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기원에 관련하여 주고 받아 온 질문과 답변들
1. 제기되어온 질문들
인간은 어떻게 기원하게 되었는가? 왜 인간은 모든 다른 생물들보다 우월한가?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과 채소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태양과 기타 별들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가? 지구, 태양, 행성들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주와 모든 원소들과 물질들, 에너지 그리고 초대형 시계를 방불케 하는 정밀한 자연계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세상에서 죽음과 부패와 모든 퇴화(엔트로피)가 일어나고 있는가? 만물의 궁극적인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이와 같은 것들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질문들 중의 일부에 불과하다. 4,000에서 6,000년 동안의 인류의 기록된 역사상 가장 선각적 지성들은 이런 질문들의 해답을 찾으려고 부심해 왔다.
2. 교과서는 무어라고 가르치는가?
(나는 이 책 내내 진화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이 믿고 가르치는 것들과 관련하여 그들 스스로의 말을 존중하는 뜻에서 수많은 주장들을 인용하겠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과거로부터 학교에서 사용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고대사 책에 씌어 있는 인간의 기원이라는 주제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세계대백과사전(2권12쪽)은 지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지구의 나이는 몇 살일까?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고 말한다.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이른 기록이 겨우 5,000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지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 기록 중에서 처음 천년 동안은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도 않다. 내가 인용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The Story of Man's Early Progress (1920, by W. West)'는 3쪽에서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최초의 인간들은 현대의 가장 미개인보다도 더 무력하고 야만스러웠다. 그들의 유일한 의복은 그들의 몸을 가려줬던 거친 털이 전부였다. 그들은 손 그리고 원숭이의 것과 같은 무서운 이빨과 손에 들린 몽둥이와 돌멩이 외에는 불이나 칼도 없었고 어떤 도구 또는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최초의 주목할 만한 것들은 몇몇 미개인들에 의한 다음과 같은 발견이었다.
즉 그 미개인들이 평평한 돌을 다른 돌과 마주쳐 작은 조각들을 떨어내서 날카로운 날이나 뾰족한 끝 그리고 손으로 잡기에 편리한 모양이 되게 하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이런 발명으로 인하여 인간들은 구석기 시대로 도약하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석기시대가 적어도 십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몇 쪽 뒤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략 1만 년 전쯤에 어떤 창의적인 야만인(미개인)이 돌을 특수한 다른 돌로 갈아서 돌칼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고 돌끼리 서로 단순하게 마주 쳐서 만든 것보다 더 날카로운 날과 예리한 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발명으로 새로운 시대가 왔다. 구석기 시대(타제석기 시대)가 신석기 시대(마제석기 시대)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어느 창의적인 원시인이 돌을 자르고 깎아서 마침내 더 좋은 돌연장을 만드는데 9만 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정말 놀랍다. 그 원시인은 정말로 그 정도로 지능박약아란 말인가? 게으름과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발명의 어머니는 분명코 그들에게 그 보다는 훨씬 더 일찍이 다가왔을 것이다.
알렌 콘슬라와 테리 스마트가 공동으로 저술한 최근의 한 역사 책 'People and Our World-A Study of World History (1977-1984)'에는 다음과 같은 서문이 있다.
“사람들은 지구 최초의 거주자들에 대해서 늘 궁금해 했다. 선사시대의 사람들은 글을 쓸 줄 몰랐고 기록을 남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기는 어렵다. 이 시대를 선사시대 즉 기록된 역사 이전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은 구석기시대,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등 3개 기간으로 구성된 석기시대에 관해서 기술한다. 저자들은 이런 시대의 사람들은 동물들을 사냥하고 야생의 식물이나 열매를 따먹고 살았던 유목민 또는 방랑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소위 아주 옛날의 인간화석이라고 불리는 고고학적 발굴물들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이 화석들은 루이스와 메리 리키 부부, 그리고 그 아들 리처드가 아프리카에서 발견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아프리카나 지구의 여타 지역에서 발견했는데, 그 연대를 175만년에서 375만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나톨 마조와 존 피플(Anatole Mazour and John People)이 쓴 또 다른 역사책 'A World History (1975)' 5쪽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최근에 발견된 뼈들은 인간으로 추정되는 생물체가 50만년 내지 175만년 전에 아프리카에 생존하였다는 사실을 과학자들로 하여금 믿도록 유도하고 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생물체가 현대 인간들과 직접적인 유사점은 거의 없지만, 그들은 직립 보행하였고 인간들과 같은 신체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돌과 나무 조각들을 연장이나 무기로 사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수십만 년 동안에 인간들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들의 생활방식은 동물들과 매우 흡사했을 것이다. 그들은 육식동물들처럼 사냥을 했을 것이고 여타의 많은 동물들처럼 식용의 열매나 뿌리들을 모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3가지의 특성들이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고 발달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첫째, 직립 자세는 사냥을 하고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손으로 무기를 잡을 수 있게 했다. 둘째, 말을 할 수가 있어서 언어를 구사하여 정보를 교환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셋째, 큰 두뇌를 가지고 있어서 정보를 활용하고 더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진화론이 참되다고 해도 한 생물체가 현대 인간으로 발전하는데 수십만 년에서 100만 년 이상씩이나 걸렸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6,000년 전인가? 인간이 6,000년에서 8,000년 전에 돌연히 인류역사의 장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동물도 말을 못하는데 무엇이 유독 인간만이 말을 할 수 있게 했는가?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생물체보다 큰 두뇌와 분석력을 갖게 했는가?
1961년도에 발행된 라이프(Life)지 8쪽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인간의 진화 역사는.......1,500만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띄엄띄엄 씌어진 기록 중 5,000년의 역사가 인류의 알려진 역사이고, 나머지의 역사들은 석기시대의 사냥꾼 세계의 발자취들을 포함한 채 침묵하고 있다. 인간이 진화하는데 걸린 1,500만 년 중 우리의 육체와 두뇌가 엄청나게 변했다는 사실 이외의 것에 대하여는 우리는 오늘날 겨우 한두 움큼의 이빨 부스러기, 심하게 손상된 한두 조각의 두개골, 죽은 사냥꾼들의 마법의 조각품과 그림들, 우리가 캄캄한 정글에서 위로 기어오르던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여줄 소수의 조잡한 연장들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사람들이 불과 연장을 쓰는 법을 배우는데 수백만 년이 걸렸다는 말인가?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38
참고 :
한자에 숨겨져 있는 창세기
Ethel R. Nelson
미국 병리학자 Ethel R. Nelson 박사는 한자의 기원에 창세기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을 발견, 연구 시작.
한자의 발생 기원은 B.C.2500 경으로 알려져 있고, 4500 년 동안 변함없이 보존되어오고 있음.
유교와 도교가 중국에 성행한 시기는 B.C. 5세기,
불교가 중국에 소개된 것은 B.C. 1세기경 (67년) 임.
공자, 노자, 석가의 가르침이 있기 전인 B.C. 500년 이전의 종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음.
고대 중국인들은 미신보다 유일신인 하나님을 섬겼다는 증거들이 도처에서 발견되며,
하나님을 '하늘 위에 계신 통치자 = 상제(上帝, 샹다이, Shangdai)' 라고 부르고 모심.
이것은 창 17:1)과 시 91:1)의 전능하신 하나님(샤다이, Shaddai)과 원어상의 발음이 비슷.
중국에도 구전으로 내려오는 대홍수 이야기가 있는데, 자신들은 이를 극복한 '누아'의 자손으로 믿고 있음 (노아와 발음이 비슷).
몽고, 중국, 극동 아시아 쪽으로 이동해온 인종은 메소포타미아 근처에서 이동해온 인종임.
이들 중 일부는 황하 유역에 정착하여 한족의 조상이 되었고, 일부는 만주와 한반도까지 들어왔음.
이들은 한자를 만들 때, 자신들의 섬겼던 상제와 조상들의 이야기를 담았을 것이 분명함.
아담은 므두셀라때까지 살아 있었으며, 므두셀라는 셈의 때까지, 셈은 바벨탑 사건 이후 400년을 더 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천지창조, 노아의 홍수사건, 바벨탑 사건까지 거의 전부를 후손들에게 구전으로 전해줄 수 있었을 것임.
다음의 한자들에 담겨져 있는 창세기의 내용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1. 船 (배 선) : 인류 최초의 거대한 배(舟)인 노아의 방주에는 8명(八)의 사람(口)이 탔음.
2. 造 (지을 조) : 흙(土)에 생기( ' )를 불어넣으니 사람(口)이 되어 걸어다님(造). (창 2 :7).
3. 田 (밭 전) : 네개의 강(+)이 흐르는 동산(口). 에덴동산 (창 2 :10~14).
