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미디어위원회
2017-08-31

갈릴레오에 대한 왜곡 

: 과학 대 종교 이야기는 사실인가, 신화인가? 

(Galileo Quadricentennial, Myth vs fact)

Jonathan Sarfati 


      2009년은 찰스 다윈(1809~1882)의 출생 200주년이 되는 해로, 다윈을 지지하는 진화론자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다른 것을 기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2009년을 ”국제 천문학의 해”로 이름 붙이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2009년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Bonaiuti de’ Galilei, 1564~1642)가 망원경을 최초로 사용한지 4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무신론자들은 ”과학 대 종교(science versus religion)”의 이야기에 갈릴레오를 너무도 자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진실은 무엇이었는가?[1]


과학 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 대 과학의 문제였다.

많은 과학사학자들은 갈릴레오를 처음 반대했던 것은 교회가 아니라, 과학 단체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에 널리 유행하고 있던 ”과학적인” 지혜는 아리스토텔레스 및 프톨레마이오스 이론(Aristotelian/Ptolemaic theory), 즉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다른 천체들은 지구 주위로 매우 복잡한 궤도를 이루며 돈다는 천동설, 또는 지구중심설이었다.[3] 그것은 이교도의 철학 체계에 기원을 두고 있었다.[2]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의 초기 개념, 즉 지동설 또는 태양중심설을 지지함으로써, 이 모든 것에 도전했다.[3] 그리고 오늘날 진화론을 숭배하고 있는 진화론자들처럼,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맹렬하게 반대했다. 그에 대해 아서 케슬러(Arther Koestler)는 이렇게 썼다 :

”갈릴레오에 대한 적개심이 결코 적지 않았던, 강력한 집단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학에 있던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사람들이었다… 학계에 있던 일반 사람들에게 혁신이라는 것은 이중의 위협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엄숙한 권위를 위태롭게 하며, 그들이 힘들게 쌓아올렸던, 그들의 전부일 수 있었던 지식 체계를 한 순간에 붕괴시킬지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학술적으로 뛰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은 천재들을 저주해왔다… 코페르니쿠스를 평생 동안 침묵하도록 만들었던 것은, 단티스쿠스 주교(Bishop Dantiscus)나 교황 바오로 3세(Pope Paul III)의 위협이 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의 위협으로 인해서였다.”

”종교적인 측면으로 코페르니쿠스에게 처음으로 극심한 공격을 가했던 것 역시 성직자 진영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지도자였던 콜롱브(delle Colombe)와 같은 열렬한 평신도였다.”[4]


교회는 처음에 갈릴레오에 대해 꽤 개방적이었다.

그것이 ”종교 대 과학”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초기 교회의 입장을 예로 나타내준 사람은 바로 그 당시 최고의 신학자였던 로베르트 벨라르미노(Robert Bellarmine) 추기경이었다. 그는 갈릴레오의 모델이 수학적으로 더 간단하다는 주장은 '뛰어나게 좋은 감각”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지구가 세 번째 행성이며,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라는 진짜 증거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와 반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 구절들을 설명하는 데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한 의견을 거짓으로 선포했다가 추후에 진실로 밝혀지는 것보다, 차라리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야만 한다.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그것을 증명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증거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5]

실제로, 그 당시에 갈릴레오는 자기의 주장을 증명하지 못했었다. 사실상, 조수(tides)를 포함한 그의 최선의 ”증명”은 오늘날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 당시에 가질 수 없었던 지식으로 인해, 교회를 판단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갈릴레오는 스스로 파멸을 초래했다.

불행하게도, 갈릴레오의 파멸은 주로 자신의 오만, 무례한 저작 행태, 불행한 우정 때문이었다. 한때 갈릴레오는 나중에 교황 우르바노 8세(Pope Urban VIII, 1568~1644)가 되는 마페오 바르베리니(Maffeo Barberini)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는데, 마페오는 갈릴레오의 업적에 대해 커다란 찬사를 보냈으며, 매우 강한 자기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 지나친 찬사가 쓰라린 결말로 끝을 맺게 된 것은, 갈릴레오가 1632년 그의 고전적인 책, ‘두 가지 주요 세계관에 관한 대화’(The Dialogue Concerning the Two Chief World Systems)라는 책을 썼을 때였다. 이 책의 내용은 천동설과 지동설에 관한 가상의 논쟁이었다. 천동설을 옹호하는 등장인물은 '심플리시오(Simplicio)”라는 사람이었는데, 책에서 그는 바보처럼 보였는데, 우르바노 8세는 심플리시오의 입에서 나오는 논의가 바로 자신이 했던 말임을 알아챘다. 우르바노는 자기의 친한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 같은 느낌으로 격분했으며, 종교재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지만, 재판을 시작한 것은 바로 그였다.

거기에다가, 다른 천문학자들을 향한 갈릴레오의 오만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살시(Sarsi) 씨 당신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모든 하늘의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전적으로 내게만 공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악의나 시기로도 은폐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대실수

불행하게도, 교회는 당시 과학계의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길을 잃게 되었고,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았지만, 성경과 당시에 유행하던 과학 모델을 조화시키려고 했다. 따라서 사실상 그들은 오늘날의 교회가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장구한 연대라는 ”과학적” 유행을 성경과 조화(타협)시키려는 것과 동일한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6]

여기에 성경이 당시의 과학적 지식을 지지하는 것처럼, 시편의 한 구절을 발췌하여 억지로 해석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시편은 명백히 시적인 것이기 때문에(창세기처럼 역사적인 이야기체가 아니다), 그것을 우주론 모델의 기초로 억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7]

시편 93:1절을 보자 :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the world also is stablished, that it cannot be moved). 다음 절은 이렇게 되어있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Thy throne {is} established of old). 여기서 같은 히브리 단어 쿤(koon, כּוּן kôn)은 ‘견고히 서서’(stablished)와 ‘견고히 섰으며’(established)로 번역됐다. (그 뜻은, 반드시 고정되어 있다거나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견고한, 안정된, 영구적인 이라는 뜻이다.) 또한, 시편 16:8절에서는 흔들리다(move)라는 동일한 의미로 히브리 단어 모트(mote, מוֹט môt)를 사용했다: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I shall not be moved). 분명히, 회의론자라 할지라도, 시편 기자가 한 장소에 뿌리를 내렸다는 성경 구절을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편 기자가 의미한 것은, 하나님이 그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길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땅이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공전과 자전의 정확한 패턴을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또한 의미할 수 있다.

더욱이, 물리학적으로도 오류가 없다. 모든 운동은 기준틀(reference frame)에 대해 상대적으로 기술된다. 그리고 당신은 원하는 어떤 기준틀을 선택해도 좋다. 성경은 오늘날 우리가 그러하듯이, 기준틀로 지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천문학자들도 ”아름다운 일출(해가 떠오름)을 보라”고 말한다. 그들은 ”지구가 자전하여 태양이 보이는 각도로 아름답게 들어서고 있는 것을 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자동차가 ”서있다”고 말할 때, 항상 땅에 대해 상대적으로 서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똑똑하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이 실제로는 지구가 자전함으로 인해서 자동차는 약 1,670km/h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며[8], 더불어 지구가 태양을 공전함으로서 자동차는 108,000km/h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고, 더욱이 태양이 은하계 주위를 돌고 있음으로 인해 자동차가 900,000km/h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맞는 말이라고 해주어야 하는가? 마찬가지로 이동 속도도 땅에 대해 상대적으로 말해지는 것이다.


지구가 중심이라는 오만?

많은 안티기독교인들은 갈릴레오가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사람을 끄집어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오만을 치료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갈릴레오를 칭송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물리학자 로렌스 크라우스(Lawrence Krauss)로 이렇게 말했다 : ”갈릴레오는 우리를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끄집어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했던 가장 큰 추락이었다.”[9]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배경에 대해 완전히 무지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개념은 전혀 가르쳐지지 않던 것이다. 교회 역사의 대부분에서, 중심부는 비천한 장소로 여겨졌었다. 가장 비천한 곳은 지구 중심부에 있는 하데스(Hades, 음부)였으며,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인 지구 표면은 그 다음으로 나쁜 곳이었고, 완전한 하늘에 비하면 매우 부패한 곳이었다. 지구 중심부로부터 더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늘에 더 가까워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지구와 꽤 가까이에 있는 달은 과도기적인 장소로 간주됐었다. 태양은 보다 더 높은 단계에 있었으며, 행성들은 매우 좋았는데, 그 천체들은 불멸하는 제5원소(quintessence)로 되어있었다. 그렇지만 멀리 있는 항성보다는 더 높은 단계는 아니었다. 한편, 궁창은 항성들보다도 더 멀리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하나님의 보좌는 그보다 훨씬 더 멀리에 있었다.

그러므로 지구가 중심으로부터 멀리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중세시대의 배경으로 볼 때, 사실상 그러한 개념을 강화시켜주는 것이었다.[10] 오히려, 실제로 과학 단체들을 당황하게 만든 것은 갈릴레오가 태양에서 흠(태양 흑점)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는데,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천체가 완전하다는 개념을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갈릴레오는 결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반유신론 잡지인 New Scientist 지도 ”갈릴레오의 가톨릭 신앙은 그의 발견으로 인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인정했으며, 이것이 갈릴레오의 위대함을 손상시킬지 궁금해 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교회의 수사신부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생각에 살을 덧붙인 것뿐이었다.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11] 갈릴레오의 이론을 적용하여 천체를 관측함으로써, 행성들이 타원 궤도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의 과학 연구는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생각을 생각한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아이작 뉴턴 경(Sir Isaac Newton, 1643~1727)은[12] 운동과 중력의 법칙을 알아내어, 이 모든 것을 설명했으며, 과학에 관한 것보다도 성경의 역사를 방어하는 글들을 더 많이 썼다. 또한, 이 네 사람 모두 젊은 지구(6일 창조)를 믿었던 창조과학자였음을 주목해야 한다.[13]


결론

토마스 슈마허(Thomas Schirrmacher) 박사는 창조 지(Journal of Creation)에 갈릴레오 이야기에 대한 본질을 훌륭한 기사로 잘 요약했다 

”알려져 있는 전설과는 다르게,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교회 관리들에게 잘 받아들여졌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오만과, 동료들의 시기,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정책적 희생물이었다. 그는 성경을 비판했다고 기소된 것이 아니라, 교황의 법령에 따르지 않아서 기소됐던 것이다.”[14]

또한 프레드 호일 경(Sir Fred Hoyle, 1915~2001)이 확인했던 것처럼, 두 체계 사이의 차이는 단지 기준틀의 문제였다. 

”두 그림(지구중심과 지구운동)의 관계는 단순한 좌표변환(coordinate transformation, 한 좌표계에 있는 어떤 점 혹은 식을 다른 좌표계로 변환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감소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인슈타인 이론의 주된 원리이다. 좌표변환에 의해서 서로 관련되어있는 세계에서 바라보는 두 가지 방법은 물리적 관점에서 볼 때 전적으로 동등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물리적 관점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옳은' 것이며, 프톨레미의 이론은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15]

마지막으로, 갈릴레오가 지구를 그 중심 위치로부터 끄집어냄으로써 지위를 격하시켰다고 하는 주장은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생각이었다.


