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은 결국 완전한 사람이었다.
: 네안데르탈인의 폐활량은 현생인류보다 더 컸다.
(The Evolution of Neanderthal Man From Evolution Ancestor to Modern Man)
by Jerry Bergman Ph.D.
진화론자들은 100여년이 지난 후에, 결국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Man)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승진시켰다. 이 일은 어떻게 일어났던 것인가?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1829년에 지금은 벨기에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 인간 유형은 뒤셀도르프 인근의 라인강의 지류인 네안데르 강(Neander river)의 이름을 따서, 네안데르탈인으로 명명되었다. 그곳 골짜기에 있던 한 작은 동굴에서 두개골 뚜껑, 갈비뼈, 골반의 일부, 일부 사지 뼈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네안데르탈 (탈(tal)은 계곡을 의미) 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다.[1] 곧 비슷한 유형의 뼈 조각들에 대한 다른 많은 발견들이 이루어졌다.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은 평균적인 유럽인 보다 짧은 다리와 작고 단단한 몸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관찰되었다.[2] 오늘날 과학자들은 이러한 적응은 그들이 살았던 추운 기후에서 열을 보존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가정한다. 당시의 선도적인 해부학자이자 병리학자였던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 1821~1902) 교수는 초기에 발굴됐던 소수의 뼈들로부터 판단하여, 네안데르탈인의 뼈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였지만, 어린 시절의 구루병(rickets)과 이후에 관절염으로 인해 변형됐다고 믿고 있었다.
19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진화론이 과학계를 지배하기 시작하자, 1900년대 초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보편적인 그림은, 그 당시에 만들어진 해부모형과 삽화로 판단할 때, 원시적인 유인원과 같은 짐승이었다. 샤프하우젠(Schaaffhausen) 교수가 제작한 네안데르탈인의 1888년 삽화(삽화 2)는 다른 그림들보다 많이 사람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매우 원숭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삽화1. 벤자민 그루엔버그(Benjamin Gruenberg)의 삽화.(1924. Elementary Biology. Boston: Ginn. p. 493.)
삽화 2. 샤프하우젠 교수의 네안데르탈인 그림. (Wikimedia Commons).
네안데르탈인은 수십 년 동안 자주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원숭이 같은 사람으로, 인간의 진화에서 중요한 진화적 연결고리였다. 네안데르탈인을 유인원으로 주장했던 많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유명한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인류의 시대 전시실에는 네안데르탈인은 크로마뇽인(Cro-Magnon)과 필트다운인(Piltdown) 사이의 진화적 연결고리로 전시되어 있었다. 필트다운인은 추후에 위조된 사기(forgery)였음은 잘 알려져 있다.[3] 더 많은 연구가 완료되면서, 네안데르탈인의 모습은 점차 바뀌었다. 네안데르탈인은 더 이상 짐승같지 않게 되었고, 더 많은 뼈들이 발견되면서, 네안데르탈인은 직립보행을 했으며, 현대인보다 더 곧은 척추를 갖고 있었던, 강인하고 튼튼한 사람이었다는 증거들이 계속 발견되었다. 마침내 충분한 뼈들이 발견되면서, 부분적이 아니라 전체 골격 구조를 조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뼈들에 근육을 입혔고, 피부를 씌워, 신체 전부를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살았던 곳(종종 동굴과 그들이 묻혀있던 장소)에 대한 더 많은 심도 깊은 연구 후에, 그들은 장식품을 사용했으며, 불을 사용했고, 악기를 연주했고, 동굴 벽화를 그렸고, 죽은 자를 매장했으며, 심지어 말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신의 연구
국제 과학자 팀이 보고한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은 한때 생각했던 것처럼, 현대인의 배럴 모양의 흉곽(barrel-shaped ribcage) 보다는, 다소 종 모양의 흉곽(bell-shaped ribcage)으로 깊게 호흡을 했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었다.[5] 따라서 그들은 수십 년 동안 흔히 그려졌던 것처럼 몸을 굽힌 구부정한 자세가 아니라, 현대적인 직립 자세를 취했고, 그들의 횡경막으로 깊게 호흡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북부 이스라엘 동굴에서 발굴된 머리는 없지만, 거의 완벽한 네안데르탈인 골격인, 케바라 2(Kebara 2) 뼈들의 흉곽에 대한 최근 완성된 3D 가상 복원에 의한 것이다.[6]
이스라엘, 스페인, 미국 대학의 과학자들에 의한 이 연구는, ”네안데르탈인은 팔을 늘어뜨리고, 구부정하게 걷는 동굴인”이라는 신화에 마지막 장례를 치르는 발견이었다.[7] ”네안데르탈인 흉부의 크기와 모양은 네안데르탈인이 현대인인지, 아니면 진화적 조상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150년 이상 계속되어온 과학적 논쟁의 주제였다.”[8]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이 연구의 주된 문제점은 다수의 표본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표본에 기초했다는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연구는 제기된 질문에 더 잘 대답하기 위해 반복될 것이다.
현대인의 것과 비교했을 때, 약간 더 큰 늑연골을 포함하여 더 긴 중앙 늑골과 같은, 약간의 작은 차이만이 발견되었다. 이 차이는 아마도 더 큰 용량의 흉강으로 인해 생겨났을 것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네안데르탈인에서 훨씬 덜 뚜렷한 허리 곡선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의 흉곽은 기저부가 넓고, 현대인의 각이 있는 늑골에 비해 수평적 늑골을 갖고 있었다. 또한 척추가 현대인보다 흉곽 내부 깊숙이 붙어있었다.
또한 ”네안데르탈인 척추는 흉곽 더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더 많은 안정성을 제공한다. 또한 흉곽은 하부 쪽에서 더 넓다. 이러한 모양의 흉곽 형태는 더 큰 횡격막을 의미하며, 따라서 폐의 용량이 더 컸음을 의미한다.” 이 큰 흉곽 부피는 더 많은 산소 섭취를 요구함에 기인할 수 있으며, 이것은 커다란 몸체를 가졌으며, 그들이 살았던 매우 추운 기후에서 활동적인 사냥과 채집생활을 했음을 의미할 수 있다.[9]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오늘날의 현대인들 보다 더 큰 폐 용량과, 더 곧은 척추의 직립 자세를 가졌다는 것이다. National Geographic 표지 기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오늘날의 우리와 동일했던 완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References
[1] Trinkaus, Erik and Pat Shipman. The Neanderthals: Changing Image of Mankind. New York: Knopf. and Shackley, Myra. 1980. Neanderthal Man. Archon Books.
[2] Asier Gómez-Olivencia et al., 2018. 3D virtual reconstruction of the Kebara. Nature Communications. 30 October 2018.
[3] Bergman, Jerry Evolution’s Blunders, Frauds and Forgeries. Atlanta, GA: CMI Publishing. 2017. Chapter 11 page 161-188.
[4] Zhang, Sarah. 2018. The Mystery of How Neanderthals Got Fire. The Atlantic, July 2018.
[5] Borschel-Dan, Amanda. 2018. 3-D model of Neanderthal rib cage busts myth of ‘hunched-over cavemen’ The Times of Israel, 9 November 2018.
[6] Asier Gómez-Olivencia et al., 2018. p. 2.
[7] Borschel-Dan, Amanda.
[8] Asier Gómez-Olivencia et al., 2018. p. 2.
[9] Asier Gómez-Olivencia et al., 2018. p. 2.
[10] Hall, Stephen. The Other Humans: Neanderthals Revealed. National Geographic. October 2008, 214(4):34-59.
*관련기사 : 네안데르탈인, 호모사피엔스보다 '폐활량 컸다' (2018. 11. 17. 이웃집과학자)
http://www.astronomer.rocks/news/articleView.html?idxno=86468
네안데르탈인, 구부정하지 않고 현대 인류보다 더 꼿꼿 (2018. 10. 31.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10/31/0200000000AKR20181031082900009.HTML?input=1195m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8/12/evolution-neanderthal-man-evolution-ancestor-modern-man/
출처 - CEH, 2018. 12. 19.
원숭이-인간 진화는 신화이다.
(The myth of ape-to-human evolution
Being popular doesn’t make an idea scientifically plausible)
Peter Line
대중들은 침팬지와 같은 원숭이를 닮은 조상으로부터 사람이 진화했다는 증거들이 압도적일 것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이러한 주장은 자주 선도적인 진화론자에 의해서 매우 과장된, 협박적인 용어와 함께 말해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 박물관에는 인간 진화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뒷받침하는 수만 개의 호미니드(hominid, ape-men) 화석들이 있다. 이들 방대한 증거로부터 나타난 패턴은 수천 건의 연구들과 일관되게 나타난다. 단 한 번의 즉각적인 인간 창조론을 포함하여 모든 모델들, 모든 신화들은 이러한 증거들에 직면하여 실패한다.”[1]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자세히 분석해보기 시작하면,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원숭이-인간 사이의 전이형태라는, ‘호미니드' 범주로 주장되는 화석들 대부분은 진화론 전문가들조차도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들이다. 예로 :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ines, 루시(Lucy) 류) : 이 멸종된 영장류는 해부학적으로 원숭이와 사람 사이의 중간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저명한 진화론자들이 있다.
네안데르탈인(Neandertals) : 이제 대부분의 진화 고인류학자들도 네안데르탈인은 완전한 (해부학적으로 더 건장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와 하이델베르크인(Homo heidelbergensis) : 일부 진화론자들은 그들을 '초기' 또는 '고대'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하고 있다. 그들은 네안데르탈인과 마찬가지로 건장한 해부학적 몸체를 갖고 있었다. 이들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믿을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2]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 진화론자들은 일반적으로 호모 하빌리스 표본들을 호미니드(hominids, ape-men)로 간주하지만, 이 종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 종은 호모 에렉투스와 비슷한 일부를 제외하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또는 다른 멸종된 원숭이 그룹으로 분류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2] 진화론자들은 그것들을 여전히 호미니드라고 말하지만, 몇몇 선도적 진화론자들은 호모 하빌리스 표본들의 대부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으로 재배치되어야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므로 호모 하빌리스는 잘못된 범주이다. '쓰레기통', '쓰레기봉지', '휴지통'과 같은 용어들이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그것을 기술하는 데에 사용되어왔다.
