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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04-07-16

중국의 ‘알려지지 않은’ 신에 대한 기원 

: 고대 상형문자인 한자 속에 나타나있는 성경

(The Original 'Unknown' God of China

: An Ancient pictogram script points to the Bible)

Ethel Nelson


      중국 북경에 있는 450년 된 천단(天壇, Temple of Heaven)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왜 황제는 매년 소위 '교사 (郊祀, Border Sacrifice, 교외에서 드리던 제천의식)”라 불리는 그 해의 가장 중요하고 화려한 의식으로, 하얀색의 커다란 대리석 천제단(Altar of Heaven)에서 황소(bull)를 희생 제물로 드렸는가? 이 의식은 마지막 황제가 폐위된 1911년에 끝났다. 그러나 희생 의식은 단지 450년 전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의식은 400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order Sacrifice가 기록되어 있는 가장 초기의 기록 중 하나는 공자(Confucius)에 의해서 편집된, 순(Shun) 황제(최초로 기록된 왕조가 시작되었을 때, BC 2256-2205년을 지배했던 황제)를 기록하여 놓은 서경(Shu Jing, Book of History)에서 발견된다. 거기에서 순 황제는 샹다이 (ShangDi, 상제, 上帝)에게 희생제물을 드렸다고 되어있다. 


샹다이는 누구인가? 이 이름은 문자적으로 '하늘의 지배자 (the Heavenly Ruler)”라는 의미를 가진다. 명나라 시대(AD 1368)의 법령(Statutes)에 기록된 Border Sacrifice에 사용된 낭송문(축문)을 검토해 보면, 샹다이에 대한 고대 중국인들의 숭배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의식에 참예할 때, 황제는 먼저 천단에서 묵도하고, 악단의 풍악에 맞추어 전통복장의 소리하는 자들이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읊었다.      

”전능자시여, 신비로운 일들을 하시는 주재자시여, 내가 생각으로 당신을 바라보나이다.... 이 큰 의식을 통해 당신을 경배하며 높여드립니다. 당신의 종인 나는 단지 한 줄기의 갈대요 버드나무입니다. 나의 마음은 한 마리 개미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나는 제국을 다스리라는 당신의 은총의 명령을 받았나이다. 나의 무지함과 몽매함을 잘 알고 있음으로, 내가 당신에게 받은 위대한 은총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까봐 심히 두렵고 떨리나이다. 그러므로 나의 거룩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나 자신을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며 모든 법도와 율례를 준수하려고 하나이다. 이곳에서는 멀지만, 나는 천상에 계시는 당신을 바라보나이다. 당신의 천상의 병거를 타고 이 제단으로 오시옵소서. 당신의 종인 내가 나의 머리를 땅에 대고 공손하게 당신께 절하나이다. 영광스런 은총을 풍성하게 내려주시옵소서...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저희들처럼 축복내려 주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경배하나이다. 당신의 선하심은 끝이 없으시나이다.”  

여기서 황제는 샹다이를 경배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고대의 이 장엄한 의식의 원래의 의도를 추적할 수 있을까? 황제는 샹다이에게 드리는 이러한 연례 의식에 매년 참가하여 축문을 낭독케 함으로서, 샹다이가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옛적 태초에 커다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있었다. 다섯 개의 원소들(행성들)은 회전을 시작하지 않았으며, 태양도 달도 빛나지 않았다. 영이시며 전능자이신 당신께서 처음에 순전한 것들에서 거친 부분들을 나누셨다. 전능자께서 하늘을 만드셨다. 땅을 만드셨다. 사람을 만드셨다. 번식하는 힘을 가진 모든 것들을 각기 모양대로 만드셨다.” 3

크리스챤에게 위의 낭송 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매우 친숙하게 들린다. 그것은 성경의 창세기의 첫 장을 읽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히브리어로 쓰여진 더 상세한 이야기로부터 발췌된 것과 같은 유사함에 주목하기 바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1-2, 9-10, 16, 27-28)

중국의 창조주이신 샹다이는 확실히 히브리인들의 창조주 하나님과 같거나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 히브리말로 전능자 하나님의 이름은 엘 샤다이(El Shaddai) 이다. 이것은 발음상으로 샹다이와 유사하다. 심지어 더욱 유사한 것은, 샹다이의 초기 발음인데, 그것은 ‘쟌 다이 (djanh-tigh) [Zhan-dai]’ 이다.고대 중국인들이 샹다이와 같이 사용하던 그들의 신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은 ‘천 (天, Tian, Heaven)’이었다. 초기 한나라의 학자였던 쟁 후안(Zheng Xuan)은 '샹다이는 ‘천’의 또 다른 이름이다” 라고 하였다.위대한 철학자 묵자(Motze, 408-382 BC) 또한 천(Heaven, Tian)을 창조주(Creator-God)로 생각했다.    

”나는 천(Heaven)이 조건없이 인간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안다. 천은 태양과 달과 별들의 질서를 정하시고, 빛나게 하시며 그것들을 붙들고 계신다. 천은 그들을 조절하심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정해 놓으셨다. 천은 눈, 서리, 비, 이슬을 내리셔서 오곡과 아마(flax)와 비단을 자라게 하셔서 인간들이 그것들을 사용하고 즐기게 하셨다. 천은 산, 강, 골짜기, 계곡을 정하셨고, 선악을 다스리도록 많은 것들을 인간에게 위임하셨다.” 6

샹다이가 모든 만물들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여기에 고대의 Border Sacrifice 의식에서 낭송되던 축문에 이러한 부분도 있다.

