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What is Secular Humanism?)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란 어렵다. '인본주의”라는 말을 들을 때, 여러 가지 관념이 떠오른다. 예컨대, Webster 씨는 인본주의를 '인간의 이익, 가치, 또는 존엄성이 우위를 점하는 체계나 사상, 또는 행동의 형태”[1]라는 뜻에 가깝게 정의하였다. 인본주의의 정의를 물을 때 일부의 사람들은 일반교양과목을 생각할 것이다. Webster 씨의 정의나 일반교양과목을 생각하는 사람이나 다 똑같이 타당하고 훌륭하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세속적 인본주의라는 세계관에 대한 정의이다.
첫째, 세속적 인본주의는 하나의 세계관 이다. 즉, 그것은 모든 현실적인 사안을 해석하는 시각으로서의 하나의 신념체계다. 안경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세속적 인본주의는 종교적 세계관 이다.[2] '세속적” 이라는 단어로 인해서 오도되지 말아야 한다. 인본주의자들 스스로가 종교적인 세계관에 집착한다는 걸 자인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른바 인본주의 선언 I & II 에 의하면, 인본주의란 "하나의 철학적, 종교적, 그리고 도덕적인 관념”[3] 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본주의자들은 "종교적”인 사람으로 식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의 공교육기관에서 종교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그렇다). 세속적 인본주의를 종교와 동일시하면, 인본주의 신념의 중요한 선전수단이 제거될 것이다. 그런데 인본주의는 하나의 신앙임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들 스스로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다. 인본주의 선언은 이렇게 선언한다. 즉,
"이 확언[선언 안에 천명된]은 최종적인 신경(credo)나 교의(dogma)는 아니다. 그것은 살아 성장하는 신념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4]
세속적 인본주의의 기본 신조들(beliefs)은 무엇인가?
세속적 인본주자들은 무엇을 믿는가?
신학적으로,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은 무신론자들(atheists) 이다. Prometheus Books의 출판업자이며 Free Inquiry지의 편집자인 인본주의자 Paul Kurtz는, '인본주의는 어떤 의미로서 보든 간에 여전히 하나님을 우주의 기원이나 창조자로서 믿는 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5] 라고 말한다. Corliss Lamont도 이에 동의하면서, '인본주의'는 "신들이 우주를 창조한 것이 아니고, 우주가 개별화된 형태를 갖춘 인간의 상상력에 자유재량권을 주어 신들을 창조하게 하였다"고 강력히 주장한다.”[6] 라고 말한다.
철학적으로,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은 자연주의자들(naturalists) 이다. 즉, 그들은 존재하는 것은 모두 자연이라고 하면서 물질세계만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없다. 영혼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세는 없다. Carl Sagan은 그의 Cosmos 시리즈의 서문에서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는 "우주는 현재, 과거, 그리고 미래의 존재의 전부다.”[7] Roy Wood Sellars는 이에 동의하면서, "인본주의는 자연주의적인 이념으로서 하나님을 창조주로 가정하는데서 당연시 되는 우주의(cosmic) 주재자로서의 그의 초자연적 지위를 거부한다.”[8]라고 말한다.
생물학 분야에서의 세속적 인본주의 신조들은 그들의 표방하는 무신론과 자연주의 철학에 밀접하게 연루되어있다. 만약에 초자연적인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생명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은 순전히 자연 현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은 진화론을 믿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줄리안 헉슬리(Julian Huxley)는 "인간은... 그의 육신,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도 초자연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모두 진화론적으로 생산되었다.”[9] 라고 주장한다. Sagan, Lamont, Sellars, Kurts - 이 모든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은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무신론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은 윤리적 상대론 (ethical relativism)을 수용한다. 그들한테는 절대적 도덕규범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상황에 따라서 자기 자신의 판단에 준하여 자기 나름의 윤리적 규범을 조정하여야만 한다 [10]라는 이론을 내세운다. 만약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의 절대적 도덕규범이 설 수 없을 것이다. 인본주의자 Max Hocutt는 인간이 "스스로의 규범들을 만들 수도 있고, 또 만들기도 한다. ...도덕률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만들어지는 것이다.”[11] 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세속적 인본주의는 무신론, 자연론, 진화론, 그리고 윤리적 상대론에 근거하는 종교적 세계관 이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의는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하는 말일 따름이다. 보다 상세한 토론 내용이 David Noebel의 Understanding of Times 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신학, 철학, 윤리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 그리고 역사학 등등 10종에 걸친 학문 하나하나에 대한 인본주의적 접근을 (상세히) 토론하고 있다.
Footnotes:
1. Webster's Encyclopedic Unabridged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New York: Gramercy Books, 1989), p. 691.
2. For detailed proof that Secular Humanism is a religion, see Clergy in the Classroom: The Religion of Secular Humanism by David A. Noebel, J.F. Baldwin and Kevin Bywater (Manitou Springs, CO: Summit Press, 1995).
3. Paul Kurtz, in the preface to Humanist Manifestos I & II (Buffalo, NY: Prometheus Books, 1973), p. 3.
4. Kurtz, Humanist Manifestos I & II, p. 24. Italics added.
5. 'Is Everyone a Humanist?' in The Humanist Alternative, ed. Paul Kurtz (Buffalo: Prometheus Books, 1973), p. 177.
6. Corliss Lamont, The Philosophy of Humanism (New York: Frederick Ungar Publishing, 1982), p. 145.
7. Carl Sagan, Cosmos (New York: Random House, 1980), p. 4.
8. Roy Wood Sellars, 'The Humanist Outlook,' in The Humanist Alternative, ed. Paul Kurtz (Buffalo: Prometheus, 1973), p. 135.
9. Julian Huxley, as cited in Roger E. Greely, ed., The Best of Humanism (Buffalo: Prometheus Books, 1988), pp. 194-5.
10. David A. Noebel, Understanding the Times: The Religious Worldviews of Our Day and the Search for Truth (Eugene, OR: Harvest House, 1991), p. 200.
11. Max Hocutt, 'Toward an Ethic of Mutual Accommodation,' in Humanist Ethics, ed. Morris B. Storer (Buffalo: Prometheus Books, 1980), p. 137.
[ If this information has been helpful, please prayerfully consider a donation to help pay the expenses for making this faith-building service available to you and your family! Donations are tax-deductible. ]
Adapted from Understanding the Times: The Religious Worldviews of our Day and the Search for Truth, and Clergy in the Classroom: The Religion of Secular Humanism by David A. Noebel, J.F. Baldwin and Kevin Bywater of Summit Ministrie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hristiananswers.net/q-sum/sum-r002.html
출처 - ChristianAnswers
진화론 : 그 선전 배후에 감춰진 비밀
(Evolution : The Secret Behind the Propaganda)
Margaret Helder
진화론은 사실(facts)이고, 창조론은 신앙(belief)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진화론' 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PBS TV 시리즈가 전하는 메시지가 확실히 그랬다. PBS 방송국에 보내졌던 내부문건(memo)은 진화론에 관하여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알려진 모든 과학적인 증거는 진화론을 지지한다. … 지난 150년 동안에 있었던 신발견들은 하나같이 진화론을 지지하고 있었다.” (PBS 내부문건 2001. The Evolution Controversy: Use It or Lose It. Evolution Project/WGBH Boston. June 15, p.5). 이 문건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과학적인 이론은 ”사실들을 묶는 보다 높은 수준의 이해”라고 정의하였다 (p.5). 하지만 창조론에 관해서는 ”과학이 아니다” 라고 간단히 처리해 놓았다 (p.6). 최근 다년간에 발표되었던 그와 유사한 여러 주장들로 인해서, 일반적인 과학이론은 물론 특히 진화론은 자연계에서 관찰된 증거에 근거하고 있어서 실험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는 확신을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과학자들 중에는 이것이 현대적 해석이 아니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과학자들이 실질적인 데이터에 관한 걱정 따윈 포기한지 오래라고 생각한다.
과학에 관한 현대적 조망은 학문(discipline)에 관한 과학자 자신들의 평가에 잘 나타나고 있다. 유명한 과학철학자 데이비드 헐(David Hull)은 일찍이 1965년에 이렇게 기술한 적이 있다.
”…과학은 많은 과학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실험적인 학문이 아니다. 관찰되지 않은 실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관찰될 수 없는 실체까지도 과학이라는 학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은 그냥 관찰하는 것만으로 되는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세워놓은 어떤 이론의 틀 안에서 시행된 관찰에 근거하는 추론이다.” 1
이 진술 안에서 우리는 사실과 그에 대한 해석, 즉 이론과의 사이에 일종의 균형(balance)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Dr. Hull이 데이터를 잘못 파악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을 해소할 수 없다. 지난 해에 그는 하나의 공동 조상으로부터 수정을 거쳐 태어나는 후손들에 관한 개념에 관한 이론(계통발생론 또는 진화론)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계통발생론 프로그램에 있어서 제일차적인 요소는 그리고 유일한 요소이기도 한 그것은 계통발생론의 실험적인 성질이다. 그러나 심지어 계통발생론까지도 마냥 쳐다보고 바라보는 것만으로써 발견되는 맹목적인 대상만이 전부는 아니다. 계통발생론의 주제 분류는 하나의 추상적인 문제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추상적이다. 첫째로 그것은 형태학적, 유전학적, 고생물학적, 그리고 그 어떤 형태의 학문적 증거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독립적으로 추론되는 학문으로 결코 직접적으로 관찰되지 않는다.” 2
우리가 알기로는 진화론적 후손에 관한 그의 사상은 그냥 내린 결론이지 결코 직접적인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 이론이 아니다.
헐 박사가 이 논문을 쓸 당시엔 과학의 본질에 관한 관념이 실질적으로 일종의 유동상태에 있었다. 1934년 칼 포퍼(Karl Popper)는 과학에 관한 어떤 이론도 일찍이 진리로 증명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가 암시한 독특한 대안은 과학이론들은 허위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노력일 따름이라고 하였던 점이다. 그런대로 나름으로 충분한 실험을 거친 이론들은 실험결과의 데이터에 근거하여 허위로 밝혀지지 않든가 논박되지 않았을 때엔, 그것이 과학적인 이론이라는 자격으로 인정되었다. 이 때 유일하게 가려진 문제는 많은 분야에 걸친 과학적 탐구가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허위가 입증될 수 없었던 이론은 과학적이기보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형이상학적이었다. 따라서 과학 잡지 Nature 지는 1981년에 ”가정상의 과거 진화의 과정은 재현될 수 없기” 3 때문에 다윈사상과 하나님의 창조 사상은 똑같이 형이상학적인 이론이라고 지적한바 있었다. 그러나 다윈사상을 비과학적이라고 특징짓는 것처럼 어려운 작업은 모습을 드러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은 1962년에 출판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에서 그는 과학적인 이해에 일종의 포스트-실험시대를 도입하고 있다. 토마스 쿤에 의하면, 모든 과학은 일종의 사상의 통일된 틀에 준하여 진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와 같은 이론체계가 없다면 사상(事象, facts)은 의미가 없으며, 또 과학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과학철학자 델 라치(Del Ratzsch)의 최근 저서 ”과학과 그것의 한계(Science and its Limits)” 에서, 그는 이론을 데이터보다 우위에 두는 것이 과학실습에 엄청난 함축을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결과적 실험 데이터는 과학에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라치는 ”과학자는 패러다임에서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일부 궁극적인 현실에 접근한다는 주장과, 선택된 패러다임도 부분적으로는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선택된 가치라는 주장을 하면서, 토마스 쿤은 현실의 정확한 양상에 관한 궁극적인 상소재판(판단)을 세계자체(데이터)와는 상관 않고 전문적인 과학자들의 의견일치에만 맡기려한다.” 4 라고 말했다. 라치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완전하고 안정된 그리고 독립된 외적 현실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에 있어서의 진리라는 것에 관하여 왈가왈부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면 현대의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 그들이 하는 일은 현행 과학적 패러다임에 시각에서 데이터를 해석하는 일이다. 그들은 말하자면 진화론과 같은 패러다임을 거짓으로 입증해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패러다임이란 전형은 쉽게 파괴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의 허위성을 밝힌다고 해서 개별적으로는 결코 패러다임을 거부되게 만들 수는 없다. 심지어 패러다임에 반대되는 수없이 많은 데이터들도 패러다임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 한다. 진화론이야말로 가장 극명한 패러다임으로서 실험적인 데이터에 크게 면역이 되어있다. 우주론도 이에 준하는 다른 예다.
과학의 새로운 정의의 가장 명백한 피해자는 진실과 진리에 대한 새로운 정의다. 예컨대 생물학자 마크 시달(Mark Siddall)과 아놀드 클루즈(Arnold Kluge)는 1997년에 ”'진리의 탐구'는 출발부터 오도된 과학탐구이며, 그리고 아무런 현실적 기본도 없는 탐구이다.” 5 라고 암시하였다. 그들은 한 발 더 나아가서 ”비록 과학이 진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론도 검증되기 전에는 진리와 상관이 없다.” 어쨌거나 이 저자들은 ”다행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는 과학탐구를 계속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라고 결론짓는다. 그들은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 진리라는 명사(名辭)의 포착하기 어려운 개념에 관한 우리들의 주장을 골칫거리로 혹은 허무주의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과학에 대한 연속적인 노력을 보장하고, 진리 그 자체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즉, 인식━을 우리가 영구적으로 인정하도록 보장하는 진리를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격한다.
