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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22-06-08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

: 성경적 창조론자들에 대한 흔한 공격  

(“The Bible is not a science book!”)

by Gary Bates and Lita Sanders


      유신진화론자(theistic evolutionists)들은 흔히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창세기에 기록된 생물과 인류의 기원뿐만 아니라, 지구의 나이와 관련된 사실적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현대과학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우리의 죄로부터 구원받는 방법을 알려주는 신학을 유지하면서도, 진화론, 빅뱅이론, 수십억 년의 오랜 연대라는 과학적 합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들 (진화론 및 오랜 연대와) 타협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성경을 대충 들여다보면 옳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성경적 창조론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보내는 시간 동안에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성경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 자세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상, 많은 유신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명백한 결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성경을 믿으면서도 진화론을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궁극적인 권위는 자연주의(기독교적이지 않은)에 기초한 만물의 기원을 주장하는 과학적 합의(진화론)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합의된 관점을 사용한다.


… 그들이 성경적 창조론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보내는 시간 동안에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성경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 자세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구원론)에 충실하면서, 창세기의 기원에 관한 기록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유신진화론적 관점을 훼손하는 또 다른 거대한 단절(문제점)이 존재한다.


성경은 진정한 역사일까?

성경이 과학책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은 역사책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대부분은 실제 있었던 일들을 사무적으로(matter-of-factly) 중계하고 있으며, 그중 많은 것들은 지도(map)나 타임라인에 배치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은 이것을 매우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최초 고고학자들은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삽을 들고 나갔다고 할 정도였다. 계속된 고고학적 발굴들을 통해, 도시, 사람들 집단, 위치 등이 성경이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정확했다는 증거들이 쌓여가고 있다.

회의론자들이 성경을 조롱할 때도 그랬다. 200여년 전에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히타이트(Hittite, 헷) 족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믿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위대한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성경의 오류 중 하나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하투샤(Hattusa,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의 유적이 발견되었을 때, 그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고대 세계에서 그들이 이집트와 경쟁할 정도로 매우 강력했음이 입증되었다. 또한 고대 이집트는 강력했던 히타이트 군대와의 전투를 기록하고 있었다.

신약성경의 기록도 역사적으로 믿을 만하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3년간의 공생애와 죽음, 부활 등을 잘 기록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는 복음서에 기술된 많은 사건들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잘 알고 있다. 비록 회의론자들이 성경에서 기록되는 몇몇 사건들, 특히 기적적인 사건들의 본질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많은 장소들과 사건들이 합리적으로 정확한 날짜와 시간 안에 배치될 수 있다는 사실에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유신진화론자들은 우선 순위를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오랜 연대에 두고 있기 때문에, 창세기의 기록된 수천 년 전의 하나님의 창조는 배제한다.


역사신학

성경의 저자들은 그들의 특정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주장했던 특별한 이유를 갖고 있다. 그리고 신약에서 저자들은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지, 어떻게 인류가 죄악에 빠졌는지, 그리고 창조하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어떻게 죽으시고 부활하셨는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중심으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창세기는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는 통로가 되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 후손들에 대해 기록해놓았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대해 많은 부분을 기록하지 않고, 창세기 역사의 대척점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정점으로, 그분의 삶의 마지막 3년에 대해 기술하는데 대부분을 할애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래를 기록한 역사책!

대부분의 역사책은 이미 일어났던 사건들만 기록한다. 그러나 성경은 훗날 정확하게 이루어진 예언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사야서는 예수님 탄생 수백 년 전에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다니엘서는 금, 은, 놋, 쇠, 진흙 신상에 대한 꿈의 해석을 통해 이어질 제국들과 예수님이 오실 시기를 정확하게 예언해 놓았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언하셨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경고를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 예루살렘을 탈출해 살아남았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한복음 3:12).


그러나 아직 성경의 예언들이 모두 실현된 것은 아니다. 마지막 때를 가리키는 여러 구절들이 있다. 구약의 종말에 대한 예언에서부터 신약의 요한계시록까지, 미래의 시기에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 타락한 창조물의 파멸, 죽은 자의 부활, 새 하늘과 새 땅의 '재창조',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그분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땅에 임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역사와 예언을 모두 의심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역사성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은 의심하고 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유신진화론적 입장을 취하여 창세기의 역사성을 의심하면서도, 예수님이 실제로 재림하시고, 죽은 자들이 정말로 다시 살아나고, 다른 모든 종말론적 약속들이 실현될 것을 믿고 있다. 

예수님은 직접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고 말씀하시면서, 이러한 모순을 다루셨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셨던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한 말씀이,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유신진화론뿐만 아니라,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의 실제 역사로서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관점들(예로 날-시대 이론, 점진적 창조론, 다중격변설 등)은 또 하나의 거대한 단절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24시간의 하루인 6일 동안 창조하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미래에 순간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성경은 계시를 드러낸 책이다!

성경은 본질적으로 과학책이 아니고, 심지어 역사책도 아니다. 또한 우리에게 오래 전에 죽은 고대 이스라엘인들과 다른 고대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말해주기 위한 책도 아니며, 로마 제국의 변경에 있었던 한 랍비의 가르침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책도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그분의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그분은 우주, 인간,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이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다. 그분은 창조, 타락, 구원, 회복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의 큰 그림에서 주인공이시다.

기독교인들이 창조에 대해 타협할 때, 그것은 바로 이 이야기의 기초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유신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죽음과 고통의 진화 과정을 통해서 그분의 창조물들을 만드셨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을 통한 우리의 '회복'은 수억 수천만 년 동안의 죽음과 고통 후에 일어나는 것인가? 타락은 하나님과의 단절이고, 이것이 죽음과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다.(창세기 3장). 이것이 미래에 있을 창조물의 '회복'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이 그토록 이국적인 이유이다. 만약 아담의 타락이 단지 신학적 관점의 이야기일 뿐이라면, 어떻게 종말에 대한 약속이 단지 신학적 진술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나머지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동정녀 탄생을 통해 예수님을 보내시는 것이나, 죽음에서 부활하시는 것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최초의 지구를 "보시기에 심히 좋게" 만드셨던 창조주께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회복하실 수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 “성경은 구원책이지 과학책이 아니다” (2008. 8. 13. 교회와 신앙)

(다중격변설을 주장하는) 양승훈 교수, 창조포럼서 주장

http://www.amennews.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8757


[에끌의 오해 6] 창조론자들은 성경을 과학책이라고 주장하는가? (2017. 3. 22. 기독일보)

https://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91175/20170322/%EC%97%90%EB%81%8C%EC%9D%98-%EC%98%A4%ED%95%B4-6-%EC%B0%BD%EC%A1%B0%EB%A1%A0%EC%9E%90%EB%93%A4%EC%9D%80-%EC%84%B1%EA%B2%BD%EC%9D%84-%EA%B3%BC%ED%95%99%EC%B1%85%EC%9D%B4%EB%9D%BC%EA%B3%A0-%EC%A3%BC%EC%9E%A5%ED%95%98%EB%8A%94%EA%B0%80.htm


*참조 : 그러나 창세기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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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거짓 역사 : 창세기 1~11장의 기록은 진정한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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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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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어린 양과 창세기의 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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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실제 역사라고 히브리어 교수는 확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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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는 창세기가 실제 역사임을 확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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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와 신학 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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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은 믿음이고, 진화론은 과학인가? : 진화론자와 유신진화론자의 히브리서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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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성경적 이해, 그리고 창조와 십자가 : 유신진화론자들의 죽음에 대한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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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이론에 대한 과학적 비평 : 유신진화론 비판, 기독교학술원 제75회 월례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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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First appeared in CMI-US Update, November 2021.

주소 : https://creation.com/bible-not-science-book

번역 : 미디어위원회

Carl Wieland
2021-12-23

성경에서 어린 양과 창세기의 역사성

(The Lamb—and Genesis history—in Scripture)


      많은 성경 비판가들은 구약에서 신약까지 성경 말씀이 전개되는 것이, 기독교가 ‘진화’해 온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화론에서는 무작위적인 유전적 돌연변이가 전혀 새로운 유전정보, 새로운 장기, 새로운 기능 등을 장구한 진화적 역사를 통해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과 유사하게, 완전히 새로운 교리와 사상들이 출현했다고 말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가설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처럼, 주장되는 인류의 사회적, 문화적 진화와 함께 그러한 교리와 사상들이 진화하여 믿음 안으로 수용됐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교리(doctrine)의 진전(progress)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더 나은 설명은 전개되고 있는 성경의 계시일 수 있다. 위대한 설교자 벡스터(J. Sidlow Baxter)는 그것을 마치 창문 블라인드가 점차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1]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 (여기에서 하나님의 진리, 십자가의 복음)은 변하지 않지만, 이와 같은 단계적 드러남을 통해서, 이전에 존재했던 빛은 더욱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벡스터의 이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계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성경을 쓰도록 영감을 주신 모든 시대 동안에, 성경의 ‘어린 양’ 개념에 있어서 완전히 일관되게 일치한다. 당신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2]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성경에서 알려져 있는지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

