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과 창조과학 사역의 방향
Ⅰ. 진화는 과학, 창조는 신앙?
먼저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라는 관점이다. 진화론은 과학의 영역이고, 과학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은 진화론을 확립된 과학적 사실로 큰 비판 없이 받아드리는 입장이다. 동시에 창조론은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이고, 이는 종교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서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공존할 일이지 대립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논쟁의 핵심은 진화론이 과학영역만의 문제이고, 객관적으로 입증된 과학적 사실인가 하는 점이다. 진화론자들 주장이 처음에는 가설수준에서 제기되었었다. 그러나 과학지식이 발전함에 따라서 많은 오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지금도 진화론의 핵심주장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진화론은 아직도 입증되지 않은 불완전한 가설수준이다. 결코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진화론은 잘 확립된 과학 이론처럼 인식되고 있다. 진화론은 생물의 영역을 넘어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심지어 종교계에서 조차 통용되는 등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조차 진화론을 확립된 과학적 사실로 본다. 창조주 하나님도 인정하고 진화론도 받아드린다. 진화론은 누구도 반대하기 힘든 중심사상이 되었다. 모든 영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Ⅱ. 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은 과학적 문제다!
과학은 통상적으로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한다. 과학은 자연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다.
과학에서 연구란 자연현상에 대하여 하나의 가정을 세운 뒤, 실험과 측정을 통하여 가정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밝히는 과정이다. 맞으면 그 한계 내에서 가정은 진리로 받아 드려진다. 틀리면 가정을 수정하여 실험과 측정을 반복하면서 자연현상에 대한 하나의 규칙을 확립하여 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생명의 기원 문제를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노력은 분명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최초의 생명체가 진화되었는지 혹은 창조주에 의해 창조되었는지 관찰한 사람도 없고, 실험을 반복할 수도, 관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진화되었건 창조되었건 최초의 생명체가 만들어진 후에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규칙대로 생명체는 종족번식을 한다. 결코 처음 생명체가 나온 방법대로 진화나 창조에 의하여 생명체가 다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즉 과학적 문제로 국한하면, 생명의 기원을 다루는 일은 분명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느 모델이 보다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느냐를 추론하는 정도일 것이다. 과학적 잣대만을 진화론 창조론 논쟁의 심판자로 삼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이 과학적 문제라고 한다면 비교적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에서의 진리와 주장은 객관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연발생설, 대진화, 중간생물체 존재가 과학적 객관적 타당성을 상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궤변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이는 논쟁의 본질이 과학적 문제를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Ⅲ. 논쟁의 본질은 서로 다른 세계관의 충돌이다!
세계관이란 세계를 바라보는 생각의 틀, 신념, 믿음이다. 세계관은 개인의 가치, 행동, 결정, 사상에 영향을 준다. 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은 생명체들이 진화되었다고 믿는 진화론자들의 믿음(세계관)과,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는 믿음의 차이라는 인식이다. 본인의 세계관에 객관적 과학적 증거들이 있으면 더욱 공고하여 지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각자 생각하는 틀, 신념은 주관적 성격도 많기 때문이다. 다윈은 인생 말년에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진화론은 어린 시절의 추측과 공상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하나의 종교로 여길 줄은 미처 몰랐다.
다윈이 처음부터 세계관적 관점에서 종의 기원을 작성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을 하나의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진화, 창조가 단순히 과학적 논쟁이 아니라 세계관적 논쟁임을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 캐톨릭 교황인 베네디톡스 16세도 진화론의 본질이 세계관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 세계관이다.
반면 17-8세기 만유인력, 중력 법칙을 발견한 영국 물리학자인 뉴턴은 정교한 자연, 우주의 질서에 감탄을 하면서 다음과 말했다.
자연, 우주의 아름다운 질서는 우주만물의 설계자, 창조주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달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것은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때문이다. 이런 아름다운 질서는 우연히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설계자, 창조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진화, 창조 논쟁의 뿌리에는 각각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세계관이 있다.
Ⅳ. 진화론은 기원 문제를 결코 밝힐 수 없다.
