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 왜 하나님은 나쁜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시는가?
(Understanding death. Answering the question,
"Why does God allow bad things to happen?")
Gary Bates
우리들 대부분은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우리가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결국에는 죽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우울한 전망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이것이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중의 아무도 죽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장수하시다 돌아가셨건, 너무 젊을 때 죽었건, 우리는 그들이 떠나는 것을 몹시 슬퍼한다. 상실의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아마도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게 한다. ”결국 먼지가 될 것이라면,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그리고, ”왜 나인가?” 혹은 ”왜 우리인가?” 내 경험으로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이 질문과 싸우고 있다. 우리는 사랑이 많으시고 전능하신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 왜 그분의 귀한 자녀들이 고통을 겪고, 때로는 번민하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시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단순히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무서운 재앙들을 보고서,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비극적인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죽음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갈등은 기독교인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죽음을 진화론적으로 이해할 때(종종 자기가 진화론적 생각에 젖어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로) 상황은 더 악화된다. 그럴 경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개념을 포함하여, 약간의 틀린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한 개념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제공할 수 없다.
직설적인 간결한 해답은 창세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은 진화론이 주는 잘못된 이해가 아니라, 올바른 역사에 의한 성경적 이해를 제공한다. 더욱이,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아시고, 그에 관해 실제적으로 무언가를 행하셨다는 것을 실감할 때, 우리는 커다란 기쁨을 찾을 수 있다.
진화론에서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세상의 진화론적 장구한 시간 개념에 영향을 받고 있다. 즉, 모든 생물들은 죽음의 곡조에 맞춰 춤을 춰왔고, 수억 수천만 년 동안 고통을 겪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교과서, 대학, 언론매체, 잡지, 박물관, 심지어 아이들 책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우리를 세뇌시켜 왔다. 이 ‘오랜 시간과 죽음’이라는 주제는 일종의 교리가 되어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를 들면 진화론자이며 천문학자였던 칼 세이건(Carl Sagan)은 그가 진행했던 매우 유명한 TV 과학 시리즈인 ‘코스모스(Cosmos)’에서 이렇게 말했다 :
”진화의 비밀은 시간과 죽음이다. 최초 세포로부터 우리에 이르기까지 끊어지지 않은 실이 연결되어 있다.”[1]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로, 그의 진화론적 관점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유명한 책 ‘종의 기원’이 보급시켰던 사상을 단순하게 반향하는 것일 뿐이다. 다윈은 이렇게 썼다 : ”따라서 자연의 투쟁으로부터, 기근과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존재인 고등한 생물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2]
다윈에게 왕은 삶과 죽음의 권한을 가지신 예수님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다윈이 그의 이론을 주장하게 됐던 동기에 관해 많은 글들이 쓰여졌다. 다윈은 그의 자녀 세 명이 일찍 죽은 것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받았다. 많은 주석가들은 그가 사랑했던 10살짜리 딸 애니의 죽음이 궁극적으로 그가 가졌던 기독교 신앙의 흔적마저 파괴해 버렸다고 말한다. 그는 교회 출석을 그만 두었는데, 이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난 후에, 그렇게 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다윈은 이 세계는 무한히 오래 되었으며, 처음부터 죽음이 존재해왔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죽음과 고통을 만드신, 잔인하신 분이 되는 것이다. 다윈에게 왕(king)은 삶과 죽음의 권한을 가지신 예수님이 아니라(요한계시록 1:18), 죽음(사망)이었다.
이 "죽음이 왕이다"라는 주제는 심지어 대중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공상과학 소설가로서 많은 영향을 주었던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 타임머신, 투명인간, 우주전쟁 등을 씀)는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의 밑에서 훈련받은 열렬한 진화론자였다. 2005년에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phen Spielberg)가 리메이크 했던 웰스의 공상과학소설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은 죽음과 투쟁에 관한 진화론적 교훈에 진정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웰스에게서 반기독교적인 개념을 발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 이야기는 (진화론적인 시간 틀로) 오랜 연대를 가진, 따라서 기술적으로 진보된 화성인들이 인류를 멸절시킬 목적으로 지구를 공격한다는 착상을 도입한다. 웰스는 이들 ‘우월한 외계인(superior aliens)’들이 인류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사람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사람보다 더 위대한 지성적 존재가 이 세상을 날카롭게,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여러 관심사로 바빴지만, 그들은 자세히 조사당하고, 분석당했다. 마치 한 방울의 물속에서 떼를 지어 이동하고 번식하는 덧없는 원생생물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듯이, 그렇게 세밀하게 사람들을 관찰했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란 덜 진화된 존재로서, 더 우등한 종에 의해 멸종될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화성인들은 지구상의 감염병에 걸려 죽고, 인간들은 면역되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는다. (웰스의 소설을 각색한) 그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수십억 명의 죽음을 대가를 치르고, 인간은 면역력 즉, 이 행성의 무수한 생물들 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따라서 어떤 사람도 헛되이 살거나, 헛되이 죽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시간과 죽음’이고, 진화였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헛되이 죽는다. 개인에게 죽음 이후의 미래에 대한 소망은 아무것도 없다.
죽음에 관한 두 개의 대조되는 역사
진화론적 관점에서 죽음(death)은 우리를 진화시킨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논할 수도 없을 것이다.[4] 지진과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들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서 죽음을 볼 때, 또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한 잔학행위에 의한 죽음을 볼 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일들이 ‘자연적인’ 일이며, 하나님은 멀리 계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 빠지지 말라.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성경적으로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
우리는 성경의 렌즈를 통해서, 이러한 ‘악한 일’들은 보시기에 좋았던 이 창조세계에 무언가 비극적으로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은 창조를 마치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창세기 1:31). 진화론과는 대조적으로, 성경은 사망을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로 설명하고 있다.(고린도전서 15:26). 죽음이 하나님의 원래의 인간 창조의 일부가 아니었다면, 그것은 자연적이거나 ‘좋은’ 것일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이전에는 죽음과 고통이 없었다고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2).[5]
그것은 죄다!
인간의 동료 인간들에 대한 잔학행위이든지, 아니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연재해이든지, 근본적인 원인은 같다. 그것은 죄(sin)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로마서 6:23). 창세기에 의하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저주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3:17). 이것은 신약성경에서도 강조되어 있다. 로마서 8:20~22절은 말한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런데 이 신약성경 구절에서는 어떤 소망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더 이상 사망이 없는, 새롭게, 회복된 ‘보시기에 좋았던’ 창조를 말한다(요한계시록 21:4). 무언가를 회복한다는 것은 원래의 조건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왜 ‘우리 주변에 죽음’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줄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해 준다. 창세기 역사의 적절한 기초 위에 지어진, 죽음에 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죽으면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죽음과 고통이 있는가?” 등과 같은 인생의 큰 문제를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신자들에게 - 이제 죽음은 선한 일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분과 영원한 교제를 갖기 위함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우리를 망쳤기 때문에, 영원히 산다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또한 우리는 그분의 창조의 정점에 있었으며, 다스릴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창조에 대해 큰 책임이 있었다(창세기 1:28). 우리의 행동이 그분의 창조 전체를 망쳐버렸다.
이것이 복음, 즉 전능하신 예수님의 바로 그 희생이 장엄하게 보여지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죽음의 저주를 제정하셨을 때, 그것은 사실상 인간이 이 타락한 세상에서 구출되고, 그들의 창조주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창조를 망쳐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자신이 그분의 영광을 버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행동에 대한 치욕을 겪으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일이 아닌가?
