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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이재만
2004-08-13

창세기 1장 (11) - 종류대로 : 정하신 질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창 1:11)  

드러난 뭍에 식물을 창조하시는 모습이다. 생물학에서 종(種, species)이라는 용어가 있다. 생물을 구분하는 최소의 단위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생물의 종류라고 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John Ray(영국, 1628-1705)가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사용당시에는 형태학적으로 분류하였다. 오늘날에는 개체사이에서 교배 가능한 한 무리를 지칭한다. 즉 같은 종의 개체들 간에는 상호 유전자(Gene)를 교환할 수 있으나, 다른 종에 속하는 개체들과는 교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설령 교배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집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종이 명쾌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생물들에게 교배를 시도해보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형태학적으로는 종의 특징을 갖고 있는 듯 하면서 교배가 불가능 한 경우도 있고, 외견상 차이가 있으나 교배를 하여 자손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생물학에서 종이라 함은 생물 개체간에 깨어지지 않는 분명한 질서를 의미한다. 


분류학이란 바로 생물이 담고 있는 질서를 통해 분류하려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분류학도 진화론적인 영향을 받아 많은 경우에 진화의 틀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진화론자들은 지리적인 격리에 의해서 종이 분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아윈도 같은 생각을 하였는데, 예를 들면 자신이 방문했던 갈라파고스 제도에 코끼리거북이, 검은방울새 등의 동물과 30여종의 식물이 이 제도에만 특별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요인으로 지리적 격리에 의해 종이 분화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고립된 지역에서 특별한 생물군의 형성은 생물의 이주본능과 적응한계에 대한 분리의 결과이지 진화에 의한 것일 리 없다. 아직까지 관찰이나 과학적 실험을 통해 격리에 의해서 종이 바뀐 적은 기록된 바 없다. 이는 단지 진화론적 선입견에 의한 '느낌'일 뿐이다.


나비와 벌들이 온갖 꽃들을 누비면서 날아다닌다. 그들이 꽃들에 도달할 때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꽃가루가 다리에 묻는다. 진달래, 개나리, 호박꽃, 무궁화꽃…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벌들이 온갖 꽃들을 돌아다녀도 진달래 암술은 정확히 자신의 꽃가루하고만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나머지 꽃들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보면 진달래는 언제나 진달래를 낳고, 개나리는 개나리만을 낳는다. 기존 질서가 자연적으로 깨어지는 경우가 관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종류대로'와 분류학에서 '종'은 어떠한 차이로 말할 수 있을까?  생물들은 분명히 깨어지지 않는 질서가 있는데, 종류대로란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질서이며, 종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질서를 찾고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을 구분한다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면서 정하신 질서를 인정할 때만 시도가 가능한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그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진화론의 성립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깨어진 질서의 증거를 찾으려는 모순 속에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인간이 정한 불안정한 개념을 사용하면서 마치 종이 깨어진 적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종류대로'의 질서가 깨진 것이 아니다. 단 한 번도 질서가 깨어진 것이 기록된 바 없다. 이는 창조주가 정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바로 이 질서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창조원리도 대적한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 하였나 보라!...” (사40:26). 종류대로 지으신 그분의 완벽한 질서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52

참고 :

이재만
2004-08-13

창세기 1장 (10) -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0)” 

