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주의는 소수의 견해라는 사실에 내쇼날 지오그래픽스는 직면하고 있다.
(National Geographic Faces Fact that Darwinism Is Minority View)
David F. Coppedge
2004년 11월 내쇼날 지오그래픽스(National Geographic)의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다윈은 틀렸는가? (Was Darwin Wrong?) 19세기 영국 자연주의자의 이론은 사회에 충격을 주었고, 과학 분야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것은 얼마나 시대의 시험들을 잘 견뎌왔는가?”
데이비드 쿼먼(David Quammen)이 쓴 메인 기사에서,
”진화론은 수십년 동안 ‘압도적인 증거들’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지만, 미국인의 45%는 인간의 기원에 있어서 다윈설은 믿지 않고 있으며 (인간은 하나님 또는 절대자에 의해서 1만년 이내에 창조되었다고 믿고 있음), 37%는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을 믿고 있다. (단지 12%만이 다른 생물체로부터 진화되었다고 믿고 있음)” 고 지적하고 있다.
쿼먼은 약간의 놀람을 보이며 말하고 있다.
”이 비율은 20 여년 동안 (1982, 1993, 1997, 1999년 4번의 여론조사 결과)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다는(진화가 아니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창조론자들은 44%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바꾸어 말해, 미국인들의 거의 반(1/2)은 찰스 다윈이 틀렸다고 믿고 있으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내쇼날 지오그래픽스는 아직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스테판 로브그렌(Stefan Lovgren)은 Nationnal Geographic News에서,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 것을 기꺼이 포기한다면, 진화론과 기독교는 공존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성경은 틀렸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과학적 증거들은 우주는 137억 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또한 지구는 45억 년 전에 형성되었고 , 최초의 인류는 약 10만 년 전에 출현하였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로브그렌은 주장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진화(evolution)를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tool)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세계관에 대한 전쟁을 치루고 있는 두 진영이 같이 잘 지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몇몇 과학자들은 제시한다.
미안하다. 유화정책은 실시되지 않을 것이다. 왕은 회개하지 않는 신화제작꾼들과는 협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무조건적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을 요구한다.
* 관련기사 : 미국인 91% 신의 존재 믿어 "<뉴스위크> (2007. 4. 1. 기호일보)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3123
캐나다인 60% 창조론 수용 (2007. 7. 5.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070705098500009
영국인들 절반 이상 진화론 안 믿어 (2009. 2. 2. 쿠키뉴스)
https://m.kukinews.com/newsView/kuk200902020094
미국인 10명 중 7명 '천국 존재한다' 믿어 (2021. 11. 30. 한국일보)
http://m.koreatimes.com/article/20211129/1391309
* 참조 : 1. <1997년 미국인의 창조/진화 의식 조사>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4268news4-5-2000.asp
2. <2000년 미국인의 창조/진화 의식 조사>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4245news3-15-2000.asp
3. <2002년 미국인의 창조/진화 의식 조사>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2/0115poll.asp
4. <또 다른 미국인의 창조/진화 의식 조사>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4225news2-22-2000.asp
5. Teaching Creation and Evolution in Public Schools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4178.asp
6. America says : "Teach creation in public schools!"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4241news3-11-2000.asp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4/10/national_geographic_faces_fact_that_darwinism_is_minority_view/
출처 - CEH, 2004. 10. 18.
다윈의 무덤과 교회
김정훈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거나 큰 일을 한 사람들을 위하여 국립묘지를 만들어 그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그런가하면, 큰 교회도 자체의 묘지를 갖고 기독교의 분위기에 맞는 묘지를 제공함으로써, 후세의 사람들에게 고인이 가졌던 기독교 정신을 알리고 있다. 영국에 가면, 런던의 국회 의사당 맞은 편에 유명한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사원이 있는데, 이곳에는 국가적으로 공을 세운 사람이나 영국의 왕족, 그리고 교회의 덕을 세운 기독교인들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건물 바닥 밑에다가 다윈의 무덤을 안치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다윈이 누구인가? 바로 교회의 근간을 무너뜨린 진화론을 퍼뜨린 장본인이 아닌가? 그의 이론이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도록(롬 1:25) 만드는데 합리화를 시켜주지 않았던가? 인간을 동물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모든 가치를 상대화
시킴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야 할 사람들의 마음 밭을 돌멩이와 가시덤불이 가득한 황폐한 땅으로 만들어, 떨어진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변화시킨 이론이 바로 진화론이 아니던가?
이 우주의 모든 것이 그저 우연히 오랜 세월에 걸쳐 생겨났다고 가르침으로써, 창세기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6일 창조를 전면 부정하고, 유신론적 진화론이니 하는 해괴한 이론을 신학교에서조차 가르쳐지도록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진화론이다. 그러므로, 다윈이야말로 교회의 토대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인데, 어떻게 교회가 다윈의 무덤을 교회 안에 고이 모실 수가 있다는 말인가?
한편, 같은 영국이 낳은 스코틀란드의 위대한 종교 개혁자였던 John Knox는 죽어서 그가 말년을 보냈던 St. Giles 대성당에 묻히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그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는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유명한 종교 개혁자 캘빈(John Calvin)과 동시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금도 세상과 타협을 할 줄 몰랐다고 전해지는 John Knox의 무덤은 오늘날 주차장으로 전락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밑바닥부터 변질시키는데 기여를 한 다윈의 무덤은 교회의 중심에 모셨다는 이 기가 막힌 사실에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무어라고 말을 하여야 할까? 이같은 사실이, 오늘날 유럽의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빠져나가게 된 것과도 전혀 무관한 일인 것 같지는 않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사사기 21장 25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왕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의 법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간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유럽의 모습이 아닐까? 교회여, 깊은 잠에서 깨어나자!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어리석은 자들을 깨우치는 파수꾼의 사명을 게을리 하지 말자 (겔 3:17)! 주인께서 돌아오실 날이 멀지 않음이니......아멘.
(출처 :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중에서)
*관련기사 : '성경·예수 안 믿어' 다윈 편지 첫 공개 (2015. 9. 12.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2/2015091200286.html
다윈의 편지 공개... '성서도 예수도 믿지 않는다'(2015. 9. 12.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43522
'성경·예수 안 믿는다' 다윈 편지 경매에 나와 (2015. 9. 11.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9/11/0200000000AKR20150911071200091.HTML
출처 -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다윈이 몰랐던 사실들
(What Darwin Didn’t Know)
만일 오늘날 다윈이 「종의 기원」을 대학 출판사에서 출판하려 했다면 과연 그 책을 출판할 수 있었겠는가? 「다윈이 몰랐던 사실들」의 저자인 제프리 사이몬즈는 150여 년의 시간 차이와 그 동안의 과학 발달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종의 기원」은 아마도 출판되기 어려웠을 것이라 주장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은 다윈의 시대에 다윈이 알지 못했던 수많은 사실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해서 다윈의 이론을 조망해 본다면 그의 이론으로는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 중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 현상들로 인해서 다윈의 이론은 틀린 것으로 기각되거나 지극히 제한적인 현상들 만을 설명하는 이론으로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다윈의 책이 전혀 다른 시대에 출판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단순히 비교해 본다는 것은 다소 무리한 주장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다윈이라면 그의 책도 다르게 썼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근본적인 원인은 다윈의 이론은 오늘날 알려진 많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저자의 전문 분야인 의학 분야, 다시 말해 인간 신체와 관련해서 다윈의 이론으로는 지극히 자명한 설명(다시 말해 ”그것이 환경에 가장 잘 적합한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아무런 정보도 주지 못하는 설명) 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실들을 24개의 장(chapter)에 걸쳐서 나열하고 있다.