칼 세이건 역시 코스모스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어딘가에 어떤 믿기지 않는 일이 알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이 말은 옳았다. 그는 실제로 그러한 큰 질문을 숙고하고 있었지만, 슬프게도 죽음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 때문에, 단순하고도 간단한, 복음의 진리에 대해 눈이 멀었던 것이다. 확실히 그는 무신론자로 죽었으며, 비극적이게도 지금은 불신자로서 ‘둘째 사망’을 겪게 될 것이다(요한계시록 2:11; 20:6; 20:14; 21:8).
”왜 내가 아닌가?”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5:45).[6] 신자나 불신자 모두 죄로 저주받은 이 행성을 동일하게 공유하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신자의 차이점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죽음과 고통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조건에 대해 무언가를 행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셨다!(요한복음 3:16).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우리에게 나타내신 방법이다. 은혜란 공로 없이 받는 호의라고 되어 있다. 얼마나 맞는 말인가!
따라서 (죽음에 대해) ”왜 나인가?”라고 묻는 대신에, ”왜 내가 아닌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끔찍한 죽음의 유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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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Segments from the TV shows of both Sagan and David Attenborough, featuring statements endorsing evolution, have been put to music in a video series called Symphony of Science. This one of Sagan’s is in the episode titled The Unbroken Thread.
2. Darwin, C., The Origin of Species, Sixth Edition, p. 463, Everyman’s Library, London and New York, 1956.
3. See Darwin’s bulldog—Thomas H. Huxley; creation.com/huxley.
4. There is a problem for those who reject evolution but accept the alleged geologic record of millions of years. The rock layers reveal countless fossils showing death and suffering of creatures. If the millions of years for the layers are correct then death would have been something that God has permitted well before any human appeared and hence before sin. This violates the necessity for the Gospel and a Saviour.
5. Though this verse in context specifically zeroes in on human death, the Scripture unmistakably indicates that this applied to all nephesh (soulish) life. See Sarfati, J., The Fall: a cosmic catastrophe, J. Creation 19(3):60–64, December 2005; creation.com/plant_death (including the ‘further reading’ web articles listed there).
6. This applies equally to rain as a blessing (e.g. watering crops, where unbelievers share in ‘common grace’) or a disaster (e.g. flood damage).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understanding-death
출처 - Creation 35(1):42–44, January 2013.
10만 개의 은하들 내에서 생명체의 흔적은 없었다
: SETI의 외계문명 탐사는 실패를 계속하고 있었다.
(100,000 Galaxies Without a Sign of Life)
David F. Coppedge
궤도 적외선 망원경의 탐사결과, 10만 개의 은하들에서 어떠한 생명체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우주가 137억 년이 되었다면, 지적 생명체가 지구에서 출현했던 것처럼, 외계에서도 생명체가 여러 번 출현했을 것이라고 진화론자들은 믿고 있다. 많은 은하들은 지구의 나이보다 더 오랫동안 진화할 시간을 가졌을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보다 더 진화하여, 그들의 기술로 은하들을 점령하고,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신호를 우리에게 보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 대한 많은 추측과 상상들이 있어왔다. 미국 NASA는 이에 대한 1차 조사를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지구 궤도에 있는 WISE(Wide field Infrared Survey Explorer) 망원경(그 목적을 위해 발사된 것은 아니지만)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펜실베니아 대학의 천문학자들은 10만 개의 은하들 중에 높은 중-적외선 파장(mid-infrared wavelengths)에 대한 검사를 수행했다. 왜 적외선인가?
”먼 은하의 외계행성들에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발달된 외계문명이 있어서, 컴퓨터 전력, 우주 비행, 통신, 또는 우리가 아직 상상하지 못하는 어떤 것으로 인해 다량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기본적인 열역학에 의해서, 이 에너지는 중적외선 파장에서 열로서 발산되어 나올 것임에 틀림없다.” 라이트(Wright)는 말했다. ”이것은 당신의 컴퓨터를 켰을 때, 열이 발산되는 이유와 동일한 물리학이다.”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은 충분히 발달된 문명은 그 항성의 모든 에너지를 수집체인 '다이슨 스피어(Dyson Sphere)' 안에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것은 천문학적 거리에서도 충분히 감지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팀은 평균보다 높은 중-적외선 방사선을 보이는 50개의 은하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자연적 과정이 아닌 지성적 흔적에 기인한 것들을 찾아내는 것에는 실패했다. Science Daily(2015. 4. 14) 지는 말했다. ”우주의 천체들로부터 이러한 방출되는 방사선을 측정할 수 있는 WISE 위성과 같은 우주 망원경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그러한 일은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연구의 공동 저자이며,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외계행성 탐사 센터의 천문학자인 제이슨 라이트(Jason T. Wright)는 말했다.
어떤 경우에서든, 외계인으로 가득한 은하들을 연구팀이 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고, 새로운 과학적 결과라고, 라이트는 말했다. ”우리의 결과는 은하들의 별빛들을 사용하여 WISE가 충분히 상세히 살펴볼 수 있었던 10만 개의 은하들 중에서 외계인의 문명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은하는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흥미로운 결과이다. 왜냐하면, 이들 은하들은 수십억 년의 나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시간은 은하들을 외계 문명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그들이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확인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아직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는 말했다.
그 조사는 몇몇 흥미로운 천체들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전 조사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은하수에서 성운(nebulae)과 같은, 대부분 자연적인 것이었다. 공동 저자인 스테인 시거드슨(Steinn Sigurdsson)은 말했다. ”가장 최신의 가장 민감한 기술로 극히 먼 곳의 현상을 살펴보았을 때, 그것이 찾던 것이 아닐지라도, 예상치 못했던 발견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종류의 일차적 조사는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한 조사는 외계인들이 무엇을 구축할 것인지를 알고 있다는 개념과, 우리의 탐측 장비가 그것들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포함하여, 많은 가정들에 의존하고 있다. 충분히 발달된 문명은 그들의 존재를 숨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할 수 있다. 관측적인 기초가 결여되었을 때, 모든 것이 추정 가능하다.
SETI(Search for Extra Terrestrial Intelligence,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는 지난 50년 이상 지속적으로 실망적인 결과에 직면해야만 했다. 진화론자들의 가정에 의하면, 우주에는 어떤 발달된 외계 문명이 있어야만 한다. 장구한 진화론적 시간 틀은 그러한 외계생물체들을 마법처럼 출현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했다. 진화론자들은 우주 너머에는 지적인 외계 생명체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신처럼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자 그러면, 그들은 어디 있는가? 그들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페르미 역설(Fermi Paradox, 그들이 거기에 있다면, 지구를 방문했을 것이라는)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우주에 인간이 홀로 있다는 생각은 불합리한 생각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우주에 거주할 수 없는 은하들이 너무도 많이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도 낭비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놀랄만한 이유인가? 만약 당신이 진화론자라면 놀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성경의 기록처럼, 하나님께서 지구에 생물들을 창조하시고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시 19:1)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분의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광대한 우주를 만드셨다.(계 5:12). 그 분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별들을 만드셨다. 왜 많은 별들을 만드실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것들은 지구에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발견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고서 말이다. 몇 개 안되는 은하들과 몇 개 안되는 별들을 가진 훨씬 적은 우주는 그 분의 무한하신 능력과 권능을 감소시킬 것이다.
