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왕의 구리광산에 대한 증거
(More Evidence of King Solomon's Copper Mine)
by Brian Thomas, Ph.D.
고대 구리광산과 제련소 유적들이 오늘날의 요르단 사해 근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솔로몬 왕이 소유했던 전설적인 광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현대의 여러 학자들은 그 광산을 솔로몬 시대 이후의 것으로 생각하여 이러한 가능성을 부인해왔었다. 그러나 최근의 방사성탄소 연대는 그 장소에 대한 ”오랫동안 용인되어온 연대”를 뒤집어 엎으면서, 이스라엘에서 가장 현명했던 통치자의 역사를 강화시키고 있었다[1].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을 비판하는 비판가들은 솔로몬과 그의 아버지 다윗 왕의 존재 자체를 의심해 왔다. ”최소주의자”(minimalists, 성경과 고고학이 상충될 때 성경보다 고고학을 더 우선하는)로 알려져 있는 학자들은 솔로몬 시대에는 구리광산과 같은 대대적인 작업을 감독할 수 있는 민족국가가 충분히 발달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고고학적 유물들을 설명하는 데에 다른 이야기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경 기록에 의존하는 것 대신에 고고학적 유물들에 기초한 역사를 세우려고 시도해왔다. 그러나 요르단의 ‘키르바트 엔 나하스'(Khirbat en-Nahas(KEN), 아랍어로 ‘구리 폐허’를 뜻함)에서 진행되고 있는 발굴조사는 비성경적 역사를 믿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계속해서 밝혀내고 있는 중이다.
Popular Archeology 지에 게재된 최근의 한 논문은 ”KEN에서의 발견의 중요성은 히브리어 성경에 기록된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존재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의 신뢰성과 연대기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언급했다[1].
성경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건축된 솔로몬 왕의 성전과 궁전은 비길데 없이 화려했다고 기술되어있다. 성경 연대기에 의하면, 솔로몬의 통치는 대략 BC 1,000년 경이었다[2, 3]. 성경 열왕기상에는 솔로몬이 만든 구리를 기초로 만들어진 놋(bronze, brass)으로 된 거대한 구조물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1개의 받침대 길이가 네 규빗, 폭이 네 규빗, 높이가 세 규빗에 달하는 10개의 놋 받침대와 일련의 기둥들을 포함하고 있었다[4]. 놋(황동, 청동)은 대부분 구리로 만들어진 합금이다.
샌디에고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고고학자인 토마스 레비(Thomas Levy)가 발굴을 주도했는데, 그들은 2006년 KEN에서의 발굴에서, ”6m 이상의 제련소 잔해와 슬래그(slag, 쇳물 표면의 산화 작용으로 생겨난 찌꺼기)를 발굴했다”[5]. 후에 그러한 슬래그들이 들어있는 지층에서 발견된 것들에 대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이 이루어졌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방법(carbon dating)은 방사성탄소가 안정된 질소로의 붕괴될 때 그 붕괴속도가 유물 내에서 항상 일정했다고 가정할 뿐만 아니라, 지구 대기 내에서 방사성탄소와 안정된 탄소의 비율이(유물이 대기와의 상호작용을 멈춘 이후로) 항상 일정했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들은 일반적으로 최근 유물에 대한 연대를 측정하는 데에는 유효하기 때문에,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방법은 노아홍수 이후에 퇴적된 나무나 뼈와 같은 탄소함유 물체에 대한 연대측정에 유용할 수 있다 (창조/홍수 모델은 대기 중 방사성탄소 농도가 노아홍수 이전이 오늘날과 매우 달랐을 것으로 예측한다. 따라서 노아 홍수 시에 파묻혀진 물질들은 방사성탄소 '연대'가 매우 부풀려져 있다고 본다).
KEN의 연대측정 결과는 아래 지층으로 내려가면서 점차적으로 오래된 연대를 나타내고 있으며, 시료들의 연대는 솔로몬의 통치 시기에 대한 성경적 연대와 일치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Popular Archaeology 지에 의하면,
”간단히 말해서, 설득력 있는 증거는 이제 대대적인 구리 생산 시설이 BC 9~10세기 동안에 KEN에서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 시기는 고대 에돔과 이스라엘의 완전히 발달된 왕국의 출현보다 최소 2세기를 앞선 것으로 많은 학자들 특히 최소주의자들이 추정하고 있던 시기이다”[1].
레비와 그의 동료들은 그 장소로 되돌아가서, 구리광산을 관리했던 국가의 정체성과 국가 지도자의 이름까지도 밝힐 수 있는 더욱 구체적인 증거들을 찾기 위해서 연구를 계속 수행할 계획이다.
References
1. Archaeologists Return to 'King Solomon's Mines' of Biblical Edom. Popular Archaeology. Posted on popular-archaelogy.com May 31, 2011, accessed June 13, 2011.
2. Dates based on Ussher's Chronology, a charted summary of which can be found on creation.com.
3. Pierce, L. 2006. The World: Born in 4004 BC? Answers. 1 (1): 25-27.
4. 1 Kings 7:27.
