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유명한 진화론자의 모습만 봐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진화론자를 꼽으라면 단연 하버드 대학에 스테판 굴드(Stephan J. Gould)박사 이다. 화석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로서 유명하며, 특별히 “단속평형이론” 또는 “구둣점식 진화론”이라는 이론을 발표하여 유명하여졌다.
먼저 단속평형이론에 대한 것을 간단히 알아보고, 그 다음에 이 사람의 태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단속평형이론은 영어로는 “Punctuated Equilibrium” 이라고 하며, 이는 유럽에서도 1930-40년 경에 이미 나왔다가 사라졌던 이론이다. 당시에는 Shindewolf & Goldshmidts가 제안했었는데 “괴물이론(Hopeful Monster Theory)”라고 명명되었다. 내용인 즉 화석기록의 증거로 보아 “느린 속도의 진화는 나온 적도 없고 나올 수도 없다” 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룡과 새의 차이는 너무나도 큰데 중간단계 동물이 생존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화석에도 발견된 적이 없으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언젠가 공룡에서 새로 갑자기 빠르게 진화되었던 시기가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진화라는 것은 느린 속도를 전제하여 엮어진 이론이므로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사장되었던 것이 굴드 박사에 의해 다시 등장한 것이다(그림). 그러니까 진화론적으로 화석을 연구한지 150년 동안 화석가운데 종들을 이어주는 중간화석이 발견되지 않자, 진화론자들이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다. “화석의 부재로 보아 진화론이 틀렸다”는 말을 하지 않고 더 엉뚱한 진화론을 내세우는 진화론자들의 궁색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단속평형이론은 전혀 관찰과 실험에서 얻어진 이론이 아니다. 그의 논문을 읽어보면 perhaps, may be, well, 등의 단어가 계속 나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1994년에 미국생물교사 학회지는 이들의 이론을 잘 표현하였다. “단속평형이론은 실험적인 근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화석간에 간격을 메울 수 없기에 나온 이론이다”.
그런데 이 굴드 박사는 창조론자와 절대 논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지난 1998년에 캔사스 교육평의회에서 진화론을 생물교과서에서 삭제한다고 떠들썩 하였을 때, 유명 방송국들이 창조론과 진화론 과학자들을 함께 초청하려고 했었다. CNN에서는 굴드 박사와 미국 창조과학연구소 소장인 죤 모리스 박사간의 대담을 방송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반대 의견으로 녹화 한 시간 전에 창조론 측 대변자가 모리스 박사에서 과학자가 아닌 사람으로 바뀌는 촌극이 벌어졌다. 또한 ABC에서도 이와 비슷한 해프닝이 벌어졌는데, “다이아로그”라는 프로그램에서 미국 창조과학연구소 부소장인 듀안 기쉬 박사와 대담 스케줄이 잡혔는데, 이번에도 녹화 바로 전에 굴드 박사의 의견으로 기쉬 박사의 순서는 갑자기 취소되고 굴드 박사만이 일방적인 진화론을 변론하도록 허락되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최근에 창조론 대 진화론의 논쟁에서 창조론자들이 패한 적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만큼 진화론은 모순 덩어리이며 과학적인 데이터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속평형이론을 가지고 많은 생물학자들은 진화론의 가장 최근의 이론이라고 말한다. 진화론이 어떠한 증거도 없는데 진화론을 지지하려고 하다 보니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이론이 나온 것이다. 이 이론은 공룡이 번창하다가, 많은 공룡의 알 가운데 새가 나왔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새가 나왔어도 같은 순간에 암컷과 수컷 새가 동시에 나와야 하는 기막힌(?) 이론이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the beginning of knowledge)이니(잠 1:8)”라고 말한다. 우리의 사고의 시작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이 써있는 성경에서 시작되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애들도 배꼽 잡을 이론이 나오는 것이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5)”. 성경은 이세상의 생물들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써있다. 진화론자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람의 태도를 보면서도 우리는 진화론의 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70
참고 :
진화론이 끼친 해악
: 인종차별, 국수주의, 공산주의, 생명윤리 문제
임번삼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지도 14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진화론이 끼친 영향은 다른 어떤 학설보다도 위력적이었다. 그 실상에 대해 메이어(Ernst Mayr 1963)는 이렇게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하이젠버그의 통계이론도 개개인의 신념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이나 뉴톤의 세계관은 전통적인 신념에 다소의 변화를 주었다. 그러나,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사상만큼 종교와 윤리에 관하여 새로운 의문을 불러 일으켰던 이론은 없었다.” [Ernst Mayr; Animal Speies and Evolution, p 988,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dge Mass, 1972]
40여년 전에 시카고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렸던 <다윈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1959)에서 헉슬리(Julian Huxley)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다윈의 이론은 더 이상 이론이 아닌 사실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인정하는 과학자라면 누구든지 진화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굴하지 않고 일어 선 사람이 영국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인 페터슨박사(Collin Patterson)였다. 그는 1981년에 시카고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렸던 <진화론회의>(1981.11.20)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20년 이상 진화론을 연구했으나...무엇 하나 제대로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게 되었다. 20여년을 허비한 셈이다. 그래서, 수주일간 여러 학자들에게 묻고 다녔다. 당신이 진화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으며, 하나라도 진화의 증거를 대어 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침묵뿐이었다.” 그는 이어서 회의장에 모인 진화학자들에게 폭탄적인 선언을 하였다. '이 방에 계시는 여러분들도 과거에 진화론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공감)을 하셨다면, 그것은 지식이 아닌 신앙으로서 였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그와 정반대인 것 같다.”
영국의 생물학자인 매튜스(1971)는 이렇게 말한다.
”생물학을 지지하는 근거가 진화론이기 때문에 생물학은 결국 증명되지 않은 이론 위에 세워진 묘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생물학은 과학인가 믿음인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창조론처럼 꼭 같은 믿음에 속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진리로 생각하겠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지금까지 증명될 수가 없었다.” [I.H. Mathews; The Origin of Species, Introduction by Charles Darwin, J.M. Dent and Sons Ltd, p10, London, 1971]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학문의 발전을 이룬다는 미명하에 끝없이 새롭게 진화이론을 진화시켜 나가고 있을 뿐이다. 후레이져(Alex Fraser)는 ”진화의 과정은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진화를 추진하는 것만이 정신이다...정신이란 자연계의 생물가운데 있다기 보다는 자연 그 자체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전형적인 범신론적 견해이다. 그러나, 성경은 유일신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홀로 만드셨다고 선언하고 있다. 진화론이 신앙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범신론적 신앙이다. 따라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은 범신론과 유일신론 간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진화론은 자연계의 공생관계나 인류사회의 사랑의 관계를 경시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회를 흡사 양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리만이 통하는 세계인 양 오도한 과오를 범한 것이다. 이러한 무신론적이며, 범신론적 진화론에 기초한 운동중 최근에 크게 유행하는 대표적인 운동이 뉴에이지이다.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은 이념적으로는 동양의 명상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와 접목된 것으로 유신진화론과 맥을 같이 한다. [우사미 마사미저, 장혜영/오덕철/김남형 역;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 한국창조과학회, pp 98-99, 서울, 1996]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들이 이러한 혼합주의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불행스러운 일이다. 기독교계에서 이러한 경향은 과학과 종교가 별개라고 믿는 젊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복음이 맹신적인 과학주의와 결탁할 때, 또 다시 중세의 지동설에 대한 종교심판과 같은 오류가 과학주의에 의해 범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냉철한 이성에 입각한 과학주의와 순수한 성경말씀이 서로 손을 잡을 때 신앙과 과학간의 바른 관계가 정립되리라 확신한다. 맹신과 독단은 의심의 여지없이 종교계나 학문세계에서 꼭 같이 경계하여야 할 독소들이다.
진화론의 위험성은 14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미 증명이 된 것이다. 그 중에서 몇가지 사례만 들어보기로 하자. [임번삼; 진화론이 학문세계에 끼친 영향, 창조, 70호(7, 8월호), pp 2-6, 한국창조과학회출판부, 1990], [John N. Moore; How To Teach Origins Without ACLU Interferance, Mott Media, pp 1-13, Milford, MI, 1983]
(1) 인종우생학과 인종차별
다윈은 ”좀 더 문명화되었다는 백인종은 생존경쟁에서 미개한 터어키인들을 멸망시켰다. 최근까지도 세계의 많은 하류인종들이 상류의 문명을 가진 인종들에게 무시당하며 살아왔을 것이다.”고 인종차별적인 표현을 하였다. [Letter from Charles Darwin to W. Graham, July 3, 1881]. 헤켈은 파푸아뉴기니아 원주민을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으로 평가했으며, 헉슬리(Thomas Huxley)는 ”흑인은 백인과 동등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Thomas Huxley; Ley Sermons, Address and Reviews, Appleton, p 20, New York, 1971].
다윈의 사촌동생인 갤튼(Francis Galton 1822-1911)은 인종우생학(Eugenics 1883)을 만들어 인종개량을 역설하였고, 소위 우수종인 백인 위주로 인종을 개량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펼쳤다(사진 1). 그의 주도로 결성된 인종우생학회(Eugenics)는 영국(1907)과 미국(1926)을 필두로 구미의 백인국가에서 설립되어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하였다. 그 결과, 유전병을 가진 사람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단종법(斷種法)과 유색인종의 백인국가로의 이민을 규제하는 이민제한법의 제정에 기여하였다.

단종법은 미국의 27개 주와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채택되었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인종우생학의 영향으로 ‘임의 단종법’을 만들어 과거 10여년간(1926-1935) 유전병, 신체부자유인, 정신박약아들에 대해 9931명을 강제로 단종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The New Encycloedia Britanica, 15th Ed., Vol. 30, 7-23, pp 1023-1026, 1984]. 이 법은 그 후 북구라파의 여러나라(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독일)에서도 채택되었다. [동아원색 세계대백과사전, 22권, p 69, 동아출판사, 서울, 1988]. 나치 독일에서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이 단종법에 준거하여 200만명 이상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위 갤튼 법칙(Galton's Law 1897)에 의하면, 개개인의 인격은 모든 조상들의 총합이며 1/4 만이 양친으로부터 온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1900년에 멘델의 법칙이 재발견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지능은 뇌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프랑스의 브로카의 법칙(Broca's Theory 1859)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지능이 높을수록 도덕성도 높아진다고 하여, 교육에 지능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이러한 갤튼의 이론은 다윈을 비롯한 생물진화론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후일 죤 듀이 등의 진화론적 교육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갤튼의 인종론은 미국에서는 고다르드(Goddard), 오스본(Henry Fairfield Osborn), 로글린(Harry Lauglin), 그랜트(Madison Grant) 등에 의해, 영국에서는 다윈의 아들인 레오날드 다윈(Leonard Darwin), 성공회의 옥스포드 주교인 처칠(Winston Churchill) 등으로 이어졌다(Chase 1980).
히틀러는 ”진화사상을 이론적 근거로 삼아 게르만족의 번영을 위해 유태인들을 기생충과 같은 존재라며 600만명이나 학살했다”고 호우퍼(Houper)는 말한다. [W. Houper; 나치즈다큐멘트:13단계에 이르는 길, pp 45-48, 論爭社, 東京]. 나치는 1930년대의 전당대회에서 진화론을 당의 지도이념으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1940년 후반에 열렸던 뉴른버그의 전범재판시 인종우생학에 관한 자료들은 거의 분실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도 진화론자들의 인종차별적 발언은 계속되고 있다. 풋남(C. Putnam 1961)은 ”흑인이 백인처럼 진화하려면 거의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하며.....5천억 년이 지나야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 흑인이 백인을 능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할 것”이라고 하였다.[C. Putnam; Race and Reason: A Yankee View, p 53, Public Affairs Press, Washington DC, 1961]. 또 다른 진화론자인 민츠(S. W. Mintz 1972)는 ”지식인들은 아메리카 흑인들을 구제불능적이며 변화할 가능성도 없는 열등한 존재로 간주했다”고 하였다. [S.W. Mintz; American Scienists, 60, p 387, 1972]. 젠센(Jensen 1969)은 천부적으로 인종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인종적 차이에 대해 흑인보다는 높은 지능을 가진 백인종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Van Evrie 1868).
여기에서, 우리는 백인우월주의가 진화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종우생학이 요즈음 인간유전체연구와 배아복제연구에 힘입어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다시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려할만한 사태이다. 우리는 진화론자들이 인종을 차별하는 이론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한 때 아프리카 등지에서 잡아 온 흑인들이 진화과정상 동물이나 사람의 어느 수준에 속하는 것인지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국수주의와 민족주의 자극
진화론은 무엇보다도 국수주의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일본, 이태리와 같은 국수주의적 국가들은 예외없이 진화론을 국가적으로 적극 장려하였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시에는 베를린에서 삼국동맹을 맺어 연합국에 공동으로 대항하였다. 이들의 침략은 적자생존의 이론에 따라 강한 힘으로 약자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의 경우, 일본창조과학연구회 회장인 우사미 박사(Masami Usami 1998)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유럽에서는...진화론과 창조론을 가르쳤고, 미국에서는 창조론만 가르쳤다. 이러한 가운데 가장 먼저 진화론을 가르친 것은 일본이었다. 왜냐하면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라고 믿는 일본의 독특한 환경때문이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는 참 신을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宇佐神 正海 著, 장혜영외 역;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 p 15, 1998]
동 학회의 부회장인 호리코시 목사(Rev. Nobuji Horikoshi)에 의하면, 쟈비에르(Francis Xavier 1549)에 의해 일본에 전파된 기독교는 도쿠가와 막부의 정권유지에 위협이 된다 하여 금지당했다가(1613.12), 1837년에 미국의 압력으로 자유화가 되었다. 그 대신, 동양제국에 대한 침략을 꿈꾸고 있었던 메이지 정권은 기독교 정신을 상쇄할 목적으로 철저한 진화론자인 미국의 몰스(Edward S. Morse 1877)를 동경대로 초빙하여, 유물론적이며 반기독교적인 교육을 하였다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시의 문부상으로 창조론 교육을 교과서에 삽입하려고 시도했던 모리(森)장관은 애석하게도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한다.
그 후, 미국의 유학시절에 창조론 교육에 감명을 받았던 니이지마(Joe Niijima)는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을 설립했으나, 다른 미션 계통인 아오야마(靑山學院), 죠우치(上智) 대학 등과 더불어 진화론의 교육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메이지 정권은 아시아 제국을 침략하기 위한 전초작업으로서 메이지 23년(1890) 천황의 칙령으로 천황이 중심이 되는 가족국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N. Horikoshi; 일본창조과학의 현주소, pp 58-59, 창조과학 국제학술대회, 한국과학기술원 시청각교실, 1993]. 그 시기를 전후하여 일본은 청일전쟁(1884), 러일전쟁(1904), 을사보호조약(1905)과 한일합병(1910)을 강행하면서 군국주의의 길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 2차 세계대전을 유발하여 아시아 지역을 피로 물들이게 하였다. 이들의 침략야욕에는 분명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진화론 사상이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냉철하게 음미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가스만(Gasman 1971)은 어떻게 인종우생학 사상이 ‘다윈 진화론의 사도’로 불리운 헤켈(Ernst Haeckel)로 부터 독일국가사회주의당(German National Socialist Party)으로 이어졌는지,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총정리하였다. [Daniel Gasman; The scientific origins of national socialism, American Elsevier, New York, 1971]. 그 책에 의하면, 헤켈은 1918년에 나치당의 산파역을 한 극우적인 툴레당(Thule Geselschaft)의 비밀요원이 된다. 이 모임에는 히틀러(Hitler)와 헤스(Rudolf Hess)가 손님으로 참석하였다 한다. [Reginard Phelps; Before Hitler came: Thule Society and Germanen Orden, Journal of modern History, 25, p 245, University of Chicago, 1963]
이 책은 이어서 소개하기를, 헤켈은 <생명의 신비>(1904)에서 ”새로 태어난 어린애가 귀머거리에 의식이 없는 존재로 태어나는 것은 영혼이 없다는 증거” 라면서, ”이런 어린애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다”고 강변하였다. 더 나아가 ”인위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수백 수천의 불치환자들인 나병환자, 정신이상자, 암환자들은...자신에게는 물론 사회에 조금도 이익을 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악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길은 이들을 고통없이 빠르게 퍼지는 독약을 먹임으로써 이룰 수 있다...정부기관의 허가를 받아서.” 라고 주장하였다. [Ernst Haeckel; The wounders of life, Harper, New York, 1904]. 이러한 그의 사상은 후일, 그대로 히틀러에 의해 실행에 옮겨졌다.
진화론자인 영국의 케이스(Arthur Keith 1949)까지도 말하기를 ”독일 총통은 독일의 개혁을 진화론에 따라 추구해 왔다”고 말한다. [Arthur Keith; Evolution and Ethics, p 230, G.P. Putnam, New York, 1949]. 매이서(W. Maser 1970)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 1924)을 분석한 글에서 히틀러가 생물학, 예배, 권력, 투쟁, 그리고 역사에서 도덕적 요소를 거부하게 된 것은 다윈사상에 기초한다고 지적하였다. [Werner Maser; Hittler's Mein Kampf: An analysis, Faber and Faber, London, 1970].
히틀러로 하여금 아리안족 우월사상을 갖도록 자극한 또 다른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미국우생학자인 그랜트(Madison Grant)가 쓴 <위대한 종의 소멸>(The Passing of the Great Race)의 독일어판(1916)이었다. 이 책에서 그랜트는 미국이 어떻게 유전적으로 ‘부적합한 인종’에 의해 오염되어 있는지 설명하였다. 그리고, 독일인들이 30년 전쟁(1618-1648)에서 너무나 많이 죽었기 때문에 우수혈통의 부족으로 1차대전에서 패망한 것이라는 잘못된 진단을 내렸다. 히틀러는 1930년대부터 우수한 아리안족의 혈통을 확보하려는 정책을 실행에 옮겼고, <마인 캄프>(Hittler 1941)에 이러한 이념을 포함시켰다. 이렇게 하여 진화론적인 헤켈의 인종주의와 갤튼의 인종우생학이 마침내 국가단위로 실현되기에 이른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20년대 초에 발행된 <로린의 신조>(Harry Laughlin's Creed 1920')이다. 로린은 사회적으로 부적합한 사람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이러한 주장은 단종법(斷種法 Sterilization Law)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법은 지금도 범인, 간질, 알콜중독, 장님, 귀머거리, 불구자, 고아와 같은 무의탁자들을 대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 법은 독일에서는 1927년부터 자율적 참여방식으로 시행되다가, 나치의 국가사회주의당(National Socialist Party)이 정권을 잡은 1933년에 히틀러가 총통으로 선출되면서 인종오염자의 명단인 <로린리스트>(Laughlin's List)에 기재된 대상자들은 강제적으로 단종처리를 하기 시작하였다(Popenoe 1934).
1945년, 히틀러가 몰락한 후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1927년에서 1933년 사이에 매년 85명이 자발적으로, 나치 치하에서는 매일 450명씩 최소한 2백만 명이 단종처리가 되었다고 한다 [Alan Chase; The Legacy of Malthus, University of Illinoise Press, Chicago, 1980)]. 여기에서 자발적이라 함은 결혼의 유보를 뜻하지만 강제적 단종처리란 살해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이러한 작업은 헤켈이 주장한대로 헬멧을 쓴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집행됐다고 한다.
헤켈이 주장한 ‘몸속에 빨리 퍼지는 독가스’는 데게쉬(Degesch)라는 회사에서 개발되어 팔벤사의 레버쿠젠 공장(Leberkusen Plant, I.G. Farben Chemie)에서 지클론 상표(Ziklon B brand)로 생산되어 나치에 납품되었다 한다. 이 회사는 2억 명을 죽일 수 있는 독가스를 생산하였으며, 실제로 30회 이상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나치가 점령했던 지역까지 포함하면 제3제국의 통치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Sutton 1976). 이러한 독가스는 마침내 6백만명의 유태인을 독살시킨 아우슈비츠의 학살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처럼, 진화론은 이러한 히틀러의 아리안족 우월사상은 물론 니체의 초인주의, 일본의 극우적인 야마또사상, 러시아의 슬라브주의, 백인우월주의 등을 직간접적으로 부추겨 민족우월감에 따른 침략주의를 고취시켜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여기에 열거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약육강식에 의한 적자생존의 원리를 강조하는 진화론은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거의 모든 국가나 단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 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에 대해 침묵이 아닌 정중한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비극들을 곰곰히 반추하면서, 무엇이 과연 바르게 학문을 하는 길인가 판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를 36년간 억압했던 바로 그 일본의 군국주의의 바탕인 진화론을 우리 학계가 그래도 옹호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3) 공산주의 및 파시즘과의 연계
헤켈은 일찍이 자연선택 이론을 도입한 정치이념은 소수의 엘리뜨에 의한 통치체제라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자연선택 이론은 동식물들은 물론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단지 선택받은 소수만이 번성하며, 대부분의 존재들은 처참하게 굶주리고 비참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Ernst Haeckel; Freedom in science and teaching, p 93, D. Appleton, New York, 1879]. 그가 주장했듯이 극소수의 엘리뜨 집단에 의해 정치적으로 실현된 전형적인 조직이 극우적인 파쇼주의(Facism)와 극좌적인 막스주의(Maxism)였다. [Leonard Carmichael; Science and social conservatism, The Scientific monthly, 78(June), p 373, Washington D.C, 1954].
파시즘은 생물학적 결정론과 연계되어 있으며, 유전적인 적자(適者)만이 불공평한 경쟁에서 생존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막스주의는 혁명의 각 과정에 의해 사회가 발전한다고 가르치면서도 역설적으로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고 <유네스코 25주년 기념사>는 지적한다. [UNESCO contributors; In the minds of man, UNESCO 1946-1971, UNESCO publication, Paris, 1972] 훼스트(Fest 1974)는 히틀러의 파시즘과 레닌의 공산주의 간의 유사점을 항목별로 설명하면서, 히틀러는 막스를 자유롭게 인용하였으며, 소수의 엘리뜨가 지배한 두 이론은 모두 같은 운명을 맞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놀트(Nolte 1972)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는 파시즘이나 막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였다. [Ernst Nolte; Three faces of facism, Richard and Winston, New York, 1966]. 그는 지적하기를 파시즘과 막시즘은 상호 동맹관계에 있으며, 같은 시기에 스페인에서 봉기한 프랑코 총통에게서 보듯이 자유선거가 아닌 엘리트에 의한 장기집권이나 프랑스 사회주의 강령(1793) 등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였다(Nolte 1966).

<공산당선언>(Communist Manifesto 1850)를 발표했던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막스(Karl H. Marx 1818-1883)는 다윈의 <생존경쟁>(struggle for survival)이라는 용어에서 <계급투쟁>(class struggle)의 이론을 도출하였다(사진 2). 그는 루터교 신자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신학논문을 쓰기도 하였다. [R. Wurumbrand; marx and Satan, p 11, Crossway Books, Wetchester, 1987]. 그러나, 베를린 대학에서 다윈의 글을 보면서 적자생존 개념에서 사회계급 간의 생존경쟁 개념(struggle for existence)을 이끌어 내었다. 그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생존경쟁을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표현하였다. 막스는 영국망명 시절에도 헉슬리의 강연회에 참석하면서, 진화론의 적자생존 개념이 자신의 계급투쟁(class struggle)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다윈에게 존경한다는 뜻으로 그의 <자본론>(Das Kapital 1867)의 속표지에 ”찰스 다윈 선생님께, 당신을 진심으로 숭배하는 칼 막스로부터(1873.6.16)”라고 자필 서명하여 증정하였다(Padover 1979). 6년후, 막스는 다윈에게 자신의 자본론 속권(續卷)을 다윈에게 바치기 위해 저술하겠으니 허락하여 달라고 했으나, 다윈은 자기가 무신론적인 책과 연계된다면 고통스러워질 것을 우려하여 거절했다고 한다(Keith 1955). 발준(Barzun 1958)은 막스사상이 진화론과 평행을 이룬다고 하였다.
