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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미디어위원회
2004-08-12

창조론 대 진화론 - 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christiananswers.net 


권위 (Authority)

하나님 말씀의 권위 인간 의견의 권위

이것이 최우선적인 문제이다. 여타의 문제들은 작거나 크거나 모두 이 문제와 연관된다. 우선, 우리들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문제에 관한 한 하나님 말씀은 과연 인간의 의견과 양립할 수 없는가 하는 측면부터 정립해 둘 필요가 있다. 아래 표는 이 두 화두간에 존재하는 주요한 상충점들을 개관하고 있다.  

'인간의 의견' 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우리는 인간의 '기존의' 역사관을 정립하고 있다. 거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이 기존의 인간 역사관을 옳다고 가르친다. 이 현실을 인정하고, 그 다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라는 화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창세기 1장에서 11장의 내용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 구구하게 많은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 문제의 판단을 돕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의 기준들을 적용하려한다.

1. 가능한 최고의 번역을 통하여 원문이 뜻하는 일차적이며 솔직하고 자연스럽고 명백한 의미를 파악한다.
2. 히브리어 원문이 의도하는 의미에 대한 언어학자들의 압도적 의견일치를 확보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학자들의 의견을 참고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신학자들이 일반화된 세속적인 의견과 원문을 '조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도출하려 기도하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James Barr 교수는 세계의 유수 대학교의 히브리어 교수들 가운데 창세기 1-11장의 저자의 의도가 글이 읽히는바 그대로 단순하고 솔직하였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교수는 없다고 썼다. 다시 말해서, 전 지구적인 홍수, 보통 날짜로서의 엿새, 모든 사람들은 참 사람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라는 점, 모든 사물의 시작 때부터 기록하는 연대기 (chronology)로서 작성된 가계혈통, 등등.

신약성경도 창세기 초두의 몇 장에 말씀들을 가감 없이 솔직한 이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려 한다. 요컨대, 일반화된 성경외적 세속적 의견을 무시하고, 종교개혁 이후 시기에 있었던 모든 유서 깊은 해설에서 볼 수 있는 바대로, 무엇보다 먼저 성경적인 판단기준만을 사용하려한다.


중요한 불일치 점 (모두 20 여 가지가 넘는다.)

 주제

하나님의 말씀

사람의 의견

출현한 순서

태양 이전에 지구,
물고기 이전에
과일나무

지구 이전에 태양,
과일나무 이전에 물고기

최초의 사람

흙으로부터
직접 만들어짐

이전에 있었던 동물의 후손

창조에 걸린 시간

만물은
6일 동안 창조됨

모든 것은
광대한 시간에 걸쳐 나타남

죄의 심판으로서
노아의 홍수

전 지구적인 홍수

지역적인 홍수

죽음, 폭력,
고통, 피흘림(사람과 동물)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함

아담 이전에 이미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 존재

사람의 타락과 저주

피조물 모두에게 영향

사람 이전에 이미 수 십억 년 동안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함으로
신음함.(롬8장)

여기에서 기독교인는 다음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

1. 일반화된 세속적인 관념을 포기한다.
2. 성경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
3. 인간의 의견과 조화를 기도한다.

 

성경의 무오성

성경의 무오성에 관해서 수없이 많은 의견들이 피력되었다. 그런데 성경의 내용은 대부분 자명하다. 간단히 말해서, 만약 성경이 얼마쯤은 진리를 얼마쯤은 오류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오류인가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 하나님이나 기독교 또는 예수님에 관해서 무엇을 어떻게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을까? 어쩌면,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명제도 하나의 오류일는지 모른다.

'A는 非A가 될 수 없다' 라는 논리의 기본법칙을 어기면서까지 진리를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로 분리하려는 기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죽은 예수는 몸으로 살아났든가, 아니면 살아나지 않았다. 살육행위가 아담 이전의 세상에도 있었든가, 아니면 없었다. 그리스도는 영적 형태로 즉 실존적으로는 진공형태로 인간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아담으로부터의 장구한 혈통의 일부분으로 치밀히 펼쳐놓은 역사의 구조 속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기독교적 신앙이 신임을 받으려면, Schaeffer가 호칭한 '역사와 우주'의 본질에 관해 성경이 언급하는 대목은 반듯이 진실이 틀림없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일을 말할 때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나라의 일을 말할 때 믿을 수 있겠는가? 라고.

참 성경에 대한 신앙은 과학 교본이 진리로 인정하는 계시만을 철저하게 주장하여야 한다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본성 (The Nature of God)

이 질문은 '신'이 진화의 기능으로 창조의 사역을 하였는가 하는 명제이기보다는 하나님은 성경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하셨고, 또 심지어 창조하실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하셨는가 하는 명제다.

1. 하나님의 선하심 - 하나님은 창조하시기 위해 죽음과 투쟁을 이용하셨을까? 또 죄가 이 세상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고통의 오랜 세월을 통해서 강자가 약자를 쓸어버리게 하셨을까? 하나님은 살육으로 얼룩진 세상을 보시고, 그런 폭력의 정점에 있는 세상과 또한 병고에 찌든 인생살이를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셨을까?

2. 하나님의 진실하심 - 만약 하나님께서 진화의 기능으로 창조의 사역을 하셨다면, 실질적으로 모든 성경 독자들을 역설적인 인상으로 압도하면서 말씀 중에 사람들을 오도하셨을까?

하나님의 기적 사역의 능력과 지혜.  

창세기적 창조를 부정하는 사람은 복음서의 기적들도 동반해서 부정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일 수 없다. 만약 어떤 신이 목적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 '인과절차(因果節次)'를 밟아야 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없이 많이 막다른 골목과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뒷골목과 마주친다면, 그런 신은 오랜 동안 시신으로 있던 사람을 눈 깜작할 사이에 되살리고, 수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의 떡과 물고기를 '無로부터 (ex nihilo)' 창조하고, 지구의 중력을 부정하듯이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신은 결코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성경적인 우주의 구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리고 하셨던 세상이 아담의 죄로 인해서 망가졌고 저주를 받아 신음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죄도 죽음도 없는 천국으로 회복될 것이다. 창조/타락/회복이라는 구조는 히브리어나 희랍어 원문의 곡해(曲解)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신 구약의 조직을 통하여 상세하게 짜놓은 구조다.

 

복음서의 논리적 기초 

십자가가 있어야 했던 진정한 이유는 인간의 타락 (Fall) 때문이다. 최초의 참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죽음이 왔지만, 두 번째 참사람으로 인해서는 죽음에서부터 부활이 왔다. 아담의 죄와 죽음으로의 타락이 없었다면, 왜 그리스도가 죽어야만 하는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에 거대한 간극을 만들어버린 역사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왜 속죄의 피가 필요하겠는가? 복음서에 대한 설교와 일반화된 세속적 세계관 사이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논리적 모순들은 진화론 사상이 야기한 여러 문제점들에까지 연결된다.

 

복음주의 (Evangelism)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이 말씀은 아름다운 말씀이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있었던 것으로 (그래서 죄의 응보는 있을 수 없다), 사람은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고 진화된 원숭이 이라는 것으로, 성경은 출애굽기 20:11 (엿새 동안에 내가 모든 것을 만들었으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명히 신화적인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으로, 죄를 범하는 행동은 동물을 조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그리고 어쨌거나 이런 말들을 담고 있는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임하지 않는 문화에서 위의 말씀은 무슨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겠는가?

 

호교론 (護敎論, Apologetics)

베드로는 우리들을 보고 "소망을 가져야할 이유" 즉 신앙을 지켜야할 이유를 설명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열심히 설득하고 있다. 엄청난 공격으로부터 우리가 꼭 지켜야할 가장 큰 대목은 창세기 내용에 대한 것이다. 창세기는 기원에 대한 책으로서 기독교 교리의 모든 구조적인 기초를 직 간접적으로 담고 있다. 기독교 교리의 논리적 근거인 이 기초를 파괴하면, 기독교 교리의 구조는 심각하게 약화될 것이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 바울은 창조설계의 증거가 너무도 압도적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교 어린이들은 자연의 설계를 설명하는 데 설계자의 존재가 필요치 않다고 배운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이 근본적으로 무신론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러나 진화론의 배후에 있는 동력(dynamic)은 모든 사물은 제 나름의 인과법칙과 고유특성을 지니고 존재한다고 설명하려 한다. 창조된 순서대로 초월적인 하나님의 기적의 간섭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배 (Worship)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로부터 경배와 영광, 그리로 권세 (power)를 받으실 자격이 있다고 일러준다. 바울은 피조물 그 자체를 숭배하기 위하여 창조주에 대한 예배를 포기한 자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진화론의 일관된 사상에 의하면 창조에 대한 영광을 받을 자를 '자연' (자연을 창조력으로 보고)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와 윤리 (Society and Ethics)

죄야말로 인류가 당면한 모든 문제들의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사회에서는 진화론이 하나님 말씀의 절대성을 거부하는 데에 과학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 적나라한 예를 우리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사회를 풍미하던 일관된 진화론 사상에서 보았다. (비록 크리스천 사회에서 있었던 종교재판과 십자군의 잔학행위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세계관은 진화론적 세계관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세계대전 이전의 서방사회의 많은 과학자들조차 정신박약자와 유전병약자들의 제거정책을 '과학적으로 계몽된' 정책이라고 떠받들었던 적이 있었다. 나날이 늘어만 가는 무법행위 (우리를 소유할 자가 없으니 우리를 지배할 자도 없다), 임신중절 (결국 우리들은 너나없이 모두가 동물이다), 결혼의 파탄 (결혼과 이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언제나 창세기에 기록된 역사적 근본까지 소급한다), 그리고 더욱 대담하고 노골적인 동성간의 성행위, 이 모든 사회적 병폐들은 반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우리 젊은이들을 키워온 이 사회가 걷어 들이게된 당연한 결실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hristiananswers.net/q-aig/aig-c013.html 

출처 - christiananswers.net

Garry A. Miller
2004-08-02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

(God as Our Creator!)


       오늘날 기독교 사회 속에서,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이 종종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잠시 생각을 해본다면,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많은 중요한 교리 중에서 가장 중요시 여겨야하는 기본적인 교리가 아닐까 싶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살아야할 의무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였다면, 우리 인간은 구세주 혹은 구원자도 필요치 않았을 것이며, 이전 것들의 회복에 대한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의 도덕적 규범들은 (예를들어 결혼, 낙태, 동성애,포르노, 불법 등등) 창세기의 창조 사건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하신 것처럼, 창조에 대한 믿음은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과 세상의 인본주의적 지도자들은 많은 기독교 국가들에서 보다 더 쉽게 이것을 인정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교육적으로, 그리고 사회의 모든 언론 매체들을 통해서, 매우 강압적으로, 효과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신론, 불가지론, 이성주의, 부도덕성, 진화론적 철학, 믿음, 해석 따위로 끊임없는 폭격을 가하고 있다. 진화는 사실(fact)로서, 모든 영역의 사고속에 존재하며, 삶은 진화되어가는 과정 중의 한 부분으로 “설교” 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화를 증명하는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소위 “증거(proofs)” 라는 것들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과학적인 관측과 사실들에 대한 진화론에 기초한 해석(interpretations)인 것이다.


화석 기록에 대한 예로 들어보자. 화석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존재한다. 화석들이 어떻게, 왜, 그리고 언제 형성 되었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실제로 관측된 증거들에 대한 해석인 것이며, 대게 우리의 철학적 믿음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이다. 화석 기록(증거)은 느리고, 점진적인, 동일과정설의 '진화론적' 과정에 의하여 해석되어질 수도 있고, 또는 비교적 최근에,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격변적인 사건과 과정에 의해서 해석되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다지층 나무의 화석들은 여러 석탄층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여러 퇴적지층들을 관통하여 수직으로 서있는 화석화된 나무들이다. 진화론에 의하면, 이들 여러 퇴적지층들은 쌓여지는데 수천년이 걸렸다. 그러나 홍수지질학에서는 이 퇴적지층들은 나무들이 썩거나 부패하기 전에, 매우 짧은 시간 안에 형성되었다).  잃어버린 전이형태(transitional form)들은 어떠한가? 지난 세기동안에 멸종된 생물 화석들을 포함하여, 수백만개 이상의 화석들이 발굴되었고, 분류되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논란의 여지가 없는 '전이 형태'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전이형태의 생물로 가장 많이 주장되어지는 것이 (아직도 많은 교과서들에는 진화의 '증거' 로서 실려 있다) 시조새(archaeopteryx)이다. 현재 이것은 많은 진화론자들도 완전한 조류(true bird)로 인정하고있으며, 또한 시조새 보다 훨씬 오래된 지층에서(진화론적 시간 틀로) 완벽한 새의 화석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명백하게 새들의 조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금은 시조새 화석들이 처음부터 사기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좋은 증거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사기로 입증된 여러 '인류의 조상'들과 다르지 않다). 화석 기록에서 진화의 가장 우수한 증거라는 것이, 모든 잃어버린 고리들을 아직도 잃어버렸다는 것이라면, 이제는 진화 모델에 대한 본질과 사실성(?)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아야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진화가 먼 옛날에 일어났을 가능성으로 인해, 진화론은 매우 오래된 시간을 요구한다. 이 시간들을 지지하기 위해, 진화론자들은 자주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결과들을 사용한다. 그것들은 거의 언급이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사성 연대측정과 관련된 가정(assumptions)들과 비정상적인 결과(anomalies)들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정들(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신념으로 가지고 있는)의 일부 또는 전부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들은 아마도 사실이 아니다), 연대측정 결과들도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많은 경우에서, 다양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방법들에 의해서 측정된 연대들은 서로간에 일치하지 않았으며, 또한 기대했던 연대와 일치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우들에서, 측정된 '연대들(dates)'은 간단히 무시되어지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결코 듣지 못하게 된다. 다만,그 결과들 중에 진화론자들의 생각과 목적에 맞아 떨어지는 것들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유감스럽게도, 과학자들은 우리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객관적이지 않으며, 자주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 그 자체의 본질은 무엇인가? 진화론은 정말 과학적 이론이고, 창조론은 종교적 이론인가? 또는 둘 다 만물의 기원에 대한 종교적인 설명인가? 진화론은 사람들에 의해서 관측되지 않았던, 과거를 다루며, 유일하고, 반복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것은 “과학(science)”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것은 예측, 관찰, 반복에 기초하고 있다. 진화론은 이중에서 최소 2 개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진화론은 실제로 과학적이지 않다. 오히려 진화론은 사실상 자연주의적 종교(또는 믿음 체계)인 것이다. 따라서 기원과 관한 두 개의 충돌되는 믿음 체계인, 자연주의적 진화론(naturalistic evolution)과 초자연주의적 창조론(supernaturalistic creation)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둘 중에 어느 것을 믿을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물론 성령님에 의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시고, 오직 그의 말씀으로 밝히 드러내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마음을 연다면, 성경적 창조 모델이 이해되고 믿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창조론 대신 진화론을 선택하는 것일까? 성경적 통찰력을 가지고, 이에 대해 답을 찾는 것은 매우 쉽다. 본질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반역하였다. 진화론은 창조주에 대한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그리고  전능하신 창조주가 정해놓은 절대적 도덕율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진화론적 믿음 체계에서, 인간은 단순히 동물들 중에서 제일 고등한 동물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적자생존'의 결과이자,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의 결과로서 이곳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지배자“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며, 정의(right)도 스스로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와 세계를 지배하는 철학이 되었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도덕적 사회적 문제들을 자라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크리스천으로서 크리스천의 믿음 체계를 신봉하고 믿기 위해서, 이 세상이 인본주의와 진화론에 기초한 믿음 체계를 받아들인 것처럼, 진화론에 관한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믿음 생활을 매우 용기 있고 힘차게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두 체계 모두 “믿음(faith)'에 의해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고, 둘 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질 수 없다. 과학적인 증거들은 두 믿음 체계를 같이 지지하는 것으로 발견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그 증거들 중 다수는 진실로 완벽하게 창조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적인 믿음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늘 따라 다니는, 그리고 인본주의자들을 깊이 사색케 하는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이곳에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부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창조를 포함하여 그 분의 진리의 말씀을 밝히 알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우리가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번역 - 한동대 창조과학연구소

링크 - http://www.creation-science.sk.ca/GodOurCreator.html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30

참고 :

한윤봉
2004-07-26

창조주와 기적 - 차원을 이용한 이해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원점을 태초에 시작하심으로써(창1:1) 차원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우주 안에 가능한 모든 차원의 세계를 초월하신 분이시다.