”전능자이신 태(Te, ShangDi) 시여, 당신이 명하실 때에, 하늘과 땅과 인간이 존재하게 되었나이다. 하늘과 땅 사이를 분리하시고, 인간과 만물을 질서 있게 하시고, 만상을 하늘에 펴셨나이다.”

샹다이가 명하실 때에 하늘과 땅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에 주목하라. 히브리어 책에 기록된 엘 샤다이의 창조하신 방법과 비교하여 보라. 우리는 샹다이와 샤다이는 이름도 유사하고 하신 일들도 매우 유사함으로 사실상 동일한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편 33:6,9)      

우리는 황제가 샹다이에게 황소를 희생 제물로 드린 이유를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이 중국에서 행해진 희생 제사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께 드려지던 희생 제사를 비교하여 보자. 

...흠 없는 송아지를 속죄제를 위하여 취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를 위하여 취하여 여호와 앞에 드리고” (레위기 9:2)

최초로 행해졌던 사례들은 창세기 4:3,4절, 8:20절에 기록되어 있다.


Border Sacrifice의 기원은 ‘God's Promise to the Chinese’ 라는 책에서 설명되어져 있다.8 저자인 Nelson, Broadberry과 Chock은 가장 오래된 중국의 상형문자들을 분석하여 왔는데, 그들은 이 문자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형 문자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모세의 시대 이전으로, 이 문자들에는 창조, 유혹, 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 동물 희생을 통한 죄의 용서 (이것은 오실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함) 등이 나타나 있었다. 놀랍게도 창세기 사건들의 모든 내용들이 중국의 독특한 문자 속에서 발견되어지고 있으며,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밑의 그림은 중국의 문자인 한자 속에 나타나 있는 놀라운 사실들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 관련이 있음과 창세기의 사건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민족들은 대홍수 이후 첫 문명이었던 바벨 문명에서 살았던 거주민들의 후손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최초로 오실 ‘여자의 후손’인 구세주에 대한 당신의 약속을 창세기 말씀 속에 주셨다 (창 3:15). 창조주 하나님의 어린 양인 구세주의 오심과 희생에 대한 예언은 인류의 나이만큼이나 오래 되었다.   

중국인들이 기독교를 서양인들의 종교라고 당신에게 말한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고대의 중국인들도 오늘날 크리스찬들이 믿는 하나님을 같이 믿었고 경배했었음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그랬던 것처럼, 중국인들의 조상들도 거짓 신들을 따라 잘못된 길을 걸어갔으며, 그들이 원래부터 섬기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져 갔던 것이다.고대의 중국 글자들은 성경의 창세기가 역사적인 진실이라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참조 : ‘성경으로 보는 한자의 세계’ 한문 강좌 열어 (2012. 9. 22. 시사코리아저널)
http://www.koreaj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477

The Lamb of God hidden in the ancient Chinese characters

https://www.semanticscholar.org/paper/The-Lamb-of-God-hidden-in-the-ancient-Chinese-Gu-Zhuan/b9fb7c36489f52d4dd2c37bb529e1646ea583fb6

The Lamb of God Hidden in Chinese Characters

https://answersingenesis.org/jesus/the-lamb-of-god-hidden-in-chinese-characters/

Noah’s Ark hidden in the ancient Chinese characters

https://creation.com/images/pdfs/tj/j19_2/j19_2_96-108.pdf

Genesis in Chinese Pictographs 

https://www.icr.org/article/genesis-chinese-pictographs/


References

1. James Legge, The Chinese Classics (Vol. III), pp. 33-34, The Shoo King: Canon of Shun, Taipei, Southern Materials Centre Inc., 1983

2. James Legge, The Notions of the Chinese Concerning God and Spirits, pp. 24-25, Hong Kong, Hong Kong Register Office, 1852.

3. Ref. 2 p. 28.

4. Schuessler, Axel, A Dictionary of Early Zhou Chinese, pp. 123, 528, University of Hawaii Press. Honolulu, 1987.

5. Lung Ch'uan Kwei T'ai Lang, Shih Chi Hui Chu K'ao Cheng, p. 497, Taipei, Han Ching Wen Hua Enterprise Co. Ltd., 1983

6. The Works of Motze, p. 290, Taipei, Confucius Publishing Co.

7. Ref. 2, p. 29.

8. Read Books Publisher, Dunlap, UN, USA, 1997.

9. This was of course the near-universal experience of all tribes and nations.

*See also: Chinese Characters and Genesis for large printable versions of Chinese Characters that show that the ancient Chinese knew the Gospel message found in the book of Genesis.

*Ethel Nelson, M.D., F.A.S.C.P

Dr. Nelson is a retired pathologist living in Tennessee who was a medical missionary in Thailand for 20 year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magazines/docs/v20n3_china.asp ,

출처 - Creation 20(3):50-53, June 1998.

Charles Taylor
2004-04-21

창조주(The Creator) : 언어학, 창세기, 그리고 진화론 제 5부


      나는 이제 창조주(Creator)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창조주는 누굴까? 히브리어 창세기는 어떻게 그를 기술하고 있을까?

