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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15-01-09

모기는 최근에 어떻게 사람의 피를 빨게 되었는가? 

(Mosquitoes Developed a Taste for Human Blood Recently)

David F. Coppedge


      아프리카에서 질병을 옮기는 모기에 대한 실험은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모기들이 사람의 피를 빨기 시작한 것은 단지 수천 년 전이라는 것이다.

Science (2014. 11. 12) 지에 게재된 모기의 진화에 대한 글은 성숙한 모기가 물 서식처에서 출현하는 공포스런 확대 사진을 싣고 있었다. 이들 모기가 직접 맨하탄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이 작은 생물은 종종 치명적인 뎅기열(dengue fever), 황열(yellow fever), 치쿤구니아(chikungunya)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들을 운반한다. 모기들은 왜 사람의 피를 빻게 된 것일까? 열대숲모기(Aedes aegypti)의 한 변이체인 집모기(Aedes aegypti aegypti)는 가까운 사촌인 숲모기(Aedes aegypti formosus)로부터 최근의 전환된 변이체이다. 엘리자베스 펜니시(Elizabeth Pennisi)는 록펠러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 연구자들의 이들 모기에 대한 연구를 기술하고 있었다. 숲모기는 실험실에서 기니피그(guinea pigs)를 문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집모기는 그 반대였다. 그들 사이에는 Or4 라는 이름의 한 특별한 유전자가 달랐다. 록펠러 대학의 언론 보도는 어떻게 그 모기들이 다른 피를 선호하게 됐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Or4가 사람의 체취에서 어떤 냄새를 감지하는 데에 관여함에 틀림없다고 추측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은 실험참가자들에게 24시간 동안 팬티스타킹을 착용하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그 냄새나는 스타킹을 수백 종의 사람 체취들을 감지해내도록 고안된 기계에 적용시켰다. 연구자들은 기니피그에 착용시킨 스타킹에서는 설카톤(sulcatone)이라 불리는 화학물질을 찾을 수 없었다는 일련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사람은 많은 설카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니피그에는 없다. OR4 유전자의 변형이 모기로 하여금 설카톤에 이끌리도록 하는 원인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일은 언제 발생했는가?

모기들이 동물로부터 사람의 피를 빨게 되는 변환은 모기들이 그들의 집 대신에 사람 주변에서 살아가고, 나무 구멍에서 발견되는 흐린 물 대신에, 물웅덩이의 깨끗한 물에서 번식하는 등의 여러 행동적 조정을 필요로 한다. ”모기들이 사람 주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변환시켜야만 했던 일련의 생활스타일이 있다.” 보샬(Vosshall)은 말한다. ”이 논문은 일부 모기가 이러한 교체를 일으켰을 때인 수천 년 전에 무엇이 발생했었는지에 관한 최초의 유전적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있다.”

냄새에 대한 모기의 끌림에 대한 또 하나의 연구가 PNAS (2014. 10. 27) 지에 게재되었다. 거기에서 연구자들은 DEET가 기피제(repellant, 퇴치약)로 작동되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는 남부 집모기에서 기피제에 필수적인 후각 수용기(odorant receptor)를 발견했다. 따라서 기피제 DEET(N,N-diethyl-meta-toluamide)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밝혀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우리는 이 합성 기피제와 메틸 자스모네이트(methyl jasmonate) 사이의 관련성을 확인했다. 따라서 DEET는 식물로부터 방어 화학물질을 모방함으로써 작동될 수도 있음을 가리킨다.

모기를 유인하고 퇴치하는 화학물질에 관한 더 많은 지식이 쌓여질수록 더 좋은 퇴치약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펜니시는 흥미로운 사실로 시작하고 있었다 : ”수백만의 곤충 종들 중에서 단지 1백여 종만이 사람의 피를 빤다.”



동물의 후각기관은 극도로 복잡하다. 후각 신경세포의 섬모에 있는 개별 후각 수용체들은 광범위한 화학물질들과 결합하여 탐지할 수 있다. 유전자들은 후각 수용체들이 후각 신경세포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조절한다. 냄새 물질과 후각 수용체의 ‘자물쇠 열쇠 적합’ 관계에서 약간의 변화도 동물의 감도 변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감도의 변화는 기존의 행동 반응의 변화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 3장의 창조물에 대한 저주가 반드시 식물과 동물의 철저한 개조를 필요로 하지 않음을 가리킨다. 일부의 경우에서, 기존의 구조와 기능에 약간의 변화가 그것을 유발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모기의 입 부분은 매우 복잡하다. 그것을 설계되지 않은 것으로 상상하기는 힘들다. 우리가 여기서 보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람을 흡혈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태학적으로 유익한 방식으로 작동되도록 설계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질병이 발생되기 시작하면서, 모기는 바이러스들을 옮기기 시작했을 수 있다. 돌연변이가 사람에 풍부하게 있는 냄새물질을 목표로 하도록 기존에 있던 구조와 기능을 변경시켰을 때, 저주의 또 다른 면이 나타나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이 일이 수천 년 전에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일은 아마도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떠난 이후에 일어났을 것이다.

 

*관련기사 : 모기는 어쩌다가 뱀파이어가 됐을까? (2014. 11. 17.  Bric)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52845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4/12/mosquito-taste-human-blood-recently/

출처 - CEH, 2014. 12. 1.

미디어위원회
2015-01-01

고대 이집트는 창세기가 실제 역사임을 확증하고 있다. 

(Ancient Egypt confirms: Genesis is history)

Carl Wieland 


       마네토(Manetho)는 BC 270년 경에 살았던 이집트의 역사가이며 제사장이었다.[1] 그가 썼던 이집트 왕들의 연대기(chronology of the kings of Egypt)는 성경의 역사와 수 세기가 달랐기 때문에, 일부 복음주의적 고고학자들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고, 성경의 기록을 불신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심지어 여러 세속적 역사가들도 마네토의 이집트 연대기는 극적으로 축소되어, 개정될 필요가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연속적으로 계승된 것으로 알고 있던 몇몇 왕조들이 동시에 이집트를 통치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2]


중요한 것은, 마네토가 썼던 글의 일부는 직접적으로 창세기를 확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쓴 이집트 역사에서, 마네토는 노아의 홍수 후에, 노아의 아들 함(Ham)은 아이깁투스(Aegyptus, 이집트) 또는 메스트라임(Mestraim, 미스라임)을 낳았다고 쓰고 있었다. 미스라임은 바벨탑 분산 후에 오늘날의 이집트로 알려진 지역에 최초로 나라를 건설했던 인물이다.[3]

중요한 것은, 마네토가 썼던 글의 일부는 직접적으로 창세기를 확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미스라임은 함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창 10:6). 이집트는 (홍수 후에 출현한 최초의 문명 중 하나) 미스라임(Mizraim or mitsrayim (מצרים) Hebrew)으로 알려져 있다.[4] 마네토는 민족들의 분산은 노아의 후손인 벨렉(Peleg)이 태어나고 5년 후의 일이라고 쓰고 있었다.[5] 이것은 창세기 10:25절에 기록된 ”...하나의 이름은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6] 나뉘었음이요”라는 기록과 일치한다.