다윈의 말년에는 칼 막스의 양자인 어벨링( Edward Aveling)이 접근하여 다윈에게 무신론을 받아 들이도록 설득했으나, 그는 스스로를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로 자처하면서 그러한 제안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에 당황한 어벨링은 ”무신론이란 적극적인 불가지론이며, 불가지론은 상당한 수준의 무신론"이라고 자위했다고 한다. [Edward B. Aveling; Charles Darwin and Karl Marx, New Centry Review, 1: 323, London, 1897]. 막스의 동업자인 엥겔스(Fridrich Engels) 역시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기독교적 신앙을 버리게 되었다(Koster 1989). 그는 ”다윈이 생물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듯이, 막스는 인류역사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다”고 했으며(Traedgold 1972), 진화론이 공산이론의 한 뿌리라고 평가하였다. 반면에, 다윈 자신은 말사스의 <인구론>(人口論)을 읽으면서 인구과잉에 따른 적자생존의 이론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민중봉기에 의한 혁명이론을 수립한 허잔(Alexander herzan 1812-1870)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Malia 1971). 볼셰비키 혁명(1917)을 일으켰던 레닌(Nikolai Lenin 1870-1924)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다윈과 막스의 저서들을 읽은 후 영원히 기독교와 결별하였다. [W. Miller, H. Robert, M. Schulman; The Meaning of Communism, p 33, Silver Burdett, Morris Town, 1963]. 그는 진화론의 자연선택 이론에 따라 공산이론을 세웠다고 한다. [F. Schwartz; The Three Faces of Revolution, p 30, The capitol Hill press, Falls church, 1972]. 그 결과, 볼세비키당의 강령으로 ‘종교는 아편’이라는 말이 삽입되었다. 레닌체제 하에서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만든 사람이 소련의 진화론적 생화학자인 오파린(A.I. Operin)이다. 그리고, 스탈린 체제에서 루이셍코(T.D. Lysenko 1898-1976)는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을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공산이데올로기로 적극 활용하였다. 그는 인간이 훈련에 의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공산주의적인 인간관을 지지하였다.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은 오늘날 학계에서는 부인되었지만, 당시에 소련에서는 루이셍코에 반대했던 학자들은 무참히 숙청당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천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독재자 스탈린(Joseph Stalin) 역시 진화론에 의해 기독교로부터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로 변신하였다. [J. Koster; The Aheisic Syndrome, Wulgemuth and Hyatt, p176, Brentwood, 1989], [E. Yaroslavsky; Landmarks in the Life of Stalin, pp 8-9, Foreign Lanuages publishing Huoss, Moscow, 1940] 그는 다윈 이론을 배운 후부터, 그가 다니던 신학교의 동료학생들에게 인간은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고 말하곤 하였다. [Koster; ibid, pp 76, 77, 177]. 레닌의 영향으로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 지도자들은 다윈을 지식의 영웅으로 추앙하였으며, 모스크바에는 다윈박물관이 세워지게 되었다. [J. Huxley, H.B.D. Kittlewell; Charles Daewin and His World, p 80, Viking press, new York, 1965].
중국공산당을 이끌었던 모택동(Mao Tze Tung 1893-1976)은 진화론을 중국과학사회주의의 초석으로 여겼다. [G.J. Stein; Biological science and the roots of Nazism, p 52, American Scientist, 76:50-58, 1988]. 이러한 정책으로 그는 8천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Jerry Bergman; The Darwinian foundation of communism, TJ 15(1), p 94, 2001]. 그는 다윈에게 빚을 졌으며, 특히 다윈사상에 심취했던 히틀러와 헤켈에게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K.J. Hsu; The Great Dying: Cosmic atastrophe, Dinosaaurs and Theory of Evolution, p 1, Brace Jovanovich, Hrcourt, 1986]. 지금도 중국이나 북한을 비롯한 공산국가에서는 샤르뎅의 유신진화론을 이념교육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다음 세대들은 앞으로 공산주의와 카톨릭교회가 어떠한 관계를 정립해 나갈지 주의깊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테일러는 지적한다. [Taylor; ibid, p 376]
(4) 인간존엄성의 훼손
진화론은 모든 인류를 사랑과 포용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살벌한 적자생존과 계급투쟁의 역사로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윤리가 피폐해지는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요인들 중 하나가 진화론임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인간을 동물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존엄성을 동물수준으로 떨어뜨렸고, 심각한 인명경시풍조를 야기시키도록 한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진화 생물학자인 하두봉 교수(전 서울대)는 이렇게 말한다. ”진화론이 내포하는 의미는 인간생명의 격하라 할 수 있다. 즉, 인간도 다른 생물 특히 다른 동물과 동격시 된 것이다. 모든 생물은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되어 다양화되어 왔다고 하는 관점에서 인간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전통적 사고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생명관의 큰 변혁이 여기서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신의 창조라고 하는 종교개념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결과를 낳았고, 현대생물학의 분석적 방법론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하두봉; 분자생물학의 제문제(생물과학심포지움, 11월7일, 이화여대), 생명과학의 현재와 미래, 한국생물과학협회, pp 10-11, 1987]
인본주의자들은 두 과제에 당면하고 있다. 하나는 상황윤리(situation ethics)이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되었으며, 윤리의 근본인 신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기독교적 윤리를 부정하고 상황에 따른 윤리관을 쉼없이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룻소가 말했듯이 인간은 유전적으로 선한 존재이므로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여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형이상학적 족쇄로부터 해방하여 그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몬트는 이렇게 부연한다. ”인본주의의 핵심적 관심은 현세에서의 행복이지 무덤 너머의 환상적인 세계의 것이 결코 아니다. 행복이란 살아 있는 동안에 의미가 있으며 초월적인 신에게 종속되거나 의존되는 것이 아니다.”[Lamont: ibid, p 30] 또 다른 진화론자인 차울라(Chawla 1964)는 이렇게 말한다. ”다윈의 진화론 발견으로 종교와 도덕적 가치는 조종을 울리게 되었으며 전통종교로부터 떠나게 되었다.” 이처럼, 진화론자와 인본주의자들은 집요하게 신과 기독교로부터의 해방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진화론의 적은 초월적인 신과 기독교라는 말이다.
(5) 생명기계론과 생명윤리문제
진화론자들은 생명을 단순히 자동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기계로 인식함으로써 생명윤리문제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생명이 단순한 기계에 불과하다는 사고가 청소년들에게 심어질 때 그 영향을 어떻게 대처하려는 것인지 염려가 된다. 이러한 생명윤리문제에 대해 하두봉 교수(1987)는 이렇게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생명은 신비하고 존엄하다고 초중등 교육을 통해 강조함으로써 생명물질론의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은 물질론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지구상의 현존하는 모든 생물들은 기나긴 진화의 소산이며, 또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현재로서는 진화의 극치에 달해 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개념을 교육의 초기부터 강조하는 것은 생명물질론에 대하여 완충작용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특히, 진화에 있어서 인간은 인간이 걸어 온 길로 진화한 것이며, 다른 생물 예컨데 세균은 세균대로의 진화과정을 걸어와서 각자가 자신의 환경에서 그리고 현재로서는 최고도로 진화되어 있는 생물이라고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전통가치관이나 윤리관 자체도 수정되어 가야 할 것이다. 이 관념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공통적인 주관인 것이며 어떤 고정된 객관성을 갖는 것은 아니므로,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들도 수정되어 감으로서 전통가치관과 과학기술 사이의 마찰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과학의 대중화, 특히 지식인에게서의 대중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두봉; ibid, p 15]
참으로 우스운 대안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동물이며 기계라고 인정한다면, 차라리 사람이 동물답게 기계처럼 사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당당하지 않을까? 진화론이 주장하듯이 인간이 진실로 동물에서 진화한 것이라면 본질적으로 동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간이 본질상 동물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할 때 그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엄청난 부작용들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것인지 진화론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많은 동물들을 잡아 먹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다른 인간(동물로서의)을 생존의 명목으로 살생을 한다면 진화론적으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처럼, 진화론이 생명윤리의 근본을 깨뜨리고 있는 심각한 현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진화론자들이 인간존엄이나 윤리를 논한다는 것은 실로 넌센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참조 : The Darwinian foundation of commun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04
The church preaches eugenics: a history of church support for Darwinism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54-60.pdf
A Civic Biology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6038/
Darwinism and the teaching of racism and eugenics in biology textbook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1/j18_1_65-70.pdf
Adam’s brothers? Race, science and Genesis before Darwi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118-122.pdf
The history of the teaching of human female inferiority in Darwin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12
Darwin Taught Male Superiorit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1/darwin-taught-male-superiority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나는 믿지 않는다!
: 창조과학을 비판하던 한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
(I don't believe!)
David Catchpoole
한 젊은이의 어둠 속으로의 비극적인 타락은 성경말씀을 진화론에 부합시키려는 시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크리스천이면서 동시에 진화론을 믿을 수 있다는 사람을 당신은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
사실상 오늘날 교회에 나가는 신앙인들 가운데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그러한 개념에 대해 변론해보라고 하면, 그들은 과학은 '어떻게'를 설명하고, 성경은 '왜'를 설명한다고 대답한다.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의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지구가 6일 동안에 창조되었고, 지구의 나이 또한 6000 년 정도라는 것을 믿는 크리스천들을 자주 조롱하고 있다.
실예로, '크리스(Chris)' 라는 어떤 젊은이는 자기 생각을 너무도 확신한 나머지 반-창조론 웹사이트를 개설하였다.1 그는 그의 웹사이트에 창조론자들과 창조과학적 생각을 조롱하는 글로 ”나는 무엇을 믿는가?” 라는 글을 게재하였다. 그 글에서 크리스는 '북미침례교도(North American Baptist)' 라고 자기의 정체를 밝힌다. 그는 성경을 단지 ”좋은 도덕 지침서” 라고 주장한다. 만약에 그 도덕적 가르침을 모든 사람들이 믿어 세계가 훨씬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그 가르침을 좇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크리스는 반-창조론적 주장을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기술한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진화론이나 빅뱅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질문은 어쩐지 엉뚱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나의 믿음을 견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 여러분들 가운데 진화론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글쎄, 여러분들을 위하여 계실는지 모르지만, 나를 위해서는 아니다. 과학은 어떻게, 무엇을, 어디서, 그리고 언제에 관한 나의 질문에 답을 준다. 성경은 누구와 왜에 대한 질문에 답을 준다. 여러분들도 이 둘을 다 요구할 것이다. 그 두 방향의 질문들은 서로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적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을 믿고 있으면서 동시에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간증할 수 있을까? 위 글에서 크리스는 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어떨까? 크리스는 자기 믿음을 '끝까지 견지' 할 수 있었을까?' (마가복음 13:13; 디모데후서 2:12).
놀랍게도 인터넷이 위에서 인용된 크리스의 말에 대한 추신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그 추신 내용은 우리에게 크리스의 이후 인생행로의 일단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위에 언급된 웹페이지에는 이제 다음과 같은 말이 게재되어 있다. 즉, "이 웹페이지는 정식으로 닫는다"라는 말과 함께, 크리스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면 링크된 주소를 클릭하라는 재미있는 초청의 말이 포함되어있다.
”내 새로운 웹사이트에서 알 수 있겠지만, 요약하자면 내가 이 웹사이트를 닫는 이유는 주로 나의 신념체계에 변화가 생긴 까닭이다. 하지만 나를 위한 걱정을 사양한다. 나는 여전히 창조론자는 아니다.”
신념체계에 변화가 생겼다고? 크리스의 새 웹사이트에 연결 궤적을 좇아들어 가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드러난다.
”이 [새로운] 웹페이지의 목적은 나의 종교관과 세계관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내가 목적하는 바와 나의 개인적인 신념, 믿음의 결핍 등은 내가 발표한 많은 글들을 통해서 말했다.”
믿음의 결핍이라? 연결궤적을 좇아 들어가다 보면 굵은 활자체로 된 ”나는 믿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쓰인 글이 실린 새 페이지가 열린다. 이 글에서 크리스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나는 믿지 않는다. … 많은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 나는 모든 것을 안 믿는다고 대답한다. 사실상 나는 모든 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최소한 나는 믿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가 무엇을 믿는지, 또 왜 그것을 믿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만약에 그것을 오랫동안 생각하다 보면 혼란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들은 수많은 모순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욱 안된 것은, 당신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들이 실질적으로 무한대로 많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그런 것들 모두를 결코 사유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들의 마음은 너무도 작아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이와 같은 생각들 모두가 나에게 믿음의 위기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하여 내가, 또는 어느 누구가 이 무한대로 광대한 우주를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각기 다르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도달한 결론은 내게 믿어야 할 최선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옹호하여야 할 철학도 없다. 뿐만 아니라 걱정하여야 할 모순되는 믿음도 없다. 그리고 어떤 것도 내 세계관을 훼방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예전보다 더 분명하게 사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나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크리스가 충심으로 진지한 답을 원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지만, 만약에 그가 Answers in Genesis 웹사이트 정보를 마음껏 이용하였다면, 그는 6일간의 창조에 대한 실질적인 설명과 성경은 믿어야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며, 아마도 오늘과 같이 그런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은 심정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성경은 우리 주변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우리가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설명해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마가복음 12:30). 크리스의 경우는 그렇게 하지 못한 자가 맞이하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실례라고 하겠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면, 그는 아무 것도 믿지 않게 되고, 또 아무 것이나 믿게 된다고 한다.3 크리스의 웹사이트에 실린 그의 글들을 읽다 보면, 이 사실이 확인된다. 그가 '믿음의 위기'를 경험하고부터,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대한 믿음에서 한번 미끄러져 버리고 나서부터, 크리스는 켈트족의 드루이드교의(이교주의)와 신-이교 교의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몇몇 친구들과 더불어 이교 예배를 조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찍 공원에 도착한 나는 공원 후면의 후미진 곳에 제단을 설치하였다. … 여승은 제문 첫 행부터 읊기 시작하였다. ”고귀한 여신께서 아니 계신 곳이 없다 - 기묘하고 불가사의한 아름다운 세상을 통하여 - 마력을 쓰시며 자유롭게 황막하고 광대한 모든 곳에 드나드신다. … 여신은 두려운 존재다. 죽음의 힘도 그녀 앞에 머리를 수그린다. …그런 다음 그 모임의 사제이고 또 두 번째 서열의 자리에 있는 나는 내가 앉은 자리 뒷면에 촛불을 세워두고 "우리의 여신은 사랑의 여신이시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서 태양은 생명을 새롭게 한다”를 되뇌었다.”
이 글을 읽는 크리스찬들은, 이전에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에 속하여 있다고 간증하던 한 젊은이가 하나님의 계명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그와 같은 이교예식을 드리는 단계에까지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크리스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글들은 명백하게 반-성경적 위협으로 크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글들 중의 한 글(그는 '우화' 라고 호칭한다)에서, 어떤 마을의 주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주민들은 '에크나롱지(Ecnarlongi)' 라는 신을 경배한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적인 경배가 줄어들지만 전혀 피해의 표적이 없을 때에, 선지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비난한다. 마을 사람들은 몇 번의 토론 모임을 가진 후에 선지자를 (다른 두 사람과 함께 교수대 위에서 교수형을 집행하여) 죽이기로 결의한다. 그런 다음 그 선지자는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면서 이렇게 말한다, '에크나롱지의 신이시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최근의 글은 크리스의 시각이 얼마나 가련하게 바뀌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두려움과 혼란 때문에 비참한 우울증과 절망감에 시달리는 기간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혼란의 와중에서 나는 사방에서 나를 감싸듯 다가오는 어둡고 불길한 벽들을 넘어 더 먼 곳을 내다볼 수 없다. 우울증과 고독감을 감내할 수 없다. …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 한다. 누구도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를 쓸모없고 무의미한 존재로 느낀다. 나는 아무리 애써도 삶을 계속하기 위해 고생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이 어찌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여러 번 혼란에 빠졌었다. 매 번 앞에서 경험한 혼란상태보다 더 나쁘면 나빴지 좋아 진 적이 없었다. … 혼란상태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더 많은 함정들과 해자(垓字)들, 그리고 위험한 낭떠러지들이 구석구석에서 입을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 이 혼란의 심연에서 언젠가는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나는 여전히 맹목적으로 앞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내딛는다. 하지만 나는 어둡고 공허한 미로 속에 들어서있고 나는 자주 자신감을 잃는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대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고, 온전한 정신을 사다리처럼 이용할 수 있어, 저 먼데 있는 불빛을 향하여 기어나갈 수 있었다. … 그러나 나는 언젠가는 내 자신감을 영원히 상실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그 어두움은 나를 갉아먹고 끝내는 나를 죽일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그 미로에 빠져있는 동안 내가 받은 피해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적인 미망 경험으로도 받은 상처가 영영 치유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끝없는 미망 경험이야 죽음에 까지 나를 끌고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 않겠는가! … 언젠가는 최선의 경우에서도 어쩌면 나의 심정적 정신적 능력이 나를 그 어두움으로부터 건져내는데 충분하지 못할 때가 있을는지 모른다. … 안내하는 지도가 있다한들, 어두움 속에서 불빛이 없는 데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모든 와중에서 크리스는 무언가를 찾으려 뒤쫓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틀린 가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의 결론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 글의 독자들에게 나는 나에 관한 걱정일랑 접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직은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일로해서 나는 매우 위험한 함정에서 빠져나오는데 도움을 받았다. … [그러나] 나는 다음 일을 생각하고는 벌써부터 겁을 먹는다. 나는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갈 길이 멀지 않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 미망을 얼마나 더 견디어내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갈 수 있는 다른 곳이 어디일까? 무엇을 포기하여야 할까? 받아들여야 할 것은 또 무엇인가? 무엇이 더 있다는 것인가? 어쩌면 나는 마냥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어찌 비극이 아닌가! 이 젊은이의 절망은 성경을 진화론과 타협하여 해석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교회에 나가는 젊은이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Chris의 경우에 못지않게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에베소서 4:14) 이리저리 나부낄 만큼 취약한지 모른다. 그것은 그들이 창세기가 복음서의 기초라는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See Q&A: Creation: Why It Matter)
그런데 이러한 위험한 우물가에 서있는 자들은 젊은이들 뿐만이 아니다. 유명한 복음전도사였던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의 불신앙으로의 전락은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도 면역(免疫)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좋은 예이다. (See Slippery Slide to Unbelief). 한 때 간증을 하기도 하던 이들이 신앙에서 실족할 때, 그리고 그들의 영향으로 다른 성도들까지도 신앙에서 실족할 때 문제는 증폭된다. (Chris는 자기 웹사이트를 통해서, 템플턴은 그의 저서 '하나님이여 안녕히 (Farewell to God)' 4를 통해서).
이 두 이야기는 창세기 말씀을 오류투성이의 인간사상(진화론)과 타협하지 않아야 하는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쨌거나 크리스천들은 이 세상의 '현실'에 부합하려고 성경의 말씀까지 '왜곡' 할 필요는 없다. 왜 그런가 하면, 실험과학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을 포함하여)의 모든 분야에서 드러난 증거 - 정확하게 말해서 지구의 역사에 관한 목격담에서 기대되는 것 - 들은 성경의 말씀과 절대적으로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See 'The Earth: How old does it look?' 'How would you answer?')
성경은 생물학, 지질학, 그리고 천문학 분야에서도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역사학에서나 도덕과 구원의 문제에서도 또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찰스 템플턴이나, 크리스와 같은 사람들 (사실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Good News)은 신실하고 진리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진리의 빛' 예수 그리스도━'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시며 구세주이신(디도서 2:13, 베드로후서 1:1)━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영생의 빛을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한일서 1:5).
References
1. 301 Startling creationist lies and misquotes, <http://www.geocities.com/CapeCanaveral/Hall/3083/>, 6th February 2001, which despite its title is ostensibly a rebuttal of a book by Peter and Paul Lalonde, 301 Startling Proofs and Prophecies: Proving that God Exists. The footer of this webpage reads: 'This Darwin's Web Ring site is owned by Chris Patton.' Chris also operates under the web alias 'Aeikkin', and identifies himself as being male.
2. Aeikkins Grove, <http://www.geocities.com/aeikkin/index.html>, 25th January 2001.
3. The American Chesterton Society, 31st January 2001.
4. Templeton, C., Farewell to God, McClelland & Stewart, Inc., Toronto, Ontario, Canada, 1996.
*참조 : 유신진화론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는 이유
http://creation.kr/Faith/?idx=1757519&bmode=view
유신진화론의 위험성 1 :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http://creation.kr/Faith/?idx=1293837&bmode=view
유신진화론의 위험성 2 :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http://creation.kr/Faith/?idx=1293838&bmode=view
과학사와 신학 해석사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92&bmode=view
창조론은 믿음이고, 진화론은 과학인가? : 진화론자와 유신진화론자의 히브리서 11장
http://creation.kr/Textbook/?idx=1289677&bmode=view
“화학적 진화”의 관점에서 본 유신진화론
http://creation.kr/Influence/?idx=1289971&bmode=view
진화론, 창조론, 그리고 유신진화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04&bmode=view
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은 양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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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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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에 의한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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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교리에 대한 타협 : 점진론적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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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론적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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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지구의 신 : 점진적 창조론, 간격이론, 날시대이론, 다중격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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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대학에서 창조론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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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학자의 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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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 창조론에 대한 성경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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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넷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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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생물들은 언제 죽었는가? : 아담 이전의 죽음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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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범죄 이전에 사망이 있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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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복음만 전하는 것! : 창세기 없는 복음은 무신론자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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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자와 기독교과학자 : 양승훈 교수의 “두 근본주의의 충돌”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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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목사님이 창세기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를 옮겨야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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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던 악마의 전략 :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고 의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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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내가 창조를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http://creation.kr/Faith/?idx=5222536&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i-dont-believe
출처 - AIG, February 8, 2001.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중 서문
임번삼
진화론의 허구와 성경적 창조론
우리에게는 보호하며 지켜야 할 것과 경계하며 싸워야 할 적이 있다. 지켜야 할 것은 생명의 신비와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생의 가치관과 불변의 진리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고 정의와 진리가 강처럼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깨뜨리려는 세력과 싸워야 한다.
