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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미디어위원회
2004-11-17

중력 : 신비로운 힘 

(Gravity : The mystery force)

by Dr. Don DeYoung 


      중력(Gravity)은 우리들이 땅 위에 견고하게 서있도록 붙들고 있으며,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공전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이 보이지 않는 힘은1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게 하고, 매일 바다의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것은 지구를 구형으로 유지하게 하고, 우리의 대기가 우주로 흩어져 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이 일상적인 중력의 힘은 과학에서 가장 잘 이해되어야 하는 개념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중력은 하나의 깊은 신비로 남아 있다. 중력은 오늘날 과학 지식의 한계에 대한 놀랄만한 한 예를 제공하고 있다.


중력 - 궤도에 물체들을 붙잡고 있는 끈

그림 1. 지구를 공전하고 있는 달. 매 초 동안 달은 약 0.8km 정도 여행한다. 이 거리에서 달은 지구 중력에 의한 끌어당겨짐으로 인해 직선으로부터 1mm 정도 궤도가 구부러진다. 달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들처럼 지구 쪽으로(둘레를) 계속 돌게 된다.


중력은 무엇인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1686년에 이것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고, 결국 중력은 모든 물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력(attractive force)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사과가 땅에 떨어지도록 하는 힘과 같은 힘이 달을 공전궤도에 붙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구의 중력은 실제로 달이 매 초마다 직선 경로로 1 mm 멀어지는 것을 막아 공전궤도를 돌 수 있도록 하고 있다(그림 1). 뉴턴의 보편적인 중력의 법칙(Law of Gravity)은 고금을 통해서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 중의 하나이다.

중력은 자연계에서 알려진 4 개의 기본적인 힘 중에 하나이다(표 1). 주목할 것은 중력은 네 개의 힘 중에서 가장, 그리고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대한 규모의 우주 공간의 물체들을 지배하고 있다. 뉴턴이 보여줬던 것처럼, 어떤 두 물체 사이에 끌어당기는 중력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훨씬 줄어든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제로(0)에 도달하지 않는다. (아래의 글 ‘설계된 중력’을 보라).

그러므로 전체 우주의 모든 입자들은 실제로 그 밖의 모든 입자들을 끌어당긴다. 중력은 강력과 약력(표 1)과는 대조적으로 장거리(long-range)에 작용하는 힘이다.2 자기력과 전자기력도 또한 장거리에 작용한다. 그러나 중력은 장거리에서 항상 인력을 가지고 있어서 결코 취소되지 않는(끌어당겼다 밀쳐냈다 할 수 있는 전자기력과 같지 않는) 것이 독특하다.

1849년 위대한 창조 물리학자인 패러데이(Michael Faraday)가 시작한 이후, 물리학자들은 중력과 전자기력 사이의 숨겨진 관계를 지속적으로 조사해왔다. 네 가지의 모든 기본적인 힘들을 하나의 방정식, 또는 ‘통일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 통합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중력은 가장 적은 부분만 이해된 힘으로 남아 있다.

        힘의 이름상대적 강도    관여하는 일
 강력(Strong)    1   원자핵의 안정성
 전자기력(Electromagnetic)    10-2 원자, 분자의 결합
 약력(Weak)    10-6 방사성 붕괴 과정들
 중력(Gravity)    10-43 우주 물체들의 안정성

(표1) 자연의 네 가지 기본적인 힘들


중력은 어떤 방법으로도 차단될 수 없다. 두 분리된 물체 사이에 있는 물체는 구성물이 무엇이든 그들 사이의 인력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것은 중력이 없는 방(antigravity chamber)이 실험실 내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력은 물체들의 화학적 구성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무게로서 인식되고 있는 질량(mass)에만 의존한다.(어떤 것에 대한 중력의 강도는 무게에 달려있다. 질량이 클수록 중력은 더 커진다). 만약 유리, 납, 얼음, 심지어 스티로폴로 이루어진 덩어리들이 모두 같은 질량을 가지고 있다면, 동일한 중력이 작용할 것이다. 이것은 이론적인 설명이 아닌, 실험적 발견이다.

중력은 정말 무엇인가? 어떻게 이 힘은 비어 있는 광대한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작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우선적으로 존재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학은 자연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질문들에 답하는 것에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다. 중력은 돌연변이 또는 자연선택에 의해 천천히 일어날 수 없다. 그것은 우주의 바로 태초부터 존재했어야만 한다. 다른 모든 물리법칙들과 함께, 중력은 계획된 설계에 의한 창조를 증거하는 명백한 증거판(testimony)인 것이다.

중력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에는 물체들 사이를 여행하는 중력양자(gravitons)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입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우주의 끈(cosmic strings)과 중력파(gravity waves)가 제안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광대한 거리를 떨어져 있는 서로 다른 물체들이 물리적으로 서로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 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력과 성경

두 군데의 성경 구절은 일반적으로 중력과 자연과학의 본질을 고려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 첫 번째, 골로새서 1:17절에는 그리스도가 만물보다 먼저 계셨고, 만물이 그에 의해서 서있음(consist)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리스어의 동사 ‘consist (sunistao)’는 응집하다(cohere), 보존하다(preserve), 함께 붙들다(hold together) 라는 의미가 있다.

성경 밖에서 이 그리스어 단어의 사용은 그 안에 물을 담고 있는 용기(container)로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골로새서에서 완전 시제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통상 완성된 과거의 행동으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인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사용되었던 한 물리적 메커니즘은 명백히 중력이다. 이 중력은 창조주에 의해서 확립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결점 없이 유지되어오고 있다. 반대를 생각해 보자. 만약 중력이 한 순간이라도 멈춰진다면, 즉각적으로 혼돈의 무질서한 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다. 지구, 달, 항성들을 포함해서, 우주의 모든 물체들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들은 즉시 작은 조각들로 붕괴될 것이다.

두 번째 구절인 히브리서 1:3절은 그리스도가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uphold) 계시다고 선포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붙들다(uphold, phero) 라는 단어는 다시 만물을(중력을 포함하여) 지속시키다(sustaining), 유지하다(maintaining)로 기술되고 있다. 이 구절에서 붙들다 라는 단어는 단순히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거기에는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과 변화들을 조절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무한한 일이 주님의 전능하신 말씀에 의해서 우주가 처음 존재하게 된 이후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력이라는 이 ‘신비로운 힘(mystery force)’은 거의 4세기 동안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매우 조금만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주를 붙들고 계시는 경이로운 신성의 발현(manifestations)들 중에 하나인 것이다.


Notes

1. Einstein said it is not a force in the way others are, but an effect of the curvature of space-time.

2. According to general relativity, the effects of gravity are not instantaneous, but transmitted at the speed of light.


* 여러 물체들 사이에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에 대한 여러 예들   

        두 물체중력의 힘(kg, 해수면에서)
  당신과 책 4.5-10(10-10 lbs)
  당신과 달 0.00045
  두 대의 인접한 기관차 0.0022
  당신과 지구 (해수면에서) 당신의 몸무게
  달과 지구 1.8×1019
  지구와 태양 3.6×1021

NB : kg은 사실 질량의 단위이다 (힘의 단위는 N(뉴튼)이고, 1kg의 무게에 작용하는 힘은  해수면에서 9.8N 이다). 주어진 질량에 의해서 가해지는 무게(힘)는 지구의 중력에 얼마나 근접한 지에 달려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해수면을 기준으로 하였다. 


설계된 중력 (Designer gravity)

거리 r 만큼 떨어진 두 물체 m1과 m사이의 힘 F는

         F =(G m1 m2)/r2 로 쓰여질 수 있다.

여기서 G는 중력상수(gravitational constant)이고, 1798년 헨리 카벤디쉬(Henry Cavendish)에 의해 첫 번째로 측정되었다.이 방정식은 두 물체 사이의 떨어진 거리 r이 커짐에 따라 감소된다는 것을, 그러나 결코 제로(0)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방정식에서 역 제곱의 성질은 흥미롭다. 중력이 왜 이러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지에 대한 본질적인 이유가 없다. 만약 우연히 우주가 진화하는 도중에 중력이 생겨났다면, r1.97 또는 r2.3 과 같은 무작위적인 숫자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정확히 측정된 계산치들에 의하면, r의 지수는 소수점 다섯째 자리까지 정확하게 2.00000 임으로 밝혀졌다. 한 연구자는 이것에 대해, 이 결과는 "너무도 깔끔하게 맞춘 것처럼 보인다" 라고 하였다.2 우리는 중력의 힘은 정확하게, 창조된 설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실제로, 지수가 정확하게 2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행성들의 궤도와 전체 우주는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Reference and note

1. For the technically minded, G = 6.672 x 10–11 Nm2kg–2

2. Thompsen, D., ‘Gravity very precisely’, Science News 118(1):13, 1980

 

* 참조 : Gravity : The mystery force
http://creation.com/gravity-the-mystery-forc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2/i3/gravity.asp 

출처 - Creation 22(3):40–44, June 2000.

미디어위원회
2004-10-02

자연에 나타난 지적 설계와 창조주 하나님

(Design In Nature To A Personal Creator)

David F. Coppedge 


     단지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이 가능할까요? 성경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창세기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찌니라.” (로마서 1:18~22)

이제, 그 증거를 알아보자!


우연의 법칙

우연에 의하여 생명을 만들 수 있을까? 우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당신이 임의로 1에서 10까지 새겨져 있는 10개의 동전들 중에서 하나씩 선택할 때, 우연히 1에서 10까지 순서대로 배열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100억 분의 1의 확률과 같은 것이다. 매번 시도하는 데에 5초 가량 걸린다고 한다면, 우연에 의해 1에서 10까지 순서대로 나오는 것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하여도, 약 1,500년의 세월이 흐른다. 생명을 우연에 의하여 창조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도 우연히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백만 마리의 원숭이가 백만 대의 타자기에서 타이핑을 한다면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것은 잘못된 비유이다. 왜냐하면,

1.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우주는 시작을 가지고 있다. 우연적 사건이 영원히 일어날 수 없다.

2. 타자기는 고장 날 것이고, 원숭이들은 지겨워할 것이며, 죽게 될 것이다.

3. 글자들은 종이 위에 남아있지 않는다. 우연에 의해 생명이 발생하게 된 '최초의 원시 스프(primordial soup)' 에서 유용한 분자들은 생성되는 것보다 더 빠르게 파괴되었을 것이다.


우주와 지구

우주는 생명체들의 존재를 위하여 자체가 매우 정교하게 조정되어져 있다. 전자의 전하량이나 중력상수와 같은 물리학의 기본적인 수치들이 조금이라도 변한다면, 생명체는 유지되어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는 정해진 법칙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생명체가 사라질 수 있는 여러 가지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목성은 위험한 소행성이나 혜성 등의 대부분을 안전하게 휩쓸어 간다. 지구는 움직임이 강한 내부 물질을 지지하기에 충분한 단단한 지각(crust)을 가지고 있다. 내부 물질의 움직임이 더 클 경우, 지각은 녹을 것이고,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태양으로부터의 지구의 거리, 지구로부터의 달의 거리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게 한다. 지축의 경사는 각 계절과 기후의 순환을 가능하게 한다. 달은 해양을 깨끗하게 하는 조수를 일으키기에 알맞은 크기와 지구로부터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달의 적절한 지름은 태양의 지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일식을 만들어 낸다. 일일이 열거하기에 너무도 많은 이러한 사항들이 존재한다.


세포

분자 수준에서의 생명체(life)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단백질, 효소, DNA에서 일어나는 화학적인 반응은 빠르고 정확하게 조화를 이루며 일어난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세포에게도 최소한 239개의 단백질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단백질들 중에 하나가 우연히 만들어질 확률은, 가장 이상적인 조건 아래에서도 1/10161 보다도 작다. 가장 단순한 세포가 우연히 만들어질 확률은 1/1040,000 이다. 1/1050 보다 작은 확률이 일어난다는 것은, 전 우주 내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신의 눈은 컴퓨터화 된 어떠한 TV 회로 시스템보다도 뛰어나다. 만들어 낸 색깔과 실제처럼 보여주는 높은 질의 움직이는 동영상들도 눈과 비교될 수 없다. 각 렌즈들은 수정 벽돌 같은 22,000 개의 투명 세포들의 미세한 층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이 만드는 렌즈와 다르게, 눈은 최고의 굴절률과 유연성, 다양한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눈의 조리개(홍채)는 불빛의 강도를 100에서 1까지 조절할 수 있다. 각막은 구면 수차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매우 얇게 고루 퍼져있다. 눈의 안쪽 부위는 난반사를 감소시키기 위해 어둡다. 눈은 자신의 방어를 위한 일종의 윤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눈은 두 개의 눈동자를 협력해서 움직일 수 있는 근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눈은 또한 1억 배나 되는 명암 차이를 감지해낼 수 있다. 망막은 1억2500만 개에 달하는 간상체(rods)와 추상체(cones)를 가지고 있다. 간상체는 마치 빠른 속도의 흑백 필름 같고, 추상체는 8백만 개의 색깔들을 인식할 수 있는 좋은 칼라 필름과 같다. 근육은 이러한 극도로 복잡한 세포들이 포화(피로화)되지 않도록 상들을 움직이게 한다. 망막의 중심부에는 원추체가 밀집되어져서 존재하는데, 각각의 시신경들은 뇌로 연결되어 있다. 당신의 눈은 당신의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아무런 수리 없이도 평생 동안을 작동할 수 있다.


당신의 귀는 대개 30만개 이상의 소리 종류를 구분해낼 수 있다. 이것은 생존하는 데에는 별 필요가 없지만, 음악을 감상하고 즐기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귀는 1에서 100억 까지의 소리 강도를 감지해낼 수 있다. 귀의 안쪽에는 20,000 개의 모세포(hair cell)가 있다. 각 모세포는 100개의 분리된 모세포로 나뉘어지는데 (모두 200만 개), 각 모세포들은 자신의 주파수와 소리 강도에 반응한다. 중이의 뼈들은 미세한 기계적 조정 역할을 담당한다. 작업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이들 소골(ossicles)들은 일정한 크기를 반드시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소골들은 태어나서부터 늙을 때까지 자라지 않는 유일한 뼈이다. 당신의 귀는 복잡한 스테레오 음향기기를 당신의 머릿속에서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손은 기계공학의 경이이다. 손은 27개의 뼈, 떨어져 있는 엄지손가락, 독특한 지문, 그리고 유연성을 가지고, 복잡한 다수의 일들을 수행한다. 타자를 치고, 수화를 하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얇은 금속에 나있는 미세한 흠집을 감지해낼 수 있으며, 야구공을 쳐내고, 망치질을 하고, 박수를 치고, 뜨개질을 하고, 악기들을 연주하고, 수영을 하고, 벽돌을 격파하고, 곡예를 하고, 손으로 마술을 하고, 그리고 셀 수 없을 정도의 평범하거나, 평범하지 않은 모든 기능들을 할 수 있다. 손톱은 매우 작은 물체를 집거나 다룰 수 있게 하며, 기타 소리를 내게 할 수 있다. 손의 피부는 많은 학대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거칠다. 그러나 매우 작은 접촉들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민감하기도 하다.


얼굴

우리의 얼굴은 28 겹의 종이처럼 얇은 피하 근육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근육들은 우리가 250,000개의 표정을 짓는데 뼈보다도 더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신들의 종 내에서 다른 개체와 잘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50억의 사람들은 각자 매우 독특한 얼굴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가 구별되어 진다. 사람은 얼굴을 통해 감정의 대부분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은 사람으로서 서로 서로가 관계를 맺고 지내도록 디자인되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각 개인을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가지도록 창조하셨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뇌는 천 억 개의 뉴런(neurons)을 가지고 있다. 각 뉴런들은 다른 뉴런들과 1,000번 이상의 연결로 이어져 있다. 이것은 뉴런들 사이의 1조 개 이상으로 상호 연결이 되어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기적 장치들의 연결과 맞먹는 것이다. 생각하고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뇌의 기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자적 기호와 복잡한 화학적 신경전달물질에 의한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로봇 제작자들은 로봇들이 종이컵을 움켜쥐거나 눌러 부수는 일 없이, 가볍게 들어 올리거나 하는 단순한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작은 아이들도 종이컵을 들어 올릴 수 있다. 다른 수천만 명의 사람들도 특별한 생각 없이도 누구나 이 일을 할 수 있다.