4. 男 (사내 남) : 에덴동산(田)에서 쫒겨나 힘쓰고 수고해야(力) 되는 사람.
5. 女 (계집 여) : 첫 번째(一) 사람(人)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서( ' ) 만든 사람.(창 2:21~22).
6. 兄 (형 형) : 말하는(口) 사람(人). 가족을 대변하여 하나님께 말하는(예배드리는) 자. 장자권자.
7. 兇 (흉악할 흉) : 형(兄)인 가인이 저주를 받아 표(×)를 받게 됨. 터진 입이 되어 가족의 대변자의 위치를 상실함을 의미.
8. 鬼 (귀신 귀) : 에덴동산(田)에서 사람(人)에게 은밀히 활동하는 것.
9. 魔 (마귀 마) :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林) 사이에서 뱀으로 위장되어 있는 귀신(鬼).
10. 生 (날 생) : 수평의 3 획은 하늘, 땅, 바다를 상징. 八은 생기를 뜻함.
11. 品 (물품 품) : 세 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것.
12. 替 (대신 체) : 성부와 성자의 두분(夫, 夫)을 대신하여 말하시는(曰) 분(요 14:16,17). 그분은 성령님.
13. 示 (보일 시) : 제물을 차려놓는 제단을 본뜬 모양. 하나님은 본래 보이시지 않는 분이나, 사람에게 나타나시길 원하시는 분임. 하늘 위에서는 한 분, 하늘 아래에서는 세 분을 나타냄. 하나님을 나타내는 부수가 됨.
14. 禁 (금할 금) : 하나님(示)께서 두 나무(林)에 대해 명하신 것.
15. 婪 (탐할 람) : 두 나무(林)를 바라보는 여자(女)의 마음.
16. 神 (하나님 신) : 示(하나님, 계시하다) + 申(펴다, 말하다).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신 분.
17. 祝 (빌 축) : 형(兄)이 하나님(示)께 부탁하는 것.
18. 祈 (기도할 기) : 하나님(示)앞에서 두 손을 도끼날처럼 모아들고(斤) 하는 행위.
19. 祭 (제사할 제) : 제단(示)위에 고기(祭 = 肉)를 손(手)으로 잡아드리는 것.
20. 祥 (상서로울 상, 복 상)) : 하나님(示)에게 양(羊)을 드리는 것.
21. 祀 (제사 사) : 오전 9~11시(사시, 巳時)에 하나님(示)을 뵙는 행사.
22. 祖 (조상 조) : 하나님(示)과 같은 모습(且, 같을 차)이었던 사람.
23. 福 (복 복) : 하나님(示)과 첫(一) 사람(口)이 에덴동산(田)에서 사는 상태.
24. 先 (먼저 선) : 흙(土)에 생기(八)를 불어넣어 된 처음 사람(人).
25. 火 (불 화) : 사람(人) 주변에서 나던 영광스런 광채(火).
26. 榮 (영화 영) : 빛을 발하는 두 사람(火火)이 선악과나무(木)와 격리되어(冥) 있을 때의 상태.
27. 仁 (어질 인) :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 두(二) 사람(人)의 성품.
28. 西 (서녁 서) : 최초의(一) 사람(人)이 살던 동산(口)있던 방향. 에덴동산은 중국 사람들에게는 서쪽이었음.
29. 要 (요긴할 요) : 최초의(一) 사람(人)이 있던 동산(口)에서의 여자(女).
30. 肉 (몸 육) : 아담의 몸(同)에 손을 넣으셔서(入) 한 사람(人)을 만듬.
31. 元 (시작 원) : 아담과 하와 두(二) 사람(人)으로 부터 인류는 시작됨.
32. 僉 (모두 첨) : 지구상의 인구는 모두 합쳐(僉) 두 명(口口, 人人)이었음.
33. 完 (완전 완) : 두(二) 사람(人)을 만들어 가정(집, 完)을 이루게 하심으로 모든 창조 행위를 마치심.
34. 裸 (벗을 라) : 금단의 열매(果)를 따먹고 벗은 줄을 알게되어 옷(衣)을 입게됨.
35. 始 (비로서 시) : 여자(女)가 남모르게 먹음으로(口) (죄, 비극이) 시작됨.
36. 初 (처음 초) :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衣)을 입히기위해 양에게 칼(刀)을 댐. 이는 우리의 죄를 위해 피를 흘려야하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첫 사건.
37. 園 (동산 원) : 흙(土)으로 만들어진 두(人人) 사람(口)이 있던 울타리(口).
38. 來 (올 래) : 선악과를 따먹은 후 나무(木)사이에 숨어있던 두 사람(人人)이 나옴.
39. 衣 (옷 의) : 범죄한 두 사람(人人)을 덮어주는 것.
40. 義 (옳을 의) : 손(手)으로 양(羊)를 쳐서(戈) 드림. 나(我)의 죄를 위해 양(羊)을 드리는 것.
41. 犧 (희생 희) : 흠 없는(秀) 소(牛)와 양(羊)을 찌르는(戈) 것.
42. 水 (물 수) : 수평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수직으로 떨어짐을 묘사. 대홍수 사실이 내포됨.
43. 洪 (홍수 홍) : 노아의 8식구(八)가 함께 손잡고(共) 치뤄낸 물난리.
44. 沿 (물따라 내려갈 연) : 여덟(八) 사람(人)이 물(沿)위에 떠있는 것.
45. 穴 (굴 혈) : 여덟(八) 사람에게 지붕(穴)을 삼고 거쳐했던 곳.
46. 空 (빌 공) : 동굴(穴)에 있는 사람들이 일하러(工) 나갔을 때의 상태.
47. 舌 (혀 설) : 바벨탑 사건 후 천(千)가지 소리(口)를 내게 됨.
48. 合 (합할 합) : 모든 사람(人)들이 한(一) 언어(口)를 사용.
49. 塔 (탑 탑) : 사람들(人)의 언어(口)가 하나(一)일 때, 흙(土)으로 쌓은 것으로, 후에 잡초(草)만 남게 됨. 바벨탑의 건설과 저주를 의미.
50. 遷 (옮길 천) : 서쪽(西, 바벨탑이 있던 시날 땅)에 큰(大) 분산(印)이 있어서 이동하게(運) 됨.
51. 血 (피 혈) : 그릇(皿)에 담겨 하나님께 드리는 생명( ' ).
52. 楚 (쓰라릴 초) :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林)의 열매를 따먹음(疋,조각)으로 시작된 것.
* 참조 : 1. 중국의 ‘알려지지 않은’ 신에 대한 기원 : 고대 상형문자인 한자 속에 나타나있는 성경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09&bmode=view
2. The Lamb of God hidden in the ancient Chinese characters
http://www.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tjv13n1chinese_lamb.pdf
3. Noah’s Ark hidden in the ancient Chinese character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2/j19_2_96-108.pdf
*관련기사 : '성경으로 보는 한자의 세계’ 한문 강좌 열어 (2012. 9. 22. 시사코리아저널)
http://www.koreaj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477
한문보존협회, ‘성경으로 보는 한자의 세계’ 강좌 실시 (2012. 9. 22. 광주타임뉴스)
https://www.timenews.co.kr/web/news/article/176813
한자어에 담긴 성경 이야기 (2010. 7. 21. 아이굿뉴스)
https://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8507
성경 배우면서 한자도 익힌다-한자 속에 숨겨진 성경말씀의 비밀 (2014. 7. 31. 고신뉴스)
http://www.kosi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857
구약성경과 한자 • 찬송가와 한자 강좌 (2021. 10. 16. KMC News)
http://www.kmc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3023
출처 - 창조지
고대 이집트의 치약
(A Tale of Ancient - Toothpaste)
David Catchpoole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 도서관에 있는 파피루스 문서 모음집에서, 서기 4세기경 이집트의 치약 제조법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을음, 아라비아고무, 물을 섞어 만든 검정색 잉크로 기록한 (1500년이 지난 지금은 바래진) 어떤 고대 이집트인이 ”희고 완벽한 이를 위하여” 라는 제목으로 기록해놓은 처방전이다. 이것은 지구상에서 알려져 있는 가장 오래된 치약 제조법이다.
최근 치의학회에서 나온 발표에 따르면, 이 처방엔 민트, 소금, 약간의 후추가 포함되어 있고 주원료는 붓꽃(dried iris flower)이었다. 이 고대의 처방전은 학회에 모인 의사들 가운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최근 치과 연구자들이 단지 최근에 붓꽃이 잇몸질병을 치료하는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에 상업적인 개발 가치가 있음을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이 고대 이집트의 치약은 ”시간을 거슬러 앞선”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콜게이트사에서 첫번째로 상업적 수단의 치약을 발매하기전인 1873년까지도, 사람들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한 비누와 소금물을 섞어 만든 물질을 치약으로 쓰고 있었다.