그 동안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95%에서 98%까지 유사하다는 식으로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유사성이 많이 강조되어 왔지만 이 책의 저자는 진화론적인 점진적인 과정으로는 넘기 어려운 차이점도 너무나 많이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보더라도 고릴라의 염색체 수는 48개이지만 인간은 46개이다. 또한 인간과 길잡이 고래(pilot whale)만이 폐경기를 경험한다. 물고기에서 포유류로 진화했다고 주장하지만, 다윈과 그 이론의 후계자들은 조류(algae)를 먹는 물고기에서 육식을 하는 포유류로 진화할 때 언제 어떻게 혀와 이빨이 등장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과정은 설명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은 다윈과 다윈의 후계자들이 설명해야 할 세부적인 사항들을 열거한다.
이 책이 주장하는 다윈이 몰랐던 사실, 다시 말해 현재 알려진 사실에 비춰봤을 때 다윈의 이론이 설명해야 할 어려운 것들로는 먼저 변화한다는 그 자체에 있다. 인간의 진화를 보더라도 진화론자들은 인간 두뇌의 용량이 400㎤에서 1350㎤으로 커지고, 다른 192종의 모든 유인원들이 가지고 있는 털가죽이 인간에게서는 없어지고, 유인원들 중에서 유독 인간 만이 땀을 흘리고, 사지의 길이가 바뀌고, 언어가 생겨서 복잡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는 등의 변화를 경험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일한 기간 동안에 돌고래와 같은 많은 다른 생물들은 전혀 변화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환경의 변화를 동일하게 경험하였다면 왜 인간은 그런 환경 속에서 이토록 변화하였는데, 다른 동물들은 같은 환경 속에서도 전혀 변화하지 않았는가?
그 외에도 다윈의 이론은 생명의 복잡성과 유전자 정보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인간 신체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많은 의문들도 그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곤란해 보인다. 예를 들어 분만될 시점을 어떻게 어머니와 아이가 동시에 아는가? 출생 시에 아이는 어떻게 숨을 쉴 때를 아는가? 너무 일찍 숨쉬기 시작하면 어머니 뱃속에서 질식할 것이고 너무 늦으면 뇌에 손상이 갈 것이다. 단순히 그것이 가장 잘 적응된 것이라는 설명 만으로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새롭게 알려주는 것이 없다. 그리고 베히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들이 베히가 열거한 예 외에도 수백 가지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런 것들이 진화하려면 중간에 존재하는 쓸모 없는 단계들을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진화론의 목적을 위해서는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해야 하지만 인간과 관상용 물고기인 제브라다니오(zebra fish)의 유전자가 92% 비슷하다는 이상한 유사성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언급되지 않는다. 또한 유인원 중에서 인간 만이 땀을 흘리는데 인간이 진화하면서 털이 없어지고 땀샘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출산 시에 인간의 아이만 얼굴을 아래로 하고서 나오고 다른 유인원들의 새끼는 머리를 위로 하고서 나온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이 합목적적인 것들이며 목적론적 설명이 보다 더 적합한 설명이라 주장한다. 물론 그의 주장과 오늘날의 지적설계 이론 사이의 차이점도 존재한다. 지적설계 이론에서는 설계로도 설명가능하고 우연과 필연으로도 설명 가능하다면 우연과 필연으로 설명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목적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지적설계 이론에 비춰봤을 때 그의 설명이 지나치게 멀리 나간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두 가지 경쟁하는 설명들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사실에 부합한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때에는 그의 주장도 이해할 만한 주장이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다윈의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윈 이후에 새롭게 알게 된 인간의 신체와 관련된 지식들을 열거해 놓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인간 신체의 기능들이 합목적적인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또한 그 동안 진화론적인 분위기 속에서 인간과 다른 동물들, 특히 유인원과의 유사성들이 너무나도 강조되어 왔는데, 그는 이들 사이에 쉽게 넘을 수 없어 보이는 차이점들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제목 : 다윈이 몰랐던 사실들 (What Darwin Didn’t Know)
부제 : 의사가 진화론을 평가하다 (A Doctor Dissects the Theory of Evolution)
저자 : 제프리 사이몬즈(Geoffrey Simmons)
도서분량 : 318 쪽
출판사 : Harvest House Publishers; (January 1, 2004)
ISBN : 0736913130
출처 - 창조 139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89
참고 :
다윈의 탄생일? : 다윈의 날에 추천되는 행사
(Happy Darwin Day?)
David F. Coppedge
인본주의자들은 미국에서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 링컨의 탄생일처럼, 2009 년에는 다윈의 탄생일(2월 12일)을 ‘다윈의 날(Darwin Day)‘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국제적 공휴일로 만들기를 희망하고 있다 (추진자들은 이것을 국제적인 행사로 치러지기를 원하고 있다). 로이터(Reuters)의 로버트 에반스(Robert Evans)의 말에 의하면, 영국 인본주의 협회(the British Humanist Association)는 그러한 행사는 ”의사과학과 과학을 위협하는 세력들이 지경을 넓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과학의 중요성을 나타내 보이는 하나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 속에서, 인본주의자들은 창조론(creationism)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다윈의 날 기념운동을 지휘하고 있는 한 사람은 말하고 있다. ”그것은 매우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창조론은 점점 더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반다윈주의에 대한 정서의 증거로서, 그들은 최근 창조론 대학의 설립에 대한 영국 국무총리의 관용, 미국의 부시 행정부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창조론과 지적설계 운동의 확장, 그리고 미국인들의 45%가 하나님이 모든 생명체들을 1만년 이내에 창조하셨음을 믿고 있다는 여론조사 등을 지적했다. 그들은 또한 이슬람교와 힌두교 내에서도 다윈주의에 대한 반대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창조론자들의 침투는 평안히 있기에는 너무도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에반스는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섬(Galapagos Islands)에 있는 다윈 연구소(Darwin Research Station)에는 진화의 증거를 찾기 위해 생물학자들이 모여 있는데, 교회에서는 이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지옥의 불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격렬한 설교들이 일상의 메뉴가 되고 있습니다” 고 주장하고 있다. 반격에 나선 것처럼, 피터 백쿠스(Peter Backus)는 Space.Com 에서 궁극적으로 경의를 가져야하는 대안적인 신성(alternative deity)을 찬양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찍이 있었고, 영원히 있을 모든 것의 이름으로 ”다윈의 우주(Darwin’s Universe)” 라는 것이다.
다윈의 날(Darwin Day) - 정말 훌륭한 생각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개념을 가르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자 어떤 행사들을 벌일지, 그래서 유익한 가정의 전통 행사가 될지 생각해 보자. 진화론자들은 물고기 청바지를 입고, 캄브리아 폭발놀이를 하며, 소행성 싸움을 하고, 멸종 놀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다윈의 날 행사에 시도해볼 10개의 기념 행사를 제안해 본다.
1. 진흙으로 싸움을 하며, 골목대장놀이(King of the Hill, 모래로 만든 성에서 남을 밀어내고 독차지 하는 놀이)를 한다.
2. 원숭이의 눈을 가리고 자판을 두드리게 하여, '셰익스피어(Shakespeare)' 라는 단어가 우연히 만들어지는지 구경하는 행사를 가진다.
3. 성적 선택(sexual selection)을 시험하기 위해 여성들을 심사위원으로 한 다윈의 턱수염 대회를 개최한다.
