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12-07-13

야고보의 유골함은 진품이었다. 

('James...Brother of Jesus' Ossuary Is Rock Solid)

by Brian Thomas, Ph.D.


      2002년 성서고고학회(Biblical Archaeological Society)와 디스커버리 채널은 아람어로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형제(James, son of Joseph, brother of Jesus)’라는 글자가 새겨진 2000년 된 고대의 유골함(ossuary)이 진품이라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비문(inscription)의 진실성에 대한 논란과 소송이 이어졌다. 이제 2012 년에 그 논란이 끝났다. 그리고 판결이 내려졌다.


2002년 11월/12월 성서고고학 리뷰(Biblical Archaeology Review) 지는 번역글을 게재했었다. 고대 비문에 대한 전문가인 고문서 학자 앙드레 르메르(Andre Lemaire)에 의해서 그 유물은 AD 6~70년 사이로 연대가 평가됐다. 그 유골함은 이전의 무덤 속 사람의 뼈를 후에 보관하도록 디자인 되었다. 그 유골함이 발견되었을 때, 그것은 평범한 파종용기(planter box)로 취급되었다.


워싱턴 발표 후 즉각적으로 유골함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신약 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 세속적 아버지 요셉, 동생 야고보 사이에 정확한 성경적 관계를 입증했기 때문이다.[2] 한때 이 유골함이 예수님 동생의 뼈를 담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라.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3]


그러나 워싱턴 보도 시까지 유골함의 발견을 알지 못했던 이스라엘 문화재청(Israel Antiquities Authority)은 그 소유자를 비문 위조범으로 고소했다. 수년 동안 전문가들은 그 비문은 오늘날에 새겨진 위조라고 말해왔다.[4] 5년 간을 끌어온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2012년 3월에 끝났다. 예루살렘의 아하론 파카쉬(Aharon Farkash) 판사는 검찰측은 그 비문이 위조라는 합리적인 근거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고소된 모든 혐의에 대해서 무죄라고 판결했다.[5]


이제 2012년 7월/8월 성서고고학 리뷰 지의 한 기사 제목은, ”야고보의 유골함에 새겨진 비문의 진위를 의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이었다.[1] 또한 그 기사는 야고보 유골함이 나사렛 예수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상세한 통계학적 분석 결과를 요약하고 있었다. 그 당시 예수, 요셉, 야고보 라는 이름을 같이 가졌을 사람들의 가능한 숫자를 고려하고, 그런 다음 당시 추정되는 전체 성인 남자 인구수에서, 세 사람의 이름이 아버지와 동생 관계에 있을 경우의 수를 평가했는데, 그 수는 1.71(하나 또는 둘)이었다. [1]


물론, 성경에는 아버지가 요셉이며 예수님을 형제로 둔 사람 야고보가 있었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형제인 예수님은 유골함에 이름을 기록할 만큼 고결하고 존경할만한 분이었다. 확실성 높은 여러 현대적 분석들을 통해, 이 유골함과 비문은 진품이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고고학적 발견처럼, 그것은 성경이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기록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6]



References

1. Shanks, H. 'Brother of Jesus' Inscription Is Authentic! Biblical Archaeology Review. Posted on bib-arch.org July/August, 2012.
2. Rose, M. 2003. Ossuary Tales. Archaeology. 56 (1).
3. More accurately, James was Jesus' step-brother.
4. Kalman, M. The Burial Box of Jesus' Brother: Fraud? Time. Posted online September 5, 2009, accessed June 25, 2012.
5. Breaking News: Golan and Deutsch Acquitted of All Forgery Charges. Bible History Daily. Posted on biblicalarchaeology.org March 14, 2012, accessed June 25, 2012.
6. For example, the account written in the earliest Flood tablet 13539, written in cuneiform about 150 years after the Flood occurred and found in the ancient ruined Babylonian city of Nippur during the 19th century, does not differ in a single detail from the Flood narrative recorded in Genesis. See: Cooper, B. 2011. The Authenticity of the Book of Genesis. Portsmouth, UK: Creation Science Movement.


* 이전 기사들 : 역사적 예수 증명하는 최초 고고학적 발견 : 야고보 유골함 (2002. 10. 30.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314§ion=section9

‘2천년 전 유골함’ 주인은 예수 동생? (2002. 12. 5. 주간동아)
아람어로 또렷이 ‘형제 야곱’ 새겨져 있어… 사실 땐 예수 실존 입증할 결정적 증거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2/11/27/200211270500032/200211270500032_1.html

야고보 유골함, 위조품 '판명' (2003. 6. 19.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141764

Oh, Brother: Jesus Box Is A Fake (2002. 10. 21. CBS News)

https://www.cbsnews.com/news/oh-brother-jesus-box-is-a-fake/

The James Ossuary. Is the James Ossuary authentic or fake? (2021. 12. 29. BibleDiscovery)

https://biblediscoverytv.com/history/2021/the-james-ossuary/


*참조 : The Authenticity of the James Ossuary (2014. Touro College University System)

https://touroscholar.touro.edu/cgi/viewcontent.cgi?article=1014&context=lcw_pubs

 James, Brother of Jesus - The James Ossuary Discovery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fJzhkZfpfvo

Is the “Brother of Jesus” Inscription on the James Ossuary a Forgery? (2017. 1. 31. Bible History Daily)

https://www.biblicalarchaeology.org/daily/biblical-artifacts/artifacts-and-the-bible/is-the-brother-of-jesus-inscription-on-the-james-ossuary-a-forger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6911/ 

출처 - ICR News, 2012. 7. 9.

