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Michael Matthews
2004-07-24

원숭이는 우리의 형제입니다 - 우체국에 한번 물어보세요.

 (Apes are our brothers—just ask the Post Office)


 

우리가 가진 DNA의 98 %가 침팬지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것은 영국의 Royal Mail 에서 발행한 생명의 비밀이라고 불리는 새 시리즈의 우표 중 first-class 우표의(좌측 상단) 광고에 나오는 말인데, 이 우표들은 Watson과 Crick의 DNA 구조 발견 50 주년과 최근의 인간 게놈 연구의 발전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된 것이다.

 


이 우표들을 광고하는 포스터들이 전 영국의 우체국에 도배되어 있는데, 강연을 위해 영국을 여행중인 미국의 AiG 직원조차 이 문구로 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런던 타임즈의 만화가인 Peter Brookes이 명확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유머가 섞인 삽화를 그려 넣었는데, 과학자와 유인원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을 고르고, '비교유전학(Comparative Genetics)' 이라고 표기했다. 이것은 명백히 DNA 연구의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가 인간 진화의 증거라는 것을 넌지시 비치고 있는 것이다.

 


시리즈 중 다른 우표도 유사한 메시지를 조장하는데, Royal Mail 인터넷 사이트의 광고를 보면 우표의 제목이 '태초의 끝(The End of the Beginning)' 이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퍼즐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발견은 현재까지 계속되어져 왔고, 유전자 지도의 해석은 계속되어질 것이고, 이것은 결국 우리에게 생명의 기원을 밝히는 방법을 제공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1

 

 

 

 

 

  

의심되고 있는 '하나님의 가설'

'생명의 비밀(The secret of life)' 이라는 우표 시리즈의 제목은 DNA의 이중 나선구조를 발견한 사람들 중의 하나인 Francis Crick 의 유명한 인용구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그의 발견을 진화의 확실한 증거이자, 종교에 대한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로 생각했다. (Crick은 50년 전에 캠브리지에 있는 한 선술집에서 우리는 생명의 비밀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었다.)

꺼리낌 없는 무신론자였던 Crick은 노벨상 수상보다 더 큰 상에 동기화되었다. 그는 공공연하게 자신이 신의 존재에 대한 2 가지 설계 논증, 즉 화학물질들은 생명(life)을 설명할 수 없으며, 화학 과정도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은 설명할 수 없다 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하는데 공헌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런던 Telegraph 지에서 말했다.

'나는 이러한 종교적인 이유들 때문에 과학을 접하게 됐고, 그것에 대해서 의심할 바가 없었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두 가지 사항, 즉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리고 의식 현상이란 무엇인지를 자문해 보고 종교적 신념을 지탱하기 위한 것으로 사용했었다.' 2

비록 Crick의 DNA에 관해 한 일이 인간 두뇌3에 관해 일한 것보다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두 가지 연구의 의도하는 바는 동일한 결론으로 도출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가설이 의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라도 Crick이 발견한 것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1953 년 당시만 해도 어떻게 유전자가 일하는지, 생명체가 어떻게 자손을 번성시키고 그 성질을 물려주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DNA 구조의 발견은 생물학에 혁명을 가져왔고, 거대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했다. (Genome Mania를 보라.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1/0309_genome.asp

 인간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있다.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프로젝트로 얻을 수 있는 잠재된 의학적 유익은 우표에  표기된 '의학적 미래 (Medical futures)' 가 강조하듯이 아주 흥미롭다.

반면에 DNA연구가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는 믿음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비록 비교유전학의 분야에서 서로 다른 종들 사이에서 DNA의 유사성(달리 말하면 차이점)에 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이 발견되었지만, 그것이 우리 DNA의 기원이나 종들 사이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 바나나와 유전자의 반 정도가 유사하다고, 우리의 반이 바나나가 아닌 것처럼4,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 98% 정도의 유전자 유사성이 있다고, 우리의 98% 정도가 침팬지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5 뿐만 아니라, 최근의 증거들은 유전자의 유사성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DNA의 실질적 교훈

지난 50 년간 DNA 연구를 하면서 이루어진 예상하지 못했던 깨달음은, DNA는 단지 시간과 우연으로서는 생길 수 없다는 것과, 경이로운 복잡성과 삶을 부호화하는 효율적인 정보시스템을 포함해서, 이 모든 것을 만든 놀라운 디자이너가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DNA는 물리적, 화학적 법칙들에 순응하지만, 이러한 법칙들 이상의 것이 들어있다. 단지 물리 또는 화학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보(information) 라는 것이다.6 자동차는 물리적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즉 자동차를 움직이는 어떤 무형의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물리적 법칙과 시간, 그리고 우연이 차를 만들 수는 없다. 빠진 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보이다. 즉 지적 설계는 이러한 미완의 요소를 완전하게 한다.

DNA는 생명체의 청사진으로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옮겨지는 것으로, 이것은 한 로봇의 프로그램을 다른 로봇으로 옮기는 것과 같다. 관찰된 과학에 의하면, 우연히 정보가 창조될 수 있는, 즉 프로그램이 우연히 만들어지는 어떠한 자연적 과정도 관측되지 않았다. 가장 논리적인 결론은 프로그램이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처럼, 최초로 창조된 종들 안에 있는 정보는 지적인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분명한 과학적 결론임에도, 창조자를 거부하는 진화론적 반역자들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References

1. 2003 collection: the secret of life

<www.royalmail.com/portal/default/all/home?shopConsigniaPage=/shop/catalog/shopDetail&id=prod240003&_requestid=8851>, 25 February 2003.

2. Do our genes reveal the hand of God?

<http://www.telegraph.co.uk/connected/main.jhtml?xml=/connected/2003/03/19/ecfgod19.xml>, 20 March 2003.

3. The second half of Crick’s life focused on brain research, as he explained in his 1994 book The Astonishing Hypothesis: The Scientific Search for the Soul, which claimed, ‘Your joys and your sorrows, your memories and your ambitions, your sense of personal identity and free will, are in fact no more that the behavior of a vast assembly of nerve cells and their associated molecules.’

4. Wieland, C., Furry little humans? Creation 24(3):10-12, 2002.

5. Note that the 98% figure, which gets bandied about in the press, refers to chimpanzees, not apes, and it has been lowered to about 95%.  See Reevaluation of >98% Similarity of Chimpanzee and Human DNA.

6. I.e. the sequence of symbols with which DNA is constructed.  This sequence is not inherent in the raw chemistry of DNA, but arises from the information in the parent’s DN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answersingenesis.org/docs2003/0407apes.asp ,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31

출처 - AIG, 7 April 2003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7-15

물만 보더라도

이재만 


     지구 표면의 70%가 물로 덮여있다. 우리 몸도 많은 양이 물로 구성되어있다. 우리는 매일 물을 마시며, 순수한 물만을 마시지 않더라도 음식과 음료수에는 물을 포함한다. 마실 뿐 아니라 목욕하고, 세탁하고, 청소하는데 반드시 물이 필요하다. 이렇게 필수적인 물에 대하여 알아보자.


필자가 살던 미시간은 민물 호수로 둘러싸여있다. 맛을 보면 민물인지 알 수 있지만, 겨울이 되면 분명히 구분이 할 수 있다. 호수 표면이 꽁꽁 얼어 많은 강태공들이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보며 소금물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물질은 물과 같은 액체에서 얼음과 같은 고체로 변할 때 부피가 줄어들어 아래서부터 얼지만, 물은 오히려 반대로 고체로 변하면 부피가 커져서 위에서 올라가 표면부터 얼음이 언다. 특이하게도 물은 섭씨 4도에서 가장 밀도가 높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물이 다른 물질과 같이 바닥부터 언다면 어떻게 될까?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강태공들이 낚시를 못하게 되는 것은 고사하고, 민물에 살고 있는 물고기를 비롯한 모든 생물들은 얼어서 죽게 될 것이다. 다행이 물이 표면부터 얼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표면에 얼은 얼음이 위의 차가운 기온을 막아주어, 물고기 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겨울을 나게 되는 것이다. 단지 이러한 문제뿐만 아니라, 물이 섭씨 4도에서 최고의 밀도를 갖는 특성이 없다면 근본적으로 생물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물은 다른 물질 보다 유난히 큰 비열을 갖고 있다. 사막지역과 같은 건조한 지역은 일기온 차이가 크고, 플로리다와 같이 다습한 곳은 일기온 차가 크지 않은 이유가 있는데, 이는 바로 물의 높은 비열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구에 물의 존재 여부와 양은 지구의 온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지구의 70%가 바다로 덮여있는데, 이는 지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대기 중에 적당한 수증기 양도 지구의 온도를 유지시키는데 아주 중요하다.


단지 지구의 온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의 온도를 유지시키는 일도 감당하고 있다. 우리의 몸이 뜨거울 때 물이 땀으로 증발되면서 몸의 열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일정한 체온을 유지시켜준다.


물의 특성 중에 알려진 몇 가지만 다루어 보았다. 이들을 제외한 수많은 물의 특성이 있는데, 모두가 생물이 사는데 필수적인 것들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물이 우연히 이러한 성질들을 갖게 되었을까? 생물들이 이러한 물의 특성에 우연히 또한 아슬아슬하게 적응하여 진화되고 생존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이러한 완벽한 성질의 물을 창조하시고, 생물들을 이러한 물과 조화시켜 창조하셨을까? 물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 모든 오묘한 성질을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창조자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분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욥 38:28-30)

이웅상
2004-06-24

성경 속의 유전법칙, 창조주 하나님 증명



멘델의 유전법칙, 야곱의 사건 속에서 이미 언급

시편의 말씀 속에서 DNA의 존재에 대해 기록

 



21세기를 유전공학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는 1866년 멘델에 의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전법칙이 발견되고, 1953년에 왓슨과 크릭이 유전물질인 DNA가 이중나선구조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멘델이 발견한 이 놀라운 최초의 유전에 관한 창조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50년 가까이 사장해 놓았었다. 보라색의 꽃을 피는 완두와 흰색의 완두를 교배하면 제 1대에서는 보라색만 나오는데 그 이유는 보라색이 우성이요  흰색이 열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멘델이 발견한 분리의 법칙에 의하면 열성인 흰색도 같은 열성인자와 만나면 발현이 되는데 제2대에 우성과 열성이 3대 1로 분리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20세기에 와서야 겨우 이해되기 시작한 이 이론이 3천4백50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에 언급되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창세기 31장 12절에 보면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 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기록되어 있다. 야곱은 외삼촌이요 장인인 라반이 자기에게 아롱진 양, 점 있는 양, 검은 양을 열번이나 주기로 한 약속을 변역하면서 지키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해치 못하게 하시고 빼앗아 주신 것을 꿈에 천사를 통해 깨닫게 된다(창세기 30: 32; 31:7-12).라반은 위의 열성 형질을 갖고 있는 양을 따로 분리해 사흘 길이나 떼어놓지만, 교배하는 수양은(외형은 모두 흰 양이지만 유전인자 속에는) 모두 얼룩 무늬있는 것, 점있는 것, 아롱진 것이 되도록 하여 이런 열성형질의 양이 많이 나오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모두 흰 양이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열성인자를 하나님이 보시고 이들이 교배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시편 139편 16절에 보면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보시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생명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형질을 기록하신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보시고 계시기 때문인 것이다.  부모에게 있는 쌍꺼풀과 귀의 모양이 어떻게 자녀에게 유전될까? 사람은 사람만 낳고 돼지는 돼지만 낳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로 16세기까지 과학자들은 정자 속에 이미 다 형성된 작은 아이가 있는 것으로 설명해왔다. 이를 ‘전형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범유전자설이 제기되면서 온 몸에 있는 세포가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생식세포에 특별한 정보를 주어 부모를 닮은 후손을 생산하는 것으로 믿게 되었다.


