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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위원회
2013-06-06

동성애가 ‘선천’도 ‘유전'도 아닌 과학적 이유 1

길원평 


동성애의 정의

동성애의 정의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있을 때에 동성애자로 분류한다. 첫째 마음 안에 동성을 향한 성적끌림(sexual attraction)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서 동성과의 성관계(sexual behavior)를 가지는 것이다. 셋째 자신을 동성애자로 인정하는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sexual identity)을 가지는 것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할 때에, 위의 세 가지 특징 중에서 어느 정도까지 가지는 것을 동성애자로 볼 것이냐에 따라 설문조사의 결과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서 세 가지 특징을 모두 가질 때에 혹은 셋째 특징인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을 가질 때에야 동성애자로 간주하면 동성애자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적은 값을 가지게 된다. 반면에 첫째 특징인 성적 끌림만 있을 때에도 동성애자로 간주하면 동성애자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큰 값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설문조사를 하는 주체가 동성애자의 비율을 많게 하고 싶어 하느냐 또는 적게 하고 싶어 하느냐에 따라 설문조사에서 동성애자로 간주하는 기준을 다르게 한다.

첫째 특징인 성적 끌림은 주관적인 생각이기에 어느 정도 모호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공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첫째 특징만 가지고 있을 때에도 동성애자로 분류하면 동성애자의 비율을 과장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둘째 특징은 실제로 행동을 옮겨서 성적관계를 맺고 있기에 좀 더 분명한 동성애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성적관계를 얼마나 주기적으로 반복하느냐에 따라 동성애자로서의 확실성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서 어린 시절의 단순한 성적 호기심에 의해서 동성과의 성적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특징은 자기 스스로 동성애자로 인식하는 단계에 들어와 있기에, 어느 정도 깊이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이 있는 경우에만 동성애자로 간주하면 동성애자의 비율은 적어진다.

쉽게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하면, 첫째 특징은 가끔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단계에 대응이 되며, 둘째 특징은 실제로 술을 주기적으로 마시는 단계에 대응이 되며, 셋째 특징은 자신이 술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 인식을 하는, 즉 알코올중독환자와 같은 단계에 대응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남성 동성애자는 구강섹스와 항문성교를 함으로써, 여성 동성애자는 구강섹스와 성구를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의 성기를 자극하고 성적쾌감을 느낀다. 동성애에 대한 대조용어로서 남자와 여자와의 성적관계를 이성애라 부르고, 동성애와 이성애를 함께 하는 경우를 양성애라고 부른다. 최근 들어서 학자들은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를 총칭하여서 성적지향이라고 부른다.


외국의 동성애자 비율

동성애자의 비율을 학문적으로 조사한 최초의 학자는 알프레드 킨제이이다. 킨제이는 원래 흑벌을 연구하였던 동물학교수이었는데, 1948년에 5300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하여서 ‘남성의 성적 행동’(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이란 책을 출판하였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오랫동안 연구조사를 수행하였으며, 그 내용도 엄청나게 방대하다. 이 책은 즉각 서구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 이후의 성적행동 연구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 남성의 13%가 16세에서 55세까지 최소 3년 동안 동성애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하였다. 이 수치는 동성애 성향을 반영하며, 남성 간의 성행위나 동성애적 행위에 관한 공상을 한다는 것이다. 1953년에 쓴 ‘여성의 성적 행동’ 이란 책에서는 여성 동성애자가 7%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킨제이 자신이 이성애와 동성애를 함께 즐긴 양성애자이었으며, 근친상간, 어린이나 동물과의 성행위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성행위를 비호하였다. 그리고 그는 성에 가해진 문화적· 종교적 제한에 대해 격분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하여 수백 명의 남성 매춘부, 1200명의 성범죄, 변태적인 성정체성으로 악명 높은 고등학교에 소속된 300명의 학생, 많은 숫자의 소아애호자, 노출증환자, 교도소의 수감자 등으로 최소한 전체 표본의 1/4 을 차지하도록 하였다. 또한 연구자들은 유아와 어린이 중 수백 명에게 오르가즘을 느끼도록 손과 입으로 자위행위를 시행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5300명의 남성이 대상이 된 킨제이의 결과는 교묘하게 왜곡이 되었으며 그가 원하였던 것처럼 동성애자의 비율이 과장되어졌다. 그는 과학적인 객관성을 유지하였다고 주장하였지만, 그가 책을 쓴 목적은 남녀 간의 사랑인 이성애가 성적행동의 표준이 아님을 증명하고 이성애자들에게 동성애적 경험을 조장하려는 것이었으며 그 목적은 달성되었다.

록펠러대학의 Bruce Voeller 교수는 킨제이 결과를 사용하여서 인구의 약 10%가 동성애자라고 강조하였으며, 이 사실을 매스컴, 국회, 법원, 교회, 정신과 의사 등에게 널리 퍼트렸다. 그 결과, 미국에서 1980년과 1990년대에 인구의 10%가 동성애자라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되었으며, 법을 만들고 정책을 수립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때에도 그 왜곡된 사실이 고려되었다. Bruce Voeller교수는 나중에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현대 동성애 인권단체의 창시자가 되었다.

네일 와이트헤드와 브라이어 와이트헤드가 공저한 ‘My Genes Made Me Do It! Homosexuality and the scientific evidence'이란 책에서 저자는 1988년부터 2010년 사이에 수행되었던 여러 설문조사결과를 수집하였다. 동성애자와 양성애자의 기준은 설문조사를 하기 전의 12개월 동안에 행하였던 성관계로써 정하였다. 그 설문조사의 결과를 요약하면, 남성 동성애자의 평균값은 약 1%이며, 여성 동성애자의 평균값은 약 0.6%이다. 그래서 남녀를 합했을 때에는 동성애자가 대략 0.8%라고 볼 수 있다. 남성 양성애자와 동성애자를 합한 수치의 평균값은 약 2.9 ± 2.0%이고, 여성 양성애자와 동성애자를 합한 수치의 평균값은 약 1.8 ± 1.3%이다. 그래서 남녀 양성애자와 동성애자를 합했을 때에는 대략 2.4%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도시에서 설문조사를 한다면, 킨제이가 얻었던 것처럼 10%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2000년 이후로는 설문조사가 과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등의 정부에 의해서 시행되고 있다. 이 결과들은 크게 변하지 않으며, 위에서 우리가 언급한 결과와도 일치한다. 이 결과들로부터 킨제이의 결과가 확실하게 과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과장을 알았다 하더라도 서구 사회에서는 동성애가 이미 확산된 후이며 동성애자의 숫자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증가하여서 하나의 압력단체를 이루어 세력을 형성하였기에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행하였다. 그러기에, 초기의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동성애자 비율

한국에이즈연맹은 1996년 9월에 낸 보고서에서 국내 동성애자 현황파악은 어렵다고 전제한 뒤 전국의 게이바 등의 실사를 기초로 동성애자의 수를 11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중에는 적극적 동성애자 1만 명에 한 두 번의 동성애 경험이 있거나 없더라도 게이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과정 중에 있는 소극적 동성애자가 포함됐다. 1995년도 인구조사의 결과를 이용하면 전체 남성인구가 2239만 명이기에, 적극적 동성애자는 전체 남성의 0.04%이고 소극적 동성애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남성의 0.49%가 된다. 한국성과학연구소가 2003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 남성 2,000명을 설문 조사하여서 그 중 1,613 명을 분석한 결과, 자신을 동성애자로 밝힌 비율은 0.2%이고 양성애자로 밝힌 비율은 0.3%이고 동성애 경험이 있는 비율이 1.1%이었다. 한국성과학연구소가 2011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서울시에 거주하는 성인남녀 10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하여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남성의 1.1%와 여성의 0.3%가 동성애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동성애 경험이 있는 남성의 비율이 1.1%로 2003년과 2011년이 동일하기에, 최근 들어서 동성애자의 비율이 거의 변동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현재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을 가진 남성은 2003년의 결과처럼 0.2%일 것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한국성과학연구소의 성의식조사가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서울 이외의 지역은 보수적이기에 전국적인 조사를 한다면 동성애자의 비율이 위에서 구한 값보다는 적을 것으로 예상이 되며, 서울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1/4임을 감안하면 남성 동성애자의 비율이 전체 남성의 0.1%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은 1996년의 전국적인 조사에서 적극적 동성애자가 전체 남성의 0.04%인 것과도 부합한다. 따라서 2010년도 인구조사의 결과를 이용하면 전체 남성인구가 2417만 명이기에 현재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을 가진 남성은 대략 2만4천 명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성과학연구소의 2011년 조사에서 여성의 동성애 경험자가 남성의 동성애 경험자의 약 1/4이기에,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을 가진 여성은 남성 동성애자의 1/4 수준인 0.03%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도 인구조사 결과를 이용하면 전체 여성인구가 2441만 명이기에, 여성 동성애자는 대략 7천 명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한국의 총 동성애자의 수는 대략 3만 명 이하일 것으로 추정되며, 동성애자의 비율은 대략 0.06%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치는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을 가진 자의 비율이며, 한 두 번의 동성애 경험을 한 자들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많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동성애자들의 수가 많지 않기에,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사회적으로 동성애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동성애 확산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으면, 동성애자의 숫자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증가하여서 하나의 압력단체를 이루어 서구 사회와 같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나아간다.


동성애는 유전? 일반적 사실에 의한 반론

어떤 행동이 유전에 의한 것이란 말은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하게 만드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유전자는 세포핵 안의 DNA에 있으며, 인간의 DNA는 약 1.8m 이다. DNA는 프로그램이 내장된 아주 작은 컴퓨터라고 보면 된다. 이 프로그램에 의해서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생성된 한 개의 세포로 된 수정란이 분열하여 100조 개의 세포로 된 몸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00조 개의 세포가 똑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 독특한 기능을 수행한다. 심장, 간, 위장, 두뇌 등 각각의 장기는 수백억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전체적인 생명 현상을 유지한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개의 세포가 분열하여 생겨났으며, 분열하는 과정에 여러 모양으로 바뀌어져 적당한 위치에서 적당한 크기가 된 후에 분열이 멈추게 된다. 한 개의 세포가 분열하여 몸이 되는 과정이 DNA에 의해 전체적으로 조율된다고 추측한다. 즉 DNA는 굉장히 정교한 설계도라고 볼 수 있다. DNA는 이중 나선구조를 가진 화학 물질이다. 쉽게  말하면 긴 사다리를 나선모양으로 꼬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긴 사다리 모양의 DNA에 엄청난 정보가 보관되어 있고, 그 정보에 의해 한 개의 세포에서 100조 개에 달하는 세포로 분화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부모의 형질을 자식에게로 전달시켜서 부모와 닮은 자녀가 태어나게 만든다. 유전자의 일반적인 역할은 단백질생성에 관여하며, 우리 몸 안의 모든 구조를 결정한다.

