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적 명칭은 돌에 새겨져 있지 않다
: 페름기의 명명에 숨겨진 이야기
(Geological Names Are Not Carved in Stone)
David F. Coppedge
지질계(geological systems)의 명명 과정에 많은 임의성과 진화론이 개입되어 있다.
로데릭 머치슨(Roderick Murchison)이 이름을 붙이기 전인, 1841년 이전에 페름기가 존재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분명히 그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 지층암석은 존재했다. 그러나 "페름계(Permian System)"라는 개념은 그것을 해석하는데 사용되는 이론과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다. 용어와 개념이 한 문화의 사고(thinking)에 고착화되면, 내부적으로 합의된 분류법과 이론적 틀을 참조하지 않고는 지층암석을 바라보는 것이 어려워진다.
생각건대 다른 문화나 다른 국가들에서 그들의 지역 내에 있는 지층암석에 대해 완전히 다른 개념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현대 지질학자가 그러한 견해를 잘못 알고 있었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한 지질학자가 "당신이 틀렸어요! 그것은 그리블플릭스 록(Gribbleflix rock)이 아니에요. 그것은 페름기 지층이에요"라고 말한다면, 그의 이러한 말은 상대방을 위협해서 그의 이론적 틀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지, 자연에 관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이 아니다. 두 문화 모두 같은 관측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임의적인 명명
임의성(arbitrariness)이라는 말에는 많은 뉘앙스가 있다, 당연하다. 암석 지층은 갑작스러운 변화의 흔적을 나타낸다 : 부정합, 색깔의 변화, 암석의 변화, 화석의 변화...등등. 분석구(cinder cone, 화산의 한 형태로 주로 원추형이며 정상 분화구가 매우 큰 화산)는 석회암이나 빙퇴석에 붙여진 이름과 함께 취급될 수 없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암석층서의 연대와 표준화석의 연대와 같은 모든 부가적인 것들과 함께, 표준 "지질주상도(geologic column)"를 받아들인다. 지질주상도는 각 단위 내에 세부적인 지층들까지 명명되어 매우 상세하게 분류되어있다.
그러나 현대지질학의 임의적인 명명과 개념 또한 순수하게 중립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석탄기와 트라이아스기 사이에 삽입된 페름기와 같은 새로운 '지질 계(system)'를 지정할 때, 어떤 특성이 중요한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머치슨은 화석, 암석학, 측면 범위(lateral extent)를 새로운 계에 걸맞은 최종적인 특징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것이 장소마다 다를 때, 각각의 특징에 어떤 가중치를 부여해야 하는가? 어떤 지층은 한 곳에서는 매우 두꺼울 수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렌즈처럼 얇다. 표준화석(Index fossils)은 한 곳에서는 풍부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을 수 있다. 석회암과 사암은 둘 다 페름기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리고 왜 영국과 같은 세계의 한 지역에서 일어났던 지질학적 역사가 지구 반대편에서도 사실일 것이라고 가정해야 하는가? 각각의 대륙에 각각의 역사와 연대 체계를 가진 다른 지질주상도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들은 심사숙고해야 할 질문들이다. 행성과학자들은 엔셀라두스(Enceledaus)와 명왕성(Pluto)과 같은 천체들에 어떤 지역은 "오래된" 곳이고, 다른 지역은 "젊은" 곳이라고 부르고 있다.
연습 삼아, 만약 당신이 새로운 지질 체계(scheme)를 처음 시작한다면, 결정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여러 특성들을 고려해보라. 어떤 체계이든 이상(anomalies)이 발견되면, 보조 가설이 필요할 것이다. 즉, 지층 순서가 맞지 않거나(혹은 뒤집혀있거나), 연대와 맞지 않는 화석들, 또는 (아래 그림의 그랜드 캐니언처럼) 전체 지층이 사라진 지점, 위아래 지층이 서로 평탄하게 놓여있는 지점 등이 그러한 것이다. 사라진 지질계는 어디로 갔는가? 이야기가 필요하다.
.합의된 지질주상도의 연대 틀을 믿기 위해서는, 여러 곳의 큰 시간 간격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지질학자들이 다른 대륙을 탐험하기 전에, 많은 표준 지질학적 명칭들이 영국에서 발견된 지층들의 관측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 유타주와 몽골의 지층이 영국인들이 명명법에 깨끗하게 들어맞을 수 있을까? 만약 아프리카 부족이 세계를 지배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명칭을 영국인들에게 강요할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지질학도 문화와 정치문제들로 오염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풍자하면, 지질주상도는 인종차별주의적 제국주의 백인 남성들의 유산인가?
사례연구 #1
2022년 1월 런던 지질학회(Geological Society of London)의 학술지인 '지질학회지(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에 게재된 최근의 논문 두 편은 이러한 문제를 조사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런던 지질학회를 대영제국의 옛 제국주의 시대의 백인남성 클럽으로 풍자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말한다.)
2022년 1월 지질학회지에는 “페름계의 명명(The naming of the Permian System)”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게재되었다.(Benton and Sennikov,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179:1). 저자들은 로데릭 머치슨(Roderick Murchison)을 "오만한 제국주의적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페름기 명칭과 함께, 전 지구적인 지질주상도(a global geologic column)라는 새로운 개념의 마지막 간격을 채우기(완성하기) 위해서 동기를 부여받았다고 말한다. 이 개념은 100년 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머치슨은 영국과 러시아의 암석들에 기초하여, 아마도 전 세계의 지층암석들이 들어맞을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머치슨(Roderick Impey Murchison, 1792~1871)은 1841년에 페름계를 명명했고, 층서학적 기둥의 마지막 간격을 메웠다. 오늘날 우리는 이 성과를 지질학이 과학으로 정립된 위대한 순간으로 보고 있다. 머치슨은 확실히 그러길 바랐고, 당시 권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기 때문에, 런던 지질학회 회장으로서의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그 점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1841년부터 1843년까지의 연례 연설에서, 그는 전 세계 지질학자들의 업적에 눈을 돌렸고, 모든 사람들이 그의 실루리아기, 데본기, 페름기 체계를 포함하여 표준 층서학적 척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머치슨이 지질시대의 명칭을 긴급한 과업으로 보았고, 그의 오만하고 독재적인 접근 때문에, 그의 신조를 홍보할 수 있었다는 일반적인 가정과 들어맞는다.
무엇이 영국의 한 백인 남성에게 그의 지질계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할 권리를 주었을까? 그렇게 광범위한 결정에 대해 투표할 위원회나 의회는 없었다. 러시아인들은 그것을 좋아했고, 머치슨은 러시아인들을 좋아했다. 그러면 왜 미국인이나 인도네시아인들은 그들 자신의 지질계를 제안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물론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겠지만, 암석 단위의 명칭에 동의하는 것은 단지 문제의 일부에 불과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명명법은 그들이 해석하는 이론적 틀에 귀속되어 있었으며, 그것이 머치슨과 그의 추종자들이 전 세계적인 수용을 위해 추진했던 것이다. 머치슨은 결국 유명 인사라는 힘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머치슨에 의해 제안된 페름기의 개념은 1940년대까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페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생 동안 싸워야 했다.
우리는 머치슨이 정말로 국제적인 층서학적 시간 틀을 만들어서 전 세계에 적용하려는 제국주의적 계획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와 다른 사람들이 그가 했던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검토하였다. 우리는 머치슨의 영향과, 1840년 이후 러시아에서 그가 했던 일들을 검토하였고, 머치슨이 '페름기'라고 불렀는 것이 현재 페름기라고 불리는 것의 3분의 2만을 나타낸다는 놀라운 사실을, 그리고 정말로 선도적 지질학자들은 머치슨의 개념을 일생 동안 비판했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페름기'가 마침내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1941년에서 였다.
다시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 머치슨이 그 이름을 붙인 1841년 이전에도 페름기는 존재했을까? 저자들은 '오랜 데본기 논란(Great Devonian Controversy)' 등 수십 년 동안 지속됐던 논쟁들을 서술하고 있었다. 머치슨은 자신의 페름기를 밀어붙였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인 "트리아스(Trias)"를 따서 트라이아스기(Triassic)가 명명된 것을 싫어했다. 모든 문제가 결국 어떤 중립적인 과학적 방법이나 암석 기록으로 해결됐다고 가정하는 대신, 합의된 일치(consensus)를 끌어내고 토론을 끝내기 위해서, 다수결에 의한 '지배적이고 독재적인 접근법'으로 해결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모두가 동의할 때,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페름계의 명명'은 강한 영향력을 가졌던 사람이 지배권을 놓고 충돌했던 씁쓸한 인간들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벤튼과 세니코프(Benton and Sennikov)는 머치슨이 "1841년부터 1871년까지 그의 남은 생애를 가능한 많은 명명을 하는 데에, 그리고 국제 층서학적 기둥을 방어하고 장려하는데 보냈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한 "훈장을 받고 영예를 얻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CEH가 반복적으로 언급했듯이, 과학은 중립적인 영역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항상 실수하기 쉬운 사람들을 통해 영향을 받았다. 머치슨은 좋은 지도자였지만, 나폴레옹도 그랬다.
다음 글에서는 수정되고 있는 지질학적 지층들에 대한 현재의 논쟁을 살펴볼 것이다.
*참조 : 현대 지질학의 패러다임인 동일과정설이 붕괴되고 있다.
http://creation.kr/Geology/?idx=1290569&bmode=view
오래된 연대 상징물의 가면을 벗기다 1, 2 : 현대 지질학의 탄생지 식카 포인트
http://creation.kr/Geology/?idx=1290510&bmode=view
http://creation.kr/Geology/?idx=1290511&bmode=view
동일과정설 지질학자들도 이제는 증거에 직면해야 한다 : 노아 홍수를 비판하는 지질학적 주장에 대한 답변
http://creation.kr/Sediments/?idx=1288688&bmode=view
출처 : CEH, 2022. 1. 31.
주소 : https://crev.info/2022/01/geological-names-are-not-carved-in-stone/
번역 : 미디어위원회
지구 대륙의 기원 :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지질학의 ‘성배’
(Geology's "Holy Grail" Still Unresolved)
by Tim Clarey, PH.D.
진화 과학자들은 여전히 지구 대륙의 기원을 설명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미스터리를 지질학의 "성배(holy grail)"라고 부르기도 한다.[1] 그러나 PNAS 지에 실린 새로운 연구는 대륙의 기원을 설명하기는커녕, 대륙의 나이를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시간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2]
세속적 지질학자들은 오랫동안 대륙들이 대양 밑의 지각보다 훨씬 오래되었다고 주장해왔다.[1] 또한 그들은 거의 모든 대륙들이 시생누대(Archean Eon)로 불려지는 25억 년 이상으로 주장되는 시기에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고 믿고 있으며, 이는 미스터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3]
호주 멜버른에 있는 모나쉬 대학(Monash University)의 프리야다르시 초두리(Priyadarshi Chowdhury)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했다.[2] 그들은 싱붐 강괴(Singhbhum Craton)로 알려진 인도 동부의 한 지역에 보존된 퇴적암의 잔해를 조사했다.[4] 퇴적암과 아래의 화성암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연구를 통해, 그들은 대륙 지각이 약 33억 년에서 32억 년 전에 지표면이 되었다고 추정했다.[2] 그들은 석영과 같은 저밀도의 광물이 풍부한 뜨거운 마그마 기둥이 지각의 두께를 두껍게 하고, 땅 덩어리를 물 밖으로 밀어 올려 대륙 지각이 형성됐다고 가정했다.[5] 하지만 이 설명은 공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것은 관찰에 기초한 과학이 아니며, 시험해볼 수도 없다.
현재의 연구 이전에, 세속적 지질학자들은 대륙의 기원에 대한 그들의 최고의 설명으로 좁은 섭입대(subduction zones)에서 형성된 석영이 풍부한 유사한 마그마의 생산을 사용해왔다.[6] 그들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지판들의 충돌과 함께 충분히 녹은 섭입대가 대륙들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전해져왔다. 하지만 이것이 흔히 믿고 있는 것처럼 한 번에 대륙들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대륙들이 어떻게 동시에 모두 나타났는지는 대답되지 않고 있다.
