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Hoesch
2007-02-23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에 대한 대중적 개념

 (Vulgar Notions of a Universal Flood)


     16세기 초의 과학자들은 하나의 딜레마에 직면했다. 그것은 화석(fossils)들은 어떻게 기원되었는가? 라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수세기 동안 산꼭대기에서 발견되는 바다 조개 화석들은 창세기 홍수(Genesis Flood)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반면에, 당시 유럽의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또는 신플라톤주의와 같은 이교도 철학들은 그것들은 그 위치의 암석 내부에서 신비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라는(자연발생설과 비슷한) 매우 통속적인 해석을 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사실이었는가? 살아있는 바다 생물체와 화석이라 불리는 재미있는 형태들 사이의 유사성은 너무도 뛰어나서 이들 사이의 관계를 부정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전 지구적인 홍수 모델은 저항을 받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사가(science historian)인 마틴 루드윅(Martin Rudwick)의 뛰어난 책 ”화석의 의미: 고생물학 역사에 있어서 에피소드들(The Meaning of Fossils: Episodes in the History of Paleontology” (Univ. of Chicago Press, 2nd ed., 1985)에 따르면, 홍수는 화석들의 설명으로서 실패해 왔었다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이것이었다. 즉, 창세기 홍수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은 바다생물 화석들을 대륙들 위로 휩쓸어 올리기에 불충분한 사건이었으며, 더군다나 (1)생물학적으로 점점 밝혀지고 있던 엄청난 동물 종(species)들의 숫자는 그것들 모두를 방주에 태우기에 부적절한 것으로 보였고, (2)그리고 모든 산들을 덮을 만한 엄청난 물이 어디에서 왔으며, 이들 물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점은 홍수모델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루드윅에 따르면, ‘한 번의 전 지구적 홍수에 대한 대중적 개념’은 실제로 그 가능성이 시도되었으나, 부족함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유일한 합리적인 대안은 성경의 홍수 이야기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주의적 철학을 조화시켜 타협하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노아의 홍수는 여러 차례 있었던 국소적 홍수들 중 단지 하나였다는 것이다. ‘자연 지형에서 발생되는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들은 지형의 광대한 변화들을 설명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바다들은 광대한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올라갔고, 천천히 내려갔다는 것이다. 루드윅은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이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았다. 즉, 이러한 식으로 노아 홍수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은 지구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것과 동등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변증론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 없이, 그는 이것을 유일한 합리적인 안으로 생각했다. 간단히 말해, 대다수의 의견은 화석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틀렸으나, 지구의 장구한 연대와 지질학적 점진주의는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루드윅의 문제점들은 얼마나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인가? 나는 모든 깊음의 샘들이 터져 대양해분들이 갈라지며 시작되는 노아의 홍수가 수 주 만에 모든 산들을 덮었다는 기록이 대륙 위에 바다생물 화석들을 설명하는 데에 논리적으로 불충분하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육상에 거주하며 코로 기식을 호흡하는 알려진 모든 종류(kind, or baramin, not species)의 생물들이 거대한 노아의 방주에 다 탈 수 없었을 것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 홍수 동안 전 지구를 덮을만한 물의 출처와 사라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지구는 물이 풍부한 행성으로 대양의 깊은 해구들은 가장 높은 산들보다 더 깊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지 태평양 해저 하나의 습곡만으로도 쉽게 지구는 물들로 범람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홍수는 이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판구조 운동과 관련되어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으로부터 몇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난센스를 믿을 것을 요청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교도 철학들은 16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에도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그것에 의해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창세기 홍수는 여러 사상들 가운데 당당히 서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William A. Hoesch, M.S. geology, is research assistant in Geology.

 


*참조 : 방주는 땅에 호흡하는 모든 동물 한 쌍씩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까?
http://www.creation.or.kr/qna/view.asp?cate=B&id=21&no=6

큰 깊음의 샘이란 무엇이며, 대홍수 당시의 물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http://www.creation.or.kr/qna/view.asp?cate=B&id=62&no=7

노아 홍수가 끝나고 난 후 창일했던 물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http://www.creation.or.kr/qna/view.asp?cate=B&id=63&no=8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149/

출처 - ICR, BTG 218c, 2007. 2. 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13

참고 : 1756|1817|1420|1422|1429|720|721|2121|2098|2075|512|2104|2094|269|271|3725|1799|3701|3596|2201|3346|3272|3119|3137|2754|2777|261|1493|2141|913|3044|3032

미디어위원회
2007-01-13

북극 지방의 혹서기 

(Arctic Heat Wave)

William Hoesch 


     북극해(Arctic Ocean)의 대양바닥 아래로 뚫은 시추공에서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바닥 아래 430m 지점 부근에서 발굴된 화석들에 의하면, 해저는 한때 섭씨 23℃의 따뜻한 온도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북극해 아래의 온도는 0℃ 전후이다. 그 발견은 모든 대양들이 적어도 한때 ‘효신세/시신세 최대 온도(Paleocene/Eocene Thermal Maximum, PETM)’ 라고 불려지는 따뜻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며, 전 지구적으로 따뜻한 상태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심해 신생대 기록과 빙핵(ice cores)의 분석에 의해서 얻어진 산소동위원소(oxygen isotope) 자료에 의한 그러한 놀랍도록 따뜻했던 온도는, 비록 그 기간의 길이는 의심스럽지만, 많은 과학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를 포함하는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의 역사적 시간 틀과 매우 잘 들어맞는다.


따뜻한 대양(warm ocean)은 몇몇 결과들을 초래했을 것이 예상된다. 따뜻한 물은 많은 증발을 일으켰을 것이고, 많은 강우를 기록했을 것이며, 세계는 매우 습했을 것이다. 얼마나 축축했을까? ICR 연구는 전 지구적으로 바다 표면 온도가 30℃ 정도였다면, 지역적으로 시간당 200mm 이상의 비가 지속적으로 강하했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엄청난 강수량은 극지방에서도 있었을 것이고, 그곳에서는 눈이 되어 폭설로 내렸을 것이다. 눈은 얼음으로 다져지고, 얼음은 빙하들이 되어서 움직였을 것이다. 만일 PETM이 대홍수 직후의 기간에 해당한다면, 대홍수에 뒤이은 빙하기는 이치에 맞는다.


두 번째로, 따뜻한 대양은 엄청나게 강력한 태풍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표면 온도를 37℃로 가정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직경 수백 마일의 사이클론들이 단지 낮은 위도에서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을 가로지르며 생겨났다. ”특급허리케인(hypercanes)'으로 불리는, 이들 태풍들은 300mph의 수평적인 바람과, 100mph의 수직적인 바람을 발생시키고, 시간당 250mm 이상의 강우를 동반하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극지방으로 빠르게 돌진된 습기를 가진 전선이 수십도 온도가 떨어지는 상태를 만들었을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북극 지방에서 살이 얼려진 매머드(flash-frozen mammoths)들의 발견은 최근까지 냉동학적인 신비였다. 비록 그 신비가 풀리지 않고 있지만, 더 신뢰할 수 있는 대답은 이제 가능해졌다. 사람이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그러한 상황은 비교적 최근 과거에 발생했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의 어떤 격변적인 배출이 온난한 기간을 유발시킨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과학자들은 온도 상승은 이산화탄소의 상승에 의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분명한 가능성이 있다. 만약 한 번의 전 지구적인 대홍수가 최근 지구 역사에서 발생했었다면, 그러면 따뜻한 대양과 비교적 온난한(또는 시원한) 공기층이 뒤따랐을 것이다. 대홍수 이후에 대양이 따뜻해진 몇 가지 이유들로는, 비교적 따뜻했던 홍수 이전 대양, 홍수 동안 대대적인 해저 화산들의 폭발, 그리고 홍수 동안 방사성 동위원소 붕괴율의 상승 등을 들 수 있겠다.    


단지 20-30년 전만 해도, 대양의 온도가 30도 정도였을 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대홍수 이후 단축된 빙하기(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의)가 도래했을 것이라는 제안은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니다. 빙하기의 기간이 얼마였는지, 대홍수 종료와 최대 빙하생성 시점 사이의 시간 간격은 얼마였는지 등과 같은 많은 사항들은 미래의 연구에서 밝혀질 것이다.     


성경적 지구 역사에 근거한 전 지구적 대홍수 모델은 매우 적합해 보인다.


*William Hoesch, M.S. geology, is Research Assistant in Geology.


*관련기사 : 지구 온난화와 북극의 고대 기록 (2006. 6. 14. KISTI)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32344.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2836/

출처 - ICR, BTG 212c, 2006. 8. 1.

Lawrence Ford
2007-01-11

자이언트 캥거루들은 가뭄으로 죽었다? 

(Giant Kangaroos Killed by Drought)


       ”한때 호주 대륙을 돌아다녔던 자이언트 캥거루와 자동차 보다 더 큰 웜뱃(wombats)들은 사람들의 사냥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후 변화에 의해서 죽었다”라고 2006. 11. 29일자 로이터 통신(Reuters)은 보도했다.

호주 과학자들에 의한 한 연구에 따르면, 거대동물군(2.4m 크기의 자이언트 캥거루, 자동차 크기의 웜뱃, 다른 거대한 생물체들)들은 한때 믿어지고 있었던 것처럼 호주 원주민들의 사냥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된 가뭄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퀸즐랜드 공과대학의 그레고리 웹(Gregory Webb) 박사는 호주 대륙은 ”대략 지난 50만년 전부터” 점점 건조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남동 퀸즐랜드의 프라이스(Gilbert Price) 박사와 같이 수행한 그의 연구는 ”지속적인 호주 기온의 상승은” 동물들을 멸종으로 내몰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였다.