또한, 이집트 학자인 패트릭 클라크(Patrick Clarke)는 가장 초기의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들과 그들의 땅을 km.t (Kham으로 발음. 즉 Cham or Ham)으로 불렀다고 말한다.[7, 8] 오늘날의 많은 현대 신학자들과 신학생들이 창세기가 실제 역사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지만, 마네토를 비롯하여, 고대 이집트인들은 창세기가 역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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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Manetho’s History of Egypt’ in Manetho, with an English Translation by W.G. Waddell,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Massachusetts, 1964, p. xi, cited in ref. 3.
2.In recent times, CMI’s Journal of Creation has featured a still-to-be-finished series of articles developing a new revised chronology of Egypt.

3.Ashton, J, Evolution Impossible, Master Books, Green Forest AZ, 2012, p. 115, citing ref. 1, p. 7.
4.John Gill’s famous 18th century commentary states, 'The word is of the dual number, and serves to express Egypt by, which was divided into two parts, lower and upper Egypt.” Egypt is also known as Miṣr (مصر) Arabic, Egypt’s current language, although that is likely a later development.
5.‘Book of Sothis App. IV’, in ref. 1, p. 239, also Ussher, J, The Annals of the World, 1658, sections 1657–1762 am, available creation.com/store.
6.Hebrew eretz (ארץ) can mean the physical earth, or its nation(s). Cf. English ‘land’ = physical ground or nation, thus eretz Israel = the nation (land) of Israel. The clear context here from Genesis 11 a few verses on is that the 'earth” that was divided is 'the earth [that] had one language and one speech”. Thus it must mean the division of nations following Babel. See creation.com/peleg2 for further documentation.
7.Clarke, P., personal communication, 4 November 2012.
8.The t at the end of km.t marked feminine gender and was not pronounced.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ancient-egypt-confirms-genesis 

출처 - Creation 35(4):56, October 2013.


미디어위원회
2014-12-30

창세기는 무오한가(오류가 없는가)? 

(Is Genesis infallible?)

Lita Cosner


       예수님이 당신에게 ”당신이 틀렸어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What if Jesus tells you you’re wrong?)”라는 글에 대한 반응으로 뉴질랜드의 한 독자인 로빈(Robin B)은 이렇게 편지를 보내왔다 :

  리타 씨, A.K. 씨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창세기는 전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문자적으로, 그리고 정확히 사실이라는 전제에 따른 것입니다. 실제로 창세기를 누가 썼는지는 추론입니다. 누가 되었든, 저자는 모세이거나, 혹은 야훼라는 모세시대 이후의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모세 이후의 누군가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모세 혹은 다른 저자는 어디서 정보를 얻었을까요? 우리가 근본주의자라면 하나님이 직접 계시해 주셨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용주의자들은 그것이 족장들을 통해 노아와 그의 자손들로 세대를 지나며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궁극적으로 모세 혹은 모세 이후의 저자에서 마쳤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근본주의자들은 실용주의자들의 해석이 거룩한 문서에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인간적 요소를 허용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모세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창세기의 편집자 혹은 저자가 계시를 통해서 받았다고 함으로써, 그 출처의 기원을 하나님께 두려고 할 것입니다. 우주가 6,000년이 되었든 수십억 년이 되었든,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혼란스러워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창세기를 신약성경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는 수천 년으로 추정되는 역사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신약성경에 나오는 복음서와 서신서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60년 이내에 기록된 것이며, 목격자 및 제삼자의 목격담과 1세기 기독교 교회에서 싹트기 시작한 사도들의 믿음과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신학적인 것이지, 과학적인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CMI는 창세기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하고 있고, A.K.씨도 그럴 것으로 알고 있으며, 나 같은 신자는 문자적이라기보다는 비유적으로 해석합니다. 나의 관점으로는 창세기 책을 목격담인 복음서와 비교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창세기는 목격자가 쓴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CMI(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의 리타 코스너(Lita Cosner)는 이렇게 대답한다 :

친애하는 로빈 씨,

음, 한 가지는 당신이 맞는데, 나의 대답은 절대적으로 ”창세기는 전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문자적으로, 정확히 사실”이라는 전제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문자적’이라는 부분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성경에는 여러 종류의 상징적인 화법이 들어있다고 믿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다윗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라고 갈망했을 때(시편 17:8), 다윗은 하나님이 문자적으로 날개 같은 부속기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문자적이란 말은 그러한 문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의 명백한 의미로 해석할 때, 그것이 최선의 해석 방법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지구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믿든지, 하나님이 아무런 관심이 없으시다면, 왜 그분은 그렇게 많은 연대기적 자료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을까요?

또한 나는 성경의 첫 다섯 권의 저자가 모세라고 예수님이 확증하셨기 때문에(예를 들어 요한복음 5:46), 나도 그렇게 믿습니다. 나는 모세가 수집한 기존의 기록들을 편집하여 창세기를 썼다는데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저작자에 대한 고대의 개념에는 요즘 우리가 ‘편집자’라고 말하는 개념도 아주 명확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자체는 앞서 존재했던 문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되는 톨레돗(toledot)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 저자가 기록하는 것을 하나님이 영감으로 감독하셨다는 사실(베드로후서 1:20-21)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우리가 지구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믿든지 하나님이 아무런 관심이 없으시다면, 왜 그분은 그렇게 많은 연대기적 자료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을까요? 설사 지구의 나이가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경 안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와 지구를 수십억 년에 걸쳐 창조하셨을까요? 그런 이유로 우리는 지구의 나이가 실제로 복음의 한 가지 이슈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책은 목격자가 편집한 것은 아니지만, 목격자이신 창조주 자신이 영감을 불어넣으신 책입니다.

동일하신 하나님이 창세기와 신약성경에 영감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에, 그것들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성경의 기본적인 목적이 과학적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구약과 신약성경 모두 세속적 과학과 충돌하는 역사적 주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전 지구적인 대홍수가 있었고, 거기서 방주에 탔던 8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확언하고 있습니다(베드로전서 3:20). 예수님은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라고 확언하셨으며(마태복음 19:4-5), 바울은 속죄(로마서 5:12-21)와 부활(고린도전서 15장)에 관한 그의 논의에서 아담을 중심적인 존재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만약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창세기를 권위 있는 것으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확실히 그들은 그렇게 여겼습니다), 창세기는 오류로 가득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면, 신약성경은 창세기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신약성경도 역시 보호될 수 없습니다.

CMI는 창세기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가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며, 과학 이론(보다 구체적으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역사과학의 분야)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목격자에 의해서 편집된 것은 아니지만, 목격자이신 창조주 자신이 영감을 불어넣으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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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is it so important to interpret Genesis as reliable history? (창세기를 실제의 역사로 해석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Further Reading
Genesis Questions and Answers

Bible Questions and Answers

.Genesis - Alleged Discrepancies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genesis-infallible 

출처 - CMI, 2014. 11. 22.

미디어위원회
2014-11-25

“교회 목사님이 창세기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를 옮겨야만 하나요?” 

(My pastors don’t believe Genesis. Should I leave my church?)