하나님께서 육지와 바다를 나누시는 장면이다. 바닷물은 짜면서도 쓴데 이는 짠맛을 내는 염화나트륨(NaCl)뿐만 아니라 쓴맛을 내는 염화마그네슘, 황산마그네슘, 황산칼슘, 황산칼륨 등도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중 염화나트륨이 85%정도로 가장 높기 때문에 짠맛이 주로 느껴지는 것이다.  염분농도는 1,000에 대한 비율인 천분율의 단위인 ‰(퍼어밀)을 사용한다. 전 해양의 평균 염분은 34.72‰ 이며 대서양이 약 34.90‰로 가장 높고, 증발량이 적은 북극과 남극 해수의 농도가 가장 낮다. 홍해와 페르시아 해역은 지역적으로 42‰를 넘으며, 사해는 포화농도에 가까워 침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바닷물은 왜 짜요?"  바닷가에 가면 아이들에게 한번쯤은 들어본 질문일 것이다. 일본의 전래동화를 보면 한 어부가 소금을 내는 맷돌을 바다에 빠뜨린 이후부터 짜졌다고 한다. 어쨌든 바닷물이 왜 짤까 하는 것은 옛날부터 큰 궁금증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바다물의 기원도 동일과정설적으로 접근하려고 해왔다. 육지 바위의 나트륨과 같은 양이온 성분이 강물에 의해 용해되어 바다로 들어가며 해저에 깔려있는 암석에서도 용해되어 바닷물로 들어가서 점점 농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이론 역시 지금의 염분농도 비율을 가지고 계산하였으며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아예 지구의 초기에 화산폭발과 함께 소금의 농도가 이미 높은 상태에 도달했다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바닷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지금의 염분을 갖게 되었다는 이론들은 늘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바닷물에는 소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질소나 산소, 이산화탄소 등의 기체도 녹아 있고,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는 인산염, 질산염, 규산염 등과 같은 영양 염류도 들어 있다.  그래서 바다 속에 많은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는 또다시 완벽한 디자인 외에는 바닷물의 기원의 어떤 해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바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보면 예수님이 첫 이적인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사건이 떠오른다.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다음 하인들이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을 때 연회장은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요 2:10)라고 칭찬했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연회장의 반응이다.  바로 ”지금까지 until now”이다.  예수께서 순식간에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음에도, 이를 보지 못한 연회장은 포도주를 잔치 처음부터 끝 무렵까지 보관해 두었다고 여긴 것이다. 더 나가서 '지금까지'라는 표현은 맛의 정도를 보고 수 십년 묶은 포도주를 염두에 두었을 지도 모른다. H2O가 포도주에서 발견되는 당류인 C6H12O6로 변화시키는데 예수님께서는 '순간' 밖에 필요치 않았다. 사실 맛있는 포도주는 이 외에 다른 많은 부산물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반면에 물 떠온 하인들은 짧은 순간에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을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누구인가?  보지 못한 연회장인가 아니면 이적을 본 하인들인가?  우리는 소금뿐 아니라 온갖 필요한 성분이 들어있는 완벽한 바다를 보고 성경대로 창조하신 그분의 능력과 신성(롬 1:20)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바로 창조사실을 믿음으로 본 물 떠온 하인들인 것이다. 그렇다, 창조를 보지 못했던 연회장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 사실인 성경을 통해 '믿음으로' 창조의 자리에 있는 선택된 하인들이 된 것이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50

참고 :

이재만
2004-08-13

창세기 1장 (9) - 뭍이 드러나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창 1:9).” 

첫째 날 물로 된 지구를 창조하시고, 둘째 날 하늘이라 칭한 궁창으로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 물로 나누셨다.  셋째 날에 그 궁창 아래 물에서 마른 땅인 뭍(dry land)을 드러내시는 모습이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습을 보이는 여러 동사가 있다.  창조하다, 있으라, 나누시다, 드러내다, 내라, 만드시다 등이다.  혹자는 '창조하다'는 단어만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만 사용하며, 창조란 단어 이외에 단어들은 기존에 창조하신 것을 조작하시는 모습을 묘사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에 창조하신다는 표현이 세 번 등장하는데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처음 창조하시는 1절, 동물을 처음 창조하시는 21절, 그리고 첫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하시는 27절에서 사용된 것과 같이 모두 언급되지 않은 것을 처음 창조하실 때 이다.  나머지 동사들은 기존의 창조된 것을 조작하시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한편 창세기 1장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행위의 동사는 무에서 유를 의미한다고 하는 측도 있다.  즉 빛이 있으라 할 때 빛이, 궁창으로 물을 나눌 때 대기가, 땅을 드러낼 때 땅이, 별을 만드실 때 별들이 무에서부터 창조됐다는 것이다.  어쨌든 두 가지 견해 모두 하나님이 짧은 시간에 그리고 모든 창조를 육일 동안 행하신 것에 동의 하며, 창조란 단어가 무에서 유의 창조에만 사용한다는 것에 반대하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속이 비어(void, 2절)있었던 지구를 마른 땅으로 순간적으로 드러내시는 모습을 양쪽 해석으로 모두로 그릴 수 있다.


진화론자들은 처음의 지구는 뜨거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증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단지 막연히 뜨거운 태양이 지구보다 오래되었다는 것과(지구가 태양에서 분리되었다는 옛 이론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오늘날 내부에서 분출하는 뜨거운 마그마는 지구가 식고있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식의 진화론적 '모델'일 때문이다. 