로이터 통신의 롭 테일러(Robb Taylor)는 ”호주 대륙은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에 기인한 오랜 기간동안의 기후 변화와 물 부족에 직면하여 왔었음에 틀림없다고 과학자들이 말했다”고 덧붙였다.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는 오늘날 과학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에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과학자들이 거대동물군에 대한 웹 박사의 결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샌디에이고에 있는 ICR의 대기 과학자인 래리 바디만(Larry Vardiman) 박사는 퀸즐랜드에서 실시된 연구에 대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

”전통적인 과학 사회의 주장에 의해서, 공룡들과 많은 다른 생물 종들은 장구한 지구 역사 동안에 일어났었던 단기간의 격변적 사건들 동안에 멸종되었다고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격변적 사건 중 하나는 약 6천5백만 년 전인 백악기 말에 있었던 소행성의 충돌 사건입니다. 백악기(Cretaceous Period)는 공룡들이 번성했던 따뜻하고 습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춥고, 건조했던 시기가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백악기 말은 전통적 과학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6천5백만 년 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 변화는 언제 발생할 수 있었는가? 바디만 박사는 계속 말한다 :

”그것은 단지 수천년 전에 발생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노아 시대에 전 세계를 황폐화시켜버린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지구는 따뜻했고 축축했습니다. 홍수 이후에 지구는 파괴적인 빙하기를 맞이했고, 이어서 점진적인 온난화와 건조화 되는 시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공룡들은 노아의 홍수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했고, 노아의 방주에 의해서 살아남은 소수의 공룡들은 홍수 이후 변화된 기후 조건에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연대 계산에 있어서의 광대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공룡의 멸종에 대한 동일한 정보가 과학자들의 가정(assumptions)에 따라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습니다.” 바디만은 말한다.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에 흥미가 있는가? 바디만 박사의 'Earth's Climate Thermostat을 읽어보라. 그리고 흥미로운 다른 뉴스들에 관한 논평 또는 제안이 있다면, Newsroom에 알려주기 바란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s/view/3135/

출처 - ICR News, 2006. 12. 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70

참고 : 2249|2116|248

Headlines
2006-12-09

인류는 3 조상 가족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유전자 연구는 가리킨다. 

(Genetic Study Points to Three Ancestral Families of Humans)


    최근(2006. 11. 23) 출판된 Nature 지 논문에서[1], 과학자들은 유럽, 아프리카, 중국, 일본 이렇게 4 지역 사람들 270여 명의 DNA 지도를 작성하였다. 과학자들은 잃어버렸거나(missing), 중복되어(duplicated) 있는 DNA의 부분들을 조사하였다. DNA의 많은 부분들이 반복적으로 다시 나타났다. 여분 복사본(extra copies)의 수는 개인 간에, 또는 인종 그룹 간에 다양하였다. 그 복사본의 수는 유전체 다형성(Copy Number Variation, CNV, 복사본 수의 변이)이라고 불려진다.

그들 연구에 있어서 주요한 흥미로운 부분은 잃어버리거나 중복된 DNA의 염색체들(chromosomes) 내의 위치와 여러 질병을 나타내는 염색체들 위치 사이에 하나의 연관성을 발견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진화의 무작위적인 과정으로부터 남겨진 것으로 생각했던, 그래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쓰레기(junk)라고 불렀던 DNA 코드 부분은, 이제 많은 신체적 특성들을 결정하고, 우리 몸의 화학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새로운 분야의 연구가 열리고 있다 : 

인간 유전체(genome) 내에서의 유전체 다형성(copy number variation)에 대한 우리의 지도(map)는 이 유전체 변이 형태의 편재성과 복잡성을 증거하고 있다. 유전체 다형성의 내부와 측면의 모든 타입의 기능적 서열의 풍부성은, 유전체 다형성이 표현형의 변이(phenotypic variation)를 가져올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러한 예상은 유전체 다형성이 유전자 발현(gene expression)에서의 변이들과 관련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보고에서 숨겨져 있는(일반 언론에서는 보도하지 않은) 사실은, 그 표본들이 4 군데의 지리적 위치에서 채취된 것이지만, 표본들은 3 개의 분명한 그룹으로 깔끔하게 나뉘어졌다는 관측이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그룹에 속하였고,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이렇게 3 그룹으로 분명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

인간 유전자 변이의 다른 부류와 대조적으로, 유전체 다형성의 집단 유전학(population genetics)은 탐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다른 개체군 집단들 사이에서 유전체 다형성의 분포는 돌연변이, 선택, 인구통계학적 역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집단 유전학을 추론하기 위해서 공통적인 유전체 다형성을 가지는 생물군들을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67 개의 유전자형 이대립인자성(genotyped biallelic) CNVs에 대한 집단 군집화(population clustering)를 수행했다. 우리는 3 개의 조상 집단으로 추정되는 적절한 군집을 얻었는데, 이들 3 개의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시아인 집단들은 분명히 구분되었다.

3 개의 그룹이 얼마나 분명하게 구별되는 지는 여기를(Click here) 클릭하여 인상적인 그래프를 살펴보라. 그래프에서의 사람 그룹들 명칭은 다음과 같다 : 나이지리아(Nigeria, YRI), 유럽(Europe, CEU), 일본(Japan, JPT)과 중국(China, CHB).


[1] Redon et al, 'Global variation in copy number in the human genome,” Nature 444, 444-454 (23 November 2006) | doi:10.1038/nature05329.

또한 다음을 보라 : BBC News,  National Geographic and News@Nature


 
비록 이 연구가 단지 제한된 표본들만을 고려했지만, 이것은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은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유래했다는 창세기 9-11장에 기록된 성경적 설명과 놀라우리만치 일치하며 확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더 많은 지역들에서 더 많은 표본들을 가지고 더 깊이 있는 연구가 수행된다면, 전 세계의 모든 인류 집단은 3 그룹으로 나뉘어질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기원에 관한 대중적인 이론인 ”아프리카 기원(Out of Africa)” 이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더 깊은 연구는 아프리카 기원에 근거한 많은 이야기들을 했던 인류학자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가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인류의 3 조상 집단에 대해서 어떠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BBC와 같은 주요한 뉴스 매체들은 인류가 단지 3 조상 집단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내 보도도 마찬가지임. 아래 뉴스 참조). 대신 그 논문의 의학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Physorg에서의 그 논문에 대한 리뷰는 다음과 같이 방어하고 있다

새로운 정밀 조사에 의하면 진화는 또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아프리카 동부에서 출현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아프리카 기원” 시나리오는 도전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기원은 너무도 최근이어서, CNVs의 방대한 대다수(89% 정도)가 269명의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도쿄의 일본인들, 베이징의 중국인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Yoruba), 북미인들, 서유럽 사람들로서, 연구를 위해 혈액 표본을 제공하였다. 그렇지만, 표본들의 3 지리적 기원에 따라 이들 CNVs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것은 지난 200,000년 정도에 걸쳐 인류의 다른 집단들이 다른 환경들에 적응하면서 유전체에 미묘한 변이가 일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라고 생거(Trust Sanger)는 한 언론 보도에서 말했다.

이 소리는 아프리카 기원 이론은 안전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가 믿기 위해서 질문되어야하는 것은, 상상하고 있는 20만년(아마도 1만 세대) 동안에 얼마나 적게 유전자 풀의 혼합(mixing of the gene pool)이 일어났으면, 아직도 3 개의 분명한 그룹들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분명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20만년 전, 혹은 단지 4400여년 전) 인류 집단은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3 개의 분명한 유전적 그룹을 형성할 수 있는 점까지 인구가 축소된 시점이 있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미안하다. 우리에게 이것은 노아의 3 아들로부터 인류가 퍼져 나갔다는 말이 훨씬 더 합리적인 것처럼 들린다.

 


*참조 : 모두 같은 인간? 전혀 다른 인간!…개인별 유전자 차이 0.3%  (2006. 11. 24. 동아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News/contents.asp?mode=view&article_no=20061124080405

Mitochondrial Eve and biblical Eve are looking good: criticism of young age is prematur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472

A possible post-Flood human migration rout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1/j19_1_65-72.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611.htm

출처 - Creation-Evolution Headlines, 2006.11. 24.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30

참고 : 2765|512|4315|3745|3210|4023|3075|4020|4005|3747|3373|2185|3358|3769

미디어위원회
2006-12-04

노아 홍수와 길가메쉬 홍수 

(The Flood of Noah and the Flood of Gilgamesh)

Frank Lorey 


배경

길가메쉬 서사시(Epic of Gilgamesh)는 19세기 중반 (고대 바빌론의) 니느웨(Nineveh)의 대도서관(Great Library) 유적지(아슈르바니팔의 서고)에서 발견되었을 때부터 기독교인에게 흥미가 있어왔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노아의 홍수와 매우 비슷한 전 지구적인 홍수가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1, 2] 아마 B.C. 2000-3000년 경까지 기록 연대가 올라가는 서사시의 나머지 부분은, 그 시대 이교도들의 전형적인 다신론적 신화들을 다루고 있는 까닭에 기독교인들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몇몇 기독교인들은 서사시에 나오는 창조에 대한 개념과 사후세계에 대해서 연구해 왔다. 비록 바빌론, 페니키아, 히브리인들의 이에 대한 설명들 모두가 공유된 신화들 이상의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고 세속적 학자들은 말하고 있지만, 이들 설명들 사이에 유사한 점들은 확인되고 있다.[3]

