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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위원회
2009-03-16

초기 새에 대한 상상의 진화 이야기들 

: 공룡 멸종 시 조류가 살아남은 것은 우수한 뇌 때문? 

(The Early Bird Get the Just-So Story)


     2009. 2. 3 - 만약 전 지구적인 대격변적 사건이 공룡들을 멸종시켰다면, 왜 새들은 생존했는가? 그들은 더 작고 섬세하게 보이는데 말이다. ScienceDaily(2009. 1. 28) 지의 한 기사는 새로운 한 가설을 제시했다. 새들은 불운했던 공룡들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들은 친척 공룡들을 멸종시킨 전 지구적인 격변에서 생존하였다. 이것은 우수한 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새로운 연구는 제안했다.   

5500만 년 전의 것으로 주장되는 한 쌍의 바닷새 두개골(seabird skulls)은 더 크고 복잡한 뇌를 보여주고 있다고, 연구원들은 한 동물학 잡지에서 말했다. 그러나 새들이 어떻게 생존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설명은 하나가 아니다. 새들이 멸종 사건으로부터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여러 다른 가설들이 제안되었다. 어떤 가설은 위치 때문이며(location hypothesis, 격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떤 가설은 해안가에 살았기 때문이라는(coastline hypothesis, 해안가 서식지는 다른 곳들만큼 충격을 받지 않아서) 것이다. 이 가설들은 그러한 운 좋은 위치와 서식지에 살았던 공룡 종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뇌가 컸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큰 두뇌 가설(bigger-brain hypothesis)의 제안자들은 몇몇 새들은 멸종해갔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현대 조류를 있게 한 것은 깃털도, 온혈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더 큰 뇌 때문임이 틀림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러나 공룡 티라노사우르스(T. rex)의 뇌는 벌새(hummingbird)의 뇌보다 훨씬 크지 않은가? 그러면 그것은 뇌의 하드웨어 때문이 아니라, 뇌의 소프트웨어 때문인가? 그러나 공룡들은 매우 우수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서식지들에서 놀랄만한 유연성과 강인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왜 공룡 벨로시랩터(Velociraptor)는 멸종했고, 도도(Dodo) 새는 출현했는가? 이것은 공룡-조류 진화에 있어서 제기되는 여러 의문들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

그 기사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 ”최근 연구는 조류의 진화에 대한 새로운 귀중한 증거를 제공하면서 흥미로운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고 있다. 이제 고생물학자들은 더 많은 화석들을 발견하고 힘써서 살펴보아야할 동기를 부여받고 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더 많은 화석들을 필요로 한다고 그 선임연구자는 말했다. ”우리는 오직 현재 이용할 수 있는 알려진 종들의 표본만을 가지고 가장 초기 새의 뇌를 이해하는 것에 다가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이러한 잠자기 전에 듣던 것과 비슷한 동화 이야기를 진정으로 즐기기를 바란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언젠가 세상이 어려워질 때, 당신이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멸종에서 생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진화론이 붕괴 중이라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 채, 대학에서 진화론의 난센스를 가르치고 있는 거품-머리의 교수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9/02/the_early_bird_gets_the_justso_story/

출처 - CEH, 2009. 2. 3.

AiG News
2008-11-06

새로운 깃털달린 공룡의 발견? 

(New Feathered Dinosaur Discovered)


      중국 고생물학자들은 또 다른 ”깃털 있는 공룡(feathered dinosaur)”을 발견했다는 것이다.[1] (2008. 10. 22. BBC News,  National Geographic,  Live Science).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깃털 있는 공룡인가? 깃털이 있음에도 공룡인가?

”기괴하다(bizarre)”라고 표현된, 에피덱스입테릭스(Epidexipteryx)로 명명된 이 화석은 공룡의 일종이라기보다는 멸종된 새(bird)처럼 보인다. (Nature 웹사이트에 사진1,  사진2을 보라).

비둘기 정도의 크기(164g 정도 추정)인 에피덱스입테릭스는 비행 깃털들이 결여되었지만 BBC 뉴스에서도 ”매우 새와 같은(very bird-like)”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화석 기록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에 의하면, 에피덱스입테릭스는 조류들이 살았던 시기보다 이전인 1억5천만년 이전에 살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공룡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맞는가?

형태의 90%가 그대로 남아 있는 그 화석은 ”온 몸이 고운 깃털로 덮여 있었고 리본처럼 생긴 두 쌍(네 개)의 엄청나게 긴 꼬리 깃털을 갖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꼬리 깃털은 오직 장식용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옥스포드 대학의 테일러(Graham Taylor)는 말했다 : ”최초로 알려진 새의 출현 연대가 다른 깃털 있는 공룡들의 연대보다 이전이기 때문에, 이 화석은 훨씬 더 그 연대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 화석은 공룡에서 조류로의 결정적인 과도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창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 과학 아카데미의 고생물학자인 장(Fucheng Zhang)은 설명하였다 : ”에피덱스입테릭스는 새들에 보여지는 많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다른 수각류 공룡들에서도 알려져 있지 않은 몇몇 인상적인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증거들은 이 화석은 공룡이 아니라 일종의 새임을 압도적으로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공룡이라고 불려지게 되는 유일한 이유는 화석기록에서 발견된 위치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얼마나 많은 증거들이 발견되어야 진화론을 재고해 볼 수 있을 것인가? 에피덱스입테릭스는 그 모습으로 설계되어진 새이거나, 돌연변이에 기인하여 비행능력을 잃어버린 새일 수 있다. 그리고 화석기록에서 발견되는 다른 멸종된 새들처럼 이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새는 홍수 이전 사람들에 의해서 전시용 새로서, 날지 못하도록 비행 깃털이 뽑혀져서 사육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이야기는 깃털가진 공룡이라는 주장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이 화석을 ‘깃털이 있음에도 공룡’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1] Zhang et al, ”A bizarre Jurassic maniraptoran from China with elongate ribbon-like feathers,” Nature 455, 1105-1108 (23 October 2008) | doi:10.1038/nature07447. 

 

For more information:
Did Dinosaurs Turn Into Birds?
What Really Happened to the Dinosaurs? 

Tyrannosaurus rex: a big chicken?
”Ostrich-osaurus” discovery? 

Vertebrates: animals with backbones
Get Answers: Dinosaurs,  Fossils


*참조 1 : ‘새의 조상’ 추정 공룡 (2008. 10. 24.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3350423.html?ctg=16

공룡→새 진화 입증하는 기이한 화석 발견 (2008. 10. 23.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it_tech/200810/h2008102309432423760.htm

우아한 꼬리 깃털~ 1억 5,000만년 전 공룡 화석 발견 (2008. 10. 23. 아이비타임즈)
http://kr.ibtimes.com/article/popnews/20081023/3540063.htm

 

*참조 2 : Another Strange Chinese Fossil Found : Dinosaur or Bird?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10.htm#20081022a


*참조 3 : Evidence for feathered dinosaur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1/j21_1_58-61.pdf

Feather Evolution Proved? (Headlines, 2009. 1. 21)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901.htm#20090121a

Feathery flight of fancy: alleged ‘protofeathers’ fail under close scrutiny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11-12.pdf

Big birdosaur blues: new fossil creates problems for dino-to-bird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5-6.pdf

Flying dinosaurs, flightless dinosaurs and other evolutionary fantasie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42-47.pdf

Bird evolution: discontinuities and reversal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59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8/10/25/news-to-note-10252008

출처 - AiG News, 2008. 10. 2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47

참고 : 4170|4033|3940|3915|3321|2162|2666|4241|3934|553|4290|4188|1928|3400|3030|2700|2357|3014|4597|5418|5237|5358|5154|4735|5168

미디어위원회
2008-05-27

공룡 시대에 현대적인 새 화석이 발견되었다. 

