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인가, '운자생존'인가?
(Survival of the Fittest - or the Luckiest?)
David F. Coppedge
진화론자들은 박테리아들이 항생제에 저항하도록 진화되었고, 그래서 생존하기에 더 적합하도록 되었기에 확산되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하게 사실이 아니라고, EurekAlert(2005. 2. 3)의 한 기사는 런던의 임페리얼 대학(Imperial College)의 연구를 인용하여 보도하고 있다. 연구에 의하면, 박테리아의 확산은 단지 우연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래는 그 기사에서 그러한 발견을 설명하고 있는 연구원들의 두 인용문이다.
왕립 협회의 대학 연구 분과 회원이며, 저자 중의 한 사람인 런던 임페리얼 대학의 프라제(Christophe Fraser)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생물학자들은 몇몇 병원성 균주들은 다른 균주들보다 더 성공적으로 확산(spread)되었을 것이라고 상당 기간 동안 가정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가 연구했던 집단 내에서의 변동(variation)은 우연(by chance)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항생제 내성과 숙주 면역력의 차이 등과 같은 것을 갖고 있는 어떤 병원성 균주는 다른 균주들 보다 강력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저자 중의 하나인 임페리얼 대학의 하네이지(Bill Hanage) 박사는 말한다.
”우리가 한 표본을 조사하여 몇몇 균주들이 다른 균주들 보다 훨씬 더 흔하게 분포하는 것을 보게 될 때, 그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도록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단지 운이 좋은 것(lucky ones)들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여기에서 보여지는 것입니다. 이들 병원성 균주들의 확산에 있어서 변동의 대부분은 단지 우연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3 종의 병원성 박테리아를 연구하면서, 그들이 감염시켰던 사람들의 사회적 패턴(social patterns)들을 추적했다. 확산의 성공(success at spreading)과 확산의 적합성( fitness for spreading) 사이에는 어떠한 분명한 관계도 없었다.
Science 지에서[1] 이에 관한 페르버( Dan Ferber)의 논평은 박테리아에 관한 또 다른 놀라움을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불멸하는 것이 아니라는(not immortal) 것이다. 배양되어 재생산된 균주들은 명백히 그들의 나이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그 결과는 ”자연선택이 하나의 불멸하는 유기체(immortal organism)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것” 이다. 둘째 ”그것은 당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새로운 면을 보게 한 흥미로운 결과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한 관측자는 성장을 멈춘 개체군은 나이를 먹고 있는 중이라고 확신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은 수선(repairs)을 위해 잠시 쉬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이 새로운 발견은 세포들이 불멸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무거운 증거가 되고 있다” 라고 말했다.
[1] Dan Ferber, Immortality Dies as Bacteria Show Their Age, Science, Vol 307, Issue 5710, 656 , 4 February 2005, [DOI: 10.1126/science.307.5710.65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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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자생존(運者生存, survival of the luckiest)’은 살아있는 생물체들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이것은 생물학에서 매우 비진화론적 방법으로 보여진다. 또한 다윈당의 당원들이 토론 시에 늘상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던(박테리아의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 획득은 진화의 한 예라고) 진화의 가장 핵심 증거 중의 하나를 손상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만약 생물학자들이 100여 년이 넘게 연구해 왔으면서도 아직도 그들의 코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이렇게 놀란다면, 어떻게 수백 수천만 년 전에 일어났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그렇게 확실한 것처럼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5/02/survival_of_the_fittest_150_or_the_luckiest/
출처 - CEH, 2005. 2. 6.
당신이 진화론에 대해 모를 수 있는 사실들
(Things You May Not Know About Evolution)
by John D. Morris, Ph.D.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디모데전서 6:20)
최근에 나는 주 법률 제정가들과 다른 영향력 있는 정치적 인사들을 모임에서 만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었다. 이들 축복받은 사람들은 전형적인 고등교육을 받았는데, 오로지 그리고 광범위하게 진화론과 진화론적 세계관만을 교육 받았었다. 현재, 그들은 교육 지침과 사회적 지표들을 세우기 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연회의 스폰서는 유익하고 복음적인 연설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의견 차이를 가지고 있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 모임에서 한 사람이 45분 동안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것을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무엇을 말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나는 나의 연설 제목에 "당신이 진화론에 대해 모를 수 있는 세 가지 사실들” 이라는 표제를 붙였다. 내가 그날 말했던 이야기를 몇 가지만 변경하여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
서론
나는 분명하게 하기위해서 단어의 정의(definitions)로부터 시작하였다. 오늘날 중요한 단어들에 대한 큰 오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몇몇 단어들은 의도적으로 학생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그들의 진짜 의도를 숨긴 채 오용되고 있는 단어들이다. 과학(Science)은 현재 관측(observations)되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진화(evolution)와 창조(creation)는 둘 다 아무도 경험적으로 관측할 수 없고, 관측될 수 없는 먼 과거에 대한 역사적 복구이기 때문에, 진정한 과학이 아니다. 사실 그것들은 완벽한 세계관(worldview)이며, 현재에 모든 관측되는 사실들을 해석하는 방법이며, 모든 사람들이 삶의 방향을 결정할 때 기초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the search for truth)'으로 이해됐었다. 하지만, 현재 수많은 현상들이 모두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졌다는 자연주의적 설명만으로는 한계에 부딪치고 있으며, 진리의 탐구 대신에 희망 없는 결론만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Evolution)은 모든 생물체들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후손(descent from a common ancestor)되어졌다는 것으로 (가령 사람은 물고기로부터 후손되었다는), 서로 매우 다른 생물체들도 변화가 계속 일어나 존재하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진화는 단순한 변화(change)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들은 시간만 있으면 변화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용어가 심각한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생물체의 새로운 형태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 사용되는 것은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론(Creation)은 생물체의 기본 종류들이 갑자기 출현한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생물체의 기본 종류들은 다른 종류의 후손이 아니며, 어떤 다른 범주의 생물체로 변화되어가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변화의 결여는 생물의 안정성(stasis)으로써 알려져 있다. 물고기는 그들이 출현한 이래로 항상 물고기였으며, 개는 항상 개였다는 것이다. 물고기와 개, 그리고 다른 생물들은 그 그룹 내에서 약간의 변화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공통조상으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니다.
.수평적 다양성 (Horizontal Variation) : YES
.수직적 진화 (Vertical Evolution) : NO
소진화(microevolution) 라는 용어는 때때로 (개의 다양한 계통과 같이) 쉽게 관찰되고 있는 작은 수평적 변화들에 쓰여지고 있다. 반면에 대진화(macroevolution)는 물고기에서 개로의 변화와 같은 커다란 수직적 변화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전혀 관측된 적이 없다. 이러한 수직적인 큰 변화가 다윈이 사용했던 용어로서의 진화이며, 일반 대중들은 이렇게 진화를 이해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선도적 진화론자들, 교과서의 저자들, 이론가들에 의해 이해되고 있는 것처럼, 진화는 오직 돌연변이(mutation)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 같은 오로지 우연한 자연적인 과정(natural processes)만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모든 것들이 초자연적인 힘의 개입 없이, 인도되지 않은 무작위적인 힘에 의해서 우연히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래의 사실들은 실제 진화(오래된 한 생물 그룹으로부터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 새로운 다른 그룹들이 태어났다는)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요점들이다. 비록 진화론에 대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사실들은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들에 대한 지식은 만약 어떤 지적인 결정을 해야할 때에 필수적인 것이다.
1. 진화는 발생하지 않았다.
1) 무작위적인 힘은 생명체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생물체들의 디자인은 너무도 복잡하고, 너무도 공학적이며, 너무도 고도로 설계되어 있어서, 단순히 지시되지 않은 무작위적인 결과로는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가장 간단한 생명체라고 말하는 세포(cell)조차 슈퍼 슈퍼 컴퓨터보다도 복잡하게 되어있다. 이것은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다. 각 세포들은 많은 구성물들을 가지고 있는데, 각각은 경이롭게 설계되어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있어야 세포가 가동된다. 그들 구성물 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세포는 살아있을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정보의 백과사전인 경이로운 DNA code에 의해 만들어지고 가동된다. 현대의 과학자들도 이 DNA code를 다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세포에 의해서 읽혀지고 조절되고 있다. 분명히 어떤 설계자(만든 자)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2) 진화는 현재 발생하지 않는다.
만약 과거에 진화가 발생했었다면, 그것은 오늘날에는 멈춰진 것처럼 보인다. 환경 변화가 많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인지, 자연선택의 압박이 매우 적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날 대진화(macroevolution)는 일어나지 않으며 관측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DNA 코드에서의 무작위적 변화인 돌연변이(mutations)들은 관측은 되고 있지만, 이들 '결함의 발생'이 어떤 혁신적이고 유익한 유전자들을 DNA 내에 증가시키는 일은 결코 관측되지 않았다. 대신에 돌연변이들은 생물체에 해롭거나 치명적이거나 중립적이거나, 아니면 DNA 내에 있는 경이로운 절차들에 의해서 복구(수선)된다.
마찬가지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은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 사이에서 선택되는 것이며,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진화론자들은 마치 자연선택이 자기 스스로 의견을 갖고 있어서 목적을 가지고 진화해 가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생명이 없는 것이고, 사고할 수 없는 것이며, 소진화적 변화 이상의 것을 발생시키기에는 무능력한 것이다.
3) 진화는 과거에도 발생하지 않았다.
과거 생물체들의 기록을 살펴볼 때, 어떤 기본적인 생물 범주가 다른 생물 범주로부터 발생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들을 찾아 볼 수 없다. 공룡 같은 몇몇 생물 종들을 멸종되었지만, 그 밖의 것들은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같은 범주 내에 모두 조화된다. 개(dog)들 내에서 매우 다양한 품종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몇몇 멸종된 종류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반은 개고 반은 다른 생물인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자주 언급되고 있는 소수의 전이형태 생물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화가 실제로 발생해서 모든 생물들이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 후손되었다면, 수천 수만의 전이형태 생물들을 볼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볼 수 없다.
하버드 대학의 고생물학자로서 가장 유명한 진화론자였던 굴드(Stephen J. Gould)도 화석기록은 갑작스런 출현(abrupt appearance)과 안정성(stasis)을 보여주고 있다고 그의 동료들에게 지적한 적이 있다. 그는 창조를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과학자로서 정직하게 이제는 잘 알려진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전이형태 화석의 부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을 제안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생물체들은 일반적으로 평형 상태, 또는 안정된 상태로 있으며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직면했을 때, 생물체의 한 그룹이 급속도로 빠르게 다른 안정된 형태로 바뀌어졌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어떠한 중간형태 화석도 남겨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마나 편리한가. 진화는 오늘날 너무 느려서 볼 수 없지만, 과거에는 너무 빨라서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굴드는 증거의 결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도기적 형태의 부재는 만일 창조가 사실이라면 정확히 예상되는 경우이다. 화석기록은 느린 또는 빠른 진화보다는 기본적인 종류들이 갑작스럽게 창조되었음을 더 지지하고 있다.
4) 진화는 결코 발생할 수 없다.
