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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지적설계운동의 역사

김영식 


편집자 주 : 지적설계이론은 학문(과학)의 영역 안에서 '설계'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 창조를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입니다. 기존의 창조과학과는 다소 다른 입장들이 섞여 있는 것이 사실이나 현재 미국에서 진화론의 모순점들을 개혁하고자 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에 본지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라는 말은 새로운 말이 아니다. 그러나 보통 많은 사람들은 지적설계라는 말을 들으면 신학자인 윌리엄 팔레이(William Paley)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에 나오는 시계공 논증을 떠올리곤 한다. 또는 창조과학회에서 발행한 『신비한 생물 창조 섭리』나 『신비한 인체 창조 섭리』와 같은 책에 나온 이야기들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말하고자 하는 지적설계운동은 그와 같은 기존의 이야기들과는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지적설계운동은 최근 10년 동안 미국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창조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지적설계운동을 이끌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인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지적설계운동은 지적인 원인들의 영향을 연구하는 과학의 연구 프로그램이고, 다윈주의와 다윈주의의 자연주의적 유산에 대해 도전하는 지적인 운동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지적설계운동이 어떤 특징과 장점을 갖고 있으며 또한 그 단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설계운동이 지금까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적설계운동의 효시는 1991년에 출판된 필립 존슨(Phillip E. Johnson)의 『심판대 위의 다윈(Darwin on Trial)』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존슨은 다윈주의가 자연주의라는 철학과 얼마나 절망적으로 얽혀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물론 다윈주의가 자연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존슨이 처음 지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명한 법학자였던 존슨의 책은 수없이 많이 팔렸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존슨이 제기한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지적설계운동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립 존슨에 대해서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존슨은 UC 버클리에서 30여 년간 법학을 가르쳐왔고, 미국 대법원장 얼 워렌(Earl Warren)의 법률 고문이었으며, 형법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여러 교과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80년대에 안식년을 맞이하여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고, 그 기간 동안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을 비롯하여 진화론에 대해서 소개하는 책들을 여러 권 접하게 되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존슨은 다윈 이후 15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창조-진화' 논쟁의 본질이 과학적인 증거로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무신론 대 유신론이라는 두 개의 상충되는 세계관 사이의 대결이라고 결론내리게 되었다. 더 나아가 두 개의 상충되는 세계관들이 서로 동등한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학문, 공공 교육, 대중매체 등에서 무신론적인 세계관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유신론적 세계관을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자연주의의 부당한 우세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존슨의 전공이 법학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그가 누구 못지 않게 뛰어난 법학자였기 때문에, 쟁점이 되는 문제들 사이의 핵심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런 상황하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학문과 문화에서의 자연주의의 독점을 해체시킨다는 것으로 목표가 분명해진 이후 그는 『균형잡힌 이성(Reason in the Balance)』(1995), 『다윈주의 허물기(Defeating Darwinism)』(1997) 등의 책을 지속적으로 출판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윈주의, 더 나아가 자연주의의 독점을 허무는 일에 동참하도록 독려하는 일을 해 왔다.

존슨의 첫 번째 책이 출판된 이후 1992년에는 미국의 남감리교 대학(Southen Mothodist University)에서 '다윈주의 : 과학인가, 철학인가?'라는 주제의 컨퍼런스가 열리게 된다. 이 컨퍼런스에서 존슨은 오늘날 지적설계운동의 핵심 인물로서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 베히(Michael Behe),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 스티븐 메이어(Stephen Meyer)와 같은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된다. 이 컨퍼런스에는 마이클 루즈(Michael Ruse)와 같은 유명한 진화론자들도 초청되었는데, 마이클 루즈는 바로 1980년대에 미국에서 창조과학을 진화과학과 동등하게 취급하도록 한 아칸소 주의 법령에 대한 위헌 소송에 진화론 측 증인으로 나와 창조과학 측이 패소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당사자였다. 그런데 루즈는 이 컨퍼런스를 통해서 존슨들의 주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설득당하게 되었고, 이후 1993년에 열린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AAAS)의 정기 모임에 참석했을 때는, 자신이 전과 같은 진화론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진화론이 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철학적인 가정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1993년에는 딘 케년(Dean Kenyon)과 퍼시벌 데이비스(Percival Davis)가 『Of Pandas and People』이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다. 이 책은 고등학교 생물학 교과서로 쓰인 책으로서 생물학에서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994년에는 존 모렐란드(J. P. Moreland)가 『Creation Hypothesis』에서 설계를 진화론에 대한 이론적인 대안으로서 제시하기도 하였다.

1996년에는 지적설계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전기가 된 큰 사건들이 두 가지가 일어난다. 첫 번째 사건은 Mere Creation이라는 컨퍼런스이다. 이 컨퍼런스의 이름은 C. S. 루이스의 『Mere Christianity』라는 에큐메니칼적인 성격을 가진 책의 제목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창조론을 지지하든 상관없이 순수하게 '창조'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연합시키고자 하는 지적설계운동의 주된 특징이 이 컨퍼런스의 제목에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무신론이 압도적인 우세에 있는 상황 속에서는 창조에 대해서 동의하는 사람들이 연합할 필요가 있고, 창조론자들을 연합시킬 수 있는 공통분모로서, '순수한 창조 그 자체(mere creation)'인 지적설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컨퍼런스에서는 지적설계에 관심이 있는 200여명의 과학자, 철학자, 그리고 일반인들이 모였는데, 컨퍼런스 결과 지적설계라는 창조론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 컨퍼런스에서 철학 박사이자 수학 박사인 윌리엄 뎀스키는 스티븐 메이어, 폴 넬슨 등과 함께 '설명을 찾아 내는 여과기'(explanatory filter)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지적설계를 과학의 연구 프로그램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1996년에 일어난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은 미국 리하이(Lehigh) 대학의 생화학 교수인 마이클 베히 박사가 『다윈의 블랙 박스(Darwin's Black Box)』를 출판한 것이다. 이 책에서 베히는 생화학 시스템 중에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의 성질을 갖고 있는 시스템들이 많이 있고, 이런 시스템들은 설계에 대한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설계를 접목시킨 생물학 연구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베히의 책은 ScienceNature 뿐만 아니라 New York TimesWall Street Journal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명한 저널에서 비평되었고, Christianity Today에서는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 후 1998년에는 윌리엄 뎀스키가 『The Design Inference』에서, 어떤 것이 과학적 연구 활동에 적합한 '설계'의 개념인지를 구체적으로 한정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베히의 책을 통해서 설계라는 개념이 사용되었을 때에는, 사람들은 아무리 베히의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설계를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뎀스키에 의해 과학에서 사용될 수 있는 설계의 개념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지면서, 단순히 설계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던 사람들의 비판들을 일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99년에 뎀스키는 설계에 대해 비교적 대중적으로 설명하는 책인 『Intelligent Design』(IVP)을 출판하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그 동안 진행되어 온 지적 설계 운동의 구체적인 모습이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현재까지 진행된 지적 설계 운동의 간략한 역사이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지적 설계 운동은 그 역사가 아직 10년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본격적으로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이후부터이므로 실제적인 역사는 5년밖에 안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역사가 매우 짧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도 예측하기 어렵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지적 설계 운동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지적 설계 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소개할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지적 설계 운동에 대해서 관심 있게 다루고 있는 곳은, 과기원 창조론 연구회(RACS), 서울대학교 창조과학 연구회(SCR), 그리고 창조과학회 산하 청년 모임인 NOAH가 있다. 이들 모임의 홈페이지에는 지적설계 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글들이 올라와 있으며, 이들 세 모임이 모여서 지적설계 운동의 주요 저서 중 하나인 『다윈의 블랙 박스』를 번역하고 있고, 이를 올해 안에 출판할 예정으로 있다. 그리고 역시 올해 안으로 앞서 소개한 필립 존슨의 주요 저서들인 『균형 잡힌 이성』, 『다윈주의 허물기』가 IVP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출처 - 창조지, 제 121호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창조의 증거로서의 설계에 의한 논증

김창환 


1. 들어가며 

어떤 것을 입증하고자 할 때 일반적으로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직접적인 접근방법과 간접적인 접근 방법이 그것이다. 간접적인 접근 방법이라 하면 결론의 부정을 가정하고 모순을 이끌어내는 귀류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창조를 입증하는 데 있어서 귀류법이라고 한다면 창조가 없었다고 가정할 경우, 즉 무목적적인 진화를 가정할 경우 필연적으로 내적인 문제들 사이에서의 모순이나 외적인 증거와의 불일치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창조과학운동이 주력해왔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창조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 방법을 취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0)

하나님께 만드신 만물들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하게 될 시도는 이것이다. 만물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보임으로써 비록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창조를 증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아무도 핑계를 댈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논의하는 데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재생할 수도 없고 직접 관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정하지 않고 논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관측 가 능한 사실들만을 가지고 창조를 입증하고자 하였다. 즉 만물에는 그것이 현재 존재하는 방식을 보건대 반드시 설계자(disigner)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생명의 설계 

…..풀밭을 걸어가다가 〈돌〉 하나가 발에 채였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는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그것은 항상 거기에 놓여 있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답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 아니라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그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 답해야 한다면, 앞에서 했던 것 같은 대답, 즉 잘은 모르지만 그 시계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대답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제작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용도를 설계했다….. 시계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1) - William Paley 

19세기 초에 자연신학자 윌리엄 페얼리는 필자가 이 글에서 하려는 시도와 본질적으로 같은 시도를 하였다. 그는 당시에 알려져 있는 생물학적 지식들에 기초하여 생명체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이 발달해 있는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생명체의 복잡함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사람의 몸에는 대략 1015(1억×천만) 개의 세포가 있다. 그리고 하나의 세포는 대략 1012(1조) 개에 이르는 원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세포에 따라 크게 다를 것이나 정확한 숫자는 중요치 않다.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이 분자 수준에서부터 얼마나 정밀하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면 정말 놀랍기 그지 없다. 여기다 예를 들기는 쉽지 않겠지만 생체분자들의 작동 메커니즘은 정말 감탄을 절로 자아낸다.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 이라는 제목의 아주 유명한 책을 썼다. 그 책의 앞부분에서 도킨스는 생명체가 참으로 복잡하고 놀라우며 그 기원이 특별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데 대해서 페얼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특별한 설명으로서 그가 제시하는 것은 자연선택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맹목적이며 무의식적이고 무목적적인 누적적 자연선택으로 생명체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를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자연선택이 설명하는 바가 창조로 설명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설명하자면 이렇다. 자연선택에 따르면 가장 잘 적응한 것이 살아 남는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명의 놀라운 적응성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창조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가장 잘 적응될 형태로 생명을 만드셨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명의 놀라운 적응성이 역시 설명된다. 이런 점에서 설령 실제로는 창조의 결과라 할지라도 거의 다 자연선택에 의해서 잘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 둘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마땅히 그 차이점에 대해서 논해보아야 하겠으나 그러면 양이 너무 많아질 것 같다. 그것은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좀 다른 쪽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연선택의 시작에 관한 것이다. 