4. 도마뱀들에 깃털을 장식하여 나무에서 떨어뜨리는 행사를 가진다.
5. 지역사회 내에서 다윈 상(Darwin Awards)을 제정하고 투표를 한다.
6. ”그랬을 것이다” 라는 말하기 대회를 열고 후원한다.
7. ‘원숭이들과 생존자들의 행성’ 이라는 영화 페스티벌을 가진다.
8. 나무 위에 가지나방(peppered moth)을 접착제로 붙이는 대회를 개최한다.
9. 창조론자들의 책을 태워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진화론의 노래(Evolution Songs)를 함께 부른다.
10. 적자생존 시합을 개최하고, 창조론자와 토론한다.
당신의 제안을 여기(write here)로 보내 달라. 한 독자는 이러한 상을 만들어 수상자를 선정하자고 제안하였다.
: "추잡한 글을 쓰는 작가상.
진정한 전이화석 발견자 상.
경고! 이 행사에 제출된 사진들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질 수 있음”
*참조 : Nature Can’t Wait for Darwin Day (CEH, 2008. 11. 23)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11.htm#20081123a
Defending Darwin Day (CEH, 2008. 2. 11)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2.htm#20080211a
Darwin Day in America (Discovery Institute, 2007. 11. 6)
https://www.discovery.org/a/19471/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4/02/new_website_aids_slow_process_of_dethroning_darwin/
출처 - CEH, 2004. 2. 13
대진화의 과학적 문제점
(Scientific Problems with Macroevolution)
칼 포퍼(Karl Popper)의 과학적 방법론(scientific method)의 정의에 의거하여, 진화론을 적용해 보면 :
1. 관측 (Observation) - 진화의 단계들은 결코 관측된 적이 없다 (Stebbins). 화석 기록에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자료들은 너무도 나쁘기 때문에, 우리가 연구하는 진화의 그 과정들을 결코 볼 수 없다 (Gould).
2. 실험 (Experimentation) - 실험과정들은 실험자의 일생을 넘어서고 있다 (Dobzhansky).
3. 반복 (Reproduction) - 실험실에서 반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Dobshansky).
4. 반증 (Falsification) - 외부 경험적 과학으로 논박될 수 없다 (Ehrlich).
대진화(Macroevolution) 연구의 문제점 :
1. 기원 - 우연히 자연적인 방법에 의해서 무기물질인 화학원소들로부터 저절로 생명체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가능성(possibility)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Hoyle).
2. 발달 - 존재하고 있는 생물체로부터 새로운 생물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유기체에는 치명적인 유전물질의 변경을 필요로 한다 (Maddox).
3. 안정성 - 세포핵 내의 효소들은 DNA 내에서 발생하는 오류들을 수선(repair)한다 (Barton).
4. 지질주상도 - 잘못된 위치의 퇴적지층에서 사람의 유물들이 발견된다. 이것은 진화론이 추정하는 지질 순서를 붕괴시키고 있다 (Corliss).
5. 디자인 - 세포 구조 내의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irreducible complexity)은 설계되어야함을 필요로 한다 (Denton, Behe).
DNA 수선 : 유전체(genome)는 매우 신뢰도가 높게 복제되며, 오류가 발생했거나 DNA가 손상을 받았을 때, DNA를 복구하는 효소들에 의해서 수선(repair) 된다. (D.H.R. Barton, Professor of Chemistry, Texas A&M University, Nobel Prize for Chemistry).
유전적 경계 내에서의 변화 : 소진화들은 종(species)들의 한계를 넘어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소진화에 의한 전형적인 품종들, 지리학적 종족들은 초기의 종들이 아니다. 초기의 종들과 같은 그러한 카테고리는 없다 (Richard B. Goldschmidt).
돌연변이의 축적은 가차없이 치명적(fatal)이다. 복잡하고, 특수하고, 기능적인 한 시스템 내에서의 어떠한 무작위적인 변화(random change)는 그 시스템을 파괴시킬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우주 내에서 가장 복잡한 기능적인 시스템이다. 오늘날 과학은 동물 유전체 내에서 10억분의 1 (0.0000001%)과 같이 극히 작은 유전적 돌연변이도 가차없이 치명적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는 침팬지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적어도 1.6% 이상이다. 이것은 적어도 4천8백만 개의 뉴클레오타이드의 차이로 계산되며, 이것이 모두 우연히 일어나야만 한다. 단지 3 개의 뉴클레오타이드의 무작위적인 변화도 동물에게는 치명적이다 (Geneticist Barney Maddox, 199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evidence.org/scientific_evid/problems_macro/prob_macro.html
출처 - CEM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31
참고 :
진화론적 발상인 인종차별
(Racism: evolutionary thinking)
김무현
진화론과 인종차별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진화론의 신봉자였던 나치 히틀러도 아리안 족, 게르만족을 우량인종(super race)으로 유대민족 등을 열등인종으로 단정하여, 열등인종인 유대인의 인종청소(약 600만 명 대량학살)가 인류의 진화에 공헌한다며 정당화를 시켰던 것입니다. 히틀러가 미쳐서가 아니라 우생학이라는 진화론적 신념하에 그러한 일들을 자행한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류는 이담과 하와의(또한 노아의)후손이며 모두 같은 피를 공유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사도행전 17:26)
바벨탑 심판이후 언어가 분리되면서 같은 언어권 안에서의 결혼이 계속됨으로 각 인종적 특성이 오늘날과 같이 드러나게 나타난 것입니다. 2권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최근 진화론 과학자들의 분자 생물학적 연구 결과도 모든 인류의 조상이 한 남자와 한 여자라는 것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정글에 사는 소위 미개인들은 현대문명으로부터 단절되고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했을 뿐이지, 그들이 진화가 덜 되었다는 식의 생각은 진화론적 발상입니다. 영화 『정글북』이나 『Cast Away』와 같이 현대 문명인의 자녀들도 정글에 버려지고 교육과 단절된다면 그와 같이 미개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인간유전자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에 참가했던 과학자들도 만장일치로 "오직 인류라는 한 인종만이 존재할 뿐이다.(There is only one race-the human race.)”라고 선포한 바 있습니다. 현재 인종을 구분 짓는 것은 피부색이나 머리 눈 빛깔 등 대부분 외형적인 것들인데, 그런 외형적인 것들의 인종간 차이는 많아야 0.01%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같은 종족에서 임의로 선출한 두 사람간의 유전자 차이가 다른 종족간에서 선출한 그것보다 더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과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더 진화된 인종이란 개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종차별이 진화론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진화론이 발표된 이후로는 그러한 사고 방식이 더욱 강화되고 대중화되었으며,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쓰여졌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진화론자들의 리더인 굴드(Stephen Gould) 박사도 다음과 같이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인종차별에 대한 생물학적 논쟁은 1850년 전에도 흔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진 후에는 기하급수적으로 그러한 견해가 급증하게 되었다.”