유전정보 (DNA)

당신의 몸 전체는 바늘 끝 보다도 훨씬 작은 수정란 세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안에는 당신 몸의 조직, 기관, 기능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완벽한 암호 체계가 들어 있다. 만약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의 수정란 속의 DNA를 다 모은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우표 무게의 1/50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몸에 있는 세포들 속에 들어있는 DNA의 총 길이는 달까지 100,000번을 왕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 스푼 안에 다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책으로 그것을 기록한다면, 정보의 양은 그랜드 캐년 40개를 채우고도 남을 책들이 될 것이다.


수많은 디자인의 예

70-80 년 동안 한번도 쉬지 않고 작동하는 심장, 순환기관, 소화기관, 호흡기관, 배설기관, 생식기관, 림프계, 내분비선, 골격, 감각기관, 면역기관, 그밖에 신체에 있는 모든 기관이나 조직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들의 긴밀한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쉬지 않고 42km를 달리는 마라토너, 공중 2번 제비돌기를 하는 체조선수, 그리고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수학적 계산을 오로지 머리로만 해야 하는 물리학자에게서 이들 기관들이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경이롭고 신묘막측하게 만들어져 있다 (시편 139:14). 예전에 무신론자인 칼 세이건 (Carl Sagan)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150억년 동안의 우주 진화에 의해 수소 원자들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 극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들이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인가? 성경에서 전하는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로마서 1:18~22)

설계(design)는 설계자(designer)가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극도로 복잡한 질서의 설계는 전지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우리들이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각각 설계되었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당신을 만든 창조주이시며, 하늘에 계신 당신의 아버지를 알기를 원하는가? 오늘부터 성경 읽기를 시작하라.


번역 - 한동대 창조과학연구소

링크 - http://www.christwatch.com/journals/body.htm

출처 - Christ Watch



한국창조과학회
2004-08-07

창조의 증거들 

(Evidence for Creation)


1. 화석 기록

 진화론자들은 오늘날 관측되는 '원시적인' 생명체로부터 '좀더 복잡한' 생명체로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지질주상도(Geologic Column)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지구 표면의 단지 극히 일부분만이 지질주상도를 충족하기 때문에, 전 지구에 걸쳐 암석/생명체/시간이 연속적으로 형성되었던 장소들이 있었다는 그들의 주장은 환상이고 상상에 의거한 주장인 것이다.'1  ”일련의 전이형태 화석들의 결여는 화석 증거의 부족으로 더 이상 변명될 수 없다. 이러한 결여는 사실이며,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2  이 상상의 지질주상도는 실제로 한 지질시대의 지층과 다른 지질시대의 지층에 걸쳐서 놓여져 있는 ”다지층 화석(polystrate fossils)”으로 이해될 수 있다. "편견 없이 보면, 식물들의 화석 기록은 특별한 창조를 지지하고 있다.”3


2. 지구 자기장의 감소

 텍사스 대학의 물리학 명예교수인 토마스 반즈(Tomas Barnes) 박사는 이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4 1829년 이래로 계속된 과학적 관측은, 지구의 자기장(earth's magnetic field)이 측정가능 하도록 지수 함수적으로 감소되어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그는 자기장의 반감기가 대략 1,400 년 정도인 것을 증명하였다. 실질적인 적용을 해본다면, 20,000년 전 지구는 엄청난 자기력을 가지고 있는 자기 별(magnetic star)과 같아야만 한다. 이러한 상항에서는, 생명 과정에 필요한 많은 분자들이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데이터에 의하면, 전 지구의 역사는 수 천년 이내로 매우 젊음을 가리키고 있다.


3. 전 지구적 홍수

성경은 노아의 시대에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음을 명백히 묘사하고 있다. 부가적으로, 수백 의 홍수전설들이 전 세계의 많은 문화들에 걸쳐서 전해져 오고 있다.5 클라크(M. E Clark)와 헨리 보스(Henry Voss)는 모든 대륙에서 볼 수 있는 층을 이룬 퇴적 지층들이 그러한 한 번의 홍수에 대한 과학적 타당성을 논증하고 있다고 하였다.세속적인 학자들도 지구의 퇴적지층에는 매우 빠른 퇴적과 엄청난 탄소화합물의 퇴적 기간이 있었음을 보고하고 있다.7  이제 성경의 홍수가 역사적으로 실제 했었다는 것이 입증 가능하게 되었다.8


4. 인구 통계학

최근의 세계 인구 성장률(population growth rate)은 한 해에 약 2% 정도 이다. 인류 역사를 통한 인구 성장률의 실제적인 적용은 그 수치의 반 정도였을 것이다. 전쟁, 질병, 기근 등은 평균적으로 82년 마다 대략 인구의 1/3 정도를 휩쓸어 버렸다. 노아의 홍수 이후 (대략 4,500년 전에) 8명으로부터 이러한 인구 성장률을 적용한다면, 오늘날 인구수는 60억명 이하로 주어질 수 있다. 하지만 진화론적 시간 척도로 이것을 적용한다면,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한다. 한 예로 41,000년 전에 단 한 쌍으로 인류가 시작했다면, 오늘날 전체 인구수는 2x1089 명이 된다.9 지구는 그 많은 시체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다.


5. 방사성 후광

물리학자 로버트 젠트리(Robert Gentry)는 화강암 결정에서 분리된 폴로늄(polonuim)-214의 방사성 후광(Radio Halos)을 보고하여 왔다. 이 원소의 반감기(half-life)는 0.000164초 이다! 이처럼 짧은 반감기를 가진 원소의 존재가 기록되기 위해서, 화강암은 그 순간에 결정 상태로 있었음에 틀림없다.10 이것은 화강암이 형성되는 데에 3억 년이 걸렸다는 진화론적인 평가와 반대된다.


6. 전 지질주상도에 나타나는 인간의 유물들

 인간이 만든 유물들과 인간의 흔적들이(가령 백악기 암석에서 나온 망치, 캄브리아기 암석에 삼엽충과 같이 나있는 사람의 발자국, 백악기 암석에 사람 손자국과 사람 발자국들...) 전 지질시대에 걸쳐서 나타난다는 사실은, 모든 지질학적 시대들이 사실은 가까운 과거에 거의 동시에 일어났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11

  

7. 지구 대기 중의 헬륨의 양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멜빅 쿡(Melvin Cook)은 헬륨-4가 태양풍과 우라늄의 방사성 붕괴로부터 우리의 대기권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현재의 율로 계산하면, 대기권에 있는 오늘날의 헬륨-4의 양은 10,000년 이내에 축적되어졌다.12


8. 우주 구조의 팽창

여러 은하들의 거리에 대한 천문학적인 평가들은 상충되는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13 성경의 기록은 창조주에 의해서 우주가 팽창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14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하늘을  펴셨다 라고 기록되어 있음). 천문학자인 러셀 험프리 (Russell Humphries)는 그러한 우주의 팽창이 먼 우주에 대한 시간을 팽창시켰을 것이라고 논증하였다.15 이것은 최근의 창조로도 엄청난 거리에 있는 별들을 설명할 수 있게 한다.

 

9. 생체 시스템의 설계

하나의 살아있는 세포는 경외심을 일으킬 만하게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상호 의존하고 있는 세포 구성물들은 진화론적 설명을 거부하며 진화론적인 상상을 0무너뜨리고 있다. 하나의 작은 세포는 100개의 다른 구성을 가지는 60,000 개가 넘는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다.16 이러한 세포가 우연히 만들어질 확률은 104,478,286 분의 1 이다.17


10. 인간 뇌의 설계

 인간의 뇌(Human brain)는 우주에서 알려진 구조물 중 가장 복잡하다.18 인간의 뇌는 1천억 개 이상의 세포들로 구성되어있고, 각 세포들은 다른 뇌세포들과 연결되어 있는 5만개 이상의 뉴런(neuron)들을 가지고 있다.19  이 구조는 매 초마다 전체 몸에서부터 나오는 일억 개 이상의 분리된 신호들을 감지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초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 하더라도, 인간의 뇌 능력을 다 쓰는 데에는 3백만 년이나 걸릴 것이다.20 자각적인 생각에 부가해서,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해보지 않고도 결과를 예측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다.21

  

 

References

 1. Woodmorappe, John, 'The Essential Non-Existence of the Evolutionary Uniformitarian Geologic Column: A Quantitative Assessment,'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vol. 18, no.1 (Terre Haute, Indiana, June 1981),pp. 46-71

2. Nilsson, N. Heribert, as quoted in Arthur C. Custance, The Earth Before Man, Part II, Doorway Papers, no. 20 (Ontario, Canada: Doorway Publications), p. 51

3. Corner, E.J.H., Contemporary Botanical Thought, ed. A.M. MacLeod and L.S. Cobley (Chicago: Quadrangle Books, 1961), p. 97

4. Barnes, Thomas, ICR Technical Monograph #4, Origin and Destiny of the Earth's Magnetic Field (2nd edition, 1983)

5. Blick, Edward, A Scientific Analysis of Genesis (Oklahoma City: Hearthstone, 1991) p. 103

6. Clark, M.E. and Voss, H.D., 'Fluid Mechanic Examination of the Tial Mechanism for Producing Mega-Sedimantary Layering' (Third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reation, Pittsburg, July 1994)

7. Ager, Derek, The Nature of the Stratigraphical Record (New York: John Wiley and Sons) p. 43 and p. 86

8. West, John Anthony, Serpent in the Sky: The High Wisdom of Ancient Egypt (New York: Julian Press, 1987) pp. 13-14

9. See Morris, Henry, Scientific Creationism (El Cajon, CA: Master Books)

10. Gentry, Robert, Creation's Tiny Mystery (Knoxville, Tenn.: Earth Science Assoc.,1988)

11. Baugh, Carl, Why Do Men Believe Evolution AGAINST ALL ODDS? (Oklahoma City: Hearthstone, 1999)

12. Cook, Melvin, 'Where is The Earth's Radiogenic Helium?' Nature, Vol. 179, p. 213

13. Cowan, R., 'Further Evidence of a Youthful Universe,' Science News, Vol. 148, p. 166

14. Psalm 104:2; Isaiah 40:22

15. Humphries, Russell, Starlight and Time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1994)

16. Denton, Michael,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Bethesda, Maryland: Adler & Adler, 1986) p. 263

17. Mastropaolo, Joseph, 'Evolution Is Biologically Impossible,' Impact # 317 (El Cajon, CA: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1999) p. 4

18. Restak, Richard, The Brain: The Last Frontier, 1979, p. 390

19. The Brain, Our Universe Within, PBS Video

20. Wonders of God's Creation, Moody Video Series

21. Weiss, Joseph, 'Unconscious Mental Functioning,' Scientific American, March 1990, p. 103



번역 - 한동대 창조과학연구소

링크 - http://www.creationevidence.org/scientific_evid/evidencefor/evidencefor.html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39

참고 : 5438|5430|5426|5432|5335|5351|5352|5359|5317|5382|5327|5287|5224|5158|5128|5104|5088|4764|4762|4849|4856|4759|4728|4693|4219|4212|4197|4151|4056|4041|3947|3806|3976|3855|3394|3803|2988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생명의 분자적 기초에서 볼 수 있는 설계의 증거 

: 눈, 섬모, 편모, 그리고 설계에 대한 이해

Michael J. Behe 


역주 : 이 글은 미국 Lehigh 대학의 생화학 교수인 마이클 베히(Michael J. Behe)가 1999년 웨더스필드(Wethersfield) 연구소(미국 뉴욕 소재)에서 강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글이다. 베히는 최근 그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는 '지적설계운동 '(intelligent design movement)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이 분야에 있어 그의 기념비적 저서인 <다윈의 블랙박스>를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저자가 카톨릭 신자인 관계로 추기경 라칭거(Ratzinger)의 글을 창조론 쪽의 대표적인 글로 인용하고 있으며, 성경적인 내용을 좀 더 강하게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순수 과학자로서 종교를 배제하고 어떻게 기원 문제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최신의 생화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 정연하고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는다.

 

요소(尿素)와 목적

1828년 독일의 화학자 Friedrich Wohler는 실험실에서 암모늄 시안산염을 가열했을 때 거기서 요소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암모늄 시안산염은 생물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기화학물이지만, 요소는 생물체의 대사분비물이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Wohler는 비생체물질이 생물체에 의해 생성되는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그의 실험은 당시까지 존재하던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구분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게 되었고, 더 나아가 모든 생물체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길을 열게 되었다.  

만약 생물체도 바위나 기타 다른 물질과 같이 보통의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면,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하다. 실제로 그 후 170년 이상 지난 오늘날, 과학은 생명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DNA의 구조가 밝혀졌으며, 유전암호를 해독하였고, 유전자와 세포, 그리고 전체 생물 개체까지도 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과학의 진보는 우주와 생명의 궁극적인 본성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물론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두 개의 반대되는 견해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견해는 아마도 옥스퍼드 대학에서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가르치는 교수로 있는 리처드 도킨스(Richrd Dawkins)로 대표될 것이다. 도킨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가 관찰하는 이 우주는 본질적으로 설계와 목적, 선과 악이 없이 단지 방향성 없는 무관심만 존재할 때에 우리가 볼 것으로 기대되는 성질들을 정확하게 갖고 있다.”1  분명히 이것은 매우 황량한 그러나 심각하게 제안된 견해이다.  

두 번째 견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Ⅱ)의 고문으로 있는 추기경 조세프 라칭거(Joseph Ratzinger)에 의해 대표된다. 약 15년 전 추기경 라칭거는 <태초에: 창조와 타락에 대한 카톨릭의 이해>(In the Beginning: A Catholic Understanding of the Story of Creation and the Fall)라는 제목의 작은 책을 썼는데, 그 책에 아래와 같이 썼다 :

”......진화론과 그 작용기작의 질문으로 직접 가 보자. 미생물학과 생화학의 발전은 혁명적인 통찰을 가져다주었다.....특별히 생물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나무(역주: 보통 계통도라고 알려진 것으로 생물간의 유연 관계를 보여 준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진화와 창조모델에 따라 서로 다른 계통도가 있다)가 어떻게 발전하고 새로운 가지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일이고, 신앙의 문제는 아니다(역주: 여기서 추기경이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진화냐 창조냐 하는 문제가 신앙과 관련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다만 구체적인 생물 다양성의 작용기작을 연구하는 일은 자연과학에서 다루어야 하는 일임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창조의 위대한 계획이 우연과 실수의 산물이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있어야만 한다....(그것은) 창조적인 이성을 가리키고, 창조적인 지성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 밝고 눈부시게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새로운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인류는 정말로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며, 오직 창조적인 지성이 그것을 잉태할 만큼 충분히 강하고 위대하며 대담하였기에 가능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는 실수가 아니라 어떤 의지의 산물인 것이다...”2

나는 추기경의 주장 가운데에서 세 가지 요점을 잡아내고 싶다.

첫째, 도킨스 교수와는 달리, 라칭거는 자연은 목적과 설계를 보여준다고 말하였다.

둘째,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기 의해서 그는 물리적 증거 -”창조적 이성을 가리키는 살아있는 창조의 위대한 생산물들”-를 지적하였다. 철학적이거나 신학적 혹은 성경적 주장이 아니라, 바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조들을 지적하였다.  

셋째, 라칭거는 그의 결론과 특별히 관계 있는 것으로, 생명의 분자적 기초를 연구하는 학문인 생화학을 인용하였다.

왜 라칭거 추기경이 보다 더 강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도킨스 교수가 이 우주의 목적 없음에 대하여 절망할 필요가 없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눈을 설명함

물론 생명의 본성에 관한 많은 토론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1859년에 시작되었다. 그의 책에서 다윈은 그가 나기 전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생명의 대단한 다양성과 복잡성이 어떻게 누군가에 의해 안내되지 않고 자연과정만으로 생겨날 수 있었는가 설명한 것-을 제안하였다.  