여러분께서는 아마도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어는 엘로힘(Elohim)이라는 말을 신학자들한테서는 물론 여러 사람들한테서 들었을 것이다. 이 단어는 복수형이다. 하지만 이 단어를 받는 술어동사는 단수 주어를 받는 형태이다.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의 암시를 본다. 즉, 단수 속에 복수가 암시되었다.

성경에 처음 나타나는 세 마디 단어 즉, bereshith bara Elohim은 역사를(시작이 있었다, berehith), 다음에 창조를(그가 창조하였다, bara), 그리고 그 다음에 창조주를(창조주, Elohim) 담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God)은 인간의 상상력과 관계가 없고, 인간의 추상적인 영역밖에 계시는 창조주(Creator)이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역사를 주관하신다. 기독교 교리는 무엇보다도 역사상의 사건에 대한 신앙이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 이르면, 우리는 곧 또 다른 이름과 만난다. 이 이름에 대한 히브리어 글자는 YHWH 이다. 이 네 글자는 tetragrammation이라는 말로 알려지게 되었다. BC 시대의 후기에 유태민족은 이 단어를 발음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 (Master, 또는 우리가 종교적인 의미로 쓰는 '주님 the Lord' 라는 뜻)'을 뜻하는 adonai 이라는 단어를 YHWH의 대용으로 사용하였다. 유태인 독자들을 돕기 위해서 그들은 네 자의 子音 발음 글자 YHWH에 모음 발음 adonai를 첨가했다. 이것으로 독자는 YaJoWaiH 와 비슷한 발음을 할 수 있었다. 이 발음을 담고 있는 글자가 유럽 언어의 Jehova (여호와)가 된 것이다. 'j'는 'y'와 비슷한 것으로 'v'를 'w'와 비슷한 발음으로 되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이 이름이 원래 하나님이 창세기 15:7에서 아브라함에게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실 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출애굽기 3:14에서 모세한테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 보이실 때의 하나님과도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이름이 Ehyeh, 즉 I am (나는 ... 이다)으로서 나는 존재한다, 또는 나는 살아있다 라는 뜻을 내포한다.

더욱이 성경 속에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과 접속된 접두어 Yehu (영어 성경들에서는 때때로 'Jeho-'로 철자가 된다)는 바로 이 이름에서 연유되어 있다. 그리고 Jesus (예수)의 히브리어 형태는 Yehoshua (예호수아)로서 YHWH가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그럼으로 창세기의 YHWH의 네 글자 형식은 예수와 특별한 연관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창세기 1:2b에서 Ruhch Elohim이라는 용어가 나타나는 것을 주목하게 된다. 이 말은 성령을 뜻한다. 이렇게 해서 창세기 기사 속에는 삼위일체의 증거가 한 방향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창조의 사역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삼위의 인격들 전 존재가 그 사역에 관련하고 있다. 즉, ElohimYHWH 그리고 Ruach Elohim 이 세 인격이 다 관련하고 있는 것이다.

YHWH라는 이름은 Elohim이라는 이름보다 더 밀접하다. Elohim은 다른 신들도 뜻할 수 있다. 심지어 영웅적인 인물이나 천사들도 뜻한다. 그것은 일반적 형식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러나 YHWH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그의 후손들의 하나님이다. 그리고 한 인격체의 이름인 것이다. 유태종족에게는 이것이 너무도 거룩한 이름이어서 그들은 그 이름을 입에 담지 않는다.

신약에서 예수는 스스로를 '주님 (the Lord)'으로 불러도 좋다고 허락하였다. 이 단어(주님)는 우리가 YHWH에 대신하는 이름인 Adonai 를 번역한 단어로서 예수는 물론 한 인격의 이름이다. 즉 한 인간의 이름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의 형태를 한 스스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는 성령에 관련된 언급을 자주 만난다. 구약에서는 성령이 사람들 위에 오셨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로는 성령은 '하나님의 권속들' 속에 거하려 오신다. 신성(神性 Godhead)의 세 인격이 창조에 관련한다. 창세기 2장에서 요약되어 있는 바처럼 특히 사람의 창조에 관련한다. 

