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전문 지질학자의 간증

한 전문 지질학자의 간증 

(Testimony of a professional geologist)

by Roger Sigler


     성장하면서, 나는 암석과 화석, 그리고 공룡에 대해 흥미가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데 한번도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공룡 티라노사우르스 렉스(Tyrannosaurus rex) 장난감을 조립했을 때를 기억한다. 그 공룡뼈를 다 조립하고 난 뒤, 나는 그 놀라운 모습을 놀라서 쳐다보았었다. 나의 공룡 소책자에는 티라노사우르스의 키가 6미터, 길이가 15미터가 되었다고 써 있었다!

이것이 내가 이른바 중생대인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에 대해서 최초로 알게 되었던 때였고, 티라노사우르스가 6500만 년에서 7000만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때였다. 이러한 생각은 나를 괴롭혔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왜 서로 다른 시대에 따라 동물들을 만드셨는지 이해하지 못했었고,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펜실바니아에서 성장한 나는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가졌었다. 숲은 나의 두번째 집이었다. 숲 속에 난 작은 길 옆에는 애추(talus, 낭떠러지 아래로 부스러져 떨어진 돌더미의 사면)가 있었다. 그 돌들은 애추 바로 위의 절벽의 층으로부터 침식되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나는 양치류의 잎 화석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그것들은 매우 아름다운 양치류 모습을 완전히 가지고 있는 인상(impressions) 화석들이었다. 나는 식물들을 진흙에 파묻어서 내 자신이 화석을 만들 수 있을지를 시도해 보기도 했었는데, 그 아이디어는 성공하지 못했었다.

1978년에서 1982년까지 대학에 다닐 때, 진화론은 물리지질학(physical geology), 지사학(historical geology), 인류학(anthropology), 사회학(sociology)과 같은 많은 정규 수업의 근본 철학이었다 (나의 전공은 지질학이었다). 인류학에서는 전이형태로 추측되는 것들을 포함한 전형적인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변화 도중의 상징물(icon)들에 대해서 배웠다. 이것들은 사실로서 가르쳐졌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었다.

사회학 시간에 교수는 여성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는데, 그것은 여성의 뇌가 작으며, 따라서 남성만큼 지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강의를 듣는 여성들조차도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나는 이러한 엄청난 무지가 초기 19세기부터 시작된 진화론적 믿음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뇌의 크기는 지적인 능력과 전혀 관련이 없다.


성경적 연대를 지질학 교실에서 몰아내기

나는 첫 지질학 수업을 받았던 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교수님은 성경을 언급했는데, 그것은 어떻게든 즉각적으로 내 주의를 끌었다. 그는 어셔 주교(Bishop Ussher)에 대해 설명했는데(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그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때였다), 어셔 주교는 성경을 읽고서는 지구가 BC 4004년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수는 말했다. ”이제 우리는 지구가 6000년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구는 실제로 약 40억에서 50억년 전에 생성되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동의했고, 교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지구가 수억 년의 나이를 가진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공룡 이야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6 일은 여섯 지질시대?

이때까지 나는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지구를 6일만에 창조했다는 것을 들은적이 있었다. 나중에 교수님의 말을 곰씹어 생각하고 있을 때, 번뜩이는 것이 내 머리를 스쳤고, 놀라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들었던 6일만의 창조는 6 지질시대를 나타내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의 지질학 과목 첫 시험에서 첫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다음 중 어느 것이 지구의 나이와 가장 가까운 숫자인가? (1) 6,000년 (2) 60,000년 (3) 600,000년 (4) 6,000,000년 (6) 6,000,000,000년” 나는 6번을 선택했고 그것은 정답이었다. 내 기억에 학생들 누구도 그 문제를 틀리지 않았고, 그것이 교수님이 원하던 답이었다.

이 특별한 교수가 나의 조언자였고, 많은 지질학 과목들을 가르쳤다. 한때 그는 나에게 머리부터 꼬리까지 완벽하게 원래 크기로 남아있는 화석화된 두 마리 물고기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화석화가 일어날 그 시점에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삼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사진을 보고 놀랐고, 그 교수는 이런 순간이 화석이 되었다는 것이 주목할만 하다고 말했었지만, 더 이상 이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진화론과 인종차별주의

