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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미디어위원회
2022-03-30

일반계시 :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General Revelation: "So That They Are Without Excuse")

by Jonathan K. Corrado, PH.D., P. E.


    기독교인들이 평생을 통해 추구해야 하는 숭고한 목표는 하나님이 진정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유한한 피조물에 의해서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이 필요하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과 관계를 갖기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항상 그분의 말씀과 작품 모두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분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소통하고, 성경 저자들과 대화하며, 그의 작품인 피조물에 그분의 특성을 표현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셔야 했다. 이에 따라 하나님은 인류에게 일반계시(general revelation)와 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라는 두 기본 범주에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일반계시는 하나님이 자연 또는 자연적 수단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에 관한 것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상세하고, 광범위한 특별계시는 주로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특히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것에 관한 것이다.[1]

일반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나 장소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시편 19:1~4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일반계시는 보편적이며,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으며,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거들을 보여준다.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0절에서 일반계시를 이와 같이 논하고 있다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 구절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공하는, 일반계시의 정확한 이유를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일반계시의 중요성과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즉 자연의 관찰과 인간의 이성을 사용하여 신의 존재와 신성한 목적을 증명하는 신학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선구자는 18세기의 이성적 변증가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였다.[2] 그는 그의 저서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or Evidences of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the Deity, 1802)’에서, 지적이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시계공(watchmaker) 논증으로 유명하다. 페일리는 예를 들어 인간의 눈은 지적설계의 증거이며,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눈(eye)과 시계를 연관시켰다. 길에서 발견한 시계가 완전히 우연하게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없을 것이다. 시계와 같이 복잡한 장치는 그것을 제작한 시계공이 있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눈과 질서정연한 우주도 무한한 지성의 결과물임에 틀림없다는 것이었다.[3]

인간은 이 일반계시를 부정하기 위해 저항할 수는 있지만, 피할 수는 없다. 모든 자연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의 놀라운 능력과 위대하심도 선포하고 있다. 인간은 이 명백한 진실을 적극적으로 부정해야만, 일반계시의 증거들을 부인할 수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14:1)

창조의 장엄함은 하나님이 계심을 확증시켜주고, 창조물들은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설계자이시며, 창조자이시고, 붙들고 계시는 분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시편 111:2-3)


References
1. Grudem, W. A. 2004.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Leicester, UK: InterVarsity Press.
2. Barrett, P. 2013. Natural Theology. In Encyclopedia of Sciences and Religions. A. L. C. Runehov and L. Oviedo, eds. Dordrecht: Springer.
3. Olson, R. E. 2013. The Journey of Modern Theology: From Reconstruction to Deconstruction.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Dr. Corrado earned a Ph.D. in Systems Engineering from Colorado State University and an M.Div. from Nations University. He is a freelance contributor to ICR’s Creation Science Update, works in the nuclear industry, and is a senior officer in the U.S. Naval Reserve.


*참조 : 하나님의 창조 속에 나타나 있는 형태, 수, 패턴, 황금비율 : 피보나치 수열, 황금 나선, 그리고 행성의 공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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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수 : 해바라기 꽃에서 나타나는 피보나치 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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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에 작용하는 동력학 법칙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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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다른 위성들의 각지름: 설계에 대한 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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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원소 주기율표와 하나님의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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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의 설계 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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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사물들 : 당신은 창조의 과학적 증거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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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놀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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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양 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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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CR, 2022. 3. 17.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general-revelation-corrado/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2-03-27

용기는 기독교인의 필수 덕목이다

(Christian Courage Is Imperative)

by Randy J. Guliuzza, President of ICR


    ‘용기(courage)’는 내가 자라면서 주로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그리고 선생님들, 심지어 TV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들었던 사람이 갖추어야할 중요한 덕목이다. 나는 컴뱃(Combat, 1962~1967년 방영됐던 전쟁 드라마)에서 의무를 다하는 용기를 보았다! 그리고 라이플맨(The Rifleman, 1958~1963년 방영됐던 드라마)에서 묘사된 조용하고 원칙적인 용기, 그리고 다른 프로그램들에서 용감한 주인공들을 보았다.

내가 고등학교 때 기독교인이 된 후,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용감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후 무디 성경연구소(Moody Bible Institute)의 교회사 수업에서, 나는 용기 있는 믿음과 용서하는 마음으로 박해를 받았던 많은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모든 기독교인들은 용감하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갔다.[1]

오늘날에도 여전히 용기 있는 기독교인들이 필요하다. ICR 모임에서 나는 종종 "ICR이 기독교인들과 교회지도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어떤 자원을 갖고 있는가?"라고 묻곤 한다. 그 질문은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창세기 1-11장을 실제 역사로 가르치는 것을 머뭇거리며 부적절한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상, 목사님들이 창세기를 실제 역사로 가르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뿌리 깊은 공포(fear) 때문이다. 문제는 교육이 아니라, 용기 부족과 관련 있을지 모른다.

용기를 말할 때,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용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 둘째, 갑자기 두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솔직히 우리 자신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 심지어 강인했던 미국의 조지 패튼(George Patton) 장군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것을 인정했다.[2] 셋째, 자신이 반드시 견뎌낼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베드로가 자신 있게 예수님께 말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마가복음 14:29~31). 베드로에게 일어났던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두려움이 문제다

나는 기독교인과의 대화나 인터뷰에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마음속의 두려움을 고백하는 것을 듣고 자주 놀란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불신자들에게 비과학적인 무식한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 부정적 시선, 직장 및 승진의 위협, 금전적 손해, 또는 전도에 방해됨 등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ICR에서 일하면서 겪은 몇 가지 경험담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겠다.

ICR 과학자들은 여러 연례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곤 한다. 컨퍼런스 동안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목사님이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진화론을 믿지 않으며, 당신이 말한 것처럼 성경이 최근의 창조를 가르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나서 덧붙인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강단에서 가르친다면, 교인들의 절반은 떠날 것이다." (또는 목회자가 사임할 수도 있고,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한 목사님의 우려는 종종 꽤 명백하다.

다음으로 일부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자들에 의해 과학적으로 무식하다는(사이비 과학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진화론의 끔찍한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4]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현대 과학(진화론)"의 반성경적(antibiblical) 개념을 복음적 진리 내로 받아들인다.

창세기의 정상적인 의미(기록된 그대로의 의미)를 바꾸려는 노력은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귀결된다 : 창세기 1~11장은 실제 역사인가 신화인가? 예를 들어,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아담을, 그의 갈빗대로 하와를 창조하셨을까?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거니셨는가? 하와는 말하는 뱀의 유혹에 넘어갔는가? 불안한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설명은 신화적으로 들릴 수 있다.

기독교 변증가인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는 동료 변증가인 션 맥도웰(Sean McDowell)에게 그러한 두려움을 드러냈었다.[5] 크레이그는 어떻게 그가 창세기 1~11장이 실제 역사가 아니고, "신화적 역사"로 믿게 되었는지를 기술하고 있었다. 이 인터뷰에서 크레이그는 모든 증거들을 공평하게 따져보려는 자신의 몸부림을 솔직하게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비뚤어진 결론을 이끌어낸 근원적인 두려움, 즉 현대과학에 모순되는 두려움을 인정하고 있었다. 크레이그는 그의 생각을 이렇게 드러냈다 :

나는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의 해석이 사실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에게 그것은 악몽일 것이다.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의 해석이(창세기의 창조된 날들은 약 6,000년 전의 24시간의 하루이며, 육상동물들을 멸절시킨 전 지구적 홍수가 실제로 있었고, 하나님이 바벨에서 모든 언어 그룹들을 창조하셨다는)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5]

휘턴 대학(Wheaton College)의 존 월튼(John Walton, 창세기 1장은 고대 우주론이라는 견해를 가졌던)과 동일한 해석을 하는, 크레이그의 성경 해석 방식은 성경 외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6] 성령이 성경 저자들에게 그러한 해석을 포함하도록 영감을 주지 않았지만, 크레이그와 월튼은 그러한 해석이 필수적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성경을 읽는 평균적인 기독교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며, 어떤 식으로든 "원래 청중"의 마음에 들어가 성경이 "쓰이고 읽혔던" 시절 그들의 생각을 분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창조론자 진영 내에서도 사람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다른 창조론 지도자에게 다윈이 창조주를 자연선택으로 대체함으로써, 주 예수가 어떤 불명예를 당하고 있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그의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 “만약 우리가 자연선택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러한 경험은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창세기를 진화론과 타협하여 해석하려는 유력한 이유가 불충분한 교육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정, 교회, 신학대학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만약 한 국가가 외국 군대의 병사들에게 최고의 장비와 물자를 지원했는데, 그 병사들이 전투에서 도망치고, 그 장비들을 두고 떠나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러한 실망스러운 시나리오에서 놓치고 있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마찬가지로 만약 최고의 진리와 기독교의 정통성을 가르치는 신학대학에서, 기독교 지도자들이 세상(또는 교회 위원회)으로부터 험악한 위협을 받을 때, 학생들에게 이에 굴복하는 성명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성도들은 교회지도자들이 확고한 교리를 고수하고, 그 모든 것을 용기 있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교화되지 않을 것이다.