1953년에는 DNA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모든 정보는 ATCG 라는 네 종류의 염기의 배열순서에 따라 다른 종류의 아미노산이 결정되고 이들의 순서에 따라 만들어진 단백질에 의해 여러 형질이 결정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 과정을 종합해 보면 DNA에 기록된 유전정보는 핵에서 정보RNA에 모든 정보를 전달하여 세포질에서 리보솜에 의해 단백질을 합성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부모에게 있던 정보가 후손에게 DNA로 전달된 후 형질로 나타나게 되어 닮게 되는 것이다.


시편 139편 13절에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에서 장부(원어로 ‘케라요츠’)는 신장을 의미한다. 즉 모태에서 나의 모든 장기를 조직하셨다는 이 말씀에서 16세기까지 믿고 있던 ‘전형설’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미 살펴본 시편 139편 16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모태에서 조직하시되 이미 기록된 정보대로 지으신다는 사실이다. 3천년 전에 기록된 시편의 말씀이 현대과학 보다 훨씬 앞서 열성인자의 존재와 이러한 모든 정보가 DNA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웅상 교수 (명지대 교목실장 / 한국창조과학회 부회장)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66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6-23

2 마리의 벼룩 이야기 (A tale of two fleas) 

: 자동차는 저절로 생겨났는가, 누군가가 만들었는가?

Carl Wieland 


     다음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자. 자동차 안에 벼룩들이 살고 있었다. 자동차는 벼룩들이 전부터 알고 있던 유일한 세계였다. 벼룩들은 그들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차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을 연구하게 됨으로서, 그들은 화학, 물리, 운동력, 중력, 전자기, 열역학, 양자역학 등등의 기초 법칙들을 모두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이 알게 된 모든 것들은 반복적인 실험에 의해 증명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매 결론에 동의하였다. 마지막으로 한 젊은 벼룩이 그들에게 숙명적인 질문을 하였다. ”최초에 이 자동차는 어떻게 있게 되었을까?” 그들 중에 C(creation)와 E(Evolution)로 불리는 두 마리가 대화를 시작하였다.

 

C : ”그것은 과거에 어떤 시점에 지적인 설계자에 의해서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다.”

E : ”무엇이라고? 너와 같은 말을 전에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 오, 알겠다. 너는 차 서랍에서 발견된 매뉴얼 책이 자동차의 설계자에 의해서 쓰여졌다고 추측하는, 종교적인 생각을 하는 벼룩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 책은 비과학적인 방랑하는 사막 벼룩들에 의해서 쓰여진 한 묶음의 신화(myth) 라는 것에 우리의 가장 뛰어난 벼룩학자들이 동의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C : ”그러면 이 자동차는 만든 자 없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단 말인가?”

E : ”제발 나를 잘못 인도하지 말라. 네가 원한다면 너는 만든 자가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학 수업 시간에서 젊은 벼룩들에게 그것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가 연구해 온 과학 법칙들과 과정들에 의하면, 이 자동차는 단순한 물질로부터 천천히 점진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저절로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다.”

C : ”너는 그러한 생각에 엄청난 과학적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약간이라도 알아야만 한다.”

E : ”모든 과학적 생각들은 결함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나도 연구 중이다. 그러나 나는 더 많은 연구조사가 이루어짐으로서 어떻게 이 자동차가 진화되었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충분한 열려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

C : ”그것이 진화했는지 안했는지에 대한 생각도 바꿀 수 있는가?”

E : ”내가 어떻게 그러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가? 자동차의 기원에서 진화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창조인데, 그것은 과학적인 생각이 아니라, 종교적인 생각이다. 그것은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과정에 대해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볼 수 없는 만든 자를 의지하는 것이다. 나는 과학을 공부한 벼룩들이 너와 같이 그러한 신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C : 실제로 만든 자가 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이 나를 도와주었고, 그것이 나의 과학이다. 너도 너의 생각을 입증하기위한 한 가지 실험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E : ”그것은 부당하다. 크랭크 케이스 안으로 쇠가루들이 얼마나 천천히 쌓여져 가는지 너도 알 것이다. 새로운 크랭크 축으로 응집되어 만들어지려면 수억 년은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는 새로운 어떠한 것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C : ”너의 철학은 자동차를 만든 주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도 차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만든 자가 정말 있다면, 차를 만든 과정, 또는 만든 자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 기대될 것이다. 실제로, 만든 자가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만들어졌다는 너의 생각보다 훨씬 더 과학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E : ”네가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

C : ”자, 우리가 자동차에서 일어나고 일들을 관측해 보면, 자동차는 한때 만들어졌고, 지금은 낡아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더 적합하다. 너는 우리가 발견했던 열역학 제2법칙(second law of thermodynamics) 을 기억하는가? 총체적으로 이 차의 모든 것은 낡아져가고 있고, 쇠퇴해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연구했던 과학적인 과정의 어느 것도 이 차를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이것이 창조의 매우 좋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증거는 만든 자의 매뉴얼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과 일치한다. 그래서 그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을 믿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창조의 또 다른 중요한 증거는 이 차의 구성물들이 잘 조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각 부품 사이에 상호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너도 보다시피, 코일이 스파크를 일으키기 위해서 배전기, 그리고 플러그와 같이 정렬되는 일은 저절로 자연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 세 부분이 함께 작동될 때, 과학의 법칙들이 모두 적용되며, 어떤 신비로운 과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에 관한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될 수록, 본래 자동차는 외부에서 부여된 목적(purpose)을 수행하도록, 부품 간에 질서와 관계들은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E 는 몸서리를 친다). 이것이 창조의 긍정적인 증거인 것이다. 만약 네가 아름다운 그림을 보게 된다면, Van Fleagh이 말한 것처럼, 그 그림은 창조적 지성의 결과이며, 너 자신도 그것이 창조의 증거임을 인정할 것이다. 도화지와 물감이 자연적으로 우연히 그러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다. 네가 창조자와 (과거의) 창조 작업을 결코 볼 수 없다 하더라도, 너는 창조를 알아볼 수는 있다.'  

E : ”나는 네가 말하는 점을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외부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a-tale-of-two-fleas

출처 - Creation 20(3):20–24, June 1998.

미디어위원회
2004-06-23

하나님의 창조 속에 나타나 있는 형태, 수, 패턴, 황금비율 

: 피보나치 수열, 황금 나선, 그리고 행성의 공전주기

(Shapes, Numbers, Patterns, And The Divine Proportion In God's Creation) 

Fred Willson 


     하나님의 창조 속에는, '황금비율 (Divine Proportion)'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오직 전능하시고 선하시고 모든 지혜를 가지신 성경의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여러 형태, 수, 패턴들로 나타나 있다. 가장 큰 것에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생물에서부터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경이로운 손길과 미, 기능, 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드러나 있다.

먼저 형태(shapes)들로 시작하여, 숫자적인 패턴과 비율(황금비율)이 이들 형태에 어떻게 내재하여 있는지와, 전 창조물에 걸쳐 어디에서나 나타나고 있음을 논할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한 가지 형태로부터 시작해보자. 이것은 보편적으로 조개에서 보이는 나선형태이다. 앵무조개(nautilus)에 나타나 있는 나선형태가 아마 가장 분명한 예일 것이다. 앵무조개를 유심히 보면, 나선은 형태가 점점 커지면서도 동일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유기체의 몸체가 등각이면서 대수 함수적인 나선 경로로 자라기 때문에, 그 형태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황금 나선(golden spiral)”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황금나선은 다음 같이 다양한 것에서 나타나고 있다. 허리케인, 나선형 씨앗들, 사람 귀의 와우각(cochlea), 숫양의 뿔, 해마 꼬리, 자라는 양치류 잎, DNA 분자,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 토네이도, 나선 은하들, 태양 주위에서 감겨지는 혜성의 꼬리, 소용돌이, 해바라기 씨앗의 형태, 식물 데이지, 민들레, 대부분 포유류의 귀 구조... 등이다.

이러한 나선은 정확한 수학적 패턴을 따르고 있다. 첫 번째로 해바라기에서 나선형태를 살펴보자. 해바라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감겨지는 2 종류의 나선(씨의 배열)을 관찰하게 된다. 이 나선 열을 각 방향에서 세면, 꽃의 크기에 따라 그것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다음과 같은 비율(ratio)임을 발견하게 된다. 즉 만일 꽃이 작으면 34와 55개, 중간 정도라면 55와 89 개, 그리고 크다면 89와 144 개인 경우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숫자들은 레오나르도 피사(Leonardo Pisa, 역사적으로는 Fibonacci로 알려져 있는)에 의해 AD 1200년경에 발견된 피보나치 수열의 일부 숫자들이다.

이 수열에서 각 숫자는 전에 있는 두 수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즉, 피보나치 수열은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과 같은 수열이다. 이러한 숫자 패턴은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전 자연계에 걸쳐서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패턴에서 큰 수를 인접해 있는 작은 수로 나누면, 그 비는 항상 대략 1.618이 된다. 만일 작은 수를 인접해 있는 큰 수로 나누면, 그 비는 0.618에 매우 가깝게 된다. 이 비율은 오직 이러한 종류의 숫자에서만 들어맞는다.

이 비율은 역사적으로 ‘신의 비율(Divine Proportion)’ 또는 ‘황금률(Golden Ratio)’로 불려왔다. 이 비율은 3 가지 점에서 인류에게 이바지했다. 즉, 그것은 인류에게 아름다움과 기능을 제공하였고,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 (Beauty) 

그리스의 조각가인 피디아스와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의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예술작품을 디자인할 때 이 비율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냐하면 이 비율은 인간의 눈에 매우 보기 좋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비율은 황금 직사각형(Golden Rectangle)이라고 불리는 것을 만든다. 만약 직사각형에서 짧은 선의 길이가 1 이라면, 긴 쪽은 1.618이 될 것이다. 이 직사각형 형태는 그리스의 파르테논을 설계할 때, 그리고 수많은 그림, 꽃병, 출입문, 창문, 조각상(statues) 등을 만들 때 대부분의 기초 형태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에서도 나타나며, 유엔본부 건물도 황금 직사각형이다. 여러분이 사용하는 물건 중의 대부분이, 예를 들어 신용카드, 게임용 카드, 엽서, 전기 스위치판, 연습장(혹은 편지지), 3×5 카드, 5×8 카드... 등도 (거의) 황금 직사각형을 본뜬 것이다.1

레오나르도 다빈치, 반 고호, 버미르, 사전트, 모네, 휘슬러, 르누아르 등과 같은 미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황금 비율(황금 분할)을 사용했다. 그들은 ”빈 이젤을 가지고 황금 비율을 기초로 영역을 나누어 지평선, 나무 등등의 배치를 결정했었을 것이다.”2

왜 황금 비율이었을까? 예술 형식은 정적 또는 동적으로 대칭일 수 있다. 정적인 대칭에서 선들은 명확한 길이를 가지는 반면, 동적인 대칭에서 선은 일정한 강조 지역을 적당한 비율로 조절하고 있다. 그것은 ‘성장, 힘, 움직임’을 암시한다. 그것은 예술가의 작품에 정적인 고요함과 조용한 효과보다 오히려 활기와 생기(life)를 불어 넣어 준다.3 이것이 황금 비율의 매력(appeal)이다.