과학은 분명히 먼 길을 왔다. 애당초 18세기와 19세기에는 실제 관찰내용 (실험 데이터)이 높게 평가되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찰내용들이 지나치게 높게 평가되기도 하였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같은 일부 철학자들은 우리들의 감각이 인식하는 것 말고는 실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존재하는 것은 물질계뿐이라는 것이다. 이론의 중요도가 점차로 증대하더니만 마침내 현재에 이르러서는 실험 데이터가 무시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모든 과학자가 다 의견통일(consensus)에 대한 Kuhnian 호소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과학철학자 톰 세틀(Tom Settle)은 그 상황을 이렇게 비탄하였다. ”진리탐구가 끝이 없는 탐색으로 생각하고 (아마도 실망한 나머지) 노력을 포기하고 동료과학자들과 합의에 안주하는 사상가들이 많다. 만약 그들이 옳다면, 그들이 지향하는 과학탐구의 목표가 진리에 있지 않고 의견통일에 있다. 그렇다면 그 그림은 음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 그런데 이 때의 상황에서 출현하게 될 최악의 양상은 과학자들이 오직 의견통일에 근거하는 독단적인 해석을 악착같이 옹호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때 넋 나간 짓은 다름이 아니라 규제력으로서의 진리를 포기하고 진리 아닌 그 무엇이 규제력이 있는 것으로 합의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호소(呼訴)를 현실의 잣대에 맞추고 노력을 객관화의 잣대에 맞추기 때문에 과학을 굳히기는커녕 손상을 입힌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이나 진화론과 같이 중요한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그냥 이론의 데이터들을 패러다임의 시각으로 해석할 뿐이다. 진화론은 관찰의 이론이 아니고, 어떤 철학의 시발점일 따름이다. 시달과 클루즈가 언급하였듯이 ”만약에 우리 직업이 단순히 감각경험들의 목록이나 작성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이상의 무엇이어야 한다면 생물학자들은 건전한 철학의 기본적인 요구에 대해 면역이 될 수 없을 것임은 여타의 과학이 그렇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진화론적 생물학, 특히 계통학이 물리학에서의 양자이론의 위치와 마찬가지로 설명하려 하는 그 내용을 우리는 관찰할 수 없는 것이다.”
또 한 사람의 생물학자 앤드류 브로워(Andrew Brower)는 '변형된 퇴보(descent with modification)'를 순환논리, 즉 하나의 형이상학적 가정이라고 특징지었다. ”개별적인 관찰에 대한 실험과 변형된 퇴보에 대한 실험과의 사이에는, 만약에 후자가 원인과 결과의 혼돈이 없이 실험할 수만 있다면, 일종의 존재론적 비약이 개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7 ”만약에 진화의 파생을 함축하는 변형된 퇴보에 관한 배경지식이 독립적인 방법으로는 실험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생기설(生氣說)이나 정향진화설(定向進化說)처럼 포퍼(Popper)의 가설-연역적 접근의 성분보다 더 형이상학의 제일원리로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화는 허위로 증명될 수는 없으나 하나의 선험적인 가정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다른 한편, 크리스천들은 전형적으로 과학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그 어떤 학설보다 더 전통적이고 또 실험적이다. 그들은 반대 데이터가 지적됐을 때엔 청취자는 그 패러다임이 거부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청취자는 그 데이터의 의미성을 최소화하고 그 데이터를 '이례적(異例的)'이라든가 이해하기엔 너무 조잡스럽다고 치부해버리기 일쑤다. 대부분의 진화론 지지자들은 명백한 문제들은 결국에는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의 덜 논쟁적인 측면에만 집중한다.
현재로서는, 과학자들의 의견통일이 패러다임을 지지하기 위한 주요 요소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수 의견의 입장에서 펼치는 개별적인 주장은 이미 대대적인 반대의견에 의해 타격을 받았다. 일부 과학자들은 과학이란 어떤 학문의 개별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비평적인 평가의 여지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고 ”전부가 아니거든 아무것도 없다.” 라는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전부가 아니거든 아무 것도 없다”라는 원리를 주창한 사람은 Hull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유기체의 목록을 작성함에 있어서 진화론적 방법에 수(數)적 [실험적]인 방법을 대비(對比)시켰다. 그런데 바로 이 주장이 오늘날 창조론적 표본에 반대하는 논거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계통발생론을 재구성하는 작업에서 진화론자들이 구축한 연역추단은 충분히 입증되고 있는가? … 그 어떤 결정도 … 반드시 발견과 판단의 기술을 사용하는 다양한 과학적 접근에 근거하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 추단은 연역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실험주의자들에 의해서 제기된 진화론적 재구성에 반대하는 주장은, 만약 그 주장이 건전하다면, 진화론적 분류만을 무효화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실험과학도 역시 무효화한다.” 8 헐의 주장에 의하면, 데이터에 근거하여 과학적 공리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전체의 과학적인 기획은 어쨌든 유지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어떤 이론화가 인정됐다면, 그 다음으로는 그 이론의 모든 내용은 어떤 도전도 초월한다.
과학에 있어서 실험 데이터의 중요도가 오래전부터 이론에 비해서 부차적인 것으로 강등된 마당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에 관한 PBS TV 시리지의 진술은 한결 흥미를 더한다. PBS 메모는 진화론이 네거티브 증거들에 의해서 쉽게 그 허위성이 증명될 수 있다고 함축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네거티브 데이터들로부터 진화론을 방어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에 헌신하고 있다. 사실상 오늘날 실험적인 증거들 (암호화된 DNA의 본질과 정보와 같은 것)에 그토록 빈번하게 호소하는 쪽은 창조 모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화론자들은 바로 이 데이터의 중요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차라리 다행한 일이다. 과연 그렇다. 모든 것을 다 까놓고 살펴보았을 때, 대부분의 현대 과학의 본질은 전혀 실험적이 아니고, 오히려 포스트-실험적이든가 다분히 이론 지향적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진실과는 차이가 있다. 이러다가는 아마 PBS가 진실을 일반에게 알리기 위하여 창조론에 근거한 새로운 시리즈를 발표하여야만 할 것 같다.
References
1. David Hull. 1965. The effect of essentialism on taxonomy??two thousand years of stasis (II).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16 (61): 1-18.
2. David Hull. 1964. Consistency and monophyly. Systematic Zoology 13 (1): 1-11.
3. Editorial. 1981. How true is the theory of evolution? Nature 290 March 12: 75-76.
4. Del Ratzsch. 2000. Science and Its Limits: The Natural Sciences in Christian Perspective. InterVarsity Press. pp. 191.
5. Mark Siddall and Arnold Kluge. 1997. Probabilism and phylogenetic inference. Cladistics 13: 313-336.
6. Tom Settle. 1979. Popper on 'When is a Science not a Science?' Systematic Zoology 28: 521-529.
7. Andrew Brower. 2000. Evolution is not a necessary assumption of cladistics. Cladistics 16: 143-154.
8. David Hull. 1967. Certainty and circularity in evolutionary taxonomy. Evolution 21 (1): 174-189.
* Dr. Helder is a botanist and President of Creation Science Association of America.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evolution-secret-behind-propaganda
출처 - ICR, Impact No. 351, 2002.
지상강좌 - 진화론, 창조론, 그리고 유신진화론
카톨릭의 유신진화화
카톨릭내의 유신진화론의 뿌리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가미된 스콜라 철학(Thomism)과 유니테리언(Uniterianism), 니이덤의 자연발생설(abiogenesis), 다윈의 진화론(evolutionism) 및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림4).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는 13세기에 야기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단죄사건'(Aristoteles Condemnation 1210)을 성경과 교묘히 조화시킴으로써, 카톨릭에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접목시켰다. 그는 그리스의 자연관, 성경, 하나님, 인간 및 자연을 망라하는 스콜라철학을 <신학대전>에 집약하여 카톨릭 내에 범신론적 자연사상이 침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을 '만물의 제일생성원인'(prima causa)이라고 표현하였다.
한편 예수회 신부였던 니이덤은 창세기를 인용하여 하나님이 물과 흙에서 생물(신종)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도록(tadsche, produce) 만드셨다고 해석하면서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주장하였다(창세기 1;20-21, 2;19).
19세기로 들어서면서 영국성공회 출신의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은 카톨릭교회의 추기경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카톨릭 내의 진화서적에 대한 금서조처를 해제하고 유신진화론을 도입하였다.
20세기초 나타난 생의 철학자 베르그송(1859-1941)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조화를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이었다. 그는 <진화적 창조>(1907)에서 진화현상을 물질과 기계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에는 반대했으나 진화의 역사적 측면은 인정하였다. 자연계의 생명현상은 그 내면에 어떤 잠재력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창조주가 진화 메커니즘을 통하여 생물을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생명의 내부에는 보다 높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생의 원동력'(vital impulse)이 있기 때문에 생명의 기원과 역사는 창조적 진화론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고 하며 이러한 생명의 추진력을 '초월의식'이라고 불렀다. 이 흐름이 생식작용으로 다음 세대로 이전되면서 신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예수회 신부인 샤르뎅(1881-1955)은 진화론을 입증하기 위하여 비정상적이리만큼 열성적으로 활동한 사람이었다. 샤르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에 동양의 신비주의를 접목시켰다. 그는 태초에 원물질(en arche)이 있었고 이것이 진화하여 단세포에서 식물, 동물,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후 온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는 오메가포인트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예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샤르뎅의 저서들에 대해 카톨릭 당국은 처음에는 퇴출과 불매명령을 내렸으나(1957), 그후 모니텀(Monitum, 1962)은 금서조치를 해제했다. 샤르뎅이 소속한 예수회에서도 그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였다. 그는 유인원으로부터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필트다운인, 북경인, 로데지아인 등의 조작 및 조립사건에 선도적으로 관여하였다. 그는 교황청과 프랑스정부에 의해 두 번에 걸쳐 추방당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카톨릭의 유신진화화를 촉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비오 9세는 사실상 진화론을 수용했으나(Syllabus of Errors), 비오 12세는 <인간탄생>(Humani Generi, 1958)이라는 교서를 통해 진화론과 공산주의를 격렬히 비난하였다. 그러나 교황청 산하 과학아카데미의 압력으로 진화론을 신중히 연구, 검토할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카톨릭은 급속히 진화사상으로 물들어갔다.
이러한 추세는 마침내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청 산하의 과학아카데미에 보낸 서신(1996. 10. 23)을 통해 "인간이 생명의 초기형태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은 가설 이상의 이론"이라고 피력함으로써 극에 달했다. 그리고 1999년에는 진화론을 카톨릭의 한 교리로 수용하면서 "이미 있던 존재(유인원)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이 탄생했으며, 진화론은 지동설처럼 언젠가는 정설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진화론을 카톨릭의 공식 교리로 명확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카톨릭계의 한 신문은 "교황이 갑자기 우리를 원숭이의 후손으로 만들었다"고 개탄하였다. 이러한 전통복음주의의 퇴조는 사도 바울이 말했던, 말세에 나타날 배도 사건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개신교의 유신진화화
초대교회에서 교부시대까지 카톨릭과 같은 역사와 전통을 공유하는 개신교의 유신진화론의 역사적 뿌리는 역시 일부 교부들이 6일이라는 기간을 해석한 것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명백하게 유신진화론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은 에든버러 대학의 교수이자 목사인 찰머스(1780-1847)가 큐비에(1768-1832)의 다중격변설(multiple catastrophism)을 창세기의 내용과 조화시킨 간격설(gap theory)을 주장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림5).
큐비에는 창세기의 6일은 비유이며 지구상에는 여러 번 국지적 홍수가 있었고 그 때마다 지층과 화석이 형성되었으며,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가 전 지구를 덮었던 최후의 대홍수였다고 주장하였다. 찰머스는 창세기 1장의 1절과 3절 사이에 간격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6일창조설에 대해서는 문자적으로 24시간의 하루(literal 24 hour theory)를 지지하는 비교적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 후,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이면서 목사인 버클랜드(1784-1856)는 간격설을 수용하면서 여기에 6기간설을 덧붙였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그의 제자 라이엘(1797-1875)은 허튼의 지층형성 이론을 더욱 발전시킨 동일과정설과 국부홍수론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동일과정설은 다윈의 진화론은 물론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의 종교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국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린 스미스(1774-1851)도 국부홍수론을 주장하였다.
창세기의 6일창조설을 6기간설로 재해석하려는 이러한 국부홍수론(local flood theory)은 히치칵(1793-1864)에 의해 미국에 소개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찰머스의 간격설은 그후 밀러, 쿠르츠, 펨버, 스코필드 등에 의해 이론이 더욱 체계화되었으며, 특히 펨버의 이론이 스코필드 주석성경(Scofield Referance Bible 1917)에 소개됨으로써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에서 개신교의 유신진화화는 먼저 개신교의 한 축인 성공회를 통하여 가속화되었다. 스트라우스(1808-1874)는 <종의 기원>을 접한 후 성경의 기적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고 다윈에게 고백하였다. 킹슬리 신부(1819-1875)는 다윈에게 기증 받은 <종의 기원>의 영향으로 종의 불변설을 부인하고 자연선택설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다윈은 "기독교의 한 성직자가 내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은 스스로 다른 형태로 분화할 수 있는 약간의 원형만을 창조하신 것으로 믿는다고 하였다......그가 만든 법칙에 따라서" 라고 <종의 기원> 제2판에서 기술하고 있다. 킹슬리는 어린이용 교재인 <물의 자손들>(1863)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자연 어머니"라고 고쳐서 부르기도 하였다.
캔터베리의 추기경인 프레드릭 템플턴(1821-1902)은 진화론을 본격적으로 성공회 내로 이끌어 들였을 뿐만 아니라 영국 상원에 영향력을 발휘해 다윈을 기독교 심장부인 웨스트민스터교회당에 묻히도록 했다. 그의 아들인 윌리엄 템플턴 추기경(1881-1944)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진화론에 좌익사상까지 성공회 내로 유포시켰다. 이 밖에도 보이스카웃을 창설한 포웰(1857)과 나탈의 주교로서 모세오경과 여호수아서의 기적을 믿지 않았던 클렌소(1814-1883)의 역할도 지대하였다.