5. Kiderra, I. King Solomon's (Copper) Mines?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news release, October 27, 2008, reporting on research published in Levy, T. E. et al. 2008. High-precision radiocarbon dating and historical biblical archaeology in southern Jorda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5 (43): 16460-16465.
*추천 자료 : King Solomon’s Mines, After All (2013. 9. 3. BiblePlaces Blog)
https://www.bibleplaces.com/blog/2013/09/king-solomons-mines-after-all/
King Solomon's copper mines found in Israel (2013. 9. 4. Deccan Herald)
https://www.deccanherald.com/content/355250/king-solomons-copper-mines-found.html
Found: Fresh Clues to Mystery of King Solomon's Mines (2017. 4. 3. National Geographic)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king-solomon-mines-bible-timna-dung
King Solomon’s Mines found (2020. 1. 24. Jerusalem Post)
https://www.jpost.com/opinion/king-solomons-mines-found-615234
Israeli Archaeologists Discover Why ‘King Solomon’s Mines’ Went Bust 3,000 Years Ago (2022. 9. 21. Haaretz)
King Solomon's mines were abandoned and became a desert wasteland. Here's why. (2022. 10. 1. LiveScience)
https://www.livescience.com/king-solomon-mines-depleted-firewood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www.icr.org/article/6214/
출처 - ICR News, 2011. 6. 23.
바벨탑 사건과 민족 이동
김홍석
바벨탑 사건의 개황.
하나님의 창조, 선악과사건, 노아홍수, 그리고 바벨탑사건을 들어 창세기의 4대 사건이라고 정리한다. 선악과 사건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하는 그릇된 지식의 욕망”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였으며, 하나님을 넘보는 죄를 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에덴으로부터 쫓겨난 인류는 가인의 살인으로부터 라멕의 악행과 타락에 이르기까지 거듭되던 불순종과 급기야 항상 악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들로 인하여 노아홍수라는 심판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 사람의 죄악은 특히 '하나님의 아들들'과의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람의 본분을 넘어서려는 어리석은 의도가 고발당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창세기 11장에 의하면 그것은 불과 200년 정도 후였던 것 같다. 셈이 홍수 후 2년에 아르박삿을 낳고, 아르박삿이 35세에 셀라를, 셀라 30세에 에벨을, 에벨 34세에 벨렉을 낳았으며 이는 기껏 노아홍수 후 100년 정도가 지났던 때이며, 벨렉은 239세를 살았는데 바벨탑사건은 벨렉 때 있었다(창 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참으로 인류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유지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다. 인류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의도를 가지고 단결했다. 하나님처럼 되려했던 선악과사건과 노아홍수 이전 인류의 악한 시도와 마찬가지로, 이 고질적인 어리석은 욕망은 다시 한 번 자신을 높여 하나님처럼 되고자하는 악하고 불경스러운 시도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 닿으려고, 그래서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려고(창 11:4),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하셨고, 200여 년 전 노아홍수 후에 인류를 향해 다시 한 번 강조하신 ”땅에 가득하여 번성하라”는 말씀(창 9:7)에 도전하면서 그들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고 다짐하였다. 사람들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려오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언어를 혼동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함께 악한 도모를 할 수 없도록 하셨으며 흩어지게 하셨다.
민족의 이동.
창세기 10장은 노아홍수 이후에 야벳, 셈, 함으로부터 어떻게 민족들이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은 모든 후손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은 아니다. 그 하나의 증거로서 야벳의 후손들에 대한 기록은 일곱 아들들과 일곱 손자들만 기록하고 있다. 일곱 아들 가운데 고멜과 야완의 아들들에 해당하는 손자들만 기록하였다. 다른 기록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야벳과 셈과 함의 아들들 즉 손자들 70명이 기록되면서 이들이 각각의 민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창 10:32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
이들은 다음과 같이 나뉘어서 온 땅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언어의 혼돈에 대한 이해.
언어의 혼돈으로 인한 사람들의 흩어짐은 오늘날 어족이라는 구분이 어느 정도 이를 실감하게 해준다. 언어의 혼돈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우리는 그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보기 위하여 방언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방언대화를 바라보면서 당시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두세 시간 동안 서로 방언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도저히 무슨 말인지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긴 시간동안의 진지한 대화는 갑자기 어떻게 말들이 달라질 수 있었는지를 쉽게 연상할 수 있게 한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들었는가를 물어보면 자신들은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평상시처럼 했으며 상대방이 하는 말도 그저 평상시처럼 들었다고 말한다. 아울러 사도행전 2:8-21은 오순절 날 성령님이 임하시고 방언을 하게 되면서 각 나라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 베드로의 말을 각 나라의 말로 알아들었던 사건을 통하여 앞으로 주님이 다시 오셨을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로 다시 회복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전을 품게 한다.
우리는 비록 온 인류를 추적하지는 않더라도 현존하는 모든 인류가 노아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되었는지를 그저 막연하게 듣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디에 살다가 어디로 갔는지를 자세히 들음으로써 온 인류가 친척이며 혈육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노아 할아버지가 들려주셨던 공동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것은 창조에 대한 사연들과 노아홍수에 대한 사연들이 비록 원형은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그 기억을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길가메쉬 왕조의 이야기와 같은 근동의 신화들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기록(대명회전에는 창세에 관한 기록이 창세기와 유사하게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도, 우리나라의 기록들(한단고기에 수록된 단군세기, 태백일사, 삼일신고 등) 가운데도 뚜렷이 남아있어 우리를 놀라게도 하고 반갑기도 한 것이다. 다음은 Wayne Jackson이 언어학, 역사, 고고학적 증거들을 연구한 것이다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 참조).
