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은 양립할 수 없다.
(The Dirty Little Secret Is Out
: Religious Faith and Evolution Are Incompatible)
Frank Sherwin
최근 한 책의 리뷰 글에서, 시카고 대학의 생태학 및 진화론 교수인 제리 코인(Jerry Coyne)은, 단순한 생명체로부터 복잡한 생명체가 생겨났다는 세속적인 대진화(macroevolution)의 세계관은 기독교 신앙(Christian faith)과 조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이것을 말해왔었다 : 진화론은 단지 과학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반대하기 위한 하나님을 거부하는 믿음 체계이다. 이것은 ”태초에 하나님이...”라는 성경 기록과, ”태초에 수소가...”라는 세속적 과학 사이에 뚜렷한 대조로부터 명백해 보인다.[1]
코인 박사는 합법적인 과학의 영역으로부터 신실한 신자들을 배제하는데 있어서 매우 포괄적이었다 :
나는 모든 신앙이 과학과 세속적 이성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앙인(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와 다른 수많은 신앙들을 가지고 있는 90%의 미국인)들은 양립할 수 없는 범주에 빠져있다.[2]
신앙과 과학(그는 과학을 진화론과 관련시키고 있다) 사이의 부조화(disharmony)는 과학 사회에서 하나의 숨기고 싶은 비밀이다. 과학과 종교가 완벽하게 조화된다고 선언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전문가적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일이라고 코인은 말했다. 왜 성경적 세계관에 그렇게도 반대하는 세속적 과학자들이 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이 양립할 수 있는 척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제시하고 있었다 :
결국, 우리는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우리의 학생들에게 창조론 대신에 진정한 과학(진화론)이 가르쳐지고 있다. 창조론과의 전투에 있어서 자유주의적 종교인들은 우리의 중요한 동맹군이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 지를 선언함으로서 그들을 멀리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전략적 측면에서, 이것이 국립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와 같은 그룹들이 종교와 과학은 대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된 증거(진화론을 믿는 종교적 과학자들의 존재)는 과학자들이 그들의 신앙심 부족을 큰소리로 떠들어댈 때 믿겨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2]
이처럼, 코인은 창세기를 역사적 사실로서 믿지 않고 있는 종교인들을 동맹군으로서 간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사용하는 것이 창조론과의 전투에서 효과적인 전략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성경을 쓰여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원시적인 유대-그리스도교 감각이라고 불렀다. 신앙 문제에 대한 그의 공격적인 적대감은 기원에 관한 주제(창조인가 진화인가)는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확실히 과학계 내에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부족한 신앙을 솔직히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창조과학자들 같은)들은 과학적 증거들을 따르며, 그 증거가 창조주를 가리키고 있을 때에도 객관적으로 받아들인다. 가령 한 노벨상 수상자는 ”우주의 법칙에는 어느 정도 지성(intelligence)이 개입되어있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3]
정말로, 코인과 같은 진화생물학자였던 고 해리슨 매튜(L. Harrison Matthew)까지도 이렇게 말했었다 :
진화론은 생물학의 척추(backbone)이다. 따라서 생물학(biology)은 입증되지 않은 한 이론 위에 기초하는 과학이라는 매우 특이한 입장에 처해있다. 그러면 그것은 과학인가, 신앙인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창조론에 대한 믿음과 정확하게 같은 종류의 것이다. 이 둘 모두 오늘날까지도 자신이 진실이라고(또는 아니라고) 믿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고 믿는 개념이다.[4]
비록 100%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또는 안 계신다는 경험적 증거들을 확보할 수는 없을지라도, 창조론을 찬성하는 증거들은 확실히 합리적인 선을 넘어 매우 우세하다.[5] 진정한 실용 과학에서의 발견들은 성경적 계시와 놀랍도록 일치한다. 하나님 말씀의 기초 위에 섰을 때 과학의 놀라운 발견들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한 진화과학자에 의해서, 마침내 진화론은 기독교 신앙과 대립된다는 진실이 공개적으로 인정되었다는 뉴스를 널리 알리라. 대진화는 과학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신앙과는 정반대에 있는 믿음 체계인 것이다.
References
[1] Morris, H. 1995. In the Beginning, Hydrogen. Acts & Facts. 24 (3).
[2] Coyne, J. A. Seeing and Believing. The New Republic. Posted on tnr.com February 4, 2009.
[3] Begley, S. Science Finds God. Newsweek, July 20, 1998, 48.
[4] Matthews, L. H. 1971. Introduction. In Darwin, C. Origin of Species. London: J.M. Dent & Sons, Ltd., ix.
[5] Gish, D. 1981. Summary of Scientific Evidence for Creation(Part I & II). Acts & Facts. 10 (5).
*참조 1 : 최근 언론에 보도된 유신진화론적 글들.
템플턴재단, 유신론적 진화론 보급에 동참 (2009. 3. 18.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14933§ion=sc73§ion2=
하나님과 진화론 함께 믿습니다 : 진화론 주일 지키는 교회 늘어 (2009. 2. 11.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14683§ion=section2
신은 어떤 존재인가 : '창조냐 진화냐' 넘어 '종교도 진화의 산물' 주장 (2009. 2. 2.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1/2009020100808.html
박종화 목사 '창조-진화, 대립관계 아냐” (2009. 3. 19.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today.co.kr/view.htm?id=201398
*참조 2 : Theistic evolution—a greater fairytale for mankind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24-27.pdf
10 dangers of theistic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749/
Biblical problems for theistic evolution and progressive crea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497/
'A child may see the folly of i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427/
Is it possible to be a Christian and an evolution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304/
Theistic evolution: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795/
Did the Creator use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306/
출처 : ICR, 2009. 3. 20.
URL: http://www.icr.org/article/4571/
번역 : 미디어위원회
창조과학자와 기독교과학자
: 양승훈 교수의 “두 근본주의의 충돌”을 읽고
”... 너는 그들에게 '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하고 말하여라. 그들은 반항하는 족속이다. 듣든지 말든지, 자기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는 것만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이 듣든지 말든지 오직 너는 그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겔 2:4-7)
에스겔 2장 4-7절의 말씀은 마치 현재 기독교계에 있는 과학자나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실을 말하라는 명령처럼 들려온다.
양승훈 교수의 블로그에 있는 최근 칼럼(번호 1380) ”두 근본주의의 충돌”에서(아래 참조) 양 교수는 창조과학자를 일컬어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어, 지구는 약 6 천년 되었으며, 1년간의 노아홍수가 모든 지층을 만들었다고 믿을 뿐 아니라, 전문적 깊이가 없어 때로는 증명된 과학적 사실들도 부정하는 편협한 사람들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다시 서술되어야 한다. 창조과학자란 젊은 지구와 노아홍수를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인 과학자들(Bible Believing Christian Scientists)”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지구와 노아홍수를 믿는 것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지구의 자전, 태양계, 은하계, 열역학법칙들, 기체의 행동 법칙들, 전기-자기의 법칙들, 유전 법칙들, 만유인력의 법칙, 상대성 이론 등을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이런 물리학, 생물학 등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수많은 과학법칙들의 거의 전부는 성경을 성경대로 믿었던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보일, 켈빈, 패러데이, 멘델, 파스퇴르, 맥스웰 같은, 양 교수가 소위 창조과학자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다시 말해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었던 사람들(Bible Believing Christians)”에 의해서 발견된 것들이었다.
양승훈 교수가 창조과학자들을 자연과학의 법칙들도 무시하는 비전문가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현재 살아있는 창조과학자들 중에도 현재 살아있는 창조과학자들 중에도 노벨상을 받았던 사람들과 공동 연구 과제들을 수행했던 듀안 기쉬 박사나, 판구조론 컴퓨터 모델링으로 Science나 Nature 지에 최고의 논문을 실었던 지질학자인 바움가드너 박사 같은 사람들이 자타가 공인하는 창조과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창조과학자들 중에 전문가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외에도 멘델처럼 훌륭한 연구 업적을 냈지만 세상이 아직 알아주지 못해 묻혀 있는 진주와 같은 창조과학자들이 많이 있다. 양 교수는 이들을 그렇게 세상 기준으로 폄하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천동설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당시에도 가장 유능하고 가장 명석한 사람들 모두 다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가 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지구가 돌지 않다고 해도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지나간 역사는 하나님도 바꿀 리 없다.