지각판들이 모일 때 대륙 지각의 좁은 조각들이 형성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120마일에서 250마일 폭의 지역은 모든 대륙들의 거대한 크기를 설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다른 지구과학자들은 섭입대에서 형성된 이들 좁은 대륙지각 띠의 화학적 조성이 오래된 시생대 대륙 지각과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며, 미스터리에 또 다른 복잡한 문제를 더하고 있었다.[3] 이것은 세속적 과학자들이 수천 마일 폭의 대륙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게 만든다. 대륙의 기원은 여전히 미스터리한 지질학의 "성배"인 것이다.
"논쟁은 계속될 것 같다"라고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오리건 대학의 지질학 교수인 일리야 빈드만(Ilya Bindeman)은 말했다.
대륙의 기원에 대한 모든 세속적 설명은 추측으로 남아있다.[7] 그들의 연구는 대륙의 기원에 대해 답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의 연구는 대륙의 기원을 신화적인 장구한 시간으로 더 깊숙이 밀어넣을 뿐이며,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창세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대륙의 기원에 대해 더 잘 설명해준다. 그것은 꽤 분명하다. 하나님이 대략 6000년 전 창조주간 셋째 날에 그것들이 드러나게 하셨다.
References
1. Hecht, J. 2015. Rise of the upper crust. New Scientist. 226 (3017): 36-39.
2. Chowdhury, P., et al. 2021. Magmatic thickening of crust in non-plate tectonic settings initiated the subaerial rise of
Earth’s first continents 3.3 to 3.2 billion years ago.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118 (46).
3. Gazel, E. et al. 2015. Continental crust generated in oceanic arcs. Nature Geoscience. 8 (4): 321-327.
4. A craton is a large area of continental crust believed by secular scientists to have had very little recent deformation or mountain-building activity.
5. Lanese, N. Earth's 1st continents arose hundreds of millions of years earlier than thought. LiveScience. Posted on livescience.com November 8, 2021, accessed December 2, 2021.
6. A subduction zone is where older ocean crust is pulled down into the mantle at a convergent plate boundary (where plates move toward one another), creating a quartz-rich melt in the process.
7. Clarey, T. 2020. Carved in Stone: Geological Evidence for the Worldwide Flood. Dallas, TX: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128-131.
*Dr. Clarey is Research Scientist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doctorate in geology from Western Michigan University.
*관련기사 : 지구 최초 대륙, 33억 년 전에 출현했다. 기존 예측보다 약 7억 년 이상 더 빨리 생성돼. (2021. 11. 16. Sciencetimes)
*참조 : 지질학의 성배를 찾고 있는 진화론자들
https://creation.kr/Geology/?idx=1290556&bmode=view
격변적 판구조론과 노아의 홍수
http://creation.kr/Catastrophic/?idx=1288262&bmode=view
전 지구적 대홍수, 격변적 판구조론, 그리고 지구의 역사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483&bmode=view
한 공룡 화석은 4천만 년을 지워버렸다.
https://creation.kr/Catastrophic/?idx=1288268&bmode=view
노아 홍수 이전의 잃어버린 세계
http://creation.kr/Catastrophic/?idx=4527739&bmode=view
맨틀 내의 낮은 온도의 암석판들은 최근의 전 지구적 홍수를 가리킨다.
http://creation.kr/Catastrophic/?idx=1752833&bmode=view
네바다 주의 땅속 깊은 곳에서 맨틀 내로 가라앉고 있는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http://creation.kr/Catastrophic/?idx=1288272&bmode=view
지구 맨틀 속에 들어있는 물 : 지구 내부에 거대한 바다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http://creation.kr/Catastrophic/?idx=1288267&bmode=view
맨틀 내로 유입되는 많은 량의 물은 젊은 바다를 가리킨다.
http://creation.kr/Catastrophic/?idx=1752832&bmode=view
중국 아래의 지각판은 빠른 섭입을 확인해준다
http://creation.kr/Catastrophic/?idx=5633480&bmode=view
남극대륙의 빠른 융기 속도는 기존 지질학과 모순된다.
http://creation.kr/Geology/?idx=1290551&bmode=view
북미 대륙의 지질학은 완전히 틀렸다.
http://creation.kr/Geology/?idx=1290546&bmode=view
출처 : ICR, 2021. 12. 23.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geology-holy-grail-unresolved/
번역 : 미디어위원회
크레이터 호수 국립공원 : 화산 분출 이후의 고요한 아름다움
(Crater Lake National Park : Serene Beauty After Volcanic History)
by Tim Clarey, Ph.D., and James J. S. Johnson, J.D., Th.D.*
미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깊은 호수는 화산 안에 위치한다. 크레이터 호수(Crater Lake)로 알려진, 그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수심 592m에 이른다.[1] 크레이터 호수 국립공원은 1902년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서 지정되었고, 미국의 다섯 번째 국립공원이 되었다. 오레곤주 남중부의 캐스케이드 산맥의 중심부 근처에 있는 크레이터 호수는 포틀랜드에서 남쪽으로 약 5시간 거리에 있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8시간 거리에 있다.[2]
이 호수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진화 지질학은 수백만 년 전의 캐스케이드 산맥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연대는 반증되거나 검증될 수 없는, 가정(assumptions)들과 진화론적 교리에 기초한다. 진실된 설명은 불과 4,500년 전의 전 지구적 홍수로 시작된다.
크레이터 호수의 홍수 기원
ICR의 홍수 모델에 의하면, 캐스케이드 산맥(Cascade Mountains)은 노아 홍수의 후퇴기 동안에 형성되기 시작했다.[3] 홍수가 있던 해에 근원 마그마는 태평양 대양저가 북미대륙의 서해안 아래로 빠르게 섭입되면서 생성되었다.[4] 이 과정은 하와이 화산들과는 다른 매우 폭발적인 마그마들을 만들어냈다.[5] 이 과정은 노아 홍수의 해 후반과, 이어진 빙하기 동안에 반복적으로 분출하게 했다. 캐스케이드 산맥은 거대한 화산들로 매우 빠르게 자라났다.
크레이터 호수 아래에 있는 화산은 빙하기 동안 마지막으로 대격변적 폭발을 했다. 이전에 마자마 산(Mount Mazama)이라고 알려졌던, 3,900m 높이의 이 화산은 약 75입방마일의 분출물을 쏟아냈다.[2] 이것은 스스로 붕괴되도록 했고, 그릇 모양의 분화구(caldera, 화산폭발 후 화도가 함몰하여 형성된 지형)를 만들었다. 이 분출은 1980년 세인트 헬렌산의 폭발보다 42배 더 강력했다.[2] 현재 국립공원 내에서 가장 높은 고도는 스콧 산(Mount Scott)에서 2,721m 밖에 되지 않는다.[1]
이 재앙적인 폭발 이후, 몇 개의 용암이 열린 칼데라로부터 흘러나왔고, 마침내 커다란 분석구(cinder cone)가 발달되었다. 원뿔 모양의 외관으로 인해 위저드 섬(Wizard Island, 마법사 섬)으로 알려진 이 섬은 호수 표면으로부터 거의 240m 위로 솟아 있다.[1] 분석구는 화산이 휴화산이나 사화산이 되면서, 마지막 가스 제거 과정에서 종종 형성된다.[6]
1853년 초기 방문객들은 그 호수를 딥 블루 레이크(Deep Blue Lake)라고 불렀지만, 후에 한 신문 기사로부터 ‘크레이터 레이크’라고 불려지게 되었다.[1] 호수로 유입되는 지류는 없으며, 매년 약 14m의 겨울 강설로 인해 녹은 물이 공급되고 있다.[2] 물은 증발과 지하 침투에 의해서 제거된다.[1]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이 호수는 가시거리가 깊이 36m에 이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 중 하나이다.[1]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냄
크레이터 호수는 연중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는데, 매년 약 50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하지만 몇몇 피조물들은 그곳이 집이 되고 있다. 깨끗한 담수 호수인 크레이터 레이크의 투명한 물은 홍연어(kokanee salmon)와 무지개송어(rainbow trout)의 서식지이다.
주변 호안과 위저드 섬은 흑곰, 보브캣(bobcat), 사슴, 마멋(marmots) 등 다양한 커다란 동물들과[2] 새앙토끼(pika), 얼룩다람쥐(chipmunks), 황금망토땅다람쥐(golden-mantled ground squirrels)와 같은 작은 동물들이 살아가는 상록수 숲과 암괴원(felsenmeer) 서식지를 제공한다.[7]
조류 관찰자들도 즐거이 크레이터 호수를 방문한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크레이터 호수에는 많은 철새나 텃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흰머리수리(Bald eagles, Haliaeetus leucocephalos)와 송골매(Palco peregrinus)는 칼데라 절벽에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 미국 물까마귀(American dippers, Cinclus mexicus)는 빠르게 흐르는 개울 바닥에서 먹이를 구한다. 아고산대 지역은 회색왕관 장밋빛 핀치(Leucosticte tephrocotis)의 서식지이다. 자연적 산불로 타버린 숲은 다양한 딱따구리를 유혹한다... 비오리(Mergus Merganser)는 호수에서 새끼들을 키우며,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숲과 목초지에 흩어진다.[7]
누가 이렇게 장엄한 화산섬을 둘러싼 아름다운 호수를 기대했겠는가? 크레이터 레이크를 찾아 위저드 섬을 바라보는 이들은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이사야 42:12)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상기할 수 있다.
References
1. Hopson, R. F. 2018. Crater Lake National Park, Southwest Oregon. In The Geology of National Parks, 7th ed. D. Hacker, D. Foster, and A. G. Harris, eds. Dubuque, IA: Kendall- Hunt, 649-666.
2. Macy, M. 1999. Crater Lake. In America’s Spectacular National Parks. L. B. O’Connor and D. Levy, eds. Los Angeles, CA: Perpetua Press, 120-121.
3. Clarey, T. 2020. Carved in Stone: Geological Evidence of the Global Flood. Dallas, TX: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4. Clarey, T. Plate Subduction Beneath China Verifies Rapid Subduction.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December 23, 2020, accessed October 29, 2021.
5. Clarey, T. 2019. Subduction Was Essential for the Ice Age. Acts & Facts. 48 (3): 9.
6. Cinder cones are made of a rock called scoria. These are volcanic rocks that contain many holes from gas bubbles. Cinders are about the same size as lava rocks for landscaping and/or gas grills, around 0.08–2.5 inches in length.
7. Birds. Crater Lake National Park, Oregon. National Park Service. Posted on nps.gov, accessed November 1, 2021. Regarding animals in parks and wildlife refuges of the Great West, see also Johnson, J. J. S. Yes, Deer, It’s Time for Some Calm News.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April 27, 2020, accessed October 29, 2021. This article’s coauthor visited Crater Lake and Lava Butte, Oregon, during the summer of 1992 for biogeography research for use in teaching ecology and ornithology at Dallas Christian College.
* Dr. Clarey is Research Scientist and Dr. Johnson is Associate Professor of Apologetics and Chief Academic Officer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Dr. Clarey earned his Ph.D. in geology from Western Michigan University.
출처 : ICR, 2021. 12. 30.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crater-lake-national-park//
번역 : 미디어위원회
브라이스 캐니언의 장엄한 암석 기둥들
(Hoodoos of Bryce Canyon)
미국 유타주의 브라이스 캐년(Bryce Canyon)을 방문한 사람들은 분홍색, 적색, 흰색, 오렌지색의 우뚝 솟은 암석 기둥(암주)들의 숨이 멎을 듯한 경치를 보게 된다. 이들 암석 기둥들은 말굽 모양의 원형극장을 이루며 형성되어 있는데, 주변 절벽에서 잘려진 것들이다. 가장 크고 장엄한 브라이스 원형극장(Bryce Amphitheater)은 폭이 약 19km, 깊이가 245m으로, 수천의 암석 기둥들이 도열해있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장엄한 암석 기둥들(Hoodoos, duha127 | Thinkstockphotos.com)
자연적 원형극장의 가장자리에 서있는, 거대한 키의 군대들처럼 보이는 암석 기둥들은 ‘후두(hoodoos, 첨탑)’로 불리고 있다. 그들은 거대한 홍수 직후에 빠르게 형성되었다.
그러한 황폐한 곳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포착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놀라운 것은 머리에 마치 떨어질 듯한 모자를 쓰고 있는 것과 같은 (가끔씩 실제로 떨어지고 있는) 섬세하고 홀쭉한 후두들이다. 아메리카 인디언 전설에 따르면, 이 암주들은 인간의 형상을 가졌지만, 사악한 행위를 저질렀고 돌로 변한, 전설의 반인반수였다. 어떤 것은 줄을 서있고, 어떤 것은 앉아 있고, 어떤 것은 서로 껴안고 있다. 당신은 여전히 그 얼굴들에 빨간 페인트를 볼 수 있다.