앞의 인용문에서 인상적으로 들리는 많은 수의 화석들을 모두 제거하라. 그러면 단지 극히 소수의 표본만 남게 된다. 그 중에는 최근에 발견된 호모 플로렌시엔시스(Homo florensiensis, 일명 '호빗') 표본이 있다. 이것도 선도적인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특징으로 인해서, 선천적 요오드 결핍증이나 크레틴병(cretinism)에 의해 변형된 사람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잡지는 크레틴병은 더욱 최근에 발견된 호모 나레디(Homo naledi) 화석의 수수께끼(진화론자들에게) 같은 특징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증거를 강조하고 있었다.[3]
인간의 진화는 가능하기나 한가?
그러나 어쨌든 '유인원(ape-men)'이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실제적인 생물학적 이유들이 있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소위 '대기시간 문제(waiting time problem)'이다. 누구도 원숭이 같은 생물(침팬지와 사람의 추정되는 공통조상)로부터 사람으로 변형되는데 필요한 모든 해부학적 변화들에는, 수백만 개의 DNA 돌연변이가 일어났어야한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침팬지와 사람 사이에는 수백만 개의 뉴클레오티드(DNA 철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화론적 시간 틀로, 이것이 6~7백만 년 동안 내에 일어났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러한 특별한 돌연변이들이 소위 '호미닌(hominin)' 개체군 내에서 발생하여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이다.[4]
예를 들어, 하나의 점돌연변이(point mutation, 한 철자의 변경)가 고정(확립) 될지라도, 대기 시간은 최소 150만 년이다.[4] 동시에 선택될 수 있는 뉴클레오티드의 수는 다른 뉴클레오티드의 선택을 방해하기 때문에(선택 간섭이라 불려짐), 6백만 년 동안 기껏해야 1,000건 정도의 유익한 돌연변이가 고정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상한인 7백만 년을 사용해도 실제적인 차이는 없다.)[5]
그러나 이것도 원숭이를 사람으로 전환시키는데 필요한 유전정보의 단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존 샌포드(John Sanford) 박사에 따르면, 이러한 돌연변이도 독립적이고 서로 연결되지 않은 돌연변이들이라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 ”1,000개의 특정 돌연변이 및 인접 돌연변이(1,000개의 철자를 만들 수 있는)들에 대한 자연선택은 600만 년 내에 발생될 수 없다. 왜냐하면 특별한 염기서열에 인접한 돌연변이들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수조 년 후에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6]
침팬지와 사람 사이의 유전체(genome, DNA) 차이가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1% 정도로 작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약 3천만 개의 뉴클레오티드 차이가 난다. 따라서 호미니드 진화 라인에서 약 1천5백만 개의 뉴클레오티드 변화가 일어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약 6백만 년 전에 ”마지막 공통조상”으로부터 침팬지 계통과 사람 계통으로 각각 진화한 후에 난 차이가 3천만 개의 차이임으로). (오늘날 사람과 침팬지 사이의 DNA 차이는 이전에 7500만 개의 두 배인, 1억5천만 개가 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 많은 장애물들
간단히 말해, 침팬지와 사람 사이에 1% 차이가 난다는 잘못된 생각에도 불구하고, 이용 가능한 시간 내에 돌연변이들로 그러한 변환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침팬지-인간 사이의 유전체 차이는 1%가 아니라, 적어도 5% 이상이 다르다. 따라서 진화론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다.[7]
따라서 진화가 넘어야하는 장애물들은 훨씬 더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제 진화론이 상상하는 공통조상 이후로 약 7천5백만 개의 뉴클레오티드의 변화가 일어나야한다!
이 문제에 더하여, 진화론의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는데, 사람 유전체는 ”돌연변이적 멜트다운(mutational meltdown)”으로 인해 하향적으로 쇠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전자에 돌연변이들이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유전체는 한 세대 당 100개의 돌연변이들이 추가되고 있다. 자연선택은 이 돌연변이들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다.[8]
또한 진화론을 더욱 악화시키는 상황은, 유전체에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정크 DNA(junk DNA, 쓰레기 DNA)의 양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DNA에서 기능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의 비율이 약 3%에서 이제는 80%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돌연변이들이 중립적이 아니라, 해로울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9]
증가하는 근심
따라서 진화론은 유인원에서 사람으로 전환되는 데에 필요한 유전정보의 도착을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유전정보가 수백만 년 동안 어떻게 보존될 수 있었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은 일부 진화론자들에게 경고를 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댄 그라우(Dan Graur)는 인간 개체군이 유지될 수 있기 위해서(유해한 돌연변이의 영향을 부정하기 위해서), 사람 유전체의 기능적인 부분이 25% 이하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10]
그러나 유명한 엔코드 프로젝트(ENCODE project)의 결과에 의하면, DNA의 적어도 80%가 기능적이라는 것이다.[10] 따라서 사람은 멸종됐어야 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번식률이 너무 낮아, 해로운 돌연변이의 양을 보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멸절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다음 중에 하나이다 :
1. 엔코드 프로젝트의 평가가 완전히 잘못되었거나(매우 가능성이 낮거나), 또는
2. 주장되는 '호미닌'(hominins, 현대형 인간을 포함하여)은 진화론자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수백만 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원숭이-인간 진화론은 완전히 거짓이다.
해로운 돌연변이들의 축적 문제는 진화론자들이 기술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비록 유전체(genome)의 10%만이 기능적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호미니드 계통의 멸종”이 유익한 돌연변이가 '호미닌(hominin)' 개체군에서 확립되기 오래 전에 일어났을 것이다.[11]
따라서 진화론은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전환되는 데에 필요한 유전정보의 도착을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유전정보가 수백만 년 동안 어떻게 보존될 수 있었는지도 설명하지도 못한다.
인간 진화론(human evolution) 개념은 원래의 한 쌍의 부부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초 아담”도 없었으며, 불순종에 의한 타락도 없었다. 따라서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에 대한 논리적 이유도 없다.(고린도전서 15:45). 많은 크리스천들이, 심지어 신학대학이나, 기독교교육 기관조차도 이 개념(인간 진화론)을 받아들여야한다고 협박당했고, 실제로 넘어갔다. 생물학적 증거들이 성경적 창조론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특별히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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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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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tics Questions and Answers
References and notes
1. White, T.D., Human evolution: The evidence; in: Brockman, J. (Ed.), Intelligent Thought: Science Versus The Intelligent Design Movement, Vintage Books, New York, pp. 79–80, 2006.
2. See: Line, P., Explaining robust humans, J. Creation 27(3):64–71, 2013; creation.com/explaining-robust-humans. In an upcoming book I have detailed chapters on Homo erectus, Homo heidelbergensis, and Homo habilis.
3. Line, P., Making sense of ‘Homo naledi’, Creation 40(4):36–38, 2018.
4. Sanford, J. et al., The waiting time problem in a model hominin population, Theoretical Biology and Medical Modelling, 12:18, 2015 | doi:10.1186/s12976-015-0016-z.
5. Sanford, J.C., Genetic Entropy, 4th ed., FMS Publications, pp. 137–138, 2014.
6. Sanford, ref. 5, p. 137–138.
7. Buggs, R., How similar are human and chimpanzee genomes? 14 July 2018. richardbuggs.com/index.php/2018/07/14/how-similar-are-human-and-chimpanzee-genomes/#more-265.
8. Sanford, ref. 5, pp. 44–49, 85, 127, 131.
9. Sanford, ref. 5, pp. 21–22, 184.
10. Graur, D., An upper limit on the functional fraction of the human genome, Genome Biol. Evol. 9(7):1880–1885 | doi:10.1093/gbe/evx121, 2017.
11. Rupe, C. and Sanford, J., Contested Bones, FMS Publications, pp. 292–295, 201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ation.com/ape-to-human-evolution
출처 - Creation 41(1):44–46—January 2019.
놀라운 기능의 피부에 감사하라.
(Be Thankful for Skin)
David F. Coppedge
사람의 피부(human skin)는 신체의 가장 큰 기관이며 보호, 감각, 체온조절, 분비, 기타 기능들이 탑재되어 있다.
Nature 지는 이번 주에 피부에 관한 몇 가지 특별 기사들을 게재했다. 한 논문은 그것을 특별한 세포 층들의 복잡한 정렬로 이루어진 ”초능력의 피부”라고 부르고 있었다. Science Daily(2018. 9. 20) 지는 ”우리는 수천의 다양한 미생물들과 수많은 화학물질들에 의해 폭격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피부는 이러한 공격에 대한 1차 방어선이라는 것이다. 일련의 논문들이 말하고 있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피부 (Nature. 2018. 11. 21). 간단한 단어로 그 주제를 소개하고 있다. ”다기능적 장기로서, 피부는 감각기능뿐만 아니라, 감염 및 환경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짧은 기사는 계속된다,
신체의 가장 큰 기관으로서 피부는 감염과 손상에 대해 최전선이 있는 1차적 방어선이다. 또한 피부는 체온 조절과 비타민 생산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그리고 피부의 감각 기능은 우리가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것을 돕는다.
초능력의 피부 (Nature. 2018. 11. 21). ”피부는 신체의 가장 큰 기관이며, 여러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고 이 기사는 시작된다. ”물리적 장벽이 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면역 및 감각 기능도 갖고 있다.” 이 기사의 인포그래픽은 교육적이고 흥미로우며, 약 10개의 층들과 여러 형태의 세포들을 묘사하고 있었다. ”피부의 '미생물' 조차도 일종의 보호 역할을 하고 있다 : 일부 미생물들은 피부에 존재하지만 해롭지 않다. 그러나 다른 미생물은 병원성을 가질 수 있다. 우리 몸의 90%는 털이 있는 피부로 덮여 있지만, 털이 없는 피부(glabrous skin)도 있는데, 손바닥과 발바닥 같은 피부이다.” ”그것은 미묘한 촉각의 세부 사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특화된 신경에 의해 자극 받는다”고 설명 글은 말한다. 걸으면서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라. 당신은 그 특별한 신경을 갖게 되어 기쁜가?
피부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Nature. 2018. 11. 21). 사람들은 건강한 피부를 원하기 때문에, 피부를 관리하려고 한다. 화장품 판매 실적은 그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우리 몸을 싸고 있는 피부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내부로 들여보내는 음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기사에서는 이러한 필수영양소들을 함유하고 있는 음식에 대해 논의하면서, 비타민 C와 D의 피부 치료적 측면을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의 인과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see 15 Nov 2018). 우리의 피부는 햇빛에 노출되었을 때,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있기 때문에, 햇볕에 약간 노출되는 것은 좋지만, 너무 많이 노출되면 해롭다.