지각(지구 표면)에 가장 넓게 퍼져있는 암석이 화강암인데, 아직도 화강암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지질학자들의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이다.  이전에는 화강암은 마그마가 지구 내부에서 식어서 만들어 졌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에는 수많은 지질학적 문제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화강암을 대기압 하에 섭씨 1600도면 녹일 수 있다.  그러나 녹였다가 어떠한 방법으로 식히더라도 지금의 화강암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지질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것처럼 화강암이 마그마에서 오랜 세월동안 식으며 형성되었다고 가정한다면, 화강암을 액체로 녹였다가 식힐 때 다시 화강암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즉 화강암을 구성하는 광물인 석영, 장석, 운모의 균일한 비율의 결정(Crystals)이 인위적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지구에서 가장 흔한 화강암 형성과정 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의 한계를 볼 수 있다.  화강암 역시 오랜 시간이 아닌 빠른 시간동안 완벽한 비율로 누군가가 만들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화강암이 매우 빨리 형성되었어야만 하는 지질학적 자료들이 속속히 등장하고 있다.


성경은 지구가 처음에 태양처럼 뜨거웠다든지 태양에서 분리됐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구는 처음에 물이었고, 오히려 지구가 태양보다 먼저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이것들 중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욥 12:8, 9)” 욥이 한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물 가운데 마른 땅을 그의 능력과 신성으로(롬 1:20) 드러내시는 모습을 그릴 수 있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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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재만
2004-08-13

창세기 1장 (8) -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째날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창1:8).  둘째 날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시는데 하루를 할애했다고 말씀하신다. 간격이론과 같이 창세기 1장을 기록된 그대로 보지 않는 이론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다른 하나가 날-시대이론(Day-age theory)이다.  이 이론은 잠재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지배해왔기 때문에, 혹시 날-시대이론과 같은 생각해보려는 분들이 있을까 하여 집어보기로 한다.

날-시대이론은 1800년도 초, 그러니까 허튼(James Hutton)과 라이엘(Charles Lyell)에 의해 동일과정설이 확장되기 시작한 시기에 대두되었다. 즉 자신이 관찰하고 있는 지질학적 속도를 과거에도 똑같았다고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대격변을 무시한 이러한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역사를 여러 단계의 지질시대로 구분하였다. 바로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식의 것이 그 시대이다. 지질학자들은 이 세 가지의 시대(era)를 12의 더 작은 기간(period)으로 구분하였으며, 이 기간은 더 잘게 나누어 수십 개의 단위(series)로 구분하였다. 반면에 성경은 6일 동안에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날-시대이론이란 기독교 학자들이 창세기 1장을 그 지질시대의 틀에 맞추어서 재 해석한 이론을 말한다. 즉 창세기 1장의 하루를 지질시대의 어떤 기간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지질시대를 아무리 맞추려 해도 성경과 조화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순서에 주목하더라도 창세기 1장과 진화론적 지질시대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차이점은 표를 참조하면 이해될 것이다. 사실인 창세기 1장이 사실이 아닌 지질시대하고 조화를 이룰 리 없다. 표에서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날-시대이론처럼 창조기간을 늘리면 오히려 더 많은 문제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꽃과 곤충은 정상적인 논리에서 볼 때 오랜 세월 따로 있을 수 없으나, 날-시대이론으로는 오랫동안 따로 생존해야 한다는 모순에 빠실 수 밖에 없다. 이뿐 아니라 완벽한 우주와 생물은 시간을 길게 늘이면 늘일수록 오히려 문제점만 드러내며, 이를 위하여 상상할 수 없는 가설을 또 첨가해야 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번 언급했듯이 이들이 주장하는 지질시대는 지구상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있다(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즉 위의 지질시대의 모든 층을 보여주는 곳은 지구상에 한군데도 없다는 것이다. 이 지질시대는 진화론적 사고로 지구역사를 꿰어 맞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날-시대이론은 간격이론(Gap theory)과 같이 신학적인 심각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날-시대이론은 하나님께서 수십억 년 동안 우연에 의한 변화를 목적 없이 사용하셨다고 말한다. 약육강식, 멸종, 파멸, 죽음 등의 과정을 오랜 기간 묵과하신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모든 것과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very good)라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죄로 인해 위의 결과들이 나왔다고 가르치지만 날-시대이론은 죄가 있기 전에 이러한 참혹한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진리의 책 성경은 사실만을 포함한다.  이 진리의 책은 타락한 인간에게서 나온 상상의 것과 타협될 수도 없고 허락치도 않는다.  오히려 타락한 인간에게서 나온 것 중에 무엇이 잘못인지 분별하도록 도와준다.  성경은 진화론세대에서 나온 어떤 부분이 거짓인지 분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보여줄 뿐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지질시대와 창세기 1장과의 비교
 지질시대 창세기 1장
 태양과 별들이 지구보다 먼저 생김 지구가 태양과 별들보다 먼저 생김
 뭍이 바다보다 먼저 바다가 뭍보다 먼저
 물고기가 과일나무보다 먼저 과일나무가 물고기보다 먼저
 식물이 오늘날 대기를 생산 대기는 식물보다 먼저
 태양이 식물보다 먼저 식물이 태양보다 먼저
 태양이 지구의 첫번째 빛 빛이 태양보다 먼저
 파충류가 새보다 먼저 새가 파충류보다 먼저
 창조과정이 지금도 계속 진행 창조는 끝났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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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재만
2004-08-07

