에서와 같이 떼로 사는 습성은 방주생활에서 생겨난 습성일 수 있다. 또 하나 바다사자나 다람쥐원숭이 같이 군집으로 사는 동물들 중 많은 수가 수태율은 좀 떨어지지만 동물원 등에서 한 쌍으로도 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군집을 이루는 새들 중 많은 수가 독립된 한 쌍으로도 번식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음을 여러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동물들의 군집 크기도 같은 종 내에도 다양한데, 홍학의 어떤 군집은 수천 마리씩으로 집단 서식하나, 어떤 군집은 10쌍 보다도 적은 수가 모여 산다. 펠리칸은 6마리 보다 적은 수에서도 후손을 번식시키는 것이 보고되었다. 군집생활은 홍수 이후에 생겨난 습성일 가능성이 크며, 방주 내에서나 방주 밖에서 동물들이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없다.(29)
Q14. 병원균과 같은 미생물들은 어떻게 살아 남았습니까? 노아의 식구들이 각종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이들은 홍수 시에 모두 사라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노아의 홍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질병을 일으키는 균들이 오늘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방주 안에 8명에 감염이 일어났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홍수와 함께 사라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아의 8식구는 콜레라, 티푸스, 소아마비, 결핵, 나병 등 온갖 질병의 병원균을 가지고 있었어야 하며, 심지어 매독, 임질 등의 성병과 회충, 요충 등의 각종 기생충, 에이즈 바이러스 등도 보유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정말 노아의 식구 8명에게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러한 질병은 전해질 수 없는 것인가?
이러한 주장들은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병원균들이 사람에게서만 감염을 일으키고, 사람에서 사람으로만 전염되며, 홍수 전과 오늘날의 병원균이 수천 년 동안 전혀 변형되지 않고 동일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만 유효한 주장이다. 먼저 방주 안에는 영장류만도 400여종이 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들이 증상을 나타내지 않고 사람의 감염병 균들을 보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기생하는 촌충과 같은 기생충은 중간숙주인 돼지나 소와 같은 여러 동물에 무증상으로 존재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 감염병의 80% 이상이 동물로부터 전염될 수 있으며, 대부분의 기생충들은 한 숙주에게만 기생하지 않으며, 병원균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specialization)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를 감염시킨 결핵균은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는데, 나중에는 사람만 감염을 일으키는 종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많은 포유류, 파충류, 조류 등이 보유하고 있던 균들이 변형되어 훗날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균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한 숙주에만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많은 균들이 실제 다른 종에도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개의 디스템퍼는 고양이에게는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감염을 일으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최근에는 변형이 일어나 사자에게도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병원균들은 짧은 기간 내에 변형이 일어나 감염 방법을 바꿀 수 있는 것도 밝혀졌는데, 어떤 바이러스들은 원래의 숙주에서 다른 동물로 옮겨가면서 맹독성이 증가되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기생충인 선충류는 소진화의 결과 단지 3년만에 숙주를 완전히 바꾸어 나중에는 원래의 숙주에 기생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도 최근에 영장류로부터 변형되어 발생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매독은 인도마마(yaws)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진화론을 믿는 연구자들도 사람 질병의 대부분이 수백만 년의 인류역사 중 단지 마지막 수천 년 동안에 발생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병원균과 기생충들이 방주 밖에서도 살아 남을 수도 있다. 먼저 병원균이 매개 곤충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말라리아의 경우 모기 몸 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물들의 시체 속에서 살아 남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홍수가 끝난 후 초기에는 식량의 부족으로 죽은 사체들을 파내서 먹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포나 내생포자로 살아 남을 수 있다. 파상풍균이나 탄저균은 아포를 형성하여 상당기간 살아 남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건조상태로 살아 남을 수 있다. 박쥐에 감염을 일으키는 rabies 바이러스는 공기 중 먼지로 날아다니다 동굴탐험가에게 감염되곤 한다. 마지막으로 극지방에 동결로 살아 남을 수 있다. 시베리아의 매머드와 같이 병원성 미생물들에게도 갑작스런 동결이 일어났다가 추후에 해동되면서 동물에 접촉이 일어났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의 식구들이 수많은 질병을 앓고 있지 않았다면 병원균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과장에 의한 오해이다.(30)
Q15. 고대문명들은 다같이 홍수 설화를 가지고 있다는데, 이는 노아 홍수를 의미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대격변적 대홍수에 대한 기억이 지구상 대부분 민족들의 신화나 전설 속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대홍수 전설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지방뿐 아니라 이집트의 경전, 인도 산스크리트의 고어, 태평양 여러 민족들의 민담, 남 북아메리카 원주민, 호주 뉴질랜드 원주민, 유럽의 토착민들의 전설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신화는 어떤 과학적 가치를 가지지는 못하지만, 인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은 신화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우습고 불합리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앗시리아인들과 바벨로니아인들은 여러 개의 홍수 전설을 가졌었고, 그 중 길가메쉬의 서사시는 성경의 기록과 매우 유사하다.【그림 2-11 참조】 서사시 열한번째 석판에 기록된 이 신화는 메소포타미아 계곡의 다른 전설들과 같이 배를 건조해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실으라고 명령받은 한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가축과 야생 짐승들이 그 배로 들어온 후 그 문이 닫혔다. 그 후 번개, 천둥, 지진, 지하수의 분출과 어둠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마침내 그 폭풍이 가라앉고 배가 땅에 닿았다. 그 사람은 한 마리 비둘기와 한 마리 제비 그리고 한 마리 까마귀를 먼저 내보내었다. 그 후 그는 배에서 나와 희생제물을 드렸고, 신들은 그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무지개를 보내주었다."
앗수르어로 기록되어 있는 이 '길가메쉬서사시'의 서판은 열한번째 서판으로 1873년 니느웨의 아쉬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굴되었다. 창세기 기록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유사한 점이 매우 많아 동일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도 이와 유사한 홍수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의하면 모든 중국인들은 대홍수를 극복함으로써 이름을 떨친 옛 선조 '누와' 의 자손이라고 한다. 누와가 성경의 노아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상형문자인 한자에서도 노아 홍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배 선(船) 자는 아래와 같이 배 주(舟)와 여덟(八) 명의 사람(口)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방주에 8명이 탔음을 나타내고 있다.【그림2-12 참조】 또한 홍수 홍(洪) 자는 노아의 8식구(八)가 함께 손잡고(共) 치뤄낸 물난리, 계집 여(女) 자는 첫 번째(一) 사람(人)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서( ) 만든 사람, 금할 금(禁) 자는 하나님(示)께서 두 나무(林)에 대해 명하신 것, 탐할 람( ) 자는 두 나무(林)를 바라보는 여자(女)의 마음, 지을 조(造) 자는 흙(土)에 생기( )를 불어넣으니 사람(口)이 되어 걸어다님(造), 서녁 서(西) 자는 최초의(一) 사람(人)이 살던 동산(口)있던 방향 (에덴동산이나 아라랏산은 중국사람들에게는 서쪽이었음), 올 래(來) 자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 나무(木)사이에 숨어있던 두 사람(人人)이 나옴...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31)
영국의 인류학자 프레이져(1854~1941)는 북·중·남아메리카의 130개 인디오 종족중 대홍수를 주제로 한 신화를 가지고 있지 않는 종족은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고대 멕시코의 티마르포포카 그림문서에는 "하늘이 땅에 다가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산도 물 속으로 숨었다. 바위가 땅위에 모든 것을 뒤덮고, 테트존트리(구멍이 많이 난 용암)가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끓어오르고 붉은 산이 춤추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과테말라에 사는 인디오인 키체족의 포플부흐 라는 고서에는 "대홍수가 일어났다.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검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해 달아났다. 어떤 사람들은 지붕으로 기어올라갔지만 집이 무너져 땅으로 떨어졌다. 또 그들은 나무에 매달렸지만 나무는 그들을 흔들어 떨어뜨린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동굴 속에 피난처를 찾았다. 그러나 동굴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버렸다. 이리하여 인류는 멸망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마존강의 인디오 전설에는 "어느 날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무서운 소리가 났다. 만물이 암흑 속에 잠긴 뒤에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만물을 휩쓸어 버렸고, 온 세계가 물에 잠겨 버렸다" 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바벨론 설화에서 온 설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홍수 이야기는 이렇게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바벨탑 사건이나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한 사건은 전 세계에 설화로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은 이 사건들은 국지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며, 노아의 홍수만이 전 세계적인 사건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 한반도에도 과거 우리 조상이 이주해 살기 전에 사람들이 살았으나, 그 후 어느 날 갑작스럽게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가 오랜 후에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노아 홍수 이전에 한반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나 홍수 때문에 다 죽어버려 노아의 후손이 중앙 아시아로부터 바이칼 지방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오기까지 한반도에는 아무도 살지를 않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896년 9월 3일 미국 미시간 주에서 발견되었다. 홍수가 시작하여 온 땅이 물에 잠기자 높은 데로 올라가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두 번째 장면을 주시하자.
Q16. 노아의 홍수로 엄청난 퇴적물이 쌓였다면 당시 바닷물은 흙탕물이어서 물고기들이 살 수 없었던 것은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지구에는 엄청난 퇴적물들이 있는데 이들이 1년여의 홍수로 퇴적되려면 방주는 진흙 수프 위에 떠 있었을 것이고, 물고기들은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물이 실제 어떻게 퇴적물을 운반하는지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모든 퇴적물이 홍수 기간 철저히 섞여져 있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퇴적물은 이와 같이 쌓여지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퇴적물을 '분지(basin)' 안으로 이동시키고, 이들은 퇴적되어 다시 섞이지 않고 계로부터 독립된다. 그래서 같은 용량의 물이 더 많은 퇴적물을 대륙을 가로지르며 쌓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퇴적물들은 대홍수 시 물에 의한 수압으로 다져지기 때문에 재비산 없이 연속적으로 퇴적될 수 있는 것이다.(32)
*관련기사: 지구 내부에 거대한 바다? :‘지각 아래 북극해 이상 물 존재’ (2007. 3. 4.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94157.html
*참고 : 노아의 홍수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 - Fingerofthomas.org
http://fingerofthomas.org/노아의-홍수-scientific/
세 자매봉 ; 노아 홍수의 증거
: 초격변의 증거인 호주 시드니 해분
(Three Sisters ; evidence for Noah's Flood)
by Tas Walker, Ph.D.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은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드니의 서쪽에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 카툼바 (Katoomba)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장엄한 경관인 세 자매봉을 감상하게 된다. 이 세 자매는 그룹 가수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암석 노두(rock outcrop)이다. 불루 산맥(Blue Mountains)이 세계적 보존 지역이 되면서, 이 자매들은 오늘날 호주의 상징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에코 지점(Echo Point) 근처에서 바라보는 세 자매봉은 계곡 위에 인상적으로 펼쳐져 있다. 맑은 날에는 먼 거리에 있는 Kings Tableland를 희미하게 볼 수 있다 (전경의 왼쪽을 보라). 하루 종일 변화되는 햇빛에 따라 세 자매봉의 장엄한 색조는 다르게 조망된다. 밤에 비춰지는 그들의 모습은 어두운 밤 하늘을 배경으로 매혹적이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성경에 기술되어있는 전 세계적인 홍수의 강력한 증거를 보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세 자매봉을 구성하고 있는 사암(sandstone)은 거대한 물에 의한 퇴적을 가리키고 있다. 세 자매봉이 조각될 때 만들어진 계곡들과 협곡들은 거대한 물에 의한 침식의 증거인 것이다. 성경적인 전 세계적인 홍수는 이러한 퇴적과 침식을 잘 설명하고 있다. 자,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사암이 거대한 지역을 뒤덮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둘러보면, 협곡 둘레의 모든 날카로운 절벽들은 같은 종류의 사암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장엄한 계곡이 침식되기 전에, 이 사암 지층은 거대한 지역을 덮고 있었다.
광대한 크기 (Vast size).
그러나 지층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지역보다 훨씬 더 광대한 지역까지 확장되어 있다. Katoomba 으로부터 지층은 동쪽으로 160 km, 남쪽으로 160 km, 북쪽으로 160 km에 도달하고 있어서 거대한 직사각형의 침전물 퇴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1).1 지질학자들은 그것을 시드니 해분(Sydney Basin)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동쪽으로는 New England Fold Belt, 서쪽으로는 Lachlan Fold Belt 을 침식한 엄청난 량의 퇴적물들이 쌓여진 장소인 것이다.
많은 지질학자들은 시드니 해분은 250 km (160 마일)의 폭에 2,000 km (1,200 마일)의 길이로 북쪽으로 확장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림 2).2 퇴적지층의 광대한 크기는 격변, 아니 그 이상인 초격변의 증거인 것이다.
그림 1 : 많은 지질학자들은 시드니 해분은 (적색) 북쪽으로 크고, 긴 퇴적층의 해분 (밝은 핑크색)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퇴적층 네트워크는 2,000 km (1,200 마일) 이상의 길이로, 매장된 식물에 의해 만들어진 석탄과 가스의 풍부한 퇴적물들을 포함하고 있다. 위로 놓여져 있는 퇴적층들은 그림에서는 생략되었다.