재학 동안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나는 사람이 적어도 동굴인(cavemen)에서 진화되었다고 확신했었다. 슬프게도 이것 때문에 '흑인(Negroes)'들은 사람으로의 진화가 덜 된 형태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님 안에서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조화시켜야할 지 몰랐지만, 그러나 나는 계속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1982년에 나는 지질학 석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이후에 바로 텍사스의 휴스톤(Houston)으로 이사했는데, 그것은 많은 지질학자들을 위한 일자리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에 나는 이때 아마도 유신론적 진화론자(theistic evolutionist, 비록 이 용어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였지만, 무신론자가 된 적은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을 믿는다는 것은 나에게 비논리적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24살이 된 이후 언제쯤인가부터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이것은 1986년 가을에 모두 바뀌기 시작했다. 무선리모콘을 가지고 TV 채널을 이리저리 넘기고 있다가 그 때 당시  TV에서 전도를 하는 유명한 복음전도자의 설교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낙태에 반대하는 설교를 너무나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고, 또한 그때까지 낙태를 반대하는 그러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로 그것에 귀기울여 듣게 되었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낙태가 무서운 죄이며, 하나님의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선언하고 있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지만, 그  설교에 대해서 관련이 있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설교자에게 기부금을 보내게 되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일이 이 일이 있었을 때쯤 발생했다. 내 차가 고장이 나서 고생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멈춰서서 나를 도와주었다. 우리가 고장난 차를 길 가로 밀어내고 나서 나는 그에게 고마워서 내가 뭐 해줄 수 있는게 없습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그 때 그 사람은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나에게 해 줄 일은 없지만, 우리 동네 기독교 라디오 방송국인 KSBJ에 기부를 좀 하시면 어떨까요”라고 말했고, 나는 그 사람이 말한대로 하기로 하였다. 내가 기부를 하고 난 뒤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지만, 그는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TV 복음전도사로부터 많은 정보를 받기 시작했고, 또 ‘기독교의 매력(The Seduction of Christianity)’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사업차 여행 중일때는 묵는 호텔 방에 비치된 기드온 성경을 열어보게 되었다.

1987년에 그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인디애나의 한 호텔방에서 요한계시록을 읽던 중에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이 내 삶에 들어와 주시기를 요청했다. 이런 거듭남(born-again)의 경험은 정말 강력한 것이었다. 나는 내 죄를 회개하고, 그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

이 때에 나는 내가 진화론의 타당성에 대해서 교회(유신론적 진화론을 가르치는), 언론, 그리고 대학 등에 의해서 속아왔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거듭난 이후 진화론은 거짓임을 그 즉시로 깨달았다.

이후 내 모든 삶은 180도로 바뀌었다. 나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되었고, 나는 새로운 피조물(고린도후서 5:17)이었다. 나는 매우 흥분했고, 나의 여자친구와 성경구절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한 달 뒤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또 한 달 뒤에 우리는 약혼했다. 마침내 우리는 그 다음 달에 결혼하게 되었다.


창세기, 간격이론, 그리고 지질학

나는 계속 여행을 다니고 있었고, 그 텔레비전 복음전도자로부터 많은 연구들을 받아보고 있었다. 그는 간격이론(Gap theory)를 지지하는 ‘시대들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God's Plan for the Ages)’이라는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 그것은 내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처럼 보였고, 특별히 화석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거듭난 순간 진화론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아직도 지구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었다.

1988년에, 우리는 특정 종파에 속하지 않는 지방의 교회에 나갔고, 그 해 말에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가르쳤는데, 계속해서 진화론에 관한 주제가 부각되는 것이었다. 비록 내가 '간격이론(Gap theory)'에 빠져 있었지만, 그리고 또한 교회의 누군가는 지구의 나이가 젊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 이슈를 피해 가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그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즘 내가 다니던 교회에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박사의 친척이 우리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누군가 ICR(Institure for Creation Research)의 메일링 리스트에 내 이름을 넣어서 그 단체의 카탈로그를 받기 시작했다.

내 눈을 가장 사로잡았던 책은 켄햄(Ken Ham)이 쓴 ‘거짓말 : 진화론(The Lie: Evolution)’ 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표지는 내 호기심을 무척이나 자극하는 것이었는데, 금단의 열매 아래 머리에 '진화론(evolution)'이라고 씌여진 뱀이 있는 것이었다. ICR 팜플렛에 소개된 이 책 표지를 두 달 쯤 보고 있다가 결국엔 그 책을 샀다. 이 책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내 눈을 뜨도록 했고, 간격이론을 지지한다는 성경구절들을 실제로 찾아보도록 하게 하였다. 그 즉시 그 구절들은 문맥에 맞지 않게 인용되었고, 가상적인 루시퍼(Lucifer)의 홍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되던 구절들은 사실 노아의 홍수(Noah’s Flood)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약 2년 정도가 지나, 나는 간격이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젊은 지구 창조론자(young-earth creationist)가 되었다. 솔직히 그 2년의 시간은 내게는 투쟁의 기간이었다.