미국에서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죤 듀이(1859-1952)가 진화론적인 환경론을 교육계에 끌어 들였다. 그는 진화론에 기초한 인본주의선언(1933)을 만들어 기독교와의 대결을 선언하였다. 기독교계에서는 대중설교가 비쳐(1813-1887), 자유교회의 목사인 포스딕(1878-1969) 등이 진화론의 전파에 열성적이었다. 그리고 복음주의 신학자로 알려진 독일의 성경주석가 델리치(1813-1890)를 비롯하여 프랜시스 쉐퍼(1912-1984)나 에드워드 영(1907-1962)과 같은 학자들도 6기간설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유신진화론의 주장 종합
이상에서 보았듯이, 유신진화론에는 간격설, 날-연대설, 골격가설, 진행적 창조설 등이 있다. 이들의 주장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고 상호 모순되는 점도 있지만 개요는 다음과 같다.
간격설(Gap Theory)은 창세기 1장 1-2절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는 주장이다. 첫번째의 창조세계가 천사장 루시퍼의 반란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그 상태가 2절에 나타난 혼돈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3절부터 시작되는 6일간에 지금의 우주를 다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첫번째 세계가 파괴되면서 동식물과 인간이 지층 속에 매몰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화석이 되었다고 한다. 창세기 1장의 1절과 3절 사이에 큰 지질학적 간격이 있다 하여 간격설이라 하며 재창조설(reconstruction)로 부르기도 한다.
날-연대설(Day-Age Theory)은 창세기 1장 3절 이하의 6일 창조가 문자적으로의 24시간이 아닌 지질학적 여섯 기간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 지질연대마다 그 시대에 살았던 진화된 동식물들이 그 지층에 묻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날의 원어인 욤(yom)의 복수형 야민(yamin)이 '날' 이외에 '기간'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는 데 근거를 둔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는 모두 단수형으로만 기술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골격가설(Frame Theory)은 성경은 구원에 대한 골격을 설명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창조→타락→구속→회복의 과정을 나타낸 것이므로,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과정은 구원을 설명하기 위한 신화이며 풍유이거나 비유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창세기의 역사성을 부인한다. 눌찌(1924) 등이 주장했으며, 일명 풍유설(allegory theory)이라고도 한다.
진행적 창조론(점진적 창조론, Progressive Creationism)은 하나님이 진화과정을 통해 천지를 창조하셨으나 필요에 따라 진화를 중단시키거나 직접 개입하여 신종을 만드신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생물의 신종이 전혀 태어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고안해 낸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설명한 유신진화론의 공통된 주장은 다음과 같이 종합할 수 있다.
① 하나님이 창조의 주체이시나 진화론적으로 만물을 만드셨다. 따라서 지금도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법칙에 따라 창조는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은 창조사역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며, 모든 자연계의 작용은 자연법칙에 따라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결정되어 있다(결정론).
②아담이 탄생하기 전(Pre-Adamic Age) 긴 지질연대가 있었다. 그 지질시대에 살았던 생물들이 그 해당되는 지층 속에 묻히면서 무기질과 치환된 것이 오늘날의 화석이다.
③하나님이 한 유인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현생인류인 아담을 만드셨다.
④창세기에는 창조의 구체적 기록이 없으며, 모두 신화, 비유, 풍유적이다.
⑤하나님이 굳이 엿새동안에 서둘러서 창조하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복음과는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비복음주의적 성격에 대한 신학적 연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①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신화나 비유화로 치부하며, 성경을 상징적이거나 상황적으로 해석한다. 예컨대 아담을 지은 흙은 선재하는 피조물(pre-existence 유인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②자연계에서 진화가 일어나 사람이 탄생했다는 주장은 질서도(orderness)의 지속적 증가를 나타내는 주장으로 이는 열역학 제2법칙(무질서도의 증가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더구나 훼손된 자연회복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도 대치된다.
③창세기 1장에는 10회나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min, kind)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풀과 채소(창1;12), 물고기들(창1;21), 새들(창1;21), 육상동물들(창1;24-25) 등이 진화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로 만드신 것이다. 종(species)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벌게이트 성경 주석에 능통하였다는 린네는 성경에 기록된 '종류'가 생물학적인 '종'과 같은 의미라고 해석하였다.
④창세기에는 만물을 6일만에 창조했다고 했으며,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이 직접 6일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어디에도 진화적 표현은 찾아 볼 수 없다. 만일 6기간설이 맞다면 성경은 왜 6일이라고 표현했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⑤아담이 유인원에서 진화했다는 말은 반성경적이다. 그렇다면 이브 역시 같은 시기에 아담처럼 암컷 유인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만드셨다고 추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경우, 인류는 한 혈통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신구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고 말한다.
⑥고통과 죽음은 첫 사람 아담의 범죄에서 왔다는 것이 성경의 핵심교리이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에서는 아담이 태어나기도 전에 수많은 동식물과 인간이 죽어서 지층 속에 화석이 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담의 범죄로 죽음이 온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성립하게 되어 전통복음의 기초를 흔들고 있다. 창조라는 기초가 파괴되면 구원이라는 건축물은 자동적으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⑦유신진화론자들은 특수계시(성경)보다 자연계시(자연법칙)를 더 중시한다.
⑧이들은 과학과 성경을 분리하여(Compartmentalism)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양자간의 불일치와 마찰을 회피하려고 한다.
⑨창조연대가 길다는 주장은 역으로 짧다고도 주장할 수 있는 자가당착의 논리에 빠지게 한다. 유신진화론자들이 왜 굳이 진화론과 성경을 조화시키려고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창조론
창조론의 뿌리는 창세기이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문자적 표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축자영감설1)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 플라톤(BC 429-347)의 관념론(idealism)과 로마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시의였던 갈레노스(130-200)의 목적론적 생기론(teleological animationism)이 창조론의 학문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선포된 후(313) 창조론은 다윈의 진화론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서양의 학계를 지배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견지되어 왔다. 중세기에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루터를 비롯하여 캘빈과 멜랑히톤(1497-1560), 카톨릭의 수아레스(1548-1617)와 페타비우스(1583-1652) 등에 의해 지지되어 왔다.
루터(1483-1546)는 어거스틴의 6기간적 해석을 비판하면서 지구는 6천년 전 어느 봄에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장로교 창시자인 캘빈(1509-65)도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6일간이라 기록한 것은) 여러 나라에서 성행하는 괴이한 우화들을 물리치고 세계는 처음부터 시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하나님의 영원성을 분명히 빛내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며...... 우리로 하여금 일체의 공상을 물리치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6일간으로 나눔으로써 우리가 일생동안 이를 명상토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우주를 카오스상태로 창조하셨다고 했다.(When God in the beginning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the earth was empty and waste.)
이러한 창조론적 해석은 히브리원어성경을 가장 정확하게 번역했다는 흠정역 성경(King James Version 17C)에 인용됨으로써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번역에 참여했던 캠브리지 대학의 부총장인 라이푸트(1602-75)는 지구의 창조연대를 기원전 3,928년 9월 17일로(1642), 아일랜드 아르마 교구의 어셔 주교(1581-1656)는 기원전 4004년 10월 3일로 추정하였다(1650).
이러한 연대가 너무 짧은 것 같다고 지레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추측보다는 사실의 확인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9세기의 옥스퍼드 운동을 주도했던 웨슬레(1703-91)도 창조신앙의 회복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개신교는 물론 카톨릭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자연과학계에서는 린네, 파스퇴르(1822-1895), 슈라이덴(1804-1882), 슈반(1810-1882), 버효(1821-1902), 멘델(1822-84) 등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과학자들이 창조론에 입각한 자연과학의 이론을 확립하였다. 오늘날의 생명과학 이론들은 대부분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수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린네(1707-1778)는 생물과 광물의 분류체계를 확립하였다. 그가 동식물을 이분법으로 분류한 것은 종간에 불변하는 독립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비록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의 방향으로 분류하였지만, 이것은 진화계열이 아닌 형태적 배열을 나타낸 것이었다.(Not phylogeny but taxonomy)
한편 프랑스의 해부학자인 큐비에(1769-1832)도 루터교도인 부인의 영향으로 종의 불변설을 주창하면서 라마르크(1744-1829)의 진화설과 대립하였다. 그리고 파스퇴르는 약관 39세의 나이에 <자연발생에 관한 시험적 검토>(1861)에서 "생명은 오직 생명으로부터 유래한다(life from life only)"는 생명속생설을 실험적으로 입증하여, 천여 년간 지속되어 온 생명의 기원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원 신부였던 멘델(1822-1884)은 완두콩과 분꽃을 이용한 실험으로 모계의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밝혔다. 그가 수립한 유전법칙은 다윈의 진화론과 대립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오늘의 생명과학은 그의 이론 위에 세워진 것이다. 독일의 슈라이덴, 슈반, 버효 등의 세포학자들도 "세포는 세포로부터 유래한다(cell from cell)"는 세포설(cell theory)을 확립하였다.
이처럼 오늘날의 생명과학 이론은 대부분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기초가 잡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이론들이 흡사 진화론을 증거라도 하는 양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성경적 창조론(biblical creationism)은 스키너의 제목설(title theory)로 정리되었다. 즉 창세기 1장 1절은 1장 전체의 제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창조론에서는 전통적으로 지구의 나이를 6천여 년에 문자적인 6일창조설을 신봉하고 있다. 그리고 창조과정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창 2;3f)라는 창세기의 내용은 무에서 유(時空物)의 창조(bara, creation)와 6일간 질서를 부여하는 만듦의 과정(asah, make)을 내포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창조론은 헵(1879-1950), 훽세마(1886-1965), 루터교의 피퍼(1852-1931) 및 안식교의 지질학 교사였던 프라이스 등으로 이어졌다. 프라이스의 영향을 받은 헨리 모리스는 창조론연구회(CRS:The Creation Research Society, 1963)와 창조과학연구소(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1973)를 설립하여 전세계적인 창조과학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켄 햄이 주도하는 AIG(Answers In Genesis)를 비롯하여 130여 개의 창조과학 단체들이 활동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1년 필립 존슨은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를 제창하고 진화론과 그 바탕이 되는 자연주의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윌리엄 뎀스키와 마이클 베히 등에 의해 더욱 체계화된 이 이론은 자연과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창조-진화논쟁을 사회과학의 무대로 확대시키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복음화성회(1980)에서의 창조론 강의를 계기로 탄생한 한국창조과학회(1981)가 창조과학관 건립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창조과학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 밖에 창조사학회(1997)와 창조신학회(1999)도 활발한 학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맺는 말
진화론은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세계관으로서 조립, 조작, 사기 사건으로 점철되어 왔다. 유인원의 발굴 역사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는 나치의 만행을 포함한 수많은 역사적 범죄사건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 앞에 진실한 참회나 반성 없이 그런 사건들을 학문의 발전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진화사상에 알게 모르게 오염된 많은 과학자들이 인류의 복지와 국익을 내세워 낙태수술과 인간 배아의 복제를 감행하려 하고 있다.
진화론의 사실 날조는 일본 동북구석기문화연구소의 후지무라(藤村新一) 부이사장이 자국의 고대사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가짜 유물로 역사를 조작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두 곳에서의 유물날조를 시인했지만(2000. 11) 일본고고학회에서는 20개소 이상의 날조사실을 확인(2001. 9)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역사가들은 과거는 용서하되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참회가 없는 용서가 진화론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비극적인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마저 갖게 한다. 세계사는 이처럼 국수주의, 종교, 이데올로기, 진화론 등의 영향으로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잘못된 역사는 반드시 정사로 복원되어야 한다.
특히 동물이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전제 아래 구성된 진화론적 시각의 문화사는 시급한 수정이 요구되고 있다.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기술이 전형적인 역사왜곡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창세기의 기록은 인간이 창조되면서 바로 목축과 농업이 시작되었고, 축성문화가 있었으며, 아담의 7대손 라멕 때에는 이미 지금과 같은 음악, 목축, 동철 문화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4-5천년 전에는 노아가 2만 톤이 넘는 방주를 건조하였고, 뒤이어 그 후손들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드높은 바벨탑을 건조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최초의 인류문명이 매우 뛰어난 것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죄의 유입으로 홍수심판을 받아 모든 문명이 일시에 바닷속으로 수장되어 소멸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에 다시 신구석기의 문화가 출현하여 공존하면서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성경적 암시이다. 이토록 구체적인 성경의 기록을 무슨 이유로 굳이 외면하면서 인간의 상상력으로 과거사를 추리해 내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마음속에 하나님을 멀리 하려는 인간의 죄성에 기인함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진화론에 각별한 경계를 기울여야 한다. 진화론이 기독교계로 침투하는 것은 매우 교묘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들이 처음부터 무신론적 유물론의 모습으로 도전해 왔다면 기독교계는 놀라 합심하여 대항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유신진화론의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사상을 흡사 성경에 대한 해석의 일환인 양 신학의 형태로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구미의 많은 교육기관들이 이러한 사상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기독교계마저 진화사상으로 물든다면 세계의 복음주의는 암울한 미래만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교계에는 현재 이러한 진화사상이 구미제국에서 공부하고 갓 돌아온 젊은 신학자들에 의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교계마저 유신진화론으로 물든다면 '진리의 기둥과 터'인 하나님의 교회는 머지 않아 설자리 마저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여기에 창조과학운동의 중요성이 있으며 모든 교회교육에 창조과학 커리큘럼을 필수적으로 삽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교계와 학계가 협력하여 유신진화사상의 침투에 대처해야 한다. 학계에서는 창조신앙에 입각한 이론의 정립과 진화론의 허구를 체계적으로 파헤쳐야 하며, 진화론자들을 비롯한 불순한 세력들에 의해 왜곡된 인류의 역사를 정사로 복원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아울러 신학계에서는 창조과학에 대한 신학적 정통성을 뒷받침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복음전파의 수단으로 우리 나라에 설립되었던 미션계통의 연세, 이화, 숭실 등의 대학과 배재, 경신, 오산, 이화, 정신, 대광 등의 고등학교들이 지금은 생물과 지구과학시간에 진화론에 입각한 내용만 열심히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반면, 창조과학은 거의 외면을 당하고 있다.
