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을 보는 오늘날의 입장
문: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은 과연 옳았는가?
답: 찰스 다윈은 약 1세기 전 런던 근처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심장마비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는데 (1882년 4월19일), 그 이후 그의 이론은 현대 생물학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고 오늘날 숭배에 가까운 열의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과학계에서 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튼, 아인슈타인과 같은 기라성 같은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인정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학설은 커다란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진화론이라는 이론
오랜 기간에 걸쳐 생명체가 진화했다는 진화론은 오늘날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은 사람
들에게는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다윈의 이론 자체를 뒷받침하는 이론이나 실증자료를 수집하려는 진화론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뚜렷하게 입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화론을 견고하게 믿는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가끔 중단되기는 했어도 끊임없이 진화하여 점차 다양하고 복잡하게 진화해 왔다고 하는데, 이들이 주장하는 생명체의 주요한 진화과정은 ① 원시대기에서 유기물질, ② 세균과 점액, ③ 해면동물과 강장동물, ④ 척추가 있는 물고기, ⑤ 바다와 육지에 다같이 살 수 있는 양서류, ⑥ 파충류(공룡포함), ⑦ 조류와 포유류라는 대체로 일곱 단계이다.
다윈은 이중 6단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서 어류가 양서류로, 양서류가 파충류로, 파충류가 조류로, 순서를 밟아 진화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윈은 이러한 과정이 끊임없는 생존경쟁속에서 소위 '자연도태'를 통해 이루어지는 극히 미미한 '발전들'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조금씩 나타나는 과정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자연도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그 어미들보다 약간 우세하다. 즉 시력이 약간 더 좋다거나, 혹독한 추위를 보다 잘 견뎌내는 자질들이 축적되어 드디어 새로운 동물 또는 식물이 나타났다는 것이 다윈 이론의 골자이다.
다윈의 가정은 옳은 것인가?
만일 이러한 다윈의 가정이 옳다면 지구상에서 발굴되는 화석들은 일정한 진화형태를 보여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진화론이 나온 지 120년이 지난 지금 어떤 종(種)의 생물이 다른 종(種)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화석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즉, 다양한 종의 생물들 사이에서의 변이의 중간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어떤 것도 발견된 적이 없다. 예를 들면, 진화론자들은 물고기가 양서류로 변하는 데 약 오천만 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간형태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지느러미 일부를 가지고 있고 발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화석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중요한 식물과 동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진화에 있어서 과도기적인 종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진화론이 인정될 수 없는 이론임을 증거한다. 왜냐하면 인정될 수 있는 이론이라는 것은 그 정의상 관찰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증명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
진화론자들이 오랫동안 들고 나온 논리는, 진화가 일어나는 기간은 수백만 년의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의 진행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아는지를 당연히 물어야 한다. 우리도 맹목적 믿음에 근거하여 진화론자들의 말을 단순히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쨌든 그런 논증은 창조냐 진화냐를 논하기 이전의 문제로서 건전하지도 과학적인 객관성을 지닌 것도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진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적어도 그 진행과정의 약간의 단계라도 관찰할 수 있어야한다.
예를 들어 박쥐의 날개를 들어 보자. 박쥐의 날개는 어떻게 진화하였을까? 박쥐와 날지 못하는 뾰족뒤쥐 모양의 그 조상 사이에는 심각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박쥐가 걸어다니면서 쓰던 다리가 서서히 날개로 변했다는 다윈적 설명을 희미하게나마 뒷받침해 줄 만한 화석은 찾아 볼 수 없다.
또 다른 한 예로 고래를 들 수 있다. 고래의 조상은 물에서 바다로 옮아간 원시적 유제(有蹄)포유류였고, 이 시기에 중간적인 양서류 단계가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디서도 부분적으로 진화된 날개, 다리, 눈 혹은, 다양한 조직이나 기관 등의 생물학적 구조를 볼 수 없다. 더욱이 가령 동물이 진화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불완전한 기관을 가지고는 생존할 수가 없다. 만약 진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면, 자연의 모든 것들은 완전히 무질서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렇듯 과거에 진화가 일어났었다는 것을 표시하는, 부분적으로 진화된 동물이나 식물의 증거가 화석에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진화가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적으로 진화된 동물이나 식물이 오늘날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추종자들은 이따금 유전인자의 실수로 인하여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진화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돌연변이는 아주 드물지만 유익한 것들이 있어 이들이 진화의 메커니즘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이론을 네오다윈니즘(Neo-Darwinism)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그러한 우발적이고 유익한 돌연변이는 자연 도태의 과정을 통해 식물 또는 동물에 서서히 퍼지게 되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신종(新種)이 탄생된다는 것이다.
진화론을 믿는 이유는 진화론이 확실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1966년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있었던 심포지엄에서 그 동안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만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이러한 네오다윈니즘이 물리학자, 수학자와 공학자들 사이에서도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당시 매사추세스 공과대학(mit) 전기공학 교수였던 머리이든은 소위 네오다윈니즘에서 말하는 돌연변이에 의해서 사람이 태어날 확률을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어떤 한 사람이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타자를 쳐서 1000권의 훌륭한 저작을 써내는 것'과 같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즉 그 절차란 '우선 어떤 뜻이 담긴 한 구절을 타자를 치고 거기에 몇 가지 실수를 범하면서 다시 타자 치고 이어 글자를 약간 더 보태어 길이를 늘려 타자를 친 다음, 그 문장이 어떤 뜻이 담긴 문장이 되었는가를 검토해 본다. 그리하여 1000권의 장서가 완성될 때까지 이 과정을 계속 되풀이한다' 는 것이다. 우발적이지만 쓸모 있는 돌연변이라는 관념, 최소한 하나하나 차례로 일어나는 다윈류의 연속적 돌연변이라는 관념은 또 하나의 생물학적 수수께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되는데, 즉 다윈이 말한 '극도로 완벽한 기관' 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다윈이 이 개념을 가지고 가장 고민했던 것은 사람의 눈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하는 문제였다.
눈이 제 기능을 하려면 깨끗하고 습기가 있어야 한다. 눈에 빛이 쪼이게 되면 그 빛은 눈을 보호하는 외곽 즉 각막을 지나 자동조절장치를 가진 구멍으로서의 눈동자를 거쳐, 역시 자동적인 조절기능을 가진 동공을 거쳐 '렌즈(안구의 수정체)' 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렌즈는 빛을 망막에 집중시키는 기능을 한다. 빛이 망막에 집중하게 되면 빛에 민감한 1억 300만 개의 간상체와 원추체들이 광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빛을 전기 신호로 전환시킨다. 그 전기신호는 빠른 속도로 뇌에 전달된다. 이렇게 볼 때 눈의 렌즈, 망막, 뇌는 서로 상대방이 없으면 제구실을 못하는 것인데, 이들이 어떻게 공교롭게도 수천, 수만 번의 우발적인 돌연변이를 똑같이 거듭함으로써 진화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러한 여러 가지 사실들 때문에 현대의 진화론자들조차도 '과연 진화되었는가?' 하는 심각한 회의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우 주장이 강한 진화론자였던 모어(T. L. More)는 이렇게 말한다. '고생물학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진화론은 오직 믿음에만 근거한 것임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다른 유명한 진화론자 왓슨(D. M. S. Watson) 교수의 말을 인용해 보자. '진화론이 동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것이 일어나는 모습이 관찰되거나 구체적인 증거에 의하여 입증되기 때문이 아니며, 진화론에 대한 유일한 대안(특별한 창조론)이 확실히 믿을 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영국의 유명한 진화론자 아서 케이스(Arthur Keith) 경은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 '진화론은 입증되지 않았고, 또 입증될 수 도 없다. 우리가(진화론자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진화론이 아니면 특별한 창조론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창조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술들은 진화론의 무신론적(無神論的)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욱이 화석기록 속에 점진적인 진화의 증거가 없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진화론자들이 대진화(大進化 : macroevolution)라고 알려진 새로운 이론을 채택하고 있다. 대진화 이론이란 동물과 식물들이 점진적인 과정이나 과도기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이 종(種)에서 저 종(種)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파충류(도마뱀과 같은)가 과도기적 중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날아다니는 새로 바뀐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진화론자들은, 생물은 화석기록 속에 점진적인 변화의 자국을 남기지 않고 어떤 형태의 생명으로부터 다른 형태의 생명으로 갑자기 바뀐다고 믿으며, 바로 이런 이유로 있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생물학자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대부분의 새로운 종(種), 속(屬), 과(科) 수준 이상의 거의 모든 분류들이 갑자기 나타나며, 이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점진적이고 완전히 계속적인 변화의 연속으로 진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화석자료는 현재의 분류학적 분류체계와 유전학적 돌연변이 작용의 특성에 못지 않게, 성경이 교훈하는 바와 같이 생물의 '종류', 그 각각은 그 사이에 연결됨이 없는 틈으로 벌어진 수많은 '종류'를 정확히 보여준다.
이 사실을 입증해주듯 이러한 종래의 진화개념을 바꾸어야 할 만한 이론이 최근 진화론자들에 의해 제안되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 이래 가장 획기적인 변혁이 바로 12년 전에 일어났다. 1980년 10월 진화론 사상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한 중요한 진화론자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진화론과 관련된 여러 분야, 즉 화석학, 고생물학, 진화유전학, 분자생물학, 해부학 등의 세계적 권위를 가진 진화론자 160명이 시카고의 한 박물관(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에 모여 '대진화 (大進化: macroevolution)' 란 제목으로 회의를 열었다(Science, Vol. 210, 1980.11.2. Evolutionary theory under fire). 그 회의의 결론은 소진화를 연장해서 갑자기 한 종(種)에서 다른 종(種)으로 급작스럽게 변해 가는 대진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과학의 발견은 산 너머 산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이 다윈의 진화론이 제창된 지 1세기가 넘도록 진화론은 자연과학인 사고와 철학에 거대한 틀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왔던 것은 사실이다. 다윈이 임종한지 백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 '자연도태' 와 '적자생존' 이 잘못임이 밝혀졌더라도 우리는 다윈을 신랄하게 질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의 발견이란 점진적인 것으로서, 이는 마치 산 너머 또 하나의 산이 존재하듯이 새로운 발견이 거듭됨에 따라 진리의 실체는 결국 밝혀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다윈이 지금까지도 살아있어서 자기 이론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해도, 우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생명 기원의 탐구 과정에 있어 하나의 시행착오' 라는 말로서 너그럽게 보아 넘겨 줄 수 있는 여유 있는 학문적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어차피 과학의 이론이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줄곧 달려가는 발견의 항해이며, 하나의 수평선을 넘으면 그 너머에는 또 다른 수평선이 있다는 것을 다윈 자신은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1/e11/e11c2.htm
출처 - 창조지, 제 85호 [1993. 3~4]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27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
유신론적 진화론
Q : 유신론적 진화론은 무엇이며 그 문제점은 어떤 것인가?
A : 140년전, 진화론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토마스 헉슬리는 인류기원의 문제를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 라고 말했다. 오늘날에 와서도 인류기원의 제문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다수의 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에서부터 출발한 진화론을 기원론의 해답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교육을 받아 왔던 일반 대중들 역시 진화론을 인류기원의 해답을 풀어주는 진리인 양 받아들여 왔다.
진화론은 성경의 창조론을 탈피하여 생명의 세계를 설명하려는 하나의 이론이다. 그리고 진화론적 사고 방식은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사회학, 교육학, 심리학, 인류학, 법학)이나 심지어는 신학(神學)에까지도 깊숙이 파급되어 왔다. 신학자들은 진화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했을 때, 거부와 수용이라는 뚜렷한 이원론적인 양상을 띄게 되었다.
그러나 일찍부터 타협이라는 제3의 입장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이었다. 베르그송은 폴란드계와 영국계 부모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의 태어난 해가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이 출판되었던 해와 맞아 떨어져서인지 몰라도 이론은 평생 동안 그를 사로잡았다.