그림 2 : 후에, 킬로미터 두께의 퇴적물들과 식물들이 그 위를 덮었다. 그래서 시드니 해분과 북쪽 해분 사이의 연결이 감추어졌다. 후에 퇴적된 퇴적물들은 풍부한 물을 함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Great Artesian Basin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격변적인 퇴적 (Deposited catastrophically)
우리는 세 자매봉의 사암이 지층들에 퇴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로를 내기 위해 산을 깎은 지역에서 잘 볼 수 있고, 시드니 주변의 날카로운 절벽들을 형성하고 있는, 위에 놓여진 Hawkesbury Sandstone을 검사함으로서 알 수 있다. (그림 4). 현저하고 수평적인 지층들과 연결되어, ‘사층리(cross bedding)’ 라 불리는 희미하고 경사진 지층들이 있다. 이것은 모래가 흐르는 물에 의해 퇴적되었음을 가리킨다.
그림 6은 흐르는 물이 바닥에 모래에 파도모양의 무늬(wavy pattern)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물들은 각 모래 파도(wave)의 뒤쪽으로 모래 알갱이들이 꼭대기에 도달할 때까지 그들을 밀어 올린다. 그리고 모래 알갱이들은 모래 파도의 앞쪽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래서 모래 파도들은 앞쪽으로 움직이며, 사층리 형태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모래 파도들의 정렬은 물 흐름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사층리의 두께는 물의 속도와 깊이를 나타내고 있다.3
Macquarie 대학의 지구과학과 주임강사인 지질학자 Patrick Conaghan 박사는, 사층리의 크기로부터 모래가 퇴적될 당시의 상황을 결정했다. 그는 1994 년에, 이러한 퇴적은 북쪽으로부터 20 m의 높이, 250 km의 폭, 그리고 거대한 속도로 밀려오는 엄청난 물의 벽(a wall of water)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묘사했다.4 이 격변적 해석은 성경에 기록된 홍수 동안에 예상될 수 있는 것과 일치한다.
사암 지층은 매우 두꺼워 100-200 m, 또는 그 이상이나 된다.1 그러한 두터운 모래 퇴적물이 쌓여지기 위해서, 시드니 해분의 수면(water level)은 지속적으로 올라갔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래는 더 깊은 물이 있는 지역으로 운반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두터운 사암 지층에는, 퇴적층 사이에 시간 간격(time breaks)이 있었다는 어떠한 표시도 (예로, 보존된 화석 집단들의 수평적 거주 등이) 없다. 빠르게 흐르는 물에 의한 퇴적은 될 수 있는 데로 깊은 해분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림 3. 퇴적층의 동-서 단면도.
그림 4. 사층리 (crossbeds)
그림 5. 고원 (plateau)
그러므로 증거들은 대륙에서 침식되어 나온 거대한 량의 퇴적물들이 수백 km의 폭과 수천 km의 길이를 가진 ‘강 (river)’에 의해서 운반되어 퇴적되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구상 어디에서도 이러한 거대한 강은 없다. 이 강들은 퇴적물의 입자들을 크기에 따라 분류(sorted) 시켰다. 이것이 그렇게 많은 모래들이 같은 장소에 퇴적되어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세 자매봉은 비정상적인 격변적인 퇴적을 말하고 있고, 성경에 기술되어있는 전 세계적인 홍수와 일치한다. 모래는 1년여의 홍수 기간의 초기 단계인 범람기(Inundatory stage)에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퇴적되었다.5 몇몇 사암 지층들은 단지 수 일만에 퇴적되었을 수도 있다.2
빠른 침식 (Rapid erosion)
시드니 해분의 퇴적물들이 퇴적되고 난 후, 홍수 기간의 두 번째 단계에서 앞바다의 대양저(ocean floor)는 가라앉기 시작했고, 불루 산맥(Blue Mountains)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주 대륙을 덮고 있던 물은 대륙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물이 물러가면서, 물들은 지형들을 빠르게 파기 시작했다.
처음에 물은 가끔 ‘평탄화(planation)’ 표면을 만들면서 대륙의 광대한 지역을 시트처럼 평평하게 깎으며 흘렀다. 그리고 흐름이 감소되면서, 물은 우리가 시드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넓은 계곡들을 팠다. 많은 양의 물들이 감소하기를 계속하면서, 좁은 계곡들이 고원의 가장자리에 파여졌고, 우리는 세 자매봉과 같은 전경을 (Echo Point 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들이 완전히 물러갔을 때, 땅은 마르기 시작했고, 물의 흐름이 만들어 놓은 큰 계곡들이 남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계곡들은 갑자기 막힌 날카로운 벽들로 끝난다. 우리는 이러한 계곡의 끝에서 오늘날의 폭포를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계곡을 침식한 물의 흐름과 비교했을 때, 단지 작은 자취에 불과하다 (그림 5). 지금의 그러한 작은 물의 흐름이 거대한 계곡을 조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침식의 이러한 패턴은 전 지구적 홍수의 마지막 단계 동안 기대될 수 있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1700 년대 말에, 이러한 가파른 절벽은 초기의 시드니 정착민들이 더 넓은 초원을 얻기 위해 블루 산맥을 지나는 길을 발견하는 것을 방해했다. 최초의 탐험가들은 강을 따라 갔으나, 계곡의 끝에 있는 날카로운 쿨데삭스(cul-de-sacs)에 의해 멈춰지게 되었다. 이들은 이러한 장애물이 노아 홍수 시 물의 배수(drainage)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고 1813년에, 유명한 탐험가들인 Blaxland, Wentworth, Lawson 등은 융기된 고원의 남아있는 침식 지형을 따라가는 혁신적인 능선 정상(ridge-top) 루트를 사용함으로서 그들의 길을 발견하였다.6
그림 6.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세 자매봉을 노아의 홍수와 관련시켜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암석들의 연대가 2억3천만 년 되었다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대틀 속에서, 세 자매봉은 확실히 4,500 여년 전에 형성될 수 없다. 그러나 암석의 연대측정 방법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오래된 연대를 믿는 지질학자들은 과거에 대한 잘못된 가정들(assumptions)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연대를 얻게 된다. 특별히 그들은 격변적인 노아 홍수의 영향들을 무시한다.
오래된 연대를 믿는 지질학자들은, 퇴적암은 오늘날의 지구상의 강들이 만드는 것과 같이 천천히 퇴적되어서 만들어졌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퇴적암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만 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 동안 격변적인 상황은 엄청난 퇴적암을 빠르게 퇴적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수백만 년의 시간은 제거될 수 있다. 그러한 격변적인 퇴적에 대한 증거들은 우리가 보듯이, 암석 자체에 보존되어 있다.
오래된 연대를 믿는 지질학자들이 이들 암석의 연대를 2억3천만 년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그 안에 함유하고 있는 화석들과 그 지역에 놓여져 있는 암석 지층들의 상대적인 위치에 근거해서 이다. 최근에 한 창조 지질학자는 Hawkesbury 사암층의 채석장에서 발견된 나무 조각에 대해서 방사성 탄소(C-14) 연대측정을 실시했다.7 오래된 연대를 믿는 지질학자들은 그러한 암석은 2억3천만 년이나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C-14 분석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방사성 탄소는 최대로 잡아도 50,000 년 이내에 사라져야만 한다. 어떠한 방사성 탄소도 남아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분석 실험에 의하면, 그 오래되었다는 나무에서 적은 양이지만 상당량의 방사성 탄소가 분석되었다. 이것은 이 사암층이 50,000 년 이상 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방사성 탄소의 적은 량도 시간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홍수 이전의 대기 중에 적은 방사성 탄소 농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C-14은 홍수 이후에 상승되었다).
노아 홍수의 증거 (Evidence of Noah's Flood)
세 자매봉은 호주의 하나의 관광 상징물(icon)이다. 또한 그들은 노아 홍수의 상징물인 것이다. 이 사암 기념비는 대규모의 격변적인 퇴적과 거대한 물에 의한 침식의 증거물로 서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확히 우리가 노아의 홍수에서 기대되는 것이다. 세 자매봉은 호주의 한 상징물일 뿐만 아니라, 성경의 신뢰성에 대한 상징물인 것이다.
수직으로 묻혀있는 화석 나무들
부러진 통나무들이 남태평양 바다가 바라보이는 시드니 북쪽 40km 지점의 두터운 사암 지층에 수직으로 서있는 채로 퇴적되어 있다. 부디(Bouddi) 국립공원에 있는 ‘Box Head’의 동편에 위치한 머리 부분은 Hawkesbury 강의 북쪽 입구를 형성하고 있다.
이 사암층은 Gosford Formation 지층의 부분으로, Hawkesbury 사암층 아래에 놓여 있으며, 대략적으로 서쪽으로 100 km 떨어져 있는 세 자매봉을 구성하는 지층과 동등하다. 확연한 사층리들이 통나무 위의 지층들에서 명백히 보인다.
퇴적층의 육중한 출현과 사층리는 깊고 빠른 물의 흐름에 의해서 퇴적되었음을 나타낸다. 퇴적층의 두께는 모래가 퇴적되면서 물도 지속적으로 상승했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 통나무들은 이곳에서 자라지 않았고, 다른 장소에서 옮겨져 왔다.
통나무들은 토양이나 뿌리를 가지지 않은 채 부러져 있다. 그들은 고대의 나무 숲을 뒤집어 엎고, 부숴버리고, 뿌리와 줄기를 나뭇잎과 잔가지들과 분류시킨 강력한 힘을 증거하고 있다. 나뭇잎과 잔가지들은 시드니 해분의 다른 퇴적지층에 퇴적되었다. 그것들은 석탄층을 형성하여 지금은 전력 생산을 위해 채굴되고 있다.
References
1. Jones, D.C. and Clark, N.R. (Eds.), Geology of the Penrith 1:100,000 Sheet 9030, NewSouth Wales Geological Survey, Sydney, 1991.
2. Allen, D., Sediment transport and the Genesis Flood-Case studies including the Hawkesbury Sandstone, Sydney, CEN Tech. J. 10(3): 358-378, 1996.
3. Austin, S.A. (Ed.), Grand Canyon: Monument to Catastrop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California, pp. 33-35, 1994.
4. Woodford, J., Rock doctor catches up with our prehistoric surf, The Sydney Morning Herald 30 April, 1994, p.2. For more detail, see: Conaghan, P.J., The Hawkesbury Sandstone: gross characteristics and depositional environment, Bulletin, Geological Survey of New South Wales 26:188-253, 1980.
5. Walker, T.B., A Biblical geologic model, In: Walsh, R.E. (Ed.), Proceedings of The Third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reationism, Creation Science Fellowship, Pittsburgh, pp. 581-592, 1994; .
6. Info Blue Mountains History Plaza, 29 November 2002.
7. Snelling, A.A., Dating dilemma: fossil wood in ‘ancient’ sandstone, Creation 21(3):39-41, 1999.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magazines/docs/v21n3_date-dilemma.asp)
8. The basement rocks of the Brisbane Area, Australia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0_2/j10_2_241-257.pdf
*The Great Artesian Basin, Australia
http://creation.com/great-artesian-basin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ation.com/three-sisters-evidence-for-noahs-flood
출처 - Creation 25(2):38–42, March 2003
노아의 홍수와 교회, 그리고 이 세대
구약 창세기에 나타난 노아의 홍수 기록은 교회에 다니지 아니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이 땅에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신화나 전설로 취급 받아온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 사건이다. 이 노아의 홍수 사건은 특히 인본주의 교육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매스 미디아 제작자들에 의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욱 왜곡된 모습으로 묘사되어져 왔는데, 그들은 대부분 성경에 기록된 이 전무후무한 사건을 과거에 중동 지방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지역 홍수 중의 한 가지 정도로 축소하여 소개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얼마 전 미국의 CBS 채널을 통해 방영된 <노아의 방주>라는 드라마나,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National Geographic 같은 잡지에 크게 보도된 바 있는 <흑해에서 일어난 노아 홍수의 증거 발견> 같은 내용의 기사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한결 같이 성경의 내용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불신하도록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말하는 것과 같은 규모의 전 세계를 덮은 노아의 홍수 사건을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 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두 가지 이유는 아마도 첫째, 어떻게 그렇게 전 지구를 덮을 만큼 많은 비가 올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심과 둘째, 그 물들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가고 없는가 하는 질문 때문인 것 같다. 노아의 홍수 사건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므로, 현재 우리가 관찰하거나 실험실에서 반복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하여 낼 수 있는 성질의 주제는 아니지만,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또 실험을 통해 밝혀낸 여러 가지 다양한 과학적 지식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 과학적 타당성을 재어 볼수는 있다. 이같은 접근 방법은 오랜 세월 동안 동일 과정을 거쳐 지층이 형성되어 왔다고 가르치는 진화론적 모델에도 똑같이 적용이 되는 문제인데, 우리는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 어느 모델이 보다 더 합리적으로 사실과 부합되게 설명을 잘하는지 가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홍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먼저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둘째 날에 하늘을 지으실 때,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어 놓으신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창 1:6-7). 이 말은 우리가 오늘 날 보는 하늘과는 달리, 창조 당시에는 하늘에 지구를 덮는 물 층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 물 층으로 인하여 지구 전 지역의 기후는 따뜻한 아열대성 기후를 갖게 되었을 것이고, 동시에 우주에서 떨어지는 해로운 고주파선으로부터 지구의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을 그 물 층이 하게 됨으로 그야말로 지상의 생물에게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지금은 얼음으로 덮여 있는 시베리아나 극 지방에서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활옆수 숲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과, 공룡과 같이 거대한 몸집을 한 파충류가 과거 이 땅에 번성하였던 사실, 그리고 창세기에 기록된 홍수 이전 족장들의 수명이 900세 이상 장수하였던 사실들은 모두 지구를 둘러싼 물층의 존재하에서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한 내용들이다.