치의학 학회에 참석했던 한 치과의사는 실제로 자신이 그 매운 치약을 써보고 ”그것은 불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엔 입이 신선해짐과 깨끗해짐을 느꼈다”고 말했다.
4세기의 이 치약 처방전은 고대 이집트 도시인 크로코딜로폴리스(Crocodilopolis) 외곽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뒤, 1878년 구매되어진 파피루스 기록 뭉치 속에 있었다.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의 파피루스 수집물 분야의 책임자이자, 그 오래된 치약 제조법을 찾아낸 허만 하라우어(Hermann Harrauer) 박사는 덧붙여 설명하기를, ”파피루스는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수시로 재사용되었고, 이 치약 처방전에는 아마도 수도원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서신 내용이 뒷쪽에 적혀 있었고, 그것을 쓴 사람은 아마도 이 처방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고 말했다.
하라우어 박사는 계속 이어 말했다. ”그것을 기록한 사람은 수도사(monk)였을 것이다. 서기 4세기에 이집트는 크리스천화 되었고, 대부분의 크리스천 수도사들은 의사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일치한다.”
기록된 시기는 위대한 크리스천 신학자였으며(그리고 창조론자 였던) 케사르의 대주교였던 바실(Basil the Great)이 살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는 당시의 최신 의학과 건강관리가 수도원 사회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라우어 박사는 또 말하기를 ”그 치약 제조법은 당대 의학지식을 매우 많이 가지고 있었던 어떤 사람이 그것을 요약하여 적은 것”이라고 했다.
고대인들을 '원시인'으로 여기는 진화론적 사고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옛 문화에서 선진화된 과학 기술을 발견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고대 치약의 제조법이 밝혀진 그 치의학회에 참석한 한 치과의사는 그것이 밝혀진 것에 대해 이렇게 논평을 했다. ”치과 전문인 중에 어느 누구도 그런 발전된 치약 제조법이 고대 사회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나 다른 고대 사람들이 오늘날의 사람들이 발명한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보고들은 크리스천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경은 창조 주간의 여섯째 날에 인간은 완전한 상태로 창조되었고, 그후 겨우 6000여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대인들의 놀라운 발명은 창조론자들에게는 기쁨이 되지만, 진화론자들에게는 놀라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a-tale-of-ancient-toothpaste
출처 - Creation 26(3):32–33, June 2004.
성경 창조 기록의 독특성
(The Uniqueness of the Biblical Creation Record)
Wayne Jackson
인류가 가지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창조 우화(creation fables)들은 기원에 대한 창세기의 설명이 진실함을 드러내는 데에 도움이 된다.
조지 바톤(George A. Barton) 박사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셈족 언어(Semitic languages)를 가르쳤던 교수이다. 한때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미국인 동양학 연구학교(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의 이사이기도 하였다. 그는 성서 고고학의 전문가로서 인정받았었다. 1916에 처음 출판된 그의 방대한 책 ‘고고학과 성경(Archaeology And The Bible)’에서, 바톤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와 바빌로니아의 창조 이야기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여볼 때, 성경적 설명이 시사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었다.” (pp. 297-298).
1853년 12월에 고고학자인 호르므쯔 라삼(Hormuzd Rassam)은 고대 니느웨(Nineveh)의 한 장소를 발굴하고 있었다. 발굴 도중에, 그는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을 하게 된다. 그는 앗시리아(Assyria) 제국의 마지막 위대한 통치자인 앗수르바니팔 (Assurbanipal, 669-626 B.C)의 궁궐을 발견하였다. 앗수르바니팔 왕은 방대한 점토판(clay tablets)들을 모아둔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가 발견한 기록들을 번역하고 복사하기 위해서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전역의 필사가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수만장의 점토판들을 모았는데, 거기에는 역사적, 과학적, 종교적 문헌들과, 공적인 문서나 기록들, 사적인 문서나 편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Finegan, p.181).
이들 서판의 많은 부분은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872년 12월, 박물관 관리자인 조지 아담 스미스(George Adam Smith)는 이 서판들 중에서 창조와 홍수를 같이 기록하고 있는 바빌로니아인의 이야기를 발견했다고 발표하였다.
창조에 관한 서사시는 일곱 장의 점토판에 대략 1,000행 정도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은 ‘에누마 엘리슈(Enuma elish)’ 라 불려지는데, ‘When above’을 의미하며, 텍스트의 첫 단어들인 ”Time was when above heaven was not named . . .”로부터 취해졌다. 같은 서사시의 다른 점토판들은 아수르(Ashur), 키시(Kish), 우룩(Uruk)에서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이 창조 이야기가 아마도 함무라비(Hammurabi, 1728-1686 B.C.) 시대까지 확장되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이야기들 사이에는 일부 유사한 면들이 발견된다. 하지만 모세에 의해서 쓰여진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 이야기는 에누마 엘리시의 기록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하다. 바빌로니아 서사시들은 다신론적 신화와 미신들이 난잡하게 섞여있는 완전히 불합리한 것이 특징이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이야기 개요
바빌로니아의 창조 기록은 2 명의 고대 신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남성 신의 이름은 압수(Apsu) 이고, 여성 신의 이름은 티아마트(Tiamat)이다. 이들 두 신은 많은 신들을 낳았다. 이들이 낳은 후손 신들은 매우 거칠어서, 평온하고 조용한 날이 없었다. 압수는 이들을 모두 쓸어버리기로 결정하였다. 신들 중에 에아(Ea) 라는 이름의 신 하나가 그의 아버지의 계획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를 암살하였다. 그리고 나서 에아는 바빌론의 도시를 지배하는 신인 마르두크(Marduk)라는 이름의 신을 만나게 된다.
한편 과부가 된 티아마트는 몸이 피 대신 독으로 채워진 여러 무서운 괴물들을 창조하였다. 그녀는 압수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서 이 괴물들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녀는 그녀의 후손 중에 하나인 킹우(Kingu)를 지명하여 복수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그러나 복수의 대상이 된 신들은 티아마트의 의도를 알아 차렸다. 그리고 그녀와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서 마르두크를 선택하였다.
마르두크는 활과, 화살, 곤봉을 들고 티아마트에 대항하기 위해 나아갔다. 그는 그녀를 그물로 사로잡았다. 티아마트가 마르두크를 삼키기 위해서 그녀의 입을 벌렸을 때, 그는 그녀 안으로 강한 바람을 불어 넣었고, 그녀의 몸은 팽창되어졌다. 마르두크는 그녀에게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그녀의 배를 찢었고, 그녀의 심장을 조각내었다. 마침내 그녀는 죽었다. 마르두크는 승리를 뽐내며 그녀의 시체를 밟고 섰다. 그는 그녀의 몸을 두 조각으로 잘랐다. 이것으로부터 하늘(heavens)과 땅(earth)이 만들어졌다. 결국에는 킹우도 죽임을 당했다. 피가 그의 몸 밖으로 흘러 나왔다. 그리고 마르두크는 에아에게 그 피(blood)로부터 인류(mankind)을 만드는 것을 위임했다.
결론
합리적인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 고대 바빌론 서사시의 이상야릇한 이야기와 모세의 기록 사이에 보여지는 분명한 대조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도 모세의 장엄한 이야기처럼 기품 있는 것은 없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성경의 말씀은 얼마나 멋있는가! 성경을 비판하는 공격이 있을 때마다, 성경의 기원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임이 드러나고 있다.
* 노트 : 에누마 엘리슈(Enuma elish)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Enuma Elish : A Babylonian 'Creation' Account를 보라.
SOURCES
.Barton, George A. (1946 7th edition), Archaeology And The Bible (Philadelphia: American Sunday - School Union).
.Finegan, Jack (1946), Light From The Ancient Past (Princeton: University Pres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hristiancourier.com/articles/uniqueness-of-the-biblical-creation-record-the
출처 - Christian Courier: Archives
바벨탑 : 전설인가, 역사인가?
(The Tower of Babel : Legend or History?)
Wayne Jackson
창세기(The book of Genesis)는 그 문서의 제목이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기원(beginnings)’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창세기에 있는 기원들 중의 하나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언어(different languages)들로 말하기 시작했는지에 관한 기록이 있다.
성경에 의하면, 원래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다”(창세기 11:1). 야심에 찬 인류는 시날(Shinar, 바빌론) 평지에 모여서, 높이가 하늘에 닿는 위대한 탑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만드는 의도는 스스로의 이름을 내는 것과, 온 지역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땅에 충만(fill) 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창세기 1:28, 9:1)에 대한 직접적인 불복종이었다. 그들은 그 일을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사악한 계획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선포하셨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 11:7). 그 신성한 명령은 이루어졌고, 사람의 언어(languages)들이 태어났고, 사람들은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었다. (창 11:8)
이 사건은 실제의 역사에 기초한 것인가? 이에 대해 회의론자들은 부정적으로 대답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대해 공공연하게 조롱한다. 한 불신자는 이 이야기를 터무니없는 전설(nonsensical legend)로써 분류한다. 그는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전 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때 오직 한 언어만을 말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이다.” (Allen, pp. 43,44).