세계관적 관점에서 볼 때 진화론의 뿌리는 인간 중심적 사고인 인본주의, 과학주의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 스스로 우주, 생명의 기원 문제를 밝혀보려는 자유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결코 생명의 기원을 밝힐 수 없다. 자연발생설은 물질, 중간생물체, 대진화는 각각 하나의 특정 물질 또는 생명체를 그 출발로 하고 있다. 즉 진화론은 있는데서 있는 것을 설명하고 있을 뿐 결코 출발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하여는 설명하지 못한다. 자연발생설에서 제기하는 생명체의 근본이 되는 물질은 어디서 왔는가? 에 대하여 진화론은 답을 줄 수 없다.
우리는 물질이 분자 또는 분자들의 혼합으로 되어 있고, 분자는 원자들의 집합체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104개의 서로 다른 원소들은 각각 전자와 핵으로 되어 있고, 핵은 양성자, 중성자로 되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이 원소는 어디에서 왔는지 물으면 대답이 힘들어 진다. 이렇게 근원을 캐면 결국 한계상황에 도달한다. 인간의 이성, 지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한다. 진화론은 그 출발이 있는 상태에서의 변화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기원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줄 수 없다. 진화론은 인간적인 이성, 지성의 노력으로 생명의 근원을 밝히려 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한테 주목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과학의 한계, 인간 이성, 지성의 한계로 결코 기원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Ⅴ. 진화론은 무신론이다.
진화론을 받아드리면 성경과 대치되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된다. 첫째로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천지창조(공간, 우주, 생물, 인간창조)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연이 된다. <생명체는 무생물에서 우연히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다.> 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창조의 주체가 됨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혹자는 자연발생설과 최초 생명체가 다양한 생물들로 진화된 것이 하나님의 창조역사라고 주장을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생명체들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창조주 하나님도 인정하고 진화론도 받아드린다. 유신론적 진화론이다. 그런데 막상 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들이다. 한마디로 유신진화론은 하나의 억지타협, 궤변에 불과하다. 진화론은 결코 창조주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다.
둘째로 진화론은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다. 인간만이 많은 생명체들 중 유일하게 영적존재이다. 영적으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이 있다. 분명한 것은 많은 생명체들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나님에 대하여 반응하는 영적 존재라는 점이다. 진화론에서는 인간도 단지 하나의 진화 산물일 뿐이다. 진화론 주장대로 사람과 원숭이가 공통조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면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하나님 형상을 가진 인간 정체성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셋째로 진화론 창조론 논쟁은 치열한 영적 싸움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하나의 종교로 여겼다는 것을 보고 스스로 놀랐다는 다윈의 고백은 진화론이 영적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하나님이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11-12)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12절은 거짓 것을 믿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다. 진화론을 종교로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도 된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진화론을 하나의 탈출구, 대안으로 삼아서 진화론을 하나의 종교로 믿게 된 사람들의 영적 심판에 관한 경고이다. 결국 진화론의 본질은 무신론이다.