그 상대가 총칼을 들었다면 싸움은 간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적은 자신의 모습을 들어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위장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기들도 진리를 찾는 구도자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수많은 해악을 인류사에 끼쳐왔다. 선악의 개념을 혼돈케 하였고, 인간존엄성에 기초한 전통 윤리관과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러한 세력과의 싸움은 쉽지가 않다. 더구나, 이들이 가장 많이 배우고 사회적으로 덕망 높은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나 진리 아닌 것이 진리를 가장하고, 정의 아닌 것이 정의의 자리에 서 있다면, 우리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그 적은 다름 아닌 '진화론' 이라고 나는 서슴없이 말하고 싶다. 이들은 백인위주로 인종을 개량해야 한다며 인종우생학(Eugenics)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인이 혼혈되는 것을 막으려고 유색인종에 대한 이민제한법을 만들었으며, 유전질환자와 불구자의 출산을 막으려고 단종법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론에 심취하여 나치정권은 유전질환자와 신체부자유자를 200만명을 단종 처리하였고, 600 만명의 유태인을 아우슈비츠에서 독살하였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사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뿐만 아니라, 약육강식이 자연선택의 원리라며 제국주의자들끼리 동맹을 맺어 국력이 약한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일을 당연시하였다. 독일, 일본, 이태리가 그러한 국가였다. 진화론의 적자생존 사상이 침략의 당위성을 그들에게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이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수많은 증거를 가진 이야기이며 역사 속에 나타났던 엄연한 사건들이다.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의 거의 모든 교육기관에서는 지금도 사람이 원숭이의 자손이라 가르치면서 인간존엄성과 그에 기초한 윤리관과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한 단일정부를 세워 세계를 지배할 계획을 꿈꾸며 공공연히 그러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화론자인 존 듀이와 쥴리언 헉슬리가 각각 주도한 인본주의 선언(1933, 1973)과 유네스코 헌장(1946)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진화론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추리에 근거한, 무신론적이면서 유물론적인 신념이요 신앙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많은 진화론적 주장이 추리와 조립, 조작, 및 사기극으로 점철되어 왔다는 점이다.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이론적 허구와 잘못이 드러날 때마다 진솔한 사과나 반성이 없이 학문의 추구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해프닝이라며 도도한 자세를 견지하여 오고 있다. 일단 주장해 놓고 아니면 그만 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불길한 미래를 예감케 한다. 더구나, 그들이 저지른 과거의 행적들을 돌이켜 보면 이러한 염려는 기우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이러한 진화론의 실상과 허상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사실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알려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에 대한 비판과 대책이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추리와 사기극으로 구성된 진화론을 우리 자녀들에게 계속 가르치도록 국가가 강요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그렇게 배우며 자란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 왜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로 치닫고 있는지 따져 보아야 할 일이 아닐까? 과거는 용서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고 사가(史家)들은 말하지 않았던가? 비극의 과거사를 잊게 되면 미래의 역사는 더 큰 보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고 하지 안 했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의 양식있는 지성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직장에서 은퇴한 후, 지금은 몇몇 대학에서 생명과학과 창조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생명과학의 역사가 창조론과 진화론간의 치열한 논쟁사였음을 깨닫게 되면서 새로운 교재를 집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국내외 자료들을 뒤적이다가 진화론이 인류사에 끼친 부정적인 비사(秘史)들과 접하게 되었다. 그 역사적인 학문적 음모에 관한 자료를 접할 때마다 놀라움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진화론은 이미 학교에서, 사회에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위세에 밀려 주저앉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찾아 끝까지 나서야 할 것인가? 참으로 많이 망설이고 고민하였다. 그저 입만 다물고 있어도 되는 일인 터인데...! 진화론과의 논쟁이 쉬운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꼭 필요한 싸움이라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밤을 고민하며 갈등하다가 본서의 출간을 서두르게 된 것이다. 다소 무리한 부분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진화론의 허구를 고발하고 창조의 진리를 들어내려는 마음으로, 창조과학적인 시각으로 본서를 기술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지식서가 아니라 불의한 세력에 대한 고발이며,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내 나름의 외침이라 할 수 있다.
생명과학의 역사는 진화론과 창조론간의 긴 논쟁사이다. 이러한 논쟁의 한 가운데 생명나무가 서 있다. 이 나무는 원래 에덴동산의 중앙에 선악과나무와 더불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에, 창조주는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으나, 생명나무는 금하지 아니하셨다. 그러나, 우리 선조인 아담은 불행스럽게도 생명과일 대신 금단의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였다. 그 순간, 선악과와 더불어 생명나무도 그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고 하였다. 선악의 문제는 생명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암시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낙원에서 추방당했다. 이 때부터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다시 찾으려고 아담의 후예들은 서로 싸우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간의 학술논쟁이 그러한 싸움이다. 두 이론 사이에 질 수 없는 학술논쟁이 수 천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서의 제목을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라고 붙이게 되었다.
원래는 대학 교재용으로 집필하려 했으나, 자료들을 모으면서 일반인들에게도 꼭 알려야 할 내용이라 생각되어 가능한 한 쉽게 쓰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내 자신이 아는 것이 적은 데다 집필을 서두른 탓에 미흡한 부분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은 다음 기회에 보완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허심탄회한 지적과 질책을 기대한다.
끝으로, 수익성이 없는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 온갖 정성을 기울이신 창조과학회의 송만석 회장님과 고려문화사의 권영석 사장님, 총판을 맡으신 도서출판 두란노의 관계자,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신 임철수 형님과 저의 가족들에게도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02년 1월, 송파구 문정동 자택에서. 저자 씀.
리키와 요한슨
이재만
현재 대표적인 진화론 인류학자를 꼽으라면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 1944- )와 도날드 요한슨(Donald Johanson, 1943- )을 든다. 리처드 리키는 유인원 Homo habilis를 발표해서 유명한 루이스 리키 (Louis Leakey, 1903-72)의 셋째 아들로서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인류의 진화를 지지할 빠진 고리를 찾기에 열심인 사람이다. 도날드 요한슨은 에디오피아에서 유인원 루시(Lucy)를 발표해서 유명해졌다. 모두가 진화론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일 뿐 아니라, 학계나 일반인들에게 마치 유인원이 살아있었던 것으로 알게 한 장본인들이다. 물론 이들이 발표한 유인원들은 나중에는 원숭이나 인간으로 결론이 났다. 이들 진화론 리더들의 사고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진화론자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나누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리처드 리키는 자신의 저서 “오리진(Origin, 1977)”의 도입부에서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는 우리를 끊임없이 흥분 시키는 요소가 있다. 그 이유는 우리들에게 자신들의 과거에 관하여, 즉 사고와 감정을 지닌 문화적 동물이 어떻게 해서 유인원 같은 조상으로부터 등장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동물인가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푸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시작했다.
유인원(ape-man)이라는 것은 진화론이 대두되면서 언급된 상상의 산물인데, 이들의 존재가 틀림없다는 전제로 시작할 뿐 아니라, 우리가 “과거”의 “문화적 동물”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므로 우리의 “미래”를 풀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진화론은 진화 그 자체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스스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즉 진화론은 인간을 해석하는 기준을 설정하게 되는 것이며, 과거에 우리가 동물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인간자체로 창조된 존재 인지하는 것이 내일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들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인간은 동물 중에 하나라는 것을 버릴 생각이 없이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저서인 “제 6의 멸종(The Sixth Extinction, 1995)”에서는 그는 “우리는 변화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은 연속적인 생물 흐름에서 한 순간에 불과할 뿐, 결코 종착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의 창조 과정과 이따금씩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멸종 사이의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상호작용에 의한 산물, 즉 지극히 많은 종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다.” 리키의 이 언급은 정말로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다. 놀랍게도 멸종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멸종이라는 것은 하나의 종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멸종과 창조과정을 연결할 수 있을까? 이것은 엄청남 믿음임에 틀림없을 뿐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는 태도이다. 이어서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상호작용”이라고 얼버무리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삶은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의 “한 순간”이며, 인간 자체도 진화 산물 중에 “한 종”으로 처리해 버린다.
요한슨도 “인류시대에서(In the Age of Mankind, 1988)”의 머리말에서 “우리는 우리를 만든 자연세계와 유전적으로 아주 밀접하고 의존적 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하였다. 자연이 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다아윈이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쓴 배경에는 벌써 자연이 무엇이 살 것인가 살지 못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전제가 깔린 내용이다. 요한슨도 여느 진화론자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자연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인간은 자연세계와 유전적으로 밀접한가? 어떤 과학적 근거에도 그러한 결과를 이끈 내용이 없다. 이것은 자신의 “느낌”이며,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희망”일 뿐이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 그의 형상으로 태어난 귀중한 존재라고 말한다. 자연이 탄생시킨 것도 아니고 자연의 한 부분도 동물 중에 한 종도 아니며 다른 동물들을 다스려야 할 귀한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연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잠깐 살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며, 물론 이 순간이 진화의 과정의 일부도 아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으며,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살 존재로 지음 받았다. 문제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냐 아니면 영원히 하나님 없이 저주아래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진화론은 사실이 아닌 것에서 시작하였기에 사실인 성경역사와 대치될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복음조차도 거부케 한다. 진화론 인류학자인 리키와 요한슨의 생각을 보면서도 잘 알 수 있다.
히틀러의 진화론 대 기독교도의 저항
(Hitler's Evolution Versus Christian Resistance)
Paul G. Humber
히틀러가 진화론자임을 가리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한 한 권의 저서가 출판된 지(1) 9개월 후에, 하버드 대학의 Stephen Jay Gould는 이 저서의 이론을 더욱 확고히 지지하는 논문을(2) 발표하였다. 그 논문에서 그는 Benjamin Kidd를 ”학계와 비전문가들 사이에서 크게 존경받고 있는 영국의 해설가”로 소개하면서, 키드의 말을 인용하였다. 키드는 독일이 ”다윈의 이론을 이용하여 전쟁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키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굴드에 의해서 인용되었다.
”다윈의 학설이 독일에서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인 목적으로 쓰이는 교본 속에 공공연히 등장하여, 독전(督戰) 계획은 물론, 힘이 곧 권리라는 이론을 국가정책에 반영하려는 고도의 조직적인 계획을 대대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2)
이와 같은 진화론과 나치즘의 연계를 살펴보고, 우리는 히틀러의 정책들이 기독교와 상충하는가를 알아보려 한다. 그동안에 드러난 증거들만으로도 나치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저항이 실제로 엄청났었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회고 (Einstein's Commentary)
<히틀러 치하의 교회의 고백 (The Church's Confession under Hitler)>에서 저자 Arthur Cochrane은 망명 중에 있던 위대한 물리학자 Albert Einstein의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성명서 내용을 자기의 저서 526쪽에 Wilhelm Niemoller의 'Struggle and Testimony of the Confessing Church' 란 제목으로 된 증언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주고 있다.
”나치 혁명이 일어났을 때, 자유에의 헌신을 항시 자랑하던 대학들과 가까웠던 나로서는 자유를 사랑하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대학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 기대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대학들은 혁명이 나자마자 굴복하고 입을 봉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날 열정적으로 자유를 사랑한다는 논설을 써왔던 위대한 신문들의 논설에 기대를 걸어봤다. 그러나 그들도 나치 혁명후 단 몇 주만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
이런 와중에서도 오직 교회만이 진리를 억압하려는 히틀러의 계획을 당당히 가로막고 나섰다. 그 이전엔 나는 교회에 대해 어떤 형태로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직 교회만이 외롭게 지성과 도덕의 자유를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나치와 맞서 끈기있는 용기를 보여주었던 것을 알고 있기에, 지금 나는 교회에 대해 엄청난 애정과 감탄을 느끼고 있다. 한 때 내가 무시하였던 교회에 대해 지금 나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간증한다.' (3)
Roland H. Bainton은 이 부분에 대해 회고하면서 아인슈타인의 말의 진실성을 이렇게 간증했다:
”Karl Barth와 Hans Asmussen의 주도하에 약 4,000 명에 달하는 신교 목회자들은 참회하는 교회(Confessing Church)를 조직하였다. 이 모임은 1934년 바멘(Barmen)에서 '그 어떤 총통도 인간인 이상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설 수 없다' 고 선언하였다. 이로 인해서 이 참회하는 교회 모임은 자산을 몰수당하고, 신학교는 핍박을 받았으며 출판물은 금지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자, 대부분의 목사들은 형무소로 끌려가고, 병역 연령에 해당하던 목사들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전선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연로한 목사들은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기도 했다. 그들 가운데 Martin Niemoller가 끼어있었는데, 이 사람은 루터교파의 목사로서 근 반 년 넘게 수감 생활을 끝내고 히틀러의 법에 의해 '국가와 나치당에 반역적인 공격' 이라는 죄명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나치주의 정책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며 끈질기게 저항하였던 그는 마침내 나치가 몰락할 때까지 나치에 저항하는 신교의 상징적인 인물로 남아 있게 되었다.” (4)
코크레인(Cochrane)은 이런 사실들을 다음과 같이 확인하면서 그 의의를 크게 부각시켰다.
”용감한 베를린 교구의 마르틴 니몰러 목사가 조직한 '위기에 처한 목사들의 연맹' (Pfarrenernotbund ; Pastors' Emergency league)의 회원의 수가 1934년 1월 15일에 확인된 바로는 7,036 명에 이르고 있었다.”
코크레인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수많은 회원목사들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1937년 7월 1일에 연맹의 창시자가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맹은 결코 해체도 폐쇄도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1944년 크리스마스 예배를 볼 때까지 존속했었다.” (3)
히틀러에게 전달된 한 통의 공식 메시지
1936년 6월 4일, 독일 복음교회는 한 통의 메시지를 히틀러 앞으로 보내어, 총통이 '독일 국민을 비기독교도로 전향시키려 하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던 적이 있었다.(3) (히틀러는 한 사람의 유태인을 숭배하는 종교를 믿을 마음이 조금도 없다고 했다.) 그 메시지에서 보다 더 뜻있는 대목은 이러했다 :
”국가 사회주의 인생관의 한계 안에 살고 있지만, 기독교도는 유태인에 대한 증오를 강요받았을 때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 교리가 엄연히 살아있는 한, 그런 강요를 거부한다.” (3)
나치 점령 하에서의 유럽 기독교도의 저항
그들의 저항은 확고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실천행위였다는 전제를 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들의 저항을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핍박의 강도는 매우 심했다. 작업장에서 지나치는 말로 히틀러를 '불한당'이라 내뱉기만 하여도 그 결과는, 예를 들어, 거세라는 형별이 내려질 것이었다.(5) 그러나 기독교도는 기독교도로서의 태도를 명시적으로 간증하고 행동하여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웃을 걱정하고 돌보던 기독교도 집단에 대한 새로운 증거들이 주기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뉴욕 타임스지는 1981년에 Victor Kugler의 사망을 보도하면서 그를 화란에서 '안네 프랑크(Anne Frank)를 숨겨주었던' 사람이라고 확인하였다.(6) 그 보도 기사는 그를 '기독교도'라고 기술하고, Charles Wittenberg의 말을 인용하여, Kugler가 "전 세계 사람들이 문을 꼭꼭 잠그던 시기에 나치 지옥을 도망쳐 나오던 희생자들을 숨겨주기 위해 문을 열어주었던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그런 크리스천이 Victor Kugler 혼자만이 아니었다. 유태인 대학살(Holocaust)이 자행되고 있던 시기에, '전 세계' 가 유태인들한테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코리에 텐 부움(Corrie ten Boom), 그녀의 누이동생, 남동생 그리고 아버지 이 모두가 화란 인들이었는데, 이들은 나치의 핍박으로부터 유태인들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라벤스부루크(Ravensbruck)에 수감되었다. (그들 중 몇 사람은 감옥에서 죽기도 했다).(7)
폴란드에서도 유태인들한테 동정을 보냈던 기독교도들이 있었다. 폴란드에서 기독교도들의 도움을 3년 동안 받았던 Nechama Tec는 지금은 코네티컷 대학의 사회과학 교수로 있으면서 <빛이 어둠을 뚫고 들어올 때(When Light Pierced the Darkness)>8 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고, 그 책의 주제로 기독교도들의 종교적 신앙심을 다루고 있다. 그녀는 기독교도들의 신앙심이 유태인들을 동정하게 한 주요 동기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Jacques Ellul은 한 사람의 기독교도로서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세차게 밀어주었다. "유태인 지역사회에 도움을 준 적이 있었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대답하기를:
”그게 어떻게 시작됐었나 하면, 나는 사람들을, 특히 독일 사람들의 추적을 받고 있는 유태인들을 도와주려고 하였던 게 발단이 되었습니다. 나는 유태인들을 위해서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고, 우리 고장의 외곽지역에 있던 마끼 (maquis: 2차 세계대전중 항독 프랑스 애국군) 병사들과 연락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지방 레지스탕스를 조직하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9)
"바다에는 잡히지 않은 물고기가 수없이 많죠. 유태인들을 도와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쳐버리기 쉬운 일입니다." 유태인들은 하롤드 슐바이스(Harold Schulweis) 랍비의 주도로 '의로운 기독교도들(Righteous Christians)' 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였다. 이스라엘은 31명의 대상자를 선발하여 국립보험재단(National Insurance Foundation)으로부터 연금을 받게 하였다. 이스라엘은 또한 로즈 바르마(Rose Warmer)로 하여금 전국 규모로 학교에 신약성경을 배포토록 허락하였다. 그것은 그녀가 '2차 대전 와중에 지긋지긋한 아우슈비츠(Auschwitz)의 죽음의 수용소를 자진하여 찾아갔었기' 때문이었다.(10)
Joseph Bayly에 의하면, 플리머스 형제회(Plymouth Brethren)의 회원으로서 창조과학자이며 부다페스트 의과 대학의 교수로 있던 Ference Kiss 박사는 자기 목숨을 걸고 나치들로부터 유태인들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였다.(11)
미국에서는 어떠했을까?
수많은 기독교도를 포함하여, 모든 미국 사람들이 유태인 수난에 대해 그토록 무신경하고 복지부동하였다는 건 정말 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지금 낙태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에 버금간다고나 할까). 미국 사람들은 위대한 미국의 정치가이며 기독교도의 대변인이었던 William Jennings Bryan이 '전 독일을 굴복시킨 나치 이론의 바탕에 다윈 이론이 깔려있다는 사실' (2) 을 미국 국민한테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계간지 <헤브루 크리스천 협력(Hebrew Christian Alliance)>의 편집인만은 최소한 한 번은 목소리를 높였던 같다. 1943년, 그는 이 계간지의 사설에서:
”폭로된 독일 사람들이 저지른 잔학행위 내용을 보고, 또 듣고 당신들은 무엇을 느낍니까? 마음이 아픈가요? 당연히 그래야 하겠죠. 크리스천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침묵했어요. 이런 잔학행위가 벌어지기 훨씬 오래 전에 벌써 저들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들렸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야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들의 안위를 위해 기도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들을 먹여주고 옷을 입혀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엔 그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지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복수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히틀러와 그의 철학의 패배를 주창합니다.”(12)
결론
오늘날 세계인의 대부분은 히틀러를, 그리고 스탈린까지도 경멸합니다. 그들 두 사람은 한결같이 성경에서 일러주고 있는 이웃 사랑의 윤리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수백만의 인명을 살해하였습니다. 스탈린은 의식 속에서 다윈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13) 히틀러는 세계인의 목구멍 속으로 적자생존의 이론을 억지로 주입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1) Gould에 의하면, 곤충학자 Vernon L. Kellogg는 선점한 권리를 요약하여, ”가장 선진된 진화의 단계를 선점한 인간 집단은 … 생존경쟁에서 승리하여야 한다. …”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입니다.(2)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 사람의 유태인이었던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위하여 마음이 상하고 살이 찢겨 나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숭배하는 기독교도들이 그를 창조주로 믿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사람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것이, 그러면서 히틀러의 철학이 전적으로 모순투성이라고 보는 것이 무슨 놀라운 일이 됩니까? 또한 예수님을 따르며, 고통 받는 유태인을 구제하기 위해 동정하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것이 그 무슨 놀라운 일인가요?
*참조 : Darwin and Hitler: A Trumped-Up Connection? (CEH, 2008. 4. 16)
https://crev.info/2008/04/darwin_and_hitler_a_trumpedup_connection/
Nazi-Era Scientists Were Willing Colluders (CEH, 2008. 2. 17)
https://crev.info/2008/02/naziera_scientists_were_willing_colluders/
Hitler’s ‘master race’ children haunted by their past
http://creation.com/hitlers-master-race-children-haunted-by-their-past
The trial and death of Adolf Eichmann
http://creation.com/the-trial-and-death-of-adolf-eichmann
REFERENCE
1. Paul G. Humber, 'The Ascent of Racism,' Impact (Institute fro Creation Research, February 1987).
2. Stephen Jay Gould, 'William Jennings Bryan's last Campaign,' Natural History, November 1987, pp. 22-24
3. Arthur C. Cochrane, The Church's Confession under Hitler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2), pp.40, 108, 268-279, 278 respectively.
4. Roland H. Bainton (Marshall B. Davidson, Editor) The Horizon History of Christianity (New York: American Heritage Publishing Co., Inc., 1964), p.390
5. Helmut Ziefle, 'A Christian Family Resists Hitler,' Christianity Today, December 15, 1978, pp. 23-24
6. The New York Times, December 17, 1981, p. D23
7. Corrie ten Boom, The Hiding Place (Old Tappan, NJ: Fleming H. Revell, 1971).
8. Nechama Tec, When Light Pierced into Darkness: Christian Rescue of the Jews in Occupied Poland Oxford University Press, 1986)
9. David W. Gill, 'Ain Interview with Jacques Ellul,' Christianity Today, April 20, 1984. p.18.
10. The Church around the World, a news-sheet published by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Wheaton, 12/86 and 10/84 respectively.
11. Joseph Bayly, 'Salt, and Old Wounds,' Eternity, May 1986, p.64
12. Robert W. Ross, So It Was True: The American Protestant Press and the Nazi Persecution (University of Minn. Press, 1980)-discussed by Vernon C. Grounds in 'Have We Learned Our Lesson?,' Christianity Today, Sept. 6, 1985. p.42
13. Paul G. Humber, 'Stalin's Brutal Faith, ' Impact No. 172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October 198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181.htm
출처 - ICR, Impact No. 181, 1988.
진화론의 결점들을 발견하는 것이 위법인가?
(Is It Against the Law to Find Flaws in Evolution?)
Minneapolis Star Tribune 지는 미국 대법원(Supreme Court)이 생물학을 가르칠 때 진화론이 사실로서 가르쳐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 고등학교 생물 교사이며 코치인 로드 레베크(Rod LeVake)의 재배정 사건을 기각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수업시간에 창조론이나 종교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진화론의 결점들을 언급하기를 원했었다. ACLJ (The American Center for Law and Justice)의 검사(ACLJ attorney)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망스럽다....나는 대법원이나 지방법원이 이 사건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교육구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로 돌아갔다. 레베크는 과학 분야에서 진화론을 비판하는 사람들 외의 과학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교육구는 그가 한 명의 숨어있는 창조론자가 되도록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Update 01/15/2001 : Answers in Genesis 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공공학교의 학생들은 여전히 창조론을 배우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베크 사건에 반응하여, 1 채널(Channel One)은 학생들이 과학 시간에 어떤 견해를 배우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단지 17%의 학생만이 진화론을 배우기를 원했고, 31%가 창조론을, 52%가 두 입장을 다 배우기를 원했다. 즉, 공공학교 학생들의 83%가 과학수업 시간에 창조론이 포함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숨어있는 창조론자 (stealth creationist) : 격한 감정의 표현인가, 두려움의 표현인가? 당신은 이 말에 충격을 느끼지 않는가? 지금은 러시아의 교사들이 다윈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미국의 교사들보다 더 자유롭다. 레베크는 과학수업 시간에 종교를 가르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다윈주의를 지지하지 않는 과학적 사실들을 제시하기를 원했을 뿐이다.(just wanted to present scientific facts that don’t support Darwinism). 그러한 증거들은 항상 과학 저널에 발표되고 있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여기서도 읽을 수 있다.
또한 의회에서도 학교에서 진화론과 같은 논쟁 중인 주제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법안을 얼마 전에 통과시켰다. 그리고 레베크는 그 결의안을 지킬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윈주의자들은 심한 피해망상증에 빠져있다. 그들은 증거들에 대한 차분한 토론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무수한 증거들이 진화론을 거부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협박 전술을 사용하고, 기원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힘으로 세뇌시키기 위해 강요하고 있다. '숨어있는 창조론자” 라는 표현은 마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빗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조바심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조만간 사람들은 진화론이 마치 마약처럼 학생들에게 강제로 주사되어졌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필립 존슨(Phillip Johnson)가 옳았음을 희망할 수 있다.
