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bile background
미디어위원회
2021-04-08

무신론은 진화론을 필요로 한다. 

: 진화론은 사실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Atheism needs evolution. Does evolution ‘fall out’ of the facts?)

Calvin Smith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기원)에 대한 질문에는 두 가지의 답만이 존재한다. 스스로 생겨났거나, 그렇지 못했거나 이다. 만약 우주 만물이 스스로 생겨났다면, 어떤 종류의 우주 진화가 실제로 일어났어야만 한다. 만약 스스로 생겨나지 않았다면, 창조주가 있어야만 한다. 이 둘 중에 하나이다. 제3의 옵션은 없다.[1]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이 확실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으며, 진화가 일어난 과정은 증명된 것처럼 알고 있다. 유명한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말했다  :

”우리에겐 수백 수천만 개의 증거들이 있으며,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2]


freeimages.com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기원에 대한 질문에 있어서 본원적인 믿음의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증명됨 없이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전제(presupposition), 혹은 공리(axiom)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본원적인 출발점에 대한 믿음이 사실들을 수집 분석한 결과라고 말할지라도, 그들의 믿음 체계의 뿌리에는 더 이상 지지될 수 없는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진화론자인 마이클 루스(Michael Ruse)는 그 사실을 이렇게 인정하고 있었다.

”진화론은 어느 단계에서는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선험적인 혹은 형이상학적 가정을 필요로 하는, 종교와 같은 것이다.”[3]

이에 대한 추상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누군가가 ”나는 A를 믿는다.”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왜?”라고 질문을 하면, 대답하는 사람은 ”B 때문에”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계속적으로(무한 소급)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알파벳을 다 사용할 때까지(C 때문에, D 때문에,..) 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대답하는 사람은 답을 멈추고, ”내가 그것을 믿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라고 얘기해야 할 것이다. 결국 자신의 믿음을 다른 믿음을 가지고 정당화 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 다른 믿음이 본원적인 믿음이다.

누군가가 특정한 출발점을 채택한다면, 다른 모든 데이터들은 그 출발점의 세계관이 제공하는 필터를 통해 걸러지게 될 것이다.[4]


진화론은 무신론에서 생겨난 것이다.

무신론자들에게 출발점은 ”신은 없다!”는 주장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다. 물론 일부 수정론자들은 신에 대한 믿음의 부재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신이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시작한다면, 관찰되는 (우주, 지구, 다양한 생물들, 인간의 경험 등) 일반적인 사실들에 대한 논리적인 해석과 설명은 무엇이 될까?


무신론적 믿음의 5가지 포인트

1.  자연주의(Naturalism). 당연히 모든 것이 자연적인 과정으로부터 나왔다는 믿음을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가정 자체가 지성, 지적설계자의 부재, 존재하도록 인도한 분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2.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엄청난 복잡성이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었다고 믿는 것은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물질 안에 무수히 많은 변화가 있어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관여한 과정은 물질이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행되도록 한 원인이 되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3.  장구한 시간. 만물의 엄청난 다양성이 우리 우주 안에 존재하기 위해서, 모든 과정들이 엄청나게 긴 시간동안 일어났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4.  인간은 어쩌다 우연히. 인간은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고, 지시되지 않은, 자연의 우연한 과정들을 통해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이사슬(food chain)’의 제일 꼭대기에 있다는 것 외에 특별한 것이 없다. 윤리나 도덕 같은 것들은 단지 자연적 발전 과정의 한 부분일 뿐이고, 따라서 어떠한 식으로든 절대적이지 않다.

5.  진화. 궁극적인 결론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소위 ”자가 창조(self creation)”로 말해질 수 있는 한 과정(진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가 창조’는 비논리적인 개념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도 존재하기 이전에 무언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렌스 크라우스(Lawrence Krauss)와 같은 새로운 무신론자는 실제로 이러한 비과학적인 난센스(nonsense)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화론(우주론적, 지질학적, 화학적, 생물학적, 고인류학적...)의 모든 핵심 요소들은 결국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고전적 무신론에 적용한 기본 개념을 논리적, 철학적으로 완성한 이론에 불과한 것이다. 이 모든 결론은 물리적 증거들이 어떠한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도 전에, 단순히 신이 없다는(무신론) 일반적인 믿음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진화론적 출발점을 가진 사람이 바라보는 모든 관측사실들은 그러한 관점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들이 결국 그들의 믿음을 지지하는 우주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데에 사용되는 것이다.

이런 본원적인 출발점에 과한 전제들은 역사 이래로 동일했다. 진화론이라는 개념은 근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고대 이집트, 바벨론, 힌두,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모두 장구한 연대 개념과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여기 참조). 그들의 믿음은 오늘날 진화의 증거로 주장되는 것들(지질주상도, DNA, 자연선택,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유인원 화석 등)에 대한 정보(지식) 없이도 존재했다.

조금 더 근대적인 예로, 무신론자 였던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였던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은 찰스 다윈이 주장하기 65년 전인 1794년 그의 책 ‘주노미아(Zoonomia, 동물생리학)을 통해서, 이 세계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을 생각하고 발표했었다. 그 책에는 지구가 우주의 폭발로부터 형성되었고, 바다에서 생명체가 시작되었고, 지속적으로 복잡해져서 사람이 되었으며, 이 모든 과정들이 수백만 년 동안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결론은 오늘날의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진화의 증거들 없이도 내려졌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누군가가 무신론적 개념을 만들어낸 이유는?

성경은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반역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에 대한 궁극의 거부는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당신은 나에겐 죽은 사람입니다.”라는 표현).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함으로 그를 거부했다. 하나님에 대한 부정은 유명한 무신론자 니체(Nietzsche)의 발언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신은 죽었다(God is dead).”

일부 사람들이 역사 동안 자신을 무신론자(atheists)라고 선언했지만, 무신론의 개념은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의문시되어 왔다. (아마도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비논리성과 그 시스템 속에 너무도 당연한 도덕적 방향성 때문에). 예를 들어 (자타가 공인하는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은 이렇게 말했다 ;

”신앙의 반대는 무신론적 고백과 우상숭배를 행함이다. 무신론은 너무도 어리석으며  많은 고백자들을 결코 가질 수 없는, 인류에게 혐오스러운 것이다.”[6]

일부 사람들은 진화론은 과학적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즉각적으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 (과학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지 아닌지 간에) 자연주의자들과 성경에 회의를 가졌던 사람들만이 다윈을 지지했던 것이다.

즉각적으로 진화론에 반대를 했던 사람들은 저명한 과학자들이었다. 전자기를 발견한 물리학자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전자기학의 아버지)[7], 면역학을 개척하고 생물학의 기본 법칙(Biogenesis, 생물속생설)을 발전시켰던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8], 열역학법칙의 개척자이며 대서양 횡단 전보를 개발했던 로드 켈빈(Lord Kelvin)[9], 그리고 현대 빙하지질학의 창시자였던 루이스 아가시(Louis Agassiz) 등은 다윈의 진화론을 거부했다.

유명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영국왕립학회의 회원이었던 존 허셜(John Herschel) 경은 진화론을 ‘엉망진창의 법칙(the law of higgledy-pigglety)’이라고 평가절하 했다.[10] 대영박물관의 자연사 분야 책임자였던 리차드 오웬(Richard Owen) 역시 다윈의 진화론에 여러 반론들을 제기하며 괴롭혔고, 결국 다윈은 그를 미워했다고 인정하기까지 했다.[11] 유명한 과학철학자인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은 (귀납적 과학의 역사(The History of Inductive Sciences)의 저자) 케임브리지 도서관에서 ‘종의 기원’ 책을 추방했다. 그리고 많은 성경적 지질학자들은 다윈주의와 이에 동반된 장구한 연대의 지구 역사를 거부했다.

많은 사람들은 다윈의 진화론을 정말로 매우 비과학적인 이론으로 생각했다. 독일 브런즈윅(Brunswick)의 듀칼 자연사박물관의 책임자였던 요한 블라시우스(Johann H. Blasius) 교수 역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게 적은 사실들로 그렇게 광범위한 결론을 내리는 과학책을 결코 읽어본 적이 없다... 다윈은 한 종류에서 다른 종류가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12, 13]

하지만 반대로 다윈의 진화론을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로운 사상가(free thinking)‘로 소개했던, 모세로부터 과학을 자유롭게 하기 원했던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자칭 불가지론자였던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 악명 높은 사기꾼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 등이 그들이다. (헤켈은 이미 기원에 관한 반성경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학적 관점에서도 초기의 채택자(유신진화론자였던 아사 그레이(Asa Gray), 그리고 인종차별적 신학자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 같은 사람)들은 다윈주의를 수용하기 이전에도 창조에 대한 자연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

과학이 꽃을 피웠던 중세로부터 시작하여, 약 200년 전까지 서양 세계의 기본적인 세계관은 기독교와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도덕적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오늘날 많이 달라졌다. 기독교와 성경은 대중의 삶에서 거의 버려졌고, 성경의 가르침이나 심지어 성경적인 도덕적 개념 역시 불법이 되어서, 주요 공립학교에서는 기원에 대한 한 가지 관점(진화론)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왜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양세계의 교육시스템이나 언론에서 진화론이 마치 사실이며 과학이라는 인상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제 진화론적 가르침은 너무도 넘쳐나서, 저절로 지속되는 개념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진화론적 개념이 유신론적 관점보다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집에서 하나님을 믿도록 교육 받았다 하더라도) 신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을 출발점으로 받아들이도록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이다.

하지만 진화론은 사실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무신론이라는 출발점부터 자세히 검토해 봐야 한다. 진화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진화라는 필터로 해석된 것일 뿐이다. 진화론이 틀렸음을 가리키는 수많은 증거들은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수상 책과 DVD로 나온 ‘진화론의 아킬레스 건(Evolution’s Achilles’ Heels)’이 보여주듯이). 성경적인 관점에서 출발할 때, 이 세계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진화론적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고 있는 것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Related Articles
Atheism is more rational?
Atheism
Is Richard Dawkins an atheist?
Leading anti-creationist philosopher admits that evolution is a religion
What all atheists have to believe
Holy war?


Further Reading
Atheism, Godless Religions Questions and Answers
Scientists of the past who believed in a Creator


References and notes
1.Note that theistic evolution (the idea that God used evolution to create) is not a true third option as it still postulates a Creator at the root of existence.
2.'The Genius of Charles Darwin (Episode 3): Richard Dawkins, Channel 4 (UK), Monday 18th August 2008.
3.A complete transcript of the talk is available online at arn.org/docs/orpages/or151/mr93tran.htm and in print in: Young, C.C. and Largent, M.A., Evolution and Creationism: A Documentary and Reference Guide, pages 253–260.
4.It is of course possible to have your starting point change.
5.Note that there are many different names and proposed mechanisms for the generic concept of ‘evolution’; Darwinian evolution, Neo-Darwinian evolution, Punctuated Equilibrium, Chaos theory etc. There is even flat-earth evolutionism!
6.Principia, Book III; cited in; Newton’s Philosophy of Nature: Selections from his writings, p. 42, ed. H.S. Thayer, Hafner Library of Classics, NY, 1953.
7.Lamont, A., James Clerk Maxwell (1831–1879), Creation 15(3):45–47, 1993; creation.com/maxwell.
8.Louis Pasteur (1822–1895), Outstanding scientist and opponent of evolution, Creation 14(1):16–19, 1991; creation.com/pasteur.
9.Woodmorappe, J., Lord Kelvin revisited on the young age of the earth, Journal of Creation 13(1):14, 1999; creation.com/kelvin.
10.Bowlby, J., Charles Darwin: A new life, W.W. Norton & Company, New York, p. 344, 1990.
11.Darwin, F., Seward, A.C. (Ed.), More letters of Charles Darwin, Vol. 1, pp. 226–228, 1903 as cited in Bowlby, p. 352.
12.Director Blasius interview: 'Evolution is only a Hypothesis”, 1859, cited in Braunschweiger Zeitung, 29 March 2004.
13.Wieland, C., Blast from the past, creation.com/blasius, 16 June 2006.
14.van Niekerk, E., Countering revisionism part 1: Ernst Haeckel, fraud is proven, J. Creation 25(3):89–95, 2011; part 2: Ernst Haeckel and his triple-woodcut printJ. Creation 27(1):78–84, 2013. 


번역 - Jay Lee

링크 - http://creation.com/atheism-needs-evolution 

출처 - CMI, 2015. 1. 1.

미디어위원회
2021-03-10

다윈의 이상한 질병

(Darwin's Strange Sickness)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


       찰스 다윈은 36년 동안 알 수 없는 병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점점 쇠약해져 갔다. 1959년에 콜프(내과 의사이자 정신과 의사)는 원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8년 후에 그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이 바로 다윈의 이상한 질병과 원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름 앞에 * 표는 비창조론자).

내용 : 다윈의 이상한 질병

 1. 콜프(Colp)는 이 미스터리를 풀기로 결심했다 - 다윈이 수십 년간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2. 문제의 배경 - 왜 강하고 건장한 젊은 남자에게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였는가?

 3. 깊은 공포 - 다윈은 밤낮을 쉴 수 없었다.

 4. 불가능한 이론을 팔기 위한 다윈의 캠페인 - 그는 그를 지배하는 영과 교제했다.

 5. 그는 그의 진로를 신중히 선택했다 - 그리고 그의 삶을 강력한 존재에게 넘겼다.

 6. 결론 - 콜프의 심도 깊은 연구는 분명한 해답을 제공한다.

 

1. 콜프(Colp)는 이 미스터리를 풀기로 결심했다.

왜 다윈은 몇 십년 동안 병을 앓게 되었는가?

거기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다윈은 그의 유명한 항해를 통해서 진화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할 뿐만 아니라, 그 여행 기간동안 내내 매우 건강했고, 강인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윈은 그 후에 왜 병자가 되었단 말인가? 그는 그의 생애동안 늘 아내의 의무적인 보살핌 속에서 지냈으며, 여러 가지 육체적 질병증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학자들은 여행기간 동안 그토록 정력적이었던 다윈이 왜 만성적인 질병을 겪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며 이 문제를 풀고자 수년동안 고심해 왔다. 그럴 즈음, 내과 의사이자 정신과 의사인 *랄프 콜프(Ralph Colp Jr.)가 다윈의 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다윈이 책을 낸 다음 세기인 1959년에 다윈에게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콜프는 이 문제에 대해 18년 동안 아주 철저하게 연구했고, 그의 결론을 책으로 내기에 이른다. ('To Be an Invalid : The Illness of Charles Darwin')

어떤 면에서 보면 콜프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없는 다윈 전문가 중에서도 전문가라 할 수 있었다. 콜프는 다윈이 쓴 모든 글과 다윈에 대한 모든 글을 다 분석했다. (콜프는 이런 자료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사진자료로도 가지고 있었다.) 의학적, 정신분석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윈의 생애와 행동, 병적 증상들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책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2. 문제의 배경

왜 강하고 건장한 젊은 남자에게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였는가?

”5년여에 걸친 탐험에서 돌아온 몇 년 후부터 다윈은 남은 여생을 매일 고통 속에 사는 환자가 되었다. 의사들도 그 원인과 치료법을 찾지 못해 고심했다.”

”젊은이로서 다윈은 예사롭지 않은 건강과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글호(Beagle) 탐험동안, 험한 바다에서도 견뎌내었고, 아르헨티나에선 원시적인 환경에서 불구하고 거친 가우초(남미 카우보이; 스페인 사람과 인디언의 혼혈)와 함께 야생마를 타고 건너다녔다. 산과 만나면 그때마다 그 산을 넘었다. 그러나 몇년 뒤 다윈은 허약, 구토, 만성적인 피로에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다.”-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113.

다윈의 건강문제에 관한 많은 이론들이 나왔지만, 콜프의 것만큼 완벽하게 조사된 것은 없었다. 정말로 콜프의 견해에 더욱 믿음이 가게 하는 다윈에 관한 이상한 점들이 있었다. 이 Encyclopedia의 글중 어디에서나 인용된 다윈의 말들을 회상하여 보면, 다윈은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그를 아프게 했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다윈은 왜 그런 생각과 견해를 가지고 스스로를 그리도 괴롭혔던 것일까?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너무도 잘못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윈은 결혼 초에 부인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보면서 자주 울곤 했다.

”1839년에 다윈은 사촌인 엠마(Emma Wedgwook)와 결혼했는데, 그녀의 전통적, 종교적인 믿음은 종의 기원에 관한 다윈의 이교도적 탐구와 대립되는 것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앞으로 영원히 갈라서지 않기 위해서, 성경이 말하는 창조에 도전하는 것을 제발 재고하라는 편지를 다윈에게 쓴다. 평생동안 다윈은 부인의 감동적인 편지를 소중히 여기지만(여러 번 편지에 입맞추며, 읽다가 울곤 함), 자신의 과학적 행보를 고수한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110.

편지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그가 믿지 않았다면, 왜 다윈은 그 편지를 보면서 여러 번 울었겠는가? 그가 내면적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했지만, 편지에는 자신이 믿는 것을 말하고 있었기에 그는 평생동안 편지를 보면서 반복해서 울었던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는 창조가 분명해보여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 예를 들어 눈과 같이 복잡한 구조, 칠면조 깃털의 질서정연한 패턴 등을 생각할 때, 아픔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진화론이 사실이 아님을 스스로가 알았기 때문에, 이러한 증거들은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3. 깊은 공포

다윈은 밤낮을 쉴 수가 없었다.