  

기적은 자연법칙이나 정상적인 자연과정에 위배되는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정의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궁금해하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이 행한 기적일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그 분이 행한 창조사역과 기적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은, 예수님의 12 제자중의 하나인 빌립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14:8)'라는 요구처럼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자연 만물에 분명히 나타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없다고 핑계치 못한다고 했다(롬1:20).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세계는 하나님이 계심을 웅변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지만(히13:1), 과학주의가 생활화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무조건 믿으라는 주문은 오히려 그들을 하나님에게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본 글에서는 차원을 이용하여 하나님과 기적을 동시에 설명함으로써 과학세대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우리는 수학을 통해서 점을 0차원, 점이 모여서 된 선을 1차원, 선으로 이루어진 면을 2차원, 면으로 구성된 공간을 3차원, 공간에 시간을 합한 것을 4차원이라고 배웠다. 4차원에 또 다른 차원요소를 결합하면 5차원이 될 수 있으며, 차원은 무한차원으로까지 연장될 수 있다. 인간은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로서 4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4차원의 세계에서 일어 나는 일들을 알지는 못한다. 즉, 인간은 현재 순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들만 알 수 있을 뿐, 아득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이나 미래에 일어 날 일들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알 수 있는 것도 우리의 기억력과 역사적인 기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떤 일들이 발생할 지 전혀 알 수 없다.   

차원이 낮을수록 하등하고 제한된 세계에 속하게 된다. 1차원의 세계에 사는 동물은 직선운동만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올라가다가 떨어지더라도 계속 벽타기를 즐겨하는 구더기, 앞으로만 가는 지렁이, 뱀 등을 1차원 동물이라 할 수 있다. 일차원 동물들은 2차원 이상의 세계에서 일어 나는 일들을 모른다. 반면에 2차원 세계의 동물은 직선운동뿐만 아니라 전후좌우 방향감각이 있지만 공간의 개념은 없다. 날지는 못하지만 외출했다가 자기 집을 찾아 올 수 있는 동물들이 이에 해당한다(두더지, 거북이 등). 2차원 동물들은 3차원 이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없고 3차원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3차원 세계의 동물은 방향감각과 입체적 공간개념을 갖고 있는 동물들로 정의할 수 있다. 3차원 동물들은 1차원과 2차원 동물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다양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역시 4차원의 세계에서 일어 나는 일들은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1차원 동물과 2차원 동물이 어떤 지점을 출발하여 목표지점까지 갔다 와야 한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가는 도중에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 장애물에 도착했을 때, 1차원 동물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그러나 2차원 동물은 장애물을 우회하여 목표지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여기서 1차원 동물과 2차원 동물의 능력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차원 동물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1차원이라는 세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없기 때문에 목표지점까지 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1차원 동물의 눈에는 2차원 동물이 장애물 지점에서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몇 시간 후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직선운동만이 가능한 1차원 동물은 장애물을 우회하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목표지점을 돌아오는 것은 2차원 동물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이지만, 1차원 동물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기적)이 두 번(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차원을 한 단계 높여서 깊은 웅덩이(3차원)에 2차원 동물과 3차원 동물이 빠졌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웅덩이에는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 곳을 탈출해야 한다. 2차원 동물과 3차원 동물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2차원 동물은 탈출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하지만, 그 안을 왔다갔다 하거나 반복 선회하다가 지쳐버릴 것이다. 2차원 동물은 공간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설령 누군가가 구원의 줄을 넣어준다 하더라도 탈출하지 못한다. 그러나 3차원 동물은 공간을 이용하여(예를 들면, 벽을 이용하거나 줄을 사용하여) 웅덩이를 쉽게 탈출할 수 있다. 탈출한 3차원 동물은 먹을 것을 잔뜩 구하여 웅덩이에 빠진 2차원 동물에게 갖다 준다. 2차원 동물은 3차원 동물이 갑자기 사라져서 거의 절망상태에 있었는데, 3차원 친구가 갑자기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않았던 음식을 갖고 와서 너무 놀란다. 3차원 세계를 이해 못하는 2차원 동물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2차원 동물이 평생을 노력해도 안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것이다. 이 기적은 2차원 세계에 적용되는 법칙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이지만, 2차원 세계의 질서가 무너진 것은 아니다. 단지 2차원 세계에 적용되는 과학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3차원 동물이 한 것일 뿐이다.

1차원이 2차원에 속하고 2차원이 3차원에 속한 것처럼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3차원의 세계가 4차원 세계에 속해 있다면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는 2차원 동물들이 3차원 동물이 행하는 일들을 모르는 것과 같이, 단지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이다. 비신앙인들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기적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오히려 비과학적이라고 비웃는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많은 기적들은 역사적으로 있었으며, 현재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기적들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신가? 성경에 의하면 그 분은 전 우주적 존재로서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출3:14), '처음과 나중 되시는 분'이시며(계1:8), '천년을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같이 여기시는 분'(시 90:4)이시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4차원의 세계로 정의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분임을 성경은 명백히 하고 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원점을 태초에 시작하심으로써(창1:1) 차원을 창조하신 분이고, 우주 안에 가능한 모든 차원의 세계를 초월하신 분이다. 다시 말하면, 그 분은 3차원의 한계 속에 갇혀 있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능력과 지혜를 가지신 분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분의 존재와 행하신 일(기적)들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3차원 세계에 적용되는 과학적 법칙이나 방법으로는 그것을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차원을 초월하신 하나님 편에서는 6일 동안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여러 가지 기적들을 일으키시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또한 그 분이 창조하신 세계를 관리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 역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단지 유한한 차원에 속한 피조물들이 그 분의 존재와 행하시는 일들을 부인하며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기적은 우주 안에 적용되는 통일성이나 법칙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수많은 비밀들(즉, 자연 법칙들)을 숨겨 놓으셨으며 또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기적이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지만, 우주가 자연법칙들에 위배됨이 없이 통일성을 가지고 하나의 우주(universe, not multiverse)로서 작동하는 이유도 우주가 한 분이심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유한한 3차원 공간에 갇혀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없고, 기적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음은 인간의 이해와 지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 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성경의 기적들을 부인하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 분의 존재를 겸손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지혜가 부족하여 깨닫지 못하던 비밀들을 알 수 있다(약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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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3/e32/e32o18.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26

참고 :

박영관
2004-07-26

일본 복음화를 소망하며


      일본에서 창조사역이나 복음전파의 활동을 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드문 기회이지만 은혜의 말씀과 사역을 증거할 기회가 있을 때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귀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일본으로 유학 온 지도 어느새 7년이 되어갑니다.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수많은 우상들이 공중권세를 잡고 사회를 지배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쇼윈도우의 신형 자동차에도 아이스크림에도 진화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사용되며,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진화론이 사회에 난무(?)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신교의 신자가 1% 미만이라는 통계 보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사회에서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우며, 그런 만큼 창조사역이나 복음전파의 활동을 펴는 것 역시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깊은 곳에 은혜가 더욱 크다고, 드문 기회이지만 은혜의 말씀과 사역증거의 기회가 있을 때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귀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일본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씀을 전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실험실 세미나를 많이 활용하고 있지만, 시야가 좁아서인지 많은 소재를 찾을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다음은 실험실 세미나에서 소개했던 논문으로 저와 관련된 전공분야에서 발표된 것 중 노아의 방주를 증거하는 논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 마우스 선조가 서부 중앙 아시아에서부터 이동하여 각
지역(대륙)에서 아종(亞種, subspecies)으로 분화하였다.

 제 전공은 실험동물학으로 유전학, 독성학, 의학, 수의학, 동물학, 축산학 등이 부분적으로 복합된 영역의 학문입니다. 따라서 학문의 위치를 정하는 것도, 정의하는 것도 개개인에 따라서 상당한 견해차이가 있습니다만, 현재는 독립된 학문의 하나로 자리를 잡고 있는 학문으로 저의 경우는 분자유전학을 기초로 암억제 유전자를 찾아내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소개하고자 하는 논문은 1998년 학술잡지 Genetics(Prager E.M. et al., 150, 835-861)에 실렸던 분자유전학적 기술을 사용하여 집쥐(마우스)의 기원이 서부 중앙아시아라는 학설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인도북부 히말라야 지역을 마우스 발원지라고 생각했던 것을 부인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입니다. 논문에서 실험 재료가 된 쥐는 학명으로는 Mus musculus에 속하는 쥐로, 여러 종의 쥐 중에 사람의 주거지 주위에서 음식물 찌꺼기 등을 먹고 살아가는 종류입니다. 따라서 이 쥐의 이동 경로를 조사한다는 것은 사람의 이동 경로를 조사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아시아 곳곳, 서쪽으로는 소아시아 반도와 이집트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우리 나라와 일본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대륙 18개국 67개소에서 포획된 마우스의 유전자(mtDNA1), Y Chr., p53 pseudogene2))를 조사하여 유전자 염기배열의 유사정도를 비교 분석 정리한 결과로 '마우스 선조가 서부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이동하여 각 지역(대륙)에서 아종(亞種, subspecies)으로 분화하였다'라는 학설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노아의 홍수 때 방주에 들어온 동물들을 제외한 육상의 모든 동물들이 멸종되었고, 그 후 노아의 방주가 처음으로 지면에 닿은 곳이 아라랏산(논문에서 언급한 서부 중앙아시아, 현 터어키 동부지방)이었으며, 바벨탑 사건(현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남쪽지역) 이후 사람들이 제각기 흩어지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논문이 이러한 성경의 사건들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유학생활을 하면서 일본인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복음화되어 있지 않은 이유를 어디서 여러분은 찾고 있습니까? 저는 그 원인을 저희 한국인의 선조가 믿음을 굳건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우리의 선조들은 세계각지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 중 일부가 한반도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다시 일부가 일본에까지 오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한반도에 들어온 우리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며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현재 일본땅이 카미가미(神神, 잡신)의 '잡신의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사선상에 일제 식민지 탄압도 우연히 있었던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일본에서의 생활이 언제까지 허락될지는 모르지만, 이 땅에 복음의 자녀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기도하며 저도 창조과학 사역에 더욱 힘쓸 것을 다짐해 봅니다.

     

주석

    1) mtDNA(mitochondrial DNA): 세포내 소기관의 하나인 미토콘드리아에서 독립적인 유전양식을 갖고 유전되며, 암컷으로부터만 유전되어지는 유전자. mtDNA의 유전자 염기배열의 변이를 조사함으로써 모계조상을 찾아 올라갈 수 있다.

    2) Y Chr.(Y chromosome): 성염색체의 하나로 일반적으로 수컷에만 있는 염색체. mtDNA가 모계조상을 연구할 수 있는 재료라면, Y 염색체의 연구는 부계조상을 연구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소개한 논문에서는 Y 염색체상의 Zfy-2라는 유전자의 염기배열을 조사하였다).

    3) p53 pseudogene: 쥐이 17번 염색체상에 있는 암억제 유전자 p53의 위유전자(僞遺傳子). 암억제 유전자 p53과 상당히 유사하나 유전자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는 유전자. 위유전자는 통상의 유전자에 비해 점돌연변이의 발생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변이의 분포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공통선조를 추론하는데 연구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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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3/e32/e32o17.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25

참고 :

송만석
2004-07-26

새 천년을 창조과학 시대로


       새로운 천 년이 요란한 행사와 화려한 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컴퓨터로 사이버 공간에 서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시대,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이 공존하는 시대, 생명의 신비가 벗겨지고 질병도 정복되는 시대, 로봇의 발전으로 노동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되는 시대 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눈부신 과학의 발전과 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미래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닌, 이 수십 년 이내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21세기의 현실을 보면 자원 고갈, 에너지 위기, 빈부의 격차, 전쟁, 지진, 기근 등의 재난이 더 심화될 전망인데도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거짓 믿음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뿌리 없는 열매가 없듯 이런 장미빛 환상도 16세기에 시작된 인본주의와 과학주의의 산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 스스로가 주인이 되려는 사상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16세기 르네상스로 나타난 강력한 인본주의 문화는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물질을 절대시하는 물질주의와 하나님 대신 거짓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드러나게 된 생명 현상과 물질계에서 나타나는 놀라운 규칙성, 복잡성은 오히려 스스로가 지적 설계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임을 증명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우연으로 돌리는 진화론이 이미 많은 과학자들의 맹목적인 믿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과 능력을 갖춘 과학자들일지라도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을 터인데, 그들은 스스로 믿는 진화론이 과학적이며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거짓된 종교적 믿음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오만과 무지는 하나님 없는 마음이 얼마나 어두워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런 과학자들의 거짓 믿음은 직접적으로 모든 교육과 지식의 세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국가의 정규 교육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진화 믿음을 과학이라고 학습 받고 있으며, 인본주의에 기초한 많은 학문들을 무비판적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접하는 컴퓨터 게임, 인터넷 등을 통해 진짜 같은 가상현실에 익숙해지면서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기아와 빈곤, 질병과 고통, 전쟁과 죽음 등은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세계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상현실 속에서 젊은이들은 생명체의 진화와 상상력의 현실화를 당연시하며, 실제 세상은 시시하고 고루하거나 또는 반대로 너무나 힘든 세상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역사하시며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고리타분한 전통적 기독교인들만이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21세기의 세련된 종교인들은 정신 혁명(?)을 통해 스스로의 하나님을 찾고 있고, 지성적인 사람들은 과학적 진화론에 의해 창조론이 이미 매장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영적 갈급함은 스포츠, 성적 타락, 새로운 유희, 명예, 돈으로 대신 채워지고, 이런 것들을 쫓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 되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따돌림당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함께 타락해 가는 현실, 교회의 권위가 더 심각하게 땅에 떨어져 가는 상황, 기독교의 진리도 다원주의적 종교 속에 파묻혀 가는 세태, 멸망으로 가면서도 파국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의 세상, 오만이 가득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21세기는 실로 종말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보와 교통의 발전으로 세계가 한 문화권이 되어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으면서 충성된 증인이라고 칭찬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증거하는 것은 그 분이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셨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스스로 죽으신 분이시며, 죽으실 수 없기 때문에 부활하시어 다시 심판주로 오실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진화론과 인본주의가 잡고 있는 교육 현장과 과학 지식 세계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아가서, 악한 영적 세력들을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꾸짖고 내어쫓으며,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주인 되신 그 분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21세기에 창조과학 사역을 부흥시키셔서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며,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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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3/e32/e32c10.htm 

출처 - 창조지, 제 118호 [2000. 1~2]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0

참고 :

임번삼
2004-07-26

간증 및 창조과학회 21세기의 비전 (2)

임번삼

E. 常夏의 나라 인도네시아로!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계획과는 전혀 다르신 것 같습니다. 93년 3월 어느날, 하루는 서울의 그룹 비서실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어요. 회장명으로 인도네시아로 발령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 곳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지식도 없을 뿐더러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터라 적잖게 당황했었죠. 더구나, 일본에서 공사간에 새로 벌려 놓은 일들이 많은데...! 또 다시 하나님께 기도해 보았으나 당시로서는 그 분의 뜻을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 해 5월 중순경 일본을 떠나서 가족들과 함께 인도네시아로 가게 되었지요. 이렇게 해서 3년간에 걸친 저의 남방생활이 새로이 시작이 된 것이죠. 잘 아시다시피 그 곳은 아열대 지방이라서 연중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며 계절은 비가 오는 우기(3-10월)와 메마른 건기(11-3월)와 나눠져 있지요. 날씨도 날씨지만 생활습관의 차이와 문화시설의 미비로 처음에는 얼마나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특히, 문화적인 충격이 컸었는데, 일례로 자카르타 국제공항 같은 건물의 화장실에 들어가더라도 휴지대신 물이 들어있는 양동이와 플라스틱 바가지가 그 위에 떠 있을 뿐입니다. 저는 당시에 비싼 손수건으로 일을 처리했지만, 그들은 왼손으로 몇 번이고 용변부위를 닦아 내면서 오른손에 물바가지를 들고서 왼편 손에 부으면서 기교적으로 씻는 것입니다. 그러니, 똥물은 바닥으로 튀고 한 손으로만 일을 처리했으니 축축하면서도 께름직하고...

