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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위원회
2004-07-26

최근의 진화론 (신다윈주의, 현대종합이론, 단속평형설, 분자진화설, 형질발현 단계설 등)

임번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다윈의 진화론은 최근의 학계를 지배하고 있으면서도 이론적인 모순들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그리고, 학계의 비판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이론으로 끊임없이 그 얼굴을 바꾸어 왔다. 그렇게 하면서 학문이 발전하는 것이라는 미명 하에 말이다. 그 중 대표적인 이론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신다윈주의 (Neo Darwinism)

  이 설은 화란의 드브리스가 <왕달맞이꽃의 연구>(1901)로 인공돌연변이에 의한 변종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돌연변이설에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가미하여 바이스만(August Weismann 1834-1914)이 <진화론 강의>(1902)를 통해 제시한 이론이 신다윈주의이다. 즉, 자연은 돌연변이에 의해 생성된, 그래서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종을 선택하여 진화하도록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그 후, 밀러(1928)에 계승되었다. 바이스만은 라마르크가 예로 들었던 기린의 화석에서도 목의 길이가 현재보다 약간 짧은 중간길이의 화석생물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후천적 획득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쥐의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즉, 수정하기 전에 생쥐의 꼬리를 잘라 낸 후에 20대 이상 교미를 반복하였으나, 꼬리가 없는 쥐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변이(變異 variation)는 생식시 자웅의 불변적인 유전단위인 생식질(生殖質)이 결합하여 생기는 것이며, 이 때 자연선택이 작용하여 진화를 일으킨다고 하였다. 생식질 내에서 생긴 이러한 미세한 변이가 축적되어 큰 변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는 몸이 환경의 영향으로 변하는 경우에도 생식세포에는 있는 생식질은 변하지 않고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생식질의 연속성'도 주장하였다. 이들은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을 주장하는 스펜서(Spener 1820-1903), 헤켈, 기어드(Giard), 페리어(Perrier) 등의 신라마르크주의(Neo-Lamarkism)와 충돌하였다. 신라마르크주의자들은 자연에 의한 도태설을 부인하고, 환경요인이 진화의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집단유전학자들도 돌연변이설을 부정하였다.

 

2. 정향진화설 (定向進化說 Orthogenesis)

다윈진화설에 대한 반론으로 코프, 네겔리(Negeli), 에이머(Eimer 1871) 등은 진화가 자연선택이 아니라, 생물체내에 있는 어떤 '고차원적인 섭리'에 의해 어느 정해진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쉰데볼프(Otto H. Schindewolf 1896-1971)도 생물은 일정한 방향으로 정향적으로 진화하며 말발굽 계열을 그 예로 들었다. 그러나, 저명한 진화학자인 심프손(Simpson)을 비롯한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의 진화경로에서 정향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설을 반박하였다. 그리고, 쉰데볼프가 제시한 말의 계열도 그 순서대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짜 맞춘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3. 집단유전설(集團遺傳說 Population Genetics)

생물군이 지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격리되면 변종이 생긴다는 이론은 일찍이 바그너(Wagner 1813-1887)와 로마네스(Romanes 1848-1894)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었다. 이러한 이론은 그 후 하디-바인베르크 법칙, 할데인, 심슨, 그리고 현대종합이론이 가미되어 집단유전설로 발전하였다. 특히, 영국의 수학자인 하디(Godfrey H. Hardy 1877-1947)와 독일인 의사인 바인베르크(Wilhelm Weinberg 1862-1937)가 제창한 하디-바인베르그 원리(Hardy-Weinberg's principle 1908)는 집단유전학을 출범시킨 계기를 만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교배는 무작위로 일어난다.

 (2)대립인자와 인자형은 적합성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

 (3)대립인자는 유전자의 이동에 의해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는다.

 (4)돌연변이는 일어나지 않거나 무시할 정도이므로 대립인자의 빈도는 항상 일정하다.

 (5)집단은 크기 때문에 여기에 무작위적인 부동이 작용하지 않는다.

 (6)윗 조건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유전자빈도에 변화가 일어나 대진화를 촉발한다.

율(G.H. Yule 1873-1949)과 할데인(John B.S. Haldane 1892-1964), 라이트(Sewell Wright(1889-?), 피셔(Fischer), 심슨(Simpson) 등은 격리집단에서 돌연변이에 의한 자연선택으로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피셔의 <자연선택의 유전학적 이론>(1930)은 자연선택설에 대한 유전학적 기초를 수립했고, 할데인은 <자연선택 및 인위선택의 수학적 이론>(1924)에서 여러 종류의 자연선택이 유전자빈도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수리적으로 연구하였다. 이 설에서는 진화의 단위가 격리된 집단(isolated population)이며 진화의 기본기구는 한 집단내의 개체에서 나타나는 유전적 변이(genetic variation)라고 주장한다. 즉, 한 집단이 격리된 상태에서는 격리집단의 모든 유전자가 섞인 유전자 풀(gene pool)을 형성하며, 이 상태에서 유전자빈도(gene frequency)의 점진적인 변화가 진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한 집단이 유전적으로 평형일 때(환경변화가 없을 때) 진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유전적평형이 파괴될 때에는 유전자빈도의 상승으로 급격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소수의 개체군이 지리적 또는 기능적으로 모집단에서 격리되어 있을 때 종의 분화는 더 빨리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종으로 관찰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 이 설의 취약점이기도 하다. 피셔와 할데인은 진화요인이 자연선택이라 했으나, 라이트는 유전적 부동현상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돌연변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부인하고, 집단내의 유전적 변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점진적으로 진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진화가 유전적 변이에 대한 자연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다윈의 진화론과 같으나, 획득형질의 유전을 인정치 않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환경변화가 없을 때에는 유리한 변이는 선택되고 불리한 변이는 배제하여 형질의 안정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환경이 변할 경우 자연선택은 환경에 적응한 형질을 집단 내에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은 자연선택설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진화의 단위를 집단으로 해석한 점이 신다윈주의와 다르다.

 

4. 현대종합이론 (Modern Synthesis Theory)

1930년대에는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멘델의 유전학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줄리언 헉슬리(Julian S. Huxley 1887-1975)는 <진화-현대적 총합>(1942)이라는 저술에서 지금까지 제창된 진화론을 종합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ansky 1900-1975)는 이 설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되는 <유전학과 종의 기원>(1937)에서 초파리의 자연집단에 대한 연구로 소수개체의 격리에 의해 새로운 종이 형성된다고 하는 창시자원리(創始者原理/先驅原理)를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유전자돌연변이가 유전자풀에서 일어나면 좋은 종이 자연에 의해 신종으로 선택되어 진화한다는 것이다.

뮐러(Muller 1928) 역시 초파리에 대한 X-선 조사로 자연돌연변이율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설을 주장하였다. 심슨(Simpson)은 <진화의 속도와 양상>(1944)에서 고생물학적 사건들을 집단유전학으로 해석하고자 하였으며, 마이어(Mayer)도 <계통분류학과 종의 기원>(1942)에서 돌연변이가 유전자변이를 가져오는 요인이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요인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현대종합이론(Modern synthesis theory)은 계통분류학, 유전학, 생태학, 분류학, 고생물학 등의 학문을 총합하여 짜깁기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계에서는 돌연변이가 유리한 방향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설의 취약점이다. 최근에, 현대종합이론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위해 모인 시카고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렸던 진화론학술대회(1980.10.16-10.19)에서 이 분야의 일인자인 아얄라(Francisco Ayala)는 "화석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작은 변이들이 축적되지 않았음을 이제 확신한다"면서 점진진화론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굴드와 엘드리지(Gould & Eldridge) 역시 전통적 진화론을 비판하고 '바람직한 괴물설'을 주장하였다. 삼일간 걸쳐 진행된 이 회의에서는 이례적으로 "소진화는 대진화로 연결될 수 없다"는 중대한 성명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선언은 전통진화론에 치명적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R. Lewin; Evolution Theory Under Fire, An Historic Conference in Chicago, Challenges the Four Decade Long Dominance of the Modern Synthesis, Science, Vol. 210, pp 883-887, Nov. 21, 1980].

 

5. 도약진화설/단속평형설 (Punctuated Equilibria Theory)

이 설은 네겔리(Carl W. von Naegeli 1817-1891)의 정향진화설이나 헉슬리 등의 현대종합이론이 주장하는 점진진화론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940년대에 슈밋트와 엘드리지(Gold Schmidt & Niels Eldrege)가 주장한 것이다. 즉, 전통적인 점진진화설에서 생물의 중간종이 발견되지 않은 데 대한 보완책으로 나온 것이다. 화석이나 자연계의 생물종들은 중간형태가 없이 갑자기 완벽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진화가 단속적으로 휴면상태에 들어갔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다른 종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요지이다. 그래서, 도약진화설(saltatory(jump) evolutionism) 또는 퀀텀진화론(quantum evolutionism)이라고 불리운다.

엘드리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점진진화론자들이 기대하는) 중간종 형태의 증거를 발견한 적이 결코 없었다." [Niles Eldredge; Alternate Theory of Evolution Considered; Lack of Fossil 'Missing Link Evidance Causes Change in Thought, Los Angeles Times, Nov. 19, 1978]. 슈밋트(R. Gold Schmidt)는 <진화의 물리적 기초>(Material Basis of Evolution 1940)에서 종내 변화(소진화/변이)와 신종의 형성(대진화/진화)은 별도의 기구에 의한 것이며, 신종의 생성은 염색체구성의 전체적인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전체돌연변이설(systematic evolutionism)을 주창했으며, 이 때의 진화요인은 돌연변이라고 하여 '바람직한 괴물론'의 사고를 제시하였다.

이 설은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2년에 하버드대학의 굴드(Stephene Jay Gould)가 '바람직한 괴물이론'(hopful monster theory)으로 변형하여 재등장시킨 것이다. 굴드는 이렇게 말했다.

"돌연한 변형으로 나타나는 화석기록들은 점진진화설을 지지하지 않는다...대진화는 바람직한 괴물들이 희귀하게 나타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 집단내의 작은 연속적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다."

"나는 다음의 10년간(1980's) 골드 슈밋트의 이론이 진화생물학계에서 널리 정당화될 것으로 예견한다."

이들에 의하면(1973), 집단의 유전자가 평시에는 유전적 평형을 이루고 있다가 5천-5만 년 간격으로 갑자기 신종으로 교체가 된다는 것이다. 신종 출현은 당시에 살고 있는 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괴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났으므로 '바람직한 괴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윈의 전통진화론과 정면으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이들은 대진화를 일으키는 요인은 근본적이고도 급속한 염색체의 재배치나 조기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조절유전자나 초월적 유전자(super gene)의 격변적인 변이의 결과라고 말한다. [Stephene Jay Gould; The Return of Hopeful Monsters, Natural History, June/July, 1977].

이들은 중간형이 화석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신종이 갑자기 탄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데, 파충류의 알에서 종자가 전혀 다른 새(鳥類)가 부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파충류-새의 진화모델에 대해 디스커버지(誌)가 창조론자인 모리스(Henry Morris), 블리스 (Richard Bliss), 기쉬(Duane Gish) 등의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인 굴드(Stephene Gould) 및 세이건(Carl Sagan)에게 공개토론을 제의했으나, 진화론자들이 거절하는 바람에 좌절되었고, 그 대신 간단한 편지로 몇 마디로 논쟁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Discover, May-June, 1981].

먼저, 기쉬가 물었다. "최초의 새가 파충류의 알에서 나왔는가?"

굴드가 대답했다. "혹자들이 (진화론적인) 지적단계를 웃어 넘기게 하려고 당신처럼 진화론을 오해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자, 기쉬박사가 "파충류와 조류 사이의 도약(reptile-bird jump)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반박했으나, 진화론자들이 대답을 피하는 바람에 논쟁은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 후, 미국과학진흥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Advancement of Science)는 어린이교육협회와 공동으로 교재를 만들었는데(사진 11), 그 책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새끼공룡이 알을 낳고 있는 공룡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지금 새끼공룡이 들어 있는 알을 낳고 있나요?"

어미공룡은 대답한다.

"그 알은 전혀 새롭고 놀라운 알이란다...그 알에서 세계 최초의 어린 새가 태어났으며, 그 새는 자라면서 깃털이 나오고...높은 나무가지에 앉아 처음으로 노래하는 아름다운 새가 되었단다... 아주 먼 옛날 옛적에." [Dahlov Ipucar; The Wonderful Egg,  Doubleday, Garden City, New York, 1958]

그러나, 이러한 도약진화설에는 굴드도 인정하듯이 몇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어째서 괴물이 아닌 바람직한 괴물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은 불행스럽게도 염색체 재배치나 돌연변이에 의해 나타나는 생물은 예외 없이 기형적인 것만 보아왔다. 그 누구도 바람직한 괴물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파충류가 새로 도약한다는 것도 비논리적인 데, 하물며 다리가 어떻게 날개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셋째로, 새로 태어난 괴물은 누구와 짝을 이루어 후손을 번식시킬 수 있었겠느냐 하는 점이다. 즉, 이러한 괴물이 우연히 태어났다 하더라도 다른 성을 가진 또 다른 괴물이 반드시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당대에서 끝이 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태어난 괴물이 성장하기까지 누가 키웠으며, 새끼새가 성숙할 때까지 어미공룡이 먹이를 가져다 주었어야 한다. 수많은 동물들이 과연 이런 식으로 출현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약설이 점진진화설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창조론자와 도약진화론자간에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러한 분쟁 중에도 양자간에 중요한 공통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잃어버린 고리는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라는 사실이다(The missing links are the missed, forever).


*참조 : Eviscerating Eldredg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10

Just-so-stories for the punctuated evolutionist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1/j18_1_48-51.pdf
Punctuated equilibrium: come of ag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774

 

6. 분자진화설 (Molecular Evolutionism)

이 설은 훌로킨(Marcel Florkin 1900-)이 <생화학적 이론>(1944)에서 주장한 비다윈적 진화론이다. 예컨데, 어떤 단백질(Hb의 글로부린)이 척추동물의 진화에 따라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화석 등으로 추정되는 진화햇수에 대응하는 한 아미노산을 치환하는데 소요되는 햇수를 산출하는 것이다. 생물대표종의 특정 단백질(예; 사이토크롬 C, Hb)에 대해 조사하여 구성아미노산의 상동성에 따라 계통수를 작성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쥬커칸(E. Zuckerkan과 폴링(Pauling)은 헤모글로빈(Hb)분자에 대한 진화연구를 토대로 분자시계(分子時計)를 만들었고, 말고리어쉬(E. Margoliash 1965)는 사이토크롬 C의 진화에 대해 연구했으며, 핏치(W.M. Fitch 1967)는 생물계통수(生物系統樹)를 작성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1960년대에 전기영동법이 개발되면서 집단생물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변이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되어,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아울러, 유전적 변이가 환경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아얄라와 존슨(Ayala & Johnson)은 유전자변이가 환경에 적응현상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그러나, 윌슨과 살리취(Wilson & Sarich)는 전기영동법으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진화에 관계되는 조절유전자가 아니라, 구조유전자에 대한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쿄토대학의 키무라(Motoo Kimura 1924- )는 <분자수준에 있어서의 진화속도>(Nature 1968)라는 글에서 분자진화중립설(Neutral theory of molecular evolution)을 주장하여 관심을 끌었다. "돌연변이는 자연선택과는 무관하게 중립적이며, 우연히 집단 내에 축적이 되면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현대종합설이 주장하듯이 유리한 변이는 선택되고 불리한 변이는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변이는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집단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을 접목한 비다윈적 진화론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킹(King & Jukes) 등이 <비다윈진화>(Science 1969)에서 이 설을 지지하면서 진화론자들간의 찬반논쟁을 유발시키기도 하였다. 그의 분자중립진화설은 이러하다.