다윈은 증거도 없는 오류(error)로 서구 사회를 확신시키려했고, 그러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끔찍한 징벌을 두려워하는 공포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것과 같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입혔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킴으로서 극도의 근심으로 고통 당했다. 콜프는 다윈의 병이 진화론의 일로 시작되었음을 추적했다. 첫 번째로 부인 엠마는 그의 과학적 조사가 그의 영혼을 빼앗아갈 것을 걱정했다. 다윈은 목이 잘리거나, 교수형에 처해지는 꿈을 꿨다. 그는 성경의 권위에 맞서는 신념은 살인자임을 자백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113.

다윈이 남미에서 샤가스병(Chagas disease, 잠만 자는 병)에 걸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의 증상은 그 병과 맞지 않는다. 콜프가 분명히 제시한 것과 같이, 다윈의 병은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극심한 갈등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수많은 증거들은 분명하게 한 길을 제시했지만, 다윈은 완강하게 다른 길을 택했던 것이었다.

건강상 문제를 보인 것은 다윈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일을 겪었다. *휴 밀러(Hugh Miller, 1802-1856))는 크리스천으로 시작했지만, 동료들 때문에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는 지질학과 퇴적지층에 관한 책을 몇 권 출판했는데, 책('Testimony of the Rocks')의 마지막 부분에서 공개적으로 'millions of years(수백만 년)'의 이론으로 말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는 일시적 규폐증 외에는 항상 건강한 편이었다.

”암석들의 증거(Testimony of the Rocks)' 라는 책을 집필하는 동안, 휴는 무서운 꿈과 환상에 시달렸고, 깨어보면 밤새 거리를 방황하고 다닌 것을 깨닫곤 하였다.(그때 그는 자기 옷에 진흙이 묻었으니 조사하여 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종종 밤새도록 글을 썼는데, 강도나 침입자가 들어오는 상상 때문에 늘 곁에다 칼과 총을 두고 있었다. 휴는 너무 극심한 두통에 시달려서 자신의 머리가 타버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305-306

휴 밀러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기 3년 전에 총으로 자살한다.

”비글호에서의 젊은 다윈과 나이들고 병들어 집(Down House)에서 생활하는 철학자 다윈은 매우 구별된다. 그는 쉽게 지쳤고, 두통, 복통, 구토에 시달렸다. 젊은 사람으로서 그는 혼혈인디안과 같이 말을 타고 대초원을 누비며, 400마일에 걸친 광야길을 가고, 지질학자들의 망치를 손에 들고 화석을 발굴하며, 아무도 오르지 않은 산을 오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었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449

과학에 있어서 다윈의 공헌은 한 생물이 다른 생물로 바뀐다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증거에 의해 입증된 적이 전혀 없기에, 그 이론에 대한 어떠한 과학적인 정당성도 없는 것이다.

 

4. 불가능한 이론을 팔기 위한 다윈의 캠페인

그는 그를 지배하는 어떤 영과 교제했다.

”다윈이 영국 박물관에 있는 실험실 테이블에서 자신의 견본을 조사하고 있을 때, 나중에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반자가 된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칭을 가지게 됨)를 처음 만났다. 젊은 헉슬리는 ”자연 생물체 그룹들 사이에는 중간단계가 없이, 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라고 말했다. 다윈은 보고있던 표본에서 눈을 떼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것이 전혀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이 내 견해일세” 후에 헉슬리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의 친절한 대답에 뒤따른 다윈의 익살스런 미소가 오랫동안 떠오르며, 나를 수수께끼에 휩싸이게 했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111.

헉슬리는 다윈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세계에 의해 포로가 되는 대신에, 그 이상한 미소가 있었던 장소로부터 도망쳤어야만 했다. 증거가 부족했지만, 다윈은 어쨌든 자신의 이론을 밀고 나갔고, 진화론을 믿지 않았던 헉슬리 같은 사람들을 확신시켰다.

다윈이 여행에서 돌아온 뒤, 또 한 명의 부유한 아마추어 과학자인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이 처음으로 동물진화 이론에 동조한다.(인간 진화에 대해서는 전혀 설득을 시키지 못하지만). 얼마 후 어릴 때부터 다윈을 우상시해온 *조셉 후커(Joseph Hooker)가 같은 편이 된다. 그 다음은 부족한 증거에 대한 관심보다도 다윈을 더 우상시하였던 헉슬리였다. 

그리고 나서 다윈은 영국의 과학계에 최대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다윈이 '종의 기원(Origin of the Species)'을 쓰기 시작했던 처음에는(1859) 의심으로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웠지만, 정신적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 다윈은 식물학자 조셉 후커경, 비교해부학자 토마스 헉슬리,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 세 명의 판단으로 그의 마음을 고정시켰다. 라이엘은 셋 중에서 유일하게 다윈의 생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그의 방어적인 자세는 다윈을 불편하게 했다. 그들이 자신의 접근과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위험한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윈은 자연 진화를 믿는 다른 십여명의 전문가들을 확신시키는데(개인적 설득으로) 열심이었다. 심지어 명단을 작성하고 목표를 정해, 확신이 서지 않은 사람들에게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이들을 동료로 만들지 못한다면, 내 이론은 안전하지 못해 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356.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다윈은 다른 길을 잘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 윌리암 페일리(William Paley)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1816)'을 읽었고, 부분적으로나마 감동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자연에 대한 설계를 공부하는데 매료되었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러한 차이가 생기게 된 것일까?

 

5. 그는 그의 진로를 신중히 선택했다.

그리고 그의 삶을 강력한 어떤 존재에게 넘겼다.

다윈이 남미에서 주술사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인 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다윈의 생애에 관해 연구한 학생들 중에는 그때 악령이 다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찰스 다윈은 혼자 힘으로 영국 과학계에 새 이론을 이끈 장본인이다. 그러나 그는 위험한 불안(awful misgivings)과 밤의 공포에 시달렸으며, 편지를 보며 울기를 계속했다.

다윈은 자신의 일을 신중히 했고, 자기 행동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도 잘했고, 그들을 안내하고 가르치며, 자신의 말을 믿게 했다. 그들은 그렇게 들었던 것이었기에, 자기들이 믿는 것을 믿었다. 그러나 가파른 산을 올라, 산꼭대기에서 조사한 지식들을 전달했던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의 욕망을 위해, 진실을 왜곡했을 때, 다른 많은 사람들을 잘못 이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 없었다. 다윈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내면의 갈등은 그의 생애를 슬픔으로 가득 채웠던 그의 선택에 의해 원인되었던 것이다.

반면 헉슬리나 후커는 이러한 갈등이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미래 과학의 기초로서 진화론이 확고히 확립되어갈 것이라는 것을 다윈이 보증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지도자인 다윈이 어떤 문제에 부딪쳐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의심을 싹틔울리 만무했다. 헉슬리와 후커는 심신에 아무런 병이 없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진화론의 선두주자였던 다윈은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죄책감과 긴장, 공포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생을 보냈던 것이다.

 

6. 결론 

콜프의 심도 깊은 연구는 분명한 해답을 제공한다. 콜프에 의하면, 다윈의 허약, 구토, 무력감, 우울증, 불면증, 기타 증상들은 자신의 업적에 관한 극도의 갈등으로 원인된 복합 정신질환에 의한 장애라는 것이다. 콜프가 보는 바와 같이,  진화에 관한 다윈의 이론은 스스로가 그 안에서 너무 많은 갈등 요인을 보았기에, 자신의 건강을 해쳤던 것이다. 콜프는 다윈이 내면적인 고통의 결과로서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 까지도 경험했다고 말한다.

콜프는 다윈이 그의 이론을 정립하면서 육체적인 질병이 시작됐고, 그 이후 계속 악화되었다고 결론지었다. 다윈은 이러한 죄책감과 모순 때문에 그의 책을 수년동안 집필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월리스(Wallace)가 그와 같은 책을 그보다 먼저 쓰려고 하자 완성하였다고 콜프는 믿고 있다.   



참조 : 1. 찰스 다윈은 정신이상자였는가? : 그의 정신 건강에 대한 연구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66&bmode=view

2. 사냥과 살생에 대한 다윈의 열정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78&bmode=view

3. 다윈의 전 세계 항해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89996&bmode=view

4. 다윈 사상, 모든 게 그 집안 내력이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44&bmode=view

5. 다윈의 불법적인 발명품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45&bmode=view

6. 비글호의 항해 - 창조주를 위한 봉사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29&bmode=view

7. 다윈의 무덤과 교회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73&bmode=view

8. 다윈주의를 격렬히 비판한 비글호의 선장, 피츠로이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92&bmode=view

9. 다윈의 불독 - 토마스 헉슬리 : 그리고 헉슬리와 윌버포스의 옥스포드 논쟁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69&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sdadefend.com/pathlights/ce_encyclopedia/Encyclopedia/20hist06.htm

출처 -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


미디어위원회
2021-01-04

1970년에 주장됐던 진화론의 잘못된 증거들

(Exploring the ‘Evidence for Evolution’ … in 1970)

by Paul Price


      1970년은 흥미로운 해였다. 미국에서 1갤런의 휘발유 가격이 0.36달러였고, 새 집의 평균 가격은 20,000달러를 약간 넘었으며, 연평균 수입은 9,000달러를 약간 넘었다. 연평균 수입이 집값의 거의 절반이라고 상상해보라! 그해 비틀즈가 해체되었다는 소식이 발표되었고,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최초의 상용 비행을 했다.[1] 다윈(Darwin)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한 세기가 넘었고, 세부 사항들을 다듬어져 주장되던 진화론의 증거들은 바위처럼 확고한 것으로 보였다. 진화론은 심각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1970년까지 진화론의 강력한 증거로 주장되던 것들에 대한 허구적 실체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왜 1970년에 초점을 맞추었는가? 그것은 내가 진화론에 대한 항목이 포함되어 있는(그러나 창조론에 대한 항목은 없는) 그 해의 세계백과사전(World Book Encyclopedia) 사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사의 목적으로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진화를 찬성하는 증거들'이라는 제목 아래의 섹션이다. 1970년에 진화론을 찬성하는 데에 사용됐던 증거들이 오늘날에도 증거로 사용되고 있을까? 그것들 중에서 면밀한 조사를 통과한 것이 있을까? 거기에 쓰여 있는 주요 주장들과 설명글을 살펴보겠다. (이후 빨간색의 글은 세계백과사전에서 인용한 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여러 가지의 매우 다른 종류의 증거들에 근거한다. 이러한 종류의 증거들 중 다섯 가지를 아래에서 논의하겠다. 왜냐하면 그 증거들은 현재의 전체 진화론의 주요한 근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2]


변이와 변화

"누구나 다양한 생물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 창조론자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진정한 질문은 그 변화에 자연적 한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세포가 인간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다윈은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윈은 이러한 변화에 제한이 있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의 유전학과 생물학은 확실히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주요한 제한 요소는 유전정보의 한계 때문이다. 진화는 유전정보의 획득 과정을 필요로 하지만, 돌연변이는 유전정보가 점차적으로 파괴되는 유전정보의 소실 과정이기 때문이다.[3]

“일부 변이(variations, 변종)는 후천적 특성이라고 불리며, 따뜻한 기후, 비옥한 토양, 특수 먹이 등 외부 조건으로 인해 발생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획득형질(acquired characteristics)은 유전되지 않는다. 이것은 그러한 특성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들은 진화 과정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만 정확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분야인 후성유전학(epigenetics)에 의하면, 때때로 환경적 요인에 의해 획득된 특성은 실제로 미래 세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유전체 자체가 변경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진화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매우 커다란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 과정은 사실상 자연선택을 '바보'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유전체에서 개선(또는 퇴화)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상 후성유전학적 변화일 수 있다. 이러한 후성유전학적 변화에 대한 선택은 효율 면에서 매우 낭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유형의 변화는 일시적일 수 있고, 사실상 유전자의 변형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참조 : 다윈의 핀치새는 후성유전학이 답이다 : 진화론의 한 주요 상징물이 붕괴되고 있다.   식물의 후성유전학 연구는 진화론자들을 당황시키고 있다 : DNA의 변경 없이 생물 종의 다양성이 발현될 수 있다! )

“예를 들어 1849년에 야생 포도나무가 갑자기 콩코드(Concord)라는 품종의 크고 달콤한 포도를 만들었다. 변이(variations)라고 불려지는, 다른 변종 또는 돌연변이는 뿔이 없는 소, 다리가 짧은 양, 이중 꽃 및 새로운 여러 씨앗을 만들었다."

콩코드 포도에 대한 일화는 매우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품종은 인공선택과 대량 경작이라는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 1849년에 보스턴 태생의 에브라임 웨일즈 불(Ephraim Wales Bull)은 콩코드 포도(Concord grape)를 개발했다. 콩코드 외곽의 농장에서… 그는 이상적인 포도를 생산하기 전에 약 22,000개의 묘목을 심었다."[4]

인공선택(artificial selection)과 식물육종은 “진화”가 아니다. 펜톤(Fenton, 세계백과사전에서 이 항목의 저자)은 인간의 개입을 편리하게 무시하면서, "갑자기 만들었다"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종류의 포도에서 다른 포도로의 약간의 변형은 창조론자들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위에 나열된 다른 모든 예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예들 중 어느 것도 기능적 유전정보의 증가, 또는 한 기본 종류(kind)에서 다른 종류로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참조 : 돌연변이의 행진 - 족보견과 인공선택 : 인공선택과 자연선택 모두 유전자 풀의 감소 과정이다).

“또한 권위 있는 학자들 대부분은 다윈이 추정했던 것처럼 자연선택이 유전적 변이(variations)의 결과를 통제해왔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즉, 선택은 새롭고 유용한 특성을 가진 생물을 보존했다. 선택은 장점이 부족하거나 유해한 변이가 발생한 이웃을 몰아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형태가 번식될 때, 그 과정은 반복되는 등, 수많은 세대에 걸쳐 진행되었다. 지구는 생명체를 위한 모든 종류의 장소와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해조류, 곤충 및 인간과 같이 다른 생물들을 만들었을 수 있다.”[2]

여기에서 논리적 구멍은 너무도 커서, 기차가 통과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 변이(variations)는 발생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자연선택이 그것에 작동될 수 있다.(위의 인용문은 선택이 전능하고, 크기에 관계없이 모든 변화에 작동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Ref.3 참조). 진화론자들은 지구상에 다양한 환경이 존재하기 때문에, 작은 우연한 변화가 "해조류, 곤충, 인간처럼 다른 생물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주장에는 특별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대부분의 비판론자들은 말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맹목적으로 진화론을 믿는다.

“두 종(종류)이 교잡하여 새로운 종을 생산할 때, 다른 종류의 변이(variation)가 발생한다. 이것은 마로니에, 쐐기풀, 풀, 장미, 일부 달팽이 등에서 적어도 두 번 발생했다. 교잡에 의해서 생겨난 새로운 한 풀(grass)은 너무 빨리 자라고 커서, 원래의 두 부모 종을 모두 몰아냈다. 새로운 형태가 조상보다 우월했기 때문에, 이것은 점진적인 진화였다.”

여기에서 완전히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이 예는 분명히 새로운 어떤 유전정보를 획득한 것(돌연변이 제외)이 아니고, 이미 존재하고 있던 유전적 내용의 새로운 조합(combinations)을 갖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잡종 활력(hybrid vigor, 번식향상)’이라고 불려진다. 유전자풀(gene pool)에 아직 없던 것은 재조합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단세포를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 유형의 과정이 아니다. (*참조 : 진화의 3R : Rearrange(재배열), Remove(제거), Ruin(파괴) - 다시 말해서, 진화는 없다!)

