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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미디어위원회
2018-04-26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이유 

(Voting with their feet)

by Don Batten  


      영국의 주요 종교들 중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급감하고 있다. 영국 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의 교인들은 1980년과 2000년 사이에 27%나 감소하였다. 이러한 감소율에 대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 2003/2004 년에 한 조사가 실시되었다. 모두 14,000명의 영국과 아일랜드 사람들이 그들이 왜 교회 다니는 것을 포기했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에 응답하였다.[1] 사람들은 다항 선택식 질문에 답하기 보다는 오히려 글로서 응답을 해주었다.


놀랍게도 91%의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게 된 것에 대해서 매우 비슷한 이유를 제시하였다. 이것은 한 응답자의 말로 요약될 수 있다 : ”교회는 믿는 이유에 대해서 더 강력한 방어를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에 대한 비판자들의 공격에 대해서 교회들이 대답해주고, 믿음을 방어해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많은 응답자들은 그들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가르침을 얻기 위해 가정 교회들와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가르침을 제공하는 여러 웹 사이트들이 자주 목록화 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Answers in Genesis (AiG) 웹 사이트 였다. 응답자들은 그들의 믿음과 성경의 권위를 지지하는 가르침에 대한 증거들을 원했다.


불행하게도, 전통 교회 안에 있는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는 진화론적 역사관에 굴복하였고, 성경을 방어하기 위한 어떠한 갈망도 잃어버렸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신앙으로 인해 핍박을 받았던 조셉 톤(Josef Ton) 루마니아 침례교회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서구 유럽에서 기독교를 파괴했던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는 진화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과 우리의 믿음에 진화론을 적용시킨 것이다.”


창세기에 대한 파괴 작업은 ‘고등비평(higher critic)’으로 열심이었던 독일의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성경에 진화론적 인류역사관을(원시적인 다신교로부터 성경을 믿는 일신교가 생겨난 것으로) 적용하였다. 벨하우젠과 그의 동료들은 모세오경은 모세에 의해서 기록되지 않았고, 후에 확인되지 않는 유대 랍비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결정하였다. 지금도 많은 보수적인 신학대학들까지도 이 이단사설인 파괴적인 ‘JEDP’ 문서가설을 가르치고 있다.[2]


교회를 떠나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과 도덕적 생활의 거룩함을 가르치고 있지 않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좌절감이었다. 응답자의 많은 수가 영국 국교회에서 동성애자를 성직자로 임명한 것에 대해서 몹시 슬퍼하고 있었다. 그러나 창조(creation)에 대한 창세기의 설명이 거부된다면, 하나님이 정하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도 거부될 수 있는 것이고,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창세기의 말씀이 거부된다면, 동성애를 금지한 분명한 다른 성경 말씀들도(창세기 19, 레위기 18:22, 로마서 1:26–27, 고린도전서 6:9, 디모데전서 1:10) 거부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호주에서의 연구는, 진리와 도덕적 기준들은 교회를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3] 심지어 세속적인 뉴스 해설가인 앤드류 볼트(Andrew Bolt)까지도 높은 낙태율에 대해서 말하면서[4], 교회지도자들이 생명의 고결함과 같은 도덕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바른 자세들을 가져주기를 한탄하고 있었다.


호주에 있는 한 자유주의 대주교(archbishop)는 그의 종파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면서, 근본주의자 교회(fundamentalist churches, 즉 성경 중심의 교회)들이 양떼를 훔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는 굶주린 양떼들이 목초지를 찾고 있는 것을(슬프게도 대부분은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도 또한 자유주의 신학에 감염되어 왔던 주류 종파들을 떠나고 있는 중이다. 자유주의적 교회는 죽어가고 있고, 보수주의적 (성경을 믿는) 교회는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5]


분명히 성경의 권위를 세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창조 메시지는 교회의 성장과 쇠락의 문제에 있어서 핵심적이다. 만약 교회 지도자들이 첫 구절부터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교회를 부적절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점점 더 증가할 것이고, 그들은 교회를 떠나가게 될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Let the people speak, Church Survey UK. The 42-page report is available at <www.churchsurvey.co.uk/?home>.
2. For refutation, see Grigg, R., Did Moses really write Genesis? Creation 20(4):43–46, 1998.
3. Bellamy, J., et al., Why don’t people go to church? National Church Life Survey [Australia], 2002.
4. Bolt, A., We kill babies, Melbourne Herald-Sun, 10 November 2004, p. 23, <www.family.org.au/In_the_news/Abortion/We_kill_babies.htm>.
5. Shiflett, D., Exodus: Why Americans Are Fleeing Liberal Churches for Conservative Christianity, Sentinel, USA, 2005.

 

*참조 : Voting with their fee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09/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why-are-mainline-churches-in-britain-and-ireland-in-freefall

출처 - Creation 28(1):6, December 2005.

미디어위원회
2018-02-23

단지 복음만 전하는 것! 

: 창세기 없는 복음은 무신론자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Just preach the Gospel!)

Jonathan Sarfati 


       성경적인(‘젊은 지구’) 창조론을 믿지 않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무신론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해롭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하기를, 창세기와 같이 불화를 일으키는 논제를 피하고 ”단지 복음만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에서 복음을 가장 잘 전했던 사람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바울의 복음 메시지에는 창세기가 들어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복음을 어떻게 전했을까?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는 복음을 요약해서 말하면서, 고린도 사람들로 하여금 약 15년 전에 그가 처음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이미 그들에게 가르쳤던 것임을 상기시킨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1-4).

그런데 마지막 구절인 ”성경대로”를 주목하라. 바울은 ‘좋은 소식’인 복음은 뿌리 없이 허공에 매달려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좋은 소식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먼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며,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등의 나쁜 소식을 먼저 제시하며, 계속하여 복음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21-22, 26, 45).

따라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생략하라고 다그치는 바로 그 부분인 창세기 처음 몇 장에 기초를 굳게 두고 있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성경 중에서 복음이 가장 잘 드러난 로마서도 썼다. 바울은 여기서도 역시 아담과 예수님, 두 사람을 대조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그리고 그 앞 장에서(롬 4:1-17), 바울은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인한 의에 대하여 중요한 진리를 가르친다. 바울의 논점은 창세기에서의 사건의 순서에 근거한다. 정확하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즉 믿음은 그가 할례를 행하는 행함(창 17장)보다 이전이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역사적으로 최초의 이방인 회심자들인 바울의 독자들이 창세기를 잘 알았으며,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바울이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창세기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 이것은 초기의 기독교인 회심자들이 제자훈련을 시작하기 바로 전에 창세기를 완전히 배웠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신론자들은 창세기가 복음의 기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신론자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주된 이유는 그것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18)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명백한 미련함에 대한 한 가지 이유는 많은 복음전도자들이 창세기에 기초를 두지 않고 복음을 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신론자들은 정확히 이것을 미련한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목소리가 큰 무신론자인 프랭크 진들러(Frank Zindler)는 이렇게 말한다:

”생물학이 기독교를 가장 당황하게 만든 것은 생물학적 진화의 발견이다. 이제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실존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중심되는 신화는 못쓰게 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없었다고 한다면 원죄 같은 것도 없다. 원죄가 없다면 구원이 필요 없다. 구원이 필요 없다면 구세주가 필요 없다. 나는 그것이 역사적으로나 다른 면으로나 예수를 실업자의 대열에 넣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 진화론이 기독교에 대해 확실히 죽음의 종을 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들러와 마찬가지로, 무신론자의 사도인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진화론과 기독교를 결합시키려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물론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단지 상징일 뿐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상징?! 그러니까 예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에 의한 상징적인 죄 때문에 고통당하고 처형당한 것이지요? 그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그것은 ”미쳐서 짖는 것”이라는 판단 밖에는 내릴 수가 없지요!”


죽음과 고통의 문제

위의 구절들에서 바울은 죽음과 고통을 분명하게 아담의 죄와 연관 짓는다. 바울에게 있어서 죽음은 ”마지막 원수”(고전 15:26)이며 ”죄의 삯”(롬 6:23)이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이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말씀하신 그분의 원래의 창조의 일부분일 수 없다.

인간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있었으므로(창 1:26-28),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그의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 역시 저주를 받았다. 따라서 타락은 그 범위가 우주적이며, 전체의 피조물에 영향을 미친다. 로마서 8:22절에서 말하듯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담이 타락할 때 피조물이 무익해지도록 하셨기 때문이다(20절).

그러나, 수십억 년이라는 세월과 성경을 혼합시킴으로써 창세기를 부정하는 것은 거대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들 장구한 시대는 그 오랜 시간 틀에 걸쳐 지층암석들이 쌓였다는 사실을 수반한다. 그러나 이들 암석층은 화석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는 죽은 사람과 죽은 동물과 가시들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수십억 년이라는 교의는 이들 죽음의 대부분을 아담의 죄 이전으로 둔다. 이는 성경이 일관성 있게 말하고 있는 죄와 죽음의 인과 관계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고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우리가 오랜 연대를 믿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주장하지 않는 큰 이유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더욱 더(훨씬 많이) 비논리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수단으로 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창조를 낳게 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다윈이 한 말을 들어보라:

”이와 같이, 자연의 전쟁으로부터, 기근과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 지위의 대상인 가장 높은 동물이 뒤따라 나왔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바를 실감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또 다시, 빈틈없는 무신론자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과학철학자 데이비드 헐(David Hull)은 이렇게 썼다:

”진화론에서 하나님이 어떤 의미를 갖든, 자연사의 자료들이 어떻든, 그분은 낭비하지 않고 원함이 없는 개신교의 하나님은 아니다. 그분은 또한 그분의 작품을 돌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다. 심지어 그분은 욥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두려운 하나님도 아니다. 갈라파고스의 하나님은 부주의하며, 낭비하며, 냉담하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분은 분명 우리가 기대어서 기도하고 싶어지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다.”

무신론적 유전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자크 모노드(Jacques Monod, 1910-1976)는 진화론에 대해 더욱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것은 소멸 또는 파괴의 과정이기 때문에 보다 잔인하다. 생존을 위한 투쟁과 약자의 소멸은 끔찍한 과정이다. 현대의 우리의 모든 윤리는 그것에 반발한다. 이상적인 사회는 선택적이지 않은 사회, 약자가 보호받는 사회이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자연법칙과 정확히 반대이다. 나는 진화가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다소간 하나님이 이런 과정을 고안하셨다는 개념을 기독교인들이 지니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강조는 저자가 추가한 것이다).”


결론

첫 절에서 보았듯이,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그리고 그의 저술에서 창세기를 광범위하게 인용했다. 사실상, 바울 및 다른 사도들은 새로운 기독교인들에게 창세기의 진정한 역사에 관해 광범위하게 가르쳤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의 본보기를 따라야 한다!

또한,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용인하는 것이 무신론자들을 이기는 것이라고 분별없는 상상을 하고 있다. 슬프게도, 많은 교회들이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쓴 이래 150년간 이것을 시도해 왔다. 심지어 영국 교회는 다윈에게 사과까지 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전혀 감명을 받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차라리 어느 창조론자 블로거처럼 유신론적 진화론자 단체인 BioLogos를 이렇게 꾸짖는 것이 더 낫다:

”당신이 타협함으로써, (1)당신은 그들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2)그들에게, 그들이 당신을 이기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다. 그들은 그저, 당신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세상이 싫어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버리다가 결국에는 당신이 모든 것을 버릴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당신이 올바른 장인 창세기 1장을 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애들 장난밖에 없다.”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s://creation.com/just-preach-gospel

출처 - Creation, Vol. 35(2013), No. 3, pp. 15-17.