미디어위원회
2012-06-27

베들레헴이 고대에 실제로 존재했음이 확인되었다. 

(Artifact Confirms Ancient Bethlehem)

by Brian Thomas, Ph.D.


     베들레헴(Bethlehem)이라는 도시는 매우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위대한 고대의 역사가 ‘불라’(bulla, 공문서용 인장)라 불리는 한 작은 점토 도장(clay seal)의 발견에 의해서 확인되었다(사진은 여기를 클릭). 이스라엘 문화재청에 따르면, 제1차 성전시대((BC 1024~586년) 동안 베들레헴 사람들은 예루살렘 행 화물의 세금 지불에 대한 확인 도장으로 불라를 사용했다.[1] 따라서 그것은 고고학적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베들레헴의 실존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2]


베들레헴은 창세기에 처음 언급되고 있고(창 35:19), 이스라엘 사사 중 한 사람(입산, 삿 12:8~10)의 고향이었다. 선지자 미가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고, 이 예언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 5:2).


영원히 존재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 외에 모든 인간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을 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약속된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정말로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헤롯왕 앞에서 미가서를 인용할 때(마 2:4~6) 미가서 5:2절의 마지막 구절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은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예언의 성취에 대한 불신(기적, 초자연, 성경의 하나님을 불신하는 태도)을 조장하기 위해서 어떤 학자들은 성경의 예언은 사건이 성취되고 나서 쓰여진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실제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며, 저자가 쓴 내용이 고대의 일이었다면, 어떻게 동시대에서 확신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문제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이 들어있는 이 불라를 통해, 이 작은 고대 도시의 역사성은 이제 고고학적으로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예루살렘의 고대 다윗 성의 발굴 책임자였던 엘리 수크론(Eli Shukron)은 이스라엘 외무부 보도 자료에서 말했다. ”이것은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이 성경 밖에서 나타난 최초의 사례이다. 이것은 베들레헴이 실제로 유다 왕국의 한 도시였고, 그 이전에도 존재했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1]


베들레헴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탄생지였다.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미가의 예언에 대한 정확한 성취였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음을 거부하는 자들과, 미가가 예언할 당시에 베들레헴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던 자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베들레헴, 미가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사람들보다 더 큰 믿음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References

1. Earliest evidence of Bethlehem in First Temple period. Israel Ministry of Foreign Affairs press release, May 23, 2012.
2. The seal was dated to sometime during the reign of Hezekiah, Manasseh, or Josiah, who lived within 700-850 B.C. (See ref. 1).
3. Micah 5:2.
4. "And when he [Herod] had gathered all the chief priests and scribes of the people together, he demanded of them where Christ should be born. And they said unto him, In Bethlehem of Judaea: for thus it is written by the prophet, And thou Bethlehem, in the land of Juda, art not the least among the princes of Juda: for out of thee shall come a Governor, that shall rule my people Israel" (Matthew 2:4-6).


*참조 : History of Bethlehem Documented by First Temple Period Bulla from the City of David. (2019. 6. 16. Bible History Daily)

Israeli Archaeologists Find Earliest Evidence of Bethlehem's Existence in Jerusalem Dig. (2012. 5. 23. Haaretz)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6891/ 

출처 - ICR News, 2012. 6. 18.

미디어위원회
2012-04-05

언어의 기원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언어학자들. 

(Linguists Argue over Language Origins)

by Brian Thomas, Ph.D.


      사람이 지구상에서 최초로 말(language)을 시작한 것은 어디일까? 2011년 Science 지에 게재된 한 연구에 의하면, 증거는 사람의 기원에 관한 유행하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이야기와 일치하여 언어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오클랜드 대학의 인류학자 쿠엔틴 앳킨슨(Quentin Atkinson)은 자음과 모음과 같은 기본적인 소리 단위인 음소(phonemes)의 분포를 조사했다.[1] 그는 아프리카에서 멀리 떨어진 언어는 적은 음소를 사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의 응구니족(Nguni)의 언어는 뻥 소리와 딸깍거리는 소리를 포함하여 다른 언어보다 꽤 다양한 소리를 사용한다.

그러나 언어는 음소들이 모여진 것 이상이다. 왜냐하면, 특별한 단어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소리들이 결합될 뿐만 아니라, 단어 자체가 특별한 문법에 의해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앳킨슨은 그의 연구를 위한 데이터들을 손으로 골랐다(hand-picked)고 말한다. 또한 Science 지에 게재된 한 논평에서, 마이클 시소우(Michael Cysouw)와 두 명의 사람들은 앳킨슨의 발견이 가지는 문제점을 말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어떤 기원이 인접한 지리적 지역을 거쳐 필연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거쳤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2]   

뮌헨의 루트비히-막시밀리안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ät)의 양적 비교 언어학 전문가인 시소우는 앳킨슨의 방법이 예를 들어 ”종속절의 구조”와 같은, 음소보다 다른 언어 측면에 적용되었다면, 그 결과는 언어의 기원이 동부 아프리카, 또는 코카서스(Caucasus), 또는 완전히 다른 어떤 곳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대학 보도 자료에서 말했다.[3]

