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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이집트의 임호텝과 요셉은 동일 인물이었는가?

미디어위원회
2020-08-07

이집트의 임호텝과 요셉은 동일 인물이었는가?

(Were Joseph and Imhotep of Egypt The Same Man?)

By Emmet Sweeny


들어가며

수 세기 동안 유럽 크리스천들이 갖고 있던 열망 중 하나는 성경에 대한 검증이었다.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260~340)를 비롯하여 AD 4세기의 기독교 저술가들은 구약성경을 우화나 종교적 선전으로 보는 사람들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와 이집트의 역사를 참고하려고 했다.

이러한 정신으로 유세비우스는 프톨레마이오스 학자 마네토(Manetho)의 이집트 역사를 이용하여, 성경의 시간 척도에 기초하여 이집트 연대기를 재구성했다. 예를 들어, 그는 이집트 역사의 시작과 히브리 역사의 시작을 함께 묶는 초기 유대인 주석가들의 길을 뒤따랐다.

그러한 노력으로 이스라엘의 출애굽(BC 14, 또는 15세기로 추정) 시기를 람세스(Ramesside) 때로 보았으며, 최초의 바로인 메네스(Menes)를 아담과 동시대의 인물로 보았다. 그것에 의해서 이집트 문명은 BC 4,000년이나 5,00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수 세기 동안 유세비우스(Eusebius)의 이집트 연대 체계는 나일강 왕국의 “전통적인” 연대기가 되었으며(현대의 이집트 학자들은 거의 알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당대의 역사를 이해하는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1821년 이후 상형문자의 번역으로, 성경의 역사가 곧 극적으로 확인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고고학이 성경에 언급된 위대한 인물과 사건들에 대한 이집트의 언급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 문서들이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그러한 희망은 곧 사라졌다.

그 다음 세기에도 특정 바로를 구약 역사의 위대한 사건들과 연결시키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그러한 모든 노력들은 헛수고가 되었고, 결국은 포기되었다.

성경에서 위대한 인물로 묘사된 사람들(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등)이 실제 역사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모든 확인 작업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그들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집트인들이 언급할 가치가 없었던 작은 인물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견은 학자들 사이에서 점차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곧 새로운 정통(new orthodoxy)이 되었다. 이후, 고고학에서 성경(특히 창세기)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는 모든 시도는 즉시 광신적인 것으로 치부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러한 작업은 이제는 더 이상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반대 의견들이 있었다. 1950년대에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의 연구는 학문적 광풍을 몰고 왔는데, 그는 구약성경에 기술된 “노아의 대홍수, 소돔과 고모라 사건, 출애굽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벨리코프스키는 이 사건들 중 마지막 사건인 출애굽 사건은 실제로 이집트 역사의 주요 이정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건이 이집트인들에 의해 기록되어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고, 현대 학자들은 출애굽기에 묘사된 사건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오해했기 때문에, 그 사건을 놓쳤음을 보여주었다.

벨리코프스키가 채택한 혁명적인 입장은 고대 연대기(chronology)가 엄청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들여다보게 했다. 유세비우스의 마네토 작업에 근거한, 잘못되고 사실상 임의적인 이집트 연대기가 현대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이러한 중요한 성경 속의 사건들은 역사책에서 효과적으로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왜곡된 이집트 연대기는 원래 창세기를 입증하기 위해 시도됐었다!)

다른 고대 국가들의 역사도 왜곡된 이집트 연대기와 일치되도록 재구성되었음을, 벨리코프스키는 보여주었다. 이러한 고대 세계에 대한 ‘현대적’ 역사는 사실상 성경적 역사와 전통적 역사와 접촉할 지점이 없도록 만들었으며, 그것들과 반복적으로 충돌했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벨리코프스키의 격변적 분석을 견지(堅持)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책은 우리가 격변적인 체제를 받아들일 때, 퍼즐(puzzle)의 모든 요소들이 제자리에 들어맞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이다. 히브리 역사의 가장 초기 부분은 이집트 역사의 초기 부분과 실제로 가장 멋있게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내 작업의 중심 주제는 인접해 있었고 서로 연관되어 있었던 두 나라(이집트와 이스라엘)에 대한 평행한 기원(parallel origins)이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역사는 처음부터 얽혀 있었고, 그 밀접한 관련성은 그 후 수 세기 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따라서 나는 두 민족의 역사 사이에 연결고리를 구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장은 노아의 대홍수인 성경의 모든 사건 중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사건에 대한 검토이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고고학자들은 고대에 거대한 홍수에 의한 대격변적 파괴(cataclysmic destruction)를 가리키는 풍부한 증거들을 발견하고 있다.