또 다른 매우 흥미로운 분야는 식물 줄기 주변에서의 잎의 나선 배열 (잎차례, phyllotaxis)에서 피보나치 수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 나선 형태는 똑바로 위에서 줄기를 내려다 볼 때 관찰되어진다. 그리고 줄기의 호(arc)가 어떤 엽저(leaf base, 잎의 밑부분)에서 다음 엽저로 형성되어지면서, 그리고 줄기 둘레에 분획(fraction)이 새겨지면서 관찰되어진다. 각 경우에서 그 수는 피보나치 수열이다. 예를 들면, 느릅나무(elm)에서 호는 원주의 1/2이고, 너도밤나무(beech)와 개암나무(hazel)는 1/3, 살구와 졸참나무류(oak)는 2/5, 배와 포플러는 3/8, 아몬드와 아씨 버드나무(pussy willow)는 5/13, 그리고 일부 소나무는 5/21 이거나 13/34 이다. 하나님은 왜 이것들을 이런 식으로 배열했을까? 이러한 패턴은 각 잎들이 다른 잎들을 가리거나 밀집되지 않으면서 햇빛과 공기에 최대한 노출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이러한 패턴은 잎의 배열에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꽃잎의 배열에서도 또한 발견된다. 예를 들면, 백합은 3장, 노란 제비꽃은 5장, 참제비고깔(delphinium)은 8장, 개꽃(mayweed)은 13장, 과꽃(aster)은 21장, 제충국(pyrethrum)은 34장, 헬레니움(helenium)은 55장, 그리고 갯개미취(michaelmas daisy)는 89장의 꽃잎을 가지고 있다. 잎과 꽃잎 배열에 있어서 그처럼 다양한 나선 비율로 말미암아, 아무도 하나님의 창조에 싫증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놀랍게도 생물체 내에서도 이러한 나선과 숫자가 발견되는데, 정보를 담고 있는 DNA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DNA 분자는 폭이 21Å(angstrom, 1억분의 1cm), 나선이 완전히 한번 회전했을 때의 길이가 34Å 으로, 둘 다 피보나치 수인 것이다! DNA 분자는 문자 그대로 하나의 긴 황금 직사각형 더미이다.4

매우 작거나 매우 큰 것의 영역을 들여다보자. 원자 세계에는 4 가지의 근본적 비대칭(원자핵의 구조, 핵분열 파편의 분포, 많은 동위원소의 분포, 방출되는 입자의 분포)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비대칭이 '황금비율'과 거의 같다는 것과 이러한 값을 형성하는 수가 때때로 피보나치 수이거나 피보나치에 ‘가까운’ 수” 라는 것이다.수소 원자의 양이 변하는 상태에서, 핵이 연속적인 에너지 단계로 방사성 에너지를 얻거나 잃을 때, 원자의 전자가 변하는 비율은 피보나치 수를 만들어 낸다.6 

또한 태양 주변의 각 행성의 공전주기를 인접한 행성의 공전주기와 정수(round numbers)로 비교할 때, 매우 광대한 영역의 현상임에도, 놀랍게도 그 수는 피보나치 수이다! 해왕성(Neptune)부터 시작해서 태양을 향해 안쪽으로 감에 따라, 그 비는 1/2,  1/3,  2/5,  3/8,  5/13,  8/21,  13/34 이다. 이것들은 식물에서 잎들의 나선 배열과 똑같다!


     행성 공전주기 및 식물의 나선잎 정렬과 피보나치 수와의 상호 관계 8

    관측치   이론치    비율    식물
  명왕성90,000 (일) (2:3 해왕성) 
  해왕성60,19362,000  
  천왕성30,68831,000    1 : 2  느릅나무
  토성10,67010,333    1 : 3  너도밤나무
  목성  4,332  4,133    2 : 5  살구
  소행성들  1,200-2,000  1,550    3 : 8  배
  화성    687     596    5 : 13  아몬드
  지구    365     366     8/13    8 : 21 
  금성    225     277    13/21    8 : 21  소나무
  수성      88       87   13 : 34  소나무


아마도 노아 홍수의 날과 관련하여, 특히 금성에서 소행성대까지의 태양계를 변경시켜 버린 어떤 우주적 힘을 이론화하여온 창조론자들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표에서의 화성(596대 687)과 금성(277대 225)의 이론치와 관측치의 차이와 관련이 있으며,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관측치들이 이론치 값에 매우 가까움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이 두 값의 조정과 더불어, 행성들의 공전 주기가 피보나치 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는 배열 그 이상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음을 보여주는 경이로운 수학적 배열에 대한 많은 사례들 중에 하나인 것이다. 아담의 죄가 전 피조세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로마서 8:22), 그것이 완벽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선하신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당신의 위대한 작품들의 모든 흔적들을 덮도록 허용하지는 않으셨다는 것이다 (시편 19:1).

표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탈(divergence)은 지구에서 나타난다. 화성 다음의 행성에서, 그 수는 8:21이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이 수는 지구를 '스쳐지나', 금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일탈에도 화성과 금성에 비교한 지구의 주기가 피보나치 수(8/13, 13/21)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anomaly)은 전 우주와의 관계에서, 지구라는 행성이 독특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계시는 증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또한 다른 사실을 성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상'은 빅뱅설과 성운설(nebular hypothesis)을 산산조각내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모든 행성들이 회전하는 먼지와 원자들의 성운에서 형성되었다면, 이러한 특성들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들의 공전주기와 식물줄기의 잎 배열이 상관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형태, 수, 나선, 그리고 황금비율은 모든 창조물에 걸쳐 그들이 존재하는 어디에서나 나타나있다. 그것들은 생물에서도 발견되며, 무생물적인 현상에서도 발견된다. 그들의 좌우대칭, 아름다움, 그리고 수학적 정확성은 자연의 모든 양상에서 분명히 나타나 있다. 절대적인 완벽성이 (아담의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모든 것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실상 도처에서 그리고 각종 사물들에서 나타난다는 것은 그것들이 무작위적으로 우연히 진화 과정에 의해서 발생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합리적인 결론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인격적이며 지적인 창조주가 이러한 모든 것들을 보이지는 않지만 인격적 존재의 가시적인 지문(fingerprint)으로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이 위대하고 지혜롭고 전능하신 창조적이며 주권적인 하나님은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욥 37:5)” 고 성경에 나타나있는 분으로, 찬양을 받으시기에 마땅하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그의 이름은 무엇인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4:11).

 

References 

1. Trudi Hammel Garland, Fascinating Fibonaccis, Dale Seymour Publications, 1987, p. 19. Available: www.bbhomeschoolcatalog.com or 800/260-5461.

2. Ibid., pp. 34, 36.

3. Garth E. Runion, The Golden Section, Dale Seymour Publications, Palo Alto, CA. 1990, pp. 84_85.

4. Marl Wahl, A Mathematical Mystery Tour, Zephry Press, Tucson, AZ. 1988, p. 128.

5. J. Wlodarski, 'The Golden Ratio and the Fibonacci Numbers in the World of Atoms,'Fibonacci Quarterly, December 1963, p. 61.

6. H. E. Huntley, 'Fibonacci and the Atom,' Fibonacci Quarterly, December 1969, pp. 523_524.

7. There is still controversy as to whether Pluto is a real planet. Whether or not it is, its distance from Neptune is still a Fibonacci ratio, even if in the opposite direction.

8. Marcius Willson, The Fourth Reader of the School and Family, Harper & Brothers, Publishers, New York, 1860, p. 216.

* Fred Willson is ICR's Extension Specialist in Science Education.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shapes-numbers-patterns-divine-proportion-gods-cre

출처 - ICR, Impact No. 354, 2002.

미디어위원회
2004-06-23

만들어진 사물들 (Things That Are Made) 

: 당신은 창조의 과학적 증거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가?

Dr. Gary Parker 


     ”창조의 증거는 있나요? 창조는 당신이 믿는 그 무엇이 아닌가요? 어떻게 당신은 창조의 과학적인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진화론자들은 창조의 증거가 관찰되지 않기 때문에 과학에 속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심지어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창조에 대한 긍정적인 과학적 증거가 진정으로 발견될 것인가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창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사상(事象, events)의 정상적인 경로에서 자연스럽고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가끔씩 당신은 모양이 재미있는 조약돌들을 집어 든다. 어떤 돌멩이 모양은 신발이나 인형을 연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이것들이 언뜻 보아 어떤 디자인의 양상을 띠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실은 시간과 우연, 그리고 풍화작용과 부식작용으로 생긴 모양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산책하고 있던 중에 조약돌 가운데서 인디언의 돌화살촉을 하나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자. 비록 인디언의 공예기술에 관해 사전지식이 없는 당신이지만, 당장에 이 물건의 변별성쯤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우연, 그리고 부식으로 생긴 조약돌들의 모양은 윤곽이 둥글게 무뎌져 있어서 전반적인 외양은 취약한 결(lines)과 함유된 광물질의 편차(偏差), 그리고 때로는 암석의 '조직”에 따라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화살촉의 예리한 각은 어떤 광물질을 거슬려 골고루 깎아 세운 날인가 하면, 또 어떤 날의 취약한 부위는 마모되지도 않았고, 갈아낸 모서리 날은 암석 '조직”을 좇은 것이 있는가하면 거슬려 있는 것도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나 우연, 그리고 부식으로는 그런 패턴이 결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시간, 우연, 그리고 부식은 실질적으로는 패턴의 흔적을 없애고, 그 자리에 각종 광물질 본래의 부식 저항력이나 암석 안에 있는 취약한 결에 대한 저항력을 반영하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돌화살촉에서 관찰되는 저민 자국이나 무늬는 모종의 패턴을 반영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일 뿐만 아니라, 그 패턴은 부식의 결과와 광물질 안에 내재하는 잠재력의 결과로 생길 수 있는 것을 훨씬 초월하는 모종의 계획에 따라 대리인의 힘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당신은 창조자나 창조행위를 보지 않고서도 그 창조의 증거를 발견하고 어렵지 않게 창조자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경우의 예에서 모양과 형틀을 만드는 물질과 새로운 패턴과 장치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서 흔히 우리가 인간의 손재주로 제작한 종류의 창조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창조 행위의 증거는 실제로 관찰된  관계로부터 도출되는 논리적 추론  위에 실질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이 관찰에서 연역된 과학적인 추론은 심지어 창조 대행인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에도 다른 대상물에까지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천문학자나 정부 공무원들은 외계에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지적생명체의 탐색에 수백만 달러를 허비한 결과로서, 자연발생적인 신호와 의도적으로 발신된 신호와의 사이에 차이점을 식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정상적으로 두 종류의 대상물을 구별한다. 즉, 창조된 대상물과 시간, 우연 그리고 다양한 자연과정의 결과로 생긴 대상물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차이점은 대상물 자체의 '디자인”도 아닐뿐더러, 디자인의 필연적인 복잡성도 아니다. 그것은 디자인의 종류(kind of design) 이다.