앳킨슨은 그러한 비판은 자신의 원래의 결론을 훼손시키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의 논지를 방어했다.[4]

LMU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언어학자들은 오랫동안 언어의 분포 패턴을 분석하여 언어의 기원을 밝혀보려고 시도해왔다.[3] 그러나 연구자들이 이러한 방법론을 두고 오락가락 하더라도, 단지 분석 패턴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들은 아마도 큰 그림의 해답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 주제에 관한 최고의 정보인 성경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언어가 원숭이 같은 유인원으로부터 자연적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에 기초하여, 경험적 증거들을 제한적으로 해석함으로써[5], 연구자들은 4,000여년 전에 바벨탑 사건으로 인류가 분산되면서, 사람의 각종 언어들이 갑자기 초자연적으로 생겨났다는 사실을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6] 



References

1. Atkinson, Q. D. 2011. Phonemic Diversity Supports a Serial Founder Effect Model of Language Expansion from Africa. Science. 332 (6027): 346-349.
2. Cysouw, M., D. Dediu and S. Moran 2012. Comment on 'Phonemic Diversity Supports a Serial Founder Effect Model of Language Expansion from Africa.' Science. 335 (6069): 657.
3. Out of Africa? Data fail to support language origin in Africa. Ludwig-Maximilians Universität news release, February 15, 2012. ScienceDaily, 2012. 2. 15.
4. Atkinson, Q. D. 2012. Response to Comments on 'Phonemic Diversity Supports a Serial Founder Effect Model of Language Expansion from Africa.' Science. 335 (6069): 657.
5. Thomas, B. 2010. Human Language: An All or Nothing Proposition. Acts & Facts. 39 (6): 18.
6. Genesis 11:1-9. See also Morris, J. 2003. What Happened at the Tower of Babel? Acts & Facts. 32 (1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6746/ 

출처 - ICR News, 2012. 3. 30.

미디어위원회
2011-09-15

사람의 언어는 젊은 지구 모델과 적합하다. 

(Human Languages Fit a Young Earth Model)

by Brian Thomas, Ph.D.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대략 4천 년 전쯤 바벨에서 사람의 언어(languages)를 다르게 하셨다[1].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일치되게, 이것은 같은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의 분산과 이동을 가져왔다.[2] 대조적으로 진화론적 언어학자들은 모든 언어들은 지난 1만2천년 이상에 걸쳐서 발달되었다고 믿고 있다.


만약 창조 모델에서 말하는 최근의 분산과 이동이 사실이라면, 바벨에서 기원한 동일한 언어 계통으로부터 유래한 지역적 언어들이 발견될 것이 기대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차이는 4,000여 년 동안에 일어난 차이에 (세대를 지나가면서 발생하는 단어나 발음 변화와 같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차이) 불과할 것이다. 한 새로운 연구는 중앙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의 두 언어 계통(어족)이 같은 조상 언어에서 왔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과 같이 공통의 그리고 최근의 기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UCLA의 제리드(Jared Diamond)는 네이처 지에 ”언어학: 언어들 사이의 깊은 관계”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여기에서 그는 에드워드 바쟈(Edward Vajda)의 작업을 요약했다.[3] 알래스카 대학의 2010년 인류학 논문집에 게재됐던 연구에서, 에드워드는 케트(Ket) 언어(시베리아의 200여 종족에서 사용되는)로 대표되는 예니세이(Yeniseian) 언어의 문법 구조와 북아메리카의 나데네(Na-Dene) 언어(나바조 인디언에 의해서 대표되는)의 문법 구조 사이에 매우 중요한 통계적 연결을 발견했다.

그것은 두 어족 내에 있는 모든 언어들이 한때 한 언어였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적 언어학자들에 의하면(이것은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 다른 언어들은 5,000~10,000년 후에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갈라졌음에도, 왜 예니세이와 나데네 언어는 1만2천 년 전에 분기됐음에도 아직도 그러한 강한 연관성을 보이는가?”라고 제리드는 썼다.[3]

그 의문은 실제로 몇 가지 의문들로 나뉘어져야 한다 : 이들 언어가 1만2천 년 전에 갈라졌다면 왜 이들 언어들은 그렇게도 서로 유사하게 나타나는가? 모든 언어들은 한 언어로부터 시작되어 오랜 진화의 기간을 거치면서 갈라졌는가? 아니면 첫 시작부터 구별되는 언어로 창조되었는가?


첫째, ”다른 언어”들은 서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결코 갈라지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 언어들은 바벨에서 출발할 때 서로 알아들을 수 없도록 창조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여러 가계 그룹들 사이에 의사전달을 불가능하게 했고, 분산을 유도했다. 

더 중요한 것으로, 이들 언어들이 아직도 그러한 강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이유는 그 언어들을 사용하는 현대인들의 조상은 단지 4,000여 년 전쯤에 동일한 가계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12,000년의 동안에 예니세이 어와 나데네 어의 언어적 진화 동안에 발생했을 그 모든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변화는 발생해왔다. 그러나 12,000년 동안에 일어났을 만한 정도의 변화가 아니다.