종교적 모더니즘의 시도도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 보위(Bowie)는 이것을 상징적 표현으로 특성 되어지는 애들 같은(child-like) 동화적 대답으로 간주하면서, 사람의 언어들이 서로 다른 것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pp. 562-565).
그러나 사실은 성경 이야기의 신뢰성을 의심할만한 아무런 유효한 이유들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언어학 (Philology)
첫째로, 많은 학자들이 실시한 언어 연구에 의하면, 다양한 인간의 언어들은 궁극적으로 공통 어원(common source)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비교 언어학자인 막스 말러(Max F. Maller, 1823-1900)는 고대의 언어들을 연구하여 그것들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관찰하였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의 책 '언어과학(Science of Language)'에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우리들은 언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형식들을 검사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세 분명한 형식(어근, 어미, 어형변화)들을 인간 언어의 한 공통의 기원과 조화시킬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확실히 '예' 라고 답할 것이다.” (quoted by Free, pp. 46-47).
산스크리트어(Sanskrit)는 인도의 고대 언어이며, 고전적인 언어이다. 윌리암 존스 경(Sir William Jones)은 이 언어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하였다. 그는 1786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산스크리트어는 비록 오래 되었지만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언어는 그리스어(Greek)보다 더 완벽하고, 라틴어(Latin)보다 더 풍부하고, 두 언어들보다 더 우아하고 세련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강한 유사성을 가졌고, 둘 다 문법의 형식과 동사의 뿌리가 같다. 그래서 어떠한 언어학자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공통의 어원으로부터 이 언어들이 발생했다는 믿음 없이 세 언어 모두를 조사할 수 없다.” (quoted by Robertson, p. 10).
존은 또한 고트어(Gothic), 켈트어(Celtic), 페르시아어(Persian)가 모두 같은 언어 계통에 속한다고 제의했다. 이들은 오늘날 인도-유럽어족으로 알려져 있다.
창세기에 관한 두 권의 연구 업적으로 존경받고 있는 네덜란드의 학자인 알더스(G. Ch. Aalders)는 이와 같은 말을 했다.
”한 유명한 아시리아어 학자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그리고 여러 섬들에 사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들과 고대 수메르어(알려진 가장 오래된 언어)와 이집트어 사이에는 명백한 관련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전에 창세기 11:1-9의 이야기를 하나의 신화로 여겼던 이 학자는, 결국 성경의 이야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신뢰할만한 이야기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p. 254).
헤롤드 스티거(Dr. Harold Stigers) 박사는 이 문제에 대해 흥미로운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무수한 언어와 방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림잡아 3000여 개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체 언어(parent language)로부터의 종국적인 파생(derivation)은 주요 언어계보의 경계들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충분히 유사하고, 다르지 않은 구문(syntax)과 어휘(vocabulary)의 공통적인 모습들은 공통 조상 언어가 있었음에 틀림없음을 가리키고 있다.” (p. 130).
흥미롭게도 최근에 통속적인 저널리스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여 언어들을 비교한 어떤 언어학자의 연구에 대해서 토론을 하였는데, 그들은 정말로 ‘원시 세계(proto-World)’라 부르고 있는, 한 모체 언어(mother tongue)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숙고하기 시작하였다. 한 저자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마도 성경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바벨탑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저주를 받아 언어의 혼란이 있기 전 적어도 한 때에는 사람들이 정말로 단일 언어를 사용했었던 것 같다.” (Dyer).
그렇다. 단지 오늘날 성경비평가들만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History)
언어들의 기원(origin of languages)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을 지지하는 역사적인 증거들이 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고대의 전설(traditions)들이 있다. 유세비우스(Eusebius)의 인용에 의하면, 아비데누스 (Abydenus, 기원전 4세기 중반의 그리스 역사가)는 파괴된 바벨론의 거대한 탑에 대해 말했었다. 그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이 시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여러 많은 언어들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quoted by Rawlinson, p. 28).
크게 혼돈된 설명 속에서, 분명한 것은 어떤 고대의 사건에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작품 중 하나에서,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썼던 황금의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행동은 그들 언어의 혼동을 야기했다고 말하고 있다. (see M’Clintock & Strong, p. 590).
유대인 역사가인 요셉푸스(Josephus)는 고대의 자료들을 인용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든 인류가 한 언어를 사용했을 때, 그들 중 일부는 탑 하나를 건설하였다. 마치 그들은 그것으로 하늘까지 오르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은 폭풍바람을 보내어 그 탑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모두에게 각각의 특별한 언어를 주셨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도시는 바벨론(Babylon)이라 불려졌다.” (Antiquities 1.4.3).
그러한 참고자료가 아니라도, 창세기 11장의 상세한 기록은 역사적 전망과 놀랍도록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음을 숙고해 보라.
시날(Shinar) 지역에 바벨론(Babylon)이 있었다는 것은 가장 초기의 시대에 분명히 알려져 있었다 (cf. Gen. 10:10; Dan. 1:2).
바벨론에 한 '탑(tower)'이 있었다는 암시는 지구라트(ziggurats)라 불리는 탑들이 고대의 그 지역에 존재했었다는 사실과 확실히 일치한다. 이들 탑들은 하나의 단 위에 다른 단을 건설하는 식으로 여러 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꼭대기로 갈수록 점점 작아진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신성을 나타낼 때 봉헌되어지는 하나의 작은 사원으로 여겨진다.
‘벽돌(brick)’과 ‘역청(bitumen, KJV 에서는 slime)’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진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바빌론 지방에는 건축 시에 흔히 사용되는 돌들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특성이다. 그 지역에서는 불에 구워진 벽돌(fired bricks)들이 수 세기 동안 사용되어 왔다.
바벨탑에 대한 창세기 설명의 역사성이 의심받을 만한 (반기독교인들의 편협한 주장을 제외하곤) 아무런 이유가 없다. 런던 대학의 아시리아학(Assyriology) 교수인 도날드 와이즈만(Donald J. Wiseman)은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창세기 11장의 기록은....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설명에 대한 모든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p. 157).”
심지어 한 자유주의 작가도 ”여기에서 개략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배경은 기대 이상으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Speiser, p.75)” 라고 시인하고 있다.
고고학 (Archaeology)
고대 바벨탑(Tower of Babel)의 정확한 위치는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여러 파괴된 유적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불확실하다. 유대와 아랍의 전승들을 조사했던 많은 작가들은 보시파(Borsippa, 'Tongue Tower”)에 바벨탑의 잔해가 있다고 하였다. 그곳은 북부 바빌론에서 남서쪽으로 11마일 지점(이전에는 시의 근교지역) 이다. 다른 사람들은 탑이 있는 장소를 에트멘안키 (Etemen-an-ki,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사원)로 확인하고 있다. 이곳은 유프라테스강 오른쪽 강둑 근처에 있는 도시의 남쪽 구역에 위치한다. 이들 폐허들의 한 곳 또는 다른 곳은 최초 바벨탑에서 고고학적으로 유래된 것(descendant)일 수 있다.
바빌론의 홍수 이야기를 번역했던 영국 박물관의 조지 스미스(George Smith)는 그의 책 ‘칼데아인의 창세기 이야기(Chaldean Account of Genesis, 1880)’에서, 확실하게 모세의 기록을 생각나게 하는 칼데아인(바빌로니아 지배의 기초를 쌓은 고대 셈족)이 쓴 한 단편(fragment)을 보고하고 있다. 비문(inscription)은 고대의 지구라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 사원의 건축은 신들을 화나게 했다. 한 밤에 신들은 지어진 것을 무너뜨려 버렸다. 신들은 그들은 멀리로 흩어버렸고, 그들의 말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들의 진보로 저지되었다.” (Caiger, p. 29).
결론 (Conclusion)
한때 높이가 3피트, 폭이 4피트인 울타리를 만들었던 아일랜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상한 울타리 모양에 대해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이 울타리를 넘어뜨릴 때, 그것은 이전보다 더 높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 성경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믿지 않는 비판론자들이 성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많은 공격을 퍼붓고 있지만, 성경은 여전히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다. 성경(The Bible)은 신뢰할 수 있는(trustworthy) 책이다.
SOURCES
.Aalders, G. Ch. (1981), Genesis (Grand Rapids: Zondervan), Vol. I.
.Allen, Steve (1990), Steve Allen on the Bible, Religion, & Morality (Buffalo, NY: Prometheus).