네 종류의 핵산염기가 둘씩 짝을 이루어 유전자쌍을 만들며 세 쌍이 하나의 아미노산을 만들도록 암호화(triple codon)되어 있다. 예컨데, GAT와 GAC는 모두 아스파라긴산을 만들도록 지시하는 암호이다. 즉, 끝자리의 T와 C가 서로 바뀌어도 결국 아스파라긴산이 만들어진다. T→C이든 C→T이든 같은 아아스파라긴산이 만들어지므로 그 아미노산을 함유한 단백질의 생성에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게 된다. 이런 현상을 중립적 돌연변이(neutral variation)라 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자연선택과는 무관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립적 돌연변이가 쌓이면 '휴식상태'에 있는 돌연변이가 그 생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게 되고 자연선택에 의해 종 전체로 확산이 된다는 것이다. 즉, 중립적 변이는 유전적 변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중립설은 유전자형(genotype)에 관한 것이며, 표현형(phenotype)에 대한 자연선택설을 수용한다.

그러나, 이 이론으로 분자진화의 특징인 '진화속도의 일정성'과 '진화의 보수성'은 잘 설명이 되지만, 분자진화와 표현형진화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중립설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중립적 돌연변이가 왜 생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일반적으로 유해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7. 형질발현 단계설(Stepwise Control Theory)

고려대학교의 생물학 교수였던 이영록(李永綠 1989)은 형질발현단계설(形質發現段階說)을 주장하였다. 표현형의 진화는 분자진화에 근거하나 유전형질의 발현은 분자, 세포, 개체 등 각기 다른 수준에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며, 각 단계마다 환경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표현형의 진화속도는 분자진화의 속도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영록 교수 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생물의 역사, p 17, 법문사, 서울, 1996] 그러나, 이 설 역시 진화가설에 대한 추상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증명할 아무런 실험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추론적 설명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범균비래설(Panspermia)

전술했듯이, 생명포자(sperm)가 우주에 가득하게(pan) 날아 다니다가, 운석이나 외계의 우주선에 의해 원시지구에 떨어져 생명이 부화하여 오늘의 동식물들로 분화되었다는 설이다. 리히터(Hieronymus T. Richter 1824-1898), 헬무홀츠(Helmuhortz 1884), 캘빈(Lord Kalvin 1824-1907), 아레니우스(Svante A. Arrhenius 1859-1927)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근에,  크릭(Francis H. Crick 1916-)은 <유전정보의 기원>(1968)에서 문명이 발달한 다른 혹성에서 생명의 종자를 우주선으로 보낸 것이라는 정향적 범균설(定向的 汎菌說 directed panspermia)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설은 결국 우주계의 생명이 최초에 자연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창조된 것인지 하는 근원적인 문제로 귀결하게 된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진화론의 태동

임번삼 


       진화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학술적으로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커티스 등은 "진화란 유전자풀에서 한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형질빈도(alleles frequency)의 모든 변화"라고 말한다. [Helena Curtis, N. Sue Barnes; Biology, 5th ed, Worth Publishers, p974, 1989] 이러한 진화론의 핵심을 컬쿳(Kerkut 1960)은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로 요약하였다. [G.A. Kerkut; Implication of evolutionism, p6, 1960]

(1) 무생물에서 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다.

(2) 자연발생은 단 한번 일어났다.

(3) 바이러스, 세균, 동식물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4) 원생동물에서 후생동물이 발생하였다.

(5) 여러 무척추동물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6)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이 발생했다.

(7) 척추동물인 어류에서 양서류, 양서류에서 파충류, 파충류에서 조류와 포유류가 발생했다.


  진화론은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첫 단계는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합성되어 안정된 반응계를 형성한 화학진화(chemical evolution)이다. 둘째 단계는 안정된 반응계가 자기복제능력을 가진 원시세포로 발전하는 생명발생(origination of life)의 과정이다. 셋째 단계는 원시세포가 장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동식물과 미생물종으로 분화한 생물진화(biological evolution)이다. 첫 단계는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1937)에 집약되어 있으며, 밀러와 유레이 및 폭스가 실험적으로 증명하고자 시도했음은 앞장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 둘째 단계는 중세기의 생명의 자연발생설이며, 셋째 단계는 다윈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1859)에 의해 점화된 것이다.

  진화론의 탄생근거는 동식물의 형태적 유사성, 생명현상이나 유전자기능의 동일성, 같은 종 내에서의 변종출현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하등한(?) 생물로부터 고등한 생물로 발전했으리라고 판단하고, 그러한 믿음 위에 가설을 설정한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에서 경계하는 선입관(先入觀)을 가지고 출발한 것이다. 생물의 진화론은 다윈이 주장하기 이전부터 있어 온 사상을 다윈이 자기 이론으로 정리하였을 뿐이라고 드프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조상의 생물종으로부터 변이에 의해 신종이 생성된다는 진화론은 다윈 이전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주창된 것이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95), 라마르크(1809),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및 체임버스(Robert Chambers 1844) 등이 그 예이다" [A. De Veris; The Enigma of Darwin, Clio Medica 19(1-2), 136-155, p 145, 1984]

  유럽의 18세기는 <이성의 시대>이면서 <자연과학과 신학간의 전쟁시대>였다. 이러한 싸움은 그리스의 자연에 대한 점진적 적응사상이 자극을 준 것이다. 다윈이 한 일은 오직 세계관적인 이론을 체계화한 것에 불과하였다. [A. Desmond; The Politics of Evolution, p 1,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진화론의 성립과정을 정리하면 표에서 보는 바와 같다(표 1). 이 표에서 보듯이 진화론은 명백히 상상에 의존하여 만든 추리소설과 같은 것이다. 그 내용은 비약의 연속이기 때문에 매우 드라마틱하며 강한 믿음이 없이는 수용하기 힘든 시나리오이다. 첫 장면은 원시대기의 주성분으로 추측되는 환원성 가스들이 번개의 방전에너지로 결합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이 비에 녹아 원시해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러한 물질들이 교질상의 원시바다에서 햇빛의 작용으로 서로 결합하여 코아세르베이트라는 입자가 되고, 이것이 외부에 있는 핵산과 단백질분자를 흡수하여 단백질상의 구형입자(proteinoid)로 발전하면서 무기호흡계가 발생한다. 이것이 발달하여 광합성능을 가진 독립영양체인 원시세포(protocell)가 되면서 산소를 방출하기 시작한다. 산소는 대기권으로 올라가 오존층을 형성한다.

  이러한 원시세포들이 해중의 세균류가 된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다양한 동식물로 방산진화한다. 유해로운 우주광선이 오존층에 의해 차단되면서 해중생물이 육상으로 올라  온다. 그 과정은 해양척추동물이 양서류, 파충류, 설치류, 조류, 포유류(類人猿), 영장류를 지나 마침내 오늘의 인간으로까지 진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생물들은 진화를 계속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또 다른 동물로 바뀔 것이라는 예고편이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인류의 이름을 그들은 이미 에데노피테쿠스(Ethenopithecus)라고 명명까지 해 놓은 상태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완전히 추리에서 출발하여 예측으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추리는 자연과학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물질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생성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유물론적이며 무신론적인 사상임을 알 수 있다. 사람도 동물의 일종이므로 인간존엄성을 굳이 내세울 근거도 없어지게 된다. 다른 동식물들보다 머리가 좋은 탓에 만물을 지배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다른 동물집단의 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이에 대비하여 인종을 개량하자고 진화론자들이 인종우생학(人種優生學 Eugenics)을 설립한 것이 120 년전(1883년)의 일이다. 흡사 공상소설에서나 나옴직한 이러한 가설이 오늘날 거의 모든 학문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불가해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진화사상의 기원은 그리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밀레토스학파(700 BC)는 물질에서 생명이 저절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아낙시만드로스(611-546 BC)는 흙으로부터 식물과 하등동물이 생겼고, 인간은 어류로부터 진화한 것이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384-322 BC)는 특히 동물학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였다. 그는 동물의 종류를 에이도스(eidos)라 하였고 비슷한 에이도스를 모아 게노스(genos)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생물의 진화를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생물의 계통을 나열한 자연의 사다리를 작성하기도 하였다(그림 2).

  다윈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우연'이라는 개념을 배우게 되었다고 종의 기원(1859, 1872년판)에서 주장했으나,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엠페도클레스의 우연론이 어떻게 불가능한 것인지 논증하였다. 그는 자연의 과정에서 우연으로는 자연계의 현상이 일어날 수 없으며, 자연 속에 내재하는 어떤 힘(계획과 아이디어)에 의해 수행된다는 목적론적 자연관을 설파하였다. 이는 우연에 의해 자연선택이 이루어진다는 다윈의 자연선택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로마시대부터 1,500여년 간은 기독교적 창조론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시기였다. 중세기가 지나면서 생명의 자연발생설이 나타나면서 현대진화론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헬몬트, 뷰퐁, 니이담, 푸셰 등의 생명의 자연발생설, 라이엘의 지질학(geology), 라마르크 등의 생물진화론, 라매뜨리의 인간기계론, 생물분류학(taxonomy), 해부학(anatomy),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 그리고 말서스 등의 인구론을 비롯한 사회과학(social science)의 출현이 다윈의 진화론 형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 요인들이라 할 수 있다.

  영국에서 라이엘 등을 중심으로 한 지질학이 확산되고 있을 때, 생물진화론의 씨앗이 프랑스에서 뷰퐁과 라마르크를 중심으로 싹을 피워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두 요소가 합하여져 다윈에게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1. 생물분류법의 수립

  18세기까지는 '종(種 species)은 불변'(immutability)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종이란 마이어(E. Mayre)가 제안했듯이 '상호교배가 가능한 집단'을 말하며, '자연집단 내에서 같은 유전자 풀(pool)을 이루고 있으면서 다른 무리와는 생식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무리'라 정의할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종이 분화를 일으키는 요인으로서 지리적 격리(geographic isolation), 생식적격리(reproductive isolation), 이질배수성(allodiploidy)을 든다.

 18세기에 창조과학자인 스웨덴의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 사진 1)는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 1735)라는 불후의 저서를 통하여 생물의 이명분류법(二名分類法)을 확립하였다(사진 2). 그 분류체계에서 인간을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로 분류하였다. 그 자신은 진화론에 반대하고 창조주에 의한 창조를 믿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물분류체계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역설적으로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로 '종은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린네는 사람을 영장류의 일종으로 분류했으며, 분류학상 어느 종으로도 분류하기에 애매한 잡종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2. 용불용설과 후천획득형질 유전설

 프랑스의 뷰퐁(Buffon 1707-1788)은 <박물지>(1749)에서 "생물은 환경의 영향, 특히 먹이와 온도가 생물의 변화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뷰퐁의 박물지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다윈 이전의 최대의 진화론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해부학자 라마르크(Jean Beptiste de Lamak 1744-1829)였다. 그는 <동물철학>(Phylosopie Zoologique 1809)과 <척추동물지>(1815)에서 "생물은 환경이 변하면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한다. 생물의 기관은 사용할수록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그리고, 퇴화하거나 발달한 형질은 다음 자손에게 전하여 져서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고 진화에 시간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그리고, 생물은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서서히 변한다고 하였다. 또한, 동물의 기관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고 많이 사용하면 발달한다는 용불용설(用不用說, Theory of Use and Disuse 1809)과 후천적으로 얻어진 형질은 유전된다(aquired character inherited)는 획득형질유전설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실험적인 비교해부학과 분류학을 주장한 큐비에의 '종의 불변설'과 대치되어 빛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가설들은 후일 학문적으로 부정되었으나 종의 진화사상을 확산시키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하였다. 다윈은 라마르크의 자연선택현상을 설명하면서 용불용설을 인용하였다. [S.J. Gould; Leonardo's Moutains of Clams and the Diet of Worms, Harmony Books, p 4, 1989]

  오켄(Lorez Oken 1779-1851)은 <자연철학 개요>(1809-11)에서 "동물은 그 발생기간에 동물계 전체과정을 경과하며 태아는 전체의 동물망을 일시적으로 대표한다"고 하는 계통발생설(系統發生說)을 주장하였다.

 

3. 인간의 진화론

   뷰퐁(1707-1788)은 "원숭이와 사람은 공통조상을 가졌었다"고 하였다. 다윈의 조부이며 박물학자인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은 <동물학>(Zoonomia 1794-1796)에서 생명은 해중에서 발생하여 양서류, 육상동물, 원숭이를 거쳐 사람이 되었다고 했으며, 환경에 대한 적응(adaptation)이 진화의 요인이라 주장하였다. 그는 다윈이 태어나기 7년전에 죽었지만 독일어로 쓰인 에라스무스의 영어번역본은 다윈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Ernst L. Kraus; Erasmus Darwin, translated by W.S. Dallas, J. Murray, London, 1879] 후일, '다윈의 불독'으로 알려진 헉슬리(Thomas H. Huxley 1825-1895)는 <자연계에서 인간의 위치>(1863)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동물기원설을 주장하였다. 다윈의 또 다른 추종자인 독일의 헤켈도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하였다.

 

4. 지질학과 화석

  생물학계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다윈의 진화론형성에 큰 영향을 준 분야가 19세기에 부상한 지질학(geology)이었다. 당시에 학계에서 수용하고 있었던 격변설(激變說 catastrophism)에서는 지층이 대홍수에 의한 격변적 변화로 급격히 형성된 것이라 가르치고 있었다. 이에 반해,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은 <지질학 원리>(Principle of Geology 1830-33)에서 지층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된다는 동일과정설(同一過程說 uniformitarianism)을 주장하였다(사진 3). 라이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허튼(James Hutton 1726-1797)은 <지구의 이론> (Theory of Earth 1795)에서 '지형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서서히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들이 축적되어 형성되는 것'이며 '현재는 과거의 열쇠'(The present is the key of the past)라고 하였다. 동일과정설의 핵심이론은 '장기간'과 '서서히'라는 말속에 압축되어 있는데, 이 용어들은 후일 다윈의 진화론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격변설에서는 지구의 역사가 매우 짧다(10만년 이내)고 했으나, 동일과정설에서는 지층을 12개로 구분하고 지구역사가 운석의 분석결과를 토대로 46억년이라고 주장하였다. 라이엘은 다윈에게 영국에서 과학연구를 계속하려면 저서 속에 종교문제를 다루지 말도록 충고를 받았으며, 다윈은 이 충고를 끝까지 지켰다고 한다. [Himmelfarb 1968) 여기에 곁들여 지층 속에서 발견되는 화석(化石 fossil)이 또 다른 논쟁거리로 등장하였다. 화석은 라틴어 포실리티스(fossilitis; 땅에서 파낸 기묘한 물건)에서 유래한 말이다. 진화론자들은 옛 화석에 나타난 생물의 종류가 현재의 생물종과 다른 이유는 그러한 생물들로부터 현재의 생물로 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라이엘은 화석종과 현재 생물이 다소 차이를 나타내는 이유는 종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진화론자들을 비판하였다.