그런데 유전자는 일반적으로 여러 다른 유전자들과 상호 연관되어서 작동을 한다. 한 유전자가 발현하기 위해서도 여러 다른 유전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떤 때는 20개 이상의 유전자들이 한 유전자의 발현에 필요하다. 즉, 한 유전자가 독자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물며, 많은 다른 유전자들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최근에 효모의 268개 유전자들 사이에 567개의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유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를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생명체의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데는 수많은 유전자가 관여하게 된다. 물론 아주 단순한 생명체의 행동양식은 한 두 개의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관련유전자를 임의로 제거 또는 치환시키고 선택교배를 하면, 그 행동양식이 한 두 세대 안에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sandhopper의 섭식 행동은 복잡한 당을 간단한 당으로 바꾸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 즉, sandhopper가 가진 유전자가 어떤 종류의 복잡한 당을 바꾸는 효소를 만드느냐에 따라, 좋아하는 음식이 달라진다. 만약 그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더 이상 부모가 좋아하던 음식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단순한 생명체에 대해 선택교배를 하여서 한 두 세대 이내에 행동양식이 바뀌게 되면, 그 행동양식은 소수의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그 유전자를 복원시키면 그 행동양식이 다시 나타난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만약 어떤 행동양식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아주 천천히 바뀌게 될 때에는, 그 행동양식에 많은 유전자들이 관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예로 공간과 빛에 대해서 소극성 또는 적극성을 지닌, 습성이 다른 두 종류의 마우스(mouse)를 선택 교배한 결과, 30 세대에 걸쳐서 천천히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예로 과학자들은 높이 나는 또는 낮게 나는, 습성이 다른 두 종류의 초파리를 40년 동안 선택 교배시켰다. 이 실험은 약 1000세대 동안 진행되었으며, 5000개의 유전자들을 살펴 본 결과, 250개의 유전자가 두 종류의 나는 습성과 관계된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250개 유전자 중에서 4개의 유전자를 치환시키고 그 효과를 증폭시키더라도, 4개의 유전자가 나는 습성에 미치는 영향은 적은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동성애가 유전자에 의해서 나타난 현상이라면, 일반적인 관점에서 추론하면 수많은 유전자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초파리와 마우스의 실험에서처럼 동성애란 행동양식은 아주 천천히 여러 세대에 걸쳐서 변화되어야 한다. 즉, 일반적인 이성애자의 가계에서 동성애자가 나오려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조금씩 동성애적 경향이 강화되어서 결국 동성애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계에서 동성애가 사라질 때에도 여러 세대에 걸쳐서 천천히 사라져야 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유전자가 조금씩 변화되어서 다른 행동양식이 나타나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계조사를 해 보면, 갑자기 동성애자가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렇다면 동성애를 결정하는 유전자의 개수가 작은가? 이러한 추론은 행동양식에 관련되는 유전자의 수가 많다는 일반적인 유전적 사실과 상반된다.

혹시 동성애가 갑작스러운 돌연변이의 결과인가? 동성애를 결정하는 유전자의 수가 많은 경우에는, 그 많은 유전자가 동시에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하기에,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면 핵심적인 유전자 중에서 한 두 개가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동성애가 생기는 것인가?  한 두 개의 유전적 결함에 의해서 나타나는 질환들이 제법 알려져 있다. 예로서, 헌팅턴 무도병(Huntington's disease),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 겸상적혈구빈혈증(sickle cell anemia), 다운증후군(Down's syndrome), 루게릭병(Lou Gehrigs's disease)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행동양식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물론, 다운증후군의 경우는 육체적인 문제에서 파생된 독특하고 간단한 행동양식이 생긴다. 행동유전학의 전문가이신 Plom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돌연변이에 의한 4000개 이상의 유전적 효과가 인간의 몸에 대해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이 육체적 결함을 만들어 낸다.”

동성애를 한 두 개의 돌연변이에 의해서 생겼다고 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한 두 개의 돌연변이로 생겼다고 보기에는, 동성애가 생기는 빈도가 너무 높다. 다운증후군과 같이 유전자의 손상으로 나타나는 유전질환은 전체 인구 중에서 0.025% 이하의 빈도를 갖는다. 그리고 그러한 유전질환자를 모두 합치더라도, 전체 인구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동성애의 빈도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약 2.4% 이기에, 동성애가 유전자 손상에 의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빈도가 높다.


동성애는 유전? 자녀재생산에 의한 반론

 동성애가 유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다른 강력한 근거는 자녀재생산이란 간단한 논리로부터 얻을 수 있다. 자녀를 적게 낳는 행동양식은 결코 유전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행동양식을 갖게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집단이 자녀를 적게 낳으면, 그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기에, 결국 그 유전자를 가진 집단은 사라지게 된다. 어떤 유전자 집단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려면, 그 집단의 성인 한 명당 한 명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남성 동성애자의 13.5% 가, 여성 동성애자의 47.6%가 한 명 이상의 아이를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조사에 따르면, 남성 동성애자의 15%만이 결혼을 한다. 이러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동성애를 나타내는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없기에, 동성애 유전자를 가진 집단이 점차 줄어들어서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동성애 옹호론자의 몇 가지 주장을 소개하겠다. 첫째, 남성 동성애를 야기하는 유전자가 남성 동성애자의 여동생 또는 누나에게도 존재하는데, 남성 동성애자는 그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도록 가족을 부양하면서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사를 해 보면 동성애자들은 대체로 가족들과 친밀한 유대 관계를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둘째, 남성 동성애 유전자는 X염색체에 있어서 여성에 의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며, 그 유전자를 가진 남성은 가냘프게 보이는 반면에, 그 유전자를 가진 여성은 더 여성적으로 보여서 남자들에게 더 인기를 얻고 많은 자녀를 낳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 동성애자의 어머니들이 그렇게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다.

셋째, 동성애 유전자를 가진 남성은 덜 공격적인 성품을 가져서, 이러한 섬세한 성품이 여성들로부터 더 인기를 얻고 자녀를 낳을 확률이 놓아진다는 것이다. 남성 동성애자들이 여성으로부터 인기는 더 있을지 몰라도, 동성애자 본인이 이성과의 성관계를 하기를 원하지 않기에, 이성과의 성관계를 원하는 이성애자들보다 더 자녀를 낳을 확률이 높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또한 남성 동성애자들 중에서 약 15%만이 결혼을 하기에 여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논리를 고안해 내어도 동성애 유전자가 작동하여서 실제로 동성애자가 되면 결혼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녀를 적게 낳기에, 그 동성애 유전자를 가진 집단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결국 사라지게 된다.


동성애는 유전? 유전자 자체에 의한 반론

동성애를 나타내는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현대 유전학자들의 주류는 행동양식이 하나의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으며, 그 행동양식에 수많은 유전자들이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본다. 히스톤의 변화에 대한 연구로부터 어떤 특성에 수천 개의 유전자가 관련이 되고 환경과 사회 활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유전자는 몸의 형태는 만들지만, 행동까지는 결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1993년에 서구 언론은 동성애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발견하였다고 대서특필을 하였다. 왜냐하면, 1993년에 동성애자인 해머는 38명의 남성 동성애자 가계의 X염색체를 분석하여, 동성애 성향이 X염색체의 한 부분인 다형질 유전자들(Xq28)의 존재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학술지 Science에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인 해머의 연구결과는 일반인들의 마음에 동성애는 유전임에 틀림없다는 인식을 심어 놓았다.

하지만, 1999년에 라이스 등은 동성애자 형제를 가진 52명의 가계에서 Xq28 염색체 안에 존재하는 유전자들을 분석하였으며, 대조군과 비교하여 동성애자 형제를 가진 가계에서 이들 유전자의 발현 빈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라이스 등은 Xq28이 남성의 동성애와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학술지 Science에 발표하였다. 2005년에 해머를 포함한 연구팀이 더 많은 가계를 가지고 조사한 결과, 동성애 성향과 유전자들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첫 번째 결과는 어쩌면 조사한 가계의 수가 적음으로써 생기는 통계적인 요동(fluctuation)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는 언론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음으로써 일반인들에게 동성애는 유전이라는 오해를 여전히 갖고 있게 만들었다. 해머 그룹은 여성 동성애자들의 가계를 조사하였으며 X염색체와 여성 동성애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다. 동성애자들에게 후생적인 영향에 의해서 히스톤 단백질의 변화가 있는지를 조사한 연구도 있지만, 동성애자와 일반인 사이에서 특별한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실 동성애의 빈도가 너무 커서 히스톤 단백질에 의한 후생적인 요인에 의해서라고 보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이 세상에는 태어난 아기가 앞으로 동성애자가 될 것이라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조사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동성애는 타고 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성애에 유전적인 요인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유전자에 의해서 남자 아이의 몸이 너무 빈약하다든지, 혹은 여자 아이가 너무 남성적인 몸을 갖게 되면, 결국 동성애자가 되게 만드는 간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우리가 말한 것은 동성애가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동성애가 유전자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관련은 약하고 간접적이다.


동성애는 유전? 설문조사에 의한 반론

만약 동성애가 유전에 의한 것이라면, 나이가 들어도 감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설문조사에 의하면, 남성 동성애자와 여성 동성애자의 수가 나이가 많아질수록 급격히 감소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50대 동성애자 수는 30대 동성애자 수의 1/4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동성애의 기준을 "지난 일 년 동안 동성과의 성관계(SS Activity)를 가졌느냐’로 잡으면, 잘못된 조사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들의 모임에서는 용모와 젊음을 강조하기에 중년이 지나면 상대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적끌림과 성정체성에 의한 조사 결과도 나이가 많아질수록 감소하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1948년과 1953년에 있었던 킨제이 결과에서도 나이가 많아질면서 동성애적 성향과 활동의 비율이 이성애자들과 비교하였을 때에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로부터 이성애는 나이가 들더라도 큰 변화가 없는 반면에, 동성애는 젊은 날에 강력하게 나타나다가 나이가 들면 급격히 감소하는 특성을 가짐을 알 수 있다.

