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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9

인류는 3 조상 가족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유전자 연구는 가리킨다. 

(Genetic Study Points to Three Ancestral Families of Humans)


    최근(2006. 11. 23) 출판된 Nature 지 논문에서[1], 과학자들은 유럽, 아프리카, 중국, 일본 이렇게 4 지역 사람들 270여 명의 DNA 지도를 작성하였다. 과학자들은 잃어버렸거나(missing), 중복되어(duplicated) 있는 DNA의 부분들을 조사하였다. DNA의 많은 부분들이 반복적으로 다시 나타났다. 여분 복사본(extra copies)의 수는 개인 간에, 또는 인종 그룹 간에 다양하였다. 그 복사본의 수는 유전체 다형성(Copy Number Variation, CNV, 복사본 수의 변이)이라고 불려진다.

그들 연구에 있어서 주요한 흥미로운 부분은 잃어버리거나 중복된 DNA의 염색체들(chromosomes) 내의 위치와 여러 질병을 나타내는 염색체들 위치 사이에 하나의 연관성을 발견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진화의 무작위적인 과정으로부터 남겨진 것으로 생각했던, 그래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쓰레기(junk)라고 불렀던 DNA 코드 부분은, 이제 많은 신체적 특성들을 결정하고, 우리 몸의 화학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새로운 분야의 연구가 열리고 있다 : 

인간 유전체(genome) 내에서의 유전체 다형성(copy number variation)에 대한 우리의 지도(map)는 이 유전체 변이 형태의 편재성과 복잡성을 증거하고 있다. 유전체 다형성의 내부와 측면의 모든 타입의 기능적 서열의 풍부성은, 유전체 다형성이 표현형의 변이(phenotypic variation)를 가져올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러한 예상은 유전체 다형성이 유전자 발현(gene expression)에서의 변이들과 관련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보고에서 숨겨져 있는(일반 언론에서는 보도하지 않은) 사실은, 그 표본들이 4 군데의 지리적 위치에서 채취된 것이지만, 표본들은 3 개의 분명한 그룹으로 깔끔하게 나뉘어졌다는 관측이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그룹에 속하였고,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이렇게 3 그룹으로 분명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

인간 유전자 변이의 다른 부류와 대조적으로, 유전체 다형성의 집단 유전학(population genetics)은 탐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다른 개체군 집단들 사이에서 유전체 다형성의 분포는 돌연변이, 선택, 인구통계학적 역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집단 유전학을 추론하기 위해서 공통적인 유전체 다형성을 가지는 생물군들을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67 개의 유전자형 이대립인자성(genotyped biallelic) CNVs에 대한 집단 군집화(population clustering)를 수행했다. 우리는 3 개의 조상 집단으로 추정되는 적절한 군집을 얻었는데, 이들 3 개의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시아인 집단들은 분명히 구분되었다.

3 개의 그룹이 얼마나 분명하게 구별되는 지는 여기를(Click here) 클릭하여 인상적인 그래프를 살펴보라. 그래프에서의 사람 그룹들 명칭은 다음과 같다 : 나이지리아(Nigeria, YRI), 유럽(Europe, CEU), 일본(Japan, JPT)과 중국(China, CHB).


[1] Redon et al, 'Global variation in copy number in the human genome,” Nature 444, 444-454 (23 November 2006) | doi:10.1038/nature05329.

또한 다음을 보라 : BBC News,  National Geographic and News@Nature


 
비록 이 연구가 단지 제한된 표본들만을 고려했지만, 이것은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은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유래했다는 창세기 9-11장에 기록된 성경적 설명과 놀라우리만치 일치하며 확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더 많은 지역들에서 더 많은 표본들을 가지고 더 깊이 있는 연구가 수행된다면, 전 세계의 모든 인류 집단은 3 그룹으로 나뉘어질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기원에 관한 대중적인 이론인 ”아프리카 기원(Out of Africa)” 이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더 깊은 연구는 아프리카 기원에 근거한 많은 이야기들을 했던 인류학자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가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인류의 3 조상 집단에 대해서 어떠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BBC와 같은 주요한 뉴스 매체들은 인류가 단지 3 조상 집단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내 보도도 마찬가지임. 아래 뉴스 참조). 대신 그 논문의 의학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Physorg에서의 그 논문에 대한 리뷰는 다음과 같이 방어하고 있다

새로운 정밀 조사에 의하면 진화는 또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아프리카 동부에서 출현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아프리카 기원” 시나리오는 도전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기원은 너무도 최근이어서, CNVs의 방대한 대다수(89% 정도)가 269명의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도쿄의 일본인들, 베이징의 중국인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Yoruba), 북미인들, 서유럽 사람들로서, 연구를 위해 혈액 표본을 제공하였다. 그렇지만, 표본들의 3 지리적 기원에 따라 이들 CNVs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것은 지난 200,000년 정도에 걸쳐 인류의 다른 집단들이 다른 환경들에 적응하면서 유전체에 미묘한 변이가 일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라고 생거(Trust Sanger)는 한 언론 보도에서 말했다.

이 소리는 아프리카 기원 이론은 안전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가 믿기 위해서 질문되어야하는 것은, 상상하고 있는 20만년(아마도 1만 세대) 동안에 얼마나 적게 유전자 풀의 혼합(mixing of the gene pool)이 일어났으면, 아직도 3 개의 분명한 그룹들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분명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20만년 전, 혹은 단지 4400여년 전) 인류 집단은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3 개의 분명한 유전적 그룹을 형성할 수 있는 점까지 인구가 축소된 시점이 있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미안하다. 우리에게 이것은 노아의 3 아들로부터 인류가 퍼져 나갔다는 말이 훨씬 더 합리적인 것처럼 들린다.

 


*참조 : 모두 같은 인간? 전혀 다른 인간!…개인별 유전자 차이 0.3%  (2006. 11. 24. 동아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News/contents.asp?mode=view&article_no=20061124080405

Mitochondrial Eve and biblical Eve are looking good: criticism of young age is prematur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472

A possible post-Flood human migration rout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1/j19_1_65-72.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611.htm

출처 - Creation-Evolution Headlines, 2006.11. 24.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30

참고 : 2765|512|4315|3745|3210|4023|3075|4020|4005|3747|3373|2185|3358|3769

Frank Lorey
2006-12-04

노아 홍수와 길가메쉬 홍수 

(The Flood of Noah and the Flood of Gilgamesh)


배경

길가메쉬 서사시(Epic of Gilgamesh)는 19세기 중반 (고대 바빌론의) 니느웨(Nineveh)의 대도서관(Great Library) 유적지(아슈르바니팔의 서고)에서 발견되었을 때부터 기독교인에게 흥미가 있어왔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노아의 홍수와 매우 비슷한 전 지구적인 홍수가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1, 2] 아마 B.C. 2000-3000년 경까지 기록 연대가 올라가는 서사시의 나머지 부분은, 그 시대 이교도들의 전형적인 다신론적 신화들을 다루고 있는 까닭에 기독교인들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몇몇 기독교인들은 서사시에 나오는 창조에 대한 개념과 사후세계에 대해서 연구해 왔다. 비록 바빌론, 페니키아, 히브리인들의 이에 대한 설명들 모두가 공유된 신화들 이상의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고 세속적 학자들은 말하고 있지만, 이들 설명들 사이에 유사한 점들은 확인되고 있다.[3]

세계 곳곳에는 고대의 출처를 둔 무수한 홍수 이야기(flood stories)들이 있다.[4] 가장 초기의 문자기록인 설형(쐐기)문자 점토판(cuneiform tablets)들에서 발견되는 홍수 이야기들은 뚜렷한 유사점들을 가지고 있다. 쐐기 모양의 문자는 수메르인(Sumerians)들에 의해 발명되었고, 아카드인(Akkadian)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바빌론어(Babylonian)와 아시리아어(Assyrian)는 아카드어(Akkadian)에서 파생된 언어(dialects))이고, 이들 둘 다 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원래의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와 나중의 바빌론과 아시리아인들의 홍수 이야기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유사점의 대부분은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5] 바빌론의 홍수 이야기는 가장 완전한데, 205줄의 홍수에 대한 설명 중에서 단지 7줄만 잃어버렸다.[6] 그것은 또한 최초로 발견된 것이어서, 초기 홍수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어졌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12개의 큰 점토판(tablets)들에 포함되어 있고, 최초의 발견 이후에 그 서사시는 다른 점토판들에서도 초기의 다른 고대 언어들로 번역되어서 발견되고 있다.[7] 사실상  B.C. 650년 경으로 연대가 평가되는 점토판들은 원래의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B.C. 2000년 경으로 연대가 평가된 점토판들에서도 홍수 이야기의 단편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8]  B.C. 2000년 이전에 잘 구성된 홍수 이야기는 그 연대보다 훨씬 오래 전에 있었던 자료들로부터 편찬된 것으로 언어학자들은 믿고 있다.[9] 수메르의 상형문자 기록들은 B.C. 3300년경 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10]


이야기

길가메쉬 서사시는 시(poem)의 형태로 구성 되어있다. 주인공은 길가메쉬(Gilgamesh)이고, 그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에 의하면, 길가메쉬는 우르크(Uruk)의 최초 왕조에서 126년 동안 통치한 것으로 되어있다.[11] 이 오랜 통치 기간은 성경에 나오는 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나이와 비교할 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길가메쉬 이후의 왕들은 오늘날의 수명과 비슷한 생애를 살았다.[12] 왕들의 목록은 또한 온 땅을 뒤덮어 파멸시켜 버린 특별한 대홍수를 기록해 놓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13]

그 이야기는 영웅 길가메쉬의 업적들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위대한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서, 홍수 이전 시대의 자료들을 보존했던 사람이었다. 길가메쉬는 우르크의 도시 성벽을 건축했던 일과 우르크의 엔나(Eanna) 사원을 세운 일을 포함하여, 그가 이루어놓았던 모든 일들을 점토판 위에 기록하여 놓았다. 그러나 그는 억압적인 군주였다. 이것은 그의 백성들이 ‘신(gods)들’에게 길가메쉬에 대해 싸울 강적(nemesis)을 만들어 달라고 울부짖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14]

한 번의 싸움이 끝나고, 이 강적인 엔키두(Enkidu))는 길가메쉬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이 둘은 많은 위험한 모험들을 겪게 되면서 명성을 얻게 되고, 엔키두는 결국 그 모험으로 인해 죽게 된다. 그 후 길가메쉬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불사(immortality)의 영원을 찾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시도 끝에 그는 성경의 노아를 매우 닮은 우트나피쉬팀(Utnapshtim)을 만나게 된다.[15]

간단히 요약하면, 우트나피쉬팀은 인류를 파멸시켜버린 거대한 홍수(Great Deluge)를 이겨낼 배(ship)를 만든 후에 불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친척들과 모든 종류의 생물들을 배에 태웠다. 우트나피쉬팀은 땅을 발견하기 위해 새들을 내어 보냈고, 배는 홍수 후에 산 위에 정박하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하세계로 엔키두를 방문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16] 비록 많은 유사성이 두 이야기 사이에 존재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아래의 표는 창세기와 길가메쉬 서사시에 기록된 홍수 이야기를 여러 측면에서 비교하였다.

창세기와 길가메쉬 서사시에 기록된 홍수 이야기의 비교

내용

창세기

길가메쉬

홍수의 크기
홍수의 원인
누구를 멸망시키려고
일으키신 분
영웅의 이름
영웅의 성격
알려준 방법
배를 지으라 명령했는가?
영웅은 불평했는가?
배의 높이
내부의 구획
문들
창문들
바깥쪽 코팅
배의 모양
승선자
다른 승선자
홍수의 수단
홍수의 기간
땅을 발견하는 시험
새의 종류
방주가 도착한 장소
홍수 후 희생제물?
홍수 후 축복?

전 지구적
사람들의 사악함
모든 인류
여호와 (Yahweh)
노아 (Noah)
의로움
하나님의 지시
명령함

여러 층(3층)
많음
하나
적어도 하나
역청
장방형
노아의 가족만
모든 종류의 동물들
지하수 폭발과 엄청난 강우
일 년여 (40 주야 강우 포함)
새를 날려 보냄
까마귀와 세 마리 비둘기
아라랏(Ararat)산
드려짐, 노아에 의해
축복하심
전 지구적
사람들의 죄
한 도시와 모든 인류
신들의 모임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
의로움
꿈에
명령함

여러 층(6층)
많음
하나
적어도 하나
역청
입방형
가족과 소수의 다른 사람들
모든 종류의 동물들
엄청난 강우
단기간 (6일 밤낮)
새를 날려 보냄
비둘기, 제비, 까마귀
니쉬르(Nisir)산
드려짐. 우트나피쉬팀에 의해
축복하심


이 두 이야기를 표로 비교하는 데에 몇몇 해석들이 있을 수 있다. 일부 유사점들은 매우 놀랍다. 반면에 다른 것들은 매우 일반적이다. 배를 만들기 위해 우트나피쉬팀이 받은 명령은 주목할 만하다. ”오, 슈루파크(shuruppak)의 사람이여, 우바투투(Ubar-Tutu)의 아들이여, 그대의 집을 뜯어내라. 배를 지으라. 부를 포기하고, 내세의 삶을 구하라. 소유들을 경멸하라. 너의 생명을 구원하라. 살아 있는 모든 종류(kinds)의 씨들을 지은 배로 데려 오라. 배의 규모를 잘 측량하여 지으라.”[17]

사람의 죄들을 심판하기 위한 홍수의 원인 역시 인상적이다. 7번째 점토판 180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죄인에게 그의 죄를 물으라. 거역한 자들에게 그의 거역을 물으라”[18]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창세기 6-9장과 길가메쉬 서사시의 유사점에 대한 연구는 이들의 유사성이 우연히 일치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영웅들 이름의 의미는 공통적인 뿌리나 연결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노아(Noah)는 ‘안위(rest)’를 의미한다. 반면에 우트나피쉬팀은 ‘삶을 발견한 자(finder of life)’를 의미한다.[19] 둘 다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였을 때, 의롭고 비교적 흠이 없던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트나피쉬팀은 방주에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항해자와 소수의 기능인들을 태우고 있었다. 또한 두 이야기 모두 배가 중동의 어떤 지역에 도착했다고 기록한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아라랏산(Mt. Ararat)과 니시르산(Mt. Nisir)은 480km(300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홍수 후에 영웅들이 받은 축복도 꽤 다르다. 우트나피쉬팀은 영원한 삶을 얻게 되었고, 노아는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었고, 동물들을 지배했다.


결론

이 두 홍수 이야기에 대한 비교 연구가 이루어진 초기부터, 이들 이야기 사이에 명백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동의되고 있다. 인류 전 종족들에 널리 퍼져있는 홍수에 대한 이야기들은 합법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거대한 홍수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완벽한 증거이다.[20] 길가메쉬의 가장 오래된 단편들의 기록 연대는 창세기의 기록 연대보다 더 오랜 것으로 추정되었다.[21] 그러나 성경의 홍수 이야기는 구전으로, 또는 노아로부터 족장들에 의해서(결국 모세까지) 물려 내려오게 된 기록들로서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는 원본에 대한 재언급(약간 변경되어)이었던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보다 더 오래되었을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제안한 대중적인 한 이론은, 히브리인들의 홍수 이야기는 바빌론의 이야기를 빌려왔다고 말한다.[22] 그러나 어떠한 결정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 윤리적 측면에서, 그리고 많은 세부적 사실들에서의  차이는, 성경의 홍수 이야기가 수메르인들의 전설을 빌려와서 쓰여졌다고 볼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이고 비종교적인 학자들을  여전히 그러한 이론을 선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에서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는 이론은, 모든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들에 앞서는 하나의 공통의 출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23]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창세기 이야기는 정확한 내용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기록과 전승을 대대로 후손에게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4]

창세기는 대부분이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하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길가메쉬 서사시는 신화적인 일들을 서술하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심지어 많은 자유주의적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One-source Theory)은 노아의 홍수와 방주 사건이 실제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25]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쓰여졌음과 오류가 없음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전승 속에 홍수 사건에 대한 진실된 설명을 보존해두고 계셨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창세기 이야기가 모세(Moses)에 의해서 모아지고, 편집되고, 쓰여질 때까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수백 년 이상을 순전하고 정확하게 보존되어 왔던 것이다.[26] 그리고 길가메쉬 서사시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미화되고 손상된 홍수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REFERENCES

[1] Keller, Werner, The Bible as History, (New York: William Morrow and Company, 1956), p. 32.
[2] Sanders, N.K., The Epic of Gilgamesh, (an English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London: Penguin Books, 1964), p. 9.
[3] Graves, Robert, The Creek Myths, Volume 1,(London: Penguin Books, 1960), pp. 138-143.
[4] Rehwinkel, Alfred M., The Flood in the Light of the Bible, Geology, and Archaeology,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1951), p. 129.
[5] O'Brien, J. Randall,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Biblical Illustrator, (Fall 1986, volume 13, number 1), p. 61.
[6] Barton, George A., Archaeology and the Bible, (Philadelphia: American Sunday School Union, 1916), pp. 273-277
[7] Keller, The Bible as History, p. 33.
[8] Whitcomb, John C. and Morris, Henry M., The Genesis Flood, (Phillipsburg: Presbyterian and Reformed, 1961), p. 38.
[9] Heidel, Alexander, The Gilgamesh Epic and Old Testament Parallel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9), p. 13.
[10] O'Brien,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p. 61.
[11] Heidel, The Gilgamesh Epic and Old Testament Parallel, p. 13.
[12] Sanders, The Epic of Gilgamesh, p. 21.
[13] Vos, Howard F., Genesis and Archaeology, (Chicago: Moody Press, 1963), p. 35.
[14] Sanders, The Epic of Gilgamesh, pp. 20-23.
[15] Ibid., pp. 30 39.
[16] Ibid., pp. 39-42.
[17] Keller, The Bible as History, p. 33.
[18] Sanders, The Epic of Gilgamesh, p. 109.
[19] O'Brien,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pp. 62, 63.
[20] Morris, Henry M., Science and the Bible, (Chicago: Moody Press, 1986), p. 85.
[21] O'Brien, 'Flood Stories of the Ancient Near East', p. 64.
[22] Ibid.
[23] Ibid.
[24] Morris, Science and the Bible, p. 92.
[25] Ibid., p. 85.
[26] Whitcomb, John C., The Early Earth(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6), p. 134; Whitcomb and Morris, The Genesis Flood, p. 488.