학교 당국의 행정책임자들이 현재의 상황을 이처럼 무관심으로 일관해도 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도대체 교육부에서는 무슨 권한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무신론적 유물론인 진화사상만 가르치도록 강요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계가 집단적으로 항의라도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아니면, 홈 스쿨링(home schooling)이라는 극단적인 처방까지도 검토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1)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verbal inspiration) : 성서의 한자 한자가 모두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주장.
출처 - 창조지, 제 131호 [2002. 5~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02
참고 : 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077|3426|3812|3244|3241|3041|3039|3037|3024|2864|2579|2359|2307|2114|2039|2016|1174|6107|6110
진화론과 현대 발전 이론
19세기 후반에 진화론은 영국의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스펜서(Herbort Spencer)의 노력에 의하여 좀 다른 형태로 출현하였다. 스펜서는 맬서스(Thomas Malthus)로부터 생각을 도출하여 다윈(Charles Darwin)과 같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개념을 수정하면서 그 자신의 사회진화론을 그 자체의 조직 구조에 근거를 두었다. 스펜서의 진화에 대한 정의는 고전이 되었다.
"진화는 사물의 통합이며 운동에 부수하는 소실(燒失)이다. 그 기간 동안에 사물은 불명확하고 앞뒤가 맞지 않은 동질(同質)로부터 명확하고 시종 일관하는 이질(異質)로 변화하고, 보유된 운동은 평행적인 변형을 하게 된다"(Timasheff, 1964: 32).
콩트는 진화가 주로 도덕적 발달과 관념의 발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으며, 스펜서는 진화가 사회구조의 심층적인 전문화와 분화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콩트는 진화가 인간의 중재에 의하여 유도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회의 과학적 지식은 도덕적 발전으로 귀착되며 계획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주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과 '사회위생학(social hygienics)'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반면에 스펜서는 '사회적 다원주의자(Social Darwinist)'라고 명명되었다. 그는 식물과 동물세계의 진화와 같이 '적자생존'의 원리가 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스펜서는 가난한 자들은 그들이 보다 덜 적합하기 때문에 가난하고, 반대로 부유한 자들은 부자가 될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스펜서 사상의 정치적 의미는 당시의 방임주의의 정치적 정책과 일치하였으며 현재의 철학적, 정치적 사상 속에도 존재하고 있다.
진화론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도 때로는 미미하지만 계속 보급되었는데 특히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Emile Durkheim)과 다른 사회학자들의 이론 속에 보급되었다. 진화라는 말을 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의 사회는 단순한 원시적 상태로부터 복잡한 현대적 상태로 발전한다는 논지를 포함시켰다.
사회발전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러한 일반 이론을 실제적으로 적용하면 이렇다. 가난하고 산업화되지 않은 사회는 진화의 원시적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고, 반면에 산업화된 국가는 보다 복잡하고 개화된 단계와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보다 발전되고 복잡한 사회는 원시적(덜 발전된)사회가 결과적으로 도달하게 될 목표점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모든 사회는(비록 그 사회가 발전된 형태일지라도) 계속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화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기간 동안에 진화론은 다른 나라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드는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식민지 사회의 노동력과 물적 자원을 자국의 산업화를 지원하는데 사용하는 반면에 식민지 사회는 전산업단계에 그대로 남아 있도록 하는데 활용되었다. 식민지 정부의 활동과 종교 전도사업은, 덜 개발된 사회의 사람들은 원시적이고 '퇴보적'이며 '미개'하므로 자신들의 사회가 횡단한 것과 같은 단일의 직선적인 진화의 길을 따라서 발전하도록 이들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는 가정에 기초를 두었다.
20세기초 '진화론은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사회적 행위의 특별한 측면과 어떤 사회 발전의 수준은 그 자체 기원(起源)의 견지에서만은 효과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비평가들은 주장하였다. 즉 한 사회의 역사적 진화의 계속성을 가정할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진화론에 대한 두번째의 비판은 그것이 사회적 변칙, 예를 들면 현대 산업화된 환경 속에서도 대단히 전통적인 종교의식(宗敎儀式)이 존재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항상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이론에 맞지 않는 불규칙한 형태를 과거의 시대착오적 자취로서 설명하는 반면에 어떤 학자들은 사회 내에서의 그들의 기능적 상호관계와 실용의 측면에서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진화주의에 대한 세 번째 비평은 점차로 지지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단일의 직선적인 성격에 관한 가정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사회주의 국가의 출현으로 명백해졌다. 많은 비평가들은 진화론이 인과율(因果律)의 메커니즘과 변화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즉 이 이론은 사회의 상이한 진화단계는 기술할 수 있으나 한 사회가 한 단계로부터 다음 단계로 어떻게 이행되어 가는지에 관해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필연적인 진보에 관한 가정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들은 사회가 발전해감은 물론 쇠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었던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130호 [2002. 3~4]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96
참고 :
진화론의 댐에 생긴 틈새가 넓어지고 있다.
(Cracks are widening in Evolution's Dam)
지난 수십년 동안 공립학교 교실은 진화론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교과서에 있는 진화론 편향의 수많은 주장들이 허위라는 것과 심지어 어떤 것들은 새빨간 사기라는 것이 알려진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총체적 통제를 여전히 만끽하고 있습니다. 주(州) 교육법과 전국 교습(敎習)기준은 기원에 관한 과학적 이론을 다룸에 있어서 진화론에 대체할 수 있는 이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만을 배타적으로 교수하라는 지령을 내립니다. 진화론에 부합하지 않는 증거들은 교실 안에 도입되어서는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진화론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동료 학생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든가 등급사정 때 핍박받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사태가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진화론의 댐에 틈새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육계에 대한 진화론의 목조르기도 머지않아 곧 손을 놓고야 말 것입니다.
하지만 성급한 결론은 금물입니다. 성경적 창조이론은 공립학교의 과학수업에서 진화론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찰 수는 없을 것입니다. 법정은 공립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제어의 목소리가 단호합니다. 아무리 과거에 오랜 기간동안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쳤지만, 아무리 미국의 머릿돌을 놓은 선조들과 나라의 교육체계가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치기를 소망하였지만, 오늘날의 기상조건 하에서는 창조론이 다시는 학교에 도입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본래의 목적을 손상할 뿐입니다.
그러나 진화론도 또한 종교라는데 주목하여야합니다! 이 글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세속적인 글에서도 그 사실이 극명하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진화론이라는 종교도 또한 학교에서 가르쳐서는 안 되기는 마찬가집니다. 미국의 과학교실에서는 다시 과학을 다루어야 합니다. 역사를 다루어도 안 되고, 과거에 대한 철학적(종교적) 이념을 다루어도 안 됩니다. 진화론의 기원의 이념 ━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주제를 과학교실에서 다루지 말아야 합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동물적 본능으로부터 유발된다는 진화론의 도덕관이나, 인간생명을 천대하는 진화론의 인생관도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우리 학교를 송두리째 틀어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의 세계관도 큰 부분은 진화론의 영향하에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용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화론의 댐에 생긴 주요 틈새는 1999년 8월에 드러났습니다. 캔자스 주 교육위원회가 교육계의 '엘리트' 한 분으로부터 건네 받은 추천내용을 좇아 내놓은 새로운 교수안내 지침을 거부하는 투표를 하였던 때가 그 때입니다. 그 교수안내 지침 내용은 지난날의 것보다 오히려 더 진화론적이었습니다. 여러 명의 교수들과 교육자들, 그리고 관련된 시민들은 학교 이사진과 함께 새로운 안내지침을 제기하였던 것입니다. 그 새로운 안내지침이란 것은 학교 교습시간에 찬성과 반대의 증거를 같이 제기하여도 좋다는 허락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비평적 사고의 능력을 고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안내지침이 채택되어 마침내 전 세계의 진화론자들로부터 빗발치는 비평을 유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곧 '전문가'들이 캔자스 주로 쏟아져 들어와서 진화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사들을 학교 이사회에서 제거할 것을 극구 주장하였습니다. 외부로부터 막대한 자금이 그 안내지침을 반대하는 이사들의 금고 속으로 흘러 들어갔던 것입니다. 뒤이어 11월에 진화론자들은 이사회의 통제를 탈환하고 결국 결정을 뒤집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캔자스 주의 학교들은 예전보다 더 진화론적으로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진화론의 댐에 틈새가 생겨 누수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 누수 틈새가 임시변통으로 땜질이 됐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뒤이어 다른 주와 다른 학교 이사회들이 과학교육을 개선하고 과학시간에 종교교습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심사숙고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이래로 펜실베이니아주, 서 버지니아주, 루이지애나주, 아칸서스주, 미시간주, 캘리포니아주, 인디아나주, 워싱턴주, 앨라배마주, 코네티컷주, 하와이주, 그리고 아마 그 밖에 다른 주들에서도 중대한 노력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진화론자들의 패배가 결정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진화론을 옹호하기 위하여 집결한 열성분자들은 언제나 똑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창조론자들의 조직과 창조론에 대한 선교와 과학적 탐구는 계속 활기를 띠어 갔습니다. 특히 창조과학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는 진화론의 과학적 파산상태에 관해서 계속 사람들을 교양하면서 창조론을 강화해나갔습니다. ICR는 어떤 정치적인 조직체가 아님은 물론이고 학교 이사회에 대해 로비활동 따위는 더더구나 하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후보를 후원하려는 의도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가능할 때면 정보를 제공하고, 또 자문에 응합니다. 캔자스 주에서 그렇게 하였으며, 또 많은 주에서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지 법제화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시민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주의적인 진화론에 반대하는 이론적 근거들이 엄청나게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덜 '종교적'으로 개선된 교육을 원하는 욕구도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은 우리가 노력한 소산입니다.
물론 이 사역은 창조론자 조직이 혼자서 한 것이 아닙니다. 최근 이 일에 주요하게 참여한 사역자는 '지적 설계 (Intelligent Design)' 운동입니다. 이 단체는 특별히 고명한 과학자나 철학자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기독교운동 단체라는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단호하게 반-자연주의자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들은 진화론이 의지하고 있는 종교 색을 띤 토대와 파탄 난 주장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많은 측면에서 이들의 이론은 주도면밀하게 비종교적이며, 또 훌륭한 과학교습을 창설하고 있기 때문에 공립학교 교습에 훌륭하게 부합합니다.
부가해서 말씀드리면, ICR는 지적 디자인 운동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들은 공공연하게 크리스천임을 천명하는 과학자들입니다. 우리는 자연주의적 진화론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창조사역을 지지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창조주이신 성경의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하는 인격적인 친교를 옹호합니다. 우리는 ID (지적 설계) 단체의 과업을 지지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과업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비록 어느 누가 자연 속에서 디자인의 증거를 발견한다 해도, 그한테는 여전히 구주가 필요할 것입니다. ICR과 ID의 십자군운동 (개혁운동)은 하나같이 효과적이고도 중요합니다.
2002년 1월에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교육 법안에 서명하였습니다. 그 법안은 학생들은 생물학적 진화론을 지지하지 않는 증거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증거들을 배울 수 있어야한다는 특별 지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학생들은 이런 사안들에 관하여 어느 한 쪽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지 않고 비평적 사고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 사고방법을 가르쳐야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법안에 대해서는 Acts & Facts에 실린 본 사안의 Back to Genesis 장에서 토론되어 있습니다).
오하이오 주가 이 새로운 연방법의 적용을 제일 먼저 기도하였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예전의 그 진화론의 부하들은 오하이오 주로 몰려와서 그 진저리나는 주장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까지도 그 어떤 결론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이제 이 사안의 진실한 본질을 인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진화론자들의 주장에서 그들의 열기와 거친 호통을 여실히 알았습니다. 그들은 진화론자들이 전문가인 체하는 말속에 진실을 갈파하였던 것입니다. 지도급 진화론자들은 모두가 무신론자들이든가 아니면 무신론자인체 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미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사람들은 과학이라는 허울을 쓴 종교를 식상하고 있음은 물론, 보다 더 훌륭한 그 무엇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화론 사상과 가정과 사회의 도덕에 끼친 진화론의 악영향을 비난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오하이오주의 창조론자들에게 불리하게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창조론자들은 실패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화론의 댐은 틈새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사태는 결코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 Dr. Morris is President of IC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president/prz-0205.htm
출처 - ICR President's Column, May 200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03
참고 :
법과 규범은 진화하는가?
(Do Laws and Standard Evolve?)
모든 지적, 또는 문화적 투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가설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말의 뜻을 명확히 정의하는 자는 승리한다. 진화론과 성경의 창조론과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화석이나 유인원 차원 이상에 것에 관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 논쟁이 관여하는 기본적인 전제들에 비추어 인생, 법률,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련된 질문에 대답한다. 가장 중요한 논쟁의 주제는 지배권(Lordship)에 관한 싸움이다. 즉, 누가 주인인가? … 하나님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금세기(20C)의 대부분을 통하여 다윈의 진화론이 문화 투쟁에서 승리자로 부상하였다. 진화론은 미국의 생물학 교과서를 재구성하는 일을 훨씬 넘는 성과를 이룩하여, 쟁점 사항인 자연에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뱀이 하와에게 던졌던 질문,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냐?” 바로 그 질문을 다윈이 현대인들에게 물으면서 선언하기를, 권위의 궁극적인 원천은 인간이라고 부추겼다.