제가 발령을 받은 곳은 인도 미원(PT.Indo Miwon)이라는 조미료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미원(주)과 그 나라의 최대 재벌인 중국계 살림그룹이 합작으로 만든 회사였지요. 본사는 자카르타에 있었지만 공장은 스마트라 섬 남단의 람풍이라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매월 한 두차례씩은 람풍으로 비행기를 타고서 날아가곤 했지요. 일년 내내 갖가지의 열대화가 아름답게 피어 오가는 바람결에 너울거리던 장면들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자카르타에는 한인교회들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곳에서 우연히도 제가 학생시절에 다녔던 원효로 4가의 심원교회에 같이 계셨던 서만수 목사님(장로회 합동)을 만나뵙게 되어서 서목사님이 시무하시는 한인연합교회에서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교인수는 1,2부로 나누어 예배를 드렸는데, 합쳐서 500여명이 되는 비교적 큰 교회였지요. 이곳에서도 목사님의 허락을 받아서 매주일 낮예배 후에는 성경공부를 한 2년6개월간 계속했는데, 그 때 참석하시던 15~20여 성도님들의 열심히 경청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매주일 오후에는 외국인(중국, 예멘)상대로 영어성경공부도 병행을 했지요. 그리고, 남선교회를 통해서는 매월 한번씩 신앙강좌를 개최토록하여 전교인 대상으로 창조론 중심의 강연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교인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새신자가 오면 예배시간에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하루는 깡마른 체구에 안경을 쓴 40대 초반의 김종성 박사라는 분이 소개되었지요. 예배후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고 우리 집에도 초대하여 창조과학 활동에 대해 같이 활동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죠. 김박사는 OMF 선교사로 파송된 평신도 선교사였는데,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하시고 배재대학에 재직중 인도네시아의 한 족속을 입양하려는 소명감이 있어 흔쾌히 한국을 떠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이 먼 곳까지 오시게 된 것이었습니다.

창조과학은 그때 처음 알게 된 것이었지만 자연과학을 전공하신 분이 이해가 빨랐고 결국은 미국에서 같은 비전을 가지고 귀국한 Victor Riawu 라는 분과 같이 셋이서 우리 사무실에 모여 기도로 준비하다가 마침내 인도네시아 최초로 창조과학회를 창립하기에 이르렀죠. 그것이 96년 1월 중순경으로 기억이 납니다. 10여명의 발기인중 초대회장은 적임자가 없어서 계속기도 하며 찾기로 하고 우선은 현지국적을 가지고 계신 서만수 선교사님을 선출하였지요.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창조과학활동이 개시가 된 것이죠.

주요 업무로는 회지발간과 무료배포, 강연회와 세미나를 확대하는 일이었지요. 사실, 인도네시아에서는 공산주의를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 누구나 의무적으로 다섯 종교중 하나를 갖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슬람, 힌두교, 불교, 천주교, 기독교가 그것이죠. 전 국민의 85%정도가 이슬람이며 다섯 종교간에는 상대방에게 전도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된 상태라서 이슬람에 대한 선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죠. 한가지 다행스러웠던 일은 그들도 기독교가 믿는 모세오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이었죠. 이 사실이 왜 중요하냐 하면, 창조신앙을 통해서 이슬람의 지식계층에게 접근해 갈 수 있는 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번은 김선교사와 같이 반둥시의 한 강연회에 간적이 있었는데, 그 교회의 목사님은 보스톤에서 신학을 하신 분이셨고, 사회자 역시 미국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유신론적 진화론자들 이셨습니다. 저는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 창조와 진화의 두 모델을 비교하면서 설명을 했는데, 담임목사께서 나중의 강평시간에 "하나님은 지금도 진화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창조사역을 하고 계신다"고 하더군요. 당혹스러웠지만 아하, 이것이 인도네시아 목회자들의 창조과학에 대한 인식이로구나 깨닫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리고, 이곳에서의 창조과학의 활동방향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교회와 교계지도자 및 학교의 교사들이라는 인식을 하는 계기가 되었죠.

인도네시아에서도 저는 3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자녀의 대학입학문제로 부득이 귀국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요. 김 선교사는 수라바야 대학의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창조과학적 시각에서의 교육을 하시게 되었고, 바쁘신 와중에서도 시간을 내어 기관지를 발행하여 8호까지 내게 되었지요. 그리고, 지난 년말에는 교수/교사세미나가 수라바야에서 열렸는데, 우리 창조과학회에서도 조정일 교수(전남대 생물학과)를 특별강사로 파견하여 한국에서의 학교교육에 대한 사례를 소개했으며, 이것이 결실을 맺어서 금년 3월 학기부터 수라바야에 있는 페트라대학(Petra University)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처음으로 대학기관에 창조과학 커리큘럼이 개설되어 현재 35-40명의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김종성 선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던들 불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96년 1월말경에 저는 정들었던 상하의 나라 인도네시아를 떠나 정리해고의 열풍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로 6년여만에 귀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나온 길들이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로 점철된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F. 창세기를 통한 역사의 복원 필요성 절감 

6년만에 귀국하여 옛 직장에 돌아와 보니, 그다지 길지도 않은 세월이건만 왜 인심들이 그다지 차갑게 변해버린 것이었을까? 흡사 고향을 잃어버린 방랑자의 심정처럼 허무함이 마음속 깊이 짓누름을 느꼈죠 고향이란 과연 무엇일까? 옛 고향에 가봐도 소꿉친구며, 검둥강아지며, 할머님, 할아버님, 아버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무심한 소나무만이 침묵함으로 서 있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제 마음속에서는 고향을 찾아야겠다는 강한 집념에 사로 잡히게 되었지요. 잃어버린 고향! 그곳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강한 섬광 같은 것이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죠. 비록 이때 처음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고향은 하나님 나라라는 확신이 엄습해 왔고, 에덴동산에서 아라랏산으로, 우랄/알타이산맥과 중앙아시아 대륙을 지나 해돋는 동쪽 끝인 한국과 일본으로 거대하고도 장엄한 민족이동을 해온 역사의 흔적들을 샅샅히 밝혀서, 왜곡된 역사를 바르게 복원시키는 작업이 너무나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되면 성경상의 기록들이 역사적으로 사실이며, 궁극적으로는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여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선교적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죠.

이러한 역사복원작업은 자연과학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인문/사회과학분야와 같이 협력하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예컨데, 언어와 문자, 역사와 신화, 민족 문화, 유적/유물, 화석, 인종학(골상, 혈액 등), 종교와 토템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해야만 가능한 일이겠죠. 그러면, 이러한 방대한 사업을 누군가가 주도해 나가야 할텐데, 과연 누가 해야 할까요? 참으로 중요한 질문일 것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저희 학회와 창조사학회가 같이 이 문제를 협력하여 풀어 나가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저의 창세기를 보는 관점은 역사적인 면에 많은 관심을 두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례로, 최근에 제가 깨닫게 된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사건에 대해 소개해 보기로 하지요. 특히, 언어의 분화와 문자의 계보를 통한 세계민족의 소아시아 기원설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G. 바벨탑사건과 언어/문자의 계보로 본 인류의 이동경로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사건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특히, 바른 역사의 복원이라는 차원에서 더욱더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사건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핵심은 인류최초의 집단 반역사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언어 혼잡과 족보의 기록이라는 두 가지의 조처를 취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언어를 혼잡시켜 세상끝까지 인류집단을 흩으시면서도 각 집단 속에서 불신자들 속에서 살아 나갈 경건계열의 성도들이 성결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생명책의 모형인 족보를 기록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바벨탑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 무시무시했던 대홍수의 악몽이 가신지 다섯 세대(약 100년)가 지난 때였습니다. 홍수의 공포로 아라랏산 속에서 어려운 생활을 해 오던 노아의 후손들은 그 일부가 서서히 산의 북, 서, 동편으로 하산하면서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 주력부대 중 일부가 남동쪽의 옛고향을 향하여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곳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라는 거대한 강이 양편으로 흐르는 사이에 위치한 곳이라서 농사짓기에 알맞는 땅이었습니다. 이 기름진 곳에 이르자, 이미 믿음을 내 버린 그들에게는 백여년 전에 있었다는 노아 할아버지 시대의 홍수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엄습해 왔을 법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홍수로 자기네들을 벌하신 하나님께 대해 강한 반항심리가 불같이 일어났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함족에게 더욱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노아 할아버지가 자기네 가나안 후손들에게 형제들의 종의 종이 되도록 저주를 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간파한 함의 손자인 니므롯은 함족을 중심으로 거대한 음모를 꾸미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날(수메르) 평야에 거대한 성을 쌓아 적의 침입을 막음과 동시에, 자기네 집단의 흩어짐을 막기 위해 성곽을 쌓고 성 중앙에는 거대한 탑을 건설하여,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사시에 홍수가 다시 덮친다 해도 그 꼭대기로 피신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건축공사를 함으로써 자기들의 단합된 힘을 주변에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아니 저주받은 함족의 통치력을 강화하여 노아의 예언, 아니 더 정확히는 하나님의 예언이 어찌 되는지 지켜 보자는 것입니다. 탑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은 하나님께 대항하려는 것이고, 탑 꼭대기에 사람의 이름을 내자는 것은 인본주의를 표방하자는 것이며, 자기 족속들이 온 지면에 흩어짐을 막자고 한 것은 땅끝까지 정복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셨던 창조주의 말씀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추측컨데, 니므롯은 바벨탑을 쌓기 이전에 이미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였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기록들이 이 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편의 강력한 악카드족과 북방의 앗수르 족을 쳐서 점령하였으며, 더 나아가 레센이라는 커다란 성을 건축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고대 바벨론 제국으로서 세계 최초의 세계제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거대한 공사에 필요한 벽돌공장과 이 벽돌들을 서로 단단하게 연결해 주는 접착력이 강한 역청을 고아 내는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후일 조사된 바에 의하면 벽돌에는 자기네들이 당시에 하나님 대신에 창조의 신이라고 믿고있었던 '말둑(Malduk)'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바벨탑사건의 이전에 이미 문자가 존재했었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역청은 아스팔트의 원료인 타아르(tar)를 지칭하는 것인데, 이는 그 지방에 노아홍수 때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방대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건축자재를 가지고서 마침내 성곽과 탑쌓기 공사가 착착 진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게 쌓기 시작한 탑이10M, 20M, 50M 높이로 올라갔습니다. 오늘날, 이라크 지방에서 출토한 지글라트는 바벨탑의 흔적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높이가 90M에 이르는 것도 있습니다. 이처럼 탑이 올라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의 무모한 행위를 무작정 묵인만 하고 계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고 그들을 세상 끝까지 흩어지게 하자".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자 바벨론 제국은 크나큰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지요. 탑의 윗쪽에서 "벽돌 세 가마니를 올려 줘"라고 소리를 치면 아랫쪽에서는 "What did you say?"라 하고, 그러면 탑 중간에서 일하던 자들은 "뿌지타오(不知道)"라 하고,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또한 무리는"'わかりもせん" 이라고 제각각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여대니, 탑쌓는 일은 순식간에 중단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은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었겠죠. 이렇게 해서 모인 집단이 후일의 민족(民族)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죠. 따라서, 민족의 기원은 언어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어족(語族, language tribe) 라고 부르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언어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민족을 지탱해 주는 혼적(魂的)인 요소라 할 수 있으므로, 언어를 잘 가꾸어야만 그 민족의 영속성이 보장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점이 우리 크리스찬 엘리트들이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벨론 제국을 일시에 엄습한 언어의 혼잡(confused; balal,히)으로 하늘의 문(babili; gate of heaven,바)을 건설하려 했던 그들의 꿈은 산산조각 무너져 내리게 되었고, 같은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삼삼오오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이동하게 된 것이죠. 이것을 인류이동사(人類移動史)라 하는 것이지요. 이 과정은 수천 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도중에 민족들간에 크고 작은 무수한 분쟁을 겪으면서 오늘의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이것을 국가(國家)라 부르게 된 것이죠.

민족의 이동과정은 저의 추측적 견해로서는 멜라닌(melanin) 색소가 많이 분비되어서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은 햇볕을 좋아하게 되기 때문에, 자연히 햇볕이 많이 내려 쪼이는 남쪽을 향하게 되었을 것이고, 색소의 저분비로 피부가 흰 사람들은 햇볕이 적게 비치는 북녘을 향하게 되었으며, 황색인종들은 해가 돋는 동쪽을 향하여 거의 평행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게 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 후에, 정착지에서 기후와 풍토에 알맞게 적응하면서 같은 피부의 인종끼리 결합하여 오래 살다보니 피부 색깔이 유전적으로 우성인자가 되어 같은 후손들이 태어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똑같은 원리로, 골상이나 혈액형도 유전자의 우열의 법칙에 따라서 우성인자가 그 집단에 오래동안 축적되다 보니, 오늘날과 같은 인종으로 나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종의 분포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데, 셈(Shem)족은 중동지방을 비롯한 적도 북반부의 온난한 지역을 따라서 거주하고 있으며, 캄챠카 반도를 거쳐서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으로 정착하였고, 함(Ham)족은 중동지방에서 한 부류는 아프리카로, 다른 부류는 동남아를 거쳐서 인도네시아, 오스트랄리아, 폴리네시아 등지로, 야벳족은 지중해연안과 유럽 및 북쪽지방에 거주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부 인종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들도 제기되고 있는 터라, 앞으로 더 규명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예컨데, 중국민족은 피부색으로 볼 때에는 셈족이지만 제반 상황을 종합해 보면 야뱃족의 일파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으며,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던 진시황은 함족의 후예로 주장되기도 합니다. 우리 한(韓)민족 역시 피부색으로 볼 때 셈족으로 보고 있으나 바벨론 제국을 건설했던 함족설로부터 힛타이트제국을 건설했던 헷족속의 후예설, 악카드족의 후예설 및 야벳후예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들이 다양하게 주장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민족은 인류의 이동과정에서 다른 민족에게 혼혈, 동화가 되어 버린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로는 오랜 역사, 문화 및 전통의 공유, 같은 신화와 종교, 언어와 문자를 공유하면서 공통의 운명을 같이 해온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집단들이 이동할 때에는 그 만한 이유들, 예컨데, 전쟁, 기근, 종교나 미신적 터부, 질병 등이 있어야만 이동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이동경로는 아직도 베일에 가리워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아리안족이나, 동/서코오트족, 반달족, 훈족, 투루크족, 기마족의 대륙간 이동은 우리의 주목을 끌만한 커다란 사건들입니다.