용기는 어떤 사람은 갖고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없는, 인격적 특성이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용기에는 분명히 자발적인 요소가 있다. 이와 관련된 구절은 너무도 많다. “...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신명기 20:3).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편 118:6). 이러한 진리를 가르치는 목사님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튼튼하게 만들고 있지만, 모든 기독교인들도 한 부분을 담당해야 한다.

신학대학은 용기를 기독교인의 핵심 덕목으로 가르쳐야 하고, 학생들은 양육과 멘토링을 통해 용기를 갖는 훈련을 받아야할 것이다.


성경적 용기 : 5가지 실천적 진리

용기는 부모, 교회, 교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만큼,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 용기를 가르치는 우리의 노력을 배가시켜야 한다. 우선 용기에 관한 성경적 진리를 살펴보자.


1. 용기는 우리가 깊이 사랑하는 것을 보존하려는 마음과 비례한다.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한복음 12:42-43). 우선순위에서 얼마나 극명한 차이가 있는지 보라. 이 관리들의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사람들인가, 예수님인가?

저항하는 자를 처벌하고, 순종하는 자를 보상해주는 세상의 방식은 사랑을 포함하여 기독교인의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극도로 사랑한다. 그러한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불신자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것처럼 보이지만, 오직 기독교인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더 사랑하는가? 사람의 칭찬인가, 그리스도의 칭찬인가?


2. 용기는 헌신과 비례한다.

느부갓네살 왕은 샤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위협하며 말했다.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그들이 대답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다니엘 3:15,17~18). 확실히 그들의 용기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지만, 그들이 옳은 일을 하는데에도 강하게 헌신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악한 자들은 개인의 삶이나 평판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더욱 진리, 고상함, 자유와 같은 가치 있는 것들을 파괴하려 할 수 있다. 이러한 귀중한 것들은 지키려는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선(goodness)을 가져온다. 그것들을 지키기를 강하게 원하고 (자신과 후세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거짓말, 거짓이론, 무질서, 폭정, 비진리 등에 용기 있게 대항한다.


3. 용기는 희망에 비례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신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이었다.(히브리서 2:14-15). 그래서 두려움은 종노릇으로 이어지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는 자유를 낳는다. 자신감(confidence)과 용기는 형제지간이다. 용기가 없는 군대는 자주 패배와 죽음에 직면하지만, 용기 있는 군대는 대개 생존 가능성이 높다. 최종 승리를 확신하는 군대는 용감하다.

따라서 ICR(그리고 전 세계 창조과학 단체들)의 자신감 구축 작업은 중요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감은 준비를 잘 하면 커진다. ICR의 중요한 임무는 교회를 위협하는 조롱꾼들에게 대답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목사님들이 그들의 양떼를 이끌고, 먹이를 주고, 방어하도록 돕는 것이다. 다음으로 예수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풍요로움과 우리의 이해는 믿음에 대한 자신감을 높여준다. 기독교인들은 창조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잘 들어보지 못했다. ICR는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창조물들에서 보여지는, 그분의 천재성, 지혜, 능력 등을 크리스천들이 볼 수 있도록 도와서,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다.


4. 용기는 다른 사람을 용기 있게 만든다.

골리앗은 매일 겁에 질린 이스라엘의 군대를 조롱했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뒤,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사무엘상 17:52)고 기록되어 있다. 용기는 용기를 가져온다.

무디(Moody)에서 1학년 때 토요일 밤 참가자들과 함께 노방전도를 나갔다. 나는 첫 노방전도에 조금 긴장했다. 나는 젊은 기독교인으로서 사람들, 특히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초보자였다. 하지만 팀장이 말씀 팻말을 설치하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용기가 생겼고, 몇 주 동안 자신감이 솟구쳤으며, 곧 용기 있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5. 용기는 성령의 힘으로 주어진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특별한 용기를 주시면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에스겔 3:8-9). 이 말씀은 용기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주고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강함과 용기의 길을 선택하라고 명령하시면서도, 그 길을 넉넉히 걸어갈 수 있도록 그분의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것이다.


결론

오늘날 용기의 중요성이 약화 되고, 기독교를 공격하는 경향이 커짐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을 용기의 모델로서 바라봐야 한다. 나는 목회자 청빙위원회에 참여하여, 지원자의 자질, 성경적 자격 등을 평가한 적이 있다. 나는 목회자가 갖추어야할 자격 중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이 있다고 본다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요한복음 10:11~12). 나는 확실히 건전한 교리를 갖고 계시는 분을 찾았지만, "당신은 작년에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을 모른다는) 베드로의 부정은 우리가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 확신”에 대해 주의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12). 반대로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 믿기를 꺼려했던 것은 우리에게도 경고가 되고 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한복음 12:43). 삶의 우선순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고, 예수님으로 인한 담대함으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그분의 진리와 이름을 선포하자. 예수님은 그럴 가치가 있다.


References
1. Luke 9:51.
2. Cunningham, J. General Patton’s Speech. Posted on cunninghamjeff.medium.com August 10, 2016, accessed December 24, 2021.
3. Mark 14:29, 31.
4. Guliuzza, R. J. 2017. Twenty Evolutionary Blunders. Dallas, TX: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5. Craig continued, “And I say that would be a nightmare because if that’s what the Bible teaches it puts the Bible into massive, I think irredeemable, conflict with modern science, history, and linguistics, and I don’t want that to happen. So, yes, yes, it’s true I don’t want young earth creationists’ interpretation to be right.” Sean McDowell Interviews William Lane Craig: Is Adam Historical? Uncommon Descent. Posted on uncommondescent.com September 26, 2021, accessed December 23, 2021. Emphasis in original.
6. Guliuzza, R. J. 2021. Walton’s Lost World Obscures Biblical Clarity. Acts & Facts. 50 (7): 4-6.
7. John 10:11-12.

* Dr. Guliuzza is President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He earned his Doctorate of Medicine from the University of Minnesota, his Master of Public Health from Harvard University, and served in the U.S. Air Force as 28th Bomb Wing Flight Surgeon and Chief of Aerospace Medicine. Dr. Guliuzza is also a registered Professional Engineer and holds a B.A. in theology from Moody Bible Institute.
.Cite this article: Randy J. Guliuzza, P.E., M.D. 2022. Christian Courage Is Imperative. Acts & Facts. 51 (3).


*참조 : 진화론-창조론 논쟁이 중요한 이유 : 토양, 나무, 그리고 그들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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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방울 속에서 살아가기 : 교회가 창조과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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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대학에서 창조론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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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독교 대학들은 예수님보다 다윈을 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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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대한 타협은 성경의 기초를 허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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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이 기독교의 신뢰성을 손상시키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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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CR, 2022. 2. 28.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christian-courage-is-imperativ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2-01-31

창조과학을 통한 선교전략과 선교전망

고재형 


서언

창조과학회는 지난 1981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 진리의 파수꾼이요 복음의 전파자로서의 역할을 매우 잘 감당해 왔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과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이 사역에 몸담아 온지 15년째를 맞고 있다. 나 자신과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신앙적 확신과 성숙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이는 나 한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창조과학사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적 유익을 끼쳐왔던 것이 사실이고, 보이든 보이지 않던 간에 사회의 변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쳐왔다고 생각한다. 즉 창조신앙의 확립은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인식시켜 왔을 뿐 아니라, 자연과 환경에 대한 파괴된 창조질서를 회복하게 하였다. 이것이 왜곡된 사회질서와 관계들을 바로 세우는 근본적인 힘으로 작용해 왔다고 믿는다. 이러한 영향이 이제 미국과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 확산되어 나아가고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회가 점점 복음에 대해 냉담해지며 세속화되어 더욱 복잡하고 불건전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날로 늘어가는 가정파괴와 청소년 성범죄, 낙태, 동성애, 포로노산업과 인터넷 음란사이트의 증가 등은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또한 최근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는 문제들 즉 생물 및 인간복제, 게놈연구를 통한 인간조작, 유전자변형식품, 그리고 성전환수술 등은 그리스도인들까지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나아가 지구환경과 생태계의 심각한 파괴, 에이즈와 광우병과 같은 새로운 질병들, 그리고 암과 성인병과 같은 만성질환의 증가 등 전반적으로 자연과 사회 속에서 점점 창조의 질서와 그 안에 있는 피조물들이 파괴되고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제들이 결코 창조신앙의 정립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나서 창조신앙을 공격해 왔던 진화론적 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걸림돌이 되어 왔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가정과 사회를 파괴해 왔다는 사실이다. 또한 한국 밖의 수많은 미전도 종족들도  현대사회의 변화 속에서 진화론의 영향으로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세속주의화되어 창조론이 바탕이 되지 않은 그릇된 세계관 안에 갇혀 왜곡된 삶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본 소고에서는 복음전도와 선교적 관점에서 창조과학과 기독교신앙과의 연관성을 재고함으로써, 창조과학 선교의 중요성과 시대적 사명에 대해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21세기를 맞아 세계선교를 위한 창조과학 선교의 비전을 나누고, 다가올 세대를 바르게 준비하기 위한 그 선교적 과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창조과학 선교의 필요성 : 창조신앙의 의미와 선교적 중요성

창조는 성경에 들어오는 대문과 같아서 이를 통과하지 않고는 타락과 구원, 중생과 부활, 그리고 마지막 심판과 같은 근본적 기독교 교리와 언약에 이를 수 없다. 또한 인간과 자연세계를 이해하기 어렵고 이것들 간의 관계들도 정립하기 어렵다.


