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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03-10-04

내가 6일 창조를 믿는 이유

김무현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이사야 42:5)

나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까지도 성경 말씀이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다른 종교의 경전들도 깊이 있고 윤리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으며 그 중에는 성경의 가르침과 유사한 내용도 있다. 성경이 그런 경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일까? 물론 성경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디모데후서 3:16)고 증거한다. 하지만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성경구절로 증명한다는 것은 순환논리이므로 설득력이 없었다. 


미국 대학에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 나는 항상 짐이 되었던 위와 같은 질문에 스스로 도전해 보기 위해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한시간씩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묵상이 몇 년 동안 계속되는 가운데 참으로 많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깨달음이 있었다. 이 기간동안 그때까지 막연히 품고 있었던 성경에 관한 많은 의심과 회의가 걷히고 성경이야말로 결코 사람이 만들어낸 종교적 경전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전까지는 평범하고 필요없는 것같이 생각되던 내용 가운데도 심오한 진리가 숨겨져 있음도 깨닫게 되었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 기록되었다는 가장 큰 증거는 역시 예언의 성취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완벽한 일관성에 있다.


이렇게 성경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 후에도 한가지가 찜찜했는데 그것은 창세기 1-11장의 내용이었다. 학교에서 과학적 사실이라고 배운 내용들과 너무도 상반되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6일 창조와 노아 홍수가 특히 그러했다. 나 자신에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창세기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에도 과학을 전공한 교우들이 말도 안 된다고 우길 때에는, 믿기 힘들면 그냥 상징적인 의미만으로 해석하라며 어물쩍 넘어가곤 하였다. 그러던 중에 창조과학에 관한 여러 서적들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특히 헨리 모리스 박사님의 책들과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과 AIG(Answers In Genesis)의 여러 자료들이 정말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본주의적 진화론으로 너무도 철저히 세뇌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진화론이란 것이 증명할 수 있는 참과학이 아니라 추론에 불과한 유사과학임을, 실제로 진화론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들도 별로 없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화석마저도 진화론의 가장 큰 장애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조나단 웰스 박사가 밝혔듯이 진화론에 관한 한, 과학 교과서들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철학적(자연주의에 관한 맹신)인 내용들로 가득 찼는지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최근 들어 DNA연구와 정보이론, 지적설계 이론들을 접하며 창조와 지적설계에 대한 확신이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성경에 관해 찜찜했던 마지막 짐이 벗어진 것이다. 이후에야 모든 성경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확신을 가지고 전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도 창세기가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하시며 모세를 믿지 못한다면 나 또한 확신으로 믿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요한복음 5:46-47). 모세오경을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신화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만큼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것도 힘들다는 말이다.


이후로 나는 확신을 갖고 한국창조과학회(KACR)와 미주창조선교회(ACTS)의 남부 지부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귀하고 보람된 일을 맡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쁨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창세기 중 진화론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공격받는 부분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6일간의 천지창조 내용일 것이다. 전능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모든 기원과정을 수십 억 년에 걸친 자연과정(Natural Process)이라 주장하는 무신론적 자연주의자들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아성이 바로 지질학적/우주적 오랜 연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오랜 연대는 우주/지구/생명의 진화를 부분적으로나마 정당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전제이다. 


그들은 지난 200여 년에 걸쳐 과학이라는 학문분야에서 전능하고 초월적인 창조주의 존재나 지적설계 개념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 모든 기원이론은 자연주의 관점에서만 설명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고, 그 체계 안에서만 학문의 탑들을 쌓아 나갔다. 그 결과 현대과학은 모든 자연의 현상 및 기록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대신, 전능자의 지적설계 및 초월적 창조를 철저히 배제한 학문체계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들은 오랜 우주/지구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많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격변의 상황은 없었고, 모든 것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는 균일론의 가정 하에서 성립된 추론일 뿐이다. 실제로는 젊은 우주/지구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이라는 배경신념과 모순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철저히 배제되고, 무시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성경적 창조를 믿는 과학자들은 철저히 소외를 당하며 지적인 조롱과 핍박 속에 놓이게 되었다.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로마서 15:3)

이러한 과학의 진화론을 중심으로 한 도그마(dogma) 때문에 많은 신학교와 교회에서 창세기의 해석을 애써 현 과학의 패러다임(paradigm)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와 노력들이 많이 있어 왔다.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 간격이론(gap theory),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 그리고 점진적 창조이론(progressive creation)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사야 29:13)

그 중 유신론적 진화론은 그 자체가 초월적 창조주가 없다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복음적 신앙과 병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암시나 힌트조차 없기 때문이다. 간격이론 및 날-시대 이론은 창세기 1장을 현 과학의 오랜 우주/지구 패러다임에 맞추어보려는 노력인데, 성경적 해석에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현 과학의 패러다임인 진화론과도 병행하기 쉽지 않은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신명기 4:2)