그러면 왜 인간은 그렇게 작은가? 창조주가 설정해 놓은 물리적 법칙을 감안할 때, 우리의 크기가 이 정도여야만 하는 물리적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안정적인 항성(태양)으로부터 적절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지구 크기의 행성 위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거기에서 여러 종류의 생물들을 즐기며 관계를 가지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가 행성처럼 크다면, 서로 접근하는 경우에 중력으로 인해 서로 충돌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에 두셨던지 상관없이, 우리는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왜 여기인가? 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멋진 곳에 두셨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태양계는 장엄한 은하수의 중심부근에 있지 않아서, 방사선이 문제되지 않는다. 또한 너무 멀리 있다면, 우리 행성에는 생명체에 필요한 무거운 원소들이 부족할 것이다.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은하의 생명체 거주 가능 지역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
우리의 작은 크기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과학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크기는, 은하(galaxy) 규모와 쿼크(quarks) 규모 사이에 중간쯤 크기에 해당한다. 그것은 광대한 우주에서 우리의 중요성을 숙고할 때, 고려해야만 하는 사실이다. 원자들의 수준으로 보면 우리들은 믿을 수 없도록 거대한 존재들이다. 미생물들에게 인간은 산과 같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에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분적으로 그 너머에 계시다가, 부분적으로 이곳에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은 모든 곳에 충만하게 계시는 것이다.
성경은 거의 전적으로 인간(human life)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대한 우주와 수많은 은하들을 만드신 전능하신 창조주가 작은 행성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죄와 행위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시편 8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관심은 성경 아모스 서에서도 볼 수 있다. 목동이었던 부르심을 받은 이 선지자는 우상 숭배하는 부요한 지도자들에 의해서 그들의 권리를 짓밟히고 곤경에 처해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의 강한 관심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그가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암 5:8~9) 다른 말로 해서, 강한 자들에게 갑자기 패망을 주시는 것은 묘성과 삼성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성경을 믿는 자들에게 우리가 은하 내에서 비교적 작은 크기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잡한 생물체를 이루는 데에는 제한된 범위의 크기가 있다. 원자 스케일에서 모든 것들은 단지 몇 개의 입자들과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별들의 스케일에서, 대부분의 천체들은 중력에 의해서 상호 작용을 하는 구형의 천체들이다. 우리와 같은 존재가 허락되는 크기는 매우 좁은 범위의 크기 스펙트럼을 가진다. 이웃들과 같이 살아가며, 대기 중에서 음파를 이용해 소통하며, 책을 쓰고, 음악을 연주하며, 산을 오르고, 성도들이 모여 집회를 할 수 있는 존재로서 말이다. 우리의 신체 크기를 폄하하지 말라. 우리는 은하에 비하면 작지만, 원자들에 비하면 거대하다. 그리고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이 여기에 계신다.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외계 생명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우리의 관측은 제한적이고, 성경도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신 29:29)), 그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무수한 천사들이 있으나, 그들의 도달 한계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원하신다면 외계 행성에 푸른 잔디와 메뚜기를 꾸며 놓으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떠한 지적인 외계 생명체도 탐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 지구상에 생물들이 진화되었기 때문에, 외계 모든 곳에서도 생명체들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외계생명체를 탐사해왔던 진화론자들에게는 이러한 새로운 연구 결과는 실망스런 일일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5/04/100000-galaxies-without-life/
출처 - CEH, 2015. 4. 19.
파라카스 두개골 : 그들은 외계인(또는 네피림)이 아니다.
(The Paracas skulls : they’re not aliens (or nephilim)!)
Lita Cosner
.Flickr/ Marcin Tlustochowicz (CC BY 2.0)
우리는 사람의 두개골처럼 보이나 변형된, 페루의 파라카스 두개골(Paracas skulls)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왔다. 그들은 사람은 고사하고 지구상의 어떤 생물과도 같지 않은 DNA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되고 있다. 영국의 한 독자에게서 온 편지는 전형적인 예이다 :
”페루 파라카스의 두개골에 관한 기사를 실어주면 안될까요? 당신들은 그것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들은 사람인가요, 유인원인가요? 그들의 DNA는 기록된 어떤 것과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해집니다.”
”이것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소위 외계인이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파라카스 두개골의 시기에 페루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비정상적으로 키가 컸고, 그들의 두개골도 비정상적으로 컸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두개골의 크기를 유발한 일부 유전질환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신체 크기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은 135cm 정도이지만, 농구선수들은 2m가 넘는다). 그리고 두개골은 의도적으로 변형될 수 있다. 일부 멕시코와 남미 문명은 아기의 부드러운 두개골에 무거운 무게를 위치시켜 이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문명에서는 이러한 두개골 모양을 만들기 위해 아기의 두개골을 천으로 단단히 묶어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실행은 종종 어떤 종류의 신분을 상징하기 위해서 수행되었다. 따라서 질병에 의해서 또는 어떤 목적에 의해서 변형된 사람의 두개골을 발견했다고 해서, ”외계인이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행성에 외계인의 존재로 비약되기도 한다. 외계 행성에서 생명체가 우연히 만들어지고, 진화해서, 사람과 같은 또 다른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이다. 설사 생명체가 다른 외계 행성에서 진화되었다 하더라도, 엄청난 거리 때문에 그들이 정상적인 수명 하에서 지구로 여행해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라카스 두개골에 관한 주장과 그러한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자세히 조사했을 때, 그러한 주장을 의심할만한 많은 이유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한 발표는 과학 저널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저 언론 매체들에 의해서 다뤄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한 주장을 했던 브리엔(Brien Foerster)은 사설 박물관에서 일하는 공신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페루에서 초자연적 현상 투어를 안내하고 있다. 검사를 실시했던 유전학자는 익명을 원하고 있어서, 자신을 공개할 때까지 그의 전문성은 인정될 수 없다.
그리고 파라카스의 DNA는 우리가 지금껏 본 어떤 DNA와도 같지 않다는 주장은 매우 의심스러운 주장이다. 먼저, 왜 외계인은 DNA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만약 생명체가 다른 곳에서 진화되었다면, 왜 DNA처럼 보이는 것에 우연히 정보가 보관되어 있었단 말인가? DNA도 우연히 같이 진화로 생겨났는가? 그리고 왜 사람 두개골처럼 보이도록 진화했는가?
이러한 DNA 주장은 '아타카마 미라(Atacama child)'와 유사하다. 이에 대한 내용은 우리의 글 Sirius the documentary을 보라. 사실, 아타카마 미라에 대한 DNA 분석은, 그 아기가 외계인이 아니라, 사람이었음을 나타냈다.
(*관련기사 : '키 15㎝ 외계인 미라’ 알고보니 태아였다(2018. 3. 24. 한겨레),
15년 전 칠레 발칵 뒤집은 15cm ‘외계인’ 미라의 정체는(2018. 3. 23. 서울신문))
또한 어떤 크리스천들은 그 두개골을 노아 홍수 이전의 네피림(nephilim)의 유골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였는가?(Who were the ‘sons of God’ in Genesis 6?)”라는 상세한 글을 게재했었다. (그 글은 게리 베이츠의 책 'Alien Intrusion: UFOs and the Evolution Connection”에서 발췌한 것임). 그것에 대해서는 그 글을 읽어보라.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자극적인 주장이 있을 때에, 특히 그 결론이 반성경적일 때에는 주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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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Alien Life / UFO Questions and Answer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paracas-skulls
출처 - CMI, 2014. 4. 27.