한윤봉
2018-01-01

<신년사>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2017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학회에 대한 도전과 공격이 심했던 한 해였습니다. 인본주의와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창조과학자로서 살아가는 길은 참으로 힘들고 외로운 길임을 체험했던 해였습니다. ”성경적 창조신앙 회복을 통해서, 교회와 다음 세대들을 강건하게 세우고, 부흥하게 하는 불씨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가십시다”고 마음을 모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힘들게 달려온 2017년이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함께 동역해주신 여러분의 기도 덕분이고, 하나님의 은혜였음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학회를 공격하는 범위와 강도가 더 넓어지고, 거칠어지고 있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믿고, 성경을 수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기 위해, 분연하게 일어선 분들이 많았습니다. 수많은 아람 군대가 말과 병거로 성읍을 둘러쌌을 때, 엘리사의 사환은 두려워 떨었지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말했습니다(열왕기하 6:16).

2018년에는 우리 학회가 어떤 심한 도전과 공격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도전과 공격이 많을수록, 우리 학회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쫓아 제대로 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2018년 한 해 동안에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결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능력과 지혜로서,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들보다 많은 하나님의 천군 천사가 우리를 지켜주시고, 결국에는 승리하게 하실 겁니다.

어두움을 인내하며 잘 견딘 자만이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넓고 편한 길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험한 십자가의 길입니다. 창조과학자로서 성경적 창조신앙과 구원신앙의 회복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십자가의 길을 갈 때, 지치거나 외롭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며, 기도하며, 함께 가십시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2018년에도 늘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54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17-12-29

2017년 창조과학 10대 뉴스


       2017년은 창조과학에 대한 논란이 어느 해보다 컸던 한 해였다. 진화론과 진화에 필요한 수십억 년의 연대가 과학적 패러다임이 되어버린 오늘날,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믿는 신앙은 조롱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거짓의 속임수 이론이다. 올 한 해 창조과학 10대 뉴스를 선정해 보았다.


1.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에도 필요한 외침, ‘오직 성경’

2017년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종교개혁자들이 내걸었던 주요한 슬로건들 중 하나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었다. 그들은 오직 성경만이 궁극적인 권위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진화론이 만연한 오늘날, 창조/진화 논쟁에 있어서도 ‘오직 성경’은 재강조 될 필요가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보다 오늘날의 과학, 즉 진화론과 오래된 연대를 이 세계와 인류의 기원에 대한 궁극적 권위로 삼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 비추어 과학을 해석하기보다,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시간 틀에 어떻게든 들어맞도록 성경을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최근의 과학적 연구가 밝혀내고 있는 사실들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타협은 전혀 불필요한 것이다.

많은 기독교 교리들이 창세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이 세계를 6일 동안에 창조하셨으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이 세계에 죽음이 들어왔고, 타락한 인류를 심판하신 전 지구적 홍수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의 창조가 사실이 아니고,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기독교 사상의 기초는 붕괴된다. 예수님께서도 창조를 믿으셨으며,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노아 홍수를 믿으셨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오직 성경”을 외쳤던 종교개혁가들과 진화론의 등장 이전에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이 가졌던 성경에 대한 이해였다.

태초부터 전투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없다거나, 성경이 진리가 아니라고 하는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은 없다. 오늘날 진화론은 소위 ‘과학’으로 위장하여, 이 세계는 커다란 폭발(빅뱅)로 생겨났으며, 전 지구적 홍수는 없었으며, 사람은 유인원에서 진화한 존재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 대응하여 대대적인 과학적 반대를 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지식과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화론이 만연한 이 시대에도 필요한 외침은 ‘오직 성경’인 것이다.

*원문 : 진화론이 만연한 이 시대에도 필요한 외침, ‘오직 성경’

https://creation.kr/Faith/?idx=1293853&bmode=view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기인가?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71&bmode=view


2. 비과학, 반과학인 것은 창조과학이 아니라, 진화론이다.

올해 포항공대 박성진 교수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었다가, 한국창조과학회 활동 이력이 논란이 되어 후보를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진화론을 거부하며,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6일 창조를 믿는 창조과학자들은 마치 사이비 과학자처럼 매도당하고 있다.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연대는 사실인가? 창조과학자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먼저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최초 생명체는 어떻게 자연발생 될 수 있었는가? 생명체에 필요한 세포기관들과 수천의 필수적인 화학물질들이 모두 동시에 어떻게 자연적 과정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는가? 어떻게 자연 상태에서 수천의 화학물질들이 정교하고 정확하게 결합 및 조직화되어 생명체가 되었는가? 최초 생명체의 유전자들 속에 들어있는 암호화 된 유전정보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정보도 우연히 생겨났는가? DNA가 복제되기 위해서는 수십 종의 단백질들이 필요한데, 이들 단백질의 암호는 DNA에 들어있다. 어떤 것이 먼저 생겨났는가? 무작위적 복제 오류인 돌연변이가 어떻게 엄청난 양의 유전정보들을 최초의 생명체로부터 사람까지 계속 증가시킬 수 있었는가? 돌연변이들은 정보의 소실, 기능의 파괴, 암, 질병, 기형 등을 초래하는데, 어떻게 돌연변이의 축적으로 생물이 점점 발전할 수 있었는가? 선택은 기존에 이미 있는 것들 중에서 고르는 과정인데, 어떻게 자연선택이 새로운 장기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가? 여러 효소들이 정확한 순서대로 모두 함께 있어야만 작동되는 생화학적 경로들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다세포 생물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개별 생존에 적응한 세포가 어떻게 각 장기의 다른 세포가 되는 것을 배웠는가? 암수 성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서로 다른 암수의 생식기관이 만들어지는 데에 필요한 물리적, 화학적, 생리적 과정들이 어떻게 무작위적 돌연변이로 암 수에서 각각 동시에 매 생물마다 만들어졌는가? 진화론이 맞다면, 예상되는 수백 수천만의 전이형태 화석들이 사라져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부분적으로 발달된 진화 도중의 장기를 가진 생물은 생존에 불리하지 않겠는가? 캄브리아기에 왜 갑자기 척추동물인 물고기를 포함하여 20개 문(phylum) 이상의 다양한 생물 형태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는가? 그들의 조상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캄브리아기에서 발견된 새우는 3,000개의 렌즈들로 이루어진 겹눈을, 아노말로카리스는 1만6천 개의 겹눈을, 삼엽충은 이중렌즈 구조의 수백 개의 겹눈을 갖고 있는데, 이들이 하등한 동물인가? 이들 눈은 어떤 것에서 진화한 것인가? 지층의 연대는 어떤 화석이 나오는 지로 결정하고, 화석의 연대는 어떤 지층에서 나왔는 지로 결정하는 것은 순환논법 아닌가? 그리고 어떤 생물(살아있는 화석)들은 왜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는가? 사람보다 매우 짧은 한 세대의 기간과 많은 개체 수를 낳고 있음에도 말이다. 맹목적인 화학이 어떻게 마음, 지능, 이타주의, 공생, 도덕성 등을 만들어냈는가? 관측되지 않는 과거에 대한 추정 이야기가 사실처럼 말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증거들이 없는, 근본적으로 종교적 믿음 체계로 보이는 진화론만이 기원과학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퇴적지층들은 정말로 오래된 연대를 가리키는가? 오늘날 관측되고 있는 지형과 지표면의 모습은 장구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퇴적된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홍수에 의해서 짧은 기간 내에 격변적으로 퇴적되고, 침식된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퇴적지층들은 구성입자 성분에 따라 분류되어, 사암층, 셰일층, 석회암층 등으로 광대한 넓이로 쌓여 있다. 이들 각 지층들은 수백 수천만 년의 연대를 나타낸다고 주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백만 년 동안 모래만 쌓이다가, 수백만 년은 점토만 쌓이다가, 수백만 년은 석회암만 쌓일 수 있단 말인가? 이 무슨 우스꽝스럽고 불합리한 주장인가? 대륙을 횡단하며 쌓여있는 광대한 수평 퇴적층들, 지층들 사이에 침식 흔적이 결여된 매끄러운 부정합 경계면들, 부서짐 없이 습곡된 지층들, 산꼭대기나 내륙 깊숙한 곳의 바다생물 화석들, 막대한 량으로 분출되어 있는 용암들, 평탄한 침식 지표면들, 대륙 해안의 급경사면, 장거리로 운반된 막대한 량의 모래와 자갈들, 전 세계의 수극들, 대륙경사면의 해저협곡들, 산꼭대기의 평탄면들, 다지층 화석들, 교대로 나타나는 석탄층, 수조 개의 동식물 화석들, 빠르게 매몰된 모습의 생물 화석들, 전 세계의 화석무덤들, 육상생물과 바다생물의 혼재된 발견.... 등은 과거에 전 지구적 홍수가 실제로 있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과학적 증거들에 기초하여 볼 때, 퇴적지층들이 수억 수천만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쌓여졌다는 진화론적 동일과정설은 틀렸으며, 동일과정설에 기초하여 퇴적지층에 할당된 수억 수천만 년의 지층 연대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등의 지질시대는 허구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한 젊은 연대를 가리키는 수많은 과학적 증거들이 있다. 최근에 목성의 위성 이오에서는 맹렬한 화산폭발이, 유로파에서는 200km 높이로 수증기 기둥이,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에서는 101개의 간헐천이 커튼처럼 분출되고 있음이 관측되었다.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추운 곳에 있는 천체들은 수십억 년이 지났다면 차갑게 식어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외에도 타이탄, 트리톤, 미마스, 가니메데, 해왕성, 천왕성, 명왕성, 수성, 금성, 달, 67P 혜성, 세레스... 등에서 관측되고 있는 활발한 지질학적 모습들은 태양계 천체들의 나이가 46억 년이 될 수 없으며, 매우 젊음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6500만 년 전에 멸종했다는 공룡 뼈에서 연부조직, 혈관, 혈액세포들이 아직도 남아있었고, 수억 수천만 년 전 화석들에 연부조직, 단백질, 색소, 생체물질들이 남아있었으며, 수억 수천만 년 전의 것으로 주장되는 석탄, 다이아몬드, 화석 나무, 공룡 뼈 등에서 남아있어서는 안 되는 방사성탄소(C-14, 반감기 5730년)가 검출되고 있고, 고생대, 중생대 지층에서 사람이 만든 유물이나 발자국들이 발견되고 있고, 인류의 많은 예술품, 그림, 조각 등에서 공룡과 유사한 생물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증거들은 수억 수천만 년의 연대가 허구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장구한 연대가 사실이 아니라면, 진화할 시간이 없는 진화론은 완전히 허구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과학적 증거들에 기초하여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는 진화론에 반대되는 증거들에 대한 6700여 편의 글들이 있다.) 진화론을 거부하며, 수십억 년의 연대를 거부한다고 사이비 과학자인가?  

*원문 : 진정한 사이비 과학자들은 누구인가? : 비과학, 반과학인 것은 창조과학이 아니라, 진화론이다.
https://creation.kr/Debate/?idx=1293674&bmode=view


3. 43억 년 전의 생명체가 발견됐다? 그리고 이 미생물은 오늘날의 것과 유사했다.