그가 제안한 작용기작은 물론 무작위적 변이 위에서 작용하는 자연선택이었다. 아주 간단하게, 다윈은 모든 종 안에 변이가 있음을 인식하였다. 같은 종 안에서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크고, 어떤 것은 빠르고, 어떤 것은 색깔이 어둡다. 단순히 다윈은 그들이 모두 먹고 살 만한 먹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한 종에 속하는 생물의 모든 개체들이 자손을 이어갈 수 있도록 생존하지는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히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변이 개체가 생존하여 자손을 낳는 경향이 높다고 추론하였다. 만약 그 변이가 유전된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종의 특성이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아주 커다란 변화도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윈의 이론은 매우 고상한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이 아닌 이미 19 세기 중엽의 생물학자들도 다윈이 상상한 것과 같은 점진적인 방식으로 될 수 없는 몇 가지 생물체계를 알고 있었다. 특별히 그 중의 한 가지는 눈이었다.  

그 시대의 생물학자들도 눈이 렌즈, 망막, 눈물관, 안구근 등의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구성 요소를 갖는 매우 복잡한 구조물인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어떤 동물이 불행히도 그들 구성요소 중 어떤 하나를 갖지 않고 태어나면, 심하게 시력을 잃거나 장님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체계적인 구조가 여러 단계를 거친 자연선택에 의해 한데 모아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심하였다.  

하지만 다윈도 눈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그리고 <종의 기원>에서 ”극단적으로 완벽하고 복잡한 기관”이라고 적당하게 제목을 붙인 한 섹션에서 눈에 대하여 적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눈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 정말로 모르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가 만약 현재 생물체들의 눈을 바라본다면, 상당한 변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썼다.

어떤 생물체들은 진짜 '눈'이 아니라, 단지 빛에 민감한 세포들의 집합체를 갖고 있을 뿐이다. 이런 구조는 밝은 곳에 있는지 혹은 어두운 곳에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지만, 빛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를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느 각도에서 빛이 오든지 빛에 민감한 세포들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어떤 생물체에서 보듯이 빛에 민감한 세포들의 집합체를 압축하여 놓으면, 어느 한쪽 측면에서 들어오는 빛은 빛에 민감한 한 부분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고, 다른 한쪽은 밝게 비출 것이라고 다윈은 진술하였다.

이론적으로 그와 같은 구조는 생물체로 하여금 어느 방향에서 빛이 오는지를 알 수 있게 할 것이고 그것은 일종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포들을 컵 모양으로 압축할수록 방향을 찾는 능력이 증가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컵을 아교성 물질로 채운다면, 아직은 조악하지만 렌즈의 시작이 될 것이고 그것은 더욱 발전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논쟁을 통하여 다윈은 빛에 민감한 세포들의 집합과 같이 단순한 것으로부터 현대 척추동물의 눈과 같이 복잡한 것이 점진적인 진화의 경로를 통하여 생겨났다고 당시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진화론이 눈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다면, 다른 무엇인들 설명할 수 없었겠는가?

그러나 다윈의 이론적 구성에는 다루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도대체 빛에 민감한 그 세포의 집합체는 어디서 왔는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 관찰되는 대상은 빛에 대하여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다윈의 주장은 이상한 출발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다윈은 그 같은 질문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하나의 신경세포가 빛에 민감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어떻게 생명 그 자체가 기원하였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라고 말하였다.3

지난 반세기 동안 과학은 시각의 작용기작과 생명의 기원, 두 질문에 모두 관심을 가져 왔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다윈이 그 같은 질문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옳았다. 왜냐하면 당시의 과학은 그것을 조사할 물리적이거나 개념적인 도구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맛보기로 19세기 중엽의 과학 수준을 말해보면, 당시에는 모든 화학의 기초가 되는 원자에 대해서 단지 이론적인 존재로만 여겼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원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우리가 오늘날 생명의 기초라고 알고 있는 세포도 당시에는 단지 현미경으로 관찰 가능한 작은 젤로 조각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닌 단순한 원형질 덩어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다윈은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 미래에는 그의 이론을 지지해 줄 발견이 있으리라는 희망 아래 그것을 하나의 블랙박스로 남겨 놓았던 것이다.  

'블랙박스'란 흥미 있는 일을 하지만, 누구도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는 어떤 기계나 체계를 지칭할 때 과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며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작동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매우 복잡하여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의 작용기작을 알 수 없다.

우리들 대부분(그리고 나의 경우 분명히)에게 있어 블랙박스의 좋은 예는 컴퓨터이다. 글을 쓰거나 게임을 하기 위하여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는 아주 희미하게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겉을 뜯어내어 안에 있는 회로를 들여다보더라도 나는 여전히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말할 수 없다. 말하자면 다윈 시대의 과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세포가 하나의 블랙박스였다. 세포는 매우 흥미 있는 일을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지는 줄 몰랐다.  

사람들은 블랙박스가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어떤 간단한 작용기작, 즉 상자 안은 복잡하지 않아야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원리로 작동해야 한다는 식으로 가정하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바다 진흙 속에서 세포 생명체가 저절로 생겨났다고 믿는 믿음이다.

19세기에 두 명의 저명한 과학자이며 다윈의 지지자였던 헥켈(Ernest Haeckel)과 헉슬리(Thomas Huxley)는 탐험선이 퍼 올린 바다의 진흙 중 어떤 것은 살아 있는 세포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세포란, 헥켈의 말을 빌리면 ”하나의 단순하고 작은 탄소의 단백질성 조합의 덩어리”4였기 때문에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물론 금세기에 이루어진 생물학의 굉장한 발전으로 우리는 이와는 다르게 알고 있다. 이제 현대 과학이 세포의 블랙박스를 열었기 때문에, 다윈을 힘들게 했던 그 질문을 다시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빛에 민감한 부위를 만들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 빛의 광자가 망막에 부딪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나의 광자가 처음에 망막에 부딪히면 11-씨스-레티날(11-cis-retinal)이라고 불리는 작은 유기분자와 작용을 한다.5 레티날의 모양은 보통 구부러져 있는데, 광자와 작용을 하면, 똑바로 펴지면서 트랜스-레티날 (trans-retinal)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시각을 일으키는 하나의 전체적인 연쇄사건의 작동을 일으키는 신호가 된다.  

레티날은 모양을 바꿀 때 그것에 붙어 있는 다른 단백질 로돕신(rhodopsin)의 모양도 변하게 한다. 로돕신의 모양 변화는 다른 종류의 단백질인 트랜스듀신(transducin)이 달라붙을 연결 부위를 노출시킨다. 이제 로돕신과 결합된 트랜스듀신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포스포다이에스터라제(phosphodiesterase)라고 불리는 단백질과 결합을 한다.

그 일이 일어날 때, 포스포다이에스터라제는 싸이클릭 GMP(cyclic GMP)라고 불리는 작은 유기분자를 잘라내어 그것을 5-GMP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세포 내에는 많은 싸이클릭 GMP가 있고 그 중 어떤 것은 이온 통로 역할을 하는 다른 종류의 단백질에 달라붙는다.

정상적으로 이온 통로는 나트륨 이온을 세포 안에 들어가게 한다. 하지만 포스포다이에스터라제의 활동으로 싸이클릭 GMP의 농도가 줄어들면, 이온 통로에 붙어 있던 싸이클릭 GM가 떨어지며, 이온 통로의 모양이 변화돼 결국 통로를 닫게 한다. 그 결과 나트륨 이온은 세포 안으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되고, 세포 안의 나트륨 농도가 감소해 세포막을 가로지르는 전압이 변하게 된다.

그것이 차례로 전기적 극성을 띠는 파동을 일으켜 시신경 아래 뇌까지 전달된다. 그리고 이제 뇌가 받아들인 전기신호를 해석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시각이다. 바로 이것이 다윈이 말한 '간단한' 빛에 민감한 세포 부위가 어떻게 기능을 하는지에 대하여 현대과학이 발견한 것이다.

 

다윈의 판단 기준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히 위에서 기술한 시각정보 처리과정이 복잡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단지 기능하는 시각체계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몇 가지 것들을 무시한, 시각의 화학적 성질의 간단한 그림에 불과하다. 가령 나는 체계의 복구, 즉 어떻게 시각체계가 다음 번에 들어오는 광자를 위해서 처음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위에 기술한 설명이 다윈과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간단한 출발점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은 다윈이 상상했던 그 어느 것보다도 훨씬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가 눈이나 혹은 다른 생물체들의 구조가 너무도 복잡해서 다윈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지의 여부를 말할 수 있을까? 사실은 다윈 자신이 우리에게 판단할 기준을 주었다. 그는 <종의 기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만약 수많은 연속적인 작은 변화에 의해서 형성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이 보여질 수 있다면, 나의 이론은 절대적으로 깨어지고 말 것이다.”6

그러면 과연  ”수많은 연속적인 작은 변화”에 의해서 형성되지 않는 것은 어떤 종류의 기관이나 체계일까? 우선 그것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y complex,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질 것이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란 상상적인 어구이지만, 매우 간단한 개념을 나타낸다.

내가 <다윈의 블랙박스: 진화론에 대한 생화학적 도전>에서 쓴 것처럼,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갖는 체계란 ”기본적인 기능에 기여하는 몇 개의 잘 짝지어지고 상호 작용하는 부분들로 구성되어, 그 중의 어느 한 부분을 제거하면 효과적인 체계의 기능을 멈추게 하는 그런 하나의 체계를 말한다.”7  

덜 형식적으로 말하면,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란 한 체계가 서로 상호 작용하는 몇 개의 부분들을 갖고 있는데, 만약 그 중의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그 체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한 가지 좋은 예는 간단한 쥐덫이다.  

철물점에서 보통 살 수 있는 쥐덫은 일반적으로 밑에 나무판이 있고 거기에 다른 부분들이 붙어 있다. 또한 양끝이 연장된 스프링이 하나 있는데, 한쪽 끝은 나무판에 붙어 있고 다른 한쪽은 실제로 쥐를 붙잡는 역할을 하는 해머(hammer)라고 부르는 금속 부분에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 해머를 아래로 누르면 쥐가 그리로 지나갈- 때까지 그 위치에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쥠막대(holding bar)가 그 일을 한다. 쥠막대 끝 부분도 고정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캣취(catch)라고 불리는 금속 조각에 붙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부품들은 다양한 꺾쇠에 의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만약 이 쥐덫이 스프링, 혹은 해머, 혹은 나무판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전에 하던 것의 절반 아니면, 1/4 정도만 쥐를 잡지 못하게 될까? 아니, 쥐를 전혀 잡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이것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체계는 다윈의 이론에게는 두통거리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다윈이 생각한 것과 같이 점진적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변해 가는 식으로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쥐덫을 진화시키기 원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나무판으로 시작해서 비록 비효율적이지만 쥐 몇 마리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랄 수 있을까?  거기에 쥠막대를 첨가하고 효율을 조금 더 개선시킬까? 그리고는 한번에 하나씩 다른 부품들을 더해가면서 전체 장치를 꾸준히 향상시킬까? 아니,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쥐덫은 완전하게 조립될 때까지는 전혀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윈주의에 대한 생화학적 도전

쥐덫은 그렇다 치지만, 생물학적 체계는 어떤가?  우리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과연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갖는 어떤 생물학적 세포나 생화학적 체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답은 그와 같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체계가 사실은 매우 많다는 것이다.  

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첫 번째는 섬모이다. 섬모라는 것은 여러 형태의 세포 표면에 나와 있는 작은 머리털 같은 소기관이다. 섬모는 앞뒤로 채찍 모양의 움직임을 통하여 세포 표면 위로 액체를 움직이는 흥미로운 능력을 갖고 있다. 허파 내 어떤 조직에서는 각각의 세포가 수백 개의 섬모를 갖고 있으며, 그것들은 또한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  

그림. 1  (위) 외부 미세관들의 융합된 이중-고리 구조, 중앙 미세관들의 단식-고리 구조, 연결 단백질들, 그리고 다이네인 발동기를 보여 주는 섬모의 단면도.  (아래) 이웃하는 미세관을 '걸어' 올라가는 다이네인에 의해 유도된 미끄럼 운동이 휘어지는 연결 단백질 넥신에 의하여 굴곡 운동으로 전환됨.

섬모성 세포 사이에는 가블릿(goblet) 세포라고 불리는 더 커다란 세포가 있는데, 허파의 벽면에 점액을 분비한다. 이 점액은 섬모의 운동에 의하여 목구멍까지 휩쓸려 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허파에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어떤 먼지 입자나 다른 외부 물질들과 함께 기침을 통해 바깥으로 배출된다. 그러나 무엇이 작은 머리털 같은 소기관을 앞뒤로 채찍 같이 움직이게 하는가? 과거 수십 년간의 연구는 섬모가 사실은 매우 복잡한 분자기계라는 것을 보여 준다.  

섬모는 아홉 개의 이중 미세관(double microtubule)으로 이루어져 있다8 (그림 1 참조). 각각의 이중 미세관은 다시 각각 10개와 13개의 튜불린(tubulin) 단백질 줄로 이루어진 두 개의 고리를 가진다. 섬모의 중앙에는 두 개의 단식 미세관(single microtubule)이 있고, 모든 미세관들은 여러 형태의 연결 단백질에 의하여 서로 연결된다. 이웃하는 이중 미세관들은 넥신(nexin)이라는 단백질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바깥쪽에 위치한 이중 미세관들은 안쪽의 단식 미세관에 방사상 단(radial spoke)을 통해 연결된다. 그리고 중심에 있는 두 개의 단식 미세관 끼리는 작은 연결 다리에 의하여 붙어 있다. 게다가 각각의 이중 미세관에는 두 개의 부속물이 붙어 있는데, 각각 바깥과 안쪽에 있는 다이네인(dynein) 다리이다.

비록 이 모든 것이 복잡해 보이지만, 이것은 단지 간략한 기술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으로 섬모 전체의 복잡성을 다 말했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수많은 생화학적 연구를 통해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섬모는 대략 200여 종류의 서로 다른 단백질 부품을 갖고 있다!  

그러면 섬모는 과연 어떻게 작동하는가?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 '섬유-미끄러짐 기작' (sliding-fiber mechanism)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웃하는 미세관들은 섬유 (fiber)이고, 다이네인은 '발동 단백질'(motor protein)이다.

섬모가 작동할 때, 한쪽 튜불린 줄에 연결되어 있는 다이네인은 길게 뻗어 옆에 이웃하는 미세관에 달라붙어 그것을 아래로 잡아당긴다. 이 일이 일어날 때, 미세관들은 각각 서로에 대하여 미끄러져 움직이기 시작한다. 만약 연결 단백질인 넥신을 통해 서로 붙잡고 있지 않다면, 서로 떨어질 때까지 미끄러져 움직일 것이다.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헐거운 편이지만, 섬유가 미끄럼 운동을 하면서 넥신은 점점 더 긴장된다. 넥신과 미세관의 긴장 상태가 어떤 점 이상으로 증가되면, 미세관이 구부러지게 된다. 그러면 미끄럼 운동은 이제 굴곡 운동으로 바뀐다.  

누구나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섬모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미세관이 없다면, 미끄럼 운동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다이네인이 빠진다면, 섬모를 구성하는 전체 기구는 빳빳하고 무 운동 상태에 놓여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넥신 연결체가 없다면, 다이네인이 미세관을 밀어내기 시작할 때 섬모를 구성하는 전체 기구가 서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넥신을 제거한 실험에서도 확인되었다.