창세기 7장 11절은 이어서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말은 바로 지구를 둘러 싸고 있던 물이 땅으로 쏟아졌다는 이야기로 해석되어 지며, 동시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말은 전 지구적으로 펼쳐져 있는 해저 화산이 폭발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같은 폭발은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바닷물이 육지를 침범할 수 있도록 함으로, 위에서 내리는 비와 함께 전 지구를 물에 잠기게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라고 창조과학자들은 믿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발견되는 염호(호수 이면서도 바닷물과 같은 염분을 함유)의 존재나, 전 지구를 덮고 있는 거대한 퇴적암 층의 존재,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대규모 화석무덤과 석탄층의 존재 등은 과거 이 지구가 한 때 물속에 잠겼었다는 과학적 증거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랜드 캐년의 장엄한 협곡같은 지층의 구조도 과거에는 그것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조금씩 깍이어 형성되었다고 진화론자들은 생각하였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들에 의하여, 오히려 홍수와 같은 격변에 의해서 단 시일내에 형성되었다고 믿는 지질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노아의 홍수 때 이 지구를 가득 채웠던 그 많던 물은 지금 어디로 가고 없는 것일까?
성경에 보면,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 하시어 물을 감하였다는 기록(창 8:1)이 나오는데, 이는 물의 증발을 의미한다. 오늘날 극 지방에 존재하는 빙하가 다 녹으면, 해수면의 상승을 가져와 일부 도시는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염려하고 있는데, 이는 상당 부분의 홍수때 물이 오늘날 빙하로 갇히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 한편, 시편에는 온 땅을 덮었던 바닷물이 주의 정하신 처소로 빠져 나갈 때에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가는 대규모 조산 운동이 일어 났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나오고 있어(시 104:6-9), 홍수 후 해수면이 낮아짐으로 물들이 땅에서 물러갔음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히말라야 산맥과 같은 과거 대규모의 조산운동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 믿어지는 장소에서 바닷속에 존재하는 조개나 물고기의 화석이 발견 됨으로 그 같은 사실을 잘 뒷 받침 해주고 있다.
결국, 과학적 자료는 전 지구를 덮은 홍수를 충분히 잘 뒷받침해주고 있으며, 오히려 전에는 잘 이해가 안되던 지질학의 문제들도 성경적 홍수 모델을 통하여 적절한 대답을 찾아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면, 과학을 떠나 순수 성경적 입장에서만 볼 때라도, 과연 노아의 홍수가 지역적 홍수이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가? 이 점에 있어서 성경은 단호하게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를 덮은 홍수임을 여기 저기서 수차례에 걸쳐 밝히고 있다.
먼저, 노아의 홍수는 타락한 인류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던 이 땅까지 함께 심판을 받았다 (창 6:13). 둘째, 이 홍수로 인하여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물에 잠겼다 (창 7:19). 셋째, 홍수가 시작해서 다 끝나기 까지 1년이 넘는 기간이 지났는데 (창 7:11, 8:13), 이 말은 홍수의 규모가 전 지구적임을 시사한다. 넷째,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와 같은 홍수로 심판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었는데 (창 9:11, 15-16), 만약 노아의 홍수가 지역 홍수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후로도 수 도 없이 많은 지역 홍수를 허락하심으로 거짓말을 하신 셈이 된다. 이는 오직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전 지구를 덮는 홍수로는 다시 인류를 심판하지 않겠다는 말로서만,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 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만일 노아의 홍수 사건이 단지 그 지역에만 국한되어 나타난 지역 홍수 였다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옆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함으로서 심판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성경이 알리고자 하는 당시 사람들의 타락한 모습과 이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의 메세지가 사실 우스꽝스러워 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인본주의의 영향을 받은 오늘날의 자유주의 신학적 해석은 노아의 홍수를 어떻게 해서든지 지역홍수로 축소시킬려고 애를 쓰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해야 하는 오늘날의 교회가 만약 이 부분에서 분명한 성경적 입장에 서서 바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자유주의 신학적 해석으로 노아의 홍수 사건을 가르친다면, 이는 스스로 성경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압도하는 과학적 증거와도 모순을 갖게되어, 결국 진화론적 잘못된 과학에 영향을 받아 과학에 발맞추려다 오히려 올바른 과학적 자료에 창피를 당하는 우스꽝스러운 꼴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마 24:37-39; 눅 17:26-27) 노아의 홍수 사건이 갖는 예언적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셨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대는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주의 재림의 약속을 기롱하며(벧후 3:3-7), 노아의 홍수 또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교회는 이 세대를 향하여 분명한 메세지를 선포해야 할 책임이 있다. 노아의 홍수에 대한 올바른 메세지는 이 세대에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롬 12:2), 다시오실 인자의 때를 기다리게 한다. 우리 모두 깨어 기도해야 할 때이다.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중에서
출처 -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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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홍수 (13) - 방주에 들어간 동물의 방식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창 6:19)
하나님께서 노아가족과 함께 방주에 들어갈 동물들의 방식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다. 성경에 방주에 들어갈 동물의 방식에 대하여 몇 차례에 걸쳐 묘사하고 있다. 암수 한 쌍씩(6:19), 종류대로(6:20, 7:14, 8:19),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공중의 새는 암수 일곱씩(7:2, 3),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을 암수 둘씩(7:8, 15, 16) 등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서 암수 한 쌍씩이나 암수 둘씩과 같은 묘사는 방주에 들어가는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7장 16절에는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이 암수”라고 분명히 언급했으며, 7장 3절에 이렇게 암수로 들어간 이유는 ”그 씨(offspring, 자식)를 유전케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반면에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둘씩, 새들은 암수 일곱씩”이라 함은 쌍쌍이 들어가되 구체적으로 방주에 태울 짐승의 수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종류대로'는 창세기 1장에서 생물을 창조하실 때 10번씩이나 반복해서 사용하신 표현이다. 식물(셋째 날), 물고기와 새(다섯째 날), 육지의 동물(여섯째 날)들을 창조하실 때 반복해서 사용하신 단어이다. 종류대로는 히브리어로 'fixed' 또는 'defined'란 의미가 있는데, 즉 서로 교배가 가능한 생물의 질서를 나타내는 단위를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즉 동물들이 창조 때 갖추었던 그 질서 그대로 방주에 탔음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창조 때와 방주에 태울 때 똑같이 사용하신 종류대로란 말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시며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7:20)와 ”그 씨를 유전케 하는 것”과 서로 통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생물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2)하신 말씀에는 당연히 창조하셨을 때부터 암수를 함께 창조하셨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노아홍수 때 종류대로 방주로 들어가게 하시며 씨를 유전케 하기 위해 암수로 방주에 들어가도록 하신 것에서 확인된다.
진화론자들이 도저히 그 메커니즘을 알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암수의 구분이다. 이들이 언제, 어떻게, 왜 암수로 저절로(!) 구분되었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암수가 저절로 생기더라도 암컷과 수컷이 같은 시기에 등장해야 하는데 이를 설명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생육하기 위한 수단으로 처음부터 암수를 구분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명령하고, 씨를 유전케 방주에 암수를 태우시는 말씀이 그것이며 진화론적 사고는 들어갈 틈이 없다. 처음부터 암수대로 질서 있게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려는 모습 속에 그 목적과 창조자의 행하신 사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순수하게 편견 없이 읽는다면 성경은 초지일관 종류대로, 암수로, 성장한 완벽한 상태로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 단순하거나 불완전했다거나 하는 의미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을 어떠한 암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종류대로 창조하신 동물들을 방주로 암수를 실으라고 명령 속에서도 그 일관된 모습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구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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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들은 노아 홍수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How Could Fish Survive the Genesis Flood)
노아의 홍수 당시 어떻게 동물들이 노아의 방주에 탔고, 적응했으며, 그곳에서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관심들이 모아지고 있다.1 그러나 수생동물(aquatic animals)들이 홍수 동안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분명히 육상에 살면서 공기로 호흡하는 동물들은 땅을 뒤덮은 대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수생동물들은 주변이 온통 물임으로, 집에 있는 것처럼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만은 않다.
수중 생물체들은 육상생물체들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생리학적, 생태학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2대격변적 홍수인 경우, 어류의 많은 종들이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지질 퇴적층에서 나타나 있는 어류 화석들의 기록은 많은 종들의 멸종을 보여주고 있다.3 몇몇 생물체들은 거친 물결에 의한 외상으로도 매우 쉽게 죽기도 한다. 다른 몇몇은 살기에 적절한 서식장소들의 파괴로 인해 죽기도 한다. 예를 들어, 너무 많은 담수(fresh water)는 적응을 불가능하게 하여 바다 물고기 종들을 죽음으로 내몰 것이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염분 농도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라, 수온, 빛, 산소, 미생물, 그리고 영양 상태와도 관련이 있다. 이것들은 수생생물들의 생존을 논의하는데 있어, 반드시 모두 다 평가되어야 한다.
논의를 간단히 하기 위해, 담수물고기, 바닷물고기, 그리고 두 서식지 모두에서 살 수 있는 물고기 중에서 다섯 종류의 물고기 (개복치(sunfish), 메기(catfish), 송어(trout), 뱀장어(eel), 대구(codfish))가 선택되었다. 선택된 물고기들은 맑은 담수, 탁한 담수,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질주해가는), 바다로 내려가고(반대로), 절대적으로 바닷물에서만 사는 것들이다. 이 범주들은 그들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의 주된 요소인 염분(salinity), 수온(temperature), 혼탁도(turbidity)에 관한 참고자료들과 함께 논의될 것이다.
생리학적 범위
염분
물고기는 그들의 신체 내부액체와 외부액체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데 있어서, 하나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담수물고기(freshwater fishes)들은 음식, 마시는 물, 조직에서 전이된 것으로부터 매우 많은 양의 담수를 얻고 있다. 반면에, 바닷물고기(marine fishes)들은 체액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매우 적은 양의 담수를 얻고 있다. 마시는 물에 포함된 많은 양의 소금과 일정한 삼투압은 조직 부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에서 담수를 끌어당긴다. 4
신장과 아가미가 이 균형을 관리하는 두 기관들이다. 만약 담수물고기가 너무 많은 물을 얻는다면, 신장은 순환하는 소금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양의 물을 내보낸다. 바다의 경골어류(bony fish)들은 과다한 소금을 아가미를 통해 내보내고, 내부의 물을 재흡수하여 보존한다.
바다 송어(sea-run trout)는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담수로 이동하고, 뱀장어(eels)는 담수에서 바다로 이동한다. 둘 다 그들의 환경에 있는 소금의 양에 따라 물과 소금의 조절을 반대로 할 수 있다. 개복치와 대구는 각각 그들의 생활 주기 동안 담수와 바다에 남아 있는다. 소금의 양은 담수의 0 에서부터 바닷물의 35 ppt (35,000 ppm, 또는 35,000 mg/l)까지 분포할 것이다. 절대적 담수어(obligate freshwater fish)는 일반적으로 7 ppt (7,000 mg/l) 보다 더 높은 염분 농도에서는 치사되어진다. 절대적 바닷물고기 종은 매우 적은 범위의 염분 내성 한계치를 지닌다.5 강과 바다를 오고가는 종들은 삼투압을 조절함으로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수온
물고기가 서식할 수 있는 수온의 범위는 어종과 서식지에 따라 다양하게 분포한다. 몇몇 물고기는 온도 변화에 대해 매우 민감하여, 차가운 물, 따뜻한 물, 뜨거운 물에서만 산다. 다른 몇몇 종들은 얼음물에서부터 뜨거운 물(0~32℃)까지 넓은 범위의 수온에서 생존이 가능하다. 성장 단계에 있는 어린 물고기들은 자주, 성어의 생존 수온 범위 내에서 폭이 좁은 수온 범위가 요구된다.