언어학 (Philology).
첫째로, 많은 학자들이 실시한 언어 연구에 의하면, 다양한 인간의 언어들은 궁극적으로 공통 어원(common source)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비교 언어학자인 막스 말러(Max F. Maller, 1823-1900)는 고대의 언어들을 연구하여 그것들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관찰하였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의 책 '언어과학(Science of Language)'에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우리들은 언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형식들을 검사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세 분명한 형식(어근, 어미, 어형변화)들을 인간 언어의 한 공통의 기원과 조화시킬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확실히 '예' 라고 답할 것이다.”
산스크리트어(Sanskrit)는 인도의 고대 언어이며, 고전적인 언어이다. 윌리암 존스 경(Sir William Jones)은 이 언어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하였다. 그는 1786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는 비록 오래 되었지만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언어는 그리스어(Greek)보다 더 완벽하고, 라틴어(Latin)보다 더 풍부하고, 두 언어들보다 더 우아하고 세련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강한 유사성을 가졌고, 둘 다 문법의 형식과 동사의 뿌리가 같다. 그래서 어떠한 언어학자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공통의 어원으로부터 이 언어들이 발생했다는 믿음 없이 세 언어 모두를 조사할 수 없다.” 존은 또한 고트어(Gothic), 켈트어(Celtic), 페르시아어(Persian)가 모두 같은 언어 계통에 속한다고 제의했다. 이들은 오늘날 인도-유럽어족으로 알려져 있다.
창세기에 관한 두 권의 연구 업적으로 존경받고 있는 네덜란드의 학자인 알더스(G. Ch. Aalders)는 이와 같은 말을 했다. ”한 유명한 아시리아어 학자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그리고 여러 섬들에 사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들과 고대 수메르어(알려진 가장 오래된 언어)와 이집트어 사이에는 명백한 관련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전에 창세기 11:1-9의 이야기를 하나의 신화로 여겼던 이 학자는, 결국 성경의 이야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신뢰할만한 이야기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헤롤드 스티거(Dr. Harold Stigers) 박사는 이 문제에 대해 흥미로운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무수한 언어와 방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림잡아 3000여 개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체 언어(parent language)로부터의 종국적인 파생(derivation)은 주요 언어계보의 경계들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충분히 유사하고, 다르지 않은 구문(syntax)과 어휘(vocabulary)의 공통적인 모습들은 공통 조상 언어가 있었음에 틀림없음을 가리키고 있다.”
흥미롭게도 최근에 통속적인 저널리스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여 언어들을 비교한 어떤 언어학자의 연구에 대해서 토론을 하였는데, 그들은 정말로 ‘원시 세계(proto-World)’라 부르고 있는, 한 모체 언어(mother tongue)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숙고하기 시작하였다. 한 저자(Dyer)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마도 성경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바벨탑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저주를 받아 언어의 혼란이 있기 전 적어도 한 때에는 사람들이 정말로 단일 언어를 사용했었던 것 같다.”
역사 (History).
언어들의 기원(origin of languages)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을 지지하는 역사적인 증거들이 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고대의 전설(traditions)들이 있다. 유세비우스(Eusebius)의 인용에 의하면, 아비데누스 (Abydenus, 기원전 4세기 중반의 그리스 역사가)는 파괴된 바벨론의 거대한 탑에 대해 말했었다. 그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이 시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여러 많은 언어들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크게 혼돈된 설명 속에서, 분명한 것은 어떤 고대의 사건에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작품 중 하나에서,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썼던 황금의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행동은 그들 언어의 혼동을 야기했다고 말하고 있다.
유대인 역사가인 요셉푸스(Josephus)는 고대의 자료들을 인용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든 인류가 한 언어를 사용했을 때, 그들 중 일부는 탑 하나를 건설하였다. 마치 그들은 그것으로 하늘까지 오르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은 폭풍바람을 보내어 그 탑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모두에게 각각의 특별한 언어를 주셨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도시는 바벨론(Babylon)이라 불려졌다.”
그러한 참고자료가 아니라도, 창세기 11장의 상세한 기록은 역사적 전망과 놀랍도록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음을 숙고해 보라. 시날(Shinar) 지역에 바벨론(Babylon)이 있었다는 것은 가장 초기의 시대에 분명히 알려져 있었다(창 10:10; 단 1:2).