진화론자들과 홍수지질학자들 모두 이 화려한 색깔의 지층들은 호수 바닥에서 형성되었고, 후에 구조적 힘이 지층들을 밀어 올렸고, 침식에 노출됐다고 말한다. 진화론자들은 이 침식이 수백만 년에 걸쳐 발생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실제로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렇다. 이 지층들은 물에 의해서 퇴적되었고, 격변적인 지각 운동으로, 빠르게 침식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다른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세부 사항을 살펴보기 전에, 브라이스 캐니언은 엄밀히 말하면 캐니언(canyon, 협곡)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실제로 고원지대(Paunsaugunt Plateau, 더 큰 콜로라도 고원의 팔)의 가장자리이다. 이 고원은 홍수 물이 물러갈 때인, 노아 홍수 말기에 융기되었고, 브라이스의 측면 안쪽으로 물러가는 물에 의해 침식되었다.
후두(Hoodoos)들은 콜로라도 고원과 미국 황무지에서 흔하다. 다른 장엄한 후두들은 카파도키아(Cappadocia, 터키). 알프드오트프로방스(Alpes-de-Haute-Provence, 프랑스), 세르비아, 대만, 드럼헬러(Drumheller, 캐나다 앨버타) 등에도 있다.
이 고원의 꼭대기는 분홍색과 흰색의 클라론 지층(Claron Formation)으로 이루어져 있다. 분홍색은 퇴적물 속의 철분과 망간이 산소와 반응한 것에 기인한 것이다. 후두들은 이 지층에서 조각되어 만들어졌다.
클라론 지층은 마지막 홍수물이 물러간 직후인, 노아 홍수 이후 초기에 퇴적된 최초의 퇴적층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고원지대는 대륙 내부에 거대한 호수(유타, 와이오밍 및 콜로라도의 그린리버 호수를 포함하여)들을 형성했던 자연적 댐들을 만들면서, 같은 시기에 융기하는 중이었다. 결과적으로 물은 댐들을 돌파했고, 폰서간트 고원(Paunsaugunt Plateau)의 가장자리에서 급격하게 빠져 나갔다.(아래 그림 참조).[1] 고원지대에서 물이 흘러내리면서 파여져, 브라이스(Bryce)에서 절벽과 원형극장들이 생겨났다.[2]
절벽 가장자리의 조건은 침식에 최적이었다. 클라론 지층의 층들은 경도가 다르며, 연질의 이암(mudstones)과 단단한 사암 또는 석회암이 번갈아 쌓여있다. 이암이 씻겨나갈 때, 다른 암석들은 더 쉽게 붕괴되고 떨어져나갔다. 가파른 경사면은 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의 속도와 에너지를 증가시켰다. 대홍수 이후 초기에, 슈퍼 태풍들이 땅을 황폐화시켰고, 오늘날 우리가 관측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파괴되었을 것이다.
빗물이 대기를 통과할 때, 약산성이 된다. 즉, 산은 퇴적물, 특히 석회암 층을 녹여버린다. 또한, 브라이스의 퇴적층들은 절리(joints)라 불리는 여러 세트의 평행한 균열들을 갖고 있다. 물이 이들 균열 안으로 들어가,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는데, 오늘날 그 지역은 연간 200회의 동결/융해 주기(freeze-thaw cycles)를 경험한다. 이것은 암석층을 더욱 약화시켰을 것이다.
물이 아래쪽으로 흘러 내려가면서, 부스러기들을 쌓아놓고, 만나는 연한 암석들을 파내면서, 작은 계곡(gullies)들을 만들었다. 계곡들은 그들의 수직 균열을 따라 침식되는 더 많은 표면을 노출시키면서, 캐니언으로 넓혀졌다. 또한 동결/융해 주기는 균열들을 확장시켰고, 측면의 층리들을 특히 더 부드러운 암석층을 벗겨내었다.
일반적으로 암석들이 풍화될 때, 크고 가느다란 암석 기둥들을 남겨놓기 보다는, 오히려 붕괴된 돌무더기들을 남겨놓을 것이 예상된다. 이러한 장엄한 암석 기둥들이 만들어졌던 열쇠는 단단한 암석(일종의 모자)이 부드러운 암석 상부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드러운 암석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예를 들어, 토르의 망치(Thor's Hammer)와 헌터(The Hunter) 위의 모자(caps)는 더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석 기둥들은 어떻게 형성됐는가?
대홍수는 대륙 안쪽에 막대한 양의 퇴적물을 바닥에 퇴적시킨 거대한 호수들을 남겼고, 이들 호수들은 후에 가장자리로 흘러넘치면서 격변적으로 배수되었다.
홍수물은 고원의 가장자리에서 낮은 쪽의 암석들을 계속해서 침식했고, 더 많은 암석 물질들을 깎아내었다.(새핑(sapping)이라 불리는 과정). 가파른 벽은 형태를 잃지 않으며, 빠르게 침식되었다.
홍수 이후에, 가파른 경사면은 아래로 떨어지는 빗물의 속도를 증가시켰고, 산성 수는 균열 틈으로 들어가 부드러운 층을 용해시켰다. 동결-해동 사이클은 균열을 확장시켰고, 측면을 벗겨내었다.
일반적으로 풍화된 암석은 붕괴되어 암석더미가 되지만, 단단한 암석이 최상층('뚜껑')에 있는 경우, 부드러운 층이 빠르게 사라지지 않도록 보호하여, 가늘고 긴 후두(암석 기둥)들을 남겨놓았다.
*Dr. Andrew Snelling holds a PhD in geology from the University of Sydney and has worked as a consultant research geologist in both Australia and America. Author of numerous scientific articles, Dr. Snelling is now director of research at Answers in Genesis–USA.
Footnotes
1. The Grand Canyon was also probably carved by this post-Flood dam-break. A. A. Snelling and T. Vail, 'When and How Did the Grand Canyon Form? chapter 18 in The Answers Book 3, ed. K. Ham,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2010), pp. 175–187.
2. J. E. Laity and M. C. Malin, 'Sapping processes and the development of theater-headed valley networks in the Colorado Plateau,” Bulletin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America 96:203–21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answersingenesis.org/geology/natural-features/hoodoos-bryce-canyon/
출처 - AiG, 2018. 7. 29.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79
참고 : 4198|4275|4235|4473|4490|4607|4610|4722|4786|4805|5185|5260|5264|5286|5307|5399|5400|5419|5429|5468|5517|5527|5556|5675|5717|5721|5737|5834|5841|5897|5898|5951|5955|5958|5957|5973|6006|6030|6049|6076|6097|6104|6123|6136|6170|6175|6215|6222|6223|6225|6228|6240|6254|6255|6311|6316|6330|6413|6415|6417|6422|6431|6453|6462|6469|6485|6507|6508|6523|6524|6531|6535|6542|6543|6545|6547|6551|6552|6558|6559|6563|6566|6638|6645|6688|6694|6723|6737|6758|6785|6847|6852|6857|6861|6869|6875|6877
그랜드 캐니언에서 새롭게 발견된 대홍수의 증거
: 코코니노 사암층의 사층리 표면에서 발견된 연질퇴적변형구조
(New Evidence of Flood in Grand Canyon)
by Brian Thomas, PH.D.
그랜드 캐니언의 장엄한 퇴적층 꼭대기 근처에 노출되어있는 유명한 코코니노 사암층(Coconino Sandstone)은 지금도 논란 중에 있는 암석 지층이다. 그 사암층의 기원을 두고 두 주장이(사막 모래 퇴적인지, 물속 퇴적인지) 다투고 있다. 만약 바람이 지금은 단단해진 코코니노의 모래 언덕(사층리)을 형성했다면, 그 지역 전체가 대기 중에 노출된 건조한 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물이 코코니노 사암층의 사층리를 형성했다면, 그 지역 전체는 성경에 기록된 홍수처럼 물에 잠겼을 것이다. 새롭게 기술된 세 가지 특징은 성경적 옵션과 일치한다.
로마린다 대학(Roma Linda University)의 두 지질학자는 코코니노 사암층의 노출된 표면에서 그들이 관찰한 작은 특징들을 기술했다. Frontiers in Earth Science 지에 게재된 논문에서, 그들은 그 특징들을 연질퇴적변형구조(soft sediment deformation structures, SSDS)로 분류했다.[1] 이것에는 접힘(folds), 릿지(ridges), 회전된 블록(rotated blocks), 작은 원뿔 모양의 구덩이(small, cone-shaped pits)들이 포함된다. 연구자들은 암석층 내의 사층리 면의 표면에서 이들 SSDS를 발견했다. 절벽 측면에 노출된 사층리(cross-beds)는 옆으로 누워져서 V자 더미처럼 보인다. SSDS들은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가?
<사진은 여기를 클릭>
.Coconino pits with 10-centimeter scale
거대한 모래 언덕이 코코니노 사암층으로 쌓여지고 있을 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공기나 물 같은 어떤 유체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모래를 모래 언덕 위로 밀어올렸고, 그 모래들은 “아리조나 북부와 유타주의 상당 지역,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 서부"를 뒤덮었다.[2] 이 사암층은 멀리 북쪽으로 와이오밍주와 몬태나주까지 뻗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2]
그랜드 캐니언에서 물에 의해 퇴적된 암석지층 위에 놓여있는 코코니노 사암층이 바람에 의해서 퇴적되었다는(풍성층) 주장은 오랫동안 동일과정설 지질학자들이 갖고 있던 견해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이미 두 가지 특징은 물에 의한 퇴적임을 나타낸다. 첫째, 코코니노 사암층의 사층리의 경사 각도는 평균 20도이며, 이것은 수중에서 모래 언덕이 형성될 때 볼 수 있는 것과 일치한다.[2] 반면에, 바람에 의해 쌓여진 모래 언덕은 대부분 32도 정도의 가파른 각도를 갖는다.[3] 둘째, 코코니노 사암층의 사층리 표면 중 일부는 완전한 발톱 자국이 남아있는 파충류 발자국들을 갖고 있다.[4] 마른 모래는 발톱 자국을 보존하지 않는다.
이제 새로운 연구는 "젖은 모래의 사태(avalanching of wet sand)"를 나타내는 작은 접힘과 릿지를 보고하고 있었다.[1] 그리고 "코코니노 사암층에서 회전된 블록과 다른 SSDS들은 퇴적물을 대체하거나 변형시키기 위해 어떤 종류의 액상화(liquidization)를 필요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1] 연구의 저자들은 모래에서 빠져나오는 물이 작은 블록들을 대체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작은 원뿔 모양의 구덩이(한때 개미 사자 구덩이(ant lion pits)로 해석됐던)들은 마치 두 특징이 함께 형성된 것처럼, 접힘과 릿지와 평행하게 나있다. 그것은 어떤 곤충이 만든 것이 아니라, 젖은 모래가 압착되어 짜여지면서 생긴 구덩이처럼 보인다. 이것은 작은 물의 폭발(water blasts)을 일으켰고, 모래에 원뿔 모양의 공간을 만들었다. 저자들은 “그 구덩이들을 아마도 물이 빠져나온 구조(water escape structures)"로 묘사하면서, 이것은 "모래를 액화시킨 상당한 양의 물이 존재했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1]
그래서 결국 그곳에 많은 물이 있었다. 게다가, 약간의 흔들림(shaking)이 있었다. "어떤 트리거(trigger)가 퇴적물의 흔들림이나 진동을 촉발했다면, 공극의 수압은 모래를 변형시키는데 필요한 전단 응력(shear stress)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1] 그들은 축축하게 젖어있던 모래 퇴적물을 흔들었던 부가적인 에너지로 지진 활동을 제안했다.
이러한 세밀한 관찰은 광대한 넓이의 퇴적물(코코니노 사암층)의 기원이 전 지구적 홍수이었음을 확인시켜준다.
References
1. Brand, L. and S. Maithel. 2021. Small-Scale Soft-Sediment Deformation Structures in the Cross-Bedded Coconino Sandstone (Permian; Arizona, United States); Possible Evidence for Seismic Influence. Frontiers in Earth Science. 19 November, 2021.
2. Whitmore, J. 2019. Lithostratigraphic Correlation of the Coconino Sandstone and a Global Survey of Permian “Eolian” Sandstones: Implications for Flood Geology. Answers Research Journal. 12 (2019): 275-328.