여기에서 진화론자들이 '종류(kinds)'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 단어는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자들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조롱할 때 포함됐던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진화론자들도 이 종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두 진영은 ‘종류’라는 단어의 수준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창조론자들은 '종류(kinds)'를 생물 분류상 '과(family)' 수준으로 보고 있으며, 종류 내에서 변이(variation)가 가능한 원래 창조됐던 가장 기본적인 생물 그룹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종의 풀(grass)이 교잡되어 새로운 종이 만들어졌다는 사례는 창조론적 세계관에도 잘 부합되는 것이므로, “진화의 증거”로 간주될 수 없다. (*참조 : 핀치새의 부리)


화석

“화석은 오래 전에 살았던 생물들의 유해 또는 흔적이다. … 화석이 한 지층에서 수집되었을 때, 오늘날의 식물과 동물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변이(variations)를 나타낸다. 다른 지층의 화석들을 차례로 연구할 때, 그러한 변이는 종종 새롭거나 더 큰 그룹이 발달됐던 일련의 단계들을 기록하고 있고, 오래된 그룹은 사라졌다. … 과학자들은 이 증거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많은 생물들이 화석을 남기지 않은 채로 살았다. 아직 많은 유형의 화석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기록은 설득력이 있으며, 생물의 역사 전반에 걸쳐 질서 있는 변화를 나타낸다. 또한 오래되고 더 오래된 화석들이 점점 더 비슷하기 때문에,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위의 내용을 읽어보면, 초심자는 화석기록이 매우 명확한 진화적 그림을 제공한다는 인상을 확실하게 받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펜톤이 고생물학자이며 지질학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이 그의 의도적으로 기만적이었을까? 유명한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Steven J. Gould)는 1977년에 훨씬 더 정직하게 썼다.(결과적으로 창조론자들에 의해 매우 자주 인용되었다) :

“화석기록에서 과도기적 전이형태의 화석이 극히 드물다는 것은 고생물학의 영업비밀로 남아 있다. 우리의 교과서를 장식하고 있는 진화나무는 가지의 끝과 마디에서만 데이터를 갖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든, 한 종은 그 조상의 점진적인 변화에 의해서 점차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것들은 한꺼번에 "완전히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5]

분명히 이 두 '권위 있는 학자'(펜톤 또는 굴드) 중 하나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심하게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거나, 대중들을 속이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기꾼들은 굴드가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세계관을 붕괴시키는 사실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펜턴은 '고생물학의 영업 비밀'을 감추기 위해서, 그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가 쓴 것과는 다르게, 오래된 화석일수록 점점 서로 비슷해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대신, 유명한 ‘캄브리아기의 폭발(Cambrian Explosion)’을 보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생물학적 몸체 형태들은 어떠한 조상 없이 갑자기 출현한다! 또한 아직 덜 유명하지만, 여전히 놀라운 ‘에디아카라 폭발(Ediacaran explosion)’을 갖고 있는데, 진화론자들은 캄브리아기보다 더 이른 시기로 연대를 추정한다. (*참조 : 화석은 여전히 진화론을 부정한다 : 캄브리아기 폭발)

화석기록에는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다양한 지층 높이에서 보존되고 있는데, '일반적인 발전'이 있다고 말한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진화론자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점진적인 일련의 진화적 변화를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창조론자들이 예상하는 것과 더 비슷해 보인다. 전 지구적 홍수가 지구상의 다른 지역(다른 서식지)을 점진적으로 쓸어버렸고, 다른 형태의 생물체들을 파묻어 버렸다. 이것은 다른 (지질시대의) 지층에서 엉뚱한 화석(out-of-place fossils)이 발견되는 것에 대한 훨씬 더 나은 설명이다.


발생학

“진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대한 많은 증거는 개별 생물의 발달, 특히 동물의 발달에서 얻어진다. 그러한 발달은 지구의 오랜 역사를 통해 많은 그룹의 동물들이 지나간 단계와 매우 유사하다… 오늘날 개와 같이 태어나지 않았던 포유류가… 물고기 같은 아가미를 발달시켰다가 잃어버리고, 두 개의 폐를 만든다. 동시에, 개의 심장은 물고기, 양서류, 파충류 단계를 거쳐서 발달하여, 동물이 따뜻함을 유지하도록 혈액을 매우 효율적으로 펌프하는 4개의 방을 가진 기관이 되었다… 성체들이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특성들이 여전히 유전되고 있다. 이것은 현대동물과 초기동물 사이에 진정한 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전 글들에서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에, 거의 할 말이 없다. 즉, 발생반복설(Embryonic Recapitulation)이라고 하는 이 아이디어는 거의 전적으로 19세기 독일 동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의 아이디어와 사기적인 삽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6] 그는 나중에 완전히 책임지지 않고, 준 사과적인 표현을 했다. 헤켈의 배아 그림은(이 그림에 기반하여 그러한 주장을 함) 실제 사진과 비교해보면 거의 유사하지 않다.

<윗줄은 헤켈의 그림. 아랫줄은 배아의 실제 모습> (*참조 : 재발견된 위조 : 헥켈의 배아 그림(발생반복설)은 사기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대의 언론 매체들은 이러한 사기를 희석시키기 위해 여전히 정치를 하고 있다. 세계의 정보 출처인 위키피디아(Wikipedia)는 현재(이 글을 쓸 당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헤켈이 5명의 교수에 의해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고, 독일 예나(Jena)의 한 대학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널리 주장되어 왔지만, 이 주장에 대해 독립적으로 검증 가능한 출처는 없는 것 같다... 배아 그림에는 여러 버전이 있었고, 헤켈은 사기 주장을 부인했다.”[7]

헤켈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림을 위조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발생반복설(Recapitulation Theory)과 관련하여, 다른 많은 곳에서 정치적 발언을 볼 수 있다 :

“발생반복설이라는 헤켈의 이론은 기각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현대적인 관점은 캘리포니아 대학 고생물학 박물관에 요약되어 있다.”

“배아(embryos)는 진화 과정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헤켈이 주장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특이하다. 같은 배아의 다른 부분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그 결과 생물발생법칙(Biogenetic Law)은 포기되었고, 그것의 추락으로 과학자들은 진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배아 변화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발달을 제어하는 특정 유전자 중 일부를 발견함에 따라, 최근 몇 년 동안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8]

같은 배아의 다른 부분이 다른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그 말에는 어떤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이 횡설수설은 진화 과학자들이 당황하고 있으며, 과거의 거짓말과 실수를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위키백과를 신뢰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글을 썼는데, 이것은 또 다른 좋은 사례이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위험은 사실 위키피디아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세계백과사전 1970’은 그 이상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로 위험했다. (*참조 : 위키백과 : 진화론적 편견의 반창조론적 웹사이트)


비교 해부학

“사람의 팔, 악어의 앞발, 말의 앞다리, 고래의 지느러미, 박쥐의 날개를 비교해보자. 처음에는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실제로 뼈, 근육, 혈관, 신경의 동일한 배열을 보여준다. "

상동성(homology)이라는 이러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보자.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무엇을 증거하는가? 어떤 사람은 그것이 생명체의 다양한 독립적 기원에 반대되는 증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그러나 '수렴진화'도 다양한 독립적 기원의 진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창조인가 진화인가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까? 확실히 아니다. 많은 종류의 자동차들이 공통된 설계 요소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종류의 생물들도 공통된 설계 요소를 공유할 수도 있는 것이다. 비교해부학적 유사성은 공통조상으로 설명될 수도 있지만, 공통설계로도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카터 박사(Dr Carter)의 용어를 사용하여, 비식별적 정보(non-discriminating information)에 불과한 것이다. (*참조 : 상동성과 상사성 : 진화론의 문제점을 감추기 위한 속임수 용어)


지리적 분포

“진화의 많은 증거들은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에 사는 식물과 동물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미대륙에서 약 600마일 떨어져 있으며, 태평양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모든 섬들에는 남미대륙 서부에서 발견되는 종들과 유사한 26종의 육지 새들이 살아간다. 그러나 이 종들 중 23종은 섬에 도착한 이후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갈라파고스의 새들은 별개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상이 남미대륙 본토에서 표류한 후 발생한 변화로 인해 그곳에서 발전한 것 같다.”

이것은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과 휴 로스(Hugh Ross)가 장려했던 종의 고정(fixity of species) 교리에는 반대되지만, 성경적 창조론과는 모순되지 않는다. 앞에서 논의했듯이, 창조론자들은 동물이 변화하고 다양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기본적으로 창조된 종류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른 종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할 뿐이다. 갈라파고스의 핀치새에서 보여지는 변화는 진화론이 주장하듯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생물로 진화됐다는 변화가 아니다. 이것 역시 비식별적 정보인 것이다. 증거들은 노아 방주에서 내려온 동물들이 현재 위치로 이동하는 것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갈라파고스 생물들이 남미대륙의 생물들과 닮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 것이다. 남미대륙도 그들 조상들의 이주 경로였다.(*참조 : 생물지리학, 그리고 전 지구적 홍수. 1부 : 홍수 이후 동식물들은 어떻게 전 세계에 분포했는가? 2부)


간단히 말해서,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이야기에 대한 증명의 부담을 짊어진 적이 없다.”


그리고 이것으로 펜톤의 다섯 가지 증거는 끝난다.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설득력이 없으며, 그중 하나 이상은 노골적으로 거짓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후 한 세기가 넘도록 진화론자들이 제안했던 최고의 증거들이라 말인가? 간단히 말해서,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이야기에 대한 증명의 부담을 짊어진 적이 없다. 협박, 허풍, 연막, 관련 없는 사실, 심지어 노골적인 사기 등의 조합으로 발전해 왔다. 펜톤은 “어느 누구도 진화가 완전히 이해되었다고 말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썼다. 이 회피 전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주 사용된다. 이론의 세부 사항은 항상 어둡고 불확실하지만, 보편적 공통조상이 있었다는 주장은 확고한 기반에 있다고 하면서, 과학은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고, 그들에게 편리하도록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화론의 기초를 면밀히 조사해볼 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놀라운) 섹션 : 진화론을 반대하는 이유

펜톤(Fenton)은 그 섹션을 마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반대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충돌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진화론에 대한 종교적 반대는 최소한 세 가지 신념에서 비롯된다.

1. 성경에 대한 확신이다. 많은 사람들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능하신 행위로 세상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과 식물을 “그 종류대로 열매를 맺도록” 창조하셨다고 생각한다. 이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등한 형태로부터의 진화를 믿지 않는다.”

이것은 놀랍도록 정확한 묘사이다. 이것은 열렬한 진화론자가 창조론자들을 비판하면서 하는 말이다. 사실 오늘날의 진화론자(특히 유신진화론자)들은 일반적으로 덜 솔직하다. 그들은 성경과 진화론이 명백하게 충돌한다는 사실을 경시한다. 예를 들어, 진화론자 조수아 스와미다스(Joshua Swamidass) 박사는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literally)” 받아들인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진화론도 믿고 있다![9] 분명히 그는 “글자 그대로”에 대한 비문자적 이해를 가진 사람들 중 한 명이다.


2.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주, 보존자, 궁극적인 종말이시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확신으로 인해 유기 생명체가 자연적 힘에 의해 진화적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생각과 일치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 죄 이전의 죽음 등에 대한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3. 기독교 복음에 대한 확신이다. 죄의 실체와 죄로부터의 구속은 기독교 신앙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인간이 더 하등한 상태에서 진화 과정을 통해 존재했다면, 인간의 죄는 불완전한 것이 되며, 죄로부터 구속의 복음은 모든 의미를 잃게 된다.

이것은 성경적 창조론에 반대하는 사람이 세속적 백과사전에 발표해 놓은 놀랍도록 날카로운 논평이다. 그렇다. 지난 50년 동안 이것이 바로 우리 성경적 창조론자들이 지적해온 것이다. 50년 전에 우리를 비방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진술은 진화론과 기독교 복음이 서로 충돌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기독교와 진화론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과학적 근거에 의해 진화론에 반대한다. 과학자들도 진화론에 관한 특정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화론의 반대자들은 이러한 불일치들로 인해 진화론은 증명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화석 배열, 비교해부학, 발생학 등의 사실들이 공통조상에 대한 증거라는 것은 부인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척추동물이 모두 유사한 많은 구조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척추동물이 모두 하등한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했음을 증거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은 단지 창조주가 같은 부류의 종들을 만드실 때에 동일한 패턴(공통 설계)을 사용했음을 시사한다고 믿는다.


정말로 그렇다! 진화론자들은 이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50년 동안 거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의 이전 주장들은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반대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할까 두려워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위와 같은 발언을 감히 하지 못한다. 오늘날 그들의 주장에 반대되는 논쟁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창조론자들은 조롱당하고 무시당하고 있다. 이 속임수의 벽을 뚫기 위해서는, 주님의 재림 외에 무엇이 필요할까? 





References and notes

1. The People History, 1970. thepeoplehistory.com/1970.html, accessed 8 Sep 2020. 

2. Fenton, C., “Evolution”, The World Book Encyclopedia 6:331–334, Field Enterprises Educational Corp., 1970.

3. Price, P., Genetic Entropy: The Silent Killer, Creation 41(4):48–50, 2019. 

4. The History, concordgrape.org, accessed 8 Sep 2020. 

5. Gould S., Evolution’s erratic pace, Natural History 86(5):14, May 1977. 

6. van Niekerk, E., Countering revisionism part 1: Ernst Haeckel, fraud is proven, J. Creation 25(3):89–95, 2011; part 2: Ernst Haeckel and his triple-woodcut print, J. Creation 27(1):78–84, 2013. 

7. Ernst Haeckel, en.wikipedia.org/wiki/Ernst_Haeckel, accessed 10 September 2020. 

8. Recapitulation Theory, en.wikipedia.org/wiki/Recapitulation_theory, accessed 10 September 2020. 

9. See Dr Swamidass’ comment on our article dealing with his recent interview of Dr W.L. Craig, at the bottom of the page. 


*참조 : 진화론은 사실인가? : 진화론자들이 자주 사용하고 있는 21가지 잘못된 주장

https://creation.kr/Debate/?idx=1293675&bmode=view

과학수업에서 진화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면제되는가?진화론을 정밀히 검토해보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질문 33가지

http://creation.kr/Education/?idx=1293515&bmode=view

진화론자들에게 보내는 15개의 질문

http://creation.kr/Debate/?idx=1293672&bmode=view


진화론의 거짓을 폭로합니다. (주제별 자료실)

http://creation.kr/Series/?idx=1843199&bmode=view


출처 : CMI, 2020. 10. 6. (GMT+10)

주소 : https://creation.com/evidence-for-evolution-world-book-197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0-12-17

만들어진 신인가, 무신론자의 망상인가?

(God Delusion, or Atheist Delusion?)

David F. Coppedge


   Live Science(2020. 11. 24) 지에서 소위 한 “전문가”는 모든 종교를 심리적 망상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 말은 무신론자들에게 해당되는 것 아닌가?

라이안 맥케이(Ryan McKay)와 로버트 로스(Robert Ross)는 Live Science 지에서, 종교를 조롱하는 데에 "(진화론적) 과학 뉴스"를 사용하면서, 종교를 병적인 심리적 망상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신을 믿는 것은 망상인가?”라는 암시적인 제목의 글에서, 그들은 신실한 종교인들을 약간은 인정하고 있지만, 금새 심하게 조롱하며 비웃고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의 목표는 종교적 믿음을 악마시 하거나 방어하려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위안과 평안의 원천이지만,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캐나다의 심리학자)의 생각에 의하면, 특정한 종교적 신념은 "악성(malignant)"일 수 있는데, 즉 삶을 평가 절하시키고 손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악성 신념은 소수가 공유하는 악성 신념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그 기사는 여러 이유로 종교에 대한 학술적 분석에 실패하고 있었다.

▶ 이 기사는 유명한 무신론자인 스티븐 핑커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를 높이고 있다.

▶ 무신론자들은 망상이 없는 잘 통제되는 집단으로 묘사되고 있다.

▶ 심리학 분야는 신뢰받기 위한 많은 문제들이 있다.(22 May, 2014). 인간복제 논란을 기억하는가? 그 논란은 여전히 유행하고 있으며(6 Oct, 2019), 과학계의 사기 및 거짓의 역사를 기억하는가?

▶ 저자들은 소위 정신의학(psychiatry)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미국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APA)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을 호의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매뉴얼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10 May, 2013

▶ 이 기사는 종교와 무관한 망상적 신념을 언급하고 있다.

▶ 이 기사는 그들의 마음도 ‘만물우연발생의 법칙(Stuff Happens Law)’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생겨났다는 무신론적 망상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 그들은 망상, 악성, 병리와 같은 용어들 범주의 바깥에 무신론은 두고 있다. 무신론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만물이 모두 우연히 저절로 어쩌다 생겨났다는 것 아닌가?

▶ 무신론은 자기-반박(거짓을 사실이라고 주장)의 이유로 그 자체가 망상이다. 무신론은 초자연적인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비물질적인 진리와 도덕을 이야기 한다.

확실히 이슬람 극단주의와 같은 일부 종교는 믿는 자의 “삶을 평가 절하시키고 손상시킬" 수 있다. 하지만 무신론은 어떤가? 가장 끔찍한 대량살인과 대량학살이 무신론적 진화론에 의해서 촉발되지 않았는가? (9 Jan, 2019, 30 Nov, 2005을 보라).

---------------------------------------------------


편견으로 가득하고, 경박한 기사에 믿음이 흔들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악성인가? 가난하고 약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느라 일생을 보낸 정직하며 헌신적인 선교사님들과 목사님들은 이런 종류의 주장이 “과학” 언론 매체에서 보도되며 불신을 조장하고 있는 것에 가슴이 아플 것이다.

Live Science 지는 기사의 끝에 "쓰여진 내용은 저자의 견해이며, 본사의 견해를 반드시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는 고지문을 통해 혹시라도 생겨날 문제를 회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기사를 “전문가의 목소리(Expert Voices)” 시리즈에 게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과학적 주장이나 논쟁과 관련이 있다면, 왜 상대방의 의견과 반박 글을 게재할 기회를 주지 않는가?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워서인가?