한류어종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어종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을 장기적으로 가진다면 최소한 2~24℃의 수온에서 생존할 수 있다. 조사대상이 된 성어들이 선호하는 수온은 다음과 같다. 송어 16~21℃. 개복치 16~28℃, 메기 21~29℃, 뱀장어 16~28℃ 정도, 대구 12~16℃ 이다.6, 7
혼탁도
자연 상태의 물 속에서 부유하는 미립자들은 광전자적으로 혼탁도가 측정된다. 부유 미립자들은 침식된 토사, 유기 입자, 박테리아, 플랑크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물질들은 바다속 기질(substrate)들을 덮음으로 먹이감들을 죽이고, 산란 장소를 파괴하여, 물고기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토사는 아가미와 무척추동물의 호흡 기관을 마모시켜 손상을 일으킨다. 물고기들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점액(mucus)을 분비하여 입자들을 밖으로 내보낸다. 탁한 물은 간접적으로 빛의 투과를 막아 광합성이 가능한 지역을 감소시킨다. 혼탁도의 범위는 다음과 같다. 깨끗함;<10ppm (mg/l), 탁함;10-250 ppm, 매우 탁함;>250 ppm. 월렌(Wallen)은8 많은 어종들이 100,000 ppm 정도의 매우 탁한 물에서도 한 주 이상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생존 작전
바다 위를 흐르는 빗물 (runoff)
지표를 뒤덮는 폭우는 금새 급류가 되어 하천 유역을 범람한다. 그 다음 잠식된 해안선은 담수로 뒤덮일 것이다. 오듐(Odum)은5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많은 층을 이룬(highly stratified)', 혹은 '염분이 분리된(salt-wedge)” 강어귀(estuary) 라고 불렀다. 대륙으로부터의 그런 엄청난 담수의 유출은 바다에 내린 강우와 합해져 염분 약층(halocline), 또는 강한 염분 농도차(density gradient)를 이룬다. 이것은 육지의 담수 생태계에서 떠밀려 나온 어류들이 계속해서 담수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만약 담수의 깊이가 깊어 내부의 혼합 흐름을 막기에 충분하다면, 이와 같은 담수층은 강한 바람에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은 담수물고기와 바닷물고기가 대홍수로 일시적으로 옮겨진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을 그려볼 수 있게 한다.
혼탁류의 흐름
한편, 침전되는 입자 강우와 바닥에 깔리는 슬러리(slurries)로서, 혼탁류의 큰 입자들과 거대한 밑짐(bedloads)은 대양 안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더 무거운 입자들은 천천히 움직이는 해안가 물 속에 가라앉았을 것이고, 진흙 흐름은 대양 바닥 위에 퇴적되었을 것이다. 담수층과 염수층의 경계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지만, 입자들의 삽입은 아마도 적절한 혼합없이도 일어났을 것이다. 주어진 내성 범위 내에서, 많은 물고기들은 높은 혼탁도의 노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세인트 헬렌산에서의 뜻밖의 발견
1980년 5월 18일 세인트 헬렌산의 화산 폭발은 생태계의 회복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분명, 노아의 홍수는 화산 폭발보다도 훨씬 더 큰 한번의, 또는 몇 번의 격변이었지만, 그 사건은 생태계가 회복되는 방법을 알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관심이 있는 세 가지 요인(염분 등의 용질이 용해된 의미에서의 알칼리도, 온도, 혼탁도)에 대해서, 중요한 변화가 그 지역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9, 10
세인트 헬렌산 스프릿 호수 (Spirit Lake) | ||
1980. 4. 4 | 1980. 6. 30 | |
알칼리도 (Alkalinity, mg/l) | 0.01 | 150.5 |
수온 (Temperature, °C) | 4.0 | 22.4 |
혼탁도 (Turbidity, mg/l) | 0.75 | 24.61 |
엄청난 격변적 사건에 노출됐던 스피릿(Spirit)호수는, 분출 후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알칼리도와, 상온과 같은 수온, 낮은 혼탁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폭발로 인해 호수에 살던 모든 고유 어종들이 죽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나무 조각들의 부패와 메탄, 이산화황의 확산으로 많은 양의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1980년 6월 30일 경에 물고기들을 다시 기른다 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0년 안에 그 호수는 물고기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회복되었고, 많은 수중 생물들이 돌아 왔고, 확립되었다. 만약 호수가 터틀(Toutle)강에 직접 연결되었다면, 연어들도 지금쯤 호수에 다시 살게 되었을 것이다.
예전의 화산 폭발 기록을 검사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찰은 아마도 폭발 부근의 다양한 지역 중에서 생태계에 가장 적은 피해를 입은 장소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폭발 지역 내에 있었던 메타 호수(Meta Lake)를 예로 들면, 폭발 당시 호수는 얼음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 덕분에 겨울 동안 잠들어 있던 생태계가 열기와 산소부족, 화산재로 인해 파괴되지 않았다. 물고기가 완전히 사라졌던 그 장소에서, 물고기와 그 생태계는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회복되었다. 수생생물학자인 머디 크릭(Muddy Creek)은 많은 양의 진흙과 파편들이 밀려들어왔던, 스위프트(Swift) 저수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관찰했다. 물고기들은 부근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강 연안이나, 더 낮은 하류의 저수지로 옮겨갔다. 그러나 2년 만에 많은 플랑크톤이 서식하게 되었고, 생태계는 새로운 이주자들과 함께 잘 회복되었다.
그러한 제한된 영역(평방 500마일)의 격변은 가령 홍수와 같은 거대한 격변에 대한 하나의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 그러한 사건들의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가장 손상을 입기 쉬운 것에까지도 살아남기 위한 피난처가 존재한다. 둘째, 원 상태로의 회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는데, 한 달에서 10년이면 충분하다. 셋째, 최소의 피해를 입은 지역으로부터 생물들의 이주는 생물체들의 정상적인 이주 행동과 함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몇몇 동식물의 개체 수나 종들은 그러한 사건으로 멸절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남은 개체들은 새롭게 번성하여 회복될 수 있다.
References
1. John C. Whitcomb and Henry M. Morris, The Genesis Flood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1961), pp. 63-79.
2. M. M. Ellis, 'Detection and Measurement of Stream Pollution' in Lowell E. Keup, William M. Ingram, and Kenneth M. Mackenthun, Biology of Water Pollution (U.S. Dept. of Interior, Federal Water Pollution Control Administration, 1967), pp. 129-185.
3. John C. Briggs, 'A Cretaceous-Tertiary Mass Extinction?' BioScience 41 (1991), pp. 619-624.
4. Ernst Florey, An Introduction to General and Comparative Animal Physiology (Philadelphia, W. B. Saunders Co., 1966), pp. 97-110.
5. Eugene P. Odum, Fundamentals of Ecology (Philadelphia, W. B. Saunders Co., 1971), pp. 328,354.
6. Alex Calhoun, Inland Fisheries Management (State of California , The Resource Agency, Department of Fish and Game, 1966), pp. 194, 375, 448.
7. William A. Anikouchine and R. W. Sternberg, The World Ocean: An Introduction to Oceanography (Englewood Cliffs, N.J., Prentice Hall, Inc., 1973), pp. 215, 223.
8. I. E. Wallen, 'The Direct Effect of Turbidity on Fishes,' Oklahoma Agric. and Mech. College Bulletin 48 (1951), pp. 18-24.
9. Robert C. Wissmar, Allan H. Devol, Ahmad E. Nevissi, James R. Sedell, 'Chemical Changes of Lakes Within the Mount St. Helens Blast Zone,' Science 216 (1982), pp. 175-178.
10. Robert C. Wissmar, Allan H. Devol, James T. Staley, and James R. Sedell, 'Biological Responses of Lakes in the Mount St. Helens Blast Zone,' Science 216 (1981), pp. 178-181.
* Dr. Kenneth Cumming is Professor of Biology and Dean at the ICR Graduate School.
*참조 : 노아 홍수 때 민물고기들을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71
홍수 동안에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http://www.hisark.com/홍수-동안에-민물고기와-바닷물고기는-어떻게
노아 홍수시 민물고기는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0
노아의 방주에 관한 24개의 질문과 답 (FAQ)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1
번역 - 한동대 창조과학연구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222.htm
출처 - ICR, Impact No. 222, December 1991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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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4573|4198|4275|4235|4473|4490|4607|4610|6104|6049|6030|6006|4195|2141|6076|5973|5957|5958|5955|5951|5841|5834|5737|5721|5717|5675|5556|5517|5468|5429|5419|5400|5399|5286|5307|5264|5260|5185|4786|4722|4471|4468
노아홍수의 중요성
창조과학 세미나의 제목을 보면 '진화냐 창조냐?” '지구의 나이?” '생명의 기원” 등과는 달리 과학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노아홍수는 역사적 사실인가?” 하는 주제이다. 창조과학선교회에서 실시하는 창조과학학교에서도 10주간의 과정 가운데 2주나 할애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룬다. 언뜻 보면 성경 전체 중에 작은 한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는듯한 이야기인데 정말로 이것이 그리도 중요한 것일까?
지질학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라고 불리는 '지질계통표”다. 진화론자들이 지구의 역사라고 하면 여지없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이 지질계통표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을 이들 지질계통표를 수십 층으로 세밀히 나누었으나, 지구상에 이들이 그림에서 보듯 수직으로 모든 층을 보여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지질계통표는 화석에 의해 가설된 것인데, 진화론자들이 상상하듯이 화석이 단순한 무척추동물에서 고등한 척추동물까지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은 지구상에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다. 지구상에도 없는 단지 과학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과학의 의례적인(!) 그림이다.
그러나 화석들이 분포하는 양상을 보면 그림처럼 수직적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수평적이다. 화석들은 지표의 퇴적암 속에 '널려있다”는 표현이 오히려 적당하다. 실제로 수평적으로 분포하는 화석들을 진화의 순서에 꿰어 맞춰 수직적으로 과학책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말로 공룡이 사람과 동시대에 살았었는가?”라고 놀란듯한 질문을 받곤 한다. 이러한 질문은 질문자가 지질계통표가 지구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아직까지 화석 가운데 전이화석(어떠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되는 과정의 화석)이 발견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진화가 맞다면 지구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하는 수억 개의 화석에서 당연히 쉽게 관찰되어야만 함에도 말이다. 그리고 이 화석들이 분포하는 것은 수직적이 아니라 지표에 널려있듯이 다분히 수평적이다. 그리고 화석이 만들어 지는 것은 (깊음의 샘들과 하늘의 창이 열리는 노아홍수와 같은) 대격변에 의해서 만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공룡을 비롯한 대부분의 화석들은 지구전체에 있었던 대격변 당시에 동시에 만들어졌어야 한다. 또한 이는 화석들이 살아있을 당시 모두 같은 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노아홍수가 왜 중요한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바로 진화론이 사실이라고 지지하고 있는 '지질계통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지질계통표의 역사는 없다. 오직 노아홍수만이 존재할 뿐이다. 지질계통표의 긴 역사가 단 1년 여 있었던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되는 순간이다! 그러니 노아홍수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는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도 아주 중요하다. '창세기 1장의 하루가 오늘날의 하루인가?” '인류의 기원은?” '생물의 기원은?” '우주의 기원은?” 하는 문제는 과학적 실험을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제한되어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디자인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 전체에 걸쳐 일어났던 노아홍수는 '사건”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수 많은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노아홍수에 대한 확신은 더 소급해 올라가면 홍수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셨던 위의 여러 질문에 대한 확신으로 이끌어 올라간다. 또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타락과 하나님의 저주 등 신학적인 질문에 대하여도 사실로 받아들이는 기폭제 구실을 한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를 포함한 성경 전체에 대한 질문에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41
참고 : 4198|4275|4235|4473|4490|4607|4610|6547|6545|6543|6535|6531|6508|6507|6558|6551|6559|6549|6462|6417|6431|6524|6415|6413|6330|6254|6255|6240|6228|6225|6223|6222|6136|6170|6104|6076|6030|5556|5973|5468|5958|5957|5951|5898|5527|5841|5737|5721|5675|5429|5419|5400|5399|5286|5260|4805|4211|4217|4214|4132|3968|3948|3111|4363|3044|3278|2912|2050|1493|1464|1192|557|2104|512|3032
벨렉의 날에 세상(땅)이 어떻게 나뉘어졌는가?
: 해수면의 상승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How Was the Earth Divided in Peleg's Day?)
창세기 10:25 절과 역대상 1:19 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창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아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 때에 땅이 나뉘었음이요” (대상1:19).
”Two sons were born to Eber; One was named Peleg, because in his time the earth was divided....” (NIV, Genesis 10:25)
벨렉은 홍수 후 수세기를 살았다. 그에 대해서 알려져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어떻게 땅이 나뉘어졌을까? 여기에 세 가지 가능한 의미가 있다. 성경 주석가들은 단지 처음의 두 가지만 언급했었다.
a. 벨렉의 날에 일어난 나눠짐은 바벨탑 사건 후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의 나눠짐이다. (참조. 창11:1-9)
b. 벨렉의 날에 대륙표류(continental drift)가 시작되면서 대륙이 나뉘어졌다.
c. 벨렉의 날에 해수면이 상승되면서 대륙을 나누었다. (해수면이 90 m 정도 낮았다면, 모든 대륙은 연결될 수 있다.1 만약 해수면이 오늘날의 수준으로 상승했다면, 세상(땅)은 물로 나뉘어졌을 것이다.)