예컨대, 눈(雪)송이는 믿을 수 없을 만치 아름다운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양 또한 복잡하다. 그러나 눈송이 하나하나는 0oC의 상태 하에서 물의 분자가 ”자연적으로 무엇을 행함으로” 생긴 결과다. 눈송이 패턴을 본 딴 모자이크 타일의 디자인은 눈송이의 그것보다 더 이상의 대단한 디자인을 보여주지 못함은 물론, 모자이크 타일의 복잡성 또한 눈송이의 복잡성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모자이크 타일에서 창조된 디자인을 인식한다. 왜일까? 우리는 그 채색 돌멩이들이 스스로는 그와 같은 패턴으로 배열되고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패턴은 반드시 외부로부터 온 것이다. 그리고 그 타일들을 적절하게 배열을 유지하기 위해 뭔가가 작용한 것이다.


뿐만 아리라 눈송이같이 자연발생 체계 내에서는 전체의 성질이 철저하게 부분의 성질에서 연유되고 있다. 창조된 체계에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조직의 성질이 각 부분에 새로운 성질들을 부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성질은 체계의 부분 부분이 스스로 개발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발할 수도 없다. 요컨대, 시간, 우연, 그리고 자연과정이 만들어낸 체계의 질서는 '내부에서의 결정”이다. 이에 비하여 창조는 ”외부에서 결정한” 질서를 가진 체계를 생산하고 있다.


과학적 관찰과 논리적 연역에 근거하여 창조된 대상물을 변별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생명 체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여 보자.

바이러스를 위시하여 생명체계의 두 가지 기본적인 '성분”은 DNA와 단백질이다. DNA는 유전인자이고, 단백질은 구조와 기능의 기본 분자이다.


비록 당신이 DNA에 관한 나의 프로그램 학습 교본을 읽고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DNA와 단백질은 기본적으로 단순한 분자들로서 각 분자는 중복된 단위들 중의 한 고리(chain) 또는 폴리머(重合體)이다.1 DNA는 일련의 염기, 즉 뉴클레오티드이다. 그리고 단백질은 일련의 아미노산이다. 모든 생명 체계에서 DNA 안에 있는 염기의 유전 배열(sequence)은 각 종의 단백질을 특징짓는 아미노산의 독특한 배열의 생산을 지시한다.


만약에 DNA와 단백질과의 사이에 개재하는 관계가 시간, 우연 그리고 자연적인 과정에 의한 결과라면, 그 때에는 DNA와 단백질 사이에는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어떤 종류의 성질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런 성질이 있는가? 그렇다. 그런 성질이 당연히 있는 것이다. 베이킹 소다와 식초를 섞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산과 염기가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아미노산과 DNA의 염기가 반응하고 있음도 안다. 당-산(sugar-acid), 아민 인산(amine phosphoric acid), 그리고 여타의 전반적인 자연적 화학반응들은 DNA와 단백질의 무작위적인 파편들 가운데서도 역시 일어난다.


그렇다면 DNA와 단백질 파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자연적 화학반응의 경향들은, 시간, 우연, 그리고 화학법칙들이 이러한 분자들의 혼합물로부터 궁극적으로 생명(life)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가? 어림도 없다. 실상은 그 반대다. 문제는 이 모든 자연적인 화학반응들은 생명 체계에 관한 한 잘못된 반응(wrong reaction)이다. DNA와 단백질은 시간, 우연, 그리고 그 자체의 화학적인 성질에 맡겨두면 생명 체계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반응하며, 생명의 기초 원리로 가정되는 어떠한 진화도 방해할 것이다. 사실상 DNA와 단백질 간의 자연적인 교차 연결은 나이를 먹는 기간동안 유전인자의 비활성화에 얼마간 이바지하고, 염기-아미노산 반응은 죽어가는 세포 속에 일어나는 대대적인 화학적 파멸의 일부분이 된다.


그러나 살아있는 세포 속에 있는 DNA는 모종의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단백질 분자들의 생산을 지시하는 유전암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어떤 화학자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한 번에 3 기(基)씩 묶여진 염기 그룹들이 특정 아미노산 분자들의 직선배열을 명시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 특정 아미노산 분자들의 각 분자마다 소속 R 그룹에 의해서 식별된다. 20 종의 R 그룹은 광범하게 다양한바 - 산, 염기, 가용성 지방, 가용성 물, 수소의 단일 원자, 긴 고리, 고리가 없는 것, 단일 고리, 또는 이중 고리 등등이다. 그런데 어떤 자연적인 화학적 성질 같은 것이 있어서 일련의 3기 한 벌 염기 그룹으로 하여금 일련의 아미노산 R 그룹을 직선 배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3기 한 벌 염기와 R 그룹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화학적인 근거도 없기 때문에, 시간과 우연이 그들을 연결할 수 없는 것은, 한 쌍의 주사위를 굴려서 13의 수를 나오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돌화살촉이 창조된 것임을 알고 있으며, 또 그것은 시간, 우연 그리고 부식의 결과로 생긴 조약돌의 형태와는 구별된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비슷한 방법으로 DNA와 단백질과의 사이에서 관찰되는 종류의 관계로부터 도출되는 논리적 추론은 지구상의 생명체는 창조된 것이라는 직접적이며 긍정적인 증거를 제공해준다.


이때, 창조의 증거는 우리가 DNA와 단백질과의 관계에 관해 알고 있고, 또 관찰할 수 있는 것에 근거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때때로 창조론자들은 지식의 공백을 하나님을 이용하여 메운다는 비난을 받는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상, 광물질의 성질과 부식과정의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각품을 시간과 부식의 제품으로부터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산과 염기 그리고 생화학 과정의 성질에 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최초의 생명체가 특별한 창조의 제품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화학적 진화론에 관해서 많은 저서를 남긴 유명한 생화학자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나의 창조의 주장이 DNA와 단백질에 관해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하자, 거침없이 그는 그가 진화론을 지지하는 이유는 금후 50년 내에 새롭게 발견될 것으로 믿어지는 것에 근거한다고 언급했다. 


생명의 기원을 말하는 동안, 그는 DNA와 단백질과의 사이에 생명 연계의 기원에 관한 이론 따위는 없었다고 거침없이 말했었다. 그리고 질문 전 후에서 극적으로 숨을 고르면서, 그는 이와 같이 질문을 했다. ”[비-생명체와 생명체 사이에서의] 이행(移行)은 화학적인 것인가 아니면 철학적인 것인가?” 즉, 생명 체계는 자연발생적인 화학반응의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화학물질들을 초월하여 유기조직을 위한 계획을 찾아봐야만 하는가? 현재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증거들은 확실히 우리들에게 화학물질들을 초월하여 창조의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얼마쯤은 역설적이지만, 일단 생명 체계가 창조되고 생명 유지에서 필요한 DNA-단백질 관계가 설정되고 나면, 생명체는 그 어떤 화학법칙도 위반하지 않으면서 이해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방법으로 그 종류대로 번성하기를 계속한다. DNA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전제하면, 그리고 에너지와 원재료의 공급이 조정되었다고 전제한다면, 또한 ”해석하는” 분자들 (메신저, 이동 RNA, 리보솜, 그리고 효소를 활성화하는 특수 아미노산 등등을 포함하여2)의 (무작위가 아닌)조합이 조정된다고 전제한다면, 생명체의 세포는 DNA를 사용하여 계속해서 단백질을 ”만들 것이며,” 그리고 순서에 따라서 다른 세포의 활동과 성장을, 심지어 재생산을 위한 DNA의 복사까지도 규제할 것이다. 이 메커니즘은 차라리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들은 생명 체계의 기원(origin)이 아닌 생명 체계의 작동(operation)을 설명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생명체의 세포는 텔레비전 세트와 같다고 하겠다. 텔레비전 세트의 작동은 그 어떤 물리학 법칙이나 화학 법칙도 위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법칙들은 그 TV 세트의 기원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관련된 우연이나 또는 시간이 어떤 것이든 관계없이, TV 세트는 ”자연의 힘에” 내맡겨진 동, 인 그리고 유리에 작용하는 Ohm의 법칙이나 Coulomb의 법칙과 같은 법칙들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여기서 다시 관찰된 디자인의 종류는 의도적이며 목적적인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서 창조 행위라 함은 물질에게  텔레비전 화상송출의 능력을 부여하여 주는 행위를 말함인데, 그것은 물질 스스로의 힘으로는 개발되지도 않고 개발될 수도 없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예를 고찰해보자. 알루미늄은 날 수 있을까? 과연 그것에 고무와 가솔린을 섞으면 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다 ─ 당신이 이 모든 성분을 비행기를 제작하는 방법으로 옳게 배치하기 전에는 불가능 한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는 무엇이 날 수 있게 만드는가? 날개인가? 엔진인가? 조종사인가? 이 모든 것 중 어느 하나도 스스로는 날 수 없다. 사실상 (하지만 당신의 다음 항공 여행 시에는 이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항공기는 하나의 비-비행 부품들의 집합체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항공기의 비행 자질은 알루미늄이나, 고무 또는 가솔린의 성질에서 연유되지도 않았으며, 또 그 성질로 변형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물체들의 성질이 사용은 되었으나, 비행 능력은 이들 전체의 유기적 조직의 성질일 따름이다.


생명체의 체계도 또한 이런 것이다. 하나의 살아있는 세포는 살아있지 않은 분자들의 협동체다. 이 분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장, 반응 그리고 재생산의 성질들은 그 체계에 포함된 분자들의 고유 성질로부터 연유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유기적 조직의 특성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이때 관찰되는 유기적 조직은 눈송이에서 관찰되든가 해변의 조약돌에서 관찰되는 조직의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의도된 창조의 산물에서만 관찰되는 종류의 조직이다.


그런 뜻에서 창조주의는 생명주의와 기계주의의 고전적인 양극단 사이에 위치한다 하겠다.3 진화론자들을 포함하여 기계주의자들은 생명 체계는 단순히 복잡한 물질의 한 형태라고 하고, 물리 화학의 제 법칙들과 생명 체계의 작동에 중요한 분자들의 성질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충분조건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주의자는 생기설(vitalism)과 기계론의 양 극단 사이에 위치한다.3 진화론자를 포함하여 기계론자는 생명 체계는 단순히 복잡한 물질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고, 물리 화학의 법칙들과 생명 체계의 작동에 중요한 분자의 성질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충분하다고 한다.


극단의 다른 한 쪽의 위치하는 생기론자(vitalist)는 '생명”이란 물질과는 전적으로 다른 그 무엇이라고 주장하면서, '활력 (vital force)'의 물질 안에로의 침입이 너무도 신비롭기 때문에 생명체계의 기원은 물론 그 작동까지도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창조주의자는 생명 체계는 질서정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동하고 있어서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신실한 배려가 잘 반영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질서와 조직의 생물학적 표준이 물질의 성질에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에서만 발생한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생물학적 질서는 과학적으로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으나, 화학 법칙이나 물질의 성질에서 연유되지도 않았으며 축소되지도 않는다. 대신에, 작동하는 메커니즘과 조직의 패턴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생명의 기원이 특별한 창조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리켜준다.