과학이 진리인가? (과학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가 태양을 보기 위해 촛불을 정말로 켜야 할까요?
과학이 진리인가?
과학이 진리가 아니면 무엇이 진리란 말인가? 비과학이 그러면 진리인가?
과학은 현재 알려진 지식을 정리한 것으로 계속 발전되어 오면서 현 시대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맞다고 인정하는 영역을 말한다.
기원 전의 과학과 1 세기의 과학과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과 18/19 세기의 과학과 20 세기 과학과 21 세기의 과학은 다르다. 옳다고 생각한 것이 나중에는 틀렸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러면 22 세기의 과학 입장에서 보면 21 세기 과학은 어떠할까? 아마도 유치하고 틀린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과학을 그 시대의 패러다임(쉬운 말로는 한 시대의 과학적/사상적 흐름의 모형)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시대에는 어떤 주장이 강하고 다음 시대에는 정반대의 주장이 강한 모습을 보게 된다. 지난 날에 진리로 여겨지던 지식이 오늘날에는 거짓으로 나타낸 것들이 허다하다.
연금술로 금을 만들려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시간과 정력을 바쳤으며, 천동설을 주장하면서 갈릴레오를 가택 연금하기도 하였다. 뉴턴의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천체물리학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 생겼다. 한 때는 사람의 몸에 필요 없는 흔적기관이 100 여 개나 된다고 하였지만, 이제는 필요 없는 기관이 거의 없다. 땅의 퇴적층은 흙먼지, 모래로 매년 mm 단위로 퇴적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 퇴적층의 깊이만큼 오래되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많은 깊은 퇴적층이 화산 폭발이나 대규모 홍수로 급격하게 수 개월 내에 생성된 예가 많이 발표되고 있다. 퇴적층 사이의 화석으로 지구의 연대와 생물의 생성 연대를 측정하는 기준이 허물어지고 있다.
1 + 1 = 2 와 같은 항등식은 불변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과학적 발견과 발명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있다. 모든 과학은 불변의 진리로 여겨지고, 과학자들의 말은 목사님의 말씀보다 더 정확하고 믿을 만하다고 여긴다. 과학으로 인간의 두뇌를 연구하고, 과학으로 종교가 왜 생기게 되었는지를 뇌과학 혹은 행동심리학 등으로 연구하고 있다. 모든 과학자들의 말이 1 + 1 = 2 와 같은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도체와 정보통신 공학의 발달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과학자의 예측은 매우 신뢰할 만하고, 일반적으로 성경의 예언보다 더 정확하게 여겨진다.
일부 과학자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니고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라고 조롱하고 있다. 저절로 만들어진 과정은 이러 이러 하다고 주장하면서, TV 와 각종 매스컴을 지배하고 있다. 교회에 출석하는 청소년들은 주눅이 들어 있고, 일부 신학자들은 그 과학의 조류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저절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를 연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조는 상당수의 신학교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사조는 과학을 성경보다 높은 권위에 두고, 성경을 오늘날의 과학에 맞추어서 재해석하게 한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을 따르지 않는 기독교인은 후진적인 세대로 치부하고, 자신은 신세대의 과학적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는 무리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조에 가장 앞장서서 기독교를 비난하고 모욕하고 힐난하는 무리들이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진화론을 따르려는 신학자들을 가장 경멸하면서, 가면을 벗어버리고 완전한 무신론적 대열에 서라고 조롱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선배 기독교 과학자들은 어떠하였을까. 대표적인 다섯 분의 업적과 신앙을 살펴보자. 근대 물리학을 개척한 뉴턴은 ”과학적 연구는 창조주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과학은 하나님께 묻는 완벽한 영역이다.” 라고 하였다.
오일러라는 18세기 수학자는 18세기 수학적 업적의 1/3을 혼자서 이루어 낸 분으로 오늘날 수학의 기반을 다진 분이다. 이 분의 수학적 통찰력은 어느 수학자보다 뛰어나서 물리학자 파인만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라고 칭송하였다. 오일러는 스위스 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경 묵상과 가정 예배를 드렸으며, 완전 실명 가운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산 분이다. 실명 가운데 이룬 수학적 업적이 더 크다고 알려져 있다. 당대의 종교 철학자들이 너무 고루하게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고 오일러를 비난을 할 정도로 그는 기독교 근본주의적 신앙인이었다.
맥스웰이라는 영국의 과학자는 오늘날 정보통신공학의 기본이 되는 전자기학의 기초를 다졌으며, 그의 통찰력이 만든 맥스웰 방정식은 오늘날의 전자공학의 근본 원리가 되었다. 그는 엄격한 청교도 교회의 장로님으로 인격적으로도 영국 역사상 가장 존경을 받았다.. 그는 ”당신이 성경을 찾아보면, 당신의 과학 탐구를 멈출 어떤 문장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고백하였다. 맥스웰을 존경하여 평생 연구실 책상 위에 맥스웰의 초상화를 걸어 둔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는 맥스웰의 방정식으로부터 유도되었다는 사실은 학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폴로 우주선을 달에 보낸 폰 브라운에게 한 기자가 우주선 발사 명령을 내릴 때에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가 설계를 주도하고 제작한 새턴 로켓은 33 번의 우주 발사에서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우주 존재 뒤에 전능자가 계심을 인식하지 못하는 과학자를 이해하기 어렵다.” 라고 고백하였고, 과학을 맹신하고 하나님보다 우위에 두는 자들을 항해서 ”우리가 태양을 보기 위해 촛불을 정말로 켜야 할까요?”라고 질문하였다.
오늘날 과학의 핵심적인 발전에 공헌한 분들 중에 기독교 과학자들이 매우 많다. 특히 수학자 오일러와 전자기학자 맥스웰의 통찰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과학은 1 세기 정도 뒤져있을 지 모른다. 그들은 자연의 탐구를 하나님의 질서를 알아 가는 길이라 믿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은 질서 있게 세상을 창조하였으므로 체계적인 해답이 있을 것으로 확신하였다. 그들은 과학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고 믿었고, 발견되는 과학적 사실은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우리의 우주가 존재하는 것이나,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매우 비과학적이다. 우주의 기원이나 인간의 기원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하며, 현대 과학이 아닌 훨씬 초월적인 기적적인 선재 조건들이 존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소위 빅뱅 이론에서 말하는 우주의 초기 상태의 폭발력과 물질들이 어디서 오는지 누구도 밝힐 수 없다. 따라서 빅뱅이론도 그 근거가 희박하다. 왜 우주가 존재하게 되었는지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말장난으로 나는 존재하므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생각하는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다. 다른 말로 말하면 모르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창조과정은 오늘날의 과학법칙을 초월한 힘과 능력으로 된 것이다. 창조 이후의 우주 질서가 우리가 알아가고 있는 과학이다.
그 창조주가 이 땅에 와서 행한 기적들은 창조주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일부 신학자들은 과학적으로 성경의 기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그 기적들을 모두 부정한다. 그들의 우유부단한 생각들이 연약한 믿음의 성도들에게 침투하여 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의심하게 하고, 교회를 떠나게 한다. 강단에서 예수님의 기적과 천지 창조의 설교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이미 떠났고, 떠나려 하고 있다. 창조주에 대한 신앙이 무너지면 그 믿음의 기준이 무너졌으므로, 도덕적인 삶의 모습도 쉽게 무너진다. 진화론을 받아들인 교회는 대부분 동성애를 용납하고 낙태도 그다지 반대하지 아니한다.
