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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미디어위원회
2016-11-04

진화론의 확산과 선교사의 사명

김연수 선교사(SMI/KWMA)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에릭 머택서스(Eric Metaxas)는 2013년 7월에 크리스챤 포스트(Christian Post)에 ”젊은 무신론자에게서 배워야 할 점 – 왜 그들은 기독교를 떠났는가?”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거기서 그의 교회를 떠난 수많은 젊은이에 대한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얻게 된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들이 기독교를 떠난 이유가 첫째로는 교회가 ”복음”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사역자들이 ”열정”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그들이 기독교를 떠나게 된 데에는 다른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 교회가 더 이상 복음을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열정을 잃어버린 것이 그들이 교회를 떠난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사실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2009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이미 떠났다(Already Gone)”에서는 유명 조사기관인 ”미국 연구 그룹(America’s Research Group)”이 그 당시를 기준으로 최근에 교회를 떠난 1,000명의 이십대를 대상으로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내어놓았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39.8%는 중학교 때에, 43.7%은 고등학교 때에, 10.6%는 대학교 때에 성경에 있는 모든 기사와 이야기들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고 다양하고 복합적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성경에 대한 신뢰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심각한 면을 시사해 주고 있다. 

결국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진리 문제, 성경의 신뢰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 교회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에서 성경적인 창조신앙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거나, 세상에서 마치 진리인양 버젓이 가르쳐지고 있는, 그리고 일부 교회 안에서까지 진화론을 인정하면서 성경을 해석하려는 유신진화론을 교묘하게 신앙과 함께 섞어서 가르치는 것은, 그것 자체가 기독교 존립에 가장 위협적인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타협점이 없는 완전히 상반된 이론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진화론의 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상 중의 하나는 18, 19세기 유럽을 지배했던 ”자연주의”라고 볼 수 있다. 자연주의라는 것은 한 마디로, ”보이는 모든 것을 보이는 것만으로 설명하자는 사상”이며, 진화론이야말로 그 자연주의 사상의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설명할 때에도, 성경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외형이 인간을 가장 많이 닮은 ”원숭이의 형상”에서 왔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게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모든 것이 물질로부터 출발했다는 자연주의적 믿음만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결국 물질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진화론은 과학적 이론이면서, 동시에 신앙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인정하는 것은 진화론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1. 진화론이 인간사회에 끼치는 폐해 

진화론은 검증된 이론도 아니며, 하나의 정립된 이론으로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 타당성을 가진 사실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과학적인 것처럼 가르쳐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사회에 들어오자 실로 거의 모든 방면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그것은 정치, 사회, 학문, 종교, 문화 등에 깊숙이 파고들어 심각한 폐해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말 진화론이 옳은 것이라면, 신이 존재하는 증거도 없고, 사후 생명도 없으며, 인간에게 절대적인 윤리적 토대도 있을 수 없고, 인간 삶의 궁극적인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1) 인간의 존엄성 훼손

무엇보다도 진화론은 인간의 고유의 존엄성을 심하게 훼손시킨다.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온 것을 부인하기에, 그리고 저급한 생물에서 진화를 통해 생겨난 것이 인간이기에, 그들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이고 확고부동한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생명은 어쩌면 단순히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기계와 같은 것이기에, 인간이나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을 가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2) 인종차별에 대한 정당화  

진화론은 하류 인종, 상류 문명, 인종우생학 등의 개념을 만들어 인종차별을 만들어냈다. 결국 그러한 사상은 흑인들의 노예화를 정당화했고, 히틀러 같은 사람은 진화 사상을 근거로 게르만족의 번창을 위해 기생충처럼 여겨졌던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하기도 했다. 호주에 사는 많은 백인들은 원주민들은 원시 미개인이어서 백인의 기술과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랫동안 믿었으며,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이나 몽골인에 대해 인종차별적 개념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지금도 진화론을 진실로 신봉한다면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적인 사상이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에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제국주의나 식민지주의의 정당화

사실상 근세 역사에서 유럽의 오랜 동안의 제국주의는 진화론을 국가적으로 장려했던 나라들을 중심으로 일어났었다. 일본 또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진화론을 가르쳤던 나라였다. 진화 사상에 따라 스스로를 우수한 민족이라고 믿게 되었던 그들은 아직 산업화가 되지 않았던 약한 나라들을 침공하고 그들을 강제로 지배하고 수탈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4)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출현

헤겔이 말하듯이, 자연선택이론을 도입한 정치이념은 소수의 엘리트에 의한 통치체제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소수의 선택 받은 사람들은 번성하고, 대부분의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은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러한 사상은 극우 쪽에서는 퍄쇼주의를, 극좌 쪽에서는 공산주의가 출현하도록 만들었다. 그 둘은 전체주의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생존경쟁”(struggle for survival)이라는 용어에서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라는 이론을 도출해냈다. 다윈이 일종의 생물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다면, 마르크스는 인류역사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 이론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로 그들의 창조기원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5) 극심한 경쟁주의–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ist)과 생명 경시 풍조

진화론이 주장하는 ”적자생존” 사상은 다른 개체를 죽여서라도 살아남아야만 된다는 의식을 부채질한다. 생존경쟁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쓰러뜨려야 된다는 당위성을 정당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인간사회의 극심한 경쟁주의는 그 깊은 뿌리를 진화론에서 찾을 수 있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조는 결국 그러한 사상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생물을 그 ”종류대로” 다르게 창조하셨다는 창조론과는 반대의 개념이다. 또한 인간 존재를 기계나 조직의 한 부품 정도로 생각하는 사상은 인간의 존재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가져왔다. 얼마든지 잘라낼 수 있으며,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전제를 그 바닥에 깔고 있다. 생명 자체가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어떤 영원한 가치나 의미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6) 모든 학문 분야에 끼치는 해악   

진화론은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교육학, 경제학, 철학, 문학, 역사, 예술, 신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여기서는 기독교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신학 분야에 대해서는 잠시 생각해 본다면, 무엇보다도 진화론의 영향으로 20세기에 일어난 ”고등비평주의”(Higher Criticism)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등비평주의자들은 성경 자체와 성경의 진리가 진화를 해왔다는 ”성경진화론”(Biblical Evolutionism)을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 중의 하나인 ”문서설”은 헤겔주의적 진화론에 기초한 것으로, 성경의 신뢰성을 크게 실추시켰다. 그러한 자유주의적 신학 사상은 결국 성경적 창조론을 부인하고, 진화론적이고 범신론적인 창조를 주장하게 되었다.

특히, 1912년 주장된 ”필트다운인 화석” 사건은 그것이 1962년에 가짜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까지 50년 동안 현대신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진화론이 과학적인 증거를 갖추었다고 굳게 믿게 되었던 많은 신학자들은 그들의 창세기와 구약의 해석을 다르게 전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진화론자인 샤르댕 신부는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고, 인간이 진화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웃지 못할 주장까지 했다.


2. 진화론이 선교지에 끼치고 있는 해악과 상황

진화론이 모든 인간사회에 그렇게 큰 폐해를 끼쳐왔다면, 선교지에도 예외일 수가 없을 것이다. 선교지의 거의 모든 나라의 공교육에서 진화론은 그것이 마치 이미 증명되고 확정된 사실로 가르쳐지고 있다. 과학 분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 분야에서도 진화론이 직접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다.

1) 진화론적 세계관 형성

선교지의 공교육 현장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릴 때부터 진화론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게 되어 아이들은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부터 진화론으로 무장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진화론 교육을 통해 하나님이 없는, 인본주의적인 진화론적 세계관을 갖게 된다. 대부분의 선교지 국가들의 생물, 지리 교과서에는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왜곡된 진화론이 마치 실험적으로 확인된 사실처럼 기술되고 있다. 그러한 진화론의 교육에 따라 인간은 목적 없이 우연히 태어난 존재이며, 그에게는 영원한 의미가 없으며, 절대적인 윤리도 있을 수 없다고 그들은 믿게 된다. 그들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이다.

2) 창조론은 한 종교의 신앙적 가르침에 불과하다고 가르침

어릴 때부터 그러한 진화론적인 교육을 받아 온 사람들은 창조론에 대해서는 아주 편협된 결론을 갖게 된다. 창조론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가르치는 하나의 신앙일 뿐이며, 진화론만이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고 학문이라고 가르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은 결과적으로 복음을 파괴한다.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권능을 거부하는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현대과학이 모든 물질과 자연법칙만으로 설명하려는 자연주의적 과학을 다루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은 궁극적으로 창조와 진화 두 가지 이론밖에 있을 수 없는데, 창조주를 언급하는 것은 특정 존재나 종교를 다루는 것으로 간주하여 창조론을 강하게 거부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될 수도 없는 진화론만을 과학적인 사실인양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3) 교회 안에서의 세상과 상반된 가르침과 타협

학교에서 진화론이 옳은 이론인 것처럼 배운 학생들이 교회에 와서 창조론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성장해 갈수록 성경 진리에 대해 심하게 흔들리게 되면서, 창조론을 단지 신앙적인 것으로만 치부하고 문제를 삼지 않든지, 아니면 창조론은 단지 신앙적인 면에서만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또 다른 경우에는 그 두 가지를 혼합하여 타협적인 이해를 갖게 된다. 아마도 유신진화론이 그들에게 그럴듯한 타협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화론이 혹시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말씀은 거짓이 되기 때문에, 신자로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시에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4) 성경적인 창조론이 교회에서조차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음

선교지의 대부분의 학교에서나 교회에서조차 성경적인 창조론은 제대로 가르쳐지지 못하고 있다. 교사들도 그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어떤 경우에는 성경적인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믿음과 신념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과 사상의 체계라고 볼 수 있으며, 진화론을 과학의 이름으로 가르친다면, 이와 함께 무신론에 대한 신앙과 신념을 결국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조차 진화론을 묵인한다면, 그리고 올바른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기독교가 갖고 있는 성경과 창조주에 대한 신앙을 결과적으로 소홀히 하게 되고 바른 신앙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선교지 상황에 따른 선교사의 사명과 역할

”창조, 설계, 진화”, 이 세 개의 단어는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신의 존재, 우주의 생성, 신과 우주의 관계, 인간의 기원과 정체성 등을 모두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 성경을 근간으로 하는 기독교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모든 것을 주장하고 모든 사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간이 그 성경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그의 영원한 운명이 갈리게 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결국 한 인간이 복음을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들의 영원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교지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게는 이미 그들이 어떤 종교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종교적 분위기가 다른 종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깊은 마음을 붙잡고 있는 진화론적 사상 때문일 수 있다.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어떤 절대자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고 진화에 의해 우연히 주어진 것이라는 신념은 기독교의 창조 신앙을 허황되게 보이게 만들며, 미신적이라고 판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그러한 선교지 사람들에게 복음수용의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진화론적 사상의 거짓과 폐해를 가르쳐 줌으로, 복음전파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창조신앙의 강조는 선교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절실히 요청되는 부분이다. 교회의 근세 역사에서 교회의 변질과 쇠퇴는 진화론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성장과 침체 역시 진화론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 성경적인 가르침과 신앙이 약해지면 그 다음은 반드시 교회의 쇠퇴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1) 선교사의 창조신앙 교육 –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쳐져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모든 동식물과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래서 우주와 인간의 존재 의미가 바로 그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영혼, 원죄, 인간의 죽음과 부활은 핵심적인 신학적 논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교지의 진화론 교육의 보편화는 창조 신앙을 전하는 기독교의 복음에 가장 장애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지의 학생들과 사람들에게 창조신앙의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치원이나 학교 사역, 신학교 사역, 일반인 교육을 통해 창조신앙을 계속적으로 보급함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그들에게 예상되는 장애를 미리 제거해 나가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2) 창조신앙 교육의 효과적인 사용 – 창조과학 집중 강의 등을 활용.

선교사들은 본국에서나 선교지에서 한국창조과학회와 연계하여 본인들이 그러한 교육을 받고 그러한 훈련이나 교육을 선교지 사람들에게도 제공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본인들의 훈련을 지나 현지인 교육을 한국창조과학회를 통해 유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선교지 상황에 따라 방학 중이나 특별한 기간에 집중강의 등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현지 학교 교사와 주일학교 교사에 대한 교육의 기회 제공.

일차적으로 선교사들이 관여하고 있는 현지 교회의 주일학교와 어른들에게 특별한 기간이나 정규적인 시간을 확보하여 창조신앙을 보급함으로 학생들이나 그곳 사람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배우거나 배웠던 진화론의 허구성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며, 현지 학교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 좋은 강사를 다양한 다른 과목들과 연계하여 그 학교들에게 창조신앙 교육에 대한 기회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진화론의 과학적 허구성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창조신앙의 필요성이 강조될 수 있을 것이다.

4) 현지 학교에서의 과학 교실 운영.

대부분의 선교지는 과학기구나 과학교실이 현저하게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을 잘 선용하여 기구나 교실 등을 제공하여줌으로, 창조신앙 교육의 기회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과학 실험이나 교실을 통해서 그들의 과학 교육에 공헌하면서, 다양한 합법적인 기회를 얻어 내어 창조과학 교육을 함께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김광, 창조, 맞습니다, 서울: 세창미디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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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민,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개혁신학으로 본 창조과학의 신학적 문제, 서울: CLC,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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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창조국과학회, 이병수 편역, 정확무오한 성경, 서울: 세창미디어, 2012.
한국창조과학회, 30가지 테마로 본 창조과학,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2.
한국창조과학회, 당신이 몰랐던 유신진화론, 서울: 세창미디어, 2016.