  층서학(層序學)의 시조로 불리우는 큐비에는 화석은 홍수에 의한 격변시 생성되었다는 격변설(또는 천변지이설 catastrophism)을 주장하였다. 그는 파리근교의 몽마르뜨에서 발굴한 화석들(1796)을 연구 분석한 <화석골에 대한 연구>(1812)를 발표했으며, 화석뼈들을 모아 처음으로 동물의 모습을 복원하였다(사진 4). 그는 27회의 격변 후 최종적으로 전지구적인 노아 홍수에 의한 격변이 일어났었다고 주장하였다(1812). 격변설에서는 화석이 격변에 의해서만 생성되며 중간종이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나, 다윈은 더 많은 화석이 발견되면 중간종(transitional forms)도 무수히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한 중간종의 화석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어, 화석은 진화론을 괴롭히는 최대의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다.

 

5. 자연신학과 자연철학

  19세기에 풍미한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속에는 자연을 이끌어가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후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로 하여금 범신론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하였다. 그의 사상은 중세기에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에 따라 카톨릭교회에 신비주의적 요소가 침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자연철학은 자연을 신비화함으로써 환경보호에 기여했으나, 자연과학의 발전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자연철학의 영향을 받은 자연신학(自然神學 natural theology)은 자연계에 나타난 신의 능력과 신성(롬 1;20)을 노래하면서 모든 생물이 자연에 적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신비속에서 신의 설계와 신의 의지를 찾고자 하였다. 큐비에의 제자인 하버드 대학의 아가시즈(L. Agassiz)는 <분류에 대한 고찰>(1857)에서 "생물계는 유일한 지혜와 위대성, 전지성, 통찰, 섭리를 잘 보여준다. 이런 사실들을 통하여 인간은 창조주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다윈은 캠브리지 대학에서 배웠던 그의 스승 패일리(William Paley 1743-1805)에게 일생동안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자연환경에 대한 생물계의 오묘한 적응현상을 신의 존재론적 증명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다윈은 생물들이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현상에서 생물의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의 선택(natural selection) 현상으로 이해하였다. 다윈은 학부과정에서 고전, 수학, 신학을 공부했는데, 패일리의 <기독교의 증거>와 <도덕과 정치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패일리는 자연계의 오묘한 조화는 지적설계자(Master Designer)인 창조주의 솜씨(Creator's Hand)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표현에 대해 연구한 진화론자인 헉슬리는 해석하기를, 패일리가 신이 자연을 창조한 후에는 우연에 의해 발전해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유주의적이며 진화론적인 사고를 받아들인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였다. [Francis Darwin ed; Charles Darwin, life and letters, 3 vols, 2;202, John Murray, London, 1887] 그래서, 패일리의 신은 종종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연선택사상은 다원 이전에 웰스(William Charles Wells 1813), 월레스(Alfred Russel Wallace 1858), 체임버(Robert Chamber)등에 의해 주창된 것으로. 다윈은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가 체임버의 <창조의 자연사적 증거들>(1844)을 보지 못했더라면 <종의 기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F.G. Crookhank; The Mongol of Our Midst, p 4, E.P. Dutton & Company, New York, 1931] 체임버는 인종이 진화와 퇴보에 의해 유래된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Crokshank 1931).

  다윈은 그 후, 보수주의적인 캠브리지나 옥스퍼드대학 대신 자유주의적인 에딘버러대학으로 전학하여 지질학자 및 라마르크주의의 동식물학자들과 만나면서 진화에 대한 기초를 쌓게 되었다. 그는 불신자들(부모, 형제, 친구들을 포함한)이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다는 성경내용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불신자로 돌아서게 된 것으로 전한다. [Nora Barlow; 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rwin, 1809-1882, p 87, Collins, London, 1958]

 

6. 유물론과 사회과학

  다윈이 후일 비글호(The Beagle)로 항해하면서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와 더불어 가장 애독한 책이 말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의 <인구론>(人口論 Essay on the Principles of Population 1798)이었다. 인구론에 나오는 "식량생산의 증가는 산술급수적이나 인구증가는 기하급수적이다...이러한 불균형은 기근, 지진, 혁명, 전쟁 등에 의해 인구가 조절된다"는 글을 읽고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개념을 도출하였다. 그는 후커에게 보낸 편지(1838. 10)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말서스의 인구론을 읽었는데..... 생물이 경쟁상황에서 적절한 변화를 일으킨 것은 살아 남고 적응치 못하면 도태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런 생존경쟁의 결과라면 신종(新種)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공산주의자인 엥겔스(Engels)는 생명을 '단백질의 한 존재양식'으로 규정하였으며, "진화론은 유물론의 한 기둥"이라 하였다. 막스(Karl Marx)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연환경에서 생물들의 경쟁은 계급간의 경쟁과 관련된다"고 했으며 다윈의 생존경쟁을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라는 말로 바꾸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자본론> 속표지에 "챨스 다윈 선생님께,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칼 막스로부터" 라고 서명하여 다윈에게 기증하였다(사진 5). 이러한 사실에서도 진화론과 유물론간의 긴밀한 학문적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The Wealth Nation 1776)에서 "자유경쟁의 시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룬다"고 하였다. 다윈은 이러한 현상을 자연도태에 의해 모든 것이 스스로 진보한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영향으로 진화론은 당시에 부르조아 계급의 주요한 정치이념으로 이용되었다.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는 사회를 하나의 통합적인 생명체로 해석하는 <사회진화론>을 주장하면서 '진화(evolution)'라는 용어의 보급에 앞장을 섰고,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획득형질의 유전과 자연선택설을 지지하였다. 그가 만든 사회진화론은 적자생존원리를 합리화함으로써 인종차별과 강대국에 의한 식민지정책의 합리화에 이용되었다.

 미국의 프랭크린(Benjamin Franklin 1706-1790)도 영국의 사회주의적인 단체(Moon Club)의 회원이었으며 [Taylor; ibid, p 55], 유니테리언이었던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는 사회주의적인 프랑스혁명을 지지하다가 미국으로 추방되기도 하였다. [Taylor; ibid, p 56]

 

7. 인공육종실험

  다윈은 당시에 유행했던 동식물의 육종실험으로 변종이 탄생하는 것을 보고 여기에 '장기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계속되면 신종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실험적 세계에 상상의 날개를 달게 한 것이다. 그는 <종의 기원>(1859)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자연계에서의 도태는 인공교배보다 훨씬 더 정교한 것이다...자연계의 생물들은 한없이 복잡하며 격심한 조건에 순응치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8.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이 밖에도, 오랜 중세 암흑기에 인간을 억압했던 종교에 대한 반발로 촉발된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및 18세기에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산업혁명도 다윈의 진화론 형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물진화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몽테스큐(Chales de Secondat Montesquieu 1689-1755)로 그는 "태초에 매우 적은 종으로부터 다양한 생물로 증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마일레(Benoit de Maillet 1656-1738)는 "물고기가 조류, 포유류, 사람의 조상"이라고 했으며(1748), 백과사전학파인 디데로(Diderot)는 "원시동물로부터 자연에 의해 오늘의 모든 동물들로 발전했다"고 하였다.

 

9. 유니테리언 가문과의 교제

  다윈의 가문은 유니테리언인 웨지우드 가문(Josiah Wedgewood's family)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죠시아 웨지우드는 다윈의 조부인 에라스무스 다윈의 친구였다. 이들이 다니는 유니테리언 교회에는 산소의 발견자인 화학자 플리스틀리(Joseph Priestley)도 포함되어 있었다. 찰스 다윈도 청년시절에는 유니테리언이었다. 죠시아의 딸인 수산나(Susannah)는 다윈의 아버지인 로버트 다윈(Robert Darwin)과 결혼하였다. 찰스 다윈은 어머니의 조카인 에마(Emma Wedgewood)와 근친결혼을 하였다. 다윈의 큰 누나는 웨지우드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다윈 가문과 유니테리언신앙의 웨지우드 가문이 3대에 걸쳐 겹사돈관계를 맺으면서 긴밀한 혈연관계를 갖게 되었다.

  유니테리언은 후일 다윈의 진화론을 교회 내로 이끌어들이는 중심적 역할을 함으로써 유신진화론의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하버드대학을 유신진화론으로 바꾸게 한 아사 그레이이다. 그는 다윈의 친구로서 교제를 계속하였으며, 미국에 진화론을 도입한 <진화론 전도사>였다. 여기에서 의문이 되는 점은 왜 다윈 가문이 웨지우드 가문과 대대로 결혼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 해답은 그 당시 빅토리아시대의 영국사회에서는 명문계급간에 우수한 집안끼리 결혼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이미 부정된 라마르크의 후천 획득형질의 유전설을 다윈이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Taylor; ibid, p 127]

  그러나, 이렇게 의도적으로 육종되어 태어난 근친간의 자손은 병에 걸리게 된다. 찰스 다윈의 10명의 자손이 이를 증명한다. 한 딸(Marry)은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앤(Anne)은 10세에 죽었다고 한다. 장녀(Henrietta)는 15세에 정신분열증에 걸렸고, 6남중 3명은 다윈이 표현한대로 잦은 병으로 '쓸모 없는'(semi-invalid) 존재가 되었으며, 막내아들(Charles Jr.)은 지능저해자로 태어나 9개월만에 죽었다고 한다. 레오날드 다윈만 제대로 자라났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다윈 자신도 일생을 갖가지 병으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윈슬로우(J. H. Winslow)는 그가 비소축적 독에 걸렸다고 했으며(Colp 1977), 애들러 교수(Saul Adler)는 샤가스씨병(Chagas disease, Triatoma infestans)에 걸렸을 것으로 진단하였다(Colp 1977). 다른 학자들은 니코틴중독이나 정신적, 심리적 질환을 추측하기도 한다.

  그의 병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콜프(Colp)에 의하면 다윈은 공교롭게도 진화사상을 품기 시작한 젊은 시절(1837. 7)부터 각종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망, 비글호를 운전했던 피츠로이 선장의 자살,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때(1859) 받은 거센 사회적인 비난 등으로 신경쇠약과 위장병을 앓았으며, 얼굴에 퍼진 습진 때문에 그 유명한 수염을 기르게 되었다고 한다. [Ralph Colp; To be an invalid, p 142,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1977] 다윈은 1882년 4월 19일, 런던근교에서 심장마비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였다. 무신론자인 그의 시신은 유신진화론자인 훼드릭 템플의 노력과 영국상원의 청원에 힘입어 기독교의 심장부인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묻히게 되었다.

  다윈의 사촌인 갤튼(Francis Galton)은 미래사회를 지배할 우수 엘리트의 육종에 대해 광범위한 저술활동을 하였다. 그는 한 저서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보다 적합한 인종이나 혈통종자를 만들려면 덜 적응적인 인종보다 빠르게 증식하는 보다 좋은 기회를.....인종우생학이라는 단어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충분히 표현해 준다" [Francis Galton; Heredity Genius, p 24, Macmillan, London, 1869]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임번삼
2004-07-26

<지상강좌> 진화론, 창조론, 그리고 유신진화론


자연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서 학문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학문은 자연에 대한 해석체계로서 자연계에 내재되어 있는 우주의 법칙을 찾아내려는 합리적이고도 체계적인 활동인 것이다.

우주의 법칙 자체를 신격화한 것이 범신론(pantheism)인데, 기독교를 제외한 여러 종교와 진화론을 포함한 많은 학문이 이에 속한다. 이에 반해 우주법칙을 만든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신을 진리의 본체로 믿는 인격신론(personal theism)에는 개신교를 비롯하여 카톨릭, 유대교 및 이슬람교가 있다.

학문은 그리스의 이오니아학파로부터 출발했다. 지금부터 2,70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학문의 주된 관심사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en arche)에 관한 것이었다. 우주와 생명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추구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늘의 자연, 사회, 인문 분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모든 학문의 공통목표는 우주와 생명의 실체, 즉 진리의 본질을 탐구하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질과 에너지를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만으로는 진리를 찾을 수 없으며, 인문 및 사회과학과 서로 손을 잡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문, 사상 및 종교의 형태로 추구되어 왔다.

학문분야에서는 자연에 대한 해석이 두 가지 시각으로 대립하여 왔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그것이다. 생명과학의 역사는 세 가지 테마에 대한 논쟁사라 할 수 있는데, 이 분야에서도 두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왔다.

첫째는, 태초에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가 하는 기원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절로 태어났다는 자연발생설과 창조주가 무로부터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대립하여 왔다.

둘째는, 오늘의 수많은 동식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나 하는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두 설이 극명하게 대립하였다. 무기물에서 단세포가 발생한 후, 지금과 같은 여러 종류의 동식물로 발달했다는 진화론(evolutionism)과 창조주가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한 형태로 만들었다는 창조론(creationism)이 그것이다. 이 밖에 다른 천체로부터 생명의 씨앗이 지구로 날라 와서 부화했다는 우주유입설(panspermia)이 있으나 그 씨앗이 태초에 어떻게 탄생했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므로 결국 모든 문제는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셋째는,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fossils)과 그것을 품고 있는 지층(geological strata)의 형성에 관한 문제이다. 진화론자들은 지층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이면서 그 시대에 진화되어 살고 있었던 생물군이 화석으로 매몰되었다는 동일과정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대홍수에 의한 격변으로 조산활동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지각이 변동하면서 지층과 화석이 짧은 기간에 생성되었다는 격변설을 주장한다.

어떤 문제이든 과거에 일어난 일이므로 정확한 실상을 알 수 없으며 단회적 사건(?)이었으므로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설명하는 해석체계이면서 신념이요 신앙일 뿐이다.

진화론은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 신앙이며 창조론은 목적론적이며 인격신에 대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두 이론은 주장하는 내용이 대립적이므로 물과 기름처럼 타협될 수가 없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학문적 해석체계는 이 두 이론뿐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화될 수 없는 두 이론을 하나로 엮어 놓은 것으니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이다. 말하자면 유신론적 유물론(theistic materialism)이 탄생한 셈이다. 이질적인 요소가 봉합되었으니 여러모로 자가당착(自家撞着)적인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신진화론은 이론상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주장하는 내용이 산만한 느낌을 준다.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비과학(non-science)이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교육기관에서 오로지 진화론만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이론인 양 가르쳐지고 있다. 반면 창조론은 창세기에 근거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리적인 비과학으로 매도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으로 위장된 비과학이며 창조론은 비과학으로 매도되고 있는 초과학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뒤에서 차차로 설명할 것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실시한 어느 여론조사(John Hulley 1995)는 흥미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벨상 수상자들(1900-1990)의 종교 분포에서 개신교가 64%로 수위를 점하였고, 카톨릭(22%), 유대교(11%), 정교회(1.6%)가 그 뒤를 따랐다. 기독교계가 98.6%로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기원'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조사(Gallup poll 1993)에서도 매우 놀랄만한 결과가 나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비율이 47%이었으나 진화론은 9%에 불과하였다. 반면 유신진화론이 40%를 차지했다.