Related Articles
Why the Universe does not revolve around the Earth
The Galileo ‘twist’
The Galileo affair: history or heroic hagiography?
The Galileo excuse [for compromise]
The flat earth myth
Joshua’s long day
Why would God bother with a tiny planet like Earth?


Further Reading
Astronomy and Astrophysics Questions and Answers


References
1. Another book with a good discussion on the Galileo affair, as well as many other attacks on Christianity, is Carroll, V., and Shiflett, D., Christianity on Trial: Arguments Against Anti-Religious Bigotry, ch. 3, Encounter Books, 2001; see review by Hardaway, B. and Sarfati, J., Journal of Creation 18(3):28–30, 2004.
2. For a biblical and scientific critique of absolute geocentrism, see Faulkner, D., Geocentrism and Creation, Journal of Creation 15(2):110–121, 2001.
3. The planets and the sun actually orbit the centre of mass of the solar system. For most purposes, this is close enough to planets orbiting the sun, but an observer outside the sun would see a ‘wobble’ and know that there are planets orbiting. This is a major way that astronomers detect extra-solar planets. And the sun itself is in orbit around the galaxy’s center of mass. So a more precise term than 'heliocentric” (sun-centred) is 'geokinetic” (moving earth).
4. Koestler, A., The Sleepwalkers: a history of man’s changing vision of the universe, pp. 427, 431, Hutchinson, London, 1959.
5. Koestler, Ref. 4, p. 448.
6. Grigg, R., The Galileo Twist, Creation 19(4):30–32, 1997; . Return to text.
7. Sarfati, J., Refuting Compromise, Master Books, 2000; Boyd, S.W., ‘A Proper Reading of Genesis 1:1–2:3’; in DeYoung, D., (editor), Thousands … Not Billions, pp. 157–170, Master Books, Green Forest, Arkansas, 2005. This sampled 47 narrative and 49 poetic passages as well as Genesis 1:1–2:3.
8. Depending on the latitude of course—multiply by the cosine.
9. Cited in Brooks, M., The years of thinking dangerously, Darwin or Galileo: Who did most to cut us down to size? New Scientist 200(2867/8):70–71, 20/27, 2008.
10. See Hannam, J., God’s Philosophers: How the Medieval World Laid the Foundations of Modern Science, Icon Books, 2009 (USA title: The Genesis of Science: How the Christian Middle Ages Launched the Scientific Revolution, Regnery, 2011). The author, James Hannam, has a Ph.D. on the History of Science from the University of Cambridge, UK.
11. Lamont, A., Johannes Kepler: Outstanding scientist and committed Christian, Creation 15(1):40–43, 1992; .
12. Lamont, A., Sir Isaac Newton: A Scientific Genius, Creation 12(3):48–51, 1990; .
13. See also Sarfati., J., Newton was a creationist only because there was no alternative? , 29 July 2002.
14. Schirrmacher, T., The Galileo Affair: history or heroic hagiography, Journal of Creation 14(1):91—100, 2000.
15. Hoyle, F., Nicolaus Copernicus, pp. 87–88, Harper & Row, NY, 197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galileo-quadricentennial

출처 - Creation, 2009. 7. 9.


미디어위원회
2017-07-26

창조의 또 다른 목격자 - 사탄 

: 예수님이 창조주이시기에 받았던 광야의 시험

(A remarkable witness to creation—Satan)

Russell Grigg 


마태복음 4:1~4절은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것은 성경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천지 만물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창세기의 창조 진리에 관해, 사탄 자신이 증거하고 있는 가장 비범한 증언이다. 사실상 사탄은 이렇게 말한 것이다 :

”네가 하나님이라면 창조해 보라!... 필요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섬유질 등의 유기분자들을 창조하고, 그것을 조직하여, 적절한 영양분을 갖게 하고, 보통은 요리를 통하여 일어나는 화학 변화가 생겨나게 하라. 이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하고, 그것을 한 번의 명령으로 일어나게 하라.”

왜 순간적이어야 하는가?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어디선가 새로운 밀 낱알을 발견하셔서, 그것을 땅에 심고, 자라나는 동안 물을 주셨다고 하자. 그리고 수개월 후에 그분이 그것을 추수하셔서, 수확물을 가루로 만들고, 가루에 물을 섞고 구워, 떡을 만들었다 하자. 기적을 일으켜 보라는 사탄의 요구는 이런 과정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유혹의 동기가 되고 있던 예수님의 굶주림을 즉각적으로 완화시켜 줄 수 없다.

왜 말씀으로 명하여 그 일을 하라는 것인가? 그리고 (돌을 가지고 만들든지, 아니면 무에서 만들든지) 떡을 만드는 것이 어떻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는 그분의 전능하심이다. 즉, 그분은 원하시는 것(그분 자신의 거룩함과 부합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1] 창조주간 동안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이 하신 말씀의 능력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를 원하셨다. 예를 들면, 첫째 날에 그분은 빛이 나타나라고 명령하셨다. 둘째 날에는 궁창이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셋째 날에는 땅이 드러나고, 식물이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이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다섯째 날에는 새와 바다생물이 존재하라고 명령하셨다. 여섯째 날에는 육지동물이 있으라고 명령하셨고, 첫 번째 남자와 첫 번째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 모든 기적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라고 표현된 하나님의 의지의 결과로 일어났으며, 또 즉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수억 수천만 년에 걸친 어떤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 일어나지 않았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수억 수천만 년 동안의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유혹 속에서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창조주간 동안에 일어났던 즉각적이고, 명령에 의한 창조를 작은 규모로 재현해보라고 도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물론, 유혹이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예수님이 그것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과 나에게는 사탄의 그러한 유혹이 전혀 유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이것은 창세기 1장이 사실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이시라는 것에 대한 사탄의 놀라운 증언인 것이다.[2]     

그 사건에서 예수님은 그분 자신의 물리적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적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사탄의 도전에 응하지 않으셨다.[3] 대신에 예수님은 신명기 8:3절을 인용하셨다 :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이유로 창조를 행하셨다.[4] 사도 요한(apostle John)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셨던 일곱 가지 기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표적(signs)'이라고 부르며, 그의 복음서에서 이들 표적들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렇게 썼다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31).[5]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곱 가지의 기적들은 다음과 같다 :

1.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심 (2:1~11);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심 (4:46~54);
3. 중풍병자를 고치심 (5:1~15);
4. 5,000명을 먹이심 (6:1~15);
5. 물 위를 걸으심 (6:16~21);
6.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심 (9:1~41);
7.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심 (11:1~44).

이 모든 기적들은 창조에 대한 예수님의 주권을 보여준다. 이것들 모두에게는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든 기적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하심(말씀으로 하셨거나, 아니면 단지 원하심)으로 일어났으며, 그리고 그것들 모두 즉각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기적들 중 오랜 기간에 걸친 자연적 과정으로 우연히 일어난 것은 없다. 눈으로 목격한 사람의 기록에 의하면 그러한 일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의 창조자로서,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신다.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은 성경의 진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결론

예수님은 사탄을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표현하셨다.(요한복음 8:44). 사탄이 오늘날의 세상에 퍼뜨린 거짓말 중 하나는, 창세기에 기록된 역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은 성경의 진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나님에 관하여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야고보서 2:19). 그리고 예수님을 유혹하는 장면을 보면, 사탄은 창조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과, 최소한 예수님께서 복잡한 유기물질을 즉각적으로, 그리고 초자연적으로 창조하시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탄의 운명은 요한계시록 20:10절에 쓰여 있는데(불과 유황 못에 던져짐), 그는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창조(혹은 지적설계)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6]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들임으로서 구원을 얻는 것이다. 복음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Related Articles

Is Jesus Christ the Creator God?

Sermon ideas


References and notes
1. God cannot do things that are contrary to His nature as God. E.g. He cannot look with favour on iniquity (Habakkuk 1:13); He cannot deny himself (2 Timothy 2:13); He cannot lie (Titus 1:2).
2. As the New Testament writers later affirm, e.g. John 1:3; Colossians 1:16; Hebrews 1:3.
3. In this case, directly attributable to the Spirit of God (Matthew 4:1), who had led Him into this situation of being hungry in the wilderness.
4. See Grigg, R., Is Jesus Christ the Creator God?, Creation 13(3):43–45, 1991.
5. There were other miracles, described by the other Gospel writers. John selects these seven.
6. See Grigg, R., A brief history of design, Creation 22(2):50–53, 200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a-remarkable-witness-to-creation-satan

출처 - Creation 30(2):38–39, March 2008.

미디어위원회
2017-06-02

무신론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진화론 

: 미국 대학생의 무종교 비율에 관한 새로운 조사

 (Evolution Is the Doorway to Atheism)

Jerry Bergman 


      2017년 5월 Scientific American 지에서 발표된 새로운 연구는 한동안 진화론 비판가들이 말해왔던 것을 확인해주고 있었다. 진화론은 무신론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라는 것이다. 협동 연구프로그램(Cooperative Research Program)으로 완료된 이 연구는 미국 184개 대학의 137,000명 이상의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학 신입생들의 종교 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낮았으며, 전국적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무종교'로 응답한 학생들의 수가 크게 증가했음을 보여주었다[1]. '무종교'라고 응답한 대학생들의 수는 1986년에 10%에서, 2016년에 31%로 세 배나 치솟았다. 1980년대 중반은 진화론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법원 판결에서 계속 패소했던 시기였다. 동시에, 각 주의 교육위원회들은 교육과정에서 진화론에 대한 교육을 강화시키기 시작했었다. 이 두 가지 추세는 공립학교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기독교의 쇠퇴는 199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이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대학생들에서 높은 비율의 무종교 추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859년 찰스 다윈에 의해 출간된 ‘종의 기원’은 지금까지의 책들 중에서 가장 크게 성경을 훼손했던 책이었다.

진화론이 무신론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라는 주장은 교회 통계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창조론(Creationism)이나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를 지지하지 않는 교파는 대대적으로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무종교' 학생들 증가의 대부분은 가톨릭과 주류 개신교단에서 일어났는데, 가톨릭 학생들은 32%에서 23%로 줄었고, 침례교 학생은 17%에서 7%로, 감리교 학생은 9%에서 3%로 줄어들었다. 흥미롭게도, '다른 기독교인(가톨릭이나 주류 개신교가 아닌)'을 선택한 학생들의 수는 같은 기간 동안에 5%에서 13%로 증가했다.

불신앙 학생들의 비율은 대학 유형과도 관련이 있었다. '무종교'의 비율은 4년제 칼리지(colleges) 대학에서 보다(26%), 주립대학(state universities)들에서 더 높았다(36%). 이에 비해 2년제 칼리지 대학은 17%만이 무종교로 대답하였다. 마지막으로 1990년 이후 종교적 봉사활동에 보고서를 제출한 학생들의 비율은 85%에서 69%로 떨어졌다.

Nature(2016. 10. 18) 지에 게재됐던, 학자들의 신념에 대한 또 다른 연구는 위의 연구를 뒷받침하고 있다.[2] 일반적으로 정치적으로 진보 진영의 사람들은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일 가능성이 높으며, 보수적이거나 중도적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을 가능성이 높으며, 더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사회학(9,717명), 물리학(9,316명), 천문학(574명) 교수들의 90% 이상이 자신들은 진보적 성향이라고 대답했으며, 화학(12,930명), 수학(16,893명), 경제학 교수의 약 70% 정도(또는 그 이하)가 자신들은 진보적 성향이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교수들의 믿음은 학생들의 신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하다.