3. Whitmore, J. 2019. A Global Survey of Permian “Eolian” Sandstones: Implications for Flood Geology. Answers Research Journal. 12 (2019): 275–328.
4. Brand, L. R. and T. Tang. 1991. Fossil Vertebrate Footprints in the Coconino Sandstone (Permian) of Northern Arizona: Evidence for Underwater Origin. Geology. 19: 1201–1204.
*Dr. Brian Thomas is Research Scientist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aleobiochemistry from the University of Liverpool.
*참조 : 코코니노 사암층은 사막 모래언덕이 아니라, 물 아래서 퇴적되었다 : 노아의 홍수를 반증한다는 가장 강력한 논거가 기각됐다!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3612173&bmode=view
그랜드 캐년의 코코니노 사암층은 풍성층이 아니다! 지질주상도 2 : 코코니노 사구들
https://creation.kr/Geology/?idx=1290498&bmode=view
사층리와 노아의 홍수
https://creation.kr/Sediments/?idx=1288501&bmode=view
코코니노 사암층의 파충류 발자국들은 홍수를 지지한다.
https://creation.kr/Sediments/?idx=1757343&bmode=view
자이언 국립공원 : 사층리는 깊은 물속에서 형성되었다.
https://creation.kr/Sediments/?idx=6885393&bmode=view
호주 미리마 국립공원의 사층리는 격변적 물 흐름을 증거한다.
https://creation.kr/Sediments/?idx=4987321&bmode=view
출처 : ICR, 2021. 12. 9.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evidence-flood-grand-canyon-coconino/
번역 : 미디어위원회
노아 홍수는 불가리아 프로바디아 지역의 주변 지형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The remarkable landscape around Provadia, Bulgaria
How Noah’s Flood formed it)
Tas Walker
오늘의 피드백은 불가리아의 S.A.가 질문한, 그의 고향 근처의 매혹적인 지형에 관한 것이다.
CMI 분들 안녕하세요. CMI의 지질학자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불가리아 프로바디아(Provadia) 마을에 있는 협곡은 어떻게 형성되었나요? 나는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협곡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흑해에서 약 50km 떨어져 있으며, (일부 세속적 과학자들에 따르면) BC 5600년 경에 한 지역적 홍수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고원 꼭대기의 암석들에는 바다 조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 S.A.
CMI의 타스 워커(Tas Walker) 박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S.A.님
불가리아의 프로바디아 마을에 관해 보내준 정보에 감사드린다. 그곳은 아름다운 지역이며, 지질학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드론 사진은 매우 훌륭하다.[1]
당신이 보내주신 사진(그림 1)은 프로바디아 마을이 서쪽과 동쪽으로 높은 급경사면(escarpments)이 있는, 길고 좁은 계곡 또는 협곡 내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절벽들은 경관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확장되어있는 고원(plateau)으로 올라가고 있다. 계곡이 형성될 때, 고원은 단면의 안쪽으로 침식되었다. 고원 꼭대기는 두터운 밝은 색의 암석으로 덮여 있다. 이 암석들은 급경사면의 정상부에서 가파른 절벽을 형성하고 있다. 이 절벽의 아래쪽인, 급경사면의 하부 부분은 계곡 쪽으로 더 부드럽게 경사져있다. 고원은 한때 이 지역을 가로지르며 계속됐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같은 종류의 암석이 모든 급경사면의 꼭대기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로바디스카 강의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특징은, 그 강은 고원을 자르고 관통하며 지나가고 있으며, 프로바디아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원의 꼭대기를 형성하고 있는 밝은 색깔의 암석은(그림 1) 당신이 나에게 보내준 지질도에 의하면, ”후기 백악기 암석 - 석회암, 사암, 유기석회암” 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석회암은 해양 환경에서 퇴적되었을 것이고, 고원 꼭대기에 바다 조개 화석들이 있는 것을 설명해준다. 호주를 포함하여, 많은 곳에서 백악기 지층의 정상 부위는 노아 홍수의 물이 상승함에 따라 퇴적된 마지막 퇴적물을 나타낸다.(The Great Artesian Basin, Australia). 이것이 이곳 불가리아에서도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불가리아의 프로바디아(Provadia, Bulgaria) 지역. 서쪽과 동쪽의 가파른 절벽은 고원을 이루고 있다. 프로바디스카 강(Provadiyska River)이 마을을 관통하여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마을의 동쪽에는 긴 병목과 같은 고지대가 계곡과 나란히 달리고 있고, 그곳에는 오베츠 요새(Ovech Fortress)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동쪽으로는 또 다른 좁은 계곡이 있는데, 그곳을 따라 또 다른 강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계곡의 동쪽으로 고원이 계속된다.
프로바디아 주변의 암석을 포함하여, 이 지역의 모든 암석들은 홍수물이 상승하면서, 노아의 홍수 동안에 퇴적되었을 것이다. 노아 홍수는 엄청난 대격변이었고, 지질학적 지층들은 광대한 지역에 걸쳐 퇴적되었을 것이다. 이 홍수는 전 지구의 모든 땅들을 뒤덮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 다음, 노아 홍수의 물이 지형을 완전히 뒤덮은 후에, 홍수 물이 광대한 지역에서 연속적으로 판(sheet)상으로 물러갔고, 그 결과 고원은 평탄하게 조각되었다. 많은 대륙들에서 수 km 두께의 막대한 퇴적물이 대륙 표면으로부터 침식되었고, 평탄면(planation surface)을 남겨놓았다. 평탄면이라는 이름은 지표면이 평탄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 프로바디아 지역의 평탄면을 나타내는 고원의 꼭대기도 동일한 상황일 가능성이 있다. 아프리카의 침식 표면에 관한 글(erosion surface on Africa, 번역 글은 아래 관련자료 링크 참조)은 그 과정을 보다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대홍수 기간 동안에서, 퇴적지층들이 표면에서 제거되었던 시기는 (세속적 지질시대를 풍자하여) ‘침생대(erodozoic)'라고 불려왔다. (아프리카에 관한 글에서 그림 14 참조)
노아 홍수의 물은 대륙 표면을 휩쓸고 물러갔으며, 결국 깊이가 줄어들었고, 일부 땅들이 물의 표면 위로 나오게 되었다. 이 일이 발생했을 때, 물은 드러난 땅들 사이의 장소들을 통하여, 넓은 수로를 형성하며 흘러갔고, 지형에 계곡과 골짜기들을 파놓았다. 물이 대륙에서 물러간 후, 홍수는 끝났고, 현재의 강과 시내는 노아 홍수 말기에 파여진 원래의 수로를 사용하여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계곡의 특징 중 하나는 현재 흐르는 강에 비해 계곡의 크기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오버핏 계곡(over-fit valley)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프로바디아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계곡의 특징으로, 프로바디스카 강은 현재의 계곡보다 그 크기가 훨씬 작다.
프로바디스카 강의 또 다른 주목할만한 특징은 프로바디아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계곡이 고원을 자르고 통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극(water gap)”으로 알려진 지형학적 특징으로, 노아의 홍수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된다. 오늘날에 일어나는 과정과 같이 강우와 느린 침식으로 지형이 침식되었다면, 강은 고원을 관통하지 않고, 옆으로 돌아서 흘러갔을 것이 예상된다. 그런데 어떻게 물이 고원을 관통하며 침식을 일으켰는가? 이것은 물러가던 노아 홍수 물에 대한 또 하나의 특징이다. 수로들은 훨씬 높았던 수위의, 전 지역을 뒤덮었던 홍수 물이 물러갈 때 형성되었다. 계곡들은 물러가던 물에 의해 파여졌고, 수위는 계속 감소되었다. 수극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은 Do rivers erode through mountains을 읽어보라.
노아의 홍수가 어떻게 물러갔는지를 시각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는 Google Maps의 지형 보기(terrain view)로서, 특히 수위 상승을 나타내는 층을 볼 수 있도록 한 응용 프로그램이다. (HeyWhats That Sea Level Rise). 그림 2는 그러한 지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 지도에서 빨간색은 해수면이 오늘날의 해수면보다 50m 높았을 때 잠겼던 지역이고, 오렌지색은 100m 높았다면, 노란색은 230m 높았다면 잠겼을 지역이다. 230m 이상의 지역은 옅은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Google 지도에서 음영이 없는 지형 보기(unshaded terrain view)이다. 프로바디아 마을은 바르나(Varna)의 서쪽(왼쪽) 약 50km에 위치하고 있으며, 빨간색의 띠로 보여지는 좁은 계곡 내에 있다. 고원은 옅은 녹색으로 표시된 지역으로, 프로바디아의 양편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의 길이는 약 40km, 너비는 5km이며, 서쪽에는 남쪽으로 휘어져 있다.
노아 홍수의 수위가 고원의 수준보다 낮아지면서, 한때 이 지역에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갔을 것이다.
그림 2. 프로바디아(Provadia) 주변 지역의 지형 보기. 빨간색 = 현재 해수면보다 50m 높은 지역. 오렌지색 = 50~100m 높은 지역. 노란색 = 100~230m 높은 지역. 옅은 녹색 = 230m 이상 높은 지역.(Google 지도). 프로바디아는 바르나(Varna)의 서쪽(왼쪽) 약 50km에 위치하고 있으며, 빨간색의 띠로 보여지는 좁은 계곡 내에 있다. 고원은 옅은 녹색 지역으로 프로바디아의 양편으로 볼 수 있다.
지도에서 고원 북쪽의 커다란 노란색 지역을 주목하여 보면(그림 2), 노아 홍수의 물이 고원의 수준보다 낮아지면서, 한때 이 지역에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갔음을 가리킨다. 빨간색의 경로를 따라 가다 보면, 당신은 이 물이 프로바디아 계곡을 관통하여 남쪽으로 흘렀다가, 남동쪽으로, 그리고 다시 북쪽으로 흘렀다가, 마지막으로 동쪽으로, 바르나(Varna)를 지나 흑해(Black Sea)로 흘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노아 홍수의 물이 어떻게 배수됐는지를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프로바디아 계곡(Provadia Valley)과 양측면의 가파른 절벽(그림 1)의 또 다른 특징은 절벽 아래쪽에 부서진 암석 파편들이 없다는 것이다. 절벽 아래쪽의 부드러운 퇴적층 성질 때문에 기저부에 약간의 물질이 있지만, 계곡의 폭과 비교하면 별로 없다. 사실, 양쪽 절벽 사이에 있는 계곡 바닥은 비교적 평탄하다. 이것은 절벽이 최근에 침식되었으며, 침식된 물질은 계곡 밖의 지역으로 운반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특징은 노아의 홍수 말기에, 대륙으로부터 마지막 홍수 물이 배수되었을 때 형성됐던 많은 계곡들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북쪽으로 프로바디아 계곡을 통해 배수됐던, 엄청난 양의 물은 절벽 아래에 암석 파편이 없는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
동쪽에 있는 인접한 계곡은(그림 1) 암석 파편들이 이 지역 밖으로 완전히 운반되지 않은 계곡의 예가 되고 있다. 노아 홍수의 거의 끝 무렵에, 홍수 물의 수위가 고원의 높이 아래로 떨어진 후에, 작은 양의 물이 상류에 갇히게 되었고, 이 인접한 계곡을 통해 배수되었을 것이다. 이 물은 암석 파편들을 멀리로 운반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이것은 계곡과 관련된 그림 2의 노란색 음영으로 가리켜진다.
당신은 BC 5600년 경의 한 홍수에 대해서 질문했다. 이것은 지질학자인 피트만(Pitman)과 라이언(Ryan)이 제안했던 가설로, 지중해가 BC 5600 년경에 보스포러스(Bosporus)를 돌파하여, 흑해 수위의 급격한 상승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노아 홍수는 흑해 홍수를 과장하여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제안은 성경의 기록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지 않는다. 흑해 홍수는 분명히 노아의 홍수가 아니다.(The Black Sea flood Definitely not the Flood of Noah).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보스포러스의 퇴적물에 대한 더 많은 연구는 피트만과 라이언이 제안했던 것처럼, 흑해가 범람한 적이 결코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further research into the sediments in the Bosporus)
질문해주셔서 감사하다. 노아 홍수 때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 타스 워커 (Dr Tasman Walker, Scientist, Writer, Speaker, 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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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Крепост 'Овеч' от птичи поглед, Bird’s eye view of Ovech Fortress, https://www.youtube.com/watch?v=F89L5iSFmUw accessed 12 December 2018; I also found this drone footage: Ovech Fortress, Provadia, Bulgaria (drone footage), https://www.youtube.com/watch?v=3ape9qPaQmA, accessed 12 December 2018.