CMI


     우리는 한 후원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는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이 창세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매우 놀랐다는 것이다. 태스 워커(Tas Walker) 박사가 이에 대해 숙고해야 하는 몇 가지 점들을 이야기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들의 연구와 사역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며, 간행하시는 여러 잡지와 글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지금 나이는 30살) 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 명의 목사님들 중 어느 누구도 성경 창세기를 사실로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두 분은(한 분은 아직 확인을 못함) 노아의 홍수가 전 지구적 홍수였다는 사실도 또한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두고 있고, 한 아이는 뱃속에 있습니다. 저는 자녀들이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가르치는 교회에서 자라기를 원합니다. 창세기를 사실로 믿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 저희 교회는 너무도 좋습니다. 교회를 옮기는 것은 너무 과격한 생각인가요?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태스 워커 박사가 이에 대해 대답했다 :

성경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 믿지 않는 목사님들이 이끄시는 교회에 다니시는 귀하의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일은 진화론으로 가득한 오늘날 매우 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어느 교회를 다닐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당신이 기도하면서 생각해보아야할 몇 가지 점들이 있습니다.

1.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가 당신에게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좋을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서 많은 요인들에 대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2. 교회에 속해있는 것에는 많은 좋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합니다. 예를 들어 간혹 청소년 사역자들은 강하고 전투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목사님들도 변해갑니다. 아마도 당신이 기다리면, 많은 것들이 개선되는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3. 교회는 당신이 얻기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당신의 은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역지이기도 합니다. 창조론에 대한 당신의 열정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면,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4. 당신은 교회에서 진리를 말하고 진리 위에 서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창세기의 진실성과 기초됨은 이 특별한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필요가 있는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진리를 말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했던 멋진 진리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6일 창조를 강요하기보다, 그들이 알기를 원하고 필요로 할 때 말해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당신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당신은 성경에 관한 의심을 풀어주며,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 확고한 기초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항상 교회에 창조 잡지들, DVD, 브로셔 등을 갖다놓고, 필요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져가게 하고 있습니다.

5. 당신은 목사님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목사님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불화를 일으키거나, 논쟁하지 마십시오. 한 주제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교회의 광범위한 사역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당신의 열정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 봉사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오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여기에 성도였던 한 사람이 교회 목사님을 창세기의 진리로 나아올 수 있게 했던 두 사례가 있습니다.

1) 교회의 한 젊은 성도가 교회 목사님에게 한 권을 책을 빌려주었고, 목사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see Esa Hukkinen interview).

2)오웬 버트(Owen Butt) 목사님은 창세기를 신화(myth)라고 믿고 있었지만, 창조과학 세미나를 참석한 후에 그의 생각이 바뀌었고, 그의 전체 사역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를 창조과학 세미나에 초대하고 정보를 줬던 사람은 그 교회의 성도였습니다. 그곳에서 목사님의 모든 생각이 변화되었습니다. (See Catching the vision).

6. 당신의 자녀와 가족이 창세기와 창조의 진리에 잘 서있는지 확인하십시오. 그들에게  창조과학 도서, DVD, 다른 소스들을 제공하며, 제기하는 의문과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십시오. 그러나 당신의 교회와 목사님들, 특별히 당신의 자녀들에 대해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에서 당신의 교회나 목사님을 비난하거나 비판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독이 될 것입니다.

7. 만약 목사님이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고, 상황이 당신에게 매우 어렵게 된다면, 그래서 당신의 입지가 좁아지고, 설교 중에 공격적인 말을 듣는다면, 교회를 옮기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인생의 전체 여정에서 주님과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5)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시길 빌며, 

태스 워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my-pastor-doesnt-believe-in-genesis 

출처 - CMI, 2014. 11. 15.

미디어위원회
2014-09-10

뱀독의 기원이 밝혀졌다. 

(Decoding Snake-Venom Origins)

Jeffrey Tomkins Ph.D 


      뱀독(snake venom)의 기원은 창조론자와 진화론자 모두에게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최근 진화론적 패러다임을 벗어난 일부 과학자들은 뱀독 단백질이 기존의 타액 단백질에서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1]

태초의 창조 시에 하나님은 사망, 질병, 폭력으로 가득한 세계를 창조하시지 않았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반역 때문에, 독을 가진 뱀을 포함하여, 부정적인 모든 요소들이 창조물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면 생겨나는 질문은 어떤 방법으로 저주가 창조물에 치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창조주에 의해서 부정적인 요소들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유전자들이 추가되었는가? 아니면 기존의 유전정보가 손상되었거나,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었는가? 유전체의 붕괴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지식에 따르면, 유전자 엔트로피(무질서도)와 관련된 유전자 변형이 그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2, 3]

오늘날 지배적 과학 패러다임인 진화론적 견해에 의하면, 뱀독 단백질은 비뱀독 유전자의 복제 과정을 통해 어떻게든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무작위 돌연변이 과정을 통해서 정확한 조직에서 새로운 유전자들의 발현과 결합하여,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도록 어떻게든 다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취적인 세속적 과학자 그룹은 유전자 중복(gene duplication)은 그 자체가 극히 드문 사건이고, 중복된 유전자가 돌연변이에 의해서 용도변경이 발생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뱀독의 분비샘과 다양한 뱀들(독사, 비독사, 도마뱀붙이 등)의 다른 신체 조직에서의 유전자 발현을 비교해 봄으로써, 뱀독의 기원에 대한 다른 설명을 찾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뱀독은 뱀독 분비샘 안으로 생리적 또는 신체 유전자의 중복 및 연속적인 보강(recruitment)을 통하여 진화되었다는 가설은 데이터에 의해서 지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했다.”고 말함으로서, 그들의 결과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로 보강을 진행했다고 주장되는 많은 수의 유전자 계통은 비뱀독 파충류의 침샘을 포함하여, 다양한 조직에서 발현되는 패턴의 증거임을 발견했다.” 다른 말로해서, 뱀독 유전자는 독사나 비독사 모두의 많은 다른 신체 조직들에서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독(venom) 유전자는 독사와 비독사 모두 파충류 조직에서 (침샘에서의 기능을 포함하여) 독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저자들은 ”사실 우리의 분석은 뱀독 성분의 대부분은 기존에 있던 타액 단백질로부터 파생된 것임을 보여준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뱀독은 단순히 침의 변형된 형태로 간주되어야한다”고 인정했다. 

이들 뱀독의 단백질이 독사나 비독사 모두의 다른 타입의 신체 조직에서 발견된다면, 독성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자들은 그들의 데이터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기존의 타액 단백질이 뱀독이 된 한 가능한 경로는, 초기 독성이 용량 의존적(dosage-dependent)인 곳에서 단순히 높아진 발현 수준일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더 높게 발현된 독액 유전자는 자신의 제어 영역의 변경에 의해서 원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전사요소 결합 부위(유전자 조절스위치)의 소실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전사 조절 염기서열을 방해하거나 삭제해버릴 수 있는, 단일염기쌍의 무작위적인 돌연변이, 또는 커다란 삽입 및 삭제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저자들은 말했다.

따라서 오늘날 독사에서 발견되는 독의 수준은 뱀독 분비샘의 과도 발현을 초래한 유전정보의 변경에 기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타입의 유전학적 모델은 사실, 유전체(genomes)는 쇠퇴되고 있고, 유전정보의 변경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창조론자들에 의해서 예측되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아메바-사람으로의 상향적인 (새로운 유전정보의 증가가 필요한) 진화론적 과정이 아닌 것이다.

