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위원회
2007-05-29

노아 시대 홍수 심판의 의미

이은일


서론

노아 시대 대홍수의 심판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의미가 매우 깊기 때문에 과거의 사건으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우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게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홍수와 관련된 과학적 증거를 보기 전에 노아 홍수와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우선 보아야 할 것이다.


본론

1. 전 지구적 심판으로서의 대홍수

노아 시대 대홍수의 심판이 있었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6장에서부터 심판의 전조는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하여 6장 5절부터 7절까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고 홍수의 심판을 선포하셨다. 그런데 이 홍수의 심판이 전 지구적인 홍수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휩쓴 국지적인 홍수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홍수가 전 지구적인 홍수였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첫째는 심판의 대상이 모든 사람과 기식있는 생물이었음을 여러 곳에 분명히 하고 있다. 창세기 6장 11절에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12절에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17절에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7장 4절에는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또한 실제로 홍수가 전 땅을 덮었고, 노아방주에 탄 사람들과 생물 이외 모든 사람과 기식있는 생명체가 홍수로 죽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7장 19절에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7장 21절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7장 22-23절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또한 하나님은 9장 11절을 통해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이런 심판의 홍수는 다시 있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만약 노아의 홍수가 국지적인 홍수라면 지금도 계속되는 국지적인 홍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홍수가 있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들은 거짓이 되고 말 것이다. 


2. 예수님 재림의 예표적 사건으로서의 대홍수

노아 시대 대홍수가 전 지구적인 홍수였다는 것을 성경은 왜 그렇게 강조하고 있을까? 그것은 대홍수를 통해 전 지구적인 심판이 과거에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전 지구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임을 분명히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모스 3장 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오셔서 행하실 전 지구적인 심판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 노아 홍수의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누가복음 17장 26-30절에 예수님은 재림의 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예수님은 재림의 때를 노아의 때와 롯의 때에 비유하셨다. 즉 예수님의 재림의 때(인자의 때)에는 노아의 때와 같이 "다 멸하는” 심판이고, 또한 롯의 때와 같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심판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이 마지막 심판을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예언하셨다. 노아의 때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를 지으면서 대홍수를 대비하고 있는 것을 수십 년간 보면서도 심판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예수님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라고 표현 하셨다. 자신들의 일상의 삶에 열중한 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임박한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는 모습인 것이다. 롯의 때도 동일하였다. 롯이 자기의 사위들에게 가서 심판을 경고하지만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기고 무시해버린 것처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 19:14).

예수님의 재림이 노아 홍수 사건과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베드로후서 3장 3-6절 말씀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베드로 사도는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 사도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의심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재림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런 의심을 북돋으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떨어지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가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는 것이었다. 즉, 옛날부터 지금까지 만물이 그대로 변함없이 그대로 있었고, 한번도 부활이나 재림 사건이 없었으므로,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관찰되는 경험을 근거로 과거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매우 과학적인 주장이다. 재림이 관찰된 적이 없으니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이들의 주장이 잘못된 지식에 근거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즉, 조상들로부터 지금까지 만물이 변화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잘못이라는 것이다. 첫째는 땅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되었고, 이 땅이 굳건하게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는 것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의 심판이 예비 되어 있는데 모르는 척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창조 이후에 땅이 변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큰 변화 즉 물의 넘침으로 멸망당했었는데, 이것도 일부러 모르는 척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대홍수 심판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은 다가올 불의 심판, 즉 예수님의 재림을 무시하는 태도인 것이다.


3. 노아 시대 홍수 사건을 통해 본 심판과 구원

심판은 죄에 대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반응이다. 로마서 1장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와 같은 말씀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노하고 계신다. 노아 시대 하나님의 진노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전 지구적인 심판이 일어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악인은 많고 왕성한대 왜 그 당시 하나님의 진노가 극심하셨을까? 창세기 6장 5절에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또한 6장 11절에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다시 말해 죄가 세상에 가득 찼고, 계획을 하는 것마다 모두 악한 것뿐이고, 모든 사람이 죄인이었다는 것이다. 이 우주에 유일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죄로 인해 완전히 더렵혀져서 하나님은 물로 깨끗이 청소하실 수밖에 없게 되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로 인해 임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연기할 의인이 없어서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즐겨하지 않으신다. 노아 시대 홍수의 심판 때도 하나님은 많이 괴로워하셨다. 창세기 6장 6절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죄 때문에 괴로우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멸망당하는 것이 괴로우셨을 것이다. 에스겔 33장 11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의인으로 인해 돌이킬 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의인들이 악인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공동체를 이뤄야하는 것 같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은 우리에게 심판을 연기할 의인의 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의인이 악인과 함께 멸망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의인 10명이 있으면 멸망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낸다. 그러나 롯 이외 의인을 찾을 수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당하고 만다. 

노아 시대도 노아만이 의인이었기 때문에 심판을 면할 수가 없었다. 왜 이 시대 노아만이 의인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그 이유는 창세기 6장 1-2절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이 말씀에서 사람의 딸들이란 살인자 가인의 후손을 말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셋의 후예를 가리키는 것이 다수의 성경학자들의 해석이다.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아담의 계보에서 "아담이 일백 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즉, 셋은 바로 아담의 직계 후손이 된다. 가인에 의해 아벨은 죽고, 가인은 떠났고, 셋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의 뒤를 잇는 후계가 된 것이다. 지금도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무리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지녔던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인 여인의 아름다움에 그 특권을 포기하고 만 것 같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셋의 후예들이 살인자 가인의 후예들과 결혼하면서 영적인 영향력을 상실하였고, 그래서 하나님의 의인들이 사라져 갔기 때문에 6장 5절에는 죄악이 관영하였다고 기록되었고, 7절에는 홍수의 심판이 선포된 것이다.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들 사이의 결혼이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았을까? 그 결혼의 결과를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연결되는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뜻에는 다투지 않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즉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버린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들과 다투지 않고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6장 4절에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라고 기록되었다.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들 사이의 결혼을 통해 태어난 자식들은 네피림(거인)들이었고 유명한 용사들이었다. 네피림에 대하여는 민수기 13:33절 아낙자손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네피림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고, 가나안을 정복하는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다. 민수기에 네피림(거인)이라는 표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마는 족속에게 쓰여 진 것을 보면 창세기에 있는 네피림, 고대의 용사들이라는 표현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가인의 후예인 라멕은 창세기 4장 23-24절에서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시(詩)인데 자신의 살인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가인의 문화에서 영웅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은 왜 거인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정확히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셋의 후예들은 서로 분리되어서 자손을 낳고 있었다. 따라서 가인과 셋의 후예들은 각각 유전적으로 유사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각각 다른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가인과 셋의 후예가 서로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을 때 그 자녀들은 가인과 셋의 유전정보 모두를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두 집단에서 관찰되었던 형질과는 다른 사람들이 태어날 수 있었고, 그중에 거인이나 용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인의 후손들은 왜 아름다웠을까?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첫째는 가인의 후손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도시 문명을 건설하여 살았기 때문에 농사를 짓고 살았던 셋의 후손들보다 피부도 곱고 세련되었을 것이다. 창세기 4장 12절에 가인은 살인하였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음을 기록하고 있다.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이 저주가 가인의 후예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가인의 후예들도 가인을 좇아 농사를 짓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또한 가인의 후손들이 육축 치는 자의 조상,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들이 된 것을 보면 (창 4:20-22) 농사보다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많다. 가인이 건축한 에녹성이라는 도시에서 가인의 후예들은 셋의 후예들과는 전혀 다른 도시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둘째 이유는 가인의 후예들은 여인들 간에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이 더 많았을 것 같다. 가인의 후예 중 라멕은 두 여인과 결혼하는 놀라운 일을 한다.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1:1인 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이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창세 이후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는데 이것을 라멕이 깨뜨린 것이다. 한 남자가 두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 여인들 사이에 질투가 날 수 밖에 없고 서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그 결과 여인들 사이에 화장술들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멕의 부인 중의 하나인 '아다”의 이름은 꾸밈, 아름다움 등을 뜻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인들에게 바로 임하지 않는다. 심판이 선포되고, 그 선포된 말씀 앞에서 회개하면 심판이 돌이켜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심판이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경고를 하시고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다. 셋의 후예가 타락하고 나서 그들에게 남은 날이 일백 이십년이라는 것이다. 이 당시 사람들의 수명이 구백세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일백 이십년은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또한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짓고 있는 기간이 바로 심판이 임하기 전까지 회개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노아가 방주를 지었던 기간은 정확히 몇 년인지 알 수 없지만 수십년 정도 밖에 안 되었을 것이다. 대홍수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시작되었다. 창세기 7장 11-12절에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 일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노아가 방주를 짓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창세기 6장 10절에 세 아들을 난 후 6장 14절부터 시작된다. 6장 17-18절에는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라고 기록되어 있어 방주를 지을 때 아들들과 자부들이 이미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아는 세 아들을 오백세 이후에 낳았으니 (창 5:32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실제 방주를 지은 기간은 수십 년 정도 밖에 안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경고는 홍수 120년 전, 수십년 전뿐 아니라 몇 세대 전부터 이뤄졌었다. 창세기 5장 21절에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이 낳은 아들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활을 쏘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또한 파수꾼이라는 의미도 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에는 이 사람의 죽음은 세상의 종말을 뜻한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 '므두셀라”는 창세기에 기록된 인물 중에서 가장 오랜 수명인 969세를 향수하였다. '므두셀라”가 죽은 해가 바로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 즉 홍수의 심판이 시작된 해이다. 하나님은 '므두셀라”의 출생 이후 969년을 기다리셨으며, '므두셀라”의 수명이 가장 오랜 것은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나타내는 것 같다.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에서 구원의 소식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통해 전해온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할 때 모두가 멸망당할 수밖에 없지만 노아의 방주에 탄 노아와 그 가족들과 동물들은 대홍수의 심판에서 구원받고 살아남게 된 것이다. '구원'이란 죽음의 심판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할 때 "예수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들어가지 말고 유일한 구원의 길인 예수님을 믿고 살아남으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예수님 이외 구원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고 베드로가 고백한 것처럼(행 4:12),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되는 방법은 오직 노아가 지은 방주뿐이었다.  