베르그송은 일찍이 기독교 신학과 생물 진화론을 접합시키려고 노력한 최초의 기독교 진화론자가 되었다. 그는 기독교 신학과 진화론을 모두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은 나머지, 양쪽 모두를 종합하여 나름대로 하나의 체계를 세우려 시도하였다. 그 결과 그는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킬 수 없는 불합리한 학설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베르그송의 타협설
베르그송은 진화론의 역사적인 측면을 인정하였으나, 진화 현상을 물질적 또는 기계적 입장에서 설명하려는 입장을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우주의 생명 현상을 볼 때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 외에도 그것보다 더 깊은 내면 속에 잠재한 생명 탄생의 측면을 견지하게 된다. 쉽게 말해 진화론도 초월자의 창조적 힘의 영향을 빌어야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말은 하나님도 진화의 과정을 택해 온갖 종류의 생물을 창조했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진화라는 메커니즘을 이용, 생물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윈의 '자연 선택' 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다윈은 생물이 증식하는 과정에서 개체간의 차이에 의한 변이가 나타나는데, 변이의 요인으로 생물 부위의 사용과 불사용, 교배, 생활 상태 등이라 하였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으로 결국 새로운 변종(變種)들이 생겨, 그 변종들은 유기체의 생존 및 생식에 필요한 최대의 가치를 가지고 '자연 선택' 이라는 혜택을 받고 그 나머지는 도태된 후, 선택된 변종들은 보존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반면 다른 변종들은 도태된다고 다윈은 믿었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생각으로는 단세포동물이나 하등생물은 접어둔다 치더라도 척추동물과 같은 다세포동물, 즉 여러 기관이 긴밀하게 조화되어 전체적 기능을 발휘하는 고등동물은 우연하게 이루어지는 변종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변종 현상은 다만 부분적으로 생길 수 있는 현상으로 전체적 기능을 증진시키기보다는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러므로 동물이 진화의 단계를 뛰어넘으려면 복잡한 기관의 모든 부분이 똑같은 시기에 변종을 산출해야만 제대로 그 기능을 가지고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그러한 다양한 변종의 동시순응이 우연하게 생긴다는 다윈의 이론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보았다. 만약에 이러한 각 부위의 변종이 같은 시기에 생겨났다면, 그것은 우연히 생겼다고 볼 수 없는 기적과 같은 현상이라고 보아야 하며, 이것은 자연도태라는 이론 이외에 특수한 힘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되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변종의 한계
진화론은 세계의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모두 하나의 단세포 유기체에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 개념을 도식화한 것이 바로 생물의 계통수(family tree)인데, 이 나무는 대부분의 고고학, 역사학, 생물학 교과서 등에 수록되어 있다. 또 오늘날 자연과학 분야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부여하는 대학의 교육기관 중 일반 진화의 계통수 개념을 배척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백사십년 동안 수만 명의 학자들이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생물이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반증할만한 명확한 증거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진화론이 제시하는 단 하나의 생물 계통수 대신, 성경의 창조론은 생명의 거대한 숲 개념을 제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숲의 각 '나무' 들은 변이 혹은 분화의 유전자적 잠재력을 지닌 채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었으나, 그 변이는 창조된 '나무' 의 본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엄격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인류는 많은 종족으로 변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채 창조되었다. 그 가운데는 구약시대 블레셋 사람 골리앗과 같은 3m가 넘는 장신의 소유자가 있는가 하면, 중앙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신장 150cm 미만의 왜소한 피그미족들도 있다. 그러나 시간상의 격차와 상당한 공간적, 환경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과연 인간이며 동일한 계통수에 속하는가 라는 질문이 심각하게 제기된 적은 없다.
또 어떤 종류의 생물들은 인류보다 더 큰 변이 가능성을 지닌 채 창조된 듯이 보인다. 예를 들어 과거 수세기 동안 수백 가지 형태의 개들이 새로 생겨났는데, 유럽산 닥스훈트(Dachshund)로부터 우리 나라의 진도견(珍島犬)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 각각이다. 그러나 그 개들도 역시 동일한 종류에 속한다. 이는 진화의 증거가 결코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변종들은 대개 생물의 야생에서의 생존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변종은 부분적으로 생길 수 있는 현상이며, 부분적으로 생기는 변종 현상은 전체적 기능을 증진시켜 주지 못하고 오히려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베르그송의 생각은 옳았다.
창조적 진화 (creative evolution)
베르그송은 이 밖에도 다윈의 기계론적 혹은 무의식적 진화론(無意識的 進化論)으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진화의 요소가 있다고 보았다. '왜 생명체는 어찌하여 점진적으로 더 많은 복잡성을 향하여 나아가야만 하는가?' 라는 맹점을 다윈의 이론은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초에 이 지구상에 출현했던 생물은 매우 단순하게 생겨서 자연 환경에 비교적 적응하기에 용이했을 것이라고 진화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진화의 과정들은 '현상태에 안주해 있지 않고, 더욱더 복잡한 상태로 옮겨가면서까지 더 많은 위험 부담을 자초하는가? '라는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이 문제는 단순하게 무의식적 진화론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어질 수 없으며, 어떤 그 무엇인가가 생명체를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더 상위 영역으로 이끌어 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베르그송은 이를 '생명의 원동력'(vital impulse: 佛語 elan vital)이라고 명했으며, 이 생명의 추진력은 진화의 모든 과정에 스며들어 있고 그로 인해 진화의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다고 했다. 그러므로 생명 기원의 역사는 무의식적 측면이 아닌 창조적 진화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원동력이란?
그렇다면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설했던 생명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념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이 생명의 추진력을 생명에 스며들어가 내부에 퍼져 있는 의식의 흐름(a stream of consciousness)이라고 정의했다.
이 의식의 흐름 또는 추세의 경향이 생명체를 생기게 하고 진화의 방향을 결정해줄 것으로 믿었다. 이 의식의 흐름은 일정한 유기체인 경우에 생식세포가 생식작용을 통하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끊임없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전달된다고 하였다. 이 생명의 힘의 작용을 통해 변종들이 끊임없이 산출되고 축적되는 과정들을 되풀이한 끝에 신종(新種)들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생명의 추진력을 '초월적 의식'이라고 달리 말하기도 했으며, 이것을 또 '하나님은 초월적 의식'이라 지칭하여 하나님과 생명의 원동력을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베르그송은 진화의 궁극적 원인, 곧 왜 진화가 생겼는가 할 때에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 그 목적이며 지상 위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게 된 이유라는 자신의 주장을 거듭 밝혔다.
창조적 진화의 문제점
19세기 당시 유럽을 풍미했던 진화론은 그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패러다임이었다. 이 이론에 수많은 지성들이 매료되거나 동조했으며, 베르그송과 같이 유신론적 사상은 고수하면서 진화론을 조심스럽게 섭취했던 미온적 학자는 이의 근본 해결을 위해 끝내 진화론과 창조론과의 타협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이에 베르그송은 양자를 종합하여 하나의 체계를 제나름대로 이루어 본 것이다.
그러나 성서적인 생명관은, 유물론적 진화론이나 기계론적 진화론 모두를 거부한다. 또한 하나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진화가 거듭되고 거듭된 끝에 계속해서 신종(新種)들을 창출해 나간다는 베르그송의 유신론적 진화론(有神論的 進化論)도 부정한다.
어찌됐건 이러한 타협으로 베르그송은 그 어느 쪽도 만족시킬 수 없는 불합리한 학설을 만들어 냈다.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진화론과 창조론 이라는 판이한 두 개의 이론을 결합, 소위 '새로운 변종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모순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신학적으로 타협하고 양보하면서 자기네 이론을 수정해 나갈 때, 이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만약 19세기 후반에 소위 과학적으로 정립되었다는 균일론적 진화론에 의한 엄청난 압력이 없었더라면, 이 베르그송과 같은 학자들은 아마도 궁극적 기원에 대한 그들의 성서적 확신들을 털끝만큼도 양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론은 역시 창조론
창세기에는 모든 수생생물과 날아다니는 생물이 종류대로(창 1:11),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이 종류대로(창 1:24) 창조되었음과,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되었음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각종 생물은 그 나름대로의 중요한 특징과 개성이 있고 그것을 부여하신 자의 목적을 명백히 지니고 있다. 많은 생물종들은 비록 유전적인 탄력성은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정한 범주 내에서만 변이될 수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학문적으로 입증된 사실들이다. 특히, 생명체 중에서 사람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특수 창조되었으므로 다른 생물들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음을 확연히 못박아놓고 있다(창 1:26). 또 과학이 발전되어 갈수록 그 나타난 증거는 진화가설보다는 창조에 의해 더 잘 설명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 창조론과, 진화론과의 조화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창조하셨다는 사실 이외에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무신론적 진화론뿐만 아니라, 과학적 견해에다 神의 실재를 결합시킨 유신론적 진화론도 옳지 못하다.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해 진화론과 기독교 창조론 사이에서 갈등하다 변증법적 원리에 의거해 창조적 진화를 고안해 낸 베르그송의 노력은 어찌 보면 가상하다고 할 수도 있다.
허나 성경의 창조론 보다는 진화론에 입각한 이론을 전개함으로써, 진화론이라는 허위를 결국은 벗지 못하고 말았다. 베르그송의 오류를 거울 삼아 창조론 인식에 있어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1/e11/e11c1.htm
출처 - 창조지, 제 88호 [1993. 10~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26
참고 : 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812|3682|3426|3423|3244|3241|3077|3055|3041|3039|3037|3024|2864|2579|2359|2353|2330|2307|2114|2039|2016|1174|6107|6110
진화론 : 진정한 과학인가, 어리석은 생각인가?
(Evolution : Real Science or Nonsense?)
Martin Estrin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게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 12:1)
인간들은 매우 만족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어디 있는가? 이에 반해서, 대부분의 원숭이(apes)들은 아주 만족해하면서 살아간다. 만약 내가 진화론에 어떤 소박한 논리를 적용시킨다면, 나는 논리적으로 원숭이들이 사람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믿고 싶다.
만약 진화가 그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한 종의 변화를 의미한다면, 인간은 자신을 따뜻하게 해줄 털을 자라게 하고, 가장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식사를 줄이고, 옥외 생활에 적응함으로써 고급 집을 짓지 않고, 화폐를 폐지하고, 복잡한 정부도 없애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그리고 전쟁, 스트레스, 교통 혼잡, 대량학살(같은 종의 구성원을 불필요하게 죽이는) 등을 없애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원숭이들은 이러한 모든 것을 달성하였다. 사람으로부터 진화된 원숭이들은 더 많이 일할 수 있고, 더 건전한 생활 방식을 창조하였다. 만약 더 많이 진보된 사회에서 그 최종 목적이 평화(peace)와 공평(equity)이라면, 원숭이로 진화된 종족들은 그들의 선조인 사람들보다 확실히 진보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나에게 바나나를 달라. 나는 원숭이가 되기를 원한다.
진정한 과학은 제멋대로(arbitrary) 일 수 없다.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생명체는, 적절한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화학물질이 함께 모여, 더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였을 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체가 출현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알맞는 종류의 화학물질들이 우연히, 무작위적으로 만나서, 마침내 결합이 되기까지 서로에게 알맞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유기물질들이 서로 혼합되어 더 복잡한 생명체로 바뀌어지는데, 또 다시 광대한 시간이 더 걸렸기 때문이다.
진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key)는 무작위적인 상황 아래에서 꼭 맞는 구성요소들이 함께 만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구성요소들이 어떤 계획 하에, 혹은 지시되어서, 혹은 체계화된 방법 안에서 만들어졌다면, 거기에는 그들을 지시하는 힘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은 바로 '창조되었다' 라고 결론지어지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은 1859 년에 자연선택설을 발표함으로써 진화론을 진보시켰다. 이 가설이 1920 년대에 과학계 안에서 넓은 지지를 얻고 있을 때, 과학자 윌리암 뎀파이어(Sir William Cecil Dampi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이해되고 있는 물리학의 기본 개념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틀이 갖추어진 추상적 개념이다. 그래서 명백한 무질서의 현상을 질서로 이끈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과학자들은 관측될 수 없는 것에 대해 간단한 대답을 제공하기 위해서, 추상적 이론을 사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을 '진화 과학(evolution science)'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진정한 과학이란 무엇인가? 그저 단지 이론인가? 아니면 논증된 사실인가? 그것은 무작위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가? 아니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가? 진정한 과학에서, 한 이론(a theory)은 아마도 탐구와 연구를 위한 기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입증될 때까지, 그것은 단지 추측일 뿐이다. 결론을 추측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
게다가, 과학적인 사실로 결정된 것이라면, 그것은 항상 복잡한 패턴의 부분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사실에 기초로 한 과학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볼 때, 그것은 매우 체계적인 것이다.
과학은 사물을 그 자체로 바라본다. 연구는 그것이 어떻게 있게 됐는지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발견이 이루어지면 (예를 들어 빛의 속도와 같은), 그것은 과학적인 사실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 정확하게 같은 방법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사실들은 가장 간단한 것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일관성(consistent)이 있고, 예측(predictable)할 수가 있다.
2 더하기 2 는 4 이다. 그리고 2 곱하기 2 는 4 이다. 그것은 절대적이고, 결론적이고, 그리고 불변적이다. 기본 수학이나 복잡한 대수학이나, 당신이 어떠한 계산 방법을 수행하던지, 그것은 항상 그 방법대로 행해질 것이고, 항상 같은 결과를 산출할 것이다. 물리, 화학, 전기, 전파, 식물학, 동물학, 자연과학, 그리고 생명과학 등은 모두 아주 정확하고 체계적인 과학이다. 각각은 특별한 패턴을 따른다. 과학적인 조합뿐만 아니라, 각각의 기본적인 형태들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오렌지와 귤을 교배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같은 과(family)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사과와 오렌지를 교배할 수 없다. 비록 그들이 둘 다 과일(fruits)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사과로부터 오렌지가 진화되었다거나, 오렌지로부터 사과가 진화되었다는 어떠한 논리와 증거가 없다. 마찬가지로, 원숭이와 인간이 많은 유사한 육체적인 특징 및 사회적 행동이 있다하더라도,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결론은 매우 빈약해 보인다.