Ham, Ken & Paul Taylor, 한국창조과학회 역, 창세기에 답이 있다, 서울: 한국창조과학회, 2010.
Haasma, Deborah & Loren D. Haasma, 오리진-창조, 진화, 지적설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들, 서울: IVP, 2012.
Metaxas, Eric, 'Learning from Young Atheists – What Turned Them off Christianity”, Christian Post, July 1, 2013.
Strobel, Lee, 홍종락 역, 창조 설계의 비밀, 서울: 두란노, 2010.

*필자는 남서울교회(홍정길목사 시무)에서 대학부 사역자로 사역하다가 1990년에 위클립성경번역선교사(GBT)로 파송되어 2006년까지 인도네시아, 이리얀 자야, 끄웨르바 부족을 위한 성경번역 사역을 했고, 그 후에 한동대, 통번역대학원, 응용언어학과 교수로 사역하다가 2011년부터 현지 선교사를 돕는 성경 스토리텔링 사역(SMI대표)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의(KWMA국제총무)에서 사역하고 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 Ph.D. 신약신학)와 미국 텍사스주립대학원(M.A. 언어학)과 미국 풀러신학대학원(Th.M.)에서 수학했다.


출처 - 제5회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세미나 자료집 (2016. 10. 10)

미디어위원회
2016-09-16

창조과학 사역의 의미 1 : 창조과학에 대한 소개

이은일 


      창조지에 연재된 창조과학 지상 강좌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글을 올리면서, 창조과학 자체에 대한 이해 전에 왜 창조주 하나님이 강조되어하며, 진화론이 어떻게 확대되었고, 하나님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어떻게 창조과학이 활용되는 지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서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은 없으시다고, 또는 창조되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100년 이상 공격받고 있었고, 진화론이 바로 그 공격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1)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가 비과학적인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창조과학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강조하는 사역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또는 심판자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시대에 창조주 하나님이 강조되는 것은 절실히 필요하다. 그것은 교회 밖의 세상에서 진화론 교육을 통해 하나님이 이 모든 지구와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진리가 비과학적인 거짓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의 ”생명의 기원” 서론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중세기까지는 생명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는 설과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창조론이 신봉되고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부터 과학적인 연구가 진행되면서 생명은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학설이 대두되었고, 1859년에는 다윈에 의해 종의 기원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면서 생물의 진화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글을 보면 비과학적인 ‘생명 자연발생설’과 ‘창조론’을 함께 비과학적인 무식한(?) 이론으로 동일시하고, 과학적인 ‘생명 속생설'과 ’진화론‘을 함께 과학적인 이론으로 소개하고 있다. 진화론은 비과학적인 증명할 수 없고,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진화론은 마치 ’진화법칙‘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하나님의 창조를 비과학적인 것으로 만들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다.   


2) 창조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기초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교육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혼란을 겪고 있다. 즉, 성경의 말씀이 과학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설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화론의 영향으로 자신들도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십자가의 구원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믿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 1절, 성경의 처음을 자신이 창조주시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 성경의 첫 말씀에 대하여 의심하는데, 그 뒤에 있는 말씀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기는 어렵다. 성경은 죄와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지금의 땅과 하늘을 다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죽었던 몸이 영원한 몸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창조 -> 타락 -> 구원 -> 최후의 심판 -> 새 하늘과 새 땅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첫 시작이 하나님의 창조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시작하셨고, 그 뜻대로 끝내신다는 것이며, 그분이 만드셨기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에 대한 믿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본론

1. 진화론의 대두와 그 배경

창조주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부인하는 진화론이 어떻게 대두되었고, 왜 그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1) 계몽주의의 영향

지금 세계의 문명은 유럽 문명이 절대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유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로마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진 곳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국교화 된 후 기독교 지도자들은 정치권력과 합쳐져 중세의 암흑시대를 낳게 되었다. 16세기에 시작된 계몽주의, 즉 르네상스는 중세의 종교적 권위주의 시대에서 벗어나 그리스 로마시대와 같은 인본주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또한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종교전쟁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게 하였다. 중세의 신본주의를 버리고 인간이 중심이 된 인본주의는 이성 중심의 철학과 과학주의를 낳았고, 마침내 기원문제 조차도 하나님을 버리는 진화론을 낳게 되었다.


2) 다윈의 진화론 발표 - 다양성에 대한 오해

1859년 다원은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진화론을 소개하였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군도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물들을 보면서 이런 다양한 동물들이 어떤 변화를 거쳐서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고, 그런 변화가 일어나게 된 이유에 대하여 나름대로 이론을 만든 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다.  이 시대에 다윈 말고도 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변화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유전학 등이 발달되지 못한 시대에 유전정보에 의해 이런 다양성이 발현된다는 것에 대하여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다윈 등의 당시의 과학자들은 이런 변화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이론을 채택하였고, 첫 기원에서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발표한 것이다.  

진화론이 발표된 후 1860년 동물학자인 헉슬리와 월버포스 주교는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역사적 논쟁을 하였다. 진화론자들은 동식물의 다양성에 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진화론을 변명하였고, 이에 비해 월버포스 주교의 창조론 변증은 과학적 증거가 약해 보였다. 이 당시의 과학수준으로는 생명체에 있는 생화학 기전이나 DNA 등에 대하여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생명체가 지적설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때 다양성과 진화가 다르다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3) 진화론 확대의 시대적 배경과 거짓 증거의 영향력

창조론은 주로 정치적 세력으로 인정되던 가톨릭 쪽에서 주장하였기 때문에 창조론 옹호자들은 보수주의자들로 취급되었고, 진화론 옹호자들은 개혁적인 인사들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진화론은 시대적으로 인기가 있는 이론이었다. 또한 이 당시 제국주의에 의한 침략 전쟁은 진화론의 양육강식에 의한 자연선택 이론으로 합리화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흑인 및 동양인들을 인격적인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열등한 인종으로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진화론에 있었던 것이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진화론은 인본주의의 발달에 따른 나타난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즉 인본주의 시대에서도 물질의 기원,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는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진화론은 이 기원의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 없이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이 인본주의 시대에 환영을 받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은 유럽에서 교육되고 있는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1925년 프로테스탄트 보수주의의 아성인 테네시주에서 인간과 원숭이의 선조는 같다는 진화론을 가르쳤던 고교 생물교사 죤 스콥스는 재판에 회부되어 $100의 벌금을 내라는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도리어 진화론자들의 거센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 후 진화론자들의 법정 투쟁이 42년이나 계속되었고, 1967년에 대법원이 ”반진화론법은 연방헌법에 위배 된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종지부를 찍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의 핵심은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미국의 과학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학문적으로 유럽보다 뒤진 상태였고, 발전된 유럽에서 가르치는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다.

원숭이 재판으로 불리우는 스콥스의 재판을 통해 진화론이 미국에 자리 잡게 된 중요한 계기는 진화론이 과학적 증거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재판에서 제시된 진화론의 과학적 증거들은 ”중간 단계 화석의 증거들”이었다. 대표적인 것은 ‘필트다운인’이었는데 이 필트다운인은 영국 필트다운지역에서 발견된 1912년 발견된 것으로, 진화론자들이 예측한대로 원숭이의 턱뼈를 가진 인류의 두개골이었다. 진화의 완벽한 증거로 인정받았던 필트다운인 화석은 1953년 뼈에 대한 연대측정결과 수십 년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정밀 조사결과 조작된 것임을 1962년 공식 확인하였다. 1912년부터 1962년, 20세기 초반 중요한 시기에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완벽한 증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대에 살고 있던 위대한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의 과학적 증거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진화론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위대한 신학자들, 기독교인들이 쓴 글에는 진화론을 인정하는 글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의 기독교인들도 진화론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 것이다. 50년 동안의 거짓 증거의 위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진화론은 생물학에서 유일한 과학적 이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생물학 뿐 아니라 학문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지질학, 우주과학 등의 자연과학 뿐 아니라, 역사, 문화인류학 등 인문과학에까지도 깊은 영향을 주었고, 학문의 전 영역에서 다뤄지게 되면서, 사람들의 생각 속에 가설에 불과한 진화론이 법칙인 것처럼 인식되게 된 것이다.


2. 진화론과 과학만능주의의 쇠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진화론과 과학만능주의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진화론에 대하여는 그 허구성을, 과학에 대하여는 그 한계에 대하여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1) 진화론적 역사관의 쇠퇴

진화론의 역사 해석은 끝없는 진보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 진화되고,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우수한 집단이 더 진화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역사는 계속 발전한다고 믿고 있었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 사람들은 과학의 진보와 그 열매를 누리면서 사람의 능력에 의해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이런 환상은 진화론적 역사의식과도 잘 맞는 것이었다. 인본주의와 과학만능주의, 진화론은 서로 잘 어울리는 동무들이었던 것이다.  

인류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진화론적으로 역사 발전이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인간 이성을 절대시하던 철학적 풍토도 깨어지게 되었다. 또한 문화 인류학이 발전하고, 인권 존중 사상이 퍼지면서, 원시인적인 삶이라고 경멸받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삶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진화론적으로 발달되지 못한 문명이라고 낮게 평가되었던 것은 지나친 서구 기계 문명 위주의 평가이며, 그들 나름대로 독특하고 발전된 문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진화 이론에 의해 낮은 단계에 있다고 흑인들을 평가하는 것은 진화론적 선입관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1, 2차 세계 대전이 바로 진화론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적자생존, 자연선택 이론은 어떤 특별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할 수 있게 해주었고,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멸절시키는 것도 진화론적으로 당연히 일어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우생학”도 바로 진화론의 결과이다. 모든 인간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에게 불임 수술을 하거나, 결혼을 제한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도태시키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세계에서 진화론의 영향력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만, 역사 등의 인문과학 분야에서는 그 영향력이 현저히 감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에서는 아직도 진화론의 영향력이 강력한 실정이다.


2) 과학만능주의의 쇠퇴

르네상스 이후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두려움의 대상이던 자연(피조세계)은 분석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별의 운행에도 규칙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여러 물리학적 법칙들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세계가 하나의 정교한 기계인 것처럼 인식하였다.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인본주의적 세계관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인간 이성을 왜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지를 설명해야하는 철학의 입장에서 기계와 같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인간 이성은 그 중심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과 과학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어리석은 것으로 취급되기 시작했고, 기원에 관하여는 진화론만이 유일한 과학적 대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 이성으로 실험하고, 연구하는 과학은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 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많은 과학적 발전은 사람들에게 큰 변화와 유익을 주었다. 쉬운 예로 자동차의 발명은 길거리에 널려있는 말똥의 공해로부터 사람들의 삶을 해방시키는 것으로서 크게 환영받았다. 과학의 발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주었고, 이것은 과학만능주의로 나타났다. 즉, 과학은 하나님을 대신한 현대인들의 신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 이성과 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1,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무너지기 시작했고, 증가되는 환경오염과 지구에서 인류가 사용할 에너지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과학 발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철학적으로도 인간 이성의 절대성이 비판받고 과학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주관적인 부분이 있고, 인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체, 프로이드, 하버머스 등의 학자들은 학문이 이해관계나, 인격성, 신념 등과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하였고, 물리학의 발전으로 ‘빛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일 수 있다’는 등의 인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3.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상

하나님 대신에 인간 이성을 중심으로 세웠던 계몽주의 운동은 자신들의 이상향으로 꿈꾸었던 그리스, 로마 시대처럼 다신론과 죄가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1) 다신론적 사회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불리우는 지금의 시대는 어떤 절대적 기준이 있을 수 없으며, 비합리주의, 상대성, 다의성, 이질성 등을 인정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문화적 현상이 아니라, 과학과 철학의 수백 년간 고민하며 내린 결론인 것이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신이 된 인간 이성, 과학은 이제 그 신적인 자리에서 내려와야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오만한 자리에 앉았던 서구문명은 천대하던 동양문명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양에 있는 철학, 종교 등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 이성과 과학의 절대성에 회의를 갖게 된 서양은 이러한 동양의 철학과 종교,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동양 사상의 주류를 이루는 범신론적 가치관과 문화 등이 급속도로 세계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서양의 신비주의와 쉽게 결합할 수 있다. 뉴에이지 운동 등이 동양적인 범신론적 세계관과 밀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심각하게 인간 이성 및 과학의 절대성을 고민하지 않더라도, 현대인들은 문화적으로 인간 이성 중심의 건조한 사상에 목마르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과학과 인간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으며, 다른 의지할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만능주의적 생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과학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과학만능주의적 생각을 아직도 붙들고 있다. 현대 문명은 이와 같이 과학만능주의와 신비주의의 두 가지 어울리지 않는 사상이 공존하고 있다. 이런 사상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계는 다신론적 가치관이 지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 이성과 과학만이 신이던 시대에서, 이제 그것을 포함하여 천사숭배, 악마숭배, 자연숭배 등 다양한 신이 생긴 것뿐이다.


2) 죄의 번창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로마서 1장 21절부터 32절까지 잘 나와 있다. 우상을 숭배하고, 동성연애, 음란, 간음 등 성적인 죄를 짓고, 살인, 분쟁, 비방, 교만, 부모를 거역, 우매, 무정, 무자비 하는 등 상실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런 상실한 마음은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 하여, 마약, 도박 등의 쾌락을 쫓게 된다. 점차 마음의 양심의 소리는 작아지고, 죄를 짓기에 익숙하게 된다.  이제 더 나아가 자신과 같이 죄를 짓는 사람들을 옳다고 주장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로마서의 기록은 지금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컴퓨터의 발전은 가상공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등장시켰고, 가상공간 내에서는 어떤 일도 가능하게 되었다. 살인, 폭력, 성적인 쾌락 등이 아무런 문제없이 행해질 수 있고, 그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인 것처럼 보인다. 깊은 고민과 사색보다는 즉각적인 반응이 컴퓨터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인간의 죄가 바로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무시한 결과 가상공간에서의 죄악은 실제 현실의 삶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모습은 청소년들에서 더 잘 나타나고 있다.