세계 곳곳에는 고대의 출처를 둔 무수한 홍수 이야기(flood stories)들이 있다.[4] 가장 초기의 문자기록인 설형(쐐기)문자 점토판(cuneiform tablets)들에서 발견되는 홍수 이야기들은 뚜렷한 유사점들을 가지고 있다. 쐐기 모양의 문자는 수메르인(Sumerians)들에 의해 발명되었고, 아카드인(Akkadian)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바빌론어(Babylonian)와 아시리아어(Assyrian)는 아카드어(Akkadian)에서 파생된 언어(dialects))이고, 이들 둘 다 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원래의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와 나중의 바빌론과 아시리아인들의 홍수 이야기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유사점의 대부분은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5] 바빌론의 홍수 이야기는 가장 완전한데, 205줄의 홍수에 대한 설명 중에서 단지 7줄만 잃어버렸다.[6] 그것은 또한 최초로 발견된 것이어서, 초기 홍수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어졌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12개의 큰 점토판(tablets)들에 포함되어 있고, 최초의 발견 이후에 그 서사시는 다른 점토판들에서도 초기의 다른 고대 언어들로 번역되어서 발견되고 있다.[7] 사실상  B.C. 650년 경으로 연대가 평가되는 점토판들은 원래의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B.C. 2000년 경으로 연대가 평가된 점토판들에서도 홍수 이야기의 단편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8]  B.C. 2000년 이전에 잘 구성된 홍수 이야기는 그 연대보다 훨씬 오래 전에 있었던 자료들로부터 편찬된 것으로 언어학자들은 믿고 있다.[9] 수메르의 상형문자 기록들은 B.C. 3300년경 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10]


이야기

길가메쉬 서사시는 시(poem)의 형태로 구성 되어있다. 주인공은 길가메쉬(Gilgamesh)이고, 그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에 의하면, 길가메쉬는 우르크(Uruk)의 최초 왕조에서 126년 동안 통치한 것으로 되어있다.[11] 이 오랜 통치 기간은 성경에 나오는 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나이와 비교할 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길가메쉬 이후의 왕들은 오늘날의 수명과 비슷한 생애를 살았다.[12] 왕들의 목록은 또한 온 땅을 뒤덮어 파멸시켜 버린 특별한 대홍수를 기록해 놓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13]

그 이야기는 영웅 길가메쉬의 업적들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위대한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서, 홍수 이전 시대의 자료들을 보존했던 사람이었다. 길가메쉬는 우르크의 도시 성벽을 건축했던 일과 우르크의 엔나(Eanna) 사원을 세운 일을 포함하여, 그가 이루어놓았던 모든 일들을 점토판 위에 기록하여 놓았다. 그러나 그는 억압적인 군주였다. 이것은 그의 백성들이 ‘신(gods)들’에게 길가메쉬에 대해 싸울 강적(nemesis)을 만들어 달라고 울부짖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14]

한 번의 싸움이 끝나고, 이 강적인 엔키두(Enkidu))는 길가메쉬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이 둘은 많은 위험한 모험들을 겪게 되면서 명성을 얻게 되고, 엔키두는 결국 그 모험으로 인해 죽게 된다. 그 후 길가메쉬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불사(immortality)의 영원을 찾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시도 끝에 그는 성경의 노아를 매우 닮은 우트나피쉬팀(Utnapshtim)을 만나게 된다.[15]

간단히 요약하면, 우트나피쉬팀은 인류를 파멸시켜버린 거대한 홍수(Great Deluge)를 이겨낼 배(ship)를 만든 후에 불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친척들과 모든 종류의 생물들을 배에 태웠다. 우트나피쉬팀은 땅을 발견하기 위해 새들을 내어 보냈고, 배는 홍수 후에 산 위에 정박하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하세계로 엔키두를 방문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16] 비록 많은 유사성이 두 이야기 사이에 존재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아래의 표는 창세기와 길가메쉬 서사시에 기록된 홍수 이야기를 여러 측면에서 비교하였다.

창세기와 길가메쉬 서사시에 기록된 홍수 이야기의 비교

내용

창세기

길가메쉬

홍수의 크기
홍수의 원인
누구를 멸망시키려고
일으키신 분
영웅의 이름
영웅의 성격
알려준 방법
배를 지으라 명령했는가?
영웅은 불평했는가?
배의 높이
내부의 구획
문들
창문들
바깥쪽 코팅
배의 모양
승선자
다른 승선자
홍수의 수단
홍수의 기간
땅을 발견하는 시험
새의 종류
방주가 도착한 장소
홍수 후 희생제물?
홍수 후 축복?

전 지구적
사람들의 사악함
모든 인류
여호와 (Yahweh)
노아 (Noah)
의로움
하나님의 지시
명령함

여러 층(3층)
많음
하나
적어도 하나
역청
장방형
노아의 가족만
모든 종류의 동물들
지하수 폭발과 엄청난 강우
일 년여 (40 주야 강우 포함)
새를 날려 보냄
까마귀와 세 마리 비둘기
아라랏(Ararat)산
드려짐, 노아에 의해
축복하심
전 지구적
사람들의 죄
한 도시와 모든 인류
신들의 모임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
의로움
꿈에
명령함

여러 층(6층)
많음
하나
적어도 하나
역청
입방형
가족과 소수의 다른 사람들
모든 종류의 동물들
엄청난 강우
단기간 (6일 밤낮)
새를 날려 보냄
비둘기, 제비, 까마귀
니쉬르(Nisir)산
드려짐. 우트나피쉬팀에 의해
축복하심


이 두 이야기를 표로 비교하는 데에 몇몇 해석들이 있을 수 있다. 일부 유사점들은 매우 놀랍다. 반면에 다른 것들은 매우 일반적이다. 배를 만들기 위해 우트나피쉬팀이 받은 명령은 주목할 만하다. ”오, 슈루파크(shuruppak)의 사람이여, 우바투투(Ubar-Tutu)의 아들이여, 그대의 집을 뜯어내라. 배를 지으라. 부를 포기하고, 내세의 삶을 구하라. 소유들을 경멸하라. 너의 생명을 구원하라. 살아 있는 모든 종류(kinds)의 씨들을 지은 배로 데려 오라. 배의 규모를 잘 측량하여 지으라.”[17]

사람의 죄들을 심판하기 위한 홍수의 원인 역시 인상적이다. 7번째 점토판 180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죄인에게 그의 죄를 물으라. 거역한 자들에게 그의 거역을 물으라”[18]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창세기 6-9장과 길가메쉬 서사시의 유사점에 대한 연구는 이들의 유사성이 우연히 일치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영웅들 이름의 의미는 공통적인 뿌리나 연결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노아(Noah)는 ‘안위(rest)’를 의미한다. 반면에 우트나피쉬팀은 ‘삶을 발견한 자(finder of life)’를 의미한다.[19] 둘 다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였을 때, 의롭고 비교적 흠이 없던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트나피쉬팀은 방주에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항해자와 소수의 기능인들을 태우고 있었다. 또한 두 이야기 모두 배가 중동의 어떤 지역에 도착했다고 기록한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아라랏산(Mt. Ararat)과 니시르산(Mt. Nisir)은 480km(300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홍수 후에 영웅들이 받은 축복도 꽤 다르다. 우트나피쉬팀은 영원한 삶을 얻게 되었고, 노아는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었고, 동물들을 지배했다.


결론

이 두 홍수 이야기에 대한 비교 연구가 이루어진 초기부터, 이들 이야기 사이에 명백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동의되고 있다. 인류 전 종족들에 널리 퍼져있는 홍수에 대한 이야기들은 합법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거대한 홍수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완벽한 증거이다.[20] 길가메쉬의 가장 오래된 단편들의 기록 연대는 창세기의 기록 연대보다 더 오랜 것으로 추정되었다.[21] 그러나 성경의 홍수 이야기는 구전으로, 또는 노아로부터 족장들에 의해서(결국 모세까지) 물려 내려오게 된 기록들로서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는 원본에 대한 재언급(약간 변경되어)이었던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보다 더 오래되었을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제안한 대중적인 한 이론은, 히브리인들의 홍수 이야기는 바빌론의 이야기를 빌려왔다고 말한다.[22] 그러나 어떠한 결정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 윤리적 측면에서, 그리고 많은 세부적 사실들에서의  차이는, 성경의 홍수 이야기가 수메르인들의 전설을 빌려와서 쓰여졌다고 볼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이고 비종교적인 학자들을  여전히 그러한 이론을 선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에서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는 이론은, 모든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들에 앞서는 하나의 공통의 출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23]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창세기 이야기는 정확한 내용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기록과 전승을 대대로 후손에게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4]

창세기는 대부분이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하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길가메쉬 서사시는 신화적인 일들을 서술하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심지어 많은 자유주의적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One-source Theory)은 노아의 홍수와 방주 사건이 실제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25]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쓰여졌음과 오류가 없음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전승 속에 홍수 사건에 대한 진실된 설명을 보존해두고 계셨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창세기 이야기가 모세(Moses)에 의해서 모아지고, 편집되고, 쓰여질 때까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수백 년 이상을 순전하고 정확하게 보존되어 왔던 것이다.[26] 그리고 길가메쉬 서사시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미화되고 손상된 홍수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REFERENCES

[1] Keller, Werner, The Bible as History, (New York: William Morrow and Company, 1956), p. 32.
[2] Sanders, N.K., The Epic of Gilgamesh, (an English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London: Penguin Books, 1964), p. 9.
[3] Graves, Robert, The Creek Myths, Volume 1,(London: Penguin Books, 1960), pp. 138-143.
[4] Rehwinkel, Alfred M., The Flood in the Light of the Bible, Geology, and Archaeology,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1951), p. 129.
[5] O'Brien, J. Randall,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Biblical Illustrator, (Fall 1986, volume 13, number 1), p. 61.
[6] Barton, George A., Archaeology and the Bible, (Philadelphia: American Sunday School Union, 1916), pp. 273-277
[7] Keller, The Bible as History, p. 33.
[8] Whitcomb, John C. and Morris, Henry M., The Genesis Flood, (Phillipsburg: Presbyterian and Reformed, 1961), p. 38.
[9] Heidel, Alexander, The Gilgamesh Epic and Old Testament Parallel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9), p. 13.
[10] O'Brien,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p. 61.
[11] Heidel, The Gilgamesh Epic and Old Testament Parallel, p. 13.
[12] Sanders, The Epic of Gilgamesh, p. 21.
[13] Vos, Howard F., Genesis and Archaeology, (Chicago: Moody Press, 1963), p. 35.
[14] Sanders, The Epic of Gilgamesh, pp. 20-23.
[15] Ibid., pp. 30 39.
[16] Ibid., pp. 39-42.
[17] Keller, The Bible as History, p. 33.
[18] Sanders, The Epic of Gilgamesh, p. 109.
[19] O'Brien,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pp. 62, 63.
[20] Morris, Henry M., Science and the Bible, (Chicago: Moody Press, 1986), p. 85.
[21] O'Brien,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p. 64.
[22] Ibid.
[23] Ibid.
[24] Morris, Science and the Bible, p. 92.
[25] Ibid., p. 85.
[26] Whitcomb, John C., The Early Earth(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6), p. 134; Whitcomb and Morris, The Genesis Floodp. 488.