*참조 : 무신론은 진화론을 필요로 한다 : 진화론은 사실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77&bmode=view

무신론은 하나의 종교라고 법원은 말한다.

http://creation.kr/Education/?idx=1293506&bmode=view

맹목적인 물질이 진화하면 ‘마음’이 만들어질까?

http://creation.kr/Worldview/?idx=1876303&bmode=view

인본주의자 선언 2000 에서 언급된 현대 무신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16&bmode=view

세속적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40&bmode=view

나는 문화적 크리스천이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40&bmode=view

스티븐 호킹의 무신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56&bmode=view

가이아 이론과 자연숭배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3128683&bmode=view

현대 과학에서 이루어지는 교묘한 우상숭배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4009252&bmode=view

지적설계의 증거가 무신론자에게 설계자를 확신시키다.

http://creation.kr/IntelligentDesign/?idx=1291601&bmode=view

사람이 하나님을 창조했다는 무신론자들의 광고가 시카고에 등장했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49&bmode=view

20세기의 유명했던 무신론자, 안토니 플루의 전향 이야기 : 악명 높았던 무신론자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던 이유는?

http://creation.kr/Debate/?idx=1293668&bmode=view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영국인들의 반은 진화론을 의심하고 있었다.

http://creation.kr/Debate/?idx=1293648&bmode=view

도킨스는 “하나님은 없다”라는 광고를 지원하고 있다 : 영국 런던의 버스에 등장한 무신론자들의 광고

http://creation.kr/Debate/?idx=1293647&bmode=view

도킨스의 최근의 책 : 지상 최대의 거짓말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51&bmode=view

스티븐 호킹의 무신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56&bmode=view

진화론의 뿌리와 열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70&bmode=view

진화론 : 고대의 이교도 개념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45&bmode=view

20세기를 마감하면서 -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을 중심으로

http://creation.kr/Debate/?idx=1293578&bmode=view

진화론이 지배하고 있는 학계는 창조론을 공격한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21&bmode=view

진화론은 자연법칙들을 바탕에 두고 있지 않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19&bmode=view

다윈 대 하나님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47&bmode=view

진화론은 현대의 신화들에 기초하고 있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16&bmode=view

진화론의 뿌리와 열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70&bmode=view

진화론이 학문에 끼친 영향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38&bmode=view

진화론이 끼친 해악 : 인종차별, 국수주의, 공산주의, 생명윤리 문제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39&bmode=view

창조론과 진화론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52&bmode=view

진화론이 인문학과 과학에 끼친 충격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11&bmode=view

진화론이 신학에 미친 영향

http://creation.kr/Faith/?idx=1293812&bmode=view

진화론이 교회에 미친 영향

http://creation.kr/Faith/?idx=1293787&bmode=view

진화론의 확산과 선교사의 사명

http://creation.kr/Faith/?idx=1293848&bmode=view

진화론의 유산, 우생학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이 남긴 인종차별 사상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63&bmode=view

런던동물원은 사람을 전시하였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83&bmode=view

오타 벵가의 비극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79&bmode=view

공교육 체계에서 문제아를 만드는 방법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30&bmode=view

진화론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81&bmode=view

핀란드 고교 총기사건의 살인자는 다윈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38&bmode=view

진화론은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을 조장했다고 아버지는 말한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29&bmode=view

나치즘의 뿌리였던 진화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28&bmode=view

진화론이 낳은 괴물, 아돌프 아이히만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64&bmode=view

히틀러의 진화론 대 기독교도의 저항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10&bmode=view

다윈의 진화론과 나치의 인종 대학살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13&bmode=view

나치의 기독교 말살 계획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08&bmode=view

린치버그의 거짓말 - 어떻게 미국의 진화론 학자들이 나치를 가르쳤는가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07&bmode=view

다윈과 트로츠키의 관계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06&bmode=view

진화론과 사회악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06&bmode=view

진화론이 끼친 해악 : 인종차별, 국수주의, 공산주의, 생명윤리 문제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39&bmode=view

스탈린의 잔인성과 진화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01&bmode=view

스탈린의 죽음의 철도가 폭로되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62&bmode=view

모택동은 다윈으로 인해 7천7백만 명을 살해했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07&bmode=view

중국 복음 선교에 진화론이 미친 영향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67&bmode=view


모든 과학자들이 다 틀릴 수 있나요? 

http://creation.kr/Debate/?idx=1293663&bmode=view

증거를 따르라! :과학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을 말해야만 한다.

http://creation.kr/Education/?idx=1293517&bmode=view

과학이 진리인가?

http://creation.kr/Worldview/?idx=1876333&bmode=view

진정한 사이비 과학자들은 누구인가? : 비과학, 반과학인 것은 창조과학이 아니라, 진화론이다.

http://creation.kr/Debate/?idx=1293674&bmode=view

대중문화는 진화론을 과학으로 선전하고 있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50&bmode=view

진화론과 하나님의 형상

http://creation.kr/Worldview/?idx=1288122&bmode=view

진화론이라는 신비주의와 과학의 종말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84&bmode=view

현대 과학에서 이루어지는 교묘한 우상숭배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4009252&bmode=view

애매모호주의 : 애매모호함을 추구하는 하나의 종교 :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의 사고

http://creation.kr/Worldview/?idx=1876308&bmode=view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이유 

http://creation.kr/Worldview/?idx=1876308&bmode=view

위키백과 : 진화론적 편견의 반창조론적 웹사이트

http://creation.kr/Debate/?idx=1757518&bmode=view

진화론 - 영적 세계에 대한 거부 수단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48&bmode=view

창조론이 과학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http://creation.kr/Education/?idx=1293549&bmode=view

진화론에 대한 증거들은 모든 과학 분야에서 압도적인가?

http://creation.kr/Debate/?idx=1293676&bmode=view

과학적 발견들은 진화론을 지속적으로 파괴시키고 있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35&bmode=view

현대의 과학적 발견들은 성경을 입증한다.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12&bmode=view

교회와 믿음의 분리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50&bmode=view

과학과 종교 간에 갈등은 없다고 노벨상 수상자는 말한다.

http://creation.kr/Education/?idx=1293512&bmode=view

벤 스타인의 “추방: 허용되지 않는 지성” : 진화론을 고발한 영화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43&bmode=view

빅뱅이론을 또 다시 비판하고 있는 이론물리학자들

http://creation.kr/Cosmos/?idx=1294041&bmode=view

진화론을 비판하는 3,000 명의 교수, 과학자, 학자들 명단 

http://creation.kr/Peoples/?idx=1293718&bmode=view

다윈주의에 대한 반란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74&bmode=view

기독교 : 현대 과학의 원인?

http://creation.kr/Debate/?idx=1293611&bmode=view

창조를 믿는 것은 지적 자살?

http://creation.kr/Debate/?idx=1293607&bmode=view

창조가 과학적이고, 진화는 종교적이다

http://creation.kr/Debate/?idx=1293604&bmode=view


출처 : CEH, 2020. 11. 29.

주소 : https://crev.info/2020/11/god-delusion-or-atheist-delusion/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0-10-07

진화론의 뿌리와 열매

(Roots and fruits)

Robert Gurney 


      어떤 이론의 본질을 발견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의 ‘뿌리와 열매’를 연구하는 것이다. 즉, 그것의 기원과 그 결과를 연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진화론의 기원은 반기독교적이며, 반성경적이고, 그것의 결과는 일정하게 악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진화론을 반대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두 가지는 그것이 반기독교적이고, 반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의 뿌리

진화론적 개념은 실제로 매우 오래 되었다. 예로써, 이교도인 그리스 사람들은 약 2,700년 전에 그것에 대해 적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진화론은 장구한 시간 개념과 함께 17~18세기의 반기독교적 ‘계몽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자유주의 신학도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개념의 개척자 대부분은 이교도들이었다. 이교도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신’은 성경의 하나님과 매우 다르다. 그들의 신은 우주로부터 시작된 멀리 떨어진 존재로, 자연법칙에 따라 작동되도록 방임하고 있는 신이다.[1]

오래된 지구 연대와 찰스 라이엘(1797~1875)의 반-홍수지질학, 그리고 찰스 다윈(1809~1882)의 진화론 등 여러 이론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찰스 라이엘은 이신론자(deist, 자연신론자)로서 ”모세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지질학)”을 원했다.[2] 그는 또 다른 이신론자인 제임스 허튼(1726~1797)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제임스 허튼은 급진적인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을 제안했는데, 거기에서 그는 오늘날 일어나는 빈도와 크기의 지질학적 과정만이 지층 암석 기록을 해석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라이엘은 이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다.[3]

다윈은 한때 신학을 공부했지만, 기독교를 떠나, 이신론자 혹은 아마도 회의론자가 되었다.[4] 그는 찰스 라이엘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반기독교적 이신론자였고 진화론자였던 자신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찰스 다윈의 이론은 그의 과학적 관측으로부터 제안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친구이며 멘토였던 찰스 라이엘의 이신론과 동일과정설적 세계관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세계관에 일치하도록 데이터들을 해석했던 것이다.[5]

따라서 이러한 개념의 뿌리(장구한 연대와 진화론)는 분명 반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인 것이다.


진화론의 열매

이러한 진화론적 개념들의 열매는 무엇일까? 악한 열매의 목록은 거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의 목록이다. 모든 국가와 사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악한 영향을 받았다. 과학 자체도 타락되었으며, 과학의 발전은 손상을 입었다.[6]

진화론과 (진화론이 필요로 하는) 수십억 년의 연대는 세속적 인본주의(무신론)의 기초가 되었다. 그것은 인본주의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간이 가지는 책임감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만들 수 있게 했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삿 21:25]

이 진화 철학을 채택하는 국가와 사회는 가족생활의 붕괴, 가정 파탄, 성적 부도덕, 인간생명 경시, 인간 존중 결여(낙태를 포함)가 만연하게 되었다. 진화론은 수천만 명의 냉혈적 살인자들을 만들어낸 마르크스주의와 나치즘의 사상적 기초였던 것이다. 이러한 학살에는 중국 공산당에서 7,700만, 소련의 강제수용소에서 6,200만,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에서 200만, 나치즘에 의한 2,100만 명의 비전투적 살인이 포함된다.[7]

진화론은 우생학(eugenics)이라는 가장 끔찍한 학문의 기초였다(우생학은 열등한 인종을 도태시키고, 우수한 인종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학’ 이론이다). 우생학으로 인해 히틀러는 수많은 장애인들을 살해했고, 미국에서는 수백만 건의 강제불임이 실시됐다.[8]

또한 여러 종류의 인종차별주의가 생겨났고, 열등한 사람으로 간주된 인종들의 무자비한 제거가 실시됐다.[9] 예로서, 호주의 원주민들은 하등 인간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학살되었다.[10]

진화론은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잃어버리거나, 믿음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데 일조해왔다. 과거 기독교 국가이었던 나라들에서 수많은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공산주의 혹은 세속적인 인본주의가 우세하게 되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진화론 교육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잃어버렸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장구한 연대와 진화론의 또 다른 열매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창세기를 역사가 아니라 신화로 폄하시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개념 자체를 훼손하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의 반응

많은 크리스천들은 수십억 년의 연대와 더불어 진화론은 실제로 사탄의 기만이라는 나의 견해에 공감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20)

진화론의 열매들은 한결같이 나쁘다. 그러나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믿는 믿음으로 맺어지는 열매는 일관되게 언제나 선하다. 성경을 믿어 생겨나는 열매는 진화론을 믿어 생겨나는 열매와 정확히 반대되는 결과를 나타낸다. 예로써 성경은 인종차별을 찬성하지 않는다. 성경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이고, 약 5천 년 전에 살았던 노아의 후손으로, 서로 매우 가깝다.[11] 또한 모든 피조물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경이롭게 설계되었음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과학의 발전을 장려한다.[12]

그러나 어떤 기독교인들은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이거나, 또는 성경과 그것을 조화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이러한 유신론적 진화론을 믿는 어떤 목사님이 나에게 말했다. ”히틀러나 스탈린이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진화론을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다윈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찰스 라이엘과 다윈이 그들 이론의 전체 결말을 예견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도 추측은 했을 것이다. 다윈 책의 전체 제목은 ”자연선택의 방법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 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대하여”인 것이다. 그는 ‘인간의 계보(The Descent of Man)’에서 이렇게 썼다 :

”어떤 미래의 시간에... 문명화된 인간 종족이 거의 확실하게 세계의 미개한 종족을 몰살시키고, 대체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인간형 원숭이들도(인간 형태와 외모를 가진)... 틀림없이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간격은 더 커질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흑인 또는 호주 원주민과 고릴라 사이의 차이보다, 우리 백인(Caucasian)보다 더 문명화된 상태이길 희망하는 인간과 개코원숭이 같은 하등한 원숭이와의 차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13, 14]

우리가 알아야 되는 중요한 사실은 라이엘과 다윈은 과학에서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배제시키려 했다는 것이며,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이론이 성경에 대한 믿음과, 성경의 하나님, 그리고 성경에 뿌리를 둔 도덕성을 파괴하게 될 것이라고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15]

일부 기독교인들은 다윈의 이론이 기독교에 적대적일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다윈이 그의 책에서 창조주를 언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종의 기원'의 전체 흐름과 완전히 낯선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언급은 ”기독교 공동체를 달래기 위한 제스처”로 보인다.[16] 즉, 다윈은 1860년의 ‘종의 기원’ 2판과 이후 판에서 (책의 마지막 문장에) ”창조주에 의해서(by the Creator)”라는 그의 유명한 단어를 덧붙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조셉 후커(Joseph Hooker)에게 보내는 편지에서(1860년 3월),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 ”... 전혀 알 수 없는 과정에 의해 ‘나타난’ 것을 의미하면서, 나는 대중들의 의견에 맹종하여, 모세오경의 창조란 단어를 사용한 것을 오랫동안 후회해 왔다.”[17]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윈 자신은 반-기독교인이었고, 그가 생각했던 것은 이신론적 ‘하나님’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기독교의 하나님은 아닌 것이다.

또 다른 매우 일반적인 반응은 진화론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과정이며, 나치즘, 마르크스주의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이론으로 잘못 사용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그 과정(진화 과정)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비논리적이며, 비성경적이다. 어떤 이론의 열매가 악하다면, 그 본질 또한 선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이 진화를 수단으로 하여 창조하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수십억 년 동안 죽음, 질병, 폭력, 고통, 파괴의 과정을 사용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강자가 약자를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것이 포함된다. 만약 하나님이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셨다면, 왜 우리는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겠는가? 사실 나치즘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잔인한 본성을 그저 따라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백만 명을 죽인 나치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은 진화론적 사고에 흠뻑 젖어 있었고, 자신의 행동은 옹호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칭찬받을 만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자연과 협력하여 인류의 발전을 위해 인종을 개량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18]

사실 미생물-사람으로의 진화에 반대되는 과학적 증거들은 너무나 강력해서, 진화론을 ‘이론’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이론이라는 단어를 잘 증명된 데이터의 설명으로 사용한다. 예로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그것이다. 사실 진화론은 그저 자연주의적 세계관과 과학의 자연주의적 정의에 기초한 가설에 불과하다. 그러한 임의적인 가정은 모든 것이 하나님과 초자연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설명될 수 있으며, 또 설명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진화론의 ‘뿌리와 열매’는 그것이 사탄의 속임수라는 것을 매우 명확하게 보여준다, 과학이 실제의 사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성경의 가르침은 이러한 결론을 지지한다. 또 하나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성경적 창조론에 대해 끔찍한 증오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창조론을 배제하고, 조롱하고, 억압하며, 그래서 진화론적 세계관을 확립하기 위하여, 힘을 가지고 모든 일들을 수행한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연대를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이 글에서 기술한 불쾌한 사실들을 바꿀 수 없고, 또 그러한 사실의 의미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Related Articles

Evolution and social evil

Darwin’s impact—the bloodstained legacy of evolution

Charles Lyell’s hidden agenda—to free science 'from Moses”

Further Reading

Morality and Ethics Questions and Answers

 

References and notes

1.Mortenson, T., The Great Turning Point, Master Books, Green Forest, 2004, pp. 24–25.
2.Catchpoole, D. and Walker, T., Charles Lyell’s hidden agenda—to free science 'from Moses”; creation.com/lyell; August 2009.
3.Mortenson, T., Ref. 1, pp. 25–33.
4.Brentnall, J. and Grigg, R., Darwin’s slippery slide into unbelief, Creation 18(1):34–37, 1995; creation.com/darwinslide.
5.Statham, D., Darwin, Lyell and the Origin of Species, J. Creation 24(1):65–71, 2010.
6.Bergman, J., Textbook tyranny, Creation 24(2):56, 2002; creation.com/textbook-tyranny.
7.Rummel, R.J., Death by Government, New Brunswick, N.J.: Transaction Publishers, 1994, Hall, R., Darwin’s impact—the bloodstained legacy of evolution, Creation 27(2):46–47, 2005; creation.com/darwinimpact.
8.Grigg, R., Eugenics … death of the defenceless, Creation 28(1):18–22, 2005; creation.com/eugenics.
9.Racism Q&A; creation.com/racism-questions-and-answers.
10.Wieland, C., Darwin’s bodysnatchers: new horrors, Creation 14(2):16–18, 1992; creation.com/bodysnatch.
11.Batten, D., et al., Creation Answers Book, Chapter 18: How did all the different races arise (from Noah s family)? creation.com/cab18.
12.Sarfati, J., The biblical roots of modern science; creation.com/roots.
13.Darwin, C., Descent of Man, 1871, Vol. 1, p. 201, Darwinonline.org.uk.
14.See also Bergman, J., The Dark Side of Charles Darwin, Master Books, Green Forest, 2011, pp. 211–232.
15.Grigg, R., Darwin’s mystery illnessCreation 17(4):28–30, 1995; creation.com/illness.
16.Taylor, I., In the Minds of Men, TFE Publishing, Toronto, 1984, p. 463, n.9. See Footnote 11 in Grigg, R., Charles Darwin’s mystery illness (Footnote 15 above).
17.Bergman, ref. 14, pp. 67–68. Also see creation.com/darwin-divine-design. 
18.Grigg, R., The trial and death of Adolf Eichmann; creation.com/eichmann. 