과학의 기본적 법칙들은 확고히 진화에 반대되고 있다. 모든 과정들은 원래의 상태보다 덜 조직화되고 덜 정보를 가진(무질서한) 상태로 진행되어간다는 것이 ‘열역학 제2법칙(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이다. 이 기본 법칙은 진화가 아니라 퇴화를 말하고 있다. 풍부한 외부 에너지의 존재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유익한 돌연변이나 유전자에 정보의 증가를 결코 만들지 않는다. 대신에 유입되는 풍부한 외부 에너지는 살아있는 것들, 특히 DNA의 파멸을 촉진한다. 그것은 진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진화는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반되는 것이다. 진화는 발생하지 않으며, 발생하지도 않았고, 발생할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수많은 디자인들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
우리들 모두는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이다" 라는 주장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반복되는 슬로건(mantra)은 1980년 아칸사스(Arkansas) 창조 재판에서 루스(Michael Ruse) 박사의 증언에서 비롯되었다. 진화론에 대한 편향된 생각을 가졌던 재판장은 그 말을 그의 공식 의견서에 집어넣었고, 그 깃발은 그때 이후 진화론자들에 의해 흔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학의 본질과 과학이론에 대해 전문가인 루스 박사는 최근에 그가 잘못 생각했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진화론은 기독교에 대한 어엿한 대안의 종교처럼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 선포되어지고 있다.... 진화론은 종교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다음의 두 가지를 시사해주고 있다.
2. 진화론은 하나의 완전한 세계관이다.
진화는 초자연주의에 반대하는 자연주의 종교(religion of naturalism)이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과 같은 삶의 모든 큰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 의도되었다. 과학과 자연주의가 동일하다는 주장은 과학의 정의에서부터 창조주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창조주가 존재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지라도, 이러한 개념에 의하면 비과학적인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단순히 무작위적인 맹목적인 힘의 결과로서 모든 만물들이 만들어졌다는 이러한 자연주의 종교는 논리적으로 오로지 무신론과 조화되는 것이다. 진화론은 창조주에 대한 책임감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결과를 가져왔으며, 인종차별, 낙태, 유아살해, 안락사, 난잡한 성행위, 이혼, 자살, 사회적 다윈주의 등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에, 고통으로 가득 찬 부도덕한 사회를 이끌어내게 되었던 것이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과학과 기술은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내었지만, 진화론이라는 개념 자체는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3. 진화론이라는 종교는 기독교와 반대된다.
진화론(Evolution)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과 부적자의 도태로서 요약될 수 있다. 대다수의 죽음들은 유익한 돌연변이가 일어난 소수가 지속될 수 있도록 허락한다. 강자는 약자와 무력한 존재들의 희생을 비용으로 번영하는 것이다. 오직 관심사는 생존(survival)과 번식(reproduction)이다. 진화는 작은 생명체로부터 시작하여 광대한 시간동안 수많은 피흘림과 도태를 거쳐서 인류까지 도착했다고 말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마지막 문단에서, 죽음과 육식행동, 그리고 멸종이 사람을 만들어냈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Christianity)는 매우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픔도 고통도 죽음도 없이, ‘심히 좋았던’(창 1:31) 세계를 창조하셨던 전능하신 창조주와 함께 시작한다. 창조주는 그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고, 자비롭게 개인적 동반자를 포함하여 사람의 모든 필요를 공급했다. 이 완전함은 사람에 의해서 거부되었고, 현재 사람의 모든 영역은 ‘죄의 삯’(롬 6:23)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죄의 결과와 형벌 아래에서 쇠퇴되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만물이 아담의 관리 아래에 있었지만, 이제는 그의 형벌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식물들은 시들고, 동물들은 죽으며, 사람들은 고통 당하고 죽는다. 심지어 무생물조차도 악화되어 간다. 달의 궤도는 붕괴되어 가고, 태양의 연료는 없어져 간다. 모든 피조물들은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다(롬 8:22).
오늘날 우리는 적자생존과 멸종을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창조적인 과정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우리의 창조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우리들의 죄에 대한 은혜로우신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다. 그는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을 보내주셨고, 희생시키셨다. 모든 것에 완전하신 분이 불완전한 사람들을 대신해 죽으셨다. 그는 은혜의 선물로써 영원한 삶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러한 개념은 적자생존과 살아남기 위한 투쟁 개념과 비교해 볼 때, 정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진화는 단지 투쟁과 궁극적인 제거 외에는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 반면에, 기독교는 모든 투쟁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원한 삶을 제공한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둘 다 완전한 세계관이다. 둘 중에서 창조론은 과학적 관측들에 의해서 더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삶과 영원에 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번역 - 한동대학교 창조과학연구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things-you-may-not-know-about-evolution
출처 - ICR, BTG No. 160a April 2002.
숲의 교향곡 (Sylvan symphony)
: 식물들은 생존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있었다.
Carl Wieland
숲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숲을 걸을 때, 우리들 대부분은 나무의 다른 많은 부분들이 땅속에 묻혀있기 때문에 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지하에 있는 나무의 거대한 뿌리 시스템은 서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고, 심지어 진균류(fungus) 하고도 밀접하게 얽혀져 있다. 진균류의 세맥(threads)을 통한 이들 연결망은 다른 나무들과 연결되어 있고, 심지어 다른 종의 나무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나무와 진균류 사이의 기초적인 관계는 꽤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다. 나무들은 공기로부터 탄소 함유 화합물(예를 들어 당(sugars))들을 만든다. 그러나 진균류들은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나무의 뿌리 밖으로 흘러나오는 탄소함유물들은 진균류에게 유용하다. 대신에 진균류들은 땅으로부터 질소나 인과 같은 필수 영양분들을 유리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특별한 효소들을 생산한다. 그래서 나무들은 이들 물질들을 더 많이 얻는 것이 가능하다.
서로 다른 두 생물 종들이 상호 이익을 얻는 이와 같은 관계는 매우 흔하며, 이것은 공생(symbiosis, together-living) 이라고 불려진다.
새로운 발견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산림청의 숲 생태학자인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는, 나무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는 진화론적 투쟁 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교육받아 왔었다. 나무들은 더 많은 햇빛을 얻기 위해 더 크게 자라도록 투쟁하고 있으며, 이것으로 인해 주변 나무들은 가려져서 적은 햇빛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마드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숲에는 서로 다른 많은 식물 종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것은 진화론적인 ‘투쟁(struggle)’ 이론의 예측과는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사실 경쟁(competition)이라는 용어로는 단지 이러한 다양성의 10~20% 정도만 설명될 수 있을 뿐입니다.” 1
그녀는 이 진균류의 세맥들이 다른 종의 나무들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했다. 시마드는 자작나무(paper birch)와 전나무(Douglas fir)의 묘목들을 심으면서, 나무에 진균류들이 자랄 수 있도록 접종시켰다. 일 년 후에 그녀는 몇몇 나무 위로 천막을 쳤다. 이렇게 그늘이 만들어진 나무들은 햇빛에 노출된 나무들보다 적은 광합성에 의해 적은 탄소화합물들을 만들게 되었다.
6주 후에, 그녀는 비닐 백으로 나무를 뒤집어 씌워 밀봉하고, 후에 탄소가 어디 나무로부터 유래했는지를 알기 위해 다른 동위원소 표지(labels)를 한 이산화탄소들을 그 안으로 주입했다.2 수주일 후에 이들 다른 탄소표지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나무들을 분석했을 때, 결과는 놀라웠다. 한 나무에서 만들어진 탄소화합물은 자주 다른 나무의 끝에서도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그늘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은 다른 방법보다는 햇볕에 있는 나무들로부터 더 많은 탄소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요약해서 무엇이 발생하였는가 하면, 진균류들은 탄소의 흐름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건강한 나무로부터 탄소를 취해서 그늘에 있는 나무들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식물 종에 상관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건강한 전나무로부터의 탄소는 그늘에 있는 자작나무의 생존을 돕기 위해서 전달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보통의 숲에서 나무들이 키 큰 나무들에 의해서 햇빛을 빼앗겼을 때, 사람들이 예측했던 것만큼 고통당하지 않는 이유를 명백하게 설명해줄 수 있었다.
진화론적 난센스
시마드가 말한 것처럼, ”한 집단에서의 식물들의 생존은 개체적으로 그리고 그들의 이웃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것은 진화론적 예측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무들은 생태학적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살아있는 생물체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자주 뜻밖에도 서로 복합적으로 상호관계(interrelationships)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또 하나의 놀라운 예인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에 의해 황폐화되기 이전에, 이 세계는 얼마나 놀라운 조화 속에서 유지되고 있었을 지를 상상해 보라.
References and notes
1. This item is based largely on C. Zimmer, The Web Below, Discover, p. 44, November 1997. All quotes come from that article.
2. Different isotopes of carbon.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sylvan-symphony
출처 - Creation 20(3):56, June 1998.
생물학은 진화론과 충돌하고 있다
(Biology Confronts Evolution)
진화론은 생물학인체 가장하고 있지만, 어떠한 실험적 증거 자료들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아주 조금이라도 진화론을 지지할 만한 증거가 있는지 살펴보자.
대부분의 생물학 교과서들은 아미노산의 선구물질(precursors)들을 일 주일 동안 끓이고 전기 스파크를 일으켜 몇 종류 아미노산들이 미량 생겨났다는 유리 실험장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지혜가 개입되지 않은 어떤 우연한 과정들에 의해, 하나의 살아있는 세포가 생겨났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고무수액, 모래, 철광석, 석탄 등이 화산 속으로 떨어져서 오랜 시간 후에 자동차가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철광석과 석탄 내의 탄소가 강철이 되고, 모래가 녹아서 유리가 되며, 경화 처리된 고무수액은 고무가 된 다음, 수십억 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생물교과서에 적혀 있듯이, 저절로 더 좋은 피스톤, 실린더, 점화플러그, 변속기가 달린 완전한 엔진, 유리창, 철강 본체, 고무타이어, 4륜 차축, 와이퍼, 헤드라이트, 그리고 휘발유가 가득 찬 탱크가 만들어졌다는 것과 같다. 교과서는 첫 번째 세포와 모든 생물체들이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진화했다고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독특한 종류의 공상(fantasy)이라고 말한다. 만약 누군가가 전날 밤에 새 차를 샀는데, 아침에 보니 그 차가 녹슬고 부패하여 한 더미의 재로 되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의 이야기가 물리학 법칙의 방향은 맞게 설명했으나, 녹슬거나 부패하는 것이 그렇게 빨리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만약 그가 모래와 철광석 한 더미가 쌓아놨는데, 그것들이 새 차로 진화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실제 일어나는 일과는 완전히 반대가 되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의 ‘전도된 공상(거꾸로 된 공상, inverted fantasy)’인 것이다. 따라서, 아미노산들에서 세포가 만들어졌다거나, 화산 속에서 자동차가 만들어졌다는 예들은 단순한 공상일 뿐만 아니라, 거꾸로 된 공상인 것이다. 그것은 암소가 낮은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에, 달 저편까지 뛰어올랐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이야기 정도가 아니라, 풀이 암소를 먹었다는 것과 같이 완전히 뒤집혀진 거꾸로 된 공상이라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거부하는 한 가지 방법은 바로 관측(observation)이다. 과학자들은 자동차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 조립라인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것을 관측함으로써 설득되어지며, 아무도 화산 안에서 또는 화산 밖에서 자동차가 저절로 또는 목적없이 만들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모든 차들은 지적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명쾌하게 결론을 짓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체는 어떠한가? 생물학은 생명체를 설명하기에 충분한가? 아니면 전도된 진화론적 개념으로 생물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말들을 덧붙이고 있는가? 대표적인 생물체들의 생활사(life cycle)를 조사하여 봄으로서 이 대답을 찾아보도록 하자.