* Mr. Lorey is a Registered Historical Archaeologist.

 

*참조 :

A comparative study of the flood accounts in the Gilgamesh Epic and Gene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introduction.asp

   Chapter 1. The background of the Gilgamesh Epic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1.asp

   Chapter 2. The flood account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2.asp

   Chapter 3. A comparison of ethic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3.asp

   Chapter 4. A comparison of specific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4.asp

   Chapter 5. A comparison of scientific reliability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5.asp

   Chapter 6. A comparison of interal consistency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6.asp

   Chapter 7. A comparison from secular historical record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h7.asp

   Conclusion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lood/conclusion.asp


*Noah’s Flood and the Gilgamesh Epic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10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414/

출처 - ICR, Impact No. 285, March 199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25

참고 : 3641|3249|3372|3148|2797|2104|299|1799|1795|1536|1427|512|4198|4275|4235|4473|4490|4607|4610|6547|6545|6543|6535|6531|6508|6507|6558|6551|6559|6549|6462|6417|6431|6524|6415|6413|6330|6254|6255|6240|6228|6225|6223|6222|6136|6170|6104|6076|6030|5556|5973

Bruce Malone
2006-06-17

세인트 헬렌산 폭발은 창조론의 증거를 제공하였다. 

(Mt. St. Helens Explosion Gives Creation Evidence)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추론하기 위해서 지질학자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지질학적 과정들을 연구하고 관측하여, 어떻게 암석 지층들이 전 지구를 뒤덮게 되었는지를 결정한다. 1800년대 이전의 지질학에서는, 한 번의 전 세계적인 홍수(a worldwide flood)가 이들 암석 지층들의 형성 원인이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현대 지질학의 창시자인 제임스 허튼(James Hutton)과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등이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이라는 새로운 믿음 체계로 대체해 버렸을 때 바뀌어졌다.

동일과정설은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것과 같은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slow-and-gradual processes)들로 행성 지구의 지질학적 모습들을 설명하는 믿음 체계이다. 그것은 또한 전 지구적인 대격변과 같은 것에 의한 퇴적물들의 대규모적이고 빠른 퇴적은 결코 없었다고 가정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이러한 개념에 깊게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느리고 점진적인 지질학적 변화의 개념을 확장하여 느리고 점진적인 생물학적 변화를 가정하게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에, 많은 지질학자들은 오늘날에는 볼 수 없는 엄청나게 빠른 지질학적 변화들이 과거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지질학계는 이들 격변들 사이에 수백만 년의 시간이 있었다는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

창조론 모델의 기본적인 가정은 한 번의 전 세계적인 홍수가 최근 과거에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 가정이 맞다면, 격변적인 홍수 사건의 증거들이 있어야만 한다. 전 세계적인 홍수는 식물계와 동물계에 대대적인 파멸을 초래하였을 것이고, 이들 유기체들과 침전물들의 재퇴적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것은 지구 행성 전체에 막대한 양의 화석을 포함하는 엄청난 퇴적지층들을 쌓아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확히 이것이 화석 기록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창조론 모델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주장되는 대홍수 동안 발생한 과정들을 보여줄 수 있는 자연적 모델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에 워싱턴주에 있는 세인트 헬렌산(Mt. St. Helen)의 폭발은 그러한 하나의 자연적 모델을 제공하였다. 세인트 헬렌산은 180억 입방 피트의 암석으로 평가되는 화산재, 진흙, 증기, 녹은 눈들을 시속 144km (90 mph)로 산 아래쪽으로 흘러내렸다. 이것과 이후에 연속된 화산성 이류들은 산허리의 북쪽면 위에 180m (600 feet) 두께의 퇴적물들을 쌓아놓았다. 과학계에서 이것은 본질적으로, 대규모의 홍수 사건이 있었다면 발생했었을 과정들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맹렬한 진흙과 화산재들의 흐름 동안에 쌓여진 퇴적물들은 균질하게 혼합되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들은 미세한 층리들을 보이는 일련의 수평퇴적층(horizontal strata)들을 만들었다. 그 층들은 우리들이 여행하며 도로 절개지 등에서 흔히 관측할 수 있는 수평적인 암석 층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였다. 이러한 타입의 수평적 암석 지층들의 띠는 자주 수백만 년의 지구 역사를 가리키고 있다고 가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세인트 헬렌산 폭발은 지질학자들에게 이것과 똑같은 형태의 수평적 지층들이 흐르는 물(flowing water)에 의해서 어떻게 빠르게 퇴적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작은 축척의 모델을 제공했다. 세인트 헬렌산의 폭발에 연속되어, 불어난 물이 새롭게 퇴적된 퇴적물들을 관통하며 터져 나가 강이 흐르는 새로운 협곡(canyon)이 하루 만에(1982. 3. 19일) 형성되었다. 30m 깊이의 이 협곡은 놀랍게도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1/40 스케일의 모델처럼 보였다.

만약 이 지역이 형성되는 것을 보지못한 사람이라면, 현재 이 캐년의 바닥을 흐르고 있는 작은 강이 수백 수천만 년에 걸쳐 이 협곡을 파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는 그랜드 캐년을 흐르는 있는 콜로라도 강에 대해서 현재 우리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많은 지질학자들은 이제 세인트 헬렌산의 터틀강 협곡(Toutle River canyon)이 빠르게 형성되었으며, 그랜드 캐년도 한때 엄청난 규모의 물이 격변적으로 흘러가며 단기간 내에 파여졌다는 것을 인정해가고 있는 중이다.

지질학계의 대다수 사람들은 낮은 에너지 과정들과 광대한 기간으로 지질학적 기록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반해 창조론자들은 높은 에너지 과정들과 짧은 기간으로 지질학적 기록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 둘 중에 오직 한 견해만이 옳은 것이다. 그리고 이 둘 중에 오직 한 견해만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어느 견해라고 생각하는가?

 

*참조 : Rapid Erosion at Mount St. Helens
http://www.icr.org/research/index/researchp_sa_r04/

세인트 헬렌 산의 폭발에 대한 종합적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Learning the lessons of Mount St Helens (CMI, Creation 39(3):23–27, July 2017)
http://creation.com/lessons-from-mount-st-helen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rdino.com/articles.php?spec=7 ,

출처 -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353

참고 : 1814|713|1341|285|3906|5502

John D. Morris
2005-12-21

초기 지구에서 모든 달의 길이는 정확히 30일이었는가?

(In the Early Earth, Were All the Months Exactly Thirty Days Long?)


    오늘날 사용하는 역법(calendar)에는 한 달의 길이가 28부터 31일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약간의 혼란이 일어난다. 4, 6, 9, 11월은 30일, 2월은 28일, 1, 3, 5, 7, 8, 10, 12월은 31일, 그리고 윤년인 경우에 2월은 29일 이다. 그래서 그 달에 몇일이 있는지를 기억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동요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차이는 왜 났을까? 한 달의 길이가 모두 같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창세기에 기술된 바와 같이 완벽한 창조라면 더 규칙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한 달(month)의 길이는 지구의 위성인 달(moon)의 29½ 날 주기에 대략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들에서 음력(lunar calendar)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쉽게 확인될 수 있는 ‘새로운 달(new moon)’의 출현은 음력의 적용을 용이하게 하였다. 성경에 사용된 히브리인의 역법은 음력이다. 성경의 역사적인 사건들과 절기를 나타내는 날짜의 많은 부분이 음력의 날짜들 또는 달의 모양과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현대 역법은 28부터 31일까지 불규칙한 달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달 들의 많은 수가 로마의 신들이나 황제들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그리고 달들의 길이가 다양하게 된 원인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그리 크지 않다. 예를 들면, 8월(August)이 케이사르 아우구수투스(Caesar Augustus)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을 때, 그는 그 달이 가장 긴 달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월의 하루를 8월에 더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각 달이 정확하게 30일이었다면, 일 년의 주기가 훨씬 단순했을 수도 있었으며, 그래서 12달은 360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해왔다. 태초의 시기에 이것은 더 규칙적이었을까? 그것은 홍수 시기에 변화되었는가?  


많은 학자들이 이 질문에 대해 숙고해오고 있지만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홍수이전 달들의 길이에 관한 성경에서의 가장 중요한 암시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보자. 홍수는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에 시작되었다(창7:11). 그리고 '일백 오십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창7:24),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창8:4) 라고 기록되어있다.


이월 십칠일과 칠월 십칠일 사이에 150일이 존재했다. 따라서 평균 30일의 5개월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심히 좋았더라”(창1:31)는 말씀 안에서 매우 규칙적이었던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오늘날 일년의 길이가 365¼ 일인 것은 창조된 질서(created order)의 변경된 흔적임에 틀림없다. 


지구의 공전궤도를 바꾼 무엇이 일어났었는가? 지구의 각운동량(angular momentum)은 엄청나다. 그리고 회전하고 있는 회전의(gyroscope)에서처럼 그것을 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지구의 운동은 변화에 저항할 것이다. 그것을 바꾸는 데에는 엄청난 힘이 필요로 할 것이다.


성경은 그러한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자세한 모든 사항들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노아의 시대에 있었던 엄청난 홍수는 지구의 시스템을 영원히 바꾸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만약 지구의 공전 궤도가 바뀌었다면, 그 때가 그것이 일어났던 때였을 것이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거대한 양의 물들이 재배치 되고, 대륙들이 이동하고, 소행성들이 충돌했을 수도 있고, 산들과 바다의 높이가 변화되고, 하루의 길이, 일년의 길이, 그리고 지축의 기울기 등 모든 것들이 변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일들에 대한 정확한  크기와 강도를 상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 했을 한 사건은 알고 있는 것이다.



*참조 : 
자료실/노아의 홍수/격변적 지층형성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4

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홍수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1

자료실/노아의 홍수/홍수지질학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2591

출처 - ICR, Dr. John's Q&A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36

참고 :

유종호
2005-07-26

대홍수에 대한 홍수 후의 기록들 2


3. 퇴적암 층에 매몰되어 있는 화석들

모든 종류의 동식물 화석들이 바위로 변한 대홍수의 진흙탕 퇴적물들 속에 묻혔던 것이다. 이 모든 화석들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진화론자들은 동물과 인간들의 이런 화석들의 형성을 침니(沈泥)와 화산재 층이 장단간의 세월 동안에 이 뼈들을 덮음으로써 말미암았다고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1985년 11월 판 내셔날 지오그래픽 지에 3마리의 하이에나가 인간의 시체를 막 뜯어 먹으려고 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두개골들이 갑자기 밀어닥친 홍수에 둥둥 떠내려가고 분출하는 화산으로부터 침니, 자갈, 재 등이 연속된 층을 만들며 뒤덮였다. 점점 수용성 광물들은 뼈를 돌로 바꾸었다.”

585쪽에서는 루시라고 불리는 부분적인 뼈들과 두개골들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들은 화석이 퇴적암 층과 화산재로 오래 동안 감추어져 있었다고 말한다.

진화론자인 리처드 리키는 그의 저서 <호수의 사람들> 6쪽에서 화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뼈들은 미세한 침니 속에서는 급속히 매몰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필수적인 과정이 일어나는 호수 주변에는 3가지 환경이 존재한다. 첫째는 잔잔하게 치는 파도가 얕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뼈 위에 한 겹의 침니를 덮어주는 호수의 해변, 둘째는 호수 변두리로 굴러 내려가는 개울의 하상, 셋째는 이 양극 사이에서 개울이 호수에 이르러 호수 물이 침니를 떨어뜨리게 하는 지점에서 일어난다.”

얕은 물속과 뒤늦게 내려오는 개울의 하상에 가라앉아 있는 뼈 위에 침니를 내려놓는 잔잔한 파도는 결코 화석을 보존해 주지 않는다. 퇴적물을 순차적으로 덮는 것은 그런 화석들을 결코 보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셔날 지오그래픽과 리처드 리키에 의해서 제시된 화석의 기원에 관한 이러한 설명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수억 개에서 수십억 개에 이르는 화석들에 대한 설명을 시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경우 수천 개의 화석들이 한 장소에서 무더기로 발견된다.

내셔날 지오그래픽 1985년 11월호 589쪽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단층운동, 융기작용, 침식작용이 수백 미터 깊이의 호수와 강바닥의 퇴적물과 수백만 년 동안 싸여온 여러 가지 깊이의 화석들을 노출시켰다. 이와 같은 수백만 년 동안 많은 분출로부터 온 수많은 화산재 층들이 이 퇴적물들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다.”

수백만 년을 1-2년으로 바꾸어 보라. 그러면 대홍수의 격류로부터 온 진흙과 퇴적물들이 가라앉고 “깊음의 샘들이 터질 때” 수많은 화산들의 화산재가 분출됐던 노아 시대의 홍수 활동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1976년 6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 123쪽에 있는 “동물들은 어디로 갔는가?” 라는 기사에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동물 종들을 11,000년 전이나 늦게 소멸되었다고 적고 있다. 즉;

“이 동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왜 사라졌는가? 이것은 미국의 자연사 가운데서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설명들을 분간하느라 뜨거운 논쟁에 휘말려 있다. 엄청난 수의 동물들이 사라졌고 모든 종류의 조류들이 소멸됐다. 그들은 왜 사라졌을까?”

주어진 대답 중 하나는 아시아에서 온 일단의 유목민 사냥꾼들이 그들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결국 그들을 다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대답은 약 12,000년 전에 한발과 기아, 동사(凍死)로 그들을 죽게 한 빙하시대에 있어서의 기후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증명되지 아니한 다른 이론들도 있다. 그들의 설명은 대홍수에 대한 설명들과 매우 유사하지만, 과학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진화론자들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던 어떤 홍수가 이런 많은 종류의 동물 종들을 휩쓸어버렸다는 것은 바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사냥꾼들이나 가뭄이나 기근이나 동사에 의해 죽은 동물의 뼈들은 그대로 보존되고 화석화 되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로 화석화된 뼈의 거대한 무더기로 발견되어질 수 없다. 

1981년 8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똑같은 거짓 논리가 있다. 거대 동물인 디프로토돈의 뼈들이 호주 동북부의 칼라본나 호수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이 동물들도 그들의 추측에 의하면 약 10,000년 전에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1893년과 1953년에 과학적 탐사로 이 동물들의 완전한 골격들이 완전한 형태로 1,000 개체나 발견되었다. 그 기사는 170쪽과 174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이 거대 동물들이 어떻게 그들의 최후의 운명을 맞았는지 모르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추론이 여기에 있다. [그러고 나서 한발이 어떻게 그 지역을 강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꾸며냈다]. 비옥한 초원에서 가뭄으로 말라버린 호수의 물로 힘들여 걸어갔을 때, 두 마리의 동물들은 ‘상처 때문이 아니라 좌절감과 기가 진하여 죽었다’. 칼라본나 호수의 갈라진 마른 하상에 이들은 두 개의 희미한 혹이 되었다. 진흙과 뜨거운 태양이 수천 년 전에 쓰러진 곳에 그들을 보존해 둔 것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그런 시체들은 금방 부패하고 사라져 버린다. 만일 동물들이 비옥한 초원에서 물을 찾아 그 호수로 옮겨 왔다면 그들은 분명히 그 비옥한 초원 근처의 어느 곳에서 물웅덩이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들은 누구를 위하여 이 우화를 펴내고 있는가? 여론에 따르면 이 진화론적 이야기를 믿지 않는 대부분의 일반인을 위해서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온 세계에 걸쳐 무더기로 쌓여 있는 이런 무수한 화석들에 대한 과학적으로 타당한 유일한 설명이 있다. 죽은 후에 노출된 채로 유기된 동물의 시체는 일반적으로 다른 동물들에 의해 즉시 먹혀버리거나, 금방 썩어버리거나, 뼈들은 1-2년 이내에 가루로 부셔져 버린다. 우리는 미국 중서부 주들의 초기 역사에서 물소의 예를 알고 있다. 수백만 마리의 물소들이 무자비하게 살해되어 땅 위에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들에 대한 어떤 흔적도 없다. 화석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그 생물체는 빠르고 완전하고 깊고 단단하게 묻혀서 단기간 내에 바위로 변하여야만 한다. 생물체의 유해가 보존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대홍수 때에 수십억의 생물체들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이 물기 있는 퇴적층에 층층으로 매몰되는 것이다.