▶ 창세기의 전반부 : 아담의 타락 → 죄로 인해 최초로 동물이 죽임당함 — 아마도 양/어린 양?[3]. 가인과 아벨의 기록에서, 우리는 어린 양의 필요성을 알게 되고, 또한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으니라”(히브리서 9:22)라는 성경 구절을 통해서,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버지-아들(father-and-son)'의 이야기는 숫양(어린 양)의 대속하는 속성과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준비해 주실 것이다”라는 (예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에 대한 대속물)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 출애굽기와 레위기는 죽임 당하는 유월절 어린 양(흠이 없는)의 속성을 소개하고 있다. 어린 양의 피는 십자가처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칠해졌다. 그것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믿는 자들을 보호해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최종적인 피인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죄 없이 죽으시지 않으셨다면, 그는 우리의 대속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 이사야서 53장에는 어린 양처럼 죽임 당하는 한 사람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그 양이 인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요한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36)고 말씀했고, 우리는 그 어린 양이 특별하신 분, 나사렛 예수님이셨음을 알고 있다. 성경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들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5장과 6장에서 우리는 영원토록 전 우주를 다스리시는 부활하신 어린 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큰 그림

많은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사실들이 서로 함께 묶여져 있는, 성경의 놀라운 구조에 대해 친숙하다. 여기에서 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창세기의 초반부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창세기의 첫 부분은 신화나 설화이며,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무슨 기록이든 그 안에 신학이 들어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자주 대답하곤 한다. 성경의 신학은 역사성과 객관성(정당성)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애굽기와 어린 양의 교리가 전개되는 앞에서의 성경 부분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과 야곱의 후손들, 그리고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이 정말로 존재했다고 말하며,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노예 생활이 없었다면, 그러면 어린 양의 피가 발려지지 않은 집의 장자를 죽이는 죽음의 천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그림, 즉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과 연관되어 있는 방식은 무너지게 된다. 간략히 말해, 사건의 역사성이 파괴된다면, 성경으로 단단히 묶여있던 신학의 신뢰성도 무너지는 것이다.


역사는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제공한다.

만약 역사적으로 모세가 호렙산에서 반석을 치지 않았다면, 그 반석은 곧 영적인 모습의 그리스도시라고 말한(고전 10:4) 바울 사도는 신학적으로 틀린 것이 되는 것이다. 죄와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과 십자가의 근본적 교리는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출애굽기의 역사적 사건들과 묶여져 있다. 그리고 또한 그것들은 (심지어 더욱) 창세기의 역사적 사실과(어떻게 죄와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왔는지) 똑바로 연결되어 있다. 구약의 역사는 신약에서 직간접적으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만약 역사적으로 모세가 호렙산에서 반석을 치지 않았다면,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말한(고전 10:4) 바울 사도는 신학적으로 틀린 것이 된다.

십자가와 복음에 대한 사탄의 증오는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십자가 사건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의 신뢰성을 훼손시키려는 노력이,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조롱을 하든지, 과학으로 포장하든지, 학문적 권위 등을 이용하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람들에게 성경의 역사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창세기의 역사가 실제로 사실이라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힘을 내기 바란다. 창세기의 역사성은 복음의 신뢰성과 연결되어 있다. 창세기의 기록이 사실이 아니라면, 복음의 신뢰성도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여러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아주 작은 도움도 큰 힘이 된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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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A long-ago Baxter message inspired this article. The Australian-born James Sidlow Baxter (1903–1999) was a famous preacher and author in the UK.
2. 1 Peter 1:18–20 says that our redemption is 'with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 lamb without blemish or defect.”
3. There probably had not been enough time for lambs to be born from the adult animals created to multiply. The first married couple, with no mutational defects or infertility problems, was told to multiply. The Fall occurred before Eve had conceived her first child, Cain, thus only weeks at most. See Timing of the Fall.

 

*추천 : 성경의 역사성을 밝혀주고 있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
1) ‘Patterns of Evidence: Exodus’
 https://www.youtube.com/watch?v=2skx69TxLXk

2) ‘The Exodus Revealed: Search for the Red Sea Crossing’
https://www.youtube.com/watch?v=9BQ_x0kaw7o
https://www.youtube.com/watch?v=yTnqRpXKcaQ



번역 - 봉은준

링크 - http://creation.com/the-lamb 

출처 - CMI, 2015. 4. 23. (GMT+10)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351

참고 : 2942|6066|5275|2970|3641|3628|3024|3020|4540|4492|4440|6283|6189|6133|6145|6044|5986|5969|6064|5882|5861|5753|5723|5265|5094|5035|5033|4663|4380|4375|4204|3932|3689|3654|3967|638|5163|5440|6564|5870|6376|6642

미디어위원회
2021-09-24

아담의 타락 이전에 동물들의 죽음?
(Animal Death Before the Fall?)


by Jake Hebert, PH.D.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모두 아담이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죽음(death)이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가르친다.(창 2:17, 롬 5:12). 화석들은 죽은 동물의 잔해이기 때문에, 화석들이 수억 수천만 년 전의 것이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은 아담의 범죄 이전에 동물들의 죽음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창세기 2:17절과 로마서 5:1절 모두에서 동물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성경은 이러한 가능성을 허용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성경의 중요한 단서들을 무시하고 있다. 타락 이전에 사람과 동물들은 모두 식물만을 먹었다. 채식은 죽음이 없던 세상에서는 완벽하게 이치에 맞지만, 죽음이 있던 세상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동물들의 죽음이 하나님의 원래 창조의 일부였다면, 하나님은 몇몇 동물들을 땅에 버려진 사체들을 치우기 위한 청소부로 설계하셔야 하지 않았을까?

타락 이전에 동물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suffering)도 있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부 공룡 뼈들은 이빨 자국이 나있었고, 폭력이 있었으며, 암도 있었음을 보여준다.[1. 2] 그러므로 타락 이전에 동물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동물들이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았던 것이 아니라, 고통과 살육과 고통이 난무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어떻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구절과 어울릴 수 있겠는가? (창세기 1:31)

우리는 본능적으로 피 흘림이(동물들의 피 흘림도 포함하여)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공포스러워 하고, 일부는 충격을 받기도 한다. 죄악은 너무나 끔찍해서 하나님은 죄악에 대한 끔찍한 벌, 즉 피를 흘릴 것을 요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흘린 피만이 죄의 참된 제거를 해줄 수 있다.(히 9:24-25, 10:4), 동물의 피를 흘리는 것은 예수님의 피의 제사를 상징하고, 죄의 심각성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아담의 타락 이전 수억 수천만 년 전부터 피를 흘리는 일이 계속 존재했다면, 피흘림은 그렇게 심각한 일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함축적으로, 우리의 죄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로마서 8:22절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라고 쓰고 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자연스러운 의미는 이 "탄식(groaning)"이 타락으로부터 창조물에 부과되었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바울이 이 탄식을 출산의 고통에 비유하고 있음으로 더욱 강화된다. 하지만 출산의 고통과 수고가 언제 여성에게 부과되었는가? 타락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바울의 비유는 하나님이 하와와 그녀의 딸들에게 고통스런 출산을 부과하신 것과 동시에, 창조물에게도 고통과 탄식을 가하셨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일부 기독교인들이 아담의 범죄 이전에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진정한 이유는 세속적 과학자들이 화석들이 수억 수천만 년 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주장을 받아들인 기독교인들은 아담의 죄보다 훨씬 이전에 동물의 죽음이 있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나은 설명이 있다. 화석들은 물에 의해서 쌓여진 퇴적암에서 발견된다.[3] 아담의 범죄 이후에 노아 시대에 있었던 전 지구적 홍수는 수십억의 식물과 동물들의 유해들을 빠르게 매몰시키고 보존하는데 필요한 엄청난 양의 진흙과 침전물을 제공했다.[4]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아담의 타락 이전에 사람이나 동물의 죽음이 있었다고 믿을 아무런 신학적, 과학적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References

1. Clarey, T. 2013. Tyrannosaurus rex: Scavenger or Predator? Acts & Facts. 42 (11): 13.
2. Thomas, B. Triassic Tumor Raises Creation Questions.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March 5, 2019, accessed July 9, 2021.
3. A secular geologist once told me that 90 to 95% of all sedimentary rocks are water-formed. Moreover, creation scientists think this figure is an underestimate as some sedimentary rocks are incorrectly attributed to wind deposition rather than water.
4. Hebert, J. 2021. Is the Bible Evidence for Creation? Acts & Facts. 50 (5): 15.
* Dr. Hebert is Research Scientist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Cite this article: Jake Hebert, Ph.D. 2021. Animal Death Before the Fall?. Acts & Facts. 50 (9).


*참조 : 창세기는 실제 역사이다 - 아담 이전의 죽음 문제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5476&t=board


출처 : ICR, 2021. 8. 31.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animal-death-before-the-fall/

번역 : 미디어위원회

Russell M. Grigg
2021-07-22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던 악마의 전략 

: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고 의심하게 한다.

(Strategy of the Devil)


      창세기 3장에는 사탄(Satan)이 아담과 하와를 처음으로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1] 사탄의 전략은 성공했고, 우리의 첫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되었다. 오늘날도 사탄은 계속하여 같은 전술을 사용하여 같은 결과, 즉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거역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 전술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한다.