"만약 내가 기술한 것처럼 상황이 된다면, 다윈주의의 지적 파산(intellectual bankruptcy)은 그리 오랜 기간 숨겨질 수 없을 것이다. 다윈주의자들은 강력한 힘을 휘두르면서 잠시 동안 최후의 심판일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질문들로 압박하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속이는 것을 거부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The Wedge of Truth, Inter-Varsity Press 2000, p. 15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0102.htm#school26
출처 - CEH, 2002. 1. 9
진화론, 창조론, 유신진화론 2
<진화론의 역사>
진화론의 역사는 그리스의 물질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밀레투스의 삼인과 아낙시만드로스(BC 611-546 고대 그리스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 및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생명이 무기물로부터 발생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중세기에 헬몬트(Jan Baptista van Helmont 벨기에의 의학자, 화학자 1579- 1644), 뷔퐁(Georges Louis Leclerc de Buffon 프랑스의 철학자, 박물학자 1707-1788), 니이덤, 풋세 등에 의해 꽃을 피웠다. 그들은 여러 그림과 책자를 만들어 시궁창에서 쥐가, 풀잎 이슬에서 반딧불이(우리가 흔히 반딧불로 알고 있는 곤충의 정식 이름)가, 갯벌에서 문어와 뱀장어가 저절로 생긴다고 하였다. 이러한 학술적 환경 속에서 라마르크(Lamarck 1744-1829 프랑스의 박물학자, 진화론자)의 용불용설과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이 탄생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다윈(Charles Darwin)은 여기에 라이엘(1797-1875 영국의 지질학자)의 동일과정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 영국 고전학파 경제학자)의 <인구론>, 페일리의 자연신학, 비들(George Wells Beadle 미국의 유전학자)의 유니테리언(1773), 및 계몽사상가인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 프랑스의 사상가)의 인본주의 사상을 혼합하여 생물의 진화이론을 체계화한 <종의 기원>(1859)을 발표하였다.

그가 내세운 진화론의 요지는 이러하다. 생물은 필요 이상의 자손을 낳으며 (overproduction), 그들간에 자연환경에 적응하려고 개체변이(individual variation)가 생기고, 그 개체들간에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 일어나며(competition), 그 결과 환경에 가장 적응한 개체만이 생존하게 된다는 것이다(The survival of the fittest). 이러한 방식으로 자연은 우량형질을 선택한다고 주장한다(natural selection).
이러한 주장은 후일 약육강식에 의한 힘의 논리를 독재권력에게 정당화시켜 주는 근거로 악용되었다. 다윈의 학설은 초창기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혔으나, 영국에서는 ‘다윈의 불독’이라는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영국의 동물학자 1825-1895)와 독일에서는 ‘진화론의 예언자’라는 헤켈(Ernst Haeckel 독일의 생물학자, 철학자 1834-1919)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윈주의의 모순이 속속 밝혀지면서 이를 수정하려는 많은 이론들이 등장하였다. 드브리스(Hugo de Vries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유전학자 1848-1935)와 바이스만(August Weismann 독일의 발생학자, 유전학자 1834-1914)은 획득형질의 유전설을 부인하고 돌연변이가 진화의 요인이라는 신다윈주의(Neo-Darwinism)를 표방하였다(1902). 그러나 스펜서(Herbert Spencer 영국의 철학자. 1820-1903)와 헤켈 등은 자연도태설을 반박하고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하는 신라마르크주의(Neo-Lamarkism)를 내세워 이들과 격돌하였다. 한편 네겔리(Karl Wilhelm von Negeli 스위스의 식물학자. 1817-1891)와 에이머(Teodor Eimer) 등은 말발굽의 진화과정을 예시하며 자연계의 ‘고차원의 섭리’에 의해 정해진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정향진화설(Orthogenesis)을 주장하였으나, 다른 진화론자인 심프슨(George Gaylord Simpson 미국의 고생물학자 1902-1984)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한편 소련에서는 오파린(Aleksandr Ivanovich Oparin 러시아의 생화학자. 1894-1980)이 생명이 저절로 발생했다는 화학진화설(chemical evolutionism 1936)을 다시 주장하였다. 아울러 루이셍코가 부활시킨 라마르크주의가 스탈린의 비호 하에 스탈린이 죽을 때까지(1953)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공산주의의 뿌리인 무신적 유물론을 수호하기 위해 학문이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한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진화 이론들이 1950년을 전후하여 바그너(Moritz Friedrich Wagner 독일의 생물학자. 1813-1887)와 로마네스(1848-94) 등에 의해 집단유전학으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1960년대에 심프손, 피셔, 홀데인(John Burdon Sanderson Haldane 영국의 생리학자, 유전학자 1892-1964) 및 키무라 등에 의한 분자진화설과 1970년대의 굴드(Stephen Jay Gould) 와 엘드리지(Niles Eldredge) 등에 의한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a theory 1973) 및 이영록 등에 의한 형질발현단계설(stepwise control theory 1989)로 이어졌다.
<진화론이 끼친 해악>
이러한 진화론은 역사적으로 엄청난 재앙을 우리에게 끼쳤지만 아무도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골치가 아프기 때문에 피하려 하는 듯하다. 다윈의 사촌인 갤튼(1822-1911)은 우생학을 만들어 백인 위주의 인종차별을 주도하였다.
일부 구미의 백인국가에서는 백인종과 유색인종간의 혼혈을 막으려고 유색인종에 대한 이민제한법을 제정하거나 인종개량을 목적으로 단종법을 만들었다. 신체부자유자들과 유전질환자들을 제거할 목적으로 금혼 조치를 취하기도 했으며, 이 법에 준거하여 나치정권에서는 200만 명 이상을 처형하기도 하였다.
최근(1999-2001)에는 인간게놈(human genome)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우량인간을 복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이는 새로운 우생학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간 배아의 복제 역시 21세기의 바벨탑을 쌓으려는 위험한 시도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바이오해저드(biohazard 생물학적 위험. 사람과 그 환경에 대하여 위험시되는 생물학적 물질, 상황)를 사전에 막기 위한 생명윤리법(bioethic law)의 제정에 창조과학회를 비롯한 기독교계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약육강식에 의한 자연선택의 원리를 내세운 진화론은 당연히 군국주의자들에게는 약소국가를 침공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일본, 이태리에서 태동한 군국주의였다. 독일의 진화론자인 헤켈은 나치당의 전신인 툴레당(Thule Geselschaft)의 비밀요원이 되었으며(1918), 이 선서식에 참석했던 히틀러는 1933년에 정권을 잡으면서 나치강령에 진화론을 삽입하였다.
그리고 헤켈이 <생명의 신비>(1904)에서 주장한 방식대로 데게쉬사(Degesch Chemie)가 개발한 독가스(Ziklon B)가 팔벤사(Farben Gmbh)의 레버쿠젠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2억 2천만 명을 살상할 수 있는 양이 만들어지고 32회나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중 최악의 사례가 유태인 600만 명을 죽인 아우슈비츠의 집단학살 사건이었다.
일본에서는 명치(明治) 후기에 미국의 요구로 기독교를 허용하면서(1837) 이에 대항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의 골수 진화론자인 모스(Edward Morse) 교수를 동경대학에 초빙하여(1877) 대학생들을 진화교육으로 세뇌시켰다. 그리고 창조론을 진화론과 병행하여 교육시키려고 하였던 모리(森) 문부상이 암살을 당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다.
그 후 일본은 진화론적 약육강식의 논리에 입각하여 국력이 약했던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청나라와 러시아를 차례로 침략하는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들의 침략은 곧 피침략국가의 고통으로 직결된 것이었다. 이처럼 진화론은 사랑과 공생의 원리가 아닌 힘의 논리에 의한 강자의 지배원리를 확산시켰던 것이다.
청교도 국가였던 미국에서는 진화론자들이 교육기관에서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창조론 교육을 축출하고 진화론 교육으로 대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운동에 앞장 선 진화론 교육자인 존 듀이(John Dewey 미국의 철학자, 교육학자. 1859-1952)는 인본주의 선언(Humanist Manifesto 1933)을 초안하여 ”인간을 신으로부터 해방시키자”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종교 대신 진화론적 과학주의를 제창하였다. 바야흐로 과학주의(scientism)가 21세기의 새로운 종교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듀이는 후일 모스크바재판(1936-1937)에서 트로츠키를 도와 준 공로로 소련정부로부터 사회주의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1963년에는 케네디 대통령이 ‘종교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여 미국의 모든 국공립기관에서 기도와 성경을 축출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청교도적 창조신앙을 미국의 모든 공공기관으로부터 추방하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이에 따라 모든 공교육기관에서는 창조론적 기독교교육이 사라지고 진화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 후 케네디 가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비운의 풍랑 속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처럼 세속인본주의(secular humanism 1979)는 진화론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의 인본주의협회는 말하기를 ”인본주의란 인간이 자기 운명을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신념이다. 그것은 유신론적 종교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인 건설적인 철학이다”고 하였다. 이 협회의 창시자 중 하나이며 진화론자인 헉슬리(Julian Sorell Huxley 영국의 생물학자. 1887-1975)는 같은 책자에서 ”인본주의라는 단어는 인간이 다른 동물처럼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영국인본주의협회는 인본주의의 신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신에 대해 어린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종교교육은 없애야 한다...종교는 단지 역사적 관심거리로 교육되어야 한다...종교는 인본주의, 마르크스주의, 모택동사상, 공산주의를 포함한다...나는 비종교적인 도덕성을 신봉한다...나는 용서받아야 할 죄가 없으며, 무덤 너머로는 생명이 없고 영원한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토마스 헉슬리의 손자인 줄리안 헉슬리는 유네스코헌장(1949)을 진화론에 입각하여 작성하였다. 그는 인류가 당면한 문제(핵무기, 식량부족, 에너지고갈, 전쟁, 공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수 엘리트집단이 지배하는 세계정부의 구성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세계정부를 이끌 세계총통의 출현을 갈망하였다.
진화론은 이처럼 유엔을 통해 전세계의 교육계로 침투할 수 있는 교두보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제 인본주의자들에게 남아 있는 최종 목표는 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한 사회주의의 건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신적(反神的)인 세속인본주의는 동양의 신비주의(요가, 명상, 선)와 접목되면서 뉴에이지운동(New Age Movement)과 연계되어 오늘에 이른다.
무신론적 유물론인 진화론은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러시아의 민중봉기이론을 수립한 허잔(1812-70), 볼셰비키 혁명(1817)을 주도한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 피의 숙청을 단행한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1879-1953), 그리고 중국공산당을 창건한 모택동(毛澤東 1893-1976) 등은 진화론에 입각하여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닌과 스탈린은 다윈을 지식의 영웅으로 추앙하여 모스크바에 다윈박물관을 세웠으며 모택동은 다윈과 헤켈 및 히틀러에게 심취하여 공산당원들에게 약육강식 사상을 집중적으로 교육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도 일부 공산국가에서는 샤르뎅의 유신진화론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은 음미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진화론이 끼친 또 하나의 해악은 인간존엄성의 거부와 전통윤리관의 붕괴이다. 그들은 인간이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한 것이라 믿기 때문에 인간존엄에 근거한 기존의 윤리관은 당연히 바뀌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진리나 가치관을 모두 상대화시켰고, 상황윤리(situation ethics)와 다원주의(pluralism)를 확산시켰다.
다원주의는 일면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이러한 사상에서 만민구원설을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가 출현하여 전통복음에 심대한 위협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믿든 구원을 받게 되어 있다면 굳이 예수를 믿어야 할 당위성이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전통복음에 대한 이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밖에도 진화론은 학문을 반신적인 물질중심으로 재편케 하였다. 이러한 유물론적 풍조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독일의 철학자 1770-1831)의 진화론적인 변증사관과 결합되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헤겔의 제자인 포이에르바하(Ludwig Andreas Feuerbach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1804-1872)는 ”신이란 인간의 투영”이라 했으며, 영국의 인기작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신이란 인간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존재”라고 하였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독일의 시인, 철학자. 1844-1900)는 마침내 ”신은 죽었다”고 선언(1882)하였다. 이 해는 다윈이 서거한 날로 <종의 기원>을 발표한지 23년이 되는 해였다. 그 후, 니체는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신학계에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일부 랍비들이 편집한 것이라는 문서가설(Documentary Hypothesis)이 등장하여 헤겔주의와 진화론의 영향으로 더욱 확산되었다. 고등비평론(Higher Criticism)을 주장한 독일의 자유주의신학자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독일의 신학자, 역사학자, 셈어(語)학자. 1844-1918)은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고 공공연히 주장하였다. 브리태니커의 편집인으로 부임한 윌리엄 스미스는 재위 14년간 19판을 인쇄하면서 이러한 문서가설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유신진화론은 날개를 단 듯 세계 각지로 확산되어 나갔다.
<왜곡으로 점철된 진화론>
많은 진화이론은 조립, 조작, 사기극으로 점철된 것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인류의 조상이라는 호미노이드(라마피테쿠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등)의 유골들은 조립된 것이 많다.
라마피테쿠스는 오랑우탄의 뼈로 , 네브라스카인의 어금니는 맷돼지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호모 하빌리스는 원숭이의 유골이었다. 호모에렉투스에 속하는 자바인과 북경인의 경우도 유사하였다. 자바인은 발견자인 듀보아(E. Dubois)가 고백했듯이(1937) 긴팔원숭이였다. 북경인도 원숭이의 뼈들을 조립한 것이었으며 대개의 유골들은 여러 번에 걸쳐 진화론자들에 의해 어디론가 증발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어금니 두 개 뿐이다.
더 나아가 필트다운인의 것은 오랑우탄과 사람의 유골을 조립한 후 오래 된 것처럼 보이려고 치아를 줄톱으로 갈고 뼈들은 중크롬산카리액으로 염색한 사실도 드러났다(1953). 이러한 사기극을 주도한 사람의 명단에는 발견자인 우드워드(A. S Woodward)와 도오손(C. Dawson) 외에도 '1차 진상조사위원”이었던 아서 케이스(1866-1955)를 비롯하여 예수회 신부인 샤르뎅(당시 30세), 그리고 진화론에 심취하여 소위 ‘잃어버린 세계’(유인원의 세계)를 찾아 나섰던 인기 작가 코난 도일도 들어 있다.
샤르뎅은 이 밖에도 북경인의 유골조작과 로데지아인의 두개골에 있는 총탄구멍(?)을 메운 그림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그는 바이덴라이히와 더불어 석회채굴업자들이 남긴 잿더미(7m)를 흡사 북경원인이 처음으로 불을 사용한 흔적인 것처럼 오도하는 일에도 앞장을 섰다. 그들의 주도로 한 진화론자 화가가 그린 불을 사용하는 북경인의 걸개그림이 대영박물관 입구에 내어 걸리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진화론자들이 제시한 유인원의 두개골 용적은 실측한 것이 아니라 진화이론에 부합하도록 임의로 책정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행위는 진화론자들의 과학을 빙자한 비과학적 행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다윈을 도와 진화론의 확산에 기여했던 헤켈(1834-1919)은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근거로 저 유명한 ‘배발생도’를 제시하여(1866) 지금도 세계의 많은 교과서들이 이를 싣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은 헤켈이 섬세하게 조작한 것임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그 자신이 신문기자들에게 ”6-7%를 조작했을 뿐”이라고 한 고백에서도 입증되었다. 계속된 연구결과들은 헤켈이 6-7%가 아니라 엄청나게 조작했음을 밝혀 내었다. 뿐만 아니라 이 그림은 최근(1970)에 다른 진화론자인 리키가 최신 화보집을 발간하면서 재조작하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처럼, 진리 아닌 것이 진리를 위장하고 정의 아닌 것이 정의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가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유신진화론의 역사>
유신진화론의 정의와 범위는 아직 애매한 점이 많다. 이 단어가 내포하듯이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이 자연법칙에 따라 진화론적으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창조주를 믿으면서 진화론도 수용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창세기와 진화론을 연계시키려는 목적에서 시도된 것이다. 유신진화론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콘셉은 진화론의 그것과 맥을 같이 한다. 예컨 데, 우주만물의 진화, 진화에 필요한 긴 지질연대, 각 지질연대에 부응하는 지층과 생물화석의 형성, 유인원으로부터의 인간진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유신진화론의 범주에 진화 자체를 주장하진 않았다 하더라도 긴 지질연대를 상정하는 간격설과 날-연대설은 물론, 생물의 진화를 주장하는 진행적 창조론, 및 창세기의 내용을 비유나 신화로 폄하하고 있는 비복음주의적인 골격가설을 포함시켜 기술하고자 한다. 이러한 견해는 미국 창조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의 설립자이면서 창조과학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헨리 모리스의 <과학적 창조론>에 근거한 것이다.(Scientific Creationism, 16th ed. pp 215-255, 1991)
유신진화론의 기점을 잡는 일 또한 애매한 점이 많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의 큰 사상적 뿌리는 어거스틴을 비롯한 일부 교부들의 6일에 대한 기간적 해석과 삼위일체설을 부인한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서 찾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에 영향을 받은 스콜라철학(Thomism), 근세의 자연주의(naturalism), 큐비에의 다중격변설(multiple catastrophism), 그리고 비들의 유니테리언(uniterianism), 벨그송의 생의 철학 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요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대의 일부 교부들이 유신진화론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6일에 대한 기간적 해석은 후일 동일과정설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루터는 일부 교부들의 그러한 해석태도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다.

한편,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삼위일체설을 부인하여 니케아종교회의(327)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게 되자 동유럽(폴란드, 헝가리)등지로 잠복하였다. 이들은 종교개혁시 루터교로 잠시 침투했으나 다시 영국과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그들의 영향을 받은 비들(1615-1662)은 영국에서 유니테리언 교회(Uniterian Church 17C)를 설립하였다.
이들은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자연현상이란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을 부인하였다. 또한 설립 초기에는 유니테리언의 기치 아래 개별행동주의를 표방하였다. 이들의 세력은 소수였으나 매우 영향력 있는 지도급 인사들이 많았다.
경험주의 철학자인 로크를 비롯하여 고전물리학을 완성한 뉴튼, 산소의 발견자 프리스틀리, 인기작가인 밀턴과 에머슨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런던에 첫 교회(Uniterian Universal Church, 1773)을 세웠다. 그 후 보스톤에 세워진 킹스채플(King's Chapel, 1793)은 미국 유니테리언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다윈은 어린 시절부터 프리스틀리가 다녔던 유니테리언교회의 교인이었고, 그의 외가 겸 처가인 웨지우드 가문(Wedgewood family)도 골수 유니테리언이었다. 다윈의 가문은 대를 이어 명문인 웨지우드 가문과 겹사돈 관계를 맺었다. 이는 우량 가문간의 결합으로 좋은 자손들을 얻으려는 진화론적 발상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찰스 다윈의 10명의 자녀들은 막내(Leonard Darwin)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불구자이거나 어려서 죽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진화론적 우생학의 허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다윈 자신도 진화론을 구상한 시기(1838년경)부터 정신적 질환에 시달렸으며, 말년에는 얼굴에 번진 습진때문에 그 유명한 수염을 기르게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유니테리언 사상은 문서가설과 진화론의 탄생에 크게 기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이후, 진화론과 문서가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빠른 속도로 구미제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사상들은 먼저 영국성공회 내로 침투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자이면서 진화론자인 스미스(W.R. Smith)는 브리태니카의 주필이 되어(1881) 14년간 19판을 발행하면서 문서가설을 적극적으로 홍보, 확산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 결과, 성공회를 비롯한 기독교계가 유신진화론으로 급속히 물들어 갔다. 1890년경에는 구미 신학교의 요직이 문서가설을 신봉하는 유신진화론자들에 의해 독점되었고, 복음주의자들이 한직으로 밀려 나면서 창조론적 복음주의는 급속히 약화되었다.
미국에서는 다윈의 친구이면서, 유니테리언 신자인 부인의 영향을 받은 아사 그레이(1810-88)가 창조론적 고생물학자인 아가씨즈(1807-75)와 논쟁하였다. 불행스럽게도, 아가씨즈가 먼저 서거하는 바람에 하버드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유신진화론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뒤이어, 그레이의 영향을 받은 스미스소니언의 초대관장을 지낸 제임스 다나(1813-95)가 퓨리탄 신앙의 본거지인 예일대학을 유신진화론으로 물들게 하였다. 그는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하였다고 선언하였다. 이어서, 프린스톤대학이 구이욧(1807-84) 등에 의해, 맥길대학이 도손(1820-99) 등에 의해 날-연대설을 수용하면서 유신진화론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대부분의 신학교들도 유신진화사상으로 바뀌어 갔다. 미국의 교계 역시 인기있는 대중 설교가인헨리 비쳐와 포스딕(1878-1969) 등의 영향으로 진화사상으로 급속히 물들어 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신진화론의 성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챨머스(1780-1847)가 간격설(1814)을 제기하면서 부터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킨 펨버의 이론이 스코필드주석성경에 소개됨으로써(1917) 간격설은 마침내 일반 대중속으로 널리, 그리고 깊속히 침투하게 되었다.
유신진화론의 위험성은 이들이 교회와 신학교에 진화사상을 퍼뜨림으로써 범신론적 자연주의와 물질주의를 확산시킨다는 데 있을 것이다. 유신진화론은 간격설로부터 날-연대설, 골격가설, 진행적 창조설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되어 오늘에 이른다.
*참조 : Creation Compromises : Framework Hypothesis, Gap Theory, Progressive Creation, Theistic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055
<신간> 예수와 다윈의 동행 - 신재식(호남신학대 신학과 교수) (2013. 7. 31.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3/07/31/0903000000AKR20130731125700005.HTML
진화론을 믿는 크리스천 과학자가 있다고? (2009. 6. 19. 오마이뉴스)
[서평] 우종학 박사의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9342
'창조의 방법으로 진화를 사용하셨다” (2015. 2. 10. 기독신문)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0276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3/e31/2002_130_3.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79
참고 : 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077|3426|3812|3244|3241|3041|3039|3037|3024|2864|2579|2359|2307|2114|2039|2016|1174|6107|6110
인본주의자 선언 2000 에서 언급된 현대 무신론
Bob, Gretchen Passantino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보자 (Imagine there's no heaven)'
제 1부
(이 논설은 최초로 Christian Research Journal 의 Vol. 22/No.3 Issue에 발표되었다. )
존 레논 (John Lennon)이 지금은 유명해진 자기 노래의 가사를 처음 창작하고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부정하기보다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 평화와 번영, 그리고 나눔을 지향하는 지구의 황금시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었다. 상상해보자─만약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나누는 사랑이 그토록 충족되어 남의 사랑을 탐낼 필요가 없는 사랑. 상상해보자─다양한 문화의 혼재를 인정함으로써 전쟁이 근절된 세계를. 상상해보자─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이들이 생물학적 사회학적 진화를 거쳐 생육된 동일한 보편적 인간의 권리에 기쁘게 헌신하는 세계를. 우리가 이곳에 이상향(Utopia)을 보장받고 있으며,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세계가 하나인데', 별도로 하나님, 또는 천국을 필요하다고 할 사람이 누구겠는가?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그리고 사후의 삶이 진실이 아니고, 또 부적절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세계의 정확한 모습들이다. 비종교적인 세계관이 보다 더 광범하게 받아들여지고, 더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지금, 크리스천들은 저 사색적인 비종교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려 하는지를 재평가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1 흔히 '인본주의(humanism)' 라고 불려지는 그들의 운동은 무신론자(atheists), 불가지론자(agnostics), 회의론자(skeptics), 그리고 의심하는 자(doubters) 들로 구성되어있다. 인본주의 운동은 그 자체의 철학적 논거와 정치적 행동주의, 그리고 크리스천들과의 실제적인 대결에 있어 점점 더 복잡하게 세련되고 있다.
인본주의자들에게 보다 명료하게 복음을 이해시키고 복음과 교통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변증론(apologetics)이 하여야할 중요한 의무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세상에 나가 모든 족속들을 '제자로 삼으라고'2 명령하셨을 때, 그는 믿는 자들보다 지적으로 우수하다고 자처하는 자들을 배제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기에 회의론자와 철학적 사상가를 위하여 죽으셨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용어의 정의
하나님에 관한 회의론자들은 '무신론자(atheist)' 즉,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수용하기를 점점 꺼리는 경향이 있다. 회의론자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는 정의를 수용하게 되면, 무신론자(atheist)가 되어 공격에 취약해진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신론자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의하는 대신에 믿음의 결여로 정의한다.3 이 조직은 저변을 확대하여 어떤 신이나 초자연적인 현실에 관련된 것을 배제하는 다른 용어들을 포함한다.