4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7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ation.com/landscape-around-provadia-bulgaria
출처 - CMI, 2019. 1. 12. (GMT+10)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79
참고 : 4198|4275|4235|4473|4490|4607|4610|4722|4786|4805|5185|5260|5264|5286|5307|5399|5400|5419|5429|5468|5527|5556|5675|5717|5721|5737|5834|5841|5897|5898|5951|5955|5958|5957|5973|6006|6030|6049|6076|6097|6104|6136|6170|6175|6215|6222|6223|6225|6228|6240|6254|6255|6311|6316|6330|6413|6415|6417|6422|6431|6453|6462|6469|6485|6507|6508|6523|6524|6531|6535|6542|6543|6545|6547|6551|6552|6558|6559|6563|6566|6638|6645|6688|6694|6723|6737|6758|6785|6847|6852|6857|6861|6869|6875|6877|6879|6884|6900|6906|2050
하렌 브레츠 1
: 그리고 거대한 화산용암지대에 대한 논쟁
(J Harlen Bretz
And The Great Scabland Debate)
Sean D. Pitman
* 황토(Loess)가 벗겨진 콜럼비아 강 용암대지
지질학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논쟁 중의 하나는 워싱턴주 동부의 ‘수로가 있는 화산용암 지대(Channeled Scabland, 수로를 가진 딱지 땅)’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하렌 브레츠(J Harlen Bretz)가 이렇게 이름을 붙인 이유는, 아래에 놓여있는 현무암질 암석을 덮고 있는 황토(loess)나 토양의 ‘딱지(scab)’ 사이로 흐르는 이 지역의 특징적인 수로 때문이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이 수로와 딱지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그것들은 그 지역에서 현재 일어나는 침식 과정에 의해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되었는가, 아니면 다른 수단에 의해 형성되었는가? 20세기 초, 그 시대의 가장 저명한 과학자들은 사고 면에서 뚜렷이 ‘동일과정설적’ 이었다.1, 2
즉, 비록 관찰되는 지질학적 증거 모두는 아닐지라도, 그들은 일상적인 지질학적 사건들을 엄청난 시간에 걸쳐 작용한 규칙적인 과정으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시카고 대학에서 지질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하렌 브레츠(J Harlen Bretz)는 처음으로 이러한 관념(notion)에 대해 진지하게 이의를 제기했으나, 결코 쉽지 않았다. 브레츠가 많은 양의 뛰어난 증거(이 이야기에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들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주된 독단적 교리(dogma)를 바꾸는 과정은 그에겐 엄청난 투쟁이었다.
.화산용암 지대의 수로 (Coulee, 쿨리)
과학자들은 진리에 대한 일반적인 탐사에서 조사하고, 결론을 내리는 데에 냉정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곧 밝혀지겠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우리들 대부분처럼, 어떠한 기존의 사실과 다른 압도적인 증거들에 직면하고서도 오랫동안 지녀온 오류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매우 감정적인 사람들이었다.
화산용암 지대에 대한 브레츠의 관심은 1910년, 그 지역의 새롭게 출판된 퀸시(Quincy) 지형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지도에서는 분명히 현재 구혈폭포(Potholes Cataract)로 알려져 있는 커다란 구혈들이 나타나 있었다. 같은 해, 조셉 파디(Joseph Thomas Pardee)는 홍적세(Pleistocene) 후기 동안 몬태나주 서쪽의 산간 분지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빙하호에 대한 지형학적 증거를 기술한 논문을 출판했다. 그는 챔벌린(T.C. Chamberlin)에 의해 이전에 언급되었던 현저한 수평 호안선 또는 ‘해안선(strandlines)’을 기술했다. 이 내용에서 현저한 역할을 하게 되는 이 호수는 호안선이 특별히 현저한 미졸라 몬타나(Missoula Montana)를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
.화산용암 지대의 지형도
.프랑스인의 폭포 지형도
.마른 폭포의 지형도
.마른 폭포
브레츠는 몇몇 뛰어난 지질학과 학생들과 함께 1922년에 화산용암 지대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7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대부분을 발로 다니며 매 여름마다 원정을 계속했다. 그가 본 것은 정말로 주목할 만했다. 예를 들면, 마른 폭포(Dry Falls)의 절벽은 5.6 km 넓이에 수직 길이는 약 120에서 180m 나 되었다.1,4 비교해보면, 나이아가라 폭포는 단지 겨우 2.4km 넓이에, 수직 길이가 50 m일 뿐이다. 브레츠는 물에 의해 퇴적된 매우 큰 자갈층 사주(gravel bar)의 존재뿐만 아니라, 수로의 매우 가파른 측면 벽과 그것들의 상대적으로 직선적인 길도 주목했다. 또한, 브레츠는 화산용암 지대 전체에서 마치 대대적인 빠른 물의 흐름에 의해 깎인 것처럼 보이는, 유선형적(streamlined) 특징을 가진 주변 경관으로부터 튀어나와있는 거대한 섬들을 보았다.2
브레츠는 1923년 미국 지질학회지(Geological Society of America)에 그의 최초의 관찰결과를 처음으로 제출했다. 첫 번째 논문에서 그는 단지 여러 번에 걸친 현장 활동에서 보았던 것만을 기술했다. 그는 신중하게 그의 관찰내용에 대해 어떠한 종류의 설명이나 해석도 제공하지 않기 위해 특별히 신경 썼다. 하지만, 그는 관찰된 수로 침식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한편, 1923년, 브레츠는 자신의 두 번째 논문에서 그의 동료 지질학자들을 아주 약간이나마 선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두 번째 논문에서 브레츠는 사실상 정말로 거대한 격변적 홍수(huge catastrophic flood)로 말미암아 화산용암 지대(Scabland)의 대부분의 현저한 지형들이 만들어졌다고 제안했다.2
물론 이러한 결론은 브레츠의 동료 지질학자들에 의해 열렬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이 지역은 명백하게 동일과정적 지질작용에 의해 수백만 년에 걸쳐 깎여져서 형성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홍수 모델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개념을 제출한 것에 대해 브레츠는 공개적으로, 그리고 격렬하게 조롱당했다. 브레츠의 논문을 조롱하고 비웃음을 가하는 데에는, 파디(Pardee)가 1922년에 간략하게 제출한 워싱턴주의 스포케인(Spokane) 근처 화산용암 지대(Cheney-Palouse Scabland Tract)에 대한 논문이 사용되었다. 그 논문에서 파디는 드문 빙하 작용이 매우 장구한 시간 동안에 작용해서 화산용암 지대가 만들어졌다고 제안했었다.
하지만, 브레츠가 이 지역을 2, 3년 후에 방문하러 갔을 때, 파디의 ‘빙하’ 퇴적물이 사실은 범람 사주(flood bar)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은 브레츠의 생각을 듣고 난 후, 파디가 마음을 바꾸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실제로 1925년에 브레츠에게 편지를 써서 빙하호의 배수를 그가 제안한 격변적 홍수에 대한 가능한 원인으로 간주할 것을 제안했었다. 이 편지 내용에 관하여, 브레츠는 메리암(J.C. Merriam)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화산용암 지대를 많이 살폈던 연방 조사국의 파디(Pardee) 씨는 만일 미졸라(Missoula) 빙하호가 대지를 가로질러 갑자기 배출되었다면, 미졸라 빙하호가 이 막대한 하천의 물을 공급했을지도 모른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설명은 보통의 기후적 용해 하의 육빙과 수반하는 빙하의 배수에 의한 화산용암 지대에 대한 그의 이전 관점을 버렸음을 가리킨다. 홍적세 지질학에서 초 보수주의적인 알덴(Alden) 박사조차도 "만약 그 많은 물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내가 기술한 현상들은 명백히 하천(river)에 의한 것처럼 보인다" 라고 하였다.” 2
나중에 파디 자신은 홉스(Hobbs)와의 1943년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사이언스 지 기사에서 언급된 ‘표적물(drift)'은 거력 퇴적물(bouldery deposits)로 구성되어있다. 이것은 그 당시에(1922년) 컬럼비아 고원(Columbia Plateau)에 걸쳐 멀리까지 뻗어있던 빙하에 의해 운반되고 퇴적된 자갈 빙력토(gravelly till)로 해석되었다. 빙하작용을 제안하는 이 퇴적물의 주된 특징은 큰 거력의 존재와 그것들의 일부는 외래 기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1922년 이래로 얻어진 그 지역의 정보로부터 저는 그 퇴적물이 빙하보다는 오히려 브레츠가 제안한 것처럼 대홍수에 의한 것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즉, 저는 그것들을 빙하 작용의 결정적 증거로 간주하지 않는다. 반면에 그 퇴적물은 직접적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빙하 작용과 관계가 있고, 당신이 제안하듯이 얼음 덮개 아래에 있던 하천(stream)에 의해 수로와 분지들이 파여서 형성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2
그렇다면 파디는 실제로 미졸라 호수에 대한 홍수 가설(flood hypothesis)을 고려했으나, 아마도 알덴(Alden)과 브라이언(Kirk Bryan) (그 당시 파디의 상관들)에 의해 그런 이설적(heretical) 개념을 더 이상 추구하지 못하도록 설득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생각은 이제는 수치스럽게 된 1927년의 ‘화산용암 지대 논쟁’ 에서 브레츠가 충격적인 대홍수 아이디어를 제출했을 때, 파디의 침묵과 일치한다.2
1927년 이전의 지질학자들은 브레츠가 제안한 것의 진지함(seriousness)을 이해하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브레츠의 이론은 다름 아닌 동일과정설의 기초를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예상되었던 것처럼, 격변적인 모델을 암시하는 그의 주장에 대한 반대는 정말로 매우 컸다. 사실상, 브레츠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리고 굴욕감을 주고자 했던 매우 강한 욕망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브레츠는 워싱턴 지질학회(Geological Society of Washington)의 공개 포럼에서 그의 생각을 제시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오히려 브레츠 본인은 이 모임의 저변에 깔린 목적이나, 청중들이 그의 생각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인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브레츠 모르게, 여섯 명의 ‘도전적인 선임자들(challenging elders)’이 공개토론에서 브레츠의 주장에 맞서서 그를 공격하도록 선발되었다.6
브레츠의 발표에 대응하여 처음으로 말한 사람은 알덴(W.C. Alden)이었다. 알덴은 브레츠가 관찰한 많은 특징들은 붕괴된 용암 동굴(collapsed lava caves)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또한 브레츠가 관찰한 특징들을 만들어낼 충분히 큰 홍수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언급했고, 그만한 양의 물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단언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형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른 원인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반대자들은 이미 그 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비교적 작은 하천들이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관찰된 모습들을 사실상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지역을 수일 안에 휩쓴 엄청난 규모의 격변적 대홍수 대신에, 하천들이 수백만 년에 걸쳐 화산용암 지대의 지형을 깎았으며, 브레츠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격변적 개념을 버려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6
하지만 브레츠는 쉽게 패배 당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많은 증거들을 매우 잘 준비해서 이 회의에 왔다. 그는 화산용암 지대에서 발견되는 수로(channels)와 사주(bars)들은 매우 물이 많은 컬럼비아 강이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든 것보다도 훨씬 더 컸음을 지적하면서, 6명의 연설자들에게 맞섰다. 관찰된 증거들의 무게는 사실상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 많은 양의 물이 단지 며칠 만에 전체 지역을 침식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2, 5, 6
브레츠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압도적인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6명의 선임자들’은 그것들 중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브레츠가 그렇게 많은 물의 근원을 입증하거나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격변적인 모델로 그들을 확신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비록 동일과정적 가설은 관찰된 증거들과는 브레츠의 격변적 모델보다도 잘 맞지 않았지만, 아무도 공개적으로 브레츠를 믿는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신성한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은 인정되도록 강요되고 있었고, 그것은 텅 빈 독단적 교리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비록 파디(Pardee)가 이 토론에 참석하고 있었지만, 그는 브레츠를 변호하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토론에 귀를 기울이면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마도 만일 파디가 더 일찍 용기를 내어 말했더라면, 브레츠에 대한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질학계에서 동일과정설은 수로가 있는 화산용암 지대의 형성에 대한 격변적 기원을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브레츠가 제공한 압도적인 현장 증거들을 고려하지도 않은 채,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지질학적 특징은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었다는 것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알게 되었다. 그렇게, 브레츠에 대한 반대는 오랫동안 맹렬하게 지속되었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번역 - 창조과학회 대구지부
하렌 브레츠 2
: 그리고 거대한 화산용암지대에 대한 논쟁
(J Harlen Bretz
And The Great Scabland Debate)
Sean D. Pitman
1940년 6월 18일이 되자 상황은 브레츠에 대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시애틀 워싱턴에 있는 미국과학발전 협의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에서 주관한 태평양의 제4기 지질학 (Quaternary Geology of the Pacific) 이라는 제목의 한 학술대회에 수로가 난 화산용암 지대(Channeled Scablands)에 대한 비격변적 기원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많은 논문들이 제출되었다. 또한 대회 후에 현장 탐사여행이 조직되었는데, 예일 대학의 리차드 플린트(Richard Foster Flint)가 비격변적 모델에 대한 증거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안하였다. 브레츠는 현장 탐사여행뿐만 아니라, 회의에도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아마도, 그는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계속해서 공개적으로 조롱당하는 것에 지쳐했을 것이다.