생물학을 넘어 피부를 움직이는 것 (Nature. 2018. 11. 21). 로봇 제작자들과 보철(prosthetics) 공학자들은 사람 피부의 놀라운 특성을 모방하길 원하고 있었다. 그러한 도전은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축성과 감지기능을 지닌 피부 닮은 전자장치는 생체신호를 모니터링 하고, 감각 기능이 있는 인공 의족을 만들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 기사에서 볼 수 있는 로봇 손은 피아니스트 또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미묘하고 재빠른 손동작에 비해 서툴러 보인다. 다른 생물의 피부도 또한 연구 주제로 언급되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가장 큰 장기의 경이로움을 생각하고, 그 피부를 설계하신 설계자에게 감사를 드리고, 피부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한다. 우리가 받은 선물을 잘 관리하는 것이 감사를 표시하는 방법일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8/11/be-thankful-for-skin/
출처 - CEH, 2018. 11. 23.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의 발견으로 당황하고 있는 진화 인류학자들
(Oldest Animal Cave Painting Baffles Evolutionary Anthropologists)
David F. Coppedge
어떻게 같은 시기에 동물벽화가 세계의 반대편에서 동시에 나타날 수 있을까?
동물들을 그린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cave painting)는 진화 인류학자들에 의해서 40,000년 전으로 연대가 평가되어 왔었다. 당황스럽게도 유럽의 동굴벽화와 유사한 그림이 같은 시기인 약 37,000년 전에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섬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그것은 진화론적 연대 문제에 대한 유일한 수수께끼가 아니다. 문제는 그 후에 같은 벽에 그려진 동굴벽화는 ”가장 오래된 것” 위에 중첩되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다시 그려진 그림의 연대는 각각 20,000년과 4,000년 전이었다. Nature(2018. 11. 7) 지에 게재된 ”보르네오에서 구석기시대의 동굴예술” 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아우버트(Aubert) 등은 말했다 :
유럽에서 현대인의 도착(45,000~43,000년)과 관련하여, 최초의 예술적 표현 방식인 암벽화가 등장한 시기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에서 암벽화가 나타났다는 것은 이제 명백하다. 따라서 유사한 동굴벽화가 유라시아 대륙의 극단적인 서쪽과 동쪽 지역에서 거의 동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널리 분리된 지역의 문화적 융합 결과인지, 유라시아에서 대규모 인구 이동이 있었는지, 또는 다른 원인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들의 네 가지 옵션을 간단하게 고려해보자.
1)우연의 일치 : 이것은 전혀 설명이 아니다. 그것은 ”만물 우연발생 법칙”에 의존하는 것과 같다.
2)문화적 수렴성(이러한 문화가 우연히 두 번 발생했다) : 1)과 동일한 설명.
3)유라시아 대륙에서 대규모의 인구 이동 : 이동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도보여행 도중에 많은 동굴 벽화들을 남겼을 것이 예상되는데, 그러한 것이 없다.
4)알지 못하는 다른 원인 : 1)과 동일한 설명.
진화론의 시간 틀
라우라 게젤(Laura Geggel)은 Live Science(2018. 11. 7) 지의 기사에서, 예술작품들은 기록된 문명의 역사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수만 년으로 분리된 3단계들에서 만들어졌다는, 저자들의 주장을 다시 언급하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예술 능력에 약간의 진전이 있지만, 그다지 큰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1. ”52,000~40,000년 전에 시작됐던 첫 번째 단계에서는, 손자국 스텐실(hand stencils)과 붉은 오렌지색의 황토로 그려진 동물들이 포함된다”고 게젤은 말했다. 그 당시 보르네오(Borneo) 섬은 오래된 연대 지질학에 의하면, 본토와 연결되어 있었다.
2. ”주요한 변화는 약 2만 년 전인 마지막 최대 빙하기(Last Glacial Maximum) 동안에 일어났다. 이 시기에 새로운 방식의 암석예술이 나타났는데, 인간 세계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이 단계에서 예술가들은 어두운 짙은 자주색(mulberry-purple color)을 좋아했고, 손자국 스텐실로 그림을 그렸다. 추상적인 기호와 정교한 머리 장식을 착용하고, 사냥이나 의식적인 춤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인간의 모습들을 그렸다”고 연구자들은 말했다. 그리고 단지 몇 인치 떨어져서, 오래된 것과 사실상 거의 동일한 손자국 스텐실이 나타나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 것보다 적어도 2만 년의 차이를 두고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다른 타입의 동굴그림들이 서로 다른 두 집단의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또는 한 특정 문화의 진화를 나타내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아우버트는 말했다.
3. ”암석예술의 최종 단계는 인간 같은 인물상, 보트, 기하학적 디자인이 포함되어 있는데, 주로 검은색 안료로 그려졌다고 연구자들은 말했다.” 이것은 약 4000년 전의 시기로, 신석기시대 농부들이 그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보르네오 섬은 그 시기 이전에 말레이 반도에서 적어도 530km가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들의 진화론적 시간 틀에 이것을 끼워 맞추기 위해, 동굴의 방해석 퇴적물 일부분을 추출하여, 우라늄-토륨(uranium-thorium dating) 법으로 그것의 연대측정을 실시했다. 그러나 측정 결과에 따르면, 그들은 오래 전에 지리학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서, 어떻게 그러한 예술 특성이 동시적으로 발생했는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곤혹스러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서, 언제나 유머를 사용하며 슬쩍 넘어가고 있었다. Phys.org(2018. 11. 7) 지는 말한다 :
”그것은 매우 멋진 일이었다.” 그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서호주 대학(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의 고고학자인 피터 베스(Peter Veth)는 말했다. ”인간들은 현대인이 되면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유사한 전략을 채택했다.”
동굴벽화는 1994년 이래로 알려졌지만, 지금까지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으로는 측정되지 않았다. 황토색의 황소 그림은 약 1.5m 너비로, 근육 조직과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같은 종류의 황소가 오늘날 보르네오 섬에 살고 있다.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단순한 막대기처럼 그렸던 더 최신의 그림보다, 최초의 동굴예술은 더 높은 품질을 나타낸다.
진화론자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해보겠다. 기억할 것은, 진화론자들은 이 동굴벽화를 그린 사람들은 완전한 현생인류인, 현대적 호모 사피엔스(modern Homo sapiens)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커다란 뇌와 신체적 특징들을 갖고 있었으며, 문명화된 생활패턴 때문에 약해진 오늘날의 현대인보다 아마도 더 건장했을 것이다. 1세기 동안에 4세대가 지나갔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구성해보자.
이야기는 문명 이전에 사냥, 채집, 식사, 잠을 자던, 당신과 같은 사람들에서 시작한다. 어느 날 그들 중 몇 명이 동굴 벽에 손자국을 남기기로 결정했다. 또 다른 사람은 사냥해서 먹었던 황소를 동굴 벽에 그렸다. 그들은 동굴에서 살았고, 동물들을 사냥(수렵생활) 했고, 채집생활을 했고, 늙었고, 죽었다. 그들의 자녀들도 동굴에서 살았고, 동물들을 사냥했고, 채집생활을 했고, 늙었고, 죽었다. 어느 날 조니는 이러한 삶이 너무 지루해서 엄마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이러한 생활이 너무 지겨워요! 우리 오두막을 짓고, 동물들을 잡으러 멀리 다니지 않고, 채소나 곡물을 심어서 먹으면 안돼요?”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0세기가 흘러갔고, 800세대를 내려오는 동안, 오로지 동굴에서 살았고, 사냥을 했고, 채집을 했고, 늙고, 죽기를 계속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았다. 그들의 땅은 점차 본토와 분리되어 섬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같은 동굴에 들어가서, 손자국 그림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른 색깔을 사용하여 더 많은 것을 그려넣기로 결정했다. 그의 친구들은 손 그림 옆에 유치해 보이는 막대기 모양을 새겨 넣었고, 위에 재미있게 머리카락을 그렸다. 그들은 웃고, 동굴 집으로 돌아갔고, 계속 사냥을 했고, 채집생활을 했고, 늙었고, 죽었다. 다시 수백 세대가 지나갔다. 찰리는 이러한 삶이 너무 지루해서 엄마와 아빠에게 물었다. ”내 생일에 조랑말을 가질 수 없나요?”라고 물었다. 다시 640 세대가 더 지나간 후에, 누군가가 똑같은 동굴에 들어갔고, 더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은 처음 것보다 예술적으로 더 나아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뿅! 문명이 나타났다!
당신은 이러한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과학적일 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고 있다. 인간은 창의적이고, 발명을 하고, 삶을 개선하고,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 왜 언론매체들은 이러한 바보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과학자들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하고 있지 않는 것일까? ”당신의 이야기는 신뢰할 수 없어 보이네요. 아무도 그러한 이야기는 믿지 않을 거예요.” 왜 어떠한 과학부 기자도 이러한 장구한 기간 동안 인간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일까? 그들은 생각이 없는가? 그들은 궁금하지도 않은가? 그리고 문명은 거의 마술처럼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진화론이 장구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성경 이야기는 훨씬 더 실제적이다. 성경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같다. 불과 몇 천 년 전에, 타락한 인간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거대한 탑을 쌓았다. 그들의 계획이 좌절되고, 그들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으로 흩어졌다.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노력들을 했고, 마을과 도시가 급속하게 등장했다.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권력을 잡았고, 왕과 독재자가 되었고, 서로 전쟁을 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새로운 무기들을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창의력을 사용하여 많은 도구와 물품들을 만들어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면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은 무엇인가? 연대측정 방법에서 가정(assumptions)이 없는 연대측정 방법은 없다. 당신은 동굴에서 약간의 미세한 방해석으로 정확한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시료의 오염과 침식 가능성은 없었을까? 단지 1세기 조금 넘게 측정된 붕괴 속도를 수만 년 전으로까지 외삽할 수 있는가? 수백만 년은 물론이고, 40,000년을 경험한 사람이 있는가? 기억해야할 것은, 이러한 연대는 진화론을 믿고 싶어 하는, 오류 많은 사람들이 추정해낸 연대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완전한 현생인류가 수천 세대 동안 동굴에서 수렵생활과 채집생활만을 하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반복 측정될 수 있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실험될 수 없는 먼 과거에 일어났던 일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거기에 없었고, 그들 중 누구도 40,000년을 경험하지 못했다. 일반 상식을 가진 누구라도, 아니 초등학생이라도, 진화론자들의 이야기는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두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떤 이야기가 더 합리적일지를 물어보라. 그들이 판단해줄 것이다.