쥐덫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섬모도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부품이 필요하다. 또한 쥐덫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 계단 한 계단 진행하는 다윈 식의 점진적인 방법으로 섬모가 생성되었다는 것은 매우 상상하기 어렵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갖는 생화학적 체계의 또 다른 한 예는, 운동을 위한 소기관이라는 점에서는 섬모와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점에서 볼 때는 완전히 다르다. 박테리아의 편모는, 박테리아가 헤엄쳐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문자 그대로 배 밖에 붙어 있는 하나의 발동기 (motor)와 같다.9 (그림 2를 보라)

사람이 만든 모터보트에 힘을 주는 기계장치처럼 편모는 하나의 회전 기구여서, 회전하는 표면이 액체 매체를 밀어내면서 박테리아를 움직이는 힘을 얻는다. 추진기(propeller) 역할을 하는 편모의 부분은 기다란 채찍 같은 구조로 플라젤린(flagellin)이라고 부르는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추진기는 갈고리(hook) 단백질에 의해 구동축(drive shaft)에 붙어 있는데, 갈고리는 만능 이음새(universal joint) 역할을 하며 추진기와 구동축이 자유롭게 회전하게 한다. 구동축은 회전 발동기(rotary motor)에 붙어 있고, 회전 발동기는 그것을 돌아가게 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하여 박테리아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산(acid)의 흐름을 사용한다.

구동축은 박테리아의 세포막을 뚫고 통과하여 박혀 있어야 하는데, 몇 가지 종류의 단백질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투관 물질(bushing material)로 사용된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편모가 복잡한 구조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편모가 보여 주는 복잡성은 이보다 더하다.

기능을 제대로 하는 하나의 편모를 만들기 위해서는 편모 자체의 부품이나 세포 안에서 이것을 만드는 체계의 부분으로서 약 40여 개의 서로 다른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철저한 유전적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의 단백질이 없는 경우 정상적인 편모의 절반 혹은 1/4 빠르기로 회전하는 편모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편모가 아예 만들어지지 않거나, 만들어져도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  

섬모나 쥐덫과 같이, 편모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부품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따라서 섬모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지며, 그것의 기원은 다윈의 이론에 상당한 걸림돌이 된다.  

 

다윈 식의 상상

나는 섬모나 편모를 발견하지는 않았다. 그것의 작용 기작을 밝혀낸 사람은 내가 아니다.  그 일은 수십 년 동안 세계의 수많은 연구실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내가 주장한 것처럼 이들 구조들이 다윈 식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다면, 다른 과학자들은 분자 기계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왔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분자진화학회 지(Journal of Molecular Evolution; JME)를 한 번 보자. 그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JME는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 후 어떻게 다양해졌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연구하기 위하여 특별히 만들어졌다. 흥미롭고 엄격한 자료를 출간하는 좋은 학회지로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약 40 여명의 과학자 가운데 대략 15명 정도가 미국국립과학회의 회원이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어느 한 권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논문이 '배열분석'(sequence analysis)이라고 불리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분자 기계의 구성물질인 단백질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아미노산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만일 누군가가 단백질(혹은 그것의 유전자)의 아미노산 배열을 안다면 다른 종에서 얻은 유사한 단백질의 배열과 비교할 수 있고 어디에서 두 배열이 똑같은지, 유사한지, 혹은 다른지 알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개의 산소 운반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의 배열을 말의 것과 비교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두 개의 단백질 첫 번째 위치에 있는 아미노산이 같은지 다른지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위치에선 어떤지? 세 번째는? 네 번째는? 그 질문의 답을 아는 것은 흥미로울 일일 테고 두 종이 얼마나 관계가 가까운지 가르쳐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미노산 배열을 비교해 보는 것이 섬모나 편모와 같이 복잡한 분자 기계들이 어떻게 다윈식의 단계적 방법으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결론을 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마도 다음의 예를 통해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당신이 개 앞발에 있는 뼈와 말 앞발의 뼈를 비교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뼈의 수가 똑같고, 유사한 양상으로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또한 흥미로운 일은 그것들이 두 동물이 얼마나 서로 가까운지를 말해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개 앞발의 뼈와 말 앞발의 뼈를 비교한다고 해서 처음에 어디에서 뼈가 왔는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모델을 만들고 실험을 하는 등등의 일을 해야만 한다.

지난 십 년 동안에 분자진화학회지에 실린 논문 중 그 같은 실험적인 작업이나 모델을 만드는 일을 했던 것은 거의 어느 것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10  발표되는 논문들은 압도적으로 배열 분석에 관심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배열 분석은 흥미롭고 또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배열 분석만으로는 어떻게 복잡한 분자 기계들이 다윈식의 방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말할 수 없다.  

다른 학회지, 이를테면 미국국립과학학회 지(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세포(Cell), 분자생물학학회 지(Journal of Molecular Biology) 등을 조사해 본다 하더라도, 이야기는 똑같다.  

배열을 비교해 보는 연구는 수도 없이 많지만, 복잡한 분자 기계의 다윈 식 생성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 다윈 식의 진화론에 대한 문제들을 고려하는 몇 안 되는 연구들도 그나마 모두 다루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엄밀하게 테스트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만약 과학적 문헌-학회지들-이 어떻게 다윈식의 과정이 그같이 정교한 분자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담고 있지 않다면, 왜 많은 과학자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과학자들이 과학적 훈련의 한 부분으로 다윈주의가 사실이라고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 답변의 일부분이 된다. 한 가지 좋은 예를 Voet와 Voet가 공동으로 저술한 훌륭한 교과서 <생화학>(Biochemistry)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림. 2  추진기, 갈고리, 그리고 내부와 외부의 세포막과 세포벽에 박혀 있는 발동기를 보여 주는 박테리아 편모의 그림.

첫 번째 장에는 학생들에게 세상에 대한 생화학적 견해를 소개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 땅에 생물이 생겨났고 다양해졌는가에 대한 진화론적 견해를 보여주는 믿기 어려운 칼라 그림이 있다.

그림을 3등분으로 나눴을 때 윗부분에는 화산, 번쩍이는 번갯불, 희미한 햇빛과 둘레에 가스들이 그려져 있고, 학생들로 하여금 어떻게 생명이 시작되었는지 말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림의 가운데 부분에는 진화론자들이 생명이 처음 생겨났다고 믿는 원시바다에서 뻗어져 나오는 DNA가 박테리아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있어 우리에게 생명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를 설명해 준다.(박테리아는 한 개의 편모를 갖고 있는데, 아주 멀리서 봐서인지 한 개의 머리카락 같이 간단해 보인다.)  

그림의 밑부분에는 진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동물들과 에덴 동산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앙에는 벌거벗은 남녀의 모습이 있다(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자가 남자에게 사과를 건네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것이 어떻게 이 땅에 다양한 생명이 생겨났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암시적으로 믿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런 과정들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심오한 과학적 답을 찾기 위하여 교과서를 뒤져본다면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몇 군데에서 독자의 상상력에 호소하였다.

그러나 상상은 일종의 두 개의 날을 가진 칼과 같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놓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실제는 없는 어떤 것을 볼지도 모른다. 과학 문헌을 조사하면 할수록 다윈주의가 단지 상상의 세계에 갇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설계에 대한 이해

다윈주의에 대한 나의 비판들은 정말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몇 명의 다른 과학자들이 이미 전에도 생명의 생화학은 너무 복잡해서 다윈이 제안한 점진적인 기작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더 나아가 다른 과학자들이 과학적 문헌에는 생명의 분자적 기초의 기원에 대한 진짜 설명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이미 지적해 왔다. 산타페(SantaFe) 연구소의 스튜어트 카우프만(Stuart Kauffman), 시카고 대학의 제임스 사피로(James Shapiro), 그리고 매사츄세츠 대학의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같은 과학자들은 모두 자연선택이 좋은 설명이 되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은 내가 제안한 대안에 있다. 나는 만약 여러분이 섬모나 편모 혹은 다른 분자 기계들을 본다면, 그것들이 어떤 지성체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그 제안은 어느 정도 주목을 끌었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내가 로마 카톨릭 신자이고 따라서 지적설계의 제안은 종교적인 생각이지 과학적이 아님을 의미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경우 지적설계의 결론은 전적으로 경험적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적으로 물리적 증거에 기초한 그것은 어떤 사물이 설계되었다고 어떻게 결론을 맺게 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통해 더 잘 알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의식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어떤 것은 설계되었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다고 결정한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어떻게 우리는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가?

어떤 사물이나 체계가 설계되었다는 결론을 어떻게 내릴 수 있는지 보기 위하여 한 번 이런 상상을 해 보자. 여러분이 친구와 함께 숲 속을 거닐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여러분의 친구가 넝쿨에 발목이 잡혀 끌려 올라가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제 넝쿨을 잘라 친구를 구한 다음, 상황을 재구성해 본다. 주위를 살펴보다가 아래로 굽어져 말뚝에 의해 고정되어 있는 나뭇가지에 넝쿨이 묶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뭇잎으로 넝쿨이 덮여져 있어서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계속 발견해 간다.

각 부분들이 배열된 방식을 보면서 여러분은 이것이 우연이 아니고 설계된 올가미였다 라고 금새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결론은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확실히 물리적 증거에 기초를 둔 것이다.  

넝쿨 올가미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을 더 해보기로 하자. 우선 그것을 설계한 사람은 누구인가? 잠시 생각해 본 후에, 그 질문에 답할 충분한 정보가 없음을 알게 된다. 아마도 당신의 적이거나 친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장난꾸러기의 짓일 수도 있다. 더 많은 정보가 없이는 우리는 누가 올가미를 설계하였다고 결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가미를 구성하는 부분들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우리는 그것이 정말로 설계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언제 올가미가 설계되었냐는 것이다.  잠시 생각한 후에, 우리는 그 질문에 답할 충분한 정보가 없음을 알게 된다. 더 많은 자료가 없이는 그 올가미가 한 시간, 하루, 아니면 일주일 전에 설계되었는지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올가미 부분들간의 상호작용을 볼 때 설계 그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게 된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올가미를 설계하였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올가미가 설계되었다는 사실은 그 체계를 관찰함으로써 바로 이해된다.  

비록 우리가 설계의 사실을 쉽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학문적으로 엄격한 방법으로도 다룰 수 있다. 설계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엄격한 방법으로 다루는 일이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에 의해 그의 전공논문인 <설계에 대한 추론: 작은 확률들을 통한 우연의 제거 (The Design Inference: Eliminating Chance through Small Probabilities)11>에서 훌륭하게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을 시작하면서 인용한 내용에 다시 귀 기울이고 싶다. 내 견해로는 엄밀한 경험적 관찰을 토대로 볼 때 Ratzinger 추기경이 말한 대로 결론을 맺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생명창조의 위대한 계획은 우연과 실수의 산물이 아니다....(그것은) 창조적인 이성을 가리키고, 우리에게 창조적인 지성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 밝고 눈부시게 나타난다.”

 

참고문헌

1. G. Eastbrook, '과학과 하나님: 화해의 경향? (Science and God: A Warming Trend?)' Science 277 (1997): 890-93.

2. J. Ratzinger, <태초에: 창조와 타락에 대한 카톨릭의 이해 (In the Beginning: A Catholic Understanding of the Story of Creation and the Fall)>, Grand Rapids, Michigan: Eerdmans, 1986, pp. 54-56.

3. C. Darwin,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1876; 재판, New York: New York 대학 출판부, 1988, p. 151.

4. J. Farley, <데카르트부터 오파린 까지의 우연 발생 논쟁(The Spontaneous Generation Controversy from Descartes to Oparin)>, Baltimore: Johns Hopkins 대학 출판부, 1977, p. 73.

5. T. M. Devlin, <생화학 교과서 (Textbook of Biochemistry)>, N ew York: Wiley-Liss, 1977, chap.22.3.

6. Darwin, <기원 (Origin)>, p.154.

7. M. J. Behe, <다윈의 블랙박스: 진화론에 대한 생화학적 도전 (Darwin's Black Box: The Biochemical Challenge to Evolution)>, New York: Free Press, 1996, p. 39.

8. D. Voet and J. G. Voet, <생화학 (Biochemistry)>, New York: J. Wiley and Sons, 1995, pp. 1252-59.

9. 위의 책, pp. 1259-60.

10. Behe, 위의 7번 책, chap. 8.

11. W. Dembski, <설계에 대한 추론: 작은 확률들을 통한 우연의 제거 (The Design Inference: Eliminating Chance through Small Probabilities)>, Cambridge: Cambridge 대학 출판부, 1998.     

 

번역 - 김정훈 교수

출처 - 창조지, 제 135호 [2003. 1~3]

Walt Brown
2004-07-26

살아있는 기술 

(Living Technology)


      살아있는 생물체의 체내에는 과학의 발달로 알려지게 된 가장 복잡한 현상들이, 즉 전기적, 음향학적, 기계적, 화학적, 광학적 현상들이 발견되어진다. 여러 동물들의 생체에 대한 세밀한 연구들에 의하면, 동물들은 세상에서 가장 우수하게 디자인된, 그리고 가장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진, 또한 중복되지 않은 신체 장비와 능력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디자인된 장치들의 예를 들면, 고성능의 소형 초음파 시스템을 갖고 있는 고래와 돌고래, 주파수 조절 레이더와 인식 시스템을 갖고 있는 박쥐,1 효율적인 공기역학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벌새(hummingbird), 조절시스템, 폭발낭, 사격장치를 갖추고 있는 폭격수 딱정벌레,2 간단하면서도 정확한 항해 시스템들을 갖고 있는 많은 새들, 물고기들, 곤충들,3 그리고 특별한 자가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생물체들이다. 이러한 복잡한 시스템들의 각 구성요소들은 선택적으로 불리한 시스템을 가진 생물체의 존재없이, 갑자기 진화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증거들은 설계자가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살모넬라, 대장균, 연쇄상구균과 같은 많은 세균들은 소형 모터들에 의해서 매초당 자기 몸길이의 15 배 정도를 갈 수 있는 놀라운 추진력을 얻고 있다.4 이 추진력을 자동차에 비교하면 액체 속에서 시속 240 km (150 마일)의 추진력이다. 이 극도로 효율적이며, 역추진도 가능한 모터들은 1분에 10만 번을 회전할 수 있다.5 각 축들은 한 다발의 채찍과 같은 편모(flagella)를 프로펠러처럼 회전시킨다. 모터들은 회전자(rotors)와 고정자(stators)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기 모터들과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6 그러나, 전기적 전하는 전자(electrons)의 흐름에 의해서가 아니라, 양자(protons)의 흐름에 의해서 일어난다. 세균은 정지할 수 있고, 출발할 수 있으며, 속도, 방향, 심지어 프로펠러의 모양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7 그들은 또한 복잡한 센서, 스위치, 조절 메커니즘, 단시간 기억장치 등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고도로 소형화되어 있다. 사람 머리카락 단면 안에 이러한 모터 8백만 개가 들어갈 수 있다.8 진화론은 세균은 생명체가 진화된 가장 처음의 형태 중의 하나라고, 그러므로 그들은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가졌다고 가르치고 있다. 세균은 작지만,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몇몇 식물들은 세균의 모터의 1/5 크기의 모터들을 가지고 있다.9 반도체 등에서와 같은 초미세기술(nanotechnology)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다윈이 상상했던 것을 뛰어넘어 놀랍게 설계되어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그림 18 : 북극 제비갈매기의 이동 경로와 조종실. 평균 크기의 새인 북극 제비갈매기(Arctic Tern)는 위에서 나타낸 바와 같이 현대적인 대륙간 여객기가 가지고 있는 항해장비와 같은 고도로 정교한 기술을 가지고 바다를 횡단하여 항해한다. 제비갈매기의 여행 경로는 22,000 마일 정도로 추정된다. 제비갈매기의 항해장비들은 고도로 소형화 되어있고, 매우 신뢰할 만하며, 유지하기가 쉽고, 쉽게 재생된다. 더군다나 이 놀라운 새는 훈련될 필요가 없다. 만약 아래 그림의(여객기 조종실의) 장비들이 진화될 수 없었다면, 어떻게 제비갈매기의 더 놀라운 장비들이 진화될 수 있었는가?      