마치 노아 시대처럼, 소돔과 고모라처럼, 사람들의 죄가 관영하고, 세상을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세상의 죄에 대하여 선지자적 비판을 가해야하는 교회도 세상의 소금과 빛을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암울한 모습이야말로 복음을 강력하게 증거해야하는 시대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진정한 신, 창조주 하나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 창조주 하나님이 필요한 세상

1) 절대적 기준이 필요한 사람들

죄의 번창함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 쾌락을 추구하며 죄를 짓고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어떤 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군인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절대적 기준에 대한 헌신, 충성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모습인 것이다. 자신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강력한 신적 존재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소개는 신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창조주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으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신이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신을 위해 존재해야함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또한 창조주에 대한 개념은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의 절대적 기준이 있음을 말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 기준을 바라면서도, 절대적 기준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 뜻에 맞는 절대적 기준만을 찾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만이 참된 절대적 기준을 제공해준다. 왜냐하면 성경만이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된 책이고, 그분의 감동에 의해 쓰여진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쓰여진 많은 내용들, 특히 창세기의 기록들이 신화처럼 취급받았지만, 과학적 증거는 도리어 성경의 기록만이 참된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절대적 기준인 성경 말씀이 유일한 진리이며, 구원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2) 마음 밭이 돌로 가득 찬 사람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여러 종류의 밭이 나온다. 복음의 씨가 떨어지더라도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옥토에 떨어져야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고 있지만, 갈수록 열매 맺는 일은 힘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미 진화론적 교육으로 하나님이 없다는 교육을 계속 받아왔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현실의 쾌락을 제거해야하는 거침돌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으면서도 진리로 향하는 이정표 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기원에 대하여 설명하는 진화론은 하나님을 믿게 하는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따라서 진화론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진화론의 허구성을 드러내면 이들은 자신들이 믿었던 사상이 깨어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말하면 마음 밭에 있는 돌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이런 거침돌들을 제거하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면 열매를 크게 맺을 수 있게 된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성경의 기록이 진리임을 확신 못하는 기독교인들은 풍성한 열매를 맺기 힘들다. 창조과학 강연을 듣거나 책을 통하여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삶이 완전히 변화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마음 밭에 있는 돌들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삶의 주인이 자신에서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3) 예수님을 오해하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좋은 사람 또는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할 뿐이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예수님을 단지 다른 신처럼 잘 보이면 복을 주는 신중의 하나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기 전에, 예수님은 성부, 성령 하나님과 함께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셨다. 세계의 주인이 되신 분이 종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하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지를 묵상한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묵상한다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창조주 되신 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시킬 것을 약속하셨다. 창조주 되신 분은 만물을 통치하시므로 역사의 시작과 끝도 주관하시는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분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단순히 복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온전히 통치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 복을 받으려고 하기 전에, 그분을 왕으로 인정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할 것은 분명하다. 이런 믿음은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해준다.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온 우주의 통치자가 되어 만물을 그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회복하실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동일한 회복이 일어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신다.


결론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이다 (엡 6:12). 예수님을 유혹했듯이 지금도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줄 수 있다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성경을 보면 살인자 가인이 쌓은 에녹성에서 찬란한 문화가 꽃피웠고,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말았다. 노아시대 홍수의 심판 이후에 등장한 사람들도 바벨성을 쌓으며 하나님께 도전하다가 흩어지고 말았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과 사상이 있어왔고,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창조과학 사역은 진화론이 지배하는 시대에 진화론이 거짓 과학이며, 과학적 증거는 도리어 성경의 기록을 지지함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를 위해서는 과학적 연구를 수행해야하고, 연구 결과를 잘 전파할 수 있도록 사람을 훈련시키고, 강연하고, 책을 출판하는 등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 창조과학적 지식을 계속 연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과학자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지식을 전파하는 사역자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선교지에서든,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훈련받으면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과학 사역은 하나님의 도구이지 그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진화론과 같은 사상을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고전 10:4,5)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진화론을 비롯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본주의 사상은 과학적인 증거를 가지고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도 견고한 진임을 알아야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의 증거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믿음에 대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의 믿음을 공고하게 해주고, 복음의 목적을 분명하게 해주고, 선교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지만, 이런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 뿐이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전 10:4,5) 

모든 하나님의 사역이 그렇듯이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는 창조과학 사역도 지식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만이 그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고, 헛된 사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창조과학 사역자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바울의 해박한 지식으로 위대한 서신서가 태어났지만,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던 바울처럼 창조과학자들과 사역자들은 창조과학 지식을 발전시키면서 항상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이길 소망한다.

미디어위원회
2016-09-15

진화론이 신학에 미친 영향 

(The Influence of Evolutionism on Theology)

박창성  

요약

    1859년에 등장한 다윈(Darwin)의 진화론은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현재까지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처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은 것은, 창조를 신앙의 기초로 하고 있는 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신학자들이 진화론을 보는 시각에 따라, 성경관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다양한 신학 사조로 나뉘게 되었다. 현재 기독교가 여러 교파로 분열된 중요한 원인중 하나는 진화론의 영향에 의한 신학의 차이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가 하나로 연합하기 위해서는, 분열을 일으키고 믿음을 약화시킨 공동의 적이 진화론이라는 것을 깨닫고 바르게 대처함으로써, 믿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Darwin's theory of evolution, called as a revolution, has influenced significantly on every fields since appeared in 1859. Among them, Christianity has been most seriously influenced because its foundation is creation. According to theologians' view on evolutionism, their views of the Bible were varied, and then their theology were varied. One of the important reasons, why Christianity is divided into many sects, is the theological difference caused by evolutionism. Therefore, in order to unite churches into one, their beliefs should be one by acknowledging that evolutionism is their common enemy and responding correctly to it.   

 

I. 서론

현재 기독교는 한 분이신 하나님과 그 분께서 주신 같은 성경을 믿으면서도, 믿음이 같지 않고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신학의 차이로 교회가 분열되고 반목함으로써, 주 안에서 화합하고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단합된 공동체로서 사회에 대한 영향이 미약하며,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교회가 쇠퇴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 원인의 중심에는 진화론이 있다. 진화론은 기독교 내부로 깊숙이 들어와 믿음을 약화시키고 분열시켰으며, 선교하는데 있어서도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진화론이 우리의 적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본 논문에서는 진화론이 신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고찰하고, 그 결과에 대한 부정적 요소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과학과 신학의 관계

1. 일반계시(General Revelation)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세계, 즉 자연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는 것이 일반계시이다 (시 19:1, 롬 1:19-20). 따라서 피조물의 세계를 연구하는 것이 과학이므로, 바른 과학은 당연히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창조의 섭리를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자연계시를 잘 깨닫지 못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롬 1:21-23). 자연계시는 불완전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보조적 역할을 할 뿐이며, 항상 특별계시인 성경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2. 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

더욱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참 하나님과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 특별계시이며, 그 특별계시를 인간을 통해서 책으로 기록하게 하신 것이 성경이다.

비록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기계적으로 직접 받아 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성경 저자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재능과 특성을 사용하셔서,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을 것이다(딤후 3:15-17). 모든 성경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라면, 성경은 신학과 윤리뿐만 아니라, 과학과 역사, 모든 면에서 오류가 없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말씀으로서 진리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며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그림 1.  과학과 신학의 관계 

     
3.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관계

1)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는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

피조물의 세계인 자연을 통해 일반계시를 먼저 깨닫고, 성경을 읽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성경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게 된다. 또, 성경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자연을 바라보면 일반계시를 더욱 쉽게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함께 깨닫도록 해야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있다.

2)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창조주 하나님 한 분께서 우주 만물을 지으셨고, 성경 66권의 원저자도 하나님 한 분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다(말라기 3:6). 따라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는 전체적으로 서로 모순됨이 없이 일관성(Coherence)이 있어야 하고, 과학과 신학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보완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 때문에 자연을 잘못 이해한 과학이론이 나오거나 성경을 잘못 해석하였을 때, 일시적으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고, 과학과 신학이 갈등을 겪게 된다.

 

III. 진화론이 등장하기 전의 과학과 신학

19세기 초까지 과학,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던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과학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성경에 대한 의심과 비판이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나, 19세기 초 1830년대 까지는 비교적 과학과 신학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1. 격변설과 창조론 (Catastrophism and Creationism)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주와 지구상의 생명체들을 창조하셨고, 대륙을 덮고 있는 대부분의 지층과 화석들은 지구전체가 물로 덮인 격변(노아의 홍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었다.

2. 정통 신학(Orthodox Theology)의 성경관

대부분의 성경 주석가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학과 윤리뿐만 아니라, 역사에 있어서도 오류가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 도표에서 보는바와 같이,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창세기 1-11장은 약 6,000년 전에 이루어진 창조를 역사적 사건으로 기술한 것이며, 창조의 '날”은 24시간의 하루이고,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적인 홍수(global flood)라고 믿었다.

소수의 주석가는 창조주간의 '날”을 지질시대로 해석하여 오래 전에 창조된 늙은 지구로 생각하거나, 노아의 홍수가 신화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에 의해 영감되었으며, 오류가 없고, 역사적으로도 신뢰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도표 1.  성경 주석 비교

(위 도표는 Mortenson, The Great Turning Point, 46p 에서 부분 인용한 것임)

1)'ages ago' 는 지질학적인 오랜 시대 전에 창조되었다는 의미이다.
2)'Day 1'은 창세기 1:1이 6일 창조 중에서 첫째 날의 창조에 해당한다는 뜻이고, ”summary'는 창조주간 전체를 요약해서 한꺼번에 표현한 구절이라는 뜻이다. 'nc'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3)'24 hr'은 창조주간의 ”날'이 24시간의 하루라는 뜻이고, ”ages'는 지질시대와 같은 긴 기간을 의미한다.
4)'global'은 노아의 홍수가 지구 전체가 물로 덮인 전 지구적 홍수라는 뜻이고, ”myth'는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 아니라 신화를 기록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IV. 동일과정설과 다윈의 진화론 등장

1830년대에 들어서서 과학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오류가 없다고 믿어 오던 성경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과학적 주장들이 등장한 것이다.

지질학자 라이엘(Lyell)이 1830년부터 1833년 사이에 ‘지질학 원리 (Principles of Geology)’라는 3권의 책을 출판하여 동일과정설 (uniformitarianism)을 주장하였다. 이 가설은 대륙에 쌓여 있는 지층과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생물의 화석들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작은 규모의 지질현상들이 오랜 세월 동안 느린 속도로 진행되어온 결과라고 해석하는 이론이다. 이것은 그 때까지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에 의해서 짧은 시간동안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석해왔던 격변설(catastrophism)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동일과정설이 다윈에게 용기를 주었다. 다윈은 격변설 때문에 지구의 역사에서 하등동물로부터 고등동물로 진화하는데 필요한 긴 시간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두꺼운 퇴적층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쌓여진 것이라면, 생물이 진화하기에 충분한 기간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남미의 갈라파고스 섬을 여행하면서, 동일과정설과 자신의 진화 가설을 확신하고 돌아와, 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판하여 진화론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이다.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이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를 부정하는 지질학의 진화론이라면, 다윈의 이론은 생물의 창조를 부정하는 생물학의 진화론이다. 과거에도 현재와 동일한 지질학적인 사건이 되풀이 되었을 것이라는 동일과정설의 주장은 실제로 관찰한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사고에서 나온 가정이다.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도 같은 종(species)내에서 일어나는 변이(variation)만을 목격한 후,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그와 같은 변이가 오랜 세월 누적되어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로 진화(evolution)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 가설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진화론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반박할 만큼 유전학과 같은 과학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고, 이 당시의 특수한 사회적 상황 때문에 진화론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퍼져나가게 되었다.

 

V. 기독교계의 반응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초가 되는 창조를 부인하는 진화론이 널리 퍼지게 되자, 과연 기독교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독교 진영에서는 이 진화론에 대해서,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반응이 나왔다.

첫째, 진화론을 잘못된 이론으로 간주하고, 성경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오던 성경에 대한 정통적인 신앙을 지켰다.

둘째, 성경과 진화론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여 조화를 이루려는 방향으로 타협하였다.

셋째, 진화론을 과학적 진리라고 생각하여, 정통적인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신앙을 추구하였다.

 

VI. 창세기 해석의 변질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성경의 진실성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직접적인 도전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은, 창조와 노아의 홍수, 바벨탑 사건에 대한 기록이 포함된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내용이다. 진화론이 타당성 있는 과학이론이라고 생각한 신학자들은 진화론의 공격으로부터 창세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주로 믿어오던 것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게 되었다.

 

1. 유신론적 진화론 (Theistic Evolutionism)

우선 성경과 진화론의 충돌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님께서 최초의 생물을 창조하신 후, 진화의 방법을 통해서 여러 종류의 생물들을 만드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을 유신론적 진화론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전향하였다.

이 이론을 주장한 사람들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주간의 내용이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여 절충한 것이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 성경의 기록은 진화론의 주장과 다르다. 성경에는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변형하여 만드셨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고, 언제나 각 생물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음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2) 진화론은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속성과 맞지 않는다. 진화론의 핵심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다. 하나님께서 싸움을 시켜서 약한 자를 없애고 강한 자를 남게 하는 잔인한 방법으로 생물들을 만드셨을 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불쌍하고 세상에서 버림받는 자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기꺼이 이 땅에 오셔서 희생당하셨다.