리처드 리키와 아프리카에서 화석을 채집한 다른 이들이 발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대홍수 때에 퇴적물들로 덮인 동식물과 인간의 유해들이다.
 

4. 화석들은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거듭 말하거니와 화석은 세계 도처 심지어는 높은 산꼭대기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화석이 특별히 흔하게 나오는 곳 중에는 리프트 벨리라는 곳이 있는데 그 길이가 8,000km 이다. 시리아로부터 요르단 계곡을 거쳐 죽 뻗어 홍해로 내려와서 동아프리카를 지나 아프리카 대륙의 남부까지 이른다. 리프트계곡의 지각은 대홍수 때에, 지각이 융기하는 동안 그랬던 것과 거의 유사하게 비틀어 꼬였다. 탄자니아에는 리프트계곡의 남단을 향하여 올두바이 골짜기가 놓여있다. 지각의 융기나 찢김은 싸이고 싸인 퇴적암 층을 관통하고 도려내면서 빠른 강물이 그 위에서 폭포로 떨어지는 일련의 절벽을 형성했다. 이것은 그랜드 캐니언의 축소판인 길이 40km나 되는 올두바이 골짜기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원숭이와 다른 동물들과 인간의 화석들이 많이 드러났다. 루이스와 메리 리키와 그의 아들인 리처드가 많은 화석들을 발견한 곳이 이곳이다. 이 모든 지역과 관련하여 리처드 리키는 그의 저서 <호수의 사람들> 7쪽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과거에 퇴적됐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탄자니아 올두바이 호수는 깊이가 90m 이다. 다행히도 최근의 계절 강이 길이 40km 골짜기를 관통하여 길을 깎아 내려갔는데 과거의 수직 기록을 노출시켰다.”


5. 발견되는 극소수의 인간화석

그러나 극소수의 인간화석들만 발견되고 있다. 화석 수집가들은 많은 동물의 뼈들이 묻혀있는 곳을 주로 탐사했으나, 극소수의 인간 뼈들만 발견되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초기 인류들의 유물을 거의 남기지 않기 위하여 대홍수 이전 세계를 파괴해 버리기 위한 하나님의 고의적인 목적인 것 같다. 그분은 구약의 언약인 방주와 신약에 있는 예수의 십자가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셨다. 리처드 리키 자신은 첫 조상의 온갖 유물들이 한 두 개의 설화 속에는 산재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실로 홍수 이전의 지구를 파괴하여 과거의 문명을 수천 피트 지하의 진흙 퇴적암 속에 묻어 버리고 그것을 재구성하고 다시 꾸밈으로써 고도로 문명화된 당시 세계의 모든 유물을 파멸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 어쩌다 발견된 것들은 현대인과 닮았다.


6. 아름답고 쾌적했던 이전의 세계

다시 말하건대 결코 한 지역이 아닌 전 세계가 정말로 아름답고 쾌적하였다. 인도와 오늘날의 중국, 그리고 다른 아열대 기후에서만 자라는 양치류, 종려, 목련, 계피, 빵 나무(폴리네시아 원산) 및 기타 식물들의 화석들이 북극에서 256km 떨어진 북쪽 알래스카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런 화석들은 또한 시베리아, 그린랜드, 스피츠버겐에서도 발견된다. 화석으로 된 나무들은 지금은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북극의 대륙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7. 세계의 생소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화석들

동물의 화석들은 오늘날에는 그런 동물이 살지도 않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지역에서 발견된다. 알렉산더 캐트 코트는 1967년 판 그의 논문 <홍수에 관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즉;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코끼리들이 영국의 중원에 묻혀 있고, 나일 강이 원산지인 악어가 독일의 중심부에서 발견되고, 고래의 완전한 골격이 영국의 내륙지역에서 발견되고, 거대한 나무들의 뿌리와 꼭대기와 어떤 것은 잎들과 열매까지도 달린 채로 광산의 밑바닥에서 발견되고 있다.”

예일 대학교의 지질학부장인 밴자민 실리만은 1829년 판 그의 저서 <지질학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홍수에 관하여는 한 가지 의견 밖에 없다. 지질학은 전적으로 사건에 대한 성경의 역사를 확인한다. 고래들, 상어들, 기타 어류들, 악어들, 양서류들, 매머드, 멸종된 코끼리, 코뿔소, 하마, 하이에나, 호랑이, 사슴, 말, 여러 종의 소(牛)과 동물, 그 외의 수많은 동물들이 홍적층의 깊고 얕은 곳에 묻힌 채,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그들을 멸종시켰던 동일한 재난 즉 갑작스럽고 격렬한 홍수에 의하여 매몰되었음을 시사하는 환경 하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는 계속하기를] 고래의 뼈대가 북해의 해안에 있는 산혼(Sanhorn)산의 꼭대기에 있었다. [이 산은] 높이가 900m 이고 그런 높이까지 수위가 올라간 홍수 말고는 그 고도로 고래를 운반해 갈 수 있는 어떤 원인도 있을 수 없다.'

많은 경우 진화론자들이 더 오래된 화석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젊은 화석 상층부에 놓여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70

참고 :


유종호
2005-07-25

대홍수에 대한 홍수 후의 기록들 1


1. 암석들과 퇴적물들

홍수와 관련하여 지구의 표면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과 토양, 그리고 홍수 기간 중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오늘날 크게 분류하여 3종류의 암석 즉 화성암, 수성암, 그리고 변성암이 있다. 화성암은 최초로 창조된 최초의 원시 암석이다. 그것은 층으로 되어있지 않은 깊은 곳의 암석 덩어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식물이나 동물들 이전에 존재했기 때문에, 그 속에서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단한 이 바위의 상부에는 창조 때에 꽤 깊은 곳까지 지구 전체를 덮었던 엉성하고 비옥한 토양이 있었다. 토양은 땅에 물을 대주고 에덴동산의 시대부터 홍수 때까지 이 땅을 극히 비옥하게 해주었던 안개와 함께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퇴적암들은 지구 대부분의 지각을 덮고 있으며, 격렬했던 홍수 물의 작용에 의해 층서를 이루며 퇴적된 암석들이다. 그 속에 화석이 들어 있지 않은 일부 퇴적암들은 창조기간(창조 셋째 날 뭍이 드러나는) 동안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최초의 화성암들은 분명히 '깊음의 샘이 터질 때” 표석(漂石)으로 분출됐다. 표석들은 격렬한 대홍수의 충격을 받아서 큰 바위로, 굵은 자갈로, 잔자갈로, 모래로, 그리고 진흙으로 부셔졌을 것이다. 이것은 차례대로 성글고 기름진 토양과 뒤섞였다. 이 혼합물은 말라서 굳어지기 전에 진흙, 석회 기타 결합 물질들과 함께 결합되었다. 이렇게 층으로 된 대부분의 바위들이 지금의 석회암, 혈암, 사암 등이다. 이 암석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암석과 토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제2차 암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변성암이 있다. 그것은 화학반응과 압력과 열로 인하여 어떤 종류의 암석이 다른 종류의 암석으로 변화된 퇴적암이다. 예컨대 석회석이 대리석으로, 혈암이 석판암으로, 그리고 사암이 규암으로 변한 것 등이다.


2. 홍수 후의 이 지구의 지층

150일 동안 격동적인 폭풍우와 지진들, 그리고 폭발적인 화산들에 의해 생긴 엄청난 해일과 대격변들로 인하여 깨진 바위들, 큰 자갈들, 돌멩이들, 잔자갈들, 모래, 미사, 진흙 등은 섞이고 다시 섞이면서 거칠게 앞뒤로 굴려지고 뒤흔들어졌다. 이것들은 석회와 철분과 다른 결합물질들과 서로 결합되었다. 이 진흙탕 혼합물의 요동과 교란이 어느 정도 잔잔해지면서 또 다른 퇴적층이 물의 바닥 위에 쌓였다.

이렇게 해서 부드럽고 교반(攪拌)된 물질들의 퇴적물들이 처음에는 한 방향에서 연이어 다른 방향에서 유입되고 쌓여서 연속적으로 지층을 이루어 나갔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지층 속에서 지금 물렁물렁한 퇴적물과 함께 혼입된 여러 가지 종류의 동물들과 인간의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지층들을 만든 여러 물질들과 암석층의 색깔 및 조직들은 물질들이 이동되어 온 위치에 좌우되었다. 지층은 사암, 점토, 석회석, 혈암 및 다른 혼합물들로 구성될 수 있었다. 다음 지층이 그 위로 쌓이기 전에 각각의 하부 지층은 아직 물렁물렁하고 평평했을 것이다. 극렬한 교란이 수 피트에서 수십 피트의 퇴적물을 1-2시간 안에 퇴적되게 할 수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지층의 두께가 수천 피트에 이르고 퇴적층의 형성이 매우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어떤 진화론적인 지질학자들은 지층이 오늘날과 같이 쌓이는 데에는 약 10-40억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기간 동안 사이에 홍수들이 중간에 끼어들어 이루어 놓은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노아 때의 홍수는 오늘날의 그 어떤 홍수보다도 수천 배나 더 격렬했다.

대홍수가 얼마나 격렬했으며 퇴적층들이 얼마나 빨리 쌓였는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퇴적암의 여러 연속 층을 수직으로 관통하며 수직으로 서있는 많은 화석 나무들이나 식물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이런 나무들을 다지층(polystrate) 나무라고 부른다. 영국의 크레이그리스(Craiglieth)라는 채석장에 있는 그와 같은 하나의 화석나무는 최소한 10개의 석회암 지층에 걸쳐있는데, 높이가 24m이고 40도로 경사되어 서있다. 거기에는 가지들과 뿌리들도 붙어 있다. 만일 그 지층이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수백만 년 동안 쌓여서 된 것이라면, 나무의 꼭대기는 다음 지층이 쌓이기 오래 전에 썩어버렸을 것이다. 암석들이 많은 퇴적 지층 속에 서있는 화석 나무들은 노바스코티아와 오리건 주에서 발견되어진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 그루의 나무들이 암석층 사이의 지표 밑에 묻혀있다. 그들 대부분은 그 표면이 흙으로 고르게 덮여 있고 몇몇은 수직 또는 각을 이루고 서있다. 우리는 격렬한 홍수 중에 나무들이 여러 위치에서 매몰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골풀이나 속새와 같은 매우 섬세한 식물까지도 퇴적층 속에서 부러지지 않은 채 원상대로 발견되어진다. 이 다지층 나무들은 진화론자들이 지구의 퇴적층은 대홍수와 같은 재난 중에 급격히 쌓인 것이 아니라, 수백만 년 넘게 서서히 그리고 차근차근 쌓였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과학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꼬리가 머리 쪽으로 꼬부라진 수천 마리의 고기들이 한 채석장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갑자기 죽었고, 퇴적암층 속에서 재빨리 묻힌 채로 바위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화석화된 벌레들까지도 퇴적암에 묻혀서 발견된다. 마찬가지로 수천의 공룡들이 갑자기 익사해서 퇴적암 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어진다. 매머드와 같은 매우 다른 거대한 체구의 많은 동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시베리아에서는 많은 매머드들이 그들의 입과 위 속에 아직 열대성 식물성 먹이가 소화되지 않고 남아 있은 채 순간적으로 얼어 죽었다. 규화(硅化)된 숲이 남극으로부터 불과 16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오늘날도 비록 규모는 훨씬 작지만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1980년 5월 18일 워싱턴 주에 있는 세인트 헬렌 산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분출되었다. 많은 나무들이 돌풍으로 뿌리에서 찢겨져 나가 스피릿 호수로 쓸려 내려갔다. 백만 그루 이상의 나무들이 얕은 호수물 위에 떠있었다. 5년 후에는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완전히 가라앉아서 호수의 밑바닥 근처 수십 미터 두께의 퇴적물 속에 똑바로 선채로 묻혀 있음이 발견되었다. 만약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후 어떤 진화론자들이 각각 다른 높이로 묻혀있는 이 나무들을 보게 된다면, 수천 년 동안 거기에서 자라다가 수천 년 동안에 걸쳐 천천히 쌓여진 퇴적물 속에 묻히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은 모두 1-2달 안에 일어났던 것이다.

이 두꺼운 퇴적층 중 어떤 것은 아직도 물렁물렁하고 유연하고 쉽게 휘어질 수 있는 동안에 높은 산을 이루었고, 암석으로 경화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기 전에 융기되었다. 습곡 당시 아직도 유연하고 쉽게 휘어질 수 있어서, 지층들은 조각조각 깨어지지 않고, 두껍고 유연한 표지로 덮인 책 속의 낱장들처럼 휘어지거나 구겨졌다. 진화론자들은 어떻게 지층들이 조각들로 부서지지 않은 채 수백만 년 동안에 걸쳐 이와 같은 산들로 천천히 융기될 수 있었는 지를 설명해보려고 애써왔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68

참고 : 4198|4275|4235|4473|4490|4607|4610|6563|6566|6638|6645|6559|6558|6552|6549|6547|6545|6543|6535|6531|6508|6507|6551|6462|6417|6431|6524|6415|6413|6330|6255|6254|6240|6228|6225|6223|6222|6136|6170|6104|6076|6030|5556|5973|5468|5958|5957|5951|5898|5527|5841|5737|5721|5675|5429|5419|5400|5399|5286|5260|4805|4211|4217|4214|4132|3968|3948|3111|4363|3044|3278|2912|2050|1493|1464|1192|557|2104|512|3032

유종호
2005-07-23

대홍수 3


8. 광범위한 홍수

지상의 모든 세력들 즉, 궁창 위의 물 층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비, 지구를 뒤흔드는 지진,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폭발하는 화산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대륙들, 융기하는 산들, 토네이도, 허리케인, 거친 폭풍의 포효, 대란을 일으키는 역류와 소용돌이를 동반한 무시무시한 해일 등이 합쳐서 작동한다면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까? 광물 탐사가인 존 윌리엄스가 말한 대로 200일간의 추가적인 활동과 함께 150일 동안 수 주일 연속해서 한꺼번에 일어난 이 모든 것들은 틀림없이 “아마도 수직으로 수 마일에 달하는 깊이의” 해일을 일으켰을 것이다. 확실히 여러 종류의 요소로 된 퇴적암들에는 매우 많은 층들이 있다. 정말로 대홍수는 모든 형태의 생명과 지구의 전 표면을 통째로 파괴시켜버린, 세계의 역사 가운데서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격렬했던 대재난이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알프레드 레윈클 박사가 그의 저서 <대홍수> 329쪽에서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요약해 놓았다. 즉;

“성경의 대홍수(Deluge)는 하늘과 모든 땅이 관련된 전 세계적 재난이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무죄한 사람들을 위해 창조하신 세계를 파괴시켜버린 것은 그분의 뜻이요 목적이었다. 그래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융기를 일으키기 위하여 잠재한 모든 자연의 힘들을 일시에 총 동원하였던 것이다. 이 크나큰 자연의 힘들(지진들, 화산들, 바람과 물...)은 우주적인 대 파괴를 위하여 가공할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이 힘들이 연합하면 파괴와 이동을 극대화시키는 상승효과를 내기 때문에 그 크기는 인간의 계산 한계를 초월한다. 하나의 강이나 수계(水系)의 수위가 불어나서 야기되는 국부적인 홍수도 때때로 해당 지역의 지형도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바꾸어 버린다. 그러나 그런 국부적인 홍수들과 역사적으로 알려진 가장 큰 규모의 홍수일지라도 처음 세계를 덮쳐버린 대 재난의 모습을 그리기에는 수만의 만 배는 더 곱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미네소타 주 맨카토 유역과 그것과 같은 다른 강들의 유역을 따라 내려오면서 미네소타 강 유역을 관찰해 보면, 우리는 강의 유역의 폭을 4 km나 넓게 깎아내는 데에는 맨카토가 최근에 경험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홍수를 치렀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최근의 맨카토 홍수는 그런 넓은 유역을 만들어 내는데 필요로 하는 홍수의 물과 비교해 보면 작은 개울에 불과할 뿐이다. 전 세계에 걸친 강의 유역들은 보통의 홍수가 능히 깎아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넓다.

강들의 넓은 유역과 협곡들이 현재 지역의 육지 표면 위에서 깎여나갔을 뿐만 아니라, 깊은 협곡들이 대륙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다 속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와 같은 해저 협곡들(submarine canyons) 중에는 콜로라도 주의 그랜드 캐니언보다 더 큰 것들도 있다. 

바하마 해저 대협곡은 그랜드 캐니언보다 2배나 큰데, 깊이는 4,200m, 폭은 64km, 길이는 200km에 이른다. 어느 한 해저 협곡은 허드슨 강 입구로부터 약 480km나 뻗쳐 있다.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 약 640km 구간에는 해안 절벽까지 뻗쳐있는 해저 협곡들이 많다. 이와 같은 해저 협곡들은 거의 모든 대륙들에서 두루 발견된다. 이런 해저 협곡들은 분명코 땅덩어리가 들려올라오고 바다의 분지가 홍수 이전 그 위에 존재했던 수증기 층으로부터 지구 위로 쏟아져 내리고 남아있는 모든 물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낮아졌던 대홍수의 끝 무렵 쯤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 물들이 바다를 향하여 돌진하면서 협곡은 바다가 다 채워지기 전에 아직 굳지 않은 부드러운 퇴적지층들을 깎아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또한 지질학자들은 매우 넓은 지역의 바다가 내려앉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미시간 대학교 지질학부 책임자는 얼마 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진리를 탐구하는 자로서 우리는 바다의 광활한 바닥이 수 마일이나 되는 수직 거리를 가라앉았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하여 이 이상 외면할 수가 있겠는가?”

