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진화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창조냐 진화냐 '하는 논의는 기독교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이다. 사람이 과연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자기형상으로 창조하여 (창1:27, 골3:10) 다른 동물들과 완전히 구별된 존재인가, 아니면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우연의 산물로서 아메바와 원숭이에서 진화했는가에 대한 문제의 해답에 따라서 개개인의 인생 목표와 생활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비기독교인과 성경을 진리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조차도 창조와 진화에 대하여 진화는 과학적 사실이고, 창조는 신앙의 문제라고 간단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적 사실을 믿질 못하고 신화적 이야기로 간주해 버리는 큰 이유중의 하나는 진화론을 입증된 과학적 사실로 오랫동안 배워왔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과 창세기에 기록된 인류의 기원에 대한 기사는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기독교 신자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에 대해선, 신화적 사실 내지 이와 비슷한 이론으로 타협하기도 한다. 그러면 과연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인가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자.
과학이란 존재하고 있는 물체를 대상으로 한다. 물체의 현상을 오관으로 관찰하고 측정하여 분석하고 가설과 이론을 세운다. 그 이론이 실험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증명이 되면 그 이론은 과학적 사실이 된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론이라 할지라도 실험을 통하여 증명이 되지 않으면 과학적 사실이 될 수 없다. 진화론은 다음의 일곱 가지의 가정들을 기본근거로 한다.(Implication of Evolution by G. A. Kerkut, pergmon press 1960).
그런데 위 가정들은 그 성격상으로 보아 실험에 의하여 확인 실험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진화의 현상을 관찰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진화론은 하나의 과학적인 학설은 될지라도 과학적 사실이나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진화론의 첫째 가정 즉 생명의 자연발생은 실험으로 입증이 된 적이 없기 때문에 생명체는 생명체로부터 발생한다는 진리를 진화론자들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생명체의 자연적발생 불가능이란 논리는 초자연적 능력에 의한 창조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셈이다.
진화론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단일한 생명 기원을 가져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로부터 식물, 동물, 사람들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인간 신체의 유기적 조직체는 오랜 세월 동안 진화의 발달 과정에 의하여 점차적으로 동물 즉 원숭이에서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류 진화를 화석을 근거로 하여 유인원에서 사람까지 진화론자들이 계보를 세워 주장하고 있지만 중간에 많은 발생진화 과정에서 생기는 중간 형태의 화석들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진화의 자료라고 과거에 믿던 화석들이 더 많은 화석 발견과 함께 면밀한 과학적 고찰로 그 허구성이 최근 진화론자 자신들에 의하여 입증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면 유인원 등의 화석들 '오스트랄로피테쿠스','피테칸트로푸스'.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그리고 '라마피테쿠스' 등에 대한 자료들을 간단히 소개해 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1924년 '로데시아'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빨과 두개골 등으로 보아서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으로서 서서 걸었다고 가정한 후 그것을 사람의 조상으로 단정하였다. 그후 '리키'(Leaky )라는 미국인은 '탄자니아'에서 앞의 것과 비슷한 두개골과 뼈들을 발굴한 후 역시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 것으로 단정하고 '진잔트로푸스'라고 명명한 후 인간의 조상으로 또한 단정했다. 그림2는 두 명의 진화론자가 '진잔트로푸스' 두개골 화석을 보고 그린 대조적 상상도이다.
그러나 1966년 영국의 유명한 해부학자이며 진화론자인 '주커만(Zukerman) 경은 수백 가지의 원숭이, 유인원의 두개골, 뼈와 해부학적 자료들을 앞의 화석들과 비교검토한 끝에 위의 두 발굴화석이 인간의 조상이 아니고 유인원이었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최근 시카고 대학의 인류학, 해부학교수인 '옥스나드'(Oxnard)박사도 위의 화석이 유인원의 것임을 증명하였고 (Nature Vol.258 p.389-395),1973년엔 '리키'교수 자신도 '산디아고'에서 개최된 강연회에서 자신의 종전학설이 틀린 것임을 시인하였다. 1891년에 발견된 '자바인',1920년에 발견된 '북경인'은 '피테칸트로푸스'라는 인류의 조상으로 가정했으나 자바인은 긴 팔 원숭이였음이 판명됐고 북경인의 화석은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반출도중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더 이상 확인이 불가능하다. '네안데르탈인'은 독일에서 발견된 것으로 반쯤 서서 행동한 인류의 조상으로 믿어졌으나 그 후 비타민D의 결핍으로 인한 구루병 환자인 곱추였음이 판명됐고 '크로마뇽'인도 보통 사람인 것으로 최근 판명됐다.(National Geographic Vol. 142 p.219(1972)).
또 예일대학의 유명한 인류 진화론 학자 '데이비드 '필빔' 교수팀은 1973년 파키스탄에서 '라마피테쿠스'의 많은 화석을 발굴하여 턱뼈와 이빨 등을 조사 연구한 결과 '라마피테쿠스'가 인류의 조상이라던 자기의 학설을 뒤엎고, 인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새로운 독립적 존재인 유인원의 일종이라고 발표하여 진화론 학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 그는 말하기를 과거에는 진화론이라는 선입견에 따라서 소수의 화석만 가지고 인류의 조상이라고 단정하였으나 파키스탄에서 발굴한 많은 화석으로 턱뼈와 이빨을 조립해본 결과 자기가 주장한 과거의 학설이 틀렸다는 사실이 판명되었기에, 인류진화에 대한 종전의 학설을 변경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과거의 학설은 '라마피테쿠스'와 인류는 한 조상으로 설명되어 있어서 다윈의 진화론과 같은 내용이 되지만, 그의 새로운 최근 학설은 원숭이와 사람은 서로 별개의 조상을 갖고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창조론을 설명하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실험의 결과와 실제적인 증거가 되는 자료의 해설에 따라 과학의 이론은 바꾸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많은 화석을 조사해 볼 때 복잡한 고등 동물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그 진화된 중간 생물의 화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지구의 모든 동식물이 각 종류(Kinds)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했다는 성경의 말씀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또한 단순한 단 세포에서 복잡하게 정렬된 고등동물로 자발적으로 발전한다는 진화론은 물리화학의 열역학 제2법칙에도 위배된다. 수많은 과학의 법칙 중에서 경험적으로 얻어진 가장 중요한 법칙인 제2법칙은 화학반응의 진행방향을 지시한다. 화학반응의 자발적인 진행방향은 항상 무질서도(Entropy)가 증가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생명체의 진화는 무질서도가 증가되기보다는, 오히려 질서가 증가되는 쪽이기에 제2법칙에 상반되어 자발적인 진화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진화론의 가능성을 확률로 볼 때 단순한 하나의 유전인자(DNA)가 우발적으로 합성될 확률이 대략 1/10600로서 자연적으로는 시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합성될 수가 없다는 것을 또한 말해준다. 이상과 같이 자연적으로는 시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합성될 수가 없다는 것을 또한 말해준다. 이상과 같이 자연 우발적으로는 진화가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이 몇 과학자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 진화론은 하나님이 생물체를 창조하실 때에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다고 주장한다. 보편적인 진화론은 무신론이어서 우연에다 '신념'의 근거를 두지만 유신론적 진화론은 '신'에 대한 신앙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유기 조직체들은 비인간이었으나 진화의 과정으로 오랫동안 발달하여 인간육체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결정적인 시기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정신과 영혼을 심어주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간주한다. 즉 한편으로는 진화론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의 진리를 어느 정도 지지하고 있다. 즉 인류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하여 어떤 결정적인 단계에 있어서는 진화론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창조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 유신론적인 진화론은 '창조'와 '섭리'사이의 차이점을 부정하여 결국 비 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은 형태로나 질적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생성하는 사역이다. 히브리말로는 동사 '바라'(bara)로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하는 것이나, 새로운 것을 직접 무에서 유로 존재하게 한다는 '창조'(Creat)를 뜻한다. 반면에 만든다(make)는 히브리 동사 '아사'로서 이 말은 제 이차적인 원인과 자연의 힘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으로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고 그저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행동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즉 과학은 '아사'로서 자연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창조 '바라'는 아니다. 구약에서 '바라'는 약 55회 언급되고, '아사'는 2600번이나 사용되었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하나님의 섭리적 사역과 구별되는 창조 사역을 표현함에 있어서 '바라'라는 동사를 특별히 사용한 것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유신론적 진화론에 의하면 오랜 기간동안 제 이차적인 원인을 통하여 작용하신 자연적인 과정이 곧 하나님의 창조의 '방법'이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곧 '자연적인 과정'이었으므로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아니라 섭리 사역의 한 부분으로 생각되어야 할 것이다. 섭리란 말은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간접적으로 조종되는 어떤 자연적인 과정을 통한 하나님의 사역을 말한다. 결국 유신론적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하나님의 섭리사역이란 방법으로 조종되고 동시에 섭리 사역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성경적인 개념이 아니다. 만일 유신론적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바라'라는 특수한 낱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뿐더러 '아사'라는 말로서 적합하고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신론적인 진화론은 성경적 기독교의 입장에서 용인될 수 가 없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1절에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종류는 히브리말로 '민'(min)으로서 영어의 종류(Kinds)에 해당된다. 다윈이 쓴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의 종(Species)은 성경에 쓰여지질 않고 있다. 그런데 종(Species)에는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있으며, 교배에 의하여 인공적인 종(Species)이 생겨 날수도 있지만, 그것이 종류(Kinds)의 범위를 벗어나 새로운 종류가 되지는 못한다. '말'(Horses)과 당나귀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종(Species)으로서, 말과 당나귀를 교배시키면 노새가 태어나지만 노새는 번식 능력이 없게 된다. 아직 동물계에서는 인공적인 종(Species)으로 번식능력이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새로운 종류(Kinds)가 생겨날 수가 없다는 사실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생물학의 멘델의 법칙에 의하여도 설명되어질 수 있다.
멘델의 법칙에 따르면 유전은 규칙적 질서에 따라 일어나며, 또 종(Species)은 이미 포함되어 있는 종의 결합에 의하여만 변이(Variation)가 일어나며, 아주 새로운 종류(Kind)는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따라서 멘델 법칙은 한 종류에서 다른 종류로 계속적으로 진화한다는 다윈의 진화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다윈이 멘델의 연구 결과를 먼저 알았더라면 '종의 기원'을 결코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식물계에서는 인공적인 새로운 종(Species)이 나와 번식되기도 하지만, 그 사실이 성경의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말과 어긋나지 않으며, 새로운 종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변이(Mutation)와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과정을 통해 진화가 꼭 일어난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변이나 자연 선택의 현상이 어떤 종류 내에서 일어날 수가 있고, 또 일어나고 있지만 변이와 자연 선택이 결합하여 새로운 종류가 된다는 이론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질 않았다. 과학은 머지않아 실험실에서 무생물로부터 생명을 창조해 낼 것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실현되지는 못했다. 앞으로 실현될 때까지 이것은 과학적 사실은 될 수 없다. 만일 실험실에서 그것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두 가지 경우는 서로 같지 않다. 곧 태초의 원시시대 어느 웅덩이나 바다에서 저절로 생성된 생명과 실험실에서 과학자의 생각과 교묘한 조작으로 생성된 생명은 별개의 사건인 것이다. 전자에서는 '우연'이 작용하였고 후자에서는 (고도로 계획된 조작)이 작용하였다. 진화 과정의 첫 출발점은 과학적으로 해답할 수 없는 한가지 질문을 던져준다. 즉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수소에서 출발하였다면 그 수소는 어디서 왔느냐 하는 문제다. 과학의 기본 방법은 인과율(因果律)에 있다. 즉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수소란 존재의 산물이 있으면 수소를 창조한 (즉 히브리말로 '바라') 창조주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는 귀결이 나온다. 이 결론은 과학적으로 이해는 할 수 없지만, 과학의 이치 즉 인과율에 모순되지는 않는다.
과학은 존재하는 물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존재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연 현상 밖의 분야는 과학의 정당한 영역이 아니며 철학이나 신학의 영역에 속한다. 물질계에 속한 우주의 기원이나, 생명의 기원이나 인류의 기원 등은 자연 현상의 영역이 아니다. 이 문제들은 관찰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며, 실험에 의하여 관찰되거나 측정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물질 세계가 처음 생성되고 생명이 시작되고 인류가 처음 나타난 그 당시에는 이들을 관찰하고 기술할 과학자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 가운데 욥에게 말씀하신 질문이 적절한 표현이 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욥 38:4).
결론으로, 진화론은 과학의 정의로 따져 볼 때 관측산 사람도 없었고 그 실험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 될 수 없다. 또한 진화론의 근거인 일곱 가지 기본 가정도 과학적으로 확증되지 않았고 다만 철학적인 근거 위에 놓여있는 독단적인 이론이므로, 입증된 사실로 간주될 수 없다. 전통적인 진화론자들이 귀중한 진화의 증거라고 믿어졌던 화석에 대한 해석이 충분한 화석자료와 과학적 고찰로 허구성이 최근 입증되었으며 화석의 증거는 오히려 창조론을 더 지지하고 있다. 열역학 제2법칙과 확률적인 측면으로 볼 때도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게 된다. 유신론적 진화론도 비 성경적 사실로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을 고려하질 않는다. 생물학의 멘델 법칙에 의해서도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될 가능성이 없다. 또 진화론의 궁극적인 첫 출발점인 수소 원자의 기원을 숙고할 때에도 그것을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한다. 진화론은 유물주의로서 무신론이지만 진화론을 해석하려면 하나님과 같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를 필요로 하게 된다.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2
참고 :
진화론의 문제점
돌연변이가 진화의 원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첫째, 돌연변이는 거의 대부분 해로운 방향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만약 돌연변이가 진화의 원인이라면 돌연변이 개체가 정상 개체보다도 더 생존능력이 커야 하는데, 실제는 거의 대부분이 기형이나 불구, 허약함, 단명의 결과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생기는 겸형적혈구 빈혈증, 염색체 수의 돌연변이로 생기는 다운 증후군, 염색체 구조의 돌연변이로 생기는 결실, 중복, 역위, 전좌의 결과들도 그러한 예에 해당된다.
둘째, 돌연변이는 너무 드물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실제로 십만 분의 1내지 백만분의 1세대 중 1번 꼴로 나타나는데, 그 첫째 이유는 DNA 자체가 매우 안정된 물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DNA는 100 ℃ 로 가열해야만 단일 사슬로 분리가 가능할 정도로 안정되어 있어서 반경에 따라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한 예로 사람의 유전자는 250만년간 안정이 유지된다고 한다. 그 둘째 이유는 DNA 내에는 돌연변이 교정장치가 있어서 , 만약 DNA의 두 개 사슬 중 하나가 혹 부분적 손상을 입는다 할지라도 쉽게 교정이 되어 원상 복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셋째, 돌연변이는 일어나는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어느 한 방향으로의 발전이어야 하는데, 실제로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방향은 방향이 없다는 점이다. 넷째, 돌연변이는 종 내에서만 인정된다는 점이다. 한 예를 들면 돌연변이가 나타나 종을 뛰어넘어 (대진화), 초파리가 파리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중간화석으로서 말의 화석이 진화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말은 에오히푸스에서 에쿠우스로 갈수록 몸체의 크기가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했는데, 현존하는 아르헨티나산 플라벨라 말은 키가 50cm 밖에 되지 않고 경주용 말은 키가 2m 나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플라벨라말에서 경주용 말로 진화되었다는 말인가? 그것은 말의 종류에 따라 크기가 다양하다는 결론을 나타낼 뿐이다.
둘째,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말은 진화될수록 발가락 수가 감소되어 현재 말 발굽 한 개로 되었다고 했는데, 실제는 현존하는 말 중, 영국산 Shire 말은 발가락 숫자가 여러 개라는 점이다.