성경에 기록된 첫 유혹은 하와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의 진실성을 의심한 것이었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기를, 그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KJV: every, NIV: any)[2]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창세기 3:1) 라고 묻고 있다. 

이것에 대한 하와의 대답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었어야 한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세기 2:16-17)  

그러나 이 말씀 대신에 하와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3:2–3) 라고 대답하고 있다.

먼저 사탄은 질문에서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라고 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고, 왜곡했음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분명했으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사탄은 적당하게 모호하게 했다 (‘모든 나무‘).

그리고 하와는 최소한 세 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인용하여,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하고 의미를 추가했음을 유의해야 한다 :

1. 하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잘못 인용함으로서 그녀의 특권을 과소평가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이 모든 나무의 (하나만 제외하고) 실과를 임의로 먹을 수 있다고 하셨지만, 하와는 이것을 축소시켜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라고 했다.  

2.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을 잘못 인용함으로서 제한사항을 과장했다. 하나님께서는 만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었지만, 그녀는 이것을 하나님의 명령에 포함시켰다.

3. 하와는 하나님의 벌을 잘못 인용함으로서 그녀의 의무를 과소평가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녀는 이것을 바꾸어 ”죽을까 하노라” 라고 했다.[4]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박사는 여기에 관하여 해설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추가하거나 (현대의 이단들이 하듯이), 삭제하여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이 하듯이) 변조하는 것은 항상 위험한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항상 정확하게 의도하시는 바를 말씀하실 수 있다 (신명기 4:2; 잠언 30:5; 요한계시록 22:18–19). 그리고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 행동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거나 (잠언 30:6), 영생에 참여함을 잃을 수도 있다” (요한계시록 22:19). [5]

 

2.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도록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고, 하와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뿌린 후, 사탄은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곧 바로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3:4). 이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했고, 그 결과로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했으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했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도록 한다.

죄를 범하면 결과가 따른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경험에서만 배우는 것인데, 하와는 이 분야에서 아무런 경험이 없었다. 그녀가 분명히 알았던 것은 하나님의 심판(불순종의 결과는 죽음이라는)에 대한 엄중한 사전경고였다. 사탄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5) 라고 유혹하자, 심판에 관한 어떤 생각도 그녀의 마음에서 금방 사라졌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은 사탄 자신의 추락을(이사야 14:13–14) 초래했던 것과 같은 욕망이었고[6], 이제 사탄은 하와를 저항할 수 없는 동일한 욕망에 감염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사탄이 제안한 이득은 거짓이었다. 앞으로 그녀(그리고 아담)는 선을 잃어버림으로서 선을 알게 되고,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악을 알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선을 일관되게 행할 능력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고, 또한 그들은 악을 삼갈 능력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처럼 되기는커녕, 지금부터 그들은 사탄의 노예가 될 것이었다. 그들의 눈은 뛰어난 지혜로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수치와 두려움으로 표현되는 죄책감을 맛보게 될 것이었다.


4. 하나님의 성품을 비방하도록 한다.

하와가 과일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사탄의 제언은 하나님께서 하와가 얻게 될 유익을 하나님이 알고 계셨다는 문장과 함께 제시되고 있다.(창세기 3:5). 따라서 사탄의 말은 하나님께서 불공평하신 것처럼, 그리고 하와가 소유해야 하고 하와에게 크게 유익이 되는 무엇인가를 제한하시는 것처럼, 그래서 마치 하나님께서 치사하게도 그녀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그녀가 하나님을 의존하도록 한 것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은근히 비방하고 있는 것이다  

하와의 마음에 일단 하나님을 원망하는 생각이 들어오자, 이제 하나님을 완전히 거역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

1. 그녀가 보기에 나무는 ‘먹음직도 하고’ (즉, 그녀의 육체적 식욕을 자극), ‘보암직도 하고’ (즉, 그녀의 감각과 감성을 자극), ‘지혜롭게도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즉, 그녀의 지성을 자극) 나무가 되었다. [6]  

2. 그녀는 과일을 따먹었는데, 그것은 그녀 자신이 취한 행동과 행위였다. 

3. 그녀는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었다 (창세기 3:6). 그녀 자신이 죄를 범하고서는, 그녀의 남편도 동일한 죄를 범하기를 바랐고, 아담은 자기의 뜻으로 자진해서 그렇게 했다. 

이렇게 금단의 과일을 바라보았고, 탐하게 되었고, 따먹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거절되었고, 하나님의 뜻은 막혔으며, 하나님의 방법은 거부되어졌다.

모든 죄의 본질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보려는 마음의 욕망이다. 이 결과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뜻을 선택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서, 최종적인 행동은 그들의 본심과 마음에서 이미 범하고 있었던 죄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결론

지난 150여년 동안 다윈주의(Darwinism)의 유행과 그에 따라 많은 교회지도자들에 의한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과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의 수용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부정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영향으로 인해 서양 사회는 하나님의 심판(judgment)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존재조차 믿지 않게 되었다. 하와에게 그렇게도 잘 통했던 사탄의 전략은 현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효과적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and footnotes

1. Satan appropriated and used the body of a specific serpent on this occasion to carry out his subtle purpose of tempting Eve to sin. See the author’s article ‘Who was the Serpent?’, Creation magazine, Vol. 13 No. 4, 1991, pp. 36–38.
2. Hebrew ‘any’. The question is a little ambiguous and could mean either, ‘Has God indeed enjoined that you should not dare to touch any tree, or, ‘Have you not then the liberty granted you of eating promiscuously from whatever tree you please?’—John Calvin, Genesis, Banner of Truth Trust, 1965, p. 148.
3. Compare the modern theistic-evolutionary jibe, ‘Did God really say, 'Six days”?’
4. Adapted from WH. Griffith Thomas, Genesis, Eerdmans, Michigan, 1946, p. 48.
5. Dr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Master Books, El Cajon, California, 1976, p. 111,
6. For a discussion of the meaning of these verses see Ref. 1, p. 38, note 5.
7. It is possible also that Eve thought that if they ate and became like God, they would be beyond the reach of His vengeance. See Ref 2, p. 150, editor’s note.
8. Many commentators have noted that this account of Eve’s coveting the forbidden fruit is perfectly described in 1 John 2:16: ‘For all that is in the world, the lust of the flesh, and the lust of the eyes, and the pride of life is not of the Father, but is of the world.’ The (unsuccessful) three temptations of Christ by Satan, described in Luke 4:1–12, followed a similar pattern.
9. The Apostle Paul wrote, concerning the strategy of Satan in the world, that ‘… we are not ignorant of his devices’ (2 Corinthians 2:11b). However, he also wrote to the same church at Corinth, ‘There hath no temptation taken you but such as is common to man: but God is faithful, who will with the temptation also make a way to escape, that ye may be able to bear it’ (1 Corinthians 10:13). 


*참조 : 진화론-창조론 논쟁이 중요한 이유 : 토양, 나무, 그리고 그들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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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지구 지질학에 대한 성경적 지질학자들의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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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나이 논쟁에 있어서 열쇠 : 노아 홍수는 장구한 시간과 양립될 수 없다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77&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6/i3/devil.asp ,

출처 - Creation 16(3):48–49, June 199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28

참고 : 3242|3241|3244|3164|2330|3055|2378|2638|2710

미디어위원회
2021-06-29

고대근동의 세계관으로 창세기를 썼을까?

한윤봉, 전북대학교 석좌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한국창조과학회 전 회장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한 역사서다. 1장에서 11장까지는 인류초기 역사, 즉 창조, 죄로 인한 타락, 노아홍수 심판, 바벨탑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12장부터 50장까지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장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고대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역사가가 역사를 쓸 때, 역사적 사실들을 비유나 상징으로 쓰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다. 그런데 유신진화론(또는 진화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역사서인 창세기를 기록된 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사람인 모세가 ‘고대 근동지방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모세가 고대근동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창세기를 썼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고대 근동지방(오늘날의 중동지역)의 역사는 기원전 4000년경에 수메르 문명의 등장으로 시작되어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가 고대 근동을 정복한 기원전 6세기까지로 본다. 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고대근동의 우주관은 ‘하늘, 땅, 지하세계’로 특징된다. 고대근동 사람들은 신들이 존재하는 상층 하늘(upper heaven)과 그 밑에 해와 달과 별들(즉 천체)이 있는 하층 하늘(lower heaven)로 구분하였다. 그들은 다신론적 우주관을 갖고 있었다. 땅은 지면이 편평하고 반구형 천장을 가진 모양이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 우주의 중심(지구중심설)이라고 믿었다. 땅은 바다 위에 기둥들로 받쳐져있으며, 땅 밑에는 죽은 자들이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지옥과 같은 지하세계(스올, sheol)가 있다고 믿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태양을 비롯한 천체들이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는 천동설(즉, 지구중심설)은 고대근동의 우주관으로서 기원전 300년에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 후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으로 이어졌으며,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천동설이 체계화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로마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천문학자들이 가졌던 우주관이었으며,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이었다.

모세가 고대근동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창세기를 기록했다면, 창세기에는 ‘땅이 편평하고 반구형 천장을 가진 지구와 천동설’을 묘사하는 내용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반면에, 모세가 고대근동의 세계관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축자영감’되어 창세기를 썼다면, 창세기 1장의 내용들은 현대 천문학이 밝혀낸 과학적 사실들과 모순되면 안 된다. 