더 나아가, 과학적인 사실로 간주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재현될 수 있어야만 한다. 만약에 진화가 사실이라면, 과학자들은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형된 변화의 순서를 재창조할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대신에 1950 년대의 과학자들은, 동식물의 각 생물체들은 각각의 종들을 위한 특별하고, 복잡한 암호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DNA라 불리는 것으로, 세포 안에 있는 복잡한 정보의 구획들로써, 식물 또는 동물의 종류를 결정하고 있다. DNA 암호는 모든 종들에 대해 독특하며, 모든 생물체들은 그것을 위한 특별한 DNA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존슨'은 인간 종을 위한 DNA 암호뿐만 아니라, 그를 위한 특별한 DNA 패턴을 가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DNA 패턴은 각각의 종마다 특별한 순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는 약 30 억 개의 정보 비트(뉴클레오티드라 불리는)가 매우 정확한 DNA 서열(sequence)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 DNA 서열은 스스로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거나, 재배열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DNA는 의지적으로 뉴클레오티드를 추가시키는 독립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 주어진 프로그램이 한번 설치되면, 그것으로 기본적인 서열(sequence)이 고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순수한 과학적 측면에서, '진화 과학'은 부정되는 것으로 나타낸다. 진화는 예측될 수 없고, 무작위적이다. 반면에 과학(science)은 이전에 존재한 체계에 기초를 한 체계적 시스템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우주가 스스로 무작위적으로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우주는 아직까지는 완전히, 전적으로, 모든 면에서 체계적이다.
답보다 훨씬 많은 질문들
그밖에도 진화론은 과학의 표준적인 정의로 적합하지 않은 추가적인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진화론이 제안된지 140 여 년을 넘도록, 진화 분야에 대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엄청난 연구 자금으로, 집중적인 연구들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진화론은 답보다는 더 많은 질문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 개념은 주로 원인과 결과 시나리오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생물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변화되고, 발전했다는 것이다.
20 세기에 들어서서, 여러 고생물학자들은 진화론을 입증하기 위해, 그리고 인간은 오랜 기간 동안 다른 생물체로부터 잘 적응되어 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원숭이(apes)와 사람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s)‘ 라고 주장되는 멸종된 생물체의 뼈 조각들을 발견해 왔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증거들은 실제로 무엇을 지지하는가? 왜 구부러진 등을 가진 40 만년 되었다는 한 종류의 생물체를 ‘잃어버린 고리’ 라고 그렇게 빨리 믿어버리는가? 이 발견이 있은 후 몇 년 후에, 몇몇 다른 화석들이 (백만년 전으로 추정하는) 세계의 다른 장소에서 발견되었고, 이것도 잃어버린 고리라고 불려졌다. 이들 두 고리 사이에 고리는 있는가? 그리고 다른 모든 잃어버린 고리들은 어디에 있는가?
생물체의 독특한 장기들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의 사슬(chain)들은 어디에 있는가? 눈은 어떻게 발달되었는가? 우리는 어떻게 심장, 위, 다른 장기들, 치아, 청각, 후각, 신경, 근육, 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잘 덮고 있는 피부를 얻게 되었는가?
그리고 정자는 난자를 만나서, 복사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쉽게, 또 다른 생물체를 얻는다. 그 문제에 있어서, 수컷과 암컷의 성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볼품없고 미끄러지는 애벌레가 번데기로 되었다가, 자연에서 가장 정교하게 아름다운 생물체 중의 하나인 나비로 만들어지는 것을 진화론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그러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면서 어려운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무기물질들이 유기체인 살아있는 세포로 변화될 수 있는가? 사실 이것은 진화론에 대해 제기되었던 최초의 질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진화론의 제안자들이나 지지자들은 그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코헨(I. L. Cohen)은 그의 책 ”다윈은 틀렸다: 확률에 대한 연구(Darwin Was Wrong—A Study in Probabilities)” 에서 ”생명체가 생명없는 무기물질로부터 우연히 발생되었다는 생각은, 조용하게 숨겨져 있고, 강조되고 있지 않으며, 사실상 잊혀져 있다” 라고 말했다.
이러한 끊임없는 질문들을 불러 일으키는, 그리고 매우 제한적인 답만을 제시하고 있는 이러한 빈약한 과학 이론인 진화론은, 중요한 조각들을 대부분 잃어버린, 끝이 보이지 않는 그림 맞추기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진화를 둘러싸고 있는 논쟁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아직도 그렇게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에 매달려 있고, 그것을 옹호하고 있으며, 심지어 과학 교과서 안에 진실된 사실로서 남아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집착하는 것을 볼 때,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코헨의 결론은 이것이다.
”불행하게도, 추상적 개념의 지속적인 반복은, 인증되지 않은 이론에 신뢰성을 부여하였고, 계속해서 확립된 사실로써 우리의 공동체의 마음에 자리잡게 되었다.”
결론
진화론자들은 부정직한가? 처음에 진화론의 제안자들은, 사회가 소수의 개념들도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도록 관대해지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제 다윈주의는 대다수의 개념이 되었고, 진화론자들은 편협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시장 원리 내에서 다른 의견들을 강압적으로 배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하는 장소(공공 학교들)에서, 진화론은 과학적 복음으로 숭배되고 있으며, 다른 개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른 개념들은 이단 사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생각들도 공개 토론 장소에서 말해질 필요가 있다. 단 하나의 관점만을 주입시키는 것은 진정한 과학이라고 볼 수 없다. 좀더 공평해져야만 한다.
*Mr. Estrin has an M.A. in Journalism and has worked 25 years in the news media.
번역 - 한동대 창조과학연구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evolution-real-science-or-nonsense
출처 - ICR, BTG No. 144a, December 2000.
과학자의 편견
'과학적'이란 말은 많은 경우에 설득력을 준다.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말할 경우에는 관찰과 실험의 결과, 특히 실험이 한 회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실험을 통하여 동일한 결과를 얻었을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만유인력의 법칙은 물체가 떨어지는 현상의 관찰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반복실험을 하였을 때 동일하게 얻어진 '과학적' 결과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 없이 함부로 과학적이란 말을 사용한다면, 이는 옳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거기에는 과학자의 철학적 해석이 도입되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가 배우고 있는 과학교과서에는 이러한 '과학적'인 면과 '철학적'인 면이 섞여있어, 배우는 이들은 분별없이 모두가 과학적인 것인양 받아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진화론, 빅뱅, 지구의 나이와 같은 역사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진화는 관찰된 적이 전혀 없으며, 실험을 하여서 성공한 예도 없다. 그럼에도 진화론자들은 반복해서 실험을 한다. 수없는 반복실험을 하여도 한번도 진화가 증명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진화는 당연히 철학적 사고의 산물이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라고 하면 몇 가지 특징들을 생각하는데, 편견이 없다, 객관적이다, 확실하다, 진실하다 등이다. 아마 실험 데이터를 다루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사실 데이터를 모을 때도 많은 경우에 편견이 있다), 해석하는 데에는 결코 위에 나열한 특징을 갖고 있지 않다.
실제로 위에 나열한 편견이 없다, 객관적이다, 확실하다, 진실하다 같은 묘사는 누구를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다름아닌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다! 과학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과학자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이며, 일반 사람들과 같이 어떤 일로 결정을 내릴 때는 다분히 자신의 편견이 적용된다. 보통사람처럼 실수도 하고, 욕심도 있고, 물론 자신의 자라온 배경과 배운 배경에 영향을 받는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6)의 그늘 아래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위에 나열된 것이 과학자이고, 과학자들에 의해서 제시된 것들 또한 이에 근거해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 다면, 이를 우리는 '과학주의'라고 부른다. 분명히 과학자들은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객관적이지 않으며, 인간이므로 확실치 않고, 다른 사람과 같이 가끔씩만 진실을 말한다.
그런데 과학책 안에 두 가지 부분을 다룰 때 갑자기 철학적인 사고, 즉 편견에서 얻어진 결과가 증가한다. 바로 '기원'과 '시간'에 대한 부분에서 그렇다. 오늘날에 많은 과학자들은 이 두 가지 부분에서 진화론적 편견을 갖고 있다. 자신이 진화를 믿지 않는다고 말할지라도, 과학자들은 진화론적 사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해석을 한다. 기존에 편찬된 책들, 논문들, 지도교수들의 의견을 통하여 철학에 철학을 더한 내용들을 참고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이 세상의 편견은 누가 만들었을까? 사람의 죄가 만들었고, 사탄도 그렇게 했다. 그러면 편견을 최소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편견이 없는 분에게 끊임없이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실에 기초하여 과학을 하여야 한다. 편견 없는 분은 누구인가? 오직 한 분 하나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길 밖에 없다. 진화론적 사고를 가지고는 안 된다. 기원과 시간에 대한 사실은 어디에 있는가? 그분께서 주신 책 바로 성경밖에 없지 않은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78
참고 :
가장 유명한 진화론자의 모습만 봐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진화론자를 꼽으라면 단연 하버드 대학에 스테판 굴드(Stephan J. Gould)박사 이다. 화석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로서 유명하며, 특별히 “단속평형이론” 또는 “구둣점식 진화론”이라는 이론을 발표하여 유명하여졌다.
먼저 단속평형이론에 대한 것을 간단히 알아보고, 그 다음에 이 사람의 태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단속평형이론은 영어로는 “Punctuated Equilibrium” 이라고 하며, 이는 유럽에서도 1930-40년 경에 이미 나왔다가 사라졌던 이론이다. 당시에는 Shindewolf & Goldshmidts가 제안했었는데 “괴물이론(Hopeful Monster Theory)”라고 명명되었다. 내용인 즉 화석기록의 증거로 보아 “느린 속도의 진화는 나온 적도 없고 나올 수도 없다” 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룡과 새의 차이는 너무나도 큰데 중간단계 동물이 생존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화석에도 발견된 적이 없으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언젠가 공룡에서 새로 갑자기 빠르게 진화되었던 시기가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진화라는 것은 느린 속도를 전제하여 엮어진 이론이므로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사장되었던 것이 굴드 박사에 의해 다시 등장한 것이다(그림). 그러니까 진화론적으로 화석을 연구한지 150년 동안 화석가운데 종들을 이어주는 중간화석이 발견되지 않자, 진화론자들이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다. “화석의 부재로 보아 진화론이 틀렸다”는 말을 하지 않고 더 엉뚱한 진화론을 내세우는 진화론자들의 궁색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단속평형이론은 전혀 관찰과 실험에서 얻어진 이론이 아니다. 그의 논문을 읽어보면 perhaps, may be, well, 등의 단어가 계속 나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1994년에 미국생물교사 학회지는 이들의 이론을 잘 표현하였다. “단속평형이론은 실험적인 근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화석간에 간격을 메울 수 없기에 나온 이론이다”.
그런데 이 굴드 박사는 창조론자와 절대 논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지난 1998년에 캔사스 교육평의회에서 진화론을 생물교과서에서 삭제한다고 떠들썩 하였을 때, 유명 방송국들이 창조론과 진화론 과학자들을 함께 초청하려고 했었다. CNN에서는 굴드 박사와 미국 창조과학연구소 소장인 죤 모리스 박사간의 대담을 방송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반대 의견으로 녹화 한 시간 전에 창조론 측 대변자가 모리스 박사에서 과학자가 아닌 사람으로 바뀌는 촌극이 벌어졌다. 또한 ABC에서도 이와 비슷한 해프닝이 벌어졌는데, “다이아로그”라는 프로그램에서 미국 창조과학연구소 부소장인 듀안 기쉬 박사와 대담 스케줄이 잡혔는데, 이번에도 녹화 바로 전에 굴드 박사의 의견으로 기쉬 박사의 순서는 갑자기 취소되고 굴드 박사만이 일방적인 진화론을 변론하도록 허락되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최근에 창조론 대 진화론의 논쟁에서 창조론자들이 패한 적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만큼 진화론은 모순 덩어리이며 과학적인 데이터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속평형이론을 가지고 많은 생물학자들은 진화론의 가장 최근의 이론이라고 말한다. 진화론이 어떠한 증거도 없는데 진화론을 지지하려고 하다 보니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이론이 나온 것이다. 이 이론은 공룡이 번창하다가, 많은 공룡의 알 가운데 새가 나왔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새가 나왔어도 같은 순간에 암컷과 수컷 새가 동시에 나와야 하는 기막힌(?) 이론이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the beginning of knowledge)이니(잠 1:8)”라고 말한다. 우리의 사고의 시작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이 써있는 성경에서 시작되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애들도 배꼽 잡을 이론이 나오는 것이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5)”. 성경은 이세상의 생물들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써있다. 진화론자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람의 태도를 보면서도 우리는 진화론의 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70
참고 :
진화론이 끼친 해악
: 인종차별, 국수주의, 공산주의, 생명윤리 문제
임번삼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지도 14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진화론이 끼친 영향은 다른 어떤 학설보다도 위력적이었다. 그 실상에 대해 메이어(Ernst Mayr 1963)는 이렇게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하이젠버그의 통계이론도 개개인의 신념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이나 뉴톤의 세계관은 전통적인 신념에 다소의 변화를 주었다. 그러나,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사상만큼 종교와 윤리에 관하여 새로운 의문을 불러 일으켰던 이론은 없었다.” [Ernst Mayr; Animal Speies and Evolution, p 988,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dge Mass, 1972]
40여년 전에 시카고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렸던 <다윈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1959)에서 헉슬리(Julian Huxley)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다윈의 이론은 더 이상 이론이 아닌 사실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인정하는 과학자라면 누구든지 진화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굴하지 않고 일어 선 사람이 영국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인 페터슨박사(Collin Patterson)였다. 그는 1981년에 시카고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렸던 <진화론회의>(1981.11.20)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20년 이상 진화론을 연구했으나...무엇 하나 제대로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게 되었다. 20여년을 허비한 셈이다. 그래서, 수주일간 여러 학자들에게 묻고 다녔다. 당신이 진화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으며, 하나라도 진화의 증거를 대어 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침묵뿐이었다.” 그는 이어서 회의장에 모인 진화학자들에게 폭탄적인 선언을 하였다. '이 방에 계시는 여러분들도 과거에 진화론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공감)을 하셨다면, 그것은 지식이 아닌 신앙으로서 였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그와 정반대인 것 같다.”