셋째, 에오히푸스와 에쿠우스가 같은 지층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넷째, 에오히푸스는 현존하는 아프리카산 Hyrax (하이엑스)와 거의 같다는 이론이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다섯째, 진화론자들은 신장과 발가락 수만 예로 들었는데, 갈비뼈의 수와 허리뼈의 수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갈비뼈의 수는 에오히푸스로부터 18 → 15 → 19 →18 로 변화되었고 허리뼈의 수는 에오히푸스로부터 6~7 → 8 →6 개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여섯째, 화석이 진화론자들이 나열한 변화순서 ( 에오히푸스 → 오토히푸스 → 플리오히푸스 → 에쿠우스) 대로 모두 나온 경우가 없고 , 여리 저기서 불규칙하게, 불연속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개별적으로 나타난 화석을 말의 신장 순서로만 나열했다는 점이다.
한편 진화론자들은 시조새가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되어가는 중간형태의 화석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도 많은 모순점이 있다.
첫째, 시조새외의 다른 새에서도 발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호애친, 투래코, 타조들이 좋은 예이다.
둘째, 시조새의 깃털은 날 수 있는 완전한 형태의 깃털이라는 점이다.
셋째, 시조새 외에도 치아를 가진 새들이 화석으로 발견되었고 거북이와 같이 치아가 없는 파충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언제나 치아가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더 진화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좋은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사람은 치아가 있고 욀 너구리는 치아가 없는데, 그렇다면 오리 너구리가 사람보다 더 진화했다는 말인가?
넷째, 파충류의 비늘에서 조류의 깃털로 변하는 중간 전이 형태 화석이 무수히 많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섯째, 시조새의 화석과 새의 화석이 동일 지층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시조새는 희귀한, 그러나 분명한 한 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진화론자들의 발생상의 증거의 모순점은
첫째, 진화론자들은 발생과정에서 각 동물에 공통적으로 어류의 아가미에 해당하는 아가미 구멍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 나가미 구멍은 어류의 아가미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후에 생물 종류에 따라 인두, 귀, 턱, 머리, 목 부분이 될 조직이라는 점이다. 같은 맥락으로 발생과정중 어느 한 순간 물고기의 꼬리처럼 보이는 부분도 실은 어류의 꼬리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사람의 33개 척추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이다. 즉, 사람의 척추는 처음부터 33개이지 꼬리가 변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어류는 독립적으로 처음부터 어류 유전 정보를 가진 유전자 때문에 어류이고, 양서류는 독립적으로 처음부터 양서류 유전 정보를 가진 유전자 때문에 양서류이지 발생과정중, 어류 유전자가 변하여 양서류 유전자가 되어 어류에서 양서류로 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셋째, 진화론자들은 발생 과정상에서 공통조상을 주장하는데, 이는 출생할 때까지는 다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으므로 어떤 성장 단계까지는 비슷한 기본 형태를 갖는다고 해석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해석의 차이)
진화론자들의 해부상 증거의 모순점은 박쥐의 날개, 고래의 가슴 지느러미, 개의 앞다리, 팔은 물론 기본 구조가 같다. 이는 한 창조주의 공통된 설계의 증거, 기본 모형의 증거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해석의 차이)
진화론자들의 용불용설의 모순점은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한 예로 어떤 사람이 후천적 훈련의 결과로 훌륭한 유도 선수가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 유도 선수의 아들까지도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유도를 잘 하도록 태어나는 것을 결코 아니다.
진화론자들의 자연선택설의 모순점은 환경 변화에 따라 관찰되는 나방의 비율이 변하는 현상은 사실이지만, 그 환결 변화에 따라 유전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진화론자들의 격리설의 모순점은 다윈은 1종이 각각 격리되어 주위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화, 13개의 다른 종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실제로 핀치새는 지금도 13개 종류일 뿐이라는 점이다. 즉, 처음부터 핀치새라는 1종안에서 13종류의 아종이 있었을 뿐이다.
출처 - 창조지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이광원
1. 진화론의 요지
진화론은 생물이 우연히 자연적으로 생기게 되었다고 보는 이론으로, 원자들의 무작위적인 반응에 따라 무기물에서 간단한 생물이 생겼으며,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형태와 기능이 변하여 처음에는 간단하고 하등한 생물이던 것이 점차 복잡하고 정교한 고등생물로 되어 오늘날 이처럼 다양한 생물들이 있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진화되어 가는 과정을 실제로 관찰할 수 없으므로, 진화했다는 가정을 먼저 받아들이고 진화요인을 설명하려는 다양한 이론과 가설을 제시한다.
2. 진화요인 설명 이론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이란 책을 통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제기한 후 많은 이론들이 제안되었다. 라마르크는 본래 '생물은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한다'는 진화사상의 선구자 부폰(1707-1788)의 영향을 받아 진화가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는 생물의 기관 중에서 많이 쓰이는 기관은 발달하고 쓰이지 않는 것은 퇴화해 버리며, 이렇게 얻어진 획득형질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는 용불용설을 주장했다. 라마르크의 영향을 받은 다윈도 획득형질의 유전을 믿었고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를 주장하였다. 다윈은 모든 생물은 개체마다 변이가 있으며, 또 생물들 간에는 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생존경쟁이 일어나는데 이들 중 환경에 가장 유리한 변이성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고(적자생존), 이러한 변이성은 자손에게 전달되어 댇로 이어지면서 종의 다양화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다윈의 자연선택설 발표 이후 바이스만은 체세포에 변이가 생긴 후천적 변이는 유전되지 않고 생식세포에 생긴 변이만이 유전된다는 생식질연속설(신다윈설)을 발표하여 다윈의 개체변이 유전의 잘못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한편 드브리스는 달맞이꽃에서 돌연변이체가 유전되는 것을 발견하고 이러한 돌연변이에 의하여 새로운 종이 형성되어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돌연변이설을 발표하였으며, 로마네즈 등은 유전성 있는 변이가 생겨도 격리가 있어야만 진화가 된다는 격리설을 주장했고, 로치는 교잡에 의해 만들어지는 잡종에 의해 새로운 종이 형성된다는 교잡설을 주장했다.
1942년 헉슬리는 이제까지 제창된 진화용인을 설명하는 설들을 종합적으로 체계화했고, 도브잔스키는 현대종합이론의 기틀을 만들었다. 즉,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물 집단의 유전자풀에 일어난 후 좋은 종이 환경에 잘 적응하여 살아남는 자연선택이 일어남으로써 새로운 생물종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현대종합이론이 최근 40여년간 진화요인의 설명으로 가르쳐져 왔으나 1970년대에 들어와서 굴드교수와 엘드리치는 단속평형설을 제창했다. 이 가설은 종래 다윈이 주장하였고 그 후 현대종합이론에서 설명해온 점진론적진화(연속적진화)를 부정하고, 어떤 종의 생물이 평형을 이루고 불변한 채 지속되다가 어느 환경, 시기가 되면 빠른 시일에 갑자기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지질화석 자료에 근거하여 제시된 이론이다.
3. 진화의 단계
생명의 기원 문제는 실험과학으로 증명할 대상이 아니다. 창조론적 관점이나 진화론적 관점은 생명의 기원을 생각하며 생물의 다양성을 보는 견해일 뿐이다. 창조론적 관점은 생물은 이미 완성되어 주어진 것으로 보고 질서, 조화와 같은 생명현상의 특성을 관찰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는 메카니즘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한편 진화론은 원자에서 아메바로,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로 변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과정으로 보고, 어떻게 변해 가는지 그 과정과 요인을 설명하려하고 체계화하는데 집중한다. 진화의 첫 단계는 원자에서 단세포로 어떻게 진화했는가를 다루는 화학진화이며, 그 다음 단계는 단세포에서 고등생물로 진화하는 생물진화 단계이다.
4. 화학진화
최초의 생명은 지구상에 어떻게 생겨났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1924년 소련의 오파린과 1929년 영구의 홀데인을 위시한 과학자들은 화학진화설을 제창했다. 그들은 지구상에는 단 한 번의 자연발생이 일어남으로써, 물질로부터 화학반응을 통해 가장 원시적인 생명이 합성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에 이어 밀러와 폭스를 비롯한 화학진화설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4단계에 걸쳐 화학진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아미노산과 같은 기본 단위에 해당하는 간단한 유기물이 합성되었다.
둘째, 간단한 유기물의 중합으로 단백질과 같은 복잡한 유기물이 합성되었다.
셋째, 복잡한 유기물의 무작위적인 모임이 원시적인 막에 의하여 둘러싸였다.
넷째, 이러한 유기물의 모임에 별도로 만들어진 유전물질 DNA가 투입되었다.
이와 같이 4단계의 물질적인 변화를 통해 최초의 원시 생명체가 지구상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오파린-홀데인 가설에 의하면 초기 지구의 원시대기는 환원성 기체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즉, 유리 산소(O2)와 이산화탄소(CO2)는 거의 없고 수소(H2)가 원시대기의 주성분이며, 산소, 탄소, 질소가 각각 수소와 결합한 수증기(H2O), 메탄(CH4), 암모니아(NH3),와 같은 환원성 기체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원시대기의 조성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조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러나 아미노산, 당류, 염기와 같은 간단한 유기물을 생체 밖에서 직접 합성하기 위해서는 기체의 조성이 환원성이어야만 했기 때문에, 아마도 원시대기의 조성도 환원성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원시대기의 물리적 특성으로서는 대기 중에 에너지가 많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구에서 나오는 높은 열 에너지와 방사 에너지,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자외선, 화산 활동으로 분출되는 에너지, 그리고 번개와 함께 방출되는 에너지가 원시대기에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화학진화의 제1단계는 원시대기에서 환원성 기체에 에너지가 작용하여 간단한 유기물이 만들어진 다음, 빗물에 씻겨 바다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가정은 1953년 밀러의 실험에 근거하고 있다. 밀러는 원시대기와 원시해양의 물리 화학적인 조건을 시험관 속에 모방한 다음 간단한 유기물의 합성을 점검하였다. 그는 밀폐된 U자관에 있는 공기를 모두 제거한 다음, 메탄, 암모니아, 수증기, 수소와 같은 환원성 기체를 넣고 전극을 꽂아 약 6만 볼트 세기의 전기적 방전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생성케 함으로써 원시대기를 모방했고, 물을 넣고 끓임으로써 원시해양을 모방하였다. 그리고 한쪽 관에 냉각기를 장치하여 수증기를 물방울로 냉각시킴으로써 빗물을 모방하였다. 약 1주일 동안 전극으로 방전한 다음에 물을 채취하여 분석해본 결과 4-5종의 아미노산과 다른 간단한 유기물이 생성되었음을 관찰하였다.
그 후 밀러의 이러한 실험장치를 이용하여 다른 과학자들은 시안화수소(HCN)를 재료로 세린과 같은 아미노산과 ATP 및 염기를 합성해 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밀러식 실험에 근거하여 원시대기에서도 환원성 기체로부터 간단한 유기물이 합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원시지구에서 화학진화에 의하여 원시생명체가 형성되었다면, 밀러의 실험에서처럼 원시대기의 조성이 환원성이어야만 한다. 환원성 기체로써는 에너지의 도움을 얻어 유기물 합성이 가능하지만, 이산화탄소, 수증기, 질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비환원성 기체로서는 생체 밖에서의 유기물 합성이 불가능하다. 최근 NASA의 인공위성에 의한 행성탐사 결과에 의하면 지구와 가장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금성과 화성의 대기의 주성분이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로 확인됨에 따라 지구의 원시대기의 주성분도 비환원성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오히려 원시지구의 환원성 기체의 가능한 출처는 운석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량의 환원성기체가 운석과 함께 지구로 들어와서 바닷물에 녹아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미량에 지나지 않았을 거으로 추측되고 있다.
또한 원시대기에는 산소가 없었으므로 오존층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오존층에 주로 흡수되는 자외선이 강한 에너지로서 지표면에 떨어져 유기물을 합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뿐 아니라 유기물을 분해하는 방향으로도 작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학진화의 제2단계는 기본 단위가 되는 가장 간단한 유기물이 바다로 들어가서 중합됨으로써 복잡하고 큰 분자의 물질로 합성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즉, 아미노산은 단백질로, 염기는 핵산으로, 단당류는 다당류로 각각 중합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러한 가정은 폭스의 실험에 근거하고 있다. 폭스는 원시지구의 표면이 당시에는 뜨거웠기 때문에 아마도 중합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폭스는 순수한 아미노산을 가열한 결과, 여러개의 아미노산 결합으로 이루어진 폴리펩티드를 얻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실험에 근거하여 폭스는 해양 속에서도 간단한 유기물이 복잡한 유기물로 중합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밀러식 실험장치에서 합성된 아미노산은 화학식이나 분자식은 같을지라도 모두가 생물체의 구성 성분으로 이용될 수 있는 아미노산은 아니다. 밀러의 실험에서 합성된 아미노산 중에도 알라니과 같은 화학식을 가진 아미노산이 세 종류가 있지만, 생물체 구성 물질로 쓰일 수 있는 알라니은 한 종류 밖에 없다. 생물체 밖에서는 이러한 아미노산들이 구별없이 폴리펩티드를 합성하는데 쓰일 수 있지만, 이러한 폴리펩티드는 생물체의 구성 물질로 이용되기 어렵다. 화학진화의 제3단계는 복잡한 유기물들이 뭉쳐져서 알갱이가 형성된 다음에 막으로 둘러싸였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오파린은 콜로이드 입자의 이러한 알갱이를 코아세르베이트라고 하였다. 코아세르베이트 표면에 아마도 탄화수소가 모여서 원시적인 막을 형성함으로써 주의의 액체와 경계를 이루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한편 폭스도 오파린의 생각에 따라 자신이 가열하여 만든 단백질로 미소립자를 만들었다. 이 미소립자는 코아세르베이트와 비슷하게 경계면을 이루어 주위의 매질로부터 분리되고, 두 개의 미소립자가 결합하거나 혹은 한 개의 미소립자가 두 개로 분열하 현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코아세르베이트나 미소립자에는 생명있는 세포의 필수조건인 유전물질이 아직 없는 상태이다. 화학진화의 제4단계는 아마도 별도로 합성된 DNA가 코아세르베이트 속으로 흡수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와 같이 원시생명체는 4단계의 과정을 거쳐 탄생하였다고 보는 것이 화학진화설이다. 그런 제3단계에서 코아세르베이트가 막으로 둘러싸이고 제4단계에서 유전물질이 투입되는 과정이 아직까지는 실험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원시생명체가 탄생되었다고 가정할지라도, 아직도 남아있는 문제점의 하나는 특정한 기질과 효소 단백질과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즉, 서로 상관업시 무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기질과 효소가 어떻게 우연에 의해서 서로 인식할 수 있는 븐자 구조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유전물질 DNA가 복제 혹은 전사해야만 세포의 증식과 기능이 나타나는데 우연에 의하여 만들어진 DNA중합효소와 RNA중합효소가 우연에 의하여 만들어진 DNA에 어떻게 해서 정확하게 인식될 수 있는지 아직도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5. 생물진화
화학진화설에 의하면 최초의 원시생물은 그 후 진화하여 제일 먼저 종속영양생물로 되었을 것이고, 다음으로 종속영양생물로부터 독립영양생물이 출현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원시생물이 출현했을 당시에는 대기 중에 산소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바다 속에 풍부한 유기물을 이용하여 무기호흡에 의하여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종속영양 생물이 원시생물로부터 먼저 진화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종속영양생물의 무기호흡으로 인하여 생성된 이산화탄소의 양은 점차 증가했을 것이고, 바다 속의 유기물의 양은 점점 감소했을 것이며, 이러한 환경변화에 따라 아마도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유기물을 직접 합성해 낼 수 있는 독립영양생물이 진화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최초에 출현한 독립영양생물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원핵생물이었을 것이며, 그리고 원핵생물은 진핵생물로, 단세포 진핵생물은 다세포 진핵생물로 진화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와 같은 화학진화설을 뒷받침 하고자 제시된 근거를 종합해 볼 때, 화학진화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된 가설일 뿐이다.