Ⅵ. 창조과학 사역의 방향.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된 1980년부터 지금까지 창조과학 사역의 중심은 교회였다. 신앙인을 상대로 진화론의 허구에 대한 세미나 활동을 주로 하였다. 미국의 관련기관들로부터 자료를 입수하고, 책을 번역하는 일들을 하였다. 창조과학 사역자는 대부분 신앙을 갖고 있는 대학 교수들이었다. 창조과학 세미나는 진화론의 허구를 폭로해왔다. 창조과학 세미나는 온누리 교회, 지구촌 교회, 대학생 선교회 등에서 필수코스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회가 창조과학 세미나 한 두 번 한 것으로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도 사실이다. 창조과학 사역의 전략적 가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극히 인색하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앞으로 창조과학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창조과학 전문가들이 각 전공 영역에서 진화론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근거를 심도 있게 마련해야 한다. 자연발생설이 불가능함을 화학적 논리로 반박하는 일, 소진화와 종의 다양성에 대한 명쾌한 설명, 자연선택이 대진화로 이어질 수 없다는 생물학적 논리, 방사성 원소 붕괴에 의한 연대측정의 명백한 한계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그리하여 각 영역에 있는 전문가 집단에서 진화론의 허구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일반 대중을 향한 창조과학 전달 매체수단을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창조과학의 핵심내용은 대부분 전문적 과학영역에 속한다. 과학 용어자체가 일반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일반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핵심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정확, 간결,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는 소통기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디자인 전문가들이 창조과학 contents를 애니메이션, 만화, 동영상, PPT자료로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동시에 창조과학 강사들도 과학의 어려운 기술적 내용을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technical communication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창조과학 사역자는 일반대중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창조과학 운동은 확고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진화/창조론 논쟁은 성격상 끝이 없는 싸움이다. 논쟁의 본질이 증명할 수 없는 세계관 싸움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선교를 위해서도, 신앙의 근본을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서도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필요하며, 그 중심에 창조과학이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온누리 교회가 일본 선교전략에 창조과학을 활용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바 있다. 유럽교회가 진화론과 타협한 유신진화론 입장을 취한 것이 유럽교회 쇠락의 주요원인이 되었다는 평가는 세계관 운동의 전략적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과학으로 포장된 진화론 정체를 폭로해야 한다. 과학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기독교의 지도자들과 연합하여 핵심 선교, 교육 전략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창조과학 운동은 인간정체성을 회복하는 신앙훈련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진화론의 본질은 하나님 형상을 상실한 사람들이 자유의지로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과 대적하는 일이다. 기독교인들은 교육, 연구, 철학, 예술 등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하나님 하신 일을 이해할 수도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도 없음을 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성경을 진리로 받아 드리며 하나님을 인정하기로 결단하는 일이다. 최근 교회를 중심으로 회복사역, 정체성 회복 운동, 아버지 학교 등 영성 훈련 프로그램이 효과적인 신앙훈련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죄가 왔고, 결과로 거절감, 상처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형상을 회복케 하는 창조신앙 운동은 21세기에 사는 창조과학 신앙인들의 소명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오늘도 창조역사를 지속하신다.
출처 - 2009. 10. 10.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773
참고 : 6636|6634|6627|6610|6604|6597|6585|6583|6582|6562|6561|6556|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01|6096|5459|5274|5450
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과 창조과학 사역의 방향
Ⅰ. 진화는 과학, 창조는 신앙?
먼저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라는 관점이다. 진화론은 과학의 영역이고, 과학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은 진화론을 확립된 과학적 사실로 큰 비판 없이 받아드리는 입장이다. 동시에 창조론은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이고, 이는 종교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서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공존할 일이지 대립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논쟁의 핵심은 진화론이 과학영역만의 문제이고, 객관적으로 입증된 과학적 사실인가 하는 점이다. 진화론자들 주장이 처음에는 가설수준에서 제기되었었다. 그러나 과학지식이 발전함에 따라서 많은 오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지금도 진화론의 핵심주장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진화론은 아직도 입증되지 않은 불완전한 가설수준이다. 결코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진화론은 잘 확립된 과학 이론처럼 인식되고 있다. 진화론은 생물의 영역을 넘어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심지어 종교계에서 조차 통용되는 등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조차 진화론을 확립된 과학적 사실로 본다. 창조주 하나님도 인정하고 진화론도 받아드린다. 진화론은 누구도 반대하기 힘든 중심사상이 되었다. 모든 영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Ⅱ. 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은 과학적 문제다!
과학은 통상적으로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한다. 과학은 자연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다.