이에 관해서는 바울이 로마서 1:20에서 하신 말씀만큼 적절한 설명은 없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 그리도 명백하게 피조물은 창조주를 증언하고 있기에 바울은 실제로 이렇게 부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그렇다면, 증거가 그토록 명백한데 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가? 바울은 사람들이 진리를 막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로마서 1:18).


과학대학원 학생들과 대학 교수들에게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창조에 관한 나의 생물학적 세부 이론에 대해 어느 누구도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분자생물학자 한 사람이 나의 결론을 받아드릴 수 없다고 하면서, 누군가(Anyone)가 '저 밖”에서 생명을 창조하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문제는 마음의 문제도 과학적인 증거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 심정(heart)의 문제다. 우리한테는 나중에 더할 데 없이 밝혀질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선물로 주는 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창조된 질서 그 자체로서도 우리들 속에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하다. 그것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시편 19:1). 이 얼마나 경이로운 ”침묵의 설교”인가! 얼마나 놀라운 신앙에의 부르심인가! 창조의 증거들은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있다. 창조주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시간은 참으로 고귀한 시간이다!



Reference

1. Parker, Gary E., W. A. Reynolds, and Rex Reynolds, 1975, DNA: The Key To Life,2nd Ed., Programmed Biology Series, Educational Methods, Inc., Chicago.

2. Parker, Gary E., 1970, 'The Origin of Life on Earth,'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Vol. 7, No. 2, 97-103.

3. Parker, Gary E. & T.R. Mertens, 1973, Life’s Basis: Biomolecules, Self-Teaching Guides, John Wiley & Sons, New York.

* Dr. Parker Is Chairman of Life Sciences at Christian Heritage College and Research Associate with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in San Diego, Californi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062.htm ,

출처 - ICR, Impact No. 62, August 1978.

미디어위원회
2004-06-23

설계의 약사(略史)

(A brief history of design)

Russell Grigg 


    고대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창조자의 표시가 분명히 드러나다

2000년 넘도록 사람들은 자연 속의 '설계'가 어떤 설계자를 가리킴을 주장하고 왔다[1]. BC 44년 로마의 문필가이자 웅변가이며 정치가인 키케로(106-43 BC)는 그의 책『De Natura Deorum (신들의 특성에 관하여)』[2]에서 이 개념을 구사하여 그 당시 철학자들의 진화론적인 개념들에 도전하였다. 


그리스의 진화론,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당시 철학의 주된 두 학파는 에피쿠로스파[3]와 스토아파[4]였다. 에피쿠로스파는 육체적 즐거움 그리고 고통과 근심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한 행복을 추구하였다. 근심의 두 가지 주된 원인은 신에게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따라서 에피쿠로스는 진화적 원자이론을 가르침으로써 이 두 가지 두려움을 모두 폐기하려 하였다.

그는 자연 속에 어떤 목적이라도 있음을 부인하였는데 그 까닭은 모든 것이 미립자들(atoma: atoms)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밑으로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이 미립자들이 때로는 저절로 '방향을 바꾸어' 뭉쳐짐으로 무생물체, 생물체, 인체, 신격체 등을 형성한다. 신들은 인간보다 미세한 원자로 만들어 졌다. 신들은 세계를 창조하거나 제어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에 관한 일들에 관심이 없으며 따라서 인간이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죽을 때면 혼이 분해되어 살아지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사후 심판을 예상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키케로는 그의 책에서 스토아파의 인물을 등장시켜 설계로부터 유래한 논의들을 가지고 이러한 개념들을 반박하였는데, 그 목적은 우주가 지성을 지닌 설계자에 의해 지배되어 있음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 그는 예술적 표현(예를 들어 회화나 조상 제작)에는 의식적인 목적이 필요하며 그러기에 예술보다 완벽한 자연도 목적을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배의 움직임이 숙련된 지성적 존재에 의해 인도되며 해시계나 물시계가 시간을 가르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 설계에 의한 것임을 논하였다. 그는 브리튼이나 스키치아의 야만인들마저도 해와 항성과 유성들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모형이 의식이 있고 지성을 지닌 존재가 만든 것임을 못 알아 볼 수 없다고 말하였다[6].

키케로는 계속해서 에피쿠로스의 진화론에 도전하면서 미립자들이 우연히 충돌하면서 이 세계만큼 아름다운 것이 형성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이하게 여겼다. 그는 이것이 알파벳의 글자들을 계속 땅바닥에 던지다 보면 언젠가는 에니우스의 『연대기』가 모두 쓰여진다고 믿는 것과 똑같다고 말하였다[7,8].
 

근세의 설계 논법자들 

18세기에 있어 가장 저명한 설계 논법자는 윌리엄 페일리(1943-1805)이었다. 그는 그의 책 『자연신학』에서 어떤 이가 어느 시골의 불모지를 걸어가다가 시계를 하나 발견한다고 가정하였다. 그 시계의 여러 부분(예를 들어 스프링, 톱니바퀴, 바늘)이 충족하는 기능들에서 얻어지는 유일한 논리적 결론은 "그 구조를 이해하고 그 용도를 설계한" 제작자가 있다는 것이다[10]. 페일리는 또한 눈에 있어서도 설계의 증거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즉 눈은 시각기구로서 망원경과 현미경, 안경과 마찬가지로 지성에 의한 설계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그 외의 많은 인간과 동물의 기관(器管)들에서 보이는 복잡한 설계를 논의하며 복잡한 생명체의 존재가 지능을 지닌 창조자를 암시한다는 결론을 항시 지시한다.

18세기의 스코틀랜드 무신론 철학자 데비드 흄은 시계가 생식하는 생물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시계 논의에 반박하려 하였다. 그런데 페일리는 흄보다 30년 후에 썼으며, 페일리의 논의들은 흄의 반론들 대부분에 대비한 증거였다. 예를 들어 한 현대 철학자는 흄에 반론하기를 "생물에 관한 페일리의 논의는 시계와 생물이 비슷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성립된다. 시계에 관해 말하는 목표는 독자로 하여금 생물에 관한 논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하는 데에 있다."[11]

찰스 다윈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하는 시절(1828~1831)에 필독서로서 페일리를 읽었다. 그는 훗날 말하기를 "페일리의 『자연신학』 보다 나를 더 감탄시킨 책은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그 책을 정식으로 암송할 수 있을 정도였다."[12]

그러나 그는 자연 속에 하나님 없이 설계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이론을 전개하고 주장하는 데에 여생을 보냈다[13]. 다윈은 작고 쓸모 있는 변이들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으며, 그 변이들을 간직하는 생물들이 살아남아 후세에게 그 변이들을 넘겨준다는 것, 즉 자연선택을 제안하였다. 자연선택은 아주 미세한 개선에 있어서도 그리고 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작용하며, 작은 변이들을 축적해서 현재 생물계에 보이는 모든 '설계'들을 내놓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현대 과학 대 다윈 

귀에 거슬리게 무신론적인 옥스퍼드 대학의 리처드 호킨스 교수를 포함한 진화론자들은 여전히 다윈의 이론을 가지고 설계논의를 대적하고 있다. 다만 지금 그들은 자연 선택의 유전 복사의 잘못(돌연변이)에 작용한다고 믿고 있으며, 그 돌연변이의 일부가 유전정보의 내용(부속 기사 참조)을 증가시킨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호킨스의 논의는 과학적 이유로 심한 비판을 받아왔다[14, 15, 16, 17]. 호킨스의 신 다윈주의는 몇 가지 결함을 지니고 있다.

  • 자연선택은 자기 재생하는 존재를 필요로 한다. 가장 단순한 자기 재생 생물(부속 기사 참조)일지라도 그것을 우연히 만들어 낸다는 것은 지면에 문자를 떨어뜨려서 에니우스의 『연대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도 더 엄청난 일이다. 생물은 작은 '조립 블록'으로 정교하게 구성된 길다란 분자를 필요로 한다.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조립블록'들이 올바른 순서로 결합하지 않을뿐더러 큰 분자를 이룰 가망이 전혀 없다. 오히려 큰 분자는 분해되어 작은 분자가 되는 경향을 지닌다[18]. 또한 '조립블록'은 불안정하다[19].
  • 다윈이 그저 알지 못했던 복잡한 생물학적 기계장치가 있다. 생화학자 마이컬 베히 박사가 제시하는 예에는 참된 모터, 운송 시스템, 혈액 응고의 단계들, 복잡한 시각계 등이 있다. 그는 이 기계들이 많은 부품들을 필요로 하며 그 부품들 없이는 전혀 기능하지 못함으로써 자연 선택에 의한 작은 단계들 없이는 전혀 기능하지 못함으로써, 자연선택에 의한 작은 단계들을 거쳐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 생물물리학자 겸 정보이론가인 리 스페트너 박사는 돌연변이가 결코 유전정보를 증가시키지 않으며, 감소시킬 뿐임을 지적한다. 드물게 일어나는 유용한 돌연변이들 마저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그는 이런 돌연변이체들을 제거하는 경향을 지니는 우연의 결과들을 극복하기에는 자연도태가 너무 약하므로써 근소한 이점들을 축적하기에도 불충분함을 지적한다[21].
     

성경과 '설계 논법' 

1) 설계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0절에서 설계 논법을 사용하였는데,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을 만들어진 것들(즉 자연 속에 있는 설계의 증거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은 '변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계속해서 사람들이 그 명백한 증거를 스스로 거절한다고 말한다.

자연 속에 있는 이 설계의 증거는 인간에게 죄인 판결을 내릴 수는 있어도 인간을 구원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성경이 분명히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창조주와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느냐를 제사하기 위해서는 복음 설교가 또한 필요하다(병행 기사 참조)[22].

키케로는 그리스도보다 한 세기 전에 살았으며 아마도 창세기의 하나님에 대해 들은 적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설계 논법을 펼친 것은 스토아파 철학자들이 말하는 그리스의 모든 신과 여신들을 지지하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뉴 에이지' 신봉자들은 대자연이나 가이아(Gaia: 그리스의 지구 여신)가 설계를 하였다고 간주할지도 모른다. 

 

2) 창조 복음전도 

크리스천은 설계논법 그리고 그 외의 과학적인 논법들은 구사할 때 복음전도의 전단계 활동에 훌륭하게 임하고 있는 셈이다. 즉 그는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에 대하여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있는 진화론적인 가정들의 잘못들을 노출시키려고 하고 있다. 바울이 아테네에서 겪은 경험은 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예수와 부활을 전파하여”(사도행전 17:18) 그 당시의 에피크로스파와 스토아파 철학자들, 양쪽 모두에 도전하였다. 바울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느님을 가리킴으로써 그들의 잘못된 개념들에 도전하였다.[23].

그는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심판자를 지명하셨고 그를 죽은자들로부터 일으키시므로 이에 대한 확증을 주셨기에 심판하실 한 날이 있을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였다.(사도행전 17:18-31).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인데(사도행전 4:12), 이는 창조주시자 구세주시니 인류의 죄를 위해 벌을 받기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다.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의 복음 특히 글자 그대로의 창세기, 즉 글자 그대로의 창조, 인간의 타락, 죄에 대한 사형 등이 있어야만 이해가 되는 1-4, 21-22, 26, 45절을 제시하는 방법을 따라야 한다.

