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대 하나님

미디어위원회
2009-05-30

하나님을 거부하게 만든 다윈의 주장 

(Darwin’s arguments against God

How Darwin rejected the doctrines of Christianity)

Russell M. Grigg 


       사람들이 세상에 관하여 혁명적인 개념을 갖게 하는데 가장 공이 크다고 널리 인정받고 있는 다윈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많은 주장들을 했다. 여기에 몇 가지를 소개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널리 생각했던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를 받아들이며 자랐다. 즉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의 잘 알려진 논증으로서, 시계의 설계가 의미하는 것은 지적인 시계공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므로, 우주의 설계에 있어서도 지적인 창조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윈은 ”나는 페일리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이라는 책보다 더 감탄했던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전에 나는 그것을 거의 외울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은 자연의 설계를 어떤 목적이나 다스리는 지성의 필요성 없이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데에 그의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67세 때에 그 자신을 불가지론자로 불렀다.

다윈은 창세기가 실제 역사(real history)라는 것을 부정했다. 그가 주장했듯이, 만약 모든 생물 종(種)들이 극도로 느린 진화의 과정에 의해 생겨났다면,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갑작스런 명령에 의해 식물과 동물과 사람을 따로따로 창조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으므로, 그것은 틀린 것이 된다. 그는 이렇게 썼다 :

”나는 지금까지(즉 1839년 1월, 그의 나이 29세 때에) 점차적으로, 바벨탑이나, 징조로서의 무지개 등등 세상에 관하여 구약성경에 나오는 역사가 명백히 거짓이라는 것과, 하나님이 복수심에 불타는 폭군의 감정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으로부터, 그것을 더 이상 힌두(Hindoos; 원문대로)의 신성한 책 혹은 어떤 야만인들의 믿음보다 더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다윈은 기독교에서 기적적인 것을 부정했다.

그는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기적’에 관하여 이렇게 썼다 : ”우리가 자연의 확고한 법칙을 알면 알수록 기적을 더 믿을 수 없게 된다. 즉, 그 당시 사람들은 무지했고, 우리가 거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경솔히 믿었고, 복음서들이 사건과 동시에 기록되었음이 증명될 수 없으며, 그것들이 중요한 많은 상세한 부분들에서 서로 다르므로 … 나는 점차적으로 기독교가 거룩한 계시라는 것을 불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윈의 논쟁은 철학적으로 결론 난 것이었다. 그는 자연에 관한 법칙이 확고하다고 알고 있었으므로, 모든 기적에 관한 기록이 틀리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모든 기적에 관한 기록들이 틀렸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경우에만 이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순환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또한, 기적은 자연의 법칙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더해지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적절하다.


2. 다윈은 미래의 심판에 관한 성경적 교리에 분개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 ”사실 나는 어떻게 사람들이 기독교가 사실이기를 바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성경에 쓰여 있는 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인다면, 나의 아버지와 형제와 나의 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포함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히 형벌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가증한 교리이다.”

비평 : 사실상, 주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죄 값을 대신하여 죽으시도록 보내심으로써(요 1:29),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셨다.

다윈은 또한 ‘분개적 주장(argument from outrage)’이라는 오류에 대신 의존함으로써, 왜 형벌이 불공평한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는 대단히 심각하다. 하나님의 완벽하신 공의로우심은, 유한한 죄인이 무한한 기간 동안 형벌을 받든지, 아니면 무한하신 대리자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할 형벌을 대신 받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이시자 인간이신 예수님 자신이 세상 죄를 지심으로 이루어졌다(사 53:6).


3. 다윈은 자연선택으로 말미암아 설계가 곳곳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 ”이전에는 내게 매우 결정적으로 보였던 페일리의 주장과 같은, 자연 내의 설계에 관한 구식 주장은, 이제 자연선택의 법칙이 발견되었으므로 의미가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마치 문짝의 경첩을 사람이 만들었듯이, 이매패류(bivalve) 조개의 아름다운 힌지(hinge)는 지적인 존재가 만들었음이 틀림없다고 더 이상 주장할 수 없다... 자연 내의 모든 것들은 일정한 법칙의 결과이다.”

비평 : 틀렸습니다, 찰스씨. 자연선택은 집단 내에서 ‘부적당한’ 개체를 도태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 때부터 이미 있었는데, 이전에 보이지 않던 유전자의 조합, 혹은 (유전자의 복제 실수가 유전되는) 돌연변이에 의해 손상을 입은 유전자를 드러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이미 존재하는 유전정보에만 작용을 할 뿐, 정말로 새로운 어떤 것을 저절로 생겨나게 하거나 혹은 설계할 수는 없다.