”세속적 인본주의자는 전형적으로 스스로를 무신론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든지, 신의 존재 가능성에 관해서 확신이 없는)로 묘사한다. … 세속적 인본주의자는 문제해결과 행동의 선도(先導)를 위하여 신의 힘이나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들은 윤리적/도덕적 기초의 형성과 삶의 의미를 창출하기 위하여, 이성과 역사의 교훈,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의 적용에 의지한다.” 4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사람으로서 '무신론자' 라는 꼬리표를 지키려는 노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무신론자 (Atheist)
첫 번째로, 무신론자는 '보편적 부정(universal negative)'을 증명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보편적 부정은 실제로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다.5 (하지만 언제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세상 어디에도 흰색 까마귀는 없다는 사실을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곳을 철저하게 동시적으로 (조사를 위해 접근할 때 날아가 버릴 수도 있겠기에) 조사하여야할 것이다. 유추컨대,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면, 물질 세계와 비물질 세계에 관한 무한한 지식과 존재의 두 상태를 '초월한' 것으로 가정되는 그 어떤 것에 대한 무한한 지식을 실질적으로 모두 알고 있어야할 것이다.
두 번째로, 무신론자는 지성적인 설계자가 있음을 가리키는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풍부한 증거를 세우기 위하여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한다. 이 실체 (지성적인 설계자)는 생산된 우주보다 반드시 더 커야만 할 것이다.
세 번째로,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물질주의자들로서, 오직 물리적 우주만이 현실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수(數), 도덕적 가치, 이념, 그리고 양심과 같은 비 물질적 실체들의 존재에 대해 적절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다른 이유 때문도 있지만, 이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불신자들은 '무신론자' 라는 딱지를 회피한다.
불가지론자 (Agnostics)
위에서 언급된 하나님-의심자들은 '회의론자' 라는 용어를 비신론자 (nontheist)라는 뜻과 동일하다고 생각되는 '불가지론자'로 재정의한다. 어쩌면 그들은 어떤 신, 또는 신들의 존재를 믿는 길로 인도하게 할 '지식을 거의, 또는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는 뜻으로 스스로를 그냥 '불가지적'이라고 표현되기를 선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가지적'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고안한 헉슬리 (T. H. Huxley)는 사람은 ”이성이 미치는 한계까지” 이성을 따라야한다라고 하면서, 브리태니가 백과사전 이 지적한 바처럼, ”인간은 자신의 지식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식한다.” 6 라고 부언했다. 비록 우리는 이 글에서 불가지론 이론을 특별히 하나님의 존재에 관해서만 언급하려 하지만, 불가지론 이론은 다양한 세계관 분야에 제한적으로나마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불가지론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게 할만한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를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며, 따라서 장차 언젠가 그들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부류의 불가지론자들과의 대화는 쉬운 편이다. 그것은 그들이 새로운 이론이나 증거에 대한 평가에 열린 마음 자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의 불가지론자들은 복음에 마냥 거부적인 자세가 아닐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을 바꾸는 것을 꺼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부류의 불가지론자들은 현재로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장차 언젠가 (예컨대, 과학이 충분하게 발전하였을 때, 또는 인간이 지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충분히 진화하였을 때가 오면) 알 수도 있을 것이라고 공언한다.
또 어떤 불가지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 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하나님은 너무도 '다른 존재 (other)', 즉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지하기(to know)'에 전혀 불가능한 존재로 치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이런 비유로 논쟁을 펼칠는지도 모른다. 즉, 달팽이가 수학공식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남자가 여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를 안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한다든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또 다른 부류의 불가지론자들은 인간의 언어는 물질 세계에서 쌓은 인간의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물질 세계의 사물들을 기술하는데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도 당신의 존재를 우리 인간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 이들 뿐만 아니다. 여전히 또 다른 불가지론자들은 우리들은 실험할 수 있는 것만을, 그런 의미에서 오직 실험실에서 실험되는 것들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만약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는 실험적으로 식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존재를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마지막으로 예를 든 두 부류의 불가지론자들이야말로 대화하기에 가장 어려운 상대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우리는 기독교 교리의 주장을 숙고하여 보도록 도전장을 건네 볼 수 있다.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에 있건 모두가 양심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창조의 지혜와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로마서 1:20-32, 2:14-15를 참조하시오.)
회의론자 (Skeptics)
하나님-의심자들은 때때로 자신들을 '회의론자' 라고 말한다. 이들은 대상이나 이념, 또는 사건들을 만나는 족족, 아무런 편견이나 선입관 또는 세계관도 없이 제 나름으로는 중립적인 입장에 섰다면서, 신랄하게 분석하려 든다. 회의론자와 관련이 있는 용어로 '합리주의자 (rationalist)'가 있다. 이들은 그냥 직관, 경험, 또는 감정이나, 아니면 남의 지령에 따르는 대신, 이성에 의해서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심자들이 자신들을 '합리주의자' 라고 호칭할 때, 그들은 사람이란 합리적인 동시에 종교적일 수는 없다는 전제를 가정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 가정은 허구인 것이다.
크리스천은 성경의 말씀, 즉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데살로니가 전서 2:21-22) 라는 가르침에 따라 '회의적' 이고도, '합리적 유신론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相考)하여야” (사도행전 17:11) 한다7. 유태종족이나, 무슬림, 그리고 크리스천이 다 받아드리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은 증거채택의 기준, 다시 말해서 회의적 심문을 강구하고 있는데, 이 기준이야말로 오늘날의 대부분의 법률체계의 근거가 되어있는 것이다, (예컨대 신명기 17:6, 19:15). 예수님도 이와 같은 건전한 회의론의 원칙을 거듭거듭 가르쳤던 것이다. (마태복음 18:16, 요한복음 5:31-47, 8:14-18).
하지만 인본주의자가 자신을 회의론자라고 표현할 때엔, 그는 어떤 특정한 종류의 회의론자라는 뜻을 의미한다. 특히 이 문제의 토론에서, 그는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물질세계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당치도 않고, 어떤 경우에도 탐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세계에 간섭할 능력이 없다는 ”전제를 이미 견지하고 있는” 회의론자이다.
인본주의자 (Humanists)
이들과 비슷한 철학을 가지는 부류들을 묶을 수 있는 어떤 하나의 포괄적인 그룹이 없는 가운데, 대부분의 하나님-의심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용어는 '인본주의(Humanism)' 이다. 비종교적인 인본주의자들을 대변하는 '신 인본주의자 선언 2000 (The New Humanists Manifesto 2000)' 에서 '그들 자체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신 프런티어로 진출하기 위하여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념을 새롭게 한다.' 라고 선언하였다.8 때때로 인본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세속적' 인본주의자로 정의를 내린다. 즉, 그들은 어떤 종교적 신앙도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종교 행위도 종교 연구도 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들의 정의는 더 나아가 '인본주의자는 초자연적, 권위주의적, 반민주적 신앙이나 이념을 거절한다.'9 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 선언에 담긴 세속적 인본주의의 인본 사상은 넘치도록 명백하다:
”초자연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에서 세속적 인본주의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인식하고 모든 가치─종교적, 윤리적, 사회적 또는 정치적 가치 어느 것이든 상관없이─는 그 원천을 인간의 경험과 문화에 있다는 생각을 견지한다. 그런 까닭에 인본주의는 인생의 목적을 신학적 또는 이념적 추상개념에서 찾기보다는, 인간적 필요와 흥미에서 도출하려고 하면서 인간은 스스로의 운명에 책임을 질줄 알아야한다고 단언한다.” 10
기독교적 회의론자와 합리주의적 크리스천이 있듯이, 비록 매우 제한적인 의미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유지자라는 세계관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도 창조적이며 완성하는 존재라는 맥락 속에 인본주의의 위치를 설정한다. 그렇지만, 훨씬 더 일반적으로 쓰이는 인본주의자라는 용어는 삶의 의미와 개인적 완성을 인간들 안에서 또는 그들 사이에서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포함한 어떠한 초자연적인 존재와는 상관하지 않는 하나님-의심자를 가리킨다.
크리스천이 인본주의자 (무신론자)의 세계관에 접근하다.
우리가 인본주의자 또는 하나님-의심자에 접근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인본주의자의 인생철학과 그 원천을 검토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 찬반토론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인본주의자의 주장을 비평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신앙을 방어하는 양면작전이어야 한다.
우리는 인본주의자의 세계관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그 속에 어떤 합리적인 또는 증거가 확실한 정당성이 있는지를 발견하려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합리적 탐구에 의존하는 인본주의자라면, 합리적 탐구에 대한 그의 신념 속에 어떤 정당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 사람이 자기 이론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가?, 혹은 자기 이론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합리주의자들은 ”이성은 정당하다”, 또는 ”이성은 물질의 본질적 성질이다”, 혹은 ”이성은 진화의 생존 메커니즘이다”라고 대답하는 인본주의자들은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적절한 정당성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합리적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기 때문에 이성을 진리발견에 쓰일 연장으로서 신임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대비해서, 이성이 신임을 받을 만 하니까 이성을 신임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가?
지도자들과 그들의 신념들
폴 커츠(Paul Kurtz) : 인본주의자들의 21 세기에 대한 근본적 주장은 인도주의 선언 2000 (Humanist Manifesto 2000; HM2K) 속에 포함되어있다. 이 주장은 세계적인 세속적 인도주의들의 선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폴 커츠가 제창한 것으로서, 그는 종전의 인본주의자 선언문을 작성하고 공표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Paul Kurtz is Professor Emeritus of Philosophy at t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 founder and chairman of the Committee for Scientific Investigation of Claims of the Paranormal (CSICOP), the Council for Secular Humanism, and Prometheus books. He is a former Co-Presidient of the International Humanist and Ethical Union (IHEU). BA, New York University; MA and Ph.D., Colombia University. He is a fellow of 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nd Humanist Laureate and President of the International academy of Humanism.11
그 외에 다른 HM2K 지도자들
HM2K에 서명자들은 광범위한 학계의 여러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그의 저서, '눈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 Why the Evidence Reveals a Universe without Design)' 으로 유명한 영국 과학자로서 1990년에 영국 왕립협회(the British Royal Society)로부터 ”과학을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한 과학자”에 수여하는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상을 받았다.12 다른 서명자들로는 고인류학자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 물리학자 헤럴드 크로토(Harold W. Kroto), 국제우주대학 총장 아더 클락(Arthur C. Clarke), 화란의 생물물리학자 옌스 스코우(Jens C. Skou), 화학자 마리오 몰리나(Mario Molina), 그리고 허버트 하우프트만(Herbert Hauptman), 등 그밖에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무신론자들 가운데 한 사람의 별종 : 매덜린 머레이 오헤어 (Madalyn Murray O'Hair)
위에 거명된 학자들은 더 활동적이었던 전 세대의 몇몇 무신론자들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미국 무신론자들(American Atheists)의 발행자인 매덜린 머레이 오헤어는 지성적인 행적보다는 종교의 공개적인 활동을 반대하기 위하여 서슴없이 내뱉던 터무니없는 폭언에 가까운 거친 언행으로 인해서 더 많이 알려졌던 사람이다. 그녀의 아들이 연루된 그녀의 송사가 1959년에 대법원의 판결을 받았던 일로 인해서, 그녀는 1963 년에 들어서서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Marray v. Curtlett 에서 법원은 공립학교에서의 필수적 기도 시간을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던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이 머레이로 하여금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미국을 창조하기 위해 30 년이 넘도록 사회활동에 발벗고 나서게 된 동기가 되었다. 머레이는 빈번하게 공개 토론에 참여하여 목청껏 기독교 교리를 비난하고 무신론 운동을 옹호하였다. 그녀는 종교 없는 미국 사회를 옹호하기 위하여 소송을 제기하면서, 미국의 지폐와 화폐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안에서 (In God We Trust)” 라는 글귀를 삭제하라고 요구하였다.13
그녀는 유사한 이념 조직들을 거의 예외 없이 소원케 하고 말았던 것 같다. '미국무신론자(American Atheists, 오헤어의 단체)' 와 '무신론자 연합(United Atheists)' 은 물론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 (Freedom from Religion Foundation)' 과의 사이에 오랜 동안 지속되던 반감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동료 무신론 비평가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가장 빈번하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속한 행동이 멋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던 것이죠. 그리고 말입니다. 비속어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점잖을 수 있겠습니까? -욕지거리 말입니다.” 14 한 때는 그녀의 AA 회원 수가 75,000 명이 넘는다고 호언한 적도 있었으나, 정확하게는 대략 5,000 명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1995 년 그녀와 그녀의 친족 일단은15 그녀가 거느리던 여러 조직체의 자산에서 큰 몫을 챙겨 가지고 잠적하였다. 나중에 그들은 살해 된 것으로 판명되었다.16 저널리스트 루이 두보우스 (Louis Dubose)는, ”그 여자는 두둑한 배짱에, 겁도, 절조도 없었으며, 비속하고, 용감했다... 세상에서 가장 미움을 받던 부인으로서 보기에는 쾌활한 여인네로 알려졌었다.” 17 고 평했다.
그 밖의 기라성 같은 무신론자들
폴 쿨츠(Paul Kurtz)처럼 철학적 소양으로 해서 유명한 학자들이나, 매덜린 머레이 오헤어처럼 방종한 분노 표출 때문에 알려진 자들과 같은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의 모든 증거들에 대한 독단적 부정과 물질적 세계관의 우월성에 대한 숭배라는 그들의 공동 이념으로 인해서 한데 뭉쳤다. '무신론 인사들(Atheist Celebrities)' 웹 사이트에는 저명한 무신론자들이 관련 문서자료들과 함께 명단이 등재되어 있다. 그 중에 철학자로는 Thomas J. Altizer, Paul and Patricia Churchland, Paul Edwards, Antony Flew, Michael Martin, Kai Nielsen, 과학자로는 Fracis Crick, Richard Leakey, Stephen J. Gould, 정치가로는 Fidel Castro, 유명인사로는 Woody Allen, Ingmar Bergman, Bill Blass, Marlon Brando, Warren Buffett, George Carlin, Dick Cavett, George Cloone, Patrick Duffy, Katherine Hepburn, Arther Miller, Jack Nicholson, Penn and Teller, 사업가로는 Bill Gates, 그리고 그밖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들 - 또한 악명높은 인사들까지 Larry Flynt, Bob Guccione, Derek Humphry, Kack Kevorkian, Marily Manson, Howard Stern 등이 있다.18 기타 이름있는 무신론자/인본주의자로서는 Michael Shermer, Dan Barker, Jim Pippard, 그리고 Steve Allen 도 포함되어 있다.
인본주의자의 신념 선언 (Humanists Statements of Belief)
인본주의자들이 선언한 많은 신념들 가운데서 어떤 일정한 주제들만은 거의 보편적이라고 할 만큼 빠지지 않고 포함되어있다. 그것은 이런 것들이다. 즉, (1) 하나님의 존재 그리고,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는 기껏 해봐야 적절하지도 않고 또 알 수도 없다. (2) 인간의 의미성과 인간의 완성은 인간만의 노력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다. (3) 종교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현실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고 성장시키려는 순수한 인간의 노력에 정반대 입장에 있다. 그리고 (4) 물질(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존재만이 우리가 알 수 있고 또 경험하는 유일한 현실이다.
그런 다음, 문제가 하나님 즉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신앙 또는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에 대한 것에 관련되면, 인본주의자들은 중립적인 태도를 버린다. 인본주의자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증거들을 인정하는 모든 종교적 신앙을 특히 기독교 신앙과 종교행위를 포함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반대한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왜 인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세운 가정들이 합리적이라고 믿는지, 그리고 왜 크리스천들과 다른 종교 신봉자들에 대한 자기들의 반감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지를 조사하려한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들이 실패할 것임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미국무신론자들(American Atheists)'는 우리가 이미 위에서 간단하게 기술한 정의들과 궤를 같이하는 철학이념을 선양한다. 현재의 American Atheists의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다.
”무신론자는 신을 사랑하는 대신에 자신을 그리고 동료 인간을 사랑한다. 무신론자는 지금 우리가 공헌할 수 있는 이곳─여기 이 지구 위에서─모든 인간이 다 함께 즐기기 위하여 우리가 일 할 수 있는 이곳을 천국으로 받아들인다. 무신론자는 기도를 통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나 무신론자는 삶을 맞아, 삶과 맞붙어 싸워, 삶을 굴복시키고, 삶을 즐기게 할 수 있는 내재적 확신과 힘을 자기 자신 안에서 찾아야한다는 명제를 받아들인다. 무신론자는 오직 자기 자신을 알고, 동료 인간을 알고 나서야 삶의 완성을 도울 수 있는 이해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19
다른 인본주의 단체들은 이와 유사한 반복구절을 그들의 결정적인 선언에 삽입한 것이 보인다.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 (The Freedom from Religion Foundation)은 이렇게 선언한다 :
”어느 누구라도 성경과 사도신경을, 또는 메시아를 따르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자유사상가가 될 수 없다. 자유사상가한테는 계시나 신앙은 가치가 없으며, 종교를 신봉하는 것은 진리로 가는 길을 보장하지 못하게 한다...”
”자유사상가는 자연주의자이다. 진리는 지론(持論)과 현실의 합치의 정도 만큼이다. 현실이란 직접적으로는 우리의 오관을 통해서 인식이 가능한 한도이고, 간접적으로는 이성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서 확인되는 한도이다...”
”의미는 반드시 마음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자유사상가는 안다. 우주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우주체계는 괘념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이 만약에 목적을 가지려한다면 당신 자신이 괘념하여야 한다...”
”자유사상가는 종교의 주장이 이성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였다고 확신한다... 대부분의 자유사상가는 종교가 진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유해하다고 간주한다. 종교는 전쟁, 노예제도, 성차별, 인종차별, 호모혐오, 문서훼손, 좁은 도량, 그리고 소수 민족에 대한 억압 등등의 정당화에 사용되었다. 종교적 절대라는 전제주의가 진보를 압살한다... 세속적 인본주의는 그 어떤 신도, 성경도, 구세주도 가지지 않는다. 세속적 인본주의는 합리적 자연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신축적이고도 상대적이다. ─ 즉 그것은 종교가 아니다.” 20
미국 무신론자 협회(The American Atheists Association)은 '우리는 교-정 분리를 위해 일한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하여 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에 묻지 않고 과학과 철학을 이용하며, 유신론적 신앙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권익을 지적으로 옹호하기 위하여 나선다.' 21 라고 선언한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세속적 인도주의 평의회 (Council for Secular Humanism)는 '원리의 선언'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우리는 비관주의보다는 낙관주의를, 절망보다는 희망을, 교의의 자리에 교습을, 무지대신에 진리를, 유죄판결이나 죄지음보다는 기쁨을, 공포의 자리에 관용을, 증오대신에 사랑을, 이기심보다는 동정심을, 추악한 것 대신에 아름다움을, 맹신이나 비합리적인 것보다는 이성을 신앙으로 여긴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달성 가능한 최선의 것과 가장 고상한 것을 완전하게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22
미국 인본주의자 협회 (American Humanists Association)는 그들의 인본주의의 정의를 다음과 같은 대담한 선언으로 끝을 맺는다. ”인본주의는 철학이자 세계관이다, 또는 자연주의 기초 위에 선 삶의 자세 ─ 우주 곧 자연이 존재의 전부이고 진리라는 확신이다.” 23
미국 인본주의자 협회의 전임 회장이었던 세계적인 작가이자 무신론자인 故 아이작 아시모브 (Issac Asimoc)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본주의의 주장을 이렇게 두드러지게 표현했다.
”나는 내 생애에서 단 한 순간도 종교 같은 것에 마음이 쏠렸던 적이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결코 정신적 공허 따위를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 나름의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건 초자연적 존재자를 포함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 그자체로서 전적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컨대 나는 합리주의자인 것이다.” 24
정당화되지 않는 무더기 가정 (A Massive Presupposition with No Justification)
앞서 열거된 인본주의에 관한 그 많은 정의, 선언, 그리고 단정들 (그리고 기독교적 유신론에 관해서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것들)이 마치 어떤 보편적 기준처럼 가정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아무런 합리적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왜 우리가 정당성이 없는 그것들을 수용하여야 하는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인본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개발이나 인간적 완성, 그리고 전 지구적 발전은 오직 물질만이 실체인 완전한 자연계를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는 사상이다. 그렇지만 인본주의자는 어떻게, 그리고 왜 이 명제가 진실이란 것을 알 수 있는가를 확신을 가지고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에 인간성이라는 것은 장구한 진화의 과정 (모든 물체들은 시간 속에서 무작위로 운동하는 에너지와 물질로부터 발전된다)을 지나서 등장한 상대적으로 짧은 생애에 불과하다면, 그 때엔 과연 우리는 우리 種 안에 구원과 세상의 완성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본주의 과학자 리차드 도킨즈 (Richard Dawkins)가 HM2K를 '종차별적'이라고, 또한 무보증 종의 자기본위라고 비난했을 때, 그의 생각이 앞에 말한 우리의 질문과 그다지 먼 데 있지 않았던 것 같다.25 보편적 인권에 관한 HM2K 선언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그는 ”HM2K의 윤리 규정은 의심할 바 없이 종 차별적이다. 이 선언문(Manifesto)은 토론이나 질문을 거치지 않고 윤리 문제에 관한 한 '호모 사피엔스' 종만이 고려의 대상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당연한 듯이 가정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이 선언은 비 진화론적이다.”26 라고 지적하였다.
인본주의자들이 그들이 내린 정의와 선언, 그리고 단언에서 가정한 보편적 기준이란 것들도 도킨즈가 인본주의자의 윤리 규정에 지적하였던 비평과 같은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인본주의자들이 근거 없이 오만스럽게 단정하는 소위 보편적 원리라는 것들에 대한 대응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다.27
첫째 : 그들의 주장에 증거를 요구하면, 그들은 합리적 근거를 제시할 기도는 조금도 하지 않고 단순히 ”그냥 그런 것이 있어” 라고 하던가, ”그것이 물질의 본래적인 속성이야”, ”그것은 자명한 것이야”, 또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거든” 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본주의자가 크리스천에게 신앙의 증거를 요구하면, 크리스천도 당연한 듯이 그들과 비슷하게 대답한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계신다” ”당신도 내면 깊은 데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다.” 또는 ”믿음을 가져보세요”라고), 인본주의자들은 일각의 여유도 주지 않고 당장에 크리스천의 대답을 거절하고는 크리스천의 믿음을 정당화할 수 없는 논리로 조소하기 일쑤다. 그와 같은 보편적 원리에 대한 '맹신'이야말로 Free Inquiry 잡지와 HM2K, 그리고 그밖에 많은 출판물에 발표된 인본주의의 실상이다.
둘째 : 근거 없는 세계관은 '맹신' 이라고 할 수 있는 바, 그것은 불합리하다. 그리고 합리주의자한테는 보편적 가치와 원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찾아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 속하는 합리주의자들은, 단연 소수 집단이지만, 기독교 교리의 합리적인 주장에 가장 열린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부류들이다. 기독교 교리의 합리적 주장이라 하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토론과 같은 것을 말한다. 이 글의 후반부에서 거론하려 한다.