(3) 진화론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맞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생물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두 알고 계시며,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왜 오랜 세월이 걸리고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불확실한 방법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생물들을 만드시겠는가?

성경을 방어하기 위해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타협한 것은, 사실상 실질적인 내용은 진화론이 차지하고 하나님을 명목상의 창조주로 전락시킨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신론적 진화론은 현재까지 가톨릭의 공식적인 견해가 되어있고, 개신교에도 널리 퍼져있다.

 

2. 날-시대이론 (Day-Age Theory)

동일과정설이 나온 이후, 지구의 나이를 매우 오래된 것으로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자,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날'(day)을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고생대, 중생대와 같은 지질학적 '시대'(age)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바꾸어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날'을 지질시대로 볼 수 있는 성경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질시대로 해석한다고 해서, 진화론과 같은 내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 창세기의 내용은 연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진화론의 주장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 창세기에서의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여진 히브리어의 'yom'은 24시간의 '하루' 이외에 정해지지 않은 기간(indefinite time)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전후 문장을 살펴보면 어느 의미인지 매우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히브리어 문법상 하나, 둘 ,셋, 혹은 첫째, 둘째, 셋째와 같은 수를 세는 단어가 앞에 나오는 경우는 예외 없이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한다. 만약 '날'이 긴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라고 날이 바뀌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 출애굽기 20:11에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것을 명하시면서 ”이는 엿새(six days) 동안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고 직접 하신 말씀이 기록 되어있다. 만약 '날'이 지질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6억 년 동안 일하고 1억 년 동안 쉬라는 말씀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7일마다 주일을 지키고 있는가?

(3) '날'을 지질시대로 바꾸어서 해석하는 것은 진화론에서 수십억 년이라고 주장하는 지구의 역사에 성경을 맞추어 보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동물과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일이 반복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데, 이것은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성경 말씀과는 달리 죽음, 질병, 고통을 아담과 하와의 범죄와 타락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다고 말함으로써 복음의 기초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다.

아담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었으며, 그가 범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기 전에는 인간에게 육체적 죽음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롬 5:12, 고전 15:45). 인간에게 내려진 육체의 죽음 대신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만약 원래부터 인간이 육체적으로 죽도록 창조된 것이라면,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가?

 

3. 간격 이론 (Gap Theory)

오래된 지구의 나이에 성경의 연대를 맞추는 방법으로, 6일 창조주간의 길이를 늘이려고 한 것이 날-시대 이론이라면, 창조주간의 앞에 긴 시간을 두려고 한 것이 간격이론이다. 

간격이론의 주장은 창세기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사탄이 반란을 일으키자 하나님께서 큰 홍수(Lucifer's flood)를 일으켜 전 지구의 생명체를 멸하셨고, 그 때문에 2절에서 지구는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으며, 3절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창조하셨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는 수십억 년의 지질학적 시간 간격이 있기 때문에, 성경상의 지구의 역사는 매우 긴 것이어서 현대 과학에 비추어 볼 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층 속에서 발견되는 많은 화석들은 노아의 홍수 때문이 아니라, 1절과 2절 사이에 일어난 Lucifer의 홍수로 인해서 죽은 생물들의 잔해라고 생각한다.

간격이론의 골자는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생물들을 멸하시고 다시 창조하셨다는 것인데,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다

(1)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6일 동안 지으셨다는 성경말씀과 모순된다. 출애굽기 20:11에서는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을 6일 동안 지으셨다고 명백하게 말씀하셨는데, 그 긴 간격을 어디에 넣을 수 있겠는가?

(2) 2절의 ”혼돈하고 공허하며”는 무질서하고 폐허가 된 상태(chaotic and ruined)라고 해석하는 것보다는, 형태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고 아직 생명체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비어있는 상태(unformed and uninhabited)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3) 날-시대 이론과 마찬가지로, 죽음, 질병, 고통을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다고 말함으로써 복음의 기초를 무너뜨린다.

(4) 간격이론은 노아 홍수의 증거를 없애버림으로써 의미를 약화시킨다. 만약 화석이 Lucifer의 홍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노아의 홍수는 무슨 일을 한 것인가? 간격이론은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지도 않는 Lucifer의 홍수를 전 지구적인 홍수로 가정하고, 노아의 홍수를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홍수로 격하시킴으로써 노아의 홍수가 지닌 앞으로 오게 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로서의 귀중한 의미를 약화시킨다(벧후 3:2-14).

 

4. 창조와 노아의 홍수를 신화로 해석

이라크의 니느웨(Nineveh) 유적지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를 서사시 형태로 기록한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1849년에 발견된 에누마 엘리시(Enuma Elish) 서사시는 창조에 대해서, 1853년에 발견된 길가메시(Gilgamesh) 서사시는 홍수에 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서사시들에 기록된 내용이 창세기의 창조와 노아의 홍수에 대한 내용과 유사점이 많고, 창세기가 기록된 시기보다 앞선 유물이라고 보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퍼져있던 신화를 차용하여 창세기에 기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게 되었다. 말하자면, 창세기의 창조와 노아의 홍수에 대한 기록은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사점이 많고 기록된 시대가 앞섰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성경이 그 신화들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세히 비교해 보면, 성경과 매우 다른 부분도 많고, 창세기의 내용은 역사적, 지질학적 증거가 뒷받침되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반면에, 서사시의 기록들은 주로 이치에 맞지 않거나 비과학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나라들에서 창세기의 창조, 노아의 홍수와 유사한 신화가 발견되는 것은, 오히려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노아의 후손들이 바벨탑 사건 이후 전 세계로 흩어져 살게 되었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가 구전되어 왔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사실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기록된 성경을 갖게 되었지만, 이방지역에서는 그들의 문화에 맞는 신화로 각각 변질되어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표 2.  진화론의 등장 전, 후의 창세기 해석 비교  


VII. 성경관의 변질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신론적 진화론, 날-시대 이론, 간격 이론을 주장하고 창세기의 기록을 신화로 해석한 것은, 성경적 근거로 판단하기보다는 진화론에 맞추어 창세기를 왜곡 해석한 것이다. 이와 같이 진화론의 공격에 믿음을 잃고 타협하자, 성경에 대한 불신은 필연적으로 성경 전체에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다.

벨하우젠 (Wellhausen, 1844-1918)은 모세오경이 서로 다른 저자들이 기록한 네 개의 문서를 후대의 유대인들이 편집하여 만든 것이라는 문서설을 주장하여, 성경의 기원으로서 하나님의 영감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불트만(Bultmann, 1884-1976)은 복음서에 옛날 사람들의 세계관에서 나온 신화가 많기 때문에, 신화를 벗겨내고 현대인들에게 맞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수님의 동정녀탄생, 부활, 승천, 기적을 행하신 일들을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로 간주하였다.

이처럼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에 대한 믿음이 전체적으로 흔들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정통적인 성경관에서 변질된 성경관이 나오게 되고, 그에 따라 여러 갈래의 신학 사조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VIII. 신학 사조의 분화

진화론을 과학적 진리로 여기고 수용하여, 성경을 진화론에 맞추어 다시 해석함으로써, 이제까지 믿어 오던 정통 신앙과는 전혀 다른 신앙을 만든 것이 자유주의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미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 1768-1834)로부터 시작하였으나, 진화론이 등장한 이후 리츨(Ritschl, 1822-1889), 등에 의해 계승되어, 20세기 초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성경보다 우위에 놓고 비평하는 인본주의 신학이다. 성경의 권위보다는 그리스도가 직접 말씀하신 교훈에만 권위를 두고, 성경에 계시된 사건들의 객관적 역사성을 부정한다.

이와 같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나오게 된 신학이 유럽의 신정통주의와 미국의 근본주의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1차 대전을 기점으로하여 쇠퇴하였으나, 아직도 기독교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신학사조들의 성경관을 비교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정통 복음주의 (Orthodox Evangelicalism)5)

정통 복음주의는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종교개혁가들이 지켜온 정통 보수신앙이다. 정통 복음주의는 성경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완전 영감되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며, 오류가 없는 궁극적인 권위로 생각한다.

5) 복음주의라는 용어는 자유주의에 대하여 강경한 근본주의와 비교적 온건한 신자유주의를 포함하는 폭넓은 의미로 흔히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경의 완전 영감과 무오성을 믿는 정통 보수 신학으로 정의하였다.

2. 자유주의 (Liberalism)

자유주의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의 진실성을 부정하였다. 창조, 노아의 홍수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부활, 기적을 행하신 것까지도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성경의 완전 영감과 무오성을 부정하였다. 성경의 일부만 하나님의 말씀이고, 나머지는 사람의 글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내용을 기록한 부분은 영감을 받았지만, 역사나 과학적인 현상에 대해서 기록한 것은 영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점은 영감 받은 부분과 영감 받지 않은 부분을 가려내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람이 성경보다 우위에 서서 믿을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판단하게 된다는 점이다. 간단한 역사적, 과학적 사실조차도 실수를 포함하여 기록한다면, 누가 나머지 영적 문제를 다룬 글들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3. 신정통주의 (Neo-orthodoxy)

바르트(Barth, 1886–1968)에 의해서 시작된 신정통주의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고,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의 진실성을 부정한다. 그리고 신정통주의는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체이지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는 아니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만나면, 그 때서야 비로소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중간 역할을 할 뿐, 그 자체로는 오류가 포함될 수 있는 사람의 책이라고 보는 것이다. 독자가 감동을 받아야 영감을 받은 책이 된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영감을 받은 책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한낱 사람이 쓴 책에 불과할 것 아닌가? 객관적인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신정통주의의 계시개념은 비성경적이다.

도표 3.  신학사조와 성경관의 비교 

 

IX. 기독론, 구원론, 다른 종교에 대한 입장의 차이

창세기는 복음의 기초가 되는 창조, 인간의 범죄, 타락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따라서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역사적 사실로 믿지 않는 자유주의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구원론에 있어서 정통 복음주의 신앙과 큰 차이가 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종교에 대한 견해에도 큰 차이가 있다. 성경의 역사적 진실성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자유주의는, 철학화 되었거나 실재(reality)와 연결되지 못한 관념적인 종교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다른 종교에 대해서 포용적, 혹은 다원주의적인 견해를 가지게 된다. 

1. 복음주의

아담 하와의 원죄와 인류의 타락,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을 믿는다. 창조주이시면서 인간이 되신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죄를 용서받고, 그를 구주로 믿음으로써 영생에 이르는 구원을 얻게 된다. 성도들의 영적 변화와 개인의 영혼 구원을 위한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수님만이 참 진리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믿는다. 다른 종교는 진리를 바로 찾지 못하고 길을 잘못 들어선 것으로 보고, 선교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2. 자유주의

아담과 하와의 원죄와 인류의 타락을 부정하므로,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도 부정한다. 내세보다는 현재의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다. 예수님께서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억눌린 자를 위해서 오셨다고 믿기 때문에, 사회의 정의가 실현되고, 변화되는 것을 구원으로 본다. 따라서 개인의 영혼 구원을 위한 선교보다, 가난한 자, 약한 자, 억압받는 자를 위한 사회 구원에 더 관심이 많다.

예수님의 성육신, 동정녀 탄생, 부활을 부정하고, 그 대신 인성을 강조한다. 기독교를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로 보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포용하거나 다른 종교에도 구원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를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로, 예수님을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대등하게 생각하는 것은 창조에 대한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어떻게 대등할 수 있는가?   

 

X. 교회의 분열과 쇠퇴

1. 교회의 분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화론의 영향으로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신앙과 실천하는 방법에 있어서 스펙트럼처럼 여러 갈래로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사실상 정통 복음주의와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같이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같은 신학적 견해를 가진 교회들 끼리 교파를 이루어 분열된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성경의 가르침 중에서 강조하는 부분과 특성에 따라 교단을 이루었지만, 그 후 각 교단들이 분열한 원인들 중에는 신학적 차이가 중요한 문제로 작용하였다.  

1929년 미국 프린스톤 신학대학과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의 분열, 1953년 한국 예수교 장로회와 기독교 장로회의 분열, 1959년 예수교 장로회가 합동측과 통합측으로 나누어진 것은 신학의 차이로 분열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현재도 미국은 동성애에 관한 문제로 교단이 분열되고 있으며, 한국은 WCC(세계교회협의회) 문제로 교단간의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이와 같이 분열된 교단, 교파간의 반목과 갈등은 기독교의 연합을 해치게 되고, 사회에 대한 복음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반기독교 정서를 불러일으켜서 선교에도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교회의 쇠퇴

현재 세계적으로 볼 때, 많은 나라들의 교회가 쇠퇴하고 있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이 성행했던 유럽의 교회들은 대부분 쇠퇴하였다. 영국은 반세기 전만해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교회를 다녔는데, 이제는 5% 이하로 줄어들었다. 세계 제일의 선교국인 미국조차 급속도로 세속화 되어 오히려 선교지로 변하고 있으며, 한창 급속도로 부흥하던 한국 교회도 정체내지 쇠퇴기를 맞고 있다.

이렇게 교회가 쇠퇴하게 된 원인의 중심에는 진화론이 있다. 기독교 여론조사 기관인 Barna Group 의 최근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교회를 다니던 자녀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집을 떠나면, 그들 중 70%가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진화론 교육으로 성경을 의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Barna Group의 또 다른 통계에 의하면, 복음주의 교회를 다니는 개신교인의 8% 만이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더욱 놀라운 것은 목회자는 51% 만이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6) 이와 같은 통계들은 교회가 쇠퇴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진화론은 성경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키고 복음을 파괴한다. 교회가 진화론과 타협한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게 되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잘 말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교회는 쇠퇴하고, 성경의 권위를 믿는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6) The Barna Group, Most Adults Feel Accepted by God, But Lack a Biblical Worldview, August 9, 2005

https://www.barna.com/research/most-adults-feel-accepted-by-god-but-lack-a-biblical-worldview/

 

XI. 결론

진리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는 서로 일치한다. 피조물의 세계인 자연은 성경에 계시된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과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이 서로 반목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진화론 때문이다.