나도 한때 날/시대이론이 더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그 모든 창조를 수십억 년에 걸쳐 철저히 자연적 과정(Natural Process)에 의존해야만 할 특별한 이유도 없을 뿐더러 그에 대한 확실한 과학적 증거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후에는 다시 한번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게 되었다. 특히 재림 후에 이루어질 전 우주적 재창조는 수십억 년이 아닌 단시간에 이루어질 것임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주님 재림 후의 재창조가 단시간에 이루어질 것이라면 태초의 창조도 수십억 년이 걸려야 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전능적/초월적 창조는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일이고 과학의 범주를 초월하기 때문에 과학으로는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전능한 창조의 흔적들을 이 자연세계에 남겨 놓으시며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그것을 탐구할 기회를 주셨다. 또한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 창조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도 간략하게 그 대략을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여 주셨다. 진화론적 세계관과 과학주의로 철저히 세뇌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6일 창조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주위사람들이 지성인이 아닌 맹신자라고 놀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오히려 젊은 우주/지구를 보여주는 자료와 현상들도 많이 존재한다. 나 자신이 그랬듯이 그것들을 자세히 공부해 보면 성경적 창조가 더 이상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실제로 인류의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들은 진화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지질학적 세월에 걸쳐 존재한 것이 아니라 노아 홍수를 전후하여 갑자기 나타난다. 세계 모든 종족과 언어의 기원도 성경에 기록된 노아 홍수와 바벨탑 사건으로 더 잘 설명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7)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편 33:6)

창조란 인간의 두뇌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데에 있어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가지 관점만 절대로 옳다고 주장하며 법칙(Doctrine)화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계시하여 주신 성경을 가장 자연스럽게 해석하며, 그 기원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전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참으로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13:12 말씀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처럼 창조의 자세한 내용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줄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곳에서 계시록의 24장로들과 같이 전능하신 창조주를 다음과 같이 찬양할 것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요한계시록 4:11)

한편, 창조와 타락의 중요한 신학적 기초가 창세기 1-3장에 있기 때문에 그 내용 자체가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절대적 진리임을 믿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세이다. 모세오경을 신화로 보려는 자유주의적 입장은 근거도 희박하며, 오히려 우리 믿음의 기초를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가장 좋은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누구든지 이 계명(구약 특히 모세오경)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19)

인간의 머리에서 추론해낸 진화론이란 가설에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를 애써 끼워 맞출 필요가 없다.


다음에는 6일 창조 외의 타협적 성경해석을 도입하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예를 날/시대 이론을 통해서 살펴보려 한다. 날/시대 이론은 진화론이 거세게 과학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던 19세기에 휴 밀러(Hugh Miller) 등에 의해 제안되기 시작했다(1869). 지금은 휴 로스(Hugh Ross)등의 Reasons To Believe라는 단체를 통하여 전해지고 있다. 이 이론은 날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 '욤'(yom)이 성경에서 '문자적인 24시간의 날'로도 쓰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어느 불특정한 기간'으로도 쓰일 수 있음에 주목하였다(창세기 2:4(창조하신 때), 시편 20:1(환난날), 욥기 20:28(진노하시는 날), 전도서 7:14(형통한 날)). 그리고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순서와 진화론에서 말하는 진화 순서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에 착안하였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론이 말하는 것과 비슷한 순서대로 점진적 창조(Progressive Creation)를 하였다는 것이다. 즉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의 한 날은 역사지질학의 한 시대 만큼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지층이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균일적으로 다 만들어졌으므로, 노아의 홍수를 지역적 홍수(local flood)로 본다(이는 예수님께서 노아 홍수가 결코 지역적 홍수가 아니라고 하신 것에 위배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해석에는 여러 가지 성경적 문제점들이 있다. 히브리 원어 상으로도 욤(yom)이 숫자를 나타내는 제한적 형용사(either numeral or ordinal) 뒤에 쓰인 경우에는 전체 성경을 통하여 한번의 예외도 없이 문자 그대로의 날을 의미한다(이를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성경에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부연설명까지 있음). 또한 출애굽기 20:8∼11에 보면 창조의 6일(six days)에 해당하는 욤(yom)의 복수형 야민(yamin)이 쓰였는데 이처럼 복수형이 쓰인 경우에는 한번도 예외 없이 문자적인 날을 의미한다.

"이는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출애굽기 20:11)

특히 사람을 창조하여 이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면,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이유 없이 오랜 지질학적 연대에 걸쳐, 고생대 생물을 만들고 다 죽이고, 공룡을 만들고 다 죽이고 하는 과정을 밟으셨냐 말이다. 이것은 바로 주일학교에서 설교를 하던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던 아들의 질문이기도 하다. 날-시대 이론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병과 고통과 살생과 싸움과 죽음이 아담의 첫 범죄 이전부터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전능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오랜 세월을 낭비해 가며, 이유 없이 수많은 생물들을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 등 가장 비효율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이끄시며 아담까지 오게 하셨겠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에 조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또한 인간이 불순종의 죄를 짓기 이전에 이미 피조세계에 질병과 고통, 죽음과 파괴 등이 진행되었으므로 그러한 것들을 인간의 죄 때문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창세기 3:17-19)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로마서 8:19-23)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린도전서 15:21-22)

인간의 머리에서 만들어낸 진화론이나 역사지질학이란 유사과학에 성경 해석을 애써 끼워 맞추려다 보니 오히려 창조-타락-구속-심판 및 완성으로 요약되는 성경의 큰 물줄기에 큰 흠집을 내게 된다. 그 엄청난 창조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듯 진화도 단지 추론이며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우리 피조물이 초월자가 하신 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개미들이 사람이 컴퓨터를 만들고 달나라에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과학의 패러다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바란다. 진화는 종교이지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6일 창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바라보기 바란다.