유전물질의 보존이라는 수단에 의한 생존
제왕나비(monarch butterfly)는 모든 관측이 검증될 수 있기 때문에, 생물학에서 하나의 좋은 예이다. 제왕나비의 전체 생활사는 데옥시리보핵산(DNA) 하나에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으며, 60일 내에 관찰될 수 있다. 제왕나비의 알은 타원형이며, 길이는 약 1㎜ 이다. 부화한지 3일 만에 애벌레(caterpillar)가 되고, 그 둘레에 번데기(chrysalis)를 지은 다음, 나비(butterfly)로 된다. 그 다음 제왕나비는 날고, 이동하고, 먹고, 짝을 짓고,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번식 기능을 끝마친 직후에 암 수는 탈수되어져 죽는다.
유일한 순서가 유전정보에 저장되어 있다.
제왕나비의 생활사는 겉으로 보기에 비활성인 알(inert egg) 내에 16개의 다리를 가진 애벌레와 6개의 다리를 가진 나비가 되도록 하는 모든 유전정보가 들어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애벌레였을 때 나비의 어떠한 신체적 발현(조짐)도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알이었을 때 애벌레의 어떠한 신체적 발현도 없었다. 생물체의 발현된 형태 내에는 발현되지 않은 과도기적 구조와 다른 형태들이 유전정보의 보관소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60일 내에 그러한 현저한 변형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유전정보의 보존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이러한 믿을 수 없는 복잡한 변형(transformation)은 어떤 엔지니어도 그 설계도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연속적 순서에 대한 유전정보의 보존(sequential genetic reserves)이라고 불려질 수 있다. 그것들은 성충이 되기 위해 엄격한 순서에 따라 한 번만 일어나며, 결코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복잡한 생물체들이 그러한 순서를 가지고 있다. 어떤 생물체들은 16개의 다리에서 6개의 다리로 변형되지 않고, 걷다가 나는 것으로 변형되지 않으나, 성체로의 변형은 놀랄만하다. 모든 다세포 생물체들은 알이나 씨앗에서 성체의 외형으로 성장하고 발달해 가는데, 그것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으로 분자생물학적으로 계획되어져 있으며, 조직되어 있고, 조정되어지고, 통제되어지며, 명령된 지속적인 구조적, 기능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DNA가 어떻게 그것을 진행시키는지 알지 못하나, 그러한 메가-공학(mega-engineering)이 진화론이 주장하는 어리석은 방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에 다른 종류의 유전정보의 보존들이 있다.
정확한 시점과 주기가 유전정보에 저장되어 있다.
북극 여우가 여름에 툰드라와 잘 어울리는 회색 털을 가지고 있을 때, 보관된 유전정보 내에는 겨울에 입을 하얀 털에 대한 유전정보가 들어 있다. 겨울에 북극 여우의 하얀 털은 눈과 잘 어울리나, 그것의 보관된 유전정보 내에는 다음 여름을 위한 회색 털도 여전히 들어 있다. 마찬가지로, 바위뇌조(rock ptarmigan)는 보관된 유전정보 내에 봄에는 얼룩덜룩한 적갈색의 털을, 가을에는 갈색 계통의 회색을, 겨울에는 하얀 색의 깃털을 가지도록 하는 유전정보가 저장되어 있다. 나무들은 봄에 잎과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과일을, 가을에는 낙엽을 떨어뜨린다. 새들은 봄과 여름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어린 새들을 키우고, 가을에는 이주한다. 이러한 주기성(periodicity)은 생물체의 보관된 주기적인 DNA 유전정보 내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어김없는 정확성을 가지고 평생 동안 되풀이된다. 여우는 마지막 눈이 아니라 첫 눈이 올 때 하얀 털을 가지며, 한 주나 한 달 뒤가 아니라 눈이 막 녹기 시작할 때 회색 털을 가진다. 그리고 이것은 무작위적 과정에서처럼 시행착오에 의해 결코 빨간색이나, 녹색, 주황색, 혹은 파란색 털로 자라지 않는다. 만일 보관된 주기성에 대한 유전정보가 정밀성과 정확성을 가지고 설계되지 않았다면, 여우는 한 계절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보존된 유전정보가 정확한 시점에서 발현되고 있다.
뜨거운 날씨 속에서의 활동한다면, 뜨거운 환경에서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열충격 단백질(heat-shock proteins)을 합성하도록 보관된 유전정보가 자극되어진다. 활동 양식은 근육의 액틴과 미오신 수축성 섬유에서 새로운 단백질이 나타난다. 골격근의 비대와 서맥(bradycardia)은 훈련 시에 유발되어지고, 골격근의 위축과 빈맥(tachycardia)은 휴식 시에 유발되어진다. 적혈구 수의 증가와 글리세린산(2,3-diphospho-glycerate)의 농도 증가는 높은 고도의 지역에서 체류할 때 유발되어지며, 해수면의 고도로 되돌아오면 그러한 현상은 사라진다. 관상동맥이 막혔을 경우 두 달 안에 막힌 동맥의 주변에 새로운 보조 관상동맥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뼈 세포들은 골절이 일어났을 때에 생겨나며, 벗겨지고, 베어지고, 찢어진 상처에서는 새로운 살들이 생겨난다. 이러한 것들은 각 생물체 내에서 자극에 의해 발현되어지는, 이미 만들어져서 보존되어있는 수많은 DNA 유전정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발현되는데 수백만 년이 아니라, 대략 몇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다. 생물체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필요한 것을 경험할 수 없고, 필요가 즉시 충족되지 않는다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진화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없다. 생각이 없는(vacant-minded) 진화는 어리석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거나, 조직하거나, 조정하거나, 통솔하거나, 변화를 통제할 수 없다. 무작위적이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단순해서, 생명체와 생명체의 생존과 같이 극도로 복잡한 것을 이해할 수도 없고, 그렇게 행동할 수도 없다.
모든 보존된 유전정보들은 즉시 기능해야 한다.
착상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체의 DNA는 필요에 따라서 보존된 모든 유전정보의 이용을 가능하도록 하며,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간섭도 없다. 예를 들어, 생명체는 밤에 혹독한 추위에 잘 견디도록 해주는 단백질과, 한 낮의 더위 속에서 산을 오를 때에 열충격(heat shock)과 고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단백질을 동시에 각각을 자극할 수도 있다. 항상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는 보존된 풍부한 유전정보들은 언제라도 적절한 패턴으로 발현시킬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각 생명체에게 놀라운 형태적, 기능적, 그리고 행동적 메커니즘을 부여하여, 어떠한 다양한 환경에서도 제때에 정확하게 그러한 메커니즘이 작동되어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그것들은 처음부터 정확하게 작동된다. 전도된 진화론적 미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들은 수백만 년 이상에 걸쳐 마술처럼, 또는 맹목적인 반복에 의해 작동하게 된 것이 아니다. 만약 북극 지방의 여우가 우연히 첫 번째 강설을 위해 하얀 털을 가지도록 진화시켜야 했다면, 그 여우는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북극 여우는 착상 때부터 모든 보존된 유전정보의 융통성, 정밀성, 정확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태어났다고 해도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반응, 적응, 순응, 순화는 진화인가 설계인가?
만일 어떤 사람이 운동을 한다면, 심박수는 증가할 것이고, 이것을 반응(response)이라고 부른다. 만일 한 사람이 같은 운동을 몇 주 동안 계속 실시한다면, 심박수는 초기 반응보다 낮아질 것이다. 같은 운동에 대하여 낮아진 심박수는 적응(adaptation)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변화된 반응이 환경에 의해 유발된 것이라면, 그것은 순응(acclimation)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만약 그것이 기후의 변화에 대한 반응이라면, 그것을 순화(acclimatization)라고 불려진다. 이들 중 어떤 것이라도 진화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되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즉각적인 반응들은 DNA에 저장된 정보로부터 생겨난 생리학적 변화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DNA 상에 보존되어 있는 유전 정보의 발현에 의해, 그러한 변화들은 극적으로 새로운 요구들을 지배하고 현재 상태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보존된 유전정보들은 자극이 운동과 같이 내부에서부터 오던지, 혹은 기후나 환경에서와 같이 외부에서 오던지 간에, 새로운 적절한 단백질들을 합성할 것이다. 위의 네 가지 반응들을 사용함으로써, 진화론자들은 우리는 잘못 인도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매우 단순한 것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설계는 모든 것을 처리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진화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그것이 생물학에서 진화가 제거되고 있는 이유이다.
종의 분화, 소진화, 대진화는 실제 생물학에서 있는가?
누구라도 생물학에서 주목할 만한 다양성을 관찰할 수 있다. 모든 남자형제들과 여자형제들은 다르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들도 지문과 행동이 다르다. 치와와는 개와 다른 생물종이 아니다. ‘종의 분화(speciation)’와 ‘소진화(microevolution)’는 생물체들의 헤아릴 수 없는 다양성들을 도용하기 위한 시도이다. 모든 치와와는 서로 다르지만, 어떤 치와와도 고양이나 너구리, 혹은 그 밖의 다른 것으로 결코 진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또한 소진화의 연장으로서의 ‘대진화(macroevolution)’는 잘못된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은 풀이 암소를 먹는 것과 같은 전도된 공상이기 때문에, 결코 관측되지 않아 왔다.
과학적으로 묘사되는 생명체
누구라도 관찰할 수 있듯이, 생물학의 기본 법칙은 생물발생설(minor vita ex vita)이다. 즉 생명체는 생명체로부터만 생기며, 항상 더 적은 생명력을 가지고 생겨난다는 것이다. 생물학은 진화론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우주적인 물리 법칙의 관할 하에 있다. 우주의 근본 법칙은 자연은 항상 쇠퇴해져 간다(natura semper scalas descendet)는 것이다. 즉, 퇴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의 피할 수 없는 가차없는 법칙은 진화가 아니라 퇴화(devolution)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진정한 본질처럼 생물학에서의 진정한 본질도 퇴화인 것이다. 이것은 공립학교와 대학교 생물학 교과서에서 과학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는 진화론과는 정 반대가 되는 현상이다.
각 생물체의 한 세대의 역사는 그 생물집단의 역사와 같다. 단지 규모가 작을 뿐이다. 각 개체는 엄청난 생명력으로 만들어져서, 죽을 때까지 그 생명력을 점차적으로 소진해 가고 있다. 어떠한 개체도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처럼, 어떠한 집단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형성되어진 모든 생명체들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죽게 마련이다.
유전적 질환을 초래하는 환경 오염물질들로 인해, 집단은 생존 가능한 자손들을 번식시킬 수 없을 때까지 그들의 생명력을 잃어 간다. 그것은 바로 멸종(extinction)의 도래이다. 이와는 달리, 생물 교과서에 게재되어있는 진화론적 미신은, 생명체가 화산 속의 자동차처럼 갑자기 생겨났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움직일 수 있는 기계처럼, 그들 스스로 영원히 완벽해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다중 전도된 공상(multi-inverted fantasy)인 것이다.
결론
우리가 보아왔던 것처럼, 생물학은 생명체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생물학은 매우 완전하고, 관측 가능하며, 실험으로도 잘 증명될 수 있다. 진화론이라는 미신과 같은 불필요하고, 잘못되었고, 다중 전도되었으며, 관측되지도 않는 이론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생물학은 전적으로 진화론을 제거하고 있다.
Reference
.Mastropaolo, Joseph. The Rise and Fall of Evolution, A Scientific Examination. 2003, pp. 115-123. Manuscript in revision.
*Dr. Mastropaolo is an adjunct professor of physiology for the ICR Graduate School.
번역 - 창조과학회 대구지부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68.htm ,
출처 - ICR, Impact No. 368, February 200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95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
뭐! ...감자가 아니라고?