이제 생명체가 진화할 시간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더 초기로 내려간 생명체의 출현 시기는 지구 행성에 대폭격 시기와 혜성이나 소행성들로부터 지구에 물이 도착한 시기 등을 다시 조정해야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최근 진화론자들은 캐나다에서 ”43억 년 전의 미생물 화석”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전까지 최초 생명체는 약 37억 년 전에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주장되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에 41억 년 전 생명체가 발견됐다는 보고에 이어, 2017년에 43억 년 전에도 생명체가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지구의 바다가 형성된 직후에 ”거의 순간적으로 생명체가 생겨났다”고 말하고 있었다.

생명체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진화론의 기초는 생명체의 자연발생설이다. 세포에 필요한 아미노산, 단백질, 지질, 당, 핵산, RNA 등 수백 수천의 유기물질들이 자연적 환경에서 무작위적 과정을 통해 모두 우연히 만들어졌고, 정확하게 조립되어, 최초의 세포가 자연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너무도 심각해서, 생물학적으로, 화학적으로, 확률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해 보인다. 가장 간단한 미생물로 생각되는 마이코플라즈마도 200개의 분자기계들과 689개의 단백질들을 만드는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모두 우연히 생겨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생명체에 있는 단백질들은 L형 아미노산들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어떻게 자연적인 과정으로 D형 아미노산들과 분리될 수 있었는가? 사실 자연발생설은 과학적으로 부정된 이론이다. 더군다나 이 우연히 생겨난 세포가 계속 후손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전정보를 물려주어야 하는데, 이 유전정보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정보는 우연히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 정보학자들의 결론아닌가? 잉크가 쏟아져서 우연히 글자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 그것도 단어와 문장들로 이루어진, 문법이 맞고, 뜻이 통하는 한 페이지가? 아니 한 권의 책이? 진화론자들은 최초의 생명체가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모르며, 생명체가 무엇인지 아직 정의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은 초기 지구에서 생명체가 순간적으로 자연발생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대양에서는 더욱 자연발생할 수 없다. 바닷물에는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유기물질들이 없으며, 고농도로는 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단백질들, 지방들, 당들, 핵산들은 물이 완전히 배제되었을 때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물이 있는 곳에서는 자연적 과정으로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다. 일억 번을 양보해서 단백질들 중 하나가 극히 극히 극히 우연히 형성됐다 하더라도, 그것은 즉각적으로 가수분해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 미생물은 ”오늘날 대양 열수분출구 주위에서 살고 있는 박테리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수억 년 동안 생물들은 진화해 나갔다고 말해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이 화석 미생물은 43억 년이 지난 후에도 변화하지 않았는가? 진화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왜 고대의 미생물 화석은 장구한 세대 후에도(미생물의 짧은 한 세대의 기간을 생각해보라) 현대의 미생물과 왜 그렇게 유사한 것일까? 진화론을 믿기 위해서는 엄청난 믿음이 필요하다.

*참조 : 43억 년 전의 생명체가 발견됐다?: 가장 초기의 미생물도 오늘날의 것과 유사했다.

https://creation.kr/Influence/?idx=1289967&bmode=view


4. 하등하다는 동물성 플랑크톤에서 다연발의 작살이 발견되었다.

와편모충류(dinoflagellates)라 불리는 한 특별한 그룹의 플랑크톤은 두 개의 편모를 갖고 있는 해양 원생동물이다. 최근 이들 와편모충류에서 개틀링 총(Gatling gun, 세계 최초의 다중 총신 기관총)과 같이 작동되는 놀라운 작살-발사 캡슐이 발견되었다. 진화 과학자들은 하등한 플랑크톤에서 그러한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가 발견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어쨌든 이들은 단세포 미생물이다. 발견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이들 와편모충류가 그들의 먹이를 어떻게 공격하는지 그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발사 메커니즘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고도로 복잡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독특한 형태의 발사 메커니즘이 독침을 쏘는 해파리에서 발견되는, ‘자포’라 불리는 세포기관과 흡사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자포동물의 자포는 와편모충류 발사체의 어떠한 유전자도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진화론적 예측과 모순된다. 그러나 그들은 간단하게 ”매우 흥미롭다”고 말하며 넘어가고 있었다.

창조과학자들은 이들 작살과 같은 발사체는 완전히 기능을 하는 정교한 메커니즘으로, 어떠한 진화적 징후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완벽하게 기능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매혹적인 사격 구조는 아담의 타락 전과 후에 먹이를 얻는 방법으로 설계되었을 것이다. 가장 작고 ”가장 하등하다는” 생물조차도 놀라운 설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참조 : 동물성 플랑크톤에서 발견된 다연발의 작살! : 하등하다는 원생동물에서 고도로 복잡한 기관의 발견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93


5. 가장 오래된 나무가 가장 복잡했다?

중국 북서부에서 새로 발견된 3억7천4백만 년 전의 것으로 주장되는 나무 화석은 진화론의 이야기와 반대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생대 데본기의 나무가 오늘날의 나무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클라독스롭시드(cladoxlopsids)라 불리는 이 데본기의 나무들은 세 가지 친숙한 식물 조직, 즉 잎, 줄기,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물과 영양분을 운반하기위한 목부(xylem)로 알려진, 거미줄처럼 상호 연결된 가닥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바깥쪽 테에 정렬된 작은 내부 섬유 다발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 나무는 자라면서, 각 가닥은 높이와 둘레에서 나무의 전반적인 성장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느슨하게 떨어져있다가, 이웃한 가닥과 다시 붙는 것이었다. 즉, 가장 최초로 진화했다는 나무로 알려진 어떠한 나무보다 고도로 복잡한 구조와 기능을 이미 갖고 있었던 것이다.

카디프 대학의 고생물학자인 크리스토퍼 베리는 ”일찍이 이것과 같은 복잡성을 갖고 있는 나무는 지구의 역사상에서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성경 창세기는 창조주간 셋째 날에 하나님께서 모든 식물들을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식물이 진화된 적이 없었다면, 그들 중 가장 초기의 것조차도 최상위 수준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전 지구적 대홍수가 있었음을 가리키는 수많은 지질학적 증거들이 있다. 이는 클라독스롭시드가 진화로 출현한 '가장 초기'의 나무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단지 매몰되어 화석화 된 첫 번째 나무였을 뿐이다. 창조와 노아 홍수는 수억 수천만 년의 신화적인 시간을 쓸어가 버리고, 클라독스롭시드 화석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 나무는 특별 창조되었고, 4500여 년 전의 노아 홍수로 화석화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낮은 퇴적지층에서 등장하는 나무도 가장 복잡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원문 : 가장 오래된 나무가 가장 복잡했다? 고생대 데본기의 화석 나무는 매우 발달된 구조를 갖고 있었다.
https://creation.kr/Circulation/?idx=1295079&bmode=view


6. 공룡 시대의 녹조류가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있었다.

식물학자들은 북미 대륙에서 대형 녹조류의 한 형태인 차축조류 리크노탐누스 바바투스(Lychnothamnus barbatus)를 발견했다. 이 녹조류는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 공룡 화석에 섞여있던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 녹조류는 어떻게 6천5백만 년 동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 차축조류는 30cm 길이로 자라나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턱수염처럼 보인다. 아르헨티나에서 공룡들과 함께 묻혔고 화석화되었던 이 녹조류는 1800년대 유럽에서 정확히 똑같은 조류가 살아있음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또한 아시아 전역과 호주의 민물 호수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동일한 조류가 21세기 북미대륙에서 갑자기 나타났는데, 어떠한 진화론적인 변화도 없었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이 녹조류가 진화에 필요한 도전적인 환경을 결코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늘상적인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거대한 공룡을 참새, 독수리, 펭귄, 홍학, 고래, 기린, 곰, 사자,...등으로 변화시킬 만큼, 충분히 강력했던 환경적 변화들이, 어떻게 담수에서 살아가는 조류 종에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던 것일까?

백악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리크노탐누스에서는 어떠한 진화적 변화도 없었기 때문에, 진화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거나, 백악기-제3기 멸종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거나, 또는 아무 일도 없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창조주간에 식물들과 동물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그들은 노아 홍수 동안에 격변적으로 매몰됐고(공룡들과 현대적으로 보이는 차축조류, 그리고 수조 개의 생물 화석들과 함께), 그리고 종류 내에서만 번식되게 창조되었다는 성경 창세기의 기록은, 오늘날 민물에서 발견된 백악기 화석과 동일한 모습의 차축조류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원문 : 공룡 시대의 녹조류가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있었다.
https://creation.kr/LivingFossils/?idx=1294821&bmode=view


7. 그리스에서 570만 년 된 사람발자국의 발견으로 다시 써야하는 인류 진화론

스웨덴 웁살라 대학 연구자들의 한 논문은 진화 고인류학자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 크레타 섬의 트라칠로스에서 오래된 사람발자국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사람과 유사한 생물이 570만 년 전에 그리스의 크레타 섬을 배회하고 있었을 수 있음을 가리킨다... 현저하게 사람 발자국과 비슷한 화석 발자국들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너무도 놀랐다.” 570만 년 전은 인류의 조상이 아직 출현하지도 않은 시기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것을 만들었을까? 이러한 발견은 진화론적 시간 틀을 완전히 벗어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위협하고 있으며, 사람이 유럽에서 진화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진화론적 지질학에 따르면, 그 당시 크레타 섬은 그리스 본토의 일부였기 때문에, 발자국을 만든 제작자들이 헤엄치거나 배를 타고 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같은 발을 가진 생물은 570만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아야만 한다. 아프리카의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사람발자국과 유사한 발자국도 366만 년의 전의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이 발자국도 진화론자들에게는 너무도 불편한 발자국이었다. 진화론자들은 라에톨리 발자국을 사람의 발을 가진 원숭이 같은 루시(Lucy)가 새겨놓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트라칠로스의 발자국은 라에톨리 발자국보다도 200만 년이나 더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도 나쁜 상황이다. 그들은 라에톨리 발자국보다 2백만 년이나 더 오래된, 사람의 것처럼 보이는 발자국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저자들이 그 논문의 게재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에서, 그 발견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그들의 눈을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발자국들이 오래된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들은 수백만 년이라는 연대를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원문 : 그리스에서 570만 년 된 사람 발자국의 발견? : 트라칠로스의 발자국으로 다시 써야하는 인류 진화론
https://creation.kr/Apes/?idx=1852249&bmode=view


8. 4천8백만 년 전 조류 화석에 지방이 남아있었다.