아마도 이들 세속적 연구자들이 언급했던 가장 놀라운 발언은, 표준 진화론적 추론을 질책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특히 확립된 사실로서 간주되고 있는, 진화생물학의 ‘그랬을 것이다’라는 추정 이야기의 문제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일부 과학자들은 진화론의 신다윈주의적 모델이 연구의 진행을 발전시키는 대신에, 제한하고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부 세속적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깊게 뿌리박혀있는 진화론적 설명에 과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용감함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References

1.Hargreaves, A. D. et al. 2014. Restriction and Recruitment—Gene Duplication and the Origin and Evolution of Snake Venom Toxins. Genome Biology and Evolution. 6 (8): 2088–2095.
2.Sanford, J. C. 2008. Genetic Entropy and the Mystery of the Genome, 3rd ed. Waterloo, NY: FMS Publications.
3.Sanford, J., J. Pamplin, and C. Rupe. 2014. Genetic Entropy Recorded in the Bible? FMS Foundation. PDF posted on kolbecenter.org July 2014, accessed July 25, 2014.

*Dr. Tomkins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received his Ph.D. in genetics from Clemson Universit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339/ 

출처 - ICR News, 2014. 9. 3.

미디어위원회
2014-08-25

더 많은 날과 월을 가진 달력들. 

: 창세기에 기록된 시간 단위와 로마력, 태음력, 이슬람력.

(Calendars more than just days and months)

David Malcolm 


      태음력(Chinese calendar)과 이슬람력(Islamic calendar)은 서구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인다.

(구정처럼) 1월말 근처에 있는 새해, 또는 매년 점점 일찍 다가오는 라마단(month of Ramadan)은 이상해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 무슬림들은 그들의 농작물을 언제 심어야할지를 어떻게 알게 되는 것일까? 만약 무슬림의 달력에서 어떤 날들이 몇 년 전에 정해진 것이라면, 계절들과 완전히 조화될 수 있는 것일까? 서구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이슬람력의 특징은 달(month)은 달의 위상(phases of the moon)과 정확히 관련되어있는 태음력(lunar calendar)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데서 설명될 수 있다.


.월식(lunar eclipse) 동안 지구에서 본 달. 붉은 색과 오렌지색을 띠고 있다.

달은 약 29.5일(삭망월이라 불리는)이라는 주기로 달의 위상을 진행해간다. 그래서 29일에서 30일 사이의 한 달(month)을 갖는다는 것은 달(moon)과 정확히 보조를 맞추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겐 어떤 달력의 특성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는 것일까?

초승달은 새로운 달(new month)이 되었다는 신호이고, 보름달은 한 달의 중간이 되었다는 신호이다. 이런 개념은 서구에서 이질적인 개념은 아니다. 소형 옥스퍼드(The Shorter Oxford) 사전에는 월(month)이라는 개념은 달(moon)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적혀있다. 월이라 말은 달의 공전주기와 상응하는 시간의 길이로서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력 달이라는 개념은 논리적이다. 이슬람력에서 연속적인 12개의 이런 음력 달은 1년이 된다.

중국달력은 더 복잡하다. 그것은 종종 태음력이라고 일반적으로 불려지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이다.

이슬람력이 그러한 것처럼, 태음력은 달(moon)의 위상과 관련된 월(months)들을 가지고 있으나, 추가적으로 그것은 13개월을 지닌 몇 개의 해(year)들을 가짐으로써, 장기적으로 해가 계절과 보조를 맞추도록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그것은 서구 사람들에겐 이상하게 보여진다. 정말로 한 해는 12개월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달력들을 공식화할 어떤 특정한 규칙은 없는 것인가? 우리 달력을 만들어낼 기초를 가진,  여러 인종 그룹들에 제시될 판단기준은 없는 것인가? 어떤 달력의 기준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해줄 절대적인 기준이 될 만한 것을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는 것인가?

사실, 우리는 그러한 판단기준을 이미 가지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미 (천체에) 규정해 두신 것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창 1:14~19)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간(즉 계절)을 결정하도록 우리에게 천문학적 주기들을 제공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다.

로마력(Roman calendar)은 결함이 있다. 그것은 한 해를 임의로 12개로 나눈 월들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자전에 의해 야기되는 밤과 낮이라는 주기는 우리에게 날(day)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달의 위상은 우리에게 월(month)이라는 개념을 준다. 그리고 약 365일 동안 1회전하여 움직이는 별들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정해준다. 그러므로 한 해 안에 12개월이 있어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떤 달력도 하나님이 천제에 규정해 놓으신 것과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로마력 또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약간의 충격을 준다.

모두에게 친숙한 우리의 달력은 초창기 교회에 의해 채택되었고, 지금은 세계적인 표준이 되었지만, 실은 결함이 있는 상태이다. 사실, 이슬람력이 12개의 임의로 된 음력 달로 이루어진 한 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함이 있는 것과 같이, 로마력도 1년을 임의로 12개로 그저 나누어놓은 월(month)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함을 가지고 있다.

유대력(Hebrew calendar)은 수세기동안 유대인들에 의해 사용되어 왔고, 오늘날도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태음력과 같이, 29일 아니면 30일이 번갈아 나오는 월(months)들을 가지고 있고, 음력 달과 보조를 맞추고 있으며, 또한 장기적으로는 태양년과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것은 19년마다 7번의 13개월을 가진 해들을 가지고 있다. (아래 비교표를 보라)
 

주(week)

우리는 일(day), 월(month), 년(year)이 천문학적 기간에 있어서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그 목적을 위해 정해 놓으신 것들이다. 그러나 주(week)는 다르다. 그것은 어떤 관찰 가능한 천문학적 기간위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7일이라는 주(week)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완성하시고, 그의 창조물을 위한 어떤 패턴을 설정하셨던 창세기에서 시작된다. (창 2:2-3, 출 20:11)
 

12 개월(twelve months)

한 해가 12개월로 구성되어야한다는 어떤 의무도 없어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여러 그룹의 사람들은 1년에 12개월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마음대로 해왔던 것이다. 왜 그럴까?

원래 1년의 태양년 안에 정확히 12개의 음력 월들이 있었는지 아닌지 궁금해할만하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완벽한 창조가운데 세워놓으신 방법으로, 한 월안에는 정확히 30일이 있었고, 한 태양년 안에는 정확히 360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은 바벨탑 사건 때, 다른 언어들이 생겨 사람들이 흩어지기 전에, 이미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근거 있는 문화적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

이것에 대한 수학적으로 완벽한 몇몇 징후들이 있다. :

• 우리가 각도에서 사용하는 1도(degree)라는 단위는 분명 바벨론 수학자들에게서 온 것이고, 그것은 태양을 나타내려던 의도였다. 한 해가 360일을 가지고 있다면, 태양은 정확히 하루에 1도씩 움직일 것이다. (하루 밤, 별들의 움직임에 의해 관찰된 바에 의하면)

• 히브리 용어로, 29일만을 가진 달은 ‘결함 있음’이라고 불려진다. 그러므로 정상적으로 1달은 30일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 성경 창세기 6~9장에 나오는 전 지구적인 홍수의 연대기를 보면, 370일 동안 일어났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홍수의 시작일과 끝난 날은 명확히 1년 더하기 10일이었다고 나타나 있다. (창세기 7:11~13절에는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2월 17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또 창세기 8:13~16절에는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둘째 달 스무 이렛날(2월 27일)에 땅이 말랐더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물리학을 고려할 때 입증하기는 어렵다.