창세기 1장 (7) - 궁창 위의 물 : 계획의 하나님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창1:7). 

하나님께서 지금의 대기인 궁창을 만드시는데, 바로 첫째 날 창조하신 물을 아래 위로 나누시면서 그 사이에 궁창을 만드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래 물은 다섯째 날 창조될 바다의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생물(21절)들이 살게 되는 물이다. 반면에 위의 물은 지금은 존재하지는 않지만, 창조 당시에는 있었던 어떠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 궁창 위의 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한다.


첫째 날 창조된 빛은 하나의 에너지이며, 가시광선을 포함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감마선, X선, 자외선 등 해로운 광선도 포함된다고 지난 번 빛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이미 설명되었다. 이 해로운 광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단파들이다. 이 단파들은 인체의 각종 피부암과 백내장 등을 일으켜 사람의 건강을 직접 위협할 뿐만 아니라, 육상생물의 돌연변이 발생, 농산물 수확감소, 해양의 생태계 파괴 등을 초래한다. 오늘날에는 오존층이 이러한 단파들을 막아주고 있는데,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공기 중의 수증기이다. 


창조과학자들 대부분은 둘째 날의 궁창 위의 물이 수증기의 형태로 존재하였다는 것에 동의를 한다 (수증기는 완전한 무색 기체며, 습관적으로 수증기라 생각하는 물이 끓으며 발생되는 뿌연 김이나 안개는 아직 액체인 물의 상태다). 그리고 이 궁창 위의 물이 있을 경우 나타날 현상을 덮개효과(Canopy effect)라고 부른다. 이 수증기는 자외선, 우주선 또는 지구 외부의 해로운 에너지들이 도달되기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즉 이 덮개는 생물의 생존능력을 약화시키는 돌연변이의 주된 요인을 제거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건강을 유지시키고 수명을 연장시키는데 효과적으로 기여했을 것이다. 실제로 하늘의 창들이 열려(창 7:11) 궁창 위의 물이 사라졌던 노아홍수 전후를 통해 900 여 년을 살았던 사람들의 수명이 갑자기 줄어든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궁창 위의 물은 창세기의 다른 궁금증을 풀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이 덮개는 빛의 복사열은 통과시키고 지표에서 반사된 복사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시키기 때문에, 지구를 골고루 따뜻한 온도를 유지시켰을 수 있다. 그러므로 홍수 이전에는 비를 내릴만한 기압골을 형성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에, 노아홍수 이전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5,6)라는 홍수 이전인 창조 당시 지구에 대한 묘사는 앞뒤가 정확하게 맞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히 11:7)”라는 말씀 속에, 노아는 정말로 비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위와 더위의 언급이 없다가 홍수 직후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직후에 처음으로 언급된 것도 뒷받침되는 증거이다 (창 8:22). 여러 면에서 궁창 위의 물은 지금 상상할 수 없는 완벽한 지구를 유지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제거된 후에 지구환경과 생물들에게 많은 변화와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재미있는 것은 첫째 날 빛과 셋째 날 식물을 창조하신 사이에 둘째 날에 궁창 위의 물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만약에 첫째 날 빛을 만드시고, 둘째 날에 궁창 위의 물을 만드시지 않았다면, 자외선은 화학작용이 강하므로 셋째 날 식물을 창조하셨을지라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식물창조 후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놀랍게도 빛의 창조와 식물의 창조 사이에 이를 완전하게 조화시키는 물 층을 끼워놓으신 것이다. 또한 앞서 설명한 것처럼 완벽하게 조성된 궁창을 둘째 날에 창조하시지 않았다면, 셋째 날 식물들의 창조가 보기 좋으셨을 리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또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실제로 순식간에 모든 것을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6일이라는 기간을 충분히 활용하셨다. 자신이 만든 시간을 인정하시고, 그 지으신 시간을 사용하시면서 '계획하시는' 모습을 보이신다. 마치 창조하시는 동안에도 시간을 사용하시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듯하다. 