(Bird Fossil Found, Dating Back to the Dinosaur Era)

AiG News 


      ”공자 새의 새벽(the dawn of the Confucius bird)”이라는 별칭이 주어진, 중국에서 발견된 새로운 화석 새는 공룡들의 시대에 있었다고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새는 놀랍도록 잘 보존되어 있었다. (“Dino-Era Bird Fossil Found; One of Oldest Known”, National Geographic News, 2008. 5. 6)

에콘컨퓨셔니스 정스(Eoconfuciusornis zhengi)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그 새 화석은 2년 전에 북경(Beijing) 외곽의 호안(lakeside)에서 발견되었는데, 이제 한 팀의 과학자들은 그 발견을 중국과학(Science in China) 지에 보고하였다.

연구팀의 리더인 북경 연구소(Beijing Institute)의 장(Zhang Fucheng) 교수는 ”에콘컨퓨셔니스는 상세한 부분까지 매우 잘 보존되어 있는 화석이다.”라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에콘컨퓨셔니스는 1억3천1백만년 전에 죽어서 호수 바닥으로 떨어졌고, ”침전물에 의해 매우 빠르게 묻힌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대에도 불구하고, National Geographic 뉴스는, 그 화석 새는 완전히 발달된, 그리고 현대적으로 보이는 날개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칭적으로 균형 잡힌 꼬리 깃털들은 검은색과 갈색의 휘어진 선을 보여주며 돌 안에 새겨져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National Geographic’s website의 사진을 보라).

따라서 이들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 근본적으로 완전히 현대적인 새가 시조새(Archaeopteryx, 악명 높은 공룡-조류의 전이형태, 1억5천만년 전) 이후에, 그러나 또 하나의 공룡-조류 전이형태로 주장되는 깃털 가진(추정) 공룡 Microraptor gui  이전에(?) 매우 짧은 기간(진화론적 시간 척도로) 안에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화석 기록의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온 이 현대적 새의 발굴 뉴스는 대대적으로 보도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논평했던 소수의 진화론자들은 ”그것은 종들의 놀랄만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Microraptor gui 를 발견했던 중국 고생물학 연구소의 씽쑤는) 일반적인 말만 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침묵과 일반적인 반응들이, 이러한 완전히 현대적인 새가 화석기록에서 그렇게 일찍 출현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dinosaurs/feathers/bird-fossil-found-dating-back-to-dinosaur-era/

출처 - AiG News, 2008. 5. 10.

김기환
2008-04-29

플로리다 법안 때문에 기분 나쁜 진화론 지지자들 

(Evolution supporters unhappy with Florida bill)


     지난 주 Nature 지(452호. 2008. 4. 17)에는 플로리다주 의회의 두 위원회를 통과한 진화론 교육관련 법안에 관한 독자들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 내용을 아래에 소개한다.


제목 : 플로리다 법안 때문에 기분 나쁜 진화론 지지자들

진화에 관하여 ‘모든 범위의 견해(the full range of views)’들을 제시한 교사를 보호하는 법안이 플로리다 주의 의회에 상정되었다. 비판자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이미 진화론 교육을 가르치도록 하는 주 교육기준에 위배되는 교사들에 대한 행정적인 지도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진짜, 진짜 나쁜 법안이다.” ‘과학을 위한 플로리다 시민 모임’의 죠 울프 회장은 말하고 있었다. “원하기만 하면 어느 교사든지 종교적인 생각, 지적설계론, 또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론까지 가르칠 수 있고, 그렇게 한 경우에도 그 교사의 해고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아카데믹 프리덤’ 법안에는 지적설계론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시애틀에 있는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의견이 수용된 것이다.  

지난 주 이 법안은 플로리다 주 의회의 두 위원회를 통과하였다. 최종 투표는 5월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Evolution supporters unhappy with Florida bill. 16 April 2008, Nature, doi:10.1038/452796c
http://www.nature.com/news/2008/080416/full/452796c.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

출처 - Nature, 16 April, 200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261

참고 :

AiG News
2008-04-23

고대의 뱀은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Ancient Serpent Shows its Leg)


     이상한 괴물이 돌아왔다 : 그것은 다리를 가진 뱀이다! (BBC News. 2008. 4. 10)

조금 이상한 소리로 들리지만, 화석화된 뱀(snake)이 두 뒷다리(two hind limbs)를 가진 채 레바논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것은 창세기 3장의 배로 다니도록 저주를 받은 뱀(serpent)이 생각나게 한다. 그러면 이 다리가 있다는 뱀은 창세기와 관계가 있는가, 아니면 진화와 관계가 있는가?

먼저 그 화석의 세부적 사항을 알아보자. 그 화석 표본은 길이 85cm로, 8년 전인 2000년 발굴되었던 것이다. 유럽 ESRF의 연구팀은 X-레이를 사용하여, 그 뱀이 몸체 뒷부분에 두 돌출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단지 하나만 뱀이 묻혀있는 석회암 돌판 표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뒷다리는 약 2 cm 정도로 다리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떠한 발가락(toes)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발가락들이 보존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흔적다리로서 발가락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ESRF의 책임 고생물학자인 폴 타포로(Paul Tafforeau)는 말한다.

두 번째, 이 화석 발견의 중요성을 알아보자. 진화론자들은 이 같은 화석은 뱀의 기원에 관한 논란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뱀의 조상은 수 세대 동안 굴에서 생활한 후 다리를 잃어버린 육상 도마뱀(terrestrial lizards)이거나, 바다 파충류(marine reptiles)였다는 것이다.

이 화석의 발견은 창조론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에 다리를 가진 뱀들에 관한 여러 발굴 시에 응답했던 대답과 동일하다. 예를 들어, 2 년전에 우리는 아르헨티나 뱀 화석(Argentine snake fossil)에 대해서 응답하였다. 여기에 그 대답들을 요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

1. 만약 뱀들이 한때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잃어버렸다면, 이것은 창조 모델과 완벽하게 적합한 것이다. 우리들이 주변에서 관측되는 ‘진화’는 모두 정보의 감소(information-reducing)와, 그로 인한 퇴화된 변화(degenerating change)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생물체들은 원래의 형태보다 덜 복잡한 형태로 변화되었고, 실제로 특징과 기능들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뱀들은 다리를 가진 채 창조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특별한 환경에서의 자연선택은 다리가 없는 단순한 형태의 뱀들을 선택했다. 또 하나의 설명은, 이들 소위 ‘다리(legs)’라고 불리는 구조는 교미(copulation)에 사용되는 기관일지도 모른다. 사실 진화론자들도 이 표본에서 그 다리라는 구조는 너무도 작아서 보행에 사용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또한 이것이 다리라면 왜 앞다리는 없는가? 뱀의 조상은 그 긴 몸통을 곧추 세우고 뒷다리 두 개로만 걸었는가?) 아마도 뱀들은 결코 걸었던 적이 없을 수 있다.   