고대근동의 우주관에 의한 기록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창조 둘째 날에 만들어진 ‘궁창(라키아)’을 하늘의 물을 떠받치고 있는 ‘단단한 반구형의 천장’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궁창(firmament)은 ‘넓게 펼쳐진 공간’을 의미할 뿐, 단단한 반구형 천장을 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하늘(궁창)은 ‘넓게 펼쳐진 휘장이나 차일 또는 돔 형태의 천막’으로 종종 비교되는데(시 104:2, 사 40:22), 이는 고대 근동지방의 우주관과 다른 이해를 성경저자들이 가지고 있었음을 뜻한다. 

맛소라 사본을 번역한 『쉬운 성경』에는 궁창이 ‘둥근 공간’으로 번역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둥근 공간’을 만드시고, 그 공간 아래의 물과 공간 위의 물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공간을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되니, 이 날이 둘째 날이었습니다”(창 1:7-8)

또한 이사야 40장 22절에서 개역개정 성경에는 “땅 위 궁창”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영어 성경(NIV, NASB, KJV)에는 ‘원형의 땅 위에(above the circle of the earth)’로 번역되어 있다. 이는 창조된 지구가 원형의 둘레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단순한 반구형이 아니라 둥근 구형체임을 말한다.

또한 욥기 26장 7절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에서 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놀랍게도 성경은 ‘지구는 둥근 둘레를 가진 구형체로서 우주 공간에 떠 있도록 창조’되었음을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 외에 편평한 지구를 뜻한다고 잘못 인용되는 요한계시록 7장 1절의 ‘땅 네 모퉁이’는 동서남북을, ‘사방의 바람’은 네 방향(즉, 동서남북)에서 부는 바람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으로서, 결코 지구가 편평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한편, 모세가 고대근동의 세계관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축자영감’되어 창세기를 썼다면, 창세기 1장의 내용들은 현대 과학이 밝혀낸 과학적 사실들과 일치해야 한다. 현대 천문학 지식은 ‘둥근 지구가 우주공간에 떠있으며, 자전하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낮과 밤이 바뀌고, 달(月)이 가고, 사계절이 생기며, 해(年)가 바뀐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이런 물리적 현상들을 고대근동의 세속적 우주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자전운동’을 하는 둥근모양의 지구가 태양주위를 돌면서 공전하도록 창조되었음을 묘사하고 있다. 창조 넷째 날에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창조된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 공간에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는데(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뜻은 아니다), 천체를 창조하신 목적이 창세기 1장 14절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즉,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천체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천체 운행에 질서가 없다면 일어날 수 없는 물리적 현상들로서,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이 질서를 가지고 운행하도록 창조 넷째 날에 우주법칙들을 정하셨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것은 지구가 태양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즉, 지동설)이다. 따라서 성경에는 천동설을 지지하거나 암시하는 말씀이 없다.

창세기 1장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설계에 따라,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으로 피조세계가  창조되었음이 6하 원칙에 따라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놀랍게도 현대 천문학 지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과학적으로 틀린 고대근동의 우주관과는 전혀 다른 내용, 즉 현대 천문학에서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과 일치하는 내용을 간결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기록하였다. 이는 성령님의 감동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과학책은 아니지만, 진화론을 믿는 주류과학계의 주장으로 진리가 부정되는 책이 아니다. 나아가 고대근동의 우주관을 지지하는 책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창세기는 고대근동의 세속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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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파워, 2021. 6. 18


미디어위원회
2021-06-23

하나님의 시간으로 창조했을까?

한윤봉, 전북대학교 석좌연구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한국창조과학회 전 회장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시간이 시작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초차원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시간’은 분명 ‘사람의 시간’과 다를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보기에는 천년 이상의 긴 시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창조주간의 하루를 하나님의 시간으로 해석해야 할까?

모세 시대에 히브리 사람들은 ‘욤(YOM)’을 ‘24시간 하루’로 해석하여 안식일 계명을 지켰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을 믿는 신학자들과 지성인들은 ‘긴 시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고, 주류과학계가 주장하는 46억 년 지구 나이와 138억 년 우주 나이에 대한 믿음과 아래 인용한 성경말씀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베드로후서 3:8). 


그런데, 이 말씀은 ‘천년이 곧 하루다“란 뜻이 아니다. 말씀의 앞(3-7절)과 뒤(9-10절)의 문맥을 살펴보면 무슨 뜻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말세에 거짓 선생들이 나타나서 늦어지고 있는 마지막 심판의 날과 예수님의 강림을 조롱하고 복음을 왜곡하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으로써, 주의 날(심판의 날)이 도적같이 올 것이므로 깨어 있어야 함을 베드로가 권면하면서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자들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24시간 하루는 천년 이상의 긴 시간‘이라고 주장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천년이 하루 같다’는 표현은 모세의 기도문인 시편 90편에도 나온다. “주의 목전(目前)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시편 90:4). 모세는 천년이 어제 같을 뿐만 아니라, ‘밤의 한 순간’ 같다고 표현했다. NIV 영어성경에서도 ‘막 지나간 하루와 같다(like a day that has just gone by)’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문자적으로 ‘천년=하루’라는 뜻이 아니라 비유적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시간 개념으로 ‘천년이 곧 하루’라는 뜻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셨고, 시공을 초월한 초차원적인 존재로서 시간에 대하여 자유롭고 시간의 제약을 받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의 시간 길이가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기 때문에 욤을 ‘24시간 하루’가 아닌 비유적 하루로 해석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즉, “욤이 하나님의 시간이라면, 히브리 사람들은 안식일 계명을 어떻게 지킬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점이다. 이런 질문은 사람은 하나님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시간으로 또는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창조하셨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욤‘을 하나님의 시간으로 해석하여 ‘천년 이상의 긴 시간’이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사람들은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6천 년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일만 해야 하고, 다음 천년 동안은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안식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심각한 모순이 된다. 왜냐하면, 6천 년 동안 쉬지 않고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 주간의 하루는 ‘24시간 하루‘여야 함이 논리적으로 명확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도록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하나님은 6시간 만에라도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생활 패턴으로 살 때 가장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건강한 생활 패턴은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날은 쉬면서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 때 인간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즉, 하나님은 7일 주기의 생체리듬을 갖도록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의 창조 후에 일곱째 날에 안식하심으로써 건강한 삶의 패턴을 직접 보여주셨다. 이는 창조의 하루는 하나님의 시간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임을 확증시켜 준다.

하나님의 창조의 최종목적은 ‘인간 창조’이며, 피조세계는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다. 따라서 창조주간의 하루를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게 맞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하루 시간 길이에 대한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란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지구자전을 기준으로 하는 ‘24시간 하루’를 명확하게 정하셨다. 하루에 대한 성경적 정의는 과학적 정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창조의 하루를 하나님의 시간이 아닌, 일상의 ‘24시간 하루’로 해석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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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파워, 2021. 6. 4 

Jonathan Sarfati
2021-02-10

창세기는 역사다! (Genesis is history!)


      우리의 사역은 성경의 첫 절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 창조론(‘6일 창조, 젊은 지구’)에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도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은 창세기 1~11장을 시, 혹은 비유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우리를 비난한다. 우리는 성경을 과학책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참조: 창조론자들은 성경을 과학책이라고 주장하는가?)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과학교과서는 수년만 지나도 수정해야 되지만, 성경은 과학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수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성경이 실제로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를 기록했던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1]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창세기가 어떤 종류의 책인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2] 이를 위해 우리는 성경을 성경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성경의 다른 저자들은 창세기를 역사로 취급하고 있다.

이미 여러 기사에서 밝혔듯이, 성경의 나머지 책들은 창세기를 실제 역사로 취급하고 있다.[3]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성경의 다른 저자들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시간 틀[4], 심지어 사건의 순서까지도 단순히 문학적 혹은 신학적 장치가 아닌, 실제적 사건으로 취급하고 있다.[5] 그리고 역사적 실제성은 믿음과 도덕성에 대한 엄격한 가르침의 기본이 된다.[6] 더욱이 신약의 저자들은 자기의 독자들인 초대교회의 새로운 회심자들이 창세기에 관한 상세한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7]
 

성경적 역사는 어떤 식으로 보일 것인가?

창세기가 역사(history)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토론을 목적으로, 창세기가 역사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것이 어떤 식일 것이 예상되겠는가? 논쟁의 여지없이 역사적인 책이라고 알려진 대부분의 출애굽기, 여호수아, 사사기 등과 같은 스타일로부터 답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히브리어 문법의 전문가들은 구약에 있어서 역사를 다루는 이야기는 매우 독특한 양식의 동사를 갖고 있다고 입증한 바 있다. 그것들은 qatal(완료시제)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동사로 시작하고, 결과를 나타내는 waw(vav, ו), 혹은 wayyiqtols 라고 하는 또 다른 형태의 동사가 이어진다.[8, 9] 이런 동사 형태는 구약의 역사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이것을 창세기 1장에 적용해 보라. 첫 번째 동사 bara(create, 창조하다, ברא)는 qatal인데, 뒤이어 나오며, 그 설명을 앞으로 전달해 가는 동사는 wayyiqtols이다. 즉, ‘and ... said(ויאמר, 그리고 말씀하셨다)’, ‘and there was( ויהי, 그래서 있었다)’, ‘and saw(וירא, 그리고 보았다)’ 등. 이와 같이 이런 것들은 역사적인 설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양상이다.