이러한 민족단위의 이동은 대개가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스쳐 지나간 곳에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장례/제사의 흔적이라는 고인돌, 혼혈인종, 주거양식, 음식, 언어와 문자, 화석, 신화와 종교 등이 그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언어와 문자는 웅변적으로 인류의 이동경로를 알려주는 명백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졌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누군가가 강압적으로 없애려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정시대 때 일본인들이 우리 말을 없애려고 창씨개명에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본어를 배우게 했지만, 우리 말과 한글은 해방과 더불어 찬란하게 부활하여 배달민족의 문화를 다시 꽃피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언어와 문자 속에 나타난 인류의 이동경로를 어렴풋이나마 여러분과 더불어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H. 세계의 언어와 문자의 계보 

현재, 세계에는 4천여 의 언어가 있으나, 이 중에서 문자를 가진 것은 3백여종에 불과합니다. 언어는 크게 나누어 볼 때 인도/아리안어, 중국/말레이어, 앵글로/색슨어, 우랄/알타이어 등으로 분류되고 있지요. 이중에서 지역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라틴어(영어)〉러시아어〉아라비아어〉중국어〉인도어〉스페인어 순이며, 인구적으로는 역시 라틴어(영어)에 이어 중국어〉인도어〉아라비아어〉스페인어 순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 말은 우랄/알타이어 중에서도 알타이어에 속합니다. 이 부류에는 우리말 외에 일본어, 훈어(몽글어, 터키어), 퉁그스어(만주어)가 포함되어 있지요.

그러면, 이제부터 문자의 계보에 대해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주지하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의 점토판문자 입니다. 옛 수메르 지역이었던 지금의 이라크 남부의 우르지방에서 BC 3500여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판문자가 3,900매나 발굴되었는데, 당시에는 종이나 가죽이 없었기 때문에 진흙을 곱게 손질하여 편편하게 만든 후 말려서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그 위에 골필이나 단단한 나무를 뾰족하게 갈아서 토판에 대고 흙을 파내면서 글씨나 그림을 새겨 넣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글씨는 토판의 안쪽으로 파서 새겨졌기 때문에 음각(陰刻)문자라 불러지게 되었지요. 여기에서 수메르쐐기문자(설형문자, BC 31C)와 원(原)엘람상형문자(BC 30C) 및 이집트상형문자(BC 27C)가 파생되었지요. 이 이집트상형문자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문자들이 파생되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즉, 이집트상형문자에서 고(古)시나이문자를 거쳐서 페니키아문자(BC 12C)가 나왔고, 페니키아문자로부터 남아라비아문자, 그리스문자(BC 8C), 아람문자(BC 31C)가 갈라져 나왔죠. 다시, 남아라비아문자에서는 에티오피아문자가, 그리스문자에서는 라틴문자와 슬라브문자가, 그리고, 아람문자에서는 인도계 제문자(BC 6C)와 히브리문자, 시리아문자(BC 3C)와 알메니아/그루지아문자(BC 5C)가 탄생했습니다. 뒤이어, 시리아문자에서는 위그루(7C), 몽글문자(13C), 만주문자(16C) 등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한편, 중국한자의 모형으로 알려진 갑골문(甲骨文)은 거북이 껍질이나 짐승의 뼈 위에 새겨진 것으로서 은나라의 유적지에서 발굴이 되었는데 (BC 14C), 4,500여 글자중 겨우 1/3만이 해독이 된 상태라고 합니다. 이 글자형태가 발전하여 나중에 금문(金文, BC 15 ~ AD 3C)을 거쳐서 전서(篆書, BC 3C), 예서(隸書, 1C), 해서(楷書, 5C)의 순으로 발전을 해 왔습니다. 이 해서에서 일본의 가나(假那, 8C), 수문자(水文字, 10C), 글안문자(契安文字, 10C), 서하문자(西夏文字, 11C) 및 여진문자(女眞文字, 12C)가 나온 것이죠.

세계 최고(最古)문자에 속하는 고대 페르시아어와 바벨로니아어 및 엘람어를 처음으로 해독한 사람은 영국의 로린손 (Henry Rawlinson, 1810-1895)이라는 언어학자인데 그 일화가 재미있습니다. 테헤란에서 바그다드로 가는 길목에 케만샤(이란 서부)라는 지역에 100M가 넘는 베히스탄 이라는 바위산 암벽에 가로3M, 세로 5.5M 넓이에 쐐기형의 비문(설형문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왔는데, 1833년 어느날 동인도회사의 사관으로 부임한 로린손이라는 젊은이가 페르샤 정부의 군사고문으로 임명이 되어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암벽의 글자를 보고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에 혼자서 말을 타고서 두 번을 현지답사 하다가 어느날 마침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하단부의 고대 페르시아어를 필사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대 페르시아어는 당시에 독일 학자인 게오르그 그로테휀트(1775-1853) 및 칼스텐니이불(1733-1815) 등에 의해 어느 정도 해독이 되고 있었던 터라 그는 이러한 자료들을 참고로 하여 4O종에 달하는 문자기호를 완전히 해독하게 되었고, 고대 페르시아어를 라틴어와 영어로 대역하여 '베히스탄에 있는 페르시아어 비문'이라는 논문을 왕립 아시아협회지(1846)에 발표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니느웨와 니므롯 지방에서는 프랑스와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다수의 설형문자들을 발굴하였는데, 오늘날 이것을 '앗시리아 설형문자'라 칭하며 로린손이 발견한 '바벨로니아 설형문자'와 구분하고 있는데, 이 문자는 후일에 수메르문자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로린손은 이어서 윗 단에 새겨진 엘람어를 구사일생으로 필사하였고, 최상부의 바벨로니아어도 쿠르드족 소년의 도움으로 탁본(拓本)한 후, 1848년부터 2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 비문엔 300개의 문자가 적혀 있었는데, 그는 바벨로니아문자 연구의 대가였던 에드워드 힌쿠스목사(1792-1866)의 도움을 받아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1857년 어느날, 윌리엄 탈봇(1800-1877)이 '앗시리아/바벨로니아 설형문자로 기록된 텍스트를 하나 택하여 몇몇 과학자들로 하여금 해독케 하여 그 번역한 내용들을 서로 비교해보기로 하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번역용 텍스트로 선택한 것은 앗시리아왕인 디글랏 빌레셋1세(재위 BC 1115-1077)의 육각주(六角柱) 각문(刻文)이었다고 합니다.

이 제안에 응한 사람은 로린손과 프랑스의 설형문 연구자인 쥴 오펠(1825-1905), 그리고 에드워드 힌쿠스 등이었는데, 힌쿠스와 로린손의 해독문은 서로의 내용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으며, 따라서 1857년의 이날이 앗시리아/바벨로니아문자 해독 기념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에 의해 해독된 내용에 의하면 세 문자의 내용은 모두 같은 내용을 담고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당시의 아케메네스 왕조가 다민족으로 구성된 제국이었음을 알게 했습니다. 그 내용의 해독한 결과에 의하면 그 비문은 다리우스1세(재위 BC 522-486)가 기록한 것인데 그가 '선왕인 칸비세스 2세의 이집트원정에 따라 갔을 때 선왕의 동생이요 자기에게는 아저씨가 되는 발디라고 자처하면서 왕위를 찬탈한 마고스의 승려인 고오마타라는 자를 다리우스 1세가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암각된 글씨 위에 그려진 그림내용은 다리우스1세가 거짓 왕인 고오마타를 발로 밟고 있는 장면과, 목에 쇠사슬을 메고 끌려가는 9인은 다리오1세의 등극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제국내 여러 부족의 주모자들이라고 합니다. 페르시아의 알케메네스 왕조를 일으킨 큐로스2세(재위BC 559-529)는 칸비세스2세와 발디아의 아버지였으며, 다리우스1세는 이들의 분가(分家)였기 때문에 왕위등극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이러한 비문을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 후에도 로린손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던 앗시리아계통의 비문들을 1861년부터 1884년에 걸쳐 연구하고 '서아시아 설형문자'(전 5권)를 출판한 후 1895년에 런던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상의 연구내용을 종합해 보자면 티그리스와 유프라데스강 사이에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엔 앗시리아가, 남부엔 바벨로니아가 각각 자기 고유의 말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셈어에 속하는 것입니다. 남부 바벨로니아의 수메르인들이 발명한 수메르어를 바벨론 사람들이 자기 것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바벨로니아 설형문자는 사실은 수메르 설형문자라고 합니다. 베히스탄 비문의 둘째 칸에 새겨진 엘람문자는 수메르어와 같은 계통의 언어였던 것으로 고증이 되고 있습니다.

그 후에 프랑스 연구팀이 고대도시인 라가슈(1877)를, 미국 펜실바니아연구팀이 닛풀(1889)을 각각 발굴했는데, 라가슈에서는 앗시리아/바벨로니아외의 다른 여러 다른 유적들도 발굴이 되었고 닛풀에선 수메르문자의 점토판을 3만점이나 발굴해 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메르인과 수메르어가 어떤 계통의 것인지는 아직도 베일속에 가리워져 있다고 합니다.

 


출처 - 창조지, 제 112호 [1999. 1~2]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9

참고 :

임번삼
2004-07-26

간증 및 창조과학회 21세기의 비전 (3)

임번삼


I. 우리 문자의 기원설

그러면, 우리 말의 경우는 어떠 할까요? 잘 알려져 있듯이 통일신라 시대에 설총이 한자의 음과 뜻을 따서 간편하게 만든 이두(吏讀)가 향가에 사용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일본 가나(假名)의 기원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집현전(集賢殿) 학자들을 통해 만드신 28자의 훈민정음(訓民正音)에서 비롯된 것임은 잘 알고 계시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훈민정음이 옛 전자(篆宇)를 본받아 만든 것이라고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의 세종실록 25년 12월조에 기록되어 있는데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과연 옛 전자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학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학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몇 가지 내용을 간추려서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1) 세종대왕 친제설

이 주장은 1940년 안동에서 훈민정음해례본(세종 28년 9월 1O일)이 발견되면서 한글의 기원설로 확고하게 우리나라 학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주장이기도 하지요. 이 책에 의하면 '초성글자의 기본자는 天.地.人의 3재(三材)를 본 떠 만들었다.' 고 명백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죠. 조선조의 제 4대 성군인 세종이 집현전을 개설하고 그 곳에서 정인지, 성삼문, 신숙주 등의 학자들로 하여금 한자와는 다르면서도 사용하기에 쉽고 간편한 글자(諺文)를 만들도록 하여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세종시대 이전에는 어떠한 형태의 문자도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전제가 따르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에 의한 독창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설이지요.

(2) 산스크리트어(梵字) 유래설

  조선조의 제9대왕인 성종때 제기된 설인데. 성현이라는 학자는 '용재총화'라는 저서에서 "초종성 8자, 초성 8자, 중성12자의 글자모양은 범자의 글자모양에 기대어 만들었다."고 하여 처음으로 범자기원설을 제기하였죠. 그 후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우리나라 언문글자의 모양은 모두 범자를 본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글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3) 파스파 유래설

파스파문자는 인도계의 티베트문자에서 파생한 것으로 원나라 세조(쿠빌라이)때 훈민정음보다는 170년이 앞서 제정된 것으로 중국 내륙지방에서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선조 후기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원(元)의 파스파는 소리글자며 중국글자는 모양을 주로한 글자이므로 우리 언문과 가까운 글은 몽고글자이지 중국글자가 아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실 때 명나라 학사인 황찬이 귀양살이를 하는지라 성삼문 등을 보내어 질문하게 하였는데 13번이나 왕래하게 하였다. 이 때가 원이 망한지 겨우 79년이 지난 때이므로 황찬이 우리나라에 전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몽고글자에 대한 지식일 것이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유희는 언문지(諺文誌)에서, 또 최근엔 이근수 박사(훈민정음 신연구, PP. 185~192, 1995)가 파스파문자와 훈민정음 두 문자간의 창제배경과 목적이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한 바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역사학자인 레드야드 역시 고전(古篆)의 뜻을 몽고전자(蒙古篆宇) 의 약자로 보고 이것이 곧 파스파문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주장한바 있습니다. 본설의 강점은 세종 당시에 잘 알려진 창제문자라는 점, 글자의 모양이 네모꼴로 유사하며, 특히 ㄱ, ㄴ, ㅂ, ㅅ의 모양이 비슷한 점, 문자의 구성원리와 운용이 비슷한 점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고전(古篆)기원설

전서(篆書)란 BC 3세기경 중국에서 사용하였던 한자의 한 형태인데, 이것을 모델로 하여 한글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정인지의 훈민정음서문, 최만리의 언문창제반대상소문,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등에서 주장되었던 설이지요.

이 밖에도 서장문자기원설, 창호상형(窓戶象形)기원설(에카르트,1928), 太極事象기원설, 거란 여진문자기원설, 일본의 神代文字기원설, 팔리문자기원설 등이 있으나, 이보다는 다음에 소개하는 가림토기원설이 가장 설득력있게 대두되고 있으므로 그 개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5) 가림토(加臨土/加臨多文) 유래설

이 설은 고려말 이암(李庵, 1297-1364)이 저술한 단군세기(檀君世紀)에 기록되어 있는 정음(正音) 28자가 가림토문자라는 설입니다. 그리고, 그의 현손인 이백(李佰, 1455-1528)이 중종때 찬수관(撰修官)이 되어 편찬한 태백일사(太白逸史)에도 가림토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속에는 태백교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逸新考)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단군을 시조로 하는 단군조선의 민족사를 편찬하는 과정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다시 제기가 된 것은 83년 10월에 열렸던 제2회 한국사 학술대회에서 재야 사학자인 안호상 박사 등에 의해서 입니다. 그는 단군세기를 인용하여, 3세 단군인 가륵(嘉勒)이 재위 2년(BC 2181)에 삼랑 을보륵(Z普勒)에게 명하여 正音 38자의 가림토문자를 만들었는데, 이 38자에서 10자를 제외한 28자가 훈민정음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한자의 위세에 눌려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으나 일본에서는 신대문자(神代文字)의 일종인 아히루문자(アヒル文字)로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최근엔 개천학회 회장이었던 송호수 박사(광장,84.1월호)도 세종 이전에도 가림토문자가 이미 존재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BC 2181년이라면 수메르상형이나 이집트상형문자가 있었을뿐 중국의 갑골문자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때인데 어떻게 음소문자인 가림토가 생겨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지요. 더구나, 가림토기원설의 출처인 단군세기(檀君世紀)는 1911년에 계연수가 편찬한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들어있는 내용인데, 이것이 고려말에 쓰여진 이암의 단군세기 원본의 내용과 같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근수 교수는 단군세기 원본에는 가림토의 내용이 없는데 후일에 가필하여 첨가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림토문자는 11-17세기에 중국에 흩어져 살았던 유태인들이 히브리어를 본떠 만들었다는 조철수씨(신동아, 97년5월호, PP.360-381)의 주장과 세종이전, 어쩌면 단군조선 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졌었다는 두 설이 대립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Ⅱ. 훈민정음, 가림토문자, 히브리어의 유사성

그러면, 조철수씨의 가림토기원설(신동아, 97년 5월호, PP.360 373)에 대한 개요를 좀 더 소개해 볼까 합니다. 11-17세기에 걸쳐 중국에 거주해 왔던 유대인들이 1489년에 개봉부(開封府)지방에 중국 유태교인 청진교(淸眞敎 또는 桃筋敎)의 예배당인 청진사(淸眞寺 또는 禮拜寺)를 중건하면서 이를 기념하여 세운 한자로 기록한 석비(重建淸 眞寺記)에 의하면 그들은 아담의 19대손인 아브라함의 후예로서 천축(天竺)에서 하늘의 명을 받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17세기까지도 녕하(寧夏), 운남(雲南), 광동, 북경 등지에 수만명이 중국의 높은 관직에 오르며 살았으나 18세기부터는 그들의 회당터(17m), 비석(4개). 성서두루마리와 기도문만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조철수씨의 주장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중국계 유태인이 만들었다는 가림토문자에서 왔으며, 이 가림토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이렇습니다. 먼저, 자음을 보면, 히브리어는 22자, 가림토는 38자, 훈민정음은 28자 입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훈민정음과 가림토의 자음은 서로 닮은 글자가 매우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 놀라움을 줍니다.