2. 진화론자들은 뱀들은 도마뱀(또는 바다 파충류)들이 진화하여 생겨났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화론적 입장에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결론은 뱀들은 매우 특별한 등뼈(backbone)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일부 뱀들은 다른 파충류들과는 다르게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턱(unhinging jaws)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다리를 가진 뱀은 창조모델을 위협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유전학적 정보의 증가를 보여주는 진화론적 변화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이 뱀과 창세기 3장의 뱀 사이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자. 창세기 3:14절에서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게 되었다. 우리가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화석화된 뱀은 노아의 홍수로 인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아의 홍수는 창세기 3장의 사건 이후에 1000여년 이상이 지난 시기에 일어났을 것이다. 더군다나, 성경은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뱀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저주가 모든 뱀들에게 내려진 저주인지 한 특정 뱀에게만 내려진 저주인지 알 수 없다.


*관련기사 : 9천만 년 전, 다리 가진 뱀 발견 (2008. 4. 11.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3&Total_ID=3107502&cloc=joins|article|c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8/04/12/news-to-note-04122008 

출처 - AiG News, 2008. 4. 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247

참고 : 3336|3396|1904|2583|3969|1072|3170|3718|2060|3782|4046|3945

미디어위원회
2008-03-04

또 다시 선전되고 있는 가지나방

(Peppered moths -back on the agenda?)

Paul Taylor 


      영국의 좌경적 신문인 The Independent 지 (최근 장문의 기사로 창조박물관을 크게 다룬 바 있는)는 2007년 8월 25일자 기사에서, 케틀웰(Kettlewell)의 유명한 가지나방(peppered moth, 후추나방) 실험이 자연에서 일어나는 진화의 증거로 입증되었다는 한 이야기를 게재하고 있었다. 그 기사는 케틀웰의 실험이 옳았고, 가지나방 개체수의 분포는 ‘작동되고 있는 진화(evolution in action)’의 좋은 사례였고, 무례한 창조론자들이 늘 하던 대로 그것을 잘못 전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기사의 필자인 Independent 지의 과학부 편집인 스티브 코너(Steve Connor)와 연구원 겸 캠브리지 대학 교수인 마이클 마제루스(Michael Majerus)는 둘 다 창조론자들에 대한 그들의 비판과, 그 연구에 관한 그들의 주장에서 정직하지 않았다.

코너는 ”창조론자들이 피 냄새를 맡았다. 가지나방 이야기는 꾸며낸 데이터에 기초한 사례로서, 다윈주의가 어떻게 결함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선전되고 있다.” 라고 쓰고 있었다. 그는 마제루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 ”가지나방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각, 포식, 조류, 나방, 오염, 위장, 점심, 죽음 등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진화론 단체들이 가지나방 이야기를 공격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AiG 웹사이트는 이전에 가지나방 전설에 대한 정보를 특집으로 실은 바 있다.[1] 이 나방 종(Biston betularia)은 밝은 색의 종(typica)과 검은 색의 종(carbonaria) 등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사실 Biston betularia 형의 나방은 상대적으로 연한 색의 것에서부터 어두운 색의 것까지 연속적인 색소형성의 범위를 보이고 있다. 더 어두운 것들은 임의로 다른 타입으로 분류되고 있다.) 설명하자면 밝은 색의 나방은 오염이 심한 지역의 검게 변색된 나무껍질들 위에서 더 쉽게 눈에 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지역에서 새들은 밝은 색의 나방들을 더 쉽게 잡아먹을 수가 있었고, 어두운 색 나방의 개체 수 비율을 높게 증가시켰다. 마찬가지로 오염이 안 된 지역에서는, 밝은 색의 나방들의 수가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와 같은 개체 수의 분포가 발생했었던 몇몇 증거들이 있다.

Independent 지의 기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가지나방 실험들에 대한 비판이 개체 수들에 대한 관찰이 정확했는지 아닌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판되었던 것은 실험 방법과 결론이었던 것이다. 개체 수의 분포 증거가 맞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창조론자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나방이 진화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방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유전정보가 재배열(rearrangement)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것은 ”무기물에서 사람으로” 진화되기 위해 요구되는 그런 종류의 유전정보의 증가(increase in genetic information)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케틀웰이 행했던 실험은 처음에 창조론자들에 의해가 아니라, 동료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비판되었다. 그것은 주디스 후퍼(Judith Hooper)의 책 '나방과 인간들(Of Moths and Men)‘ 에서, 어떤 유명한 사진들은 죽은 나방을 나무에 접착제로 붙여서 얻어진 사진이라고 주장되었다. 이것은 나방들은 나무 껍질(bark)에 앉지 않고, 덮개(canopies)가 있는 곳으로 날아오르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방법론에 대한 비판은 개체수의 관찰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제루스가 오늘날에도 새들이 상당한 양의 나방들을 잡아먹고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창조론자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Independent 지의 기사가 케틀웰의 방법론에 결점(flaws)들이 있었음을 시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기사는 그 결점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마땅히 언급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실험에 참가했던 과학자들은 한 이야기를 증명하기 위해서 관련 없는 증거를 제시했다” 는 비난을 여전히 받게 되는 것이다. 과학적 연구에서,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방법이 부정직한 것이라면, 설령 결론이 맞는다 해도, 그 실험은 유효하지 않는 것이다.

그 기사는 가지나방들이 ”작동되고 있는 진화의 전형적인 사례”였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정확하지 않는 말이다. 설사 그것이 맞는다 하더라도, 가지나방 실험은 진화의 예가 아니라, 자연선택(이것은 창조론자들도 받아들임)의 한 예가 되는 것이다. 다윈주의자들이 쓰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자연선택은 (예컨대 환경에 의해서) 단순히 유전학적 특성이 선택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선택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관찰될 수 있다. 그러나 다윈주의적 자연선택(무기물에서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진화론자들의 추정)은 새로운 유전정보의 획득을 필요로 한다.

마제루스의 말 중에 하나는 옳다. 그것은 가지나방 이야기는 진정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부적절한 방법론과 지나치게 과장된 주장이 증명할 수 없는 것들(무기물에서 사람으로의 진화)을 증명하기 위한 헛된 시도로서 또 한번 사용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무기물에서 사람으로의 진화는 결코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참조  : The Moth Files : An UPDATE on the Peppered Moth fiasco

https://creation.com/the-moth-files

More about moths : A recent attempt to restore the reputation of the peppered moth as an evolutionary icon falls flat

https://creation.com/more-about-moths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natural-selection/adaptation/peppered-moths-back-on-the-agenda/

출처 - AiG, September 3, 2007.