진화론은 참된 과학이 아니라, 인간이 영적으로 어리석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려는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계시를 왜곡하여 해석한 잘못된 과학 이론이다. 생물은 자연 발생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진화했다는 화석상의 증거가 없다. 더구나 DNA에 저장되어 있는 정교하게 설계된 정보가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는 한, 진화론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 가설로 시작된 진화론이 정설로 입증도 되기 전에 널리 퍼져서, 학문적 기득권을 누리고 있지만, 언젠가 붕괴될 날이 올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과 타협한 성경해석과 진화론을 수용한 자유주의 신학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정죄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모두 진화론의 피해자들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들도 처음부터 악의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서 진화론에 맞춘 신학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로 자신들의 신앙이 옳다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진화론이 우리 모두의 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진화론이 기독교 안에 깊숙이 들어와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분열하게 만든 것이다. 다시 연합하려면, 성경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바른 신앙으로 돌아와야 한다. 믿음이 각자 다르면서, 교회의 일치를 주장하는 것은 공허한 이야기일 뿐이다.

모든 성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거짓과학인 진화론의 도전에 담대히 맞서서, 하나님의  창조와 그 분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에 대한 믿음을 견고하게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주안에서 한 마음, 한 믿음이 되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함으로써, 교회를 부흥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1) Davis, Percival and Dean H. Kenyon. Of Pandas and People: The Central Question of Biological Origins. Dallas, TX: Haughton Publishing Co., 1993.
(2) Elwell, Walter A.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 2nd ed.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1.
(3) Erickson, Millard J. Christian Theology.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85.
(4) Hiebert, Paul G. 'Cultural Differences and the Communication of the Gospel” in Perspectives on the World Christian Movement. Pasadena, CA: William Carey Library, 1999.
(5) Morris Henry M. and John D. Morris. The Modern Creation Trilogy Vol. 1. Scripture and Creation. 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7.
(6) ________. The Modern Creation Trilogy Vol. 2. Science and Creation. 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7.
________. The Long War against God. Grandrapids, MI: Baker Books, 1989.
(7) Mortenson, Terry. The Great Turning Point.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2004.
(8) 목창균, 현대 신학 논쟁. 서울: 두란노, 1995.


출처 - 2012. 국제학술대회

미디어위원회
2016-09-14

무신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

: 기독교 세뇌한다고 자녀를 빼앗겼던 노르웨이의 부부

권혁상 


       2015년 11월 중순, 노르웨이 나우스트달(Naustdal, 주민 1,100여명)에서 살고 있는 마리우스 보드나리우(Marius Bodnariu) 가족에게 일어난 악몽과 같은 끔직한 사건은 진화론 즉 무신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기독교인이 당할 수 있는 고통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어떠할지를 보여주는 예고편 같은 사건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편 마리우스는 시장 집무실의 IT 엔지니어로, 그리고 아내 룻 보드나리우(Ruth Bodnariu)는 지방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는 기독교인 부부로, 생후 3개월 된 아이부터 중학교 재학 중인 장녀까지 3남2녀를 양육하고 있는 행복한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루마니아의 한 기독교 자선 센터에서 만나, 불우한 아이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복음전하는 사역을 하다가 결혼하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려고, 아내 룻의 고국인 노르웨이의 소도시 나우스트달로 이주하여 약 10여 년째 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중학교 다니는 장녀가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중 ”하나님이 죄를 벌하신다”고 말하는 것을 옆에서 들은 교장선생님이 그 학생이 ”광신적인 기독교인 부모로부터 기독교 세뇌적인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우려하여, 아동복지기관인 '바르네베르넷(Barnevernet)”에 신고하면서 벌어졌다. 바르네베르넷은 학교에 있는 두 딸을 데려가 여러 유도 질문을 하면서 부모들에게 맞은 적이 있냐고 물었고, 딸들은 그들이 잘못하면 부모가 손바닥으로 등이나 머리를 때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바르네베르넷은 경찰과 함께 집에 있던 두 아이를 그 부모로부터 빼앗아갔고, 그 다음 날(11월 17)에는 생후 3개월 된 아들까지 빼앗아갔다. 그리고 그 부모는 자녀에게 신체적 학대를 했다는 이유로 자녀양육권을 빼앗겼다. 5남매들은 양육을 위탁 받은 3가정으로 나뉘어 보내진 후, 생후 3개월 된 아들은 한 주에 2번, 두 아이들은 한 주에 한 번 방문이 허락되었고, 장녀와 차녀는 아예 부모와 만남을 차단하였다.

남편 마리우스의 동생 다니엘에 따르면, ”형과 형수는 보통의 기독교인 부부로서 결코 자녀들을 학대한 적이 없고, 잘못하면 약한 체벌만 가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바르네베르넷은 자녀들을 병원에 데려가 물리적으로 학대 받은 증거를 찾으려고, 피부검사, CT 촬영 등을 했지만, 그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 바르네베르넷은 자녀들을 빼앗아가는 과정에서 그 부모들에게 확인도, 설명도 하지 않았고, 그 이웃 사람들에게 보드나리우 부부에 대한 인터뷰 조사도 하지 않았다.

자녀를 돌려 달라는 탄원이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수차례 거부되자, 보드나리우 부부는 그들의 억울한 내용을 인터넷 (http://bodnariufamily.org/)에 올려 세상에 알렸고, 이를 알게 된 기독교인들이 루마니아, 미국, 캐나다, 스페인의 노르웨이 대사관 앞에서 항의 데모를 지속적으로 벌여, 결국 사건 발생 7개월 후인 2017년 6월 14일, 바르네베르넷은 다섯 자녀들을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자녀들을 돌려받았지만, 보드나리우 부부는 지역 경찰과 아동복지기관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감시를 받고 있다. 현재 보드나리우 부부는 가족의 치유와 평화를 찾아 루마니아로 이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루터교가 국가종교로, 명목상으로 인구의 83%가 기독교로 분류되어, 왕 즉위식, 결혼, 장례, 세례가 루터교 의식으로 진행되는 나라다. 그러나 최근(2010년) 조사에 따르면,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슬람 포함)은 22%에 불과할 정도로 대부분은 무신론자다.

왜 기독교 국가인 노르웨이가 참 기독교인이 급격히 줄어, 인구의 약 80%가 무신론자가 되었을까? 이는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비슷한데, 100여 년 전부터 진화론을 학교에서 교육한 후 벌어진 일이다.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고 무신론자들의 믿음에 불과한데, 이를 과학인 것으로 공교육에서 가르친 결과, 무신론자들이 양산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나치 정부의 홍보 장관인 괴벨스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의심받지만 자주, 오랫동안, 크게 말하면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는 거짓의 진화론도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과학시간에 지속적으로 배우게 되면, 진화론을 과학으로 믿게 되고, 결국 무신론자가 될 수밖에 없다.

보드나리우 가족의 장녀가 재학 중인 중학교 교장선생님도 진화론의 피해자로서 ”하나님이 죄를 벌하신다”고 무심코 이야기한 장녀의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교장 본인은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믿고 있는데, 어린 학생(장녀)이 1)하나님은 계시며, 2)그 하나님이 죄를 지으면 벌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무신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녀가 이단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으로 보았고, 그 주범이 장녀의 기독교인 부모로 판단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신고를 받은 아동복지기관, 즉 바르네베르넷 직원이나 지역 경찰, 법원 판사 등 모두 교장선생님과 같이 무신론자 입장에서 이 사건을 처리한 점이다. 이들에게는 부모가 자녀들의 나쁜 행실을 바로 잡기 위해 손바닥으로 머리나 등을 때린 것을 아동학대로 간주한 반면, 보드나리우 부부는 성경 말씀대로 자녀의 올바른 행실을 위해 자녀들의 적절한 체벌은 사랑의 매(회초리)로 본 것이다 ;

”회초리를 아끼는 자는 자기 아들을 미워하거니와 그를 사랑하는 자는 어릴 때에 그를 징계하느니라” (KJV 잠 13:24).

”그(자녀)를 회초리로 때려서 그의 혼을 지옥에서 건질지니라” (KJV 잠 23:14).

미국은 25개 주에서 과학시간에 진화론과 창조론을 균형 있게 가르쳐, 학생들에게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일한 비중으로 과학교육에 반영하여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국내 교회를 비롯한 기독교계에서 사이비 이단 종교에 대하여는 크게 경계하지만, 공교육에서 무신론자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진화론 교육에 관대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배운 진화론으로 무장된 학생들이라도 창조과학 사역자들이 진행하는 1시간의 창조과학 강의를 듣고 대부분 진화론이 잘못된 것을 깨닫는 점이다. 기독교계가 진화론 교육에 무관심 하는 한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무신론자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 성경은 불법서적으로, 그리고 참 기독교인들은 마치 사이비 이단 광신자로 취급 받는 세상, 즉 보드나리우 가족이 경험한 무서운 세상이 올 것이다.

 

*관련기사 : ”다섯 아이를 뺏겼어요!” 기독교인 부모의 눈물…전세계 항의시위 (2015. 12. 30.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206859&code=61221111&sid1=mis&sid2=0010

노르웨이 정부, ”하나님께서 죄 벌하신다” 는 가정교육 이유로 자녀 양육권 박탈하고 입양 추진(2016. 1. 4. 목장드림뉴스)
http://www.p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7

‘기독교 세뇌’한다고 자녀 빼앗긴 노르웨이 부모, 양육권 회복 (2016. 6. 8. 복음기도신문)
http://gnpnews.org/archives/20697?ckattempt=1

출처 - 대전지부 소식지 GooD 42호

미디어위원회
2016-06-03

과학 발전의 기초가 됐었던 신학 

(How Theology Informs Science)

by Jake Hebert, Ph.D.


      한때 '신학(theology)'은 학문의 여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성경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증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학을 무의미한 연구 분야로 간주하고 있다. 결론은 이것이다. 만약 성경이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진 신화나 오류투성이의 책이라면, 그것을 연구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라는 것이다. 명백한 것은,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시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일 때, 그 말씀에 대한 연구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무신론자들과 성경 비판론자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은 물리, 화학, 수학과 같은 '진정한' 학문과 같지 않게, 인간의 지식에 의미있는 기여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이며 무신론자인 로렌스 크라우스(Lawrence Krauss)는 이렇게 말했다 :

정말로 나는 과학의 여명기부터 적어도 지난 오백 년 동안, 신학(theology)이 지식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전제를 반박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보라고 여러 신학자에게 도전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거기에 대해 반증 사례를 제시한 신학자는 없었다.[1]

이러한 주장과는 달리, 반증 사례가 존재한다. 성경에 기초한 신학은 좋으며, 우리의 창조주와 올바른 관계를 갖는 데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기여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그 기여는 미세하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은 놀랍도록 직접적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과학을 가능하도록 만든다.[2] 과학은 관측에 의존하기 때문에, 감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공되는 이 세계에 대한 정보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과학적 연구는 무의미하다. 당신이 관측하고 있는 것이 정말로 사실인지 아닌지,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 당신의 뇌가 당신이 보고 있거나 듣고 있는 정보들을 전기적 자극으로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어떻게 아는가? 하나님은 신실하고 진실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 세계에 대한 정보가 감각(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주신)을 통해서 일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고 예상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우주가 질서 있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비교적 드문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고) 행동할 것을 예상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고린도전서 14:33)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신학은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 중 하나인 ‘에너지보존 법칙’과 같은 것을 발견하는 데에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직관적으로, 우리는 뭔가가 일어날 수 있게 하는 능력으로 에너지를 생각한다. 이 법칙은 어떤 에너지가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변환될 수는 있지만, 에너지 자체가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제임스 주울(James Joule)은 1파운드의 물을 화씨 1도 상승시키는 데에 필요한 마찰의 양은 동일한 량의 기계적 작업 772 foot-pounds의 결과와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에너지보존 법칙의 공식에 있어서 한 중요한 스텝이었다. 그의 발견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서, 물리학자들은 에너지 단위에 줄(joule)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주울의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그의 신학에 의해 동기 부여를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3]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주울은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창조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으시다는 자신의 신념을 밝혔었다 :

내가 확인한 것은 소멸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창조주에게 속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론이 수행될 때 힘(오늘날 ‘에너지’로 말해지는)의 소멸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잘못된 것이다.[4]

그래서 크라우스의 주장과는 다르게, 신학(세속 과학과 타협한 신학이 아닌, 좋은 신학)은 자연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5] 예수님은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태복음 7:18) 라고 말씀하셨다. 기독교 세계관이 현대 과학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현대의 시대에 신학의 사용으로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추가적 증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 모두에서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References

1.Krauss, L. 2012. A Universe from Nothing. New York: Free Press, 144.
2.Lisle, J. 2009. The Ultimate Proof of Creation.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3.Weisstein, E. W. Joule, James (1818-1889)Wolfram Research. Posted on scienceworld.com, accessed March 7, 2016.
4.James Prescott Joule. New World Encyclopedia. Posted on newworldencyclopedia.org, accessed March 7, 2016.
5.It is ironic that Krauss (reference 1) attempts to find loopholes in conservation of energy so that a universe can come into existence without the need for a Creator. One can only wonder what Joule would have thought of this.

* Dr. Hebert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receiv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Cite this article: Jake Hebert, Ph.D. 2016. How Theology Informs Science. Acts & Facts. 45 (5).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9293

출처 - ICR, Acts & Facts. 45 (5). 2016.