DNA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화학물질이다. DNA에 관하여 특기할 만한 점 몇 가지를 들어 볼 수 있겠는데, 첫째로 자기복제이다. 짝을 이루고 있는 두 가닥에 동일한 정보가 들어 있어서 각각의 가닥이 역시 동일한 정보가 들어 있는 새로운 가닥들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 화학적 안정성이다. RNA와 DNA는 산소가 하나 있고 없고 하는 차이인데 그 안정성에서는 매우 큰 차이가 난다. RNA는 비교적 불안정하여 쉽게 깨어지는데 비해 DNA는 몹시 안정한데 이는 각각의 역할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다. 이렇게 DNA는 유전정보를 저장, 보관, 복제하기 위한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참으로 놀라운 설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위의 자연선택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생체에는 DNA 복제에 관여하는 효소들이 있는데, 이 효소들은 DNA 없이 존재할 수 없고 DNA는 이 효소들 없이 복제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자기복제 체계가 없이는 자연선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눈먼 시계공' 이 DNA를 설계할 수는 없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레이엄 케언즈 스미스는 DNA가 최초의 자기복제체계가 아니며 더 단순한 자기복제 체계(점토)로부터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2) 여기에 대해 자세히 다루기는 어려우나 이 점은 확실한 것 같다. 무신론(또는 자연주의)의 입장에서는 복잡한 구조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자연선택 외에는 다른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결국 어떤 설명이든 자연선택으로 환원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선택이 기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은 최초에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겠는가? 우연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스미스의 견해는 그 우연의 가능성을 조금 높이고 자연선택의 줄을 좀 더 길게 한 것에 불과하다. 생명체의 복잡한 구조의 기원으로서 자연선택은 창조의 대안으로 제안되었고, 수많은 진화론자들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반박하는 일은 간단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논의는 아마도 이 글의 범위를 넘을 것이므로 이쯤에서 그만두어야만 하겠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생명체에만 적용될 수 있다. 반면 하나님의 창조는 모든 만물에 해당된다. 그러면 생명체로부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기로 하자. 

 

3. 생명을 위한 설계 

지구의 질량, 지자기장의 크기, 대기 조성, 대기의 층상구조, 적절한 알베도(albedo), 기울어진 자전축, 태양과의 거리, 적절한 자전시간 등 대단히 많은 요소가 지구상에 생명체가 사는 데에 적합하도록 대단히 정밀하게 조정되어 있다.

물은 매우 특별한 화합물로서 생명에 반드시 필요하다. 비열, 응고열과 기화열, 열전도도가 모두 커서 생체와 지구의 온도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물과 다른 화합물의 여러 수치들을 비교해 볼 때 오직 물만이 지금 물이 하고 있는 열적인 역할에 유일하게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진다. 뿐만 아니라 4도 이하에서는 냉각하면서 오히려 부피가 팽창하는데 이는 수중생물에게 몹시 중요한 점이다. 강이나 호수의 물이 얼기 시작할 때 0℃의 물이 4℃의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표면부터 얼기 시작한다. 표면에 생긴 얼음층은 보온 덮개 역할을 하고 그 아래의 물은 쉽게 얼지 않게 된다. 거기에서 수중 생물들은 겨울을 나는 것이다. 만일 물이 아래에서부터 얼기 시작한다면 많은 수중생물들이 겨울을 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물은 유전상수가 상당히 큰데 이는 생체분자들이 어떤 작용을 할 수 있으면서 적절히 안정한 상태로 존재하게 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또 물은 매우 큰 표면장력을 갖는데 이는 모세관 현상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높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식물이 물을 빨아들이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생명체는 그 성격상 복잡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 그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원소는 오직 탄소뿐이다. 탄소가 없었다면 복잡한 구조들도, 따라서 당연히 생명도 존재할 수 없다. 내게는 탄소화합물들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가능케 하는 탄소라는 원소의 특이한 성질이 몹시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원소가 존재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우리의 존재를 제외하면), 이러한 원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다. 물론 그런 세상엔 우린 있을 수 없겠지만, 수많은 탄소화합물들의 특이하고 생명에 이바지하는 성질을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생명은 기본적으로 탄소의 성질에 의존하고 있다. 

이쯤에서 반론을 다루어야 할 것 같다. 반론은 주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환경이 생명에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자연선택을 통하여 환경에 맞추어졌다는 것이다. 즉 환경이 생명에 잘 맞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형태로 생명이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생명이 그 환경에 맞게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적어도 태양계에는 지구이외에는 생명체가 없으며 생명체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종류의 생명도 결코 맞출 수 없는 환경이 (그런 별이) 많다는 것이다.

두번째 반론은 약한 인류학적 원리(weak anthropic principle)라고 불리우는 것인데 바로 이와 같은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크거나 무한한 우주에서 지적 생물이 발달하기에 필요한 조건은, 오직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한정된 특정한 구역에서만 충족된다. 그러므로 이런 구역의 지적생물은 우주 안에서 그의 고장이 그의 생존에 필요한 조건을 충촉하고 있다는 것을 관측해도 놀라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4) 이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지구가 얼마나 특별한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가 충분히 특별해서 우연히 그러한 행성이 존재할 확률이 매우 작다면 약한 인류학적 원리는 충분히 긴 시간이 있으면 우연히 생명이 생길 수도 있다는 주장과 논리적으로 다른 점이 없다. 지구가 과연 충분히 특별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국지적이지도 않고 생명의 특수한 형태에 의존하지도 않는 측면은 두 반론에 의해서 반박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측면의 극단적인 예들을 보기로 하자. 

 

4. 설계된 법칙들 

…..만일 우리가 기본 상수값들 중 하나를 바꾼다면 무언가 반드시 잘못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바 이 우주가 생명체가 살기에 적절치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우주는 인간을 위해 설계된 것인가?…5)- John Gribbin & Martin Rees

두 개의 양성자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은 중력의 약 1036이다. 어째서 자연계의 기본적인 힘들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래야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 전기력은 분자수준에서 중요한 힘이고 중력은 아주 큰 스케일에서 중요한 힘이다. (전하가 양전하, 음전하로 나누어져 있어 큰 스케일에서는 모두 상쇄되는 것도 음미해 볼만하다. 전기력은 기본적으로는 작은 수준에서의 작용을 위하여 설계된 듯하다.) 생명은 기본적으로 복잡해야 하고 구조의 기본단위(여기서는 분자 또는 원자)와 비교하여 몹시 커야 한다. 그러나 중력이 너무 강하면 어느 정도의 물질만 모여도 붕괴해버려 태양처럼 되어버린다. 중력이 없다면 태양과 같은 에너지의 원천이 생길 수도 없거니와 물질들은 별을 이루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전기력이 중력의 1026배라면? 이 경우에는 태양의 수명이 1년쯤 될 것이다. 강한 핵력은 어떤가? 강한 핵력이 조금만 더 약했다면 오직 수소밖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한 핵력은 아마도 복잡한 생명의 구성을 위하여 기본단위의 다양성을 목표로 설계된 것이 아닌가 한다. 강한 핵력 역시 극도로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도록 하여 전자기력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되어있는 것이 또한 설계의 묘인 것 같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원자핵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양성자와 전자의 질량차이(= 1836 : 1)는 왜 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좀 엉뚱한 질문을 던져보자. 왜 전자는 원자핵에 가서 붙어버리지 않는 것일까? 답은 불확정성 원리이다. 전자에게는 원자핵 만한 크기에 갇혀 있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양성자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질량이 무겁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자구조는 원자가 identity를 가지면서도 다른 것과 상호작용하면서 어느 정도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한 설계일 것이다.

어째서 원자의 에너지는 양자화되어 있는가? 이 질문이 의미하는 바는 왜 양자역학 법칙들이 원자의 에너지가 양자화되도록 세워졌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전자가 원자핵을 임의의 궤도를 돈다면 같은 원자핵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서로 완전히 같은 원자로 간주될 수 있을까? (이것이 Bohr가 원자 에너지의 양자화를 제안했을 때 가졌던 생각이었다. 그는 어째서 모든 수소원자가 그렇게 완전히 동일한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만일 원자들이 서로 완전히 같지 않다면 어떻게 생명이 자기복제를 할 수 있겠는가?

어째서 공간은 3차원인가? 중력은 거리의 (공간차원-1)제곱에 반비례함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역제곱 법칙만이 궤도운동을 안정되게 할 수 있다.

소수의 기본 입자들과 소수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명과 같은 복잡한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지는 않다. 만일 임의로 법칙을 준다면 절대다수의 경우에 입자들이 한데 뭉치거나, 아니면 균일하게 퍼지기가 쉬울 것이다. 모든 기본 법칙들이 생명의 존재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의미에서든 법칙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들이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대단히 잘 조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것(생명의 존재)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맺으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시는 것도 이와 같을 게야. 만드시기 전에 그분 뜻으로 이리저리 재셨을 터이니. 그러나 우리는 이 안에 살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나서 보았기 때문에 그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일 게다.” ”밖에서 보아야 사물을 꿰뚫어 보기에 용이하다는 말씀이신지요?”  ”예술이 창조한 것은 그렇다. 우리의 마음으로 그 일을 이룬 장인의 마음을 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의 피조물은 안된다. 그것은 우리 마음과 비슷한 장인의 마음이 빚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

뉴턴 이전 시기에는 과학은 반드시 현상의 의미(이유 또는 목적)를 설명해야 했다고 한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하자 만유인력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므로 그것은 진정한 과학이론이 아니라는 반박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점차 과학자들은 올바르게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와서는 현상 또는 존재 양식 또는 법칙들에 어떤 의미(이유 또는 목적)를 부여하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고, 이유나 목적이 없다고 믿는 경향이 만연해졌다.

이 글에서 여러 수준에서의 설계의 흔적들을 다루었다. 지적인 설계자가 있다는 생각은 여러 수준에서 일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일관성의 측면에서 개별적인 현상 또는 법칙들에 의미를 일부 추측해 보는 것도 가능했다. 무신론(또는 자연주의)적인 관점도 이러저러한 설명들을 제시하고 있으나 거의 전적으로 자연선택과 우연에 의존하고 있어서 한계가 있다.

물론 '증명' 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수준에서 동일한 목적을 향한 설계가 존재함을 볼 수 있다면 일관된 설계자가 있어야 함을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듯 하다. 설계는 설계자가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 - 창조지, 제 116호 [1999. 9~10]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지적설계의 지성 

(The Intelligence of Intelligent Design)

William S. Harris 


       *편집자주 : 이 글은 윌리엄 해리스 박사가 캔자스 주의 신문 에 지적설계에 대해 투고한 기사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 윌리엄 해리스(William S. Harris) : Missouri-Kansas 시 대학의 의학 교수 / Intelligent Design Network, Inc.(기원론 및 지적설계 관련 주제에 대한 연구 및 행사들을 증진, 후원하고 있는 캔자스주의 비영리 단체) 디렉터. 


7월 1일자 ”내가 그것을 보았을 때”라는 기사에서 지적설계 이론을 ”과학적 분류자(scientific imposter)”라고 부른 케네스 밀러는, 지적설계의 개념에 대해서 분명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밀러는, 그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많은 종교를 가진 과학자들이 ”자연적인 역사의 활동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는 글을 썼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정확히 지적설계 이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0% 이상이 이런 견해에 동의하고 있으며, 우리들 대부분 역시 그것이 순간적이든 오랜 시간이 걸렸든지 간에, 인간은 지성에 의해서 생성되었고,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있다. 그러나 지적설계의 옹호자들은 어떠한 목적이나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분자들과 물질들의 의미 없는 움직임에 의해 자연이 생겨났다는 신다윈주의자들의 주장에는 반대한다. 실제로 '과학적 분류자(scientific imposter)'라는 표현은, 과학으로 가장한 일종의 철학(또는 세계관)인 다윈주의에 더 적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자 학장인 진화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는 최근에 Scientific American 잡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다윈주의는 새로운 생물 철학의 기본 요소가 되었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또 ”찰스 다윈보다 더 일반 사람들의 세계관을 극적으로 수정한 생물학자는 없었다” 라고 단언하며, 이 세계관이 ”강력한 지적, 정신적 혁명을 일으켰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다” 라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다윈주의는 실로 하나의 ”정신적 혁명”이었던 것이다.