바벨론에 한 '탑(tower)'이 있었다는 암시는 지구라트(ziggurats)라 불리는 탑들이 고대의 그 지역에 존재했었다는 사실과 확실히 일치한다. 이들 탑들은 하나의 단 위에 다른 단을 건설하는 식으로 여러 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꼭대기로 갈수록 점점 작아진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신성을 나타낼 때 봉헌되어지는 하나의 작은 사원으로 여겨진다. ‘벽돌(brick)’과 ‘역청(bitumen, KJV 에서는 slime)’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진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바빌론 지방에는 건축 시에 흔히 사용되는 돌들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특성이다. 그 지역에서는 불에 구워진 벽돌(fired bricks)들이 수 세기 동안 사용되어져 왔다. 바벨탑에 대한 창세기 설명의 역사성이 의심받을 만한 (반기독교인들의 편협한 주장을 제외하곤) 아무런 이유가 없다. 런던 대학의 아시리아학(Assyriology) 교수인 도날드 와이즈만(Donald J. Wiseman)은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창세기 11장의 기록은....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설명에 대한 모든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한 자유주의 작가도 ”여기에서 개략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배경은 기대 이상으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라고 시인하고 있다.
고고학 (Archaeology).
고대 바벨탑(Tower of Babel)의 정확한 위치는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여러 파괴된 유적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불확실하다. 유대와 아랍의 전승들을 조사했던 많은 작가들은 보시파(Borsippa, 'Tongue Tower”)에 바벨탑의 잔해가 있다고 하였다. 그곳은 북부 바빌론에서 남서쪽으로 11마일 지점(이전에는 시의 근교지역) 이다. 다른 사람들은 탑이 있는 장소를 에트멘안키 (Etemen-an-ki,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사원)로 확인하고 있다. 이곳은 유프라테스강 오른쪽 강둑 근처에 있는 도시의 남쪽 구역에 위치한다. 이들 폐허들의 한 곳 또는 다른 곳은 최초 바벨탑에서 고고학적으로 유래된 것(descendant)일 수 있다.
바빌론의 홍수 이야기를 번역했던 영국 박물관의 조지 스미스(George Smith)는 그의 책 ‘칼데아인의 창세기 이야기(Chaldean Account of Genesis, 1880)’에서, 확실하게 모세의 기록을 생각나게 하는 칼데아인(바빌로니아 지배의 기초를 쌓은 고대 셈족)이 쓴 한 단편(fragment)을 보고하고 있다. 비문(inscription)은 고대의 지구라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 사원의 건축은 신들을 화나게 했다. 한 밤에 신들은 지어진 것을 무너뜨려 버렸다. 신들은 그들은 멀리로 흩어버렸고, 그들의 말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들의 진보로 저지되었다.”
*참조 : A possible post-Flood human migration rout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1/j19_1_65-72.pdf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381&bmode=view
아기들이 진화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Babies Baffle Evolution)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창세기 11:1)
성경은 대홍수후 수세기동안 인류가 동일한 언어를 구사했다고 가르친다. 관련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많은 언어들 간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미를 지니는 비슷하게 소리나는 말들이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가르침을 지지한다. 일부 언어학자들은 이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말한다.
이제 일부 언어학자들이 모든 일류가 하나의 동일한 언어를 말했다는 믿음을 지지하는 한 방법의 리서치를 수행해냈다고 주장한다. 언어학자들은 여러 다른 언어 그룹에서 갓난 아기들이 말하는 것을 연구해 왔다. 4개월 이하의 아기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기위하여 다양한 소리들을 만들어낸다.
말하는 것은 70개의 근육과 몸의 다른 부분을 동시에 조정사용해야 하는 매우 복잡한 활동이다. 7-10개월된 아기들은 보통 모음과 자음을 번갈아 사용하는 소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학자들은 영어를 말하는 가족들의 아기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세가지의 아주 특징적인 패턴의 교체소리들을 발견했다. 나중에 이들은 이러한 패턴들이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언어 그룹의 아기들에서도 흔한 것임을 발견했다. 언어학자들이 다양한 언어그룹의 아기들을 비교하다가 이번에는 이 모든 그룹으로 부터 네번째의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모든 인류가 한때 한가지 언어를 구사했다는 독립적인 증거로 해석되거 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그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성경의 진실이 과학에 의해 지지되어질 때 성경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자들 앞에 분명히 제시된다.
Notes: Science News, 5/27/00, pp. 344-346, 'Building Blocks of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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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content/babies-baffle-evolution ,
출처 -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53
참고 : 4543|4499|4491|4281|4237|4228|4119|3398|2405|1395|997|736|609|550||188
성경 회의론에 대한 도전
(Biblical Skepticism Challenged)
Creation Moments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시편 119:160)
불행하게도 많은 성서 고고학자들이 사사기 시대의 성경의 설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시대에 이스라엘이 분명한 단일 민족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William Dever 교수의 발표가 이러한 관점에 심각한 도전을 제시한다. 데버 교수는 애리조나 대학의 근동 고고학 및 인류학과 교수이다. 그가 말하기를 이 사사시대에 약 300여 개의 새로운 마을들이 팔레스타인의 중심부 언덕 지역으로 갑작스럽게 나타났다고 했다. 명확하게 다른 디자인의 집들과 마을들은 그 당시의 이스라엘이 따랐던 삶의 배열과 일치했다. 그는 또 증거에 따르면 당시의 인구 증가는 갑작스런 사람들의 유입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돼지는 흔히 먹는 고기였지만, 이 새로운 마을에서는 돼지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이 특이했다. 산간지역이 개간됨에 따라 농업 또한 급속도로 변화했다. 철의 유입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도자기 형태도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빠르게 변화되었다. 또한 그 당시의 이집트의 유물들이 결론적으로 성경의 역사를 증거했다. 사사기 시대에 이집트에 세워진 기념비가 이스라엘을 분명한 한 민족으로 언급하고 있다.