더욱이, 창세기 1~11장은 아무런 형식의 변화 없이 창세기 12~50장으로 매끄럽게 넘어간다. 후자(창세기 12~50장)가 역사로 읽히도록 의도되었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원전 자체의 문법과 형식을 볼 때 전자(창세기 1~11장)도 의심의 여지없이 역사인 것이다.


시는 어떤 식으로 보일 것인가?

이제, 창세기가 시(poetry)라면 그것은 어떤 식이어야 하는가? 시편과 같은 히브리 시는 다른 형식을 갖는다.[10] 히브리 시의 결정적인 특성은 리듬이나 운율이 아니라, 대구법(parallelism)이다. 즉, 둘 혹은 그 이상의 연속적인 행에 들어있는 서술들이 어떤 식으론가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동의어 대구법(synonymous parallelism)에서는 하나의 서술이 있으면, 즉시로 그와 동일한 뜻의 다른 단어로 말해지는 다른 서술이 뒤따른다. 시편 19:1~2절이 이것을 잘 설명해 준다 :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반의어 대구법(antithetical parallelism)에서는, 첫 번째 서술에 뒤이어 그와 반대되는 서술이 뒤따라온다. 예를 들면, 잠언 28:1과 7절을 보면 :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통합적 혹은 구조적 대구법((synthetic or constructive parallelism)에서는 첫 번째 서술이 그 다음의 서술에 의해 확장된다. 예를 들면, 시편 24:3~4절을 보면 :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러나 창세기에는 사람(라멕)의 말을 인용한 창세기 4:23~24절 외에는 대구법이 없다. 이 부분은 창세기의 나머지 부분과는 두드러진다. 창세기가 정말로 시라면, 전반적으로 대구법을 사용했을 것이다.[11] 사실상, 성경에는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시로 찬양하는 부분이 있는데, 시편 104편이다. 그러므로 창조를 시적으로 표현한 기사가 어떤 식으로 보여질지를 보기 원한다면, 그곳을 보면 된다. 예를 들면, 시편 104:7,11절은 대구법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로 말미암아 빨리 가며...
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또한 히브리어 학자인 스티븐 보이드(Steven Boyd) 박사는 여러 가지 형태의 동사(완료시제 혹은 미완료시제)가 히브리 시에서는 빈번히 사용되었는데, 역사책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따라서 그가 동사들을 분석한 결과, 창세기 1:1~2:3절이 (시가 아니라) 이야기일 확률이 99.997%라고 발표했다.[12]
 

창세기와 다른 구절들과의 구조적(structural) 유사성

구조에 있어서 창세기 1장과 가장 유사한 구절 중의 하나가 민수기 7장이다. 둘 다 구조화된 기사이며, 둘 다 날(day)에 대한 히브리 단어(욤,  יוֹם , yôm)를 숫자로 포함하고 있다. 사실상 둘 다 숫자화 된 날들의 연속이다. 민수기 7장에는 12개의 연속적인 숫자화 된 날들이 있는데, 거기서 이스라엘의 12지파 각각의 대표들이 제단에 희생제물을 가지고 온다 :

첫째 날에 헌물을 드린 자는 유다 지파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라 ...
둘째 날에는 잇사갈의 지휘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헌물을 드렸으니 ...
셋째 날에는 스불론 자손의 지휘관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헌물을 드렸으니 ...
열두째 날에는 납달리 자손의 지휘관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헌물을 드렸으니 ...

날-숫자의 대비는 오히려 민수기 7장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각 날을 셀 뿐 아니라, ”...던 날에(in the day that)”라는 문구로 그 장을 열고 닫음으로써, 전체 순서를 집합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것을 놓고 보통 길이의 날들임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으로부터, 창조주간을 요약하고 있는, 창세기 2:4절의 ”...던 날에(in the day that, כיום, bəyôm)”는[13] ”...할 때에(when)”에 대한 히브리 관용구인 것으로(많은 영어 번역본에서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창세기 1장의 날들이 보통 길이의 하루가 아니라는, 잘못된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14]

더욱이, 민수기 7장이 신학적인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한 시적 구조일 뿐,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창세기 1장의 날들에 대해서도 그것을 부정할 문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둘 다 직설적인(straightforward) 역사인 것이다.
 

첫째, 둘째... 날들은 보통 길이의 날들이다.

창세기의 창조주간 기사에서 둘째 날에서부터 여섯째 날에 대한 숫자들은, 민수기의 구절들에서 숫자화 된 모든 날들처럼, 서수(ordinal number)의 히브리어 형태로 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15] 즉, 각 날들이 둘째(second, שני, shenî), 셋째(third, שלשי, shlishî), 넷째(fourth, רביעי, rveî‘yî), 다섯째(fifth, חמישי, chamîshî), 여섯째(sixth, ששי, shîshî) 등의 서수로 수식되어 있다.

그러나 창조주간의 첫째 날에 대해서는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창세기 1:5절에서 ”첫째 날”은 서수인 ”first day”(즉, יום ראשון, yôm ri’shon’이 아니고)라고 기록되어있지 않고, 대신에 기수(cardinal number)인 ”one day”(한 날, יום אחד, yôm echad)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16] 이것은 기록된 역사에 있어서 ‘날(day)’이라는 단어를 숫자로 수식하는 처음 순간이다. 그래서 기수가 적절한 것이다. 다른 날들이 있었다면, 한 날이 아니라 ”첫째” 날일 수 있지만, 창조주간의 시작에 있어서는 오직 그 한 날 뿐이었다. 또한 하나님 자신도 창세기 1:5절에서 어두움(밤)과 빛(낮 시간)의 주기를 ”한 날”이라고 정의하고 계신다. 즉,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한 날이니라” 지구가 한번 회전하는 시간이 그 하루와 동일했다. 전체의 창조는 지구가 단지 여섯 번 회전하는 데 걸린 시간 안에 완성되었다. 지구가 회전한 여섯 번의 보통 길이의 날들이었다.[17]

위대한 신학자 바실(Basil, AD 329-379)은 오래 전에 창조주간에 관한 설교에서 이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

”성경은 왜 ‘첫째 날(the first day)’ 대신에 ‘한 날(one day)’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우리에게 둘째, 셋째, 넷째 날이라고 일련의 날들을 말하기 전에, 그 첫 번째 날을 ‘한 날’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따라서 그 날을 ‘한 날’이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낮과 밤의 길이를 결정하고, 그 한 날이 포함하는 시간을 결합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것은 한 날의 시간은 낮과 밤으로 이루어진 24시간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와 동지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지 않다 하더라도, 성경에서 말하는 한 날의 시간 길이는 경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 날의 기간은 24시간 이거나, 또는 천체가 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18]