이 다윈주의는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과 인과 관계를 거부하며, 더이상 하나님을 창조주 또는 설계자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특별히, 중요한 과학적 반증 자료들이 무시되며, 다윈주의가 공식적인 진리로 교육되어짐에 따라, 다윈주의에 내포되어 있는 근본적인 사상들은 많은 미국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살펴보면, 종교적 문서가 아닌 바로 ”과학적 증거들(특별히 생화학분야에서의 증거들)”이 지적설계이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DNA에서 수행되고 있는 인간의 유전인자를 판독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언어를 밝히는 작업”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이 바로 지적설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암호는 요리책과도 같아서, 일류요리사처럼 이 지시를 어떤 유용한 것으로 번역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들에게 유용한 것이 되는데, DNA나 단백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 분명한 것은 바로 지성이 이러한 요리책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지적설계이론은 이와 같이, 지성이 거대하고 매우 복잡한 유전암호를 만들어냈다고 제안한다. 이와 같은 제안은, 생명체라는 생물학 책의 한 단어에 불과한 가장 작은 단백질의 출현에서조차 그것이 자연법칙과 우연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는 데에 현대과학이 거듭 실패해 왔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만약 한 개의 단백질이 형성될 수 없다면 어떻게 수천 개의 기능을 가진 단백질이 가장 단순한 세포에서까지 발견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의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거대 분자들이 모여진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자연적인 기작(매커니즘)이 아직 없다”는 사실이 곧 ”그와 같은 기작은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오늘날, 우리 아이들에게 생명과 생명체의 다양성이 물질과 시간과 자연법칙의 단순한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서 가르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기초가 되어야 할 이 ”미래의 발견”을 우리는 믿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진실을 찾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세계관을 보급하고 있는 것인가!

 

출처 - 창조지, 제 121호

편집실
2004-07-26

진정한 'Adam' 과 'Eve'는 과연 누구인가 ?


     기원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탐구해 보려는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는 것 같다. 과거에는 단지 천문학이나 지질, 화석학적인 측면에서 기원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오늘날에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오히려 고고학, 심리학, 언어학 등등 모든 학문에 걸쳐 이와 같은 논의는 계속 확산되고 있으며, 어찌하든 보다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기원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 습성인 듯 하다. 물론 이 같은 탐구의 결과들이 무신론적인 진화론을 확증해 주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새롭게 나타나는 증거자료들이 오히려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거듭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알게 함에(롬1 :20)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인한 분자수준에서의 생물 분자의 상호착용을 통하여 해명해보려는 시도는 근래에 가장 큰 흥미를 끄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최근 이와 같은 연구결과중의 하나가 발표됨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자료들은 종래의 진화론학계(특히 인류기원에 대한진화론 가설)가 주장하던 학설과 크게 여러 면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TIME誌(87. 1. 26일자) 기사와 NEWSWEEK誌(88. 1. 11일자)의 표지특집기사(Cover Story)를 중심으로 소개해 본다. 이 기사는 본 회의 입장과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음을 미리 밝혀둔다.(편집자 註)

 

Eve라고 명명된 (여기서의 Eve는 성경상의 하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과학자들은 이와 같이 부르는 것을 마지못해 억지로 부르고 있음- 註) 이 여성은 현 인류의 공통 조상이며, 검은 머리에 검은 피부를 지녔으며, 식량을 얻기 위하여 약 20만년 전의 대초원(Savanna)을 떠돌아 다녔을 것으로 주장한다. 그녀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세계적인 테니스선수)처럼 근육질의 몸에 강인한 체력을 지녔으며, 짐승을 손으로 직접 찢어 발겼으며, 석기도 다룰 줄 아는 여자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당시 지구상에 유일한 여성은 아니었으나, 오늘날까지 모든 여성들에게 자신의 일정한 유전정보를 유전시킬 수 있었던 출산력이 왕성한 재수 좋은(?) 여성으로 추측하며, 우리 직계로 계산하면 약 10,000대조 할머니가 될 것이라 한다. 


지난해 Eve의 발견 발표이래, 최초의 인류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이들은 이것이 성경을 근거한 근본주의자들의 이론(이브가 5992년 전에 살았었다는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을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 올바른 성서학자라면 그 누구도 이와 같은 확정된 연대를 주장하는 사람은 없음 - 註)을 뒤엎었고, 인류가 훨씬 더 이전에 진화되었다는 대다수 진화론자들의 주장에도 도전한다고 말한다.


과거 전통적인 인류학자에게 학문적으로 필적할 만한 라이벌은 거의 없었으며, 몇몇 석기류나 뼈 화석들의 발굴로 인하여 논란이 되곤 하였다. 그런데 'Eve의 이론'은 전통적인 인류학자들에게 격렬한 과학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프리카 협곡의 발굴 작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험실 안에서 분자 생물학자들에 의하여 우리 모든 인류의 조상이 한 여자로부터 왔다는 것을 DNA 추적을 통하여 주장한 것이다. 일부과학자들은 그녀의 고향이 남아프리카라고 주장하며, 대부분은 사하라 남쪽의 아프리카라고 추정한다. 또한 일부 과학자들은 'Adam '(여기서의 아담도 성경에서 말하는 아담은 아님 - 주註)을 찾는 작업도 시작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 작업은 또 다른 아주 미세한 종류의 DNA와 관계되어 더욱 어려울 것이라 한다. 이 'Eve' 논쟁의 가장 큰 논란은 지금까지 진화는 매우 천천히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진행되어 왔다고 주장되어 왔으나, 이 최초의 여성은 약 l4만년에서 28만년쯤 전에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 때문이다. (TIME 誌 87.l.26일 p66). 유명한 진화론적 화석학자인 리챠드 리키는 현대인이 시작된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일정한 한 장소(Single Center)는 없다고 단언하였다 (1977년). 그러나 유명한 고생물학자인 하버드 대학의 굴드(Stephen Jay, Gould ) 교수는 'Eve'의 논쟁이 인류가 일정한 한 장소로부터 실재하였다는 것을 인정케 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인류의 한 핏줄이라는 개념이 두 달전 시카고에서 있었던 미 인류학회(American Anthropological Association)의 토의에서 명백히 인정된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아무튼 'Eve 논쟁' 은 진화론자들에게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이 분명한데, 미 테네시 대학의 고생물학자인 스미스(Fred Smith)교수는 이 같은 곤혹스러운 입장을 'DNA로부터의 이 같은 자료는 너무도 명확하고 과학적이므로 우리 고생물학자들을 그저 무능하고(bumbling) 구식의 못난 자들로 만들었다' 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Eve를 추적하기 위하여 먼저 칸(Rebecca Cann) 교수가 행한 방법은 147명의 산모를 설득하여 아이의 태반을 기증 받도록 설득한 것이다. 태반은 큰 체세포의 표본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버클리대의 윌슨(Wilson)과 스톤킹(Mark Stoneking), 그리고 칸(현재 하와이대) 교수는 미국과 아프리카, 유럽, 중동, 그리고 아시아의 여성들을 택하였다. 뉴기니아와 호주에 있는 그녀의 공동 연구팀은 그곳의 원주민 여성들을 찾아냈다. 태반이 수집되고 동결된 세포는 버클리대의 윌슨 교수의 실험실에서 분석되었다. 세포는 스프처럼 혼합기에서 분쇄되고 원심분리기로 분리해내어, 세포분리를 위한 세포분리세제를 혼합하고, 형광물감을 들여서 재차 원심분리 해낸다. 이렇게 하면 순수한 DNA를 포함하는 깨끗한 액체를 얻을 수 있다. 이 DNA는 체세포의 핵 내에 포함된 DNA가 아니며, 세포내의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on; 세포질 내에서 타원형 모양으로 존재하며, 세포의 호흡에 관계하는 효소가 들어 있음 - 註)에 존재하는데, 이 미토콘드리아는 세포를 유지시키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생산한다. 60년대까지만 하여도 이 미토콘드리아 내의 유전인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70년대말, 이 미토콘드리아 DNA가 모계로부터만 승계되는 것으로 혈통관계를 추적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핵 내의 DNA처럼 부모의 유전인자가 혼합된 것이 아니며 모든 세대에 걸쳐 일정하게 유지되어온 것이다. 이것이 바뀌려면 돌연변이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그렇게 많은 유전암호단위의 재배치가 우연하게 두 개의 동일한 미토콘드리아 DNA로 바뀌어 나타날 가능성은 천문학적인 확률인 것이다 (또한 이것이 바뀌지 않고 지난 수십만 년간 계속적으로 승계되어 왔다는 것이 유전적 변이를 거부한다 - 註). 


변이의 정도를 조사하기 위하여 버클리 과학자들은 DNA 샘플을 서로 비교 가능하도록 분류하였다. 그러나 그 차이는 미미하였다. 심지어 종족간에도 인정할만한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스톤킹은 이것에 대하여 '인류는 젊은 종이며, 문화권 사이에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고, 미토콘드리아 DNA의 개념하에서 보면 다른 어떤 척추동물이나 포유류보다도 인류 상호간에 훨씬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며, 심지어 뉴기니아인의 DNA가 다른 뉴기니아인보다 오히려 다른 아시아인의 DNA와 보다 더 가까울 정도다' 라고 하였다 


어린 유아의 DNA를 통하여 볼 때 이것은 아프리카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DNA를 두개의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현재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또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과 모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배타적인 아프리카 사람집단의 DNA 가운데는 좀더 다양한 DNA 형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더욱 변이가 많이 일어났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지역으로부터 전 세계로 현재 인류의 공통조상이 되는 여성이 기원한다는 것이다. 윌슨 교수는 '행운의 한어머니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한 어머니가 'Eve' 로 규정된 것에 성서와 연관되는 것을 극구 꺼리고 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류의 본성 때문일까?(롬1:28).


그는 이 Eve 말고도 당시 최소한 수천 명의 남녀가 함께 살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들도 모두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들 모두는 우연하게도 자손들이 계속 딸을 낳는데는 실패하여 결국은 그녀들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Eve' 처럼 전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이 'Eve' 가 누구인가? 성서의 'Eve' 라고 하면 모든 문제가 간단히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이 점 하나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문제는 계속 복잡해지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이들은 계속 한 명의 Eve가 남게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끈질기게 추측을 계속하고만 있다. 