홍수의 심판 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식이 인간 노아가 열심이 만든 방주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산은 덮은 홍수 가운데서 노아가 만든 방주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방주를 지을 때 엄청난 파도에서도 잘 견딜 수 있도록 방주의 설계도를 직접 고안하셨다. 6장 14-15절에서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라고 말씀하셨다. 한 규빗이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이므로 약 45cm가 된다. 따라서 방주의 크기는 축구경기장 보다 길고, 농구장 20개를 합친 면적이 되는 엄청난 크기이다. 이 방주의 길이, 넓이, 높이의 비율은 선박을 매우 안정하게 만들어, 30m의 파도에도 견딜 수 있는 구조이다. 설계도는 하나님이 만드시고, 실제 노아가 충성스럽게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었을 때 놀라운 구원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 6;22)”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시다.


결론

노아 홍수 사건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전 지구적으로 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있을 불의 심판을 예표하고 있다. 성경에 노아 홍수 사건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하여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왜 심판이 일어났는지, 얼마나 하나님이 오래 참으셨는지, 사람들이 진노의 심판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한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아 홍수 사건의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난 후 이제 노아 홍수와 연관된 과학적인 증거들을 봐야할 차례이다. 노아 홍수의 사건은 너무나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많다. 그러나 진화론적인 선입관에 빠지지 않고 과학적인 증거들을 살펴보면 대홍수의 사건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너무나 많은 증거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John D. Morris
2007-05-18

세인트 헬렌 산의 분출을 연구하는 이유 

(Why Does ICR Study the Mount St. Helen's Eruption?)


      1980년 5월 18일 세인트 헬렌 산(Mount St. Helens)의 분출 이후,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은 그것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실시해 왔다. 세인트 헬렌 산의 분출로부터 암석들의 기원, 지질학적 모습들의 기원, 그리고 그것들을 형성하는 데에 필요한 과정들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ICR은 지구 암석의 대부분은 수억 수천만 년의 추정하는 지질시대 동안 천천히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노아의 대홍수 동안 빠르게 형성되었다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지질학자들은 현대의 암석들과 그것들을 형성하는 오늘날의 과정들을 연구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과거의 환경을 추론한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었던, 그 어떠한 것과도 완전히 다른, 유일하고 엄청난 사건이었다. 따라서 과거에도 동일한 일들만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자들은 이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암석들은 율, 크기, 강도에 있어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을 훨씬 넘어서서, 극도로 엄청난 지질학적 과정들을 경험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세인트 헬렌 산의 분출과 같은 오늘날의 한 국소적 격변은 우리에게 지구의 지질학적 파워에 대해서 어렴풋이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며, 특별히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여 전 세계적 대격변인 노아의 홍수 시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세인트 헬렌 산의 격변은 거대한 홍수에 대한 한 작은 스케일로서의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명심해야할 것은 분출에 의해서 일어난 손상의 대부분은 물(water)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인트 헬렌 산은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었다. 그것이 뜨거워졌을 때, 물은 강력한 홍수가 되어 산 아래로 흘러내렸고, 경로에 있는 토양, 암석, 나무 등과 같은 모든 것들을 침식시켜버렸다. 그리고 이것들은 결국 산 아래쪽에 재퇴적되었다. 후발된 화산 활동들은 그 격렬함을 증가시켰다. 분출이 끝나고 평온해졌을 때, 식물과 동물 잔해들이 가득한 180m나 되는 퇴적물들이 퇴적되었다. 오늘날 그 퇴적물들은 퇴적암으로 암석이 되었고, 죽은 생물체들은 화석이 되었다. 더군다나 나무들은 석화되어지고 있는 중이고, 토탄(peat, 석탄의 전 단계)이 형성되었으며, 깊은 캐년이 파여졌다. 현대 지질학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되었다고 가르쳤던 많은 지질학적 모습들이 눈앞에서 빠르게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980년 이후에 형성된 화성암들은 방사성 연대측정 결과 수백만 년의 연대를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얼마 전에 생겨난 명백히 젊은 암석들이었다.       

인기 있는 슬로건이 이것을 설명하는 것을 돕고 있다. 지질학적 모습들을 만든 것은 ”적은 물과 오랜 시간인가, 아니면 많은 물과 적은 시간인가?” 이 둘 중에 하나에 정답이 있다. 우리가 홍수를 목격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현대적인 격변들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격변들은 노아의 홍수가 엄청난 스케일로 만들었을 지질학적 모습들을 빠르게 만들어 내었다. 간단히 말해, 노아의 홍수와 같은 전 지구적인 대홍수는 성경적 시간틀 안에서도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지질학적 모습들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지질학자들은 이러한 지질학적 모습들을 장구한 시간의 증거로서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지구는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 지구는 거대한 홍수를 경험했던 것처럼 보인다.    

 

*세인트 헬렌 산의 폭발에 대한 종합적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Learning the lessons of Mount St Helens (CMI, Creation 39(3):23–27, July 2017)
http://creation.com/lessons-from-mount-st-helen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267/

출처 - ICR, BTG 2007. 5. 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906

참고 : 3353|713|1341|285|274|2104|2050|1493|1464|1192|2168|2116|512|1491|557|3119|3111|1682|2107|3079|3081|3086|3347|3346|3272|3305|3621|3657|3701|3773|3725|3772|3813|3845|2179|3766|3300|269|2094|2754|568|299|1536|302|3730|2383|2386|2390|2093|545|2375|1810|1877|2777|755|1906|3671|3596|2844|2674|2511|937|932|284|892|283|282|685|573|2355|2285|2201|2662|2663|3044|2253|925|926|927|928|549|552|2212|2214|913|1916|3172|3734|2471|2441|278|279|634|929|2069|3377|2106|508|3129|2417|1814|5502

William Hoesch
2007-02-23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에 대한 대중적 개념

 (Vulgar Notions of a Universal Flood)