1) 전도전략으로서의 창조과학 선교의 필요성 : 사도바울의 아덴 설교의 재조명

여기서 ‘창조과학 선교’는 창조론적 복음전도, 즉 복음의 씨를 뿌리는 데 있어서 과학적  합리적 증거에 근거한 창조론적 세계관을 먼저 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역을 말한다. 사도행전 17장에서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창조론적 복음전도의 좋은 모범을 보여 주었다. 즉 바울 또는 베드로가 창조신앙이 있었던 유대인들의 회당에서는 메시지의 처음에 창조주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지 않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복음을 전했으나(사도행전 2장), 마케도니아 지방의 아테네에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먼저 선포한 후, 그 창조주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음을 전했다.

이 때 비록 소수이긴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사도행전 17:24-31). 이렇게 복음을 전파하기 전에 창조론으로 마음의 밭을 가는 작업은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와 씨의 비유’에서  그 필요성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당시 고대 헬라사상의 하나인 진화론적 철학을 갈아 엎고 창조론으로 마음 밭을 고르게 하지 않았다면, 복음의 씨가 그들에게 떨어져서 열매 맺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셨기에 가능했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복음을 본격적으로 전도하기 전에 창조론으로 미리 마음의 토양을 변화시키고 준비시킴으로써 효과적인 복음증거를 이루는 전도방법을 ‘창조론적 복음전도(Creation Evangelism)’ 또는 ‘예비 복음전도(Pre-Evangelism)’라고 정의할 수 있다. 또한 이제 과학의 진보를 통해 발견한 창조론의 합리적 증거를 기반으로 선교하는 사역을 ‘창조과학 선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선교적 접근은 바울의 시대에만 필요했던 것이 아니다. 무신론적 자연주의와 진화론적 철학에 물든 현대판 헬라인이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2) 창조신앙의 의미와 중요성

창조과학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사건이 한 개인에게 접목되었을 때 가져다 주는 신앙적 의미와 유익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창조는 기독교신앙의 근본이요 삶의 기초이다. 창조신앙을 바탕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보다 확고한 신앙을 학립할 수 있다.

둘째, 창조는 복음의 기반이요 성경적 세계관의 기본 틀이다. 성경적 세계관은 창조와 타락, 구속과 완성이라는 틀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기본 틀 중에서도 창조론적 세계관이 바로 잡힐 때 다른 틀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셋째, 창조신앙은 예수와 복음을 재발견하게 한다.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인정한다면 신약 복음서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더구나 성경은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신 창조주이심을 강조하고 있고(요한복음1장; 요한1서1장), 창조주로서의 많은 표적들(물로 포도주를 만드심과 오병이어의 기적 등)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구원자로서의 자격과 능력이 있음을 선포하고 있다. 즉 예수는 2천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난 한 위대한 선지자요 성현이 아니라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볼 수 있다.

넷째, 창조신앙은 자아의 발견을 열어 준다. 창조주의 모든 창조물에는 목적이 있고 계획이 있다. 이 세상에 의미없이 던져진 존재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게 창조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알기에 각 개인을 향하신 주님의 계획과 삶의 목적을 발견해나갈 수 있다.

다섯째, 창조신앙은 윤리를 참된 예배와 헌신으로 인도한다. 창조신앙으로 발견된 자아는 이제 더 큰 주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나를 위한 주님의 계획이 이제 주님을 위해 사용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이며 주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은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사 40:12-25, 사 43:1-3, 롬 11:33-12:2, 마 6:33). 특히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이 성도들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라고 헌신을 촉구했던 근거는 바로 앞절에 나오는 바 그 분이 우리 인간과 만물의 창조주가 되신다는 사실에 기인한 다. 또한 시편과 요한계시록에 많은 생물들과 성도들이 주를 찬양하고 경배하라고 선포했던 말씀에는 항상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다’라는 선언이 동반된다.


2. 창조과학 선교의 비전과 과제

창조과학 선교의 필요성에서 보았듯이 이 사역은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한 선교 사역이다. 이 사역이 활성화될 때 복음은 힘 있게 증거되고 세상은 기독교 세계관을 기초로 변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활성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창조과학사역의 비전과 선교적 과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복음의 장애물 제거와 창조론적 복음전도의 활성화

창조과학을 통해 무신론적 진화론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창조론의 과학적 증거들을 알림으로써 복음의 장애물인 가시밭과 돌밭을 고르게 한다. 밭을 복음의 씨를 받기에 합당하게 준비시키는 일은 이 사역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사역이다. 교회가 줄어가고 있는 한국교회 상황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창조주와 구세주되신 예수님을 전파하고 해야 한다. 창세기를 비롯한 성경전체의 권위를 보호함으로써 성경적 세계관의 초석을 교회 안에 확립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성숙한 성도의 삶이 회복되도록 창조론적 복음전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 온누리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에서 새신자 양육반 첫 번째 과정을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7영리(‘당신은 창조주를 아십니까’라는 전도용 소책자)를 가르치고 있다. 이것을 전도용으로도 많이 활용하고 있어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 많은 교회에서 이런 시도를 하도록  추천하고 싶다.


2) 예배자, 사역자로서의 준비를 위한 재교육과정 및 대학원설립

창조신앙은 참된 예배와 헌신으로 인도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 따라서 목회자, 선교사, 찬양인도자 등의 예배자와 사역자들에게 재교육과정으로 창조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성경적 세계관을 가르친다면, 사역에 지친 그들이 바른 세계관 안에서 예배할 것이다. 이러한 재교육과정은 새로운 관심을 일으키는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일 뿐만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역이 될 것이다. 이것을 위해 교회나 신학교 내에 적절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며 평생교육원 또는 정식 교과과정으로 도입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교육과정이 국내에 정착하고 활성화될 수 있도록 창조과학대학원 과정의 설립이 요구된다.


3) 창조과학전시관 및 야외현장학습장의 건립

현재 국내에는 창조과학회 대전지부에서 운영하는 창조과학전시관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학원과 같이 연구와 전시, 그리고 교육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교육환경이 되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일천만이 넘는 한국교회 안에서 큰 교회 건물은 수없이 많지만, 이 시대의 정신과 영적전쟁을 수행하는 창조과학전시관과 교육연구 센터 하나를 건립하지 못하는 실정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제 이러한 전시관은 건물 안으로 제한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창조솜씨를 직접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야외학습장과 관광단 개발이 필요하며, 전 세계의 천연지역에 많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21세기에는 문화시대에 걸맞은 창조과학문화전시관과 현장학습장이 우리나라에도 속히 설립되어야 한다. 한편 사이버 창조과학전시관의 구축도 시대적으로 먼저 시작해야 할 놓쳐서는 안 될 과제라 생각한다. 3차원 가상공간을 이용한 전시관은 공간을 뛰어넘어 국내지방과 선교지에서도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전문인선교의 전략사역으로서 창조과학 선교의 강화

위와 같은 창조과학의 사역들과 선교비전은 전 세계, 특히 미전도종족 선교지역에서도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과학자와 과학도들의 헌신이 필요하다. 물론 교수와 교사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사역이 과학 분야 전문인들로만 구성될 필요는 없다. 과학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과 편견 때문에 이미 잘 정리된 결론들을 배우고 전하는 통로역할을 기피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자격지심을 갖기보다 적극적으로 배우고 알려 이 시대에 창조론적 세계관이 전 세계에 퍼지고 자리 잡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창조사실로부터 예수님을 전하는 7영리를 제작한 바 있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로 이미 다 번역되어 있다. 목회자들도 이런 부분에 더 관심을 갖고 전문 강사를 모셔서 세미나도 해야겠지만, 직접 배우고 익혀서 교회양육에 잘 접목시키고 이 사역에 관심을 갖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나오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한 차원 더 끌어 올려 신학교의 선교학 과정에 또는 전문인선교훈련에 도입해서 선교사를 양성하여 파견하고, 선교지에서 사람들과 만날 때 지체 없이 이 교육선교가 활용되도록 하면 선교지의 초기교회가 건전하고 든든하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책과 정기간행물을 기본으로 하는 문서출판사역을 시작하고 영어를 기본으로 해서 아시아 주요언어로 번역한다면 파급력이 클 것이다. 물론 오디오, 영상 테이프와 CD 등의 미디어와 인터넷 홈페이지 콘텐츠도 번역물까지 나온다면 이는 대단한 선교도구가 될 것이다. 아는 바와 같이 선교지에서 ‘예수’ 영화 한 가지의 영향력과 열매는 이미 검증된 바 있다. 따라서 해외선교단체와 창조과학회 등이 파트너쉽을 가지고 이 사역에 대한 전문분야 트랙을 만들고  구체적 실행계획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3. 창조과학 선교의 지역별 접근전략과 전망