출처 - 창조지, 제 135호 [2003. 1~3]

미디어위원회
2003-10-04

창세기로 돌아가기

(Back To Genesis)

Dr. Henry M. Morris 


세상의 빛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1] (요 1:9) 

지금까지 이루어진 선언(宣言) 중 가장 경이로운 것 중 하나를 고른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래 전 어느 날 아침,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를 비난할 근거를 찾기에 혈안이 된 편협한 종교주의자 들에게 한 주장일 것이다. 이 주장으로 인해 그는 정신 나간 미치광이 혹은 기만적인 사기꾼 아니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세가지 가능성 중 하나로 귀착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경이로운 선언

그가 한 선언이란 바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이다. 이 주장을 들은 사람 중에는 이러한 질문을 한 사람도 있었으리라. “이봐요, 세상을 밝히는 것은 저 위대한 태양이지 갈릴리 출신의 거처도 없는 별볼일 없는 설교자일 리가 없지 않겠소? 하늘 높이 운행하는 저 태양이야말로 빛을 발하여 사람들이 어두움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저 태양이라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이오? 또 태양은 생명을 낳는 역할을 하죠. 에너지를 방출하여 식물을 자라게 하고 강물이 흐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태양이야 말로 ‘생명의 빛’이라고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오. 그런데 피조물에 불과한 당신이 어떻게 생명의 원천이라고 주장할 수 있느냐 이말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놓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단지 은유적인 표현을 쓴 것 뿐입니다. 그는 영적인 빛이요 영적인 어두움을 밝히는 영적인 생명의 근원이라는 말이지요. 태양광선을 복사(輻射)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대답 또한 문제 제기자의 생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정식 교육도 못 받고 망상에 빠진듯한 추종자들이나 거느린 한 시골 설교자를 생각해 보라! 그가 전세계를 위한 영적, 도덕적, 지적 지침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 그의 제자들은 이스라엘이라곤 벗어나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나사렛 출신의 이 예수라는 사람은 어떻게 그의 터무니 없는 이 주장을 사람들이 받아드리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놀라운 실현

그러나 놀랍게도 지난 이천년 동안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삶의 변화를 체험하였다. 단지 개개인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가 총체적으로 변화되었다. 수많은 교회와 여러 사역 단체들이 세워졌음은 물론이고 많은 훌륭한 학교가 그의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병원과 자선기관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를 위해 국가가 세워지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노예제도가 폐지되기도 하였다.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들의 많은 수가 그의 신실한 추종자들이었고 과거의 위대한 의학자들도 그러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경멸 당하고 지도자들에 의해 매우 끔찍한 방법으로 사형에 처해졌지만 현재까지 영적, 도덕적, 지적인 차원에서 세상의 빛이 되고 있다. 그를 따르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생명의 빛을 얻었다는 기쁨의 간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리! 죽음을 이기고 영광스러운 육신으로 무덤에서 살아나셔서(역사상 가장 잘 증명할 수 있는 사실로서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는 사건) 그는 하늘 아버지와 동일한 신분을 가진 전능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증명하셨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이 그의 권위를 기대어 만물을 창조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증거 하였다. 그는 태양은 아니지만 태양보다 위대한 분이시다. 그는 바로 태양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골 1:16),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요 1:3).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셨다” (엡 3:9)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물리적 빛의 근원인 태양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태양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보존해 주시는 분이기도 하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서부터 이며” (미 5:2),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 (히 1:3). 과학자들은 태양이 계속해서 빛을 복사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에 대해 아직도 확신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많은 과학자들이 태양의 핵융합 이론을 신봉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이론으로도 풀지 못하는 어려운 숙제들이 남아 있으며 어느 누구도 정확한 해답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빛의 힘

그런데 성경을 믿으면 창조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존자이기도 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는 그의 힘으로 세상을 지탱하고 계신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7). 사실상 그는 우리가 속한 태양계의 태양뿐 아니라 전 우주의 모든 태양을 운행하고 계신다. 그는 이 작은 태양계의 빛일 뿐 아니라 전 우주의 빛이시다. 장래에 약속된 새 땅의 거룩한 성에서는 태양도 필요치 않으니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계 21:23). 