4. 다윈은 세상의 고통과 불행을 하나님이 없고 자연선택이 맞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많은 민감한 존재들이 ”때때로 너무나 고통을 당한다. 그러한 고통은 그 작용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에서 자연선택의 믿음과 꽤 잘 들어맞다…”고 썼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실 수 있는 분으로서 그렇게 전능하시고 그렇게 지식이 풍부한 존재라면, 그 분은 우리의 유한한 정신에는 전지전능하므로, 그의 자비가 무한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건 우리의 오성과 맞지 않는다. 거의 무한한 시간에 걸쳐 수백만의 하등동물들이 고통을 겪는 것에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비평 : 다윈의 고통에 대한 관점은 1851년, 당시 10살이던 그의 딸 애니의 죽음으로 대단히 개인화되었다. 그 일은 ”도덕적이고 정당한 우주에 대한 다윈의 마지막 남은 믿음을 파괴했으며, 그의 기독교 신앙에 최종적인 조종을 울렸다.” 하지만 그 자신이 선호하던 이론에도 고통이 있었고, 핵심적인 부분으로서 죽음은 마찬가지로 위안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원래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셨고, 거기에는 어떠한 죄악이나 고통이나 죽음도 없었다(창 1:29-31). 이 죄 없는 세상이 첫 번째 사람의 반역으로 망쳐졌고, 아담의 불순종이 세상에 죽음이라는 침입자를 가져왔다(창 2:17, 참고 3:19). 하지만, 지금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될 수 있으며, 그분과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수십억 년이라는 연대 개념과 타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다윈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점진론적 창조론’과 매우 유사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생물 종(種)들을 수십억 년에 걸쳐서 창조하셨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관점은 (사람의 탄생 이전에도 죽음이 있었고) 애니를 죽인 세균을 하나님이 아주 치명적인 병원균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죽음이 ‘마지막 원수’(고전 15:16)이며, ‘죄의 삯’(롬 6:23)이라는 성경적 가르침과 모순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세균을 이로운 행위자(beneficial agent)로 창조하셨는데, 단지 아담의 타락 이후에 치명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다윈은 기독교인들의 내적 확신을 하나님에 대한 증거로 보는 것을 무시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 ”그러나 힌두교도, 마호메트교도 및 다른 사람들도 한 분의 하나님이 존재한다거나, 혹은 많은 하나님들이 존재한다거나, 혹은 불교도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거나, 각자가 자기의 편에서 같은 방식과 같은 설득력으로 주장할 지도 모른다. 또한 많은 야만족들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믿고 있는지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사실상 그들은 영과 유령을 믿으며, 타일러(Tyler)와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보여주었듯이, 그러한 믿음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비평 :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는 반박할 수 없는 역사적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초기 기독교인들의 내적 확신은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증거가 없었다면, 1세기에 기독교가 사라지고 말았을 문화적 요인이 최소한 17개나 있다.


6. 다윈은 맹목적인 우연보다는 ‘제1 원인’이 보다 더 장엄한 개념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하등한 동물이 지녔던 그런 낮은 정신으로부터 발달…된 인간의 정신이 그런 웅장한 결론을 도출할 때 신뢰할 수 있을까?” 라고 썼다.

비평 : 이것은 회의론자들과 논쟁할 때 기억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왜 우리가 그들 자신의 진화론적 가정 하에서 추정한 이론을, 그리고 그들의 회의론적 생각을 사실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자연선택은 생존 가치(survival value)에서만 작용을 하는 것이지, 논리나 진리에는 작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단백질들이 임의로 결합하여 생명체를 만들 확률이 제로라는 것을 알고 있다.


7. 다윈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자녀들을 ‘끊임없이 가르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원숭이가 뱀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과 증오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뿌리치기가 힘들 것이다.”

비평 :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하나님을 쉽게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여기에는 대부분의 어른들이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생각하지 않는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도, 되풀이하여 배우지 않은 어린이들도 포함된다.

다윈의 주장은 어떤 믿음의 원천을 추적하여 그것을 반증하려고 시도하는 오류인 발생론적 오류(genetic fallacy)를 범한다. 사람들은 잘못된 이유로 인해서도 옳은 일을 믿을 수 있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게 되는 이유는 창조와 부활의 진리와는 관계가 없을 수 있다.



결론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며, 어떠한 사람도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증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히 11:6). 만약 증명하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보다 더 뛰어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의 믿음은 비이성적이 아니며, 논리와 이치로 뒷받침된다 (롬 1:18-20, 벧전 3:15). 다윈은 논리적 오류를 범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자연에 나타내신 증거들을 무시하였으므로, 하나님을 반박하는 논쟁에서 실패했다.



번역 - 이종헌

링크 - ,

출처 - Creation magazine 31(2), Marc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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