영국의 생물학자인 매튜스(1971)는 이렇게 말한다.
”생물학을 지지하는 근거가 진화론이기 때문에 생물학은 결국 증명되지 않은 이론 위에 세워진 묘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생물학은 과학인가 믿음인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창조론처럼 꼭 같은 믿음에 속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진리로 생각하겠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지금까지 증명될 수가 없었다.” [I.H. Mathews; The Origin of Species, Introduction by Charles Darwin, J.M. Dent and Sons Ltd, p10, London, 1971]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학문의 발전을 이룬다는 미명하에 끝없이 새롭게 진화이론을 진화시켜 나가고 있을 뿐이다. 후레이져(Alex Fraser)는 ”진화의 과정은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진화를 추진하는 것만이 정신이다...정신이란 자연계의 생물가운데 있다기 보다는 자연 그 자체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전형적인 범신론적 견해이다. 그러나, 성경은 유일신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홀로 만드셨다고 선언하고 있다. 진화론이 신앙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범신론적 신앙이다. 따라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은 범신론과 유일신론 간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진화론은 자연계의 공생관계나 인류사회의 사랑의 관계를 경시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회를 흡사 양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리만이 통하는 세계인 양 오도한 과오를 범한 것이다. 이러한 무신론적이며, 범신론적 진화론에 기초한 운동중 최근에 크게 유행하는 대표적인 운동이 뉴에이지이다.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은 이념적으로는 동양의 명상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와 접목된 것으로 유신진화론과 맥을 같이 한다. [우사미 마사미저, 장혜영/오덕철/김남형 역;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 한국창조과학회, pp 98-99, 서울, 1996]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들이 이러한 혼합주의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불행스러운 일이다. 기독교계에서 이러한 경향은 과학과 종교가 별개라고 믿는 젊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복음이 맹신적인 과학주의와 결탁할 때, 또 다시 중세의 지동설에 대한 종교심판과 같은 오류가 과학주의에 의해 범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냉철한 이성에 입각한 과학주의와 순수한 성경말씀이 서로 손을 잡을 때 신앙과 과학간의 바른 관계가 정립되리라 확신한다. 맹신과 독단은 의심의 여지없이 종교계나 학문세계에서 꼭 같이 경계하여야 할 독소들이다.
진화론의 위험성은 14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미 증명이 된 것이다. 그 중에서 몇가지 사례만 들어보기로 하자. [임번삼; 진화론이 학문세계에 끼친 영향, 창조, 70호(7, 8월호), pp 2-6, 한국창조과학회출판부, 1990], [John N. Moore; How To Teach Origins Without ACLU Interferance, Mott Media, pp 1-13, Milford, MI, 1983]
(1) 인종우생학과 인종차별
다윈은 ”좀 더 문명화되었다는 백인종은 생존경쟁에서 미개한 터어키인들을 멸망시켰다. 최근까지도 세계의 많은 하류인종들이 상류의 문명을 가진 인종들에게 무시당하며 살아왔을 것이다.”고 인종차별적인 표현을 하였다. [Letter from Charles Darwin to W. Graham, July 3, 1881]. 헤켈은 파푸아뉴기니아 원주민을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으로 평가했으며, 헉슬리(Thomas Huxley)는 ”흑인은 백인과 동등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Thomas Huxley; Ley Sermons, Address and Reviews, Appleton, p 20, New York, 1971].
다윈의 사촌동생인 갤튼(Francis Galton 1822-1911)은 인종우생학(Eugenics 1883)을 만들어 인종개량을 역설하였고, 소위 우수종인 백인 위주로 인종을 개량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펼쳤다(사진 1). 그의 주도로 결성된 인종우생학회(Eugenics)는 영국(1907)과 미국(1926)을 필두로 구미의 백인국가에서 설립되어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하였다. 그 결과, 유전병을 가진 사람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단종법(斷種法)과 유색인종의 백인국가로의 이민을 규제하는 이민제한법의 제정에 기여하였다.
단종법은 미국의 27개 주와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채택되었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인종우생학의 영향으로 ‘임의 단종법’을 만들어 과거 10여년간(1926-1935) 유전병, 신체부자유인, 정신박약아들에 대해 9931명을 강제로 단종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The New Encycloedia Britanica, 15th Ed., Vol. 30, 7-23, pp 1023-1026, 1984]. 이 법은 그 후 북구라파의 여러나라(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독일)에서도 채택되었다. [동아원색 세계대백과사전, 22권, p 69, 동아출판사, 서울, 1988]. 나치 독일에서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이 단종법에 준거하여 200만명 이상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위 갤튼 법칙(Galton's Law 1897)에 의하면, 개개인의 인격은 모든 조상들의 총합이며 1/4 만이 양친으로부터 온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1900년에 멘델의 법칙이 재발견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지능은 뇌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프랑스의 브로카의 법칙(Broca's Theory 1859)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지능이 높을수록 도덕성도 높아진다고 하여, 교육에 지능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이러한 갤튼의 이론은 다윈을 비롯한 생물진화론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후일 죤 듀이 등의 진화론적 교육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갤튼의 인종론은 미국에서는 고다르드(Goddard), 오스본(Henry Fairfield Osborn), 로글린(Harry Lauglin), 그랜트(Madison Grant) 등에 의해, 영국에서는 다윈의 아들인 레오날드 다윈(Leonard Darwin), 성공회의 옥스포드 주교인 처칠(Winston Churchill) 등으로 이어졌다(Chase 1980).
히틀러는 ”진화사상을 이론적 근거로 삼아 게르만족의 번영을 위해 유태인들을 기생충과 같은 존재라며 600만명이나 학살했다”고 호우퍼(Houper)는 말한다. [W. Houper; 나치즈다큐멘트:13단계에 이르는 길, pp 45-48, 論爭社, 東京]. 나치는 1930년대의 전당대회에서 진화론을 당의 지도이념으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1940년 후반에 열렸던 뉴른버그의 전범재판시 인종우생학에 관한 자료들은 거의 분실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도 진화론자들의 인종차별적 발언은 계속되고 있다. 풋남(C. Putnam 1961)은 ”흑인이 백인처럼 진화하려면 거의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하며.....5천억 년이 지나야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 흑인이 백인을 능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할 것”이라고 하였다.[C. Putnam; Race and Reason: A Yankee View, p 53, Public Affairs Press, Washington DC, 1961]. 또 다른 진화론자인 민츠(S. W. Mintz 1972)는 ”지식인들은 아메리카 흑인들을 구제불능적이며 변화할 가능성도 없는 열등한 존재로 간주했다”고 하였다. [S.W. Mintz; American Scienists, 60, p 387, 1972]. 젠센(Jensen 1969)은 천부적으로 인종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인종적 차이에 대해 흑인보다는 높은 지능을 가진 백인종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Van Evrie 1868).
여기에서, 우리는 백인우월주의가 진화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종우생학이 요즈음 인간유전체연구와 배아복제연구에 힘입어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다시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려할만한 사태이다. 우리는 진화론자들이 인종을 차별하는 이론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한 때 아프리카 등지에서 잡아 온 흑인들이 진화과정상 동물이나 사람의 어느 수준에 속하는 것인지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국수주의와 민족주의 자극
진화론은 무엇보다도 국수주의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일본, 이태리와 같은 국수주의적 국가들은 예외없이 진화론을 국가적으로 적극 장려하였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시에는 베를린에서 삼국동맹을 맺어 연합국에 공동으로 대항하였다. 이들의 침략은 적자생존의 이론에 따라 강한 힘으로 약자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의 경우, 일본창조과학연구회 회장인 우사미 박사(Masami Usami 1998)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유럽에서는...진화론과 창조론을 가르쳤고, 미국에서는 창조론만 가르쳤다. 이러한 가운데 가장 먼저 진화론을 가르친 것은 일본이었다. 왜냐하면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라고 믿는 일본의 독특한 환경때문이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는 참 신을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宇佐神 正海 著, 장혜영외 역;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 p 15, 1998]
동 학회의 부회장인 호리코시 목사(Rev. Nobuji Horikoshi)에 의하면, 쟈비에르(Francis Xavier 1549)에 의해 일본에 전파된 기독교는 도쿠가와 막부의 정권유지에 위협이 된다 하여 금지당했다가(1613.12), 1837년에 미국의 압력으로 자유화가 되었다. 그 대신, 동양제국에 대한 침략을 꿈꾸고 있었던 메이지 정권은 기독교 정신을 상쇄할 목적으로 철저한 진화론자인 미국의 몰스(Edward S. Morse 1877)를 동경대로 초빙하여, 유물론적이며 반기독교적인 교육을 하였다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시의 문부상으로 창조론 교육을 교과서에 삽입하려고 시도했던 모리(森)장관은 애석하게도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한다.
그 후, 미국의 유학시절에 창조론 교육에 감명을 받았던 니이지마(Joe Niijima)는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을 설립했으나, 다른 미션 계통인 아오야마(靑山學院), 죠우치(上智) 대학 등과 더불어 진화론의 교육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메이지 정권은 아시아 제국을 침략하기 위한 전초작업으로서 메이지 23년(1890) 천황의 칙령으로 천황이 중심이 되는 가족국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N. Horikoshi; 일본창조과학의 현주소, pp 58-59, 창조과학 국제학술대회, 한국과학기술원 시청각교실, 1993]. 그 시기를 전후하여 일본은 청일전쟁(1884), 러일전쟁(1904), 을사보호조약(1905)과 한일합병(1910)을 강행하면서 군국주의의 길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 2차 세계대전을 유발하여 아시아 지역을 피로 물들이게 하였다. 이들의 침략야욕에는 분명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진화론 사상이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냉철하게 음미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가스만(Gasman 1971)은 어떻게 인종우생학 사상이 ‘다윈 진화론의 사도’로 불리운 헤켈(Ernst Haeckel)로 부터 독일국가사회주의당(German National Socialist Party)으로 이어졌는지,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총정리하였다. [Daniel Gasman; The scientific origins of national socialism, American Elsevier, New York, 1971]. 그 책에 의하면, 헤켈은 1918년에 나치당의 산파역을 한 극우적인 툴레당(Thule Geselschaft)의 비밀요원이 된다. 이 모임에는 히틀러(Hitler)와 헤스(Rudolf Hess)가 손님으로 참석하였다 한다. [Reginard Phelps; Before Hitler came: Thule Society and Germanen Orden, Journal of modern History, 25, p 245, University of Chicago, 1963]
이 책은 이어서 소개하기를, 헤켈은 <생명의 신비>(1904)에서 ”새로 태어난 어린애가 귀머거리에 의식이 없는 존재로 태어나는 것은 영혼이 없다는 증거” 라면서, ”이런 어린애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다”고 강변하였다. 더 나아가 ”인위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수백 수천의 불치환자들인 나병환자, 정신이상자, 암환자들은...자신에게는 물론 사회에 조금도 이익을 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악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길은 이들을 고통없이 빠르게 퍼지는 독약을 먹임으로써 이룰 수 있다...정부기관의 허가를 받아서.” 라고 주장하였다. [Ernst Haeckel; The wounders of life, Harper, New York, 1904]. 이러한 그의 사상은 후일, 그대로 히틀러에 의해 실행에 옮겨졌다.
진화론자인 영국의 케이스(Arthur Keith 1949)까지도 말하기를 ”독일 총통은 독일의 개혁을 진화론에 따라 추구해 왔다”고 말한다. [Arthur Keith; Evolution and Ethics, p 230, G.P. Putnam, New York, 1949]. 매이서(W. Maser 1970)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 1924)을 분석한 글에서 히틀러가 생물학, 예배, 권력, 투쟁, 그리고 역사에서 도덕적 요소를 거부하게 된 것은 다윈사상에 기초한다고 지적하였다. [Werner Maser; Hittler's Mein Kampf: An analysis, Faber and Faber, London, 1970].