지구 표면의 현재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격렬하게 변했음이 틀림없다. 이 지구지질학은 옛날에는 남극과 북극을 포함해서 이 지구는 어디나 그저 늘 이상적이고, 아름답고, 쾌적한 기후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지역들과 융기된 산들과 조여진 지층들 속과 온 지구상의 노출된 지층 속에 묻혀있는 동식물의 유해들은 초기 지구의 조건과 거기에 격동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것은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3:6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때 세상은” 기후와 지구의 표면 구조에 관한한 분명하게 달라졌던 것이다. 그것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다”고 말한 대로 엄청나게 변화되었다. 그리고 지금 있는 “하늘과 땅”은 원래의 것과 전적으로 다르다.

이런 결과로 에덴동산은 파멸되었고, 그것의 정확한 당초의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 혹자들이 추측하는 대로 에덴동산은 팔레스타인이나 바벨론 지역 내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 해도 그것은 수백 내지 수천 피트 두께의 대홍수 퇴적물 아래에 묻혀있을 가능성이 많다. 사람들이 옛 세계에서 새 세계로 옮겨 왔을 때 그전 고향에서 쓰던 옛 지명을 새로운 고향의 지명으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일이 에덴동산과 같은 곳에서도 적용되었을 것이다. 바위 속에서 굳어진 많은 통나무들이 금속광산에서 발견되고, 여러 가지 종류의 동물과 물고기들의 화석들이 바위덩이들 속에서 발견된다. 남 다코타 주의 황무지에는 지층이 진흙과 혈암과 석회암과 사암의 혼합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해일이 밀려온  방향에 따라 퇴적물이 이들 지층을 만들었음을 시사한다. 개, 고양이, 악어, 사슴, 낙타, 말, 심지어는 코뿔소와 많은 다른 동물들의 화석 잔해들이 그 황무지에서 발견된다.

대홍수 때의 이 모든 난류의 결과로 생긴 화석 잔해들은 수많은 생물들이 엄청나게 큰 더미로 함께 묻혀있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물고기들이 죽으면 표면에 뜨거나 바닥에 가라앉고 다른 물고기들에게 먹힌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10,000평방 마일에 달하는 지역에 수백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갑작스럽고 매우 처참하게 죽었음을 보여주는 화석들이 발견된다. 잔해들은 지질학자인 휴 밀러가 기술한 바와 같이 “뒤틀렸고, 짓눌렸고, 굽어져 있는데, 많은 경우에 꼬리가 머리까지 휘어져 있고, 척추는 삐져나왔고, 지느러미는 고통 중에 죽은 고기처럼 전신에 퍼져있다. 영국에서는 1평방 야드의 사암 속에 1,000개의 물고기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런 사실들은 육상 동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의 화석들도 그들이 갑작스럽고 비참하게 죽었음을 보여준다. 동물들은 틀림없이 진흙이나 다른 퇴적물의 층에 의해 순식간에 덮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보존되어 화석이 될 수가 없다. 골수 진화론자인 던바는 다음과 같이 썼다. 즉;

“죽은 뒤에 버려져서 노출되어 있는 짐승의 시체는 육식동물들이나 주검을 좋아하는 동물들에 의해 갈가리 찢기거나 먹혀 버린다. 만일 이런 일을 모면할지라도 이런 큰 동물은 박테리아가 딱딱한 부위 이외의 모든 부분을 완전히 부패시킨다. 노출되어 있을 경우 1, 2년 후에는 가루나 먼지가 되어버릴 것이다. 어쩌다가 습기 많은 퇴적물이나 정지된 물밑에 묻히게 되면 풍화가 방지되고 부패는 크게 감소될 것이며 포식자들은 잔해들을 훼손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죽은 직후의 매몰은 양호한 보존을 보장해주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화석무덤들은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데, 어떤 지역은 무수한 공룡 또는 동물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지역은 물고기들, 어떤 때는 많은 동물들이 섞여 있기도 하다. 어떤 때는 정상적으로는 온대지방에서만 사는 동물들의 화석이 북쪽의 아주 먼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심해에 사는 동물화석이 산꼭대기에서 발견된 일도 있다. 낙타, 멧돼지, 코뿔소의 뼈들이 함께 묻혀 발견되기도 한다. 코끼리와 다른 거구 동물들이 시베리아, 알래스카, 영국, 유럽의 여러 곳에서 수백만 마리씩 발견된다. 시실리에는 하마들이 수천 마리나 묻혀 있다. 지질학자들은 동물들이 이렇게 죽고 매몰되고 보존된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매우 격렬한 어떤 사건이 일어났어야 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물고기와 육상동물들에게 있었던 사건은 대홍수 이전에 살았던 인간들에게도 같다. 만일 우리가 지구의 심층에 있는 퇴적암을 파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분히 대홍수 이전의 인간들과 그 암석 속에 묻혀있는 그들의 발달된 문명들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9. 지구에 홍수가 일어날 수 있을 충분한 물

온 지구 위에 한꺼번에 대홍수가 날 만큼의 많은 물이 과연 있었을까? 에 대한 의문이 가끔 제기된다. 지구 표면의 70%가 물이다. 해양의 평균 깊이는 온 육지 표면의 평균 높이의 12배에 달한다. 만일 모든 육지를 깎아서 바다를 평평하게 메운다면 모든 육지가 물에 잠기고 그 평균 수심이 2.4km(1.5마일)나 될 것이다. 만일 바다의 밑바닥이 올라오고 육지가 땅 밑에 펄펄 끓는 액상의 마그마(용암) 위로 가라앉는다면 전 지구를 홍수로 덮기에 충분한 물을 갖기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액체와 고체의 더미가 통째로 소용돌이치는 지진과 화산과 폭풍과 함께 믿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진흙탕 범벅으로 꽉 찼을 것이다.


10.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다른 잡지들이 지금은 대홍수를 사실이라고 여긴다. 

뉴스 매체, 잡지, TV 프로그램 등은 진화론자들의 추정과 주장들을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꾸준히 나팔을 불어댔지만,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1977년 9월 판 129쪽에서 이런 제목으로 하나의 기사를 시작했다. 즉;

“옛날에 실로 거대하고 광범위한 대홍수가 있었다는 고대의 설명을 지지하는 거부할 수 없는 증거들이 있다.”

그러고 나서 노아, 대홍수, 진실 이라는 본격적인 제목이 나온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것(대홍수)이 당초에는 국지적 사건(어느 강의 범람, 강력한 허리케인 혹은 타이푼)이었는데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동안 부풀려지고 각색되어지고 마침내는 신화의 수준으로까지 굳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홍수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이 놀라운 결론은 우리가 다음에서 보는 대로 별개의 두 분야 학자들이 독자적으로 정밀 조사하여 내려지게 되었다. 즉 11,600년 전에 살았던 아주 작은 바다 생물인 조개들을 연구했던 지질학자들과 약 8,000년 전에 사람의 손으로 씌어진 기록을 해독한 고고학자들이 그들이다.”

지질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이여! 나는 전에 고고학(이집트, 수메르 등의 고대인들과 그들이 남긴 문명의 업적들에 관한 연구)과 지질학(대홍수로 인해 변화된 지구의 구조와 그 속에서 발견된 화석에 관한 연구)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성경과 그 속에 있는 선사시대의 역사 및 일반 상식 등이 지구의 최초 사람들에 관한 사실들을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것과 함께 언급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즉;

“성경은 대홍수의 시기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성경은 그 사건이 있었다는 것만 언급할 뿐이다. 이제는 구운 도자기 조각 위에 씌어진 초기 인간들의 기록물들과 함께 죽은 지 오래된 조개들이 옛날에 거대하고 광범위한 홍수가 있었다는 거부할 수 없는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로버트 실버버그 같은 진화론자까지도 1971년 그의 책 <시대 시계> 91-92쪽에서, 진화론자로서 기록하긴 했지만, 대홍수에 관하여 가장 아름다운 최상의 묘사를 했다. 1백5십만 년 전을 언급하고 난 후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전 시대인 플라이오세(世)는 세계적인 온난의 시기였다. 즉 어디서나 겨울에도 온난했고, 빙하는 알려진 바 없고, 남극과 북극 지역에도 얼음은 없었다. 플라이오세 말기에 이르러 지각에 강력한 대교란 사건이 시작되었고 장차 알프스 산맥과 로키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 될 지역들을 들어 올리면서 습곡운동과 융기운동이 진행되었다. 이 융기작용의 절정은 플라이오세를 마감하는 급격하고 대재난적으로 온도가 급강하한 것과 우리가 홍적세(洪績世)라고 부르는 격변적이고 혹한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빙하시대에 대하여 좀 더 언급하겠다. 그는 계속해서 쓰기를) 지질학적 시간의 척도에서 최대의 변화는 점진적이고 거의 인식할 수 없을 만큼의 속도로 다가오지만, 플라이오세로부터 홍적세적 환경으로의 바뀜은 놀라운 속도(5,000년 이내)로 일어난 것 같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대홍수가 이 모든 급격한 변화를 설명해 준다는 것을 받아드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한 사람의 진화론자인 리처드 카링턴은 그의 저서 <우리 지구 이야기> 155쪽에 다음과 같이 썼다. 즉;

“그 시대에 지구에 서식하던 많은 종류의 동물들 가운데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완전히 쓸려 나갔다. 개개인뿐만 아니라 전 인종이 모두 파멸되었다. 이 큰 파멸사건은 육지와 바다와 공중에서 똑같이 무차별적으로 휩쓸었다. 대파멸 사건이 끝났을 때 지구 위에 있던 생명체의 모든 양상은 변했다. 단 한 마리의 공룡이나 바다나 공중의 거대한 파충류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물들의 돌발적인 멸종에 대해서 그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그는 같은 책 159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마도 지질학적인 사건들이 생태계에 대변화를 주었던 주된 원인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기후의 변화는 식물의 생태에 있어서 광범위한 변화를 야기하여 초식성의 공룡들은 먹이를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외적인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모든 주요 생명체가 그렇게 광범위하게 소멸된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과학자들로 하여금 다른 이론들을 두루 찾게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인간의 장수에 관한 학설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지구에 접근 또는 충돌하는 다른 행성이나 혜성 때문에 여러 형태의 동물들이 멸절되었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그러나 “먹이를 빼앗긴 것”과 “인간의 장수”는 화석이 형성되도록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든 간에, 대홍수가 그와 같이 광범위한 파괴와 생명의 멸절의 원인이라고 진화론자들이 말할 수는 없다.

대홍수는 진화론자들이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지질학적 사실이다. 오늘날 지구의 지질학적 모습에서 다음 항목들에서와 같이 대홍수의 증거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1)오늘날의 홍수에 의해서 형성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넓은 강 유역들
2)지구의 퇴적암에 현존하는 화석 무덤들
3)많은 양의 홍수 물로 인하여 쌓여있는 두터운 퇴적암 지층들
4)최근에 융기된 거대한 산맥들
5)산들의 꼭대기에서 발견되는 바다생물 화석들
6)최근 해수면이 엄청나게 올라간 증거
7)최근에 양 극지방에서 얻은 과거 온난한 기후의 증거
8)한 장소에 함께 묻혀있는 엄청나게 많은 여러 종류의 화석들
9)전 세계에 걸쳐 공룡과 기타의 동물들이 돌연히 멸종된 사실
10)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서 입과 위에 열대성 먹이가 있는 채로 갑자기 묻히고 동결되어버린 거구 동물들
11)전 세계에서 문명이 갑자기 일어난 것
12)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파괴적인 대홍수가 일어났다는 그 외의 수많은 증거들
 13)많은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홍수 설화 등등.


11. 많은 나라들에서 발견되는 홍수 설화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과 종족들과 나라들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홍수 설화는 전 세계적인 홍수가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내가 앞서 언급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1977년 7월호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즉;

“규모가 크고 광범위한 지역에 대홍수가 있었다는 성경의 설명은, 형태는 여러 가지이지만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문화권의 전설이요 신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다에서 먼 곳에 사는 사람들-미국 서남부의 호피 인디언, 페루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에 사는 잉카족 등-까지도 그 땅을 쓸고 지나가면서 산꼭대기까지 차서 땅 위의 모든 생명체를 치명적으로 휩쓸어 버렸다는 대홍수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

대홍수 이야기가 온 지구상에 널리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그런 홍수를 부정한다. 한편 성경이 그와 같은 홍수가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것이고, 홍수 이야기가 다른 민족들 가운데는 널리 퍼져있지 않았다면, 진화론자들은 대홍수가 없었다는 증거로서 그것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온 세상에 퍼져있는 이렇게 많은 대홍수 이야기는 세부적으로는 잘못 전달되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하고, 창세기의 설명과 같이 간결하고 사실에 입각한 단순성이 결여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이 모든 이야기 안에는 그렇게 무서운 홍수가 있었다는 핵심적인 사실은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 홍수 설화의 대부분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었던 대홍수가 한 척의 배 안에서 구조된 몇 사람 외에는 모든 생명체들을 휩쓸어 갔고 소수의 남은 자들만 구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대홍수 설화는 최소한 200개 이상의 민족, 종족, 나라들 가운데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신구약 성경의 수많은 낱권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38절과 누가복음 17:26절에서 홍수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자신의 재림과 관련지어 홍수를 언급하셨고, 이 땅에 또 다른 파멸이 올 것인데, 이때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불로 태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후서 3장에서 그것을 언급하고 있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베드로후서 3:3-10)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66

참고 :

유종호
2005-07-22

대홍수 2


5. 화산들

깊음의 샘들이 터질 때 발생했던 또 하나의 파괴적인 힘은 화산 폭발과 거의 동시적으로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난 침식작용이었다. 

이 화산 폭발은 지구의 기초를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구 위에 엄청난 양의 액상 마그마를 퍼부어서 우리가 오리건 주와 지구상의 많은 다른 곳이 가지고 있는 용암과 훨훨 타는 화성암들을 제공하게 되었다. 화산은 먼지와 진흙과 용융 상태의 바위와 증기와 물과 표석과 유황 등을 분출해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의 뜻을 무시했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분노의 가공할 장관을 제공했다. 이들 화산 중 어떤 것은 지구의 여러 곳에 거대한 용암을 흐르게 했다. 인도의 데칸 고원에는 화산암과 용암이 3.2km 두께로 생겼고 미국의 콜롬비아 고원은 화산 폭발물이 평균 900m 두께로(어느 한 곳은 4.8km) 50만km2에 걸쳐 펼쳐져있다. 화산에서 폭발된 화산재는 틀림없이 온 지구 위에 대기권의 최고층에까지 도달했을 것이고 더욱 더 맹렬한 폭풍우를 일으켰을 것이다.

룻 무어는 그의 책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347쪽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한 때 미국의 서북부를 온통 뒤덮었던 그와 같은 용암류와 그 보다 더욱 격렬한 수백 개의 거대한 화산의 분출들을 연구하고 실사하면서 지질학자들은 가장 장엄한 자연현상에 대한 추가적인 이해를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무엇이 지구를 전율하게 하고 요동치고 용암과 불을 내뿜게 했는가? 무엇이 이 압도적이고 포악하고 붉고 뜨거운 바윗물 홍수를 일으켰는가? 인간들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수백 년 동안이나 지내 왔던 것이다.'

같은 책 353쪽에서 그녀는 1883년에 화산이 터져서 파멸된 크레카타오 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자바와 수마트라 사이의 순드라 해협에 위치한 불운한 섬은 전 세계적으로 해일을 일으켰던 폭발 때 해면으로부터 쓸려버렸다. 한편 미대륙의 서북 변방을 따라서 수백 번의 폭발이 차례로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한 산의 중심으로 모아진 궤적을 따라서 용출된 용암들이 1,040km 이상이나 길게 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의 강령에 충실한 제자이며 성경을 무시하는 그녀는 같은 책 354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수백만 년 후에 분기 폭포들이 다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 세계적인 대홍수에 관한 성경의 설명을 석회암과 화석들이 증거해 주고 있지만, 진화론자들은 그것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것들을 과학적으로 시험하고 증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홍수 때에 단기간에 일어났던 것을, 생명이 지상에서 수백만 년 이상 동안 진화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갖기 위하여 수백만 년과 수십억 년 이상으로 잡아 늘리고 있다.

크레카타오 섬의 폭발과 관련하여 살펴본다면 당시의 폭발음은 지금까지의 모든 기록 중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굉음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폭발 때와 같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수소폭탄 100개를 한꺼번에 폭발시켜야 될 정도였다. 그 소리는 폭발이 일어 난지 4시간 후에 4,800km 밖에까지 들렸다. 바다에서는 30m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서 자바와 수마트라의 낮은 해안선을 따라 내륙으로 밀어 닥쳤다. 1,200개의 마을과 도시가 파괴되었다. 파도가 약 40,000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해일이 큰 배를 내륙 2.4km까지 밀어붙여서 해발 9m 언덕에다 좌초시켜 놓았다. 이제 대홍수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전 지구 위에서 수천 개의 화산들이 동시에 터지면서 지각의 기반을 뒤흔들고 갈기갈기 찢었을 때 이 지구가 어떠했겠는가?