영국 캐임브리지 대학의 신학생이었던 찰스 다윈은 성경을 의심하고, 당대의 과학을 바탕으로 자연을 탐구하여 진화론을 펼치고, 죽기까지 그의 이론을 확장해 나갔다. 그의 이론의 핵심은 과학적 사실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물의 창조를 대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바탕으로 삼았던 당대의 과학적 증거들은 과학이 발전하고 여러 사실들이 발견되면서 상당 부분 부정되었고, 남은 것은 이론의 테두리만 남았으며, 그 후대 과학자들에 의해 보완되어 신다윈주의 이론으로 불리고 있으나, 정보과학의 발전으로 그 이론도 계속 수정이 되고 있다. 과학은 불변이어야 하는데, 계속 수정 보완되고 있고, 특별히 생물학적 진화론은 그 근거를 상실해 가고 있다. 간략하게 말하면 인간의 신체는 수십 조개의 생체 컴퓨터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생체 컴퓨터 시스템의 생성원리를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물학이 발전하면 다윈의 진화론을 증명해 줄 것으로 믿었으나, 더욱 캄캄한 미로를 헤매고 있다. 슈퍼 컴퓨터보다도 훨씬 정교한 생체 컴퓨터가 저절로 만들어진 이유를 찾는 것이 그들이 과제이다.
변화하는 과학의 발전에 장단을 맞추어서 성경을 재해석하는 신학자들은 신실한 기독교 과학자들의 말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폰 브라운은 ”유한한 인간은 어디서나 계시고, 전지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알려고 시도할 수도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인간이 하나님의 능력을 논하는 것은 태양을 보려고 촛불을 켜는 것 같다고 하였다.
냉장고와 에어컨에서 사용되는 열역학 법칙을 발견한 제임스 주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과학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이다.”
욥이 당대의 철학자요 과학자인 현인들과 논쟁한 후에 창조주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기 42:2~6)
욥이 결국 깨달은 것은 ”인간의 지식이 유한하며, 겨우 깨달은 과학적 지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헤아리거나 성품을 함부로 논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안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고, 진리이신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어렴풋이 아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더 명확하게 알수록 그 질서의 아름다운 세상과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화성에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
: 무기 원소들의 발견이 생명체 존재의 가능성인가?
(Washing Machines on Mars)
by Jason Lisle Ph.D.
얼마 전 많은 언론매체들은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Curiosity)가 화성에 원시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는 증거를 발견했다는 NASA의 발표를 일제히 보도하고 있었다.[1, 2, 3]
그러나 증거라는 것들은 몇 가지 원소들에 불과한 것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상상이었다 :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는 다시 한번 과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었다. 탐사로봇은 화성 암석에 구멍을 뚫을 수 있고, 분말 입자들을 화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의 한 분석은 화성 암석에 황, 질소, 수소, 산소, 인, 탄소 등과 같은 화학물질들이 포함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 결과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이들 원소들은 모두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이다. 그렇다. 고대 화성의 환경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인 것처럼 보인다.
결론으로 내린 문장을 제외하고, 위의 문장은 전적으로 사실이다. 큐리오시티는 화성에서 이러한 원소들을 (그 원소들은 우주에서 매우 일반적인 원소들이다) 발견했다. 정말로 그러한 원소들은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이다. 그러나 한때 생명체들이 화성에 존재했었다는 결론을 내린 과학자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단지 원소 물질들의 존재만을 기초하여 복잡한 생명체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화성에 그러한 기본 원소들을 자연적으로 조직하고 구성하여 복잡한 생물체를 만드는데 필요한 정보의 개입이나 획득 과정으로 알려진 그 어떠한 원리도 없다.
살아있는 생물들은 이러한 동일한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복잡한 기계처럼, 원소들은 설계도에 들어있는 정보와 지시에 따라 복잡하고 조직화된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가 설계도 없이, 그리고 창조적 정보 없이 저절로 생겨나는 메커니즘은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단지 원소들의 일부만 발견되었다고 화성에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떠들어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기 원소들만 있으면 생명체는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무기 원소의 존재만으로 지적 외계인의 존재도 추측할 수 있는 것인가?
References
Landau, E. NASA: Yes, Mars could have hosted life. CNN. Posted on lightyears.blogs.cnn.com March 12, 2013, accessed March 12, 2013.
Klotz, I. Mars had the right stuff for life, scientists find. Reuters via Yahoo!, March 12, 2013.
Wall, M. Wow! Ancient Mars Could Have Supported Primitive Life, NASA Says. Space.com. Posted on www.space.com March 12, 2013, accessed March 12, 2013.
* Dr. Lisle is Director of Research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received his Ph.D. in Astro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Colorado.
*관련기사 : 나사 '화성에 생명체 존재했을 수도” (2013. 3. 13.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31301071432158002
나사, '화성에 생명체 존재했을 가능성 있어...” (2013. 3. 13. 파이낸셜뉴스)
http://www.fnnews.com/view?ra=Sent1101m_View&corp=fnnews&arcid=201303130100119520006391&cDateYear=2013&cDateMonth=03&cDateDay=1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7381/
출처 - ICR News, 2013. 3. 13.
화성에 생명체 존재의 강력한 증거?
: 물의 존재가 생명체 존재의 증거인가?
(Strong Evidence for Life on Mars?)
by Jake Hebert, Ph.D.
화성 표면에 액체 상태의 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과학자들은 붉은 행성(화성)의 표면에 한때 호수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해 왔다.[1] NASA의 화성 궤도탐사선(Mars Reconnaissance Orbiter)이 전송해온 사진을 토대로, 과학자들은 화성 북반구에 과거 호수가 존재했었다고 제안했다.[2] 그 호수의 물은 지하 근원으로부터 분화구로 흘러들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지하수 근원의 존재 가능성으로부터 화성 지표면 아래에 미생물의 존재 가능성을 제안했다. 그들은 생명체가 화성의 표면 아래에서 기원됐을 가능성을 제안했고, 따라서 지구상의 생명체 역시 지하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창조과학자들은 우주에 지적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한’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진화과학자들은 세속적인 생명의 기원 이야기가 갖고 있는 거대한 장벽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생명체가 지구에서 진화되었다면, 우주 어디에서도 진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성 없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외계생명체 발견이 어느 정도 진화론을 입증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화성 또는 외계 어느 곳에서도 외계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그 어떠한 증거도 현재까지 없다. 그러나 진화과학자들은 생명체가 붉은 행성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증거로서 화성에서 (기껏해야) 액체 상태의 물(혹은 과거에 액체 상태의 물)의 발견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성 표면에 한때 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 추정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물이 생명체에 필요한 것이지만, 물이 생명체를 만들지는 못한다. 사실, 물의 존재는 세속적인 생명의 기원 이야기에서도 문제 거리이다. 왜냐하면 물은 가수분해(hydrolysis)라고 알려진 자발적인 화학반응을 통해, 생명체에 필요한 복잡한 생체분자들을 깨뜨려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3]
더욱이 미생물이 화성에서 발견된다 하더라도, 지구에서 생명의 기원 문제가 갖고 있는 극복할 수 없는 장벽들을 화성의 생명 기원 이야기도 갖고 있는 것이다. 화성에서 미생물의 발견은 진화 이야기를 더욱 믿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터무니없는 불가능한 일련의 우연들이 지구와 화성에서 두 번 일어나는 것을 기대해야 되기 때문이다.[4]
결론적으로, 화성에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이러한 ‘무모한 주장’은 화성에서 알루미늄 광석을 발견하고선, 고대 화성인들이 만들었던 우주선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5] 과학자들은 화성에서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비록 그들이 과거 화성 표면의 물의 존재 증거를 발견했다 할지라도, 단지 지표면 아래에서 물의 존재를 추정할 뿐이다. 그러나 물이 생명체를 만들 수는 없다. 만에 하나 미생물이 화성에서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것의 존재는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초자연적인 기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References
1. Choi, C. Q. Giant Mars Crater Shows Evidence of Ancient Lake. SPACE.com. Posted on space.com January 21, 2013, accessed January 21, 2013.