1. 벨렉의 날에 언어가 나뉘어졌다.
성경은 ”세상(땅)이 나뉘었음이요 (the earth was divided)”라고 말한다. 땅의 히브리어 단어인 erets 는 나라들(countries), 육지(land), 또는 땅(ground)으로 번역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민족이나 언어가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육지(land)가 나뉘어졌다. 그밖에도 벨렉은 언어가 바벨에서 나뉘어진 후 아마도 두 세대를 살았다.2
2. 벨렉의 날에 대륙이 갈라지고, 대륙표류가 시작되었다.
만약 이것이 일어났다면, 무엇이 갈라졌는가? 더 곤란한 것은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는가? 대륙이 움직이고 갈라지기 위해서는 지구를 뒤흔드는 힘이 요구된다. 판구조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지질학적으로 대륙들은 자주 갈라져왔다고 믿는다. 암석의 두꺼운 판들이 갈라지고 이동하기 위해서는, 그 판들은 엄청난 마찰력을 극복하고 다른 판들 위로 수평적으로 미끌어져 올라가야 한다.3 동시에 또 다른 힘에 의해 판들이 고무줄처럼 끊어질 때까지 판들을 잡아 당겨져야만 한다. 판구조론은 이러한 초거대한 힘의 어떤 것도 제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대륙이 갈라졌다고 한다면, 안전하게 대륙이 움직일 수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대륙이 갈라지고 움직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에 필요한 힘과 에너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수천년 안에 전체 대서양이 지판 위로 지판이 미끌어짐에 의해 열려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전지구적 재난과 화산활동 등이 동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질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이러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고대와 현대의 모든 문명들 속에 분명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는 전지구적인 격변은 오로지 홍수(flood) 이다).
만일 대륙이 분리되어 나갔다면, 그들은 훨씬 더 조각 맞추기처럼 잘 들어맞아야 할 것이다. 대중들은 수십년동안 대륙들이 서로 잘 들어맞는다는 믿음을 잘못 이해하여 왔다. 실제로, 네 개의 큰 지도의 비틀림은 심사숙고하여 만들어졌다. 대서양의 경계 대륙들은 대서양 중앙해령의 기저부분과 더 잘 들어맞는다. Hydroplate theory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3. 벨렉의 날에 해수면이 상승하여 대륙을 나눴다.
성경에 peleg 이란 단어는 3 번이나 동사로 사용되었다. 2 번의 사용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뉘었다' 로서 단순히 번역되었다.(창10:25, 역대상1:19). 세 번째 사용은 물에 의한 나뉘어짐 이었다. (욥38:25). Peleg은 10 예에서 보통 명사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항상 물(water)을 의미하고 있었다. 미국 표준새번역 성경(The New American Standard Bible)은 그것을 8 번은 '강들(streams)' 로, 한 번은 '강(stream)' 으로, 한 번은 '수로들(channels)' 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peleg은 물에 의한 나누어짐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영어에 archipelago (바다를 가진, 여러 섬들로 나누어진, 군도) 라는 단어와 pelagic (원양의, 대양에 사는, 바다와 관련된) 이란 단어가 있다. Pelagic sediments 또는 Pelagic deposits 이란 말은 대양바닥에 쌓인 퇴적물을 말한다. Pelagic 은 자주 바다에서 발견되는 생물과 관계되어 있다. Bathypelagic 이란 단어는 깊은 바다에서 살거나 관계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접두사로 pelag은 바다를 의미한다.
히브리어 교수인 Bernard Northrup 박사는, peleg 은 원래 물에 의해 나누어짐을 의미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4 그 의미는 노아 후손의 세 아들의 언어 가계에 묻혀있었다. 따라서, 그 의미는 아마도 바벨에서의 언어 분화 이전에 있었다. Northrup 은 말한다 :
[Peleg, palag, or PLG]는 자주 물과 관련된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히브리, 콥틱(Coptic), 에티오피아, 그리스에서 물이 흘러가는 강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어원은 메소포타미아의 땅들을 경작하는데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는 관개수로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리스어(노아의 세 아들 중 야벳 계열)의 사용된 조사에서 PL과 PLG의 어근은 많은 예에서 바다(ocean)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바다 또는 호수를 형성하다”, ”홍수가 일어난 장소 또는 물 아래가 된 장소”, ”바다를 건너서”, ”넓은 바다”, ”바다가 되다”, ”넓은 바다 위에”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바다사람(seaman)과 배(ship)로도 사용되었다.
접미사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범람(an inundation)' 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바다가 되다', '바다의 생물체', '바다 위를 걷는 사람', '넓은 바다로 항해하기 또는 나가기', '공해에 모래주머니로 쌓여진 항구', 그리고 많은 경우에 '넓은 바다 자체', '바다로 가기 또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기', '바다 위에 떠다님', '바다가 만들어지다', '어떤 것이 바다로, 또는 홍수로 변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어에서 사용된 모든 예에 의하면, 그것은 바다를 의미함이 분명하다.'
명백하게, 지구는 벨렉의 날에 물에 의해서 나뉘어졌다. 수판이론(Hydroplate theory)은 어떻게 나뉘어졌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홍수 직후에는, 해수면이 오늘날 보다 수마일 낮았다. 왜냐하면 지하공간에 갖혀 있던 물층의 바닥은 지표면보다 16 km 정도 아래이었다. 부서지고, 두꺼워지고, 구부러지고, 퇴적물이 쌓인 대륙은 홍수 후 수세기에 걸쳐 맨틀로 가라앉았고, 해수면은 보상적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해수면은 오늘날의 높이에 도달했다. (자세한 내용과 증거들은 위의 웹페이지의 Part II: Fountains of the Great Deep, The hydroplate theory를 참조)
홍수 후 수 세기 동안 해수면이 낮았다는 것은, 오늘날의 대륙과 섬들로 어떻게 사람과 동물들이 이동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6 홍수 후 하나님이 사람과 동물들에게 내리신 명령은 전 세계로 흩어져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이었다. (창9:1, 11:4-9).
만약 홍수 후에도 해수면이 오늘날과 같았다면, 하나님의 첫 명령을 받들어 땅에 충만하여 재번성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겠지만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님 명령의 지혜와 긴급성은 해수면이 얼마 후에 올라갔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았을 때 분명해진다. 전 지구로 이주할 수 있는 '기회의 창' 은 벨렉의 날에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족장들의 연대기 표에 의하면 (위의 웹페이지 Part III: Frequently Asked Questions에서, According to the Bible, When Was Adam Created? 참조) 벨렉은 홍수 후 100 년에 태어나 홍수 후 339 년에 죽었다. 그러므로 벨렉이나, 그의 이름을 부른 자들은 해수면의 상승에 의해서 땅이 나뉘어졌음을 발견했던 세계적인 여행가나 탐험가였을 수도 있다. 확실히 노아의 초기 후손들은 배를 건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홍수에 의해서 세상이 극적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탐험가적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들은 호기심과 지식을 축적하기에 충분한 오래된 수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뛰어나게 정확하고, 권위있는 고대 지도들에서 (일예로 피리레이스의 지도 등, 역자주) 지금은 물로 덮여있는 섬들이나, 빙산으로 덮여지지 않은 남극대륙의 해안선이 정확하게 그려져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7 그 지도의 제작자는 해수면이 낮을 때, 그리고 남극대륙의 해안선이 얼음으로 뒤덮여지기 전에 탐험을 했었음이 틀림없다. 단지 최근에 와서야 첨단기술의 발달에 의해, 얼음 밑의 대륙의 해안선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낮아진 해수면이 단지 빙하기 동안 대륙에 얼음이 만들어짐에 의한 결과라면, 해수면은 가까스로 모든 대륙이 연결되어질 정도인 90 m 정도 낮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빙하시대의 정점에서 남극대륙은 얼음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러므로, 빙하시대는 고대지도와 대륙의 연결을 동시에 설명할 수 없다. 홍수는 이 둘을 설명할 수 있다. (수판이론은 빙하시대가 대홍수의 결과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
강한 언어학적, 그리고 과학적인 논의들은 창세기 10:25절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두 가지 해석 즉, 1)언어의 분화에 의한 민족들의 나눠짐 2)대륙표류의 시작을 거부하고 있다. 대신 이 연구는 벨렉의 날에 해수면의 상승으로 땅이 나뉘어졌음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그것들은 우리의 조상들이 홍수 후에 곧 이동을 시작했고, 탐험을 시작했음을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참조 : Scriptural constraints on the variation of water level during the Genesis Flood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069/
‘In Peleg’s days, the earth was divided’: What does this mea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420/
Flood models: the need for an integrated approac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19
References and Notes
1 . Except for narrow bodies of water, North America would join Asia at the Bering Strait, Australia would connect to Asia along a 1,000-mile-wide land bridge, Europe would join North America via Greenland, and Antarctica would touch South America.
2 . Nimrod, who established Babel, lived three generations after Noah (Genesis 10:8-10), while Peleg lived five generations after Noah.
3 . The slab must first separate from its foundation before sliding and stretching can begin. At the extreme pressures pressing a continent onto its foundation, 'fusing” would occur. Atoms on one side of the slab-foundation interface would bond with atoms on the other side in a crystalline, minimum-energy structure. Breaking that seal by some shearing action along a nearly horizontal plane would require precise, herculean forces.
Some speculate that large asteroid impacts or volcanic eruptions broke the continents. If such global disasters occurred, consider the vast collateral damage. Had some of today’s fragile life forms been anywhere on earth during such a catastrophe, they wouldn’t be here today. Also, most continental rock is far below the surface, under extreme compression. That compression prevents spreading or breaking. These proposals have many other problems.
4 . Bernard Northrup, 'Continental Drift and the Fossil Record,” Repossess the Land (Minneapolis, Minnesota: Bible Science Association, 1979), pp. 165-166.
5 . Three lines of evidence also support the conclusion that sea level was several miles lower than today: submarine canyons, tablemounts, and coral deposits almost one mile below Enewetak Atoll. For details, see pages 95-129.
A drastically lowered sea level after the flood surprises most people, because it has always been difficult to see how water covering all the earth’s mountains could go anywhere, let alone miles below today’s sea level. Once one understands where the flood waters came from, understanding where they went becomes easy.
6 . Legends of the Hopi indians tell how their ancestors came to the Americas. After a gigantic flood, their ancestors used many family-sized rafts and 'island hopped” for many years north and east to the Americas. The steep coast line [today’s continental slope] forced them along the coast until they could land. Rising water later drowned the chain of islands. [See Frank Waters, Book of the Hopi (New York: Penguin Books, 1963), pp. ix-27.] This seems to describe the Mid-Oceanic Ridge in the Pacific as a major corridor to the east. It would explain many things, including why the earliest known settlers in the Western Hemisphere lived in Central and South America. (This legend and explanation were brought to my attention by Kevin P. Kluetz on 4 June 1996.)
7 . Charles H. Hapgood, Maps of the Ancient Sea Kings (New York: Chilton Books, 1966; reprint edition, Kempton, Illinois: Adventures Unlimited Press, 199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cience.com/onlinebook/FAQ213.html#wp1615695
출처 - CSC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8
참고 : 1407|1415|1417|1419|1420|1422|1429|1436|1437|516|930|3372
노아의 홍수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점들
(Points to Ponder About the Flood)
성경은 베드로후서 3:3-8에서, 말세에 성경을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 창조와 홍수에 대해 ”부러 잊으려(willingly ignorant)”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과학과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 역사에서 가장 큰 두 가지 사건이었던 창조(creation)와 홍수(flood)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보다 많은 정보를 위해서는 창조 세미나 테이프 2를 보라).
1. 전 세계의 모든 지역으로부터 250 여개 이상 홍수 전설들이 발견되고 있다. 대부분이 창세기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참조: 세계의 홍수전설 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68)
2. 노아 방주는 어떤 곳으로 항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물에 뜨기 위해서 건조되었다. 방주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노아의 방주는 선박(boat) 형태가 아니라, '바지선(barge)' 형태이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 형태는 화물운반 능력을 매우 증가시킬 수 있다. 기롱하는 자들은 배의 뒤틀림(twisting)과 굽어짐(flexing)의 문제 때문에 가장 큰 선박도 90 m 미만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인 선박들은 바람을 이용해 항해할 수 있는 거대한 돛과 돛대(masts)를 가지고 있다. 노아의 방주는 이러한 것들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틀리는 압력을 훨씬 적게 받았을 것이다. (참조: 노아의 방주에 관한 24개의 질문과 답.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1)
3. 작은 규빗(팔굼치에서 손가락 끝까지 길이)을 사용하더라도(나는 183cm의 키에, 53cm의 규빗을 가지고 있다), 방주는 태워야할 동물, 사람, 먹이와 여분의 방들을 가질 만큼 충분했다.