*관련기사 : 印尼서 5만년 전 동굴벽화 발견… 유럽 기원설 흔들 (2018. 11. 8. 서울신문)
http://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1108023005
5만2000년전 손바닥… 현인류 最古 동굴벽화 (2018. 11. 8.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Main/3/all/20181108/92780447/1
인류 최초 동굴 벽화, 아시아에서 발견 (2018. 11. 8. ScienceTimes)
5만1800년 전 동물그림, 쇼베보다 6000년 빨라
https://www.sciencetimes.co.kr/?p=183858&post_type=new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8/11/oldest-animal-cave-painting-baffles-evolutionary-anthropologists/
출처 - CEH, 2018. 11. 7.
사람에게만 있는 뇌세포, 로즈힙 뉴런의 발견
(Newly-Discovered Brain Cell)
Frank Sherwin
3파운드의 사람 뇌는 이 우주에서 알려진 가장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생물학적 구조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기관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사람 뇌의 미세구조에 대한 한 흥미로운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과학자들은 덥수룩한 모습 때문에 ‘로즈힙 뉴런(rosehip neuron, 장미열매 뉴런)’이라 불리고 있는 한 신경세포를 발견했다.[1, 6] 이 세포들은 신피질(neocortex)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신피질은 감각 지각(청각 및 시력), 언어, 인지와 같은 고등 뇌기능과 관련이 있는 뇌의 부위이다. 연구자들은 죽은 사람의 뇌 시료에서, 그리고 외과적 수술로 적출된 뇌 조직 절편에서, 우아한 로즈힙 뉴런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이 새로 발견된 신경세포는 생쥐(mice)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세포들은 사람에서만 유일했으며, 로즈힙 뉴런은 단지 한 종류의 뇌 세포 내의 독특한 유전자 세트를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
”뉴런은 가장 복잡하고 잘 연구된 세포 유형 중 하나”이지만[2], 세속적 과학자들은 뉴런이 속한 신경계의 진화론적 기원을 알지 못한다.
”놀랍게도 중추신경계(CNS, central nervous system)의 진화론적 기원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3]
”신경계에 대한 진화론적 기록은 없다...”[4]”신경계의 기원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5]
”다양한 동물 문(phyla)들의 새로운 유전체 데이터와, 동물 진화계통나무의 수정된 개선책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는 뉴런의 초기 진화의 본질과 시기에 합의하지 못했다.”[2]
모든 것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담하게, LiveScience 지는 뇌의 일부분은 장구한 지질학적 시간에 흘렀음에도 비교적 변화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뇌의 기원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진화론자들은 생쥐의 뇌에서 일어난 것이 사람에게도 일어났을 것 같다고 단지 제안만 하고 있었다.
생쥐, 사람, 다른 포유류 사이에서 뇌의 많은 부분들이 보존되었다. 사람들은 쥐에서 배운 것에 대해 추론할 수 있으며, 적어도 유사한 어떤 것이 사람의 뇌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1]
그러나 '일종의' 추론이 모르는 것에 대한 견고한 과학적 설명이 될 수 있을까?
복잡한 로즈힙 뉴런(사람에서만 독특한)의 발견은 우리의 전능하신 창조주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전도서 11:5).
References
1. Saplakoglu, Y. Scientists Find a Strange New Cell in Human Brains: The 'Rosehip Neuron.' LiveScience. Posted on livescience.com August 27, 2018, accessed August 30, 2018.
2. Liebeskind, B. J. et al. 2017. Evolution of animal neural systems. Annual Review of Ecology, Evolution & Systematics. Vol. 48: 381.
3. Arendt, et al. 2009. Animal Evolution. UK: Oxford University Press, 65.
4. Breakthrough model reveals evolution of ancient nervous systems through seashell colors.Phys.org. Posted on phys.org January 12, 2012, accessed August 30, 2018.
5. Moroz, L. et al. 2014. Ctenophore genome and the evolutionary origins of neural systems. Nature. 510 (7503): 109-14.
6. Eszter Boldog, Trygve E. Bakken. Transcriptomic and morphophysiological evidence for a specialized human cortical GABAergic cell type. Nature Neuroscience, volume 21, pages1185–1195 (2018)
*Mr. Frank Sherwin is Research Associate, Senior Lecturer, and Science Writer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관련기사 : 새로운 뇌세포… ‘로즈힙 뉴런’ 발견 (2018. 8. 29. IT News)
http://www.itnews.or.kr/?p=28605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10908/
출처 - ICR, 2018. 9. 13.
동물은 할 수 없는데, 인간은 할 수 있는 것
(What humans do but animals don’t)
by David Christie and Russell Grigg
사람이 진화된 동물이 아니라면, 동물에게는 없는 능력과 특징을 지녀야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 여섯 가지를 고려할 것인데, 이것들은 또한 하나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언어, 읽고 쓰는 능력, 음악, 수학, 창조력, 그리고 지배력이다.
이러한 기능은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우리를 책임 있게 만든다. 사람은 이러한 특징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있고, 아니면 그분의 뜻에 반하여 심지어 ”마귀의 일”(요일 3:8)을 행할 수도 있다.
1. 언어
사람은 구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종이며[1] ”언어가 없는 사회는 없다.”[2, 3] 사람은 언어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여 우리와 대화를 나누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단지 몇 개만 예를 들면, 아담과 하와에게(창세기 3:9-19), 노아에게(창세기 6:13-7:4), 아브라함에게(창세기 18:22-33), 모세에게(출애굽기 3:4-4:17), 사울에게(사도행전 9:4-6), 그리고 사도 요한에게(요한계시록 1, 2, 3) 말씀하셨다.
동물들은 그들이 내는 소리, 안면 표정, 자세 표시, 신체 움직임, 신체 접촉 및 냄새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동물들은 문법적 구절 또는 문장을 말할 수 없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동물이 말을 했던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하와에게 말했던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민수기 22:28-30절에서 하나님이 나귀를 사용하셔서 발람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귀의 정상적인 습관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위한 일회적인 신성한 기적이었다.
2. 읽고 쓰는 능력
이것은 언어의 또 다른 부분으로, 모든 인간이 읽고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4] 대홍수 직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한 정교한 문화는 읽고 쓸 수 있었다. 물론 쓰기 및 기술과 같은 문명의 특질은 손실될 수 있다. 특히 바벨에서의 언어 혼잡에 뒤이어 일어났던 급격한 분산 이동에서 그러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글을 쓰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두 개의 돌판에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십계명을 모세에게 주셨기 때문이다(출애굽기 31:18).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책’에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을 기록해 놓으셨다(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17:8, 20:12, 21:27). 우리는 또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디모데후서 3:16)을 안다. 하나님은 그분의 기록된 말씀을 수단으로 하여 우리와 소통하시는 것을 선택하셨다. 또한 성경 본문 속에 복음이 간직되어 있다.[5]
어떠한 동물도 읽거나 쓸 수 없으며, 의사소통을 위해 쓰여진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읽고 쓰는 능력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에 상응하는 선물인 것이다.
3. 음악
사람이 음악을 창조하는 것과 그것을 감상하는 것은, 둘 다 정말로 멋진 특성이다. 음악은 말로는 부적절할 수 있는 상황을 포함하여, 긴장감, 행복, 슬픔, 유머, 사랑 등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런 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하이든(Haydn)의 ‘천지창조(The Creation)’를 듣고, 마음속에 음악이 야기시키는 창조의 웅대함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은 노래하신다! 스바냐 3:17절은 하나님에 대해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라고 말씀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에베소서 5:18-19절은 우리에게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말씀한다.
동물들이 노래를 할 수 있는가? 고래, 특히 혹등고래 수컷들은 ‘고래 노래’라고 불리는 소리를 낸다. 이들에는 긴 신음, 낮은 한탄, 으르렁거리는 소리, 떠는 소리 및 삑 소리 등이 있는데, 그것은 짝짓기를 위한 외침, 혹은 먹이를 위한 외침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소리들은 각각이 창조적이라기보다는,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반복적이다. 한 집단 내의 모든 수컷들은 어느 한 순간에 동일한 패턴으로 나열된 동일한 소리를 낸다. 이빨고래는 클릭을 통해 동일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새의 노래’는 종 특유의 짝짓기 외침, 또는 영역에 대한 경고, 또는 기계음과 같은 잡음을 들리는 대로 흉내 내는 것이다.
4. 수학
오직 하나님과 사람만이 수학을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다.[6]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방주의 상대적인 치수(창세기 6:15)는 폭풍우가 심한 바다에서 그 크기의 떠다니는 배에 대한 구조적 안전성, 복원안정성, 내항성능이 최적인 비율이었다.[7] 그리고 사람들은 복잡한 수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돌고래가 내는 소리 속에서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감춰진 질서를 풀어냈다.[8] 하나님의 수학은 돌고래에게 ”미국 해군이 부러워할 만큼 정밀한 음파탐지기 시스템”을 제공해준다.[9]
수학을 사용하면,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창조물들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수학적 규칙에 따라 거동하기 때문이다. 수학은 태양계 행성의 궤도를 포함하여, 우주의 많은 현상들과 거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우주선의 궤도를 계산하여 행성들의 근접사진을 촬영할 수 있게 해준다. 수학은 상대성이론의 개발과, 공간과 운동과 중력과 시간의 관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것으로부터 파생된 이론은 (또 다시 수학을 다시 사용하여) 비교적 젊은 우주에서 수백만 광년 떨어져있는 별빛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10]
5. 창조력
해변에서 망치처럼 단순한 도구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원숭이가 아니라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어떤 것을 만들 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판에 박힌 디자인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특정 거미는 본능적으로 일정한 패턴의 거미줄을 만들고, 특정 조류는 본능적으로 종 특유의 둥지를 건설하지만, 독창성은 입증되지 않고 있다.
