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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다시 생각해보는 창조의 순서와 그 내용

미디어위원회
2005-03-21

다시 생각해보는 창조의 순서와 그 내용

김정훈 


      창조과학 사역을 하면서 성경에 관하여 많은 질문을 받게 되는데, 한 번은 어떤 교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질문을 받게 되었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보면, 창조의 순서에 있어서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실제로, 창세기 1장에 보면, 식물이 먼저 창조되고(1:11-12) 그 후에 사람이 지은바 된 것으로(1:26-27) 기록되어 있는데, 2장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어 마치 식물이 사람보다 나중에 창조 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기록이 있음으로,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해석상의 정리가 있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필자 자신도 같이 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 기회에 창세기 1장과 2장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으며, 각각의 창조의 순서는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는지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창세기 2장의 성격부터 분명히 이해해 보도록 하자. 앞서 1장에서 연대기적인 창조의 기술이 있은 후 그 결론이 2장 3절까지 이르러서 일단락을 지음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뒤에 이어지는 2장의 내용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2장에 나오는 창조의 내용은 1장과 서로 다른 창조의 기사를 후대에 와서 편집하여 합쳐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같은 주장은 소위 '문서설'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문서설'이란 그 이론 자체에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성경의 영감성을 부인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옴을 인하여 사실 신앙생활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론이다. 여기서 2장 4절이 뒤에 나오는 창세기 2장 전체의 해석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Westminster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를 지낸 Edward J. Young 박사는 이 구절을 단호하게 표제문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4절은 앞서 1장의 창조의 내용에 대한 종결문이 아니라, 새로운 문단을 여는 표제문으로 봐야 옳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4절에서 사용된 '대략'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톨레돗' 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 단어가 창세기에서만 열 번이나 사용되고 있으며, 그 때마다 새로운 문단을 시작할 뿐만 아니라, 앞서 기술한 어떤 주제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으로 범위를 좁혀 가며 기술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2장 4절에서도 이 구절이 사용됨으로써 앞서 1장에서 기술한 창조의 내용을 이제 보다 자세하게 그 중의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려고 한다는 게 자명해 진다. 결국, 창세기 2장은 1장의 내용을 보완하며 동시에 에덴 동산으로 창조의 시선이 모아간다. 이는 또한 뒤에 3장에 나오는 에덴 동산에서의 인류의 타락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3장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창세기 2장의 성격이 1장의 많은 창조 내용 중에서 특히 인간의 창조와 에덴 동산의 환경을 1장에 대하여 보완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진다면, 그 안에 기록된 창조의 순서와 내용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2장 5절은 분명히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들'과 '밭'은 동일한 원어에서 나온 단어로서 인간의 농사를 암시하고 있는 단어라는 점이다. 실제로 영어 성경은 이 부분을 번역할 때 들의 초목(plant of the field) 과 밭의 채소(herb of the field)라는 말에서 같은 field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이 같은 사실은 5절 앞부분에 아직 비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과 경작할 사람이 없었다는 기록에 의해 더욱 뒷받침되고 있다. 사실 밭(field)이라는 것은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얻게된 결과로써,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싸우면서 이마에 땀을 흘린 후에야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얻어 낼 수 있는 땅의 일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결국 5절에 기록된 내용은 앞서 1장에서 창조의 셋째날,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으로 표현된 지상의 모든 종류의 식물이 '땅'에는 이미 창조되었으나(1:11-12),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땀흘려 농사 지으며 가꾸게 될 '밭'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2:5)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그럼 여기서,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의 순서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선 하나님께서는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지구와 함께 모든 우주에 필요한 구성 물질을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여기서 사용된 창조하다의 히브리어 'bara'는 무에서 유의 창조를 가리키는 특별한 단어로서, 이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지구는 아직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에 있었다(2절). 이제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시고, 그 빛을 중심으로 지구를 한 바퀴 자전시키심으로, 저녁이 되며 아침을 오게 하여 지구에 첫째 날을 되게 하셨다(3-5절). 여기서 창조된 빛은 태양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우주의 어딘가 에서 단지 지구를 비추는 빛의 근원에 대한 창조를 가리킨다고 여겨진다. 한 가지 더 주목하여 말할 것은 여기서 창조된 빛은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하나님 자신이 빛을 비추는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하나님 자신이 피조물이 되는 우스꽝스런 결과를 낳고 말기 때문이다. 둘째 날은 궁창을 만드시고, 물을 둘로 나눠 궁창 위의 물과 그 아래의 물로 나누시었다(6-8절). 여기서 궁창 위의 물은 당시 지구의 환경과 후에 노아의 홍수 사건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날에는 육지가 드러나면서 식물이 만들어진다(9-13절). 식물은 본래 광합성을 할 때 태양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이 때 창조된 식물은 이미 잎사귀가 무성한 장성한 식물로서 태양이 있기 전에 만들어 졌어도 다음 날 태양이 나올 때까지 충분한 양의 에너지가 이미 그 잎사귀에 저장되어 있었을 것이며, 또한 첫째 날 만들어진 보다 근원적인 빛이 지구를 비추고 있으므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하등의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하나님은 놀랍게도 넷째 날에 가서야 비로소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드시는데(14-19절), 태양에서 지구가 떨어져 나왔다는 식의 진화론적 사고와는 정반대의 순서로 창조를 하시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족속들은 한결 같이 태양을 하나의 신으로 숭배하였던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태양을 하나의 피조물로써 넷째 날 만드신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제 태양이 창조됨으로써 지구를 비추는 빛의 역할을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이 맡아 하게 된다. 다섯째 날이 이르러 하늘의 새와 물 속의 생물을 창조하시는데(20-23절), 이때 다시 한 번 'bara' 라는 특별 동사를 사용하신다. 아마도 이제까지의 식물을 포함한 다른 피조물에는 없는 무언가를 동물을 창조하실 때 새로이 창조하신 것 같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soul' 로 보는데, 꽤 설득력이 있는 생각이다. 이제 여섯째 날이 이르러서는, 땅 위의 모든 생물과 사람을 지으시는데(24-31절), 사람을 창조하실 때 다시 한번 'bara'가 사용됨으로 이제까지의 피조물에는 없는 근본적인 새로운 것을 사람에게 새로이 창조하여 주심을 볼 수 있다. 동물을 포함한 모든 다른 피조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오직 사람만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의 형상, 'spirit' 이 아닐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6일간에 걸쳐서 창조를 하셨을까?  그 분은 본래 전능하시어서 단 하루 만에도 천지를 지으실 수 있는 분이 아닌가?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제 칠일 째 되는 날 친히 안식을 하심으로(2:1-3), 우리도 하나님처럼 6일 동안 힘써 일하고 7일에는 안식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을 갖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출20:8-11).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임에 틀림이 없다. 진화론적 사고에 익숙하여 창조의 각 하루를 수억 년의 긴 연대로 인식하는 혹자들에게는 6일 창조의 내용이 오히려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가령, 셋째 날 만들어진 식물이 수억년 동안을 태양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6일의 노동 후 7일째 안식의 개념은 또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수억 년을 안식하셨어야만 된다는 결론이 아닌가?  성경은 창조의 기록에 있어서 분명하다. 창세기 1장은 창조의 순서를 6일 간에 걸쳐 명시하고 2장에서는 초점을 에덴 동산으로 모아 3장에서 타락된 존재로서의 우리의 실체를 밝힐 준비를 한다. 창세기 1-2장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고는 인간이 상상하여 쓸 수 있는 종류의 글이 아니다. 여기에 성경의 위대함이 있다.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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