또한 자란 환경에 따라 동성애의 빈도가 다르다는 것이 설문조사를 통하여 밝혀졌다. 1994년에 미국 시카고에서 행하였던 조사에서 14~16세의 청소년기를 어디서 보냈느냐와 지난 일 년 동안 동성애 상대가 있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림 9는 14~16세의 청소년기를 어디서 보냈느냐에 따라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다름을 보여 준다. 지난 일 년 동안 동성애 상대가 있었던 남성은 시골에서 자란 경우는 1.2%이고, 중소도시에서 자란 경우는 2.5%이고, 대도시에 자란 경우에는 4.4%이었다. 지난 일 년 동안 동성애 상대가 있었던 여성은 시골에서 자란 경우는 0.7%이고, 중소도시에서 자란 경우는 1.3%이고, 대도시에 자란 경우에는 1.6%이었다. 즉, 큰 도시에서 클수록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높고 시골에서 자랄수록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낮음을 보여 준다. 2006년 덴마크에서 행한 조사에서도 도시에서 태어난 자가 시골에서 태어난 자보다도 더 동성애 상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동성애는 유전적인 요인보다는 자란 환경, 즉 후천적인 요인의 영향을 더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성에 대한 성적 끌림을 처음 느낀 나이와 사춘기를 겪는 나이를 비교해 보면, 동성애가 유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춘기를 겪는 나이는 환경에 의한 영향이 적고 생물학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져서 유전적 효과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 때문이다. 사춘기를 겪는 나이는 12세 근처에 모여 있는 반면에, 동성에 대한 성적 끌림을 처음 느낀 나이는 넓게 퍼져 있으며 불규칙한 분포를 가진다. 따라서 사춘기는 대부분 유전적인 영향인 것으로 볼 수 있는 반면에, 동성애는 유전적이기 보다는 환경에 의한 영향이 더 크다고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동성애도 유전적이라면 사춘기처럼 특정한 나이에 집중해서 나타나는 생물학적인 사건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위원회
2012-09-25

진화론의 유산, 우생학 

: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이 남긴 인종차별 사상 

(Eugenics … death of the defenceless. The legacy of Darwin’s cousin Galton)

Russell M. Grigg 


     지난 120년 동안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경의 생각만큼 인류에 해악을 끼친 사상은 거의 없다. 그는 우생학(eugenics)이라는 진화론적 유사과학을 수립한 사람이었다. 오늘날, 인종 청소, ‘장애가 있는’ 태아를 제거하기 위한 낙태 시술, 영아 살해, 안락사, 연구 목적을 위한 태아 수집 등 이 모든 일들은 우생학의 적자생존 이론에 공통의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골턴(갤튼)은 누구이며, 우생학은 무엇이며, 우생학이 인간에게 어떻게 해를 끼쳤는가?


프란시스 골턴 (Francis Galton)

.프란시스 골턴(위 합성 사진에서 오른쪽)은 1882년에 영국 버밍햄의 퀘이커(Quaker) 교도 가문에서 태어났다. 모계 쪽으로 에라스무스 다윈의 손자이며, 찰스 다윈(위 사진에서 왼쪽)의 사촌인 그는 장성한 후 일생 동안 다윈주의적(진화론적) 불가지론의 신봉자였으며, 반기독교주의자였다.


그는 생후 18개월에 알파벳을 배웠고, 30개월(2살 반)에 책을 읽었으며, 5편의 시를 외우고, 여섯 살에 일리아드를 읽고 토론한 천재였다.[1] 1840년에는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해 의학과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신경쇠약으로 인해 1844년 1월 졸업 당시에는 평범한 학사 학위 졸업생에 불과했다[2]. 그러나 대학 졸업하던 해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평생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막대한 유산을 상속했다.

남는 것이 시간이었던 청년 거부 골턴은 레저 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남서 아프리카 대륙 탐험 후 발표한 보고서로 1853년에는 왕립지리학회(Royal Geographic Society) 회원이 되었으며, 3년 후에는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다. 그 해, 골턴은 루이자 버틀러(Louisa Butler)와 결혼했으며, 그의 장인은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인 해로우 스쿨의 교장을 역임했었다.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 찬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그는 14권의 저서와 200편 이상의 논문을 집필했다.[3] 그가 발명한 것 중에는 ‘소리나지 않는’ 개 호르라기(역주: 개를 부르는 호각), 텔레타이프 프린터, 인간의 지능과 신체 기관을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와 기법 등이 있으며, 날씨 지도를 발명하고, 고기압대의 존재를 발견했다.


찰스 다윈과의 교류

1859년에 출간된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은 골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1869년에 다윈에게 쓴 편지에서 ”사촌이 쓴 종의 기원의 출현으로, 내 인생은 진정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 책으로 인해 나를 오래 동안 사로잡았던 악몽과 같은 미신을 떨쳐버리게 되었으며, 그 책이야말로 나에게 사고의 자유를 알게한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었다”[4]라고 쓰고 있었다.     

.소위 인류의 진화에 대한 유사과학적 삽화. 침팬지와의 유사성을 제시하여 흑인이 백인보다 덜 진화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1868년에 ‘과학의’ 이름으로 나타난 삽화. 침팬지 두개골을 과도하게 확대하고 ‘검둥이(역주: 원문에서 흑인을 비하하는 negro라고 표현하고 있음)’ 턱을 과도하게 늘려 ‘검둥이들’이 원숭이보다 훨씬 더 열등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저명한 진화론자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조차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가 인종주의자나 ‘변두리’ 문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당대의 주요 과학 저서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오늘날의 호전적인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사상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손쉽게 외면하려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출처 : J. C. Nott와 G. R. Gliddon의 지구의 토착 인종, J.B. Libbincott 출판사, 필라델피아, 미국, 1868년.

골턴은 ”다윈의 진화론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최초로 인식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5] 그의 생각에 의하면, 재능, 성격, 지능 등의 특징들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유전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은 그들이 처한 환경의 불행한 희생자가 된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극빈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위에서 언급한 모든 특징들이 환경, 즉 개인에 대한 양육법과 양육 환경에 따른다는 주류 과학의 견해와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인간은 동물들처럼 선택적으로 번식할 수 있고, 번식해야한다고 골턴은 믿었다.[6] 1883년에, 그가 인류의 육체적 정신적 특성들을 향상시키는 방법들을 연구하기 위해 ‘우생학(eugenics)‘이라는 용어[‘건강한, 좋은’을 뜻하는 그리스어 εύ (eu)와, ‘종류’나 ‘자식’을 뜻하는 γένος (genos)를 조합시킨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골턴의 견해는 인간 영혼의 존재, 인간의 마음속에 깃든 신의 은총, 남과 다르고자 하는 인간의 자유, 또는 개인의 존엄성 등에 대한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았다. 1865년에 이를 주제로 그가 처음 기고한 기사에서, 그는 '사람의 추리력이 신으로부터 받은 재능임을 ...... 부인했으며, 아담과 하와 이후 인류가 죄의 저주를 받았음을 부인했다.” 그리고 종교적 감정을 ”인간 종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진화적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했다.[8] 

원죄 의식에 관해서, 그는 ”[이것은] 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높은 땅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낮은 땅에서 빠르게 올라온 것임을... 그리고 무수히 많은 세월의 야만시대를 거친 연후에, 최근에 이르러서야 인류는 문명과 종교를 갖게 되었다”라고 썼다.[9]

'세습 천재(Hereditary Genius, 1869)'에서, 골턴은 이러한 개념들을 확장해서, 머리 좋은 남자와 부자 여자 사이의 중매결혼 제도가 궁극적으로 우수한 인종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제의했다. 찰스 다윈은 이 책을 읽고, 골턴에게 쓴 편지에서, ”사람은 바보들을 빼고, 지능에서 크게 차이나지 않으며, 열정과 근면에서만 차이가 있었다고 항상 주장했던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너는 어떤 의미에서 반대자 한 명을 개종시키게 된 것이지...”라고 쓰고 있었다.[5] 확실히 다윈은 골턴의 개념을 통해 자신의 진화 이론을 사람에게까지 확장시킬 수 있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골턴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1871년 저서 '인간의 계보(Descent of Man)'에서 11번이나 골턴에 대해 언급했다.

국제 우생학 학회(International Eugenics Congresses)가 1912년, 1921년, 1932년에 3차례 개최되었으며, 영국, 미국, 프랑스, 호주, 캐나다, 인도, 일본, 모리셔스,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온 우생학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그 사상을 지지했던 명사들 중에는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SF 작가였던 웰스(H.G. Wells)[10], 미국 대통령인 테오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와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가 있었다. 골턴은 1901년에 인류학 연구소로부터 헉슬리 메달(Huxley Medal)을, 1902년에 왕립 협회로부터 다윈 메달(Darwin Medal)을, 린네 협회로부터 다윈-월레스 메달(Darwin–Wallace Medal)을, 캠브리지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으로부터 명예 학위를 수여 받았으며, 1909년에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러한 명예들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골턴은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는 최상의 옹호자는 되지 못했다. 그는 매우 오래 동안 질병을 앓았으며, 그와 그의 아내는 우수한 지능을 가진 혈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부부는 그의 이름과 유산을 상속할 자식을 낳지 못했다. 1911년 그가 죽은 후, 그의 유언대로 런던대학교의 우생학과 골턴 우생학연구소에 기금이 후원되었다.


작동된 우생학

인류의 신체적 및 정신적 특성들을 향상시킨다는 개념은 일견 경탄스러운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와 같은 일을 달성하는 방법은 선택된 부모에 의한 ‘적합한 자손(fit)’의 출생률을 증가시키는 것(‘긍정적 우생학’)뿐 아니라, 향상을 손상시키는 사람들, 즉 ‘부적합한 자손(unfit)’의 출생률을 감소시키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11]

예를 들면, 1913년 무렵, 미국 주의 3분의 1(1920년대부터는 반 이상)은 ‘부적합한’ 자로 간주된 보호수용자들의 강제 단종(sterilization, 불임)을 허용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었다.[12] 이와 같은 강제 단종을 통해 약 7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으며, 그 피해자들에는 범죄자, 정신박약자, 약물 중독자, 극빈자, 맹인, 청각 장애자 등과 간질, 결핵, 매독 등에 걸린 환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버지니아 주의 린치버그 시에서만 8천 건 이상의 강제 단종이 실시되었으며[13],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례들도 많았다.[14, 15]

1935년과 1976년 사이에, 약 6만 명의 스웨덴 시민들에게 유사한 일이 일어났으며, 노르웨이와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자행되었다.[16]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 정부는 수감 중이거나 보호시설에 있는 자들뿐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은’ 장애를 지닌 모든 독일 시민들에 대해 강제 단종을 명령했다. 이 조치는 인종간 혼인으로 인해 히틀러가 바라는 ‘우월한 독일 인종’이 ‘오염’되는 것을 예방하고자 함이었다.

.우생학 협회 로고.


1938년부터 1945년까지, 그러한 쓸모없는 ‘밥 벌레’들에 대한 외과적 치료가 보다 포괄적인 방법으로 대체되었는데, 그것은 히틀러 나치 정권에 의해서 자행된 대량학살(genocide)이었다. 이로 인해 인간 이하로써 살 가치가 없는 자들로 간주된 1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집단 학살을 당했으며, 이와 같은 내용은 뉘른베르크 재판의 공식 판결문에 기록되어있다. 학살당한 자들은 유대인, 복음주의 기독교도[17], 흑인, 집시,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사지절단자, 정신병자 등이었다.