(What! … No Potatos?)
정부는 우리가 먹고 있는 식물의 '야생 종'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에 눈뜨게 되었다. 야생종들은 풍부한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좀더 양질의 식물을 개발하려는 과학자들은 이 점이 바로 진화의 오류를 단적으로 말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이야기한다.
북미와 호주에는 왜 그렇게도 많은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일까? 1840년대 아일랜드 감자 기근 사건이 있었던 때로 되돌아가 보자. 감자 마름병(Potato blight)이 라고 알려진 병 때문에 감자 수확에 실패했을 때, 아일랜드에서는 150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떠났다. 왜 감자들은 병을 극복하지 못한 것일까? 감자는 남미의 안데스산맥에서 시작되었다. 거기엔 많은 다른 종의 감자가 자라고 있었고, 일부는 감자 마름병에 저항성이 있는 종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감자가 1500 년대에 유럽에 소개되었을 때, 이 병에 저항성이 있었던 종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유럽에 있는 종자엔 애초부터 병에 대한 감수성이 컸던 것이다. 병에 대한 저항성 있는 유전자가 포함된 종이 없었기 때문에, 병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고사해버린 것이었다. 이후로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1970 년대 미국에서, 유전적으로 획일화된 재배의 결과로, 약 10 억달러 이상의 옥수수를 잃게 되었다. 왜냐하면, 옥수수 종의 80%가 '남부 잎 마름병(southern leaf blight)’ 라고 알려진 바이러스성 병에 감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
너무 성공적?
식물 육종학자들은 모든 종류의 곡물성 식물의 생산량을 증가시키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성공으로 농부들은 그 지방 고유의 종 대신에 새로운 종자를 심게 되었다. 예를 들면, 1949년 이후로, 중국에서 적어도 9000 개 이상의 다양했던 밀 종류가 사라져버렸다.
'녹색 혁명'은, 쌀과 밀의 높은 생산성을 가져왔고, 이는 빠르게 고유의 종자와 대체되었다. 예를 들어, 1984년 방글라데시에서 재배되는 밀의 96%가 녹색 혁명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종자로 구성되었다.
이 '기적의 밀' 이라는 단 하나의 종이 재배되는 모든 밀의 67%를 차지하였다 (2). 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제공되었다. 그렇지만 고유의 종을 잃어버리고, 몇 개 안되는 새로운 종에만 의지하게 되자 여러 문제가 야기되었다.
문제점들
단일화된 종이 심겨진 넓은 지역은, 결핍된 저항성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페스트와 질병에 피해를 입기 쉬워졌다. 새로운 페스트와 질병은 바다 건너에서 오거나, 혹은 유전자 재조합의 결과로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항생제처럼, 새로운 질병은 새롭게 기능하는 유전자가(3) 아니고서는 제지할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이 선택한 일부분의 종은 질병에 대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새로운 페스트와 병을 이기기 위한 노력으로, 육종학자들은 야생종으로부터 새로운 유전자를 추출하여, 새로운 종을 만들었다. 이 신종은 겨우 5~7년 사이에 기존의 종자를 대신하여 널리 퍼졌다.
그렇지만, 야생형이 소실되면서, 육종학자들은 생산량 증가, 경작자와 살충제에 대한 의존성 감소, 품질 향상, 그리고 가뭄, 온도차, 염분에 대한 내성 등등을 위해 더 나은 종자를 만들기 위한 유전자 소스의 결핍에 부딪혔다. 이와 같은, 유전정보의 소실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왔다. UN 산하 FAO는, 농작물이 가진 유전적 다양성의 약 75% 정도가 이번 세기에 소실되었다고 추정하였다. 이에 당국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하였다
부정되는 진화
많은 과학자들은 진화가 일어나는 맹목적인 과정(즉,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모든 유전정보를 창조한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야 겨우 시작된 우리의 음식물에 대한 야생종 보호 노력은, 어떤 종류의 선택(인위적이건, 육종학자에 의해서건, 자연적이건)도, 새로운 유전정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만약 돌연변이로써 모든 유전 정보가 생겨난다면, 그토록 뛰어난 과학자들이 더 나은 종을 만드는데 필요한 유전자를 만들어 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그 누구도 단 하나의 유전자조차 만들어 낼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긁힐 때 감염되는 녹병균에 대한 저항성 유전자를 대신할 그 어떤 것도 없음을 육종학자들은 알게 되었다.(7)
진화론자 윌슨(E. O. Wilson)은, '각각의 종은 거대한 유전 정보 저장고이다. 박테리아에는 약 1000 개 정도, 일부 균류엔 10,000 여개, 대부분의 꽃과 일부 동물들에는, 700,000 개 이상의 유전자가 있다. 만약 이 유전자 전체를 끄집어낸다면, 단 하나의 세포에 있는 DNA 길이만 대략 1m 정도 될 것이다.(이 세포로 이루어진)분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약, 이것들을 보통 크기의 문자로 바꾸어, 책에 인쇄한다고 하면, 1768년 이후에 출판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5권을 꽉 채울 것이다.' 라고 하였다. (8)
펜실베니아 대학의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얀젠(David Janzen)은, '종이의 생산을 위해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것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국회도서관의 책들을 펄프화하는 것과 같다' 고 말했다.(8)
책에 쓰여진 이야기들이 지식의 산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생물의 유전정보 역시 지식의 산물인 것이다. 이 정보의 원천은 스스로 유전정보를 만들 수 없어서 유전적 다양성의 소실을 염려해야만 하는 우리들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뛰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유전적 다양성의 소실에 관심을 가지면서, 육종학자들도 유전정보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작위적이고, 맹목적인 과정을 통해서는 어떤 것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과, 자연선택 역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고 다만 잃어버릴 뿐임을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진화가 모든 유전정보를 만들 수 있다는 맹목적인 신뢰는, 맹목적인 믿음일 뿐이다.
농장에서 잃어버리는 정보
우리가 가장 많이 재배하는 일부 식물의 유전정보가 눈에 띠게 소실되었다. 일 예로 네이블오렌지는 종자를 만들지 않게 되었다. 이와 같은 유전적 획일화는 또 다른 유전정보의 소실을 유발한다. 많은 작물들이 자가번식(농부들이 임의로 하나하나 번식시킴)에 의해 유전적으로 획일화되었다. 예를 들면, 야생종 해바라기는 씨앗이 성숙되는 시기, 씨앗의 크기 등이 조금씩 다른데 비해, 재배되는 모든 해바라기는 씨앗을 동시에 성숙하게 만든다. 이것은 농업을 위해 자란 종들에는 야생종에 있던 유전정보가 일부 결핍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농업에 최적화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가축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Friesian 젖소와 Friesian 황소를 교배하면, Beef Shorthorn(우유를 덜 생산하고, 고기의 중량은 더 많이 생산하는)이 아닌, 더 나은 Friesian 젖소가 태어난다. 야생종 동물들이 서로 다른 유전자의 교배로 다양성을 띤 자손이 번식되는데 반해, 이와 같은 동종 교배는 많은 유전자가 유사해진다. 그리하여, 동종 교배는 야생종보다 많은 양의 유전정보가 소실된다.
요즘의 딸기 맛은 왜 아버지가 먹던 딸기 맛과 다른 걸까?
많은 사람들이 정원에서 따먹었던 달콤하고 향긋한 딸기를 기억하고 있다. 오늘날 보다 작긴 했지만, 더 맛있고 향긋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람들은 보기에 크고, 붉은 딸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잘 팔리게 된다. 그리하여 육종 학자들은 크고, 붉은 딸기를 많이 생산하는데 주력하였다. 이와 같은 특징에만 주력한 결과, 맛은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높은 생산성만큼 맛없는 딸기가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하나의 특징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다른 것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특징이 강조되는 동안, 또 다른 부분이 감소되고 있는 것이다. 유기체가 도달될 수 있는 생물학적 한계가 있다. 육종은 새로운 생물체를 창조할 수 없다. 유기체의 생물학적 능력을 넘어서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유전자 은행
농작물에 대한 이와 같은 문제점이 대두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작물을 위한 '유전자 은행(gene banks)'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일례로, 필리핀에 있는 '국제쌀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 IRRI)' 는 8만 여종의 쌀을 보유하고 있다. 이 유전자 은행은 요청이 있을 경우 종자 샘플을 제공한다. 캄보디아가 진화론에 고무된 악명 높은 폴포트 정권 하에 있을 때, 쌀을 재배하는 농부들은 이 은행으로부터 종자를 공급받아서 이미 소실된 종류의 쌀을 다시 재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유전자 은행의 종자들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종자를 생산하도록 해야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유전자 은행은 노동집약적이며, 유지비가 많이 들고, 이익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일부 종자들은 -20°C의 저장고에서 100 년 가까이 보존될 수 있긴 하다. 그렇지만, 이 경우도 계속적으로 냉장 기능을 유지해야만 한다. FAO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전자 은행의 종자 중 거의 절반 가량이 새로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자칫하면 그 종자들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5)
게다가, 유전자 은행에는 주로 재배하는 작물로만 이루어져 있다. 곡류가 아닌 작물들은(그러나, 열대 지방에선 식량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 은행에서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유전자 은행의 14%를 밀 종자가 차지하고 있는 반면, 카사아바(cassava, 빈곤국가 사람들의 주식인)는 겨우 0.5% 만이 있을 뿐이다. (6)
이 유전자 은행과 함께, '종자 저축(Seed Saver)'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더 이상 농부들이 재배하지 않는 고유한 종자들을 자발적으로 모으고 있다. 이와 같이 종자 살리기에 열심인 사람들은 서로서로 조직망을 구성하여, 희귀한 종자들을 보관하고 있다.
로마에 있는 International Plant Genetic Resources Institute (IPGRI) 처럼, 유전 자원을 보존하려는 단체들은, 농부 스스로 고유의 종을 보존해야 하게끔 하는 일이 점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민단체(NGO)들은, 이러한 접근 방법으로 농부들을 일깨우고 있다. 이같은 NGO 중 다수가 기독교 단체로, 개발 도상국가의 경제 활동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References and notes
1. Food and Agriculture Organisation (FAO) website
: http://www.fao.org/sd/epdirect/epre0040.htm (9 February, 1998).
2. U.S. National Research Council Board on Agriculture, 1993. Managing Genetic Resources: Agricultural Crop Issues and Policies, National Academy Press, Washington, p. 70.
3. Wieland, C., ‘Superbugs not super after all’, Creation 20(1):10-13, December, 1997.
4. Bred among themselves only, with culling of ‘off-types’.
5. FAO, State of the World’s Plant Genetic Resources for Food and Agriculture, Rome, p. 62, 1996.
6. Ref. 5, p. 60.
7. Note that this differs from genetic engineering in which already existing genes from one organism are inserted into another.
8. Cited from Anon., ‘Genetic diversity’, World Resources Institute, 1991 (wri.org website).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진화론의 주장/자연선택에 있는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J0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4197cen_d1999.asp ,
출처 - Creation 21(1):12–14, December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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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3202
잘 무장된 물벼룩과 무우 (신 라마르크주의?)
이전 세기에 바이스만(August Weisman)이 수십 세대에 걸쳐 쥐의 꼬리를 자르면서, 라마르크(Larmarck, 다윈이 존경했던) 같은 진화론자의 이론에 반기를 드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즉, 생물체가 살아가는 동안 얻은 후천적 변화가, 유전될 수 있다는 이론 말이다. (기린이 더 높은 곳의 나뭇잎을 먹기 위해 목이 길어졌다는 용불용설 같은 이론). 바이스만에 의해 꼬리가 잘려진 쥐의 후손들 중 어떤 것도 짧은 꼬리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이로써, 환경에 의해서 야기된 변화는 유전될 수 없다는 것이 현대 생물학의 '중심 이론' 중 하나가 되었다.1 그렇지만 최근의 발견은 이 이론에 반기를 드는 듯이 보인다.