위의 두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사회에서 진화론이 유신진화론으로 급속히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신진화론의 정체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신진화론은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다윈의 진화론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다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20세기 후반부터는 진화론이 반대로 유신진화론에 영향을 주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이들은 성경의 기적들을 부인하며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진화론적으로 창조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유신진화론이 오늘날 기독교계로 깊속히 침투하고 있어 우리의 각성이 요구되고 있다. 말세에 교회에 '양의 가죽을 쓴 이리'가 들어온다면 그 중 하나는 이 유신진화론이라고 나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과 교역자들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관심마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유신진화 사상으로 서서히 세뇌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머지 않아 기독교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 같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전된 것은 창조과학자들의 게으름이 큰 몫을 했음을 자성해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창조과학자들은 기독교계에 유신진화론에 대한 경종을 울리면서 체계적인 대처방안을 모색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쟁사

앞에서도 기술했듯이, 생명과학의 역사는 생명의 기원과 다양성 및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과 지층의 형성에 대한 논쟁사라 할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우주와 지구 및 생명체가  저절로 발생하였고, 유인원으로부터 현생인류가 진화했다고 가르친다. 유신진화론에서는 하나님이 창조의 주체라는 사실만 다를 뿐, 진화론의 주장에 거의 동의한다. 즉 하나님이 자연법칙에 따라 진화론적으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창조론에서는 6일 동안 하나님이 무에서 우주를 창조하셨고 모든 생명체들은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한 형태로 만드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진화라는 용어가 개입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상(事狀)은 하나인데 해석이 이처럼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우주, 태양, 지구 등의 나이에 대해서도 진화론에서는 긴 연대(각각 120억 년, 50억 년, 46억 년)를 주장하나, 창조론에서는 모두 10만 년 이내(7-8천여 년)로 추정한다. 지층형성이나 그 속에 들어 있는 화석의 기원에 대해서도 진화론과 유신진화론에서는 장기간에 서서히 쌓였다는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을 주장하지만 창조론에서는 노아홍수에 의한 천재지변으로 갑자기 만들어졌다는 격변설(catastrophism)을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학설을 예시해 보면 진화론에서는 자연발생설, 화학진화설, 생물진화설, 동일과정설, 빅뱅설등이 있으며 유신진화론에는 다중격변설, 간격설, 날-연대설, 진행적 창조설, 골격가설 등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창조론에는 생명속생설, 세포설, 종의 불변설, 유전법칙, 격변설(노아 홍수에 의한) 등이 있다.

진화론이나 유신진화론의 특징은 모두 예외 없이 추리에서 출발하여 추측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장의 기술방식은 대개 '...라면', '...일 경우', '...로 추측된다', '...일 것이다', '...라 생각된다' 등과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이에 반해 창조론은 대부분 실험에 의해 확인된 확고부동한 사실들이다. 오늘의 생명과학 이론들은 거의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수립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조론과 싸우고 있는 진화론자들이 최근에는 이러한 창조과학적 이론을 진화론을 옹호하는 것처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석은 사실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세 이론간의 논쟁은 매우 치열하였다. 생물의 진화문제에 대해서는 종의 가변설(evolution of species)을 주장한 뷰퐁-라마르크(1744-1829)팀이 종의 불변설(immutability of species)을 주장한 린네-큐비에팀과 부딪혀 창조론적인 종의 불변설이 승리를 거두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창조론측의 레디(1626-1697), 스팔란쨔니(1729-1799), 파스퇴르(1822-1895), 틴달(1823-1893) 등의 생명속생설(biogenesis)이 각각 진화론측의 헬몬트, 뷔퐁(1708-1788), 니이덤과 푸셰(1800-1872), 베스쳔(1837-1915) 등의 자연발생설(abiogenesis)과 격돌했으나 창조론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특히 파리에서 프랑스과학아카데미 주선으로 열렸던 파스퇴르와 푸셰간의 대결은 공개논쟁의 개시를 알리는 첫 신호탄이기도 하였다.

이후, 한동안 생명의 기원논쟁은 잠잠하여진 듯 했으나 20세기초(1936)에 소련의 오파린이 다시 화학진화설(chemical evolutionism)을 들고 나옴으로써 생명발생설에 대한 두번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유물론적 주장은 생명을 단순한 자동기계로 해석하려는 생명기계론으로 연계되어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까지는 창조론이 연속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 발표되면서 상황은 진화론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인 멘델은 6년간 수도원에서 완두콩과 분꽃을 재배하면서 발견한 '유전법칙'을 오스트리아의 부린학회에서 공식 발표했으나(1866) 그 내용이 다윈의 진화론과 상치되었기 때문에 생물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빛나는 그의 업적은 1900년도에 그의 법칙이 재발견될 때까지 그의 죽음(1884)과 더불어 무덤 속에 들어가 침묵을 강요당하였다.

영국의 런던에서 공개적으로 열렸던 '옥스포드논쟁'(1860)에서는 창조론 측의 윌버포스 주교가 진화론자인 헉슬리에게 판정패를 당하였다. 이 논쟁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첫 번째 공개논쟁이었으므로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그 영향으로 진화론은 영국은 물론 구미제국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싸움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도 계속되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그레이(Asa Grey)와 아가시즈가 격돌하여 유신진화론이 승리한 데 이어 예일대학, 프린스턴대학, 맥길대학 등이 1880년대에 진화사상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고등학교 교과서에 처음으로 진화론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20세기초부터는 창조론이 교과서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추세에 위협을 느낀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변호사는 반진화운동을 전개하여 테네시주(1925), 미시시피주(1926), 아칸소주(1928) 등이 진화론 교육을 금지시키도록 법제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실제로 스코프스 재판이 끝난 직후인 1927년에 13개 주에서 반진화론 입법이 상정되었다.

이에 반발한 진화론 측의 시민자유주의연맹(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이러한 법규들의 실효성을 실험할 목적으로 스코프스(John Thomas Scopes)라는 교사의 협조를 얻어 테네시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내용을 가르친 사건을 연출토록 하였다.

이를 알게 된 한 학부형의 고발로 테네시주의 데이튼이라는 지방 법정에서 '원숭이재판'(1925. 7)이 열리게 된다. 세계 최초로 열린 이 법정재판에서 스코프스의 변호를 맡았던 ACLU 측의 대로우(Clarence Darrow)가 제시한 네브라스카인(1922)과 필트다운인(1912)의 자료의 뒷받침으로 진화론측이 승리하였다.

진화론자들이 제시했던 그러한 자료들은 후일 네브라스카인의 어금니는 멧돼지의 것으로(1928), 필트다운인의 유골은 오랑우탕의 턱뼈에 인간의 두개골을 조립한 사기극으로 드러 났으나(1953) 진화론을 미국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데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은 스코프스사건을 근본주의와 모더니즘간의 상징적인 충돌이며 따라서 창조론을 변호했던 브라이언의 패배를 근본주의의 몰락으로 의도적으로 몰고 갔다.

1960년대에는 소련의 스푸투닉호 발사에 자극을 받은 미국정부가 과학교육을 강화하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진화론이 생물교과서에 재등장하여 창조론을 대체하게 되었다. 그러나, 카터(Paul Carter), 산딘(Ernest Sandeen), 마스덴(George Marsden) 등의 수정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스코프스 재판으로 근본주의가 몰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속하게 되었으며 근본주의는 오랜 지적 전통을 지닌 운동이라고 지적하였다.  

1970년에는 국공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을 금지하는 미국헌법조항(Establishment Clause)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헨리 모리스(Henry Morries)를 비롯한 창조론자들은 성경적 창조론(biblical creationism)과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을 구분하고 이 중에서 과학적 창조론을 진화론과 같은 비율로 가르치도록 하는 동등시간법(equal time law)을 채택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81년에 아칸소주와 루이지아나에서 이 법안을 채택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에 대해 ACLU는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닌 종교교리라고 법정에 고소하였다. 아칸소주의 법정에서 열린 재판정에서 일주일간 양측은 전문가를 동원하여 변론에 임했다. 진화론 측의  루스(Michael Ruse)는 창조과학이 과학의 요구 조건인 자연법칙성, 실측성, 재현성, 잠정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과학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의 변론 내용을 에 수용한 담당판사 William Overton는 동등시간법에 대해 위헌판정을 내렸다.

뒤이어 루이지애나 법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판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반창조론자인 라우든(Larry Lauden)등은 루스가 주장한 것처럼 창조론이 비과학적인 요소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더구나 그의 주장대로라면 진화론을 포함한 많은 역사적인 과학적 사건들이 과학의 범주에서 배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지층형성에 대해서도 허튼-라이엘의 동일과정설과 큐비에의 다중격변설 및 성경적 격변설이 격돌하여 왔으나 지금은 동일과정설이 일방적 승리를 거둔 상태이다. 그러나, 최근(1980) 미국 시애틀에서 세인트 헬렌산이 폭발하면서 지층과 호수가 단기간에 형성됨으로써 지구연령에 대한 논쟁을 재연시키게 되었다. 영국의 대표적 지질학자인 스완시대학의 지질학과장인 에이거 역시 짧은 지질연대를 내세우며 신격변설(neo-catastrophism 1976)을 주장하고 나섰다.

심지어 진화론의 대표주자격인 스티븐 굴드(1975)까지도 '격변주의자들이 라이엘보다 더 실증적이다. 지질학적 기록은 격변을 요구하는 것 같다. 암석들은 갈라져 있으며 비틀어져 있다. 모든 동물군들은 멸종되었다. 이러한 실제적인 상황을 속이려고 라이엘은 자신의 상상력을 증거로 동원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창조론적 지질학자인 헨리 모리스(1987)는 앞으로의 학술논쟁의 촛점은 <창조냐 진화냐>에서 <지층의 연대>문제로 이행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진화론과 창조론간의 이러한 논쟁은 그후 여러 국가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KBS-2(1988)와 '과학동아' 및 매스컴을 통해 양측간의 학술논쟁이 여러 번 전개된 바 있다. 당시에 진화론 측을 변호했던 세 학자들은 장로를 포함한 기독교인들이었다고 한다.

유신진화론과 창조론간의 싸움도 끊이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세기 영국의 한  카톨릭교회 내에서 벌어졌던 진화론적인 와이즈맨(1802-1865)과 창조론적인 매닝(1808-1892)간의 논쟁(19C), 하버드대학에서의 '진화론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진 아사 그레이(1810-1898)와 빙하고생물학자인 아가씨즈(1807-1873)간의 논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싸움은 총칼은 들지 않았지만 인간의 생명과 영혼을 담보로 한 것이기에 양보할 수 없는 전투라 할 수 있다. 단순한 학술논쟁이 아니라, 영혼을 죽이고 살리는 처절한 영적 전투인 것이다. 크리스쳔 엘리트라면 이러한 전투대열에 참여하는 것이 '착하고 충성된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34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유물론, 애니미즘, 그리고 진화론 

(Materialism, Animism and Evolutionism)

Magnus Verbrugg 


       인간은 창조된 이후 줄곧 스스로의 창조 여부에 관한 질문과 맞닥트려 싸워왔다. 유태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 신자들은 전통적으로 창조론을 지지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창조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거의 없다. 그들이 창조주를 부인하게 된 것은 현대과학이 이룩한 발견의 결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부인한 역사는 실질적으로 인간의 죄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

고대 힌두교도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브라마(Brahma) 신(神)은 우주만물이 마모됐을 때 어떻게든 기존의 물질을 재생시키어 새로운 우주를 형성하는 현실적인 현상으로만 믿었다. 이와 비슷하게, 후기의 고대희랍 철학자들은 물질은 영원한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까닭에 그들도 역시 창조주를 몰랐다. 그들은 물질에는 내재하는 어떤 힘이 있어서 생명력을 부여한다고 믿었다. 희랍인들은 이 '종교적” 신앙을 철학체계로 완성시켰다. 오늘날 애니미즘 (物活論)으로 알려진 철학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가시적인 물체로부터 개념을 추상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여 정신적 기능을 구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창조주를 모르는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은 자연현상의 배후에는 어떤 숨겨진 힘(power), 또는 불가시적인 정령(spirit)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믿음을 오늘날 애니미즘이라고 한다. 미생물 부문 노벨상 수상자 쟈크 모노(Jacque Monod)는 애니미즘을 이렇게 정의했다. 즉, 애니미즘은 "중추신경계통의 기능을....무생명적인 것 (inanimate nature)으로 인식하고, 그 자각을....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처럼 인간의 주관적인 방법으로 설명될 수도 또 설명되어야 한다는 가설로 객관화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1 플라톤(Plato)은 사유의 추상을 통해서 혼돈한 물질로부터 모든 물체를 형성하는 힘을 데미우르고스(Demiurg)라고 의인화하였다.

위대한 자연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생명이란 모든 생물체의 배후에 존재하는 특별한 힘(power)이라고 선언하고, 이를 애너머(anima: 생명이라는 라틴어)라 불렀다. 이는 입김, 즉 영어의 ‘breath'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무생명체 안에 생명력의 투입이라는 그의 애니미즘은 창조주를 대신하는 그의 이론이다. 이렇게 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물론이 생기설(生氣說. vitalism)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베르그송(Bergson), 드리시(Driesch), 드 샤르댕(de Chardin)을 포함하여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그의 유물론적 생기설에 형식상의 수정을 가하며 이를 옹호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유물론자들은 생명력(vital forces)이 물리화학적인 분류법과 계기로는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생기설을 부인한다. 그리고 중력, 전자기력(electromagnetism), 그리고 원자력과 같은 오직 물리력 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측정되지 않는 힘은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로 간주하고, 그것을 '초자연적 (supernatural)'이라고 선언했다.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생화학자인 오파린(A.I. Oparin)은 "생명이란 세상의 모든 물체와 마찬가지로 물질이다… 그러나 그 고유 특성은 물질의 일반적인 특성의 한계 안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물질운동의 어떤 특수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하여 유물론자들은 생명은 물리적 에너지와는 실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나아가 물리적 에너지로 변질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고수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에는 물질과 뚜렷이 구별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렇지만, 인간의 출현과 동시에 물질운동의 새로운 사회적인 형식이 대두한다..”라고 하였다.


생명체의 과학적인 분석  데이터

오래 전부터 인체는 80%가 물로 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주로 탄소, 질소, 산소, 인, 그리고 미미할 정도의 몇 가지 다른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인체는 먹은 음식(대개가 단백질, 지방질, 그리고 녹말)을 먼저 미세한 분자들로 분해한 후 복합분자들로 만들어내고 있다. 예컨대, 특수 단백질인 효소는 수천번 씩 인체 내에서 화학작용을 촉진시킬 수 있다. 수십만 개의 서로 다른 단백질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특수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DNA와 RNA 그리고 개별 생명체의 세포분열과 세포번식과 관련된 몇 가지 다른 분자들의 기능들이 알려져 있다. 한 세포 내에 있는 각각의 분자는 세포의 전반적인 기능에 꼭 필요한 분자 나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 분자를 세포에서 떼어냈을 때 그 분자는 세포 내에 있을 때와 같은 화학반응을 여전히 일으키지만, 반응은 제멋대로 된다. 통제된 화학반응은 간 데 없어진다.


과학적 허구의 간극을 뛰어넘어

과연 유물론자들은 창조주 없이도 물질이 살아있는 유기체를 어떻게 생성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실험실에서 생명을 생산해 냈다는 그 어떤 실험흔적이라도 남겼던가?