또한 Eve의 생존시기가 약 20만년 전이라는 계산은 백만년 경과하면 약 2∼4%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변이가 생길 것이라는 가정하에 추론해 낸 것이다 (약14만년∼29만년 사이라고 주장). 그런데 버클리 연구팀의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는 에모리(Emory) 의대의 월레스(Douglas Wallace) 교수팀은 Eve가 살았던 곳은 아시아 지방이라고 또 다른 주장을 한다. 그들은 4대륙으로부터 약 700명의 혈액을 수집하여 미토콘드리아 DNA에 따른 결론에 근거하고 DNA를 분리하고 혈통의 타입을 배열하는 데 있어서는 다른 방법을 취하였다. 그들은 그녀가 약 15만∼20만년 전에 살았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버클리 팀과는 달리 그들은 아시아에 가장 많이 서식하는 원숭이의 DNA 형태와 가장 유사한 인간의 DNA 형태를 찾아내었다는 것이다. 월레스의 자료대로라면 이브는 중국 남동부에 살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그는 Eve가 아프리카에서 살았을 것이라는 입장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아직은 아시아-아프리카 어느 곳으로도 확정할 수 없다는 점뿐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뉴스위크지의 필자는 최근의 증거로는 Eve가 아프리카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하려고 유도한다. 핵 DNA의 연구결과와 현대 인류의 최초 화석들이 아프리카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 (아마도 리키 등의 발굴 성과를 말하는 것 같음 - 註)을 그는 말하고 있다. 


Eve가 20만년 전에 살았다면 그녀는 최초로 나타난 현대 인류중의 한 명이며, 식량을 찾아 평원을 가로질러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약 25명 정도의 집단으로 사는 오늘날 남아프리카의 부쉬멘(Bushmen) 같았을 것이라고 이들은 추측한다. 주위의 인류였던 자바인, 북경인들도 '미토콘드리아 이브' 이전 수십만년 전에 이와 같이 살았을 것으로 또한 추측을 한다. 우리가 책에서 배운 이 원시인들이 과연 Eve의 후손들과 조우하였는지는 이들 연구팀들도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이브의 후손들은 9만년에서 18만년전 그들의 주거지인 아프리카를 떠났을 것이라는 추측이고, 자바인, 네안데르탈인 등과 그들이 만났든 그렇지 않든 분명한 것은 Eve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물려받은 Eve 후손(딸)은 계속적으로 현재 인류에게까지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버클리와 에모리 대학의 생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인자가 Eve의 후손이 오게 되므로 모두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 유전적으로 결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 연구팀들은 그들이 서로 종족 승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서로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지나친 비약을 하기도 한다. 또는 이브의 후손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이 너무 원시적이어서 가까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이 가정하듯, 만일 네안데르탈인들이 현대 인류의 언어능력이 결여된 상태였다면 그들의 구혼 행위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종족 번식 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화석학자들과 분자생물학자들 간의 논쟁에 있어 난제로 남는다. 이 유전학자들에 대하여 가장 신랄한 비평론자인 미시간 대학의 고생물학자인 울포프(Milford Wolpoff) 교수는 현재 우리의 공통조상이 백만년전 쯤에 살았었다고 믿는다. 그는 말하기를 '유전학적 증거로부터 얻어 낼 수 있는 최선의 증거란 Eve의 후손이 아프리카로부터 세계로 퍼졌다는 것과 원주민 집단과는 전혀 동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같은 일이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찾아냈다. 역사의 기록은 항상 집단이 움직이고 부락은 서로 연인들을 교환하므로서 상호 혼합되어 왔다. 나는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람이 서로 섞이고 서로 연합하고 한 가족으로 진화하여 왔다고 믿는다' 라고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만일 Eve 의 후손들이 모든 적대자들을 제거하였다면 그 이론은 그녀의 살인자 자녀인 카인(Cain)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여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물론 여기서의 카인도 성경 상의 바로 그 카인은 아님 - 註). 


실제로 이와 같은 일반적 개념을 나타낸 것이 현대 인류의 기원에 대한 두 그룹의 고전적인 인류학파를 이끌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하우웰(W. W. Howells) 에 의하여 명명된 '노아의 방주이론' (여기서의 노아의 방주도 성경상의 직접적 개념은 아님 - 註)이다. 한 학파의 이론은 비교적 최근에 일정한 장소에 나타난 소그룹(약10∼20만년전)이 노아의 방주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전 세계로 이주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집단은 진화의 계통수나 사닥다리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학파는 하우웰이 '촛대가설(candelabra)' 이라고 부르는 이론을 믿는다. 이 이론은 가지촛대 모양처럼 평행으로 된 여러 잔가지를 지닌 촛대처럼, 서로 다른 종족이 오랜 기간에 걸쳐 분기(分岐)되어 나가서 현대 인류로 독자적으로 진화하였다는 설이다. 이 같은 설은 1962년 쿤(Carleton Coon)의 저서인 '종족의 기원 (The Origin of Races)'을 통하여 더욱 현저히 부각되었다. 그는 흑인들은 가장 최근에야 현대인들로 진화한 미개한 종족이므로 그들의 문명이 덜 발달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는 또 현대 인류의 진화는 유럽이나 아시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찌하든지 현대 인류의 조상을 아프리카인과는 구별짓고 싶은 듯하다. 그는 '만일 아프리카가 인류의 요람지였다면, 그것은 단지 현재 인류와는 전혀 별개의 요람지였을 것'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화론자들 사이에서의 논란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울포프(Wolpoff)는 쿤(Coon)의 이론을 반박하며 격자(格子)설을 주장한다. 가지촛대에 격자모양의 상호 유전적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새로운 'Eve' 의 등장으로 이들 진화론자들은 종래의 네안데르탈인, 북경인, 자바인 등과 이 'Eve'를 꿰어 맞추기 위해서 종래의 연대 개념과 그리고 종족간의 분자 생물학적 연관관계를 해석하는데 진땀을 빼고 있다. 아마도 구구한 해석과 이론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더욱 기원에 대한 논란 그 자체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지도 모를 일이다. 네안데르탈인과 'Eve'의 혈통이 서로 섞였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서도 벌써 큰 논란이 벌어졌으며, 이 별것 아닌 주제에 어쩌면 온갖 혼란스러운 별개의 여러 논문들을 양산해 낼지도 모를 일이다. 벌써 그러한 양상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박물관의 스트링거(Christopher Stringer)의 다음 말은 그것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 주제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나 또 진화론자들이 우왕좌왕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네안데르탈인과 Eve가 서로 혈통교배가 있었는지에 대해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화석 내에서는 그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DNA' 의 결과는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은 아직도 회의적인 입장들이다. 그들은 유전학적 증거들을 완전하게 부정하지는 않으나, 역시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이는 입장도 아니다. 이들은 어쩌면 뒷받침할 만한 화석의 증거들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앨런맨(Alan Mann)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극적인 도약을 다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 우리와 같은 인류가 아주 최근에야 나타났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토콘드리아의 자료들은 매우 중요한 증거 자료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로 소급될만한 훌륭한 화석 증거물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 만일 당신이 화석자료를 검토한다면 아프리카에서의 훌륭한 증거품들이 당신 앞에 놓여질 것이다. 이 분야의 한 사람이 아프리카의 한 돌덩이를 걷어차기만 하여도 우리는 교과서를 다시 써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제 화석 수집가들은 20만년 된 퇴적층에서 유전학자들을 옹호할 증거 자료들을 발굴하려고 계속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유전학자들은 이 같은 자료를 기다리지 않고 벌써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Eve'의 이론을 확장하여 'Adam'을 찾는 작업이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과학자들은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Y 염색체(Chromosome)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염색체는 미토콘드리아보다도 훨씬 많은 유전인자를 지닌 세포핵 내의 DNA에 포함되어 이것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이 'Adam'은 적어도 모든 세대에 한 명의 아들을 낳았던 행운의 조상일 것이다. 그는 어쩌면 Eve와 다른 시대에 살았을 것이라고 그들은 추측한다. 과학자들은 수년 내에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Eve의 딸들로부터 계승되어졌다. 그녀들 중의 어느 한 남편이 오늘날 모두의 조상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것은 실제 반드시 Eve의 남편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녀가 한 명 이상의 남편을 두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브의 딸들 모두는 동일한 외조부(外祖父)의 손녀들이다. 그러므로 이 기사(記事)의 결론은 이렇게 마치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 밝힐 수 있는 오직 유일의 안전한 결론은 'Adam'은 'Eve'의 아버지라고 하면 확실하다는 것이다. 

* * * * * * * * 


지금까지 우리는 '미토콘드리아 DNA 논쟁'을 살펴보았다. 어쩌면 이 논쟁은 이제 어떤 실마리만을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논쟁의 말미가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한은 계속적으로 미궁 속으로 빠져들며 결론이 없이 우회할 것이다. 마치 화석의 증거를 가지고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방황하듯이 말이다. 아무튼 이제 확실한 것은 현재의 모든 인류의 조상은 한 여성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이고, Y 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한 남성으로부터 온 인류를 증거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분명해졌다. 진화론대로라면 우연히 미토콘드리아DNA의 돌연변이가 일정한 시기에 한 여성에게만 일어나서 재수 좋은 그 한 여성이 다른 여성들보다 출산력이 훨씬 왕성하여 인류 모두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고, 진화론자들의 분자 진화론에 따른다면 Y 염색체도 우연히 한 남성에게만 나타난 돌연변이로서 운좋게 이들이 말하는 'Eve'를 만나 현재의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 중대한 의문이 생긴다. 진화론자들의 말대로 그렇게 돌연변이가 일어났었다면, 이 미토콘드리아 DNA는 왜 운좋은 그 'Eve'에게서만 일어났으며, 그 이후에 20만년간(그들 주장대로라면) 살았던 수많은 모든 여성들에게는 한번도 다시는 그와 같은 변이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인가? 물론 Y 염색체에도 이것은 적용된다. 


바벨탑사건 이후 인류는 혼잡된 언어 속에서 살며 기원에 대한 이론 또한 항상 혼잡되어 왔다. '미토콘드리아 DNA' 처럼 명쾌한 기원에 대한 결론이 나와도 결론없이 계속 혼잡된 이론으로 버티어 나갈 것이 또한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본성이다. 그렇지만 세상이 아무리 혼잡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시끄럽더라도, 이 미토콘드리아 DNA의 경우처럼 항상 변하지 않을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을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 언제든…. 그러기에 오히려 진화론자들의 연구결과는 창조론만을 계속 뒷받침 해줄 것이 분명하다. 이제 다만 궁금한 것은 또 한번 진화론자들의 새로운 결과와 이론(?)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편집실 제공).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사야34:26)

 

출처 - 창조지, 제 54호 [1988. 7]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

참고 :

Michael Matthews
2004-07-24

원숭이는 우리의 형제입니다 - 우체국에 한번 물어보세요.

 (Apes are our brothers—just ask the Post Office)


 

우리가 가진 DNA의 98 %가 침팬지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것은 영국의 Royal Mail 에서 발행한 생명의 비밀이라고 불리는 새 시리즈의 우표 중 first-class 우표의(좌측 상단) 광고에 나오는 말인데, 이 우표들은 Watson과 Crick의 DNA 구조 발견 50 주년과 최근의 인간 게놈 연구의 발전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된 것이다.

 


이 우표들을 광고하는 포스터들이 전 영국의 우체국에 도배되어 있는데, 강연을 위해 영국을 여행중인 미국의 AiG 직원조차 이 문구로 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런던 타임즈의 만화가인 Peter Brookes이 명확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유머가 섞인 삽화를 그려 넣었는데, 과학자와 유인원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을 고르고, '비교유전학(Comparative Genetics)' 이라고 표기했다. 이것은 명백히 DNA 연구의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가 인간 진화의 증거라는 것을 넌지시 비치고 있는 것이다.