이는 당시 만연됐던 다윈주의(Darwinism)가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건으로서, 자신들을 ‘적자/우성 인종’으로 여긴 학살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이 ‘부적자/열성 인종’으로 낙인을 찍은 수백만 인류를 학살한 사건이었다.

다윈주의의 핵심 사상은 자연선택이다.[18] 나치는 독인 민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선택 절차를 자신들이 직접 관장해야 한다고 믿었다.[19] 그로 인해, 우생학적 유토피아(eugenics utopia)에 대한 골턴의 순진한 비전이 나치정권에 의해서 인종청소라는 희대의 악몽과 같은 돌연변이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슬프게도, 인종적 우월성과 우생학의 개념은 히틀러 정권과 같이 죽지 않았다. 미국의 악명 높은 반흑인 및 반유대 인종주의자였던 데이비드 듀크(David Duke)는 골턴, 웰스(H.G. Wells), 아더 키스(Arthur Keith) 등과 같은 우생학자들의 저서들과 하버드 대학의 윌슨(E.O. Wilson)과 같은 근대 사회생물학자들의 초기 저서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견해를 정립했다.[20]


21세기의 우생학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생학이라는 말은 ‘혐오스러운 단어’가 되었다. 이제 우생학자들은 스스로를 ‘인구학자’, ‘인간 유전학자’, ‘가족 정치인’ 등으로 불렀다. 학술지의 이름도 바꾸었다. 우생학 연보(Annals of Eugenics)는 인간 유전학 연보(Annals of Human Genetics)로 바뀌었으며, 우생학 분기 보고서(Eugenics Quarterly)는 사회생물학 저널(Journal of Social Biology)로 변경되었다.[21] 그러나 홀로코스트 후 약 60년이 지난 오늘날, 골턴의 우생학이 낳은 살인적인 개념이 다시 살아나 번성하고 있으며, 의학적 존중의 상징인 실험실 가운을 덧입고 있다. 

오늘날 의사들은 태아/배아 줄기세포 연구에서 뿐만 아니라, 낙태, 유아살해, 안락사 등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창 1:26)된 인간을 일상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가. 낙태

영국의 저명 신문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발 기형 또는 언청이나 입천장 파열과 같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기형 태아에 대한 낙태 시술이 점증하고 있으며, 보다 많은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태어나지도 못하고 살해당하고 있다”고 한다.[22]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대학의 제클린 레잉(Jacqueline Laing) 박사는 ”이러한 모습들은 기형아를 없애는데 광분한 소비주의 사회의 우생학적 추세를 나타내는 증세이다”라고 논평한바 있다. ”이는 노골적인 우생학의 행태이다”라고 영국 라이프 트러스티의 뉴알라 스캐리스브릭(Nuala Scarisbrick)은 말했다. ”그들은 장애인들에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끔찍할 뿐만 아니라, 혐오스러운 일이지요.”[22]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5천만 건의 낙태가 시술되고 있다. 신생아 3명 당 1명에 해당하며, 세계 평균으로 볼 때, 자궁 내 태아는 4분의 1 확률로 고의살해 위험에 처해있다.[23]

나. 유아 살해


중국은 가구 당 1 자녀라는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가구는 아들을 원하며,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는 죽을 수도 있다. 가끔씩 그와 같은 소름끼치는 법칙이 자행되고 있으며, 그나마 다행이라면 태어나기 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태아의 성감별이 일반화되어 있으며, 낙태의 대부분은 여아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권신장론자(feminist)들이 낙태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23]

장애아 역시 같은 위험에 놓여 있다. ‘윤리주의자’인 피터 싱어(Peter Singer)라는 사람은 일정한 나이까지의 유아 살해를 합법화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장애아를 죽이는 것이 사람을 죽이는 것과 도덕적으로 동일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까지 쓰고 있다.[24]

다. 안락사


2001년 5월,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안락사(euthanasia)가 합법화됐으며, 그 법은 2002년 1월부터 발효되었다. 벨기에에서는 안락사가 묵인되다가, 2002년 5월에 합법화됐으며, 스위스, 노르웨이, 콜럼비아 등에서는 묵인되고 있다.[23]


결론

물론 모든 진화론자들이 살인자는 아니다. 프랜시스 골턴도 자신의 이론이 방어능력이 없는 미출생 아이들에 대한 학살은 차치하고,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이끌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살인 행위는 전적으로 진화론의 가르침, 즉 가장 약한 자가 도태된다는 적자생존의 법칙과 일치하는 것이다.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결과이다. 예수는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마 7:17–18)라고 말씀하셨다.

우생학이라는 죽음의 철학과는 대조적으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 보기시에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창 1:26–27)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또한 살인, 즉 무죄한 자에 대한 고의적인 살인을 명시적으로 금하셨다(출 20:13). 실제로, 하나님은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으며(요 3:16–17), 우리가 그를 믿을 때에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변화되게 하셨다(롬 8:29, 고후 3:18).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본성을 취하여(히 2:14), 마지막 아담이 되었으며(고전 15:45), 그리하여 첫 번째 사람인 아담 혈족의 구속자(Redeemer, 이사야 59:20)가 되셨던 것이다.


우생학과 스코프스 원숭이 재판 (Scopes Monkey Trial) [1]


.스코프스 재판에서 대결했던 진화론 측의 클라렌스 데로우(Clarence Darrow, 왼쪽)와 창조론 측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스코프스(Scopes)가 가르친 진화론 교과서였던 조지 헌터(George Hunter)의 '시민생물학(Civic Biology)'과[2] 실험 부교재는[3] 노골적일 만큼 우생학적이고 무례할 만큼 인종차별적이었다. 헌터는 인류를 다섯 인종으로 나누고, ‘에티오피아계 혹은 흑인계’로부터 유럽과 미국의 문명화된 백인 거주민로 대변되는 가장 높은 등급의 백인계까지 각 인종별로 진화 수준에 따라 등급을 매겼다.[4] '시민생물학'은 범죄와 부도덕은 가계 내에서 유전되어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가계들은 사회의 기생충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그 사람들이 하등동물이라면, 그들을 대대적으로 제거해, 그들이 사회에 퍼지는 것을 막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인류가 이를 허락하지는 않겠지만, 보호시설 또는 다른 장소에서 성적으로 격리하거나, 그러한 열등하고 퇴화된 인종이 혼인하여 영속화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4]

이것이 당시의 진화론자들이 스코프스가 가르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던 책이다! 이 모든 것은 데이비드 멘튼(David Menton) 박사가 만든 DVD인 Inherently Wind: a Hollywood History of the Scopes Trial (right)에 기록되어 있다.


References and notes
1. The 1925 trial in Dayton, Tennessee, USA, of high-school teacher John T. Scopes, charged with violating state law by teaching the theory of evolution.
2. Hunter, G., A Civic Biology Presented in Problems, American Book Co., New York, USA, pp. 195–196, 1914.
3. Hunter, G., Laboratory Problems in Civic Biology, American Book Co., New York, USA, 1916.
4. Ref. 2, pp. 261–265.



Judgment at Nuremberg (뉘른베르크 재판) 

Perhaps the most frequently asked question concerning the eugenics-inspired genocide of the Holocaust is: ‘How could it have happened?’ In the 1961 MGM film Judgment at Nuremberg, about the trial of four Nazi war criminals, judges who had enforced Nazi decrees,1 one of the defendants (Judge Ernst Janning, played by Burt Lancaster) cries out to Chief Judge Dan Haywood (played by Spencer Tracy): ‘Those people—those millions of people—I never knew it would come to that. You must believe it!’ Haywood’s response was eloquent: ‘It came to that the first time you sentenced a man to death you knew to be innocent.’

Likewise today, eugenic killing of innocent preborn babies because they are thought to be less than perfect began the first time a doctor consented to kill a handicapped child in the womb. The rest is history.

[1].Based on the third Nuremberg Trial (1947), also called the ‘Judges’ Trial’ because it tried Nazi judges and prosecutors for imposing the Nazi ‘racial purity’ programme through the eugenic and racial laws. There were a total of 13 Nuremberg Trials.

The photograph (above right) comes from the first Nuremberg Trial (1945–6), the most famous and significant of them because it tried the main German leaders.
Front row (left-to-right): Hermann Göring, Rudolf Hess, Joachim von Ribbentrop, Wilhelm Keitel;
Back row: Karl Dönitz, Erich Raeder, Baldur von Schirach, Fritz Sauckel. (Courtesy Wikipedia)



References and notes

1. Cowan, R., Sir Francis Galton and the study of heredity in the nineteenth century, Garland Publishing Inc., New York, USA, p. vi, 1985.
2. Forrest, D.W., Francis Galton: The life and work of a Victorian genius, Paul Elek, London, UK, p. 25, 1974.
3. Subjects included twins, blood transfusions, criminality, travel in undeveloped countries, meteorology, correlational calculus, anthropometry (measurement of the human body), and fingerprints as a means of identity—first used by Scotland Yard in 1901 and now throughout the world.
4. Galton to Darwin, 24 December 1869, quoted from ref. 1, p. 74. Return to text
5. Galton, Sir Francis, Encyclopædia Britannica 5:97–98, 1992.
6. These two views of heredity versus environment have also been labelled ‘nature versus nurture’.
7. Galton, F., Hereditary talent and character, 2 parts, MacMillan’s magazine 12:157–166 and 318–327, June and August 1865 (Source: ref. 1, p. 1.).
8. Ref. 1, p. 75.
9. Galton, F., Memories of my life, Methuen & Co., London, UK, pp. 317–18, 1908.
10. Bergman, J., ‘H.G. Wells: Darwin’s disciple and eugenicist extraordinaire’, Journal of Creation 18(3):106–110, 2004.
11. The last sentence of Galton’s autobiography reads: ‘Natural Selection rests upon excessive production and wholesale destruction; Eugenics on bringing no more individuals into the world than can be properly cared for, and those only of the best stock.’ (Ref. 9, p. 323.)
12. In 1931, Vermont became the 31st US State to enact a sterilization law (not repealed until 1973). Source: Washington Post, 8 August 1999, p. A21.
13. Wieland, C., The lies of Lynchburg, Creation 19(4):22–23, 1997.
14. ‘Eugenics’, Encyclopædia Britannica 4:593, 1992.
15. Black, E., War against the weak: Eugenics and America’s campaign to create a master race, Four Walls Eight Windows, New York/London, 2003; see review by Sarfati, J., Creation 27(2):49, 2005.
16. Isherwood, J., Payout planned for victims of ‘barbaric’ sterilizations, Sydney Morning Herald, 27 August 1997, p. 10.
17. Sarfati, J., Nazis planned to exterminate Christianity, Creation 24(3):47, 2002.
18. Evolution describes the results of selection. See Stein, G.J., Biological Science and the Roots of Nazism, American Scientist 76:50–58, January–Februay 1988.
19. See Bergman, J., Darwinism and the Nazi race Holocaust, Journal of Creation 13(2):101–111, 1999. This is thoroughly documented in Weikart, R., From Darwin to Hitler: Evolutionary Ethics, Eugenics, and Racism in Germany, Palgrave Macmillan, New York, USA, 2004; see review by Sarfati, J., Creation 27(4):39, 2005.
20. Bergman, J., Darwinism’s influence on modern racists and white supremacist groups: the case of David Duke, Journal of Creation 19(3):103–107, 2005.
21. Clay, C. and Leapman, M., Master race: The Lebensborn experiment in Nazi Germany, Hodder & Stoughton, London, UK, p. 181, 1995.
22. British abortion rate skyrockets as couples eliminate ‘defective’ childrenLifeSite Daily News, for Monday 31 May 2004.
23. Statistics from Festival of Light, Adelaide, Australia.
24. Singer, P., Taking life: humans, excerpted from Practical Ethics, 2nd ed., Cambridge, pp. 175–217, 1993. Singer is Ira. W. DeCamp Professor of Bioethics at the University Centre for Human Values, Princeton University.