.Bowie, Walter Russell (1952), 'The Book of Genesis,” The Interpreter’s Bible (New York: Abingdon), Vol. 1.
.Caiger, Stephen L. (1946), Bible and Spade – An Introduction to Biblical Archaeology (London: Oxford University).
.Dyer, Gwynne (1990), 'Seeking the Mother Tongue,” New Zealand Herald, September 17.
.Free, Joseph P. (1950),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Wheaten, IL: Van Kampen Press).
.Josephus, Flavius (1957), The Life and Works of Josephus, William Whiston, Translator (Philadelphia: John C. Winston Co.).
.M‘Clintock, John & Strong, James (1895), Cyclopedia of Biblical, Theological, and Ecclesiastical Literature (Grand Rapids: Baker, 1968), Vol. I.
.Rawlinson, George (1873), Historical Illustrations of the Old Testament (Boston: Henry A. Young & Co.).
.Robertson, A, T. (1919), A Grammar of the Greek New Testament In The Light of Historical Research (London: Hodder & Stoughton).
.Speiser, E.A. (1964), The Anchor Bible – Genesis (Garden City, NY: Doubleday & Co.).
.Stigers, Harold G. (1976), A Commentary on Genesis (Grand Rapids: Zoadervan).
.Wiseman, Donald J. (1980), 'Babel,” The Illustrated Bible Dictionary, J. D. Douglas, Ed. (Wheaton, EL: Tyndale House), Vol. 1.
. Babel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4/i3/babel.asp
. The tower with many flaws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4/i2/tower.asp
. Answers, April – June 2008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3/n2
번역 - 한동대학교 창조과학연구소
링크 - http://www.christiancourier.com/archives/babel.htm
출처 - Christian Courier : Archives
민족과 언어의 기원
- 창세기의 과학적 이해
- 자료는 '창세기의 과학적 이해'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
창세기 10장
(창10:32)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우리는 이 장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이 장의 주요 관심사는 고고학과 고대 역사학의 전문가에게 해당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유용한 교훈을 포함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들 중 몇 가지를 살펴 보자
<1> 이 구절은 인류가 한 종족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 사실은 생물학적 사실에 의해 증명된다. 이 지구상의 어떤 남자도 그와 다른 지역의 여자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을 수 있으며, 그 또한 자녀나 손자들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족인 것이다.
<2> 이 사실은 진화론자들에게는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수 백만년 전 그 조상이 인간과 원숭이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그러나 어찌하여 이런 일이 한 곳으로부터가 아니고 오십여 군데의 각각 다른 곳에서 우연히 일어날 수 업었을까? 빅토리아 시대의 어떤 과학자들은 복수진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과 그와 유사한 ‘원시인’들은 독립적으로 진화하였고, 그래서 현재 현대인들은 높은 지성과 문화에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이 생각이 극히 부조리한 것임을 증명하였다. 사실에 맞는 유일한 설명은 한 중심점으로부터 세계 전역으로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가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조차도 모계로만 전달되는 생체 내의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 연구를 통하여, 인류는 아프리카의 한 여인으로부터 퍼져 나갔다고 주장하며, 이를 인류의 조상격인 ‘이브’ 라고 주장하는 연구진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인류의 조상은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전파되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3> 세계 전역에 걸쳐 인간들은 그의 이웃에 대한 자신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이야기를 꾸며왔다. 히틀러는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 또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진화론의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원리를 도입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순수혈통의 아리안 족속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환상극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성경은 모든 나라에 퍼져 있는 모두가 노아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한다.
<4> 그것은 또한 인류가 아직까지도 세 부류 - 백인종(대부분의 유럽인), 황인종(한국, 중국, 인도, 중동 등의 아시아인) 그리고 흑인종(대부분의 아프리카인)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분류를 셈, 함, 야벳족으로 거슬러 올라가 적용시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대략 흑인종은 함족, 백인종을 야벳 등으로, 또한 황인종을 셈과 같이 그 분류를 세 가지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치를 보이고 있다. 대략 지금의 현재 중동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마도 가장 노아의 식구들과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곳에서부터 시작하여 계속 동쪽으로 이주하여 셈족인 아시아 인종이 되었을 것이며, 그들은 종교성이 대단히 강한 민족이다.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 즉 기독교, 유대교, 회교, 불교, 유교, 힌두교 등이 이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물론 기독교의 신교는 종교 개혁 후 유럽인인 야벳 족속에 의해 창대하게 되었다. 진실로 야벳이 창대하게 되어 셈의 장막에 거하지 않는가? (창9:27). 예수님을 백인종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는 서양의 영향을 받은 텔레비전 및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Christ)과 같은 영화의 영향이고, 그는 우리와 같이 검은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지금의 중동사람과 매우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진화와 언어
전 장에서 우리는 장기를 두는 능력 혹은 음악성과 같은 인간지력의 경이에 대해 약간 생각해 보았다. 지금 우리가 바벨탑에서 일어난 일들을 토의하기 전에 ‘언어’에 대해 고려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과학’은 그 주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1> 다윈이 1864년 진화론을 주창한 이래 과학자들은 사람의 조상에 대해 적은 증거들이라도 힘을 다하여 찾아왔다. 수백 가지의 실험이 침팬지의 새끼부터 어미까지를 대상으로 행해졌으나 아직까지 그 어느 누구도 ‘말하는 침팬지’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고작 으르렁거리는 것과 우리가 타잔의 치타라는 침팬지를 통해 익숙한 ‘후-후-’ 라는 어휘가 그들의 한계이다.
<2> 다윈 이후 약 50년 동안 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동물들의 으르렁 소리, 부르는 소리 등으로부터 진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그들의 이론에 매우 자신만만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원시’ 언어에 대한 연구가 증가됨에 따라 이 이론들은 조용히 물러갔다. 현대학자들은 이 주제에 대해 완전히 언급을 회피하거나, 그들이 실제로 이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자백하는 양자택일의 경우에 놓여 있다. ‘아마도 우리는 언제 언어가 시작되었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초기 언어가 어떠한지에 대해 유용한 고찰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창조적 언어의 능력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어능력이 완전하게 형성되지는 않았을지라도 다른 형질과 같이 점진적으로 진화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라고 주장한다.
<3> 1950년대와 60년대에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 실험은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용하려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용량의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포기되었다. 그러나 2개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1400CC의 머릿속에 모든 정보를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10개 언어 이상을 구사할 수도 있다.
창세기 11장
(창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시날은 정확히 말하면 아라랏의 남남동편의 바빌로니아(지금의 이라크)이다. 그러나 아마도 성서의 기자는 그 자신의 위치, 즉 이스라엘부터 본 방향을 지칭하고 있는 것 같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에 의해 수원이 연결된 평야들은 고대 시대의 그 비옥함으로 널리 알려졌다.
(창11: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Q : 어떻게 몇 가족이 성을 쌓아 그 꼭대기의 탑이 하늘에 닿게 할 수 있었을 것인가?
A : 많은 학자들이 벨렉(그의 이름은 ‘나뉘었음’을 의미함)이 언어의 혼돈시대에 태어났다고 믿는다.
이는 노아 홍수 후 100여년이 지난 때이다. 이상적인 조건 - 전쟁, 질병, 사고가 없는 상태 -을 생각할 때 방주에서 나온 3쌍의 사람들이 매 8년마다 그들의 수를 2배로 늘렸다고 생각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노아는 세 아들 부부를 통해 손자만 16명을 두었다.). 이 증가는 한 세기를 지날 때 20,000명 이상을 더한 수일 것이다. 적어도 그 당시까지 노아의 후손들은 수천 명에 이르렀을 것이 확실하다.
(창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사실들이 이 놀라운 기적과 일치하는가?
<1> 오래 전에 기록된 언어일수록 더 어렵고 복잡하다. 고대 중국어는 현대 중국어보다 더 어렵고, 고대 헬라어는 현대 헬라어보다 더 어렵다. 가장 어려운 언어 중의 하나는 산스크리트어미여, B. C 1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각 동사는 500여 가지의 변화를 가지고 있다.(영어와 비교해 보면, 겨우 5가지로 do-does-did-done-doing이다) 중국기록은 B. C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6000여 기본자(한글은 24자)를 가지고 있었다.
<2> 원시인들이 썼던 언어들은 문명인의 언어들보다 매우 복잡하다. 에스키모인들은 현재 시제만도 63가지 형이 있으며, 눈의 흰색에 관한 표현도 10가지가 넘으며, 단순한 명사 하나만도 252 가지의 변화(단어 끝의 변화로서 예를 들면 he-his-him 등인데, 영어에는 명사의 변화란 없고 대명사의 변화뿐이다)를 갖는다.