히틀러로 하여금 아리안족 우월사상을 갖도록 자극한 또 다른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미국우생학자인 그랜트(Madison Grant)가 쓴 <위대한 종의 소멸>(The Passing of the Great Race)의 독일어판(1916)이었다. 이 책에서 그랜트는 미국이 어떻게 유전적으로 ‘부적합한 인종’에 의해 오염되어 있는지 설명하였다. 그리고, 독일인들이 30년 전쟁(1618-1648)에서 너무나 많이 죽었기 때문에 우수혈통의 부족으로 1차대전에서 패망한 것이라는 잘못된 진단을 내렸다. 히틀러는 1930년대부터 우수한 아리안족의 혈통을 확보하려는 정책을 실행에 옮겼고, <마인 캄프>(Hittler 1941)에 이러한 이념을 포함시켰다. 이렇게 하여 진화론적인 헤켈의 인종주의와 갤튼의 인종우생학이 마침내 국가단위로 실현되기에 이른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20년대 초에 발행된 <로린의 신조>(Harry Laughlin's Creed 1920')이다. 로린은 사회적으로 부적합한 사람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이러한 주장은 단종법(斷種法 Sterilization Law)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법은 지금도 범인, 간질, 알콜중독, 장님, 귀머거리, 불구자, 고아와 같은 무의탁자들을 대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 법은 독일에서는 1927년부터 자율적 참여방식으로 시행되다가, 나치의 국가사회주의당(National Socialist Party)이 정권을 잡은 1933년에 히틀러가 총통으로 선출되면서 인종오염자의 명단인 <로린리스트>(Laughlin's List)에 기재된 대상자들은 강제적으로 단종처리를 하기 시작하였다(Popenoe 1934).
1945년, 히틀러가 몰락한 후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1927년에서 1933년 사이에 매년 85명이 자발적으로, 나치 치하에서는 매일 450명씩 최소한 2백만 명이 단종처리가 되었다고 한다 [Alan Chase; The Legacy of Malthus, University of Illinoise Press, Chicago, 1980)]. 여기에서 자발적이라 함은 결혼의 유보를 뜻하지만 강제적 단종처리란 살해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이러한 작업은 헤켈이 주장한대로 헬멧을 쓴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집행됐다고 한다.
헤켈이 주장한 ‘몸속에 빨리 퍼지는 독가스’는 데게쉬(Degesch)라는 회사에서 개발되어 팔벤사의 레버쿠젠 공장(Leberkusen Plant, I.G. Farben Chemie)에서 지클론 상표(Ziklon B brand)로 생산되어 나치에 납품되었다 한다. 이 회사는 2억 명을 죽일 수 있는 독가스를 생산하였으며, 실제로 30회 이상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나치가 점령했던 지역까지 포함하면 제3제국의 통치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Sutton 1976). 이러한 독가스는 마침내 6백만명의 유태인을 독살시킨 아우슈비츠의 학살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처럼, 진화론은 이러한 히틀러의 아리안족 우월사상은 물론 니체의 초인주의, 일본의 극우적인 야마또사상, 러시아의 슬라브주의, 백인우월주의 등을 직간접적으로 부추겨 민족우월감에 따른 침략주의를 고취시켜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여기에 열거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약육강식에 의한 적자생존의 원리를 강조하는 진화론은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거의 모든 국가나 단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 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에 대해 침묵이 아닌 정중한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비극들을 곰곰히 반추하면서, 무엇이 과연 바르게 학문을 하는 길인가 판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를 36년간 억압했던 바로 그 일본의 군국주의의 바탕인 진화론을 우리 학계가 그래도 옹호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3) 공산주의 및 파시즘과의 연계
헤켈은 일찍이 자연선택 이론을 도입한 정치이념은 소수의 엘리뜨에 의한 통치체제라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자연선택 이론은 동식물들은 물론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단지 선택받은 소수만이 번성하며, 대부분의 존재들은 처참하게 굶주리고 비참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Ernst Haeckel; Freedom in science and teaching, p 93, D. Appleton, New York, 1879]. 그가 주장했듯이 극소수의 엘리뜨 집단에 의해 정치적으로 실현된 전형적인 조직이 극우적인 파쇼주의(Facism)와 극좌적인 막스주의(Maxism)였다. [Leonard Carmichael; Science and social conservatism, The Scientific monthly, 78(June), p 373, Washington D.C, 1954].
파시즘은 생물학적 결정론과 연계되어 있으며, 유전적인 적자(適者)만이 불공평한 경쟁에서 생존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막스주의는 혁명의 각 과정에 의해 사회가 발전한다고 가르치면서도 역설적으로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고 <유네스코 25주년 기념사>는 지적한다. [UNESCO contributors; In the minds of man, UNESCO 1946-1971, UNESCO publication, Paris, 1972] 훼스트(Fest 1974)는 히틀러의 파시즘과 레닌의 공산주의 간의 유사점을 항목별로 설명하면서, 히틀러는 막스를 자유롭게 인용하였으며, 소수의 엘리뜨가 지배한 두 이론은 모두 같은 운명을 맞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놀트(Nolte 1972)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는 파시즘이나 막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였다. [Ernst Nolte; Three faces of facism, Richard and Winston, New York, 1966]. 그는 지적하기를 파시즘과 막시즘은 상호 동맹관계에 있으며, 같은 시기에 스페인에서 봉기한 프랑코 총통에게서 보듯이 자유선거가 아닌 엘리트에 의한 장기집권이나 프랑스 사회주의 강령(1793) 등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였다(Nolte 1966).
<공산당선언>(Communist Manifesto 1850)를 발표했던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막스(Karl H. Marx 1818-1883)는 다윈의 <생존경쟁>(struggle for survival)이라는 용어에서 <계급투쟁>(class struggle)의 이론을 도출하였다(사진 2). 그는 루터교 신자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신학논문을 쓰기도 하였다. [R. Wurumbrand; marx and Satan, p 11, Crossway Books, Wetchester, 1987]. 그러나, 베를린 대학에서 다윈의 글을 보면서 적자생존 개념에서 사회계급 간의 생존경쟁 개념(struggle for existence)을 이끌어 내었다. 그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생존경쟁을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표현하였다. 막스는 영국망명 시절에도 헉슬리의 강연회에 참석하면서, 진화론의 적자생존 개념이 자신의 계급투쟁(class struggle)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다윈에게 존경한다는 뜻으로 그의 <자본론>(Das Kapital 1867)의 속표지에 ”찰스 다윈 선생님께, 당신을 진심으로 숭배하는 칼 막스로부터(1873.6.16)”라고 자필 서명하여 증정하였다(Padover 1979). 6년후, 막스는 다윈에게 자신의 자본론 속권(續卷)을 다윈에게 바치기 위해 저술하겠으니 허락하여 달라고 했으나, 다윈은 자기가 무신론적인 책과 연계된다면 고통스러워질 것을 우려하여 거절했다고 한다(Keith 1955). 발준(Barzun 1958)은 막스사상이 진화론과 평행을 이룬다고 하였다.
다윈의 말년에는 칼 막스의 양자인 어벨링( Edward Aveling)이 접근하여 다윈에게 무신론을 받아 들이도록 설득했으나, 그는 스스로를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로 자처하면서 그러한 제안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에 당황한 어벨링은 ”무신론이란 적극적인 불가지론이며, 불가지론은 상당한 수준의 무신론"이라고 자위했다고 한다. [Edward B. Aveling; Charles Darwin and Karl Marx, New Centry Review, 1: 323, London, 1897]. 막스의 동업자인 엥겔스(Fridrich Engels) 역시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기독교적 신앙을 버리게 되었다(Koster 1989). 그는 ”다윈이 생물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듯이, 막스는 인류역사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다”고 했으며(Traedgold 1972), 진화론이 공산이론의 한 뿌리라고 평가하였다. 반면에, 다윈 자신은 말사스의 <인구론>(人口論)을 읽으면서 인구과잉에 따른 적자생존의 이론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민중봉기에 의한 혁명이론을 수립한 허잔(Alexander herzan 1812-1870)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Malia 1971). 볼셰비키 혁명(1917)을 일으켰던 레닌(Nikolai Lenin 1870-1924)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다윈과 막스의 저서들을 읽은 후 영원히 기독교와 결별하였다. [W. Miller, H. Robert, M. Schulman; The Meaning of Communism, p 33, Silver Burdett, Morris Town, 1963]. 그는 진화론의 자연선택 이론에 따라 공산이론을 세웠다고 한다. [F. Schwartz; The Three Faces of Revolution, p 30, The capitol Hill press, Falls church, 1972]. 그 결과, 볼세비키당의 강령으로 ‘종교는 아편’이라는 말이 삽입되었다. 레닌체제 하에서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만든 사람이 소련의 진화론적 생화학자인 오파린(A.I. Operin)이다. 그리고, 스탈린 체제에서 루이셍코(T.D. Lysenko 1898-1976)는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을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공산이데올로기로 적극 활용하였다. 그는 인간이 훈련에 의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공산주의적인 인간관을 지지하였다.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은 오늘날 학계에서는 부인되었지만, 당시에 소련에서는 루이셍코에 반대했던 학자들은 무참히 숙청당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천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독재자 스탈린(Joseph Stalin) 역시 진화론에 의해 기독교로부터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로 변신하였다. [J. Koster; The Aheisic Syndrome, Wulgemuth and Hyatt, p176, Brentwood, 1989], [E. Yaroslavsky; Landmarks in the Life of Stalin, pp 8-9, Foreign Lanuages publishing Huoss, Moscow, 1940] 그는 다윈 이론을 배운 후부터, 그가 다니던 신학교의 동료학생들에게 인간은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고 말하곤 하였다. [Koster; ibid, pp 76, 77, 177]. 레닌의 영향으로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 지도자들은 다윈을 지식의 영웅으로 추앙하였으며, 모스크바에는 다윈박물관이 세워지게 되었다. [J. Huxley, H.B.D. Kittlewell; Charles Daewin and His World, p 80, Viking press, new York, 1965].
중국공산당을 이끌었던 모택동(Mao Tze Tung 1893-1976)은 진화론을 중국과학사회주의의 초석으로 여겼다. [G.J. Stein; Biological science and the roots of Nazism, p 52, American Scientist, 76:50-58, 1988]. 이러한 정책으로 그는 8천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Jerry Bergman; The Darwinian foundation of communism, TJ 15(1), p 94, 2001]. 그는 다윈에게 빚을 졌으며, 특히 다윈사상에 심취했던 히틀러와 헤켈에게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K.J. Hsu; The Great Dying: Cosmic atastrophe, Dinosaaurs and Theory of Evolution, p 1, Brace Jovanovich, Hrcourt, 1986]. 지금도 중국이나 북한을 비롯한 공산국가에서는 샤르뎅의 유신진화론을 이념교육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다음 세대들은 앞으로 공산주의와 카톨릭교회가 어떠한 관계를 정립해 나갈지 주의깊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테일러는 지적한다. [Taylor; ibid, p 376]
(4) 인간존엄성의 훼손
진화론은 모든 인류를 사랑과 포용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살벌한 적자생존과 계급투쟁의 역사로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윤리가 피폐해지는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요인들 중 하나가 진화론임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인간을 동물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존엄성을 동물수준으로 떨어뜨렸고, 심각한 인명경시풍조를 야기시키도록 한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진화 생물학자인 하두봉 교수(전 서울대)는 이렇게 말한다. ”진화론이 내포하는 의미는 인간생명의 격하라 할 수 있다. 즉, 인간도 다른 생물 특히 다른 동물과 동격시 된 것이다. 모든 생물은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되어 다양화되어 왔다고 하는 관점에서 인간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전통적 사고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생명관의 큰 변혁이 여기서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신의 창조라고 하는 종교개념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결과를 낳았고, 현대생물학의 분석적 방법론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하두봉; 분자생물학의 제문제(생물과학심포지움, 11월7일, 이화여대), 생명과학의 현재와 미래, 한국생물과학협회, pp 10-11, 1987]
인본주의자들은 두 과제에 당면하고 있다. 하나는 상황윤리(situation ethics)이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되었으며, 윤리의 근본인 신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기독교적 윤리를 부정하고 상황에 따른 윤리관을 쉼없이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룻소가 말했듯이 인간은 유전적으로 선한 존재이므로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여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형이상학적 족쇄로부터 해방하여 그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몬트는 이렇게 부연한다. ”인본주의의 핵심적 관심은 현세에서의 행복이지 무덤 너머의 환상적인 세계의 것이 결코 아니다. 행복이란 살아 있는 동안에 의미가 있으며 초월적인 신에게 종속되거나 의존되는 것이 아니다.”[Lamont: ibid, p 30] 또 다른 진화론자인 차울라(Chawla 1964)는 이렇게 말한다. ”다윈의 진화론 발견으로 종교와 도덕적 가치는 조종을 울리게 되었으며 전통종교로부터 떠나게 되었다.” 이처럼, 진화론자와 인본주의자들은 집요하게 신과 기독교로부터의 해방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진화론의 적은 초월적인 신과 기독교라는 말이다.