이러한 성경 구절은 질량-에너지 등가원리라는 현대 과학의 개념을 넌지시 보여 주고 있다. 만물이 힘에 의해 서있다. 그런데 그 힘은 바로 예수님의 힘인 것이다. 그 안에서 만물이 보존된다. 온화하며 사랑이 많으신 우리의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자로서 만물을 운행하시며 언젠가 이 모든 것을 태초의 완벽한 상태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를 믿는 자마다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주장하시며 물리적인 생명에 대해 말씀하신다. 현대 물리학 (적어도 고전 물리학)은 전자기대(電磁氣帶, electro-magnetic spectrum)를 중심으로 연구되어 졌다. 전자기대는 자연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힘과 에너지를 포함하는데 빛, 열, 소리, 전기, 자력, 화학 에너지 등 중력과 핵에너지를 제외한 모든 것이 해당된다. 빛에 대한 연구는 물론 그 중심부를 차지하는 가시광선 대를 포함하여 장파인 적외선에서 단파인 자외선의 복사까지 전 대역을 다룬다. 이와 같이 빛 에너지는 모든 에너지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에 속한다. 성경에 기록된 첫 구절 중의 하나가 “빛이 있으라” (창 1:3)인 것이 그리 놀랍지 만은 않다. 태초에는 빛이 없었으나 하나님이 “광명이 있어”(창 1:14)라고 빛의 창조를 명하신다. 그 즉시 하늘에는 땅을 위한 두 개의 광명이 생겨나고 “또 별들이” (창 1:16) 전 우주에 흐드러지게 생겨난다. 이 모든 빛은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창 1:14) 이루고 땅의 생명체를 위한 여러 놀라운 현상(광합성 작용 등)을 가능케 하여 생명을 유지시킨다. 

성경은 “그(하나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4)라고 증거하고, 또한 그리스도는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 (요 1:9) 이라고 말씀한다. 이는 물리적으로나 영적으로 모두 적용되는 사실이다.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행 17:28,27).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세포 하나 하나를 포함한 존재 여부가 바로 예수님의 보존능력에 달려 있다는 깨달음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다면 정신이 번쩍 나는 경험이 될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힘을 회수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존재는 무(無)로 몰락(沒落) 되는 것이다. 

영적인 관점에서도 예수님은 “세상에 와서 각 사람” (요 1:9)을 각성(覺醒)시키는 분이다. 이방의 땅에서 태어났거나 평생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도 듣지 못한 사람들도 자연, 양심, 역사 등의 테두리 안에서 빛에 노출되며,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점점 더 강한 빛에 노출되어 종래에는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성경의 본보기가 있다면 로마 사람 고넬료의 이야기일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도록 베드로를 보내신다. 베드로가 말했듯이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신다” (행 10:34,35) 

반면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경고도 있으니 이러한 빛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사람은 “핑계치 못하고” (롬 1:20) 예수님을 믿지 않은 고로 “죄 가운데서 죽게 된다” (요 8:24) 는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 (대하 16:9).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딤전 2:4) “어두움에서 빛으로 돌아가게 하기를” (행 26:18) 원하시지만 사람들이 회심하지 않는 것이다. 

 

하늘의 빛을 전달하며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라고 말씀하셨으며 여기에서는 영적인 빛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는 아니 하시지만 예수님이 자신의 빛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듯이 그의 빛의 각성 운동은 믿는 이를 매개체로 지속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1) 

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이자 창조자로 여기는 사람들로서 우리의 사명과 과제는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빌 2:15,16) 일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4:12) 


[1] 개역 한글 성경에서 인용함. 이하 인용된 모든 성경 구절은 개역 한글 성경에서 가져옴.


출처 - ICR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back-genesis

          https://www.icr.org/article/6203/

번역 - 박한성

Andrew A. Snelling
2003-10-04

창세기 개론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고, 그때에 공간과 물질이 만들어졌다. 출애굽기 20:11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하늘과 땅, 바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드셨고, 수백만 년 내지는 수십억 년의 공백기간(gap)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언행일치를 위해 출애굽기 20장에 나타난 바와 같이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6일동안 일을 하고, 나머지 하루동안 안식할 것을 말씀하셨다면, 그 창세기 1장의 그 날은 평범한 24시간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히브리(Hebrew) 말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런 뜻인데, 이 사실은 믿을만한 진술과 보수적인 그리스도 학자에 의해 확증되었다. 창세기 때의 하루는 시간이 길었어야 한다는 히브리말과 아담이 930 살에 죽은 사실, 이 두 가지 모두에서 일치하지 않았다. 


창조 첫째 날에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명하시기는 했지만, 그 빛의 원천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 (태양은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빛에 따르는 어둠이 있었고, 그 결과 지구는 이미 자전을 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당시 지구를 물로 덮으셨고, 그 때 그곳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날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구표면을 덮고 있는 일부의 물을 들어올려 그들 사이에 궁창을 두셨다. 우리는 궁창 위의 물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를 풀지 못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것들이 지구 위의 궁창 주위를 순환하는 수증기 상태로 존재해야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수증기로 된 하늘덮개가 지구 전지역을 아열대 기후 상태의 온도로 유지시키고, 노아의 홍수 때에 내린 큰비의 일부 원천이 되었을 것이라는 데 반하여, 최근에는 만약 이 궁창 위의 물이 수증기로 된 하늘 덮개 형태였다면 하늘덮개의 두께가 40 주야로 땅에 비를 뿌리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2장 5-6절은 태초에 지구상에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았고, 안개만 지면을 적셨다고 말함으로써 '궁창위 물' 에 대해 수증기로 된 하늘덮개의 형태였다는 모델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셋째 날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땅을 덮고 있었던 물로부터 뭍을 드러나게 하셨음을 들었다. 이 사실은 최초로 형성된 바위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새로운 땅 표면이 드러난 것처럼 물이 빠지면서 그들 바위들을 침식시켰고, 새롭게 형성된 바다 밑바닥에 침적된 침전물을 형성하였다. 또한 나타난 말씀을 통해, 그 당시 지구는 원래 완만한 하나의 대륙으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에 땅 표면을 덮기 위해 각종 식물들이 창조되었다. 