     16세기 초의 과학자들은 하나의 딜레마에 직면했다. 그것은 화석(fossils)들은 어떻게 기원되었는가? 라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수세기 동안 산꼭대기에서 발견되는 바다 조개 화석들은 창세기 홍수(Genesis Flood)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반면에, 당시 유럽의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또는 신플라톤주의와 같은 이교도 철학들은 그것들은 그 위치의 암석 내부에서 신비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라는(자연발생설과 비슷한) 매우 통속적인 해석을 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사실이었는가? 살아있는 바다 생물체와 화석이라 불리는 재미있는 형태들 사이의 유사성은 너무도 뛰어나서 이들 사이의 관계를 부정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전 지구적인 홍수 모델은 저항을 받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사가(science historian)인 마틴 루드윅(Martin Rudwick)의 뛰어난 책 ”화석의 의미: 고생물학 역사에 있어서 에피소드들(The Meaning of Fossils: Episodes in the History of Paleontology” (Univ. of Chicago Press, 2nd ed., 1985)에 따르면, 홍수는 화석들의 설명으로서 실패해 왔었다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이것이었다. 즉, 창세기 홍수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은 바다생물 화석들을 대륙들 위로 휩쓸어 올리기에 불충분한 사건이었으며, 더군다나 (1)생물학적으로 점점 밝혀지고 있던 엄청난 동물 종(species)들의 숫자는 그것들 모두를 방주에 태우기에 부적절한 것으로 보였고, (2)그리고 모든 산들을 덮을 만한 엄청난 물이 어디에서 왔으며, 이들 물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점은 홍수모델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루드윅에 따르면, ‘한 번의 전 지구적 홍수에 대한 대중적 개념’은 실제로 그 가능성이 시도되었으나, 부족함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유일한 합리적인 대안은 성경의 홍수 이야기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주의적 철학을 조화시켜 타협하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노아의 홍수는 여러 차례 있었던 국소적 홍수들 중 단지 하나였다는 것이다. ‘자연 지형에서 발생되는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들은 지형의 광대한 변화들을 설명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바다들은 광대한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올라갔고, 천천히 내려갔다는 것이다. 루드윅은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이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았다. 즉, 이러한 식으로 노아 홍수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은 지구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것과 동등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변증론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 없이, 그는 이것을 유일한 합리적인 안으로 생각했다. 간단히 말해, 대다수의 의견은 화석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틀렸으나, 지구의 장구한 연대와 지질학적 점진주의는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루드윅의 문제점들은 얼마나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인가? 나는 모든 깊음의 샘들이 터져 대양해분들이 갈라지며 시작되는 노아의 홍수가 수 주 만에 모든 산들을 덮었다는 기록이 대륙 위에 바다생물 화석들을 설명하는 데에 논리적으로 불충분하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육상에 거주하며 코로 기식을 호흡하는 알려진 모든 종류(kind, or baramin, not species)의 생물들이 거대한 노아의 방주에 다 탈 수 없었을 것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 홍수 동안 전 지구를 덮을만한 물의 출처와 사라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지구는 물이 풍부한 행성으로 대양의 깊은 해구들은 가장 높은 산들보다 더 깊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지 태평양 해저 하나의 습곡만으로도 쉽게 지구는 물들로 범람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홍수는 이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판구조 운동과 관련되어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으로부터 몇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난센스를 믿을 것을 요청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교도 철학들은 16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에도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그것에 의해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창세기 홍수는 여러 사상들 가운데 당당히 서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William A. Hoesch, M.S. geology, is research assistant in Geology.

 


*참조 : 방주는 땅에 호흡하는 모든 동물 한 쌍씩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까?
http://www.creation.or.kr/qna/view.asp?cate=B&id=21&no=6

큰 깊음의 샘이란 무엇이며, 대홍수 당시의 물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http://www.creation.or.kr/qna/view.asp?cate=B&id=62&no=7

노아 홍수가 끝나고 난 후 창일했던 물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http://www.creation.or.kr/qna/view.asp?cate=B&id=63&no=8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149/

출처 - ICR, BTG 218c, 2007. 2. 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13

참고 : 1756|1817|1420|1422|1429|720|721|2121|2098|2075|512|2104|2094|269|271|3725|1799|3701|3596|2201|3346|3272|3119|3137|2754|2777|261|1493|2141|913|3044|3032

미디어위원회
2007-01-13

북극 지방의 혹서기 

(Arctic Heat Wave)

William Hoesch 


     북극해(Arctic Ocean)의 대양바닥 아래로 뚫은 시추공에서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바닥 아래 430m 지점 부근에서 발굴된 화석들에 의하면, 해저는 한때 섭씨 23℃의 따뜻한 온도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북극해 아래의 온도는 0℃ 전후이다. 그 발견은 모든 대양들이 적어도 한때 ‘효신세/시신세 최대 온도(Paleocene/Eocene Thermal Maximum, PETM)’ 라고 불려지는 따뜻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며, 전 지구적으로 따뜻한 상태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심해 신생대 기록과 빙핵(ice cores)의 분석에 의해서 얻어진 산소동위원소(oxygen isotope) 자료에 의한 그러한 놀랍도록 따뜻했던 온도는, 비록 그 기간의 길이는 의심스럽지만, 많은 과학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를 포함하는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의 역사적 시간 틀과 매우 잘 들어맞는다.


따뜻한 대양(warm ocean)은 몇몇 결과들을 초래했을 것이 예상된다. 따뜻한 물은 많은 증발을 일으켰을 것이고, 많은 강우를 기록했을 것이며, 세계는 매우 습했을 것이다. 얼마나 축축했을까? ICR 연구는 전 지구적으로 바다 표면 온도가 30℃ 정도였다면, 지역적으로 시간당 200mm 이상의 비가 지속적으로 강하했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엄청난 강수량은 극지방에서도 있었을 것이고, 그곳에서는 눈이 되어 폭설로 내렸을 것이다. 눈은 얼음으로 다져지고, 얼음은 빙하들이 되어서 움직였을 것이다. 만일 PETM이 대홍수 직후의 기간에 해당한다면, 대홍수에 뒤이은 빙하기는 이치에 맞는다.


두 번째로, 따뜻한 대양은 엄청나게 강력한 태풍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표면 온도를 37℃로 가정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직경 수백 마일의 사이클론들이 단지 낮은 위도에서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을 가로지르며 생겨났다. ”특급허리케인(hypercanes)'으로 불리는, 이들 태풍들은 300mph의 수평적인 바람과, 100mph의 수직적인 바람을 발생시키고, 시간당 250mm 이상의 강우를 동반하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극지방으로 빠르게 돌진된 습기를 가진 전선이 수십도 온도가 떨어지는 상태를 만들었을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북극 지방에서 살이 얼려진 매머드(flash-frozen mammoths)들의 발견은 최근까지 냉동학적인 신비였다. 비록 그 신비가 풀리지 않고 있지만, 더 신뢰할 수 있는 대답은 이제 가능해졌다. 사람이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그러한 상황은 비교적 최근 과거에 발생했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의 어떤 격변적인 배출이 온난한 기간을 유발시킨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과학자들은 온도 상승은 이산화탄소의 상승에 의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분명한 가능성이 있다. 만약 한 번의 전 지구적인 대홍수가 최근 지구 역사에서 발생했었다면, 그러면 따뜻한 대양과 비교적 온난한(또는 시원한) 공기층이 뒤따랐을 것이다. 대홍수 이후에 대양이 따뜻해진 몇 가지 이유들로는, 비교적 따뜻했던 홍수 이전 대양, 홍수 동안 대대적인 해저 화산들의 폭발, 그리고 홍수 동안 방사성 동위원소 붕괴율의 상승 등을 들 수 있겠다.    


단지 20-30년 전만 해도, 대양의 온도가 30도 정도였을 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대홍수 이후 단축된 빙하기(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의)가 도래했을 것이라는 제안은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니다. 빙하기의 기간이 얼마였는지, 대홍수 종료와 최대 빙하생성 시점 사이의 시간 간격은 얼마였는지 등과 같은 많은 사항들은 미래의 연구에서 밝혀질 것이다.     


성경적 지구 역사에 근거한 전 지구적 대홍수 모델은 매우 적합해 보인다.


*William Hoesch, M.S. geology, is Research Assistant in Geology.


*관련기사 : 지구 온난화와 북극의 고대 기록 (2006. 6. 14. KISTI)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32344.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2836/

출처 - ICR, BTG 212c, 2006. 8. 1.

미디어위원회
2007-01-11

자이언트 캥거루들은 가뭄으로 죽었다? 

(Giant Kangaroos Killed by Drought)

Lawrence Ford 


       ”한때 호주 대륙을 돌아다녔던 자이언트 캥거루와 자동차 보다 더 큰 웜뱃(wombats)들은 사람들의 사냥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후 변화에 의해서 죽었다”라고 2006. 11. 29일자 로이터 통신(Reuters)은 보도했다. (참조. The Guardian, 2014. 3. 15)

호주 과학자들에 의한 한 연구에 따르면, 거대동물군(2.4m 크기의 자이언트 캥거루, 자동차 크기의 웜뱃, 다른 거대한 생물체들)들은 한때 믿어지고 있었던 것처럼 호주 원주민들의 사냥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된 가뭄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퀸즐랜드 공과대학의 그레고리 웹(Gregory Webb) 박사는 호주 대륙은 ”대략 지난 50만년 전부터” 점점 건조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남동 퀸즐랜드의 프라이스(Gilbert Price) 박사와 같이 수행한 그의 연구는 ”지속적인 호주 기온의 상승은” 동물들을 멸종으로 내몰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였다.