창조과학자들이 세상과학자들과 아주 다른 주장을 하는 부분이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자연과학의 범위를 벗어난 과거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 성경의 역사와 다른 설명은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창세기 1장 ~11장의 역사로서 특별히 세상과학자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6일간의 창조와 전 지구적인 파괴를 야기한 노아홍수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보지 않은 6일간의 우주 창조는 믿음의 결정판이고, 노아홍수는 하나님께서 성경대로 행하신 전 지구적인 증거들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노아홍수의 바른 이해가 없으면 캄브리아기의 화석 대폭발, 넓은 고생대 지층에 비해 아주 협소한 중생대와 신생대 지층 규모, 지층과 지층 사이의 시간 간격 없음, 지층의 역전 현상, 화석 순서의 뒤바뀜, 빙하기나 공룡에 대한 설명, 인종, 언어, 현재 지형 등 이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증거들을 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이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보면 그런 증거들이 훨씬 더 쉽게 이해된다. 또한 성경을 벗어나서는, 이들 증거들에 대한 해석에 더 많은 불확실한 가정들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성경은 사실을 말했기 때문에, 성경의 주장을 사실로 믿고 보면, 어느 모로 보아도 타당한 설명을 주고 있다.
성경의 역사적 기록들은 사실이든지, 거짓이든지 둘 중 하나이지, 명석한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될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창조과학자들은 처음부터 항상 계셨던 그 분의 증언을 믿는 것이고, 그 증언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증거적임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의 기록을 믿고 그 사실이 기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물리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 그렇다면 그 과정은 어떤 과정이었는지, 그 증거가 남아 있는지, 하나님의 디자인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등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대로 사실이며, 피조물에 보이는 창조자의 능력과 속성을 보여주어, 성경의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드러내 그 분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을 파하고 그 분 앞에 무릎 꿇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않는 과학자들의 믿음을 살펴보자. 최근 한국의 교계에서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있는 양승훈 교수나 시카고 코스타(KOSTA)에서 과학에 대한 강의를 했던 우종학 박사, 그리고 해외에서는 점진적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 있는 천문학 박사인 휴 로스 등이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지 않는 과학자들의 대표적 예이다.
(1) 이들은 성경이 암시조차도 하고 있지 않는 45억 년의 오랜 지구/ 150억 년의 오랜 우주(빅뱅)를 믿는다. 많은 유명한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 이들은 성경에서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진화가 사실일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는 고생대-중생대-신생대로 이어지는 약 6억년의 지구 생물 역사를 믿는다. 역시 세상의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그들은, 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의 확신할 수 없고 결점이 많은 결론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증언인 창세기 1장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다른 분야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믿음을 보임으로써 그들이 가진 믿음이 일관성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3) 이들은 진화는 사실이 아니라고 믿기도 하고 (양승훈 교수: 진화론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고생대-중생대-신생대를 사실로 믿으면서 진화론을 거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믿음이다), 상관없다고 믿기도 한다(우종학 박사, 휴 로스). 세상 대부분의 생물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이 진화가 사실이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4) 이들은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세상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5) 이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다고 믿는다. 세속 생물학자들이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믿는다. 이 세상의 과학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7) 이들은 천국과 지옥도 믿는다. 이 세상 대부분의 전문가와 유명 인사들이 천국과 지옥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믿음의 행태를 분석해 보면 이 과학자들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각을 믿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도, 천국의 존재도,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도, 부활도, 각종 기적들도 자신의 필요에 의해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상을 지식인들은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이라 부른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과학 즉 자연과학이 아닌 과학을 거부함으로써 세상에서 받게 될 비난을 피하면서, 과학자로서의 세상 영광도 취하고, 신앙인으로서도 대우 받기 위해, 그런 것들을 사실로 믿는다고 말하거나, 자신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 그런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믿음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다.
이 과학자들은 성경이 과학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경은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매 년 바로잡아야 하는 과학책과는 달리 바로 잡을 필요가 전혀 없는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 기록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면에서도 전혀 하자가 있을 수 없다.
이들의 생각에 독자의 마음이 동조되었다면 잠잠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더욱이 단순히 안 믿어진다는 것과 성경말씀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석해 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무능하시다고, 혹은 거짓말 하셨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150억 년, 46억 년, 혹은 6억 년이라고 표현할 방법을 몰라 6일이라고 얼버무리셨다고 혹은 거짓말하셨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창조과학자들도 성경의 모든 부분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역사도 있고, 시도 있고, 사실 기술도 있고, 비유도 있어, 문맥을 이해하고 읽어야 할 경우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과연 과거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 그대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밖에 어떤 다른 해석이 있을까? 창세기 1장을 자기 지식에 맞추어 해석해서 읽는다면 나머지 49 장과 다른 65 권의 성경은 어떻게 읽게 될 것인가?
더 큰 문제는 이들 개인의 믿음은 자신들에게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서 파급된 영향력 즉 성경에 대한 불신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서양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고, 성경 사상을 기반으로 건국 되었던 미국의 오늘날의 세태가 확실하게 그 불신의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성경에서 벗어난 사상은 개인 구원을 어렵게 하고, 언제나 문화의 타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엄청난 죄의 물꼬를 그들이 터주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이 과학자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가 아닌 다른 역사를 주장하려면 얼마든지 세상 학계에 나가서 자기가 연구한 과학 이론을 발표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의미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세상 지식을 통해 실망에 실망을 거듭한 끝에 돌고 돌아 사실을 발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결국에 ‘사실’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이미 말해 놓은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또 십 수년 전에 쓴 책이나 최근에 쓴 양 교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소감은 그가 확신하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는 (좋게 말해서) 항상 중립적인 위치에 서 있다. 이것도 일리가 있고 저것도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진화론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경적 창조도 아니다, 하나님 편도 아니고 세상편도 아니다. 그에게는 확실한 것이 없고 늘 애매모호하다. 그의 글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가 하나님도 판단하고 세상도 판단한다. 이것은 첫 사람 아담이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고자 했던 우리의 원죄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명령하고 있고 누구에게서 배웠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딤후 3:14).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세상 아비 두 선생이 있다고 말씀하셨다(요 8:38). 그러므로 확실한 것도 아닌 세상의 것을 교회에 들고 들어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의 권위를 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양 교수를 비롯한 이와 비슷한 자세를 취하는 과학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무서운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증명되지도 않고, 자기도 확신하지 못하는 생각을 가지고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암암리에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게 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무서운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란 무엇인가? 사실이란 내가 알든지 모르든지 상관이 없고, 좋아하든지 싫어하든 상관이 없고,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없이,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실은 무서운 것이다. 창조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더하거나 빼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더해지고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듯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물에 빠지는 편이 낫고, 죄인은 하나님 계신 곳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마 18:6).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 30:6). 이것은 어떤 특정인을 향한 독설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결과는 무섭다. 이런 무서운 사실 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참조 1 : [양승훈 칼럼] 두 근본주의의 충돌 (크리스천투데이 2009. 1. 20)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0409