독일의 유명한 화석 발국지인 '메셀 피트'에서 발견된, 4천8백만 년 전의 것으로 주장되는 조류(bird) 화석에는 지방질 기름(fatty oil)을 포함하여, 새가 몸치장을 위해 사용했던 피부 기름샘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 화석은 정말로 4천8백만 년 전의 것이 될 수 있을까? 메셀 피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화석들이 발굴되고 있다. 이곳에서 이전에도 놀라운 발견들이 있었지만, 이 발견은 과학자들을 가장 크게 놀라게 만들고 있었다. 한 연구자는 ”이 발견은 동물에서 연한 부분 보존의 가장 놀라운 사례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들이 놀라고 있는 이유는, ”연질 부분을 구성하는 유기물질은 보통 수십 년 내에, 어떤 것은 단지 몇 년 내에도 분해된다”는 사실을 고생물학자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 화석에서 또 다른 문제점은, 이 새가 현대의 새의 것과 사실상 동일한 미지선(uropygial gland, 꽁지기름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어떠한 진화도 없었다. 연구팀은 화석 새 기름의 화학적 조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열분해 가스크로마토그래피-질량 분석기를 사용하여 이 물질을 분석했다. 그 물질은 그 새가 갖고 있던 기름 물질로서, 현대 조류의 미지선과 화학적 구성이 매우 흡사했다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수천만 년”이라는 연대는 표본에 대한 관측 결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한 연대는 생물들의 오랜 진화를 가정하고 있는 진화론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생겨난 연대이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연부조직이 그렇게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어떠한 진화도 없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그 새가 4천8백만 년 전에 화석이 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물론 공룡의 연부조직을 포함하여, 수억 수천만 년 전의 것으로 주장되는 화석들에 연부조직, 혈액, 색소, 단백질 등의 유기물질들이 남아있었다는 보고가 산처럼 쌓여져 가고 있다. 2017년 한 해에도, 5400만 년 전의 바다거북 화석에서 단백질과 색소가, 6600만 년 전의 공룡 알에서 친수성의 색소가, 2억 년 전 식물 잎 화석에서 원래 유기분자가, 1억9500만 년 전의 공룡 늑골에서 혈액세포가, 2천만 년 전의 호박 속 진드기에서 완벽하게 보존된 적혈구가, 1억 년 전 초기 백악기 조류 화석에서 연부조직이 발견되었다.(검색창에 키워드로 검색하여 살펴보라). 이제 진화론의 붕괴를 목격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참조 : 화석 새의 기름 발견으로 당황하고 있는 과학자들 : 4천8백만 년(?) 전 조류 화석에 지방이 남아있었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10


9. 빅뱅이론을 또 다시 비판하고 있는 이론물리학자들

저명한 3명의 이론물리학자들은 현대 빅뱅이론의 중요한 부분인 우주의 급팽창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었다. 급팽창 이론(Inflation theory)은 빅뱅 모델의 초기 버전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물리학자 앨런 구스에 의해 제안됐다. 우주는 아마도 빅뱅 직후에 짧은 기간의 가속 팽창의 시기를 겪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후에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급팽창 빅뱅 이론은 너무도 단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급팽창을 멈춘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주는 너무도 미세 조정되어 있고, 물리 상수들은 극단적으로 정밀한 값으로 맞추어져 있음이 발견되고 있다. 커다란 폭발로 이러한 질서정연한 우주가 만들어질 확률은 완전히 제로이다. 이들은 급팽창 빅뱅 이론을 포기하고 대안을 고려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2004년 5월에 33명의 지도자급 과학자들은 ”과학 사회에 보내는 공개서한”이라는 폭탄선언을 발표했었다. 그들은 ”우주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빅뱅이론에 의해 지배되어 왔었다. 사실 그러한 지배는 과학적인 방법 보다는 연구비의 조달과 더 관련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빅뱅 이론은 다수의 가설적 개념들, 즉 이제껏 결코 관측된 적이 없는 급팽창,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등과 같은 것들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천문학자들에 의해 관측되는 것과 빅뱅이론에 의해 예측되는 것 사이에는 치명적인 모순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리학의 어떤 분야에서도, 관측과 이론 사이의 차이를 이어주기 위해서 새로운 가설적 물체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분야는 없다는 것이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암흑물질을 규명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실 실험에서도 지속적으로 부정적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암흑물질의 위기”로 불리는 것으로 발전했다. 최근 세속적 천문학자들은 빅뱅 우주론에 도전하는 세 가지 기괴한 발견을 기술하고 있었다. 너무도 작은 별이 궤도를 선회하는 거대한 행성을 갖고 있었고, 가장 멀리 떨어진 초기 우주에 성숙한 은하들이 있었고, 근처에 있는 '최근'의 우주에 재폭발되는 별이 있었다. 이와 같은 천문학적 발견들은 세속적 천문학자들을 끊임없이 좌절시키고 있지만, 우주가 자연적인 과정으로 형성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개념과는 부합되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빅뱅(Big Bang)’이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실 때에 사용하셨던 방법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빅뱅이론은 성경과 완전히 모순되며, 심각한 과학적 문제점들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세속적 과학자들도 궁극적으로 빅뱅이론을 포기한다면, 그 이론과 타협했던 기독교인들을 어떻게 되는 것인가? 기독교인들은 세속적 과학자들의 오류 많고, 변덕스럽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론에 창세기를 혼합시키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원문 : 빅뱅이론을 또 다시 비판하고 있는 이론물리학자들
https://creation.kr/Cosmos/?idx=1294041&bmode=view


10. 왜소행성 하우메아도 고리를 갖고 있었다!

명왕성 근처의 먼 왜소행성 하우메아(Haumea) 주위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현저한 고리(rings)가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명왕성보다 작은, 약한 중력을 가진 천체 주위에, 어떻게 고리가 수십억 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일까? 진화 천문학자들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전략 중 하나는 자신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관측에 대해, 그것은 흥분되는 발견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념비적 발견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믿을 수 없네요. 이것은 정말로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들은 매우 당혹해하고 있었다. 고리와 같은 섬세한 것은 수십억 년 동안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세기 동안 토성의 고리가 그들에게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면, 고리 입자들을 붙잡고 있는 중력이 훨씬 약한, 작은 천체에서 고리를 발견한 것이 얼마나 놀라울까! 그들에게 이것은 충격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전에 하우메아 지름의 10분의 1에 불과한, 목성과 해왕성 사이에서 공전하고 있는 켄타우로스 소행성들도 고리를 갖고 있음을 밝혀졌었다. 하우메아의 고리가 오래된 나이와 조화될 수 없는 다른 사실로는, 하우메아는 매우 빠르게 자전하고 있으며, 바깥쪽으로 오랜 세월 동안 섬세한 고리 입자들을 파괴해왔을 위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행성과학자들은 46억 년의 태양계 나이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합의는 변경 불가능한 법칙이 되었고, 태양계의 모든 천체들은 오래됐을 것으로 말해져 왔다. 하우메아가 젊게 보이는 천체의 유일한 경우라면, 드물게 특이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여 년 동안 태양계의 거의 모든 행성들, 위성들, 천체들이 젊은 모습을 갖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보고해왔다. 수성의 자기장, 금성 지표면의 재포장, 이오의 화산 분출, 지구자기장의 붕괴속도, 화성에 충돌하는 운석들, 토성의 고리, 포이베의 고리, 엔셀라두스의 간헐천, 유로파의 분출되는 물기둥, 타이탄의 대기와 에탄 바다의 부족, 혜성 67P에서 발견된 산소, 미란다의 지표면, 트리톤과 명왕성의 활발한 지질학... 등 젊은 태양계를 가리키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 수십억 년의 태양계 나이를 주장하는 모이보이(moyboys, millions of years boys, 수억 수천만 년을 아무렇게나 말하는 과학자)들처럼, 일관되게 계속 틀리는 직업을 가진 ‘전문가’ 그룹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수학과 전문용어에 뛰어나고, 물리학을 잘 알고 있다. 그들 모두는 46억 년의 태양계 나이에 동의하는, 단단히 결성된 전문가 집단의 구성원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감히 어느 누구도 그 줄을 벗어날 수 없는,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 연구비, 승진, 출세 등의 특별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모두 다윈의 배지를 착용해야한다. 젊은 연대를 주장하는 비-모이보이들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들이 어떠한 증거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벌거벗은 황제 다윈이 수십억 년의 연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모이보이 우주론자들은 다윈의 신화가 숭배 받도록 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참조 : 왜소행성 하우메아도 고리를 갖고 있었다! : 작은 천체에 존재하는 고리는 젊은 연대를 가리킨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08



      ”우리에게는 보호하며 지켜야 할 것과 경계하며 싸워야 할 적이 있다. 지켜야 할 것은 생명의 신비와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생의 가치관과 불변의 진리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고 정의와 진리가 강처럼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깨뜨리려는 세력과 싸워야 한다.

그 상대가 총칼을 들었다면 싸움은 간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적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위장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기들도 진리를 찾는 구도자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수많은 해악을 인류사에 끼쳐왔다. 선악의 개념을 혼돈케 하였고, 인간존엄성에 기초한 전통 윤리관과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러한 세력과의 싸움은 쉽지가 않다. 더구나, 이들이 가장 많이 배우고 사회적으로 덕망 높은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나 진리 아닌 것이 진리를 가장하고, 정의 아닌 것이 정의의 자리에 서 있다면, 우리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그 적은 다름 아닌 '진화론' 이라고 나는 서슴없이 말하고 싶다. 이들은 백인위주로 인종을 개량해야 한다며 인종우생학(Eugenics)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인이 혼혈되는 것을 막으려고 유색인종에 대한 이민제한법을 만들었으며, 유전질환자와 불구자의 출산을 막으려고 단종법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론에 심취하여 나치정권은 유전질환자와 신체부자유자들 200만 명을 단종 처리하였고, 600만 명의 유태인을 아우슈비츠에서 독살하였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사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뿐만 아니라, 약육강식이 자연선택의 원리라며, 제국주의자들끼리 동맹을 맺어 국력이 약한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일을 당연시하였다. 독일, 일본, 이태리가 그러한 국가였다. 진화론의 적자생존 사상이 침략의 당위성을 그들에게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이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수많은 증거를 가진 이야기이며, 역사 속에 나타났던 엄연한 사건들이다.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의 거의 모든 교육기관에서는 지금도 사람이 원숭이의 자손이라 가르치면서, 인간존엄성과 그에 기초한 윤리관과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한 단일정부를 세워 세계를 지배할 계획을 꿈꾸며, 공공연히 그러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화론자인 존 듀이와 줄리언 헉슬리가 각각 주도한 인본주의 선언(1933, 1973)과 유네스코 헌장(1946)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진화론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추리에 근거한, 무신론적이면서, 유물론적인 신념이요, 신앙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많은 진화론적 주장이 추리와 조립, 조작, 및 사기극으로 점철되어 왔다는 점이다.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이론적 허구와 잘못이 드러날 때마다 진솔한 사과나 반성이 없이, 학문의 추구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해프닝이라며, 도도한 자세를 견지하여 오고 있다. 일단 주장해 놓고, 아니면 그만 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불길한 미래를 예감케 한다. 더구나, 그들이 저지른 과거의 행적들을 돌이켜 보면, 이러한 염려는 기우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이러한 진화론의 실상과 허상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 사실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알려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에 대한 비판과 대책이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추리와 사기극으로 구성된 진화론을 우리 자녀들에게 계속 가르치도록 국가가 강요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그렇게 배우며 자란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이, 왜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로 치닫고 있는지 따져 보아야 할 일이 아닐까? 과거는 용서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고 사가(史家)들은 말하지 않았던가? 비극의 과거사를 잊게 되면, 미래의 역사는 더 큰 보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고 하지 안 했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의 양식있는 지성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어찌하랴! 진화론은 이미 학교에서, 사회에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위세에 밀려 주저앉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찾아 끝까지 나서야 할 것인가? 참으로 많이 망설이고 고민하였다. 그저 입만 다물고 있어도 되는 일인 터인데...! 진화론과의 논쟁이 쉬운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꼭 필요한 싸움이라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 임번삼 저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서문 중에서.