또한 창조의 사역을 뜻하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 1:26에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표현을 만난다. 이 복수 명사형은 특별히 사람의 창조에 연관이 있어서 (1:27), 이 대목에 이르러는 성경은 신성(神性)이 갖는 인격들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남성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나의 대답은 예(yes)다. 성경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역할을 명백히 가르친다. 비록 하나님의 눈은 남녀의 가치를 동등하게 보지만, 성경은 모든 점에 있어서 두 성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남자는 결혼에 있어서 책임지는 자격, 즉 대답하는 자격이고, 여자는 받드는 자, 즉 돕는 자의 자격으로 되어있다. 창세기 2:18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남자를 돕는 배필을 지어 주리라 결심하신다. 이 단어(돕는 자)는 사무엘상 7:12에서도 보인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에벤에셀(Ebenezer) 그 자체는 '돕는 바위' 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자리를 뜨면서 하나님께서 이 곳을 그냥 돕는 여성이라고 하셨다고 혹시라도 주장하기 전에, 나는 여러분께 꼭 알려 드려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ezer 은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창세기 2:18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정확한 말씀은, '내가 그에게 어떤 돕는 자를 마련해 주리라 (I'll provide him some help for him.)' 이다. 히브리어의 추상적인 명사들은 대개가 여성인데, 여기서는 정말 뜻밖에도 추상적인 개념을 뜻하는 단어가 남성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 자신에 관해서 살펴보면, 그의 이름 Elohim 만으로는 복수형이다. 히브리어에서 어미 -im을 가진 단어들 가운데 가끔은 여성 명사도 있지만, 대개는 거의 언제나 남성이다. 이것만이 하나님에게 남성이라는 이유를 달게 되는 절대적인 증거는 아니다. 이것을 증명하려면, 이 단어에 따르는 술어동사의 형태도 합당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명사에 연결되는 술어동사의 형태가 명백하게 남성 단수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격이 남성일 뿐만 아니라, 단수-복수 연관 인칭이라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이것이 Elohim 이라는 단어가 소유하고 있는 우리를 놀라게 하는 문법적 특징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단어를 하나님(God) 이라고 번역하여야할 것인가, 또는 신들(gods) 이라고 번역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그것을 분간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후자(신들)로 번역이 되어야 할 때는 오직 술어동사가 복수형일 때에 한정되어있다. 그 예가 이사야 37:12, '그 나라 신들이 건졌더냐...? (Have the gods of the nations delivered them...?' 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Elohim은 복수 동사형인 Ha-Hittsilu를 뒤따른다, '신들이 건졌더라 (have they delivered)', 그래서 Elohim은 '신들 (gods)' 이어야 한다.

이와 똑같은 문법적 특징, 즉 남성 명사형이 통상 '주님 (the Lord)'으로 번역되는 거룩한 이름 YHWH에도 적용된다. 이 단어는 통상 남성 술어동사를 받는다. 그러나 이 단어에는 복수형 동사는 술부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님이 이 단어 속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언가를 드러내게 하는 요소를 함축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궁극적으로 예수께서는 엠마오(Emmaus)로 가시는 노상에서 두 가지를, 즉 당신 자신과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포함한 '성경의 모든 것'에 관해서 설명하셨다. (누가복음 24:27).

하나님(God)이 대명사로 언급될 때면, 그것은 언제나 남성대명사 huu 'he' 이지, 결코 여성대명사 hii 'she' 인 적은 없다. 이 모든 내용으로 보아 '하나님(God)'에 대한 히브리어 속에 그 어떤 여성적인 요소라든가, 심지어 공통성(common gender)의 원리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몰론 여러분들은 희미하게나마 삼위일체의 존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또 다시 삼위 개개 인격이 다 남성임을 보게 된다. 술어동사야말로 주어의 성을 결정하는 요소다. 비록 ruach 'spirit' 가 보통은 여성명사이지만, 하나님을 언급할 때에는 이 단어는 Elohim과 어울려서 Elohim의 문법적 그리고 의미론적 성질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열왕기상 24:27의 말씀, '주님의 영이 어느 길로 가셨는가...?'에서 Ruach  (spirit)라는 단어는 남성동사 abar 'went'를 취하였다. 

히브리어의 문법에 관한한, 성경이 신격(Deity)의 속성에 非-남성적인 요소를 나타낸다고 주장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신격(Deity)의 속성에 여성의 흔적이 있다는 생각이 나돌고 있는데, 그것은 오늘에 이르러 일부의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에서 연유된 결과 일 뿐이다. 그 일부의 사람들이라고 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  하나님이 구별을 지어놓으신 개체들을 하나의 거대한 통일된 집단으로 묶어 두기를 원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지목한다. 무엇보다 더 나쁜 것은 그런 생각이 소위 여성의 해방 운운하는 사상을 내세운 성차별의 철폐 운동권들에 의해 강력하게 부추겨졌다는 점이다. 그들의 운동은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해를 거듭할수록 변질되고 있다. 이들의 운동과 과학과의 차이는 과학이 하나님에게 공헌하는 입장에 있을 때에는 다시없이 선량한 반면에, 이 운동권의 사상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에 반대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념을 신봉하는 사람은 당연히 회복이 가능하다. 그들도 일단 회복된 이후로는 그 이념이 나쁜 속성에서 발단이 되었음을 인식하고 일반적으로 그 운동권을 비난한다. 

이와 같이 해서, 책임자로서의 남자와 남편을 돕는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는 배필로서의 여자로 구성된 가정의 원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어지는 성경 전체에 충만하다. 이에 더하여, 창세기 초두의 언어들은 물질계의 기원과 사람의 실질적인 기원을 밝혀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독생자,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이 세상의 구원 속에 사람을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흔적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하나님 당신 자신을 나타내는 이름들 안에 감춰져 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7/i4/creator.asp 

출처 - Creation 7(4):21–23, June 198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50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2-28

소돔과 고모라의 재발견

(Sodom and Gomorrah Rediscovered)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창세기 19:24,25)

”Then the LORD rained down burning sulfur on Sodom and Gomorrah - from the LORD out of the heavens. Thus he overthrew those cities and the entire plain, including all those living in the cities - and also the vegetation in the land.' Genesis 19:24, 25 NIV)   

아름답지만 황폐한 사해(Dead Sea) 지역의 남쪽 끝에는, 소돔산(Mt. Sodom)이라고 알려져 있는 산이 있다. 이 지역은 소돔 성이 위치해있던 곳과 인접해 있다. 성경은 그 날에 파괴된 것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포함하여 보다 넓은 지역이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까지 적어도 5 개 도시가 재로 변했고, 유황불이 그들에게 쏟아졌었음이 발견되었다. 이 도시들의 각각의 위치는 이 지역에 대한, 특히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지역에 대한 정밀한 위성 지도와 지형학적 모습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각 장소들을 방문한 사람들은 도시가 유황불(sulfur balls, King James version에서는 brimstone)로 재로 변해버렸음을 연달아 발견하면서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을 확인하였다.