사람은 창조적일뿐만 아니라, 꽃, 깃털, 눈과 같은 하나님 창조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모두 인식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사실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다.
사실 생물들이 하나님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는, 인간 공학자들이 생물에 들어있는 놀라운 구조와 기술에 대해 영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체모방공학이라는 최첨단 분야로써, 자연을 모방하여 실용적인 공학기술을 얻기 위해, 생물에 들어있는 설계 및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다.[11]
6. 지배력
하나님은 첫 사람에게 특별한 명령을 주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 이와 같이 사람은 지상의 모든 생물들에 대한 주권을 부여받았다. 이것은 결코 철회된 적이 없으며, 범죄로 인해 타락한 이 세계에서 메뚜기, 모기, 잡초 및 기타 해충을 방제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등, 이 세계의 타락한 상태까지도 적용된다. 그것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질병에 대한 처치 및 치료법을 개발하도록 한다.
사람의 지배력에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 대한 통제가 포함된다. 이 미생물들은 하나님의 최초 창조의 일부였지만(창세기 1:31), 타락 후에 정보를 잃어버린 돌연변이로 인해, 그들 중 일부가 질병을 일으키게 되었다.[12] 하나님은 또한 사람에게 환경에 대한 지배를 맡기셨으며(시 8:6-8), 우리는 환경을 어떻게 관리했는가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13]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창세기 2:15-17)와 생명나무(창세기 3:22-24)를 제외하고,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를 아담에게 주셨다.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먹었을 때, 그들은 죄가 없던 완전한 상태에서 악과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첫 번째 부모가 반역을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전한 세상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거룩하시고”(베드로전서 1:15-16), ”참되시고”(예레미아 10:10), ”선하시고”(시편 145:9), ”아름다움”이 있으신(시편 27:4) 하나님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이사야 43:7) 사람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사람은 진화하지 않고 창조되었고, 언어, 문학, 음악, 수학, 창의력, 지배력에서 거룩함, 진리, 선함,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목적을 성취 할 수 있다. 아니면 반역을 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반역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고린도후서 5:17, 에베소서 4:24).
References and notes
1. Adamthwaite, M., Languages of the post-Diluvian World, J. Creation 30(1) 112–121; creation.com/how-language-develops.
2. 'Of all the objections to the evolutionary kinship of man to animal, the most readily observed and easily perceived difference is that of language.” Smith, S., Human consciousness and the image of God,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39(2):40–45, June 2002.
3. Sign language in a deaf community is included, as it has all the features of full-blown grammatical language, merely using visual rather than audible sequences of symbols.
4. Barring pathological damage to the relevant parts of the nervous system, of course.
5. Cosner, L, Why did God give us a book? Creation 37(4):16–17 2015, creation.com/why-book.
6. The complex computations that must take place within the nervous system of certain species, e.g. the archer fish’s ability to aim at where the insect is rather than where it looks to be, are hardwired and not related to the way humans use mathematics. See Sarfati, J., Archer fish use advanced hydrodynamics, Creation 36(3):36–37 July 2014; creation.com/archer-fish.
7. Hong, S.W. et al., Safety investigation of Noah’s Ark in a seaway, J. Creation 8(1):26–36, 1994; creation.com/ark-safety.
8. Howlett, R., Flipper’s Secret, New Scientist 154(2088):34–39, 28 June 1997.
9. Sarfati, J., Refuting Evolution, Creation Book Publishers, USA, 2012, p. 70, creation.com/rech5.
10. See How can we see distant stars in a young universe?, Ch. 5, Creation Answers Book, Creation Book Pub., USA, 2017, creation.com/cab5.
11. For examples, see creation.com/biomimetics.
12. Gurney, R., The carnivorous nature and suffering of animals, J. Creation 18(3):70–75, 2004; creation.com/carniv.
13. Wieland, C., Fouling the Nest: Christianity and the environment, Creation 24(1):10–17, 2001; creation.com/fouling-the-nest.
*DAVID CHRISTIE, B.Com., M.Admin., Ph.D., FAICD, FIMC. spent 10 years in the Royal Marines Commandos, 9 years as a patrol officer in Papua New Guinea, and 23 years as a certified management consultant and businessman. Now retired, he is a member of Friends of CMI and Chairman of CMI Australia. For more: creation.com/david-christie
RUSSELL GRIGG, M.Sc. (Hons) was an industrial chemist before serving 20 years with 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now OMF International). He is a staff member of 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 in Australia. For more: creation.com/russell-grigg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s://creation.com/what-humans-do
출처 - Creation, Vol. 40(2018), No. 2 pp. 52-54
인간의 2족보행에 적용된 지적설계
(Intelligent design applied to human bipedalism)
백행운
요약
인간은 포유동물 가운데 두 다리로 걷는 유일한 존재이다. 2족보행은 움직이는 동안 균형을 유지해야 하므로 4족보행보다 훨씬 어렵다. 2족보행의 장점은 운동 효율과 넓은 시야, 그리고 손의 자유를 들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4족보행을 하는 영장류가 점진적으로 진화하여 2족보행을 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2족보행과 4족보행은 점진적인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다른 설계인가? 인간과 가장 비슷한 영장류인 침팬지와의 비교를 통해 인간의 2족보행과 동물의 4족보행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해부학적 구조분석을 통해 알아보았다. 사람만이 2족보행을 하는데, 이는 다른 동물들의 4족보행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장치를 필요로 한다. 결론적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영장류와 비교할 때도, 2족보행은 4족보행에서부터 진화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설계계념이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론
포유동물 가운데 인간은 두 다리로 걷는 유일한 존재이다. 2족보행은 움직이는 동안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4족보행보다 훨씬 어렵다. 걸음을 배우는 어린아이나 뇌질환으로 재활중인 환자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2족보행의 장점은 운동 효율과 넓은 시야, 그리고 손의 자유를 들 수 있다.[1] 진화론에서는 4족보행을 하는 영장류가 점진적으로 진화하여 2족보행을 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2족보행과 4족보행은 연속적인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다른 설계인가를 살펴보자. 인간과 가장 비슷한 영장류와 해부학적 비교를 통해 인간의 2족보행과 4족보행의 차이점을 조사하였다.[2, 3]
1. 머리 (head)
1.1 두개골의 모양과 이마 (Skull features and brow ridges)
옆에서 볼 때, 원숭이의 두개골은 눈썹부위와 턱이 돌출되어 있지만, 사람은 눈썹부위 돌출이 적고 턱이 작다. 이는 2족보행시 체중의 중심선 유지에 매우 적합하다.[4[
1.2 시상능 (sagittal crest)
두개골의 시상능은 거대한 턱근육이 부착하는 지점이다. 고릴라와 오랑우탄 같은 영장류의 시상능은 매우 뚜렷한 반면, 사람에서는 뚜렷하지 않다. 사람은 턱이 작고 중심선에 가까이 위치한다. 이는 2족보행시 상체의 무게를 줄이고, 몸 중심선에 위치시키려는 설계개념이 적용되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1.3 목덜미 능선 (nuchal crest)
원숭이의 목덜미 능선은 매우 넓어서 크고 강한 목근육이 부착된다. 이는 4족보행 동물에 일반적인 목구조를 뒷받침한다. 반면에, 사람은 작은 목근육을 가짐으로써, 머리의 무게를 절감하려는 설계개념이 반영되어있다.
1.4 대후두공 (foramen magnum)
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구멍인 대후두공은 인간은 두개골의 정중앙에 위치한 반면, 침팬지는 두개골의 뒤에 있다. 인간은 2족보행에 적합하고, 침팬지는 4족보행에 적합하다.
1.5 뇌 (brain)
사람의 뇌는 침팬지보다 크고, 언어영역과 운동영역이 발달해 있다. 이는 2족보행을 하면서 어려운 균형유지를 해야 하는 목적성에 맞는 설계개념이 반영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2. 몸통 (trunk)
2.1 무게중심 (center of gravity)
사람의 무게중심은 요추부위에 있는 반면, 침팬지의 무게중심은 배에 있다. 이는 사람은 직립보행에, 침팬지는 기어 다니는데 적합한 무게중심을 갖고 있다.
2.3 흉곽 (chest cage)
사람의 갈비뼈는 납작하지만, 침팬지의 갈비뼈는 배 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체중중심선으로 볼 때, 사람은 서서 걷기에 적합하고, 침팬지는 기어 다니기에 적합한 구조를 갖고 있다.
2.4 척주와 골반 (vertebral column and pelvis)
사람의 척주는 S-자 모양으로 생겨서 발로부터 오는 충격이 머리로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충격 완화 기능이 있다. 반면에 침팬지의 척주는 C-자 모양 또는 활모양으로 생겨서 기어다니기에 적합한 구조를 갖고 있다.[5]
3. 상지 (upper limbs)
3.1 어깨 (shoulder)
4족동물의 가슴은 깊고 어깨뼈는 몸통의 옆에 부착되어 있다. 사람은 4족동물에 비해 가슴이 얕고, 어깨뼈는 등쪽에 있어서, 어깨의 운동범위가 매우 넓다. 4족동물은 체중을 앞발로 지탱해야 하므로 운동범위가 제한되지만, 사람의 팔은 감정표현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운동범위가 크다.