한편 성경을 비평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만 편애하고 다른 이방 민족은 학대하는 인종차별(racism)을 스스로 보여주지 않았는가?”라는 조롱 섞인 비평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이스라엘은 '언약공동체”이지 '핏줄공동체”가 아니어서, 어느 이방 민족이라도 누구나 하나님을 믿고 그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한다면 그 언약백성 속에 속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하나님 말씀을 보존하고 온 세계에 그것을 전해야 할 사신으로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 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요, 그것이 인종차별을 정당화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밖으로 버려진 민족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기 9장의 「무지개 언약」을 땅위의 온 인류에게 행하셨으며 또한 아브라함의 언약을 통해서 "네 씨(예수)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이사야 11:9-10에는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셨으며, 아기 예수 탄생 후 유대인 선견자 시므온을 통하여 누가복음 2:30-32에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은 애초부터 모든 인류에 대한 것이었고, 단지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한 언약을 이루어나가시는 도구로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은 미국이나 한국 등을 특별히 택하셔서 하나님의 일들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것 자체가 축복임을 알고 소중히 그 사명들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참조 : The church preaches eugenics: a history of church support for Darwinism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54-60.pdf
A Civic Biology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6038/
Darwinism and the teaching of racism and eugenics in biology textbook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1/j18_1_65-70.pdf
Adam’s brothers? Race, science and Genesis before Darwi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118-122.pdf
The history of the teaching of human female inferiority in Darwin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12
Darwin Taught Male Superiorit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1/darwin-taught-male-superiority
Anti-slavery activist William Wilberforce: Christan hero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121-127.pdf
Darwinism’s influence on modern racists and white supremacist groups: the case of David Duke
http://creation.com/darwinisms-influence-on-modern-racists-and-white-supremacist-groups-the-case-of-david-duke
William Wilberforce : A Leader for Biblical Equalit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1/william-wilberforce
진화론으로 정당화 되고 있는 낙태!
김무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비성경적인 낙태가 아무 문제없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류문화 향상및 인구문제, 여권신장등을 내세우며 권장되기까지 합니다. 그 배후에서 진화론이 어떠한 역할을 하였을까요?
그 정당성을 제공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진화론의 확장에 큰 획을 이룬 헤켈의 법칙, 즉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Ontogeny recapitulates phylogeny.)는 이론입니다. 즉 모태 속의 태아가 동물의 진화와 같이 단세포로부터 시작하여 어류-양서류-포유류 등의 동물발달상태를 거쳐 결국 인간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로 출발하여, 어디서부터 태아를 인간으로 볼 것이냐 라는 질문이 나오고, 인간이 아닌 '동물 상태(animal state)”일 때, 낙태를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냐 라고 주장하며 정당성을 내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헤켈의 이론은 그 후 의료기술의 발달과 함께 발생학자/생물학자들(대부분의 진화론 학자들을 포함하여)에 의해서 자세히 연구한 결과 근거 없는 이론으로 결론 지어 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생물교과서에서는 그것이 마치 과학적으로 검증된 법칙처럼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화론적 세계관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장되자 1973년 미국의 연방대법원(Supreme Court)에서 '모태 속의 태아(human fetus)는 사람(person)이 아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낙태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오게 되어 그 후로는 낙태가 법적으로 보호를 받게되고, 오히려 인구문제의 해결책으로 장려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모든 여성은 임신 첫 3개월 동안은 낙태할 권리를 가지며, 임신 4-6개월이나 그 후에도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임신부의 건강상 필요하면 낙태가 가능합니다. 영국의 법률은 28주 내의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법제정들은 순전히 자의적인 것이며, 태아는 혼자 내버려두면 살 수 없다는 이유로 인격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합의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어 드디어 1982년 인디애나 (Indiana) 주에서 유전적 결함으로 태어난 아기 'Baby Doe”를 부모와 의사가 합의하여 의학적 치료(medical treatment)를 거부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사건이 발생했고, 주법원이 이를 묵인함으로써 태아살해(infanticide)까지도 법적 조치를 받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계속된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없는 노인이나 중환자도 다수가 합의하면 이 사회로부터 분리시켜도 된다는 무서운 결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1975년 미국 소아과 의사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77%의 의사들은 신생아가 유전적 결함이 있을 경우,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DNA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던 진화론자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은 모든 모태 속의 태아에게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여 오직 건강하다고 판정된 아기만이 태어나도록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생윤리학(Bioethics) 석좌교수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유전적 결함이 있거나 심각한 장애자인 신생아의 경우 그 아기가 스스로 생각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비인간 ('non-person”) 으로 간주하여 부모에게 죽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어느 나이에서든지 심각한 장애로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그 가족들이 판단하면, 법적 조치를 받지 않고 죽일 수도 있음을 허용해야 한다고 대학교 강단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비리그의 일류대학에서 이러한 것들이 엘리트 학생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 속에서, 그리고 교회의 의사결정 등에서, 오직 성경만이 창조주께서 계시한 진리이며, 하나님만이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데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한때 역사 속에서 백인들이 흑인 노예를 비인격으로 간주하고 함부로 다루거나 죽이던 사실들에 대해서 분노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자궁 속의 태아를 비인격으로 규정하고 함부로 살해하는 것에는 전혀 무관심하거나 의분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 가장 큰 낙태시술소(abortion clinic)를 운영하던 나단슨(Bernie Nathanson) 박사는 진화론의 신봉자였으며 자기가 낙태를 시술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오히려 돕고있다는 신념으로 60,000명 이상의 낙태를 시술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음파 의료기술이 도입되어 나단슨 박사는 자기가 낙태시키고 있는 생명은 동물과 같은 태아(animal-like fetus)가 아닌 baby 라는 것을 직접 스크린으로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아기의 생명을 죽게 했다는 죄의식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중 성경을 통하여 과거의 회개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반낙태운동(pro-life movement)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삶의 원리와 생명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180° 바뀔 수 있다는 좋은 예입니다.
*관련기사 : 美 낙태 합법화 후 40년간, 약 5700만의 생명이 스러졌다 (2013. 1. 23.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60855
진화론자들의 Out of Africa 이론
1987년 1월 7일자 학술지 Nature(volume 325)에 진화론 연구의 경향을 바꾸는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논문(by Wilson, Cann and Stoneking)이 게재되었습니다. 저자인 버클리대학(U. C. Berkeley)의 생화학과 교수인 윌슨(Allan C. Wilson)은 이 논문에서 지금으로부터 10만년 내지 20만년 전에 (균일론에 근거하여 백 만년 정도에 2~4%정도의 미토콘드리아 DNA변이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계산된 수치)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지방에 존재했던 한 여성이 현생인류의 공통의 조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세계 곳곳의 여성 147 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여 이들의 염기 서열(nucleotide sequence)의 변이를 추적하여 계통도를 만들어 본 것입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핵 안에 있는 DNA처럼 부모의 DNA가 서로 합쳐진 것이 아니라, 모계에서 모계로만 승계되는 것으로서, 모든 세대에 걸쳐 여성에게만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 DNA는 돌연변이에 의해서만 그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 연구의 결과 현인류의 모든 여성은 아프리카의 한 여자로부터 흘러나온 것이 밝혀졌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10년 후인 1997년 10월 다른 연구팀(Stanford U, U of Arizona, U of Pennsylvania)에서 유사한 방법으로, 남성의 세포핵 내의 DNA에 포함되어 있는 Y염색체 서열을 분석하여 발표한 남성 계통 흐름도에 의해서 다시 지지되었습니다. 그들의 독립적인 결과도 현존 남성의 공통의 조상은 10만년 내지 20만년 전에 에티오피아 지방에 존재했던 한 남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연구 발표를 종합하여 현생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10만년 내지 20만년 전에 에티오피아 지방에 존재했던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자손이며, 아프리카로부터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는 'Out of Africa 이론'이 성립되었습니다.