* Frank Lorey is a Registered Historical Archaeologist.

 

*참조 : A comparative study of the flood accounts in the Gilgamesh Epic and Gene

   Introduction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introduction.asp

   Chapter 1. The background of the Gilgamesh Epic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1.asp

   Chapter 2. The flood account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2.asp

   Chapter 3. A comparison of ethic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3.asp

   Chapter 4. A comparison of specific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4.asp

   Chapter 5. A comparison of scientific reliability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5.asp

   Chapter 6. A comparison of interal consistency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6.asp

   Chapter 7. A comparison from secular historical record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7.asp

   Conclusion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onclusion.asp


*Noah’s Flood and the Gilgamesh Epic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10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414/

출처 - ICR, Impact No. 285, March 1997.

미디어위원회
2006-06-17

세인트 헬렌산 폭발은 창조론의 증거를 제공하였다. 

(Mt. St. Helens Explosion Gives Creation Evidence)

Bruce Malone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추론하기 위해서 지질학자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지질학적 과정들을 연구하고 관측하여, 어떻게 암석 지층들이 전 지구를 뒤덮게 되었는지를 결정한다. 1800년대 이전의 지질학에서는, 한 번의 전 세계적인 홍수(a worldwide flood)가 이들 암석 지층들의 형성 원인이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현대 지질학의 창시자인 제임스 허튼(James Hutton)과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등이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이라는 새로운 믿음 체계로 대체해 버렸을 때 바뀌어졌다.

동일과정설은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것과 같은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slow-and-gradual processes)들로 행성 지구의 지질학적 모습들을 설명하는 믿음 체계이다. 그것은 또한 전 지구적인 대격변과 같은 것에 의한 퇴적물들의 대규모적이고 빠른 퇴적은 결코 없었다고 가정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이러한 개념에 깊게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느리고 점진적인 지질학적 변화의 개념을 확장하여 느리고 점진적인 생물학적 변화를 가정하게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에, 많은 지질학자들은 오늘날에는 볼 수 없는 엄청나게 빠른 지질학적 변화들이 과거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지질학계는 이들 격변들 사이에 수백만 년의 시간이 있었다는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

창조론 모델의 기본적인 가정은 한 번의 전 세계적인 홍수가 최근 과거에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 가정이 맞다면, 격변적인 홍수 사건의 증거들이 있어야만 한다. 전 세계적인 홍수는 식물계와 동물계에 대대적인 파멸을 초래하였을 것이고, 이들 유기체들과 침전물들의 재퇴적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것은 지구 행성 전체에 막대한 양의 화석을 포함하는 엄청난 퇴적지층들을 쌓아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확히 이것이 화석 기록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창조론 모델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주장되는 대홍수 동안 발생한 과정들을 보여줄 수 있는 자연적 모델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에 워싱턴주에 있는 세인트 헬렌산(Mt. St. Helen)의 폭발은 그러한 하나의 자연적 모델을 제공하였다. 세인트 헬렌산은 180억 입방 피트의 암석으로 평가되는 화산재, 진흙, 증기, 녹은 눈들을 시속 144km (90 mph)로 산 아래쪽으로 흘러내렸다. 이것과 이후에 연속된 화산성 이류들은 산허리의 북쪽면 위에 180m (600 feet) 두께의 퇴적물들을 쌓아놓았다. 과학계에서 이것은 본질적으로, 대규모의 홍수 사건이 있었다면 발생했었을 과정들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맹렬한 진흙과 화산재들의 흐름 동안에 쌓여진 퇴적물들은 균질하게 혼합되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들은 미세한 층리들을 보이는 일련의 수평퇴적층(horizontal strata)들을 만들었다. 그 층들은 우리들이 여행하며 도로 절개지 등에서 흔히 관측할 수 있는 수평적인 암석 층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였다. 이러한 타입의 수평적 암석 지층들의 띠는 자주 수백만 년의 지구 역사를 가리키고 있다고 가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세인트 헬렌산 폭발은 지질학자들에게 이것과 똑같은 형태의 수평적 지층들이 흐르는 물(flowing water)에 의해서 어떻게 빠르게 퇴적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작은 축척의 모델을 제공했다. 세인트 헬렌산의 폭발에 연속되어, 불어난 물이 새롭게 퇴적된 퇴적물들을 관통하며 터져 나가 강이 흐르는 새로운 협곡(canyon)이 하루 만에(1982. 3. 19일) 형성되었다. 30m 깊이의 이 협곡은 놀랍게도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1/40 스케일의 모델처럼 보였다.

만약 이 지역이 형성되는 것을 보지못한 사람이라면, 현재 이 캐년의 바닥을 흐르고 있는 작은 강이 수백 수천만 년에 걸쳐 이 협곡을 파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는 그랜드 캐년을 흐르는 있는 콜로라도 강에 대해서 현재 우리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많은 지질학자들은 이제 세인트 헬렌산의 터틀강 협곡(Toutle River canyon)이 빠르게 형성되었으며, 그랜드 캐년도 한때 엄청난 규모의 물이 격변적으로 흘러가며 단기간 내에 파여졌다는 것을 인정해가고 있는 중이다.

지질학계의 대다수 사람들은 낮은 에너지 과정들과 광대한 기간으로 지질학적 기록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반해 창조론자들은 높은 에너지 과정들과 짧은 기간으로 지질학적 기록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 둘 중에 오직 한 견해만이 옳은 것이다. 그리고 이 둘 중에 오직 한 견해만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어느 견해라고 생각하는가?

 

*참조 : Rapid Erosion at Mount St. Helens
http://www.icr.org/research/index/researchp_sa_r04/

세인트 헬렌 산의 폭발에 대한 종합적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Learning the lessons of Mount St Helens (CMI, Creation 39(3):23–27, July 2017)
http://creation.com/lessons-from-mount-st-helen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rdino.com/articles.php?spec=7 


John D. Morris
2005-12-21

초기 지구에서 모든 달의 길이는 정확히 30일이었는가?

(In the Early Earth, Were All the Months Exactly Thirty Days Long?)


    오늘날 사용하는 역법(calendar)에는 한 달의 길이가 28부터 31일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약간의 혼란이 일어난다. 4, 6, 9, 11월은 30일, 2월은 28일, 1, 3, 5, 7, 8, 10, 12월은 31일, 그리고 윤년인 경우에 2월은 29일 이다. 그래서 그 달에 몇일이 있는지를 기억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동요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차이는 왜 났을까? 한 달의 길이가 모두 같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창세기에 기술된 바와 같이 완벽한 창조라면 더 규칙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한 달(month)의 길이는 지구의 위성인 달(moon)의 29½ 날 주기에 대략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들에서 음력(lunar calendar)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쉽게 확인될 수 있는 ‘새로운 달(new moon)’의 출현은 음력의 적용을 용이하게 하였다. 성경에 사용된 히브리인의 역법은 음력이다. 성경의 역사적인 사건들과 절기를 나타내는 날짜의 많은 부분이 음력의 날짜들 또는 달의 모양과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현대 역법은 28부터 31일까지 불규칙한 달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달 들의 많은 수가 로마의 신들이나 황제들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그리고 달들의 길이가 다양하게 된 원인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그리 크지 않다. 예를 들면, 8월(August)이 케이사르 아우구수투스(Caesar Augustus)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을 때, 그는 그 달이 가장 긴 달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월의 하루를 8월에 더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각 달이 정확하게 30일이었다면, 일 년의 주기가 훨씬 단순했을 수도 있었으며, 그래서 12달은 360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해왔다. 태초의 시기에 이것은 더 규칙적이었을까? 그것은 홍수 시기에 변화되었는가?  


많은 학자들이 이 질문에 대해 숙고해오고 있지만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홍수이전 달들의 길이에 관한 성경에서의 가장 중요한 암시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보자. 홍수는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에 시작되었다(창7:11). 그리고 '일백 오십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창7:24),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창8:4) 라고 기록되어있다.


이월 십칠일과 칠월 십칠일 사이에 150일이 존재했다. 따라서 평균 30일의 5개월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심히 좋았더라”(창1:31)는 말씀 안에서 매우 규칙적이었던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오늘날 일년의 길이가 365¼ 일인 것은 창조된 질서(created order)의 변경된 흔적임에 틀림없다. 


지구의 공전궤도를 바꾼 무엇이 일어났었는가? 지구의 각운동량(angular momentum)은 엄청나다. 그리고 회전하고 있는 회전의(gyroscope)에서처럼 그것을 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지구의 운동은 변화에 저항할 것이다. 그것을 바꾸는 데에는 엄청난 힘이 필요로 할 것이다.