 


시리즈 중 다른 우표도 유사한 메시지를 조장하는데, Royal Mail 인터넷 사이트의 광고를 보면 우표의 제목이 '태초의 끝(The End of the Beginning)' 이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퍼즐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발견은 현재까지 계속되어져 왔고, 유전자 지도의 해석은 계속되어질 것이고, 이것은 결국 우리에게 생명의 기원을 밝히는 방법을 제공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1

 

 

 

 

 

  

의심되고 있는 '하나님의 가설'

'생명의 비밀(The secret of life)' 이라는 우표 시리즈의 제목은 DNA의 이중 나선구조를 발견한 사람들 중의 하나인 Francis Crick 의 유명한 인용구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그의 발견을 진화의 확실한 증거이자, 종교에 대한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로 생각했다. (Crick은 50년 전에 캠브리지에 있는 한 선술집에서 우리는 생명의 비밀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었다.)

꺼리낌 없는 무신론자였던 Crick은 노벨상 수상보다 더 큰 상에 동기화되었다. 그는 공공연하게 자신이 신의 존재에 대한 2 가지 설계 논증, 즉 화학물질들은 생명(life)을 설명할 수 없으며, 화학 과정도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은 설명할 수 없다 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하는데 공헌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런던 Telegraph 지에서 말했다.

'나는 이러한 종교적인 이유들 때문에 과학을 접하게 됐고, 그것에 대해서 의심할 바가 없었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두 가지 사항, 즉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리고 의식 현상이란 무엇인지를 자문해 보고 종교적 신념을 지탱하기 위한 것으로 사용했었다.' 2

비록 Crick의 DNA에 관해 한 일이 인간 두뇌3에 관해 일한 것보다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두 가지 연구의 의도하는 바는 동일한 결론으로 도출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가설이 의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라도 Crick이 발견한 것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1953 년 당시만 해도 어떻게 유전자가 일하는지, 생명체가 어떻게 자손을 번성시키고 그 성질을 물려주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DNA 구조의 발견은 생물학에 혁명을 가져왔고, 거대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했다. (Genome Mania를 보라.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1/0309_genome.asp

 인간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있다.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프로젝트로 얻을 수 있는 잠재된 의학적 유익은 우표에  표기된 '의학적 미래 (Medical futures)' 가 강조하듯이 아주 흥미롭다.

반면에 DNA연구가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는 믿음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비록 비교유전학의 분야에서 서로 다른 종들 사이에서 DNA의 유사성(달리 말하면 차이점)에 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이 발견되었지만, 그것이 우리 DNA의 기원이나 종들 사이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 바나나와 유전자의 반 정도가 유사하다고, 우리의 반이 바나나가 아닌 것처럼4,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 98% 정도의 유전자 유사성이 있다고, 우리의 98% 정도가 침팬지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5 뿐만 아니라, 최근의 증거들은 유전자의 유사성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DNA의 실질적 교훈

지난 50 년간 DNA 연구를 하면서 이루어진 예상하지 못했던 깨달음은, DNA는 단지 시간과 우연으로서는 생길 수 없다는 것과, 경이로운 복잡성과 삶을 부호화하는 효율적인 정보시스템을 포함해서, 이 모든 것을 만든 놀라운 디자이너가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DNA는 물리적, 화학적 법칙들에 순응하지만, 이러한 법칙들 이상의 것이 들어있다. 단지 물리 또는 화학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보(information) 라는 것이다.6 자동차는 물리적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즉 자동차를 움직이는 어떤 무형의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물리적 법칙과 시간, 그리고 우연이 차를 만들 수는 없다. 빠진 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보이다. 즉 지적 설계는 이러한 미완의 요소를 완전하게 한다.

DNA는 생명체의 청사진으로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옮겨지는 것으로, 이것은 한 로봇의 프로그램을 다른 로봇으로 옮기는 것과 같다. 관찰된 과학에 의하면, 우연히 정보가 창조될 수 있는, 즉 프로그램이 우연히 만들어지는 어떠한 자연적 과정도 관측되지 않았다. 가장 논리적인 결론은 프로그램이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처럼, 최초로 창조된 종들 안에 있는 정보는 지적인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분명한 과학적 결론임에도, 창조자를 거부하는 진화론적 반역자들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References

1. 2003 collection: the secret of life

<www.royalmail.com/portal/default/all/home?shopConsigniaPage=/shop/catalog/shopDetail&id=prod240003&_requestid=8851>, 25 February 2003.

2. Do our genes reveal the hand of God?

<http://www.telegraph.co.uk/connected/main.jhtml?xml=/connected/2003/03/19/ecfgod19.xml>, 20 March 2003.

3. The second half of Crick’s life focused on brain research, as he explained in his 1994 book The Astonishing Hypothesis: The Scientific Search for the Soul, which claimed, ‘Your joys and your sorrows, your memories and your ambitions, your sense of personal identity and free will, are in fact no more that the behavior of a vast assembly of nerve cells and their associated molecules.’

4. Wieland, C., Furry little humans? Creation 24(3):10-12, 2002.

5. Note that the 98% figure, which gets bandied about in the press, refers to chimpanzees, not apes, and it has been lowered to about 95%.  See Reevaluation of >98% Similarity of Chimpanzee and Human DNA.

6. I.e. the sequence of symbols with which DNA is constructed.  This sequence is not inherent in the raw chemistry of DNA, but arises from the information in the parent’s DN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answersingenesis.org/docs2003/0407apes.asp ,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31

출처 - AIG, 7 April 2003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7-15

물만 보더라도

이재만 


     지구 표면의 70%가 물로 덮여있다. 우리 몸도 많은 양이 물로 구성되어있다. 우리는 매일 물을 마시며, 순수한 물만을 마시지 않더라도 음식과 음료수에는 물을 포함한다. 마실 뿐 아니라 목욕하고, 세탁하고, 청소하는데 반드시 물이 필요하다. 이렇게 필수적인 물에 대하여 알아보자.


필자가 살던 미시간은 민물 호수로 둘러싸여있다. 맛을 보면 민물인지 알 수 있지만, 겨울이 되면 분명히 구분이 할 수 있다. 호수 표면이 꽁꽁 얼어 많은 강태공들이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보며 소금물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물질은 물과 같은 액체에서 얼음과 같은 고체로 변할 때 부피가 줄어들어 아래서부터 얼지만, 물은 오히려 반대로 고체로 변하면 부피가 커져서 위에서 올라가 표면부터 얼음이 언다. 특이하게도 물은 섭씨 4도에서 가장 밀도가 높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물이 다른 물질과 같이 바닥부터 언다면 어떻게 될까?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강태공들이 낚시를 못하게 되는 것은 고사하고, 민물에 살고 있는 물고기를 비롯한 모든 생물들은 얼어서 죽게 될 것이다. 다행이 물이 표면부터 얼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표면에 얼은 얼음이 위의 차가운 기온을 막아주어, 물고기 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겨울을 나게 되는 것이다. 단지 이러한 문제뿐만 아니라, 물이 섭씨 4도에서 최고의 밀도를 갖는 특성이 없다면 근본적으로 생물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물은 다른 물질 보다 유난히 큰 비열을 갖고 있다. 사막지역과 같은 건조한 지역은 일기온 차이가 크고, 플로리다와 같이 다습한 곳은 일기온 차가 크지 않은 이유가 있는데, 이는 바로 물의 높은 비열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구에 물의 존재 여부와 양은 지구의 온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지구의 70%가 바다로 덮여있는데, 이는 지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대기 중에 적당한 수증기 양도 지구의 온도를 유지시키는데 아주 중요하다.


단지 지구의 온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의 온도를 유지시키는 일도 감당하고 있다. 우리의 몸이 뜨거울 때 물이 땀으로 증발되면서 몸의 열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일정한 체온을 유지시켜준다.


물의 특성 중에 알려진 몇 가지만 다루어 보았다. 이들을 제외한 수많은 물의 특성이 있는데, 모두가 생물이 사는데 필수적인 것들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물이 우연히 이러한 성질들을 갖게 되었을까? 생물들이 이러한 물의 특성에 우연히 또한 아슬아슬하게 적응하여 진화되고 생존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이러한 완벽한 성질의 물을 창조하시고, 생물들을 이러한 물과 조화시켜 창조하셨을까? 물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 모든 오묘한 성질을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창조자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분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욥 38:28-30)

이웅상
2004-06-24

성경 속의 유전법칙, 창조주 하나님 증명



멘델의 유전법칙, 야곱의 사건 속에서 이미 언급

시편의 말씀 속에서 DNA의 존재에 대해 기록

 



21세기를 유전공학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는 1866년 멘델에 의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전법칙이 발견되고, 1953년에 왓슨과 크릭이 유전물질인 DNA가 이중나선구조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멘델이 발견한 이 놀라운 최초의 유전에 관한 창조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50년 가까이 사장해 놓았었다. 보라색의 꽃을 피는 완두와 흰색의 완두를 교배하면 제 1대에서는 보라색만 나오는데 그 이유는 보라색이 우성이요  흰색이 열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멘델이 발견한 분리의 법칙에 의하면 열성인 흰색도 같은 열성인자와 만나면 발현이 되는데 제2대에 우성과 열성이 3대 1로 분리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20세기에 와서야 겨우 이해되기 시작한 이 이론이 3천4백50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에 언급되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창세기 31장 12절에 보면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 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기록되어 있다. 야곱은 외삼촌이요 장인인 라반이 자기에게 아롱진 양, 점 있는 양, 검은 양을 열번이나 주기로 한 약속을 변역하면서 지키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해치 못하게 하시고 빼앗아 주신 것을 꿈에 천사를 통해 깨닫게 된다(창세기 30: 32; 31:7-12).라반은 위의 열성 형질을 갖고 있는 양을 따로 분리해 사흘 길이나 떼어놓지만, 교배하는 수양은(외형은 모두 흰 양이지만 유전인자 속에는) 모두 얼룩 무늬있는 것, 점있는 것, 아롱진 것이 되도록 하여 이런 열성형질의 양이 많이 나오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모두 흰 양이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열성인자를 하나님이 보시고 이들이 교배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시편 139편 16절에 보면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보시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생명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형질을 기록하신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보시고 계시기 때문인 것이다.  부모에게 있는 쌍꺼풀과 귀의 모양이 어떻게 자녀에게 유전될까? 사람은 사람만 낳고 돼지는 돼지만 낳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로 16세기까지 과학자들은 정자 속에 이미 다 형성된 작은 아이가 있는 것으로 설명해왔다. 이를 ‘전형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범유전자설이 제기되면서 온 몸에 있는 세포가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생식세포에 특별한 정보를 주어 부모를 닮은 후손을 생산하는 것으로 믿게 되었다.


1953년에는 DNA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모든 정보는 ATCG 라는 네 종류의 염기의 배열순서에 따라 다른 종류의 아미노산이 결정되고 이들의 순서에 따라 만들어진 단백질에 의해 여러 형질이 결정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 과정을 종합해 보면 DNA에 기록된 유전정보는 핵에서 정보RNA에 모든 정보를 전달하여 세포질에서 리보솜에 의해 단백질을 합성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부모에게 있던 정보가 후손에게 DNA로 전달된 후 형질로 나타나게 되어 닮게 되는 것이다.