‘창조와 격변’에 대한 한국창조과학회의 입장
https://creation.kr/Faith/?idx=1293774&bmode=view
다중격변론 - 한국에서 등장한 타협이론 (한국기독공보, 2011. 2. 11)
http://pckworld.com/article.php?aid=4912591656
양승훈 교수의 점진적 창조론 강의의 위험성 (기독교개혁신보. 2023. 2. 8)
*참조 2 : '우리가 믿는 것은 창조과학 아닌 '하나님의 창조'
양승훈 교수, <창조에서 홍수까지> 출간 기념 북 콘서트 (2014. 7. 28. 기독교포털뉴스) http://www.kport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031
'건강한 신학적 기초 위에 세워져 있지 않은 창조론 운동은 심각한 문제 야기' (2014. 7. 28. 기독일보)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건강한-신학적-기초-위에-세워져-있지-않은-창조론-운동은-심각한-문제-야기-43173.html
*참조 3 : 성경 성(性)적 해석 ‘하나되는 기쁨’ 논란 재점화 : 저자 양승훈 교수와 추천자 정동섭 목사 등 기자회견 (2010. 1. 21.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362
교회연합신문 「하나되는 기쁨」 관련 입장 발표 : 강춘오'구원파 동조 등 근거 없는 거짓말”
목회자 '복음주의적 입장이 예배를 섹스로 보는 것인가” (2010. 1. 23. 기독일보)
http://cdntv.co.kr/s02_1.htm?mode=read&read_no=12847&now_page=2&menu=1
'성경을 性경 오도한 ‘하나되는 기쁨', 분명 이단서적” : 9개 평신도 단체들, 기자회견 열고 저자 등 강력 규탄 (2010. 2. 9.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657
'하나되는 기쁨', 반성경적 (2010. 2. 18. 크리스챤월드리뷰)
http://www.christianwr.com/news/articleView.html?idxno=24980
한국교회개혁연대 출범, ‘하나되는 기쁨’ 규탄 나서 : 중진 목회자들 중심… '성경 색욕거리로 전락시킨 것 회개해야” (2010. 2. 25.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879
쾌락 통해 창조주를 만난다는 이교적 저서 : ‘하나되는 기쁨’ 실태 고발 세미나… '관계자 퇴출하라” (2010. 3. 13.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7451
「하나되는 기쁨」, “반기독교적 음란서적” 결론 (2010. 12. 15. 기독일보)
한국교회, <하나 되는 기쁨>의 성(性)사역 중단시켜야 (2012. 8. 24.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article.html?no=62593
<하나 되는 기쁨> 저자 양승훈교수, 신간 출간 기념회 논란 일어 :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개최하려다 교계 인사들 강력 반발 장소 변경 (2012. 8. 2.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article.html?no=62426
창조주 찬양 주일을 기념하며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5월 마지막 주는 창조주 찬양 주일입니다. 우리 한국창조과학회에서는 매년 이 기간을 창조주를 찬양하는 주일로 정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더욱 높이고 경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산과 들이 엄청난 생명력으로 다시 푸르고, 그 사이 사이를 넘나들며 춤추며 노래하는 아름다운 나비와 새들의 몸짓은 그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고 경배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1).
성경의 그 많은 말씀 중에 창조주를 기억하는 일과 그가 하신 일을 기억하는 일만큼 귀한 일이 없기에 모든 말씀 중 첫 번째로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은 다른 어느 생명체보다 더 높이 창조주를 찬양할 수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에 사로잡혀 창조주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하나님에 의한 우주 만물과 인간의 창조 사실을 단지 기독교의 신화 또는 설화 정도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에서는 진화론을 배척하고 있으며, 진화론자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진화론적 신념을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일, 그것은 먼저 깨달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성경에 수차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아름다웠다는 뜻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였으며, 모순이나 갈등이 없는 완벽한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은 고등, 하등의 진화론적 개념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름대로 완벽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생태계에서 더없이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진정 과학의 눈으로 생명현상을 본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 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은 채 진화의 산물로 자처하는 모습은 너무도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늦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전도서12:1,2).
창조주를 기억함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할 우리의 본분과 세상 만물을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관리할 의무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매년 맞이하는 이 창조주 찬양주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더욱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고, 우리 인간 스스로는 정체성과 존엄성을 회복하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914
참고 :
'과학의 날' 특별기고. 과학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이 지구상에 사람을 제외한 어떤 생명체도 과학 지식을 축적, 확대해 가고 있지 않다. 사람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지혜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질서를 연구함으로써, 그 질서를 규명하고, 그 질서를 이용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21세기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발전된 과학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발전된 과학지식과 기술로 인해 인류는 우주에 대하여, 생명에 대하여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과학이 발전할수록, 지식이 늘어날수록 더 확실해지는 것은 우리는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 우주가 확장되고 있다는 발견을 하였을 때, 우주는 빅뱅이론에 의해 명확하게 설명되는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더 멀리 있는 우주를 관찰할수록 빅뱅이론과는 달리 ‘초기 은하’모습이 우리가 속한 은하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우주의 구조가 너무나 균질하고, 우주 초기의 질서도가 매우 높으며, 우주와 태양계가 지구의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찰들은 우주가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주의 거대한 구조, 은하계를 붙들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중력의 힘 등은 발전된 과학이론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관찰되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이 빅뱅이론에 의해 우주 생성의 비밀이 풀린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우주를 관찰할수록 우주는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우주에 대한 연구와 비슷하게 생명에 대한 연구도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다. 생명과학자들은 생명정보의 전달물질인 인간의 전체 DNA를 분석하게 됨에 따라 생명의 신비를 모두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생명과학이 발전됨에 따라 DNA분석만으로는 알 수 없으며, DNA보다 3배 이상 많은 RNA, RNA보다 10배 이상 많은 단백질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있기 때문에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생명과학 연구에 의해 많은 진보가 이뤄지고 있고,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생명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묘막측’한 존재라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로마서 1장 20절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에 살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처럼 교육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과학의 진보는 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적 증거가 없음을 밝히고 있지만,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인본주의’, ‘물질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자연주의’ 등의 세계관에 사로잡힌 과학자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알고, 또한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과학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야 하고, 또한 이웃을 섬기는 일도 잘 해야 할 의무와 특권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과학이 무엇인지 바로 알 때, 우리 모두는 과학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과학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과학으로 회복시키는 일군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기도와 헌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군들이 많이 나오게 하소서. 아멘.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75
참고 :
창조과학 사역의 의미 2 : 창조과학에 대한 소개 II
서론
진화론이 어떤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태어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대적하였는지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를 위해 창조과학이 어떻게 쓰임 받고 있는 지를 첫 번째 강좌에서 소개하였다. '창조과학에 대한 소개 II” 에서는 진화론이 교회와 신학에 준 부정적인 영향과 교회 및 사회 교육에서의 창조과학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다.