성경은 그러한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자세한 모든 사항들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노아의 시대에 있었던 엄청난 홍수는 지구의 시스템을 영원히 바꾸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만약 지구의 공전 궤도가 바뀌었다면, 그 때가 그것이 일어났던 때였을 것이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거대한 양의 물들이 재배치 되고, 대륙들이 이동하고, 소행성들이 충돌했을 수도 있고, 산들과 바다의 높이가 변화되고, 하루의 길이, 일년의 길이, 그리고 지축의 기울기 등 모든 것들이 변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일들에 대한 정확한  크기와 강도를 상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 했을 한 사건은 알고 있는 것이다.



*참조 : 
자료실/노아의 홍수/격변적 지층형성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4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홍수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1

자료실/노아의 홍수/홍수지질학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2591

출처 - ICR, Dr. John's Q&A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36

참고 :

유종호
2005-07-26

대홍수에 대한 홍수 후의 기록들 2


3. 퇴적암 층에 매몰되어 있는 화석들

모든 종류의 동식물 화석들이 바위로 변한 대홍수의 진흙탕 퇴적물들 속에 묻혔던 것이다. 이 모든 화석들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진화론자들은 동물과 인간들의 이런 화석들의 형성을 침니(沈泥)와 화산재 층이 장단간의 세월 동안에 이 뼈들을 덮음으로써 말미암았다고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1985년 11월 판 내셔날 지오그래픽 지에 3마리의 하이에나가 인간의 시체를 막 뜯어 먹으려고 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두개골들이 갑자기 밀어닥친 홍수에 둥둥 떠내려가고 분출하는 화산으로부터 침니, 자갈, 재 등이 연속된 층을 만들며 뒤덮였다. 점점 수용성 광물들은 뼈를 돌로 바꾸었다.”

585쪽에서는 루시라고 불리는 부분적인 뼈들과 두개골들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들은 화석이 퇴적암 층과 화산재로 오래 동안 감추어져 있었다고 말한다.

진화론자인 리처드 리키는 그의 저서 <호수의 사람들> 6쪽에서 화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뼈들은 미세한 침니 속에서는 급속히 매몰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필수적인 과정이 일어나는 호수 주변에는 3가지 환경이 존재한다. 첫째는 잔잔하게 치는 파도가 얕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뼈 위에 한 겹의 침니를 덮어주는 호수의 해변, 둘째는 호수 변두리로 굴러 내려가는 개울의 하상, 셋째는 이 양극 사이에서 개울이 호수에 이르러 호수 물이 침니를 떨어뜨리게 하는 지점에서 일어난다.”

얕은 물속과 뒤늦게 내려오는 개울의 하상에 가라앉아 있는 뼈 위에 침니를 내려놓는 잔잔한 파도는 결코 화석을 보존해 주지 않는다. 퇴적물을 순차적으로 덮는 것은 그런 화석들을 결코 보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셔날 지오그래픽과 리처드 리키에 의해서 제시된 화석의 기원에 관한 이러한 설명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수억 개에서 수십억 개에 이르는 화석들에 대한 설명을 시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경우 수천 개의 화석들이 한 장소에서 무더기로 발견된다.

내셔날 지오그래픽 1985년 11월호 589쪽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단층운동, 융기작용, 침식작용이 수백 미터 깊이의 호수와 강바닥의 퇴적물과 수백만 년 동안 싸여온 여러 가지 깊이의 화석들을 노출시켰다. 이와 같은 수백만 년 동안 많은 분출로부터 온 수많은 화산재 층들이 이 퇴적물들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다.”

수백만 년을 1-2년으로 바꾸어 보라. 그러면 대홍수의 격류로부터 온 진흙과 퇴적물들이 가라앉고 “깊음의 샘들이 터질 때” 수많은 화산들의 화산재가 분출됐던 노아 시대의 홍수 활동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1976년 6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 123쪽에 있는 “동물들은 어디로 갔는가?” 라는 기사에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동물 종들을 11,000년 전이나 늦게 소멸되었다고 적고 있다. 즉;

“이 동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왜 사라졌는가? 이것은 미국의 자연사 가운데서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설명들을 분간하느라 뜨거운 논쟁에 휘말려 있다. 엄청난 수의 동물들이 사라졌고 모든 종류의 조류들이 소멸됐다. 그들은 왜 사라졌을까?”

주어진 대답 중 하나는 아시아에서 온 일단의 유목민 사냥꾼들이 그들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결국 그들을 다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대답은 약 12,000년 전에 한발과 기아, 동사(凍死)로 그들을 죽게 한 빙하시대에 있어서의 기후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증명되지 아니한 다른 이론들도 있다. 그들의 설명은 대홍수에 대한 설명들과 매우 유사하지만, 과학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진화론자들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던 어떤 홍수가 이런 많은 종류의 동물 종들을 휩쓸어버렸다는 것은 바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사냥꾼들이나 가뭄이나 기근이나 동사에 의해 죽은 동물의 뼈들은 그대로 보존되고 화석화 되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로 화석화된 뼈의 거대한 무더기로 발견되어질 수 없다. 

1981년 8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똑같은 거짓 논리가 있다. 거대 동물인 디프로토돈의 뼈들이 호주 동북부의 칼라본나 호수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이 동물들도 그들의 추측에 의하면 약 10,000년 전에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1893년과 1953년에 과학적 탐사로 이 동물들의 완전한 골격들이 완전한 형태로 1,000 개체나 발견되었다. 그 기사는 170쪽과 174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이 거대 동물들이 어떻게 그들의 최후의 운명을 맞았는지 모르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추론이 여기에 있다. [그러고 나서 한발이 어떻게 그 지역을 강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꾸며냈다]. 비옥한 초원에서 가뭄으로 말라버린 호수의 물로 힘들여 걸어갔을 때, 두 마리의 동물들은 ‘상처 때문이 아니라 좌절감과 기가 진하여 죽었다’. 칼라본나 호수의 갈라진 마른 하상에 이들은 두 개의 희미한 혹이 되었다. 진흙과 뜨거운 태양이 수천 년 전에 쓰러진 곳에 그들을 보존해 둔 것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그런 시체들은 금방 부패하고 사라져 버린다. 만일 동물들이 비옥한 초원에서 물을 찾아 그 호수로 옮겨 왔다면 그들은 분명히 그 비옥한 초원 근처의 어느 곳에서 물웅덩이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들은 누구를 위하여 이 우화를 펴내고 있는가? 여론에 따르면 이 진화론적 이야기를 믿지 않는 대부분의 일반인을 위해서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온 세계에 걸쳐 무더기로 쌓여 있는 이런 무수한 화석들에 대한 과학적으로 타당한 유일한 설명이 있다. 죽은 후에 노출된 채로 유기된 동물의 시체는 일반적으로 다른 동물들에 의해 즉시 먹혀버리거나, 금방 썩어버리거나, 뼈들은 1-2년 이내에 가루로 부셔져 버린다. 우리는 미국 중서부 주들의 초기 역사에서 물소의 예를 알고 있다. 수백만 마리의 물소들이 무자비하게 살해되어 땅 위에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들에 대한 어떤 흔적도 없다. 화석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그 생물체는 빠르고 완전하고 깊고 단단하게 묻혀서 단기간 내에 바위로 변하여야만 한다. 생물체의 유해가 보존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대홍수 때에 수십억의 생물체들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이 물기 있는 퇴적층에 층층으로 매몰되는 것이다.

리처드 리키와 아프리카에서 화석을 채집한 다른 이들이 발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대홍수 때에 퇴적물들로 덮인 동식물과 인간의 유해들이다.
 

4. 화석들은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거듭 말하거니와 화석은 세계 도처 심지어는 높은 산꼭대기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화석이 특별히 흔하게 나오는 곳 중에는 리프트 벨리라는 곳이 있는데 그 길이가 8,000km 이다. 시리아로부터 요르단 계곡을 거쳐 죽 뻗어 홍해로 내려와서 동아프리카를 지나 아프리카 대륙의 남부까지 이른다. 리프트계곡의 지각은 대홍수 때에, 지각이 융기하는 동안 그랬던 것과 거의 유사하게 비틀어 꼬였다. 탄자니아에는 리프트계곡의 남단을 향하여 올두바이 골짜기가 놓여있다. 지각의 융기나 찢김은 싸이고 싸인 퇴적암 층을 관통하고 도려내면서 빠른 강물이 그 위에서 폭포로 떨어지는 일련의 절벽을 형성했다. 이것은 그랜드 캐니언의 축소판인 길이 40km나 되는 올두바이 골짜기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원숭이와 다른 동물들과 인간의 화석들이 많이 드러났다. 루이스와 메리 리키와 그의 아들인 리처드가 많은 화석들을 발견한 곳이 이곳이다. 이 모든 지역과 관련하여 리처드 리키는 그의 저서 <호수의 사람들> 7쪽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과거에 퇴적됐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탄자니아 올두바이 호수는 깊이가 90m 이다. 다행히도 최근의 계절 강이 길이 40km 골짜기를 관통하여 길을 깎아 내려갔는데 과거의 수직 기록을 노출시켰다.”


5. 발견되는 극소수의 인간화석

그러나 극소수의 인간화석들만 발견되고 있다. 화석 수집가들은 많은 동물의 뼈들이 묻혀있는 곳을 주로 탐사했으나, 극소수의 인간 뼈들만 발견되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초기 인류들의 유물을 거의 남기지 않기 위하여 대홍수 이전 세계를 파괴해 버리기 위한 하나님의 고의적인 목적인 것 같다. 그분은 구약의 언약인 방주와 신약에 있는 예수의 십자가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셨다. 리처드 리키 자신은 첫 조상의 온갖 유물들이 한 두 개의 설화 속에는 산재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실로 홍수 이전의 지구를 파괴하여 과거의 문명을 수천 피트 지하의 진흙 퇴적암 속에 묻어 버리고 그것을 재구성하고 다시 꾸밈으로써 고도로 문명화된 당시 세계의 모든 유물을 파멸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 어쩌다 발견된 것들은 현대인과 닮았다.