이로 인해서 초래된 결과는 가히 파괴적이었다. 기독교를 공공의 장에서 배제하는 일, 모태 안에 있는 9개월 짜리 제 자식을 죽이는 일, 그리고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공공연하게 토론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타락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물론 이런 것들을 승인하지 않지만, 일단 수세에 몰리면 그들도 도덕이 정치의 본령이 아니라는 항의에 순순히 침묵하고 만다.
그와 같은 논쟁에 사회가 취할 대응방법은 다음의 3 가지 원초적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과 직결된다. (1) 인간은 도덕률을 입법화할 수 있는가? (2) 가능하다면, 어떤 규범에 따라서 입법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3) 그와 같은 규범은 진화하는가? 이 질문들이 그것이다. 이 질문들 하나하나에 대한 대답은 기원의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 여하에 따라서 결정된다. 법률은 도덕적으로 중립이며, 인간 이성은 진리의 전권 결정자이다, 규범은 문화의 성숙도에 따라서 변한다는 화두를 가지고 다윈주의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을 설파하여 문화에 대한 성경적 기독교의 억제력을 무력화 시켰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진화론의 전제들을 정식으로 수용하기를 거부하지만, 그들은 그 이론이 근거하는 가정들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였다.
사람은 도덕률을 법제화할 수 있는가?
도덕률이 함축되어 있지 않는 법은 법제화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실질적인 질문은 과연 인간은 도덕률을 법제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도덕률의 어떤 체계를 법제화할 것인가에 있다. 모든 법률은 명시적으로 도덕적이든가, 아니면 어떤 확실한 도덕적 개념을 지향하는 절차이다. 심지어 교통 신호등을 규제하는 법규까지도 도덕률을 내포한다. 교통신호등의 목적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게 하여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교통신호등도 다음의 명제들을 도덕적 개념으로 전제한다. 즉, (a) 질서는 선이고 혼돈은 악이다, (b) 재산권은 존중되어야한다, (c) 생명은 보전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 그것이다. 이 하나 하나의 원칙은 기원에 대한 창세기의 규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즉, (a) 당신의 사역을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라고 선언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무질서의 창시자가 아니다(고린도전서 14:33), (b) 그는 사람으로 땅을 다스리게 하시며, 피조물에 질서를 마련하게 하사 재산권의 기초를 놓으셨다 (창세기 1:26), 그리고 (c) 그는 생명의 신성함을 합법적인 정부의 제1 원리로 정하셨다 (창세기 9:5, 6). 이런 명제들이 하찮은 신호등에도 그 기조를 이루는 무언의 도덕적 전제들이다.
물론 법률은 사람을 구원할 수도 죄를 씻을 수도 없다. 하나님은 민법으로 악행을 억제하려 하시지, 영혼구원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없다 (로마서 13:4).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정법을 통한 인간구원을 주장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이다. 인간의 문제는 상황적인 것이지 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그 해결을 정부 차원에서의 계획이나 교육개선으로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 그런 세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국가가 참 구세주로 존경받을 것임은 당연하다 하겠다.
법제화가 준거하는 규범은 무엇인가?
인간이 통치에 적용할 수 있는 규범은 단지 두 가지뿐이다. 즉, 하나님의 법이 아니면 인간의 의지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두 규범들 사이에서 중간적인 바탕은 없다고 이해했다. 그들은 창조주에 대한 충성을 선언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초월적인 원리로서 법질서를 설정하셨음을 인정하였다. 우리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고유한 권한을 부여받았음을 자명한 진리로 확신한다.
이와 같이 선언하면서 독립선언서는 창세기의 기원설에 견고하게 근거하고 있는 서유럽의 1000년에 걸친 법의 전통을 미국의 헌장에 구현하였다. 수십년 동안 미국의 법학도들은 윌리엄 블랙스톤 경(Sir William Blackstone)으로부터 법 이론의 기초를 창세기에서 배워왔다. 블랙스톤의 영국 법률에 대한 논평(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은 미국 법학도의 주요 교재였다. 그의 논평은 법 연구의 접근방법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법이었다.
1. 블랙스톤 전통 (The Blackstone Tradition)
블랙스톤은 법에 대한 총체적 분석의 근거를 일반계시(자연)에 대한 특별계시(성경)의 우월성 위에, 문자적 24 시간으로 된 6 일간의 창조주간 위에, 문자적 아담과 그의 원죄가 인간이성의 타락을 결과한 이유 위에, 그리고 재산권의 법률적 근거로 온 땅을 다스리게 허락하신(Dominion Mandate) 창세기의 기록 위에 세웠던 것이다. 블랙스톤은 성경의 권위를 사회의 유일한 합법적 근거로 단정하고 법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진화한다는 사상을 반박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은 법을 만들지 않는다. 그 대신에 사람은 법을 찾아낸다. 법은 대다수의 의지 이상의 그 무엇에 의해 정당화되어야만 한다. 법은 영원한 의(義)의 기초 위에 서야만 한다. … 이에서 정해진 원리를 우리는 계시된 법률이라, 또는 신성한 법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법률은 성경 속에서만 발견된다. … 그리고 만약에 우리 이성이 우리의 최초의 조상이 죄를 범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정욕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은 상태로 있고, 편견에 의해 흐려지지 않은 상태로 있고, 질병이나 방종에 의해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면, 우리 과업은 쉬울 것이다. … 그러나 사람마다 경험하는 자기 자신은 이에 역행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자기 이성이 타락하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
계약, 재산권, 사범(私犯, 개인적 불법행위), 그리고 증거에 관한 기본적 관습법의 이론의 기원은 창세기의 처음 열한 장(章)들 안에 들어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을 법의 부여자로(창세기 2:17) 명시하고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의(義)와 자비의 의미를(창세기 3:15), 최초의 관례로서의 결혼의 취지를(창세기 2:21), 범죄자에게 속죄와 복원의 필요성을 (창세기 2:17, 3:17, 9:6), 성약(聖約)의 뜻을(창세기 9:12, 13, 15:18), 국가의 살인자 사형집행 관할권을(창세기 9:6), 가족의 자손양육권을(창세기 1;28), 가족에 대한 가장의 지휘권을(창세기 3:16, 18:19),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창세기 1:31), 등등을 제정하신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법에 대한 블랙스톤의 명백한 창조주의적 접근의 엄청난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물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무시되고 천대받았다. 미국변호사협회 저널(American Bar Association Journal)의 1978년 7월 판에서 역사학자 헨리 스틸 코매거(Henry Steele Commager)는 벌어진 이 일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진화의 법으로 대체해버렸다.'
2. 법에 대한 '과학적' 접근 (The Scientific Approach to Law)
”19세기 한 세기 내내 진화론의 영향 하에서 역사, 법률, 그리고 정치경제와 같은 구시대의 학문들에는 철저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인류학, 사회심리학, 비교신학, 범죄학, 사회지리와 같은 새로운 학문들이 대두하였다 …” (Julian Huxley).
1000년을 이어온 크리스천 법의 전통은 1870년에 들어와 맥이 끊겼다. 그 해 하버드 법과대학 신임학장 크리스토프 콜럼버스 랑델(Christopher Columbus Langdell)은 법학교육에 진화론적 접근을 시작하였다. 특히 법에서 창세기적 근본을 버리고 다윈주의에 뿌리를 대고 있는 철학을 취하였던 것이다.
랑델은 관습법에서 기독교 원리의 전통적 교수법을 포기하고 새로운 '케이스 북 방법'을 택하였다. 케이스 북 방법은 꾸준히 진화하는 판사들의 의견들을 통하여 법을 찾아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최초로 출판된 그의 '케이스 북'인 Cases on Contrasts의 서문에서 랑델은 과학과 법률, 그리고 동일과정설과의 사이에 개재하는 상호관계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과학으로 간주되는 법은, … 현재의 상태로 되기까지는 그 진전이 완만하였다. 환언하면, 법은 하나의 성장하는 생명체로서 많은 경우 신장하는데 몇 세기를 걸리기 일쑤였다. 법의 성장과정은 대체로 일련의 사건 사례들(cases)을 통하여 추적해볼 수 있다. 그런데 법 이론이 구현된 사건사례들을 연구하는 것이 법 이론을 통달하는데 유일한 방법이 아닌 이상, 많은 경우 가장 짧은 사례들의 연구가 최선의 방법이라 하겠다.”
법학자 허브 티투스(Herb Titus)는 설명하기를, ”랑델은 사건사례들은 법 이론들과 원리들의 '원천'이라고 믿었다. 사건사례는 법규를 탄생시켰다. 탄생된 법규는 완만하게나마 일련의 사건사례들을 통하여서 완숙한 법의 원리로 진화한 것이다”라고 했다. 랑델은 한 세기를 풍미하던 전통을 세웠다. 그 전통에 따라서 판관들은 스스로를 선재(先在)법을 해석할 의무에서 해방되었다고 내다봤다. 그들은 이제는 무슨 법을 적용할 것인가를 자력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랑델은 ”무슨 규범에 따라서 사람은 법을 제정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인간의 자유이성을 지목하면서 대답에 대신하였던 것이다.
법률은 진화하는가? (Do laws evolve?)
랑델의 법의 진화설은 1765년에 블랙스톤의 Commentaries가 출판된 이후 유일하게 미국의 법률에 크게 영향을 미친 이론이었다. 케이스 북 방법이 출판된 이후 여러 해를 통하여 학자들과 법학자들은 진화론을 미국의 법체계에 통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랑델의 주된 영향은 법률 교육에 분명하게 다윈주의 방법론을 도입하는 일이었으나, 법 이론에 진화론적 인본주의 형상을 갖추는 과업은 그의 후배 법학도들과 지적 후계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미합중국 대법원 판사 올리버 웬델 홈즈 2세(Oliver Wendell Holmes Jr.)는 누가 뭐라고 해도 20세기를 통틀어 최대의 영향력이 발휘하였던 독보적 법학자였다. 그의 묵중한 논문, The Common Law는 블랙스톤의 Commentaries를 법학도들의 입문교재의 자리에서 밀어내고 대신 들어앉았다. 홈즈는 "법의 생명은 논리가 아니고 경험"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법원은 법의 진화를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옳고 그름은 절대적 의미로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판관들은 어떤 주어진 시점에서 진화하는 사회에 가장 적절한 규범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하여야만 한다고 설파하였던 것이다.
30여 년 간 홈즈는 그의 명백한 진화론적 편견을 법정에 도입하였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사람에게 개코원숭이나 한 톨의 모래알과 다른 의미를 부여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다.”
지조 굳은 진화론자 홈즈는 '인간 생명을 신성시하는 것은 관할지역 밖에서는 효력이 없는 순전히 제한적인 이상에 불과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Buck v. Bell에서 획기적인 결심을 피력하였다. 즉, 그는 버지니아 주정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간주한 사람들에게 강제로 거세를 명령하는 우생학 법을 공포하였을 때 이를 지지 격려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퇴보한 후손들이 범죄로 사형집행 되기를 기다리는 대신에, 또는 그들이 기아로 저능인간으로 영락하게 내버려두는 대신에, 사회가 나서서 명시적으로 적절치 못한 자들이 후손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임을 알아야 한다.”
홈즈와 그의 동료들은 임신중절의 합법화, 이유 없는 이혼, 동성결혼의 입법화, 그리고 헌법입안자들의 이상을 거부하는 헌법해석, 이런 목표를 위한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법정은 헌법을 입안자들이 의도하였던 의미에 비추어 해석하여야 한다는 개념을 거부하고 진화론적 기준을 헌법해석에 적용하고 있다.
결론 (Conclusion)
악(惡)이 문화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있어서 진화론이 광범위한 호응을 얻는 일까지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론의 배후에 있는 가정들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과의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은 그것이 주도권의 싸움이기 때문에 포괄적이다. 법의 원천은 언제나 문명의 참 주인이어야 한다. 법의 수여자는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규범은 절대로 진화할 수 없다(히브리서 13:8). 인간을 위한 주님의 도덕법은 그것이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불변의 속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결코 변할 수 없다. 이 원리들의 특정한 적용은 문화와 문화와의 사이에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원리 그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도덕과 정치의 분리, 아동 권리, 과다인구, 환경주의, 동성결혼, 교육, 극형, 형법체계의 목적, 이런 문제들에 관한 논쟁은 창세기에 근거하여 토론을 펼쳐야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창세기 말씀으로 무장하고서만이 권위를 가지고 오늘날의 문제들을 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Douglas W. Phillips, Esq., is an attorney and adjunct professor of apologetics at IC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03.htm
출처 - ICR, Impact No. 303, 199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0
참고 :
냉혹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에 대한 다윈의 영향
: 카네기, 록펠러 등의 자본가들과 진화론
(Darwin's Influence on Ruthless Laissez Faire Capitalism)
개요 (Abstract)
몇몇 지도자적 위치의 '강도 귀족(robber baron, 착취로 축재한 19C 자본가)'들에 대한 글들을 검토하여 보면, 그들의 많은 수가 강자가 궁극적으로 약자를 지배한다는 다윈 사상의 영향을 극명하게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윈 사상을 신봉하였던 자본가들은 결국 강자의 약자 지배가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완전히 자연스럽다고 믿었기 때문에, 무자비한(때로는 비윤리적이며 불법적인) 상거래 관행이 과학적으로도 정당화된다고 확신하였다. 다시 말해서 다윈주의가 표방하는 관념과 결론은 '역사 전개'에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확신한 그들은 무자비한 상거래관행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론 (Introduction)
다윈의 세계관은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의 발전뿐만 아니라, 1800년대와 1900년대에 번창한 냉혹한 자본주의의 융성에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Morris and Morris, 1996). 자본주의에 따라다니는 오명의 핵심은 남은 중요하지 않다는 극단적 개인주의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약한' 회사를 착취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동시에 타당한 상행위라는 그들의 확신에서 연유되었다. 소위 robber baron들은 그들의 행동이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되는 불가피한 역사의 소산이라고 추단(推斷)하였던 것이다.(Josephson, 1934). 그들 중 크리스천으로 성장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교리를 거부하든가, 사회주의적 다윈주의를 포용하기 위하여 기독교 교리를 수정하려 하였다. 겔트루드 힘멜파브(Gertrude Himmelfarb)는 다윈사상이 영국에서 수용된 데는 부분적으로나마 그것이 어떤 특수층의 탐욕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르기를, 자연선택 이론이 영국 땅에서 발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이론이야말로 냉엄한 영국의 국가이념이 필요로 하는 원자론적(原子論的)이며, 이기적(利己的)인 의식구조에 기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서 다윈은 기본 단위는 개인이며, 기본 본능은 이기심이며, 기본 활동은 투쟁이라고, 사뭇 유순한 척 말하였다. 스펭글러(Spengler)는 기원을 '생물학에 대한 경제학의 적용' 이라고 기술하면서, 그것은 영국에서 빅토리아여왕 시대에 풍미하던 자본주의 윤리와 맨체스터 경제학의 '탐욕 철학'이었기 때문에…영국 공장의…자연선택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풍기고 있다(1962, p. 418)고 지적했다.”