어쨌든, 플린트는 하천의 매적작용(aggradation, 퇴적작용으로 지표면이 평탄화되는 작용)과 절개(incision)와 더불어 빙하성 유수평원(proglacial outwash, 빙하가 녹은 물이 하천을 이뤄 모래와 자갈을 운반하여 빙하연변이나 그 전방에 층상으로 퇴적시킨 것)에 대한 그의 복잡한 논점의 멋진 줄거리를 이야기했다. 플린트는 화산용암 지대의 범람 사주의 표면 형태가 ‘다양한 개석(dissection) 상태에 있는 짝을 이루지 않는 유수침식으로 인한 단구(terrace, 계단식 대지)’의 모습이라고 대담하게 제안했다. 이어서 호지(E. T. Hodge)는 하천얼음에 의한 복잡한 둑 형성과 도수(diversion, 하천이 유로를 바꾸는 과정)와 관련된 빙식작용을 포함하는 그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 때 앨리슨(I. S. Allision)은 플린트의 '메우기(fill)' 가설을 자신의 ‘얼음 메움(ice-jam)'이라는 동일과정적 가설과 비교함으로써 플린트에 맞섰다. 마침내, 그 학술대회의 8명의 연사 중의 한 명이었던 파디(Pardee)가 ‘미졸라 빙하호수 내의 연흔(ripple marks, 물결무늬)’에 대해 온화하게 말했다.2
겸손한 태도로 파디는 몬타나 대초원(Montana prairie) 지역에서 발견되는 명백하고 특이한 물 흐름 층(current beds)들을 형성한 물의 기원이 미졸라 호수라는 그의 이전 이론뿐만 아니라, 몬타나 북서쪽에 있는 카마스 대초원(Camas Prairie)에 최고 15m 높이에 150m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는 거대한 ‘연흔(물결무늬) 자국(ripple marks)’들도 설명했다. 그는 계속해서 미졸라 호수에는 약 2,000 km3의 물이 있었으며, 한때 이 호수의 가장 자리를 빙하 댐이 막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는 빙하댐이 매우 급격한 상태에서 붕괴되었음을 강하게 제시하는 호수 분지 내의 심하게 침식된 수축(constriction) 현상들, 흐르는 물에 의해 운반된 거대한 암설사주(huge bars), 그리고 거대한 물 흐름에 의한 연흔 자국들을 포함한 확실한 증거들을 제시했다. 2, 3, 5, 6
파디는 계속해서 이것이 일어난 방식은, 얼음 댐이 물을 막고 있다가 물이 충분히 깊어져 얼음 댐을 들어올리게 되자, 막혔던 물이 거의 상상할 수 없는 힘으로 분출하게 되었고, 호수는 단지 48시간 만에 완전히 비게 되었다고 제안하였다. 그는 코딜레란 빙하(Cordilleran Glacier)의 바깥쪽 부분이 클락 포크강(Clark Fork River)을 막았던 실제적 마개(plug)나 댐이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얼음 댐에 의해 약 600m 깊이에 대략 3000 평방마일(7,700 km2)에 달하는 미졸라 호수(해발 1,245 m)가 형성되었다.5 얼음 댐이 파괴되었을 때, 미졸라 호수로부터 500 입방마일의 물이 시속 80~96 km의 속도(또는 시간당 9.46 입방 마일의 양)로 돌진했는데, 그것은 600m 높이의 물 벽이 태평양으로 들어가면서 줄곧 엄청난 힘으로 덮쳐버렸음을 의미한다.4
오늘날 이 거대한 유량의 물은 아이다호의 북쪽에 있는 래쓰드럼(Rathdrum) 대초원을 가로질러 시속 75km로 이동하는 각각 최대 180m 깊이에 달하는 3개의 거대한 흐름으로 나뉘어 워싱턴 동부로 돌진했다고 여겨진다.5 이러한 규모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 이 물 흐름은 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강물들의 흐름보다 10배나 더 큰 규모였다. 이 범람이 스포케인 계곡(Spokane Valley)을 가로질러, 그리고 황토를 덮고 있는 용암대지를 가로질러 밖으로 격렬하게 분출되었을 때, 그것은 다수의 십자꼴이나 ‘구부러진(bradded)’ 수로 뿐만이 아니라, 폭 32km의 체니-팔루스 트랙(Cheney-Palouse Tract), 폭 22km의 크랩 크릭 수로(Crab Creak Channel), 그리고 80km 길이의 그랜드 쿨리(Grand Coulee)를 깎아냈다. 서쪽의 호스 헤븐 구릉(Horse Heaven Hills)과 남쪽으로 블루 산맥(Blue Mountains)에 의해 막혔을 때, 물은 콜롬비아 강이 태평양쪽인 서쪽으로 향하는 와룰라 갭(Walula Gap, 와룰라 협곡)까지 질주했다. 이 협곡은 너무나 좁아서 많은 양의 물이 충분히 빠른 속도로 흘러갈 수 없었기 때문에, 홍수는 아이다호의 루이스톤(Lewiston)를 지나 스네이크 강(Snake River) 상류까지 역행했다. 하지만, 결국 물은 태평양 쪽으로 빠졌고, 그 길을 따라 오리건의 윌리암에트 계곡(Willamette Valley)을 범람시켰다. 이 시간 동안 포틀랜드는 약 120m의 물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5
물론, 엄청난 양의 범람수(flood waters)의 기원에 대한 파디의 증거는 브레츠가 필요로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 증거는 브레츠가 어디엔가 틀림없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물에 의한 격변의 원인과 근원을 확신시키는 데 충분하였다. 그러한 격변의 결과를 뒷받침하는 모든 정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준비되어 왔기 때문에, 나머지는 모두 다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흥미롭게도 파디 자신은 미졸라 호수와 워싱턴 주의 수로가 난 화산용암 지대의 명백한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파디는 브레츠가 그 점을 말하도록 관대하게 남겨두었다고 몇몇 사람들은 생각했다. 2
1952년에, 브레츠는 다시 화산용암 지대로 현장 조사를 하러가서, 상세한 지도, 항공사진, 그리고 퇴적학적 정보들을 포함하는 훨씬 더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 후 1956년 논문에서, 브레츠는 격변적인 홍수에 대한 가장 확증적인 증거는 사주(bar) 표면 위에 있는 거대한 물의 흐름에 의한 수류 연흔(current ripple)의 존재로 드러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연흔(물결무늬)은 최대 30미터 높이의 사주가 거대한 물의 흐름에 의해 완전히 침수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거대한 수류 연흔의 수많은 예들은 플린트가 전형적인 하안 단구(river terrace)로 해석했던 같은 사주에서도 발견되었다. 그것이 폭로됨에 따라, 미졸라 호수의 거대한 수류 연흔에 대한 파디의 인정에 뒤이어, 15개 이상의 화산용암 지대의 연흔 현장에 대한 브레츠의 증거자료들과, 연흔이 나있는 100개 이상의 지역들에 대한 베이커(Baker)와 눔메달(Nummedal)의 확인이 있었다. 그러한 모습들은 정말로 엄청난 격변적 속도로 흐르는 매우 깊은 물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것은 지질학자들이 브레츠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던 괴로운 시작이었다.2
브레츠의 뛰어난 연구는 오랜 세월에 걸쳐 힘들게 이뤄졌으나, 최종적으로 수용될 때까지 그는 수십 년 동안 커다란 반대와 싸워야만 했었다. 마침내 1979년, 지질학계에서는 브레츠에게 권위있는 ‘영예의 메달(Penrose Medal)’ (지질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영예)을 시상함으로써 공개적으로 브레츠의 연구를 인정하였다.3 브레츠가 90세 후반이 되었을 때, 50년 이상 주장해왔던 워싱턴주 동부의 수로가 난 화산용암 지대(Channeled Scablands)의 형성에 대한 그의 ‘제정신이 아닌(insane)’ 격변적 모델에 대한 전반적인 수용이 마침내 실현되었던 것이다.
*하렌 브레츠의 묘비 : ”J HARLEN BRETZ, 격변적인 홍수가 자연의 펼쳐진 드라마에 때때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음을 우리에게 끈기있게 가르쳤던 사람”
1. Allen, J. E., Burns, M., Sargent, S. C., Cataclysms on The Columbia, Timber Press, (1986), Samuel Strok book review for Geology 103 at Bellevue Community College - Winter, 2003
2. Baker, V., Joseph Thomas Pardee and the Spokane Flood Controversy, GSA Today, 5:(9), September 1995
https://www.geosociety.org/gsatoday/archive/5/9/pdf/i1052-5173-5-9-sci.pdf
3. Helfferich, C., Boulders, Braids, and J Harlen Bretz, Alaska Science Forum, Article #1160, November 17, 1993
https://www.gi.alaska.edu/alaska-science-forum/boulders-braids-and-j-harlan-bretz
6. Newman, J., Missoula Floods, Oregon Field Guide, Episode 1001, 2002-2004
https://www.worldcat.org/ko/title/oregon-field-guide-1001-missoula-flood/oclc/639350936
* 참조 : Field studies in the Columbia River basalt, Northwest USA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557
Can welded tuffs form underwater?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6_2/j16_2_114-117.pdf
Continental Flood basalts indicate a pre-Mesozoic Flood/post-Flood boundary
https://dl0.creation.com/articles/p061/c06117/j10_1_114-127.pdf
번역 - 창조과학회 대구지부
홍수의 증거판, 울루루(에어즈록)와 카타츄타(올가스)
(Uluru and Kata Tjuta testimony to the Flood)
by Andrew A. Snelling, Ph. D.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지형인 울루루(Uluru, Ayers Rock)와 카타츄타(Kata Tjuta, the Olgas)를 보지 않고는 호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의 지질학적 모습들은 아름다울 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편평한 황무지 평야와는 대조되게 경이롭게 우뚝 솟아오른 모습 때문이다.
울루루 (Uluru)
울루루는 사막 평원 위에 약 340m의 높이로, 해발 고도로는 867m로 사면이 날카로운 절벽으로 솟아 올라있다. 하나의 고립된 거대한 암석 덩어리는 밑둥의 둘레가 9 km (5.6 miles)나 된다. 울루루는 사막 모래밭에 놓여있는 하나의 거대한 거력(boulder)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아래의 그림 2를 보라). 대신 그것은 물 속에 떠있는 빙산의 끝부분처럼, 주변 사막 아래의 지하에 놓여져 있는 같은 종류의 거대한 암석층의 노두(outcrop) 이다.
울루루는 같은 암석들의 많은 지층들과 층들(layers or beds)이 기울어진 채, 그리고 끝부분은 거의 서 있는 상태로(80-85°로 묻힌 채로) 구성되어 있다. 노출된 지층의 누적 두께는 적어도 2.5 km에 달하며, 주변의 사막 모래 아래에 묻혀있는 지층들까지 모두 합하면 전체 두께는 거의 6 km(3.75 miles)에 이른다.