*참조 : Endgame - Eugenics Pt.1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jxpN0GLyAls

Endgame - Eugenics Pt.2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0gDJTQkrovU

Endgame - Eugenics Pt.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dd9NwSBS0TE

Endgame - Eugenics Pt. 4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lJZQ5LaWsfo

Endgame - Eugenics Pt.5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4FqSGXrnudo

Evolution and Eugenics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0lDyU0Pl8aQ

Sir Francis Galton - Father of Eugenics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ufqOe0_pres&feature=related

Eugenics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zjNm_D7MhV8

Darwin and eugenics
http://creation.com/darwin-and-eugenics

‘Hooray for eugenics!’
http://creation.com/hooray-for-eugenics

Ota Benga: The Story of the Pygmy on Display in a Zoo

https://www.creationresearch.org/crsq-1993-volume-30-number-3_ota-benga-the-story-of-the-pygmy-on-display-in-a-zoo

The church preaches eugenics: a history of church support for Darwinism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54-60.pdf

A Civic Biology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6038/

Darwinism and the teaching of racism and eugenics in biology textbook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1/j18_1_65-70.pdf

Adam’s brothers? Race, science and Genesis before Darwi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118-122.pdf

The history of the teaching of human female inferiority in Darwin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12

Darwin Taught Male Superiorit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1/darwin-taught-male-superiority

Dawkins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83/

Darwinism’s influence on modern racists and white supremacist groups: the case of David Duke
http://creation.com/darwinisms-influence-on-modern-racists-and-white-supremacist-groups-the-case-of-david-duke


번역 - 김형중

링크 - http://creation.com/eugenics-death-of-the-defenceless 

출처 - Creation 28(1):18–22, December 2005.

미디어위원회
2012-06-20

스탈린의 죽음의 철도가 폭로되다.

(Stalin’s Railroad of Death Unearthed)

David F. Coppedge 


      신학교에서 다윈의 책을 읽고 무신론자로 바뀐 스탈린(Stalin)은 잔인한 독재자가 되었고, 공포의 통치로 히틀러보다 더 많은 수백만 명을 죽인 냉혹한 독재자가 되었다. 그의 사악한 행위 중 하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최소 십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내몰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완성시키지 못했던 시베리아의 철도 프로젝트(railroad project in Siberia)이다.


BBC News(2012. 6. 7)는 목격자인 루드밀라 리파토바(Lyudmila Lipatova)를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그 철도 프로젝트의 강제 노동을 선고를 받은 30만 명의 노예와 같은 노동자의 1/3이 날씨, 기아, 또는 교도관의 만행으로 죽었는데, 그는 1947~1953년까지의 이 잔혹한 기간에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이야기는 스탈린 통치의 공포에 관한 것이었다. 그 독재자는 조국을 위한 지뢰 제거를 위해 병사들을 지뢰밭으로 내몰았으며, 동부 및 서부 시베리아를 연결하는 수천 마일의 철로를 건설하는 그의 웅대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러시아의 남성과 여성은 불충분한 이유로, 혹은 전혀 이유도 없이 범죄자로 고발되어, 겨울에는 –50℃, 깊이 빠지는 눈 속에서, 여름철에는 견딜 수 없는 더위와 모기 속에서 계속 일해야 하는 중노동자로 처해지는 운명이 되었다. 무자비한 교도관은 때로 비협조적이라는 노동자를 발가벗겨 기둥에 매달고는 모기의 맹습을 받도록 방치했는데, 리파토바는 그 고문을 ”어떤 고문대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불렀다. 그의 문서에는 진귀한 사진도 들어있었다. 한 가지 잊혀지지 않는 사건은 미모의 한 젊은 여성이 어떠한 잘못도 없음에도 쥐가 그녀의 고용주의 은행어음을 갉아먹어버린 후에 횡령으로 고발되어, 철도 프로젝트의 중노동자로 끌려온 경우였다.


그 철도는 완성되지 않았다. 그리고 죄수들의 운명은 지금까지 거의 잊혀진 채로 내려왔다. 이제 70대의 리파토바는 비참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단하였다. 60년이 지난 후인 현 정권은 ‘뼈들의 철도(Railroad of Bones)‘ 프로젝트를 재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는 바라건대, 건설노동자들을 더 인자하게 대해줄 것을 소망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16)”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믿음을 다윈에게 쉽게 내던져버린 그 신학생은 자신이 새로 선택한 우상, 즉 최적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이론을 참된 진리로 믿어버렸던 것이다. 스탈린은 무자비한 힘을 선호하는 자연 법칙으로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러한 스탈린의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히틀러를 초보자처럼 보이게 하는 공포 통치를 통해, 목사, 시민, 심지어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까지 고문하고 죽여버린 괴물로 만들었던 것이다. 자신은 호화로운 사치와 쾌락에 빠져 있으면서, 자신을 구국의 영웅으로 숭배하도록 그의 희생자들을 성공적으로 세뇌시켰다. 이러한 책략은 자신을 중국, 북한, 캄보디아, 이라크, 쿠바 등 독재자들의 롤 모델로 만들게 했다. 그가 1953년 뇌졸중으로 죽지 않았다면, 스탈린은 서방으로 핵무기를 향하게 했을 것이다.


한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아픔과 고통을 고려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에서는 20세기에 실행되었던 마르크시즘(Marxism)의 독재 역사를 결코 배워보지 못한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그 공산주의의 '신조'가 계속 가르쳐지고 있다. 학생들은 또한 마르크시즘과 진화론 간의 연결을 들어보지 못했다. 당신은 스탈린이 수많은 교회들을 무신론 박물관으로 바꾸고, 수많은 목사들을 강제수용소와 시베리아로 보냈다는 것을 알면 놀랄 것이다. 이들은 사형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BBC는 이 이야기를 권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뉴스 매체들처럼 여전히 다윈(진화론)을 포용하고 있다. ‘뼈들의 철도’는 스탈린이 최소 2,000만 명의 시민들을 죽이고, 더 많은 사람을 투옥시켰던 12년간 공포의 독재정치의 한 일면일 뿐이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알고 있다면, 다윈은 멋진 사람이고, 스탈린은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잘못 인도된 젊은이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야만 한다.


연습 : 모택동이 죽인 사람은 7,700만 명에 이른다(11/30/2005).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죽은 사람들의 수는 무려 1억4,800만 명에 이른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인지 상상할 수 없다면, 밤낮 쉬지 않고 5초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계속 불러 보라. 그 숫자는 28년간 계속 세어야 하는 숫자이다!

 

*참조 : Stalin's 'Railroad of Death' Witnesses Revival - CBN.com
http://www.youtube.com/watch?v=9d8yplyyDto

Most Evil Men in History - Joseph Stalin (1of 3)
http://www.youtube.com/watch?v=C9t6QyEv_fU

Stalin’s ape-man Superwarrior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198/

Resurrecting Stalin’s Ghost  

https://crev.info/2008/09/resurrecting_stalin146s_ghost/

The Darwinian foundation of commun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04

Darwin and Hitler: A Trumped-Up Connection?  

https://crev.info/2008/04/darwin_and_hitler_a_trumpedup_connection/

Nazi-Era Scientists Were Willing Colluders

https://crev.info/2008/02/naziera_scientists_were_willing_colluders/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v.info/2012/06/stalins-railroad-of-death-unearthed/ 

출처 - CEH, 2012. 6. 7.

Brian Thomas
2012-03-07

다윈의 날이 조용히 지나간 이유는? 

(Why 'Darwin Day' Passed without Fanfare)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1809년 2월 12일 태어났다. 그러나 2012년 2월 12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윈의 날(Darwin Day)을 기념하지 않았다. 텍사스 주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 날이 조용히 지나가는 것에 대해, 그리고 미국인의 40%가 창조론을 믿고 있으며, 텍사스 주민의 1/3이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고 믿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 한탄하고 있었다.

산 마르코스 머큐리 지에서 라마 한킨스(Lamar Hankins)는 이렇게 썼다 :

나는 진실이 무엇인지 결정하기 위해서 전문가들 사이의 합의된 의견을 보고 있다... 진화 생물학자들과 관련 분야의 사람들은 진화론은 참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진화론이 사실이라는 과학적 합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1]

그는 덧붙였다. ”아무도 하나님이 1만년 전쯤에 6일 동안 지구와 모든 동식물을 창조하셨다는 믿음을 시험해 볼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경험적 증거들은 생명체는 35억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1]

그러나 역사는 전문가들의 합의가 잘못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한킨스의 발언은 많은 연구자들이 진화론의 많은 과학적 문제점들을 공개적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2]

만약 생명체가 35억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해왔다는 믿음이 시험될 수 있다면, 왜 똑같은 기술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수천년 전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믿음은 시험될 수 없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이 두 이론을 반복적으로 관측하기 위해서는 타임머신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련 과학 모델들은 타임머신 없이도 간접적으로 시험될 수 있다. 진화론을 신봉하는 많은 연구자들처럼, 많은 미국인은 진화모델을 시험해보았고, 진화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왔다.[2]

만약 진화론자들이 창조모델이 시험되고, 조사되고, 검토되는 것을 허용했었다면, 그들은 토론과 논쟁 시에 우월한 지위를 내놓았어야 했을 것이며, 진화론자들의 상투적 수법인 ”당신의 무지가 부끄럽지도 않은가”라는 전략이 그 효력을 잃게 됐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을 조사해보는 것보다 조롱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한킨스가 인용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사려 깊은 미국인들은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아마도 충분한 진화론적 증거들이 제시된다면, 미국인들은 더 쉽게 진화론의 주장을 믿을 것이다.