과학이 성경에서 발견되는 많은 상세한 것들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우리는 과학 때문에 성경이 선언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학은 결코 성경이 틀리다고 증명할 수가 없다.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진리를 확신시킨다.
References: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4/00, pp. 28-35, 68, 'Save Us From Postmodern Malar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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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content/biblical-skepticism-challenged
출처 - Creation Moments
아비멜렉에 대한 기록 검증
(Abimelech the Watermelon)
Creation Moments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사사기 9:53)
사사기에서 한 여인이 탑 위에서 맷돌을 던져, 팔레스타인의 리더였던 아비멜렉의 두개골을 깼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일부의 성경학자들은 어떠한 여인도 맷돌을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세지 못하며, 더욱이 맷돌이 왜 탑 위에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은 이들 질문에 아주 쉽게 대답할 수가 있다. 먼저 종종 당나귀에 의해 돌려졌던 거대한 원형의 맷돌은 이 사건 후 약 천 년 정도까지 발명되지 않았으며, 이 사건이 일어났던 시대에 사용되었던 맷돌의 형태는 둥근 빵 모양의 돌들로서, 약 2~3 kg 정도의 무게였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맷돌들을 성지에서 많이 발견하였다. 그때 당시 각각의 집들에서 자신들의 밀을 날마다 갈아야 했으며, 이때 돌판 위에서 이 조그만 맷돌들이 사용되었다. 이 작업은 보통 지붕 위 햇빛을 가리는 커버아래서 산들바람을 맞으며 행해졌다.
사사기의 이야기를 검증해 보기위해서, 고고학자들은 그때 당시에 사용되었을 만한 맷돌과 수박을 사용하였다. 매직 마커를 사용해 수박에 얼굴을 그리고 이것을 아비멜렉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런 다음 여자 자원자들로 하여금 고대의 이층 타워에서 이 맷돌을 던지게 하였다. 아비멜렉은 살아남지 못했다.
성경이 구원에 관하여든 역사에 관하여든 이야기 할 때, 우리는 그 기록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할 수가 있음을 안다.
References :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2/02, pp. 34-37, 62, Denise Dick Herr and Mary Petrina Boyd, 'A Watermelon Named Abimel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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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radio/transcript.php?t=2331
출처 - Creation Moments
솔로몬 왕이 건설했을 가능성이 있는 성벽이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Solomonic Wall in Jerusalem Announced)
David F. Coppedge
2010. 2. 22. - 솔로몬 시대(BC 10 세기)로 연대가 평가되는 커다란 성벽이 발견되었다고 언론 매체들은 보도하였다. (see PhysOrg, Live Science and Israel Ministry of Foreign Affairs). 고고학자인 마자르(Eilat Mazar)는 성전산(Temple Mount) 남동쪽 끝에서 발견된 그 구조를 열왕기상 3:1절의 성경 구절과 연결시키고 있었다.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왕상 3:1). 그 성벽은 길이가 약 46m, 높이가 거의 6m나 되었다. 조각된 돌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망루(tower)도 확인되었는데, 방이 있는 문루(chambered gatehouse)였을 가능성이 있다.
Bible Places Blog에서 토드 볼른(Todd Bolen)은 그 발견을 해석함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 성벽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지역은 마자르와 그의 부친에 의해서 1986-1987년에 발굴되었다. (see his second post on the story). 새로운 것은 그 장소에서 발견된 도자기와 단지(pottery and jars)들에 기초하여 그 성벽이 솔로몬 시대의 것으로 연대가 평가된 것이다. 단지들 중에 ‘왕에게(to the king)’라는 글귀가 새겨져있는 단지는 일찌기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것들 중에서 가장 큰 단지에 속한다. 이것이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하더라도, 솔로몬 시대로 연대가 재평가되었다는 것은 중요하다.
성경을 비판하는 일부 고고학자들은 다윗과 솔로몬은 철기시대 II (Iron Age II)에 있었던 작은 부족의 족장들이었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었다. 그래서 커다란 도시들을 건설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건축물은 대규모적이었고 복잡했다. 이것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번성했음을 가리키고 있으며,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see also the Edom findings from 10/27/2008 and the Qeiyafa inscription from 01/07/2010).
*참조 : 솔로몬 건설 추정 성벽 예루살렘서 발견 (2010. 2. 23.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00223105900009
솔로몬 왕 건설 추정 성벽 예루살렘서 발견 (2010. 2. 23. KBS New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2052189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10/02/solomonic_wall_in_jerusalem_announced/
출처 - CEH, 2010. 2. 22.
예수님의 고향 마을이 발굴되었다.
(Hometown of Jesus Was Real)
by David F. Coppedge
예수님이 자라셨던 마을인 나사렛(Nazareth)에서 1세기 경의 집이 발굴되었다. 이스라엘 문화재청(Israeli Antiquities Authority)은 그 발견을 발표했다. Phys.org(2009. 12. 21)의 글과 사진을 클릭하여 보라. 이것은 예수님이 사셨던 시기를 포함하여 초기 로마 시대에 최초로 발굴된 거주 장소이다.