3.2 팔 (arm)
원숭이는 팔이 길고 다리는 짧아, 4족보행에 적합하다. 반면에, 사람은 긴 다리에 비해 팔이 짧아서 걷기에 적합하다. 이는 상체의 무게를 줄여 무게중심을 낮춤으로써 안정성을 높이고 에너지를 절감하려는 2족보행 설계개념이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3.3 손 (hand)
침팬지의 손가락은 곡선이고 엄지가 짧아서 물건을 대강 잡는다. 사람의 손가락은 직선이고, 엄지가 길고 마주보고 있어서, 미세동작과 도구사용이 매우 다양하다. 사람의 손은 정확한 일을 하는 구조로 설계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4. 하지 (lower limbs)
4.1 골반 (pelvis)
침팬지의 골반은 좁고 길다. 이는 기어다니는 4족보행 동물의 일반적인 골반 구조이다. 사람의 골반은 넓고 짧은데, 2족보행시 상하지를 받쳐주고, 머리가 큰 아기를 낳기에 적합한 구조를 갖고 있다.[5, 6]
4.2 허벅지뼈 (femur)
침팬지의 허벅지뼈는 직선이고 외반각이 작아서 상체 지지가 어렵고, 그 길이도 짧기 때문에 엉덩이 근육이 작다. 사람의 허벅지뼈는 길고 외반각이 크며, 하단부가 굵고 엉덩이 근육이 크다. 이는 서서 상체를 지탱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은 걷고 침팬지는 기는데 적합한 허벅지 뼈의 구조이다.[5, 7-9]
4.3 다리와 무릎 (leg and knee)
침팬지의 다리는 가늘고 약하다. 무릎은 굽어있고 무릎관절이 약하다. 반면에 사람의 다리뼈는 길고 강하여 상체의 체중을 지탱할 수 있다. 사람의 무릎관절은 튼튼하여, 한 다리로 오래 지탱할 수 있다. 이는 체중중심선을 유지하여 균형을 잡기에 적합한 구조이다.[5, 10, 11]
4.4 발 (foot)
침팬지의 엄지발가락은 다른 발가락들과 따로 존재하고, 손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발바닥은 평평하다. 사람은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들과 나란하고, 발목뼈가 크고 강하다. 사람의 발바닥에는 가로와 세로에 3개의 아치가 있어서, 충격을 흡수하고 유연성을 부여한다. 침팬지의 발은 물건을 잡기에 적합하지만, 사람의 발은 체중을 지탱하며, 오래 걸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12]
결론
포유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2족보행을 하는데, 이는 다른 동물들의 4족보행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장치를 필요로 한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영장류와 비교할 때도, 2족보행은 4족보행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진화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설계계념이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1. Sockol MD, et al. Chimpanzee locomotor energetics and the origin of human bipedalism. Proc Natl Acad Sci USA. 2007, 104(30):12265-9
2. Carmine Clemente. Gray's Anatomy of the Human Body (30th Edition), 2018
3. Chaeles F. Sonntag. On the Anatomy, Physiology, and Pathology of the Chimpanzee. 1923, J Zoology 323-426
4. Saladin, Kenneth S. 3rd, ed. Anatomy & Physiology: The Unity of Form and Function. McGraw-Hill. 2003, pp. 286–287
5. O'Neill MC, et al. Three-dimensional kinematics of the pelvis and hind limbs in chimpanzee (Pan troglodytes) and human bipedal walking. J Hum Evol. 2015, 86:32-42
6. Wittman, Anna Blackburn; Wall, L. Lewis. 'The evolutionary origins of obstructed labor: bipedalism, encephalization, and the human obstetric dilemma'. Obstetrical & Gynecological Survey. 2007, 62: 739–748
7. Ruff Christopher. 'Ontogenetic adaptation to bipedalism: age changes in femoral to humeral length and strength proportions in humans, with a comparison to baboons'. Human Evolution. 2003, 45 (4): 317–349.
8. Thorpe SK, Holder RL, Crompton RH. 'Origin of human bipedalism as an adaptation for locomotion on flexible branches'. 2007, Science. 316 (5829): 1328–31.
9. Lovejoy CO. 'Evolution of human walking'. 1988, Scientific American. 259 (5): 118–25.
10. Kondō, Shirō. Primate morphophysiology, locomotor analyses, and human bipedalism. 1985, Tokyo: University of Tokyo Press.
11. Aiello,Leslie and Christopher Dean. An Introduction to Human Evolutionary Anatomy. 1990, Oxford: Elsevier Academic Press.
12. Cunningham, C. B. et al. The influence of foot posture on the cost of transport in humans. The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2010, 213 (5): 790-797.
출처 - 2018년도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새로운 식이 연구는 창세기와 일치한다.
: 체중 감량의 핵심은 식사의 양보다 질이다!
(New Diet Study Matches Genesis)
스탠포드 예방 연구 센터(Stanford Prevention Research Center)의 영양학 박사인 크리스토퍼 가드너(Christopher Gardner)와 그의 동료들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San Francisco’s Bay Area)에 살고 있는 과체중 및 비만 성인 60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실시했다. 실험 대상자들은 칼로리 계산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지도받았다. 그들은 완전히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먹을 수 있었지만, 다량의 야채와 자연식품만을 먹게 했다. 연구 결과 몇 가지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첫째, 연구 참여자들은 칼로리의 제한 없이도 체중을 줄일 수 있었다. New York Times 지에 따르면, 가장 많이 체중을 감량한 사람들은 ”음식과의 관계가 바뀌었다”고 가드너는 말했다.[1] 그들은 흰 빵, 설탕 가득한 스낵, 시럽, 달콤한 음료 등과 같은 가공식품에서, 전통적인 식사 시간에 먹는 자연식품으로 식사를 변경했다. 영양학자들은 그들에게 최소한의 가공만을 한, 영양이 풍부한 식품을 집에서 준비하여 먹도록 안내했다.
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지는 두 번째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2] 그 연구의 참여자들은 운동을 하도록 권장을 받았지만, 일반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체중이 감소했다. 또한 그들은 혈압을 비롯한, 다른 건강 지표들도 개선되었다.
음식의 양(quantity)이 아닌, 음식의 질(quality)에 초점을 둔 1년 후에, 사람들은 평균 4.5kg 이상 체중이 감소했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의 몇 배 이상으로 체중이 감소했다. 질적인 식단으로 흰 쌀 대신에 현미, 기름진 고기 대신에 살코기, 과일주스 대신에 신선한 과일, 올리브 오일, 견과류, 풍부한 야채 등을 먹게 했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사실은, 특정 유전자형이 특정 식단에 다르게 반응할 것이라는 가설에 대한 시험 결과였다. 이 개념은 개인화된 식단에 초점을 맞춘 산업을 창출해냈었다. 연구 결과 다른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들에서도 동일한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그들이 한 일은 보다 양질의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음식의 질이라는 단 하나의 변화에 반응하여, 그들의 몸이 동일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만약 인류가 원래부터 영양가 있는 자연식품과 채소를 흡수하도록 설계되었다면, 당연히 그 설정된 건강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창세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창세기 1:29) 이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자연의 것들을 사람의 먹을 거리로 설계하셨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창세기에 기록된 것처럼, 사람의 건강과 채소, 과일, 견과류 및 모든 자연식품들 사이에 친화적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오랜 연구 결과들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O'Connor, A. The Key to Weight Loss Is Diet Quality, Not Quantity, a New Study Finds. New York Times. Posted on nytimes.com February 20, 2018, accessed February 21, 2018.
2. Gardner, C. D. et al. 2018. Effect of Low-Fat vs Low-Carbohydrate Diet on 12-Month Weight Loss in Overweight Adults and the Association With Genotype Pattern or Insulin Secretion.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319(7): 667-679.
*Brian Thomas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s://www.icr.org/article/new-diet-study-matches-genesis
출처 - ICR News, 2018. 2. 2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44
참고 : 5500|5938|6682|6632|6600|6592|6548|6546|6527|6515|6440|6435|6386|6329|6326|6323|6212|6198|6183|6182|6116|6025|5658|5652|5582|5564|5489|5441|5410|5362|5300|5250|5161|5149|5118|5105|5094|5070|4484|4518|4360|5005|4661|4621|4521|4331|4280|4248|4222|4127|3970|3961|3838|3794|3229|3048
창조질서와 건강
이은일
서론
하나님은 물질세계의 모든 질서를 아름답고 멋지게 창조하셨다. 또한,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인간의 질병이나 죽음은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의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의 범죄함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떠났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우리는 참혹한 질병과 죽음에 시달리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지만, 우리의 육체는 부활의 몸을 입기 전까지는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영생에 대한 욕망이 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한 강렬한 소망은 아마도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에 대한 왜곡된 소망일지도 모른다. 비록 영생까지는 아니더라도 건강한 장수에 대한 소망도 매우 강력하다. 건강한 것은 물론 좋은 것이다. 그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건강이 하나님보다, 믿음보다, 주님의 부르심보다 우선시 된다면 건강도 우상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기 원하시고, 복 받길 원하시지만 건강을 추구하고, 복을 추구하는 삶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으신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를 알고, 그 질서대로 살면서 건강해지는 것을 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게 살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성되고 지혜롭게 감당하길 원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땅을 다스리는 존재이다. 이런 존재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를 잘 이해하고, 그 질서대로 사는 것이 지혜이다. 당연히 그 결과는 건강한 육체와 정신일 것이다.
1. 우리 몸에 대한 건강한 인식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우선 되어야 한다. 이런 인식이 없어도 열심히 운동하고 노력하면 건강해질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게 성취한 건강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른다면 건강 자체가 목표가 되는, 우상이 되는 삶밖에 되지 못한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성전이다.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육체라는 것이다. 영과 육의 신비에 대하여 우리는 아직 다 알지 못하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육체를 포함하는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우리 몸과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도록 정결해야 한다. 인간의 영혼은 중요하고 몸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몸을 학대하고, 몸을 더럽게 하는 것이 참된 영성이라고 잘못 생각한 시대도 있었다. 지금은 지나치게 몸을 우상화하고 있어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몸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창조 작품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작품에 불필요하거나, 쓸데없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사람의 몸에 퇴화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전에는 필요했지만 진화하면서 필요가 없게 된 기관들이 흔적기관으로 남아 있거나 퇴화된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퇴화기관이라고 주장했던 많은 기관이 실제로 기능이 있음이 이미 밝혀졌다. 그런데도 아직도 많은 사람이 우리의 몸 안에 쓸데없는 퇴화 기관들이 남아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꼬리뼈, 사랑니, 편도, 대장의 충수돌기(맹장 끝에 있는 충수돌기) 등이다. 그러나 꼬리뼈는 꼬리가 퇴화된 것이 아니라, 단지 척추 끝에 있는 뼈일 뿐이다. 모든 뼈가 그러하듯 꼬리뼈도 중요한 근육과 기능이 연결되어 있다. 이 뼈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쳐보면 안다. 심한 경우 변실금(변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아무 때나 변이 나오는 증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편도와 충수돌기는 한때 편도염이나 맹장염(정확하게는 충수돌기염)만 일으키는 쓸모없는 기관이라고 생각해서, 기회가 되면 수술에서 제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면역학이 발전하면서 편도와 충수돌기는 모두 우리의 몸을 방어하는 면역 시스템임이 밝혀졌다.