Jerry Bergman
2008-01-19

다윈주의 : 목적 없는 생존

(Darwinism : Survival without Purpose)


”인류는 생명체의 의미에 대해서 항상 궁금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생명체는 DNA의 생존을 영속시키려는 것보다 더 높은 목적이 없다. 생명체는 단지 맹목적이고 냉혹한 무관심만 있을 뿐, 설계와 목적, 선과 악이 없다.”[1] -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진화는 ”기만적인 단순한 것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 크다.”[2] 첫째로 생물체들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variations)는 계획이나 목적 없이 무작위적으로 발생한 것이다.”[3] 진화는 계획이나 목적이 없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핵심 원리가 돌연변이(mutations)라고 불리는 무작위적인 복제오류에 의해 만들어진 개체들 중에서 적자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of the fittest)이기 때문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무엇이든지 목적성을 가진다는 것은 자연선택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매우 위태롭게 하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4] 퓰리처상의 수상자인 작가 에드워드 흄즈(Edward Humes)는 진화라는 사실은 명백하나 ”그것을 거의 볼 수 없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설계와 의미를 찾으려고 갈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

”다윈의 탁월성은 설계의 모습 너머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무목적성의 이해, 자연선택의 무자비한 과정, 야생에서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생물계통수로부터 가장 성공적인 유기체만을 추려냈으며, 그로 말미암아 뛰어난 지성이 세상을 설계했다는 것이 망상(illusion)이었음을 이해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시계와 같은 ‘완벽성’을 보이는 벌집이나 개미행렬(ant trails)과 같은 것들에 대해 정밀한 조사 결과 … 그것들은 의식적인 설계가 아니라, 무작위적이고, 반복적인, 무의식적 행동들의 산물이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5]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을 영속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음을 진화론이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은 교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어떤 교사는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쳤다”고 증언했다.[6] 왜냐하면 그것은 교사들로 하여금 ”그들의 태도와 신념에 완전히 반대되는 어떤 것, 즉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으로부터 멀어지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진화를 수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연구에서, 예일대학의 심리학자인 블룸(Bloom)과 와이즈버그(Weisberg)는, 저자들이 ‘무차별적 목적론(promiscuous teleology)’이라고 부르는 세상을 바라보는 진화론적 방식이 그들로 하여금 진화를 수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설계와 목적이라는 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7] 진화의 궁극적인 무목적성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생명체의 무목적성은 크로스(Lawrence Krauss) 교수에 의해 다음과 같이 역력히 표현되었다. ”우리는 단지 자연에 약간의 오염(pollution)을 일으킬 뿐이다…. 만약 우리가 제거되더라도…, 우주는 거의 동일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히 무의미한 존재이다.”[8]


교과서들

삶의 목적(purpose of life)과 같은 종교적인 질문에 대해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나는 현재의 과학교과서들을 조사하여 보았다. 그리고 진화론이 허무주의와 무신론적 관점을 가르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교과서 중의 하나에는 ”진화는 계획이나 목적 없이 진행된다 …진화는 무작위적이고 방향성이 없다.”라고 적혀있다.[9] 같은 저자들에 의한 다른 교과서에서,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철학적 유물론(philosophical materialism), 즉 물질이 모든 존재의 구성성분이고, 모든 정신적, 영적 현상들은 그것의 부산물이라는 신념을 믿는 것이 요구됨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그 저자들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윈주의적 진화는 … 자연이 무자비하게 부적합한 생물체들을 제거하는 과정으로서, 무목적적일 뿐만 아니라, 냉혹한 것이다. 갑자기 인류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자가 아무도 없는 단지 동물들 중의 한 종(species)으로 전락되었다. 위대한 인간의 정신(mind)은 단지 진화하는 신경세포들의 덩어리(mass of evolving neurons)일 뿐이다. 가장 곤란해진 것은 우리를 안내할 신적 계획(divine plan)이 없어졌다는 것이다.”[10]

또 다른 교과서에서는 ”인간은 단지 생명체들의 거대한 수풀 속에 난 작고, 매우 늦게 우연히 생겨난 잔가지”일 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점진적이고, 지시된 힘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진화”는 현재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가르쳐지고 있다.[11] 많은 교과서들은 진화는 맹목적인 생존을 제외하곤 목적이 없고(purposeless), 목표가 없다(no goal)고 가르치고 있다. ”진화가 최종 목표나 상태를 향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화 과정 그 자체보다 더 수용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12] 어떤 주요 교과서는 인간은 눈멀고, 귀머거리고, 벙어리인 시계공(즉 미래에 대해 완전히 장님인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공공연히 가르치고 있다.

”인간은 … 다른 모든 생물 종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진화적 근원으로부터 왔다. 우리에게 몸과 뇌를 준 것은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s)들의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은 … 생명체의 통합성, 생명체의 다양성, 생명체의 복잡성, 그리고 생명체 내의 명백한 설계를 … 설명한다.”[13]


암시들

많은 교과서들은 유신론에 대한 다윈주의의 의미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한 교과서에는 다윈이 과학에 미친 중요한 수많은 공헌들은 생명체의 명백한 설계와 목적의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모든 생물학적 현상들을 기계적인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 교과서는 ”지시되지 않은, 무목적적인 변이를 눈멀고 제멋대로인 자연선택의 과정과 결부시켜 생각함으로써, 다윈은 생물체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에 대한 신학적 또는 영적인 설명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이고 있다.[14] 저자는 ”가장 서구적 사고의 단계였던 … 기계주의(mechanisms)와 물질주의(materialism)라는 기반에 중요한 지지물을 제공한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었다.”라고 언급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15] 또 다른 교과서에서는 심지어 인간은 사랑의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인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실제적 어려움은 항상 우리의 중요성을 손상시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진화는 다른 모든 유기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또한, 과학이 보여주는 것처럼 어떤 특별한 목적이나 어떤 우주적 설계의 부분으로 창조된 것이 아닌, 무작위적 과정의 산물(products of a random process)이라는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했다.”[16]

이러한 교과서들은 모두 다 분명히 과학이 아니라 종교적 사고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한 교과서는 공공연히 유신론적 진화론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하나님의 어떠한 역할도 배제하고 있으며, 인간과 모든 생물체들은 ”어떤 신의 개입(intervention) 없이 자연선택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다윈주의가 유신론을 위태롭게 하였음을 입증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다. ”진화론적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은 의식적이고 목적적이며 인간과 같은 특성을 지닌 신적 존재(deity)를 대체했다.”

”현재의 종류와 같은 생물체들이 동시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일어난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들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다윈주의적 관점은 생물들이나 지구 및 우주 등이 어떤 지적설계자의 설계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보편적인 종교적 관점과 모순 된다. 이 체제에서 설계를 하고 목적을 가진 신은 필요하지 않다…. 종교는 세상을 통치하는 신의 형상으로 인류가 창조되었다는 위안적 생각에 의해서 지지되어왔다. 종교는 정서적 안위와 일련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교리(dogma)에 대한 믿음은 그것의 미스터리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에 의해 손상되었다…. 창조론자들과 과학계의 입장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17]

다윈 자신은 기원에 대해 전적으로 무신론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관점을 가르쳤다. 그는 심지어 한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자연선택이 어떤 후손의 단계에서 기적적인 추가를 요구한다면 나는 그 이론을 버릴 것이다.”[18] 그래서 진화론 생물학자인 앨콕(John Alcock)은 ”우리는 단지 우리 안의 유전자들을 전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라고 결론지었다.[19]

선도적 진화론자인 브라운(Janet Browne)은 다윈의 목표는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보던 방식을 뜯어 고치는 힘들고 끈질긴 일이었다.”고 매우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다윈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비롭고, 거의 완벽한 자연세계에 대한 생각”과 ”사물의 아름다움이 어떤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즉 모든 생물들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존재하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지어낸 하나의 우화(a fable)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확신시켜야만 했다.