정인지가 쓴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서문에서 훈민정음 초성의 음운체계는 5음(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이 기본인데 여기에 반설음, 반치음을 합하여 중국처럼(宋 ; 洪武正韻序) 7음체계로 분류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훈민정음의 음운체계는 7음이면서도 그 기본은 히브리어처럼 5음체계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의 해설은 성리대전(性理大全), 절운지장도(사마광; 切韻指掌圖,1019-1086)등의 역리에 따라 초성을 풀이했습니다. 즉, 사람의 성음(聲音)을 5행(五行)에 근본을 두고 오음(五音), 사시(四時), 음악의 오음(五音), 방위(方位)등과 관련지어 설명을 한 것입니다. 중국의 오음은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 목화토금수)이나 훈민정음은 후아설치순(喉牙舌齒脣: 수목화금토)으로서 히브리의 '창조서'와 그 순서가 일치하는 사실이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창조서에서도 음운체계를 사방(四方), 사시(四時), 오모음(五母音)등 숫자와 역리로 풀이한다는 것이죠.

히브리어의 음운서인 창조서(쎄페르 예찌라, AD 200-400)는 자음 22개의 신비함을 역리로 해석한 책이라 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자음은 BC 3세기에, 모음부호는 AD 9-1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이 창조서중 가온(Saadia Gaon, AD 950-1000)이 편찬한 기도문을 중국내의 유태인들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2장 3절에 22개 히브리 자음에 대한 5음체계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2개의 기본자는 3모자(母字)와 7복자(復字) 및 12보통자(普通字)로 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세 모자는 불(sh; 하늘), 물(mayim; 땅), 바람(avir; 사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 셋은 모든 것의 근원이며 그 하나에서 셋을 알고 셋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태백교의 근본철학인 삼일신고의 주장과도 상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서로 닮은 데가 많다는 것이죠. 하지만 조박사의 이론에 반대하는 이론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창호상형설을 주장했던 에카르트는 히브리문자와 한글의 글자꼴이 완벽히 닮은 것이 아니라 하였고, 권재선 교수는 가림토가 조선조말기에 중국말 표기를 위해 만들어진 한글의 변형체라 했으며, 김정수 교수는 히브리어에서 한글로의 발전과정이 없이 비약한 점이 비논리적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이기림; 신동아, PP.376-381,97년 5월호).

이상에서 살펴 보았듯이 현존하는 세계의 모든 문자들이 기본적으로는 중동지방에서 유래하여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데, 메소포타미아지방의 수메르문자로부터 이집트상형문자로, 이집트문자에서 페니키아문자를 거쳐 그리스와 아람문자로, 그리스문자에서 라틴계와 슬라브계 문자로, 아람문자에서 인도/아리안문자와 시리아, 위글, 몽고, 만주문자 및 아라비아문자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인류의 기원은 중동지방에서 출발했으며 그 곳으로부터 인류는 문자의 발달과정에 나타났던 루우트를 따라서 이동해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한자의 기원이 문제가 되는데, 갑골문자의 출현 자체가 BC 1600년경으로 수메르나 이집트문자에 비하면 1700여년의 격차가 있기 때문에 일단은 한자의 기원 역시 중동으로 추리하여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Ⅲ. 한국창조과학회의 비전

창세기에 기초하여 하나님에 의한 천지와 만물의 창조를 믿는 우리 창조과학회의 사명은 참으로 막중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수주의, 종교, 이념, 학문적 편견 등으로 왜곡되어 온 세계사를 바로 잡고 있었던 그대로의 정사(正史)를 바르게 복원하는 일은 바른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과제라 생각합니다. 역사가 정사로 복원될 때 우리 앞에는 하나님을 반역하다 무너져 내린 바벨탑이 나타나 보일 것이며, 그 너머로는 아라랏산에 정박했던 노아의 방주가, 또 그 너머로는 패역했던 인류에게 내리셨던 무시무시한 홍수의 물결이, 선악과를 따먹고 울면서 낙원에서 쫓겨났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이, 그리고, 마침내는 저 웅장했던 천지창조의 장면과 마침내는 천지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 눈앞에 선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러한 광경을 학문을 통해 바라보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게 될 것이며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창조과학회가 앞으로 가져야 할 비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합니다.

   1) 진화론으로 왜곡된 학문을 바로 잡아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밝힌다.

   2) 인간존엄성의 회복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중심적인 바른 인생관을 갖도록 인도한다.

   3) 굴절된 역사를 바르게 복원하여 성경기록의 역사성을 증거한다.  

   4)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연/인문/사회과학 분야간의 협력방안을 적극 모색한다.

이러한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몇 가지의 구체적인 과제로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검토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러한 일은 본 학회와 한국창조사학회가 주관이 되어 공동으로 추진한다면 더욱 효과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 진화론에 대한 이론적 비판과 창조과학적인 해답제시

   2) 저술활동의 활성화(각 전문분과별)

   3) 교육계에 커리큘럼 확대

   4) 본 학회의 본격적인 학술활동 활성화

   5) 창조과학을 통한 선교활동 시도

   6) 창조과학관〈자연사박물관)의 건립운영

   7) 창조과학 홍보활동의 강화


 지금까지 긴 시간을 경청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이만 저의 강연을 끝맺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출처 - 창조지, 제 113호 [1999. 3~4]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8

참고 :

현천호
2004-07-26

자연을 통해 본 하나님

 창조(설계)의 증거들 


I. 우주의 신비 

봄이 되어 신록이 소생하고 각종각색의 꽃이 피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하늘의 무수한 별이 반짝이며 체계적으로 운행되고 있는 광활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우주의 신비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우주의 신비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한 것은 망원경과 현미경이 발명된 1600년 경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시대에 네델란드에서 한즈 리퍼쉐이가 망원경을 발명했고, 또 자카랴스 잔슨이 현미경을 발명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하늘의 별들을 관측하기 시작한 것은 1610년이었으며, 그는 달의 분화구를 관찰했고 목성의 위성 중 4개를 관측했다. 그후 천체망원경은 계속 발달되어 1990년 4월에는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의해 허블 우주망원경을 지상 500km 상공궤도에서 돌게 함으로써 천체 관측정확도를 지상에서 보다 10배 이상 개선시킬 수 있게 되었다. 허블 우주망원경으로는 수십억 광년까지의 원거리 천체들을 관측할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 은하계에는 2000억개의 별이 있으며 우주에는 이와 유사한 은하계가 1000억 개 정도가 되며, 우리 은하계의 직경은 10만 광년이며, 우주의 직경은 200억 광년 정도가 된다고 추정한다. 달은 27.32일만에 지구 주위를 한바퀴 돌고 있으며, 지구의 태양 주위 공전 주기는 365.26일이며 태양도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 2억 5천만 년을 주기로 은하계의 중심을 향하여 회전하고 있다. 은하계의 다른 2000억 개의 별들도 이렇게 공전하며 천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은하계는 이와 같은 회전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어딘가를 향해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있을 것이며, 또 우주의 다른 1000억 개의 은하계들도 우리 은하계와 유사한 운동을 하고 있을 것이라 하니, 우주의 그 크기와 운행 질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우주의 끝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찬양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19:1). 한편 물질의 미시세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어떠한가? 193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었으며 원자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회전하고, 원자핵은 중성자와 양성자로만 구성된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입자가속기가 개발된 후 소립자 연구가 활발해졌으며 중간자(Meson), 쿼크(Quark) 등 현재까지 발견된 소립자 수만 하더라도 수백 종에 이른다. 그러나 물질의 근본이 무엇인지, 아직 현대과학으로도 완전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생명의 신비는 또 어떠한가? 다 죽은 것 같이 생각된 딱딱한 씨앗을 봄에 밭에 심으면, 비가 오고 태양을 쪼이면서 새싹이 나고, 자라서 마침내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를 맺어 추수하게 된다. 철새들은 어떻게 그 길을 알아서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수 천리를 날아 왔다가, 여름이 되면 북쪽으로 되돌아가는가? 사람들의 자녀들은 어떻게 부모의 모습과 그 성격까지도 그렇게 닮을 수 있단 말인가? 또 부모는 그 낳은 자식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참 신비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우주의 신비들과 생명의 신비들이 우연의 결과일까, 아니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설계)의 결과일까? 성경은 그 첫머리에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1:1)

또 성경은 자연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볼 수 있음도 알려주고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O)

 

Ⅱ. 창조(설계)의 증거들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세계에는 어떤 설계의 증거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정교한 천체 운동과 천문항법

해, 달, 별 등 천체 운행이 시간(년윌일시)에 따라 그 위치가 정확하기 때문에 선박으로 대양을 항해할 때 3개 이상의 천체의 양각을 육분의(Sextant)로 측정하고 그 때의 시각을 스톱워치(Stop Watch)로 정확히 측정하면 천측력(Almanac)에 의하여 선박의 위치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이것은 그 무수한 천체들의 운동이 얼마나 규칙적이며 정교한가를 말해준다. 우리가 차고 다니는 시계는 그 시침, 분침, 초침이 규칙적으로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다. 사람이 그렇게 돌아가도록 설계하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원인이 있었기에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인과율의 법칙이다. 하물며 시계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광대하고, 무수한 하늘의 별들이 시계보다 더 정확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있는 우주가 우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설계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2) 태양과 달의 시각도

태양의 직경은 달의 380배이며, 지구로부터 태양의 평균거리는 달까지의 평균거리보다 390배가 멀다. 그래서 지구에서 관측하는 시각은 태양이나 달이나 0.53°로서 소수점 이하 두 단위까지는 똑같다. 그래서 태양과 달이 사람의 눈에는 같은 크기로 보이는 것이다. 


(3) 지구의 환경

지구에는 대기층이 있어 산소공급, 온도조절, 공기의 순환뿐만 아니라, 그 밀도가 적절하여 매일 2,000만개의 유성낙하로부터 지구를 보호한다고 한다. 물이 있어 생명체를 유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물은 4℃가 최대 밀도(보통물질은 온도가 낮을수록 밀도가 크다)이기 때문에 얼음이 물보다 가벼워 추운 겨울에도 바다나 강물의 표면에만 결빙이 되고, 그 밑에 서식하는 수중생물들은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흙은 무진장의 무기물을 함유하고 있어 식물이 이것을 소화하여, 결국 동물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녹색식물은 탄산가스를 마시고 산소를 내뿜으며, 반면에 동물들은 산소를 마시며, 탄산가스를 내뱉는데 이러한 조화도 신비스러운 것이다.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것은 대기, 물, 흙과 같은 환경 외에도 태양과의 거리, 지구의 크기, 자전축의 기울기, 자전 속도 등, 천문학적 환경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이상과 같은 지구의 환경이 우연의 산물일까, 아니면 그렇게 설계된 결과일까 생각하게 한다. 


(4) 동물에서 보여지는 설계의 증거들

〈물고기와 조선 공학〉

사람들이 큰 배를 만들 때 배의 폭을 너무 넓게 하면, 짐은 많이 실을 수 있으나 배가 가지 못하고, 폭을 너무 좁게 하면 짐을 많이 싣지 못하고, 배가 불안정해지는 등의 어려움에 부딪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조선공학자들이 컴퓨터의 모의시험과 모형을 통한 수조시험 등 연구한 결과 배의 길이에 대한 폭의 비율이 0.21~0.30 사이라야 효율적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물고기들의 길이에 대한 폭의 비율을 보면 고래가 0.21, 돌고래가 0.25, 상어가 0.26, 참치가 0.28 등으로 조선공학적으로 연구한 결과로 알게 된 그 범위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고기들이 조선공학을 공부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비율의 균형 잡힌 몸매를 갖고 있는 것일까? 


〈독수리와 항공 공학〉

사람들이 비행기를 만든 초기에 비행기가 수평으로는 잘 날았으나 급강하를 하게 되면 공기의 흐름때문에 날개에 심한 진동이 생겨 날개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아서 추락하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항공공학자들은 고민하였다. 그러던 중 독수리가 토끼와 같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하여 급강하하여 먹이를 낚아채고 다시 안전하게 공중으로 날아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면밀히 관찰하게 되었다. 독수리의 비행술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독수리가 급강하 할 때 날개깃털 중 맨 앞의 깃털이 위로 들려서 그 사이로 약간의 공기의 흐름이 생기고 이 흐름이 전체 깃털의 진동을 방지하면서, 안정된 비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항공기 설계자는 이 원리를 이용 전연장치(Flap)를 고안하여 날개설계에 적용함으로서 급강하시의 비행기 추락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항공공학자들은 독수리에게 기술료도 지불하지 않고 기술 이전을 받은 셈이다. 사실은 그 지적소유권자는 독수리가 아니라 독수리를 설계한 창조주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박쥐와 하이테크 시력〉

우리는 흔히 박쥐는 눈이 나빠서 자신의 초움파 소리를 입으로 내어 그 반향음파를 귀로 듣고, 물체를 인식하며 날아다닌다고 알아왔다. 물론 이것도 사실이며, 레이더(Radar)나 소나(Sonar)가 바로 이 원리로 물체의 방향과 거리를 탐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박쥐가 자신의 초음파를 단순히 듣는 것만이 아니라 초음파 반향을 받아들여 두뇌에서 3차원 화면을 구성하여 주변의 물체를 실제로 입체적으로 보고 있으며, 그 해상력이 1mm 단위까지도 정확히 볼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즉 박쥐는 3차원 초음파 영상탐지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최첨단 과학기술의 덕택으로 오늘날 2차원 초음파 영상탐지기를 개발하여 의학적 심장병 또는 산부인과 진단 등에 사용하고 있으나, 아직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3차원 초음파 영상탐지기는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쥐의 눈, 입, 귀, 두뇌의 조직화되고 유기적인 기능은 창조주의 설계의 증거가 아닐까? 


(5) 사람과 로봇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특히 컴퓨터, 전자 및 광학, 정밀 기계, 소재, 시스템 설계 등 각 분야의 기술이 혁신적으로 발전됨에 따라 사람이 개발한 로봇이 마치도 사람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을 것같은 시대를 맞이하였다. 공장자동화나 사무자동화는 물론, 선박의 대양 항해도 사람의 도움없이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며, 우주왕복선도 우주 항공사가 승선하지 않고도 달이나 화성까지 가서 탐험하여 실험자료를 지구에 송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요, 인류의 업적이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지혜로 설계하여 제작한 결과라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그런데 로봇은 역시 로봇이며 사람의 기능을 따를 수 없는 분야가 많고, 유기적이 못되며, 생명이 없다. 기계적인 기능면에서 쉬운 예를 들자면, 사람은 조금만 훈련하면 두발 자전거를 잘 탈 수 있으며, 위험한 장소는 피해서 운전할 수 있으나, 현대 과학기술로도 아직은 두발 자전거를 안전하게 운전하며 탈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할 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인체의 기능은 또 얼마나 정교하고 유기적인가. 눈은 1백 분의 1W의 빛을 식별할 뿐 아니라, 먼 산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손에 편 책을 읽을 수 있듯이 초점거리 조절이 자동화되어 있으며, 귀로는 수백 m 밖의 소리를 식별하며, 코로는 7가지의 냄새를 분별하며 혀로는 맛을 감지한다. 인체의 지휘, 통제 통신 및 정보(C3I : 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and Intelligence) 본부라고 할 수 있는 두뇌에는 뉴런(Neuron)이란 신경세포 5백억 개 정도가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각각의 세포는 또 신체 각 기관의 세포와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모든 신체와 정신작용을 총괄적으로 지휘 통제하며, 종합적인 사고를 수행하는 기억과 논리, 통찰력, 나아가서는 창의력까지 발휘한다. 또 인체에는 60조 개 이상의 세포가 있다고 하며 세포 속에는 생명체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유전정보의 저장고 DNA가 있다. DNA에 의하여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유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DNA의 종류에 따라 후손에게 그 특성이 전달되는 것이므로, 장구한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콩이 팥으로 바뀔 수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녀가 부모를 닮는 신비 또한 DNA에 담긴 개개인의 다른 정보가 후손에게 유전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지정의를 갖춘 인격체이다. 로봇은 그렇지 않다. 사람에 비하면 하찮은 일개의 로봇도 사람이 설계하였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거든, 하물며 더 복잡하고 정교하며 유기적이며 생명이 있는 사람이 창조되지 않고, 장구한 세월에 걸쳐 하등동물에서 진화하다보니 오늘의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진화론을 어떻게 지성인으로서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오히려 성경 창세기 1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전능하시고, 고도의 지혜자이신 하나님의 창조(설계) 섭리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 훨씬 믿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시편139:14). 