복음서의 저자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저술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하려 함이다.”(요 20:31) 그러나 그는 그의 복음서 서두에서 예수께서 창조주시며(요 1:1-3) 삼위일체의 두번째 위격이신 분이 인간이 되셨다(요 1:14)고 선포하였다, 따라서 복음전도는 그리스도를 창조주로서 제시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충분치 못한다.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면 그는 우리 구주가 될 수 없다.(이사야 43:11)
 

결론 

설계와 창조주의 메시지 없이는 '복음선포”에 기초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없이는 설계논법이 구원을 줄 수 없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에서 시작하고, 그것은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죽음 및 그의 부활의 메시지와 결합시키면서, 결여됨이 없는 복음을 제시해야한다. 


*참고문헌

1. 철학자들은 이것을 목적론적 논법이라고 일컫는다.

2. 에피쿠로스파 철학자 한 명, 스토아파 철학자 한 명 그리고 아카데미(플라톤이 창설한 철학학교)의 대변인 한 명이 관여하는 가공의 대화.

3. 에피쿠로스(341-270 BC)의 가르침에 기초함.

4. 키티움의 제논(335-263 BC)의 가르침에 기초함. 스토아파 철학자들은 범신주의자들이 었다. 그들에게 있어 행복이란 불굴의 정신과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곤경과 불운을 인 내함으로써 우주의 고요함과 질서를 열심히 흉내내는 데에 있었다. 그들의 명칭은 제 논이 가르쳤던 주랑(柱廊)(그리스어 : Stoa)에서 유래한다.

5. 데모크리투스(460-361 BC)에서부터 유래됨. 이들 철학은 그리스에서 시작하였다.

6. 키케로, 『신들의 특성에 관하여』 [De Natura Deorum], 제 2권, 87-88절.

7. 참고문헌 6, 제 2권, 93절.

8. 다음 문헌과 비교하시오. Grigg, R., Could monkeys type the 23rd Psalm? Creation 13(1):30-34, 1990; Updated in Apologia 3(2):50-64, 1994.

9. 참고문헌 6, 제 2권, 94절.

10. Paley, W., Natural theology, First published 1802, Republished by bill cooper as Paley's Watchmaker, New Wine Press, Chichester, England, pp. 29-31, 1995.

11. Sober, E., Philosophy of biology, Westview Press, Boulder, Co, USA, p. 34, 1993, cited in Behe, 참고문헌 20.

12. C. Darwin to John Lubbock, Nov. 15, 1859,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D. Appleton & Co., 2:15, 1911.

13. Wieland, C., Darwin's real message: Have you missed it? Creation 14(4):16-19, 1992.

14. Gitt, W., Weasel words, Creation 10(4):20-21, September 1998.

15. Bohlin, R. G., Up the river without a paddle - Review of river out of Eden: A Darwinian view of life, Creation ex Nihilo Technical Journal 10(3):322-327, 1996.

16. Sarfati, J.D., Review of climbing Mt. improbable, Cen Technical Journal 12(1):29-34.

17. Truman, R., The problem of information for the theory of evolution: Has Dawkins really solved it? , July 14, 1999.

18. Sarfati, J., Origin of life: The polymerization problem, Cen Technical Journal 12(3):281-284, 1998.

19. Sarfati, J., Origin of life: Instability of building blocks, Cen Technical Journal 13(3):124-127, 1998.

20. Behe, M.J., Darwin's black box, The Free Press, NY, USA, p. 217, 1996. 그는 이 특성을 '환원불가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이라고 부른다.

21. Spetner, L.M., Not by chance, The Judaica Press, Brooklyn, NY, USA, 1997.

22. 마태복음 28:18-20; 마가복음 16:15; 누가복음 24:47; 로마서 10:13-15.

23. 추가로 읽기 위하여: Morris, H.M., Design is not enough! Back to Genesis, No. 127, I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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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정보 : 과학적 설계를 가리킨다 


생물 속에 있는 모든 설계는 많은 정보를 지닌 일종의 요리법 책에서 암호화되어 있다. 정보는 순서의 복잡성을 묘사하지만 그 순서를 이루고 있는 물질에서는 의존하지 않는다. 정보는 종이(책) 위의 잉크 분자로 된 순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보는 잉크 분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패턴들에 있다. 정보는 또한 음파의 패턴(예를 들어 연설)으로서 저장될 수 있으나 역시 그 정보는 그 음파 자체이거나 충격 전파(전화) 혹은 자기(磁氣) 패턴(컴퓨터 하드 드라이버)이 아니다.

반(反)유신론자인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도 인정하기를 "무에서 정보를 창조할 수 있는 물리학 법칙은 없다"(본 호 p.42). 정보과학자 워너 깃트가 논증한 바에 따르면, 정보와 관련된 자연 법칙들에 의하면, 알려져 있는 모든 경우에서 정보가 있기에는 지능을 지닌 발신자가 존재해야 함을 논증하였다[1]. 데이비스는 오직 철학적(종교적) 이유로 이러한 결론을 거절한다. 따라서 현대판 설계 논의에는 고도의 정보 내용을 탐지하는 일이 포함된다. 실제로 이것은 바로 SETI (the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외계 지능 탐지])프로젝트가 하고 있는 일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고도의 전파 신호를 탐지하는 일이 포함된다. 우리가 발신자의 특성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할지라도 그러한 신호가 지능을 지닌 발신자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보는 것이다.

생물에 있어서 정보는 모두 DNA의 패턴 속에 저장되어 있으며, 이 패턴들은 모든 생명장치의 구성 성분인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명령들을 암호화한다. 뉴클레오티드[핵산의 구성 성분]라고 일컬어지는 4 가지 유형의 DNA '문자'가 있고, 아미노산이라고 일컬어지는 20가지 유형의 단백질 '문자'가 있다. 3 개의 DNA '문자'로 된 한 단위(코돈)가 한 단백질 '문자'를 암호화한다. 그 정보는 '문자들' 자체의 화학 성분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순서에 들어 있다. DNA는 현재 알려져 있는 정보 저장·회수 시스템으로서 월등하게도 가장 소형이다.

자 우리가 생물의 정보를 책으로 써야한다고 생각해 보라. 도킨스가 인정하기를 '한 개의 인간 세포에는 『브리타니카 대백과사전』 전 30 권을 서너번 저장하기에 충분한 정보 용량이 있다'[2]. 가장 단순한 생명체에도 조차 58 만개의 '문자'로 된 482 개의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가 있다.

우리에게 반대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키고 책들에 수록되어 있는 정보를 DNA로 저장하는 기술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이상적인 컴퓨터 기술이 될 것이다. 핀의 대가리 만한 크기의 DNA 책 한 권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량은 각기 다르면서도 특정한 내용을 실은 페이퍼백 책들을 쌓아올린 것에 환산한다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500번 올라가는 것에 해당된다[4]. 다시 말하면, 핀의 대가리 크기 만한 DNA에는 4 기가 바이트급 하드 드라이브 한 개의 1조배 정보 용량이 있다.

알파벳의 문자들이 저절로 에니우스의 『연대기』를 치지 않듯이 DNA 문자들도 뜻을 지닌 순서를 형성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연대기』가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듯이, DNA 암호의 '언어' 없이는 DNA '문자' 배열들도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참고문헌 

1. Gitt, W., In the beginning was information, CLV, Bielefeld, Germany, 1997.

2. Dawkins, R., The blind watchmaker, W.W. Norton, NY, USA, p. 115, 1986.

3. Fraser, C.M. et al., 'The minimal gene complement of mycoplasma genitalium', Science, 270(5235):397-403, 1995; Perspective by goffeau, A life with 482 genes, same issue, pp. 445-446.

4. Gitt, W., Dazzling design in miniature, Creation 20(1):6,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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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김영철

링크 - https://creation.com/a-brief-history-of-design

출처 - Creation 22(2):50-53, March 2000.


미디어위원회
2004-06-23

지적설계 운동 

(The Intelligent Design Movement)

William Dembski 


     다윈주의(Darwinism)에서는 생명의 기원과 발달을 오직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인 원인만을 가지고 설명한다. 특히 다윈주의는 하나님이나 또는 어떠한 인도하는 지성이 생명의 기원과 발달에 어떤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시킨다. 서양문화에서 다윈주의의 대두는 실로 잠시 빛났다가 사라지는 유성과 같았다. 그것이 대두되고 있을 때조차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인 원인이 생명의 모든 다양성과 복잡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다윈주의의 시각을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반대자들이 항상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반대는 산발적이고 대중 중심이었으며, 법정을 통하여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지만) 여론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였다. 지적 설계 운동과 함께 이러한 반대는 집중되었고, 동유럽에서의 자유운동이 1980년대 말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지배를 뒤집었던 것처럼 다윈주의의 문화적 지배를 뒤집을 것으로 기대되게 되었다. 

지적 설계 운동은 Charles Thaxton, Walter Bradley, Michael Denton, Dean Kenyon, Phillip Johnson 같은 사람들의 작업으로 시작되었다. 성경을 과학책으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이 학자들은 다윈주의를 과학적, 철학적 측면에서 비판하였다. 과학적 측면에서 그들은 다윈주의가 생물학의 골격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철학적 측면에서 그들은 다윈주의가 자연이 스스로 충분하며 따라서 하나님이나 또는 어떠한 인도하는 지성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보는 자연주의와 절망적으로 얽혀있다는 것을 밝혔다. 좀 더 최근에 Michael Behe, Stephen Meyer, Paul Nelson, Jonathan Wells 그리고 필자와 같은 학자들은 그 다음 단계를 취하고 있는데, 즉, 지적 설계가 생명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건설적인 연구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데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다윈주의를 비판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건설적인 대안을 제공하는 두 갈래의 접근법을 통해, 지적 설계 운동은 학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명석한 이들 중에서 빠른 속도로 동조자를 얻고 있다. 이미 그것은 지식 시장에서 다윈주의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 완전히 성공하게 되면 지적 설계는 다윈주의 뿐만 아니라 다윈주의의 문화적 유산의 자리도 빼앗게 될 것이다. 서양문화의 어떠한 측면도 다윈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었으므로 서양문화의 어떠한 측면도 지적 설계의 빛 안에서 재평가되는 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지적 설계란 무엇인가? 지적 설계는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인 원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지적 원인들은 할 수 있다는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인 원인들은 글자조각들을 흩어놓을 수 있으나 그 조각들을 의미있는 단어나 문장으로 배열시킬 수는 없다. 의미있는 배열은 지적 원인을 필요로 한다.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들과 지적 원인들 사이에 근본적인 구별이 있다는 이러한 직관은 지난 세기들의 설계 논증에 깔려 있었다.

수 세기 동안 신학자들은 자연은 자연 자체로는 설명할 수 없고 자연을 넘어선 지성을 필요로 하는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논증해왔다. Minucius Felix와 Basil the Great (3-4세기) 같은 교부들로부터 Moses Maimonides와 Thomas Aquinas (12-13세기) 같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 Thomas Reid와 Charles Hodge (18-19 세기) 같은 개신교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신학자들은 설계 논증, 즉 자연의 자료로부터 자연을 넘어선 지성이 작용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증을 해왔다.