과학에서 연구란 자연현상에 대하여 하나의 가정을 세운 뒤, 실험과 측정을 통하여 가정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밝히는 과정이다. 맞으면 그 한계 내에서 가정은 진리로 받아 드려진다. 틀리면 가정을 수정하여 실험과 측정을 반복하면서 자연현상에 대한 하나의 규칙을 확립하여 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생명의 기원 문제를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노력은 분명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최초의 생명체가 진화되었는지 혹은 창조주에 의해 창조되었는지 관찰한 사람도 없고, 실험을 반복할 수도, 관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진화되었건 창조되었건 최초의 생명체가 만들어진 후에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규칙대로 생명체는 종족번식을 한다. 결코 처음 생명체가 나온 방법대로 진화나 창조에 의하여 생명체가 다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즉 과학적 문제로 국한하면, 생명의 기원을 다루는 일은 분명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느 모델이 보다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느냐를 추론하는 정도일 것이다. 과학적 잣대만을 진화론 창조론 논쟁의 심판자로 삼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이 과학적 문제라고 한다면 비교적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에서의 진리와 주장은 객관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연발생설, 대진화, 중간생물체 존재가 과학적 객관적 타당성을 상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궤변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이는 논쟁의 본질이 과학적 문제를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Ⅲ. 논쟁의 본질은 서로 다른 세계관의 충돌이다!
세계관이란 세계를 바라보는 생각의 틀, 신념, 믿음이다. 세계관은 개인의 가치, 행동, 결정, 사상에 영향을 준다. 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은 생명체들이 진화되었다고 믿는 진화론자들의 믿음(세계관)과,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는 믿음의 차이라는 인식이다. 본인의 세계관에 객관적 과학적 증거들이 있으면 더욱 공고하여 지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각자 생각하는 틀, 신념은 주관적 성격도 많기 때문이다. 다윈은 인생 말년에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다윈이 처음부터 세계관적 관점에서 종의 기원을 작성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을 하나의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진화, 창조가 단순히 과학적 논쟁이 아니라 세계관적 논쟁임을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 캐톨릭 교황인 베네디톡스 16세도 진화론의 본질이 세계관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반면 17-8세기 만유인력, 중력 법칙을 발견한 영국 물리학자인 뉴턴은 정교한 자연, 우주의 질서에 감탄을 하면서 다음과 말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달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것은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때문이다. 이런 아름다운 질서는 우연히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설계자, 창조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진화, 창조 논쟁의 뿌리에는 각각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세계관이 있다.
Ⅳ. 진화론은 기원 문제를 결코 밝힐 수 없다.
세계관적 관점에서 볼 때 진화론의 뿌리는 인간 중심적 사고인 인본주의, 과학주의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 스스로 우주, 생명의 기원 문제를 밝혀보려는 자유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결코 생명의 기원을 밝힐 수 없다. 자연발생설은 물질, 중간생물체, 대진화는 각각 하나의 특정 물질 또는 생명체를 그 출발로 하고 있다. 즉 진화론은 있는데서 있는 것을 설명하고 있을 뿐 결코 출발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하여는 설명하지 못한다. 자연발생설에서 제기하는 생명체의 근본이 되는 물질은 어디서 왔는가? 에 대하여 진화론은 답을 줄 수 없다.
우리는 물질이 분자 또는 분자들의 혼합으로 되어 있고, 분자는 원자들의 집합체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104개의 서로 다른 원소들은 각각 전자와 핵으로 되어 있고, 핵은 양성자, 중성자로 되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이 원소는 어디에서 왔는지 물으면 대답이 힘들어 진다. 이렇게 근원을 캐면 결국 한계상황에 도달한다. 인간의 이성, 지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한다. 진화론은 그 출발이 있는 상태에서의 변화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기원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줄 수 없다. 진화론은 인간적인 이성, 지성의 노력으로 생명의 근원을 밝히려 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한테 주목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과학의 한계, 인간 이성, 지성의 한계로 결코 기원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Ⅴ. 진화론은 무신론이다.
진화론을 받아드리면 성경과 대치되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된다. 첫째로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천지창조(공간, 우주, 생물, 인간창조)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연이 된다. <생명체는 무생물에서 우연히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다.> 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창조의 주체가 됨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혹자는 자연발생설과 최초 생명체가 다양한 생물들로 진화된 것이 하나님의 창조역사라고 주장을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생명체들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창조주 하나님도 인정하고 진화론도 받아드린다. 유신론적 진화론이다. 그런데 막상 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들이다. 한마디로 유신진화론은 하나의 억지타협, 궤변에 불과하다. 진화론은 결코 창조주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다.