그 당시 한 해에는 ICR의 헨리 모리스 박사가 근처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모리스 박사님이 지구의 나이는 10,000년 이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그를 비웃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지구의 나이가 그렇게 젊다는 것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나는 우리 교회 목사님께 물었었고, 그는 ”그것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 마디 하셨다. 그것이 그가 말한 전부였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바꾸기 사작하셨다. 마침내 나는 지구가 젊고, 하나님이 아닌 과학자들은 지식과 힘에 있어 제한된 자들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지구가 젊다는 것을 확신하는 창조론자가 되었다. (이것은 내가 구원을 받고 대략 2년 후의 일이다.)

나는 매년 텍사스의 휴스톤 남쪽에서 열리는 ‘베이 지역 창조론 회의(Bay Area Creation Conference)’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 회원은 NASA에서 일한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때가 처음으로 듀안 기쉬(Duane Gish) 박사와 ICR의 스티븐 오스틴(Steven A. Austin) 박사와 같이 잘 알려진 창조론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또 ICR의 대학원 과정 팜플렛도 가져왔다.

많은 생각과 기도(그리고 아내의 격려와 더불어)를 통해 ICR의 지질학 과정에 신청하여 합격했다. 내 직업은 휴스톤의 지하수 관리를 하는 것이었는데, 회사 소유주이기도 한 나의 상사에게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은혜롭게도 내가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심지어 월급까지 계속 주었다! ICR 과정은 여름에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 3년동안 매년 여름 6-7주 가량의 시간을 보냈고, 석사 학위논문을 위한 연구를 위해 현장에서 8주를 보냈다. 1998년에 지질학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을 했다.


그런데 사무실로 돌아와서...

내 상사는 내 믿음에 대해 어떤 것도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동료들로부터는 반발을 조금 받게 되었다. 1999년의 가을이 되어서는 지열(geothermal) 에너지 공급소의 새로운 자리에서 일하게 되었다. 새로운 경영자가 오자마자 나는 그의 사무실로 불려가게 되었다. 그는 누군가 내 방에 걸려있는 창조론자 포스터가 눈에 거슬린다고 했다며 말했다. 사무실은 종교적인 색채가 없었으면 한다는 그의 생각을 말했다.

사무실 안에 있는 모두는 내가 회사의 긴 복도에 벽 크기의 지질도를 걸어두었기 때문에, 내가 지질학적으로 무엇을 믿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이들 지도를 사용해서, 나는 창조와 대홍수를 같이 일하는 근무자들과 동료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2002년 봄이 되어서 미국 지질학회(Geological Sciety of America)의 한 회의에 참석했었다. 나와 같이 승합차를 탔던 몇몇 지질학자들 중에서 한 동료 지질학자는 내가 ICR에서 공부했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그는 실제로 그곳을 다녔다는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했다. 그는 ICR이 그의 마을에서 학회를 열 때면 언제나 항상 제일 먼저 소리높여서 질문을 했었고, 많은 성가신 일들을 일으켰었다고 했다. 그 여행을 하는 동안 같이 차를 타고 가던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나는 펜실바니아의 피츠버그에서 있었던 창조론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n Creationism)에서 전문적 논문을 쓰고 발표하는데 관여해오고 있다. 나는 1998년의 홍수지질학 논문의 주 저자였는데, 그 논문은 ICR의 학위논문에 기초한 것이었다. 2003년에는 대홍수의 자세한 연대기에 대한 논문을 히브리 학자인 배릭(Bill Barrick) 박사와 공동저자로 발표하였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Greater Houston Creation Association의 회장역을 맡았고, 현재까지 그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


결론

그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배움의 과정이었다. 이제 나는 세상의 기원(Origins)에 대해 다룰때면 성경이야말로 맨 처음, 그리고 으뜸으로 찾아보아야 하는 것임을 믿는다. 결과적으로 성경은 가장 올바른 역사적 문서(물론 역사 그 이상의 것이다)임이 반복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성경의 몇몇 구절은 시적이고, 상징적인 반면에, 역사적인 방식으로 씌여진 (창세기에 기록된 역사들처럼) 기술이며, 그것은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조사하고 연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누구든지 지금 저의 간증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은 적어도 성경의 창세기를 읽고, 그것(그리고 다른 성경의 65권의 책)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음(gospel message)에 대해 깊이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creation-scientists/testimony-of-a-professional-geologist/

출처 - AiG, 2006. 2. 28.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21-서울종로-1605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