설계 논증은 낡은 것이다. 과연 그렇기는 하지만 설계 논증은 철학이나 종교 시간에 여전히 가르쳐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설계 논증은 William Paley의 (1802년 출판된 Paley의 Natural Theology에 있는 것과 같은) 시계공 논증이다. Paley에 따르면 만일 우리가 들판에서 시계를 보았다면, 목적에 대한 적합성은 (즉, 그 각 부분들이 시간을 말해주는 데에 대한 적합성은) 그것이 지성의 산물이며 단순히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과정의 결과가 아님을 보증한다. 따라서 유기체에서의 목적에 대한 놀라운 적합성은, 전체 유기체의 수준에서든 여러 기관의 수준에서든 (Paley는 특히 포유류의 눈에 초점을 맞추었다.) 유기체가 지성의 산물임을 보증한다. 

직관적인 호소력에도 불구하고, Paley의 논증은 최근까지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고 있다. 지난 5년간 설계는 폭발적으로 소생하였다. 과학자들은 설계가 과학적인 이론으로서 엄밀하게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설계가 130년간 과학의 주류로부터 떨어져 있었던 것은 지적인 원인에 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정밀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계가 많은 열매를 맺는 과학적 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무언가가 설계되었는지를 확실히 결정할 수 있다고 확신해야만 한다.

Johannes Kepler는 달의 분화구가 달 주민에 의해 지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분화구가 자연적으로 생성되었음을 지금은 안다. 설계가 과학에 타당하게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은 이렇게 무엇인가를 설계의 결과로 잘못 돌리고 후에 그것이 뒤집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나 이제는 지적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정밀한 방법을 가지게 되어 과학자들은 Kepler의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이렇게 나타난 것이 '지적 설계'로 알려진 과학 연구의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생물학에서 지적 설계는 생물학적 기원과 발달에 관한 이론이다. 그 기본적인 주장은 생물학의 복잡하고 정보가 많은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적인 원인이 필요하며 그러한 원인들은 경험적으로 탐지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적 원인이 경험적으로 탐지가능하다는 것은 세상의 관찰할 수 있는 것들에 기반하여 지적 원인과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을 믿을 만하게 구분할 수 있는 잘 정의된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러 특정 과학에서 이미 이런 구분을 끌어내기 위한 그러한 방법들이 발전되어왔는데 특히 법의학, 암호학, 고고학, 그리고 외계지성탐사(영화 Contact에서와 같은) 같은 것들에서 그렇다. 

이러한 방법들이 지적인 원인작용을 탐지할 때마다 그것들이 찾아내는 밑바닥에 있는 본체는 정보다. 지적 설계는 정보이론으로 적절하게 정식화할 수 있다. 그러한 이론에서는 정보는 과학적 탐구의 적절한 대상일 뿐만 아니라 지적 원인작용의 믿을만한 지표가 된다. 그러므로 지적 설계는 정보를 탐지하고 측정하며 그 기원을 설명하고 그 흐름을 추적하는 이론이 된다. 지적 설계는 따라서 지적 원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지적 원인에 의해 유도된 정보의 경로에 대한 연구이다.

그 결과, 지적 설계는 창조자나 기적을 전제하지 않는다. 지적 설계는 신학적으로는 최소한의 요구로 만족한다. 그것은 지성을 탐지하되 그 지성의 본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화학자 Michael Behe의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물리학자 David Bohm의 '활동적인 정보(active information)', 수학자 Marcel Schutzenberger의 '기능적 복잡성(functional complexity)', 그리고 필자의 '복잡 특수 정보(complex specified information)'는 같은 실재에 대한 여러 표현이다.

지적 원인의 경험적 탐지가능성은 지적 설계를 전적으로 과학 이론이 되게 하고, 그것을 철학자들의 설계논증이나 전통적으로 '자연신학'이라고 불리워진 것과 구별한다. 세상에는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들로는 설명할 수 없고 오직 지적인 원인에 의지하여야만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건들, 사물들 그리고 구조들이 있다. 과학자들은 지금 이것을 엄밀하게 보여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오랬동안 있어왔던 철학적 직관이 이제는 과학적인 연구 프로그램으로 형성되고 있다. 

지적 설계는 필연적으로 모든 형태의 자연주의에 대한 거부를 수반한다.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들이 전적으로 세계를 움직인다는 형이상학적 자연주의(metaphysical naturalism)는 그것이 틀렸기 때문에 거부된다. 과학을 위해서 과학적 설명은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들을 넘어서서는 안된다는 방법론적 자연주의(methodological naturalism)는 그것이 조사를 질식시키기 때문에 거부된다. 과학이 지적인 원인 없이도 잘 될 수 있는 척 하는 것은 아무 이득이 없다. 그보다, 지적인 원인이 경험적으로 탐지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은 그 활동에 대한 증거에 대해 열려있어야만 한다.

특수 창조와 유신론적 진화는 어떻게 되는가? 논리적으로 말하면, 지적 설계는 엄격한 창조론(하나님께서 새로운 종을 창조하실 때마다 개입)으로부터 미묘하고 광범위한 진화(하나님께서 계통수 안에 모든 유기체를 빈틈없이 함께 혼합)에 이르기 까지 모두와 양립한다. 지적 설계에서는 첫 번째 질문이 어떻게 유기체들이 존재하게 되었냐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 역시 연구를 위하여 제기되어져야 하는 질문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지적인 원인으로 말미암았음을 나타내는 분명하고 경험적으로 탐지가능한 표시를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다. 원리적으로는, 진화론적인 과정도 어떠한 특수 창조의 행위만큼 그러한 지성의 표시를 보여줄 수 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지적 설계의 신학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지적 설계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끌기 위한 변증적인 도구가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적 설계는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이다.

지적 설계는 신학적인 함축을 갖는다. 지난 200년간 신학에 대한 가장 맹렬한 도전은 자연주의였다. 서양문화에서 자연주의는 모든 진지한 조사에서 표준적인 자세가 되어왔다. 성경연구로부터 법, 교육, 예술, 과학, 매체에 이르기까지 조사는 오직 자연주의적인 가정 하에서만 진행되도록 기대되었다. 

C. S. Lewis는 이렇게 썼다. 

자연주의적인 가정들을...... 당신은 모든 측면에서 만난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우리가 '유물(hangover)'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부터 온다. 우리는 모두 우리 뼈 속에 자연주의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회심조차도 그 영향을 한 번에 우리 속으로부터 제거할 수 없다. 경계가 느슨해지는 순간 그 가정들은 다시 마음 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Miracles에서 인용)

자연에 있는 설계의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지적 설계는 서양문화에서 이러한 계몽주의의 불행한 유물을 치유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실로, 지적 설계는 자연주의에 대한 최신의 가장 명확한 논박을 제공한다. 자연주의는 과학이 목적론적 자연관에 대한 거부를 정당화시켜주기를 기대하였다. 지적 설계는 바로 그 점에서 자연주의가 실패하였음을 보여준다. 확실히 자연주의를 거부하는 데에 좋은 철학적인 이유들이 있다 -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과 세상이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은 과학이 답할 수 없고 세상을 초월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지적 설계는 자연주의를 거부하는 데에는 좋은 과학적 이유들도 있음을 보여준다.


더 깊은 공부를 위해서 ;

지적 설계 운동은 Charles Thaxton, Walter Bradley, Roger Olson의 The Mystery of Life's Origin (Philosophical Library, 1984)와 Michael Denton의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Alder & Adler, 1986; 진화론과 과학-창조과학회 역간) 의 출판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두 책은 진화론에 대한 강력한 과학적인 비판을 보여준다. 게다가 설계의 과학적 증거와 창조에 관한 신학적 관점을 섞지 않음으로서 이후에 출판되는 책들의 어조를 형성하였다. 

다음에 중요한 책은 Phillip Johnson의 Darwin on Trial (InterVarsity, 1991; 심판대 위의 다윈-과학과예술사 역간) 이다. Johnson은 진화론에 반하는 과학적인 증거들을 논하였을 뿐 아니라 진화론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자연주의와 얽혀 있는지 보여주었다. Johnson은 그의 분석을 Reason in the Balance(InterVarsity, 1995) 와 Defeating Darwinism by Opening Minds (InterVarsity, 1997) 에서 계속하였다. 

Dean Kenyon과 Percival Davis의 Of Pandas and People (Haughton, 1993) 과 J. P. Moreland의 Creation Hypothesis (InterVarsity, 1994) 는 과도기적인 책들이었다. 앞선 책들이 긍정적인 대안 없이 진화론을 비판한데 비해 이 책들은 진화론에 대한 이론적 대안으로서 설계를 시험하기 시작하였다. 

Michael Behe의 Darwin's Black Box (Free Press, 1996)의 출판과 함께 댐이 무너졌다. 여기서 처음으로 설계를 통한 생물학의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제대로 갖춰진 윤곽이 나타났다. Behe의 책은 Science와 Nature에서부터 New York Times와 Wall Street Journal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비평되었다. 그것은 Christianity Today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책의 영향은 굉장했다. 

필자의 The Design Inference (Cambridge) 와 Mere Creation: Reclaiming the Book of Nature (InterVarsity) 가 1998년 가을에 나올 것이다. Stephen Meyer, Paul Nelson, Del Ratzsch, John Mark Reynolds, John Wells를 포함한 연구자들이 이 책들에 관여하였다. 운동은 Origins & Design 이라는 이름의 전문학술지를 가지고 있다. The Discovery Institute의 Center for the Renewal of Science and Culture 는 많은 노력을 조화시키고 있다. (www.discovery.org)


번역 - 김창환

주소 - https://www.discovery.org/a/121/

출처 - Discovery Institute, 1998. 3. 1. 

미디어위원회
2004-05-15

질서 또는 무질서? 

(Order or Chaos?)

Martha Blakefield 


      무질서(chaos)가 하나님을 찬미하는가? 걱정하지 말라. 당신의 옷장이나 주일 아침에 당신 집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자 하는 무질서는 “무질서 이론(chaos theory)” 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과학 분야에 관한 것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법칙과 지구를 공전하는 달에 관련된 법칙이 하나이며 같다는 것을 뉴턴이 발견하면서, 과학적 사고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그가 우주의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하고 공식화한 이래로, 과학자들은 우주가 몇몇 간단한 법칙에 의해서 설명되어지는 하나의 시계(clock)와 같이 움직인다고 가정했다. 과학자들은 비교적 단순한 방정식(equation)의 항으로 복잡한 시스템과 같이 보이는 것들을 기술했다. 그들은 세계를 볼 수 있었고,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만들 수 있어서, 어떤 수들을 대입하면 어떠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간단하고 수학적인 술어로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을 기술하는 방법을 결국에는 발견할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전 우주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만물 이론(theory of everything)과 같은 일련의 방정식들까지도 발견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만델브로트 세트(Mandelbrot Set)로서 알려져 있는 유명한 분열도형 패턴(fractal pattern). (Photo by Stephen Johnson, Photo Library)


그러나 과학자들이 우주의 시스템을 더 많은 방정식들로 해결해보려고 하였지만, 그들은 이러한 운동들을 설명하려는 법칙들에 반하는 설명되어지지 않는 현상들과 시스템들로 계속적으로 좌절하게 되었다. 행성들 공전궤도의 흔들림(wobbles), 비행기 날개의 기류 패턴에 있어서 난기류(turbulence), 동물 개체수(populations)의 크기 변화 등과 같은, 이들 시스템 내에서 때때로 발생하는 것들은 간단한 방정식으로 그것들을 설명해보려 했던 과학자들을 실패하게 하였다.