*참조 : 진화론이 학문에 끼친 영향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38&bmode=view

진화론이 끼친 해악 : 인종차별, 국수주의, 공산주의, 생명윤리 문제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39&bmode=view

창조론과 진화론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52&bmode=view

진화론이 인문학과 과학에 끼친 충격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11&bmode=view

진화론이 신학에 미친 영향

http://creation.kr/Faith/?idx=1293812&bmode=view

진화론이 교회에 미친 영향

http://creation.kr/Faith/?idx=1293787&bmode=view

진화론의 확산과 선교사의 사명

http://creation.kr/Faith/?idx=1293848&bmode=view

진화론의 유산, 우생학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이 남긴 인종차별 사상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63&bmode=view

런던동물원은 사람을 전시하였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83&bmode=view

오타 벵가의 비극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79&bmode=view

공교육 체계에서 문제아를 만드는 방법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30&bmode=view

진화론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81&bmode=view

핀란드 고교 총기사건의 살인자는 다윈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38&bmode=view

진화론은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을 조장했다고 아버지는 말한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29&bmode=view

나치즘의 뿌리였던 진화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28&bmode=view

진화론이 낳은 괴물, 아돌프 아이히만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64&bmode=view

히틀러의 진화론 대 기독교도의 저항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10&bmode=view

다윈의 진화론과 나치의 인종 대학살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13&bmode=view

나치의 기독교 말살 계획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08&bmode=view

린치버그의 거짓말 - 어떻게 미국의 진화론 학자들이 나치를 가르쳤는가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07&bmode=view

다윈과 트로츠키의 관계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06&bmode=view

진화론과 사회악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06&bmode=view

진화론이 끼친 해악 : 인종차별, 국수주의, 공산주의, 생명윤리 문제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39&bmode=view

스탈린의 잔인성과 진화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01&bmode=view

스탈린의 죽음의 철도가 폭로되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62&bmode=view

모택동은 다윈으로 인해 7천7백만 명을 살해했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07&bmode=view

중국 복음 선교에 진화론이 미친 영향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67&bmode=view

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은 양립할 수 없다. 

http://creation.kr/Faith/?idx=1293785&bmode=view

복음의 진로를 가로막는 견고한 진 - 진화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77&bmode=view

죽음의 문화, 그 뿌리에 있는 진화론 : 낸시 피어시의 신간 ‘당신의 몸을 사랑하라’

http://creation.kr/Faith/?idx=2980993&bmode=view

진화론이 설명할 수 없는 4가지 관측 사실.

http://creation.kr/Debate/?idx=1757512&bmode=view

성경과 진화론 양립이 가능한가?

http://creation.kr/Debate/?idx=1293661&bmode=view

다윈의 공헌? : 진화론과 성경은 혼합될 수 없다.

http://creation.kr/Debate/?idx=1293635&bmode=view

진화론과 기독교는 물과 기름 같다.

http://creation.kr/Debate/?idx=1293634&bmode=view

템플턴, 그레함, 라이엘, 그리고 의심 : 어떻게 ‘거짓말’이 한 복음전도자를 실족시켰는가?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75&bmode=view

성경적 창조신앙과 교회교육의 중요성 

http://creation.kr/Faith/?idx=1293862&bmode=view

왜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에 대해 배워야만 하는가? 

http://creation.kr/Debate/?idx=1293606&bmode=view

창조론이 학교 수업시간에 가르쳐져야만 한다. : 영국과 웨일즈의 교사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http://creation.kr/Education/?idx=1293524&bmode=view

비누방울 속에서 살아가기 : 교회가 창조과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84&bmode=view

내가 변증가가 되어야하는 이유

http://creation.kr/Faith/?idx=3658351&bmode=view

진화론은 사실인가? : 진화론자들이 자주 사용하고 있는 21가지 잘못된 주장

http://creation.kr/Textbook/?idx=1289684&bmode=view

과학수업에서 진화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면제되는가?진화론을 정밀히 검토해보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질문 33가지

http://creation.kr/Education/?idx=1293515&bmode=view

진화론자들에게 보내는 15개의 질문

http://creation.kr/Debate/?idx=1293672&bmode=view

유신진화론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는 이유

http://creation.kr/Faith/?idx=1757519&bmode=view

창조과학을 통한 선교전략과 선교전망

http://creation.kr/Faith/?idx=1293768&bmode=view

창조냐 진화냐 토론회 : 진화론측 주장과 반론

http://creation.kr/Debate/?idx=1293585&bmode=view

“내겐 성경이 있어 – 더 이상 뭐가 필요해?” : 창조/진화 논쟁은 불필요한 것인가?

http://creation.kr/Debate/?idx=1293673&bmode=view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ation.com/roots-and-fruits 

출처 - Creation 34(3):20–22, July 2012.

미디어위원회
2020-08-19

다윈의 불독 - 토마스 헉슬리 

: 그리고 헉슬리와 윌버포스의 옥스포드 논쟁 

(Darwin’s bulldog - Thomas H. Huxley)

Russell Grigg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1859년 자신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발표가 불러일으킨 과학적, 신학적, 도덕적 논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토마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는 그 논쟁에 뛰어들어, 스스로 자신을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이란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1] 다윈은 그를 ”나를 대신하여 복음 즉, 악마의 복음(devil’s Gospel)을 전하는 착하고 친절한 대리인”이라 불렀다.[2]


.토마스 헉슬리

1860년대에 인간의 유인원 조상(ape ancestors)과 동굴 인류(cave men)에 대한 이야기로 청중들의 넋을 잃게 하고, 격분시킨 사람은 다윈이 아니라 헉슬리였다. 추기경에서 칼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런던은 그의 재치 넘치는 강연으로 애태우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튼 손에 수염이 덥수룩한 노동자들이 인류의 조상에 관한 그의 강연을 듣기위해 무리지어 몰려왔다. 그는 오늘날의 복음 전도자 또는 대중음악 가수에 열광하는 부류의 군중들을 끌어들였다.”[3] ”

그의 선동, 즉 서양의 새로운 신앙인 불가지론(agnosticism, 이 용어는 그가 만들었음)이 세상을 휩쓸었다.”[3]


젊은 시절과 독학

토마스는 1825년 런던 근교의 일링 마을에서 헉슬리 집안의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그는 가난하게 자라 정규 학교 교육은 2년밖에 받지 못했다. 교회가 부자들의 사치품이었던 1840년대의 열악한 산업지역에서 살면서, 그는 독학을 통해 신분 향상을 추구하였다.

그는 12살 때에 제임스 허튼(James Hutton)의 책 ‘지구의 이론(Theory of the Earth)’을 읽으면서, 성경에 상반되는 지질학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역사, 과학 및 철학 서적의 열렬한 독자였던 그는 채링크로스 병원(Charing Cross Hospital) 의과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거의 모든 지식을 독학으로 습득했다.[4] 그는 런던 대학에서 의학사 시험 중 Part 1을 해부학 및 생리학 과목에서 수석을 차지하면서 통과했지만, Part 2에 응시하지 않는다.[5]

그 후 헉슬리는 남극해 측량선인 HMS 래틀스네이크(HMS Rattlesnake) 호의 보조 외과의사(외과의사의 조수)가 된다(1846-1850). 그는 정규 학사 학위를 취득하지 않았지만[6], 이 항해에서 얻은 다양한 해양 무척추동물의 구조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면서, 영국 과학계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을 확보한다[7]. 1851년, 25세의 나이에 그는 왕립학회 회원(F.R.S.)으로 선출되었으며, 또한 1852년 이 학회는 1년 전 찰스 다윈이 수상했던 로열 메달(Royal Medal)을 그에게 수여한다.


헉슬리와 다윈

1859년 11월, 다윈은 자신의 저서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을 발표한다. 다윈은 ‘무신론자로 비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20여 년간 그 발표를 미루고 있었지만, 알프레드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가 1년 전에 보냈던 편지에 자극을 받아 행동에 나섰다. 그 편지에서 월리스는 다윈의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과 동일한 견해를 밝히고 있었다.[8]

다윈은 그렇게 말하지 않도록 조심했지만, 궁극적으로 종의 기원은 인류가 창조된 것이 아니라, 단지 유인원(ape)에서 진화되었을 뿐임을 의미했다. ”그러나 천국의 약속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왜 우리가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9] 다윈은 이러한 모든 논쟁을 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헉슬리는 그렇지 않았으며, 그는 동료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차피, 원숭이에서 진화되는 것은 먼지에서 진화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라고 썼다.[10] 따라서 헉슬리가 대의명분을 필요로 했던 것 못지않게, 다윈은 대변자가 필요했으며, 곧 이어 다윈은 헉슬리를 자신의 ”가장 열렬하며 중요한 후원자”[11]이며, 또한 ”저주받을 이단을 전파하는 나의 착하고 존경스러운 대리인”[12]이라고 말한다.

헉슬리는 진화의 자연성을 열광적으로 지지하였지만, 놀랍게도 진화의 메커니즘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진화 속도에 관해서는 다윈과 의견이 맞지 않았다. 예를 들어, 다윈은 도약 진화 또는 ‘급격한 변화’를 모두 배제했다. 이로 인해 헉슬리는 다윈에게 쓴 편지에서, ”당신은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Natura non facit saltum)‘라는 것을 서슴없이 받아들여, 당신 자신에게 필요 이상의 어려움을 안겨주었다.”라고 말한다.[13] 또한 헉슬리는 인공선택과 자연선택 간의 유사성, 교배, 그리고 부모의 발달된 특성이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다윈의 범생설(Pangenesis)에 동의하지 않았다.[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헉슬리의 이러한 모든 양면성이 다윈의 학설에 관한 그의 광신적이고 적극적인 옹호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법학 교수인 필립 존슨(Phillip Johnson)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진화론적 자연주의 신념은 진화론자들의 다양한 집단이 결속되어서 나온 것이지, 어떤 명확한 체계적 명제에 관한 합의가 아니다.”[15]

헉슬리가 이와 같이 행동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학자인 게르트루드 힘멜파브(Gertrude Himmelfarb) 교수는, ”헉슬리는 한이 많은 사람이었다. 성직자들에 비해 낮은 과학자들의 신분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자기 발뒤꿈치를 ”성직자들의 입안에 넣고 짓이길 수”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의 기원은 그에게 그 기회를 부여했다”라고 말했다.[16]


헉슬리와 복음

노아의 홍수가 단지 지역적 홍수였다고 말하는 신학자들의 주장에 관하여 ”어린 아이라도 그러한 주장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헉슬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복음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으며, 반성경적 믿음인 진화론적 자연주의를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기독교인(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었다 :

”기독교 신학이 히브리 성경의 진실성 위에 서있다는 것을 한 순간이라도 의심하는 기독교인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당혹스럽다.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의 개념은 유대교 역사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나사렛의 예수와 메시아를 동일시하는 것은 히브리 성경 구절의 해석에 달려있는 것이다. 성경이 역사적 특성을 갖지 않는다면, 그에 관한 증거도 가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여호와가 아브라함과 약속하지 않았다면, 할례와 제사를 여호와가 명령한 것이 아니라면, ‘십계명’이 하나님의 손으로 석판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면, 아브라함이 테세우스와 같은 신화속의 영웅과 다를 바가 없다면, 노아의 홍수가 꾸며낸 이야기라면, 인류의 타락 이야기가 전설이라면, 창조 이야기가 한 선각자의 꿈이라면, 이러한 모든 분명해 보이는 실제 사건들의 확실하고 구체적인 기록들이 로마제국의 이야기보다 역사로서의 가치가 없다면, 이런 것들보다 훨씬 불분명하게 언급된 메시아에 관한 교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이러한 빈약한 꾸며낸 이야기를 확실한 사실로서 믿고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기독교 교리의 기초를 세웠던 신약성경의 저자들의 권위는 무엇이 되는가?”[17]

헉슬리는 ”노아의 홍수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상세한 사실의 필연적인 결과임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라고 덧붙이고 있었다.[18] 그리고는 노아의 홍수가 단지 지역적 홍수였다고 말하는 신학자들의 주장에 관하여 ”어린 아이라도 그러한 주장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19]

”하나님이 죄악을 심판하는 방식의 한 사례를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사실로 설명하고 있다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다.”

계속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예수가 사실로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라고 말했다면, 노아 홍수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예수가 믿었다는 것인가, 믿지 않았다는 것인가? 내가 보기엔 그 이야기는 노아의 아내와 며느리들을 언급함으로써, 홍수 전의 사람들이 결혼을 했고, 자식들을 결혼시켰다는 사실을 성경이 확실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으며, 그 이야기를 틀림없는 사실로 확고히 믿는 자가 그들의 일상사를 기록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더욱이 하나님이 죄악을 심판하는 방식의 한 실례를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사실로 설명하고 있다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다. 부주의한 사람들을 휩쓸어간 노아의 홍수가 없었다면, 늑대가 없을 때 ‘늑대’의 울음소리보다 더 좋은 경고는 무엇인가? 만약 요나가 고래 뱃속에서 3일 동안 있었던 일이 '인정된 사실'이 아니라면, '앞으로 다가올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프랑스에서처럼 보수당의 연설가가 중대한 정치적 및 사회적 변혁이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의 지배로 귀착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청중에게 경고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 자신이 로베스피에르의 존재와 그의 행위를 믿지 않고 있다면, 그의 논거뿐만 아니라, 진실성은 어떻게 되는가?”[20]

마태복음 19장 4~5절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 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에 관하여, 헉슬리는 다음과 같이 썼다 :

”창세기 2장 24절 말씀에 대한 신성한 권위가 없다면, 그 말은 얼마나 가치 없는 말인가?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인류의 타락 이야기를 하나의 ’유형‘ 또는 ’우화‘로서 아무렇게나 여길 수 있다면, 바울 신학의 기초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21]

또한 고린도전서 15장 21~22절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에 관하여, 헉슬리는 다음과 같이 썼다 :

”만약 아담이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족 영웅)보다 더 실존 인물이라 생각할 수 없다면, 또한 인류의 타락 이야기가 심오한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비슷한 한낱 교훈적인 ‘유형’이라면, 바울의 변증법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성경 말씀을 타협하고 있는(유신론적 진화론) 신학자들의 태도를 지적하면서, 헉슬리는 ”신학자들이 취한 (타협적) 태도가 옹호될 가망이 없음”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윈의 죽음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다윈이 죽자, 헉슬리의 주도 하에 다윈은 그의 고향인 다운(Downe)이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 묻혔다. 헉슬리와 그의 무신론자 친구들은 그렇게 하도록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캐논 파라(Canon Farrar)에 압박을 가했으며, 다른 친구들은 하원의 지지를 끌어냈다. 이렇게 해서, 헉슬리가 그렇게 경멸했던, 진화론과 쉽게 타협했던 자유주의적 성직자들에 의해서, 불가지론자 다윈은 종교적으로 숭고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게 되었던 것이다.

13년 후에 헉슬리도 죽었다. 몇몇 사람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국장을 치룰 것을 제안했으나, ”헉슬리는 그러한 제안이 있을 것을 예상했고 그렇게 못하게 했다.”[22] 대신 그의 장례식은 일부 과학자와 무신론자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향에서 조촐하게 거행됐다. 이러한 생각은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라는 말씀이 보통 사람들에게만 해당하고, 왕립협회 회원인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기를 바랬던 그의 간절한 생각들 중 하나였다.”[23].