시편 139편 13절에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에서 장부(원어로 ‘케라요츠’)는 신장을 의미한다. 즉 모태에서 나의 모든 장기를 조직하셨다는 이 말씀에서 16세기까지 믿고 있던 ‘전형설’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미 살펴본 시편 139편 16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모태에서 조직하시되 이미 기록된 정보대로 지으신다는 사실이다. 3천년 전에 기록된 시편의 말씀이 현대과학 보다 훨씬 앞서 열성인자의 존재와 이러한 모든 정보가 DNA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웅상 교수 (명지대 교목실장 / 한국창조과학회 부회장)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66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6-23

2 마리의 벼룩 이야기 (A tale of two fleas) 

: 자동차는 저절로 생겨났는가, 누군가가 만들었는가?

Carl Wieland 


     다음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자. 자동차 안에 벼룩들이 살고 있었다. 자동차는 벼룩들이 전부터 알고 있던 유일한 세계였다. 벼룩들은 그들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차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을 연구하게 됨으로서, 그들은 화학, 물리, 운동력, 중력, 전자기, 열역학, 양자역학 등등의 기초 법칙들을 모두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이 알게 된 모든 것들은 반복적인 실험에 의해 증명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매 결론에 동의하였다. 마지막으로 한 젊은 벼룩이 그들에게 숙명적인 질문을 하였다. ”최초에 이 자동차는 어떻게 있게 되었을까?” 그들 중에 C(creation)와 E(Evolution)로 불리는 두 마리가 대화를 시작하였다.

 

C : ”그것은 과거에 어떤 시점에 지적인 설계자에 의해서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다.”

E : ”무엇이라고? 너와 같은 말을 전에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 오, 알겠다. 너는 차 서랍에서 발견된 매뉴얼 책이 자동차의 설계자에 의해서 쓰여졌다고 추측하는, 종교적인 생각을 하는 벼룩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 책은 비과학적인 방랑하는 사막 벼룩들에 의해서 쓰여진 한 묶음의 신화(myth) 라는 것에 우리의 가장 뛰어난 벼룩학자들이 동의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C : ”그러면 이 자동차는 만든 자 없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단 말인가?”

E : ”제발 나를 잘못 인도하지 말라. 네가 원한다면 너는 만든 자가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학 수업 시간에서 젊은 벼룩들에게 그것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가 연구해 온 과학 법칙들과 과정들에 의하면, 이 자동차는 단순한 물질로부터 천천히 점진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저절로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다.”

C : ”너는 그러한 생각에 엄청난 과학적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약간이라도 알아야만 한다.”

E : ”모든 과학적 생각들은 결함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나도 연구 중이다. 그러나 나는 더 많은 연구조사가 이루어짐으로서 어떻게 이 자동차가 진화되었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충분한 열려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

C : ”그것이 진화했는지 안했는지에 대한 생각도 바꿀 수 있는가?”

E : ”내가 어떻게 그러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가? 자동차의 기원에서 진화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창조인데, 그것은 과학적인 생각이 아니라, 종교적인 생각이다. 그것은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과정에 대해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볼 수 없는 만든 자를 의지하는 것이다. 나는 과학을 공부한 벼룩들이 너와 같이 그러한 신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C : 실제로 만든 자가 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이 나를 도와주었고, 그것이 나의 과학이다. 너도 너의 생각을 입증하기위한 한 가지 실험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E : ”그것은 부당하다. 크랭크 케이스 안으로 쇠가루들이 얼마나 천천히 쌓여져 가는지 너도 알 것이다. 새로운 크랭크 축으로 응집되어 만들어지려면 수억 년은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는 새로운 어떠한 것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C : ”너의 철학은 자동차를 만든 주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도 차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만든 자가 정말 있다면, 차를 만든 과정, 또는 만든 자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 기대될 것이다. 실제로, 만든 자가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만들어졌다는 너의 생각보다 훨씬 더 과학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E : ”네가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

C : ”자, 우리가 자동차에서 일어나고 일들을 관측해 보면, 자동차는 한때 만들어졌고, 지금은 낡아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더 적합하다. 너는 우리가 발견했던 열역학 제2법칙(second law of thermodynamics) 을 기억하는가? 총체적으로 이 차의 모든 것은 낡아져가고 있고, 쇠퇴해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연구했던 과학적인 과정의 어느 것도 이 차를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이것이 창조의 매우 좋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증거는 만든 자의 매뉴얼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과 일치한다. 그래서 그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을 믿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창조의 또 다른 중요한 증거는 이 차의 구성물들이 잘 조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각 부품 사이에 상호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너도 보다시피, 코일이 스파크를 일으키기 위해서 배전기, 그리고 플러그와 같이 정렬되는 일은 저절로 자연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 세 부분이 함께 작동될 때, 과학의 법칙들이 모두 적용되며, 어떤 신비로운 과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에 관한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될 수록, 본래 자동차는 외부에서 부여된 목적(purpose)을 수행하도록, 부품 간에 질서와 관계들은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E 는 몸서리를 친다). 이것이 창조의 긍정적인 증거인 것이다. 만약 네가 아름다운 그림을 보게 된다면, Van Fleagh이 말한 것처럼, 그 그림은 창조적 지성의 결과이며, 너 자신도 그것이 창조의 증거임을 인정할 것이다. 도화지와 물감이 자연적으로 우연히 그러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다. 네가 창조자와 (과거의) 창조 작업을 결코 볼 수 없다 하더라도, 너는 창조를 알아볼 수는 있다.'  

E : ”나는 네가 말하는 점을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외부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a-tale-of-two-fleas

출처 - Creation 20(3):20–24, June 1998.

미디어위원회
2004-06-23

하나님의 창조 속에 나타나 있는 형태, 수, 패턴, 황금비율 

: 피보나치 수열, 황금 나선, 그리고 행성의 공전주기

(Shapes, Numbers, Patterns, And The Divine Proportion In God's Creation) 

Fred Willson 


     하나님의 창조 속에는, '황금비율 (Divine Proportion)'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오직 전능하시고 선하시고 모든 지혜를 가지신 성경의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여러 형태, 수, 패턴들로 나타나 있다. 가장 큰 것에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생물에서부터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경이로운 손길과 미, 기능, 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드러나 있다.

먼저 형태(shapes)들로 시작하여, 숫자적인 패턴과 비율(황금비율)이 이들 형태에 어떻게 내재하여 있는지와, 전 창조물에 걸쳐 어디에서나 나타나고 있음을 논할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한 가지 형태로부터 시작해보자. 이것은 보편적으로 조개에서 보이는 나선형태이다. 앵무조개(nautilus)에 나타나 있는 나선형태가 아마 가장 분명한 예일 것이다. 앵무조개를 유심히 보면, 나선은 형태가 점점 커지면서도 동일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유기체의 몸체가 등각이면서 대수 함수적인 나선 경로로 자라기 때문에, 그 형태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황금 나선(golden spiral)”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황금나선은 다음 같이 다양한 것에서 나타나고 있다. 허리케인, 나선형 씨앗들, 사람 귀의 와우각(cochlea), 숫양의 뿔, 해마 꼬리, 자라는 양치류 잎, DNA 분자,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 토네이도, 나선 은하들, 태양 주위에서 감겨지는 혜성의 꼬리, 소용돌이, 해바라기 씨앗의 형태, 식물 데이지, 민들레, 대부분 포유류의 귀 구조... 등이다.

이러한 나선은 정확한 수학적 패턴을 따르고 있다. 첫 번째로 해바라기에서 나선형태를 살펴보자. 해바라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감겨지는 2 종류의 나선(씨의 배열)을 관찰하게 된다. 이 나선 열을 각 방향에서 세면, 꽃의 크기에 따라 그것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다음과 같은 비율(ratio)임을 발견하게 된다. 즉 만일 꽃이 작으면 34와 55개, 중간 정도라면 55와 89 개, 그리고 크다면 89와 144 개인 경우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숫자들은 레오나르도 피사(Leonardo Pisa, 역사적으로는 Fibonacci로 알려져 있는)에 의해 AD 1200년경에 발견된 피보나치 수열의 일부 숫자들이다.

이 수열에서 각 숫자는 전에 있는 두 수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즉, 피보나치 수열은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과 같은 수열이다. 이러한 숫자 패턴은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전 자연계에 걸쳐서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패턴에서 큰 수를 인접해 있는 작은 수로 나누면, 그 비는 항상 대략 1.618이 된다. 만일 작은 수를 인접해 있는 큰 수로 나누면, 그 비는 0.618에 매우 가깝게 된다. 이 비율은 오직 이러한 종류의 숫자에서만 들어맞는다.

이 비율은 역사적으로 ‘신의 비율(Divine Proportion)’ 또는 ‘황금률(Golden Ratio)’로 불려왔다. 이 비율은 3 가지 점에서 인류에게 이바지했다. 즉, 그것은 인류에게 아름다움과 기능을 제공하였고,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 (Beauty) 

그리스의 조각가인 피디아스와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의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예술작품을 디자인할 때 이 비율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냐하면 이 비율은 인간의 눈에 매우 보기 좋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비율은 황금 직사각형(Golden Rectangle)이라고 불리는 것을 만든다. 만약 직사각형에서 짧은 선의 길이가 1 이라면, 긴 쪽은 1.618이 될 것이다. 이 직사각형 형태는 그리스의 파르테논을 설계할 때, 그리고 수많은 그림, 꽃병, 출입문, 창문, 조각상(statues) 등을 만들 때 대부분의 기초 형태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에서도 나타나며, 유엔본부 건물도 황금 직사각형이다. 여러분이 사용하는 물건 중의 대부분이, 예를 들어 신용카드, 게임용 카드, 엽서, 전기 스위치판, 연습장(혹은 편지지), 3×5 카드, 5×8 카드... 등도 (거의) 황금 직사각형을 본뜬 것이다.1

레오나르도 다빈치, 반 고호, 버미르, 사전트, 모네, 휘슬러, 르누아르 등과 같은 미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황금 비율(황금 분할)을 사용했다. 그들은 ”빈 이젤을 가지고 황금 비율을 기초로 영역을 나누어 지평선, 나무 등등의 배치를 결정했었을 것이다.”2

왜 황금 비율이었을까? 예술 형식은 정적 또는 동적으로 대칭일 수 있다. 정적인 대칭에서 선들은 명확한 길이를 가지는 반면, 동적인 대칭에서 선은 일정한 강조 지역을 적당한 비율로 조절하고 있다. 그것은 ‘성장, 힘, 움직임’을 암시한다. 그것은 예술가의 작품에 정적인 고요함과 조용한 효과보다 오히려 활기와 생기(life)를 불어 넣어 준다.3 이것이 황금 비율의 매력(appeal)이다.