2. Michalski, J. R. et al. 2013. Groundwater activity on Mars and implications for a deep biosphere. Nature Geoscience. 6 (2): 133-138.
3. Sarfati, J. 1998. Origin of life: the polymerization problem. Journal of Creation. 12 (3): 281-284).
4. Psarris, S. 2009. DVD. What You Aren't Being Told About Astronomy, Volume 1: Our Created Solar System. Creation Astronomy Media.
5. Strongest evidence yet to there being life on Mars. The Telegraph. Posted on telegraph.co.uk January 20, 2013, accessed January 21, 2013.
Image credit: NASA
* Dr. Hebert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receiv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관련기사 : 화성에 생명체 존재할 '강력한 증거' 발견돼 (2013. 1. 22. 아시아경제)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12118231368019
'화성에 생명체 살았을 강력한 증거 발견' (2013. 1. 21. KBS New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2600353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www.icr.org/article/7254/
출처 - ICR News, 2013. 2. 8.
비소 생명체 소동의 종말
(Arsenic Life Isn’t)
인산염(phosphate) 대신에 비소(arsenic)를 사용하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발견됐다는 2010년의 주장을 기억하는가? 심도 있는 실험 결과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2010년 12월 언론 매체들은 지구 행성에서 외계생명체 같은 이상한 미생물이 발견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아래 과거 기사 참조). 그러나 2012년 7월 초 PhysOrg, National Geographic, Live Science, Astrobiology Magazine 등은 펠리사 울프 사이먼(Felisa Wolf-Simon)의 주장이 틀렸음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비소를 사용하는 생명체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NASA의 우주생물학지(Astrobiology Magazine)는 기술했었다. 그러나 두 개의 후속 연구에 의하면, 그 생물체는 유전암호에 비소가 아니라, 인을 필요로 함을 확인했다. 이것은 ‘비소-기반 생명체(arsenic-based life)’라는 주장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National Geographic 지는 GFAJ-1(Felisa의 첫 글자를 따서)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생명체는 지구 상에서 ‘두 번째 창세기’를 나타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주생물학자인 폴 데이비스(Paul Davies)는 한 번의 반증이 우리 행성에서 외계생명체를 찾는 자신들의 모험을 무효화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울프 사이먼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이 생명체가 작은 양의 비소를 소화할 수 있다면, 여전히 그녀의 주장은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다른 과학자들은 그녀가 훨씬 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작동되고 있는 과학의 좋은 예인가? 이것은 실증주의자였던 칼 세이건(Carl Sagan)이 강조했던 것처럼, 과학이 자기교정(self-correcting) 과정을 보여주는 것인가? 이것이 과학자들은 편견 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면, 그 실체가 폭로되었을 것인가? 이것이 그들이 지적인 완전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가? 사실이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쉽다. 그 생물은 유로파나 외계행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성 지구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생명체는 쉽게 수집되고, 쉽게 실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윈의 이야기가 출판되고 153년 동안 그 증거들이 오류투성이였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진화론을 믿고 있다. PhysOrg 지가 인용한 기사를 살펴보라. ”NASA는 지구 또는 화성에서 초기 생명체가 진화했을 환경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염분, 비소, 무기물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캘리포니아 동부의 모노호수(Mono Lake)에서 여러 탐색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증거도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엉뚱한 일들을 수행하고 있다. 생명체의 엄청난 복잡성과 방대한 유전정보들을 생각해 보라. 생명체가 무기물로부터 우연히 자연발생할 수 있을 확률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여전히 작은 것 하나로 엄청난 것을 상상한다. 그들은 인산, 비소에는 신경을 쓰면서, 동식물에 들어있는 경이로운 설계된 모습들은(설계는 설계자가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외면한다. 그들은 진정 커다란 질문에 대해서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 ”나사 중대발표는 외계인이 아닌 슈퍼 미생물 발견” (2010. 12. 2. 나우뉴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1202601021
NASA 중대발표는 ”기존과 판이한 생명체 발견” (2010. 12. 2.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12/02/0200000000AKR20101202230400009.HTML
NASA ”비소 먹는 생명체 발견”..교과서 바꿔야 하나(2010. 12. 3. 코리아헤럴드)
http://www.koreaherald.com/national/Detail.jsp?newsMLId=20101203000014
”도대체 뭐냐” NASA 중대발표 임박…지구촌 들썩 (2010. 12. 2. 머니투데이)
http://stock.mt.co.kr/view/mtview.php?no=2010120215341429751&type=1&outlink=2&EVEC
”웬 외계인?” 나사 발표에 왜 한국만 흥분했을까 (2010. 12. 1. 코리아헤럴드)
http://www.koreaherald.com/national/Detail.jsp?newsMLId=20101201001073
NASA `신종 미생물' 발표 비판 도마에 (2010. 12. 9. 매일경제)
http://news.mk.co.kr/se/view.php?year=2010&no=681496
비소 박테리아, 나사의 독(毒)이 되나? (2010. 12. 9. 동아사이언스)
http://news.dongascience.com/PHP/NewsView.php?kisaid=20101209200002216045&classcode=01
*참조 : Bacteria not made of arsenic after all
http://creation.com/bacteria-not-made-of-arsenic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2/07/arsenic-life-isnt/
출처 - CEH, 2012. 7. 1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417
참고 : 4993|3012|1426|2641|4522|5003|5038|4997|4210|4040|3815|2860|2741
신년 인사
한국창조과학회가 창립 30주년이 되는 2011년을 맞아 감사와 은혜로 한 해를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네 번의 계절이 바뀌어 다시 새해를 맞게 되었습니다. 지난 30년 간 학회에 놀랍도록 부어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새해에도 더욱 충만하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한결같은 섬김과 기도로 함께 동역하신 회원님들의 가정과 직장과 사역 가운데에 은혜로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지난 한 해는 거대한 지진과 해일로 인한 일본의 원전 폭발 사고를 비롯해 홍수와 가뭄, 폭설 등 자연재해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게다가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 에너지 문제, 전쟁 등 불안한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면서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앙을 찾고 되돌아보게 되었던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2011년의 사역을 돌아보면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위시하여 교육원 기본과정, 심화과정 및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주제로 열린 580여 회의 창조과학 세미나와 창조과학 캠프, 창조과학 탐사여행 등 많은 사역들이 진행되었습니다. 특별히 창조과학 교육원의 기본과정이 새롭게 개편되어 인터넷 온라인 강좌로 개설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 회원들의 섬김과 중보 속에서 쌓여진 많은 창조과학 자료들을 시대적인 흐름에 맞도록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학회 홈페이지가 전면 개편되었고, 도서 출판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주)창조과학회가 창립되어 인터넷 쇼핑몰인 태라몰이 개설되었습니다. 여러 면으로 힘든 여건 속에서도 한 해 동안 창조과학 사역에 충성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제 창조과학회의 서른 해를 넘어서는 첫 해인 2012년을 맞으면서 창조과학의 새로운 세대를 열어 간다는 다짐으로 새해 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5월에 부산에서 열리게 될 국제학술대회는 '자녀와 함께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라는 주제를 가지고 3천명 참석의 비전으로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창조과학회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학술대회가 되어 부모에게는 창조신앙이 확립되고 자녀들에게는 강력한 신앙의 도전을 주는 은혜의 잔치가 되도록 회원님들의 기도와 동참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교육원 과정, 캠프, 교원 연수, 학술 세미나, 창조과학 탐사여행, 목회자 초청 세미나, 교재와 도서 제작 등 저희 한국창조과학회의 사역을 통해 한국교회가 일치된 목소리로 차세대를 창조신앙으로 무장하기로 선포하는 해가 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해에도 회원님 모두 건강하시고 가정과 섬기시는 교회와 직장 속에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56
참고 :
예수님은 왜 창조주인가?