셋째 : 인본주의자의 주장을 만났을 때, 우리는 낙담이라도 했다는 듯이 비유적으로 두 팔을 들어올리는 반응을 해 보이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보편적 진리와 가치 그리고 원리를 포기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이와 같은 대응은 불합리하겠지만, 그런 반응이 인본주의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세계관을 정당화하려는 기도를 포기시키고 기독교적 유신론으로 전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범주에 속하는 인본주의자들은 수적으로는 많은 편이지만, 그들의 무의미한 상대론을 현재 유행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급진적인 표현으로 일반화시키는 데 매우 성공적이다.28
포스트모던 인본주의 (Postmodern Humanism)
포스트모던이즘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였다.29 많은 포스트모던 인본주의자들은 종전의 인도주의가 모든 물질적 현실 (과학적인 법칙, 보편적 인권, 절대치, 진리와 진리 인식의 가능성, 그리고 절대윤리)을 관장하는 보편적 절대가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근거가 없다고 인식한다.
그 좋은 예가 여기 있다. 1999년에 있었던 어떤 인본주의자들의 모임에 우리도 참석하였었다. 그때 한 젊은 강사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고 윤리의 보편적 절대 체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교리는 협소하고 바보 같다고 강의를 했다. ”천하에 옳은 것 (things of right)은 없는데”, 크리스천들은 오만하게도 감히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의 강의가 끝난 후에 우리는 그와 토론을 벌리던 중, 우리는 그의 말━천하에 옳은 것이 없는데 그는 어떻게 감히 자기 자신은 옳고 크리스천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오만한 말이 아닌가? 하고 지적하였다.
우리는 급기야 길고 긴 싸움과 난장판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뜻밖에 그는 재빨리 손을 들고는 세속적 인본주의도 기독교 교리도 다 같이 참인 것 같다, 그래서 절대론도 상대론도 둘 다 정확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들은 다 같이 모르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라고 답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황당할 정도로 불합리한 그의 대답은 그의 일상적인 삶의 태도를 고스란히 반영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그의 대답은 일관성이 없는 급진적 포스트모던주의에 대한 그의 헌신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 젊은 강사와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던 인본주의자들도 오직 기독교 유신론에 의지하여야만 합리적 강론과 탐구에 필요한 논리적 근거를 얻을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정당한 설명 없이 보편적 절대치에 대한 자신감을 붙들고 늘어지는 동료 인본주의자 (포스트모던 인본주의자가 아닌)들과도 손을 잡지 않는다. 그 대신 포스트모던 인본주의자들은 그냥 철학적 허무주의에, 즉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심지어 그 존재자체나 사상, 가치 그리고 행동까지도 최종 분석의 결과로 드러나는 것은 무의미와 무意義 그것뿐이라는 이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인본주의자 선언 2000 (Humanist Manifesto 2000)에 서명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포스트모던 주의자들이 표방하는 상대론을 거부하는 절대론자 라고 밝혔다.
”과학의 객관성을 부인하고, 현대기술의 사용을 한탄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소위 포스트모던 사상이 서유럽의 여러 나라에 대두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형태는 패배주의를 권장한다. 최선의 경우라고 해봐야, 그들은 세계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그 어떤 프로그램도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문제의 해결 가능성이나 달성 개연성조차도 부정하는 일이다. 이들의 철학-문학 운동의 효과는 역생산적 (逆生産的)이든가, 나쁘게 말해 허무주의적이다.” 30
크리스천은 이 비평에 동의하지만, 그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유신론적 세계관의 시각에서 하는 비평이다. 허무주의는 비합리주의와 절망감이 표방하는 반-신앙 (anti-faith)이다. 그래서 허무주의는 ”스스로의 보조(步調)만으로는 자기 자신을 이끌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허무주의가 자기모순이라는 모래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론적 인본주의는 또 어떤가? 그도 별반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 사상은 모래수렁에서 빠져나왔다는 환상에 매달리려고 하지만, 주의 깊게 뜯어보면 그들의 발을 모래수렁 밖에서 붙들어 주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이념도 어쩔 수 없이 모래수렁 속에 빠져 자취를 감출 운명에 있음은 포스트모던 인본주의와 마찬가지다.
Free Inquiry 지의 최근 판 전체 지면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주관주의, 그리고 상대론 같은 이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데 할애하고 있다.31 작가인 매트 체리 (Matt Cherry)의 논설인 '진리 그리고 결과'에서 아래와 같이 선언했다.
”[포스트모더니스트 사상가들은] '진리' 라는 개념 그 자체를 거부한다. 그들은 '객관적 지식'은 물론 '사실들' 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개인적인 해석만이 존재한다 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은 '이성' 과 '과학' 은 '신화' 나 '이야기' 또는 '마술적인 표현' 들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비록 과학이 문화간의 진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경우에도, 도덕적 관념만은 역시 완전하게 상대적이어야 한다 ─ 즉, 그것은 취미나 전통의 문제와 마찬가지다. 자연과 진리에 관한 이 이론들은 실물-세계의 결과를 만든다. 만약에 이 이론들이 심각하게 채택되면, 그것들은 예컨대 과학에 대한 지지, 사회 개형에 대한 지지, 그리고 보편적 인권에 지지를 파괴할 것이다.”32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nson) 교수는, 자신의 논설 ”다시 계몽사상으로 돌아가서 (Back to the Enlightenment)”에서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알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계몽 사상가들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포스트모던니스트들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라고 믿는다.”고 지적했다.33
체리와 윌슨 이들 두 사람의 주장은 마치 합리적인 크리스천 유신론의 절대론 즉, 절대 가치는 존재한다, 진리는 존재한다, 그리고 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등등을 환영하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기독교가 ”영원, 무한, 전지, 전능하셔서 우리가 현실에서 조우하는 균형, 질서, 도덕, 가치, 그리고 진리를 창조 유지하시는 하나님 위에 근거하고 있다” 는 이유 때문에 가차없이 합리적 기독교 유신론을 거부해 버린다. 절대론적 인본주의는 기독교 유신론에 접근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현실, 즉 실존하는 물질계의 총괄적 결과로 인식하는 자연주의에 대한 그들의 선입관을 얼마만큼이라도 접어보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진리로부터 몇 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겠다.
중국에 있는 인권단체의 시아오롱 리 (Xiaorong Li)는 Free Inquiry 지의 같은 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보편적 인권에 관한 그 어떤 사상에도 치명적이라는 이론에 동의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더는 학문적 토론이나 철학적 사색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의 고통, 핍박, 그리고 심지어 죽음에 미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절대 윤리라든가 보편적 인권, 그리고 확실한 문화적 규범과 같은 가치 기준이 없다고 단언할 때, 개인이나 사회, 그리고 문화적 고립주의에 초래할 그 결과는 최악의 성질의 것이다. 리 여사는 클린턴 대통령이 중국에서의 인권위반 문제를 제기하였을 때, 중국정부가 ”정치적 억압은 전통적 '문화 가치' 기준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라고 대답했다고 지적하였다. 리 여사는 중국정부의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는 장쩌민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우리 두 나라는 사회제도, 이념, 역사전통 그리고 문화배경이 상이하다. 두 나라는 인권이나 기본자유를 성취하는 방법이 다르다.” 34
보편적 가치기준을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통렬하게 해부한 리 여사의 비평은 그토록 강력하고도 합리적이어서 여러 곳에서 자주 인용된다. 기독교 유신론은 급진적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리 여사의 통렬한 비평에 동의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더 한 발 나아가서, 크리스천은 보편적 인권이 인간의 직관, 경험, 진화 또는 '그냥 옳음 (just-is-ness)'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유신론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리 여사의 비평을 정당화할 수 있음을 말해야 한다. 보다 진실한 것은, 정의가 앞서 열거한 '빼앗을 수 없는 권리들'을 인간에게 '부여하여 주신' 영원하신 하나님한테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인본주의자인 리 여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다양한 도덕규범이 존재한다고 해서 다른 도덕 가치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명제를 정당화 할 수 없는 것은, 병고, 기아, 고문, 노예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들의 가치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경험적 주장들은 ”다른 문화를 판단하지 마라.” 또는 ”우리는 다른 가치도 인정하여야 한다.” 따위의 도덕적 원칙을 개발하기 위한 근거로서는 합당하지 않다.”
”만약에 존중되고 또 인정된 문화가 그 문화를 거역하는 개인을 존중하지 않고 인정도 하지 않을 때엔 어떻게 해야 좋다는 것인가? 한 소녀가 여성거세나, 발-묶기 또는 사전에 결정된 혼인을 피하기 위하여 싸울 때, 또는 과부가 죽은 남편을 섬기기 위한 분신을 원하지 않을 때에도, 상대론자는 이와 같은 개인들이 원하지 않는 문화 또는 전통적 관습이라도 그것들을 '반듯이 존중' 하여야만 할 것이 아닌가. 그럴 경우 상대론자는 개인을 존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문, 간음 그리고 살인을 위한 도덕적 기초를 효과적으로 인준하여 주는 꼴이 된다.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윤리적 상대론자는 중립을 지켜낼 수는 없는 것이다. ─ 그들은 개인의 편에 서던가 아니면, 그 문화에 속한 군림하는 지배세력 편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대론자들은 다른 삶의 방법에 대한 동등한 존중과 인정, 즉 그들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라는 하나의 정교한 중심 가치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윤리적 상대론자들은 스스로를 거부하고 말았다.” 35
같은 판 Free Inquiry 지에 올라있는 다른 논설들도 객관적 절대 윤리를 거절하는 급진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리 여사의 철퇴와 같은 비평에 힘을 실어주었다. 데오도르 쉬크 (Theodore Schick Jr.)는 ”문화는 도덕적으로 무오성이 아니기 때문에 - 동시에 문화가 비도덕적인 행위를 제재할 수 있기 때문에 - 문화적 상대론은 정확할 수 없다.” 라고 주장했다.36하비 시겔 (Harvey Siegel)은 ”왜 모든 것은 상대적이 아닌가 (Why Every Thing is Not Relative)” 에서 상대론자들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자체부조리의 문제를 지적했다.
”'상대론의 반대자들은 그 이론에 대한 비평을 수없이 많이 하였다. 가장 뛰어난 근본적인 비평은 이런 것이다. 즉, 상대론은 자기부조리를 스스로 밝힘으로써 자기반박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이론에 대한 변호는 그 이론을 포기하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고발]은 상대론이 진리를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론적인 주장이나 논설의 인식론적 장점을 배제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37
우리는 절대론적 인주의자들이 인본주의적 상대론이 파산되었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있다. 더욱이 본 논설의 2부에서 제시하겠지만, 절대론적 인본주의도 다른 인본주의와 마찬가지로 파산하였다는 것이 우리 주장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반대하는 주장들 중에는 주목할만한 것이 없는 대신에, 하나님의 존재에 찬성하는 주장들은 가히 압권이라 하겠다.
NOTES
1.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심사숙고하는데 전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이나 다른 종류의 궁극적 가치와 이념에 관하여 이야기하는데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Seinfield 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만족한다. 이 논설은 삶의 의미와 인생의 존재를 사유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존재와 그 적절성에 관한 토론에 기쁘게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2. 마태복음 28:19
3. 이 정의는 George Smith가 Atheism에서 일반화시켰다. The Case Against God (Amherst, NY: Prometheus, 1980).
4. 'Are Secular Humanists Atheists?' The Secular Humanism Organization.
5. 그 자체가 이미 보편적 부정인 명제, 즉 ”보편적 부정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와 같은 진술의 허위인 것과 같이, 어떤 '보편적 부정'은 입증될 수도, 반증될 수도 있다. 매개변수들이 주의 깊게 알려지고 탐색되고 있는 한에서, 보편적 부정은 증명될 수 있다는 가설은 성립된다. 또 다른 하나의 예는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즉, ”우리 집 연못 밑에서 살고 있는 호흡기관이 없는 낯익은 종류의 코끼리들은 없다.” 어쨌거나 보편적 부정은 증명하기가 어렵다.
6. 'Agnosticism,' in Encylopedia Britannica 2000. (on-line version at www.britannica.com).
7. An excellent book on this subject is J.P. Moreland's Love Your God with All Your Mind (Colorado springs, CO: NevPress, 1997).
8. Paul Kurtz, 'Humanists Manifeto to 2000 : a Call for a New Planetary Humanism,' Free inquiry, Fall 1999, 4.
9. 'Definitions of Humanism,' The American Humanist Association Web site (https://americanhumanist.org/), 1997, 2.
10. Ibid.
11. Council for Secular Humanism.
12. Quoted in Philip Johnson, Reason in the Balance (downers Grove, IL: Inter Varsity, 1995), 176.
13. A popular rumors attributed to her is false. It concerns a petition to the FCC to remove religious broadcasting from U.S. airwaves. This is completely fabricated and was never pursued by O'Hair or any other atheist organization and is beyond the power of the FCC to consider. See Bob Passantino, Fatasies, Legends, and Heroes (Costa mesa, CA: Answers In Action, 1989), 28.
14. Louis Dubose, 'Whatever Happened to the World's Most Famous Atheist?' The Progressive. Feb. 1999, 5
15. Excepting her son, William Murray (the subject of her original lawsuit), who had been estranged from his mother since his conversion to Christ.
16. See news reports, including Dubose.
17. Ibid.
18. (www.primenet.com/~lippard/atheistcelebs).
19. (www.atheists.org)
20. Dan Barker, 'What Is a Freethinker?' ('Nontract #11') (Madison, WI: Freedom from Religion Foundation, 1993), 1-3 (also at www.ffrf.org/nontracts/freethinker.html).
21. 'Welcome to the American Humanist Association Website,”
22. 'The Affirmations of Humanism: A Statement of Principles,” Council for Secular Humanism.
23.'Definitions of Humanism,” The American Humanist Association Web site, 1997, 3.
24. 'Rationalism,” American Rationalist: The Alternative to Religious Superstition Web site.
25. From the humanist's viewpoint is unwarranted, but from God's relvelation we are told that humans alone out of all of God's creation were made 'in His image.'
26. 'Manifesto 2000 Commendations and Comments,' Free inquiry, Winter 1999/2000, 8.
27. Christian auther Gregory Koukl explains the three responses as: 'One: Morality is simply an illusion. Two: Moral rules exist but are mere accidents, the product of chance. Three: Moral rules are not accidents but are the product of intelligence.' (Frances J. Beckwith and Gregory Koukl. Relativism: Feet Planet Firmly in Mid-Air [Grand Rapids: Baker, 1998, 167.)
28.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용어의 정확한 정의에 숙지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그들이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어떤 부류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념들을 신봉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은 Christian Research Journal 22, no.2 (1999): 56-58에 실린 Stephen Ross 의 'A Postmodern Promenade,'를 참조하세요.
29. 이 증거들을 요약한 재료가 Beckwith and Koukl 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도덕적 상대론의 역사와 광범한 내용은 Beckwith and Koukle의 제 8장 (가치의 해설과 교육)에서 그리고 정치의 정당성과 다중 문화주의는 제 10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30. HM2K Article II, 8.
31. What Happened to Truth? issue of Free Inquiry, Fall 1998.
32. Matt Cherry, 'Truth and Consequences,' Free Inquiry, Fall 1998, 20.
33. E. O. Wilson, 'Back to the Enlihtenment,' Free Inquiry, Fall 1998, 21.
34. Xiaorong Li, 'Postmodernism and Universal Human Rights: Why Theory and Reality Don't Mix,' Free Inquiry, Fall 1998, 28.
35. Theodore Schick, Jr., 'Is Morality a Matter of Taste?' Free Inquiry, Fall 1998, 32-34. 아마 그는 알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설명하였던 원리는 2000년 전에 바울 사도가 로마서 2:1에서 이미 언급하였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그런데, 바울의 대답은 Schick의 대답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다. 그것은 바울이 인간 내면의 양심을 윤리적 판단의 근거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2:21,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6. Harvey Siegel, 'Why Everything Is Not Relative,' Free Inquiry, Fall 1998, 35-38.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equip.org/free/DR503-1.htm
출처 - 기타
다윈의 진화론과 나치의 인종 대학살
(Darwinism and Nazi race Holocaust)
by Jerry Bergman Ph.D.
나치당 간부들과 1900년 초의 유력한 독일 생물학자들은 그들의 저서에서, 다윈의 이론이 나치의 인종차별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공언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인간의 유전인자 풀(pool)은 선택적 생식을 통하여 개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농부가 우량종 가축을 생식하는 방법과 유사하다는 생각에서 연유된 발상이었다. 히틀러 정부는 인종차별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다윈의 진화론에, 특히 스펜서(Spencer)와 헥켈(Haeckel)의 고심하여 쓴 책들에 크게 의존했다. 결과적으로, 히틀러 정부정책의 핵심은 '우등인종'의 보호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실행하는데 있었다. 이 정책이념은 가능한 한 우등인종이 '열등인종'과 섞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열등인종'의 유전자 풀에 의한 오염을 최소화 하자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이른바 '우등인종'에 대한 그들의 신념이 근거하고 있던 이론은 모든 종이 각기 그 내부에 집단적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개념이다. 이 학설은 다윈의 진화론의 근본인 '적자생존(適者生存)' 이론에 대전제가 되며, 동시에 필요조건이기도 했다. 이 철학적 신념은 결국 '종국적 해결'이란 정책으로 현실화되어, 무려 6백만 명의 유태인과 독일 과학자들이 '열등인종'으로 판단한 인종에 속하는 무고한 사람들 4백만 명을 말살하기에 이르렀다.
서론
나치가 유태인을 대대적으로 학살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데에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이론에 의하면 진화의 진행은 주로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약자의 제거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비록 히틀러와 그의 지지자들의 모순되는 동기들을 평가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한층 고무된 우생학(eugenics)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다윈의 사상은 나치의 인종관념과 전쟁관념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고무하였다. 만약에 나치가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대로 모든 인류는 아담(Adam)과 하와(Eve)의 후손들이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전폭적으로 포용하고 그 믿음의 바탕에서 일관되게 행동을 하였다면, 유태인 대학살(Holocaust)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의 주류(자유주의적) 신학과 이에 속한 여러 분파의 학파가 전개하던 운동(인류의 신성한 기원에 대한 유태교적-기독교적 이론을 삭제하고, 그 대신 다윈의 진화론적 인류기원론으로 대체하자는 운동)은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발전에 적용하자는 공공연한 주장에 크게 기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회학의 진화론적 해석은 급기야 Holocaust1의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헥켈[2,3,4,5,6]과 챔버레인(Chamberlain)[7] 그리고 몇몇 학자들에 의해서 수정된 다윈의 학설은 9백만 명이 넘는 생명을 강제수용소에서 살해하고, 6조 달러의 전비를 소요케 하였던 전쟁에서 사천만의 생명을 희생시켰다. 더군다나, 나치 사상을 극악무도한 Holocaust에 까지 이르게 한 주요 이유는 사회발전의 진화론적 해석을 자연과학계에서는 물론 인문학계에서까지 광범하게 수용하였다는 사실에 기인했다.[1,8,9,10]
진화는 적자의 선택적 생존, 혹은 우등한 개인의 선택적 생존에 의해서 진전된다는 것이 다윈 이론의 핵심이었다. 이 이론이 성립하려면 하나의 종 안에 다양한 개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체간에 존재하는 차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벌어져, 마침내 보다 유리한 특성을 지닌 개체들(최적자들)이 더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비록 인종의 차별화가 애초에는 근소한 차이에서 출발하지만, 차별적 생존율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종분화(speciation)의 과정(새로운 종의 개발 과정)을 거쳐 뚜렷하게 벌어져, 마침내 차별화 된 종족이 태어나게 된다는 이론이다.
오늘날 서구의 이념을 지배하는 사상,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평등주의 이념은 모든 국가와 문화들 사이에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11 이 이념을 반대한 주요 세력은 사회 진화론적 우생학 운동, 특히 그들의 생경한 '적자생존'의 세계관이었다.10,12 루드머러(Ludmerer)가 일찍이 지적한 바도 있지만, 인종의 유전적 특성은 선택적 생식에 의해서 개량될 수 있다는 이념은 플라톤(Plato)의 공화국(Republic)에서 이미 엿볼 수 있을 만큼 오래된 사상이다. 그러나 :
”... 현대의 우생학은 19세기에 들어와서 생겼다. 이 신생 이념인 우생학의 뿌리는 다양하다. 가장 중요한 뿌리는 진화론이다. 프랜시스 갤튼(Francis Galton, 우생학 이라는 학술 용어를 만든 사람)은 그의 사촌,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과학적 이론(진화론)에서 파생한 직접적이며 논리적 부산물이다.”[13]
나치는 독일의 정부정책은 다윈사상으로 대표되던 당시의 과학자와 유식 계층 간에 존재하던 시대정신(Zeitgeist)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하게 홍보하였다.[10] 당시의 독일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에 대한 평가는 20세기 나치 운동과 이를 지지하던 많은 과학자들이 작성한 현존하는 문서들, 저작물들, 그리고 문화유물들에 대한 조사로 기약될 수 있을 것이다. 케이스(Keith)는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 즉, 유태인을 비롯해 '열등'한 '인종'으로 단정해버린 인종들에 대한 나치의 독단적 차별정책은 다윈 이론이 인류를 개량하는데 결정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그들 나름의 신념에서 연유된 결과가 크다,[14] 테네바움(Tenebaum)은 독일의 정치철학의 기초가 된 신념은 진화론적 발달 개념이 결정적인 요소들이었다 라고 했다.
”... 투쟁, 선택, 그리고 적자생존과 같은 개념과 관찰들은 모두 다윈한테서 비롯됐다... 그러나 그런 개념들은 이미 19세기 독일의 사회철학 속에 널리 싹트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 그런 밑바탕이 있었기에 독일제국(Reich)과 약소국과의 관계에서 '망치와 모루'의 그것처럼 ... 비교 우위에 있는 독일은 세계를 통치할 고유권리가 있다, 라는 이론이 개발될 수 있었다.” 14
다윈 이론에서의 인종 개념의 중요성
진화론은 개체가 독특한 특성을 습득하여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하는 현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새로운 특성을 제 것으로 만든 개체들은 그런 특성을 갖지 못한 개체들과 비하여 더 잘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우수한 개체는 보다 더 잘 살아남아서 이러한 특성들을 후손들에게 전수함으로써 그런 특성의 수가 점점 많이 축적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보다 약한' 개체들이 결국 도태되어 사라질 것이다. 만약 하나의 종 안에서 모든 개체들이 전적으로 평등하다면, 자연은 선택의 대상을 찾지 못할 것이며, 결국에는 그 종의 진화는 중단되고 말 것이다.
강자와 약자의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차이는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궁극에는 전혀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들 중 얼마는 살아남는 데 있어서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집단은 우수한 집단, 다시 말해서 보다 진화된 종족이 될 것이다. 그런 특성을 습득하여 제 것으로 만든 종족이 차지한 유리한 생존경쟁 조건 때문에, 그 특성은 궁극적으로 전체 종족에 고루 확산될 것이다. 그리 되어 결과적으로 더 높고 더 진화된 형태의 동물이 출현할 것이다. 히틀러와 나치들은 자기네들의 주요 목표들 중 하나가 이 용인된 ”과학적인 이론을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다윈 이론의 핵심은 진화가 아니고 선택이었다. 진화는 ... 선택의 결과를 기술한다.”[16] 히틀러는 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나치]는 반듯이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에 협조하여야 한다” 라고 강조하였다.