또 다른 매우 흥미로운 분야는 식물 줄기 주변에서의 잎의 나선 배열 (잎차례, phyllotaxis)에서 피보나치 수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 나선 형태는 똑바로 위에서 줄기를 내려다 볼 때 관찰되어진다. 그리고 줄기의 호(arc)가 어떤 엽저(leaf base, 잎의 밑부분)에서 다음 엽저로 형성되어지면서, 그리고 줄기 둘레에 분획(fraction)이 새겨지면서 관찰되어진다. 각 경우에서 그 수는 피보나치 수열이다. 예를 들면, 느릅나무(elm)에서 호는 원주의 1/2이고, 너도밤나무(beech)와 개암나무(hazel)는 1/3, 살구와 졸참나무류(oak)는 2/5, 배와 포플러는 3/8, 아몬드와 아씨 버드나무(pussy willow)는 5/13, 그리고 일부 소나무는 5/21 이거나 13/34 이다. 하나님은 왜 이것들을 이런 식으로 배열했을까? 이러한 패턴은 각 잎들이 다른 잎들을 가리거나 밀집되지 않으면서 햇빛과 공기에 최대한 노출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이러한 패턴은 잎의 배열에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꽃잎의 배열에서도 또한 발견된다. 예를 들면, 백합은 3장, 노란 제비꽃은 5장, 참제비고깔(delphinium)은 8장, 개꽃(mayweed)은 13장, 과꽃(aster)은 21장, 제충국(pyrethrum)은 34장, 헬레니움(helenium)은 55장, 그리고 갯개미취(michaelmas daisy)는 89장의 꽃잎을 가지고 있다. 잎과 꽃잎 배열에 있어서 그처럼 다양한 나선 비율로 말미암아, 아무도 하나님의 창조에 싫증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놀랍게도 생물체 내에서도 이러한 나선과 숫자가 발견되는데, 정보를 담고 있는 DNA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DNA 분자는 폭이 21Å(angstrom, 1억분의 1cm), 나선이 완전히 한번 회전했을 때의 길이가 34Å 으로, 둘 다 피보나치 수인 것이다! DNA 분자는 문자 그대로 하나의 긴 황금 직사각형 더미이다.4

매우 작거나 매우 큰 것의 영역을 들여다보자. 원자 세계에는 4 가지의 근본적 비대칭(원자핵의 구조, 핵분열 파편의 분포, 많은 동위원소의 분포, 방출되는 입자의 분포)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비대칭이 '황금비율'과 거의 같다는 것과 이러한 값을 형성하는 수가 때때로 피보나치 수이거나 피보나치에 ‘가까운’ 수” 라는 것이다.수소 원자의 양이 변하는 상태에서, 핵이 연속적인 에너지 단계로 방사성 에너지를 얻거나 잃을 때, 원자의 전자가 변하는 비율은 피보나치 수를 만들어 낸다.6 

또한 태양 주변의 각 행성의 공전주기를 인접한 행성의 공전주기와 정수(round numbers)로 비교할 때, 매우 광대한 영역의 현상임에도, 놀랍게도 그 수는 피보나치 수이다! 해왕성(Neptune)부터 시작해서 태양을 향해 안쪽으로 감에 따라, 그 비는 1/2,  1/3,  2/5,  3/8,  5/13,  8/21,  13/34 이다. 이것들은 식물에서 잎들의 나선 배열과 똑같다!


     행성 공전주기 및 식물의 나선잎 정렬과 피보나치 수와의 상호 관계 8

    관측치   이론치    비율    식물
  명왕성90,000 (일) (2:3 해왕성) 
  해왕성60,19362,000  
  천왕성30,68831,000    1 : 2  느릅나무
  토성10,67010,333    1 : 3  너도밤나무
  목성  4,332  4,133    2 : 5  살구
  소행성들  1,200-2,000  1,550    3 : 8  배
  화성    687     596    5 : 13  아몬드
  지구    365     366     8/13    8 : 21 
  금성    225     277    13/21    8 : 21  소나무
  수성      88       87   13 : 34  소나무


아마도 노아 홍수의 날과 관련하여, 특히 금성에서 소행성대까지의 태양계를 변경시켜 버린 어떤 우주적 힘을 이론화하여온 창조론자들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표에서의 화성(596대 687)과 금성(277대 225)의 이론치와 관측치의 차이와 관련이 있으며,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관측치들이 이론치 값에 매우 가까움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이 두 값의 조정과 더불어, 행성들의 공전 주기가 피보나치 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는 배열 그 이상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음을 보여주는 경이로운 수학적 배열에 대한 많은 사례들 중에 하나인 것이다. 아담의 죄가 전 피조세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로마서 8:22), 그것이 완벽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선하신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당신의 위대한 작품들의 모든 흔적들을 덮도록 허용하지는 않으셨다는 것이다 (시편 19:1).

표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탈(divergence)은 지구에서 나타난다. 화성 다음의 행성에서, 그 수는 8:21이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이 수는 지구를 '스쳐지나', 금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일탈에도 화성과 금성에 비교한 지구의 주기가 피보나치 수(8/13, 13/21)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anomaly)은 전 우주와의 관계에서, 지구라는 행성이 독특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계시는 증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또한 다른 사실을 성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상'은 빅뱅설과 성운설(nebular hypothesis)을 산산조각내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모든 행성들이 회전하는 먼지와 원자들의 성운에서 형성되었다면, 이러한 특성들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들의 공전주기와 식물줄기의 잎 배열이 상관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형태, 수, 나선, 그리고 황금비율은 모든 창조물에 걸쳐 그들이 존재하는 어디에서나 나타나있다. 그것들은 생물에서도 발견되며, 무생물적인 현상에서도 발견된다. 그들의 좌우대칭, 아름다움, 그리고 수학적 정확성은 자연의 모든 양상에서 분명히 나타나 있다. 절대적인 완벽성이 (아담의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모든 것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실상 도처에서 그리고 각종 사물들에서 나타난다는 것은 그것들이 무작위적으로 우연히 진화 과정에 의해서 발생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합리적인 결론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인격적이며 지적인 창조주가 이러한 모든 것들을 보이지는 않지만 인격적 존재의 가시적인 지문(fingerprint)으로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이 위대하고 지혜롭고 전능하신 창조적이며 주권적인 하나님은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욥 37:5)” 고 성경에 나타나있는 분으로, 찬양을 받으시기에 마땅하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그의 이름은 무엇인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4:11).

 

References 

1. Trudi Hammel Garland, Fascinating Fibonaccis, Dale Seymour Publications, 1987, p. 19. Available: www.bbhomeschoolcatalog.com or 800/260-5461.

2. Ibid., pp. 34, 36.

3. Garth E. Runion, The Golden Section, Dale Seymour Publications, Palo Alto, CA. 1990, pp. 84_85.

4. Marl Wahl, A Mathematical Mystery Tour, Zephry Press, Tucson, AZ. 1988, p. 128.

5. J. Wlodarski, 'The Golden Ratio and the Fibonacci Numbers in the World of Atoms,'Fibonacci Quarterly, December 1963, p. 61.

6. H. E. Huntley, 'Fibonacci and the Atom,' Fibonacci Quarterly, December 1969, pp. 523_524.

7. There is still controversy as to whether Pluto is a real planet. Whether or not it is, its distance from Neptune is still a Fibonacci ratio, even if in the opposite direction.

8. Marcius Willson, The Fourth Reader of the School and Family, Harper & Brothers, Publishers, New York, 1860, p. 216.

* Fred Willson is ICR's Extension Specialist in Science Education.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shapes-numbers-patterns-divine-proportion-gods-cre

출처 - ICR, Impact No. 354, 2002.

미디어위원회
2004-06-23

만들어진 사물들 (Things That Are Made) 

: 당신은 창조의 과학적 증거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가?

Dr. Gary Parker 


     ”창조의 증거는 있나요? 창조는 당신이 믿는 그 무엇이 아닌가요? 어떻게 당신은 창조의 과학적인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진화론자들은 창조의 증거가 관찰되지 않기 때문에 과학에 속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심지어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창조에 대한 긍정적인 과학적 증거가 진정으로 발견될 것인가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창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사상(事象, events)의 정상적인 경로에서 자연스럽고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가끔씩 당신은 모양이 재미있는 조약돌들을 집어 든다. 어떤 돌멩이 모양은 신발이나 인형을 연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이것들이 언뜻 보아 어떤 디자인의 양상을 띠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실은 시간과 우연, 그리고 풍화작용과 부식작용으로 생긴 모양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산책하고 있던 중에 조약돌 가운데서 인디언의 돌화살촉을 하나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자. 비록 인디언의 공예기술에 관해 사전지식이 없는 당신이지만, 당장에 이 물건의 변별성쯤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우연, 그리고 부식으로 생긴 조약돌들의 모양은 윤곽이 둥글게 무뎌져 있어서 전반적인 외양은 취약한 결(lines)과 함유된 광물질의 편차(偏差), 그리고 때로는 암석의 '조직”에 따라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화살촉의 예리한 각은 어떤 광물질을 거슬려 골고루 깎아 세운 날인가 하면, 또 어떤 날의 취약한 부위는 마모되지도 않았고, 갈아낸 모서리 날은 암석 '조직”을 좇은 것이 있는가하면 거슬려 있는 것도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나 우연, 그리고 부식으로는 그런 패턴이 결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시간, 우연, 그리고 부식은 실질적으로는 패턴의 흔적을 없애고, 그 자리에 각종 광물질 본래의 부식 저항력이나 암석 안에 있는 취약한 결에 대한 저항력을 반영하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돌화살촉에서 관찰되는 저민 자국이나 무늬는 모종의 패턴을 반영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일 뿐만 아니라, 그 패턴은 부식의 결과와 광물질 안에 내재하는 잠재력의 결과로 생길 수 있는 것을 훨씬 초월하는 모종의 계획에 따라 대리인의 힘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당신은 창조자나 창조행위를 보지 않고서도 그 창조의 증거를 발견하고 어렵지 않게 창조자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경우의 예에서 모양과 형틀을 만드는 물질과 새로운 패턴과 장치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서 흔히 우리가 인간의 손재주로 제작한 종류의 창조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창조 행위의 증거는 실제로 관찰된  관계로부터 도출되는 논리적 추론  위에 실질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이 관찰에서 연역된 과학적인 추론은 심지어 창조 대행인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에도 다른 대상물에까지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천문학자나 정부 공무원들은 외계에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지적생명체의 탐색에 수백만 달러를 허비한 결과로서, 자연발생적인 신호와 의도적으로 발신된 신호와의 사이에 차이점을 식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정상적으로 두 종류의 대상물을 구별한다. 즉, 창조된 대상물과 시간, 우연 그리고 다양한 자연과정의 결과로 생긴 대상물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차이점은 대상물 자체의 '디자인”도 아닐뿐더러, 디자인의 필연적인 복잡성도 아니다. 그것은 디자인의 종류(kind of design) 이다.


예컨대, 눈(雪)송이는 믿을 수 없을 만치 아름다운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양 또한 복잡하다. 그러나 눈송이 하나하나는 0oC의 상태 하에서 물의 분자가 ”자연적으로 무엇을 행함으로” 생긴 결과다. 눈송이 패턴을 본 딴 모자이크 타일의 디자인은 눈송이의 그것보다 더 이상의 대단한 디자인을 보여주지 못함은 물론, 모자이크 타일의 복잡성 또한 눈송이의 복잡성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모자이크 타일에서 창조된 디자인을 인식한다. 왜일까? 우리는 그 채색 돌멩이들이 스스로는 그와 같은 패턴으로 배열되고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패턴은 반드시 외부로부터 온 것이다. 그리고 그 타일들을 적절하게 배열을 유지하기 위해 뭔가가 작용한 것이다.


뿐만 아리라 눈송이같이 자연발생 체계 내에서는 전체의 성질이 철저하게 부분의 성질에서 연유되고 있다. 창조된 체계에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조직의 성질이 각 부분에 새로운 성질들을 부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성질은 체계의 부분 부분이 스스로 개발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발할 수도 없다. 요컨대, 시간, 우연, 그리고 자연과정이 만들어낸 체계의 질서는 '내부에서의 결정”이다. 이에 비하여 창조는 ”외부에서 결정한” 질서를 가진 체계를 생산하고 있다.


과학적 관찰과 논리적 연역에 근거하여 창조된 대상물을 변별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생명 체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여 보자.