Bible Places에서 토드 보렌(Todd Bolen)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 ”이 발견은 나사렛이 신약성경에서 1세기 경 언급된 이후, 그러한 도시는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었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적어도 한 사람)의 이론을 잠재우는 것이다. 요세푸스와 동시대의 다른 문헌들에서 나사렛이 언급되어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 도시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음을 가리킬 뿐이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 와서 보라.
윌리엄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는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와의 논쟁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의 시간선 상에서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인류의 2%가 살았던 시점에 오셨다는 것을 지적했었다. 이것은 갈라디아 4:4절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고 바울이 말한 것을 설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히친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복음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었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에서 예수님이 너무 늦게 오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로마제국(Pax Romana)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도로망과 연결망을 가지고 있어서, 복음이 로마제국을 통해서 그 당시의 문명들에게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before Christ, BC) 살았던 사람들은 구세주(Redeemer)가 오실 것이라는 아담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었다.(창 3:15).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의롭다하심을 받았다. 약속된 메시야가 오시기 이전이든지 이후이든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에 반해 진화론자들은 사람 이전에 오래된 세계가 있었으며,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를 거쳐서 사람이 되었다고 가정한다. 당신이 원한다면, 그러한 주장은 비과학적이며, 자기 모순적이며, 증거들과도 일치하지 않는, 어리석은 신화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둘 중에 하나이다. 당신의 믿음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가치 있고 영원한 것을 선택하기 바란다.
*관련기사 : 예수가 놀던 집 발견? (2009. 12. 22. 한국경제)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12228147g&sid=01050601&nid=005
나사렛서 예수시대 집터 발굴 (2009. 12. 21.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09/12/21/0601170100AKR20091221203600079.HTML?template=3386
*참조 : Jesus' House? 1st-Century Structure May Be Where He Grew Up (2015. 3. 2. LiveScience)
https://www.livescience.com/49997-jesus-house-possibly-found-nazareth.html
First-Century House Found in Nazareth: Did Jesus Live There? (2015. 3. 3. NBC News)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9/12/hometown_of_jesus_was_real/
출처 - CEH, 2009. 12. 21.
”야벳, 컴퓨터 끄는 것을 잊지 말거라!”
: 2,000 여년 전의 고대 난파선에서 발견된 놀라운 기계 장치
(Japheth, remember to turn off the computer...)
Calvin Smith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진화론적 세계관에 의하면, 고대 인류는 원시적이었으며, 시간이 흘러 진화하면서 점점 더 지적으로 발전했던 역사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수천년 전의 사람들이 기술적으로 발전된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노아 홍수와 같은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의 신화로서 분류된다. 왜냐하면 노아와 같은 고대의 사람이 창세기 6장에 기록된 것과 같은 거대한 배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주의 깊은 관찰자들은 사람은 매우 현명하게 창조되었으며,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람의 죄와 저주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진화되기보다 오히려 쇠퇴되고 있다는, 성경의 창조론적 견해를 지지하는 뉴스들을 접할 수 있다.
최근에 CBC 뉴스는 BC 150-100년 사이에 만들어진 한 장치(device)에 대한 이야기를 보도하였다. 이 장치는 1901년 그리스 안티키테라(Antikythera) 섬의 한 난파선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그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 장치는 암석 속에 파묻혀 있었으며, 내부를 조사하기 위해서 처음 X-레이로 조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암석의 형성에는 수백만 년이 걸린다고 일반적으로 가르쳐지고 있지 않은가! [2]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은 고대에 있었던 일종의 기계적 유사 컴퓨터이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이 그 장치의 놀라움을 기술하고 있었다 : ”매우 뛰어난... 그 기계가 디자인된 방식은 당신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도록 한다. 이 장치를 만들어낸 사람이라면 놀라운 일들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기사는 그 기계를 설명하면서, 그것은 일종의 유사 컴퓨터로서 (흔히 현대 자동차에서 사용되어지는) 차동기어(differential gear)를 가지고 있었고, 태양, 달의 움직임과 일식을 추적할 수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그 기계는 또한 행성들의 움직임들도 추적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복잡함은 18세기의 시계에 비견된다는 것이다.