6. 진화 증거자료의 문제점
(1) 화석상 증거
진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근거는 화석이라 생각되고 있다. 화석이란 과거에 살던 생물의 사체의 굳은 부분이거나 자국이 땅 속에 묻혀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을 말한다 첫째로 화석을 진화의 근거로 삼는 이유는 화석은 지층에 따라 일정한 순서대로 발견되는 점이다. 각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을 지질연대에 따라 배열해 보면 화석의 형태가 점차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현상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오래된 지층일수록 하등한 생물의 화석이 발견되고, 덜 오래된 지층일수록 좀더 고등한 생물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척추동믈의 화석학자들은 화석이 이처럼 순서에 따라 발견되는 것은 아마도 화석이 발견되는 지층의 지질연대 순으로 생물이 진화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화석을 진화의 증거로 삼았다.
말의 화석도 지질연대에 따른 말의 진화를 보여주는 예로 생각되고 있다. 화석학자들은 시신세의 지층에서 발견된 애완용 개보다 조금 더 큰 화석을 가장 오래된 말의 화석으로 보고 있다. 이 화석의 특징을 보면 머리의 앞부분은 짧고, 이는 부드러운 잎이나 과일을 먹는데 알맞게 잇몸 속으로 내려앉았고, 앞다리의 발가락은 네 개이다. 그리고 올리고세, 마이오세, 플라이오세 및 홍적세에서 각 발굴된 화석에서는 점진적인 차이를 찾나볼 수 있었다. 즉, 체구는 커지고, 발가락의 수는 적어지고, 어금니는 거친 풀을 뜯기에 알맞도록 잇몸 밖으로 솟아나 있었다. 화석학자들은 비록 이들 화석간의 변화 과정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지층에 나타난 화석간의 점진적인 차이를 관찰하고, 이와 같은 차이가 점진적인 변화, 즉, 진화에 의해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했다.
둘째로, 멸종한 생물의 화석을 진화의 근거로 삼고 있다. 화석 중에는 현존하는 생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화석이 있는데, 이러한 화석의 생물은 과거에는 살았으나 멸종됨으로써 현존하는 생물 중에는 멸종한 생물과 관련 있는 생물을 찾아볼 수 없다. 진화론자들은 생물이 멸종되면 그 생물로부터 진화하여 출현할 수 있는 생물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므로, 현존하는 생물 중에서 멸종된 화석과 관련 있는 생물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바로 진화를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해석하였다..
셋째로, 현존하는 생물의 중간형이라고 생각되는 화석을 진화의 증거로 삼고 있다. 그 예로서 시조새를 들고 있는데, 이 화석은 중생대 쥐라기의 지층에서 발굴되었다. 주둥이에는 이빨이 나 있고 날개의 끝에는 발톱이 있는데, 이빨과 발톱은 파충류의 특징이며, 앞발이 날개 모양을 하고 있고 전신이 깃털로 덮혀있는 것은 새의 특징으로 해석되었다. 다라서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형이며, 두 조의 생물이 하나의 공동 조상으로부터 진화된 결과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중간형의 화석이 반드시 존재했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화석을 진화의 증거로 삼는 데는 아직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지층의 순서가 엇갈린 화석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예 들면, 1억4천 만년전 멸종한 공룡의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미국의 글렌로즈에서 인류의 발자국과 치아의 화석이 동일한 지층에서 다랑 발견되어 진화의 증거로서의 화석의 위치에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둘째는, 중간화석의 결여이다. 사실상 150만 종의 현존하는 생물이 진화했다면 중간 화석이 수 없이 많이 발굴되어야 할 터인데, 중간화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은 화석을 단순히 진화의 증거로 간주하기에는 문제점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만약 다윈이 제창한 진화설에 의하여 생물이 진화됐다면, 생물의 진화는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일어났을 것이므로 그러한 흔적을 보여주는 많은 중간화석이 발굴되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고생물 학자들에 의해 확인된 화석기록에 의하면 중간화석이 결여되어있다. 이러한 문제가 1980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진화론 학회에 쟁점으로 등장하였다. 점진적으로 진화한다는 점진설을 주장하는 집단유전학자들은 중간화석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중간화석이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간화석이 결여된 것으로 나타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고생물 학자들은 중간화석이 발굴되지 않은 것은 중간화석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진화는 오히려 격변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라는 격변설을 주장했다.
이와 같이 점진설과 격변설은 중간화석의 결여에 대한 집단유전학자들과 고생물학자들 간에 상반된 해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중간화석의 결여라는 관점에 의하면 점진설 보다는 격변설이 더 유력하다. 그러나 격변설이 옳다면 짧은 시간에 격변적으로 생물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에 대하여 만족스럽게 설명되어져야만 하는데, 그것이 어려운 점으로 남아있다. 일반적으로는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설로써 진화를 설면하고 있다. 그러나 중간화석의 결여에 대한 또 하나의 가능한 설명으로는 창조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 발생학적 증거
1866년에 헤켈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발생반복설을 주장하였다. 헤켈은 고등 동물의 발생과정에 하등동물의 발생과정과 유사한 특징이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반복설은 내세웠다. 이 반복설은 곧 고등동물의 발생과정이 하등동물의 발생과정을 반복한다는 뜻이 아니고, 유사한 발생과정이 여러 종류의 동물에서 나타났다는 뜻이다. 이러한 발생반복설도 생물이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근거로 생각되고 있다.
(3) 비교해부학상의 증거
현존하는 생물의 해부학적인 특징을 비교해 보면 기본적인 형태와 기능은 다르지만 발생학적 기원이 같은 기관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손, 개의 앞다리, 새의 날개, 고래의 지느러미인데, 이들 기관을 상동기관이라고 한다. 진화론자들은 이와 같은 상동기관의 존재를 한 종류의 동물에서 다른 종류의 동물로 진화했다는 근거로 해석한다.
또한 새의 날개와 곤충의 날개에서와 같이 형태와 기능은 비슷하지만 발생의 기원은 전혀 다른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기관을 상사기관이라고 한다. 생물이 같은 환경에서 생활하면 형태가 같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종류의 진화론의 근거에 대한 특징을 종합해보면, '점진적인 차이'이다. 즉, 지질연대에 따라 베열된 화석의 특징과 현존하는 생물의 형태적, 발생학적 및 생화학적 특징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에 이르는 점진적인 차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바로 이러한 차이를 점진적인 변화로 해석하여 진화론의 근거로 삼고 있다.
(4) 돌연변이와 진화의 원동력
진화론에 있어서 돌연변이는 가장 유력한 진화의 원동력이다. 유전자의 변동이 자연 환경에 의하여 선택될 때에만 생물의 본질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돌연변이는 진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인이 된다. 유전자 변경을 유도하는 요인으로서 유전적 부동과 유전자 확산이 있지만, 유전적 부동은 소집단에서 특별한 경우에만 적용이 기능하며 유전자 확산은 두 집단의 유전자 풀을 비슷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진화의 원동력으로서의 역할을 크게 기대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돌연변이는 진화의 요인으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돌연변이를 진화의 원동력으로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 유의하는 것이 좋다.
첫째로, 돌연변이 빈도는 대단히 낮다는 것이다. 더구나 생식세포의 유전자에 일어난 돌연변이만이 짆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돌연변이를 통한 진화에 의하여 지구 상에 사는 150만 종의 모든 형질이 형성되었다면 무엇보다도 장구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단히 낮은 빈도의 돌연변이가 오랜 시간을 두고 선택됨으로써만 진화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점진적인 변화를 통한 진화였다면 발굴된 화석이 지충에 따라 점진적으로 나타나야만 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화석 기록은 점진적이 아니고 오히려 격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중간화석의 결여와 점진적 진화를 조화시키는 데 아직도 어려움이 남아있다.
둘째로, 돌연변이에 의하여 진화의 방향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돌연변이에 의해서 나타난 형질이 한쪽 방향으로 계속 선택되어야만 가능하다. 돌연변이는 환경요인에 의해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돌연변이를 이용하여 일정한 방하 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돌연변이가 아니고 오히려 자연선택이다.
아무리 돌연변이가 많이 일어날지라도 돌연변이에 의해 나타난 형질이 환경조건에 적합하여 선택되지 않는다면 돌연변아는 진화의 원동력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현존하는 모든 생물의 수 많은 생물의 형질이 자연선택에 의해서 진화된 결과라면 형질의 수 만큼이나 많은 환경조건이 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환경조건이 지구상에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상 생명현상의 원인이나 요인을 단정적으로 밝혀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생물의 출현에 대한 요인을 밝혀내는 것은 생명 현상 중 어떤 현상보다도 연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생각하지 않고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른지 모르지만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으로는 아직 풀 수 없는 숙제가 남아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진화는 증명된 사실이라고 단정하기가 아직은 어렵다. 오히려 진화론은 하나의 해석이며 또한 가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명의 기원과 생물의 출현에 대하여 창조의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5) 회색 가지나방의 자연선택
1845년, 영국의 맨체스터가 공업화하면서 공해를 일으키기 전에는 회색가지나방의 대부분은 흰색(흰색나방)이고 검은색 나방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맨체스터가 공업화된 이후 검운색 나방의 수는 점차 증가하고 흰색 나방의 수는 감소하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50년 후 이 지방의 대부분의 나방은 검은색 나방이었고, 희색 나방은 소수에 지니지 않았다.
공업암화 전에는 밝은색 지의류가 가로수에 자생하여 나무껍질이 밝은 색깔을 띠었는데, 여기에 붙어 살던 흰색 나방은 몸 빛깔이 나무 껍질의 색과 비슷하므로 새의 눈에 발견되지 않았지만, 검은색의 나방은 쉽게 새의 눈에 띠어 잡아먹힘으로써 검은색나방의 수는 적고 흰색 나방의 수는 많았던 반면에 공업암화 이후에는 공장의 심한 매연 따위로 지의류가 죽어 없어지면서부터 나무의 검은색이 노출되자, 검은색 나방은 새의 눈에 쉽게 발견되지 않게되고 흰색 나방이 오히려 더 잘 잡아먹혀 검은색 나방의 수는 증가하고 흰색 나방의 수는 감소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흰색과 검은색의 나방의 빈도가 공업암화를 전후하여 엇갈리게 변하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 의하여 검은색 나방이 자연선택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에 맨체스터 부근의 공해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흰색 나방의 빈도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즉, 가로수 껍질의 색깔이 검은색일 때는 검은색 나방이 선택되었고, 밝은색일 때는 흰색 나방이 선택되었다.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에 의하면 나방의 색깔은 멘델의 법틱에 따라서 나타나는 우열의 대립인자라고 한다. 즉, 검은색 나방과 흰색 나방의 몸 빛깔은 서로 우열의 대립이자라는 것이다. 검은색은 인자형 CC Cc에 의해서 나타나는 우성의 형질이고 흰색은 인자형 cc에 의해서 나타나는 열성의 형질이다.
이 경우, 검은색 나방의 형질이 공업암화 이전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따라 이 자연선택의 결과는 진화로 나타날 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검은색 나방이 흰색 나방의 돌연변이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며, 공업암화애 의해서 검은색 나방이 선택된 것은 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검은색 나방이 흰색 나방의 돌연변이종이 아니고 흰색 나방과 정상적인 대립인자의 관계라면, 비록 검은색 나방이 환경조건에 의해서 선택되었다 할지라도 그러한 선택의 결과로 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고 하겠다.
(6) 갈라파고스의 핀치새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의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했을 때, 그는 거기에 흩어져 살고 있던 핀치새의 다양한 모양을 관찰하고 매우 흥미를 느껴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 기술해 두었다. 그 후 진화론자들은 핀치새의 경우를 여러 종류의 핀치새가 한 종류의 공동 조상으로부터 자연선택 및 격리에 의하여 진화한 예로 풀이했다. 14종의 핀치새 중 8종은 나무에서 서식하면서 주로 곤충을 먹고 살고 6종은 땅 위에 서식하면서 주로 씨를 먹고 산다. 형태적으로 가장 다양한 구조는 발과 부리이다.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서식지에 대한 경쟁과 먹이에 대한 경쟁에 의해서 조상벌 되는 핀치새가 다양하게 진화되었다고 생각되었다.
갈라파고스 제도가 약 200만 년 전 화산 분출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섬에 사는 모든 육상 동물은 다른 육지로부터 이주해 왔어야만 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핀치새의 조상새는 섬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약 950km 떨어진 에콰도르로부터 이주해 왔을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특별히 핀치새는 잘 날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먼 거리를 자신의 힘으로 날아왔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심한 태풍에 밀려 이 섬에 떨어짐으로써 이주하게 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비록 공동 조상새가 발견된 경우도 없고 종간의 변화가 직접 관찰된 경우도 없지만, 현존하는 핀치새의 차이점에 근거하여 조상새가 이주한 다음 20-50km 떨어진 섬과 섬 사이의 지리적 및 생식적 격리에 의하여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됨으로써 14종의 핀치새가 되었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950km의 거리를 이동했을 핀치새가 50km 떨어진 거리는 이동을 할 수 없었겠는가?
(7) 열역학적 고찰
우리는 이미 '에너지 보존법칙'을 알고 있다. '우주 내에 있는 에너지는 그 형태는 변할 수 있으나 그 총량은 일정 불변이다'라는 에너지 보존법칙을 '열역학 제1법칙'이라고도 한다.한편 석유나 가스를 사용하면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이 우주 내에 있는 가용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동시에 이 우주 내에 있는 모든 사물은 가용 에너지가 가해지지 않는 한 질서에서 무질서로 바뀌게 된다.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이 우주 내에서 무질서도가 증가하고 가용 에너지가 감소하는 현상을 '열력학 제2법칙'이라고 한다.
모든 생물은 분자들이 질서있게 모여 세포를 이루고 또 그 세포가 질서있게 모여 조직과 기관을 이루는 질서도가 아주 높은 상태이다. 그러나 생물이 죽어 부패하면 원자 또는 분자 단위로 분해되어 주위에 흩어지므로 질서가 낮은 무질서한 상태로 된다. 이처럼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는 자연 상태에서는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상태로 진행이 된다.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되고, 유기물에서 생명세포가 되는 화학진화의 과정은 분명히 질서도가 증가하는 과정이다. 질서도가 생명체 밖에서 자연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인 과학법칙에 어긋나게 되므로 화학진화는 불가능한 이론이다.
(8) 수학확률적 고찰
단백질은 세포의 가장 중요한 구성 물질이다. 생명체에 있는 단백질은 20종류의 아미노산이 수 백개에서 수 만개까지 일정한 배열로 모여 생명체의 기능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단백질은 DNA의 명령에 따라 불과 5초만에 만들어진다고 한다.
간단한 단백질 하나가 우연히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의 확률을 알아보면, 만약 100개의 아미노산이 특정한 순서로, 자연적으로 배열되어 간단한 단백질로 합성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해보면 100!(홱토리얼)이다. 즉 1/1x2x3x4.................x99x100인 것이다. 계산에 의하면 1/10^130 이다.
여기서 설령 우연히 단백질이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단백질이 곧 세포는 아니다. 수 많은 단백질과 또 다른 여러 종류의 뷴자들이 적어도 수백억 개가 질서있게 모여야 하나의 세포가 된다. 또 세포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생명은 아닌 것이다.
간단한 단백질 하나가 우연히 생길 수 있는 확률은 0으로 취급되는 수치이다.