이는 인류의 진화는 지구상의 어느 특정 지방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진화론의 기본 믿음과 충돌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또한 인류의 탄생 연대를 기존에 널리 받아들여지던 화석의 동위원소 측정법이 아닌 DNA 상에 남겨진 돌연변이율로부터 계산(분자시계, molecular clock)한 것이라는 점에서 진화론자들로부터도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최근 연구의 결과들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모든 인류가 그로부터 유래했다는 창조론과 맞물리는 점이 있어서 기독교계로부터도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다른 한편,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충실한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인물들의 계보 연구에 의해 추정된 '세계 역사 6000년 + alpha' 의 연대 계산과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역시 그 연구의 결과(특히 연대추정)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진화론자들도 그 연구 결과가 창조의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믿기보다는, 그 이브와 아담을 제외하고는 같은 진화과정을 걷고 있던 다른 인류의 조상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두 멸종되거나 자손을 남기지 못했다고 나름대로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왜 'Out of Africa 이론'의 연대계산에 문제가 있는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분자시계의 창시자는 UC 버클리 대학의 사리치(Sarich) 박사인데 먼저 그가 어떻게 분자시계를 보정(calibration)했는지를 들여다보면 이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현인류의 DNA 염기서열을 관찰할 때, 어느 것이 변이한 것이고 어느 것이 변이하지 않은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 인류의 DNA 구조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하지만, 진화론자들은 인류가 침팬지로부터 진화했다는 가정 하에 침팬지를 준거점(original reference)으로 사용합니다.
더욱이 사리치 박사는, 진화론에서 화석의 빈도와 연대가 잘 알려진 몇 종의 돌연변이를 관찰하고, 그 화석의 연대와 비교하여 DNA의 기준변화율을 책정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변화율을 침팬지와 사람에 적용하여 침팬지로부터 사람의 진화는 약 5백-7백 만년 정도라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위의 'Out of Africa' 연구팀들이 사용한 분자시계는 이 사리치 박사의 화석에 의한 보정법과 그 변화율 계산에 근거한 것입니다. 지금 분자생물학자들은 화석의 연구는 이제 진부한 것이고 첨단과학인 분자생물학으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 첨단 분자생물학의 변화율 보정이 기존의 화석과 진화론의 연대 계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순환논리(circular reasoning)의 전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최근의 다른 진화론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그 분자시계의 보정도 경우에 따라 엄청난 변화를 보이며 신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발표된 적도 있습니다. 또한 'Out of Africa' 연구팀들은 이미 인류화석학의 패러다임이 인류가 아프리카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임을 알고 편파적 실험자료처리로 아프리카 기원(Africa origin)의 결론에 도달한 것이라고 비평받고 있습니다.
아무튼 앞으로 이러한 연구의 방향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합니다. 크리스챤 과학자들의 냉철한 지성이 필요한 시대 입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39
참고 :
찰스 다윈은 정신이상자였는가?
: 그의 정신 건강에 대한 연구
(Was Charles Darwin Psychotic? : A Study of His Mental Health)
Jerry Bergman, Ph.D.
서론
다윈이 평생 지니고 있었던 많은 심각한 질병들은 1세기 이상 동안 많은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졌던 주제였다. 다윈은 단지 6살이었던 1825년부터 건강상의 문제가 시작되어, 28살 무렵에는 무기력할 정도로 쇠약해졌다고 말했다 (Barloon & Noyes, 1997, p.138). 호란 (Horan, 1979, p.ix)은 다윈이 ”아파서 40년 동안 켄트(Kent)에 있는 그의 집에 적막하게 틀어박혀” 있었다고 단정했다. 진화론 학자인 미카엘 루즈(Michael Ruse) 조차도 "다윈은 30살 때부터 병약자(invalid)였던 사람이었다”고 단정했다 (2003, p.1523). 그리고 다윈의 병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에서, 의사였던 조지 피커링(George Pickering)은 다윈은 30대에 ‘병약한 은둔자’가 되었다고 결론을 지었다 (1974, p.34). UCLA 대학의 의학부 교수인 로버트 파스나우(Robert Pasnau) 박사(1990, p.123)는 다윈이 또한 비글호 여행을 하는 5년 동안의 전 기간을 시종일관 "거의 계속해서 아픈 채로 있었다.”고 기록했다.
수십 개의 학술 기사와 적어도 3권의 책이 다윈의 질병(Darwin's illness) 문제에 관해 저술되었다. 현재의 결론은 다윈이 광장공포증(agoraphobia, 강박신경증의 한 증상. 사람들이 밀집한 장소에 혼자서 나갈 때,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고, 현기증이 나며,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심장이 크게 뛰는 등의 불안 발작이 일어나는 증상)을 포함한 몇 가지 심각하고 무기력한 정신이상증으로 고통 받았다는 것이다. 광장(공간)공포증은 집과 같이 심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이 아닐 때 공황발작(panic attacks, or actual panic attacks)의 두려움으로 특징지어진다. 광장공포증 환자 사이에서 흔하듯이, 다윈도 또한 추가적으로 많은 공포증(군중 속에 있거나, 홀로 있거나, 혹은 부인을 동반하지 않은 채 집을 나설 때)들을 나타냈다 (Kaplan & Sadock, 1990 pp.958-959).
광장공포증은 다윈이 또한 겪었던 만성적 질병인 이인증(depersonalization, 자신이 자신의 신체 밖에 있다거나,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증상)과 자주 관련된다 (Barloon & Noyes, 1997, p.138). 바룬(Barloon)과 노이즈(Noyes)는 다윈의 정신 상태에 관한 연구에서, 다윈이 불안 장애(anxiety disorders)로 고생했으며, 그것은 너무도 심각하여서, 그가 집을 떠나 동료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능력을 제한했으며, 그의 활동을 위축시켰다고 결론내렸다. 이러한 진단이 아마 그의 매우 격리된 은둔자적 생활양식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997, p.138). 그것은 또한 1991년에 데스몬드(Desmond)와 무어(Moore)가 저술한 다윈의 전기(biography of Darwin)의 제목이 "다윈: 고통 받았던 진화론자의 삶 (Darwin: The Life of a Tormented Evolutionist)” 으로 붙여진 것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른 정신적, 의학적 문제
콜프(Colp, 1977, p.97)는 "다윈의 대부분의 일상생활은 다양한 정도의 통증(pain)으로 인해 고문대(rack) 위에서 살아가는 삶”이었다고 결론지었다. 때때로 그 고통은 너무나 심해서 다윈은 그 고통을 ‘참혹한 엄청난 고통’이라고 불렀다. 다윈의 많은 정신적 증상, 또는 정신적 영향을 받은 육체적 증상에는 심각한 우울증(severe depression), 불면증(insomnia), 히스테리성 울부짖음(hysterical crying), 죽어가는 느낌(dying sensation), 떨림(shaking), 기절 발작(fainting spell), 근육 경련(muscle twitches), 호흡 곤란(shortness of breath), 진전(trembling), 메스꺼움(nausea), 구토(vomitting), 심각한 불안증(severe anxiety), 이인증(depersonalization), 눈앞에 점이 보이며(seeing spots), 환상과 환시(treading on air and vision), 그리고 다른 시각적 환영(visual hallucination) 등이 포함되고 있다 (Barloon & Noyes, 1997, p.139; Picover, 1998, p.290; Colp, 1977, p.97; Bean, 1978, p.573). 신체 증상으로는 두통, 심장의 심계항진(cardiac palpitation), 귀울림(아마도 이명, tinnitus), 통증이 있는 헛배부름(painful flatulence), 위장 전도(gastric upset) 등이 있었다 - 모두 다 대개 정신적 원인을 가진다 (Pasnau, 1990). 콜프는 "이러한 증상 뒤에는 항상 불안증과 우울증이라는 핵이 있었다.”라고 언급했다 (1977, p.97). 어떤 이들은 다윈의 정신적 문제의 일부는 그의 떠나지 않는 격렬한 공포(fear)에 기인하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즉, ‘위험한 환상’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는 끊임없는 가책적인 두려움에 의한 것이었다 (Desmond & Moore, 1991, p.477). 이러한 두려움은 그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과 사실상 거룩한 창조자가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또한 다윈의 행동도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비록 그의 아내와 딸들에게 헌신적이었지만, 그는 심지어 그의 딸들이 완전히 성장한 후에도 "그들을 어린아이처럼 다뤘다" (Picover, 1998, p.289).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일부 다윈의 말은 그의 정신적 안정성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면, 1875년, 그는 동료 과학자인 로버트 후커(Robert Hooker)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자네는 나의 책에 대해서 물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자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뿐이라네. 나는 그 책이 잘 쓰여졌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써야할 필요성을 너무나 많이 발견하네....나는 책을 출판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바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네.” (Colp, 1977, p.228 에서 인용).