 

똑같은 놀라움을 군주 나비(monarch butterfly)에서 갖게 된다. 이 나비는 북아메리카에서 번식하고, 겨울을 보내러 멕시코로 수천의 마일을 날라 간다. 군주 나비는 핀 머리(pin head) 크기의 뇌에 들어있는 정보를 가공해서, 자기장의 약한 세기와 태양을 이용하여 항해한다.

그림 19 : 세균의 모터. 살모넬라 세균의 편모에 대한 현미경적 사진에 근거한 그림.


그림 20 : 세균의 모터에 대한 개략도. 비록 이 작은 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위에서 묘사한 구성요소들의 존재가 추정되고 있다. From “Learning How Bacteria Swim Could Set New Gears in Motion,” by Tom Koppel, figure by Johnny Johnson. ⓒ September 1991 by Scientific American, Inc. All rights reserved.

 

 

References and Notes

1. “Ounce for ounce, watt for watt, it [the bat] is millions of times more efficient and more sensitive than the radars and sonars contrived by man.”  Pitman, p. 219.

2. Robert E. Kofahl and Kelly L. Segraves, The Creation Explanation (Wheaton, Illinois: Harold Shaw Publishers, 1975), pp. 2-9.

* Thomas Eisner and Daniel J. Aneshansley, “Spray Aiming in Bombardier Beetles: Jet Deflection by the Coanda Effect,” Science, Vol. 215, 1 January 1982, pp. 83-85.

* Behe, pp. 31-36.

3. Jason A. Etheredge et al., “Monarch Butterflies (Danaus plexippus L.) Use a Magnetic Compass for Naviga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Vol. 96, No. 24, 23 November 1999, pp. 13845-13846.

4. David H. Freedman, “Exploiting the Nanotechnology of Life,” Science, Vol. 254, 29 November 1991, pp. 1308-1310.

* Tom Koppel, “Learning How Bacteria Swim Could Set New Gears in Motion,” Scientific American, Vol. 265, September 1991, pp. 168-169.

* Howard C. Berg, “How Bacteria Swim,” Scientific American, Vol. 233, August 1955, pp. 36-44.

5. Y. Magariyama et al., “Very Fast Flagellar Rotation,” Nature, Vol. 371, 27 October 1994, p. 752.

6. Could a conventional electrical motor be scaled down to propel a bacterium through a liquid? No. Friction would overcome almost all movement. This is because the ratio of inertial-to-viscous forces is proportional to scale. In effect, the liquid becomes stickier the smaller you get. Therefore, the efficiency of the bacterial motor itself, which approaches 100% at slow speeds, is remarkable and currently unexplainable.

7. C. Wu, “Protein Switch Curls Bacterial Propellers,” Science News, Vol. 153, 7 February 1998, p. 86.

8. Yes, you read this correctly. The molecular motors are 25 nanometers in diameter while an average human hair is about 75 microns in diameter.

9. “... the smallest rotary motors in biology. The flow of protons propels the rotation ...” Holger Seelert et al., “Proton-Powered Turbine of a Plant Motor,” Nature, Vol. 405, 25 May 2000, pp. 418-419.

* Hiroyuki Noji et al., “Direct Observation of the Rotation of F1-ATPase,” Nature, Vol. 386, 20 March 1997, pp. 299-30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cience.com/

출처 - CSC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8

참고 : 3857|3855|3840|3839|3638|3828|3817|3806|3803|3740|3690|3674|3402|3324|3670|3639|3629|3624|3610|3394|3358|3318|3313|3276|3267|3269|3231|3143|3105|3075|3034|3005|2988|2952|2940|2920|2910|2899|2857|2733|2610|2606|2603|2475|2396|2393|2371|2340|2318|2299|2125|2133|2020|1896|957

미디어위원회
2004-07-26

”하나님이 계심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답하시렵니까?

Ken Ham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면, 하나님은 누가 만드셨나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의 일상생활 중에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시작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사실상, 과학의 법칙들은 비록 태양이나 수많은 별들과 같이 전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까지도 하나같이 소진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태양은 생성된 후부터 쉼 없이 초당 수백만 톤의 연료를 소모하고 있다. 결국 태양도 영원토록 존속할 수 없는 존재인 이상 탄생도 있어야 마땅하다. 이 법칙은 전체 우주에도 해당된다.

크리스천들이 우주는 성경의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면,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적 질문처럼 들린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 시간 밖에 존재하신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시작이나 종말과는 관계없이 영원하시며 무한하신 존재다. 또한 그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인 까닭에 끝없는 지성을 지녔다.1

이 관념은 논리적인가? 현대과학이 이 관념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적 창조주의 증거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창조주의 지성을 알아보기 (Recognizing Intelligence)

과학자들은 동굴 안에서 고대인의 석기들을 발견하고 흥분한다. 그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던 사람들의 지성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구는 스스로 설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뿐일까! 러시모어 산(Mt. Rushmore)의 암벽에 조각된 미국 대통령들의 조각상들은 수백만 년 동안 우연한 풍화작용으로 새겨진 결과물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은 제작물들이 지성의 산물이라는 증거와 마찬가지로, 그 조각상들도 설계자의 작품이라는 증거를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윌리엄 팰리(William Paley)의 저 유명한 시계 비유에서 그 시계의 제작자가 있었음을 암시한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지도급 과학자들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식물이나 동물을 포함하여 시계와 자동차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놀랍도록 복잡한 인간의 두뇌를 하나님의 지성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지성적인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입장은 변호 될 수 있을까?

 

생명체의 디자인 (Design in Living Things)

분자생물학자 마이클 덴튼 박사(Dr. Michael Denton)는 불가지론자로서 이렇게 결론지고 있다.

”정교하고 복잡한 생명체의 분자조직과 비교하면 우리의 20세기 최고수준의 기술이라는 것도 서툴러 보인다. 우리가 현재 생물학 분야에서 알고 있는 정도가 생물계 전체의 디자인 중에서 어느 단편적인 것 이상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환상일 것이다. 실제로 기본적 생물학탐구의 모든 분야에서 수그러들 줄 모르고 늘기만 하는 생명체의 디자인과 복잡성에 관한 새로운 발견들은 그 속도를 더하고 있다.” 3

다윈주의와 무신론의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리차드 도킨즈(Richard Dawkins)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생명체들은 너무도 정말 같지 않게, 또 너무도 아름답게 '디자인 되어서' 우연한 존재라고 할 수 없다.” 4

이렇게 해서 심지어 더없이 열렬한 무신론자까지도 우리 주변은 온통 디자인 된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디자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성경의 설명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도킨즈와 같은 진화론자들은 생명체가 설계자의 디자인에 의한다는 관념을 거부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강조를 겸해서) 있다.

모든 모양과는 반대로, 자연 안에 있는 시계공은 눈먼 물리력 (blind forces of physics)일 뿐이다,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전개된 힘을 가진 진짜 시계공은 선견지명이 있다. 그는 마음의 눈으로 미래의 목적을 내다보면서, 자기 시계의 톱니와 스프링을 설계하며 그런 부품들의 연결 계획을 세운다. 우리가 지금 알기로는 다윈이 발견한 맹목적, 무의식, 그리고 자동과정을 거치는 자연선택이야말로 존재에 대한 설명이며, 겉보기에 합목적적인 형태를 갖춘 모든 생명체도 실은 목적을 가진 마음이 없다. 자연선택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것은 눈먼 시계공일 뿐이다.”

 

선택과 디자인 (Selection and Design)

생명은 유전 인자, 즉 DNA 안에 들어있는 정보의 바탕 위에 세워진다. 도킨즈는 자연선택6과 돌연변이 (DNA 안에서 목적 없이 저질러진 복사과정의 실수)가 합쳐져서 생명체의 디자인을 책임지는 막대한 정보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고 믿었다.7

자연선택은 관찰될 수 있는 논리적 과정이다. 그러나 선택은 유전인자 안에 이미 포함되어있던 정보만을 따라서 작동할 뿐이다. 자연선택은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지 않는다.8 실질적으로 이것은 기원에 관한 성경의 말씀과 일치한다. 즉, 하나님은 동물과 식물을 그 '종류대로' 지으셔서 각각의 종류가 종류별로 뒤를 잇게 하셨다.

하나의 종류 안에서 엄청난 변종들을 볼 수 있고, 또 그 속에서 자연선택의 결과도 알 수 있다. 예컨대, 들개들(dingoes), 늑대들(wolves), 그리고 코요테들(coyote)은 늑대/개 종류의 유전인자 안에 들어있는 정보에 오랜 시간에 걸쳐 작용한 자연선택의 결과다.

어쨌거나 자연선택 과정에서 산출되는 새로운 정보는 전혀 없다. 변종들은 개의 원래종에 있던 정보를 재배치, 또는 추려낸 결과로 생긴 것들이다. 하나의 종류가 예전에 없던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전혀 새로운 종류로 바뀐 예는 일찍이 관찰된 적이 없다!

정보증가의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자연선택은 진화의 메커니즘으로서 작업할 수 없는 것이다. 진화론자들도 이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알 수는 없지만 돌연변이가 어떻게든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여 자연선택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고 있다.

 

돌연변이는 새로운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가? (Can Mutation Produce New Information?)

실질적으로 그 대답은 분명히 no! 다. Johns Hopkins 대학교에서 정보통신 이론을 가르치고 있는 리 스페트너 (Dr. Lee Spetner) 박사는 그의 최근 저서에서 이 문제를 명백히 하고 있다.

”본 장(章)에서 나는 진화의 몇 가지 예를 (그들이 진화의 예라고 주장하는 경우들), 특히 돌연변이의 예를 살펴보고 정보는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하겠다. 내가 읽은 모든 생명과학의 문헌에서 정보를 증가시키는 돌연변이의 경우는 나는 단 한 건도 발견하지 못 했다.” 9

       ”분자 수준에서 연구된 모든 중요한 돌연변이들은 유전인자의 정보를 감소시키면 시켰지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판명되었다.”10

       ”NDT (neo-Darwinian theory; 신다윈주의 이론)은 진화의 과정에서 정보구축의 방법이 설명될 것으로 추정하였다. 인간과 박테리아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 생물학적 차이점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있다. 둘 사이에 있는 생물학적 차이점들은 다 그 정보의 차이점에서 유래된 것이다. 인간의 게놈은 박테리아의 게놈이 가지고 있는 정보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정보는 그것을 잃기만 하는 돌연변이에 의해서는 결코 구축될 수 없다. 사업가가 조금씩 돈을 잃기만 하는데 돈을 벌 수 없다.”

진화론 과학자들은 스페트너 박사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도달한 결론의 근처에도 못 가보았다. 돌연변이는 진화과정을 촉진시키는 메커니즘이 아니다.

 

더 많은 문제점들! (More Problems!)

과학자들은 세포 속에 수천 개의 '생화학적 기계' 라고 부를만한 장치들을 발견하였다. 그 장치의 모든 부품들은 동시적으로 제 자리에 있어야만 하지 그렇지 않을 때는 세포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단순한 기계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왔던 것들이 사실은 상당히 복잡하다. 예컨대, 빛을 감지할 수 있는 장치가 전기적 충격기동(起動)으로 변질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생명체는 이와 같은 '기계 장치들' 위에 구축되었기 때문에, 자연과정이 생명체계를 만들 수 있었다는 이념은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생화학자 마이클 베헤 박사 (Dr. Michael Behe) 는 그와 같은 생화학적 '기계 장치들'을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복잡성' 이라는 용어로 묘사하였다.

”도저히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복잡한 시스템이 세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고 생명체는 어떤 지성에 의해서 설계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결과, 생명체가 단순한 자연법칙의 결과라는 사상에 익숙해진 20 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한테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세기들에 살던 인간들도 다 나름으로의 충격을 경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라고 충격적인 발견을 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12

리차드 도킨즈는 시작에 앞서 '기계적 장치'의 필요성을 인정하여야 하는 문제를 인정하고 이렇게 진술하였다.

”복제(replication)와 이어지는 누적 선택(cumulative selection)의 전제가 허용되는 가정 하에서는 눈먼 시계공의 이론은 더없이 강력하다. 그러나 복제에 복잡한 기계장치가 필요한 것이라면, 복잡한 기계장치가 궁극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유일한 방법은 누적 선택이기 때문에, 우리는 또 하나의 문제를 가지게 된다.”13

진정, 또 하나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생명체를 탐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복잡한 생명체의 구조를 만난다. 그리고 우리는 ”생명체는 스스로 생겨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생명체의 발생에는 정보의 원천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생명체의 화학적 성분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기계장치'가 애초부터 존재하여야만 하였던 것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더 큰 문제 (A Greater Problem Still)

최초의 기계장치 세포가 순전히 우연으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예컨대 무작위로 hat라는 단어를 알파벳 순서로 긁적이다가 때로는 단순한 BAT라는 단어를 쓰는 수가 있을 것이다.14 그렇듯이 오랜 시간이 흐르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보다 더 복잡한 정보가 우연히 생기지 말라는 법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도대체 'BAT' 라는 단어가 독일 사람이나 중국 사람한테 무슨 뜻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인가? 요점은, 글자의 순서 따위는 진정 의미있는 언어의 협약이나 번역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한 세포 속에는, DNA(또는 다른 분자들)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순서를 만드는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다. 언어/번역 시스템이 없는 DNA는 아무런 의미도 담지 못한다. 그리고 DNA가 없는 시스템도 아무런 역할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마지막 남은 복잡성은 DNA 안에 있는 글자의 순서를 읽을 수 있는 번역 기계장치도 그 자체는 DNA에 의해서 일일이 지시받는다는 사실이다.

 

정보는 무정보로부터 발생할 수 있을까? (Can Information Arise from Non-information?)

독일 연방의 물리학과 기술원 교수 베르너 깃드 박사 (Dr. Werner Gitt)는 과학을 통해서 확실히 인지(認知)하는 사실 중 한 가지는 정보가 혼돈(混沌)으로부터 우연히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명백히 밝혔다. 정보는 (보다 더 큰) 정보에서 생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보는 지성에서 산출된 결과라고 했다.

”암호 시스템은 언제나 두뇌운동의 과정에 생기는 결과물이다 (암호체계는 지성적인 창조자, 즉 발명자가 있고 나서야 생산된다). 물질은 그 나름으로서는 어떤 암호도 발생시킬 수 없다. 모든 실험을 통해서 보면, 정보의 생산에는 자유로운 의지, 인식, 그리고 창조력을 자발적으로 작동하는 어떤 사유능력의 소유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극명하게 밝혀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15

”물질이 정보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자연법칙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 또한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그 어떤 물리적 과정이나 물질적 현상도 알져진 것은 없다.”16

 

정보의 원천은 무엇인가? (What is the Source of Information?)

그러므로 우리는 생물체 안에 있는 막대한 양의 정보는 과학이 매일 밝히고 있는 바처럼 인간의 지성을 훨씬 능가하는 어떤 지성적 존재로부터 기원하여야 한다는 결론을 연역(演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결론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즉, 그와 같은 정보의 원천은 그 자체보다 더욱 큰 정보/지성의 존재에 의해서 지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이론이 타당하다고 하면, 그때엔 바로 그 더 큰 정보/지성의 존재는 어디서 오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 다음 것은 어디서 오는가? 하고 마침내 외삽법(外揷法)에 의해서 무한대로 영원히 추정하다가 마침내…

마침내 무한한 지성의 원천까지 가게 될 것이다. 그 무한한 지성은 유한한 인간의 지성의 이해를 초월한다. 그런데 바로 이 무한한 지성이야말로 성경이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으니… ” 에서 밝힌 바 그 하나님이 아닌가? 성경의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식 또한 그 어떤 제약에 의해서도 제한 받지 않으시는 무한한 존재이시다.

그런 즉 어느 쪽이 당당히 변론 가능한 논리인가? 즉, 외적으로 존재하게 된 물질 (즉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스스로 존재하게 된 물질)이 실제적으로 과학에서 관찰된 모든 현상에 역행하면서 어떤 정보체계로 정리된다는 이론이 변론 가능한 논리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한한 지성의 존재가 생명체의 정보체계를 창조하여 존재하게 하였다는 이론, 즉 실물과학에 순응하는 이론이 변론 가능한 논리인가?