<3> 세계 그 어떤 곳에서도 고도로 발달하고 매우 복잡하여 정확하게 표현 가능한 언어를 갖고 있지 않은 인간 집단은 없었으며, 실제 석기시대의 도구들을 사용할지라도 언어는 매우 발달했다.
<4> 세계에 약 50여 종의 분명한 어족이 있으며, 각각의 언어들은 서로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것 같다. 그것들 중 몇 종류들이 보다 큰 분류체계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등은 모두 라틴어에 귀속되고, 우리는 일본, 몽고, 헝가리, 핀란드 등과 같이 우랄알타이 어족에 포함된다). 오직 피레네인들에 의해 말해지는 바스크어는 어떤 조상어나 자손어를 갖고 있지 않다. 가장 최근의 이 주제에 대한 연구서는 조오지 스타이너가 쓴 ‘바벨탑 이후’이다.(O.U.P. 1975) 그는 ‘원래의 언어를 재조립하려는 모든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아직까지도 모든 인류는 한 민족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데 동의한다.
<5> 모든 인류는 어떤 언어든지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입술, 혀, 입, 이 등의 사용에 있어서는 놀랄만한 다양성이 있다. 어떤 언어들은 터지거나 폭발하는 것 같고, 어떤 것들은 쉿소리를 내는 것 같고, 어떤 것들은 우르르 울리는 소리를 내고, 어떤 것들은 휘파람 소리를 낸다. 동양의 언어 중 많은 것들이 음조를 갖고 있어서, 그것들을 말할 때는 정확한 단어뿐만 아니라 정확한 음조까지도 유의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게 된다.
<6> 어떤 언어는 극히 복잡하다. 우리의 국어대사전은 23만이 넘는 단어를 수록하고 있다. 각 단어는 뿐만 아니라 하나의 뜻 혹은 여러 가지의 뜻을 갖고 있으며 교육받는 사람은 1분에 120여 단어를 조합하여 의미 있는 문장들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없다. 23만여 단어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는 수백만, 수십 억의 조합된 문장들을 생각해 볼 때에 한글과 같이 단순한 언어에 있어서까지도 기적에 가까운 사고와 선별의 능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어떤 원숭이나 그 외의 다른 동물 중에서 이제껏 단 한 마리도 이러한 추상적 사고, 단어의 선택 그리고 의미 있는 대화의 능력에 대해 그 모양이라도 흉내낼 수 없었다.
결론
1. 위의 모든 사실들이 언어의 진화론 - 소리의 나열에서 문법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원시적인 것으로부터 문명화된 것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을 전적으로 반박한다. 우리의 한글은 서서히 진화해온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께서 창제한 것이다.
2. 위의 모든 사실들은 완전히 성경기록과 일치한다.
첫째, 언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고귀한 선물이다. 이 기능은 본능처럼 우리에게 주어졌고 처음부터 완전했다. (물론 우리는 영어와 같은 ‘젊은’ 언어가 앵글로 색슨어와 프랑스어 등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둘째, 바벨에서 하나님은 원래의 한 가지 언어를 나누어 50여 개의 주요 언어들이 되게 하셨으며, 모두가 똑같이 복잡하며 모두가 길고도 어려운 공부 없이는 능숙하게 이해될 수 없게 하셨다.
(창11: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1> 당신은 시베리아, 그린란드, 사하라 사막, 혹은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사는 원주민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중 대부분은 살기는 고사하고 여행을 위해서도 이와 같이 살기 어려운 기후 지대를 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사실은 사람들이 위 지역 모두에 살고 있고 그 곳에서 살기를 택하였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인간은 왜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평지를 떠나서 거의 지구의 모든 끝으로 흩어지게 되었는가? 인류학자들은 여러 추측을 했다.
첫째, 어떤 사람들(예, 에스키모인들)은 보다 나은 수렵지를 찾기 위해 북쪽으로 갔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이웃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이주했다.
셋째, 이라크에 갑작스런 기근이 있었을 것이다.
넷째, 인구밀도가 너무 높았다 등...
그러나 이제까지의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언어의 혼란이다. 노아의 후손들은 ‘땅에 충만하라’(창9:1)는 하나님의 명령 순종하기를 거부해 버렸기 때문에 이런 갑작스런 사건에 의해 그들은 흩어져야만 했다.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타의에 의해서 전 세계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현상이 일어난 것과 같이...
<2> 쓰는 기술이 바벨탑에서 상실되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석한 부족들은 그들의 새 언어에 적절한 문자를 만들어 냈으며, 수학, 천문학, 공학 등에 굉장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다른 부족들은 정글에 방치된 채 아마도 문자를 기록하는 법을 한 번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까지도 그들의 고대 구음을 보유했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보유하고 있다.
<3> 따라서 지구 위에 있는 3000 여종이나 되는 언어들의 다양성은 인간의 현명함의 소산이 아니라 인간 범죄의 결과이다.
출처 - 창세기의 과학적 이해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05
참고 : 5153|4996|4557|4543|4499|4400|4382|4281|4237|4228|4119|3938|1395|736|730|2545|1536
여리고성 기사가 신화?
김무현
여리고 성에 관한 예언 (Prophecy at Jericho)
여호수아 6:26에 여리고성에 관한 예언이 있으며, 열왕기상 16:34절에 그 예언이 어떻게 정확히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참고: 계자 = youngest son)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여호수아 6:26)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열왕기상 16:34)
여호수아 6:26에 여리고성의 정복 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고 강력하게 선포하십니다. 아합 시대 벧엘 사람 히엘이 그 예언에 불순종하여 (열왕기상 16:34) 여리고성을 다시 건축하려다가, 여호수아서의 저주의 예언대로 정확히 첫째 아들과 막내 아들을 잃습니다. 왜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을 다시 건축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까지도 강력하게 경고하시고 심한 처벌을 주셨을까? 여리고성의 유적과 폐허는 하나님의 승리와 심판에 대한 분명한 증거로서 후대에 남겨 놓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심정은 여호수아 4:6-7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여호수아 4:6-7)
최근 소위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한 비교종교학자가 썼다는 『예수는 없다』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며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비평한 책으로서, '창조나 노아의 방주나 아브라함이나 여리고성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는 구약성경은 신화에 불과하며, 만일 선하신 신이라면 구원을 여러 다른 길로 베푸실 것이지, 성경대로 오직 예수를 통한 구원으로만 한정지을 리가 없다”는 식의 내용을 설파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이러한 책을 보면서 신앙이 흔들리며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태복음 24:4)
만일 그런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을 읽으며 자신감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확실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러한 책들은 대부분 일부 근거가 희박한 사실을 원하는 목적대로 그럴듯한 논리체계로 부풀려서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하여 마치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사람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성서 고고학의 대가 넬슨 글루엑 박사가 '성서의 기록이 고고학적 발굴에 있어서 확실히 부정된 적은 한번도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발견들은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히 기록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라고 천명하였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도 밝힌바 있습니다.
다음은 예일대학 고고학자 버로우스(Millar Burrows) 박사의 고백입니다.
”자유신학자들의 성경에 대한 과도한 의심은 그에 관한 데이터를 섬세하게 분석하여 유추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이미 초월자를 전격적으로 배격하는 특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고고학의 발견들은 성경의 역사적 기록들이 신뢰할만한 것임을 더욱 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세속학자들이나 자유신학자들은 애초에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없다는 배경신념 하에서 모든 것을 조사하고 결론짓기 때문에 과연 그러한 편견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앤티적인 비평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신뢰성을 더욱 강하게 해 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발견도 예외는 아닙니다. 1999년 『Creation Ex Nihilo Journal』에 실린 성서고고학의 대가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발굴들이 성경의 내용을 정확히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논문은 1900년대 초기와 중기에 독일과 영국의 탐사팀, 그리고 최근(1997) 이탈리아 탐사팀에 의해 밝혀진 여리고성 유적의 발굴에 관한 보고서를 분석한 내용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리고성은 외벽과 내벽 두 겹으로 되어있으며(그림 참조), 외벽은 5m 정도 높이의 기초성벽(retaining wall) 위에 두께 2m, 높이 7m의 진흙벽돌벽(mud-brick wall)을 세웠으며, 내벽은 지상으로부터 높이가 14m 정도 되는 둑(embankment) 위에 다시 높이 솟아오른 내성벽(inner mud-brick wall)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즉, 난공불락의 구조를 가진 이중 벽의 성으로서 양식만 풍부하다면 몇 년이고 버틸 수 있는 그러한 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 3:15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에 도달한 시기가 추수가 거의 끝나 그 성안에 양식이 풍부한 때였음을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고고학자들에 의해 실제로 발굴된 여러 항아리들 속에 성경이 말한대로 곡식이 가득 들어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면 과연 그렇게 양식이 풍부했던 난공불락의 성이 어떻게 그리 쉽게 함락되었을까?