바이러스를 위시하여 생명체계의 두 가지 기본적인 '성분”은 DNA와 단백질이다. DNA는 유전인자이고, 단백질은 구조와 기능의 기본 분자이다.


비록 당신이 DNA에 관한 나의 프로그램 학습 교본을 읽고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DNA와 단백질은 기본적으로 단순한 분자들로서 각 분자는 중복된 단위들 중의 한 고리(chain) 또는 폴리머(重合體)이다.1 DNA는 일련의 염기, 즉 뉴클레오티드이다. 그리고 단백질은 일련의 아미노산이다. 모든 생명 체계에서 DNA 안에 있는 염기의 유전 배열(sequence)은 각 종의 단백질을 특징짓는 아미노산의 독특한 배열의 생산을 지시한다.


만약에 DNA와 단백질과의 사이에 개재하는 관계가 시간, 우연 그리고 자연적인 과정에 의한 결과라면, 그 때에는 DNA와 단백질 사이에는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어떤 종류의 성질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런 성질이 있는가? 그렇다. 그런 성질이 당연히 있는 것이다. 베이킹 소다와 식초를 섞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산과 염기가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아미노산과 DNA의 염기가 반응하고 있음도 안다. 당-산(sugar-acid), 아민 인산(amine phosphoric acid), 그리고 여타의 전반적인 자연적 화학반응들은 DNA와 단백질의 무작위적인 파편들 가운데서도 역시 일어난다.


그렇다면 DNA와 단백질 파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자연적 화학반응의 경향들은, 시간, 우연, 그리고 화학법칙들이 이러한 분자들의 혼합물로부터 궁극적으로 생명(life)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가? 어림도 없다. 실상은 그 반대다. 문제는 이 모든 자연적인 화학반응들은 생명 체계에 관한 한 잘못된 반응(wrong reaction)이다. DNA와 단백질은 시간, 우연, 그리고 그 자체의 화학적인 성질에 맡겨두면 생명 체계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반응하며, 생명의 기초 원리로 가정되는 어떠한 진화도 방해할 것이다. 사실상 DNA와 단백질 간의 자연적인 교차 연결은 나이를 먹는 기간동안 유전인자의 비활성화에 얼마간 이바지하고, 염기-아미노산 반응은 죽어가는 세포 속에 일어나는 대대적인 화학적 파멸의 일부분이 된다.


그러나 살아있는 세포 속에 있는 DNA는 모종의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단백질 분자들의 생산을 지시하는 유전암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어떤 화학자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한 번에 3 기(基)씩 묶여진 염기 그룹들이 특정 아미노산 분자들의 직선배열을 명시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 특정 아미노산 분자들의 각 분자마다 소속 R 그룹에 의해서 식별된다. 20 종의 R 그룹은 광범하게 다양한바 - 산, 염기, 가용성 지방, 가용성 물, 수소의 단일 원자, 긴 고리, 고리가 없는 것, 단일 고리, 또는 이중 고리 등등이다. 그런데 어떤 자연적인 화학적 성질 같은 것이 있어서 일련의 3기 한 벌 염기 그룹으로 하여금 일련의 아미노산 R 그룹을 직선 배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3기 한 벌 염기와 R 그룹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화학적인 근거도 없기 때문에, 시간과 우연이 그들을 연결할 수 없는 것은, 한 쌍의 주사위를 굴려서 13의 수를 나오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돌화살촉이 창조된 것임을 알고 있으며, 또 그것은 시간, 우연 그리고 부식의 결과로 생긴 조약돌의 형태와는 구별된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비슷한 방법으로 DNA와 단백질과의 사이에서 관찰되는 종류의 관계로부터 도출되는 논리적 추론은 지구상의 생명체는 창조된 것이라는 직접적이며 긍정적인 증거를 제공해준다.


이때, 창조의 증거는 우리가 DNA와 단백질과의 관계에 관해 알고 있고, 또 관찰할 수 있는 것에 근거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때때로 창조론자들은 지식의 공백을 하나님을 이용하여 메운다는 비난을 받는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상, 광물질의 성질과 부식과정의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각품을 시간과 부식의 제품으로부터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산과 염기 그리고 생화학 과정의 성질에 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최초의 생명체가 특별한 창조의 제품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화학적 진화론에 관해서 많은 저서를 남긴 유명한 생화학자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나의 창조의 주장이 DNA와 단백질에 관해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하자, 거침없이 그는 그가 진화론을 지지하는 이유는 금후 50년 내에 새롭게 발견될 것으로 믿어지는 것에 근거한다고 언급했다. 


생명의 기원을 말하는 동안, 그는 DNA와 단백질과의 사이에 생명 연계의 기원에 관한 이론 따위는 없었다고 거침없이 말했었다. 그리고 질문 전 후에서 극적으로 숨을 고르면서, 그는 이와 같이 질문을 했다. ”[비-생명체와 생명체 사이에서의] 이행(移行)은 화학적인 것인가 아니면 철학적인 것인가?” 즉, 생명 체계는 자연발생적인 화학반응의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화학물질들을 초월하여 유기조직을 위한 계획을 찾아봐야만 하는가? 현재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증거들은 확실히 우리들에게 화학물질들을 초월하여 창조의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얼마쯤은 역설적이지만, 일단 생명 체계가 창조되고 생명 유지에서 필요한 DNA-단백질 관계가 설정되고 나면, 생명체는 그 어떤 화학법칙도 위반하지 않으면서 이해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방법으로 그 종류대로 번성하기를 계속한다. DNA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전제하면, 그리고 에너지와 원재료의 공급이 조정되었다고 전제한다면, 또한 ”해석하는” 분자들 (메신저, 이동 RNA, 리보솜, 그리고 효소를 활성화하는 특수 아미노산 등등을 포함하여2)의 (무작위가 아닌)조합이 조정된다고 전제한다면, 생명체의 세포는 DNA를 사용하여 계속해서 단백질을 ”만들 것이며,” 그리고 순서에 따라서 다른 세포의 활동과 성장을, 심지어 재생산을 위한 DNA의 복사까지도 규제할 것이다. 이 메커니즘은 차라리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들은 생명 체계의 기원(origin)이 아닌 생명 체계의 작동(operation)을 설명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생명체의 세포는 텔레비전 세트와 같다고 하겠다. 텔레비전 세트의 작동은 그 어떤 물리학 법칙이나 화학 법칙도 위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법칙들은 그 TV 세트의 기원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관련된 우연이나 또는 시간이 어떤 것이든 관계없이, TV 세트는 ”자연의 힘에” 내맡겨진 동, 인 그리고 유리에 작용하는 Ohm의 법칙이나 Coulomb의 법칙과 같은 법칙들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여기서 다시 관찰된 디자인의 종류는 의도적이며 목적적인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서 창조 행위라 함은 물질에게  텔레비전 화상송출의 능력을 부여하여 주는 행위를 말함인데, 그것은 물질 스스로의 힘으로는 개발되지도 않고 개발될 수도 없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예를 고찰해보자. 알루미늄은 날 수 있을까? 과연 그것에 고무와 가솔린을 섞으면 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다 ─ 당신이 이 모든 성분을 비행기를 제작하는 방법으로 옳게 배치하기 전에는 불가능 한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는 무엇이 날 수 있게 만드는가? 날개인가? 엔진인가? 조종사인가? 이 모든 것 중 어느 하나도 스스로는 날 수 없다. 사실상 (하지만 당신의 다음 항공 여행 시에는 이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항공기는 하나의 비-비행 부품들의 집합체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항공기의 비행 자질은 알루미늄이나, 고무 또는 가솔린의 성질에서 연유되지도 않았으며, 또 그 성질로 변형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물체들의 성질이 사용은 되었으나, 비행 능력은 이들 전체의 유기적 조직의 성질일 따름이다.


생명체의 체계도 또한 이런 것이다. 하나의 살아있는 세포는 살아있지 않은 분자들의 협동체다. 이 분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장, 반응 그리고 재생산의 성질들은 그 체계에 포함된 분자들의 고유 성질로부터 연유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유기적 조직의 특성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이때 관찰되는 유기적 조직은 눈송이에서 관찰되든가 해변의 조약돌에서 관찰되는 조직의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의도된 창조의 산물에서만 관찰되는 종류의 조직이다.


그런 뜻에서 창조주의는 생명주의와 기계주의의 고전적인 양극단 사이에 위치한다 하겠다.3 진화론자들을 포함하여 기계주의자들은 생명 체계는 단순히 복잡한 물질의 한 형태라고 하고, 물리 화학의 제 법칙들과 생명 체계의 작동에 중요한 분자들의 성질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충분조건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주의자는 생기설(vitalism)과 기계론의 양 극단 사이에 위치한다.3 진화론자를 포함하여 기계론자는 생명 체계는 단순히 복잡한 물질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고, 물리 화학의 법칙들과 생명 체계의 작동에 중요한 분자의 성질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충분하다고 한다.


극단의 다른 한 쪽의 위치하는 생기론자(vitalist)는 '생명”이란 물질과는 전적으로 다른 그 무엇이라고 주장하면서, '활력 (vital force)'의 물질 안에로의 침입이 너무도 신비롭기 때문에 생명체계의 기원은 물론 그 작동까지도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창조주의자는 생명 체계는 질서정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동하고 있어서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신실한 배려가 잘 반영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질서와 조직의 생물학적 표준이 물질의 성질에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에서만 발생한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생물학적 질서는 과학적으로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으나, 화학 법칙이나 물질의 성질에서 연유되지도 않았으며 축소되지도 않는다. 대신에, 작동하는 메커니즘과 조직의 패턴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생명의 기원이 특별한 창조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리켜준다.


이에 관해서는 바울이 로마서 1:20에서 하신 말씀만큼 적절한 설명은 없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 그리도 명백하게 피조물은 창조주를 증언하고 있기에 바울은 실제로 이렇게 부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그렇다면, 증거가 그토록 명백한데 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가? 바울은 사람들이 진리를 막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로마서 1:18).


과학대학원 학생들과 대학 교수들에게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창조에 관한 나의 생물학적 세부 이론에 대해 어느 누구도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분자생물학자 한 사람이 나의 결론을 받아드릴 수 없다고 하면서, 누군가(Anyone)가 '저 밖”에서 생명을 창조하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문제는 마음의 문제도 과학적인 증거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 심정(heart)의 문제다. 우리한테는 나중에 더할 데 없이 밝혀질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선물로 주는 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창조된 질서 그 자체로서도 우리들 속에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하다. 그것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시편 19:1). 이 얼마나 경이로운 ”침묵의 설교”인가! 얼마나 놀라운 신앙에의 부르심인가! 창조의 증거들은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있다. 창조주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시간은 참으로 고귀한 시간이다!



Reference

1. Parker, Gary E., W. A. Reynolds, and Rex Reynolds, 1975, DNA: The Key To Life,2nd Ed., Programmed Biology Series, Educational Methods, Inc., Chicago.

2. Parker, Gary E., 1970, 'The Origin of Life on Earth,'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Vol. 7, No. 2, 97-103.

3. Parker, Gary E. & T.R. Mertens, 1973, Life’s Basis: Biomolecules, Self-Teaching Guides, John Wiley & Sons, New York.

* Dr. Parker Is Chairman of Life Sciences at Christian Heritage College and Research Associate with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in San Diego, Californi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062.htm ,

출처 - ICR, Impact No. 62, August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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