라셀(Rachels)은 자본가들이 생물학의 '적자생존' 이론을 "살인적 경쟁을 승인하는 경제계의 윤리적 권유"로 해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였다.(1990, p. 63, see also Hsu, 1986, p. 10). 쥴리안 헉슬리(Julian Huxley)와 키틀웰(H.B.D. Kittlewell)은 다윈주의 사회학은 ”자유기업에 영광을 돌린 결과 경제사회를 무자비한 상행위와 전쟁, 비과학적인 우생학과 인종주의로 인도하여 마침내 히틀러와 나치의 이념을 낳았다”고 결론지었다.(헉슬리와 키틀웰에서, 1965, p. 81).
냉혹한 자본주의 (Ruthless Capitalism)
다윈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착취뿐만 아니라,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와 존 록펠러 (John D. Rockefeller)와 같은 독점 자본가들의 무자비한 상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켄네스 슈(Kenneth Hsü) (1986, p. 534)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다윈주의는 영국과 미국에서 경쟁적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상행위를 변호하는데 이용되었다.”
스탈린, 마르크스, 레닌, 그리고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카네기(Carnegie)도 한 때는 기독교 교리를 믿었으나, 결국에는 포기하고 다윈주의를 수용한 후, 저 유명한 다윈주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와 친밀한 친구관계를 유지했다. 카네기는 자서전에서 친구 몇 사람과 함께 기독교 교리에 회의를 품게 되었을 때를 이렇게 회고하였다.
”… 기독교 교리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요소, 그리고 대속을 통한 인간구원의 계획과 그 위에 세워진 온갖 조직구조까지도 포함하여, 내가 회의를 품게 되었을 때, 다윈과 스펜서의 저작물을 만났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 나는 빛이 홍수와 같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으며, 모든 것이 분명하게 밝아지던 경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신학과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진화의 진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더 좋게 자라가는 것은 다 좋은 것이다' 라는 격언이 내 좌우명이 되었으며, 나의 진정한 위안의 원천이 되었다.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지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급한 모습에서부터 고급한 모습으로 높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완성을 지향한 행진을 가로막는 어떤 막힘도 상상할 수 없다” (1920, p. 327).
아래 인용된 카네기의 말은 그의 지론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경쟁의 법은 그것이 선의냐 악의냐 와는 상관없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경쟁의 대체 개념은 아직 발견된바 없다. 법이 때로는 개인한테는 가혹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것이 경주의 최선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모든 삶의 현장에서 적자의 생존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Hsu의 글을 인용함, 1986, p. 10).
기록에 의하면, 존 록펠러는 언젠가 한 번 ”대기업의 성장은 단지 적자생존의 결과다 … 자연의 법칙이 성취됐을 따름이라는 말이다 … ”라고 말했다.(Ghent, 1902, p. 29). 명목상의 크리스천 명사로 행세하던 록펠러 가문의 사람들은 진화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다 못해 성경 앞부분의 책들을 신화라고 치부해버렸다.(Taylor, 1991, p. 386). 어떤 박애주의자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 Bryan, 스코프스 재판에서 창조론을 변호함)의 이름을 딴 대학의 설립을 위해 1만 달러의 희사를 약속하였을 때, 존 록펠러 2세는 이에 응수하기 위해 바로 그 날 공개적인 反창조주의 대학교인 시카고 신학교(Chicago Divinity School)에 100만 불을 기부하였다.(Larson, 1997, p. 183). Morris and Morris는 록펠러의 철학이 철도계의 거물인 제임즈 힐(James Hill) 뿐만 아니라, 아마도 당시의 대부분의 자본가들에 의해서 수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1996, p. 87). 모리스가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수많은 현대의 진화론자들도
”…사회주의적 진화론자들의 극단적인 경향을 한탄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다. 즉, 다윈주의야말로 사업계와 정치계에 고루 팽배하던 무자비한 경쟁에 과학적인 재가를 허락해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19C의 자유방임주의적인 자본가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가 있었다.” (p. 83).
이런 암시뿐만 아니라 Morris and Morris는 다시 이렇게 지적한다. 즉, 좌익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냉정한 극우 자본가들도 한 가지로 反창조론자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상호간에 싸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이 창조론에 대항할 때만은 공동전선을 펼친다 … (p. 82). 기독교를 포기하지 않는 자본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다윈주의에 대한 신념과 혼합하려 한다. 그 결과 그들의 신앙은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절충 형태가 되어버렸다. 비록 대부분의 미국 사업가들이 짐작컨대 의식화된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자는 아닐지라도,
”… 그들은 자신들이 거둔 것과 같은 성공은 상대적으로 덜 성공적인 경쟁자들을 유린하여 얻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근면과 덕행의 소산이라고 정의하였다. 어쨌거나 그들은 결국 스스로를 크리스천으로 인정하였으며, '너희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켰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은 불가능한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부라는 신을 동시에 섬기려하였지만, 그들은 기독교 교리를 다윈의 생존투쟁과 적자생존 이념에 순응시키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동업자들과 결코 경제전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의식하고 있었다.”(Oldroyd, 1980, p. 216).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다윈의 중요한 기여를 기록한 몇 가지 연구발표가 있다. 무연탄 파업연대(Anthracite Coal Strike Commission) (1902-1903)의 청문회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 석탄 트러스트는 '적자생존' 이론에 개인의 자유와 권한을 가미하여 다윈의 이념을 설교하였다'(Doukas, 1997, P.367). 이 연구는 '미국의 국가 이념 안에서 엿볼 수 있는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의 인기를 법인자본주의의 쇄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Douka, 1997, p. 367)라고 하였다.
로젠탈(Rosenthal, 1997)은 역사적으로 보아 생물속생설(생물은 생물에서만 발생한다는 이론)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전쟁, 그리고 자본주의들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들을 수용하는 태도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생물발생 이론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어떤 생물발생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생물속생설은 사업/사회에서의 경쟁, 남성우월주의, 공격적인 사회현상, 영토주도권 싸움, 외국인을 싫어함, 그리고 심지어 애국심, 이를 위한 전쟁, 그리고 인종간의 대량학살까지도 유전학적인 근거를 가진 인간의 보편적 특질이라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발생 이론은 미국사회학 역사의 대부분을 통하여 두드러진 위치를 점하여왔다. 로젠탈(Rosenthal)은 쿨리(Cooley)나 소로킨(Sorokin)나, 섬너(Sumner), 그리고 로스(Ross)는 물론 심지어 파크(Park)까지도 지나날 반동적 사회정책을 권장하던 생물학적 인종주의 이론에 추파를 던지고 충실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오늘날 비즈니스에 집요하게 남아있는 다윈사상
비즈니스에 적용되고 있는 다윈주의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곁에 팽배하다. 로버트 블레이크(Robert Blake)는 1996년에 출판한 Corporate Darwinism의 공동저자들과 더불어 현대적 다윈주의를 비즈니스에 적용하려 기도하였다. 그들은 비즈니스가 매우 예측 가능한 방법으로 진화할 뿐만 아니라, 특히 인간진화의 단계들과 매우 흡사한 단계들을 거치어 진화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같은 '비즈니스 진화'는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하였다. 즉 비즈니스는 경쟁상대를 먹든가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경쟁자에게 먹힌다는 다윈의 원리를 따랐던 것이다.
요약 (Summary)
다윈사상이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의 발전과 성장에만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이 아니고,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는 말로 훌륭하게 설명되고 있는바와 같이, 자본주의가 무자비한 형태로 성장하고 발전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만약에 다윈이 그의 진화론을 발전시키지 않았어도 과연 냉정한 자본주의가 실제로 꽃을 피울 수 있을까에 대해 결정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만약에 카네기나 록펠러, 그리고 다른 자본가들이 어린 시절에 품고 있던 순수한 유태교적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계속 포용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다윈주의자가 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1800년대 후반에서와 1900년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무자비한 이념이 되지 않았을 것은 명백하다. Morris and Morrs(p. 84)가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다윈이 출현하기 오래 전에 이미 다른 동기들(탐욕이나 야망, 그리고 심지어 일종의 선교사적 열정까지 포함된 동기들)이 포악하고 무원칙한 robber baron 상거래 행위를 자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다윈주의는 자본주의에게 일종의 외양상의 과학적인 합리성을 부여하여 주었기 때문에, 지난 세기(20세기)의 초반에 자본주의가 너무도 두드러지게 극단으로 흐르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Acknowledgements: I want to thank Bert Thompson, Ph.D. Wayne Frair, Ph. D., and John Woodmorapper, M.A., for their comments on an earlier draft of this article.
References
Blake, Robert, Warren Avis and Jane Mouton. 1966. Corporate Darwinism. Houston, Tx: Gulf Pub.
Caarnegie, Andrew. 1920. Autobiography of Andrew Carnefie, ed. John C. Van Dyke. 1986; reprint, Boston: Northeastern Uninversity Press.
Doukas, Dimitra. 1997. 'Corporate Capitalism on Trial: The hearings of the Anthracite Coal Strike Commission, 1902-1903. 'Identities: Global Studies in Culture and Power, 3(3): 367-398.
Ghent, William. 1902. Our Benevolent Feudalism. New York: Macmillan.
Himmelfarb, Gertrude. 1962. Darwin and the Darwinian Revolution. New York : W.W. Norton.
Hsu, Kenneth. June 1986. 'Darwin's Three Mistakes,' Gerlogy, (vol. 14), p. 532-534.
Hsu, Kenneth. 1986. The Great Dying:Cosmic Catastrophe, Dinosaurs and the Theory of Evolution. NN. Harcourt, Brace, Jovanovich.
Huxley, Julian and H.B.D. Kittlewell. 1965. Charles Darwin and His world. New York: Viking Press.
Josephson, Matthew. 1934. The Robber Barons. New York: Harcourt and Brace.
Larson, Edward J. 1997. Summer for the Gods: The Scopes Trial and America's
Continuing Debate Over Science and Religion. New York: Basic Books.
Oldroyd, D.R. 1980. Darwinian Impacts. Atlantic Highlands, NJ: Humanities Press.
Oxford University Press.
Rosenthal, Steven J. 1977. Sociobiology: New Synthesis or Old Ideoloy? American Sociological Association.
Taylor, Ian. T. 1991. In the Minds of Men: Darwin and the New World Ordr. Minneapolos: TFE Publishing.
Jerry Bergman, Ph.D., is on the Biology faculty at Northwest State Sollege in Ohio.
*참조 : Darwin’s critical influence on the ruthless extremes of capital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60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454
출처 - ICR, Impact No. 333,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2
참고 :
진화론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다.
(Evolution Is Religion - Not Science)
필자는 최근 2편의 Impact 글에서1, 2 진화론자들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무기입자들로부터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생각이 과학적 이론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얘기한 바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나 과거 화석의 기록에서도 진화적인 전이형태들이 관찰되지 않았고, 보편적 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열역학 제2법칙)'은 그러한 것들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창조과학자들과의 과학적 논쟁에서 항상 패배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진화론자들은 과학적 논쟁의 기회는 갖으려하지 않고 창조론자들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만을 가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창조론자들과의 공식적인 논쟁은 피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논쟁들이 득이 되지 않고 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여전히 창조론자들의 메시지를 반박할 필요가 있다.” 3
왜 그들은 창조론자들의 주장에 그토록 반대해야 하는가? 왜 그들은 철저한 반창조론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진화론자들이 진화를 믿는 것은 그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억지로라도 창조주가 없이 모든 생명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그러므로 무신론 종교인 셈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인본주의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리고 신세대 진화론자들은 범신론의 한 종류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을 의미한다. 무신론이든지 인본주의(혹은 범신론)든지 간에, 그 목적은 우주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구성물에 대한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에 있어서 신이라는 존재를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인본주의 철학의 핵심은 자연주의이다. 자연세계의 일들은 그들 자체의 원리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며, 신이나 초자연적인 조절과 안내 따위는 없으며, 우리 인류는 그러한 과정 중의 산물이다. 초기 인본주의 운동의 철학자들이 인본주의나 자연주의 중 어느 용어가 자신들의 입장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토론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두 개념은 상호보완적이며, 분리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4
자연주의와 인본주의는 일반적으로 과학이나 생명의 유지, 우주 등에서 신의 존재를 배제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이 분명 무신론인 것은 분명하다. 무신론은 유신론이 아닌 이상 하나의 종교인 셈이다! 광신적인 무신론 진화론자인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조차도 무신론이 진실인 것은 증명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우리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5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믿어야만 하고, 진화론을 종교로 만들었다. 진화론의 무신론적 성향은 허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진화론적 생각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주장되고 있다. 예를 들면 Ernst Mayr는 이렇게 말했다.