여호수아 6:20에 보면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비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리 에너지(acoustic wave energy)는 극히 미약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사는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우깁니다.
하지만 독일과 영국의 발굴 팀(성경학자들이 아닌 세속학자들)은 한결같이 강력한 지진운동의 확실한 흔적들이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흔들어 벽을 무너뜨렸다는 겁니다. 혹자는, 그렇다면 지진이 우연히 자연현상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되묻겠지만, 그와 같이 정확한 장소에 그리고 그렇게 정확한 시각에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합하여 소리 칠 때) 땅을 흔드실 분은 창조주 하나님밖에 없으며, 그것이야말로 기적중의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위의 ”무너져 내린지라(fell down flat)”은 히브리 원어로는 ”그 아래로 무너진지라 (fell beneath itself)”의 뜻에 더 가깝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것은 외성벽(outer mud-brick wall)이 수직으로 솟아있는 그 밑의 기초성벽(retaining wall) 바깥으로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성들은 바깥에서 사다리를 올려놓고 밀고 들어오는 침입자들에 의해 안쪽으로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쪽으로 무너지면 그 무너진 돌들을 밟고 내려가 그 성을 정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당시 성을 함락할 만한 사다리도 갖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외성벽이 안쪽으로 무너졌다면 5m나 되는 수직 기초성벽을 올라갈 방도가 없었을 것입니다.
발굴 팀의 조사에 의하면 여리고성은 특이하게도 기초성벽 위의 진흙벽돌 (outer mud-brick)들이 모두 그 아래의 기초성벽 바깥쪽으로 무너져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 무너져 내린 진흙벽돌들이 완만한 경사면(ramp)과 같은 역할을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계단처럼 쉽게 밟고 올라가 그 성을 정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도 정확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6:5에 보면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라고 되어있고 또한 6:20에도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The people went up into the city, every man straight before him(straight up and over)”(Joshua 6:20) 라고 증거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독일 발굴 팀의 보고서에 의하면, 북방의 외벽에는 집들이 그 벽에 붙여져 지어져 있었는데, 오직 한 부분만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라합의 집이 외성벽에 붙어 지어져 있었으며, 여리고 정복 시 라합의 가족들은 집 속에 들어가 살아남았다고 되어 있습니다.(여호수아 6:22) 아마 그것이 라합이 살던 곳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또한, 여호수아 6:24에 보면,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라고 되어있습니다. 발굴 팀에 의하면 땅을 파고 들어가면 1m 정도의 두께나 되는 탄재와 그 흔적들이 나오는 층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가장 특이한 사실은 그 탄것들 중에 곡식이 가득 담긴 저장 항아리(storage jar)들이 많이 발견되는데, 만약 가나안 전쟁을 계속 치러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중요한 군량미를 다 태워 없애 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고 상식적으로 난센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에 대한 해답이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여호수아 6:17-18)
즉 여리고성의 승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100% 하나님께서 하셨고 그에 대한 믿음의 표현으로 (즉 우리가 취한 것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다라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전쟁을 호르마(Hormah; dedicated by complete destruction) 전쟁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역대하 20:15)
그와 같이 항아리에 가득 담긴 채 남아있는 탄곡식의 유적은 성경이 모두 역사적 사실대로 기록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역사적 기록들을 분명히 후세에 남겨 놓고 싶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여리고성을 다시 건축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의 예언을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속 성경 비평학자들의 근거 없는 주관적 역사해석에 조금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그 세속학자들이 주장하는 연대도, 많은 경우 오차가 있는 탄소 동위원소법에 의한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므로 언젠가는 반드시 그 진리가 사실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예전에도 그랬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 앞에는 어떠한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성벽을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참조 : The walls of Jericho
고고학으로 증명된 여리고 성의 기적 (2017. 1. 24. 기독일보)
성경이 참 역사의 기록임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들
(Archeological Evidence of the Bible's Historical Records)
당신은 누구에게 의심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있었다면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불쾌했던 경우 중에 하나였겠지요. 당신은 성경을 읽으면서 또는 기도를 드리면서 의심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야고보서 1:6∼8을 묵상하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야고보서 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성경의 많은 기록들을 과학적/합리적이라는 미명 하에 인간의 작은 머리로 재해석하려는 운동이 자유주의 신학입니다. 이러한 자유신학은 동정녀탄생이나 예수님의 모든 기적들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예수님을 부처나 공자와 같은 훌륭한 도덕선생으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자유주의 신학이야말로 오늘날 진화론과 함께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는 가장 큰 사단의 무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진화론과 인본주의, 자유주의가 팽배했던 유럽의 교회들은 지금 화려한 건물과 간판만 존재하지 신앙은 죽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을 묵상하십시오.
”그 중에 이 세상 신(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린도후서 4:4)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로마서 16:17-18)
성경은 비과학적인 책이 아니라, 초과학적인 책입니다. 지어낸 역사가 아닌, 참역사입니다. 과학으로서는 영의 세계(spirit)나 초월자를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최근까지 발달된 과학은 오히려 진화보다는 창조를 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적으로도 정확한 기록임이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과학에 관한 저서보다 신학에 관한 저서를 더 많이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심도 있는 성경 연구 후에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성경의 역사적 기록들은 세속의 어떤 역사문서보다 더 사실이며 진리이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에서 45년 간 고대 문서들을 연구한 윌슨 교수(Prof. Robert Wilson)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세속의 대부분의 역사 문서들은 편견적이거나 부정확하다. 하지만 오직 성경만은 신뢰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의 많은 고고학자들이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에 의심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앗수르 최대의 성읍이며 요나서에 나옴으로 유명한 니느웨의 유적을 고고학자들이 19세기까지 발견하지 못하여 그것과 관련된 성경의 내용을 의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큰 홍수의 범람으로 잠겨버린 니느웨성의 흔적과 유적들이 발견되고 소 선지서 중의 하나인 나훔 1:1, 1:8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에 다시 한번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에 놀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자면, 1970년경에 시리아에서는 B.C. 2300년경으로 추정되는 Ebla 점토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성경을 비판하는 일부 고고학자들이 창세기에 나오는 '가나안(Canaan)' 이라는 이름이 구약의 후대에서나 쓰인 이름으로, 모세오경이 모세에 의해서 기록되어졌다는 유대전승에 회의적 반응을 보여 왔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창세기 1:2의 '테홈(the deep)' 이라는 히브리 원어가 구약의 후대에서나 쓰였던 단어라고 주장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Ebla 점토판에 의해서 'Canaan'과 'Tehom'의 히브리원어가 이미 모세 전에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이사야 20:1에는 '앗수르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비평하는 많은 고고학자들이 다른 근동의 어떤 역사적 문서에서도 사르곤 왕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성경의 역사성에 오류가 있음을 주장하여 왔습니다. 최근에 이라크의 코사밷(Khorsabad)라는 곳에서 사르곤 왕의 궁전의 일부가 발굴되어 아스돗을 포획한 사실이 그 궁전 벽에 새겨져 있음으로 인해서 성경의 정확한 역사성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습니다.
비슷한 예로 성경에 나오는 헷족속(Hittites)에 대한 기록이 다른 근동지방의 문서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음으로 인해서, 성경의 저자가 역사에 없는 민족을 상상속에서 만들어 낸 것으로 생각되었었습니다. 최근에 터키의 보가즈코이 (Bogazkoy)라는 곳에서 헷족속의 도시와 역사적 기록들이 발굴됨으로써, 성경의 정확한 역사성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예를 더 들자면, 다니엘 5장에 바벨론의 마지막 왕으로 나오는 벨사살 왕(Belshazzar)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다른 근동의 문서에는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 나보니더스 (Nabonidus)로 나와있음으로 해서 성경을 비평하는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성경이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으로 간주하여 왔었습니다. 19세기 중엽에 벨사살이 나보니더스 왕의 아들로서 그 당시에 나보니더스왕과 바벨론을 공통으로 통치하였다는 기록이 적힌 토판(Tablet)들이 발견됨으로써 성경의 정확한 역사성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습니다.
특히 다니엘서의 예언들이 너무나 정확하게 성취되기 때문에 성경을 비평하는 사람들이 그 책이 다니엘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그 후대에 쓰여진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자료는 거의 없으며, 그저 다니엘서에 헬라어 단어 3개가 들어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그리스의 악기 이름으로서 그와 같은 자유신학적 주장에 아무런 근거도 제공하여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고대 바벨론의 유적들은 『다니엘』서의 내용들이 모두 역사적 사실들임을 증거합니다.