지구가 지구회전 속도를 증가시켰을 수 있고, 그래서 한 해에 5일여 되는 시간이 추가되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노아홍수 때 지구의 관성모멘트를 감소시켰던 격변적 판구조 운동을 통해서) 그리고 어떤 특정한 메커니즘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달(moon)은 지구로 더 가까워져서, 한 해 속에 증가된 음력달 수를 갖게 되었을 수도 있다.


계절과 날과 년의 측정

성경 창세기 안에 모든 단서들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 하에- 24시간으로 된 하루를 가지고 시작하여, 인간이 자신의 삶을 관리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6일 일하고 7일째 쉬는 패턴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구에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창조주에게서 나오는 우리의 지능을 사용해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질서정연한 우주를 만들어주셨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지능으로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지구가 태양주변을 공전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고, 또한 지구가 매 24시간마다 자전축을 기준으로 자전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2]

그리고 천문학의 지식을 사용하여, 고대인들은 우주에서의 지구의 위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날, 월, 년, 계절은 항상 우리 존재의 중심에 있었고, 달력은 우리의 삶의 날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인 도구가 되어왔다. 그래서 결점 많은 달력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휙휙 넘길 때, 그 달력은 하나님의 창조의 천재성과, 대략 6,000년 전에 문자 그대로 24시간의 6일 동안 이 세계를 정해놓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 그 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달력들의 비교



로마력의 문제점

• 서구 달력에 있는 월들(months)은 달의 위상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문제점이 이것 하나뿐만이 아니다.

• 대부분의 월들(12개의 월들 중 7개의 월들)은 31일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소수 5개의 월들은 30일 이하의 날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총 365일이라는 날짜는 30일짜리의 달 7개와 31일짜리의 달 5개로 구성될 수 있다. 그리고 윤년에는 31일짜리 달을 6개 두면 된다.

• 우리가 갖고 있는 월의 이름들 중 4개가 숫자를 의미하는 라틴어로 되어있다. 글자대로 해석하면 9월(September)은 7번째, 10월(October)는 8번째, 11월(November)는 9번째, 그리고 12월(December)은 10번째를 의미한다. 아마도 예전에는 한 해가 3월에 시작된 것 같다. 그것은 (연말에 해당하는) 2월 달이 고작 남아있는 몇 일을 가지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중국 달력 (태음력)

Source: Reid, L., The Complete Book of Chinese Horoscopes, Butler & Tanner Ltd., London, pp.15, 1997.
Note: Numbers of days in each Chinese year, and hence the number of lunar months (last two columns of the above table) have been worked out by the author from the dates given in the reference.
Years are identified by one of 12 animals in a cycle as shown in this table.


어떤 해들은 보통의 12개월 대신에 13개월을 갖고 있다. 그것은 별자리가 밤하늘의 고정된 위치에 올 그때에 새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월들은 항상 달의 위상과 일치한다. 


날짜 계산 작업표

이 표는 게시된 날짜들로부터 저자가 태음력으로 계산해놓은 표이다.
3월부터 12월까지의 총 날짜 수는 항상 306일이었다.
1986년 2월 9일부터 2004년 2월 8일까지 저자가 19년을 검사한 것이다.
이것은 정확히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에 있는 19년과 같고, 이것은 6940일로 이루어져 있고, 5번의 윤년일(2월29일)을 포함하고 있다.(360×19+5)
태음력에 있는 이 날짜들을 더해도 역시 6940일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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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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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Baumgardner, J., Catastrophic plate tectonics: the geophysical context of the Genesis Flood, creation.com/cpt-flood. 2.DeYoung, D. B., Astronomy and the bible.


번역 - 김서정

링크 - http://creation.com/odd-calendars 

출처 - CMI, 2014. 6. 26.

미디어위원회
2014-07-23

아담은 정말 930년을 살았는가? 

: 사람 수명의 감소곡선은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가리킨다. 

(Did Adam Really Live 930 Years?)

by Brian Thomas, Ph.D.


      창세기 5:5절은 아담이 930년 동안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현대의 많은 독자들은 창세기를 읽을 때에 이러한 숫자에 대해 머뭇거리게 되고, 결국 일부 사람들은 성경 전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식물 유전학자인 존 샌포드(John Sanford)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족장들의 나이를 도표로 만들었다. 그 결과 950살을 산 노아 이후에 사람들의 수명은 체계적으로 감소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결과를 보여주는 온라인 게시물에 따르면, ”이러한 감소곡선(decay curve)은 결코 우연히 생겨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1] 

노아 홍수 이후에 시작된 사람 수명의 감소 현상은 뚜렷한 감소곡선을 이루고 있다.

 

연구자들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사람 수명의 생물학적 감소곡선이, 과학 분야에서 돌연변이 축적으로 인해 알려진 생물학적 감소곡선(biological decay curve)과 어떻게 그렇게 일치할 수 있는지 놀라고 있었다.[1, 2] 사람의 매 세대마다 발생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들이 축적됨에 따라, 유전정보는 지속적으로 소실되어왔다. 

초기의 돌연변이들이 한때 사람을 수백 년이나 살 수 있게 했던 유전자들에 손상을 입혔던 것은 아닐까?

연구자들은 쓰고 있었다 : ”수명 데이터는 초기 족장들의 매우 긴 수명이 실제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노아 홍수 이후에 사람 수명의 급속한 하락은 사실이었다.”

족장들의 수명이 사실이라면, 그들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 성경 구절들도 정확한 실제 역사였다는 것이다.



References

1. Sanford, J., J. Pamplin, and C. Rupe. Genetic Entropy Recorded in the Bible? Encouragement for Believers – Science Update. Posted on logosra.org June 1, 2014, accessed June 26, 2014.
2. Also see Sanford, J. 2008. Genetic Entropy. Waterloo, NY: FMS Publications, 155.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215/ 

출처 - ICR News, 2014. 7. 14.

미디어위원회
2014-04-28

채식을 하는 상어

(Vegetarian shark)

David Catchpoole 


너스상어는 날카로운 톱니모양의 치아를 사용하여, 브로콜리, 양배추, 셀러리, 상추 등을 잘게 씹어 먹는다.

   상어는 언제나 고기만을 먹는가? 아니다 틀렸다! 영국 버밍햄 국립해양센터에 있는 1.8m 길이의 너스상어(nurse shark, 대서양수염상어)는 채식주의자로 바뀌었다.

2009년 이후로, 플로렌스(Florence, 조련사는 그 상어를 이렇게 부름)는 어떤 형태의 고기나 물고기를 기피하고 있었다. 대신 그 상어는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먹는다. ”그리고 그 상어는 다른 종류의 채소들도 먹으며, 몰로카이 푸른거북(Molokai the green turtle)이 거주하는 해양 수조에서 동료들로부터 그런 것들을 훔칠 수 있다.”[1]

조련사들은 그 상어가 적절한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플로렌스가 고기를 먹게 하려고, 그들이 고안할 수 있는 모든 트릭을 사용한다”. 예로서 그들은 셀러리, 속이 빈 오이, 상추 잎 사이에 물고기 조각을 숨겨 놓곤 했다.

”그것을 잘 숨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플로렌스가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는 그것을 먹지 않고, 채소를 줄 때까지 완고하게 기다립니다”라고 해양생물 큐레이터인 그레이엄 버로우(Graham Burrows)는 설명한다.