진화론은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원리도 반대한다. 진화론에서 우리는 계획성이 없이 그때의 환경에 맞게 변하여 지금까지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그 환경과의 조화가 아니라, 그 환경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원리에 순응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말한다. 진화론은 우리의 삶 자체도 계획성 없이 보이는 것에만 의지하도록 만들어버린다.

 

*참조 : Is the raqiya‘ (‘firmament’) a solid dom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50

Waters above or beyond?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0_2/j10_2_211-213.pdf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42

참고 :

이재만
2004-08-06

창세기 1장 (6) -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 하시고" (창1:6)

첫째 날 만드신 물로 구성된 지구(watery earth)를 꾸미고 계시는 모습이다. 궁창이란 단어는 히브리 단어는 raquya 인데, firmament 또는 expanse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넓게 퍼진 공간을 의미한다. 즉, 물로 된 지구를 둘로 나누시는데 바로 궁창이라는 것으로 나눈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궁창은 3일에 걸쳐 언급되는데 둘째, 넷째, 다섯째 날이다. 둘째 날은 물을 아래 위로 나누시면서 만드신 궁창(a firmament in midst of the waters)이다. 넷째 날은 해와 달과 별들을 있게 하신 하늘의 궁창(the firmament of the heaven)이다. 다섯째 날은 새가 나는 땅 위 하늘의 궁창(above the earth in the open firmament of heaven)이다. 여기서 어렵지 않게 둘째 날의 궁창과 다섯 째 날의 궁창은 같은 오늘날의 대기권이며, 넷째 날의 궁창은 대기권을 벗어난 우주의 공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말에도 “하늘을 나는 새”와 “하늘의 별들”과 같이 하늘이란 단어를 함께 사용한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어쨌든 궁창이란 말은 “넓게 퍼진 공간”을 총칭을 뜻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궁창은 대기권을 의미한다.


순수한 건조대기는 질소 78%, 산소 21%, 기타 1%가 일정한 비율로 혼합되어 있으며, 지표에서 지상 80km 까지 특별한 성분을 제외하고는 비율이 거의 일정하다. 대기중에 가장 풍부한 기체인 질소는 모든 생물에게 필요한 영양소의 공급원이다. 비가 온 후에 식물들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이유는 비가 대기 중의 질소를 공급하여 주기 때문이다. 식물에게 다량이 필요한 질소는 토양 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은데, 가뭄이 오래 지속될 경우 수분 자체의 부족도 있지만, 질소의 부족이 심각하게 뒤따른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다. 특히 번개가 칠 때 발생하는 고온은 질소를 화학적 반응시켜 질산염으로 전환시키고, 비로 인해 식물에게 제공된다. 이 벼락이나 번개에서 힌트를 얻어 인공적으로 암모니아를 합성하여 만든 것이 바로 질소비료인 것이다. 욥기에 보면 “그가 번개 빛으로.. 식물을 풍비히(in abundant) 주시느니라 (욥 36:30-31)” 란 표현은 놀라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산소는 생물의 호흡에 절대적이다. 산소가 없으면 물론 생물이 살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산소 양이 지금보다 더 많으면 좋을 듯 하지만, 그럴 경우 산소의 다른 역할로 불이 너무 잘 붙게 된다. 또 일단 불이 나면 소화하기도 어려워, 지구는 곧 불바다로 변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산소의 양이 지금보다 적어져도 그 반대 현상으로 불을 붙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뿐 아니라, 당장 호흡이 힘들어진다.


대기의 완전함을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다. 대기의 조성을 보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창조과정 가운데 시간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처음에 조화롭지 못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대기로 점점 조화롭게 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해야 되며 이 완전성은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롬 1:20) 만을 보여준다. 


창조주 앞에 섰던 욥의 고백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 42:3-4). 사실을 알고 있는 분을 통하지 않고 창조에 관하여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 오직 처음부터 계셨던 분에게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물어보고 그분의 답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답을 통해서 오늘날의 모습을 보고 이해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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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2004-08-05

창세기 1장 (5) -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5).

진화론적 사고가 들어온 이래로 성경은 이전에 겪지 못했던 어려움을 맞아왔다. 특별히 창세기 1장인데 그 중에 "욤(day)” 즉 하루에 대한 논쟁이다.  즉 고생대 중생대 하는 진화론적 지질학과 빅뱅과 같은 천문학의 진화론적 가설로 교육을 받으면서이다.