물질과 생명과의 사이에 있는 간극에 연결 가교를 놓아보려는 기도로 수십억 달러의 돈이 쓰였다. 그렇지만, 비전문가들은 이런 섬세한 문제로 신경을 쓸 필요까지는 없다는 충고를 듣게 마련이다. 오파린(A.I. Oparin)과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을 대변하는 러시아의 어느 이론가는 매우 영향력이 큰 저서를 집필했다. 세르기우스 모르구리스(Sergius Morgulis)가 그 책의 이름을 <생명의 원천>이라고 번역한바 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 생물학자는 마치 비전문가처럼 식물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을 구분하는 경계선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생명체와 생명체의 구별도 모른다. 그런 차별성은 전적으로 개념적인 것이지, 실체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4

이렇듯이, 모르구리스는 생명체와 무생명체 간에 그 어떤 간극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독단적으로 선언하였다. 그의 스승인 오파린은 죽은 물체에 생명을 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운동(motion)으로 알았다:

"물질은 끊임없이 운동한다, 그리고 … 생명은 운동의 특수한 형식으로 생성된다.”5

이와 같은 엉뚱한 관념은 공산주의자 프리드릭 엥겔스(Friedrich Engels)로부터 왔던 것이다. 엥겔스는 새로운 자연 '법칙”을 발견하였다고 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질적 차이는 화학적 구성물의 차이에 있던가, 에너지의 양적 또는 형식적 차이에 있다. … 어쩌면 그 둘 다의 차이에도 있을 것이다.”6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생명체에게 창조력을 주는 힘이 애너머(anima) 였듯이, 엥겔스와 그의 제자 오파린한테는 물리력, 즉 에너지가 그러했다. 모노(Monod)는 이것을 '우주적 물활력(cosmic animism)이라고 불렀다.7 원론적으로 우주적 물활론(cosmic animism)은 숲과 돌의 신들을 숭배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변증법적 유물론은 현대의 과학자들 사이에 상당히 인기가 높다. 몽따랑띠(G. Montalenti)도 ‘생물 철학의 연구(Studies in Philosophy of Biology)’에서 유물론적 변증법을 사용하였다: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를 결정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는 잘 알려져 있다. …분자들이 개별적으로 차별성과 재생을 시작할 때 …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이 실질적으로 역할을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생명을 시작시키는 일이다… 재생의 힘이 문제다. …”8

이 생명재생의 과정에 대해 딜론(Dillon)은 도발적인 시나리오를 썼다.

"상호간에 복제가 가능할 만큼 모순이 없었던 폴리 아미노산 연쇄고리(poly amino acid chain)의 접촉은 우연히 시작한다. (혹은, 그 대신에 자력-복제를 하는 개별 peptoid 분자가 생긴다.) …이것이…최초의 생명의 존재였다.”9

그는 두 개의 분자가 화학적 연결로 결합되었을 때 새로운 분자 하나가 생긴다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떻게 죽은 분자가 갑자기 자력-복제의 기능을 시작할 수 있는가 하는 데 대해서도 언급이 없었다.

물리학자 엘사쎄르 (Elsasser)는, 폴리 아미노산 연쇄고리의 무작위적인 편성과 상호간의 '우연한” 접촉의 가능성은 통계학적으로 영(零)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노 (Monod)의 지론(持論)을 저지하지는 않는다.

"...생물권은 (물리학의) 제1법칙들과 양립할 수 있지만, 그 법칙들로부터 연역되지 않는다. … 내 손에 들려 있는 이 조약돌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의 독특한 배열이 예측불허라는 바로 그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그것(폴리아미노산 연쇄고리의 접촉. 譯者註)도 예측불허이다.”10

그렇지만 일단 그것들(폴리 아미노산 연쇄고리의 무작위적인 편성과 상호간의 우연한 접촉. 譯者註)이 일어나면, 그것들은 "화학적 장치(chemical machines)”11로 간주돼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그런 것이 일어났을까? 여기 그 대답이 있다:

"무작위적인 편성이 날개를 달게 되고, 보존되고, 재생된다. …그렇게 되어 질서, 법칙, 필연으로 변화한다. 전체적인 맹목적 과정이 아무 것으로도 될 수 있다: 그것은 가시적인 것 그 자체로 될 수도 있다.”12

이와 같이 해서, '당연히(by definition)' 불가능한 일이 능히 생겨날 수 있게 되었다!

해롤드 불럼(Harold Blum)은 독특한 방법으로 유물론 운동(cause)을 도왔다. 왜 단백질 분자들의 생성이 "자연발생적일까?”하고 그는 자문한다. 그리고는 "만약에 생명 체계(system)가 진화한다는 것이 …(하나의 사실)이라면,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자연발생적인 단백질 분자의 생성을 받아들였을 것이 틀림없다."13

현대 철학의 정교한 합리적 설명의 한 예를 딜론(L. Dillon) 박사의 생명의 정의에서 엿볼 수 있다. "대사(代謝)작용으로 분해된 단백질의 양을 보충하기에 충분한 양의 단백질을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합성하는 능력”14을 생명이라고 그는 정의한다. 이 말은 생명체들도 화학적인 실체들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런 다음 그는

"이것으로 생명체의 근본적인 특성들이 일반적인 물리-화학적 용어로 기술될 수 있다는 이유가 충분해 진다. 이런 까닭에 그 정도로서도 유기체 세계에 대한 일반화된 기계론적 관념이 공고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15


잃었던 과학을 되찾다 (Science Regained)

유물론자들은 크리스천들이 과학에 초자연적인 힘을 도입하려 한다고 거듭거듭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유물론자들은 죽은 분자들 속에 창조력으로 가장한 숨은 정령(spirits)이나 정령신앙(animism)을 과학에 도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크리스천은 더 이상 이교도의 철학이 발명한 정령들을 수용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진화론을 부인하는 과학적인 이론들이 수없이 많이 대두되고 있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이 유물론 철학의 실추가 허만 두위어드(Herman Dooyeweerd) 박사에 의해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두위어드 박사의 필생의 노작은 크리스천들에게 유물론자들에 대항할 수 있는 엄청난 철학적 무장을 제공해 주었다. 실체의 법상(實體의 法相; modal aspects of reality)에 관한 이론을 요약한 그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이 탁월한 화란의 철학자는, 과학자들이라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피조물을 지배하고 있는 다양한 법칙들이 상호간에 치환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상호치환의 불가능은 물론이고, 그보다는 오히려 각 실체는 변별적이고, 치환이 불가능하며, 그 실체의 독특한 법상으로 특별히 창조되었다 고 했다.

그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인본주의자들은 생명체 안에 존재하는 어떤 힘에게 창조의 능력(creative powers)을 할당해 주고 있다. 그것이 그들의 실질적인 신으로 되었다. 이념들(-isms)간의 차이는 여러 철학자들이 제 각각 한 가지 힘을 선택하고, 그것으로 여타의 힘들을 통분할 수 있다고 보는 데서 생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우상신 (偶像神)을 숭배한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물질로 된 우상이다. 고대의 인류들이 모시던 돌 우상들만큼이나 허망한 우상을 숭배하는 꼴이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유물론이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는가를 알려줄 수 있을 때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성경적 기초 위에서 과학적 탐구노력을 쌓아가야 할 때다.

만약에 우리가 이 우주(cosmos)의 원천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스스로를 계시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지상 성의(至上 聖意) 이다”16 라고 간증한다면, 우리는 이 법칙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인 이 세계를 보전하시는 데 쓰시는 우주법칙(cosmonomy)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껏 수많은 분야에서 과학을 희생시켰던 허구들로부터 과학은 구조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신실하다면, 하나님의 법칙들을 탐구하는 과학자가 된 자신이 거듭거듭 명예로울 것이다.


 

References

1. Monod, Jacques, Chance and Necessity, NY: Affred A. Knopf, Inc. 1972, p. 30

2. Parin, A.I., Life, its Nature, Origin and Development, NT: Academic Press, 1962. pp.5-6

3. Ibid., P.7.

4. Oparin, A.I., The Origin of Life, NY: dover Pub., 1938 Translation by Morguiis, S., p. viii

5. Oparin, A.I. op. cit., (1962) p. 6.

6. Engels, Friedrich, Dialectics of Nature, NY: International Pub., (1940), 1960, p.27

7. Monod, J., op. cit., p. 31

8. Montalenti, G. in Studies in the Philosophy of Biology, London: MacMillan, F.J., and Dobzhansky, Th., Eds., 1974, pp. 12-13

9. Dillon, Lawrence, S., The Genetic Mechanism and the Origin of Life, NY: Plenum Press, 1978, p. 412.

10. Monod, J., op. cit., p. 44.

11. Ibid., p. 45.

12. Ibid., p. 98.

13. Blum, Harold, Time's arrow and Evolution, NY: Harper & Bros., 1955, p. 164 and 173.

14. Dillon, L.S.,op. cit., p. 411.

15. Dillon, L.S., op. cit., p. 426.

16. Dooueweerd, Herman, A New Critique of Theoretical Thought, amsterdam and Philadelphia: H.J. Paris and the Presbytarian and Reformed Pub. Co., Vol. I. 1953, p. 101.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materialism-animism-evolutionism

출처 - ICR, Impact No. 94, 1981.

jerry Bergman
2004-07-26

다윈사상이 도덕률과 기독교 신앙에 끼친 영향

(The Effect of Darwinism on Morality and Christianity)


      사람이 다윈주의자가 되면서 동시에 크리스챤으로도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끔씩 제기되어 왔다 (Miller). 한편 종교와 다윈사상은 서로 섞일 수 없는 별도 분야이기 때문에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도 들린다 (Gould).

그러나 사실상 다윈사상에 의한 세계관이 생명의 근원, 목적 그리고 궁극적 의미에 관한한 일종의 도덕적, 그리고 종교적 가르침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윈사상의 가르침은 기독교, 유태교 그리고 이슬람교적인 신앙과 정면으로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다.

”문제는 다윈주의자들이 어느 순간에는 신(神)이나 종교를 다루지 않는다고 확실히 천명하고 돌아서서는 우주의 생성에는 그 어떤 목적도 없다고 철저하게 단언하고 있다는 점이 종교적이다.” (Johnson, p.118).

어떤 과학자들은 밀러(Miller)나 구울드(Gould)보다 더 개방적이고 솔직한가 하면, 또 몇몇 다른 과학자들은 "과학과 종교는 전혀 다른 분야에 속한다" 라고 주장하면서 무엇인가 정직하지 못한 이기적인 책략을 품기도 한다.(Dawkins, p. 62).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Futuyma는 ”창세기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결같이 ”진화론의 사상과 전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pp. 12-13). 이어서 그는, 다윈주의자들은 생명의 ”유물론적, 기계론적 기원”을 고집하고 있는 데 반해 ”창세기를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하나님' 한테서 구한다고 주장한다.

역사학자들은 다윈사상이 기독교 교리뿐만 아니라 유신론에 대해서도 파괴적인 충격을 안겼다는 사실을 세세히 기록하였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창세기의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믿게 만든 장본인이 다름 아닌 다윈사상이라고 인정하는 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다윈사상이 유신론이라는 카드로 만들어진 집을 모조리 무너뜨렸다고 보았던 것이다.

”만약에 성경이 창세기 첫 장부터 틀렸다면, 성경의 전체 계획의 신빙성은 결국 의심을 받게 될 것은 확실하다. 진화론은 단지 하나의 과학이론 이라기보다는, 그것은 하나의 폭탄으로서 … 무신론자들한테서는 환영을 받았고 유신론자들한테는 두려움을 주었다.” (Raymo, p.138).

다윈사상의 광범위한 수용의 결과로, 사회에서의 기독교적 도덕기반은 손상되었다. 더욱이, 다윈도 ”자기가 주창한 새로운 사상이 정치, 사회, 그리고 종교에 미칠 영향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특히 종교분야가 잃을 것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Raymo, p. 138).

많은 과학자들은 일반화된 다윈사상의 수용이 초래한 결과로, 인간은 ”우연적, 우발적, 찰나적 피조물의 일부분이지, 만물의 영장도 아니며”, 모든 유신론적 종교교리가 표방(標榜)하는 ”우주의 존재 이유 (raison d'etre of the universe)”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Raymo, p. 163).

노벨상 수상자,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의 말로 대표되는 바와 같이, 다윈사상은 많은 탁월한 과학자들로 하여금 ”우주에 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주의 무의미성(無意味性)이 더욱더 드러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었다.(p.154). 다윈사상은 이렇게 가르친다. 즉, ”우리의 삶은 우주 안에 있는 삼라만상 가운데서 찰나적이며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고 하였고 (Raymo, p. 110), 그리고 천당과 지옥은 물론이고 사후의 삶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을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육신을 떠나 존재하는 그 어떤 살아있는 힘이라든가, 물질이 아닌 정령, 또는 특별히 창조된 종(種)으로서 필요로 하는 생명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라고 하였다. (Raymo, p.42).

레이모(Raymo)는 ”갈릴레오(Galileo) 이후, 우리가 과학을 통해 배운 것은, 우주는… 우리의 운명 따위엔 아랑곳도 않고 있다는 것이며, [그리고] 무덤이 우리의 종착역이라는 암시뿐이다.” (Raymo, p.66-67).

가장 저명한 진화론 학자 중의 한 사람인 하버드 대학의 고생물학자, 조지 게이로드 심프슨(George Gaylord Simpson)은 사람이란 ”목적 없는 자연의 과정 중에 우연히 생긴 결과다” (p.35) 라고 가르쳤다.

레이모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즉, 다윈의 이론은 ”우리가 듣기 싫어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눈동자로서 피조물의 중심과 정점에 있다고 배워 온” 때문이기도 하며, 또 우리는 ”우주론적 구조 내의 삼라만상 중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태어난 찰나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p.129).

레이모는, 우주나 인간한테는 뭔가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는 우리의 믿음을 다윈사상이 깡그리 분쇄해버린 이상, 우리 교육 체계는 젊은이들에게 ”계보상 파충류나 아메바를 조상으로 가진 후손처럼 차갑고 축축한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라고 부언한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상들의 선례를 따라, 우리도 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 우주 속에서 우주의 양육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위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진화는 따사롭지 못하고 우울하다. 그 뿐만 아니라 변덕스럽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하다.” (p. 144).

잔인하던지 아니던지 그 여부와는 상관없이, ”다윈이론은 그 어떤 과학 기준에서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의 취학 어린이들은 지적인 보호 담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p.144)” 라고 레이모는 진술한다. 어쨌거나, 다윈사상의 함축은 ”아마도 인류의 사상사(思想史)에서 가장 혁명적이란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무대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우주적 존재의 우연한 일부분에 불과한 왜소한 존재이다. … 하루살이가 지구 안에서 찰나적인 존재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주 속에서는 찰나적인 것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우리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사실이지, 대다수의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 우리의 삶이 순간적이라니!, 우리의 운명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니!” (p.222 emphasis his).

존경받는 옥스퍼드 대학의 동물학자 리차드 도킨즈(Richard Dawkins)는 다윈사상의 함축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저술한 바가 있다. ”신을 반대하는 과학자의 경우 (A Scientist's Case Against God)” 라는 제목으로 펼친 그의 연설에서 도킨즈는, 다윈사상이 ”보다 더 높은 목적이란 것이 환상이란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라고 주장하면서, 그는 우주가 ”이기적인 유전인자들 (selfish genes)”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처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행운을 잡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라고 했다. (Easterbrook, p. 892).

도킨즈는 인생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은 오해에 기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무식의 소치라고 믿었다. ”오직 과학적으로 무식한 자들” 만이 인생이 보다 높은 목적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믿는다. 과학적으로 유식한 자들은 인생의 존재에 이유란 것은 없고, 어쩌다가 역사 속에 우연히 ”존재하게 됐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도킨즈는 더 나아가서, 유신론을 지지하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날 조그만 더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것을 인정한다” 라고 가르치고 있다. (Easterbrook, p. 892).