홍수 후 빙하기 동안에 해수면은 100m 정도는 낮아, 베링해협은 육지다리로 연결되어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후에 해수면은 상승되었고 이들은 분리되었다.[4] 그러나 두 어족 내의 언어들은 진화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오랜 기간에 의해 분리되지 않았다. 두 언어는 아직도 너무도 유사하다. 언어들이 보여주는 증거는 최근의 공통된 기원을 가리키고 있으며, 이 시나리오는 성경적인 젊은 지구 모델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Reference

1. Genesis 11:6-7.
2. Genesis 1:28.
3. Diamond, J. 2011. Linguistics: Deep relationships between languages. Nature. 476 (7360): 291-292.
4. Hoesch, B. 2007. Megafloods in the English Channel. Acts & Facts. 36 (10): 1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6337/ 

출처 - ICR News, 2011. 8. 30.

미디어위원회
2011-08-01

솔로몬 왕의 구리광산에 대한 증거 

(More Evidence of King Solomon's Copper Mine)

by Brian Thomas, Ph.D.


       고대 구리광산과 제련소 유적들이 오늘날의 요르단 사해 근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솔로몬 왕이 소유했던 전설적인 광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현대의 여러 학자들은 그 광산을 솔로몬 시대 이후의 것으로 생각하여 이러한 가능성을 부인해왔었다. 그러나 최근의 방사성탄소 연대는 그 장소에 대한 ”오랫동안 용인되어온 연대”를 뒤집어 엎으면서, 이스라엘에서 가장 현명했던 통치자의 역사를 강화시키고 있었다[1].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을 비판하는 비판가들은 솔로몬과 그의 아버지 다윗 왕의 존재 자체를 의심해 왔다. ”최소주의자”(minimalists, 성경과 고고학이 상충될 때 성경보다 고고학을 더 우선하는)로 알려져 있는 학자들은 솔로몬 시대에는 구리광산과 같은 대대적인 작업을 감독할 수 있는 민족국가가 충분히 발달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고고학적 유물들을 설명하는 데에 다른 이야기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경 기록에 의존하는 것 대신에 고고학적 유물들에 기초한 역사를 세우려고 시도해왔다. 그러나 요르단의 ‘키르바트 엔 나하스'(Khirbat en-Nahas(KEN), 아랍어로 ‘구리 폐허’를 뜻함)에서 진행되고 있는 발굴조사는 비성경적 역사를 믿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계속해서 밝혀내고 있는 중이다.


Popular Archeology 지에 게재된 최근의 한 논문은 ”KEN에서의 발견의 중요성은 히브리어 성경에 기록된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존재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의 신뢰성과 연대기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언급했다[1].

성경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건축된 솔로몬 왕의 성전과 궁전은 비길데 없이 화려했다고 기술되어있다. 성경 연대기에 의하면, 솔로몬의 통치는 대략 BC 1,000년 경이었다[2, 3]. 성경 열왕기상에는 솔로몬이 만든 구리를 기초로 만들어진 놋(bronze, brass)으로 된 거대한 구조물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1개의 받침대 길이가 네 규빗, 폭이 네 규빗, 높이가 세 규빗에 달하는 10개의 놋 받침대와 일련의 기둥들을 포함하고 있었다[4]. 놋(황동, 청동)은 대부분 구리로 만들어진 합금이다.


샌디에고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고고학자인 토마스 레비(Thomas Levy)가 발굴을 주도했는데, 그들은 2006년 KEN에서의 발굴에서, ”6m 이상의 제련소 잔해와 슬래그(slag, 쇳물 표면의 산화 작용으로 생겨난 찌꺼기)를 발굴했다”[5]. 후에 그러한 슬래그들이 들어있는 지층에서 발견된 것들에 대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이 이루어졌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방법(carbon dating)은 방사성탄소가 안정된 질소로의 붕괴될 때 그 붕괴속도가 유물 내에서 항상 일정했다고 가정할 뿐만 아니라, 지구 대기 내에서 방사성탄소와 안정된 탄소의 비율이(유물이 대기와의 상호작용을 멈춘 이후로) 항상 일정했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들은 일반적으로 최근 유물에 대한 연대를 측정하는 데에는 유효하기 때문에,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방법은 노아홍수 이후에 퇴적된 나무나 뼈와 같은 탄소함유 물체에 대한 연대측정에 유용할 수 있다 (창조/홍수 모델은 대기 중 방사성탄소 농도가 노아홍수 이전이 오늘날과 매우 달랐을 것으로 예측한다. 따라서 노아 홍수 시에 파묻혀진 물질들은 방사성탄소 '연대'가 매우 부풀려져 있다고 본다).


KEN의 연대측정 결과는 아래 지층으로 내려가면서 점차적으로 오래된 연대를 나타내고 있으며, 시료들의 연대는 솔로몬의 통치 시기에 대한 성경적 연대와 일치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Popular Archaeology 지에 의하면,

”간단히 말해서, 설득력 있는 증거는 이제 대대적인 구리 생산 시설이 BC 9~10세기 동안에 KEN에서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 시기는 고대 에돔과 이스라엘의 완전히 발달된 왕국의 출현보다 최소 2세기를 앞선 것으로 많은 학자들 특히 최소주의자들이 추정하고 있던 시기이다”[1].

레비와 그의 동료들은 그 장소로 되돌아가서, 구리광산을 관리했던 국가의 정체성과 국가 지도자의 이름까지도 밝힐 수 있는 더욱 구체적인 증거들을 찾기 위해서 연구를 계속 수행할 계획이다.