챨스 스펄전은 ”과학이 무엇인가? 과학이 사람의 무지함을 숨기려는 방법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담대히 단언한다. 그리고 우리의 어떤 것보다 (그들의 말을) 훨씬 경솔하게 믿도록 요구한다”라고 하며, 과학자들 역시 타락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 갈 수 없음을 경고했다.


종교개혁 시대에 신부들이 오히려 모든 것이 6일이 아닌 하루에 또는 순간에 창조되었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이때 마틴 루터는 ”모세가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6일 동안 창조했다 라고 썼다면, 6일 전체가 하루였다는 식의 어떤 주석도 감히 생각하지 마라. 그러나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서 6일 동안 행하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 당신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아시는 성령께 의지하라…… 그의 말씀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고 사람의 생각에 성경을 맞추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비슷하게 존 캘빈도 이야기 했다. ”…지금 세상은 끝으로 가고 있으며, 아직 6천년에 도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순간이 아니라 6일 동안에 완수 되었다.”  루터나 칼빈 모두는 당시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게 한 개신교의 분수령을 이룬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는 창세기 1장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지구의 역사도 성경의 역사로 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창세기 1장 밖에서 저녁과 아침이란 말이 욤과 함께 쓰였을 때나 아닐 때나, 보통의 하루가 아닌 적은 찾아볼 수 없다. 히브리어 '욤(day, 약 1200번)” 또는 '야밈(days, 약 700번)”가 성경에서 사용될 때는 보통의 날로 사용되었는데, 시간의 의미로 사용되더라도 문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더 이상의 내용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창세기 1장의 하루 만을 특별히 취급할 이유가 없다.


요나가 물속에 3일 있었을 때나, 여리고 성을 일곱바퀴 돌았을 때에 대하여는 반대하지 않으면서(즉 기적은 인정하면서), 창세기 1장을 오늘날의 하루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기존의 진화론적 편견이 남아있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직도 성경으로 순수하게 들어가고자 준비가 덜 됐던지, 과학에 의해 성경이 흔들릴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가 태양이 없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한다면 아직도 천동설에 갇혀있는 사람이다. 태양과 상관없이 지구가 한 바퀴 돌 때 저녁과 아침이라고 한다. 지구는 처음 창조될 때부터 돌고 있었다는 것이다. 욥의 말 중에 ”땅을 공간에 다시며(26:7)”라는 말이나, 잠언의 ”궁창으로 해면에 두루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When He set a compass upon the face of depth, 깊음의 표면 위를 둥글게 에워쌀 때, 8:27), 이사야서의 ”그는 땅 위 궁창에 않으시나니 (He sit upon the circle of the Earth, 지구의 원 위에 앉으시나니, 40:22)” 등은 둥근 지구가 허공에 떠 있음을 묘사한다. 그 둥근 지구가 처음부터 돌고 있다는 것을 창세기 1장은 계속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의 하루를 오늘날의 하루로 고백하는 것은 믿음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나의 어떤 생각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토를 달지 않겠다는 자세인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내 (한정된) 생각에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완전한) 하나님 말씀에 맞추겠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이 있는데, 그 고백의 순간에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함이 넘치는 것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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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2004-08-05

창세기 1장 (4) - 빛이 있으라 하시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3)

빛은 무엇인가?  물리학적으로 파동적 성질과 입자적 성질을 가진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가운데 파동성에 주목하여 볼 때,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빛(가시광선)은 3900-7700 Å(옹스트롬=10^-8cm)이다. 이 범위 내의 파장의 크기에 따라 규정지은 것이 바로 보남파초노주빨 무지개 색이다. 뉴턴이 처음에 일곱 무지개 색으로 표현했지만, 후에 바우마(Bouma P.J, 1947)가 남색을 제외시켜 파장에 따라 여섯 색으로 구분했다. 모든 파장의 가시광선이 한꺼번에 와 닿을 때 색감을 구분할 수 없으므로, 가시광선을 소위 백색광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물체를 보고 있다는 것은 반사된 빛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란색 색종이를 보고 있다는 것은 그 색종이가 노란색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색은 흡수하고 노란색의 파장만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만약 파란색의 안경을 쓰고 흰 종이를 볼 때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안경이 파란 빛의 파장 만을 통과시키고 나머지 빛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가시광선 영역에서만 우리가 인식한다.