6. 아름답고 쾌적했던 이전의 세계

다시 말하건대 결코 한 지역이 아닌 전 세계가 정말로 아름답고 쾌적하였다. 인도와 오늘날의 중국, 그리고 다른 아열대 기후에서만 자라는 양치류, 종려, 목련, 계피, 빵 나무(폴리네시아 원산) 및 기타 식물들의 화석들이 북극에서 256km 떨어진 북쪽 알래스카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런 화석들은 또한 시베리아, 그린랜드, 스피츠버겐에서도 발견된다. 화석으로 된 나무들은 지금은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북극의 대륙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7. 세계의 생소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화석들

동물의 화석들은 오늘날에는 그런 동물이 살지도 않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지역에서 발견된다. 알렉산더 캐트 코트는 1967년 판 그의 논문 <홍수에 관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즉;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코끼리들이 영국의 중원에 묻혀 있고, 나일 강이 원산지인 악어가 독일의 중심부에서 발견되고, 고래의 완전한 골격이 영국의 내륙지역에서 발견되고, 거대한 나무들의 뿌리와 꼭대기와 어떤 것은 잎들과 열매까지도 달린 채로 광산의 밑바닥에서 발견되고 있다.”

예일 대학교의 지질학부장인 밴자민 실리만은 1829년 판 그의 저서 <지질학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홍수에 관하여는 한 가지 의견 밖에 없다. 지질학은 전적으로 사건에 대한 성경의 역사를 확인한다. 고래들, 상어들, 기타 어류들, 악어들, 양서류들, 매머드, 멸종된 코끼리, 코뿔소, 하마, 하이에나, 호랑이, 사슴, 말, 여러 종의 소(牛)과 동물, 그 외의 수많은 동물들이 홍적층의 깊고 얕은 곳에 묻힌 채,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그들을 멸종시켰던 동일한 재난 즉 갑작스럽고 격렬한 홍수에 의하여 매몰되었음을 시사하는 환경 하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는 계속하기를] 고래의 뼈대가 북해의 해안에 있는 산혼(Sanhorn)산의 꼭대기에 있었다. [이 산은] 높이가 900m 이고 그런 높이까지 수위가 올라간 홍수 말고는 그 고도로 고래를 운반해 갈 수 있는 어떤 원인도 있을 수 없다.'

많은 경우 진화론자들이 더 오래된 화석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젊은 화석 상층부에 놓여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70

참고 :


유종호
2005-07-25

대홍수에 대한 홍수 후의 기록들 1


1. 암석들과 퇴적물들

홍수와 관련하여 지구의 표면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과 토양, 그리고 홍수 기간 중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오늘날 크게 분류하여 3종류의 암석 즉 화성암, 수성암, 그리고 변성암이 있다. 화성암은 최초로 창조된 최초의 원시 암석이다. 그것은 층으로 되어있지 않은 깊은 곳의 암석 덩어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식물이나 동물들 이전에 존재했기 때문에, 그 속에서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단한 이 바위의 상부에는 창조 때에 꽤 깊은 곳까지 지구 전체를 덮었던 엉성하고 비옥한 토양이 있었다. 토양은 땅에 물을 대주고 에덴동산의 시대부터 홍수 때까지 이 땅을 극히 비옥하게 해주었던 안개와 함께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퇴적암들은 지구 대부분의 지각을 덮고 있으며, 격렬했던 홍수 물의 작용에 의해 층서를 이루며 퇴적된 암석들이다. 그 속에 화석이 들어 있지 않은 일부 퇴적암들은 창조기간(창조 셋째 날 뭍이 드러나는) 동안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최초의 화성암들은 분명히 '깊음의 샘이 터질 때” 표석(漂石)으로 분출됐다. 표석들은 격렬한 대홍수의 충격을 받아서 큰 바위로, 굵은 자갈로, 잔자갈로, 모래로, 그리고 진흙으로 부셔졌을 것이다. 이것은 차례대로 성글고 기름진 토양과 뒤섞였다. 이 혼합물은 말라서 굳어지기 전에 진흙, 석회 기타 결합 물질들과 함께 결합되었다. 이렇게 층으로 된 대부분의 바위들이 지금의 석회암, 혈암, 사암 등이다. 이 암석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암석과 토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제2차 암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변성암이 있다. 그것은 화학반응과 압력과 열로 인하여 어떤 종류의 암석이 다른 종류의 암석으로 변화된 퇴적암이다. 예컨대 석회석이 대리석으로, 혈암이 석판암으로, 그리고 사암이 규암으로 변한 것 등이다.


2. 홍수 후의 이 지구의 지층

150일 동안 격동적인 폭풍우와 지진들, 그리고 폭발적인 화산들에 의해 생긴 엄청난 해일과 대격변들로 인하여 깨진 바위들, 큰 자갈들, 돌멩이들, 잔자갈들, 모래, 미사, 진흙 등은 섞이고 다시 섞이면서 거칠게 앞뒤로 굴려지고 뒤흔들어졌다. 이것들은 석회와 철분과 다른 결합물질들과 서로 결합되었다. 이 진흙탕 혼합물의 요동과 교란이 어느 정도 잔잔해지면서 또 다른 퇴적층이 물의 바닥 위에 쌓였다.

이렇게 해서 부드럽고 교반(攪拌)된 물질들의 퇴적물들이 처음에는 한 방향에서 연이어 다른 방향에서 유입되고 쌓여서 연속적으로 지층을 이루어 나갔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지층 속에서 지금 물렁물렁한 퇴적물과 함께 혼입된 여러 가지 종류의 동물들과 인간의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지층들을 만든 여러 물질들과 암석층의 색깔 및 조직들은 물질들이 이동되어 온 위치에 좌우되었다. 지층은 사암, 점토, 석회석, 혈암 및 다른 혼합물들로 구성될 수 있었다. 다음 지층이 그 위로 쌓이기 전에 각각의 하부 지층은 아직 물렁물렁하고 평평했을 것이다. 극렬한 교란이 수 피트에서 수십 피트의 퇴적물을 1-2시간 안에 퇴적되게 할 수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지층의 두께가 수천 피트에 이르고 퇴적층의 형성이 매우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어떤 진화론적인 지질학자들은 지층이 오늘날과 같이 쌓이는 데에는 약 10-40억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기간 동안 사이에 홍수들이 중간에 끼어들어 이루어 놓은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노아 때의 홍수는 오늘날의 그 어떤 홍수보다도 수천 배나 더 격렬했다.

대홍수가 얼마나 격렬했으며 퇴적층들이 얼마나 빨리 쌓였는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퇴적암의 여러 연속 층을 수직으로 관통하며 수직으로 서있는 많은 화석 나무들이나 식물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이런 나무들을 다지층(polystrate) 나무라고 부른다. 영국의 크레이그리스(Craiglieth)라는 채석장에 있는 그와 같은 하나의 화석나무는 최소한 10개의 석회암 지층에 걸쳐있는데, 높이가 24m이고 40도로 경사되어 서있다. 거기에는 가지들과 뿌리들도 붙어 있다. 만일 그 지층이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수백만 년 동안 쌓여서 된 것이라면, 나무의 꼭대기는 다음 지층이 쌓이기 오래 전에 썩어버렸을 것이다. 암석들이 많은 퇴적 지층 속에 서있는 화석 나무들은 노바스코티아와 오리건 주에서 발견되어진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 그루의 나무들이 암석층 사이의 지표 밑에 묻혀있다. 그들 대부분은 그 표면이 흙으로 고르게 덮여 있고 몇몇은 수직 또는 각을 이루고 서있다. 우리는 격렬한 홍수 중에 나무들이 여러 위치에서 매몰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골풀이나 속새와 같은 매우 섬세한 식물까지도 퇴적층 속에서 부러지지 않은 채 원상대로 발견되어진다. 이 다지층 나무들은 진화론자들이 지구의 퇴적층은 대홍수와 같은 재난 중에 급격히 쌓인 것이 아니라, 수백만 년 넘게 서서히 그리고 차근차근 쌓였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과학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꼬리가 머리 쪽으로 꼬부라진 수천 마리의 고기들이 한 채석장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갑자기 죽었고, 퇴적암층 속에서 재빨리 묻힌 채로 바위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화석화된 벌레들까지도 퇴적암에 묻혀서 발견된다. 마찬가지로 수천의 공룡들이 갑자기 익사해서 퇴적암 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어진다. 매머드와 같은 매우 다른 거대한 체구의 많은 동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시베리아에서는 많은 매머드들이 그들의 입과 위 속에 아직 열대성 식물성 먹이가 소화되지 않고 남아 있은 채 순간적으로 얼어 죽었다. 규화(硅化)된 숲이 남극으로부터 불과 16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오늘날도 비록 규모는 훨씬 작지만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1980년 5월 18일 워싱턴 주에 있는 세인트 헬렌 산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분출되었다. 많은 나무들이 돌풍으로 뿌리에서 찢겨져 나가 스피릿 호수로 쓸려 내려갔다. 백만 그루 이상의 나무들이 얕은 호수물 위에 떠있었다. 5년 후에는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완전히 가라앉아서 호수의 밑바닥 근처 수십 미터 두께의 퇴적물 속에 똑바로 선채로 묻혀 있음이 발견되었다. 만약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후 어떤 진화론자들이 각각 다른 높이로 묻혀있는 이 나무들을 보게 된다면, 수천 년 동안 거기에서 자라다가 수천 년 동안에 걸쳐 천천히 쌓여진 퇴적물 속에 묻히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은 모두 1-2달 안에 일어났던 것이다.