플로렌스는 분명 고기를 먹는 것으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플로렌스의 입안 깊숙이 박혀있던 녹슨 고리(낚시 바늘)를 제거하는 수술 후에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플로렌스가 다른 세 마리의 너스상어와 함께 플로리다에 도착했을 때, 한동안 음식을 멀리했다”고 버로우는 설명했다. 초음파 검사는 문제를 곧 보여주었다. ”낚시 고리가 분명 수년 동안 거기에 박혀있었고, 심하게 녹이 슬어서 그녀를 심하게 아프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항생제를 투여 받았고, 빠르게 회복되었다”.

틀림없이 낚시 고리의 외상 후 충격이[2] 플로렌스를 채식주의자로 만든 요인이 되었다.

 이 너스상어는 물고기나 고기를 거부한다. 그녀는 대신 날카로운 톱니 이빨로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잘게 씹어 먹는다.

아담의 타락 이전인 대략 6천 년 전에 살았던 상어의 조상들은 생선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 열매를 주었고, 그것을 먹은 이후에, 상어는 물고기를 잡아먹는 식습관을 발전시켜왔다(창 3:6). 선악과로 인해 이 세상에는 죽음, 고통, 육식, 그리고 질병이 들어왔다.[3] 그래서 플로렌스가 식물을 먹는다는 것은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타락이후 세계에서도, 그녀와 다른 ‘채식성 육식동물’들은 때때로 물고기 및 고기와 함께 식물 섭식을 증대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4])

사실, 오늘날 지식이 풍부한 상어 관찰자들은 플로렌스의 식물을 먹는 능력이 독특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스상어들은 때때로 야생의 상태에서 바다조류(algae)를 먹는다. 그래서 우리는 플로렌스가 처음 푸른거북의 채소 일부를 훔쳤을 때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가 완전히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녀가 해양수조에서 다른 육식성 귀상어(hammerheads sharks)와 흑기흉상어(black-tipped reef sharks)들을 당황시키는 것을 원치 않았다”라고 버로우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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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ching a kinkajou (킨카주 너구리 잡기)
 Echoes of Eden (에덴의 메아리)
The lion that wouldn’t eat meat (고기를 먹지 않는 사자)
Lea, the spaghetti lioness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암사자 레아)
 Piranha (피라냐 물고기)
 Tigers and pigs … together? (호랑이와 돼지가 함께?)
Vegetarian spider (채식주의자 거미)
The cat who refuses to eat meat(고기를 먹지 않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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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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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Wrenn, E., Meet Florence, the world’s first vegetarian shark who prefers celery sticks and cucumber to fish, dailymail.co.uk, 18 May 2012.
2. Fish feel pain, Creation 26(4):7, 2004; creation.com/fish-feel-pain.
3. For further details and discussion see ‘How did bad things come about?’ Chapter 6 of CMI’s The Creation Answers Book, chapter available as a pdf at creation.com/cab6.
4. Wieland, C., The cat who refuses to eat meat, creation.com/vegcat, 28 April 2009.


*관련기사 : 채식하는 상어등장, 물고기는 ‘외면’ (2012. 5. 16. 헤럴드경제)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20516000390

“물고기 안먹어!”…채식 고집하는 희귀 상어 포착  (2012. 5. 14. 나우뉴스)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514601007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ation.com/vegetarian-shark 

출처 - Creation 36(2):15–15, April 2014.

미디어위원회
2014-04-17

Q & A - 가인의 아내는 누구인가요?

이재만 


질문에 대한 첫 단계 : 가인의 아내는?

창조과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가인의 아내는 누구인가요?”이다. 미국 대표적인 창조과학 단체가 뽑은 ‘창조과학자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에서도 줄 곳 선두를 빼앗기지 않은 질문도 이것이다.

질문인 즉, 성경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아내와 동침했다”(창 4:17)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아담의 자식은 가인, 아벨, 셋 이외에 또 있다는 것 아닌가?” ”이 아내는 어디서 왔고, 아담 말고 창조 때 이미 다른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대충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다 보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답변을 한다고 할지라도, 잠재적으로 갖고 있던 의문이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더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근친결혼, 인류의 기원, 진화론적 세계관, 지구의 나이 등 얽혀있는 잠재된 의문이 계속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하게 되면, 역으로 자신 갖고 있던 잠재적인 진화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하나 둘씩 매듭이 풀어지듯이 성경적 세계관을 갖추는 기회로 삼게 된다.

이 질문에 대한 성경 속의 실마리는 하와가 셋을 낳았을 때 했던 고백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이 아벨 대신 다른 씨를 주셨다”(창 4:25).

여기서 씨는 그의 아들인 셋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와가 아벨 ‘대신’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보아 셋이 태어난 때는 아벨이 태어난 다음이 아니라 ‘아벨이 죽은 다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 5장의 족보를 보면 아담이 130살에 셋이 낳았다고 말한다(창 5:3). 그렇다면 셋이 셋째 자식이 아니라, 이미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뿐 아니라, 다른 자녀들도 여럿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5장에는 아담서부터 노아홍수 이전까지의 족보가 순서적으로 적혀있다. 그러나 이 족보는 아담 후손의 모든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 아니다. 노아의 직계조상만을 적어놓은 것이다. 즉 세대는 빠짐없이 적었지만,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아는 자신의 여러 형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구원 받은 노아 자신의 이름만 기록되어있다. 그의 아버지인 라멕도 많은 형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직계 조상인 라멕만 적은 것이다. 이는 노아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 증조인 에녹도 마찬가지다. 그들 모두에게 형제 자매가 있었겠지만 그들의 이름이 모두 기록되진 않았다. 즉 이 족보의 기록 목적 중에 중요한 점은 모든 인류는 아담의 후손이지만, 홍수 심판 이후 오직 노아만 살아남았으며,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노아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경은 아담서부터 예수님의 족보까지를 연결하려는 것이다.

분명히 아담은 다른 자녀들도 있었겠지만, 성경에는 그들 중에 단지 첫 살인자 가인, 첫 피살자 아벨, 그리고 홍수 심판에서 유일한 구원자인 노아의 직계조상인 셋만을 기록한 것이다. 이 족보의 시작인 아담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담은 셋을 낳은 후에 800년을 지내며 아들과 딸들을 낳았다”(창 5:4)

즉 아담은 세 아들만은 낳은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아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는 셋을 낳은 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셋을 낳기 전인 130년 동안 아담이 아들만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모순적인 생각이 아닌가?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첫 명령으로 ”생육하라”고 명령하셨는데, 단지 아들만 주었다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 명령 속에는 남자와 여자를 동일하게 주셨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인은 아내를 어디서 얻었을까? 선택의 여지 없이 자신의 여동생이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벌을 주셨을 때 ”무릇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일 것입니다”(창 4:14)라고 가인이 극도로 두려워한다. 왜 가인은 이렇듯 사람들을 두려워했을까? 만약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자신과 관계가 먼 자들이라면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만날 사람들이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닌 모두가 자신의 형제들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일관되게 온 인류는 아담의 직계 후손이라고 말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들었다” (행 17:26)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롬 5:12)

”기록 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그러므로 가인뿐 아니라, 아담의 자녀들은 모두 오누이끼리 결혼했음에 틀림없다.


질문에 대한 둘째 단계 : 근친 아닌가?

가인의 아내가 여동생이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만약에 그 아내가 여동생이라면 근친결혼 아닌가요?”