리차드 도킨즈의 방대한 저서가 전하고 있는 중심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즉, 만약에 우주가 ”어떤 설계도, 목적도, 악이나 선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의미없는 무관심만을 가졌다면”, 그 우주는 우리가 그런 우주한테 기대할 수 있을 만큼의 특성만을 보여줄 것이다. (Easterbrook, p.892). 도킨즈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저서인 '이기적인 유전인자(The Selfish Gene)' 를 통해 기도했던 바가 이런 것이라고 인정했다. 즉, 개체들은 종들(species)의 선을 위해 행동한다 라는 과학에서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잘못된 가정들을 그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잘못된 관념”으로 간주하고, ”반드시 폭로 돼야 할 오류를 폭로하는 최선의 방법은… 진화론을 유전인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Easterbrook, p. 892). 그런 다음 도킨즈는, <이기적인 유전인자>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 책이 인간의 존재 이유에 관해서 '진실'을 설명하기 때문이라고 부언하였다. 그의 설명은 ”인간은 …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인간의 이기적인 유전인자를 번식시키기 위해 여기 던져져 있을 뿐이다. 인생한테 보다 높은 목적 따위는 없다. 누군가 그의 <이기적인 유전인자>를 읽고 사흘 밤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의 전 생애가 공허해지고 우주는 더 이상 뜻이 없어진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Bass에서 인용, p. 66).

도킨즈는 자기 책이 사람들을 낙담시켰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레이모의 주장에 의하면, 현대의 다윈주의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관념은 인간의 마음은 ”단순한 고기 덩어리로 된 컴퓨터에 지나지 않는다” (pp.187-188) 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인간영혼의 존재를 '파탄 난 관념'으로 보았던 결과로 인간의 마음은 ”단순한 고기 덩어리로 된 컴퓨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하나의 공리(公理)'에 가까운 관념이라고 간주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pp. 192-193, emphasis his).

Futuyma의 말에 따르면, ”만약에 피조물을 품고 있는 세계가 순전히 물질과 물리력에 의해서 발전되고 있다면, 그것은 설계된 세계일 수 없으며, 또 목적이나 목표 따위도 가지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pp. 12-13). 더욱이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즉, 이와는 대조적으로 창조론자들은 세계의 모든 물체 하나하나, 즉 각 종(種)들은 … 어떤 지적 고안자가 목적을 가지고 설계(design)하였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인류의 종을 설계된 피조물이 아니고, 피조의 목적도 없는 단순한 물질의 기계론적 산물로 보는 관념을 진화론적인 메시지로만 치부해 버린다” 라고 하였다. (pp. 12-13).

이러한 비관적, 무신론적, 그리고 허무주의적인 인생관은 널리 보급된 관념일까? 어떤 조사자는, ”내가 만났던 조사 대상자들 가운데 99%의 과학자들은 도킨즈의 생각, 즉 진화를 부인하는 사람은 모두 다 무식하든가, 바보이든가, 미쳤든가, 아니면 비뚤어진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지지하고 있다” 라고 주장했다. (Rorsch, p. F3). 하지만 그들이 자주 들먹이는 이 주장은 전적으로 허위다. 미국 내에 있는 약 1만 여명이 넘는 과학자들과 전 세계에서 10만 여명에 가까운 창조론 지지 과학자들은 다윈사상을 거부하고 있으며, 그 대신에 창조론적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다. (Bergman). 모든 부모들과 조부모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모두들 ”과연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이란 아무런 궁극적인 목적도 없으며, 우리의 마음도 단순히 고기 덩어리로 된 컴퓨터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가르치기를 원하는가? 하고 자문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보면,

”……다윈사상이 함축하고 있는 뜻은 이렇다. 즉, 생명에는 전통적 종교의 의미로서의 '목적'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은 궁극적으로 무작위적인 과정(process)에 불과하다. …  다윈사상은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려 기도했다는 이유로 해서 과학 이론들 가운데서도 독특하다…” (Leith, p. 9, emphasis his).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저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이며, 우울한 다윈의 이론을 믿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과학이 다윈이론을 진리라고 증명하였다고 확신해 버리는 데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과학자들은 수없이 많은 증거들이 창조론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엘리트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진화론의 비과학적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과학자들도 수없이 많다. 샬리즈(Shallis)는 이렇게 주장한다.

”즉,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의 말처럼 우주는 목적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 이설(異說)이 아니라면, 호일(Hoyle)의 말처럼 '우주는 목적이 있다' 라고 말하는 것도 이설이 아니다. 이 두 이론이 다루고 있는 분야는 과학이 아닌 형이상학적인 관념이다. … 바로 여기서 나는 이런 결론을 유추해 본다. 즉, 과학이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허락한 결과로 스스로를 종교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무신론적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 (pp. 42-43).

다윈주의자들은 지난 100 여년 동안 가히 비극적일 만큼 파괴적인 사상으로 판명된 세계관을 우리 사회에 주입시켜오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필트다운(Piltdown) 인이라는 가짜 두개골을 들고 나오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수많은 교과서들 속에 전시하고 있는 그런 유형의 허위 증거들을 가지고 그 파괴적인 사상을 우리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Wells).

감사 : Bert Thompson, Ph. D., and Clifford L. Lillo for their insight.

 


REFERENCES:

.Bass, Thomas, 1990. Interview. Omni, 12(4):58-89

.Bergman, Jerry. 1999. ' The Attitude of Various Populations Toward Teaching  Creation and Evolution in Public Schools.' CEN Tech J, 13(2):118-123

.Dawkins, Richard. 1999. 'You can't Have It Both Ways: Irreconcilable Differences?' Skeptical Inquirer, July/August, pp. 62-63.

.Easterbrook, Gregg. 1997. 'Of Genes and Meaninglessness.' Science, 277:892,  August 15.

.Futuyma, Douglas, 1983. Science on Trial. NY: Pantheon Books.

.Gould, stephen Jay. 1999. Rocks of Ages: Science and Religion in the Fullness of Life. NY: Ballantine.

.Johnson, Phillip. 1991. Darwin on Trial. Washington, D.C.: RegneryGateway.

.Leith, brian. 1982. The Descent of Darwinism. London; Collins.

.Miller, Kenneth R. 1999. Finding Darwin's God: A Scientis's Search for Common  Ground Between God and Evolution. NY: Cliff Street Books.

.Raymo, Chet. 1998. Skeptics and True believers. New York, NY: Walker.

.Rorsch, A. 1999. 'Mutation Research Frontiers: Challenges to Evolution Theory.'  Mutation Research, 423:F3F19.

.Shallis, M. 1984. 'In the Eye of a Storm.' New Scientist, Hanuary 19, pp. 42-43.

.Simpson, George Gaylord. 1970. The Meaning of Evolution.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Weinberg, Steven. 1977. The First Three Minutes. NY: Basic Books.

.Well, Honathan. 2000. Icons of Evolution: Science or Myth. Washington, D.C.:  RegneryGateway.  

  

*참조 : Kinsey, Darwin and the sexual r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111-117.pdf

The Evolution of Morality   01/20/2008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1.htm#20080120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36.htm

출처 - ICR, Impact No. 336,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6

참고 : 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812|3682|3426|3423|3244|3241|3077|3055|3041|3039|3037|3024|2864|2579|2359|2353|2330|2307|2114|2039|2016|1174

미디어위원회
2004-07-26

나치의 기독교 말살 계획

(Nazis planned to exterminate Christianity)

Jonathan Sarfati 


       나치 전범에 대한 뉘른베르크 (Nuremberg) 국제재판은 무려 6백만의 유태인을 살해한 Holocaust 사건을 나치의 인종학살 계획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고발하였다. 미국의 고소인 단을 이끌었던 윌리엄 도노반 장군(General William Donovan)은 나치가 유태인 학살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체계적 파괴도 계획하였다는 내용을 담은 방대한 분량의 문서들을 제출하였다.


도노반의 문서들―무려 150 권에 달하는 장정본(裝幀本)―은 1959년 도노반이 죽은 후에 코넬(Cornel) 대학교에 보관되었다. 지금은 Rutgers Journal of Law and Religion에서 internet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이 범죄적 음모에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선전부장 요셉 게벨스(Joseph Goebbels), 히틀러 소년단의 지도자 그리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피고인 발두어 시라크(Baldure Schirach)를 포함한 나치당의 정상급 핵심 요원들이 연루되어 있었다.


이 문서에 의하면, 나치는 기독교회가 애초부터 나치의 인종차별과 정복전쟁 계획에 반대 입장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제압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하여 나치는 교회의 내부에 침입하려 하였다. 즉, 중상모략, 체포, 습격 등을 획책하고  목회자를 살해하고, 신도의 사상을 개조하며, 교회 학교와 청소년 조직에 침입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교회는 타협적인 교회에 반대하면서 대(對) 나치 항거의 전면에 나섰다. 성경의 무오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견지 하지 못했던 자유주의 교회들은 집권자의 친-진화론적 이념에 기독교 교리를 끼어 맞추려는 기도의 일환으로 기독교 교리를 서슴없이 ‘재해석’하려 하였다. 그것은 오늘날 다윈의 ‘과학’적 이론에 추종하려는 현상과 유사했다.


일찍이 1937년에 벌써,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나치 정책에 반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자 나치는 이를 보복하기 위하여 700명의 목회자를 체포 구금하였다.


인본주의자와 자칭 ‘민간 자유주의 단체’ 는 ‘창조설을 교회 내에 국한’ 시키자, 그리고 모든 기독교의 영향을 대중의 생활과 학교로부터 말살하자, 하고 외쳤다. 이 불길한 외침에 보조를 맞추어  ‘여러 교파의 교회들도 … 종교 활동을 가능한 한 좁은 범위 안으로 한정하려 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자진하여 축소한 활동범위 위에 더 많은 제약을 막무가내로 가하려 하던 나치의 방해 공작에 교회는 속수무책이었다.


기독교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러한 현상은 나치의 ‘점진적 잠식을 위한 용의주도한 기독교 말살 계획’을 진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고, 교회의 조직체계를 나치의 정치목적에 이용당하게 하였다.


 

*참조 : The Darwinian roots of the Nazi tree (Weikart review)
http://creation.com/the-darwinian-roots-of-the-nazi-tree-weikart-review

Darwinism and the Nazi race Holocaust
http://creation.com/darwinism-and-the-nazi-race-holocaust

The Darwinian foundation of communism
http://creation.com/the-darwinian-foundation-of-communism

Stalin’s ape-man Superwarrior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198/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4/i3/nazi.asp 

출처 - Creation 24(3):47, June 2002.

미디어위원회
2004-07-26

린치버그의 거짓말 

- 어떻게 미국의 진화론 학자들이 나치를 가르쳤는가.

 (The lies of Lynchburg)

Carl Wieland 


     최근에 상영된 TV 다큐멘터리가1) 폭로한 기록은 진화론적인 사고가 초래할 수 있는 불온(不穩)한 결과가 얼마나 전율스러운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1920년대 초부터 수천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자기 의사에 관계없이 강제로 ‘바람직하지 못한 번식’을 중단시킨다는 목적 때문에 거세(去勢) 되었다는 내용이다. 무려 8,000여 명이 넘는 소위 ‘탐탁치 못한 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버지니아 주의 린치버그(Lynchburg, Virginia)에 있는 시설로 보내져서 거세 절차를 거치게 되었다.


그 희생자들 가운데에는 그 정도가 다양한 정신지체자들도 얼마쯤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보다는 가정 파괴의 결과로 자포자기한 사람들, 또는 이런저런 사회적 불운(不運) 때문에 고통 받던 사람들이 많았다. 거기에는 학교의 우등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 기관의 절차가 ‘그들 자신을 위한 일’이라든가 아니면 ‘그들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포함하여 온갖 거짓말을 정기적으로 들어야 했다. 그들이 받아야 할 수술 뒤에 감추어진 목적을 어떻게든 알아낸 노인들도 수술을 받기 전에는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그 다큐멘터리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기관의 전반적인 노력은 우생학적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이들이 추진한 우생학 운동은 프랜시스 갤튼 경(Sir Francis Galton)―찰스 다윈의 사촌 동생―이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적자의 생존’의 이념을 인간 사회에 적용, 내지는 권장하고자 했다. 이 운동의 목적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적용시키는 데는 ‘부적합한 자’로 간주될 수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거세하는 방법이었다. 이 생각은 ‘좌익 우익 구별 없이 모든 사회개혁 운동가들’을 솔깃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중에는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도 끼어 있었다.

.찰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갤튼(Francis Galton)은 버지니아 린치버그에서 있었던 거세 프로그램(sterilization program)에 영감을 주었다. 


자기 고향에서 시행된 거세 수술의 대부분의 책임이 있던 린치버그의 주임 의사는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과업이 사회의 ‘과학적 선(善)'을 위한 일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다윈주의에 헌신적인 그에게는 절대 정(正)이나 절대 오(誤)의 개념은 ‘하층 민중’을  보다 큰 선으로 인도하는 길에 방해가 되는 구식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헌법(창조론에 근거한)이 보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인권 조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그의 행동을 엄폐할 필요성을 인식한 그는, 진화론을 지지하고 있는 미국의 지도급 생물학자 해리 로린 박사(Dr. Harry Laughlin)가 마련하였던 모범 입법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로린 법률안은 ‘정신박약자들’ 뿐만 아니라, 맹인, 마약 중독자, 결핵이나 매독 환자, 간질병 환자,2) 극빈자, 귀머거리, 그리고 노숙자들에 대한 강제 거세를 요구했다. 그 법률안은 이 부류의 사람들은 "악성 유전인자의 희생자들임이 명백한 이상, 이 민족을 타락시킬 저들한테 후손 생식을 중단시킴으로써, 이 나라의 '백인의 인종적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을 공공연한 입법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험 대상이다. 다시 말해서 이 법안이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선언할 것을 보증하는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들은 갖고 있었다. 미국시민자유동맹 (the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 송사를 벌였던 저 유명한 '스코프스(Scopes) 재판'을3) 긍정적으로 온건하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노골적으로 조작된 재판에서, 어느 젊은 여성이 ‘삼대(三代)를 걸쳐 정신박약’한 가족의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거세의 대상으로 선별되었다. 그녀의 변호사는 대법원에까지 상고하면서 로린(Laughlin) 법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그는 실상은 그녀를 위한 변호 대신에 우생학 정책을 수립하는 단체의 일에 깊이 관여하였던 것이다!


그 젊은 여성에게 더욱 불행하게도, 1924년에 이 사건을 주재한 대법원의 주임 판사 오리버 웬델 홈즈(Oliver Wendell Holmes)는 유력한 다윈주의자로서4) 미국에서 세속적 인본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많은 사업에 법적 근거를 마련한 사람이었다. 홈즈가 그 법(Laughlin 법)이 합헌적이라고 판결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주 정부가 ‘사회적 부적합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에게 거세를 강요하는 일은 수용될 수 있다는 판결이었다. 순진한 희생자에게 거세를 강요하는 일이 진행되었다. 뒤이어 추진된 일련의 조사에서 그녀가 ‘수 대(代)에 걸친 정신박약자 가족’ 출신이라는 저들의 이야기는 완전히 가공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그 대법원의 판결이 있은 이후로, 우생학 이론은 미국의 여러 주 정부에서 채택한 사회정책의 주요 항목이 되었다. 


1933년에 집권하자마자 히틀러(그는 적나라한 진화론―적자생존―운동을 전개했다)는 최초로 입법한 법안들 가운데 우생학에 관한 법도 포함시켰다. ‘부적합자’에 대한 나치의 강제 거세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박수갈채를 받은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프로그램은 실제로는 로린이 입안했던 법안을 표본으로 삼고 있었던 만큼, 나중에 히틀러 정부는 로린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였다. 정신병동을 가득 채운 정신병자들 전원에게 나치가 안락-살인을 진행시키고 있을 때, 그들의 ‘인종 보건’ 정책에 대해서 ‘과학적’이라고 하는 감탄이 줄어들지 않았다. 어느 미국의 진화론 학자는 실제로 이렇게 진술한 적도 있었다 : "독일 사람들은 우리가 마련한 게임에서 우리를 이겼다"


일단 ‘게르만 인종의 정화(淨化)’를 실질적으로 실행한 과업을  ‘도덕적’ 이라고 인정한 이상, 그 출발선에서부터 더 나아가 홀로코스트 (Holocaust; 유태인 대학살)라는 대규모의 공포 프로그램까지 가는 길은 짧고 빠른, 논리적인 길이 되고 있었다.5)


제2차 세계대전 후, 진화론적 ‘인종 위생학(衛生學)’의 이름으로 자행된 상상을 초월한 잔혹행위에 경악한 미국 대중의 공포는 결국 우생학 실천운동을 지하로 잠입시키고 말았다. 그 운동은 이름을 바꾸었으나, 1970년 이후까지 계속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무려 70,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타의에 의한 거세로 고통 받았던 것이다.