그러나 각 학문 간의 상호협력은 불충분했으며, 심지어 우리 시대에도 그러한 문제는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근시안적인 학문의 과도한 전문화 때문이다.

그 결과 실제로 당시에 일어났던 실제 이야기들을 파괴하는 작업들이 여러 방법과 절차를 사용하여, 수 세기 동안 학자들에 의해 자행되었다.

그리하여 메소포타미아의 우르(Ur)에서 레너드 울리(Leonard Woolley)가 발견한 대홍수의 증거들은 국지적 홍수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시리아 등에서 일어났던 홍수에 의한 파괴는, 울리의 작업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학자들에 의해서 1천 년 후 일어난 것으로 연대가 할당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우르 홍수의 본질과 규모가 변조되었고, 모든 고대 사람들이 보고하고 있었던 대홍수에 대한 고대 역사는 완전히 왜곡되었고, 서로 조각나게 되었다.

아브라함과 메네스(Menes, 최초의 바로)를 연결시켜 보면, 우리는 고대에 대한 예상치 못한 전혀 새로운 견해를 갖게 된다. 우리는 이제 고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역사가 퍼즐 조각처럼 들어맞는 것을 보게 된다.

다음의 일치는 요셉(Joseph)과 임호텝(Imhotep)에 관한 이야기다. 이집트의 전통에 따르면, 메네스(Menes)가 집권한지 2세기가 지난 후 조세르(Djoser, ‘현자’)라는 위대한 바로가 살았는데, 그 시대에 재상이었던 임호텝은 이집트의 모든 현자 중 가장 으뜸인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세르와 임호텝은 기근 당시 7년 동안 함께 살았으며, 임호텝에게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 것은 왕의 꿈이었다. 마찬가지로 히브리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성경에 따르면, 아브라함 이후 2세기가 지난 후에 위대한 선견자인 요셉이 바로의 재상(총리)이 되어, 왕의 꿈을 해석함으로써 7년 기근의 위기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알려준다.

물론 역사가들은 오랫동안 임호텝과 요셉 사이의 두드러지게 닮은 점을 알고 있었으며, 그 주제에 대해 많은 글들을 썼다. 그들은 틀림없이 오래 전에 두 사람의 정체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천 년이나 넘게 잘못된 표준 이집트 연대기가 이 문제에 혼란을 초래했다.

현재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 덕분이다. 고대 이집트 연대기에 내재된 모순에 대한 벨리코프스키의 탁월한 설명은 고대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다. 그의 책 ‘혼돈의 시대(Ages in Chaos, 1952년)’에서, 그는 출애굽을 기점으로 이집트 후기 역사를 완전히 재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의 작업은 혼돈의 시대에서 영감을 받아 이집트 역사의 초기 부분을 재구성하고 있다. 벨리코프스키는 출애굽으로 시작했다. 우리도 같은 사건으로 끝난다...


조세르의 시대

바로 조세르는 누구인가?

이집트 문명의 시작을 성경의 아브라함과 동시대에 둔다면, 이집트와 이스라엘 역사의 출발은 같은 시기가 되고, 이제 새로운 연대기에 따라 두 역사의 재구성을 시도해야 한다.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동질성이 거의 없었던 두 이웃한 나라의 역사가 밀접하게 일치될 것이 기대될 수 있다.

히브리 역사에 따르면, 아브라함 이후 2세기가 지난 즈음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축복했던 그의 열두 아들들은 가나안에 정착했다. 이들 중 한 명으로 가장 젊고 현명했던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다. 이집트에서 그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에게 알려지면서, 운명이 극적으로 변화되고 신분이 상승된다.

그는 곧 왕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가 되었으며, 그 유명한 대기근 동안에 아버지와 형제들이 힘들어할 때, 전체 가족들을 이집트로 데려왔다. 따라서 요셉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어떻게 한 인물을 비천한 상태에서 탁월하게 높은 지위로 올리실 수 있는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창세기의 4분의 1 이상이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이집트인들은 요셉을 기억했을까? 아니면 이집트 전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인물을 알고 있을까? 더 구체적으로, 초기 왕조시대의 이집트 전승은 요셉과 동일시되는 사람을 전하고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메네스에 의해서 왕조가 설립된지 2세기 정도가 지나서,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현자가 나타났다. 이 사람은 조세르 왕의 치하에 신과 같은 존재였던 임호텝(Imhotep)이었다.