6. 지진들

공포의 화산들이 서로 연달아 터지면서 근년의 것 가운데 최악이며 극도로 격렬했던 지진들이 기록되었다. 최근의 지진들이 얼마나 큰 재앙을 일으켰는가는 미국을 강타했던 대지진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센트 루이스에서 약 160km 떨어진 소읍인 뉴 마드리드에 집중타를 가했다. 1811년 12월 15일 이른 아침에 천둥과 같은 소리와 격렬한 충격과 함께 지진이 일어났다. 굴뚝은 허물어져 넘어졌고, 의자와 탁자들은 나뒹굴었으며, 수백 마일 떨어진 건물들이 마구 요동쳤다. 사람들이 집밖으로 뛰쳐나왔을 때 땅은 대양의 파도처럼 흔들렸으며, 사람들은 걸어 다니려고 하지 않고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유황증기로 된 검은 구름은 그 지역을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었다. 동이 텄을 때 사람들은 아직도 육지가 파도처럼 격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삼림은 갈가리 찢겼고, 건물들은 입 벌린 땅 틈으로 삼키어졌다. 수천 에이커의 숲이 삼키어졌고, 구릉들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호수들이 생겨났다. 어떤 것은 길이가 112km나 된 것도 있었다. 다른 곳들에서는 호수가 들려 올라가서 물이 바닥났다. 그 지진의 격렬함은 북아메리카의 먼 곳까지 감지되었다. 버지니아에서는 경보가 울렸고, 동부 여러 주들에서는 굴뚝들이 쓰러졌으며, 캐나다의 북쪽 지방에서는 인디언들이 공포에 떨었다. 잠시 동안 미시시피 강이 들려 올라가서 물이 역류했다. 몇 시간 후 역류해서 모인 모든 물들이 무시무시한 세력과 우렁찬 소리를 내며 그의 진로 상에 있던 모든 것들을 부수며 흘러 내렸다. 노아의 대홍수가 몇 달 동안 쏟아졌던 것만큼이나 악성이고 격렬한 지진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땅에 넓은 틈이 생겼다. 사람들은 키 큰 나무를 잘라서 틈새와 직각으로 떨어뜨렸다. 충격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틈새가 그들 아래로 열렸을 때 생매장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나무들에 매달렸다.

첫 번째의 대충격 사건이 있은 지 10년 후에 마지막 충격이 왔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마무리 되었을 때 수천 평방 마일의 땅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에 많은 것들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노아의 홍수 이후 오랫동안 이 지구는 어떻게 되었었는가?

최근에 터진 몇몇 대지진의 격렬함을 보기 위하여 1692년 6월 7일 자메이카의 로얄 항구를 강타한 재난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땅은 파도를 일으키며 움직였다. 이곳저곳에서 땅이 갈라져 크게 입을 벌렸다가 금세 입을 다물었다. 몇몇 틈새로는 사람들이 빨려 들어갔고, 다른 틈새에서는 짓이겨져 죽었다. 거대한 파도가 배들을 서로 부딪치게 하고 어떤 배들은 쓸려 내려가지 않고, 남아있는 집 근처의 육지 위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난리 통에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 단 몇 분 사이에 그 도시는 카리브 해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근년에 캘리포니아나 중국 등지에서 또 다른 수많은 격렬한 지진들이 있었다. 그때 유사한 대파괴가 땅과 사람과 건물들을 강타했다. 무엇보다도 1988년 12월 7일에 구소련의 아르메니아에서 있었던 가공할 대지진은 얼마나 처참하였는지! 그것은 미국과 온 세계에 걸쳐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이 모든 지진들은 대홍수 동안에 온 세계에서 일시에 '큰 깊음의 모든 샘들이 터졌을” 때에 비하면 사소한 사건들에 불과하다.


7. 해일(海溢)들

침식(浸蝕)과 폭발을 동반하는 화산들과 함께 파멸적인 공포를 주는 지진들과 거대한 해일들이 연달아서 일어났다. 일본에서는 쓰나미(tsunamis)라고도 부르는 이 살인적인 파도는 정상적인 해양 파도보다도 18m나 더 높고 총 높이는 30m나 되었다. 이 거대한 살인마 파도는 가공할 속도로 이동한다고 알려져 있다. 1896년 대서사시 같이 장엄한 한 재난에서 살인마 파도가 일본을 강타해서 27,000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일본은 반복해서 바다로부터 갑자기 몰려와서 박살내고 파괴하고 해독을 끼치고 인명을 앗아가는 이 쓰나미의 타격을 받곤 한다. 1960년 5월 칠레에서 있었던 한 지진은 24시간에 16,000km 혹은 시속 640km 속도의 파도를 일으켜서 일본과 캘리포니아, 그리고 알래스카로부터 뉴질랜드까지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크레카타오 화산 폭발 때는 38m 높이의 파도가 무서운 속도로 모든 방향의 대양을 건너갔다. 일본과 호주와 인도에서까지 선박과 도크들을 성냥개비처럼 부러뜨렸다. 케이프 혼(남미의 최남단)에서까지도 시간당 640km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결과 36,000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고 6,000척의 배가 파손되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수백 개의 마을이 괴멸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노아 때의 홍수가 국지적 사건에 불과하다고 믿기에 충분할 만큼 어리석고 반(反) 하나님적이다.

해일은 일반적으로 조류(潮流)에 의하여 생긴다고 말들 있지만, 그 용어는 특별히 지진이나 해저 화산의 폭발이나 매우 강력한 폭풍에 의해서 육지로 밀려올라오는 높고 파괴적인 파도에 적용된다. 폭풍만 해도 30m 높이의 파도를 일으킨다. 프랑스의 Cherbourg에서는 거대한 폭풍에 밀려온 파도가 3톤 이상의 바위들을 큰 바위로 쌓은 방파제 너머로 내 던졌다. 그리고 그 파도들은 65톤짜리 콘크리트 불럭을 18m나 옮겨놓았다.

홍수의 파괴력은 근년에 홍수가 행한 일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홍수는 350톤의 화강암덩이를 91m 이상이나 이동시켰다. 75톤 내지 210톤에 달하는 표석(漂石)들이 겨우 4.5-6m 깊이의 홍수 물에 떠내려간 일이 있다. LA의 세인트 가브리엘 산맥에서는 한 번의 단순한 홍수 때에 1평방마일 당 십만 입방 야드의 바위와 흙이 휩쓸려 떠내려갔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살펴보게 되는 바와 같이 노아의 대홍수에 의해서 뒤집혀진 거대한 양의 바위와 흙이 이동되고 세계 모든 곳에 침적(沈積)되었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가 있다. 지표면의 75% 이상이 퇴적암으로 되어 있다고 과학적으로 추정되어 왔다. 콜로라도 주와 애리조나 주에는 퇴적물로 된 흙과 암석층이 최소한 그랜드 캐니언의 두께만큼 되고, 인도의 어느 곳은 퇴적층의 두께가 19.2km(12마일)이나 된다. 창조의 셋째 날 육지가 형성될 때 일부의 기반 암석이 들려 올라왔지만 화석을 함유하고 있지 않은 이 암석들은 전 지구가 전체적으로 365일 이상 동안 대란을 겪었던 홍수기간 중에 쌓였던 퇴적암의 중복 층과는 같지 않다.

해일을 연구해 본 과학자들은 해일들이 대양의 바닥에까지 이르러 가장 깊은 물 속을 가장 빠르게 이동하는 일련의 파도였음을 알아내었다. 7,200m 깊이의 해저에서 해일은 시속 960km로 비행하는 점보제트기 만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270m 깊이에서는 속도가 시속 184km로 떨어지고 해안선 상에서는 시속 48km로 떨어진다. 그러나 얕은 물 때문에 파도는 엄청나게 높이 솟아오른다. 대양의 깊은 곳에서 겨우 60cm 높이였던 파도는 시속 48km로 내륙으로 밀려오면서 무려 30m 높이의 살인적 파도로 될 수 있다. 가장 최악의 파도는 일반적으로 첫 번째의 파도가 아니다. 계속적으로 밀려오는 파도들이 대양으로 되돌아간 파도들과 만나면 두 파도들은 돌진하는 물의 벽을 훨씬 높게 만들어 내어서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된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64

참고 :

유종호
2005-07-21

대홍수 1


1. 노아의 방주

하나님에 대한 첫 번째의 반란이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후에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구세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통해 인간들에게 아직도 하나님께로 다시 복귀할 수 있는 희망을 주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그들의 후손 중 하나의 “씨”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서 인간에 대한 사탄의 권세를 멸하고 인간을 하나님께로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아담과 이브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적인 대홍수로부터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구해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인간의 씨와 그 약속의 씨(구세주)가 그 안에서 구원될 방주를 짓는 방법을 지시해 주셨다.

방주에 관하여 많은 기록이 있다. 사람들이 제기할 수도 있는 의문과 관련하여 몇 개의 언급이 있다. 그중 하나는 방주의 크기에 관한 것이다. 길이는 135m, 폭은 22.5m, 높이는 13.5m 였고, 3층의 갑판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569량의 철도 화물차를 싣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방주 전 공간 중 약 반 정도에 모든 육상동물의 각 2쌍 씩을 넉넉히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방주에 있었던 동물의 종 수는 우리가 종(species)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한 종들이란 일반적으로 자유롭게 이종교배를 해서 건강한 후손을 생산할 수 있는 일단의 동물들을 말한다. 한 쌍의 개(canis) 속은 모든 형태의 개와 그 변종들인 늑대들, 자칼들, 그리고 코요태들을 낳을 수 있다. 개 속에 속하는 200종(species) 이상의 변종들은 한 두 마리의 야생 개에서 왔다. 끝없이 많은 비둘기 변종들이 양비둘기(rock pigeon)에서 퍼졌다. 표범, 호랑이, 사자, 보통의 고양이 등의 고양이 속으로부터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나 다른 종류(kinds)의 동물들은 서로 섞이거나 합체되지 않는다. 이 사실이 로버트 클라크로 하여금 그의 저서 <다윈: 그 전과 그 후>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짓게 했다. 즉;

“진화에 대한 모든 이론은 이 현대적 발견의 관점에 비추어 볼 때 실패했다. 단순히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비참하게 실패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진화론은 거의 믿어질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의 종족들이 서로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다 한 조상 노아로부터 왔으나, 피부색, 눈의 모양, 체구의 크기와 일반적인 외모가 얼마나 다른가! 성경에 다소의 힌트가 있기는 하나 무엇이 그런 변화를 가져왔으며 언제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이다.

여러 다른 종류(kinds) 또는 그 종류 안에서의 여러 변종들까지도 방주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에 전 지구적인 현상이었던 완만한 표고차의 지표 구조와 온난한 기후로 미루어 볼 때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모든 종류의 피조된 동물들도 당시 지구의 다른 모든 지역에서는 물론이고 방주를 짓던 그 곳에도 살고 있었으리라는 개연성이 있다. 만일 어떤 동물이 자기들의 생존경쟁을 위하여 고지형이나 사막 또는 정글과 같은 환경을 필요로 하였다면, 이런 환경은 전 세계적으로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늘날 대해를 항해하는 큰 선박들만큼이나 큰 대형 방주를 건조하는 것에 대해서도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어서 방주를 건조하는 것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홍수 직후에 피라미드를 건설할 만큼의 놀라운 위업에 비해 방주의 건조는 비교적 적은 규모의 건축공사라 할 수 있다. 피라미드 건설에서 보여준 기계공학적 창의성과 집행능력은 그들의 선조인 노아의 후손들에게서 전수되어지고 배웠던 것이다.

노아와 그의 3 아들들이 방주를 지을 자재를 모으고 또 배를 건조하는 데 120년이 걸렸지만, 이것은 그들이 전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 배를 지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목수와 조선공과 기타의 일꾼들을 고용했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교회를 지을 때 믿지 않는 외부 일꾼을 고용하는 것처럼 그들의 세속적인 이웃 가운데서 고용했을 것이다.

대홍수의 가공할 파괴력은 두 가지의 근원에서 왔다. 창7:11-12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즉;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 월 곧 그 달 십칠 일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대홍수를 생각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의 창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2. 하늘의 창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첫 번째의 질문은 40 주야를 계속 쏟아졌던 비의 물 근원은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분명히 창조의 둘째 날에 하나님께서 끌어 올리신 궁창 위의 물 층이다. 궁창 위의 물은 태양광선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해서 지구를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준 수증기 형태였다. 하늘의 그 물 층에 포함되어 있던 물은 지상에 있던 물의 양 만큼이나 많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 보호적 물 층이 40주야 동안 지구 위로 쏟아져 내렸을 때, 아마도 전 지구에 걸쳐 기상 이변이 생겼을 것이다.

천둥과 번개가 갑자기 나타났고 가장 거센 허리케인과 토네이도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지구가 여태껏 경험했던 어떤 것보다 더 격렬한 것이었을 것이다. 또한 번개는 쉼 없이 내리쳤고 천둥은 계속해서 쿵쿵거렸을 것이다. 그 하늘 창이 열렸을 때 어마어마한 물이 마치 폭포와 같이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 물이 그렇게 쏟아졌을 뿐만 아니라, 찬 공기가 땅 위를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기온은 아주 급강하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폭풍우가 몰아치면 사람들이 피난처로 숨어들어서 움츠리고 벌벌 떨고 있을 만큼 가공스럽다면, 그 당시 폭풍우의 격렬함은 어느 정도였을까!

진화론자들은 오늘날 지구상에 있는 물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설명하려고 한다. 플레스톤 클라우드는 그의 저서 <우주와 지구와 인간>의 109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최초의 대기권과 수권(水圈)은 거의 확실하게 화산 폭발이나 탈기(脫氣)의 과정이라고 부르는, 애초에 함께 떨어져서 행성을 형성했던 물질들에 함유되어 있던 가스 상태의 구성 물질 중에서 응축된 산물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클라우드는 이 탈기가 큰 트림이나 여러 번의 트림 또는 일정한 트림들 중 어떤 경우에 일어날 수가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여러 번의 트림이 있었다는 가정을 선호한다. 그러나 진짜 의문은 이 모든 물들이 실제로 있게 한 모든 가스들은 어디서 왔는가? 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또 다시 비과학적 추측에 불과한 설명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지는 1986년 4월 2일자 판에서 이 지구에 있는 모든 물에 대해서 또 하나의 설명을 싣고 있다. 즉;

“아이오와 대학의 과학자들(진화론자들)은 물이 지구와 행성들 위에서 어떻게 모아졌는가에 대해 놀랄만한 새 이론을 제시했다. 그들은 전에는 한 번도 탐색된 바 없는, 바다들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물을 20억년 이상 동안 공급했던 얼음으로 된 작은 혜성들이, 1분에 20개 혜성의 비율로 100톤씩의 물을 방출하면서 지구 대기권으로 계속 돌진해 들어왔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다른 행성이나 달 위에는 물이나 바다가 없는가? 진화론자들이 어떤 이론에 이어 또 다른 이론들을, 그것들이 합리적이지도 않고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데도 계속 조작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가? 다시 묻건대 그들이 지구에 물을 날라다 주고 있다고 추정하는 얼음으로 된 혜성들은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달과 화성은 왜 물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3. 큰 깊음의 샘들

대홍수의 두 번째 파괴력의 근원은 그 날에 터졌던 큰 깊음의 모든 샘들이었다. 큰 깊음의 샘들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깊음의 샘들은 지구의 전 표면과 지각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뒤흔들어 내동댕이치고, 떨어뜨리는 온갖 활동을 포함하고 있었다. 깊음의 샘이 터졌을 때 많은 지질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아마도 지구 전체가 뒤틀리고 대륙들이 움직이고 요동쳤을 것이다. 한 때는 대양과 바다였던 것이, 뒤틀릴 때 록키나 히말라야 같은 산맥으로 솟아오를 수 있고, 한 때 육지였던 것이 바다 속 5마일 깊이로 묻혀버릴 수도 있다.

대홍수 때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에 대해서 대충 헤아려보기 위하여 우리는 지각이 격렬하게 교란되고 대륙들과 산맥들은 들려 올라서 근년에 필리핀에서 발생했던 바와 같이 화산폭발에 따른 용암과 화산재와 연기들이 전 지구 위를 뒤덮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구의 모든 곳과 대양의 바닥까지도 수많은 화산들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많다. 한편 전 세계적인 지진들도 지구를 뒤흔들었다. 창조의 둘째 날에 창조주께서 거기 두셨던 궁창 위의 수증기로부터 지상으로 폭우가 40일간 쏟아졌다. 또한 기상 체계에 있어 젯드 기류와 심한 기압 차 현상이 발생해서 매우 격렬한 허리케인과 토네이도가 일어나고 지구의 기후는 열악하게 변했다. 온 지구 위의 조화에 격변을 일으켰던 엄청나게 사나웠던 노아 홍수 당시의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와 비교한다면, 1992년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앤드루 허리케인은 그저 미풍에 불과한 것이다. 1993년 미드웨스트 홍수는 전 지구를 동시에 뒤덮었던 대홍수의 물에 비하면 단순한 연못 정도에 불과하다. 1994년 LA 지진도 대홍수 때 전 지구를 뒤흔들었던 지진에 비한다면 사건도 아니다.