이 발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 기사의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알 수 있다 :
과학자들에게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는 어떻게 그러한 유용한 장치가 또 다른 1000 년 동안 어떠한 기록도 없이 고고학적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런던 과학박물관의 관장인 마이클 라이트(Michael Wright)는 말했다. ”나는 이와 같은 과학 기술이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가, 유사한 형태로 재발명되는 일을 쉽게 발견한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170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가르쳐지고 있는 일부 과학 기술들은 사실 수천년 전에도 존재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단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한 복잡한 기계장치를 만들 수 있는 지성이 오래 전에도 존재했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과학 기술은 지난 100여년 동안 아이디어들을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서 빠르게 발전되어 왔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발견에 빠르게 접근 도달할 수 있었고,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고립된 한 개인이나 작은 그룹들은 짧은 기간 내에 빠르게 원시적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집을 건축하는 방법이나,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지난 300년 동안 이루어진 과학 기술의 발전 양을 생각해 보라. 인류는 단지 300여년 안에 전기, 자동차, 컴퓨터 등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인류는 노아 홍수가 일어나기 전까지 1656년 동안 커다란 발전을 이룩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아이디어들이 기록되고 공유되는 조직화된 구조가 없었다면, 엄청난 발전은 없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범법자를 처벌하는 정부나 경찰력의 부재는 노아 홍수 이전 시대의 과학 기술 발전에 있어서 주요한 제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구 유럽의 과학 기술을 활짝 꽃피운 것이 성경적 기독교와 그것으로부터 흘러나온 사상이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4]
아담은 완벽하게 창조되었고,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아담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에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다) 창조되었다. 창세기 4:21-22절에는 창조 이후 짧은 기간 안에 사람들은 금속들을 가공 제조할 수 있었으며, 악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일들은 노아가 거대한 방주를 건조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매우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세뇌되어 왔던 진화론적 사고의 틀을 벗어버린다면, 이 새로운 발견은 노아의 방주에 유사 컴퓨터와 같은 이러한 기계 장치가 장착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고대인들이 원시적이었다거나 오늘날의 우리보다 덜 지적이었다고 생각할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CBC News, Scientists unlock mystery of 2,000-year-old computer.
[2] See Keys to Rapid Rock Formation, Creation 17(1):45, 1994. Also Walker, T., Rapid Rock, Creation 24(2):38-39, 2002.
[3] Note that by ‘primitive’ we do not mean the standard evolutionary ‘Stone Age caveman’ stereotype. See (a) Cardno, S., The mystery of ancient man, Creation 20(2):10–14, 1998; (b) Niemand, R., The Stone ‘Age’—a figment of the imagination?, Creation 27(4):13, 2005.
[4] Noah would have had considerable time to accumulate the ‘know-how’ of his age to take with him to the new world he was about to enter. Looking at the high level of ingenuity in the civilizations that sprang up shortly after the Flood, like Babylon and Egypt (while other groups of those dispersed at Babel, isolated from people possessing metallurgy and engineering knowledge, improvised with stone tools and sought temporary shelter in caves), gives us some idea of what that pre-Flood technology would have been like.
Published: 22 December 2006 (GMT+10)
*참조 : '고대 그리스인, 2100년 전 천체 계산용 컴퓨터 발명' 연구결과 발표 (2016. 6. 10. 뉴시스)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60610_0014141856#_PA
“기원전 그리스 천체 슈퍼컴퓨터 썼다” (2006. 11. 30. 경향신문)
https://m.khan.co.kr/world/europe-russia/article/200611301820151#c2b
'약 2300년전 고대 바빌론人 미적분 개념 알았다…목성 궤도 계산' (2016. 1. 29. 뉴시스)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60129_0013867248#_enlipl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japheth-remember-to-turn-off-the-computer
출처 - Creation, 22 December 2006.
석기시대에 삼각함수 전문가가 영국에 있었는가?
(Were Stone Age Britons Trigonometry Experts?)
by Brian Thomas, Ph.D.
영국 남부와 웨일즈에는 수 세기 동안 스톤헨지(Stonehenge) 같은 석조 기념물들, 대지예술(earthworks), 언덕 야영지(hill camps) 등을 포함하여 사람이 만든 구조물들이 지리학적으로 높은 지점들에서 관측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분포에 있어서 기대하지 않던 어떤 것이 입증될 수도 있게 되었다. 지상 높은 곳에서 바라보았을 때, 고대의 많은 장소들은 다른 장소들과 관련되어 이등변 삼각형(isosceles triangles)의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장거리 이동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역사학자이며 은퇴한 행정관인 톰 브룩스(Tom Brooks)는 이러한 장소들 1,500여 군데를 분석했다. 그는 그 장소들이 똑같은 길이의 두 변을 가지는, 이등변 삼각형을 이루는 곳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고대 여행자들에게 언덕 꼭대기의 표지물들을 바라보는 선들을 이용하여, 다음 위치까지의 방향과 거리, 또는 삼각형의 꼭지점 지점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나타내주는 것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지점들이 서로 서로 보일 수 있는 위치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A에서 B로 가는 간결한 길을 제공할 수 있었다.”[1]
브룩스는 말했다. ”몇몇 삼각형들은 160km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치는 100m 이내로 정확합니다. 그것은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제 매우 발전되고, 복잡하고, 정확한 기하학적 측량술(geometrical surveying)이 발견된 것입니다. 석기시대의 조상들은 원시적이었다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어떤 외부 지성에 의해 도움을 받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1] 그의 관측에 의거하면, 석기시대의 조상들은 여행을 위해 이들 삼각형의 기하학적 패턴들을 사용하였고, 표시를 남겨둔 구면삼각법(spherical trigonometry)의 전문가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관측과 추정들은 성경적 역사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창조와 타락에 대한 성경적 설명으로부터 하나님은 최초의 사람을 원래 완벽하게 만드셨으나, 아담의 범죄로 인해 저주를 받아, 그 후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전적 오류들이 일어나 점차적으로 쇠퇴되어 갔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것은 고대인들은 원숭이 같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하였기 때문에 현대인보다 매우 지적 능력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오류투성이의 진화론적 개념과는 정반대 되는 설명이다. 고대의 영국 거주민들은 수학적으로 매우 현명했다는 이와 같은 새로운 증거는 진화론적 개념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Daily Mail 뉴스가 보도되고 하룻밤이 지나서 한 동굴인(caveman)의 그림이 그 기사에 추가되었다. 그 기사가 9월 14일에 게재되었을 때, 동굴인에 대한 그림은 없었고, 단지 지도와 거석기념물 사진만 있었다. 그러나 15일에 마치 진화 이야기를 강화시켜주는 것처럼 동굴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새로운 제목과 URL이 그 기사에 할당되었다.[2] 이러한 변경은 편집자가 고대 영국인들의 천재성에 대한 이러한 증거를 폄하시키려는 듯한 행동으로 보인다.