그 대답은 자명하다. 그런데, 왜 모든 지적인 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수용하지 않는가? 마이클 베헤가 이렇게 대답한다.

”나에게 소중하고 존경스러운 과학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초월하는 그 어떤 존재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초자연적 존재가 자연에 영향을 주어 아무리 미세하고 심지어 건설적인 간섭까지도 하지 않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서 … 그들은 물질세계에 대한 설명을 그들이 수용하는 범위로 제한하려는 어떤 선험적 철학적 언질을 그들의 과학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때때로 이러한 그들의 고집때문에, 그들은 어쩐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수가 없지 않다.”18

문제의 요점은 이런 것이다. 즉, 일단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규범을 세울 수 있으며, 우리는 그 규범에 따라 살아야만 한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창조주를 반항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셨다. 죄라고 불려지는 이 반항으로 인해서, 우리 인간의 육신은 죽어야만 하는 것으로 선고되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살든가, 하나님을 정죄하는 자리에 두고 살든가 하여야 한다.

그러나 기쁜 소식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저지른 배반의 죄에서 건지시는 길을 마련하여 주셨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그를 믿는 사람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으며 주님과 영원을 같이 살 수 있게 하신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을 창조하였는가? (So Who Created God?)

무한하고 영원하신 존재는 언제나 존재해 왔었다. 하나님을 창조한 것은 없다. 그는 스스로 계신 존재다. 그는 성경에서 'I am' 이라고 하신 그다.19 그는 시간 밖에 계신다 ━ 사실은 그가 시간도 만드셨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말씀을 신앙의 차원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6).

이것은 맹목적 신앙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사실을 말하자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진화론자들이야말로 맹목적 신앙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 관찰되는 과학을 거역하는 그 무엇을 믿고있다. 예컨대, 정보는 혼돈으로부터 우연히 생길 수 있다는 이론이 그것이다.

크리스천의 신앙은 맹목적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변호가 가능한 신앙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누구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변명할 수 없다 하신 그 이유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Reference

1. Psalms 90:2; 106:48; 147:5; Notice that it is only things which have a beginning which have to have a cause. See J. Sarfati, 'If God created the universe, then who created God?' CEN Technical Journal 12(1)20-22, 1998. See condensed online version.  

2. W. Paley, Natural Theology, 1802. Reprinted in 1972 by St Thomas Press, Houston, Texas.

3. M. Denton,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Adler and Adler, maryland, 1986, p.342.

4. R. Dawkins, The Blind Watchmaker W.W. Norton & Co. N.Y. 1987. p.43.

5. Ref. 4, p.5.

6. Natural selection, The concept that some variants in a population will be less 'fit' to survive and/or produce offspring than others in a given environment.

7. See C. Wieland, Stones and Bones, Creation Science Foundation Ltd. Australia, 1995, and G. Parker, Creation; Facts of Life, Master Books, Green Forest, Arkansa, 1996.

8. L. Lester and R. Bohlin, The Natural Limits to Biological Change, Probe Books, Dallas Texas, 1989. pp.175

9. L. Spetner, Not by Chance, The Judaica Pess Inc, Booklyin, New York, pp. 131

10. Ref. 9, p. 138.

11. Ref. 9, p. 143.

12. M. Behe, Darwin's Black Box, The Free Press, New York. 1996, pp. 252-153.

13. Ref. 4. pp. 139-140.

14. Actually generating word is far simpler than sentences or paragraphs. Simple calculations show that even a billion years would not be enough time to generate even one protein 'sentence'.

15. W. Gitt, In the Beginning was Information, CLV, Bielenfeld, Germany, pp. 64 .

16. Ref. 15, p.89.

17. This, capable of generating infinite information, and certainly the enormous, though finite, information of life.

18, Ref. 12, p. 243.

19. Exodus 3:14; Job 38:4; John 8:58, 11:25; et a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www.answersingenesis.org/docs/3270.asp

출처 - AiG, 1998. 6. 1.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지적설계운동의 역사

김영식 


편집자 주 : 지적설계이론은 학문(과학)의 영역 안에서 '설계'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 창조를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입니다. 기존의 창조과학과는 다소 다른 입장들이 섞여 있는 것이 사실이나 현재 미국에서 진화론의 모순점들을 개혁하고자 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에 본지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라는 말은 새로운 말이 아니다. 그러나 보통 많은 사람들은 지적설계라는 말을 들으면 신학자인 윌리엄 팔레이(William Paley)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에 나오는 시계공 논증을 떠올리곤 한다. 또는 창조과학회에서 발행한 『신비한 생물 창조 섭리』나 『신비한 인체 창조 섭리』와 같은 책에 나온 이야기들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말하고자 하는 지적설계운동은 그와 같은 기존의 이야기들과는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지적설계운동은 최근 10년 동안 미국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창조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지적설계운동을 이끌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인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지적설계운동은 지적인 원인들의 영향을 연구하는 과학의 연구 프로그램이고, 다윈주의와 다윈주의의 자연주의적 유산에 대해 도전하는 지적인 운동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지적설계운동이 어떤 특징과 장점을 갖고 있으며 또한 그 단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설계운동이 지금까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적설계운동의 효시는 1991년에 출판된 필립 존슨(Phillip E. Johnson)의 『심판대 위의 다윈(Darwin on Trial)』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존슨은 다윈주의가 자연주의라는 철학과 얼마나 절망적으로 얽혀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물론 다윈주의가 자연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존슨이 처음 지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명한 법학자였던 존슨의 책은 수없이 많이 팔렸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존슨이 제기한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지적설계운동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립 존슨에 대해서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존슨은 UC 버클리에서 30여 년간 법학을 가르쳐왔고, 미국 대법원장 얼 워렌(Earl Warren)의 법률 고문이었으며, 형법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여러 교과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80년대에 안식년을 맞이하여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고, 그 기간 동안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을 비롯하여 진화론에 대해서 소개하는 책들을 여러 권 접하게 되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존슨은 다윈 이후 15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창조-진화' 논쟁의 본질이 과학적인 증거로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무신론 대 유신론이라는 두 개의 상충되는 세계관 사이의 대결이라고 결론내리게 되었다. 더 나아가 두 개의 상충되는 세계관들이 서로 동등한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학문, 공공 교육, 대중매체 등에서 무신론적인 세계관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유신론적 세계관을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자연주의의 부당한 우세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존슨의 전공이 법학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그가 누구 못지 않게 뛰어난 법학자였기 때문에, 쟁점이 되는 문제들 사이의 핵심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런 상황하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학문과 문화에서의 자연주의의 독점을 해체시킨다는 것으로 목표가 분명해진 이후 그는 『균형잡힌 이성(Reason in the Balance)』(1995), 『다윈주의 허물기(Defeating Darwinism)』(1997) 등의 책을 지속적으로 출판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윈주의, 더 나아가 자연주의의 독점을 허무는 일에 동참하도록 독려하는 일을 해 왔다.

존슨의 첫 번째 책이 출판된 이후 1992년에는 미국의 남감리교 대학(Southen Mothodist University)에서 '다윈주의 : 과학인가, 철학인가?'라는 주제의 컨퍼런스가 열리게 된다. 이 컨퍼런스에서 존슨은 오늘날 지적설계운동의 핵심 인물로서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 베히(Michael Behe),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 스티븐 메이어(Stephen Meyer)와 같은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된다. 이 컨퍼런스에는 마이클 루즈(Michael Ruse)와 같은 유명한 진화론자들도 초청되었는데, 마이클 루즈는 바로 1980년대에 미국에서 창조과학을 진화과학과 동등하게 취급하도록 한 아칸소 주의 법령에 대한 위헌 소송에 진화론 측 증인으로 나와 창조과학 측이 패소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당사자였다. 그런데 루즈는 이 컨퍼런스를 통해서 존슨들의 주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설득당하게 되었고, 이후 1993년에 열린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AAAS)의 정기 모임에 참석했을 때는, 자신이 전과 같은 진화론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진화론이 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철학적인 가정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1993년에는 딘 케년(Dean Kenyon)과 퍼시벌 데이비스(Percival Davis)가 『Of Pandas and People』이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다. 이 책은 고등학교 생물학 교과서로 쓰인 책으로서 생물학에서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994년에는 존 모렐란드(J. P. Moreland)가 『Creation Hypothesis』에서 설계를 진화론에 대한 이론적인 대안으로서 제시하기도 하였다.

1996년에는 지적설계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전기가 된 큰 사건들이 두 가지가 일어난다. 첫 번째 사건은 Mere Creation이라는 컨퍼런스이다. 이 컨퍼런스의 이름은 C. S. 루이스의 『Mere Christianity』라는 에큐메니칼적인 성격을 가진 책의 제목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창조론을 지지하든 상관없이 순수하게 '창조'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연합시키고자 하는 지적설계운동의 주된 특징이 이 컨퍼런스의 제목에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무신론이 압도적인 우세에 있는 상황 속에서는 창조에 대해서 동의하는 사람들이 연합할 필요가 있고, 창조론자들을 연합시킬 수 있는 공통분모로서, '순수한 창조 그 자체(mere creation)'인 지적설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컨퍼런스에서는 지적설계에 관심이 있는 200여명의 과학자, 철학자, 그리고 일반인들이 모였는데, 컨퍼런스 결과 지적설계라는 창조론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 컨퍼런스에서 철학 박사이자 수학 박사인 윌리엄 뎀스키는 스티븐 메이어, 폴 넬슨 등과 함께 '설명을 찾아 내는 여과기'(explanatory filter)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지적설계를 과학의 연구 프로그램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1996년에 일어난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은 미국 리하이(Lehigh) 대학의 생화학 교수인 마이클 베히 박사가 『다윈의 블랙 박스(Darwin's Black Box)』를 출판한 것이다. 이 책에서 베히는 생화학 시스템 중에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의 성질을 갖고 있는 시스템들이 많이 있고, 이런 시스템들은 설계에 대한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설계를 접목시킨 생물학 연구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베히의 책은 ScienceNature 뿐만 아니라 New York TimesWall Street Journal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명한 저널에서 비평되었고, Christianity Today에서는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 후 1998년에는 윌리엄 뎀스키가 『The Design Inference』에서, 어떤 것이 과학적 연구 활동에 적합한 '설계'의 개념인지를 구체적으로 한정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베히의 책을 통해서 설계라는 개념이 사용되었을 때에는, 사람들은 아무리 베히의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설계를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뎀스키에 의해 과학에서 사용될 수 있는 설계의 개념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지면서, 단순히 설계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던 사람들의 비판들을 일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99년에 뎀스키는 설계에 대해 비교적 대중적으로 설명하는 책인 『Intelligent Design』(IVP)을 출판하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그 동안 진행되어 온 지적 설계 운동의 구체적인 모습이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현재까지 진행된 지적 설계 운동의 간략한 역사이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지적 설계 운동은 그 역사가 아직 10년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본격적으로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이후부터이므로 실제적인 역사는 5년밖에 안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역사가 매우 짧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도 예측하기 어렵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지적 설계 운동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지적 설계 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소개할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지적 설계 운동에 대해서 관심 있게 다루고 있는 곳은, 과기원 창조론 연구회(RACS), 서울대학교 창조과학 연구회(SCR), 그리고 창조과학회 산하 청년 모임인 NOAH가 있다. 이들 모임의 홈페이지에는 지적설계 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글들이 올라와 있으며, 이들 세 모임이 모여서 지적설계 운동의 주요 저서 중 하나인 『다윈의 블랙 박스』를 번역하고 있고, 이를 올해 안에 출판할 예정으로 있다. 그리고 역시 올해 안으로 앞서 소개한 필립 존슨의 주요 저서들인 『균형 잡힌 이성』, 『다윈주의 허물기』가 IVP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출처 - 창조지, 제 121호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창조의 증거로서의 설계에 의한 논증

김창환 


1. 들어가며 

어떤 것을 입증하고자 할 때 일반적으로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직접적인 접근방법과 간접적인 접근 방법이 그것이다. 간접적인 접근 방법이라 하면 결론의 부정을 가정하고 모순을 이끌어내는 귀류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창조를 입증하는 데 있어서 귀류법이라고 한다면 창조가 없었다고 가정할 경우, 즉 무목적적인 진화를 가정할 경우 필연적으로 내적인 문제들 사이에서의 모순이나 외적인 증거와의 불일치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창조과학운동이 주력해왔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창조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 방법을 취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0)

하나님께 만드신 만물들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하게 될 시도는 이것이다. 만물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보임으로써 비록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창조를 증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아무도 핑계를 댈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논의하는 데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재생할 수도 없고 직접 관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정하지 않고 논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관측 가 능한 사실들만을 가지고 창조를 입증하고자 하였다. 즉 만물에는 그것이 현재 존재하는 방식을 보건대 반드시 설계자(disigner)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생명의 설계 

…..풀밭을 걸어가다가 〈돌〉 하나가 발에 채였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는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그것은 항상 거기에 놓여 있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답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 아니라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그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 답해야 한다면, 앞에서 했던 것 같은 대답, 즉 잘은 모르지만 그 시계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대답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제작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용도를 설계했다….. 시계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1) - William Paley 

19세기 초에 자연신학자 윌리엄 페얼리는 필자가 이 글에서 하려는 시도와 본질적으로 같은 시도를 하였다. 그는 당시에 알려져 있는 생물학적 지식들에 기초하여 생명체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이 발달해 있는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생명체의 복잡함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사람의 몸에는 대략 1015(1억×천만) 개의 세포가 있다. 그리고 하나의 세포는 대략 1012(1조) 개에 이르는 원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세포에 따라 크게 다를 것이나 정확한 숫자는 중요치 않다.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이 분자 수준에서부터 얼마나 정밀하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면 정말 놀랍기 그지 없다. 여기다 예를 들기는 쉽지 않겠지만 생체분자들의 작동 메커니즘은 정말 감탄을 절로 자아낸다.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 이라는 제목의 아주 유명한 책을 썼다. 그 책의 앞부분에서 도킨스는 생명체가 참으로 복잡하고 놀라우며 그 기원이 특별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데 대해서 페얼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특별한 설명으로서 그가 제시하는 것은 자연선택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맹목적이며 무의식적이고 무목적적인 누적적 자연선택으로 생명체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를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자연선택이 설명하는 바가 창조로 설명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설명하자면 이렇다. 자연선택에 따르면 가장 잘 적응한 것이 살아 남는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명의 놀라운 적응성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창조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가장 잘 적응될 형태로 생명을 만드셨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명의 놀라운 적응성이 역시 설명된다. 이런 점에서 설령 실제로는 창조의 결과라 할지라도 거의 다 자연선택에 의해서 잘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 둘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마땅히 그 차이점에 대해서 논해보아야 하겠으나 그러면 양이 너무 많아질 것 같다. 그것은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좀 다른 쪽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연선택의 시작에 관한 것이다. 

DNA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화학물질이다. DNA에 관하여 특기할 만한 점 몇 가지를 들어 볼 수 있겠는데, 첫째로 자기복제이다. 짝을 이루고 있는 두 가닥에 동일한 정보가 들어 있어서 각각의 가닥이 역시 동일한 정보가 들어 있는 새로운 가닥들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 화학적 안정성이다. RNA와 DNA는 산소가 하나 있고 없고 하는 차이인데 그 안정성에서는 매우 큰 차이가 난다. RNA는 비교적 불안정하여 쉽게 깨어지는데 비해 DNA는 몹시 안정한데 이는 각각의 역할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다. 이렇게 DNA는 유전정보를 저장, 보관, 복제하기 위한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참으로 놀라운 설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위의 자연선택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생체에는 DNA 복제에 관여하는 효소들이 있는데, 이 효소들은 DNA 없이 존재할 수 없고 DNA는 이 효소들 없이 복제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자기복제 체계가 없이는 자연선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눈먼 시계공' 이 DNA를 설계할 수는 없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레이엄 케언즈 스미스는 DNA가 최초의 자기복제체계가 아니며 더 단순한 자기복제 체계(점토)로부터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2) 여기에 대해 자세히 다루기는 어려우나 이 점은 확실한 것 같다. 무신론(또는 자연주의)의 입장에서는 복잡한 구조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자연선택 외에는 다른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결국 어떤 설명이든 자연선택으로 환원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선택이 기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은 최초에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겠는가? 우연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스미스의 견해는 그 우연의 가능성을 조금 높이고 자연선택의 줄을 좀 더 길게 한 것에 불과하다. 생명체의 복잡한 구조의 기원으로서 자연선택은 창조의 대안으로 제안되었고, 수많은 진화론자들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반박하는 일은 간단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논의는 아마도 이 글의 범위를 넘을 것이므로 이쯤에서 그만두어야만 하겠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생명체에만 적용될 수 있다. 반면 하나님의 창조는 모든 만물에 해당된다. 그러면 생명체로부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기로 하자. 