콜프는 다윈의 아들 레오나드(Leonard)가 그의 아버지의 병이 심지어 자녀들에 대한 감정도 방해했다고 쓰고 있었다. 예를 들면, 레오나드는 한때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젊은 청년으로 나는 잔디밭을 서성이고 있는 아버지께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는... 마치 어떤 대화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외면했다. 그때 갑자기 그가 더 이상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내 마음에 일어났다" (Colp, 1977, p.100에서 인용).
다윈의 정신적 문제는 너무나 심각한 것으로 간주되어, 피코버(Picover, 1998, p.289)는 "이상한 지도자... 별난 과학자, 그리고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는 역사적 인물 모음집에 다윈을 포함시켰다. 다윈이 몇몇 심각한 무기력한 질병들로 고통당했다는 것은 언급되지 않았고, 단지 그것들을 초래한 원인에 관해서만 토의되었다.(Pasnau, 1990, p.121).
다윈의 병에 대한 다른 가능성 있는 원인
다윈의 아내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그의 정신적 질환이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반박하고자 하는 그의 삶의 목표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Bean, 1978, p.574; p.28; Pasnau, 1990, p.126). 대부분의 정신분석 연구에서, 그의 문제들은 압제적인 아버지를 향한 억제된 분노와 자신의 이론으로 "하늘의 아버지를 살해한"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Pasnau, 1990, p.122).
다윈의 정신적, 신체적 이상의 원인에 대한 진단에는 기생충 감염(샤가스 병, Chaga's disease, 남미에서 흔한 곤충에 의해 원인됨), 비소 중독(arsenic poisoning), 그리고 어쩌면 내이이상(inner ear disorder)도 포함된다 (Picover, 1998, p.290; Pasnau, 1990). 그러나 이 모든 원인들은 대개 반박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정신병(psychosis, 심각하고 무기력하게 하는 정신질환)에 가까운 전형적이고 본태성인(essential) 정신적 장애(mental disturbance)를 가졌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한 진단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건강상태는 종종 한 번에 수개월 동안 분명히 무기력해졌고,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특히 그의 전성기 동안에 병약한 상태로 지내게 되었다.
아놀드 소스비(Arnold Sorsby)는 다윈이 또한 강박 관념(obsessive-compulsive)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고 주장했으며, 다음과 같은 증거들을 제시했다.
"만약 샤가스 병이 다윈의 증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무엇이 일으켰는가? 나의 개인적 진단에 따르면, 강박관념의 특징과 정신 신체적 발현(psychosomatic manifestations)을 가진 불안 상태일 수 있다. 불안(anxiety)은 분명히 그의 많은 신체적 문제들을 촉진했고, 강박관념을 갖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다윈은 모든 것을 ‘바로 그대로(just so)’ 가지려고 하는 강박관념적 특징을 나타냈다. 그는 많은 강박관념적 하이포콘드리아증 환자(hypochondriacs, 신병기우증, 자기 건강에 지나치게 신경을 써서 정상적인 감각이나 약간의 신체 이상을 심각한 질환으로 생각하는 일종의 정신장애)들처럼 그의 건강과 증상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어야만 했고, 심지어 자신이 목욕할 때 사용했던 스펀지를 위한 특별한 서랍장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건강 일지도 썼다. 밤낮으로 몸이 얼마나 좋았는지에 따라서 점수를 매겼고, 매 주말에는 점수를 더했다. 어떤 밤이 매우 좋았다거나 그럭저럭 좋았다거나 하는 정도를 정하는 데 있어서 빈번하게 마음이 바뀐 증거도 있다(1974, p.228).
건강상태에 대한 다윈 자신의 말
건강 문제와 병에 대한 일기 외에도(Colp, 1977, p.136), 그는 그의 건강 문제를 편지와 자서전에서 자주 논했다. 건강상태에 대한 다윈 자신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나는 매우 조용히... 살도록 강요당한다. 그리고 거의 아무도 만날 수 없으며, 심지어 나의 가족들과도 오래 말할 수 없다.” (Bowlby, 1990, p.240 인용). 한 번은 다윈이 린네 학회(Linnean Society)에서 단지 ‘몇 분’ 동안 말하곤, "24시간을 토했다"고 불평했다 (Darwin, 1994, pp.98-99). 또 다른 때에, 다윈은 "손님들로 가득 찬 집"에 있었고, 세례식을 위해 교구 교회를 방문한 후에, 그의 건강은 "원점으로 돌아가" 좋았던 건강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으며, (구토를 포함한) 병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Desmond & Moore, 1991, p.456). 이러한 사건들에서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그의 갑작스러운 병세는 그의 무력감이 심리적인 근원이었음을 보여준다.
다윈의 또 다른 면은 그의 가학적 충동(sadistic impulses)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자서전에 적혀있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이 생생한 예를 보여준다.
"학교생활 후반부에, 나는 사격을 열렬히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새를 사격할 때 보다 더 거룩한 대의명분를 가지고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도요새를 죽였을 때를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는지. 나는 너무나 흥분해서 손이 떨려 총을 다시 장전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이 경험은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나는 매우 뛰어난 사격수가 되었다” (1958, p.44).
그가 처음으로 새를 죽인 것이 그를 흥분으로 떨리게 했을 만큼 살생을 너무나 좋아했다는 사실은 다윈의 새디즘적 경향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새 죽이기에 대한 그의 열정은 잘 알려져 있다. 어떤 사람은 살생에 대한 이러한 ‘열정’이 부분적으로 자연선택이라는 그의 무자비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이론의 이빨과 발톱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론
다윈은 분명히 매우 괴로운 사람이었고, 그의 성인기의 대부분을, 특히 전성기 때, 심각한 정서적 문제로 고생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정신적, 그리고 많은 신체적 문제들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많이 토의되었으나, 결코 확실하게 알려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다윈이 그의 정신적, 신체적 문제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그의 삶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그의 정신적 신체적 문제들에 대한 원인 진단으로는, 다양한 쇠약증세를 포함한 정신적 노이로제와 더불어 광장공포증(agoraphobia)이 아마도 가장 정확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다윈이 현재 많은 과학자들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우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피하고 있다. 비록 일찍이 살았던 가장 위대한 과학자는 아니더라도,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종종 기록되어지는 다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진 소수의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다윈과 그의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정신적 건강상태와 그것이 그의 연구와 결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가 고려되어야만 한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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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sby, Arnold, ed. 1974. Tenements of Clay. NY: Charles Scribner's Sons.
* Dr. Bergman is on the Biology faculty at Northwest State College in Ohio.