어떤 면에서 이 근친결혼에 대한 부분이 가인이 여동생과 결혼했다는 성경적인 질문보다 더 부담되는 궁금증이다. 왜냐하면 여동생을 아내로 맞이했다는 것은 성경 속으로 들어가 꼼꼼히 맞춰보면 찾을 수 있지만, 근친결혼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가까운 근친결혼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몸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같은 과정에 의해 이미 많은 유전자 손상을 입었다. 그런데 오누이끼리 또는 가까운 친척끼리는 그 손상 받은 유전자부위도 비슷하므로 서로 관계를 가질 경우 그 후손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아빠가 Aa이고 엄마가 Aa 유전자를 각각 가졌다고 하자. 이 둘이 결혼을 하면 다음 세대는 유전적 재조합에 의해 확률적으로 각각 AA, Aa, aA, aa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아빠가 돌연변이에 의해 A유전자에 결손(A')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A'A, A'a는 엄마에게서 온 A a유전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A라고 하는 유전자의 기능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자식들끼리 근친결혼을 할 경우, 예를 들어  A'AA'a를 가진 오빠가 A'AA'a를 가진 여동생과 결혼하면 A'A'의 조합을 갖는 경우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때는 A에 대한 기능을 하는데 치명적인 문제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가까운 근친결혼은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날의 세상과 지금 우리의 신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지금의 세상은 창조 이후에 타락, 홍수심판, 바벨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주요 사건을 겪은 후에 맞고 있는 변질된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은 이 굵직굵직한 사건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셔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났다. 아담 후손의 삶이 죄악으로 가득 찼을 때 하나님께서 쓸어버리셨던 노아홍수 심판사건 이후에 성경에서는 처음으로 추위와 더위가 등장한다. 즉 처음에는 아담과 하와가 옷을 입지 않았어도 좋았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는 의미다. 홍수심판 이전 노아의 족보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900살 이상씩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홍수를 지나며 나이가 갑자기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신체에 변화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라고 하셨는데, 즉 창조되었을 당시의 아담 부부의 신체는 흠이 없을 정도로 좋았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가인이 자신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이하여도 생물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가인이나 여동생이나 유전자에 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노아홍수 직후에도 비슷하게 펼쳐진다. 홍수심판 이후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인 함, 셈, 야벳 세 부부는 자식을 낳았을 것이다. 과연 이들의 자식들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아무리 멀어도 사촌지간 일 것이다. 그래도 그때까지 유전적 결손이 그리 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홍수 후에 태어난 노아의 후손들은 한동안 서로 결혼했을 텐데, 이런 상황에 변화를 주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바로 바벨탑 사건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다. 이때 흩어지는 장면이 성경에 등장한다. ”각기 언어와 족속과 나라대로”(창 10:5). 영어로는 ”after their languages, after their families, in their nations”로 번역되어있다. 풀어서 쓰면 ”언어에 따라, 가족(들)에 따라, 그들의 나라가 되었다”이다. 즉 하나님께서 가족끼리 흩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당시에 흩어지며 이들의 자식들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여기서도 여전히 오누이간의 결혼이 그려진다.

이런 근친간의 결혼은 바벨탑 사건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모두 근친 간에 결혼을 했다. 아브라함의 가계도표가 도움이 될 것이다(그림). 아브라함과 그 아내인 사라와의 관계는 아버지(데라)는 같지만 엄마가 다른 이복 여동생이다(창 20:12).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서로 오촌간이다. 즉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다(창 22:23).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남종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해 아내를 택하라”(창 24:4). 여기서 내 족속은 영어로 ”my own relatives”, 즉 가까운 친족을 의미한다.

이런 모습은 이삭의 아들인 야곱에게도 등장하는데, 야곱과 아내인 라헬은 서로 외사촌간이다. 더군다나 이삭이 아들인 야곱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한다.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창 28:2). 라반은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빠다. 이삭이 야곱에게 외사촌과 결혼할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가까운 친척과 결혼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넘어 장려하고 있었다. 또한 에서가 다른 족속의 여자와 가까이 하는 것을 걱정하는 리브가의 걱정(창 27:46)을 보더라도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엿보게 한다.

성경은 여기에 어떤 이유도 말하지 않는다. 어색한 부분도 없다. 그러나 성경을 사실로 보고 접근을 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우리 신체는 처음이 좋았으며, 이때까지만 해도 근친결혼을 하더라도 유전자 결손 위험이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와 같이 근친결혼을 허용하던 상황이 반전되는 대목이 등장한다. 바로 출애굽을 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명령에서다.

”각 사람은 자기의 살붙이를 가까이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레 18:6)

”너는 제 자매 곧 네 아버지의 딸이나 네 어머니의 딸이나 집에서나 다른 곳에서 출생하였음을 막론하고 그들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레 18:9)

살붙이는 가까운 친척(close relatives)을 말한다. 야곱 때만해도 허용과 장려를 하던 상황이 수백 년 후에 바뀐 것이다. 그 동안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우리 몸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한결같은 하나님께서 조치를 바꾸실 때는 우리가 변했을 때다. 허락이 아니라 장려하던 근친결혼을 금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변명도 없이 명령하셨다. 사실인 성경적 역사를 보면 지금 이 시점에서 근친결혼 금지는 당연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역사관과 세계관으로 성경을 보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성경을 사실로 놓고 볼 때 ‘가인의 아내’는 그 답에 어려움이 없다. ‘가인의 아내’에 대한 질문은 우리의 몸과 환경이 과거에도 지금과 똑 같았다는 사고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이 기준이 아니라 성경적 역사가 사실이라는 생각으로 당시 상황으로 들어가면 분명한 해답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이 갖고 있던 제한된 사고에서 벗어나서 처음이 좋았던 성경적 역사관을 갖추게 하는 귀한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셋째 단계 :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된 이유

이 질문은 특히 미국 사람에게 더 많이 받는다. 이 질문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역사적 사건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1925년에 있었던 일명 ‘원숭이 재판’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당시 미국의 테네시주 교육법 상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불법이었는데, 스코우프라는 고등학교 교사가 교실에서 진화론을 가르침으로 발생했던 소송사건이다. 1주일 동안 진행된 재판이 공판사상 처음으로 라디오로 전국에 생중계될 정도로 관심이 높았었다.

진화론 측 변호사는 재판이 일어나게 된 일차적 원인인 법적 문제보다는 거의 모든 시간을 성경의 난해한 부분을 공격하는데 할애하였는데, ‘가인의 아내’는 이때 그가 던졌던 질문들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이때 창조론 측 변호를 맡은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은 대부분의 다른 질문에 대하여는 답변을 잘했으나, 이 질문에 대하여 분명히 답변을 하지 못했다. 아래는 이 부분에 대한 대화 내용이다.

Q - 가인이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지 찾았습니까?
A - 아니요, 나는 이 부분은 불가지론적으로 남겨놓았습니다.

Q - 결코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고요?
A - 노력한 적이 없습니다.

Q - 노력한 적이 없어요?
A - 없습니다.

Q - 성경은 그가 아내를 얻었다고 말하지요. 그렇죠? 그때 지구상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단 말인가요?
A - 말할 수 없습니다.

Q -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요?
A - 그것이 내게 어려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Q - 어떤 다른 사람의 언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아내를 얻었습니다.
A -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Q -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당신은 모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 전파되며 더욱 여러 사람에게 알려진 질문이 되어버렸다.