당시 미국시민자유동맹(ACLU) (이 단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경우 진화론적 사고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에 소속되어 있던 젠니 크로케트(Jenny Crockett)라는 사람의 노력으로, 정부의 엄폐(掩蔽) 기도에도 불구하고  ‘인종 위생 운동’의 스캔들은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다. 결과는 불분명한 사과의 변(辯)과 ‘정신건강 상담’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진화론의 가정(假定)으로 인해서 삶이 파괴된 많은 사람들한테 주는 보상의 전부이었다.


전체적으로 교회는 진화론자(그 때 이후 변화했으며 또 계속 변화하고 있는)들의 ‘과학적’ 주장이라는 ‘위압’에 억눌려서, 인간과 세계의 참된 역사를 강력히 옹호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보다는, 대체로 외면하던가, 아니면 불안한 타협을 유지하고 있는―혹은 그보다도 더 못한―게 실상이다.6) 우리 주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어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3-14)


만약 우리가 소금과 빛이 될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또 성경적 현실의 실현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행되고 있는 사회악을 단순히 ‘사회’의 죄라고 탓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참조와 주석

1) ‘린치버그 사건(The Lynchburg story)'는 부루스 이디(Bruce Eadie)에 의해 출판되었고, 1993년에 Discovery Networks와 Channel Four와 합동으로 Worldview Pictures에 의해서 기록영화로 제작됨. 이 이야기는 그 책에 기록된 정보에 근거하고 있다.

2) 아이러니하게도, 로린은 만년에 간질병에 걸렸다. 그 이후 그가 후손출산을 중단시키려 그토록 애썼던 그의 노력의 대상인 소위 ‘백인 쓰레기’의 한 사람으로 되어버린 그도 진화론적 우생학회 동료들의 기피 대상자로 전락했다.

3) The ACLU = the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통상적으로 좌익 친-인본주의 운동의 챔피언이었다. 1925년에 있었던 유명한 Scopes의 ‘monkey trial’ (원숭이 재판 :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자들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자들 간에 벌어진 재판)에서 이 단체는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방지하는 테네시주 법에 도전하기 위하여, 누군가 엉뚱한 사람을 찾아내어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허위자백을 유도하여 진화론 운동에 대중적 동정심을 노렸으며, 또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선전과업을 전개하였다.

4) 법학 교수 필립 존슨(Phillip Johnson)은 홈즈(Holmes)를 "확신에 찬 다윈주의자로서 다윈 이론의 철학적 함축을 깊게 이해하고 있다"고 하고, 또 그러기 때문에 홈즈는 "도덕률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다"라고 갈파했다.  존슨은 이 유력한 판사가 미래의 법학자들한테  "모든 도덕적 관념들을 접어두고, 법을 … 근본적으로 국가적 강제의 과학으로 보는 입장에서 접근하라고 부추겼다"라고 말했다. See David Menton, 'Inherit the Wind: An Hostorical Analysis' Creation 19(1):35-38, December 1996

5) 제2차 세계대전을 연구한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나중에 강제수용소에서 사용한 Zyklon-B gas를 포함한 대량학살의 기구들은 ‘우생학’ 운동을 목적으로 하고 설립된 의학/심리학/생물학회의 요원들로 일하던 존경받는 독일 학자들에 의해서 실제로 개발된 것들이었다.

6) 고(故) B. B. Warfield와 같은 성서의 무오류성(無誤謬性)을 옹호하는 유명한 인사들까지도 성서 옹호와 동시에 다윈의 진화론도 지지하였다.

*Oliver Wendell Holmes(1841-1935), 유력한 미국의 대법원 판사로서 강제 거세를 인정하였다. 그의 진화론적 인본주의 신념은 미국의 법률에 돌이킬 수 없는 자국을 남겼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법을 세속화시켜 피도 눈물도 없는 법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the-lies-of-lynchburg

출처 - Creation 19(4):22-23, September 1997.

미디어위원회
2004-07-26

다윈과 트로츠키의 관계 

(The Darwin/Trotsky connection)

Barry Woolley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1879-1940)는 1917년의 혁명에 뒤이어 러시아의 정권을 탈취한 공산당의 조직, 선전, 그리고 군대를 총괄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독재자 레닌의 후계자로 있다가 마침내 스탈린으로부터 그 자리를 박탈당했다. 대범하지 못한 도량에 재치 없고 성급한 성격의 트로츠키는 마르크스주의에 무한한 믿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다윈의 사상 때문에 그의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더욱 견고해졌다.


마르크스주의와 다윈의 사상에 대한 그의 광신에 가까운 신념과 무산계급의 적(敵)에 대한 그의 분노는 러시아 내전 (1918-1920)의 와중에서 태어난 소비에트의 적들을 괴멸시키기 위해 붉은군대 까지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그는 노동자의 군대화 (軍隊化) 농민의 식량 징발을 제도화하였다. 그는 무정부주의자 네스토 마크노 (Nestor Makhno) (1889-1934)가 이끈 우크라이나의 반란 농민 게릴라군을 괴멸시켰다. 결국 마크노는 중상을 입고 가족들과 함께 국외로 도주했다. 마크노는 볼셰비키가  백계 러시아 군과 대결하고 싸울 때 트로츠키와 동맹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다. 트로츠키는 크론스타트 (Kronstadt)1)에서 소비에트의 수병 (水兵)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폭력을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그러한 그의 잔학행위는 ‘프로레타리아트를 옹위하기 위한 것이며, 불퇴전 (不退轉)의 혁명 목적 기여한다는 절대적 확신’ 때문이었다.2)


러시아 내전의 종식 이후에도, 트로츠키는 정력적으로 행정부의 세부 업무와 ‘신(神) 없는 사회’의 지도자 과업을 수행했다.  이 단체는 소비에트에서 무신론을 선전하는 과업을 책임지고 있었다. 열렬한 무신론자였던 그는 ‘종교를 무신론으로 대체 (代替)하라‘고 주장했다. 이 목적을 위한 과업으로 종교의식 대신에 연극을 이용하고, ‘붉은’ 세례, ‘붉은’ 결혼, ‘붉은부활제’ 같은 것들을3) 권장했다. 그는 크리스쳔들을 핍박하고, 교회의 신성 (神性)을 모독하였다. 그리고 나아가 중산계급의 도덕심을 증오하기에 이르렀다.


트로츠키는 불퇴전의 혁명운동을 세계적 규모로 확대하라고 주장했다.4) 그리고 독일을 비롯해서 폭력적 혁명의 기운이 성숙하였다고 생각되는 여러 나라에서 공산당은 정권을 쟁취하라고 부르짖었다. 부유한 유태인 지주5)의 아들로 태어난 트로츠키가 어찌 되어서 자기 아버지가 속한 사회계급과 종교에 그토록 악의적인 편견을 품게 되었을까? 그것은 실패한 그의 대학 생활과 비정상적인 그의 여성문제와 크게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이 17살에 어느 혁명 단체 (revolutionary commune)에 참가하기 위해 대학을 중단했다. 이 단체의 조직원들 가운데 유일한 공산주의자 알렉산드라 르보나 소코로브스카야 (Alexandra Lvona Sokolovskaya)는 그보다 6살 연상의 여자이었다. 처음에 그는 그녀는 물론 그녀의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맹렬하게 비난했었다. 심지어, 1896년 신년 만찬 모임에서 그는 ‘살아있는 모들 것을 어렵고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저주를!’이라고 말하며 건배를 제의한 적도 있었다.6)

그러나 그는 곧 그녀와 정분이 나고 말았다. 그 일로 해서 그는 그녀의 마르크스 사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단체가 추진한 사회운동으로 말미암아 결국 조직원들은 제정 러시아의 형무소7)에 수감되는 죄수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수감 생활 동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기 사상을 개발하는 기회로 삼았다. 오뎃사(Odessa)의 형무소 감방에서, 트로츠키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그의 자서전을 정독했다. 그런지 수 년 후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다윈은 나한테 남아있던 마지막 이념적 파편들 마저 무너뜨려 버렸다. … 오뎃사의 형무소 감방에서 나는 과학이라는 견고한 기초 위에 우뚝 선 나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事實)을 어떤 확실한 체계 속에서 스스로를 세우기 시작했다. 진화론과 결정론 (determinism)이라는 이념 즉, 점진적 발전은 물질 세계의 특성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는 이념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나에게 있어서 다윈은 거대한 우주라는 사원의 출입문을 지키고 서있는 위대한 문지기와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의 세밀, 정확, 정직 그리고 동시에 강력한 사상에 취하고 말았다. 나는 그의 글, 즉 그가 신에 대한 신앙8)을 견지하고 있다는 글을 일고 경악했다. 나는 종의 기원은 자연의 선별 (選別)에 의해 그리고 성(性)적 선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세운 사람도 신에 대한 신앙을 한 머리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9)


세부 내용은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자. 어쨌거나 기독교 창조 이론가인 제임즈 클러크 맥스웰 (James Clerk Masxwell)이나 루이 페스튜어 (Louis Pasteur)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시대에 산 트로츠키가 마르크스와 다윈의 이념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이상하였다. 그의 사상 전향의 경험은 순수하고도 철저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사상 전향이 물려준 유산은 그의 손에 의해 흘린 소용돌이치는 유혈로 기록되었다.


1940년, 멕시코에서 생활하고 있던 트로츠키는 이 또한 다윈을 탐독하고 무신론적인 인생관으로 전향한 죠셉 스탈린 (Josef Stalin)의 지령을 받은 자객의 손에 의해 암살 당했다. 스탈린은 아마도 역사상 최대의 대량 학살자 일는지 모른다. 스탈린이나 트로츠키는 그들의 사상적 전제 (前提)에 충실하게 일관된 행동을 했다: 만약 나를 창조한 자가 없다면, 나를 지배할 자도 없다. 그리고 절대 정(正)?오(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그와 같은 진화론적 세계관에서 조망하면, 사람들을 살해하는 일이, 심지어 그게 수백만을 헤아린다 해도, 본질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BARRY WOOLLEY, M. S.

Barry Woolley는 연구기계공학자 (Research Mechanical Engineer)로서 운동의 양극항등식 (plate equations of motions)과 소리와 구조의 상호작용 (interaction of sound and structures)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주제들에 관한 문서를 미국 음향학회 (Acoustical Society of America)의 간행물 (Journal)에 발표하였다.


References and notes

1) 크론스타트(Kronstadt)는 페트로그라드(오늘날의 성-페테스브르그)의 앞바다에 위치한 도서에 서있는 군항으로서 20,000 명의 수병이 주둔하고 있었다. 1921년 3월 그 수병들(그들 가운데 농민의 아들이 많았다)은 자기네 부모들이 당한 알곡 도난 사건에 대해 항의하고 또 근로자의 자유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봉기하였다. 트로츠키의 명령을 받아, 백색 제복으로 위장한 붉은군대는 빙판 위를 횡단하여 해군 기지를 함락한 후 수병들을 학살하였다.

2) Woolley, B. L., Adherent of Permanent Revolution: A History of the Fourth (Trotskyist) International, University Press of America, Lanham, Maryland. p.2, 1999.

3) Heller, M., Cogs in the Soviet Wheel, London, p.204, 1988.

4) "전쟁은 혁명과 마찬가지로 협박에 근거를 두고 수행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는 패배한 군대의 어느 부분만을 괴멸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다. 그렇게 함으로써 적군의 나머지 부분을 겁먹게 하고 또 그들의 의지를 꺾는 호과를 얻어낸다.  혁명도 같은 수법으로 과업을 추진한다. 혁명은 몇 사람만을 죽이고 수천 사람을 겁먹게 한다" 라고 그는 기록했다. Ref. 3, p.119, which quotes Trotsky, L., Terrorizm i Kommunizm, Moscow, 0. 57, 1920.

5) 트로츠키는 Lev Davidovich Bronstein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나중에 그는 Odessa의 감방에서 동료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을 자신의 혁명 아호 (雅號)로 취해 사용하며 자기가 유태 출신아란 사실을 감추었다.

6) Carmichael, J., Trotsky: an Appreciation of his Life, Hodder and Stoughton, London, p. 43. 1975.

7) 트로츠키와 알렉산드라가 동부 시베리아로 4년간의 유배형을 선고 받은후, 1900년 모스크바를 통과하는 어느 이송 (移送) 형무소의 감방 안에서 유태인 군목의 주례로 그들은 결혼했다. 시베리아에 있는 동안 그녀는 그의 두 딸을 출산했다. 그리고 그녀는 1938년 사망할 때까지 브론스타인 부인 (Mrs. Bronstein)이란 이름을 고수했다. 그녀의 도움 (그녀는 며칠 동안 병상에 누어 ‘환자’ 마네킹을 품고 있었다)으로 그는 그곳을 탈출하여 1902년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그는 나탈랴 이바노브나 세도바 (Natalya Ivanovna Sedova)를 만났다. 그녀는 나중에 그의 정부가 되었다. 비록 알렉스산드라가 법적으로 결혼한 트로츠키의 아내였지만, 나탈랴는 ‘트로츠키 부인’으로 행세하면서 그의 두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1904년 그가 죽을 때까지 그와 동거하였다.

8) 다윈의 종의 기원의 마지막 단락에서 언급한 ‘창조주’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다분히 영국 목사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2판에서 6판에 걸쳐 추가로 언급한 그의 ‘창조주’에 대한 생각 때문에 트로츠키는 다윈을 오해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아무튼 다윈은 그의 나이 40에 가서 기독교를 포기 하였던 것이다. See Brentnall, J. Grigg. T., Darwin's slippery slide into unbelief. Creation 18 (1): 34, 1995.

9) Eastman. M., Trotsky: A protratit of his Youth, New York, pp. 117-118, 1925.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3/i2/darwin_trotsky.asp 

출처 - Creation 23(2):54-55, March 2001.

미디어위원회
2004-07-26

피로 물든 ‘진화론의 세기’ 

(The Blood-stained 'century of evolution')

Carl Wieland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그리스도의 이름과 교회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많은 종교전쟁과 잔학행위들을 지적한다. 그들은 ‘크리스천’으로 자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해서 종교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단지 20세기 한 세기 동안에 종교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유로 해서 죽임을 당한, 그것도 대개는 자기 나라 정부에 의해서 학살된 인명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1) 문제는 이 살육(殺戮)행위가 기독교의 성경적 가르침에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철학 때문에 저질러졌다데 있다. 이 철학은 진화론을 신봉하는 데서부터 발원(發源)한다.