로이터 통신의 롭 테일러(Robb Taylor)는 ”호주 대륙은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에 기인한 오랜 기간동안의 기후 변화와 물 부족에 직면하여 왔었음에 틀림없다고 과학자들이 말했다”고 덧붙였다.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는 오늘날 과학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에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과학자들이 거대동물군에 대한 웹 박사의 결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샌디에이고에 있는 ICR의 대기 과학자인 래리 바디만(Larry Vardiman) 박사는 퀸즐랜드에서 실시된 연구에 대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

”전통적인 과학 사회의 주장에 의해서, 공룡들과 많은 다른 생물 종들은 장구한 지구 역사 동안에 일어났었던 단기간의 격변적 사건들 동안에 멸종되었다고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격변적 사건 중 하나는 약 6천5백만 년 전인 백악기 말에 있었던 소행성의 충돌 사건입니다. 백악기(Cretaceous Period)는 공룡들이 번성했던 따뜻하고 습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춥고, 건조했던 시기가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백악기 말은 전통적 과학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6천5백만 년 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 변화는 언제 발생할 수 있었는가? 바디만 박사는 계속 말한다 :

”그것은 단지 수천년 전에 발생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노아 시대에 전 세계를 황폐화시켜버린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지구는 따뜻했고 축축했습니다. 홍수 이후에 지구는 파괴적인 빙하기를 맞이했고, 이어서 점진적인 온난화와 건조화 되는 시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공룡들은 노아의 홍수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했고, 노아의 방주에 의해서 살아남은 소수의 공룡들은 홍수 이후 변화된 기후 조건에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연대 계산에 있어서의 광대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공룡의 멸종에 대한 동일한 정보가 과학자들의 가정(assumptions)에 따라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습니다.” 바디만은 말한다.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에 흥미가 있는가? 바디만 박사의 'Earth's Climate Thermostat을 읽어보라. 그리고 흥미로운 다른 뉴스들에 관한 논평 또는 제안이 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s/view/3135/

출처 - ICR News, 2006. 12. 1.

미디어위원회
2006-12-09

인류는 3 조상 가족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유전자 연구는 가리킨다. 

(Genetic Study Points to Three Ancestral Families of Humans)

David F. Coppedge


    최근(2006. 11. 23) 출판된 Nature 지 논문에서[1], 과학자들은 유럽, 아프리카, 중국, 일본 이렇게 4 지역 사람들 270여 명의 DNA 지도를 작성하였다. 과학자들은 잃어버렸거나(missing), 중복되어(duplicated) 있는 DNA의 부분들을 조사하였다. DNA의 많은 부분들이 반복적으로 다시 나타났다. 여분 복사본(extra copies)의 수는 개인 간에, 또는 인종 그룹 간에 다양하였다. 그 복사본의 수는 유전체 다형성(Copy Number Variation, CNV, 복사본 수의 변이)이라고 불려진다.

그들 연구에 있어서 주요한 흥미로운 부분은 잃어버리거나 중복된 DNA의 염색체들(chromosomes) 내의 위치와 여러 질병을 나타내는 염색체들 위치 사이에 하나의 연관성을 발견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진화의 무작위적인 과정으로부터 남겨진 것으로 생각했던, 그래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쓰레기(junk)라고 불렀던 DNA 코드 부분은, 이제 많은 신체적 특성들을 결정하고, 우리 몸의 화학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새로운 분야의 연구가 열리고 있다 : 

인간 유전체(genome) 내에서의 유전체 다형성(copy number variation)에 대한 우리의 지도(map)는 이 유전체 변이 형태의 편재성과 복잡성을 증거하고 있다. 유전체 다형성의 내부와 측면의 모든 타입의 기능적 서열의 풍부성은, 유전체 다형성이 표현형의 변이(phenotypic variation)를 가져올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러한 예상은 유전체 다형성이 유전자 발현(gene expression)에서의 변이들과 관련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보고에서 숨겨져 있는(일반 언론에서는 보도하지 않은) 사실은, 그 표본들이 4 군데의 지리적 위치에서 채취된 것이지만, 표본들은 3 개의 분명한 그룹으로 깔끔하게 나뉘어졌다는 관측이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그룹에 속하였고,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이렇게 3 그룹으로 분명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

인간 유전자 변이의 다른 부류와 대조적으로, 유전체 다형성의 집단 유전학(population genetics)은 탐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다른 개체군 집단들 사이에서 유전체 다형성의 분포는 돌연변이, 선택, 인구통계학적 역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집단 유전학을 추론하기 위해서 공통적인 유전체 다형성을 가지는 생물군들을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67 개의 유전자형 이대립인자성(genotyped biallelic) CNVs에 대한 집단 군집화(population clustering)를 수행했다. 우리는 3 개의 조상 집단으로 추정되는 적절한 군집을 얻었는데, 이들 3 개의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시아인 집단들은 분명히 구분되었다.

3 개의 그룹이 얼마나 분명하게 구별되는 지는 여기를(Click here) 클릭하여 인상적인 그래프를 살펴보라. 그래프에서의 사람 그룹들 명칭은 다음과 같다 : 나이지리아(Nigeria, YRI), 유럽(Europe, CEU), 일본(Japan, JPT)과 중국(China, CHB).


[1] Redon et al, Global variation in copy number in the human genome, Nature 444, 444-454 (23 November 2006) | doi:10.1038/nature05329.

또한 BBC News(2006. 11. 23)를 보라.


 
비록 이 연구가 단지 제한된 표본들만을 고려했지만, 이것은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은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유래했다는 창세기 9-11장에 기록된 성경적 설명과 놀라우리만치 일치하며 확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더 많은 지역들에서 더 많은 표본들을 가지고 더 깊이 있는 연구가 수행된다면, 전 세계의 모든 인류 집단은 3 그룹으로 나뉘어질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기원에 관한 대중적인 이론인 ”아프리카 기원(Out of Africa)” 이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더 깊은 연구는 아프리카 기원에 근거한 많은 이야기들을 했던 인류학자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가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인류의 3 조상 집단에 대해서 어떠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BBC와 같은 주요한 뉴스 매체들은 인류가 단지 3 조상 집단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내 보도도 마찬가지임. 아래 뉴스 참조). 대신 그 논문의 의학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Physorg(2006. 11. 22) 지의 그 논문에 대한 리뷰는 다음과 같이 방어하고 있다

새로운 정밀 조사에 의하면 진화는 또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아프리카 동부에서 출현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아프리카 기원” 시나리오는 도전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기원은 너무도 최근이어서, CNVs의 방대한 대다수(89% 정도)가 269명의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도쿄의 일본인들, 베이징의 중국인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Yoruba), 북미인들, 서유럽 사람들로서, 연구를 위해 혈액 표본을 제공하였다. 그렇지만, 표본들의 3 지리적 기원에 따라 이들 CNVs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것은 지난 200,000년 정도에 걸쳐 인류의 다른 집단들이 다른 환경들에 적응하면서 유전체에 미묘한 변이가 일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라고 생거(Trust Sanger)는 한 언론 보도에서 말했다.

이 소리는 아프리카 기원 이론은 안전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가 믿기 위해서 질문되어야하는 것은, 상상하고 있는 20만년(아마도 1만 세대) 동안에 얼마나 적게 유전자 풀의 혼합(mixing of the gene pool)이 일어났으면, 아직도 3 개의 분명한 그룹들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분명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20만년 전, 혹은 단지 4400여년 전) 인류 집단은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3 개의 분명한 유전적 그룹을 형성할 수 있는 점까지 인구가 축소된 시점이 있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미안하다. 우리에게 이것은 노아의 3 아들로부터 인류가 퍼져 나갔다는 말이 훨씬 더 합리적인 것처럼 들린다.

 


*참조 : 모두 같은 인간? 전혀 다른 인간!…개인별 유전자 차이 0.3%  (2006. 11. 24. 동아사이언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49407

Mitochondrial Eve and biblical Eve are looking good: criticism of young age is prematur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472

A possible post-Flood human migration rout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1/j19_1_65-72.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6/11/genetic_study_points_to_three_ancestral_families_of_humans/

출처 - CEH, 2006.11. 24.