이 두꺼운 퇴적층 중 어떤 것은 아직도 물렁물렁하고 유연하고 쉽게 휘어질 수 있는 동안에 높은 산을 이루었고, 암석으로 경화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기 전에 융기되었다. 습곡 당시 아직도 유연하고 쉽게 휘어질 수 있어서, 지층들은 조각조각 깨어지지 않고, 두껍고 유연한 표지로 덮인 책 속의 낱장들처럼 휘어지거나 구겨졌다. 진화론자들은 어떻게 지층들이 조각들로 부서지지 않은 채 수백만 년 동안에 걸쳐 이와 같은 산들로 천천히 융기될 수 있었는 지를 설명해보려고 애써왔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68

참고 : 4198|4275|4235|4473|4490|4607|4610|6563|6566|6638|6645|6559|6558|6552|6549|6547|6545|6543|6535|6531|6508|6507|6551|6462|6417|6431|6524|6415|6413|6330|6255|6254|6240|6228|6225|6223|6222|6136|6170|6104|6076|6030|5556|5973|5468|5958|5957|5951|5898|5527|5841|5737|5721|5675|5429|5419|5400|5399|5286|5260|4805|4211|4217|4214|4132|3968|3948|3111|4363|3044|3278|2912|2050|1493|1464|1192|557|2104|512|3032

유종호
2005-07-23

대홍수 3


8. 광범위한 홍수

지상의 모든 세력들 즉, 궁창 위의 물 층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비, 지구를 뒤흔드는 지진,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폭발하는 화산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대륙들, 융기하는 산들, 토네이도, 허리케인, 거친 폭풍의 포효, 대란을 일으키는 역류와 소용돌이를 동반한 무시무시한 해일 등이 합쳐서 작동한다면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까? 광물 탐사가인 존 윌리엄스가 말한 대로 200일간의 추가적인 활동과 함께 150일 동안 수 주일 연속해서 한꺼번에 일어난 이 모든 것들은 틀림없이 “아마도 수직으로 수 마일에 달하는 깊이의” 해일을 일으켰을 것이다. 확실히 여러 종류의 요소로 된 퇴적암들에는 매우 많은 층들이 있다. 정말로 대홍수는 모든 형태의 생명과 지구의 전 표면을 통째로 파괴시켜버린, 세계의 역사 가운데서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격렬했던 대재난이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알프레드 레윈클 박사가 그의 저서 <대홍수> 329쪽에서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요약해 놓았다. 즉;

“성경의 대홍수(Deluge)는 하늘과 모든 땅이 관련된 전 세계적 재난이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무죄한 사람들을 위해 창조하신 세계를 파괴시켜버린 것은 그분의 뜻이요 목적이었다. 그래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융기를 일으키기 위하여 잠재한 모든 자연의 힘들을 일시에 총 동원하였던 것이다. 이 크나큰 자연의 힘들(지진들, 화산들, 바람과 물...)은 우주적인 대 파괴를 위하여 가공할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이 힘들이 연합하면 파괴와 이동을 극대화시키는 상승효과를 내기 때문에 그 크기는 인간의 계산 한계를 초월한다. 하나의 강이나 수계(水系)의 수위가 불어나서 야기되는 국부적인 홍수도 때때로 해당 지역의 지형도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바꾸어 버린다. 그러나 그런 국부적인 홍수들과 역사적으로 알려진 가장 큰 규모의 홍수일지라도 처음 세계를 덮쳐버린 대 재난의 모습을 그리기에는 수만의 만 배는 더 곱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미네소타 주 맨카토 유역과 그것과 같은 다른 강들의 유역을 따라 내려오면서 미네소타 강 유역을 관찰해 보면, 우리는 강의 유역의 폭을 4 km나 넓게 깎아내는 데에는 맨카토가 최근에 경험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홍수를 치렀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최근의 맨카토 홍수는 그런 넓은 유역을 만들어 내는데 필요로 하는 홍수의 물과 비교해 보면 작은 개울에 불과할 뿐이다. 전 세계에 걸친 강의 유역들은 보통의 홍수가 능히 깎아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넓다.

강들의 넓은 유역과 협곡들이 현재 지역의 육지 표면 위에서 깎여나갔을 뿐만 아니라, 깊은 협곡들이 대륙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다 속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와 같은 해저 협곡들(submarine canyons) 중에는 콜로라도 주의 그랜드 캐니언보다 더 큰 것들도 있다. 

바하마 해저 대협곡은 그랜드 캐니언보다 2배나 큰데, 깊이는 4,200m, 폭은 64km, 길이는 200km에 이른다. 어느 한 해저 협곡은 허드슨 강 입구로부터 약 480km나 뻗쳐 있다.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 약 640km 구간에는 해안 절벽까지 뻗쳐있는 해저 협곡들이 많다. 이와 같은 해저 협곡들은 거의 모든 대륙들에서 두루 발견된다. 이런 해저 협곡들은 분명코 땅덩어리가 들려올라오고 바다의 분지가 홍수 이전 그 위에 존재했던 수증기 층으로부터 지구 위로 쏟아져 내리고 남아있는 모든 물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낮아졌던 대홍수의 끝 무렵 쯤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 물들이 바다를 향하여 돌진하면서 협곡은 바다가 다 채워지기 전에 아직 굳지 않은 부드러운 퇴적지층들을 깎아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또한 지질학자들은 매우 넓은 지역의 바다가 내려앉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미시간 대학교 지질학부 책임자는 얼마 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진리를 탐구하는 자로서 우리는 바다의 광활한 바닥이 수 마일이나 되는 수직 거리를 가라앉았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하여 이 이상 외면할 수가 있겠는가?”

지구 표면의 현재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격렬하게 변했음이 틀림없다. 이 지구지질학은 옛날에는 남극과 북극을 포함해서 이 지구는 어디나 그저 늘 이상적이고, 아름답고, 쾌적한 기후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지역들과 융기된 산들과 조여진 지층들 속과 온 지구상의 노출된 지층 속에 묻혀있는 동식물의 유해들은 초기 지구의 조건과 거기에 격동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것은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3:6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때 세상은” 기후와 지구의 표면 구조에 관한한 분명하게 달라졌던 것이다. 그것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다”고 말한 대로 엄청나게 변화되었다. 그리고 지금 있는 “하늘과 땅”은 원래의 것과 전적으로 다르다.

이런 결과로 에덴동산은 파멸되었고, 그것의 정확한 당초의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 혹자들이 추측하는 대로 에덴동산은 팔레스타인이나 바벨론 지역 내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 해도 그것은 수백 내지 수천 피트 두께의 대홍수 퇴적물 아래에 묻혀있을 가능성이 많다. 사람들이 옛 세계에서 새 세계로 옮겨 왔을 때 그전 고향에서 쓰던 옛 지명을 새로운 고향의 지명으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일이 에덴동산과 같은 곳에서도 적용되었을 것이다. 바위 속에서 굳어진 많은 통나무들이 금속광산에서 발견되고, 여러 가지 종류의 동물과 물고기들의 화석들이 바위덩이들 속에서 발견된다. 남 다코타 주의 황무지에는 지층이 진흙과 혈암과 석회암과 사암의 혼합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해일이 밀려온  방향에 따라 퇴적물이 이들 지층을 만들었음을 시사한다. 개, 고양이, 악어, 사슴, 낙타, 말, 심지어는 코뿔소와 많은 다른 동물들의 화석 잔해들이 그 황무지에서 발견된다.

대홍수 때의 이 모든 난류의 결과로 생긴 화석 잔해들은 수많은 생물들이 엄청나게 큰 더미로 함께 묻혀있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물고기들이 죽으면 표면에 뜨거나 바닥에 가라앉고 다른 물고기들에게 먹힌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10,000평방 마일에 달하는 지역에 수백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갑작스럽고 매우 처참하게 죽었음을 보여주는 화석들이 발견된다. 잔해들은 지질학자인 휴 밀러가 기술한 바와 같이 “뒤틀렸고, 짓눌렸고, 굽어져 있는데, 많은 경우에 꼬리가 머리까지 휘어져 있고, 척추는 삐져나왔고, 지느러미는 고통 중에 죽은 고기처럼 전신에 퍼져있다. 영국에서는 1평방 야드의 사암 속에 1,000개의 물고기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런 사실들은 육상 동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의 화석들도 그들이 갑작스럽고 비참하게 죽었음을 보여준다. 동물들은 틀림없이 진흙이나 다른 퇴적물의 층에 의해 순식간에 덮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보존되어 화석이 될 수가 없다. 골수 진화론자인 던바는 다음과 같이 썼다. 즉;