결론

창세기는 실제로 역사(history)이다. 성경의 다른 저자들도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성경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다른 역사적인 책들과 비교할 때, 그 형태와 동사의 양상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더욱이, 그것은 시편과 같은 시적인 책과 전혀 유사하지 않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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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Sarfati, J., 'But Genesis is not a science textbook, Creation 26(4):6, 2004; creation.com/textbook.
2. A classic explanation is Grigg, R., Should Genesis be taken literally? Creation 16(1):38–41, 1993; creation.com/literal. See also Sarfati, J., Refuting Compromise, ch. 2, Creation Book Publishers, Atlanta, 2004, 2011; as well as the articles under creation.com/genesis.
3. A new resource documenting this is Genesis Verse-by-Verse, creation.com/genverse.
4. Wieland, C., Jesus on the age of the earth, Creation 34(2):51–54, 2012; creation.com/jesus_age.
5. Sarfati, J., Genesis: Bible authors believed it to be history, Creation 28(2):21–23, 2006; creation.com/gen-hist. See also Batten, D., and Sarfati, J., 15 Reasons to Take Genesis as History, Creation Book Publishers, 2006.
6. Sarfati, J., Why Bible history matters, Creation 33(4):18–21, 2011; creation.com/bible-history-fall-ark.
7. Cosner, L., What the New Testament doesn’t say, creation.com/nt-doesnt-say, 11 September 2012.
8. In modern Hebrew, the letter ו, when functioning as a consonant, is pronounced like our v, but in biblical times, it was pronounced like our w. The same sound shift occurred in Latin: when Julius Caesar said 'Veni, vidi, vici” (I came, I saw, I conquered), he pronounced it 'Weni, widi, wiki.” Much later Ecclesiatical (Church) Latin pronounces it 'Veni, vidi, vichi.”
9. Joüon, P. and Muraoka, T., A Grammar of Biblical Hebrew: Part Three: Syntax, p. 390, Pontifical Biblical Institute, Rome, 1991.
10. See also: Is Genesis poetry/figurative, a theological argument (polemic) and thus not history? creation.com/fh.
11. Kaiser, W.C., Jr., ‘The literary form of Genesis 1–11’ in Payne, J.B., New Perspectives on the Old Testament, Word Inc., Waco, Texas, USA, pp. 59–60, 1970.
12. Probabilities range from 0 (impossible) to 1 (certainty). Boyd, S.W., The biblical Hebrew creation account: New numbers tell the story, icr.org, November 2004. See also Boyd, S.W., A proper reading of Genesis 1:1–2:3; in: De Young, D. (Ed.), Thousands … Not Billions, Master Books, Green Forest, AR, pp. 157–170, 2005.
13. Actually, in Numbers 7, the phrase is bayyôm, where the ‘a’ in bayyôm represents the definite article, ‘the’, meaning ‘on the day [xth]’, unlike bəyôm, which lacks the article.
14. McCabe, R.V., interview in Creation 32(3):16–19, 2010; creation.com/mccabe; Graves, D.G., '… when Yahwe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a proposal for the right translation of כיום [bəyôm] in Genesis 2:4, J. Creation 23(3):119–122, 2009.
15. Ordinal numbers are used to refer, for example, to the order of runners finishing a race—first, second, third, etc., as opposed to cardinal numbers: one, two, three, etc.
16. An English Bible version which reflects this distinction is the NASB.
17. And this numbering pattern, including the deliberate use of the definite article for Day 6 (and Day 7 in Genesis 2:2–3, as well as for all the days in the Numbers passage) further emphasizes this. Sarfati, J., The numbering pattern of Genesis, J. Creation 17(2):60–61, 2003; creation.com/numbering—after Steinmann, A., אחד as an ordinal number and the meaning of Genesis 1:5,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JETS) 45(4):577–584, 2002.
18. Basil, Hexaëmeron 2:8, AD 370, newadvent.org/fathers/32012.htm; see also Genesis means what it says: Basil (AD 329–379), Creation 16(4):23–53 September 1994; creation.com/basil.
19. For a detailed critique of some of the compromising attempts to deny the history of Genesis based on literary style, see Kay, M., On literary theorists’ approach to Genesis 1 (two parts), J. Creation 21(2):71–76; 21(3):93–101, 2007; creation.com/literary-theory-1 and creation.com/literary-theor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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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genesis-is-history 

출처 - Creation 37(2):50–52, April 2015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39

참고 : 5275|5035|5033|4869|4540|4492|4487|4440|4297|3731|3689|3589|3331|3024|3020|2982|2936|2797|2638|2138|2016|3901|4351|5628|5627|5969|5870|6581|6044|5084|5542|5923|6107|6135|6283|5381|6360|6414|6110|6152|6153|6285|6146|5394|5265|6064|6066|6133|2942|6351|6533|6564|1922|3640|6491|6480|6477

미디어위원회
2021-01-27

에녹 :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
(Enoch : The man who walked with God)

by Lita Cosner


      창세기 5장의 계보는 “그는 ~ 세를 살고 죽었더라”라는 침울한 반복구를 반복하고 있다. 기록된 수명은 오늘날 경험하는 어떤 사람보다도 훨씬 길지만, 죽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목록 중에 아무도 죽음의 저주에 굴복하기 전에 1천 살이 넘은 사람은 없는데, 여기에 놀라운 예외적인 한 사람 있다.

노아의 증조부인 에녹(Enoch)은 아담으로부터 일곱 번째 세대에 태어났다(창세기 5:21~24). 에녹은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했다고(walked with God) 한다(창세기 6:9). 칠십인역은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pleased God)”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다윗이 했던 것처럼(열왕기상 3:6), 주 앞에서 행하였다고 한다.(창세기 48:15).

에녹은 죄를 지었고 약속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을 통한 구원이 필요했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의로운 삶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모세의 율법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지만, 일종의 희생 제사(창세기 4:2~5을 보라)와 기본적인 도덕규범이 있었을 것이다. 성경은 에녹이 자신이 받은 계시에 따라 살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또한 그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히브리서 11:6) 하기 때문이다.

에녹은 족장들의 계보에 죽어서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말씀한다. 외경에는 에녹이 데려감에 합당하도록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정확히 하나님이 어떻게 데려가셨는지 추측되어 있지만, 성경은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죽음에 대한 주권을 갖고 계시며, 우리는 에녹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일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에녹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살고 죽었던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담과 하와의 타락한 후손이었다. 그는 죄를 지었고 약속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을 통한 구원이 필요했다(창세기 3:15, 마태복음 1:18~23). 그는 스스로 거룩해져서, 하나님과 동행할 가치가 있도록 자신을 만들 수 없었다. 어떠한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에녹의 생애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을 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이 이야기에서 그 이유는 전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성경의 더 넓은 맥락에서 볼 때, 아마도 하나님은 미래에 죽음의 패배를 예고하시기 위해 에녹을 택하셨을 것이다. 즉, “그리고 그는 ~ 죽었더라”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마지막 운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나님은 죽음에 대한 주권을 갖고 계시며, 우리는 에녹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일을 엿볼 수 있다.

신약에는 에녹이 세 번 언급되어 있다. 그는 누가복음 3장에서 예수의 족보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현재의 논점에 있어서 그의 역사성을 확증해 준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브리서 11:5) 

유다는 이렇게 말한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다서 1:14~15). 이것은 성경이 성경 이외의 출처에서 정보를 인용한 매우 드문 곳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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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에녹은 우리에게, 심지어 모세의 언약 이전에도 구원이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했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 자신에 대한 그분의 계시를 믿는 것이 항상 중심이었다. 에녹은 또한 죽음이 자연적 질서가 아니라,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끝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부활을 약속으로 받는다.

성경에서 성경 이외의 어떤 출처에서 인용한 구절이 성경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유다가 에녹서를 인용한 것이 성경으로써 인증이 되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러나 이곳이 성경에서 성경 이외의 글을 인용한 유일한 곳이 아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아레오바고 연설에서 두 명의 그리스 철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분명히 그것을 성경 안으로 정경화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신약의 저자들이 성경을 인용할 때, 특히 마소라 본문과는 다른, 칠십인역 번역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 경우 인용문은 한 책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성경의 일부가 되지만, 그것의 출처는 성경이 아닌 것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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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41(4):24–25, October 2019
주소 : https://creation.com/enoch

번역 : 이종헌

미디어위원회
2021-01-06

과정신론 : 성경과 조화될 수 있는가?

(Process theism : Compatible with the Bible?)

Shaun Doyle


       과정신론(process theism) 또는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은 하나님과 이 세계가 상호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 중에(in the process)’ 있다는 생각으로, 둘 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장하고, 성장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지식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독립성과 더불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당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창조하셨다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거부한다. 미국에 거주 중인 에밀리아(Emilia W.)는 이러한 관점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해왔다.


안녕하세요.

CMI(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의 웹사이트에서 과정신학에 관련된 정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과정신론자인 친구와 하나님과 창조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성경은 하나님이 무로부터 창조하셨다고 결코 말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된 모든 성경 구절들은 원래 존재하던 물질로부터 모든 것을 “형성”하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CMI의 많은 글들처럼 열역학 제2법칙을 사용하여 우주가 시작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려고 합니다(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무로부터 창조하셨습니다). 나는 나의 주장으로 인해 우리의 믿음이 과학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으로 보일까 두렵습니다. 만약 열역학 제2법칙이 반증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과정적 관점(Process view)을 받아드려야 할까요?

그 친구가 하나님에 대해 믿는다고 하는 말의 대부분은 나에게 무의미하고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친구는 고등교육을 받았기에, 제가 그것을 이해할 만큼 똑똑하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저는 CMI로부터 과정신론자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주어야 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CMI의 숀 도일(Shaun Doyle)의 답변이다.


우리 웹사이트에는 과정신론에 대한 몇 가지 간단한 글들이 있다. (검색 창에 "과정신학"을 입력하면 볼 수 있다. 과정신론과 범신론 사이에 많은 중복이 있기 때문에 "범신론"을 검색하는 것도 유용할 수 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과정신론을 직접적으로 다룬 글은 없다. 나는 이 관점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할 것이지만, 과정신론은 상당히 광범위한 흐름의 신학적 관점이기 때문에, 이것들 중 일부는 당신의 친구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과정신론은 하나님과 창조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창조물과 함께 진화하는 '과정 중의' 하나님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하나님도 점점 더 좋아진다고 본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온갖 종류의 불완전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즉, 대부분의 과정신론자들은 하나님은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고 보기에,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확립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내에서도 주장하는 범위는 다양하다.