4. 대홍수 후의 지질학이 가르쳐 주는 교훈

지금까지 우리는 고고학, 일반 세계사 그리고 성경의 역사가 지구의 고대사에 대하여 가르쳐 주는 바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지각의 구조에 대한 학문인 지질학은, 발생했던 변화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준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지질학은 사실에 입각한 과학이다. 그리고 우리가 창조 이래로 변화된 지구 표면의 모습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변해버린 지각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지질학과 성경은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경과 지구에 대한 현재의 지질학은 서로 상충되지 않으나, 지구 위에서 수억 수천만 년 동안에 균일하게 점진적으로 지각이 형성되었다는 진화론이라는 이론과 지구에 대한 현대의 지질학은 모순된다!

태초 이래로 지구상에서는 거대하고 돌발적이고 첨예한 변화들이 발생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 지질학적 현상들이 있다. 이들 중의 하나는 산맥의 융기이다. 성경은 대홍수 때의 물이 가장 높은 산들 보다도 15규빗이나 더 높이 찼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반드시 오늘날의 가장 높은 산들보다도 더 높이 물이 찼다는 의미는 아니다. 태초에는 지상의 모든 것이 “매우 좋았음”으로 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들에게 장애가 되는 높은 산들이나 사막 지대가 없었고, 육지는 약간 완만한 기복으로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당시의 대홍수 물이 오늘날 존재하는 가장 높은 산을 덮었다는 것은 지구상 전역 특히 로키산맥이나 히말라야 산맥이나 알프스 산맥 위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해양 동물들의 화석을 보더라도 분명하다.

이런 산맥들이 융기되고 그 때 뒤틀려졌다는 지질학적인 증거들이 있다. NASB 성경 최신 번역판에서는 시104:5-9절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즉;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산이 솟아올랐을 뿐만 아니라, 대륙은 이동하고 따로 따로 찢겨졌다. 진화론자들은 “현재는 과거를 아는 열쇠” 이고 이 땅 위의 모든 변화는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균일하고 느리고 점진적으로 일어났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리처드 리키와 같은 진화론자마저도 과거 지구에 거대하고 강력한 변화가 일어났었다고 믿고 있다. <호수의 사람들> 1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이 유라시아 대륙과 다시 한번 충돌한 것은 불과 1, 2백만 년 전의 일이다. 그 충돌은 지구의 표면을 구성하고 그 위에 대륙들이 거대한 화강암 선박처럼 실제로 떠 있는 거대한 판의 운동으로 인하여 힘을 받아 일어났다. 그때 아프리카의 땅 모습은 오늘날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3가지의 서로 다른 액체들 즉, 공기(대기권), 물(수권), 그리고 지구 심부에 녹아있고 그 위에 우리의 지각이 놓여서 떠있는 암석(용암)들로 구성되어 있다. 성경이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라고 말할 때, 이것은 지구의 한 복판에 있던 물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기와 물을 함께 뒤섞여진 액상의 마그마로 말미암아, 터져서 솟구쳐 오르고 쏟아져 내렸으며, 겹쳐 포개지고 어마어마한 단층을 일으킨 땅덩어리들도 물과 함께 혼합되었을 것이다.

지구의 모든 산들은 지표면이나 깊은 땅 속에 화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분출물들은 홍수 동안에나 홍수 직후에 분출되어 수십억의 동식물과 인간들을 퇴적지층 속에 매몰시켰을 것이다. 산맥들뿐만 아니라, 미국 서부의 콜로라도 주, 애리조나 주, 유타 주, 그리고 아시아의 티베트의 광활한 고원도 지층의 두께 수천 피트, 넓이는 수백만 평방마일이 되는 퇴적지층으로 그 안에 수많은 수생생물들을 함유한 채로 융기되어있다. 또한 모든 종류의 산맥들, 산꼭대기, 고지대 등에서 대양의 밑바닥에서 살았던 생물 화석들이 발견된다. 만물이 수십억 년 동안에 아주 느리고 점진적으로 변해 왔다고 믿고 있는 진화론자들은, 산들, 그들의 습곡과 변형들, 그 위에서 발견되는 해양 생물의 화석들을 설명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고래나 크고 작은 바다 생물들이 산꼭대기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리처드 크링턴은 그의 저서 <우리의 지구 이야기> 163쪽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고대에 알프스산맥과 히말라야산맥은 바다 밑의 양측에서 작용하는 땅덩이의 압력으로 하상(河床)으로부터 융기되었다. 이 거대한 물체가 서서히 융기되면서 엉키고 요동하는 바위들의 엄청난 파도가 주위의 해변으로 밀려올라오게 하는 물리적 힘을 생각해보면 경외스러울 정도이다.”

당신은 “서서히 융기되었다”는 말을 주목했는가? 격변적인 물리적 힘이 작용했다는 여러 증거가 있지만,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서서히 진화되었다고 하는 그들의 신조와 주장을 방어하기 위하여, 모든 것이 천천히 그리고 균일하게 진행했다는 종래의 믿음을 결코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높은 산들이 아주 젊다는 것은 인간의 취락지가, 지금은 인간이 살기에 부적절한 4,800m 높이의 히말라야나 안데스 산맥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보아도 명백하다. 분명히 이 산들은 인간들이 거기서 살았던 이후에 융기되었음에 틀림없다. 진화론자들은 산들과 고원들의 융기를 설명하는데 매우 고심한다. 수많은 진화론 책들을 저술한 룻 무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산들과 대륙들이 융기되었다는 당혹스럽고 낡은 의문에 대해 아직도 답이 없다."

듀턴과 배튼이라는 다른 두 진화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산 구조들의 형성에 대한 만족스런 이론은 아직도 우리를 피해 다니고 있다."

그러나 같은 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 성경의 알찬 언급은 단지 한 두 마디의 간결하고 사실에 입각한 단어들로 엄청난 대란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 모든 활동을 위하여 5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이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짐”이 하늘과 땅과 지구 내부의 용융된 마그마 속에서 약 150일 동안 격렬한 대란이 있은 후까지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진화론자들은 산들과 고원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어이가 없어 오로지 말문을 닫고 있다. 룻 무어는 그녀의 책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242-3쪽에서 <미국의 지질학적 탐사>의 공동 저자인 지질학자 C. 듀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그가 서 있던 고원[그랜드 캐니언 지역]이 늘 그렇게 고지대였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반대로 그 대부분의 엄청난 바위덩이는 얕은 바다의 밑바닥에서 생성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여러 차례 해수면이나 그보다 아래에 있었다. 그것은 틀릴 수가 없다. 석회암 층과,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화석들과 심지어 가끔 그려져 있는 물결무늬 등은 수면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을 논쟁의 여지가 없이 증명해 준다. 한 때는 평평했던 바다의 바닥이 시간이 흐르면서 솟아올랐다. 무엇이 그렇게 엄청난 융기를 일으켰는가? 무엇이 십만 평방 마일의 지구 표면을 해발 2마일 이상이나 들어 올렸는가? 듀턴은 산들 위에다 시선을 고정하고서 무엇이 그들을 만들었으며, 그들이 어떻게 거기 있게 되었는가? 라는 요지로 묻고 있었다.”

우리가 미국의 공원들을 두루 여행하며 미국의 내무부가 지구의 지질학적 형태의 기원에 대해서 제공하는 설명서를 보면서, 또 우리가 기상천외하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설명문들을 분석하면서, 우리는 내무부와 많은 공공 기관들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진화론자들이 이와 같은 지질학적 모습에 대하여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간명하고 이치에 맞고 신뢰성이 있는 대답에 대하여 주목해 볼 생각을 단 한번이라도 해 보았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62

참고 :

고재형 외
2005-05-25

노아의 홍수에 관한 16개의 질문과 답 (FAQ)


2. 대홍수

 

Q1. 노아 대홍수의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5-7)......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 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 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11-13)'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고,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고, 강포가 가득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시고, 노아로 말미암아 새롭게 출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노아의 홍수는 타락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므로 일부 지역의 홍수가 아니었다. 패괴와 강포가 가득한 땅에서 범죄한 인류중 일부만 멸망시키고 남은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악된 길을 계속 가도록 허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 (창 6:7)',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창 6:17),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호흡을 기식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 (창7:21-23)  【그림2-9 참조】

세상 끝날 예수님의 재림시 이 땅의 사람들은 죄악으로 멸망하여 버린 노아시대의 사람들처럼 주님의 심판의 경고를 조소하며, 무관심할 것임을 경고하셨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다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눅17:26-30).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 3-7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는 불의한 자들의 죄를 심판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노아를 구원하시는 과정을 통하여 마지막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과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2-9.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실 때 방주에 타지 못한 생물들은 모두 익사하였다.

 

Q2. 노아 대홍수의 기간은 얼마입니까? 

성경은 노아홍수의 사건을 창세기 6, 7, 8, 9장에 걸쳐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홍수가 진행되어진 날자들을 매우 상세히 기록하여 놓고 있는데 이것은 노아의 홍수가 설화나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일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홍수는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약 BC 2,350년경으로 추정. 이 연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연대가 있을 수 있음으로 오차 가능성이 있음 )에 일어났는데, 노아가 방주 내에 있었던 기간은 일년이 넘는 371일 이었다.     

  480세 :      대홍수 경고(창 6:13) 
  600세 :      홍수 시작(창 7:11-14) 
       2월 10일방주에 들어감. 7일을 기다림.
       2월 17일40주야간 비가 내리기 시작.  
  150일간 땅에 물이 창일
       7월 17일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 물이 감하기 시작.  
       10월 1일  산들의 봉우리가 보임
       11월 19일비둘기를 내보냄.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옴.
  601세 :      1월 1일      방주 뚜껑을 제침
       2월 27일  땅이 말랐으며, 방주에서 나옴.

 

Q3. 노아의 대홍수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노아의 홍수는 결코 지역적이 될 수 없고, 전 세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구 표면에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과 증거물들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노아의 홍수가 전 세계적 홍수였음을 증명하는 몇 가지 사실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성경적 증거

   1) 노아홍수의 크기와 기간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홍수로 인하여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으며, 홍수가 1년 이상 지속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2)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거대한 방주를 지을 필요가 없다. 방주의 규모는 한 지역에 분포된 동물만을 싣기에는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만일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의 식구들과 동물들은 고산지대로 피하든지 이웃지역으로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43,200 m3의 용량을 가진 거대한 방주를 120년에 걸쳐 축조한 이유가 없다.

   3)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모든 동물을 방주에 태울 필요가 없다. 다른 지역에 사는 같은 종의 동물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종류대로 동물들을 태울 필요가 없다. 그리고 노아가 사는 중동지역에서만 사는 동물이 있어 구해내야 한다면 방주가 너무 크다.

   4)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새들을 태울 필요가 없다. 홍수시 새들은 다른 지역의 산으로 날아가면 된다. 굳이 방주에 탈 필요가 없다.

   5) 예수님과 사도들의 증언이 있다. 베드로(벧후 2:5, 3:6)와 바울(히11:7)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노아의 대홍수가 온 인류를 멸망시켰다고 증언하고 계신다 (눅17:26~30).

   6)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홍수를 겪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았다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어긋나며, 장차 예수님의 재림 시 심판을 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7)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하나님이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실 필요가 없다.  

(2) 지질 지형학적 증거

   1) 지구 표면 중 75%이상이 물에 의해 만들어진 퇴적지층이다.

   2) 세계 도처의 고산지대에 바닷물호수인 염호가 존재한다.

   3) 퇴적층 넓이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퇴적물질의 성분은 매우 균일하다.

   4) 퇴적층 경계면은 거의 평행의 층리현상을 보이며, 전혀 풍화나 침식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5) 오랜 침식에도 부정합 지층의 경계면은 너무도 깨끗하다.

   6) 부서짐 없이 일률적으로 휘어지고 뒤틀려진 퇴적지층들이 발견된다.

   7) 지향사 구조가 존재하는 등 지구지각에 엄청난 격변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8) 히말라야나 알프스 같은 높은 산맥에 조개류, 물고기류, 해초류 등의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된다.

   9) 아라랏산 4200m 부근에는 용암이 물에 급격히 식을때 만들어지는 베게용암이 발견된다.  

  10) 엄청난 화산들이 과거에 폭발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11) 지층에는 토양층이 결여되어 있고, 생물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없다.

  12) 광범위한 지역의 한 물질로만 구성된 사암층과 역암층은 거대한 홍수가 있었음을 증거한다.

  13) 강과 계곡들은 과거에 엄청난 물이 흘렀던 수로들을 가지고 있다.

  14) 파도나 물의 작용에 의한 층면 구조들이 존재한다.

  15) 지표면에 수억년된 고평원들이 오랜 세월의 침식에도 평탄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16) 과거에는 해수면이 훨씬 낮았다는 증거들이 있다.

  17) 과거에 엄청난 바닷물이 증발한 흔적들(Salt Dome 등)이 남아 있다.

  18) 대양바닥에 물에 의해 침식된 모습의 해저캐년(submarine canyons)이 존재한다.

  19) 대양 속에서 길이 74,000km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해저산맥(해령)이 발견되었다.

  20) 대양의 해저산맥은 로키, 안데스, 히말라야, 애팔래치아 산맥들과 평행하게 달리고 있다.

  21) 영구 동토지역에서 발견되는 매머드 사체는 지구에 대격변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22) 시베리아 1200m의 깊이에, 알래스카 300m깊이에, 푸르드호만 570m 깊이에 엄청난 양의 나뭇잎, 소나무, 야자수나무 등 고대숲이 발견되었다.

  23) 최근 화산폭발 지역에서 하루에 7.5m의 지층과, 1~2년에 120m의 지층이 생성되는 것이 관찰됐다.

  24) 그랜드캐년도 대홍수에 의한 격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증거들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25) 지구 육지 표면의 80~85%는 진화론적인 순서대로의 3개의 연속적 지층을 가지고 있지 않다. 

  26) 오래된 지층이 젊은 지층위에서 발견되는 곳이 지구상에 500 여 지역이 넘는다.

  27) 세 개 지층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즉 공중에서 뒤집혀야만 설명이 가능한 충상단층이 발견되고 있다.  

  28) 루이스 충상단층은 길이 217 km, 폭 24km, 두께 4.8km의 덩어리가, 거대한 애팔래치아 산맥은 250km를, 마테호른산은 48~97 km를, 미텐산은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서 젊은 지층위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이동한 흔적이 없다.      

(3) 화석학적 증거

   1) 오늘날에는 만들어지지 않는 화석이 엄청난 양으로 발견된다.

   2) 대부분의 화석이 급격히 매몰된 양상을 가지고 나타난다.

   3) 열대, 한대, 건조지역의 동식물화석이 무더기로 함께 쌓여있는 화석무덤들이 발견된다.

   4) 동물과 식물의 화석이 분리된채 발견된다.  

   5) 수십만년이 걸렸다는 지층을 수직으로 뚫고 서있는 다지층나무 화석들이 발견된다.

   6) 발자국, 빗방울자국, 물결자국, 벌레가 기어간 자국 등 순간적인 흔적들이 남아있다.

   7) 수억년된 고생대 지층에는 오늘날 볼 수 있는 생물들이 똑같이 화석으로 발견되며, 어떤 것들은 살아서 발견되고 있다.  

   8) 완벽한 장기를 가진 동물들이 갑자기 출현한다.

   9) 식물들의 화석은 너무도 갑자기 출현한다.  

  10) 지질연대와 맞지 않는 화석들이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

  11) 수억년된 화석에 분해되기 쉬운 아미노산, 단백질, DNA가 남아있다.

  12) 발견된 화석의 95%가 바다생물 화석이다.

  13) 발견된 곤충목의 1,263개 과(families)의 화석을 조사한 결과 84%가 1억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아있던 형태와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14) 몸이 발견되는 지층의 수천만년 아래 지층에 발자국만 남겨 놓는 이상한 현상이 발견된다.

  15) 그랜드캐년의 코코니노 사암층에는 대략 천만년 동안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경사가 높은 북쪽으로만 나있다.

  16) 나우틸로이드(Nautiloid) 캐년의 레드월(Redwall) 석회암층의 오징어 화석들은 대부분 태평양쪽을 향하여 죽어있다.   

  17) 수억, 수천만년전 지층 깊은 곳에서 사람의 유물들이 나오고 있다.

  18) 사람과 공룡이 동시대를 살았다는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19) 석탄이 매우 빠르게 형성되는 것이 발견되었다.

  20) 화석의 광물화가 불과 수십년만에 이루어짐이 발견되었다.

(4) 역사적 증거

   1) 모든 고대문명의 역사에서 홍수에 대한 전설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뉴질랜드 마오리족, 호주 원주민 등에는 홍수 전설이 내려오고 있고, 특히 니느웨에서 발견된 바벨론의 길가메쉬 서사시나 미국 미시간 주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인디언의 석판 등에는 노아의 홍수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2) 40일간에 내린 비에 의한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하류인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갔을 텐데, 방주는 강상류인 북쪽에 있는 아라랏 산에 도착했다. 이는 강물에 의한 작은 홍수가 아니라 바닷물의 육지 침범이 동반된 엄청난 홍수였음을 말해준다.

   3) 노아의 후손들의 이름이 도시나 국가, 민족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4) 단군의 가르침을 기록한 민간전승의 규원사화나 중국 순황제때 상제께 드리는 제사문을 보면 기독교적인 신앙고백내용과 유사하다. '그분께서 하늘을 펴시고, 땅을 펴시고, 인간을 지으셨도다.', '하나님은 오직 한분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

   5) 상형문자인 중국의 한자에 창세기와 홍수관련한 문자들이 남아 있다.   