본론
1. 신학의 변화 -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와 영향
1) 진화론의 거짓 증거들
학문의 여왕이라는 신학도 진화론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게 되었다. 왜냐하면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성경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의 창조는 거짓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가설에 불과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화의 증거가 있다고 믿게 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지금은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자바인, 필트타운인 등은 진화의 결정적인 증거로 여겨졌다. 자바인은 원숭이의 두개골 일부와 사람의 다리뼈 일부를 가지고 주장한 것인데, 15m 떨어져 있는 두 뼈가 한 개체라는 주장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고, 이것을 발견한 듀보아가 같은 지층에 있던 사람의 머리뼈는 감추고 거짓말을 하여 인류와 원숭이의 중간단계인 원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지금은 진화론자들은 자바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때 당시의 학자들도 많이 의심했지만, 대중들에게는 결정적인 증거로 비춰졌다. 필트타운인은 더 심한 거짓 주장이었다. 이것은 과학적 사기인데, 사람의 두개골에 원숭이의 턱뼈를 교묘하게 붙인 것이었다. 필트타운인에 대하여 수많은 박사 논문들이 나왔고,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되는 결정적 증거로 50년 동안 인정받았었다. 후에 이 뼈들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조사하다가, 이 뼈들이 불과 몇 십 년밖에 안된 뼈라는 것이 드러났고, 더 자세히 조사하면서 가짜로 사람의 머리뼈와 원숭이 턱뼈를 붙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은 진화론이 전혀 증거가 없는 가설에 불과하며, 또한 과학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비교적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자바인이나 필트타운인과 같은 가짜 때문에 진화론이 과학적 진실인 것처럼 인정받는 세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신학자들은 과학적 사실인 진화론과 성경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고, 이것이 더 나아가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즉 진화는 사실이고,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진화론 자체가 하나님을 부인하는 물질주의적 사상인데, 거기에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붙인 것은 진화론자들도 비웃을 일이고, 성경말씀과도 맞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유신론적 진화론은 거짓된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창조하신 진리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2)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
르네상스 이후 과학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인간 이성이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게 되자, 인본주의적 세상에서 성경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 자유주의 신학이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성경말씀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대 자료로 보는 문서 비평적인 학문이 발전되었고, 신학교에서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기보다는 하나의 자료로서 취급하게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크다. 우리나라의 많은 목사님들도 자유주의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신 분들이 많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성경을 그대로 진리의 말씀이라고 믿는 목회자가 50%도 안 된다는 놀라운 이야기도 있다. 이런 상황은 인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당연시 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놀라운 부흥이 이 당시에 있었고, 자유주의 신학을 배운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면서 많은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극단적인 자유주의 신학, 이에 대항하여 나온 근본주의 신학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극단적인 형태는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인간 지식이 우월하다는, 즉 과학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 그리고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는 믿음은 아직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이 보편화됨에 따라, 성경이 증거하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목사님들은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내용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진화론이라는 과학과 맞지 않는 하나님의 창조를 주장하기 어렵고, 신학교에서도 유신론적 진화론을 배운 목사님들이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할 뿐 아니라, 기적도 부인한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홍해가 갈라지는 하나님의 역사도 갈대밭을 그냥 걸어간 것이었다고 해석한다. 물론 갈대밭에 왜 이집트 군사들이 빠져 죽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지만.... 또한 예수님의 부활도 부인한다.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신앙이 회복된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결국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에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도 부인하는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 영향으로 성경말씀과 과학이 충돌된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쉽게 성경말씀보다는 과학을 믿고, 성경말씀은 무시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흔히 드는 예가 갈릴레오에 대한 종교재판을 들고 있다. 과학적인 사실인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기독교가 억압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과학에 대하여 기독교가 왈가불가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두 가지 오해가 있다. 첫째는 그 당시의 가톨릭 종교 지도자들이 지동설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천동설은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오던 지식이었을 뿐이다. 성경말씀에 근거해서 천동설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둘째로 종교지도자들이 지동설을 억압한 것은 성경 때문이 아니라, 이때 당시 종교재판을 주도한 사람들은 성직자인 동시에 과학자들이었기 때문에 억압한 것이었다. 그때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던 과학적 사실과 지동설이 배치되기 때문에 종교적 권위를 이용하여 억압한 것이다. 지금도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과학자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억압당하는 유사한 과정을 겪고 있다.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이 거짓되다는 주장에 대하여 일부 교회에서는 배척당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창조가 과학적으로도 모순이 없으며, 노아홍수 심판 때의 홍수에 의한 증거들이 많다는 창조과학 내용들이 일부 목사님들에게는 자신들이 배운 유신론적 진화론과 맞지 않아 당황하기도 한다. 또는 창조과학이 근본주의 신학에서 나온 잘못된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창조과학과 근본주의 신학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2. 근본주의 신학과 창조과학 운동
1) 근본주의 신학
근본주의 신학은 우리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한 신학이다. 그것은 근본주의 신학에서 나온 세대주의가 우리나라 신학계에서 이단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목사님들은 근본주의 신학이 우리나라에 정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신학이 잘 발전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우리나라 배경에서 근본주의 신학은 성경말씀에 대한 지나친 집착, 잘못된 해석체계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근본주의 신학을 바라보는 눈이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 근본주의 신학은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은 것이다.
근본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다. 성경말씀에 대하여 인간의 이성에 타협하여 해석하는 것에 대한 강한 반발이다. 그래서 근본주의 신학은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매우 노력한다. 따라서 근본주의 신학의 내용 중에는 좀 지나치게 성경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이 강력하게 대두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해가 필요하고, 또한 좀 고지식해 보여도 성경말씀 중심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자세에 대하여 존중해야 할 것이다.
2) 창조과학 운동
창조과학 운동이 근본주의 신학의 배경에서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화론이 성경의 창조주를 부인할 때, 동일하게 과학의 이름으로 창조주를 인정하는 운동이다. 성경말씀이 과학적인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창조과학 운동도 근본주의 신학처럼 성경해석에서 문화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할 수 있으며, 과학적 해석이 잘못될 수도 있다. 성경에 대한 어떤 해석도 완전한 해석은 있을 수 없다. 성경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메시지를 모두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강조점이 달라질 때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양한 해석을 제공해준다. 또한 해석하는 사람의 제한점 때문에 성경은 항상 제한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창조과학은 과학적인 자료가 성경말씀과 모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과학적인 자료를 통해 성경말씀대로 창조되었고, 대홍수의 심판이 있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성경말씀은 불변하지만, 과학적인 자료는 인간의 해석을 담고 있다. 따라서 창조과학의 내용은 과학의 발전과 새로운 시각에 따라 발전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오류가 있다면 수정될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는 창조과학 사역자들이 이 시대의 레갑족속이라고 생각한다. 예레미야 시대에 레갑족속은 레갑의 아들 요나단이 포도주를 먹지 말라고 한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레갑족속의 우직함을 칭찬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셨다. 창조과학 사역자들은 성경말씀을 우직하게 믿고, 과학적인 증거들을 찾고 해석한다. 따라서 창조과학은 일반 과학에서 다루는 과학적인 내용을 사용하지만, 일반 과학과는 전혀 다르다. 일반 과학들은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창조과학은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관찰하고 실험을 하며, 그 현상을 설명한다. 따라서 일반 과학자들 입장에서 창조과학자들은 잘못된 과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결론을 내리기 전에 이미 성경을 통해 결론이 나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과학은 과학 이전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인 사실들을 억지로 성경말씀에 맞추려고 하거나, 무시해서도 안 된다. 많은 경우 성경과 과학이 갈등을 일으킬 때, 성경에 대한 더 깊은 해석이나, 과학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3. 창조과학에 대한 오해, 과학에 대한 오해
1) 창조과학에 대한 오해
창조과학에 대한 다른 측면의 오해가 있다. 창조과학을 통해 창조를 증명한다는 오해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의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과학은 진화될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들과 창조되었기 때문에 관찰될 수 있는 현상들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창조과학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창조와 노아 홍수이다. 노아 홍수와 같은 격변에 대한 증거들은 매우 풍성하다. 그러나 그것도 진화론적 지층해석이나 연대가 틀렸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일 뿐, 노아 홍수 자체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노아 홍수와 같은 대격변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뚜렷한 증거들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뿐이다. 창조과학은 성경을 기초로 하고 있지, 창조과학이 성경말씀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이다.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는 창조과학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성경말씀을 믿음으로 믿으면 충분하지, 굳이 과학적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말씀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풀어서 해석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풀어서 해석해주셨고, 지금도 수많은 목사님들이 성경말씀을 풀어서 해석해서 말씀을 전하고 계신다. 창조과학은 단지 과학적 자료들을 사용한다는 독특함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창조과학 사역자들은 성경말씀에 대한 깊은 확신과 이해가 우선 있어야하고, 그 후에 과학 자료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선배 창조과학자들이 잘 풀어서 해석한 것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 지식보다는 성경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창조과학 사역자들의 필수 요소인 것이다.
2) 과학에 대한 오해
창조과학자들이 성경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과학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과학자들이 창조과학자들처럼 이미 마음속에 내린 결론을 가지고 관찰하고 실험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객관적인 사실만을 이야기하고, 과학자들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 결과를 발표한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 없다. 과거에는 그렇다고 사람들이 믿었다. 그러나 모든 과학자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피조세계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보지 못한다. 창조과학자들은 창조주를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 너무 잘 보인다.