(6) 열역학 제1 및 제2법칙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 알려진 이 법칙을 요약하면 "모든 에너지(물질)는 저절로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으며, 다만 그 형태만 변할 뿐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초월적인 창조주를 가정하지 않고는 오늘날 우주의 엄청난 에너지(물질 포함)를 설명할 수가 없다. 현대 우주기원론 중에서 대다수의 천문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론은 대폭발 이론(Big-Bang Theory)이다. 대폭발이론이란 태초(약 150억년 전)에 엄청난 고온의 불덩어리 같은 우주난(Cosmic Egg)이 대폭발을 일으켜서 점차 팽창하면서 수축하는 과정에서 원자들이 생기고 뜨거운 원자들의 가스가 냉각되면서 별과 은하들이 생겼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런데 대폭발을 일으킨 맨 처음 우주난은 어디서 왔으며 처음 폭발은 어떻게 일어났으며, 또한 어떤 과정을 거쳐 별들이 현재의 우주와 같이 분포되었는가 등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대답하지 못한다. 만일 저절로 물질(에너지)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된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엔트로피(무질서도) 증가의 법칙이라 불리는 이 법칙을 요약하면 "모든 시스템의 반응은 엔트로피를 증가하는 방향으로,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즉 유용한 에너지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주의 역사는 완벽한 질서가 유지되었던 태초와 완전한 무질서의 종말 즉 열적 죽음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성경은 놀랍게도 그 첫 책인 창세기에서 천지창조를 선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우주의 종말을 예고하였으며, 그 후에 있을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해서도 묘사하였다.


Ⅲ. 맺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우주와 생명체의 창조(설계)의 증거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우주와 생명체의 창조주가 계심을 자연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갈릴레오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다. 하나는 성경이란 책이요, 다른 하나는 자연이란 책이다."

우리는 자연이란 책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읽을 수 있으며, 성경이란 책을 통해서는, 창조주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또한 죄로 인하여 의로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겨진 우리 인류에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그리스도를 십자가상의 희생의 제물로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과의 화해의 길을 열어 주셨고 영생을 약속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3:16)

이 작은 글이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잘못 배우고 자라온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너져 가는 창조신앙이 회복되는 계기가 되고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랑하는 우리 이웃들에게는 자연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성경을 통하여 독생자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는 이 축복된 복음을 믿게 되는 동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이만 맺는다.



출처 - 창조지, 제 109호 [1998. 7~8]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7

참고 :

임번삼
2004-07-26

간증 및 창조과학회 21세기의 비전 (1)

임번삼


A. 어릴 때 가졌던 수 많은 질문들! 

오늘 창조과학회 회원의 날에 특강의 기회를 갖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아울러 저의 부족한 강연내용이 아무쪼록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께 조그마한 자극과 도전이 된다면 더없는 다행으로 알겠습니다. 

저는 1944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는데, 왜정시대의 말기에다 곧 이어 터진 6.25 동란으로 그 당시의 생활상은 처참한 굶주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저의 가정은 5O년도에 아버님이 서거하신데 이어 민족상잔의 와중에서 할아버님과 큰 형님을 잃게 되었으며, 계속되는 피난생활 끝에 가족들은 서울과 정읍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할머님과 누나, 여동생과 같이 셋이서 시골에 남게 되었는데, 초등학교까지는 십여리나 되는 먼 길을 다니게 되었지요. 학교에 가려면 도중에 넓은 개천이 있었는데, 비 오는 날은 그곳을 건너다가 몇 십미터를 떠 내려가서 가까스로 헤엄쳐 나오곤 했습니다. 지금까지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온 것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어찌나 굶주렸던지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하게 느껴집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일중 하나는 언젠가 삼일간을 굶었더니 얼굴이 누렇게 붓고 황달기가 생겨서 입으로 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줏어 먹으리라 다짐하고 집을 나섰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땅 위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두가 흙과 돌맹이뿐이었고 풀이라는 풀은 이미 다 뜯겨서 자취도 없었고, 나무껍질들 역시 멀겋게 벗겨진 채 앙상한 속살만 드러내 놓고 있는 게 아닙니까. 나뭇잎이나 열매들도 모조리 먹혀서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올라갈 수 없는 높은 가지 끝에 붙어 있는 두서너 개의 잎사귀들만이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라도 하는양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 때에 느꼈던 그 절망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던 저에게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생에 대한 의문들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도대체 왜 사는 것일까? 생노병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해결방법은 없을까?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은 나와는 무슨 상관이라도 있는 것일까? 산속에는 왜 독버섯이며 옻나무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일까? 육식동물들은 왜 연약한 초식동물들을 잡아 먹어야만 사는 것일까? 세상에 악이란 왜 존재할까?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란 없을까? 세상엔 왜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공존하며 악은 어디서 온 것일까? 

끝없이 이어지는 이러한 의문들은 번번히 메아리 없는 독백으로 끝나곤 했지만 그것은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후일에 제가 성경과 만났을 때 그러한 의문들에 대한 궁금증들이 컸던 만큼 더욱 확고한 해답을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잦은 피난생활 속에 저는 6학년 반학기를 서울의 교동국민학교로 옮겨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살았던 곳은 광화문 부근의 당주동 이라는 곳이었는데, 한 울타리 내에 15세대가 같이 살았으니 얼마나 북적거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곳에서 친구의 소개로 무교동에 있었던 중앙성결교회에 나가게 되었지요. 그 후, 서울시내 이곳 저곳으로 잦은 이사를 다니면서도 대학교 졸업시까지 맹목적일 정도로 신앙생활에 열중했었는데,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한가지 예를 들면, 극장구경을 중項고등학교 6년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극장에 가면 안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어기고 가게 되면 선생님들에 대한 불순종이 되겠고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날은 항상 주일날이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갈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신앙생활의 패턴이 깨어진 것은 해군장교로 입대하면서부터 였습니다. 하루는 당시에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거기에 쓰여진 한 문구에 제 마음이 사로 잡히게 된 것이었죠. '새는 알을 까고 나와야만 구만리 장천을 나르며 눈 아래로 펼쳐지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 만일, 알속에 그대로 갇혀 있다면 어떻게 저 광활한 세상을 구경인들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굵은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껍질을 깨는 일은 괴롭고 고통을 수반하나 껍질을 깰 수 있는 자만이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또 다른 세계를 살펴 볼 수 있게 된다.' 그렇다! 나도 나를 둘러 싸고 있는 옛껍질들을 깨고서 날아 보자. 높히 떠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 봐야만 더 깊은 세상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해서 나는 1O여년 간에 걸쳐 그토록 열성적으로 심신을 바쳐 왔던 신앙생활의 틀을 훌훌 털어버리고 하나님 앞을 떠난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흡사, 가인이 하나님 앞을 떠나 갔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때의 심정은 뭐랄까 공허하면서도 해방감 비슷한 느낌을 받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 후로 모든 일은 당연스럽게도 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결정, 처리하였고 경남 진해시에서의 3년 3개월에 걸친 군생활은 서울의 가족들로부터 떠난 생활이었기 때문에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자유로운, 지금 생각해 보면 타락적인 생활을 즐기게 된 것이었죠. 특히, 노름과 술은 거의 매일같이 빼 놓을 수 없는 친구가 되었지요. 이러한 생활은 제대를 하고 당시에 부산에 있었던 미원(주)에 들어간 후까지도 간간히 계속되었지요. 

1980년도에 광주사태가 발발하면서 저는 인생의 주요한 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무력감에 대해 깨닫는 계기가 되었지요. 한 쪽에서는 죽네사네 하는데 텔레비전이나 신문들은 선량한 국민들이 광주사태에 대한 헛된 루머에 현혹이 되지 말고 자신들의 맡은 업무에나 충실히 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내용의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이러한 현실을 비판이라도 하는 지식계층들은 남산의 악명 높은 안기부에 끌어다가 뺑뺑이를 돌리는, 그리고 정의 아닌 것이 '정의사회의 구현'을 외쳐대는 현실 앞에서 깊은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되었지요. 이러한 절망감은 급기야 인생의 허무감으로 이어졌고, 현실의 높은 벽을 넘을 수 없음을 느끼게 된 저는 마침내 정신적인 혼란을 느끼게 되었지요. 

매일같이 잠을 못 이루던 어느 날, 집사람의 권고도 있고 해서 하루는 인근 상가에 들리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최귀라 복음성가테이프(4개)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집사람은 초저녁 잠이 많아 일찍 잠자리에 드노라면 저는 제 공부방으로 나와서 그 테이프를 듣곤 했지요. 테이프가 시작되기 전에 최귀라씨 부부가 간절히 기도를 하더군요. "하나님, 이 찬양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의 감화를 주사 하나님을 발견케 하옵소서." 이러한 기도를 듣는 순간 제 마음은 이상한 감회에 사로 잡히게 되었지요. 어두운 방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나에게 들려오는 찬양소리들은 메말랐던 저의 마음속으로 촉촉히 젖어들기 시작했지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천국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자비하신 보좌앞에 꿇어 엎디어 자복하고 회개하니 믿음주소서..."  생명을 살리는, 천상에서 떨어지는 찬송소리는 사막처럼 메말랐던 내 마음밭에 소나기처럼 쏟아져 들어 왔으며, 나의 무릎은 어느새 꿇어 앉게 되었고 두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쉬지 않고 두 뺨위로 흘러 내렸지요. 이런 식으로 며칠을 지내다 보니 내 마음은 서서히 평온함을 되찾게 되었고 성경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가 3층에 있는 강변교회(김명혁 목사님 시무)에 새신자로 등록을 하고서 그 곳에서 성경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지요. 성경책이 방대하기 때문에 저는 우선 다급한 대로 이 세상이 왜 이토록 모순 투성이인지 세상의 창조원리에 대해 알아 볼 양으로 창세기를,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내려 오셨던 분이 예수님이라고 하는데 오셔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알아 보고자 마태복음을,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탄생하여 어떻게 세계로 퍼져 나갔는지 선교의 과정을 알아 보기위해 사도행전을, 마지막으로 이토록 이그러진 세상이 종국적으로 어떻게 종말을 고하고 신천신지가 열리게 되는지 알고 싶어서 요한계시록을 우선적으로 골라서 읽어 보기로 하였지요. 그리고 창세기를 오래간만에 펼쳐드는 순간 저는 이상한 감동에 사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제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B. 창세기와의 만남 

창세기 첫 장에 나오는 귀절은 저의 시선과 마음을 다른 곳으로 떼어 옮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그것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며 용솟음하는 역동적인 외침이었고, 저 높은 하늘 위로부터 금속성 소리를 내면서 눈송이처럼 떨어져 내려오는 위로의 말씀이었으며, 혼탁한 이 세상을 향하여 외치시는 하나님의 호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귀절이 뜻하는 바를 좀 더 자세히 알아 보고 싶어서 몇 권의 참고서적들을 살피게 되었고 창세기와 관련된 설교나 강연이 나오면 주의 깊게 듣게 되었지요. 이런 식으로 창세기 공부를 해 나가던 과정을 통하여 어릴 때부터 마음 속으로 가져 왔었던 인생과 우주만물에 대한 수많은 의문 사항들이 하나씩 둘씩 풀리게 되었고 그 덕분에 이제는 적어도 제 자신이 과거에 가졌던 의문사항들은 놀랍게도 거의 완전히 풀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감격적으로 깨닫게 되었던 창세기 1장의 개요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들(Elohim)이 아무 것도 없는데서 부터 시간(berishith)과 공간(하늘들, shamayim)과 물질(땅, 원소, erets)을 만들어 내셨다(창조, bara)'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드신 상태가 혼돈하고(wasteness), 공허하며(emptiness), 흑암(darkness)에 싸인 혼돈한 모습(chaos)이었다는 것이지요(창1;2). 즉 무질서도가 극에 달한 상태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신이 찾아 오셔서 질서를 갖춘 만물들(cosmos)을 첫 날에 만드셨던 원소들을 이용하여 6일간에 걸쳐서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우주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만드셨는데, 하나님의 뜻에 맞게 다스릴 수 있도록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생기(영혼)를 코를 통하여 불어 넣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는 이유는 만물의 제일생성원인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 되어야 마땅하며 우리가 이러한 원리를 확실히 깨닫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 중심적인 인생관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time/berishith)은 절대적인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시간으로부터 유한하게 창조가 된 것으로 창조(創造)라는 시발역(始發驛)을 출발하여 인류역사의 종말이라는 종착역(終着驛)을 향해 달리는 기차와 같은 것이지요. 종말의 저 너머로 우리의 본향인 새 예루살렘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곳은 죄로 야기된 염려, 슬픔, 불안, 초조, 근심, 걱정과 죽음이 없는 영원한 시간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유한한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도록 이 세상을 현재(常)가 없이 미래(천국)을 향하여 끊임없이 흐르기만 하는 무상(無常)한 곳으로 만드신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는 이 세상에 목적을 두지 말고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서 아브라함처럼 천성을 바라보며 장막생활을 하며 살라는 하나님의 메세지인 것이지요. 이러한 창세기에 근거한 직선적인 시간관은 어거스틴이 정립한 것으로 타종교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순환론적인 시간관과는 그 궤를 전혀 달리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C. 박사학위과정 및 한국창조과학회와의 만남 

저는 회사에 다니면서 뒤늦게 모교인 고려대에서 박사학위과정을 하고 있는데 그 당시 사정으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요. 시간내랴, 학비 충당하랴, 집식구들 눈치보랴...

이렇게 4년5개월이 지난 84년도 8월 초순의 어느날 이었는데 지도교수이셨던 전문진 교수께서 지나가는 말씀처럼 "임선생도 이번에 논문을 제출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시길래 교수님이 나를 놀리시나 생각을 했었죠. 왜냐하면, 그 당시에 제가 실험하고 있었던 내용이 미생물의 융합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러한 실험이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도입초기단계라서 2년 동안을 수없이 실험해 왔지만 한 마리의 융합균주도 나타나지 않아서 애를 태우고 있었던 사실은 교수님께도 익히 알고 계시는 터일텐데 짐짓 모른채 하시고 나더러 논문을 내 보라 하시는 것은 나를 위로하시려는 차원에서 한번 던져 보시는 말씀정도로 들렸던 것이죠. 그러나, 계속해서 반년 아니면 일년간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리라고 느껴져서 바로 옆의 실험실에 들어가서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하였지요. "하나님, 교수님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셨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불가능한 일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일 이번에 학위과정을 허락해 주신다면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으로 알고 앞으로 창조과학분야를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겠습니다."

이러한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놀라운 소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같이 연구하고 있던 석사과정의 후배중에 김종헌이라는 학생이 헐레벌떡거리며 저에게 뛰어 오더니 드디어 융합균체 한 마리가 현미경상에 나타났다는 겁니다. 2년동안 그렇게 실험했어도 생성되지 않아 우리를 애먹여 온 융합균주가 한 마리라도 나타났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뉴스였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되었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또 다시 그 후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배님, 이제는 융합균주들이 30여마리가 넘게 나타났습니더. 와 보이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어서, 두세시간 후에는 현미경으로 보이는 것은 온통 융합균주들로 가득 차있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저는 고개를 떨어뜨린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감사합니다. 당신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하여 절망적으로만 생각되었던 논문작성 작업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고, 20여일간의 숨가뿐 노력끝에 가까스로 소정의 기일내에 논문을 제출할 수가 있게 되었지요.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학위를 받고 보니 저에게는 창조과학을 통한 헌신의 사명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하나님께 다짐한 약속이라 가볍게 파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는 우선 한국창조과학회를 찾아 가게 되었지요. 당시에 정동에 있었던 학회 사무실에서 조덕영 간사께서 저를 맞아 주셨고, 학회에 대한 설명과 활동내용을 들려 주었지요. 저는 우선 창조과학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이 절감이 되어서 학회가 발행한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와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라는 책 두 권을 사 가지고 나왔는데, 그 내용이 어찌나 도전적이고도 마음속에 와 닿았는지 여러 번을 숙독했습니다.