References

1. Archaeologists Return to 'King Solomon's Mines' of Biblical Edom. Popular Archaeology. Posted on popular-archaelogy.com May 31, 2011, accessed June 13, 2011.
2. Dates based on Ussher's Chronology, a charted summary of which can be found on creation.com.
3. Pierce, L. 2006. The World: Born in 4004 BC? Answers. 1 (1): 25-27.
4. 1 Kings 7:27.
5. Kiderra, I. King Solomon's (Copper) Mines?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news release, October 27, 2008, reporting on research published in Levy, T. E. et al. 2008. High-precision radiocarbon dating and historical biblical archaeology in southern Jorda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5 (43): 16460-16465.


*추천 자료 : King Solomon’s Mines, After All (2013. 9. 3. BiblePlaces Blog) 

https://www.bibleplaces.com/blog/2013/09/king-solomons-mines-after-all/

King Solomon's copper mines found in Israel (2013. 9. 4. Deccan Herald)

https://www.deccanherald.com/content/355250/king-solomons-copper-mines-found.html

Found: Fresh Clues to Mystery of King Solomon's Mines (2017. 4. 3. National Geographic)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king-solomon-mines-bible-timna-dung

King Solomon’s Mines found (2020. 1. 24. Jerusalem Post)

https://www.jpost.com/opinion/king-solomons-mines-found-615234

Israeli Archaeologists Discover Why ‘King Solomon’s Mines’ Went Bust 3,000 Years Ago (2022. 9. 21. Haaretz)

https://www.haaretz.com/2022-09-21/ty-article/.premium/israeli-archaeologists-discover-why-king-solomons-mines-went-bust-3-000-years-ago/00000183-59ed-d1c8-ade3-ffed39f90000

King Solomon's mines were abandoned and became a desert wasteland. Here's why. (2022. 10. 1. LiveScience)

https://www.livescience.com/king-solomon-mines-depleted-firewood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www.icr.org/article/6214/ 

출처 - ICR News, 2011. 6. 23.

미디어위원회
2011-03-11

바벨탑 사건과 민족 이동

김홍석


바벨탑 사건의 개황. 

하나님의 창조, 선악과사건, 노아홍수, 그리고 바벨탑사건을 들어 창세기의 4대 사건이라고 정리한다. 선악과 사건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하는 그릇된 지식의 욕망”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였으며, 하나님을 넘보는 죄를 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에덴으로부터 쫓겨난 인류는 가인의 살인으로부터 라멕의 악행과 타락에 이르기까지 거듭되던 불순종과 급기야 항상 악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들로 인하여 노아홍수라는 심판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 사람의 죄악은 특히 '하나님의 아들들'과의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람의 본분을 넘어서려는 어리석은 의도가 고발당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창세기 11장에 의하면 그것은 불과 200년 정도 후였던 것 같다. 셈이 홍수 후 2년에 아르박삿을 낳고, 아르박삿이 35세에 셀라를, 셀라 30세에 에벨을, 에벨 34세에 벨렉을 낳았으며 이는 기껏 노아홍수 후 100년 정도가 지났던 때이며, 벨렉은 239세를 살았는데 바벨탑사건은 벨렉 때 있었다(창 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참으로 인류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유지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다. 인류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의도를 가지고 단결했다. 하나님처럼 되려했던 선악과사건과 노아홍수 이전 인류의 악한 시도와 마찬가지로, 이 고질적인 어리석은 욕망은 다시 한 번 자신을 높여 하나님처럼 되고자하는 악하고 불경스러운 시도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 닿으려고, 그래서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려고(창 11:4),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하셨고, 200여 년 전 노아홍수 후에 인류를 향해 다시 한 번 강조하신 ”땅에 가득하여 번성하라”는 말씀(창 9:7)에 도전하면서 그들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고 다짐하였다. 사람들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려오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언어를 혼동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함께 악한 도모를 할 수 없도록 하셨으며 흩어지게 하셨다.

 

민족의 이동. 

창세기 10장은 노아홍수 이후에 야벳, 셈, 함으로부터 어떻게 민족들이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은 모든 후손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은 아니다. 그 하나의 증거로서 야벳의 후손들에 대한 기록은 일곱 아들들과 일곱 손자들만 기록하고 있다. 일곱 아들 가운데 고멜과 야완의 아들들에 해당하는 손자들만 기록하였다. 다른 기록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야벳과 셈과 함의 아들들 즉 손자들 70명이 기록되면서 이들이 각각의 민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창 10:32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 


이들은 다음과 같이 나뉘어서 온 땅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언어의 혼돈에 대한 이해. 

언어의 혼돈으로 인한 사람들의 흩어짐은 오늘날 어족이라는 구분이 어느 정도 이를 실감하게 해준다. 언어의 혼돈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우리는 그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보기 위하여 방언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방언대화를 바라보면서 당시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두세 시간 동안 서로 방언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도저히 무슨 말인지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긴 시간동안의 진지한 대화는 갑자기 어떻게 말들이 달라질 수 있었는지를 쉽게 연상할 수 있게 한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들었는가를 물어보면 자신들은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평상시처럼 했으며 상대방이 하는 말도 그저 평상시처럼 들었다고 말한다. 아울러 사도행전 2:8-21은 오순절 날 성령님이 임하시고 방언을 하게 되면서 각 나라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 베드로의 말을 각 나라의 말로 알아들었던 사건을 통하여 앞으로 주님이 다시 오셨을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로 다시 회복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전을 품게 한다.