모든 과학자들은 그전에 이루어졌던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존하고 있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필트타운인을 생각해보라. 필트타운인에 대한 수많은 박사논문이 있을지라도 실제로 필트타운인이 거짓된 것에 불과한 것이 밝혀졌을 때, 그 모든 연구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주신 지성으로 많은 과학지식을 축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해를 선인과 악인에게 모두 비춰주시듯, 하나님을 모르더라도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
과학이 아주 객관적이라는 오해와 더불어 과학은 진리라는 오해가 있다. 물론 어떤 과학적 사실들은 '법칙”이라고 불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도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지식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 요즘처럼 빨리 발전하는 세상에서는 1년만 지나가도 낡은 지식이 되고 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과학은 진리만을 이야기한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 과학은 제한된 것이다. 사람이 관찰하고 실험할 수 있는 것을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관측이 불가능한 것은 과학의 영역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다. 진화론은 과학적 방법으로 알 수 없는 기원에 관한 가설을 제시하고, 관찰할 수 없는 진화를 주장한다. 따라서 진화론은 신념에 불과한 것이다. 단지 하나님이 없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인간적인 신념인 것이다. 진화론의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굳게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기원에 대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따라서 과학은 기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과학은 알 수 없다. 우리는 믿지 않지만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였다고 한다. 이 세상과 우주는 엄청난 질서와 설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혜를 가진 전능자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주장에 반대할 근거는 없다.”
4. 창조과학 사역의 방향
1) 창조과학 교육 사역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잠 1:3).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더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모른다면 모래성에 쌓은 집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초등, 중등,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내용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에 대한 것은 없다. 도리어 진화론 교육을 통해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라는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창조과학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세상의 교육 현장에서 잘못된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교육되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적어도 진화론의 잘못된 점은 교육되어야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진화론이 증거가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진화론 비판 교육은 반드시 제도적인 교육에서 이뤄져야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깊게 뿌리내리도록, 인본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특별히 교회학교에서 잘못된 진화론 교육의 영향으로부터 어린 학생들을 보호해야한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장 근본이라는 것, 하나님은 창조주라시는 것에 대한 기초가 든든히 세워져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과학 사역은 소수 과학자들의 과학 연구 뿐 아니라, 창조과학 지식을 학생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선교사들의 경우도 선교현장에서 적용할 때 매우 큰 복음 전달의 수단이 되고 있어, 선교사들을 교육하는 사역도 더 확장되어야할 것이다.
2) 창조과학 연구 및 창조과학적 삶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예수님 안에서 회복되어야 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과학 사역자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다. 이 땅 끝은 지리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원의 감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도 변화시키고, 삶도 변화시켜, 자신의 삶 자체가 선교사로 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직업이 지식세계, 학문세계와 연관되어 있다면, 주변의 학자들을 변화시키고, 학문 자체를 변화시켜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사명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모든 분야, 모든 땅에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과학과 성경이 분리되어 있다는 이원론적 사고를 버리고, 과학이든 무엇이든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음을 선포해야한다. 해 아래 있는 어떤 것도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닌 것이 없고, 그분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없다. 따라서 창조과학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과 연관된 지식들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창조과학은 지금까지의 지식과 삶을 창조주 하나님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음과 이 모든 것들을 노아 홍수 때처럼 심판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사는 것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창조과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연구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학문과 지식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진화론의 영향을 받지 않은 학문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모든 지식이 창조주를 아는 지식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어떤 경우든지 자신의 삶의 영역을 하나님의 능력과 지식으로 새롭게 하는 것이다.
결론
창조과학 사역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께 그분의 창조하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영광을 올리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유가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 4:11)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선포하는 것은 바로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삶의 주인이 그분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잘 알게 되면,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죽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더욱 깨닫게 되는 것이다.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53
참고 : 3851
당신이 무시할 수 있는 다른 교리는 무엇인가?
(What Other Doctrines Do You Ignore?)
by John D. Morris, Ph.D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최근에 나는 한 명의 복음주의적 목사님과 창조에 관한 견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안하지만 이해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창조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성경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창조보다 더 많은 기독교 교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창조에 대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성경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에 영향을 끼친다.
불행하게도, 창조에 대한 그 목사님의 태도는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태도이다. ”오, 나는 그 주제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논쟁적입니다. 게다가, 현대 과학은 수십억 년의 우주 및 지구의 연대를 증명해왔습니다. 창조와 지구의 나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그것 외에 오늘날에 필요한 더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이것은 매우 영적인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창조의 교리는 다른 교리들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다른 교리들에 손상 없이 창조의 교리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기되어지는 그 다음 질문은 ”그러면, 당신이 무시할 수 있는 또 다른 교리는 무엇입니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창조론은 모든 것 위에 주권자로서 하나님을 위치시키는 '세계관(worldview)”을 가진 개념이다. 창조주로서 그분의 역할은 인생을 이끄시고, 그의 율례를 벗어나는 경우 벌을 가하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이것은 어떤 기계의 제조업자가 어떻게 그 기계를 작동시키고 수리하는 지에 관한 매뉴얼을 저술할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인류의 창조주는 우리의 인생과 택함에 대한 권한을 갖고 계신다.
그런데, 창조주의 매뉴얼(성경)에는 예수님 자신이 창조주라고 기록되어있다. (예를 들어, 골로새서 1:16절을 보라). 창조주로서 예수님의 역할을 부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칠 수 없다. 창조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 시부터 유래된(현대적 편의에 의한 것이 아닌) 결혼에 대한 교리를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최근 창조(recent creation)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전 세계적인 홍수(worldwide Flood)를 말씀하셨으며, 동물들을 구별된 종류(separate kinds)들로 창조하셨음을 말씀하셨다.... 그분의 창조에 대한 가르침은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다. 또한 예수님은 창조와 노아홍수가 사실이었음에 근거하여, 그의 재림에 대해 가르치셨다.
많은 과학자들이 창조론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우리들이 의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일부 과학자들의 의견은 자주 진정한 과학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흔히 반하나님적 사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동정녀 탄생과 부활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르침에서 그러한 사항들은 삭제시켜야 하는가? 창조론은 기독교 세계관에 있어서 기초이다. 창조가 아니라면, 하나님, 죄, 인간, 죄에 대한 심판, 창조주의 죽으심을 통한 구속, 재림... 등에 관한 기독교 교리들에 대한 논리(logic)가 무너지게 된다. 만약 우리가 많은 기독교 교리들의 기초가 되고 있는 창조의 교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한다면, 다음에는 어떤 교리라도 쉽게 포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 Dr. John D. Morris is the President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2904/
출처 - ICR, BTG 213a, 2006. 9. 1.
창조과학 사역자로 택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고등학교 2학년 초에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성경의 서두에 써있는 이 글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더 이상 관심조차 두지 않았고 고등부 공과에서 배우는 성경공부 외에는 신약성서를 복음서 별로 나눈 쪽복음서를 읽어보는 것이 전부였던 나였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서서히 창조와 진화에 대한 갈등이 커갔지만, 신앙과 학문은 서로가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이 둘을 함께 생각하는 것은 무리라는 논리로 마음 편하게 피해갔다. 그러면서도 주일학교 교사가 되어 어린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천지와 우주 만물, 그리고 우리 모두를 창조하셨다는 말을 해야 할 때는 믿음과 신념이 실리지 않은 말이 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가르치는 말에도 힘이 실리지 못했고, 내심으론 솔직히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교사로 또는 찬양대원으로 교회에서 주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몸으로는 열심히 임했던 것 같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동물 형태/발생학을 전공하게 된 이후부터는 학부시절에 별로 접하지 못했던 진화론 일색의 문헌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교수로서 대학에서 동물발생학, 무척추동물학을 강의하다가 대학의 사정상 주 전공이 아닌 동물분류학까지 강의하게 되면서부터는 교재와 참고문헌들에 충실한 진화론적 개념을 기조로 한 강의를 열심히 하였다. 그러던 중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일신상에 어려움이 많아지자 단순히 “살고 싶다. 이렇게 일생을 마칠 수는 없다.”는 절박한 이유 하나만으로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난 후부터 일련의 영적체험이 시작되면서 나에게는 생각의 기본 틀이 바뀌기 시작했다.