넷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는데, 해와 달은 이미 존재했던 빛의 운반체로써 낮과 밤을 주관하고, 별들은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나타내도록 하셨다. 별들의 거리는 오늘날 광년(대략 초당 300,000km의 속도로 1년 동안 빛이 가는 거리)으로 측정되는데, 만약 별들로부터 빛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몇 백년이 걸린다면 어떻게 이들이 창조된 날들의 하루가 24시간으로 이루어졌겠는가? 

지금까지로는 우리가 그것들을 이해할 만큼 모든 성경적인 그리고 과학적인 자료들을 일치시켜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빛이 채 하루도 안 걸려서 모든 별로 부터 지구에 도착하도록 초기에는 아주 작은 규모의 우주를 만드실 수 있었고, 그 후 '하늘을 넓히심으로써' 우주가 빠르게 팽창되었다. 유사하게 하나님께서는 이미 별들로부터 지구에 도착하는 빛을 창조하실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빛의 속도가 과거에는 더욱 빨랐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충분히 '성숙한'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그래서 빛은 때와 계절을 알려주는 별들을 위해 6일까지 지구상에 존재해야만 했다. 

다섯째 날 하나님께서는 바다 속의 생물들과 새들을 창조하셨고, 육지의 동물과 인간은 여섯째 날에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함축적으로 고래와 커다란 바다생물체를 창조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최초의 가장 큰 생물체였다. 사용된 용어는 공룡들이 채식을 하며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와 함께 평화롭게 살았음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동물과는 다르게 창조되었다. 아담은 원시적인 야만인이 아닌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이브가 그의 갈비뼈로부터 만들어지기 전인 여섯째 날에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다. 

여섯째 날의 마지막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가 만든 모든 것들을 보고 좋아하셨음을 알 수 있고, 그 당시에는 반역, 유혈, 고통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곱째 날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안식하셨으므로, 루시퍼는 그때까지는 창조된 질서를 타락시키고, 신에게 대항하여 모반을 꾸미지 않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후 루시퍼(현재의 사탄)는 모반을 꾸며서 뱀의 모습으로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토록 꾀었고, 금지된 행위(선악과를 따먹는 것)를 하도록 유혹하였다. 그들은 시험에 빠져서 반역의 대가로 저주, 고통, 그리고 죽음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다음으로 아담과 이브가 아이들을 가졌음을 알게된다. 카인, 아벨, 그리고 셋은 이름이 나타나 있으나, 그 외에도 그들은 여러 명의 아들과 딸을 가졌음이 나타나있다. 그러면 카인은 누구와 결혼을 했는가? 우리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의 누이와 결혼했을 것이다. 기억하건데 하나님은 모세 시대까지 남자가 누이와 결혼하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고, 이 때에는 유전적인 결합이 분명히 문제되지 않았다. 

우리는 카인이 나가서 도시를 세우는 동안 인구가 빠르게 늘어났음을 알고 있다. 또한 창세기 4:19-22는 악기를 다루고, 놋쇠와 철과 같은 금속들을 다루는 아담의 자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탐광과 제련을 하는데 발전된 기술을 갖고 있었음을 내포하며, 무지한 원시인들이 석기와 청동기 그리고 철기시대를 거치며 발전해 가는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묘사된 바가 없다. 

인간의 사악함과 죄 뿐만 아니라, 많은 이유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구상에 홍수를 일으키셨다. 만약 홍수가 지구상에 없었다면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방주가 필요하지 않았을 테지만,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높은 언덕들"과 같이 성서에 나타난 말씀은 명확하였다. 게다가 만약 홍수가 단지 지엽적으로 있었다면, 무지개가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일 수는 없다. 그리고 성서에서 모든 육상동물과 호흡하는 동물이 한 쌍씩 방주에 태워졌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아마도 모든 종류의 공룡도 한 쌍씩 태워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땅속 깊은 샘이 파괴되고, 지구 내부에 있던 막대한 양의 지하수가 솟아나오며, 노아의 홍수가 시작되었고, 아마도 화산활동도 있었을 것이다. 내포하는 의미를 추측해보면, 원래의 대륙이 파괴되고 노아 홍수 동안 급격한 대륙이동을 수반하면서 침적된 지층들이 오늘의 대륙을 형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견해가 비록 '판구조론'의 증거와 대립되고는 있지만). 홍수 때 물에 의해 쓸려버린 수십 억의 생물들이 지구전체가 물로 뒤덮임으로 인해 침전되고 바위 층에서 화석화되므로써 많은 화석들을 만들어내었다. 몇 가지 화석들을 통해 급격한 화석화와 지층의 대변동이 굉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노아 홍수이전 사람들의 화석은 발견되지 않는다. 대양의 깊은 곳으로 물이 빠지며, 그 과정중 오늘날의 지형과 같은 나눠진 형태로 대륙이 형성되었다. 