헉슬리의 생애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1981년 미국 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은 ”종교와 과학은 별개이며, 같은 문맥의 설명이 과학적 이론과 종교적 믿음 모두의 오해로 이어질 수 있는 인간 사고에 있어서 상호 배타적인 영역이다”라고 결의하고 있다.[15] 법학 교수인 필립 존슨(Phillip Johnson)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토마스 헉슬리의 생애는 이러한 난센스의 가장 좋은 대답이 되고 있다. 사실상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하나님의 문제와 늘 붙어있으며, 진화론적 자연주의(evolutionary naturalism)의 요점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여, 문 뒤에 남겨지도록 만드는 것이다.”[15]


헉슬리와 윌버포스의 논쟁
(Huxley’s Debate with Wilberforce)


헉슬리는 영국과학진흥협회(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의 연례 회의에서 옥스퍼드의 성공회 주교인 사무엘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 노예 제도를 반대한 정치가인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의 아들)와 벌인 논쟁으로 인하여 오늘날 잘 알려져 있다. 이 논쟁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7개월 후인, 1860년 6월 30일, 옥스퍼드 박물관의 도서관에서 700명 이상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헉슬리와 윌버포스는 논쟁에 앞서 ‘종의 기원’에 대한 논평을 기술했다. 헉슬리는 1859년 12월 26일 타임스(The Times) 지에 5,000 단어 길이의 과찬하는 기사를 발표했다. 수학과를 수석 졸업했으며, 열성적인 조류학자이고, 영국과학진흥협회의 부회장이었던 윌버포스는 1860년 7월, Quarterly Review 지에 18,700 단어 분량의 주의 깊게 논증하는 과학적 평가를 기고했으며[24], 여기에서 그는 6페이지(239-245페이지)를 할애하여 한 종(species)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되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질학적 기록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 관한 윌버포스의 논평을 읽으면서, ”사고력이 대단히 뛰어나며, 대부분의 추측된 부분들을 정학하게 지적하고, 모든 문제점들을 잘 제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25]

옥스퍼드 논쟁에서, 윌버포스는 종의 기원에 대한 자신의 논평을 요약하여 제시했다. 그의 연설은 ”무지, 편견과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일반적인 표현으로서) 사실상 그 시대의 대중들이 다윈의 저서에 대해 품고 있었던 많은 과학적 반론들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26] ”그가 본 바와 같이, 또한 대부분의 청중들이 본 바와 같이, 이러한 논평은 (종의 기원이) 과학적 사실로서 왜곡되었음을 증명했으며, 이를 밝히고자 계속 효과적으로 발언했고, '또한 좋은 반응'을 얻었다.”[27] 그 후 헉슬리가 연설했으며, 이어서 로버트 피츠로이(Robert FitzRoy, 다윈과 함께 항해를 했던 비글호의 선장)와 다윈의 친구인 조셉 후커(Joseph Hooker)가 발언했다.

이 논쟁에 관한 오늘날의 설명들 대부분은 윌버포스가 헉슬리에게 자신의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 중 어느 측이 유인원(ape)과 친척인지 질문했었다는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한 답변에서 헉슬리는 자기의 재능과 영향력을 중요한 과학적 토론을 조롱하는데 사용하는 인간보다는 차라리 유인원을 할아버지로 택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 논쟁에서 이와 같이 알려진 언쟁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보인다. 루카스(J. R. Lucas)는 Nature 지[29]에 개괄적으로 소개된 Historical Journal[28]의 장문 기사에서, 이 이야기에 유리한 증거와 불리한 증거를 요약하고 있었다. 그는 청중이 하원 전체보다 많았기 때문에, 그 논쟁의 시끄럽고 다소 공격적인 분위기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발언 내용을 전부 들을 수 없었거나, 또는 발언 내용을 모두 정확하게 들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후커는 이틀 후 다윈에게 쓴 편지에서 이러한 점을 언급하지 않았다.[30] 당시 정기 간행물의 기자 보도에도 이와 같은 점은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루카스는 ”아세니움(The Athenaeum) 지의 3개 기사와 잭슨 옥스퍼드 저널(Jackson's Oxford Journal)의 한 짧은 기사들이 있었는데, 이 기사들의 설명은 서로 달랐다. 그 어느 기자도 이렇게 놀랄만한 언쟁을 보도하지 않았으며, 그 언쟁의 엄청난 영향을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기록했다.[31] 마찬가지로 이브닝 스타(Evening Star) 지도 다음 날 그 논쟁에 관한 기사를 실었지만, 그와 같이 알려진 언쟁을 언급하지 않았다.[32]

옥스포드 논쟁이 일어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공개된, 다윈의 지지자들이 쓴 다양한 형태의 편지들은 상당히 다르다. ”다윈이 아들인 프란시스(Francis)가 1887년 편찬한 ‘다윈의 생애와 편지(Darwin’s Life and Letters)‘에서 그 일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33, 34] 그 언쟁을 말한 그대로 옮겨놓은 설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헉슬리 자신에 의하면 그의 말은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할아버지로서 보잘 것 없는 유인원과 선천적으로 고귀하게 태어났으며 뛰어난 영향력을 갖추고 이러한 능력을 이용하는 인간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나에게 질문한다면, 또한 중요한 과학적 논쟁에 웃음거리를 끌어들이려는 단순한 목적으로 이용한다면, 나는 주저함 없이 유인원을 더 좋아한다고 단언한다.”[35] 헉슬리는 자신에게 가상적인 질문을 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만약 윌버포스가 실제로 그렇게 물어보았다면, 헉슬리는 분명히 ”주교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또는 윌버포스를 지명하면서, ”귀하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이라고 말해야 했겠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또한 윌버포스는 ‘할머니’란 단어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헉슬리의 자서전을 쓴 작가인 아드리안 데스몬드(Adrian Desmond)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논쟁은 서로가 상당히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승자’를 가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헉슬리는 자신이 ”옥스포드의 논쟁에서 4시간 내내, 그리고 그 후 20시간 동안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고 믿었고, 후커는 ”여러 차례의 갈채 속에” 윌버포스를 결과적으로 ‘패배’시킨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생각했다. 혼란 속에서 정신이 없던 투사들은 윌버포스가 의기양양하게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윌버포스는 ‘어떠한 악의’가 없었으며, 헉슬리를 제압했다고 확신했다.”[36].

이 논쟁에 대한 설명이 편향되고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아마도 그 설명들로 말미암아, 역사는 이 논쟁을 일반인들이 진화론을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본 주제에 대한 최신 정보는 ‘헉슬리와 윌버포스의 논쟁을 다룬 아래 Related Articles를 참조하기 바란다.


Related Articles
Darwin’s real message: have you missed it?
What did Wilberforce really say to 'Darwin’s bulldog”?


Further Reading
Charles Darwin Questions and Answers


References
1.Not to be confused with ‘Darwin’s Rottweiler’, a term coined by Oxford theologian Alister McGrath about Richard Dawkins.
2.C. Darwin to T.H. Huxley, 8 August 1860.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Edited by Francis Darwin, 2:123–124, D. Appleton & Co., New York, 1911.
3.Desmond, A., Huxley: From Devil’s Disciple to Evolution’s High Priest, Addison-Wesley, Massachusetts, USA, 1997, adapted from dust-cover and p. xvii.
4.‘In his teens he taught himself German, eventually becoming fluent and used by Charles Darwin as a translator of scientific material in Germen.’ Thomas Henry Huxley, Wikipedia, en.wikipedia.org/wiki/Thomas_Henry_Huxley, 6 February 2008.
5.Ref. 3, pp. 34–35.
6.‘His only degree 'qualifications” thus were honorary doctorates—from Breslau, Edinburgh, Dublin, Cambridge, Würzburg, Oxford, Bologna, and Erlangen’ received in his later years.’ Encyclopaedia Britannica 6:179, 1995.
7.Two papers by Huxley were published by the Linnean Society and one by the Royal Society.
8.See Grigg, R., Alfred Russel Wallace: ‘co-inventor’ of DarwinismCreation 27(4):33–35, 2005.
9.Ref. 3, p. 266.
10.T.H. Huxley to Frederick Dyster, 30 January 1859, as quoted in ref. 3, p. 253.
11.Ref. 3, pp. 267.
12.C. Darwin to T.H. Huxley, 16 December 1859, More Letters of Charles Darwin, ed. Francis Darwin and A.C. Seward, John Murray, London, 1903, 1:131, Letter 85, as quoted in darwin-online.org.uk/content/frameset?itemID=F1548.1&viewtype=text&pageseq=1, 12 March 2008.
13.T. H. Huxley to C. Darwin, Nov. 23, 1859. Ref. 2, pp. 26–27.
14.Blinderman, C. and Joyce, D., The Huxley File, #4 Darwin’s Bulldog, aleph0.clarku.edu/huxley/guide4.html, 12 March 2008.
15.Johnson, P.E., Thomas Huxley, A Pioneer in a Still-Raging Scientific Debate, Washington Times, 4 January 1998, p. B8.
16.Ernle, Quarterly Review, ccxxxix, (1923), 224, as quoted by Himmelfarb, G., Darwin and the Darwinian Revolution, Chatto &Windus, London, p. 217, 1959.
17.Huxley, T., Science and Hebrew Tradition, Vol. 4 of Huxley’s Collected Essays, ‘The Lights of the Church and the Light of Science’, (1890), pp. 207–208, aleph0.clarku.edu/huxley/CE4/Lights.html, 18 March 2008.
18.Ref. 17, p. 214.
19.Ref. 17, p. 225.
20.Ref. 17, pp. 232–233.
21.Ref. 17, pp. 235–236.
22.Ref. 3, p. 611.
23.Ref. 3, pp. 612–613.
24.Wilberforce’s Review of the Origin of Species is available at usp.nus.edu.sg/victorian/science/science_texts/wilberforce.htm (last accessed 14 May 2010), 26 March 2008.
25.C. Darwin to J.D. Hooker, July 1860, ref. 2, pp. 117–118. Return to text.
26.Gauld C., Update: The Huxley-Wilberforce Debate, [An analysis of 63 books on the subject.] Ships Resource Center, www1.umn.edu/ships/updates/wilbrfrz.htm, 13 March 2008.
27.Lucas, J.R.,Wilberforce and Huxley: a Legendary Encounter, The Historical Journal 22(2):319, 1979.
28.Ref. 27, pp. 313–330.
29.Lucas, J., Wilberforce no ape, Nature 287:480, 9 October 1980.
30.Bowlby, J., Charles Darwin: A New Life, W.W. Norton & Co., New York, pp. 354–55, 1990.
31.The Athenaeum, nos. 1705, 1706, 1707, 30 June, 7 July, 14 July 1860; Jackson’s Oxford Journal 7 July, 1860. Quoted in ref. 27, p. 315.
32.Ref. 30, pp. 358–59.
33.See Blackmore, V. and Page, A., Evolution the Great Debate, A Lion Book, Oxford, UK, p. 103, 1989.
34.One source is Mrs Isabella Sidgwick, writing as ‘Grandmother’ in Macmillan’s Magazine 78(468):433–434, October 1898, i.e. 38 years later. Available in ref. 27, pp. 313–314.
35.T.H. Huxley to F. Dyster, 9 September 1860, quoted in ref. 3, p. 279.
36.Ref. 3, p. 280.


번역 - 김은태

링크 - http://creation.com/darwins-bulldog-thomas-h-huxley 

출처 - Creation 31(3):39–41, June 2009.


미디어위원회
2020-06-15

현대 과학에서 이루어지는 교묘한 우상숭배 

(Subtle Idolatry in Modern Science)

by Brian Thomas, PH.D.


      현대 과학을 철저히 믿고 있는 무신론 사상가들조차도, 우상숭배는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우상숭배의 중심에는 경배와 철저한 추종이 있다. 성경은 고대 이집트인, 가나안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상숭배의 문화를 갖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이 힘을 갖고 있으며, 개인적, 정치적, 또는 물리적 사건을 변경시킬 수 있는 것으로 상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생명이 없는 어떤 물체에 신과 같은 속성을 부여하는 것을 비웃는 일부 과학자들도 비슷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 각 사람은 교묘한 우상숭배의 뿌리를 근절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야만 한다.

로마서는 우상숭배와 그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로마서 1:24-25)

나는 시카고 대학에서 전시됐던 손 크기의 고대 가나안인의 우상과 중국의 현대적 불교 우상을 촬영했었다. 수천 년의 시간과, 수천 마일의 거리가 분리되어 있었지만, 그것들은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 숭배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신론자들도 그것이 우상숭배인지 모르면서 거기에 빠질 수 있다. 우상숭배는 너무나 피해가 크고 널리 퍼져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그것을 가장 먼저 제 일 계명으로 금지하셨다.[1] 현대의 과학적(진화론적) 사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자연이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고, 자연의 힘을 숭배한다.

과학자인 마크 할렛(Mark Hallett)과 맷 웨델(Mathew Wedel)은 “용각류 공룡(The Sauropod Dinosaurs)”이란 책을 저술했다. 그들은 이렇게 쓰고 있었다 :

자연선택은 수억 년 전에 바다전갈의 공격에서 고대 물고기의 보호를 위해 진화했던 골모세포(osteoblasts)로부터, 엄청난 무게의 용각류의 이동과 유연성을 제공하는, 강하고 가벼운 경이로운 생물공학적 구조를 진화시켰다.[2]

이들은 창조주를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로 대체했다. 이것은 물리적 사건들에 우상의 힘을 믿고 있었던 고대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실수하지 마라. 용각류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정교한 설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할렛과 웨델은 그들의 책 전체에 설계(design)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가볍게 만들어진 짧은 두개골”이라고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만들었다는 것인가? 그들은 용각류의 긴 척추와 관련하여, “각각의 우아하고 조각한 것처럼 보이는 뼈의 모양은, 거대한 동물에게 최소한의 뼈로 필요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4] 실제 조각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이 자연인가? “기능을 수행하도록” 및 “조각한” 것과 같은 용어는 의도적이고, 인격적이며, 지성적이고, 지각이 있는 건축가를 의미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그 모든 기준을 충족시킨다. 무작위적 돌연변이에 기초한 자연주의적 과정은 그렇지 않다.

기후, 바람, 포식행동과 같은 자연적 과정이, 건축가나 공학자처럼 멋진 건물이나 복잡한 기계를 만드는 것을 관측한 사람이 있는가? 사람은 멋진 건물이나 복잡한 기계를 만들 수 있다. 하나님도 만드실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은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우상처럼, 마음, 지성, 또는 선택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생물들에서 발견되는 경이로운 복잡성과 설계를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려야하는 경배를 강탈하여 자연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5]

그렇다면 자연주의라는 우상숭배를 근절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설계(design)라는 단어를 보게 될 때, 실제 설계자를 염두에 두어야한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비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할 때, 그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고, 자연주의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실제로 자연적 과정이 수행했다는 증거를 요구해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그들에게 실제 설계자에 대해 알려주고, 그 분께 경배와 존경을 표현할 것을 말해보라!


References

1.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Exodus 20:3).

2. Hallett, M. and M. J. Wedel. 2016. The Sauropod Dinosaurs: Life in the Age of Giants. Baltimore, MD: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59.

3. Ibid, 54.

4. Ibid, 63.

5. “I am the Lord, who makes all things, who stretches out the heavens all alone, who spreads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iah 44:24).

* Dr. Thomas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aleobiochemistry from the University of Liverpool.

Cite this article: Brian Thomas, Ph.D. 2020. Subtle Idolatry in Modern Science. Acts & Facts. 49 (5).


*참조 : 용각류 공룡 목의 경늑골에서 보여지는 놀라운 설계

http://creation.kr/animals/?idx=1291190&bmode=view

용각류 공룡이 직면했을 긴 목의 물리학 : 기린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기관들이 공룡에도 있었을까?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601&bmode=view

용각류와 기린의 긴 목은 진화론을 부정한다.

http://creation.kr/NaturalSelection/?idx=3009974&bmode=view

키가 큰 공룡들은 머리를 들 수 없었는가? 

http://creation.kr/Dinosaur/?idx=1294547&bmode=view

용각류와 기린의 긴 목은 진화론을 부정한다.

http://creation.kr/NaturalSelection/?idx=3009974&bmode=view

진화론자들은 자연을 신격화하고 있다 : 가이아 이론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자연숭배 사상 

http://creation.kr/NaturalSelection/?idx=1757450&bmode=view

가이아 이론과 자연숭배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3128683&bmode=view


출처 : ICR, 2020. 4. 30.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subtle-idolatry-in-modern-scienc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0-04-08

다윈의 퀴슬링 

: 다윈을 도왔던 믿음의 변절자, 찰스 킹즐리 

(Darwin’s quisling : Charles Kingsley)

Russell M. Grigg

 

*퀴슬링(Quisling) : 적을 도와준 사람. 배신자, 매국노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노르웨이를 점령한 독일의 나치당에 협조했던 노르웨이 육군 장교인 Vidkun Quisling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단어).


     믿음을 배반한 성직자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아마도 다윈의 길을 확장하였던 유명한 저자처럼 파괴적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쓴 책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의 1,250부 제1판은 1859년 11월 24일에 출판되었다. 책은 공공연한 소동을 일으키게 되었고, 제1판 전체는 당시 출판물에 열심이었던 한 사람에 의해서 모두 사들여졌다는 항간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1] 영국을 가로질러 종교계로부터 신속히 비난받았다.


한 협력자의 발견

창세기의 창조 설명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이러한 이론에 대한 교회의 적의는 다윈과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조셉 후커(Joseph Hooker)와 같은 그의 매니저들에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이론의 전파를 촉진시켜줄 과학을 조금 알고 있는 저명한 성직자를 열심히 찾았다. 그리고 그들은 찰스 킹즐리 신부(Rev. Charles Kingsley)를 발견했다. 킹즐리는 1842년에 영국 국교회(성공회, Anglican)의 보좌사제로서, 그리고 2년 후에 교구사제로 임명되었던 아마추어 박물학자(naturalist)였다. 그는 기독교 사회주의자 운동(Christian Socialist movement)의 설립 멤버 중 하나였다. 그는 가난한 자의 원인을 다루었던 소설의 작가로서 알려져 있었고, 역사 소설인 ‘히파티아(Hypatia, 1853)’와 ‘이봐 서쪽이야(Westward Ho, 1855)’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1859년에 그는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의 예배당 근무 사제(Chaplain)로 임명되었다.


