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갈비뼈로부터 창조된 하와
(Eve created from Adam's rib)
Russel Grigg
하나님은 왜 하와(Eve)를 아담의 갈비뼈(Adam's rib)로부터 만드셨을까? 결국, 하나님이 원하셨다면, 그분은 하와를 땅의 흙으로부터 쉽게 만들 수 있으셨다. 실제로, 하나님은 아담을 이런 방식(땅의 흙)으로 만드셨으며(창 2:7), 뿐만 아니라 '들의 모든 짐승' 및 '하늘의 모든 새'도 그런 방식으로 만드셨다(창 2:19). 그런데 왜 하나님은 하와를 다르게 만드셨을까? 아마도 그분은 아담과 하와의 역할에 관한 것뿐 아니라, '마지막 아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고전 15:45)의 역할에 관해서도 우리에게 알려주시길 원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좋지 않다”는 말의 첫 번째 언급
하나님이 하와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창조 이야기에 있어서, 독자들은 이 문장이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전까지, 인류의 타락 이전에는 그랬으리라고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물들을 돌아보실 때마다 '좋았더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첫 번째의 '좋지 않은' 일로써,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위한 돕는 배필'로서 하와를 창조하셨다(창 2:18하). ‘돕는 배필’(히브리어 에쩨르)이라는 용어는 역할이나 신분이 낮은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기능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그의 상대편 혹은 그의 보족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용어는 시편 33:20, 121:1~2에서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돕는다고 할 때 하나님께 사용되었다. 사실상 이 단어는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성경 이름 아짜리아의 어근이 된다.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을 때 아담이 이렇게 말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창 2:23).
'한 몸'의 중요성
그러나 하와를 만들 때 꼭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어야 했을까? 여기에 대해 캘빈은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만약에 두 성(sex)이 서로 다른 원천으로부터 나왔다면, 그 둘은 서로 모욕을 했거나, 시기했거나 혹은 투쟁을 야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담의 몸 일부를 취한 이유는 그 자신의 한 부분을 보다 큰 자비심으로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잃었지만, 그 대신에 훨씬 더 가치 있는 보상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는 신실한 인생의 동반자를 얻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그는 불완전했었는데, 이제 그의 아내 안에서 완전하게 된 그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와 역시 아담과 관계를 맺고 있어야 했다 - 만약에 그녀가 흙으로부터 창조되었다면, 전적으로 독립적인 창조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담의 한 부분으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독특한 방법으로 아담의 후손이 되었다.
하와가 아담의 후손인 것은 그녀의 구원 가능성을 위해서도 중대한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오실 메시야를 '친족-구속자'(사 59:20), 즉 그가 구속할 사람들과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이라고 썼다. 히브리서 2:11~18절은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천사(혹은 성질상 외계인으로 가정되는 존재)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형상을 입으셨는지를 설명해 준다.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친척이 되기 위해, 이 하나의 인간 가족의 한 부분이 되시기 위해 아담의 계보 안으로 들어오셨다(눅 3:23~38).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면, 이 필수적인 친족-구속자 개념은 토대가 무너진다. 아니면 역으로 말해서, 오늘날 아담의 후손이 아닌 사람들이 있어서 아담을 통해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두 가지 상황 모두 성경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책임
최초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아담은 인류의 연합적(혹은 책임 있는) 머리였고, 지금도 그렇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향한 자기의 태도가 인간 역사의 과정을 결정한 사람이었다. 연대기적으로 아담 이후에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창조된 하와는 비록 그녀가 아담이 금지된 과일을 먹기 조금 전에 그것을 먹었지만(창 3:6), 성경에서 볼 때 하와에게는 이런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명령을 준 사람은 아담이었으며(창 2:16~17), 아담은 하와가 그 과일을 먹었을 때 그녀와 함께 있었다(창 3:6). 그러나 명백하게, 그는 그녀가 그 경고를 흘려버리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창 3:1~3). 죄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항하여 그분과 무관하게 살려는 욕망이다. 신약에서는 하와가 (뱀에게) 속은 것이지,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고 확언한다(딤전 2:14). 따라서 아담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즉 마음속으로 이미 저질렀던 죄가 공공연하게 드러난 것이다(마 15:19).
신약성경은 고린도전서 15:21~22절에서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한데 대해 아담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아담이 인류의 머리였던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받은 인류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롬 5:12-21, 엡 1:22-23; 5:23).
그리스도 중심의 결혼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
결혼이라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 설립된 한 가지 이유는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우리가 그려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일부일처 결혼은, 두 남자 혹은 두 여자 혹은 기타 다른 조합 사이의 ‘결혼’이 보여줄 수 없는 방식으로 이 목적을 잘 보여준다. 사실상, 예수님이 결혼에 대해 가르치실 때(마 19:3~6, 막 10:5~9), 예수님은 창조 기사를 실제의 역사로써 인용하셨다(창 1:27, 2:24).