과정신론과 하나님의 독립성

그렇다면 전통적인 성경적 유신론(biblical theism)과 과정신론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를 구분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홀로 존재하실 수 있는가? 전통적인 유신론자는 ‘예’라고 말하지만, 과정신론자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과정신론자에게 하나님은 하나님 외의 어떤 대상과 진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

과정 형이상학(process metaphysics)에서, 현실세계의 구조는 사회적이며 필연적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적 하나님이라는 견해를 추구한다. 즉 하나님은 비신적인 실체(non-divine actualities)와 반드시 관계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2]

이것은 하나님 외의 무언가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비신적인 실체도 원인이 되는 존재(causal being)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존재는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창조하도록 영향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 이것은 과정신론을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독립적이라는 생각을, 즉 하나님은 자신 이외의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설명 : 과정신론은 많은 면에서 세상과 하나님을 동등하게 여기고, 둘 다 성장하기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필요로 하시지도 않고, 성장하실 필요도 없으시다. 하나님은 이미 완벽하시다. 오히려 그 분은 세상을 무에서부터 창조하셨고, 그의 권능으로 세상을 붙들고 계시므로, 우리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신성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성경적 유신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만이 필연적이고 독립적이라면, 모든 것에는 존재하는 이유가 있으며,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은 그것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그 분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가리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를 원하신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3]

과정신론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완전한 의존성을 강압적인(coercive) 것으로 보고 있으며,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손상시킨다. 그들은 살아있지 않은 대상(물체)일지라도 절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하나님은 그러한 근본적인 특성(절대적인 자율성)을 파괴할 수 없을뿐더러, 무에서부터 그러한 특성이 존재하도록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과정신론의 하나님의 독립성에 대한 거부는 거의 항상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순서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거부는 과정신론이 하나님의 독립성을 거부하는 근본적인 증상(symptom)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하고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독립성을 확언한다. 예로 사도행전 17:24-25절을 들 수 있다 :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이 구절은 두 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과정신론을 부정한다. 첫째로,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라는 구절은 하나님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하나님 이외의 존재들로부터 절대로 받으시지 않으시며,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족하시는 분(self-sufficient)이시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구분한 것에 주목하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드셨음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 뿐만 아니라, 우주 자체도 지으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에 의구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이 구절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하나님 이외의 존재를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과정신론과 치명적으로 모순된다.

또 다른 중요한 구절은 로마서 11:34~36절이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서정적 표현의 이사야 40:13절과 욥기 41:11절을 인용하면서,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구약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로마서 11장은 사도행전 17장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하나님과 상호관계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으시다. 오히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만물이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하고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정신론이 아니다.

역대상 29:14절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신약의 구절들과 동일한 생각을 반영한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동일한 관점이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분이시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세 구절 모두에서, 무로부터의 창조 문제는 정도가 다르지만 명백하게 나타나있다. 요점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 외에 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정신론은 하나님이 자신 외의 어떤 것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말하므로, 과정신론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에 대한 묘사와 모순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셨나?(Did God create time?)”와 “하나님은 존재하기 위해 논리에 의존하시는가?(Does God depend on logic to exist?)”을 참조하기 바란다.)


과정신론과 무로부터의 창조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는 어떤가? 만약 당신이 무로부터의 창조를 의미하는 우주의 시작을 주장하고 싶다면, 당신이 직면하게 될 여러 반박들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은 시작이 없는 우주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열역학 제2법칙이 그러한 주제에 관련될 수도 있다. 또한 하나님과 창조물 모두 경우에 따라서는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만약 시간이 ‘어떤 것의 이전/이후’ 관계라면, 무변화성은 무시간성이다. 또한 만약 하나님과 세상의 근본적인 물질들이 모두 변화 없이 공존했고, 하나님께서 그 물질들을 새로운 형태로 변형시켜 만드신 것이라면, 그것은 과정신론자들에게 무로부터의 창조 없이 절대적인 시작을 확립해주는 길을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를 정적인 것에서 시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은 완전히 정적인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다. 과정신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연법칙을 위반할 수 없다고 말하므로, 이 생각은 과정신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만약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것을 한번 바꿀 수 있었다고 말한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을 다시 바꾸지 않는 것일까? 과정신론자들은 기적을 상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적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성경적 이슈에 관해서는, 먼저 성경의 '창조(creation)'라는 단어가 항상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부터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정당성이 없다. 이는 그 단어가 무로부터의 창조와 항상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단어가 갖는 의미의 범위는 일반화하기에는 너무도 광범위하다. 묘사된 창조 활동의 종류는 문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단어 ‘바라(bara)’(히브리어로 ‘창조하다’를 뜻하는 동사)를 보자. 창세기 1:27절에서, 이 단어는 인간을 창조하는데 세 번 사용되었지만,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전에 존재했던 물질을 사용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창세기 2:7절을 봤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래 있던 물질을 사용하여 창조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시편 51:10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에게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bara)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윗이 물리적 상태의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물질은 이 구절과 관련이 없다. 또한 창세기 1:1절에서 사용된 바라(bara)라는 단어는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 하늘과 땅을 형성하셨는지 우리에게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과 땅(the heavens and the earth)’이 만들어진 질서의 완전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메리즘(merism, 양단법)으로 봤을 때, 이미 존재하는 물질에서 그것이 형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라(bara)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피조물들이 이미 존재하는 물질에서 나왔는지 아닌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된 정보는 다른 고려사항들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또한 창세기 1:1절은 메리즘과는 다르게, 무로부터의 창조를 보여준다는 견고한 주장들이 있다. 예를 들어, 2절은 하나님이 창조 활동을 시작하신 환경이 아니라, 1절에서 묘사되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결과로 생겨난 환경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다른 고대 근동지역의 창조 이야기들은 창세기 1:2절에서 보여주는 창조의 초기 상태를 (구분되지 않은 물 덩어리로서) 공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창세기 1장과 다르게, 다른 고대 근동지역의 창조 이야기들은 "x, y, z가 존재하기 전에"와 같은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유래된,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물 덩어리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성경의 창세기 1:1절은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고 시작되며, 2절의 나눠지지 않은 물 덩어리의 문자적 소개에 앞서, 하나님께서 세계의 완전성을 창조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고대 근동우주론과 창세기1장(Ancient Near Eastern cosmogonies and Genesis 1)”을 참조하기 바란다.)

게다가 창세기1:1과 명백한 평행구절을 이루고 있는 요한복음 1:1~3절은(요한복음 1:1의 첫 번째 절의 형태는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의 창세기 1:1과 일치한다) 요한복음 1:3절에서 등장하는 "만물(all things)"이 말씀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선포와 함께, 무로부터의 창조를 내포하고 있는 창세기 1:1절을 요한이 이해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조나단 사파티(Jonathan Sarfati) 박사의 저서 “The Genesis Account”을 참고하기 바란다.

골로새서 1:16절은 요한복음 1장의 "만물"이라는 개념을 자세히 설명하여,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강조한다. 이는 천사의 계급을 포함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창조하셨음을 말한다. 만약 "보이지 않는" 것들도 창조되었다면, 어떻게 이미 존재했던 물질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히브리서 11:3절은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부터 세상이 형성되었다는 주장에 대한 가장 분명한 답을 주고 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첫째,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는 구절은 보이는 세계는 보이는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따라서 보이는 세계는 어떤 것으로부터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것은 보이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 물질로 만들어졌다거나, 혹은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 구절은 이러한 부정(보이는 세계가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과 어떻게 대조될 수 있을까? 앞의 절은 그 대답을 제공한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이 세계가 이전에 존재하던 물질로 만들어졌다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이 부정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전한 능력에 의해서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것과 대조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보이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 물질로 만들어졌다는 옵션은 언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 대조는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명백한 확언으로 간주된다.


결론

하나님이 관계를 갖고 계심에 틀림없다는 과정신론자들의 말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신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신적 존재가 아닌 것과 관계를 갖고 계신다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삼위일체가 그 해답을 제공한다. 신적 관계의 필요성은 신적 존재들, 즉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창조는 '강압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신적 연합(삼위일체)과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주권적인 은혜의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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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Panentheism is the idea that the world is in some sense located within God, such that it is a part of God. Process theism is usually panentheistic, but it formally need not be. In fact, it could be argued that panentheism doesn’t preserve God’s necessity for external relations so crucial to process theism, since everything is actually internally located in God in panentheism. 

2. Viney, D., Process theism, plato.stanford.edu, 28 June 2014. This necessity is limited to the (mutable) matter of the cosmos, not the current form of the cosmos. Process theists like Alfred North Whitehead imagined the universe having different epochs with different laws of nature. 

3. Creatio ex nihilo arises from this and the belief that all contingent things came into being (i.e. they had a beginning). Since nothing comes from nothing, if everything came into being, it had to come into being purely by God’s will apart from any pre-existing matter—i.e. creatio ex nihilo. 