이은일
2016-04-21

과학의 날을 맞이하여, 창조론 교육 이대로 좋은가?


      과학의 날은 원래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의 기일인 4월 19일에 행사가 진행되었다가, 4.19 혁명일과 겹쳐져서 1969년부터 우리나라 과학기술처 개청일인 4월 21일로 옮겨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학의 날을 우리나라에서 기념하고 있는 것은 과학발전이 국가발전과 직결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감하지만, 문제는 기원과학으로서 진화론만을 과학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는 종교적 주장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기원과학으로 진화론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창조과학회는 1981년 창립된 이후 기원과학으로서 창조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창립된 해에는 거의 1년 내내 전국의 교회에서 창조과학 세미나 요청이 쇄도하였던 것처럼, 성경말씀대로의 창조가 진화론보다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세미나를 한국교회 성도들은 진심으로 환영하였습니다. 지난 35년동안 창조과학회는 우리나라 창조론 교육의 중심에서 창조신앙 강화를 위한 역할을 충성되게 감당하며 그 결과 한국 기독교계에서 과분한 칭찬과 지지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교계의 지지는 점차 약해지고 창조과학회를 공격하는 목소리들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창조과학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져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는 비판이고, 둘째는 근본주의 또는 문자주의라는 비판입니다. 셋째는 창조과학회에서 주장하는 창조에 대한 내용자체가 틀렸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의 배후에는 과학적인 진화론을 인정하는 것이 기독교 지성이라고 주장하는 유신진화론자들이 있습니다. 창조과학회는 이 세 가지 비판과 공격에 대하여 지혜롭게 대응하고 답변해야 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창조신앙과 창조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는 창조신앙을 강화하고 회복하기 위한 창조 교육에 있어서 창조과학회가 그 중심 역할을 계속 감당하여야 하는가? 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도래하였기 때문입니다.
 

본 론

1. 창조론 교육은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를 강조해야한다.

창조과학이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은 오해 그 자체입니다. 과학 자체가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에 의한 질서를 연구하는 것뿐이지, 창조 자체를 관찰하거나 증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변증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알고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창조과학세미나에서 창조를 변증하는 방식은 주로 창조와 진화 두 가지 이론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진화론이 주장하는 물질의 진화와 물질로부터의 생명체 탄생이 우연과 오랜 시간이라는 비과학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을 합니다. 정교한 우주와 생명체의 설계가 우연의 결과라는 주장은 너무나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체의 설계도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새로운 설계도가 우연히 만들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이런 주장은 DNA정보 자체의 놀라운 복잡성과 정교성에 의해 거부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수많은 화석들이 과거와 현재 전혀 진화(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종류를 기준으로 새로운 종류로의 변이를 의미하는)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창조과학에서 주장하는 진화론 비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진화론이 틀렸기 때문에 창조가 맞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 자체가 믿음을 요구함을 주목해야만 합니다. 또한 창조과학은 진화론만이 유일한 과학적 해석이라는 세상의 학문과는 다른 출발선에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관찰과 추론을 통해 정립되는 것이지만, 창조과학은 성경의 기록이 진리라는 과학자들의 믿음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창조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나타난 놀라운 질서를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인 증거가 있기 때문에 창조가 지지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창조과학자들 중에 누구도 과학으로 창조를 증명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창조과학자들은 과학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칫 과학적 증거가 창조과학의 중심인 것처럼 주장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도 있습니다. 창조과학이 진화론의 허구를 드러내기 위해 과학을 다루지만, 초월적 창조는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론 교육은 과학적 증거를 수반하지만, 그 과학적 증거가 핵심이 아닙니다. 그 핵심은 초월적 창조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2. 유신진화론은 초월적 창조를 거부한다.

진화론 자체에도 수많은 주장들이 있지만 초월적 창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내에서도 언제 부터인가 초월적 창조를 거부하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창조방법이 초월적인 창조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선입견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화의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세상을 창조하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진화론은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는 과학인데, 이 진화론을 거부하는 창조과학은 기독교 지성을 망신시키는 장본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유신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이 자연주의 믿음에 기반을 둔 기원과학이라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유신진화론자들이 아닌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이 자연주의 믿음에 기반을 둔 기원과학이라는데 모두 동의하는데 말입니다. 진화론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자들은 진화론과 자연주의 믿음은 별개의 것이며, 진화이론은 순수한 과학적 탐구의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유신진화론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보다 원숭이와 같은 존재에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훨씬 이성적이며 과학적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과학적 지식이 없는 시대에 쓰여진 성경은 새로운 과학의 발전에 따라 그 주장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과학을 성경말씀보다 우위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유신진화론자들은 성경의 기록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진화론을 수용하면서도 얼마든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를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초월적 창조와 연관된 죄와 타락, 구원과 복음에 대한 내용을 송두리째 왜곡시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에서 창조과학 세미나를 대신하여 유신진화론을 새로운 창조론 교육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에 비교하여 기원과학으로서 진화론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를 안다면 유신진화론은 교회에 발붙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신진화론이 교회 내에서 지지를 획득해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상황은 신앙의 위기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다른 확인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를 믿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3. 창조론 교육은 가정과 기독교육의 현장에서 이뤄져야한다.

창조론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창조과학이 근본주의나 문자주의로 비판받으면서 영향력이 감소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을 근본주의 또는 문자주의라고 비판하는 주된 단골 메뉴는 연대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또한 많은 신학자들이 창조과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연대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창조과학회는 젊은 연대를 주장하는 분들과 젊은 연대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분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젊은 연대를 주장하는 분들의 근거는 성경의 기록입니다. 창조 6일의 하루가 24시간 하루를 의미하며, 창세기 족보에 근거하여 창조 이후의 연대들이 계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에서 정확하게 날짜까지 알 수 없는 경우를 고려하고, 족보에 빠진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성경 기록을 근거하면 우주와 지구의 연대가 1만 년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젊은 연대를 지지하는 분들은 주장합니다. 반면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그룹 또한 있습니다. 이 분들은 초월적 창조를 거부하는 빅뱅이론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우주의 연대를 1만 년 이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한편 젊은 연대를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 중에는 이런 상반된 의견이 조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성경이 지구의 시간을 기준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지목합니다. 빠른 속도로 우주여행을 하고 지구에 돌아올 때 지구에서는 이미 더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는 상대성이론의 논의처럼 지구와 우주 시간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대문제를 논의하게 되면 복잡하고 어려운 상대성이론, 빅뱅이론, 방사성동위원소 측정 등 많은 과학적 주제들을 다루게 됩니다. 창조과학자들이 이런 부분에서 학술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매우 필요합니다. 창조과학은 과학적 증거들의 진화론적 해석과 성경적 해석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하여 진화론의 공격으로부터 창조신앙을 굳게 하는 역할을 지금까지 해왔고, 또한 앞으로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창조론교육의 중심이 창조과학이 되는 것에 대하여는 이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교회 밖에서 창조신앙을 공격하는 진화론에 대처하기 위하여 창조과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 내부에 진화론을 인정하는 유신진화론이 깊게 뿌리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내에서 초월적 창조를 공격하는 유신진화론에 대처하기 위해 창조과학만으로 충분할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만 합니다.

창조과학이 창조론교육의 중심역할을 했던 것은 그만큼 창조신앙교육에서 과학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은 이제 과학 뿐 아니라, 역사와 심리학을 포함한 전 인문분야의 학문세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도 진화론만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 세상 자체가 치열한 생존경쟁이 이뤄지는 진화론적 세상이 된 것 같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창조론 교육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녀양육을 포함하여 기독교육 전반에 걸친 창조신앙 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창조과학을 배워서 창조과학자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럴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조론 교육의 핵심은 과학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하나님은 기복신앙의 대상이나, 잔인한 폭군이 아닙니다. 창조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만드시고 공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므로 마땅히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신의 피 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이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독특한 사명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누가 어린 자녀들과 청년들에게 하나님과 자신의 삶의 목적에 대하여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 역할을 위해 바로 부모님과 교사들이 세워졌습니다. 부모님과 교사들이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인지를 직접 보여줄 수 있는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정교하게 답변할 필요가 있다면 공부하면 됩니다. 아니면 창조과학 사역자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창조신앙이 크게 위협받는 이 시대입니다. 부모와 교사들이 직접 나서서 창조신앙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믿음의 기초를 세워주고,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결론

금년 과학의 날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실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발전이 마치 진화론을 정당화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학의 발전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지혜의 선물입니다. 과학을 바로 이해하고, 잘못된 진화론을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창조신앙에 기초한 자녀양육이 바르게 이뤄져야 합니다.  한국창조과학회는 35주년을 맞이하면서 기독교육과 가정교육에서 창조신앙 강화를 위한 노력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5월 26일(목)부터 28일(토)까지 창조신앙교육축제를 온누리교회 양재캠퍼스에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자녀양육을 고민하는 모든 부모들이 창조신앙 중심으로 자녀양육을 실행하여 우리나라 교육을 변화시키고, 미래를 여는 일에 한국 교회가 앞장서야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신앙의 강화는 진화론을 비판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창조신앙이 가정과 교육의 기초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홍수, 감각적인 정보 중심의 미디어 시대, 정보와 지식의 축적을 넘어서는 인공지능 시대에 창조론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함께 생각하고 기도하며 지혜를 모으고 함께 동역하는 기반이 갖춰지기 위하여 창조신앙교육축제가 준비되었습니다. 

진리를 지키는 일은 값없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게 하지 않고는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창조의 진리를 가정 가정마다 전해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창조신앙을 전하여 모든 교회가 창조신앙에 기초한 믿음이 굳건해지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이번 창조축제를 통해 교회를 통해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길 기도드립니다.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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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위원회
2016-03-30

인간 지혜의 어리석음

(The Foolishness Of Human Wisdom)

Dr. Henry M. Morris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로마서 1:22).

마태복음 5:22절에서 예수님은 이웃에 대한 행동도 심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형제에 대해 미련한 놈이라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하셨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리고 예수님도 특별한 경우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편 14:1).

하나님의 존재를 가리키는 무수한 증거들을 외면하고 애써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서, 성경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한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26). 특히 자신의 물질적 부요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2:20).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위선을 꾸짖으시면서 ”어리석은 맹인들이여”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23:17,19)

그러나 아마도 가장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모든 인본주의적 세상 지혜에 대해서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고린도전서 3:19).

그러한 세상 지혜는 고대에 이교적 사상들을 낳았고, 오늘날에는 무신론적 진화론으로 만연해 있다. 그들은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로마서 1:21,22,25) 그러한 인본주의적 철학은 흔히 ‘과학(science)’으로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셨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린도전서 1:1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1577/237

출처 - ICR, 1992. 4. 1.

한국창조과학회
2016-01-01

“어둠 속에서 더 밝게 보이는 빛”


     한 해 한 해 소중하지 않은 해가 없지만, 2016년은 특별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창조과학회 35주년을 맞이하여 미국의 Answers in Genesis와 아시아 각국의 창조과학자들과 함께 그동안 중단되었던 아시아 창조 컨퍼런스를 우리가 주최하게 되었습니다.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온누리교회 양재캠퍼스에서 열리는 이번 컨퍼런스는 학술적인 발전뿐 아니라, 아시아권의 창조신앙 부흥을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한 온누리교회와 함께 공동주최하면서 일반 성도님들과 어린이, 중고생, 대학 청년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들도 함께 준비되고 있어 다음 세대의 창조신앙 회복을 위한 전 교회적인 연대를 꿈꾸고 있습니다.


2015년은 그 어느 때보다 유신진화론의 공격이 심했던 해였습니다. 앞으로도 더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을 비롯하여 성경의 진리를 공격하는 거센 파도에서 창조과학회는 어둠 속에서 더 밝게 빛나는 빛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진화의 거짓과 맞서 창조를 증거하는 사역들을 계속할 뿐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창조신앙을 적용하고 소금과 빛 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살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길 소망합니다. 또한 2016년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북&컬쳐 클럽’을 통해 출판사역과 문화사역이 활성화되어,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부르심에 따라 사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함께 동역하고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새해 더욱 주님의 기름부으심이 가정과 일터와 사역에 넘치도록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299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15-12-10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유

Jay Lee 


      찰스 다윈은 성경도 예수도 믿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친필 편지가 얼마 전에 공개 되었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쓰기 전까지 성직자의 삶을 살려고 생각했던 사람이지만, 말씀을 버리고 진화론을 주장했고, 그 결과 그는 영생을 잃어버렸다. 오늘날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다윈의 길을 따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함께 진화론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진화론을 따랐던 유럽의 교회들은 결국 무너져버리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 역사를 보고도 멸망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진화론이 정말로 과학적 이론이며, 부정할 수 없는 진리라도 되는 것일까?    

남 유다의 르호보암 왕 시절에 하나님의 한 선지자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벧엘로 올라가서, 금송아지와 산당을 만들고 그 제단 앞에서 분향하고 있는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대언한다. 그 선지자는 함께 식사를 하자는 여로보암 왕의 제안을 거절하는데, 그 이유는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벧엘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가 다가와 자기 집으로 가서 떡을 먹고 물도 마시라고 얘기한다. 이 얘기를 거절하는 선지자에게 그 늙은 선지자는 이렇게 거짓말을 한다.

”...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열왕기상 13:18)

결국 그 선지자는 늙은 선지자의 말에 속아, 그의 집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시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죽게 된다.