진화론이 무신론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라는 세 번째 증거는 사례 연구이다. 필자는 별 어려움 없이, 아인슈타인(Einstein), 다윈(Darwin), 프로이드(Freud), 마르크스(Marx) 등을 포함하여 52명의 유명 인사들의 신념에 대한 연구 사례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필자가 몇 달 내에 출판하려고 하는 ”진화론, 무신론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 창조론자가 왜 진화론자가 되었는가? 52건의 역사적 사례(Darwinism is the Doorway to Atheism: Why Creationists Become Evolutionists, 52 Case Histories)”라는 제목의 책에 잘 정리되어 발간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선도적 진화론자 중 한 명인 시카고 대학의 제리 코인(Jerry Coyne)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

”1859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에 의해 출간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은 지금까지의 책들 중에서 가장 크게 성경을 훼손했던 책이었다... 그 책은 이전에 위대한 설계자만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자연의 패턴들을, 진화와 자연선택이라는 순전히 자연주의적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일련의 성경적 주장들을 완전히 파멸시켜버렸다.”[3]

조사자인 조나단 켈리(Jonathan Kelley) 박사는 '무종교' 학생들의 급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교회를 다녔던 학생들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것은 진화론(의 수용)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 결과를 미국의 수많은 대학생들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Downey, Allen. 'College Freshmen Are Less Religious Than Ever.” Scientific American.  May 25, 2017.
.Reardon, Nancy. 18 Oct 2016. 'The Scientists who support Donald Trump.” Nature 538:298-299.
.Coyne, Jerry. Fact vs. Faith. New York: Viking, 2015, p. 2.
.The Australian, February 1, 2000, p. 6.

*Dr Jerry Bergman, professor, speaker, and author of numerous books and scientific papers, is a contributing writer for CEH. See his Author Profilefor previous articles by Dr. Bergman.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7/05/evolution-doorway-atheism/

출처 - CEH, 2017. 5. 29.

미디어위원회
2017-05-29

진화론이 만연한 이 시대에도 필요한 외침,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in an age of science)

Lita Sanders


      2017년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해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게시한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개신교에서는 마틴 루터의 담대한 선언을 종교개혁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시대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에 대항했던 종교개혁가들이 영감을 얻었던 성경적 원리를 기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내걸었던 주요한 슬로건들 중 하나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었다. 그들은 오직 성경만이 크리스천들에게, 심지어 교회 성직자들과 교황에게도, 궁극적인 권위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창조/진화 논쟁에 있어서도, ‘오직 성경’은 재강조 될 필요가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동일과정설적 해석은 기원에 관한 문제에서 궁극적 권위가 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 비추어 과학을 해석하기보다,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시간 틀에 어떻게든 들어맞도록 성경을 재해석하고 있다.

가장 슬픈 일은, 최근의 과학적 연구가 밝혀내고 있는 사실들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타협은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질학에서 세인트 헬렌산(St. Helens)의 폭발과 같은, 격변적인 지질학적 사건은 극적으로 지형과 경관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이후 동식물 군은 빠르게 회복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생물학에서, 생물들은 너무도 잘 설계되어 있어서, 과학자들은 그러한 경이로운 기능과 구조들을 모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산호초와 같은 생물은 정교하게 설계된 생태계에서 섬세한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본다.


성경을 최종 권위로 삼을 때, 우리는 성경을 사용하여 오늘날 여러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을 자신 있게 해결할 수 있다. 결혼에 관한 크리스천들의 원리가 창조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때, 동성애 문제에 대해 자비로우면서도 강력하게 말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을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독특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할 때,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으며, 외계인이나 다른 행성에서의 생명체에 관한 생각을 정립할 수 있고,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에게 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성경은 권위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이슈들에 대해 말해주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조/진화 논쟁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일이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 부여받은 특별한 사명으로 생각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만이 오늘날 이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묻고 있는 질문들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인 것이다.


Related Articles

Scripture and general revelation

Roman Catholicism, science, and evolution


Related Media

Jesus is God – a biblical defense of the Trinity (Creation Magazine LIVE! 5-18)

Genesis: Bible authors believed it to be history

Genesis: A case study for biblical authority (Creation Magazine LIVE! 5-1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sola-scriptura-in-an-age-of-science

출처 - Creation 39(3):6, July 2017.

이은일
2017-05-03

4차 산업혁명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 

결국 사람, 가정, 공동체의 문제… 교회만이 문제 해결 주체


 1985년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백투더 퓨처 2’는 주인공 마티가 미래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는 2015년이다. 30여 년 전 사람들이 바라본 30년 후의 모습은 어땠을까. 스마트 안경, 디지털 카메라, 3D 입체영상, 자동화 메뉴판, 지문인식기계, 태블릿 PC, 화상회의와 영상통화, 드론 등 실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상상이 현실이 됐다. 이처럼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또 어떤 상상이 현실이 될지 기대되면서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궁금하다. 미래사회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미래사회를 어떻게 준비해야할 것인가? (편집자 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큰 기쁨과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다가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한 <매킨지 보고서>에 의하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상화되면서 가사노동이 25% 줄어들게 되고, 자율주행차의 대중화로 2030년에는 교통사고율이 40% 감소하며, 인공지능 의료서비스의 향상으로 73세였던 건강수명이 2030년이 되면 77세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가사노동이 감소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증가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활이 편리하고 풍요해졌는데, 왜 삶은 더 팍팍해지고 삭막해졌을까? 이것은 과학기술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과학기술 발전이 인류의 삶에 미친 거대한 영향의 결과라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과학기술은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것이었다. 현대인들은 압도적인 과학기술 앞에서 세상의 모든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버렸고, 지나치게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룬 현대문화는 더 빨리, 더 편한 세상을 추구하였고, 무엇보다 생각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버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보다 무엇이 나를 더 기쁘게 해줄 수 있는지를 찾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사회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생활은 편리해질 수 있지만, 사람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걱정을 하고 있다. 이미 대규모 공장에서는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가 진행되어 공장의 규모가 커져도 고용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공장을 넘어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하는 많은 일들을 로봇이 대신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올해 1월 매킨지글로벌 연구소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얼마나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820여 가지 직업이 수행하는 업무를 총 2,069가지로 세분화했다. 그 결과 710가지(34%)의 업무를 향후 50년 내에 로봇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요리사 73%, 기자나 법조인 22%, 의사와 간호사의 일 29%를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을 발전시키고 있는 과학기술이 잘못된 것인가? 힘든 일들은 로봇이 하고, 사람들은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이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도약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까지의 사회체계, 교육내용 등 모든 것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하는 도전과 두려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고 물질이 모든 것의 시작이고, 전부라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인공지능보다 못한 인간이 살아남는 길은 인공지능을 뇌에 이식해 인공지능과 결합한 인간으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두려움을 과학기술로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진화론자가 아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는가?


1~4차 산업혁명의 득과 실

과학기술이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은 1차 산업혁명부터다. 증기기관차로 상징되는 1차 산업혁명은 공장에 많은 근로자들이 모이게 됨에 따라 급격한 도시 팽창을 가져왔다. 농경 중심의 사회가 도시중심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도시로 모여든 농촌 청년들에게 농촌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은 쓸모없어지면서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했다.

2차 산업혁명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개개인의 기호보다 대중의 유행이 중요해졌고, 각자의 개성을 대량소비에 맞추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 각각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소비자로서의 인간만이 대우받는 사회가 되었다. 사람이 인격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뗄 수 없다. 거대한 자본 없이는 과학기술을 공장으로 구체화시켜 산업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자신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모두가 달음질치는 사회가 되었다.

디지털 혁명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의 발전으로 자동화,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정보의 홍수가 이뤄지는 시대를 열었다. 좋은 정보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악하고 음란하며 거짓된 인간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보들을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정보만을 선택하면서 나와 기계, 지식과의 관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 우선되는 왜곡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1, 2, 3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가 빼앗긴 것은 가정과 공동체의 권위와 구조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양육 받고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던 시대에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 줄 전문교육기관에 자녀들을 맡겨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머니들이 직업을 갖는 것이 보편화됨에 따라 양육마저 외부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시대이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공동으로 일을 하고, 공동으로 수확해서 기쁨을 나누던 시대에는 공동체의 권위가 매우 컸다. 개인의 이익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손해 보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공동체는 없다. 모두가 나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울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은 가정과 공동체가 파괴된 현실에서 세워지고 있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더 엄청날 수 있다. 정보화혁명 시대의 승자들인 일부 회사들(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독점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은 엄청난 풍요와 엄청난 박탈을 동시에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로봇에게 소득세를 내게 하고 최소임금을 주어 모든 사람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궁극적인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신만의 일을 할 때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돈을 버는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노동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 노동의 의미, 지식의 가치, 자본의 역할 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길을 개척하여 진정 새 길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갈 때는 함께 갈 사람들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수년 내에 쓸모없는 지식이 되는 시대에는 평생 같이 공부하면서 서로에게 교사가 될 수 있는 동료들이 필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고, 가정과 공동체의 울타리에서 자녀들을 새로운 개척자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나타날 수많은 문제들이 결국 사람과 가정과 공동체의 문제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교회밖에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그리스도인들만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이 땅을 다스릴 것을 믿기 때문이다. 교회만이 과학기술이나 자본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직 교회만이 사람이 치열한 경쟁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겸손히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출처 - 2017. 4. 30. 온누리신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98

참고 :

한윤봉
2017-01-02

성경적 창조신앙 회복을 위해 함께 가십시다.


       36년 전에 이 땅에 한국창조과학회를 세우셔서 창조신앙을 지키고 전파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  2017년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부족한 제가 제7대 신임회장으로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창조과학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중심에 신앙적으로 학문적으로 탁월하신 역대 회장님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35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다양한 사역으로 창조과학회의 지경을 넓히신 이은일 전임 회장님과 눈물로 기도하며 섬기신 김경 본부장을 비롯한 창조과학회 동역자들과 후원자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성경적 창조신앙이 심각한 도전과 공격을 받고 있는 엄중한 때에 차기 회장을 맡게 되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앞으로 2년 동안 새로 선임된 회장단, 위원장, 위원들과 함께 전임 회장님이 이뤄놓으신 사역들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창조신앙의 회복을 통해서 ”교회와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세우는 한국창조과학회”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사람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창조과학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사역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섬기는 동안 창조과학회의 Keyword는 ”교회와 다음 세대”입니다. ‘교회들이 필요로 하고 협력하는 창조과학회, 젊은이들이 찾고 가입하는 창조과학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다음 세대들의 성경적 창조신앙 회복을 위해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주일학교용(2017년) 및 중고등학생용(2018년) 창조신앙교재를 만드는 것과 젊은이들의 창조신앙을 회복하고 헌신된 창조과학자를 찾기 위해 ‘창조과학 토크 콘서트’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인본주의와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창조과학자로서 살아가는 길은 참으로 힘들고 외로운 길입니다. 성경적 창조신앙 회복을 통해서 교회와 다음세대들을 강건하게 세우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가십시다. 결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서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신,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요.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늘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14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16-12-22

유신진화론의 위험성 1 

: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Perils of Theistic Evolution)

Philip Bell


      수년 동안 나는 성경의 권위와 진리에 대해서 말해야하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절실하게 느껴왔다. 어디에도 유신진화론자(theistic evolutionists, TEs)과의 논쟁보다 더 격렬한 의견 대립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여 생물들이 존재하게 하셨다고 주장한다.[2] 그래서 진화론과 하나님을 같이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자인 데니스 알렉산더(Denis Alxander)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창조론자’들은 ”복음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피해를 주며”, ”불화를 일으키고”, ”진화론을 거부하자는 캠페인은 성도들의 주의를 딴 데로 쏠리게 한다”는 것이다.[3] 그러나 그의 주장과는 반대로, 창조론자들이 지속적으로 진화론에 의문을 제기해왔던 캠페인은 힘을 얻어 왔으며, 분명 무시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한다.