”다윈주의는 모든 초자연적 현상이나 원인들을 거부한다”6
캔사스 주립대의 한 생물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데이터가 지적 설계자를 설명한다해도, 그러한 가설은 자연주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에서부터 배제된다.”7
매우 영향력 있는 진화론자인 하버드 대학의 굴드(Stephen Jay Gould)와 윌슨(Edward Wilson), 영국의 도킨스(Richard Dawkins), 코넬 대학의 프로바인(William Provine), 수많은 다른 진화론자들이 무신론자임은 과학계에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심지어 저명한 과학철학자이자 열렬한 다윈주의 무신론자인 마이클 루즈(Michael Ruse)는 진화론은 그들의 종교라고 얘기한바 있다.
”진화론은 단지 과학이라기보다는 견습자(practitioner)에 의해 발전되었다. 진화론이 의미와 도덕성을 지닌 기독교를 완전히 대신할 수 있는 이상, 특정한 종교로서 공표 되었다… 진화론은 종교인 셈이다. 이것이 초기 진화론의 실체였고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다.” 8
'종교(religion)'를 말하는 다른 방법은 실재사물을 바라보는 '세계관(worldview)' 이다. 진화론적 세계관은 생명체의 진화뿐 아니라, 전체 우주의 진화에도 적용된다. 우주적 진화론의 영역에서 자연주의 과학자들은 생명과학자가 실험하는 것보다 훨씬 실험적인 면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그들은 난해한 수학과 형이상학적 고찰을 통해 진화론적 우주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Jeremy Rifkin은 이런 놀라운 놀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주론들은 사회에 의해 엄청난 기만(deceptions)들로 재구성된 물리적 실체의 작은 조각들로 구성된다.”9
그들은 모든 (진화론에 반하는) 과학적 근거들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믿어야만 한다. 그것은 과학적 근거가 그것을 증명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기만’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다음의 놀라운 구절을 주목하기 바란다.
”우리는 자연의 구성물중 일부가 들어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에 대해 확실치 않은 것에 대해 과학계가 관용적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한 면을 취했다.....… 우리는 관찰되는 사물에 대해 물질적 요인을 먼저 고려하도록 되어있으며, 물질주의적 설명만을 생산해내도록 개념이 잡혀있다. 더욱이 물질주의는 절대적인데, 이는 우리의 영역 안으로 신의 발걸음을 허락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
이렇게 솔직한 말을 한 사람은 하버드 대학의 Richard Lewontin 이다. 진화가 실험적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실험을 평가할만한 방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교과서를 장식하는 데에는 쓰일 수는 있어도, 그것을 사실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최근에 다른 진화론자에 의해 쓰여진 것에는 진화론자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연결고리가 빠진 조상을 규명할 수 없고, 진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났을 것인가를 설명해줄 만한 실험 가능한 이론을 짤 수가 없다. 애석하게도 어떻게 파충류가 마른 땅을 처음으로 정복하게 되었는지, 새들이 어떻게 날기 위한 날개와 깃털을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공룡이 멸종했는지, 어떻게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는지 등은 편견에서 오게 된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11
놀랍게도 물리학자에 의한 이러한 정직한 고백은 과학자들의 근본이 자연주의임을 암시하고 있다. 믿음의 학생들은 가르치고 있는 고등교육을 받은 대학교수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효과적으로 그들의 머리를 말끔히 비우기 위해서 신뢰를 사용한다. 우리의 교육방법은 1차적으로는 선전의 방법이다. 우리는 설명없이 우리의 입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를 제시한다. 우리는 단지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들에 대한 증거와 논증만을 소개하고 반대되는 어떠한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다.”12
진화론자 교수에게 과학을 배우고 있는 창조론자 학생들은 진화론에 관한 진술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가를 증명할 수 있다. Ruse가 지적했듯이 실제로 진화론은 종교성을 띄는 무신론을 기초로 하고 있는 비과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코넬 대학의 Will Provine은 이것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듯이 현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사람을 무신론자로 만든다. 종교적 관점이 무신론과 구별될 수 없을 경우에만, 진화론과 같이 양립될 수 있다.”13
다시 한번 강조하면 진화론은 진화론자들의 장황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아니다. 진화론은 하나의 철학적 관점일 뿐이다. 다른 저명한 진화론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화론은 그들이 느끼듯이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은 실제 설명할 가치를 가지지 못할 때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진화론에 반대되는 것도 거짓임을 증명할 수가 거의 없기 때문에 논의될 수 있다. 실험적 증거들은 미미하다.”14
이러한 주장은 매우 일반적이다. 실제 진실된 진화(대진화를 의미)를 설명하는 실험적 증거는 적은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 형태의 진화라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항하는 오랜 전쟁(The long war against God)’15 이란 나의 책에서 역사의 초기부터 진화론의 일부가 반창조론자들에 의해 가짜 증거들이 근거로 제시되었음을 밝혔다. 이런 반창조론자들은 모든 고대 종교를 포함하며 오늘날의 세계적인 종교인 불교, 힌두교 등을 포함한다. 심지어는 창조론자들이 갖는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내에서의 자유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포함하고 있다.
20세기 진화론자들의 리더는 일반적으로 신다윈주의의 창시자인 줄리안 헉슬리(Julian Huxley)로 생각된다. Huxley는 진화론은 ”계시가 없는 종교 (religion without revelation)”라고 부르며, 그것을 제목으로 책을 썼다. 최근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진화는… 지구상에서 나타난 생각 중 가장 강력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생각이다”16
그 책에서 그는 열정적으로 하나님 중심의 종교적 관점으로부터 진화론 중심의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7 그리고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가설은 지혜를 필요로 하며 도덕적 부담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고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할만한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한다.”18
물론 여기서 말한 어떤 것이란 진화 인본주의의 종교이며, 오늘날 진화 인본주의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예의 요약을 마치며, 독자들은 모든 인용문들이 광신적인 진화론자들의 글들임을 주목하기 바란다. 성경의 인용은 전혀 없으며, 창조론자들의 진술도 전혀 없다. 진화론자들 스스로 진화는 과학이 아니라, 무신론으로서 종교적 신념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Morris, Henry M.,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Part I,' (Impact No. 330, December 2000), pp. i-iv.
2 Morris, Henry M.,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Part II,' (Impact No. 331, January 2001), pp. i-iv.
3 Scott, Eugenie, 'Fighting Talk,' New Scientist (vol. 166, April 22, 2000), p.47. Dr. Scott is director of the anti-creationist organization euphemistically named The National Center for Science Education.
4 Ericson, Edward L., 'Reclaiming the Higher Ground,' The Humanist (vol. 60, September/October 2000), p. 30.
5 Dawkins, Richard, replying to a critique of his faith in the liberal journal, Science and Christian Belief (vol. 7, 1994), p. 47.
6 Mayr, Ernst, 'Darwin's Influence on Modern Thought,' Scientific American (vol. 283, July 2000), p. 83.
7 Todd, Scott C., 'A View from Kansas on the Evolution Debates,' Nature (vol. 401. September 30, 1999), p. 423.
8 Ruse, Michael, 'Saving Darwinism from the Darwinians,' National Post (May 13, 2000), p. B-3.
9 Rifkin, Jeremy, 'Reinventing Nature,' The Humanist (vol. 58, March/April 1998), p. 24.
10 Lewontin, Richard, Review of The Demon-Haunted World, by Carl Sagan. In New York Review of Books, January 9, 1997.
11 Bowler, Peter J., Review of In Search of Deep Time by Henry Gee (Free Press, 1999), American Scientist (vol. 88, March/April 2000), p. 169.
12 Singham, Mark, 'Teaching and Propaganda,' Physics Today (vol. 53, June 2000), p. 54.
13 Provine, Will, 'No Free Will,' in Catching Up with the Vision, Ed. by Margaret W. Rossite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9), p. S123.
14 Appleyard, Bryan, 'You Asked for It,' New Scientist (vol. 166, April 22, 2000), p. 45.
15 Morris, Henry M., The Long War Against God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89), 344 pp.
16 Huxley, Julian, Essays of a Humanist (New York: Harper and `Row, 1964), p. 125.
17 Ibid., p. 222.
18 Ibid.
* Dr. Morris is Founder and President Emeritus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32.htm
출처 - ICR, Impact No. 332,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9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사례 2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A Summary Part Ⅱ)
Dr. Henry M. Morris
우리는 현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진술로부터 한 종류의 개체로부터 더욱 복잡한 종류의 개체로 수직적 진화를 한 예를 인류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음을 지적했다.
진화론자들의 비슷한 진술들도 과거의 지질학적 시대에서 발견된 수십억 개의 화석들 중에서 그러한 진화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예들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진화에 반대되는 증거들은 동시에 특별한 창조의 강력한 증거들이다. 사실 그것들은 기원의 창조모델에 기초한 특이적인 예견들인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명백히 창조된 것들간의 산재해있는 벽들을 분명히 예견해왔다. 비록 각 종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이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멸종되지 않고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창조론자들은 또한 복잡하게 조직된 것에서의 수직적 변화는 좋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되는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왜냐하면 창조주는 시작될 때부터 정확하게 모든 것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화에 반대되는 논쟁과 증거들은 동시에 창조에 대한 긍정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유전학의 애매한 증거
진화에 대한 직접적인 어떠한 증거도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진화론자들은 DNA나 다른 생화학적 물질 같은 애매한 증거들이 진화가 과학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증거해 준다는 입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많은 진화론자들조차도 DNA 자체가 진화의 증거가 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DNA가 모든 개체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다른 두 개체간의 유사한 DNA 구조가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는 얘기다. 창조주가 생명체들을 창조할 때 같은 종류의 DNA 정보를 사용하지 않거나,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진화의 증거가 아니라, 지적설계와 창조의 증거인 것이다.
DNA 유사성의 예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예는 단지 DNA 유사성이 90% 이상이 되는 사람과 침팬지의 유사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과 침팬지의 생리학적 유사성을 고려할 때 그리 놀라울만한 것은 아니다. 왜 그들은 사람과 거미간의 DNA 유사성을 비교하지는 않는가?
유사성(유전학적, 해부학적, 발생학적 등 어느 것이든)은 진화와의 관계보다는 동일한 설계자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더욱 잘 설명해준다. 유사성보다는 개체간의 큰 차이가 더욱 중요하다. 진화론은 모두가 공통 조상을 갖는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지만, 이것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어떻게 자연적 과정에 의해서 이렇게 커다란 틈이 도대체 발생했단 말인가?
사람과 침팬지의 명백히 적은 DNA의 차이는 해부학적으로 지성 등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모든 유인원들과 인류와의 피상적인 유사성은 실제 관찰에서 보는 차이와 비교할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진화론자들은 중간단계가 비어있는 틈을 발전하는 DNA나 다른 증거들이 메워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화의 증거가 화석기록이라는 마법에 걸려 있다. 그러나 화석증거나 비교형태학도 때론 그 결과가 앞뒤가 맞지 않을 때도 있다. 유전학 얘기에서 일관성 없는 많은 것 중 일부를 이야기하자면 Roger 박사가 Part I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러한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전반적인 영향은 분자 계통발생학이 결코 처음의 진화론자들이 믿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전체 변화의 복잡한 역동성은 분자 계통발생학에 여러 다른 결과들을 갖게 된다. 다른 유전자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1
Lewin은 전통적인 다윈주의의 증거들과 관련된 계통발생학적 증거들이 낳는 몇 개의 전형적인 자기모순을 언급했다.
”전통적인 분류방식에 의해 식충류에 분류되는 'elephant shrew'는 사실 진짜 코끼리와 매우 근접해있다. 소는 말보다는 돌고래에 더욱 가깝다. 오리너구리는 캥거루와 코알라와 진화적으로 같은 위치에 있다.” 2
이러한 접근 방법은 매우 이상한 비교가 되곤 한다.
유전자 암호에서 소위 '정크 DNA(Junk DNA)'가 많은 것이 진화의 특별한 증거로써 제시되었다. 특히 이들 Junk DNA는 돌연변이가 일어났던 것으로 생각되었고, 때론 pseudogenes(가짜 유전자-역자주)3 라고 불린다. 그러나 쓸모 없는 유전자로 간주되던 것이 실제로는 유용한 기능을 하는 것이라는 증거가 빠르게 축적되고 있다.
많은 유전자가 유전자 더미 속에서 이미 밝혀지고 있고, 쓰레기로 간주되던 것들이 과학적 암호인 것으로 밝혀지는 것을 보게 된다. 4
그러므로 정크 DNA (Junk DNA, 심지어는 pseudogene이라 불리던)가 기능이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단지 무지를 드러낸 것이었고, 유익한 연구에 대한 방해였던 것이다. 사람의 흔적기관도 진화의 증거로써 한때 간주되었지만, 현재 모두가 특이한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것은 단지 그것의 쓰임새가 과학자들에 의해서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기껏해야 이런 류의 증거들은 엄밀히 얘기하면 부수적인 것이다. 이런 증거들은 창조모델에서 기대되는 것처럼, 태초의 창조 후 점차 쇠퇴되어 가는 과정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진짜 문제는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진화에 과연 목격할만한 증거가 현재 있는지, 또는 과거에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보아왔듯이 심지어 진화론자들조차도 진화의 실제적인 과학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진화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질문은 ”왜 목격 가능한 진화적 변화들은 모두가 수평적이거나, 소진화로 불리는 사소한 변화이거나, 퇴화나 멸종의 방향으로 향해 가는가?”이다. 그 대답은 과학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열역학 법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화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에나 과거에나 진화에 대한 증거가 없는 가장 과학적 이유는 자연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법칙 중 하나가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 법칙은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라고 알려져 있는 엔트로피의 법칙인데, 이는 실제 세계에서 모든 시스템은 쇠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질서가 파괴되고, 복잡성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향을 말한다.