요셉과 임호텝의 진정으로 유사한 점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바로 조세르(Djoser)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집트 전승에서 임호텝의 위치처럼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마네토의 제3왕조의 두 번째 바로였던 조세르(Djoser, or Zoser)는 네체리케트(Netjerkhet)라는 제목의 기념비에서 발견된다. '현자(The Wise)'를 의미하는 조세르라는 이름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에게 수여되었다. 많은 학문적인 토론이 조세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그는 피라미드를 세운 초기 왕조 최초의 바로인 것으로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이 개념은 잘못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라미드 또는 큰 석조 기념물을 세운 최초의 바로였다. 특히 사카라(Sakkara)에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Step Pyramid)과 인접한 사원의 디자인은 이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제공한다. 기둥들은 갈대 다발을 모방했고, 천장은 종려나무를 모방한 문양이다. 문들은 이를 모방한 경첩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집트 역사의 거의 모든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계단식 피라미드와 사카라의 사원은 전통적 이집트 연대기에 많은 어려움을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성전 건물은 매우 현대적인 모습으로 보이며, 오늘날까지 방문자들은 성전 홀(temple hall)의 '원-도리아 양식(proto-Doric)'의 기둥들을 보고 그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한다.

이후에 이집트인들은 조세르의 통치 기간을 황금시대로 간주하게 되었고, 바로는 거의 신과 같은 권력자로 인정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조세르라는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지혜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그를 숭배하는 것은 점차로 강화되어, 이집트 말기왕조 시대(Saite period, 제26왕조)에 그는 이미 신격화되었다. 한 주석가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문학의 수호신이자, 저명한 의사로서, 그리스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와 동일시되었다.

… 시간이 지나 그는 초기의 바로들 중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으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제22왕조의 아피스(Apis) 숭배자들의 봉헌 중에서 그의 이름은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로 나온다. 우리는 제26왕조에서 그의 정신을 계승한 손브프(Sonbf)라는 이름의 사제와 또 다른 사제인 아하모스(Ahmose)를 알게 된다.”

조세르는 그에게 부여된 제사장직을 갖고 있었고, 그의 죽음 이후 몇 세기 동안 신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극찬을 받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인 설명은 거대한 석재 건물인 피라미드를 남긴 첫 바로로서, 후대에 자연스럽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의 기념물은 그의 불멸을 보장했다.

이 설명이 어느 정도 진실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조세르의 명성은 그의 재상(vizier)이었던, 신과 같은 임호텝의 명성으로 더 높아졌다. 아래에서 보게 되겠지만, 이 사람은 이집트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이자, 꿈의 해석자로 여겨졌다.

임호텝은 또한 사카라(Sakkara)에서 훌륭한 건축물을 설계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공인되고 있다. 이 두 명의 뛰어난 인물은 함께 행동하여 이집트 문명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형성했으며, 이집트를 잊을 수 없는 파괴적인 대기근에서 구해냈다고 기억되고 있다.


조세르와 7년의 흉년

이집트의 전통적 역사는 7년간 지속됐던 대기근을 기록해 놓고 있다. 이 대기근은 조세르 통치 기간에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바로였던 조세르가 왜 '현자(The Wise)'라고 불렸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7년간의 대기근에서 이집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가 아스완(Aswan) 근처의 암벽에 새겨진 비문(rock-cut inscription)에 적혀있다. 이 비문은 BC 1세기에 살았던 프톨레마이오스 5세(Ptolemy V, 에피파네스) 시대의 것으로 연대가 평가되었다. 이 비문은 대기근을 역사적 사실로 기록하고 있으며, 조세르 왕 18년에 발생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비문은 조세르 시대의 것으로 주장되지만, 이러한 주장은 일반적으로 기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문은 매우 오래된 기록의 사본(물론 철자는 업데이트된 것으로)일 수도 있다. 조세르의 통치 기간에 이집트에 큰 위기가 닥쳤다. 바로는 비탄에 잠겼다 :

“나의 시대 7년 동안 나일강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궁에 있는 사람들은 매우 큰 마음의 고통에 빠져있다. 곡식이 부족하고, 과일이 없고, 사람들이 먹는 모든 것이 결핍되었다.”

물론, 조세르의 기근은 고대 히브리인 요셉 시대의 기근과 매우 흡사하다. 이집트 연대기 기록의 모든 요소들은 요셉 이야기와 순서가 좀 다르지만 거의 비슷하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바로의 꿈이 먼저 나오지만, 두 이야기는 꿈의 해석이 기근을 벗어날 수 있게 했던 열쇠를 제공했다는 것에 일치한다.