이런 일은 성경에만 있는 일이 아니라, 역사 내내 일어나고 있으며, 지금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크리스천들에게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버리고 과학(진화론)이 얘기하는 거짓말들을 믿고 따르던 유럽은 이제 선교하는 국가가 아닌, 선교를 가야 하는 나라가 되었고, 진화론을 받아들여 교과서에 집어넣은 미국 역시 교회와 기독교인의 수는 계속 줄어들었고, 그를 기점으로 사회에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가?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경고하셨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유한한 지식에 의지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고, 그로 인해 사탄의 공격에 무방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16~17) 

”디모데여,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많은 것을 맡기셨습니다. 그것을 잘 간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을 멀리하십시오. 진리에 대해 변론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지식을 ‘참된 지식’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결코 지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참된 믿음을 떠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대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디모데전서 6:20. 쉬운 성경)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유신진화론’이 침투해 우리의 전신 갑주를 하나씩 하나씩 해체해 가고 있다. 그들은 과학이라는 미끼, 전문가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성경 말씀에 대한 믿음을 제거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작은 타협과 불순종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이라는 학문의 한계와 성경의 능력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사전은 과학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관찰, 실험, 조사를 실시하고 이것에 의해 얻은 지식을 정리, 분석, 종합하여 개념과 가설을 만들고…”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 편리함을 주고 있는 과학이 이런 정의에 잘 부합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을 우리는 관찰과학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빅뱅 이론’이나 ‘진화론’이 이런 정의에 부합하는 것일까? 우리는 한 생물이 다른 종류의 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을 관찰한 적도 없고, 과거에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지 관찰할 수도 없다. 이는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역사과학(Historical Science)’이라 부른다.

즉 빅뱅 이론, 진화론, 우주의 나이 등의 문제는 관찰과 실험이 존재하지 않는 역사과학이라는 것을 먼저 유념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제 과학과 말씀을 비교해 보자. 과학은 결국 무엇인가? 인간이 관찰을 통해 발견한 지식이다. 문제는 인간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불완전한 지식은 과학이 진리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며, 그렇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없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은 우리가 관찰을 통해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갈릴레오의 시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당시의 과학 이론은 지구를 중심에 두고 하늘이 돈다는 천동설이었으며, 지동설을 주장하는 과학자는 갈릴레오와 케플러 정도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한된 지식으로 인한 잘못된 가정과, 관측 기술로 축적된 데이터는 지동설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갈릴레오와 케플러가 태어나기 100년 전에 과학은 무엇을 얘기하고 있었을까?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것이 과학이었으며,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주장은 과학이 아니었다. 즉 어떠한 이론에 대한 관찰과 데이터가 뒷받침이 안 된다면, 그럴듯한 이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과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놀라울 만큼 과학이 발전했지만, 저 상황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을까? 조금 더 많은 지식이 생겼을 뿐, 인간은 아직 우주나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으며,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만을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떠하신가? 하나님에게 지식의 제한이 있으실까?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순간을 관찰하지 못하셨는가? 하나님은 관찰을 하신 정도가 아니라, 창조를 하신 그 장본인이시다. 다른 지식은 어떠한가?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많이 아는 분야가 단 하나라도 있을까?

하나님의 지식수준이 넓고 넓은 우주라면, 인간의 지식수준은 지구만하다고 얘기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아주 미약한 지식을 가진 인간이 아주 약간의 지식을 알게 되었다고, 자신의 지식에 비춰 전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고 틀렸다고 얘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왜 전지하신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무지한 인간의 지식을 더 신뢰해야 하는 것인가?

   
‘유신진화론’은 성경 말씀을 변질시키는 것이다.

창조론과 ‘유신진화론’의 대립은 창세기 1장에서의 하루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서 시작한다. 창세기에서의 하루를 뜻하는 히브리어 '욤”, 영어로는 ‘day’의 의미인데, someday라는 말의 day가 꼭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창세기 1장에서의 '욤”도 굳이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한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 주장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그것은 창세기에서 쓰여진 '욤”은 그 앞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라는 말과 함께, 서수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즉 첫째 날, 둘째 날... 이런 식으로 쓰여져 있다. 히브리어에서 서수와 함께 있는 '욤”이 24시간을 의미하지 않은 적은 없고, 이는 일반적으로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한 발짝 양보해서 '욤”이 24시간의 하루가 아닌 긴 시간을 의미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문제는 발생한다. 사실 창조론자들이 ‘오랜 지구 창조론’이나 ‘유신진화론’을 경계하는 이유는 그 하루가 꼭 6일 이어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하루를 24 시간이 아닌, 장구한 시간으로 해석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죽음이 생겨나게 된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오랜 지구 연대를 믿는 신학자나 창조론자들이 많이 있고, 또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휴 로스, 존 레녹스 같은 신학자들을 무척 존경하지만, 오랜 지구 연대를 믿게 되면, 반드시 인간이 생겨나기도 전에 죽음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믿어야 하고, 위의 신학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성경에는 동물의 죽음이 없었다는 말이 없으며, 따라서 인간이 생겨나기 전에 동물들의 죽음은 있었지만, 인간의 죽음은 아담의 범죄 이전에는 없었다. 따라서 이는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 잔인한 세상을 만들어 놓으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을까? 이 세상의 저주는 인간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던 것일까?

그들의 주장은 철저하게 세속적 지질학과 화석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인간의 창조 이전에 동물들의 죽음은 있었으며, 특히 육식동물도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성경의 기록과 분명히 반대되는 주장이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30)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동물들에게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대로 되었다고까지 쓰여 있다.

‘유신진화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창세기 1장에 여러 번 반복하여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세상이 아닌,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잔인하고 고통이 가득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를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시는 이상한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이 세상의 저주가 인간의 죄로 인한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계획과 창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복음의 5대 요소, 즉 창조, 타락, 십자가, 부활, 재림의 큰 틀을 시작부터 왜곡시켜, 전체를 변질시켜버리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며, 교회가 이러한 이단 사상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신앙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사실인가?

그럼에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과학계가 주장하고 있는 진화론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화론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짓, 의문, 과장, 추정... 투성이인 것이다.

문제를 하나 내겠다.

         x + 5 = ?

답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x의 값을 모르기 때문이다. 창조론과 유신진화론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그 차이는 창조론은 ”인간은 알 수 없다”라는 것을 전제로 시작하고, 유신진화론은 ”인간은 알 수 있다”라는 세속 과학자들의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모른다. 그것을 어떻게 아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인간은 모르기에 모든 역사과학은 '가정(assumption)”을 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즉 과학자들은 우리가 모르는 x의 값을 나름의 이유로 참이라고 가정하고 출발한다. 하지만 그 가정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 수가 없다. 알 수 있었다면 가정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아보자.

20세기 초 허블은 우주의 나이가 200억 년 정도 된다고 계산했다. 하지만 이 나이는 점점 줄어서 제가 학교에 다녔을 때쯤에는 150억 년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137억 년이 우주의 나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어떻게 이런 계산이 나왔을까? 그리고 이 계산은 이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일까?

우주의 구성 물질에 대한 과학계의 이론은 10년마다 바뀌어 왔다. 그리고 이 이론은 또 바뀔 것이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우주의 구성물질에 대한 이론은 계속해서 바뀌어 왔다. 그리고 지금은 암흑에너지가 73%, 암흑물질이 23%, 일반물질이 4% 정도 된다고 말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과학자들은 우주의 암흑에너지가 73%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1998년 솔 펄머터 등의 과학자들이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들이 가속팽창을 실험적으로 밝혀냈을 때, 그 거리의 기준이 되는 ‘Ia형 초신성(type 1a supernovae)들의 밝기는 항상 일정하다’ 라는 가정을 했었다.

이 가정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가?

그들의 증거란 지금까지 초신성의 밝기가 일정했다는 것뿐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자동차사고를 한 번도 안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을 해주지 못한다. 그리고 실제로 2015년 4월 아리조나 대학교의 연구진은 Ia형 초신성의 광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논문을 통해 발표했다. (참조 : 우주 거리 측정의 기본 잣대가 흔들리고 있다. Now News. 2015. 4. 14.)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73%라고 믿었던 암흑에너지가 몇 %인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Ia형 초신성 밝기의 변화에 따라 암흑에너지 자체가 없을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허블상수나 ΛCDM 모형에 따라 계산된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보다 줄어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137억 년이라는 우주 나이에는 우주가 아주 작은 점에서 시작했다는 가정이 들어가 있다. 이 가정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무엇이 있는가? 없다. 이는 자연주의적 관점으로 봤을 때, 다른 말로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우주는 한 점으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는 추론을 사실처럼 여기는 것일 뿐이지, 하나님이 처음 태초를 만드셨을 때, 지름 1억 광년에서 시작하셨는지, 2억 광년에서 시작하셨는지 알 수 없다. 만약 처음에 시작된 우주의 크기가 컸다면 우주의 나이는 더 줄어들어야할 것이다.

폴 스타인하르트 교수는 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

”우리는 빅뱅이 우주의 시작인지 알지 못하며, 이는 언제나 가설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일반상대성 이론 안에서도, 양자 중력의 이해 내에서도, 빅뱅이 실제 사건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이는 단지 팽창하는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돌렸을 때,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점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반드시 사실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게 사실인지 모른다. 오히려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이론은 양자 역학과 통합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빅뱅의 특정한 시점에서 양자 역학이 작용할 때, 양자적 중력에 대한 이론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빅뱅이 마음에 안 들면 빅뱅이 시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고려해 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2011. 03. 17. Inflation Theory on trial 강연 중에서.

그렇다면 137억 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가진 지식 중 가장 유명한 가설을 통해 추정하는 나이일 뿐, 그것이 사실이라는 확신은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x + 5 = ? 라는 질문에서 x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빅뱅 이론이 얘기하는 것처럼 우주에 경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고, 우리의 은하가 우주의 중심에 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은 단지 특정한 가정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과학의 가정은 어떠한 사실을 추론하기 위한 도구에서 끝나지 않는다. 과학은 자신의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때로는 무리하게 가정을 결론으로 이끌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인간과 침팬지가 사촌이며, 500만 년 전에 한 공통조상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 한번 해보지 않고 믿어버리는 이 주장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단 하나도 없다. 가령 예를 들어 그 공통조상에 대한 화석이 있는가? 없다.

그 공통조상에 대한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과 침팬지의 DNA가 98% 동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과학적 상식이다. 첫째, 인간과 침팬지의 DNA가 98% 동일하다는 것은 공통조상이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2010년 개발된 MS-Word와 2013년 MS-Word의 프로그램 언어는 90% 이상 동일하다. 하지만 그것은 둘이 진화되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프로그래머들이 동일한 기능의 프로그램을 만든 것일 뿐이다. 둘째, 이미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서 인간과 침팬지의 DNA는 70~89%만 동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사실 인간과 침팬지는 염색체 숫자도 다르다). (참조 : 인간과 침팬지의 Y-염색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Nature 2010. 01. 28. 인간과 침팬지의 DNA 서열 27억 개 중 24억 개만 일치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진화론에 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기본적으로 다윈주의 진화론은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며, 관찰도 된 적이 없고,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난 일이라는 직접적인 증거, 즉 화석 증거도 없다.

아미노산 150개 정도 크기를 가지는 한 단백질이 우연히 생겨날 확률은 1/10^77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단백질이 한번 우연히 만들어지기도 극도로 어렵지만, 다음 세대에도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 아미노산들의 정확한 순서가 DNA 염기서열 내에 우연히 암호로 만들어져야만 한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너무도 다양한 생명체들은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우연히 처음 생겼다는 최초 생명에 이 모든 단백질들이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 중 지극히 소수만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이 최초 생명체에서 수많은 종류의 다른 단백질들이 생겨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들은 기존에 이미 존재하던 풍부한 유전정보가 재조합되며 뒤섞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이지,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지는 과정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새로운 하나의 단백질이 우연히 생겨날 확률은 1/10^77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신진화론자들은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진화론적 과정, 즉 무작위적 돌연변이들을 통한 과정이 아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는 설명을 덧붙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진화론을 믿어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하나님께서 왜 생물을 한 번에 안 만드시고, 오랜 시간동안 수백 수천만 마리의 동물들을 죽여가면서 만드셔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대답할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실제로 그렇게 하셨는지에 대한 증거, 즉 화석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찰스 다윈이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했던 화석 증거는 진화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실제로 진화론자들에게 진화론을 보여주는 화석 증거에 대해 물어보면, 그들은 증거를 제시하는 대신에 진화론에는 이제 화석 증거가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아래 링크를 통해서 진화론자들이 화석에 대해서 직접 고백하는 말들을 살펴보라.


창조론은 유신진화론보다 더 과학적이다.

2005년 세속적 과학자들은 한 사건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은 6800만 년 전의 공룡화석에서 연부조직이 아직도 남아있었다는 보고였다. 당시에 과학계는 연부조직이 아무리 길어도 100만 년 이상 남아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보고한 연구팀은 많은 비난을 받았고, 과학자들은 그것이 오염됐거나, 공룡의 것이 아닌 미생물들에 의한 생물막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과학계는 지속적으로 연부조직이 남아 있는 공룡화석들을 발견해왔고, 또 그 화석에 있는 연부조직이 오염된 것이 아니라, 진짜 원래의 공룡의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공룡 화석들이 8천만 년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채, 어떻게 혈관과 혈액세포가 수천만 년 동안 남아있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그들은 그 화석들이 수천만 년 전의 것이라는 그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진화 과학자들이 어떤 연대를 수천만 년 전의 것이라고 말할 때에, 그에 상응하는 과학적인 증거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신 있게 내놓은 만한 연대추정의 근거를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창조론자들은 공룡 화석들이 수천만 년 전 것이 아니라는 과학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이다.