그러나 의심의 물줄기는 세속적 기원 이야기를 괴롭히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모든 것들이 무로부터 생겨나고, 아무도 조직하지 않았는데 먼지 구름으로부터 별들과 행성들이 생겨나서 정교한 공전 궤도를 돌게 되었며, 무기물로부터는 생명체가 생겨날 수 없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고급 두뇌들, 값비싼 기기들, 순도 높은 시약들을 갖춘 실험실에서조차 생명체를 만들어낸 적이 없음에도, 살아있는 세포는 무기물로부터 우연히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왜 다윈의 날이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기념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미국인들이 진화론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진화론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References

1. Hankins, L. W. Freethought San Marcos: A solution to the post-Super Bowl blahs. San Marcos Mercury. Posted on smmercury.com February 7, 2012, accessed February 13, 2012.
2. A Scientific Dissent from Darwinism. Discovery Institute. Posted on discovery.org, accessed February 13, 201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6680/ 

출처 - ICR News, 2012. 2. 2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316

참고 : 3808|3887|2445|4140|3591|3107|3679|2527|4542|3949|4501|4345|5130|5081|4801|4238

박창성
2012-01-17

진화론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 이유


   진화론이 타당성이 없는 이론이라면 어떻게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었습니까?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진화론이 어떻게 전 세계에 널리 퍼져서 오늘날 모든 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윈(Darwin)이 진화론을 발표할 당시(1859년)의 과학이 진화론의 허구성을 지적할 만큼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는 부모의 형질이 어떻게 자손에게 전해지는지조차 확실히 알지 못하던 시대였습니다. 1900년경이 되어서야 멘델이 완두콩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서 유전법칙을 발견하게 되어 유전자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었고, 그 유전자(DNA)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게 된 것은 훨씬 후인 1953년에 와트슨과 크릭에 의해 DNA의 분자구조가 밝혀지면서부터입니다.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에 대해 무지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진화론의 등장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에 다윈이 진화론을 내놓았다면 인정을 받기는커녕 ”진화를 뒷받침할만한 화석상의 근거가 어디 있느냐?” ”어떻게 DNA의 유전정보가 저절로 만들어지고 바뀐다는 것이냐?”라고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빗발치는 공격을 당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진화론이 검증을 받기도 전에 일반대중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고고학, 인류학, 지질학, 역사학, 천문학, 등 주위의 학문들이 진화론에 맞추어 체계를 세워나갔기 때문에 진화론은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아성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진화론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이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음과 같은 사회적 배경이 작용하였습니다.


첫째, 일반 대중이 진화론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중엽은 미국을 비롯해서 많은 서양나라들이 자유주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종교적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이 팽배했던 사람들에게 진화론은 하나님을 떠나는데 아주 적당한 구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손을 잡고 가다보면 처음엔 즐겁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손을 놓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인류의 역사에서 다윈이 진화론을 내놓을 때가 바로 이 무렵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정치가들이 진화론을 이용했습니다.

당시의 과학,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영국에서는 의회제도가 있었으나, 통치자의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성경에 근거를 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에 따라 절대권력을 왕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왕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는 국회의원들은 성경과 왕권과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성경의 오류를 지적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때 마침 등장한 진화론은 성경의 오류를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로 이용되었습니다.

당시에 순수 학문인 지질학, 생물학, 천문학을 연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귀족계급이거나 의사, 변호사와 같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정치성향이 강했습니다. 이들 중에서 진화론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앞장 세워서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림으로써 왕으로부터 권력을 빼앗게 된 것입니다.


셋째, 고용주들이 진화론을 이용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현대적 공장의 고용주들은 생존경쟁에서 적합한 자만이 살아남고(적자생존), 적합하지 않은 자는 사라지게 된다(자연도태)는 진화론의 논리를 노동자들을 혹사시키고 착취하는데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진화론은 반가운 이론이었습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72

참고 : 2334|2359|2114|2579|3591|3841|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077|3426|3812|3244|3241|3041|3039|3037|3024|2864|2307|2039|2016|1174

Lita Cosner
2012-01-13

다윈주의와 제1차 세계대전 

(Darwinism and World War One)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은 20세기 서양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별히 다윈주의(Darwinism)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던 초기의 사람들 중에 독일의 지성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사상을 적용시켰다. 그들은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삶의 투쟁에 용감히 맞서는 인종의 보존을 적용했다. 이것의 가장 악명 높은 결과는 홀로코스트(Holocaust)였다.[1] 그러나 사회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는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시기의 지성인들은 기독교 신앙과 윤리를 대체하는 것으로 다윈주의와 그 사상의 윤리적 의미를 환영하고 받아들였다. 그 시대 가장 유명한 독일의 다윈주의자이자, 배아 발생 그림의 위조범이었던[2]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은 ”진화론은 인류의 세계관에 완벽한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믿었다.[3] 그는 다윈주의는 기독교적 윤리의 포기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다윈주의의 출현 전까지, 인간 생명의 고귀함은 유럽의 법률과 사상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많은 독일의 지성인들이 사회에서 가치 있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비균등은 인종(race)에 주로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윈주의자들은 또한 같은 인종 내에서도 열등한 개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동물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칼 보그트(Karl Vogt, 1817~1895)는 정신적 장애를 가진 아이는 그의 부모보다 더 유인원(ape)에 가깝다고 주장했다.[4] 그러므로 다윈의 사촌인 프란시스 갤톤(Francis Galton, 1822~1911)에 의해 설립된 개념인 우생학(eugenics)이 독일에서 발달하며 세계 최초로 우생학 협회가 설립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6]

독일의 사회 다윈주의자들은 노르딕 또는 게르만(Nordic or Germanic) 민족이 ‘지배자 인종(master race)’이라 환상에 빠져들었다. 우생학자인 알프레드 플뢰츠(Alfred Ploetz, 1860~1940)는 ‘인종 위생학(racial hygiene, Rassenhygiene)’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후에 나치는 이것을 환영하며 받아들였고, 실행으로 옮겼다. 독일인이 우월하다는 믿음은 나치로 하여금 ‘탐탁치 않은(undesirable)’ 사람들을 제거하도록 이끌었고,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의 다윈주의자들은 같은 개념으로 열등한 인종에 대한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했다. 그들은 우월한 인종의 운명은 하위 인종을 지배하거나 제거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명백한 길은 전쟁을 통해서였다. 그들의 관점에서 모든 인종들과 나라들은 생존 경쟁에 놓여있었고, 전쟁을 수행하지 않는 인종이나 나라는 사라질 것이었다.[7] 다른 말로 해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평화는 인종과 그룹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지속적인 전투에서 잠시의 휴전이었다.[8]

‘생활권(Lebensraum)'이라는 개념은 독일이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그들의 이웃 나라들을 점령하는 것을 정당화했던 변론 중 하나였다. 독일은 인구가 넘치지 않은 반면, 다른 인종들은 많아지고 있는 중이며, ”전쟁이 없다면, 하위의 또는 부패된 인종들이 싹트는 건강한 인종의 성장을 쉽게 질식시켜버릴 것이며, 세계적인 부패가 초래될 것이다”라고 믿었다.[9]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러한 인종 경쟁을 강조했다 :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물려줄 경제 조직의 종류에 대해서보다, 오히려 우리가 투쟁을 통해 얻은 그리고 뒤에 남겨놓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elbow-room, Ellbogenraum)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다.”[10]

흥미롭게도, 독일의 다윈주의자들은 전쟁이 지배 인종에 유익한 지에 관해서 나뉘어졌다. 헤켈을 포함한 일부는 반전론자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쟁이 지배 인종의 최고 구성원들을 죽여버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류학자인 오토 암몬(Otto Ammon, 1842~1916)은 전쟁은 나라가 더 강해지고, 적자인 반대자에 위대한 승리를 시험하는(최적자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11] 물론 독일의 인구 중에도 탐탁하지 않은 개인들이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플뢰츠는 이들을 전쟁의 최전선으로 내보내 더 적합한 사람들보다 앞서서 죽임을 당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12]

전쟁을 진화의 도구로써 보는 이러한 관점 때문에, 독일의 지도자들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을 지라도, 전쟁을 바람직한 선택으로 간주했다. 또한 거기에 숙명론적인 요소도 있었다. 즉, 그들은 전쟁은 그들의 운명이고, 그들은 ”세계의 발전에 예정된 역할”을 완수하고 있었다고 믿었다.[13]

어떤 사람들은 다윈이 직접적으로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의 원리를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용어는 그리고 진화론적 사고와의 연결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윈은 동물 사회에서 살육은 진화가 진행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

”그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여왕벌이 자신의 딸인 어린 여왕벌들이 태어나자마자 즉시 죽여버리는 야만적이고 본능적인 증오는 동경해야 한다. 의심 없이 이것은 사회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어미의 사랑과 어미의 증오(이것은 다행스럽게도 매우 드물지만)는 자연선택의 냉혹한 원리에서 모두 같은 것이다.”[14]

다윈은 단순이 이 이론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을 탐탁하지 않아 했다. 그러나 독일의 사회 다윈주의자들은 다윈의 거리낌을 공유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을 유발한 다른 요소들이 있었지만, 사회 다윈주의와 반기독교 윤리 체계에 대한 독일 지도자들의 보편적인 믿음은 그들의 군국주의를 정당화했으며, 그것을 도덕적 선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Related articles
The Darwinian roots of the Nazi legal system
Refutation of New Scientist’s Evolution: 24 myths and misconceptions (Nazi-Darwin link)


Further reading
Communism and Nazism Questions and Answers


References and notes
1. Weikart, R., From Darwin to Hitler: Evolutionary Ethics, Eugenics, and Racism in Germany, Palgrave Macmillan, New York, USA, 2004; reviewed at creation.com/weikart. Dr Richard Weikart is professor of modern European history at California State University, Stanislaus.
2. Grigg, R., Ernst Haeckel: Evangelist for evolution and apostle of deceit, Creation 18(2):33–36, 1996; creation.com/Haeckel; Fraud rediscovered, Creation 20(2):49–51, 1998; creation.com/fraud.
3. Weikart, R., Darwinism and death: devaluing human life in Germany 1859–1920,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63(2):323–344, 2002; p. 325.
4. Weikart, ref. 3, p. 333.
5. Greek: εὐ– (eu–) meaning 'well” and γένος (genos) meaning 'kind” or 'offspring”.
6. Grigg, R., Eugenics … death of the defenceless: The legacy of Darwin’s cousin Galton, Creation 28(1):18–22, 2005; creation.com/eugenics.
7. Hamilton, R. and Herwig, H., 'World wars: definitions and causes”, in: Hamilton, R. and Herwig, H., eds., The Origins of World War One, p. 26,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8. Weikart, R., The origins of social Darwinism in Germany: 1859–1895,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54(3): 469–489; p. 485.
9. Evans, R., The Coming of the Third Reich, p. 35, Penguin, 2005.
10. Weikart, ref. 8, p. 482.
11. Weikart, ref. 8, p. 482.
12. Evans, ref. 9, p. 35.
13. Herwig, H., 'Germany” in: The Origins of World War One, Ref. 7; p. 186.
14. Quoted from Weikart, ref. 3, pp. 331–332. See also Muehlenberg, B., 'Darwin and eugenics: Darwin was indeed a ‘Social Darwinist’”, creation.com/darwin-and-eugenics, 18 March 2009.