울루루는 주요 구성 광물은 장석(feldspar)의 알갱이나 결정 조각으로, 전문적으로는 ‘장석질 사암(arkose)’으로 알려진 거칠은 사암의 일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암석 표면의 모래 입자들은 녹의 코팅(rusty coatings)이 일어나 있어, 이 핑크색 광물은 울루루를 전체적으로 붉은 색으로 보이게 한다. 이 장석질 사암에 대한 세밀한 검사에 의하면, 이 광물 입자들은 신선한(fresh) 모습을 띠고 있는데, 특히 꽤 큰 장석 결정들의 빛나는 면들이 그러하다. 암석 구성은 대, 중, 소, 그리고 미세한 알갱이들이 함께 무작위적으로 섞여져 있는데, 지질학자들은 이 상황을 ‘저급 분류(poorly sorted)’로 묘사하고 있다 (맨 아래의 사진 참조). 더군다나, 입자들은 자주 끝 모서리들이 뾰족한 상태(둥글거나 부드럽지 않은)로 되어있다.
카타츄타 (Kata Tjuta)
울루루의 서쪽 약 30km 지점에 있는 카타츄타(Kata Tjuta)는 여러 개의 거대하고 둥근 바위 돔(domes)으로 구성되어있다. 가장 높은 올가산(Mt. Olga)는 해발 고도 1069m(3,507 feet)로 주변의 사막평원 위로 600m(1,970 feet)를 솟아 있다. 좁은 협곡들에 의해 나뉘어진 장엄한 이 암석 덩어리들은 주변 5km에서 8km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 층을 이룬 암석들(rock layers)은 남서쪽으로 10-18° 각도로 땅속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크기는 거대하다. 그 암석층의 전체 두께는 약 6km (3.75miles) 정도이고, 그들은 사막 모래 속으로 확장되어, 다른 노두들(outcrops)은 북동쪽으로 15km, 북서쪽으로는 40km 이상 떨어진 곳에 나타나 있다.
카타츄타를 만들고 있는 이들 암석지층들은 카타츄타 북서쪽 35km에 있는 큐리산의 노두를 따라 이름이 유래되어, 모두 합쳐서 큐리산 역암(Mount Currie Conglomerate)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역암은 자갈, 둥근 돌, 다른 암석의 거력(boulders)들이 미세한 모래, 미사, 이토들에 의해 굳어져 함께 뭉쳐져 있는 거칠게 분류된(sorted) 퇴적암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주로 화강암이나, 현무암의 둥글어진 거력들(1.5m 크기도), 자갈들, 둥근 돌들로 구성되어있는데, 일부는 사암, 유문암(rhyolite), 몇몇 변성암들의 조각들도 존재한다. 모암(matrix)은 대부분 한때 미세한 미사(silt)와 이토(mud)이었던 검은 회녹색의 물질로 되어있고, 밝은 색의 사암층(beds)과 렌즈(lenses)도 또한 일어나 있다.
울루루 장석질 사암과 큐리산 역암은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노두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증거들은 분명히 두 암석 덩어리는 같은 시기에 같은 방법으로 형성된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2. Arkose의 경사진 지층이 주변 사막 모래 아래로 계속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울루루의 단면.
그림 3. 카타츄타의 단면은 큐리산 역암의 약간의 경사진 지층들을 보여주고 있다.
진화론적 역사 (The evolutionary ‘history’)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은 6억~9억년 전에, 중앙 호주(Central Australia) 대륙의 대부분은 해수면 아래에 놓여있었으며, 아마데우스 해분(Amadeus Basin)으로 알려진 바다의 팔, 지반의 함몰(depression) 부위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다. 강들은 진흙과 모래와 자갈을 이곳으로 날라서 퇴적층을 쌓아갔다. 다른 형태의 퇴적층도 또한 형성되었다. 그리고 소위 캄브리아기라고 불리는 5억5천만 년 전에 Amadeus Basin의 남서쪽 경계가 해수면 위로 올라갔고, 암석들은 압착되고, 구겨지고, 구부러져, 습곡(fold) 되었고, 단층을 따라 잘려지면서 산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후반기 단계에, 빠른 침식이 일어나 Petermann과 Musgrave Ranges를 조각하였는데, 울루루 장석질 사암과 큐리산 역암은 이 침식의 결과물로서 충적 선상지(alluvial fans)이라 불리는 것과 격리되어 퇴적되었다는 것이다. (그림 4A).
비록 동일과정적(느리고 점진적인) 지질학자들이 장석질 사암과 역암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퇴적되었다고 믿고 있더라도, 주기적인 일시성 홍수들로 울루루 지역의 남쪽과 서쪽의 산들이 깎여지고, 인접한 충적 평원(alluvial flats)에 수십 km에 걸쳐 자갈들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5천만 년은 걸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두 개의 분리된 퇴적층(arkose층과 역암층)이 각각 퇴적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대략 5 억년 전에, 그 지역은 다시 얕은 바다로 잠겨졌으며, 울루루 장석질 사암의 충적 선상지와 큐리산 역암은 점차적으로 모래, 미사, 진흙, 석회암의 층들에 의해 묻혀지게 되었다. (그림 4B). 그리고 4 억년 전쯤에 접혀지고, 잘려지며, 융기가 일어나는 새로운 기간이 시작되었고, 이 기간은 1 억 년 정도 지속되었다고 추정한다. 더 젊은 Amadeus Basin 퇴적물에 의해 수백에서 수천미터 두께로 묻혀진 울루루 장석질 사암과 큐리산 역암의 지층들은 강하게 접혀(습곡되어)졌고, 잘려졌다(단층이 일어났다). (그림 4C). 원래 수평적이었던 울루루 장석질 사암 지층들은 거의 수직적인 위치로 회전되었고, 반면에 카타츄타에 큐리산 역암은 단지 10-18°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울루루-카타츄타 지역은 아마도 그때 이후로 (약 3억년 동안) 해수면 위로 남아 있었다고 믿고 있다. 초기에 육지 표면은 울루루와 카타츄타의 꼭대기 보다 높았었는데, 침식이 계속 일어났고, 오늘날의 울루루와 카타츄타 모습으로 점차적으로 조각되어졌다는 것이다. (그림 4D). 7천만 년 전에 그 지역은 숲으로 뒤덮여졌는데, 이것은 매우 습한 열대성 환경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건조한 기후와 사막 모래는 단지 가장 최근의 빙하기 이후인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니다! - 최근의 격변적 홍수 기원.
그림 4. 카타츄타와 울루루의 형성에 대한 (어떠한 진화론적 가정들과 상관없는) 있음직한 지질학적 역사 또는 사건들의 나열.
A. 큐리산 역암(좌측 붉은색)과 울루루 장석질사암(arkose, 우측 노란색)의 충적 선상지는, 접혀지고 침식된 초기 퇴적물(오렌지색)과 화강암(회녹색)의 기초 위에 퇴적되었다.
B. 큐리산 역암과 울루루 장석질사암은 다른 퇴적물(파란색)에 의해 묻혔다.
C. 퇴적 지층은 접혀졌고, 잘려졌고(단층이 일어났고), 기울어졌고, 그리고 침식되었다.
D. 육지 표면 아래쪽으로 더 많은 침식이 일어났고, 오늘날의 카타츄타와 울루루를 조각하였다.
모든 것이 흥미있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암석 지층의 증거들은 그러한 이야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울루루에서 어디에나 있는 장석질사암(arkose) 안의 신선한 장석(fresh feldspar) 결정들은 추정하는 것처럼 수백만 년 동안을 결코 견뎌오지 않았다. 장석들은 태양열, 물, 공기(예로 축축한 열대 기후)에 노출되었을 때 부서져서, 비교적 빠르게 점토(clays)로 변화된다. 만약 장석질 사암이 수 센티(1-2 인치) 두께로 수십 평방 킬로미터 넓이로 모래 종이처럼 퇴적되어서 수십 수백만년 동안 태양열에 의해 건조되었다면, 장석 결정들은 점토로 분해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장석질 사암이 이야기에서처럼 수백만 년 동안 열대성 강한 화학적 기후와 강한 파괴적인 침식에 노출되었다면, 장석 결정들은 오래 전에 점토들로 분해되었어야만 한다. 어느 쪽이더라도, 점토와 남은 풀려난 광물 입자들은 쉽게 풍화되고, 전체가 멀리 씻겨져 내려감으로서 사암 구조는 약해지고, 붕괴되어 울루루는 전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먼 거리를 이동한 모래 알갱이들(grains)은 광대한 시간동안 멀리로 멀리로 이동되면서, 뾰족하고 날카로운 끝부분들은 닳아 없어져 부드럽고 둥근 모습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그들의 주장처럼) 광대한 기간동안 움직이는 물에 의해서 작용을 받은 같은 종류의 모래 알갱이들은 또한 분류가 일어나 있어야만 한다. 즉, 작은 모래 알갱이들은 물에 의해 더 쉽게 이동되기 때문에, 큰 알갱이들과는 분리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만일 울루루 장석질 사암이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천만 년에 걸쳐 쌓여진 것이라면, 오늘날 그 암석들은 작거나 큰 알갱이들을 가진 지층들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현재에도 신선하고 빛이 나는 장석 결정들과 날카롭고 분류가 안 된 알갱이들은, 울루루 장석질 사암이 빠르게 퇴적됨으로서 장석들이 분해되고, 둥글게 닳아지고, 분류가 일어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음을 가리키고 있다.
큐리산 역암은 무엇인가? 수백 수천만 년에 걸친 느리고 점진적인 퇴적을 믿는 지질학자들까지도, 그러한 큰 돌들(일부는 직경이 1.5m)을 움직일 만한 빠르고 격렬한 물의 흐름이 과거에 확실히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암석들의 기원(출처)이 되는 큰 산들이 침식을 받아 다양한 입자 크기의 혼합물 (미사, 이토에서부터 자갈, 돌멩이, 표석까지)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수십 킬로미터를 빠르게 운반하며 둥글고 모가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 격변적인 상황은 상당히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어나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모든 증거들은 장석질 사암과 역암들이 격렬한 홍수 상황 하에서 최근에 격변적으로 퇴적되었다는 것과 훨씬 더 잘 일치한다. 특히 노출되어 있는 울루루와 카타츄타에서, 암석 구성과 성분들은 전체가(울루루의 경우 약 2.5 km) 거의 균질하게 유사한다. 그리고 각 층들은 극도로 규칙적이고 평행하다. 만약 퇴적지층이 이야기에서처럼 수백 수천만 년에 걸쳐 쌓였다면, 반드시 지층들 사이에는 침식의 증거(예로 수로들)와 풍화작용을 받은 표면들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리고 구성 성분과 광물의 변화가 나타나 있어야만 한다.
심한 동요 (Staggering)
이러한 사실들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강력한 동요를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은 6,000m 두께의 모래, 자갈, 돌멩이, 표석들을 쏟아 부울 수 있는, 그리고 이들 퇴적물들을 수십 킬로미터를 운반할 수 있는(아마도 짧은 시간 안에) 물의 양과 힘을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격변적인 대홍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재앙적인 사건은 최근에 일어났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장석질 사암의 장석 결정들은 오늘날에 신선한(풍화를 받지 않은) 상태로 보여지지 않을 것이다.
.지질학적 현미경 하에서 보여지는 울루루 장석질 사암(Arkose). 크기가 다른 암석 알갱이들이 섞여 있는 것과, 알갱이의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장자리를 주목하여 보라.
장석질 사암과 역암 지층들은 오늘날 기울어져 (arkose는 거의 수직으로) 있기 때문에, 이들 퇴적지층들이 압착되고, 물을 함유한 암석들이 단단해진(암석화 된) 후, 지구 운동에 의해서 위로 밀려 올라갔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울루루, 카타츄타와 다른 호주 중앙부의 지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지형-형성 과정 전문가들은, 이들 모습들은 오늘날의 사막 기후에서 바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덥고 습한 열대 기후에서 물에 의한 침식에 의해서 조각되었다고 확신한다.
만약 울루루와 카타츄타의 오늘날 지형모습이 같은 격변적 홍수 물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즉, 홍수물이 덮었던 광대한 지역의 낮은(depression) 부위에 장석질 사암과 역암을 쏟아 부었다면, 그리고 물들이 후퇴하면서 기울어지고, 솟아 오른 지층들이 육지 표면으로 나타나고, 울루루와 카타츄타의 모습 뒤에 남아있는 비교적 부드러운 퇴적층들의 침식이 시작되었다면, 이것은 쉽게 설명된다. 이러한 홍수 물들이 호주 대륙으로부터 후퇴하면서, 지형들은 마르기 시작했다. 물에 있던 화학성분들은 아직도 모래 알갱이, 자갈, 표석들 사이에 갇혀 있어서, 콘크리트에서 시멘트의 역할과 유사하게 암석들을 결합하고 단단하게 하는 일들을 지속하고 있다.