   6)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역사도 약 6000년 전이고, 노아의 홍수는 대략 4350년 전이다.

   7)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인의 상형문자로 5~6000년 전이다.

   8) 고대언어 발생은 5,000년 전을 넘지 못한다.

   9) 최초의 도시형성 연대는 약 5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0) 농업을 시작한 시기를 5~6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1) 가축을 길러 이용한 시기를 5~6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2) 최초로 야금술은 5~6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13)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 수령은 대략 4,300년 전이다.

(5) 인구통계학적 증거

   홍수 이후 노아의 8식구로 시작된 세계인구는 통계학적 견지에서 볼 때, 오늘날의 인구와 잘 들어맞는다. 만일 홍수이후 인구의 연간증가율이 현재 세계 인구증가율의 1/4에 불과한 0.5%만 되어도 현재 인구에 도달하는 데에는 4,000년이면 충분하다.

 

Q4. 세계적으로 육지 깊숙한 곳이나 높은 산 위에 염호(鹽湖)가 존재하는데 이는 노아 홍수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현대 과학자들이 인정하듯이 40일간에 내린 비만으로 지구의 모든 산을 덮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전 지구적인 홍수가 되려면 해저가 솟아오르거나 대륙이 가라앉는 등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야만 한다. 따라서 홍수의 주요 원인으로 바닷물의 육지침범이 고려되어야  한다. 노아 홍수 시 바닷물이 육지를 침범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먼저 노아의 홍수가 단지 강우에 의한 일부 지역의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노아가 살았다고 추정되는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하류인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떠내려갔을 텐데,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방주는 상류쪽인 북쪽에 있는 아라랏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지구상의 여러 곳에 있는 염호(鹽湖)의 존재는 바닷물의 육지 침범의 증거가 된다. 많은 학자들이 고산지역에 있는 염호의 생성원인을 조사하였는데 담수호가 증발이나 어떤 원인에 의해 자연적으로 염호가 될 수 없으며, 결국 언젠가는 바닷물의 침습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터어키 동부에 위치한 만호는 해발 1,700m에 있는데 다량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바다에 사는 청어가 이 호수에 서식하고 있다. 또한 이란에 있는 우르미아 호수는 해발 1,470m에 위치하며 염분의 함유량은 23%나 된다. 그리고 해발 3,800m의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는 그 넓이가 480km2나 된다고 하니 가히 놀라울 지경이다. 또한 카스피해와 고비 사막에 남아 있는 내지해(內地海)는 염호로써 육지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고산지대의 염호는 과거 그 지역이 바닷물로 덮였음을 말해주고 있다.(21)  

 

Q5. 노아 홍수 시 식물들은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성경에서는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창 6:17)라는 하나님의 '멸망의 선포'에서 보면 그 대상에는 식물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 실제로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지으신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실 때에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창 7:21-22)'라고 성경에 적힌 대로라면 동물만 멸절시킨 것이지, 식물을 멸절시키지 않으셨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창 8:11)'란 구절을 접하면, 동물들을 방주로 인도하는데도 특별한 섭리와 인도를 하셨던 하나님께서 바닷물 속의 식물들도 특별한 방법으로 보존하셨음을 알 수 있다. 홍수 때에 바닷물의  범람으로 인하여 육상식물이 다 멸절하고 다시 자연발생하고 그것이 진화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다윈이 1859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생명의 자연 발생은 한번만 일어난다'는 가정에도 명백히 배치된다. 어떻게 식물들은 전 세계적인 홍수 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1) 식물들의 씨앗(seed)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육상식물의 종자들은 여러 농도의 소금물에서 일년 동안 잠갔다가 꺼낸 후에도 발아할 수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또한 이 보다 더한 혹독한 환경에서도 식물의 종자는 살아남을 알 수 있다. 고대 미이라의 손에 쥐어진 밀알 씨를 땅에 심었더니 싹이 텄다는 보고가 있다.

2) 식물들은 홍수 시 떠다니던 거대한 나무 매트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세인트 헬렌산 폭발 후 스프릿(Spirit) 호수에는 백만 그루 이상의 떠다니는 거대한 통나무들로 매트처럼 덮여졌는데, 노아의 홍수 시에도 화산폭발에 의해 엄청난 면적으로 이 떠다니는 나무 매트(floating log mats)들이 수면 위에 있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식물들에 의해 만들어진 석탄층들이 종종 한 주(state)를 덮을 정도로 넓은 면적으로 발견되며 심지어는 극지방에서도 두꺼운 석탄층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섬을 이룬 이 떠다니는 거대한 나무 매트들은 홍수지질학(flood geology)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몇몇 지층들에는 나무 파편들의 흔적들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떠다니던 나무매트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얕은 물에서 바닥 표면과 부딪혀 떨어져 나간 조각들로 보이며, 많은 암석지층들은 평온한 물에서 퇴적되어진 양상을 보이는데, 이 매트들이 홍수의 격랑 속에서 제동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매트들은 여러 동물들에 대해 수주 혹은 몇 달 동안 일시적인 피난처 역할을 했을 것이며, 식물들의 생존뿐만 아니라 특별히 곤충(insects)이나 벌레들이 알이나 유충상태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음이 틀림없다.

많은 식물들은 이 나무 매트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고, 얕은 물가로 흘러간 나무 매트의 식물들은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라앉고 묻힌 거대한 나무 매트들은 넓은 면적에 석탄층을 형성했음이 틀림없다. 방주에서 노아가 내보낸 비둘기가 물고 온 감람 새 잎사귀(Olive branch)는 감람나무가 싹이 새로 나서 자란 것이 아니라, 이 나무매트에서 살아남은 감람나무가 물이 감하면서 뿌리를 내려 새 잎사귀를 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감람나무는 매우 재생력이 강하여 작은 가지를 꺾어 땅에 심어도 쉽게 자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나무매트 위에서 식물들의 씨앗, 포자들은 더 쉽게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일부 식물들은 방주 내에 비축된 먹이 중에 섞여서 우연히 또는 노아에 의해서 많은 종자들이 계획적으로 보관되어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사실 노아는 홍수 후에 피폐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많은 준비들을 했을 것이다. 기구, 기계, 연장, 재료, 물품, 의복, 그릇 등등을 준비했을 것이고, 농사를 위해 곡식, 야채, 과일나무 등 많은 식물들의 종자들을 모았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노아가 모든 식물들의 종자를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농사를 바로 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종자들은 모아 두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창 9:20) 절에는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는 장면이 나온다. 분명히 노아는 농업을 준비하였으며, 포도나무 씨앗도 준비하였음이 틀림없다.(22)   

     

Q6. 노아 홍수시 민물고기는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노아의 홍수가 바닷물의 침습에 의한 전지구적 홍수라면 어떻게 모든 물고기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떤 종류는 차고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고, 어떤 종류는 탁한 물, 어떤 종류는 바닷물을, 심지어 어떤 종류는 바닷물보다 더 짠물을 필요로 한다. 민물에 사는 생물과 바닷물에 사는 생물이 어떻게 같이 살아 남을 수가 있었을까.

실제 그들 중 많은 수가 살아 남지 못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모든 화석의 95% 이상이 바다생물이다. 그들은 견디지 못하고 죽었고, 수조개(trillions)의 화석으로 남게되었다. 많은 수가 거대한 화석무덤을 만들었고, 무더기로 퇴적물에 덮여져 질식되면서 부패될 시간도 없이 죽어갔다. 분명히 그들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러나 소수 아니 극소수의 몇 마리라도 살아 남았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들 소수의 나머지들은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    

1) 최근 연구에 의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홍수 중 바닷물의 염분농도가 서로 다른 층을(salinity stratification) 이루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큼이 밝혀졌다. 즉 심부의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13~15ppt, 중간부위는 7~11 ppt, 표면은 5ppt 이하로 염분농도가 다르게 층을 이루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민물이 바닷물과 완전히 섞이지 않고 바닷물 위에 염분농도의 경사를 이루며 놓여져 있었다면 바다고기는 심부에서, 민물고기들은 표면부위에서 충분히 살아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2) 홍수환경에서 어떤 지역은 민물로 고립된 지역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기억해야할 것은 엄청난 강우가 한동안 지속됐다는 것이다. 비는 담수이다. 퇴적물들에 대한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구성성분이 다른 퇴적물들이 어떤 지역에 격리되어 발견되고 있으며, 물의 화학성분, 물의 온도 등이 서로 다른 상태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홍수동안 상당기간동안 이러한 고립지역들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3) 홍수 전 바다의 염분농도, 온도, 혼탁도 등을 알지 못한다. 오늘날의 바다와 같이 홍수 전에도 짠 바다였는지  알지 못한다. 홍수전의 바다는 오늘날의 바다보다 덜 짤 수도, 더 짤 수도 있다. 왜냐하면 홍수의 시작은 큰 깊음의 샘이 터지면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4) 민물과 바닷물에서 같이 사는 물고기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바다에 살던 연어가 산란을 위해 산골짜기의 차가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을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연어, 줄무늬농어, 철갑상어 등은 민물에서 알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성장하며, 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호수나 냇가에서 자란다. 민물과 바닷물에서 같이 살 수 있는 물고기들은 toadfish order, garpike order, bowfin, sturgeon, herring/anchovy, salmon/trout/pike, catfish, clingfish, stickleback, scorpionfish, flatfish order 등이다. 그러므로 민물고기들은 홍수시기에는 민물과 바닷물에 다같이 견디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홍수 후 분화가 되면서 많은 종들이 그 능력을 잃어 버렸을 수 있다. 또한 민물고기와 바다고기의 생리적 차이가 매우 적을 수 있다. 스코틀란드에서 보고된 야생의 송어(민물고기)와 양식된 연어(민물, 바닷물 이동)와의 잡종(hybrids)은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경우에 담수와 바닷물이 처음부터 완전히 혼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음으로 염분의 농도가 천천히 올라간다면 어느 정도 기간을 거쳐 적응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강 하류에 사는 종들은 염분농도의 변화에 원래 잘 견딘다. 불가사리는 정상적인 바닷물의 염분농도의 16~18%에서도 살 수 있고, 따개비는 10% 이하로 감소된 농도에서도 살 수 있다.(23)

           

Q7. 홍수 후 바닷물의 침습에 의한 육지토양의 염분농도는 식물이 살 수 없을 정도였습니까? 

바닷물이 물러간 후 육지표면은 소금이 남아있어 식물이 살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17,18 세기부터 이성주의자들이 성경을 비판할 때 사용하던 주장이다. 그러나 바닷물이 물러가면서 남긴 소금은 빗물에 의해서도 쉽게 용해되어 제거되며, 관개용수로 사용된 물에 의해서도 쉽게 제거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배수가 잘 되는 곳에서는 한 번의 강한 비에도 소금농도가 극적으로 낮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홍수 후 지구의 곳곳은 바닷물의 급격한 후퇴로 인한 침식으로 수로와 계곡들이 잘 발달되어 있었을 것임으로 빗물에 의한 염분의 세척은 매우 신속히 일어났을 것이다. 바닷물이 물러간 후 수일에서 수주 후에는 육지의 대부분에서 염분은 제거되었을 것이고, 염분에 민감한 식물들까지도 쉽게 발아하고 자라기 시작하였을 것이다(24)       

   

 Q8. 화분을 필요로 하는 식물의 경우 화분 시킬 곤충이 없는데 어떻게 번성하였습니까? 

곤충매개식물(entomophilous plants)은 곤충에 의해서 번식하는 식물로서, 성경비판자들은 이들 식물들이 홍수후 자라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두 가지 이유를 근거로 하고 있다. 하나는 홍수 직후에는 곤충들이 없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곤충매개식물은 종자를 퍼트리는데 절대적으로 곤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먼저 곤충들을 생각해보자. 앞에서도 논의했지만 곤충들은 방주 밖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곤충들의 수는 홍수말기에는 매우 증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식물들이 자라 처음으로 꽃을 피울 때쯤에서는 곤충들은 상당한 숫자로 불어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곤충매개식물들은 자가수분이나 바람에 의한 수분으로도 충분히 번식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몇몇 연구자들은 식물의 꽃에 곤충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망을 씌운 후 관찰한 결과 곤충 없이도 수분이 이루어졌다고 보고하고 있다. 곤충매개식물의 대부분은 곤충 없이도 씨를 퍼뜨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곤충들이 매개할 때보다는 수분율이 떨어지지만 멸종할 수준은 아닌 것이다. 절대적으로 곤충에 의존하는 식물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극소수이며 소진화에 의해 종 내에서 변형된 식물일 것이다.(25)           

   

Q9. 홍수 후 황량한 세계에서 동물들은 먹이를 어디서 구했습니까? 

어떻게 황폐화된 서식지에서 많은 종들이 살아 남았을까? 홍수는 대부분의 종들이 생존에 필요로 하는 식량과 서식처를 파괴했을 것이다. 방주에서 내린 동물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방주에서 나온 육식동물들은 방주에서 내린 다른 동물 외에는 먹이가 없었을까?  

이러한 생각들은 홍수 후 방주에 약간 남아있을 먹이 외에는 육지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홍수 후에도 먹을 것이 있었던 것이다. 1) 먼저 홍수 뒤에 남겨진 쓰레기들이다. 나무의 껍질들은 토끼, 코끼리, 호저(porcupine) 등에게 임시적인 좋은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2) 그리고 빠르게 자라난 풀들이다. 창세기 8장에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한 후 10월 1일에는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고, 40일 후에는 까마귀를 보내고, 다시 7일 후에(11월 17일) 비둘기가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왔으며, 홍수 다음해 1월1일에 물이 걷히고, 2월 27일에 방주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람 새 잎사귀가 난 후부터 100일 후에, 물이 걷히고 57일 후에 노아와 동물들은 방주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씨앗으로 살아남은, 빠르게 자라는 풀들은 이 기간동안 충분히 발아하여 잎사귀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3) 또 다른 먹이는 해초(seaweed)들이다. 홍수기간동안 해초들은 광대한 지역에 번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소, 코끼리, 토끼 등은 해초를 잘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소, 말, 여우, 곰 등도 해초를 주식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아이슬란드의 양은 눈이 많은 겨울의 4달을 해초만을 먹고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버섯류도 좋은 식량이 되었을 것이며, 5) 파묻혀진 죽은 동물의 사체들도 식량이 되었을 수 있다. 6) 상당기간동안 매우 중요한 먹이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수생생물들이다. 홍수기간동안 전 지구의 물고기의 종 수는 감소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몇몇 종은 홍수 후 바다에 영양물질들이 풍부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숫자로 증가하였을 것이다. 또한 바닷물이 후퇴하면서 어떤 지역은 물이 갇혀  작거나 큰 호수를 이루다가 말라가면서 많은 물고기들을 남겼을 것이고, 이러한 지역에서는 많은 수생식물들과 죽어 가는 많은 물고기들을 먹이로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자, 하이에나, 표범과 같은 육식동물이나, 매, 갈매기와 같은 각종 조류, 설치류, 파충류 등은 이러한 풍부한 물고기들을 먹으며 어쩌면 먹이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여유롭게 번식해 갔을지도 모른다.(26)              

 

Q10. 홍수 후 첫 번째 먹이사슬(food chain)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습니까? 

홍수에 의해서 동식물의 개체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고, 생존하여 살아남은 동식물들은 주변에 경쟁자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개체수가 증가하였을 것이다. 특히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 중에서 곤충과 벌레들과 설치류들은 빠른 시간 내에 현저하게 증가했을 것이며, 이러한 동물들은 홍수 후 첫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이에 비해 덩치가 큰 동물들의 개체 수는 천천히 증가하였을 것인데, 이것은 생태학적으로 먹이사슬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홍수 후에 떠다니는 많은 쓰레기나 나무 부스러기들은 곤충들이 알을 까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썩어 가는 동물의 사체들이나 채소, 해초 등에 파리는 많은 알들을 낳았을 것이다. 증식하는데 장애물이 없다면 1㎎의 작은 곤충의 알들은 6개월 후에는 1,200억배로 증식할 수 있으며, 300마리의 개미도 1년 안에 수십억 마리로 증식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홍수 후 초기부터 곤충들은 이미 상당수에 도달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은 충분히 먹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우, 야생돼지, 호랑이, 사자, 곰, 늑대 등은 곤충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땅속에서 사는 벌레(earthworm)들은 홍수에서도 어느 정도는 살아 남을 수 있다. 비 온 후에 길가에서 흔히 관찰되는 지렁이 같은 벌레들은 1년 동안 침수된 진흙에서도 살아 남았으며, 물 속에서도 수주 이상 살 수 있었고, 이들의 낭(capsules)은 나무 뿌리에 묻어 수천 km의 바다를 건너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음이 보고되어 있다. 물의 온도가 10℃ 이하인 지역에서 이들의 낭은 휴면상태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살아 남은 땅속벌레들은 홍수가 물러가는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것이다.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조건의 1/4 수준만 되어도 earthworm 1000마리는 6개월 후에 73,000마리, 1년 후에 883,000마리로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대부분의 조류는 벌레를 먹으며, 뱀도 그렇고, 많은 육식성 포유동물들 예를 들어 여우, 오소리, 족제비, 너구리, 주머니쥐 등도 벌레를 즐겨 먹거나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땅속에 사는 벌레들은 홍수 후 먹이사슬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설치류(rodents)의 경우 그들의 증식율은 믿기 어려운 정도인데, 방해하는 경쟁자가 없을 경우 한 쌍의 쥐는 1년 만에 15,000마리로 증식할 수 있으며, 야생의 경우에서도 10개월에 2,557마리로 늘어남이 보고되고 있다. 더군다나 이들의 번식은 홍수 후 땅에 먹이가 되는 벌레나 곤충들이 풍부하였다면 더욱 가속되었을 것이다. 이 경우 수주에서 수개월후면 설치류들은 땅에 매우 흔하게 존재하여 육식동물들의 훌륭한 먹이감이 되었을 것이다.(27)                       

  

Q11. 동물들은 대홍수 이후 어떻게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이동 분산하게 되었습니까? 