권혁상
요약 :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기록하고 있다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더 구체적으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6]. 예수님은 본인의 정체성에 의심을 품고 "네가 누구냐”(요 8:25)고 질문하는 유대인들에게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요 8:25]고 말씀하시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6:46]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리고 예수님이 창조주간에 창조 사역의 어떤 부분을 담당하셔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다”고 하는지? 이러한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여야 한다. 본 논문은 복음서와 구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창조적인 사역을 추적하여 창조주로서의 예수님을 조명하였다.
1. 서론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요 3;16],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마 1:21], 대제사장[히 10:21], 하나님 본체의 형상(히 1:3), 만유의 상속자(히 1:2), 알파와 오메가[계 22:13]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성경은 예수님을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로 기록하고 있다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더 구체적으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6]고 기록하고 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과 부활의 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구원과 부활의 주님으로서의 예수님의 행적은 복음서에 자세히 기록되었으나, 창조주로서의 예수님, 구약시대에 활동하신 예수님(성자 하나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는 창조주로서의 예수님의 행적을 성경을 바탕으로 조사하여 창조사역에 예수님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였는지를 밝히려고 한다.
2. 본론
2.1.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창조적 사역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천국복음을 전하시면서, 병든 자와 눌린 자를 치유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많은 기적과 이사를 행하셨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낱낱이 기록하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을 두기에 부족하다”[요 21:25]고 하였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역 중 예수님이 창조주임을 계시한 사역이 많으나, 그 중 대표적인 사역을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라”[요 11:13]고 명령하자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사로가 살아 나오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요 1:4]임을 보이셨다. 갈리리 바다 건너편 들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온 무리 들에게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천명 여자와 어린아이를 포함하면 수만 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12광주리를 남기는 기적을 행하심[마 14:13-21]으로, 예수님은 질량보존의 법칙을 초월하여 물질을 만드시는 창조주의 모습을 보이셨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물(H2O)이 포도주(C2H5OH-)로 변하는 기적을 행하시어, 성분이 다른 물질로 변화시킬 수 있는 창조주임을 보여 주셨다. 제자들과 배를 타고 호수건너 편으로 갈 때 광풍이 일어 배에 물이 가득차 위태롭게 되자 제자들이 주무시고 있는 예수님을 깨워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눅 8:24] 하니, 예수님이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잔잔하게 되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결을 명하매 순종하는가”[눅 8:25] 서로 말하며 두려워하고 놀라워했다. 예수님은 환경을 지배하는, 즉 환경이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창조주임을 보이셨다.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요 6:20] 안심시키셨다. 여기서 ”내니”는 나는 스스로 계신 분의 뜻으로 예수님 본인이 창조주임을 나타내시고, 본인이 만든 중력의 법칙에 지배받지 않으심을 보이셨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은 귀신의 정체를 밝히고 귀신에게 명하여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눅 4:35] 명하여 귀신을 쫓아내어, 보이는 세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까지도 지배하시는 창조주[골 1:16]이심을 나타내셨다.
2.2. 구약시대의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성자 하나님)이 구약시대에 어떤 창조적 사역을 하였는지는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계시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로 ”스스로 계신 자”[출 3:14-15], 즉 창조주를 나타낸다. 성경은 성자 예수님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골 1:15]로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형상”[고후4:4], ”하나님 본체의 형상”[히1:3]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성자 예수님은 '여호와' 혹은 물리적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 분을 계시하였을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6:46] 말씀하신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모세가 만난 하나님은 누구인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 하셨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언제 예수님을 보았나? 창세기 18장은 아브라함이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과 두 천사를 만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창 18:1]. 아브라함은 여호와 일행을 영접하고 발을 씻기시고, 떡과 우유, 송아지 요리를 대접하였다.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신 여호와는 아브라함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 즉 하나님의 형상, 예수님(성자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이 대접한 떡과 우유, 그리고 송아지 요리를 드신 여호와 하나님은 디베랴 호수 가에서 제자들에게 떡과 생선을 준비하시고 함께 드신 예수님[요 21:1~14]을 연상시킨다.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기한이 이를 때에 네게로 돌아온다”는 말씀을 하시고, 그 증표로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하신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나고, 여호와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요셉의 처 마리아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님으로 돌아오셨다[눅 1:3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일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였다[신 12:1]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신 12:2]”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듣고 그들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시고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신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들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신 12:6~7]고 말씀하셨다. 이상의 성경말씀을 통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신 여호와는 모세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여호와 형상, 즉 예수님(성자하나님)으로 나타내셨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내시고, 미리암과 아론을 꾸짖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여호와,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신 여호와는 예수님(성자 하나님)이다. 이를 확인시켜주는 장면이 복음서에 나온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아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제자들에게 보였다[마 17: 1~3]. 베드로가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마 17:4~5]. 이는 구약시대에 모세와 엘리아에게 말씀하신 여호와는 성자 하나님, 즉 예수님임을 보여준다. 마태복음 17:5절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예수님)이 동시에 제자들에게 계시한 사건이다.