(5) 생명기계론과 생명윤리문제
진화론자들은 생명을 단순히 자동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기계로 인식함으로써 생명윤리문제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생명이 단순한 기계에 불과하다는 사고가 청소년들에게 심어질 때 그 영향을 어떻게 대처하려는 것인지 염려가 된다. 이러한 생명윤리문제에 대해 하두봉 교수(1987)는 이렇게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생명은 신비하고 존엄하다고 초중등 교육을 통해 강조함으로써 생명물질론의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은 물질론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지구상의 현존하는 모든 생물들은 기나긴 진화의 소산이며, 또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현재로서는 진화의 극치에 달해 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개념을 교육의 초기부터 강조하는 것은 생명물질론에 대하여 완충작용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특히, 진화에 있어서 인간은 인간이 걸어 온 길로 진화한 것이며, 다른 생물 예컨데 세균은 세균대로의 진화과정을 걸어와서 각자가 자신의 환경에서 그리고 현재로서는 최고도로 진화되어 있는 생물이라고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전통가치관이나 윤리관 자체도 수정되어 가야 할 것이다. 이 관념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공통적인 주관인 것이며 어떤 고정된 객관성을 갖는 것은 아니므로,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들도 수정되어 감으로서 전통가치관과 과학기술 사이의 마찰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과학의 대중화, 특히 지식인에게서의 대중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두봉; ibid, p 15]
참으로 우스운 대안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동물이며 기계라고 인정한다면, 차라리 사람이 동물답게 기계처럼 사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당당하지 않을까? 진화론이 주장하듯이 인간이 진실로 동물에서 진화한 것이라면 본질적으로 동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간이 본질상 동물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할 때 그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엄청난 부작용들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것인지 진화론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많은 동물들을 잡아 먹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다른 인간(동물로서의)을 생존의 명목으로 살생을 한다면 진화론적으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처럼, 진화론이 생명윤리의 근본을 깨뜨리고 있는 심각한 현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진화론자들이 인간존엄이나 윤리를 논한다는 것은 실로 넌센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참조 : The Darwinian foundation of commun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04
The church preaches eugenics: a history of church support for Darwinism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54-60.pdf
A Civic Biology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6038/
Darwinism and the teaching of racism and eugenics in biology textbook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1/j18_1_65-70.pdf
Adam’s brothers? Race, science and Genesis before Darwi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118-122.pdf
The history of the teaching of human female inferiority in Darwin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12
Darwin Taught Male Superiorit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1/darwin-taught-male-superiority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나는 믿지 않는다!
: 창조과학을 비판하던 한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
(I don't believe!)
David Catchpoole
한 젊은이의 어둠 속으로의 비극적인 타락은 성경말씀을 진화론에 부합시키려는 시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크리스천이면서 동시에 진화론을 믿을 수 있다는 사람을 당신은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
사실상 오늘날 교회에 나가는 신앙인들 가운데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그러한 개념에 대해 변론해보라고 하면, 그들은 과학은 '어떻게'를 설명하고, 성경은 '왜'를 설명한다고 대답한다.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의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지구가 6일 동안에 창조되었고, 지구의 나이 또한 6000 년 정도라는 것을 믿는 크리스천들을 자주 조롱하고 있다.
실예로, '크리스(Chris)' 라는 어떤 젊은이는 자기 생각을 너무도 확신한 나머지 반-창조론 웹사이트를 개설하였다.1 그는 그의 웹사이트에 창조론자들과 창조과학적 생각을 조롱하는 글로 ”나는 무엇을 믿는가?” 라는 글을 게재하였다. 그 글에서 크리스는 '북미침례교도(North American Baptist)' 라고 자기의 정체를 밝힌다. 그는 성경을 단지 ”좋은 도덕 지침서” 라고 주장한다. 만약에 그 도덕적 가르침을 모든 사람들이 믿어 세계가 훨씬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그 가르침을 좇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크리스는 반-창조론적 주장을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기술한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진화론이나 빅뱅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질문은 어쩐지 엉뚱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나의 믿음을 견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 여러분들 가운데 진화론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글쎄, 여러분들을 위하여 계실는지 모르지만, 나를 위해서는 아니다. 과학은 어떻게, 무엇을, 어디서, 그리고 언제에 관한 나의 질문에 답을 준다. 성경은 누구와 왜에 대한 질문에 답을 준다. 여러분들도 이 둘을 다 요구할 것이다. 그 두 방향의 질문들은 서로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적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을 믿고 있으면서 동시에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간증할 수 있을까? 위 글에서 크리스는 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어떨까? 크리스는 자기 믿음을 '끝까지 견지' 할 수 있었을까?' (마가복음 13:13; 디모데후서 2:12).
놀랍게도 인터넷이 위에서 인용된 크리스의 말에 대한 추신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그 추신 내용은 우리에게 크리스의 이후 인생행로의 일단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위에 언급된 웹페이지에는 이제 다음과 같은 말이 게재되어 있다. 즉, "이 웹페이지는 정식으로 닫는다"라는 말과 함께, 크리스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면 링크된 주소를 클릭하라는 재미있는 초청의 말이 포함되어있다.
”내 새로운 웹사이트에서 알 수 있겠지만, 요약하자면 내가 이 웹사이트를 닫는 이유는 주로 나의 신념체계에 변화가 생긴 까닭이다. 하지만 나를 위한 걱정을 사양한다. 나는 여전히 창조론자는 아니다.”
신념체계에 변화가 생겼다고? 크리스의 새 웹사이트에 연결 궤적을 좇아들어 가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드러난다.
”이 [새로운] 웹페이지의 목적은 나의 종교관과 세계관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내가 목적하는 바와 나의 개인적인 신념, 믿음의 결핍 등은 내가 발표한 많은 글들을 통해서 말했다.”
믿음의 결핍이라? 연결궤적을 좇아 들어가다 보면 굵은 활자체로 된 ”나는 믿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쓰인 글이 실린 새 페이지가 열린다. 이 글에서 크리스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나는 믿지 않는다. … 많은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 나는 모든 것을 안 믿는다고 대답한다. 사실상 나는 모든 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최소한 나는 믿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가 무엇을 믿는지, 또 왜 그것을 믿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만약에 그것을 오랫동안 생각하다 보면 혼란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들은 수많은 모순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욱 안된 것은, 당신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들이 실질적으로 무한대로 많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그런 것들 모두를 결코 사유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들의 마음은 너무도 작아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이와 같은 생각들 모두가 나에게 믿음의 위기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하여 내가, 또는 어느 누구가 이 무한대로 광대한 우주를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각기 다르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도달한 결론은 내게 믿어야 할 최선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옹호하여야 할 철학도 없다. 뿐만 아니라 걱정하여야 할 모순되는 믿음도 없다. 그리고 어떤 것도 내 세계관을 훼방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예전보다 더 분명하게 사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나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크리스가 충심으로 진지한 답을 원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지만, 만약에 그가 Answers in Genesis 웹사이트 정보를 마음껏 이용하였다면, 그는 6일간의 창조에 대한 실질적인 설명과 성경은 믿어야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며, 아마도 오늘과 같이 그런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은 심정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성경은 우리 주변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우리가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설명해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마가복음 12:30). 크리스의 경우는 그렇게 하지 못한 자가 맞이하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실례라고 하겠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면, 그는 아무 것도 믿지 않게 되고, 또 아무 것이나 믿게 된다고 한다.3 크리스의 웹사이트에 실린 그의 글들을 읽다 보면, 이 사실이 확인된다. 그가 '믿음의 위기'를 경험하고부터,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대한 믿음에서 한번 미끄러져 버리고 나서부터, 크리스는 켈트족의 드루이드교의(이교주의)와 신-이교 교의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몇몇 친구들과 더불어 이교 예배를 조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찍 공원에 도착한 나는 공원 후면의 후미진 곳에 제단을 설치하였다. … 여승은 제문 첫 행부터 읊기 시작하였다. ”고귀한 여신께서 아니 계신 곳이 없다 - 기묘하고 불가사의한 아름다운 세상을 통하여 - 마력을 쓰시며 자유롭게 황막하고 광대한 모든 곳에 드나드신다. … 여신은 두려운 존재다. 죽음의 힘도 그녀 앞에 머리를 수그린다. …그런 다음 그 모임의 사제이고 또 두 번째 서열의 자리에 있는 나는 내가 앉은 자리 뒷면에 촛불을 세워두고 "우리의 여신은 사랑의 여신이시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서 태양은 생명을 새롭게 한다”를 되뇌었다.”
이 글을 읽는 크리스찬들은, 이전에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에 속하여 있다고 간증하던 한 젊은이가 하나님의 계명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그와 같은 이교예식을 드리는 단계에까지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크리스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글들은 명백하게 반-성경적 위협으로 크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글들 중의 한 글(그는 '우화' 라고 호칭한다)에서, 어떤 마을의 주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주민들은 '에크나롱지(Ecnarlongi)' 라는 신을 경배한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적인 경배가 줄어들지만 전혀 피해의 표적이 없을 때에, 선지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비난한다. 마을 사람들은 몇 번의 토론 모임을 가진 후에 선지자를 (다른 두 사람과 함께 교수대 위에서 교수형을 집행하여) 죽이기로 결의한다. 그런 다음 그 선지자는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면서 이렇게 말한다, '에크나롱지의 신이시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최근의 글은 크리스의 시각이 얼마나 가련하게 바뀌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두려움과 혼란 때문에 비참한 우울증과 절망감에 시달리는 기간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혼란의 와중에서 나는 사방에서 나를 감싸듯 다가오는 어둡고 불길한 벽들을 넘어 더 먼 곳을 내다볼 수 없다. 우울증과 고독감을 감내할 수 없다. …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 한다. 누구도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를 쓸모없고 무의미한 존재로 느낀다. 나는 아무리 애써도 삶을 계속하기 위해 고생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이 어찌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여러 번 혼란에 빠졌었다. 매 번 앞에서 경험한 혼란상태보다 더 나쁘면 나빴지 좋아 진 적이 없었다. … 혼란상태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더 많은 함정들과 해자(垓字)들, 그리고 위험한 낭떠러지들이 구석구석에서 입을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 이 혼란의 심연에서 언젠가는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나는 여전히 맹목적으로 앞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내딛는다. 하지만 나는 어둡고 공허한 미로 속에 들어서있고 나는 자주 자신감을 잃는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대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고, 온전한 정신을 사다리처럼 이용할 수 있어, 저 먼데 있는 불빛을 향하여 기어나갈 수 있었다. … 그러나 나는 언젠가는 내 자신감을 영원히 상실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그 어두움은 나를 갉아먹고 끝내는 나를 죽일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그 미로에 빠져있는 동안 내가 받은 피해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적인 미망 경험으로도 받은 상처가 영영 치유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끝없는 미망 경험이야 죽음에 까지 나를 끌고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 않겠는가! … 언젠가는 최선의 경우에서도 어쩌면 나의 심정적 정신적 능력이 나를 그 어두움으로부터 건져내는데 충분하지 못할 때가 있을는지 모른다. … 안내하는 지도가 있다한들, 어두움 속에서 불빛이 없는 데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모든 와중에서 크리스는 무언가를 찾으려 뒤쫓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틀린 가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의 결론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 글의 독자들에게 나는 나에 관한 걱정일랑 접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직은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일로해서 나는 매우 위험한 함정에서 빠져나오는데 도움을 받았다. … [그러나] 나는 다음 일을 생각하고는 벌써부터 겁을 먹는다. 나는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갈 길이 멀지 않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 미망을 얼마나 더 견디어내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갈 수 있는 다른 곳이 어디일까? 무엇을 포기하여야 할까? 받아들여야 할 것은 또 무엇인가? 무엇이 더 있다는 것인가? 어쩌면 나는 마냥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어찌 비극이 아닌가! 이 젊은이의 절망은 성경을 진화론과 타협하여 해석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교회에 나가는 젊은이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Chris의 경우에 못지않게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에베소서 4:14) 이리저리 나부낄 만큼 취약한지 모른다. 그것은 그들이 창세기가 복음서의 기초라는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See Q&A: Creation: Why It Matter)
그런데 이러한 위험한 우물가에 서있는 자들은 젊은이들 뿐만이 아니다. 유명한 복음전도사였던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의 불신앙으로의 전락은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도 면역(免疫)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좋은 예이다. (See Slippery Slide to Unbelief). 한 때 간증을 하기도 하던 이들이 신앙에서 실족할 때, 그리고 그들의 영향으로 다른 성도들까지도 신앙에서 실족할 때 문제는 증폭된다. (Chris는 자기 웹사이트를 통해서, 템플턴은 그의 저서 '하나님이여 안녕히 (Farewell to God)' 4를 통해서).