야생의 무는 보통 애벌레(caterpillar)의 공격을 받으면, 잎을 보호하는 돌기(spike)가 증가하고 독소가 생성되어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2,3 주도 면밀하게 진행된 연구에서, 이와 같이 획득된 저항성의 일부가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 결과를 보였다.
이와 비슷한 예로, 물벼룩(water fleas, Daphnia)은 천적에게 노출되면, '헬멧처럼 생긴 보호구'를 만드는 kairomones 라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 놀라운 것은 공격에 노출되어 kairomones 물질을 생성한 개체의 자손이, 그렇지 않은 개체의 자손보다 더 커다란 헬멧을 만든다는 점이다. 그 후손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2,3
유전은 DNA 언어를 사용하여 암호화된 명령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환경은 유전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꼬리를 자르거나, 목을 늘리는 것이 유전적 명령을 다시 쓰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정보의 흐름은 단지 일방향 (DNA로부터 유기체로) 이라는 신조는 진실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발견이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지지하는 것일까? 그리고 진화를 위한 새로운 메커니즘이 제시된 것일까? 대답은 아니다 (No) 이다.
물벼룩은 그들의 생애 동안에 더 큰 헬멧을 만드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그것이 돌연변이와 자연도태를 통해 조금씩 진화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그것 모두가 태초부터 설계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주장 모두 물벼룩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것은 잠재되어 있던 유전자의 '스위치 온'을 통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의 발견에 따르면, 스위치의 온, 오프는 전적으로 부모로부터 유전된다고 보여진다).4,5 앞에서 말한 이 새로운 발견은 단순히 이런 메커니즘의 확장인 것이다. 즉, 스위치 온 된 유전자가 그대로 켜진 채 자손에게 이어지는 메커니즘 말이다. 이것은 결코 무작위적 반응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율을 높여 대대에 번식하게끔 도와주게 프로그래밍 된 메커니즘인 것이다.
이 새로운 발견의 요점은, 그 부모세대 까지도(유전된 자손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 때문에 변이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환경에 의해 야기된 변이가 아니라, 미리 프로그래밍 된 반응이 환경에 의해 이끌려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어떠한 새로운 유전정보가 생겨났다는 증거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해 있던 것이다.
모든 진화 이론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는, 어떻게 이 모든 새로운 유전 정보가 생겨났는가에 대한 설명에 있다.6 즉, 수십억년 동안 미생물에서 까치, 기린, 목련, 분자생물학자 등으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게 한 새로운 유전 정보들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발견은 라마르크식 진화이론이나, 신다윈주의 믿음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물체들은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고, 고도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복잡성은 생물체가 전능하신 창조자에 의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매우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References
1. Of course, starting from biblical presuppositions would have made this obvious -- cf. circumcision.
2. New Scientist, 163(2202):12, September 4, 1999.
3. Agrawal, A.A., Laforsch, C., Tollrian, R., Transgenerational induction of defences in animals and plants, Nature 401(6748):60-63, September 2, 1999. Haukioja, E., Bite the mother, fight the daughter, Nature 401(6748):22-23, September 2, 1999.
4. Jerlstrom, P., Genomic imprinting, CEN Technical Journal 13(2):6, 1999.
5. Cohen, P., The great divide, New Scientist 160(2164):16, December 12, 1998.
6. Natural selection does not add information, it culls it. Mutations can occasionally give a survival benefit, but all examples to date, e.g. wingless beetles on a windswept island, have been losses of information. See the distinguished Israeli biophysicist Lee Spetner's book Not by Chance! The Judaica Press, Inc., New York, USA, 1996 (see review of Not By Chance!).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진화론의 주장/자연선택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J02
*참조 : 공룡 피 빨던 거대 벼룩 화석 발견 (벼룩도 살아있는 화석?)
http://ecotopia.hani.co.kr/45042
(2012. 3. 1. 한겨레)
공룡 피 빨았던 벼룩(1억6500만년 전) 화석 중국서 발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3/01/2012030101068.html?news_Head2
(2012. 3. 1. 조선일보)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2/i1/water_fleas.asp , Well-armed water fleas and radishes
출처 - Creation 22(1):56, December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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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어떻게 효소들은 작동하는가
: 그러나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물어보지 말고, 그냥 믿으라.
(How Enzyme Work :But Do'nt Ask Where They Came From : Just Believe)
효소(enzymes)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 또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 반응(reactions)들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세포내의 단백질 기계들이다. Jan. 9 issue of Science1 (2004. 1. 9)에서 발표한 4명의 과학자들은 이들 생물학적 촉매들의 경이로운 힘을 기술하고 있다. 효소 촉매작용(enzyme catalysis)은 1019배로 반응을 가속시킬 수 있는데, 반응이 진행되는데 있어서 최고 수준에서 분자적 인식(molecular recognition)을 포함하고 있다. 그 수치는 1천만조(10 quintillion) 배로 반응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05/06/2003 일자 헤드라인을 보라). 효소를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설명들을 적은 후, 그들은 “효소 촉매작용을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이러한 개관(overview)은, 효소 촉매작용에 대해 다양한 기원들이 제안되고 있는 (그들은 몇몇 제안된 이름들을 목록화 하였다) 다수의 논문들이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특히 시기적절 하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논문은 이들 제안들을 통합하는 구조 틀을 제공하고 있다. 그들은 효소들이 그들의 특수한 반응들을 수행하는 방법을 규명하기 위하여 비율 이론(rate theory)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사용하였다. 그들의 표에는 식물과 동물로부터 선정된 효소들에 의해서 사용된 16 가지의 메커니즘들을 목록화 하였다. 여기에 tyrosine-tRNA synthetase 라는 한 예가 있다 :
“효소-이행 상태와 효소-중간체 상보성(complementarity)은 타이로신의 활성화의 이행 상태를 안정시키고, 중간체가 만들어지는 방향으로 7 자릿수의 크기로 화학 평형을 이동하는 것을 돕는다. 화학 과정에 의해 유도된 고리 운동(loop motions)들은 이들 상호작용을 만드는 것에 있어 필수적이며, 활동적인 부위에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효소 tRNA-synthetase 의 상세한 것에 대해서는 07/21/2003과 06/09/2003 headlines을 보라).
이들 메커니즘의 상세한 수학적 분석을 제공하고 난 후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내리고 있다.
“진화론적 선택은 반응들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광범위한 분자적 메커니즘들을 사용하는 효소의 발달을 가능하게 하였다. 원칙적으로 그런 반응율의 강화가 준열역학적 활성화 자유 에너지를 낮추거나, 일반화된 전달계수를 늘리는 것으로부터 기인할 수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분석은 전자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현대의 이행 상태 이론(transition state theory)이 이들 과정을 설명하는데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있다.[1]
[1] Garcia-Viloca, Gao, Karplus, and Truhlar, “How Enzymes Work: Analysis by Modern Rate Theory and Computer Simulations,” Science 09 Jan 2004, 10.1126/science.1088172.
진화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믿음이 요구된다. 사실, 그들의 믿음은 너무 커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는 훈계의 말씀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과학자들은 단백질 기계(효소)들은 너무도 효율적이고 너무도 정확해서, 반응을 1천만조 배나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다고 기술하였다. 그들은 또한 이들 단백질 기계들은 손과 장갑처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단백질들은 아미노산들의 긴 사슬로 되어있고, 그 배열이 기능을 수행하는데 가장 결정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은 효소들이 메커니즘을 수행하기 위해 실제로 구부러지고 비틀어져 있는 것들을 기술하였고, 작동하고 있는 수많은 다양한 경로들을 목록화하여 놓았다. 그러나 '진화론적 선택(evolutionary selection)‘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함으로서, 이러한 복잡성과 특수성이 모두 우연히, 그리고 지시되지 않은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연구자들이 화학물질들의 무작위적인 연못으로부터 이러한 메커니즘들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줄 것을 바랐었다. 효소 촉매작용들에 대한 개관(overview)이 효소들의 기원에 관한 흥미를 끄는 시점에서 시기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서언에서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효소들의 기원에 관한 어떠한 설명도 찾아볼 수 없다. 얻어지는 것이라곤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 그러한 모든 것들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가정(assumptions)들뿐이다. 예를 들면 : (1) “효소에 관한 연구는 자연선택이 준열역학적 활성화 자유 에너지를 낮추기 위해 많은 경로들을 이끌어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2) “진화론적 선택은 반응들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광범위한 분자적 메커니즘들을 사용하여 효소의 발달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자연선택에 대한 철저한 믿음은 어떠한 이론이나 설명도 필요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의 글은 맹목적이고 어린애와 같은 믿음을 가진 교리적인 글인 것이다. 이것은 진화론자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지식한 사고의 또 하나의 예인 것이다. 이들 과학자들은 수학과 화학에 대한 그들의 설명들을 살펴볼 때에 분명히 현명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윈의 사원에 있는 우상들에게 허리를 굽히고 경배하면서, 그리고 “자연선택이여, 자연선택이여, 홀로 이 모든 경이를 만드신 전능자시여” 라고 노래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쉽게 그들의 신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이용 가능한 다음의 Evolution: Possible or Impossible? 글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진화론의 주장/자연선택에 있는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J0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0104.htm ,
출처 - Creation-Evolution Headlines, 2004. 1. 12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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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타주의와 공생관계는 진화를 거부한다
(Altruism and Symbiotic Relationships)
Dr. Walt Brown
1) 이타주의 (Altruism)
사람과 많은 동물들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며, 그들의 삶을 희생하기도 한다.1 각 종의 생존경쟁을 말하고 있는 자연선택에서, 이타적인(자기 희생의) 개체는 빠르게 제거되어야만 한다. 그러한 위험하고 희생이 큰 행동이 어떻게 유전될 수 있었는가? 왜냐하면 이타적 행동을 지시하는 유전자를 가지는 개체는 그것을 후손에게 전달하는 (생존하는) 것이 방해받을 것이기 때문이다.2 만약 진화가 옳다면, 이기적인 행동은 이타적인 행동을 완전히 제거했을 것이다.3 더군다나 사기성과 공격성은 협력 체제를 붕괴시켰을 것이다. 이타주의는 진화론과 모순된다.4
2) 공생관계 (Symbiotic Relationships)
서로 다른 많은 생물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무화과나무(fig trees)와 무화과말벌(fig gall wasp)5, 유카나무와 유카나방(yucca moth)6, 많은 기생충과 숙주들, 화분을 가진 식물과 꿀벌...등이다. 여왕벌, 일벌, 숫벌로 구성된 꿀벌 집단의 숫자도 상호의존적이다. 만약 상호의존적인 공생관계에서의 한 개체가 먼저 진화하였다면(가령 동물 이전에 식물, 화분식물 이전에 꿀벌, 또는 여왕벌 이전에 숫벌...), 그것은 생존할 수 없다. 그룹의 모든 구성원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가 같이 동시에 진화하였어야만 한다. 다른 말로하면 이것은 창조다.
*참조 : Human Mind Outwits Darwinian Models
https://crev.info/2008/05/human_mind_outwits_darwinian_models/
References and Notes
1.".... the existence of altruism between different species - which is not uncommon - remains an obstinate enigma.” Taylor, p. 225.