출처 - http://www.kacr.or.kr/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53

참고 : 6513|6293|6065|5820|5547|4801|6512|6511|6302|6298|6296|6295|6294|6079

박창성
2017-11-03

창조과학에 대한 오해와 진실 3


      최근에 일부 인사들에 의해서 창조과학에 대한 비판이 대중 매체를 통하여 많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듣고 잘못 판단하시는 분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변론의 글을 올립니다.


(오해 1) 창조과학은 창조를 증명하려고 한다.

창조과학은 인간과 동·식물을 비롯한 우주 만물의 기원에 대해서, 자연현상만으로 변화하여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가설이라고 판단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살펴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로마서 1:19-20). 우주 만물에는 자연현상만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정교한 설계와 지혜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어리석고 진화론 교육으로 세뇌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알 수 있는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성경의 중요한 기록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것은 창조를 실제로 재현해 보거나, 이성적인 논리로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 2) 창조과학은 안식교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일에 대해 알려주시는 내용을 성경적 창조론(biblical creationism)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과 성경을 믿는 과학자들이 자연세계를 통해서 깨달은 일반계시와 과학적인 증거들을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 또는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이라고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였던 유럽 국가들의 대부분이 오래 전부터 기독교를 국교로 믿었기 때문에, 뉴턴(Newton, 1643~1727), 케플러(Kepler), 보일(Boyle), 패러데이(Faraday), 파스퇴르(Pasteur), 켈빈(Kelvin)...등,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큰 공적을 남긴 저명한 분들이 모두 하나님의 창조와 성경을 믿는 과학자들(creation scientists)이었습니다. 이 분들로부터 창조과학이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창조과학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1859년에 다윈(Darwin)이 '종의 기원”을 출판한 이후로, 진화론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창조론이 퇴조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진화론을 가르치게 되자, 창조과학자들의 수도 매우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한편, 교회는 무신론적 진화론의 영향으로 쇠퇴하고, 신학은 성경을 진화론에 맞추어 해석하는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으로 변질되거나, 진화론도 믿고 창조주 하나님도 믿는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으로 타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진화론이 거의 승리를 굳혀가는 것처럼 보이던 1961년, 미국의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박사가 등장하여,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라는 책을 저술함으로써, 창조론을 다시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리스 박사의 주장에 동조하는 창조과학자들이 모여들었고, 전 세계에서 진화론자였던 많은 과학자들이 창조론자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이 과학자들에 의해서 창조과학은 더욱 보완되고 체계화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모리스 박사가 주도한 현대 창조과학 운동의 초기에 지질학자 조지 프라이스(George Price)를 비롯한 안식교 교인 과학자들의 연구가 부분적으로(특히, 홍수지질학) 공헌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창조과학의 한 부분이지 전체가 아닙니다. 또한, 진화론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연구한 안식교 교인들의 과학적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지, 안식교의 신앙이나 교리를 받아들인 것은 더욱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 창조과학의 발전에 안식교인들의 과학적 연구가 부분적으로 공헌을 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창조과학은 결코 안식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며, 그들의 신앙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사들이 '창조과학은 안식교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며 비판하는 것은, 창조과학자들을 이상한 신앙을 가진 집단인 것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해 3) 창조과학자들은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들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진화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창조와 성경 기록의 진실성을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과학자들이 수천 명에 달합니다. 이들은 기초과학, 응용과학뿐만 아니라, 공학, 의학, 등 여러 가지 관련분야의 박사학위를 가진 전문가들입니다.

그 외에도, 창조론을 지지하면 직장, 또는 학술단체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꺼려져서 외부에 나타내지 않는 분들까지 고려한다면, 훨씬 더 많은 과학자들이 창조론을 지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창조과학은 이 분들 중에서 전문적인 단체나 학술기관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창조과학은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들의 주장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창조과학 운동에 참여한 분들 중에 관련 분야의 학위를 소지하지 않은 일부 회원들이 있음을 보고 비판하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해 4) 창조과학은 입증된 현대과학을 무시하는 사이비 과학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자연과학을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연구하는 귀중한 학문으로 여기며,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대과학 중에서 우주만물의 기원에 관한 가설로서 과학적으로 타당성이 없고,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의 섭리를 부정하는 진화론을 배격하는 것입니다.

진화론의 주장에는 현대과학에서 밝혀낸 자연법칙과 상충되는 여러 가지 비과학적인 가설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질로 부터 생물의 자연발생, DNA 유전정보의 자연발생, 단세포 생물에서 복잡한 기관을 가진 고등생물로의 진화, 대폭발 후 무질서한 상태로부터 질서있는 우주로의 진화, 가스의 수축에 의한 별들의 형성...등이 해당됩니다.

창조과학은 이와 같은 비과학적인 가설들을 가려내어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맹목적으로 진화론을 가르치고 추종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과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른 과학을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창조과학을 사이비과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을 모른 채, 오로지 자연현상만으로 우주만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거나, 진화론의 허구성을 깨닫지 못하고 창조과학의 내용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분들의 주장입니다.
냉정히 살펴보면, 능력과 지혜가 없는 자연현상에 의해서, 물질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고도의 지능과 영혼을 가진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이 사이비과학입니다.


(오해 5)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을 문자주의로 해석한다.

성경을 저자의 의도대로 바르게 해석하려면, 문법은 물론이고 문맥과 성경전체의 흐름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사회, 문화, 정치와 종교적 배경까지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사실을 그대로 서술하는 형식 이외에 시, 예언, 편지,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기록되었고, 비유, 상징, 과장, 등의 문학적인 수사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어떤 장르에 해당되는가를 파악하여 해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고, 일부 성경 구절의 사전적인 뜻만을 생각하여 해석하는 것을 문자주의(letterism) 해석이라고 하며,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 중의 하나입니다.

종합해 보면, 문맥과 장르, 시대적 배경을 잘 살펴서 해석하되, 비유나 상징, 영적인 의미로 표현했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을 경우에는, 성경 구절을 그 당시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일차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자의 의도대로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 중 하나입니다. 창조과학자들은 이 원칙에 충실한 성경해석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문자주의로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반 대중은 물론, 신학자들도 성경을 성경 안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받아들인 지식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래서 전에는 성경이 알려주는 일차적인 의미를 그대로 믿었던 구절들을, 진화론이 만연되어 있는 현시대에 와서는 상징, 비유, 풍유나 영적인 의미, 심지어는 오류가 있는 내용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조와 노아의 홍수에 대한 기사를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로 해석하고, 아담과 하와도 실제로 존재했던 최초의 인류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진화론의 영향을 받고, 그와 같은 해석을 하는 분들은, 이 성경 기록들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 창조과학자들을 문자주의 해석을 한다고 비판합니다.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인 창조과학자들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세계를 통해서 알려주시는 일반계시를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비교적 잘 깨닫기 때문에, 성경을 뒷받침하는 변증을 해서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창조과학자들의 노력이 일반계시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분들의 시각으로는, 문자주의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 구절 '옷으로 덮음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로 솟아올랐으나”(시편 104:6)를 해석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닷물이 산을 덮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술한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다른 의미로 해석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가 산을 덮을 수 있는 가능성과 그 증거를 알고 있는 창조과학자는 실제로 하나님께서 바닷물로 산을 덮는 대홍수를 일으키신 것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창조과학자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이와 같은 지식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문자주의 해석을 한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많은 것입니다.

오래 전에 기록된 성경을 우리가 저자의 의도대로 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을 연구할 때는 문법과 문맥,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주의 해석을 해서도 안 되고, 시대의 조류에 맞추기 위해서 저자가 의도하지도 않은 의미로 부당하게 바꾸어 해석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해 6) 창조과학은 세대주의와 관계가 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볼 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다스리시는가에 대한 견해로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과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언약신학은 구약과 신약시대 전체를 하나님의 언약이 연속적으로 성취되어가는 과정으로 보는 반면에, 세대주의는 일곱 가지 시대(무죄, 양심, 인간통치, 약속, 율법, 은혜, 천년 왕국)로 나누고, 하나님께서 각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다스리고 구원하셨다고 설명합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언약신학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혈통적인 이스라엘에서 영적인 이스라엘, 즉 교회로 이어졌다고 보는 반면에,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에 대해서 각각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대주의는 성경을 잘못 해석한 부분이 있고, 특히 한국에서는 일부 극단적인 세대주의자들이 천년 왕국시대와 관련된 임박한 종말을 주장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거나, 이단적인 신앙을 퍼뜨린 경우가 있어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극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창조과학이 세대주의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경계해야한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일반적으로 창조과학은 언약신학이나 세대주의, 또는 종말론과 같은 신학 문제에 대해서 다루지 않습니다. 그것은 창조과학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고, 사역분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조과학은 진화론에 의해서 공격을 많이 받고 있는 창세기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변증에 주로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창조과학 운동에 참여한 분들 중에는 신학을 전공하였거나, 성경을 깊이 연구한 분들이 많습니다. 혹시, 그 분들 중에 세대주의 견해를 가진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지, 창조과학 전체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필자도 세대주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 참조 : ”천지만물을 완벽하게 6일 동안 창조하셨다” (2017. 12. 13. 크리스천투데이)
[인터뷰] 한국창조과학회 회장 한윤봉 교수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07281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16

참고 : 6680|5783|2346|6640|3851|3853|3778|3377|4516|3334|3682|3812|2330|3055|3591|2059|5765|5413|6107|4487|6480|6639|6614|6477|6471|6239|6135|6620

한윤봉
2017-09-05

창조과학에 대한 오해와 진실 2


      ‘창조과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창조과학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창조과학자들을 ”과학을 무시하며, 국제학술지에 실릴 수 있는 연구결과도 제시하지 못하고(비난하는 그들은 얼마나 많은 논문을 게재하는지 궁금하다), 홍수지질학이 창조과학의 유일한 분야이며, 안식교에서 출발한 이단이다”라는 등 폄훼하며, 창조과학자를 반지성적인 ’사이비 과학자‘라고 명예훼손에 버금가는 비난을 서슴치 않는다. 또한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하며, 창조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들은 지성적이라고 주장하며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거칠고 비인격적인 언어로 거침없이 공격하고 비난한다는 점이다.

창조과학은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복음을 믿는 과학자들이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의 내용들이 과학적으로도 사실임을 증거함으로써 창조주의 존재와 그 분의 전지전능하심을 변증하는 학문”이다. 창조과학자들은 현대 과학이 밝혀 낸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사용하여 성경적 창조가 과학적으로도 사실임을 증거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과학적 연구와 발견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며, 어느 과학자들보다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으며, 많은 과학적 연구 성과들을 내고 있다.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소개되는 곤충학의 아버지 파브르, 미생물학의 아버지 파스퇴르, 운동법칙과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뉴턴, 유도전류를 발견한 패러데이, 전자기학의 아버지 맥스웰, 절대온도를 발견한 켈빈, 열역학에서 일에 대한 개념을 정립한 주울,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행성의 타원궤도 운동법칙을 발견한 케플러, 현대 화학의 아버지 보일 등 수없이 많은 유명한 과학자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기록된 그대로 믿었다.[33].