노아 홍수 이후 기후가 변하므로써, 빙하기가 시작되었고 최대 500년 가량 동안 계속되었다. 많은 양의 물들이 대륙의 빙하가 됨으로 해서 오늘날보다 거의 200 미터나 낮은 해수면을 유지했다. 그렇게 해서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를, 그리고 호주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육로가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아라랏산 지역으로부터 지구 전역으로 동물이 이주하는 것이 용이했다 


빙하기 중에 또 하나의 중요한 성경적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벨탑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나뉘게 하셔서 바벨로부터 사람들을 이동시키셨고, 빙하기에 존재했던 육로가 그들의 이동을 용이하게 했을 것이다. 인류유전자의 이러한 분열은 다른 '피부색'을 가지며, 언어와 문화양식이 다른 인종들을 급격하게 발생시켰다. 바벨론으로부터 이주한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나 생활양식이 퇴행했을지도 모른다. 

노아의 홍수 이후 500년에서 700년 사이에 빙하기가 약화되기 시작했던 약200년 무렵, 대륙의 얼음덩어리들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올라가고 육로가 차단되었다. 세속적인 역사가들은 여기서부터 역사기록을 시도하지만 증거들은 인간과 초기 역사, 그리고 물질의 기원을 성경적으로 해석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음을 보여 준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bible/b1/b14/b14o5.htm ,

출처 - 논문집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9

참고 :

김성근
2003-08-21

에덴의 위치에 관한 소고


1. 서론 

2. 에덴의 위치에 대한 기존 견해들

3. 에덴 위치에 대한 새로운 가설

4. 결론

참 고 문 헌

부록1

부록2

 

1. 서론 

에덴은 지금 이 땅위에는 없다.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의 도성 새 예루살렘은 에덴과는 다른 곳이다. 그곳에서는 옷을 벗지 않고 흰옷을 입고서 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는 지금 이 땅위에서 없어지기 전의 그 에덴의 위치를 찾아보고자 한다. 에덴의 위치에 관한 문제에 관한 결론적인 답은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에덴의 위치를 거론하는 것도 하나의 가설을 두고자 하는 것이다. 과학적이라는 것이 진화론적 전제를 두고서 가설을 검증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작업은 아니다. 그러므로, 창조를 전제로 두고서 가설을 검증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것도 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제하에 에덴동산의 위치를 알아보기로 한다. 

 

2. 에덴의 위치에 대한 기존 견해들 

우선, 톰슨 II 주석성경에서 '에덴동산'에 대한 사항을 보면, 그 지리적 위치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에덴이 동쪽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취하는 자들은 비손강(11절)을 인도의 인더스 강 또는 갠지스 강으로, 기혼강(13절)을 이집트의 나일강으로 본다. (2) 에덴이 남바벨론의 에리두(Eridu) 부근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E. 그레이의 탐사를 근거로 한다. 그는 비손강, 기혼강, 힛데겔강을 북아라비아의 다와진, 시르한, 룸마의 강줄기였다고 한다. (3) 에덴이 북바벨론 지역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학설은 1881년 독일의 앗시리아 연구 학자 델리취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는 에덴을 바벨론 평야 전체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는 비손과 기혼을 바벨론에 있는 두 운하 곧 팔라코파스 운하와 샤트-엔-닐 운하로 보았다. 이처럼 에덴 동산의 위치에 대한 지리적 재구성은 여러 갈래로 시도되었으나 만족할 만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성경 지명이 단일 지역만을 의미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 지구상의 지형 변화가 계속되었다는 난점 때문이다. 

위의 내용 중 첫번째 주장은 요세푸스의 주장이다. 요세푸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모세는 연이어 말한다. 하나님이 동방에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무성한 낙원을 창설하셨다. 그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그것으로 선과 악을 알 수 있는 지식의 나무도 있었다.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이 동산 안으로 이끌어들이시고 나무들을 돌보라고 명령하셨다. 동산을 적시는 강이 하나 있었는데 온 땅 곳곳을 흐르는 이 강은 네 지류로 갈라졌다. 군중이라는 뜻의 피손(Phison) 강은 인도로 흘러 들어가 바다로 흘러가는데 헬라인들은 갠지즈(Ganges) 강이라고 부른다. 티그리스 강 뿐 아니라 유프라테스 강은 홍해(the Red Sea)로 흘러 들어간다. 유프라테스 혹은 프리트란 이름은 분산 혹은 꽃이라는 뜻이고 티그리스 혹은 디글라트란 이름은 좁고 빠른 것이란 뜻이며 이집트를 관통하는 게온 강은 동방에서 발원한 것이라는 뜻으로 헬라인들은 나일 강이라고 부른다.'