Some inherited behavior is lethal to the animal but beneficial to unrelated species. For example, many animals (goats, lambs, rabbits, horses, frogs, toads) scream when a predator discovers them. This increases their exposure but warns other species.
2. From an evolutionist’s point of view, a very costly form of altruism occurs when an animal forgoes reproduction while caring for another individual’s young. This occurs in some human societies where a man has multiple wives who share child-raising duties, even though only one wife bears children. More well-known examples include celibate individuals (such as nuns and many missionaries) who devote themselves to helping others. Such traits should never have evolved, or if they accidentally arose, they should quickly die out.
Adoption is another example.
From a Darwinian standpoint, going childless by choice is hard enough to explain, but adoption, as the arch-Darwinist Richard Dawkins notes, is a double whammy. Not only do you reduce, or at least fail to increase, your own reproductive success, but you improve someone else’s. Since the birth parent is your rival in the great genetic steeplechase, a gene that encourages adoption should be knocked out of the running in fairly short order. Cleo Sullivan, 'The Adoption Paradox,' Discover, January 2001, p. 80.
Adoption is even known among mice, rats, skunks, llamas, deer, caribou, kangaroos, wallabies, seals, sea lions, dogs, pigs, goats, sheep, bears, and many primates. Altruism is also shown by some people who have pets - a form of adoption - especially individuals who forgo having children of their own in order to have pets.
Humans, vertebrates, and invertebrates frequently help raise the unrelated young of others.
"... it is not clear that the degree of relatedness is consistently higher in cooperative breeders than in other species that live in stable groups but do not breed cooperatively. In many societies of vertebrates as well as invertebrates, differences in contributions to rearing young do not appear to vary with the relatedness of helpers, and several studies of cooperative birds and mammals have shown that helpers can be unrelated to the young they are raising and that the unrelated helpers invest as heavily as close relatives.” Tim Clutton-Brock, 'Breeding Together: Kin Selection and Mutualism in Cooperative Vertebrates,” Science, Vol. 296, 5 April 2002, p. 69.
Six different studies were cited in support of the conclusions above.
3."Ultimately, moral guidelines determine an essential part of economic life. How could such forms of social behavior evolve? This is a central question for Darwinian theory. The prevalence of altruistic acts - providing benefits to a recipient at a cost to the donor - can seem hard to reconcile with the idea of the selfish gene, the notion that evolution at its base acts solely to promote genes that are most adept at engineering their own proliferation. Benefits and costs are measured in terms of the ultimate biological currency - reproductive success. Genes that reduce this success are unlikely to spread in a population.” Sigmund, Carl et al., 'The Economics of Fair Play,” Scientific American, Vol. 286, No. 1, January 2002, p. 87.
4. Some evolutionists try to explain this long-standing and widely recognized problem for evolution as follows: 'Altruistic behavior may prevent the altruistic individual from passing on his or her genes, but it benefits the individual’s clan that carries a few of those genes.” This hypothesis has five problems - the last two are fatal.
Observations do not support it. [See Clutton-Brock, pp. 69-72.]
"... altruistic behavior toward relatives may at some later time lead to increased competition between relatives, reducing or even completely removing the net selective advantage of altruism.” Stuart A. West et al., 'Cooperation and Competition between Relatives,” Science, Vol. 296, 5 April 2002, p. 73.
* If individual X’s altruistic trait was inherited, that trait should be carried recessively in only half the individual’s brothers and sisters, one-eighth of the first cousins, etc. The key question then is: Does this 'fractional altruism' benefit these relatives enough that they sire enough children with the altruistic trait? On average, one or more in the next generation must have the trait, and no generation can ever loose the trait. Otherwise, the trait will become extinct.
* If X did not inherit the altruistic trait but got it from a rare mutation, then probably no brothers, sisters, or cousins have the trait. No matter how much the individual’s clan benefits, the trait will become extinct. From an evolutionist’s perspective, all altruistic traits had to originate this way. Therefore, altruistic traits cannot survive the first generation.
* The hypothesis fails to explain altruism between different species. Without discussing examples that require a knowledge of the life patterns of such species, consider a simple example above of humans who forgo having children in order to care for animals.
5. Oscar L. Brauer, "The Smyrna Fig Requires God for Its Production,”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Vol. 9, September 1972, pp. 129-131.
* Bob Devine, Mr. Baggy-Skin Lizard (Chicago: Moody Press, 1977), pp. 29-32.
6. Jerry A. Powell and Richard A. Mackie, Biological Interrelationships of Moths and Yucca Whipplei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6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cience.com/
출처 - CSC
진흙탕물 : 자연선택의 분명한 혼란
(Muddy Waters : Clarifying the confusion about natural selection)
자연선택이란 무엇인가?
왜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이 진화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는가?
그것은 창조모델 안으로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은 종종 '적자 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이라고도 불리워진다. 또한 최근에는 '적자 번식(reproduction of the fittest)' 이라고도 불린다. 많은 이들은 자연선택의 증거가, 무기물 분자가 미생물이 되고, 훗날 잉어, 목련, 사람으로 변하는 학설의 증거가 된다는 사실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진화에 대한 거의 모든 설명들이 진화이론을 명백히 밝히는데 실패함으로써,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자연선택은 진실이 아니다. 자연선택은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다윈의 표절?
자연선택은 실제 매우 솔직하고 상식적인 통찰력이다. 창조론자이고, 화학자이며 동물학자인 Edward Blyth(1810-1873)는, 다윈 이전인 1835-7년에 자연선택에 대해 언급했다. (다윈은 Blyth 의 생각을 매우 유사하게 도용하였다). 한 유기체가 그 처한 환경에서, 어떤 유전적 특징 혹은 성질을 갖게 되면, 그것은 다음 세대로 그 유전자가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큰 기회를 제공한다. (그 유전적 특징을 가지지 않은 동류와 비교해서). 성공적으로 다음 세대로 이어진 그 특징 혹은 성질은, 동일 개체군내에서 더욱 증가하게끔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 이와 같은 기회들은(성공적 번식을 위한) 다음의 몇 가지 방법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
.생존의 더 큰 기회.
유기체는 생존을 위해서 더욱 적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적자생존'의 의미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물리적인 적응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당신의 생존 가능성이 크다면 (혹은 적다면), 당신은 자손 번식의 가능성 또한 큰(혹은 적은) 것이다. 이같이 하여, 당신의 유전자가 이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털을 길게 하는 유전자는 추운 기후에서 사는 동물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흰색을 나타내게 하는 유전자는 극지방에서 사는 곰의 위장술을 높일 것이다. (동물의 위장술이 반드시 잡아먹히지 않도록 돕는 것만은 아니다. 포식자가 먹이감에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을 돕기도 하니까). 이런 연유로 굶주림을 면하기도 하기 때문에, 유독 밝은 색깔을 지닌 곰은 다음 세대에 이 유전자를 더욱 쉽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짝을 발견하는데 더 큰 기회.
만약 어떤 어류의 암놈이 습관적으로 긴 지느러미의 수놈을 선호한다면, 긴 지느러미의 유전자를 지닌 수놈은 번식에 더 큰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 해서 그들의 유전자(긴 지느러미의 유전자를 포함한)가 전해질 가능성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긴 지느러미의 유전자(이로 말미암아 긴 지느러미를 가지게 된 어종)는 그 개체군내에서 더욱 일반화될 것이다.
.번식을 성공시키기 위한 또 다른 방법.
한 식물의 종들을 생각해보자. 종자들은 바람에 의해 흩어진다. 만약 공기 중에서 다른 종자들보다 더욱 가볍게 뜰 수 있게 하는 유전자를 지닌 종자가 있다면, 이 같은 두드러진 특징을 지닌 그 유전자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선택되어 광범위하게 퍼질 것이다.
반대로, 만약 그 식물 종들이 한 작은 섬에서 자란다 하자. 너무 멀리까지 날아가 버리는 종들은 쉽게 바다에 빠져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적게 날아가는 유전자가 더 유리해진다. 공기중으로 짧은 거리나 긴 거리를 날아가기 위한 유전자들은 둘 다 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결과로 말미암아, 섬 안 식물 개체군의 모든 개체가, 오직 '짧게 날아가는' 종자만을 생산하게 되고, '멀리 날아가는' 유전자는 제거되는 것이다.
적응 (Adaptation)
이런 방법으로 생물은 환경에 좀더 적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뿌리의 길이에 대한 여러 유전자를 가진 식물 개체군에 대해 말해보자. 그 개체군은 세대가 지나가면서, 반복적으로 매우 건조한 기후에 노출되었다. 그래서 그 식물은 깊은 지하수에까지 내려가는 긴 뿌리를 가진 것들만이 생존하기 쉬워졌다.
그리하여, 짧은 뿌리의 유전자는 도태된다. 곧, 짧은 뿌리의 유전자를 가진 식물체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그 식물은 '긴 뿌리' 형이 되는 것이다. 이제 그 식물들은 그들의 이전 세대 보다 더욱 건조한 기후에 적응되었다.
다윈의 신념
이 같은 적응(환경에 세밀하게 조절되는)은 다윈에 의해, 본질적으로 독창적이고, 오류 없이 사실적인 것으로 가공되었다. 만약 짧은 시간동안 환경에 적응된 '새로운' 변종이 생길 수 있다면,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어떤 새로운 특징들을 지니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생물체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신념에 따르면, 폐(lungs)는 원래 폐가 없었던 장소에서 발생하였고, 깃털도 깃털이 없는 어떤 생물체에서 발생하였다. 다윈은 유전이 정말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오늘날의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는 생식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암호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정보(유전자)의 우편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자연선택이 실제로는 유전정보를 제거하고 있는 것임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는다. 자연선택은 당연히, 어떤 새로운 종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 위의 예를 보면, 그 식물 개체군은, 어떤 유전자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건조한 기후에서 더욱 잘 생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그 식물은 이전 세대가 지녔던 유전정보의 일부분을 잃었다.) 긴 뿌리를 만드는 유전정보는 이전 세대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자연선택은 개체군에 어떤 새로운 종을 만들거나, 증가시킬 수 없다.
적응(adaptation), 또는 분화(specialization)은 항상 유기체 내에 있는 일부 유전정보의 영구한 소실을 대가로 지불하고 있다. 만약 환경이 짧은 뿌리 식물이 생존하는데에 유리하도록 다시 되돌아갈지라도, 짧은 뿌리의 유전정보가 기적적으로 '재등장'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개체군은 더 이상 같은 방법으로는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짧은 뿌리 종이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한번 더 부모 집단에 혼합된 유전자들(긴뿌리, 짧은 뿌리 두 종류의 유전자가 섞인)이 존재하는 방법 밖에 없다.
변이(variation)가 만들어지는 한계
이와 같이 유전정보가 소실되는 과정에서, 유전자 풀이 유전정보를 무제한 소실시키지 않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변이가 제한된다. 이것은 자연선택과 정확히 똑같은 원리인 인공적인 교배에서 볼 수 있다.