”인류로 하여금 고귀한 삶을 추구하도록 하는 도덕적 의미로 넘쳐나는 세상은 다윈의 세계가 아니었다. 자연에 대한 다윈의 관점은 어둡고, 암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연 속의 어떤 종류의 설계, 어떤 종류의 계획과 질서가 있으며, 자신의 존재에 의미가 있다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믿음이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곳에서, 다윈은 그들이 모든 생물체들을 어떤 신성한 목적이 없는 것으로 보기를 원했다.”[20]

다윈은 그러한 관점을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았으나, 진화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자연이 궁극적으로 ”완전히 우연에 의해 지배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

”자연의 아름다운 외형은 말 그대로 단지 외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그 아래에는 종과 종 사이의, 개인과 개인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이 있다. 생명은 죽음에 의해서 지배되고, 파괴는 번식적 성공의 열쇠이다. 따라서 모든 신학적 의미들은 다윈에 의해 해체되었고, 경쟁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완벽한 적응이라는 자연주의 신학자들의 사상에 기초가 되었던 모든 목적인(telos, purpose)은 맬서스주의적-다윈주의적 투쟁으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설계로 본 것을 그는 환경에 대한 단순한 적응, 즉 동물이나 식물이 생존하도록 도운 방식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적응으로 보았다.”[21]

신다윈주의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그러한 체계의 무목적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

”맹목적인 물리적 힘과 유전적 복제의 우주에서, 어떤 사람들은 상처를 입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운이 좋을 것이다. 그 속에서 어떠한 분별이나 이유, 혹은 어떠한 정의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는 사실상 설계도, 목적도, 선도, 악도 없으며, 단지 무목적과, 무자비와, 무관심만 있을 때 기대되어지는 특성만을 정확히 가지고 있을 뿐이다.”[22]

이러한 견해가 과학자들 사이에 얼마나 널리 퍼져있을까? 선도적 생물학자들 149명에 대한 한 연구에 의하면, 89.9%가 진화는 궁극적으로 생존을 제외하고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시간과 우연의 변덕 속에서 단지 하나의 우주적 사고(a cosmic accident)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6%의 생물학자들만이 진화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23] 진화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신론자들이었다. 이것은 솜머(Sommers)와 로젠버그(Rosenberg)가 ”진화론의 파괴적인 힘(destructive power of Darwinian theory)”이라고 불렀던 단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24]
 

목적과 기독교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한 거주할 곳(home)으로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고 가르친다. 만약 우주가 순전히 자연적 방법에 의해서 진화되었다면, 우주는 단지 존재할 뿐이며, 존재에 대한 어떠한 ‘목적’은 인간 스스로가 생각해낸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경험과 지적 재능들은 이것에 반대됨을 보여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복잡한 기계들과 우주의 질서정연한 기능들의 유사성은 설계논증의 근거가 되고 있다. 기계에 설계자와 제조자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는 우주만물도 설계자와 제조자가 필요하다.

어떤 것의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관찰자의 세계관에 의존한다. 무신론자들에게 ”생물체 구조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이 구조가 생존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시력과 다리는 삶의 즐거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단지 진화의 계획되지 않은 부산물일 뿐이다. 생물학자들은 끊임없이 보호색에서부터 생식습성까지 모든 것들을 단지 생존을 기초로 해서 설명할 뿐이다. 전통적인 신다윈주의는 모든 것들을 무작위적이고 자연선택 된 돌연변이의 결과와 자연법칙으로 인한 운 나쁜 또는 운 좋은 우연한 사건들로 보고 있다. 대조적으로, 창조론자들은 모든 존재들을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 따른 것으로 해석한다. 진화론자들은 심지어 모순적인 행동까지도 설명하려고 하나, 창조론자들은 그 너머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고 노력한다.


결론

전통적인 진화론은 생물계는 생존 외에는 어떠한 계획이나 목적이 없으며, 무작위적이며, 방향성도 없을뿐더러, 냉혹하다고 가르친다. 인간은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무도 없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정신(minds)은 단순한 고기 덩어리일 뿐이며, 우리를 인도하는 어떠한 신성한 계획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공공연하게 무신론(atheism)과 허무주의(nihilism)라는 종교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법정은 끊임없이 공립학교에서 이러한 반기독교적 종교를 가르치는 것을 승인해왔고, 이처럼 분명히 종교적인 생각을 무효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방해해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디모데후서 4:3-4).

               
References

1. Scheff, Liam. 2007. The Dawkins Delusion. Salvo, 2:94.
2. Humes, Edward. 2007. Monkey Girl: Evolution, Education, Religion, and the Battle for America's Soul. New York: Ecco, 119.
3. Ibid, 119.
4. Turner, J. Scott. 2007. The Tinkerer's Accomplice: How Design Emerges from Life Itself.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6.
5. Humes, Monkey Girl, 119.
6. Ibid, 172.
7. Bloom, Paul and Deena Skolnick Weisberg. 2007. Childhood Origins to Adult Resistance to Science. Science, 316:996.
8. Panek, Richard. 2007. Out There. New York Times Magazine, 56.
9. Miller, Kenneth R. and Joseph S. Levine. Biology. 1998. Fourth Edition, Englewood Cliffs, NJ: Prentice Hall, 658, emphasis in original.
10. Levine, Joseph S. and Kenneth R. Miller 1994. Biology: Discovering Life. Second Edition, Lexington, MA: D.C. Heath, 161, emphasis in original.
11. Raven, Peter H. and George B. Johnson. 2002. Biology. Sixth Edition, Boston, MA: McGraw Hill, 16, 443.
12. Purves, William K., David Sadava, Gordon H. Orians, and H. Craig Keller. 2001. Life: The Science of Biology. Sixth Edition, Sunderland, MA: Sinauer Associates; W.H. Freeman, 3.
13. Interview with Richard Dawkins in Campbell, Neil A., Jane B. Reece, and Lawrence G. Mitchell. 1999. Biology. Fifth Edition, Menlo Park, CA: Addison Wesley Longman, 412-413.
14. Futuyma, Douglas J. 1998. Evolutionary Biology. Third Edition, Sunderland, MA: Sinauer Associates, 5.
15. Ibid, 5.
16. Curtis, Helena and N. Sue Barnes. 1981. Invitation to Biology. Third Edition, New York, NY: Worth, 475.
17. Strickberger, Monroe. 2000. Evolution. Third Edition, Sudbury, MA: Jones & Bartlett, 70-71.
18. Darwin, Francis (editor). 1888. The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London: John Murray, 210.
19. Alcock, John. 1998. Animal Behavior: An Evolutionary Approach. Sunderland, MA: Sinauer Associates, 16, 609.
20. Browne, Janet. 1995. Charles Darwin: Voyaging, A Biography.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542.
21. Ibid, 542.
22. Dawkins, Richard. 1995. River Out of Eden. New York: Basic Books, 133.
23. Graffin, Gregory W. 2004. Evolution, Monism, Atheism, and the Naturalist World-View. Ithaca, NY: Polypterus Press, 42.
24. Sommers, Tamler and Alex Rosenberg. 2003. Darwin's Nihilistic Idea: Evolution and the Meaningless of Life. Biology and Philosophy, 18:653.