타협의 위험성

대학에 있을 때 잠시 몇 년 동안, 나 자신도 성경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유신진화론에 동조했었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나의 신앙에 위기를 초래했다고 증언할 수 있다. 나는 진화론이 틀렸던 지, 아니면 창조/타락/홍수/바벨탑에 대한 창세기 기록이 틀렸던 지를 선택해야하는 기로에 직면했었다. 만약 창세기를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면, 기독교 신앙을 논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믿음은 영적인 난파선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기원에 대한 나의 싸움(고뇌)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세속적 철학(진화론)을 수용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는 것을 더욱더 확신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시켜준다고 말하면서, 성경의 분명한 의미와 모순되게 말하는, 자칭 똑똑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크리스천들에게 매우 위험한 것이다. 복음주의적 교회가 진화론과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되는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몇 가지만을 다루고자 한다.


1. 유신진화론은 성경을 세속적 이론에 굴복하도록 한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은 의심되지 않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심지어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읽는 것과 불일치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예로서, 유신진화론자인 데니스 알렉산더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어떻게 타락을 이해할 수 있을까?” 라고 적고 있었다.[4]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이론이 성경의 진리보다 앞서는 것이다! 일부 유신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내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실제로 그들은 성경보다 그들의 이론을 우위에 두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성경은 완전하며 불변한다.(시 119:89, 잠 30:5,6). 진리는 결코 타협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의 권위는 진화론적 해석에 굴복되지 말아야한다. 유신진화론은 사상적으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5] 그리고 유신진화론을 허용할 때마다, 피할 수 없는 결과는 (그 결과가 좀 늦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성경의 핵심적 가르침을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see here).


2. 유신진화론은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읽는 것을 부정하게 만든다.

유신진화론은 "성경의 명료성(the perspicuity of Scripture)"으로 알려진 것을 부인하게 만든다.[6] 유신진화론은 우리의 성경을 읽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창세기 1~11장의 기록을 역사적인 설명이 아니라, 신화, 우화, 시, 비유로 격하시킨다. 그리고 다윈 시기 이전의 크리스천들과 위대한 신앙인들 모두가 창세기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었다는 참으로 뻔뻔하고 대담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 세기에 걸쳐 성경적 창조론을 옹호했던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지고 불화를 일으키는 자들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명료성과 성경의 분명한 뜻은 진화론과 어긋날 때마다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다. 예로서, 유신진화론자인 샘 베리(R. J. Sam Berry)는 그의 책 ‘하나님과 생물학자’에서[7], ”만약 하나님이 정말로 전지전능하다면, 분명히 그 분은 아담의 갈비뼈 하나로부터 하와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남자는 여성과 같은 수의 갈비뼈를 가지고 있다”라고 원본에 강조하면서 적고 있었다.

기초적인 번식 생물학적 지식에 반하여, 잃어버린 갈비뼈가 어떻게든 아담의 후손에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터무니없는 조롱을 하고 있는 것이다.[8] 갈비뼈는 아담 한 명에서만 부족하면 된다. 더군다나 갈비뼈는 재생될 수 있다!(see here). 샘 베리의 주장은 창세기 2:22절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라는 기록을 무시하고, 그의 뻔뻔한 주장을 의도적으로 숨기기 위한 연막전술인 것이다. 만약 그 구절이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일이고, 그리고 우리는 성경의 어떠한 구절도 그 의미를 확신할 수 없게 될 것이다.


3. 성경적 창조주 대 ‘진화를 사용하는 신’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마 5:48), 거룩하시고(사 6:3), 전지 전능하시고(렘 32:17), 생명이시고(요 1:4), 빛이시고(요일 1:5), 사랑이시다(요일 4:16). 그리고 그 분의 속성들은 ”분명하게 보여 알 수 있다”(롬 1:20).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권능, 지식, 사랑이 유신진화론적 방식에서 분명하게 들어날까? 진화를 사용하는 신은 (제한된 지식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물들을 신속하게 창조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제한된 능력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수억 수천만 년에 걸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과정으로 생물들을 창조하셨다면, 그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죽음들과 고통들은 어찌된 것인가? 그 잔인하고 처절한 과정들은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다(창 1:31). 간단히 말해서, 유신진화론은 예수 그리스도(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의 영광을 훼손하고, 찬탈하는 행위인 것이다.


4. 유신진화론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증언을 무시하는 것이다.

만일 유신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창세기의 기록뿐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신약성경의 기록자들도 잘못 말씀하시고, 잘못 기록한 것이 될 것이다. 신약성경의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살펴보라.

(1)태초부터 사람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눅 11:50),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막 10:6),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행 3:21),

(2)땅은 물에서 나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벧후 3:5),

(3)노아 홍수가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마 24:37~38),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벧후 3:6),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히 11:7),

(4)사람은 동물과 구별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고전 15:39),

(5)아담의 범죄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롬 5:12~14, 고전 15:45-49),

(6)아담에서 하와가 창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딤전 2:13~14),

(7)뱀에 의해서 하와가 문자 그대로의 유혹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고후 11:3)

창세기가 신화나 비유라면, 이와 같은 창세기를 인용하고 있는 신약성경의 기록들도 모두 틀렸다는 말인가? 이 무슨 참람한 주장인가!


<다음에 계속 됩니다>


미디어위원회
2016-11-25

창조질서와 결혼제도 : 창조와 성

이은일 


서론

많은 사람들이 결혼과 성(性)은 별개의 문제라고 믿는다. 결혼과 상관없이 성적 행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 행위가 결혼 제도 안에서만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구시대적인 고리타분한 주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믿음에 따라 나온 열매는 뚜렷하다. 청소년들의 성적타락, 미혼모와 미혼부, 버려지는 아기들, 혼외 정사로 인한 가정의 붕괴, 그로 인한 자녀들의 삶의 붕괴, 성매매, 성폭행, AIDS 등 성병 전파, 동성애 등등.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대가는 사회와 개인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런 흐름은 거세지고 있다.

 

본론

1. 결혼과 성

진화론 입장에서, 특히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인간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적 행위는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당연한 행위이며, 따라서 인간을 성적 행위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결혼과 상관없이 성적 행위 자체가 절대적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 성적 행위가 절대적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고 분명하게 기록하셨다. 성적 행위는 결혼이라는 연합을 통해 탄생된 가정 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축복일 뿐이다. 결혼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지는 성적 행위는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는 자녀 생산의 결과를 가져오지만, 결혼 테두리 밖에서 이뤄지는 성적 행위는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번째 사회적 질서이며, 세상의 가치관에서도 가정이 사회의 기본단위로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가정은 부부간, 가족간 사랑을 경험하고 키우는 곳이며,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가정을 통해 자녀들은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배우며, 사회질서를 배우면서 성장한다.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가정이 없는 사회를 상상하면 된다. 부모 없이 자란 자녀들로 가득한 사회가 과연 어떤 모습을 가질까?  

절대적 기준을 상실한 사회는 절대적 기준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저술한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집단의 이익을 대표하는 공리주의적 주장과, 개인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유주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어떤 편을 들어야 정의로운 사회가 되는지에 대한 집요한 질문들을 던진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센델 교수의 주장을 알려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 고충이 있지만, 이 책에서 흥미로운 것 중에 하나는 ‘동성애’를 합헌 판결한 판사의 판결문에 대한 센델 교수의 날카로운 반박이다. 동성애 결혼에 대한 합헌 판결의 요지는 성적 행위와 배우자 선택의 자유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센델 교수는 동성이던, 이성이던, 배우자 선택이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라면, 왜 국가가 결혼제도를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배우자 선택이 개인의 자유에 해당된다면, 왜 국가가 누가 누구와 결혼하는지에 대한 관리를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런데 모든 국가가 결혼제도를 관리한다. 그 이유는 가정이 그 국가를 유지하는 기본 단위이고, 그 기본 단위가 건강하지 못하면 국가 사회가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가정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동성을 선택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판결은 서로 모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동성애 결혼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판결하는 것은 국가가 결혼제도를 관리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사법기관이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와 사회는 결혼제도를 통해 존속할 수 있다. 결혼을 해서 가정 당 2.1명 이상의 자녀를 생산해야 그 나라의 인구가 유지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서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한 자녀들을 어른으로 성장시켜야 그 나라가 계속 발전할 수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기를 안 낳으면, 결론은 그 나라는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 예측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생산 가능 인구는 2016년도에 최고조에 이르고, 그 이후부터는 계속 감소하며, 2017년에는 고령인구가 유소년 인구를 초과하게 된다. 2100년 인구는 2천만명 수준으로 줄어들고, 2300년이면 더 이상 우리나라 인구는 소멸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아마도 그 전에 외국에서 들어온 다른 사람들에 의해 한반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오직 결혼을 통해서 자녀들이 생산되고 양육될 때 나라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며, 결혼과 자녀 양육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질서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에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되어 있다. 아니,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결혼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 절대적으로 반영된 제도이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하나 되기 원하시는 뜻이 담겨져 있다. 교회와 예수님이 하나 되어야 하듯, 부부가 주님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는 것이다. 또한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수고와 희생을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자녀 양육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수고와,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신 희생과 닮아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의지적인 희생을 하시는 사랑이다. 범죄한 인간을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희생하신 십자가의 사랑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의 마음에 담겨져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과 자녀 양육은 어려운 것이다. 하나 되는 것도 어렵고, 희생하는 것도 어렵다. 결혼과 자녀생산, 자녀양육을 당연한 가치로 여겨졌던 사회에서는 힘들어도, 위기가 닥쳐와도, 심지어 죽을 것 같아도 부부관계를 깨지 않았고, 자녀들을 최우선으로 돌보았다.

그런데 이런 결혼과 가정에 대한 절대적 가치가 깨어졌다. 결혼을 하지 않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관계가 냉랭해져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배우자 외에 애인을 두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힘들면 결혼을 유지하기보다 이혼하는 편이 더 낫다고 믿는다. 자신의 자녀들을 학대하고, 심지어 죽이는 부모들이 늘어날 정도로, 가정이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안전한 곳이 아닌 곳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아시아 국가 중에 1위이며, 이혼하는 것이 두려워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정은 창조 이후로 계속 문제가 많았지만, 가정을 대신할 곳은 없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말이 아닌 행동으로부터 배우고, 그대로 행동한다. 문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문제 아이들이 되는 것이고, 문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건전한 가정이 되기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선 결혼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결혼을 수단처럼 생각하면, 아무리 목적이 고상하더라도 결혼이 유지되기 힘들다. 가정을 통해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을 이루기보다 자신들이 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되면, 가정이 안식의 장소가 아닌 전쟁터가 되기 쉽다. 결혼은 그 자체가 목표를 갖고 있는 제도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공동체의 모델이다. 결혼만이 하나님의 자녀를 늘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 땅에 충만하도록, 땅을 정복하도록, 모든 생물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다스리도록 하셨다. 오직 결혼을 통해서만 이런 일들이 이뤄질 수 있다. 