성경 창세기 2장에서 나타나는 강의 이름은 비손(2:11), 기혼(2:13), 힛데겔(2:14) 그리고 유브라데(2:14)이다. 원어에서는 각각 삐쉬온, ?흐온, 쑁펨데웉, 페?라트로 나온다. 비손은 '분산하는', 기혼은 '강줄기'라는 뜻이며, 힛데겔은 '소리'라는 뜻으로 다니엘 10:4에서도 나타나는 지명이며 원어사전에서 보면 티그리스라고 보며, '페라트'의 경우 원어사전을 찾아보면 유브라데을 지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최근의 고고학적 일부 견해는 에덴동산의 위치를 바레인 섬으로 보기도 한다. 바레인 섬에는 아직 발굴이 안된 분묘들이 많이 있으며, 뱀숭배 흔적들이 발견되는 것이 그 이유로 제시되고 있다. 

 

3. 에덴 위치에 대한 새로운 가설

이러한 에덴 위치에 대한 여러 견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고에서는 또 하나의 가설을 적어보고자 한다. 이 견해는 판구조론(Plate Techtonics)을 원용(援用)하는 것이다. 하나의 대륙으로 되어져 있던 대륙은 진화론상의 연대기인 중생대(약 230만 년 전)에 갈라지기 시작하여 남쪽의 곤드와날랜드(Gondwanaland)와 북쪽의 라우라시아(Laurasia)로 나뉘어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제 진화론적 견해를 주장하고 있는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판구조론을 설명하고 있는 다음의 그림을 참조하면서 이 견해를 전개하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의 그림에 있어서의 아프리카 대륙의 동북부와 아라비아 반도의 대륙판이 붙어있던 부근에 에덴동산이 있었고, 그것이 홍수라는 판구조의 변화 내지 격판구조의 변화를 겪음으로써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그림에서 주목할 부분은 지금의 예멘과 이디오피아 부근이다. 예멘과 이디오피아 부근은 성경의 지명에 의하면 구스 땅이라고 나타난다. 특히 이디오피아가 그러하다. 예멘은 가끔 스바라는 지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경 창세기 2장 13절에서 보면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렀고'라고 기록되어져 있다. 다음의 <그림 2>를 보기로 한다. 여기서는 홍수의 격판구조 변화이전의 구스지역을 확대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기혼강의 위치는 바로 균열되기 전의 홍해이다. 즉, 기혼강은 홍해-아카바 만-사해-요단강-갈릴리호-헬몬산 화산분화이전의 그 북부까지의 지류로 형성된 강으로 보는 것이다. '둘렀고'라는 표현은 '핫소베브'라고 하여 '두루 흐른다'는 의미이다. 이 경우, 최소한 세 강의 발원을 추측해낼 수 있다. 즉, 기혼, 힛데겔(그림2의 a), 유브라데(그림2의 b) 세 강이 발원하였을 곳을 추정하는 것이다. 그곳은 메소포타미아의 한 지역이 된다(왕하 19:12, 사 37:12, 겔 27:23). 이제 비손강의 위치만 알아내면 되는데, 소아시아 반도의 판구조 쪽으로 흘렀던 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만약 <그림 1>에서 보이는 라우라시아 대륙판이 좀 더 아프리카 북부나 아라비아 판 북동부에 근접하여 있었다면 라우라시아 판 쪽으로 흘렀을 가능성도 있다. 라우라시아 대륙판은 홍수 때에 격판구조 변화가 일어난 이후 또다시 벨렉(창세기 10:25) 때에 온 지면으로 바벨탑 건설에 대한 심판으로 흩어지면서(창 11:8-9)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프란시스 쉐퍼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재변의 존재를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들의 질서에 맞지 않는 사건은 어떤 것이든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과학은 약 B.C. 10,000년경에 발생한 기이한 사건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동사(凍死)한 맘모스와 기타 동물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 12,000년간 이 지역은 일률적으로 추운 지역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발견된 큰 맘모스와 기타 동물들을 연구해 본 결과 이 동물들이 죽을 때는 날씨가 따뜻했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갑작스럽게 죽었기 때문에 온대 기후에서 자라났던 식물들을 토하지도 못하고 넘기지도 못한 채 입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과학의 문제로서 성경 사건과는 무관하다. 나는 이것을 홍수에 관련시키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 사건이 홍수 후에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재변 관념은 미련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거대한 짐승들이 갑자기 얼어 죽어 그것들을 발견했을 때 먹어도 좋은 정도의 고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동사에 대해 익숙히 알고 있는 과학자들은 이 거대한 동물들의 떼죽음을 근거로 기온이 수시간 내에 갑자기 화씨 -150°(섭씨 -101°)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계산해 내고 있다." 

이들 맘모스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동사(凍死)에 대한 기록은 최근의 월간 과학동아 99년 6월호, 시공사에서 나온 '코끼리 - 세계의 기둥' (로베르 플로르 저, 이한헌 역, 1997), 그리고 D-couvertes Gallimard Sciences 사에서 나온 'Les fossiles empreinte des mondes disparus' (Yvette Gayrard-Valy, 1987) 등에서 보면 그 언급이 나오며, 영화로는 '에덴의 동쪽'의 대사 내용에서도 이 이야기는 언급된다. 맘모스 5만구의 냉동화석에 대한 견해들을 종합해보면 라우라시아 대륙 판구조가 홍수 이후에 또다시 급작히 움직였다는 것을 생각게 해준다. 이로써 라우라시아 판구조에 있었을 만한 비손강의 위치를 찾아보면, 그 강은 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 등 보석이 나오는 곳으로 되어 있는 바, 그리이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가 스키타이 인들이 부자라고 했다는 견해를 덧붙여 이해해보자면 스키타이 문명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스키타이 인들은 금으로 빗을 만들 정도로 풍부한 금 자원을 지니고 살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로써 비손 강은 스키타이 터전의 홍수 이전 해당지역에 흐르던 강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 위치를 찾아볼 수도 있다.