미디어위원회
2006-12-04

노아 홍수와 길가메쉬 홍수 

(The Flood of Noah and the Flood of Gilgamesh)

Frank Lorey 


배경

길가메쉬 서사시(Epic of Gilgamesh)는 19세기 중반 (고대 바빌론의) 니느웨(Nineveh)의 대도서관(Great Library) 유적지(아슈르바니팔의 서고)에서 발견되었을 때부터 기독교인에게 흥미가 있어왔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노아의 홍수와 매우 비슷한 전 지구적인 홍수가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1, 2] 아마 B.C. 2000-3000년 경까지 기록 연대가 올라가는 서사시의 나머지 부분은, 그 시대 이교도들의 전형적인 다신론적 신화들을 다루고 있는 까닭에 기독교인들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몇몇 기독교인들은 서사시에 나오는 창조에 대한 개념과 사후세계에 대해서 연구해 왔다. 비록 바빌론, 페니키아, 히브리인들의 이에 대한 설명들 모두가 공유된 신화들 이상의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고 세속적 학자들은 말하고 있지만, 이들 설명들 사이에 유사한 점들은 확인되고 있다.[3]

세계 곳곳에는 고대의 출처를 둔 무수한 홍수 이야기(flood stories)들이 있다.[4] 가장 초기의 문자기록인 설형(쐐기)문자 점토판(cuneiform tablets)들에서 발견되는 홍수 이야기들은 뚜렷한 유사점들을 가지고 있다. 쐐기 모양의 문자는 수메르인(Sumerians)들에 의해 발명되었고, 아카드인(Akkadian)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바빌론어(Babylonian)와 아시리아어(Assyrian)는 아카드어(Akkadian)에서 파생된 언어(dialects))이고, 이들 둘 다 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원래의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와 나중의 바빌론과 아시리아인들의 홍수 이야기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유사점의 대부분은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5] 바빌론의 홍수 이야기는 가장 완전한데, 205줄의 홍수에 대한 설명 중에서 단지 7줄만 잃어버렸다.[6] 그것은 또한 최초로 발견된 것이어서, 초기 홍수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어졌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12개의 큰 점토판(tablets)들에 포함되어 있고, 최초의 발견 이후에 그 서사시는 다른 점토판들에서도 초기의 다른 고대 언어들로 번역되어서 발견되고 있다.[7] 사실상  B.C. 650년 경으로 연대가 평가되는 점토판들은 원래의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B.C. 2000년 경으로 연대가 평가된 점토판들에서도 홍수 이야기의 단편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8]  B.C. 2000년 이전에 잘 구성된 홍수 이야기는 그 연대보다 훨씬 오래 전에 있었던 자료들로부터 편찬된 것으로 언어학자들은 믿고 있다.[9] 수메르의 상형문자 기록들은 B.C. 3300년경 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10]


이야기

길가메쉬 서사시는 시(poem)의 형태로 구성 되어있다. 주인공은 길가메쉬(Gilgamesh)이고, 그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에 의하면, 길가메쉬는 우르크(Uruk)의 최초 왕조에서 126년 동안 통치한 것으로 되어있다.[11] 이 오랜 통치 기간은 성경에 나오는 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나이와 비교할 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길가메쉬 이후의 왕들은 오늘날의 수명과 비슷한 생애를 살았다.[12] 왕들의 목록은 또한 온 땅을 뒤덮어 파멸시켜 버린 특별한 대홍수를 기록해 놓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13]

그 이야기는 영웅 길가메쉬의 업적들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위대한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서, 홍수 이전 시대의 자료들을 보존했던 사람이었다. 길가메쉬는 우르크의 도시 성벽을 건축했던 일과 우르크의 엔나(Eanna) 사원을 세운 일을 포함하여, 그가 이루어놓았던 모든 일들을 점토판 위에 기록하여 놓았다. 그러나 그는 억압적인 군주였다. 이것은 그의 백성들이 ‘신(gods)들’에게 길가메쉬에 대해 싸울 강적(nemesis)을 만들어 달라고 울부짖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14]

한 번의 싸움이 끝나고, 이 강적인 엔키두(Enkidu))는 길가메쉬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이 둘은 많은 위험한 모험들을 겪게 되면서 명성을 얻게 되고, 엔키두는 결국 그 모험으로 인해 죽게 된다. 그 후 길가메쉬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불사(immortality)의 영원을 찾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시도 끝에 그는 성경의 노아를 매우 닮은 우트나피쉬팀(Utnapshtim)을 만나게 된다.[15]

간단히 요약하면, 우트나피쉬팀은 인류를 파멸시켜버린 거대한 홍수(Great Deluge)를 이겨낼 배(ship)를 만든 후에 불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친척들과 모든 종류의 생물들을 배에 태웠다. 우트나피쉬팀은 땅을 발견하기 위해 새들을 내어 보냈고, 배는 홍수 후에 산 위에 정박하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하세계로 엔키두를 방문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16] 비록 많은 유사성이 두 이야기 사이에 존재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아래의 표는 창세기와 길가메쉬 서사시에 기록된 홍수 이야기를 여러 측면에서 비교하였다.

창세기와 길가메쉬 서사시에 기록된 홍수 이야기의 비교

내용

창세기

길가메쉬

홍수의 크기
홍수의 원인
누구를 멸망시키려고
일으키신 분
영웅의 이름
영웅의 성격
알려준 방법
배를 지으라 명령했는가?
영웅은 불평했는가?
배의 높이
내부의 구획
문들
창문들
바깥쪽 코팅
배의 모양
승선자
다른 승선자
홍수의 수단
홍수의 기간
땅을 발견하는 시험
새의 종류
방주가 도착한 장소
홍수 후 희생제물?
홍수 후 축복?

전 지구적
사람들의 사악함
모든 인류
여호와 (Yahweh)
노아 (Noah)
의로움
하나님의 지시
명령함

여러 층(3층)
많음
하나
적어도 하나
역청
장방형
노아의 가족만
모든 종류의 동물들
지하수 폭발과 엄청난 강우
일 년여 (40 주야 강우 포함)
새를 날려 보냄
까마귀와 세 마리 비둘기
아라랏(Ararat)산
드려짐, 노아에 의해
축복하심
전 지구적
사람들의 죄
한 도시와 모든 인류
신들의 모임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
의로움
꿈에
명령함

여러 층(6층)
많음
하나
적어도 하나
역청
입방형
가족과 소수의 다른 사람들
모든 종류의 동물들
엄청난 강우
단기간 (6일 밤낮)
새를 날려 보냄
비둘기, 제비, 까마귀
니쉬르(Nisir)산
드려짐. 우트나피쉬팀에 의해
축복하심


이 두 이야기를 표로 비교하는 데에 몇몇 해석들이 있을 수 있다. 일부 유사점들은 매우 놀랍다. 반면에 다른 것들은 매우 일반적이다. 배를 만들기 위해 우트나피쉬팀이 받은 명령은 주목할 만하다. ”오, 슈루파크(shuruppak)의 사람이여, 우바투투(Ubar-Tutu)의 아들이여, 그대의 집을 뜯어내라. 배를 지으라. 부를 포기하고, 내세의 삶을 구하라. 소유들을 경멸하라. 너의 생명을 구원하라. 살아 있는 모든 종류(kinds)의 씨들을 지은 배로 데려 오라. 배의 규모를 잘 측량하여 지으라.”[17]

사람의 죄들을 심판하기 위한 홍수의 원인 역시 인상적이다. 7번째 점토판 180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죄인에게 그의 죄를 물으라. 거역한 자들에게 그의 거역을 물으라”[18]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창세기 6-9장과 길가메쉬 서사시의 유사점에 대한 연구는 이들의 유사성이 우연히 일치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영웅들 이름의 의미는 공통적인 뿌리나 연결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노아(Noah)는 ‘안위(rest)’를 의미한다. 반면에 우트나피쉬팀은 ‘삶을 발견한 자(finder of life)’를 의미한다.[19] 둘 다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였을 때, 의롭고 비교적 흠이 없던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트나피쉬팀은 방주에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항해자와 소수의 기능인들을 태우고 있었다. 또한 두 이야기 모두 배가 중동의 어떤 지역에 도착했다고 기록한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아라랏산(Mt. Ararat)과 니시르산(Mt. Nisir)은 480km(300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홍수 후에 영웅들이 받은 축복도 꽤 다르다. 우트나피쉬팀은 영원한 삶을 얻게 되었고, 노아는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었고, 동물들을 지배했다.