 

3. 생명을 위한 설계 

지구의 질량, 지자기장의 크기, 대기 조성, 대기의 층상구조, 적절한 알베도(albedo), 기울어진 자전축, 태양과의 거리, 적절한 자전시간 등 대단히 많은 요소가 지구상에 생명체가 사는 데에 적합하도록 대단히 정밀하게 조정되어 있다.

물은 매우 특별한 화합물로서 생명에 반드시 필요하다. 비열, 응고열과 기화열, 열전도도가 모두 커서 생체와 지구의 온도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물과 다른 화합물의 여러 수치들을 비교해 볼 때 오직 물만이 지금 물이 하고 있는 열적인 역할에 유일하게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진다. 뿐만 아니라 4도 이하에서는 냉각하면서 오히려 부피가 팽창하는데 이는 수중생물에게 몹시 중요한 점이다. 강이나 호수의 물이 얼기 시작할 때 0℃의 물이 4℃의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표면부터 얼기 시작한다. 표면에 생긴 얼음층은 보온 덮개 역할을 하고 그 아래의 물은 쉽게 얼지 않게 된다. 거기에서 수중 생물들은 겨울을 나는 것이다. 만일 물이 아래에서부터 얼기 시작한다면 많은 수중생물들이 겨울을 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물은 유전상수가 상당히 큰데 이는 생체분자들이 어떤 작용을 할 수 있으면서 적절히 안정한 상태로 존재하게 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또 물은 매우 큰 표면장력을 갖는데 이는 모세관 현상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높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식물이 물을 빨아들이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생명체는 그 성격상 복잡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 그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원소는 오직 탄소뿐이다. 탄소가 없었다면 복잡한 구조들도, 따라서 당연히 생명도 존재할 수 없다. 내게는 탄소화합물들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가능케 하는 탄소라는 원소의 특이한 성질이 몹시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원소가 존재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우리의 존재를 제외하면), 이러한 원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다. 물론 그런 세상엔 우린 있을 수 없겠지만, 수많은 탄소화합물들의 특이하고 생명에 이바지하는 성질을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생명은 기본적으로 탄소의 성질에 의존하고 있다. 

이쯤에서 반론을 다루어야 할 것 같다. 반론은 주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환경이 생명에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자연선택을 통하여 환경에 맞추어졌다는 것이다. 즉 환경이 생명에 잘 맞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형태로 생명이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생명이 그 환경에 맞게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적어도 태양계에는 지구이외에는 생명체가 없으며 생명체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종류의 생명도 결코 맞출 수 없는 환경이 (그런 별이) 많다는 것이다.

두번째 반론은 약한 인류학적 원리(weak anthropic principle)라고 불리우는 것인데 바로 이와 같은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크거나 무한한 우주에서 지적 생물이 발달하기에 필요한 조건은, 오직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한정된 특정한 구역에서만 충족된다. 그러므로 이런 구역의 지적생물은 우주 안에서 그의 고장이 그의 생존에 필요한 조건을 충촉하고 있다는 것을 관측해도 놀라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4) 이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지구가 얼마나 특별한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가 충분히 특별해서 우연히 그러한 행성이 존재할 확률이 매우 작다면 약한 인류학적 원리는 충분히 긴 시간이 있으면 우연히 생명이 생길 수도 있다는 주장과 논리적으로 다른 점이 없다. 지구가 과연 충분히 특별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국지적이지도 않고 생명의 특수한 형태에 의존하지도 않는 측면은 두 반론에 의해서 반박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측면의 극단적인 예들을 보기로 하자. 

 

4. 설계된 법칙들 

…..만일 우리가 기본 상수값들 중 하나를 바꾼다면 무언가 반드시 잘못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바 이 우주가 생명체가 살기에 적절치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우주는 인간을 위해 설계된 것인가?…5)- John Gribbin & Martin Rees

두 개의 양성자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은 중력의 약 1036이다. 어째서 자연계의 기본적인 힘들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래야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 전기력은 분자수준에서 중요한 힘이고 중력은 아주 큰 스케일에서 중요한 힘이다. (전하가 양전하, 음전하로 나누어져 있어 큰 스케일에서는 모두 상쇄되는 것도 음미해 볼만하다. 전기력은 기본적으로는 작은 수준에서의 작용을 위하여 설계된 듯하다.) 생명은 기본적으로 복잡해야 하고 구조의 기본단위(여기서는 분자 또는 원자)와 비교하여 몹시 커야 한다. 그러나 중력이 너무 강하면 어느 정도의 물질만 모여도 붕괴해버려 태양처럼 되어버린다. 중력이 없다면 태양과 같은 에너지의 원천이 생길 수도 없거니와 물질들은 별을 이루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전기력이 중력의 1026배라면? 이 경우에는 태양의 수명이 1년쯤 될 것이다. 강한 핵력은 어떤가? 강한 핵력이 조금만 더 약했다면 오직 수소밖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한 핵력은 아마도 복잡한 생명의 구성을 위하여 기본단위의 다양성을 목표로 설계된 것이 아닌가 한다. 강한 핵력 역시 극도로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도록 하여 전자기력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되어있는 것이 또한 설계의 묘인 것 같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원자핵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양성자와 전자의 질량차이(= 1836 : 1)는 왜 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좀 엉뚱한 질문을 던져보자. 왜 전자는 원자핵에 가서 붙어버리지 않는 것일까? 답은 불확정성 원리이다. 전자에게는 원자핵 만한 크기에 갇혀 있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양성자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질량이 무겁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자구조는 원자가 identity를 가지면서도 다른 것과 상호작용하면서 어느 정도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한 설계일 것이다.

어째서 원자의 에너지는 양자화되어 있는가? 이 질문이 의미하는 바는 왜 양자역학 법칙들이 원자의 에너지가 양자화되도록 세워졌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전자가 원자핵을 임의의 궤도를 돈다면 같은 원자핵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서로 완전히 같은 원자로 간주될 수 있을까? (이것이 Bohr가 원자 에너지의 양자화를 제안했을 때 가졌던 생각이었다. 그는 어째서 모든 수소원자가 그렇게 완전히 동일한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만일 원자들이 서로 완전히 같지 않다면 어떻게 생명이 자기복제를 할 수 있겠는가?

어째서 공간은 3차원인가? 중력은 거리의 (공간차원-1)제곱에 반비례함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역제곱 법칙만이 궤도운동을 안정되게 할 수 있다.

소수의 기본 입자들과 소수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명과 같은 복잡한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지는 않다. 만일 임의로 법칙을 준다면 절대다수의 경우에 입자들이 한데 뭉치거나, 아니면 균일하게 퍼지기가 쉬울 것이다. 모든 기본 법칙들이 생명의 존재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의미에서든 법칙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들이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대단히 잘 조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것(생명의 존재)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맺으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시는 것도 이와 같을 게야. 만드시기 전에 그분 뜻으로 이리저리 재셨을 터이니. 그러나 우리는 이 안에 살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나서 보았기 때문에 그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일 게다.” ”밖에서 보아야 사물을 꿰뚫어 보기에 용이하다는 말씀이신지요?”  ”예술이 창조한 것은 그렇다. 우리의 마음으로 그 일을 이룬 장인의 마음을 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의 피조물은 안된다. 그것은 우리 마음과 비슷한 장인의 마음이 빚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

뉴턴 이전 시기에는 과학은 반드시 현상의 의미(이유 또는 목적)를 설명해야 했다고 한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하자 만유인력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므로 그것은 진정한 과학이론이 아니라는 반박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점차 과학자들은 올바르게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와서는 현상 또는 존재 양식 또는 법칙들에 어떤 의미(이유 또는 목적)를 부여하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고, 이유나 목적이 없다고 믿는 경향이 만연해졌다.

이 글에서 여러 수준에서의 설계의 흔적들을 다루었다. 지적인 설계자가 있다는 생각은 여러 수준에서 일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일관성의 측면에서 개별적인 현상 또는 법칙들에 의미를 일부 추측해 보는 것도 가능했다. 무신론(또는 자연주의)적인 관점도 이러저러한 설명들을 제시하고 있으나 거의 전적으로 자연선택과 우연에 의존하고 있어서 한계가 있다.

물론 '증명' 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수준에서 동일한 목적을 향한 설계가 존재함을 볼 수 있다면 일관된 설계자가 있어야 함을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듯 하다. 설계는 설계자가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 - 창조지, 제 116호 [1999. 9~10]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지적설계의 지성 

(The Intelligence of Intelligent Design)

William S. Harris 


       *편집자주 : 이 글은 윌리엄 해리스 박사가 캔자스 주의 신문 에 지적설계에 대해 투고한 기사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 윌리엄 해리스(William S. Harris) : Missouri-Kansas 시 대학의 의학 교수 / Intelligent Design Network, Inc.(기원론 및 지적설계 관련 주제에 대한 연구 및 행사들을 증진, 후원하고 있는 캔자스주의 비영리 단체) 디렉터. 


7월 1일자 ”내가 그것을 보았을 때”라는 기사에서 지적설계 이론을 ”과학적 분류자(scientific imposter)”라고 부른 케네스 밀러는, 지적설계의 개념에 대해서 분명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밀러는, 그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많은 종교를 가진 과학자들이 ”자연적인 역사의 활동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는 글을 썼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정확히 지적설계 이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0% 이상이 이런 견해에 동의하고 있으며, 우리들 대부분 역시 그것이 순간적이든 오랜 시간이 걸렸든지 간에, 인간은 지성에 의해서 생성되었고,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있다. 그러나 지적설계의 옹호자들은 어떠한 목적이나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분자들과 물질들의 의미 없는 움직임에 의해 자연이 생겨났다는 신다윈주의자들의 주장에는 반대한다. 실제로 '과학적 분류자(scientific imposter)'라는 표현은, 과학으로 가장한 일종의 철학(또는 세계관)인 다윈주의에 더 적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자 학장인 진화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는 최근에 Scientific American 잡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다윈주의는 새로운 생물 철학의 기본 요소가 되었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또 ”찰스 다윈보다 더 일반 사람들의 세계관을 극적으로 수정한 생물학자는 없었다” 라고 단언하며, 이 세계관이 ”강력한 지적, 정신적 혁명을 일으켰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다” 라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다윈주의는 실로 하나의 ”정신적 혁명”이었던 것이다.


이 다윈주의는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과 인과 관계를 거부하며, 더이상 하나님을 창조주 또는 설계자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특별히, 중요한 과학적 반증 자료들이 무시되며, 다윈주의가 공식적인 진리로 교육되어짐에 따라, 다윈주의에 내포되어 있는 근본적인 사상들은 많은 미국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살펴보면, 종교적 문서가 아닌 바로 ”과학적 증거들(특별히 생화학분야에서의 증거들)”이 지적설계이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DNA에서 수행되고 있는 인간의 유전인자를 판독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언어를 밝히는 작업”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이 바로 지적설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암호는 요리책과도 같아서, 일류요리사처럼 이 지시를 어떤 유용한 것으로 번역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들에게 유용한 것이 되는데, DNA나 단백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 분명한 것은 바로 지성이 이러한 요리책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지적설계이론은 이와 같이, 지성이 거대하고 매우 복잡한 유전암호를 만들어냈다고 제안한다. 이와 같은 제안은, 생명체라는 생물학 책의 한 단어에 불과한 가장 작은 단백질의 출현에서조차 그것이 자연법칙과 우연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는 데에 현대과학이 거듭 실패해 왔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만약 한 개의 단백질이 형성될 수 없다면 어떻게 수천 개의 기능을 가진 단백질이 가장 단순한 세포에서까지 발견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의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거대 분자들이 모여진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자연적인 기작(매커니즘)이 아직 없다”는 사실이 곧 ”그와 같은 기작은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오늘날, 우리 아이들에게 생명과 생명체의 다양성이 물질과 시간과 자연법칙의 단순한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서 가르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기초가 되어야 할 이 ”미래의 발견”을 우리는 믿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진실을 찾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세계관을 보급하고 있는 것인가!

 

출처 - 창조지, 제 121호

편집실
2004-07-26

진정한 'Adam' 과 'Eve'는 과연 누구인가 ?


     기원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탐구해 보려는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는 것 같다. 과거에는 단지 천문학이나 지질, 화석학적인 측면에서 기원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오늘날에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오히려 고고학, 심리학, 언어학 등등 모든 학문에 걸쳐 이와 같은 논의는 계속 확산되고 있으며, 어찌하든 보다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기원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 습성인 듯 하다. 물론 이 같은 탐구의 결과들이 무신론적인 진화론을 확증해 주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새롭게 나타나는 증거자료들이 오히려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거듭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알게 함에(롬1 :20)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인한 분자수준에서의 생물 분자의 상호착용을 통하여 해명해보려는 시도는 근래에 가장 큰 흥미를 끄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최근 이와 같은 연구결과중의 하나가 발표됨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자료들은 종래의 진화론학계(특히 인류기원에 대한진화론 가설)가 주장하던 학설과 크게 여러 면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TIME誌(87. 1. 26일자) 기사와 NEWSWEEK誌(88. 1. 11일자)의 표지특집기사(Cover Story)를 중심으로 소개해 본다. 이 기사는 본 회의 입장과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음을 미리 밝혀둔다.(편집자 註)

 

Eve라고 명명된 (여기서의 Eve는 성경상의 하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과학자들은 이와 같이 부르는 것을 마지못해 억지로 부르고 있음- 註) 이 여성은 현 인류의 공통 조상이며, 검은 머리에 검은 피부를 지녔으며, 식량을 얻기 위하여 약 20만년 전의 대초원(Savanna)을 떠돌아 다녔을 것으로 주장한다. 그녀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세계적인 테니스선수)처럼 근육질의 몸에 강인한 체력을 지녔으며, 짐승을 손으로 직접 찢어 발겼으며, 석기도 다룰 줄 아는 여자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당시 지구상에 유일한 여성은 아니었으나, 오늘날까지 모든 여성들에게 자신의 일정한 유전정보를 유전시킬 수 있었던 출산력이 왕성한 재수 좋은(?) 여성으로 추측하며, 우리 직계로 계산하면 약 10,000대조 할머니가 될 것이라 한다. 


지난해 Eve의 발견 발표이래, 최초의 인류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이들은 이것이 성경을 근거한 근본주의자들의 이론(이브가 5992년 전에 살았었다는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을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 올바른 성서학자라면 그 누구도 이와 같은 확정된 연대를 주장하는 사람은 없음 - 註)을 뒤엎었고, 인류가 훨씬 더 이전에 진화되었다는 대다수 진화론자들의 주장에도 도전한다고 말한다.