* Dr. Bergman is Professor of Biology at Northwest State College in Ohio.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대구지부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513/

출처 - ICR, Impact No. 413, 200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146

참고 : 3800|3856|3841|3808|3744|3736|3729|3679|3677|3606|3598|3586|3593|3591|3426|3391|3360|3341|3293|3262|3109|3107|3059|3051|3012|2859|2748|2763|2752|2579|2504|2334|2125|2153|2114|2067|2061|1912|1914|1907|736|730|729|657|658|659|696|653|654|551|328|201|202|45|4039|3919|3887

미디어위원회
2007-11-30

미골(꼬리뼈), 진화론자들을 어리석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 

(Tailbones, Things That Make Evolutionists Look Stupid)

John Hinton 


     진화론자들이 만들어낸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주장 중의 하나는 사람의 미골(coccyx, 꼬리뼈)은 먼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꼬리(tail)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유머 같은 우스운 개념이지만, 아직도 과학으로서 공공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은 꼬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지금도 꼬리를 가지고 있다면 여러 모로 편리할 것이다. 예를 들면, 두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치면서 꼬리로 커피를 먹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한 피아노를 칠 때 음악이 중단됨 없이 악보를 넘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쓸모 있을 어떤 부분을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우리가 꼬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사용했었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했기에 중요하지 않게 되었을까 나는 궁금하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반갑다는 표시로 그것을 흔들다가, 후에 악수를 하는 것이 더 근엄하게 보인다고 생각했는가? 그래서 꼬리가 없어지기 시작했는가? 아니면 꼬리로 물체를 잡았었는데, 우리가 너무 많이 먹어 몸무게가 나가면서 나무에 매달릴 때 끊어져 나갔는가? 이들 괴상한 과학자들은 실제로 '흔적 꼬리(vestigial tail)”가 오늘날 전혀 사용하지 않아 떨어져 나갔거나 퇴화되어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미골은 척주(spinal column)의 끝 이상의 기능이 있다. 사람 미골은 다수의 운동에 관여하는 9개 근육의 부착 지점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변(defecation) 활동과관련된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미골이 불필요하다는 그들의 결론에 동의하는지를 델라웨어 윌밍톤(Wilmington)의 아슐리 머리(Ashley Murry)에게 물어보아야만 할 것이다. 이 소녀는 미골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일생동안 기저귀를 차야만 한다. 그녀의 사례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1] 미골의 또 하나의 중요한 사용은 그 뼈는 우리들이 앉아있는 행동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미골 없이도 앉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색하고, 불편할 것이다. 더군다나 미골은 어떤 내부 장기들을 지지하는 것을 돕고 있다.[2]    

우리가 미골의 정확한 기능들을 모두 나열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등뼈의 끝부분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이다. 등뼈는 어느 곳에선가 끝나야만 한다. 그런데 왜 미골이 쓸모없다는 것인가? 열려진 상태로 보호되지 않은 채 끝나있는 척수(spinal cord)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척수액이 다리 쪽으로 계속 흘러나와 고통스럽고 귀찮아질 것이다. 잘못된 과학자들에 의한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결코 무해한 것이 아니다. 나의 양아버지는 척추 통증으로 고생할 때, 한 무능한 의사에 의해서 그의 미골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그는 또 다른 의사에 의해서 그가 필요한 것은 일련의 척추운동이고, 미골 제거 수술은 의사들에 의해서 더 이상 실시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까지 미골 절제 수술은 실시되고 있었다. 미골에 관한 진화론자들의 허튼소리에 넘어간 의사들은 첫 수술 후 24시간 안에 그 실수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양아버지는 두 번째 의사의 의견을 따랐기 때문에, 지난 30년 동안 어떠한 척추 문제없이 지내왔다. 그리고 그는 성인용 기저귀와 멜빵, 후속 수술비 등으로 들어가는 상당한 비용의 지출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골이 퇴화된 쓸모없는 기관이라는 터무니없고 엉터리 같은 주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과학 전문가이며 진화론 지지자인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는 미골을 흔적기관(vestigial organ)의 예로서 사용했던 현대 과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3] 왜 그들은 그러한 엉터리 같은 말을 하면서도 신뢰를 얻고 있을까? 왜 그들은 이러한 잘못된 개념을 전파했음에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며,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가?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진화론이라는 종교를 선전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것은 진화론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Additional Information:
1. Referenced by Steve Grohman in his creation seminar.
2. Covey, Jon A. Edited by Anita K. Millen. Vestigial Organs. s.l.: s.n., n.d.
3. Bergman, Jerry. Do Any Vestigial Structures Exist in Humans. CEN Technical Journal. 14(2) 2000. 

 

*참조 : Human tails and fairy tale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299/

Human tails?

https://creation.com/human-tails

Tailbone “serves no purpose”?

https://creation.com/tailbon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rdino.com/articles.php?spec=74 

출처 - CSE

미디어위원회
2007-10-17

흔적기관으로 주장되던 맹장의 기능이 발견되었다. 

(Appendix to the Vestigial Organ Story : Whoops Function Found)


     새로운 연구 보고에 의하면, 맹장(appendix, 충수)은 우리의 진화론적 과거로부터 남겨진 단지 하나의 쓸모없는 기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Associate Press의 기사에 따르면(Oct. 5, 2007), 이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기관이 당신의 소화관을 위해 유익한 세균들을 만들어내고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듀크 의대(Duke University Medical School)의 과학자들은 맹장이 소화를 도와주는 정상세균총(normal bacterial flora)을 재생성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새 이론에 따르면, ”벌레 같은 모양의 이 기관은 질병과 다이어트 등으로 결장(colon)에서 세균의 개체수가 감소했을 때, 우리의 소화기관이 의존하는 이로운 세균(good germs)들을 배양하는 세균공장(a bacteria factory)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Science Daily (2007. 10. 8) 지는 그 기능을 발견한 듀크 대학의 연구자 중 한 사람인 윌리암 파커(William Parker)의 경력을 소개하고 있었다.   

저개발 국가의 주민들은 확실히 맹장염(appendicitis, 충수염)의 발병률이 낮다. 선진국 주민들에서 맹장염의 발병률이 높은 것은 과도한 위생(excessive hygiene)에 의한 면역계의 과잉반응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그 기사는 제안하였다. 맹장의 염증은 치명적일 수 있고, 신속히 제거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맹장이 소용없는 장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진화론자들은 오랫동안 맹장을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남겨진 쓸모없는 흔적기관(vestigial organ)의 전형적인 예로서 간주해왔다. 사람이 맹장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 견해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사람의 맹장은 다른 포유류와 비교하여 더 작고, 더 오그라들어 보인다.

1895년에 비더스하임(Weidersheim)은 사람 몸에서 180가지의 기관 목록을 만들어서, 그것들을 진화로 남겨진 흔적기관들이라고 말했다. 창조론자들은 어떤 신체 기관의 기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의 기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해왔었다. 주장되던 180가지의 흔적기관 목록은 점점 줄어들어서 오늘날 단지 소수의 몇 가지 밖에 남지 않았다. (Jerry Bergman의 글을 보라)  

이 새로운 논문은 이전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맹장의 새로운 역할, 즉 소화관의 정상세균총(군)을 ”재부팅(reboot)” 시키는 신체의 기관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시간 대학의 한 과학자는 비더스하임의 목록에 올라있는 또 다른 소용없는 기관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 ”나는 편도선(tonsils)에서도 같은 종류의 기능을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브랜다이스 대학(Brandeis University)의 한 과학자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말을 하고 있었다 : ”듀크 의대의 설명은 진화론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찰스 다윈을 위하여 더 이상 영광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하라. 다윈의 이론이 이들 주장되던 흔적기관들에 대한 의학적 연구를 100여년 동안 방해해 왔었다는 것을 숙고하라. 편도선은 진화 과정에 남겨진 쓸모없는 기관이라는 가정 때문에, 지속적으로 어린이들의 목에서 편도선은 제거되었다. 그 희생자들은 목 감염(throat infections)에 더 민감하게 되었다. 만약 당신이 맹장염에 걸렸다면, 맹장을 제거하는 것이 더 낳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만 하다면 당신의 모든 장기들을 최대한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현명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 장기들은 거기 있어야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흔적기관이라고 주장되던 한 기관이 확실하게 아니었음이 밝혀진 또 하나의 사례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맹장이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발견이 진화론적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물어보아야만 한다. ”진화론적 의미(evolutionary sense)”는 하나의 모순어법(oxymoron)이다. 맹장이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 진화론적 의미를 가지는 것과 똑같이, 이제 맹장이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진화론적 의미를 가지는가? 만약 그것이 진화론적 의미라면, 그것은 일 원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불성실하고 부정한 정치인들을 투표로 낙선시키는 것처럼, 다윈당의 의원들도 그 신뢰도를 평가하여 불량한 사람들은 몰아내자.