 우리는 비록 온 인류를 추적하지는 않더라도 현존하는 모든 인류가 노아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되었는지를 그저 막연하게 듣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디에 살다가 어디로 갔는지를 자세히 들음으로써 온 인류가 친척이며 혈육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노아 할아버지가 들려주셨던 공동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것은 창조에 대한 사연들과 노아홍수에 대한 사연들이 비록 원형은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그 기억을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길가메쉬 왕조의 이야기와 같은 근동의 신화들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기록(대명회전에는 창세에 관한 기록이 창세기와 유사하게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도, 우리나라의 기록들(한단고기에 수록된 단군세기, 태백일사, 삼일신고 등) 가운데도 뚜렷이 남아있어 우리를 놀라게도 하고 반갑기도 한 것이다. 다음은 Wayne Jackson이 언어학, 역사, 고고학적 증거들을 연구한 것이다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 참조).

 

언어학 (Philology).

첫째로, 많은 학자들이 실시한 언어 연구에 의하면, 다양한 인간의 언어들은 궁극적으로 공통 어원(common source)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비교 언어학자인 막스 말러(Max F. Maller, 1823-1900)는 고대의 언어들을 연구하여 그것들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관찰하였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의 책 '언어과학(Science of Language)'에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우리들은 언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형식들을 검사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세 분명한 형식(어근, 어미, 어형변화)들을 인간 언어의 한 공통의 기원과 조화시킬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확실히 '예' 라고 답할 것이다.”

산스크리트어(Sanskrit)는 인도의 고대 언어이며, 고전적인 언어이다. 윌리암 존스 경(Sir William Jones)은 이 언어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하였다. 그는 1786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는 비록 오래 되었지만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언어는 그리스어(Greek)보다 더 완벽하고, 라틴어(Latin)보다 더 풍부하고, 두 언어들보다 더 우아하고 세련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강한 유사성을 가졌고, 둘 다 문법의 형식과 동사의 뿌리가 같다. 그래서 어떠한 언어학자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공통의 어원으로부터 이 언어들이 발생했다는 믿음 없이 세 언어 모두를 조사할 수 없다.” 존은 또한 고트어(Gothic), 켈트어(Celtic), 페르시아어(Persian)가 모두 같은 언어 계통에 속한다고 제의했다. 이들은 오늘날 인도-유럽어족으로 알려져 있다. 

창세기에 관한 두 권의 연구 업적으로 존경받고 있는 네덜란드의 학자인 알더스(G. Ch. Aalders)는 이와 같은 말을 했다. ”한 유명한 아시리아어 학자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그리고 여러 섬들에 사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들과 고대 수메르어(알려진 가장 오래된 언어)와 이집트어 사이에는 명백한 관련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전에 창세기 11:1-9의 이야기를 하나의 신화로 여겼던 이 학자는, 결국 성경의 이야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신뢰할만한 이야기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헤롤드 스티거(Dr. Harold Stigers) 박사는 이 문제에 대해 흥미로운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무수한 언어와 방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림잡아 3000여 개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체 언어(parent language)로부터의 종국적인 파생(derivation)은 주요 언어계보의 경계들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충분히 유사하고, 다르지 않은 구문(syntax)과 어휘(vocabulary)의 공통적인 모습들은 공통 조상 언어가 있었음에 틀림없음을 가리키고 있다.”

흥미롭게도 최근에 통속적인 저널리스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여 언어들을 비교한 어떤 언어학자의 연구에 대해서 토론을 하였는데, 그들은 정말로 ‘원시 세계(proto-World)’라 부르고 있는, 한 모체 언어(mother tongue)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숙고하기 시작하였다. 한 저자(Dyer)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마도 성경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바벨탑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저주를 받아 언어의 혼란이 있기 전 적어도 한 때에는 사람들이 정말로 단일 언어를 사용했었던 것 같다.”

 

역사 (History).

언어들의 기원(origin of languages)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을 지지하는 역사적인 증거들이 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고대의 전설(traditions)들이 있다. 유세비우스(Eusebius)의 인용에 의하면, 아비데누스 (Abydenus, 기원전 4세기 중반의 그리스 역사가)는 파괴된 바벨론의 거대한 탑에 대해 말했었다. 그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이 시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여러 많은 언어들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크게 혼돈된 설명 속에서, 분명한 것은 어떤 고대의 사건에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작품 중 하나에서,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썼던 황금의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행동은 그들 언어의 혼동을 야기했다고 말하고 있다.
 

유대인 역사가인 요셉푸스(Josephus)는 고대의 자료들을 인용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든 인류가 한 언어를 사용했을 때, 그들 중 일부는 탑 하나를 건설하였다. 마치 그들은 그것으로 하늘까지 오르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은 폭풍바람을 보내어 그 탑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모두에게 각각의 특별한 언어를 주셨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도시는 바벨론(Babylon)이라 불려졌다.”

그러한 참고자료가 아니라도, 창세기 11장의 상세한 기록은 역사적 전망과 놀랍도록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음을 숙고해 보라. 시날(Shinar) 지역에 바벨론(Babylon)이 있었다는 것은 가장 초기의 시대에 분명히 알려져 있었다(창 10:10; 단 1:2).   