*참조 : 유신진화론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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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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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에 의한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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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유신진화론 :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아담이 없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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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성경적 이해, 그리고 창조와 십자가 : 유신진화론자들의 죽음에 대한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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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은 믿음이고, 진화론은 과학인가? : 진화론자와 유신진화론자의 히브리서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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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은 양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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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 이전에 동물들의 죽음 : 동물을 잔인하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과 상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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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생물들은 언제 죽었는가? : 아담 이전의 죽음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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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자, 테야르 드 샤르댕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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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의 진화론 수용의 역사 : 교황 프란치스코의 진화론과 빅뱅이론 인정에 대한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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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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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내용들이 신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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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은 바벨론의 신화를 재편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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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조 기록의 독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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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거짓 역사 : 창세기 1~11장의 기록은 진정한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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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역사성에 관하여 제기되어 왔던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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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간격이 있는가? : 간격이론(Gap Theory)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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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과 1:2 사이에 긴 시간 간격이 존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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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족보에 간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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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하라’ 인가, ‘다시 충만하라’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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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의 하루는 여섯 번의 태양일(24hr의 하루)을 가리킨다고 히브리어 교수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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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의 하루는 여섯 번의 태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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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들은 왜 한 번의 전 지구적인 대홍수를 믿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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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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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하루가 아닐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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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의 날들은 얼마의 시간이었는가? : 하나님은 그 단어들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의도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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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교리에 대한 타협 : 점진론적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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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론적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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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지구의 신 : 점진적 창조론, 간격이론, 날시대이론, 다중격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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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대학에서 창조론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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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믿음이 최근의 탈선인가? : 오래된 지구 창조론, 또는 젊은 지구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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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학자의 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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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 창조론에 대한 성경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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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증인 타파하기 :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인 휴 로스의 주장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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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넷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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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생물들은 언제 죽었는가? : 아담 이전의 죽음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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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범죄 이전에 사망이 있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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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격변(양승훈 저)’에 대한 한국창조과학회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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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자와 기독교과학자 : 양승훈 교수의 “두 근본주의의 충돌”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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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이론에 대한 과학적 비평 : 유신진화론 비판, 기독교학술원 제75회 월례포럼(2019.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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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신앙의 역사, 그 교회사적 고찰 :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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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고, 요세푸스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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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고 칼뱅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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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은 어떤 창조론을 믿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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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이 만연한 이 시대에도 필요한 외침, ‘오직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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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2016. 6. 11. (GMT+10)

주소 : https://creation.com/process-theism

번역 : 조항윤

Gary Bates, Russell Grigg
2020-12-24

창세기로부터 큰 그림을 가르치셨던 예수님

(Jesus teaching the ‘big picture’ from Genesis)


      복음을 설명하고 선포하는 것을 돕기 위해 창세기(Genesis)를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창조론적 복음주의(creation evangelism)는 새로운 것인가? AiG(Answers in Genesis)와 같은 창조론 단체들이 쓰고 있는 방법은 오늘날 해로운 문화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진화론 교육에 단순히 대항하기만을 위함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부터 기초를 든든하게 하는 것은 오늘날 복음주의와 교회 교육이 자주 놓치고 있는, 성경과 구원의 큰 그림을 확실하게 하는 작업인 것이다.

진화론(과학으로서 과시되고 있는 인본주의적 믿음의 정당화)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면역시켜 놓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과학(science)이 성경이 틀렸음을 입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이와 같지는 않았다.


듣기를 갈망했던 군중들

1950 년대에 빌리 그레함(Billy Graham)과 같은 복음전도자들이 공개적인 집회를 열었을 때, 그가 말하는 것을 듣기를 열망하는 군중들로 대형 체육관들은 가득 채워졌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 기도, 찬송 등을 가르쳤던 학교 교육과 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환경 하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개념은 이해하고 있었다. 기독교적 교리와 복음의 기초는 삶에 있어서 확립된 사실이었다. 이들 군중들에게 나타났던 많은 반응들은,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하나님께로 단순히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에는 잘 통용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대부분이 비기독교인 사람들에게 ”성경은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어쨌다는 거야?”


진화론으로 가득한 문화 속에서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으며, 주일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 그들은 구원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새로운 개념을 배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아덴의 아레오바고(Areopagus)에서 이 방법을 사용했다 [1].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되어 있다.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바울은 진화론과 같은 형태를[2] 믿고 있었던 당시의 시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철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라고 표현하고 있다.(행 17:18).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To an unknown god)” 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 그들의 제단을 가리켰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이 경배하는 알지 못하는 신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 (24절)” 이시며,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한 사람으로부터) 만드신 (26절)” 분임을 말했다. 바울이 말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는 이 세계의 진실된 역사로서, 창세기에서 발견되는 복음의 기원을 펼쳐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믿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중의 한 명은 아레오바고 관원이었던 디오누시오(Dionysius)였다(34절). 오래지 않아 교회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디오누시오는 그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3] 아덴에서의 교회는 크고 영향력이 있게 되었다. 그들은 출발할 때부터 바른 기초를 가졌던 것이다.


교회 세대들에게 설교하기

이것과 대조적으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는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을 설교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짓는다.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36절). 그 날에 삼천 명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았다(41절).[4] 

베드로는 신앙이 있었던 세대들, 즉, 이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율법을 주신 분이시요, 창조주시요, 심판주이심을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설교했던 것이다. 그들은 창조와 타락, 죄가 들어옴, 이어진 형벌에 대한 창세기 기록을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도움 받을 곳이 없는 그들의 상태에서, 예수님은 약속대로 오신 메시야로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불행하게도, 구원에 관한 이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많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구원에 대한 감정적인 생각이나, 기초적인 가르침의 부족, 그리고 진화론적 교육에 의한 창세기의 불신과 같은 많은 것들에 기인할 수 있다.


예수님과 ‘큰 그림(big picture)’

‘큰 그림(big picture)’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일부 신앙인(유대인)들과 예수님도 또한 대면했었다. 누가복음 24장 13-35절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두 명의 제자가 몇 일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엠마오(Emmaus)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며,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슬퍼하는 지를 물어보셨다. 그들은 예수님인줄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중 한 사람인 글로바(Cleopas)가 예수님께 묻고 있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예수님이 이르시되 ”무슨 일이뇨?” 그들이 대답했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글로바는 성경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기소침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그리스도)이 왜 죽으셔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그의 친구는 그들의 현재 상황과 국가적 상태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던 것이다.

똑같은 일이 제자들이 모여 있는 다락방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도 발생했다(눅 24:44-46). 예수님은 모세가 자신에 관해서 기록했던 것으로 시작하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그러면 모세가 기록했던, 분명한 복음을 위해서 예수님이 설명해야했던 것은 무엇인가?[6].

그것은 창조(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을 창조주로 기술하고 있다. 요1:1-3, 골1:16, 히1:2), 아담의 범죄, 죄가 들어옴, 인류에 내려진 죽음 등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었다. 이것은 인류의 죄에 대한 대속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날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그가 죽으셔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하셨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또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구세주(Saviour)가 필요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왜, 도대체 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어야만 했는지를 설명해야만 한다. 그 이유에 대한 기본 개념은 창세기(Genesis)에서 확립되는 것이다.[7]

오늘날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이것은 ”큰 그림(big picture)” 이다.


*Gary Bates heads Ministry Development for Answers in Genesis in Brisbane, Australia. He was previously a business proprietor, and volunteer state coordinator/speaker for Answers in Genesis in Western Australia.

*Russell Grigg, M.Sc.(Hons.), was an industrial chemist before serving 20 years with 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He is a staff member of Answers in Genesis in Australia.


References and notes

1. Areopagus (Greek: Areios pagos), the hill of Ares, the Greek god of war, corresponding to the Roman god Mars. The Council of the Areopagus was the Supreme Court of the City of Athens.
2. For example, Aristotle taught that ‘the lowest stage [in nature] is the inorganic, and this passes into the organic by direct metamorphosis, matter being transformed into life’. (Osborn, H.F., From the Greeks to Darwin, Charles Scribner’s Sons, New York, 2nd ed., p. 78, 1929.) But Aristotle criticized the transformism of Empedocles, so seemed anti-evolutionary.
3. Eusebius, Bishop of Caesarea, refers to Dionysius as ‘the first Bishop of the Church of Athens’. (Eusebius, Historia Ecclesiastica, iii.4; iv.23, as quoted in New Bible Dictionary, Inter-Varsity press, London, p. 312, 1974.)
4. In any comparison of numbers, it should be noted that Paul’s audience at Athens was very much fewer than ‘the multitude—out of every nation under heaven’ (Acts 2:5–6) that was Peter’s at Jerusalem.
5. For a study of Old Testament prophecy concerning the First Coming of the Messiah see: Fruchtenbaum, A., Messianic Christology, Ariel Ministries, Tustin, California, 1998.
6. Jesus, John and Paul clearly confirmed the book of Genesis (written by Moses) as literal history. See also Luke 16:29–31; John 1:45; John 5:46–47; Acts 26:22, 28:23.
7. Many people relate how they could not understand Christianity until taught fundamental principles from Genesis. E.g. ‘Because you took me back to the beginning, now I understand the plot. For the first time I am understanding what Christianity is all about. No-one ever suggested I start reading the Bible at the beginning.’ See Ham, K., Why won’t they listen? Master Books, Inc., Green Forest, Arizona, p. 105, 1999.



* 참조 : 예수님은 최근 창조를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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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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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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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있는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 성경에서 반복되고 있는 ”I 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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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들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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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교회가 전해야할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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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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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 : 확증된 역사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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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이 만연한 이 시대에도 필요한 외침, ‘오직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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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조 기록의 독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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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잡힌 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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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왜 66권인가? : 어느 책이 성경에 속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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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무오한 하나님 말씀인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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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5/i3/teaching.asp ,

출처 - Creation 25(3):24–26, June 200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42

참고 : 5686|5376|5275|4540|4440|3945|3641|3249|2970|3020|2982|2797|2864|2412|4140|638|5466|5462|4596|3654|5969|5870|6581|6044|5084|5542|5923|6107|6135|6283|5381|6360|6414|6110|6152|6153|6285|6146|5394|5265|6639|6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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