  결혼을 통한 관계를 이룰 때,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에로스적 사랑은 결핍을 채우기 위한 사랑이다. 아무리 받아도 부족하다. 아가페적 사랑은 넘쳐남으로 흘러 나오는 사랑이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주어도 남는 사랑이다. 결혼을 통해 부부간에, 부모자녀 간에 이런 주는 사랑을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사랑을 받는 경험을 통해 사랑을 주는 성숙에 이른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유하면서 부부간에 대한 사랑을 정의한 에베소서 5장 말씀의 핵심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는 것이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배우자를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소유 당하라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에베소서에 말씀하시는 사랑은 남편들이 쉽게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것 같은 사랑을 하라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오신 겸손한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만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도 아내에게 복종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생명보다 아내를 더 사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영적 권위를 갖고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처럼 아내의 머리 역할을 해야 한다. 오직 사랑과 희생만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남편의 자리이다. 아내도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돕도록 놀라운 지혜를 주신 아내는 자신의 지혜로 남편을 지배하거나 조정해서는 안된다. 남편이 최종적인 결정을 하는 가장으로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지혜로 남편을 도와 남편이 지혜롭고 정의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가정의 중심에 부부가 있어야한다. 자녀들이 가정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은 부부간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자녀들도 그 문제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자녀를 잘 양육하는 방법은 부부가 사랑이 넘쳐야 한다. 자녀들도 그 넘치는 사랑 속에서 잘 양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과 자녀양육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독신의 은사와 사명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결혼과 자녀 양육은 힘들지만, 인생에서 가장 복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만 준비하고, 결혼을 준비하지 않아서, 실제 결혼하고 나서 당황한다. 결혼은 힘든 것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결혼 전에 미리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성적 행위는 부부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고, 자녀를 낳은 것도 하나님의 큰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부부가 하나로 연합되는 과정에서 성적 행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 사랑과 성(性)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신뢰, 존중, 희생, 이해, 네 가지로 분리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깊이가 한정 없기 때문이다. 성적 행위 없이도 얼마든지 깊은 인간관계, 고상하고 거룩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간관계와 부부관계가 다른 것은 바로 성적 행위를 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있다. 오직 성적 행위를 통해 자녀를 생산할 수 있고, 부부간의 친밀함과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인 성(性)을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는 이제 더 이상 혼전성관계나, 외도 등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도리어 성관계를 통해 임신한 것을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즉, 사랑과 희생으로 섬겨야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 보는 음란한 사회가 되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 사원과 성관계를 갖고도 회개하지 않고,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표현하면서 적당히 넘어가는 것을 용납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진화론적 가치관은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 대하여 도리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진화론적 가치관은 자신들을 옳다고 주장하게 만든다. 

  절대적 기준을 상실한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는 감정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 사랑을 성적 행위로 표현하기 원한다. 느낌으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결혼에 대한 책임보다 자신의 감정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진화론적 물질주의적 세계관에서는 이런 감정의 주인이 물질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학물질에 의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며, 물질을 조정하면 그런 감정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하고, 느끼는 감정도 물질에 의한 것이므로, 감정이 이끄는 데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감정도 소중하고, 우리의 육체도 소중하지만, 우리의 주인은 우리의 존재이지 감정도 육체도 화학물질도 아니다. 도리어 우리의 감정, 생각, 행동 모두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존재로 만들어가야 한다. 육체와 정신은 분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성숙해야 한다. 그런데 성적 연합은 이런 성숙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적 연합을 성숙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성적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도리어 sex의 노예가 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적 연합에서 기쁨을 누리도록 우리의 뇌에 쾌락중추를 만들어주셨다.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은 성적 행위에서 분비되어 성적 연합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부부간의 연합에는 도파민 외 여러 호르몬이 필요하다. 성적 쾌락 뿐 아니라, 행복감, 신뢰감, 일체감, 안정감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도파민뿐만 아니라, 세로토닌,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엔돌핀 등 다양한 호르몬을 통해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셨다. 이런 호르몬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육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부관계를 통해 이런 감정들을 함께 건전하게 추구하는 것은 악셀과 브레이크를 사용해서 안전하게 차를 모든 것과 같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오직 성적 쾌락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악셀만 있는 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오직 도파민 분비만을 원하는 성관계는 곧 도파민 중독이 되고, 뇌가 손상 받게 된다. 이런 일은 성적 행위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에서 일어난다. 마약, 약물, 도박, 쇼핑 등 다양한 행동들이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고 쾌락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하다. 한 순간의 쾌락을 계속 선택하면, 육체의 쾌락이 나를 지배하는 주인이 되어 나의 인생 전체를 망쳐버리게 된다.

  도파민 중독이 어떻게 뇌를 손상시키는지는 포르노 중독 연구에서 잘 나타나있다. 포르노를 보면서 쾌락을 추구하면 할수록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웬만한 도파민 분비로는 쾌락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더 강한 포르노를 탐닉하다 보면, 도파민 중독이 되고, 놀랍게도 뇌에 구조적 변화가 오며, 성관계 능력도 떨어진다. 포르노에 중독되면 도리어 성욕이 감소한다. 포르노 중독 환자의 치료에 노인은 2개월 정도 걸리지만, 젊은이의 경우는 4-5개월로 더 걸린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포르노를 많이 다운로드 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포르노를 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포르노를 너무나 많이 보기 때문에 성추행과 성폭행도 우리나라에서 계속 늘어가고 있다. 

  모든 중독은 비극을 초래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도 비극적으로 만든다. 정상적인 부부관계도 파괴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성에 중독된 사회다. 아니 세계가 성에 중독되어 있다. 동물대상 sex를 금지하는 법이 나올 정도로 성에 중독된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교육도 어떻게 성관계를 가지면서 임신을 하지 않고, 성병을 피할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혼제도 안에서만 성관계를 가지라는 순결교육은 구시대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사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성관계가 이뤄지는 현실에서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갖지 말라는 교육은 설득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은 변화되어야한다. 성교육은 성관계에 대한 교육, 피임 교육, 성병 예방 교육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성행위가 단순한 쾌락의 도구가 아니라, 남녀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얼마나 필수적인 것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만약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된다면, 성교육에서 어떻게 남성끼리 항문성교를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이성 간의 성관계, 동성 간의 성관계를 가르치는 것이 학교 성교육의 내용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성중독을 포함한 모든 중독의 치료의 시작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을 어떻게 치료할 지에 대한 내용을 보면, 첫 번째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두 번째가 자신의 힘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공동체의 격려와 도움으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알콜 중독에 대한 치료 원리는 구원의 십자가의 도와 같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듯이, 오직 하늘의 도움으로만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알콜중독이나 성중독만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중독의 진정한 뿌리는 우리의 죄성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죄에 중독된 자들이다. 이런 죄의 문제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십자가의 복음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를 통해 전달하시도록 하신 것처럼, 성중독 사회를 변화시키는 복음의 메시지도 우리를 통해 전달되길 원하신다. 복음은 말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도 전달되어야 한다. 복음으로 변화된 삶이 없다면 복음의 능력을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를 변화시킨 것은 여성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한다. 당시 오직 여성 그리스도인들이 순결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귀족들이 여성 그리스도인들을 며느리로 삼길 원했고, 그 결과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양육되었고, 가족들이 변화되었다. 결국 로마의 지도층들 안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의 사회는 로마처럼 성중독에 빠진 사회이다. 사람을 성적 도구로 여기는 세상이다. 그러나 교회만이 사람을 쾌락의 도구로 여기지 않고, 서로의 삶에 대한 헌신과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이 있다.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가 될 때, 힘든 자녀 양육도 함께 짐을 질 수 있을 것이다.  

 

3. XX와 XY

   XX는 여성의 염색체를 의미하고, XY는 남성의 염색체를 의미한다. 결혼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절대적 제도라면, 남성과 여성도 염색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절대적인 것이다. 질병 때문에 이런 염색체 이상이 생겨서, 완전한 남자 또는 여자의 역할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지만, 염색체에 의해 남성과 여성이 결정되는 것은 변화될 수 없다. 또한 아무도 자신의 염색체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염색체에 의해 남자와 여자가 결정되는 것은 변화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질서이다. 남자면 남자이고, 여자면 여자이지, 다른 존재는 없다. 바로 이 남성과 여성을 통해 자녀가 태어나는 것도 변화될 수 없는 창조질서이다. 남성과 남성 사이에, 여성과 여성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날 방법은 전혀 없다. 

  남성과 여성이 염색체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고, 결혼에 의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면, 이런 질서를 보호하고 장려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그런 책임이 있다. 그런데 염색체에 의해 결정된 남성과 여성을 거부하고, 다른 성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몸은 남자 또는 여자일지라도 마음은 여자 또는 남자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술을 하더라도 다른 몸을 갖길 원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수술을 하더라도 염색체가 변화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구별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남성과 여성에 대한 문화적 구별 및 차별에 대하여는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야 한다. 과거에 요리를 하는 것은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이 어떠해야 한다는 많은 생각들이 문화적 가치관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우리가 남성과 여성의 기질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의 상당부분도 문화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부여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고 다른 역할을 하고 싶은 부분에 대하여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여성 같은 남성일지라도 아기를 가질 수 없듯이, 선천적으로 정해진 남자, 여자의 구별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질서를 무시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동성끼리 서로 사랑하니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것이 사회의 진보적인 모습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동성끼리 성적관계를 갖고 살면서 부부로서 법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 결혼을 통해 자녀는 낳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입양하거나 자녀를 낳기 위해 다른 이성과 또 결혼해서 두 여자와 한 남자가 같이 사는 일들이 벌어진다. 절대적 기준이 사라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동성끼리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는 일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이 원한다고 모든 것을 허용한다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실제로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억제하는 많은 법들을 가지고 있다. 국가에 세금을 내야하고, 병역의 의무도 있다. 운전할 때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공공장소에 담배를 피우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왜 이런 법과 규정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 법과 규정을 지킬까? 이런 법과 규정들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가정은 남자와 여자로 이뤄지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가족 공동체가 되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는 결국 어떻게 될까? 동성 결혼이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동물과의 결혼을 허용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결혼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이 동물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할 근거는 무엇인가?

  동성애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금지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동성애 유전자를 주장하는 연구논문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학자에 의해 억지로 주장되는 것일 뿐, 과학자들은 동성애 유전자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성애적 경향은 있을 수 있다. 범죄자들에게도 범죄자적 경향이 있다. 범죄자들이 범죄자적 경향이 있다고 해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정상참작이 되지 않는다. 사실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에 대하여 이런 유전적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모든 행동을 유전적 성향으로 정당화할 수 없으며, 사회적으로 허용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행동을 절제해야 한다.  