이러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은 과학 사회 내에서 호기심을 유발했다. 과학자들은 질서를 발견하리라 생각했던 곳에서 무질서를 발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때에, 무질서같이 보이는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질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빠르고, 강력하게 계산할 수 있는 컴퓨터의 발달로, 과학자들은 수 년 동안 그들이 의지하고 있었던 방정식들을 시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어떤 상황 하에서, 이 방정식들 중 일부는 무질서한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무질서하게 보이는 이들 시스템들이 실제로는 이상하고 복잡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상학자(meteorologist)인 에드워드 로렌즈(Edward Lorenz)가 컴퓨터로 기후 모델을 프로그램했을 때, 그는 이상한 결과를 얻었다. 로렌즈는 최초의 기상 조건에서의 미세한 차이가 결과에서는 극적인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기상학자들은 이것이 그와 같을 것인지를 오랫동안 의심해왔었다. 사실, 그들은 이 생각을 ‘나비효과 (the butterfly effect)’ 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 이름은 ‘한 마리의 나비가 아시아에서 날개 짓을 하면, 수 일 또는 수 주 후에 뉴욕의 기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는 반신반의의 믿음’에 기초하여 붙여졌던 것이다.1

로렌즈가 이들 차이를 설명하는 방정식을 만들고, 이들을 컴퓨터에 넣어 결과를 그래프로 얻었을 때, 그는 이들 무질서한 방정식들이 이상한 종류의 예측을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만드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프의 선은 다차원의 나비 형태의 비틀린 8자 형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비록 선들이 항상 반복하여 같은 형태를 본질적으로 그리고 있었지만, 결코 정확하게 똑같은 모습을 그리지 않았으며, 그래프의 한 점이 어떠한 다른 점과 교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로렌즈의 발견 이후, 과학자들은 이러한 ‘이상한 끌어당김(strange attractors)’ 이라고 불리는 많은 다른 현상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방정식은 되풀이하여 같은 일반적인 형체를 그리지만, 결코 정확히 같은 것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잡한 분지되는 형태(branching patterns)를 형성하는 다른 무질서 방정식들은 반복적으로 그들 자신이 되풀이 되어지지만, 크기가 감소되는 형태를 만들어 낸다. 많은 식물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과 같이, 각 분지들은 끝으로 가면서 더 작아지는 패턴을 만들어 낸다. (아래의 그림을 보라). 

일 예로, 식물들은 잎의 도관이나, 나무의 분지된 가지들에서 비슷한 반복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Photo by Tom Wagner)

모든 무질서 계들은 초기 조건에 특이하게 감수성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아주 작은 변화가 매우 큰 차이의 결과를 보이는 듯한 계(systems)들인 것이다. 과학자들은 천문학, 역학(epidemiology), 기상학, 대기의 난기류, 주식시장, 인체 등에서 무질서의 증거들을 발견해오고 있다. 인간의 신체를 연구해 오던 일부 과학자들은 무질서(chaos)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애리 골드버거(Ary Goldberger)는 인간 심장의 박동이 무질서할 뿐만 아니라, 심장에 무질서가 필요함을 발견했다고 믿고 있다. 그가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심장 박동과 건강한 사람의 심장 박동의 변화를 비교했을 때, 건강한 사람의 심장 박동이 실제로 더 무질서했던 것이었다.2

이것은 무질서한 행동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닐 수 있으며, 어떤 시스템의 설계에 있어서 필수적인 특성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해, 몇몇 과학자들의 눈을 뜨게 했다.

우리가 무질서한 시스템 내에서 발견되는 절묘한 복잡한 패턴들을 생각해 볼 때, 그 이론은 잘못 명명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무질서(Chaos, 혼돈)’는 통상적으로 어떠한 종류의 혼란이나 흐트러진 상태를 묘사한다. 이 경우에는, 무질서하다고 보였던 것들이 더욱 세밀한 조사에 의해, 더욱 복잡한 또 다른 질서를 가지고 있었음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에서)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복잡하고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즉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측하지 못하거나 놀라운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들을, 단순하게 가리킬 때 “무질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을 더욱 연구하며 알아가고 있는 일부 과학자들은 ‘복잡화(complexification)‘, 또는 ‘경이로운 과학(the science of surprise)‘과 같은 다른 이름을 붙이고 있다.

“관습적으로, 전문가들은 외부 지성의 개입 또는 불완전한 자료들에 대한 이러한 경탄(surprises)을 비난해 왔었다. 그러나 이제, 과학자들은 강력한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우리 주위의 세계를 연구하면서, 경탄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기후와 같은 시스템은 그것들이 운행되어져 가는 것이 매우 경이롭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항상 예상외의 길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일으키는 것이 그들의 본성 내에 존재한다.” 3

아직까지, 과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방정식이 현재보다 더 정확하게 어떤 시스템의 미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여러 해가 지나, 우리 주변의 복잡한 세계가 작동되어지는 새로운 법칙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을 때, 틀림없이 자연 법칙에 대한 우리의 설명들을 부정하는 또 다른 일련의 현상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현명한 과학자는 인간의 생명을 취하실 수도 있고 연장하실 수도 있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셨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될 때, 창조된 만물은 창조주의 신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잠언 25:2)

 

 

References

1. Christopher Lampton, Science of Chaos: Complexity in the Natural World, p. 68, Franklin Watts, New York, 1992.

2. Ref. 1, p. 78.

3. Ref. 1, p.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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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 이론(Chaos theory) : 진화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화론자들은 간혹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질서의 형태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희망을 가지려한다. 무질서한 경향으로 가차 없이 진행되는 우주적 법칙에 반하여, 무질서한 화학물질이 최초의 자가 복제를 하는 정교한 세포로 스스로 모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투쟁에서, 그것은 희망의 밝은 빛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징후들은 이러한 것이 허망한 희망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한 ‘무질서에서 질서‘의 고전적인 예 중의 하나가, 어떤 오일이 가열되어질 때 표면에 나타나는 육각형 형태이다. 그러나 가열이 멈춰지면, 곧 바로 이 형태들은 분자적 무질서의 바다로 다시 사라진다. 허리케인의 소용돌이처럼, 이들 형태들은 잠깐 동안만 존재할 뿐이며, 그들은 설명하는 데에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하며 반복적인 구조인 것이다. 거기에 함유되어 있는 정보는 본질적으로 물질의 화학과 물리에 관한 것으로서, 어떠한 특별한 ‘프로그래밍’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편,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정말로 복잡하고, 정보를 함유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의 성질은 본질적으로 구성물질의 화학과 물리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앞서서 프로그래밍된 세포라는 기계들을 필요로 한다.

이 프로그래밍은 부모 생물체로부터 계속 전달되어지지만, 최초에는 지적인 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과정으로는 프로그램이 기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볼 수 있는 서로 유사한 형태들인 분지(갈래) 구조(branching structures)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 심지어는 우리 안에서도 발견되어질 수 있다. 위의 사진을 보라. 나무의 주 가지들은 모든 방향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다. 그리고 그들 가지들은 더 작은 가지들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더욱 작은 가지들을 내밀고 있다. 그들은 모두 비슷하나 다르다. 또한 진흙이 마르면서 갈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들은 크기들이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같은 형태로 갈라진다. 또한 강어귀에서 발견되어지는 얼음 결정의 모습, 우리의 폐(lungs)에서 기관지의 복잡한 형태, 전기적 방전시의 형태 등, ‘분열도형(fractal)’의 형태라고 불려지는 많은 예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Martha Blakefield, is a teacher and freelance writer. She has published a homeschooling newsletter for several years and has a strong interest in science and in educating from a Christian world 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0/i3/order_chaos.asp 

출처 - Creation 20(3):4, June 1998.

Carl Wieland
2004-05-04

사람의 업적 대 놀라운 ‘생체 컴퓨터’ 기술 

(Man’s achievements vs amazing ‘living computer’ technology)


      때때로 어떤 비교는 우리가 살아있는 미세한 생명체의 환상적인 설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이룩한 공학기술의 뛰어난 업적인 컴퓨터에 사용되는 실리콘 칩(silicon chip)을 살펴봄으로서 시작해 보자(아래 그림). 


이 소형 칩은 의심할바 없이 소형화의 위대한 업적중 하나이다. 이것은 개미의 턱 안에 들어갈 만한 물체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과 정교함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너무 도취되기 전에 개미보다도 더 작고, 바늘 끝보다 더 작은 크기인 먼지 진드기의 머리를 생각해 보자. 심지어 바늘 끝 표면에 군집을 이룰 수 있는 더 작은 대장균(E. coli) 박테리아로 내려가 보자. 우리는 지금 실리콘 칩보다 극히 작은 크기의 수준으로 내려가 있으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놀랄 만한 생물학적 기계라는 것이다. 이들 박테리아의 어떠한 세포 하나라도 사람의 기술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극도로 뛰어난 공학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구조는 단지 수 분 안에 자기 자신과 똑같은 구조를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늘 끝에 붙어있는 대장균


위의 사진은 이 대장균 박테리아를 확대해 더 미세한 크기로 들여다보았다. 이제 실리콘 칩은 소형화에 있어서 훨씬 뒤처지게 되었다. 이들 각각의 박테리아 세포 내부에는 중앙통제 시스템인 놀라운 설계의 DNA 분자라는 고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 DNA 분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축적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옆의 그림은 확대하여 재구성해 본 DNA 사슬의 작은 한 부분이다. 각 나선은 너무도 얇아서, 만약 당신이 DNA 사슬을 직경 2 mm 두께의 철사줄로 생각한다면, 그 길이는 지구의 둘레를 33번이나 돌 만큼의 길이가 된다!1 


이러한 환상적인 분자는 사람이 만든 가장 뛰어나 정보 저장 시스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거의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저장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그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보다도 정보를 가장 초집적할 수 있는 시스템, 즉 일정한 공간에 가장 많은 정보량을 담을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사람 DNA에 들어있는 정보의 량을 알 필요가 있다. 사람 DNA에 들어가 있는 정보의 량은 500 페이지짜리 책 1000권에 해당하는 량이다.2 이제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량(한 사람의 정보량에 대략 50억 또는 60억 배의 정보량)을 생각해 보자. 만약 그 모든 정보들을 DNA에 담아 하나로 뭉쳐 놓는다면, 그것은 아스피린 두 알보다 크지 않을 것이다.3


사람의 모든 지적 노력의 결과인 실리콘 칩도 하나님의 놀라운 설계 업적에 비교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우연한 진화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은 논할 필요도 없는 듯이 보인다.


성경은 로마서 1:20절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References and Notes

1. Source: Information scientist Dr Werner Gitt, in Faszination Mensch (in English as The Wonder of Man).

2. Regarding the whole genome as one strand, regardless of the fact that it is broken up into 23 chromosomes.

3. Source: French cytogeneticist Jerome LeJeune, famous for discovering the cause of Down’s Syndrome, in Anthropotes, Rivista di studi sulla persona e la famiglia, Citta Nuova Editrice, 1989. This is also confirmed by calculations supplied by Dr Werner Gitt, whose book In the Beginning was Information inspired this articl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magazines/docs/v21n1technology.asp ,

출처 - CreationExNihilo(December 1998–February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732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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