미국 창조과학연구소의 존 바움가드너(John Baumgardner) 박사는 지질학계에서 판구조론 분야의 전문가로서 연구 결과를 <네이처>나 <사이언스> 지에 게재하였으며, Raymond Damadian 박사는 MRI 발명자로서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 까지 했으며, 유럽에서 창조과학계의 리더였던 Wilder Smith 박사는 유기화학을 포함해서 박사학위가 세 개가 되는 당대 최고 석학 중의 한 명이다.

한국의 창조과학자들 중에도 학문적 연구가 뛰어난 교수님들이 KAIST, 포항공대, 고려대, 연세대, 광주과기원, 한양대, 전북대, 전남대, 인하대, 영남대, 건국대, 충남대, 충북대, 한동대, 경인여대, 삼성전자 연구소, 서울대학 병원 연구소 등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연구 결과들을 유명 국제학술지에 게재하고 있다.

현재 한국창조과회 회장인 필자는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들만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가입할 수 있는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정회원으로서, 네이처 자매지를 포함한 세계적인 국제학술지에 270편의 SCI 논문을 게재하였으며, 14건의 특허등록 실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국제첨단소재협회(IAAM)에서 수여하는 2017년 ‘아시아 에너지 기술상’을, 노벨화학상 수상자 루돌프 마르커스 박사를 기념하여 제정한 2016년 ’Rudolph A. Marcus 상’을 수상하였고, 영국 캠브리지 국제인명센 터에서 수여하는 ‘세계 100대 과학자’에 네 번(2005, 2011, 2014, 2015) 선정되었으며, ‘이달의 과학기술자 상’(2011. 7, 교육과학부)을 수상하였다.

하나님에 의한 6일 동안의 창조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과학적(또는 초자연적) 사건이기 때문에 결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창조과학자들은 피조세계에 보이는 것들이 창조의 결과인지, 진화의 결과인지를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어느 주장이 성경의 가르침에 더 일치하는지를 판단한다. 또한 창조과학자들은 결코 성경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한 창조의 결과들이 과학적으로도 맞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성경말씀을 인용할 뿐이다.

복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전한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천 지식인들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믿고 전하는 창조과학자들을 꼴통인 근본주의자라고, 사이비 과학자라고 공격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임의대로 해석하고 왜곡하는 저들은 어떤 과학자로 불리는지 궁금하다.


‘창조과학회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한국창조과학회는 안식교에서 출발한 이단이 아닙니다.

홍수 지질학의 선구자인 프라이스 박사의 학문적 업적만을 인정할 뿐, 안식교의 교리, 종말론과 구원론을 결코 따르지 않습니다. 한국창조과학회와 해외의 창조과학 단체들은 순수 기독교 복음주의 초교파 학술단체입니다.

2. 창조과학은 사이비가 아닙니다.

진화론이 우연에 의한 생명의 자연발생을 전제로 하듯이,  창조과학은 창조를 전제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의학, 생명공학, 화학공학, 재료과학, 기계공학, 전자공학, 정보통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적설계에 의한 창조가 과학적으로 사실임을 변증하는 과학적인 연구와 학문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3. 한국창조과학회는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않습니다.

한국창조과학회는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에 의한 창조의 결과들이 과학적으로도 사실임을 변증할 뿐입니다.

4. 창조과학은 극단적 문자주의를 따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한국창조과학회는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신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들을 기록된 말씀대로 믿을 뿐, 모든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지 않습니다.

5. 창조과학은 과학을 부정하거나,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왜곡하지 않습니다.

창조과학은 결코 과학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화론과 타협이론들을 부정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왜곡하는 것은 성경적 창조신앙을 주장하는 창조과학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화론은 곧 과학이다`라는 믿음때문에 창세기의 내용을 진화론에 꿰어 맞추는 다양한 타협이론들이 성경을 왜곡하는 신학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창조과학회가 안식교에서 출발했다는 진화론자나 유신진화론자들의 터무니없는 공격이 있습니다.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1981년에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되게 된 배경에 관한 고 김준곤 목사님의 인터뷰 글을 링크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한국창조과학회를 사랑하시고 격려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고 하용조 목사님의 글도 소개합니다.

: 창조과학회 25주년 기념 특별인터뷰 - 김준곤 목사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238

: 창립30주년 기념 축사 - 하용조 목사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121



”천지만물을 완벽하게 6일 동안 창조하셨다” (2017. 12. 13. 크리스천투데이)
[인터뷰] 한국창조과학회 회장 한윤봉 교수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07281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80

참고 : 6640|3851|3853|4516|3334|2059|1911|5765|6107|4487|6480|6639|3782|4241|6211|6356|6169|6473|6096|5083|5274|6461|6075|6634|5796|6292|6476|2647|6174|5718|6180|905|6165|6618|6631|6633|6636|6566|6638|6468|6449|6582|6553

미디어위원회
2017-08-31

갈릴레오에 대한 왜곡 

: 과학 대 종교 이야기는 사실인가, 신화인가? 

(Galileo Quadricentennial, Myth vs fact)

Jonathan Sarfati 


      2009년은 찰스 다윈(1809~1882)의 출생 200주년이 되는 해로, 다윈을 지지하는 진화론자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다른 것을 기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2009년을 ”국제 천문학의 해”로 이름 붙이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2009년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Bonaiuti de’ Galilei, 1564~1642)가 망원경을 최초로 사용한지 4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무신론자들은 ”과학 대 종교(science versus religion)”의 이야기에 갈릴레오를 너무도 자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진실은 무엇이었는가?[1]


과학 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 대 과학의 문제였다.

많은 과학사학자들은 갈릴레오를 처음 반대했던 것은 교회가 아니라, 과학 단체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에 널리 유행하고 있던 ”과학적인” 지혜는 아리스토텔레스 및 프톨레마이오스 이론(Aristotelian/Ptolemaic theory), 즉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다른 천체들은 지구 주위로 매우 복잡한 궤도를 이루며 돈다는 천동설, 또는 지구중심설이었다.[3] 그것은 이교도의 철학 체계에 기원을 두고 있었다.[2]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의 초기 개념, 즉 지동설 또는 태양중심설을 지지함으로써, 이 모든 것에 도전했다.[3] 그리고 오늘날 진화론을 숭배하고 있는 진화론자들처럼,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맹렬하게 반대했다. 그에 대해 아서 케슬러(Arther Koestler)는 이렇게 썼다 :

”갈릴레오에 대한 적개심이 결코 적지 않았던, 강력한 집단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학에 있던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사람들이었다… 학계에 있던 일반 사람들에게 혁신이라는 것은 이중의 위협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엄숙한 권위를 위태롭게 하며, 그들이 힘들게 쌓아올렸던, 그들의 전부일 수 있었던 지식 체계를 한 순간에 붕괴시킬지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학술적으로 뛰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은 천재들을 저주해왔다… 코페르니쿠스를 평생 동안 침묵하도록 만들었던 것은, 단티스쿠스 주교(Bishop Dantiscus)나 교황 바오로 3세(Pope Paul III)의 위협이 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의 위협으로 인해서였다.”

”종교적인 측면으로 코페르니쿠스에게 처음으로 극심한 공격을 가했던 것 역시 성직자 진영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지도자였던 콜롱브(delle Colombe)와 같은 열렬한 평신도였다.”[4]


교회는 처음에 갈릴레오에 대해 꽤 개방적이었다.

그것이 ”종교 대 과학”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초기 교회의 입장을 예로 나타내준 사람은 바로 그 당시 최고의 신학자였던 로베르트 벨라르미노(Robert Bellarmine) 추기경이었다. 그는 갈릴레오의 모델이 수학적으로 더 간단하다는 주장은 '뛰어나게 좋은 감각”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지구가 세 번째 행성이며,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라는 진짜 증거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와 반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 구절들을 설명하는 데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한 의견을 거짓으로 선포했다가 추후에 진실로 밝혀지는 것보다, 차라리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야만 한다.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그것을 증명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증거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5]

실제로, 그 당시에 갈릴레오는 자기의 주장을 증명하지 못했었다. 사실상, 조수(tides)를 포함한 그의 최선의 ”증명”은 오늘날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 당시에 가질 수 없었던 지식으로 인해, 교회를 판단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갈릴레오는 스스로 파멸을 초래했다.

불행하게도, 갈릴레오의 파멸은 주로 자신의 오만, 무례한 저작 행태, 불행한 우정 때문이었다. 한때 갈릴레오는 나중에 교황 우르바노 8세(Pope Urban VIII, 1568~1644)가 되는 마페오 바르베리니(Maffeo Barberini)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는데, 마페오는 갈릴레오의 업적에 대해 커다란 찬사를 보냈으며, 매우 강한 자기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 지나친 찬사가 쓰라린 결말로 끝을 맺게 된 것은, 갈릴레오가 1632년 그의 고전적인 책, ‘두 가지 주요 세계관에 관한 대화’(The Dialogue Concerning the Two Chief World Systems)라는 책을 썼을 때였다. 이 책의 내용은 천동설과 지동설에 관한 가상의 논쟁이었다. 천동설을 옹호하는 등장인물은 '심플리시오(Simplicio)”라는 사람이었는데, 책에서 그는 바보처럼 보였는데, 우르바노 8세는 심플리시오의 입에서 나오는 논의가 바로 자신이 했던 말임을 알아챘다. 우르바노는 자기의 친한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 같은 느낌으로 격분했으며, 종교재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지만, 재판을 시작한 것은 바로 그였다.

거기에다가, 다른 천문학자들을 향한 갈릴레오의 오만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살시(Sarsi) 씨 당신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모든 하늘의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전적으로 내게만 공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악의나 시기로도 은폐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대실수

불행하게도, 교회는 당시 과학계의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길을 잃게 되었고,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았지만, 성경과 당시에 유행하던 과학 모델을 조화시키려고 했다. 따라서 사실상 그들은 오늘날의 교회가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장구한 연대라는 ”과학적” 유행을 성경과 조화(타협)시키려는 것과 동일한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6]

여기에 성경이 당시의 과학적 지식을 지지하는 것처럼, 시편의 한 구절을 발췌하여 억지로 해석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시편은 명백히 시적인 것이기 때문에(창세기처럼 역사적인 이야기체가 아니다), 그것을 우주론 모델의 기초로 억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7]

시편 93:1절을 보자 :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the world also is stablished, that it cannot be moved). 다음 절은 이렇게 되어있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Thy throne {is} established of old). 여기서 같은 히브리 단어 쿤(koon, כּוּן kôn)은 ‘견고히 서서’(stablished)와 ‘견고히 섰으며’(established)로 번역됐다. (그 뜻은, 반드시 고정되어 있다거나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견고한, 안정된, 영구적인 이라는 뜻이다.) 또한, 시편 16:8절에서는 흔들리다(move)라는 동일한 의미로 히브리 단어 모트(mote, מוֹט môt)를 사용했다: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I shall not be moved). 분명히, 회의론자라 할지라도, 시편 기자가 한 장소에 뿌리를 내렸다는 성경 구절을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편 기자가 의미한 것은, 하나님이 그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길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땅이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공전과 자전의 정확한 패턴을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또한 의미할 수 있다.