과거 전통적인 인류학자에게 학문적으로 필적할 만한 라이벌은 거의 없었으며, 몇몇 석기류나 뼈 화석들의 발굴로 인하여 논란이 되곤 하였다. 그런데 'Eve의 이론'은 전통적인 인류학자들에게 격렬한 과학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프리카 협곡의 발굴 작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험실 안에서 분자 생물학자들에 의하여 우리 모든 인류의 조상이 한 여자로부터 왔다는 것을 DNA 추적을 통하여 주장한 것이다. 일부과학자들은 그녀의 고향이 남아프리카라고 주장하며, 대부분은 사하라 남쪽의 아프리카라고 추정한다. 또한 일부 과학자들은 'Adam '(여기서의 아담도 성경에서 말하는 아담은 아님 - 주註)을 찾는 작업도 시작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 작업은 또 다른 아주 미세한 종류의 DNA와 관계되어 더욱 어려울 것이라 한다. 이 'Eve' 논쟁의 가장 큰 논란은 지금까지 진화는 매우 천천히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진행되어 왔다고 주장되어 왔으나, 이 최초의 여성은 약 l4만년에서 28만년쯤 전에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 때문이다. (TIME 誌 87.l.26일 p66). 유명한 진화론적 화석학자인 리챠드 리키는 현대인이 시작된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일정한 한 장소(Single Center)는 없다고 단언하였다 (1977년). 그러나 유명한 고생물학자인 하버드 대학의 굴드(Stephen Jay, Gould ) 교수는 'Eve'의 논쟁이 인류가 일정한 한 장소로부터 실재하였다는 것을 인정케 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인류의 한 핏줄이라는 개념이 두 달전 시카고에서 있었던 미 인류학회(American Anthropological Association)의 토의에서 명백히 인정된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아무튼 'Eve 논쟁' 은 진화론자들에게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이 분명한데, 미 테네시 대학의 고생물학자인 스미스(Fred Smith)교수는 이 같은 곤혹스러운 입장을 'DNA로부터의 이 같은 자료는 너무도 명확하고 과학적이므로 우리 고생물학자들을 그저 무능하고(bumbling) 구식의 못난 자들로 만들었다' 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Eve를 추적하기 위하여 먼저 칸(Rebecca Cann) 교수가 행한 방법은 147명의 산모를 설득하여 아이의 태반을 기증 받도록 설득한 것이다. 태반은 큰 체세포의 표본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버클리대의 윌슨(Wilson)과 스톤킹(Mark Stoneking), 그리고 칸(현재 하와이대) 교수는 미국과 아프리카, 유럽, 중동, 그리고 아시아의 여성들을 택하였다. 뉴기니아와 호주에 있는 그녀의 공동 연구팀은 그곳의 원주민 여성들을 찾아냈다. 태반이 수집되고 동결된 세포는 버클리대의 윌슨 교수의 실험실에서 분석되었다. 세포는 스프처럼 혼합기에서 분쇄되고 원심분리기로 분리해내어, 세포분리를 위한 세포분리세제를 혼합하고, 형광물감을 들여서 재차 원심분리 해낸다. 이렇게 하면 순수한 DNA를 포함하는 깨끗한 액체를 얻을 수 있다. 이 DNA는 체세포의 핵 내에 포함된 DNA가 아니며, 세포내의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on; 세포질 내에서 타원형 모양으로 존재하며, 세포의 호흡에 관계하는 효소가 들어 있음 - 註)에 존재하는데, 이 미토콘드리아는 세포를 유지시키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생산한다. 60년대까지만 하여도 이 미토콘드리아 내의 유전인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70년대말, 이 미토콘드리아 DNA가 모계로부터만 승계되는 것으로 혈통관계를 추적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핵 내의 DNA처럼 부모의 유전인자가 혼합된 것이 아니며 모든 세대에 걸쳐 일정하게 유지되어온 것이다. 이것이 바뀌려면 돌연변이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그렇게 많은 유전암호단위의 재배치가 우연하게 두 개의 동일한 미토콘드리아 DNA로 바뀌어 나타날 가능성은 천문학적인 확률인 것이다 (또한 이것이 바뀌지 않고 지난 수십만 년간 계속적으로 승계되어 왔다는 것이 유전적 변이를 거부한다 - 註). 


변이의 정도를 조사하기 위하여 버클리 과학자들은 DNA 샘플을 서로 비교 가능하도록 분류하였다. 그러나 그 차이는 미미하였다. 심지어 종족간에도 인정할만한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스톤킹은 이것에 대하여 '인류는 젊은 종이며, 문화권 사이에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고, 미토콘드리아 DNA의 개념하에서 보면 다른 어떤 척추동물이나 포유류보다도 인류 상호간에 훨씬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며, 심지어 뉴기니아인의 DNA가 다른 뉴기니아인보다 오히려 다른 아시아인의 DNA와 보다 더 가까울 정도다' 라고 하였다 


어린 유아의 DNA를 통하여 볼 때 이것은 아프리카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DNA를 두개의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현재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또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과 모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배타적인 아프리카 사람집단의 DNA 가운데는 좀더 다양한 DNA 형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더욱 변이가 많이 일어났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지역으로부터 전 세계로 현재 인류의 공통조상이 되는 여성이 기원한다는 것이다. 윌슨 교수는 '행운의 한어머니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한 어머니가 'Eve' 로 규정된 것에 성서와 연관되는 것을 극구 꺼리고 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류의 본성 때문일까?(롬1:28).


그는 이 Eve 말고도 당시 최소한 수천 명의 남녀가 함께 살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들도 모두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들 모두는 우연하게도 자손들이 계속 딸을 낳는데는 실패하여 결국은 그녀들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Eve' 처럼 전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이 'Eve' 가 누구인가? 성서의 'Eve' 라고 하면 모든 문제가 간단히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이 점 하나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문제는 계속 복잡해지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이들은 계속 한 명의 Eve가 남게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끈질기게 추측을 계속하고만 있다. 


또한 Eve의 생존시기가 약 20만년 전이라는 계산은 백만년 경과하면 약 2∼4%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변이가 생길 것이라는 가정하에 추론해 낸 것이다 (약14만년∼29만년 사이라고 주장). 그런데 버클리 연구팀의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는 에모리(Emory) 의대의 월레스(Douglas Wallace) 교수팀은 Eve가 살았던 곳은 아시아 지방이라고 또 다른 주장을 한다. 그들은 4대륙으로부터 약 700명의 혈액을 수집하여 미토콘드리아 DNA에 따른 결론에 근거하고 DNA를 분리하고 혈통의 타입을 배열하는 데 있어서는 다른 방법을 취하였다. 그들은 그녀가 약 15만∼20만년 전에 살았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버클리 팀과는 달리 그들은 아시아에 가장 많이 서식하는 원숭이의 DNA 형태와 가장 유사한 인간의 DNA 형태를 찾아내었다는 것이다. 월레스의 자료대로라면 이브는 중국 남동부에 살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그는 Eve가 아프리카에서 살았을 것이라는 입장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아직은 아시아-아프리카 어느 곳으로도 확정할 수 없다는 점뿐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뉴스위크지의 필자는 최근의 증거로는 Eve가 아프리카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하려고 유도한다. 핵 DNA의 연구결과와 현대 인류의 최초 화석들이 아프리카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 (아마도 리키 등의 발굴 성과를 말하는 것 같음 - 註)을 그는 말하고 있다. 


Eve가 20만년 전에 살았다면 그녀는 최초로 나타난 현대 인류중의 한 명이며, 식량을 찾아 평원을 가로질러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약 25명 정도의 집단으로 사는 오늘날 남아프리카의 부쉬멘(Bushmen) 같았을 것이라고 이들은 추측한다. 주위의 인류였던 자바인, 북경인들도 '미토콘드리아 이브' 이전 수십만년 전에 이와 같이 살았을 것으로 또한 추측을 한다. 우리가 책에서 배운 이 원시인들이 과연 Eve의 후손들과 조우하였는지는 이들 연구팀들도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이브의 후손들은 9만년에서 18만년전 그들의 주거지인 아프리카를 떠났을 것이라는 추측이고, 자바인, 네안데르탈인 등과 그들이 만났든 그렇지 않든 분명한 것은 Eve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물려받은 Eve 후손(딸)은 계속적으로 현재 인류에게까지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버클리와 에모리 대학의 생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인자가 Eve의 후손이 오게 되므로 모두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 유전적으로 결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 연구팀들은 그들이 서로 종족 승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서로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지나친 비약을 하기도 한다. 또는 이브의 후손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이 너무 원시적이어서 가까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이 가정하듯, 만일 네안데르탈인들이 현대 인류의 언어능력이 결여된 상태였다면 그들의 구혼 행위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종족 번식 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화석학자들과 분자생물학자들 간의 논쟁에 있어 난제로 남는다. 이 유전학자들에 대하여 가장 신랄한 비평론자인 미시간 대학의 고생물학자인 울포프(Milford Wolpoff) 교수는 현재 우리의 공통조상이 백만년전 쯤에 살았었다고 믿는다. 그는 말하기를 '유전학적 증거로부터 얻어 낼 수 있는 최선의 증거란 Eve의 후손이 아프리카로부터 세계로 퍼졌다는 것과 원주민 집단과는 전혀 동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같은 일이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찾아냈다. 역사의 기록은 항상 집단이 움직이고 부락은 서로 연인들을 교환하므로서 상호 혼합되어 왔다. 나는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람이 서로 섞이고 서로 연합하고 한 가족으로 진화하여 왔다고 믿는다' 라고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만일 Eve 의 후손들이 모든 적대자들을 제거하였다면 그 이론은 그녀의 살인자 자녀인 카인(Cain)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여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물론 여기서의 카인도 성경 상의 바로 그 카인은 아님 - 註). 


실제로 이와 같은 일반적 개념을 나타낸 것이 현대 인류의 기원에 대한 두 그룹의 고전적인 인류학파를 이끌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하우웰(W. W. Howells) 에 의하여 명명된 '노아의 방주이론' (여기서의 노아의 방주도 성경상의 직접적 개념은 아님 - 註)이다. 한 학파의 이론은 비교적 최근에 일정한 장소에 나타난 소그룹(약10∼20만년전)이 노아의 방주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전 세계로 이주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집단은 진화의 계통수나 사닥다리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학파는 하우웰이 '촛대가설(candelabra)' 이라고 부르는 이론을 믿는다. 이 이론은 가지촛대 모양처럼 평행으로 된 여러 잔가지를 지닌 촛대처럼, 서로 다른 종족이 오랜 기간에 걸쳐 분기(分岐)되어 나가서 현대 인류로 독자적으로 진화하였다는 설이다. 이 같은 설은 1962년 쿤(Carleton Coon)의 저서인 '종족의 기원 (The Origin of Races)'을 통하여 더욱 현저히 부각되었다. 그는 흑인들은 가장 최근에야 현대인들로 진화한 미개한 종족이므로 그들의 문명이 덜 발달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는 또 현대 인류의 진화는 유럽이나 아시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찌하든지 현대 인류의 조상을 아프리카인과는 구별짓고 싶은 듯하다. 그는 '만일 아프리카가 인류의 요람지였다면, 그것은 단지 현재 인류와는 전혀 별개의 요람지였을 것'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화론자들 사이에서의 논란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울포프(Wolpoff)는 쿤(Coon)의 이론을 반박하며 격자(格子)설을 주장한다. 가지촛대에 격자모양의 상호 유전적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새로운 'Eve' 의 등장으로 이들 진화론자들은 종래의 네안데르탈인, 북경인, 자바인 등과 이 'Eve'를 꿰어 맞추기 위해서 종래의 연대 개념과 그리고 종족간의 분자 생물학적 연관관계를 해석하는데 진땀을 빼고 있다. 아마도 구구한 해석과 이론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더욱 기원에 대한 논란 그 자체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지도 모를 일이다. 네안데르탈인과 'Eve'의 혈통이 서로 섞였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서도 벌써 큰 논란이 벌어졌으며, 이 별것 아닌 주제에 어쩌면 온갖 혼란스러운 별개의 여러 논문들을 양산해 낼지도 모를 일이다. 벌써 그러한 양상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박물관의 스트링거(Christopher Stringer)의 다음 말은 그것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 주제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나 또 진화론자들이 우왕좌왕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네안데르탈인과 Eve가 서로 혈통교배가 있었는지에 대해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화석 내에서는 그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DNA' 의 결과는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은 아직도 회의적인 입장들이다. 그들은 유전학적 증거들을 완전하게 부정하지는 않으나, 역시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이는 입장도 아니다. 이들은 어쩌면 뒷받침할 만한 화석의 증거들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앨런맨(Alan Mann)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극적인 도약을 다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 우리와 같은 인류가 아주 최근에야 나타났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토콘드리아의 자료들은 매우 중요한 증거 자료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로 소급될만한 훌륭한 화석 증거물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 만일 당신이 화석자료를 검토한다면 아프리카에서의 훌륭한 증거품들이 당신 앞에 놓여질 것이다. 이 분야의 한 사람이 아프리카의 한 돌덩이를 걷어차기만 하여도 우리는 교과서를 다시 써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제 화석 수집가들은 20만년 된 퇴적층에서 유전학자들을 옹호할 증거 자료들을 발굴하려고 계속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유전학자들은 이 같은 자료를 기다리지 않고 벌써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Eve'의 이론을 확장하여 'Adam'을 찾는 작업이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과학자들은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Y 염색체(Chromosome)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염색체는 미토콘드리아보다도 훨씬 많은 유전인자를 지닌 세포핵 내의 DNA에 포함되어 이것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이 'Adam'은 적어도 모든 세대에 한 명의 아들을 낳았던 행운의 조상일 것이다. 그는 어쩌면 Eve와 다른 시대에 살았을 것이라고 그들은 추측한다. 과학자들은 수년 내에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Eve의 딸들로부터 계승되어졌다. 그녀들 중의 어느 한 남편이 오늘날 모두의 조상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것은 실제 반드시 Eve의 남편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녀가 한 명 이상의 남편을 두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브의 딸들 모두는 동일한 외조부(外祖父)의 손녀들이다. 그러므로 이 기사(記事)의 결론은 이렇게 마치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 밝힐 수 있는 오직 유일의 안전한 결론은 'Adam'은 'Eve'의 아버지라고 하면 확실하다는 것이다. 

* * * * * * * * 


지금까지 우리는 '미토콘드리아 DNA 논쟁'을 살펴보았다. 어쩌면 이 논쟁은 이제 어떤 실마리만을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논쟁의 말미가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한은 계속적으로 미궁 속으로 빠져들며 결론이 없이 우회할 것이다. 마치 화석의 증거를 가지고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방황하듯이 말이다. 아무튼 이제 확실한 것은 현재의 모든 인류의 조상은 한 여성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이고, Y 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한 남성으로부터 온 인류를 증거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분명해졌다. 진화론대로라면 우연히 미토콘드리아DNA의 돌연변이가 일정한 시기에 한 여성에게만 일어나서 재수 좋은 그 한 여성이 다른 여성들보다 출산력이 훨씬 왕성하여 인류 모두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고, 진화론자들의 분자 진화론에 따른다면 Y 염색체도 우연히 한 남성에게만 나타난 돌연변이로서 운좋게 이들이 말하는 'Eve'를 만나 현재의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 중대한 의문이 생긴다. 진화론자들의 말대로 그렇게 돌연변이가 일어났었다면, 이 미토콘드리아 DNA는 왜 운좋은 그 'Eve'에게서만 일어났으며, 그 이후에 20만년간(그들 주장대로라면) 살았던 수많은 모든 여성들에게는 한번도 다시는 그와 같은 변이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인가? 물론 Y 염색체에도 이것은 적용된다. 


바벨탑사건 이후 인류는 혼잡된 언어 속에서 살며 기원에 대한 이론 또한 항상 혼잡되어 왔다. '미토콘드리아 DNA' 처럼 명쾌한 기원에 대한 결론이 나와도 결론없이 계속 혼잡된 이론으로 버티어 나갈 것이 또한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본성이다. 그렇지만 세상이 아무리 혼잡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시끄럽더라도, 이 미토콘드리아 DNA의 경우처럼 항상 변하지 않을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을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 언제든…. 그러기에 오히려 진화론자들의 연구결과는 창조론만을 계속 뒷받침 해줄 것이 분명하다. 이제 다만 궁금한 것은 또 한번 진화론자들의 새로운 결과와 이론(?)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편집실 제공).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사야34:26)

 

출처 - 창조지, 제 54호 [1988. 7]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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