4. 길이와 폭의 비율인 6 : 1 은 오늘날의 선박 건조 시에도 자주 사용되는 비율이다. 이 비율은 폭풍우 속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상의 비율이다.
5. 방주는 중앙부에 '문풀(moon-pool, 심해굴착선과 같이 중앙의 가운데가 빈 원통상 설비)'을 가졌을 수도 있다. 거대한 선박들은 바닥 중앙에 선박 안으로 확장된 벽을 가진 하나의 구멍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갖추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그것은 선박이 물마루에서 물이 구멍을 통해 위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것은 긴 선박에서 변형력(strain)을 감소시키는데 필요했을 것이다.
2)올라가고, 내려가는 물은 펌프의 피스톤처럼 작용하여 방주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안으로 끌어 들이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방주 안의 동물들로부터 발생되는 좋지 않은 가스들을 축적을 막았을 것이다.
3)구멍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바다로 쓰레기들을 버릴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6. 노아의 방주는 거칠은 바다에서 안정성을 더욱 유지하기 위해서, 양 측면에 커다란 돌 닻(anchor)들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돌 닻으로 추정되는 돌들 여러 개가 방주가 도착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참조: 노아의 방주를 찾아서 2.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58)
7. 노아는 950년을 살았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매우 컸을 것으로 믿고 있다. 3.3m 이상의 키를 가졌을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뼈들이 발견되었다! (참조: 과거 지구상에 거인들이 있었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1)
만약 노아도 매우 키가 컸다면, 그의 규빗은 매우 컸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방주가 좀 더 컸을 수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세미나 테이프 2편을 보라).
8. 하나님은 노아에게 각 종(species)대로가 아니라, 각 종류(kind)대로 2 마리씩을 (어떤 것은 7 마리) 태우라고 명하셨다. 노아는 늑대, 코요테, 여우, 잡견.. 등을 포함할 수 있는 개 종류(dog kind) 2 마리를 태웠을 것이다. 이 '종류” 라는 집단은 오늘날 분류학상의 아마도 과(family) 정도에 해당했을 것이며, 이것은 방주에 타야할 동물들의 수를 매우 감소시켰을 것이다. 동물들은 홍수 이후 지난 4400여년 동안 많은 품종들(varieties)로 다양화되었다. 이 다양화는 진화론자들이 가르치고 있는 위대한 주장들과 유사한 것이 아니다.(진화론들은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아메바가 코끼리로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참조: 핀치새의 부리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8,
종의 진화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0)
9. 노아는 모든 동물들을 붙잡아올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은 동물들을 노아 앞으로 나오게 하셨다. (창세기 6:20 ”...네게로 나아오리니”).
10. 단지 육상에 거주하며, 코로 호흡을 하는 동물들만 방주에 태워졌다. (창세기 7:15,22). 노아는 수많은 곤충(insects) 종들을 태울 필요가 없었다.
11. 많은 동물들은 열악한 날씨 동안에는 잠을 자거나, 동면하거나, 매우 비활동적이다. 이 경우 노아 식구들은 방주 안의 동물들을 돌보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12. 성경 기록에 따르면 모든 동물(그리고 사람)들은 홍수 이전에, 그리고 홍수 동안에 채식을 하고 있었다. (창세기 1:20-30, 9:3). 따라서 육식은 노아 홍수 이후에 생겨났고, 방주 안에서 육식동물은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비판가들의 질문은 무효가 되는 것이다.
13. 아마도 홍수 이전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보다 더 현명하고 더 앞서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직접 접촉했던 아담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수명이 매우 길었기 때문에, 많은 세대 동안 지식이나 기술들을 축적하고 전수하여줌으로서 홍수 이전 사람들의 지식 기반은 매우 확장되었을 것이다.
14. 성경은 가장 높은 산도 15 규빗이나 물들로 덮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방주 높이의 반이다. 방주는 홍수 동안 바닥이 부딪치는 것으로부터 안전했다.
15. 오늘날 존재하는 높은 산들은 홍수 이후에 산들이 솟아오르고 골짜기가 내려갈 때까지(시편 104:5-9, 창세기 8:3-8) 존재하지 않았다. 8,000m를 넘는 에베레스트 산도 대륙의 주요 산맥들도 홍수 말기 또는 이후에 격변적인 판구조운동으로 솟아 올랐다.
16. 만약 지구의 표면을 평탄하게 만든다면, 2.4 km(8,000 피트) 깊이의 물이 지구를 뒤덮을 만큼 바다에는 충분한 물이 있다.
17. 최근 방주를 보았다는 많은 주장들이 성경에 방주가 머물렀다고 기록되어있는 지역에서 제기되고 있다. 방주가 있는 실제적 장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기본적인 생각이 있다. (더 많은 정보를 위해서는 나의 창조 세미나 3편을 보라). 이 두 입장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들을 소비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방주는 눈으로 덮인 채 아라랏산 위에 있다고 믿고 있다. (CBS는 1993년에 이 장소에 대해 1시간 짜리 특집방송을 내보냈었다).
다른 그룹은 방주는 아라랏산 남쪽 17마일에 '여덟 계곡(the valley of eight)'이라 불리는 계곡에 있다고 믿고 있다 (여덟은 방주에 탄 사람의 수). 성경의 기록에는 방주는 아라랏 산들(mountains, 영어 성경에는 복수)에 머물렀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아라랏산 자체에 머물렀다고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참조 : 노아의 방주를 찾아서 1.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55)
18. 대륙은 홍수 이후 100-300 년까지 육지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창세기 10:25). 사람과 동물들은 그때까지 지구상 어느 곳이라도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보다 많은 정보는 세미나 6 편을 보라). (참조: 노아의 홍수에 관한 16 개의 질문과 답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0, 벨렉의 날에 세상(땅)이 어떻게 나뉘어 졌는가?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8)
19. 에베레스트산의 가장 높은 900m (7,930-8,840m, 26,000-29,000feet)는 바다 조개와 다른 대양서식 동물들로 채워진 퇴적암으로 구성되어있다. (참조: 뒤틀린 땅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66)
20. 퇴적암은 전 세계적으로 발견된다. 퇴적암은 물 속에서 형성된다.
21. 닫혀있는 상태에서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화석화된 조개들은 (심지어 에베레스트산 꼭대기 부근에서도) 그들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빠르게 묻혔음을 입증하고 있다. (참조: 빠르게 소멸되는 모습이 남아있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50, 빠른 화석화의 증거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57)
22. 휘어진 암석 지층들, 화석 무덤들, 다지층 화석들은 홍수에 의해서 가장 잘 설명된다. (참조: 다지층 화석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56, 그랜드 캐년의 지층은 지질시대가 허구임을 보여준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62)
23. 사람들은 홍수를 믿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홍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3:3-8).
*참조 : Where did all the water go?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938/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홍수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1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방주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rdino.com/cse.asp?pg=articles&specific=5
출처 -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817
참고 : 4198|4275|4235|4473|4490|4607|4610|6104|6049|6030|6006|4195|2141|6076|5973|5957|5958|5955|5951|5841|5834|5737|5721|5717|5675|5556|5517|5468|5429|5419|5400|5399|5286|5307|5264|5260|5185|4786|4722|4471|4468|6547|6545|6543|6535|6531|6508|6507|6558|6551|6559|6549|6462|6417|6431|6524|6415|6413|6330|6254|6255|6240|6228|6225|6223|6222|6136|6170
비아미 족의 전설들 (The BIAMI Legends)
: 파푸아 뉴기니 식인종족에게 전해져 온 창조와 홍수 이야기
Tom Hoey
비아미(Biami) 족은 파푸아 뉴기니(Papua New Guinea)의 서쪽 지방에서 살고 있는 종족으로 약 4000-5000 명 정도의 인구 수를 가지고 있다. 14년 전(1970년)까지 그들은 파푸아 뉴기니의 마지막 식인 종족 이었다. 13년 전 톰호이(Tom Hoey)와 다른 2명의 선교사가 이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언어를 배운 후, 비아미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와 노아 홍수에 대한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톰호이와 다른 선교사들은 비아미족이 4000년 이전의 바벨탑을 떠나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이 전승되어온 이야기들이 창조주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원주민들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준비시켜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지난 13년 동안, 비아미 족의 많은 수가 크리스챤이 되었다. 선교사들이 들어간 후 13년 동안에 그들은 식인습관과 야만적인 관습들을 버렸고, 비아미 교회는 매우 강하게 부흥되어 현재 15개 이상의 지역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현재 교회의 지도자는 크리스천이 되기 전에 종족의 지도자급 사냥꾼이었다.
비아미의 창조 이야기
”처음 세상에는 단지 남자들만 살고 있었다.[1] 세상의 첫 번째 남자는[2] 한 작은 야자수가 계속해서 우는 것을 들었다. 남자는 작은 야자 나무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자신을 위해 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칼을 가져와[3] 작은 야자수를 여자의 모양으로 조각하였다.[4] 그는 여자의 기관들을 모두 조각하였다.[5] 그리고 그가 나무에 조각한 코 안으로 생명의 호흡을[6] 불어넣었다. 여자는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각주 :
[1]. 비아미 족의 전승되어온 이야기에는 남자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관해서는 꽤 모호했다. 창세기에서는 매우 명확하다 - 하나님은 흙(dust)으로 아담을 만드셨다.
[2]. 비아미 족의 이야기에 최초에 이 세상에 어떤 다른 남자들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 남자가 있었다. 창세기는 확실하다 - 다른 어떠한 남자도 없었다.
[3]. 칼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종류의 날카로운 도구를 의미할 수도 있다.
[4]. 야자수 나무(palm tree)는 여자 또는 소녀의 형체로 조각되었을 것이다.
[5]. 여성 기관들의 조각에 대한 묘사는 전설들의 일부에서 어느 정도 외설스럽다.
[6]. 비아미 족들이 창조주 하나님이 최초의 남자인 아담에게 생명의 호흡을 어떻게 불어넣었는지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을 들었을 때, 그들은 남자의 기원에 관한 성경의 기록이 그들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 강한 친근감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의 매우 명확한 세부사항에 대해서 그렇게 확신하지는 않았다.
비아미의 홍수
”한때 전 세상을 덮은 거대한 홍수가 있었다. 홍수는 비아미의 조상만을 제외하고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을 쓸어버렸다.[1] 그들의 조상들은 고비아(Gobia)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나무의 껍질들을 꿰어 망태기(string bags)를 만들었다. 그들은 농작물과 그들의 모든 동물들, 그들의 개들, 그리고 그들의 돼지들을 나무에 실었다. 홍수 물이 땅 위로 점점 오르자, 사람들은 나무 위로 더 올라갔다. 나무는 물이 올라가면서 물 위로 자랐기 때문에, 그들은 이 나무의 가지에서 안전하였다.
물들이 전 세계의 표면에서 물러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나무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땅들은 진흙 투성이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농작물들을 심었고, 동물들은 번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무로부터 멀리 나아갔고, 땅들에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나무 아래로 내려왔던 사람들은 사모스, 쿠보, 고바시스, 에토로의 조상들이 되었다.”
각주 : 1. 비아미 족은 그 나무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비아미 족과 그들 주변의 모든 다른 종족들의 조상들이었으며, 그들은 백인 선교사가 오기 전까지 어떠한 다른 사람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고 믿고 있었다.
2. 창세기와 이 이야기의 유사점에 주목하라.
.거대한 홍수가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은 죽었다.
.그들은 모든 동물들과 먹을 식물들을 준비했다.
.그들은 홍수 이후 땅에 재분포 되었다.
3. 이 이야기는 노아 홍수와 바벨탑에 대한 성경 이야기의 확실성에 대한 인류학적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참조 : A possible post-Flood human migration rout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1/j19_1_65-72.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magazines/docs/v7n2_biami.asp ,
출처 - Creation 7(2):12–13, October 1984.