예를 들어 발굴된 한 바벨론 건물의 비석에는 다니엘서 1장의 내용처럼 포로로 잡혀온 왕족과 귀족에게 갈대아(바벨론)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된 건물이라 적혀있고, 다른 곳에서 발굴된 거대한 용광로에는 다니엘서 3장의 내용처럼 바벨론 신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화형 시키는데 사용되는 용광로라 적혀 있었습니다. 한편 발굴된 느브가넷살 왕의 명각에는 다니엘서 4장에 느브가넷살 왕이 제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행했던, 그 공백기에 대한 기록이 있었는데, 그 내용과 시기가 성경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최근에 고대 역사를 연구한 데이비드 롤(David Rohl)의 '문명의 기원 (The Genesis of Civilization)'과 피터 제임스(Peter James)의 책 '암흑의 세기들 (Centries of Darkness)' 에 의하면, 성경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고대 초기 이집트의 역사의 일부가 조작/변개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추세에 합류하여 영국 케임브리지 (Cambridge) 대학의 렌프류(Coli Renfrew) 교수는 '고고학의 시대 추정에 새로운 혁명이 진행중에 있다.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만 할 것이다. (A chronology revolution is on its way. History will have to be rewritten.)' 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아무튼 지금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간에는 불신자들까지도 성경을 토대로 연구하고 탐험해야만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믿고 있다고 합니다. 당신은 성경이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오류 없이 기록된 책임을 믿습니까?
호주고고학연구소(Australian Institute of Archeology)의 소장이었던 윌슨(Clifford Wilson) 박사는 '내가 아는 한 지금까지의 어느 고고학적 발견이 성경과 상반된 적이 없었다. 성경은 이 세상이 소유한 어떤 역사책보다도 가장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고고학의 가장 위대한 권위자 넬슨 글루에크(Nelson Gluek) 박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견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찾아낸 수십 가지의 고고학적 발굴들은 한결같이 성경의 역사기록들이 개괄적으로나 세부적으로나 아주 정확하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성경의 내용을 자세히 연구함으로 인하여 종종 놀라운 고고학의 발견들이 이루어졌습니다.” (Dr. Nelson Glueck, Archeologist, from his book 'Rivers on the desert'‚)
성경은 신화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한 인류역사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참조 : Egyptian history and the biblical record: a perfect matc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857
Evidentialism–the Bible and Assyrian chronolog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02
A reliable historical record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20-23.pdf
What is the importance of the Dead Sea Scrolls?
http://christiananswers.net/q-abr/abr-a023.html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23
참고 : 3148|3233|1412|1413|2323|2525|512|1805|3974|3945|3872|3372|303|3249|4148|4071|4100|4237|4258|4329|4375|4376|4377|4380|4381|4382|4383|4385|4390|4391|4394|4395|4400|4402|4405|4409|4422|4458|4470|4742|4771|4804|4819
창세기와 한자 (3)
이재만
중국은 여러 산맥과 사막, 바다들로 둘러싸여 지리적으로 고립된 위치에 있다. 이는 외부로부터 영향도 적게 받았으며, BC 2500년에 시작된 한자 문화도 2,000년 가까이 보존될 수 있는 환경을 이루었다. 중국의 철학인 유교, 도교, 인의 사상, 성악설, 음양오행설은 후에 BC 500년경에 나타난 것들이다.
BC 221년에 중국을 통일시킨 진나라의 진시황은 중요한 몇 가지 정책을 실시하는데, 바로 도량형통일, 제사제도 폐지, 분서갱유, 만리장성 축조 등이다. 그 중에 특별히 분서갱유는 한자의 원래 뜻을 잃어버리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기에 주목할 만하다. 분서갱유는 왕권확립을 위하여 기존의 책들을 모두 불살라버리는 정책을 의미한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얼마나 철저했는가 하는 것은 진시황 이전의 책들이 아주 적은 양만 발견된다는 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다음 통일왕국인 한나라부터 다량의 문서가 전수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에서 문화가 발달했다는 상대적인 평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분서갱유로 인하여 진나라 이전의 역사는 중국인의 기억 속에 사라지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가장 오래된 책을 고려시대의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로 꼽는데, 고조선을 비롯하여 삼한시대, 삼국시대에도 문자와 문화가 매우 발달했을 터인데, 고려시대의 책들이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하는 데는 통일왕국인 고려초기의 분서갱유가 있었음을 배제할 수 없다. 단지 동양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단 왕권확립을 위해서는 분서갱유가 필연적으로 수반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단지 진나라 때 분서갱유로 인하여 그 이전의 역사는 많이 왜곡되었을지라도 뜻 글자인 한자는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당시의 생각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 이외의 것을 참고할 때는 많은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만 바벨탑 사건과 동일한 시대에 만들어진 한자라든지, 지구상에 홍수에 대한 전설이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견된다든지, 용(공룡과 유사함)에 대한 전설을 갖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다든지 하는 공통된 기억들은 그냥 지나치기에 아쉬운 감이 있다.
성경에는 인간들이 하나님 잊기를 잘한다고 기록되어있다. 사사기 2장에 보면,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7절)"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바로 다음에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10절)" 라고 기록되어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이적을 행하시더라도 2대를 넘지 못하고 잊어버리던 이스라엘을 볼 수 있다. 이사야서에서는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라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다. 그들의 아비들이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사람의 계명으로만 가르침을 받았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잊어버리며 살아왔다. 홍수에서 구원 받은 노아의 후손들도, 바로 우리의 조상들도 잊어버리며 살아왔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첫 조상이 타락한 것, 지구 전체를 홍수가 덮었던 것, 언어가 갈라진 것, 모두 잊어버렸다. 그 가운데 아슬아슬하게 남겨진 흔적 중에 하나가 뜻 글자인 한자인 것이다.
창세기와 한자 (2)
이재만
1979년에 출판된 ”창세기 발견”이 커다란 관심을 일으켰지만, 한편 이 책에 수록된 한자들이 정말로 한자가 시작된 초기에 것들인지에 대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이에 대하여 당나라 시대의 기와나 청동유적에서 발견된 문자들을 중심으로 다시 책을 편찬하게 되었는데, 1994년에 출판된 ”창세기와 공자가 풀 수 없었던 수수께끼(Genesis and The Mystery Confucius couldn’t solve)” 이다. 이 책에는 나중에 문자의 모양이 아닌 고대 상형문자를 직접 실었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창세기의 내용을 더욱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었다. 즉 오늘날의 것으로 바뀌기 전의 문자의 모양이 더욱 원래의 뜻을 잘 간직하고 있을 터인데, 실제로 그러한 증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난 호에 보여주었던 船, 造, 禁, 婪에 이어 몇 글자를 더 추가해 보았다.
한자에서 볼 示 자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神(신), 祈禱(기도), 禮拜(예배), 祭祀(제사) 등의 글자에 볼 示 변으로 되어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해당하는 한자를 보아도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조상을 뜻하는 祖(조) 자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示 자와 같다는 의미인 且(차)를 합해서 만들 글자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 처음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은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언급되어있다.
하나님을 뜻하는 볼 示 자와 양 羊(양) 자를 합하여 만든 글자가 행복을 의미하는 상서로울 祥(상)자이다. 양에 대한 글자도 한자에 많이 나오는데, 특별히 성경과 비교할 때 쉽게 해석될 수 있다. 羊(양) 자와 자신을 의미하는 나 我(아) 자를 합치면 옳을 義(의) 자가 된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양을 받으므로 기쁜 일이 일어나고 의로운 자가 된 경우가 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창세기 4: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義)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히브리서 11:4)” 왜 양과 내가 합해서 의롭다는 의미가 되었을까?
사람이 자신이 벗었다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언제일까? 성경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라고 기록되어있다. 벗다라고 하는 裸(라)자는 옷을 의미하는 衣(의)자와 실과를 의미하는 果(과)가 합해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여자가 그 실과(果)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裸) 줄을 알고 무화과(果)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세기 3:6)”
떠내려 간다는 沿(연) 자도 물 水(수) 변에 여덟 八(팔)과 사람을 뜻하는 입 口(구) 자로 되어있다. 노아의 여덟 식구가 있는 방주가 떠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일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 (창세기 7:18)”
한자가 만들어졌다는 시대는 성경적으로 노아홍수가 일어난 직후나 언어의 혼잡으로 인류가 흩어진 바벨탑 사건의 시기와 일치한다. 그렇다면 당시 한자를 만들 당시 중국사람들은 노아와 동시대 사람들이기 때문에 홍수 이전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뜻글자인 한자에 남겨졌을 것이다. 기존에 나와있는 한자의 대한 기원에 대한 책들은 거의 2500년 후인 후한의 허신 때 되서 해석되었으며, 이때는 이미 중국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한자의 본래 의미를 많이 잃어버린 후였다. 실제로 이때는 한나라 이전인 진시황제때 전국을 통일하면서 모든 책을 불태워버린 '분서갱유' 한참 후였기 때문에, 그전 생각들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