(9) 진화론의 약점과 결론
진화론은 수십억 년의 지질시대를 통하여 '무기물→유기물→단세포 생물→하등생물→고등생물→인간'의 순으로 생물이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첫째로,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로 진화한다는 생물진화는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유전자에 큰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한 종에서 보다 우수한 다른 종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유전질서는 엄격하기 때문에 유전자 변이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또 생물진화의 중요한 증거인 중간형태의 화석이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로 무기물에서 단세포까지의 진화인 화학진화도 불가능하다. 무기물에서 단세포까지의 진화는 질서도의 증가를 의미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우주와 만물에서의 질서도는 감소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화학진화는 과학법칙에 위배되므로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러 수학·확률적으로 볼 때 세포의 주성분인 단백질 하나가 자연적으로 합성하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일이다.
셋째로 진화론은 무에서 무기물이 생기는 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일단무기물을 전제로 하고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되는 화학진화부터 거론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기물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에너지보존법칙에 의하면 이 우주 내에 있는 물질과 에너지는 절대로 우연히 생기거나 저절로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와 만물이 우연히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진화론은 우주와 만물의 법칙 그 자체에 모순이 된다.
결론적으로 생물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은 비합리적이요, 비과학적인 하나의 가설이다.
출처 - 창조지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생물학적 고찰)
한성
1859년 찰스 다윈(C. Darwin) 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후 오늘날까지 그의 진화론은 생물학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창조주를 과학의 분야에서 제거하려는 시도가 인본주의적 세계관과 결합하여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빠르게 전파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진화론은 현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어떠한 사고방식보다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의 진화론은 이론의 단계를 넘어서서 하나의 완전한 법칙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과학자들은 진화론이 너무나도 불완전한 가설임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이 불완전함을 진화론적 사고 안에서 조금씩 수정함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이러한 진화론의 허구성을 진화론의 근간이 되는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진화론 개요
사실 이러한 진화론 사상은 기원전 5, 6 세기부터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 간에도 있었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간단하고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복잡하고 완전한 것으로 변하려고 애쓴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다윈 이전에는 이러한 진화론적 사고는 극히 일부 박물학자들만의 것이었으며,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적 사고가 압도적으로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창조론적 세계관이 급격히 바뀌게 된 것은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고 난 이후 부터였다. 청년 시절에 그는 박물학자로서 영국 측량선 비글호를 타고 5년 동안 전세계를 항해하면서 동식물들을 관찰하였고, 그때부터 진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후 20여년간 널리 자료를 수집하여 1859년 11월 24일 ‘자연도태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는 종의 보존에 대하여’ 라는 긴 제목의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다윈이 말한 진화론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그는 다음과 같은 대략 5단계의 연역적 체계로 그의 이론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출발점은 ①생물은 일반적으로 많은 새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②수가 많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격심한 생존경쟁이 일어난다. 그런데 ③그들 중에는 변이를 수반하는 것들이 있어서 그 변이는 생존경쟁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 ④유리한 변이를 일으킨 변종은 살아남을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진화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⑤이러한 과정이 오랜 시간동안 반복되어 그 변종은 드디어 해당 종 내에서 다수파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종의 탄생, 즉 종의 진화인 것이다.
다윈은 이 이론의 출발점인 다산성과 생존경쟁에 대해서 맬서스(T. Malthus) 의 '인구론'에서 암시를 받았다. 멜서스는 그의 저서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직선적으로 밖에 증가하지 않아서 그 결과 생존경쟁이 일어난다고 논하였다. 다윈은 이것을 읽고, 인구와 식량의 차이는 인간 뿐만 아니라 생물전체에 해당한다고 사고를 확장하여 그의 이론을 전개해 나갔다.
그 다음 단계가 생물의 변이인데, 사실 다윈의 세대에선 예는 들고 있었지만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1901년 드 브리스(De Vries)가 큰 달맞이꽃의 연구에서 돌연히 나타난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돌연변이 형질을 발견하자 사람들은 이것을 다윈의 진화론에 접목시켰다.
그러나 다윈은 이러한 변이와 변이의 유전에 대한 구체적인 기작을 설명하지 못하고, 단지 세포 내에는 '젬뮬(gemmule)' 이라는 입자가 함유되어 있어 이것이 증식하거나 다른 세포로 이동하여 변이와 유전이 일어난다는 '팬제네시스(pangenesis)'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러하던 것이 1900년 멘델(G. J. Mendel) 의 '유전의 법칙'이 세상에 알려지고부터, 유전자(gene)가 젬뮬의 개념을 대체하게 되었다.
20세기 전반에 들어와서 사람들의 돌연변이와 유전의 법칙에 대한 이해가 늘어가자 여러 가지 새로운 이론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 중의 한 분야가 '집단유전학'이다. 집단 유전학이 진화론과 결합하여, 진화의 기본단위는 '개체'가 아닌 '집단'이며, 집단 중에서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소집단'이 '대집단'을 대신하여 진화의 단위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소집단 생성원인으로 '격리' 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이 격리는 다시 지리적 격리와 생식적 격리로 이분화된다.
이러한 돌연변이, 유전, 소집단, 격리 그리고 다윈 진화론을 종합하여 이른바 '종합설(modern synthesis theory)' 이 탄생하게 된다. 이 종합설이 현대 진화론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또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의 근간이 바로 이 종합설이다.
종합설에서는 진화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변이가 비교적 단기간에 무 방향으로 소규모로 일어나서 종 내의 변이를 유발할 때를 '소진화 (microevolution)' 라고 하며, 자연 선택된 집단이 격리에 의해 오랜 시간동안 일정한 방향으로 크게 진화하여 종을 뛰어넘는 변이를 유발할 때를 '대진화 (macroevolution)' 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다양한 품종의 개나 말 등이 나타나는 것이 소진화이고, 파충류에서 조류나 포유류로 변하는 것을 대진화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소진화들이 축적되어 대진화가 일어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단세포 동물로부터 모든 동식물이 진화할 수 있다는 대진화의 기본 골격은 소진화의 개념을 확대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대략적으로 살펴본 진화론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 있는 가설인지, 과연 그것이 현재와 같은 '법칙'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2. 현대 진화론에 대한 고찰
현대 진화론에서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논법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다산 ⇒ 생존경쟁 ⇒ 변이 ⇒ 자연선택 (자연도태) ⇒ 진화
다산과 생존경쟁은 지금도 관찰되고 있는 확실한 사실이다. 그것들의 인과관계도 대략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변이, 자연선택 그리고 진화...
지금부터 각각의 단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A. 돌연변이 (mutation)
변이는 자연선택과 더불어 진화론의 가장 기본이 되는 논거이다. 변이의 메커니즘으로 진화론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 돌연변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먼저 돌연변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돌연변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전자의 개념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유전자란, 간단히 말해 생명체를 만드는 설계도와 같다. 그 설계도를 기초로 여러 가지 생체 현상이 일어나 하나의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면, 누군가가 만든 것과 저절로 생겨난 것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것을 만드는 데 사용된 설계도가 있는가, 없는가 이기 때문이다.
분자생물학의 급속한 발달로 오늘날 우리는 유전자를 분자수준에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유전자는 DNA라는 이중 나선 구조로 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얇은 필라멘트인데, 세포 한 개 속에 들어있는 DNA의 길이는 약 1.7 m로 우리 키와 거의 같다 (그림 1). 우리 몸은 약 60~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을 다 연결하면 지구에서 태양까지 여러 번 왕복할 만큼 길다. 그런데도 무게는 1g 도 되지 않는다. 이 DNA의 구조는 이중나선으로 되어 있고 이것은 다시 4개의 염기, 즉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사이토신(C)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염기들이 A:T G:C로 쌍을 이루어 이중나선 구조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DNA가 꼬이고 꼬여 핵 속에 저장되어 있는 형태를 염색체라고 한다.
핵 속에 들어있는 염색체가 여러 가지 외부의 요인, 즉 자외선, X-선, 화학물질 세포내의 대사과정의 고장 등에 의해 파괴되거나 변형되어 일어나는 것이 바로 돌연변이이다.
앞에서 설명한 종합진화설에 있어서는, 생물에게 유리한 돌연변이가 야기되면 그것은 반드시 자연도태를 거치면서 생물집단으로 퍼진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유리한 돌연변이란, 생물의 번식률이나 생존율을 높이는 돌연변이를 뜻한다. 다윈론적인 사고에서는 새로운 종이 형성될 수 있는 돌연변이는 생물에게 유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를 위하여 수많은 실험을 행해왔다. 가장 많은 실험재료로 사용된 것은 초파리(Drosophila)이다. 초파리는 여름에 흔히 볼 수 있는 과일껍질에 몰려드는 빨간 눈의 작은 파리이다. 미국의 유전학자 모건(T. H. Morgan)은 이 초파리로 돌연변이 연구를 한 최초의 과학자이다.
그는 초파리에 X-선을 쬐어 주면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의 돌연변이가 생성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고, 이것은 유전자에 의해 자손으로 이어져간다는 것을 관찰했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최초로 증명한 것이었다. 그는 이 업적을 인정 받아 1933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돌연변이의 실험적 연구가 계속됨에 따라 밝혀진 사실은, 모든 돌연변이는 아무리 보아도 생물이 살아 나가는 데 유리하다고 보여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림 2). 1945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으로 발생된 돌연변이의 경우 백혈병, 기형, 죽음 등 치명적인 증상만 보여주었지 유리한 돌연변이는 하나도 관찰되지 못했다. 진화론의 주장대로라면 오존층의 파괴가 오히려 반가운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자외선과 우주선에 강한 새로운 종의 출현으로 인해 진화론을 설명할 수 있으니 말이다. 환경오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돌연변이 하면 떠오르는 것이 흉측한 괴물이지, 아름답고 유익한 생물체로 떠올리지 않는다.
생명은 이러한 사실을 인간보다도 먼저 인식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미리 아셨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하셨을 때부터 모든 생명의 설계도인 유전자를 쉽게 변하지 않는 아주 안정한 상태로 유지하게끔 만들어 놓으셨다.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마련해 두셨던 것이다. 세포는 핵 내에서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교정하는 완벽한 교정장치(repair system) 를 가지고 있다. 세포는 여러 가지 효소와 단백질이 관여하여 돌연변이가 일어난 장소를 찾아내어 그것을 제거한 뒤 새롭게 합성하는 놀라운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가장 단순한 단세포 생물인 대장균(E. coli)까지도 이러한 완벽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만약 생명체가 돌연변이를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이용해왔다면 이러한 교정장치가 있을 필요가 없다.
초파리로 돌연변이 실험을 한지 거의 1세기가 다 되어가지만, 지금까지 초파리가 아닌 다른 종의 생명체가 나타나진 못하고 있다. 미생물학자들이 지금까지 박테리아로 수없이 많은 연구를 해 왔지만, 비록 성질은 변화시킬 수 있었어도, 돌연변이에 의해 박테리아가 아닌 전혀 다른 종의 생물을 만들어 내진 못했다. 즉 수평적인 변이는 일어나도 진화론이 뜻하는 수직적인 변이는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야생동물을 자연상태에 내버려 두어도 자기 종류들 내에서만 번식해 간다. 간혹 잡종이 생길 수 있으나 잡종들은 그 당대에서 끝나고 더 이상 번식을 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말과 당나귀는 사로 다른 종이지만, 인공적으로 교배시켜 노새가 생기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새는 번식을 하지 못한다. 식물이나 동물세계에서 혹 인공적으로 더 나은 품종을 개발했다 해도 대개 번식력이 약화되어 몇 세대 이상 가지 못하거나 존속하기 힘든 약체가 된다. 1845년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관찰, 연구했던 그 유명한 13종의 핀치새는 오늘날도 여전히 13종의 같은 핀치새로 남아있다.
현대의 상당수의 진화론자들은 이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중립 진화설과 바이러스 진화설이다. 두 가지 가설 모두 현대 분자생물학의 눈부신 발전에 의해 생겨난 가설들이다. 이 가설들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B. 자연선택 (Natural Selection)
다윈이 넘어야 했던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는 생명체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이었다. 그는 자신의 진화론에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큰 지주로 삼음으로써 생명의 기원 문제에 인격적인 존재를 배제할 수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지구상의 모든 생물 종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산물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하는,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새로운 사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을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하여도 여전히 문제는 발생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자연은 환경에 잘 적응하고 유리한 돌연변이 형질은 선택하고 해로운 것은 도태시켜, 오랜 세월이 지나면 한 종류의 생물체가 결국 더 진보된 다른 종류로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자연계에서의 돌연변이든 X-선이나 자외선을 사용한 인위적인 돌연변이든,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존경쟁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은 돌연변이는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생물의 종이란 벽을 넘어서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것 같은 돌연변이는 전혀 없었다. 적자생존이나 자연선택의 진정한 뜻은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유리한 것들이 살아남는다는 것이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생물체가 환경에 잘 적응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원칙은 진화론 뿐 아니라, 온 생물체 존속의 원리라고도 볼 수 있다. 자연선택, 적응, 적자생존 등은 환경이 생물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보여주지만, 그것이 아메바에서 사람까지 진화했다는 대진화의 메커니즘은 될 수 없다.
자연 선택에 관하여 진화론자들이 자주 내세우는 증거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국에서 발견된 회색 가지나방이라는, 나방의 체색깔이 공업화에 따라 검게 되었다는 공업암화(Industrial Melanism)라는 현상이다 (그림 3).
대기오염은 나무껍질에 붙어 있는 지의류를 말려 죽인다. 그 결과로 공업 지대인 리버풀 근교의 떡갈나무 숲에는 지의류가 거의 자라지 않으므로 떡갈나무가 검은 색을 띄고 있다. 따라서 검은 색의 회색 가지나방이 잘 적응하게 된다. 이 검은 회색 가지나방은 밝은 무늬의 야생 나방보다 새에게 잘 포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잉글랜드의 공업지대에서는 자연선택에 의해 회색 가지나방은 거의가 검은 색의 나방으로 변해 버렸다. 이 현상을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의 대표적인 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대기오염이 개선됨에 따라, 다시 검은 나방과 밝은 무늬의 나방을 동일한 비율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진화의 절대조건의 하나는 변화한 형질이 절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진화는 불가역적인(irreversible) 현상이다. 환경의 선택에 의해 검게 된 회색 가지나방이 다시 원래의 밝은 색으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은 이 현상이 자연선택이 아닌 단순한 가역적인(reversible) 적응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사 이러한 변이가 적응이 아닌 유전적인 변화라고 해도 이러한 변화는 어디에서든 관찰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 사는 한국인이 한국에 사는 한국인보다 더 검은 것은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한국인의 경우, 멜라닌(melanin)을 합성하는 효소가 환경에 의해 더 많이 발현되었다는 것은 실험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연선택의 증거가 되진 않는다. 그것은 단지 개체의 가역적인 적응이었을 뿐이다.