  사실 동성애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 학습되는 것이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민감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을 가졌다. 또한 인간관계에서 깊은 관계를 갖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상처를 받기도 쉽다. 그런데 같은 동성애자들은 이런 마음을 잘 이해하고 어루만져주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은 강한 공동체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모두 동성애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자란 동성끼리 깊은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끼리 항문성교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경험이 없는 사람이 성중독 환자가 될 수 없듯이, 항문성교를 하지 않고 동성애자가 될 수 없다. 동성애는 동성끼리의 깊은 사랑과 우정도 있겠지만, 항문성교의 쾌락을 누리고 싶다는 갈망이 존재한다(남성 동성애자들 중심으로 글을 쓴 것이다). 그러나 항문 성교는 성병과 에이즈 등이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항문기능이 훼손되어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항문은 배설기관이지, 생식기관이 아니다.

  항문성교 없이 민감한 성품을 가진 동성끼리 깊은 우정의 교제를 나누는 것은 동성애가 아니다. 따라서 동성애의 치료는 성중독과 마찬가지로 항문성교의 쾌락을 포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와 두려움도 회복해야 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었을 때, 주님께서 먼저 사랑하신 것처럼, 동성애자들도 주님은 사랑하시고 회복되길 바라신다. 우리도 동일한 마음으로 동성애자들과 성중독자들을 비롯한 모든 중독자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도 종류만 다를 뿐, 죄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직 주님의 은혜만이 중독에서 죄에서 우리 모두를 건져주실 것이다.

 

결론

  성중독에서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는 교회가 대안을 보여주어야 한다. 힘들어도 결혼해서 서로 사랑하면서 한 몸을 이뤄가는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를 많이 낳고 열심히 사랑과 희생으로 양육하면서, 좋은 아빠, 엄마가 되어야 한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우리의 아이들이 사랑과 희생을 배워서 자신들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서 주님의 일군이 될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에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힘으로 이들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고 희생하는 국민이 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다. 또한 그 사랑과 희생으로  열방과 세계를 섬긴다면, 힘이 아닌 사랑으로 세계의 으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를 섬김으로 더 큰 나라를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오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는 삶이다. 

  또한 교회는 사랑과 희생과 함께 절대적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염색체를 바꿀 수 없다면, 인정해야 한다. 이성을 믿을 수 없더라도 건전한 가정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의 선택의 결과이다.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질서를 깨는 것이 아니라, 질서 내에서 다양성의 조화를 통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를 유감없이 발휘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교회만이 세상의 대안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가정을 창조하시고, 부부와 자녀들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려고 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사건을 통해 이 땅에 교회를 창조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교회만이 죄에 중독된 사회를 구원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출처 - 제5회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세미나 자료집 (2016. 10. 10)

구주와
2016-11-08

과학주의와 청소년 교회 교육


1. 청소년과 과학주의

   청소년들은 교회를 잘 나오지 않는다. "공부를 해야 해서, 학원에 가야 해서, 친구와 싸워서, 재미가 없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청소년들이 교회에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을 믿지 않는 이유는 바로 성경의 내용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유인원이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가르치고,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빚고 코고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이런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들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교과서와 성경 중 어느 책을 진리라고 받아들일까? 더 많은 시간을 보고, 듣고, 공부하는 교과서이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학교에서 진화론만을 가르치면서 청소년들은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심각한 시기에 교회에서 진화론이 틀렸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지도 못하고 있다. 일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게 될 수도 있고, 여러 질문들이 들어와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된 진화론이라도 어릴때부터 세뇌교육을 당하게 되면 뿌리깊게 진화론자가 되어 사회로 나오게 된다. 중장년층은 섬기는 교회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며 은혜를 받는데, 청소년들은 학교 선생님과 교과서의 내용과 어긋나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교과서의 내용이 왜 틀렸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가르쳐야만 한다. 단순한 세뇌교육의 싸움만으로는 학교와 교회는 그 시간에서 싸움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와 선교사분들은 성경은 물론이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진화론의 내용과 그 거짓됨을 공부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시대적 사명감이 필요하다. ”과학과 신앙은 별개이다.”, ”과학으로 성경을 부정하려고 하지 마라”, ”너무 깊게 따지면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성경을 믿어라”라는 말은 더 이상 청소년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은 이미 어른들보다 더 많은 수학, 과학 지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2.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과학교과서의 내용을 보면 정말 참담함을 감출 수 없다. 부모들과 목사님들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오면 칭찬하기 바쁘고, 좋은 대학, 스카이 대학에 보내는 데에만 급급하다. 하지만 다른 과목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과학이나 생물과목에 있어서는 공부 잘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교과서 내용은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고, 그 원숭이 역시 또 다른 생물로부터 진화하였고 이는 결국 분자(molecule), 원자(atom)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어떠한 이단 종교단체를 가더라도 이렇게 가르치지는 않는다. 이단에서조차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빚으시고, 그 갈비뼈를 취하여 이브를 만드신 것을 알고 있다. 학교에서는 지금 이단들도 가르치지 않는 내용을 학생들 머릿속에 계속해서 주입시키고 있다. 학교공부를 잘 하면 세상적으로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갈 수는 있겠지만, 뿌리깊게 진화론에 물들게 되고 성경을 부정하게 되어 결국 교회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학생들에게 과학 교과서를 공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으며,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되, 진화와 관련된 내용은 성경과 모순되며 실제로는 창세기의 모든 창조의 과정, 노아의 홍수과 같은 내용이 설화가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라는 점에 대하여 함께 설명해주어 진화론은 틀렸고 성경이 진리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진화론의 내용을 일부 들여다보도록 하자.

인류의 진화
 『인류는 400-800만 년 전 사이에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진화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석으로 발견되는 모든 인류의 조상형을 모두 ‘화석 인류’라고 한다. 화석 인류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약 300만 년 전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다. 이 원시 인류는 키가 1~1.5m 정도였으며, 오늘날의 사람과 비슷하게 작은 송곳니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뇌 용량은 450~650ml 정도로 오늘날의 유인원과 비슷하며 직립보행을 하였다. 사람 속(屬)에 속하는 최초의 화석 인류는 약 200만 년 전에 살았던 호모 하빌리스이다. 이들의 뇌 용량은 평균 650ml 정도였다. 호모 하빌리스로부터 현대인과 더욱 가까운 호모 에렉투스가 진화됐다고 여겨진다.』

말의 진화
『화석은 생물이 진화해 온 방향을 제시한다. 최근으로 올수록 생물의 구조는 더욱 복잡해지며 새로운 종의 출현으로 생물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화석은 특정한 종이 진화해 온 모습을 밝혀준다. 말의 화석을 보면, 시간이 지난수록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의 수는 적어지는 방향으로 변했다. 또 어금니의 변화를 보면 말이 살아온 환경의 변화를 추정할 수 있다.』

시조새(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
 『시조새는 시기적으로 파충류와 조류 사이에 출현하였으며, 파충류와 조류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척추동물이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시조새와 같은 중간 종의 생물은 한 생물에서 다른 생물로의 진화를 밝혀주는 열쇠가 된다. 비둘기 정도의 크기인 시조새는 꼬리에 긴 뼈가 있고, 한 쌍의 날개와 부리가 있으며 부리 속에 이가 발달돼 있다. 날개에는 깃털이 있고 날개 끝에 발톱이 달린 3개의 발가락이 있다.』

우리들의 어린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위와 같이 그럴 듯한 계통도 그림과 화석사진을 근거로 진화론을 배우고 있다. 위 내용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진화론의 내용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반면 교회에서 청소년들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신비에 대하여 얼마나 배우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3. 청소년들에 대한 강력한 세뇌교육
 

목사님들이나 부모님들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진화론을 공부한다고 하여도, 주일에 교회에서 성경과 말씀으로 교육받는 이상 학생들이 진화론을 믿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혹은 막연히 ”우리 자녀들은 교회에 다니니까 진화론을 믿지는 않을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목사님들은 교회에서만 학생들을 보고, 부모님들 역시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모습은 잘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매일같이 적어도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진화론으로 무장된 세뇌교육을 당하고 있는데 비하여, 주일에 성경과 말씀을 듣는 시간은 채 1시간도 되지 않는다.

세뇌교육은 영어로 brainwashing-education 이라고 하며 한자로는 ‘洗(씻을 세)腦(골 뇌)’ 라고 쓴다. 말 그대로 뇌를 씻어낸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이슬람 무장단체인 IS에 세뇌된 어린 아이들이 자폭테러를 하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세뇌교육의 결과가 교통사고가 난 후 가해자가 ”How are you?”라고 물으면 쓰러진 피해자가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하는 것이라고 한다.

신천지에서도 신입 성도들에 대한 세뇌교육은 유명하다. 수개월간 매일 같이 하루 몇 시간씩 성경공부라는 이름으로 세뇌교육을 시키는데, 그렇게 세뇌당하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신천지 이론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불법 다단계 업체의 경우에도 신입회원들을 상대로 약 1달 간 강제 합숙을 시키면서 자신들의 이론을 계속 설명하는데, 이렇게 세뇌교육을 당한 사람들은 다단계 이론이 진실된 것으로 믿고 다단계 판매활동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세뇌교육으로 가장 유명한 북한에서는 학생들이 5년 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그리고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까지 김씨 가문에 대해 무려 684시간의 수업을 듣는데 그 내용은, 김정일이 햄버거를 개발했으며, 평소 골프를 즐기던 김정일은 1994년 어느 날 18홀 코스에서 38언더파 34타의 신기록을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홀인원을 11개 해야 가능한 기록이다.


 4. 청소년에게 미치는 진화론의 영향

진화론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우연의 산물이자 분자와 원자들의 우연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여기기 때문에, 유물론과 무신론을 기반으로 생명에 대한 경시현상(자살, 낙태), 도덕경시, 쾌락주의 등의 많은 부작용을 발생시키게 된다.

낙태 : 낙태란 태아를 자연분만기에 앞서서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론과 무신론에 의하면, 태아도 생명이긴 하지만 생명 자체가 분자들의 조합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무생물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게 되므로, 자연히 생명경시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낙태를 해도 별다른 죄책감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1993. 3. 5.자 한겨레 신문에 의하면 기혼여성 절반이 낙태수술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전세계 임신 4건 중 1건이 낙태되는데, 우리나라 한해 신생아수 43만 명에 낙태수가 30만이라고 한다. OECD 국가 중 단연 1위임에 의문이 없다. 조사되지 않은 건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규모가 큰 산부인과가 아닌 개인 산부인과의 경우 불법 낙태를 하지 않으면 병원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낙태의 95%는 불법이라고 한다. 그럼 합법적인 낙태도 있다는 말인가? 있다.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 의하면,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유전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등),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등),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임신 24주 이내인 경우에 한하여 임신중절수술이 허용되고 있다.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약 60여개국에 이르고 있다.

자살률 증가 : 진화론으로 인한 생명경시현상은 자살률 증가라는 또 다른 비극을 낳게 된다. 국내 청소년 자살률은 10년 새 57.2% 증가하여 10만 명당 약 5.58명에 이르고,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바로 자살이다.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이 한사람 한사람에게 주신 소중한 축복이라는 사실을 올바르게 안다면 결코 자살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행위이다.