화학원소와 전기, 전자 등을 제외하고 눈으로나 현미경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대부분 그 존재조차 별로 믿지 못하는 형태학자 특유의 근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의 의식구조에 맞게 모든 것을 보여주셨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영이라는 것의 존재를 믿게 되면서, 더불어 성령, 부활, 창조 등 성경에서 흔히 등장해서 항상 거북스러웠던 단어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성경을 읽으며 “이런 말씀이 있었나?” 하며 새삼스럽게 놀라는 대목이 많아졌는가 하면, 대학에서 가르쳐온 전공에 관한 교재나 문헌들을 읽을 때 생명현상의 오묘함에 놀라 온 몸에 감동의 물결이 치듯 하는 경험을 하곤 했다. 그 이전에는 솔직히 단순히 지식으로만 습득했을 뿐 크게 감동할 줄은 몰랐었다. 이런 상황이 되니 진화론을 기저에 깔고 있는 강의가 송두리 채 잘못되었다는 자책감이 커져서 “이걸 어쩌나?” 하는 당황스러움에 찾은 것이 한국창조과학회에서 발간되는 ‘창조’지를 구해 읽었고, 창조과학회의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여 창조론적 개념을 익혀갔다.
1990년도 1학기부터 나의 강의는 강의의 기조와 해석이 완전히 다른 강의로 탈바꿈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입에 밴 진화라는 단어 때문에 기도해야만 했다. 그 후로는 나의 생물학 강의가 창세기 부록을 강해하는 듯한 강의가 된 셈이다. 그런 만큼 강의를 끝내고 강의실을 나오는 나의 기분은 즐겁고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하는 마음이 되었다. 나의 창조과학 사역은 이렇게 강의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창조과학 사역은 내가 알아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강권하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두려움과 감회가 더 큰지 모른다. 내가 무엇이기에 불신 가정에서 택하여 성 삼위 하나님에 대한 믿음 주시고, 이 믿음을 근거로 전공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전파하게 하시는가하는 의문과 감사함이 얼버무려진 것이 나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해보려고 시도해왔다. 과학이 기적을 낳는 학문이 아닌 이상, 과학이 증명할 수 있는 한계는 그리 넓지 못하다고 본다. “구약성서 요나서에서 요나를 삼켰던 물고기는 어떤 물고기였을까?”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고기 중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보면서 나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든다. 과학적 상식적으로는 물고기 뱃속이나 구강 속에서 사람이 생존할 수가 없다. 우선 산소가 절대 부족하다. 또 큰 물고기들은 보통 작은 물고기들을 씹지 않고 거저 삼켜버린다. 그래도 그 물고기가 통째로 삼킨 물고기의 가시에 찔려 위장에 탈났다는 기록이 없고 또 그럴 리도 없다. 그만큼 강한 소화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창조주의 능력을 되새겨 보면 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어 이름을 붙인 동물의 종만 해도 150여만 종이 되는데, 그들 하나하나가 수백 권의 책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한 기관계의 총체적인 조화로 생명현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일순간에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불가능하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시기 위해서 요나를 삼킨 후 살려두었다가 다시 뱉어 버릴 수 있는 특수한 물고기를 뱃사람들이 요나를 들고 물로 던질 즈음에라도 만드실 수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 후에 그 물고기가 좀 더 번성했었는지 그것 하나로 살다 소멸했는지는 차치하고, 나는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현존하는 물고기의 크기와 구조를 조사하며 가늠해보는 것보다 더 타당한 창조주에 대한 믿음이라고 본다. 이 부분은 성경에 기록된 많은 사건들에 대하여 내가 평상시 가졌던 의문 중 일련의 영적체험을 한 후 제일 먼저 풀린 의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창조과학 사역을 하는 동안 어려웠던 부분들은 생명과학 분야 학회에서 이방시하는 부분이 작지 않은 어려움이었고, 사역 자체로 말하면 큰 도회지에서보다 시골내지 소도시에서 주로 시청각 기자재에 얽힌 일화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고, 때로는 교역자들의 창조과학에 대한 몰이해 내지 편견이 적지 않은 장애이기도 했다. 창조론에 대한 강의는 학생들이나 들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그간 조사한 기독교인들의 의식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론이 믿어져서 믿는다고 사람보다 사실은 잘 믿어지지 않지만 믿으려고 노력한다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므로 보다 확고한 신념을 불어 넣어줄 창조과학자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현실을 교역자들이 인식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모 신학대학에 강의하러 갔을 때 신학대학 교수의 질문 중에는 “창조과학회에서는 성경에 있는 창조의 날을 문자대로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최초의 동물을 성체로 만드셨다고 보십니까 알로 만드셨다고 보십니까?” 라는 것도 있었다. 놀라운 질문들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신학의 흐름이라고 본다.
요즘은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고,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불변하신다는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을 다시금 꼼꼼히 되새겨야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한국창조과학회에는 다른 학회와는 전혀 다르게, 학문의 전공분야가 전혀 다른 학자들이 창조 신앙 하나로 뭉친 너무도 독특한 학회이다. 많은 회원들이 모든 어려움을 딛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헌신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동이 크고 부럽기까지 하다. 창립한지 25주년이 되어 성년이 된 우리 학회는 이제 모든 활동 주역이 차세대로 넘어가야하는 중인데, 능력 있는 젊은 학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고, 또 계속 등장하고 있어 무척 고무적이며, 더없이 감사한 일이다. 이후로도 창조과학 교육이 다방면으로 진행되며, 많은 차세대 젊은 창조과학자들을 발견하고 지원할 수 있는 체제도 필요하고, 외국 창조과학자들과의 끊임없는 교류로 서로의 필요를 채울 수도 있어야 하겠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 창조과학자 모두를 향한 특별한 계획이 있으셔서 택하여 세우시고 이제까지 인도하여 오셨다고 믿는다. 왜곡된 진실을 바로 알려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바쁜 창조과학자들의 발걸음마다를 성령님께서 동행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출처 - 창조 제148호, 2007년 1-3월호.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91
참고 :
거룩한 지성으로 창조를 교육하라.
신명기 6장에서 모든 지식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알아가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합니다. 잠언 1:7에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32에서 ”진리(하나님의 말씀)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반지성주의가 아닙니다. 지성을 연마하되 거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20세기 초에는 노도처럼 밀려오는 진화론과 인본주의의 거센 지적 도전에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기독지성인들이 체계적인 거룩한 지성으로 대응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젊은이들이 진화론과 인본주의로 세뇌되어 성경에 회의를 느끼고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거룩한 지성의 중요성을 간과한 탓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실패를 되풀이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 이시고, 인간사와 역사의 주관자이시므로, 모든 학문과 예술과 삶은 그러한 전제와 시각에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기독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야 하며, 그러한 동력과 연료를 제공해야 합니다.