대홍수에 의한 격변의 증거
: 여러 민족의 전설과 세계 도처에 남아있는 대홍수의 흔적
임번삼
이러한 격변설이 전 지구적인 사건이었다면, 그리고 당시 사람의 수명이 수백 세였다면 홍수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왔을 것이며, 세계 도처에 많은 증거들을 남겼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도처에, 그리고 여러 민족의 전설 속에 지구적인 대홍수에 관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대홍수 전설들
현재 지구상의 200여 부족이 270여 종의 홍수에 관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표 3). 그 지역은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다는 바벨로니아 지방에서 시작하여 그리스,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이집트, 중국, 인도, 페루, 브라질, 하와이, 피지, 수마트라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망라한다. 그 내용은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공통된 것은 홍수에 의한 우주적 격변, 구원받은 인종의 씨앗, 방주의 준비, 인류의 범죄, 신의 노여움, 구원받은 가족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기술내용은 노아홍수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Randy L. Wysong; Creation-Evolution: The Controversy, p 386, Inquiry Press, Midland, Michigan, 1978]
후레이져 (James Frazer, 1918)는 <구약성서 속의 민간전승> (Folklore in the Old Testament)에서 전 세계 지역에서 138 개의 홍수전설을 수집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네 가지의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째는 홍수를 야기한 도덕적 문란이며, 둘째는 신이 사람에게 홍수를 미리 예보했다는 사실이고, 셋째는 구원받은 몇 사람을 제외한 전 인류의 멸절과 마지막으로 동물들이 홍수의 시작과 종료를 알려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 밖에 이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큰 배가 동원되었다는 내용도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홍수전설을 연구했던 커스탄스(1979) 역시 각 나라의 전설 속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하였다. 홍수의 원인이 인간의 타락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홍수에 대한 예고가 있었다. 인류가 모두 멸절했으나 일부가 생존하였고, 현생인류는 그 생존자의 후손이며, 홍수를 전후하여 동물들(특히 새들)이 홍수의 진척상황을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홍수 후에 주인공들이 신께 희생 제사를 드렸다는 내용 등이다. [Arthur C. Custance; Flood Traditions of The World, The Flood: Local or Global?, pp 67-106, Grand Rapids, MI, 1979]
홍수에서 인류를 구원한 사람의 이름을 중국 전설에서는 ‘누와 (Nu-wah)’ 라 하였다. 중국 남부의 고산지방에 사는 묘족(苗族 Miao)들은 지금도 제사 때마다 선조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전통적인 주술문을 낭송하고 있는 데, 그 내용 역시 노아의 홍수장면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컨데, 묘족의 전승은 대홍수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흙모래 섞인 비가 40 일간 쏟아져 내렸도다. 물은 산들과 산맥을 넘쳐 흘렀도다. 산채 같은 홍수가 계곡과 웅덩이에 뛰어 들었도다. 세계에는 발붙일만한 곳도 없었도다. 사람마다 좌절하며 무기력하게 되고 멸망케 되었도다...그러나, 족장 누아는 올바른 사람이었도다....매우 폭이 넓은 방주를 만들었도다....그와 함께 승선한 동물들은 암수 한 쌍이었도다...그 날이 이르자 물은 멀리 물러갔도다.” [Edgar Traux 저, 임번삼 역; 묘족에게 전승되어 온 창조이야기, 창조, 78호(4,5,6월호), p 4-5, 한국창조과학회, 1992]
(2) 길가메쉬 서사시
대영제국의 런던박물관에서 <서아시아 계형문자>(5권)를 저술한 로린손(Hery Rolinson 1810-1895)의 조수로 일하던 인쇄공출신의 스미스(George Smith 1840-1876)는 36세로 요절했지만, 불후의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쐐기문자의 기록에서 번역한 앗슈르바니팔의 역사>를 저술하여 성서고고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어느 날 라쌈(1852)이라는 사람이 니느웨의 앗슈르바니팔(Assurbanipal 669-627 BC)의 왕실서고에서 발굴한 24,000장에 달하는 방대한 점토판문서(627 BC)의 길가메쉬 서사시(The Epics of Gilgamesh) 11장(326행)을 읽다가 몹시 흥분했다고 전한다. 이 사진은 11장의 토판사진과 당시에 살았던 갈데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사진 11).
스미스가 밝힌 바에 의하면, 이 서사시는 주인공인 영웅 길가매쉬가 수메르의 우룩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생명나무를 찾아 배를 타고 출가하여 겪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커다란 뱀이 생명나무를 삼키자 신은 대노하여 홍수를 일으킨다. 그런데, 11장에 나오는 홍수 이야기가 창세기의 노아홍수의 기록과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치한다. [N.K. Sandars; The Story of The Flood, The Epic of Gilgamesh, Chapter 5, Penguin Books, London, 1972]
(3) 에블라의 창조이야기
페티나토(Giovani Petinato 981)는 <에블라의 고문서>(Archives of Ebla)에서 에블라 지역에서 114개의 2개 국어 번역사전이 발견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모세보다 천여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므로, 이러한 증거만으로도 모세 때에 문자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개발가설(開發假說)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에블라의 창조이야기는 기원전 16세기의 다른 바벨론의 기록들(Enuma Elish, Epic of Atrahasis)과는 매우 다르다고 한다. 이러한 증거들은 진화론적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도 창세기가 쓰여지기 천여년 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지구가 없었을 때에 그것을 만드셨고 낮의 빛이 없었을 때 그것을 만드셨고 월광이 아직 없었을 때 계셨도다.'
(4) 한자의 증언과 천단(天壇)
중국 한자는 삼황오제 시절 황제의 신하 창힐 (蒼頡, Tsieng Chih)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Hsin Cheng Yu; Ancient Chinese History, p 6, Taiwan Commercial Press, Taipei, 1963]. 한자는 처음에는 상형문자로 출발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표의문자(뜻글자)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상형 및 표의문자 속에 창세기의 사건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이 싱가폴의 강목사(C.H. Kang)와 미국의 생리학자인 넬슨 여사(C.H. Kang & E.R. Nelson)가 260여개의 한자를 풀이함으로써 밝혀지게 되었다. [하현일 역; 창세기와 중국문자, 인쇄계사출판국, 서울, 1984, 원문은 The Discovery of Genesis, Thai Watana Panich Publishing Co, Bangkok, 1979]
이러한 창세기의 내용은 진시황 때 이사(李斯 220 BC)가 한자를 인장문자로 통일시키기 이전의 고대한자 속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중국문자는 전설적인 은나라(1711-1122 BC 추정)의 폐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甲骨文字)와 청동기 그릇의 안쪽에 새겨진 청동글자이다. 지금의 한자는 허신(許愼 86 BC)이 표의문자를 분석하여 집필한 설문문자(說文文字 120 AD)를 토대로 하고 있다. [전광호, 우재태역; 고대한자 속에 감추어진 창세기 이야기, pp 26-29, 인천, 1996, 원문은 Etherl R. Nelson, Richard E. Broadberry; Genesis and The Mystery: Confucius Couldn't Solve, CPH, St. Louis, Revised, 1994]
이 책들에 의하면, 공자(551-479 BC)가 쓴 서경(書經)에 기록하기를 순임금(2230 BC)이 '상제께 제사를 드렸다”고 했으며 [James Legge; The Chinese Classics(vol. 3), The Shoo King:Cannon of Shoon, Southern Material Center Inc. Taipei, pp 33-34, 1983] 그 내용은 창세기의 내용과 유사한 것이라 한다. 황제가 일년에 두 번씩 드렸다는 국경제사 봉선제(封禪祭 Sacrifice Offering)는 은나라 때부터 2천년간 계속되었으나, 기원전 6세기경부터 도교를 비롯한 민간종교가 등장하고, 기원전 3세기 경에 진시황의 분서갱유, 그리고 1세기 경에는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옴으로써 다신론이나 범신론적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15세기에 이르러 청조(淸朝)는 다시 북경남쪽에 천단(天壇 1420)을 만들고, 황천상제(皇天上帝)께 제사를 지냈다(그림 15). 그 후(1539), 천단의 남쪽에는 75미터의 3층 제단을 세우고 숫소를 번제로 드리고 주문을 외우며 제사를 지내어 오다가, 이 제사의식이 청나라가 망하면서(1911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한다.
넬슨 등이 저술한 책에 의하면 263자의 한자 속에 창세기의 기록이 내포된 한자들이 나오는 데, 그 중 몇 자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노아의 여덟(八) 식구(口)가 대홍수를 피하여 탔던 방주(舟)는 배선(船)자에 잘 나타나 있다. 홍수의 홍(洪)자는 여덟 명(八)이 하나로(一) 연합하여(手) 홍수(水)를 맞은 사실을 나타낸다. 떠다닐 연(沿)자는 여덟(八) 식구(口)가 물(水)위에 떠다녔음을 의미한다. 노아가족들(八)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이 낮에 사람들이 일하러(工) 나가 텅빈 상태를 공(空)이라 고증한다. 즉, 여덟 사람이 한 지붕아래 있었던 동굴(穴)이 일(工)을 하러 나가면 텅 비게 된다(空)는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하나님께 제사드린 희생(犧牲)제물은 소(牛)나 양(羊)중에서 좋은 것(秀)으로 골라 창(戈)으로 죽여서 드리는 번제였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어린양(羊) 중에서 가장 좋은 것(秀)을 창으로 잡아(戈) 희생제를 드릴 때에 의롭다(義)고 칭함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하현일 역; ibid, pp 181-190]
(5) 중동지방의 지명들
지명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노아의 홍수기사에 나오는 아라랏산은 옛 지명 그대로이다. 산 주변에 사는 원주민들은 자기들은 노아의 후손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토판문자가 만들어졌고, 길가메쉬 서사시가 기록된 바벨론 지역(지금의 이라크)의 두 강의 이름도 창세기에 나오듯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히브리어로 힛데겔)로 불리우고 있다. 역시 창세기에 나오는 홍수 전후의 수많은 중동지역의 지명과 족속들, 노아의 10대손 아브라함이 살았다는 갈데아 우르(Ur)와 하란(Haran)이라는 성경에 나오는 옛 지명도 오늘날 그대로 남아 옛날의 역사를 무언으로 증언하고 있다.
(6) 노아방주의 발견
창세기에 기록된대로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해발 5,160m)의 정상부분 어딘가에 묻혀 있을 가능성에 대하여 많은 탐험가들이 발굴 작업에 나섰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경우만 하여도 1856년 이래 23회에 200명 이상의 탐험가들이 빙하 속에 묻힌 방주를 발견했다고 보고하였다. 그리고, 1883년에 터키정부도 노아의 방주를 발견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창세기에 기록된 4-5천년 전의 노아의 방주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이 판명되는 의미 외에도 오랜 전설적 사건이 현실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것이었다.
아라랏산의 정상은 두 봉우리(5,160m와 5,126m)로 구성되어 있고, 두 봉우리 사이에는 거대한 빙하가 있으며, 일년내내 강풍이 휘몰아치기 때문에 그 속에 묻힌 방주를 찾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한다. 반면에, 그러한 추위 때문에 지금까지도 방주가 보존되어 왔을 것으로 추측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탐험가들이 집중적으로 탐색하는 지역이 터키, 러시아의 국경선이 만나는 아르메니아의 아그리 다기(Agri Dagi)지역이다. [William H. Stiebing; Ancient Astrounauts, Cosmic Collisins and Other Popular Thorie About Man's Past, Prometheus Books, pp 22-23, Buffalo, NY, 1984], [Lloyd R. Bailey; Noah: The Person and the Story in History and Tradition, p 72, University of South Caliornia Press, 1989]
이러한 방주에 대한 증언은 매우 긴 역사를 가진다. 유대인 출신의 로마의 역사가인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를 비롯하여, 살라미스의 주교인 살라미스(4C), 초대교회의 교부인 크리소스톰, 중세기의 마르코 폴로(15C), 올리어리우스(Adam Olearius 1662), 윌리엄 휘스튼(1737), 에스토니아의 도르팟대학 교수인 패롯(Friedrich Parrot 1829), 터키주재 영국대사인 브라이스(James Bryce 1876) 등이 방주의 존재를 증언했거나, 직접 등정하여 확인했다고 말하고 있다. 터키정부는 지진(1883.5.2)으로 파괴된 그 지역을 영국대사관원들과 같이 조사하던 중 지상으로 4-50피트가 솟아 오른 거대한 목재선박의 구조물을 발견하고 노아의 방주라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The British Prophetic Messenger, Summer, 1886], [The Chicago Tribune,August 10, 1983], [New York Herald, August 10, 1883]
네스토리아파의 지도자인 존 죠셉(John Joseph, 1887)은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방주를 목격했으며(1887.4.25), 그의 이야기는 친구인 코언(1939)에 의해 상세히 기술되었다. [Frederick B. Coan; Yesterdays in Persia and Kurdistan, pp 163-165, Claremont: Saunders Studio Press, 1939]. 죠셒은 세계종교회의 의장인 배로우스의 초청으로 시카고 박람회에서 탐사결과를 보고하였다(1893). 그 때에 그는 말하기를 방주는 길이가 300야드에 100피트의 높이이며, 방주의 한 쪽 끝부분이 파손되어 있었다고 하였다. [Charles Beritz; The Lost Ship of Noah: In Search of the Ark at Ararat, p 26, G.P. Putnam's Son, New York, 1987] 벨지움 금융인들의 지원으로 죠셒은 방주의 일부를 분해하여 시카고 박람회장으로 옮기고자 했으나, 터키정부의 입국거부로 실행되지 못했다고 한다. [Tim La Haye, John C. Morries; The Ark on Ararat, Creation Life Publishers, El Cajon, Chicago, p 26, 1976]
20세기에도 탐험 활동은 계속되었다. 아르메니아 출신의 미국인 하고피안(George Hagopian, 1902-10)은 돌처럼 굳은 방주를 목격했다고 했으며(William H. Stiebing, 1984), 제정러시아의 로스코비츠키(Vladimir Roskovitsky, 1916)는 아라랏산에서 선체의 1/4이 물속에 잠긴 전투함 크기의 물체를 발견했다고 보고하였다. [Vladimir Roskovitsky; Noah's Ark Found, The New Eden, Los Angeles, 1940 cited by La Haye & Morries, The Ark on Ararat, pp 76-70, 1976]. 이러한 보고를 받은 러시아 황제인 니콜라스 2세는 150명의 군인들을 보내어 방주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에 대해 백러시아군의 19연대 연대장이었던 쿠오 대령(Col. Alexander Koor, 1915-16)은 자볼로츠키 소위가 아라랏산의 두 봉우리 사이의 등마루에서 처음으로 방주를 발견했다고 증언했으며 [Kelly L. Segraves; Search for Noah's Ark, p 28, Beta Books, San Diego, 1975], 로스코비츠키는 관측한 내용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방주는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높은 천장을 가진 큰 방들도 몇 개가 발견되었다...울타리의 두께는 2피트 정도로 코끼리보다 10배나 큰 동물들을 가두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사용한 나무의 재질은 서양협죽도(Oleander)로 겉에는 페인트를 칠하면 전혀 썩지 않는다. 이 방주는 대부분의 시간을 냉동된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Vladimir Roskovitsky; New Eden Megazine, CA, 1939 cited by La Haye and Morries, The Ark on Ararat, p 79, 1979]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보고서는 볼세비키 혁명(1917. 2. 8)으로 황제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그 후 이와 관련한 아무런 자료도 발견할 수 없어 신빙성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Berlitz; ibid, pp 32-34]
미국조종사들이 찍어 성조지(The Stars & Strife)에 실렸던 사진들도 1943년에 모두 분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미국 조종사들이 1960년 봄에 배와 같은 구조물을 발견했으나, 소련군의 감시로 사진을 찍지 못하고 귀향했다고 한다. [Beritz; ibid, p 42].