사자와 얼룩말의 예를 들어보자. 사자가 얼룩말 무리를 습격하면 얼룩말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사자는 전력을 다해 쫓아간다. 다윈식으로 말하면, 발이 빠른 얼룩말은 살아 남고, 발이 느린 얼룩말이 먹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얼룩말은 자연선택에 의해 점점 빨리 달리도록 진화할 것이고, 그에 따라 사자도 느린 사자는 도태되어 버리고, 빠른 사자만 살아 남아, 결국엔 사자도 빨리 달리도록 진화할 것이다. 그 결과 옛날의 얼룩말과 사자의 빠르기보다 오늘날의 사자와 얼룩말의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옛날과 오늘날의 사자와 얼룩말의 빠르기는 동일하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자는 느린 말만 골라서 습격하는 것이 아니라, 맨 처음 눈에 띈 목표를 향에 단숨에 습격한다. 사자는 순발력은 강하나, 지구력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사자에게 눈에 띈 얼룩말은 단순히 운이 나빴을 뿐이다. 다시 말해, '적자생존'이 아니라 '운 좋은 자의 생존'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C. 진화
다윈은 그의 가설의 마지막을 앞에서 살펴본 과정의 오랜 시간에 걸친 반복으로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즉 자연선택에 유리한 돌연변이가 연속적으로 일어나서 그것들이 축적됨으로써 비로소 진화한다는 것이다. 앞의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거짓이라면 더 이상 이 문제는 논의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만약'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일어난다고 가정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쉽게 이해하기 위해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하려면 앞다리가 날개로 진화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큰 변화가 생기려면 많은 돌연변이가 질서 정연하게, 그리고 동시에 한 개체에 축적되어야 한다. 날개가 형성될 뿐만 아니라, 그 날개를 움직이기 위해 뇌도 동시에 진화해야 하고, 뼈의 구조를 변화 시켜 더욱 가볍게 해야 하고, 공기저항을 적게 할 수 있는 체형의 변화도 수반되어야 하고, 비늘에서 깃털로 바뀌어야 한다 (그림 4). 해부학적으로 살펴보면 새와 파충류의 심혈관계의 구조는 완전히 반대이다. 폐의 구조도 전혀 다르다. 파충류에서 새가 되기 위해선 이러한 변화들이 한 개체에 목적에 맞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과연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다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한대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진다고 가정해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보다 더 큰 믿음을 소유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3. 진화의 증거 자료에 대한 고찰
A. 계통 분류학적인 측면
계통 분류에 대해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모든 생물체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특징, 즉 그룹과 그룹간의 종속관계"라고 정의 내렸다. 다시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특성이 비슷한 생물체들끼리 그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시도되어왔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이후부터 근대 생물학의 등장과 함께 생물학적인 지식이 점점 축적되게 되고, 그러한 지식들을 기초로 자연의 질서 있는 계층구조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면서 급격히 발전해 왔다. 그러한 시기에 진화론이 등장하게 되고, 단순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으로의 점진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진화론과 계통분류학의 계층구조적 양상이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진화론에 있어서 없어선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증거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현대 진화론자들도 이 계층 분류학적 측면을 진화론을 전개하는 가장 강력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 한 것은 계통분류라는 개념이 오히려 창조론적인 측면을 더욱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계통분류에 대해 알아보고 과연 이것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초기의 계통분류학자들은 분류기준으로 주로 해부학적인 유사성, 상동기관, 상사기관, 생식범위 등 주로 외적으로 관찰 가능한 기준들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요즘은 분자 생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DNA 염기서열,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 등 미시적 관점에서의 종 분류를 가능케 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기준으로 분류된 것들을 진화론자들은 '진화 계통수' (그림 5) 라는 분류구도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처럼 이 계통수가 진화의 직접적인 증거라고 주장할 경우에는, 진화의 순서처럼 연속적인 배열형태로 분명히 나타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자연 속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상도 그러한 양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계통수에 나타나는 마디, 즉 가지 쳐 뻗어나가는 각각의 마디라는 것은, 진화론자들의 주장 대로라면 실제로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있음 직한 가상의 조상형을 거기 끼워 넣은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현재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상은 진화 계통수에서 가장 끝단에 위치해 있고, 그러한 생물상은 거의 대등한 사촌 관계이며 어느 한쪽이 다른 한 쪽의 조상이라든가 후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분명히 나타나 보인다. 실제 진화론이 등장하기 이전의 분류학자들은, 자연계에 나타나는 너무나도 계층적인 체계와 개개의 생물군들에 나타나는 독립적인 특징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라고 이야기했다.
다윈 자신도 자연계의 분류체계가 너무나도 질서 정연하다는 것을 보고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왜 진화론자들은 이것을 진화론에 대한 증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들 자신의 선입관적인 편견을 배제하지 않은 채, 즉 생물은 진화했다는 가정을 먼저 한 다음 생물계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가능한 모든 편견을 배제하고 생물계를 바라보려는 시각들이 늘어나면서, 계통분류에 관한 새로운 이론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한 이론들을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관점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상도 더 진화되고, 덜 진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존재하는 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진화되어 왔고, 따라서 진화계통수에서도 가장 끝 단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비록 그들은 진화론적인 개념으로 설명했지만, 달리 말한다면 "그들이 존재하는 환경에 가장 적합하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계층 구조적인 양상은 흔히들 추정하고 있는 것처럼 생물진화를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즉, 무작위적이고 방향성 없는 진화적 과정과 같은 것에 의해 자연적으로 계층구조적 양상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질서가 실제 자연계에 나타난다는 것은 한 분의 설계자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납득할 만한 생각인 것이다.
B. 해부학적 유사성 (상동기관은 무엇을 증거하는가?)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에 대한 강력한 증거의 하나로 상동현상을 채택하여 그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의 생물학적인 지식으론 다윈의 이러한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었음에 틀림없다. 또한 그 당시의 생각으론 이러한 다른 종간의 유사성이 골격구조 뿐 만 아니라 모든 생물형태에서 관찰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지식이 점점 축적되면서 그들의 생각을 지지하기 보다는 반대하는 쪽으로 밝혀지고 있다.
비록 골격구조를 비교해 보면 종간의 유사성이 매우 잘 관찰된다고 해도 다른 형태-예를 들면, 심장 혈관계, 호흡기, 신경계-들을 비교해 보면 종간의 유사성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다른 종과는 구별되는 불변의 독특한 성질에 의해 구별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척추동물의 심장 혈관계를 형태학적으로 관찰했을 때 어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에 이르는 명확한 계통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진화론적인 관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통체계를 조금만 자세히 관찰해 보아도 이러한 진화론적 연속성을 반박할 수 있는 비교 해부학적인 증거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를 대동맥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림 6). 포유류에서는 산소를 함유한 혈액을 심장에서부터 전신에 보내는 대동맥이 좌측 제4동맥궁인 반면, 파충류에서는 우측 제4동맥궁이다. 혈액의 진행방향이 서로 반대라는 것이다. 파충류에서 포유류로의 점진적인 변화를 상상해 본다면 온 몸의 혈관계가 우측에서 좌측으로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골격구조는 비슷하지만 혈관계는 오히려 완전히 반대이다. 이러한 현상을 진화론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호흡기도 마찬가지다. 조류와 파충류의 폐의 구조를 비교해 보면 그건 하늘과 땅 차이다. 파충류는 공기가 들어가는 입구와 출구가 하나인 반면, 조류는 입구와 출구가 각각 다르게 존재한다. 파충류는 허파꽈리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일어나지만 조류는 측기관지라는 독특한 기관에서 일어난다 (그림 7).
파충류에서 조류로의 진화는 폐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볼 땐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상동구조가 진화를 증거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증거는 발생학에서 관찰된다. 상동구조가 그 발생과정도 상동현상으로 진행된다면 상동현상에 대한 진화론적 증명은 타당해 질 수 있으나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실제 상동 기관들은 서로 다른 경로로 발생한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보면 해부학적 유사성이 과연 진화의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자동차를 보면 작은 경승용차를 비롯해서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 트럭, 버스 등, 다양한 차종이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차들은 공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바퀴도 4개이고, 몇 기통 이냐가 다르지 거의 비슷한 구조를 가진 엔진이 장착되어 있고, 헤드라이트가 2개이고... 수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보고 작은 차에서 큰 차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진화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까? 아니면 표준 설계도를 기초로 한 회사에서 약간씩 변형을 주어 다른 종류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할까?
해부학적인 유사성이 무엇을 증거하는가 하는 것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전혀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데 있다. 그 사람이 가진 시각은 바로 그 사람이 가진 세계관을 반영한다. 그 사람이 진화론적인 세계관을 가진다면, 어떠한 객관적인 사실도 진화론적인 세계관이라는 색안경을 끼고서 진화론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C. 분자생물학적 증거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이래로 진화론자들은 종과 종을 연결하는 중간형의 화석을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화석 기록을 수집하면 할수록 중간형은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생물계는 너무나도 불연속적이라는 사실만 더욱 확실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분자생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어, 생물계의 비교를 더 이상 화석기록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 들어서,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은 2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백질마다 그 아미노산의 배열이 모두 다르고, 또한 같은 단백질이라도 종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생물간을 비교할 때, 특정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을 비교하여 그 차이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의 배열의 차이를 백분율 (%) 로 나타내면서 정량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발견들이 종 사이의 차이를 정확히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화석을 붙잡고 있던 진화론자들에겐 이 소식은 복음과 같은 것이었다. 마침내 연결 고리 및 일어버린 중간형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찾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객관적인 자료가 축적될수록 오히려 이러한 정량적인 생물분류는 종간의 불연속성을 증거하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가장 많은 비교의 수단이 되고 있는 사이토크롬 C (Cytochrome C)라는 단백질을 예로 들어보자. 그림을 자세히 보자 (그림 8). 언뜻 보면 하등생물로부터 고등생물까지의 아미노산 배열차이가 연속성을 띠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어느 아미노산 배열이든 종과 종 사이의 중간형으로 간주되는 것은 없다. 한 종에서의 아미노산 배열은 다른 종과 항상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있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림에는 전이형태나 중간형의 배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 9) 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박테리아와 진핵생물들과의 비교를 보면 그 사이에 어떠한 중간형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즉 모든 진핵생물들은 세균으로부터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것이다.
진핵생물끼리의 비교도 마찬가지다 (그림 9-C). 비록 원핵생물과 진핵생물과의 비교 보다는 짧게 나타나긴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 중간형으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이토크롬의 아미노산 배열의 차이점으로부터 생물계를 몇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비교 해부학적 분류의 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각각의 생물군은 다른 종으로부터 명확하게 떨어져 있다. 어느 종도 중간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종과 부분적으로 혼합된 경우란 없다. 분류계층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종간의 격리현상은 더 강해진다. 그런데 아래쪽에 위치한 척추동물 간의 비교 또한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단백질의 유사성 정도를 바탕으로 척추동물을 분류해 보면 턱이 없는 무턱류의 원구류와 고등동물로서 유턱류의 척추동물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림 10). 그림에서 보듯이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진화 계열, 즉 원구류 ⇒ 어류 ⇒ 양서류 ⇒ 파충류 ⇒ 포유류로의 순서가 분자 수준에서는 흔적조차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즉 모든 종이 동일한 거리만큼 떨어져있는 것이다.
단백질뿐 만 아니라, DNA나 RNA의 염기 서열을 비교해 보아도 같은 결과가 얻어진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단백질 분자의 유사성을 서로 다른 종들 사이에서 비교해 보았다. 그러나 하나의 생물체 내에서도 유사한 단백질이 동시에 여러 개가 존재하는 예도 많이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혈액을 구성하고 있는 적혈구 내의 헤모글로빈 (hemoglobin) 이 그것이다. 사람에게는 4종류의 헤모글로빈이 존재한다. 그것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a 형, b 형, g 형의 헤모글로빈이고, 나머지 하나는 마이오글로빈 (myoglobin) 이다. 마이오글로빈은 주로 근육 내에 존재하면서 산소를 저장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그리고 a 형과 b 형은 성인의 적혈구 내에 존재하는 형태이고, g 형은 주로 태아나 신생아에게서 발견되는 형태이다. 이 네 가지 단백질들은 아미노산 배열, 형태, 역할 등이 매우 비슷하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진화론자들은 이 네 가지 단백질들이 공통적인 선조 분자로부터 진화되어 나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대표적인 분자진화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 처럼 이 네 종류의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을 비교해 보면 모든 것이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11). 마이오글로빈은 나머지 세 분자와 그 분자적 거리 (아미노산 배열의 유사성) 가 모두 같다. 나머지 세 헤모글로빈을 비교해 보아도 각각의 거리는 똑같다. 어느 것이 더 멀거나 가깝다는 것이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천 종류의 단백질과 핵산의 배열이 수백 종의 생물에서 비교되어 왔지만, 어떤 아미노산 배열이 다른 종의 직계 자손이거나 선조였다는 결론은 전혀 관찰되지 않고 있다. 즉 분자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도 화석과 마찬가지로 진화론자들이 오랫동안 찾아왔던 중간형의 존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생물학적인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진화론이 더욱더 확실해 진다고 하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4. 진화론에 관한 새로운 학설들
다윈 이후,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눈부실 정도로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다. 다윈은 그것을 예견했고, 그러한 발전에 의해 진화론에 대한 증거들이 속속들이 발견될 것이고 진화론은 더욱더 굳건해 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후자는 그의 예견이 적중했지만, 전자는 그러지 못했다. 과학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의 이론의 불완전성만이 더욱 대두될 뿐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너무나도 불완전한 이 가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들이 대두되었다. 그러한 예들을 설명하고, 불완전한 기반 위에 정립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그러한 가설들의 불완전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A. 중립진화설
다윈론의 대전제 중의 하나가 모든 생물은 변이, 즉 돌연변이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돌연변이에 대한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 될수록 거의 모든 돌연변이는 생물이 살아가는데 유익하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선택에 의해 유리한 돌연변이가 축적되어 종 전체에 확산된다는 것이 진화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유리한 돌연변이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주장은 억지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진화론자들 또한 이러한 돌연변이의 맹점을 정확히 인식하게 되었고, 그러한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중립진화설이다. 이 이론은 1968년에 일본의 '기무라' 가 집단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을 결합하여 처음 제창하였다. 중립진화설이란 간단히 말해서 유전자의 진화는 다윈이 말하는 생존에 유리한 자연선택에 의해 유발되는 것뿐 만 아니라 생물에게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돌연변이가 우연히 확대됨에 따라 야기될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분자생물학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먼저 그에 대해 설명해 보기로 하자. 유전자(DNA)는 4개의 염기가 쌍을 이루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하였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생성하는 설계도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4종류의 염기 중 3개가 한 조를 이루어 특정한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하게 된다. 그 3개의 염기를 코돈 (codon) 이라고 한다. 그런데 4개의 염기가 코돈을 이루는 경우의 수는 64인데 반해 아미노산은 20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러 개의 코돈이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GAT와 GAC는 세 번째 염기가 틀리지만 아스파라긴산 이라는 동일한 아미노산을 지정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T에서 C로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치환이 일어나더라도 동일하게 아스파라긴산이 만들어지게 된다. 만약 T가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C로 바뀐다 하더라도 실제적인 단백질의 구조와 배열은 전혀 바뀌지 않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중립적 돌연변이라고 한다. 중립적 돌연변이의 다른 유형도 존재한다. 어떤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아미노산 중의 하나가 돌연변이에 의해 다른 아미노산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그 단백질의 기능에는 전혀 영향이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중립적 돌연변이는 실제 생물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자연선택과는 무관하게 된다. 따라서 중립적 돌연변이가 오랜 시간 동안 축적이 되더라도 생명체는 변이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를 휴식상태라고 표현하는데, 어느 상황이 되면 이러한 중립적 돌연변이가 축적이 되어 생명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 되고 그것이 자연선택에 의해 종 전체로 퍼지게 된다는 것이 중립진화설이다. 이 이론으로 돌연변이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이론 또한 진화론이라는 불완전한 이론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커다란 맹점을 안고 있다. 즉 중립진화설은 중립적인 돌연변이가 어떻게 생명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실제적인 유전자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중립적인 돌연변이가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어서 드디어 생물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곧 유전자의 변화를 수반하는 돌연변이를 뜻하는 것이다. 생명체에게 전혀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 돌연변이 그 자체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중립진화설은 언어적 유희에 불과한 가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B. 단속평형설
극히 최근에 들어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새로운 진화론이 '단속평형설'이다. 이 이론은 고생물학이나 화석학에서 출발하고 있다. 앞에서 다뤘듯이, 진화론자들이 화석기록을 보고 가장 당혹해 하는 것은 그토록 기다리던 중간형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믿었던 화석에서 오히려 종과 종간의 단절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새로운 가설을 세우게 된다. 그것이 단속평형설이다. 1940년대 들어서 미국의 고생물학자 엘드리지(N. Erdridge)가 처음으로 주창한 이론이었는데, 그 당시엔 웃기는 소리라고 사장되었던 것이, 1980년대 들어서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굴드(S. Gould) 교수에 의해 정리되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굴드의 주장은, 진화는 다윈이 생각했던 것처럼 일정한 속도로 서서히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속평형설에 의하면, 진화는 짧은 기간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 야기되나, 그 후는 긴 기간에 걸쳐 생물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 상태가 계속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이론은 다윈의 진화론의 일부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는 것이 있다 (그림 12). 진화 연대상 몇 억 년 동안이나 전혀 진화되지 않고 옛날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생물을 뜻한다. 예를 들자면, 실러컨스, 투구게, 앵무조개, 뉴질랜드의 쐐기도마뱀, 은행나무 등 상당히 많은 수의 종들이 지금까지 진화되지 않은 채 태고의 모습대로 현재 살아 남아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다윈 진화론에서는 생물은 종류에 따라 진화의 속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러 지층에 걸쳐 발견되는 화석을 연구하면 생물은 전혀 변화하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 바로 단속평형설이다.