더욱이, 물리학적으로도 오류가 없다. 모든 운동은 기준틀(reference frame)에 대해 상대적으로 기술된다. 그리고 당신은 원하는 어떤 기준틀을 선택해도 좋다. 성경은 오늘날 우리가 그러하듯이, 기준틀로 지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천문학자들도 ”아름다운 일출(해가 떠오름)을 보라”고 말한다. 그들은 ”지구가 자전하여 태양이 보이는 각도로 아름답게 들어서고 있는 것을 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자동차가 ”서있다”고 말할 때, 항상 땅에 대해 상대적으로 서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똑똑하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이 실제로는 지구가 자전함으로 인해서 자동차는 약 1,670km/h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며[8], 더불어 지구가 태양을 공전함으로서 자동차는 108,000km/h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고, 더욱이 태양이 은하계 주위를 돌고 있음으로 인해 자동차가 900,000km/h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맞는 말이라고 해주어야 하는가? 마찬가지로 이동 속도도 땅에 대해 상대적으로 말해지는 것이다.


지구가 중심이라는 오만?

많은 안티기독교인들은 갈릴레오가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사람을 끄집어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오만을 치료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갈릴레오를 칭송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물리학자 로렌스 크라우스(Lawrence Krauss)로 이렇게 말했다 : ”갈릴레오는 우리를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끄집어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했던 가장 큰 추락이었다.”[9]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배경에 대해 완전히 무지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개념은 전혀 가르쳐지지 않던 것이다. 교회 역사의 대부분에서, 중심부는 비천한 장소로 여겨졌었다. 가장 비천한 곳은 지구 중심부에 있는 하데스(Hades, 음부)였으며,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인 지구 표면은 그 다음으로 나쁜 곳이었고, 완전한 하늘에 비하면 매우 부패한 곳이었다. 지구 중심부로부터 더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늘에 더 가까워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지구와 꽤 가까이에 있는 달은 과도기적인 장소로 간주됐었다. 태양은 보다 더 높은 단계에 있었으며, 행성들은 매우 좋았는데, 그 천체들은 불멸하는 제5원소(quintessence)로 되어있었다. 그렇지만 멀리 있는 항성보다는 더 높은 단계는 아니었다. 한편, 궁창은 항성들보다도 더 멀리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하나님의 보좌는 그보다 훨씬 더 멀리에 있었다.

그러므로 지구가 중심으로부터 멀리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중세시대의 배경으로 볼 때, 사실상 그러한 개념을 강화시켜주는 것이었다.[10] 오히려, 실제로 과학 단체들을 당황하게 만든 것은 갈릴레오가 태양에서 흠(태양 흑점)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는데,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천체가 완전하다는 개념을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갈릴레오는 결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반유신론 잡지인 New Scientist 지도 ”갈릴레오의 가톨릭 신앙은 그의 발견으로 인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인정했으며, 이것이 갈릴레오의 위대함을 손상시킬지 궁금해 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교회의 수사신부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생각에 살을 덧붙인 것뿐이었다.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11] 갈릴레오의 이론을 적용하여 천체를 관측함으로써, 행성들이 타원 궤도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의 과학 연구는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생각을 생각한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아이작 뉴턴 경(Sir Isaac Newton, 1643~1727)은[12] 운동과 중력의 법칙을 알아내어, 이 모든 것을 설명했으며, 과학에 관한 것보다도 성경의 역사를 방어하는 글들을 더 많이 썼다. 또한, 이 네 사람 모두 젊은 지구(6일 창조)를 믿었던 창조과학자였음을 주목해야 한다.[13]


결론

토마스 슈마허(Thomas Schirrmacher) 박사는 창조 지(Journal of Creation)에 갈릴레오 이야기에 대한 본질을 훌륭한 기사로 잘 요약했다 

”알려져 있는 전설과는 다르게,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교회 관리들에게 잘 받아들여졌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오만과, 동료들의 시기,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정책적 희생물이었다. 그는 성경을 비판했다고 기소된 것이 아니라, 교황의 법령에 따르지 않아서 기소됐던 것이다.”[14]

또한 프레드 호일 경(Sir Fred Hoyle, 1915~2001)이 확인했던 것처럼, 두 체계 사이의 차이는 단지 기준틀의 문제였다. 

”두 그림(지구중심과 지구운동)의 관계는 단순한 좌표변환(coordinate transformation, 한 좌표계에 있는 어떤 점 혹은 식을 다른 좌표계로 변환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감소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인슈타인 이론의 주된 원리이다. 좌표변환에 의해서 서로 관련되어있는 세계에서 바라보는 두 가지 방법은 물리적 관점에서 볼 때 전적으로 동등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물리적 관점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옳은' 것이며, 프톨레미의 이론은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15]

마지막으로, 갈릴레오가 지구를 그 중심 위치로부터 끄집어냄으로써 지위를 격하시켰다고 하는 주장은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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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would God bother with a tiny planet like Earth?


Further Reading
Astronomy and Astrophysics Questions and Answers


References
1. Another book with a good discussion on the Galileo affair, as well as many other attacks on Christianity, is Carroll, V., and Shiflett, D., Christianity on Trial: Arguments Against Anti-Religious Bigotry, ch. 3, Encounter Books, 2001; see review by Hardaway, B. and Sarfati, J., Journal of Creation 18(3):28–30, 2004.
2. For a biblical and scientific critique of absolute geocentrism, see Faulkner, D., Geocentrism and Creation, Journal of Creation 15(2):110–121, 2001.
3. The planets and the sun actually orbit the centre of mass of the solar system. For most purposes, this is close enough to planets orbiting the sun, but an observer outside the sun would see a ‘wobble’ and know that there are planets orbiting. This is a major way that astronomers detect extra-solar planets. And the sun itself is in orbit around the galaxy’s center of mass. So a more precise term than 'heliocentric” (sun-centred) is 'geokinetic” (moving earth).
4. Koestler, A., The Sleepwalkers: a history of man’s changing vision of the universe, pp. 427, 431, Hutchinson, London, 1959.
5. Koestler, Ref. 4, p. 448.
6. Grigg, R., The Galileo Twist, Creation 19(4):30–32, 1997; . Return to text.
7. Sarfati, J., Refuting Compromise, Master Books, 2000; Boyd, S.W., ‘A Proper Reading of Genesis 1:1–2:3’; in DeYoung, D., (editor), Thousands … Not Billions, pp. 157–170, Master Books, Green Forest, Arkansas, 2005. This sampled 47 narrative and 49 poetic passages as well as Genesis 1:1–2:3.
8. Depending on the latitude of course—multiply by the cosine.
9. Cited in Brooks, M., The years of thinking dangerously, Darwin or Galileo: Who did most to cut us down to size? New Scientist 200(2867/8):70–71, 20/27, 2008.
10. See Hannam, J., God’s Philosophers: How the Medieval World Laid the Foundations of Modern Science, Icon Books, 2009 (USA title: The Genesis of Science: How the Christian Middle Ages Launched the Scientific Revolution, Regnery, 2011). The author, James Hannam, has a Ph.D. on the History of Science from the University of Cambridge, UK.
11. Lamont, A., Johannes Kepler: Outstanding scientist and committed Christian, Creation 15(1):40–43, 1992; .
12. Lamont, A., Sir Isaac Newton: A Scientific Genius, Creation 12(3):48–51, 1990; .
13. See also Sarfati., J., Newton was a creationist only because there was no alternative? , 29 July 2002.
14. Schirrmacher, T., The Galileo Affair: history or heroic hagiography, Journal of Creation 14(1):91—100, 2000.
15. Hoyle, F., Nicolaus Copernicus, pp. 87–88, Harper & Row, NY, 197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galileo-quadricentennial

출처 - Creation, 2009. 7. 9.


미디어위원회
2017-07-26

창조의 또 다른 목격자 - 사탄 

: 예수님이 창조주이시기에 받았던 광야의 시험

(A remarkable witness to creation—Satan)

Russell Grigg 


마태복음 4:1~4절은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것은 성경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천지 만물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창세기의 창조 진리에 관해, 사탄 자신이 증거하고 있는 가장 비범한 증언이다. 사실상 사탄은 이렇게 말한 것이다 :

”네가 하나님이라면 창조해 보라!... 필요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섬유질 등의 유기분자들을 창조하고, 그것을 조직하여, 적절한 영양분을 갖게 하고, 보통은 요리를 통하여 일어나는 화학 변화가 생겨나게 하라. 이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하고, 그것을 한 번의 명령으로 일어나게 하라.”

왜 순간적이어야 하는가?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어디선가 새로운 밀 낱알을 발견하셔서, 그것을 땅에 심고, 자라나는 동안 물을 주셨다고 하자. 그리고 수개월 후에 그분이 그것을 추수하셔서, 수확물을 가루로 만들고, 가루에 물을 섞고 구워, 떡을 만들었다 하자. 기적을 일으켜 보라는 사탄의 요구는 이런 과정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유혹의 동기가 되고 있던 예수님의 굶주림을 즉각적으로 완화시켜 줄 수 없다.

왜 말씀으로 명하여 그 일을 하라는 것인가? 그리고 (돌을 가지고 만들든지, 아니면 무에서 만들든지) 떡을 만드는 것이 어떻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는 그분의 전능하심이다. 즉, 그분은 원하시는 것(그분 자신의 거룩함과 부합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1] 창조주간 동안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이 하신 말씀의 능력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를 원하셨다. 예를 들면, 첫째 날에 그분은 빛이 나타나라고 명령하셨다. 둘째 날에는 궁창이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셋째 날에는 땅이 드러나고, 식물이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이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다섯째 날에는 새와 바다생물이 존재하라고 명령하셨다. 여섯째 날에는 육지동물이 있으라고 명령하셨고, 첫 번째 남자와 첫 번째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 모든 기적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라고 표현된 하나님의 의지의 결과로 일어났으며, 또 즉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수억 수천만 년에 걸친 어떤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 일어나지 않았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수억 수천만 년 동안의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유혹 속에서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창조주간 동안에 일어났던 즉각적이고, 명령에 의한 창조를 작은 규모로 재현해보라고 도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물론, 유혹이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예수님이 그것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과 나에게는 사탄의 그러한 유혹이 전혀 유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이것은 창세기 1장이 사실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이시라는 것에 대한 사탄의 놀라운 증언인 것이다.[2]     

그 사건에서 예수님은 그분 자신의 물리적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적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사탄의 도전에 응하지 않으셨다.[3] 대신에 예수님은 신명기 8:3절을 인용하셨다 :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이유로 창조를 행하셨다.[4] 사도 요한(apostle John)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셨던 일곱 가지 기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표적(signs)'이라고 부르며, 그의 복음서에서 이들 표적들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렇게 썼다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31).[5]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곱 가지의 기적들은 다음과 같다 :

1.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심 (2:1~11);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심 (4:46~54);
3. 중풍병자를 고치심 (5:1~15);
4. 5,000명을 먹이심 (6:1~15);
5. 물 위를 걸으심 (6:16~21);
6.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심 (9:1~41);
7.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심 (11:1~44).