결론
증거들은 총체적으로 수백 수천만 년에 걸친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을 주장하는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의 이야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울루루와 카타츄타 암석 지층들의 증거는 최근에, 빠르고, 거대한 크기의, 그리고 격변적인 홍수(노아의 홍수와 같은)에 기초한 과학적 모델과 훨씬 잘 일치한다. 그러므로 울루루와 카타츄타는 창세기의 목격 기록에서와 같이 전 지구적인 홍수에 의한 격렬한 물들이 새겨놓은 뚜렷한 증거판(testimony)인 것이다.
*참조 : The origin of Ayers Rock
Kata Tjuta: an astonishing story
References and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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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거대한 홍수를 가리키고 있는 호주의 카타츄타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421&bmode=view
호주의 글래스 하우스 산맥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422&bmode=view
호주 캔버라 지역에서 제거된 300m 두께의 페름기 지층 : 물러가던 노아 홍수 물에 의한 막대한 침식 사례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4866220&bmode=view
악마의 탑(데블스타워)과 성경적 해석 : 거대한 현무암 기둥들은 성경적 시간틀과 모순되는가?
http://creation.kr/Sediments/?idx=1288580&bmode=view
콜롬비아 과타페 바위의 형성과 노아의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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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뷰트 : 대홍수의 잔존물
http://creation.kr/Sediments/?idx=1288617&bmode=view
노아 홍수의 후퇴기에 대륙에서 일어났던 막대한 침식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5808930&bmode=view
대륙에 발생되어 있는 대규모의 거대한 침식은 대홍수가 휩쓸고 간 증거이다.
http://creation.kr/Sediments/?idx=1288667&bmode=view
대륙 해안의 거대한 급경사면들은 노아 홍수의 물러가던 물에 의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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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지표면의 침식은 노아 홍수/홍수 후 경계를 신생대 후기로 위치시킨다.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476&bmode=view
노아 홍수의 물은 대륙에서 어떻게 물러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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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구릉 : 대륙에서 빠르게 물러갔던 대홍수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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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몬태나 산맥에서 발견되는 노아 홍수의 증거 : 산을 관통하여 흐르는 강(수극)과 산꼭대기의 퇴적층 잔해
http://creation.kr/Sediments/?idx=1288691&bmode=view
구글 어스는 애팔래치아 산맥이 대홍수로 침식되었음을 보여준다.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5015217&bmode=view
피오르드는 어떻게 형성됐는가?
http://creation.kr/Sediments/?idx=3177622&bmode=view
중국의 계림, 카르스트 산들, 그리고 노아의 홍수
http://creation.kr/Sediments/?idx=1288663&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uluru-and-kata-tjuta-a-testimony-to-the-flood
출처 - Creation 20(2):36–40, March 1998.
지구 아래의 비밀이 밝혀지다
(Secrets Under the Earth Revealed)
David F. Coppedge
지하 깊은 곳에서 더 많은 물이 추정되었다.
고대 협곡과 강들도 발견되었다.
지구물리학자들은 원격탐지 기술과 계산을 통해, 지하에 숨겨져 있는 지형들을 볼 수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물
지구의 지각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발견되었다.(Nature, 2021. 8. 17). 서스캐처원 대학(University of Saskatchewan)의 과학자들은 퇴적암의 공극(pore spaces)에 포함된 지하수의 양을 추정하기 위해 모델링 기법을 사용했다. 그들의 놀라운 결론은 이렇다 : "지구 지각의 가장 윗부분 10km에는 거의 4400만 입방킬로미터의 물이 들어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Phys.org 지는 헤드라인으로 "육지에서 가장 큰 물의 저장고는 빙상이 아닌, 지하였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지각에 저장된 물의 이전 추정치를 두 배로 늘리고 있었다.
기사는 불행하게도 시추로는 그 물에 접근할 수 없다고 쓰고 있었다. 갇혀있는 담수의 대부분은 1~10km 정도 아래에 있다. Phys.org 지(2021. 9. 9)는 그 물은 소금기가 많은 소금물일 가능성이 높고, 담수 근원과의 연결은 끊겨있다고 쓰고 있었다. 그것은 지구물리학자들이 핵폐기물의 처리와 탄소 격리(carbon sequestration) 정책을 고려할 때, 두 수원이 혼합되어 지하수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을 의미한다.
Phys.org 지는 그 발견으로부터 장구한 시간과 생명체에 대해 부당한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었다 :
이 깊은 저장고는 얕은 대수층과는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 이 소금물은 지질학적으로 장구한 시간 동안 갇혀 있었을 것이다. 덧붙여서 이것은 지구 표면의 과거 상태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 고대의 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활발한 미생물 생태계를 지지할 수도 있다. 그러한 지표면 깊은 곳의 생물 군집은 태양계의 다른 곳에서 거주 가능한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
*The open-access paper by Ferguson et al., “Crustal Groundwater Volumes reater than Previously Thought,” is published in the American Geophysical Union journal Geophysical Research Letters 9 Aug 2021.
.물의 행성인 지구는 태양계에서 독특하다. (Photo credit: Illustra Media)
빙하기의 서명
'MRI' 스캔은 북해 아래의 장엄한 빙하기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British Antarctic Survey). 2013년에 그린란드 아래에서 그랜드 캐니언보다 더 큰 협곡이 발견됐다는 "입이 떡 벌어지는" 발견을 보도했었다.(29 Aug, 2013). 그것은 얼음-투과 레이더에 의해 발견됐던 것이었다. 몇 년 후, 이 방법에 의해 남극대륙 아래에서 "슈퍼-거대 협곡"이 발견되었다.(14 Jan, 2016). 이제, 영국 남극 조사국(British Antarctic Survey)은 탄성파 방법을 사용하여 북해 아래의 지형들을 탐지하였다.
3D 탄성파 반사 기법을 사용하여, 북해 아래에서 장엄한 빙하기 지형이 발견되었다. 자기공명영상(MRI)과 비슷하게, 이 영상들은 템스 강(River Thames)보다 10배나 넓은 거대한 해저 수로들을 전례 없이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사에서 재구성된 이미지들은 빙산에 의해 파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홈(grooves), 해저 깊숙이 파묻혀 있는 거대한 "터널 계곡들(tunnel valleys)"(이들 중 일부는 이전에 지도화 됐다), 그리고 에스커(eskers)라고 불리는, 빙상 아래에 파여진 수로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기사는 이 상세한 이미지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해석되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3D 탄성파 반사 기법(3D seismic reflection technology)은 음파를 이용해 지표면 깊숙이 파묻힌 고대 지형을 정밀하게 입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자기공명영상(MRI) 장치가 인체 내 구조를 촬영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 방법은 수백 미터의 퇴적물 아래에 묻혀 있더라도, 지표면 몇 미터 아래에 묻혀있는 모습들처럼 이미지화할 수 있다. 이 새로운 데이터에 의해 제공되는 매우 상세한 사항들은 얼음이 형성될 때, 수로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고대의 '얼음 지문(ice fingerprints)'을 현대 빙하 아래에 남겨진 것과 비교함으로써, 과학자들은 이 고대의 빙하들이 후퇴하면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깊은 생각 없이 말해지는 장구한 시간
유콘 황야에서 발견된 알려진 가장 긴 고생대의 연속 기록.(Stanford University, 2021. 7. 8).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라는 진화론적 패러다임이 자리 잡은 후, 이 이야기는 구식의 현장 작업에서도 적용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캐나다 유콘(Yukon)의 필강(Peel River) 강변에 있는 암석들을 수집한 후, 분석을 위해 스탠포드로 가져왔다. 그곳에서 과학자들과 학생들은 분류 및 광물학에 대한 그들의 과정을 충실히 수행했고, 그것을 장구한 시간과 진화론적 패러다임에 적합시켰다. 그들은 다른 패러다임이 그 데이터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이전의 과학적 패러다임과 모순되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도, 그들의 패러다임을 유지했다 :
데이터는 저산소 농도, 즉 산소 결핍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육상식물과 초기 동물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현생대(Phanerozoic)까지 말이다. "초기 동물들은 여전히 저산소 농도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라고 스펄링(Sperling)은 말했다. 오랫동안 주장되어 온 추정과는 다르게, 과학자들은 오늘날 바다의 무산소 영역에서 종종 발견되는 호흡기 독소인 황화수소(hydrogen sulfide)가 놀랍게도 고생대 바다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기사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1억2천만 년 동안 지속된 지질기록을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캄브리아기 후기부터 데본기 중기까지의 이 장구한 시간 기록에서 진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을까? 필석류(Graptolites, 벌레와 같은 몸을 가진 캄브리아기 바다생물)가 발견되었고, 그들의 이야기에 적합시키고 있었다 : "필석류들은 인식 가능한 다양한 몸체 모양을 비교적 빠르게 진화시켰기 때문에, 이 서식지의 바다생물 화석들이 남긴 연필과 같은 흔적들은 지질학자들에게 그들이 발견된 암석의 연대를 알 수 있게 한다." 다른 곳에서는 초기 식물(plants)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식물들은 필석류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멸종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Their work was published in an open-access AAAS journal as Sperling et al., “A long-term record of early to mid-Paleozoic marine redox change,” Science Advances, 7 Jul 2021 • Vol 7, Issue 28 • DOI: 10.1126/sciadv.abf4382.
당황스런 누락
특히, 그 기사는 소위 ‘캄브리아기 폭발(Cambrian explosion)’이 진화론의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얼버무리고 있었다. 그 논문은 "캄브리아기 폭발"을 참고문헌에서만 언급하고 있으면서, 대신에 "캄브리아기 방사(Cambrian radiation)"이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있었다. 조사 중인 지층들이 그들의 견해로 캄브리아기 폭발 이후에 퇴적된 것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확실히 진화적 조상이나 전이형태에 대해 언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들은 지층암석에서 산소와 인의 농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마치 산소의 증가가 이후 생물들의 진화와 필석류의 멸종을 유발한 것처럼 말이다. 연구자들의 이야기는 복잡하며, 논란을 일으키며, 그들의 해석은 항상 서로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들의 첫 문장은 "고생대의 바다가 신원생대(Neoproterozoic)의 바다와 얼마나 달랐는 지와, 변화한 환경 조건들과 생물학적 진화 사이의 인과 관계는 심각하게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새로운 동물 몸체들의 출현을 위해, 산소 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가정인 것처럼 보인다.
다윈은 20여개의 동물 문(phyla)들이 갑작스럽게 출현하는 것에 대해 어리둥절해 했지만, 그 이야기의 절반은 알지 못했다. 진화론의 심각한 문제, 즉 캄브리아기에 다양한 몸체의 생물들이 갑작스러운 출현하는 것은 스티븐 마이어(Stephen Meyer)의 책 ‘다윈의 의문(Darwin’s Doubt)’과 일러스트라 미디어(Illustra Media)의 영상물 ‘다윈의 딜레마(Darwin’s Dilemma)’에 잘 제시되어 있다.
‘캄브리아기의 폭발’에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진화가 마법을 부릴 수 있었던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이어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눈, 다리, 소화관, 다양한 몸체들을 만들어내는 유전정보들은 무작위적인 자연적 과정으로는 생겨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전정보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캄브리아기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물체가 어떠한 조상 생물 없이 갑자기 등장하는 많은 다른 지층들에서도, 다윈의 이론에 대한 엄중한 도전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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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육지와 바다 아래의 지층암석에 있는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석은 세계관에 기초한다.
*참조 : 남극대륙의 빙상 아래에 거대한 협곡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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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빙상 아래에서 발견된 800km의 거대한 협곡 : 그랜드 캐년보다 더 긴 협곡이 섬에 나있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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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 발생되어 있는 대규모의 거대한 침식은 대홍수가 휩쓸고 간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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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구릉 : 대륙에서 빠르게 물러갔던 대홍수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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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기의 폭발’ : 화석은 진화가 아니라, 창조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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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기에서 생물들의 갑작스러운 출현을 창조론에 반대되는 증거로 왜곡하고 있는 진화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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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기 폭발을 악화시키고 있는 칭장 생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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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캄브리아기 화석 창고인 중국 칭장 생물군 : 연부조직 또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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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기 절지동물도 복잡한 뇌를 가지고 있었다. :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캄브리아기의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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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EH, 2021. 9. 16.
주소 : https://crev.info/2021/09/secrets-under-earth/
번역 : 미디어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