모든 다른 인종들 위에 자리하고 있는 유일한 인종으로서, 아리안족(Aryans)은 자기네의 진화론적 우수성으로 인해서 모든 타 인종을 지배할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또한 부여받았다고 믿었다. 인종문제야말로 나치 철학의 주요 강령의 하나였다; 그래서 테네바움(Tenebaum)은 나치주의는 다윈이념과 합병하였다, 라고 잘라 말했다 :
” ... 나치의 정치 체계 속에는 아무 것도 빠뜨린 것이 없었다. ... 그들의 정치 철학의 사전은 공간, 투쟁, 선택 그리고 멸종(Ausmerzen), 이런 類의 어휘로 가득 차있었다. 나치들은 연역법적 논리를 사용하여, 세계는 하나의 정글과 같아서 그 속에서는 서로 종족을 달리하는 인종들 간에 제각기 공간을 차지하기 위하여 쉬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 강자는 승리하며, 약자는 죽든지 죽임을 당한다, 라고 분명히 결론짓고 있었다. ...”[17]
1933년, 뉘름베르크에서 개최된 나치당 대회에서, 히틀러는 ”보다 고등한 인종은 보다 하등한 인종을 복종시킨다. ... 자연 속에서 관찰되는 이 권리야말로 우리의 사유(思惟)가 미치는 유일한 권리로 간주되어야 한다” 라고 선언하고, 그것은 과학을 통해서 발견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15]
히틀러는 인류도 동물이기 때문에, 가축의 생식(生殖) 과정에서 습득한, 유전인자의 유전법칙의 적용이 가능한 상대(相對)라고 믿었다. 나치들은 자연의 힘에게 진화를 주관하도록 허락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인종의 진화를 일일이 조종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의 첫 단계는 '열등 인종들'을 격리시켜서 '아리안족'의 유전인자 풀을 더 이상 오염시키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었다. 사실상 이 정책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그들은 열성인자가 열등 인종을 생식한다는 다윈 이론이 과학적으로 '입증' 되었다는 학설을 순수하게 믿었다. 이 신념은 독일의 지식계층 간에서는 상식으로 통했다. 나치들은 자신들의 정책은 보다 살기 좋은 세계의 수립을 위한 실천계획의 일환으로 과학이 입증한 학설들을 우등 인종 생식에 적용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믿었다 : ”법인 국가(corporate state)의 사업은 우생학 다시 말해서 인위적 선택이라는 응용 생물학을 정책 기조로 한다.”[18,19]
일찍이 1925년에 벌써, 히틀러는 '나의 투쟁 (Mein Kampf)' 제 4장에서 다윈 이념이 독일의 성공에 이바지한 유일한 근거이라고 기술하고, 그 취지를 유명한 자신의 저서의 제목인 나의 투쟁 이 적절하게 암시하고 있다고 기술하였다. 클라크(Clark)가 결론적으로 지적한 바와 같이, 아돌프 히틀러는:
” ... 진화론의 이론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진화론적인 관념들은 노골적으로 Mein Kampf와 그의 대중 연설문 안에 드러나 있는 조잡스러운 내용들의 근거가 되어 있었다. ... 히틀러는 ... 보다 고등한 인종이 언제나 보다 열등한 인종을 정복했다고 하면서 자기 이론의 합리화를 시도했다.”[20]
한편 히크만은 이에 부언하여, 히틀러는:
” ... 진화론의 돈독한 신자였으며 또 설교자였다. 그의 정신병적 복잡한 증세가 얼마나 깊고 심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투쟁의 개념이 중요하였던 이유로] ... 그는 Mein Kamfp에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수많은 진화론적 관념들, 특히 투쟁, 적자생존과 같은 관념들과 약자의 멸종과 같은 제안을 강조하는 관념들을 표현하고 있었다.'21 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라고 했다.
더욱이, '우등인종'을 생산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진화의 과정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야말로 나치주의의 핵심적인 라이트모티브(Leitmotif: 중심사상)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밖에 여러 출처들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나치 사상은:
” ... 이념적 화주(火酒:독한 술)를 내놓았다. 이러한 관념들은 몽마(夢魔)와 연계하여 나치의 국가적 사회정책을 군사정책과 외교정책에 꽁꽁 묶어 크게 반영하고 있다. 그 사실들은 나치의 거대한 인종 프로그램에 비추어보아 명백하게 이해될 수 있다.”[22]
다윈의 진화론과 인종문제에 대한 나치 세계관의 운명적인 합병은 결과적으로 유태인 대학살(Holocaust)과 2차 세계대전을 야기한 주요한 이유로 불거져 나왔다.
”나치 사상과 이론의 중심 강령 중 하나는 ... 진화론이었다, [그리고] ...나치는 모든 생물학적 주체들이 상향(上向) 진화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보다 더디게 진화한 유형(type)들은 ... 실질적으로 멸종되어야 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 나치는 자연의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주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치들은] 유태인을, 그리고 ... 나치가 '후진'으로 간주한 흑인을 멸종시킬 정치적 대책을 제도화하였다.”[23]
'우등인종', '열등인종 유형', '인종의 오염', 그리고 진화론 이란 단어 그 자체 (Entwicklung), 이런 것들은 히틀러와 나치 지도자들이 빈번하게 사용하였던 용어들이다. 히틀러의 인종관은, 자주 주장되는 바처럼, 주변 과학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었다. 그 보다는 그의 인종관은:
”노골적인 다윈주의적 사회주의 유형이었다. 이런 이념은 전체 독일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고 또 용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독일 국민이 그의 인종차별관을 과학적이라고 간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가사회주의와 히틀러에 관한 최근의 연구 발표에 의하면, 나치즘의 독특한 특징은 사회정책에 진화론을 실질적으로 적용하였다는 점이다. 국가사회주의 독일정부의 '생물학적-정치철학적 사회정책,'은 ... 인종 정책에 대한 도덕적 해석을 일원론적, 초자연주의적, 극단적 허무주의에 근거하고, 이를 인종 불평등에 대한 정책에 반영하고, 자연 법칙에 따르는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을 위한 영원한 투쟁의 이념을 공공정책 수립에 국가 권력을 동원하였다 ...”[24]
나치들은 보다 '고등한 인간'의 번식을 위한다면, 다윈의 이념도 조정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네 정책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철학을 내세워, 유력한 당원들의 저서와 연설을 통하여 거듭거듭 주창하게 하였다.[25] 그들은 진보된 세계건설을 위해 다윈의 이념에 따라서 당당하게 모든 방법을 다해서 부적자(不適者)를 무자비하게 제거하라고 요구하였다:
”독일의 사회주의적 다윈 이념의 기본 개념은 ... 인간이란 어떤 특별한 초월성도 또는 특별한 인간다움(humanness)도 없고 다만 자연의 한 부분일 따름이라고 했다. 다른 한편, 게르만족은 생물학적으로 우수한 군서(群棲) 집단의 구성 분자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정책은 생물학적 법칙의 솔직한 적용이라고 했다. 그들의 이념의 근본을 들여다보면, 헥켈과 그의 동료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자들이 국가사회주의 사상의 핵심 이념을 진전시켰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이야말로 법인 국가의 사업은 우생학, 즉 인위적 선택 과업이다, 라고 주장했던 장본인들이다....”[18]
언젠가 한 번은 히틀러가 이렇게 진술한 적이 있었다, 우리 나치 당원들은: ... ”야만인들이다! 우리는 야만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것은 명예로운 명칭이다. [왜냐하면, 그 명칭으로 해서,] 우리는 세계를 도로 젊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26] 한 사람의 진화론 신봉자로서의 히틀러는 ”의식적으로 독일의 실질적 정책 집행을 진화론의 이론에 합치하게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27] 케이스(Keith)는:
”만약에 전쟁이 진화의 아들이라면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아들인) 전쟁이 발발했을 때엔, (아버지인) 진화는 '미쳐버릴 테고,' 급기야는 극도로 광포해져서, 생명의 세계에서 하여야 할 제 나름의 고유 역할을 수행 못하고 끝내 좌절하고 말 것이다 진화의 고유 역할이라면, 상호 경쟁하는 개체들, 말하자면, 부족들, 국가들, 또는 인종들 사이에 경쟁을 촉진시키는 역할이다. 단 한 가지 길 말고는 전쟁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것은 진화의 법칙을 인간 본성에 그 법칙이 지워놓은 강제력을 인간 본성에서 제거하는 길이다. 그런데, 과연 인간은 진화의 법칙을 무효화할 수 있을까? ... 나로서는 당장에 그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며 실천할 수도 없다는 걸 발견했다. ”인간이 본성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독일이 진화의 술통에서 진화주(進化酒)를 마지막 남은 앙금까지 몽땅 마셔버리고 진화론에 만취된 상태에서 유럽을 물과 피로 목욕을 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진화의 법칙이 악(惡)이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인간을 정글로부터 끄집어내어 야수들의 왕으로 만들어 준 법칙이라면 그런 법칙 (진화의 법칙)을 마냥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을 것이다.”[28]
독일의 유태인과 다윈 사상
독일의 우생학 지도자들은 영국의 그들에 비교하여 원래가 그다지 심하게 반-셈족(anti-Semitic) 경향이 아니었다. 독일의 초기 우생학자들 대부분은 독일에 사는 유태인들을 아리안족(Ariyans)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독일의 우생학 운동이 독일 국내는 물론 국외에 사는 많은 유태인 교수들과 의사들에 의해 지지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유태인들은 완만하게나마 처음에는 독일의 우생학 이론에, 나중에는 우생학의 법 적용에 협조하였던 게 사실이다.
다윈주의 인종관은 순수했던 독일 사회의 많은 분야들 속으로 천천히 침투해 들어갔다.[9] 독일의 인종적 순결을 수호한다는 목적에 헌신하였던 범독일연맹 (Pan German League)은 애초부터 공공연한 반-셈족 경향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사실, 독일에 동화된 유태인들도 연맹의 정회원이 될 수 있었다. 독일의 인종 이론이, 비록 흑인종과 집시인종(Gypsies)을 열등 인종으로 분류하였지만, 독일 안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유태인들이 많았던 이유로 해서, 유태인종은 열등인종에 부합하지 않다고 믿었던 독일 사람들이 많았다. 슈로이네스(Schleunes)는 이렇게 말하였다. 즉, 1903부터 범독일연맹(Pan German League)의 제반 사업계획 속으로 고루 퍼지기 시작하던 인종 이념의 영향은 그 정도를 높이다가, 1912년까지 연맹은 마침내 ”인종 원리'에 근거하여 인종차별과업을 추진할 것이며, 그 이후 머지않아 유태인을 맹원의 자격요건에서 제외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29]
독일 사람들의 인종관이 품고 있는 첨예한 과학적 배타성에도 불구하고, 1930대 이전에는 대부분의 독일 유태인들한테 미친 영향이 그런대로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독일 유태인들은 독일국민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을 1차적으로는 독일인으로, 2차적으로는 유태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유태인들은 독일 지식계급이 가지고 있던 인종관념을 적절히 수정하여 자신들을 독일인 범주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나날이 높아가던 그들의 독일인으로의 동화 경향이 마침내 그 정도를 높여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독일은 당시 유태인의 안전한 피난처라고 믿게까지 되었다.30 당시로서는 아직은 창세기의 창조설을 굳건히 고수하면서 인종주의를 근거로 하고 있는 진화론을 포함한 인종 차별적 세계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또한 현실이었다. 그 이후 독일에서 전개되던 사태를 유태인 유전학자들은 물론 심지어 유태인 우생학자들과 몇몇 다른 유태인 사회집단들도 고분고분하게 수용하지 않았던 것만은 명백하였다:
”우생학 운동가들은 독일에서 전개되고 있던 우생학 계획의 진전을 우려와 감탄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집권한 후 표면으로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던 우생학 계획의 실제적 세부 내용들을 그들은 어정쩡하게나마 환영하였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우생학자들은 미국의 예를 들어, 그 곳에서는 결혼을 엄격히 통제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으면서도, 강력한 정치적 자유의 전통이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하자고 말하고 있었다.”[31]
히틀러의 우생학적 목표
나치의 정책들은 유태인이나 다른 인종들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 결과보다는 우등인종을 열등인종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자는 일견 이상주의적인 목표에서 오는 결과가 더 컸다. 히틀러는 자신의 다윈주의적 세계관을 생쥐를 포식하는 고양이에 비추어 설명하면서, 궁극적으로 유태인종을 멸종시켜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 유태인종은 사람을 타락시킨다. ... 궁극적으로 자연은 유해요인들을 제거하기 마련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자연 법칙에 따라서 상호간에 먹고 먹힌다. 사람도 이 법칙에 의해 누군가를 축출할 수 있어야 한다. 파리는 잠자리한테, 잠자리는 새한테 잡아먹히고, 새는 새 나름으로 더 큰 새에게 희생된다. ... 자연 법칙을 알고 나면 ... 그 법칙에 순종하게 된다.”[32]
그리고 히틀러는 또 이렇게 주장했다. 그래서 정부는 반드시 '자연의 법칙' 특히 '원천적으로 인류를 출산하고, 그 진화의 근본인 적자생존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정부 정책에 적용하여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십계명 중에서 인정하는 계명이 있다면, 그것은, '너는 네 종족을 보존하라.' 이다. 개인의 생명을 지나치게 값을 매기지 말아야 한다. 만약 개인이 자연의 평가의 눈에 중요하게 평가되면, 자연은 그를 보전하려고 애쓸 것이다. 한 마리 파리가 한 번에 수백만 개의 알을 낳지만 부화되는 알의 수는 몇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 종족은 번창하고 있다.”[33]
히틀러는 아리안 족이 비(非)아리안 족과 섞여서 생식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특단의 결심을 세웠다. 그의 결심은 결국 '종국적 해결책'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일단 열등한 인종들이 멸종하고 나면, 앞으로 오는 세대들은 그가 시행했던 계획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진보(improvement)를 두고두고 고마워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게르만족은 보다 고등한 인종으로서 영광된 진화의 미래가 약속되어 있다. 이 이유만으로도 유태인종은 게르만족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그걸 못했을 때엔 혼합 결혼이 발생할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보다 고등한 진화 단계의 존재로 태어나기 위한 자연의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Mein Kampf, 나의 투쟁)[20] 라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은 종족에 비해 훨씬 중요한 존재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인종들은 인간이 아니고 차라리 동물이다, 라고 나치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하의 인간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유태 인종은 실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집산주의자(集産主義者: collectivist)와 진화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을 멸종시키는 것은 정당하고 합법적이었다. 독일 정부의 시각으로는 그들을 사람(persons)으로 보지 않았다.”[34]
결과적으로, 다윈주의 운동세력은 '19세기-20세기 독일 지성사(知性史)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다, [그리고] 국가사회주의 [나치즘] 이론을 여는 서막으로 이해되었다.[35] 진화론이 세계 어느 지역에서 보다 독일에서 급속히 적용되어 공고하게 뿌리를 내렸던 이유는 왜일까?
독일의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된 진화론
슈로이네스(Schleunes)는, 1895년에 출판된 다윈의 저서가 독일의 유태인 정책에 끼친 영향은 즉각적이고도 충격적이었다, 라고 하고, 그는 비교적 신랄하게 그 이유를 이렇게 지적했다:
”최근에 와서 과학적으로 적법성이 인정된 생존경쟁에 대한 다윈의 철학은 우등한 사람이나 국가가 열등한 사람이나 국가에 대해 인종차별주의적 개념을 표방하는 것을 정당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에 발생하는 투쟁을 당연시했다,”[36]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다윈을 대변하던 독일의 탁월한 과학자, 헥켈(Haeckel) 교수의 저서들이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자신들이 표방하는 인종차별관이 정당함을 강력히 간증해준다고 확신했다.[37] 헥켈의 지지에서 얻는 효과의 경우에서처럼, 기성 과학계의 지지는 인종차별주의 사상이 보다 광범하게 파급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그런 결과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인종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실질적으로는 과학적 진리의 표현이다”[36] 라는 데 크게 만족했다.
그런데, 그들의 인종관념에 대한 지지는 과학의 권위말고 어디서 그 이상의 권위를 구할 수 있겠는가? 가장 탁월한 동물-행동 과학자의 한 사람이었고, 또 그의 연구 분야의 창시자로 간주되던 콘라드 로렌즈(Konrad Lorenz)는:
”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종문제에 대한 최선의 치료 방법은 기생체(寄生體)의 성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근절시키는 방법이다. 사회 내에서 감염된 부차집단(副次集團:subpopulation)의 열생학(劣生學: dysgenic)적 영향에 대항하는 우생학적 사회집단의 방어수단은 기생체 제거를 위한 과감한 조치야말로 최소한의 필요한계다. ... [건강한] 사회집단이 이 열등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했을 때에는 악성종양 세포가 인체 전부위로 확산하도록 내버려두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열등 요소들은 자체뿐만 아니라 숙주체(宿主體)까지 파괴해 버린다.”[38]라고 진술했다.
로렌즈의 저서는 열등인종들의 ”기생적 성장”을 근절시키기 위해 설계된 나치의 계획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게르만 종족(German Volk)'의 종족적 우수성 유지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계획들은 인종차별주의를 거의 난공불락으로 만들었다. 비록 왕(King)은 ”유태인 대학살(holocaust)은 과학적 유전학적 근거에 준한 것처럼 위장한다....” 라고 말하였지만[39], 정부와 대학교의 엘리트들의 입장은 이미 단단히 확립되어 있어서 동시대의 과학자들은 정부의 인종정책에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할 입장에 있지 못했던 것이다. 유태인 대학살(holocaust)에 대한 일부의 책임이 독일 국민의 반-셈족적인 태도에 돌릴 수는 있다 그것도, 다윈 사상이 기존의 독일 국민의 태도에 보태어졌을 때에 가서야, 그들의 반-셈족적인 태도가 그 효력을 치사량까지 높아지는 시너지 효과를 들어내는 결과를 보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우생학은 더욱 더 극단으로 흘렀다.
우생학 계획의 제 1단계는 어느 집단이 유전적으로 우등한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크게 보아 종족별 문화수준을 판단척도로 삼는 기준이었다. 우등 선별평가에 필요한 이상적인 특징들은 이러했다: 즉,
” ... 인종 이론가 한스 귄터(Hans F.K. G nther)가 묘사한 우등한 인간의 외양적 특징들을 살펴보면; '금발, 장신, 긴 두개골, 좁은 안면, 강조된 턱, 좁고 높은 콧날, 부드러운 모발, 엷은 파란색 눈, 큰 눈망울, 희고 분홍빛 피부색깔 이런 것들이다.”[40]
피상적인 관찰만으로 인종을 광의의 차등으로 분류하는 일은 아무한테나 가능한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심도있는 탐구를 하고 보면, 인종별 등급을 매기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실제로 나치가 그것을 인식하기까지엔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열등하다고 치부해버렸던 집단들 가운데 많은 소집단들, 예컨대 슬로바키아인(Slovaks), 집시인(Gypsies), 그리고 몇몇 다른 인종들은 순수 아리안(Aryan) 인종과 쉽게 구별되지 않았다. 나치가 분류 대상자들을 '최고등' 인종으로 구분할 때, 대상자의 두개골의 크기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육체적 특징들을 측정했다. 나치들은 제나(Jena) 대학교의 인종과학 교수 한스 귄터(Hans F.K. G nther)의 이론에 크게 의존했다. 당시 비록 귄터는 ”나치당과 개인적으로는 격렬하게 논쟁하는 관계에 있었지만, 그의 인종 개념들은 나치당에 의해 수용되고 있었다. ...” 사실, 그의 인종 개념들은 독일 정부안에서 광범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독일의 인종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41] 귄터는 ”하나의 인종이 비록 순수하지 못하다고 하여도, 그 구성원들은 해당 인종의 어떤 주도적인 특징들을 골고루 가질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주도적 특징들에 준하여 그 인종의 특징을 정형화(stereotyping)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41]
귄터는, 모든 아리안족(Aryans)의 특징을 북유럽인(Nordic)의 유형이라 하고, 이 유형은 자기 자신이 혼합 인종으로 분류한 유태인의 유형과 대조된다고 결론 내렸다. 귄터는 한 인간의 족보, 두개골의 동물학적 치수 측정, 그리고 육체의 외형의 치수 평가 따위를 종합적으로 사용하여 그 사람의 소속 인종을 결정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인체는 영혼의 쇼 윈도우이며, 영혼은 제 1원리다.”[42] 우등인종에 필요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 극상급(極上級) 여성들을 특별 구역의 주거에 거주하면서 임신하도록 하여 정부 계획이 끝날 때까지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으로 태어난 후손들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그 후손들의 IQ는 열등인종 쪽으로 후퇴하고 있었으며, 대개가 부모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쁜 혈통 이론
나치즘에 미친 다윈의 영향은 비단 유태인에 대한 그들의 차별적인 태도에서 뿐만아니고 여타의 문화와 인종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골고루 드러나고 있다. 나중에는 심지어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나치의 태도에서도 다윈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는 데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다름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즉 정신질환은 유전의 영향이 크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정신병 환자들의 혈관 속에는 유태인의 피나 비-아리안족의 피가 섞여 있을 것이란 믿었다.) 그러기 때문에 나치는 궁극적으로 그들을 말살하여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폴리아코브(Poliakov)는 이렇게 지적하였다. 즉, 1900년대 초기 수년 동안에는 감응유전(感應遺傳: telegony) 이론을 수용한 지식인이 많았다. 이 이론은 '나쁜 피'가 한 인종의 혈통을 영원히 오염한다. 그것은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쁜 피가 좋은 피를 몰아낸다”[43] 라는 이론이다. 그것은 오직 멸종만이 열성(劣性) 유전인자의 혈통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며, 그리 되면 진화도 한층 더 진전 될 것이라는 이론이었다.