다윈은 킹즐리에게 ‘종의 기원’ 제1판의 복사본을 보냈다. 킹즐리는 그에 대한 감사 편지에서 과도하리만큼 다윈을 칭찬했다. 킹즐리는 "당신의 명망과 직관력, 그리고 내가 알게된 많은 사실들은 나를 두렵게 합니다. 만약 당신이 옳다면, 내가 믿어왔고 저술해왔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라고 썼다 [2]. 확실히 이것은 그에게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각 종류의 생물체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미신(superstition)’으로부터 이제는 자유롭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윈은 영국 국교회의 고위 성직자로부터 이러한 지지를 받는 것에 너무도 기뻐서 그는 ‘종의 기원’ 제2판의 마지막 장에 킹즐리의 편지를 서둘러서 첨부시켰다. 그 책은 단지 2달 후에 출판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유명한 책의 저자이며 성직자인 분이 나에게 편지를 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소수의 원래 형태를 창조하시고, 이들이 다른 필요한 형태로 스스로 발달해가도록(self-development) 하셨다는 개념을 점점 배워가고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창조의 새로운 행위로서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서 빈 공간이 채워지도록 하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이것은 하나의 전략적인 움직임이었다. 다윈은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과 조화되려고 하였다.[4, 5]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킹즐리의 편지를 익명으로 인용하자, 그 글을 읽은 한 비판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부름 받은 성직자가 믿음에 치명적인 그러한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6] 다윈에게 그의 이름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다윈은 이것을 거절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직자의 시인은 다른 교회 지도자들의 반발을 무마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익명성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863년에, 킹즐리는 ‘물의 아이들(The Water Babies)’ 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여러 가지로 진화를 암시하는 괴기스런 어린이 책이었다. 예를 들면, 톰(Tom, 아가미를 가지고 물 속에서 살아가는 양서류가 된 어린이)은 어머니 캐리(Mother Carey, Mother Nature와 비슷함)에게 다가와서 말한다. "어머니, 어머니는 오래된 짐승에서 새로운 짐승을 만들어내느라고 항상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그녀는 대답한다. "새로운 짐승들을 만드는 데에 그렇게 어려운 것은 없단다... 여기 앉아 있으면, 그것들은 스스로 만들어져 나오기 때문이지.”[7] 또 다른 장에서, 세대가 지나가면서 점차로 원숭이로 변해가는 인간 종족에 대한 놀림조의 이야기가 있다. 킹즐리는 동화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이제 사람들은 환경, 선택, 경쟁 등등에 의해서 짐승(beasts)이 사람으로 되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짐승이 사람으로 될 수 있다면, 환경, 선택, 경쟁의 똑같은 법칙에 의해서 사람도 짐승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8]  


헉슬리의 친구

킹즐리는 진화론 편을 드는 데에 매우 열심이었다. 그는 다윈과 라이엘(Lyell)과 관계를 갖고 있었고, 반기독교적 영국 생물학자로서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으로 알려진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와 친구 관계를 유지하였다. 헉슬리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킹즐리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었다 : "그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다윈 신봉자였다. 그리고 그러한 이설에 그가 찬성하는 것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현했던 에일즈버리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와 내가 같은 두꺼비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무엇이겠는가! 경박한 나이 많은 부인이 그러한 표현에 자기가 놀림을 당했는지, 아니면 킹즐리를 숭배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9]    

1867년에 킹즐리는 왕립연구소에서 주최한 ‘과학과 성경(Science and Scripture)’이라는 제목의 두 번의 강연에서 공개적으로 사람은 원숭이의 후손이며, 이 세계는 수백만 년이 되었다는 그의 믿음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1867년 프레이져 매거진(Frasers Magazine) 6월, 7월호에 실리게 되었다.[10]

킹즐리가 그의 위치에서 창세기의 창조 설명을 거부하고 진화론을 받아들인 것이 그를 인종차별주의적 견해(racist views)를 신봉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약 인간들 그룹이 오랜 세월 동안 격리되어 다양한 특성들로 진화되어 왔다면, 덜 진화된 종족이 있었을 것이며, 이들은 다른 종족들 보다 덜 사람이 되었을 것이었다. 킹즐리는 그의 설교집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아프리카의 흑인들과 정확히 같은 종족인 호주의 검은 원주민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모든 시도는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들에게는 결국은 실패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짐승들처럼 이 땅에서 멸망되어야만 한다.” [11, 12]          


패튼(Paton)에 의해서 논박되다

뉴헤브리디스(New Hebrides) 제도의 선교사였던 존 패튼(John G. Paton, 1824–1897)은 킹즐리의 설교집을 읽었을 때 매우 마음이 아팠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기가 알고 있었던 호주 원주민 크리스천 여자인 노라(Nora)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서 반응했다. 그것은 마치 유명한 설교자가 주장했던 모든 것을 산산조각내는 것 같았다. 패튼은 썼다 :

"...그녀는 비참한 오두막집 안에서 아파하며 누워있었다. 방문자들은 그녀가 자기의 불쌍한 동족들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을 설명해주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의 친구인 로더릭 우쿠하트(Roderick Urquhart, Esq.)는 그 장면을 극복하기 위해 말했다. ”노라, 내가 당신을 여기서 보게되어 마음이 아픕니다. 당신의 아픔에 모든 위로를 드립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내 삶의 변화가 정말로 나를 건강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 역시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나의 불쌍한 남편(알콜중독에 빠져있던)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그를 주님의 발 앞으로 인도하신다면, 나는 아무 것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12] 

패튼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

"복음은 근처의 같은 호주 원주민 종족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우리가 있던 아네이티움(Aneityum) 섬의 3,500명의 식인종들이 그들의 이교 숭배를 포기하였고, 문명화되었고, 크리스천의 삶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사모아(Samoa)에서는 34,000명의 식인종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뉴헤브리디스 제도에서는 12,000명 이상의 식인종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 모두가 완전한 크리스천들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133명의 원주민들이 훈련을 받았고, 복음 설교자와 교사로 세워졌고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스도는 영국과 호주에 있는 크리스천들에 의해서 그를 따르는 호주 원주민들의 마음과 삶속에 동일한 방법으로 들어오셨고 축복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12]     

킹즐리는 진화론을 찬성하고 창세기의 창조를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 원주민에 관한 모든 설명들에서 틀렸다. 다윈과 헉슬리에 대한 킹즐리 신부의 협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정확성에 의문을 일으키고 훼손하고자 했던 그들의 작업을 돕게되었다. 따라서 그는 시대는 조금 틀리지만 이 글의 제목과 같은 이름을 부여받을만 한 사람인 것이다.

다윈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지지를 통해, 킹즐리는 1863년에 찰스 라이엘의 후원에 의해서 지질협회(Geological Society)의 특별회원(Fellow)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873년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참사회원(Canon of Westminster Abbey)이 되었고, 1875년 그가 죽은 후에, 대리석 흉상이 그곳 창문턱에 놓여지게 되었다. 다윈은 1882년에 이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묻혔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인 창세기를 훼손하는 데에 앞장섰던 두 사람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 중의 한 곳에 명예롭게 묻혀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Related Articles


Further Reading


References and notes

1. Apparently the book was not even advertised. Freeman has suggested that most, if not all, of the first edition was bought up at the dealer’s auction before the official publication date, by an agent of Lyell and Hooker, and that these copies were then sent free to sympathisers and other prominent people whom the principals wished to influence. (Taylor I., ; In the Minds of Men, TFE Publishing, Toronto, Canada, pp. 355–56, 1984, who cites Freeman, R., The Works of Charles Darwin, an annotated bibliographical handlist, Dawsons of Pall Mall, London, p. 21, 1965.)

2. Kingsley’s letter of thanks was dated 18 November 1859, which means he received his copy at least a full week before the official publication date. ‘Kingsley to Darwin, November 18, 1859’,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D. Appleton and Co., London, Vol. II, pp. 81–2, 1911.

3. Darwin, C., On the Origin of Species, 2nd edit.,John Murray, London, p. 481, 1860. Note that this is slightly different from the wording that appears in Ref. 2. Himmelfarb suggests that either Kingsley altered it when he gave permission for it to be used or Darwin himself altered it for greater clarity. See Ref. 6, p. 400, note 41.

4. Darwin wrote : "I would give absolutely nothing for the theory of Natural Selection, if it requires miraculous additions at any one stage of descent." ‘C. Darwin to C. Lyell, October 11th 1859’,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D. Appleton and Co., London, Vol. II, p. 7, 1911.

5. See also Brentnall, J.H. and Grigg, R.M., Darwin’s slippery slide into unbelief, Creation18(1):34–37, 1995. Also Wieland, C., Darwin’s real message: have you missed itCreation14(4):16–19, 1992.

6. Himmelfarb, G., Darwin and the Darwinian Revolution, Chatto and Windus, London, p. 246, 1959, who cites Bree, Species not Transmutable, p. 244.

7. Kingsley, C., The Water Babies, Penguin Books Ltd, London, Puffin abridged edition, p. 191, 1984. Original edition 1863.

8. Ref. 7, pp. 158–165.

9. Desmond, A., and Moore, J., Darwin, Michael Joseph, London, p. 488, 1991, who cite ‘Huxley to F. Dyster, 29 February 1860’, Thomas Huxley Papers, Imperial College of Science and Technology, London.

10. Chitty, S., The Beast and the Monk: A Life of Charles Kingsley, Hodder and Stoughton, London, p. 215, 1974.

11. Kingsley, C., Sermons on National Subjects, Sermon XLI, Macmillan & Co., pp. 414–17, 1880, cited in Ref. 12.

12. John G. Paton, Autobiography, ed. by Paton, J., Banner of Truth Trust, Edinburgh, pp. 263–65, 1965.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charles-darwins-quisling-charles-kingsley

출처 - Creation 22(1):50–51, December 1999.


미디어위원회
2020-02-20

가이아 이론과 자연숭배

(Gaia and Selectionism's Nature Worship)

by Randy J. Guliuzza, P.E., M.D.


      생명체에는 목적을 갖고 함께 작동되는 많은 시스템들이 들어있다. 예를 들어, 심장과 혈관으로 구성된 순환기계는 생명유지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의도적인 결과는 항상 의지를 가진 주체의 행동을 나타내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연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심장과 혈관 같은 것들이 무작위적 과정으로 우연히 생겨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진화론적(반-설계적) 세계관을 갖고서, 자연(nature)이 주체가 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장 적합한" 특성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창조론자들이 목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선택론자들은 자연선택 과정에 의한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고 인식한다.

선택론자(selectionists)들은 이 복잡한 복잡성 뒤에 있는, 의지적이고 창조적인 행위자(agent)로서 하나님을 자연(nature)으로 대체했다. 놀랍게도 성경은 이러한 일이 있을 것임을 정확하게 말씀해 놓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생물들 사이의 밀접한 상호의존성의 기원에 대한 선택론자들의 가설을 검토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자연숭배로 바꾸어버렸다.

로마서 1장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종교적 관습을 설명하고 있다. 25절에서 당시 그리스 사람들이 하던 일을 보여준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롬 1:22~25) [2]

간단히 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연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창조되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 논문에는, 자연에 신과 같은 능력을 투사하는 일이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 일부 진화론자들은 자연을 "가이아(Gaia)"로 의인화하고 있다. 영국 엑서터 대학(University of Exeter)의 진화생태학자인 팀 렌톤(Tim Lenton)과, 프랑스의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가 Science 지에 게재한 글 "가이아 2.0(Gaia 2.0)"에서 자연의 인식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3] 이 논문은 현대의 진화론자들이 어떻게 종교적으로 하나님보다 자연숭배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학 저널들은 가이아처럼 자연을 숭배한다.

자연에 대한 특별한 명칭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숭배했던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1970년대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과 린 마르굴리스(Lynn Margulis)가 처음으로 제안했던, 가이아 이론(Gaia hypothesis)은 지구의 물리적 생물학적 과정들이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자기-조절적이고, 본질적으로 지각 있는(sentient)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4]

호주의 철학자 피터 고드프리-스미스(Peter Godfrey-Smith)는 가이아가 의미하는 바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

지구는 살아있는 생물체가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 조절을 하고, 변화에 반응한다고 그(러브록)는 주장했다. 지구는 스스로 살기 위해 행동한다... 가이아는 생물체에서 들어있는 종류의 자기 조절 메커니즘을 통해서, 살아있는 지구가 스스로 유리한 상태가 되도록, 온도와 산소 같은 요소들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설에서 가장 강력한 진술은 지구가 실제로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5]

요컨대, 가이아는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유리한 조건에 도달하기 위해서, 탐지 활동을 할 수 있는, 본질적으로 지각이 있는, 살아있는 행성이라는 것이다. 팀 렌톤(Tim Lenton)은 가이아를 하나의 이론적 틀로 쓰지 않았다. 가이아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며, 지구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작동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의식적으로 가이아와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사람은 가이아와 하나라고 느끼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가이아는 스스로 변화하고, 변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가이아 내에서 이러한 의식적 선택을 하는 것은, 가이아 2.0이라 불리는, 근본적으로 가이아의 새로운 상태“라고 믿고 있었다.[3]

렌톤은 사람이 만든 기계와 가이아가 자원을 소비하는 방식을 서로 대조함으로서, 자연에게 의지와 지혜를 부여하고 있었다 :

가이아에 의해서 이루어진 철저한 조사는 많은 인간적 혁신들의 품질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이아와 비교했을 때, 인간의 혁신은 매우 열악하게 결합되어있고, 지속 불가능한 발명의 집합체이다. 이는 인간이 발명을 중단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학자들이 가이아만큼 똑똑해지도록 관심을 기울여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3]

진화론자인 포드 두리틀(W. Ford Doolittle)의 최신 글 "가이아의 만들어지는 진화적 감각"은 동일한 수준의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었다.[6] 그는 선택론과 가이아 사이의 두 관련성을 전개시키고 있었다. 첫째, 진화론자들은 네 발 가진 육상동물이 고래로 변하는 것과 같은 생생한 상상력을 활용하여,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다양한 생물들이 하나의 개별 생물체를 구성한다고, 그는 제안한다. 고드프리-스미스는 이러한 접근 방식은 "한때 한 생물체라는 개념이 완화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5] 그 "개체"는 서로 다른 다중의 생물 개체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생태계 수준의 개체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리틀은 결국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들은 가이아(Gia)라는 집단적 "생명체의 특성"에 흡수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둘째, 두리틀은 이 혼합에 진화를 추가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이해”를 더욱 “잡아 늘려야”만 했다.[6] 생물체와 자연선택에 대한 그의 변경된 견해는 모든 "함께 살아있는 것들[가이아]이 단일 선택 단위를 구성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6]  그래서 하나의 외부 행위자(agent)로 기능을 하는 자연선택이 지구 역사 전체에 걸쳐 가이아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이아는 가나안의 신 바알보다 더 효과적이었을까? 가이아가 의지력을 갖고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은 진화론자들의 마음에만 있는 것이다. 가이아는 과학으로 위장된, 자연을 의인화한 미신인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의도적인 설계처럼 보이는 생물학적 기능의 기원을 하나님에게 돌리지 않고, 자연에게 돌리기 위한 궁여지책의 왜곡된 이론이다. 다윈이 하나님이라는 선택적 행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선포했을 때, 그의 주장은 위대한 공로로 여겨지게 되었다. 다윈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고 불리는, 완전히 물질주의적인 메커니즘을 불러냄으로써, 그러한 일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윈은 유사-행위자 주변에 있던 비밀통로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불법적 비유를 통해, 그 유사-행위자를 영리하게 은폐했다. 그러나 다윈의 이중성에 괴로워하던 두 명의 저명한 무신론자들이 커튼을 젖혀버렸다 :

친숙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다윈은 진화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 지적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는 육종에 의한 (인공)선택과 자연선택 사이의 검증되지 않은 비유로 그것을 숨겼다.[7]

간단히 말해서, 사람 육종가들은 실제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음(minds)을 갖고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자연을 사람처럼 의인화한다.

다윈은 자연선택을 통해서 과학 내로 자연숭배를 재도입했다.[8] 무신론적 선택론자와 유신론적 선택론자 모두 환경이 생명체의 다양성을 형성하는 행위자(agency)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 이 본질적으로 미스터리한 유사-행위자(pseudo-agency)는 모든 진화론적 설명에 생기를 주었고, 우리가 보았듯이, 미신적인 가이아라는 개념에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선택론(selectionism)은 자연(nature)에 생물을 "선호" 또는 "제거"할 수 있는 선택적 능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불완전한 것임을 발견해야만 한다. 일부 종교적 실천가(진화론자)들은 무생물인 것에 의지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어떻게 생각이 없는 물체가 선택과 같은 정신적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가? 지적설계론자인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다윈 이전에는 선택하는 능력은 대게 지성(intelligences)에 의한 것으로, 즉 선택의 결과를 심사숙고하여 반영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는 행위자에 의한 것으로 국한됐었다.[9] 

마찬가지로, 영국의 진화론자인 호지(M. Hodge)도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었다 :

어느 누구도 선택과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주체로서, 자연을 쉽게 또는 무심코라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다윈의 시대 이전에 그러한 발상을 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10]

다윈의 동료들도 이 미스터리한 의지력을 과학에 도입하는 것에 반대했다. 호지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

문제의 한 원인은 다윈이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명사가 동사를 지배하는 것으로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F. Darwin, 1887, vol. 3, p. 46). 그러한 사용은 자연선택을 하나의 행위자로서 구체화하고, 심지어 신성시하고 있었다.[10]

동사를 지배하는 명사”로서 사용되었다는 이 간결한 말은 크리스천과 과학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크리스천들은 사람들이 물체나 상상의 추론을 어떻게 신격화할 수 있는지를 인식해야한다. 즉 물체가 의지력을 갖고 있다고 상상한다. (예 : "바알 행전").