바벨론에 한 '탑(tower)'이 있었다는 암시는 지구라트(ziggurats)라 불리는 탑들이 고대의 그 지역에 존재했었다는 사실과 확실히 일치한다. 이들 탑들은 하나의 단 위에 다른 단을 건설하는 식으로 여러 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꼭대기로 갈수록 점점 작아진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신성을 나타낼 때 봉헌되어지는 하나의 작은 사원으로 여겨진다. ‘벽돌(brick)’과 ‘역청(bitumen, KJV 에서는 slime)’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진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바빌론 지방에는 건축 시에 흔히 사용되는 돌들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특성이다. 그 지역에서는 불에 구워진 벽돌(fired bricks)들이 수 세기 동안 사용되어져 왔다. 바벨탑에 대한 창세기 설명의 역사성이 의심받을 만한 (반기독교인들의 편협한 주장을 제외하곤) 아무런 이유가 없다. 런던 대학의 아시리아학(Assyriology) 교수인 도날드 와이즈만(Donald J. Wiseman)은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창세기 11장의 기록은....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설명에 대한 모든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한 자유주의 작가도 ”여기에서 개략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배경은 기대 이상으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라고 시인하고 있다.

 

고고학 (Archaeology).

고대 바벨탑(Tower of Babel)의 정확한 위치는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여러 파괴된 유적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불확실하다. 유대와 아랍의 전승들을 조사했던 많은 작가들은 보시파(Borsippa, 'Tongue Tower”)에 바벨탑의 잔해가 있다고 하였다. 그곳은 북부 바빌론에서 남서쪽으로 11마일 지점(이전에는 시의 근교지역) 이다. 다른 사람들은 탑이 있는 장소를 에트멘안키 (Etemen-an-ki,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사원)로 확인하고 있다. 이곳은 유프라테스강 오른쪽 강둑 근처에 있는 도시의 남쪽 구역에 위치한다. 이들 폐허들의 한 곳 또는 다른 곳은 최초 바벨탑에서 고고학적으로 유래된 것(descendant)일 수 있다.   

바빌론의 홍수 이야기를 번역했던 영국 박물관의 조지 스미스(George Smith)는 그의 책 ‘칼데아인의 창세기 이야기(Chaldean Account of Genesis, 1880)’에서, 확실하게 모세의 기록을 생각나게 하는 칼데아인(바빌로니아 지배의 기초를 쌓은 고대 셈족)이 쓴 한 단편(fragment)을 보고하고 있다. 비문(inscription)은 고대의 지구라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 사원의 건축은 신들을 화나게 했다. 한 밤에 신들은 지어진 것을 무너뜨려 버렸다. 신들은 그들은 멀리로 흩어버렸고, 그들의 말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들의 진보로 저지되었다.” 


*참조 : A possible post-Flood human migration rout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1/j19_1_65-72.pdf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381&bmode=view


Creation Moments
2010-09-15

아기들이 진화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Babies Baffle Evolution)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창세기 11:1)


성경은 대홍수후 수세기동안 인류가 동일한 언어를 구사했다고 가르친다. 관련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많은 언어들 간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미를 지니는 비슷하게 소리나는 말들이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가르침을 지지한다. 일부 언어학자들은 이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말한다.

이제 일부 언어학자들이 모든 일류가 하나의 동일한 언어를 말했다는 믿음을 지지하는 한 방법의 리서치를 수행해냈다고 주장한다.  언어학자들은 여러 다른 언어 그룹에서 갓난 아기들이 말하는 것을 연구해 왔다. 4개월 이하의 아기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기위하여 다양한 소리들을 만들어낸다.

말하는 것은 70개의 근육과 몸의 다른 부분을 동시에 조정사용해야 하는 매우 복잡한 활동이다. 7-10개월된 아기들은 보통 모음과 자음을 번갈아 사용하는 소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학자들은 영어를 말하는 가족들의 아기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세가지의 아주 특징적인 패턴의 교체소리들을 발견했다. 나중에 이들은 이러한 패턴들이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언어 그룹의 아기들에서도 흔한 것임을 발견했다. 언어학자들이 다양한 언어그룹의 아기들을 비교하다가 이번에는 이 모든 그룹으로 부터 네번째의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모든 인류가 한때 한가지 언어를 구사했다는 독립적인 증거로 해석되거 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그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성경의 진실이 과학에 의해 지지되어질 때 성경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자들 앞에 분명히 제시된다.


Notes: Science News, 5/27/00, pp. 344-346, 'Building Blocks of Talk.'

Copyright 2010 Creation Moments. All Rights Reserved.


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content/babies-baffle-evolution ,

출처 -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53

참고 : 4543|4499|4491|4281|4237|4228|4119|3398|2405|1395|997|736|609|550||188

미디어위원회
2010-07-02

성경 회의론에 대한 도전

(Biblical Skepticism Challenged)

Creation Moments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시편 119:160)

  불행하게도 많은 성서 고고학자들이 사사기 시대의 성경의 설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시대에 이스라엘이 분명한 단일 민족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William Dever 교수의 발표가 이러한 관점에 심각한 도전을 제시한다. 데버 교수는 애리조나 대학의 근동 고고학 및 인류학과 교수이다. 그가 말하기를 이 사사시대에 약 300여 개의 새로운 마을들이 팔레스타인의 중심부 언덕 지역으로 갑작스럽게 나타났다고 했다. 명확하게 다른 디자인의 집들과 마을들은 그 당시의 이스라엘이 따랐던 삶의 배열과 일치했다. 그는 또 증거에 따르면 당시의 인구 증가는 갑작스런 사람들의 유입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돼지는 흔히 먹는 고기였지만, 이 새로운 마을에서는 돼지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이 특이했다. 산간지역이 개간됨에 따라 농업 또한 급속도로 변화했다. 철의 유입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도자기 형태도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빠르게 변화되었다. 또한 그 당시의 이집트의 유물들이 결론적으로 성경의 역사를 증거했다. 사사기 시대에 이집트에 세워진 기념비가 이스라엘을 분명한 한 민족으로 언급하고 있다.  