또한 새로운 한 결론이 분명히 유사한 목적을 가지고 업데이트된 글 속에 추가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국 고고학 지의 편집장인 마이크 핏츠(Mike Pitts)는 말했다 : ”영국 남부의 풍경(landscape)은 집중적으로 조사되었고, 많은 대지예술들과 고고학적 발견들이 있었다. 그 풍경에서 패턴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쉽다. 그러나 그 패턴들은 그것들이 진짜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
그러나 브룩스가 조망하여 발견해낸 패턴들은 발견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패턴들은 고도의 수학적 지식과 응용 없이는 사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가 발견해낸 복잡한 지형적 배치는, 따르도록 강요되는 어떤 이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만든 기념물들로부터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으로 인해 고대인들이 매우 지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린 사람은 브룩스만이 아니다.
그 뉴스는 진화론에 더 우호적으로 보도하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과학적 발견들은 고대인들이 현대인들보다 더 현명하지는 않았다하더라도, 매우 현명하였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3]
References
[1] Derbyshire, D. Stone Age satnav: Did ancient man use 5,000-year-old travel chart to navigate across Britain. Daily Mail. Posted on dailymail.co.uk September 14, 2009 and updated September 15, 2009, accessed September 14, 2009 and September 15, 2009.
[2] The original title was ”Ancient man used stone ‘sat nav’ 5,000 years ago to navigate across country.”
[3] See also Thomas, B. Ancient Stone Knives Made by ‘Smart’ Humans. ICR News. Posted on icr.org August 24, 200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4964/
출처 - ICR News, 2009. 9. 21.
언어는 생물학이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 생겨났다.
(Language Driven By Culture, Not Biology, Study Shows)
AiG News
만약 보편적인 문법(grammar)이 자연선택에 의해서 진화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을까? (ScienceDaily. 2009. 1. 19) 그것은 최근의 한 연구가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알고 있다!
PNAS 지에 게재된 최근의 한 논문에 의하면, 언어(language)는 유전자들의 진화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문화적 발달(cultural development)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미국과 영국 연구자들은 내리고 있었다. 그 논문은 실험될 수 없는 진화론적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언어를 성졍적 조망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이 묻고 있는 질문은, 인간의 생물학이 언어적 발달을 수용하도록 진화되어졌는가? 또는 생물학이 이미 거기에 있었는가? 이다. ”언어 유전자들은 매우 안정적인 언어적 환경에서만 오직 상호진화 될 수 있었을 것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언어적 환경은 자연선택을 위한 안정적인 표적을 제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그들은 대답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는 유전학에 비해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여 유전학과 나란히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ScienceDaily는 설명하고 있었다 :
”사람은 자연선택에 의해서 진화된 유전적 ‘언어 모듈(language module)’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저자들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인간 언어의 유전학적 기초는 언어의 출현보다 먼저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우리들이 다른 언어를 말할지라도, 모든 사람 그룹들은 같은 언어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과 매우 다른 문화적 언어를 배우는 사람의 능력과 일치한다.
런던대학의 닉 채터(Nick Chater)는 덧붙이고 있다 :
”우리 논문은 인간 언어의 진화론적 기원과 유전학적 기초에 관한 이론들의 내부적 모순들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언어에 대한 유전학적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인간 언어는 우리의 유전자들이 따라가는 것보다 너무도 빠르게 진화되어왔다. 이것은 언어가 생물학에 의해서라기 보다, 문화에 의해서 모양을 갖추고 생겨났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보편적인 문법이 자연선택에 의해서 진화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것은 발생할 수 있었을까? 우리의 발견은 언어는 생물학적 적응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진화되어진 시스템에 의해 존재했음에 틀림없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언어는 사회적 지능(social intelligence)이라는 독특한 인간 능력으로부터 발생되었다는 널리 알려진 이론들과 일치한다.”
또한 채터는 전체 인도-유럽 언어 그룹은 1만년 이내에 갈라져나갔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언어가 어떠한 진화론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는 것보다, 오히려 창조 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독특한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바벨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해부학적 구조를 바꾸시지 않으면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그리고 흩어진 사람들은 오늘날에 이르러 더욱 많은 언어들로 다양화되었다.
For more information :
FOXP2 and the non-evolution of human language
Is there any such thing as a primitive language?
Get Answers : Anthropolog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9/01/24/news-to-note-01242009
출처 - AiG News, 2009.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