어느 정도 창조과학에 대한 개황정도를 이해하게 되면서, 조간사께 자원하여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휴일, 주일, 밤시간에 이곳 저곳으로 다니면서 창조과학에 관한 강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저의 창조과학활동이 막을 올리게 된 것이지요. 직장생활하랴 교회생활하랴 강연하랴 나름대로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제가 자원한 것이었기에 보람차고 기뻤지요. 반면에, 집사람을 비롯한 가족들에게는 같이 있어야 하는 시간을 잃게 되어 얼마나 미안했던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영길 회장께서 저에게 일본에서 공부한 경력이 있으니 일본어로 된 창조관련 서적을 번역해 보라고 하시면서, 호리꼬시 노부지 목사님이 지은 '人間の 誕まれた 曰(인간 탄생)' 이라는 책을 주시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로 알고 밤시간을 이용하여 6개월만에 학회의 이름으로 번역을 했지요. 일본의 한 청년이 2차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의 혼란한 사회속에서 인생에 대해 깊이 회의를 하다가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지요. 

86년 6월, (주)미원의 기술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회사일로 무척 바빴으나, 그러한 와중에서도 몇몇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생물공학과목을 현장적인 경험을 가미하여 가르쳐 달라는 청탁을 받았는데, 이 역시 진화론으로 물든 학생들에게 창조과학을 가르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고, 회사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밤 6시 이후와 토요일 오후에 출강하기로 하고, 숙명여대 생물학과에서 2년간, 건국대 농화학과에서 3년간 봉사를 하게 되었지요. 생물공학은 새로운 학문이라서 한 시간의 강의를 준비하는데 열 시간의 준비가 필요했었지요.

돌이켜 보면 이 때가 저에게는 가장 바빴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창조과학적 관점에서 강의를 했더니 학생들의 반응은 일단은 매우 흥미롭게 경청하였고 질문도 많이 하였지요. 그 중에 어떤 학생들은 졸업후 몇년이 지나도록 안부인사의 전화를 해주어 얼마나 큰 보람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89년 초에 저의 집이 가락동의 훼밀리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정들었던 강변교회를 떠나 상가 이층에 자리잡은 은현교회라고 하는 자그마한 곳으로 교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새로 개척한 곳이라서 교인은 많지 않았지만, 교회를 개척하신 김기호 목사님(당시 전도사)의 창세기 성경공부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 시간을 통하여 저는 또 한번 창세기의 깊이에 대해 무릎을 꿇게 되었고, 창세기를 매개로 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간의 접목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자유와 평등사상, 선악과 사건과 죽음에 대한 이해, 경건계열과 불신계열의 분리, 하나님의 주권선언과 신중심적인 인생관의 필연성, 문화적 명령, 언어와 문자의 기원, 족보와 언약 등등.. 

 

D. 일본에서의 창조과학 활동 

90년말에 안수집사가 되면서 교회일에 한참 열심을 내고 있던 중 내게는 큰 변화가 찾아 오게 되었지요.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을 회사에서는 갑자기 일본 동경에 있는 무역회사인 미원저팬(주)으로 발령을 낸 것입니다. 전공도 완전히 다른 분야였을 뿐 아니라, 첫 해외근무라서 심리적으로 적지않게 당황했지요. 더구나, 얼마 전에 안수집사가 된 터라 나름대로 교회에도 할 일이 많았는데,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령을 받고 보니,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어디에 계시는 것인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본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떠나면서 저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했지요. 매일같이 기도, 찬양, 말씀읽기(하루 5-6장)를 생활화하리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 신앙은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고. 이러한 당초의 다짐이 그곳에 머무는 동안 크게 빗나가지 않고 지켜진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동경복음교회(東京福音敎會, 이청길 목사님 시무)에서 교회생활을 하면서, 6-7명의 교사들과 같이 중고등부 예배프로그램을 시작하였고, 외국인 대상으로 창세기 성경공부를 주일 낮 예배시간 후에 개설했으며(5명), 우에노(上野) 부근의 한 가게에서는 금속 세공업을 하는 한국인/일본인을 대상으로 창세기 목요성경공부를 개설하여 2년 반동안 복음을 전하였으나 별다른 결실은 보지 못했지요.

그러나, 동경복음교회에서 성경공부를 같이 하셨던 이기섭 집사님은 그 후에 와세다대학을 졸업하면서 신학을 전공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쯤은 목회자가 되시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어느날 우리 동경사무실로 하루는 진객 한 분이 찾아 오셨는데, 그는 동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행하려고 며칠 전에 도착했노라면서 창조과학활동을 같이 하고 싶어서 인사겸 나를 찾아 왔노라는 것입니다. 저도 마침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던 터라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동역자로 알고, 동경부근의 사가미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우재태 박사와 연락을 취하여 세 사람이 모임을 갖게 되었지요. 기도하면서 모이다가 마침내 창조과학회 일본지부를 설립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지요. 그 때가 92년 3월경으로 기억이 됩니다. 매월 토요일 밤 7시경에 저희 사무실에 모여서 차가운 김밥으로 요기를 하면서 기도와 더불어 최신의 창조과학 관련자료의 독해를 하곤했는데, 하루는 이현주 라는 여성이 전화를 걸어 오셨어요. 생면부지의 분이 어디서 우리가 모인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자기도 창조과학 모임에 참석하고 싶으니 끼워 달라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은 일본인 전도사와 국제결혼을 하시고 지금은 동경순복음교회에 다니시는 분이었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한국의 창조과학 자료를 일본말로 번역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우리에겐 가장 취약한 분야였는데 이렇게 자원자가 나와 주시니 얼마나 고마웠던지요. 

이렇게 하여 4-5명이 꾸준히 모임을 가지면서 창조과학 강연(동경복음교회, 신숙한인교회, CCC일본지부..)과 창조과학 서적의 한국어로의 번역작업을 일차적으로 시작했지요. 모두가 너무나도 바쁘셨던 터라 번역작업은 주로 밤시간들을 이용하셨는데, 매월 모일 때마다 피곤하게 메마른 얼굴로 고군분투하시던 얼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 옵니다. 이렇게 하여서 1년 6개월여만에 '진화론과 과학 (Michael Denton ; Evolution : A Theory in Crisis)'을 본 학회의 명의로 발행하게 되었고, 이러한 번역작업은 제가 인도네시아로 떠난 후에도 두 박사님들이 계속하셔서 '한자속에 나타난 천지창조' 라는 두번째 서적을 출간하게 되었지요.

또, 일본에서의 생활중에 잊을 수 없는 일중의 하나는 Remnant(レムナント)라는 신앙 월간지를 발간하는 쿠보씨(久保有政)와 일본창조과학연구회(日本創造科學硏究會)의 대표인 우사미(宇仕海 正海) 박사와의 만남이죠. 특히, 쿠보씨를 통해서 성경과 역사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 나갈 수 있는지 배우게 되었지요. 예컨데, 일본의 풍습속에 남아 있는 성경적인 흔적에 대한 그의 글들이 그러한 예들이라 할 수 있지요.

(다음 호에 계속)



출처 - 창조지, 제 111호 [1998. 11~12]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6

참고 :

김영길, 조덕영
2004-07-26

한국에서의 창조론 운동의 회고와 전망

김영길, 조덕영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반드시 사람을 사용하신다 (롬 10:13~15). 모세가 그러했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요나, 바울, 그리고 예수님의 12제자가 그러했다. 한국 창조론 운동도 하나님은 창조과학회라는 모임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불러내어 역사하셨다.


1. 한국창조과학회의 태동 

1980년 '80 세계복음화 대성회' 기간 중 '창조냐 진화냐'에 대한 4일간의 세미나(8.12~8.15)가 한국대학생 선교회(CCC)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이 세미나는 예상을 뒤엎고 학생, 일반, 교역자, 과학자 등 연 4천여 명이 참석하는 경이적인 모임이었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이 '기원 문제'에 대해 관심이 크다는 것을 확인하고, 유일한 국내 강사였던 김영길 박사(KAIST교수, 본회 회장)를 중심으로 통역했던 과학자 등 25명의 크리스찬 과학자는 간담회를 갖고 창조과학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3O여 차례의 모임과 기도로 준비하고 81년 1월 29일 두란노 서원) 에서 창립을 앞두고 철야 기도회를 가졌는데, 조병호 목사(새서울 순복음교회)가 출애굽기 3:6절을 본문으로 '창조'라는 말씀을 전하였다. 이날 김영길, 최영상, 송만석, 김해리, 민성기 박사와 초대 간사가 된 심영기 박사 등이 참석하였다.


드디어 1981년 1월 31일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한국창조과학회가 정식 창립되었다.

김준평 (중앙대 농화학) 장로의 대표기도, 철야기도를 인도한 조병호 목사의 사도행전 17:24~27 본문으로 한 메세지에 이어 진행된 2부 창립총회에서 김영길 박사를 초대회장으로 선임하였다.

81년 2월 11일 자로 확정된 초대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장 - 김영길 (한국과학기술원, 재료공학)

부회장 - 최영상 (고려대, 회학)

감사 - 유완영 (한국통신기술연구소)

간사 : 기획간사 - 오형재 (서울산업대, 수학)

행정간사 - 심영기 (고려대, 회학)

학술간사 - 노정구 (KAIST, 생물공학)

홍보간사 - 남수우 (KAIST, 재료공학)

신앙간사 - 유병우 (KAIST, 통계학)

재정간사 - 민성기 (홍릉기계)

출판간사 - 정명균 (KAIST, 기계공학)

교육간사 - 채명준 (한양대,화학)

분과위원 :

생명과학분과위원장 - 이은호(KAST, 생물), 김해리(서울대, 생화학) : 생물, 생회학, 의학, 약학, 동식물학, 간호학, 보건학 등

지구과학분과위원장 - 박동원(서울대, 지형학), 김정욱(KAIST, 환경공학부) : 지질, 지리, 천문, 기상, 광물, 해양학 등

이공학분과위원장 - 김정한(KAIST, 화학), 장근식(KAIST, 항공학) : 물리, 화학, 수학, 기계, 토목, 재료, 금속, 전기, 전자, 산업공학 등

대전지부장 - 문한규(한국표준연구소 재료시험실장)

고문 - 김준평(중앙대, 농화학), Goette(숭전대, 화학), Torrey (예수원, 신부), 김준곤(CCC 목사), 전산초(연세대, 간호), 이병호(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 장영길 (장영길 소아과의원, 의학) 

학회 사무실은 강력한 창립 후원자 CCC 김준곤 목사의 배려로 무료로 정동 사무실 일부에 마련하게 되었다. 초기 임원 선임의 특징은 부회장을 위원장, 학술간사 및 분과위원장을 위원으로 하는 '교과서 수정 추진 위원회'를 조직한 것으로, 창립부터 교과서 수정을 위한 의욕을 보였던 것이다.

창립전후로 매스컴들은 창조론을 믿는 과학자들의 조직적 활동을 지속적으로 보도하여, 교계 신문 뿐 아니라, 일간지들과 방송들이 창립 총회를 전후하여 여러 가지를 보도하였다. ('진화론에 반기를 든 과학자들' 조선일보 1981.1.28., '창립총회 안내' 한국일보 1981.1. 27, 중앙일보, KBS, FEB, CBS 등).

정회원 54명, 준회원 4O명으로 출발한 창조과학회는 10주년이 지나면서 약 1천 여명의 회원으로 성장했고, 1990년 교육부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창조과학회의 출범은 과학과 신앙을 양립할 수 없어 고민하던 수많은 기독교인들과 일반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더욱이 신학을 포함한 거의 모든 학문이 과학적 타당성이나 증거도 없이 오랫동안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일 것' 이라는 막연한 진화론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던 상태에서 크리스찬 과학자들이 던진 '과학을 통한 창조론 전파'는 교계와 학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2. 문서 선교 사역 

초기 창조론 운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문서 선교였다. 그 중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는 그 대표적인 서적이다. 이 책은 창조과학을 소개할 서적의 필요를 느낀 임원들의 제안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자체 연구자료가 없어 미국 창조과학회의 자료들을 번역, 정리하기로 하고, 양승훈(당시한국과학기술원 박사 2년차, 행정간사)가 책 절반을 차지하는 화석학적 고찰을, 그외 김영길, 최영상, 남수우, 노정구, 박동원, 김해리 교수가 나누어 번역하였다. 일차 완성된 원고는 번역에 참여한 임원들이 검토하여 수정 보완하였고, 완성된 원고는 을지로 인쇄소 골목의 허름한 여관방에서 양승훈 간사와 출판업자 두 사람이 마무리 작업하여 만들어 - 비록 오자와 탈자가 많았지만 창조과학을 소개하는데 큰 역할을 하여, 출간 두 달이 못되어 재판을 찍어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바로 창조과학 문서 선교의 시발이었다. 

문서 선교는 1989년 창조과학회 출판부(대표 김종배 박사) 인가로 이어져서 현재까지 40여 종의 단행본과 전도소책자를 출간하게 되었다.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간증집 '열리는 영의 세계', '신비한 인체의 창조섭리',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 사실인가?', '공룡도 하나님이 만드셨을까?', '놀라운 창조 이야기(번역서)', '신비한 식물 창조섭리',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 등은 모두 베스트 셀러에 들었고, 꾸준히 독자들에게 환영받는 책이 되었다.

특히 1990년 창조론적 관점에서 서술한 자연과학(김영길 외 26인 공저)은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신학교 뿐만 아니라, 명지대, 우석대, 고신대, 경희대 등에서 대학 교양과정 교재로 채택되었다. 이 책은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교과서 검정'이라는 교육부 제도에 묶여 개선이 되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오히려 대학의 교과서가 먼저 수정되는 아이러니를 가져온 것이다. 1994년 발간된 역서 '진화론과 과학'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간된 진화론 비판 서적중 가장 깊이 있는 책으로, 신앙인들 뿐 아니라 진화론자들에게도 참고 교재로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문서 선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 이전에 창조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데 기여하였고, 지금도 중요한 사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3. 창조과학 연수회의 개최 

창조과학 연수회는 창립 1주년 기념으로 82년 2월 22일부터 24일까지 연세대 장기원 기념관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연인원 400여명이 참석한 이 연수회를 시발로 해마다 창조과학 연수회를 개최하여, 한국 교계가 창조과학 운동을 이해하는 장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창조과학 강사들을 양성하게 되었다. 1991년 8월 20일부터 23일까지 온누리 교회에서 그 대상을 일반인까지 확대하여 학회 창립 10주년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이때 국내 강사로 조정일 교수, 이웅상 목사, 미국에서 듀안 기쉬, 리처드 블리스, 스티븐 오스틴, 존 모리스 등 미국 창조연구소(ICR)의 핵심 요원들과 호주 창조과학회(CSF) 소장 앤드류 스넬링, 일본 창조과학 연구회의 우사미 마사미 박사 등이 해외강사로 참여하였다. 이 국제심포지엄에는 연인원 4,000 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가 되어, 주요 일간지들은 기쉬 박사 등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고, MBC TV에서는 인터뷰 내용을 방영하였다. 교계 일간지 국민일보는 연일 관계 기사를 실어 중요성을 알렸고, 무료 5단 전단 광고를 수시로 실어 후원하고, 행사가 끝난 뒤에는 주요 강의내용을 발췌 수록하여 대중들에게 창조과학을 알리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명지대에서는 종합대학교로서 처음으로 창조론 강좌를 개설하였고(91.8.31. 국민일보), 95년까지 전주 우석대, 덕성여대, 안양대, 대전 배재대, 천안 호서대, 한동대 등 여러 종합대학교에서 창조론 강좌를 개설하게 되어 기원문제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시도되게 되었다.
 