비손강이 그 강이 소아시아로 흘렀든 라우라시아로 흘렀든 어쨌든 그 발원은 에덴동산이므로 이로써 에덴의 위치를 추정해본다면 지금의 이라크 북부 산지에 해당하는 노아홍수 전의 장소였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림 1>에서 그것을 확인해보면 결코 에덴의 위치가 동북부에 섬으로 나타난 한국이나 일본이 아니요, 인도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메소포타미아의 한 지역이었다는 앞에서 결론지은 바대로의 견해로 그냥 두게 되면 자칫 오경편집설과 관련되어지게 된다. 더더구나, 에덴의 위치에 대하여 두로라고 보고 있는 견해(에스겔 28:11-19)를 보게 되면 JEDP 문서설에 의해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발견이 있게 되는데, 그것은 <그림 1>을 참조할 때에 그러하다. <그림 1>을 보면, 모든 땅은 하나로 뭉쳐져 있고, 앞의 논의에서 잠정적으로 결론지은 메소포타미아의 에덴 위치 부근은 곤드와날 대륙과 라우라시아 대륙의 뭉쳐진 전 대륙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동편에 에덴을 창설하시고' 라는 성경 창세기 2:8의 기록을 입증해준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성경 창세기 2:8에서 에덴의 위치는 그 기준점이 따로 없이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JEDP 문서설로 하게 되면, 창세기 2장은 J문서이다. 야웨문서기자는 이스라엘 왕정시대에 살았던 자들로 전제하게 된다. 이들의 세계에서 볼 때, 이들은 가나안 지역에 거주했으므로 메소포타미아의 에덴(왕하 19:12, 사 37:12, 겔 27:23 등) 위치는 북쪽이 된다. 그런데, 문서설에서 야웨문서기자의 작품이라고 보게 되는 성경 창세기 2장에서 에덴은 그 위치가 동쪽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이 기록에 대하여 각 성경 역본들은 다음과 같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한글개역)

"And the LORD God planted a garden in Eden, in the east;..." (NRSV)

"Now the LORD God had planted a garden in the east, in Eden;..."(NIV)

"And the LORD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KJV) 

위에 나열된 역본들에서 보듯이 차이가 좀 있다. 한글개역 성경은 '드러난 뭍'(창 1:9)의 동방의에덴에 동산이 창설된 것으로 되어 있다. NRSV에서는 '에덴 곧 동방에', NIV는 '동편 곧 에덴에', 그리고 KJV는 '에덴에서의 동편에' 동산이 창설되었다고 되어 있어서 뉘앙스에 차이가 있다. NRSV와 NIV 에 있어서 '드러난 뭍'의 동편은 에덴이다. KJV에서는 '드러난 뭍'이 곧 에덴일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기준점이 없다는 것이며, 그 기준점을 오경문서설에 입각하여 찾다보면 야웨기자건 엘로힘기자건 그 기준점을 가나안에서 찾게 되므로 그 자체로서 북쪽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 에덴을 언급하고 있는 기록들과 모순이 된다. 

 

4. 결론 

이상에서 에덴동산의 위치에 관한 견해들을 소개하고 새로운 각도로 그 위치를 생각해보는 시도를 해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전제로 두고서 견해를 전개하는 '과학'이기 때문에 다각도의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이 소고에서 전개한 새로운 각도의 시도를 가설이라고 하였다. 18세기에 들어와서 진화론적 견해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찰스 다아윈이 '종의 기원'으로 진화론을 거론하기 전까지에 있어서 모든 과학들은 창조의 전제 하에 일반 계시로서 나타내주신 하나님의 뜻을 자연에서 찾기 위하여 전개되어져 왔다. 그런데, 이제 20세기말에 창조과학의 여러 각도에서의 접근이 있어온 관계로 이렇게 에덴의 위치에 대한 가설을 제기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발제에 대하여 많은 논평과 비판과 연구가 있게 되었으면 한다. 파스퇴르가 밀봉한 유리관에서는 아직도 이렇다할 변화가 없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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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과학동아. 동아일보사(1999. 6.).                  

부록1. 
http://www.ucmp.berkeley.edu/geology/tectonics.html 사이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림을 편집하여 펼친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며 진화론에 입각한 내용을 담고 있음

(99년7월8일 현재).


- 베게너에 대해서는 http://www.ucmp.berkeley.edu/history/wegener.html

(99년7월8일 현재). 

 부록2.

 

그림의 망실과 위치표시 등이 파일을 읽는 동안 어긋날까봐 이곳에 부록으로 남겨둠.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bible/b1/b14/b14o3/b14o3.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8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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