조나단 그레이(Jonathan Gray)가 도시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 성벽의 직사각형의 외곽선을 볼 수 있다. 재로 변한 하얀 색의 도시가 주변 회갈색의 사막과 대조되어 황량하게 놓여있다.

 

위의 사진에서 성의 벽은 꽤 분명해 보여서, 심사숙고가 필요치 않았다. 집과 건물들의 크기는 실제적으로 꽤 컸는데, 이것은 한때 이 도시에 큰 체구의 사람들이 살았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성벽과 도시의 모든 것들은 완전히 재로 변해 있었다.

여기에 마치 지구라트(ziggurat, 이교도의 피라미드 사원)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흙무더기(mound)가 있다. 몇 도시의 외곽에는 이집트의 거대한 스핑크스와 모습이 매우 유사한 거대한 모습들이 있었다.

재로 변한 몇몇 집들에 들어갔을 때, 전갈의 존재는 일행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한 사람이 성벽의 조각을 손으로 쥐자 쉽게 부서졌다.

   수백의 유황 불(sulfur balls)들이 발견되었고, 수집되었다. 두 번의 경우에서, 조사팀은 비가 온 후에 도시에 들어갔다. 알갱이를 둘러싸고 있는 유리들은 빛에 의해 반짝거렸으며, 강우는 수백만 개의 유황불을 노출시켰다.

유황 불(balls)은 압축된 순수한 유황 가루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러 화산 전문가들에게 문의한 결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성분으로 구성된 불 덩어리들(balls)은 없었다는 것을 (화산 활동 주변에서 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유황 불들이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온도는 대략 섭씨 5,000도(화씨 9,000도) 정도로 평가되었다. 그들 주변의 모든 것들을 태워버린 후, 열은 그들 주변에 형성된 재들을 녹이기를 계속하여 유리화된 재를 형성했다. 그래서 유황 덩어리들은 녹아서 재고체화 된 재들의 유리질 케이스에 의해서 둘러싸여지게 되었다.

금화(gold coins) 였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분석결과, 동전은 금소금(gold salts)으로 변화되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열은 동전에 있던 금들을 태워서 금재(gold ash)로 바꾸어 버렸다. 다음 사진들은 탐험자들이 한 집 내부에서 재로 변해버린 유황 덩어리들 몇 개를 발견하는 것과 한 샘플을 태우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유황 불 샘플 중의 하나가 검증 팀에 의해서 수집되었다. 독립된 실험실에서 분석된 결과 유황(sulfur)의 함유량이 95% 이상으로 높았다.

 

이 도시들의 재발견에 대한 더 많은 사진들과 정보들을 얻기 위한다면, 다음의 비디오를 추천한다. 다시 한번 성경의 기록이 진실임이 입증되었다.

 

Surprising Discoveries, Part II and the Ark of the Covenant CD-ROM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bibleplus.org/discoveries/sodomfound.htm 

출처 - BiblePlus 


미디어위원회
2004-01-27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On the Origin of Language)

Les Bruce 


       서유럽의 언어연구는 언어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로서 시작되었다.1  희랍 사람들이 시작한 언어연구는(B.C. 3, 4세기) 처음에는 언어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습주의자(conventionalist)들은 언어형태 (주로 소리와 단어)와 그 의미와의 관계를 본래가 독단적인 것으로서 일종의 사회적 인습이라고 가정했다. 자연주의자(naturalist)들은 단어의 형태 (예컨대, 그 소리)는 실질 세계의 대상물과 자연스럽게 연관되어있다고 가정하였다. 어떤 소리의 조합(단어의 전체 또는 단어의 부분)은 대상물에의 흉내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 보고, 그 소리 또는 그 개념은 대상물에 대한 직접적 모방이라고 했다. (예컨대, kookaburra).

 

위의 예에서처럼 의미에 그다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대부분의 언어들도 어떻게 의성어(擬聲語)에서 파생되었는가를 설명하려는 노력에서 어원학(語源學)의 원리가 시작되었다.  언어파생역사의 연구(어원학)를 통하여 자연주의자들은 모든 언어의 기원은 의미하는 대상물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말에서 연유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했다.


최초의 철학적인 언어 토론은 결국 언어 패턴의 규칙성에 관한 토론장으로 발전하였다. 언어설명의 구조로서 두 가지 기본적인 이론이 부각되었다. 그 중 하나는 불규칙성을 선택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언어의 근원적 규칙성을 주장하였다. 언어는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과정에서 부지부식 간에 훼손된다는데 근거하여 언어의 불규칙성을 설명하고 있는 후자의 탁월한 이론은 크게 호응을 받았다. 이 이론은 언어의 옛날 형태가 현재의 그것보다 더 순수하다고 주장했다. 