이론적으로 수천만 년 된 유기물에는 방사성탄소(C-14)가 남아 있으면 안 되지만, 지금까지 보고된 어떠한 유기물에도 탄소-14가 검출되지 않은 유기물들은 없었다. 이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신뢰할 수 없거나, 이 세상의 모든 유기물들은 10만 년이 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분명히 어떤 진화론자는 ”수천만 년 된 공룡의 화석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공룡 화석들이 수천만 년 되었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을까? 없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가 저렇게 나와서는 안 된다. 즉 그들의 주장은 과학적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장과 반대되는 과학적 증거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신진화론’은 이러한 비과학적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세속적 천문학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근 뉴호라이즌스 탐사선이 명왕성 근처를 지나면서 양질의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주었는데, 그 결과는 세속 과학자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명왕성은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형성된 지 수십억 년이 지난 것으로 말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에너지가 남아있을 수 없지만, 최근까지 활발한 지질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 매체들은 이에 대해 몸은 늙었지만 피부는 젊다! 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잠시만! 몸이 늙었다는 과학적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뉴호라이즌스 호의 연구책임자인 앨런 스턴은 ”만약 한 화가가 근접비행 전에 명왕성을 이렇게 그렸다면, 나는 아마도 과장됐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명왕성에 있었던 것이다”라며, ”아무도 이를 예측하지 못했다!”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정말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는가? 아니다. 창조론자들은 명왕성이 어떨 것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했었던 것이다.

NASA가 명왕성의 사진을 받기 전인 7월 9일 한 창조론 사이트의 글에는 아래와 같은 예측 글이 게재됐었다 :

(1) 명왕성은 지질학적으로 활발할 것이며, 지표면이 재포장되고 있는 증거들이 발견될 것이며
(2) 대기는 수십억 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빠르게 탈출되고 있을 것이며
(3) 그 위성들은 충돌로 형성됐다는 개념에 도전하고 있을 것이며
(4) 기자들은 물 존재의 증거를 가지고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 여부로 비약할 것이다.

이것들 중 (4)번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예측은 명왕성의 사진이 도착하고서 정확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 과학자들은 명왕성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관측된 증거들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주가 오래 되었을 것이라는 확실치 않은 가정에 의한 결론을 실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알지 못해서 가정을 해놓고, 그 가정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보이는 관찰 증거보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관념을 더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사실들, 그리고 성경의 경고

이런 비과학적인 방법과 관념, 그리고 인간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얘기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일 것이라는 착각은, 성경 말씀을 믿고 있는 크리스천들을 병들게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신주 단지처럼 붙들고 있는 과학 이론이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과학적 발견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성도인가? 여러분은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우리에게 구원을 주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믿고 있는가? 그렇다면 불완전한 인간의 지식을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보다 더 신뢰해서는 안 된다. 십 년 뒤면 또 바뀔 인간의 제한적인 이론을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불신으로 인해 선악과를 먹었고,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개혁 교회의 5대 강령은 무엇인가?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주님만 영광을 받으심… 아닌가?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기본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오직 성경이 아니라, 성경과 진화론과 고고학과 철학이 아닌가?

”나는 성경을 신의 계시라 믿지 않으며, 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밖에 없어 죄송하게 생각한다.” - 찰스 다윈

얼마 전 찰스 다윈의 친필 편지가 공개 되었다. 종의 기원을 쓰기 전 성직자의 삶을 살려고도 생각했던 찰스 다윈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 대신 진화론이란 거짓말 앞에 무릎을 꿇고, 성경도, 예수님도 믿지 못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윈의 길을 따랐던 유럽의 교회들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한때 기독교 국가로 여겨지던 몇몇 유럽의 나라들도 더 이상 기독교 국가라고 불릴 자격을 상실했다.

예수님은 다윈이 왜 불신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너무나도 두려운 경고로 성경을 마무리 하고 계신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오늘날 ‘유신진화론’은 우리에게 지식의 선악과를 던져 놓고 먹으라고 하고 있다. 속지 말라.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말씀인 것이다.

 

*관련기사 : 유신 진화론은 복음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2016. 1. 9. 기독일보)

차성도
2015-11-17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의 전망과 대책 

<부제 : 바람직한 군선교를 위한 제언>


1.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협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일까? 혹자는 북한의 핵, 계층갈등, 빈부격차, 청년실업, ... 등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인이 소멸되는 것보다 더 큰 위협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평균 자녀의 수)이 급격히 감소하여 최근 몇 년째 1.19이기 때문에, 2,750년이면 한국인이 소멸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협은 저출산과 고령화이다.


2. 저출산∙고령화가 가장 심각한 곳은?

우리나라에서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은 아마도 교회일 것이다. 교회마다 전도의 열기가 식어가면서 새 신자는 드물고, 많은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면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교인수가 1990년대부터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였는데, 청소년들의 감소가 가장 두드러진다. 영적 저출산∙고령화의 결과는 한국교회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먼저 겪었던 유럽이나 미국의 교회들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3. 영적 저출산∙고령화의 결과는?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관광명소뿐 아니라, 술집, 잡화점, 나이트클럽, 이슬람회당 등이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아는 바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이 한국땅에서도 이미 시작되었다. 그 예로 예배당이 불당으로 변했는데, 십자가가 세워졌던 자리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만(卍)자가 달렸다. 2012년도에 예배당이 불당으로 바뀐 곳이 서울에만 10여 곳이다. 한국교인의 감소추세로 미루어 보건데, 몇 십 년 안에 요사이 경쟁적으로 짓고 있는 대형 예배당이 지금의 유럽이 그러하듯이 관광명소나 댄스홀, 심지어 이슬람회당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에 대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무감각하다는데 있다. 만일 시급히 이 문제에 대처하지 않는다면, 염려했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구미의 교회들이 생생하게 보여준 역사적 교훈이다. 자식이 없는 집안은 대가 끊길 수밖에 없듯이, 복음의 열정이 식어진 교회도 몰락할 수밖에 없다. 영적 저출산∙고령화의 시급한 해결에 한국교회의 사활이 걸려있다.


4. 영적 저출산∙고령화의 원인은?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공통된 원인은 유물주의, 인본주의, 경쟁주의, 과학주의의 바탕 위에 세워져서 돈∙음행∙권력을 탐하도록 조장하는 진화론이다. 그럴듯한 과학으로 포장된 진화론이 위세를 떨치면서, 온갖 문제들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이것을 보여주는 통계자료로 이혼율, 성범죄율, 자살룔, 낙태율 등의 모든 지표들이 한결같이 미국은 1960년대, 한국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의 교인 수는 1965년부터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하였는데, 1933년 인본주의 선언문 발표로 인한 진화론 교육의 강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의 교인 수가 1995년부터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한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1963년에 시작된 제 2 차 교육과정부터 진화론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미국에서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일본의 개신교가 한국보다 먼저 시작되었지만, 현재의 기독교인 비율이 50배나 차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은 유럽의 영향을 받아 개신교가 시작되면서 바로 진화론 교육이 시작되었기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반면에, 한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개신교가 시작되고 78년이 지난 후에 진화론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에 기독교가 뿌리를 충분히 내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이 모든 자료들은 진화론이 온갖 사회문제의 주범이자 기독교의 최대의 걸림돌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의 자녀들은 매일 학교에서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배우고 있으며, 주말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진화를 또 다시 접하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진화론을 믿은 비율을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무종교(70%), 불교(68%), 천주교(83%), 기독교(40%)로 나타났다. 천주교의 비율이 무종교보다 더 높은 이유는 천주교가 1996년에 진화론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일부 개신교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조만간에 개신교의 진화론을 믿는 비율도 천주교처럼 될 것이 심히 염려된다.

사탄이 온갖 진화론의 무기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이유는 창조를 무너뜨리면 복음을 불신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랫동안 많은 기독교인들이 진화론을 무시하거나 그 이론과 타협하거나 진화론의 엄청난 파괴력을 간과했다. 이로 인해 진화론이 창조론을 괴멸함에 따라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가장 근원적인 전쟁은 인본교와 기독교의 전쟁인데, 이제는 진화와 창조의 대리전이 되었다.


5. 영적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결책은?

 모든 선교기관과 교회들은 이구동성으로 전도가 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또 다른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 무성해져 싹이 나는 것을 막아 버렸다.”(마 13:7)라고 말씀하셨듯이, 이 시대의 최대 가시덤불인 진화론이 복음의 씨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화론을 제거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창조과학의 최대 임무는 거짓 진화론을 제거하여 복음의 씨가 잘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영적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해결된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들이 입대하므로, 군인을 복음화 한다는 것은 곧 대한민국을 복음화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영적 저출산∙고령화를 동시에 해결할 비책은 바로 군복음화이다. 즉, 한국교회의 미래는 군복음화에 달려있다! 본인이 이전에도 창조과학으로 군인교회를 섬겨왔지만, 2013년부터 춘천 102보충대에서 매 주일마다 8:30에 보충병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군복음화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보충병들이 주일 예배 후 자대 배치되면 종교행사가 선택사항이 되므로, 복음을 전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기에, 이들이 복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먼저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가시덤불인 진화론을 제거한 후에 복음의 씨앗을 최선을 다해 뿌리고 있다. 2014년 초 화천의 군인교회로 창조과학특강을 갔을 때, 그 주에 자대배치 받아 처음으로 예배에 참석한 3명의 신병 모두가 신병교육대에서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간증을 듣고는 신병교육대에서도 복음을 전하기로 결단하였다. 신병훈련이 진행되는 5주 내에 화천의 7, 15, 27사단의 신병교육대를 주일 14:00에 순차적으로 방문하면서 훈련병들에게도 창조과학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신병교육기간은 가장 곤고할 때이므로 훈련병들이 가난한 마음으로 복음을 잘 받아드린다. 그래서 102보충대에서 매주일 아침에 복음을 전하고,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자마자 바로 주일 오후에는 차 안에서 빵을 베어 물고는 신병교육대로 달려간다.


6. 어떻게 군복음화를 할 것인가?

군선교의 현황을 살펴보면, 2014년을 기준으로 1,004개의  군인교회가 있지만 현역 군목은 263명이고 민간 군목이 400여명뿐이다. 진중세례 받는 군인수가 1999년부터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군선교는 주로 진중세례와 위문방문으로 진행된다. 진중세례식이 중요하지만, 복음전파가 우선되어야 세례 받는 병사도 늘어나고 진중세례가 더 의미 있어질 것이다. 도시 인근의 군인교회에는 위문팀들의 방문이 넘쳐나지만, 오지의 군인교회에는 관심이 적을뿐더러, 아직도 ‘위문방문=찬양팀+설교+초코파이’의 등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사이 군인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군복음화가 전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군사역의 최우선은 군복음화이어야 하며, 최적기는 훈련기간에서 자대배치 받기 전까지이다. 왜냐하면 이 기간 동안에는 종교행사가 의무이기 때문이다. 군복음화를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은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전도자이다. 각 지역교회들은 인근의 신병교육대를 품고 중보하고, 전도팀을 보내거나 선교단체와 동역해야 한다. 각 교회가 병사들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단체와 동역한다면 더 많은 열매가 기대된다. 만일 39개 신병교육대를 집중적으로 중보하고 전도하는 교회와 선교단체가 있다면 군복음화는 이루어질 것이다. 군사역의 목표는 군제자화이어야 한다. 지역교회들이 군인교회를 이따금씩 방문하지만, 하나의 행사처럼 진행되곤 한다. 군인교회를 실질적으로 도우려면 지역교회가 한 군인교회를 책임지고 꾸준히 섬겨야 한다. 그 예로 화천의 개척한지 3년 되는 작은 교회가 주일예배를 드리고 나서 매주 군인교회를 찾아가 장병들을 격려하고 함께 성경공부를 진행하여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만일 1,004개의 지역교회만이라도 군인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꾸준히 섬긴다면 군제자화는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라고 말씀하셨듯이, 가장 많은 재정을 무엇에 투자하는가보면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만일 취미에 가장 많은 재정을 사용한다면 취미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고, 자녀교육에 가장 많은 재정을 투입한다면 자녀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만일 선교에 가장 많은 재정을 배정한다면 선교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교회이고, 건축에 가장 많은 재정을 투입한다면 건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교회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처럼 온 천하보다 한 영혼이 더 귀하다고 말씀하셨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이 한 영혼이기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처럼 잃어버린 한 영혼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을 하늘나라에서는 그 무엇보다 기뻐한다. 가장 귀한 것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일 진데, 가장 가치 있는 삶은 한 영혼을 위한 삶일 것이다. 나∙우리교회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무엇이며, 나∙우리교회는 무엇에 가장 많은 열정을 바치고 있는가?

군복음화에 참여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모든 성도들에게 군선교의 현장을 방문해 보실길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젊은 병사들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에게는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부어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군복음화를 위해 중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무릎을 통해 역사하시길 기뻐하신다. 군사역자들을 격려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동역이다. 기회가 되어 개인 및 교회가 군복음화에 직접 참여한다면, 각 개인과 교회마다 활력이 넘칠 것이고 한국 복음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군사역은 시간과 재정을 일방적으로 쏟아부어야하고, 또한 즉각적인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본인이 군사역을 할 때마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군복음화에 달려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영적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결에 달려있으며, 이 문제는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청년들이 입대하므로 한국교회의 사활이 군복음화에 달려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일 우리 교회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군복음화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공멸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교회마다 해야 할 사역이 많겠지만, 지금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이다. 세계 선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한국교회는 다시금 일어나야 한다. 군복음화는 한국복음화를 이룰 것이며, 한국복음화는 세계복음화를 이루어 낼 것이다!



출처 - 2015. 10. 26. '제4회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 세미나' 자료집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270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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