엔트로피의 법칙은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잘 증명된 자연법칙 중 하나이다. 이 법칙은 단지 물리학이나 화학 시스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이나 지질학, 모든 시스템에서 예외 없이 적용되는 법칙이다.
”열역학 제 2법칙에 어떠한 예외도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매우 작은 것에서조차도 말이다. 제 1법칙인 에너지에 관한 것에서처럼 정확하고 모델의 세부사항에 영향을 받지 않는 법칙이 존재하기 위해선 구성하고 있는 상호작용하는 물질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 논리적 기반이 있어야만 한다.” 5
이 인용문의 저자는 일차적으로 물리학을 언급하고 있지만, 열역학 제 2법칙이 모델의 세부사항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실제적으로 모든 진화론자들은 환원주의자들(reductionists)이다 - 즉 그들은 생명체 내에는 생명의 기원이 되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모든 생물학적 과정들은 물리, 화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과정들은 또한 열역학 법칙에 따라 조정되어야하고, 실제로 모든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에너지의 유입이 있는‘열린계 (open system)’이고, 이를 통해 모든 시스템이 자연적으로는 쇠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진화가 유지될 수 있으므로 논쟁은 해결될 수 있고, 진화는 어쨌든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뎀스키(W.A Dembski)의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 라는 최근의 감명 깊은 책을 진화 곤충학자가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이다. 이 과학자는 열역학 제 2법칙에 위반되는 진화의 결점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함으로서, 자연적인 과정으로 복잡성이 증가될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결점은 무엇인가?
”비록 닫힌계(closed system)에서 전체적인 무질서도가 감소되지 않을지라도, 커다란 시스템 내의 국소적 질서(local order)는 지적 요소의 작용 없이도 증가할 수 있다.” 6
이러한 엔트로피 법칙에 대한 얕은 생각의 답변은 전형적인 진화론의 위선이다. 열린계에서 어떤 조건에서는 부분적인 질서는 증가할 수 있지만, 진화는 그러한 조건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지구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로부터 열려있다는 것이 어떻게 태양열이 열린계나 닫힌계에서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변화를 했는지에 대한 아무런 해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근본적인 열역학 방정식은 열린계에서 열의 유입이 그 시스템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가시킬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열린계에서 알려져있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경우는 어떤 종류의 안내 프로그램을 따를 때와 하나 이상의 에너지 전환 메커니즘이 있는 경우에서이다.
진화는 이 두 가지의 경우에 다 해당되지 않는다. 돌연변이는 질서화되는 메커니즘이 아니라, 제 2법칙에 따라 질서가 파괴되는 메커니즘이다. 그것들은 모두 해롭고, 때론 아무런 해가 없는 정도이지, 유익하진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 관찰된 돌연변이에 있어서는). 자연선택은 질서를 만들어낼 수 없고 단지 질서가 와해된 돌연변이를 걸러줄(제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지, 새로운 질서가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모든 시스템이 즉시 또는 나중에 와해되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진화가 열린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러한 우주적인 경향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과거나 현재나 진화를 믿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자들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실제 진화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 유일하게 관측되는 증거는 엄격한 한계 내에서 매우 제한된 수평적 변화뿐이다. 진화는 과거에 결코 발생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전혀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References
1 Roger Lewin, 'Family Feud,' New Scientist (vol. 157, January 24, 1998), p. 39.
2 Ibid., p. 36.
3 Rachel Nowak, 'Mining Treasures from `Junk DNA',' Science (vol. 263, February 4, 1994), p. 608.
4 Ibid.
5 E. H. Lieb and Jakob Yngvason, 'A Fresh Look at Entropy and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Physics Today (vol. 53. April 2000), p. 32.
6 Norman A. Johnson, 'Design Flaw,' American Scientist (vol. 88. May/ June 2000), p. 274.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scientific-case-against-evolution-summary-part-2
출처 - ICR, Impact No. 331, 2001.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사례 1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A Summary Part I)
Dr. Henry M. Morris
진화에 대한 믿음은 매우 놀라울만한 현상이다. 이는 대진화를 뒷받침할만한 과학적 증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토양 위에 열렬히 보호되고 있는 믿음이다. 이런 이상한 상황은 진화론자들이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최근의 말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언급들은 진화가 현재에도 일어나지 않으며, 과거에도 절대 일어나지 않았음을 무의식중에 보여주고 있다.
진화는 현재 일어나지 않고 있다.
첫째로, 진화의 예가 적다는 것은 진화를 관찰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볼 때 명백하다. 진화가 실제 일어나는 과정이라면, 진화는 현재에도 일어나야만 하고,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전이 형태 (transitional forms)'가 수없이 존재해야만 한다. 물론 그 대신에 우리가 보는 것은 종 내에서 서로 다른 많은 변이종들을 가지고 있는, 식물과 동물의 분명한 '종류들(kinds)'의 나열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분명히 연결할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많은 종류의 개들이 있고, 많은 종류의 고양이들이 있을 뿐이지, 이들을 합쳐놓은 듯한 동물은 없다. 이러한 변이들은 소위 소진화(microevolution)라 불리고, 이러한 작은 수평적인 변화들은 엄연히 일어나지만, 이것이 수직적인 진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진화 유전학자들은 초파리로 실험을 하거나, 매우 빠르게 번식하는 다른 종들을 사용하여 새롭고 좋은 변이종을 만들기를 희망하며 돌연변이를 유도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 어떤 새로운 종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단지 원래의 종(basic kind)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늘날의 진화론을 이끄는 진화론자이며, 피츠버그 대학의 인류학 교수인 Jeffrey Schwatz는 최근에 이렇게 말했다.
”... 어떤 방식에 의해서든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것은 과거에도 관찰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관찰되지 않는다.” 1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은 실험적 관찰(observation)과 재현성(replication)을 요구한다. 한 번도 관찰된 적이 없는 (소진화와 분명히 구별되는) 대진화(macroevolution)는 진정한 과학의 영역에서 추방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현재 살아있는 진화론자 중 최고참 격인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였고, 진화는 '단순한 사실(simple fact)' 이라고 우겨댔던 Ernst Mayr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는 '역사적 과학(historical science)' 이며, 법칙과 실험은 진화를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한 기술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진화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화는 과거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화론자들은 오늘날 진화는 매우 느리게 일어나기 때문에 관찰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비판에 대해 답변한다. 그들은 진화의 실제 증거들은 과거의 화석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발굴된 수십억 개의 화석들에서 진화과정 중의 모습인 전형적인 전이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다윈에 의하면 진화는 움직이는 점진적인 과정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하등한 것에서부터 고등한 것으로 진화하는 전이형태의 화석증거들을 수없이 가져야할 것이다.” 3
심지어는 빠른 진화를 믿는 사람들조차도, 하나의 구별된 종(kind)이 다른 더욱 복잡한 종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세대가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화석에는 상당한 수의 전이형태의 구조가 있어야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소위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s)라는 화석기록의 간격을 채우는 대신에, 대부분의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종 간의 중간형태에 대한 증거가 없고, 화석기록에는 간격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있다.4
무생물에서 생명체로의 진화, 무척추동물로부터 척추동물로의 진화, 유인원에서 사람으로의 진화의 역사는 놀랍게도 그 중간단계가 빠져있다. 화석기록에서의 그 중간단계는 모두 빠져있다. 단지 현재의 세계에만 있을 뿐이다.
생명의 기원을 중요시하는 이 분야의 앞서가는 연구가인 Leslie Orgel은 단백질은 DNA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으며, DNA 또한 단백질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음을 이야기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일견하여, 생명체는 사실 화학적 수단에 의해 기원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려야할 것으로 보인다” 5
전적으로 진화론에 몸담고 있는 Dr. Orgel 로서는 그러한 결론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RNA가 제일 처음에 있었던 물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다음 내용을 인정하고 있다.
”RNA가 생겨나는 정확한 원리는 아직 분명치 않다. ....과학자들은 많은 가설들을 내놓고 있지만 그 증거들은 기껏해야 조각에 불과하다.” 6
번역 (Translation) : ”생명이 자연적으로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불행하게도, 두 세대에 걸쳐 학생들은 스탠리 밀러(Stanley Miller)의 가스 혼합을 이용한 유명한 실험 (실제적으로 생명의 자연적 기원을 증명하였다는)을 배워왔다. 그러나 실제로 증명한 것은 아니었다.
밀러는 플라스크 안에 모든 것을 넣고 전기적 전하를 주고 기다렸다. 그는 실험장치의 바닥에 아미노산과 다른 기본적인 화합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발견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얼마간은 시험관 속에서의 생명의 창조가 실험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실험은 원시적인 물질이상으로는 더 진전되지 않았고, 원시수프로부터의 쓴맛을 우리에게 남겨놓았다.7
또한 캄브리아기의 다세포 생물인 무척추동물들이 원시세계의 단세포 생물로부터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심지어는 고집스러운 진화론자인 굴드 조차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캄브리아기의 폭발은 생명의 역사 중 가장 놀랍고도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다.” 8
그리고 또 이해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원시 바다에서 살면서 겉은 딱딱한 부분으로 쌓여있던 무척추동물이 현재의 물고기와 같이 안의 구조만 딱딱한 척추동물로 진화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아직도 가시 없는 무척추동물에서 첫 번째 척추가 있는 물고기로의 전이는 미스터리로 남아있고, 많은 이론들이 분분하다.” 9
중간단계가 없는 다른 벽들도 매우 많다. 매우 까다로운 창조과학의 반대자인 고생물학자 엘드리지(Niles Eldredge)는, 화석기록에서 진화의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신에 문제는 똑같이 남는다.
”사실상 생물군(biota)의 모든 종류들이 그들이 존재했던 기간을 통하여 기본적으로 안정한 상태로 (소수의 변동만을 가진 채) 있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10
어떻게 진화론자들은 화석 생물들이 존재했던 기간동안 변하지 않았던 개체 화석들을 가지고 진화계통나무를 만들 수 있었을까?
”화석의 발견은 간단한 진화 나무(중요 시기의 화석들은 자주 중간단계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다른 그룹의 잡동사니 모습을 하고 있다)를 만들려는 시도를 엉망으로 만들곤 한다. 일반적으로 주요 그룹들은 같은 선상이나 점진적인 방향의 것들과 함께 묶이지 않는다. 새로운 종들은 다른 시기에 다른 그룹으로 잘려지고 붙여지곤 한다.” 11
유인원과 사람의 중간단계에 관해 얘기하자면 진실은 똑같다. 비록 인류학자가 수십년동안 그것을 찾으려 했지만 말이다. 많은 증거들이 제안되긴 했지만, 차례로 모두 거절(reject)되었다.
”고생물학자들이 100년 이상 발굴하였던 것들은 2000 이 조금 안 되는 조상들의 유품들이었다. 그들은 현재 살아있는 종들의 분자적 증거들과 함께 턱뼈, 치아, 화석화된 뼈조각들로 분류되었고, 침팬지와 사람이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려나온 시기인 5백만년에서 8백만년 이후에 인류의 진화계통(line)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다.” 12
인류학자들은 자신들의 진화 시나리오에 맞추기 위해, 현재 살아있는 동물들의 DNA나 다른 분자 유전학적 증거들을 극히 단편적인 화석증거들을 보충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전학적 증거들은 사실상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화석증거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분자 계통발생학(molecular phylogenetics)은 결코 진화론의 창시자들이 믿었던 것들에 직접적이고 전반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유전체(genome)의 변화의 복잡한 역동성은 다른 유전자마다 다른 스토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매우 많은 다른 결과들을 가지고 있다.” 13
인간의 유전학적 자료들을 요약해보면 차라리 비관적이다.
”심지어는 DNA 염기서열 데이타에서도 진화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을 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과거의 재현은 창조적인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14
현재나 과거나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실제로 없음을 볼 때, 진화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진화는 과학이 아니라, 보편적인 자연주의 믿음에 기초한 하나의 임의적인 체계(an arbitrary system)일 뿐이다.
References
1 Jeffrey H. Schwartz, Sudden Origins (New York. John Wiley, 1999), p. 300.
2 Ernst Mayr, 'Darwin's Influence on Modern Thought,' Scientific American (vol. 283. July 2000), p. 83.
3 Jeffrey H. Schwartz, op. cit., p.89.
4 Ibid.
5 Leslie E. Orgel, 'The Origin of Life on the Earth,' Scientific American (vol. 271. October 1994), p. 78.
6 Ibid, p. 83.
7 Massimo Pigliucci, 'Where Do We Come From?' Skeptical Inquirer (vol. 23. September/October 1999), p. 24.
8 Stephen Jay Gould, 'The Evolution of Life,' chapter 1 in Evolution: Facts and Fallacies. ed. by J. William Schopf (San Diego, CA., Academic Press, 1999), p. 9.
9 J. O. Long, The Rise of Fishes (Baltimore: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1995), p. 30.
10 Niles Eldredge, The Pattern of Evolution (New York; W. H. Freeman and Co., 1998), p. 157.
11 Neil Shubin, 'Evolutionary Cut and Paste,' Nature (vol. 349. July 2, 1998), p.12.
12 Colin Tudge, 'Human Origins Revisited,' New Scientist (vol. 146. May 20, 1995), p. 24.
13 Roger Lewin, 'Family Feud', New Scientist (Vol. 157. January 24, 1998), p. 39.
14 N. A. Takahata, 'Genetic Perspective on the Origin and History of Humans,' Annual Review of Ecology and Systematics (vol. 26, 1995), p. 343.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scientific-case-against-evolution-summary-part-1
출처 - ICR, Impact No. 330,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