19세기에 들어와서부터 종전의 언어연구를 크게 특징짓던 언어기원에 대한 이론화 노력은 필연적으로 개재하던 높은 불확실성 때문에 심각한 반동에 부닥쳤다. 새로운 관심사는 여전히 역사적이었으나 목표는 그다지 이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마침 민족국가들은 과거를 재발견하려 노력하던 낭만적인 시대였다. 전 인류의 모어(母語)보다는 오히려 민족의 모어와 동포의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낭만적 민족주의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어쩌면 현실적인 목표에 대한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기존의 비과학적인 불확실성에 대한 반작용이었을는지 모른다. 실험적인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보다 과학적인 접근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와 같이 해서 역사적 과거를 재구성하기 위하여 체계적 비교언어학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19세기 한 세기 동안 주로 독일 학자들의 선도로 엄청난 양의 학술 연구가 이루어졌다. 산스크리트(梵語)가 라틴어와 희랍어는 물론 기타의 유럽 언어들과 근원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한 Sir William Jone의 학설 위에 근거하여, 초기의 언어역사학자들은 비교언어학의 원리를 개발하게 되었다. 발굴된 언어역사학의 데이터 덕분에 인도-유럽 조어(祖語, proto-Indo-European)2의 재구성이 진척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조어가 많은 유럽 언어들로 파생된 변화의 과정까지도 기술될 수 있었다.


독일에 근거한 ‘신문법학’ 파는 19세기 3/4분기에 음성변화의 연구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문법학자들은 역사자료를 자세히 분석하여 음성변화의 놀라운 규칙성을 증명해 보였다. 선도적 신문법학자 Hermann Paul (1846―1921)은 음성변화의 중심 메커니즘의 편리한 법칙들을 식별하였다. 그리고 그 법칙의 테두리 안에서 ‘잘못 발음하는’ 양식으로 변화하는 음성변화를 그는 세 형태로 분류하였다.3 미국의 초기 구조주의자인 Leonard Bloomfield (1887-1949)는 신문법론자의 이론을 더 자세히 펼쳐냈던 사람이다. 그는 음성변화의 메커니즘을 두 가지 형태로 분류하여 목록을 작성하였다. 즉, 고정화 메커니즘에 대비시킨 퇴화 또는 단순화의 메커니즘이 그것이다. 그는 최소한 세 가지 고정화 메커니즘에 의한 변화를 실증하고 그것들을 재-구성의 과정과 보상적(補償的) 과정으로 성격 지었다. 그리고 Bloomfield는 단순화 메커니즘의 범주에 속하는 음성변화에 대해서는 최소한 11가지 과정을 실증하였다.


신문법학자들이 제시한 언어 변화의 다양한 과정에 관한 상세한 입증자료들, 특히 음성변화에 대한 입증자료들은 언어 변화의 두 가지 기본적인 원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원리는, 1) 간소화의 과정과 2) 재구성의 과정이다. 20세기의 저명한 역사언어학자들 중의 한 사람인 Martinet이 언어의 변화에 관한 이 두 원리를 세웠다는데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적절한 대화를 유지하는 재구성의 과정이 인간이 갖는 노력의 최소화 경향을 지향하는 단순화는 재구성 과정과 상충한다고 언급했다.


'언어학적 진화는 대화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욕구와 정신과 육체의 활동을 최소화하려는 인간의 본래적인 경향과의 사이에 개재하는 갈등에 의해서 지배된 결과로 진행된다고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도 물론 다른데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동은 노력의 최소화 법칙에 좌우되고 있다.” (Martinet 1964: 167).


최소 노력의 법칙은 현존상태를 무자비하게 간소화하고 복잡한 용장(冗長)을 줄여나가고, 이어서 궁극적으로 언어의 다양한 체계를 재구성하여 통화 가능 수준을 유지하려 한다. 재구성의 원리를 통화의 보존 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Herman Paul이 언어의 기원에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말은 자칫 오도하는 말이 될 성 싶다. 언어기원의 문제는 오늘날의 언어학자들에게 여전히 흥미 있는 대상인 것처럼 Paul에게도 관심 있는 문제였다. 현대 언어학 (과거 175년 동안)과 예전의 2천년期의 언어학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순수한 이론적인 영역에서부터 실험과학의 영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여전히 언어의 기원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언어의 기원에 대한 그들의 추론은 반드시 관찰 가능한 언어 사실들에만 근거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언어의 두 가지 근본적인 원리는 반드시 언급해야만 한다. 즉, 최소의 노력으로 거두려는 간소화 효과와 통화의 보정(補正)유지, 즉 재구성이다. 이 두 원리에 연관된 두 가지 관찰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가) 원시언어 : 오늘날 어떤 인간 집단도, 심지어 석기 문화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까지도, 원시언어로 간주될 수 있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더욱이 인류역사를 통해서 알려진 언어들 중의 어떤 언어도 여하한 의미로 보나 원시언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Elgin은 '우리들이 기록을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고대언어 (예컨대, Sanskrit)들은 많은 현대 언어들보다 더 뒤엉키고 복잡한 문법구조를 가지고 있다.” 라고 지적했다 (Elgin 1973: 44). 인류역사를 통하여 꾸준히 이어온 간소화 과정은 오늘날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 사실은 당연히 놀라운 것이 못 된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 물론 확정적이 되지는 못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최소한 물질문화의 단순성이 반드시 단순한 언어문화를 암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나) 언어의 창조성 : 한 언어에 있어서 어휘가 가장 창조성이 높은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심지어 그런 어휘의 영역에 있어서까지도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자료를 적용하기 보다는 차라리 기존의 어휘집에 담긴 자료를 재적용 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Langacker 1967: 186). 어느 특정 언어 안에서부터 기존의 어휘를 재적용하고 연장하는 것 말고도 단어들이나 또는 단어의 부분들을 다른 언어에서부터 차용(借用)하는 관행이 보통이다. 일반적으로 언어는 특특한 형태를 새로 발명한다는 뜻으로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영어의 대명사 체계는 현재 활용되고 있는 기본적인 두 원리를 설명한다. 고대 영어의 대명사 체계는 1인칭, 2인칭 그리고 3인칭 각 인칭에 다 골고루 세 가지 수(數)를 구별했다 (단수, 兩數, 복수). 그런데 현행 표준영어에서는 단수와 복수로만 구별한다. 예전에 사용하던 ‘낭비’ 체계는 양수와 복수와의 사이에 있는 차이점을 중립화됨으로써 간소화 되었다. 게다가, 2인칭 ‘you'가 가지고 있던 단수-복수의 변별성이 상실된 결과로 때때로 어이없는 모호성(비효율적인 통화)이 돌출하기도 한다.