1. 사냥과 살생에 대한 다윈의 열정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78&bmode=view
2. 다윈의 이상한 질병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89995&bmode=view
3. 다윈의 전 세계 항해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89996&bmode=view
4. 다윈 사상, 모든 게 그 집안 내력이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44&bmode=view
5. 다윈의 불법적인 발명품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45&bmode=view
6. 비글호의 항해 - 창조주를 위한 봉사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29&bmode=view
7. 다윈의 무덤과 교회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73&bmode=view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대구지부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67.htm
출처 - ICR, Impact No. 367 January 2004.
다윈의 전 세계 항해
(Darwin,s Voyage Around The World)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
다윈의 비글호 항해는 그에게 진화의 위대한 발견들을 가져다준 원천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831~1836년까지 5년 간의 여행에서 그는 진화의 어떠한 증거도 결코 찾지 못했다. 여기에 무엇이 일어났는지가 있다. 이것은 과학 대 진화이다. 창조-진화 백과사전은 창조과학의 사실들로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다.
중요 : 이 장을 읽은 후에, 다윈의 이상한 질병을 읽기 바란다. 다윈의 46년 간 지속된 병의 원인이 마침내 밝혀졌다.
내용 : 다윈의 전 세계 항해
찰스 다윈의 5년 간 비글호 여행은 그의 진화론의 근간이 되었다고 널리 말하여지고 있다. 자 그렇다면, 그가 5년 동안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근간으로 제공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자. 잠시동안 다윈이 항해한 세계로 우리도 같이 여행을 떠나보자.
1. 베르데 곶 섬(Cape Verde Islands)
1831년 12월 31일 (실제 생일이라고 후에 다윈은 말했다.) 국왕폐하의 배 비글호(His Majesty's Ship (H.M.S) Beagle)는 영국에서 남아메리카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베르데 곶 섬에 1832년 1월 16일에 멈췄을 때, 다윈은 마을을 보았고, 배가 공급품을 위해 정박할 동안, 짧은 시간에 가까운 언덕 몇 군데를 재빨리 걸었다. 찰스 다윈은 젊었고, 튼튼했다. 비록 배여행으로 멀미가 있었지만, 그는 강했고, 육지에서 동안 모든 종류의 배낭여행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2.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
티에라 델 푸에고에서 1832년 12월과 1833년 1월에 다윈은 24살이었고, 타른 산(Mount Tarn)이라 불리는 황폐한 산을 올랐다. 그것은 매우 힘든 등반이었으나, 바위와 눈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 있는 동안 다윈과 승무원들은 그들의 집인 푸에강스(Fuegans)로 3번 돌아갔고, 그는 티에라 델 푸에고의 바람만 거세게 부는 황량한 땅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곳에 진화의 증거는 없었다.
3. 리오데자네이로(Rio De Janeiro)
비글호는 1832년 브라질, 우루과이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해안을 따라 9개월 동안 관측을 했다. 티에라 델 푸에고의 답사후, 1833년에는 똑같은 일을 하며 7개월을 보냈다. 그것은 영국정부가 배를 바다로 보낸 이유로서, 남아메리카와 다른 지역의 해안을 조사하여, 런던의 영국해군본부 지도를 수정, 추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배가 남아메리카 해안을 관측하는 동안, 젊은 다윈은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1832년 4월 4일에 배는 리오데자네이로에 도착했다. 10주 동안, 피츠로이(Fitz Roy, 비글호의 선장)가 비글호에서 브라질 해안의 영국 해도를 업데이트 하는 동안, 다윈은 리오데자네이로에 보타포고 만(Botafogo Bay)의 오두막집에서 살았다. 그 집에 있는 동안 다윈은 진흙으로 집을 만들고, 그런 다음 반쯤 죽은 거미와 모충으로 가득채워 넣는 벌(mud-dauber wasps)에 대해 연구했다. 진화의 증거는 없었다. 그는 또한 벌과 거미와의 싸움을 보았다. 다윈은 후에 그것이 '생존투쟁'의 이해를 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한 진화의 증거는 없었다. 다윈은 밤에 들었던 유쾌히 짹짹 우는 귀뚜라미와 개구리에 관해 썼다. 그는 가까운 시골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4. 몬테비데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Montevideo To Buenos Aires)
배는 1832년 7월에 몬테비데오를 향해 떠났고, 다윈은 해안을 탐험하며 거의 6개월을 보냈다. 배는 1833년에 다시 몬테비데오로 되돌아왔고, 다윈은 더 많은 시간을 해안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의 일기장과 기록들은 그가 어떠한 진화의 증거들도 보지 못했음을 암시하지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화석뼈를 발견했다. 이것은 그를 흥분시켰으나, 그가 본 어떤 것도 진화의 증거는 아니었다. 1833년 8월 11~17일에 그는 말을 타고 여행을 했다. 그는 바히아 블란카 북쪽의 리오데자네이로 입구에서부터 수백 마일을 여행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400마일을 지나갔다. 달 아래에서 잠을 잤고, 가우초들이 발견한 사냥감은 무엇이든지 먹었다. 그의 일기장은 그가 강했고, 젊은 남자였고, 여행을 잘 할 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1833년 9월 2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파라나 강을 끼고 서북방향의 산타푸로 험난한 길을 여행했다. 그런 다음 그는 배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강하류를 따라 10월 2일에 도착했다. 11월 14일부터 28일에 그는 화석뼈와 말의 이빨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아르헨티나에 말이 최근까지도 없었기 때문에, 그를 더욱더 흥분시켰다. 그러나 전에도 말했듯이 이것도 진화의 증거는 아니었다.
5. 산타쿠르즈 강(Santa Cruz River)
1834년 1월에 그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데세아도(Deseado)로부터 다시 티에라 델 푸에고로 갔고, 남아메리카의 남쪽 끝의 가까이까지 내려간 다음, 포크랜드(Falkland) 섬에 상륙했으며, 다시 해안을 돌았다. 4월 18일부터 5월 8일까지 다윈은 배에서 산타크루즈(Santa Cruz) 강 탐사를 도왔다.
6. 밸파래소(Valparaiso)
5월에 배는 마젤란해협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1834년 6월 11일에 비글호는 태평양으로 들어섰다. 7월의 마지막날에 밸파소래 북쪽 1200마일 쯤에서 겨울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거기 있는 동안 다윈은 마을을 산책했고, 가까운 정글도 들어갔다. 그는 진화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7. 칠레 해안가와 다도해(Chiloe Coast And Archipelago)
1월에 배는 남쪽으로 돌아왔고, 칠로(Chiloe) 섬의 해안가와 다른 칠로 다도해의 많은 섬들을 조사하면서 3개월을 보냈다. 다윈은 그가 본 빙하에 큰 감명을 받았다. 거대한 얼음은 전쟁때 대포가 터지는 소리를 내면서, 거대한 파도를 모든 방향으로 내보내면서 쪼개졌다. 1835년 2월에 칠로의 해안가 발디비아(Valdivia)에서 다윈은 지진을 느꼈다. 더 많은 흥분! 그는 그의 나이에 영국 원주민이 경험한 것보다 2배는 많은 경험을 했으나, 어떤 자료도 진화를 암시하는 것은 없었다.