이 모든 기적들은 창조에 대한 예수님의 주권을 보여준다. 이것들 모두에게는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든 기적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하심(말씀으로 하셨거나, 아니면 단지 원하심)으로 일어났으며, 그리고 그것들 모두 즉각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기적들 중 오랜 기간에 걸친 자연적 과정으로 우연히 일어난 것은 없다. 눈으로 목격한 사람의 기록에 의하면 그러한 일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의 창조자로서,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신다.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은 성경의 진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결론

예수님은 사탄을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표현하셨다.(요한복음 8:44). 사탄이 오늘날의 세상에 퍼뜨린 거짓말 중 하나는, 창세기에 기록된 역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은 성경의 진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나님에 관하여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야고보서 2:19). 그리고 예수님을 유혹하는 장면을 보면, 사탄은 창조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과, 최소한 예수님께서 복잡한 유기물질을 즉각적으로, 그리고 초자연적으로 창조하시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탄의 운명은 요한계시록 20:10절에 쓰여 있는데(불과 유황 못에 던져짐), 그는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창조(혹은 지적설계)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6]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들임으로서 구원을 얻는 것이다. 복음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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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ideas


References and notes
1. God cannot do things that are contrary to His nature as God. E.g. He cannot look with favour on iniquity (Habakkuk 1:13); He cannot deny himself (2 Timothy 2:13); He cannot lie (Titus 1:2).
2. As the New Testament writers later affirm, e.g. John 1:3; Colossians 1:16; Hebrews 1:3.
3. In this case, directly attributable to the Spirit of God (Matthew 4:1), who had led Him into this situation of being hungry in the wilderness.
4. See Grigg, R., Is Jesus Christ the Creator God?, Creation 13(3):43–45, 1991.
5. There were other miracles, described by the other Gospel writers. John selects these seven.
6. See Grigg, R., A brief history of design, Creation 22(2):50–53, 200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a-remarkable-witness-to-creation-satan

출처 - Creation 30(2):38–39, March 2008.

미디어위원회
2017-06-02

무신론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진화론 

: 미국 대학생의 무종교 비율에 관한 새로운 조사

 (Evolution Is the Doorway to Atheism)

Jerry Bergman 


      2017년 5월 Scientific American 지에서 발표된 새로운 연구는 한동안 진화론 비판가들이 말해왔던 것을 확인해주고 있었다. 진화론은 무신론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라는 것이다. 협동 연구프로그램(Cooperative Research Program)으로 완료된 이 연구는 미국 184개 대학의 137,000명 이상의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학 신입생들의 종교 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낮았으며, 전국적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무종교'로 응답한 학생들의 수가 크게 증가했음을 보여주었다[1]. '무종교'라고 응답한 대학생들의 수는 1986년에 10%에서, 2016년에 31%로 세 배나 치솟았다. 1980년대 중반은 진화론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법원 판결에서 계속 패소했던 시기였다. 동시에, 각 주의 교육위원회들은 교육과정에서 진화론에 대한 교육을 강화시키기 시작했었다. 이 두 가지 추세는 공립학교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기독교의 쇠퇴는 199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이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대학생들에서 높은 비율의 무종교 추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859년 찰스 다윈에 의해 출간된 ‘종의 기원’은 지금까지의 책들 중에서 가장 크게 성경을 훼손했던 책이었다.

진화론이 무신론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라는 주장은 교회 통계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창조론(Creationism)이나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를 지지하지 않는 교파는 대대적으로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무종교' 학생들 증가의 대부분은 가톨릭과 주류 개신교단에서 일어났는데, 가톨릭 학생들은 32%에서 23%로 줄었고, 침례교 학생은 17%에서 7%로, 감리교 학생은 9%에서 3%로 줄어들었다. 흥미롭게도, '다른 기독교인(가톨릭이나 주류 개신교가 아닌)'을 선택한 학생들의 수는 같은 기간 동안에 5%에서 13%로 증가했다.

불신앙 학생들의 비율은 대학 유형과도 관련이 있었다. '무종교'의 비율은 4년제 칼리지(colleges) 대학에서 보다(26%), 주립대학(state universities)들에서 더 높았다(36%). 이에 비해 2년제 칼리지 대학은 17%만이 무종교로 대답하였다. 마지막으로 1990년 이후 종교적 봉사활동에 보고서를 제출한 학생들의 비율은 85%에서 69%로 떨어졌다.

Nature(2016. 10. 18) 지에 게재됐던, 학자들의 신념에 대한 또 다른 연구는 위의 연구를 뒷받침하고 있다.[2] 일반적으로 정치적으로 진보 진영의 사람들은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일 가능성이 높으며, 보수적이거나 중도적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을 가능성이 높으며, 더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사회학(9,717명), 물리학(9,316명), 천문학(574명) 교수들의 90% 이상이 자신들은 진보적 성향이라고 대답했으며, 화학(12,930명), 수학(16,893명), 경제학 교수의 약 70% 정도(또는 그 이하)가 자신들은 진보적 성향이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교수들의 믿음은 학생들의 신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하다.

진화론이 무신론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라는 세 번째 증거는 사례 연구이다. 필자는 별 어려움 없이, 아인슈타인(Einstein), 다윈(Darwin), 프로이드(Freud), 마르크스(Marx) 등을 포함하여 52명의 유명 인사들의 신념에 대한 연구 사례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필자가 몇 달 내에 출판하려고 하는 ”진화론, 무신론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 창조론자가 왜 진화론자가 되었는가? 52건의 역사적 사례(Darwinism is the Doorway to Atheism: Why Creationists Become Evolutionists, 52 Case Histories)”라는 제목의 책에 잘 정리되어 발간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선도적 진화론자 중 한 명인 시카고 대학의 제리 코인(Jerry Coyne)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

”1859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에 의해 출간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은 지금까지의 책들 중에서 가장 크게 성경을 훼손했던 책이었다... 그 책은 이전에 위대한 설계자만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자연의 패턴들을, 진화와 자연선택이라는 순전히 자연주의적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일련의 성경적 주장들을 완전히 파멸시켜버렸다.”[3]

조사자인 조나단 켈리(Jonathan Kelley) 박사는 '무종교' 학생들의 급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교회를 다녔던 학생들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것은 진화론(의 수용)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 결과를 미국의 수많은 대학생들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Downey, Allen. 'College Freshmen Are Less Religious Than Ever.” Scientific American.  May 25, 2017.
.Reardon, Nancy. 18 Oct 2016. 'The Scientists who support Donald Trump.” Nature 538:298-299.
.Coyne, Jerry. Fact vs. Faith. New York: Viking, 2015, p. 2.
.The Australian, February 1, 2000, p. 6.

*Dr Jerry Bergman, professor, speaker, and author of numerous books and scientific papers, is a contributing writer for CEH. See his Author Profilefor previous articles by Dr. Bergman.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7/05/evolution-doorway-atheism/

출처 - CEH, 2017. 5. 29.

이은일
2017-05-03

4차 산업혁명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 

결국 사람, 가정, 공동체의 문제… 교회만이 문제 해결 주체


 1985년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백투더 퓨처 2’는 주인공 마티가 미래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는 2015년이다. 30여 년 전 사람들이 바라본 30년 후의 모습은 어땠을까. 스마트 안경, 디지털 카메라, 3D 입체영상, 자동화 메뉴판, 지문인식기계, 태블릿 PC, 화상회의와 영상통화, 드론 등 실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상상이 현실이 됐다. 이처럼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또 어떤 상상이 현실이 될지 기대되면서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궁금하다. 미래사회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미래사회를 어떻게 준비해야할 것인가? (편집자 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큰 기쁨과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다가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한 <매킨지 보고서>에 의하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상화되면서 가사노동이 25% 줄어들게 되고, 자율주행차의 대중화로 2030년에는 교통사고율이 40% 감소하며, 인공지능 의료서비스의 향상으로 73세였던 건강수명이 2030년이 되면 77세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가사노동이 감소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증가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활이 편리하고 풍요해졌는데, 왜 삶은 더 팍팍해지고 삭막해졌을까? 이것은 과학기술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과학기술 발전이 인류의 삶에 미친 거대한 영향의 결과라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과학기술은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것이었다. 현대인들은 압도적인 과학기술 앞에서 세상의 모든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버렸고, 지나치게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룬 현대문화는 더 빨리, 더 편한 세상을 추구하였고, 무엇보다 생각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버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보다 무엇이 나를 더 기쁘게 해줄 수 있는지를 찾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사회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생활은 편리해질 수 있지만, 사람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걱정을 하고 있다. 이미 대규모 공장에서는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가 진행되어 공장의 규모가 커져도 고용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공장을 넘어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하는 많은 일들을 로봇이 대신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올해 1월 매킨지글로벌 연구소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얼마나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820여 가지 직업이 수행하는 업무를 총 2,069가지로 세분화했다. 그 결과 710가지(34%)의 업무를 향후 50년 내에 로봇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요리사 73%, 기자나 법조인 22%, 의사와 간호사의 일 29%를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을 발전시키고 있는 과학기술이 잘못된 것인가? 힘든 일들은 로봇이 하고, 사람들은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이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도약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까지의 사회체계, 교육내용 등 모든 것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하는 도전과 두려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고 물질이 모든 것의 시작이고, 전부라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인공지능보다 못한 인간이 살아남는 길은 인공지능을 뇌에 이식해 인공지능과 결합한 인간으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두려움을 과학기술로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진화론자가 아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는가?


1~4차 산업혁명의 득과 실

과학기술이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은 1차 산업혁명부터다. 증기기관차로 상징되는 1차 산업혁명은 공장에 많은 근로자들이 모이게 됨에 따라 급격한 도시 팽창을 가져왔다. 농경 중심의 사회가 도시중심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도시로 모여든 농촌 청년들에게 농촌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은 쓸모없어지면서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했다.

2차 산업혁명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개개인의 기호보다 대중의 유행이 중요해졌고, 각자의 개성을 대량소비에 맞추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 각각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소비자로서의 인간만이 대우받는 사회가 되었다. 사람이 인격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뗄 수 없다. 거대한 자본 없이는 과학기술을 공장으로 구체화시켜 산업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자신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모두가 달음질치는 사회가 되었다.

디지털 혁명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의 발전으로 자동화,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정보의 홍수가 이뤄지는 시대를 열었다. 좋은 정보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악하고 음란하며 거짓된 인간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보들을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정보만을 선택하면서 나와 기계, 지식과의 관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 우선되는 왜곡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1, 2, 3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가 빼앗긴 것은 가정과 공동체의 권위와 구조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양육 받고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던 시대에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 줄 전문교육기관에 자녀들을 맡겨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머니들이 직업을 갖는 것이 보편화됨에 따라 양육마저 외부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시대이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공동으로 일을 하고, 공동으로 수확해서 기쁨을 나누던 시대에는 공동체의 권위가 매우 컸다. 개인의 이익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손해 보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공동체는 없다. 모두가 나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울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은 가정과 공동체가 파괴된 현실에서 세워지고 있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더 엄청날 수 있다. 정보화혁명 시대의 승자들인 일부 회사들(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독점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은 엄청난 풍요와 엄청난 박탈을 동시에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로봇에게 소득세를 내게 하고 최소임금을 주어 모든 사람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궁극적인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신만의 일을 할 때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돈을 버는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노동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 노동의 의미, 지식의 가치, 자본의 역할 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길을 개척하여 진정 새 길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갈 때는 함께 갈 사람들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수년 내에 쓸모없는 지식이 되는 시대에는 평생 같이 공부하면서 서로에게 교사가 될 수 있는 동료들이 필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고, 가정과 공동체의 울타리에서 자녀들을 새로운 개척자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나타날 수많은 문제들이 결국 사람과 가정과 공동체의 문제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교회밖에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그리스도인들만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이 땅을 다스릴 것을 믿기 때문이다. 교회만이 과학기술이나 자본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직 교회만이 사람이 치열한 경쟁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겸손히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출처 - 2017. 4. 30. 온누리신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98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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