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
결국 사람, 가정, 공동체의 문제… 교회만이 문제 해결 주체
1985년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백투더 퓨처 2’는 주인공 마티가 미래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는 2015년이다. 30여 년 전 사람들이 바라본 30년 후의 모습은 어땠을까. 스마트 안경, 디지털 카메라, 3D 입체영상, 자동화 메뉴판, 지문인식기계, 태블릿 PC, 화상회의와 영상통화, 드론 등 실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상상이 현실이 됐다. 이처럼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또 어떤 상상이 현실이 될지 기대되면서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궁금하다. 미래사회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미래사회를 어떻게 준비해야할 것인가? (편집자 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큰 기쁨과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다가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한 <매킨지 보고서>에 의하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상화되면서 가사노동이 25% 줄어들게 되고, 자율주행차의 대중화로 2030년에는 교통사고율이 40% 감소하며, 인공지능 의료서비스의 향상으로 73세였던 건강수명이 2030년이 되면 77세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가사노동이 감소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증가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활이 편리하고 풍요해졌는데, 왜 삶은 더 팍팍해지고 삭막해졌을까? 이것은 과학기술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과학기술 발전이 인류의 삶에 미친 거대한 영향의 결과라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과학기술은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것이었다. 현대인들은 압도적인 과학기술 앞에서 세상의 모든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버렸고, 지나치게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룬 현대문화는 더 빨리, 더 편한 세상을 추구하였고, 무엇보다 생각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버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보다 무엇이 나를 더 기쁘게 해줄 수 있는지를 찾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사회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생활은 편리해질 수 있지만, 사람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걱정을 하고 있다. 이미 대규모 공장에서는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가 진행되어 공장의 규모가 커져도 고용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공장을 넘어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하는 많은 일들을 로봇이 대신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올해 1월 매킨지글로벌 연구소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얼마나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820여 가지 직업이 수행하는 업무를 총 2,069가지로 세분화했다. 그 결과 710가지(34%)의 업무를 향후 50년 내에 로봇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요리사 73%, 기자나 법조인 22%, 의사와 간호사의 일 29%를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을 발전시키고 있는 과학기술이 잘못된 것인가? 힘든 일들은 로봇이 하고, 사람들은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이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도약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까지의 사회체계, 교육내용 등 모든 것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하는 도전과 두려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고 물질이 모든 것의 시작이고, 전부라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인공지능보다 못한 인간이 살아남는 길은 인공지능을 뇌에 이식해 인공지능과 결합한 인간으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두려움을 과학기술로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진화론자가 아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는가?
1~4차 산업혁명의 득과 실
과학기술이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은 1차 산업혁명부터다. 증기기관차로 상징되는 1차 산업혁명은 공장에 많은 근로자들이 모이게 됨에 따라 급격한 도시 팽창을 가져왔다. 농경 중심의 사회가 도시중심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도시로 모여든 농촌 청년들에게 농촌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은 쓸모없어지면서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했다.
2차 산업혁명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개개인의 기호보다 대중의 유행이 중요해졌고, 각자의 개성을 대량소비에 맞추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 각각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소비자로서의 인간만이 대우받는 사회가 되었다. 사람이 인격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뗄 수 없다. 거대한 자본 없이는 과학기술을 공장으로 구체화시켜 산업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자신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모두가 달음질치는 사회가 되었다.
디지털 혁명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의 발전으로 자동화,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정보의 홍수가 이뤄지는 시대를 열었다. 좋은 정보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악하고 음란하며 거짓된 인간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보들을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정보만을 선택하면서 나와 기계, 지식과의 관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 우선되는 왜곡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1, 2, 3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가 빼앗긴 것은 가정과 공동체의 권위와 구조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양육 받고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던 시대에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 줄 전문교육기관에 자녀들을 맡겨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머니들이 직업을 갖는 것이 보편화됨에 따라 양육마저 외부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시대이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공동으로 일을 하고, 공동으로 수확해서 기쁨을 나누던 시대에는 공동체의 권위가 매우 컸다. 개인의 이익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손해 보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공동체는 없다. 모두가 나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울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은 가정과 공동체가 파괴된 현실에서 세워지고 있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더 엄청날 수 있다. 정보화혁명 시대의 승자들인 일부 회사들(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독점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은 엄청난 풍요와 엄청난 박탈을 동시에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로봇에게 소득세를 내게 하고 최소임금을 주어 모든 사람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궁극적인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신만의 일을 할 때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돈을 버는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노동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 노동의 의미, 지식의 가치, 자본의 역할 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길을 개척하여 진정 새 길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갈 때는 함께 갈 사람들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수년 내에 쓸모없는 지식이 되는 시대에는 평생 같이 공부하면서 서로에게 교사가 될 수 있는 동료들이 필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고, 가정과 공동체의 울타리에서 자녀들을 새로운 개척자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나타날 수많은 문제들이 결국 사람과 가정과 공동체의 문제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교회밖에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그리스도인들만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이 땅을 다스릴 것을 믿기 때문이다. 교회만이 과학기술이나 자본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직 교회만이 사람이 치열한 경쟁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겸손히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출처 - 2017. 4. 30. 온누리신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98