8. 컨셉시온(Concepcion)
컨셉시온에 도착한 후에 200마일 북쪽으로 더가다가, 그는 같은 지진의 격렬한 영향을 느꼈다. 가까운 섬에서 선장 피츠로이는 홍합껍질이 바다 수면보다 10피트 위로 떠오른 상태에서 형성된 것을 보았다. 무엇인가 융기시킨 원인은 지진이었다. 이것은 젊은 다윈에게 정말 새로운 것이었고, 그는 주의 깊게 그의 일기장에 그것에 관해 기록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진화의 증거는 없었다.
9. 산티에고에서 멘도자(Santiago To Mendoza)
1835년 3월에 그는 산티에고에 있었고, 잠시동안이나마 흔들리는 배위를 떠날 수 있어서 기뻤다. 다른 배낭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는 산티아고(Santiago)로부터, 칠레, Portillo Pass를 경유하여, 아르헨티나의 멘도자(Mendoza)까지 안데스산맥을 넘었다. 그는 우스팔라타(Uspallata)에서 되돌아왔다. 이 배낭여행은 3월 18일에서 4월10까지 이어졌다. 안데스를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젊은 남자에게 그것을 행하는데 육체적 어려움은 없었다. 칠레인 안내인과 10마리의 노새가 24일 동안 대륙을 지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여행동안 들판에서 먹고 잤다. 안데스에서 그는 바다조개화석을 4200m 고지에서도 발견했고, 안데스의 아르헨티나 지역에서는 화석화되어 돌같이 된 나무들을 발견했다. 둘 다 과거에 어떤 시간에 거대한 산이 융기한 증거였으나, 다시 한번 그것은 진화의 증거를 제공하진 못했다. 해안으로 돌아와서 다윈은 4월 23일 그의 조개화석과 화석화된 나무를 배에 전달하기위해 비글호를 탔다. 그리고 그는 급히 해안가로 되돌아왔고, 많은 시간을 배에서 떨어져서 보내어, 배로 인한 멀미 등을 겪지 않음을 감사히 생각했다.
10. 밸파래소에서 코피아포(Valparaiso To Copiapo)
또다른 배낭여행으로서, 그는 4월 27일 밸파래소에서 코피아포까지 북쪽지역을 여행했다. 다윈은 배낭여행을 철저히 즐겼고, 길을 따라가며 밖에서 캠프하는 것도 좋아했다. 해안으로 가는 도중에 그는 아쿠에로스산 아래 은광산으로 여행을 했다. 다윈은 광부들이 200파운드는 더 나가 보이는 짐을 어깨에 지고, 수직으로 걸린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6월 22일에 그는 다시 배를 탓다. 그러나 여행 중에 어떠한 진화의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찾았다면, 그의 노트와 후에 항해에 관해 내용들을 기술했던 그의 책에서 나타나 있어야만 했다
11. 리마(Lima)
1835년 7월에 그는 다시 비글호에 올랐고, 그 배는 북쪽인 칼로, 리마항구로 향했고, 그들은 6주를 머물렀다. 젊은 다윈은 또 다른 탐사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나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배에서 보냈다. 그런 다음 배는 닻을 올리고, 태평양을 향해 출발했다. 다윈은 그가 본 것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졌고, 그는 많은 코멘트를 일기장에 썼으나, 그 중에 진화의 증거들은 아무 것도 없었다.
12. 갈라파고스(Galapagos)
에콰도르 서쪽의 약 600마일 부근에서, 그들은 갈라파고스에 도착했고, 거기서 5주를 보냈다. 젊은 다윈이 선원 몇몇과 산책하는 동안 선장은 섬을 측량했다. 거기에서 많은 이상한 생물들이 있었으나, 진화의 증거는 아니었다. 그는 또한 핀치새의 아종들을 보았고, 몇 마리를 수집했고, 그의 노트에 기록했다. 영국에 도착했을 때, 그의 친구인 존 굴드(John Gould)는 그것이 진화의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이곳에서 마침내 진화의 증거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서 토의한 것과 같이, 그것은 진화의 증거가 아니었다. 그 핀치새들은 하와이의 벌새들이 모두 아종인 것처럼, 한 종으로부터 변화된 아종들이었다. 다윈이 알지 못했던 것은 DNA coding에 있어서 한계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변화들은 오직 DNA 코드안에 저장된 것들 중에서만 이루어졌던 것이다. 오직 그 코드의 변화에 의해서만 종이 변화될 수 있었기 때문에, 진화는 일어날 수 없었다. 갈라파고스 섬은 오랜 시간 그곳에 있었으나, 핀치새는 핀치새였고, 그들중 아무것도 뭔가 새로운 것으로 변하지 않았다.
13. 타이티(Tahiti)
1835년 10월20일부터 11월 15일까지 25일 동안 순풍에 의해 비글호는 갈라파고스에서 타이티로 진행했다. 마타바이(Matavai) 만에 도착했을때, 그는 산호 군락을 보았고, 두 명의 타이티인과 동행하며 여행을 하였다. Tia-aura 계곡(지금은 Tauaura)을 걸으면서 그들은 우둘투둘한 산골짜기고 들어갔다. 그가 보았던 다른 어떤 곳보다 훨씬 더 장엄한 곳이었다. 이틀이 걸렸고, 그 여행은 위험한 바위를 오르고, 암층을 오르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일기장 내용중 산호초, 협곡, 가파른 벼랑 등 어떤 것에서도 진화의 증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강도 높은 11일간의 여행이었고,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14. 코로라레카(Kororareka)
1835년 12월 21일에 뉴질랜드만의 코로라레카(지금은 Russell)에 도착해서, 다윈은 거친 불모지대를 탐사하였고, 마오리족이 살아가는 방법을 보았다. 다시 항해를 하여 배는 14일 후에 시드니 항구에 닻을 내렸다. 다윈은 Bathurst로 그를 데려다줄 안내인을 고용하였고, 12일간의 행진을 시작했다. 오지에 있는 동안 다윈은 Wallaroo에서 캥거루를 사냥했다. 그러나 그가 들개를 찾고 있었으나,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그는 원주민들이 땅을 경작하는 능력에 놀랐고, 30야드 떨어진 작은 목표물에 창을 던져 맞추는 것에 놀랐다. 그들은 상당히 지능이 높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15. 타스마니아(Tasmania)
1836년 1월에 배는 타스마니아로 항해했고, 지칠 줄 모르는 다윈은 가시덤불이 많은 곳을 통과하여 웰링톤 산을 올랐다. 2월 17일에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남서쪽에 있는 King George 해협을 지났다. 1500마일의 여행이었고, 다윈은 많은 시간 뱃멀미로 고생했다. 배는 우연히 Aborigines 원주민들의 연례 축제를 벌이는 시간에 도착하여, 그들의 축제를 볼 수 있었다.
16. 집으로의 여행
다윈의 긴 여행의 마지막 구간이었다. 그는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회상하며 여러 달을 보냈다. 인도양을 가로지르고, 희망봉을 돌아, 태평양으로 들어가고, Ascension 섬으로,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해안의 마지막 측량까지, 그런 다음 Cape Verde 섬 위로 진행하여, 1836년 10월 2일에는 그가 떠났던 영국의 Falmouth로 향해가고 있었다.
비록 그가 진화가 어떻게 발생했을 것인가에 대해 상상의 꿈을 꾸면서 그의 나머지 생애를 보냈다 하더라도, 그는 결코 어떤 확실한 사실도 제공받지 못했다. 다윈은 그의 여행이 그에게 가르쳐준 수업을 배웠어야만 했다. 그는 세계를 여행했지만 어떠한 진화의 증거도 찾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당신도 알다시피 진화는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sdadefend.com/pathlights/ce_encyclopedia/Encyclopedia/20hist05.htm
출처 -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