더욱이 성경은 결혼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특별한 역할을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긴 구절은 에베소서 5:22~33절이다. 남편들에게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25~27절),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28~30절), 그리고 이것이 다른 모든 의무보다 앞선다(31~33절)고 말한다. 아내들에게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2절)고 말한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3:28절에서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바울의 주장과 모순되지 않는다.
다음을 주목하라: 결혼을 하면 우리는 마치 (은유적으로 말해서) 우리에게 부모가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부모를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에게 (문자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부모가 실제로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에 있어서 우리는 최소한 이상적으로는 마치 (은유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한 몸’인 것처럼 서로에게 밀착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자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하와가 실제로 아담의 몸에서 취해졌기 때문이다.
상처를 통해 나온 신부
하나님이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를 만드셨을 때, 창세기 2:21~23절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담의 신부가 될 하와는 (문자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아담의 옆구리에 있는 상처를 통하여 태어났다.
마지막 아담이신(고전 15:45)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었을 때 옆구리를 창에 찔린 것은 예언을 성취시키신 것이다(요 19:34, 36~37; 슥 12:10). 이것은 그분의 죽으심 직후에 일어난 일이며, 그 죽음은 첫 번째 아담의 죄 때문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죄에 대한 희생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의 옆구리에 있는 그 상처로부터 흘러내린 것은 보배로운 피로서(벧전 1:19), 그것을 통하여 믿는 자들이 죄로부터 깨끗하게 된다. 이들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신부가 될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 따라서 은유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의 신부가 될 교회는 그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린 상처에서 ‘태어난다.’
하늘에서 신랑 신부의 연합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죽음과 악의 멸망 이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의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다(계 19:6~9). 복음이란 비록 첫 번째 남편인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죄를 지었지만, ‘마지막 아담’이시며, 교회의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가 모두 구속 받는다는 것이며, 또한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죄들의 용서함'을 받고, '의의 선물을 값없이'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는 것이다(골 1:14; 롬 5:17; 요일 3:14).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www.creationmagazine.com/creation/2013vol35iss4?pg=42#pg42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5(2013), No. 4, pp. 42-44.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창조된 하와
(Eve created from Adam's rib)
Russel Grigg
하나님은 왜 하와(Eve)를 아담의 갈비뼈(Adam's rib)로부터 만드셨을까? 결국, 하나님이 원하셨다면, 그분은 하와를 땅의 흙으로부터 쉽게 만들 수 있으셨다. 실제로, 하나님은 아담을 이런 방식(땅의 흙)으로 만드셨으며(창 2:7), 뿐만 아니라 '들의 모든 짐승' 및 '하늘의 모든 새'도 그런 방식으로 만드셨다(창 2:19). 그런데 왜 하나님은 하와를 다르게 만드셨을까? 아마도 그분은 아담과 하와의 역할에 관한 것뿐 아니라, '마지막 아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고전 15:45)의 역할에 관해서도 우리에게 알려주시길 원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좋지 않다”는 말의 첫 번째 언급
하나님이 하와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창조 이야기에 있어서, 독자들은 이 문장이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전까지, 인류의 타락 이전에는 그랬으리라고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물들을 돌아보실 때마다 '좋았더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첫 번째의 '좋지 않은' 일로써,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위한 돕는 배필'로서 하와를 창조하셨다(창 2:18하). ‘돕는 배필’(히브리어 에쩨르)이라는 용어는 역할이나 신분이 낮은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기능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그의 상대편 혹은 그의 보족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용어는 시편 33:20, 121:1~2에서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돕는다고 할 때 하나님께 사용되었다. 사실상 이 단어는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성경 이름 아짜리아의 어근이 된다.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을 때 아담이 이렇게 말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창 2:23).
'한 몸'의 중요성
그러나 하와를 만들 때 꼭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어야 했을까? 여기에 대해 캘빈은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만약에 두 성(sex)이 서로 다른 원천으로부터 나왔다면, 그 둘은 서로 모욕을 했거나, 시기했거나 혹은 투쟁을 야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담의 몸 일부를 취한 이유는 그 자신의 한 부분을 보다 큰 자비심으로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잃었지만, 그 대신에 훨씬 더 가치 있는 보상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는 신실한 인생의 동반자를 얻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그는 불완전했었는데, 이제 그의 아내 안에서 완전하게 된 그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와 역시 아담과 관계를 맺고 있어야 했다 - 만약에 그녀가 흙으로부터 창조되었다면, 전적으로 독립적인 창조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담의 한 부분으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독특한 방법으로 아담의 후손이 되었다.