 

*참조 : 맹장은 이로운 박테리아 생산공장 (2007. 10. 6. 연합뉴스)

http://news.empas.com/issue/show.tsp/cp_yt/3116/20071006n02679/

맹장은 이로운 박테리아 생산공장 (2007. 10. 8. 병원신문) 

https://www.kh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423

맹장 쓸모없다? 유익균 공장이자 피난처  (2015. 6. 25. 코메디닷컴) 

https://kormedi.com/1215336/%EB%A7%B9%EC%9E%A5-%EC%93%B8%EB%AA%A8%EC%97%86%EB%8B%A4-%EC%9C%A0%EC%9D%B5%EA%B7%A0-%EA%B3%B5%EC%9E%A5%EC%9D%B4%EC%9E%90-%ED%94%BC%EB%82%9C%EC%B2%98/

맹장은 쓸모가 있었다…과학자들 '면역체계 기여도' 확인  (2017. 1. 13.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70113125100009

Appendix: a bacterial ‘safe hous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382/

Your appendix … it’s there for a reas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709

Appendix shrieks ‘Creation’ (at least 18 times!)

https://creation.com/appendix-shrieks-creation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710.htm 

출처 - CEH, 2007.10. 6.

미디어위원회
2007-10-02

벨로시랩터는 용이었는가? 

: 팔뚝 부분에 깃털이 있었다고? 

(Was Velociraptor a Dragon?)


      쥐라기 공원(Jurassic Park)에서 공포의 대명사이던 벨로시랩터(Velociraptor)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던 것처럼, 이제 일부 과학자들은 벨로시랩터가 깃털(feather)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벨로시랩터가 영화에서의 용처럼 날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Science (21 September, 2007) 지에 게재된 최근의 주장은 몽고에서 발견된 벨로시랩터 표본의 요골(radius bone)에 분명하게 나있다는 ‘깃혹(quill knobs)’들에 기초한 것이었다. 저자들은 그들의 짧은 연구 논문에서, 그것이 공룡들이 깃대가 있는 깃털(quill feather, 장깃털)을 가졌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Science Daily(뼈사진을 볼 수 있음), BBC News 등의 다른 과학부 기자들도 이것이 황당했던 아케오랩터(Archaeoraptor) 사건 이후에 약간의 보상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당혹스러워함 없이 그 주장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었다.

[1] Alan H. Turner, Peter J. Makovicky, Mark A. Norell, 'Feather Quill Knobs in the Dinosaur Velociraptor,” Science, 21 September 2007: Vol. 317. no. 5845, p. 1721, DOI: 10.1126/science.1145076.



아무도 그들의 주장에 질문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논문과 사진들은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벨로시랩터가 확실한 깃털을 가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의 점들을 숙고해 보라 :


1. 그 증거는 주변적인 것이며, 확실한 것이 아니다.

2. 그 주장은 벨로시랩터의 여러 표본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한 뼈(one bone)에 근거하여 제기된 것이다. 그들이 먼저 해야만 하는 것은 다른 표본들도 조사해보는 것이어야 한다. 

3. 어떠한 깃털(feathers)이나, 깃털 인상(feather imprints)도 발견되지 않았다. (09/06/2007의 footnote 2를 보라). 단지 깃혹(quill knobs)들로 추정되는 부분들만 발견되었을 뿐이다. 

4. 그 구조(깃혹)들은 단지 6개만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작은 혹(knobs)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압흔(dimples, 옴폭 들어간 곳)처럼 보인다.

5. 비교를 위해 보여준 대머리수리의 뼈(vulture bone)에 있는 것처럼 압흔들은 직선 라인(a straight line)이 아니라, 하나의 곡선(a curve)으로 이어져 있었다.

6. 추정되는 깃혹들은 뼈의 중간 1/3 지점에 있었는데,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계속되지 않고 있었다. 왜 벨로시랩터는 팔 중간에 단지 6개의 깃털만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에 비해 대머리수리의 뼈에서는 깃혹들이 뼈를 따라 계속되고 있었다.

7. 그들은 다른 쪽 팔이나, 골격의 다른 어떠한 부분에서도 유사한 깃혹들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쪽 팔 중간에만 깃털이?) 

8. 모든 새들이 깃혹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독수리(eagles)는 깃혹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들도 깃혹의 결여가 깃털의 결여를 증거하지 않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깃혹의 존재가 깃털에 대한 직접적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깃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깃털이 없는 동물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들의 마지막 말은 지지될 수 없는 것이다 : ”이 모습이 그들의 조상이 가지고 있던 기능적 잔재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던지 간에, 중간 크기의 팔 후면에 장깃털(quill feathers)들의 존재는 명백히 날지 못하는 드로메오사우르스(dromaeosaur)가 이제 깃털을 가졌던 것으로 확립될 수 있게 한다.”    

9. 이들 구조들은 깃털을 지지하는 것보다,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10. 벨로시랩터는 깃털을 사용하지 않았다. 저자들도 그 생물체의 골격이 비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팔들은 너무 짧아서 날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11. 저자들은 깃털들의 사용 용도에 대해서 성적 과시용(sexual display) 또는 주행 중 하향 양력(downward lift)을 위해서 사용되었을 것으로만 추정하였다. 이것에 대해 그들은 비행의 기원(origin of flight)에 관한 켄 다이얼(Ken Dial)의 우스꽝스러운 가설을 언급하고 있었다. (05/01/2006, 12/22/2003을 보라).

12. 그 논문은 벨로시랩터가 비행할 수도 있었을 조류 같은 깃털달린 공룡들로부터 후손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것에 대한 증거는 전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진화(evolution)가 아니라, 퇴화(devolution)이다.

13. 깃털은 비늘(scales)과 너무도 다르다. 팔 뼈를 따라 나있는 움푹 파여진(pits) 부분들의 존재는 어떻게 복잡한 깃털들이 진화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너무도 부족하다. 그러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 ”커다란 몸체를 가진 비조류 수각아목(nonavian theropod) 분기군의 비행하지 못하는 생물들이 보조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깃털의 진화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상당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그 증거에 비해 너무도 앞서가는 주장이다.     