나치주의는 그 이념적 근거를 다윈(Darwin)에 두고 있다고 공언하였다.2) 그들은 인종간에도 약육강식(弱肉强食)은 당연하고 도덕적이라고 까지 주장했다. 약한 인종을 동정(同情)하는 것은 자연법을 거부하는 행위라고도 했다. 이러한 잔인무도한 이념으로서의 진화론(進化論)이 ‘과학적’ 이라는 지주목이 없었더라면, 바흐(Bach)나 루터(Leuther)와 같은 위인을 우리에게 보내주었던 민족을 그렇게 까지 송두리째 현혹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또한 공산주의자들도 자기들 이념의 논리적 결론으로 진화론을 내세운다. 만약에 모든 것이 ‘자연법’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면, 그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의사(意思)가 정(正)?오(誤)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가령 노동계급이 무장투쟁을 통해서 권력을 쟁취하는 게 마땅하다고 한다면, 그 때에는 사회주의 천국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는 생명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과는 관계없이 그 이론이 옳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에 의해 살해된 생명의 수가 나치주의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 아마도 전 세계에 걸쳐 9천만 명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3)


스탈린의 잔학 행위는 혁명의 이상(理想)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일시적 ‘일탈행위(逸脫行爲)’ 라고 암시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어쨌거나, ‘대량 살육의 과학을 완성한’ 사람, 그리고 정치적 통제의 궁극적 방법으로써 전체적이고도 무자비한 잔인성을 완성한 사람은 러시아 혁명의 ‘아버지’인 레닌 바로 그 사람이었다.4) 진화론은 공산주의자들이 대중을 ‘과학적 무신론자’로 세뇌하는 데 사용한 주된 도구였다. 만약 모든 것이 마땅히 진화된 것이라면, 그 때엔 모든 것은 강자(强者)의 변덕에 좌지우지될 것이며, 그 이후로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창조주의 존재는 없어질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스탈린의 신념, 즉 수백만의 인명을 도살하는 것이 잔디를 깎는 것보다 나쁠 것이 없다는 믿음이 비롯되었다. (잔디는 진화론의 이념에 있어서는 우리 사촌이다.)


마오쩌둥의 공포와 허위의 통치는 결과적으로 수천 수백만의 생명을 주검으로 내몰았다. 그가 애독했던 책이 두 진화론자, 즉 다윈과 헉슬리(Huxley)의 저서들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가 강요한 기아(飢餓)로 인해서 수백만의 생명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마오는, ‘우리 인민의 수가 무수히 많으니까, 몇 명쯤 잃어도 끄떡없다.’ 라고 했다는 기록을 그의 주치의가 남겼다.5)그 이후 그의 후계자들은 수천 수만의 생명을 억압하고 살해하였다.


이와 같은 국가적 악(惡)의 영향을 받아, 타락한 모든 인간들에 내재하고 있는 악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내용을 우리들은 망각하기 쉽다. 지금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의 기본 철학은 아직도 단단히 지속되고 있다. (예: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의사가 궁극적인 권위다.) 더 이상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사살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 국가들 안에서조차 수억의 생명들이 어머니 자궁 내에서 찢기어 죽어가고 있다.


오늘날, ‘힘은 정당하다’ 라는 표어에 직결되는 소위 초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이념은 날로 높아만 가고 있다. 성경도 당연히 사유재산과 상품의 자유롭고 공정한 유통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성경은 정부가 사악한 인간 본성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러기를 권장한다. 심지어 억만장자 죠지 소로스(George Soros)조차 족쇄 풀린 자본주의의 ‘적자생존(適者生存)’ 이론에 반대하여 이를 경고하면서, ‘예전에는 교역의 수단이었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근본적 가치의 자리를 강탈하고 말았다.’ 라고 말했다. 성공한다는 것이 반드시 정당하다는 것과는 같을 수가 없다.6)


소로스의 논평은 불변의 가치와 절대권리가 존재할 때만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 불변의 가치와 절대권리는 불변의 진리를 자신의 피조물에게 확실히 드러내 보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창조/진화의 문제는 단지 태생(胎生)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사(人間事)의 근본을 따지는 데 있어서 어느 쪽 기원설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 - 말씀으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계시(啓示)인가, 아니면 인간의 의사인가 - 를 여는 열쇠가 된다.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이 생명의 진리, 창조 진리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고 있는 창조지(Creation magazine)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References and notes

1. 약 1억3천만 명이 20세기 한 세기 동안에 무신론의 이름으로 살해됨 (낙태로 살해된 수억 명의 생명은 제외), 반면에 기록된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해된 인명은 최대로 잡아 약 1천7백만 명이다. See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Thomas Nelson, Nashville, 1994.

2. 진화론자 아더 키스 경(Sir Arthur Keith)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나는 변함없이 독일 총통은 진화론자이다 라는 주장을 견지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의식적으로 독일에서 진화론의 이론을 실제 문제에 적용하는 실험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Evolution and Ethics (NY: Putnam, 1947), p. 230.

3.'Black Book of Communism', The Courier-Mail Weekend, Brisbane, December 13, 1997, p. 8.

4.'Men who taught the world to hate', The Sunday Mail, Brisbane, July 6, 1997, p. 67.

5.'The Great Dying', The Sunday Mail, Brisbane, February 2, 1997, pp. 59-60.

6. G. Soros, in News Weekly, February 8, 1997, p. 24.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the-blood-stained-century-of-evolution

출처 - Creation 20(3), June 1998.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진화론, 창조론, 그리고 유신진화론

임번삼 


자연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서 학문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학문은 자연에 대한 해석체계로서 자연계에 내재되어 있는 우주의 법칙을 찾아내려는 합리적이고도 체계적인 활동인 것이다.

우주의 법칙 자체를 신격화한 것이 범신론(pantheism)인데, 기독교를 제외한 여러 종교와 진화론을 포함한 많은 학문이 이에 속한다. 이에 반해 우주법칙을 만든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신을 진리의 본체로 믿는 인격신론(personal theism)에는 개신교를 비롯하여 카톨릭, 유대교 및 이슬람교가 있다.

학문은 그리스의 이오니아학파로부터 출발했다. 지금부터 2,70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학문의 주된 관심사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en arche)에 관한 것이었다. 우주와 생명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추구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늘의 자연, 사회, 인문 분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모든 학문의 공통목표는 우주와 생명의 실체, 즉 진리의 본질을 탐구하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질과 에너지를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만으로는 진리를 찾을 수 없으며, 인문 및 사회과학과 서로 손을 잡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문, 사상 및 종교의 형태로 추구되어 왔다.

학문분야에서는 자연에 대한 해석이 두 가지 시각으로 대립하여 왔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그것이다. 생명과학의 역사는 세 가지 테마에 대한 논쟁사라 할 수 있는데, 이 분야에서도 두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왔다.


첫째는, 태초에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가 하는 기원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절로 태어났다는 자연발생설과 창조주가 무로부터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대립하여 왔다.

둘째는, 오늘의 수많은 동식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나 하는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두 설이 극명하게 대립하였다. 무기물에서 단세포가 발생한 후, 지금과 같은 여러 종류의 동식물로 발달했다는 진화론(evolutionism)과 창조주가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한 형태로 만들었다는 창조론(creationism)이 그것이다. 이 밖에 다른 천체로부터 생명의 씨앗이 지구로 날라 와서 부화했다는 우주유입설(panspermia)이 있으나 그 씨앗이 태초에 어떻게 탄생했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므로 결국 모든 문제는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셋째는,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fossils)과 그것을 품고 있는 지층(geological strata)의 형성에 관한 문제이다. 진화론자들은 지층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이면서 그 시대에 진화되어 살고 있었던 생물군이 화석으로 매몰되었다는 동일과정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대홍수에 의한 격변으로 조산활동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지각이 변동하면서 지층과 화석이 짧은 기간에 생성되었다는 격변설을 주장한다.


어떤 문제이든 과거에 일어난 일이므로 정확한 실상을 알 수 없으며 단회적 사건(?)이었으므로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설명하는 해석체계이면서 신념이요 신앙일 뿐이다.

진화론은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 신앙이며 창조론은 목적론적이며 인격신에 대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두 이론은 주장하는 내용이 대립적이므로 물과 기름처럼 타협될 수가 없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학문적 해석체계는 이 두 이론뿐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화될 수 없는 두 이론을 하나로 엮어 놓은 것으니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이다. 말하자면 유신론적 유물론(theistic materialism)이 탄생한 셈이다. 이질적인 요소가 봉합되었으니 여러모로 자가당착(自家撞着)적인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신진화론은 이론상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주장하는 내용이 산만한 느낌을 준다.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비과학(non-science)이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교육기관에서 오로지 진화론만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이론인 양 가르쳐지고 있다. 반면 창조론은 창세기에 근거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리적인 비과학으로 매도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으로 위장된 비과학이며 창조론은 비과학으로 매도되고 있는 초과학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뒤에서 차차로 설명할 것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실시한 어느 여론조사(John Hulley 1995)는 흥미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벨상 수상자들(1900-1990)의 종교 분포에서 개신교가 64%로 수위를 점하였고, 카톨릭(22%), 유대교(11%), 정교회(1.6%)가 그 뒤를 따랐다. 기독교계가 98.6%로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기원'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조사(Gallup poll 1993)에서도 매우 놀랄만한 결과가 나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비율이 47%이었으나 진화론은 9%에 불과하였다. 반면 유신진화론이 40%를 차지했다.

위의 두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사회에서 진화론이 유신진화론으로 급속히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신진화론의 정체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신진화론은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다윈의 진화론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다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20세기 후반부터는 진화론이 반대로 유신진화론에 영향을 주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이들은 성경의 기적들을 부인하며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진화론적으로 창조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유신진화론이 오늘날 기독교계로 깊속히 침투하고 있어 우리의 각성이 요구되고 있다. 말세에 교회에 '양의 가죽을 쓴 이리'가 들어온다면 그 중 하나는 이 유신진화론이라고 나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과 교역자들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관심마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유신진화 사상으로 서서히 세뇌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머지 않아 기독교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 같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전된 것은 창조과학자들의 게으름이 큰 몫을 했음을 자성해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창조과학자들은 기독교계에 유신진화론에 대한 경종을 울리면서 체계적인 대처방안을 모색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쟁사

앞에서도 기술했듯이, 생명과학의 역사는 생명의 기원과 다양성 및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과 지층의 형성에 대한 논쟁사라 할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우주와 지구 및 생명체가  저절로 발생하였고, 유인원으로부터 현생인류가 진화했다고 가르친다. 유신진화론에서는 하나님이 창조의 주체라는 사실만 다를 뿐, 진화론의 주장에 거의 동의한다. 즉 하나님이 자연법칙에 따라 진화론적으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창조론에서는 6일 동안 하나님이 무에서 우주를 창조하셨고 모든 생명체들은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한 형태로 만드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진화라는 용어가 개입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상(事狀)은 하나인데 해석이 이처럼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우주, 태양, 지구 등의 나이에 대해서도 진화론에서는 긴 연대(각각 120억 년, 50억 년, 46억 년)를 주장하나, 창조론에서는 모두 10만 년 이내(7-8천여 년)로 추정한다. 지층형성이나 그 속에 들어 있는 화석의 기원에 대해서도 진화론과 유신진화론에서는 장기간에 서서히 쌓였다는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을 주장하지만 창조론에서는 노아홍수에 의한 천재지변으로 갑자기 만들어졌다는 격변설(catastrophism)을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학설을 예시해 보면 진화론에서는 자연발생설, 화학진화설, 생물진화설, 동일과정설, 빅뱅설등이 있으며 유신진화론에는 다중격변설, 간격설, 날-연대설, 진행적 창조설, 골격가설 등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창조론에는 생명속생설, 세포설, 종의 불변설, 유전법칙, 격변설(노아 홍수에 의한) 등이 있다.

진화론이나 유신진화론의 특징은 모두 예외 없이 추리에서 출발하여 추측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장의 기술방식은 대개 '...라면', '...일 경우', '...로 추측된다', '...일 것이다', '...라 생각된다' 등과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이에 반해 창조론은 대부분 실험에 의해 확인된 확고부동한 사실들이다. 오늘의 생명과학 이론들은 거의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수립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조론과 싸우고 있는 진화론자들이 최근에는 이러한 창조과학적 이론을 진화론을 옹호하는 것처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석은 사실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세 이론간의 논쟁은 매우 치열하였다. 생물의 진화문제에 대해서는 종의 가변설(evolution of species)을 주장한 뷰퐁-라마르크(1744-1829)팀이 종의 불변설(immutability of species)을 주장한 린네-큐비에팀과 부딪혀 창조론적인 종의 불변설이 승리를 거두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창조론측의 레디(1626-97), 스팔란쨔니(1729-99), 파스퇴르(1822-95), 틴달(1823-93) 등의 생명속생설(biogenesis)이 각각 진화론측의 헬몬트, 뷔퐁1708-88), 니이덤과 푸셰(1800-72), 베스쳔(1837-1915) 등의 자연발생설(abiogenesis)과 격돌했으나 창조론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특히 파리에서 프랑스과학아카데미 주선으로 열렸던 파스퇴르와 푸셰간의 대결은 공개논쟁의 개시를 알리는 첫 신호탄이기도 하였다.

이후, 한동안 생명의 기원논쟁은 잠잠하여진 듯 했으나 20세기초(1936)에 소련의 오파린이 다시 화학진화설(chemical evolutionism)을 들고 나옴으로써 생명발생설에 대한 두번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유물론적 주장은 생명을 단순한 자동기계로 해석하려는 생명기계론으로 연계되어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까지는 창조론이 연속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 발표되면서 상황은 진화론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인 멘델은 6년간 수도원에서 완두콩과 분꽃을 재배하면서 발견한 '유전법칙'을 오스트리아의 부린학회에서 공식 발표했으나(1866) 그 내용이 다윈의 진화론과 상치되었기 때문에 생물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빛나는 그의 업적은 1900년도에 그의 법칙이 재발견될 때까지 그의 죽음(1884)과 더불어 무덤 속에 들어가 침묵을 강요당하였다.

영국의 런던에서 공개적으로 열렸던 '옥스포드논쟁'(1860)에서는 창조론 측의 윌버포스 주교가 진화론자인 헉슬리에게 판정패를 당하였다. 이 논쟁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첫 번째 공개논쟁이었으므로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그 영향으로 진화론은 영국은 물론 구미제국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싸움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도 계속되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그레이(Asa Grey)와 아가시즈가 격돌하여 유신진화론이 승리한 데 이어 예일대학, 프린스턴대학, 맥길대학 등이 1880년대에 진화사상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고등학교 교과서에 처음으로 진화론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20세기초부터는 창조론이 교과서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추세에 위협을 느낀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변호사는 반진화운동을 전개하여 테네시주(1925), 미시시피주(1926), 아칸소주(1928) 등이 진화론 교육을 금지시키도록 법제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실제로 스코프스 재판이 끝난 직후인 1927년에 13개 주에서 반진화론 입법이 상정되었다.

이에 반발한 진화론 측의 시민자유주의연맹(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이러한 법규들의 실효성을 실험할 목적으로 스코프스(John Thomas Scopes)라는 교사의 협조를 얻어 테네시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내용을 가르친 사건을 연출토록 하였다.

이를 알게 된 한 학부형의 고발로 테네시주의 데이튼이라는 지방 법정에서 '원숭이재판'(1925. 7)이 열리게 된다. 세계 최초로 열린 이 법정재판에서 스코프스의 변호를 맡았던 ACLU측의 대로우(Clarence Darrow)가 제시한 네브라스카인(1922)과 필트다운인(1912)의 자료의 뒷받침으로 진화론측이 승리하였다.

 

*관련기사 : 유신 진화론은 복음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2016. 1. 9. 기독일보)


출처 - 창조지, 제 129호 [20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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