2.3. 창조주간의 예수님 사역
예수님은 언제부터 그 분을 계시하였나? ”네가 누구냐”[요 8:25]고 묻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요 8:25] 말씀하신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처음부터”는 언제부터인가? 이를 예수님의 창조사역과 관련시켜 생각해보자. 창조사역은 성부 하나님 혹은 성자 하나님의 독립적인 사역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동적인 사역임을 시사하는 것이 사람을 창조하는 사역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여기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대명사 ”우리”로부터 하나님을 단수가 아닌 복수로 계시하였다. 이는 사람을 창조하는 사역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함께 사역하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창조사역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동적 사역이다. 성부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그 계획을 말씀으로 선포하신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그 선포된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일을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사역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동적 사역이다. 성부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죄로 인하여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려는 계획을 세우신다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 1:3-4]. 그리고 때가 차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성부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천국 메시지를 전하셨다 ;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 12;49].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단번에[히 7:27] 영원히[히 9:12] 갚아주시고, ”다 이루었다”[요 19:30]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역사는 창세 전부터 시작하여 약 2천년 전 유대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다 이루어 놓으셨다. 21C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이를 가르치며 깨닫도록 도우시는 분은 보혜사 성령님이다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동적인 사역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에 이른다. 구원 받은 우리가 부활하는 것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동적인 사역으로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모든 사역을 다 이루시고[요 19:30],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고전 15:20]가 되신다. 성부 하나님은 성령을 받은 우리를 살리신다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마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창세기 1:1절은 하나님의 우주 만물의 창조에 대한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완성에 대한 대선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창세기 1:2절은 무질서의 상태의 물을 품고 있는 하나님의 신(성령님)이 하나님의 창조적 명령(말씀)이 선포되기를 기다리는 상태, 즉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의 상태에서 질서와 빛과 생명을 창조할 준비를 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묘사하고 있다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
창세기 1:3절 이하는 창조 6일 간의 각 날들의 하나님의 말씀선포와 말씀대로 창조사역이 완성됨을 기록하고 있다. 첫째날 ”빛이 있으라”[창 1:3]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빛이 존재하였다(만들어졌다). 여기서 말씀을 선포하신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고, 빛이 존재하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이는 히브리서 1:2~3절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 ”-- 그(예수님)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그의(예수, 성자하나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 1:3].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이 나뉘라”[창 1:6],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창 1:9],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창 1:14~15]. 창조주 예수님은 창조주간에 매일 창조적 말씀을 선포하셨고, 말씀대로 만물이 지어졌다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창조주간에 선포한 창조주 예수님의 말씀이 빛, 궁창, 동식물, 지구, 해, 달, 별 등 모든 생명체와 모든 물체들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존재한다.
지구를 포함하여 해와 달, 별 등 모든 물체 간에는 인력 혹은 중력이 작용한다. 인력의 크기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 간의 거리의 곱에 반비례한다. 인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물질계가 존재하고, 지구, 해와 달과 별이 질서있게 운행한다. 과학자들은 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여 이를 활용하여 물체 간에 작용하는 인력을 정확히 계산하여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리고 우주선을 달이나 화성에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력이 왜 존재(작용)하는지, 즉 인력의 원천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인력의 원천은 창조주간에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 ”..그의(예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 1:3]. 예수님의 능력의 말씀은 지금도 유효하여 우주 만물이 질서있게 운행하고 있다.
2.4. 하나님의 이름
2.1 에서 언급하였듯이 구약시대에 계시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로 ”스스로 계신자”[출 3:14-15], 즉 창조주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자 하나님도 '여호와' 이름으로 일하셨다.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서 구원자의 의미가 있다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예수'라는 이름은 원래 아버지(성부 하나님)의 이름이고 이를 아들에게 주셨다 ;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요 5:43]고 책망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혜사 성령님도 '예수' 이름으로 보내신다고 약속하신다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요약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은 구약시대에는 '여호와'이고, 신약시대에는 '예수' 이다. 창조주(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 분의 명패를 '예수'(구원자)로 바꾸어 우리에게 오셨다. 하나님의 이름의 변화를 통하여 성경을 창조주(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예수)하셨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아니 우주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창조주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고, 가장 큰 사랑은 창조주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3. 결론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은 구약시대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고, 모세에게 꿈과 환상이 아닌 여호와의 형상을 가지고 나타나셔서, 대면하여 명백하게 말씀하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사람을 창조한 사역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동적인 사역이다. 예수님은 창조주간 매일 창조적 명령을 선포하신 창조주(여호와)이시다. 창조주간에 선포하신 예수님의 창조적 말씀은 천지 만물이 질서 정연하게 운행하도록 만물을 붙들고 있다. 창조주 예수님의 말씀은 물체간의 작용하는 인력, 혹은 중력의 원천이다. 창조주간에 예수님이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셨다면 천지 만물은 존재할 수 없다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출처 - 2011년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돼지에 날개가 돋는다면, SETI가 로봇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If Pigs Have Wings, SETI Could Be Robots)
2011년 3월 11일 - SETI(외계 지적생명체 탐사) 프로그램은 저 먼 우주로부터 아주 작은 신호라도 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데이터가 없어 뭔가 이상함을 짐작하고 있다. UCLA 컴퓨터과학 교수인 마이클 다이어(Michael Dyer)는 지구를 방문하는 첫 번째 외계인은 로봇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그런 개연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Live Science 지의 기자 아담 헤드헤이지(Adam Hadhazy)는, ”만약 어떤 외계우주선이 지구에 도착한다면, 그 우주선에 타고 있는 것은 99.9999999%로 자연에서 합성된 것(로봇)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이어는 공상과학 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는가? 아니면 그의 예측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그의 논리는 몇 가지 생각에 기인한다. 왜냐하면 첫째, 우주여행은 생물학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둘째, 로봇은 거친 환경과 독가스를 견뎌낼 만큼 신체적으로 강하다. 셋째, 그의 믿음은 ”지구의 종말에 인간은 로봇 자손으로 대체될 것이다”라는 인공지능의 필연성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이것은 발달된 외계인이 이미 진화의 최정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기사에서 셋 쇼스탁(Seth Shostak, SETI 책임자)은, 외계인은 껴안고 싶은 생물체가 아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기계일 것이라는 다이어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외계인의 진화를 추정하면서(07/21/2010을 보라), 다이어는 미래의 로봇이 감정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었다. 영화 ‘우주선 오딧세이(A Space Odyssey)’의 Hal 9000 로봇처럼, 만일 로봇이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을 받는다면, 로봇이 임무를 실행하도록 프로그램 될 수 있을까? 로봇이 자비를 가지도록 프로그램 될 지라도, 남아있는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지는 않을까? ”우리가 바라는 최선의 것은 보호대상 목록의 꼭대기에 인간을 세워놓고, 합성된 존재인 로봇에게 생물들의 생존을 보호하도록 소프트웨어를 장착시키는 것이다”라고 다이어는 말했다.
그러나 모든 사색들은 새로운 딜레마를 야기시킨다. 다이어는 그만의 수정구슬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 ”나의 로봇이 나의 건강(오랜 수명)에 해를 끼치는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도록 제지할 수 있음도 예견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소파에 앉아 TV를 볼 때 더 이상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가 말했다. 또는 최근의 외계침략 공상영화를 보기위해 로봇의 허락을 받아야할 지도 모른다고 헤드헤이지는 덧붙였다.
외계의 합성 로봇이 있다면 그것은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를 의미하는 것인지를 다이어는 설명하지 않고 있었다.(12/03/2005). 그는 그의 내기(주장)에 얼마를 배팅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언제 어떻게 지불할 것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에게 외계인이 생물학적(합성되지 않은) 생물체일 확률은 0.0000001%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문 : 왜 이러한 내용이 ‘Live Science(살아있는 과학)’ 지에 실렸을까? 과학(science)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한정 없는 추측(추정)을 하며, 반대되는 증거를 시험해보려고 하지도 않고, 과학과 공상과학 사이의 구별도 없으며, 지식의 겸손도 없고, 오만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게재해도 되는 것인가? 과학의 사명은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이야기꾼들에 의하여 강탈당했는가?
대답 : 그 문제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IMDB.com을 보라)
번역 - 서태철
링크 - http://creationsafaris.com/crev201103.htm#20110311a
출처 - CEH, 2011. 3. 1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038
참고 : 5003|4997|386|4993|3626|3012|1426|2641|4522|4612|3650|3121|4210|2741|922|3579|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