결론

이 두 홍수 이야기에 대한 비교 연구가 이루어진 초기부터, 이들 이야기 사이에 명백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동의되고 있다. 인류 전 종족들에 널리 퍼져있는 홍수에 대한 이야기들은 합법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거대한 홍수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완벽한 증거이다.[20] 길가메쉬의 가장 오래된 단편들의 기록 연대는 창세기의 기록 연대보다 더 오랜 것으로 추정되었다.[21] 그러나 성경의 홍수 이야기는 구전으로, 또는 노아로부터 족장들에 의해서(결국 모세까지) 물려 내려오게 된 기록들로서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는 원본에 대한 재언급(약간 변경되어)이었던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보다 더 오래되었을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제안한 대중적인 한 이론은, 히브리인들의 홍수 이야기는 바빌론의 이야기를 빌려왔다고 말한다.[22] 그러나 어떠한 결정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 윤리적 측면에서, 그리고 많은 세부적 사실들에서의  차이는, 성경의 홍수 이야기가 수메르인들의 전설을 빌려와서 쓰여졌다고 볼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이고 비종교적인 학자들을  여전히 그러한 이론을 선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에서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는 이론은, 모든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들에 앞서는 하나의 공통의 출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23]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창세기 이야기는 정확한 내용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기록과 전승을 대대로 후손에게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4]

창세기는 대부분이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하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길가메쉬 서사시는 신화적인 일들을 서술하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심지어 많은 자유주의적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One-source Theory)은 노아의 홍수와 방주 사건이 실제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25]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쓰여졌음과 오류가 없음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전승 속에 홍수 사건에 대한 진실된 설명을 보존해두고 계셨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창세기 이야기가 모세(Moses)에 의해서 모아지고, 편집되고, 쓰여질 때까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수백 년 이상을 순전하고 정확하게 보존되어 왔던 것이다.[26] 그리고 길가메쉬 서사시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미화되고 손상된 홍수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REFERENCES

[1] Keller, Werner, The Bible as History, (New York: William Morrow and Company, 1956), p. 32.
[2] Sanders, N.K., The Epic of Gilgamesh, (an English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London: Penguin Books, 1964), p. 9.
[3] Graves, Robert, The Creek Myths, Volume 1,(London: Penguin Books, 1960), pp. 138-143.
[4] Rehwinkel, Alfred M., The Flood in the Light of the Bible, Geology, and Archaeology,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1951), p. 129.
[5] O'Brien, J. Randall,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Biblical Illustrator, (Fall 1986, volume 13, number 1), p. 61.
[6] Barton, George A., Archaeology and the Bible, (Philadelphia: American Sunday School Union, 1916), pp. 273-277
[7] Keller, The Bible as History, p. 33.
[8] Whitcomb, John C. and Morris, Henry M., The Genesis Flood, (Phillipsburg: Presbyterian and Reformed, 1961), p. 38.
[9] Heidel, Alexander, The Gilgamesh Epic and Old Testament Parallel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9), p. 13.
[10] O'Brien,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p. 61.
[11] Heidel, The Gilgamesh Epic and Old Testament Parallel, p. 13.
[12] Sanders, The Epic of Gilgamesh, p. 21.
[13] Vos, Howard F., Genesis and Archaeology, (Chicago: Moody Press, 1963), p. 35.
[14] Sanders, The Epic of Gilgamesh, pp. 20-23.
[15] Ibid., pp. 30 39.
[16] Ibid., pp. 39-42.
[17] Keller, The Bible as History, p. 33.
[18] Sanders, The Epic of Gilgamesh, p. 109.
[19] O'Brien,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pp. 62, 63.
[20] Morris, Henry M., Science and the Bible, (Chicago: Moody Press, 1986), p. 85.
[21] O'Brien,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p. 64.
[22] Ibid.
[23] Ibid.
[24] Morris, Science and the Bible, p. 92.
[25] Ibid., p. 85.
[26] Whitcomb, John C., The Early Earth(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6), p. 134; Whitcomb and Morris, The Genesis Floodp. 488.


* Frank Lorey is a Registered Historical Archaeologist.

 

*참조 : A comparative study of the flood accounts in the Gilgamesh Epic and Gene

   Introduction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introduction.asp

   Chapter 1. The background of the Gilgamesh Epic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1.asp

   Chapter 2. The flood account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2.asp

   Chapter 3. A comparison of ethic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3.asp

   Chapter 4. A comparison of specific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4.asp

   Chapter 5. A comparison of scientific reliability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5.asp

   Chapter 6. A comparison of interal consistency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6.asp

   Chapter 7. A comparison from secular historical record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7.asp

   Conclusion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onclusion.asp


*Noah’s Flood and the Gilgamesh Epic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10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414/

출처 - ICR, Impact No. 285, March 1997.

미디어위원회
2006-06-17

세인트 헬렌산 폭발은 창조론의 증거를 제공하였다. 

(Mt. St. Helens Explosion Gives Creation Evidence)

Bruce Malone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추론하기 위해서 지질학자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지질학적 과정들을 연구하고 관측하여, 어떻게 암석 지층들이 전 지구를 뒤덮게 되었는지를 결정한다. 1800년대 이전의 지질학에서는, 한 번의 전 세계적인 홍수(a worldwide flood)가 이들 암석 지층들의 형성 원인이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현대 지질학의 창시자인 제임스 허튼(James Hutton)과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등이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이라는 새로운 믿음 체계로 대체해 버렸을 때 바뀌어졌다.

동일과정설은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것과 같은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slow-and-gradual processes)들로 행성 지구의 지질학적 모습들을 설명하는 믿음 체계이다. 그것은 또한 전 지구적인 대격변과 같은 것에 의한 퇴적물들의 대규모적이고 빠른 퇴적은 결코 없었다고 가정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이러한 개념에 깊게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느리고 점진적인 지질학적 변화의 개념을 확장하여 느리고 점진적인 생물학적 변화를 가정하게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에, 많은 지질학자들은 오늘날에는 볼 수 없는 엄청나게 빠른 지질학적 변화들이 과거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지질학계는 이들 격변들 사이에 수백만 년의 시간이 있었다는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

창조론 모델의 기본적인 가정은 한 번의 전 세계적인 홍수가 최근 과거에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 가정이 맞다면, 격변적인 홍수 사건의 증거들이 있어야만 한다. 전 세계적인 홍수는 식물계와 동물계에 대대적인 파멸을 초래하였을 것이고, 이들 유기체들과 침전물들의 재퇴적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것은 지구 행성 전체에 막대한 양의 화석을 포함하는 엄청난 퇴적지층들을 쌓아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확히 이것이 화석 기록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창조론 모델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주장되는 대홍수 동안 발생한 과정들을 보여줄 수 있는 자연적 모델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에 워싱턴주에 있는 세인트 헬렌산(Mt. St. Helen)의 폭발은 그러한 하나의 자연적 모델을 제공하였다. 세인트 헬렌산은 180억 입방 피트의 암석으로 평가되는 화산재, 진흙, 증기, 녹은 눈들을 시속 144km (90 mph)로 산 아래쪽으로 흘러내렸다. 이것과 이후에 연속된 화산성 이류들은 산허리의 북쪽면 위에 180m (600 feet) 두께의 퇴적물들을 쌓아놓았다. 과학계에서 이것은 본질적으로, 대규모의 홍수 사건이 있었다면 발생했었을 과정들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맹렬한 진흙과 화산재들의 흐름 동안에 쌓여진 퇴적물들은 균질하게 혼합되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들은 미세한 층리들을 보이는 일련의 수평퇴적층(horizontal strata)들을 만들었다. 그 층들은 우리들이 여행하며 도로 절개지 등에서 흔히 관측할 수 있는 수평적인 암석 층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였다. 이러한 타입의 수평적 암석 지층들의 띠는 자주 수백만 년의 지구 역사를 가리키고 있다고 가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세인트 헬렌산 폭발은 지질학자들에게 이것과 똑같은 형태의 수평적 지층들이 흐르는 물(flowing water)에 의해서 어떻게 빠르게 퇴적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작은 축척의 모델을 제공했다. 세인트 헬렌산의 폭발에 연속되어, 불어난 물이 새롭게 퇴적된 퇴적물들을 관통하며 터져 나가 강이 흐르는 새로운 협곡(canyon)이 하루 만에(1982. 3. 19일) 형성되었다. 30m 깊이의 이 협곡은 놀랍게도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1/40 스케일의 모델처럼 보였다.