번역 - 정윤창

링크 - http://creation.com/darwinism-and-world-war-one

출처 - Creation magazine, April 201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70

참고 : 3717|3369|3077|3057|1176|496|682|4636

미디어위원회
2011-10-20

노르웨이의 학살자 

: 문화적 기독교인, 실질적 진화론자 

(Norway Killer Cultural Christian, Practical Darwinian)

David F. Coppedge


      지난 7월 23일 노르웨이에서 90명 이상의 시민들을 대량 학살한 앤더스 브레빅(Anders Breivik)에 대한 초기의 언론 보도들은 그를 ”우익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묘사하였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1500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성명서에 따르면, 그는 문화적, 정치적으로 기독교와 관련되어 있었지만, 개인적인 신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의 행동의 주요 동기는 기독교적 유럽의 정치적 공정성과, 다문화주의를 야기시키는 이슬람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쓴 글들을 살펴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기보다는, 세속적 과학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진화론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나타났다.

WND(World Net Daily)는 7월 23일 브레빅을 기독교인으로 보도했으나, 24일 브레빅의 전체 성명서를 통해, 브레빅은 진화론자일뿐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며 그를 구원자요 주님으로 믿는 일반적인 의미의 기독교인이 결코 아닌 것으로 발표하였다. (WND, Terrorist proclaimed himself 'Darwinian,' not 'Christian')

브레빅은 성경을 광범위하게 인용함과 동시에 다른 역사책과 철학책들도 인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인용들은 자신의 테러 행위를 국가적 정당방위 행위와 동일한 것이라고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그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일인 십자군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위한 그의 계획을 정당화하려는 것임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또한 그의 일인 십자군 계획은 무슬림들을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에서 서구 시민사회를 파괴하는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는 노르웨이의 자유노동당을 반대하기 것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그의 성명서에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생각들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  

▶ 그는 페미니스트들이 결혼을 파괴하는 것에 대하 논박하면서 말했다 : ”결혼은 ‘여성을 억압하기위한 음모’가 아니라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결혼은 종교적인 어떤 것도 아니다. 엄격한 무신론적 진화론에 의하면, 생명의 목적은 번식하는데 있다.”

▶ 정치적 공정성에 대하여 비난하면서, 그는 사회진화론을 찬성하는 말을 했다 : ”사회 다위니즘(Social-darwinism)은 1950년 이전에는 사회적 표준이었다. 그 이전에는 우리가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용인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유전적 우월주의자라고 낙인찍힐까봐 두려워서, 우리가 선호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숨겨야만 한다.”

▶ 아프리카에 대한 차별을 지지하면서, 그는 말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근시안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프리카 차별 정책을 냉소적인 또는 진화론적 사고로 간주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정책은 가장 인간적이고 책임 있는 접근방식이다.”

▶ 완전한 유럽에 대한 그의 비전을 묘사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논리적인 이성주의자들의 생각(어느 정도의 국가적 진화론)은 우리 사회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그의 가족 배경을 살펴보면, 그의 부모나 양부모 혹은 형제들 중 누구도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을 발견할 수 없으며, 그의 삶과 신념에 대한 장문의 글을 살펴보면, 성경적인 기독교는 그의 이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그의 ‘보수주의’는 신-나치 (우파적) 힙합과 (좌파적) 헤비메탈 중에 어떤 것을 택하느냐 하는 정도이다. 그의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는 ”문화적 보수주의, 혁명적 보수주의, 유럽의 반이슬람주의, 경제적 자유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견해를 ”개신교 기독교인이지만, 나는 가톨릭에 의해서 흡수되는 개신교의 개혁을 지지한다. 전형적인 ‘개신교 노동당 교회’(Protestant Labour Church)는 그 탄생이 교회를 파괴하려고 시도임으로 해체되어야만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계속해서 ”나는 온건한 불가지론자에서 온건한 종교론자로 변화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부분들에서는 그가 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이 아니라, 단지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 사람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부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종교적인 기독교인이다. 나 자신이나 혹은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기독교를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으로, 그리고 도덕의 기본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우리를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와 같은 기독교인의 정의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때문에 그가 자신을 ”100% 기독교인”이라고 부를 때, 그는 단순히 서구의 기독교 정치의 전통과 가깝다는 뜻이지, 결코 그가 예수님께 순종하는 기독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는 ”하지만 나는 현재 자멸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방식, 특별히 개신교 교회의 방식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나는 자기 방어의 신념을 가진 교회, 자신의 교리와 가치를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교회, 자신들을 점차 몰살시키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 최소한 저항은 할 수 있는 교회를 지지한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무슬림이 자신의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그가 넓은 의미에서 단지 문화적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더 많은 증거들이 그의 혁명적인 운동을 위하여 발췌한 글들에서 나타난다. ”당신이 십자가를 위하여 싸우고 ‘순교자의 십자가’ 아래에서 죽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행동하는 기독교인, 불가지론자 기독교인, 혹은 무신론적 기독교인(문화적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과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관계보다 문화적인 요소들이 더 중요하다. 심지어 오딘주의자(Odinist)들도 이 싸움에서 그들이 우리의 기본적 교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와 함께 또는 우리 편에서 형제로서 함께 싸울 수 있다.” 오딘주의자는 노르웨이 신화를 믿는 이교도들이다.

확실히 성경적 창조론은 그의 세계관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교회와 과학에 관해서 말할 때, 논쟁할 필요도 없이 반드시 과학이 성경적 가르침보다 우선 순위를 가져야 한다. 유럽은 항상 과학의 요람이었고, 앞으로도 항상 그 길을 걸어야만 한다. 하나님과 나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나는 열성적인 종교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논리주의자이다. 하지만 나는 동일한 기독교 문화의 유럽을 지지하는 사람이다”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또한 그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책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며, 홉스, 마키아벨리, 막스, 엥겔스, 아인 랜드(Ayn Rand)의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는 노르웨이 민족을 멸종으로부터 보존하기위해서 우생학(eugenics)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의 긴 선언문에는 대량살상을 위한 폭탄과 무기 제조법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커다란 자신의 사진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 사진들 중에는 최첨단 바주카포를 들고 ”다문화-반역자 사냥 허가”를 의미하는 ”막시스트 사냥꾼(Marxist Hunter)”과 같은 문구가 새겨진 띠를 두른 사진도 있었다.

브레빅의 관점에 대한 더 자세한 해설을 위해 Uncommon Descent를 보라.



그는 빌딩을 폭파시키고 7명의 사람을 죽인 후, 청소년 캠프장에서 냉혹하게 80명의 청소년들을 총으로 살해한 사람이다. 이것은 병적인 자아도취증 환자이며, 외국인을 혐오하는 이기주이자이며, 정신 나간 미치광이의 혼란스러운 이야기이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무슬림들에게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십자군전쟁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그의 노르웨이의 유산이라고 규정했다. 그를 보수적 우익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나치당을 보수적 우익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 되지 않는다. 히틀러도 문화적 기독교인들 혹은 노르웨이 유산을 지키고자 했던 이교도들이 그의 나치당에 참여하는 것을 환영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누구나 죽여 버렸다. (이것은 물론 ”정당방위”라는 명분으로 행해졌다).

매우 긴 그의 연설문과 성경과 기독교를 자주 인용하는 모습 때문에, 그가 다윈의 지지자로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의 목적 중 어느 것이 예수 그리스도나 바울 혹은 다른 사도들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 있는가? 명백하게 아니다. 그것은 정반대되는 것이다. 극단적 종파주의자처럼 브레빅은 그의 '정당방위”를 지지해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문구를 찾아서 성경을 헤메고 다녔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방어적인 행동이 결코 아니었으며, 방어할 수 없는 시민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증오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역사와 책들을 이용한 미치광이의 비겁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기독교적 신앙은 성경의 말씀과 완전히 반대되는 많은 모습들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바로 그러한 이유로 기독교라는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는 말은 공허한 말이 되고 있다. (”기독교적 무신론자”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명백히 앤더스 브레빅은 명목상 기독교인(CINO: Christian in name only)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의 진심은 다윈과 함께 하고 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진화론적 세계관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게 된다. 컬럼바인의 살인자(11/22/2006), 십대 허무주의자(11/12/2009), 핀란드의 살인마(11/08/2007), 제임스 본 브런(06/14/2009) 등과 같이 앤더스 브레빅은 치명적인 계획을 날조해 내고, 마오쩌둥과 폴포트의 전통 하에서 적자생존의 이름으로 냉혹하게 조직적으로 행해졌던 가증스런 살인을 저지르는데 다윈의 사상을 활용했던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인들은 언론 매체들이 정치적 광신도인 사회진화론자들과,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연관지으려 할 때, 언론 매체들의 실수를 지적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참조 : 노르웨이 테러, 90여 명 사망…'범행 시인” (2011. 7. 24. KBS New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2328950

노르웨이 총기난사 테러  (2011. 7. 25.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IIS20110725000200365

노르웨이 연쇄테러 최소 91명 사망 (2011. 7. 23.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488713.html

노르웨이 "용의자는 '기독교 근본주의자'" (2011. 7. 23.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11072356378

"노르웨이 테러 기독교와 결부시키지 말아야" (2011. 7. 25.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10725111200005


번역 - 주영환

링크 - http://crev.info/content/110724-norway_killer_cultural_christian_practical_darwinian 

출처 - CEH, 2011. 7. 24.

미디어위원회
2011-06-18

스티븐 호킹의 무신론

고건 


      최근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의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라는 책이 전 세계적으로 무신론을 부추기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우주는 (중력법칙과 양자이론에 따라) 無에서 자연 발생됐다. 우주는 ‘빅뱅’에서 출발했고, 빅뱅은 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력 법칙에 의해 우주만물을 스스로 창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뉴스를 접할 때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그의 말이 참인지 아닌지를 우리의 짧은 식견으로는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은 다른 유명한 과학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주시하는 것이다. 만일 스티븐 호킹의 주장이 참이라면, 그의 주장이 모든 과학자들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아래와 같은 일들이 뒤따라야 한다. 아래와 같은 일들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호킹의 주장이 과학자들의 동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

1. 호킹의 주장이 참이라면 생의 기원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나, 지구진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는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중력법칙 학자들로 대체될 것이다. (호킹 주장대로라면) 생의 기원에 관한 문제들은 다 중력법칙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이 이 주장에 동의하는 것 같지 않다.