14. 서론은 ”일부 비조류 수각아목 공룡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깃털 또는 실 모양의 원시깃털(protofeathers)로 덮여있었다”라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논문의 참고문헌은 공동저자 중 한 명에 의한 논문으로, 독립적인 출처를 가진 논문이 아니었다. 그 논문을 하나의 반대 증언(hostile witness)으로서 공룡-조류로의 진화를 비판하는 데에 인용하는 것은 독선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15. 그들은 ”깃털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direct evidence)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깃털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증거는 간접적인 것이다.

16. 대게 깃혹들은 비행에 사용되는 우판과 깃가지(vanes and barbs)를 가지는 생물체들이 가지고 있는 이차적 깃털(secondary feathers) 이다. 다른 ‘깃털 공룡’ 후보들 중 어느 것도 진정한 조류로 주장될 수 없다면, 이와 같이 발달된 깃털을 가졌다는 것은 의심스럽다.   

17. 그 뼈는 분리(isolation)되어서 발견되었고, 벨로시랩터의 ”여러 특성들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이 뼈가 잘못 분류되었을(misclassified)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18. 이 주장은 공룡-조류로의 진화에 대한 다른 논쟁들로부터 분리되어 취해질 수 없다. (09/06/2007와 이전 링크 글들을 클릭하여 보라).       

 

경험 많은 고생물학자들이 이 뼈에 대해서 좀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한정적인 증거가 깃털 달린 벨로시랩터를 확립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창조론자들에게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멸종된 생물체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좀더 다양했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어떤 조류와 파충류들은 이빨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것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조류와 파충류들은 날 수 있지만, 어떤 것들은 날지 못한다. 어떤 조류와 파충류들은 다른 수의 발가락들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조류 강(class Aves)과 파충류 강(class Reptilia) 내에서의 형태학적 차이들은 거대하다. (타조와 벌새, 악어와 거북을 비교해 보라). 다양성은 과거에 훨씬 더 컸을 수도 있다.

창조론자들에게 다양성은 필요한 생물체들에게 설계된 구조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자가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비슷한 공통 구조들이 서로 다른 그룹의 생물체들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에 대해서 진화론자들은 기적(miracle)을 가리키는 그들의 단어인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 (우연한 돌연변이가 각기 다른 그룹들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나 우연히 비슷한 구조들이 생겨났다)로 설명한다. 깃털을 가진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추가되는 예가 될 수 있다.  

또한 벨로시랩터가 깃털을 가졌다면, 그동안 과학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그리고 쥐라기 공원의 제작자가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공룡과 조류 사이의 하나의 연결고리로 확립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생물체는 조류로의 진화계통 라인에 있는 생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자들도 벨로시랩터의 가계가 깃털을 잃어버리는 과정에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깃털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그 어떠한 조상들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그 생물체의 조상들은 (그 이야기에 의하면) 기능을 하는 깃털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이론을 선전하기 위한 광란의 켐페인을 벌리고 있다. 이것이 그러한 주변적 증거가 그렇게 많은 언론들에 앞다투어 보도되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껏해야 단지 또 하나의 상동성(homology)에 관한 주장이다. 조나단 웰즈는 그의 책 ”진화론의 상징물들(Icons of Evolution)”에서 상동성은 진화를 입증하지 못함을 너무도 잘 지적하고 있었다. 또한 상동성은 공통설계자(common design)를 가리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데로 그 공룡이 깃털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 종류의 동물이 다른 종류의 동물로 진화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하나의 뼈말고 더 많은 증거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같은 종류의 과학 논문들에 주의하라. 저자들은 어린 공룡들이 언덕을 달리는 동안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의 팔을 내뻗었을 때, 비행이 진화되었다고 제안한 켄 다이얼(Ken Dial)의 불합리한 동화같은 이야기를 참고문헌으로 인용하고 있다. 이들 연구자들은 다이얼의 논문을 보고 크게 웃는 것 대신에, 그것을 자신들의 논문을 지지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03/17/2006을 클릭하여 이러한 현상을 다루고 있는 글을 다시 읽어 보라. 한 연구팀의 사회과학자들은 과학 논문들이 실제로 지식을 쌓아나가기 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개념을 영구화 시킬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히스토리 채널(History Channel)의 한 다큐멘터리는 같은 증거로부터 어떻게 완전히 다른 해석들이 생겨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용(dragons)들에 관한 2005년도 프로그램이 재방영 되었다. 거기에서는 용들에 대한 전설이 마야, 중국, 미국 인디언,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들 전설들은 매우 놀랄만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각 문화는 이들 생물체들이 실제로 존재했었음을 믿고 있었고, 일부 문화들은 최근 시기까지도 용들을 목격했다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것이 설명될 수 있을까?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사람과 공룡이 최근까지 함께 살아왔었다는 증거로 사용해왔다. 그리고 공포스런 짐승들에 대한 기억은 용들에 대한 전설로 남아있게 되었다고 말해왔다. 세속적 TV 프로그램도 용들이 공룡들과 놀랄 만큼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공룡은 절대로 동시대에 존재할 수 없음을 가정하고서, 해설자들은 난데없이 엉뚱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그들의 진화된 뇌에 용들에 대한 상상을 본래 가지고 있었는데, 포식자들(독수리, 뱀, 사자들...)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상상의 생물체인 용과 결합되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그 프로그램은 원시 사람들이 땅 속에서 거대한 공룡의 뼈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의 신화에 거대하고 두려운 괴물로서 삽입시켰다는 것이다. ”우리의 진화론적 조상들에게 있었던 잡아먹힘을 피하게 했던 본능이 생생한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능력과 결합되어서, 전 세계 도처에 용들에 대한 신화들을 독립적으로 각각 만들었고, 우연히도 그것들은 상세한 부분들까지 매우 비슷한 내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 프로그램은 어떠한 다른 대안적 설명들 보다 과학적(진화론적) 주장을 우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진화론적 주장은 진정한 과학이 아닌, 또 다른 세계관과 논쟁 중에 있는 세계관에 관한 과학인 것이다.      

다이크스트라의 법칙(Dykstra’s Law)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사람(weirdo)인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자들의 대안적 설명에 웃어버리는 것처럼,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자들의 우스꽝스러운 설명에 대해 웃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하게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이상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는 모든 이상한 개념들이 동일하게 유효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는 모든 세계관들이 임의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증거들은 스스로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선입견과 편견들은 배제될 수 없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진리에 대한 사랑과 정직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관리될 필요가 있다. 벨로시랩터의 깃털에 관한 주장은 더 많은 관리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관련기사 : '포악한 공룡' 대명사 벨로시랩터, 팔뚝부분에 깃털 있었다 (2007. 9. 21. 세계일보)

https://news.nate.com/view/20070922n02303

벨로시랩터는 깃털 공룡 (2007. 9. 21. ScienceTimes)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B%B2%A8%EB%A1%9C%EC%8B%9C%EB%9E%A9%ED%84%B0%EB%8A%94-%EA%B9%83%ED%84%B8-%EA%B3%B5%EB%A3%A1/


*참조 : Evidence for feathered dinosaur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1/j21_1_58-61.pdf

Feathery flight of fancy: alleged ‘protofeathers’ fail under close scrutiny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11-12.pdf

Big birdosaur blues: new fossil creates problems for dino-to-bird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5-6.pdf

Flying dinosaurs, flightless dinosaurs and other evolutionary fantasie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42-47.pdf

Bird evolution: discontinuities and reversal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599/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7/09/was_velociraptor_a_dragon/

출처 - CEH, 2007.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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