다윈은 열성 혈통 사례들을 담은 긴 목록을 작성하였다. 그 사례 목록에서 그는 나쁜 피가 전체 유전인자의 혈통을 오염시켜서 영원히 불순한 피를 가진 후손을 출산하게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뮨헨(Munich)대학교의 언스트 류딘(Ernst Ruedin)을 포함하여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프랜시스 갤튼(Francis Galton), 그리고 나중에 예일(Yale) 대학교에서 정신병학 교수가 된 유진 칸(Eugene Kahn)과 같은 존경받던 수많은 생물학자들이 이 유전학적 주장에 찬성하였다. 이 과학자들이야말로 독일의 강제적 거세법의 주된 입안자들이었다. 이 법안은 아리안의 유전자 풀(pool)을 결함이 있는 '열성' 인자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설계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가서, '열성인자'는 또한 '무용지물'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대량학살을 정당화했다. 열등집단으로 판단하는 기준의 범위가 점차로 확대되어, 마침내 보다 다양한 인종들과 민족 집단들한테까지 적용되었다. 나중에는 그 기준은 건강이 좋지 못한 노인, 간질병 환자, 증세의 경중의 구별없이 정신지체자, 청각 또는 시각의 결손 환자, 그리고 심지어 어떤 정기적으로 병중에 있는 자, 이런 부류들한테까지 적용되었다.[1,44]
'열등'에 대한 판단기준이 나중에는 흑인계나 몽고계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나, 집시들, 그리고 솜씨 있게 설계된 뻔뻔스러운 인종학적 골상학 실험 기준(지금은 쓸데없는 것으로 알려짐)[45]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한테까지 적용되었다.[44] 제스 오웬(Jesse Owen)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경기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자, 히틀러는 흑인을 올림픽 경기에 참가시킨 것을 트집 잡아 미국을 혼내준 적도 있었다.[46]
어떤 진화론 학자들은 심지어 여성들이 남성들과 비교하여 진화론적으로 열등하다는 견해를 옹호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나중에 캘리포니아(California)에서 유명한 신경학(neurology) 교수가 된 로버트 바르텐버그 (Robert Wartenberg) 박사는 여성들은 '남성의 보호'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여성의 열등을 증명하려 노력하였다. 이어서 그는, 남성의 보호가 원인이 되어 약한 여성들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화의 속도가 훨씬 더디게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로 여성에 대한 자연 선택이 남성에 대한 그것보다 덜 작용하였다고 주장했다. 약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어떻게 '선택' 하는가 하는 측면에 대해서 그는 명확한 해설이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약자'를 결정하는 기준 또한 없었다. 나치 독일에서 여성들은 일부 업종에의 취업이 공공연히 제지받았다,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만 맞춰서 취업하여야한다는 것이 법으로 요구되었던 것이다.[47]
나치 독일 내에서의 진화론, 그리고 전쟁
다윈 사상은 독일 사람들로 하여금 최근세에 들어 독일이 치렀던 군사행동에서 얻었던 경험에서 나름으로 뜻 있는 해석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장차 독일의 공격적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필요한 빌미를 제공하였다: ”비스마르크(Bismakian)의 전쟁들에서 거두었던 독일의 군사적 성공은 다윈 이론이 표방하는 생존경쟁의 범주들 속에 깨끗이 합치되어 ..." 독일이 적자임을 [천명하고 있다].[48] 전쟁은 '약한' 인종들을 제거한다는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우등' 인종 내에 있는 약한 구성분자들도 제거한다는 이유 때문에 긍정적인 힘으로 인정되었다. 히틀러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대담하게 우등인종을 출산하려고 기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공공연하게 인종의 멸종정책과 전쟁정책을 수립할 때 크게 다윈의 사상에 의지하였다.[25] 부분적으로나마 이래서 나치 독일은 공개적으로 전쟁을 찬양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이야말로 고등한 인종으로부터 부적합한 인종을 제거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전쟁은 '인종의 등급을 한층 높이는' 데 필요한 단계라고 하였다. 클라크는 Mein Kampf 를 집중적으로 인용하면서 히틀러의 말을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에 대한 히틀러의 태도와 전쟁과 평화에 대한 그의 태도는 동일한 원칙에 근거하고 있었다. ”세계 법정은 ... 하나의 농담에 불과할 것이다 ... 자연의 세계 전체가 강자와 약자간에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투쟁의 격투장이다 약자에 대한 강자의 영원한 승리만이 지배하는 세계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전체 자연 안에는 부패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 살고자하는 사람은 싸워야만 한다. 끝없는 투쟁이 삶의 법칙인 이 세상에서 싸우기를 원치 않는 자는 생존할 권리가 없다.” 이와 다른 생각은 자연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런 모욕에 대해서 자연은 고통, 비참, 그리고 질병이라는 응분의 보복으로 대답할 것이다.”[49]
히틀러는, 독일 사람의 위대성은 주로 그들이 주전론자였기 때문에 여러 세기에 걸쳐 약한 구성원들을 제거해 버린 결과로 생겼다, 라고 주장하였다.[50] 독일 사람들한테 전쟁이 생소한 것이 아니었지만, 히틀러의 전쟁 정당론은 그들의 전쟁정책에 강력한 지지를 보태주었다. 약한 인종들을 멸종시키는 과업이야말로 진화의 주된 동력이라는 관념은 위감(Wiggam)에 의해 잘 표현되고 있다:
” ... 한 때에는 인간이 동물학적으로 사촌간인 유인원보다 양적으로 더 큰 뇌장(腦漿)을 가지지 못했었다. 그러나 발길질과 물어뜯기, 그리고 싸움으로 ... 그리고 적의 의표 찌르기로 사람은 적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이런 감각과 힘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적들은 도태되어버렸다. 더욱이, 인간의 뇌장은 커졌다. 그리고 신체 구조는 아닐지언정 인간의 지혜와 민첩성만은 증대했다. ...”[51]
다시 말해서, 오직 목숨을 담보한 투쟁을 통해서만 인간은 진화하기 때문에, 전쟁은 결국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은 끝없는 전쟁이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화두가 모순된 것 같지만 사실은 진리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대의 많은 과학자들은 공공연히 그의 전쟁관념을 옹호하고 나섰다 : 헥켈은 특히 고대의 스파르타 인을 즐겨 칭송하였다. 그는 스파르타 인이 성공적인 우등인종이 된 데는 생물학적 선택을 사회발전에 승인 적용하였던 결과라고 했다. '완벽하게 건강하고 강인한 아이들'을 제외하고 여타의 아이들을 도태시킴으로써 스파르타 인들은 '지속적으로 뛰어난 힘과 활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52] 기형아와 병약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이 오히려 ”공동체는 물론 살해된 아이들한테도 고루 유익한 정책이었던” 만큼 독일도 스파르타 인들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 모든 인생의 가치는 평등하며, 또한 모든 생명은 보전되어야한다는 명제는 도저히 과학적으로 진실임을 증명할 수 없는 '전통적 교의'에 불과할 뿐이다.[18,53]
그러나 유럽의 문명이 여타의 문명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진화한 데는 다른 민족들과 두드러지게 대조되게 끝없이 계속되던 전쟁도발이 주된 원인이라는 가정은 거짓이다. 풍족한 식량이 보장되는 조그만 도서의 집합인 군도(群島) 내에 사는 사람들이거나, 또는 혹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전쟁은 실질적으로 모든 인류한테 전통적으로 수행되어 왔던 것이다.[54] 아시아 대륙에서나 북미 대륙에서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수많은 부족들은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전쟁에 휘말려 왔다.
나치즘과 종교
독일 내에서 우생학 운동에 반대한 사람들 대다수는 기독교도들이었다. 히틀러는 비록 세례 받은 카톨릭 교도였지만, 그는 결코 파문을 당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젊은 시절 한 때에는 자신을 '독실한 로마 카톨릭 신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게 확실하다. 실제로 그는 때로는 종교적인 언사를 구사하기도 했다. 성인이 된 이후 그는 공공연히 강력한 반-기독교적 감정을 목청껏 외쳐댔다. 아마도 대부분의 나치 당 지도자들도 반-기독교적 감정에 있어서는 그와 같았던 것 같다. 일견 한 사람의 완숙한 정치인이 된 후부터 히틀러는 공공연하게 교회를 악용하려 하였다.[55] 히틀러는 기독교에 대한 자기 태도를 드러내면서, 노골적으로 이렇게 진술한 적이 있다:
”(종교는) ... 조직적인 거짓말이야, [그것을] 반듯이 박살내야 한다. 국가(the State)야말로 절대적 주인이 되어있어야 한다. 젊었을 때, 나는 종교를 파괴하기 위해 떨쳐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그 때 이후로, 나는 그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고 조금은 야릇한 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성 베드로의 의자(St. Perter's Chair)에 앉아있는 마지막 고위직 성직자는 어느 노쇠한 사제(司祭)인 게 틀림이 없다. 몇 명의 늙은 독부(毒婦)들이 그 사제와 마주보고 있다. ... 젊고 건강한 여자들은 우리 편에 있다. ... 인간성을 속박과 거짓말로 영원히 묶어둘 수는 없는 것이다. ... 기독교가 우리 국민들 위에 군림하였던 것은 오직 6세기에서 7세기에 걸치는 기간이었을 뿐이다. ... 우리 국민들은 예전에는 종교 없이도 온전히 살아오는데 성공했었다. 나는 지금 6개 사단의 SS (Schutzstaffel: 나치 친위대) 병력을 소유한다. 그들은 종교 문제 따위엔 절대적으로 무관심하다. 그들이 죽으러 떠날 때 종교 없이도 영혼의 평안함을 느끼고 있다.”[56]
여기 인용된 그의 말속에는 넘치도록 많은 그의 신념들이 그 진면목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독일의 희망인 청년들은 ”종교 문제에는 절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케이스(Keith)도 지적한바 있듯이, 나치당의 이념은 기독교 교리와 한 축의 양극과 같다고 생각했다. 밀너(Milner)는 독일 진화론의 아버지인 언스트 헥켈(Ernst Haeckel)에 대해서 말할 때, 헥켈이 자기 저서 창조론에 대한 자연사(Natural History of Creation)에서 ”사랑과 자비의 교회는 하나의 쇠잔한 사기꾼이 되어, 자연 질서를 왜곡한다.”[57] 라는 말을 지목했다. 헥켈이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주된 이유 중 한 가지를 보자. 그가 말하기를, 기독교는:
” ... 인종간의 차이나 피부색에 대해서는 전혀 차별을 두지 않는다. 즉, 기독교는 모든 인종간에 존재하는 장벽들을 허물어 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손은 자연의 여신의 손에 반대 입장에 있다. 그것은 인종들이란 바로 자연의 여신의 손이 긴 긴 세월 애써 만들어낸 진화의 수확물이란 걸 망각한데서 오는 태도다..., 안 그런가? 그럴진댄, 기독교는 그 목적하는 바가 반-진화론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58]
독일 과학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종교에 반대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독일 정치계의 이론도 애초부터 종교에 반대하게 되었다. 스타인(Stein)은 진화론에 대하여: 다윈의 이론,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실시한 어느 강의에서 헥켈(Haeckel)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 ... [헥켈]은, 다윈이 옳았다. ... 인류가 동물의 왕국에서 진화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그리고 여기서부터 헥켈은 독일에서 풍미(風靡)하던 다윈 이념에 대한 대대적인 해설을 버리려고 운명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그에 의하면, 인류의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생존은 진화의 법칙, 자연의 선택, 그리고 생물학적 현상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다윈도 이를 명백히 예시한 바 있다. 이 해설을 반박하는 이론은 낙후한 자들의 미신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미신이란 것은 당연히 조직적인 종교를 지목하는 말이다, 그래서 종교는 과학과 사회의 발달에 걸림돌이 된다.”[59] 라고 하였다.
여러 해 동안 히틀러의 최측근으로서 나치 독일에서 가장 세력있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마르틴 보르만(Martin Bormann)은 히틀러 못지 않게 직설적이었다. 그는, 교회는 진화에 반대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이 이유만으로도 교회는 유죄선고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나치는 과학과 진화의 편에 섰다. 더욱이 나치와 기독교 이념은 양립할 수 없다. 그는 이렇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즉, 기독교는:
” ... 어리석은 사람들 위에 서 있으며, 대다수 국민을 무지몽매한 상태로 묶어두려 한다. ... 이에 반해서,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는 과학적인 기초 위에 근거하고 있다. 최근 2000년 전에 설정된 기독교의 불변의 원리라는 것은 점차로 경직되어 마침내 생명력을 잃은 도그마로 변했다. 그러나 국가사회주의는 소명된 과업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반듯이 과학적인 연구조사에서 비롯되는 최신 데이터에 따라 스스로의 진로를 결정한다.”[60]
보만(Bormann)은 이어서 주장하기를:
” 오래 전부터 기독교 교회는... 과학 지식이 교회의 생존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인식하였다. 교회는 신학이라는 의장과학(擬裝科學)을 이용하여, 과학적인 연구조사를 억압하고 또 왜곡하려고 상당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우리 국가사회주의의 세계관은 기독교의 교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있다. 기독교 교리는 근본적으로 유태교 교리에서 온 것이다. 또한 이 이유 만으로서도, 우리는 기독교 없이 잘 해나갈 수 있다.”[60]
훔버(Humber)는 히틀러가 흑인종을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에 있는 기형동물(奇形動物: monstronsities)로 보았기 때문에 독일 기독교도들이 다음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교회가 '중앙아프리카'로 가서 '니그로 선교단'을 설립하겠다는데 난색을 보였다. 그는 그 선교활동이 결국에는 "건강한 사람을 허약한 호로(胡虜) 자식으로 변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하였다. "강자는 반드시 지배자로 남아있어야지, 약자와 피를 나누어 자신의 위대성을 결단코 희생시키지 말아야한다. 오직 약자로 태어난 자만이 내 말을 잔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한계에 묶인 약자일 따름인 데야 어쩌겠는가! 그것은, 만약에 이 법칙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유기적 생명체의 괄목할만한 상향발전(Hoherntwicklung:上向發展)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쪽 뒤에, 그는 다시 이어서, "살기를 원하는 자는 싸워야만 한다. 이 영원한 투쟁의 세계에서 싸우기를 원치 않는 자는 살 가치가 없다.”[61]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에 인종 해독(害毒)의 이론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창조론적 역사관이 광범하게 수용되었다면, 독일의 인종차별주의는 존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기술한 참고 문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성경적 이론들 중의 한 이론에 의하면, 창세기는 원래 '두 유형의 사람'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즉, 아담(Adam)과 하와(Eve), 우등 인종 혈통과 '지구의 야수들', 즉 열등 흑인 혈통이 그런 유형이라는 것이다.[62,63] 그러나, 이따위 성경 해석을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윈 사상과 나치 사상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과학적 연구 재료는 상대적으로 근소(僅少)한 편이다 진화는 피할 수 없이 선택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많은 진화론 학자들은 이 주제를 기피한다. 다윈 사상과 나치 사상을 다룬 최고의 해설들 중의 한 해설에 의하면, 나치는 열등인종에 대한 멸종계획이 진화론이라는 과학에 굳건히 근거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64] 최근에 수많은 대중 매체들이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정직한 논조로 이 화두를 다루었다.[65] 극악한 나치 사상의 원천은 다윈 사상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극악한 나치즘의 재발을 막기 위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이 이념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라고 하고 히틀러의 말을 알기 쉽게 바꿔 해설했다; 즉,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한 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66] 진화론을 받아드리지 않는 비-진화론(non-evolution) 이론을 신봉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조차 인종차별주의(racism)를 수용하거나 심지어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또 그들이 개발한 이론이란 것도 주로 사회의 편견에 호응하든가 아니면 기존 사회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 우리들의 현대적 시각으로 조망하고, 많은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과 그 결과는 한 사람의 사악한 광인과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또한 사악한 그의 정부가 표방하던 이념이 계속적으로 야기하였던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그렇지만, 히틀러는 자신을 악인으로 보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자신을 인간에 대한 시혜자로 생각했다. 그는, 미래의 세계는 많은 세월이 흘러간 후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인종 계획 열등 인종들과의 잡혼을 금지하여 인종오염을 중단시킨 결과로 인종의 유전인자를 고수준의 진화단계에 끌어올린 계획 을 더없이 고맙게 생각할 것이라고 자만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그 어떤 이념보다도 19세기의 사회적 다윈주의 학파의 이론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인간을 생물학적 물질로 보았던 이 학파의 인간관은 결국 계획 사회를 지향하는 충동에 묶이게 하였던 것이다. 히틀러는, 분방한 자유주의에 물든 무차별 잡혼(雜婚)으로 비롯된 그릇된 생식(生殖)은 한 나라의 혈통을 더럽혀서 그 인종을 붕괴시키어 마침내 열등한 인종으로 타락시킨다고 확신하였다. 이 생각은 결국 '양성(positive)' 치유가능 기준을 표시하는 카탈로그를 작성하게 하였다: 즉, 결혼 상대를 인종적, 위생법적, 우생학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선택하게 함으로써, 한 편으로는 선택의 방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적출(摘出)의 방법으로 인간의 생식을 도모하게 하였던 것이다.”[67]
그의 옹호자들은 거듭거듭 이렇게 변명하였다. 즉, 열등 인종들을 강제수용소 안에 가두려 하였던 히틀러의 노력은 그들을 징벌하려는 의도에서보다는 병자들이 집단사회에 끼칠 오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격리수용과 비슷한 안전보호 조치였다, 라고. 실제로 하아스(Haas)의 말에 의하면, 나치가 ”유태인종과 다른 인종을 죽였던 것은 객관적으로 보다 큰 선(善)을 위한 하나의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방법이었다”[68] 라는 것이다. 또한, 아우스비츠(Auschwitz)의 사령관 루돌프 헤쓰(Rudolf Hoess)는 이어서, ”최근의 과학적인 견해가 합법화하였던 투쟁은 우등한 국민과 국가 대 열등한 국민과 국가 간에 개재하는 인종학적 차별개념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또 그들 간의 투쟁을 비준하고 있다”[69] 라고 말했다. 그런데 독일 안에서도 다윈 사상의 해악을 인정한 사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프러시아(Prussian)의 교육부 장관 노르덴스키욀드(Nordenski ld)는, 비록 한 때나마 1875년에, 다윈의 가르침을 학교에서 금지시켰던 적이 있었다.
”... 프러시아의 교육부 장관은 나라의 각급 교장들한테 공문을 회송하고 다윈 이념과 그에 관계되는 일체의 자료의 취급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 이 새로운 이론의 위해성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자는 생각에서 그랬다.”[70]
여기서 하나의 흥미 있는 질문이 제기 된다. 즉, 만약 이 금지 조치가 계속 효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holocaust)이 과연 발생할 수 있었을까? 헤겔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찬반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에게 큰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은:
”자유사상가들이었다. ...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였던 학교 규정과 같은 조치가 각급 학교에서 채택되자,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친구들은 많고 많은 헤겔의 망상(妄想)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 때 그들의 열기가 어떠했었는지를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 더욱이 헤겔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열기 또한 이에 못지 않았다; 다윈 이념을 학교에서 금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의 사상과 그 방법론은 모든 분야에 침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에 한한 한 헤겔은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크게 기여하였던 사람이다; 그의 발언 중에서 가치 있는 개념들은 영원한 것이 되었으나, 한편 우리는 그가 저지른 서툰 짓들을 마땅히 그런 것이라고 제쳐놓고 말았다.”[70]
헤켈이 부덕하고 못된 협잡꾼으로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발생하였던 소름끼치는 사건들에서 결코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것이 인정된 이상, 오늘날 어느 생물학자가 위의 글을 써야할 입장이라면 이 글을 마땅히 그런 것이라고 하고 삭제하고 말 것이다.
대중매체들(mass media)은 Holocasut에 끼친 다윈 사상의 영향에 대한 훌륭한 문집을 그냥 경시해 버린다. 오늘날의 저술가들은 다윈 사상과 나치의 인종 이론과의 밀접한 연계관계, 그리고 그것이 자아내었던 나치의 여러 정책들에 관한 자신들의 포괄적 무지를 용케 둘러대던가, 아니면 심지어 왜곡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스타인(Stein)은 이렇게 훈계하고 있다:
”민족중심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외국인 혐오증의 역사는 그들이 사용한 과학과 이런 이념들을 사회운동에 적용하는 운동의 역사였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과학은 단지 원료처럼 사용되든가, 아니면 이념 지향적인 정치 배우들이 지닌 선입관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 이용되었던 것이 명백하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회생물학자들과 생물정치학 학도들은 이런 방법으로 과학을 이용하려하는 모든 기도(企圖)는 단지 의사과학(pseudoscience: 擬似科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71]
그는 이어서 말하기를, 이와 같은 오늘날의 자기방어적인 태도는:
”... 어쩐지 좀 고의적인 역사 왜곡에 근거하고 있다. 민족중심주의와 그 유사 이념들의 역사는 인종주의적이며 배타주의적인 정치사회학의 이론을 과학의 이름으로 진전시키고 또 지지하기 위하여 과학자의 권위를 이용하는데 열심히 참여하였던 당시의 수많은 존경받던 과학자들의 활동의 역사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당시의 과학자들이 다만 인종차별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하여 당시의 과학을 이용하였다, 라고만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쿠니안(Khunian)식 건망증의 한 행태에 지나지 않든가, 또는 과거의 과학오용(誤用)은 의사과학이라고 단순히 치부해버림으로써 오늘날에 있을 수 있는 과학오용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여 역사적 사건을 말소 시킬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71]
자주 주장된 바와 같이 다윈은 자신의 교양에 합당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훌(Hull)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당시 독일사회가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특징을 들어냈던 데는 다윈의 이론 속에 그런 특징들이 있었다는데 기인한다" 라는 설명을 거듭거듭 듣고 있다. 훌(Hull) 은 다윈이 "자기 사회의 특징을 자연의 소치로 돌릴 만큼 철없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72]
종교적 열성의 위험에 대한 경고성 본보기로 나치주의가 자주 거론되지만, 프란시스 갤튼의 우생학이 위험한 역할을 수행한데 대해서는 아주 드물게 거론된다. 그의 우생학은 그의 사촌, 찰스 다윈이 지지한 자연의 선택 이론에 근거하여 창출된 학문이다. 우생학은 아직도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건재하다. 1955년에 캐나다의 어느 동물학자가 지적하기를, ”아마도 우리가 감과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다윈]이 교회가 행사하던 공권박탈의 막중한 규준(規準)으로부터 인간을 최종적으로 해방시키고 여러 세기를 걸쳐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사상의 자유를 인간에게 찾아주었다는 사실일 개연성이 크다.'73 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주장하기를, 사회로부터 교회의 영향력을 줄였든 결과로 우리들은 진화의 원리를 발견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화의 수단을 소유하게 되어 그것을 이용하여 진화 그 자체한테 지시도 하고, 진화 스스로가 진전되게 내버려 두기도 하며, 진화의 방향이 나쁠 때엔 진화의 추진을 역추진 시켜서 진화를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퇴화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라고 하였다.
로완(Rowan)은 사람은 비극적으로 후자를 취했다고 하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선택은 인간의 진보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위대한 다윈 이론의 원리는 남는다....”. 그런 다음 그는 ”사람이 지능을 얻었을 때, 그는 동물의 세계에서 선례가 없었던 전적으로 새로운 길로 떠났다. 이제 그 행로는 더 이상의 육체적 변화가 아니고 지능적 변화와 그에 버금가는 지적 선택에 의존한다.”[74] 라고 부언하였다. 그는 결론적으로, 불행히도 인간들은 지능적으로 열등한 자들을 '구제하고' 있다, 그리고 열등인종의 문제를 생물학적 법칙에 따라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라고 했다.[74] 제 아무리 재치를 부린다고 해도, 이 이론이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는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즉, 진화론자가 부적자로 판단한 자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최소한 우리가 그들을 구제코자 하는 노력은 제한적이어야 하고, 나머지는 자연이 제 소임을 다 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우리는 인류의 궁극적 파멸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 그가 말한 요지이다.
결론
다윈의 진화론의 진실성을 확고부동하게 믿었던 히틀러는 스스로를 인류의 현대적 구원자로 인식했다. 또한 그는 사회가 때가 되면 자기를 위대한 '과학적 사회주의자'로, 그리고 모든 인류의 은인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란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다. 자기야말로 우등한 인종을 생식, 그리고 번식케 함으로써, 인간을 보다 높은 수준의 진화론적 발전에 끌어올린 사람으로 온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다윈의 사상이 진리라면, 히틀러는 우리들의 구원자일 것이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를 십자가에 달리게 한 셈이 될 것이다. 그 결과로 인류는 슬픔을 당할 것이다. 반면에, 만약 다윈의 사상이 진리가 아니라면, 히틀러가 시도하였던 모든 실험은 역사상 가장 잔인무도한 범죄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윈은 가장 파괴적인 철학의 아버지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영슨(Youngson)의 평가에 의하면, 사회에 적용된 다윈의 이론, 즉 우생학은 고금동서를 통해서 가장 비극적인 과학의 실수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이 우생학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측면의 정점에는 순수한 '아리안 족'을 그들 사이에서만 짝을 짓게 하여 '주인되는 인종'을 번식시키려 했던 히틀러의 시도와, 열성인자(劣性因子)를 소유한 인종이라 매도되어 6백만의 생사람을 살해한 히틀러의 시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갤튼(Galton)이 Holocaust의 책임을 히틀러한테 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이 그 계획을 변호한 결과가 어떤 것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지 못하였던 책임까지도 히틀러한테 돌리려하는 것은 전혀 온당치 못한 작태였다. 어쨌거나, 그는 우생학의 주요 창시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히틀러가 갤튼의 우생학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실은 부인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를 고려하면, 우생학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커다란 과학적 실수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75]
*감사의 말. 이 문서의 조기 탈고를 위해 깊은 안식과 강평을 주신 Wayne Frair, John Woodmorappe, 그리고 Paul Humber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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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urch preaches eugenics: a history of church support for Darwinism and eugen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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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winism and the teaching of racism and eugenics in biology text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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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s brothers? Race, science and Genesis before Dar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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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story of the teaching of human female inferiority in Darw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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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win Taught Male Superiorit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1/darwin-taught-male-superiority
Hitler’s ‘master race’ children haunted by their past
http://creation.com/hitlers-master-race-children-haunted-by-their-past
The trial and death of Adolf Eichmann
http://creation.com/the-trial-and-death-of-adolf-eichmann
나치의 범죄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던 진화론
https://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7112918&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3/i2/nazi.asp
출처 - TJ 13(2):101-111, November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