4. 전임 간사들 

학회 행정을 담당한 첫 간사는 태동때 궂은 일을 맡았던 심영기 박사(당시 고려대 대학원)였다. 심영기 간사가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자, 이웅상 목사(당시 서울사대 생물학 대학원)가 헌신하였다. 그리고 양승훈 교수(당시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대학원)도 간사로 수고하였다.

1983년 여름 이웅상 간사가 미국에 유학가고, 양승훈 간사가 박사학위를 받고 경북대학교 사범대 물리학과로 가자, 조정일 교수(당시 서울대 사대 생물교육과 졸업)가 후임을 맡았다. 조정일 간사도 얼마 후 국비로 유학길에 올랐다.

초창기에 전임간사로 헌신했던 이들 이 학위를 마치고 현재 창조론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로 활약하고 있다. 1984년에 조덕영 간사(현재 본회 대표간사 겸 출판부 편집담당)가 조정일 간사 후임으로 헌신하였다. 전임 간사 시대는 행정의 기반을 닦고 정규적인 연수회와 정기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소식지 '창조'의 정기적 발간과 창조과학 도서 및 시청각 기재의 지속적 발간이 가능하게 되었다. 1992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명현 박사가 헌신하여 봉사하다가, 1995년 신설된 한동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창조과학 운동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5. 학회 소식지 '창조' 발간 

81년부터 84년 중반까지 3년 반 동안 46배판으로 통권 14호까지 호당 400-600부씩 발행되던 학회지 '창조'는 전임간사의 헌신으로 1984년 후반기부터 매월 4,000부씩 발행되기 시작했다.

전국의 기독 관련 단체들과 교회들에 '창조'지를 보냄으로써 한국 교계에 창조론 운동의 참뜻이 널리 알려져, 통일교 단체로 오인되었던 것이 불식되고, 교계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무가지로 매월 발행하는 것이 재정적인 부담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필요한 재정이 채워졌고, 한 때 구독료를 내고서라도 받아보겠다는 구독회원들만 정규 회원보다 많은 1,000명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

몇 번의 판형 개정을 거쳐 1996년 9월 99호가 발행되었고, 현재는 격월로 발행되고 있다.
 

6. 창조과학 초청 세미나를 통한 사역 

전임간사의 헌신, 소식지 발간과 함께 달라진 것은 창조과학 초청 세미나의 급증이었다.소식지에 따르면 창립부터 1984년까지 4년간 총 282회의 세미나가 있었는데, 1985년 한해동안 수도권 지역에서만 214회, 86년에는 322회에 달하여 거의 매일 창조과학집회가 열린 셈이었다. 이것은 사무실을 통해 집회가 확인되어 창조지에 수록된 집회만의 통계이므로 실제로 전국적인 창조과학 세미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시작은 아주 미약하였으나" 한국창조과학회는 창조과학자들의 열정적인 헌신에 한국교회의 보수적이며 근본주의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놀라운 호응을 보인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수천 회에 이르는 창조론 강연을 통해 한국의 주요 교회들은 적어도 한번 이상 창조론 집회를 개최하였고, 대학의 기독단체나 직장 신우회 등에서도 창조론 강연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일부 대학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창조과학 집회를 해마다 열고 있으며 단국대에서는 미생물학과 주관으로 창조와 진화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기도 하였다. 

창조과학 세미나의 강사는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간 회장 김영길 박사를 비롯, 김정한, 송만석, 김해리, 김정욱, 이웅상, 양승훈 박사 등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강연을 하였다. '제1세대' 창조론 강사는 미국 M.I.T에서 핵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과학기술원 핵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노희천 교수와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건국대 교수로 부임한 김종배 교수,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건국대 교수로 부임한 신현길 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김영인 박사 등이 가세함으로 더욱 보강되었다. 특히 1984년 2월 강남지역 교역자 연합회가 주최로 영등포의 한 예식장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강연된 노희천 교수의 '노아의 홍수'는 한국창조과학회에서 가장 많이,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창조과학 운동에 참여시키는 역할을 했다. 김종배 교수의 '생명의 존엄성', 김정욱 박사의 '환경과 창조' 등도 많은 호응을 얻어 창조과학 사역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하였다. 조덕영 간사의 '공룡' 강연은 어린이들에게까지 창조과학 사역을 확장하는 도구가 되었다. 

창조과학 세미나의 핵심 강의는 4편의 창조과학 슬라이드로 제작되어 전국의 창조과학 강사들에게 창조과학 강의의 기본 내용으로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창조과학 영화 상영도 활기를 띠어 창조과학 집회나 여러 전도집회에서 활용되었다. 1990견 9월 현재 전국적으로 창조과학 강사로 봉사하는 핵심적인 회원만도 66명의 총회 대의원을 포함하여 100여명에 이르고 있으니 그 파급 효과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면에서 회원 모두가 성실한 창조과학 전도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 본 회는 전국에서 가장 집회를 많이 감당하고 있는 초교파적 기독교 단체로 기록될 것이다. 

본회의 사역을 통해 변화된 삶을 간증하는 편지들이 전국에서 답지하고 또 자발적으로 사역에 동참하는 회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허성욱 전 부산지부장, 허종화 교수(현 경남 지부장), 한윤봉 교수(전북대), 백우현 박사, 김정훈 박사(미 체류중), 조승운 안성의료원 과장, 김록권 원장(국군 병원), 이광원 서울 과학고 교사, 이흥배 서울 오륜중 교사, 최희원 정의여고 교사, 이상덕 집사, 유은상 회원, 백영종 회원, 김대희 회원, 윤석찬 형제 등은 학위여부를 떠나 열심이 유별난 회원들이기에 여기 기명한다. 이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창조에 대한 과학적 변증(롬 1:20)에 목말라 있다는 것이 본회 사역을 통하여 확인되었던 것이다.
 

7. 창조과학회 지부의 설립 

학회 사역이 확대되면서 지부가 설립되게 되었다. 1981년 대전 충남, 대구 경북 지부를 시발로 1982년 전북, 전남, 부산, 미주 지부가 설립되었으며, 이어 1985년에 경남, 강원 지부와 이스라엘 지회활동(서병선 박사), 1986년 충북 지부, 1988년 울산 지부, 1990년 창원 지부, 1991년 일본지부, 1993건 포항, 원주, 제주 지부, 1994년 공주, 천안지부 등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각 지부의 설립은 본 회의 노력이라기 보다는 창조과학 사역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동참하던 해당 지역 회원들의 자발적이고도 전폭적인 헌신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8. 대외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킨 창조과학 사역 

본 회의 사역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1985년 미국 창조연구소 부소장 기쉬 박사가 방한하여 서울대, 여의도 순복음 교회, CCC, KAIST, 사랑의 교회, 과학기술대, 경북대, 영남대 등에서 연속적으로 창조론 집회를 가짐으로써, 국내 과학계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1988건 4월 3일 국내 최초로 '창조냐 진화냐'의 TV심포지엄이 공영 방송인 KBS 제3TV에서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창조론 측에서는 본회의 김정한, 김정욱 박사와 본회 회원은 아니지만 교류가 있던 이대 생물학과의 이양림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하여, 진화론측 참가자 세 교수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토론은 기독교인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까지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같은 해 11월 7,8일 양일 간에는 대학 사상 처음으로 단국대에서 미생물학과 주최로 창조와 진화 두 주제가 동시에 다루어진 학술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이 심포지엄의 창조론측 강사는 김종배 교수, 진화론측 강사는 전북대 생물학과 이병훈 교수가 참석하여 양일간 차례로 각각의 입장을 발표하였다. 이 때 영화 상영도 있었는데, 대학에서 처음 열린데다가 창조론에 대하여는 무지하였던 생명과학 분야 교수들에게는 큰 충격이 되었다. 1991년에는 국내 최대의 과학 대중지 「과학동아」에서 창조론과 진화론 양측을 동일하게 다룬 기원 논쟁을 7월호 특집으로 게재하게 된다. 이 논쟁이 실리면서 독자들의 예상밖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한 과학동아는 8월호와 10월호에 거듭해서 양측의 논쟁을 싣기도 하였다. 과학동아는 1995년 1월호에 다시 한번 창조론과 진화론 양측의 주장을 게재하였다. 이 모든 것은 창조과학회 활동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로써 이제는 과학계가 기원의 논쟁에 있어서 최소한 창조론자들의 견해를 과학적 견지에서도 무조건 무시하던 입장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누구 한사람의 힘이 아니라 본회 회원들과 한국 기독교계가 뜨거운 관심과 애정으로 기도하고 성원한 결과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은혜였다.
 

9. 창조과학 교육관과 새로운 비전 그리고 열매들 

이제 국내의 관심은 창조론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가르칠 수 있는 건물의 필요성으로 인식전환 되었고, 1989년 창조과학 교육관 건립 계획이 공표되기에 이르렀다. 이 구상은 본회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학회의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는 미주 지부장 최인식 박사의 제안이 계기가 된 것이었다.

부지의 무상임대를 천명한 재단법인 벧엘 선교원의 제안으로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군 외사면 추계리에 건립을 구상하고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지만, 재정문제와 벧엘 수양관 내부의 문제로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그러나 이 구상은 지난 1993년 8월 6일, 대전 엑스포에 때 맞추어 창조과학 전시관을 개관함으로써 1차적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지금은 창조과학 교육관 건립 교회 후원회(회장 대전 찬양교회 이홍남 목사)가 조직되어 이 구상은 본회 차원을 넘어 범 기독교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대전 창조과학 전시관 개관에는 본회 요청으로 해사기술연구소에서 실험한 '노아 방주의 안정성에 대한 연구' (팀장 홍석원 박사)의 결과가 국내 매스컴의 관심을 끌었다. KBS와 MBC TV는 9시 정규 뉴스 시간에 이 실험 결과를 상세히 보도하였고, 국민일보를 비롯, 조선, 동아, 한국, 중앙 등 일간지들이 실험 결과를 상세히 보도하였다.

1990년은 본회 사역에 몇 가지 전기가 있었던 해였다. 교육부의 90학년도 부터 연차적으로 사용할 고등학교 2종 교과서용 도서검정 공고에 따라, 본회 주선으로 (주)계몽사와 두 분의 저자가 교과서를 집필하였으나 창조론적 관점을 배제하고 진화론을 긍정하는 방향으로만 교과서를 수정하라는 지시에 대하여 불복한 저자들의 도서 집필 포기에 따른 교육부의 해당 교과서 불합격 처분에 대해, 2월 5일 서울고등법원인 「검정불합격 처분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심리하였다. 원래 교과서 집필은 김해리 교수의 제안으로 몇몇 기독 출판사를 몰색하던 중,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계몽사와 연결되어 추진되었었다. 당시 계몽사는 사옥 신축으로 분주하였으나, 실무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춘식 부회장이 채택의 여부는 크게 개의치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창조론적 관점에서 서술하는 교과서 집필에 동의하여 이 일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이 교과서에 대한 소송은 끝내 기각되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일반 대중들에게 창조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고, 교계는 오랜만에 일치된 목소리로 교과서 문제에 대하여 교육부의 처사에 반론을 펴는가 하면, 우려를 표명하여 본회의 노력에 동조하였다. 그리고 한편 이 소송은 진화론을 고수하고자 하는 교육부의 입장이 얼마나 견고한가를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는 귀한 결실이 있었다. 창조론적 관점에서 서술된 교과서에 담으려고 하였던 진화론의 문제점을 담은 「진화론의 실상」이라는 책이 계몽사에서 출판되었으며, 여러모로 본회를 도왔던 김춘식 계몽사 부회장은 본회 이사로 계속 봉사하시며 본회 사무실 마련을 도움으로써, 본회 사역을 활성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렇게 여러 회원들의 기도와 헌신에 따라 본회는 1990년 11월 12일 교육부에 사단법인 인가를 받게 되었다. 이에는 10여년간의 임원들의 기도와 후원, 특별히 권도원 장로와 원동연 박사의 분에 넘치는 재정 지원, 김영길 회장과 실무 간사들의 노고가 있었다. 하나님은 놀라운 섭리로 사무실 문제와 법적 지위를 한꺼번에 확보시켜 주심으로 학회창립 10주년 직전에 제반 준비를 마치게 하시고, 10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을 시행하도록 계획하셨던 것이다. 드디어 1991년 1월 19일에는 본회 사무실이 있던 서초구 영빌딩 지하 미문 교회당에서 사단법인 한국창조과학회 정기총회를 뜨거운 감사와 감격 가운데 개최하였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기사의 궁극적 권위가 과학적 증명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과 기록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이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복음이 전해지는데 얼마나 귀중한 역할을 하는지를 배웠다.

특히 오늘날 과학시대를 살면서 실증주의 정신에 기초한 지성인들과 젊은 세대들에게 성경 첫장에 나타나는 '창조'에 대해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일은 설득력있는 복음 전파의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신앙의 핵심의 전부는 아니지만, 현대 과학 기술시대에 특수한 사역으로 허락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본회의 활동이 단순히 창조와 진회에 관련된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세계에 부여한 약속된 질서인 과학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분야의 문제를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응답하여야 한다는 책임이 수반된다고 본다.

이 일에는 창조질서와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을 막는 보전의 문제, 낙태, 살인, 유괴 등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 문제, 유전공학과 건강 등 과학의 전반 문제에 대하여 본회가 지속적인 관심을 지녀야 함을 의미한다. 이 같은 일들이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때 전반적인 기독교 문화에 따른 크리스찬 과학도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리라.

10. 세계 선교와 과학적 창조론 

마지막 본회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세계 선교에 있어 창조과학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다.

먼저 세계 20억 인구를 포용하던 사회주의권 선교에 있어 과학적 창조론의 중요성이다. 막시즘은 인간이 완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진화론적 낙관론을 그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사회 진화의 최고 형태는 공산주의이고, 여기로 가는데 방해가 되는 진화의 장애물은 적자생존과 자연도태의 법칙에 의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이론이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는 달리 그 자체 이념이 매우 종교적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공산권 선교가 매우 어려웠던 점은 바로 공산주의 이념 자체가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한 배타성과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종교에 대한 탄압, 그리고 그와 함께 시행된 세뇌교육으로 일반 대중들이 종교적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산권 선교에는 진화론의 모순을 바로 지적하고, 과학적으로 창조론을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이다. 얼마전 북경의 한 캠퍼스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가 중국 대학생 선교의 어려움에 관해 언급한 것이 있다. 그 가운데 무신론적, 진화론적 유물사관에 세뇌된 그들에게 과학적으로 신앙을 변증할 수 있는 중국어 서적이 거의 없어 매우 안타깝다는 말이 있었다. 만일 이들에게 진화론적 유물사관의 모순을 지적하고 창조론을 변증할 수 있는 과학적 자료들을 제시한 후, 창조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요 1:3)의 사랑을 전한다면, 그들의 잘못된 생각이 쉽게 깨질뿐 아니라,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공산권이 급격히 와해하는 시점에서 그들 마음 가운데 있는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복음밖에 없으며, 복음 증거에 과학적 창조론은 귀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사회주의권 못지않게 방대한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회교권에도 기독교 선교는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과학적 창조론을 통한 접근은 가능하다는 것이 이 일을 감당하고 있는 본회 회원들의 견해이다. 이미 인도네시네시아에서 본회의 임번삼, 김종성 박사 등이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이 일을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을 확신한다.

범신론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일본의 선교에 있어서도 과학적 창조론의 필요성은 이미 여러모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도 유용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한 한국창조과학회 

본회는 출범 당시 "너희 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이라"(빌 1:6) 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과학이 우선시되는 이 시대에 과학이 결코 절대적 표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과학의 표준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또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동역자들은 거듭 체험해 오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본회 사역이 하나님을 의지하는한 계속될 것임을 확신한다. 본회 사역에 대한 여러 믿음의 동역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와 동참을 기대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3)

  


출처 - 창조지, 제 100호 [1996. 11~12]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5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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