창조과학 선교는 이 시대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과 유럽에도 그리고 아직 복음이 전파되어 본 적이 없는 미전도 종족에게도 매우 효과적인 접근전략이 될 수 있다. 그동안의 사역경험을 토대로 각 지역별로 어떤 전략과 방향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기대효과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1) 구공산권과 불교권 : 중국, 몽골, 러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등

창조과학 선교가 가장 효과적인 접근이 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이 지역들이라 하겠다. 아직도 철저한 공산주의 사상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중국은 유물론적 사관과 진화론적 철학으로 그들의 세계관이 물들어 있으므로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반드시 바른 창조-진화와 관련된 기원론을 다루지 않고는 확고한 신앙을 가질 수 없다. 더구나 우리민족과 다른 특성을 가진 한족은 믿음이 정서적으로 공감되는 것 이상으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정립을 요구하기에 창조과학의 합리적 설명을 통한 창조론적 복음전도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벌써 오래전부터 이러한 선교적 접근이 좋은 호응을 얻고 있고 많은 열매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고 엄청난 인구수에 비해 창조과학사역자가 너무나 적을 뿐 아니라, 아직도 이러한 것을 보급할 학회조차 없다. 물론 정부에 등록이 쉽지 않겠지만 이러한 사역을 추진할 공동체가 없다. 필자는 최근 북경에서 캠퍼스사역을 주로 하는 지하교회의 리더 중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은데, 아직도 제대로 창조과학강의나 내용을 접하기가 쉽지 않아 지원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 열리는 한국인 유학생 선교대회인 중국 코스타(KOSTA)에서 창조과학이 정기적인 강의로 채택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제 뭔가 시작되는 조짐이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도 한국인들과 소수 조선족 중심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한족 과학자 주도의 모임들이 형성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족 공동체를 먼저 세우는 사역이라도 시급한 실정이다.

러시아는 구소련연방이 무너진 후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빨리 개방화되어 있고, 이미 모스크바 창조과학회가 1990년대 초반기에 세워져 대전에서 개최된 1993년 엑스포과학박람회 때 KAIST에서 열린 국제창조과학학술대회에 그 회장인 드미트리히가 내한하여 강연까지 한 바가 있다. 러시아의 과학자들은 창조론에 대한 입장이 적대적이지 않고 기원론의 하나로 그 입장으로 존중하는 분위기이기에 앞으로 러시아의 창조과학활동은 생각보다 흥미롭게 진전될 수 있는 면이 있다. 1923년에 구소련의 과학자 오파린이 그의 저서 ‘생명의 기원’에서 생명의 자연발생설의 기초인 ‘화학진화설’을 처음 제안할 만큼 비록 진화론적 입장이었지만 순수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이 크고 그 수준이 발전해 있다. 여기에다 창조론에 대한 개방적인 학문풍토를 더하여 창조과학활동을 할 수 있다면 선교적인 열매 뿐 아니라 학문적인 발전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국제창조과학학술대회 전후로 러시아 창조과학자들과 함께 ‘공룡뼈가 발견된 지층의 연대측정법 연구과제’를 같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일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보다 전략적으로 한국창조과학자들이 가서 러시아과학자들을 변화시켜 이러한 사역이 확대되도록 여러 가지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상당수의 러시아 과학자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의 동유럽에서부터 시베리아까지 흩어져 있는 120여개 미전도종족들을 생각할 때, 각 공화국들의 수도에 관문대학들을 중심으로 캠퍼스사역과 함께 창조과학 선교운동이 일어나도록 관심과 인력을 모아야 할 것이다.

몽골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창조과학 선교의 좋은 장이다. 몽골이 1990년대 초에 러시아에서 정치적으로 독립한 뒤부터 급속도로 개방화되어 독립된 구공산권 중 전체적으로는 미약하지만 가장 빨리 교회가 성장하는 곳 중에 하나다. 독립하기 전에는 한 명의 그리스도인도 없다가 지금은 2만명이 넘는 성도가 있고 지상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이렇게 교회의 성장과 함께 그 신앙적 기초를 든든히 해줄 창조과학 선교는 시기적절하다 하겠다. 이미 1995년 본인의 제안으로 단기선교로 KAIST에서 창조과학팀을 파송해 몽골국립대학에서 교수들과 과학연구소 소장들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그들은 러시아와 독일 등에서 진화론을 기초로 수학하고 많은 책을 저술한 석학들임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게 우리들의 강의와 토론에 대해 기꺼이 응했고 환대를 해 주었다. 이 일은 공영방송에도 소개가 될 정도였다. 미주 CCC에서는 이미 그 곳에 교사들을 대상으로 예수영화와 창조과학 영화 비디오를 상영하는 사역으로 접근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제자화하는 사역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몽골현지에 세운 교육기관들이 늘어가고 있다. 몽골의 울란바토르대학과 밝은 미래 초중고종합학교, 선교사와 주재원들을 위한 MK스쿨이 그것이다. 2002년 9월 개교한 몽골국제대학교(MIU)와 기타 학교들도 있다. 필자가 사역중인 MIU에서는 BT학부(생명공학과)가 있어서 생명과학 수업시간을 이용해서 생명의 기원과목을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생들에게 창조론적 생명관을 심어주고 있고, 관심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그룹 스터디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많은 현지교회에서 창조과학 강의를 초청받아 사역하고 있다. 이렇게 현지 교육기관 내에서 또 자체적으로 세우는 학교와 교회를 통해 창조과학사역은 매우 활성화되어 오히려 주변 시베리아 지역과 내몽골에까지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창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때에 몽골 창조과학회를 세워 교육선교 센타로 운영할 수 있다면 너무나 좋은 기회라 생각된다. 특히 몽골에는 장기적으로 창조과학전시관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싶다. 몽골의 고비사막에는 세계적인 공룡화석 집산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해서 현장에 또는 수도 울란바토르에 전시관을 운영한다면, 거대공룡화석을 한 눈에 보면서 노아홍수 전후의 지구생태계의 변화와 생물멸종의 창조섭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현장에서 제공하는 현장학습장이 될 것이다. 더불어 몽골의 넓은 초원과 호수 등 때 묻지 않은 천연지형을 투어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느끼고 찬양하며 전할 수 있도록 선교적 필드트립과 연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인도차이나의 베트남과 캄보디아도 점점 열리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한국과의 교류가 깊어지고 있고 대학차원의 교류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베트남의 강한 민족성과 뛰어난 머리에 복음이 접목되어 인도차이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교두보가 되도록 중국과 러시아 등과 유사한 선교접근 전략을 가지고 그들에게도 다가가야 할 것이다.


2) 이슬람권 : 터키, 우즈벡 등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그리고 동남아

이슬람권에서의 창조과학사역은 우선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그 지역은 이슬람화된 이래로 이미 위대한 창조주 알라를 믿고 경배하고 있다.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교과서도 아직 창조론적인 내용이 실린다고 한다. 오히려 복음화된 서구와 한국보다도 낫다. 그런데 그들은 창조주 예수님을 모르고 있다. 물론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직접 전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창조과학 그 자체를 통해 예수를 직접 증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통로가 있다. 최근에 밀려 들어오는 서구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적 진화론은 서서히 학교와 젊은이들을 혼란하게 하고 있다. 더구나 공산주의 러시아체제에서 공부한 중앙아시아의 카작, 우즈벡 등지의 사람들은 철저한 진화론 교육 안에 70년 동안 있었고, 그 전에도 근본주의적이 아닌 민속 전통적 이슬람(수피즘)이었기 때문에 종교적 사상이 강하기 보다는 형식에 매여 있어서 기원에 대한 통일된 세계관이 부재한 채 혼란한 상태에 빠져 있다. 오래전부터 이슬람국가가 된 터키와 중동의 모슬렘들도 서구의 기독교 국가들이 세속화되듯 세속 자본주의의 영향 속에 어느 정도 이와 같은 길을 걷고 있고 젊은이들이 정신적 공백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도 반드시 창조과학사역이 필요하며 이를 지원할 이슬람권 전문사역자들이 요청된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쿠란과 알라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창조주와 창조섭리를 확실하게 전하고 열려진 마음에 더하여 창조주 예수님과 성경의 진리를 소개함으로써 복음의 열매를 맺는 사역이 정말 필요하다. 벌써 오래된 경험이지만 1994년경에 터키에서 한국을 방문한 형제들을 대상으로 노아홍수의 역사성에 대해 강의했을 때 그들이 표정이 달라지고 구약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는 고백을 들은 일이 있다....이렇듯 이슬람권 사람들을 향한 창조과학 선교는 그들이 어렴풋하게 믿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다시금 눈뜨게 하고 그 분이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로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의미있는 사역이 될 것이다. 원래부터 창조주를 경배하는 이슬람의 예배 문화 때문에 오히려 공산권과 달리 창세기와 복음서를 변증하는 창조과학을 공식적으로 전하는 기회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 예수님의 신성, 십자가 대속과 부활에 대해 어떻게 지혜롭게 접근할 것인가는 좀 더 고려되어야 할 과제라 본다.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와는 달리 중동 및 북아프리카 아랍권의 경우는 근본주의 이슬람들이 많으므로 그곳 상황에 맞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그 지역들이 과거 성경상의 성지들이 많고 역사와 고고학을 비롯한 학문적 접근이 용의하므로, 이미 그 지역을 많이 탐사했던 창조사학회 등과 함께 선교전략을 논의해 볼 수 있겠다. 한편 동남아 회교국가들의 경우 창조과학회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 해외에 파송한 창조과학선교사가 인도네시아의 한 대학에서 교수사역을 하며 자연과학관련 교과과정을 이용해 창조과학을 전하고 있다. 기존의 OMF소속 교수선교사와 함께 동역하고 있는데 한국창조과학회 회원 중에서도 그 곳에 지사장으로 있으면서 이 사역을 활성화시켜 좋은 구심점을 만들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의 수많은 인구를 생각할 때 좋은 배경과 베이스를 이용해서 많은 섬들과 말레이 반도까지 연결하는 더 적극적인 사역이 요청된다.