(지금의 내 아내의 소녀 시절 내가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였을 때, 나는 한 차 가득히 탄 사람들과 데이트를 한 경험을 했다. 그것은 내가 ’you'와 밖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그녀는 그 ‘you'가 단수 ‘you'인지 복수 ’you'인지를 구별하지 않았던 결과였다. 그 때 그곳에 함께 온 나머지 사람들을 물리치는데 나는 얼마나 낯 뜨거운 경험을 했는지 모른다. 내 생각으로는 영어의 2인칭 대명사의 수의 개념은 용납될 수 없을 만큼 모호하다!)


현재 영어에서 이와 같은 현실을 교정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재구성 작업은 문법상 다른 부분들을 대명사에 수혈하여 보려는 실험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북동 지방에서 새로운 2인칭 복수대명사를 만들기 위하여 일반적인 복수명사 어미 's'를 ”you'에 첨가 하였다. 그 결과 복수 'yous'를 창출하고 그 발음을 'ewes”로 하기로 하였다. 한편 크게 활용되고 있는 '남부 사투리”도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을 재구성하였다. 그것은 구(句) 수준의 형용사인 'all'을 첨가하여 복합어 형식인 'you-all'을 사용하여 ”y'all'을 만들어냈다. 어쨌거나 이 두 경우 한결같이 혁신적이기 보다는 응용적인 재구성 과정인 것만은 분명하다.


분명히 Martinet도 포함된 많은 언어학자들은 이 두 반대 입장에 있는 원리가 그 세력이 동등하다고 믿고 있다. Langacker는, '원시언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쇠퇴언어(corrupt language)’도 없다. 언어는 변화한다. 그러나 언어는 쇠퇴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Langacker 1973:17). 이것이 입증하기 어려운 점이다. 이 주장을 지지하는 현상은 스페인어의 음성체계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서 잘 입증된 것 같다. 음성은 변화된 한편, 그 언어 체계에 있는 적지 않은 특성들이 상당히 원상대로 보존되어 있다. 정보처리의 관점에서 볼 때에 총체적 변화의 과정이 커뮤니케이션의 잠재력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았다. Bloomfield가 제시한 음성변화로 인한 간소화의 수많은 실례들은 통상적인 범주와 어휘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영어명사에 있어서 격 어미(格 語尾)의 상실의 경우가 그 한 예다. 그 결과로 생긴 언어 체계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잠재력의 상대적 복잡성은 평가하기에 매우 어렵다. 주격, 목적격 등과 같은 명사의 격을 식별하는 격 어미의 기능이 또 다른 문법형태 (통상 주격절이나 목적격절로 식별되는 절에 있는 어순)에 의해 대체되었지만,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의 측면에서 이 두 체계를 어떻게 비교하는 게 적절한 방법인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어쨌거나 이때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 이런 것들이 될 것이다. 즉,

'절 안에서의 예전 어순은 어떻게 됐는가?” '이제 어순은 화법에서 옛 정보와 새 정보를 암호화하고 표시하는 격-역할을 이중으로 기능하는가?” '초점 맞추기가 포함되었는가?”


언어는 황당하리만치 복잡하다. 언어가 갖고 있는 짜 넣어진 의미와 재결합된 (차례로 포개 진) 다양한 어계(語階)들을 보고 수많은 지도급 언어학자들은 언어가 이론적으로는 부정형 (不定形)이지만 일상적인 용도에 있어서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암시를 받는다. 언어는 너무 복잡해서 언어 현상 안에서 그 어떤 중요한 고르기 기능을 탐지할 수 없는 것은 마치 태양이 스스로를 소각하고 있는 것을 관찰만으로 식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 어떤 언어학자도 언어의 재구성 과정이 간소화 과정을 무시하고 언어의 양적 실증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만약에 우리가 언어의 발생을 인정하고 또한 동물 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진화됐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리려한다면, 우리는 진화를 실증 가능한 보편적 원리라는 가정을 인정하여야만 한다. 이와 같은 형태의 선험적 합리화는 전(前)-19세기 ‘추론문법’이 함입하였던 기본적 오류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현대적 의미로서의 전(前)-과학적인 이론이었다.