만약 이 지역이 형성되는 것을 보지못한 사람이라면, 현재 이 캐년의 바닥을 흐르고 있는 작은 강이 수백 수천만 년에 걸쳐 이 협곡을 파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는 그랜드 캐년을 흐르는 있는 콜로라도 강에 대해서 현재 우리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많은 지질학자들은 이제 세인트 헬렌산의 터틀강 협곡(Toutle River canyon)이 빠르게 형성되었으며, 그랜드 캐년도 한때 엄청난 규모의 물이 격변적으로 흘러가며 단기간 내에 파여졌다는 것을 인정해가고 있는 중이다.

지질학계의 대다수 사람들은 낮은 에너지 과정들과 광대한 기간으로 지질학적 기록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반해 창조론자들은 높은 에너지 과정들과 짧은 기간으로 지질학적 기록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 둘 중에 오직 한 견해만이 옳은 것이다. 그리고 이 둘 중에 오직 한 견해만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어느 견해라고 생각하는가?

 

*참조 : Rapid Erosion at Mount St. Helens
http://www.icr.org/research/index/researchp_sa_r04/

세인트 헬렌 산의 폭발에 대한 종합적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Learning the lessons of Mount St Helens (CMI, Creation 39(3):23–27, July 2017)
http://creation.com/lessons-from-mount-st-helen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rdino.com/articles.php?spec=7 


John D. Morris
2005-12-21

초기 지구에서 모든 달의 길이는 정확히 30일이었는가?

(In the Early Earth, Were All the Months Exactly Thirty Days Long?)


    오늘날 사용하는 역법(calendar)에는 한 달의 길이가 28부터 31일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약간의 혼란이 일어난다. 4, 6, 9, 11월은 30일, 2월은 28일, 1, 3, 5, 7, 8, 10, 12월은 31일, 그리고 윤년인 경우에 2월은 29일 이다. 그래서 그 달에 몇일이 있는지를 기억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동요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차이는 왜 났을까? 한 달의 길이가 모두 같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창세기에 기술된 바와 같이 완벽한 창조라면 더 규칙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한 달(month)의 길이는 지구의 위성인 달(moon)의 29½ 날 주기에 대략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들에서 음력(lunar calendar)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쉽게 확인될 수 있는 ‘새로운 달(new moon)’의 출현은 음력의 적용을 용이하게 하였다. 성경에 사용된 히브리인의 역법은 음력이다. 성경의 역사적인 사건들과 절기를 나타내는 날짜의 많은 부분이 음력의 날짜들 또는 달의 모양과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현대 역법은 28부터 31일까지 불규칙한 달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달 들의 많은 수가 로마의 신들이나 황제들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그리고 달들의 길이가 다양하게 된 원인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그리 크지 않다. 예를 들면, 8월(August)이 케이사르 아우구수투스(Caesar Augustus)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을 때, 그는 그 달이 가장 긴 달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월의 하루를 8월에 더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각 달이 정확하게 30일이었다면, 일 년의 주기가 훨씬 단순했을 수도 있었으며, 그래서 12달은 360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해왔다. 태초의 시기에 이것은 더 규칙적이었을까? 그것은 홍수 시기에 변화되었는가?  


많은 학자들이 이 질문에 대해 숙고해오고 있지만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홍수이전 달들의 길이에 관한 성경에서의 가장 중요한 암시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보자. 홍수는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에 시작되었다(창7:11). 그리고 '일백 오십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창7:24),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창8:4) 라고 기록되어있다.


이월 십칠일과 칠월 십칠일 사이에 150일이 존재했다. 따라서 평균 30일의 5개월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심히 좋았더라”(창1:31)는 말씀 안에서 매우 규칙적이었던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오늘날 일년의 길이가 365¼ 일인 것은 창조된 질서(created order)의 변경된 흔적임에 틀림없다. 


지구의 공전궤도를 바꾼 무엇이 일어났었는가? 지구의 각운동량(angular momentum)은 엄청나다. 그리고 회전하고 있는 회전의(gyroscope)에서처럼 그것을 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지구의 운동은 변화에 저항할 것이다. 그것을 바꾸는 데에는 엄청난 힘이 필요로 할 것이다.


성경은 그러한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자세한 모든 사항들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노아의 시대에 있었던 엄청난 홍수는 지구의 시스템을 영원히 바꾸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만약 지구의 공전 궤도가 바뀌었다면, 그 때가 그것이 일어났던 때였을 것이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거대한 양의 물들이 재배치 되고, 대륙들이 이동하고, 소행성들이 충돌했을 수도 있고, 산들과 바다의 높이가 변화되고, 하루의 길이, 일년의 길이, 그리고 지축의 기울기 등 모든 것들이 변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일들에 대한 정확한  크기와 강도를 상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 했을 한 사건은 알고 있는 것이다.



*참조 : 
자료실/노아의 홍수/격변적 지층형성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4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홍수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1

자료실/노아의 홍수/홍수지질학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2591

출처 - ICR, Dr. John's Q&A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36

참고 :

유종호
2005-07-26

대홍수에 대한 홍수 후의 기록들 2


3. 퇴적암 층에 매몰되어 있는 화석들

모든 종류의 동식물 화석들이 바위로 변한 대홍수의 진흙탕 퇴적물들 속에 묻혔던 것이다. 이 모든 화석들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진화론자들은 동물과 인간들의 이런 화석들의 형성을 침니(沈泥)와 화산재 층이 장단간의 세월 동안에 이 뼈들을 덮음으로써 말미암았다고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1985년 11월 판 내셔날 지오그래픽 지에 3마리의 하이에나가 인간의 시체를 막 뜯어 먹으려고 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두개골들이 갑자기 밀어닥친 홍수에 둥둥 떠내려가고 분출하는 화산으로부터 침니, 자갈, 재 등이 연속된 층을 만들며 뒤덮였다. 점점 수용성 광물들은 뼈를 돌로 바꾸었다.”

585쪽에서는 루시라고 불리는 부분적인 뼈들과 두개골들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들은 화석이 퇴적암 층과 화산재로 오래 동안 감추어져 있었다고 말한다.

진화론자인 리처드 리키는 그의 저서 <호수의 사람들> 6쪽에서 화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뼈들은 미세한 침니 속에서는 급속히 매몰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필수적인 과정이 일어나는 호수 주변에는 3가지 환경이 존재한다. 첫째는 잔잔하게 치는 파도가 얕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뼈 위에 한 겹의 침니를 덮어주는 호수의 해변, 둘째는 호수 변두리로 굴러 내려가는 개울의 하상, 셋째는 이 양극 사이에서 개울이 호수에 이르러 호수 물이 침니를 떨어뜨리게 하는 지점에서 일어난다.”

얕은 물속과 뒤늦게 내려오는 개울의 하상에 가라앉아 있는 뼈 위에 침니를 내려놓는 잔잔한 파도는 결코 화석을 보존해 주지 않는다. 퇴적물을 순차적으로 덮는 것은 그런 화석들을 결코 보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셔날 지오그래픽과 리처드 리키에 의해서 제시된 화석의 기원에 관한 이러한 설명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수억 개에서 수십억 개에 이르는 화석들에 대한 설명을 시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경우 수천 개의 화석들이 한 장소에서 무더기로 발견된다.

내셔날 지오그래픽 1985년 11월호 589쪽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단층운동, 융기작용, 침식작용이 수백 미터 깊이의 호수와 강바닥의 퇴적물과 수백만 년 동안 싸여온 여러 가지 깊이의 화석들을 노출시켰다. 이와 같은 수백만 년 동안 많은 분출로부터 온 수많은 화산재 층들이 이 퇴적물들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다.”

수백만 년을 1-2년으로 바꾸어 보라. 그러면 대홍수의 격류로부터 온 진흙과 퇴적물들이 가라앉고 “깊음의 샘들이 터질 때” 수많은 화산들의 화산재가 분출됐던 노아 시대의 홍수 활동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1976년 6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 123쪽에 있는 “동물들은 어디로 갔는가?” 라는 기사에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동물 종들을 11,000년 전이나 늦게 소멸되었다고 적고 있다. 즉;

“이 동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왜 사라졌는가? 이것은 미국의 자연사 가운데서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설명들을 분간하느라 뜨거운 논쟁에 휘말려 있다. 엄청난 수의 동물들이 사라졌고 모든 종류의 조류들이 소멸됐다. 그들은 왜 사라졌을까?”