동성애 : 동성애는 쾌락주의의 산물로서, 이미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 하나님이 절대 금기시하고 있는 행위이다. 진화론자들은 영혼을 믿지 않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 최대한 쾌락을 즐기게 되고 동성애도 그 도구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는 유명 방송인은 학창시절 남자선배들 300여명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한다(동아일보 2007. 5. 18.자 인터뷰).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그 사실여부를 떠나 내용 자체로서 매우 충격적이다. 삼성서울병원이 5년간 중고생 373,371명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165명 중 1명꼴로 동성 성접촉이 있다고 하며, 동성 성접촉에는 키스를 포함한 것으로서, 남학생 1,360명, 여학생 946명이었다. 동성 성접촉 청소년의 경우 이성 성접촉자의 경우보다 음주율이 2.84배, 흡연율이 4.24배 높았으며, 약물사용 13.54배, 폭력율 8.09배, 우울감 2.23배, 자살생각 2.75배, 자살시도 4.18배 높았다. 에이즈의 주된 감염원인이 동성애라는 사실은 상식에 해당한다. 10대의 에이즈 신규감염비율은 2006년 1.7%에서 2016년 4.1%로 급격히 증가하였는데, 이는 바로 10대들의 동성애가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중독 : 진화론은 영혼의 존재를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고, 결국 모든 생명체는 죽음으로써 종국적인 결말을 보게 된다. 따라서 자연히 살아있을 때 모든 쾌락을 즐기다가 죽어야 한다는 쾌락주의에 빠지게 되는데, 이러한 쾌락은 대부분 중독을 발생시키게 된다. 우리나라 청소년 흡연율이 7.8%에 이르며, 고3 남학생의 경우 22.8%의 흡연율을 보이고 있다. 그 외에도 알콜중독, 섹스중독, 스마트폰 중독, 음란물 중독 등 청소년들은 수많은 중독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 해리티지재단의 연구결과, 미국 중고등학생 6,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경험을 가진 여학생의 자살충동비율은 14.3%로서 성경험이 없는 여학생의 5.1%의 약 3배에 달했고, 남학생의 경우 무려 9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들은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고 전국민의 문제이다. 지하철을 타면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5. 최근의 교과서개정 내용

진화론의 잘못된 증거들로 가득찬 교과서를 올바르게 개정하기 위하여,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일명 ‘교진추’)의 5번에 걸친 청원이 있었고 그 결과 상당부분의 교과서 내용이 수정되는 결과를 낳았다. 2011. 12. 5. 교육과학기술부에 접수된 1차 청원은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단계라는 내용이 과학적 근거가 없으므로 교과서에서 삭제하거나 멸종된 조류로 수정해 달라는 내용이었고, 2012. 3. 5. 접수된 2차 청원은 ‘말의 진화계열’이 상상의 산물로서 교과서에서 삭제해달라는 내용이며, 2012. 12. 18. 접수된 3차 청원은 ‘화학적 진화’는 생명의 탄생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서 교과서에서 삭제해달라는 내용, 2013. 10. 접수된 4차 청원은 ‘후추 나방’의 공업암화는 진화의 증거가 아니므로 교과서에서 삭제해달라는 내용, 2014. 8. 1. 접수된 5차 청원은 '핀치새' 부리의 변형은 진화의 증거가 아니므로 교과서에서 삭제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일부 교과서에 수록된 시조새 및 말의 진화와 관련된 내용이 수정되었는데, (주)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은 ”청원 대상이 된 말의 진화 계열 역시 화석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논란의 여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진화의 증거로 제시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며, 청원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해당 내용을 삭제하고...”와 같은 입장을 밝히며 교과서 내용을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모든 청원내용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아 큰 아쉬움이 남는다.


6. 유신진화론은 청소년들이 교회로 돌아오게 만드는 해답이 될 수 없다.

진화론, 빅뱅이론 등 현대과학이라 일컬어지는 이론들과 성경을 조화시키기 위한 시도로서 ‘유신진화론’이 교계 및 학계에 만연해 있는 실정이다. 유신진화론은 말 그대로 하나님도 계시고 진화론도 인정하는, 성경과 진화론을 조화시키고 양립시키기 위한 절충설이다. 유신진화론은 교회가 현대과학이론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내놓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서, 최초 하나님이 빅뱅으로써 천지를 창조하시고 진화의 방법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인정하며 전지구적인 노아의 대홍수를 부정하는데, 이는 결국 창세기의 대부분을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하나님은 결국 우주를 창조하실때만 이 세상에 개입하시고 그 이후에는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으시고, 진화의 법칙에 의하여 세상은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청소년들이 교회와 신앙으로 돌아올 것인가? 이미 유신진화론은 널리 퍼져있지만 청소년들은 점점 교회를 떠나기만 할뿐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근의 일부 유명 기독과학자들조차 유신진화론적 주장을 펼치며, 교회에서 지구 나이가 1만 년이라고 가르치면 천문학, 화석증거를 모두 부정하는 것이고 결국 과학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신진화론대로 교과서도 맞고, 성경도 맞다고 가르치면 청소년들이 교회로 돌아오게 될까? 유신진화론대로 성경을 가르친다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아담, 이브의 창조, 노아 홍수의 대심판 부분은 설교를 할 수 없게 된다. 아담, 이브, 노아가 실존인물인지? 노아의 홍수가 실제 있었던 사건인지?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몇 년전 일어났던 사건인지? 이러한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고 이에 대하여 답을 하여야 하는데, 마땅한 답변이 없다. 그렇다고 성경 중 일부는 틀렸다고 말을 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기독교 방송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노아의 홍수, 진화론에 대한 설교 듣기가 어렵다. 목사님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교회에서 유신진화론을 가르치면 결국 청소년은 ”역시 교과서가 맞군”, ”역시 성경은 틀렸어”라는 의심에 확신을 갖고 교회를 떠나게 된다. 청소년들에게 창조의 진리와 성경은 설화가 아닌 사실이며 진리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7. 목회자들이 용기를 내야 할 때

국내 크리스천 락밴드 예레미(Yeremy)의 2000년 7월 발매된 3집 앨범 수록곡 중 ‘진화론’이라는 노래가 있다. ”진리들이 변해버렸어 거짓들이 가득한 이곳. 오만하게도 빛을 보지 못하여 지극히 못생긴 원숭이의 진화론을 따르는 지식의 사기꾼들을 보라. 커다란 시계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척이나 아는 척하네. 언제까지 속일건가, 언제까지 고집할까. 어둠은 이제 땅에 엎드려”. 진화론의 허구성을 용기 있게 잘 표현한 노래이며, 예레미의 대표곡이다.

이에 목회자들이 목소리와 용기를 내야 할 때이다. 청소년들은 나라의 희망일 뿐 아니라, 장래 한국교회를 이끌어 갈 주역들이다. 진화론에 한 번 빠진 청소년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교회에서만큼은 창조의 진리가 선포되어 청소년들의 귀와 영혼에 울려야 한다. 그럼으로써 청소년들의 신앙 회복, 나아가 한국 교회 전체가 회복되고 재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출처 - 제5회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세미나 자료집 (2016. 10. 10)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83

참고 : 6332|6439|6270|6278|2864|3682|5110|6369|6481|5462|3186|4542|4501|4345

미디어위원회
2016-11-04

진화론의 확산과 선교사의 사명

김연수 선교사(SMI/KWMA)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에릭 머택서스(Eric Metaxas)는 2013년 7월에 크리스챤 포스트(Christian Post)에 ”젊은 무신론자에게서 배워야 할 점 – 왜 그들은 기독교를 떠났는가?”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거기서 그의 교회를 떠난 수많은 젊은이에 대한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얻게 된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들이 기독교를 떠난 이유가 첫째로는 교회가 ”복음”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사역자들이 ”열정”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그들이 기독교를 떠나게 된 데에는 다른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 교회가 더 이상 복음을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열정을 잃어버린 것이 그들이 교회를 떠난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사실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2009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이미 떠났다(Already Gone)”에서는 유명 조사기관인 ”미국 연구 그룹(America’s Research Group)”이 그 당시를 기준으로 최근에 교회를 떠난 1,000명의 이십대를 대상으로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내어놓았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39.8%는 중학교 때에, 43.7%은 고등학교 때에, 10.6%는 대학교 때에 성경에 있는 모든 기사와 이야기들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고 다양하고 복합적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성경에 대한 신뢰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심각한 면을 시사해 주고 있다. 

결국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진리 문제, 성경의 신뢰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 교회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에서 성경적인 창조신앙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거나, 세상에서 마치 진리인양 버젓이 가르쳐지고 있는, 그리고 일부 교회 안에서까지 진화론을 인정하면서 성경을 해석하려는 유신진화론을 교묘하게 신앙과 함께 섞어서 가르치는 것은, 그것 자체가 기독교 존립에 가장 위협적인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타협점이 없는 완전히 상반된 이론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진화론의 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상 중의 하나는 18, 19세기 유럽을 지배했던 ”자연주의”라고 볼 수 있다. 자연주의라는 것은 한 마디로, ”보이는 모든 것을 보이는 것만으로 설명하자는 사상”이며, 진화론이야말로 그 자연주의 사상의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설명할 때에도, 성경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외형이 인간을 가장 많이 닮은 ”원숭이의 형상”에서 왔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게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모든 것이 물질로부터 출발했다는 자연주의적 믿음만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결국 물질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진화론은 과학적 이론이면서, 동시에 신앙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인정하는 것은 진화론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1. 진화론이 인간사회에 끼치는 폐해 

진화론은 검증된 이론도 아니며, 하나의 정립된 이론으로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 타당성을 가진 사실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과학적인 것처럼 가르쳐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사회에 들어오자 실로 거의 모든 방면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그것은 정치, 사회, 학문, 종교, 문화 등에 깊숙이 파고들어 심각한 폐해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말 진화론이 옳은 것이라면, 신이 존재하는 증거도 없고, 사후 생명도 없으며, 인간에게 절대적인 윤리적 토대도 있을 수 없고, 인간 삶의 궁극적인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1) 인간의 존엄성 훼손

무엇보다도 진화론은 인간의 고유의 존엄성을 심하게 훼손시킨다.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온 것을 부인하기에, 그리고 저급한 생물에서 진화를 통해 생겨난 것이 인간이기에, 그들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이고 확고부동한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생명은 어쩌면 단순히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기계와 같은 것이기에, 인간이나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을 가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2) 인종차별에 대한 정당화  

진화론은 하류 인종, 상류 문명, 인종우생학 등의 개념을 만들어 인종차별을 만들어냈다. 결국 그러한 사상은 흑인들의 노예화를 정당화했고, 히틀러 같은 사람은 진화 사상을 근거로 게르만족의 번창을 위해 기생충처럼 여겨졌던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하기도 했다. 호주에 사는 많은 백인들은 원주민들은 원시 미개인이어서 백인의 기술과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랫동안 믿었으며,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이나 몽골인에 대해 인종차별적 개념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지금도 진화론을 진실로 신봉한다면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적인 사상이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에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제국주의나 식민지주의의 정당화