반면에 가시광선의 영역을 벗어나서는 사람이 그 빛을 볼 수 없다. 이 보이지 않는 빛은 가시광선보다 짧은 파장의 자외선, X선, 감마선 등이며, 긴 파장은 적외선, 마이크로파, 전파 등에 해당한다. 이러한 빛은 보이진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는 있다. 선블락 크림을 바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바닷가에서 하루를 지낸 후에 그 피부의 그을린 차이를 보고 자외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맨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병원에서 X-선 촬영을 하고 필름을 통해서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적외선은 열로서 다가오는데, 화로에서 따뜻하게 느끼게 하는 복사 에너지가 바로 적외선이다. 열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열을 발하는 물체가 붉은색을 띠는 것은 적외선의 파장과 가시광선의 가장 긴 파장인 붉은색이 겹치기 때문이다. 또한 더 긴 파장을 통해 우리는 라디오를 수신할 수 있다.


그러면 빛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야기 하면 전자기적 '에너지”의 모든 영역이다. 빛은 가시광선뿐 아니라, 자외선, X선, 적외선, 전파를 포함하며, 열, 소리, 전기, 자기, 분자상호운동의 영역에까지 해당하는 포괄적인 에너지다. 빛은 에너지의 가장 기본이며, 전자기적인 모든 형태를 활성화 시키는데 필수적이다. 이러한 면에서 성경이 태양과 다른 별들을 언급하기 전에 빛을 먼저 언급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실제로 빛이 먼저 없었다면 별들이 빛을 비추지도 못할 뿐 아니라, 별 그 자체가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성경은 이 빛이 넷째 날 해, 달, 별들보다 훨씬 근본적인 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시편 74편에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대해 "빛과 해를 (따로) 예비하셨다"(16절)고 찬양한 것은 재미있는 표현이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 4:6). 물질의 가장 근본 된 빛을 창조하시던 하나님께서 그 말씀 그대로 영적인 면에도 적용하신다. 우리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영광의 소망의 빛(계 21:23)을 우리의 마음 속에 비춰 주셨다. 바로 어두워진 세상에 빛이신 예수님을 보내셨다(요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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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2004-08-05

창세기 1장 (3) - 간격이론 (gap theory)


    "Gap Theory (간격이론)” 창조과학 사역을 할 때 의외로 많이 받는 질문이다. 창세기 1장을 다루면서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기에 한 회를 할애하고자 한다. 간격이론이란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오랜 시간적 간격이 있다는 이론이다. 간격이론의 대부분은 화석을 포함하는 지질시대의 수억 년이 이 두 절 사이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이를 재창조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진화론이 대두된 이래로 기독교인 가운데 진화론적 지질학과 창세기 1장과 조화를 이루게 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간격이론도 그 중에 하나인데,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창세기 1장 어딘가에 긴 기간을 넣으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간격이론은 Dutchman Episcopius(1583-1643)가 처음 언급했지만, 당시 내용도 불분명했고 신학계에 영향력도 없었다. 간격이론이 알려지게 된 것은 Thomas Chalmers(Scottish, 1780-1847)에 의해서이며, 지질학자이면서 목사인 William Buckland가 대중화시켰다. 그 후에 이 이론에 대한 여러 글들이 등장했는데, 19세기 지질학자 Hugh Miller가 더 자세한 이론을 전개했다. 즉 진화론적인 지질학 개념을 가진 기독교인이 자신의 진화론적 지질학 이론과 창세기 1장을 엮으려는 노력에서 체계화(?)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Arthur C. Custance가 'Without form and Void”이라는 책에서 간격이론을 옹호한 것이 크게 파급되는 계기가 됐다.


위의 글들은 어김없이 기존 진화론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고있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주석성경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Scofield Study Bible에는 ”화석은 원시창조로 설명되며, (그러면) 창세기의 우주진화 모양과 과학은 모순이 없다” 고 설명했다. Dake’s Annotated Reference Bible에는 ”(진화론적)지구 나이에 동의할 때,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수백만년을 놓는다. 그러면 창세기와 과학사이에 모순이 사라진다.” 라고 전형적인 간격이론에 기초한 해석을 썼다.