단속평형설에 의하면 화석에서 볼 수 있는 종간의 뚜렷한 단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종이 형성될 때에 생물은 급격하게 형질이 변하나 그 변화가 일단 완료하게 되면 다시 안정된 상태가 유지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진화론은 생물이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주장한 나머지 생명체의 변화에 대한 저항성, 즉 생물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물의 안정성을 너무나도 무시하여 왔다. 만약 다윈 진화론이 옳다면, 진화는 지금도 진행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진화가 현재 진행형인 것이라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 지구상의 어디에서인가 진화는 진행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관찰 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그러한 현상을 관찰할 수는 없다. 굴드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여 생물은 급격히 변화한 다음 (매우 격변적으로) 그 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론은 반박할 여지조차 없는 것 같다. 그의 이론을 쉽게 설명하자면 도마뱀이 알을 많이 낳았는데, 어느날 그 중의 하나가 날 수 있는 새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13). 그러한 격변적 변화를 믿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보다 더 큰 믿음이 요구될 것 같다.
C. 바이러스 진화설
바이러스 진화설은 진화를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라고 여기는 새로운 유형의 진화 가설이다. 바이러스가 종과 종 사이에서 유전자를 운반하는 도구 역할을 감당하여 유전자의 수평이동을 가능케 하여 진화를 일으킨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진화론적 관점은 오직 유전자의 수직적 이동에만 관심을 가졌었는데, 바이러스 진화설에서는 바이러스가 유전자 수평이동의 도구로 등장하여 진화를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진화를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하나의 유전병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한 가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증거들로 '슈퍼 생쥐 (super mouse)'를 들고 있다. 슈퍼 생쥐란, 사람이 인위적으로 성장호르몬 (growth hormone)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생쥐에게 과다하게 주입하여, 성장이 보통 쥐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생쥐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자손으로 유전된다. 여기서 사람의 역할을 바이러스와 자연선택이 감당하여 자연계 내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린도 이 가설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기린의 목에 관해서, 정통 진화론에서는 목이 긴 기린일수록 높은 나뭇잎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살아 남을 확률이 높고, 그 때문에 조금이라도 목이 더 긴 기린이 자손을 많이 남기게 되므로 목이 길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화석에서는, 목이 짧은 기린과 현존하는 목이 긴 기린의 화석만 출현할 뿐, 중간길이의 화석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정통 진화론의 입장에선 화석발굴의 불충분성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기린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에 대해 중간형의 화석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이러한 다윈론의 약점을 바이러스 진화설에선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기린은 목이 길어지는 괴이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걸렸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얼토당토않은 생각들이 최근의 '점프하는 유전자 (jumping gene)'와 '트랜스포존 (transposon)' 이라는 유전자 조각의 발견으로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점프 유전자와 트랜스포존 모두 바이러스처럼 유전자 사이를 건너 다닐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종간의 수평적인 유전정보의 교환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이 종을 뛰어넘는 변화를 야기한다는 것은 지나친 도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바이러스나 여러 도구에 의해 전달된 유전자는 거의가 올바른 유전자가 아닌 파괴된 유전자임이 밝혀져 있다. 바이러스에 의해 생물에 유리한 변화를 가져온 예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다. 거의가 생명체에 심각한 손상을 야기하거나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진화론에 도입하는 것은 잘못된 이론을 설명하기위한 그들의 억지일 수 밖에 없다.
결론
지금까지 진화론에 대해 생물학적인 견지에서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진화론의 불완전성과 허구성을 각각의 진화단계에 따라 분석해 보았으며, 진화론자들이 가장 대표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몇 가지 증거들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그런데 다윈론의 그러한 불완전성과 모순들은 현대 진화론자들 역시 잘 파악하고 있다. 그러한 모순과 불완전성들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지 140여년이 지났는데, 진화론은 더 미궁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수많은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제시될 전망이다. 진화론자들이 그러한 불완전한 진화론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는 이유가 뭘까? 더 이상 다른 대안이 없다고 진화론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진화론을 부정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밖에 없다. 그러한 사실들을 진화론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과학적인 증거의 확실성으로 진화론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원치 않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너무나 불완전하고 모순 투성이인 진화론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세상이 끝날 때 까지 그들은 진화론을 붙잡을 것이다. 결국, 진화론과 창조론의 문제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 내 마음에 하나님을 알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의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출처 - 창조지
진화론의 가장 우수한 증거들
(The Best Evidences of Evolution)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극히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그들의 가장 우수한 증거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매우 어처구니없는 것들이다. 이것은 과학 대 진화이다.
내용 : 진화론의 가장 우수한 증거들
1. 생명체들은 부모가 있다.
2. 생명체들은 후손을 낳는다.
3. 완전함이 있다.
4. 불완전함이 있다.
5. 종들이 멸종되었다.
1. 모든 생명체들은 부모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가 사실임을 안다.
”부모가 없는 생명체는 지구상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진화를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 *Tom Bethell, 'Agnostic Evolutionists,' Harper's, February 1985, p. 61.
2. 모든 생명체는 후손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가 사실임을 안다.
”신다윈니즘(neo-Darwinism) 이론은 어떤 것이 생겨난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후손을 낳는다는 측면에서 인구의 진화에 관한 이론이다.... 누구나 생각하는 면에서, 많은 숫자의 후손을 낳거나, 특정한 식물을 먹는 동물들은 매우 잘 적응한 동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적으로 분명하지 않다. 당신은 사실상 무의미한 말에 도달하게 된다 : 자연선택은 어떤 개체가 다른 것보다 많은 후손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후손을 낳는 개체는 자연적으로 선택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떻게 말이 되고 호랑이가 되고 그 밖의 것들이 되었느냐 하는 진화의 핵심적인 내용은 수학 이론 밖의 것이다.” - *C.H. Waddington, quoted by Tom Bethell, in 'Darwin's Mistake,' Harper's Magazine, February 1976, p. 75.
3. 완전성 때문에, 우리는 진화가 사실임을 안다.
”과정으로서 자연선택은 괜찮다. 비록 적절한 사례가 매우 드물다할 지라도, 이것은 자연적으로 어느 정도 일어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진화의 가장 좋은 증거들은 생물학적 구조들이, 즉 동물들의 먹이, 천적으로부터 도망, 환경속에서의 일반적 역할 등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매우 공학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들이 최적화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예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최적화된 구조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발달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물론 않지만, 그럴 가능성을 강하게 증거한다.” - *David M. Raup, 'Conflicts Between Darwin and Paleontology,' Bulletin of the 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 January 1979, pp. 25-26.
4. 불완전성 때문에, 우리는 진화가 사실임을 안다.
”만약 불완전성이 없다면, 창조에 대비되는 자연선택의 증거는 없었을 것이다.” - *Jeremy Cherfas, 'The Difficulties of Darwinism,' New Scientist, Vol. 102 (May 17, 1984), p. 29. [*Cherfas was reporting on special lectures by *S.J. Gould at Cambridge University; notice what the expert said: 'Apart from imperfections, there is no evidence.']
”진화의 증거는 불완정성에 있다” - *Stephen Jay Gould, The Panda's Thumb (1980).
5. 종들이 멸종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가 사실임을 안다.
”결정적인 요소는 멸종이다. 오늘날 존재하고 있는 모든 종들은 대략 99%가 멸종되어가고 있다. 그들이 왜 멸종되어가는 지에 대한 질문은 진화론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으나, 확실한 해답은 얻지 못했다. 왜 생겨난 종들이 사라져 가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 *David Raup, 'Conflicts between Darwin and Paleontology,' 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 Bulletin, January 1979, p. 29.
”다윈이 어떤 멸종한 새에 관해 헉슬리에게 쓴 글을 보면 ”당신의 옛날 새는 진화론을 지지하는 좋은 증거입니다” 라고 써있다.” - *G.R. Taylor, Great Evolution Mystery (1983), p. 119.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sdadefend.com/pathlights/ce_encyclopedia/Encyclopedia/20hist14.htm
출처 -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
진화론을 보는 오늘날의 입장
문: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은 과연 옳았는가?
답: 찰스 다윈은 약 1세기 전 런던 근처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심장마비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는데 (1882년 4월19일), 그 이후 그의 이론은 현대 생물학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고 오늘날 숭배에 가까운 열의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과학계에서 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튼, 아인슈타인과 같은 기라성 같은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인정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학설은 커다란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진화론이라는 이론
오랜 기간에 걸쳐 생명체가 진화했다는 진화론은 오늘날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은 사람
들에게는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다윈의 이론 자체를 뒷받침하는 이론이나 실증자료를 수집하려는 진화론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뚜렷하게 입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화론을 견고하게 믿는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가끔 중단되기는 했어도 끊임없이 진화하여 점차 다양하고 복잡하게 진화해 왔다고 하는데, 이들이 주장하는 생명체의 주요한 진화과정은 ① 원시대기에서 유기물질, ② 세균과 점액, ③ 해면동물과 강장동물, ④ 척추가 있는 물고기, ⑤ 바다와 육지에 다같이 살 수 있는 양서류, ⑥ 파충류(공룡포함), ⑦ 조류와 포유류라는 대체로 일곱 단계이다.
다윈은 이중 6단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서 어류가 양서류로, 양서류가 파충류로, 파충류가 조류로, 순서를 밟아 진화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윈은 이러한 과정이 끊임없는 생존경쟁속에서 소위 '자연도태'를 통해 이루어지는 극히 미미한 '발전들'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조금씩 나타나는 과정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자연도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그 어미들보다 약간 우세하다. 즉 시력이 약간 더 좋다거나, 혹독한 추위를 보다 잘 견뎌내는 자질들이 축적되어 드디어 새로운 동물 또는 식물이 나타났다는 것이 다윈 이론의 골자이다.
다윈의 가정은 옳은 것인가?
만일 이러한 다윈의 가정이 옳다면 지구상에서 발굴되는 화석들은 일정한 진화형태를 보여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진화론이 나온 지 120년이 지난 지금 어떤 종(種)의 생물이 다른 종(種)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화석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즉, 다양한 종의 생물들 사이에서의 변이의 중간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어떤 것도 발견된 적이 없다. 예를 들면, 진화론자들은 물고기가 양서류로 변하는 데 약 오천만 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간형태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지느러미 일부를 가지고 있고 발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화석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중요한 식물과 동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진화에 있어서 과도기적인 종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진화론이 인정될 수 없는 이론임을 증거한다. 왜냐하면 인정될 수 있는 이론이라는 것은 그 정의상 관찰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증명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
진화론자들이 오랫동안 들고 나온 논리는, 진화가 일어나는 기간은 수백만 년의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의 진행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아는지를 당연히 물어야 한다. 우리도 맹목적 믿음에 근거하여 진화론자들의 말을 단순히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쨌든 그런 논증은 창조냐 진화냐를 논하기 이전의 문제로서 건전하지도 과학적인 객관성을 지닌 것도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진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적어도 그 진행과정의 약간의 단계라도 관찰할 수 있어야한다.
예를 들어 박쥐의 날개를 들어 보자. 박쥐의 날개는 어떻게 진화하였을까? 박쥐와 날지 못하는 뾰족뒤쥐 모양의 그 조상 사이에는 심각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박쥐가 걸어다니면서 쓰던 다리가 서서히 날개로 변했다는 다윈적 설명을 희미하게나마 뒷받침해 줄 만한 화석은 찾아 볼 수 없다.
또 다른 한 예로 고래를 들 수 있다. 고래의 조상은 물에서 바다로 옮아간 원시적 유제(有蹄)포유류였고, 이 시기에 중간적인 양서류 단계가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디서도 부분적으로 진화된 날개, 다리, 눈 혹은, 다양한 조직이나 기관 등의 생물학적 구조를 볼 수 없다. 더욱이 가령 동물이 진화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불완전한 기관을 가지고는 생존할 수가 없다. 만약 진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면, 자연의 모든 것들은 완전히 무질서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렇듯 과거에 진화가 일어났었다는 것을 표시하는, 부분적으로 진화된 동물이나 식물의 증거가 화석에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진화가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적으로 진화된 동물이나 식물이 오늘날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추종자들은 이따금 유전인자의 실수로 인하여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진화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돌연변이는 아주 드물지만 유익한 것들이 있어 이들이 진화의 메커니즘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이론을 네오다윈니즘(Neo-Darwinism)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그러한 우발적이고 유익한 돌연변이는 자연 도태의 과정을 통해 식물 또는 동물에 서서히 퍼지게 되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신종(新種)이 탄생된다는 것이다.
진화론을 믿는 이유는 진화론이 확실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1966년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있었던 심포지엄에서 그 동안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만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이러한 네오다윈니즘이 물리학자, 수학자와 공학자들 사이에서도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당시 매사추세스 공과대학(mit) 전기공학 교수였던 머리이든은 소위 네오다윈니즘에서 말하는 돌연변이에 의해서 사람이 태어날 확률을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어떤 한 사람이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타자를 쳐서 1000권의 훌륭한 저작을 써내는 것'과 같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즉 그 절차란 '우선 어떤 뜻이 담긴 한 구절을 타자를 치고 거기에 몇 가지 실수를 범하면서 다시 타자 치고 이어 글자를 약간 더 보태어 길이를 늘려 타자를 친 다음, 그 문장이 어떤 뜻이 담긴 문장이 되었는가를 검토해 본다. 그리하여 1000권의 장서가 완성될 때까지 이 과정을 계속 되풀이한다' 는 것이다. 우발적이지만 쓸모 있는 돌연변이라는 관념, 최소한 하나하나 차례로 일어나는 다윈류의 연속적 돌연변이라는 관념은 또 하나의 생물학적 수수께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되는데, 즉 다윈이 말한 '극도로 완벽한 기관' 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다윈이 이 개념을 가지고 가장 고민했던 것은 사람의 눈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하는 문제였다.