사실상 근세 역사에서 유럽의 오랜 동안의 제국주의는 진화론을 국가적으로 장려했던 나라들을 중심으로 일어났었다. 일본 또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진화론을 가르쳤던 나라였다. 진화 사상에 따라 스스로를 우수한 민족이라고 믿게 되었던 그들은 아직 산업화가 되지 않았던 약한 나라들을 침공하고 그들을 강제로 지배하고 수탈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4)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출현

헤겔이 말하듯이, 자연선택이론을 도입한 정치이념은 소수의 엘리트에 의한 통치체제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소수의 선택 받은 사람들은 번성하고, 대부분의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은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러한 사상은 극우 쪽에서는 퍄쇼주의를, 극좌 쪽에서는 공산주의가 출현하도록 만들었다. 그 둘은 전체주의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생존경쟁”(struggle for survival)이라는 용어에서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라는 이론을 도출해냈다. 다윈이 일종의 생물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다면, 마르크스는 인류역사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 이론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로 그들의 창조기원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5) 극심한 경쟁주의–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ist)과 생명 경시 풍조

진화론이 주장하는 ”적자생존” 사상은 다른 개체를 죽여서라도 살아남아야만 된다는 의식을 부채질한다. 생존경쟁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쓰러뜨려야 된다는 당위성을 정당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인간사회의 극심한 경쟁주의는 그 깊은 뿌리를 진화론에서 찾을 수 있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조는 결국 그러한 사상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생물을 그 ”종류대로” 다르게 창조하셨다는 창조론과는 반대의 개념이다. 또한 인간 존재를 기계나 조직의 한 부품 정도로 생각하는 사상은 인간의 존재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가져왔다. 얼마든지 잘라낼 수 있으며,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전제를 그 바닥에 깔고 있다. 생명 자체가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어떤 영원한 가치나 의미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6) 모든 학문 분야에 끼치는 해악   

진화론은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교육학, 경제학, 철학, 문학, 역사, 예술, 신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여기서는 기독교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신학 분야에 대해서는 잠시 생각해 본다면, 무엇보다도 진화론의 영향으로 20세기에 일어난 ”고등비평주의”(Higher Criticism)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등비평주의자들은 성경 자체와 성경의 진리가 진화를 해왔다는 ”성경진화론”(Biblical Evolutionism)을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 중의 하나인 ”문서설”은 헤겔주의적 진화론에 기초한 것으로, 성경의 신뢰성을 크게 실추시켰다. 그러한 자유주의적 신학 사상은 결국 성경적 창조론을 부인하고, 진화론적이고 범신론적인 창조를 주장하게 되었다.

특히, 1912년 주장된 ”필트다운인 화석” 사건은 그것이 1962년에 가짜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까지 50년 동안 현대신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진화론이 과학적인 증거를 갖추었다고 굳게 믿게 되었던 많은 신학자들은 그들의 창세기와 구약의 해석을 다르게 전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진화론자인 샤르댕 신부는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고, 인간이 진화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웃지 못할 주장까지 했다.


2. 진화론이 선교지에 끼치고 있는 해악과 상황

진화론이 모든 인간사회에 그렇게 큰 폐해를 끼쳐왔다면, 선교지에도 예외일 수가 없을 것이다. 선교지의 거의 모든 나라의 공교육에서 진화론은 그것이 마치 이미 증명되고 확정된 사실로 가르쳐지고 있다. 과학 분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 분야에서도 진화론이 직접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다.

1) 진화론적 세계관 형성

선교지의 공교육 현장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릴 때부터 진화론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게 되어 아이들은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부터 진화론으로 무장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진화론 교육을 통해 하나님이 없는, 인본주의적인 진화론적 세계관을 갖게 된다. 대부분의 선교지 국가들의 생물, 지리 교과서에는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왜곡된 진화론이 마치 실험적으로 확인된 사실처럼 기술되고 있다. 그러한 진화론의 교육에 따라 인간은 목적 없이 우연히 태어난 존재이며, 그에게는 영원한 의미가 없으며, 절대적인 윤리도 있을 수 없다고 그들은 믿게 된다. 그들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이다.

2) 창조론은 한 종교의 신앙적 가르침에 불과하다고 가르침

어릴 때부터 그러한 진화론적인 교육을 받아 온 사람들은 창조론에 대해서는 아주 편협된 결론을 갖게 된다. 창조론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가르치는 하나의 신앙일 뿐이며, 진화론만이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고 학문이라고 가르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은 결과적으로 복음을 파괴한다.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권능을 거부하는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현대과학이 모든 물질과 자연법칙만으로 설명하려는 자연주의적 과학을 다루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은 궁극적으로 창조와 진화 두 가지 이론밖에 있을 수 없는데, 창조주를 언급하는 것은 특정 존재나 종교를 다루는 것으로 간주하여 창조론을 강하게 거부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될 수도 없는 진화론만을 과학적인 사실인양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3) 교회 안에서의 세상과 상반된 가르침과 타협

학교에서 진화론이 옳은 이론인 것처럼 배운 학생들이 교회에 와서 창조론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성장해 갈수록 성경 진리에 대해 심하게 흔들리게 되면서, 창조론을 단지 신앙적인 것으로만 치부하고 문제를 삼지 않든지, 아니면 창조론은 단지 신앙적인 면에서만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또 다른 경우에는 그 두 가지를 혼합하여 타협적인 이해를 갖게 된다. 아마도 유신진화론이 그들에게 그럴듯한 타협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화론이 혹시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말씀은 거짓이 되기 때문에, 신자로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시에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4) 성경적인 창조론이 교회에서조차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음

선교지의 대부분의 학교에서나 교회에서조차 성경적인 창조론은 제대로 가르쳐지지 못하고 있다. 교사들도 그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어떤 경우에는 성경적인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믿음과 신념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과 사상의 체계라고 볼 수 있으며, 진화론을 과학의 이름으로 가르친다면, 이와 함께 무신론에 대한 신앙과 신념을 결국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조차 진화론을 묵인한다면, 그리고 올바른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기독교가 갖고 있는 성경과 창조주에 대한 신앙을 결과적으로 소홀히 하게 되고 바른 신앙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선교지 상황에 따른 선교사의 사명과 역할

”창조, 설계, 진화”, 이 세 개의 단어는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신의 존재, 우주의 생성, 신과 우주의 관계, 인간의 기원과 정체성 등을 모두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 성경을 근간으로 하는 기독교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모든 것을 주장하고 모든 사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간이 그 성경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그의 영원한 운명이 갈리게 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결국 한 인간이 복음을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들의 영원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교지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게는 이미 그들이 어떤 종교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종교적 분위기가 다른 종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깊은 마음을 붙잡고 있는 진화론적 사상 때문일 수 있다.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어떤 절대자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고 진화에 의해 우연히 주어진 것이라는 신념은 기독교의 창조 신앙을 허황되게 보이게 만들며, 미신적이라고 판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그러한 선교지 사람들에게 복음수용의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진화론적 사상의 거짓과 폐해를 가르쳐 줌으로, 복음전파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창조신앙의 강조는 선교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절실히 요청되는 부분이다. 교회의 근세 역사에서 교회의 변질과 쇠퇴는 진화론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성장과 침체 역시 진화론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 성경적인 가르침과 신앙이 약해지면 그 다음은 반드시 교회의 쇠퇴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1) 선교사의 창조신앙 교육 –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쳐져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모든 동식물과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래서 우주와 인간의 존재 의미가 바로 그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영혼, 원죄, 인간의 죽음과 부활은 핵심적인 신학적 논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교지의 진화론 교육의 보편화는 창조 신앙을 전하는 기독교의 복음에 가장 장애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지의 학생들과 사람들에게 창조신앙의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치원이나 학교 사역, 신학교 사역, 일반인 교육을 통해 창조신앙을 계속적으로 보급함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그들에게 예상되는 장애를 미리 제거해 나가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2) 창조신앙 교육의 효과적인 사용 – 창조과학 집중 강의 등을 활용.

선교사들은 본국에서나 선교지에서 한국창조과학회와 연계하여 본인들이 그러한 교육을 받고 그러한 훈련이나 교육을 선교지 사람들에게도 제공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본인들의 훈련을 지나 현지인 교육을 한국창조과학회를 통해 유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선교지 상황에 따라 방학 중이나 특별한 기간에 집중강의 등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현지 학교 교사와 주일학교 교사에 대한 교육의 기회 제공.

일차적으로 선교사들이 관여하고 있는 현지 교회의 주일학교와 어른들에게 특별한 기간이나 정규적인 시간을 확보하여 창조신앙을 보급함으로 학생들이나 그곳 사람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배우거나 배웠던 진화론의 허구성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며, 현지 학교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 좋은 강사를 다양한 다른 과목들과 연계하여 그 학교들에게 창조신앙 교육에 대한 기회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진화론의 과학적 허구성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창조신앙의 필요성이 강조될 수 있을 것이다.

4) 현지 학교에서의 과학 교실 운영.

대부분의 선교지는 과학기구나 과학교실이 현저하게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을 잘 선용하여 기구나 교실 등을 제공하여줌으로, 창조신앙 교육의 기회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과학 실험이나 교실을 통해서 그들의 과학 교육에 공헌하면서, 다양한 합법적인 기회를 얻어 내어 창조과학 교육을 함께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김광, 창조, 맞습니다, 서울: 세창미디어, 2016.
김홍석, '청장년을 위한 창조과학 교육-창세기 고고학”, 제2회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 세미 나, 한국창조과학회, 2013.
윤철민,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개혁신학으로 본 창조과학의 신학적 문제, 서울: CLC, 2013.
이재만, 창조주 하나님, 창세기1장 vs 진화론, 서울: 두란노, 2014.
임번삼, 창조과학 원론(상, 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서울: 한국창조과학회, 2007.
한국창조국과학회, 이병수 편역, 정확무오한 성경, 서울: 세창미디어, 2012.
한국창조과학회, 30가지 테마로 본 창조과학,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2.
한국창조과학회, 당신이 몰랐던 유신진화론, 서울: 세창미디어, 2016.

Ham, Ken & Paul Taylor, 한국창조과학회 역, 창세기에 답이 있다, 서울: 한국창조과학회, 2010.
Haasma, Deborah & Loren D. Haasma, 오리진-창조, 진화, 지적설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들, 서울: IVP, 2012.
Metaxas, Eric, 'Learning from Young Atheists – What Turned Them off Christianity”, Christian Post, July 1, 2013.
Strobel, Lee, 홍종락 역, 창조 설계의 비밀, 서울: 두란노, 2010.

*필자는 남서울교회(홍정길목사 시무)에서 대학부 사역자로 사역하다가 1990년에 위클립성경번역선교사(GBT)로 파송되어 2006년까지 인도네시아, 이리얀 자야, 끄웨르바 부족을 위한 성경번역 사역을 했고, 그 후에 한동대, 통번역대학원, 응용언어학과 교수로 사역하다가 2011년부터 현지 선교사를 돕는 성경 스토리텔링 사역(SMI대표)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의(KWMA국제총무)에서 사역하고 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 Ph.D. 신약신학)와 미국 텍사스주립대학원(M.A. 언어학)과 미국 풀러신학대학원(Th.M.)에서 수학했다.


출처 - 제5회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세미나 자료집 (2016. 10. 10)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21-서울종로-1605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