말(horse)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이 야생마로부터 일하는 큰 말, 작은 조랑말 등 모든 종류의 품종들을 만들어 왔다. 그렇지만, 곧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왜냐하면, 선택은 오직 기존에 있는 것 내에서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흰 털, 갈색 털을 가진 품종의 말을 번식시킬 수는 있다. 그렇지만,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녹색 털을 가진 품종의 말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녹색 털의 유전정보는 말 개체군 내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번식하는 과정에서, 각 품종이 야생종(wild type) 보다 적은 유전정보가 전해지기 때문에, 다양성이 제한되기도 한다. 상식적으로 작은 Shetland 당나귀로부터 Clydesdale 품종을 이끌어 낼 수 없음이 확실하다. 유전정보가 그곳에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분화(또는 적응)가 클수록, 유전자 풀은 대폭적으로 줄어들고, 삭감되어지기 때문에, 앞으로의 변이 가능성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명백하고 논리적인 이같은 사실들은, 다윈(그리고, 엉성한 공교육에 속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무제한적 과정의 소산이라는 자연선택이 창조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를 확실히 밝혀주고 있다.
진화론자들도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진화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종이 태어나는데 필요한 새로운 정보가 만들어지는 다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옛날 옛적에 폐가 없는 한 생명체가 있었는데, 그때 어디선가 폐를 만드는 유전정보가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깃털은 아직까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훗날에 생겨났다. 이것의 기본 전제는 자연선택이지만, 자연선택은 스스로 생명체를 창조할 능력이 없다. 그것은 기존에 있던 것 중에 몇 가지를 고르는 '선택'의 과정에 불과하다.
진화론자들은 새로운 정보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자연선택은 단지 '추려냄 (cull)' 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진화론자들은 돌연변이(번식 과정에서의 우연한 복제 실수)가 초기 (유전) 정보들을 만들고 자연선택이 작용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서로 다른 주제이다. 설득력 있어 보이는 돌연변이설도, 유전정보를 증가시킬 수는 없다. 돌연변이는 유기체에 심각한 손상을 유발할 뿐이다.2 독일 Braunschweig에 있는 연방 물리 기술연구소의 세계적인 유전정보 과학자인 Werner Gitt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돌연변이를 통해서 유전정보가 생성될 수 있다는 학설에는, 어떠한 자연 법칙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어떠한 물리적 과정 혹은 물질적 현상도 유전정보를 만들어낼 수 없다.' 3
과학적인 오류를 지적한 그의 이와같은 도전적인 말에 대해 어떠한 답변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적응에 유리했던 돌연변이까지도, 자연선택이 작업하기 위한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소실만을 보여주었다.4
요약
1. 자연선택은 유전정보를 증가시키지 않는다. 사실 정보를 감소시킨다.
2. 진화는 새로운 정보가 증가되는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3. 자연선택이 진화과정의 안내자가 되기 위해서는, 돌연변이(유전적 복제 실수)에 의해 새로운 유전정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4. 모든 연구된 돌연변이들은 무작위적인 과정으로 정보의 소실을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5. 진화가 일어나는 예로써, 자연선택(개체군 내에 유전정보가 소실되는)을 사용하는 사실 자체도 매우 비논리적이다.
6. 자연선택은 유전자 풀 내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만들어진 유전정보를 토대로 작동되고 있다.
자연선택은 유기체가 그 처한 환경에 '적응'하는 좋은 방법이고, 쇠퇴해 가는 세상에서 멸종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방법인 것이다. 하나의 커다란 유전자 풀이 작게 '조각조각' 남으로써, 자손세대에서 다른 종이(말의 많은 품종처럼) 생겨날 수 있게 된다.
비록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품종이 출현한다 할지라도, 새로운 유전정보가 출현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방주에서 보다, 오늘날 더욱 다양한 생물이 있는 이유인 것이다.
진화론의 신봉자들이 진화가 일어나는 과정에 대한 확실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자주 이러한 하향적인 과정들(자연선택)을 가지고 무기물로부터 사람까지 진화하였다는 상향적인 과정을 설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과 같이 교육과 지식이 증가되는 세상에서, 생물학적 변화에 관한 사실들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실된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말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들이 이해하는 것을 돕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며, 그들이 진실된 역사에 견고히 서게될 수 있도록 도와야할 것이다.
References
1. Taylor, I., In the Minds of Men, TFE Publishing, Toronto, Canada, pp. 125-133, 1984.
2. From a Frog to a Prince video, produced by Keziah, distributed by Answers in Genesis. See also Spetner, L.S., Not by chance! (above, right), The Judaica Press Inc., New York, 1998.
3. Gitt, W., In the beginning was information, Christliche Literatur-Verbreitung, Germany, p. 79, 1997.
4. Wieland, C., Beetle bloopers, Creation 19(3):30, 1997.
*참조 : Natural selection cannot explain the origin of life
http://creation.com/ns-origin-of-lif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3/i3/muddywaters.asp ,
출처 - Creation 23(3):26-29, June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6
참고 : 4511|4398|4392|4350|4301|4309|4300|4270|4202|4185|4177|4153|4142|4122|4105|4088|4089|4061|4020|4005|4004|3978|3935|3930|3920|3897|3878|3874|3847|3859|3779|3375|3712|3727|3732|3718|3652|3607|3608|3409|3413|3355|3373|3315|3202|3214|3266|3174|3097|2767|2513|2157|2347|2169|2025|2089|664|695|442|498|423|4692|4827|5005|5026|5081|5130|5420|5443|5499|5516|5683|5740|5826|5954|5979|5991|5994|6098|6132|6258|6366|6438|6490|6501
유전학 : 진화론의 숙적
(Genetics : Enemy of Evolution)
Lane P. Lester
유전학과 진화론은 이 두 개념이 태어났을 때부터 원수지간이었다.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Gregor Mendel)과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동시대 사람들이다. 다윈이 피조물들은 다른 피조물로 변화될 수 있다고 주장할 때, 멘델은 개체의 특징들은 불변이란 것을 보여주었다. 다윈사상은 유전에 관해 잘못된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관념에 기초하고 있는 데 반해서, 멘델의 결론은 조심성 있는 실험에 근거를 두고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왜 멘델의 이론은 거의 35년 동안이나 주목 받지 못하고 방치 되었을까?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 이유를 추론하는 데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내 추론은 이러하다. 즉, 다윈의 사상이야 말로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를 외면하고, 심지어 그분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주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19세기가 끝날 무렵에 이르러서, 다윈이론과는 궤도를 달리하는 조사들은 멘델이 발견한 원칙들을 분명하게 확인하였기 때문에 진화론자들도 어쩔 수 없이 멘델의 원칙들을 진화론에 편입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였으며, 또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선별적이다. 그들은 현대 유전학의 포괄적 함축을 무시함으로써만이 진화론이라는 허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관해서 이만큼만 해두고 여기서 나는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오히려 생물과 유전학의 증거를 창조주의 능력과 영광에 돌리는 일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의 오류들을 지적하는 일에 너무도 오랜 시간을 집중하였던 반면에 창조의 진리를 밝히는 사역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을 할애했다. 진화론의 전도사는 우리들을 창조주의자라고 부르기 보다는 反-진화론자로 부르기를 선호하는 데는 그 나름으로 얼마쯤은 옳다고 하겠다. Dr. William Mayer는 반-진화론자들이 창조의 모델은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화의 모델 안에 있는 약점들만을 들추어내고 있을 뿐이라고 거듭거듭 주장한다. 만약에 서로 경합하는 두 개의 개념이 존재한다면, 한 쪽을 괴멸시킨다는 것은 다른 한 쪽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들어낸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창조론은 스스로를 현대 과학의 근본으로서 충분히 개발되기 전에는 적절한 수용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Tom Bethel은 National Review 지에 경제에 관한 글을 기고하면서, ”과학에 있어서나 경제에 있어서나 마찬가지로, 어느 한 이론을 부인하려면 반드시 그 이론에 대체할 만한 가설의 대두를 기다려야만 한다. 예컨대, 자연선택에 관한 다윈의 이론은 그 이론이 표방하는 순환논리적 본질(circular nature) 때문에 이 이론이 주장하는 의미가 결여되었다는 최근의 폭로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경쟁 이론이 부족한 덕분으로 살아남았다.” (Bethell, 1980, p. 1562). 내가 믿기로는, 현실적으로 창조론에 근거한 과학이론이 태부족하기 때문에, 진화론은 전반적인 분야에서 호응을 받으며 우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 안에는 창조론에 대한 철학적으로 거부 의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되어져 있다.
그렇지만 다행하게도 대세는 바뀌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의 모델을 허물어뜨리는 일보다, 창조론의 모델을 쌓아 올리는 일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기독교대학은 물론이고 인문대학에서도 창조론에 근거한 과학이론을 재구축 (rebuild)하기 위한 연구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내가 재구축이라고 말한 이유는 현대 과학이론의 개발은 누구보다 먼저 창조론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창조이론가들은 합리적인 창조주가 합리적인 우주를 창조하였기 때문에, 합리적인 관찰, 실험, 그리고 설명을 통해서 창조이론을 습득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그들이 합리적인 까닭에 나는 이 단어를 썼다.