이 두 이야기는 창세기 말씀을 오류투성이의 인간사상(진화론)과 타협하지 않아야 하는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쨌거나 크리스천들은 이 세상의 '현실'에 부합하려고 성경의 말씀까지 '왜곡' 할 필요는 없다. 왜 그런가 하면, 실험과학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을 포함하여)의 모든 분야에서 드러난 증거 - 정확하게 말해서 지구의 역사에 관한 목격담에서 기대되는 것 - 들은 성경의 말씀과 절대적으로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See 'The Earth: How old does it look?' 'How would you answer?')
성경은 생물학, 지질학, 그리고 천문학 분야에서도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역사학에서나 도덕과 구원의 문제에서도 또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찰스 템플턴이나, 크리스와 같은 사람들 (사실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Good News)은 신실하고 진리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진리의 빛' 예수 그리스도━'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시며 구세주이신(디도서 2:13, 베드로후서 1:1)━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영생의 빛을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한일서 1:5).
References
1. 301 Startling creationist lies and misquotes, <http://www.geocities.com/CapeCanaveral/Hall/3083/>, 6th February 2001, which despite its title is ostensibly a rebuttal of a book by Peter and Paul Lalonde, 301 Startling Proofs and Prophecies: Proving that God Exists. The footer of this webpage reads: 'This Darwin's Web Ring site is owned by Chris Patton.' Chris also operates under the web alias 'Aeikkin', and identifies himself as being male.
2. Aeikkins Grove, <http://www.geocities.com/aeikkin/index.html>, 25th January 2001.
3. The American Chesterton Society, 31st January 2001.
4. Templeton, C., Farewell to God, McClelland & Stewart, Inc., Toronto, Ontario, Canada, 1996.
*참조 : 유신진화론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는 이유
http://creation.kr/Faith/?idx=1757519&bmode=view
유신진화론의 위험성 1 :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http://creation.kr/Faith/?idx=1293837&bmode=view
유신진화론의 위험성 2 :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http://creation.kr/Faith/?idx=1293838&bmode=view
과학사와 신학 해석사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92&bmode=view
창조론은 믿음이고, 진화론은 과학인가? : 진화론자와 유신진화론자의 히브리서 11장
http://creation.kr/Textbook/?idx=1289677&bmode=view
“화학적 진화”의 관점에서 본 유신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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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창조론, 그리고 유신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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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은 양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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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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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에 의한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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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교리에 대한 타협 : 점진론적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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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론적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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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지구의 신 : 점진적 창조론, 간격이론, 날시대이론, 다중격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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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대학에서 창조론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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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믿음이 최근의 탈선인가? : 오래된 지구 창조론, 또는 젊은 지구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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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학자의 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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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 창조론에 대한 성경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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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증인 타파하기 :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인 휴 로스의 주장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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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넷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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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생물들은 언제 죽었는가? : 아담 이전의 죽음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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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범죄 이전에 사망이 있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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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복음만 전하는 것! : 창세기 없는 복음은 무신론자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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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자와 기독교과학자 : 양승훈 교수의 “두 근본주의의 충돌”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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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이론에 대한 과학적 비평 : 유신진화론 비판, 기독교학술원 제75회 월례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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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지구의 신 : 점진적 창조론, 간격이론, 날시대이론, 다중격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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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목사님이 창세기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를 옮겨야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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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던 악마의 전략 :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고 의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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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내가 창조를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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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i-dont-believe
출처 - AIG, February 8, 2001.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중 서문
임번삼
진화론의 허구와 성경적 창조론
우리에게는 보호하며 지켜야 할 것과 경계하며 싸워야 할 적이 있다. 지켜야 할 것은 생명의 신비와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생의 가치관과 불변의 진리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고 정의와 진리가 강처럼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깨뜨리려는 세력과 싸워야 한다.
그 상대가 총칼을 들었다면 싸움은 간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적은 자신의 모습을 들어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위장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기들도 진리를 찾는 구도자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수많은 해악을 인류사에 끼쳐왔다. 선악의 개념을 혼돈케 하였고, 인간존엄성에 기초한 전통 윤리관과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러한 세력과의 싸움은 쉽지가 않다. 더구나, 이들이 가장 많이 배우고 사회적으로 덕망 높은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나 진리 아닌 것이 진리를 가장하고, 정의 아닌 것이 정의의 자리에 서 있다면, 우리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그 적은 다름 아닌 '진화론' 이라고 나는 서슴없이 말하고 싶다. 이들은 백인위주로 인종을 개량해야 한다며 인종우생학(Eugenics)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인이 혼혈되는 것을 막으려고 유색인종에 대한 이민제한법을 만들었으며, 유전질환자와 불구자의 출산을 막으려고 단종법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론에 심취하여 나치정권은 유전질환자와 신체부자유자를 200만명을 단종 처리하였고, 600 만명의 유태인을 아우슈비츠에서 독살하였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사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뿐만 아니라, 약육강식이 자연선택의 원리라며 제국주의자들끼리 동맹을 맺어 국력이 약한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일을 당연시하였다. 독일, 일본, 이태리가 그러한 국가였다. 진화론의 적자생존 사상이 침략의 당위성을 그들에게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이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수많은 증거를 가진 이야기이며 역사 속에 나타났던 엄연한 사건들이다.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의 거의 모든 교육기관에서는 지금도 사람이 원숭이의 자손이라 가르치면서 인간존엄성과 그에 기초한 윤리관과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한 단일정부를 세워 세계를 지배할 계획을 꿈꾸며 공공연히 그러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화론자인 존 듀이와 쥴리언 헉슬리가 각각 주도한 인본주의 선언(1933, 1973)과 유네스코 헌장(1946)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진화론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추리에 근거한, 무신론적이면서 유물론적인 신념이요 신앙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많은 진화론적 주장이 추리와 조립, 조작, 및 사기극으로 점철되어 왔다는 점이다.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이론적 허구와 잘못이 드러날 때마다 진솔한 사과나 반성이 없이 학문의 추구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해프닝이라며 도도한 자세를 견지하여 오고 있다. 일단 주장해 놓고 아니면 그만 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불길한 미래를 예감케 한다. 더구나, 그들이 저지른 과거의 행적들을 돌이켜 보면 이러한 염려는 기우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이러한 진화론의 실상과 허상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사실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알려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에 대한 비판과 대책이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추리와 사기극으로 구성된 진화론을 우리 자녀들에게 계속 가르치도록 국가가 강요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그렇게 배우며 자란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 왜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로 치닫고 있는지 따져 보아야 할 일이 아닐까? 과거는 용서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고 사가(史家)들은 말하지 않았던가? 비극의 과거사를 잊게 되면 미래의 역사는 더 큰 보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고 하지 안 했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의 양식있는 지성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직장에서 은퇴한 후, 지금은 몇몇 대학에서 생명과학과 창조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생명과학의 역사가 창조론과 진화론간의 치열한 논쟁사였음을 깨닫게 되면서 새로운 교재를 집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국내외 자료들을 뒤적이다가 진화론이 인류사에 끼친 부정적인 비사(秘史)들과 접하게 되었다. 그 역사적인 학문적 음모에 관한 자료를 접할 때마다 놀라움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진화론은 이미 학교에서, 사회에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위세에 밀려 주저앉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찾아 끝까지 나서야 할 것인가? 참으로 많이 망설이고 고민하였다. 그저 입만 다물고 있어도 되는 일인 터인데...! 진화론과의 논쟁이 쉬운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꼭 필요한 싸움이라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밤을 고민하며 갈등하다가 본서의 출간을 서두르게 된 것이다. 다소 무리한 부분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진화론의 허구를 고발하고 창조의 진리를 들어내려는 마음으로, 창조과학적인 시각으로 본서를 기술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지식서가 아니라 불의한 세력에 대한 고발이며,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내 나름의 외침이라 할 수 있다.
생명과학의 역사는 진화론과 창조론간의 긴 논쟁사이다. 이러한 논쟁의 한 가운데 생명나무가 서 있다. 이 나무는 원래 에덴동산의 중앙에 선악과나무와 더불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에, 창조주는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으나, 생명나무는 금하지 아니하셨다. 그러나, 우리 선조인 아담은 불행스럽게도 생명과일 대신 금단의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였다. 그 순간, 선악과와 더불어 생명나무도 그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고 하였다. 선악의 문제는 생명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암시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낙원에서 추방당했다. 이 때부터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다시 찾으려고 아담의 후예들은 서로 싸우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간의 학술논쟁이 그러한 싸움이다. 두 이론 사이에 질 수 없는 학술논쟁이 수 천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서의 제목을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라고 붙이게 되었다.
원래는 대학 교재용으로 집필하려 했으나, 자료들을 모으면서 일반인들에게도 꼭 알려야 할 내용이라 생각되어 가능한 한 쉽게 쓰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내 자신이 아는 것이 적은 데다 집필을 서두른 탓에 미흡한 부분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은 다음 기회에 보완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허심탄회한 지적과 질책을 기대한다.
끝으로, 수익성이 없는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 온갖 정성을 기울이신 창조과학회의 송만석 회장님과 고려문화사의 권영석 사장님, 총판을 맡으신 도서출판 두란노의 관계자,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신 임철수 형님과 저의 가족들에게도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02년 1월, 송파구 문정동 자택에서. 저자 씀.
리키와 요한슨
이재만
현재 대표적인 진화론 인류학자를 꼽으라면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 1944- )와 도날드 요한슨(Donald Johanson, 1943- )을 든다. 리처드 리키는 유인원 Homo habilis를 발표해서 유명한 루이스 리키 (Louis Leakey, 1903-72)의 셋째 아들로서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인류의 진화를 지지할 빠진 고리를 찾기에 열심인 사람이다. 도날드 요한슨은 에디오피아에서 유인원 루시(Lucy)를 발표해서 유명해졌다. 모두가 진화론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일 뿐 아니라, 학계나 일반인들에게 마치 유인원이 살아있었던 것으로 알게 한 장본인들이다. 물론 이들이 발표한 유인원들은 나중에는 원숭이나 인간으로 결론이 났다. 이들 진화론 리더들의 사고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진화론자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나누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리처드 리키는 자신의 저서 “오리진(Origin, 1977)”의 도입부에서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는 우리를 끊임없이 흥분 시키는 요소가 있다. 그 이유는 우리들에게 자신들의 과거에 관하여, 즉 사고와 감정을 지닌 문화적 동물이 어떻게 해서 유인원 같은 조상으로부터 등장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동물인가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푸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시작했다.
유인원(ape-man)이라는 것은 진화론이 대두되면서 언급된 상상의 산물인데, 이들의 존재가 틀림없다는 전제로 시작할 뿐 아니라, 우리가 “과거”의 “문화적 동물”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므로 우리의 “미래”를 풀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진화론은 진화 그 자체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스스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즉 진화론은 인간을 해석하는 기준을 설정하게 되는 것이며, 과거에 우리가 동물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인간자체로 창조된 존재 인지하는 것이 내일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들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인간은 동물 중에 하나라는 것을 버릴 생각이 없이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저서인 “제 6의 멸종(The Sixth Extinction, 1995)”에서는 그는 “우리는 변화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은 연속적인 생물 흐름에서 한 순간에 불과할 뿐, 결코 종착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의 창조 과정과 이따금씩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멸종 사이의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상호작용에 의한 산물, 즉 지극히 많은 종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다.” 리키의 이 언급은 정말로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다. 놀랍게도 멸종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멸종이라는 것은 하나의 종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멸종과 창조과정을 연결할 수 있을까? 이것은 엄청남 믿음임에 틀림없을 뿐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는 태도이다. 이어서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상호작용”이라고 얼버무리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삶은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의 “한 순간”이며, 인간 자체도 진화 산물 중에 “한 종”으로 처리해 버린다.
요한슨도 “인류시대에서(In the Age of Mankind, 1988)”의 머리말에서 “우리는 우리를 만든 자연세계와 유전적으로 아주 밀접하고 의존적 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하였다. 자연이 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다아윈이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쓴 배경에는 벌써 자연이 무엇이 살 것인가 살지 못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전제가 깔린 내용이다. 요한슨도 여느 진화론자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자연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인간은 자연세계와 유전적으로 밀접한가? 어떤 과학적 근거에도 그러한 결과를 이끈 내용이 없다. 이것은 자신의 “느낌”이며,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희망”일 뿐이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 그의 형상으로 태어난 귀중한 존재라고 말한다. 자연이 탄생시킨 것도 아니고 자연의 한 부분도 동물 중에 한 종도 아니며 다른 동물들을 다스려야 할 귀한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연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잠깐 살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며, 물론 이 순간이 진화의 과정의 일부도 아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으며,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살 존재로 지음 받았다. 문제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냐 아니면 영원히 하나님 없이 저주아래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진화론은 사실이 아닌 것에서 시작하였기에 사실인 성경역사와 대치될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복음조차도 거부케 한다. 진화론 인류학자인 리키와 요한슨의 생각을 보면서도 잘 알 수 있다.