눈이 제 기능을 하려면 깨끗하고 습기가 있어야 한다. 눈에 빛이 쪼이게 되면 그 빛은 눈을 보호하는 외곽 즉 각막을 지나 자동조절장치를 가진 구멍으로서의 눈동자를 거쳐, 역시 자동적인 조절기능을 가진 동공을 거쳐 '렌즈(안구의 수정체)' 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렌즈는 빛을 망막에 집중시키는 기능을 한다. 빛이 망막에 집중하게 되면 빛에 민감한 1억 300만 개의 간상체와 원추체들이 광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빛을 전기 신호로 전환시킨다. 그 전기신호는 빠른 속도로 뇌에 전달된다. 이렇게 볼 때 눈의 렌즈, 망막, 뇌는 서로 상대방이 없으면 제구실을 못하는 것인데, 이들이 어떻게 공교롭게도 수천, 수만 번의 우발적인 돌연변이를 똑같이 거듭함으로써 진화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러한 여러 가지 사실들 때문에 현대의 진화론자들조차도 '과연 진화되었는가?' 하는 심각한 회의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우 주장이 강한 진화론자였던 모어(T. L. More)는 이렇게 말한다. '고생물학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진화론은 오직 믿음에만 근거한 것임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다른 유명한 진화론자 왓슨(D. M. S. Watson) 교수의 말을 인용해 보자. '진화론이 동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것이 일어나는 모습이 관찰되거나 구체적인 증거에 의하여 입증되기 때문이 아니며, 진화론에 대한 유일한 대안(특별한 창조론)이 확실히 믿을 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영국의 유명한 진화론자 아서 케이스(Arthur Keith) 경은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 '진화론은 입증되지 않았고, 또 입증될 수 도 없다. 우리가(진화론자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진화론이 아니면 특별한 창조론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창조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술들은 진화론의 무신론적(無神論的)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욱이 화석기록 속에 점진적인 진화의 증거가 없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진화론자들이 대진화(大進化 : macroevolution)라고 알려진 새로운 이론을 채택하고 있다. 대진화 이론이란 동물과 식물들이 점진적인 과정이나 과도기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이 종(種)에서 저 종(種)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파충류(도마뱀과 같은)가 과도기적 중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날아다니는 새로 바뀐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진화론자들은, 생물은 화석기록 속에 점진적인 변화의 자국을 남기지 않고 어떤 형태의 생명으로부터 다른 형태의 생명으로 갑자기 바뀐다고 믿으며, 바로 이런 이유로 있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생물학자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대부분의 새로운 종(種), 속(屬), 과(科) 수준 이상의 거의 모든 분류들이 갑자기 나타나며, 이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점진적이고 완전히 계속적인 변화의 연속으로 진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화석자료는 현재의 분류학적 분류체계와 유전학적 돌연변이 작용의 특성에 못지 않게, 성경이 교훈하는 바와 같이 생물의 '종류', 그 각각은 그 사이에 연결됨이 없는 틈으로 벌어진 수많은 '종류'를 정확히 보여준다.
이 사실을 입증해주듯 이러한 종래의 진화개념을 바꾸어야 할 만한 이론이 최근 진화론자들에 의해 제안되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 이래 가장 획기적인 변혁이 바로 12년 전에 일어났다. 1980년 10월 진화론 사상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한 중요한 진화론자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진화론과 관련된 여러 분야, 즉 화석학, 고생물학, 진화유전학, 분자생물학, 해부학 등의 세계적 권위를 가진 진화론자 160명이 시카고의 한 박물관(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에 모여 '대진화 (大進化: macroevolution)' 란 제목으로 회의를 열었다(Science, Vol. 210, 1980.11.2. Evolutionary theory under fire). 그 회의의 결론은 소진화를 연장해서 갑자기 한 종(種)에서 다른 종(種)으로 급작스럽게 변해 가는 대진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과학의 발견은 산 너머 산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이 다윈의 진화론이 제창된 지 1세기가 넘도록 진화론은 자연과학인 사고와 철학에 거대한 틀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왔던 것은 사실이다. 다윈이 임종한지 백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 '자연도태' 와 '적자생존' 이 잘못임이 밝혀졌더라도 우리는 다윈을 신랄하게 질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의 발견이란 점진적인 것으로서, 이는 마치 산 너머 또 하나의 산이 존재하듯이 새로운 발견이 거듭됨에 따라 진리의 실체는 결국 밝혀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다윈이 지금까지도 살아있어서 자기 이론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해도, 우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생명 기원의 탐구 과정에 있어 하나의 시행착오' 라는 말로서 너그럽게 보아 넘겨 줄 수 있는 여유 있는 학문적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어차피 과학의 이론이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줄곧 달려가는 발견의 항해이며, 하나의 수평선을 넘으면 그 너머에는 또 다른 수평선이 있다는 것을 다윈 자신은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1/e11/e11c2.htm
출처 - 창조지, 제 85호 [1993. 3~4]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27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
유신론적 진화론
Q : 유신론적 진화론은 무엇이며 그 문제점은 어떤 것인가?
A : 140년전, 진화론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토마스 헉슬리는 인류기원의 문제를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 라고 말했다. 오늘날에 와서도 인류기원의 제문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다수의 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에서부터 출발한 진화론을 기원론의 해답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교육을 받아 왔던 일반 대중들 역시 진화론을 인류기원의 해답을 풀어주는 진리인 양 받아들여 왔다.
진화론은 성경의 창조론을 탈피하여 생명의 세계를 설명하려는 하나의 이론이다. 그리고 진화론적 사고 방식은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사회학, 교육학, 심리학, 인류학, 법학)이나 심지어는 신학(神學)에까지도 깊숙이 파급되어 왔다. 신학자들은 진화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했을 때, 거부와 수용이라는 뚜렷한 이원론적인 양상을 띄게 되었다.
그러나 일찍부터 타협이라는 제3의 입장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이었다. 베르그송은 폴란드계와 영국계 부모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의 태어난 해가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이 출판되었던 해와 맞아 떨어져서인지 몰라도 이론은 평생 동안 그를 사로잡았다.
베르그송은 일찍이 기독교 신학과 생물 진화론을 접합시키려고 노력한 최초의 기독교 진화론자가 되었다. 그는 기독교 신학과 진화론을 모두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은 나머지, 양쪽 모두를 종합하여 나름대로 하나의 체계를 세우려 시도하였다. 그 결과 그는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킬 수 없는 불합리한 학설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베르그송의 타협설
베르그송은 진화론의 역사적인 측면을 인정하였으나, 진화 현상을 물질적 또는 기계적 입장에서 설명하려는 입장을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우주의 생명 현상을 볼 때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 외에도 그것보다 더 깊은 내면 속에 잠재한 생명 탄생의 측면을 견지하게 된다. 쉽게 말해 진화론도 초월자의 창조적 힘의 영향을 빌어야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말은 하나님도 진화의 과정을 택해 온갖 종류의 생물을 창조했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진화라는 메커니즘을 이용, 생물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윈의 '자연 선택' 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다윈은 생물이 증식하는 과정에서 개체간의 차이에 의한 변이가 나타나는데, 변이의 요인으로 생물 부위의 사용과 불사용, 교배, 생활 상태 등이라 하였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으로 결국 새로운 변종(變種)들이 생겨, 그 변종들은 유기체의 생존 및 생식에 필요한 최대의 가치를 가지고 '자연 선택' 이라는 혜택을 받고 그 나머지는 도태된 후, 선택된 변종들은 보존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반면 다른 변종들은 도태된다고 다윈은 믿었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생각으로는 단세포동물이나 하등생물은 접어둔다 치더라도 척추동물과 같은 다세포동물, 즉 여러 기관이 긴밀하게 조화되어 전체적 기능을 발휘하는 고등동물은 우연하게 이루어지는 변종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변종 현상은 다만 부분적으로 생길 수 있는 현상으로 전체적 기능을 증진시키기보다는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러므로 동물이 진화의 단계를 뛰어넘으려면 복잡한 기관의 모든 부분이 똑같은 시기에 변종을 산출해야만 제대로 그 기능을 가지고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그러한 다양한 변종의 동시순응이 우연하게 생긴다는 다윈의 이론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보았다. 만약에 이러한 각 부위의 변종이 같은 시기에 생겨났다면, 그것은 우연히 생겼다고 볼 수 없는 기적과 같은 현상이라고 보아야 하며, 이것은 자연도태라는 이론 이외에 특수한 힘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되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변종의 한계
진화론은 세계의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모두 하나의 단세포 유기체에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 개념을 도식화한 것이 바로 생물의 계통수(family tree)인데, 이 나무는 대부분의 고고학, 역사학, 생물학 교과서 등에 수록되어 있다. 또 오늘날 자연과학 분야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부여하는 대학의 교육기관 중 일반 진화의 계통수 개념을 배척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백사십년 동안 수만 명의 학자들이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생물이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반증할만한 명확한 증거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진화론이 제시하는 단 하나의 생물 계통수 대신, 성경의 창조론은 생명의 거대한 숲 개념을 제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숲의 각 '나무' 들은 변이 혹은 분화의 유전자적 잠재력을 지닌 채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었으나, 그 변이는 창조된 '나무' 의 본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엄격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인류는 많은 종족으로 변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채 창조되었다. 그 가운데는 구약시대 블레셋 사람 골리앗과 같은 3m가 넘는 장신의 소유자가 있는가 하면, 중앙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신장 150cm 미만의 왜소한 피그미족들도 있다. 그러나 시간상의 격차와 상당한 공간적, 환경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과연 인간이며 동일한 계통수에 속하는가 라는 질문이 심각하게 제기된 적은 없다.
또 어떤 종류의 생물들은 인류보다 더 큰 변이 가능성을 지닌 채 창조된 듯이 보인다. 예를 들어 과거 수세기 동안 수백 가지 형태의 개들이 새로 생겨났는데, 유럽산 닥스훈트(Dachshund)로부터 우리 나라의 진도견(珍島犬)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 각각이다. 그러나 그 개들도 역시 동일한 종류에 속한다. 이는 진화의 증거가 결코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변종들은 대개 생물의 야생에서의 생존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변종은 부분적으로 생길 수 있는 현상이며, 부분적으로 생기는 변종 현상은 전체적 기능을 증진시켜 주지 못하고 오히려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베르그송의 생각은 옳았다.
창조적 진화 (creative evolution)
베르그송은 이 밖에도 다윈의 기계론적 혹은 무의식적 진화론(無意識的 進化論)으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진화의 요소가 있다고 보았다. '왜 생명체는 어찌하여 점진적으로 더 많은 복잡성을 향하여 나아가야만 하는가?' 라는 맹점을 다윈의 이론은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초에 이 지구상에 출현했던 생물은 매우 단순하게 생겨서 자연 환경에 비교적 적응하기에 용이했을 것이라고 진화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진화의 과정들은 '현상태에 안주해 있지 않고, 더욱더 복잡한 상태로 옮겨가면서까지 더 많은 위험 부담을 자초하는가? '라는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이 문제는 단순하게 무의식적 진화론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어질 수 없으며, 어떤 그 무엇인가가 생명체를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더 상위 영역으로 이끌어 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베르그송은 이를 '생명의 원동력'(vital impulse: 佛語 elan vital)이라고 명했으며, 이 생명의 추진력은 진화의 모든 과정에 스며들어 있고 그로 인해 진화의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다고 했다. 그러므로 생명 기원의 역사는 무의식적 측면이 아닌 창조적 진화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원동력이란?
그렇다면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설했던 생명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념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이 생명의 추진력을 생명에 스며들어가 내부에 퍼져 있는 의식의 흐름(a stream of consciousness)이라고 정의했다.
이 의식의 흐름 또는 추세의 경향이 생명체를 생기게 하고 진화의 방향을 결정해줄 것으로 믿었다. 이 의식의 흐름은 일정한 유기체인 경우에 생식세포가 생식작용을 통하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끊임없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전달된다고 하였다. 이 생명의 힘의 작용을 통해 변종들이 끊임없이 산출되고 축적되는 과정들을 되풀이한 끝에 신종(新種)들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생명의 추진력을 '초월적 의식'이라고 달리 말하기도 했으며, 이것을 또 '하나님은 초월적 의식'이라 지칭하여 하나님과 생명의 원동력을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베르그송은 진화의 궁극적 원인, 곧 왜 진화가 생겼는가 할 때에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 그 목적이며 지상 위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게 된 이유라는 자신의 주장을 거듭 밝혔다.
창조적 진화의 문제점
19세기 당시 유럽을 풍미했던 진화론은 그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패러다임이었다. 이 이론에 수많은 지성들이 매료되거나 동조했으며, 베르그송과 같이 유신론적 사상은 고수하면서 진화론을 조심스럽게 섭취했던 미온적 학자는 이의 근본 해결을 위해 끝내 진화론과 창조론과의 타협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이에 베르그송은 양자를 종합하여 하나의 체계를 제나름대로 이루어 본 것이다.
그러나 성서적인 생명관은, 유물론적 진화론이나 기계론적 진화론 모두를 거부한다. 또한 하나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진화가 거듭되고 거듭된 끝에 계속해서 신종(新種)들을 창출해 나간다는 베르그송의 유신론적 진화론(有神論的 進化論)도 부정한다.
어찌됐건 이러한 타협으로 베르그송은 그 어느 쪽도 만족시킬 수 없는 불합리한 학설을 만들어 냈다.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진화론과 창조론 이라는 판이한 두 개의 이론을 결합, 소위 '새로운 변종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모순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신학적으로 타협하고 양보하면서 자기네 이론을 수정해 나갈 때, 이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만약 19세기 후반에 소위 과학적으로 정립되었다는 균일론적 진화론에 의한 엄청난 압력이 없었더라면, 이 베르그송과 같은 학자들은 아마도 궁극적 기원에 대한 그들의 성서적 확신들을 털끝만큼도 양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론은 역시 창조론
창세기에는 모든 수생생물과 날아다니는 생물이 종류대로(창 1:11),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이 종류대로(창 1:24) 창조되었음과,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되었음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각종 생물은 그 나름대로의 중요한 특징과 개성이 있고 그것을 부여하신 자의 목적을 명백히 지니고 있다. 많은 생물종들은 비록 유전적인 탄력성은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정한 범주 내에서만 변이될 수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학문적으로 입증된 사실들이다. 특히, 생명체 중에서 사람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특수 창조되었으므로 다른 생물들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음을 확연히 못박아놓고 있다(창 1:26). 또 과학이 발전되어 갈수록 그 나타난 증거는 진화가설보다는 창조에 의해 더 잘 설명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 창조론과, 진화론과의 조화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창조하셨다는 사실 이외에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무신론적 진화론뿐만 아니라, 과학적 견해에다 神의 실재를 결합시킨 유신론적 진화론도 옳지 못하다.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해 진화론과 기독교 창조론 사이에서 갈등하다 변증법적 원리에 의거해 창조적 진화를 고안해 낸 베르그송의 노력은 어찌 보면 가상하다고 할 수도 있다.
허나 성경의 창조론 보다는 진화론에 입각한 이론을 전개함으로써, 진화론이라는 허위를 결국은 벗지 못하고 말았다. 베르그송의 오류를 거울 삼아 창조론 인식에 있어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1/e11/e11c1.htm
출처 - 창조지, 제 88호 [1993. 10~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26
참고 : 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812|3682|3426|3423|3244|3241|3077|3055|3041|3039|3037|3024|2864|2579|2359|2353|2330|2307|2114|2039|2016|1174|6107|6110
진화론 : 진정한 과학인가, 어리석은 생각인가?
(Evolution : Real Science or Nonsense?)
Martin Estrin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게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 12:1)
인간들은 매우 만족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어디 있는가? 이에 반해서, 대부분의 원숭이(apes)들은 아주 만족해하면서 살아간다. 만약 내가 진화론에 어떤 소박한 논리를 적용시킨다면, 나는 논리적으로 원숭이들이 사람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믿고 싶다.
만약 진화가 그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한 종의 변화를 의미한다면, 인간은 자신을 따뜻하게 해줄 털을 자라게 하고, 가장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식사를 줄이고, 옥외 생활에 적응함으로써 고급 집을 짓지 않고, 화폐를 폐지하고, 복잡한 정부도 없애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그리고 전쟁, 스트레스, 교통 혼잡, 대량학살(같은 종의 구성원을 불필요하게 죽이는) 등을 없애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원숭이들은 이러한 모든 것을 달성하였다. 사람으로부터 진화된 원숭이들은 더 많이 일할 수 있고, 더 건전한 생활 방식을 창조하였다. 만약 더 많이 진보된 사회에서 그 최종 목적이 평화(peace)와 공평(equity)이라면, 원숭이로 진화된 종족들은 그들의 선조인 사람들보다 확실히 진보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나에게 바나나를 달라. 나는 원숭이가 되기를 원한다.