.스코프스 재판(일명 '원숭이 재판')에서 진화론 측 변호사인 대로우(좌)와 창조론 측 변호사인 브라이언(우)


코스모스’의 저자이며, 미국에 진화론이 들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진화론자 칼 세이건도 동일한 질문으로 크리스천을 조롱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가인의 아내’는 진화론자들에게 성경을 비판하는 일종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것이다.


출처 - 대전지부 계간지 “GooD” 33호 (2014년 4월)

미디어위원회
2014-04-03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괴팍하신 분인가?

(Is God a ‘moral monster’?)

Lita Cosner 


        많은 성경 회의론자들은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분이 행하셨다면, 그분은 매우 비도덕적인 분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묘사한 성경을 비난하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런 논점에 답하는 것을 힘들어 하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질문을 피하기 위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 사이에 차이를 두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매우 큰 결함이 있다. 왜냐하면 동일하신 하나님이 구약과 신약 성경 모두에 영감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이다. 사실상, 신구약 성경 모두 하나님은 사랑하시며, 오래 참으시지만, 동시에 죄를 참으시지는 않는다고 가르친다. 또한 예수님 자신도 구약을 인정하셨다(눅 24:44~47, 요 10:35). 더욱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회의론자들의 공격이 근본적인 오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희생제물?

실제로 인간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을 하나님이 용납하신다는 성경 구절은 없다. 사실상, 성경은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에게 희생제물로 바친 사람들을 가장 나쁘다고 비난했다(레 18:21, 렘 32:34-35).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이들은 대개 어린아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자기 아들과 딸들을 희생제물로 바쳤을 때, 성경에서는 그들이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다고 말한다(시 106:37).

인간 희생제물은 살인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몹시 싫어하신다. 그것은 무고한 사람을 고의적으로 죽이는 것이므로 항상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은 성경이 인간 희생제물을 명령하고 있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몇 가지 구절을 인용한다.

창세기 22:1-8절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희생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것은 시험이었다는 것과 하나님은 결코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에게 해를 입히라고 의도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회의론자들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에 생각해야할 몇 가지가 있다. 이즈음에 아브라함은 늙은이였고, 이삭은 아마도 십대 혹은 젊은 성인이어서, 그가 원하기만 하면 아버지에게 저항하여 도망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그를 묶을 수 있었고 그를 제단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이삭이 거기에 협조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아브라함 자신은 이삭이 죽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최소한 그는 하나님이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것을 예상했다. 아브라함은 그의 하인에게 그와 그의 아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창 22: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그분이 이삭을 통해서 큰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하셨으므로, 가능한 경우의 수로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이 다른 희생제물을 제공하시든지(결국 그렇게 되었다), 아니면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시는 것이 있다. 이 구절에 관하여 히브리서 11:17~19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출애굽기 13:1~2, 11~16절에서 하나님은 장자에 대한 봉헌을 지시하신다. 어떤 회의론자들은 이것을 오해하여 첫 번째 태어난 아들들을 죽이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은 첫 번째 태어난 자녀를 구속하기 위해 동물 희생을 명령하는 것이다. 13절에서는 나귀에 대한 대속을 말하고 있는데(나귀는 깨끗하지 않으므로 희생제물이 될 수 없다), 거기서 대속하지 않은 나귀는 그 목을 꺾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들들에 대해서는 그런 선택이 없음을 주목하라. 오히려 아들들은 어린양으로 대속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 명령은 모든 사람의 첫 번째 태어난 사람 대신에 모든 레위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민 3:11~13).

레위기 27:28절에서는 사람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일부 회의론자들은 이것이 사람이 희생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헌신’의 한 가지 형태인 일생동안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며, 나실인의 서약 같은 서약은 또 다른 형태의 헌신이다(민수기 6장, 삼상 1:10~11).

따라서 실제로 희생제물로 허용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문맥 속에서 읽어야 하는데, 이 문맥에서는 일생동안의 성전봉사에 헌신된 사람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것은 입다가 섣불리 서약한 이후 그의 딸의 운명과 같은 경우이다(삿 11:29~40). 이것은 그녀가 처녀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몹시 슬퍼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으로, 그녀에게 죽음이 다가와서가 아니라, 자기 아버지 계보가 끊어지게 될 것을 슬퍼한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7:29). 이는 율법을 치명적으로 어긴 사람에게 죽음이 선고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 선고는 무를 수 없다.


종족 말살과 전쟁 범죄?

민족 간의 전쟁이 고대 역사를 지배했었으므로, 구약에 전쟁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부 회의론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나님이 주셨던 일부 명령에 대해 비난한다.

가장 많이 인용하는 ‘잔학행위’는 아말렉 족속을 여자와 어린 아이와 재산을 포함하여 전적으로 파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러한 파괴를 명령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로부터 나올 때 그들이 대적했기 때문이다. 신명기는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신 25:17~18, 삼상 15:2~3).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시겠다고 맹세하셨다(출애굽기 17장). 그들은 자기들의 죄 때문에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고, 그 곳을 이스라엘이 대신 차지할 것이다. 그들의 죄에는 가증스런 부도덕과 어린이 희생제물이 포함된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고, 이스라엘은 단지 그 심판을 위한 하나님의 대행자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해야 했고, 자기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취하지 말아야 했다. 사울과 그의 군대가 아각 왕을 살려주고 가축의 일부를 취했을 때, 그것은 중대한 범죄였으므로, 하나님이 사울을 심판하시고 그에 대한 그분의 호의를 영원히 버리셨다(사무엘상 15장 전반부). 실제로는 일부 아말렉인들이 다른 곳에 남아있었는데, 사무엘상 30장에 보면 급습한 아말렉인 무리들을 다윗이 쳐부수었다.

아말렉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행동이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이 창조하신 사람이 그분을 거역하여 반역할 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뿐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피조물을 그분이 택하신 방식으로 취급하실 권리를 갖고 계신다(사람들은 ‘놀고 계시는 하나님’이 이러한 특권들을 빼앗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의 혐오스런 일들을 답습한다면, 그들도 역시 그 땅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신 29:18~28).


도덕의 기준은 선한 하나님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무신론자들이 성경의 도덕성을 공격할 때, 그들이 말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어디서 왔는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자신이 그 기준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그분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을 임의적으로 하시지 않는다. 옳고 그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같은 노선을 취하느냐 아니면 맞서느냐에 의해 정의된다. 무신론자들은 도덕성에 대해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는 어떤 개인이나 그룹의 주관적인 견해가 갖는 권위에 토를 달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기준이 주관적이라면, 그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과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타락한 세상에서 사랑의 하나님의 말씀과 행하심.

성경의 내용 중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들은 반대할만한 것들일 수 있다. 사사기나 신명기를 읽을 때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많은 것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것들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인류의 타락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성경에 의해 승인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는 많은 경우에, 그분은 우리 마음의 완악함을 고려하셨다(마 19:8). 이것은 보다 큰 악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다 작은 악을 허용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점점 더 드러내시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악을 제거하시는 길로 진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한계시록 21~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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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See also Wieland, C., Jesus on the age of the earth, Creation 34(2):51–54, April 2012; creation.com/jesus_age.
2.Sarfati, J., What is good? (Answering the Euthyphro Dilemma), creation.com/euthyphro, 5 May 2007.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god-moral-monster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6(2014), No. 2, pp. 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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