주어진 대답 중 하나는 아시아에서 온 일단의 유목민 사냥꾼들이 그들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결국 그들을 다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대답은 약 12,000년 전에 한발과 기아, 동사(凍死)로 그들을 죽게 한 빙하시대에 있어서의 기후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증명되지 아니한 다른 이론들도 있다. 그들의 설명은 대홍수에 대한 설명들과 매우 유사하지만, 과학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진화론자들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던 어떤 홍수가 이런 많은 종류의 동물 종들을 휩쓸어버렸다는 것은 바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사냥꾼들이나 가뭄이나 기근이나 동사에 의해 죽은 동물의 뼈들은 그대로 보존되고 화석화 되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로 화석화된 뼈의 거대한 무더기로 발견되어질 수 없다. 

1981년 8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똑같은 거짓 논리가 있다. 거대 동물인 디프로토돈의 뼈들이 호주 동북부의 칼라본나 호수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이 동물들도 그들의 추측에 의하면 약 10,000년 전에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1893년과 1953년에 과학적 탐사로 이 동물들의 완전한 골격들이 완전한 형태로 1,000 개체나 발견되었다. 그 기사는 170쪽과 174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이 거대 동물들이 어떻게 그들의 최후의 운명을 맞았는지 모르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추론이 여기에 있다. [그러고 나서 한발이 어떻게 그 지역을 강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꾸며냈다]. 비옥한 초원에서 가뭄으로 말라버린 호수의 물로 힘들여 걸어갔을 때, 두 마리의 동물들은 ‘상처 때문이 아니라 좌절감과 기가 진하여 죽었다’. 칼라본나 호수의 갈라진 마른 하상에 이들은 두 개의 희미한 혹이 되었다. 진흙과 뜨거운 태양이 수천 년 전에 쓰러진 곳에 그들을 보존해 둔 것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그런 시체들은 금방 부패하고 사라져 버린다. 만일 동물들이 비옥한 초원에서 물을 찾아 그 호수로 옮겨 왔다면 그들은 분명히 그 비옥한 초원 근처의 어느 곳에서 물웅덩이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들은 누구를 위하여 이 우화를 펴내고 있는가? 여론에 따르면 이 진화론적 이야기를 믿지 않는 대부분의 일반인을 위해서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온 세계에 걸쳐 무더기로 쌓여 있는 이런 무수한 화석들에 대한 과학적으로 타당한 유일한 설명이 있다. 죽은 후에 노출된 채로 유기된 동물의 시체는 일반적으로 다른 동물들에 의해 즉시 먹혀버리거나, 금방 썩어버리거나, 뼈들은 1-2년 이내에 가루로 부셔져 버린다. 우리는 미국 중서부 주들의 초기 역사에서 물소의 예를 알고 있다. 수백만 마리의 물소들이 무자비하게 살해되어 땅 위에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들에 대한 어떤 흔적도 없다. 화석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그 생물체는 빠르고 완전하고 깊고 단단하게 묻혀서 단기간 내에 바위로 변하여야만 한다. 생물체의 유해가 보존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대홍수 때에 수십억의 생물체들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이 물기 있는 퇴적층에 층층으로 매몰되는 것이다.

리처드 리키와 아프리카에서 화석을 채집한 다른 이들이 발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대홍수 때에 퇴적물들로 덮인 동식물과 인간의 유해들이다.
 

4. 화석들은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거듭 말하거니와 화석은 세계 도처 심지어는 높은 산꼭대기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화석이 특별히 흔하게 나오는 곳 중에는 리프트 벨리라는 곳이 있는데 그 길이가 8,000km 이다. 시리아로부터 요르단 계곡을 거쳐 죽 뻗어 홍해로 내려와서 동아프리카를 지나 아프리카 대륙의 남부까지 이른다. 리프트계곡의 지각은 대홍수 때에, 지각이 융기하는 동안 그랬던 것과 거의 유사하게 비틀어 꼬였다. 탄자니아에는 리프트계곡의 남단을 향하여 올두바이 골짜기가 놓여있다. 지각의 융기나 찢김은 싸이고 싸인 퇴적암 층을 관통하고 도려내면서 빠른 강물이 그 위에서 폭포로 떨어지는 일련의 절벽을 형성했다. 이것은 그랜드 캐니언의 축소판인 길이 40km나 되는 올두바이 골짜기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원숭이와 다른 동물들과 인간의 화석들이 많이 드러났다. 루이스와 메리 리키와 그의 아들인 리처드가 많은 화석들을 발견한 곳이 이곳이다. 이 모든 지역과 관련하여 리처드 리키는 그의 저서 <호수의 사람들> 7쪽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과거에 퇴적됐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탄자니아 올두바이 호수는 깊이가 90m 이다. 다행히도 최근의 계절 강이 길이 40km 골짜기를 관통하여 길을 깎아 내려갔는데 과거의 수직 기록을 노출시켰다.”


5. 발견되는 극소수의 인간화석

그러나 극소수의 인간화석들만 발견되고 있다. 화석 수집가들은 많은 동물의 뼈들이 묻혀있는 곳을 주로 탐사했으나, 극소수의 인간 뼈들만 발견되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초기 인류들의 유물을 거의 남기지 않기 위하여 대홍수 이전 세계를 파괴해 버리기 위한 하나님의 고의적인 목적인 것 같다. 그분은 구약의 언약인 방주와 신약에 있는 예수의 십자가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셨다. 리처드 리키 자신은 첫 조상의 온갖 유물들이 한 두 개의 설화 속에는 산재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실로 홍수 이전의 지구를 파괴하여 과거의 문명을 수천 피트 지하의 진흙 퇴적암 속에 묻어 버리고 그것을 재구성하고 다시 꾸밈으로써 고도로 문명화된 당시 세계의 모든 유물을 파멸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 어쩌다 발견된 것들은 현대인과 닮았다.


6. 아름답고 쾌적했던 이전의 세계

다시 말하건대 결코 한 지역이 아닌 전 세계가 정말로 아름답고 쾌적하였다. 인도와 오늘날의 중국, 그리고 다른 아열대 기후에서만 자라는 양치류, 종려, 목련, 계피, 빵 나무(폴리네시아 원산) 및 기타 식물들의 화석들이 북극에서 256km 떨어진 북쪽 알래스카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런 화석들은 또한 시베리아, 그린랜드, 스피츠버겐에서도 발견된다. 화석으로 된 나무들은 지금은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북극의 대륙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7. 세계의 생소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화석들

동물의 화석들은 오늘날에는 그런 동물이 살지도 않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지역에서 발견된다. 알렉산더 캐트 코트는 1967년 판 그의 논문 <홍수에 관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즉;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코끼리들이 영국의 중원에 묻혀 있고, 나일 강이 원산지인 악어가 독일의 중심부에서 발견되고, 고래의 완전한 골격이 영국의 내륙지역에서 발견되고, 거대한 나무들의 뿌리와 꼭대기와 어떤 것은 잎들과 열매까지도 달린 채로 광산의 밑바닥에서 발견되고 있다.”

예일 대학교의 지질학부장인 밴자민 실리만은 1829년 판 그의 저서 <지질학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홍수에 관하여는 한 가지 의견 밖에 없다. 지질학은 전적으로 사건에 대한 성경의 역사를 확인한다. 고래들, 상어들, 기타 어류들, 악어들, 양서류들, 매머드, 멸종된 코끼리, 코뿔소, 하마, 하이에나, 호랑이, 사슴, 말, 여러 종의 소(牛)과 동물, 그 외의 수많은 동물들이 홍적층의 깊고 얕은 곳에 묻힌 채,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그들을 멸종시켰던 동일한 재난 즉 갑작스럽고 격렬한 홍수에 의하여 매몰되었음을 시사하는 환경 하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는 계속하기를] 고래의 뼈대가 북해의 해안에 있는 산혼(Sanhorn)산의 꼭대기에 있었다. [이 산은] 높이가 900m 이고 그런 높이까지 수위가 올라간 홍수 말고는 그 고도로 고래를 운반해 갈 수 있는 어떤 원인도 있을 수 없다.'

많은 경우 진화론자들이 더 오래된 화석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젊은 화석 상층부에 놓여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70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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