3) 세속 자본주의 자유세계 및 기타 부족선교 : 유럽, 일본, 남미, 남아프리카 등

이미 복음이 들어가서 교회가 많이 있는 자유세계에도 이 사역들이 너무도 중요하다. 서구 유럽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벌써 복음전파가 식어지고 교회성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사역은 새로운 차원의 접근전략으로서 이 세계에서 역할과 사명을 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술한 바대로 기독교의 활동이 개방되어 있지만 오히려 강한 세속 물질주의와 인본주의로 인해 형식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인의 신앙과 교회활동에 창조과학은 창조주의 존재와 주권에 대한 새로운 신앙적 도전과 확신을 심어주고 다시금 거룩한 성도의 삶을 회복하는 데 큰 기여를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미 미국과 호주, 그리고 독일 등에서 창조과학회가 설립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 시대의 마지막 대적 중에 하나인 세속 물질주의 앞에서 무너져가는 창조신앙을 지켜가고 있다. 최근 일본 창조과학의 설립으로 황금만능주의와 과학우상주의, 그리고 신사를 비롯한 수만의 종교신들로 복음전파가 어려운 일본에서 효과적인 선교사역이 되고 있음을 들은 바 있다.  재일교포중심의 한국창조과학회 일본지부와 연합하여 더 영향력 있는 사역을 기대하고 있다. 남미와 남아프리카에도 이러한 사역이 필요하겠지만, 아직 구심점이 없고 우리나라가 선교해야 할 우선 대상지역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여 미국과 호주 등 서구의 창조과학 단체들을 네트웍하여 접근하고, 한국교회는 위에 언급한 민족과 나라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한편 ‘New Tribes Mission'(새부족선교회)이라는 단체는 뉴기니에서와 또 다른 원주민부족에서 지금까지 수년간 창조론적 복음전도방법을 사용해 왔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것은 초기 선교사들이 복음서 강의와 주제별 설교로 접근했을 때 보다 훨씬 효과적이었기에 이제 새로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창세기와 그와 연관된 근본적인 지식과 진리들을 먼저 가르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원주민들이 시간이 지나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성장해 가는 것을 보면서 연결된 다른 선교단체들도 이 본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며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4) 창조과학 선교의 도구 : 세미나와 각종 미디어

이제 이렇게 여러 지역에 필요한 창조과학 선교를 활성화시키고 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로서 그 동안 교육적으로 개발되어 왔던 중요한 도구인 자료와 미디어 등 그것의 제목과 내용을 살펴보자. 전문 강사를 초청하지 못해도 얼마든지 교육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다. 즉 구입이 가능한 책, 전도용 소책자, 오디오 및 비디오 테이프, CD 등을 대상과 관심에 따라 적용한다면 비록 본인이 과학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론 창조과학자의 강의 세미나를 직접 녹화한 미디어도 활용할 수 있고 여건만 된다면 인터넷으로 사이버교육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onnuritv.com의 창조과학 사이트를 활용하라). 혹시 더 궁금한 사람이 있을 때 적절한 책을 소개해주거나 창조과학회나 관련 과학자들에게 전자메일을 띄워 답변을 연결해 준다면 훌륭한 창조과학 선교를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창조과학 교육주제와 그것에 관련된 자료를 알 때 누구나 필요에 맞게 적극 활용할 수 있다.


5) 현지 창조과학 선교의 중심거점 마련

한편 이러한 교육을 실제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소와 모임 즉 창조과학 교육 센타가 필요하다. 이것은 현지에서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연결될 수 있겠다. 먼저는 교회를 통해서이다. 현지에 세워진 원주민 교회에서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교회가 아직 없거나 미전도 지역일 경우는 기존 학교나 교육기관을 이용해서 정규수업시간 또는 특강을 이용해서 지혜롭게 접근할 수 있다. 이미 이러한 사례는 위에서 언급한 중국, 인도네시아와 몽골의 경우 외에도 많이 있다. 또 한 가지는 국내에서와 같이 해외 NGO등록단체를 통해서 영어, 한국어, 컴퓨터 교육활동을 하면서 접목하여 이를 진행할 수 있다. 아시아문화개발협력구(IACD), 국제교육문화교류기구 등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정식등록단체가 아니라도 공동체 모임을 통해 이를 실행해 나가면 될 것이다. 최근에는 사설학원이나 홈스쿨형태의 교육비지니스 형태로도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유명한 미국의 홈스쿨 교육기관이자 회사인 '아베카(A-beka)'와 ‘스쿨 오브 투머로우’(School of Tomorrow) 등은 바로 창조과학을 바탕으로 체계화된 교육교재를 가지고 가정에서 아이들과 동시에 부모들을 영어로 교육하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번역해서 교재를 만들거나 처음부터 한국교인들이 교재를 만든다면 현지인 선교 뿐 아니라 선교사 자녀를 위해서 너무나 필요한 교육도구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현재 이 부분은 창조과학사역을 포함한 한국교회의 선교과제 중 핵심적인 과제라 하겠다.

 

지금까지 많은 내용을 통해 이 시대에 창조과학이 어떤 비전과 방향성을 가지고 선교적 과제와 전략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서술했다. 앞으로 이 사역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다 더 다각적인 연구와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결과들을 활용하고 사역을 추진할 인재양성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진화론과 자연주의 철학이이라는 시대정신을 무너뜨리고 효과적인 선교적 토양을 일구기위해서는 무엇보다 다학제적으로 종합하고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연합사역을 함으로써 네트웍이 형성되어야 하겠다. 즉 과학인들 외에 신학, 역사학, 법률전문가, 언론인, 교육가 등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과 모든 세대 간의 노력으로 총체적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연히 사이버 상의 공간과 문화까지도 연결되어야 하겠다. 이미 인본주의적 진화론은 각 분야의 보이지 않는 철학과 지배사상으로 자리 잡았기에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종합적이고도 총체적인 접근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사역의 효과적 열매를 위해서도 그렇다. 제품을 시장에서 경쟁력 있게 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발명가만이 아니라, 상품개발팀과 관리팀, 그리고 마케팅과 기획홍보팀이 필요하듯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연합해서 오케스트라를 이룰 때 철학과 사상이 변하고 법과 제도가 바뀌며 교육과 문화가 달라져서, 마침내 진화론적 세계관은 과거 공산주의가 순식간에 무너지듯이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정보화시대와 게놈시대가 진행되고 있는 21세기는 그런 면에서 창조과학의 합리적 증거들과 창조섭리들을 확립하고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선교적 환경이 열리고 있다. 이 때 한국 교회는 세계교회와 함께 이를 최대한 활용하며 또 전문인선교의 인력풀을 동원한다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직 진화론은 너무도 강한 세력과 영적 진을 형성하고 있다. 이 진화 사상이야말로 한 시대를 지적으로 지배하며 인류와 지구촌을 병들게 했던 교묘한 사단의 전략이며 영적전쟁의 대상이다. 창조과학 선교가 이를 극복하는 전략적 대안임을 고려해 볼 때 한국창조과학회를 비롯한 한국교회와 선교공동체는 보다 깊이 있고 전략적인 논의와 모색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모든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여호수아 프로젝트’를 하루속히 성취하고 주님의 재림을 앞당기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이루는 초석이 되리라 확신한다. 우리는 이 시대에 다시 한번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 타문화권 선교전략으로 행했던 ‘창조론적 복음 전도’의 메시지를 되새겨보는 성령의 지혜가 필요하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사도행전 17: 24-31)