흔히 일반대중들에게는 창조와 진화의 논쟁이 주관적인 종교와 객관적인 과학의 갈등으로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종교는 윤리적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고, 과학은 물질세계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니, 서로 갈등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독인들이 그러한 그럴 듯한 술수에 미혹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인간의 머리에서 만들어낸 윤리적 경전이나 모범적 도덕책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성경과 진화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참계시로 믿는다면, 그 말씀과 진화를 동시에 수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진화란 모든 것에 초월적 전능자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자연주의(naturalism)에 입각해서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와 진화는 두 배경신념, 즉 두 세계관의 싸움이지 종교와 과학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크리스천들이 과학으로 포장된 진화라는 거대한 바벨탑의 위세 아래서 겁 먹고 패배의식에 젖어 기원에 관한 문제는 될 수 있는 대로 회피하고, 창세기를 포함한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라 믿는 대신에 구속에 관한 중심내용만을 계시로 보는 그런 추세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과 성경의 많은 저자들이 직접 창세기를 포함한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참계시로 기록되었다고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크리스천들의 이러한 회피와 패배의식 때문에 이 세상 교육기관에서는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진화론 교육이 더욱 강화되고, 우리들의 자녀들은 그 안에서 더욱 자연주의로 세뇌되며 신앙의 혼란과 방황을 거듭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화론으로 세뇌된 자녀들에게는 창세기의 창조는 사람이 만들어낸 신화정도로 들릴 것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교회와 부모들이 아직까지도 이 문제에 너무도 둔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 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베드로후서 3:17)
복음주의 신학의 거장 패커 (J.I. Packer)는 자연주의라는 누룩은 오늘날 기독신앙의 암적존재이며, 그러한 풍조에 대하여 "오늘날 교회가 갖고 있는 많은 연약한 점들의 뿌리에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무지, 즉 기독교적 지성이 현대의 인본주의의 지성에 항복하고 따르게 된 것이다. 즉 인간과 과학에 대해서는 대단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사소하게 생각하는 그런 풍조를 말한다.”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이제 교회와 크리스챤 가정에서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바로 보고 더욱 창조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이번 여름에도 많은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창조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다면 금년 또는 내년에 꼭 한 번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ACT의 [공룡캠프]와 같은 주일학교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앞으로 더 많은 지원과 자원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당신은 거듭난 기독인으로 거룩한 지성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자녀에게 창조를 교육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자녀들에게 야망을 교육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소명을 교육하고 있습니까?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3:1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83
참고 : 3384|4039|1984|2497|3728|5559|2535|5122|5906|4140|3771|4628|4501
‘창조와 격변(양승훈 저)’에 대한 한국창조과학회의 입장
2006년 8월에 출간된 양승훈 교수의 저서 ‘창조와 격변’은 책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하나님의 창조와 격변 두 가지 중요 내용을 이 책의 주제로 삼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과 견해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책에서 제시한 여러 이론들 중 결론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는 ‘다중격변론’은 한국창조과학회가 오랫동안 주장하여 왔던 노아의 대홍수에 의한 격변론과는 매우 다른 내용이어서, 회원들에게 양 교수의 주장이 학회의 입장과는 현저히 다른 위치에 있음을 알릴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양승훈 교수께서는 과거 한때 한국창조과학회 부회장도 역임하였고, 과거에 ‘창조론 대강좌’와 같은 창조론 관련 저서들도 집필하였기 때문에, 양승훈 교수의 저술 내용이 마치 한국창조과학회의 변화된 새로운 입장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과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과학적 지식들을 동시에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과 변화되는 과학지식에 대한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합니다. 한국창조과학회는 올바른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오랫동안 하나님의 창조와 노아홍수의 대격변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증거들을 밝혀 왔습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이론을 세울 수 있고, 주장과 해석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학회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때에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학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 '창조와 격변” 책 내용 중 일부 한국창조과학회 입장과 다른 내용 요약 >
1. 다중격변론과 오래된 지구
- ‘창조와 격변’ 제14장 ‘대홍수와 다중격변’ 내용 중 대홍수론에 대한 비판에서 저자는 성경의 기록으로는 전 지구적인 홍수의 증거가 압도적이지만, 지질학적인 면에서는 국부홍수론의 주장이 만만치 않으며, 방사성 연대측정법이 재현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다중격변모델이 성경적 해석과 지질학적 해석의 딜레마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중격변모델의 가장 분명한 증거로는 지구 곳곳에서 발견된 크고 작은 운석공들이며, 지구상에 확인된 171개의 운석공들 중 지구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직경 2km 이상 인 것들은 140여 개에 이르는데, 지난 4000년의 인류 역사에는 이런 흔적이 없기 때문에, 인류 역사 이전에 장구한 기간에 걸쳐서 운석충돌들이 일어났을 것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운석충돌과 동시에 일어난 화산폭발이 격변을 가능하게 했고, 노아 시대 대홍수는 마지막 격변으로 신생대 홍적세 지층을 만든 홍수였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한국창조과학회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 한국창조과학회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창세기의 대홍수가 대격변을 동반한 전 지구적 홍수였을 뿐 아니라, 화석을 포함하고 있는 고생대 캄브리아기부터 신생대 홍적세에 이르기까지의 지층들 대부분을 형성하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 홍수는 성경에 기록된바 대로 짧은 기간동안 이러한 일들을 발생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대격변이었습니다. 산을 덮는 대홍수는 지금의 과학 수준으로도 가름하기 힘든 엄청난 격변이었고, 너무도 광대한 수평퇴적층들, 수많은 잃어버린 지층들의 존재, 평탄하게 이어져있는 부정합 지층 경계면들, 장구한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없는 대규모 지층구조들, 거대한 물에 의해 분류되어진 퇴적지층 모습들, 수많은 해저 화산들, 실험실 내에서의 빠른 퇴적지층 형성 모델 확립, 굳지 않은 상태에서 퇴적지층들의 변형 모습들, 격변적 퇴적 모습의 지층과 화석들, 대륙들의 빠른 이동, 해수면의 급격한 변화 증거들, 진화론적 연대로 수억년(?) 전과 동일한 모습의 수많은 동식물 화석들, 수억 수천만년(?) 전 화석에 남아있는 DNA 조각이나 연부조직......등등의 지금까지 밝혀진 수많은 지질학적 화석학적 증거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한 번의 전 지구적인 대홍수를 동반한 대격변과 더 잘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랜드 캐년의 코코니노 사암층에서처럼 지층 중간에 보이는 사층리들을 이전에는 사막 모래의 퇴적으로, 그래서 풍성층으로 불렸었으나, 최근 물 속에서 퇴적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지층 중간에 보이는 수축균열도 건열로 불려지며 대기 중에서 건조된 모습, 또는 한발의 증거로 생각했었지만, 이것도 퇴적층에 물이 빠져나가며 수축되어지면서 생겨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한 번의 대홍수만으로도 이러한 지질학적 모습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중생대 말에 공룡들을 멸종시킨 거대한 운석 충돌이 있었고, 운석에 풍부한 이리듐이 K-T 경계면에 이리듐 층을 남겼다는 가설도, 이리듐은 화산재에도 풍부히 존재하며, 이리듐 층 이후에도 공룡의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K-T 충돌 이전에 살았던 기후와 온도에 민감한 동식물들이 충돌 이후에도 계속 살아왔었다는 증거들이 계속 발견되면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중격변론의 중심이 되는 운석공들의 충돌 흔적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으며, 운석공들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해석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창조과학회는 수억 수천만 년의 지질시대들은 존재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지층들은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와 이어진 일련의 지질학적 사건들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지구의 연대도 매우 젊다고 보고 있습니다.