이집트 이야기에는 현명한 선견자인 임호텝은 바로를 도와서 대기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임호텝의 역할은 창세기에서 요셉의 역할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1890년 찰스 윌보우(Charles Wilbour)는 나일에 있는 사할(Sahal)섬에서 임호텝(Imhotep)의 이야기가 적혀있는 거대한 비문을 발견했다.


또한 크눔 신(god Khnum, 나일강의 신이자 창조의 신)의 본질이 여기에서 중요하다. 숫양의 머리를 하고 있는 크눔은 초기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었다. 그는 창조의 신으로 여겨졌으며, 도공의 물레(potter’s wheel) 위에서 인류를 만든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크눔은 실제로 구약의 하나님과 매우 유사해 보이는데, 일부 학자들은 크눔의 숭배는 히브리 종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학자들은 7년 동안 지속됐던 조세르의 기근과 요셉의 기근을 연관시키는 데 열심이었으며, 의심할 여지없이 임호텝과 요셉, 조세르와 요셉의 바로는 연대기적 불일치가 아니라면,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이집트 연대기에 의하면 조세르는 BC 2,600년경에 통치했고, 성경적 연대기에 따르면 요셉은 BC 1,700년경에 살았다. 여기에는 약 1000년의 격차가 있다.

 <Source: Betty Matteson Rhodes>


따라서 학자들은 두 전설 사이에 다소 모호한 “연결”로 만족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요셉의 이야기가 이집트 이야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창세기 기록이 이집트 이야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성경의 기록이 이집트 이야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으로 잘 알려진 지지자는 독일의 이집트 학자였던 하인리히 브뤼쉬(Heinrich Karl Brugsch)였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디어는 기존의 이집트 연대기가 올바른 경우에만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집트 연대기는 축소되어야만 한다고 많은 신진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그 경우에 조세르의 통치 연대도 대폭적으로 당겨지면서 성경적 연대기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세르가 실제로 요셉의 바로였고, 7년 동안의 흉년에 대해 조세르에게 대비책을 조언한 위대한 선견자 임호텝은 요셉이었을까? 마지막 결론을 내리기 전에, 창세기 기록에 나타난 요셉의 삶과 성격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요셉 이야기

구약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랑받는 요셉 이야기는 창세기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에서 요셉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는 야곱과 형제 가족들을 이집트로 데려온 사람으로, 이들은 추후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로 성장한다.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요셉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역사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역사에서도 그의 중요성을 나타내며, 전체 에피소드에 대한 배경으로 이집트를 철저하게 보여준다.

이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요셉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수수께끼지만, 현재에도 이집트에 엄청난 영향력이 있다고 인정되고 있다. 사용된 용어와 관용구들은 이집트인들이 사용해왔고, 사용하고 있는 이집트어이다. 실제로 오늘날 몇몇 학자들은 이집트 기록에 근거하여, 창세기에 기록된 이집트어 용어와 관습이 당시의 것과 유사함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한 주석가 중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이집트학 전문가인 야후다(A. S. Yahuda)로서, 그는 창세기 후반부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수행했다. 야후다는 창세기 전체에 걸쳐 이집트 용어, 어구, 은유, 외래어가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궁금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용어들은 구약성경의 후반부 책들에서는 상대적으로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야후다가 제공하는 일부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