진정한 과학은 제멋대로(arbitrary) 일 수 없다.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생명체는, 적절한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화학물질이 함께 모여, 더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였을 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체가 출현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알맞는 종류의 화학물질들이 우연히, 무작위적으로 만나서, 마침내 결합이 되기까지 서로에게 알맞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유기물질들이 서로 혼합되어 더 복잡한 생명체로 바뀌어지는데, 또 다시 광대한 시간이 더 걸렸기 때문이다.
진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key)는 무작위적인 상황 아래에서 꼭 맞는 구성요소들이 함께 만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구성요소들이 어떤 계획 하에, 혹은 지시되어서, 혹은 체계화된 방법 안에서 만들어졌다면, 거기에는 그들을 지시하는 힘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은 바로 '창조되었다' 라고 결론지어지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은 1859 년에 자연선택설을 발표함으로써 진화론을 진보시켰다. 이 가설이 1920 년대에 과학계 안에서 넓은 지지를 얻고 있을 때, 과학자 윌리암 뎀파이어(Sir William Cecil Dampi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이해되고 있는 물리학의 기본 개념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틀이 갖추어진 추상적 개념이다. 그래서 명백한 무질서의 현상을 질서로 이끈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과학자들은 관측될 수 없는 것에 대해 간단한 대답을 제공하기 위해서, 추상적 이론을 사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을 '진화 과학(evolution science)'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진정한 과학이란 무엇인가? 그저 단지 이론인가? 아니면 논증된 사실인가? 그것은 무작위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가? 아니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가? 진정한 과학에서, 한 이론(a theory)은 아마도 탐구와 연구를 위한 기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입증될 때까지, 그것은 단지 추측일 뿐이다. 결론을 추측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
게다가, 과학적인 사실로 결정된 것이라면, 그것은 항상 복잡한 패턴의 부분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사실에 기초로 한 과학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볼 때, 그것은 매우 체계적인 것이다.
과학은 사물을 그 자체로 바라본다. 연구는 그것이 어떻게 있게 됐는지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발견이 이루어지면 (예를 들어 빛의 속도와 같은), 그것은 과학적인 사실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 정확하게 같은 방법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사실들은 가장 간단한 것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일관성(consistent)이 있고, 예측(predictable)할 수가 있다.
2 더하기 2 는 4 이다. 그리고 2 곱하기 2 는 4 이다. 그것은 절대적이고, 결론적이고, 그리고 불변적이다. 기본 수학이나 복잡한 대수학이나, 당신이 어떠한 계산 방법을 수행하던지, 그것은 항상 그 방법대로 행해질 것이고, 항상 같은 결과를 산출할 것이다. 물리, 화학, 전기, 전파, 식물학, 동물학, 자연과학, 그리고 생명과학 등은 모두 아주 정확하고 체계적인 과학이다. 각각은 특별한 패턴을 따른다. 과학적인 조합뿐만 아니라, 각각의 기본적인 형태들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오렌지와 귤을 교배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같은 과(family)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사과와 오렌지를 교배할 수 없다. 비록 그들이 둘 다 과일(fruits)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사과로부터 오렌지가 진화되었다거나, 오렌지로부터 사과가 진화되었다는 어떠한 논리와 증거가 없다. 마찬가지로, 원숭이와 인간이 많은 유사한 육체적인 특징 및 사회적 행동이 있다하더라도,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결론은 매우 빈약해 보인다.
더 나아가, 과학적인 사실로 간주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재현될 수 있어야만 한다. 만약에 진화가 사실이라면, 과학자들은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형된 변화의 순서를 재창조할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대신에 1950 년대의 과학자들은, 동식물의 각 생물체들은 각각의 종들을 위한 특별하고, 복잡한 암호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DNA라 불리는 것으로, 세포 안에 있는 복잡한 정보의 구획들로써, 식물 또는 동물의 종류를 결정하고 있다. DNA 암호는 모든 종들에 대해 독특하며, 모든 생물체들은 그것을 위한 특별한 DNA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존슨'은 인간 종을 위한 DNA 암호뿐만 아니라, 그를 위한 특별한 DNA 패턴을 가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DNA 패턴은 각각의 종마다 특별한 순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는 약 30 억 개의 정보 비트(뉴클레오티드라 불리는)가 매우 정확한 DNA 서열(sequence)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 DNA 서열은 스스로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거나, 재배열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DNA는 의지적으로 뉴클레오티드를 추가시키는 독립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 주어진 프로그램이 한번 설치되면, 그것으로 기본적인 서열(sequence)이 고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순수한 과학적 측면에서, '진화 과학'은 부정되는 것으로 나타낸다. 진화는 예측될 수 없고, 무작위적이다. 반면에 과학(science)은 이전에 존재한 체계에 기초를 한 체계적 시스템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우주가 스스로 무작위적으로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우주는 아직까지는 완전히, 전적으로, 모든 면에서 체계적이다.
답보다 훨씬 많은 질문들
그밖에도 진화론은 과학의 표준적인 정의로 적합하지 않은 추가적인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진화론이 제안된지 140 여 년을 넘도록, 진화 분야에 대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엄청난 연구 자금으로, 집중적인 연구들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진화론은 답보다는 더 많은 질문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 개념은 주로 원인과 결과 시나리오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생물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변화되고, 발전했다는 것이다.
20 세기에 들어서서, 여러 고생물학자들은 진화론을 입증하기 위해, 그리고 인간은 오랜 기간 동안 다른 생물체로부터 잘 적응되어 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원숭이(apes)와 사람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s)‘ 라고 주장되는 멸종된 생물체의 뼈 조각들을 발견해 왔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증거들은 실제로 무엇을 지지하는가? 왜 구부러진 등을 가진 40 만년 되었다는 한 종류의 생물체를 ‘잃어버린 고리’ 라고 그렇게 빨리 믿어버리는가? 이 발견이 있은 후 몇 년 후에, 몇몇 다른 화석들이 (백만년 전으로 추정하는) 세계의 다른 장소에서 발견되었고, 이것도 잃어버린 고리라고 불려졌다. 이들 두 고리 사이에 고리는 있는가? 그리고 다른 모든 잃어버린 고리들은 어디에 있는가?
생물체의 독특한 장기들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의 사슬(chain)들은 어디에 있는가? 눈은 어떻게 발달되었는가? 우리는 어떻게 심장, 위, 다른 장기들, 치아, 청각, 후각, 신경, 근육, 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잘 덮고 있는 피부를 얻게 되었는가?
그리고 정자는 난자를 만나서, 복사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쉽게, 또 다른 생물체를 얻는다. 그 문제에 있어서, 수컷과 암컷의 성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볼품없고 미끄러지는 애벌레가 번데기로 되었다가, 자연에서 가장 정교하게 아름다운 생물체 중의 하나인 나비로 만들어지는 것을 진화론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그러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면서 어려운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무기물질들이 유기체인 살아있는 세포로 변화될 수 있는가? 사실 이것은 진화론에 대해 제기되었던 최초의 질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진화론의 제안자들이나 지지자들은 그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코헨(I. L. Cohen)은 그의 책 ”다윈은 틀렸다: 확률에 대한 연구(Darwin Was Wrong—A Study in Probabilities)” 에서 ”생명체가 생명없는 무기물질로부터 우연히 발생되었다는 생각은, 조용하게 숨겨져 있고, 강조되고 있지 않으며, 사실상 잊혀져 있다” 라고 말했다.
이러한 끊임없는 질문들을 불러 일으키는, 그리고 매우 제한적인 답만을 제시하고 있는 이러한 빈약한 과학 이론인 진화론은, 중요한 조각들을 대부분 잃어버린, 끝이 보이지 않는 그림 맞추기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진화를 둘러싸고 있는 논쟁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아직도 그렇게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에 매달려 있고, 그것을 옹호하고 있으며, 심지어 과학 교과서 안에 진실된 사실로서 남아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집착하는 것을 볼 때,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코헨의 결론은 이것이다.
”불행하게도, 추상적 개념의 지속적인 반복은, 인증되지 않은 이론에 신뢰성을 부여하였고, 계속해서 확립된 사실로써 우리의 공동체의 마음에 자리잡게 되었다.”
결론
진화론자들은 부정직한가? 처음에 진화론의 제안자들은, 사회가 소수의 개념들도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도록 관대해지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제 다윈주의는 대다수의 개념이 되었고, 진화론자들은 편협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시장 원리 내에서 다른 의견들을 강압적으로 배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하는 장소(공공 학교들)에서, 진화론은 과학적 복음으로 숭배되고 있으며, 다른 개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른 개념들은 이단 사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생각들도 공개 토론 장소에서 말해질 필요가 있다. 단 하나의 관점만을 주입시키는 것은 진정한 과학이라고 볼 수 없다. 좀더 공평해져야만 한다.
*Mr. Estrin has an M.A. in Journalism and has worked 25 years in the news media.
번역 - 한동대 창조과학연구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evolution-real-science-or-nonsense
출처 - ICR, BTG No. 144a, December 2000.
과학자의 편견
'과학적'이란 말은 많은 경우에 설득력을 준다.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말할 경우에는 관찰과 실험의 결과, 특히 실험이 한 회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실험을 통하여 동일한 결과를 얻었을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만유인력의 법칙은 물체가 떨어지는 현상의 관찰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반복실험을 하였을 때 동일하게 얻어진 '과학적' 결과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 없이 함부로 과학적이란 말을 사용한다면, 이는 옳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거기에는 과학자의 철학적 해석이 도입되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가 배우고 있는 과학교과서에는 이러한 '과학적'인 면과 '철학적'인 면이 섞여있어, 배우는 이들은 분별없이 모두가 과학적인 것인양 받아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진화론, 빅뱅, 지구의 나이와 같은 역사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진화는 관찰된 적이 전혀 없으며, 실험을 하여서 성공한 예도 없다. 그럼에도 진화론자들은 반복해서 실험을 한다. 수없는 반복실험을 하여도 한번도 진화가 증명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진화는 당연히 철학적 사고의 산물이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라고 하면 몇 가지 특징들을 생각하는데, 편견이 없다, 객관적이다, 확실하다, 진실하다 등이다. 아마 실험 데이터를 다루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사실 데이터를 모을 때도 많은 경우에 편견이 있다), 해석하는 데에는 결코 위에 나열한 특징을 갖고 있지 않다.
실제로 위에 나열한 편견이 없다, 객관적이다, 확실하다, 진실하다 같은 묘사는 누구를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다름아닌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다! 과학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과학자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이며, 일반 사람들과 같이 어떤 일로 결정을 내릴 때는 다분히 자신의 편견이 적용된다. 보통사람처럼 실수도 하고, 욕심도 있고, 물론 자신의 자라온 배경과 배운 배경에 영향을 받는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6)의 그늘 아래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위에 나열된 것이 과학자이고, 과학자들에 의해서 제시된 것들 또한 이에 근거해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 다면, 이를 우리는 '과학주의'라고 부른다. 분명히 과학자들은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객관적이지 않으며, 인간이므로 확실치 않고, 다른 사람과 같이 가끔씩만 진실을 말한다.
그런데 과학책 안에 두 가지 부분을 다룰 때 갑자기 철학적인 사고, 즉 편견에서 얻어진 결과가 증가한다. 바로 '기원'과 '시간'에 대한 부분에서 그렇다. 오늘날에 많은 과학자들은 이 두 가지 부분에서 진화론적 편견을 갖고 있다. 자신이 진화를 믿지 않는다고 말할지라도, 과학자들은 진화론적 사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해석을 한다. 기존에 편찬된 책들, 논문들, 지도교수들의 의견을 통하여 철학에 철학을 더한 내용들을 참고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이 세상의 편견은 누가 만들었을까? 사람의 죄가 만들었고, 사탄도 그렇게 했다. 그러면 편견을 최소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편견이 없는 분에게 끊임없이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실에 기초하여 과학을 하여야 한다. 편견 없는 분은 누구인가? 오직 한 분 하나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길 밖에 없다. 진화론적 사고를 가지고는 안 된다. 기원과 시간에 대한 사실은 어디에 있는가? 그분께서 주신 책 바로 성경밖에 없지 않은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78
참고 :
가장 유명한 진화론자의 모습만 봐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진화론자를 꼽으라면 단연 하버드 대학에 스테판 굴드(Stephan J. Gould)박사 이다. 화석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로서 유명하며, 특별히 “단속평형이론” 또는 “구둣점식 진화론”이라는 이론을 발표하여 유명하여졌다.
먼저 단속평형이론에 대한 것을 간단히 알아보고, 그 다음에 이 사람의 태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단속평형이론은 영어로는 “Punctuated Equilibrium” 이라고 하며, 이는 유럽에서도 1930-40년 경에 이미 나왔다가 사라졌던 이론이다. 당시에는 Shindewolf & Goldshmidts가 제안했었는데 “괴물이론(Hopeful Monster Theory)”라고 명명되었다. 내용인 즉 화석기록의 증거로 보아 “느린 속도의 진화는 나온 적도 없고 나올 수도 없다” 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룡과 새의 차이는 너무나도 큰데 중간단계 동물이 생존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화석에도 발견된 적이 없으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언젠가 공룡에서 새로 갑자기 빠르게 진화되었던 시기가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진화라는 것은 느린 속도를 전제하여 엮어진 이론이므로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사장되었던 것이 굴드 박사에 의해 다시 등장한 것이다(그림). 그러니까 진화론적으로 화석을 연구한지 150년 동안 화석가운데 종들을 이어주는 중간화석이 발견되지 않자, 진화론자들이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다. “화석의 부재로 보아 진화론이 틀렸다”는 말을 하지 않고 더 엉뚱한 진화론을 내세우는 진화론자들의 궁색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단속평형이론은 전혀 관찰과 실험에서 얻어진 이론이 아니다. 그의 논문을 읽어보면 perhaps, may be, well, 등의 단어가 계속 나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1994년에 미국생물교사 학회지는 이들의 이론을 잘 표현하였다. “단속평형이론은 실험적인 근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화석간에 간격을 메울 수 없기에 나온 이론이다”.
그런데 이 굴드 박사는 창조론자와 절대 논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지난 1998년에 캔사스 교육평의회에서 진화론을 생물교과서에서 삭제한다고 떠들썩 하였을 때, 유명 방송국들이 창조론과 진화론 과학자들을 함께 초청하려고 했었다. CNN에서는 굴드 박사와 미국 창조과학연구소 소장인 죤 모리스 박사간의 대담을 방송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반대 의견으로 녹화 한 시간 전에 창조론 측 대변자가 모리스 박사에서 과학자가 아닌 사람으로 바뀌는 촌극이 벌어졌다. 또한 ABC에서도 이와 비슷한 해프닝이 벌어졌는데, “다이아로그”라는 프로그램에서 미국 창조과학연구소 부소장인 듀안 기쉬 박사와 대담 스케줄이 잡혔는데, 이번에도 녹화 바로 전에 굴드 박사의 의견으로 기쉬 박사의 순서는 갑자기 취소되고 굴드 박사만이 일방적인 진화론을 변론하도록 허락되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최근에 창조론 대 진화론의 논쟁에서 창조론자들이 패한 적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만큼 진화론은 모순 덩어리이며 과학적인 데이터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속평형이론을 가지고 많은 생물학자들은 진화론의 가장 최근의 이론이라고 말한다. 진화론이 어떠한 증거도 없는데 진화론을 지지하려고 하다 보니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이론이 나온 것이다. 이 이론은 공룡이 번창하다가, 많은 공룡의 알 가운데 새가 나왔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새가 나왔어도 같은 순간에 암컷과 수컷 새가 동시에 나와야 하는 기막힌(?) 이론이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the beginning of knowledge)이니(잠 1:8)”라고 말한다. 우리의 사고의 시작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이 써있는 성경에서 시작되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애들도 배꼽 잡을 이론이 나오는 것이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5)”. 성경은 이세상의 생물들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써있다. 진화론자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람의 태도를 보면서도 우리는 진화론의 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70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