히틀러의 진화론 대 기독교도의 저항
(Hitler's Evolution Versus Christian Resistance)
Paul G. Humber
히틀러가 진화론자임을 가리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한 한 권의 저서가 출판된 지(1) 9개월 후에, 하버드 대학의 Stephen Jay Gould는 이 저서의 이론을 더욱 확고히 지지하는 논문을(2) 발표하였다. 그 논문에서 그는 Benjamin Kidd를 ”학계와 비전문가들 사이에서 크게 존경받고 있는 영국의 해설가”로 소개하면서, 키드의 말을 인용하였다. 키드는 독일이 ”다윈의 이론을 이용하여 전쟁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키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굴드에 의해서 인용되었다.
”다윈의 학설이 독일에서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인 목적으로 쓰이는 교본 속에 공공연히 등장하여, 독전(督戰) 계획은 물론, 힘이 곧 권리라는 이론을 국가정책에 반영하려는 고도의 조직적인 계획을 대대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2)
이와 같은 진화론과 나치즘의 연계를 살펴보고, 우리는 히틀러의 정책들이 기독교와 상충하는가를 알아보려 한다. 그동안에 드러난 증거들만으로도 나치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저항이 실제로 엄청났었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회고 (Einstein's Commentary)
<히틀러 치하의 교회의 고백 (The Church's Confession under Hitler)>에서 저자 Arthur Cochrane은 망명 중에 있던 위대한 물리학자 Albert Einstein의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성명서 내용을 자기의 저서 526쪽에 Wilhelm Niemoller의 'Struggle and Testimony of the Confessing Church' 란 제목으로 된 증언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주고 있다.
”나치 혁명이 일어났을 때, 자유에의 헌신을 항시 자랑하던 대학들과 가까웠던 나로서는 자유를 사랑하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대학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 기대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대학들은 혁명이 나자마자 굴복하고 입을 봉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날 열정적으로 자유를 사랑한다는 논설을 써왔던 위대한 신문들의 논설에 기대를 걸어봤다. 그러나 그들도 나치 혁명후 단 몇 주만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
이런 와중에서도 오직 교회만이 진리를 억압하려는 히틀러의 계획을 당당히 가로막고 나섰다. 그 이전엔 나는 교회에 대해 어떤 형태로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직 교회만이 외롭게 지성과 도덕의 자유를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나치와 맞서 끈기있는 용기를 보여주었던 것을 알고 있기에, 지금 나는 교회에 대해 엄청난 애정과 감탄을 느끼고 있다. 한 때 내가 무시하였던 교회에 대해 지금 나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간증한다.' (3)
Roland H. Bainton은 이 부분에 대해 회고하면서 아인슈타인의 말의 진실성을 이렇게 간증했다:
”Karl Barth와 Hans Asmussen의 주도하에 약 4,000 명에 달하는 신교 목회자들은 참회하는 교회(Confessing Church)를 조직하였다. 이 모임은 1934년 바멘(Barmen)에서 '그 어떤 총통도 인간인 이상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설 수 없다' 고 선언하였다. 이로 인해서 이 참회하는 교회 모임은 자산을 몰수당하고, 신학교는 핍박을 받았으며 출판물은 금지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자, 대부분의 목사들은 형무소로 끌려가고, 병역 연령에 해당하던 목사들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전선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연로한 목사들은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기도 했다. 그들 가운데 Martin Niemoller가 끼어있었는데, 이 사람은 루터교파의 목사로서 근 반 년 넘게 수감 생활을 끝내고 히틀러의 법에 의해 '국가와 나치당에 반역적인 공격' 이라는 죄명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나치주의 정책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며 끈질기게 저항하였던 그는 마침내 나치가 몰락할 때까지 나치에 저항하는 신교의 상징적인 인물로 남아 있게 되었다.” (4)
코크레인(Cochrane)은 이런 사실들을 다음과 같이 확인하면서 그 의의를 크게 부각시켰다.
”용감한 베를린 교구의 마르틴 니몰러 목사가 조직한 '위기에 처한 목사들의 연맹' (Pfarrenernotbund ; Pastors' Emergency league)의 회원의 수가 1934년 1월 15일에 확인된 바로는 7,036 명에 이르고 있었다.”
코크레인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수많은 회원목사들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1937년 7월 1일에 연맹의 창시자가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맹은 결코 해체도 폐쇄도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1944년 크리스마스 예배를 볼 때까지 존속했었다.” (3)
히틀러에게 전달된 한 통의 공식 메시지
1936년 6월 4일, 독일 복음교회는 한 통의 메시지를 히틀러 앞으로 보내어, 총통이 '독일 국민을 비기독교도로 전향시키려 하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던 적이 있었다.(3) (히틀러는 한 사람의 유태인을 숭배하는 종교를 믿을 마음이 조금도 없다고 했다.) 그 메시지에서 보다 더 뜻있는 대목은 이러했다 :
”국가 사회주의 인생관의 한계 안에 살고 있지만, 기독교도는 유태인에 대한 증오를 강요받았을 때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 교리가 엄연히 살아있는 한, 그런 강요를 거부한다.” (3)
나치 점령 하에서의 유럽 기독교도의 저항
그들의 저항은 확고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실천행위였다는 전제를 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들의 저항을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핍박의 강도는 매우 심했다. 작업장에서 지나치는 말로 히틀러를 '불한당'이라 내뱉기만 하여도 그 결과는, 예를 들어, 거세라는 형별이 내려질 것이었다.(5) 그러나 기독교도는 기독교도로서의 태도를 명시적으로 간증하고 행동하여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웃을 걱정하고 돌보던 기독교도 집단에 대한 새로운 증거들이 주기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뉴욕 타임스지는 1981년에 Victor Kugler의 사망을 보도하면서 그를 화란에서 '안네 프랑크(Anne Frank)를 숨겨주었던' 사람이라고 확인하였다.(6) 그 보도 기사는 그를 '기독교도'라고 기술하고, Charles Wittenberg의 말을 인용하여, Kugler가 "전 세계 사람들이 문을 꼭꼭 잠그던 시기에 나치 지옥을 도망쳐 나오던 희생자들을 숨겨주기 위해 문을 열어주었던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그런 크리스천이 Victor Kugler 혼자만이 아니었다. 유태인 대학살(Holocaust)이 자행되고 있던 시기에, '전 세계' 가 유태인들한테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코리에 텐 부움(Corrie ten Boom), 그녀의 누이동생, 남동생 그리고 아버지 이 모두가 화란 인들이었는데, 이들은 나치의 핍박으로부터 유태인들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라벤스부루크(Ravensbruck)에 수감되었다. (그들 중 몇 사람은 감옥에서 죽기도 했다).(7)
폴란드에서도 유태인들한테 동정을 보냈던 기독교도들이 있었다. 폴란드에서 기독교도들의 도움을 3년 동안 받았던 Nechama Tec는 지금은 코네티컷 대학의 사회과학 교수로 있으면서 <빛이 어둠을 뚫고 들어올 때(When Light Pierced the Darkness)>8 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고, 그 책의 주제로 기독교도들의 종교적 신앙심을 다루고 있다. 그녀는 기독교도들의 신앙심이 유태인들을 동정하게 한 주요 동기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Jacques Ellul은 한 사람의 기독교도로서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세차게 밀어주었다. "유태인 지역사회에 도움을 준 적이 있었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대답하기를:
”그게 어떻게 시작됐었나 하면, 나는 사람들을, 특히 독일 사람들의 추적을 받고 있는 유태인들을 도와주려고 하였던 게 발단이 되었습니다. 나는 유태인들을 위해서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고, 우리 고장의 외곽지역에 있던 마끼 (maquis: 2차 세계대전중 항독 프랑스 애국군) 병사들과 연락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지방 레지스탕스를 조직하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9)
"바다에는 잡히지 않은 물고기가 수없이 많죠. 유태인들을 도와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쳐버리기 쉬운 일입니다." 유태인들은 하롤드 슐바이스(Harold Schulweis) 랍비의 주도로 '의로운 기독교도들(Righteous Christians)' 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였다. 이스라엘은 31명의 대상자를 선발하여 국립보험재단(National Insurance Foundation)으로부터 연금을 받게 하였다. 이스라엘은 또한 로즈 바르마(Rose Warmer)로 하여금 전국 규모로 학교에 신약성경을 배포토록 허락하였다. 그것은 그녀가 '2차 대전 와중에 지긋지긋한 아우슈비츠(Auschwitz)의 죽음의 수용소를 자진하여 찾아갔었기' 때문이었다.(10)
Joseph Bayly에 의하면, 플리머스 형제회(Plymouth Brethren)의 회원으로서 창조과학자이며 부다페스트 의과 대학의 교수로 있던 Ference Kiss 박사는 자기 목숨을 걸고 나치들로부터 유태인들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였다.(11)
미국에서는 어떠했을까?
수많은 기독교도를 포함하여, 모든 미국 사람들이 유태인 수난에 대해 그토록 무신경하고 복지부동하였다는 건 정말 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지금 낙태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에 버금간다고나 할까). 미국 사람들은 위대한 미국의 정치가이며 기독교도의 대변인이었던 William Jennings Bryan이 '전 독일을 굴복시킨 나치 이론의 바탕에 다윈 이론이 깔려있다는 사실' (2) 을 미국 국민한테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계간지 <헤브루 크리스천 협력(Hebrew Christian Alliance)>의 편집인만은 최소한 한 번은 목소리를 높였던 같다. 1943년, 그는 이 계간지의 사설에서:
”폭로된 독일 사람들이 저지른 잔학행위 내용을 보고, 또 듣고 당신들은 무엇을 느낍니까? 마음이 아픈가요? 당연히 그래야 하겠죠. 크리스천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침묵했어요. 이런 잔학행위가 벌어지기 훨씬 오래 전에 벌써 저들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들렸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야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들의 안위를 위해 기도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들을 먹여주고 옷을 입혀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엔 그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지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복수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히틀러와 그의 철학의 패배를 주창합니다.”(12)
결론
오늘날 세계인의 대부분은 히틀러를, 그리고 스탈린까지도 경멸합니다. 그들 두 사람은 한결같이 성경에서 일러주고 있는 이웃 사랑의 윤리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수백만의 인명을 살해하였습니다. 스탈린은 의식 속에서 다윈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13) 히틀러는 세계인의 목구멍 속으로 적자생존의 이론을 억지로 주입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1) Gould에 의하면, 곤충학자 Vernon L. Kellogg는 선점한 권리를 요약하여, ”가장 선진된 진화의 단계를 선점한 인간 집단은 … 생존경쟁에서 승리하여야 한다. …”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입니다.(2)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 사람의 유태인이었던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위하여 마음이 상하고 살이 찢겨 나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숭배하는 기독교도들이 그를 창조주로 믿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사람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것이, 그러면서 히틀러의 철학이 전적으로 모순투성이라고 보는 것이 무슨 놀라운 일이 됩니까? 또한 예수님을 따르며, 고통 받는 유태인을 구제하기 위해 동정하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것이 그 무슨 놀라운 일인가요?
*참조 : Darwin and Hitler: A Trumped-Up Connection? (CEH, 2008. 4. 16)
https://crev.info/2008/04/darwin_and_hitler_a_trumpedup_connection/
Nazi-Era Scientists Were Willing Colluders (CEH, 2008. 2. 17)
https://crev.info/2008/02/naziera_scientists_were_willing_colluders/
Hitler’s ‘master race’ children haunted by their past
http://creation.com/hitlers-master-race-children-haunted-by-their-past
The trial and death of Adolf Eichmann
http://creation.com/the-trial-and-death-of-adolf-eichmann
REFERENCE
1. Paul G. Humber, 'The Ascent of Racism,' Impact (Institute fro Creation Research, February 1987).
2. Stephen Jay Gould, 'William Jennings Bryan's last Campaign,' Natural History, November 1987, pp. 22-24
3. Arthur C. Cochrane, The Church's Confession under Hitler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2), pp.40, 108, 268-279, 278 respectively.
4. Roland H. Bainton (Marshall B. Davidson, Editor) The Horizon History of Christianity (New York: American Heritage Publishing Co., Inc., 1964), p.390
5. Helmut Ziefle, 'A Christian Family Resists Hitler,' Christianity Today, December 15, 1978, pp. 23-24
6. The New York Times, December 17, 1981, p. D23
7. Corrie ten Boom, The Hiding Place (Old Tappan, NJ: Fleming H. Revell, 1971).
8. Nechama Tec, When Light Pierced into Darkness: Christian Rescue of the Jews in Occupied Poland Oxford University Press, 1986)
9. David W. Gill, 'Ain Interview with Jacques Ellul,' Christianity Today, April 20, 1984. p.18.
10. The Church around the World, a news-sheet published by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Wheaton, 12/86 and 10/84 respectively.
11. Joseph Bayly, 'Salt, and Old Wounds,' Eternity, May 1986, p.64
12. Robert W. Ross, So It Was True: The American Protestant Press and the Nazi Persecution (University of Minn. Press, 1980)-discussed by Vernon C. Grounds in 'Have We Learned Our Lesson?,' Christianity Today, Sept. 6, 1985. p.42
13. Paul G. Humber, 'Stalin's Brutal Faith, ' Impact No. 172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October 198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181.htm
출처 - ICR, Impact No. 181,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