과학이 성경에서 발견되는 많은 상세한 것들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우리는 과학 때문에 성경이 선언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학은 결코 성경이 틀리다고 증명할 수가 없다.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진리를 확신시킨다. 

 

References: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4/00, pp. 28-35, 68, 'Save Us From Postmodern Malarkey.'

© 2010 Creation Moments • All Rights Reserved


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content/biblical-skepticism-challenged 

출처 - Creation Moments 


미디어위원회
2010-04-12

아비멜렉에 대한 기록 검증 

(Abimelech the Watermelon)

Creation Moments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사사기 9:53)

사사기에서 한 여인이 탑 위에서 맷돌을 던져, 팔레스타인의 리더였던 아비멜렉의 두개골을 깼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일부의 성경학자들은 어떠한 여인도 맷돌을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세지 못하며, 더욱이 맷돌이 왜 탑 위에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은 이들 질문에 아주 쉽게 대답할 수가 있다. 먼저 종종 당나귀에 의해 돌려졌던 거대한 원형의 맷돌은 이 사건 후 약 천 년 정도까지 발명되지 않았으며, 이 사건이 일어났던 시대에 사용되었던 맷돌의 형태는 둥근 빵 모양의 돌들로서, 약 2~3 kg 정도의 무게였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맷돌들을 성지에서 많이 발견하였다. 그때 당시 각각의 집들에서 자신들의 밀을 날마다 갈아야 했으며, 이때 돌판 위에서 이 조그만 맷돌들이 사용되었다. 이 작업은 보통 지붕 위 햇빛을 가리는 커버아래서 산들바람을 맞으며 행해졌다.

사사기의 이야기를 검증해 보기위해서, 고고학자들은 그때 당시에 사용되었을 만한 맷돌과  수박을 사용하였다. 매직 마커를 사용해 수박에 얼굴을 그리고 이것을 아비멜렉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런 다음 여자 자원자들로 하여금 고대의 이층 타워에서 이 맷돌을 던지게 하였다. 아비멜렉은 살아남지 못했다.

성경이 구원에 관하여든 역사에 관하여든 이야기 할 때, 우리는 그 기록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할 수가 있음을 안다.

 

References :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2/02, pp. 34-37, 62, Denise Dick Herr and Mary Petrina Boyd, 'A Watermelon Named Abimel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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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radio/transcript.php?t=2331 

출처 - Creation Moments 


미디어위원회
2010-03-01

솔로몬 왕이 건설했을 가능성이 있는 성벽이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Solomonic Wall in Jerusalem Announced)

David F. Coppedge


     2010. 2. 22. - 솔로몬 시대(BC 10 세기)로 연대가 평가되는 커다란 성벽이 발견되었다고 언론 매체들은 보도하였다. (see PhysOrg, Live Science and Israel Ministry of Foreign Affairs). 고고학자인 마자르(Eilat Mazar)는 성전산(Temple Mount) 남동쪽 끝에서 발견된 그 구조를 열왕기상 3:1절의 성경 구절과 연결시키고 있었다.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왕상 3:1). 그 성벽은 길이가 약 46m, 높이가 거의 6m나 되었다. 조각된 돌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망루(tower)도 확인되었는데, 방이 있는 문루(chambered gatehouse)였을 가능성이 있다.


Bible Places Blog에서 토드 볼른(Todd Bolen)은 그 발견을 해석함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 성벽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지역은 마자르와 그의 부친에 의해서 1986-1987년에 발굴되었다. (see his second post on the story). 새로운 것은 그 장소에서 발견된 도자기와 단지(pottery and jars)들에 기초하여 그 성벽이 솔로몬 시대의 것으로 연대가 평가된 것이다. 단지들 중에 ‘왕에게(to the king)’라는 글귀가 새겨져있는 단지는 일찌기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것들 중에서 가장 큰 단지에 속한다. 이것이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하더라도, 솔로몬 시대로 연대가 재평가되었다는 것은 중요하다.



성경을 비판하는 일부 고고학자들은 다윗과 솔로몬은 철기시대 II (Iron Age II)에 있었던 작은 부족의 족장들이었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었다. 그래서 커다란 도시들을 건설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건축물은 대규모적이었고 복잡했다. 이것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번성했음을 가리키고 있으며,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see also the Edom findings from 10/27/2008 and the Qeiyafa inscription from 01/07/2010).   



*참조 : 솔로몬 건설 추정 성벽 예루살렘서 발견 (2010. 2. 23.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00223105900009

솔로몬 왕 건설 추정 성벽 예루살렘서 발견  (2010. 2. 23. KBS New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2052189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10/02/solomonic_wall_in_jerusalem_announced/

출처 - CEH, 2010.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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