이제 우리는 유전학에서 몇 가지 증거들을 샘플로 제시해 보자. 그것이 진화론보다는 창조이론에 근거한 새로운 생물학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 증거를 변이(variation)의 4가지 원천 (source)에 비추어 정리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즉, 환경(environment), 재조합(recombination), 돌연변이(mutation), 그리고 창조(creation)가 그것들이다. 이들 4가지 원천들을 배합(combination) 해보면, 생물들 사이에 개재하는 모든 차이점들을 남김없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Environment )
나는 환경(environment)이라는 단어를 생물이 살아있는 동안 받는 모든 외적 영향의 요소들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려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남보다 더 많이 햇볕에 노출된 생활을 하였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더 검은 피부색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또는 어떤 사람은 남보다 더 많이 운동을 하였다는 이유 때문에 더 근육질의 몸을 가질 수 있다. 혹은 어떤 사람은 먹는 것을 적절히 조절하였다는 이유 때문에 병에 대한 저항력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환경원인적인 차이점들은 그런 것들을 소유하는 생명체들에게는 크게 중요할는지 모르나, 그런 차이점들은 본인의 죽음과 함께 살아지기 때문에, 후대로 이어갈 생물체의 역사(history of life)에는 중요하지 않다. 즉, 그런 것들은 유전이 되지 않는다. 1800년대 중반에 창조주의 존재를 부인하던 몇몇 과학자들은 환경원인에서 얻은 차이점들이 유전이 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찰스 다윈도 이 오류를 받아들였던 데서 그는 생물은 다른 생물로 변동될 수 있다는 믿음을 쉽게 가지게 됐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돼서 그는 기린이 긴 목을 하게 된 원인을 '신체 부위를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체득한 결과의 유전효과”라고 하였다. (Darwin, 1958, p. 202). 먹이 찾기가 제한되었던 계절의 연속 속에서 기린은 높은 나무 가지에 달린 잎사귀를 겨냥하여 목을 높이 뽑아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돼서 길어진 목을 후손한테 물려주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창조론에 근거하여 생명 세계를 연구한 사람이라면, 완벽한 신의 창조물은 새로운 변이 없이도 완성된 변이들(variations)을 이미 가지고 있어서 새로운 변이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오류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재조합(Recombination)
변이의 두 번째 원천은 재조합(recombination)이다. 이것은 유전인자의 뒤섞임(shuffling)을 수반한다. 어린 아이가 양친에 닮지만 어느 한쪽과도 꼭 판에 박듯이 닮지는 않는 이유다. 멘델(George Mendel)의 재조합원칙의 발견은 유전과학에 크게 공헌한 바 있다. 멘델은 완두콩 속에 있는 7쌍의 특색들을 연구하였다. 그는 매 쌍마다 한 세대 동안 들어나지 않던 특색들이 결코 영영 상실된 것이 아니었다는 결과를 보여주었으며, 또 새로운 특색들이 나타났을 때에도 그것은 변이요소들이 애초부터 유전인자 속에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밝혔다. 재조합은 피조물의 종류 (kinds) 안에 한정된 변이만을 가능케 한다. 어쨌거나 그것은 한정적이다. 그 이유는, 실질적으로 모든 변이들은 이미 변이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유전인자가 뒤섞임으로써 생성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재조합을 통해서 생성되는 한정적인 변이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야생 조류로부터 다양한 품종의 닭들이 생산되었다. 수많은 변이를 말한다. 그러나 결코 새로운 변동(varieties)들이 생산된 것은 아니다. 야생 조류의 유전인자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변동들 속으로 갈려져 섞였을 뿐이다. 즉 한정적 변이다. 식물의 개량종 육성 과학에서부터 우리는 사탕무의 실험 결과를 알고 있다. 1800년 초 개량식물 육성실험을 하던 사람들은 사탕무의 당도함유량을 높이고자 하였다. 그들의 실험은 성공하였다. 약 75년에 걸치는 반복적인 선택실험의 결과로 6%의 당도 함유율을 16%로 높이는 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당도함유량의 증가는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더 이상의 선택실험의 반복으로도 당도함유량을 높일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모든 유전인자들이 당도 생산을 위해 오직 하나의 변동 (variety)으로 집약되었으나, 더 이상의 당도 증가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기에서 우리는 찰스 다윈이 제시하였던 재조합의 예를 검토하여 보기로 하자. 1831년에 시작되었던 그의 세계여행 기간 동안에, 다윈은 넋을 잃게 할 정도로 흥미 있는 동식물들을 수없이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어떤 것도 그가 갈라파고스(Galapagos) 섬에서 보았던 것들만큼 넋을 잃게 하지는 못 했다. 그런 것들 가운데 일단의 핀치(finch)라는 새가 있었다. 이 단일 품종에서 우리는 외형상 그리고 삶의 유형에서 광범한 변이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 섬의 핀치새의 생활 유형과 외형이 특이하게 된 이유를 다윈은 다양한 자료들로부터 제시했던 것이다. 즉, 아마 몇 마리의 핀치새가 남미본토로부터 그 섬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 왔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오늘날의 그 섬의 핀치새들은 옛날의 그 개척자의 후손들이라고 보고, 다윈은 그 새들을 진화의 한 예로 보았지만, 우리는 오늘날의 그 새들을 피조된 단일 품종 내에서의 재조합의 결과로 보는 것이다. 그 개척자 핀치새들은 자신들 내부에 충분한 유전인자의 변이요소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다양한 변이 품종들이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돌연변이(Mutattion)
여기서 변이의 세 번째 원천을 검토하기로 하자. 돌연변이는 유전인자의 복사 과정에서 잘못된 실수로 결과되어 생긴다. 모든 살아있는 세포들은 DNA, 즉 유전분자 (genetic molecule)를 복사하도록 설계된 복잡한 분자조직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복사과정에서 생기는 실수와 마찬가지로, 유전인자의 복사과정에서도 드물기는 하지만 잘못이 일어나기도 한다. 매 10,000번에서 100,000번의 복사 과정에서 어느 하나의 유전인자가 실수로 잘못될 수 있다. 그 세포도 물론 그런 실수요인들을 정정할 수 있는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돌연변이는 어떻게든 유전인자 속으로 숨어드는 수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돌연변이는 어떤 변화를 초래할까? 어떤 돌연변이 요소는 아무런 변이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 수도 있다. 유전암호 (genetic code)는 상당 분량의 정보 중복(redundancy)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DNA 내에서의 어느 정도의 작은 변화들은 결과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돌연변이 요소들은 어쩌다 변화를 일으키지만 그 정도가 너무 미미해서 그 생명체 자체에 알아볼 만큼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돌연변이 요소들은 생명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창조 모델의 측면에서 볼 때, 유전인자의 실수 요소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무작위적인 돌연변이가 초래하는 결과에는 어떤 것들이 예상될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실질적으로 유해할 것이 예상될 수 있다. 돌연변이 요소들을 갖게 된 생물체들은 예전보다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다. 몇 가지 예들은 이것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좀 재미있는 돌연변이의 예가 색소결핍증이다. 이 증세를 가지고 태어나는 식물이나 동물의 수가 적지 않다. 이 특이한 유전인자의 실수는 색소 생산을 방해한다. 백색증에 걸린 동물들한테서 다양한 해로운 부작용이 들어났다. 시력 손상이 그 한 예이다. 그런데 식물에 있어서는 색소결핍증은 치명적이다. 엽록소가 없으면 광합성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면 알뿌리로부터의 영양공급이 사라지게 되고, 곧 어린 식물은 죽어버린다. 돌연변이의 효과에 대한 철저한 실험에는 보통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가 그 어떤 자료보다 많은 우수한 정보자료의 원천으로 알려져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유전학자들은 초파리 육성을 시작했다. 최초의 돌연변이 실험이 보고된 1910년 이후 약 3,000 사례에 달하는 돌연변이들이 확인되었다. (Lindsley and Grell, 1967). 모든 돌연변이들은 유해하든가 아니면 무해하다. 즉, 그 어떤 돌연변이도 원 초파리보다 더 성공적인 초파리로 생산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정확하게 창조모델이 예측하였던 그대로였다.
여기서 한 발 옆길로 들어서서 돌연변이의 조정 가능성 유무를 검토해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돌연변이가 유기체(생명체)의 집단에 확산되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생명체는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돌연변이의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자연의 선택이 하는 역할 중의 하나다. 우리는 순환논리(circular reasoning)가 자연의 선택에 관한 토론장에 등장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연선택이 생명체의 여정에서 현실적이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부인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찰스 다윈이 우리들의 주의를 자연의 선택에 기울이게 하였다는 사실은 이 개념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1800년대 중반에 처량한 상황에 있었던 창조과학에 대한 평가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하겠다.
자연선택은 생명체에 있어서 분명히 바람직한 변이로 보이는 변이요소들에, 즉 미래 세대에 더 많은 소산을 약속할 가능성이 있는 변이요소들에 부여하는 이름표라고 할 수 있다. 자연선택의 실례 가운데서 모든 사람이 선호하는 예가 있는데, 그것은 영국에 있는 가지나방(Biston betularia) 이다. 그 누구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 나방은 언제나 두 종류로 존재한다. 즉, 점박이와 검은 단색 나방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영국에는 많은 나무들은 옅은 색 나무줄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무껍질의 색깔이나 또는 껍질에 붙어있는 이끼의 색깔이 옅었기 때문이었다. 이 색깔은 점박이 변종 나방에게 위장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새들은 검은색 나방을 잡아먹는 경향이 있었다. 이끼의 수집에 의하면 점박이가 검은색 나방보다 광범하게 우세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국에 산업시대가 오자 석탄이 에너지의 주된 원천이 되었다. 그 때 영국에는 환경보호국 (Environment Protection Agency)이 없었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사용된 석탄의 매연은 나무들은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사물 위에 숯 검둥이 더께를 입혔다. 나무줄기는 검은 색을 띠게 되었고, 점박이 나방의 위장은 역전되었다. 이제 검은색 나방은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되었고, 점박이 나방들은 두드러지게 눈에 띠었다. 얼마를 못 가서 검은 색 나방의 수가 점박이보다 훨씬 많아졌던 것이다. 이 현상은 자연의 선택과정의 역할이 긍정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측면이다. 위에서 기술된 예와,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한 결과로 어떤 지역에서의 생명체 집단군이 환경의 변화와 만났을 때의 예와 같이, 자연의 선택 역할은 그 생명체의 특성들의 조합을 높여서 그 생물체를 새로운 환경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하게 만든다. 자연의 선택이 거부하는 역할은 유해한 돌연변이가 발생하였을 때 그런 돌연변이들을 제거하거나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서 볼 수 있다. 돌연변이가 야기하는 불이익은 생명체 집단군에 자연의 선택 역할이 확산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유익한 돌연변이 같은 것은 없을까? 유익한 돌연변이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는 생각을 고수하는 내 동료 창조론자들과 나는 미안하지만 의견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익한 돌연변이라면 그것은 돌연변이를 갖게 된 생명체가 미래세대에 더 많은 소산을 기약하게 할 가능성을 돌연변이를 갖지 않는 생명체보다 더 많이 허락한다는 것뿐이다. 예컨대, 1914년 플로리다에서 생겼던 일인데, 토마토에 발생한 돌연변이가 그 성장 패턴에 병화를 주어 훨씬 쉽게 많은 소출을 냈다는 것이다. 이 돌연변이가 인간에 의해 선택되었기 때문에, 그 돌연변이는 전체 토마토 재배에 확대 적용될 수 있었다. 박테리아의 항생제 저항력을 위한 돌연변이는 성장환경이 온통 항생제로 오염된 가운데 있는 박테리아한테는 확실히 이롭다. 이러한 유형의 돌연변이들 중 그 어떤 것도 한 생명체 종류(kind)가 다른 종류에로 변하는 것에 관한 개념들과는 상관이 없는 돌연변이임은 물론이다.
하나의 변화 유형에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생명체의 신체구조나 기능이 감소된다든가, 상실한다는 사실이다. 다윈은 Madeira 섬에 서식하는 날개 없는 딱정벌레에 주목하였다. 심한 해풍 속에 서식하는 딱정벌레한테는 날개가 결정적으로 불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날개의 상실을 가져다 준 돌연변이는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경우가 시력이 없는 동굴 어류의 경우다. 시력은 손상되기 쉬운 기관이다.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식하는 생물체한테는 취약점을 감소시켜주는 돌연변이가 유익할 것이다. 비록 이러한 돌연변이가 결정적이고 유익한 변화를 만들어 주지만, 그 돌연변이들은 언제나 있던 것을 상실하는 것을 내포하지, 결코 없던 것을 새로 얻는 것을 내포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원래부터 날개나 시력이 없던 생물체한테 날개나 시력을 만들어준 돌연변이를 관찰한 사람은 없었다.
창조(Creation)
드디어 네 번째이며 마지막 변이의 원천인 창조(creation)를 검토해보자. 창조는 왜 생명체의 역사에 필요한 부분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즉, 앞에서 다루었던 3가지 변이의 원천들로서는 오늘날 우리가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생명체의 실상을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적합한 설명을 창조 모델에서 찾을 수 있다. 창조 모델의 근본적인 특성은 매 종류(kind)의 피조물 속에 유전인자 변이요소가 상당히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이것만을 가지고 우리는 같은 종류 (kind)에서 나온 말(馬), 노새, 그리고 얼룩말의 가능한 기원을; 같은 종류 (kind)에서 나온 사자, 호랑이, 그리고 표범의 가능한 기원을; 같은 종류에서 나온 약 118 종에 달하는 애완견들, 재칼, 이리, 그리고 여우의 가능한 기원, 등등을 설명할 수 있다. 각각의 종류는 생육하고 번식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신 창조주의 명령을 순종하였기 때문에 재조합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으며, 보다 많은 뜻을 담은 자연의 선택으로 하여금 각각의 종류들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저 광대한 동식물종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References
Bethell, Tom, 1980. 'The Death of Keynes: Supply-side Economics,' National Review, December 31, 1980. p. 1562.
Darwin, Charles. 1958.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The New American Library.
Lindsley, Dan L., and E.H. Grell. 1967. Genetic Variations of Drosophila Melanogaster, Carnegie Institution of Washington Pub. No. 62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research.org/crsq/articles/31/31_4a.html
출처 - CRSQ Vol 31(4),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