출처 - 창조 138호

미디어위원회
2022-01-03

다음세대를 위한 디지털 전환을 시작하며


온 세상과 교회가 너무나 힘들었던 2021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과 꿈을 꾸며 2022년 임인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지난 한해 저희 한국창조과학회에 부어 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저희 창조과학회의 사역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대면 강의가 불가능해지고 내부적으로도 모든 모임과 행사가 온라인화되다 보니 우리 창조과학회 특유의 끈끈한 결속력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신의 일을 새롭게 시작하셨습니다. 지난해 저희 한국창조과학회 온라인 교육과정은 역대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분이 전국적으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기본과정부터 전문사역자과정을 수료하신 많은 분이 다음 과정의 조장으로 섬겨주시는 동역이 일어나며, 무엇보다 해외에 계신 많은 선교사님과 군 선교사님들이 함께 하셔서 놀라운 창조과학 사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작년 한국창조과학회 40주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대한 돌봄’이라는 비전을 선포하며 이를 위한 학회 사역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은 4차산업혁명 시대 속에서 사역하는 우리 학회의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창조과학회는 전임 회장님 재임부터 ‘한국교회와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것을 우리의 비전으로 목표로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들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들의 중심 세상인 디지털 세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폭력과 음란으로 물들어 있는 디지털 세계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한 컨텐츠로 다음 세대와 접촉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작년부터 ‘메타버스 기반 디지털 노아방주 전시관’ 구축을 1차 3년 계획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다음 세대들이 이 디지털 공간에서 재미있게 창조과학 컨텐츠를 접하도록 하며, 차세대 창조과학 교육 플랫폼으로 자리잡아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리적인 세상뿐만 아니라 디지털 세상을 어떻게 돌보고 세워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지금부터 우리 창조과학회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됩니다. 2022년 새로운 디지털 전환 사역을 시작하며 우리 학회의 ‘창조지’를 전면 디지털로 전환하였으며, 이번에 새롭게 시작한 ORJ(Origin Research Journal) 학술지도 온라인으로 발간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교회 미래의 유일한 대안은 건전한 성경적 창조신앙의 선포와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일에 표어나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과 도구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창조과학회는 2022년도 열정과 창의적인 도전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을 선포하는 일에 함께 부르심을 받아 동역하는 것이 너무나 큰 기쁨입니다. 위기의 한국교회와 다음 세대를 성격적 창조신앙으로 세워나가는 일에 눈물로 기도해 주시고 끝까지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교회와 온 세상을 향한 ‘거룩한 충격(Holy Impact)’입니다.


2022년 첫날 폭풍우로 시작하는 미국에서..


2022년 1월 1일

한국창조과학회 8대 회장

이경호 배상

미디어위원회
2021-11-29

창조신앙으로 지혜롭게 살아가기!


이은일


창조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지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지혜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창조를 알면 세상이 어떻게 시작했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가 인간의 범죄로 훼손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며 구원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죄악에 대해 놀라지 않고, 그렇다고 실망하고 포기하지도 않는다. 이미 궁극적인 승리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과 끝을 알고 있으니 중간 과정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드라마 애청자가 드라마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드라마의 맥락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같은 장면을 보면서 왜 사람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드라마의 맥락을 알고 있어야 중간에 전개되는 스토리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창조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드라마 애청자와 같이 인류 역사의 맥락을 알고,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신앙의 지혜와 하나님의 성품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드라마와 같은 역사가 나에게 펼쳐질 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갔을 때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창조신앙의 지혜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선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요셉은 노예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사람으로 살았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지 못하고 그렇게 일생을 마쳤을지라도 결코 후회스러운 인생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의 표현처럼, 그릇이 그릇을 만든 토기장이에게 항의할 수 없듯이 모든 상황에서 그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이다. 물론 요셉도 자신의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기도하고, 바로의 신하들에게 탄원한 것처럼 우리도 어려운 상황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분의 결정이 나의 뜻과 다르다고, 내가 원하는 때에 바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없다. 그분은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선한 뜻은 반드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분의 선한 뜻은 누구도 예외 없이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창조목적과 존재 이유를 알게 하시고, 그 뜻이 이뤄지도록 훈련시키고 전진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뿐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해야 할 때도 반드시 필요하다. 모세의 예를 생각해보자.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왕자로서 누리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노예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겠다는 놀라운 신앙의 결단을 하였다. 그런데 그 결단 이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던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만다. 모세의 결단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존경받을 만 했지만, 믿음의 결단 이후 모세의 행동은 급했고 잔인했다. 

  창조신앙의 지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고 해도 우리의 힘을 사용해서 그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할 때라고 믿는다면 이런 행동을 통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온유함과 겸손함, 공의로움과 거룩함, 거짓 없는 깨끗함과 오래 참음, 무엇보다 사랑의 능력이 나의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가?”


창조신앙의 지혜와 교회 공동체

창조신앙이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이유는 이세상의 모든 질서를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년 이상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태양계를 질서정연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해서 인류역사에 크게 기여한 많은 과학자들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믿었고, 그로 인해 과학의 큰 진보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없이 세상을 설명하려는 진화론이 교육과 학문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없이 지식의 탑을 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세상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진화론은 하나님 대신 기원을 설명하려는 인간적인 노력일 뿐이며, 증명되지 않은 이론을 과학이라고 포장할 뿐이다. 과학적 발견들을 하나님의 설계로 설명하면 단순명료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진화론자들은 수많은 논문을 써서 복잡하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면서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최근 유전자 정보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복잡하고 절묘한 설계들은 진화론적 해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처럼 진화론은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연과학의 범주를 벗어나 인문학에서도 주된 이론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죄악과 다양한 행동들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은 결국 인간의 죄를 정당화시키고, 사람을 물질과 동물의 수준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인간의 존재이유는 쾌락일 뿐이라며 인간의 성적인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결혼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또한 성관계는 남자와 여자 사이가 아니어도 가능하며, 남자와 여자라는 기준 자체가 편협한 것이고, 스스로 자신의 성을 결정할 수 있다고 교육하고 있다. 창조신앙의지혜는 이러한 혼란스러움 속에서 더욱 돋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창조신앙의 지혜를 세상에 잘 전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켜야한다고 말하면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따뜻한 스토리를 만들어야한다.

  창조신앙의 지혜는 창조신앙에 바탕을 둔 지식과 지혜를 세상에 나눠주는 것이다. 가정을 이루었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자녀를 갖게 되면 얼마나 기쁘고 복된 것인지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 사회와 국가가 이런 일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바꾸는 일에도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환경오염을 막고 창조질서를 복원하는 행동에도 세상의 논리가 아닌 기독교적 논리를 가지고 적극 참여해야 한다.

  창조신앙의 지혜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주의와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리주의와의 논쟁을 머리 아프게 다루었다. ‘ 개인의 자유’ 와 ‘ 사회의 공익’ 모두 매우 중요한 것이며,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귀중한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이 책이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미국 대법원의 판결을 분석한다. 합헌 결정을 내린 근거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다면 왜 국가가 결혼에 대하여 관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혼이 개인의 선택 문제라면 국가가 결혼제도를 관리하지 말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야 하는 것이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결혼을 관리하는 것은 가정이 건강해야 국가사회가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동성 결혼 합헌 결정은 건강한 가정을 지키려고 하는 국가사회의 노력과는 상반된 가치를 지지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자유와 공익의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떤 해결 방법이 있을까? 저자는 그 해결책으로 ‘공동체’ 를 제안하였다. 공적인 이익에 의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유의지로 희생을 선택해서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공동체를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가 세상에 있는가? 바로 교회 공동체만이 세상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저자 자기도 모르게 결론내리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교회 공동체를 지금 이 시대에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진정 자신의 희생을 통해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사례들이 얼마나 있는지 안타깝다.

  예수님께서 그 희생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셨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세상이 바라는 공동체의 모델이라고 교회를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 안에서 진정 자유롭고, 헌신과 희생을 통해 모든 사람을 복되게 하는 것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이라고.


출처 : 온누리신문(2021.10.3)

미디어위원회
2021-11-26

창조, 그 놀라운 신비 : 하나님 말씀과 능력에 대한 신뢰가 근원


정성수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학생 때부터 교수님들께 한결같이 듣는 말이었다. 당시 내게는 선뜻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을 들여도 진단조차 내리지 못하던 그때, 그분들은 단몇 분 만에 척척 진단을 내리고, 치료 결정을 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웠기에 자신들이 무지하다는 말이 충격이었다. 이제는 나 역시 학생들에게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말하는 처지가 되었다. 오늘날 엄청난 양의 과학 정보가 쏟아져 나오지만, 사실 과학자들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고백이다. 피조세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보이심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생명의 기본단위인 세포에 대해 무지하다. 나 또한 세포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소기관이 있고, 인간이 만든 어느 기계장치 보다 훨씬 많은 10억 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되어있다는 단순한 지식만 알 뿐이다. 세포는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일치된 목적성과 방향성을 가지고 작동하고, 뛰어난 안정성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것이 동시에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1:500,000 축척의 서울시 전도(全圖)를 보면서 아무것도 없는 평면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세포도 마찬가지로 겉보기에는 별것 없어 보이지만, 확대해 들어가면 그 규모와 정교함이 어마어마하다. 내가 아는 아주 부분적인 지식 범위에서도 그 작은 세포가 최소 서울시 이상의 도시와 같은 역동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예를 들면 시청, 발전소, 전기 송전, 유지보수시스템, 화학 공장, 조립공정, 분해, 교통, 통신, 검문, 경찰, 폐기물 처리, 재활용 등의 역할을 하는 모든 것이 세포 내에 있다. 세포 소기관보다 작은 단위인 분자 모터 같은 장치 단백질에도 적용되고 있고,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 및 연합되어 기능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경이 그 자체이다. 