둘째로 진화론은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다. 인간만이 많은 생명체들 중 유일하게 영적존재이다. 영적으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이 있다. 분명한 것은 많은 생명체들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나님에 대하여 반응하는 영적 존재라는 점이다. 진화론에서는 인간도 단지 하나의 진화 산물일 뿐이다. 진화론 주장대로 사람과 원숭이가 공통조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면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하나님 형상을 가진 인간 정체성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셋째로 진화론 창조론 논쟁은 치열한 영적 싸움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하나의 종교로 여겼다는 것을 보고 스스로 놀랐다는 다윈의 고백은 진화론이 영적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12절은 거짓 것을 믿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다. 진화론을 종교로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도 된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진화론을 하나의 탈출구, 대안으로 삼아서 진화론을 하나의 종교로 믿게 된 사람들의 영적 심판에 관한 경고이다. 결국 진화론의 본질은 무신론이다.
Ⅵ. 창조과학 사역의 방향.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된 1980년부터 지금까지 창조과학 사역의 중심은 교회였다. 신앙인을 상대로 진화론의 허구에 대한 세미나 활동을 주로 하였다. 미국의 관련기관들로부터 자료를 입수하고, 책을 번역하는 일들을 하였다. 창조과학 사역자는 대부분 신앙을 갖고 있는 대학 교수들이었다. 창조과학 세미나는 진화론의 허구를 폭로해왔다. 창조과학 세미나는 온누리 교회, 지구촌 교회, 대학생 선교회 등에서 필수코스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회가 창조과학 세미나 한 두 번 한 것으로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도 사실이다. 창조과학 사역의 전략적 가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극히 인색하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앞으로 창조과학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창조과학 전문가들이 각 전공 영역에서 진화론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근거를 심도 있게 마련해야 한다. 자연발생설이 불가능함을 화학적 논리로 반박하는 일, 소진화와 종의 다양성에 대한 명쾌한 설명, 자연선택이 대진화로 이어질 수 없다는 생물학적 논리, 방사성 원소 붕괴에 의한 연대측정의 명백한 한계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그리하여 각 영역에 있는 전문가 집단에서 진화론의 허구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일반 대중을 향한 창조과학 전달 매체수단을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창조과학의 핵심내용은 대부분 전문적 과학영역에 속한다. 과학 용어자체가 일반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일반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핵심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정확, 간결,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는 소통기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디자인 전문가들이 창조과학 contents를 애니메이션, 만화, 동영상, PPT자료로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동시에 창조과학 강사들도 과학의 어려운 기술적 내용을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technical communication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창조과학 사역자는 일반대중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창조과학 운동은 확고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진화/창조론 논쟁은 성격상 끝이 없는 싸움이다. 논쟁의 본질이 증명할 수 없는 세계관 싸움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선교를 위해서도, 신앙의 근본을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서도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필요하며, 그 중심에 창조과학이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온누리 교회가 일본 선교전략에 창조과학을 활용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바 있다. 유럽교회가 진화론과 타협한 유신진화론 입장을 취한 것이 유럽교회 쇠락의 주요원인이 되었다는 평가는 세계관 운동의 전략적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과학으로 포장된 진화론 정체를 폭로해야 한다. 과학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기독교의 지도자들과 연합하여 핵심 선교, 교육 전략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창조과학 운동은 인간정체성을 회복하는 신앙훈련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진화론의 본질은 하나님 형상을 상실한 사람들이 자유의지로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과 대적하는 일이다. 기독교인들은 교육, 연구, 철학, 예술 등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하나님 하신 일을 이해할 수도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도 없음을 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성경을 진리로 받아 드리며 하나님을 인정하기로 결단하는 일이다. 최근 교회를 중심으로 회복사역, 정체성 회복 운동, 아버지 학교 등 영성 훈련 프로그램이 효과적인 신앙훈련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죄가 왔고, 결과로 거절감, 상처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형상을 회복케 하는 창조신앙 운동은 21세기에 사는 창조과학 신앙인들의 소명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오늘도 창조역사를 지속하신다.
출처 - 2009. 10. 10.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773
참고 : 6636|6634|6627|6610|6604|6597|6585|6583|6582|6562|6561|6556|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01|6096|5459|5274|5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