또한 이러한 행동은 과학을 위협한다. 가이아 이론을 믿고 있는 선택론자들은 가이아가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다윈과 마찬가지로, 가이아(명사)가 행동을 한다(동사)고 말한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은 대부분 돌연변이를 볼 수 없다"거나, "자연선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이라고 말할 때, 동일한 방식을 사용한다. 진화론자인 스티븐 탈보트(Stephen Talbott)는 선택론이라는 신비주의로부터 그 이론을 구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연선택은 과학 이전 시대의 마술과 같은 힘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11]

최근에 탈보트는 왜 다윈의 자연선택이 생물학을 구속하고, 이제는 종교적 미신이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선택”을 대체할 단어가 없다는 것이, 선택론자들로 하여금 자연선택을 신비스러운 감독자로 설명할 수밖에 없게 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

자연선택은 항상 일을 하고 있다.... 자연선택은 생물의 몸체와 행동을 만들고, 특별한 모습, 특정 유전체 영역에 대한 작용, 선호 또는 비선호 특성을 구별한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설명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생물학자들의 자연선택에 대한 참고문헌이 비교적 적다는 것은, 선택적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사람처럼 잘 설계된 활동을 하는 메커니즘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진화론자들은 선택론자들이 육종가의 "인공선택"을 연상케 하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진화적 적응이 육종가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신비주의적 신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선택을 하는 행위자로서 "자연선택"을 명백하게 제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단지 "비유"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이다. 매우 명확한 의도를 가진 "선택"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선택능력을 가진다는 개념은 현대 생물학자들의 사고에 깊게 뿌리내려있는 진화론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12]


오늘날의 자연숭배는 선택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학계의 선도적 저널들이 왜 가이아(의인화된 자연)에게 신뢰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탈보트가 관측한 바와 같이, 그것은 진화론자들이 선택론자의 세계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가이아 가설을 교체한다면, 또 다른 미신적 가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로마서 1:25절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자연이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것으로 섬길 것이라고 말한다. 두리틀과 같은 일부 진화론자들은 지구, 달, 별, 은하 등도 거대한 생물체처럼, "우주적 자연선택"에 의해서 작동되고 있다고 상상한다.[13] 그들은 “우주는 법칙, 의미, 복잡성 등을 부여하는, 바깥에 있는 어떤 지성의 필요 없이, 자기-응집적이고, 자기-창조적인 전체로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14]

성경은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완벽하게 말씀해놓고 있다. 칼 세이건과 같은 무신론자들은 자연을 "숭배와 경외심"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 과학에 의해 밝혀진 것처럼, 우주의 웅장함을 강조하는 오래된 종교나 새로운 종교들은 기존의 믿음을 수선하여 숭배와 경외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만간 그러한 종교가 나타날 것이다.[15]

그러한 종교가 등장한 것 같다. 로마서 1장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그 종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꾸어, 자연이라는 피조물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2] 성경 말씀은 언제나 옳았다. 



References

  1. Bauer, W., W. F. Arndt, and F. W. Gingrich. 1979.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2nd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61, 511, 891.
  2. For a full translation of Romans 1:18-25, see Guliuzza, R. J. 2017. Engineered Adaptability: Engineering Principles Point to God’s Workmanship. Acts & Facts. 46 (6): 16-19.
  3. Lenton, T. M. and B. Latour. 2018. Gaia 2.0. Science. 361 (6407): 1066-1068.
  4. University of Maryland. Sulfur finding may hold key to Gaia theory of Earth as living organism. ScienceDaily. Posted on sciencedaily.com May 15, 2012, accessed November 21, 2019.
  5. Godfrey-Smith, P. 2015. The Ant and the Steam Engine. London Review of Books. 37 (4): 18-20.
  6. Doolittle, W. F. 2019. Making Evolutionary Sense of Gaia. Trends in Ecology & Evolution. 34 (10): 889-894.
  7. Fodor, J. and M. Piattelli-Palmarini. 2010. What Darwin Got Wrong.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162.
  8. Guliuzza, R. 2011. Darwin’s Sacred Imposter: Natural Selection’s Idolatrous Trap. Acts & Facts. 40 (11): 12-15.
  9. Dembski, W. A. 2004. The Design Revolution.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63.
  10. Hodge, M. J. S. 1992. Natural Selection: Historical Perspectives. Keywords in Evolutionary Biolog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13.
  11. Talbott, S. L. Can Darwinian Evolutionary Theory Be Taken Seriously? The Nature Institute. Posted on natureinstitute.org May 17, 2016, accessed September 14, 2018.
  12. Talbott, S. L. Let’s Not Begin With Natural Selection. The Nature Institute. Posted on natureinstitute.org July 19, 2019, accessed November 7, 2019. Emphasis in original.
  13. Smolin, L. 2004. Cosmological natural selection as the explanation for the complexity of the universe. Physica A: Statistical Mechanics and its Applications. 340 (4): 705-713.
  14. Rifkin, L. The Logic and Beauty of Cosmological Natural Selection. Scientific American. Posted on blogs.scientificamerican.com June 10, 2014, accessed December 1, 2019.
  15. Sagan, C. and A. Druyan. 1994. Pale Blue Dot: A Vision of the Human Future in Space. New York: Ballantine Books, 50.


* Dr. Guliuzza is ICR’s National Representative. He earned his M.D. from the University of Minnesota, his Master of Public Health from Harvard University, and served in the U.S. Air Force as 28th Bomb Wing Flight Surgeon and Chief of Aerospace Medicine. Dr. Guliuzza is also a registered Professional Engineer.

Cite this article: Randy J. Guliuzza, P.E., M.D. 2020. Gaia and Selectionism's Nature Worship. Acts & Facts. 49 (2).


출처 : ICR, 2020. 1. 31.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gaia-and-selectionisms-nature-worship/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0-01-29

중국 복음 선교에 진화론이 미친 영향 

(The Impact of Evolutionism on the Missionary Evangelization of China)

Russel Grigg


     중국에 상주한 첫 번째 기독교 선교사는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이었다. 그는 그 임무를 위해 준비하는 데 있어서 영국에서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조직신학 및 의학을 공부했으며, 중국어를 배우고, 런던 선교사 협회에 참석했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네가 나와 같이 가도록 권유하고 싶다. 중국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 길이 없는 3억 5천만 명의 영혼을 생각해 보라...”[1]

그는 중국에서 중국어 문법을 썼으며(1812), 성경 전체를 중국어로 번역했고(1807-1819), 세 권짜리 중국어-영어 사전을 편찬했는데(1815~1823), 이들 모두는 이후의 선교사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가치의 도움이 되었다.

그 다음 25년 기간에는 정치적 활동의 결과로 선교사들의 기회가 대단히 증가되었다. 첫 번째 아편전쟁이 끝남에 따라[2], 1842년 난징조약으로 홍콩 섬이 영국에게 영원히 양도되었으며[3], 상하이, 광동, 닝보(寧波, Ningpo), 진주(晉州, Fuchow), 아모이(Amoy, 샤먼(Xiamen)의 구칭) 등 5개의 ‘조약’ 항구가 설치됐는데, 이는 서방 국가들로 하여금 거주와 무역의 권리를 주는 것이었다. 1858년과 1860년에는 추가의 ‘조약항(treaty ports)’과 ‘개방’ 도시들이 설치되었다. 이는 선교사들의 지위를 혁신시켜서, 이제는 ”제국 내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으며, 각 성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자기들의 믿음을 전파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소유하게 되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의 활동이 이들 ‘개방’된 항구로 제한되었다.


허드슨 테일러 – 다음 세대 개척자

다음 50년 내에 중국으로 갔던 영국, 미국 및 유럽의 많은 선교사들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아마도 영국 요크셔 출신의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1832~1905)일 것이다.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중국인들에 대한 깊은 사색의 결과, 그는 중국 내지의 지방으로 선교사들을 보낼 목적으로 1865년에 중국내지선교회(CIM, China Inland Mission)를 창설했다.

허드슨 테일러의 믿음의 원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는 하나님의 일에는 하나님의 공급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그의 선교사들에게 ”기도만으로 하나님을 통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법을 배울 것”을 촉구했다. 테일러는 그리스어, 히브리어 및 라틴어를 배웠으며, 나중에는 몇 가지 중국 방언으로 설교할 수 있었다. 초기의 CIM 멤버로 24명의 선교사가 있었는데, 중국 내지의 선교사가 없는 11개 지방에 각각 2명씩의 선교사와 몽골을 위한 2명의 선교사였다. 허드슨 테일러가 죽은 1905년까지 그 숫자는 828명에 이르렀다. 루스 터커(Ruth Tucker)는 그녀가 쓴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서 이렇게 썼다:

”사도 바울 이래로 19세기의 허드슨 테일러보다 더 넓은 비전을 가지고 보다 더 체계적인 복음전도 계획을 지리적으로 멀리까지 수행한 사람은 없었다.”[5]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1832–1905)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에 방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899~1901의 의화단 사건(Boxer Rebellion) 때[6], 거의 2,000여 명의 중국 기독교인들과 186명의 선교사(아내와 아이들을 포함하여)들이 학살당했다.[7] 그러나 여태까지의 박해 중에서 다른 어떤 나라에서 겪었던 것보다 가장 극심했던 중국 기독교인과 선교사들의 수난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중국으로 모으도록 했다. 복음주의자들은 학살의 희생에 고무되어, ‘위대한 사명에 복종’하며, 전 세계 인구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가리라는 데에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도전받았다.



복음 선교의 10년

의화단 사건이 진압됨에 따라, 중국의 선교 사역에 예외적인 기회가 동텄다. 여기에는 여러 나라의 여러 교파에서 많은 선교사와 선교단체들이 동참했으며, 선교사들이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복음전파에 더 많이 활약했다.[8] 또한 자라나는 중국 교회를 교육, 의학 및 기독교 문학 프로그램으로 양육할 뿐만 아니라, 아편 및 여인들의 전족 등과 싸우며, 고아원을 열기도 하고, 맹인, 귀머거리, 벙어리 등을 위한 학교를 열기도 했다.

교회 역사가 라토렛(K. S. Latourette) 교수에 따르면, 중국 선교사의 숫자는 1889년 1,296명에서 1905년에는 3,445명, 1915년에는 5,462명으로 증가했다.[9] 그리고 ”1914년까지 모든 주요 도시 및 보다 작은 많은 도시에서 실질적으로 기독교 선교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10]


진화론의 충격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은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여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세계 경제와 서구인들의 지위에 미친 해로운 영향, 중국 민족주의의 등장뿐만 아니라, 노상강도, 회의론 및 불가지론의 확산, 존 듀이(John Dewey)와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11] 등과 같은 인본주의자들이 방문함으로써 진화론 철학이 번지고, ”과학과 종교는 양립할 수 없다는 배경 하에” 1922년에 중국 반기독교 연맹(Chinese Anti-Christian Federation)이 설립되었으며, 기독교는 숨겨진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2]

1920년대 중반에는 본국에서도 처음으로 선교 지원자와 선교 자금이 줄어들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이 되지 않아서, ”기독교 선교는 본국 차원에서 가장 혼란스런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거대한 운동이 시작된 이래 125년 만에 그들에게 닥친 것이었고, 중국에서는 그들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13]

비록 선교사의 수는 1918년에 6,395명에서 1925년에 8,158명으로 증가했지만, 이 증가율은 1904년에서 1914년의 증가율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라토렛 교수에 따르면, 여기에 기여한 가장 위협적인 요인은 본국에서 진화론적 자연주의(evolutionary naturalism) 및 그와 같은 부류와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이 일어난 때문이었다.

라토렛 교수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것은 복음의 타당성 및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우수성을 확증할 수 없도록 만든 하나의 커다란 손실이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에게 쏟아 부어지는 홍수처럼 많은 새로운 지식들과 그들의 믿음을 조화시켜야만 했다.... 기독교는 진리인가? 지질학, 진화론, 사회학, 심리학 등은 우주 밖으로 하나님을 몰아냈는가? 종교는 단지 원시적인 ‘귀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발전한 것인가? 영원한 생명은 망상인가? 성경은 초기 시대에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지어낸 오류투성이의 책인가? 기독교 윤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가? 몇몇 사람은 솔직히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었으며, 초기에 가졌던 확신을 고수하려고 하면서도 열정이 없어져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믿음에 대한 고백을 다시 짜면서, 새로운 (진화론적) 발견들과 일치하도록 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의 역사적 교리(creeds)와 자주 멀리 벗어났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라고 불리던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시도를 파괴적인 ‘모더니즘(modernism)’이라고 낙인찍고, 성경은 오류가 없으며, 오래된 교리들은 최종적인 것이며,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 과학적 ‘발견들’은 잘못된 것이라는 견해를 고수했다.”[14]

그 위기는 심각했다. 진화론은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구속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필요성을 훼손시켰다. 복음의 한 중요한 요소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혈족 구속자(kinsman-redeemer)라는 것이다.(사 59:20). 혈족 구속자는 그가 구속할 사람과 친척 관계이어야만 한다.(레 25:47–49, 룻기 3~4장).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한 사람으로부터 후손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행 17:26). 최초의 사람은 아담이고(고전 15:45), 그는 마지막 아담이신(고전 15:45) 그리스도의 조상인 것이다.(눅 3:38). 진화론은 역사적 아담을 부인하고, 그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혈족임을 부인한다. 그래서 이것은 모든 선교적 활동을 떠받치고 있는 혈족 구속자 개념을 부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 전망

1920년대는 진화론적 믿음에 대항하여, 그리고 자멸적인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불타  올랐던, 현대의 반진화론 운동이나, 풍부한 증거들을 가지고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가하며, 창조를 확증하는 창조론 운동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훗날 (그 당시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침례교 교회에서 추방당했던 조셉 톤(Josef Ton) 목사의 증언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서구 유럽의 기독교를 파괴시킨 결정적인 두 가지 요인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나는 진화론이며,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진화론을 성경과 우리의 믿음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15]

1920년대에 진화론이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이후에 ‘종교’를 ‘독’이라고 말했던, 철저한 진화론적 유물론자였던 모택동의 지휘 하에 있었던 ‘문화혁명’(1966~1976) 때에 극심한 박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교회는 살아남았다. 현재 중국의 기독교인 숫자는 다소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약 7천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



Related Articles

The Importance of Creation in Foreign Missions

The people who walk backwards into the future.

Mission not impossible!

Should missionary societies have a position on creation/evolution?

Lottie moon : A life poured out for China and for God

Countering post-Soviet atheism

Russell Grigg a fulfilling life


References and notes

1. Hallihan, C.P., Robert Morrison Bible Translator of China, 1782–1834, Trinitarian Bible Society Quarterly Record, Oct. to Dec, 2008, Issue 585, p. 17.
2. The First Anglo-Chinese War (1839–42), known popularly as the First Opium War, was fought between the British and the Qing Dynasty of China. To control the spread of opium, Chinese officials confiscated supplies from British traders. The British government used its military power to enforce violent redress.
3. China resumed sovereignty over Hong Kong on 1 July 1997, as per the Sino-British Joint Declaration signed in 1984.
4. Latourette, K.S.,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in China, Russell and Russell, New York, 1929, pp. 277, 360–61.
5. Tucker, R., From Jerusalem to Irian Jaya A Biographical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p. 73, Zondervan, Grand Rapids, MI, 1983.
6. The ‘Boxers’ was the Western nickname for a secret society of Chinese peasants known as I-ho ch’üan 义和拳 (‘Righteous and Harmonious Fists’, or alternatively, ‘Righteous and Harmonious Society’ 义和团). From 1899 to 1901, their ‘Rebellion’ was against foreigners and foreign influence in religion, politics, and trade. They attacked the foreign communities in the capital Peking (now Beijing), in a 55-day siege, until subdued by a force of 20,000 Japanese, American, European, and some Australian troops.
7. Ref. 4, p. 517. And the number of Chinese Catholics who died 'was probably in excess of thirty thousand” (p. 513). Missionaries were more widely scattered outside the ports than were traders and diplomats, and so formed the majority of the foreigners who were killed. The China Inland Mission, with its policy of reaching the interior provinces, suffered nearly one-third of the missionary martyrdoms.
8. Ref. 4, p. 618.
9. Ref. 4, p. 606.
10. Ref. 4, p. 662.
11. Ref. 4, p. 692.
12. Ref. 4, p. 695.
13. Ref. 4, p. 771.
14. Ref. 4, p. 770.
15. Ton, J., New Life, April 15, 1982.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s://creation.com/the-impact-of-evolution-on-the-missionary-evangelization-of-china

출처 - Creation 34(3):44–46, July 2012. 대구지부/전시관 소식지 131호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21-서울종로-1605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