최근에 방주를 가장 많이 목격한 사람은 프랑스의 나바라(1974)이다. 그는 1952년에 처음으로 방주탐사에 나서 얼음 밑의 거대한 배모양의 물체를 발견하였다. 1955년의 탐사 시 그의 아들과 같이 방주를 발견하고 5피트의 나무조각을 잘라내었다. [Fernand Navarra; J'ai trouve l'ache de Noe, Paris, 1956, Noah's Ark: I Touched It, pp 36-69, Logos International, Plainfield, NJ, 1974] 이 나무는 이집트, 스페인, 프랑스 등의 박물관으로 보내어졌고, 분석결과 나무의 종류는 백참나무(white oak)이며, 최소 5,000년 이전의 것으로 발표되었다. [Navara; ibid, pp 125-132] 그러나, 미국의 분석기관에서는 1,190-1,340년의 젊은 연대치가 나왔다.
미국의 와이어트(R.E. Wyatt)는 11년간(1977-1987) 23회나 현장을 조사하고 수많은 증거물을 수집하였으며 "배 모양의 구조 속에 대형의 구조물이 있음을 확인"하고 노아의 방주가 틀림없다고 주장하였다. [Ronald E. Wyatt; 이것이 노아방주다, pp 20-26, 크리스챤월드, 1991]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터키 정부는 방주가 발견된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광목적으로 고속도로를 놓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많은 개인이나 단체들이 방주의 목격담을 증언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창조연구회(ICR)의 현 회장인 죤 모리스가 이끈 세 번의 탐사결과와 인공위성 (ERTS, SKYLAB)이 찍은 사진들(1972-1974)이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John C. Morries; The Search for Noah's Ark, Impact, ICR, No. 125, 1983]
이상에서 노아의 방주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살펴보았으나 아직은 그러한 증거들이 노아의 방주라고 단언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증거들이 노아의 방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탐험과 연구가 진행되어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7) 갑작스러운 빙하기의 도래
빙하기는 진화론에서 주장하듯이 5-6회의 대 빙하기와 여러 번의 작은 빙하기를 거쳐 일만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아의 홍수 후에 갑자기 찾아온 추위와 격변에 의한 충격으로 맘모스와 같은 거대동물들이 얼음 속에 냉동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맘모스가 시베리아와 알라스카 및 카나다의 북부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은 이 지역들도 홍수 이전에는 아열대 기후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울러, 빙하가 북극지역에 집중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맘모스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은 채 싱싱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갑작스러운 기후의 변화로 냉동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맘모스의 입과 위 속에서는 소화가 채 되지 않은 음식물들이 발견되기도 하는 데, 이는 음식물을 소화할 겨를도 없이 어떤 급변적인 사태가 발생하여 동사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일과정설에서 설명하는 이론대로 이들의 사체가 서서히 냉동되었다면 이미 부패되었거나 다른 동물들의 밥이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8) 예술품에 등장하는 공룡들
북중미 지방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현생인류와 공룡의 발자국은 이들이 같은 시대에 살았음을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1,800년대 말에 그랜드 캐년 부근의 하바수바이 계곡의 바위에서 공룡과 사람이 같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발견되었다. 아프리카의 로데지아의 살즈버리 동굴에서도 사람과 브론토사우루스 공룡(Brontosarus)의 그림이 같이 그려져 있다. [R.L. Wysong; Creation-Evolution: The Controversy, Inquiry Press, p 378, Midland, Michigan, 1981]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멕시코 원주민들의 토우(土偶)중에는 한 여인이 등에 갑주를 달고 있는 새끼공룡의 목을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그림 16). 미국의 한 동굴 속에 있는 벽화에는 공룡과 사람, 새들의 그림이 같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공룡에 대해서는 세계최고(最古)의 기록인 성경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 "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하마 (공룡의 오역으로 봄)를 볼지어다...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 꼬리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넙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그 뼈는 놋관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같으니"(욥 40;15). 욥이 4천여년 전 사람으로 추정되므로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사람과 공룡이 노아시대의 홍수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공존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1977), 뉴질랜드 근해의 300m 수심에 쳐 놓았던 일본어선(Zuiyo Maru, 大洋水産社소속)의 어망에 해상 공룡인 사경룡(Plesiosaur)의 시체가 인양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끌은 바 있다. 이 동물은 진화론적으로는 수천만년 전에 멸종한 것이다. 그러나, 2톤이 넘는 거대한 몸체에는 발굴 당시에도 살점이 붙어 있었고, 썩는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고 목격자들은 전한다. 진화론자들의 말대로라면 수천만년간 공룡의 살이 비록 썩은 상태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존재했다고 믿어야 할 터이다. 반대로, 공룡이 지금까지 살았다면 그 동안 주장해 온 공룡의 멸절설도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사경룡의 시체가 지금도 발견된다는 것은 공룡이 최근까지도 사람과 같이 살았다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발견에 당황한 진화론자들은 그 동물이 공룡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일본의 학자들은 틀림없는 공룡이라고 확고하게 주장하며, 일본정부에서는 기념우표까지 발행한 바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괴물의 시체는 물속으로 다시 수장되고 말았다.
(9) 내륙에 있는 소금호수들
대홍수로 바닷물이 모든 육지와 산꼭대기까지 뒤덮었다면, 그리고 육지가 조산활동으로 바닷 밑에서 솟아 오른 것이라면 당연히 지구상의 여러 곳에 소금호수와 소금덩어리가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지구상에는 소금호수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이스라엘의 사해는 염해의 대표적인 예이다. 소금함량이 보통의 바닷물보다 10배 이상 짠 30% 정도이다. 그래서 비중이 높아 사람도 둥둥 뜬다고 하니, 수영이 서툰 사람도 거기에서 시험해 볼 만한 일이다. 몽고에 있는 고비사막의 염호들, 이란의 우르미아호(해발1,470m), 터키동부의 만호(해발1,700m), 안데스산맥의 티티카카호(해발3,800m) 등 수많은 소금호수들이 세계 도처에 널려 있다.
민물호수가 물을 방출하지 못하면 수분의 증발로 소금함량이 늘어나 염호가 되리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소금호수가 생성되었을까? 해답은 언젠가 전 지구를 휩쓴 대홍수가 있었고, 홍수가 물러가면서 바닷물이 남은 곳에 염호가 형성되었고, 새로 생긴 빈 호수에 지하수와 빗물이 모여 민물호수를 만든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아라랏산의 해발 2,100m지점에서는 귤크기의 소금덩이들이 무수히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나 호주 및 남미 등지에서 발견되는 엄청난 규모의 암염광산들의 존재도 해수의 증발에 의하지 않고서는 해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홍수 때 형성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10) 격변적 매몰에 의한 화석들
생물들은 죽으면 며칠 만에 부패한다. 아니면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된다. 이것이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들이 화석이 되려면 긴 기간에는 아예 생성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짠 바닷 속에서라 할지라도 화석의 형성은 불가능하다. 거기서도 다른 물고기들의 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천만 개의 화석들은 한결같이 옛날에 큰 격변적 사건이 있었음을 무언으로 말해주고 있다.
입이나 위속에 소화가 안된 음식물이 들어 있는가 하면, 수영하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고스란히 화석이 되어 있다. 공룡과 맘모스가 무더기로 화석무덤을 이루었다. 그런가 하면 부패하기 쉬운 잠자리, 해파리, 식물체와 같은 생물들도 화석으로 발견된다(사진 12). 이는 부패하기 전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격변적 증거가 어디에 또 있을까?
남아프리카의 화석학자인 브룸(Robert Broom)은 20만평에 이르는 카루고원(Karoe)에 8천억 마리의 척추동물들이 묻힌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 데, 그 동물의 대부분은 양서류와 파충류라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국 UCLA의 지질학 교수인 밀러 교수(W.J. Miller)는 "오늘 날 지구상에 있는 유기체들 가운데 화석으로써 보존되기 좋은 상황 하에서 퇴적되고 있는 유해들은 거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토록 많은 수효의 화석들이 암석층 속에 파 묻혀 있는지 주목할만한 일이다.”고 하였다. 이는 격변에 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현상이다. 격변적 화석형성 이론은 동식물체들이 고온, 고압에 의해 순간적으로 매몰되면서 탄화되었다는 것이다(그림 17).
(11) 잔류지형들 (Relic Landforms)
빙하기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남북지반에서 발견되는 잔류지형이다. 빙하의 흐름에 의해 조성된 이러한 잔류지형은 카나다, 북미지역, 북유럽, 뉴질랜드, 아프리카 지역에 남아 있다. 지금의 기후조건으로는 이러한 지형을 남길 수 없으며, 형성사례도 근간엔 발견되지 않는다. 잔류지형은 '지금과는 다른 기후환경에서 만들어진 지형” (H.F. Garner 1974)을 말하는 데, 세계도처의 지형들은 대부분 잔류지형이다 (Budel & Garner). 이러한 말은 과거의 언젠가는 지금과는 다른 격변적 환경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기후 변화로는 그러한 잔류지형들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만; 잔류지형-홍수가 남겨둔 흔적, 창조 120호(5월호), 한국창조과학회, p 7-10, 2000]
* 언더핏류 (Underfit Streams) ; 하상, 계곡, 준평원처럼 지금의 과정으로는 형성될 수 없는 엄청난 물이 흘러서 만들어 놓은 지형을 말한다. 미국과 유럽의 50% 이상이 언더핏류의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G.H. Dury, 1977).
* 건조지역의 배수로 (Drainage System) ; 잘 짜여진 하천의 배수망은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지금은 건조한 사막지대에서도 그 흔적이 지형으로 남아 있다. 미국의 모하비 사막(Mojavi Desert), 데쓰밸리 사막(Death Valley Desert, California), 페루의 아타카마 사막(Atacama Desert)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 해안절벽 (Inland Sea Cliffs) ; 해변가라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해안절벽들은 한때 전 세계에 급변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카르스트 니들 (Karst Niddles) ; 이것은 단단한 층에 깔린 석회암이 젖어 있는 상태에서 물리화학적인 작용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중국의 계림(桂林)과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다.
* 잔류 모래언덕 ; 일명 에르그스(Ergs)라고 한다. 충적층의 암석이 빙하의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모래가 되고 식생에 의해 안정한 형태가 된 것이다. 미국의 네브라스카주의 2/3 이상이 모래언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 건조 호수층(Dry Lake Beds) ; 물이 없는 호수바닥층을 말한다. 이러한 지형은 한 때 그 곳이 물이 가득한 호수였음을 말한다. 미국 서부의 건조지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2) 인구의 증가
현재의 인구가 60억이다. 첫 인류가 출현하여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다면 이러한 숫자는 설명하기가 어렵게 된다. 노아(4,000-5,000년 전 추정)의 네 식구로부터 연간 인구증가율을 0.5% (현재는 2%)로 하여 계산하면 4,000년 정도로 충분하다. 엇셔가 주장한 대로 노아홍수가 대략 4,300년 전에 일어났고,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현생인류가 유래했다면 (창9;19), 한 세대를 43년으로 계산하면 100 세대가 조금 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 500 Flood stories prove Noah's Ark is real history!
출처 - 임번삼 저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