사랑니는 세 번째 어금니를 의미하는데, 사람 중에는 네 번째 어금니를 갖고도 아무 문제없는 경우도 많다. 즉, 사랑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사랑니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랑니는 원래 치아의 끝에 위치하여 치열을 고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면 사랑니를 수술하면 안 되는 것이다. 문제는 사랑니가 나야 할 곳에 나지 않고 엉뚱한 곳에 있어서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랑니를 퇴화기관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퇴화되지 않고 멀쩡한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덜 진화된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사랑니가 있는 것은 우리 몸이 완전하지 않고 망가진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 몸에 쓸데없는 것은 없지만, 망가진 부분은 있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 이후 죽게 된 몸 자체가 사실 결정적으로 망가진 것이다. 또한, 이후 창세기에 기록된 인간의 수명은 계속 감소하고 있고, 화석에 나타나 있는 거대동물들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간과 생명체의 유전정보들이 많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유전정보의 손상이 뚜렷한 경우는 유전병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작은 경우는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다 망가진 유전정보를 어느 정도 갖고 있는데, 비교해봐야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작은 망가짐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나야할 영구치가 없어서 평생 유치(젖니)로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영구치가 나야할 그 자리에 영구치가 없는 것은 유전자 일부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사랑니 중에 문제가 되는 사랑니는 이런 망가진 유전자 때문일 수도 있고, 또한 식습관의 변화로 입의 구강 구조가 작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구강 구조가 작아지면 영구치가 나오면서 엉뚱한 위치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 작품인 인간의 몸에 쓸모없는 기관이 없듯이, 사람 중에 쓸모없는 사람도 없다. 비록 건강하지 못할 수 있고, 평생 병들어 누워있을 수 있어도 사람마다 하나님의 독특한 부르심이 있는 존귀한 존재이다. 우리의 아픈 몸은 우리를 힘들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이것을 마음 아파하실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담긴 멋진 설계일 수밖에 없다. 비록 지금 멋진 설계 모두를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몸은 놀라운 창조설계로 가득 차 있음을 DNA 유전정보 설계도에서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은 한때 인간 DNA의 95%가 쓰레기 DNA라고 주장했다.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쓸데없는 것들이 쌓여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DNA에 대한 연구가 계속될수록 쓰레기 DNA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기능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제는 쓰레기 DNA라는 주장은 사라지고 있다. DNA를 연구하면 할수록 새로운 조절 시스템을 발견하는 과학자들은 DNA가 우주보다 복잡한 놀라운 설계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사실 유전정보에 대하여 전혀 몰라도 인간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는 그냥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직립보행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직립보행을 하는 것 자체가 놀라운 설계다. 직립보행을 위해서는 유연성과 강인함을 갖춘 S자형 척추와 강력한 엉덩이 관절 구조, 튼튼한 양발, 아치형 발의 구조 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직립보행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려면, 로봇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로봇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걷는 일이기 때문이다. 로봇은 사람처럼 걷는 것이 불가능하고, 안정되게 걷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지구상의 어떤 동물도 사람처럼 직립보행하여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특별 설계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2. 창조질서에 따른 건강한 삶
이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인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합당하게 살 때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어 있다. 식이, 운동, 쉼과 잠이 건강에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를 지구에서 살도록 창조하시고, 낮과 밤으로 하루를 정하신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고 자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낮과 밤은 우리 눈에 빛을 주고 어둠을 줌에 따라, 몸의 일주기리듬이 만들어지고, 낮의 호르몬 코티졸, 밤의 호르몬 멜라토닌이 분비되어 우리 몸의 질서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밤에 빛이 있으면 멜라토닌 분비가 정지되고, 일주기 리듬이 깨지게 된다. 밤을 낮처럼 환하게 살고 있는 인공조명의 시대는 밤과 낮의 질서가 깨진 환경이다. 보름달이 환할 때 조도를 측정하면 0.02 lux도 나오지 않는다. 인공조명이 없는 밤은 생각보다 매우 어둡다. 그런데 보통 사무실의 조도는 200 lux가 넘고, 대형마트의 경우는 1,000 lux에 가깝다. 이렇게 환한 곳에서 야간 활동을 즐기고 있는 것이 현대문화의 불건강한 단면이 되고 있다.
야간 인공조명은 밤길을 밝히기도 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좋은 기능도 있지만, 쉬고 잠을 자야 하는 밤에 우리 몸이 빛에 노출됨에 따라 수면이 방해되고, 정신 건강이 나빠지며, 비만을 초래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 교대 근무자들에서 암 발생이 높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일반 사람들도 야간에 인공조명이 강한 곳에 사는 사람들에서 여성의 유방암, 남성의 전립선암 환자들이 많이 발견된다. 야간 인공조명은 가로등뿐 아니라, 휴대폰, TV, 광고판 등 우리 주변에 넘치게 많다. 잠을 잘 때 빛이 있는 것이 건강에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수면 전에 강한 빛에 노출되는 것도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밤이 밝은 나라라는 연구결과는 우리의 건강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창조질서 중의 하나가 씨를 심고 가꾸어야 추수의 때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농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도 적용된다. 지금 나의 건강은 과거에 어떤 씨를 나의 몸에 뿌렸느냐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과거 술과 담배로 나의 몸을 괴롭혔다면 지금 그 결과로 간경화나 폐암이 될 수도 있다. 낮과 밤의 창조질서를 지키고 살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장기적인 건강 영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낮과 밤의 창조질서뿐 아니라, 우리 몸 자체의 질서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 몸은 원래 땀을 흘리며 일하도록 창조되었다. 일하는 것은 인간의 범죄 이후에 주어진 저주가 아니다. 인간의 범죄 이후에 주어진 것은 우리가 먹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환경이 된 것이다. 범죄 전에도 일이 사람에게 주어졌다. 이 땅을 다스리며, 생명체를 돌보는 역할은 타락 이전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동산을 다니며 아담 자신이 이름을 지어준 동물들을 돌보는 일들은 기쁘고 복된 일이었지만,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생각하며 무엇인가를 만드는 창조적인 노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 천한 것처럼 잘못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생각은 하지 않을지라도 노동을 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 거의 온종일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이용해 일하는 것이 많은 현대인의 모습이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한다. 아마도 농사일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매일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은 별도로 시간을 내어 운동해야 한다. 놀랍게도 우리의 근육은 25세 이상이 되면 없어지기 시작하며 70세 이상이 되면 현저하게 없어진다. 감사하게도 노동 또는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우면 없어지는 근육을 대신할 수 있으며, 그 이상으로도 근육을 키울 수 있다. 25세 이상이 되면 근육에 투자해야 한다. 즉 근육 강화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은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3. 건강을 선택하는 삶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적절한 양으로 규칙적으로 먹어야 한다. 낮과 밤의 질서와 함께 식사 습관의 질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노동과 운동이 적은 현대인은 비만이 되기가 너무나 쉽다. 노동과 운동량이 적으므로 어쩔 수 없이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 적은 식사량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단백질, 채소, 과일 중심으로 식사해야 한다. 탄수화물이나 지방도 섭취해야 하지만, 우리의 음식에 탄수화물, 지방은 비교적 많기 때문에 단백질, 채소, 과일을 강조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먹는 먹거리가 건강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건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최근 유기농법들이 강조되면서, 화학비료로 억지로 키운 농산물들이 건강에 불리할 수 있다는 생각들이 많이 퍼지고 있다. 소나 닭 등도 건강하게 키워야 건강한 고기로 사람들에게 공급된다는 것도 점차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건강해지려면, 우리를 둘러싼 하나님의 피조세계 전체가 건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푸른 숲이 많아야 우리에게 맑은 공기를 공급해주고, 깨끗한 강과 바다가 있어야 건강한 물고기들이 살 수 있고, 좋은 환경에서 키운 동식물들이 더 맛있고 건강한 먹거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관리하는 것이 사람들의 사명임을 깨닫고, 어렵고 힘들더라도 피조세계 자체를 건강하게 하는 일에 우리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일 뿐 아니라, 결국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여러 번의 식사를 하는 것은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루에 세 번이나 식사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우리가 먹기 위해 사는 존재임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이다. 요즘 혼밥이 유행하는 것은 인간관계가 얼마나 삭막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밥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먹는 것이다.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처럼 즐거운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도 천국을 잔치 자리에 비유하셨고, 예수님 스스로도 자신의 몸을 우리의 먹거리라고 하셨다. 함께 먹는 것은 함께 사는 것이며, 우리말 그대로 식구(食口)인 것이다. 먹는 것이 풍성하다면, 모두가 함께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더 많이 먹도록 서로를 권유하며, 자신은 적게 먹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몸 중의 '위(胃)”는 먹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면서 매우 재미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위는 세 가지 다른 방향의 근육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 몸의 기관은 여성의 자궁뿐이다. 자궁도 세 가지 방향의 근육들로 둘러싸여 있어 임신 중에 크게 늘어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위도 자궁처럼 많이 늘어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함께 식사하면서 우리는 절제해야 할 상황에 많이 부딪치게 된다. 먹는 사람 수에 비해 먹거리가 부족하다면, 우리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먹어야 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위를 연약하게 창조하셨으면 우리는 어차피 많이 먹지 못하고 비만도 되지 않을 터인데, 왜 이렇게 자궁처럼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도록 위를 창조하셨을까? 또한, 우리는 배부르다는 느낌을 위에 음식물이 들어가고 나서 한 참 후에야 느낀다. 바로바로 느끼면 덜 먹을 텐데 왜 배부르다는 신호가 늦게 올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선악과의 열매를 먹을 것인지, 아닐 것인지 선택하게 해주셨듯이, 모든 먹는 것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절제할 수 있는지를 선택하도록 창조하신 것 같다. 나 자신의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절제해야 하고, 함께 먹는 공동체 식구들이 골고루 잘 먹기 위해서도 절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먹거리들을 먹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고전 10:23)
말씀처럼 먹는 것을 절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 것 같다. 위의 기능으로 보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지만, 나의 몸을 사랑하고, 나의 식구들을 사랑하기 위해 절제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더 좁게 생각하면 노동이 주업이 아닌 현대인들에게 먹는 것을 절제하여 위의 크기를 크게 키우지 않는 것이 건강의 중요한 비결이 된 것이다.