더욱이 관찰된 데이터로 보아 유사이전에 언어의 발전이 있었던 시기라고 할만한 시기가 존재했었다는 흔적이 전혀 없다. 그런 유의 유사이전에 언어발전이 있었다면, 그 이후 한 동한 이어졌을 균형 고르기 기간이나 간소화 과정의 원인을 암시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없다. 금세기 최고의 탁월한 언어학자의 한 사람인 Noam Chomsky는 인류의 언어와 동물의 커뮤니케이션은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전적으로 별개의 실체라고 언급한다. 이 두 실체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간소화 과정과 재구성 과정은 상호간의 균형을 잡는 기간이었다. 또는 간소화 과정을 통하여 언어는 점진적으로 제한된 일반화 체계로 축소되었다. 인간의 언어는 현재 드러내고 있는 근본적 잠재력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 또한 현재 언어의 정밀한 커뮤니케이션 잠재력은 과거 한 때에도 보다 더 광범위했었다. 


이 시대의 탁월한 사회언어학자 Labov는 진화론적 구조에서의 언어의 위치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 두 과정에 관해서 이렇게 기술한바 있다.


즉, 언어 진화론의 ‘파괴와 재건’ 이론은 그 전 과정이 역기능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동등하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은 쉽게 이해한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이론체계는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추하여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작업은 최악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최소 노력의 원리가 파괴의 배후에 숨어있는 악의 천재라고 하면, 우리는 언어의 변화를 일종의 원죄에 대한 거대한 증언으로 볼 수 있다. (Labov 1973:245).


Labov는 자기 논문의 나머지 부분에서 언어변화의 역기능적인 역할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전혀 강구하지 못했다. 그는 언어의 변화가 결과적으로 다양화 되었으면 되었지, 총체적인 복잡성이나 적응력의 분산으로 결과 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언어의 변화에서 인간 사회의 발전으로 결과 되는 순기능적인 진화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그는 언어의 다양성은 문화의 상대적 고립을 제공하면서 문화의 다중성을 유지하여 인간 사회의 진화를 촉진한다고 암시했다. 그러나 그는 순수하게 언어의 변화 안에서의 언어의 변화를 위한 순기능적 역할을 제시할 수 없었다. 언어의 발전은 역기능적(비-진화론적) 과정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 같다.


언어현상에 대한 관찰이 아무리 광범위하든 상관없이, 언어 그 자체를 볼 때, 언어가 긍정적인 발전과정의 산물이라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언어는 일관되게 변화의 상태에 있다. 언어는 기껏 해봐야 평형상태 유지가 고작인 것 같다.



1 인도 전통은 희랍인의 작품을 앞지른다. Panini (B.C. 4세기)는 범어 (Sanskrit)의 문법적인 기술로서 선배들의 작품을 앞질렀다. 그의 범어문법은 사상초유의 가장 상세하고 종합적인 문법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인은 범어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는 오히려 범어에 대한 정확한 설명에 더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2 19세기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고전 언어들 (라틴어와 희랍어)과 가장 오래된 언어로 증명된 인도-유럽어인 Sanskrit어에 근거하고 있었다. 1870년대에 터키의 Ankara 동쪽 약 150km 지점에서 Hittite어 비명이 발굴된 이후부터는 히타이트어가 가장 오래된 인도-유럽어로 인정되었다. 히타이트어는 B.C.1200년경에 소멸되었다. 

3 잘못된 발음이나 변화된 발음은 편리상 나태나 무시 또는 개개 음성발음의 자연스러운 편의와 혼동되지 않기 위해서 발생하였다. 그 대신에 잘못된 발음은 음성의 동화작용과 전체 음성체계의 균형(패턴 압력)의 영향을 내포하는 효과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초기의 언어학자들이 암시하였던 ‘쇠퇴(corrupting)’ 언어의 뜻으로 말해서 열등해진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Bibliography

Bloomfield, Leonard 1933. Language. New York: Henry Holt and Company, Inc. June, 1958 edition.

Elgin, Suzette H. 1973. What is Linguistics? 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Hall Inc.

Greenberg, Joseph (ed.) 1966. Universals of Language (2nd ed.). Massachusetts: The M.I.T. Press.

Ivic, Milka 1965. Trends in Linguistics (translated by Muriel Hapell). The Hague: Mouton & Co.

Langacker, Ronald W. 1967. Language and itsStructure. New York: Harcourt, Brace, and World, Inc.

Labov, William 1973. 'The Social Setting of Linguistic Change,' Current Trends in Linguistics. T.A. Sebeok (ed.), V. 11, Paris: Mouton.

Lyons, John 1968. Introduction to TheoreticalLinguistics.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Martinet, Andre 1960. Elements of General Linguistics (translated by Elisabeth Palmer, 1964. London: Faber and Faber). Originally published by Max Leclerc et Cie, Proprietors of Librairie Armand Colin.

Paul, Hermann 1970. Principles of the History ofLanguage (translated from 2nd edition by H.A. Strong). College Park: McGroth Publishing Company.


* The author is a member of the 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 and the Wycliffe Bible Translators; he is presently a candidate for the degree of Ph.D. in the discipline of linguistics. He has also served as a visiting Professor of Linguistics at Christian Heritage College. He wishes to thank his colleagues who have offered critical comments on earlier drafts of this article, especially David Thomas, also of the 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044.htm 

출처 - ICR, Impact No. 44, February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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