”이는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출20:11)” 속에 긴 기간이란 것이 들어갈 틈이 없다.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2)” 분명히 사람의 죽음은 죄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간격이론대로라면 아담 이전에 지질계통표에 근거한 유인원이 죽었어야 했다. (사실 유인원의 어떤 시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 놓았을까 고민하는 웃지 못할 신학자도 있다)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8:22)” 성경은 분명히 죄로 인해 피조물이 고통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반면에 간격이론은 죄 이전에 죽음과 고통이 있었다고 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무엇보다 간격이론은 아담이 죄를 짓기 전부터 죽음이 있었다고 하며 복음의 기초를 흔들고 있다. 또한 이는 노아홍수를 제거함으로 동일한 말씀으로(벧후 3:7) 심판하신다는 말씀도 막연하게 만들어버린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사45:7)”  2절의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그 깜깜한 세상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다.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간격이론은 논리적 일관성이 없다. 사실인 성경이 아니라, 사실이 아닌 진화론에 기초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지질계통표의 역사는 있지도 않고 우주의 나이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다. 창세기 1장을 통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very good”를 통해서도 화석과 같은 잔인한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리 없다. 진화론적 사고에서 나온 해석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안타깝다. (더 자세한 내용은 Answers Book, Ken Ham, 2000; Earth’s Earliest Ages, G. H. Pamper, 1900 참고바람)

 

*참조 : God of the Gap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4/n1/god-of-gaps

The gap theory—an idea with hole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294/

Morning has broken … but whe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86/

Unbinding the rules (critique of John Sailhamer’s sophistic version of the gap theor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59/

What about the ‘gap’ and ‘ruin-reconstruction’ theorie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cabook/chapter3.pdf

‘Soft’ gap sophistr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53/

Gap theory revisited
http://creation.com/gap-theory-revisited

Creation compromises—Gap Theory
http://creation.com/creation-compromises#g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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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2004-08-05

창세기 1장 (2) - 1절의 믿음


     창세기 1장을 순수하게 접근하기 위해서 먼저 몇 가지 기본 방해 요소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 진화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지질계통표, 즉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하는 진화론적 역사를 머리 속에서 제거해야 한다. 실제로 지구상에 이러한 지층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수억 년 되었다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연대측정 결과에서도 자유해야 한다. 결과가 숫자로 나왔다 할지라도 그들은 진화론과 지질계통표의 신뢰 하에 얻어진 무의미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제점은 그 동안 많이 지적되었었다.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졌다면 창세기 1장으로 들어갈 최소한의 준비작업은 마쳤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인 창세기 1장을 순수하게 보려면 비진리인 어떠한 개입도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사실이 아닌 진화론, 지질계통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난 상태라야 창세기 1장을 읽을 사전작업이 되었다 할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창 1:1). 성경 66권 중에 첫 번째 책인 창세기, 그 중에서도 첫째 장 첫 문장이다. 이 첫 번째 구절은 "시작(beginning)”, "하늘(heaven)”, "지구(earth)”를 동시에 "창조”하시는 모습을 그린다. 바로 시간, 공간, 물질을 동시에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 중 첫번째 물질이 바로 우리가 거하는 지구인 것이다. 어려운 물리이론을 펴지 않더라도 시간 없이 공간과 물질의 존재는 불가능 하다. 공간 없이 시간과 물질이 있는 것도 생각할 수 없다. 물질이 없이 시간과 공간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창조 첫 행위가 '시간”, '공간”, '물질”을 동시에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세 가지 중에 공간에 대하여만 나누어보자. 공간이라는 것은 기능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인력이라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이라는 것은 물질 존재에 필수 불가결한 매개 기능이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욥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38:38). 누군가가 처음부터 그 공간의 기능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우주의 물질은 그 모양도 갖출 수 없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동시창조라는 의미는 언제나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의 창조를 말한다. 실제로 "창조(bara)” 라는 단어는 항상 하나님의 일에만 사용되는 단어인데, 존재하지 않는 것(no existence)에서 존재하는 것(existence)으로의 무에서의 창조(ex nihilo)를 의미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가? 무에서 시간과 공간과 물질,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모습은 우리에게 "Nothing impossible”로 다가온다. 우리는 Nothing impossible 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하며, 더 나아가 그의 6 일간의 모든 창조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갖출 수 있다. 더 나아가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이적을 포함한 하나님의 구원사역까지 받아들일 자세가 된 것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나는 창세기 1장 1절은 믿지만 연이어 행하신 6일간의 창조는 믿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창세기 1장 1절을 확실히 이해한 것이 아니며, 1장 1절 그 자체도 바르게 믿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확실한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도 바로 직결된다. 눈 앞에 응답이 없이 보일 때도, 하나님께서는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뜻이 있기에 참으시거나 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이다.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창세기 1장 1절을 믿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장 1절이 사실이라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완전히 주관하심을 믿는 것이다. 순서상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믿음이 먼저이지, 나의 경험이 먼저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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