남아메리카의 밀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나무늘보나 개미핥기 등 빈치류는 느리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먼 근동의 아라랏산으로부터 옮겨올 수 있었을까? 캥거루 같은 유대류들은 오직 호주와 서반구에서만 발견되는데 어떻게 바다를 건너 왔을까?

   1) 오늘날 동물들은 대륙과 심지어 광막한 바다를 놀라운 속도로 횡단하며 이동할 수 있음이 알려져 있다. 1883년 크로카토아 섬의 화산폭발 당시 이 섬에서 서식하던 동물들은 완전히 멸종하였고 수년동안 이 섬에는 아무 것도 살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 25년이 지난 뒤에는 곤충, 벌레들뿐만이 아니라 각종 조류, 파충류들 심지어 소수의 포유동물까지 놀랍도록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많은 생물들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건너 왔던 것이다.  

   2) 과거의 대륙은 바다에 의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많은 진화론적 고고학자들도 과거에 베링해협이 육지로 되어 있어서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연결되어 있었고, 이 육교(陸橋)를 통해 사람과 동물들이 이동하였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사실 진화론자들은 대륙이동설이 유행하기 전까지 빙하기에 많은 물들이 얼음으로 갇혀 있어서 해수면은 낮았을 것이며, 따라서 유럽에서 여러 대륙 심지어 호주까지도 육지로 이동할 수 있었을 것으로 믿어 왔고 가르쳐 왔다. 사람들은 캥거루와 같은 유대동물(marsupials)들은 호주에서만 발견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캥거루는 호주에서 독특하게 진화됐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유대동물들이 미대륙에서 발견되고, 화석은 유럽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최근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오리너구리 이빨 화석의 발견은 과학자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는데, 이들 유대동물들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같이 진화되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호주와 남아메리카도 과거에는 연결되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3) 창조과학자들은 대부분 홍수 후 한번의 빙하기가 있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상당기간동안 대륙은 연결되어 있어서 동물들이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수 후 대륙이 나뉘어졌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벨렉이 태어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 Two sons were born to Eber: One was named Peleg, because in his time the earth was divided ~' 창10:25). 이 시점은 홍수 후 백여년이 지난 시기여서 대륙이 바다로 나뉘어지기 전에 동물들은 충분히 분산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4) 또 하나의 중요한 분산 방법은 사람에 의해서 일 수 있다. 호주 개척 초기에 이주민들은 몇 마리의 토끼들을 가지고 갔다. 그러나 지금은 호주 대륙 끝에서도 야생의 토끼들을 볼 수 있다. '캥거루는 방주에서 내려서 호주까지 계속 깡충깡충 뛰어갔는가?' 가끔 이러한 비아냥거리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캥거루는 뛰어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배의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감상하며 편안하게 호주대륙에 도착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Q12. 한 쌍의 동물이 많은 수로 불어나는 것이 가능합니까? 

한 쌍의 동물이 많은 수로 불어나는 것이 많은 예에서 보고되고 있다. 호주대륙으로 전해진 많은 새들은 한 쌍으로부터 출발했고, 하와이군도에 전해진 Laysan Finch 새도 한 쌍으로부터 번식되었으며, 호주 빅토리아 지역에 전해진 미국산 밤색다람쥐(American Gray Squirrel), 하와이에 전해진 rock wallaby, 고대 로마인들에 의해 밸리아릭 섬에 전해진 토끼, 19세기 호주에 전해진 토끼, 바하마에 전해진 아메리카너구리(raccoons), French Ⅰ섬에 전해진 코알라, 캘리포니아에 전해진 고라니(elk), 일하우트 섬에 전해진 양(sheep), 마우리티우스 섬에 전해진 짧은 꼬리원숭이(macaques) 등은 모두 한 쌍으로 오늘날의 숫자로 늘어났다. 또한 한 쌍은 아니지만 소수의 동물로 늘어난 예는 일하우트 섬에 전해진 순록(reindeer), 유럽에 전해진 미국산 사향뒤쥐(muskrat), 남아메리카 광대한 초원에 살게된 유럽산 말들, 남아프리카에 전해진 여러 종류의 유럽지역 새들, 유럽에 전해진 중국산 꿩(pheasants) 등 많은 수의 동물들이 한 쌍 또는 소수에서 오늘날의 숫자로 번식하였던 것이다.(28)

 

Q13. 떼로 모여 사는 동물인 경우 번식하기에 한 쌍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군집으로 모여 사는 동물들은 한 쌍만 있을 경우 번식할 수 없고 멸종해 버린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먼저 떼로 군집을 이루어 모여 사는 습성이 오늘날과 같이 과거에도 동일했는지를 알 수 없다. 바다새에서와 같이 떼로 사는 습성은 방주생활에서 생겨난 습성일 수 있다. 또하나 바다사자나 다람쥐원숭이 같이 군집으로 사는 동물들 중 많은 수가 수태율은 좀 떨어지지만 동물원 등에서 한 쌍으로도 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군집을 이루는 새들중 많은 수가 독립된 한 쌍으로도 번식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음을 여러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동물들의 군집 크기도 같은 종 내에도 다양한데, 홍학의 어떤 군집은 수천 마리씩으로 집단 서식하나, 어떤 군집은 10쌍 보다도 적은 수가 모여 산다. 펠리칸은 6마리 보다 적은 수에서도 후손을 번식시키는 것이 보고되었다. 군집생활은 홍수이후에 생겨난 습성일 가능성이 크며, 방주 내에서나 방주 밖에서 동물들이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없다.(29)

   

Q14. 병원균과 같은 미생물들은 어떻게 살아 남았습니까? 노아의 식구들이 각종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이들은 홍수 시에 모두 사라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노아의 홍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질병을 일으키는 균들이 오늘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방주 안에 8명에 감염이 일어났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홍수와 함께 사라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아의 8식구는 콜레라, 티푸스, 소아마비, 결핵, 나병 등 온갖 질병의 병원균을 가지고 있었어야 하며, 심지어 매독, 임질 등의 성병과 회충, 요충 등의 각종 기생충, 에이즈 바이러스 등도 보유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정말 노아의 식구 8명에게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러한 질병은 전해질 수 없는 것인가?

이러한 주장들은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병원균들이 사람에게서만 감염을 일으키고, 사람에서 사람으로만 전염되며, 홍수전과 오늘날의 병원균이 수천년 동안 전혀 변형되지 않고 동일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만 유효한 주장이다. 먼저 방주 안에는 영장류만도 400여종이 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들이 증상을 나타내지 않고 사람의 감염병 균들을 보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기생하는 촌충과 같은 기생충은 중간숙주인 돼지나 소와 같은 여러 동물에 무증상으로 존재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 감염병의 80% 이상이 동물로부터 전염될 수 있으며, 대부분의 기생충들은 한 숙주에게만 기생하지 않으며, 병원균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specialization)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를 감염시킨 결핵균은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는데, 나중에는 사람만 감염을 일으키는 종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많은 포유류, 파충류, 조류 등이 보유하고 있던 균들이 변형되어 훗날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균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한 숙주에만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많은 균들이 실제 다른 종에도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개의 디스템퍼는 고양이에게는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감염을 일으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최근에는 변형이 일어나 사자에게도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병원균들은 짧은 기간 내에 변형이 일어나 감염 방법을 바꿀 수 있는 것도 밝혀졌는데, 어떤 바이러스들은 원래의 숙주에서 다른 동물로 옮겨가면서 맹독성이 증가되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기생충인 선충류는 소진화의 결과 단지 3년만에 숙주를 완전히 바꾸어 나중에는 원래의 숙주에 기생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도 최근에 영장류로부터 변형되어 발생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매독은 인도마마(yaws)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진화론을 믿는 연구자들도 사람 질병의 대부분이 수백만 년의 인류역사 중 단지 마지막 수천년 동안에 발생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병원균과 기생충들이 방주 밖에서도 살아 남을 수도 있다. 먼저 병원균이 매개 곤충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말라리아의 경우 모기 몸 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물들의 시체 속에서 살아 남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홍수가 끝난 후 초기에는 식량의 부족으로 죽은 사체들을 파내서 먹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포나 내생포자로 살아 남을 수 있다. 파상풍균이나 탄저균은 아포를 형성하여 상당기간 살아 남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건조상태로 살아 남을 수 있다. 박쥐에 감염을 일으키는 rabies 바이러스는 공기 중 먼지로 날아다니다 동굴탐험가에게 감염되곤 한다. 마지막으로 극지방에 동결로 살아 남을 수 있다. 시베리아의 매머드와 같이 병원성 미생물들에게도 갑작스런 동결이 일어났다가 추후에 해동되면서 동물에 접촉이 일어났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의 식구들이 수많은 질병을 앓고 있지 않았다면 병원균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과장에 의한 오해이다.(30)  

   

Q15. 고대문명들은 다같이 홍수 설화를 가지고 있다는데, 이는 노아 홍수를 의미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대격변적 대홍수에 대한 기억이 지구상 대부분 민족들의 신화나 전설 속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대홍수 전설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지방뿐 아니라 이집트의 경전, 인도 산스크리트의 고어, 태평양 여러 민족들의 민담, 남 북아메리카 원주민, 호주 뉴질랜드 원주민, 유럽의 토착민들의 전설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신화는 어떤 과학적 가치를 가지지는 못하지만, 인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은 신화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우습고 불합리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앗시리아인들과 바벨로니아인들은 여러 개의 홍수전설을 가졌었고, 그 중 길가메쉬의 서사시는 성경의 기록과 매우 유사하다.【그림2-11 참조】서사시 열한번째 석판에 기록된 이 신화는 메소포타미아 계곡의 다른 전설들과 같이 배를 건조해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실으라고 명령받은 한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가축과 야생 짐승들이 그 배로 들어온 후 그 문이 닫혔다. 그 후 번개, 천둥, 지진, 지하수의 분출과 어둠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마침내 그 폭풍이 가라앉고 배가 땅에 닿았다. 그 사람은 한 마리 비둘기와 한 마리 제비 그리고 한 마리 까마귀를 먼저 내보내었다. 그 후 그는 배에서 나와 희생제물을 드렸고, 신들은 그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무지개를 보내주었다.'

          그림 2-11 홍수 설화가 기록되어 있는 서판

앗수르어로 기록되어 있는 이 '길가메쉬서사시'의 서판은 열한번째 서판으로 1873년 니느웨의 아쉬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굴되었다. 창세기 기록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유사한 점이 매우 많아 동일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도 이와 유사한 홍수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의하면 모든 중국인들은 대홍수를 극복함으로써 이름을 떨친 옛 선조 '누와' 의 자손이라고 한다. 누와가 성경의 노아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상형문자인 한자에서도 노아 홍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배 선(船) 자는 아래와 같이 배 주(舟)와 여덟(八) 명의 사람(口)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방주에 8명이 탔음을 나타내고 있다.【그림2-12 참조】 또한 홍수 홍(洪) 자는 노아의 8식구(八)가 함께 손잡고(共) 치뤄낸 물난리, 계집 여(女) 자는 첫 번째(一) 사람(人)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서( ) 만든 사람, 금할 금(禁) 자는 하나님(示)께서 두 나무(林)에 대해 명하신 것, 탐할 람( ) 자는 두 나무(林)를 바라보는 여자(女)의 마음, 지을 조(造) 자는 흙(土)에 생기( )를 불어넣으니 사람(口)이 되어 걸어다님(造), 서녁 서(西) 자는 최초의(一) 사람(人)이 살던 동산(口)있던 방향 (에덴동산이나 아라랏산은 중국사람들에게는 서쪽이었음), 올 래(來) 자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 나무(木)사이에 숨어있던 두 사람(人人)이 나옴...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31)

또한 미국의 인디언들은 무려 58개의 대홍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그림2-13 참조】

특히 인디언들이 많이 살았던 미시간 지방 일대에서는 오래된 석판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석판 중 5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석판이 있는데 첫 부분에는 일그러진 태양아래 한 노인이 경배하는 모습이 보이며, 둘째 부분은 큰비가 내리고 있으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세 번째 부분은 물위에 떠 있는 큰배가 보이고 40 주야를 나타내는 네모진 40칸이 좌우에 있으며, 나뭇잎을 물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있다. 넷째 부분은  둥근 태양과 함께 큰배에서 동물들이 쌍쌍이 내려오고, 네 사람의 남자들이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보이고,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징인 무지개를 볼 수 있다. 궁창 위의 물로 인한 빛의 산란으로 태양이 일그러져 보이다가,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짐으로써 둥근 태양이 보인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 석판은 노아의 홍수를 매우 정확하게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인류학자 프레이져(1854~1941)는 북·중·남아메리카의 130개 인디오 종족중 대홍수를 주제로 한 신화를 가지고 있지 않는 종족은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고대 멕시코의 티마르포포카 그림문서에는 '하늘이 땅에 다가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산도 물 속으로 숨었다. 바위가 땅위에 모든 것을 뒤덮고, 테트존트리(구멍이 많이 난 용암)가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끓어오르고 붉은 산이 춤추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과테말라에 사는 인디오인 키체족의 포플부흐 라는 고서에는 '대홍수가 일어났다.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검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해 달아났다. 어떤 사람들은 지붕으로 기어올라갔지만 집이 무너져 땅으로 떨어졌다. 또 그들은 나무에 매달렸지만 나무는 그들을 흔들어 떨어뜨린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동굴 속에 피난처를 찾았다. 그러나 동굴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버렸다. 이리하여 인류는 멸망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마존강의 인디오 전설에는 '어느 날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무서운 소리가 났다. 만물이 암흑 속에 잠긴 뒤에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만물을 휩쓸어 버렸고, 온 세계가 물에 잠겨 버렸다.' 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바벨론 설화에서 온 설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홍수 이야기는 이렇게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바벨탑 사건이나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한 사건은 전 세계에 설화로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은 이 사건들은 국지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며, 노아의 홍수만이 전 세계적인 사건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 한반도에도 과거 우리 조상이 이주해 살기 전에 사람들이 살았으나, 그 후 어느 날 갑작스럽게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가 오랜 후에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노아 홍수 이전에 한반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나 홍수 때문에 다 죽어버려 노아의 후손이 중앙 아시아로부터 바이칼 지방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오기까지 한반도에는 아무도 살지를 않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896년 9월 3일 미국 미시간 주에서 발견되었다. 홍수가 시작하여 온 땅이 물에 잠기자 높은 데로 올라가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두 번째 장면을 주시하자.

 

Q16. 노아의 홍수로 엄청난 퇴적물이 쌓였다면 당시 바닷물은 흙탕물이어서 물고기들이 살 수 없었던 것은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지구에는 엄청난 퇴적물들이 있는데 이들이 1년여의 홍수로 퇴적되려면 방주는 진흙 수프 위에 떠 있었을 것이고, 물고기들은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물이 실제 어떻게 퇴적물을 운반하는지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모든 퇴적물이 홍수기간 철저히 섞여져 있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퇴적물은 이와 같이 쌓여지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퇴적물을 'basin' 안으로 이동시키고, 이들은 퇴적되어 다시 섞이지 않고 계로부터 독립된다. 그래서 같은 용량의 물이 더 많은 퇴적물을 대륙을 가로지르며 쌓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퇴적물들은 대홍수 시 물에 의한 수압으로 다져지기 때문에 재비산없이 연속적으로 퇴적될 수 있는 것이다.(32)     

 

*관련기사: 지구 내부에 거대한 바다? :‘지각 아래 북극해 이상 물 존재’ (2007. 3. 4.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94157.html

.동아시아 밑, 지구 내부에 ‘거대한 바다’ 있다 (2007. 2. 13. 조선일보)

    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2/14/2007021400526.html

 .日 쓰나미에 미국으로 건너간 생물이 무려..(2012. 6. 8. 파이낸셜뉴스)
http://www.fnnews.com/view?ra=Sent1101m_View&corp=fnnews&arcid=12060814011261&cDateYear=2012&cDateMonth=06&cDateDay=08

  

*참고 : 노아의 홍수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 - Fingerofthomas.org
http://fingerofthomas.org/노아의-홍수-scientific/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geology/g2/g2/q22.htm ,

출처 - 도서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0

참고 : 4198|4275|4235|4473|4490|4607|4610|6104|6049|6030|6006|4195|2141|6076|5973|5957|5958|5955|5951|5841|5834|5737|5721|5717|5675|5556|5517|5468|5429|5419|5400|5399|5286|5307|5264|5260|5185|4786|4722|4471|4468|6535|6531|6508|6507|6462|6417|6431|6524|6415|6413|6330|6254|6255|6240|6228|6225|6223|6222|6136|6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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