“죽은 뒤에 버려져서 노출되어 있는 짐승의 시체는 육식동물들이나 주검을 좋아하는 동물들에 의해 갈가리 찢기거나 먹혀 버린다. 만일 이런 일을 모면할지라도 이런 큰 동물은 박테리아가 딱딱한 부위 이외의 모든 부분을 완전히 부패시킨다. 노출되어 있을 경우 1, 2년 후에는 가루나 먼지가 되어버릴 것이다. 어쩌다가 습기 많은 퇴적물이나 정지된 물밑에 묻히게 되면 풍화가 방지되고 부패는 크게 감소될 것이며 포식자들은 잔해들을 훼손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죽은 직후의 매몰은 양호한 보존을 보장해주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화석무덤들은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데, 어떤 지역은 무수한 공룡 또는 동물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지역은 물고기들, 어떤 때는 많은 동물들이 섞여 있기도 하다. 어떤 때는 정상적으로는 온대지방에서만 사는 동물들의 화석이 북쪽의 아주 먼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심해에 사는 동물화석이 산꼭대기에서 발견된 일도 있다. 낙타, 멧돼지, 코뿔소의 뼈들이 함께 묻혀 발견되기도 한다. 코끼리와 다른 거구 동물들이 시베리아, 알래스카, 영국, 유럽의 여러 곳에서 수백만 마리씩 발견된다. 시실리에는 하마들이 수천 마리나 묻혀 있다. 지질학자들은 동물들이 이렇게 죽고 매몰되고 보존된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매우 격렬한 어떤 사건이 일어났어야 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물고기와 육상동물들에게 있었던 사건은 대홍수 이전에 살았던 인간들에게도 같다. 만일 우리가 지구의 심층에 있는 퇴적암을 파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분히 대홍수 이전의 인간들과 그 암석 속에 묻혀있는 그들의 발달된 문명들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9. 지구에 홍수가 일어날 수 있을 충분한 물

온 지구 위에 한꺼번에 대홍수가 날 만큼의 많은 물이 과연 있었을까? 에 대한 의문이 가끔 제기된다. 지구 표면의 70%가 물이다. 해양의 평균 깊이는 온 육지 표면의 평균 높이의 12배에 달한다. 만일 모든 육지를 깎아서 바다를 평평하게 메운다면 모든 육지가 물에 잠기고 그 평균 수심이 2.4km(1.5마일)나 될 것이다. 만일 바다의 밑바닥이 올라오고 육지가 땅 밑에 펄펄 끓는 액상의 마그마(용암) 위로 가라앉는다면 전 지구를 홍수로 덮기에 충분한 물을 갖기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액체와 고체의 더미가 통째로 소용돌이치는 지진과 화산과 폭풍과 함께 믿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진흙탕 범벅으로 꽉 찼을 것이다.


10.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다른 잡지들이 지금은 대홍수를 사실이라고 여긴다. 

뉴스 매체, 잡지, TV 프로그램 등은 진화론자들의 추정과 주장들을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꾸준히 나팔을 불어댔지만,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1977년 9월 판 129쪽에서 이런 제목으로 하나의 기사를 시작했다. 즉;

“옛날에 실로 거대하고 광범위한 대홍수가 있었다는 고대의 설명을 지지하는 거부할 수 없는 증거들이 있다.”

그러고 나서 노아, 대홍수, 진실 이라는 본격적인 제목이 나온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것(대홍수)이 당초에는 국지적 사건(어느 강의 범람, 강력한 허리케인 혹은 타이푼)이었는데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동안 부풀려지고 각색되어지고 마침내는 신화의 수준으로까지 굳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홍수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이 놀라운 결론은 우리가 다음에서 보는 대로 별개의 두 분야 학자들이 독자적으로 정밀 조사하여 내려지게 되었다. 즉 11,600년 전에 살았던 아주 작은 바다 생물인 조개들을 연구했던 지질학자들과 약 8,000년 전에 사람의 손으로 씌어진 기록을 해독한 고고학자들이 그들이다.”

지질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이여! 나는 전에 고고학(이집트, 수메르 등의 고대인들과 그들이 남긴 문명의 업적들에 관한 연구)과 지질학(대홍수로 인해 변화된 지구의 구조와 그 속에서 발견된 화석에 관한 연구)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성경과 그 속에 있는 선사시대의 역사 및 일반 상식 등이 지구의 최초 사람들에 관한 사실들을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것과 함께 언급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즉;

“성경은 대홍수의 시기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성경은 그 사건이 있었다는 것만 언급할 뿐이다. 이제는 구운 도자기 조각 위에 씌어진 초기 인간들의 기록물들과 함께 죽은 지 오래된 조개들이 옛날에 거대하고 광범위한 홍수가 있었다는 거부할 수 없는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로버트 실버버그 같은 진화론자까지도 1971년 그의 책 <시대 시계> 91-92쪽에서, 진화론자로서 기록하긴 했지만, 대홍수에 관하여 가장 아름다운 최상의 묘사를 했다. 1백5십만 년 전을 언급하고 난 후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전 시대인 플라이오세(世)는 세계적인 온난의 시기였다. 즉 어디서나 겨울에도 온난했고, 빙하는 알려진 바 없고, 남극과 북극 지역에도 얼음은 없었다. 플라이오세 말기에 이르러 지각에 강력한 대교란 사건이 시작되었고 장차 알프스 산맥과 로키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 될 지역들을 들어 올리면서 습곡운동과 융기운동이 진행되었다. 이 융기작용의 절정은 플라이오세를 마감하는 급격하고 대재난적으로 온도가 급강하한 것과 우리가 홍적세(洪績世)라고 부르는 격변적이고 혹한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빙하시대에 대하여 좀 더 언급하겠다. 그는 계속해서 쓰기를) 지질학적 시간의 척도에서 최대의 변화는 점진적이고 거의 인식할 수 없을 만큼의 속도로 다가오지만, 플라이오세로부터 홍적세적 환경으로의 바뀜은 놀라운 속도(5,000년 이내)로 일어난 것 같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대홍수가 이 모든 급격한 변화를 설명해 준다는 것을 받아드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한 사람의 진화론자인 리처드 카링턴은 그의 저서 <우리 지구 이야기> 155쪽에 다음과 같이 썼다. 즉;

“그 시대에 지구에 서식하던 많은 종류의 동물들 가운데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완전히 쓸려 나갔다. 개개인뿐만 아니라 전 인종이 모두 파멸되었다. 이 큰 파멸사건은 육지와 바다와 공중에서 똑같이 무차별적으로 휩쓸었다. 대파멸 사건이 끝났을 때 지구 위에 있던 생명체의 모든 양상은 변했다. 단 한 마리의 공룡이나 바다나 공중의 거대한 파충류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물들의 돌발적인 멸종에 대해서 그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그는 같은 책 159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마도 지질학적인 사건들이 생태계에 대변화를 주었던 주된 원인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기후의 변화는 식물의 생태에 있어서 광범위한 변화를 야기하여 초식성의 공룡들은 먹이를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외적인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모든 주요 생명체가 그렇게 광범위하게 소멸된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과학자들로 하여금 다른 이론들을 두루 찾게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인간의 장수에 관한 학설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지구에 접근 또는 충돌하는 다른 행성이나 혜성 때문에 여러 형태의 동물들이 멸절되었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그러나 “먹이를 빼앗긴 것”과 “인간의 장수”는 화석이 형성되도록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든 간에, 대홍수가 그와 같이 광범위한 파괴와 생명의 멸절의 원인이라고 진화론자들이 말할 수는 없다.

대홍수는 진화론자들이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지질학적 사실이다. 오늘날 지구의 지질학적 모습에서 다음 항목들에서와 같이 대홍수의 증거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1)오늘날의 홍수에 의해서 형성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넓은 강 유역들
2)지구의 퇴적암에 현존하는 화석 무덤들
3)많은 양의 홍수 물로 인하여 쌓여있는 두터운 퇴적암 지층들
4)최근에 융기된 거대한 산맥들
5)산들의 꼭대기에서 발견되는 바다생물 화석들
6)최근 해수면이 엄청나게 올라간 증거
7)최근에 양 극지방에서 얻은 과거 온난한 기후의 증거
8)한 장소에 함께 묻혀있는 엄청나게 많은 여러 종류의 화석들
9)전 세계에 걸쳐 공룡과 기타의 동물들이 돌연히 멸종된 사실
10)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서 입과 위에 열대성 먹이가 있는 채로 갑자기 묻히고 동결되어버린 거구 동물들
11)전 세계에서 문명이 갑자기 일어난 것
12)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파괴적인 대홍수가 일어났다는 그 외의 수많은 증거들
 13)많은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홍수 설화 등등.


11. 많은 나라들에서 발견되는 홍수 설화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과 종족들과 나라들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홍수 설화는 전 세계적인 홍수가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내가 앞서 언급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1977년 7월호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즉;

“규모가 크고 광범위한 지역에 대홍수가 있었다는 성경의 설명은, 형태는 여러 가지이지만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문화권의 전설이요 신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다에서 먼 곳에 사는 사람들-미국 서남부의 호피 인디언, 페루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에 사는 잉카족 등-까지도 그 땅을 쓸고 지나가면서 산꼭대기까지 차서 땅 위의 모든 생명체를 치명적으로 휩쓸어 버렸다는 대홍수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

대홍수 이야기가 온 지구상에 널리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그런 홍수를 부정한다. 한편 성경이 그와 같은 홍수가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것이고, 홍수 이야기가 다른 민족들 가운데는 널리 퍼져있지 않았다면, 진화론자들은 대홍수가 없었다는 증거로서 그것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온 세상에 퍼져있는 이렇게 많은 대홍수 이야기는 세부적으로는 잘못 전달되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하고, 창세기의 설명과 같이 간결하고 사실에 입각한 단순성이 결여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이 모든 이야기 안에는 그렇게 무서운 홍수가 있었다는 핵심적인 사실은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 홍수 설화의 대부분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었던 대홍수가 한 척의 배 안에서 구조된 몇 사람 외에는 모든 생명체들을 휩쓸어 갔고 소수의 남은 자들만 구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대홍수 설화는 최소한 200개 이상의 민족, 종족, 나라들 가운데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신구약 성경의 수많은 낱권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38절과 누가복음 17:26절에서 홍수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자신의 재림과 관련지어 홍수를 언급하셨고, 이 땅에 또 다른 파멸이 올 것인데, 이때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불로 태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후서 3장에서 그것을 언급하고 있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베드로후서 3:3-10)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66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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