  필자가 진료하는 대상인 폐포도 마찬가지다. 폐포는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이 일어나는 호흡의 기능 단위이다. 폐포는 직경 약 0.3mm크기의 미세한 주머니로, 폐포벽의 두께는 가스교환이 잘되도록 0.01mm 정도로 얇다. 호흡에 따라 폐포가 접혔다 펴졌다를 반복하는데 1시간에 약 1천 번 정도 물리적 스트레스가 가해지는 셈이다. 폐포 보다 10배나 두꺼운 A4 용지라면 찢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나 폐포는 수십 년 동안 손상되지 않는다. 더욱이 그 얇은 폐포벽에는 모세혈관이 배관 되어 있고, 기가 막힌 스프링 구조가 갖춰져 있다. 폐포의 스프링 구조는 들숨에 의해 당겨진 스프링에 탄성이 발생하고, 이에 의해 날숨은 거저 쉬게 된다. 이런 스프링 구조가 없다면, 우리는 숨을 내쉴 때 마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 발생한다. 호흡을 통해 산소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산소는 물속에 많이 녹아 들어가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는 장치가 헤모글로빈이다. 산소를 있어야 하는 조직에 운반해줘야 한다. 이를 해결하는 운반 차량이 적혈구이다. 적혈구라는 아주 큰 대형 트럭에 산소를 붙들어 매어 싣는 헤모글로빈이라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이 좌석은 조직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산소를 놓아주는 자동화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폐포는 이렇게 철저히 적혈구와 모세혈관과 연계되어 있다. 적혈구는 골수에서 생성되므로 호흡은 폐와 순환기, 골수와도 동시에 처음부터 완벽히 존재해서 서로 연합해야 하는 과정이다.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부분적인 지식이라도 마음을 열고 조금만 깊게 바라보면 누구나 생명현상이 경이이고, 하나님의 설계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신앙의 토대는 과학적 지식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과학을 모르기에 성경적 창조신앙을 모른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과학을 깊이 이해할수록 창조신앙이 구체화할 수는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경적 창조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만 한다. 오늘날 진화와 창조가 과학논쟁의 화두인 것처럼, 예수님 당시 가장 큰 창조과학 논쟁은 사두개인에 의해 촉발된 부활 논쟁이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에게 과학으로 부활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들도 익숙한 출애굽기 말씀을 인용해서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해했다고 하셨다. 창조신앙은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에 대한 신뢰가 그 근원이다. 결국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와 세계관과 믿음의 문제이다.


출처 : 온누리신문(2021.9.19)

미디어위원회
2021-11-22

이 세상을 붙잡고 있는 강력한 힘


오경숙    


     고2 가을, 친구에게 억지로 끌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 나는 당시 복음의 불모지, 청소년 복음화율 1%였던 지극히 전통적인 제주의 가정에서 혼자 믿음을 갖게 되었다. 성경도 하나님도 기독교 문화도 생소한 나는 모든 것이 궁금했고, 이해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하나님은 나무라지 않으셨고, 기도하고 물을 때마다 모두 말씀해주셨고, 기도마다 응답하여 보여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는 못했다. 특히 구약의 두려운 하나님과 설화와 같은 창조이야기는 동의가 되지 않아 믿음의 한켠에 ‘보류’의 딱지를 붙이고 멀찍이 방치해 두었다. 그러던 중 물리학을 전공하던 대학원 시절, 처음 창조과학 강의를 들은 그 날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 나의 믿음의 새로운 창을 열어 준 날이었다. 일단 충격이었다. 기존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넘겼던 과학의 지식들이 모두 다 새롭게 다가 왔다. 그리고 과학에 대한 한계에 대해 너무나 큰 동의와 공감이 되었고, ‘보류’의 딱지를 붙이고 방치했던 것들을 펼쳐내고 직시하게 되는 담대함이 생겨났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을 과학에 한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라기 시작했고, 그 생각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 커져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연구하고 원리를 밝혀나갈 수는 있으나 모든 것을 밝힐 수 없으며, 그것이 과학이 한계이고 과학을 하는 우리가 갖고 있는 한계이다.

나는 물리학을 전공하였고, 작은 빛과 에너지를 이용하여 작고 작은 미시세계를 연구하였다. 12년간 연구원으로 몸담았던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과도 같았다. 태양의 에너지원인 핵융합 원리를 지구상에서 구현하는 인공태양을 만들어 다음세대 에너지원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였다. ‘핵’이 들어간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맞다. 핵폭탄의 원리를 에너지로 활용한 것일 뿐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다루고 있는 것은 맞다. 자연계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네 가지 힘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이 핵력이다.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와 양성자 외에 중성자를 발견한 것은 1932년이다. 원자의 핵에 양성자가 주를 이루고 있어 원자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데, 양성자끼리만 있으면 자석의 같은 극은 서로 밀어내는 척력이 있는 것과 같이 양성자끼리는 서로 밀어낸다. 하지만 중성자가 있음으로서 양성자를 작은 핵 안에 묶어줄 수 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자연계에서 밝혀진 가장 강한 핵력인 것이다. 그 다음 약한 힘은 전자기력이다. 양성을 띈 핵 주변을 도는 전자가 이 힘에 해당되고, 자석에서의 양극과 음극이 서로 당기는 힘도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전자기력보다 더 작은 힘은 핵 안에 불안정한 중성자들에 의해 분열되는 약한 핵력이 있다. 자연계를 구성하는 네 가지 힘 중에 가장 작은 힘은 중력이다. 규모로 보면 중력이 가장 큰 힘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장 작은 힘이다. 중력의 힘을 1로 둔다면, 약력은 1033배, 전자기력은 1037배 핵력은 1039배이다. 그만큼 가장 작은 세계가 가장 큰 우주 보다 더 강한 힘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렇듯 우리는 과학을 통해 자연계를 관찰하고 힘을 발견해 낼 수는 있었지만, 이 힘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단지 그 힘들을 활용할 뿐이다. 때론 강력한 힘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세계대전의 최후를 들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힘을 알아내고 사용하는 것 못지않은 책임이 얼마나 큰지 온 세계가 체험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다른 한 면으로 역사의 수많은 민족들이 강력한 힘으로 만들어진 태양을 숭배해 온 것은 그 힘에 대한 두려움이요, 창조주에 대한 무지함이다. 힘을 발견했다고 노벨상을 받으며 우쭐대지만, 그 힘을 만드신 분을 만나지 못한다면,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 힘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과학에 세상의 시작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의지하는 이 시대에 그 시작을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찾는 다면 믿음이 과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이들의 한계이고, 과학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편협한 믿음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이 땅에 있게 한 부모가 있듯이 이 세상의 모든 힘과 모든 것의 처음을 있게 한 존재는 자연 스스로가 아니라 창조주이심을 알아야 세상도 과학도 올바로 보고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붙잡고 있는 가장 큰 힘은 핵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이다. 세상의 그 어떤 지식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와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출처 : 온누리신문(2021.9.10)

미디어위원회
2021-11-15

하나님의 목적과 준비 그리고 순종

정우성  


     고등학교 1학년에 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2월 교회 수련회였다. 거기서 나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부모님은 넌 크리스천(non-christian)이셨고, 내가 동생들 데리고 교회 가는 것을 몹시 싫어하셨다. 정말 싫어 하셨다. 그래서 꽤 힘들었다. 하지만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처음에는 이상했고 나중에는 놀라웠다. 그래서인지 교회 가는 것이, 예배드리는 것이, 찬송하는 것이, 교회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행복했다. 그때 믿음이 생겼고, 성경이 믿어졌다. 창세기도 믿어졌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믿어졌다.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게 믿어졌다. 내 부족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존재가 성경 속의 창조주라는 것이 믿어졌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왜 그게 가능했는지 설명은 불가능하다. 은혜다. 전적으로 은혜다.

나는 지금 IT업계 19년차 반도체 개발자이다. SSD라는 데이터 저장 장치의 컨트롤러를 만든다. 당연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십 명의 팀원들과 함께 기능을 구현하고, 그 기능이 잘 구현되는지 검증해서 세상에 내놓는다. 많은 테스트를 하는데도 종종 버그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어떻게든 그 이슈를 해결한다. 이슈 해결도 실력이다. 설계라는 일에도, 이슈를 해결하는 일에도 설계자의 지혜와 지식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더 복잡한 기능일수록 더 많은 지혜와 지식이 필요하다. 복잡도가 높은 목적을 달성하고 싶을수록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도체 설계자는 반도체 칩에 원하는 대로 동작하는 회로를 만들어 넣는 일을 한다. 손톱만한 칩에 목적을 심는 일이다. 그래서 그 목적을 어떻게 하면 잘 이루도록 할까를 고민한다. 날마다 고민한다. 날마다 더 잘하려고 궁리하고 생각하는데도 늘 어렵다. 신기한 일이다. 부족한 설계자인 셈이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생기게 하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어나기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했으며 너를 여러 민족들을 위한 예언자로 정했다”(렘 1:5)

참 이해가 안 가는 구절이었다. 존재하기도 전에 알다니, 그런 게 가능한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건가?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칩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에 내 생각 속에서 먼저 존재하는구나!’