4. 기쁨을 누리는 몸의 건강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신 가장 기쁜 것은 '성관계(sex)'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장 중요한 질서 중의 하나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인데, 결혼하고 아이 낳고,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많은 자녀가 출생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렇게 힘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관계'에 큰 기쁨을 허락하신 것 같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하면, 결혼을 통해 서로에게 평생 헌신할 것을 약속하고 '성관계'를 통해 자녀를 낳게 된다. '성관계'가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성관계를 통해 우리의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또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물론 도파민 호르몬 외에도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 우리가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신경전달물질들이 준비되어 있다. 통증이 심할 때 나오는 엔도르핀도 우리에게 쾌감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쾌감을 느끼기 위해 극도로 힘든 마라톤을 열심히 하는 경우도 있다.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어가는 결혼의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성관계'라는 특별한 선물을 주셨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관계' 자체를 죄악된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관계'는 부부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의 선물을 업신여기는 것은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이 함께 성숙해가는 결혼은 힘들다고 외면하고, '성관계'라는 쾌락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포르노 중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건전한 사랑의 관계 안에서의 성관계가 아닌 쾌락만을 원하는 '성관계'는 성중독으로 발전되기 쉽다. 더 큰 쾌락만을 계속 추구하는 성중독은 결코 만족함이 없다. 또한, 이런 성중독은 뇌에서 더 많은 도파민 분비를 계속 요구해서 뇌 조직 자체를 손상시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포르노 중독이 된 경우에 성적 능력이 크게 훼손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우리가 느끼는 사랑이 단지 화학물질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화학물질 작용 때문에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느끼기 때문에 화학물질이 전달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물건을 옮기고 싶은 마음이 들면 팔을 사용해서 물건을 옮기듯이, 뇌의 화학물질도 우리 마음의 도구가 될 뿐이다. 화학물질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므로, 우리가 쾌락을 선택할 때는 그에 따른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성관계'를 선택한다면 '결혼'도 함께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을 분리해서 쾌락만을 선택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이런 의미에서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도 분리시킬 수 없다. 몸의 건강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때 우리 몸은 단련되고 건강해지듯이, 마음의 건강도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절제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도 선택하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 절제나 사랑 모두 성령님의 열매이므로, 이를 위해 우리는 절제를 선택할 수 있고,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선택의 훈련을 통해 우리는 마음을 단련시킬 수 있다.
건강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열거하자면 한정이 없겠지만, 건강이 우상이 되는 것은 차라리 건강하지 않게 사는 것보다 못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지키고, 모든 피조물을 돌보게 하셨듯이 우리도 우리 몸을 돌봐야 한다. 우리 몸을 돌보는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다. 낮 시간에는 열심히 노동하고 일을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 육체적인 노동이 좋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 별도로 시간을 내서 육체를 단련시키는 운동을 해야 한다. 밤에는 쉬고 잠을 자야 한다. 수면은 시간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모두 충분해야 한다. 밤에 자지 않고 낮에 오래 자는 것은 일주기 리듬 입장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어두운 밤에 충분히 자야 한다. 만약 꿈을 많이 꾼다면 수면의 질이 낮은 것이다. 수면의 양과 질 모두 좋아야 건강에 좋다.
우리 몸이 얼마나 멋진 하나님의 창조작품인지를 알고 우리 몸을 아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절제해야 한다. 흡연, 음주 등 나쁜 생활습관을 갖지 않도록 절제해야 한다.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이 되지 않도록 먹는 것도 절제해야 한다. 아무리 쾌락을 주더라도 부부 사이가 아닌 성관계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현대인들은 성중독 외에도 많은 것들에 중독되어 있다. 아내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들을 계속 찾고, 필요하지도 않은데 계속 쇼핑을 하고, 유명 아이돌 가수들에게 맹목적인 추종을 하는 것 등도 중독이다. 중독은 갑자기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 늪으로 빠지듯 반복적으로 계속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중독되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지만,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반복적인 나쁜 습관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독을 예방하는 길이다. 그러나 혹 이런 중독에 빠졌다면 치료의 희망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중독은 우리 의지로, 의술로 치료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지 않으면, 다시 쉽게 표현하자면 예수님께 중독되지 않으면 중독이 치료될 수 없다.
우리의 몸은 신비하다. 우리의 영혼의 그릇인 동시에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부활 후에 영혼만 남아 천사처럼 영적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몸을 입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 것이다. 따라서 몸의 건강은 지금 세상뿐 아니라, 새 땅에서도 중요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몸의 건강을 지키는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새 땅은 태양도 없고 낮과 밤도 없이 하나님의 영광이 항상 비치는 곳이니 낮과 밤의 창조질서를 따르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몸을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몸의 건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금 이 땅에 살면서 창조의 질서대로 살기 위해 선택할 때마다 우리의 몸에 건강을 심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드러내는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 몸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르고, 우리의 삶에 의와 절제와 사랑의 열매가 풍성해지길 기도드린다.
출처 - 창조 190호 (2017년 여름호)
사람의 눈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 이유는?
(Why Eyes Express Emotion)
by Brian Thomas, Ph. D.
동물들과 달리 우리는 모든 종류의 정보를 우리의 눈(eyes)으로 전달한다. 한 마디의 말없이도 의심, 걱정, 놀람, 기쁨, 슬픔... 등을 미묘한 눈빛으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방법을 갖게 되었는가?
진화론 심리학자들은 찰스 다윈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마도 교묘한 눈 표현은 눈 표현을 하지 못하던 영장류에서부터 진화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코넬 대학과 콜로라도 대학의 심리학자들은 눈의 표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 진화론의 우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2017년 보고는 Psychological Science 지에 게재되었다.[1]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호기심, 지루함 등과 같은 정신 상태를 반영하는, 50개의 단어들과 매치되도록, 슬픔, 혐오, 분노, 기쁨, 두려움, 놀라움과 같은 6가지의 기본적인 눈 표정을 짓도록 요청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눈 표정만을 보고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추정해보도록 했다. 그들은 단지 눈 모양만을 보고도 6가지의 기본적인 감정을 알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얼굴의 나머지 부분이 눈의 표현과 일치하지 않을 때에도 그랬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은 자신의 눈 표현이 다른 사람들의 눈 표현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을 테스트했다. 예를 들어, 눈을 넓게 뜨는 것은 민감성을 향상시키는 반면, 좁아지는 눈은 세부 사항을 식별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참가자들은 넓어지는 눈으로 표현되는 감정과 관련된 정신 상태를 분류하고, 좁아지는 눈과 관련된 정신 상태를 연관시켰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잘 됐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눈의 표현이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소설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코넬 대학의 언론 보도는 ”우리는 눈의 표정을 분석함으로써 사람의 감정을 해석했다. 이것은 환경 자극에 대한 보편적 반응으로 시작되어, 우리의 가장 깊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 진화된 과정이다”라고 말했다.[2]
그래서, 추정되는 진화론적 인류의 조상은, 넓어지거나 좁아지는 눈을 관찰함으로써 먼저 다른 사람의 감정적인 상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눈의 너비를 자신의 눈이 좁아지거나 넓어질 때의 느낌과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다른, 더 복잡하고, 감정적인 연결고리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은 언급되지 않은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 사람은 공막(sclera)이라고 불리는 눈의 흰자위의 량을 보고, 상대방 눈의 커짐과 좁아짐을 식별한다. 하지만 꼬리없는 원숭이류(apes)에서는 공막이 보여지지 않는다! 원숭이 같았던 인류의 조상은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던 모습을 인식하거나, 모방할 수 있었단 말인가?[3]
둘째, 이 진화론 이야기는 눈의 표현으로부터 어떤 감정을 식별하기 위해 필요한, 기계적 및 정보적 요구사항을 건너뛰고 있다. 하나는 먼저 눈의 모양을 정확하게 바꿀 수 있어야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많은 안면 근육들이 있어야만 함을 의미한다. 사람은 약 50개의 개별적으로 조절되는 안면 근육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것들 중 많은 것을 사용한다. 고릴라는 다른 원숭이류와 마찬가지로 안면 근육이 30개 미만이다.[4]
설사, 추정되는 인류의 조상이 여분의 안구 근육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근육을 언제, 얼마나 멀리, 얼마나 오래, 각 근육을 자극할지를 알려주는, 정보적 신호와 근육을 적절하게 연결시켜주는 신경이 없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이 진화론적 시나리오의 마지막 문제점은 그것이 진화로 생겨나는 것을 관측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진화가 일어나 새로운 근육과 신경 세트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또한 진화가 새로운 감정을 전달하는데 필요한 근육과 그것을 만드는 유전정보가 무작위적인 과정으로 생겨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그 근육을 자극하는데 필요한 신경과 그것을 만드는 새로운 유전정보가 생겨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적인 눈 신호를 알아채고 해석하는 정신적 프로그래밍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원숭이 같은 조상에서 눈의 표현이 진화했다고 믿고 있는 심리학자들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무작위적인 자연적 과정이 어떻게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눈 표현 시스템을 만들었는지를 보여줘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눈의 공막, 근육, 신경, 그리고 그것들을 관리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감정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복잡한 정신 능력 중에서 하나라도 없다면, 작동하지 않는다. 이 시스템은 마치 누군가가 모든 것들을 거기에 배치해 놓은 것처럼, 통합적 특성을 갖추고 작동되고 있다. 그것들은 독특하게 사람 수준에서 우리가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은 우리가 창조주와 나누는 수준의 감정(emotion)인 것이다.[5]
References
1. Lee, D. H. and A. K. Anderson. 2017. Reading What the Mind Thinks From How the Eye Sees. Psychological Science. 28 (4): 494-503.
2. Osgood, M. Eye expressions offer a glimpse into the evolution of emotion. Cornell University Press Release. Posted on mediarelations.cornell.edu April 17, 2017, accessed April 18, 2017. Also ScienceDaily, 2017. 4. 17.
3. And why would that supposed ancestor evolve visible sclera unless and until it knew in advance that eye whites would open a new dimension to interpersonal communication, all while evolution supposedly proceeds blindly?
4. See references in Burgess, S. 2014. Overdesign in the human being with a case study of facial expressions. Journal of Creation. 28 (1): 98-103.
5. 'So Jesus had compassion and touched their eyes. And immediately their eyes received sight, and they followed Him” (Matthew 20:3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9991
출처 - ICR News, 2017.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