2.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결과에 대한 해석
- ‘창조와 격변’ 제12장 ‘과학적 연대 논쟁’ 내용 중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에 대한 기술에서 아이소크론 연대측정법의 원리를 통해 초기조건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시료의 오염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K-Ar 연대측정 방법은 초기 암석에 자원소가 전혀 존재하지 않을 때만 사용될 수 있는 측정방법으로,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이 가정이 신뢰할만 하며, 전체적으로 방사성 연대측정은 암석 연대를 측정하는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비교적 짧은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방사성탄소(C-14)에 의한 연대측정 결과도 노아 홍수 이후 C-14이 증가하는 속도를 여러 가지로 가정해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의 정당성을 시험하였으나, 어떤 방법으로도 6,000년 이상 된 탄소 연대가 나온다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 한국창조과학회는 오랫동안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방법이 신뢰할만한 연대를 보이고 않고 있음을 밝혀 왔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방법은 방사성 붕괴가 항상 동일했으며, 최초에 자원소가 하나도 없었고, 붕괴 전 과정 동안 모원소와 자원소의 유출입이 없었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분출이 확인된 얼마 되지 않은 용암들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들이 수백 수천만 년의 연대측정 결과들을 보였으며, K-Ar 시계의 경우 초기부터 자원소인 아르곤이 상당량 존재하는 등 문제점들이 계속 제기되어 오고 있었고,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의 경우도 만약 노아 홍수 시에 깊음의 샘들이나 화산들이 터지면서 지하에 있던 C-14이 전혀 없는 CO2가 대기 중으로 유입되어졌다면 달라질 수 있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가 실험실에서 매우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2005년 11월 미국 ICR에서 8년 간의 연구 끝에 발표한 RATE 프로젝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가 과거 한때 엄청난 가속화가 일어났었으며, 지르콘 내에 아직도 헬륨이 풍부하게 잔류하고 있었고, 수억 년 되었다는 고대 석탄 및 다이아몬드 내에 반감기가 비교적 짧은 C-14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으며, 같은 암석 시료에 대한 방사성 연대측정 시계들마다 서로 다른 연대측정 결과를 보이는 등, 오래된 지구 연대의 핵심 근거인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 방법이 매우 신뢰할 수 없는 방법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결과가 재현 가능하고 상호 검증이 가능한 신뢰할만한 방법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한국창조과학회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3. 아담 창조 이전 동식물들의 죽음
- ‘창조와 격변’ 14장 ‘대홍수와 다중격변’의 내용을 보면, 고생대와 중생대 지층들 속에 들어있는 동식물들의 화석들을 해석하기 위해서 아담의 창조 이전에도 죽음이 있었을 수밖에 없다는 성경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롬 5:12, 창 3:14-19). 만약 아담 이전에 사망이 이미 있었다면, 사망은 "죄의 삯”(롬 6:23)이 될 수 없으며,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 (고전 15:26)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모든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롬 8:22)과 "썩어짐의 종 노릇”(롬 8:21)하는 이유는 "(피조물들의)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20)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화석 기록에는 죽음 이외에도, 질병과 기형, 기생충, 독, 암, 다른 생물체를 잡아먹음... 등과 같은 모습들이 존재합니다. 전능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오랜 세월을 낭비해가며, 이유 없이 수많은 생물들을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 등 가장 비효율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이끌어 오셨다고 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를 보시고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전에도 사망이 있었다는 예로서 아담과 하와가 걸을 때, 미생물과 곤충들의 죽음이 있었을 것으로(휴 로스는 아담이 식물을 먹었을 때도 식물의 죽음으로 주장함) 보고 있지만, 아담과 하와가 걸었을 때 미생물들과 곤충들이 죽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피를 가지고 있는, 그리고 호흡을 하는, ‘네페쉬(nephesh)’로 불려진 생물들과 구별됩니다. 그리고 먹이사슬을 통해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성경은 아담의 범죄 이전에 사람과 동물들은 채식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29-30). 즉, 하나님은 동물들에게 푸른 풀을 식물로 주셨기 때문에 육식은 없었습니다. 또한 송곳니와 발톱과 같은 육식동물들의 모습들과 행동들은 아담의 범죄 이후에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들에게도 같이 내려진 저주(창 3:14) 또는 대홍수 이후 사람의 육식 선포 시점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이며, 노아의 방주에 발려진 역청(pitch)은 식물들의 송진에 숯을 가하여 가열할 때도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생물들의 유해, 즉 죽음과 상관없으며,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등의 형성도 한 번의 전 지구적인 노아의 대홍수만으로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아담 이전에 사망이 있었고, 이것들이 화석 연료들을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작업일 수도 있었다는 양승훈 교수의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창조과학회는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사람과 동물들의 죽음, 피흘림, 고통, 질병들은 성경이 말하고 있듯이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06. 8. 31. 한국창조과학회
믿음과 현실의 분리
(Separation of faith and reality)
최근 호주 연방의회의 한 크리스천 의원은 교회에 다니는 다른 크리스천 의원들로부터 명백한 지지를 얻는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곤 슬퍼했다. 그들은 지지를 부탁받을 때 자주 이렇게 반응했다. “당신은 왜 종교와 정치를 혼합하려 하는가?” 그들은 “교회와 정부의 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가 의미하는 것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의 본래 의미는 기독교 종파가 ‘국립 교회(national church)’의 위치로서 지지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 크리스천들이 정부에 어떤 참여 또는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만 한다고 가르치셨다.(마 5:13). 확실히 이것은 정부를 포함하여, 하나님이 제정하신 인간 노력들의 모든 합법적인 제도들을 포함하고 있다.(로마서 13장). 확실히 루터(Luther)와 캘빈(Calvin)과 같은 개혁자들은 크리스천들이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 공적인 삶(public life)들을 포기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믿음의 분리는 정치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현실적인 일들에서 믿음을 분리시키려는 더 넓은 개념으로 선전되어지고 있다. 최근 한 보수적 복음주의(추정) 신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이 나에게 말하였다. 그의 교수는 창세기는 과학에 관한 것이 아니며, 하나의 신학적 서술(theological statement)이라고 강의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신학적 서술로서의 창세기가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 학생은 창세기는 하나님이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동의했다. 하지만, 오늘날 신학교와 대학교에서 ‘과학(science)’은 모든 만물들은 스스로 저절로 생겨났다고 가르쳐지고 있음을 그는 지적했다. 과학에 의하면, 모든 만물들은 순전히 자연적인 과정들을 통해서 우연히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의 우주적 사건이며, 하나님은 그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적) 과학과 신학은 여기에서 만물의 역사(history)라는 같은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이 같이 진실일 수는 없다. 하나는 스스로 생겨났다는 것이고, 하나는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신학과 과학은 깔끔하게 분리되어질 수 없다. 이것은 정말로 스코틀랜드의 신학자는 말했던 것과 같다. “종교와 과학의 분리는 결국 종교와 진실의 분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가 진실을 찾고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망되어질 것을 의미한다.”[1]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는 거의 죽었다. 왜냐하면, 믿음은 세상의 것과는 다른 마음(mind), 감성, 영원의 영역과 관련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성경의 초기 역사를 포기하기 시작했을 때, 서구 사회의 크리스천들에게 이러한 일들은 시작되었다. 이것은 다윈(Darwin)과 함께 시작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1700년대 말에 허튼(Hutton, 동일과정설의 제창자)과 함께 시작된 것이었다. 허튼과 그의 추종자들의 과학은 다윈과 함께 성경의 역사와 반대되는 위조된 역사를 제공하였다. 만약 성경의 역사가 틀렸다면, 어떻게 그 신학이 바로 설 수 있겠는가?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믿음은 전적으로 역사에 기초하고 있다.... 기독교는 역사에 기초하여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독특하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믿음은 (불교나 힌두교에 비해) 전적으로 다르다. 성경은 사실(facts)들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에덴 동산.... 당신은 홍수의 역사를 기억하는가?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역사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셨다.... 바벨탑... 아브라함.... 예수님에 관한 사실들....” [2]
물론 신학교나 대학교에서 존경받고 있는 복음주의적 교수들은 ‘예수님에 관한 사실들'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교수들이 창세기 1–11 장의 역사(history)를 부정한다. 그러나 그 역사가 없다면, 예수님의 구속 사건도 의미가 없어진다.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해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와서 모든 아담의 후손들이 죽을 수밖에 없게 된 타락(Fall)이 실제의 역사가 아니라면, 우리를 위해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에이리치(Dudley Eirich) 박사가 말한 것처럼, “진화론은 성경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파괴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한번 그 경사면 아래로 미끌어진다면, 이제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도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거한 진정한 세계 역사의 회복은 한때 그것을 믿지 않았던 크리스천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나는 창조(Creation) 지를 읽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의 진정한 역사를 믿는데에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그리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들이 자기와 화목케되기 위하여 죽으셨던(골 1:15–23) 그 분을 신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References
1. Denney, J., Studies in Theology, London, p. 15, 1894 (cited from Kelly, D., Creation and Change, Mentor, Fearn, UK, p. 17, 1997).
2. Dr Martyn Lloyd-Jones, What mean these stones? Sermon preached 12 November 1977, Evangelical Action 2002(6):17–24, 200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7/i1/editorial.asp
출처 - Creation 27(1):6, December 2004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423
참고 : 3024|540|548|2346|2864|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