▶ 야후다에 따르면, 요셉의 총리 임명은 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이 직책에는 “두 번함, 반복함, 두 번으로”라는 의미를 어근으로 가진 히브리 단어가 사용된다. 야후다는 같은 방식으로 이집트어 sn. nw (“대리인”)가 “두(two)”라는 단어인 sn.에서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구절에서 바로는 요셉 앞에서 “엎드리라(bow the knee)”고 명령한다. “보우(bow)”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데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 요셉은 “바로의 아버지(father to pharaoh)”라는 타이틀이 붙여져 있는데, 야후다가 말한 것처럼, 히브리어 표현은 이집트의 itf, ‘아버지’, 일반적인 제사장직, 총리로 태어난 사람 등과 일치한다. 바로는 요셉과 대화를 시작할 때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I have had a dream … I have heard that you understand a dream to interpret it)”(창 41:15)라고 말한다. 히브리어는 “이해하다”라는 단어를 “듣다”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주석가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지만, 야후다에 따르면, 그것은 "듣다(to hear)" 또는 "이해하다(to understand)"를 의미하는 이집트의 sdm 사용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 요셉 이야기에서 바로는 제 3자로 언급된다. 예를 들어 창 41:34절에서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야후다에 따르면, 이것은 이집트의 궁중 예절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또한 창세기 여러 구절에서 반복되는 특징적인 용어는 ”in the face of Pharaoh“, or “from the face of Pharaoh”(바로 앞에서)라는 용어인데, 이것은 “before pharaoh”를 의미한다. 야후다는 이 용어는 이집트의 궁중 예법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하며, 여기서 바로 앞에서는 말할 수 없고, 존엄이 허가했을 때에만”(m hr-hm-f)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요셉의 말에서 바로와 관련하여 “주(lord)”라는 단어가 복수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이집트 단어 nb가 "주"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복수인 nb.wy를 사용하면 바로를 나타내는 이집트어 사용법과 일치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야후다가 수집한 증거들 중 일부에 불과하지만, 전체 이야기에 대한 이집트의 배경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앞에서 말했듯이, 실제로 일부 주석가들은 히브리인 기자가 이 이야기를 기록할 때, 어느 정도 이집트 원래 이야기를 수용했다는 증거는 매우 강력하다고 말한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셉의 이야기를 기록했을 때, 이집트 사람들이 그에 대해 기록해놓은 것을 많이 인용했다는 것이다. 이들 중 어느 것도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창세기는 요셉이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는 왕의 총리 대신이 되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아시아인들(야곱과 형제 가족들)을 이집트로 데려왔다.

그는 사회적, 정치적 혁명을 지휘했다. 창세기 47:22절에 따르면, 이집트 땅은 여러 번 통치자가 바뀌었다. 바로는 왕국의 절대 통치자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요셉은 매우 특별하게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선지자였으며, 비전의 사람이었다. 요셉은 이집트인들이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는 이제 아브라함이 이주한 이후 몇 세대 후에 요셉이 “현명한” 바로 조세르와 현명한 선견자 임호텝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명의 큰 현인 요셉과 임호텝은 동일 인물이며, 요셉의 현명한 바로는 “현자”였던 조세르였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위의 평가에 추가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임호텝은 이집트의 모든 현자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임호텝과 성경의 요셉 간의 밀접한 상관관계는 학자들의 눈에 늘 띄었다. 최근에 톰 쳇윈드(Tom Chetwynd)라는 영국의 역사가가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가 하는 논란을 재조명하면서, 이 두 사람은 같은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쳇윈드는 임호텝이 BC 3000년 전의 “고왕국(Old Kingdom)”에 속해 있다는 기존의 견해를 견지하면서도, 이것에 내재된 시간적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둘 사이의 유사점은 연대기적 문제를 극복하기에 충분히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간단히 말해서, 이집트 연대기가 무엇을 말하든 관계없이, 두 사람은 동일인이어야 한다는 증거들은 너무도 강력하다는 것이다.


*참조 : Could Joseph and Imhotep have been the same person?

https://josephandisraelinegypt.wordpress.com/

Could Joseph and Imhotep have been the same person?

https://josephandisraelinegypt.wordpress.com/feature-article-imhotep-and-joseph-are-the-same-person/

Was Imhotep and Joseph the same Person?

https://the-red-thread.net/joseph-imhotep.html

Joseph’s Zaphenath Paaneah—a chronological key

https://creation.com/chronological-key-in-josephs-name-zaphenath-paaneah

Egyptian chronology and the Bible—framing the issues

https://creation.com/egypt-chronology

Resolving alleged conflicts between the Bible and other accounts of Egyptian history

https://creation.com/egyptian-chronologies


*참조 : 이집트 역사와 성경 기록 : 완벽한 조화?

http://creation.kr/archaeology/?idx=4326240&bmode=view

이집트에 히브리인들이 살았다는 증거 : 그리고 출애굽 연대에 대한 고찰

http://creation.kr/archaeology/?idx=4218772&bmode=view

이집트 연대기와 성경 : 현장 고고학자 데이비드와의 대화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29&bmode=view

출애굽의 역사성을 확증하고 있는 영화, “출애굽의 증거들”이 개봉되었다.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9000&bmode=view

“증거의 패턴: 홍해의 기적” -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영화

http://creation.kr/archaeology/?idx=3156850&bmode=view

시내산의 위치에 관해 논란이 되고 있는 고고학적 장소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공개한다.

http://creation.kr/archaeology/?idx=2574870&bmode=view

모세를 찾아서 1, 2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11&bmode=view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12&bmode=view


출처 : http://s8int.com/joseph.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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