머릿속에서 뭔가 순간 번쩍였다. 속이 다 시원해지는 경험이었다. 그러고 나니 저 말씀이 너무 쉽게 이해가 되었다. 예레미야가 세상에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먼저 존재하는 것이구나. 예를 들어 사자를 조각하고 싶은 조각가가 있다고 하자. 숙련된 조각가였던 그가 가로 1m, 세로 1m, 높이 2m짜리 큰 바위를 하나 마련했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바위다. 조각가가 바위를 째려본다. 열심히 째려본다. 아직도 세상에는 사자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조각가의 마음속에 먼저 사자상이 존재한다. 멋지게 포효하고 있다. 조각가가 바위 중에 사자가 아닌 부분을 쪼아낸다. 그러면 조각가의 마음속에 존재하던 사자가 비로소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세상에 예레미야가 아직 없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먼저 존재한다. 열방의 선지자라는 목적을 가지고 존재한다. 예레미야만 그럴까? 당연히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생각 속에 먼저 존재한다.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존재한다.

나 같은 부족한 인간 설계자도 무언가를 만들 때 무턱대고 만들지 않는다. 정말 많은 준비를 한다. 그런데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신 분은 창조주이시다. 그 부르심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준비가 예레미야의 삶에 담기게 된다. 그리고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대단해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준비가 인간의 삶에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일이다. 겁나도록 흥분되는 일이다. 그래서 창조를 믿는다는 것은 내 삶에 하나님의 목적이 담겨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준비로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일이다.

그해 2월 평생 예수님을 따라다니겠다고 결심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려고 노력하고 있다. 은혜다. 전적으로 은혜다. 그때는 그것이 나의 결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그것은 하나님의 준비였다.


출처 : 온누리신문(2021.8.20)

미디어위원회
2021-11-12

내가 경험한 창조신앙

창조신앙, 그것은 초석이자 반석!

김정민


     황해도 장연에서 월남하신 부모님의 신앙심이 매우 돈독하셨다. 특히 어머님은 1년 365일 새벽기도를 다니셨다. 가난한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한방을 썼는데 밤에 무슨 기척이 느껴져서 잠에서 깨어보면 어머님이 기도하시곤 하셨다. 가난했지만 우리 집에는 늘 손님으로 북적였다. 그 안에서 느끼던 풍성함은 아마도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어머님께 부어주시던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던 것 같다.


청년 시기 믿음의 위기가 도래했다. 대학에 입학해서 이공계통으로 전공을 정하고 KAIST 석사 과정을 졸업할 즈음 한국창조과학회가 창립되었고 가입을 권고 받았다. 그 순간 나는 진화론이 과학임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창세기 1~1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하심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의심의 구름이 마음 한쪽에서부터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음한구석에 ‘ 창세기는 비과학적이므로 사실이 아니고 신화일 뿐’ 이라는 불신앙의 댐이 봉인된 상태로 있었다. 불신앙의 댐에 진화론의 거짓 속임수가 작은 구멍을 뚫은 셈이 되었다. 이 구멍을 메우고 터지는 과정이 1년 넘게 반복됐다. 그래도 나는 ‘ 모태신앙인으로서 얼마나 신실하게 살아왔는데’ 라는 쓸데없는 자존심이 있어서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신앙상담을 받는 것도 껄끄러워했다. 결국 창세기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방향이 기울어졌다. 믿음이 쏜살같이 떠나가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창조가 의심되니까 그분의 전능하심도 의심되었고, 기도는 점점 더 형식화되었다.


미국 유학 생활을 하던 중에 한인 학생들의 교제권 중심에 있던 한인교회를 가게 되었다.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달게 느껴졌다. 말씀이 내 영혼 안으로 스며드는 기적이 일어났다. 내 영혼이 주님으로 다시 뜨거워지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성경공부그룹 및 중보기도 모임에 매주 참석하게 되었다. 또한 시카고 KOSTA 유학생 수련회에서 영적 부흥을 맛보게 되었다. 진화론이 사실이고 창세기는 신화라고 속이면서 나를 멸망으로 이끌던 모든 공격이 힘을 잃어버려 작용하지 않게 되었다. 창세기 1~11장 말씀을 믿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창조의 전능하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화론의 악한 영향력에서 벗어나 창세기의 천지창조가 믿어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성경의 이적과 기사들이 문자 그대로 믿어지게 되었다.

성경의 많은 저자들이 하나님께 경배를 올리고 찬양하는 가장 주된 방법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45:7).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주임을 믿는 창조신앙으로 나를 새롭게 출발시키셨다. 진화론의 거짓 속임수를 이기는 과정을 통해서 모태신앙 대신 창조신앙이라는 반석을 구축하게 하셨다.

내가 양재온누리교회 창조선교팀을 섬기게된 계기가 있다. 젊은 시절 진화론의 시험에 빠져 신앙의 퇴보를 겪었던 일이 30년 후 내 자식들에게도 일어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단은 세대를 건너뛰며 흰 도화지 같은 청소년의 마음과 생각에 진화론의 거짓을 사실이라고 속이는 전략을 계속 구사하고 있다. 차세대와 청년들이 이해할 수 있는 과학의 언어와 지식으로 진화론의 허구를 밝혀준다면 우리 자녀들이 진화론에 오염되기 전에 창조신앙을 굳건히 세우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나에게 창조신앙이란 무엇일까? 신앙의 초석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부여받는 반석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신앙은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나게 해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하는 능력이라고 믿는다.


출처 : 온누리신문(2021.7.25)

미디어위원회
2021-11-10

성경적인 창조세계관의 역할과 사명

정크 사이언스 VS 창조신앙

한필규


      과학 전문 칼럼니스트 스티븐 말로이가 쓴 <정크 사이언스>는 지난 몇 년 동안 잘못 알려진 과학적 사실을 분석한 책이다. 정크 사이언스(Junk Science)는 ‘ 특정 이익’ 을 추구하기 위해 악용되는 잘못된 과학적 자료와 분석이라는 뜻이다. 특정 이익 집단을 위한 사이비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학적 사실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학을 이용한 것이다. 예컨대 기업이 교수에게 연구비를 줘서 자기 제품에 유리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거나 시민단체가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건강에 대한 위험을 과장해서 공표하는 것 등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모 기업의 유제품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 효과가 있다고 발표해서 문제가 된 것도 이런 사례에 속한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이라고 부른다. 창조과학자들을 기독교 신앙을 위해 과학을 악용하는 광신적인 과학자들로 취급한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과학의 법칙들도 만드셨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과학 법칙들이 하나님의 창조신앙과 모순될 수 없음에도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진화론이 과학과 교육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이 지배하고 있을 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발붙일 곳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케플러, 갈릴레오, 뉴튼에 이르는 과학혁명 시대의 주역들에 의해 천동설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지동설이 과학이론으로 새롭게 정립되었다. 진화론은 생명체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이론은 될 수 있지만,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모든 것의 기원을 하나님 대신 설명하는 패러다임이 되어버렸다. 진화론 패러다임은 과학의 발전에 따라 그 모순을 더 크게 드러내고 있지만, 그 자체가 과학이 아닌 무신론적 철학이며 무신론 신앙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다.


지구과학도 진화론 패러다임에 갇혀있다. 현재 지구의 지형들은 거대한 물의 움직임과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격변적으로 짧은 시간에 형성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진화론 패러다임에 갇힌 판구조론은 아주 오랜 시간 서서히 현재의 지형들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과학자 중에도 진화론 패러다임으로는 현재의 지형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거대한 운석충돌의 격변적인 사건으로 현재 지구 지형들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미 창조과학 분야에서는 대홍수 격변 사건이 지구과학의 모든 이론을 수용하면서 훨씬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지구물리학 이론을 가지고 있다. 지구과학이나 생명과학이나 어떤 과학영역에 서도 하나님의 창조 설계를 인정하면 더 좋은 과학이론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진화론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과학에서는 하나님의 창조 설계조차 진화론적 패러다임으로 설명해야만 과학적 연구로 인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조과학자들은 사이비 과학자라는 비난과 배척을 받으면서 과학과 교육의 영역에서 창조신앙을 전파하고 있다. 창조과학자로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만이 이런 삶을 사는 것일까?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삶의 영역에서 동일한 도전과 비난을 받고 살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0장 22절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은 이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삶이다.


진화론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에 창조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은 어둠 속의 빛과 같은 삶이다. 하나님의 진리 편에 선 성도라면 과학의 영역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세상의 비난과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온전한 신앙은 두려움 없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영역에서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창조세계관은 우리의 인격과 삶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며 나의 가정, 우리의 교회, 세상의 일터에 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복된 삶을 누리는 중요한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출처 : 온누리신문(202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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