2. 호킹은 ”물리학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신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호킹이 이처럼 무신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것이라면, 전 세계 모든 기독교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은 교회를 스스로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노벨상을 탔던 기독교 과학자들도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다 교회를 떠날 것이다. 그러나 내 주변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전혀 안 보인다. 나 자신부터 호킹의 주장보다 성경이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3. 호킹의 주장이 참이라면 앞으로 과학교과서에서는 ”無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스스로 생겨날 수 있다”고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물질/에너지가 無에서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인 것을 감안할 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 같다 (E = MC^2 공식 참조).

4. 호킹의 주장이 참이라면 스티븐 호킹은 신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최종 해결한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러나 동료 물리학자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의 영향력은 -- 무신론을 주장한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 물리학자 가운데서도 40등 정도의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의 진위 여부는 전적으로 빅뱅론이 옳은가 아닌가 여부에 달려 있는데 '우주론 저널'이라는 2010년 4월 미국 과학저널에 실린 ”Big Bang Model? A Critical Review”에 의하면 백뱅 이론은 아직도 많은 모순과 미비점을 노출하고 있어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점은 스티븐 호킹이 아직도 노벨상을 타고 있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무엇보다 스티븐 호킹이 무신론을 주장하기 위해 택한 통로는 전문적 과학논문지가 아니라 자신의 책을 통해서였다는 점이다. 이 점이 왜 중요한가 하면 -- 과학논문지는 동료 과학자들에 의해 엄정한 과학적 검증과정을 거치지만, 책은 그러한 검증과정을 안거치기 때문이다. 토마스 라퀘르(Thomas W. Laqueur)라는 유명한 역사학자는 ”현대과학의 가장 큰 특징은 논문이 출판되기 전에 동료전문가들에 의한 검증받는 제도(Peer-Review)”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스티븐 호킹의 무신론 주장은 동료과학자들의 검증을 받은 적이 없고, 자신의 의견을 자의적으로 담은 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스티븐 호킹의 두 권의 책이 많이 팔려나가고 있는데 그 책들은 '과학의 소개'라는 관점에서는 별로 두각을 나타낼만한 책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 책들이 많이 팔리는 진짜 이유는 -- 그 책들이 과학보다는 (과학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글들로 시종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서평들이 그가 책을 계속 써내는 진짜 동기를 의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얕은 물리학 지식을 한탄하기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살펴보아야 한다. 과연 하나님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잘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신에 대해 매우 섭섭해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천국에는 천재들만 입장이 허락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같이 물리, 수학 성적이 안 좋은 사람들은 천국행 생각을 아예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양자역학을 모르면 어떤가? 오히려 겸손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정결한 자 --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천국에 가야하지 않겠는가? 천국이 (머리는 안 좋아도) 이러한 겸손하고 따뜻한 사람들로 채워지려면 하나님은 양자역학만 잘하는 (그러나 교만하고 사랑 없는) 사람은 어떻게 다루실까? 하나님은 그러한 과학자들에게는 혹시 그 자신을 스스로 숨기시지 않으실까?

V. 메쏘리는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스스로를 숨기시는 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교만하고 사랑 없는 과학자에게는 끝까지 그 자신을 숨기시는 분이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오직 사랑하는 만큼만, 그리고 겸손하고 정결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만큼만 (참고로 호킹은 두 번 다 이혼하였다) 하나님을 알게 해주신다고 거듭 기술하고 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8)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11:25-28)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린도전서 1:19)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린도전서 1:2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린도전서 1:26)

기독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계시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때 하나님은 과학도 계시를 주시는 방도의 하나로 사용하실 수 있다. 인류역사에서 근대과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은 모두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었다. 그들은 ”신이 창조한 우주가 고대 그리스 학자들 주장처럼 복잡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지동설을 연구하게 되었다. 케플러와 뉴턴은 우주가 수학공식에 따라 운행되는 것을 발견하며 ”하나님은 이러한 물리학 법칙을 통해 찬양받고 계시다”고 고백하였다. 스티븐 호킹은 결코 과학적 발견 때문에 무신론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는 과학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그는 자신의 무신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과학을 동원한 것뿐이다. 그의 어머니 이사벨(Isabel)은 1930년대부터 영국에서 공산당원으로 활동했었다. 그는 가정에서부터 무신론과 유물론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호킹은 13세 때 무신론자로 유명한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을 우상처럼 받들었다고 전한다.

한 가지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실은 ”우주가 만유인력과 같은 과학적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 뉴턴이나 케플러에게는 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중요한 통로로 사용된데 반해, 그 동일한 과학적 사실이 스티븐 호킹에게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통로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다.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과학이 믿음의 도구로 사용되고, 안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동일한 과학적 진리가 신을 부정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믿고자 하는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계시를 주시고, 불신을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자유를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가장 존중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믿으려 고집하는 자에게는 결코 계시나 이적을 강제로 보여주지 않으시는, 아니 보여주지 못하시는 분이 바로 기독교의 하나님이시다.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 마태복음 13:58.

마지막으로 컴퓨터공학 전공자로서 호킹이 ”사람은 컴퓨터와 같아서 일부 부품이 고장나면 영원히 그 컴퓨터를 못 쓰게 된다”고 주장한 것은 잘못된 비유임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요즈음에는 컴퓨터 주기억장치도 비휘발성 기술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어떤 부품이 고장 나더라도 그 부분만 교체하면 컴퓨터는 얼마든지 다시 가동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태양을 가려서 그림자를 만들 수 있지만, 태양 자체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듯이, 어떤 이론으로 무신론을 주장하더라도, 실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가 흔들릴 수는 없다. 우리의 몫은 과학을 통해 진정 위대한 디자이너이신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더 잘 보이게 하는 것뿐이다.


*참조 : Stephen Hawking: the closed mind of a dogmatic athe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093

Stephen Hawking: Is there meaning to life?

      https://creation.com/stephen-hawking-meaning-to-life

Into the Universe with Stephen Hawking: Aliens

      https://creation.com/stephen-hawking-aliens

Hawking atheopathy. Famous physicist goes beyond the evidence

     https://creation.com/stephen-hawking-god

Stephen Hawking’s end of the universe

     https://creation.com/hawkings-end-of-the-universe

Here’s the Intel; Stephen Hawking fears robots could wipe us out

     https://creation.com/hawking-fears-robots-could-wipe-us-out

Stephen Hawking: Key to the Cosmos

     https://creation.com/key-to-the-cosmos


*참조 : 호킹 ”천국·사후세계? 꾸며낸 동화일 뿐” (2011. 5. 16. 문화일보)
: 英 가디언紙와 인터뷰… '죽음 이후 뇌는 고장난 컴퓨터” 주장 논란 일 듯
http://media.daum.net/digital/view.html?cateid=1046&newsid=20110516120109214&p=munhwa

스티븐 호킹, ”우주는 자발적으로 창조” 주장 논란 (2010. 9. 7.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0638

스티븐 호킹, 이번엔 ”신학은 불필요하다” 주장 (2010. 9. 14.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0816

스티븐 호킹 ”결국 과학이 이길 것” (2010. 6. 10.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10/2010061002002.html

스티븐 호킹 ”외계인은 존재한다…만나면 피하라” (2010. 4. 26.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4261106051&code=930401

Creation Moments
2010-11-08

믿음의 힘 

(The Power Of Faith)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디모데후서 3:13)

과학의 역사, 특히 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것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어떤 것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의 힘을 발견한다. 1859년 다윈의 책이 출판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소위 primordial slime(원시 점액: 생명의 근원이 된다고 상상되는 끈적끈적한 점액물질)으로부터 생명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헥켈(Ernst Haeckel)은 이 원시점액으로 부터 생겨난 최초의 단세포 생물로부터 발생한 많은 생물군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러한 생물들이 심해 해저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H.M.S. Challenger 탐사선이 해저로 부터 샘플을 채취했다. 

형체가 없는 원형질물이 채취한 샘플병의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헤켈의 예언적인 발언을 확인하고자 이것들을 ”진행 중인 생명(life in the making)”이라고 선언하면서 Bathybius haeckeli 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수년 후 한 화학자가 병의 바닥에 사용된 보존제는 알콜이었고, 바닷물이 이 알콜에 부어졌을 때 석회 황산염의 무형질의 침적물이 생성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생명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서 이 당혹스런 사실은 영국 언론에서 결코 보도되지 않았다.

실제로 만약 당신이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하면 하나님의 증거를 보는 것이 아주 어려울 것이다. 만약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날 수 있다고 믿으면 당신은 그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 들 것이다. 인간들은 이러한 일들을 수세대에 걸쳐 행해왔다. 오늘날도 계속해서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사실일 거라고 기대하는 바에 대한 증거를 찾고있다.

 

Notes: Creation, 12/00-2: 2001, pp. 36-41, 'Life from life...or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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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김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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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on Moments
2010-09-09

인종차별의 기원 

(The Origin of Racism)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 (사도행전 17:26)

하나님께서 다른 인종간의 결혼을 인정하실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종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봐야 한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아담으로 부터 태어났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또한 우리 모두는 한 핏줄이라고 말하며, 결코 인종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함의 후손들은 저주를 받았는데, 이들이 바로 가나안 족속이었다. 그러나 가나안인인 라합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었을 때 그녀는 믿는 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환영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녀를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족보에 포함시키셨다.

찰스 다윈이 1859년 자신의 그 유명한 책인 '종의 기원'을 썼을 때까지, 교회에서의 다른 인종이라는 개념은 다른 종교와 구별되듯이 그리 대단한 문젯거리가 되지 못했다. 다윈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으로 관점이 극도로 인종차별주의적이어서 유색인종들을 언제나 야만인들이라고 부르곤 했다.

진화론을 주장하기 위한 그의 책의 의도적인 과학적 논거들 중의 하나는 여러 인종들 중 일부의 인종들은 다른 인종들보다도 더 많이 진화되었다는 주장이었다. 교회 밖과 안에서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인종차별주의는 공공연하게 조직화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한 사람과 다른 사람간의 유전적 차이가 보통 0.2%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처럼 인류는 하나인 것이다. 교회는 이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실제 인간인 아담 한사람으로 부터 갈라져 내려온 한 피를 공유하는 한 몸임을 선포함으로서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또한 모든 신앙인들은 우리를 구속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 두 번째 아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후손들이라는 복음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References: Ken Ham, Inter-racial marriage: is it biblical?, Creation 21(3) June-August,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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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김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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