참고 :
4차 산업혁명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
결국 사람, 가정, 공동체의 문제… 교회만이 문제 해결 주체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큰 기쁨과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다가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한 <매킨지 보고서>에 의하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상화되면서 가사노동이 25% 줄어들게 되고, 자율주행차의 대중화로 2030년에는 교통사고율이 40% 감소하며, 인공지능 의료서비스의 향상으로 73세였던 건강수명이 2030년이 되면 77세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가사노동이 감소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증가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활이 편리하고 풍요해졌는데, 왜 삶은 더 팍팍해지고 삭막해졌을까? 이것은 과학기술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과학기술 발전이 인류의 삶에 미친 거대한 영향의 결과라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과학기술은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것이었다. 현대인들은 압도적인 과학기술 앞에서 세상의 모든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버렸고, 지나치게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룬 현대문화는 더 빨리, 더 편한 세상을 추구하였고, 무엇보다 생각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버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보다 무엇이 나를 더 기쁘게 해줄 수 있는지를 찾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사회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생활은 편리해질 수 있지만, 사람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걱정을 하고 있다. 이미 대규모 공장에서는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가 진행되어 공장의 규모가 커져도 고용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공장을 넘어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하는 많은 일들을 로봇이 대신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올해 1월 매킨지글로벌 연구소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얼마나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820여 가지 직업이 수행하는 업무를 총 2,069가지로 세분화했다. 그 결과 710가지(34%)의 업무를 향후 50년 내에 로봇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요리사 73%, 기자나 법조인 22%, 의사와 간호사의 일 29%를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을 발전시키고 있는 과학기술이 잘못된 것인가? 힘든 일들은 로봇이 하고, 사람들은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이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도약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까지의 사회체계, 교육내용 등 모든 것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하는 도전과 두려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고 물질이 모든 것의 시작이고, 전부라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인공지능보다 못한 인간이 살아남는 길은 인공지능을 뇌에 이식해 인공지능과 결합한 인간으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두려움을 과학기술로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진화론자가 아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는가?
1~4차 산업혁명의 득과 실
과학기술이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은 1차 산업혁명부터다. 증기기관차로 상징되는 1차 산업혁명은 공장에 많은 근로자들이 모이게 됨에 따라 급격한 도시 팽창을 가져왔다. 농경 중심의 사회가 도시중심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도시로 모여든 농촌 청년들에게 농촌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은 쓸모없어지면서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했다.
2차 산업혁명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개개인의 기호보다 대중의 유행이 중요해졌고, 각자의 개성을 대량소비에 맞추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 각각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소비자로서의 인간만이 대우받는 사회가 되었다. 사람이 인격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뗄 수 없다. 거대한 자본 없이는 과학기술을 공장으로 구체화시켜 산업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자신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모두가 달음질치는 사회가 되었다.
디지털 혁명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의 발전으로 자동화,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정보의 홍수가 이뤄지는 시대를 열었다. 좋은 정보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악하고 음란하며 거짓된 인간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보들을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정보만을 선택하면서 나와 기계, 지식과의 관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 우선되는 왜곡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1, 2, 3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가 빼앗긴 것은 가정과 공동체의 권위와 구조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양육 받고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던 시대에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 줄 전문교육기관에 자녀들을 맡겨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머니들이 직업을 갖는 것이 보편화됨에 따라 양육마저 외부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시대이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공동으로 일을 하고, 공동으로 수확해서 기쁨을 나누던 시대에는 공동체의 권위가 매우 컸다. 개인의 이익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손해 보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공동체는 없다. 모두가 나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울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은 가정과 공동체가 파괴된 현실에서 세워지고 있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더 엄청날 수 있다. 정보화혁명 시대의 승자들인 일부 회사들(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독점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은 엄청난 풍요와 엄청난 박탈을 동시에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로봇에게 소득세를 내게 하고 최소임금을 주어 모든 사람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궁극적인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신만의 일을 할 때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돈을 버는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노동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 노동의 의미, 지식의 가치, 자본의 역할 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길을 개척하여 진정 새 길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갈 때는 함께 갈 사람들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수년 내에 쓸모없는 지식이 되는 시대에는 평생 같이 공부하면서 서로에게 교사가 될 수 있는 동료들이 필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고, 가정과 공동체의 울타리에서 자녀들을 새로운 개척자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나타날 수많은 문제들이 결국 사람과 가정과 공동체의 문제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교회밖에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그리스도인들만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이 땅을 다스릴 것을 믿기 때문이다. 교회만이 과학기술이나 자본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직 교회만이 사람이 치열한 경쟁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겸손히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출처 - 2017. 4. 30. 온누리신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98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