하와가 아담의 후손인 것은 그녀의 구원 가능성을 위해서도 중대한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오실 메시야를 '친족-구속자'(사 59:20), 즉 그가 구속할 사람들과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이라고 썼다. 히브리서 2:11~18절은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천사(혹은 성질상 외계인으로 가정되는 존재)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형상을 입으셨는지를 설명해 준다.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친척이 되기 위해, 이 하나의 인간 가족의 한 부분이 되시기 위해 아담의 계보 안으로 들어오셨다(눅 3:23~38).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면, 이 필수적인 친족-구속자 개념은 토대가 무너진다. 아니면 역으로 말해서, 오늘날 아담의 후손이 아닌 사람들이 있어서 아담을 통해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두 가지 상황 모두 성경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책임
최초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아담은 인류의 연합적(혹은 책임 있는) 머리였고, 지금도 그렇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향한 자기의 태도가 인간 역사의 과정을 결정한 사람이었다. 연대기적으로 아담 이후에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창조된 하와는 비록 그녀가 아담이 금지된 과일을 먹기 조금 전에 그것을 먹었지만(창 3:6), 성경에서 볼 때 하와에게는 이런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명령을 준 사람은 아담이었으며(창 2:16~17), 아담은 하와가 그 과일을 먹었을 때 그녀와 함께 있었다(창 3:6). 그러나 명백하게, 그는 그녀가 그 경고를 흘려버리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창 3:1~3). 죄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항하여 그분과 무관하게 살려는 욕망이다. 신약에서는 하와가 (뱀에게) 속은 것이지,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고 확언한다(딤전 2:14). 따라서 아담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즉 마음속으로 이미 저질렀던 죄가 공공연하게 드러난 것이다(마 15:19).
신약성경은 고린도전서 15:21~22절에서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한데 대해 아담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아담이 인류의 머리였던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받은 인류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롬 5:12-21, 엡 1:22-23; 5:23).
그리스도 중심의 결혼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
결혼이라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 설립된 한 가지 이유는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우리가 그려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일부일처 결혼은, 두 남자 혹은 두 여자 혹은 기타 다른 조합 사이의 ‘결혼’이 보여줄 수 없는 방식으로 이 목적을 잘 보여준다. 사실상, 예수님이 결혼에 대해 가르치실 때(마 19:3~6, 막 10:5~9), 예수님은 창조 기사를 실제의 역사로써 인용하셨다(창 1:27, 2:24).
더욱이 성경은 결혼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특별한 역할을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긴 구절은 에베소서 5:22~33절이다. 남편들에게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25~27절),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28~30절), 그리고 이것이 다른 모든 의무보다 앞선다(31~33절)고 말한다. 아내들에게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2절)고 말한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3:28절에서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바울의 주장과 모순되지 않는다.
다음을 주목하라: 결혼을 하면 우리는 마치 (은유적으로 말해서) 우리에게 부모가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부모를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에게 (문자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부모가 실제로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에 있어서 우리는 최소한 이상적으로는 마치 (은유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한 몸’인 것처럼 서로에게 밀착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자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하와가 실제로 아담의 몸에서 취해졌기 때문이다.
상처를 통해 나온 신부
하나님이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를 만드셨을 때, 창세기 2:21~23절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담의 신부가 될 하와는 (문자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아담의 옆구리에 있는 상처를 통하여 태어났다.
마지막 아담이신(고전 15:45)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었을 때 옆구리를 창에 찔린 것은 예언을 성취시키신 것이다(요 19:34, 36~37; 슥 12:10). 이것은 그분의 죽으심 직후에 일어난 일이며, 그 죽음은 첫 번째 아담의 죄 때문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죄에 대한 희생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의 옆구리에 있는 그 상처로부터 흘러내린 것은 보배로운 피로서(벧전 1:19), 그것을 통하여 믿는 자들이 죄로부터 깨끗하게 된다. 이들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신부가 될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 따라서 은유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의 신부가 될 교회는 그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린 상처에서 ‘태어난다.’
하늘에서 신랑 신부의 연합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죽음과 악의 멸망 이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의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다(계 19:6~9). 복음이란 비록 첫 번째 남편인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죄를 지었지만, ‘마지막 아담’이시며, 교회의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가 모두 구속 받는다는 것이며, 또한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죄들의 용서함'을 받고, '의의 선물을 값없이'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는 것이다(골 1:14; 롬 5:17; 요일 3:14).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www.creationmagazine.com/creation/2013vol35iss4?pg=42#pg42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5(2013), No. 4, pp. 4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